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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소(貞元疏)

제목정보
장소명 정원소(貞元疏)
이명 정원신역화엄경소(貞元新譯華嚴經疏), 화엄경행원품소(華嚴經行願品疏)
저자정보
찬자 이름징관(澄觀)
이명화엄징관(華嚴澄觀), 석징관(釋澄觀), 청량(清涼), 대휴(大休), 화엄소주(華嚴疏主), 청량국사(清涼國師), 화엄보살(華嚴菩薩), 진국대사(鎮國大師), 대통국사(大統國師), 대조국사(大照國師), 화엄관(華嚴觀)
생몰년738.01.29-739.02.16 ~ 839.04.27
국적당(唐)
참고사항Shortcut
장소정보
총록정보 貞元疏十卷 澄觀述
찬술방식 술(述)
교감현황
형태정보
권수 十卷
현존정보
서지정보 권제10: 목판본, 興王寺, 1095. 1095년(壽昌 1) 興王寺 원간본, 대동급문고(大東急記念文庫)(五島美術館)
서지정보 권제2-10: 필사본, 丹州神尾山北谷 禪庵, 1264. 1264년(文永 1) 일본 사본, 금택문고(金澤文庫)
서지정보 권제1-7, 9-10: 필사본, [澄藝], 1227. 1227년(嘉祿 3) 일본 사본, 동대사도서관(東大寺圖書館)
서지정보 : 목판본, [不明], [1333]. 敎藏都監 原刊本 추정 낱장(권6, 제11장 일부), 보광사(普光寺_慶北安東)
연계정보
한문대장경 ◎ 新纂卍續藏(X5 No.227) 『華嚴經行願品疏』 10卷, 唐 澄觀述 _部別 : 中國撰述 大小乘釋經部三 華嚴部疏 - 『卍大日本續藏經』 第一編 第 7 - 『卍續藏經』 (新文豐版) 第 7冊 Shortcut
학술정보
단행본 北島典生, 『華嚴法界義鏡講義』(京都: 永田文昌堂, 1990) Shortcut
단행본 佛書刊行會, 『佛典疏鈔目錄』 卷上, 『大日本佛敎全書』 第一冊(1912)

[장소Bibliographical Introduction]

章疏書名
정원신역화엄경소貞元新譯花嚴經疏
개요
당의 화엄승 청량 징관(淸涼澄觀, 738~839)이 찬술한 『정원신역화엄경소(貞元新譯華嚴經疏)』(10권, 이하 『정원소』)는 798년에 덕종(德宗)의 명으로 40권 본 『화엄경』의 강요(綱要)를 정리하고 그 문의(文義)를 해석한 것으로, 『화엄경보현행원품소(華嚴經普賢行願品疏)』·『정원화엄경소』·『화엄경행원품소』·『정원소』·『행원품소』·『화엄경소』라고도 하며 『만속장(卍續藏)』 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

체제와 내용

40권 본 『화엄경』은 『화엄경』의 마지막 품으로 선재동자가 남방으로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도를 구하여 법계(法界)의 이치에 증입하던 것을 말한 품이다. 60권 『화엄경』에서는 제44권 이하, 80권 『화엄경』에서는 제61권 이하에 해당한다. 40화엄은 정원(貞元) 12년(796)에 인도 오도국의 왕이 보낸 진공품으로 전래되었다. 즉 『화엄경』의 마지막 품인 「입법계품(入法界品)」(40품)으로, 선재동자가 남방으로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도를 구하여 법계(法界)의 이치에 증입하는 것을 설한 품이다. 60권 『화엄경』에서는 제44권 이하, 80권 『화엄경』에서는 제61권 이하에 「입법계품」이 있다. 그 「입법계품」을 계빈국(罽賓國)의 반야(般若)가 장안의 대숭복사(大崇福寺)에서 번역하여 「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라 하였다.
「입법계품」의 전역본인 40권 본 『화엄경』의 전칭(全稱)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으로, 약칭으로는 『보현행원품』이라고도 하며, 정원(貞元)12년에 역출하였으므로 『정원경』이라고도 하며 『대정장』 권10에 수록되어 있다.
『정원신역화엄경소』권10은 40권 본 『화엄경』, 즉 「입법계품」의 주석서이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한 후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행을 닦는지’를 알기 위하여 장엄당사라림(莊嚴幢沙羅林)을 출발하여 남유(南■)하면서 53선지식을 참방(參訪)하는 이야기이다.
<동국대학교 계미향>
장소찬자

