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 / 法華靈驗傳卷上

ABC_BJ_H0095_T_001

006_0542_c_01L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
법화영험전 상권法華靈驗傳 卷上
문文 1관식 사문 요원지음觀識沙門 了圓錄
총목차總目次
법화영험전 상권 法華靈驗傳 卷上
1. 소요원逍遙園의 향초(苢)가 상서를 나타내다
2. 하늘 꽃(天花)이 내려 상서를 보이다
3. 묘妙 자를 쓰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나다
4. 겨우 제목을 쓰자 이미 지옥에서 풀려나다
제1단 「서품」
1. 「서품」의 제목을 부르자 지옥이 텅텅 비다
2. 사경 용지를 사러 갔을 때 이미 천당에 태어나다
3. 왕이 머리를 풀어 진흙땅에 깔다
4. 천제天帝가 금을 하사하다
제2단 법설주 「방편품」
1. 죽은 아내가 하늘에 태어나다
2. 신인이 길을 가르쳐 주다
3. 섣달 한겨울에 연꽃이 피다
4. 부처님께서 하늘에 태어날 것을 수기受記하시다
제3단 「비유품」ㆍ「신해품」ㆍ「약초유품」ㆍ「수기품」
1. 읽은 경권은 무거우나 지은 죄 문서는 오히려 가볍다
2. 전염병이 낫고 수명은 길어지다

006_0542_c_01L[法華靈驗傳]

006_0542_c_02L1)法華靈驗傳卷上

006_0542_c_03L

006_0542_c_04L2)觀識沙門了圓錄

006_0542_c_05L3)總目次

006_0542_c_06L
卷上

006_0542_c_07L園苢呈祥天花現瑞

006_0542_c_08L妙字始成便生勝處

006_0542_c_09L題目纔寫已脫冥司

006_0542_c_10L第一段序品

006_0542_c_11L唱題之頃地獄皆空

006_0542_c_12L買紙之時天堂已化

006_0542_c_13L國王布髮天帝賜金

006_0542_c_14L第二段法說周方便品

006_0542_c_15L亡婦生天神人指路

006_0542_c_16L蓮開臘月佛記天宮

006_0542_c_17L第三段比喩品信解品

006_0542_c_18L藥草喩品授記品

006_0542_c_19L經卷重而罪案輕

006_0542_c_20L時患痊而壽笇永

006_0542_c_21L{底}順治九年全羅道寶城郡五峯山開興寺重刊
006_0542_c_22L本{甲}嘉靖十三年甲午全南高敞文殊寺重鋟
006_0542_c_23L耶山鳳棲寺留板 {乙}續藏經第二{編}乙第七套
006_0542_c_24L第四冊
撰者名補入{編}目次編者作成
006_0542_c_25L甲乙本亦有目次

006_0543_a_01L3. 밤이 대낮같이 밝아지다
4. 때맞춰 비가 내려 골고루 적시다
5. 향을 피우지 않아도 연기가 저절로 피어오르다
6. 눈을 잃고도 도리어 잘 보다
제4단 인연주 「화성유품」
1. 날짐승도 『법화경』을 듣고 인간으로 태어나다
2. 비구가 경을 외워 귀신의 난을 면하다
3. 전생에 사제지간이었음을 깨닫다
4. 전생 부모와 현생 부모를 모두 만나다
제5단 「오백제자수기품」ㆍ「수학무학인기품」
1. 들꿩이 홀연히 몸을 바꾸다
2. 염라대왕이 공경하며 기뻐하다
3. 잘 익은 우유(融酥)가 항상 그릇 속에 가득 담겨 있다
4. 호위병이 정원에 가득하다
5. 신인이 잠을 깨우고 배를 저어 주다
6. 천제가 경전을 맞아 액리장에 들여놓다
제6단 「법사품」ㆍ「견보탑품」
1. 귀신도 해치지 못하다
2. 혀가 뽑히지 않다
3. 검은 옷의 손님이 돈을 돌려보내다
4. 신선이 한 품을 독송해 달라고 청하다
5. 공중에서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들리다
6. 자리에서 향기가 나다
제7단 「제바달다품」ㆍ「권지품」
1. 몸을 연꽃의 태에 의탁하다
2. 연화좌에 이름이 내걸려 있다
3. 성승聖僧이 독송을 가르쳐 주다
4. 바다 신이 강설을 청하다
5. 집비둘기가 사람으로 태어나다
6. 귀신이 뒷간의 업보를 벗어나다
제8단 「안락행품」
1. 용천이 강설을 청하다
2. 호랑이가 흠모하다

006_0543_a_01L夜明如晝時雨普霑

006_0543_a_02L爐香不熱而自熏

006_0543_a_03L瞽叟無目而能覩

006_0543_a_04L第四段因綠周化城喩品

006_0543_a_05L羽族慣聞而便說業軀

006_0543_a_06L比丘暗誦而得離鬼難

006_0543_a_07L感悟前生之師弟

006_0543_a_08L通交二世之爺孃

006_0543_a_09L第五段五百弟子授記品

006_0543_a_10L授學無學人記品

006_0543_a_11L野雉忽爾轉身閻王聳然彈指

006_0543_a_12L融酥滿器兵衛盈庭

006_0543_a_13L神人警寢而進船

006_0543_a_14L天帝邀經而入藏

006_0543_a_15L第六段法師品見寶塔品

006_0543_a_16L鬼莫能害舌不可耕

006_0543_a_17L皀客還輸本錢仙翁特請一品

006_0543_a_18L空中彈指座上生香

006_0543_a_19L第七段提婆達多品勸持品

006_0543_a_20L身托蓮胎名標花座

006_0543_a_21L聖僧敎誦海神請聞

006_0543_a_22L鴿受人身鬼脫厠報

006_0543_a_23L第八段安樂行品

006_0543_a_24L龍天請講鬼虎欽風

006_0543_b_01L3. 학이 날아오다
4. 들꿩이 사람의 몸을 받다
5. 병의 물이 저절로 가득 채워지다
6. 기이한 향기가 널리 퍼지다
7. 경전의 글자에서 빛이 나다
8. 짐새의 독도 효력이 없어지다
제9단 「종지용출품」ㆍ「여래수량품」ㆍ「분별공덕품」
1. 경문의 빠뜨린 부분을 꿈에 일러 주다
2. 황제가 친히 시험을 보아 통과하다
3. 수명을 늘려 주고 어깨에 기록해 두다
4. 병에 맞게 약을 주다
5. 관상가가 이미 정해 주었는데 어찌 더 살기를 기약하랴
6. 천제가 도리천으로 초청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방정토로 가다
법화영험전 하권 法華靈驗傳 卷下
7. 호주湖州의 천하상좌
제10단 「수희공덕품」ㆍ「법사공덕품」
1. 무덤에서 연꽃이 피어나다
2. 혀가 경전을 외우다
3. 기와가 연꽃으로 변하여 세속 사람들을 경계하다
4. 함에 든 경전이 건초단으로 되어 물에 빠진 중생을 구하다
5. 한 번 통달하여 다시 잊지 않다
6. 머리카락을 세 번이나 잘랐는데 그때마다 저절로 자라나다
제11단 「상불경품」ㆍ「여래신력품」ㆍ「촉루품」
1. 무덤 옆에 지초芝草가 나다
2. 혀에서 연꽃이 피어나다
3. 경전에서 사리가 나오다
4. 광명이 보탑을 비추다
5. 병의 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지다
6. 천병天兵이 하늘에 가득하다
제12단 「약왕보살본사품」

