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해제 닫기

송소초(頌疏鈔)

제목정보
장소명 송소초(頌疏鈔)
이명
저자정보
찬자 이름상진(常眞)
이명
생몰년 ~
국적요(遼)
참고사항
장소정보
총록정보 頌䟽鈔八卷 常真述
찬술방식 술(述)
교감현황 <安元寫本>: "□□鈔八卷 常眞述" [□□: <正保寫本>,<元祿刊本>,<大正藏本>,<韓佛全本>에 「頌䟽」, 案 「頌䟽」].【cf. 朴鎔辰. "『新編諸宗敎藏總錄』의 對校와 校勘 硏究." 『서지학연구』, 67 (2016.09), 177-207.】 / <撰者 出生国 情報> [遼_구사론송소초에의거_한중연본의찬자명에의거]_(cf.校勘_朴鎔辰_2019.02)
형태정보
권수 八卷
현존정보
서지정보 권제1-8: 목판본, 刊經都監, 1463. 1463년(天順7년, 世祖 9) 刊經都監 晉州牧 조조본의 후쇄본(20C), 동국대도서관(東國大圖書館)
서지정보 권제2: 목판본, 刊經都監, 1463. 1463년(天順7년, 世祖 9) 刊經都監 尙州牧 조조본의 후쇄본(20C), 동국대도서관(東國大圖書館)
서지정보 권제1-8: 목판본, 刊經都監, 1463. 1463년(天順7년, 世祖 9) 刊經都監 晉州牧 조조본의 후쇄본(20C), 송광사(松廣寺_全南順天)
서지정보 : 목판, 刊經都監, 1463. 1463년(天順 7) 刊經都監 晋州牧 조조각판, 해인사(海印寺_慶南陜川)
학술정보
학술논문 권오민, 『俱舍論』에서의 經量部(佛敎學報 51, 2009,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장소해제]

章疏書名
구사론송소초俱舍論頌疏?
개요
『구사론송소초俱舍論頌疏抄』(8권)는 당의 현장(玄奘, 600~664)이 번역한 세친世親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30권)에 대한 상진常眞의 주석서이다.
체제와 내용

『구사론송소초』는 매권의 판심 서명을 ‘구사진초(俱舍眞抄)’라 하였으며 매권의 권두 서명 아래에 ‘조주(趙州, 河北省趙縣) 개원사 석상진 술(開元寺釋 常眞述)’이라는 기문이 있다. 전체 8권으로 구성된 『구사론송소초』는 권당 40~50쪽의 분량으로 되어 있다. 상진의 『구사론송소초』는 태소와 광기, 보소를 종합하여 정리, 주석한 원휘의 『구사론송소』의 주석서로 보인다. 찬영의 『송고승전』권5에 있는 「당중대운사원휘전(唐中大雲寺圓暉傳)」에 의하면 제종을 연구하던 원휘는 어려서부터 구사에 해박하였는데 그의 주석서가 널리 유행하였다고 한다.
『구사론』은 중국불교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진 대(陳代)인 563년에 진제(眞諦)가 『구사론석(俱舍釋論)』(22권)을 써서 구사종(俱舍宗) 성립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唐의 현장이 『구사론』(30권)을 번역하며 구사학은 신·구구사(新·舊俱舍)로 나뉘었다. 현장의 번역 이후 그에 대한 많은 주석서가 나왔는데? 제자 신태(神泰)의 『구사론소(俱舍論疏)』(30권, 泰疏라고도 함)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俱舍論記)』(30권, 光記), 법보(法寶)의 『구사론소(俱舍論疏)』(30권, 寶疏)의 세 주석서가 찬술되었다. 약 50년 후에는 원휘(圓暉)의 『구사론송소(俱舍論頌疏)』(30권)도 나왔는데, 산일이 심한 태소를 제외한 나머지를 ‘구사론삼소’라 한다. 또 진광(晋光)의 『구사론법종원(俱舍論法宗原)』(1권)? 법영(法盈)의 『구사론송소서기(俱舍論頌疏序記)』(1권)? 혜휘(慧暉)의 『구사론송소의초(俱舍論頌疏義?)』(6권) 등도 있다. 이처럼 중국불교의 교학에서 『구사론』의 영향이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진의 『구사론송소초』는 기존의 주석서들을 바탕으로 다시 주석하여 완성도가 높은 것이라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동국대학교 계미향>
장소찬자