중국 화엄종 4조 청량 징관(淸涼澄觀, 738~839)은 월주 산음(越州山陰, 현 浙江省 紹興) 출신으로 속성은 하후(夏侯)씨이다. 11세에 본주(本州) 보림사(寶林寺)의 패선사(霈禪師)에게 출가하여 20세(757년)에 묘선사(妙善寺) 상조(常照)화상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건원연간(乾元, 758~759)에는 윤주(潤州, 현 江蘇省 鎭江) 서하사(棲霞寺) 예(醴)율사에게서 상부율(相部律)을 배우고 다시 본주에 돌아가 개원사(開元寺) 담일(曇一)율사에게서 남산율(南山律)을 배웠다. 또 금릉(金陵)의 현벽장로(玄璧長老)에게서 삼론(三論)을 익혔다.
대종(代宗) 대력(大曆)연간에는 와간사(瓦官寺)에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열반경(涅粲經)』을 들었다. 그 후 회남(淮南)의 법장(法藏)에게서 원효(元曉)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들었으며 전당(錢塘, 현 杭州)의 천축사(天竺寺)에서는 법선(法銑)의 『화엄경』을 들었다. 772년(大曆7年)에는 담계(剡溪)의 성도 혜량(成都慧量)에게서 다시 삼론을 배웠다. 775년에는 소주(蘇州)의 천태학자 형계 담연(荊溪湛然)에게서 천태지관(天台止觀)·『법화경』·『유마경』 등의 경소류를 배웠다. 다시 우두 혜충(牛頭慧忠)·경산 도흠(徑山道欽) 및 하택 신회(荷澤神會) 문하의 낙양 무명(洛陽無名)에게서 남종선법(南宗禪法)을 배웠다. 또 혜운(慧雲)과 함께 북종의 선리(禪理)를 연구하였다.
이상과 같이 징관은 율·선·삼론·천태·화엄의 각종교의를 익히고, 또 경전(經傳)·자(子)·사(史)·소학(小學)·이아(爾雅)·천축실담(天竺悉曇)·제부이집(諸部異執)·사위(四圍)·오명(五明)·비주의궤(秘咒儀軌) 등의 학문도 배웠다. 776년에는 오대산(五台山)과 아미산(峨眉山) 등을 돌아본 후 오대산의 대화엄사(大華嚴寺)에서 주석하며 방등참법(方等懺法)을 수행하였다.
동시에 사주(寺主) 현림(賢林)의 청으로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강경 중에 기존의 소(疏)가 난해하고 의미가 잘 통하지 않아 새로 소를 쓰기로 마음먹고는 만 4년(784년 정월~787년 12월)에 걸쳐 『화엄경소』 20권을 찬하고 대화엄사 및 숭복사(崇福寺)에서 여러 차례 강의하였다.
또 제자 승예(僧睿) 등을 위하여 신소(新疏)의 연의(演義) 수십 권인 『십만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十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를 지었다. 후세에 이 소와 초를 합간하여 『화엄경소초』라 하였으며 그로 인해 그에게 ‘화엄소주(華嚴疏主)’라는 별칭이 생겼다.
796년(貞元12)에는 황명으로 입경하여 주빈삼장(廚賓三藏) 반야(般若)를 도와, 남인도 오도국(鳥荼國, [S] Udra) 왕이 보낸 『화엄경』, 「입법계품」(40권)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조정의 명으로 섬서성(陝西省) 종남산(終南山) 초당사(草堂寺)에서 소를 짓고 해석하여 『정원신역화엄경소(貞元新譯華嚴經疏)』(10권)를 찬술하였다. 다음 해에는 덕종(德宗)의 조칙을 받아 궁궐에서 『화엄경』을 강의하고 ‘청량국사(淸涼國師)’라는 칭호를 얻었다. 또 『수호국계주다라니경(守護國界主陀羅尼經)』 번역에 증의(證義)로 참여하였다.
징관은 838년(開成3년) 3월에 세수 102세, 법랍 91세로 입적하였다. 징관의 제자로는 규봉 종밀(圭峰宗密)·동도 승예(東都僧睿)·해인 법인(海印法印)·적광(寂光) 등의 ‘등문사철(澄門四哲)’을 비롯하여 백여 명이 있으며 법통은 화엄5조인 규봉대사가 이었다.
징관의 저술로는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60권)·『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90권)·『화엄경행원품소(華嚴經行願品疏)』(10권)·『대화엄경략책(大華嚴經略策)』(1권)·『신역화엄경칠처구회송석장(新譯華嚴經七處九會頌釋章)』(1권)·『화엄경입법계품십팔문답(華嚴經入法界品十八問答)』(1권)·『삼성원융관문(三聖圓融觀門)』(1권)·『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2권)·『오온관(五蘊觀)』(1권)·『화엄십요법문(華嚴心要法門)』(1권)·『화엄경강요(華嚴經綱要)』(3권) 등이 있다. 『십이인연관(十二因緣觀)』(1권)은 결실되었다. 그는 일생동안 『화엄경』을 50번 가량 강의하였으며, 단독이나 공동으로 『화엄경소(華嚴經疏)』 400여 권을 찬술하였다.
징관의 불교사상의 특징은 화엄의 중흥이라 할 수 있다. 징관은 일찍부터 여러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참학하였고 『대승기신론』에의 이해가 깊었다. 그런 기반에서 화엄학을 발양(發揚)하였으므로 그의 불교사상 중에는 선종·천태종·『대승기신론』 등이 섞여 있다. 징관은 선교로 융회하여 유심(唯心)을 강조(“總該萬有, 卽是一心;心融萬有, 便成四法界.”)하였으며 일심법계연기설(一心法界緣起說)을 세워 화엄성기(華嚴性起)의 교의를 발양하였다.
<동국대학교 계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