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蜜多心經贊) / 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賛

ABC_BJ_H0001_T_001
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찬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賛

001_0001_a_01L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찬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賛
사문 원측圓測
박인성 (역)
장차 이 경을 풀이고자 함에 네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을 밝히고, 둘째 경의 종宗과 체體를 밝히고, 셋째 경의 이름을 뜻풀이하고, 넷째 본문을 나누어서 해석한다.

첫째,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을 밝힌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지극한 이치는 그윽하고 고요하여 유有와 무無의 경계境界1)를 오묘하게 끊어 있고 법의 실상은 깊디깊어 언어의 표현을 넘어 있다. 그러므로 진리眞理로 나아가는 데는 방향이 없으니 이장二藏2)의 말들이 열려 있고, 교설을 베푸는 데는 의지함이 있으니 삼신三身3)의 감응이 갖추어 나타나고 있다. 샘물이 맑을 때 달의 그림자가 문득 나타나고 적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일 때 하늘의 북이 저절로 울린다고 가히 말할 만하다. 그러므로 중생을 대응함에 시기가 있어 근기에 맞춰 가까이 이끄시니, 여래께서는 삼법륜三法輪을 설해서 아직 법에 들지 않은 자를 법에 들게 하신다. 그래서 바라나국波羅奈國(Vārāṇasī) 시록림施鹿林4)에서 최초로 생사와 열반의 인과因果를 여셨다. 이것이 제1의 사제四諦5)의 법륜法輪이니 능히 아집我執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미 법에 들어간 이를 대승으로 향해 나아가게 하기 위해 취봉산鷲峰山6) 등 열여섯 집회에서 여러 반야경을 설하셨다. 이것이 제2의 무상無相의 법륜이다. 이것에 의해 점점 유有의 성격을 띤 법집法執을 끊긴 했으나 아직 공空에 대한 집착은 내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제3의 연화장蓮華藏 등 정토와 예토에서 『해심밀경』 등 요의了義7)의 대승경을 설하셨다. 공空과 유有 두 종류의 도리道理를 모두 나타내어 유有와 무無 두 종류의 치우친 집착을 제거했다. 이상이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이다.

둘째, 경의 종宗과 체體를 밝힌다. 체體를 밝힌다라는 말은 표현하는(能詮)8) 교설의 본체를 총체적으로 밝힌다는 것이고, 종宗을 밝힌다라는 말은 여러 교설에 의해 표현되는 종지를 개별적으로 밝힌다는 것이다.

(1) 그런데 붓다의 교설의 본체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같지 않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9)에서는 음성을 본체로 삼는다. 단어(名) 등10)은 무기無記11)이고 음성은

001_0001_a_01L[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賛]

001_0001_a_02L1)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賛 [1]

001_0001_a_03L

001_0001_a_04L沙門測撰

001_0001_a_05L
將釋此經四門分別一敎起因緣二
001_0001_a_06L辨經宗體三訓釋題目四判文解釋
001_0001_a_07L言敎起者竊以至理幽寂妙絕有無
001_0001_a_08L之境法相甚深能超名言之表
001_0001_a_09L則趣理無方乃開二藏之說設敎有
001_0001_a_10L具現三身之應可謂泉水澄淸
001_0001_a_11L影頓現諸敵冥動天鼓自鳴然則
001_0001_a_12L應物有時隨機接引所以如來說三
001_0001_a_13L法輪未入法者令趣入故波羅奈國
001_0001_a_14L施鹿林中創開生死涅槃因果此則
001_0001_a_15L第一四諦法輪能除我執爲已入者
001_0001_a_16L廻趣大乘鷲峰山等十六會中說諸
001_0001_a_17L般若此是第二無相法輪由斯漸斷
001_0001_a_18L有性法執而於空執猶未能遣
001_0001_a_19L故第三蓮華藏等淨穢土中說深密
001_0001_a_20L等了義大乘具顯空有兩種道理
001_0001_a_21L除有無二種偏執此卽敎之興也

001_0001_a_22L
言宗體者 體卽總明能詮敎體宗者
001_0001_a_23L別顯諸敎所詮然佛敎體諸說不同
001_0001_a_24L薩婆多宗用聲爲體名等無記

001_0001_b_01L선善이라 하기 때문이다. 경량부經量部12)에서는 상속가相續假13)의 음성을 본체로 삼는다. 음성을 떠나 따로 단어(名), 문장(句) 등이 없기 때문이다. 대승학파의 여러 교설은 같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오직 음성만을 본체로 삼는다. 가령 『무구칭경』에서 ‘어떤 불국토에서는 음성을 불사佛事로 삼는 일이 있다.’14)라고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단어 등만을 본체로 삼는다. 가령 『성유식론』에서는 ‘법무애지法無礙智15)는 단어 등을 대상으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음성과 단어 등을 합해서 본체로 삼는다. 가령 『십지경』에서는 “듣는 자는 두 가지 모두에 의지한다. 두 가지란 음성과 단어 등이다.”라고 말한다.

왜 여러 교설에는 이런 차이가 있는가? 실제로는 가假로써 실實을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모두 음성과 단어 등을 본체로 삼는다. 그러나 여러 고귀한 교설(聖敎)은 각각 하나의 의미에 의거하기 때문에 상반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① 가假는 실實을 따르기에 음성을 본체로 삼는다. 음성을 떠나 따로 단어, 문장 등이 없기 때문이다. ② 체體는 용用을 따르기에 단어 등을 본체로 삼는다. 표현 수단인 법들은 주어(自性)와 술어(差別) 둘이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③ 가假와 실實은 서로 의지하기에 음성과 단어 등을 합한 것을 본체로 삼는다. 둘 중의 한 가지를 빠뜨리면 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④ 대상(境)은 식識을 따르기에 식을 본체로 삼는다. 경에서 ‘법들은 식을 여의지 않는다.’라고 설하기 때문이다. ⑤ 허망은 거두어져 진실로 돌아가니 진여를 본체로 삼는다. 『인왕반야경』 등에서 법들의 본성을 설하기 때문이다.

(2) 표현되는 종지는 크게 보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병病에 따라 종지를 달리하는 것이고, 둘째 전적(部)에 따라 종지를 다르게 나타내는 것이고, 셋째 시기에 따라 종지를 밝히는 것이다. ① 첫째 병에 따라 종지를 달리한다. 유정들은 무명無明에 의해 탐貪, 진瞋 등 팔만사천의 진로문塵勞門16)을 일으킨다. 그래서 여래는 병에 따라 온蘊 등 팔만사천의 법문이란 약을 베푸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하나는 각 경우에 따라서 온, 처處, 계界 등을 표현되는 종지로 삼는 것이다. ② 둘째 전적에 따라 종지를 다르게 나타낸다. 하나하나의 경전에는 비록 많은 문門들이 있긴 하나 그 의취를 궁구하면 경전에 따라 각각 다르다. 가령 『법화경』은 1승乘을 종지로 삼고, 『무구칭경』은

001_0001_b_01L是善故依經部宗相續假聲離聲
001_0001_b_02L無別名句等故依大乘宗諸敎不同
001_0001_b_03L有處唯聲如無垢稱或有佛土
001_0001_b_04L爲佛事有處但用名等爲體如成唯
001_0001_b_05L法無礙智名等爲境有處合說聲
001_0001_b_06L及名等如十地經云說聽之者皆依
001_0001_b_07L二事謂聲名等如何諸敎有此異
001_0001_b_08L據實以假從實皆用聲及名等
001_0001_b_09L以爲體性而諸聖敎各據一義
001_0001_b_10L不相違所以者何以假從實用聲
001_0001_b_11L爲體離聲無別名句等故以體從用
001_0001_b_12L名等爲體能詮諸法自性差別二所
001_0001_b_13L依故假實相藉合說爲體隨闕一
001_0001_b_14L說不成故以境從心用識爲體
001_0001_b_15L經說諸法不離識故攝妄歸眞
001_0001_b_16L如爲體仁王等說諸法性故所詮
001_0001_b_17L宗者略有三種一隨病別宗二部
001_0001_b_18L別顯宗三約時辨宗隨病別宗者
001_0001_b_19L諸有情由無明故起貪瞋等八萬
001_0001_b_20L四千諸塵勞門是故如來應病設藥
001_0001_b_21L蘊等八萬四千法門由此一一隨其
001_0001_b_22L所應蘊處界等爲所詮宗部別顯宗
001_0001_b_23L於一一部雖有諸門究其意趣
001_0001_b_24L隨部各別如法華經一乘爲宗

001_0001_c_01L불이不二를 종지로 삼고, 『열반경』은 불성佛性을 종지로 삼고, 『화엄경』은 현성賢聖의 인과因果를 종지로 삼는다. 다른 경전들에 대해서는 위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③ 시기에 따라 종지를 밝힌다. 비록 고귀한 교설은 부류部類가 많으나 시기에 의거해서 종지를 밝히면 세 종류에 불과하다. 세 종류란 사제四諦, 무상無相, 요의了義의 대승이니 『해심밀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이제 이 한 경전17)은 여러 종지 중에서 무상無相을 종지로 삼는다.

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


셋째, 경의 이름을 뜻풀이한다. ‘불설佛說’이란 경을 설하는 주체를 표방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인 ‘불타佛陀’18)를 이 나라에서는 ‘각자覺者’라고 번역한다. 진제와 속제의 지智를 갖추고 있고 자기와 남의 깨달음(覺)을 원만하게 하기에 ‘불佛’이라 한다. 현묘한 문을 열고 펼쳐서 중생이 이를 이해하도록 하기에 ‘설說’이라고 한다. ‘반야바라밀다’는 설할 법法을 밝힌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지도피안智到彼岸’19)이라고 번역한다. ‘심경心經’은 표현 수단인 교설을 바로 밝힌 것이다. 사려思慮의 길에서는 심왕心王이 홀로 빼어나고 여러 반야경 중에서 이 교설이 가장 존귀하기에 비유를 들어 이름을 세워서 ‘심心’20)이라 한 것이다. ‘경’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꿰뚫음과 거두어 지님이다. 설해야 할 바의 의미를 꿰뚫고 교화해야 할 바의 중생을 거두어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설하는 주체에 의지하고 표현 수단과 표현 내용과 비유에 의거해서 이름을 세웠기에 ‘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21)이라 한 것이다.

관자재보살이


넷째, 본문을 나누어서 해석한다. 이 경에는 모두 세 부분이 있다. 처음에 관찰하는 작용인 지智를 밝히고, 다음에 ‘사리자!’ 이하에서 관찰되는 대상인 경계를 밝히고,

001_0001_c_01L垢卽以不二爲宗依涅槃經佛性爲
001_0001_c_02L華嚴賢聖因果爲宗自餘諸部
001_0001_c_03L上應知約時辨宗者雖諸聖敎部類
001_0001_c_04L衆多就時辨宗不過三種三種即
001_0001_c_05L是四諦無相了義大乘如深密說
001_0001_c_06L此一部諸宗之中無相爲宗

001_0001_c_07L
2)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

001_0001_c_08L
言題目者 佛說卽是標能說主梵音
001_0001_c_09L佛陀此翻名覺具眞俗智自他覺
001_0001_c_10L滿故名爲佛開敷玅門令衆生解
001_0001_c_11L名之爲說般若波羅蜜多辨所說法
001_0001_c_12L此土翻爲智到彼岸心經正顯能詮
001_0001_c_13L之敎盧道之中心王獨秀於諸般
001_0001_c_14L此敎最尊從諭立名故曰心也
001_0001_c_15L經有二義貫穿攝持貫穿所應說義
001_0001_c_16L攝持所化生故此即依主就能所詮
001_0001_c_17L法諭立號故言佛說般若波羅蜜多
001_0001_c_18L心經

001_0001_c_19L
觀自在菩薩

001_0001_c_20L
第四判文解釋 於此經中總有三分
001_0001_c_21L初明能觀智次舍利子下辨所觀境
001_0001_c_22L{底}續藏經第一編四十一套四册{甲}新修大藏
001_0001_c_23L第三十三卷
此題目本書無之恐後人會
001_0001_c_24L

001_0002_a_01L마지막에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하에서 얻어지는 과果를 밝힌다. 서분序分과 유통분流通分이 없는 것은 여러 반야경에서 강요를 간추려서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정종분正宗分이 있을 뿐 서분과 유통분이 없는 것은 『관음경』이 세 가지의 분分22)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관자재보살이’에 대해서 해석하겠다. 첫째 부분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에서는 관찰하는 주체인 사람(人)을 표방하고, 뒤에서는 관찰하는 지智의 본체를 밝힌다. 이것은 앞의 표방하는 부분이다. 관찰하는 사람을 구본舊本에서는 ‘관세음觀世音’이라 이름한다. 모든 세간의 유정들이 그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의 어업語業을 관찰하고서 모든 난관에서 구해 주기에 이에 호칭을 세워 ‘관세음’이라 이름한 것이다. 아직 신업身業과 의업意業을 관찰한다는 것은 드러내지 못했기에 이제 본역에서 ‘관자재觀自在’라 이른 것이다. 안으로 이공二空을 증득하고 바깥으로 삼업三業을 관찰할 때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재롭기 때문에 ‘관자재’라 이른 것이다.

지금 이 보살은 실제로는 원인 단계(因位)에 있는 일생보처一生補處23)인데 이미 성불해 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만약 보살이라면 『관음삼매경』을 어떻게 회통해서 풀이하겠는가? 그 경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진실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 일이 허망하지 않다. 내가 기억하기에 관세음보살은 나보다 전에 성불하여 이름을 정법명正法明24), 여래如來25), 응공應供26), 정변지正遍知27), 명행족明行足28), 선서善逝29), 세간해世間解30), 무상사無上士31), 조어장부調御丈夫32), 불세존佛世尊33)이라 하였다. 나는 그때 그 부처님 밑에서 고행을 하는 제자였다.’”라고 설한다.

만약 부처라면 『관음수기경』을 어떻게 회통해서 풀이하겠는가? 그 경에서 “선남자여! 아미타불의 수명은 한량없는 백천억 겁이지만 응당 종극이 있을 것이며 응당 반열반般涅槃34)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하고 다시, “선남자여! 아미타불의 정법正法이 멸한 뒤 한밤중이 지나 명성明星이 뜰 때 관세음보살은 칠보七寶의 보리수 아래에서 결가부좌하고

001_0002_a_01L後以無所得故下顯所得果所以無
001_0002_a_02L序及流通者於諸般若簡集綱要
001_0002_a_03L唯正宗無序流通如觀音經不具三
001_0002_a_04L觀自在菩薩者就初分中復分
001_0002_a_05L爲二初標能觀人次辨觀智體

001_0002_a_06L
此卽第一標能觀人若依舊本名觀
001_0002_a_07L世音觀諸世間稱菩薩名音聲語
001_0002_a_08L以救諸難因而立號名觀世音
001_0002_a_09L猶未能顯觀身意業而今本云觀自
001_0002_a_10L在者內證二空外觀三業不依功
001_0002_a_11L任運自在故曰觀自在今此菩
001_0002_a_12L實是因位一生補處爲已成佛
001_0002_a_13L設爾何失若是菩薩如何會釋觀音
001_0002_a_14L三昧彼經說曰佛告阿難我今噵
001_0002_a_15L其事不虛我念觀世音菩薩
001_0002_a_16L我前成佛號曰正法明如來應供正
001_0002_a_17L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
001_0002_a_18L丈夫佛世尊我於彼時爲彼佛下
001_0002_a_19L苦行弟子若是佛者如何會釋觀音
001_0002_a_20L授記故彼經曰善男子阿彌陀佛
001_0002_a_21L壽命無量百千億劫當有終極當般
001_0002_a_22L涅槃復曰善男子阿彌陀佛正法
001_0002_a_23L滅後過中夜分明星出時觀世音菩
001_0002_a_24L於七寶菩提樹下結加跌坐

001_0002_b_01L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할 것이다. 이름을 ‘보광공덕산왕여래普光功德山王如來’라 하고 열 가지의 호칭을 갖추게 될 것이고, 내지乃至35) 국토의 이름을 ‘중보장엄衆寶莊嚴’이라 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한다. 또, 『무량수경』에서 “관음보살은 이 국토에서 보살행을 닦아 목숨이 마칠 때 저 불국토에서 화생化生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한다.

모순을 해소하자면, 관음이란 이름은 같지만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저 경과 이 경에서 설한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마치 『법화경』에서 여러 부처를 다같이 ‘일월등명日月燈明’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또 모순을 해소하자면, 관음 자체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실재하는 몸(實身)이고 둘째는 화현한 몸(化身)36)이다. 첫째 실재하는 몸은 『관음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고, 둘째 화현한 몸은 『무량수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가령 『법화경』에서 “석가여래는 성도한 지 이미 오래지만 화현한 상相에 의거하기 때문에 지금 성불한다.”라고 논한다. 모순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지만 뒤의 해소 방식이 더 낫다. 여러 고귀한 교설(聖敎)에 부합해서 이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둘째, 관찰하는 지智를 밝힌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지智의 본체를 밝히고 뒤에서는 지智의 작용을 밝힌다. 이것은 지智의 본체를 밝히는 부분이다. ‘행行함’이란 ‘진행進行함’이니 ‘관찰하는 주체인 지智를 진행함’을 말한다. ‘깊음(深)’은 ‘깊숙함(甚深)’이다. 깊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① 하나는 행함의 깊음이다. 무분별지無分別智는 이공二空37)을 자기 안에서 증득하는데 모든 분별을 여의었고 행하는 것과 행해지는 것이 없는 것을 행상行相으로 삼기에 행함이 깊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품반야경』에서 “행함을 보지 않고 행하지 않음을 보지 않으면 이를 ‘보살이 깊은 반야를 행한다.’고 한다.”라고 설한다. ② 다른 하나는 경계의 깊음이다. 이공二空의 리理는 유有와 무無의 상相을 여의었고 모든 희론戲論38)을 끊어 있다. 무분별지는 이 깊은 경계를 증득하기에 ‘깊은 것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반야’는 이 나라(중국)에서는 ‘지智’라고 번역한다.39) ‘바라’는 ‘저쪽 언덕(彼岸)’을 의미하고, ‘밀다’는 ‘다다름(到)’을 의미한다. 그 나라(인도) 말대로 한다면 ‘지피안도智彼岸到’이라 해야 하겠으나 이 나라 말대로 해서 지도피안智到彼岸이라 한다.40) 지智로써 장애(障)를 끊어 열반의 성에 다다르기에 ‘지도피안’이라 한다.

001_0002_b_01L等正覺號普光功德山王如來十號
001_0002_b_02L具足乃至國名衆寶莊嚴又無量壽
001_0002_b_03L觀音菩薩於是國土修薩薩行
001_0002_b_04L終轉化生彼佛國解曰觀音名同人
001_0002_b_05L故彼此說互不相違如法華1)
001_0002_b_06L諸佛同號日月燈明又解觀音自有
001_0002_b_07L二種一實二化一者實身如觀音經
001_0002_b_08L二者化身如無量壽如法華論
001_0002_b_09L迦如來成道已久就化相故今乃
001_0002_b_10L成佛雖有兩釋後解爲勝順諸聖
001_0002_b_11L敎不違理故

001_0002_b_12L
行深般若波羅蜜多時者

001_0002_b_13L
第二辨能觀智於中有二初明智體
001_0002_b_14L後辨智用此辨智體行謂進行是能
001_0002_b_15L觀智深卽甚深深有二種一者卽
001_0002_b_16L行深無分別智內證二空離諸分別
001_0002_b_17L無能所行以爲行相故名行深
001_0002_b_18L大品曰不見行不見不行是名菩薩
001_0002_b_19L行深般若二者境深謂二空理離有
001_0002_b_20L無相絕諸戱論無分別智證此深境
001_0002_b_21L故曰行深梵音般若此翻名智
001_0002_b_22L波羅者名爲彼岸蜜多名到順彼
001_0002_b_23L應云智彼岸到從此方語智到彼岸
001_0002_b_24L因智斷障至涅槃城是故說爲智到

001_0002_c_01L‘때(時)’란 시간을 말한다. 『대지도론』에서 “유위의 법에 의지해서 시간을 임시로 말하니 시간과 수數 등은 온蘊, 처處 등 법수法數에 포함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사문론沙門論』도 이 풀이와 같다. 그래서 그 논에서 “법에 의지해서 시간을 임시로 세운다. 법을 떠나 따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유가사지론』 등에서는 “유위의 법 전후의 분위分位에 시간을 임시로 세운다.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은 행온行蘊에 포함된다.”라고 한다. 『불지경론』도 이 풀이와 같다. 그래서 그 논에서 “심과 색에 상응하지 않는 시간의 분위를 세운다. 혹은 심心의 영상影像이다.”41)라고 한다.
총괄해서 의미를 풀이하면, 반야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문자반야, 관조반야, 실상반야를 말한다. 문자반야나 실상반야는 제쳐 놓고 관조반야는 드러내고자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의 반야42)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이다.

오온이 모두 공함을 명료하게 보고


그 지智의 작용을 밝힌다. 작용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自利)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利他)이다. (첫째) 이 문장은 공함을 밝힌 것이니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自利)이다. 이제 이 문장을 풀이하고자 함에 먼저 여러 관觀을 서술하고 다음에 앞의 관觀들에 의거해서 이 경의 문장을 풀이한다.

‘여러 관觀’에 대해서 말하겠다. 불법은 깊디깊으나 본래 한맛일 뿐인데 배우는 이들이 아직 이 점을 깨닫지 못해 서로 다른 설을 내놓는다. 그래서 세존은 『불지경』에서 이렇게 설하셨다. 부처님께서 묘생妙生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건대, 온갖 크고 작은 내들이 아직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는 각각 의지하는 바가 달라서 물에 차이가 있고 물에 증감이 있지만 만약 큰 바다에 들어간다면 의지하는 바가 다르지 않고 물에 차이가 없으며 물에 증감이 없듯이, 보살이 아직 여래의 청정한 법계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는 각각 의지하는 바가 다르고 지智에 차이가 있고 지智에 증감이 있지만 만약 여래의 청정한

001_0002_c_01L彼岸時謂時分智度論說依有爲
001_0002_c_02L假說時分而時數等非薀處等
001_0002_c_03L諸數所攝法沙門論亦同此釋故彼
001_0002_c_04L論曰因法假名時離法無別時
001_0002_c_05L伽等說有爲法上前後分位假立時
001_0002_c_06L不相應法行薀所攝依佛地論
001_0002_c_07L亦同此說故彼論曰立不相應時節
001_0002_c_08L分位或心影像總釋意曰般若有
001_0002_c_09L謂卽文字觀照實相爲顯觀照
001_0002_c_10L實相等故言行深般若波羅蜜多時
001_0002_c_11L此中應說
三種般若

001_0002_c_12L
照見五蘊皆空者

001_0002_c_13L
辨其智用用有二種一者自利
001_0002_c_14L者利他此明觀空卽是自利將釋
001_0002_c_15L此文先叙諸觀後依前觀釋此經文
001_0002_c_16L言諸觀者若夫佛法甚深本唯一味
001_0002_c_17L學者未悟乃成異說是故世尊佛地
001_0002_c_18L經說佛告玅生譬如種種大小衆流
001_0002_c_19L未入大海各別所依水有差別
001_0002_c_20L有增減若入大海無別所依水無
001_0002_c_21L差別水無增減如是菩薩未證入於
001_0002_c_22L如來淸淨法界大海各別所依智有
001_0002_c_23L差別智有增減若已證入如來淸淨
001_0002_c_24L「經」一無

001_0003_a_01L법계의 큰 바다에 깨달아 들어간다면 의지하는 바가 다르지 않고 지智에 차이가 없으며 지智에 증감이 없어서 화합된 한맛의 지智를 향유한다.”라고 하였다.

친광親光(Badhuprabha, 6세기 중반경)은 이렇게 풀었다. “천 년 전에는 불법이 한맛이었으나 천 년이 지난 후 공空과 유有의 논쟁이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일천 년 후 남인도 계건지국界健至國에 두 보살이 일시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한 사람은 청변淸辨(Bhāviveka, 490∼570년경)이요 다른 한 사람은 호법護法(Dharmapāla, 530∼561)이다. 유정이 불법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도록 각각 공종空宗과 유종有宗을 세웠으니 모두 부처님의 뜻을 이룬 것이다. 청변 보살은 없음(空)을 잡고 있음(有)을 덜어 냈는데 이는 있다(有)는 집착을 없애고자 한 것이요, 호법 보살은 있음(有)을 세우고 없음(空)을 덜어 냈는데 이는 없다(空)는 집착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그런즉 없음(空)은 있음(有)을 물리치지 않으니 그러기에 ‘색이 곧 공이다’라는 이치가, 있음(非無)은 없음(空)을 물리치지 않으니 그러기에 ‘공이 곧 색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없는 것(空)이기도 하고 있는 것(有)이기도 하기에 이제二諦43)가 순조롭게 성립한다. 없는 것(空)도 아니고 있는 것(有)도 아니어서 중도中道에 들어맞으니 불법佛法의 큰 줄기가 어찌 이것이 아니겠는가?”

있음과 없음의 논쟁이 어찌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인가?
내가 더 낫다고 집착하는 논이야말로 심히 고귀한 가르침(聖敎)을 거스르는 것이다. 부처님 자신이 이를 허용하신 것은 보살을 해탈하게 하기 위함인데, 하물며 두 보살이 서로 그림자가 되고 메아리가 되어 사물을 이해하게 하는데 어찌 부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두 종류의 관문觀門을 간략하게 서술하겠다.