006_0543_b_01L仙鶴來儀野鷄轉報

006_0543_b_02L瓶水自滿異香普熏

006_0543_b_03L經字放光鴆毒無驗

006_0543_b_04L第九段從地通出品

006_0543_b_05L如來壽量品分別功德品

006_0543_b_06L冥授補闕帝親試通

006_0543_b_07L賜壽題肩應病授藥

006_0543_b_08L相師已定豈期延壽

006_0543_b_09L天帝相邀却向西方

006_0543_b_10L卷下

006_0543_b_11L湖州天下上座

006_0543_b_12L第十段隨喜功德品法師功德品

006_0543_b_13L埋即生蓮舌常諷典

006_0543_b_14L窰瓦便作蓮花而警俗

006_0543_b_15L凾經化爲草束而拯生

006_0543_b_16L經一通而更不忘

006_0543_b_17L髮三剪而輒自長

006_0543_b_18L第十一段常不輕品

006_0543_b_19L如來神力品囑累品

006_0543_b_20L芝生墓側蓮出舌根

006_0543_b_21L舍利流出於金文

006_0543_b_22L光明照耀於寶塔

006_0543_b_23L瓶水冬溫夏冷天兵匝地盈空

006_0543_b_24L第十二段藥王菩薩本事品

006_0543_c_01L1. 스스로 자기 전생을 알다
2. 두 글자를 기억하지 못하다
3. 전단향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다
4. 부처님께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다
5. 약의 정기精氣가 품에 들어가다
6. 못의 물로 병을 고치다
7. 나병이 낫다
8. 기력이 왕성해지다
9. 급성 질병이 낫다
10. 나병(大風)에도 도움이 되다
제13단 「묘음보살품」
1. 죽은 어머니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다
2. 신인이 와 허공에 머물러 경을 듣다
3. 물도 떠내려 보내지 못하다
4. 시체에서 냄새가 나지 않다
5. 범이 울부짖어 도적을 물리치다
6. 글자가 금 글씨로 변하다
제14단 「(관세음보살)보문품」
1. 불도 태우지 못하다
2.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다
3. 나찰귀의 환란을 모면하다
4. 폭풍이 배에 휘몰아치다
5. 칼로 내리쳤으나 칼이 조각조각 부러지다
6. 칼과 쇠사슬이 저절로 벗겨지다
7. 도적이 해치지 못하다
8. 아들을 소원하여 낳다
9. 몸을 나타내 법을 설하다
10. 소녀의 몸을 나타내다
11. 비구니의 몸을 나타내다
제15단 「다라니품」ㆍ「묘장엄품」ㆍ「보현보살권발품」
1. 귀신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다
2. 귀신이 머리를 조아리다
3. 염라대왕이 도솔천으로 보내다
4. 보살이 여섯 이빨의 코끼리를 타고 오시다
제16단
1. 어린 비구니가 『법화경』을 외우다
2. 시녀가 저승에서 범어 경전을 배워 오다
3. 뱃사람이 보호해 건네주다
4. 하늘 음악을 울리며 와서 맞이하다

006_0543_c_01L自識前身難通二字

006_0543_c_02L檀香遠達佛手親摩

006_0543_c_03L藥精入懷池水療病

006_0543_c_04L癩瘡即愈氣力鬱增

006_0543_c_05L急疾乃瘳大風亦利

006_0543_c_06L第十三段妙音菩薩品

006_0543_c_07L亡母脫苦神人住空

006_0543_c_08L水不能漂屍不生臭

006_0543_c_09L虎吼退賊字化爲金

006_0543_c_10L第十四段普門品

006_0543_c_11L火不能燒水不能漂


006_0543_c_12L脫羅刹難黑風吹其船舫

006_0543_c_13L刀段段壞
枷鏁自脫


006_0543_c_14L賊不能害
求男得男

006_0543_c_15L現身說法顯童女身

006_0543_c_16L顯比丘尼身

006_0543_c_17L第十五段多羅尼品

006_0543_c_18L妙莊嚴王品普賢勸發品

006_0543_c_19L崇自出竇鬼乃扣頭

006_0543_c_20L閻王指送第四天

006_0543_c_21L菩薩來乘六牙象

006_0543_c_22L第十六段

006_0543_c_23L幻尼誦出眞詮侍女冥通梵部

006_0543_c_24L舟人護涉天樂來迎

006_0544_a_01L5. 홍변 스님이 정성 들여 쓴 『법화경』을 깊이 공경하다
6. 최 목사가 미친 아이의 노래를 알아듣고 경찬법회를 베풀다
7. 입에서 광명이 나오다
8. 혀에서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다
9. 보암사의 신도들이 혹은 강설하고 혹은 질문을 주고받다
10. 연화원에서 읽고 설하다
11. 진기한 새가 상서를 나타내다
12. 죽은 누이가 징험을 알려 주다
제17단
1. 『법화경』을 독송한 혀가 오래도록 그대로 남아 있다
2. 경전이 불에 탔으나 변하지 않다
3. 경전에 한 글자도 보이지 않다
4. 손톱에 다섯 송이 꽃이 피다
발문
[序文]
『법화경』의 영험전으로는 당나라 때 남곡藍谷 사문 혜상慧詳이 엮은 『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1) 10권과 송나라 때 사명四明 사문 종효宗曉2)가 엮은 『현응록顯應錄』3) 4권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에 진정 국사眞淨國師4)가 엮은 『해동전홍록海東傳弘錄』5) 4권이 있다. 이제 이들 세 가지 책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중에서 가장 특이한 일들을 골라 모아 두 권으로 만들어 후세 사람들에게 권하여 발심하게 하려는 것이니, 두 권을 합하면 모두 107가지6) 신이한 일들이다.
관식 사문觀識沙門 석요원釋了圓7) 씀.
[본문]
1. 소요원逍遙園의 향초(苢)가 상서를 나타내다이苢는 이以로 발음하니, 향초香草라는 뜻이다.
구마라집(344~413 또는 350~409) 법사는 이곳 말로는 동수童壽라고 하는데, 구자국龜구丘로 발음한다.玆國 사람이다. 일곱 살에 출가하여 매일 천 개의 게송을 외웠다. 그의 어머니가 라집을 월지국月支國1)으로 데리고 가서 아라한阿羅漢 한 분을 뵈었더니,2) 그가 말하였다.
“이 사미는 35세가 되면 크게 불법佛法을 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오직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하루는 라집에게 말하였다.

006_0544_a_01L深敬辯山人之精書

006_0544_a_02L堪歌崔牧伯之慶會

006_0544_a_03L光明出於口角菡萏生於舌根

006_0544_a_04L寶岩徒之或講或疑

006_0544_a_05L蓮華院之若讀若說

006_0544_a_06L珍禽顯瑞亡妹告徵

006_0544_a_07L第十七段

006_0544_a_08L誦舌長存燒經不改

006_0544_a_09L經無一字瓜生五花

006_0544_a_10L[序文]

006_0544_a_11L
法華靈驗傳有大
1) [1]
藍谷沙門慧2) [2]
006_0544_a_12L所撰弘賛傳十卷大宋朝四明沙門宗
006_0544_a_13L曉所撰3) [3] 應錄四卷又有本朝眞淨
006_0544_a_14L國師所撰海東傳弘錄四卷今歷覽此
006_0544_a_15L三傳抄錄其中最爲奇特事合成二
006_0544_a_16L以勸發後來兩卷合百七奇異

006_0544_a_17L觀識沙門釋了圓錄

006_0544_a_18L[本文]

006_0544_a_19L4) [4] 呈祥*苢音以
香草也

006_0544_a_20L
法師鳩摩羅什此云童壽
玆國人
006_0544_a_21L七歲出家日誦千偈其母携至月支國
006_0544_a_22L見一羅漢曰此沙彌年至三十五
006_0544_a_23L大弘佛敎度無數人5) [5] 唯其言一日

