章疏書名
유가사지론약찬瑜伽師地論略纂
개요
『유가사지론약찬』 16권은 당의 규기가 유식학의 소의 논서인 『유가사지론』 100권을 간략히 주석한 책으로, 『유가사지론』 66권까지를 주석하고 있다.
체제와 내용
이 책의 제1권이 시작할 때 나오는 7언 24구의 게송은 인도의 최승자最勝子 등이 쓴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 앞부분에 나오는 것이다. 이 귀경송 이후 규기는 『유가사지론』을 6문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6문은 다음과 같다. 1문은 서소위敘所爲로서, 이 『논』이 설해진 목적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상세한 설명은 『성유식론장중추요』를 참조하라고 말하였다. 2문은 창소인彰所因으로, 이 『논』이 나오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내용인데, 현장이 이 『논』을 한역했다는 점 역시 소개하고 있다. 3문은 명종서明宗緒로서, 『유가사지론』이 17지를 종요宗要로 삼는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4문은 현장섭顯藏攝으로, 이 『논』이 보살장아비달마菩薩藏阿毘達磨에 속한다는 점을 밝혔다. 5문은 해제목2.해제目으로, 이 『논』의 명칭을 해석하는 내용이다. 6문은 석본문釋本文으로, 본문을 순서대로 해석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제1권은 이상의 내용과 더불어 『유가사지론』 「본지분」의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와 「의지意地」를 해석하고 있다. 제2권은 『유가사지론』 제3권의 「의지」와 제4권, 제5권의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를 해석하고 있다. 이후 제12권에 이르러 『유가사지론』 50권까지의 본지분本地分을 모두 해석하였고, 마지막인 제16권에 이르러서는 『유가사지론』의 61권부터 66권까지를 주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규기의 『유가사지론약찬』은 『유가사지론』의 본지분 전체(1권~50권)와 「섭결택분攝決擇分」의 일부(51권~66권)를 주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 「섭결택분」의 나머지(67권~80권), 「섭석분攝釋分」(81~82권), 「섭이문분攝異門分」(83권~84권), 「섭사분攝事分」(85권~100권)에 대해서는 주석이 남아 있지 않다. 『유가사지론』의 후반부에 대한 주석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규기가 이 책을 만년에 저술하였으므로 67권 이후를 완성하지 못했을 가능성, 혹은 스스로 절필絶筆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동국대학교 박인석>
장소찬자
규기窺基(632-682)는 그냥 기基라고도 불린다. 당의 장안長安 사람으로 속성은 위지尉知이고, 자는 홍도洪道이다. 17세에 출가하여 현장의 제자가 되었다. 23세에 자은사慈恩寺로 옮겨 현장에게서 범어와 불교 경론을 배웠다. 25세 이후에 역경 사업에 참여하였다. 659년 현장이 유식학의 논서들을 한역할 때, 규기는 신방神昉·가상嘉尙·보광普光 등의 세 사람과 함께 검문檢文·찬의纂義 등의 역할을 맡았지만, 『성유식론』의 한역 과정에 있어서는 규기 한 사람만 참여했다. 이후 현장이 『변중변론辯中邊論』·『이십유식론二十唯識論』 등을 한역할 때도 규기가 필수의 일을 맡았고, 이후 그에 대한 주석서도 지었다. 51세를 일기로 자은사의 번경원飜經院에서 입적하였다. 규기는 중국 법상종의 초조로 불리었고, 백본百本의 소주疏主로 불릴 만큼 다양한 경론에 대한 주석서를 작성하였다.
<동국대학교 박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