(1) 하나는 청변의 관문觀門이다. 모든 반야경과 용맹勇猛44) 학파에서는 한 관문觀門을 세운다. 법의 상相을 남김없이 버리고 공空을 관하는 문을 말한다. “모든 법들은 다 공하고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본래 적정하고 자성이 열반이다.” 하고 세운다. 그래서 반야경에서 “모든 유위법이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다고 이렇게 관해야 한다.”라고 설한다. 또 『사익경思益經』에서 “마음(心)이 분별하기에 모든 법들이 모두 바르지 않으며, 마음이 분별하지 않기에 모든 법들이 모두 바르다.”라고 설한다. 또 『중론中論』에서 “불공不空이 있다면 공空이 있을 것이네. 불공不空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공空을 얻겠는가?”45) 하고 말한다. 또

001_0003_a_01L法界大海無別所依智無差別智無
001_0003_a_02L增減受用和合一味事智親光釋曰
001_0003_a_03L千年已前佛法一味過千年後
001_0003_a_04L有乖諍佛滅沒已一千年後南印度
001_0003_a_05L界健至國中有二菩薩一時出世
001_0003_a_06L者淸辨二者護法爲令有情悟入佛
001_0003_a_07L立空有宗共成佛意淸辨菩薩
001_0003_a_08L執空撥有令除有執護法菩薩
001_0003_a_09L有撥空令除空執然則空不違有卽
001_0003_a_10L空之理非無不違空卽色之說自成
001_0003_a_11L亦空亦有順成二諦非空非有契會
001_0003_a_12L中道佛法大宗豈不斯矣問有無
001_0003_a_13L乖諍寧順佛意答執我勝論甚違
001_0003_a_14L聖敎佛自許爲解脫菩薩況二菩薩
001_0003_a_15L互相影嚮令物生解違佛意乎
001_0003_a_16L今略述二種觀門一者清辨依諸般
001_0003_a_17L若及龍猛宗立一觀門謂歷法遣相
001_0003_a_18L觀空門立一切法皆悉是空無生無
001_0003_a_19L本來寂靜自性涅槃故般若經曰
001_0003_a_20L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如露亦如
001_0003_a_21L應作如是觀又思益經云以心
001_0003_a_22L分別諸法皆邪不以心分別諸法
001_0003_a_23L皆正又中論曰若有所不空應當
001_0003_a_24L有空不空尙不得何況得於空

001_0003_b_01L『중론』에서 “붓다들은 어떤 때는 아我라고 설하고 어떤 때는 비아非我라고 설하네. 법들의 실상實相에는 아我도 없고 비아非我도 없네.”46) 하고 말한다. 이와 같이 좋은 증거가 되는 문장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래서 청변의 『장진론掌珍論』에서 “진성眞性에 의거하면 유위는 공하네. 환영과 같네. 연緣에서 생기한 것이기 때문이네. 무위는 실實이 없네. 생기하지 않는 것이 마치 허공의 꽃과 같네.” 하고 말한다.

(2) 다른 하나는 호법의 관문觀門이다. 『해심밀경』 등과 미륵彌勒(Maitreya, 4세기 후반경)의 학설에 의거해서 한 관문을 세운다. 식識은 남기고 경境은 버려 공空을 밝히는 관문이다. 모든 법들이 있음(有)에도 없음(無)에도 통한다고 세운다. 변계소집성은 정情은 있으나 리理가 없고, 의타기성은 인과 연들에서 생기기에 있고, 원성실성은 리理가 있기에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해심밀경』에서 “변계소집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들은 다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라고 설한다. 『보적경』에서는 “만약 모든 법을 덜어 내서 모두 무성無性이라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자라고 하겠다.”라고 설한다. 『유가사지론』 등에서는 “변계소집성에 의거해서 경에서 ‘모든 법들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라고 한다. 『변중변론辨中邊論』의 송頌에서 “허망 분별이 있네. 이것에 둘이 전연 없네. 이것에는 오직 공성이 있을 뿐이네. 저것에도 이것이 있네. 그러니 모든 법들은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네. 있기 때문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네. 이것이 중도中道에 들어맞는 것이네.”47) 하고 말한다. 이와 같은 좋은 증거가 되는 문구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래서 『이십유식론二十唯識論』 등에서 “모든 법들의 모든 종류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법무아法無我에 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가 변계소집한 자성과 차별의 법들에 아我가 없다는 것을 통달하면 이와 같은 것을 법무아에 들어간다고 한다.”라고 한다.

관觀에 대한 서술은 위와 같다. 이제 경문經文을 풀이하겠다. ‘오온’이란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 다섯을 말한다. ‘색色’은 근根, 경境, 그리고 법처法處의 색이다. 놓인 곳을 알 수 있고 질애質礙48)의 의미가 있기에 색이라 한다. 고수苦受와 낙수樂受와 사수捨受는 순서대로 거슬리는 대상, 끌리는 대상, 거슬리지도 끌리지도 않는 대상을 받아들이기에

001_0003_b_01L中論曰諸佛或說我或時說非我
001_0003_b_02L法實相中非我非非我如是等文
001_0003_b_03L證非一是故淸辨掌珍論曰眞性有
001_0003_b_04L爲空如幻緣生故無爲無有實不起
001_0003_b_05L似空華二者護法依深密等及彌勒
001_0003_b_06L立一觀門謂在識遮境辨空觀
001_0003_b_07L立一切法通有及無遍計所執
001_0003_b_08L有理無依他起性因緣故有圓成
001_0003_b_09L實性理有非無故深密說依所執
001_0003_b_10L說一切法皆無自性寶積經說
001_0003_b_11L撥諸法皆無性者我說彼爲不可治
001_0003_b_12L瑜伽等曰依所執性故契經說
001_0003_b_13L一切諸法皆無自性辨中邊論頌
001_0003_b_14L妄分別有於此二都無此中唯有空
001_0003_b_15L於彼亦有此故說一切法非空非不
001_0003_b_16L有無及有故是故契中道如是
001_0003_b_17L等文誠證非一是故二十唯識等曰
001_0003_b_18L非知諸法一切種無乃得名爲入法
001_0003_b_19L無我然達愚夫遍計所執自性差別
001_0003_b_20L諸法我無如是乃名入法無我
001_0003_b_21L觀如上今當釋文

001_0003_b_22L
言五蘊者所謂色蘊受想行識五
001_0003_b_23L根境及法處色方所可知有質礙義故
001_0003_b_24L名爲色苦樂捨受如次領納違順中

001_0003_c_01L수受라 한다. 식들과 함께하는 ‘상想’은 대상의 경계(分齊)49)를 파악해서 남자, 여자 등과 같은 말을 일으키기에 ‘상’이라 한다. ‘사思’ 등의 심소법은 마음(心)을 추동해서 선善 등을 짓게 하기에 ‘행行’이라 한다. 안식 등은 대상을 지각하기에 ‘식識’이라 한다. 이 다섯 종류는 모두 적취積聚의 의미가 있기에 ‘온蘊’이라 한다.
이와 같은 오온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변계소집성의 오온이다. 망정妄情은 있고 진실眞實의 리理는 없다. 둘째 의타기성의 오온이다. 인因과 연緣들의 가유假有이다. 셋째 원성실성의 오온이다. 진실의 리理가 있다. 그래서 『변중변론』에서 “온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변계소집의 온이고, 둘째는 종류種類의 온이고, 셋째는 법성의 온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역본에서 취한 것이다. 『십팔공론十八空論』도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래서 그 논에서 “세 종류란 첫째는 분별이고, 둘째는 종류이고, 셋째는 여여如如이다.”라고 말한다. 이 세 종류의 오온 하나하나에 모두 생공生空50)과 법공法空 이공二空이 있다.

“모두 공함을(皆空)”이란, 증득되는 리理가 앞의 이공二空임을 나타낸다. 이 여러 공에 의거할 때 두 해석으로 나뉜다. (1) 청변의 학설에 의거할 때 두 해석이 있다. ① 한 해석에 의하면, 삼자성 중에서 앞의 두 자성을 내버린다. 원성실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론』에서 “인과 연들에서 생긴 법은 공하다고 하네.” 하고 말한다. ② 다른 한 해석에 의하면, 삼자성의 오온은 모두 공하다. 그래서 『장진론』에서 “무위는 실實이 없네. 생기하지 않는 것이 마치 허공의 꽃과 같네.” 하고 말한다. 이것에 준할 때 원성실성도 내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호법의 학설에 의거할 때 세 종류의 온蘊 중에서 오직 변계소집성의 온만을 내버린다. 공성을 구분하기 때문이다.51) 인용한 정리正理52)와 성교聖敎53)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어떤 본本에는 ‘오온 등이 모두 공함을 명료하게 보고(照見五蘊等皆空)’라 되어 있다. 두 본이 있지만 뒤의 본을 정본으로 삼는다. 산스크리트 본을 조사해 보면 ‘등等’이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말할 ‘등’도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001_0003_c_01L故名爲受諸識俱想取境分齊
001_0003_c_02L男女等起諸說故名之爲想思等
001_0003_c_03L心法驅役於心令造善等名之爲
001_0003_c_04L眼等諸識於境了別故名爲識
001_0003_c_05L五種皆有積聚義故名之爲蘊如是
001_0003_c_06L五蘊有其三種一者遍計所執五蘊
001_0003_c_07L情有理無二者依他起性五蘊因緣
001_0003_c_08L假有三者圓成實性五蘊眞實理有
001_0003_c_09L故中邊曰蘊有三種一所執蘊
001_0003_c_10L種類蘊三法性蘊斯取新本十八
001_0003_c_11L空論亦同彼說故彼論曰所有三
001_0003_c_12L一者分別二者種類三者如如
001_0003_c_13L於此三種五蘊之內一一皆有生法
001_0003_c_14L二空言皆空者顯所證理即前二
001_0003_c_15L依此諸空分成兩釋依淸辨宗
001_0003_c_16L自有二解一曰三中遣前二性非圓
001_0003_c_17L成實故中論曰因緣所生法是卽說
001_0003_c_18L爲空一曰三性五蘊皆空故掌珍曰
001_0003_c_19L無爲無有實不起似空華準此應知
001_0003_c_20L圓成亦遣依護法宗三種蘊中
001_0003_c_21L遣所執以辨空性所引理敎具如上
001_0003_c_22L或有本曰照見五蘊等皆空雖有
001_0003_c_23L兩本後本爲正撿勘梵本有等言故
001_0003_c_24L後所說等準此應知

001_0004_a_01L
모든 고액苦厄을 구제한다.


이것은 둘째 남을 이롭게 하는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에는 세 종류가 있다. ① 첫째, 고苦는 즉 액厄이기 때문에 고액苦厄이라 한다. 육합석六合釋54) 중 지업석持業釋55)이다. 유루有漏의 법들은 고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세존께서 ‘삼계三界는 모두 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고의 문은 크게 보아 세 종류가 있으니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56)이다. 이 중에 팔고八苦가 있으니 태어남의 고통, 늙음의 고통, 병듦의 고통, 죽음의 고통, 미운 사람을 만나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오온이 치성하여 생기는 고통이다. 자세히는 고고가 있으니 25유二十五有 하나하나에 모두 생生, 주住, 이異, 멸滅 사유위상四有爲相이 있기 때문에 백 가지의 고가 된다. 25유란 사인四人57), 사악취四惡趣58), 사공四空59), 사선四禪60), 범왕梵王61), 육욕천六欲天62), 무상천無想天63), 아나함阿那含64)이다. ② 둘째, 고액은 즉 사액四厄이니 욕欲, 유有, 견見, 그리고 무명無明을 말한다. 이와 같은 네 종류는 유정들을 얽어매어 고를 받게 하는 것이 흡사 수레의 멍에(軛)65)와 같다. 만약 이 해석에 의거한다면 고의 액이기 때문에 고액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합석 중 의주석依住釋66)이다. ③ 셋째, 고와 액은 따로 지칭하는 것이 있으니 앞의 두 해석과 같다. 그러므로 육합석 중 상위석相違釋67)이다.

사리자


이 아래에서는 둘째 관찰되는 대상을 밝힌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4구句에 의거해서 공성空性을 밝히고, 뒤에서는 여섯 가지 의미에 의거해서 공상空相을 밝히는 것이다. 앞은 다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교화를 받는 사람을 표방하고, 뒤에서는 공성을 바로 밝힌다. 이것은 교화를 받는 사람을 표방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사리부다라奢利富多羅’68)인데, 혹은 ‘사리불다라舍利弗多羅’라 하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사리舍利’를 번역해서 ‘구욕鸜鵒 새’라고 한다. ‘불다라弗多羅’는 이 나라에서 ‘자子’라고 한다. 어머니 눈의 푸른 안구가 구욕 새의 눈을 닮았기에 어머니의 이름을 세워 구욕 새라 호칭하는 것이다. 『명도경』에서

001_0004_a_01L
度一切苦1)危者

001_0004_a_02L
此卽第二顯利他用此有三種一曰
001_0004_a_03L苦卽是厄故名苦厄六釋之中是持
001_0004_a_04L業釋有漏諸法無非是苦故世尊說
001_0004_a_05L三界皆苦然此苦門略有三種
001_0004_a_06L謂苦苦壞苦行苦中則有八謂生老
001_0004_a_07L病死怨憎會苦愛別離苦求不得苦五
001_0004_a_08L盛陰苦廣有2)苦苦謂二十五有
001_0004_a_09L一皆有生住異滅四有爲相故成百
001_0004_a_10L苦二十五有四人四惡趣四空及四
001_0004_a_11L禪梵王六欲天無想阿那含3)擬注
001_0004_a_12L曰苦厄卽是四厄所謂欲有見及無明
001_0004_a_13L如是四種繫諸有情令受諸苦猶如
001_0004_a_14L車軛若依此釋苦之厄故名爲苦厄
001_0004_a_15L故六釋中是依主釋一曰苦厄別有
001_0004_a_16L所目如前兩釋故六釋中是相違釋

001_0004_a_17L
舍利子者

001_0004_a_18L
自下第二辨所觀境於中有二初約
001_0004_a_19L四句以辨空性後依六義以顯空
001_0004_a_20L前中有二初標受化人後正辨
001_0004_a_21L空性此卽標人梵音奢利富多羅
001_0004_a_22L云舍利弗多羅此翻舍利名鸜鵒
001_0004_a_23L多羅此云子母眼靑精似鸜鵒眼
001_0004_a_24L立母名號爲鸜鵒明度經曰1)鷲鷺

001_0004_b_01L“혹은 우바제사優婆提舍69)라 하기도 하는 추로자鶖鷺子는 아버지를 따라 호칭을 세운 것이다.”라고 한다. 옛날에는 ‘신자身子’로 번역했는데 이는 오류이다.

이 반야는 보살의 법인데 왜 세존께서는 ‘사리자!’ 하고 부르고 ‘보살!’ 하고 부르지 않는가? 『대지도론』에서 “사리불舍利弗 그 사람은 만 가지의 삼매를 얻었고 모든 부처님의 제자 중 지혜가 제일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의 지혜는, 부처님 세존을 제외하고는, 사리불의 지혜와 다문多聞을 따라잡고자 하나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또 사리불은 나이가 비로소 팔 세가 되었을 때 무릇 작성된 논의 말들의 이치에 달통했다. 그때 모든 논사들은 일찍이 이런 일이 없었다고 감탄하였으며 어리석은 사람이건 지혜로운 사람이건 어른이건 어린애건 모두 엎드렸다.”라고 한다. 이 다른 인연들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래서 여기서 ‘사리자!’ 하고 부른 것이다. 또 소승을 이끌어 대승으로 향해 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이것은 네 구句에 의거해서 공성을 바로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색온에 의거해서 네 구를 밝히고, 뒤에서는 이를 사온四蘊에 적용하는 것이니 모두에 네 구가 있는 셈이다. 이것은 색온에 의거해서 네 구를 밝힌 것이다.
이제 네 구를 해석하겠다. 먼저 공성을 나누는 것은 앞에서 분별한 바와 같다. 공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공生空이고 다른 하나는 법공法空이다. 방금 말한 생공에는 네 가지가 있다. ① 첫째 변계소집의 아我가 없음 이를 공이라 말한다. 법수法數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사지론』 「보살지」에서 “유위와 무위의 있음을 있음(有)이라 하고 아我와 아소我所70)의 없음을 없음(無)이라 한다.”fk고 말한다. ② 둘째 생공生空에 의해 나타나는 진여이니 공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기에 또한 공이라고 말한다. ③ 셋째 고제苦諦에 속한 유루有漏의 부분적인 공이니, 이는

001_0004_b_01L子或云優婆提舍者從父立號舊翻
001_0004_b_02L身子者謬也問此般若是菩薩法
001_0004_b_03L故世尊告舍利子而非菩薩答如智
001_0004_b_04L度論說舍利弗其人得十千三味
001_0004_b_05L一切佛弟子中智慧第一故世尊說
001_0004_b_06L一切衆生智唯除佛世尊欲比舍利
001_0004_b_07L弗智慧及多聞於十六分中猶尙不
001_0004_b_08L及一又舍利弗年始八歲凡所立
001_0004_b_09L辭理超絕時諸論師歎未會有
001_0004_b_10L愚智大小一切皆伏自餘因緣廣如
001_0004_b_11L彼論是故此中告舍利子又欲引小
001_0004_b_12L廻趣大乘

001_0004_b_13L
色不異空空不異色色卽是空空卽
001_0004_b_14L是色者

001_0004_b_15L
此約四句正辨空性於中有二
001_0004_b_16L約色蘊以辨四句後類四蘊皆有
001_0004_b_17L四句此約色蘊以辨四句將釋四
001_0004_b_18L先辨空性者如前分別空有二
001_0004_b_19L一者生空二者法空所說生空
001_0004_b_20L有其四種一者所執我無說之爲空
001_0004_b_21L諸法數中所不攝故是故瑜伽菩薩
001_0004_b_22L地曰有爲無爲名爲有無我我所名
001_0004_b_23L爲無二者生空所顯眞如空所詮故
001_0004_b_24L亦說爲空三者苦諦所攝有漏別空

001_0004_c_01L유루의 오온을 본체로 삼는다. 그래서 『성유식론』 제6권에서 “부분적인 공空과 비아非我는 고제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④ 넷째 모든 법들에 속한 전체적인 공空과 비아非我이니 이는 모든 법들을 본체로 삼는다. 그래서 여러 경에서 모든 법들의 무아無我를 설하는 것이다.
비록 네 종류가 있긴 하나 3자성의 이치에 의거할 때 세 종류로 포섭된다. 첫째는 변계소집성의 공이고, 둘째는 의타기성의 공이고, 셋째는 원성실성의 공이다. 그 순서대로 3자성을 본체로 삼는다. 법공法空의 네 종류를 언급한 글은 없으나 이치에 의거해서 따져 볼 때 네 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법공의 세 종류는 앞의 것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자세히 분별한다면 18공71)이 있다. 『십팔공론』에서 거론하고 있는 바와 같다. 『대반야경』에서는 16공, 17공, 18공, 내지 20공을 거론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그 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이제 삼자성三自性에 의거해서 네 구를 해석하겠다. 네 구 중에서 앞의 두 구는 주장을 표방하며 바로 설하는 것이고, 뒤의 두 구는 외인外人의 의혹을 물리치는 것이다.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란 속제가 진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란 진제가 속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뒤의 두 구는 외인外人의 의혹을 물리치는 것이다. 외인은 서로 의지하기에 다르지 않다고 하는가, 서로 합치하기에 다르지 않다고 하는가 하는 의혹을 품는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서로 의지하기에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합치하기에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에 대해서 인도의 논사들 간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1) 첫째 청변을 비롯한 논사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색은 세 종류가 있다. 변계소집의 색 등72)이다. 공은 자성自性을 내버리니 본체가 삼자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색이 곧 공이고”란 변계소집성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001_0004_c_01L卽用有漏五蘊爲體故成唯識第六
001_0004_c_02L卷曰別空非我屬苦諦故四者諸
001_0004_c_03L法所攝通空非我卽用諸法以爲體
001_0004_c_04L故諸經說一切法無我雖有四
001_0004_c_05L依三性理攝以爲三一所執性
001_0004_c_06L二依他性空三圓成實空如其
001_0004_c_07L次第三性爲體法空四種雖無正
001_0004_c_08L以理推徵應有四句法空三種
001_0004_c_09L準上應知若廣分別有十八空如十
001_0004_c_10L八空論依大般若或說十六十七十
001_0004_c_11L八乃至二十具如彼經今依三性
001_0004_c_12L釋四句於四句中初之二句標宗
001_0004_c_13L正說後之二句遣外疑情

001_0004_c_14L
色不異空者標俗不異眞空不異色
001_0004_c_15L標眞不異俗後遣外疑情外人
001_0004_c_16L設疑互相依故爲不異耶爲相卽
001_0004_c_17L故名爲不異故作此說色卽是空
001_0004_c_18L卽是色非相依故名爲不異非相卽
001_0004_c_19L故名爲不異卽依此文西方諸師
001_0004_c_20L有兩釋一淸辨等曰色有三種
001_0004_c_21L所執等空能遣性體非三性今言
001_0004_c_22L色卽是空者遍計所執本來無故
001_0004_c_23L「危」疑「厄」「苦」疑「百」{編}「擬注」
001_0004_c_24L疑剩
「鷲」疑「鵞」

001_0005_a_01L이를 공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이 공 또한 공이다.73) 그래서 『중론』에서 “만약 불공不空의 법이 있다면 공空의 법이 있으리라. 불공不空의 법이 없는데 어떻게 공空의 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74) 하고 말한다. 뒤의 2자성自性의 공도 이것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있음의 집착을 없애기 위해 “그것(색)이 곧 공이다.”라고 설하는 것이다.
의타기성은 환술 등이 그렇듯 연緣에 의지하기 때문에 공이다. 원성실성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허공의 꽃이 그렇듯 자체自體가 또한 공이다. 이 주장하는 문장75)을 해석함에 있어서 또 한 가지의 풀이가 있다. 앞의 2자성自性76)을 내버리지만 원성실성은 내버리지 않는다. 두 학파77)는 모두 있음과 없음의 상相을 여의었고 희론戲論이 끊겨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색色과 공空을 상대시켜서 같은가 다른가 하고 묻는 것이다. 만약 색과 공의 본체가 같아서 서로 합치해 있다면 같음의 집착이 성립할 것이다. 만약 다르다면 다름의 집착이 성립할 것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면 어찌 모순되지 않겠는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면 희론이 성립할 것이다.78)

이 네 구의 분별79)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 풀이가 성립한다. 첫째 외도와 소승은 대개는 ‘지시해서 표현하는 문(表門)’에 의지해서 네 구를 설명한다. 있음과 없음 등은 표현되는 대상 곧 지시체(所詮)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둘째 대승에 서면 있음과 없음 등의 말은 모두 ‘배제해서 표현하는 것(遮詮)’이다. 모든 법들은 말할 수 없는 것(不可說)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법들은 모두 두 상相이 있다.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다.80) 자상은 오직 지각(現量智)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추리(假智)나 언어(言)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추리나 ‘언어에 의해 표현되는 것(言所詮)’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것은 공상共相이다. 우선 예를 들어 청색의 줄기, 잎 따위의 상相을 말한다고 해 보자. 그 상은 각각 달라서 오직 지각(現量)에 의해 얻어질 뿐이다. 이로부터 추리와 언어는 단지 청색 상의 공상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고, 청색을 말할 때 황색 등을 배제하기에 청색을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81) 곧바로 청색을 ‘지시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기에 ‘배제해서 표현하는 것(遮詮)’이라고 말한다.
‘배제해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 청변 학파의 설명이다. 그 진성眞性의 도리道理는 이름으로써 명명할 수 없고 상相으로써 표상할 수 없다. 무너뜨리려고 해도

001_0005_a_01L說之爲空據實此空亦非是空
001_0005_a_02L中論曰若有不空1)法則應當有
001_0005_a_03L2)實無不空法何得有空法
001_0005_a_04L後二性空準此應知爲除有執說
001_0005_a_05L彼空言依他起性猶如幻等
001_0005_a_06L緣故空圓成實性以不起故如似
001_0005_a_07L空華自體亦空有解宗中更一釋
001_0005_a_08L遣前二性非圓成實兩宗共許
001_0005_a_09L有無相絕戲論故問色空相對
001_0005_a_10L一異耶一體相卽便成一執體若
001_0005_a_11L異者則是異執亦一亦異寧不相
001_0005_a_12L非一非異應成戲論釋此四句
001_0005_a_13L分別成兩解一外道小乘多依表門
001_0005_a_14L以說四句言有無等有所詮故
001_0005_a_15L依大乘有無等言皆是遮詮一切
001_0005_a_16L諸法不可說故然一切法皆有二相
001_0005_a_17L謂卽自共自相唯是現量智得非假
001_0005_a_18L智言所可得故若假智言所詮得者
001_0005_a_19L謂卽共相且如說靑莖葉等相
001_0005_a_20L各異唯現量得由斯假智及諸名言
001_0005_a_21L但能詮表靑上共相而說靑時遮黃
001_0005_a_22L故名爲說靑非正表靑故說遮詮
001_0005_a_23L就遮詮中自有兩說一淸辨宗
001_0005_a_24L性道理不可以名名不可以相相

001_0005_b_01L집착이 없고 세우려고 해도 당체當體가 없다. 인용할 정리正理와 성교聖敎는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둘째 호법 학파의 설명이다. 세속과 승의의 도리道理는 실제로 있으나 모두 언어를 여의었다. 그중 진성은 세속에 상대되는 것이기에 진성이란 말로 표현하니 ‘표현되는 대상(所詮)’이 없는 것이 아니다. 청변 학파의 한 논사가 말한 것도 이 풀이와 같다. 그러므로 호법은 청변을 타파해 “만약 진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들이 공이다.’라고 말한다면 상부극성相符極成의 과실82)이 성립한다.”라고 말한다. 청변 학파에서는 의타기성을 내버리지만 호법 학파는 의타기성을 내버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두 학파간에는 차이가 있다. 이런 도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 불교(內宗)에서 말하는 있음(有)과 없음(無) 등의 말은 모두 ‘배제해서 표현하는 것’이어서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는 희론戱論 등의 과실을 멀리 여의었다.