006_0544_b_01L
“대승(方等)의 깊은 가르침을 중국(眞丹)에 크게 펼치는 일이 오로지 너에게 달려 있다.”
이때 부견符堅은 관중關中(지금의 섬서성 지방)에 웅거하고 있었는데, 태사太史가 아뢰었다.
“덕이 있는 상서로운 별이 외국 경계에 나타났으니, 반드시 큰 지혜를 가진 분이 중국에 들어와 도와줄 것입니다.”
부견이 말하였다.
“나도 서역에 라집이라는 스님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곧 여광呂光에게 군병을 주어 가서 구자국을 정벌하도록 하였다. 여광이 이미 라집을 데리고 돌아와 양주凉州에 도착했는데, 부견이 벌써 요장姚萇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에 여광은 관중 밖에 웅거하여 스스로 후량後凉이라고 칭하였다. 요장이 죽고, 그의 아들 흥興이 왕위에 올랐는데, 종묘에 갑자기 연리수連理樹3)라는 나무가 나오고, 소요원逍遙園의 파(葱)가 향초(苡)로 변하였다. 요흥은 이를 상서로 여겨서 드디어 여광을 정벌하고, 마침내 라집을 장안으로 맞아들이고, 국사國師의 예로써 모셨다. 요흥은 소요원에서 여러 승려들을 데리고 라집의 강설을 들었다.
구마라집은 중국의 한자에도 통달하여 전에 번역된 경전과 범본(胡本)을 비교하여 잘못된 점을 살펴서 홍시弘始 8년(406) 초당사草堂寺에서 승려 리䂮발음은 대략 리利로 한다. 등 8백여 명과, 다시 사방의 의학義學 승려 2천여 명을 모아 옛 경전을 고증 교정하여 이 『묘법연화경』 1부 7권을 역출하였다. 라집이 말하였다.
“내가 번역한 『법화경』 등을 여러분들이 힘써 유포시켜 주십시오. 만약 번역에 오류가 없다면 원컨대 내가 죽은 뒤 몸을 태워도 혀는 타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입적하였는데, 다비를 하니 과연 혀는 타지 않고 남았다. (이 일은) 『양고승전梁高僧傳』과 『진서晉書』에 자세히 보인다.
남산의 『감통전感通傳』4)에서 말하였다.
“위천인韋天人5)이 말하였다.
‘구마라집은 총명하여 대승을 잘 이해하여 과거칠불6) 이래로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고 전하여 법왕(부처님)께서 남기신 뜻을 잘 드러냈다.’
(도선이 물었다.)
‘세속에서 계를 허물었다고 말한다.’
(위천인이 답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겉모습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집은 삼현보살三賢菩薩7)의 지위에 오른 분이었으니, (불도를 닦지 않는) 한가로운 사람들이 의론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홍찬법화전』 권2, 『현응록』 상권
2. 하늘 꽃(天花)이 내려 상서를 보이다
양나라 무제武帝(502~549)가 아직 황제가 되기 전이었을 때 그의 집에서 7일 밤낮 빛이 나왔다. 이에 황제가 말하였다.

006_0544_b_01L謂曰方等深敎應大闡眞丹唯爾之力
006_0544_b_02L時符堅據關中太史奏云有德星現外
006_0544_b_03L國分野當有大智人入輔中國堅曰
006_0544_b_04L朕聞西域有羅什將非是耶即遣呂光
006_0544_b_05L率兵伐龜玆國光旣獲什廻至凉州
006_0544_b_06L聞符堅爲姚萇所害乃據關外僣號後
006_0544_b_07L萇崩子興襲位廟庭俄生連理樹
006_0544_b_08L逍遙園葱變爲6) [6] [1] 以爲祥瑞遂伐呂
006_0544_b_09L迎什入長安7)侍以 [7] 國師之禮興於
006_0544_b_10L逍遙園引諸沙門聽什講說8) [8] 辯通
006_0544_b_11L華夏覽舊經與胡本乖誤以弘始八年
006_0544_b_12L於草堂寺與僧䂮音略
利也
等八百餘人
006_0544_b_13L集四方義學沙門二千餘人對舊經考
006_0544_b_14L譯此妙法蓮華經一部七卷什曰

006_0544_b_15L法華等經幸共流布若所譯無謬
006_0544_b_16L焚軀後舌不焦爛言訖而終至於闍維
006_0544_b_17L9) [9] 不灰委見梁僧傳卷上第一張
006_0544_b_18L [2] 南山感通傳韋天人曰什公聰明
006_0544_b_19L善解大乘彼自七佛已來傳譯得法
006_0544_b_20L王之遺寄也俗以陷戒爲言此不須疑 [3]
006_0544_b_21L什位三賢非悠悠者也 [4] 出弘賛第二卷及
006_0544_b_22L現應錄上10) [10]

006_0544_b_23L天花現瑞

006_0544_b_24L
梁武帝潜龍時宅嘗七日七夜放光

006_0544_c_01L
“이 집은 내가 살 만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는 집을 내놓아 절로 만들고 광택사光宅寺8)라고 이름한 다음, 법운 법사法雲法師9)를 주지로 임명하였다. 법운 스님은 의흥義興 양선陽羨 사람으로 그가 태어날 때 구름이 방안에 가득하였던 까닭에 붙여진 이름인데, 일곱 살에 출가해서 다시 법운이라고 이름하였다. 스님이 사미(息慈) 시절에는 경전을 숭상하여 『법화경』을 자세히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여 뜻과 이치를 모두 통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훤하게 살펴서 양나라 때 이름을 날렸다.
일찍이 스님이 어느 절에서 이 『법화경』을 강설하자, 갑자기 하늘 꽃이 눈 날리듯 하늘 가득하게 내렸다. 법당 안에 들어온 꽃은 공중에 올라 떨어지지 않다가 강설을 마치자 비로소 날아갔다. 언제나 공양 짓는 소임을 하는 스님이 있어 법운 스님께 배우면서 밤낮으로 지혜 얻기를 발원하였는데, 꿈에 홀연히 한 스님이 나타나 말하였다.
“법운 스님은 과거 등명불燈明佛10) 때 이미 이 경을 강설하였는데, 그대가 어떻게 갑자기 그와 같은 분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또 이릉현夷陵縣의 한 어부가 그물 속에서 한 권의 경전을 얻었는데, 그것은 『열반경』 「사법품四法品」11)이었다. 끝에 제목 붙이기를, “송나라 원휘元徽 2년(474) 왕보승王寶勝이 절을 지어 광택사에 법운 스님을 모셨다.”라고 하였다. 이를 잘 살펴보면, 원휘 2년에 법운 스님은 나이가 겨우 열 살이었고, 절 또한 광택사가 없었으니, 이것은 신령스러운 상서가 미리 나타난 것이다.12)
3. 묘妙 자를 쓰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나다
중국 수나라 개황開皇 연중(581~600, 신라 진평왕)에 혜초慧超13)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수행이 뛰어났고, 항상 『법화경』을 암송하였다. 제자 한 사람이 열다섯 살이 되자 갑자기 병으로 죽어 태산에 갔다.

006_0544_c_01L曰非我所居乃捨爲寺名爲光宅
006_0544_c_02L法雲法師爲主雲師義興陽羡人也
006_0544_c_03L時雲氣滿室因以爲名七歲出家
006_0544_c_04L名法雲雲年在息慈雅尙經術於妙
006_0544_c_05L11) [11] 硏精累思品酌義理始末昭
006_0544_c_06L垂名梁代者也甞一寺講散此經
006_0544_c_07L忽感天花狀如飛雪滿空而下延于
006_0544_c_08L堂內升空不墜講訖方去有常供養
006_0544_c_09L學法雲師日夜發願望得慧解
006_0544_c_10L夢一僧云雲公燈明佛時已講此經
006_0544_c_11L那可卒敵也又夷陵縣漁人於網中得
006_0544_c_12L經一卷是泥洹四法品末題云宋元
006_0544_c_13L徽二年王寶勝造奉光宅寺法雲師
006_0544_c_14L以此勘之元徽12) [12] 雲公年始十歲
006_0544_c_15L寺無光宅此乃靈瑞預彰也

006_0544_c_16L妙字始成便生勝處13)出弘賛傳第
006_0544_c_17L十及現應錄 [13]

006_0544_c_18L
隋開皇中有僧慧超立行卓爾常誦
006_0544_c_19L法華有一弟子年至志學病死齊去
006_0544_c_20L「朝」無有{乙}冠註曰詳異作祥{乙}冠註
006_0544_c_21L曰現現流本作顯{乙}
「苢」作「苡」{乙}次同
006_0544_c_22L「母」作「每」{乙}
「茝」作「苡」{乙}「侍以」作
006_0544_c_23L「待以以」 又冠註曰以衍文歟{乙}
「什」無有
006_0544_c_24L{乙}
「果」作「界」又冠註曰界疑果{乙}「之」
006_0544_c_25L下有「一」{乙}
「花」作「華」{乙}「三」作「二」
006_0544_c_26L{乙}
「出弘…應錄」十字無有{乙}