『구사론송소초』를 저술한 승려 상진의 생존연대나 속가 배경, 출가 상황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하북성 조주(河北省 趙州)의 개원사(開元寺)에 있던 때의 저술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구사론송소초』의 첫머리에 있는 ‘연경좌가승록전경율론 연법대사 사자사문 경후 정본(燕京左街僧錄傳經律論 演法大師 賜紫沙門 瓊煦 定本)’이라는 기문으로 보아 요 대(遼代)에 구사학을 가르치던 남경(南京, 지금의 北京)의 승려인 연경 좌가승록연법대사(燕京左街僧錄演法大師) 경후(瓊煦)가 상진의 『구사론송소초』를 교정하였고 그것이 의천에 의해 고려에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경후는 1035년에 요의 성종(聖宗 耶律隆緒, 982~1031 재위)의 칙명으로 성종의 장모인 제국 태비(齋國 太妃)를 위해 금니사본(金泥寫本)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간행하였다. 경후가 그 사본(寫本)을 연경 보탑사(燕京寳塔寺)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으로 보아 상진은 경후와 같거나 조금 앞선 시기에 활동한 승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2.해제 상진(常眞, 생몰년 미상)의 『구사론송소초(俱舍論頌疏抄)』(8권)는 당의 현장(玄奘, 600~664)이 번역한 세친(世親, 婆修槃陀, 혹은 天親, [범] Vasubandhu, 4~5세기)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義譯은 『對法藏論』, [범] Abhidharmakosa, [장] chosmngonpa'i mdzod)』(30권, 이하 『구사론』)에 대한 주석서이다. 『구사론』은 인도의 논사(論師) 세친의 저술로 인도 소승불교의 교리를 대표하는 논서이다. 세친은 북인도 간다라국 페샤와르의 바라문 출신이며 유가학파(瑜伽學派)의 체계를 세운 무착(無着)의 동생으로, 처음에는 소승을 배웠으나 후에 대승으로 전환하여 많은 대승계 논문을 내었다. 인도의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범] sarvāstivāda, [팔]Sabbatthivāda)에서는 일곱 개의 논서로 구성된 논장(論藏)을 산출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나온 『발지론(發智論)』이다. 이후 기원후 2세기 초 무렵에 『발지론』에 대한 주석서로 협존자(脇尊者)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200권을 서술하였다. 『대비바사론』은 이후 인도에서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저서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毘婆沙’가 광설(廣說)을 뜻하듯이 이 논은 너무 방대하여 요점만을 추린 강요서(綱要書)들이 유행하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친의 『구사론』이다. 세친은 소승을 배우면서 카시미르 지방에 가서 『대비바사론』을 연구하였고 그 요점을 뽑아 600頌을 지은 후 거기에다 자신의 주석을 가하여 『구사론』을 저술하였다. 『구사론』은 그뿐 아니라 법승(法勝)의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이나 『아비담심론경』 등의 구성과 내용을 토대로 하였는데 세친은 대체로 유부(有部)의 철학을 따르면서도 비판적인 안목을 잃지 않아 때로는 경량부(經量部) 등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찰하기도 하였다.
『구사론』은 존재하는 것을 염과 정의 현상으로 분류하는 계품(界品, 제법의 본질, 권1~2)‚ 어떻게 인지되는지를 묘사한 근품(根品, 제법의 작용, 권3~7)‚ 자신이 살고 있는 미혹한 현실세계의 실상을 묘사한 세간품(世間品, 苦의 세계, 권8~12)‚ 세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서술한 업품(業品, 苦의 원인, 권13~18)‚ 수면품(睡眠品, 苦의 조건, 권19~21)‚ 깨달음의 경지와 그에 이르는 방편을 설한 현성품(賢聖品, 覺의 세계, 권22~25)과 지품(智品, 覺의 원인, 권26~27)과 정품(定品, 覺의 조건, 권28~29)‚ 유아론(唯我論)을 비판한 파집아품(破執我品, 권29~30)의 9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본 논점은 대체로 ‘인공법유(人空法有)’의 입장‚ 곧 사람은 영원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단지 물질적‚ 心的 요소들의 혼합체에 불과한 현상적인 존재(人空)이지만 사람을 위시한 일체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法)은 항구적으로 존속한다는(法有) 입장으로 정리된다.
『구사론』에서는 법을 구체적으로 75개(75法)로 보았는데‚ 75법은 대체로 五位(色法 11개‚ 心法 1개‚ 心所法 46개‚ 心不相應行法 1개‚ 無爲法 3개)로 분류되거나 72개의 유위법(有爲法)과 3개의 무위법(無爲法)으로 구분된다. 75법론에서 알 수 있듯이 『구사론』은 소승(小乘)의 설일체유부 철학계의 논서인데 포괄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불교사상 전반의 이해에도 매우 좋은 지침서가 되었다. 세친의 저서로는 본서 외에도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십지경론(十地經論)』‚ 『불성론(佛性論)』 등이 유명하다.
<동국대학교 계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