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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경론(遺敎經論)

개요

[경명] 유교경론 遺敎經論
[약] 유교론(遺敎論)
[별]
[역] 진제(眞諦)
[범] [장]


내용

K0564 (T.1529 ) 1권 유교경, 즉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에 대한 주석서이다. 경전의 내용을 7종으로 구분하여 자세히 해명하고 있다. 첫머리에 귀경게를 싣고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이 경전은 보살이 수행해야 할 법을 일곱 가지로 나누어 건립한다. 그것은 첫째 서분(序分), 둘째 수집세간공덕분(修集世間功德分), 셋째 성취출세간대인공덕분(成就出世間大人功德), 넷째 현시필경심심공덕분(顯示畢竟甚深功德分), 다섯째 현시입증결정분(顯示入證決定分), 여섯째 분별미입상상증위단의분(分別未入上上證爲斷疑分), 일곱째 이종종자성청정무아분(離種種自性淸淨無我分)이다. 경에 "석가모니불이 처음으로 법을 굴리시고"로부터 "제자들을 위하여 법요를 간략하게 설하시니"라고 함은 서문으로서, 이 가운데 법사(法師), 개법문(開法門), 제자(弟子), 대총상(大總相), 인과(因果) 자상(自相), 분별(分別) 총상(總相) 등의 여섯 가지 공덕의 성취가 있다. 경에 "너희 비구들은 내가 멸도한 후 마땅히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로부터 "이 때문에 너희들은 마땅히 질직(質直)을 근본으로 하여 마음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라고 함은 수집세간공덕분이다. 이 공덕에 수집대치사업공덕(修集對治邪業功德), 수집대치지고공덕(修集對治止苦功德), 수집대치멸번뇌공덕(修集對治滅煩惱功德) 등의 3종이 있다. 이에 대하여 자세히 해설한다. 경에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많은 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번뇌 역시 많다."로부터 "이를 이름하여 허황되지 않은 이론이라고 하느니라."라고 함은 성취출세간대인공덕분으로서, 이 공덕분에 8종이 있다. 첫째 대인(大人) 무구(無求) 공덕(功德), 둘째 대인 지각(知覺) 공덕, 셋째 대인 원리(遠離) 공덕, 넷째 대인 불피권(不疲倦) 공덕, 다섯째 대인 불망념(不忘念) 공덕, 여섯째 대인 선정(禪定) 공덕, 일곱째 대인 지혜(智慧) 공덕, 여덟째 대인 성취(成就) 필경(畢竟) 공덕이다. 다시 이에 대하여 자세히 해설한다. 이어서 현시필경심심공덕분, 현시입증결정분, 분별미입상상증위단의분, 이종종자성청정무아분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설한다. 요컨대 보살이 수행해야 할 7종의 법을 근거로 하여 유교경, 즉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을 주석하는 것이다. 이 불전의 저자에 대해서는 고래로 이설이 있다. 그것은 세친을 저자로 하는 설과 마명(馬鳴)을 저자로 하는 설, 그리고 이 논서가 중국에서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 설 등이다. 그 중에서 첫번째 설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문헌 자료를 통해 볼 때는 오히려 중국에서 지어진 것이라는 설이 더욱 유력하다. 예를 들면 법경록은 이것을 중론의혹부(衆論疑惑部)에 집어 넣고, "유교론 1권, 사람들이 진제 역이라고 하나 진제록(眞諦錄)에는 이 논이 없으므로 의혹부(疑惑部)에 집어 넣는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인수록(仁壽錄) 역시 이 불전이 범본의 번역임을 의심하고 있다. 경록을 조사해 보면 법보표목(法寶標目) 이전의 것은 전혀 이 논서의 저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는 유교경의 강의와 찬탄이 왕성하였으므로 소(疏)를 짓는 일도 매우 흔했고, 그 소들은 모두 산일되어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논서는 아마도 그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유교경은 일반적으로 소승 경전으로 취급되지만 이 논서는 대승의 입장에서 경전의 의의를 해석하였고, 소(疏)나 주석의 모범으로서 중시되었으므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유통되었던 것 같다. 즉 고려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제3권 해동유본견행록(海東有本見行錄) 하(下)에는 유교경론이라는 항목 아래 "주법기(住法記) 1권, 과(科) 1권, 이상 원조(元照) 술(述)"이라고 적혀 있고, 동(同) 제2권의 불유교경(佛遺敎經)의 항목에 "논소절요(論疏節要) 1권, 간요과(簡要科) 1권, 광선초(廣宣鈔) 1권, 이상 정원(淨源) 술(述)."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논서는 송(宋) 철종(哲宗) 원우(元祐) 원년(A.D. 1086)에 중국에 들어와 정원(淨源)과 원조(元照)에게서 3년간 공부하고 다수의 주석서 및 경전을 가지고 돌아간 고려 의천(義天)에 의하여 한국에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고려대장경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