006_0545_a_01L얼마 후 혜초 스님이 그곳으로 가서 향을 피우고 온 이유를 말하자, 나무 인형이 홀연히 소리 내어 말하였다.
“스님의 계행이 투철하시니 감히 물으신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 부군府君14) 앞으로 데리고 갔다. 혜초 스님이 물었다.
“나의 제자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부군이 말하였다.
“이곳에 있습니다만 아직 태어날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혜초 스님이 말했다.
“만나 보고자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부군은 곧 인도해 주도록 했다. 동쪽으로 수십여 보를 걸어가자, 과연 만나 볼 수 있었다. 고생(苦樂)이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제자가 대답하였다.
“다만 묶이어 구속되어 있을 뿐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날 곳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스승님께서 힘써 주십시오.”
스님이 물었다.
“어떠한 공덕을 지으면 되겠는가?”
제자는 『법화경』 한 부를 조성하고 백 명의 스님에게 재를 베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스님이 돌아와서 곧 경을 쓰고, 반승飯僧15)을 베푼 다음 다시 돌아와 부군을 뵈었더니, 먼저와 똑같이 맞아 주었다. 스님이 그동안 한 일을 진술하자, 부군이 말하였다.
“제자는 스님이 경의 제목을 베껴 쓸 때 ‘묘妙’ 자가 이루어지자마자, 곧 좋은 곳으로 환생하였습니다.”
스님이 물었다.
“어느 곳에 태어났습니까?”
부군이 말했다.
“제군齊郡 땅 왕무王武의 집에 남자로 환생하였습니다. 세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 보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혜초 스님은 3년이 지난 뒤 곧 가서 물어보았다.
“시주님네 아드님을 보고자 합니다.”
왕씨는 완강히 거절하고 아들이 있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스님이 부군의 말을 모두 말하자, 왕씨의 처가 방에 있다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법사님의 영감靈感이 이와 같은데 보여 드리지요.”
그리고는 아이를 안고 나왔다. 어린아이는 스님을 보자 달려 나와 스님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아이는 자라 장년이 되자 스스로 출가를 하여 혜초 스님을 다시 스승으로 모셨다.
『영서집』, 『홍찬법화전』 권10, 『현응록』
4. 겨우 제목을 쓰자 이미 지옥에서 풀려나다
수隋나라 행견行堅 스님은 항상 선관禪觀을 닦아서 절개와 지조가 매우 엄숙하였다. 어느 날 볼일이 있어 태산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산중의 절에 들어가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처마 아래에서 쑥대로 깔개 삼아

006_0545_a_01L泰山不遠超往焚香具述來意木偶
006_0545_a_02L人忽發聲言師戒行精苦所問敢不
006_0545_a_03L咨白遂引至府君前超白曰弟子今
006_0545_a_04L在何處君曰在此卷上第二張未有生
006_0545_a_05L超曰欲與相見得否君即使領
006_0545_a_06L行數十步果得相見因問苦樂如何
006_0545_a_07L弟子曰但被拘繫亦無苦樂念生處
006_0545_a_08L未定願師昇1) [14] 師曰作何功德
006_0545_a_09L子乞造法華經一部設齋一百員師旣
006_0545_a_10L歸即書經飯僧事訖復謁府君相接
006_0545_a_11L如先師陳所爲君曰弟子師寫經題
006_0545_a_12L妙字始成便生勝處師曰生於何處
006_0545_a_13L君曰還生齊郡王武家爲男子待三歲
006_0545_a_14L可往覔之超過三年即往問2) [15] 檀越
006_0545_a_15L之子欲得相見王氏抵拒不言有子
006_0545_a_16L師具說府君之言其妻在室語夫曰
006_0545_a_17L師靈感若此可使見之即抱兒子安
006_0545_a_18L限外兒一見師走入懷抱悲泣良久
006_0545_a_19L及年長大志願出家還事超師靈瑞
006_0545_a_20L3) [16]

006_0545_a_21L題目纔寫已脫冥司4)出弘賛傳第十
006_0545_a_22L及現應錄 [17]

006_0545_a_23L
隋釋行堅常修禪觀節操嚴甚因事
006_0545_a_24L經游泰山日夕入嶽寺度5) [18] 藉蒿

006_0545_b_01L단정히 앉아 『법화경』을 외웠다. 1경更(오후 8시~10시)쯤 되자 홀연히 그곳의 신神이 나타났다. 옷차림이 아주 훌륭하였는데, 그 신이 행견 스님을 향하여 합장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물었다.
“세상에서 전해지기로 태산이 귀신을 다스린다고 하던데 맞나요?”
신이 말하였다.
“제자가 있습니다.”
행견 스님이 물었다.
“나와 함께 공부하던 두 스님이 죽었는데 지금 그들이 여기에 있습니까?”
신이 이름을 물어 알려 주자 말하였다.
“한 사람은 이미 인간 세계에 태어났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 지옥에서 전생의 갚음을 받고 있습니다.”
행견 스님이 가서 만나 보고자 하였더니, 신이 사자使者를 시켜 담장이 있는 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한 사람이 불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데, 그 형체가 변하여 알아볼 수 없고, 피와 살이 타는 냄새로 차마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스님은 곧 처마 밑으로 돌아와 다시 신과 마주 앉자 물었다.
“저 스님을 구해 주고자 하는데 방도가 없겠습니까?”
신이 말하였다.
“구할 수는 있습니다만, 『법화경』을 베껴 쓰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틀림없이 지옥을 면할 수 있습니다.”
행견 스님은 돌아와서 스님을 구해 주겠다는 원을 세우고, 『법화경』을 베껴서 책으로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사당으로 갔다. 신이 전과 같이 나타나므로 사경해 온 사정을 말하니, 신이 말하였다.
“스님께서 『법화경』의 제목을 쓰시자마자 그는 이미 지옥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청결하지 못하여 경을 모셔 두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그냥 경을 가지고 돌아가셔서 절에 모셔서 공양하게 하십시오.”
『송고승전』, 『홍찬법화전』 권10, 『현응록』
제1단 「서품」
1. 「서품」의 제목을 부르자 지옥이 텅텅 비다
좌감문교위左鑑門校尉 이산룡李山龍은 풍익馮翊 사람이다. 당나라 무덕武德 연중(618~626, 신라 진평왕)에 돌연히 죽었다가 이레 만에 다시 살아나 말하였다.
“한 사자에게 붙들려 염라대왕 앞에 이르렀는데, 보니까 죄 지은 자 수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내게 묻기를, ‘그대는 세상에서 어떤 복을 지었느냐?’라고 하기에, ‘『법화경』 두 권을 얻어서 외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아주 잘하였다고 칭찬하고, 곧 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경을 한 번 외워 보라고 청하였습니다.

006_0545_b_01L草於廡下端坐誦經可一更忽見其神
006_0545_b_02L衣冠甚偉向堅合掌堅問曰世傳泰
006_0545_b_03L山治鬼是否神曰弟子有之堅曰有
006_0545_b_04L兩同學僧已死今在否神問名字
006_0545_b_05L一人已生人間一人在獄受對師往見
006_0545_b_06L神遣使引入墻院見一人在火中
006_0545_b_07L呼號形變不可識而血肉焦臭竪不
006_0545_b_08L忍觀即還廡下復與神坐堅曰欲救
006_0545_b_09L是僧得否神曰可能爲寫法華經必應
006_0545_b_10L得免堅去急報前願經寫裝畢賷而
006_0545_b_11L就廟神出如故以事告之神曰師爲
006_0545_b_12L寫經題目彼已脫去今生人間然此
006_0545_b_13L處不潔卷上第三張 不冝安經願師還
006_0545_b_14L6) [19] 寺中供養大宋高僧7) [20]

006_0545_b_15L

006_0545_b_16L第一段序品

006_0545_b_17L
唱題之頃地獄皆空買紙之時天堂已化
006_0545_b_18L王布髮天帝賜金

006_0545_b_19L唱題之頃地獄皆空

006_0545_b_20L
左監門校尉李山龍馮翊人也唐武德
006_0545_b_21L中暴亡過七日乃蘇云初被一使追
006_0545_b_22L至閻王殿前見囚徒數千王問龍曰
006_0545_b_23L汝作何福業答曰誦得法華經二卷
006_0545_b_24L稱大善即命敷座請誦之龍唱妙法