이제까지 청변의 학파에 의거해서 문장을 해석했다. (2) 이제 호법에 의거해서 네 구를 해석하겠다. 색은 세 가지가 있다. 삼자성의 색을 말한다. 공 또한 세 가지가 있다. 본체가 삼자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착無着(asaṅga, 310∼390년경) 보살은 『변중변론』에서 “공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성無性의 공이다. 자성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성異性의 공이다. 허망하게 집착된 자성과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성自性의 공이다. 이공二空에 현현하는 것을 자성으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변계소집의 색을 공에 상대시킬 때 세 가지의 네 구가 있다. ① 첫째 변계소집의 색을 변계소집의 공에 상대시켜서 네 구를 밝힌다. 망정妄情에 따라서 집착된 근根과 경境 등의 색은 변계소집의 본래 없음의 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본래 없음의 공은 망정妄情에 따른다면 있기 때문에 “공이 곧 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성同性의 상즉相卽83)이다. 주장을 표방하는 두 구句84)도 위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② 둘째 변계소집의 색을 의타기의 공에 상대시켜서 네 구를 밝힌다. 의타기에 의탁해서 집착된 실實의 색色은 의타기의 무실無實의 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망정妄情이 그 공한 곳(空處)에 있어서 실實의 색色이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공이

001_0005_b_01L而無執立而無當所引理敎準上
001_0005_b_02L應知二護法宗實有世俗勝義道理
001_0005_b_03L皆離名言於中眞性對世俗故說眞
001_0005_b_04L言非無所詮淸辨宗中一師所
001_0005_b_05L亦同此釋是故護法破淸辨曰
001_0005_b_06L依眞性說諸法空便成相符極成之
001_0005_b_07L於淸辨宗遣依他性護法不許
001_0005_b_08L故有差別由斯道理內宗所說
001_0005_b_09L無等言皆是遮詮遠離一異戲論等
001_0005_b_10L依淸辨宗釋文已訖二依護法
001_0005_b_11L釋四句者色有三種謂三性色
001_0005_b_12L亦有三體卽三性是故無著菩薩
001_0005_b_13L中邊曰空有三種一無性空性非
001_0005_b_14L有故二異性空與妄所執自性異故
001_0005_b_15L三自性空二空所顯爲自性故依遍
001_0005_b_16L計色對空四句有其三種一所執色
001_0005_b_17L對所執空以辨四句隨情所執根境
001_0005_b_18L等色不異所執本無之空是故說爲
001_0005_b_19L色卽是空本無之空隨情卽有
001_0005_b_20L言空卽是色此是同性相卽標宗二
001_0005_b_21L句準上應知二所執色對依他空
001_0005_b_22L辨四句附託依他所執實色不異依
001_0005_b_23L他無實之空是故說言色卽是空
001_0005_b_24L彼妄情於彼空處執有實色故言空

001_0005_c_01L곧 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장을 표방하는 두 구도 위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이성異性의 상즉相卽85)이다. ③ 셋째 변계소집의 색을 원성실의 공에 상대시켜서 네 구를 밝힌다. 원성실에 있어서 실實의 색色을 집착하는 것은 원성실의 자성공自性空과 다르지 않으며 자성공에 있어서 실實의 색色을 집착하기 때문에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장을 표방하는 두 구도 위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의타기의 이체異體의 상즉相卽과 같다.

① 의타기의 색을 이성공異性空에 상대시킬 때도 그 네 구가 있다. 연緣에서 발생한 색은 의타기의 이성공異性空과 다르지 않고, 또 이 공성이 곧 질애質礙이기 때문에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성同性의 상즉相卽이다. 주장을 표방하는 두 구도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② 또 연緣에서 발생한 의타기의 색을 2자성86)에 상대시켜 풀이할 때 두 가지의 네 구가 있다. 상이한 자성에 상대시키는 것이니 앞의 풀이와 다르지 않다. 자성공自性空에 상대시킬 때 네 구가 있다. 연緣에서 발생한 색은 진여를 본체로 삼으며 또 그 공성은 의타기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성유식론』에서 “그러므로 이것은 의타기와 다른 것이 아니며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무상성 등이 그렇듯이.” 하고 말한다. 또 『변중변론』에서 “이것에 오직 공이 있을 뿐이네. 저것에도 이것이 있네.”87)라며 말하고 있다.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의타기와 원성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緣에서 발생한 것이 공하기 때문에 서로 합치한다(相卽)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88) 주장89)을 어기는 과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90) 이것은 이성異性의 상즉相卽이다. 주장을 표방하는 두 구도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① 원성실성의 색을 자성공自性空에 상대시킬 때도 그 네 구가 있다. 원성실성의 색은 의타기성의 색의 실성實性이기 때문에 색이라고 한다.

001_0005_c_01L卽是色標宗二句準應可知此是異
001_0005_c_02L性相卽三所執色對圓成實以辨四
001_0005_c_03L於圓成性執爲實色不異圓成
001_0005_c_04L自性之空於自性空執爲實色
001_0005_c_05L言色卽是空空卽是色標宗二句
001_0005_c_06L應可知此如依他異體相卽依他起
001_0005_c_07L色對異性空有其四句謂緣生色不
001_0005_c_08L異依他異性之空然此空性是質礙
001_0005_c_09L是故說爲色卽是空空卽是色
001_0005_c_10L是同性相卽標宗二句準應可知
001_0005_c_11L釋依他緣生之色對二性空有二四
001_0005_c_12L對異性故不異前釋對自性空亦
001_0005_c_13L有四句謂綠生色用如爲體然彼
001_0005_c_14L空性不異依他故成唯識作如是說
001_0005_c_15L故此與依他非異非不異如無常等
001_0005_c_16L又中邊云此中唯有空於彼亦
001_0005_c_17L有此由斯道理依他圓成互不相離
001_0005_c_18L是故說言色卽是空空卽是色非緣
001_0005_c_19L生空故說相卽不爾應成違宗失
001_0005_c_20L此是異性相卽標宗二句準應可知
001_0005_c_21L圓成實性對自性空有其四句謂圓
001_0005_c_22L成實是依他起色實性故名之爲色
001_0005_c_23L「法則」論無「法實…空法」十一字論作
001_0005_c_24L「有空尙不得何況得於空」

001_0006_a_01L아공我空과 법공法空에 현현한 것이기 때문에91) 원성실성의 공이라고 한다.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성同性의 상즉相卽이다. 주장을 표방하는 두 구도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수, 상, 행, 식도 이와 같다.


이것은 둘째 사온四蘊도 색온처럼 각각 네 구가 있다고 풀이한 것이다. 네 구의 서로 합치하는 것(相卽)은 위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또 해석하면 이 경에는 본래 두 본이 있다. 한 본은 위에서 말한 대로이다. 또 한 본의 경은 “수, 상, 행, 식 등等도 이와 같다.”라고 되어 있다. ‘등等’이란 말은 아래의 경문에 준할 때 여섯 선교善巧92)를 가리킨다. 즉 온蘊, 처處, 계界, 연생緣生, 사제四諦, 보리와 열반이다. 이제 “사온 등”93)을 거론한다. 그 밖에 다섯 문94)도 각각 네 구가 있기에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섯 문의 차이는 후에 분별할 것이다.

사리자! 이 모든 법의 공상空相은 발생함이 없고 소멸함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으며 늘어남이 없고 줄어듦이 없다.


이 아래에서는 둘째 여섯 가지의 의미에 의거해서 공상空相을 보여 준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여섯 가지의 의미에 의거해서 공상空相을 바로 보여 주고, 뒤에서는 공상에 의거해서 여섯 문門의 법을 내버린다. 여섯 가지의 상相을 보여 주는 부분에서 “사리자!” 하고 호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풀이한 바 있다. 여섯 가지의 상相이란 발생함이 없음(不生), 소멸함이 없음(不滅), 더러움이 없음(不垢), 깨끗함이 없음(不淨), 늘어남이 없음(不增), 줄어듦이 없음(不減)이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의 상에 대해서 인도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청변 학파의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호법 학파의 해석이다.

(1) 청변 학파에 의거해서 여섯 가지의 상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본래는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을 ‘발생함(生)’이라 하고 잠시 있다가 다시 없는 것을 ‘소멸함(滅)’이라 한다.『유가사지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본성이 물들어 있어 깨끗하지 않은 것을 ‘더러움(垢)’이라 하고 물들어 있지 않아 더럽지 않은 것을 ‘깨끗함(淨)’이라 한다.모든 성교聖敎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법이 작용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늘어남(增)’이라 하고 법이 괴멸한다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을 ‘줄어듦(減)’이라 한다.『섭대승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세 맞짝의 여섯 가지 상에 대해서 세 가지 서로 다른 학설이 있다. ① 어떤 논사는 “이 문장은 단계(位)에 의거해서 세 맞짝을 밝히고 있다. 진실의 공성은 모든 상을 여의었기 때문에, 도道의 앞 단계에서는

001_0006_a_01L我法二空之所顯故說圓成空由此
001_0006_a_02L道理是故說言色卽是空空卽是色
001_0006_a_03L此是同性相卽標宗二句準應可知

001_0006_a_04L
受想行識亦復如是者

001_0006_a_05L
此卽第二類釋四蘊皆有四句四句
001_0006_a_06L相卽準上應知又解此經自有兩本
001_0006_a_07L一本如上一本經曰受想行識等亦
001_0006_a_08L復如是所言等者準下經文有六善
001_0006_a_09L謂蘊處界緣生四諦菩提涅槃
001_0006_a_10L擧四蘊等餘五門皆有四句故說等
001_0006_a_11L六門義別後當分別

001_0006_a_12L
舍利子是諸法空相不生不滅不垢
001_0006_a_13L不淨不增不減者

001_0006_a_14L
自下第二約六種義以顯空相於中
001_0006_a_15L有二初約六義正顯空相後依空相
001_0006_a_16L遣六門法顯六相中命舍利子
001_0006_a_17L上已釋六相卽是不生不滅不垢不
001_0006_a_18L淨不增不減然此六相西方兩釋
001_0006_a_19L者淸辨二者護法依淸辨宗釋六相
001_0006_a_20L本無今有名生蹔有還無名滅

001_0006_a_21L
性染不淨名垢離染非垢稱淨如諸
敎說

001_0006_a_22L執法有用曰增妄計法壞名減如攝大
乘論說

001_0006_a_23L三對六相三說不同一曰此文約位
001_0006_a_24L辨三謂眞空性離諸相故道前遠

001_0006_b_01L유전流轉해서 발생함과 소멸함을 멀리 여의었고 도道의 중간 단계에서는 혹惑95)의 더러움과 지智의 깨끗함이 없고 도道의 뒤 단계에서는 본체와 작용의 늘어남과 줄어듦을 영원히 내버렸다.”라고 말한다. ② 어떤 논사는 “이 문장은 삼자성에 의거해서 세 가지의 상을 밝히고 있다. 변계소집자성은 본래 없는 것이기에 발생함도 없고 소멸함도 없다. 의타기자성은 연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 원성실자성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라고 말한다. ③ 어떤 논사는 “이 문장은 세 맞짝의 여섯 가지 상 하나하나에 모두 모든 단계와 모든 자성이 적용된다는 것을 말한다. 삼자성을 모두 내버리니 보존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세 가지 학설 중 맨 나중의 것이 가장 뛰어나다. 그 학파의 주장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2) 호법 학파에 의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치로 보아 실제로 공상空相에는 같지 않음, 다르지 않음, 있지 않음, 없지 않음 등 많은 상相이 있으나, 이 경에서는 우선 세 맞짝의 여섯 가지 상을 거론한다. 발생함과 소멸함은 유위有爲96)의 공통된 상相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은 오직 법의 성품만을 밝힌 것이다. 늘어남과 줄어듦이란 말은 법 위에 부가되는 의미의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이치로 볼 때 실제로는 세 가지의 공空97)에 여섯 가지의 상相 모두가 있다. 그러나 경의 의도는 자성공自性空을 바로 보이고자 하는 데 있다. 생공生空과 법공法空 2공에 현현하는 진리眞理는 미혹(迷)과 증오證悟 모두가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에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이 없으며,


이 아래는 둘째 앞의 공상空相에 의해서 여섯 문門의 법을 내버리는 것이다. 여섯 문의 법을 내버리는 부분은 여섯으로 나뉜다. 이것은 첫째 오온의 문을 내버리는 부분이다. 법들의 공은 여섯 가지의 상相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공에는 오온의 법이 없다. 오온 각각의 뜻은 앞에서 풀이한 바와 같다. 여기서 말하는 여섯 문의 법은 합해서 이승二乘의 공통 대상과 고유 대상을 나타낸다. 앞의 세 문의 법98)은 오직 법의 본성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삼승三乘의 공통 대상이라고 말한다. 앞의 법의 본성에 의지해서 근기에 따라서 연생緣生 등의 문으로 나누어 말하는 것이기에 뒤의 세 문의 법99)을 고유 대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법화경』에서 “성문인을 위해 사제四諦의 법을 말하고, 연각인을 위해 연생緣生의 법을 말하고,

001_0006_b_01L離流轉生滅道中卽無惑智垢淨
001_0006_b_02L後永捨體用增減一曰此文約性辨
001_0006_b_03L遍計所執本來無故不生不滅
001_0006_b_04L依他起性從緣生故不垢不淨
001_0006_b_05L成實性以不起故不增不減一曰此
001_0006_b_06L說三對六相一一皆通諸位諸性
001_0006_b_07L遣三性無所存故三中後勝順本宗
001_0006_b_08L依護法宗理實空相乃有衆多
001_0006_b_09L謂非一異及有無等而經且說三對
001_0006_b_10L六者生滅卽是有爲通相垢淨止辨
001_0006_b_11L諸法自性增減言顯法上義用理實
001_0006_b_12L三空通有六相經意正顯是自性空
001_0006_b_13L生法二空所顯眞理通與迷悟爲所
001_0006_b_14L依故

001_0006_b_15L
是故空中無色無受想行識者

001_0006_b_16L
自下第二依前空相遣六門法遣六
001_0006_b_17L門法卽分爲六此卽第一遣五蘊門
001_0006_b_18L謂諸法空具六種相是故空中無五
001_0006_b_19L蘊法五蘊義別如前已釋此中所說
001_0006_b_20L六門法者總顯二乘通別二境初三
001_0006_b_21L止顯諸法性故是故說言三乘通境
001_0006_b_22L依前法性隨根別說緣生等門是故
001_0006_b_23L後三名爲別境故法華曰爲聲聞人
001_0006_b_24L說四諦法爲緣覺人說緣生法爲諸

001_0006_c_01L보살들을 위해 육바라밀다의 법100)을 말한다.”라고 말한다.

안처, 이처, 비처, 설처, 신처, 의처가 없고 색처, 성처, 향처, 미처, 촉처, 법처가 없으며,


이것은 둘째 12처十二處의 문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12처의 뜻을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세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 명칭을 밝히는 것이고, 셋째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첫째,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을 밝힌다. 이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생공生空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와 법공法空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이다. 생공에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란, 그 『이십유식론』에서 여기서 말하는 12처의 교설에 의지해서 말하길, “만약 6종의 2법101)에서 6식102)이 전기轉起하기에 결코 보는 자 내지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유정有情의 무아無我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한다. 법공에 깨달아 들어간다란, 여기서 말하는 12처를 내버려서 법공의 리理를 현현하게 하는 것이다. 청변과 호법은 법을 내버리는 데 있어서 차이가 나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둘째, 명칭을 풀이한다. 앞에서는 전체의 명칭을 밝히고 뒤에서는 각 부분의 명칭을 밝힌다. 전체의 명칭인 12처十二處를 밝히는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12’란 수를 든 것이며 ‘처’란 생장生長의 의미이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은 모든 심법과 심소법을 생장시키기에 ‘처’라고 한다. 육합석 중 대수석帶數釋103)이다. 각 부분의 명칭을 밝히는 뒷부분은 다음과 같다. 『유가사지론』 제3권에서 “또, 자주 뭇 색을 보고 나서 다시 버리기 때문에 눈(眼)이라 한다. 자주자주 이것에 소리(聲)가 다다르고 듣기 때문에 귀(耳)라 한다. 자주 이것에 의해서 냄새(香)를 맡기 때문에 코(鼻)라 한다. 능히 굶어 마르는 것을 제거할 수 있고 자주 말을 일으켜서 지시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혀(舌)라 한다. 근根들이 수반되고 편만하게 집적해 있기 때문에 몸(身)이라 한다. 어리석은 범부는 길고 긴 밤 동안 장식하고 간직해서 자기가 있다고 집착하고 나의 것(我所)이라고 계탁하고 나(我)라고 계탁한다. 또 세간의 사람들은

001_0006_c_01L菩薩說六度法

001_0006_c_02L
無眼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者

001_0006_c_03L
此卽第二遣十二處故今略說十二
001_0006_c_04L處義三門分別一明敎興二釋名
001_0006_c_05L三出體性言敎興者自有二意
001_0006_c_06L所謂悟入生法二空入生空者如彼
001_0006_c_07L二十唯識論云依此所說十二處敎
001_0006_c_08L若了知從六二法有六識轉都無
001_0006_c_09L見者乃至知者便能悟入有情無我
001_0006_c_10L入法空者卽此所說遣十二處顯法
001_0006_c_11L空理淸辨護法遣差別如上應思
001_0006_c_12L次釋名者先總後別初卽總明十二
001_0006_c_13L處者十二是擧數處是生長義
001_0006_c_14L六根境生長一切心心所法故名爲
001_0006_c_15L六釋之中是帶數釋後別名者
001_0006_c_16L如瑜伽論第三卷說復次屢觀衆色
001_0006_c_17L1)觀而復捨故名爲眼2)數於此
001_0006_c_18L至能聞故名爲耳數由此故能嗅諸
001_0006_c_19L故名爲鼻能除飢羸數發言論
001_0006_c_20L表彰呼召故名爲舌諸根所隨
001_0006_c_21L徧積聚故名爲身愚夫長夜瑩飾藏
001_0006_c_22L執爲己有計爲我所及我又諸世
001_0006_c_23L「觀而」或作「而觀」「數於此」一作「由
001_0006_c_24L此故」

001_0007_a_01L이것에 의지해서 갖가지 이름(名)과 상想을 임시로 세워서 이를 유정有情(sattva), 인人(pudgala), 명자命者(jīva), 생자生者(jantu), 의생意生(manuja), 유동儒童104) 등이라고 하기 때문에 의意라고 한다. 자주 보이는 것이고 그 장소를 점유하고 있으며 질애質礙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색色이라 한다. 자주 꺼내고 자주 거두며 다른 말이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에 소리(聲)라 한다. 저항성이 없고 형태가 잠복해 있고 자주 바람에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냄새(香)라 한다. 혀로 맛볼 수 있고 자주 매운맛과 쓴맛을 불러오기 때문에 맛(味)이라 한다. 자주 몸(身)에 느껴 얻어지기 때문에 감촉되는 것(觸)이라 한다. 편재하고 보유되며 오직 의意(manas)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법法이라 한다.”라고 한다.

셋째, 본체를 드러낸다. 안근眼根이란 여러 논에서 “사대四大105)로써 만들어진 것(四大所造)이고 안식眼識이 의지하는 곳이고 맑은 색을 본체로 한다.”라고 말한다. 안근에 대해 말한 바와 같이, 내지 이근耳根은 사대로써 만들어진 것이고 이식耳識이 의지하는 곳이고 맑은 색을 본체로 한다. 의근意根은 8식識 모두를 본체로 삼는다. 색色이란 『아비달마집론』에서 “사대로써 만들어진 것이고 안근이 작용하는 곳이고 25색을 자성으로 한다. 25색이란 청색, 황색, 적색, 백색, 긴 모양, 짧은 모양, 네모 모양, 둥근 모양, 거칢, 고움, 높음, 낮음, 평평함(正), 평평하지 않음(不正), 강렬한 빛(光, ātapa), 그림자(影, chāyā), 은은한 빛(明, āloka), 어둠(暗, andhakāra), 구름(雲, abhra), 김(煙, dhūma), 먼지(塵, rajas), 안개(霧, mahikā), 형색逈色(abhyavakāśa-rūpa), 표색表色(vijñapti-rūpa), 공일현색空一顯色(nabha-ekavarṇa-rūpa)이다. 소리(聲)에는 11종이 있다. 듣기 좋은 소리, 듣기 싫은 소리, 듣기에 좋지도 싫지도 않은 소리, 유집수有執受106)의 대종大種에서 나는 소리, 무집수無執受의 대종에서 나는 소리, 유집수와 무집수의 대종에서 동시에 나는 소리, 세간에서 자타에게 모두 성립하는(世所共成) 소리107), 성취한 자가 가져온(成所引) 소리108), 변계소집遍計所執109)의 소리, 성자의 말에 속하는 소리, 성자의 말에 속하지 않는 소리이다. 냄새(香)에는 6종이 있다. 몸에 좋은 냄새, 몸에 나쁜 냄새, 몸에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냄새, 함께 생기는 냄새, 섞인 냄새, 변한 냄새이다. 맛(味)에는 12종이 있다. 쓴맛, 신맛, 단맛, 매운맛, 짠맛, 담담한 맛, 좋은 맛, 나쁜 맛,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맛, 함께 생기는 맛, 섞인 맛, 변한 맛이다.
감촉되는 것(觸)에는 26종이 있다.

001_0007_a_01L依此假立種種名想謂之有情人
001_0007_a_02L與命者生者意生及儒童等故名爲
001_0007_a_03L數可示現在其方所質礙可增
001_0007_a_04L故名爲色數宜數謝隨增異論
001_0007_a_05L名爲聲離質潛形屢隨風轉故名
001_0007_a_06L爲香可以舌嘗屢招疾苦故名爲
001_0007_a_07L數可爲身之所證得故名爲觸
001_0007_a_08L能任持唯意憶性故名爲法

001_0007_a_09L
第三出體者眼根者如諸論說
001_0007_a_10L大所造眼識所依淨色爲體如說
001_0007_a_11L眼根乃至耳根四大所造耳識所依
001_0007_a_12L淨色爲體意根通用八識爲體色者
001_0007_a_13L如集論說四大所造眼根所行二十
001_0007_a_14L五色以爲自性謂靑黃赤白長短方
001_0007_a_15L圓麤細高下若正不正光影明闇
001_0007_a_16L烟塵霧逈色表色空一顯色聲有十
001_0007_a_17L一謂若可意若不可意若俱相違
001_0007_a_18L因受大種若因不受大種若因俱大
001_0007_a_19L種若世所共成若成所引若徧計所
001_0007_a_20L執若聖言所攝若非聖言所攝香有
001_0007_a_21L六種謂好香惡香平等香俱生香
001_0007_a_22L和合香變異香味有十二苦酢甘辛
001_0007_a_23L鹹淡若可意若不可意若俱相違
001_0007_a_24L俱生若和合若變異觸有二十六

001_0007_b_01L사대四大, 매끄러움, 껄끄러움, 가벼움, 무거움, 따뜻함, 느릿함(緩, mandatva), 서두름(急, amandatva), 차가움, 배고픔(飢, jighatsā), 목마름(渴, pipāsā), 더러움, 배부름(飽, tṛpti), 힘(力, bala), 무력(劣, daurbalya), 기절(悶, mūrcchā), 가려움(癢, kaṇdūti), 끈끈함(黏, pūti), 병病(vyādhi), 노사老死(jarāmaraṇa), 피로(疲, klānti), 휴식(息, viśrāma), 용기(勇, ūrjā)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다섯 대상(塵)에 대해서는 『아비달마잡집론』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에 대한 여러 논서의 같거나 다른 점은 다른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법처法處는 100법의 문 중에서 82법을 본성으로 삼는다. 51심소법110), 1색법 곧 법처의 색법, 24불상응행법111), 6무위법112)이다. 『아비달마집론』 등에 의거하면 88법을 본성으로 삼는다. 4종의 법처의 색법113)과 2무위법114)이 더해진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 밖에 문門을 분별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안계가 없고, 내지 의식계가 없으며,


이것은 셋째 18계의 문을 내버리는 것이다. 이 18계에서도 세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을 보이고, 둘째 명칭을 풀이하고, 셋째 본체를 드러낸다.
첫째, 교설을 일으키게 된 인연을 보인다. 색色과 심心을 나(我)라고 하는 이와 근기가 낮은 이를 위해서 세존께서는 18계十八界를 설하셨다.
둘째, 명칭을 풀이한다. 앞에서는 전체의 명칭을 풀이하고 뒤에서는 각 부분의 명칭을 풀이한다. 먼저 전체의 명칭인 18계를 풀이한다. ‘18’이란 수이다. ‘계界’란 종족種族을 의미하며 본성의 구별을 의미한다. 모든 법들은 열여덟 가지의 종족에 속하며 본성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대수석帶數釋이니 위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각 부분의 명칭을 풀이한다.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은 12처十二處를 다룰 때 설명한 바와 같다. 6식이 명칭을 얻은 데는 그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대상(境)을 좇아서 색식色識 내지 법식法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대상을 따라서 명칭을 세우는 것은 식識에 부합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근根을 좇아서 안식眼識 내지 의식意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감관(根)을 좇아서 명칭을 세우는 것은 식이 의지하는 곳, 식을 발생하게 하는 것 등 다섯 가지의 의미115)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색色의 식識이기에 색식色識이라 이름하고, 내지 의意의 식識이기에 의식意識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육합석 중 의주석依主釋이다. 자세히

001_0007_b_01L所謂四大滑澀輕重輭緩急冷饑渴
001_0007_b_02L濁飽力劣悶癢黏病老死疲息勇
001_0007_b_03L此五塵廣如雜集諸論同異具如別
001_0007_b_04L法處卽用百法門中八十二法
001_0007_b_05L爲自性謂心所法中五十一色中有
001_0007_b_06L謂法處色不相應二十四無爲
001_0007_b_07L有六依集論等八十八法以爲自性
001_0007_b_08L謂四種法處色及二無爲具如彼說
001_0007_b_09L餘門分別廣如別章

001_0007_b_10L
無眼界乃至無意識界者

001_0007_b_11L
此卽第三遣十八界此十八界三門
001_0007_b_12L分別一顯敎興二釋名字三出體
001_0007_b_13L言敎興者謂執色心以爲我者
001_0007_b_14L及下根者是故世尊說十八界
001_0007_b_15L釋名者先總後別總名十八界者
001_0007_b_16L八是數界是種族義及性別義一切
001_0007_b_17L諸法十八種族及性別故是帶數釋
001_0007_b_18L準上應知次別名者六根六塵如處
001_0007_b_19L中說六識得名有其二義一者從境
001_0007_b_20L名爲色識乃至法識隨境立名順識
001_0007_b_21L義故二者從根名爲眼識乃至意識
001_0007_b_22L隨根立名具伏發等五種義故此卽
001_0007_b_23L色之識故名爲色識乃至意之識故
001_0007_b_24L名爲意識故六釋中是依主釋若具

001_0007_c_01L분별한다면 『성유식론』 제5권에서 설한 바와 같다.
셋째, 본체를 밝힌다. 안계眼 등 12계는 12처를 다룰 때 설명한 바와 같다. 안식眼識 등 6식은 100법의 문 중 그 자체의 명칭대로 안식 등 6식을 본체로 삼는다. 그밖에 문들은 여러 논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바와 같다.

무명도 없고 무명의 멸진도 없으며, 내지 노사도 없고 노사의 멸진도 없으며,


이것은 넷째 연생緣生의 문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전流轉이고 다른 하나는 환멸還滅이다. 무명無明 때문에 행行들이 일어나고, 내지 생生이 연이 되어서 노사老死가 일어난다. 이와 같이 오취五趣116)와 사생四生117)을 타고 흐른다(順流). 마치 보름달의 시작을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공성空性에는 이런 유전流轉이 없기에 경에서 ‘무명이 없고 내지 노사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관하는 지智의 힘으로써 무명無明을 소멸하게 하고, 무명이 소멸하기에 행行들도 소멸하고, 이와 같이 내지 생生이 소멸하기에 노사老死도 소멸한다. 이것은 앞의 것을 굴려서 열반에 귀환하는 것이기에 환멸還滅이라 한다. 공성에는 이 환멸이 없기에 경에서 ‘무명의 소멸도 없고, 내지 노사의 소멸도 없다.’라고 설하는 것이다. 왜 이 경을 설해 이 문을 일으키는가? 『법화경』에서 “연각緣覺을 구제하고자 연생을 말한다.”라고 하지만 이제 이 경에서는 법공法空을 보여 주고자 이 문을 설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연생에 대해서 풀이하는 것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간략하게 세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 명칭을 풀이하는 것이고, 둘째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셋째 폐기하거나 건립하는 것이다.

