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인왕경소(仁王經疏) / 仁王經疏卷中【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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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경소권중【말】仁王經疏卷中【末】
제4편 이제품(二諦品第四)
“진제와 속제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교화하는 것과 교화되는 것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십이부경의 모든 설법은 다 여여한 것이다.”
제4편 이제품二諦品第四
이 품을 해석하는 데 대략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품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경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제1장 품명 해석
품의 이름을 해석하겠다.
‘진리(諦)’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세제世諦이다. 유위법은 연으로 생긴 것이므로 가짜(假)이지 실재(實)가 아니기 때문에 ‘세제’라고 한다. 둘째는 진제眞諦이다. 실상진여實相眞如는 본성이1) 청정하여 실재이지 가짜가 아니기 때문에 ‘진제’라고 한다.
혹은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라고도 한다. ‘세世’는 은폐시키는 것(隱覆)을 말하고 ‘속俗’은 거칠게 현시하는 것(麤顯)을 말한다. 즉 색이나 심 등은 현상적 법(現法)을 거칠게 현시하지만 수승한 경계(勝義)를 은폐시킨다.2) ‘세’ 그 자체가 ‘속’이기 때문에 세속이라고 한 것이니, 이는 지업석에 해당한다.3) ‘승勝’은 수승한 지혜(勝智)를 말하고, ‘의義’란 경계(境義)이다. 즉 진여의 이치는 수승한 지혜의 경계이기 때문에 ‘승의’라고 한 것이니, 이는 의주석에 해당한다.4)
모두 ‘진리(諦)’라고 이름했는데,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에서 설한 것처럼 진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설해진 그대로의 모습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는다는 뜻에서, 둘째는 이 모습을 관함으로 인해 궁극적인 곳에 도달한다는 뜻에서, ‘진리’라고 이름한 것이다.”5) 이와 같은 것을 총칭해서 ‘이제품’이라고 한 것이니, 이는 대수석에 해당한다.6)
이 품에서 ‘이제’의 의미를 설명하기 때문에 ‘이제품’이라고 한 것이다.
경문 해석
이때 바사닉왕이 말하였다. “제일의제第一義諦 중에는 세제世諦가 있습니까, 〔또는 있지〕않습니까?

두 번째는 경문에 의거해서 해석하는 것이다. 내호內護를 설한 곳에서 경문을 세 가지로 구별했었다. 처음의 「관공품」은 자리행을 설명했고, 다음의 「교화품」은 이타행을 설명했으며, 마지막의 「이제품」은 두 가지 수호의 근거(所依)를 설명한 것이다.

001_0083_c_02L仁王經疏卷中【末】

001_0083_c_03L

001_0083_c_04L西明寺沙門圓測撰

001_0083_c_05L二諦品第四

001_0083_c_06L
將釋此品略有二義一釋品名
001_0083_c_07L正釋文釋品名者諦有二種一者
001_0083_c_08L世諦謂有爲法從緣而生假而非實
001_0083_c_09L故名世諦二者眞諦實相眞如
001_0083_c_10L生淸淨實而非假故名眞諦或言
001_0083_c_11L世俗及勝義諦世謂隱覆俗謂麁
001_0083_c_12L謂色心等麁顯現法隱覆勝義
001_0083_c_13L世卽是俗故名世俗是持業釋
001_0083_c_14L謂勝智義卽境義謂眞如理是勝
001_0083_c_15L智之境義故名勝義是依主釋
001_0083_c_16L名諦者如瑜伽說諦有二義一如
001_0083_c_17L所說相不捨離義二由觀此故
001_0083_c_18L究竟處故名爲諦如是總名二諦品
001_0083_c_19L此帶數釋於此品中辨二諦義
001_0083_c_20L故名二諦品

001_0083_c_21L
爾時有世諦不

001_0083_c_22L
釋曰第二依文正釋就內護中
001_0083_c_23L別有三初觀空品明自利行次敎
001_0083_c_24L化品明利他行後二諦品明二護

001_0084_a_01L이상으로 이미 앞의 두 가지 행에 대해 다 해석하였고, 이것은 세 번째인 두 가지 수호의 근거에 해당한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한 품 안에서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문답으로 이제의 불이不二를 분별한 것이다. 둘째로 “부처님께 말하였다.” 이하는 문답으로 설법의 불이를 분별한 것이다. 셋째로 “부처님께 말하였다.” 이하는 문답으로 법문의 불이를 분별한 것이다.≻
지금 해석하자면, 경문은 다섯 단락으로 구분된다. 처음의 세 개는 앞의 『본기』와 동일하다. 네 번째로 “대왕이여, 일곱 부처님이” 이하는 『인왕경』의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다섯째로 “대왕이여, 이 경을” 이하는 경의 이름을 찬탄하면서 수지하라고 권한 것이다.
1. 이제二諦의 불이不二
처음의 문에서,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1) 왕의 질문
질문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두 경우를 따져 본 것이고, 다음은 둘을 짝지어 힐난한 것이며, 마지막은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⑴ 두 가지 경우를 따짐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왕이 두 가지 경우를 따지면서 ‘제일의제 중에는 세제가 있습니까, 아니면 세제가 없습니까’‘않습니까(不)’라고 한 것은 ‘없습니까(無)’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장차 난점을 지적하려 했기 때문에 두 경우를 따져 본 것이다.

⑵ 두 가지 경우의 난점

없다고 한다면 지智가 둘일 수 없고, 있다고 한다면 지가 하나일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두 경우를 짝지어 힐난한 것이다. 앞은 없다고 하는 경우이고, 나중은 있다고 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 하나의 힐난에 대해 여러 설명들이 다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없다고 한다면, 범부의 지智는 두 가지 즉 진지眞智와 속지俗智가 아닐 것이다. 있다고 한다면, 성인의 지는 하나 즉 제일의제지第一義諦智가 아닐 것이다. 이치에 맞게 논하자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오직 하나라고만 한다면, 범부가 속제를 보는 것도 역시 진제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살영락본업경』 「불모품」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는 이제가 ‘하나인지 둘인지(一二)’를 물은 것이고, 둘째는 이제의 유무有無에 대해 물은 것인데, 그 대답은 사중四重으로 되어 있다. 그 경에서는 ‘이제의 법성은 하나인가 둘인가, 유인가 무인가’라고 묻고, 이하에서는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불자여, 이제라는 것은, ① 세제世諦는 유有이기 때문에 공空이 아니고, 무제無諦는 공이기 때문에 유가 아니며, 이제가 항상 이러하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고, 성인의 비춤에서는 공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다.7) ② 부처님이 계시든 부처님이 안 계시든 법계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공이 아니고, 제일의第一義에는 둘이 없기 때문에 유가 아니며, 부처님이 계시든 부처님이 안 계시든 법계는 두 가지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고, 모든〕 법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다.8)

001_0084_a_01L所依上來已釋前二行訖卽此第
001_0084_a_02L三二護所依若依本記於一品內
001_0084_a_03L分爲三一問答分別二諦不二
001_0084_a_04L白佛言下問答分別說法不二三白
001_0084_a_05L佛言下問答法門不二今解卽分爲
001_0084_a_06L初三同前第四大王七佛下
001_0084_a_07L經功德第五大王此經下讚名勸持
001_0084_a_08L就初門中先問後答問中有三
001_0084_a_09L兩徵次雙難後總結此卽初也
001_0084_a_10L王兩徵謂第一義諦中爲有世諦耶
001_0084_a_11L爲無世諦那不者
無也
將欲說難故作兩徵

001_0084_a_12L
若言無者智不應一

001_0084_a_13L
釋曰第二雙難有無先無後有
001_0084_a_14L此一難諸說不同依本記云若言無
001_0084_a_15L凡夫智不應二1)謂眞及俗若言
001_0084_a_16L有者聖人智卽不應一2)謂第一義
001_0084_a_17L諦智據理論之不一不二3)定唯
001_0084_a_18L凡夫見俗亦見眞故卽應成聖
001_0084_a_19L若依本業經佛母品有其二問一問
001_0084_a_20L一二二問有無答有四重彼云
001_0084_a_21L諦法性爲一爲二爲有爲無下佛
001_0084_a_22L答云佛子二諦者世諦有故不空
001_0084_a_23L諦空故不有4)二常爾故不一聖照
001_0084_a_24L空故不二有佛無佛法界不變法常

001_0084_b_01L③ 제불이 다시 범부가 되기 때문에 공이 아니고, 무無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유가 아니며, 공은 진실하므로 하나가 아니고, 본제本際에는 생함이 없기 때문에 둘이 아니다.9) ④ 가명假名과 제법의 모습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공이 아니고, 제법이 곧 제법이 아니기 때문에 유가 아니며, 법은 법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 아니고, 〔법은〕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도 아니다.10)11) 구체적으로 설하면 그 경과 같다.

⑶ 총괄적 결론

‘하나’와 ‘둘’의 의미를 설한 근거(事)가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2) 여래의 대답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과거의 일곱 부처님(過去七佛)에게 이미 ‘하나’의 의미와 ‘둘’의 의미를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세존께서 대답하신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세존께서 간략히 답하신 것이다. 나중의 “일곱 부처님의” 이하는 이전의 힐난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신 것이다.

⑴ 간략한 대답
간략한 대답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하게 된 원인이 있음을 찬탄한 것이다. 다음은 의미의 단서를 간략히 보여 준 것이다. 마지막은 삼혜三慧를 발하라고 권한 것이다.

① 질문의 원인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왕이 일찍이 과거의 일곱 부처님께 질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하나와 둘의 의미’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일곱 부처님”이란, 첫째로 비바시불毘婆尸佛 앞에 다시 한 부처님을 설하고, 차례대로12) 두 번째는 비바시불이며, 세 번째는 식불式佛이고, 네 번째는 시기불尸棄佛이며, 다섯 번째는 비사불毘舍佛이고, 여섯 번째는 구나함불拘那含佛이며, 일곱 번째는 가섭불迦葉佛이다. 조사해 보라.13)
또는 비바시불이 첫 번째이고, 석가문釋迦文이 일곱 번째라고 볼 수도 있다. 다수의 불을 논하다 보니 ‘과거의 일곱 부처님’이라 하였지만, 실제로는 석가 부처님 한 분이 나타나 계신 것이다.

② 의미의 단서

그대는 지금 들은 것이 없고 나도 지금 설하는 것이 없습니다. 들음도 없고 설함도 없는 것이 곧 ‘하나’의 의미이자 ‘둘’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의미의 단서를 간략하게 보여 주면서, “그대는 지금 들은 것이 없고 나도 지금 설하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들음도 있고 설함도 있다는 것은 ‘하나 아님(不一)’에 해당하고, 들음도 없고 설함도 없다는 것은 ‘둘 아님(不二)’에 해당한다.14)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 아님’이란 이제에 해당하니, 첫째는 진제이고 둘째는 속제이다. ‘둘 아님’이란 제일의제에 해당하니,

001_0084_b_01L淸淨故不二諸佛還爲凡夫故不空
001_0084_b_02L無無故不有空實故不一本際不生
001_0084_b_03L故不二不壞假名諸法相故不空
001_0084_b_04L法卽非諸法故不有法非法故不二
001_0084_b_05L非非法故不一具說如彼

001_0084_b_06L
一二之義其事云何

001_0084_b_07L
釋曰第三總結可知

001_0084_b_08L
佛告大王一義二義

001_0084_b_09L
釋曰第二世尊正答文別有二
001_0084_b_10L世尊略答後七佛下廣釋前難
001_0084_b_11L中有三初讚問有因次略示義端
001_0084_b_12L勸發三慧此卽初也謂王曾問過去
001_0084_b_13L七佛故今能問一二之義言過去七
001_0084_b_14L佛者一毘婆尸佛前更說一佛如此
001_0084_b_15L第二毘婆尸第三式佛第四尸棄
001_0084_b_16L五毘舍第六拘那含第七迦葉
001_0084_b_17L又解毘婆尸第一釋迦文第七
001_0084_b_18L多爲論故云過去七佛據實釋迦一
001_0084_b_19L卽是現在

001_0084_b_20L
汝今無一義二義

001_0084_b_21L
釋曰第二略示義端謂汝今無聽
001_0084_b_22L今無說謂本記云有聽有說卽是
001_0084_b_23L不一無聽無說5)6)云不一卽是
001_0084_b_24L二謗一眞二俗不二卽是第一義諦

001_0084_c_01L진제도 아니고 속제도 아니기 때문에 제일의제라고 이름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 아님’이란 이제가 차별된다는 뜻이다. ‘둘 아님’이란 이제가 차별이 없다는 뜻이지, 이제 이외에 다시 제3제第三諦를 건립한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두 가지 설이 있지만 나중의 설이 바르다. 이렇지 않다면 ‘삼제품三諦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힐난하기도 한다. ≺설함도 있고 들음도 있다는 것이 둘(二)의 뜻이라고 하면, 이는 앞의 설과는 어긋난다. 이제가 ‘둘’을 뜻한다고 보는 경우는 들음과 설함이 모두 속제임을 뜻하기 때문이다.15)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진제와 속제가 하나라거나 다르다고 결정해서 집착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지금 분별한 것이다. 즉 ‘범부의 정을 따라서 파악하면 이제가 결정코 다르지만 성인의 지혜를 따라서 판단하면 차별이 있지 않다’는 것이지, 들음과 설함을 별도로 이제에 배당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③ 권유

왕께서는 이제16)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사유하여 법에 맞게 수행하십시오.

세 번째는 세 가지 지혜를 낼 것을 권유한 것이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17)

⑵ 자세한 해석

일곱 부처님의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이전의 힐난에 대해 자세하게 해석해 준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과거의 일곱 부처님의 게송을 인용하여 ‘하나(一)와 다름(異)’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나중은 장행에서 지금의 부처님의 설을 진술함으로써 이전의 힐난을 회통시킨 것이다.

① 과거7불佛의 게송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장행으로 발기한 것이고, 나중은 게송의 문장을 바로 인용한 것이다.

가) 장행의 발기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나) 게송의 인용

無相第一義     모습 없는 제일의제에는
無自無他作     자기가 지은 것도 없고 타자가 지은 것도 없으니
因緣本自有     인연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이요
無自無他作     자기가 지은 것도 없고 타자가 지은 것도 없네.

이것은 게송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여덟 개 반의 게송이 있으니,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에 나오는 세 개의 게송은 이제二諦에 대해 바로 진술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세 개의 게송은 ‘하나(一)’와 ‘다름(異)’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왕의 힐난에 대해 바로 해석해 준 것이다. 마지막 두 개 반의 게송은 세제의 헛됨을 밝히면서 앞의 의미들에 대해 결론지은 것이다.