006_0545_c_01L그래서 내가 『묘법연화경』 「서품」제1까지 외우는데, 대왕이 ‘그만하고 멈추시오’ 하기에, 내가 자리에서 내려와 여러 죄수들을 돌아보았더니, 그들이 모두 허공으로 날아서 가 버렸습니다. 대왕은 『법화경』을 외운 공덕의 힘으로 경을 들은 사람들까지 모두 해탈을 얻은 것이라고 칭찬하고, 나를 다시 돌려보내 살아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자에게 명하여 여러 지옥들을 구경하게 하여 철성지옥鐵城地獄16)과 확탕지옥鑊湯地獄17) 등을 보았습니다. 한 사자가 말하기를, 당신이 지옥을 벗어나게 된 것은 다 『법화경』의 덕이니, 세상으로 돌아가거든 우리에게도 음식을 베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겠다고 승낙하였더니, 이렇게 다시 살아났고 가족과 친척들이 장례 준비에 한참 분주한 것이 보였습니다.”
이산룡이 약속한 대로 곧 음식들을 준비하여 물가로 나갔더니, 홀연히 세 사람이 나타나서 사례하였다.
“그대는 약속을 잊지 않았군요.”
말을 마치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평광기』
2. 사경 용지를 사러 갔을 때 이미 천당에 태어나다
낙주洛州(중국 하남성) 낙양 사람 하현령河玄玲이 용삭龍朔 2년(662)에 서울(京師)에서 죽어 저승에 가서 주부主簿18)가 되었다. 인덕麟德 연중(664~665)에 하현령의 고향 사람이 죽어 저승에서 만났는데, 하현령이 고향 사람에게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지를 물었다.
“쫓겨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현령이 말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주부를 맡아 보고 있는데 당신은 억울하게 일찍 왔군요. 당신을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보내겠소.”
고향 사람이 작별하고 막 저승에서 나오려는데, 전에 한 마을에 살던 노파가 그를 보고 말하였다.
“당신은 여기까지 왔으면서 어찌하여 내가 괴로움 받는 것을 못 본 체하는 것입니까?”
문득 살펴보았더니, 노파는 확탕지옥에서 펄펄 끓는 쇳물에 죄인으로서 삶아지고 있었다. 다시 노파가 말하였다.
“당신이 돌아가거든 내 남편에게 말해서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만들어 달라고 해주십시오. 그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허락하거든, 열흘 후에 당신이

006_0545_c_01L蓮華經序品第一王曰且止龍便下座
006_0545_c_02L顧諸囚徒皆乘空而8) [21] 王稱誦經之
006_0545_c_03L使聞者皆得解脫王即遣龍再生
006_0545_c_04L又勑使者引遊諸獄令見鐵城鑊湯等
006_0545_c_05L使者曰汝今得脫皆經之力汝歸
006_0545_c_06L當設我食龍即許之旣蘇乃見親屬
006_0545_c_07L經營殯具即遣備食於水邊忽見三
006_0545_c_08L謝曰君不失信言已而隱9)大平廣記
006_0545_c_09L [22]

006_0545_c_10L買紙之時天堂已化

006_0545_c_11L
洛州洛陽人河玄玲龍朔二年終於京
006_0545_c_12L冥司遣爲主簿10) [23] 德中玲鄕人死
006_0545_c_13L冥道與玲相見玲問鄕人君何至
006_0545_c_14L答曰被追至此玲云我見案主逗留
006_0545_c_15L君枉來也放君還去鄕人別玲將出
006_0545_c_16L乃見同村嫗謂鄕人曰君至此豈不
006_0545_c_17L觀我受苦處耶便見鑊湯湧沸煑罪
006_0545_c_18L嫗曰君可語我夫爲我造法華經一
006_0545_c_19L脫蒙見許却後十日君可報我於
006_0545_c_20L「㴉」作「濟」{乙}「曰」作「言」{乙}「集」下有
006_0545_c_21L「又出弘賛傳第十及現應錄」{乙}
「出弘…應
006_0545_c_22L錄」十字無有{乙}
「宵」作「霄」{乙}「入」作
006_0545_c_23L「人」{乙}
「傳」下有「又出弘䝺傳第十及現應
006_0545_c_24L錄」{乙}
「去」作「志」{甲}「大平廣記出」作
006_0545_c_25L「出大平廣記」{乙}
冠註曰鱗疑麟{乙}

006_0546_a_01L마을 남쪽 물가 어귀에 와서 내게 알려 주시오.”
이 사람은 다시 살아나자, 곧 노파의 남편을 불러서 『법화경』을 베껴 쓰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급히 종이를 사다가 사람을 시켜 『법화경』을 베끼게 했다. 고향 사람이 약속한 날에 물가에 가 보았더니, 다른 노파만 보였다. 노파가 고향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먼젓번에 『법화경』을 베껴 쓰도록 부탁 받은 사람인가요?”
그렇다고 하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지난번 부인은, 남편이 사경 용지를 사온 날에 이미 하늘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을 만나서 알릴 수가 없기 때문에 나에게 당신을 만나 보고 알려 주라고 부탁하여 내가 온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이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홍찬법화전』 권10
3. 왕이 머리를 풀어 진흙땅에 깔다
『대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옛날 천축국天竺國의 한 아란야阿蘭若19)에 마하라摩訶羅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 나라 왕이 머리를 풀어 땅에 깔아 진흙을 덮어서 그 비구가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런 일이 있자, 어떤 비구가 와서 왕에게 말하였다.
“그 비구는 경전도 많이 읽지 않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큰 공양을 베푸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전에 어느 날 밤 그 비구를 만나 보려고 그의 처소로 가 보니, 그가 굴속에서 『법화경』을 읽고 있었는데, 금색 광명이 찬란한 어떤 사람이 커다란 흰 코끼리를 타고 비구에게 합장 공경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저들은 곧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대덕이시여! 내가 다가오자 금색으로 빛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 비구가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변길보살徧吉菩薩20)입니다. 변길보살은 스스로 말씀하시길, 어떤 사람이 『법화경』을 외우면 나는 마땅히 흰 코끼리를 타고 와서 그를 가르쳐 인도하겠다21)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법화경』을 읽고 있으니까 변길보살이 스스로 오신 것입니다. 변길보살은 곧 『법화경』에 나오는 보현보살입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비구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지금도 항상 그 비구를 공양하는 것입니다.”
『홍찬법화전』 권9, 『현응록』 권1
4. 천제天帝22)가 금을 하사하다

006_0546_a_01L村南水頭鄕人旣蘇卷上第四張乃即
006_0546_a_02L喚其夫令爲寫經其夫急與買紙
006_0546_a_03L人令寫鄕人至前期日往到水邊乃別
006_0546_a_04L見他嫗謂鄕人曰君是前所囑寫經者
006_0546_a_05L鄕人曰是也嫗曰前者婦人夫爲
006_0546_a_06L買紙之日已往生天所以不獲赴期
006_0546_a_07L與君今日相見故留言囑令我報君言
006_0546_a_08L畢遂不獲見也出弘賛第十

006_0546_a_09L國王布髮

006_0546_a_10L
大智度論云昔天竺國有一阿蘭若
006_0546_a_11L丘名摩訶羅其國王甞布髮掩泥
006_0546_a_12L比丘蹈過又有比丘來白王言此人
006_0546_a_13L不多讀經何以大供養王言我曾一日
006_0546_a_14L夜半欲見此比丘即往其所見此比
006_0546_a_15L在窟中讀法華經有一金色光明人
006_0546_a_16L乘白象王合掌供養我方親近彼即
006_0546_a_17L滅沒我問大德以我來故金色光明
006_0546_a_18L人滅何耶比丘言1) [24] 徧吉菩薩
006_0546_a_19L吉自言若有人誦法華經我當乘白
006_0546_a_20L象來敎導之我讀是經徧吉自來矣
006_0546_a_21L徧吉即法華經中普賢菩薩也我聞是
006_0546_a_22L禮足而退是故我今常當供養出弘
006_0546_a_23L賛第九及現應錄第一卷

006_0546_a_24L天帝賜金

006_0546_b_01L
청신사淸信士23) 음명관陰明觀은 단양 소추촌小鄒村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법화경』 한 부만을 독송하였다. 후에는 환속해서 처자식을 거느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관청에서 부리는 일을 하기도 하였고, 집안일에 힘을 쏟기도 하였으나, 살림살이가 아주 어려워 먹고 입는 것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항상 『법화경』을 외우는 일은 잠시도 쉬지 않아 잠자고 밥 먹고 관공서의 일이나 개인적인 일을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밤중에 갑자기 공중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기를, “음명관이여, 음명관이여!”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르는 소리가 아주 또렷하여 일어나서 대답하였더니, 공중에서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그대는 일어나라. 내가 그대에게 금과 보물을 주겠노라. 마을 남쪽 밭의 동쪽 머리 큰 황련黃蓮나무 아래에 보물이 있을 것이니, 그대가 가서 갖도록 하라.”
음명관은 기쁜 마음으로 곧 일어나 아들을 불러 횃불과 괭이를 가지고 함께 그 밭으로 가자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금을 가지러 가자고 하니, 오히려 의심스럽고 걱정이 되어 ‘이 밤중에 갑자기 무슨 금을 가지러 가자고 하실까?’ 하며 속으로는 혹시 아버지가 미쳐서 정신이 돈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자고 고집하므로 나무 밑에 도착하여 땅을 파 보았으나 금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아들은 그만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러자 별안간 공중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나무 앞 가까이 파 보아라.”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살림이 나아져서 다시는 가난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음명관의 생활이 넉넉해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므로 음명관은 동네 노인네들에게 사실대로 자세히 말하고서 더욱더 부지런히 외워 익혔다.
『홍찬법화전』 권8
제2단 법설주24) 「방편품」
1. 죽은 아내가 하늘에 태어나다
진법장陳法藏은 옹주雍州(중국 섬서성에 있음) 만년현萬年縣 패곡覇曲 사람이다. 공선供膳이 되어