(1) 첫째, 명칭을 풀이한다. 처음에 전체의 명칭을 풀이하고 다음에 각 부분의 명칭을 풀이한다. ① 처음에 전체의 명칭을 풀이한다. 12연기의 ‘12’란 그 수를 총합해서 표방한 것이다. 연기란 『연기경』에서 “이와 같은

001_0007_c_01L分別如成唯識第五卷說後明體者
001_0007_c_02L眼等十二如處中說眼等六識百法
001_0007_c_03L門中如其自名眼等六識以爲自性
001_0007_c_04L自餘諸門廣如諸論

001_0007_c_05L
無無明亦無無明盡乃至無老死
001_0007_c_06L無老死盡者

001_0007_c_07L
此卽第四遣緣生門然此緣生自有
001_0007_c_08L二種一者流轉二者還滅由無明故
001_0007_c_09L能超諸行乃至由生爲緣老死如是
001_0007_c_10L順流五趣四生如滿月輪始不可知
001_0007_c_11L於空性中無此流轉故經說言
001_0007_c_12L無明乃至無老死由觀智力令無明
001_0007_c_13L無明滅故諸行亦滅如此乃至
001_0007_c_14L由生滅故老死亦滅此卽輪前
001_0007_c_15L歸涅槃故名還滅於空性中無此
001_0007_c_16L還滅故經亦說無無名盡乃至亦
001_0007_c_17L無老死盡如何說此經超門者如法
001_0007_c_18L華經爲求緣覺故說緣生而今此
001_0007_c_19L1)緣爲顯法空故說此門然此緣生
001_0007_c_20L不同常釋故今略以三門分別一釋
001_0007_c_21L三出體三廢立

001_0007_c_22L
言釋名者先總後別言總名者
001_0007_c_23L二卽是總標其數如緣起經如是諸
001_0007_c_24L「緣」疑「經」{編}

001_0008_a_01L분지들은 각각 자기의 연緣들과 화합해서 연이 결여됨이 없이 상속해서 생기하기에 연기緣起라 한다.”라고 한다. 『유가사지론』에 의거하면 원인을 연각緣覺이라 하고 결과를 연생緣生이라 한다. 이 명칭은 수를 들어 종지를 나타내기에 육합석 중 대수석帶數釋이다. ② 다음에 각 부분의 명칭을 풀이한다. 삼제三際118)에 있어서 경계에 우매해서 알지 못하기에 ‘무명無明’이라 한다. 복업福業 등 삼업三業119)은 천류遷流하고 조작造作하기에 ‘행行’이라 한다. 안식眼識 등 8식識은 경계를 인식하기에 ‘식識’이라 한다. 상相 등과 색色 등은 각각 명명과 질애이기에 ‘명색名色’이라 한다. 안眼 등 육근六根은 심心 등을 생장하게 하기에 ‘육처六處’라 한다. 고苦 등 삼촉三觸은 앞의 경계를 대면하기에 ‘촉觸’이라 한다. 고苦 등 삼수三受는 거슬리는 것과 끌리는 것 등을 받아들이기(領)에 이를 ‘수受’라 한다. 자체自 등의 탐貪120)은 자기의 경계를 더럽히기(染汚)에 ‘애愛’라 한다. 욕欲 등 사취四取121)는 경계 등을 잡고 놓지 않기(執取)에 이를 ‘취取’라 한다. 행行과 식識 등122)의 종자種子는 능히 생生 등123)을 불러오기에 ‘유有’라 한다. 식識 등의 다섯 법124)이 본래 없다가 지금 있기에 이를 ‘생生’이라 한다. 그 다섯 법이 쇠변해서 괴멸하기에 ‘노사老死’라 한다.

(2) 둘째, 본체를 드러낸다.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견인牽引과 생기生起를 구별하고, 둘째 본체를 바로 드러내고, 셋째 현행現行과 종자種子를 분별한다.

① 첫째, 견인과 생기를 구별한다. 무명無明과 행行은 ‘견인하는 것(能引)’이다. 식識 등 다섯 과果의 종자種子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식識 등 다섯 종자는 ‘견인되는 것(所引)’이다. 앞의 두 분지에 의해 견인되어 발생하는 것(引發)이기 때문이다. 애愛와 취取와 유有 셋은 ‘생기하게 하는 것(能生)’이다. 당래當來의 생生과 노사老死를 가까이서 생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생과 노사는 ‘생기하게 된 것(所生)’이다. 애와 취와 유에 의해 가까이서 생기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② 둘째, 본체를 바로 드러낸다. 복업福業 등을 곧바로 감득感得하는 업業을 발하는 것이 무명無明의 분지이다. 그것에 의해 발해진 것이 행行의 분지의 본체이다. 당래의 제8식의 종자를 직접 생하는 것이

001_0008_a_01L分各由自緣和合無闕相續而起
001_0008_a_02L名緣起依瑜伽論因名緣覺果名
001_0008_a_03L緣生於此名中擧數顯宗故六釋
001_0008_a_04L中是帶數釋後出別名者三際中愚
001_0008_a_05L於境不了故名無明福等三業
001_0008_a_06L流造作名之爲行眼等八識了別境
001_0008_a_07L故名爲識相等色等召表質礙
001_0008_a_08L故曰名色眼等六根生長心等
001_0008_a_09L爲六處苦等三觸對前境故名爲
001_0008_a_10L苦等三受領順違等名之爲受
001_0008_a_11L自體等貪染自境故名爲愛欲等
001_0008_a_12L四取執取境等名之爲取行識等
001_0008_a_13L能招生等故名爲有識等五法
001_0008_a_14L本無今有名之爲生卽彼五法
001_0008_a_15L變滅壞故名老死

001_0008_a_16L
第二出體有其三義一引生差別
001_0008_a_17L正出自性三現種分別引生差別者
001_0008_a_18L無明及行名爲能引能引識等五果
001_0008_a_19L種故識等五種名爲所引是前二
001_0008_a_20L支所引發故愛取有三名爲能生
001_0008_a_21L生當來生老死故生及老死卽是所
001_0008_a_22L是愛取有近所生故正出體者
001_0008_a_23L發正感福等三業爲無明支卽彼所
001_0008_a_24L爲行支體親生當來第八識種

001_0008_b_01L식識의 분지의 본체이다. 뒤의 세 인因125)을 제외한 인因이 모두 명색名色의 분지의 본체이다. 뒤의 세 인因은 명명한 순서대로이니 뒤의 세 종자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풀이한다. ‘명색은 다섯 종자種子126)를 포섭해서 이를 본체로 한다. 그중 월등한 것을 주축으로 해서 다른 네 종자를 세운다. 이를테면 알라야식의 종자를 식識의 분지로 세우고 다른 세 종자127)를 육처六處 등128)의 분지로 세운다.’ 행行 등 여섯 종자를 윤옥潤沃하는129) 탐욕이 애愛의 분지의 본체이다. 애愛를 연해서 다시 욕欲 등 사취四取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취取의 분지의 본체이다.

그런데 이 사취에 대해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그 순서대로 오욕五欲의 경계 및 그 밖의 사견四見130)에 대해서, 그릇된 계戒 및 유신견有身見(薩迦耶見)에 대해서 생긴 탐욕이 취取의 분지의 본체이다.”131)라고 한다. 『연기경』 등 경과 논에서 말하고 있으나 서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행行과 식識 등 여섯 종류의 종자132)가 애와 취에 의해 윤옥潤沃을 입고 난 후 전기轉起하는 것을 유有라 한다. 식識 등 다섯 종자에서 생기한 결과의 법이 처음 중유中有에서 본유本有에 이르기까지133) 아직 쇠변하지 않은 단계(位)를 생生의 분지라 하고, 쇠변에 이른 단계를 모두 노老의 분지라 하고, 몸이 괴멸해서 명이 다한 단계를 사死의 분지라 한다.

③ 셋째, 현행과 종자를 분별한다. 두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실實에 의지해 바른 이치를 말하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가假에 의지해 상相을 말하는 문이다. 가假에 의지해 상相을 말하는 문에서 보면 한 분지 한 분지가 모두 종자일 수도 있고 현행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십지경론』에서 “무명에는 둘이 있다. 하나는 원인의 분지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의 분지이다. 내지 노사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실實에 의지해 바른 이치를 말하는 문에서 보면 생과 노사는 오직 현행일 뿐 종자가 아니고, 식 등 여섯 분지134)는 오직 종자일 뿐 현행이 아니고, 무명과 행, 애와 취의 분지는 모두 현행일 수도 있고 종자일 수도 있다.

(3) 셋째, 폐기하거나 건립하는 것이다. 세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결정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에 의거해서 분지를 폐기하거나 건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확장과 수렴에 의거해서 분지들을 분별하는 것이고, 셋째 세世와 대지(地)에 의거해서 그 같고 다름을 밝히는 것이다.
① 첫째, 결정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에 의거해서 분지를 폐지하거나 건립한다. 『성유식론』

001_0008_b_01L識支體除後三因餘因皆是名色支
001_0008_b_02L後之三因如名次第卽後三種
001_0008_b_03L有解名色卽攝五種以爲自性
001_0008_b_04L中隨勝立餘四種謂賴耶種名爲識
001_0008_b_05L立餘三種謂六處等能潤行等六
001_0008_b_06L種種子貪欲名愛緣愛復生欲等四
001_0008_b_07L爲取支體然此四取如瑜伽論
001_0008_b_08L第十卷說如其次第於諸欲境及餘
001_0008_b_09L四見於諸邪戒及薩迦耶見所超貪
001_0008_b_10L爲取支體經論同異如緣超等
001_0008_b_11L行及識等六種種子被潤已後轉名
001_0008_b_12L爲有識等五種所生果法始從中
001_0008_b_13L至本有中未衰變位名爲生支
001_0008_b_14L至衰變位總名爲老身壞命終
001_0008_b_15L名爲死現種別者有其二義一就
001_0008_b_16L實正理門二相從假說門相從假說
001_0008_b_17L一一皆通種及現行故十地論無明
001_0008_b_18L有二一者子支二者果支乃至老
001_0008_b_19L應知亦爾就實正理生與老死
001_0008_b_20L唯現非種識等六支唯種非現
001_0008_b_21L明與行及愛取支皆通現種

001_0008_b_22L
第三廢立有其三義一約定徧廢立
001_0008_b_23L諸支二約開合分別諸支三約世地
001_0008_b_24L辨其同異約支廢立者如成唯識第

001_0008_c_01L제8권에 다음과 같다. 왜 노老의 단계(位)를 별도로 건립하지 않는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死의 단계에 붙여서 건립한다. 병病은 왜 분지가 아닌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결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老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것이기에 분지를 건립한다. 계界135)와 취趣136)와 생生137)은 요절하는 자를 제외한다면 장차 죽음을 맞이하기에 앞서 모두 노쇠의 행行을 겪기 때문이다. 명색名色은 보편적인 것이 아닌데 왜 분지를 건립하는가? 결정적인 것이기에 분지를 건립한다. 태생, 난생, 습생은 육처가 아직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도 결정적으로 명색이 존재한다. 또 명색의 분지는 보편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138) 유색有色의 화생化生은 처음 생을 받는 단계에 비록 오근을 갖추고는 있지만 아직 작용은 있지 않으므로 그때는 아직 육의 분지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에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날 때 비록 결정적으로 의근意根이 있긴 하나 명료하지 않기에 아직 의처意處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愛는 보편적으로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 별도로 건립하는가? 악취惡趣에 태어나는 자는 그곳에 애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정적이기에 별도로 건립한다. 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선취善趣에 태어나는 자는 결정적으로 애愛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불환不還은 애愛가 있지 않을 것이다. 비록 현전에 생기하지 않을지라도 그 취取와 같아서139) 결정적으로 종자種子가 있기 때문이다. 또 애愛가 악취惡趣에 태어나는 자에게도 보편적인 것이니 아我의 경계가 현현하는 것에는 또한 애愛가 있기 때문이다. 악취惡趣의 몸을 희구하는 애愛가 없는 것에 의거해서 경은 ‘애가 있지 않다.’라고 설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전연 없는 것이 아니다.

② 둘째, 확장과 수렴에 의거해서 분지들을 분별한다. 이것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견인牽引과 생기生起의 맞짝으로써 확장과 수렴을 밝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발기發起와 윤옥潤沃의 맞짝으로써 확장과 수렴을 밝히는 것이다. ㉠ 견인과 생기의 맞짝으로써 확장과 수렴을 밝힌다. 그 논(『成唯識論』)에서 “왜 생기하게 된 것(所生)에는 생과 노사를 세우고 견인된 것(所引)에는 별도로 식 등 다섯 분지를 세우는가? 원인의 단계(因位)에서는 상의 차별을 알기가 어려워서 당래의 결과에 의거해서 별도로 다섯 분지를 세운다. 운운. 결과의 단계(果位)에서는 상相의 차별을 알기가 쉬워서 모두 두 분지를 세워서

001_0008_c_01L八卷說問如何老位不別立支答非
001_0008_c_02L定有故附死立支問病何非支
001_0008_c_03L不遍定故老雖不定遍故立支
001_0008_c_04L界趣生除中夭者將終皆有衰朽行
001_0008_c_05L問名色不遍何故立支答定故立
001_0008_c_06L胎卵濕生六處未滿定有名色又
001_0008_c_07L名色支亦是遍有有色化生初受生
001_0008_c_08L雖具五根而末有用爾時未名六
001_0008_c_09L處支故1)初生無色2)定有意根
001_0008_c_10L不明了3)名意處故問愛非遍有
001_0008_c_11L寧別立支生惡趣者不愛彼故
001_0008_c_12L定故別立不求無有生善趣者定有
001_0008_c_13L愛故問若爾不還應無有愛答雖不
001_0008_c_14L現起然如彼取定有種故又愛遍生
001_0008_c_15L惡趣者於現我境亦有愛故依無希
001_0008_c_16L求惡趣身愛經說非有非彼全無

001_0008_c_17L
二開合差別有其二義一引生相對
001_0008_c_18L以辨開合二發潤相對以辨開合
001_0008_c_19L生相對如彼論說何緣所生立生
001_0008_c_20L老死所引別立識等五支因位難
001_0008_c_21L知差別相故依當果位別立五支
001_0008_c_22L說如彼果位易了差別相故總立二
001_0008_c_23L「初」或作「約」「定」一無「名」一作
001_0008_c_24L「明」

001_0009_a_01L삼고三苦를 나타낸다. 운운.” 하고 말한다. ㉡ 발기와 윤옥의 구별에 의거해서 확장과 수렴을 밝힌다. 그 논에서 “왜 업을 발기하는 단계에서는 무명無明으로 합해서 세우고 업을 윤옥하는 단계에서는 애愛와 취取로 나누어서 세우는가? 비록 번뇌들은 모두 능히 업을 발기하고 윤옥할 수 있긴 하나 업을 발기하는 단계에서는 무명의 힘이 증대한다. 열한 가지의 월등한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연所緣 등을 말하는 것이니 자세한 것은 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업을 윤옥하는 단계에서는 애愛의 힘이 다른 것보다 더 증대한다. 애愛는 물처럼 윤옥한다고 설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자주 물을 주어야 비로소 유有의 싹을 생기게 할 수 있다. 우선 앞부분과 뒷부분에 의거해서 애愛와 취取 둘로 나누긴 하나 중복되는 발기의 의미가 없기에 무명 하나를 세우는 것이다.”라고 한다.

③ 셋째, 세世와 대지(地)에 의거해서 그 같고 다름을 밝힌다. 이것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하나는 대지(地)에 의거해서 같고 다름을 밝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世에 의거해서 같고 다름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대지(地)에 의거해서 같고 다름을 밝힌다. 그 논(『성유식론』)에서 “연기의 분지들은 모두 자기의 대지에 의지한다. 발기된 행行은 다른 대지의 무명無明에 의지한다. 가령 아래의 대지의 무명은 위의 대지의 행을 발기한다. 그렇지 않다면 최초에 아래의 대지의 염오染汚의 것을 제복除伏해서 생기한 위의 대지의 정定은 행의 분지가 아닐 것이다. 그 대지의 무명은 아직 생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둘째) 세世에 의거해서 같고 다름을 밝힌다. 그 논에서 “이 12분지의 열 가지 원인140)과 두 가지 결과141)는 결코 세世가 같지 않다.142) 원인 중 앞의 일곱143)은 애愛, 취取, 유有와 혹은 세世가 다르고 혹은 같다. 둘144)과 셋145)과 일곱146)은 각각 반드시 세世가 같다. 이와 같은 열둘은 일중一重의 원인과 결과147)인데 윤회전생 및 단절과 상주가 없음을 보여 주기에 족하다. 양중兩重의 원인과 결과148)를 시설하는 것은 실제로는 무용하다. 혹은, 이것을 넘어서면 무한에 이르게 된다.”라고 한다. 풀이하자면, 이 논은 우선 자기 학파의 일중의 연기를 펴는 것에 의해서 설일체유부의 양중의 연기를 논파하고 있다. 궁구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학파의 다른 문들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고, 집, 멸, 도가 없으며,


이것은 다섯째 사제四諦의 문을 내버리는 것이다. 이 사제의 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001_0009_a_01L以顯三苦具說如彼發潤別者
001_0009_a_02L如彼論說何緣發業總立無明
001_0009_a_03L業位中別立愛取雖諸煩惱皆能發
001_0009_a_04L無明力勝具足如彼1)而發業位
001_0009_a_05L無明力增以具十一殊勝事故謂所
001_0009_a_06L緣等廣如經於潤業位愛力偏增
001_0009_a_07L說愛如水能沃潤故要數漑灌方生
001_0009_a_08L有芽且依初後分愛取二無重發義
001_0009_a_09L立一無明三約世地辨其同異
001_0009_a_10L其二義一約地辨同異二約世辨同
001_0009_a_11L地同異者如彼論說諸緣起支
001_0009_a_12L皆依自地有所發行依他無明
001_0009_a_13L下無明發上地行不爾初伏下地染
001_0009_a_14L所起上定應非行支彼地無明由
001_0009_a_15L未起故世同異者如被論說此十
001_0009_a_16L二支十因二果定不同世因中前七
001_0009_a_17L與愛取有或異或同若二三七
001_0009_a_18L定同世2)如是十二一重因果足顯
001_0009_a_19L輪轉及離斷常施設兩重實爲無用
001_0009_a_20L或應過此便致無窮解曰論依先申
001_0009_a_21L自宗一重緣起破薩婆多兩重緣起
001_0009_a_22L尋卽可知自餘諸門廣如被說

001_0009_a_23L
無苦集滅道者

001_0009_a_24L
此卽第五遣四諦門如何說此四諦

001_0009_b_01L『법화경』에서 “성문을 구제하고자 사제를 설한다.”라고 한다. 이제 이 경에서는 법공을 보여 주고자 사제의 법을 내버린다. 그런데 이 사제는 세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 명칭을 풀이하고, 둘째 본체를 드러내고, 셋째 종류의 수를 구별한다.

(1) 첫째, 명칭을 풀이한다. 앞에서 전체의 명칭을 풀이하고 뒤에서 부분의 명칭을 풀이한다. ① 전체의 명칭에 대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사四’란 수를 표시한 것이다. ‘제諦’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유가사지론』에서 “하나는 말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을 관찰해서 궁극의 청정함에 이른다는 의미이다.”라고 한다. 대수석帶數釋이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② 각 부분의 명칭에 대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제諦는 구별되기에 같지 않으니, 내지 네 종류이다. 첫째 고苦, 둘째 집集, 셋째 멸滅, 넷째 도道이다. 삼고三苦로 이루어진 것을 ‘고苦’라 한다. 후세의 과果를 불러오기에 ‘집集’이라 한다. 집과 고가 소멸해 있기에 이를 ‘멸滅’이라 한다. 제거하고 통달하기에 ‘도道’라 한다.

(2) 둘째, 본체를 드러낸다. 고제는 유루有漏의 오온이다. 혹惑과 업業을 감득하는 것을 집제라 한다. 택멸擇滅 무위無爲가 멸제의 본체이다. 도제는 도이니 무루의 성도聖道이다.

(3) 셋째, 종류의 수를 구별하는 문이다. 둘이거나 셋이다. ① 둘이란 하나는 세속世俗이고 다른 하나는 승의勝義이다. 세속과 승의 각각에 모두 사제가 갖추어져 있다. 『현양성교론』 등에서 말한 바와 같으나 번거로울까 염려되어 서술하지 않겠다. 『승만경』에 의거해도 역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작有作이고 하나는 무작無作이다. 번뇌장과 이것에서 발기한 업이 분단分段의 생을 초감한다. 그 초감된 과果를 고제라 한다. 혹惑과 업業을 감득하기에 집제라 한다. 그 고와 집의 소멸을 멸제라 한다. 생공生空을 관하는 지智를 도제라 한다. 무루無漏의 업業의 인因이 무명을 연緣으로 해서 변역變易의 생生을 초감한다. 그 초감된 이숙異熟을 고제라 한다. 혹과 업을 감득하는 것을 집제라 한다. 그 고와 집이 소멸한 것을 멸제라 한다. 법공法空을 관하는 지智를

001_0009_b_01L門者如法華經爲求聲聞說應四諦
001_0009_b_02L今此經中爲顯法空遣四諦法然此
001_0009_b_03L四諦三門分別一釋名字二出體性
001_0009_b_04L三種數差別言釋名者先總後別
001_0009_b_05L總名者四是標數諦有二義如瑜
001_0009_b_06L伽論一如所說相不相離義二由離
001_0009_b_07L此故致究竟意處是帶數釋準前
001_0009_b_08L可知言別名者諦別不同乃至四種
001_0009_b_09L一苦二集三滅四道三苦所成名之
001_0009_b_10L爲苦能招後果故名爲集集苦盡
001_0009_b_11L名之爲滅能除能通故名爲道
001_0009_b_12L第二出體者苦諦卽是有漏五蘊
001_0009_b_13L感惑業以爲集諦擇滅無爲爲滅諦
001_0009_b_14L道諦卽道無漏聖道第三種數別
001_0009_b_15L或二或三所言二者一者世俗
001_0009_b_16L二者勝義於一一諦皆具四諦如顯
001_0009_b_17L揚等恐繁不叙依勝鬘經亦有二
001_0009_b_18L一者有作二者無作由煩幽障
001_0009_b_19L及所發業感分段生彼所感果
001_0009_b_20L爲苦諦能感惑業故名集諦彼苦
001_0009_b_21L集盡名爲滅諦生空觀智名爲道諦
001_0009_b_22L無漏業因無明爲緣感變易生所招
001_0009_b_23L異熱以爲苦諦能感惑業名爲集諦
001_0009_b_24L彼苦集盡故名滅諦法空觀智名爲

001_0009_c_01L도제라 한다. 법집法執은 업을 발기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생生을 윤옥潤沃할 수 없지 않은가? 무루의 성도는 고제와 집제가 아닌데 왜 경에서 무루가 인因이 되고 무명이 연緣이 된다고 말하는가? 『성유식론』 제8권에서 “법집과 이를 돕는 연緣을 끊기 때문에 무루가 인因이 되고 무명이 연緣이 된다고 말한다. 이치로 보아 실제로는 앞의 분단分段을 초감하는 업과 초감된 과果가 돕는 힘에 의지해서 월등하게 전기轉起하고 오묘하게 전기하는 것을 변역變易이라 한다.”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② 셋이란 2종의 사제는 모두 삼자성을 갖추고 있다. 변계소집성 등을 말한다. 『변중변론』과 『성유식론』 제8권에서 자세하게 그 상을 밝히고 있다.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번거로워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겠다.

지智가 없고 또 얻음(得)이 없다.


이것은 여섯째 지智와 끊음(斷)의 문을 내버리는 것이다. 지智와 끊음(斷)의 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법화경』에서 “보살들을 위해 육바라밀다의 법을 말한다.”라고 한다. 이제 이 경에서 법공을 보여 주기 위해 지와 끊음의 문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智와 끊음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원인 단계(因位)에 있을 때 지智라 하니 이는 곧 반야이고, 결과 단계(果位)에 있을 때 얻음(得)이라 하니 이는 곧 보리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리를 지智라 하고 열반을 얻음(得)이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해석이 있으나 뒤의 것이 낫다. 모든 전적(部)의 반야경에서는 모두 보리와 열반을 내버린다. 보리와 열반에 대해서는 후에 분별할 것이다.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마음에 장애가 없게 한다.