001_0084_c_01L非眞非俗故名第一義諦一云不一
001_0084_c_02L卽是二諦差別義不二卽是二諦無
001_0084_c_03L差別義非謂二諦之外更立第三諦
001_0084_c_04L雖有兩說後說爲正不爾應言三諦
001_0084_c_05L品也有作是難有說有聽卽爲二
001_0084_c_06L便違上說二諦爲二聽說皆是
001_0084_c_07L俗諦義故今解不爾欲遮定執眞俗
001_0084_c_08L一異故今分別隨凡情取二諦定異
001_0084_c_09L隨聖智辨非有差別非謂聽說別配
001_0084_c_10L二諦

001_0084_c_11L
王今諦聽如法修行

001_0084_c_12L
釋曰第三勸發三慧准上應知

001_0084_c_13L
七佛偈如是

001_0084_c_14L
釋曰自下第二廣釋前難文別有二
001_0084_c_15L初引七佛偈以釋一異後長行中
001_0084_c_16L今佛說以通前難前中有二初長
001_0084_c_17L行發起後正引頌文此卽初也

001_0084_c_18L
無相第一義無自無他作

001_0084_c_19L
釋曰正引偈文有八偈半大分爲
001_0084_c_20L初有三偈正申二諦次有三偈
001_0084_c_21L釋一異義正釋王難後二偈半
001_0084_c_22L「謂眞及俗」疑作夾註「謂第一義諦智」疑
001_0084_c_23L作夾註
「定」疑「言」「二」下疑有「諦」
001_0084_c_24L「卽」下有「是不二一」{乙}「云不一」疑「是
001_0084_c_25L不二」

001_0085_a_01L
㈎ 이제二諦의 의미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우선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나오는 하나의 게송은 이제의 체가 둘 다 본래 있음(本有)을 밝힌 것이다. 다음의 한 게송 문구는 삼가三假의 의미를 통해 이제의 유무有無를 설명한 것이다. 마지막 하나의 게송 문구는 유무의 상相을 버리는 것으로써 이제를 설명한 것이다.≻

㉮ 체의 본유本有
첫 게송을 해석한 곳에서, 앞의 반 송은 진제의 본래 있음(本有)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무상의 진여(無相眞如)는 본래 스스로 있다는 것이다. ① “자기가 〔지은 것도〕 없고(無自)”라는 것은 인공人空을 나타낸 것이고, “타자가 〔지은 것도〕 없으니(無他)”라는 것은 법공法空을 나타낸 것이다. ② 또는 ‘자기가 없다’는 것은 ‘아가 없음(無我)’이고, ‘타자가 없다’는 것은 ‘아소가 없음(無我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③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가 〔지은 것도〕 없다’는 것은 자기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님을 말하고, ‘타자가 〔지은 것도〕 없다’는 것은 다른 것에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말한다. 완전하게 진술하면 ‘자타 공동으로 〔지은 것도〕 아니고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不共不無因)’라는 말까지 해야 하지만 간략하게 하기 위해 처음의 두 구만 설한 것이다.≻ 비록 세 가지 해석이 있지만 경문의 뜻은 처음의 설에 있다.
다음의 반 송은 속제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인연법은 부처님이 계시든 부처님이 안 계시든 본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지은 것도〕 없다’는 것은 유위법 상에서의 인공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고, ‘타자가 〔지은 것도〕 없다’는 것은 유위법 상에서의 법공의 이치를 나타낸다. 다시 두 가지 해석이 있으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 이제의 유무有無

法性本無相     법성은 본래 모습이18) 없으니
第一義空如     제일의의 공이고 진여이며
諸有本有法     모든 있음은 본유법이니19)
三假集假有     세 가지 가가 모인 가유라네.

두 번째로 한 행行의 게송이 있으니, 삼가三假의 의미를 통해 이제의 유무有無를 건립한 것이다. 세 가지 가에 의해서 이름(名)·형상(相)이 없는 데서 이름·형상의 언설을 일으키는 것이다.20)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 두 개의 구는 ‘참된 무(眞無)’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한 구는 유有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한 구는 이제에 대해 모두 ‘가유假有’라고 짝지어 결론지은 것이다.21)
“법성은 본래 모습이 없으니”라고 했는데, 제법의 진실한 성품은 본래 모습이 없으니 이것은 ‘참된 무’를 뜻한다. “제일의의 공이고 진여이며”라고 한 것은 이명異名으로 거듭 해석한 것이니, 〔참된 무를〕 ‘제일의의 공(第一義空)’이라고도 하고 ‘진여’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있음은 본유법이니”라고 한 것은 속제의 ‘유’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유위의 온蘊 등 제법은 인연 때문에 있다는 것이다.

001_0085_a_01L世諦虛結成上義前中有三且依
001_0085_a_02L本記初有一偈明其二諦體俱本有
001_0085_a_03L次一偈文以三假義辨二諦有無
001_0085_a_04L一偈文遣有無相以辨二諦釋初
001_0085_a_05L偈中上半明眞本有謂無相眞如
001_0085_a_06L來自有無自者顯人空無他者
001_0085_a_07L法空又釋無自者無我無他者無我
001_0085_a_08L一云無自者不從自生無他者
001_0085_a_09L不從他生若具應言不共不無因
001_0085_a_10L存略故說初二句雖有三釋意存
001_0085_a_11L初說下半明俗有謂因緣法有佛
001_0085_a_12L無佛本來有之無自者有爲法上
001_0085_a_13L人空理無他者有爲法上法空理
001_0085_a_14L有二釋准上應知

001_0085_a_15L
法性本無相三假集假有

001_0085_a_16L
釋曰第二有一行偈以三假義
001_0085_a_17L二諦有無由三假故無名相中
001_0085_a_18L名相說於中三初之二句明眞無
001_0085_a_19L次有一句明有義後有一句
001_0085_a_20L結二諦皆是假有言法性本無相者
001_0085_a_21L諸法實性本來無相是眞無義
001_0085_a_22L一義空如者異名重釋亦名第一義
001_0085_a_23L亦名眞如諸有本有法者此明
001_0085_a_24L俗諦有義謂諸有爲蘊等諸法因緣

001_0085_b_01L
“세 가지 가가 모인 가유라네.”라고 한 것은 이제가 모두 가립假立이라고 짝지어 결론지은 것이다. ‘세 가지 가’라고 한 것에 대해,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름(名)·형상(相)이라는 의타기의 두 종류 가에 의해 속제의 유를 가립하고,22) ‘상도 없고 생도 없음(無相無生)’이라는 한 종류 가에 의해 ‘참된 무’의 뜻을 가립한 것이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개의 게송에서 앞의 반 송은 진제를 밝힌 것이고, 다음의 반 송은 속제를 밝힌 것이다. 세 가지 가란 법가法假·수가受假·명가名假이니, 그 의미는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23)

㉰ 유무의 상을 버림

無無諦實無     무무제는 진실한 무이고
寂滅第一空     적멸한 제일의공이며
諸法因緣有     제법은 인연의 유이니
有無義如是     유와 무의 뜻이 이와 같네.

세 번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진제와 속제가〕 사라진 것이 곧 ‘둘 아님(不二)’이고, 보존하는 것이 곧 ‘하나 아님(不一)’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의 두 구는 ‘참된 무(眞無)’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한 구는 ‘세속의 유(俗有)’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한 구는 유와 무에 대해 짝지어 결론지은 것이다.
“무무제無無諦”라고 했는데, 명名·상相의 유를 버린 것이 곧 ‘무’의 뜻에 해당하고, 명·상의 유가 없음을 증득하는 것도 역시 ‘무’를 뜻한다. 두 가지 무를 짝지어 내걸었기(牒) 때문에 ‘무무제’라고 하였으니, 곧 이 두 가지 무는 진실이자 무이기 때문에 “진실한 무(實無)”라고 하였다. “적멸한 제일의 공이며”라고 한 것은 이전의 두 가지 무를 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의 두 가지 무는 유에 상대되는 무이므로 곧 안립제安立諦이지 궁극의 이치는 아니고, 두 번째 구는 비안립제非安立諦를 밝힌 것이다.24) 미혹을 끊고 멸滅을 증득했기 때문에 ‘적멸’이라 하였고, 그 체는 한맛의 진여이기 때문에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하였다. “제법은 인연의 유이니”라고 한 것은 ‘세속의 유’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네 번째 구는 짝지어 결론지은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3행에 대한 또 다른 해석〕그런데 이 세 개의 게송에 대해 여러 설들이 다르다.25)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상으로 세 개의 행에서 처음의 한 개는 인공人空에 해당하고, 다음의 한 개는 법공法空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두 가지 무를 짝지어 내걸었기 때문에 ‘무무無無’라고 하였다.≻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 게송은 이제의 체를 나타낸 것이다. 다음 게송은 이제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 게송은 이제의 유무의 뜻에 대해 짝지어 결론지은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이제에 세 가지 문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001_0085_b_01L故有三假集假有者雙結二諦皆是
001_0085_b_02L假立言三假者本記云名相依他
001_0085_b_03L二種假故立俗諦有無相無生
001_0085_b_04L種假故立眞無義有說一頌上半
001_0085_b_05L明眞下半明俗言三假者法受名
001_0085_b_06L義如上說

001_0085_b_07L
無無諦實無有無義如是

001_0085_b_08L
釋曰第三有一偈明亡卽不二
001_0085_b_09L卽不一文別有三初之二句明眞
001_0085_b_10L無義次有一句顯俗有義後有一
001_0085_b_11L雙結有無言無無諦者遣名相
001_0085_b_12L之有卽是無義得無名相之有
001_0085_b_13L是無義雙牒兩無故名無無諦
001_0085_b_14L此二無實是無也故言實無寂滅
001_0085_b_15L第一空者遣前二無謂前二無
001_0085_b_16L有之無卽安立諦非究竟理第二
001_0085_b_17L句明非安立諦斷惑證滅故言寂滅
001_0085_b_18L體卽一味眞如故言第一義空諸法
001_0085_b_19L因緣有者釋俗有義第四一句
001_0085_b_20L結可知然此三偈諸說不同有云
001_0085_b_21L上來三行初一人空次一法空
001_0085_b_22L三雙牒二無故言無無有說初偈
001_0085_b_23L出二諦體次偈釋二諦義後偈雙結
001_0085_b_24L二諦有無義一云顯其二諦有其三

001_0085_c_01L처음의 게송은 무상無相과 인연因緣의 이제문이고, 다음의 게송은 진실(實)과 가립(假)의 이제문이며, 마지막의 한 게송은 유有와 무無의 이제문이다.26)

㈏ ‘하나(一)’와 ‘둘(二)’의 의미

有無本是二     유와 무는 본래27) 둘이니
譬若牛二角     비유하면 소의 두 뿔과 같고
照解見無二     조해照解28)로 둘 없음을 보지만
二諦常不即     이제가 항상 하나인 것은 아니네.

이하는 두 번째로 세 개의 게송이 있으니, ‘하나’와 ‘둘’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왕의 힐난을 회통시킨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 한 게송은 이치(理)와 지혜(智)를 상대시켜서 ‘하나도 둘도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한 게송은 지혜와 이치를 상대시켜서 ‘하나라거나 다르다는 집착’을 버리게 한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한 게송은 지혜와 이치를 상대시켜서 ‘진실한 의미를 깨달아 들어감’을 찬탄한 것이다.

㉮ 하나 아님(非一)과 둘 아님(非二)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중에 앞의 반 송은 비유를 들어 법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진속의 경계는 본래 항상 있는 것이니 마치 소의 두 뿔과 같다는 것이다. 다음의 반 개의 송은 하나도 둘도 아님을 밝힌 것이다. 즉 〔비일非一이라 한 것은〕 성인들이 제법이 진제와 분리되지 않음을 통달했기 때문이고, 〔비이非二라고 한 것은〕 상相을 따라 이치를 건립하여 유와 무가 병립하기 때문이다.

㉯ 집착의 제거

解心見不二     이해한 마음은 둘 아님을 보니
求二不可得     둘을 찾아도 얻을 수 없고
非謂二諦一     이제를 하나라고도 하지 않는데
非二何可得     둘 아님을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두 번째는 지혜와 이치를 상대시켜서 둘이나 하나라는 집착을 버리게 한 것이다. 말하자면 무분별지로 오직 진제를 증득했기 때문에 이제가 둘이라고 집착할 수도 없고, 안립된 도리에서는 유와 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라고 집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 참된 뜻을 깨달음

於解常自一     이해에서는 항상 본래 하나이고
於諦常自二     진리에서는 항상 본래 둘이니
通達此無二     이러한 둘 없음을 통달한다면
眞入第一義     참으로 제일의제를 깨달은 것이네.

세 번째는 지혜와 이치를 상대시켜서 참된 뜻을 깨달음을 찬탄한 것이다. “이러한 둘 없음”이라 한 것은, 한편으로 앞에서 말했던 “이해에서는 항상 하나이고”라는 주장을 내걸어 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무분별지로 하나의 여래29) 외에 따로 속제가 없음을 증득했기 때문에 “이러한 둘 없음을 통달한다면 참으로 제일의제를 깨달은 것이네.”라고 하였다.

㈐ 세제世諦의 헛됨

世諦幻化起     세제는 허깨비처럼 일어나니
譬如虛空華     비유하면 마치 허공 꽃 같고
如影三手無     그림자나 세 번째 손처럼 없는 것이나
因緣故誑有     인연 때문에 거짓으로 있는 것이네.

이하는 세 번째로 두 개 반의 게송이 있으니, 세제의 헛됨을 밝히면서 앞에서 말한 의미들을 결론지은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세제의 헛됨을 총괄해서 나타낸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한 게송은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의 헛됨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반 게송은 관觀에 대해 결론지으며 사람에 귀속시킨 것이다.

001_0085_c_01L一無相因緣二諦門次偈實假二
001_0085_c_02L諦門後一偈有無二諦門

001_0085_c_03L
有無本是二二諦常不卽

001_0085_c_04L
釋曰自下第二有三偈明一二義
001_0085_c_05L通王難文別有三初之一偈理智
001_0085_c_06L相對顯非一二次有一偈智理相對
001_0085_c_07L遣一異執後有一偈智理相對
001_0085_c_08L入眞義此卽初也於中上半擧喩
001_0085_c_09L顯法謂眞俗境本自恒有如牛兩
001_0085_c_10L下半明非一二聖達諸法不離眞
001_0085_c_11L隨相立理有無並故

001_0085_c_12L
解心見不二非二何可得

001_0085_c_13L
釋曰第二智理相對遣二一執
001_0085_c_14L無分別智唯證眞故不可執爲二
001_0085_c_15L立道理有無別故不可執爲一

001_0085_c_16L
於解常自一眞入第一義

001_0085_c_17L
釋曰第三智理相對讚入眞義
001_0085_c_18L無二者一牒上於解常一義謂無分
001_0085_c_19L別智證一如來外無別俗諦故言
001_0085_c_20L通達此無二眞入第一義

001_0085_c_21L
世諦幻化起因緣故誑有

001_0085_c_22L
釋曰自下第三有兩偈半辨世諦虛
001_0085_c_23L結成上義於中有三初之一偈
001_0085_c_24L顯世虛次有一偈顯能所化虛

001_0086_a_01L
㉮ 세제의 헛됨
처음 게송에서, 처음의 한 구는 세제의 법이 헛되어 마치 환처럼 일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나중에 나온 세 구는 비유를 들어 법을 나타낸 것이다. 비유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허공 꽃이고, 둘째는 나무 그림자이며, 셋째는 세 번째 손(第三手)이다.어떤 판본에서 ‘세 개의 머리(三首)’라고 된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의 해석에서 여러 설이 다르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허공 꽃은 상相은 있어도 체體는 없으니, 이는 분별성分別性(변계소집)을 비유한다. 나무 그림자는 실물(質)에 의탁해서 일어나니, 이는 의타성을 비유한다. 세 번째 손은 상相과 성性이 모두 없으니, 이는 진실성眞實性(원성실)을 비유한다. 이것들은 안립제이기 때문에 결국 세제이다. 인연을 따라서 헛되이 ‘유’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가지 비유는 모든 법의 공함을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대품경』 등에서 열 가지 비유를 나타냄으로써 제법이 모두 공하지 않음이 없음을 설하였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가지 비유는 변계소집의 공함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해심밀경』에서는 소집성所執性에 의거해서 세 가지 자성 없음(三無性)을 건립한다고 하였는데, 『반야경』에서 ‘모든 법은 자성이 없다’고 했던 것을 회통시키면서, 그것은 ‘상의 자성 없음(相無自性性)’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의타기를 버리지 않더라도 또한 공함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것은 『별장』의 설과 같다.