006_0546_b_01L
淸信士陰明觀丹陽小鄒村人也少年
006_0546_b_02L曾經出家無他行業誦法華經一部
006_0546_b_03L後遂還俗兼有妻子家業農功或被
006_0546_b_04L官駈役或居家力作生業甚貧衣食
006_0546_b_05L不繼口恒誦經不曾暫息除寢食祗
006_0546_b_06L承官私人事之外皆不弃日在後忽於
006_0546_b_07L夜中聞空中有人喚陰明觀陰明觀
006_0546_b_08L卷上第五張喚甚分明觀起應諾
006_0546_b_09L中人又曰汝起我與汝金寶寶在村
006_0546_b_10L南田東頭大黃蓮樹下汝可往取觀懷
006_0546_b_11L欣即起呼其子持火及鍬钁共往田
006_0546_b_12L子見父將往猶懷疑恨曰那得忽
006_0546_b_13L尒夜中取金阿翁狂顚父固2) [25]
006_0546_b_14L至樹下掘了不見金兒又諫父
006_0546_b_15L臾之頃聞空中聲曰可更近前依言
006_0546_b_16L而取果有所獲因此生業用展無復
006_0546_b_17L貧寒之弊村鄕恠其引用異常疑有他
006_0546_b_18L觀乃具向父老說之彌勤誦習出弘
006_0546_b_19L賛第八

006_0546_b_20L

006_0546_b_21L第二段法說周方便品

006_0546_b_22L
亡婦生天神人指路蓮開臘月佛記天宮

006_0546_b_23L亡婦生天

006_0546_b_24L
陳法藏雍州萬年縣霸曲人也身爲供

006_0546_c_01L정관貞觀 18년(644)에 낙주洛州에 올라가 번을 섰다. 그 뒤에 처가 죽었다. 어느덧 번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네에서 10여 리 남짓 떨어진 길에서 죽은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이미 죽은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잠깐 사이인데 진법장 앞에 홀연히 여덟아홉 채의 집이 보였다. 가난한 사람의 집인 듯하였다. 진법장이 그중 한 칸 모퉁이에 앉아 있었는데, 다음 방에서는 잠깐 사이 아내가 불려 나갔다. 법장이 따라가 보니, 아내가 쇠머리(牛頭)를 한 옥졸에게 붙들려서 쇠꼬챙이에 꿰여 펄펄 끓는 쇳물에 던져지니 뼈와 살이 흩어져 버리고 쇳물에서 꺼내면 도로 살아났다. 이렇게 일곱 번을 되풀이하고 나서야 놓아주니, 서로 만날 수 있었다. 참혹해진 몰골을 한 아내가 진법장에게 말하였다.
“제가 당신의 후처가 된 후, 전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지 제가 해친 것이 아닙니다. 집의 옷장 속에 5백 냥이 있고, 집에 있는 소는 팔면 1천5백 냥은 받을 것입니다. 돌아가시거든 시어머님(阿婆)께 부탁드려 저를 위해 『법화경』을 베껴 써 주시면 저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 말을 잊지 마시고 어머님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법장은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께 사실을 말하였다. 소를 팔아 1천5백 냥을 마련하고, 곧 경 베끼는 사람을 청하여 종이를 사오게 한 다음 다시 아내가 있던 집으로 찾아갔다.
법장이 문을 두드리니, 그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당신의 부인은 어제 사경할 종이를 살 때 이미 하늘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몹시 기뻐하며 그 뒤로 『법화경』을 더욱 깊이 믿고 받들었다. 재물이 생길 때마다 『법화경』 베껴 쓰기를 19년 동안 하고는 흥선사興善寺25)로 가서 예배 공양하고 여러 스님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홍찬법화전』 권10
2. 신인이 길을 가르쳐 주다
원지통袁志通은 농성현隴城縣 사람이다. 그는 항상 『법화경』을 외웠는데,26) 나이 스물이 되자 군대에 뽑혀 갔다. 8만蠻27) 정벌군으로 차출되어 집에서 만 리나 떨어진 곳이었으나 『법화경』 독송을 그치지 않았다. 남쪽 경계에 이르러 아군이 크게 패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지통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006_0546_c_01L貞觀十八年洛州上番去後妻亡
006_0546_c_02L下番廻3) [26] 離本住村可十餘里路逢
006_0546_c_03L亡妻妻云我今已死經於數日須臾
006_0546_c_04L之間藏忽見八九家如貧人宅藏坐
006_0546_c_05L一間偏次屋少時其妻被喚4) [27]
006_0546_c_06L隨後5) [28] 妻被牛頭獄卒鐵叉貫之
006_0546_c_07L內錢湯中骨肉分散叉出還活如是
006_0546_c_08L七返訖放來相見形容頓惡語藏云
006_0546_c_09L與君爲後妻前婦自死非妾所害
006_0546_c_10L6) [29] 內有五百錢家中有牛可直千五
006_0546_c_11L至家阿婆努力爲妾寫法華經
006_0546_c_12L妾即得離此苦將妾此語請阿婆
006_0546_c_13L藏歸啓母賣牛恰得千五百即喚經生
006_0546_c_14L買紙藏因行更尋妻住處藏始扣門便
006_0546_c_15L比家遙報云君新婦昨買紙時
006_0546_c_16L即生天7) [30] [5] 驚喜卷上第六張 信奉增
006_0546_c_17L所得財利每寫法華十九年向興善
006_0546_c_18L供養行道具向諸僧說出弘賛第十

006_0546_c_19L神人指路

006_0546_c_20L
袁志通隴城縣人也誦法華經年二
006_0546_c_21L十點入軍差征八蠻去家萬里持誦
006_0546_c_22L不絶至南界軍敗多被損傷通恓惶
006_0546_c_23L「是」作「言」{乙}「戾」作「跋」{乙}「道」作
006_0546_c_24L「首」{乙}
「捋」作「將」{乙}「看」作「者」{乙}
006_0546_c_25L
」作「」{乙}「其」下疑脫「夫」{編}

006_0547_a_01L갑자기 다섯 사람이 말을 타고 그 앞에 나타나서는 그중 맨 끝의 사람이 지통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법화경』을 염송하여 좋은 과보를 닦았으므로 우리 선신善神들이 수호해 주어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여기서 7리쯤 가면 탑이 하나 있을 것이니, 그 탑 속에 숨어 있으면 오랑캐군도 곧 돌아갈 것입니다.”
또 두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단월檀越(지통)이 『법화경』을 독송한 공덕의 힘으로 다섯 신인을 보내서 호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면 항상 선신들이 가까이에서 도와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공중으로 올라서 가 버렸다. 이때부터 원지통은 세 번을 적과 싸웠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고 오랑캐를 평정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관 8년(634)에 병이 들어 죽으니, 사자가 나타나 그를 따라 염라대왕이 계신 전각 앞에 이르렀다. 대왕이 물었다.
“그대는 어떤 좋은 일을 하였는가?”
“항상 『법화경』을 받아 지녀 재계齋戒하고 예참禮懺28)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대왕은 이 말을 듣자 합장하고 찬탄한 다음, 금으로 만든 의자와 옥으로 된 책상을 전각으로 가져오라 하고는 융단을 깔고 자리를 마련해 놓은 다음 지통에게 자리에 올라 『법화경』 외우기를 청하였다. 지통이 한 권을 외우고 나니, 대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덕업이 매우 깊어서 마땅히 다시 지옥을 보고서 죄와 복은 틀림없음을 분명히 알도록 하십시오.”
지옥을 두루 돌아본 지통은 몹시 겁이 나고 두려웠다. 다시 염라대왕 앞으로 가니, 대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지옥을 보았으니, 마땅히 다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할 것이오. 그래서 내가 당신이 더 오래 살도록 부탁드렸소.”
지통은 다시 소생하자 위와 같은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영서집』, 『현응록』
3. 섣달 한겨울29)에 연꽃이 피다
법융法融 스님30)은 속성이 위씨韋氏이며, 단양 연릉현延陵縣 신정新亭 사람이다. 어려서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어 회영산晦影山 총림에서 『법화경』을 배우고 나서 경전을 짊어지고 천 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승을 찾아 나섰다.31) 그런데 성품은 항상 됨이 없어 대중들이 이러한 스님을 용납하지 않았다.
뒤에 그는 단양 우두산牛頭山 유서사幽栖寺로 돌아와 따로 작은 방을 마련하고 예전처럼 수행에 몰두하였으므로 원근遠近의 학자와 승려들이 따라와 그에게 귀의했다. 마침내 법융 스님이 바위 계곡 앞에서 『법화경』 한 부를 강의하였는데, 그때는 바로 몹시 추운 한겨울이어서 서리가 하얗게 나무에 엉겨 붙었지만, 강의하는 곳에는

