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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수간(秋波手柬)

제목정보
대표서명 추파수간(秋波手柬)
저자정보
저자 홍유(泓宥)
역자 하혜정
발행정보
간행시기 조선
형태정보
권사항 v10
확장정보
시작책_시작번호 v10_p0082b
시작책_끝번호 v10_p0097b
시작책_권수 1
시작책_단수 46
끝책_시작번호 v10_p0082b
끝책_끝번호 v10_p0097b
끝책_권수 1
끝책_단수 46

[서지해제]

1. 저자
추파 홍유秋波 泓宥(1718~1774) 속성은 이李, 본관은 전주, 다른 호는 경암鏡巖.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17세에 고창 방장산方丈山에서 출가, 처음에는 편양문파鞭羊門派 조관慥冠에게 수업하였고, 그 뒤 여러 사찰을 다니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았으며, 후에 벽암 문파에 속하는 성안性眼의 법을 이었다. 선종ㆍ교종에 모두 통했으나 만년에는 주로 염불에 귀의하여 후학을 가르쳤다. 제자로는 문연文演ㆍ천제天濟ㆍ관식慣拭 등이 있다.
2. 서지 사항
발행 사항 미상. 필사본. 불분권 1책. 27.4×19.5cm. 표지 서명은 ‘요람要覽’으로 묵서되어 있으며, 권수제는 ‘추파수간’이라고 썼다가 먹으로 지운 상태로 남아 있다. 앞표지 면지面紙에 “을해년(1815) 11월 16일에 월식이 있었는데, 술시 초부터 해시 말까지였다. 이런 일은 고금에 처음이다.(乙亥十一月十六日有月食, 自戌初至亥末, 古今初是事.)”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 책의 필사년을 1815년 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반엽의 행자수行字數는 앞부분에서는 10행 23자이다가 뒤로 가면 14행에 24자~27자 정도로 일정하지 않게 바뀐다. 서체는 앞의 2/3 가량은 일정한 필체였으나, 뒷부분에서는 두세 번 필체가 바뀌고 글자의 크기도 눈에 띄게 작아진다.
3. 구성과 내용
발행 사항 미상. 필사본. 불분권 1책. 27.4×19.5cm. 표지 서명은 ‘요람要覽’으로 묵서되어 있으며, 권수제는 ‘추파수간’이라고 썼다가 먹으로 지운 상태로 남아 있다. 앞표지 면지面紙에 “을해년(1815) 11월 16일에 월식이 있었는데, 술시 초부터 해시 말까지였다. 이런 일은 고금에 처음이다.(乙亥十一月十六日有月食, 自戌初至亥末, 古今初是事.)”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 책의 필사년을 1815년 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반엽의 행자수行字數는 앞부분에서는 10행 23자이다가 뒤로 가면 14행에 24자~27자 정도로 일정하지 않게 바뀐다. 서체는 앞의 2/3 가량은 일정한 필체였으나, 뒷부분에서는 두세 번 필체가 바뀌고 글자의 크기도 눈에 띄게 작아진다.저자의 편지 가운데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만을 따로 모아서 편집한 것으로, 별도의 서ㆍ발이나 목차 없이 바로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서, 총 91편이 수록되어 있다.<개행>편지의 대부분은 〈상회암화상上晦庵和尙〉과 같이 승려들과 주고받은 편지이지만 가족에게 보낸 편지도 많다. ‘상부주전식上父主前式’과 같은 소제목 아래에 아우 등 다른 가족에게 보낸 편지까지도 모두 모아 놓았다. 그 외 유가의 관리나 선비들에게 보낸 편지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봉규정소奉糾正所〉는 화재로 소실된 경판의 중간重刊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동참하려 하는 면모를 알 수 있는 편지이다.<개행>본 서간집을 통해 알 수 있는 저자의 모습은 불가뿐 아니라 유가의 학문에도 밝아서 유가와 불가의 인물들과 두루 시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유불을 대비하여 토론을 할 만한 경지에 이르렀던 학승이다. 반면에 제자나 스승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을 적나라하게 표출할 만큼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