㉯ 교화의 주체와 대상의 헛됨

幻化見幻化     허깨비가 허깨비를 보니
衆生名幻諦     중생을 환제라고 이름하고
幻師見幻法     환술사는 환법이라 보니
諦實則皆無     진실(諦實)에서는 다 없는 것이네.
30)

두 번째는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이 헛됨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허깨비가 허깨비를 보니”라는 것은 모두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마경』에서는 “그 법을 설하는 자는 설함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며, 그 법을 듣는 자도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31)라고 하였다. 〔이 게송에 대해〕 여러 설이 다르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 결론

이것을 제불의 관이라 하니
보살의 관도 또한 그러하네.

세 번째는 관에 대해 결론지으며 사람에 귀속시킨 것이다. 이상에서 설한 ‘하나와 둘’의 의미는 바로 불보살이 관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② 금불今佛의 해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제일의제 중에서 항상 이제를 비추며 중생을 교화합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지금의 부처님(今佛)께서 설하신 ‘하나와 둘’의 의미를 진술한 것이다.

001_0086_a_01L有半偈結觀歸人就初偈中初之
001_0086_a_02L一句顯世諦法虛如幻起後有三
001_0086_a_03L擧喩顯法喩有三種一者空華
001_0086_a_04L二者樹影三者第三手或有本云三
首者謬之也

001_0086_a_05L釋此喩諸說不同有說空華有相
001_0086_a_06L無體喩分別性樹影託質而起
001_0086_a_07L依他性第三手相性並無譬眞實
001_0086_a_08L是安立故遂是世諦由因緣故
001_0086_a_09L妄執爲有一云三喩喩一切法空
001_0086_a_10L大品等顯十喩以說諸法無不皆空
001_0086_a_11L一云三喩顯所執空故解深密云
001_0086_a_12L所執性立三無性會般若云一切
001_0086_a_13L諸法無自性者依相無自性性說
001_0086_a_14L知不遣依他亦是空具如別章

001_0086_a_15L
幻化見幻化諦實則皆無

001_0086_a_16L
釋曰第二顯能所化虛謂幻化見幻
001_0086_a_17L化者皆非實有故維摩云其說法
001_0086_a_18L1)無示其聽法者無聞無得
001_0086_a_19L說不同准上應知

001_0086_a_20L
名爲諸佛觀菩薩觀亦然

001_0086_a_21L
釋曰第三結觀歸人如上所說
001_0086_a_22L二之義是佛菩薩之所觀也

001_0086_a_23L
大王菩薩化衆生

001_0086_a_24L
釋曰自下第二申今佛說一二之義

001_0086_b_01L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둘’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나중의 “부처님과” 이하는 ‘하나’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가) ‘둘’의 의미
이것은 ‘둘’의 의미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보살마하살은 제일의제 중에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항상 이제를 비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반야般若로 항상 진제를 비추면서 생사에 집착하지 않으니 범부와는 다르고, 대비大悲로 항상 속제를 비추면서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승과도 다르다. 이것이 ‘둘’의 의미다.

나) ‘하나’의 의미

부처님과 중생은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32)
이하는 두 번째로 ‘하나’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는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을 통해서 ‘하나’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둘째로 “일체법이” 이하는 경계와 지혜를 상대시켜서 ‘하나’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살이” 이하는 오염과 청정을 상대시켜서 ‘하나’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 교화의 주체와 대상에 의거한 설명
교화의 주체와 대상을 설한 곳에서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은 주장을 표명한 것이고, 다음은 따져 물은 것이며, 마지막은 해석한 것이다.

㉮ 주장의 표명
이것은 주장을 표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간략하게 대답하면서 ‘들음도 없고 설함도 없음이 하나의 의미’라고 한 것이다.

㉯ 따져 물음

어째서입니까?

다음은 따져 물은 것이다. 즉 주체(能)와 대상(所)이 이미 다른데 어째서 하나라고 하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 해석

중생이 공하기 때문에 보리의 공함을 세울 수 있고, 보리가 공하기 때문에 중생의 공함을 세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가 성립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의 세속의 모습을 따르면 비록 다르지만, 공의 이치는 하나다. 이로 인해서 교화되는 대상과 교화하는 자도 공하니, 주체와 대상이 모두 공함이 바로 ‘하나’의 의미다.

㈏ 경계와 지혜에 의거한 설명

일체법이 공하기 때문에 공도 공합니다.

두 번째는 경계와 지혜를 상대시켜서 ‘하나’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주장을 표명한 것이고, 다음은 따져 물은 것이며, 마지막은 해석한 것이다.

㉮ 주장의 표명
이것은 주장을 표명한 것이다. 우선 ‘하나’로 보는 문門에 의거해서 일체법을 판별하자면, 그것들은 경계와 지혜를 벗어나지 않고 모두 공하기 때문에 ‘공도 공하다’고 하였다.

㉯ 따져 물음

001_0086_b_01L文別有二初明二義後佛及下
001_0086_b_02L其一義此卽二義謂佛告大王菩薩
001_0086_b_03L摩訶薩於第一義中爲化衆生
001_0086_b_04L昭二諦由般若故常照眞諦不著
001_0086_b_05L生死異於凡夫由大悲故常照俗諦
001_0086_b_06L不著涅槃異於二乘此卽二義

001_0086_b_07L
佛及衆生一而無二

001_0086_b_08L
釋曰自下第二釋其一義文別有三
001_0086_b_09L一能所化以明一義二一切法下
001_0086_b_10L智相對以明一義後菩薩下染淨相
001_0086_b_11L對以明一義就能所中復分爲三
001_0086_b_12L標次徵後釋此卽標宗謂略答中無
001_0086_b_13L聽無說爲一義也

001_0086_b_14L
何以故

001_0086_b_15L
釋曰次徵能所旣殊如何言一

001_0086_b_16L
以衆生空故得置衆生空

001_0086_b_17L
釋曰第三釋成一義隨能所化
001_0086_b_18L相雖殊而空理一由斯所化能化亦
001_0086_b_19L能所俱空是其一義

001_0086_b_20L
以一切法空故空空

001_0086_b_21L
釋曰第二境智相對以明一義
001_0086_b_22L別有三初標次徵後釋此卽標宗且
001_0086_b_23L依一門辨一切法不出境智皆空故
001_0086_b_24L言空空

001_0086_c_01L
어째서입니까?

따져 물은 것이다. 경계와 지혜가 이미 다르므로 공도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고 따진 것이다.

㉰ 해석

반야는 모습이 없고 이제는 허공과 같습니다.33)
세 번째는 ‘하나’가 성립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하나’의 의미를 바로 해석한 것이다. 나중의 “반야는” 이하는 난점을 따라가며 거듭 해석한 것이다.

a. ‘하나’의 의미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반야로 경계를 대할 때 파악하는 자(能取)와 파악되는 대상(所取)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공하고, 이제는 제일의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기 때문에 공하니, 그러므로 반야와 이제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b. 난점의 해석

반야는 공하니, 무명無明에서부터 살바야薩婆若에 이르기까지 자상自相도 없고 타상他相도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난점을 따라가며 거듭 해석한 것이다. 〔반야가 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은 분명해서 알 수 있지만 반야의 공한 모습은 그와 어떤 차별이 있는가라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한쪽으로 반야의 공한 모습만 설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모든 지위에 의거해서 체體의 공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나중은 불과佛果에 의거해서 작용(用)의 공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a) 반야의 체의 공함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반야는 공하니, 생사의 십이연생十二緣生의 지위에서부터 열반의 일체지一切智(=살바야)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자상도 없다’고 했고 법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타상도 없다’고 했다. 이는 곧 인공人空·법공法空의 두 가지 공을 반야의 체상體相으로 삼은 것이다.

b) 반야의 작용의 공함

오안五眼을 성취했을 때는 보면서도 보는 바가 없고,

두 번째는 불과佛果에 의거해서 작용의 공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보는 작용이 없음을 밝힌 것이고, 나중은 받아들이는 작용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a) 보는 작용이 없음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오안을 성취했을 때”란 다섯 가지 눈을 총괄해서 든 것인데, 그 뜻은 뒤의 세 가지 눈을 취하려는 것이다. 육안肉眼과 천안天眼은 반야가 아니기 때문이다.34) 세 가지 눈으로 볼 때는 보는 자(能見)의 모습이 없다는 것이 곧 ‘공’의 의미다.

001_0086_c_01L
何以故

001_0086_c_02L
釋曰境智旣殊空應非一

001_0086_c_03L
般若無相二諦虛空

001_0086_c_04L
釋曰2)三成一義文別有二初正
001_0086_c_05L釋一義後般若下逐難重釋此卽
001_0086_c_06L初也謂般若對境無能取所取相故
001_0086_c_07L二諦於第一義無差別故空
001_0086_c_08L故般若二諦一而無二

001_0086_c_09L
般若空無他相故

001_0086_c_10L
釋曰第二逐難重釋所以者何
001_0086_c_11L切法空相顯可知般若空相有何
001_0086_c_12L差別是故偏說般若空相文別有二
001_0086_c_13L初依諸位顯體空相後依佛果
001_0086_c_14L用空相此卽初也謂般若空從於
001_0086_c_15L生死十二緣生位乃至涅槃一切智
001_0086_c_16L無人相故無自相無法相故無他
001_0086_c_17L卽以人法二空而爲體相

001_0086_c_18L
五眼成就時見無所見

001_0086_c_19L
釋曰第二謂依佛果顯用空相
001_0086_c_20L別有二初明無見用後明無受用
001_0086_c_21L卽初也五眼成就時者總擧五眼
001_0086_c_22L取後三肉天二眼非般若故三眼
001_0086_c_23L「無」上疑有「無說」ㆍ「無」上有「無說」{乙}
001_0086_c_24L「三」下疑有「釋」{乙}

001_0087_a_01L
(b) 받아들이는 작용이 없음

‘행行’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이 아닌 것(不行)’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행도 아니고 행이 아닌 것도 아닌 것(非行非不行)’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아가 일체법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받아들이는 작용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不受)’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다(不執著)’는 뜻이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行이니, 즉 집착하는 행을 말한다. 둘째는 행이 아닌 것(不行)이니, 즉 집착하는 않는 행을 말한다. 셋째는 행도 아니고 행이 아닌 것도 아닌 것(非行非不行)이니, 즉 무기無記의 행을 말한다. 넷째는 일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눈으로 네 가지 경계에 대해 모두 집착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집착하는 작용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 설하고, 이것이 모두 공하기 때문에 또한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다.

㈐ 오염과 청정에 의거한 설명

보살이 아직 성불하지 못했을 때는 보리가 번뇌이지만, 보살이 성불했을 때는 번뇌가 보리입니다.

세 번째는 오염과 청정을 상대시켜서 ‘하나’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주장을 표명한 것이고, 다음은 따져 물은 것이며, 마지막은 해석한 것이다.

㉮ 주장의 표명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오염이란 번뇌를 말하니, 이것은 생사의 근본이다. 청정이란 보리를 말하니, 이것은 열반의 근본이다. 이와 같은 두 종류는 공空을 본성으로 삼는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는 보리의 본성에 미혹하기 때문에 〔보리가〕 번뇌이지만, 이미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는 번뇌의 본성 그 자체가 보리임을 깨닫는다.

㉯ 따져 물음

어째서입니까?

다음은 따져 물은 것이다. 즉 ‘오염과 청정이 서로 상반되는데 어째서 하나가 되는가’라고 한 것이다.

㉰ 해석

제일의第一義에서는 둘이 아니기 때문이고, 제불여래 내지는 일체법이 여여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가 성립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그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차전遮詮이고 둘째는 표전表詮이다.35) 말하자면 제일의에는 오염된 상이나 청정한 상이 없기 때문에 ‘둘이 없다’고 하였고, 일체의 법들은 다 여여하기 때문에 바로 ‘하나의 공(一空)’을 뜻한다는 것이다.
『본기』에는 아홉 가지 의미를 통해 ‘둘 아님’을 해석한 것이 있는데, 번거로울까 봐 서술하지 않겠다.
2. 설법說法의 불이不二
〔왕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어째서 시방의 모든 여래와 모든 보살은 문자를 떠나지 않고서 제법의 상相을 행합니까?”

001_0087_a_01L見時無能見相卽是空義

001_0087_a_02L
行亦不受一切法亦不受

001_0087_a_03L
釋曰第二明無受用言不受者
001_0087_a_04L執著義不受有四一行謂著行
001_0087_a_05L不行謂不著行三非行非不行
001_0087_a_06L是無記行四不受一切法此明三眼
001_0087_a_07L於四境中皆不執著無執著用
001_0087_a_08L說爲空此皆空故亦是一義

001_0087_a_09L
菩薩未成佛時以煩惱爲菩提

001_0087_a_10L
釋曰第三染淨相對以釋一義
001_0087_a_11L別有三初標次徵後釋此卽初也染
001_0087_a_12L謂煩惱是生死根本淨謂菩提
001_0087_a_13L涅槃本如斯二種用空爲性以未
001_0087_a_14L悟時迷菩提性故爲煩惱至已悟
001_0087_a_15L覺煩惱性卽是菩提

001_0087_a_16L
何以故

001_0087_a_17L
釋曰次徵謂染淨乖違如何成一

001_0087_a_18L
於第一義一切法如故

001_0087_a_19L
釋曰第三釋成一義有其二因
001_0087_a_20L遮二表謂第一義中無染淨相
001_0087_a_21L言無二一切諸法皆悉如故是一
001_0087_a_22L空義依本記有九種義以釋不二
001_0087_a_23L恐繁不述

001_0087_a_24L
白佛言而行諸法相

001_0087_b_01L
이하는 두 번째로 문답으로 설법의 불이不二에 대해 분별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1) 왕의 질문
이것은 질문에 해당한다. 이 질문의 뜻은, ‘만약 일체법이 여여하여 그 중에 문자가 없다면 어째서 제불은 문자에 의거해서 제법의 상을 행하는가’라는 것이다.
2) 여래의 대답
“대왕이여, 법륜法輪이란, 법본法本도 여여하고 중송重誦도 여여하며 수기受記도 여여하고 불송게不誦偈도 여여하며 무문이자설無問而自說도 여여하고 계경戒經도 여여하며 비유譬喻도 여여하고 법계法界도 여여하며 본사本事도 여여하고 방광方廣도 여여하며 미증유未曾有도 여여하고 논의論議도 여여합니다.