006_0547_a_01L不已忽有五人乘馬在前最後一人
006_0547_a_02L謂通曰汝修善果誦念經文余等善
006_0547_a_03L衆守護不能爲害汝行七里許有一
006_0547_a_04L可入中隱蠻即還營矣又見二僧
006_0547_a_05L謂通曰檀越以讀誦力故適遣五人衛
006_0547_a_06L汝當精進恒有善神匡賛言已乘
006_0547_a_07L空而去自尔凡經三陣不被寸鐵
006_0547_a_08L平得歸貞觀八年抱疾命終見使者
006_0547_a_09L追至閻王殿前王問作何善行通曰常
006_0547_a_10L持法華齋戒禮懺王聞合掌稱歎
006_0547_a_11L取金床玉几至殿安設氈褥請通上座
006_0547_a_12L誦經誦一卷而止王曰汝之德業甚深
006_0547_a_13L應更觀地獄令知罪福不差通見戰懼
006_0547_a_14L復詣王所王曰汝見地獄應更勤修
006_0547_a_15L是故我今乞汝長年也通蘇述之如上
006_0547_a_16L出靈瑞集現應錄

006_0547_a_17L蓮開臘月

006_0547_a_18L
釋法融俗性韋氏丹陽延陵新亭人也
006_0547_a_19L少小被緇去俗晦影山林學法華經
006_0547_a_20L負笈尋師不遠千里然率性無恒
006_0547_a_21L爲時軰所許後歸丹陽牛頭山幽1) [6]
006_0547_a_22L別爲小屋精修故業遠近學侶翕尒歸
006_0547_a_23L乃於岩谷之前講法華經一部
006_0547_a_24L時正在盛冬凝霜被木乃於講所

006_0547_b_01L두 줄기의 금색 연꽃이 피어났다. 대중들이 매우 놀라고 기이하게 여겨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한 마리 커다란 사슴이 항상 시간에 맞추어 와서 강설을 들었으므로32) 문인들은 크게 발심하여 모두 『법화경』으로 바른 수행(正業)을 삼았다. 그 후 법융 스님이 어디서 입적하였는지 알 수 없다.33)
『홍찬법화전』 권3
4. 부처님께서 하늘에 태어날 것을 수기受記하시다
청신사 육순陸淳은 오吳나라 사람이다. 『법화경』 한 부를 외우고 채식하면서 오랫동안 재계하였다.
대업大業 2년(607) 5월에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하게 10여 일을 지나더니, 그 후부터는 나흘 밤낮을 반듯하게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고 잠시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스승인 예叡 법사가 와서 병세를 살펴보고 물었다.
“어디를 그렇게 보고 있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저에게 염마천焰摩天34)에 태어날 것이라고 수기受記하셨으므로 지금 염마천의 대궐과 전각이며 숲과 성벽이며 여러 천인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곳을 보면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어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나흘이 지나자 세상을 떠났다.
『홍찬법화전』 권7
제3단 「비유품」ㆍ「신해품」ㆍ「약초유품」ㆍ「수기품」35)
1. 읽은 경권은 무거우나 지은 죄 문서는 오히려 가볍다
유시劉時는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평강방平康坊 사람이다. 그는 영륭永隆 2년(681)에 병이 든 지 이틀 만에 죽었다. 죽은 지 엿새가 지났는데도 심장의 온기가 남아 따뜻하였다. 그리하여 가족들은 이미 장례 치를 준비를 마치고 날짜까지 정했으면서도 감히 염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레째 되던 날 새벽에 갑자기 다시 깨어나 말하였다.
“그 당시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큰 성으로 들어가니, 궁전과 누각이 웅장하고도 화려하여 이상하게 생겼는데, 염라대왕이 보였다. 대왕이 말하기를,

006_0547_b_01L生二莖金色蓮華卷上第七張衆甚驚
006_0547_b_02L嘆未曾有又有一大鹿常依時聽
006_0547_b_03L門人發心皆以法華爲正業後不
006_0547_b_04L知所終出弘賛第三

006_0547_b_05L佛記天宮

006_0547_b_06L
淸信士陸淳吳人也誦法華經一部
006_0547_b_07L蔬食長齋大業二年五月染患甚篤
006_0547_b_08L經十餘日於後四日四夜仰臥看屋
006_0547_b_09L了不暫2) [31] 有知識叡師因來看疾問
006_0547_b_10L何所視耶答云佛記淳當生熖摩天
006_0547_b_11L見彼天宮堂殿林木城闕諸天徒衆
006_0547_b_12L之致樂不覺倦也過四日身亡出弘
006_0547_b_13L賛第七

006_0547_b_14L

006_0547_b_15L第三段比喩品信解品藥草喩品
006_0547_b_16L授記品

006_0547_b_17L
經卷重而罪案輕時患痊而壽笇永夜明如
006_0547_b_18L時雨普霑爐香不3)爇而自熏瞽叟無目
006_0547_b_19L而能覩

006_0547_b_20L經卷重而罪案輕

006_0547_b_21L
劉時雍州萬年縣平康坊人也永隨二
006_0547_b_22L年六月患經二日致死死經六日
006_0547_b_23L心上煖其家已擇殯日未敢襲歛至七
006_0547_b_24L平曰忽然再蘇云當時被一人引入
006_0547_b_25L大城宮殿樓觀壯麗異常見閻羅王

006_0547_c_01L‘그대가 세상에서 지은 공덕을 말하라’ 하므로, ‘생시에 『법화경』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밖에 특별한 공덕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대왕이 죄 문서와 업業의 저울을 찾아내어 달아 보니, 『법화경』 두 권이 죄 문서보다 더 무거웠다. 대왕은 죄 문서를 검토해 보고, ‘이 사람은 90세까지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죄 문서를 맡은 이에게 ‘이 사람을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보내라’라고 명하였다. 이 때문에 내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후 유시는 계戒를 받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금으로 『법화경』을 조성하여 오래오래 공양하였다.
『홍찬법화전』 권9
2. 전염병이 낫고 수명은 길어지다
혜치慧峙 스님은 시흥始興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채식을 하며 열심히 『법화경』을 읽은 것이 어느덧 3천여 번에 이르렀다. 그런데 23세 때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수십 일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데리고 한 곳에 이르니, 담장이 울긋불긋한 것이 관청과 똑같았다.
문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귀인의 모습을 한 사람이 키가 8척, 9척은 되겠고, 몸에 감색 비단 도포를 입었으며, 머리에 검은 사모를 썼는데 이분을 염라대왕이라고 하였다. 염라대왕이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어떤 덕업을 지었습니까?”
“어려서부터 『법화경』을 외웠습니다.”라고 스님이 대답하자, 대왕이 외울 수 있는지 물었다.
스님은 곧 높은 자리에 올라 서쪽을 향해 앉아서 『법화경』을 외우기 시작하여 둘째 권 「비유품」 가운데, “비유하건대 어떤 장자가 큰 집에 거주하면서”36)라는 구절에 이르자, 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법사는 다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명하여 스님을 전송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꿈에서 깨어나니, 병도 가벼워지고 며칠이 안 가서 평소와 같이 회복되어 곧 『법화경』을 독송할 수 있게 되었다.
또 55세 되었을 때 다시 전염병에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꾸어 시흥 과심사果心寺 부도浮圖37) 위에 서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려가라고 밀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80여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을 깨자 이내 병이 나았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13년(617)에는