이 아래에서는 셋째 얻는 바의 과果를 밝힌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001_0009_c_01L道諦問豈不法執不能發業亦非潤
001_0009_c_02L無漏聖道非苦集諦如何經說無
001_0009_c_03L漏爲因無明爲緣答如成唯識第八
001_0009_c_04L卷說斷法執及資助緣故說無漏爲
001_0009_c_05L因無明爲緣理實卽前感分段業及
001_0009_c_06L所感果由資力故轉勝轉妙以爲
001_0009_c_07L變易廣說如彼所言三者二種四
001_0009_c_08L諦皆具三性謂所執等如中邊論及
001_0009_c_09L成唯識第八卷中廣辨其相尋卽可
001_0009_c_10L不繁具述

001_0009_c_11L
無智亦無得者

001_0009_c_12L
此卽第六遣智斷門如何說此智斷
001_0009_c_13L門者如法華經爲諸菩薩說六度法
001_0009_c_14L今此經中爲顯法空遣智斷門
001_0009_c_15L卽智斷自有兩釋一曰在因名智
001_0009_c_16L是般若果位名得卽是菩提一曰
001_0009_c_17L菩提名智涅槃名得雖有兩釋
001_0009_c_18L說爲勝諸部般若皆遣菩提及涅槃
001_0009_c_19L菩提涅槃後當分別

001_0009_c_20L
以無所得故菩提薩埵依般若波羅蜜
001_0009_c_21L故心無罣礙者

001_0009_c_22L
自下第三顯所得果於中有二初正
001_0009_c_23L「而發……如經」二十三字疑後人所加「如
001_0009_c_24L是十二」一無

001_0010_a_01L과果를 얻는 것을 바로 밝히고,149) 뒤에서는 예를 끌어와서 증명한다. 앞은 다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관觀에 공능이 있음을 밝히고,150) 뒤에서는 얻는 바의 과果를 밝힌다.151) 이것은 앞부분이다. 이것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란 공성에는 상相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치로 보아 실제로 공성에는 여섯 문의 법이 없다. 후자152)를 들어서 전자153)를 밝히기에 다만 ‘얻는 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다음에 ‘보리살타菩提薩埵’154)란 관찰하는 사람이니 발의보살發意菩薩155)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보리’156)는 깨달음(覺)이고 ‘살타’157)는 교화되어야 할 유정이니,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유정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이 지智와 비悲를 일으키기에 ‘보살’이라 한다. 마지막에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에 장애가 없다.’란 관찰함(觀)에 공능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명칭을 번역하고 뜻을 풀이하는 것은 위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야’는 지智이니 별경別境158) 심소 중의 혜慧이다.
‘마음(心)’이란 말은 혜慧와 함께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마음(心)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성性과 상相이다. ‘장애’란 혹惑과 지智의 2장障이다. 전체적으로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진성眞性인 공성空性의 리理는 여섯 가지 상을 여의었기 때문에 발의보살은 그 관찰하는 지智에 의지해서 혜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하여금 공성을 증득하게 하고 장障을 끊게 한다. 있음을 집착하는 이생異生과 2승乘이 2공空을 안에서 증득하고 2장障을 끊는 것이 아니다.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가 없고 전도와 몽상을 멀리 여의고 열반을 완성한다.159)


이것은 둘째 얻는 과果를 밝히는 것이다. 어떤 본에는 “모든 전도와 몽상을 멀리 여의고”로 되어 있다. 두 본이 있으나 뒤의 것이 낫다. 그런데 얻는 바의 과果에는 그 네 종류가 있다.

(1) 첫째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가 없고’란 모든 두려움을 멀리 여읜 것이다. 두려움이란 다섯 가지의 두려움이다. 『불지경론』 제2권에서 “다섯 가지의 두려움이란 첫째 못 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不活畏), 둘째 좋지 않은 평판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惡名畏), 셋째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死畏), 넷째 악취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惡趣畏), 다섯째 대중 앞에 섰을 때 잘 못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怯衆畏)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두려움은

001_0010_a_01L明得果後引例證成前中有二
001_0010_a_02L辨觀有能後顯所得果此卽初也
001_0010_a_03L中有三初以無所得故者辨空離相
001_0010_a_04L理實空性離六門法擧後顯前但言
001_0010_a_05L無得次菩提薩埵者觀人發意如前
001_0010_a_06L所說菩提名覺薩埵卽是所化有情
001_0010_a_07L上求菩提下化有情發此智悲故名
001_0010_a_08L菩薩後依般若波羅蜜多故心無罣
001_0010_a_09L礙者辨觀有能翻名釋義如上應
001_0010_a_10L般若名智別境中慧心言卽顯與
001_0010_a_11L慧俱心心有二種所謂性相罣礙
001_0010_a_12L卽是惑智二障總釋意曰眞性空理
001_0010_a_13L離六相故發意菩薩依彼觀智令慧
001_0010_a_14L俱心證空斷障非諸執有異生二乘
001_0010_a_15L內證二空斷其二障

001_0010_a_16L
無罣礙故無有恐怖遠離顚倒夢想
001_0010_a_17L竟涅槃者

001_0010_a_18L
此卽第二顯所得果或有本云遠離
001_0010_a_19L一切顚倒夢想雖有二本後本爲勝
001_0010_a_20L然所得果有其四種一無罣礙故無
001_0010_a_21L有恐怖者遠離諸怖畏怖畏卽是五
001_0010_a_22L種怖畏如佛地論第二卷說五怖畏
001_0010_a_23L一不活畏二惡1)名畏三死畏
001_0010_a_24L惡趣畏五怯衆畏如是五畏證得淸

001_0010_b_01L청정한 의향의 대지(淸淨意樂地)160)를 증득할 때 모두 이미 멀리 여의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2) 둘째 ‘전도를 멀리 여의고’란 전도를 멀리 여의는 과果이다. 세 가지, 네 가지, 일곱 가지, 여덟 가지의 전도가 있다. 세 가지의 전도란 상想과 견見과 심心의 전도이다. 네 가지의 전도란 무상을 상주라 하고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이라 하고 청정하지 않음(不淨)을 청정함이라 하고 무아無我를 아我라 하는 것을 말한다. 일곱 가지의 전도란 앞의 세 가지와 네 가지의 전도를 합한 것과 다르지 않다. 여덟 가지의 전도란 앞의 네 가지의 전도에다 다시 네 가지의 전도를 추가한 것이다. 이치로 볼 때 붓다의 과보(佛果)는 상주(常), 즐거움(樂), 아我, 청정함(淨)인데, 집착해서 무상無常, 무아無我, 청정하지 않음(不淨)이라 하는 것이고 즐거움(樂)을 뒤집어서 괴로움(苦)이라 하는 것이다.161)

(3) 셋째 ‘몽상을 멀리 여의고’란 몽상을 멀리 여의는 과果이다. 몽상夢想이란 여덟 가지의 허망한 상想이다. 그 상想이 꿈과 같기에 몽상이라 한다. 『유가사지론』에서는 여덟 가지의 분별이라 하고 있다. 그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유정의 부류들은 진여 공성空性을 알지 못하는데 이 인연 때문에 세 가지의 토대(事)를 일으킨다. 첫째는 근根과 경境이고, 둘째는 아견我見과 아만我慢이고, 셋째는 탐貪과 진瞋과 치癡이다. 탐 등에 의해서 업들을 짓고 유정有情과 기세간器世間을 생기게 한다. 이 때문에 장구한 기간 동안 생사의 바퀴가 굴러간다. 그래서 심사尋思 등의 생공관生空觀과 법공관法空觀을 통해서 혹惑과 업業을 끊어 제거하고 대보리를 증득한다. 이제 여덟 가지 분별의 의미를 약술하겠다. 『유가사지론』 제36권에서 “또 어리석은 범부들은 이와 같이 현현하는 진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인연 때문에 여덟 가지의 분별이 굴러가서 세 가지 토대(事)를 일으키고 모든 유정세간과 기세간을 생기게 한다. 여덟 가지의 분별이란 무엇인가? ① 첫째는 자성自性을 분별하는 것(自性分別)이다. 모든 법에 있어서 자성을 분별하는 것이다. 예컨대 색色의 자성을 분별하고 성聲의 자성을 분별하는 것이다. ② 둘째는 차별을 분별하는 것(差別分別)이다. 그 자성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것(可見), 볼 수 없는 것(不可見) 등을 분별하는 것이다. ③ 셋째는 총집總執을 분별하는 것이다(總執分別). 그 색色이나 성聲 상에 유정有情,

001_0010_b_01L淨意樂地時皆已遠離

001_0010_b_02L
二遠離顚倒者遠離果顚倒卽是三
001_0010_b_03L四七八三者謂卽想見及心四者所
001_0010_b_04L謂無常爲常於苦爲樂不淨爲淨
001_0010_b_05L我爲我七倒不異前三四倒八倒謂
001_0010_b_06L卽於前四倒更加四種理實佛果常
001_0010_b_07L樂我淨執爲無常無我不淨翻樂爲
001_0010_b_08L

001_0010_b_09L
三遠離夢想者遠離夢想果卽八妄
001_0010_b_10L其想如夢故名夢想瑜伽名爲
001_0010_b_11L八種分別釋彼意曰諸有情類
001_0010_b_12L不了知眞如空性由此因緣能生三
001_0010_b_13L一者根境二我見慢三貪瞋癡
001_0010_b_14L由貪等故能造諸業能生有情及器
001_0010_b_15L世間由斯長時轉輪生死故尋思等
001_0010_b_16L生法空觀斷除惑業證大菩提
001_0010_b_17L今略述八分別義如瑜伽論三十六
001_0010_b_18L又諸愚夫由於如是所顯眞如
001_0010_b_19L了知故從是因緣八分別轉能生
001_0010_b_20L三事能起一切有情世間及器世間2)
001_0010_b_21L云何名爲八種分別者一者自性
001_0010_b_22L一切法分別自性如色聲等二者
001_0010_b_23L差別謂卽於彼分別可見不可見等
001_0010_b_24L三者總執謂卽於彼色聲等上計有

001_0010_c_01L나(我), 집, 군대, 숲 등을 계탁하는 것이다. ④ 넷째는 나(我)를 분별하는 것이다(我分別). ⑤ 다섯째는 나의 것(我所)을 분별하는 것(我所分別)이다. 이 두 분별은 유루有漏와 유취有取 상에 나(我)를 계탁하고 혹은 나의 것(我所)를 계탁한다. ⑥ 여섯째는 애착함을 분별하는 것(愛分別)이다. ⑦ 일곱째는 애착하지 않음을 분별하는 것(非愛分別)이다. ⑧ 여덟째는 그 둘이 아님을 분별하는 것(彼俱相違分別)이다. 그 순서대로 좋은 것에 대해서,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 좋지도 좋지 않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일으킨 분별이다.”라고 한다. 삼장三藏162)은 해석하여 “여덟 가지의 분별이 모두 무기無記의 이숙식異熟識에서 생기한 혜慧를 본성으로 하거나, 혹은 심尋과 사伺를 본성으로 한다.”라고 한다. ‘세 가지의 토대를 일으킨다.’란 처음의 세 분별163)은 희론戲論을 일으킨다. 소의所依164)인 토대와 소연所緣165)인 토대가 육근과 육경이다. 다음의 두 분별166)은 아견과 아만을 일으킨다. 마지막의 세 분별167)은 탐, 진, 치를 일으킨다. 이 중 소의所依인 토대와 소연인 토대를 발판으로 삼아 아견과 아만을 일으키고, 아견과 아만을 발판으로 삼아 탐, 진, 치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 가지의 토대로 말미암아 유정과 기세간의 유전하는 품류의 법들이 현행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심사관四尋思觀168) 등의 자세한 것은 여러 논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다. 이 경에서 의도하는 바는 반야에 의해서 법공을 안에서 증득해서 전도와 여덟 가지의 허망한 상을 멀리 여읜다는 점이다.

(4) 넷째 ‘열반을 완성한다.’란 열반을 증득하는 과果이다. 열반에 대해서는 크게 네 문으로 나누어 서술하겠다. 첫째 명칭을 풀이하는 것이고, 둘째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셋째 종류의 수가 많고 적음을 분별하는 것이고, 넷째 문답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① 첫째 명칭을 풀이한다. 구역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열반涅槃’169)이라 한다. 혹은 ‘니원泥洹’이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적멸寂滅’이라 번역한다.”라고 말한다. 당나라의 삼장은 “파리닐바나波利匿縛喃170)를 이 나라에서 ‘원적圓寂’이라 한다. 생사를 장애하는 ‘시끄러움과 요동침(喧動)’171)을 완전하게 여의었기에 ‘원적’이라 한다. 구역의 명칭을 보존하고자 ‘열반’이라고 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001_0010_c_01L情我舍軍林等四者我分別五者
001_0010_c_02L我所此二分別於諸有漏有取之上
001_0010_c_03L卽計爲我3)惑計我所六者愛分別
001_0010_c_04L七者非愛八者俱相違如其次第
001_0010_c_05L於妙非妙及俱離事所生分別三歲
001_0010_c_06L解曰八種皆以4)無記異熱生慧
001_0010_c_07L其自性或可尋伺以爲自性生三事
001_0010_c_08L初三分別能生戲論所依緣事六
001_0010_c_09L根六境次二分別能生我見及以我
001_0010_c_10L後三如次生貪瞋癡當知此中所
001_0010_c_11L依緣事爲所依故生我見慢見慢
001_0010_c_12L爲依生貪瞋癡由此三事能現有
001_0010_c_13L情及器世間流轉品法四尋等觀
001_0010_c_14L如諸論此經意曰由般若故內證
001_0010_c_15L法空遠離顚倒八種妄想門究竟涅
001_0010_c_16L槃者證得涅槃果涅槃略以四門分
001_0010_c_17L一釋名字二出體性三種數多少
001_0010_c_18L四問答分別第一釋名舊曰梵音名
001_0010_c_19L爲涅槃或云泥洹此土翻譯名爲寂
001_0010_c_20L大唐三藏曰波利匿縛▼(口+男) 此云
001_0010_c_21L圓寂究竟離障生死喧動故曰圓寂
001_0010_c_22L謂欲存舊名爲涅槃

001_0010_c_23L「名」或作「誦」「云何名爲種」一無
001_0010_c_24L「惑」疑「或」
「無」上一有「無覆」

001_0011_a_01L② 둘째 본체를 드러낸다. 여러 학설이 같지 않다. 설일체유부에 의하면 유여의열반과 무여의열반이 모두 택멸擇滅의 무위無爲를 본체로 하고 실實의 자성이 있다고 한다. 경량부에 의하면 번뇌가 멸진한 상태(處)를 유여의열반이라 하고 고苦의 과보가 멸진한 상태를 무여의열반이라 하는데 가假이지 실實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 해석은 ‘멸제를 본체로 한다. 혹惑과 업業이 소멸한 상태는 멸제에 속하기 때문이다.’이다. 다른 한 해석은 ‘모두 도제를 본체로 한다. 도제에 혹惑 등의 소멸을 세우기 때문이다.’이다. 이제 대승에 의거하면 여러 학설이 같지 않다. 담무참曇無懺(Dharmarakṣa, 385∼433)은 “네 가지의 덕德을 숲으로 하고 현묘한 이치를 뿌리로 한다.”라고 말한다. 진제眞諦(Paramārtha, 499∼569) 삼장은 “대승에 네 가지의 열반이 있다. 세 가지의 열반은 도道의 결과이나 본래 청정한 열반은 도의 결과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또 “반야와 대비는 무주처열반의 본체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등등의 학설을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다. 이제 삼장은 “네 가지의 열반은 진여를 본체로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유식론』 제10권에서 “네 가지의 열반은 모두 장애(障)를 여읜 진여에 의지해서 세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열반경』에서 ‘법신法身과 반야般若와 해탈解脫의 세 근본적인 것이 열반을 성취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성취하는 것인 지智를 들어 성취되는 것을 취하고 장애(障)를 여읜 진여는 성취하는 것인 지智를 그것의 본체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부류를 헤아려 분별함에 있어서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한 해석은 ‘처음 것과 마지막 것이 진여이고 중간의 두 종류는 택멸에 속한다.’이다. 다른 한 해석은 ‘처음 것은 진여이고 뒤의 셋 모두는 택멸에 속한다.’이다. 비록 두 가지 해석이 있긴 하나 호법 학파의 주류는 뒤의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③ 셋째 종류의 수를 분별한다. 간략하게 하면 두 종류이고 자세하게 열면 네 종류이다. ‘간략하게 하면 두 종류’란 하나는 자성청정이고 다른 하나는 방편청정이다. ‘자세하게 열면 네 종류’란 자성청정, 유여의, 무여의,

001_0011_a_01L
第二出體諸說不同薩婆多宗
001_0011_a_02L餘無餘皆用擇滅無爲爲體有實自
001_0011_a_03L依經部宗煩惱滅處名有餘依
001_0011_a_04L苦果盡處名無餘依假而非實
001_0011_a_05L有兩釋一曰滅諦爲體惑業滅1)
001_0011_a_06L滅諦攝故一曰皆用道諦爲性於道
001_0011_a_07L建立惑等滅故今依大乘諸說不同
001_0011_a_08L曇無懺曰四德爲林玄致爲本
001_0011_a_09L諦三藏說大乘中有四涅槃三是道
001_0011_a_10L本來淸淨非道果攝又說般若
001_0011_a_11L及以大悲爲無住處涅槃自性如此
001_0011_a_12L等說不可具述今三藏曰四種涅槃
001_0011_a_13L用如爲體故成唯識第十卷曰四種
001_0011_a_14L涅槃皆依眞如離障建立而涅槃說
001_0011_a_15L法身般若解脫三事成涅槃者擧能
001_0011_a_16L成智意取所成離障眞如非能成
001_0011_a_17L爲其自性法數類分別自有兩
001_0011_a_18L一曰初後卽是眞如中間二種擇
001_0011_a_19L滅所攝一曰初一卽是眞如後三皆
001_0011_a_20L是擇滅所攝雖有兩說護法正宗以
001_0011_a_21L後爲正

001_0011_a_22L
第三種數分別者略卽二種廣開爲
001_0011_a_23L所言二者一者性淨二者方便
001_0011_a_24L開爲四者自性淸淨有餘無餘

001_0011_b_01L무주처이다. 『성유식론』 제10권에서 “열반은 의미의 차이에 의거할 때 크게 보아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본래자성청정열반이다.172) 비록 손님인 잡염雜染이 있을지라도 본성은 청정해서 무수하고 무량하며 미묘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오직 진정한 성자만이 자기 안에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본성이 본래 공적空寂하기에 열반이라 한다. 둘째는 유여의열반이다. 번뇌장煩惱障을 벗어난(出離) 진여를 말한다. 미세한 고苦가 있어서 의지처인 몸(所依身)은 아직 소멸하지 않았지만 장애(障)가 영원히 적멸해 있기에 열반이라 한다. 셋째는 무여의열반이다. 생사生死의 고苦를 벗어난 진여를 말한다. 번뇌장이 이미 소멸했고 남은 의지처인 몸(所依身) 또한 소멸해서 뭇 고苦가 영원히 적멸해 있기에 열반이라 한다. 넷째는 무주처열반이다. 소지장所知障을 벗어난(出離) 진여를 말한다. 항상 대비와 반야의 도움을 받기에 생사와 열반에 안주하지 않는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유정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작용이 있으나 항상 적멸해 있기에 열반이라 한다. 모든 유정에게는 처음의 하나가 있고 2승乘의 무학無學173)에게는 앞의 셋이 있을 수 있다. 오직 우리의 세존만이 넷을 다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한다.

④ 넷째 문답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왜 선서善逝에게 유여의열반이 있다고 하는가? 비록 실재하는, 의지처인 몸(所依身)이 없긴 하나 있는 것과 유사하게 현현한다. 혹은, 고苦가 의지하는 몸이 멸진한 것을 무여의열반이라 말하지 고가 의지하는 몸이 있는 것을 유여의열반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넷을 다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문 등에게 무여의열반이 있는데 왜 어떤 곳에서는 그들에게 무여의열반이 없다고 설하는가?『승만경』 등에서 설하듯. 어떤 곳에서는 그들에게 전연 열반이 없다고 설하지만 그들에게도 유여의열반은 있지 않은가?이것 또한 『승만경』에서 설하고 있다. 그런데 성문 등에게 몸과 지智가 있을 때 소지장이 있다. 고의 의지처인 몸이 아직 멸진하지 않았고 열반의 의미가 감추어져 있기에 열반이 없다고 설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번뇌장이 멸진했을 때 현현하는 진리眞理의 유여의열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에는 아직 무여의열반을 증득하지 않았기에 또한 그들에게는 무여의열반이 없다고 설하는 것이다.

001_0011_b_01L及無住處如成唯識第十卷說涅槃
001_0011_b_02L義別略有四種一本來自性淸淨涅
001_0011_b_03L雖有客染而本性淨具無數量微
001_0011_b_04L妙功德唯眞聖者自內所證其性
001_0011_b_05L本寂故名涅槃二有餘依涅槃
001_0011_b_06L卽眞如出煩惱障雖有微苦所依
001_0011_b_07L未滅而障永寂故名涅槃三無餘
001_0011_b_08L涅槃謂卽眞如出生死苦煩惱旣盡
001_0011_b_09L餘依亦滅衆苦永寂故名涅槃
001_0011_b_10L無住處涅槃謂卽眞如出所知障
001_0011_b_11L悲般若常所輔翼由斯不住生死涅
001_0011_b_12L利樂有情窮未來際用而常寂
001_0011_b_13L故名涅槃一切有情皆有初一二乘
001_0011_b_14L無學容有前三唯我世尊可言具四

001_0011_b_15L
第四問答問如何善逝有有餘依
001_0011_b_16L雖無實依而現似有或苦依盡說無
001_0011_b_17L餘依非苦依在說有餘依是故世尊
001_0011_b_18L可言具四問若聲聞等有無餘依
001_0011_b_19L何有處說彼非有如勝
鬘等
答有處說彼都
001_0011_b_20L無涅槃豈有餘依彼亦非有此亦
勝等

001_0011_b_21L聲聞等身智在時有所知障苦依
001_0011_b_22L未盡圓寂義隱說無涅槃非彼實
001_0011_b_23L煩惱障盡所顯眞理有餘涅槃
001_0011_b_24L爾時未證無餘圓寂故亦說彼無無

001_0011_c_01L그들이 후시에 몸과 지智가 멸진했을 때는 고의 의지처인 몸이 멸진한 무여의열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그곳에서 설한 바와 같다. 소지장所知障은 생을 초감하지 않는데 왜 그것을 끊었을 때 무주처열반을 얻는다고 하는가? 그것은 법공의 진여를 능히 은폐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끊었을 때 법공의 리理가 현현한다. 이 리理가 무주처열반이다. 생사와 열반 양쪽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소지장도 열반을 장애하는데 왜 그것을 끊었을 때 택멸擇滅을 얻지 못하는가? 택멸은 박縛174)을 여의는 것인데 그것175)은 박縛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러하다면 그것을 끊었을 때 어떻게 열반을 얻는가? 열반들이 모두 택멸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176) 본성청정은 열반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도 택멸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세한 것은 그곳177)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밖의 문답은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삼세의 붓다들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아눗따라삼약상보디를 얻는다.


이 아래에서는 둘째 예를 끌어와서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결과(果)를 얻는 것을 바로 밝히고 뒤에서는 공용功用에 의거해서 뛰어남을 찬탄한다. 이것은 앞부분이다. 문장에 세 마디가 있다.
‘삼세의 붓다들’이란 과果를 얻는 사람을 밝힌 것이다. ‘삼세’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유위법이다. 그 순서대로 ‘있었던 것(曾有)’, ‘있는 것(現有)’, ‘있을 것(當有)’을 삼세라 한다. 또 순서대로 ‘아직 있지 않은 법(當不有法)’, ‘지금 있는 법(正現有法)’, ‘더 이상 있지 않은 법(曾不有法)’을 삼세라 말한다. 그런데 이 삼세에는 그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종자種子의 삼세이고, 둘째는 도리道理의 삼세이고, 셋째는 유식唯識의 삼세이다.178) 이와 같은 삼세는 학파마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여러 논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인

001_0011_c_01L餘依非彼後時滅身智已無苦依盡
001_0011_c_02L無餘涅槃廣說如彼問諸所知障
001_0011_c_03L不感生如何斷彼得無住處答彼能
001_0011_c_04L隱覆法空眞如故斷彼時顯法空理
001_0011_c_05L此理卽是無住涅槃令於二邊俱不
001_0011_c_06L住故問若所知障亦障涅槃如何斷
001_0011_c_07L彼不得擇滅答擇滅離縛彼非縛故
001_0011_c_08L問旣爾斷彼寧得涅槃答非諸涅槃
001_0011_c_09L皆擇滅攝不爾性淨應非涅槃有說
001_0011_c_10L亦是擇滅所攝廣說如彼已外問答
001_0011_c_11L如理應思

001_0011_c_12L
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故得何耨
001_0011_c_13L多羅三藐三菩提者

001_0011_c_14L
自下第二引例證成於中有二初正
001_0011_c_15L明得果後約用歎勝此卽初也
001_0011_c_16L有三節

001_0011_c_17L
三世諸佛者辨得果人三世卽是過
001_0011_c_18L現未來有爲法也如其次第曾有現
001_0011_c_19L有及以當有以爲三世又說如次當
001_0011_c_20L不有法正現有法曾不有法以爲三
001_0011_c_21L然此三世有其三種一種子三世
001_0011_c_22L二道理三世三唯識三世如此三世
001_0011_c_23L諸宗同異具如諸論如理應思梵音
001_0011_c_24L「處」一無

001_0012_a_01L‘붓다’를 이 나라에서는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다섯 의미를 갖추고 있기에 붓다라 한다. 『불지경론』에서 ‘다섯 의미란, 첫째 두 가지 지智일체지一切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갖추고 있으며, 둘째 두 가지 장애(障)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를 여의었으며, 셋째 두 가지 상相일체법一切法과 일체종법一切種法에 통달해 있으며, 넷째 두 가지 이롭게 함(利) 자기를 이롭게 함(自利)과 남을 이롭게 함(他利)을 갖추고 있으며, 다섯째 두 가지 비유수몽교睡夢覺의 비유와 연화개蓮華開의 비유179)를 갖추고 있다. 이 다섯 의미를 갖추고 있기에 붓다라 한다.’라고 한다.
다음에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란 과를 얻는 작용인 지智를 밝힌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 ‘아눗따라삼약상보디180)를 얻는다.’란 얻어진 결과(果)인 보리를 밝힌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는 위와 같은데 이 나라 말로 번역할 때는 여러 학설이 같지 않다. 첫째 학설은 “‘아’는 무無, ‘눗따라’는 상上, ‘삼’은 정正, ‘약’은 진眞, 뒤의 ‘삼’은 정正, ‘보리’는 도道를 말한다. 모두 합쳐서 말하면 무상정진정도無上正眞正道이다.”이다. 둘째 학설은 “‘아’는 무無, ‘눗따라’는 상上, ‘삼’은 정正, ‘약’은 변遍, ‘삼’은 지知, ‘보리’는 각覺을 말한다. 여리지如理智가 진여를 연하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여량지如量智가 세속을 연하는 것을 변遍이라 한다. 무분별지가 두 무지無知를 끊는 것을 지知라 하고 보리가 잠과 꿈의 허울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각覺이라 한다. 이 네 가지 지智는 보리의 본체이다. 2승乘의 과보를 넘어서기에 무상無上이라 한다.”이다. 이제 당나라의 삼장은 “‘아’는 무無, ‘눗따라’는 상上, ‘삼’은 정正, ‘약’은 등等, ‘삼’은 또 정正, 보리는 ‘각覺’을 말한다. 이것을 넘어서는 법이 없기에 무상無上이라 말한다. 리理와 사事를 변지遍知하기 때문에 정등正等이라 한다. 허망한 것을 여의고 진실한 것을 관조하기에 정각正覺이라 한다. 다 합해서 말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다.”라고 말한다.