두 번째는 여래께서 대답하신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설법의 공함을 밝혔으니, 즉 이타행의 〔공함에〕 해당한다. 나중은 수행의 공함을 밝혔으니, 이는 자리행의 공함에 해당한다.

⑴ 설법의 공함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십이부경十二部經의 공함을 따로따로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이 명名·미味” 이하는 교敎의 공함을 총괄해서 밝힌 것이다. 마지막의 “만약 문자를 취하는 자” 이하는 ‘공을 행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① 십이부경十二部經의 공함
“법륜法輪”이라 했는데, 법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교敎이고, 둘째는 행行이다. 여기에서는 교를 설하는 것을 ‘법륜’이라 하였다.
“법본法本도 여여하고 …”라 한 것은 십이부경을 열거한 것이다. 그런데 십이부의 명칭은 여러 교에서 다르게 설한다. 어떤 경문에는 범어만 있고 번역어는 없다. 예를 들면 『심밀해탈경深密解脫經』 제3권에 나오는 이른바 수다라修多羅, 기야祇夜, 화가라나和伽羅那, 가타伽陀, 우다나憂陀那, 니다나尼陀那, 아바다나阿婆陀那, 이제우다가伊帝憂多伽, 사다가闍多伽, 비불략毘佛略, 아부다단마阿浮陀檀摩, 우파제사憂波提舍이다.36) 어떤 경문에는 오직 번역어만 있고 범어는 없다. 예를 들면 『해심밀경』 제3권에 나오는 이른바 계경契經, 응송應誦, 기별記別, 풍송諷誦, 자설自說, 인연因緣, 비유譬喻, 본사本事, 본생本生, 방광方廣, 희법希法, 논의論議이다. 어떤 경문에는 범어와 번역어가 혼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법화경』 제1권에 나오는 이른바 수다라修多羅, 가타伽陀, 본사本事, 본생本生, 미증유未曾有, 인연因緣, 비유譬喻, 기야祇夜, 우파제사優波提舍 등이다. 이와 같이 여러 판본이 다른 까닭은 여러 시대의 번역자들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001_0087_b_01L
釋曰自下第二問答分別說法不二
001_0087_b_02L於中有二先問後答此卽問也
001_0087_b_03L問意云若一切法如如中無文字
001_0087_b_04L何諸佛依於文字行諸法相

001_0087_b_05L
大王論議如

001_0087_b_06L
釋曰第二如來正答文別有二
001_0087_b_07L明說空卽是利他後明修空是自
001_0087_b_08L利空前中有三初別明十二部空
001_0087_b_09L是名味下總辨敎空後若1)取者
001_0087_b_10L不行空言法輪者法輪有二一敎
001_0087_b_11L二行此中說敎以爲法輪言法本
001_0087_b_12L如等者列十二部經然十二名諸敎
001_0087_b_13L不同自有經文唯梵非翻如深密解
001_0087_b_14L脫經第三卷所謂修多羅祇夜
001_0087_b_15L伽羅那伽陀憂陀那尼陀那阿婆
001_0087_b_16L陀那伊帝憂多伽闍多伽毘佛略
001_0087_b_17L阿淨陀檀摩憂波提舍自有經文
001_0087_b_18L翻非梵如解深密經第三卷所謂契
001_0087_b_19L應誦記別諷誦自說因緣
001_0087_b_20L本事本生方廣希法論議
001_0087_b_21L有經文梵翻雜用如法華第一卷
001_0087_b_22L謂修多羅伽陀本事本生未曾有
001_0087_b_23L因緣譬喩幷祗夜優波提舍等
001_0087_b_24L以如是諸本異者諸代翻譯意樂別

001_0087_c_01L『심밀해탈경』과 『해심밀경』은 동일한 판본인데 역자가 다르다. 이와 같은 의미들은 구체적으로는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지금 “법본도 여여하고 …”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범음 ‘수다라’는 여기 말로 법본法本이라고 하니, 해석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로 ‘교’가 이치의 근본이고, 둘째로 총체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둘째 ‘기야’는 여기 말로 중송重頌이라 하니, 앞에 나온 장행을 〔운문으로〕 암송한 것이다. 셋째 ‘화가라나’는 여기 말로 수기受記라고 하니, 부처님의 기별記別을 받는 것이다. 넷째 ‘가타’는 여기 말로 불송게不誦偈라고 하고 풍송諷誦이라고도 하니, 장행을 암송한 것은 아니다.37)
다섯째 ‘우다나’는 여기 말로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 한다. 여섯째 ‘니다나’는 여기 말로 인연因緣이라 하고 조복調伏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계戒를 제정하게 된 계기(緣起)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계경戒經이라 한다. 일곱째 ‘아바다나’는 여기 말로 비유譬喩라고 한다. 여덟째 ‘이제우다가’는 여기 말로 법계法界라고 하고 본생本生이라고도 한다. ‘계界’는 ‘생生’을 뜻한다. 아홉째 ‘사다가’는 여기 말로 본사本事라고 한다. 열째 ‘비불략’은 여기 말로 방광方廣이라 한다.조사해 보라.열한 번째 ‘아부다단마’는 여기 말로 미증유未曾有라고 한다. 열두 번째 ‘우파제사’는 여기 말로 논의論議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십이부가 모두 ‘여여하다’고 한 것은 이와 같은 것들이 ‘공함’을 뜻한다.

② 교敎의 공함

이 명名·미味·구句라는 음성과音聲果의 문자로 된 글귀(文字記句)는 일체가 여여합니다.38)

두 번째는 교敎의 공함을 총괄해서 밝힌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그에 네 가지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는 결론지은 것이니, 이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 ‘명·미·구’란 응설應說이다. 둘째로 ‘음성’이란 정설正說이다. 셋째로 ‘과보’란 능설能說이다. 넷째로 ‘일체가 여여하다’는 것은 의설依說이니, 이 진여의 이치에 의거해서 법을 설하지만 실로 설할 만한 법은 없는 것이다.≻39)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이것은 두 번째로 교체敎體의 공함을 총괄해서 밝힌 것이다.40)

001_0087_c_01L深密解脫與解深密同本譯別
001_0087_c_02L如是等義具如別章今云法本如等
001_0087_c_03L一梵音修多羅此云法本釋有
001_0087_c_04L二義一敎爲理本二總爲別本
001_0087_c_05L祇夜此云重誦誦前長行三和伽
001_0087_c_06L羅那此云受記受佛記別四伽陀
001_0087_c_07L此云不誦偈亦名諷誦不誦長行
001_0087_c_08L憂陀那此云無問自說六尼陀那
001_0087_c_09L云因緣亦名調伏由彼廣明制戒緣
001_0087_c_10L起故名戒經七阿婆陀那此云譬喩
001_0087_c_11L八伊帝憂多伽此云法界亦名本生
001_0087_c_12L界是生義九闍多伽此云本事十毘
001_0087_c_13L佛略此云方廣十一阿浮陀檀
001_0087_c_14L此云未曾有十二憂波提舍
001_0087_c_15L云論議如是十二皆云如者如是
001_0087_c_16L空義

001_0087_c_17L
是名味句一切如

001_0087_c_18L
釋曰第二總辨敎空若依本記
001_0087_c_19L其四義故本記云二結成有四一名
001_0087_c_20L味句是應說二音聲是正說三果
001_0087_c_21L是能說四一切如卽是依說
001_0087_c_22L此眞如理而說法實無法可說也
001_0087_c_23L解不爾此卽第二總辨敎體空然出
001_0087_c_24L「取」異作「所」{乙}

001_0088_a_01L그런데 교체를 나타내자면, 여러 설들이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명·구·문이 교체라고 설한다. 어떤 곳에서는 음성(聲)이 교체라고 설한다. 어떤 곳에서는 〔명·구·문과 음성을〕 합해서 교체라고 설한다. 구체적인 것은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제 이 『인왕경』에 의하면, 명·구·문들과 음성을 교체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관공품」에서는 ‘부처님이 설하신 구句·문文·성聲’이라 하였다.41) 그런데 지금 설해진 “명·미·구라는 음성과”라고 한 것에서, 명·미·구는 가립이고 음성의 체는 실재이니, 실재의 음성에 의거해서 명 등을 가립했기 때문에 ‘음성의 과’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문자로 된 글귀(文字記句)’가 모두 여여하다는 것이다.

③ 공을 행하지 않음

만약 문자를 취하는 자라면 공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공을 행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즉 만약 문자에 의지하면서 진여를 깨닫지 못하는 자라면, 여러 부部 등과 마찬가지로, 공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42)

⑵ 수행의 공함

대왕이여, 여여한 문자로 제불의 지모智母를 닦습니다.

두 번째는 수행의 공함을 밝힌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43)
두 번째는 수학修學의 공함을 밝힌 것이니, 이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닦는 주체(能修)이고, 둘째는 닦는 대상(所修)이며, 셋째는 본성本性이고, 넷째는 이치에 맞는 닦음(如理修)이며, 다섯째는 결론지은 것이다.
첫째, 닦는 주체인 지혜로 여여한 불모佛母를 닦아서 불佛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지모智母’라고 하였다.
둘째, 닦는 대상은 바로 불모이다. 이는 곧 살바야薩婆若이니 바로 일체지이다. 이에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중생의 성(衆生性)을 뜻하니, 비유하면 여의주가 필요한 것을 다 성취시킬 수 있는 것과 같다. 둘째는 중생의 근(衆生根)을 뜻하니, 비유하면 맑은 물이 그림자처럼 어울리며 적시고 맑게 해 주는 것과 같다. 마치 자비심과 같다. 셋째는 중생의 지(衆生智)를 뜻하니, 비유하면 허공이 여여함을 바꾸지도 않고 달라지게 하지도 않는 것과 같다. ‘성性’이란 ‘바뀌지 않는다(不改)’는 뜻이니, 구하는 바를 반드시 획득한다는 것이 ‘바뀌지 않음’이다. ‘근根’이란 ‘생한다 (能生)’는 뜻이니, 자비를 생하여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44)
셋째, 본성本性이 어머니가 됨을 밝힌 것이다. 아직 불佛을 획득하지 못했을 때는 미래의 불(當佛)을 지모로 삼고, 불을 획득했을 때는 곧 살바야가 된다.

001_0088_a_01L敎體諸說不同有處說名等爲體
001_0088_a_02L處說聲有處合說具如別章今依
001_0088_a_03L此經名句文身及聲爲體故前觀空
001_0088_a_04L品云佛說句文聲而今所說名味句
001_0088_a_05L音聲果者名等是假聲體是實
001_0088_a_06L實聲上假立名等故言聲果如是
001_0088_a_07L文字記句皆是如也

001_0088_a_08L
若取文字者不行空也

001_0088_a_09L
釋曰第三不行空謂若依文字
001_0088_a_10L悟如者如諸部等不行空也

001_0088_a_11L
大王如如文字修諸佛智母

001_0088_a_12L
釋曰第二修空若依本記第二修
001_0088_a_13L學空有五第一能修第二所修
001_0088_a_14L三本性第四如理修第五結成
001_0088_a_15L能修之智修如如佛母能生佛故名
001_0088_a_16L智母二所修正是佛母卽薩婆若
001_0088_a_17L一切智有三義一衆生性譬如竟珠
001_0088_a_18L所須皆能成就二衆生根譬如淸水
001_0088_a_19L影和潤淸如慈悲心三衆生智
001_0088_a_20L如虛空於如如不轉不異性是不改
001_0088_a_21L所求竟1)得是不改也根是能生
001_0088_a_22L能生慈悲利益一切衆生第三
001_0088_a_23L明本性以爲母未得佛時以當佛爲
001_0088_a_24L智母若得佛時卽薩婆若是一切

001_0088_b_01L이 일체지는 제불이 아직 성불하지 못했을 때는 ‘자성自性’이라 이름하니, 곧 감춰져 있으면 여래장如來藏이고, 나중에 불을 수득修得하는 해탈도의 때에 본성이 현현하면 법신法身이 되는 것이다. 곧 살바야각薩婆若覺45)이 본성을 현현시키면 ‘닦는 자가 변화된다(修者爲化)’고 하고, 변화되어 본불本佛을 현현시키기 때문에 ‘지모’라고 한다.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성性이라 하고”라고 했는데,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단지 본성만 있기 때문에 ‘성불성性佛性’이라 하고, 도道 중에 있는 경우라면 ‘인출불성引出佛性’이라 하며, 과果 즉 열반한 경우는 ‘지과불성至果佛性’이라 한다.46)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두 가지 성에 통하고, 이미 얻었을 때는 오직 열반성에 해당한다.
“삼승”에는 세 종류 삼승이 있다. 첫 번째는 소승의 삼승이다. 수왕불樹王佛47)은 소승 중의 대승이고, 연각은 〔소승 중의〕 중승中乘이며, 성문은 소승 중의 소승이니, 이들은 똑같이 사제를 관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대승의 삼승이다. 첫째로 회향한 성문과 연각은 진여를 관하여 인무아人無我의 공을 증득하므로 이승이라 하고, 십지 이전의 보살도 똑같이 진여를 관하여 견도에 들어가는 무아공을 증득하기 때문에 대승이라 한다. 서로 대조해 보면, 회향한 성문과 연각은 내內가 되니, 즉 대승의 내부이다. 외부의 소승 중에 적정寂靜의 성문과 연각은 외外가 되니, 즉 대승의 외부이다. 세 번째는 초지 이후에 의거해서 삼승을 만든 것이다. 초지를 견지見地라고 하고, 제2지에서 제7지까지를 수지修地라고 하며, 제8지에서 불지佛地까지를 구경지究竟地라고 한다. 대승을 소승과 대조하는 경우는 〔대승도〕 똑같이 사제를 관하기 때문에 소승이라 하고, 소승을 대승과 대조하는 경우는 〔소승도〕 똑같이 여여如如를 소연으로 삼아 관하기 때문에 모두 대승이라 한다. 수습에 있어서는 삼승이 있기는 해도 그 본성을 논하자면 모두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48)
“모든 중생은 이것을 각성覺性으로 삼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은 ‘본성’을 의미상 세 가지로 나누었던 것에 대해 통틀어 결론지은 것이다.
넷째는 이치에 맞게 닦는 것이다. 경문에서 “보살이라면 … 받아들이지 않으니”라고 한 이하에는 다섯 가지 바라밀이 나온다. ① “받아들이지 않으니(無受)”라고 한 것은 분별이 없는49) 바라밀(無分別波羅蜜)이다. ‘받아들임이 없다’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범부가 통달하지 못하는 것도 ‘받아들임이 없다’고 하니, 받아들여 집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001_0088_b_01L諸佛未成佛時名自性卽是隱
001_0088_b_02L爲如來藏後修得佛解脫道時
001_0088_b_03L顯爲法身卽薩婆若覺顯本性
001_0088_b_04L修者爲化爲化能顯本佛故名智母
001_0088_b_05L未得爲性者未得時但有本性故名
001_0088_b_06L性佛性若道中引出佛性果卽涅槃
001_0088_b_07L卽至果佛性也2)來得通二性
001_0088_b_08L得唯是涅槃性三乘有三種三乘
001_0088_b_09L3)乘三者樹王佛是小中大乘緣覺
001_0088_b_10L聲聞小中小同觀四諦故次大
001_0088_b_11L乘三乘一迴向聲聞緣覺觀如得人
001_0088_b_12L無我空爲二地前菩薩同觀如得入
001_0088_b_13L見無我空故大若相望者迴向聲聞
001_0088_b_14L緣覺爲內大乘內外小中寂靜聲聞
001_0088_b_15L緣覺爲外大乘外也第三就初地後
001_0088_b_16L爲三者初地名見二地至七地爲修
001_0088_b_17L八地至佛地爲究竟地若取大望小
001_0088_b_18L同觀四諦皆名爲小若小望大
001_0088_b_19L緣如如皆名爲大據修習雖有三乘
001_0088_b_20L論其本性皆不生滅一切衆生
001_0088_b_21L此爲覺性者通結本性義分爲三也
001_0088_b_22L第四如理修者文言若菩薩無受下
001_0088_b_23L有五波羅蜜一無受無分別故波羅
001_0088_b_24L無受有二一凡夫不能通達

