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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

제목정보
장소명 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
이명
저자정보
찬자 이름회신(懷信)
이명
생몰년794-842(추정) ~ 844-893(추정)
국적당(唐)
참고사항바로가기
장소정보
총록정보 釋門自鏡錄三卷 懷信述
찬술방식 술(述)
교감현황
형태정보
권수 三卷
현존정보
서지정보 권상,하: 목활자본, 江戶梓, 1621. 1621년(元和 7) 木活字本, 일본국립국회도서관(日本國立國會圖書館)
연계정보
한문대장경 ◎ 大正藏(T51 No.2083) 『釋門自鏡錄』2卷, 唐 懷信述 _部別 : 史傳部三 _【原】德川時代刊大谷大學藏本, 【甲】大日本續藏經, 바로가기
한문대장경 ◎ 新纂卍續藏(X87 No.1637) 『釋門自鏡錄』 2卷, 唐 懷信述 _部別 : 中國撰述 史傳部十三 感應神異傳一 - 『卍大日本續藏經』 第二編乙.第 22 - 『卍續藏經』 (新文豐版) 第 149冊
학술정보
학술논문 伊吹敦, 唐僧慧祥に就いて(早稲田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紀要別冊 Vol.4, 1987)
학술논문 西山進, 『釋門自鏡録』の選者について(大谷學報 74巻 1号, 1994)
학술논문 西山進, 『釋門自鏡録』の構成について(大谷學報 74巻 4号, 1995)

[장소해제]

章疏書名
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
개요

『석문자경록』은 당나라 때 회신懷信이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내용으로 하는 불교설화佛敎說話를 채집한 것이다. 주로 석문釋門(출가자)이 인과응보의 도리를 직접 겪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여타 설화와 차별되는 이 책의 독자적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체제와 내용

"앞에는 저자 자신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고 본문은 상·하 양권으로 이루어졌다.
서문에서는 출가한 지 50여 년이 지난 저자가 출가자로서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면서 그 복락은 과분했지만 수행은 턱없이 부족했음을 참회하면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준엄함을 보여주는 설화를 채집하여 자신과 타인이 반성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었다. 본문은 모두 열 가지 주제에 맞추어 열 가지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각 주제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의 불교설화를 수록하였다. 상권에는 일곱 가지 주제가 실려 있다. 첫쌔는 업의 과보는 오래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業繫長遠錄)이고, 둘째는 역죄逆罪(승단의 물건을 훔친 것)를 지은 일천제一闡提(단선근斷善根)의 인과응보(勃逆闡提錄)이며, 셋째는 부처님께서 가르친 법을 경시하고 비방한 것의 인과응보(輕毁敎法錄)이고, 넷째는 현명하고 덕이 높은 스님을 질투한 것의 인과응보(妬賢嫉化錄)이며, 다섯째는 분노와 탐욕과 어리석음의 인과응보(忿恚貪鄙錄)이고, 여섯째는 불교가 아닌 무익한 가르침을 배운 것의 인과응보(俗學無裨錄)이며, 일곱째는 게으르고 오만하며 정진하지 않은 것의 인과응보(懈慢不勤錄)이다. 하권에는 나머지 세 가지 주제가 실려있다. 여덟째는 자비가 없이 중생을 해친 것의 인과응보(害物傷慈錄)이고, 아홉째는 법에 어긋나게 먹고 마신 것의 인과응보(飮噉非法錄)이며, 열째는 승단에 속한 물건을 아까워하여 법대로 나누어주지 않은 것과 승단에 속한 물건을 손상시킨 것의 인과응보(慳損僧物錄)이다. 본 서는 그 주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범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경계하는 것, 곧 역죄逆罪·질투·분노·탐욕·어리석음·승단의 물건을 법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 등을 행한 이가 받았던 준엄한 과보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모두 73가지의 설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 곧 남제南齊의 경릉왕竟陵 문선왕文宣王(소자량蕭子良)이 지은 『정주자淨住子』 일부와 양나라 무제武帝(소연蕭衍)의 『단육식문斷酒肉文』 일부는 인과응보의 설화라는 전체적인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정주자』 중에서도 소자량이 재가자의 마음자세를 서술한 「겸교삼업문檢校三業門」이 수록되어 있고 후자는 무제가 그 시대의 명승名僧과 함께 스님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취지의 측면에서는 불도를 실천하는 바른 자세를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맥락적으로 일치한다. 본서에 수록된 설화의 내용은 지역적으로는 서역西域과 중국·한국을 두루 섭렵하고 시대적으로는 후한後漢에서부터 당나라 초기의 설화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지역과 시대에 있어서 불교신앙의 독자적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예를들어 열 번째 주제, 곧 승단에 속한 물건을 법에 어긋나게 사용한 것과 관련된 설화는 대부분 수나라와 당나라 때 일어난 일을 수록하였는데, 이것에 의해 이 시기는 승단의 물질적 풍요가 이루어졌고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승단의 소유물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이 주요쟁점으로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서에 수록된 흥륜사興輪寺 도안道安 스님·어떤 비구니 스님·회신 자신이 신라 출신의 스님 달의達義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어떤 선사禪師 등 세 명의 신라 스님과 관련된 설화는 신라 불교신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동국대학교 한명숙>
장소찬자

저자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서문에서 “남곡사문藍谷沙門 회신懷信”이라고 하였을 뿐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확정할 수 있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저자와 관련하여 제기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9세기 경 활동한 당나라 양주揚州 서영탑사西靈塔寺 회신이라는 가설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지적된다. 『송고승전』에 수록된 전기에 따르면 회신은 843년(회창3)에 입적했다. 그런데 담연湛然(711~782)이 765년(영태1)에 쓴 『지관보행전홍결서止觀輔行傳弘決序』에서 “『자경록』에서 (신라 스님인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선사禪師가 입적한 후 단월주의 집 고목에) 버섯(蕈)으로 피어나서 그를 공양하였다.”라고 하였다. 『석문자경록』에서는 ‘균菌’이라고 하였지만 이는 버섯균이므로 ‘심蕈’과 같은 말로 사용해도 무방하기 때문에 『지관보행전홍결서』의 『자경록』은 『석문자경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의거하면 『석문자경록』은 765년 이전에 이미 찬술되었어야 하는데, 이 해는 서영탑사 회신이 입멸하기 78년 전이다. 따라서 서영탑사 회신의 저술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두 번째는 667년에서 716년까지 활동했고 당나라 현종玄宗 때 70여 세로 입적한 행적이 보이는 『고청량전古淸涼傳』·『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의 저자인 혜상慧祥이라는 주장이다. 이 가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경록經錄에서는 『석문자경록』을 혜상의 저술이라고 하였다. 둘째, 혜상은 “남곡사문”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주장도 『석문자경록』에서 채록담의 출처를 밝히면서 『신록新錄』이라고 한 것에 해당하는 책의 성립연대와 혜상의 생존연대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세 번째는 제3의 인물인 회신이 705년에서부터 716년 사이에 찬술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본 서에 수록된 채록담과 다른 책에 인용된 사례 등을 근거로 하여 제기된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 자신이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회신은 9세에 출가하였고 60세에 이 책을 편찬하였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고 그밖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동국대학교 한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