章疏書名
협과조론夾科肇論
개요
협과조론夾科肇論은 당唐 원강康의 찬술이며, 상하 2권으로 되어있다. 승조僧肇의 찬술인 『조론肇論』 원문에 과단科段을 표기한 것으로, 조론협과肇論夾科라고도 한다.
체제와 내용
협과조론夾科肇論은 당唐 원강康의 찬술이며, 상하 2권으로 되어있다. 승조僧肇의 찬술인 『조론肇論』 원문에 과단科段을 표기한 것으로, 『조론협과肇論夾科』라고도 한다. "협과조론夾科肇論은 당唐 원강康의 찬술이며, 상하 2권으로 되어있다. 승조僧肇의 찬술인 『조론肇論』 원문에 과단科段을 표기한 것으로, 조론협과肇論夾科라고도 한다. 후진後秦의 승조(384~414)는 구마라집鳩摩羅什 문하의 사성四聖 혹은 십철十哲 중의 한 분으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조론』은 그의 글을 모아 이와 같은 그의 명성으로써 제목을 삼은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제법諸法의 무자성無自性, 불가득공不可得空 등의 미묘한 이치를 해석한 것으로, 불교 교의 이해나 노장사상老莊思想과의 관련 등의 측면에서 중국 초기불교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저술이다. 전체 내용은 본종의宗本義, 물불천론物不遷論, 부진공론不眞空論,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간에 ‘유유민서문劉遺民書問’과 ‘답유유민서答劉遺民書’가 덧붙여져 있다. 본종의宗本義는 본서의 서장序章으로서 전체 글의 대의를 개괄하고 있다. 나머지 네 가지 론이 곧 본론에 해당한다. 네 가지 론이 저술된 순서에 대하여 『고승전高僧傳』 권6의 「승조전僧肇傳」에 이렇게 말한다. ‘구마라집이 『대품경大品經』을 역출한 후에 「반야무지론」을, 다음에 「부진공론」과 「물불천론」을, 그리고 라집 입적 후에 비로소 「열반무명론」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현행본 『조론』의 앞에 붙어있는 서序는 진陳의 혜달慧達이 쓴 것인데, 아마도 이 시기에 이르러 네 가지 론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조론』에 대한 주소註疏로는, 진대陳代 혜달慧達과 당대唐代 원강元康과 혜징惠澄이 각각 저술한 『조론소肇論疏』 3권과, 원강元康의 『조론협과肇論夾科』 2권, 광요光瑤의 『조론주기肇論註記』 3권, 준식遵式의 『조론주소肇論注疏』 6권 등이 있다.
<천태문화연구원 오지연>
장소찬자
원강元康(?-?)은 당나라 때의 승려이며 성씨姓氏는 알 수 없다. 정관貞觀 연간에 경읍京邑에 유학하여 이름을 떨쳤다. 겉모습은 보잘 것 없고 키가 작았으나 속마음은 깊고 용맹하며 조금을 들어도 이해하는 바가 많아, 무리들 가운데 빼어났다. 처음에는 산야山野에 머무르며 관음을 지송持誦하면서 지혜를 얻기를 구하였다. 어느 날 머리의 뿔이 여덟 갈래로 나뉜 사슴을 보고서 어루만지자 순종하여 기르게 되었다. 그는 항상 이 사슴을 타고 멀리까지 다녔는데, 삼론三論의 글을 등에 지고 작은 굴대를 꼬리에 달고서 서울까지 들어가서 희롱하며 말하였다. “유有를 말하는 무리는 공성空性을 알지 못하니, 내가 가벼운 굴대를 주면 그것을 갈아 진리를 깨닫도록 하리라.” 또 경성에서 한 법사가 강설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주고받으며 그를 대파大破하자, 황제가 소문을 듣고 기뻐하며 불러 안국사安國寺에서 삼론을 강설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소疏를 지어 중관中觀의 이치를 해설하고, 별도로 『현추玄樞』 두 권을 지어 중관의 종지를 밝혔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宋高僧傳 권4]
<천태문화연구원 오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