001_0088_c_01L〔둘째로〕 이제 보살은 통달하면서도 받아들여 집착하지는 않으니, 능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② “문자 없음(無文字)”이란 언어가 없는 바라밀(無言語波羅蜜)이다. 문자는 가짜로 설한 것이지 이치에서 논하자면 없는 것이다. ③ “문자를 떠남(離文字)”이란 둘 없는 바라밀(無二波羅蜜)이다. ④ “문자가 아닌 것도 아님(非非文字)”이란 과가 없는 바라밀(無果波羅蜜)이다. 보살은 해解를 닦아서 문자를 떠나 해탈을 얻을 수 있으니, 이 ‘해’는 과이고 문자로 이해한 것이 아니므로 이 ‘해’도 공한 것이다. 따라서 ‘문자가 아닌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였다.  “…문자의 닦음으로 삼는 자”라고 한 것은, 한맛의 바라밀(一味波羅蜜)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진성眞性의 증득을 가장 수승한 것(最勝)으로 여기니, 바라밀을 번역하면 ‘구경최승究竟最勝’이라 한다.
다섯째는 불과를 수호하고 십지를 수호하며 인因을 수호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이타행을 수호하라고 결론지은 것이다.50)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문답으로 설법의 불이不二에 대해 분별한 것인데,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문답으로 설법의 불이에 대해 분별한 것이다. 나중의 “대왕이여” 이하는 앞의 설법에 의거해서 모든 지모智母를 닦는 것에 대해 밝힌 것이다. 이상으로 설법의 공함에 대해 이미 다 해석하였고, 이하에서는 두 번째로 모든 지모를 닦는 것에 대해 밝히겠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수습修習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삼승의” 이하는 난점을 따라가며 거듭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의 “대왕이여” 이하는 수행으로 성취되는 것에 대해 결론지은 것이다.

① 수습에 대한 설명
수습을 자세히 설한 곳에서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인위因位의 지모智母를 밝힌 것이고, 나중의 “곧 살바야의 체입니다.”라고 한 것은 과위果位의 지모를 밝힌 것이다.

가) 인위因位의 지모智母
인위를 설한 곳에서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수성修性의 지모를 밝힌 것이고, 나중의 “모든 중생의” 이하는 이성理性의 지모를 밝힌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성은 불지佛智를 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모’라고 한다.

㈎ 수성修性의 지모
이것은 첫 번째로 수성의 지모를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십지 이전에서 금강위까지는

001_0088_c_01L名無受不受著故今菩薩通達
001_0088_c_02L不受著也能不受故二無文字
001_0088_c_03L語言波羅蜜文字假說理論無也
001_0088_c_04L離文字無二波羅蜜四非非文字
001_0088_c_05L果波羅蜜菩薩修解能離文字
001_0088_c_06L解脫此解是果是非文字解此解
001_0088_c_07L亦空故言非非文字五爲修文字者
001_0088_c_08L明一味波羅蜜故證眞性爲最勝
001_0088_c_09L波羅蜜爲究竟最勝也第五結護佛
001_0088_c_10L護十地4)護化衆生利他
001_0088_c_11L解不爾問答分別說法不二文別
001_0088_c_12L5)初問答分別說法不二後大王
001_0088_c_13L下依上說法修諸智母上來已釋空
001_0088_c_14L訖自下第二修諸智母文別有三
001_0088_c_15L廣辨修習次三乘下逐難重釋
001_0088_c_16L大王下結修所成就廣辨修文別
001_0088_c_17L有二初明因位智母後卽爲薩波若
001_0088_c_18L體者果之智母就因位中文別有
001_0088_c_19L初明修性智母後一切下明理
001_0088_c_20L性智母如是二性能生佛智故言
001_0088_c_21L智母此卽第一明修性智母謂從地
001_0088_c_22L「得」上疑有「必」ㆍ「得」上有「必」「乙」「來」
001_0088_c_23L異作「得」{乙}
「乘」上疑有「小」{乙}「因」疑
001_0088_c_24L「用」ㆍ「因」異作「用」{乙}
「有」下疑脫「二」

001_0089_a_01L교敎의 공함에 의거해서 수습함으로써 수용신受用身의 일체지一切智라는 과果를 생하게 하므로 곧 생인生因에 해당하고, 법신法身과 대응시키면 요인了因이라 한다.51)
혹은 ‘여如’라는 것은 지시하는 말로서 또한 십이부경의 문자가 하나가 아님을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거듭해서 ‘여여문자如如文字’라고 한 것이다.52)
“제불의 지모를 닦습니다.”라고 했는데, 말하자면 모든 지위에서 닦았던 모든 행이 모든 불지佛智를 생하게 하기 때문에 ‘제불의 지모’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이성理性의 지모

모든 중생의 성性53)으로서의 근본根本의 지모智母가54)
이하는 두 번째로 이성의 지모를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인위因位의 진여불성은 ‘법신본각의 지과(法身本覺智果)’를 현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성으로서의 근본의 지모”라고 하였으니, 이는 정인正因에 해당한다. 수용신과 대비하면 의인依因에 해당한다.55)

나) 과果의 지모

곧 살바야의 체입니다.

〔두 번째는 과果의 지모를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과의 지모를 나타낸 것이고, 나중은 시時에 의거해서 배당시킨 것이다.〕56)

㈎ 과의 지모
이것은 과의 지모를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살바야는 모든 불지佛智의 근본으로서 또한 ‘지모’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57)

㈏ 시時에 의거한 구분

제불께서 아직 성불하지 않았을 때는 미래의 불(當佛)을 지모로 삼으니, 〔불佛을〕 아직 얻지 않았을 때는 ‘성性’이라 하고 이미 얻었을 때는 ‘살바야’라고 합니다.

이것은 두 번째로 시時에 의거해서 배당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제불이 아직 성불하지 않았을 때는 미래의 불을 지모로 삼으니, 즉 법신法身·보신報身을 지모로 삼는다는 것이다.
“아직 얻지 않았을 때는 성性이라 하고”라는 것은 인위에 있을 때는 행성行性58)과 이성理性을 불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미 얻었을 때는 살바야라고 합니다.”라는 것은 과위에 이르렀을 때는 법신의 본각本覺과 보신의 묘각妙覺을 일체지로 삼는다는 것이다.

② 난점의 해석

삼승의 반야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자성이 상주하니, 모든 중생은 이것을 각성覺性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난점을 따라가며 거듭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의 경문에서 “제불의 지모를 닦습니다.”라고 하거나 또는 “성으로서의 근본의 지모”라고 했는데, 그 특징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거듭 해석한 것이다.

001_0089_a_01L至金剛位依敎空修習生受用
001_0089_a_02L身一切智果卽是生因若望法身
001_0089_a_03L謂了因或可如者指示亦顯十二文
001_0089_a_04L字非一是故重言如如文字修諸佛
001_0089_a_05L智母者謂諸位中所修諸行能生
001_0089_a_06L諸佛智故言諸佛智母

001_0089_a_07L
一切衆生根本智母

001_0089_a_08L
釋曰自下第二明理性智母謂諸因
001_0089_a_09L眞如佛性能顯法身本覺智果
001_0089_a_10L言性根本智母卽是正因若望受用
001_0089_a_11L卽是依因

001_0089_a_12L
卽爲薩波若體

001_0089_a_13L
1)顯果智母謂薩波若諸佛智根本
001_0089_a_14L亦名智母

001_0089_a_15L
諸佛未成佛已得爲薩波若

001_0089_a_16L
釋曰此卽第二依時屬當謂諸佛未
001_0089_a_17L成佛以當佛爲智母用法身報身爲
001_0089_a_18L智母未得爲性者在因位中行性
001_0089_a_19L理性以爲佛性已得爲薩波若者
001_0089_a_20L果位中法身本覺報身妙覺爲一
001_0089_a_21L切智也

001_0089_a_22L
三乘以此爲覺性故

001_0089_a_23L
釋曰自下第二逐難重釋謂前文云
001_0089_a_24L修諸佛智母或云性根本智母其相

001_0089_b_01L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성理性에 대해 해석한 것이고, 나중의 “보살이라면”59) 이하는 행성行性에 대해 거듭 해석한 것이다.60)

가) 이성理性에 대한 해석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이전에 설했던 ‘성으로서의 근본의 지모’란 곧 삼승의 몸 안에 있는 이성으로서의 반야이니, 이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자성이 상주하는61) 것이다. 따라서 모든 중생은 이것을 불성으로 삼는다. 곧 이 경문에 의하면 모든 중생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삼승의 보살을 다 ‘각覺’이라 이름하는데,62) 이 실상반야實相般若를 삼승의 각성覺性(불성)으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 행성行性에 대한 해석

보살이라면 ‘문자 없음(無文字)’과 ‘문자를 떠남(離文字)’과 ‘문자가 아닌 것도 아님(非非文字)’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닦으면서도 닦음이 없는 것을 ‘문자의 닦음’으로 삼는 자는 반야의 진성眞性인 반야바라밀을 얻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행성行性에 대해 거듭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에 “여여한 문자로 제불63)의 지모를 닦습니다.”라고 설했는데, 아직 수행하는 모습의 차별을 나타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지금 거듭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여여한 문자’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나중의 “닦으면서도 닦음이 없는 것을” 이하는 제불의 지모를 닦음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보살이라면 〔문자 없음과 문자를 떠남과〕 문자가 아닌 것도 아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여여한 문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 네 구에 대해 여러 설들이 다르다.
한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을 받아들이지 않으니”라고 한 것은 전체적 구(總句)이니, 보살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문자 없음(無文字)”이라는 문구 이하에 세 개의 구가 있으니, ‘받아들이지 않음’에 대해 따로따로 해석한 것이다. 첫째는 문자 없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자 없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를 떠남(離文字)”이라 한 것은 ‘문자가 아니다(非文字)’라는 뜻이다. ‘문자’에 대해서는 ‘문자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문자를 떠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이고, ‘문자가 아닌 것’64)에 대해서는 ‘문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문자 아닌 것도 아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니”라는 말을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자 없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변계소집의 문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자를 떠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의타기의 문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001_0089_b_01L難解故今重釋文別有二初釋理
001_0089_b_02L後菩薩下重釋文別有二初釋
001_0089_b_03L理性後菩薩下重釋行性此卽初
001_0089_b_04L謂前所說性根本智母者卽三乘
001_0089_b_05L身中理性般若不生不滅自性當
001_0089_b_06L是故一切衆生以此爲佛性
001_0089_b_07L以此文一切衆生皆有眞如佛性
001_0089_b_08L可三乘菩薩皆名爲覺用此實相般
001_0089_b_09L爲三乘覺性

001_0089_b_10L
若菩薩波羅蜜

001_0089_b_11L
釋曰第二重釋行性謂前所說
001_0089_b_12L如文字修諸智母而未能顯修相差
001_0089_b_13L故今重釋文有兩節卽初釋如
001_0089_b_14L如文字後修無脩下釋修諸智母
001_0089_b_15L若菩薩無受乃至非非2)文者名爲如
001_0089_b_16L如文字然此四句諸說不同一云
001_0089_b_17L無受者總句菩薩不執文字故言不
001_0089_b_18L無文字者下有三句別釋不受
001_0089_b_19L一不受無文字以不執著無文字故
001_0089_b_20L離文字者非文字義若文字應非文
001_0089_b_21L故作此言不受離文字若非非
001_0089_b_22L文字應非非文字故作此言不受
001_0089_b_23L非非文字一云不受無文字不受
001_0089_b_24L所執文字不受離文字者不受依

001_0089_c_01L‘문자가 아닌 것도 아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원성실성의 문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닦으면서도 닦음이 없는 것을 문자의 닦음으로 삼는 자 …”65)라고 한 것은 앞에 나온 “제불의 지모를 닦습니다.”라는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보살이 수행하면서 ‘나는 닦는 자이고 문자는 닦이는 대상이다’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자라야 진성眞性의 반야바라밀을 얻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③ 결론

대왕이여, 보살이라면 불佛을 수호하고 중생의 교화를 수호하며 십지행을 수호하는 것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수행으로 성취되는 것에 대해 결론지은 것이다. 말하자면 보살이 이상과 같이 수습한다면 세 가지 이익을 이룰 수 있으니, 이른바 불을 수호하는 것, 교화를 수호하는 것, 십지행을 수호하는 것이다.
3. 법문法門의 불이不二
〔왕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한량없는 품류의 중생들은 근根도 한량없고 행行도 한량없는데, 법문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한량없습니까?”

세 번째는 문답으로 법문法門의 불이不二에 대해 분별한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법문의 불이에 대해 바로 설명한 것이다. 둘째는 이 경의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셋째는 경의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처음의 문에서,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이것은 왕의 질문에 해당한다. 그에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는 근根에 대해 물은 것이니, 근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불성으로서의 근이고, 둘째는 도道 중에서의 근이다.66) 두 번째는 행에 대해 물은 것이니, 즉 팔만 사천의 음陰·입入 등의 문을 말한다. 세 번째는 법문에 대해 물은 것이니, 이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법문方便法門이니, 이는 한량없어서 중생의 품류에 따라 수학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법문正法門이니, 이는 항상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不一不二)’을 닦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이치를 물었고, 두 번째는 행을 물었으며, 세 번째는 교敎에 대해 물었다.≻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이것은 이 품 내의 다섯 단락 중 세 번째로서 문답으로 법문의 수량에 대해 분별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되니,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1) 왕의 질문
이것은 질문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왕이 정定에는 사정邪定·정정正定67) 등의 한량없는 품이 있고,

001_0089_c_01L不受非非文字者不受圓成實性
001_0089_c_02L文字修無修文字等者釋上修諸佛
001_0089_c_03L智母謂菩薩修行不作是念我是
001_0089_c_04L能修文字爲所修者乃得眞性般若
001_0089_c_05L波羅蜜

001_0089_c_06L
大王爲若此

001_0089_c_07L
釋曰第三結修所成謂若菩薩
001_0089_c_08L上修習能成三3)所謂護佛護化
001_0089_c_09L護十地行

001_0089_c_10L
白佛言爲無量耶

001_0089_c_11L
釋曰第三問答分別法門不二
001_0089_c_12L依本記文別有三一正明法門不二
001_0089_c_13L二讚經德三立經名就初門中
001_0089_c_14L問後答此卽王問有其三問一問
001_0089_c_15L根有二一佛性爲根二道中爲
001_0089_c_16L二問行卽八萬四千陰入等門
001_0089_c_17L問法門有二一方便法門無量隨
001_0089_c_18L衆生品修學二正法門常修不一不
001_0089_c_19L第一問理第二問行第三問敎
001_0089_c_20L今解不爾卽此品內五段中
001_0089_c_21L三問答分別法門數量文別有二
001_0089_c_22L先問後答卽此問也謂王問定有邪
001_0089_c_23L「顯果」有脫文{乙}「文」下疑有「字」ㆍ「文」下
001_0089_c_24L一有「字」{乙}
「答」疑「益」

001_0090_a_01L중생에게 예리함과 둔함 등이 있으며, 근에는 한량없는 품이 있고, 혹은 탐貪·만慢 등이나 혹은 음陰 등에 미혹하는 한량없는 심행心行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 설해진 제법의 관문觀門들은 하나인지, 둘인지, 한량없는지를 물은 것이다.
2) 여래의 대답
“대왕이여, 일체법의 관문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나아가 한량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여래께서 대답하신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물음을 따라서 간략히 답한 것이다. 다음의 “만약 보살이” 이하는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의 “중생은 품과 품마다” 이하는 결론이다.