주장을 표방해서 과果를 얻는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오직 열반만을 말하고 예를 끌어와서 증명하는 부분에서는 오직 보리만을 말했는데 이는 각覺으로써 멸滅을 증득한다는 것이니 모순되지 않는가? 이치로 보아 실제로는 지덕智德과 단덕斷德 2덕德에 모두 통한다. 열반과 보리 각각은 한 가지 의미에 의거해서 영략호현影略互顯181)하고 있다.

001_0012_a_01L佛陀此翻覺者具有五義故名爲佛
001_0012_a_02L如佛地論言五義者一具二智一切智一
切種智

001_0012_a_03L二離二障煩惱
所知
三達二相一切法一
切種法

001_0012_a_04L具二利自利
利他
五具二譬如睡夢覺
如蓮華開
具此
001_0012_a_05L五義故名爲佛次依般若波羅蜜多
001_0012_a_06L故者辨能得智如煎可知後得阿
001_0012_a_07L耨多羅三藐三菩提者顯所得果
001_0012_a_08L是菩提梵音如上而翻此言諸說不
001_0012_a_09L一曰阿之言無耨多羅云上
001_0012_a_10L名正藐言眞後三名正菩提曰道
001_0012_a_11L總言無上正眞正1)正道一曰阿之言
001_0012_a_12L耨多羅曰上三名正藐言遍
001_0012_a_13L云知菩提名覺如理智緣眞如名正
001_0012_a_14L如量智緣俗言遍無分別智斷二無
001_0012_a_15L知名知菩提出睡夢之表稱覺此四
001_0012_a_16L智是菩提體超二乘果故名無上
001_0012_a_17L大唐三藏曰阿之言無耨多羅名上
001_0012_a_18L三名正藐名等三又言正菩提云
001_0012_a_19L無法可過故言無上理事遍知故
001_0012_a_20L云正等離妄照眞復云正覺卽是無
001_0012_a_21L上正等正覺

001_0012_a_22L
問標宗得果但說涅槃引例證成
001_0012_a_23L菩提者以覺證滅豈不相違答理
001_0012_a_24L實皆通智斷二德各據一義影略

001_0012_b_01L이 보리의 의미는 크게 보아 세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는 명칭을 풀이하는 것이고, 둘째는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셋째는 여러 문으로써 분별하는 것이다.

(1) 첫째 명칭을 풀이한다. 산스크리트 음인 ‘보리’를 이 나라에서는 각覺이라고 번역한다. 각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삼승三乘의 지智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무상보리를 말하는 것이다. 진지眞智와 속지俗智가 함께 2공空을 증득하기에 ‘각’이라 한다.

(2) 둘째 본체를 드러낸다. 두 종류가 있다. ① 하나는 실實에 의거해서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지四智 그것의 본체이다. 그래서 『성유식론』 제10권에서 “보리는 사지와 이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을 본체로 한다.”라고 한다. ② 또 하나는 가假에 의거해서 상相을 말하는 것이다. 크게 보아 세 문이 있다.
㉠ 첫째, 지智와 단斷을 분별한다. 2공을 관하는 지智와 2장을 끊는 단斷에 의해 증득되는 무위가 그것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사지론』 「보살지」에서 “2단斷과 2지智를 보리라 한다.”라고 한다. 그 논에서 2단斷을 보리라 하는 것은 지智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假에 의거해서 상相을 말해서 또한 ‘지’라고도 한다.
㉡ 둘째, 삼신三身을 분별한다. 삼신三身 모두를 본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섭대승론』에서 “지智의 수승한 본체가 삼신三身이다.”라고 한다. 그 논에서 “법신法身이 지智에 포함되는 것은 지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지智와 유사하기에 지智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 셋째, 5법을 분별하는 문이다. 5법을 모두 본체로 한다. 『불지경』에서 “대각大覺의 대지를 포함하는 5종의 법이 있다. 사지四智와 청정법계이다.”라고 한다. 그 경에서 진여를 대각이라 하는 것은 『섭대승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각覺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 의하면 각의 대상(境)이기에 ‘각’이라 한다. 그래서 그 논에 이르길, “지智와 지智가 놓이는 곳을 모두 반야라고 말한다.”라고 한다.

(3) 셋째 여러 문으로써 분별한다. 앞에서 사지四智를 풀이하고 뒤에서 삼신三身을 밝힌다.
① 먼저 사지에 대해 말하겠다. 다섯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 명칭을 표방하고 본체를 드러내는 문이고, 둘째 식識을 전환해서 지智를 얻는 것을 밝히는 문이고, 셋째 상응하는 심소를 밝히는 문이고, 넷째

001_0012_b_01L互顯此菩提義略以三門分別
001_0012_b_02L釋名字二出體性三諸門分別

001_0012_b_03L
第一釋名梵音菩提此翻名覺
001_0012_b_04L有三種謂三乘智而今且說無上菩
001_0012_b_05L卽眞俗智雙證二空故名爲覺

001_0012_b_06L
第二出體有其二種一就實出體
001_0012_b_07L智爲性故成唯識第十卷曰菩提卽
001_0012_b_08L是四智相應心品爲體二相從假說
001_0012_b_09L略有三門一智斷分別卽用二空觀
001_0012_b_10L及斷二障所證無爲以爲自性
001_0012_b_11L瑜伽論菩薩地曰二斷二智名爲菩
001_0012_b_12L彼說二斷爲菩提者智之果故
001_0012_b_13L從假說亦名爲智三二身分別通用
001_0012_b_14L三身以爲自性故攝大乘智殊勝體
001_0012_b_15L卽是三身彼曰法身通名智者智之
001_0012_b_16L性故似說名智三五法分別通用
001_0012_b_17L五法以爲自性佛地經曰有五種
001_0012_b_18L法攝大覺地所謂四智及淨法界
001_0012_b_19L經眞如爲大覺者同攝大乘覺之性
001_0012_b_20L依智度論覺之境故名之爲覺
001_0012_b_21L故彼論云說智及智處皆名爲般若
001_0012_b_22L第三諸門分別先釋四智後辨三身
001_0012_b_23L且說四智五門分別一標名出體門
001_0012_b_24L二轉識得智門三心所相應門四所

001_0012_c_01L소연所緣의 구별을 밝히는 문이고, 다섯째 최초로 현기現起를 얻는 것을 밝히는 문이다.

㉠ 첫째, 명칭을 표방하고 본체를 드러내는 문이다. 첫째는 대원경지大圓鏡智이다. 둥근 거울에 의지해서 뭇 상象이 비치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여래如來의 지智의 거울에 의지해서 모든 처소의 경境과 식識의 뭇 상이 비치어 나타난다. 비유에 의거해서 이름을 세운 것이다. 제8식 및 이것과 상응하는 심품心品182)을 본체로 한다. 열한 가지의 비유가 있는데 『불지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둘째 평등성지平等性智이다. 자타의 유정이 모두 평등하다. 작용에 의거해서 이름을 세운 것이기에 평등성지라 한다. 열 가지의 평등이 있는데, 경에서 자세하게 설한 바와 같다. 제7식 및 이것과 상응하는 심품을 본체로 한다. 셋째 묘관찰지妙觀察智이다. 상응하는 심품이 법들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잘 관찰한다. 작용에 의거해서 이름을 세운 것이기에 묘관찰지라 한다. 열 가지의 비유가 있는데 경에서 자세하게 풀이한 바와 같다. 제6식 및 이것과 상응하는 심품을 본체로 한다. 넷째 성소작지成所作智이다. 시방에 두루 갖가지의 변화變化183)의 삼업三業을 나투어184) 인위因位에서 세운 서원의 힘에 의지해 해야 할 일을 실행한다. 이것 또한 작용에 의거해서 성소작지라 한다. 열 가지의 비유가 있는데 경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전5식 및 이것과 상응하는 심품을 본체로 한다.

㉡ 둘째, 식識을 전환해서 지智를 얻는 문이다. 『불지경론』 제3권에 두 논사의 말이 나와 있다. 한 논사는 “제8식을 전환해서 대원경지를 얻는다. 제7식을 전환해서 평등성지를 얻는다. 제6식을 전환해서 묘관찰지를 얻는다. 5현식現識을 전환해서 성소작지를 얻는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 논사는 “제6식을 전환해서 성소작지를 얻으며, 5현식現識185)을 전환해서 묘관찰지를 얻는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순서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을 설하고 의혹을 끊으려면 두루 관찰해야 하는데 이는 5현식의 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에도 두 가지 해석이 나와 있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대승장엄경론』도 『불지경론』 제2권에서 말한 것과 같다.

001_0012_c_01L緣差別門五初得現起門一標名出
001_0012_c_02L2)門者一大圓鏡智如依圓鏡衆
001_0012_c_03L緣影現如是依止如來智鏡諸處
001_0012_c_04L境識衆像影現從諭立號卽用第
001_0012_c_05L八相應心品以爲自體有十一喩
001_0012_c_06L佛地經二平等性智自他有情
001_0012_c_07L皆平等從用立號名平等智有十
001_0012_c_08L平等如經廣說第七相應心品爲體
001_0012_c_09L三妙觀察智相應心品善觀諸法自
001_0012_c_10L相共相從用立號名妙觀察智有十
001_0012_c_11L種喩如經廣釋第六相應心品爲體
001_0012_c_12L四成所作智普於十方示現種種變
001_0012_c_13L三業所應作事此亦從用名成所
001_0012_c_14L作智有十種喩如經廣說五識相
001_0012_c_15L應心品爲體二轉識得智者佛地第
001_0012_c_16L有二師說一曰轉第八識得大
001_0012_c_17L圓鏡智轉第七識得平等性智
001_0012_c_18L第六識得妙觀察智轉五現識
001_0012_c_19L成所作智一曰轉第六識得成所作
001_0012_c_20L轉五現識得妙觀察智此不應
001_0012_c_21L非次第故說法斷疑則遍觀察
001_0012_c_22L非五用故無性攝論亦有兩釋
001_0012_c_23L如彼說大莊嚴論同佛地論第二所
001_0012_c_24L「正」疑剩「門」一無

001_0013_a_01L『성유식론』 제10권도 『불지경론』의 앞의 논사가 말한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셋째, 상응하는 심소를 밝히는 문이다. 각각의 지智가 모두 스물한 가지의 법의 심품과 상응한다. 스물한 가지의 법이란 변행遍行과 별경別境 각각 다섯에다 선善 열하나를 말한다. 자세한 것은 『불지경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 넷째, 소연의 구별을 밝히는 문이다. 대원경지의 소연에 대해서는 『불지경론』에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하나는 진여를 연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법을 다 연한다는 것이다. 비록 두 가지 해석이 있긴 하나 후자가 낫다. 『성유식론』 제10권도 그 논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자세하게 분별한다면 『불지경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평등성지의 소연에 대해서는 『불지경론』과 『성유식론』에 모두 세 가지의 해석이 나와 있다. 첫째 해석은 청정한 제8식만을 연한다고 하며, 둘째 해석은 평등의 진여를 연한다고 하며, 셋째 해석은 진眞과 속俗을 두루 연해서 경계로 삼는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두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묘관찰지는 모든 경계를 연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성소작지의 소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 해석은 5종의 현재세의 대상(境)만을 연한다는 것이며, 다른 한 해석은 삼세의 법들을 두루 연한다는 것이다. 뒤의 해석이 올바르다. 그 두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 다섯째, 최초로 현기現起를 얻는 것의 구별을 밝히는 문이다. 『불지경론』에 의하면 대원경지는 금강심金剛心의 시기186)에 최초로 현기하는 것을 얻는다. 평등성지 및 이것과 상응하는 심품은 보살의 최초의 대지에서 최초의 현관現觀187)의 시기에 최초로 현행現行한다. 묘관찰지 및 이것과 상응하는 심품도 최초의 대지에서 최초의 현관現觀의 시기에 최초로 현행한다. 성소작지가 최초로 현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 해석은 최초의 대지 이상이면 모두 현행을 얻는다고 하며, 다른 한 해석은 불과佛果에서야 현행을 얻는다고 한다. 뒤의 해석이 올바르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성유식론』에 의하면 대원경지가 최초로 현기하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 해석은 금강심의 시기에 최초로 현기하는 것을 얻는다고 하고, 다른 한 해석은 불과佛果에서야 현기하는 것을 얻는다고 한다. 뒤의 해석이 올바르다. 그 밖의 것은 『불지경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001_0013_a_01L成唯識第十卷中卽同佛地初師
001_0013_a_02L所說須會三心所相應者一一皆
001_0013_a_03L與二十一法心品相應謂所遍行別
001_0013_a_04L境各五善有十一具如佛地四所緣
001_0013_a_05L差別者大圓鏡智如佛地論自有兩
001_0013_a_06L一曰緣如一曰通緣一切諸法
001_0013_a_07L有兩說後者爲勝唯識第十亦同彼
001_0013_a_08L若廣分別具如佛地平等性智
001_0013_a_09L佛地唯識皆有三釋一曰但緣第八
001_0013_a_10L淨識一曰但緣平等眞如一曰普緣
001_0013_a_11L眞俗爲境具如二論妙觀察智緣一
001_0013_a_12L切境無有諍論成所作智有其二說
001_0013_a_13L一曰但緣五種現境一曰遍緣三世
001_0013_a_14L諸法後說爲正如彼二論五現起
001_0013_a_15L差別者依佛地論大圓境智金剛
001_0013_a_16L心時初得現起平等性智相應心品
001_0013_a_17L菩薩初地初現觀時最初現行妙觀
001_0013_a_18L察智相應心品亦在初地初現觀時
001_0013_a_19L最初現行成所作智自有二釋一曰
001_0013_a_20L初地已上皆得現行一曰佛果方得
001_0013_a_21L現行後說爲正廣如彼論依成唯
001_0013_a_22L大圓鏡智自有兩釋一曰金剛心
001_0013_a_23L時初得現起一曰佛果方得現起
001_0013_a_24L說爲正餘如佛地

001_0013_b_01L
② 삼신三身을 크게 보아 일곱 문으로써 분별한다. 첫째 명칭을 풀이하는 것이고, 둘째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셋째 5법이 신身에 포함되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넷째 상주(常)와 무상無常을 밝히는 것이고, 다섯째 형량形量의 크고 작음을 밝히는 것이고, 여섯째 교화하고자 하는 유정의 같고 다름을 밝히는 것이고, 일곱째 의지하는 국토의 구별을 밝히는 것이다.

㉠ 첫째, 명칭을 풀이한다. 앞에서는 전체의 명칭을 밝히고 뒤에서는 각 부분의 명칭을 밝힌다. 먼저 전체의 명칭을 밝힌다. ‘삼신三身’에서 ‘삼’은 수를 표시한 것이다. ‘신身’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 본체(體)와 의지처(依)와 집적(聚)이다. 그래서 『성유식론』 제10권에서 “본체와 의지처와 집적의 의미를 모두 합해서 신身이라 말한다.”라고 한다. 『불지경론』 제7권도 그 논의 해석과 같다. 이것은 육합석 중 대수석帶數釋이다. 다음으로 각 부분의 명칭을 밝힌다. 처음은 자성신自性身 또는 법신法身이다. 진여를 말한다. 자체가 상주하고 불변하기에 자성신이라 하고 력力188), 무외無畏189) 등 모든 공덕의 법들190)이 의지하는 곳이기에 법신이라 한다. 다음은 수용신受用身이다. 자타로 하여금 갖가지의 큰 법락法樂을 수용受用하게 하기에 수용신이라 한다. 마지막은 변화신變化身이다.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 갖가지의 변화變化의 업業을 나투기에 변화신이라 한다.

㉡ 둘째, 본체를 드러낸다. 법신은 진여를 본체로 한다. 다음에 수용신은 사지四智의 자기를 이롭게 하는 공덕과, 대지에 들어간 보살을 위해 나툰 변화의 상相의 일부인 공덕을 본체로 한다. 이에 대해 같고 다른 점은 오법五法191)을 다루는 문에서 자세하게 분별할 것이다.

㉢ 셋째, 오법五法이 신身에 포함되는 것을 밝히는 문이다. 『불지경론』에 의하면 이것에 두 논사의 풀이가 있다. 한 논사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앞의 둘192)은 자성신에 속하고 중간의 둘193)은 수용신에 속하고 성소작지는 변화신에 속한다. 경에서 ‘진여가 법신이다.’라고 설하기 때문에예를 들어 『금광명경』과 『불지경』 등이 그렇다, 논에서 ‘알라야식을 제거하고 전환해서 자성신을 얻고 제8식을 전환해서 대원경지를 얻는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앞의 둘이 자성신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섭대승론』에서는 자성신을 얻는다고 말하고, 『섭대승론』과 『대승장엄경론』에서 모두 제8식을 전환해서 대원경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이 경들에서 ‘성소작지가 변화變化의 업을 일으킨다.’고 설하고 『대승장엄경론』에서

001_0013_b_01L
三身略以七門分別第一釋名字
001_0013_b_02L二出體性第三五法攝身第四常無
001_0013_b_03L第五形量大小第六所化同異
001_0013_b_04L七依土差別第一釋名先總後別
001_0013_b_05L三身者三是標數身有三義謂體
001_0013_b_06L依聚故成唯識第十卷曰體依聚義
001_0013_b_07L總說名爲身佛地第七亦同彼釋
001_0013_b_08L卽六中帶數釋也後別名者一自性
001_0013_b_09L法身謂卽眞如體常不變故名自
001_0013_b_10L性身力無畏等諸功德法所依止故
001_0013_b_11L亦名法身次受用身能令自他受用
001_0013_b_12L種種大法樂故名受用身後變化身
001_0013_b_13L謂利有情示現種種變化事業名變化
001_0013_b_14L第二出體法身卽用眞如爲體
001_0013_b_15L受用身卽用四智自利功德及爲地
001_0013_b_16L所現化相一分功德以爲自性
001_0013_b_17L中同異五法門中當廣分別第三
001_0013_b_18L五法攝身依佛地論自有兩釋有義
001_0013_b_19L前二攝自性身中間二種攝受用身
001_0013_b_20L成所作智攝變化身經說眞如是法
001_0013_b_21L身故如金光明經
及佛地經等
論說轉去阿賴耶識得
001_0013_b_22L自性身大圓鏡智轉第八得故知前
001_0013_b_23L二攝自性身如攝大乘說得自性攝論
莊嚴皆轉第八得圓鏡智
此經
001_0013_b_24L中說成所作智起諸化業莊嚴論說

001_0013_c_01L‘성소작지가 모든 계界에서 갖가지 무량한 생각하기 어려운 변화의 업들을 일으킨다.’고 말하기 때문에 마지막의 한 가지는 변화신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언급하고 있는 곳을 다시 잘 살펴보라. 평등성지는 여러 논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국토에 의지해서 보살들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갖가지의 불신佛身을 나툴 수 있다.언급하고 있는 곳을 다시 잘 살펴보라. 묘관찰지 또한 논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집회에서 모든 자재한 작용을 나투어서 법을 설하고 의혹을 끊어준다.예를 들어 『대승장엄경론』에서 그렇게 말한다. 또 식들을 전환해서 수용신을 얻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중의 둘194)은 수용신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섭대승론』에서 그렇게 말한다. 또 붓다의 삼신三身은 모두 열 가지 특징 중 지智의 수승殊勝에 포함되기 때문에 삼신이 모두 지智가 있음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섭대승론』 중 수승殊勝을 말하는 대목에서 그렇게 말한다.
또 한 논사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처음의 것195)은 자성신에 포함된다. 사지四智의 자성自性과 상응相應과 공유共有196) 그리고 대지에 들어간 보살을 위해서 나툰 일부의 미세한 상은 수용신에 포함된다. 아직 대지에 들어가지 않은 보살 등을 위해 나툰 일부의 추대한 상과 변화의 작용은 변화신에 포함된다. 여러 경에서 모두 청정한 진여를 법신이라 말하기 때문에, 붓다를 찬미해서 논에서 여래의 법신은 생멸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구들이 있기 때문에 법신法身은 곧 청정한 법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대승장엄경론』에서 ‘대원경지는 스스로 향수하는 붓다이다.’라고 한다. 『섭대승론』에서는 ‘전식轉識197)들을 전환해서 수용신을 얻는다.’고 한다. 그런데 ‘알라야식을 제거하고 전환해서 법신을 얻는다.’란 이것은 제8식 속의 이장二障의 종자를 제거하고 전환해서 청정한 전의轉依198)의 법신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대원경지가 법신불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수용신에는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수용신自受用身이다. 삼무수겁 동안 수습修習해서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타수용신他受用身이다. 보살들이 법락法樂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사지四智의 상응, 공유 그리고 일부의 변화變化를 수용신이라 하는 것이다. 경과 논 모두에서 말하는 변화신은 대지에 들어가지 않은

001_0013_c_01L成所作智於一切界發起種種無重
001_0013_c_02L難思諸變化事故知後一攝變化身
001_0013_c_03L更勘
說處
平等性智如諸論說能依淨土
001_0013_c_04L隨諸菩薩所樂示現種種佛身更勘
說處

001_0013_c_05L觀蔡智亦如論說於大集會能現一
001_0013_c_06L切自在作用說法斷疑如莊嚴
論說
又說轉
001_0013_c_07L去諸識故得受用故知中二攝受用
001_0013_c_08L如攝大
乘論說
又佛三身皆十義中智殊勝
001_0013_c_09L故知三身皆得有智如攝大乘
中殊勝也
有義
001_0013_c_10L初一攝自性身四智自性相應共有
001_0013_c_11L及爲地上菩薩所現一分細相攝受
001_0013_c_12L用身若爲地前菩薩等所現一分麤
001_0013_c_13L相化用攝變化身諸經皆說淸淨眞
001_0013_c_14L如爲法身故讃佛論說如來法身無
001_0013_c_15L生滅故如此等文故知法身卽淨法
001_0013_c_16L具說如彼莊嚴論說大圓鏡智自
001_0013_c_17L受用佛攝大乘說轉諸轉識得受用
001_0013_c_18L然說轉去阿賴耶識得法身者
001_0013_c_19L說轉去第八識中二障種子顯得淸
001_0013_c_20L淨轉依法身非說鏡智是法身佛
001_0013_c_21L受用身略有二種一自受用三無數
001_0013_c_22L劫修所成故二他受用爲諸菩薩受
001_0013_c_23L法樂故是故四智相應共有及一分
001_0013_c_24L化爲受用身經論皆說化身爲化地

001_0014_a_01L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툰 갖가지 상相이다. 대지에 들어가지 않은 중생의 대상(境界)이기 때문에 진실의 공덕이 아니고 단지 변화의 작용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경과 논에서 성소작지가 변화의 업業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지 변화의 신身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비단 삼신三身이 지智의 수승殊勝에 포함되긴 하나, 법신法身은 지智가 의지하는 곳이고 증득한 것이기 때문에, 화신化身199)은 지智가 일으키는 작용이기 때문에 지智와 유사하게 현현한다. 그러므로 임시로 지智라고 말해도 과실이 없다. 『성유식론』은 앞에서 말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서 서술하지 않겠다.

㉣ 넷째, 상주와 무상을 밝히는 문이다. 수용신과 변화신은 이미 생멸이 있는데 왜 경에서는 불신佛身이 상주한다고 말하는가? 2신身이 의지하는 법신法身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법락을 누리는 일(受用)이 폐지되지 않기 때문이며, 자주자주 변화를 나투는 일이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즐거움을 누리는 것과 같고 항상 먹을 것을 베푸는 것과 같기에 상주한다고 하는 것이다. 『대승장엄경론』에서 상주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본성本性의 상주이다. 자성신을 말한다. 이 신身은 본래 자성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단不斷의 상주이다. 수용신을 말한다. 법락을 누리는 일이 그치거나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상속相續의 상주이다. 변화신을 말한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하며 변화가 무궁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 다섯째, 형량形量의 큼과 작음을 밝히는 문이다. 자성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그 형량의 큼과 작음을 말할 수 없다. 상相에 의거한다면 모든 곳에 편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용신은 색인 것과 색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색이 아닌 법은 형질形質이 없기 때문에 형량의 큼과 작음을 말할 수 없다. 의지처인 몸(身)과 인식의 대상(所知境)에 의거한다면 이것도 모든 곳에 편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색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색實色이고 다른 하나는 화색化色이다. 실색이란 3무수겁 동안 수습修習해서 생긴, 법계에 충만하고 실實의 정토淨土에 편만해 있는 것이다. 오직 붓다와 붓다만이 이것을 알 수 있다. 화색이란 하나는 비원력悲願力200)에 의해

001_0014_a_01L前衆生現種種相旣是地前衆生境
001_0014_a_02L故知非是眞實功德但是化用
001_0014_a_03L論唯說成所作智能起化業非卽化
001_0014_a_04L但雖三身智殊勝攝法身是智所
001_0014_a_05L依證故化身是智所起用故似智現
001_0014_a_06L說假爲智亦無有過成唯識論
001_0014_a_07L不異前說故不重述第四常無常者
001_0014_a_08L問受用變化旣有生滅云何經說
001_0014_a_09L佛身常答由二所依法身常故
001_0014_a_10L用法樂無休廢故數數現化無斷絕
001_0014_a_11L如常受樂如常施食故說名常
001_0014_a_12L莊嚴論1)說常有三種一本性常
001_0014_a_13L自性身此身本來性常住故二不斷
001_0014_a_14L謂受用身受用法樂無間斷故
001_0014_a_15L相續常謂變化身沒已復現化無盡
001_0014_a_16L具說如彼第五形量大小者自性
001_0014_a_17L法身由如虛空不可說其形量大小
001_0014_a_18L就相而言遍一切處受用身者有色
001_0014_a_19L非色非色諸法無形質故亦不可說
001_0014_a_20L形量大小若就依身及所知境亦得
001_0014_a_21L說言遍一切處色有二種一者實色
001_0014_a_22L二者化色言實色者三無數劫修習
001_0014_a_23L所生充滿法界遍實淨土唯佛與
001_0014_a_24L佛乃能知之言化色者由悲願力

001_0014_b_01L대지에 들어간 보살의 무리들을 위해 나툰 몸이다. 형량이 일정하지 않다. 또 하나는 아직 대지에 들어가지 않은 보살을 교화하기 위해 나툰 변화의 몸(變化身)이다. 색인 것과 색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색이 아닌 것은 형질이 없기 때문에 형량이 없다. 색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교화하고자 하는 유정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 여섯째, 교화하고자 하는 유정의 같고 다름을 밝히는 문이다. 『불지경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모든 여래는 교화하고자 하는 유정을 같이하는가, 같이하지 않는가? 논에 세 논사의 학설이 나와 있다. ① 한 논사는 ‘같이한다. 모든 공덕功德과 행원行願201)이 같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② 또 한 논사는 ‘같이하지 않는다. 붓다들과 교화하고자 하는 유정의 부류들은 본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③ 사실대로 본다면 같이하기도 하고 같이하지 않기도 한다.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종성種性202)과 법이法爾203)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니, 혹은 많은 것이 하나와 관계를 맺고 있고 혹은 하나가 많은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성유식론』은 세 번째의 해석과 같으니 그 논에 나와 있는 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 일곱째, 의지처인 국토의 구별을 밝히는 문이다. 『성유식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몸(身)에 네 종류가 있다. 자성신, 자수용신, 타수용신, 변화신을 말한다. 국토에도 네 종류가 있다. 첫째 자성토, 둘째 자수용토, 셋째 타수용토, 넷째 변화토를 말한다. 앞의 네 종류의 몸은 순서대로 네 종류의 국토에 거주한다. 비록 자성신과 자성토는 붓다의 법에 속하기에 체體가 구별되지 않으나 상相이 구별되기에 의미에 준거해서 주체(能)와 객체(所)를 말한 것이다. 그 변화신은 정토淨土뿐만 아니라 예토穢土에도 거주한다. 자세한 것은 그 논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가 대신주大神呪요, 대명주大明呪요, 무상주無上呪요, 무등등주無等等呪라는 것을 안다.


