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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科)

제목정보
장소명 과(科)
이명
저자정보
찬자 이름정원(淨源)
이명진수(晉水), 잠수(潛叟), 백장(伯長), 혜인정원(慧因淨源), 진수정원(晉水淨源)
생몰년1011 ~ 1011.12.31-1088.12.19
국적북송(北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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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정보
총록정보 科一卷 淨源述
찬술방식 술(述)
교감현황
형태정보
권수 一卷
현존정보
서지정보 단권: 목판본(宋版), [不明], 1196. 1196년(慶元 2) 간본, 금택문고(金澤文庫)

[장소해제]

章疏書名
(화엄일승교의분제장)과(華嚴一乘敎義分齊章)科
개요
송대의 화엄승 사회(師會, 1102~1166)가 『오교장(五敎章)』을 분과(分科)하여 해설한 것.
체제와 내용

교장총록에는 ‘정원술(淨源述)’이라고 되어 있으나, 확보된 문헌은 송대 師會의 것이다. 따라서 정원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과』가 아니다. 본서는 법장(法藏)의 『오교장(五敎章)』에 과(科)를 나누고 도시(圖示)한 것이다. 1권. 『만속장경』X58(N. 997)에 수록되어 있다. 찬술시기는 사회 65세 경으로서, 『오교장복고기(五敎章復古記)』의 성립과 비슷한 1166년(乾道2) 경이라고 생각된다. 본서의 저본이 된 것은 진수정원(晋水淨源)이 『오교장』을 교정한 중교본(重校本)으로서, 이것은 고래로 일본에 전해진 화본(和本)과는 다르다. 그러나 분과(分科)가 상당히 정확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교넨(凝然)은 본서에 기초해서 『화엄오교장통로기(華嚴五敎章通路記)』를 저술하였다고 전한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
장소찬자

정원淨源(1011∼1088)의 자字는 백장伯長이고 성姓은 양楊씨이다. 동경東京(현 낙양) 보자사報慈寺의 해달海達)에게 출가하여 참학하다가 오대산의 승천承遷에게 화엄학을, 횡해橫海의 명담明覃에게 이통현의 『화엄경론華嚴經論』을 배웠다. 다시 남방의 장수 자준長水子璿(965~1038)에게 『능엄경愣嚴經』, 『원각경圓覺經』,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을 배우고 화엄교학의 오묘한 뜻을 깨닫는다. 정원은 마명馬鳴(Aśhvaghoṣa)과 용수龍樹(Nāgārjuna)를 화엄의 조祖로 세워 화엄7조를 주장했다. 철종 원우元祐 3년1088에 세수 78세로 입적했다. 정원이 살았던 곳에 진수晉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따라 진수법사晉水法師라고 하며, 장수자선長水子璿과 함께 송대 화엄종의 이수二水로 불린다.
사회(師會, 1102~1166)는 중국 송대의 화엄종 승려로서 속성은 알 수 없고, 호는 가당(可堂)이다. 도정(道亭)·관복(觀復)·희적(希迪)과 함께 송나라의 화엄사대가(華嚴四大家)중 한 사람으로서 일컬어진다. 시호는 법진대사(法眞大師)이다. 그는 화엄학이 쇠퇴하는 현상을 통감하고 『공목장(孔目章)』·『수현기(搜玄記)』·『탐현기(探玄記)』등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특히 『공목장』에 정통하였고 이론 중 육상(六相)과 십현(十玄)에 대해 폭넓게 연구하였다. 한편 『오교장』에 대한 몇 편의 주석서를 저술하였는데, 『화엄일승교의분제장분신(華嚴一乘敎義分齊章焚薪)』2권·『화엄일승교의분제장복고기(華嚴一乘敎義分齊章復古記)』3권·『화엄일승교의분제장과(華嚴一乘敎義分齊章科)』1권이 있다. 『화엄일승교의분제장분신』은 젊은 시절에 쓴 것으로서, 분신(焚薪)이라는 이름은 남산율종(南山律宗)의 종조인 도선(道宣)이 위경(僞經)을 모아 불태움으로써 바른 이치를 드러내고자 했던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화엄일승교의분제장복고기』는 1166년(乾道2) 65세 때 쓰기 시작하였으나 「단혹분제장(斷惑分齊章)」에 이르러 병을 얻어 입적하였고, 제자인 선희(善熹)가 유명(遺命)을 받들어 완성하였다. 이외의 저술로서 『화엄융회일승의장명종기(華嚴融會一乘義章明宗記)』1권이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