⑴ 간략한 대답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관문觀門을 밝힌 것이고, 나중은 관해지는 법(所觀法)을 밝힌 것이다.

① 관문觀門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설해진 관문은 단지 한둘이 아니라 한량없는 문에 이른다는 것이다.

② 관의 대상

일체법은 또한 ‘유상有相’도 아니고 ‘무상이 아닌 것(非無相)’도 아닙니다.68)

두 번째는 관해지는 법을 밝힌 것이다. 단지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이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 경문에 대해 여러 설들이 다르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또한 유상도 아니고”라는 것은 단지 ‘유상’만 논파한 것이다. “무상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라는 것은 다시 ‘유상’을 논파한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상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유상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경문에서〕 ‘비비非非’라고 한 것은 ‘비무상非無相’을 말한다.69) 저 상相에 있어, 상은 법法과는 하나이지만 〔상은〕 상과는 다른 것이다. 반야의 상은 법과는 하나인데, 법이 아직 성취되지 못했을 때는 무엇이 ‘상’과 하나겠으며, 법이 이미 성취되었다면 곧 〔법이〕 상으로 나타나는 것(所相)이 아니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네 구로 만들어야 하니, 즉 유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유상이 아닌 것도 아니고, 무상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간략히 하려고 우선 처음과 마지막을 설한 것이다.≻
지금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앞의 글에 준하면 세 구가 있다. 처음에 ‘유상이 아니다(=무상이다)’라고 한다. 이렇다면 ‘무상이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무상도 아니다’라고 한다. 이렇다면 ‘무상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70) ‘무상이 아닌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은 처음 구와 마지막 구만 들었고 가운데 구는 준해서 나타내었기 때문에 단지 두 개의 구가 된 것이다.

001_0090_a_01L正定等無量品衆生有利鈍等根有
001_0090_a_02L無量或貪慢等或迷陰等無量心
001_0090_a_03L爲彼所說諸法觀門爲一爲二
001_0090_a_04L爲無量耶

001_0090_a_05L
大王乃有無量

001_0090_a_06L
釋曰第二如來正答文別有三
001_0090_a_07L隨問略答次若菩薩下廣釋後衆
001_0090_a_08L生品品下結文中有二初明觀門
001_0090_a_09L明所觀法此卽初也謂所說觀門
001_0090_a_10L但一二乃至無量

001_0090_a_11L
一切法亦非有相非非無相

001_0090_a_12L
釋曰第二明所觀法非唯一二
001_0090_a_13L說亦言然釋此文諸說不同有說
001_0090_a_14L亦非有相者單破有相非非無相者
001_0090_a_15L復破有相依本記云相不可得
001_0090_a_16L言非有相非非是非無相彼相者
001_0090_a_17L與法一與相異般若相與法一
001_0090_a_18L未成就誰與相一若已成就卽不
001_0090_a_19L所相有云應作四句謂非有相
001_0090_a_20L無相非非有相非非無相爲存略故
001_0090_a_21L且說初後今解准上有三句一非
001_0090_a_22L有相若爾應是無相故言非無相
001_0090_a_23L爾非應是非無相故言非非無相
001_0090_a_24L擧初後准顯中句故但二句

001_0090_b_01L
⑵ 자세한 해석

만약 보살이 중생을 봄에 하나라고 보고 둘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곧 하나라고 보는 것도 아니고 둘이라고 보는 것도 아니니, 하나이자 둘인 것이 바로 제일의제입니다. 대왕이여, 유有나 무無는 곧 세제입니다.71)

이하는 두 번째로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제二諦에 의거해서 제법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다음은 삼제三諦에 의거해서 제법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은 삼가三假에 의거해서 제법의 공함을 판별한 것이다.

① 이제二諦에 의거한 해석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보살이 중생을 하나나 둘로 본다면 이는 속제이고, 하나나 둘로 보지 않으면 이는 진제이다. 지금은 속제가 곧 진제임을 밝히기 때문에 “하나이자 둘인 것이 바로 제일의제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왕이여, 유나 무는 곧 세제입니다.”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유와 무는 속제에 해당하고,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 진제에 해당한다. 지금은 바로 속제를 나타내기 때문에 “유와 무는 곧 세제입니다.”라고 하였다. 혹은 ‘유’란 색제色諦와 심제心諦이고, ‘무’란 공제空諦라고 볼 수도 있다.

② 삼제三諦에 의거한 해석

삼제三諦가 일체법을 포괄하니,

이하는 두 번째로 삼제에 의거해서 제법을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삼제가 일체법을 포괄함을 설명한 것이다. 다음은 삼제의 이름을 나열한 것이다. 마지막은 교설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가) 일체법을 포괄함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나) 삼제의 이름

〔삼제란〕 공제空諦와 색제色諦와 심제心諦입니다.

두 번째는 삼제의 이름을 나열한 것이다. ‘삼제’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공제이니, 제일의제를 말한다. 둘째는 색제이니, 오근五根 등을 말한다. 셋째는 심제이니, 안식眼識 등 여섯 가지 식을 말한다. 이제의 문에서 볼 때는 처음의 하나는 진제이고 나중의 두 개는 속제이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본기』의 설과 같다.

다) 증명

따라서 나는 일체법이 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했습니다.

세 번째는 교설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③ 삼가三假에 의거한 해석

나(我)도 남(人)도 지知도 견見도 오수음五受陰도 공하고 내지는 일체법이 공합니다.

001_0090_b_01L
若菩薩第一義諦也

001_0090_b_02L
釋曰自下第二廣釋文別有三
001_0090_b_03L依二諦顯諸法相次依三諦顯諸
001_0090_b_04L法相後就三假辨諸法空此卽初
001_0090_b_05L謂若菩薩觀衆生一二是俗諦
001_0090_b_06L見一二是眞諦今明俗卽眞故言一
001_0090_b_07L二者是第一義諦也1)大王若有若
001_0090_b_08L無者卽世諦也據實有無卽是俗諦
001_0090_b_09L非有非無卽是眞諦今正顯俗
001_0090_b_10L言有無者卽世諦也或可有者色諦
001_0090_b_11L心諦無者空諦

001_0090_b_12L
以三諦攝一切法

001_0090_b_13L
釋曰自下第二就三諦以明諸法
001_0090_b_14L別有三初明三諦攝一切法次列三
001_0090_b_15L諦名後引說證成此卽初也

001_0090_b_16L
空諦色諦心諦

001_0090_b_17L
釋曰第二列三諦名言三諦者
001_0090_b_18L空諦謂第一義諦二色諦謂五根
001_0090_b_19L三心諦謂眼等六識二諦門中
001_0090_b_20L初一是眞後二是俗若廣分別如本
001_0090_b_21L

001_0090_b_22L
故我說一切法不出三諦

001_0090_b_23L
釋曰第三引說證成

001_0090_b_24L
我人一切法空

001_0090_c_01L
세 번째는 삼가三假에 의거해서 공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나와 남과 지와 견’은 명가名假이기 때문에 공하고, ‘오수음’은 수가受假이기 때문에 공하며, 일체법은 법가法假이기 때문에 공하다.

⑶ 결론

중생은 품과 품마다 근根과 행行이 같지 않기 때문에,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법문이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결론지어 대답한 것이다.
『본기』에서는 ‘이치상으로 논하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속제는 한량없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본래 질문에는 세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인가, 둘인가, 한량없는가’ 하는 것이다. 모두 속제의 뜻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4. 경의 공덕에 대한 찬탄
대왕이여, 일곱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설하셨고 내가 지금 반야바라밀을 설하였으니, 그것은 둘도 없고 다름도 없습니다. 그대 대중들도 마땅히 수지하고 독송하며 해설해야 합니다.72)

이하는 네 번째로 경의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과거〕 일곱 부처님(七佛)이 똑같이 설했음을 밝히면서 대중에게 수지하라고 권하였다. 다음의 “이 경의” 이하는 많은 부처님들(多佛)이 똑같이 설함을 밝히면서 경을 찬탄하고 수지할 것을 권하였다. 마지막의 “하물며 다시” 이하는 지금의 부처님(今佛)의 설에 의거해서 대중에게 수지하라고 권하였다.
1) 7불七佛의 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똑같이 설하셨음을 밝힌 것이고, 나중의 “그대” 이하는 대중에게 수지하라고 권한 것이다.
2) 다불多佛의 설
이 경의 공덕으로, 한량없는 불가설 불가설의 제불이 있고,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이 한량없는 불가설의 중생을 교화하여 하나하나의 중생이 다 성불을 얻고, 이 부처님이 다시 한량없는 불가설의 중생을 교화하여 〔그 중생들이〕 다 성불을 얻습니다. 이상의 세 부처님들이73) 반야바라밀경의 팔만억 게偈를 설하였으니, 이 하나의 게를 다시 천분千分으로 나누어 그 1분 중에 1분의 구의句義를 설하는 것도 다 끝마칠 수가 없는데,

두 번째는 많은 부처님들이 똑같이 설함을 밝히면서 대중들에게 수지하라고 권한 것이다. 경문이 분명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서술하지 않겠다.
3) 금불今佛의 설
하물며 다시 이 경에 대해 한 생각의 믿음을 일으키는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이 모든 중생은 백겁 천겁의 십지十地 등의 공덕을 뛰어넘습니다. 하물며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는 자의 공덕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곧 시방의 제불과 똑같아서 차이가 없으니, 이 사람이 곧 여래이고 머지않아 부처가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지금의 부처님의 설에 의거해서 대중에게 수지하라고 권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대중에게 수지하라고 권한 것이다. 나중은 당시 대중이 이익을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⑴ 수지의 권유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⑵ 대중의 이익

이때 모든 대중들이 이 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서, 십억 사람이 삼공인三空忍을 얻었고, 백만억 사람이 대공인大空忍과 십지의 성품(十地性)을 얻었다.

두 번째는 당시 대중이 이익을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삼공三空’이란 삼가의 공함(三假空)을 말하니, 십지 이전의 사람이 관하는 것이다.

001_0090_c_01L
釋曰第三依三假以明空相我人知
001_0090_c_02L名假故空五受陰受假故空
001_0090_c_03L切法法假故空也

001_0090_c_04L
衆生品品非二法門

001_0090_c_05L
釋曰第三結答本記云理論非一
001_0090_c_06L非二俗乃無量者不然本問有三
001_0090_c_07L一爲二爲無量皆依俗義

001_0090_c_08L
大王無二二無別

001_0090_c_09L
釋曰自下第四讚經德文別有三
001_0090_c_10L明七佛同說勸衆受持次是經下
001_0090_c_11L多佛同說讚經勸持後況復下依今
001_0090_c_12L佛說勸衆受持此卽初也文有二節
001_0090_c_13L初明同說後汝等下勸衆受持

001_0090_c_14L
是經功德不可窮盡

001_0090_c_15L
釋曰第二多佛同說勸衆受持
001_0090_c_16L顯可知故不繁述

001_0090_c_17L
況復得佛不久

001_0090_c_18L
釋曰第三依今佛說勸衆受持
001_0090_c_19L別有二初勸衆受持後時衆得益
001_0090_c_20L卽初也

001_0090_c_21L
時大衆十地性

001_0090_c_22L
釋曰第二時衆得益若依本記
001_0090_c_23L「大王…空諦」五十二字依底本爲經文然乙
001_0090_c_24L本爲釋文今從乙本{編}

001_0091_a_01L‘대공大空’이란 십지에 오른 자가 관하는 것이다. 혹은 ‘삼공’이란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이라 할 수도 있다.74)
5. 경의 이름에 대한 찬탄
“대왕이여, 이 경을 ‘인왕문반야바라밀경仁王問般若波羅蜜經’이라 이름하니, 그대들은 반야바라밀경을 수지하시오.