이 아래는 둘째 공용功用을 들어서 뛰어남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산문(長行)으로 자세하게 풀이하고, 뒤에서는 송을 들어서 찬탄하며 매듭을 짓는다. 앞은 다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자기를 이롭게 함(自利)을 밝히고 뒤에서는 남을 이롭게 함(利他)을 밝힌다.

(1) ① 이것은 첫째 자기를 이롭게 함을 밝히는 앞부분이다.

001_0014_b_01L入大地諸菩薩衆現種種身形量不
001_0014_b_02L爲化地前所現化身通色非色
001_0014_b_03L非色無形故無形量色卽不定
001_0014_b_04L所化故廣說如彼第六所化同異者
001_0014_b_05L如佛地論一切如來所化有情爲共
001_0014_b_06L不共論有三說一曰唯共一切功
001_0014_b_07L德行願同故廣如彼說一曰不共
001_0014_b_08L佛所化諸有情類本相屬故廣說如
001_0014_b_09L如實義者有共不共無始時來
001_0014_b_10L種性法爾更相繫屬或多屬一
001_0014_b_11L一屬多廣說如彼依成唯識同第
001_0014_b_12L三釋如論應知第七依土差別者
001_0014_b_13L成唯識身有四種所謂自性受用及
001_0014_b_14L變化身土有四種一自性土二自
001_0014_b_15L受用三他受用四變化土卽前四
001_0014_b_16L如其次第住四種土雖自性身與
001_0014_b_17L自性土體無差別而屬佛法相性
001_0014_b_18L異故義說能所其變化身非唯住
001_0014_b_19L亦通穢土廣如彼論

001_0014_b_20L
故知般若波羅蜜多是大神祝是大
001_0014_b_21L明呪是無上呪是無等等呪者

001_0014_b_22L
自下第二擧用歎勝於中有二初長
001_0014_b_23L行廣釋後擧頌結歎前中有二
001_0014_b_24L明自利後辨利他此卽初也所言

001_0014_c_01L주呪란 주술呪術을 의미한다. 밝히고자 함에 신묘한 혜慧로써 공성(空)을 증득하고 장애(障)를 끊는 것이고, 말하고자 함에 묘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呪의 말로써 그 뛰어난 공용을 찬탄하는 것이다. 신묘한 공용을 헤아릴 수 없기에 대신주大神呪라 한다. 어둠을 물리치고 의혹을 없애 주기에 대명주大明呪라 한다. 2승乘을 넘어서기에 무상주無上呪라 한다. 그 보살을 넘어서 붓다의 혜慧는 균등하고 평등하기에 무등등주無等等呪라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다.

모든 고를 없애주는 것이 진실해서 허망하지 않다.


② 이것은 둘째 남을 이롭게 함(利他)의 공용을 밝히는 뒷부분이다. 이 신묘한 혜로써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생사의 괴로움(苦)을 넘게 하고 열반의 즐거움(樂)을 증득하게 한다. 혀를 펴 머리칼 난 언저리에 이르는 순간에도 성실한 말을 토해 내기 마련이니 하물며 삼천대천세계를 뒤덮는데 그 말에 무슨 오류가 있겠는가? 그래서 경에서 진실한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呪를 말하니, 주를 말하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사바하204)이다.


(2) 이것은 둘째 송을 들어 찬탄하며 매듭을 짓는 부분이다. 이것은 다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는 산문으로 내세우고 뒤에서는 송으로 바로 찬탄한다.
이 송을 해석하는 여러 설이 같지 않다. 한 해석은 “이 송은 번역할 수 없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 주呪는 서역의 정음正音이자 비밀스러운 말이기에 번역하면 영험을 잃는다. 그래서 산스크리트 음 그대로 둔 것이다.”이다. 또 한 해석은 “주呪에서 성자들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 또는 귀신을 말하고 있다. 또는 법들의 깊디깊은 의미를 말하고 있다. 함축된 많은 의미를 말하고 있기에 이 나라에는 그 말에 딱 들어맞는 말이 없다. 그래서 산스크리트 음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바가범薄伽梵’205)이란 말이 그렇듯이.”이다. 또 한 해석은 “주呪는 비밀스럽게 번역되어야 한다. ‘나무불타야南無佛陀耶’206) 등이 그렇듯이.”이다.

이 송의 구를 해석할 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한다. ① 처음의 ‘아제 아제’는 이 나라에서는 ‘건너네, 건너네(度度).’라 한다. 앞의

001_0014_c_01L呪者呪術之名明卽妙慧證空斷障
001_0014_c_02L言要妙術故以呪言歎其勝用
001_0014_c_03L用莫測名大神呪遣暗除癡稱大
001_0014_c_04L明呪超過二乘故云無上越彼菩
001_0014_c_05L佛慧均平是故重言名無等等

001_0014_c_06L
能除一切苦眞實不虗者

001_0014_c_07L
此卽第二辨利他用依此妙慧令諸
001_0014_c_08L有情越生死苦證涅槃樂舒舌髮
001_0014_c_09L尙表誠言況覆三千而語有謬
001_0014_c_10L故經說曰是眞語者

001_0014_c_11L
故說般若波羅蜜多呪卽說呪曰揭諦
001_0014_c_12L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莎婆呵
001_0014_c_13L

001_0014_c_14L
此卽第二擧頌結歎於中有二初長
001_0014_c_15L行標擧後以頌正歎然釋此頌
001_0014_c_16L說不同一曰此頌不可翻譯古來相
001_0014_c_17L此呪乃是西域正音祕密辭句
001_0014_c_18L卽失驗故存梵語又解呪中說諸
001_0014_c_19L聖名或說鬼神或說諸法甚深奧義
001_0014_c_20L言含多義此方無言正當彼語故存
001_0014_c_21L梵音如薄伽梵一曰諸呪密可翻譯
001_0014_c_22L如言南無佛陀耶等釋此頌句判之
001_0014_c_23L爲三初揭諦揭諦此云度度頌前
001_0014_c_24L「說」一無

001_0015_a_01L장행의 ‘반야’ 두 자를 노래한 것이다. 이것은 반야에 큰 공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스로 건너고 다른 유정들을 건너게 하기 때문에 ‘건너네, 건너네.’ 한 것이다. ② 다음의 ‘바라’ 등의 구207)는 산문의 ‘바라밀다’를 노래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피안도彼岸到’208)라 말한다. 이는 열반이니 ‘저쪽 언덕(彼岸)’이라 한다. ‘아제’란 ‘건너다’를 의미한다. 건너서 어느 곳에 다다르는가? 저쪽 언덕이다. 건너는 곳이기에 ‘바라아제(pāragate)’라고 말한다. ‘바라(pāra)’란 번역하면 위와 같다. ‘승아제(saṃgate)’란, 이 나라에서는 다다름을 완성한 것을 말한다. ‘보리(bodhi)’란 저쪽 언덕의 본체이다. ③ 마지막의 ‘사바하(svāhā)’는 이 나라에서는 ‘신속히’라 말한다. 신묘한 혜는 탁월한 공용이 있기에 신속히 보리의 언덕에 다다르게 한다.

또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송에는 네 구가 있는데 두 마디로 나뉠 수 있다. 앞의 두 구는 법에 의거해서 뛰어남을 찬탄하는 것이고 뒤의 두 구는 인人에 의거해서 뛰어남을 찬탄하는 것이다. 법에 의거해서 찬탄하는 마디에서 앞은 원인(因)이고 뒤는 결과(果)이다. 반복해서 말한 “아제”는 이 나라에서는 “뛰어나다, 뛰어나다.”라 말한다. 원인 단계(因位)의 반야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과 남을 이롭게 하는 것 두 종류의 뛰어난 공용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뛰어나다, 뛰어나다.”고 말한 것이다. “바라아제”란 저쪽 언덕이 뛰어난 것을 말한다. 반야로써 열반의 뛰어난 언덕을 얻기에 저쪽 언덕이 뛰어나다고 말한 것이다. 인人에 의거해서 찬탄하는 마디에서 앞은 원인이고 뒤는 결과이다. “바라승아제”는 이 나라에서는 저쪽 언덕의 수행자(僧)가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원인 단계의 일승一乘 보살이 저쪽 언덕의 사람을 구하는 것을 찬탄하는 것이다. “보리 사바하”는 이 나라에서는 깨달음(覺)이 완성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결과 단계(果位)의 삼신三身의 과보를 얻은 인人을 찬탄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법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깨달음이 완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는 네 구는 삼보三寶의 훌륭함을 찬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의 두 구는 순서대로 수행과 결과의 법보法寶를 찬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제3구와 제4구는 순서대로 승보僧寶와 불보佛寶를 찬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반야심경찬 마침

001_0015_a_01L長行般若二字此顯般若有大功能
001_0015_a_02L自度度他故云度度次波羅等句
001_0015_a_03L頌長行波羅蜜多此云彼岸到是卽
001_0015_a_04L涅槃名彼岸也揭諦言度度到何
001_0015_a_05L謂卽彼岸是度之處故云波羅
001_0015_a_06L揭諦言波羅者翻名如上僧揭諦
001_0015_a_07L此云到竟言菩提者是彼岸體
001_0015_a_08L後莎婆呵此云速疾謂由妙慧
001_0015_a_09L勝功用卽能速疾到菩提岸又解
001_0015_a_10L頌中有其四句分爲二節初之二句
001_0015_a_11L約法歎勝後有二句就人歎勝
001_0015_a_12L約法中先因後果重言揭諦此云
001_0015_a_13L勝勝因位般若具自他利二種勝
001_0015_a_14L故云勝勝波羅揭諦言彼岸勝
001_0015_a_15L由般若故得涅槃勝岸故言彼岸勝
001_0015_a_16L就歎人中先因後果波羅僧揭諦
001_0015_a_17L云彼岸僧勝此歎因位一乘菩薩求
001_0015_a_18L彼岸人菩提莎婆呵此云覺究竟
001_0015_a_19L歎果位三身果人覺法已滿名覺究
001_0015_a_20L或可四句歎三寶勝初之二句
001_0015_a_21L次應知歎行果法第三四句如次
001_0015_a_22L應知歎僧及佛矣