다섯 번째는 이름을 찬탄하며 수지를 권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면서 수지를 권한 것이다. 다음은 이명異名을 거듭 찬탄한 것이다. 마지막은 비유를 들어 수지를 권한 것이다.
1) 이름의 표시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2) 다른 이름들에 대한 찬탄
이 경에는 다시 한량없는 공덕이 있으니, 국토를 수호하는 공덕이라 하고, 또한 모든 국왕의 법약法藥으로서 복행服行해서 크게 쓰이지 않음이 없는 〔공덕,〕 집을 수호하는 공덕, 또한 모든 중생의 몸을 수호하는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경의 다른 이름들을 거듭 찬탄한 것이다. 이름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호국護國이고, 둘째는 법약法藥이며, 셋째는 호사護舍이고, 넷째는 호신護身이다.
3) 비유
이 반야바라밀이 국토를 수호하는 것은 마치 성의 참호, 성벽, 칼, 창·방패와 같은 것이니, 그대가 반야바라밀을 수지해야만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세 번째는 비유를 들어 수지를 권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법을 설했고, 다음은 비유를 들었으며, 마지막의 “그대가 …” 이하는 법동품의 비유(法同喩)를 든 것이다.75)

001_0091_a_01L空者三假空也地前觀大空者
001_0091_a_02L地也或可三空者空無相無願

001_0091_a_03L
大王般若波羅蜜

001_0091_a_04L
釋曰第五讚名勸持文別有三
001_0091_a_05L標名勸持次重讚異名後擧喩勸持
001_0091_a_06L此卽初也

001_0091_a_07L
是經復有一切衆生身

001_0091_a_08L
釋曰第二重讚異名名有四種
001_0091_a_09L護國二法藥三護舍四護身

001_0091_a_10L
卽此般若亦復如是

001_0091_a_11L
釋曰第三擧喩勸持文別有三
001_0091_a_12L法說次擧喩後汝等下擧法同喩
001_0091_a_13L仁王經疏中卷末

001_0091_a_14L
001_0091_a_15L
元久二年朱明四月十日書寫了同月
001_0091_a_16L十一日交點已了傳領醫海傳領覺
001_0091_a_17L唐招提寺五室住侶宗祐

001_0091_b_01L
  1. 1)『仁王經疏』(H1, 83c)에는 ‘本生清淨’이라 되어 있는데, 本生은 本性의 오기인 듯하다. 참고로 양분良賁의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疏』권2(T33, 482b27)에도 이와 동일한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言眞諦者 實相眞如 本性清淨 實而非假 故名眞諦’라고 되어 있다.
  2. 2)이것은 ‘세속世俗(ⓢsaṃvṛti)’의 어원적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범어 ‘삼브리띠’는 어원적으로 다의적이고 또 학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언어적 표시(ⓢvyavahāra)’, ‘시설施設(ⓢprajñapti)’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 단어들은 모두 ‘가립된 언어·명칭’을 뜻한다. 예를 들어 세속제의 차원에서 가립된 색법이나 심법 등과 같은 이름들은 현상적 존재들을 현시하는 기능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참된 진리의 세계를 은폐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3. 3)원측소에서 두 단어 이상의 복합어가 ‘A卽B’인 관계로 분석되면 모두 지업석持業釋(ⓢkarmadhāraya)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世俗’이라는 복합어는 ‘世(은폐) 그 자체가 俗(현시)’인 관계로 해석된다. 이것은 범어에서는 서로 성性·수數·격 등이 같은 두 개 단어가 복합어를 이룬 경우이다.
  4. 4)원측소에서 두 단어 이상의 복합어가 ‘A之B’인 관계로 분석되면 모두 의주석依主釋(ⓢtatpuruśa)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勝義(ⓢparamārtha)’라는 복합어가 ‘勝(수승한 지혜)의 義(경계)’로 해석되는 경우는 의주석이다. 이것은 범어에서는 서로 격이 다른 두 개의 단어가 복합어를 이루는 경우인데, 이때 앞의 수식하는 단어가 소유격일 수도 있고 그 밖에 처격 등 다양한 격을 취할 수도 있다.
  5. 5)예를 들어 사성제의 고제苦諦에 대해 고苦·공空·비아非我·무상無常 등의 4가지 행상을 설하거나, 혹은 승의제勝義諦에 대해 ‘이언무이離言無二’ 등의 5상相을 설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이 설해진 상들을 잘 관찰하고 사유함으로써 궁극의 과果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상을 갖는 것을 모두 ‘진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瑜伽師地論』 권55 「攝決擇分」(T30, 605b19) 참조.
  6. 6)대수석帶數釋(ⓢdvigu)이란 예를 들어 ‘8식’ 이나 ‘3습기’처럼 두 단어 이상의 복합어에서 앞의 단어가 숫자로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7. 7)첫 번째는 유有·무無의 문에 의거해서 대답한 것이다. 범부의 분별하는 마음에서 보면, 도리道理도 실재하고 사법事法도 실재한다. 그런데 도리는 ‘가립된 실재(假有)’로서 공은 아니므로 ‘유제有諦(=世諦)’라고 하고, 사법은 ‘실로 없는 것(實無)’으로서 바로 공이므로 ‘무제無諦’라고 한다. 방편적 지혜(後得智)의 차원에서 보면, 세제(=假有)는 항상 세제이고 무제(=實無)는 항상 무제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성인의 비춤(聖照) 즉 근본지根本智의 차원에서 보면, ‘가유’와 ‘실무’의 구분도 부정되므로 ‘둘이 아니다’라고 한다. 말하자면 ‘가유’란 세간적 언어(名)에 의거해서 가립된 것이므로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고, 또 범부의 집착 속에 존재하는 ‘실유’란 본래 없는 것이므로 그것의 부정인 ‘실무’라는 것도 본래 성립하지 않는다. 『瓔珞本業經疏』 권2(X39, 248b23) 참조.
  8. 8)두 번째는 이二·불이不二의 문에 의거해서 대답한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仁王經疏』(H1, 84a)의 문장은 ‘有佛無佛法界不變 法常清淨故不二’인데, 중간에 많은 글자가 누락되어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8b26)에 의거해서 이 문장을 “有佛無佛 法界不變[故不空 第一無二故不有 無佛有佛 法界二相故不一 諸]法常清淨故不二”로 수정하였다. 여기서는 앞서 언급했던 ‘가유’와 ‘실무’의 구분(分齊)이 있는 것을 ‘세제世諦’라고 하고, 그러한 유·무가 모두 공한 평등한 일미一味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 한다. 부처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이 법계에서 항상 유무의 차별적 상이 교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제는 제일의제와는 하나가 아니고, 유와 무의 구분은 언설에 의한 것일 뿐 본래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제는 제일의제와 더불어 둘인 것도 아니다. 『瓔珞本業經疏』 권2(X39, 248c11) 참조.
  9. 9)세 번째는 인연因緣의 문에 의거해서 대답한 것이다. 제불은 중생의 근기와 인연을 따라서 육도六道에 들어가니, 이러한 감응인연感應因緣의 회합은 ‘무가 아니므로(不無)’ 그것을 ‘유제有諦’라고 한다. 또 이 인연은 ‘무’가 아니지만 여기서 다시 ‘유’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유무가 모두 없음을 일컬어 ‘무제無諦’라고 한다. 이 무제의 공은 진실한 것이므로 유제와 더불어 하나가 아니고, 유제의 법이 본래 생함이 없으므로 무제와 더불어 둘이 아니다. 『瓔珞本業經疏』 권2(X39, 248c23) 참조.
  10. 10)네 번째는 가명假名의 문에 의거해서 대답한 것이다. 여기서는 삼가三假에 의거해서 세제와 무제의 불일불이에 대해 논하였다. 명가名假·법가法假·수가受假가 모여서 존재하는 것을 세제라고 하고, 제법의 실상을 제일의제라고 하였다. 그런데 명가는 분별성分別性(=변계소집성)으로서 이름에 의거해서 제법의 상相을 건립한 것이고, 법가와 수가는 의타성依他性으로서 단지 ‘인·법과 유사한 것(似人似法)’일 뿐 실재가 아니다. 따라서 제법이 곧 제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삼가의 법’은 ‘법’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제일의제와 다르지(二) 않고, 비록 법은 아니지만 ‘법이 아닌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는 제일의제와 동일하지도 않다. 『瓔珞本業經疏』 권2(X39, 249a12) 참조.
  11. 11)『菩薩瓔珞本業經』 권2 「佛母品」(T24, 1018b24).
  12. 12)『仁王經疏』(H1, 84b)에는 ‘如此第二’라고 되어 있는데, 此는 次의 오기인 듯하다.
  13. 13)원측은 비바시불 이전의 한 부처님을 추가해서 7불을 언급하였는데, 그 전거를 찾을 수 없다. 칠불의 명칭은 경론마다 다른데, 예를 들어 『七佛經』 권1(T1, 150a18)에 나열된 과거7불過去七佛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①비바시불毘婆尸佛(ⓢVipaśyin), ②시기불尸棄佛(ⓢŚikhin), ③비사부불毘舍浮佛(ⓢViśvabūṃ), ④구류손불拘留孫佛(ⓢKrakucchanda), ⑤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Kanakamuni), ⑥가섭불迦葉佛(ⓢKāśyapa), ⑦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Sākyamuni).
  14. 14)『仁王經疏』(H1, 84b)에는 ‘卽云不一’이라 되어 있는데,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卽과 一 사이에 글자가 많이 누락된 듯하다. 전후 문맥상 이것은 ‘卽是不二 一云 不一(卽是二諦~)’로 수정해야 한다.
  15. 15)진제의 『본기』에서는 ‘설함도 있고 들음도 있다’는 것이 둘(=不一)에 해당한다고 했는데, 이런 견해는 그 이후에 나온 두 가지 설 중 전자, 즉 ‘하나 아님(二)이란 이제의 차별을 뜻한다’는 견해와 상충된다는 것이다.
  16. 16)‘王今’이라는 두 글자는 현존하는 구마라집 역에는 나오지 않는다.
  17. 17)자세히 듣는다는 것은 문혜聞慧에 해당하고, 잘 사유한다는 것은 사혜思慧에 해당하며, 법에 맞게 수행한다는 것은 수혜修慧에 해당한다.
  18. 18)구마라집 역 『仁王般若波羅蜜經』 권1(T8, 829a12)에는 ‘無性’으로 되어 있는데, 원측의 해석에는 無相으로 되어 있다.
  19. 19)‘諸有本有法’이란 문구는 인연으로 생겨난 법들을 가리킨다. ‘本有法’이라 한 것은 앞의 게송에서 “인연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이라고 했던 것과 연관된다. 인연 자체가 본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인연에 의해 생겨난 유위법들도 ‘본유법’이라고 표현하였다.
  20. 20)‘명名’은 현상적 존재들에 붙여진 가짜 이름(假名)을 말하고, ‘상’이란 모든 현상적인 유위법들의 차별적 형상을 가리키며, 이 이름과 형상의 결합 관계에 의거해서 언설희론을 일으킨다. 가령 색·수·상·행·식 혹은 중생 등의 이름과 형상은 모두 가립된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법가·수가·명가라는 세 가지 가에 의거해서 시설된 것이다.
  21. 21)원측은 “세 가지 가가 모인 가유라네.”라는 마지막 구는 속제와 진제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했는데, 이하에 진술된 한 해석에 따르면 오직 속제의 유에 관련된 진술이라고 볼 수도 있다.
  22. 22)명名·상相이 의타기에 속한다고 한 것은 이것이 인연으로 이루어진 가유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식의 오사五事 즉 명名·상相·분별分別·정지正智·진여眞如를 삼성三性과 연관시켜 논할 때는 명과 상이 각기 어떤 자성에 속하는지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해석들 가운데서, 가령 ‘명’은 번뇌 있는 마음에 나타난 언어적 표상이고 ‘상’은 그 언어에 의해 현현되는 대상의 표상이며, ‘분별’이란 명·상에 의거해서 사물의 차별적 상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러한 명과 상과 분별은 의타기의 식識의 세 가지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모두 의타기성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成唯識論』 권8(T31, 46c29) 참조.
  23. 23)삼가三假에 대해서는 「서품」의 ‘법가허실관法假虛實觀’ 등에 대한 해석 참조.
  24. 24)이전의 두 가지 ‘무’가 안립제安立諦 즉 이름(名)·형상(相)을 통해 시설된 진리라면, 이와는 달리 ‘적멸한 제일의공’이란 비안립제非安立諦 즉 상대적 차별을 초월하여 언어·형상으로 표시되지 않는 진리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25. 25)세 개의 게송이란 ‘無相第一義 無自無他作 …… 諸法因緣有 有無義如是’까지를 말한다.
  26. 26)제1송에서는 무상無相의 진제와 인연因緣의 속제, 제2송에서는 진실한(實) 진제와 가립된(假) 속제, 제3송에서는 무無의 진제와 유有의 속제로 구분하여 이제를 설했다는 것이다.
  27. 27)구마라집 역 『인왕반야바라밀경』 권1(T8, 829a16)에는 ‘本自’로 되어 있다.
  28. 28)‘조해照解’란 관조하는 지혜, 즉 ‘관해觀解’와 같은 뜻이다.
  29. 29)‘하나의 여래(一如來)’라는 것은 문맥상 어색하다. 이전의 해석에는 궁극의 제일의공第一義空은 ‘한맛의 진여(一味如)’라는 문구들이 나오는데, 이에 따를 때 ‘한맛의 진여’ 혹은 ‘하나의 진여(一眞如)’의 오기인 듯하다.
  30. 30)이 게송에 대해 원측과 천태는 특별한 설명이 없다. 그런데 길장吉藏에 따르면, 앞의 반 송은 세제世諦를 설명한 것이고 뒤의 반 송은 진제眞諦를 설명한 것이다. 중생과 객관 경계들이 모두 환과 같아서 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허깨비(幻化)가 허깨비를 본다’고 하였다. 이처럼 환이 환을 보는 중생의 세계를 ‘환제幻諦’라고 하니 곧 세제에 해당한다. 반면에 성인은 이 삼계의 법을 보면서 이것이 모두 허망한 환과 같음을 알기 때문에 ‘환술사가 환법을 본다’라고 하였다. 미혹되었기 때문에 ‘있다’고 보지만, 성인은 미혹을 끊고 관조하여 그 환법들이 진실(諦實)에 있어서는 모두 ‘없음’을 안다. 길장의 『仁王般若經疏』 권4(T33, 340b25).
  31. 31)『維摩詰所說經』 권1(T14, 540a18).
  32. 32)『仁王經疏』(H1, 86b)에는 ‘佛及衆生至一而無二’라고 되어 있는데, 가운데 至는 삭제해야 한다.
  33. 33)이제의 법이 공하여 결국엔 청정한 것을 가리켜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길장吉藏, 『仁王般若經疏』 권4(T33, 342a12) 참조.
  34. 34)육안肉眼과 천안天眼과 법안法眼과 혜안慧眼과 불안佛眼이라는 다섯 가지 눈 중에서 뒤의 세 가지, 즉 법안과 혜안과 불안은 공통적으로 혜慧를 체로 삼는다. 특히 마지막 불안은 성불했을 때 성취되는 눈으로서 앞의 네 가지 눈이 부처님의 몸에 있는 경우 불안이라고 한다. 이 오안에 대해서는 「서품」의 보살마하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경문과 그에 대한 해석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다.
  35. 35)“제일의에서는 둘이 아니기 때문이고”라고 한 것은 부정의 방식으로 나타낸 것 즉 차전遮詮에 해당하고, “제불여래 내지는 일체법이 여여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은 긍정의 방식으로 나타낸 것 즉 표전表詮에 해당한다.
  36. 36)십이부경十二部經은 부처님의 일대교설을 그 경문의 성질과 형식에 따라서 열두 종류로 구분한 것이다. ①수다라修多羅(ⓢsūtra)는 법본法本 또는 계경契經으로 번역하며, 이는 산문체의 경전에 해당한다. ②기야祇夜(ⓢgeya)는 중송重誦이라고도 하며, 산문체의 경문 뒤에 그 내용을 거듭해서 운문으로 노래한 것이다. ③화가라나和伽羅那(ⓢvyākaraṇa)는 수기受記라고 하며, 문답으로 해석한 것이나 혹은 제자의 다음 세상에 날 곳을 예언한 것을 가리킨다. ④가타伽陀(ⓢgāthā)는 불송게不誦偈 또는 풍송諷誦이라 하며, 4언·5언·7언의 운문을 말한다. ⑤우다나憂陀那(ⓢudāna)는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 하며, 다른 이가 질문하지 않았는데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신 것을 가리킨다. ⑥니다나尼陀那(ⓢnidāna)는 연기緣起라고 하며, 경 중에서 부처님을 만나 설법을 듣게 된 인연을 설한 곳을 가리킨다. ⑦아바다나阿婆陀那(ⓢavadāna)는 비유譬喩라고 하며, 비유를 통해 은밀한 교리를 밝힌 곳을 가리킨다. ⑧이제우다가伊帝憂多伽(ⓢitivṛttaka)는 본사本事라고 하며, 부처님과 제자들의 지난 세상 인연을 말한 곳이다. ⑨사다가闍多伽(ⓢjātaka)는 본생本生이라 하며, 부처님 자신이 지난 세상에서 행했던 보살행을 설한 곳이다. ⑩비불략毘佛略(ⓢvaipulya)은 방광方廣이라 하며, 광대한 진리를 설한 곳이다. ⑪아부다단마阿浮陀檀摩(ⓢadbhuta-dharma)는 미증유未曾有라고 하며, 부처님이 여러 신통력을 나타내는 일에 대해 설한 것이다. ⑫우파제사憂波提舍(ⓢupadeśa)는 논의論議라고 하며, 교법의 이치(義理)를 논의하고 문답한 글을 가리킨다.
  37. 37)앞에 나왔던 산문체의 경문(=長行)을 다시 운문으로 거듭해서 노래하는 ‘중송重頌’과는 달리, 이 풍송은 독자적 운문을 통해 곧바로 교의를 설한 것이다.
  38. 38)이하의 『본기』의 해설에 따르면, 이 경문은 “名味句도 音聲도 果인 文字記句도 一切가 如입니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런데 원측의 해석은 그와는 다르다. 그에 따르면, 명名·미味·구句가 바로 음성의 과(聲果)이다. 그 이유는 말소리(音聲) 상의 특정한 음운 굴곡에 의거해서 명·구·문(=미)을 가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39. 39)진제의 『본기』에서는 위의 경문을 ‘名·味·句, 音聲, 果, 一切如’로 구분하여 각기 應說과 正說과 能說과 依說을 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성전의 언어를 네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 것인데,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 있다. 명미구 즉 응설이란 중생에 응해서 장차 설하려고 했던 언어를 가리키고, 음성 즉 정설이란 입으로 실제로 발성되어진 음성의 설법을 가리키며, ‘과’ 즉 능설이란 그러한 음성적 설법의 결과로서 생겨나게 된 다양한 문자 언어들을 가리키고, ‘일체여’ 즉 의설이란 그러한 설법의 궁극적 근거(所依)가 되는 진여의 이치를 가리킨다. 참고로 길장의 『仁王般若經疏』 권중(T33, 342a6)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분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명미구는 응설이다. 둘째로 음성은 정설이다. 음성이란 흉부·목구멍·혀·이빨·입술·코·머리 등을 움직임으로 인해서 비로소 음성의 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과보는 능설이다. 넷째로 일체의 여여함이란 설해지는 바의 소의(所說依)이니, 이 설에는 실로 설해질 만한 법이 없는 것이다.”
  40. 40)교체란 성전 언어의 본질을 가리킨다. 원측은 교체를 실재의 음성과 가립의 명구문을 중심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진제의 『본기』의 해석과는 달리 위의 경문 해석에서도 음성과 명구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해석하였다.
  41. 41)이것은 『仁王般若波羅蜜經』 권1 「觀空品」(T8, 826a24)에 나온 “大王 是經名味句 百佛千佛百千萬佛說名味句”라는 경문을 가리킨다. ‘부처님들이 직접 설하신 명·미·구’라고 한 것에 근거해서, 원측은 이 경에서 ‘명·구·문과 성’이라는 네 가지 법을 가르침의 본질(敎體)로 간주했다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서두의 ‘교체’에 관한 논의에서 이미 자세하게 진술된 것이다.
  42. 42)이 경문은 ‘(1) 설법의 공함’ 즉 이타행의 공함을 설하는 과목으로 되어 있는데, 이 경문의 뜻이 애매해서 주석가들의 견해도 각기 다르다. 원측은 ‘문자를 취하는 것은 마치 12부경들과 마찬가지로 공을 행하지 않는 것’이라 했는데, 여기서 ‘공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설법의 공함’을 강조한 일종의 역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십이부경과 그 모든 문자들이 여여하지만, 한편 그것들은 모두 문자를 시설한 것이므로 이타행의 일환으로서 오히려 ‘공을 행하지 않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문자를 취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12부部의 경우와 같은 의미에서 ‘공을 행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길장吉藏은 이 경문에서는 ‘문자의 성리性離’를 알지 못하고 그에 집착하는 반대 경우를 들어서 문자의 공함을 나타냈다고 보았다. 다른 한편, 천태天台는 불행공不行空과 행공行空을 대비시켜 오히려 후자가 정관正觀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에 따르면 ‘공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지 문자에 집착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에 집착하지 않는 행’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길장의 『仁王般若經疏』 권2(T33, 342a11), 천태의 『仁王護國般若經疏』 권5(T33, 279b20) 참조.
  43. 43)이하에서는 진제의 『본기』 중에서 ‘⑵ 수행의 공함’과 연관된 내용 전체를 진술하였는데, 원측은 이와는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앞에서 미리 전부 소개한 것이다. 이하의 『본기』의 해석은 『인왕경』의 경문으로는 “大王 如如文字修諸佛智母 一切衆生性根本智母 即爲薩婆若體 諸佛未成佛 以當佛爲智母 未得爲性 已得爲薩婆若 三乘般若 不生不滅 自性常住 一切衆生 以此爲覺性故 若菩薩無受無文字 離文字 非非文字 修無修爲修文字者 得般若眞性般若波羅蜜 大王 若菩薩護佛護化衆生 護十地行 爲若此”에 대한 것이다.
  44. 44)이것은 ‘一切衆生性根本智母’라는 경문을 중생의 性과 根과 智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다.
  45. 45)살바야각薩婆若覺이란 「교화품」에서는 ‘살운야각薩云若覺’이라 했는데, 이에 대해 원측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운야각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살바야는 일체지一切智라고 하고 살운야는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한다. 그러나 진제의 『본기』에 의하면 모두 ‘일체지’라고 번역한다.”
  46. 46)이상에서는 지위에 의거해서 불성을 세 종류로 나누었는데, 이러한 구분은 『佛性論』 등에 근거한 것이다. 성불성性佛性은 견도 이전의 범부 지위에 있을 때, 중생이 아직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가리킨다. 인출불성引出佛性이란 발심하고 나서 금강심金剛心에 이르기까지 성도를 닦는 유학의 지위에서, 수습과 지혜와 선정의 힘에 의지해서 본유하는 불성이 이끌려 나온 것을 가리킨다. 지과불성至果佛性이란 무학의 지위에서 수행이 완전히 충족되어 그 과성果性이 분명하게 현현한 상태를 말한다. 『佛性論』 권4(T31, 808b17), 『攝大乘論釋』 권7(T31, 200c23) 참조.
  47. 47)수왕불樹王佛이란 『法華經』에서 언급된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을 가리킨다. 무량 아승기겁의 과거세에 묘장엄왕妙莊嚴王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외도를 신봉하여 바라문의 법에 집착하다가 그의 부인과 두 아들이 모두 불법佛法을 믿는 것을 보고 그 아들의 인도를 받아 불도에 귀의하였다. 후에 부처님이 왕을 위해 설법하시고 그에게 기별을 내려서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여 사라수왕娑羅樹王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였다. 『妙法蓮華經』 권7 「妙莊嚴王本事品」(T9, 59b28) 참조.
  48. 48)이 단락에서는 여러 종류의 ‘삼승’에 대해 논했는데, 이는 수행의 차원에서는 삼승의 행이 차이가 있지만 그 본성 또는 불성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49. 49)『仁王經疏』(H1, 88b)에는 ‘無分別故波羅蜜’이라 되어 있는데, 다음의 문구들과 대조할 때 故는 삭제해야 한다.
  50. 50)이상은 『본기』의 내용에 해당한다.
  51. 51)‘수성修性의 지모智母’는 성도聖道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불성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치 곡식의 종자에서 뿌리와 싹이 나오듯 수용신의 일체지를 직접 발생시키는 원인이라는 점에서는 생인生因이라 한다. 또한 그것은 마치 등불이 사물을 비추듯 이 지혜로 법성의 이치를 비춤으로써 법신이 분명하게 현현하도록 보조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요인了因이라 한다.
  52. 52)‘여如’라는 글자를 지시어로 보는 경우에는 바로 앞의 경문에서 언급된 십이부경의 수많은 문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如如文字’라는 문구는 ‘이러이러한 문자들’이라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여여’를 ‘공空’의 의미로 보는 경우는 ‘여여한 문자들’이라 번역된다.
  53. 53)진제의 『본기』에 따르면 ‘性根本智母’라는 문구는 ‘중생의 性과 根과 智’로 나누어 해석될 수도 있지만,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이 문구는 이성의 지모를 나타낸 것이다.
  54. 54)진제의 『본기』에 따르면 ‘性根本智母’라는 문구는 ‘중생의 性과 根과 智’로 나누어 해석될 수도 있지만,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이 문구는 이성의 지모를 나타낸 것이다.
  55. 55)이전의 수성修性의 지모가 성도의 수행 중에 발현된 불성이라면, 이 ‘이성理性의 지모’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여불성 자체를 가리킨다. 이 본유本有의 진여불성은 법신본각의 지과(法身本覺智果)가 현현하는 데 있어서 원리적으로 가장 바른 인(正因)에 해당한다. 한편 이성의 지모는 마치 지수화풍의 4대가 사물의 소의所依가 되어 주는 것처럼 그 수용신의 의지처(依)가 되어 주는 관계에 있으므로 수용신에 대해서는 의인依因이라 하였다.
  56. 56)여기에서 문장이 누락된 듯하다. 이후의 해석문에 준해 볼 때, 여기에 ‘나)과의 지모’라는 과목을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하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第二明果智母 於中有二 初顯果智母 後依時屬當”이라는 문구를 추가하였다.
  57. 57)아직 얻지 못했을(未得) 때는 성性이라 하고 이미 얻었을(已得) 때는 일체지一切智(=살바야)라고 한다. 성性이 지智로 되기 때문에 “이는 곧 살바야(=일체지)의 체입니다.”라고 하였다.
  58. 58)행성行性이란 앞에서 언급된 수성修性과 같은 뜻이다. 즉 성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끌려 나온 불성을 말한다.
  59. 59)『仁王經疏』(H1, 89b)에는 ‘後菩薩下重釋’으로 되어 있는데, 後 다음에 若을 추가해야 한다.
  60. 60)『仁王經疏』(H1, 89b)에는 ‘[文別有二 初釋理性 後菩薩下 重釋] 文別有二 初釋理性 後菩薩下 重釋行性’이라 되어 있는데, 전후 내용을 살펴볼 때 [ ] 부분은 연문衍文이다. 이것을 삭제하고 ‘文別有二 初釋理性 後[若]菩薩下 重釋行性’으로 수정해야 한다.
  61. 61)『仁王經疏』(H1, 87b)에는 ‘自性當住’라고 되어 있는데, 當은 常의 오기다.
  62. 62)보살의 범어는 ‘보리살타菩提薩埵(ⓢbodhisattva)’인데, 여기서 ‘보리菩提(ⓢbodhi)’는 ‘각覺’을 뜻하고, ‘살타薩埵(ⓢsattva)’는 유정有情 혹은 정진精進을 뜻한다.
  63. 63)『仁王經疏』(H1, 89b)에는 ‘修諸智母’라고 되어 있는데, 諸 다음에 佛을 추가해야 한다.
  64. 64)『仁王經疏』(H1, 89b)에는 ‘若非非文字’라고 되어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이 해석자에 따르면, 앞의 구는 ‘文字’를 부정하면서 ‘非文字’에 집착하는 경우를 논한 것이고, 이번 구는 ‘非文字’를 부정하면서 ‘非非文字’에 집착하는 경우를 논한 것이다. 따라서 ‘若非非文字’는 ‘若非文字’로 수정해야 한다.
  65. 65)『仁王經疏』(H1, 89c)에는 ‘修無修文字等者’라고 되어 있는데, 修無修 다음에 爲修를 추가해야 한다.
  66. 66)불성佛性으로서의 근이란 중생이 아직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가리키고, 도 중에서의 근이란 성도를 닦는 과정에서 인출되어 나오는 불성을 가리킨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성불성性佛性과 인출불성引出佛性, 혹은 원측의 해석에 나온 이성理性과 수성修性의 구분과 유사하다.
  67. 67)중생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었을 때, 모든 번뇌를 다 끊고 반드시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이를 ‘정정正定’이라 하고, 무간지옥에 떨어질 큰 죄를 지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자를 ‘사정邪定’이라 하며,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인연에 따라 깨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므로 ‘부정不定’이라 한다.
  68. 68)‘亦非有相’과 ‘非非無相’이라는 두 문구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데,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원측은 두 문구 중간에 ‘非無相’이 생략되었다고 보았는데, 즉 ‘亦非有相 非無相 非非無相’이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경문은 불공 역不空譯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권1(T8, 839b28)에는 ‘非相非無相 而非無量’이라고 되어 있다.
  69. 69)이 문장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지만, ‘非非無相’이라는 경문에서 非非라는 두 글자는 오자이고 정확하게는 ‘非無相’이라 해야 한다는 주장인 듯하다.
  70. 70)『仁王經疏』(H1, 90a)에는 ‘若爾非應是非無相’이라 되어 있는데, 전후 문맥상 若爾 다음의 非는 삭제해야 한다.
  71. 71)『仁王經疏』(H1, 90b)에는 ‘~至第一義諦’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至卽世諦也’로 수정해야 한다.
  72. 72)『仁王經疏』(H1, 90c)에는 ‘~至無二二無別’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至讀誦解說’로 수정해야 한다.
  73. 73)‘이상의 세 부처님들’이라 한 것은 세 종류의 다불多佛을 가리킨다. 세 종류의 다불이란 바로 앞에서 설했듯 세 차례에 걸쳐 불佛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즉 첫 번째는 ‘한량없는 불가설 불가설의 제불’이고, 두 번째는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이 한량없는 불가설의 중생을 교화하여 하나하나의 중생이 다 성불한 것’이고, 세 번째는 ‘이 부처님이 다시 한량없는 불가설의 중생을 교화하여 그 중생들이 다 성불한 것’이다. 길장吉藏의 『仁王般若經疏』 권5(T33, 343a29) 참조.
  74. 74)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을 관하는 삼매를 흔히 삼삼매三三昧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서품」의 ‘세 가지 공을 관하는 문(三空觀門)’이라는 경문에 대한 해석 참조.
  75. 75)원측의 경문 해석에서는, 앞에서 들었던 비유를 본래 주장에 결합시키는 부분을 법동유法同喩 혹은 합合이라고 한다.
  1. 1)「謂眞及俗」疑作夾註。
  2. 2)「謂第一義諦智」疑作夾註。
  3. 3)「定」疑「言」。
  4. 4)「二」下疑有「諦」。
  5. 5)「卽」下有「是不二一」{乙}。
  6. 6)「云不一」疑「是不二」。
  7. 1)「無」上疑有「無說」ㆍ「無」上有「無說」{乙}。
  8. 2)「三」下疑有「釋」{乙}。
  9. 1)「取」異作「所」{乙}。
  10. 1)「得」上疑有「必」ㆍ「得」上有「必」「乙」。
  11. 2)「來」異作「得」{乙}。
  12. 3)「乘」上疑有「小」{乙}。
  13. 4)「因」疑「用」ㆍ「因」異作「用」{乙}。
  14. 5)「有」下疑脫「二」。
  15. 1)「顯果」有脫文{乙}。
  16. 2)「文」下疑有「字」ㆍ「文」下一有「字」{乙}。
  17. 3)「答」疑「益」。
  18. 1)「大王…空諦」五十二字依底本爲經文。然乙本爲釋文。今從乙本{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