001_0015_a_23L
般若心經賛終
  1. 1)경계境界 : ‘대상’을 의미한다.
  2. 2)이장二藏 : 성문과 연각 2승乘의 도道를 설한 성문장聲聞藏과 보살의 도道를 설한 보살장菩薩藏.
  3. 3)삼신三身 : 자성신自性身, 수용신受用身, 변화신變化身.
  4. 4)시록림施鹿林 : ⓢ Mṛgadāva. 녹야원鹿野園.
  5. 5)사제四諦 :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 고제와 집제는 윤회를, 멸제와 도제는 해탈을 나타낸다.
  6. 6)취봉산鷲峰山 : ⓢ Gṛdhrakūṭa. 영취산靈鷲山.
  7. 7)요의了義 : ⓢ nītārtha. 붓다가 설한 법의 의미를 명료하게 밝힘.
  8. 8)표현하는(能詮) : 능전能詮(abhidhāna)은 ‘표현하는 것’이고 소전所詮(abhidheya)은 ‘표현되는 것’이다. 능전은 표현 수단을, 소전은 표현 내용을 의미한다.
  9. 9)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 sarvāsti-vādin. 소승불교 학파 중의 하나. 모든 것(sarva, 一切)이 있다(asti, 有)고 설說하는 학파. 음역해서 ‘살바다薩婆多’라 하기도 하고 줄여서 ‘유부有部’라 하기도 한다. 이 학파의 학설은 『阿毘達磨大毗婆沙論』, 세친世親의 『阿毘達磨俱舍論』, 중현衆賢의 『阿毗達磨順正理論』과 『阿毗達磨顯宗論』 등에 잘 담겨 있다.
  10. 10)명名은 단어, 구句는 문장, 문文은 음소 또는 음절.
  11. 11)무기無記 : ⓢ avyākṛta. 삼성三性의 하나로서 선善도 불선不善도 아닌 것을 말한다. 삼성은 선善, 불선不善, 무기無記이다.
  12. 12)경량부經量部 : ⓢ sautrāntika’. 소승불교 학파 중의 하나. 경經(sūtra)을 앎의 척도(量)로 삼겠다는 학파. 줄여서 경부經部라 한다.
  13. 13)상속가相續假 : 삼가三假의 하나. 가假는 가시설假施設(prajñapti)의 준말. 『成實論』에 의하면 삼가는 인성가因成假, 상속가, 상대가相待假이고, 『成唯識論』에 의하면 취집가聚集假, 상속가, 분위가分位假이다. 인과 연들에 의존해서 성립하기에 인성가이고, 전 찰나가 멸하면 후 찰나가 바로 생해서 찰나 찰나 단절되지 않고 연속하기에 상속가이고, 서로 의존해서 성립하기에 상대가이다. 일시에 적집해서 성립하기에 취집가이고, 미래세와 현재세와 과거세에 원인과 결과를 이루는 여러 법들에 세워진 한 가법假法이기에 상속가이고, 한 법 위에 세워진 가법이기에 분위가이다.
  14. 14)『說無垢稱經』의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或有佛土以其音聲語言文字, 宣說種種諸法性相而作佛事.”
  15. 15)법무애지法無礙智 : 사무애지四無礙智의 하나. 사무애지는 사무애해四無礙解라고도 한다. 사무애해는 법무애해(dharma- pratisaṃvid), 의무애해義無礙解(artha-pratisaṃvid), 사무애해詞無礙解(nirukti-pratisaṃvid), 변무애해辯無礙解(pratibhāna-pratisaṃvid)이다. 법무애해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막힘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의무애해는 표현된 의미를 막힘없이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사무애해는 외국어를 막힘없이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 변무애해는 이치에 맞게 막힘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상대가 원하고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기뻐하며 말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16. 16)진로문塵勞門 : 번뇌의 다른 이름. ‘진로塵勞’는 마음을 더럽히고 괴롭힌다는 뜻이다.
  17. 17)이 반야심경을 가리킨다.
  18. 18)불타佛陀 : ⓢ buddha의 음역. 불설佛說의 불은 불타의 줄임말.
  19. 19)지도피안智到彼岸 : 지智 곧 반야가 저쪽 언덕에 도달하다라는 뜻. ‘저쪽 언덕에 도달하다’는 ‘완전하게 성취하다’라는 뜻이다.
  20. 20)심心 : 이 ‘심’은 ‘마음(citta)’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심장(hṛdaya)’을 번역한 것이다. ‘중심’, ‘핵심’이란 뜻도 있다.
  21. 21)‘불설’은 설하는 주체를, ‘반야바라밀다’는 표현되는 것(표현 내용)을, ‘심경’은 표현하는 것(표현 수단), ‘심’은 비유를 나타낸다.
  22. 22)세 가지의 분分 : 서분, 정종분, 유통분.
  23. 23)일생보처一生補處 : ⓢ eka-jāti-pratibaddha. ‘한 생만 미계迷界에 매여 있는 자’란 뜻이다. 그래서 ‘일생소계一生所繫’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생 한 생만 지나면 다음 생에서 성불한다는 보살이다.
  24. 24)정법명正法明 : 과거세에 이미 성불했을 때의 관세음보살의 이름.
  25. 25)여래如來 : ⓢ tathāgata. 이는 tathā-gata(如去)나 tathā-āgata(如來)로 해석될 수 있다. tathā-gata는 진여眞如의 길을 걸어 불과佛果인 열반으로 간 자이고, tathā-āgata는 진리眞理로부터 와서 정각正覺을 이룬 자이다.
  26. 26)응공應供 : ⓢ arhant. 아라한阿羅漢. 모든 번뇌를 끊어 지智와 덕德이 원만하기에 사람들과 신들한테서 공양과 존경을 받을 만한 자.
  27. 27)정변지正遍知 : ⓢ samyak-saṃbuddha. 정등각자正等覺者.
  28. 28)명행족明行足 : ⓢ vidyā-caraṇa-saṃpanna’. ‘명明’은 무상정등각, ‘행족行足’은 계, 정, 혜인데 계, 정, 혜에 의해 무상정등각을 얻은 자이기에 ‘명행족’이라 한다. 또는 ‘명’은 숙명, 천안, 누진의 3명이고 ‘행行’은 신, 구 2업인데, 이 3명과 2업을 구족한 자이기에 ‘명행족’이라 한다.
  29. 29)선서善逝 : ⓢ sugata. 저쪽 언덕인 열반으로 잘 건너간 자. ‘여래如來’가 진여의 길을 걸어 이 사바세계에 온 자라면 ‘선서’는 진여의 길을 걸어 저쪽 언덕인 열반으로 건너가 다시는 생사의 바다로 후퇴해 침몰하지 않는 자이다.
  30. 30)세간해世間解 : ⓢ lokavid. 유정세간과 기세간의 모든 일을 알고, 또 세간의 원인, 세간의 결과, 세간의 소멸, 그리고 출세간의 도道를 아는 자이기에 ‘세간해’라 한다.
  31. 31)무상사無上士 : ⓢ uttara. 비교할 바 없이 출중한 지智와 덕德을 갖고 있는 자. 또 비교할 바 없이 출중한 열반을 얻은 자이기에 ‘무상사’라 한다.
  32. 32)조어장부調御丈夫 : ⓢ puruṣa-damya-sārathi. 훈육되어야 할 사람들을 잘 지도하는 자. 여기서 ‘장부丈夫’는 ⓢ puruṣa의 번역어로서 사람을 의미한다.
  33. 33)불세존佛世尊 : 세존은 ⓢ bhagavat의 번역어로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를 의미한다.
  34. 34)반열반般涅槃 : ⓢ parinirvāṇa. 완전한 열반. 의역은 원적圓寂이다.
  35. 35)내지乃至 : ⓢ yāvat의 번역. ‘~에 이르기까지’를 의미한다. 한역 불전에서 이 말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의 ‘중략中略’과 비슷한 용법을 갖고 있다.
  36. 36)화현한 몸(化身) : ⓢ nirmāṇa-kāya.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신통력으로써 나툰 몸. 변화신變化身이라고도 한다.
  37. 37)이공二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38. 38)희론戲論 : ⓢ prapañca. 선법善法을 더하지 못하고 불선법不善法을 덜어 내지 못하는 분별의 말.
  39. 39)보통 ‘prajñā(반야)’를 ‘혜慧’로, ‘jñāna’를 ‘지智’로 번역한다.
  40. 40)반야바라밀다 곧 ‘prajñā-pāramitā’는 ‘지智가 저쪽 언덕에 도달하다’, ‘지智가 완전하게 성취되다’는 뜻이다. 구성된 순서대로 번역한다면 ‘prajñā’는 ‘지智’, ‘pāram’은 ‘피안彼岸’, ‘itā’는 ‘도到’이므로 ‘지피안도智彼岸到’로 번역해야 하겠으나 한문은 목적어 앞에 동사가 오므로 ‘지도피안智到彼岸’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말이다.
  41. 41)『佛地經論』에는 실제로는 이렇게 되어 있다. “시간이란 유위법 상에 임시로 세운 분위이다. 혹은 심心 상의 분위의 영상이다. 색과 심 등에 의지해서 임시로 세우기 때문이다. 이 심과 색에 상응하지 않는 것은 행온에 포함된다.(時者, 卽是有爲法上假立分位. 或, 是心上分位影像. 依色心等總假立故, 是不相應行蘊所攝.)”
  42. 42)세 가지의 반야 : 실상반야, 관조반야, 문자반야를 말한다. 실상반야는 진여이다. 관조반야는 이 진여를 보는 무루의 반야이다. 문자반야는 이 반야를 표현해서 반야를 생기하게 하는 이 『般若心經』 같은 문헌을 말한다.
  43. 43)이제二諦 : 승의제와 세속제.
  44. 44)용맹勇猛 : 용수龍樹(Nāgārjuna, 150~250년경).
  45. 45)『中論』 제13≺행行을 관찰하는 장≻ 제7송. 여기에는 “若有所不空, 應當有空. 不空尙不得, 何況得於空?”로 되어 있지만, 본래는 “만약 불공의 법이 있다면 공의 법이 있을 것이네. 실제로 불공의 법이 없는데 어찌 공의 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若有不空法, 則應有空法. 實無不空法, 何得有空法?)”이다. 나가르주나 지음, 박인성 옮김, 『중론中論-산스끄리뜨본, 티베트본, 한역본-』(주민출판사, 2001) 참조.
  46. 46)『中論』 제18≺법을 관찰하는 장≻ 제6송. 여기에는 “諸佛或說我, 或時說非我. 諸法實相中, 非我非非我.”로 되어 있지만, 본래는 “붓다들은 아를 설하기도 하고 무아를 설하기도 하네. 법들의 실상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네.(諸佛或說我, 或說於無我. 諸法實相中, 無我無非我.)”이다.
  47. 47)≺상품相品≻ 제1송과 제2송. 제2송에 대한 바수반두(世親)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모든 법’이란 유위법과 무위법을 말한다. 허망 분별을 유위有爲라 하고 파악되는 것과 파악하는 것 둘의 공성을 무위無爲라 한다. 앞의 이치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공성과 허망 분별은 있기 때문에 ‘공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파악되는 것과 파악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있기 때문에’란 ‘공성과 허망 분별은 있기 때문에’이다. ‘없기 때문에’란 ‘파악되는 것과 파악하는 것 둘이 없기 때문에’이다. ‘그리고 있기 때문에’란 ‘허망 분별에 공성이 있기 때문에’이고 ‘공성에 허망 분별이 있기 때문에’이다. ‘이것이 중도中道에 들어맞는 것이네.’란 ‘모든 법이 한결같이 공한 것도 아니고 또한 한결같이 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이다. 이와 같은 이치는 중도에 잘 들어맞으며 또한 ‘모든 법은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는 반야경 등 경전의 설에도 잘 부합한다.(一切法者, 謂諸有爲及無爲法. 虛妄分別名有爲, 二取空性名無爲. 依前理故, 說此一切法非空非不空. 由有空性虛妄分別, 故說非空. 由無所取能取性故, 說非不空. 有故者, 謂有空性虛妄分別故. 無故者, 謂無所取能取二性故. 及有故者, 謂虛妄分別中有空性故, 及空性中有虛妄分別故. 是則契中道者, 謂一切法非一向空, 亦非一向不空. 如是理趣妙契中道, 亦善符順般若等經說, 一切法非空非有.)” 제1송에 대한 바수반두의 주석은 아래에서 제1송의 3구와 4구가 다시 인용되기에 그때 보여 주겠다. 그밖에 『辯中邊論』의 내용은 마이뜨레야 송, 바수반두 논, 박인성 역, 『중과 변을 구별하기』(주민출판사, 2005) 참조.
  48. 48)질애質礙 : 불가침입성(質)과 저항성(礙).
  49. 49)‘경계선’이라고 할 때의 ‘경계’의 의미이다.
  50. 50)생공生空 : 인공人空 또는 아공我空이라고도 한다.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아我가 있다는 집착이 없음을 말한다.
  51. 51)호법은 공성을 원성실의 공성과 의타기의 공성으로 구분한다.
  52. 52)정리正理 : 바른 논리.
  53. 53)성교聖敎 : 고귀한 교설, 고귀한 가르침.
  54. 54)육합석六合釋 : 산스크리트의 복합어를 말한다. 복합어(compound)란 격 표시 없이 단어와 단어가 결합한 말이다. 결합한 단어와 단어의 관계로 보아 여섯 종류가 있는데 ① 병렬복합어(相違釋, dvandva), ② 격한정복합어(依主釋, tatpuruṣa), ③ 동격한정복합어(持業釋, karmadhāraya), ④ 수한정복합어(帶數釋, dvigu), ⑤ 소유복합어(有財釋, bahuvrīhi), ⑥ 불변화복합어(隣近釋, avyavyībhāva)이다.
  55. 55)지업석持業釋 : 동격한정복합어. 이 경우 ‘고액苦厄’은 ‘고苦 즉 액厄’으로 동격 관계를 표시하는 ‘즉’을 넣어 해석할 수 있으므로 지업석이다.
  56. 56)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 이른바 삼고三苦이다. ‘고고’는 누리고 싶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몸과 마음을 다그치는 데서 오는 괴로움, ‘괴고’는 누리고 싶은 좋아하는 것들이 사라져 없어지는 데서 오는 괴로움, ‘행고’는 영원토록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변하고 소멸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57. 57)사인四人 : 범부, 연각, 성문, 보살.
  58. 58)사악취四惡趣 :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59. 59)사공四空: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등 무색계의 사공처四空處.
  60. 60)사선四禪 : 사정려四靜慮. 초정려(초선), 제2정려(2선), 제3정려(3선), 제4정려(4선)이다.
  61. 61)범왕梵王 : 범천왕. 색계 초선의 대범천을 말한다.
  62. 62)육욕천六欲天 : 사대왕천, 33천, 염마천, 도솔천, 화자재천, 타화자재천.
  63. 63)무상천無想天 : 색계 사선의 천天 중의 하나. 무상정無想定을 닦았을 때 초감되는 이숙異熟의 과보.
  64. 64)아나함阿那含 : ⓢ anāgāmin. 불환不還. 성문의 사과四果 중 제3과果의 성자.
  65. 65)멍에(軛) : 액軛은 ⓢ yoga를 번역한 말로 수레를 끄는 소의 목에 메는 멍에를 말한다. 말한 대로 사액四軛은 욕액欲軛, 유액有軛, 견액見軛, 무명액無明軛이다. 사폭류四暴流와 같다. 폭류暴流는 ⓢ ogha를 번역한 것으로 모든 선善을 쓸어가는 물이란 뜻이다. 욕폭류欲暴流는 욕계의 오경五境에 대한 탐욕이다. 유폭류有暴流는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三界의 유有이다. 견폭류見暴流는 그릇된 견해이다. 무명폭류無明暴流는 사제 등에 대한 무지無知이다.
  66. 66)의주석依住釋 : 격한정복합어. 이 경우 ‘고액苦厄’은 ‘고苦의 액厄’으로 소유격 관계를 표시하는 ‘의’를 넣어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의주석이다.
  67. 67)상위석相違釋 : 병렬복합어. 이 경우 ‘고액苦厄’은 ‘고苦와 액厄’으로 병렬 관계를 표시하는 ‘와’를 넣어 해석할 수 있으므로 상위석이다.
  68. 68)사리부다라奢利富多羅 : ⓢ śāriputra. 구욕새(śāri)의 아들(putra).
  69. 69)우바제사優婆提舍 : ⓢ upatiṣya. 띠샤(tiṣya)의 아들(upa).
  70. 70)아我와 아소我所 : 나와 나의 것.
  71. 71)18공 : 내공內空, 외공外空, 내외공內外空, 공공空空, 대공大空, 제일의공第一義空, 유위공有爲空, 무위공無爲空, 필경공畢竟空, 무시공無始空, 산공散空, 성공性空, 자상공自相空, 제법공諸法空, 불가득공不可得空, 무법공無法空, 유법공有法空,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72. 72)변계소집의 색, 의타기의 색, 원성실의 색.
  73. 73)“실제로는 이 공 또한 공이 아니다(據實此空亦非是空)”로 되어 있는데 문맥으로 보아 “실제로는 이 공 또한 공이다(據實此空亦卽是空)”와 같이 번역하였다.
  74. 74)『中論』 제13≺행行을 관찰하는 장≻ 제7송. “만약 공하지 않은 법이 있다면 공한 법이 있으리라. 공하지 않은 법이 없는데 어떻게 공한 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로 번역될 수도 있다.
  75. 75)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76. 76)앞의 2자성自性 : 변계소집자성과 의타기자성.
  77. 77)두 학파 : 삼자성을 모두 내버리는 학파와 삼자성 중 원성실은 남기고 앞의 두 자성을 내버리는 학파. 모두 청변의 학설을 따르는 학파이다.
  78. 78)같음, 다름, 같으면서 다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 이렇게 4구를 부정하고 있다.
  79. 79)네 구의 분별 : ① 색은 공과 다르지 않다. ②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③ 색이 곧 공이다. ④ 공이 곧 색이다.
  80. 80)자상과 공상, 현량과 비량 등에 대해서는 다르마끼르띠 / 다르못따라 지음, 박인성 옮김, 『니야야빈두 / 니야야빈두띠까-산스끄리뜨본-』(경서원, 2000) 참조.
  81. 81)청색이란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82. 82)상부극성相符極成의 과실 : 주장문(宗)의 오류 중 하나. 주장문의 오류(似宗)란 현량에 배치되는 것(現量相違), 비량에 배치되는 것(比量相違), 자기 학파의 학설에 배치되는 것(自敎相違), 상식에 배치되는 것(世間相違), 자기 진술에 배치되는 것(自語相違), 규정하는 것이 자타 모두에게 성립하지 않는 것(能別不極成), 규정되는 것이 자타 모두에게 성립하지 않는 것(所別不極成), 이 둘이 자타 모두에게 성립하지 않는 것(俱不極成), 규정하는 것과 규정되는 것의 결합이 자타 모두에게 성립하는 것(相符極成)이다. 이 중 규정하는 것과 규정되는 것의 결합이 자타 모두에게 성립하는 것인 상부극성은, 말 그대로 자기와 남 모두에게 성립하는 것이기에 논증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논증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류가 된다. 예를 들어 “말소리는 귀에 들리는 것이다.”라는 명제는 논증을 말하는 자든 논증을 듣는 자든 모두에게 이미 성립하고 있으므로 논증이 성립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박인성 지음, 『인명입정리론의 분석-산스끄리뜨본과 한역본-』(경서원, 2000), p.38, p.119 참조.
  83. 83)동성同性의 상즉相卽 : 동일한 자성들이 서로 합치하는 것. 이 경우 변계소집의 색과 변계소집의 공이 서로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84. 84)두 구句 :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85. 85)이성異性의 상즉相卽 : 상이한 자성들이 서로 합치하는 것. 이 경우 변계소집의 색과 의타기의 공이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86. 86)2자성 : 무성공無性空과 자성공自性空.
  87. 87)≺상품相品≻ 제1송의 3구와 4구. 송 전체와 이에 대한 바수반두(世親)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송: 허망 분별이 있네. 이것에 둘이 전연 없네. 이것에 오직 공성이 있을 뿐이네. 저것에도 이것이 있네. 논: ‘허망 분별이 있네.’란 ‘파악되는 것과 파악하는 것의 분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둘이 전연 없네.’란 ‘이 허망 분별에 파악되는 것과 파악하는 것 둘이 영원히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오직 공성이 있을 뿐이네.’란 ‘허망 분별에 파악되는 것과 파악하는 것을 여읜 공성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저것에도 이것이 있네.’란 ‘그 둘의 공성에 또한 오직 이 허망 분별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에 그것이 있지 않다면 이것이 그것으로서 공하다고 관찰한다. 남아 있는 것이 없지 않기 때문에 여실하게 있다고 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전도됨이 없이 공성의 상을 보여 줄 수 있다.(頌曰: 虛妄分別有. 於此二都無. 此中唯有空. 於彼亦有此. 論曰: 虛妄分別有者, 謂有所取能取分別. 於此二都無者, 謂卽於此虛妄分別, 永無所取能取二性. 此中唯有空者, 謂虛妄分別中, 但有離所取及能取空性. 於彼亦有此者, 謂卽於彼二空性中, 亦但有此虛妄分別. 若於此非有, 由彼觀爲空. 所餘非無故, 如實知爲有. 若如是者, 則能無倒顯示空相.)”
  88. 88)‘서로 합치한다(相卽)고 말한다면’이라는 말이다.
  89. 89)‘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라는 주장.
  90. 90)“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라고 앞의 2구에서 색과 공이 서로 즉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므로 뒤의 2구인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를 서로 즉하는 것, 서로 합치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91. 91)현현한 것이기 때문에 :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92. 92)선교善巧 : ⓢ kauśalya. ‘선교방편善巧方便(upāya-kauśalya)’의 약칭.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upāya)에 능숙함(kauśalya)을 의미한다.
  93. 93)수, 상, 행, 식도 이와 같다.
  94. 94)다섯 문 : 처, 계, 연생, 사제, 보리와 열반.
  95. 95)혹惑 : 깨달음을 장애하는 미망迷惑의 마음.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마음을 미혹하게 하므로 ‘혹’이라 한다.
  96. 96)유위有爲 : ⓢ saṃskṛta의 번역. ‘함께(sam)’, ‘만든 것(saṃṣkṛta)’이란 뜻이다. 그래서 ‘공소작共小作’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인因과 연緣들이 모여 함께 만든 것을 의미한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다. 이렇게 인과 연들이 모여 함께 만든 것은 인과 연들이 모일 때 발생했다가 인과 연들이 흩어질 때 소멸하는 것이기에 찰나생멸법刹那生滅法이다.
  97. 97)세 가지의 공空 : 무성공無性空, 이성공異性空, 자성공自性空.
  98. 98)앞의 세 문의 법 : 오온蘊, 12처十二處, 18계十八界.
  99. 99)뒤의 세 문의 법 : 연생緣生, 사제四諦, 지智와 얻음(得) 곧 육바라밀다의 법.
  100. 100)육바라밀다의 법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101. 101)6종의 2법 : 육근六根과 육경六境.
  102. 102)6식 :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103. 103)대수석帶數釋 : 수한정복합어. 주석54) 참조.
  104. 104)유동儒童 : ⓢ māṇavaka. 젊은이, 어린이.
  105. 105)사대四大 : 사대종四大種.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줄여서 ‘대大’라 한다.
  106. 106)유집수有執受 : ⓢ upātta. 느낌을 갖는 것.
  107. 107)세간에서 자타에게 모두 성립하는(世所共成) : ⓢ lokaprasiddha. 이를 『阿毘達磨雜集論』에서는 세속어소섭世俗語所攝(laukikabhāṣāsaṃgṛhītaḥ)으로 풀고 있다. ‘세속의 말에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108. 108)성취한 자가 가져온(成所引) : ⓢ siddhopanīta. 이를 『阿毘達磨雜集論』에서는 제성소설諸聖所說(āryair deśitaḥ)로 풀고 있다. ‘성자들이 설한 것’을 의미한다.
  109. 109)변계소집遍計所執 : ⓢ parikalpita. 이를 『阿毘達磨雜集論』에서 ‘tīrthyair deśitaḥ(外道所說)’로 풀고 있다. ‘외도가 설한 것’을 의미한다.
  110. 110)51심소법 : 변행遍行 심소 5, 별경別境 심소 5, 선善 심소 11, 번뇌煩惱 심소 6, 수번뇌隨煩惱 심소 20, 부정不定 심소 4이다. 변행 심소는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이다. 별경 심소는 욕欲, 승해勝解, 염念, 정定, 혜慧이다. 선 심소는 신信,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 근勤,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사捨, 불해不害이다. 번뇌 심소는 탐貪, 진瞋, 치癡, 만慢, 의疑, 악견惡見이다. 이 중 악견惡見은 살가야견薩迦耶見, 변집견邊執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사견邪見으로 세분될 수 있다. 수번뇌 심소는 분忿, 한恨, 부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 무참無慚, 무괴無愧, 도거掉擧, 혼침惛沈,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이다. 부정 심소는 회悔, 면睡眠, 심尋, 사伺이다.
  111. 111)24불상응행법 : 득得, 명근命根, 중동분衆同分, 이생성異生性,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무상이숙無想異熟, 명신名身, 구신句身, 문신文身, 생生, 노老, 주住, 무상無常, 유전流轉, 정이定異, 상응相應, 세속勢速, 차제次第, 시時, 방方, 수數, 화합和合, 불화합不和合.
  112. 112)6무위법 : 허공虛空, 택멸擇滅, 비택멸非擇滅, 부동不動, 상수멸想受滅, 진여眞如.
  113. 113)4종의 법처의 색법 : 여기서는 4종이라 말하고 있지만 『阿毘達磨集論』에 의거하면 법처의 색법은 5종이다. 극략색極略色, 극형색極逈色, 수소인색受所引色,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이다.
  114. 114)2무위법 : 정확하게 말한다면 2무위법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앞의 6무위법 중 진여가 다시 선법진여善法眞如, 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 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로 세분된 것이다.
  115. 115)다섯 가지의 의미 : 의依, 발發, 속屬, 조助, 여如의 5의義를 말한다. ‘의’란 식은 근에 의지한다는 것, ‘발’이란 근은 식을 발생하게 한다는 것, ‘속’이란 식은 근에 속한다는 것, ‘조’란 식은 근을 돕는다는 것, ‘여’란 식은 근과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16. 116)오취五趣 :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인人, 천天.
  117. 117)사생四生 :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118. 118)삼제三際 : 삼세三世.
  119. 119)삼업三業 : 복업福業, 비복업非福業, 부동업不動業. 복업(puṇya-karma)이란 원하는(可愛) 과보, 곧 욕계의 선취의 과보를 불러와 유정을 행복하게 하는 욕계의 선업을 말한다. 비복업(apuṇya-karma)이란 원하지 않는(非可愛) 과보, 곧 욕계의 악취의 과보를 불러와 유정을 불행하게 하는 욕계의 불선업을 말한다. 부동업(aniñjya-karma)이란 색계와 무색계의 선업을 말한다. 초선初禪의 업은 초선의 과보를 불러오고 이선二善의 업은 이선의 과보를 불러오기에 부동不動의 업業이라 하는 것이다.
  120. 120)자체自 등의 탐貪 : 승의勝義, 자성自性, 상응相應, 등기等起의 4종 불선不善 중 자성, 상응, 등기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의불선勝義不善은 유루有漏의 선善을 포함한 모든 유루의 법을 말한다. 유루의 법은 선이든 불선이든 고苦를 본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성불선自性不善은 자체불선自體不善이라고도 하는데 무참無慚, 무괴無愧 그리고 3불선근不善根인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한다. 상응불선相應不善은 자성불선과 동시에 일어나는 모든 심心과 심소心所들을 말한다. 등기불선等起不善은 자성불선과 상응불선에서 일어나는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그리고 불상응행不相應行의 법을 말한다.
  121. 121)사취四取 : 욕취欲取(kāma-upādāna), 견취見取 (dṛṣṭi-upādāna), 계금취戒禁取(śīlavrata-upādāna), 아어취我語取(ātmavāda-upādāna).
  122. 122)행行과 식識 등 : 식, 명색, 육처, 촉, 수.
  123. 123)생生 등 : 생, 노사.
  124. 124)식識 등의 다섯 법 : 식, 명색, 육처, 촉, 수.
  125. 125)뒤의 세 인因 : 육처, 촉, 수.
  126. 126)다섯 종자種子 : 식, 명색, 육처, 촉, 수의 종자.
  127. 127)세 종자 : 육처, 촉, 수의 종자.
  128. 128)육처六處 : 육처, 촉, 수.
  129. 129)윤옥潤沃하는 : 적신다는 뜻이다.
  130. 130)그 밖의 사견四見 : 유신견有身見을 제외한 사견, 곧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131. 131)『瑜伽師地論』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욕취란 무엇인가? 욕들에서 일어나는 욕탐이다. 견취란 무엇인가? 유신견을 제외한 견에서 일어나는 욕탐이다. 계금취란 무엇인가? 그릇된 원願에서 생긴 계금戒禁에서 일어나는 욕탐이다. 아어취란 무엇인가? 유신견에서 일어나는 욕탐이다. 맨 앞의 것은 오직 욕계의 고苦의 과果를 생기게 하고 뒤의 다른 셋은 삼계의 고의 과를 생기게 한다.(欲取云何? 謂於諸欲所有欲貪. 見取云何? 謂除薩迦耶見, 於所餘見所有欲貪. 戒禁取云何? 謂於邪願所起戒禁所有欲貪. 我語取云何? 謂於薩迦耶見所有欲貪. 初唯能生欲界苦果, 餘三通生三界苦果.)”
  132. 132)여섯 종류의 종자 :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의 종자.
  133. 133)처음 중유中有에서 본유本有에 이르기까지 : 이른바 사유四有이다. 사유는 사유死有, 중유中有, 생유生有, 본유本有이다.
  134. 134)여섯 분지 : 식, 명색, 육처, 촉, 수, 유.
  135. 135)계界 : 삼계 곧 욕계, 색계, 무색계.
  136. 136)취趣 : 오취 곧 지옥, 아귀, 축생, 인, 천.
  137. 137)생生 : 사생 곧 태생, 난생, 습생, 화생.
  138. 138)무색계의 화생에게는 명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139. 139)식, 명색, 육처, 촉, 수의 종자를 윤옥潤沃한다는 점에서 애愛는 취取와 같다.
  140. 140)열 가지 원인 : 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애, 취, 유.
  141. 141)두 가지 결과 : 생, 노사.
  142. 142)앞의 열이 현재세라면 뒤의 둘은 미래세이고, 앞의 열이 과거세라면 뒤의 둘은 현재세이다.
  143. 143)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144. 144)생, 노사.
  145. 145)애, 취, 유.
  146. 146)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147. 147)일중一重의 원인과 결과 : 무명에서 유까지는 인因, 생과 노사는 과果이다.
  148. 148)양중兩重의 원인과 결과 : 무명과 행은 과거세의 2인因, 식에서 수까지는 현재세의 5과果, 애와 취와 유는 현재세의 3인因, 생과 노사는 미래세의 2과果이다.
  149. 149)과果를 얻는~바로 밝히고 :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마음에 장애가 없게 한다.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가 없고 전도와 몽상을 멀리 여의고 열반을 완성한다.
  150. 150)관觀에 공능이 있음을 밝히고 :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마음에 장애가 없게 한다.
  151. 151)얻는 바의 과果를 밝힌다 :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가 없고 전도와 몽상을 멀리 여의고 열반을 완성한다.
  152. 152)여섯 문의 법, 곧 오온, 12처, 18계, 12연기, 사제, 보리와 열반.
  153. 153)공성.
  154. 154)보리살타菩提薩埵 : ⓢ bodhisattva의 음역. 줄여서 ‘보살’이라 한다.
  155. 155)발의보살發意菩薩 : ‘발의’는 발심發心 곧 발보리심發菩提心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발의보살’은 최상의 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낸 보살을 말한다.
  156. 156)보리 : ⓢ bodhi의 음역. 의역은 ‘각覺’이다.
  157. 157)살타 : ⓢ sattva’의 음역. 의역은 ‘유정有情’이다.
  158. 158)별경別境 : 특정한 대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별경 심소’는 특정한 대상으로 향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이 별경 심소에는 욕欲, 승해勝解, 염念, 정定, 혜慧가 있다. 반면 변행遍行 심소는 모든 대상으로 향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이 변행 심소에는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가 있다. 변행과 별경에 대해서는 스티라마티(安慧) 지음, 박인성 옮김, 『유식삼십송석-산스끄리뜨본․티베트본-』(민족사, 2000) 참조.
  159. 159)열반을 완성한다 : 구경열반究竟涅槃을 번역한 것이다. ⓢ niṣṭhanirvāṇaḥ는 ‘열반에 들어간다’, ‘열반에 머문다’이다.
  160. 160)청정한 의향의 대지(淸淨意樂地) : 보살의 대지 중 제5의 대지.
  161. 161)“이를 뒤집어서 무상, 무아, 청정하지 않음, 괴로움이라고 집착하는 것이 다른 네 가지의 전도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162. 162)삼장三藏 : 현장玄奘(602~664)을 가리킨다.
  163. 163)자성분별, 차별분별, 총집분별.
  164. 164)의지처.
  165. 165)대상.
  166. 166)아분별, 아소분별.
  167. 167)애분별, 비애분별, 피구상위분별.
  168. 168)사심사관四尋思觀 : 사심사四尋思(paryeṣaṇā)와 사여실지四如實智(yathābhūta-parijñāna)를 말한다. 사심사는 명심사名尋思(nāma-paryeṣaṇā), 사심사事尋思(vastu-paryeṣaṇā), 자성가립심사自性假立尋思(svabhāva-paryeṣaṇā), 차별가립심사差別假立尋思(viśeṣa-prajñapti-paryeṣaṇā)이다. 사여실지는 명심사소인여실지名尋思所引如實智(nāma-eṣaṇā -gata –yathābhūta-parijñāna), 사심사소인여실지事尋思所引如實智(vastu-eṣaṇa-gata –yathābhūta-jñāna), 자성가립심사소인여실지自性假立尋思所引如實智(svabhāva –prajñapti-eṣaṇā-gata-yathābhūta-jñāna), 차별가립심사소인여실지差別假立尋思所引如實智(viśeṣa-prajñapti-eṣaṇā-gata-yathābhūta-jñāna)이다.
  169. 169)열반涅槃 : ⓢ nirvāṇa의 음역. 의역은 ‘적멸’이다.
  170. 170)파리닐바나波利匿縛喃 : ⓢ parinirvāṇa의 음역. ‘반열반’이라고도 한다. 의역은 ‘원적’이다. ‘완전한 열반’을 의미한다.
  171. 171)시끄러움과 요동침(喧動) :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172. 172)이 문장 바로 뒤에 “모든 법상의 진여의 리를 말한다.(謂一切法相眞如理)”가 생략되어 있다.
  173. 173)무학無學 : ⓢ aśaikṣa의 번역. 더 배울 것이 없는 이란 뜻이다. 아라한과를 말한다.
  174. 174)박縛 : ⓢ bandhana의 번역. ‘속박’이란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175. 175)소지장所知障.
  176. 176)‘열반들이 모두 택멸에 속한다면’이라는 의미.
  177. 177)『成唯識論』 제10권.
  178. 178)원측은 종자의 삼세, 도리의 삼세, 유식의 삼세라고 했지만 도리의 삼세, 신통의 삼세, 유식의 삼세가 아닌가 싶다. 도리의 삼세를 종자의 삼세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179. 179)‘수몽교睡夢覺’는 꿈에서 깨어난다는 뜻으로 스스로 깨달음을 여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연화개蓮華開’는 연꽃이 열린다는 뜻으로 모든 유정들에게 깨달음을 열어 주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180. 180)아눗따라삼약상보디 : ⓢ anuttara-samyak-saṃbodhi. ‘anuttara’는 ‘무상無上’, ‘samyak’은 ‘정正’, ‘saṃbodhi’는 ‘등각等覺’으로 한역된다.
  181. 181)영략호현影略互顯 : 영략影略이라 줄여 말하기도 한다. 관계를 맺고 있는 두 항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한 항에서 생략한 내용을 다른 항에서 보여 주고 다른 항에서 생략한 내용을 한 항에서 보여 주어 서로 보완이 되도록 하는 것. 이 경우 열반을 말할 때는 과덕果德만을 보여 주어 지덕智德이 생략되어 있고 보리를 말할 때는 지덕智德만을 보여 주어 과덕果德이 생략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보리에 의해 열반에도 지덕智德이 있음을 보여 주고 열반에 의해 보리에도 과덕果德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82. 182)심품心品 : ‘심의 품류’란 뜻으로 보통 심心, 심소心所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심소心所와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을 가리킨다. 뒤에서 심소는 ‘상응相應’, 심불상응행은 ‘공유共有’로 표현하고 있다.
  183. 183)변화變化 : ⓢ nirmāṇa. 부처가 지전보살이나 범부를 교화하기 위해 신통력으로써 갖가지 모습을 나투는 일. 화작化作, 화현化現이라고도 한다.
  184. 184)나투어 : ⓢ prātihārya. 시현示現. 부처와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갖가지 몸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일. 부처의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 관음보살의 33신三十三身 등과 같은 것이다. 『中阿含經』에서 이 시현으로 여의족시현如意足示現(ṛddhi-prātihārya), 점념시현占念示現(ādeśanā-prātihārya), 교훈시현敎訓示現(anuśāsana)을 들고 있다. 각각 육통六通 중 신족통, 타심통, 누진통을 본성으로 한다.
  185. 185)5현식現識 : 안식, 이식, 비식, 설신, 신식의 전5식.
  186. 186)금강심金剛心의 시기 : 금강유정金剛喩定. 금강에 비유되는 정定이란 뜻. 이 정에서 최후의 번뇌를 끊고 성문이라면 아라한과를 얻고 보살이라면 불과를 얻는다.
  187. 187)현관現觀 : ⓢ abhisamaya. 현전하는 대상을 명료하게 관觀하는 일. 또는 견도見道의 위位에서 무루無漏의 혜慧로써 사제四諦를 관觀하는 일.
  188. 188)력力 : ⓢ bala. 붓다의 열 가지의 힘.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편취행지력遍趣行智力,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사생지력死生智力, 누진지력漏盡智力.
  189. 189)무외無畏 : ⓢ vaiśāradya. 붓다의 네 가지 두려움 없음. 제법현등각무외諸法現等覺無畏(sarva-dharma-abhisaṃbodhi-vaiśāradya), 일체루진지무외一切漏盡智無畏(sarva-āsrava-kṣaya-jñāna-vaiśāradya), 장법불허결정수기무외障法不虛決定授記無畏(antarāyika –dharma-ananyathātva-niścita-vyākaraṇa-vaiśāradya), 위증일체구족출도여성무외爲證一切具足出道如性無畏(sarva-saṃpad-adhigamāya nairyāṇika-pratipat-tathātva-vaiśāradya).
  190. 190)붓다의 18불공법十八不共法을 말한다. 붓다의 18불공법은 붓다에게만 있는 18법이란 뜻으로 10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삼념주三念住, 그리고 붓다의 대비大悲를 말한다.
  191. 191)오법五法 : 진여,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
  192. 192)진여, 대원경지.
  193. 193)평등성지, 묘관찰지.
  194. 194)평등성지, 묘관찰지.
  195. 195)진여.
  196. 196)자성自性과 상응相應과 공유共有 : ‘자성’은 사지四智 자체를, ‘상응’은 사지와 상응하는 심소를, ‘공유’는 사지와 함께 일어나는 불상응행을 가리킨다.
  197. 197)전식轉識 : ⓢ pravṛtti-vijñāna. 제8 알라야식을 제외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6식과 제7 말나식을 말한다. 전식의 ‘전轉’은 전변轉變, 개전改轉, 전기轉起, 전역轉易을 의미한다.
  198. 198)전의轉依 : 의지처인 몸(所依身)의 전환.
  199. 199)화신化身 : 변화신과 같은 말이다.
  200. 200)비원력悲願力 :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자비의 서원.
  201. 201)행원行願 : 수행修行과 서원誓願.
  202. 202)종성種性 : 습소성종성習所成種性과 본성주종성本性住種性. 습소성종성(samudānīta-gotra)은 습득된 종성을, 본성주종성(prakṛtistha-gotra)은 본연의 종성을 말한다.
  203. 203)법이法爾 : 진여.
  204. 204)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사바하 :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205. 205)바가범薄伽梵 : ⓢ bhavagat의 음역. 세존世尊.
  206. 206)나무불타야南無佛陀耶 : ⓢ namo buddhāya.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207. 207)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208. 208)피안도彼岸到 : 저쪽 언덕에 다다르다.
  1. 1){底}續藏經。第一編四十一套四册。{甲}新修大藏經。第三十三卷。
  2. 2)此題目本書無之。恐後人會入。
  3. 1)「經」一無。
  4. 1)「危」疑「厄」。
  5. 2)「苦」疑「百」{編}。
  6. 3)「擬注」疑剩。
  7. 4)「鷲」疑「鵞」。
  8. 1)「法則」論無。
  9. 2)「法實…空法」十一字論作「有空尙不得何況得於空」。
  10. 1)「觀而」或作「而觀」。
  11. 2)「數於此」一作「由此故」。
  12. 1)「緣」疑「經」{編}。
  13. 1)「初」或作「約」。
  14. 2)「定」一無。
  15. 3)「名」一作「明」。
  16. 1)「而發……如經」二十三字疑後人所加。
  17. 2)「如是十二」一無。
  18. 1)「名」或作「誦」。
  19. 2)「云何名爲種」一無。
  20. 3)「惑」疑「或」。
  21. 4)「無」上一有「無覆」。
  22. 1)「處」一無。
  23. 1)「正」疑剩。
  24. 2)「門」一無。
  25. 1)「說」一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