006_0547_c_01L汝可具錄生時功德遂答生時唯讀
006_0547_c_02L法華經兩卷更別無功德王遂索罪案
006_0547_c_03L及業秤秤之法華兩卷乃重於罪
006_0547_c_04L王撿案云其人合得九十年活
006_0547_c_05L案典曰可放他還因令得活遂受戒
006_0547_c_06L不飮酒食肉造金字法華永充供養
006_0547_c_07L出弘賛第九

006_0547_c_08L時患痊而壽笇永

006_0547_c_09L
釋慧峙始興人也少而道素誦法華
006_0547_c_10L凡三千餘徧卷上第八張 年二十三
006_0547_c_11L忽染時患經涉數旬乃夢有人將峙
006_0547_c_12L到一所墻院赤白一如官舍入門即
006_0547_c_13L貴人形長八九尺身著絳紺袍
006_0547_c_14L烏妙帽云是閻羅王王問師作何德
006_0547_c_15L峙答云少來誦法華經王云可誦
006_0547_c_16L峙即昇一高座面西誦法華經第二卷
006_0547_c_17L4) [32] 喩品中*比如長者有一大宅便
006_0547_c_18L王即起云法師還去命二人送
006_0547_c_19L即醒悟疾亦輕損數日平復即能讀
006_0547_c_20L又年五十五時身又染患忽夢
006_0547_c_21L始興果心寺浮圖上立有人推下云
006_0547_c_22L汝八十餘年命因即痊愈到大業十三
006_0547_c_23L「拪」作「栖」{乙}「瞹」作「暖」又冠註曰暖疑
006_0547_c_24L緩{乙}
「爇」作「熱」{乙}次同「比」作「譬」{乙}
006_0547_c_25L次同

006_0548_a_01L그의 나이 82세였는데, 그 후 어디서 입적하였는지 알 수 없다.
『홍찬법화전』 권7
3. 밤이 대낮같이 밝아지다
신씨辛氏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나이 80여 살이 되도록 정주시鄭州市의 남쪽에서 살면서 항상 『법화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였다. 그는 30여 년을 매일 밤마다 경을 읽어 왔는데, 경을 읽을 때면 밤이 대낮같이 밝아 등불을 켤 필요가 없었고, 만약 경을 읽지 않으면 평상시와 같이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9
4. 때맞춰 비가 내려 골고루 적시다
혜원慧遠38) 스님의 속성은 박씨朴氏39)이며, 경조京兆 사람이다. 나이 겨우 열 살 때 길장吉藏40) 법사에게 가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은 후부터 두루 듣고 많은 지식을 쌓아서 『법화경』을 강설하였다. 만년에는 속세를 떠나 남곡藍谷에서 지내면서 한가로이 도를 즐겼다. 당나라 정관貞觀 19년(645)에 절에서 하안거를 지내는데, 이때 마침 몹시 가물어 스님은 『법화경』을 강설하여 감로비를 내리도록 기원하니, 사방에서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법회가 열릴 때마다 두 노인이 시간을 맞추어 와서 듣는데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혜원 스님은 늘 기억해 두고서 한 번 물어보리라 생각하면서도 말을 꺼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강설이 「약초유품」에 이르자 큰비가 흡족하게 내리더니, 그 두 노인이 사흘 동안이나 법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지팡이를 짚고서 함께 왔다.
혜원 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대답하였다.
“저희 제자들은 용龍입니다. 저희들이 직접 법사께서 「비유품」을 펴시어 방편의 문을 열어 주셔서 법사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갑자기 비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감응하여 비 내릴 때가 아니었는데, 저희 마음대로 비를 내렸기 때문에 용왕님께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겸손하여 비록 어린 사미승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탈것에서 내려 인사를 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하였다.
“알아보기도 어려운 남루한 옷을 걸친 사람이나 선인이나 성인의 훌륭한 옷을 입은 사람이거나

006_0548_a_01L年八十二歲後不知所終出弘賛第
006_0548_a_02L

006_0548_a_03L夜明如晝

006_0548_a_04L
有辛老者失其名年八十餘住鄭州
006_0548_a_05L市南角常讀法華經專心淸潔自三
006_0548_a_06L十年來每夜讀經夜明如晝不可燈
006_0548_a_07L若捨經卷還暗如常不復見物
006_0548_a_08L弘賛第九

006_0548_a_09L時雨普霑

006_0548_a_10L
釋慧遠俗性朴氏京兆人也年甫十
006_0548_a_11L投吉藏法師而出家焉具戒已後
006_0548_a_12L1) [33] 聞多識講法華經晚辭人境卜居
006_0548_a_13L藍谷乘閑樂道貞觀十九年在寺夏
006_0548_a_14L時屬亢旱乃講法華以祈甘液
006_0548_a_15L近聽之雲集霧2) [34] 每有二老應時而
006_0548_a_16L旣非舊識3) [35] 記之潜思詰問
006_0548_a_17L未之發也旣講至藥草喩品大雨霑洽
006_0548_a_18L向之二老三日不來後策杖俱臻
006_0548_a_19L恠呼而問乃逡巡對曰弟子龍也
006_0548_a_20L蒙法師4) [36] 喩之品卷上第九張
006_0548_a_21L方便之門思酬德5) [37] 忽然降雨且時
006_0548_a_22L未應下感擅酒之故爲龍王所笞耳
006_0548_a_23L忽不現遠雅性謙揖雖遇沙彌必下
006_0548_a_24L騎而存問也或問其故答曰髣髴染衣

006_0548_b_01L부처님께서는 공경으로 대하여 이제 정각正覺을 이루셨는데, 나 같은 일개 승려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혜원 스님은 항상 『법화경」을 외워 자주 신령스런 감응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등잔에 기름을 넣어 주지 않았는데도 며칠 동안 저절로 불이 밝았던 일도 있었다.
『홍찬법화전』 권3
5. 향을 피우지 않아도 연기가 저절로 피어오르다
지염智琰 스님은 속성이 주씨朱氏이며, 오군吳郡 사람이다. 할아버지 헌獻은 양나라 때 산기시랑散騎侍郞이었고, 아버지 민珉은 진陳나라 때 봉조청奉朝請 벼슬을 하였고, 어머니는 장씨張氏이다. 여덟 살 때 출가하여 통현사通玄寺 거璩 법사의 제자가 되었다.
수나라 양제가 번국蕃國41)에 있을 때는 스님을 깊이 공경하고 특별한 예우를 하였다. 당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스님은 무구산사武丘山寺로 돌아와 강의하고 염불하며 남는 시간에는 항상 『법화경』의 보현참법普賢懺法 등42)을 행하였다. 또 『법화경』을 3천 번이나 외워서 명부冥府가 감응할 정도였으니, 신이한 상서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에 향로에 향을 피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향 연기가 피어오르거나, 저녁에 물통이 비기라도 하면 몰래 물이 더해져 넘치기도 하였다. 정관 8년(634)에 나이 71세가 되어 입적하였는데, 그동안 30여 차례나 『법화경』을 강설하였다.
『홍찬법화전』 권3
6. 눈을 잃고도 도리어 잘 보다
청신사 왕범행王梵行은 낭야현瑯瑘縣 임기臨沂 사람이다. 어려서 양쪽 눈을 다 잃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자비로운 마음에 구두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나이 열세 살이 되어 『법화경』 한 부를 통달하고 밤낮 없이 외워 익혀서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데 이르렀다. 1만 7천 번을 독송하니, 비록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길을 갈 때도 앞에서 인도해 줄 필요가 없게 되었고, 길 가운데 구덩이가 있는 것도 스스로 알았으며, 능히 방석을 짜고 옷을 꿰매고 편지를 쓰기를 오히려 눈 성한 사람보다 더 잘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특별히 신통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였다.
개황開皇 6년(586) 나이 71세로 명을 마치자 시체를 들판에 내다 놓으니, 새와 짐승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살이 다 허물어 없어져서 오직 백골만 남자 혀가 입 밖으로 나온 것이 길이가 한 자쯤 되었는데, 그 색깔이 마치 연꽃과 같았다.
그의 아우 혜의慧義가 벽돌로 함을 쌓아서 그 속에 넣어 두었는데

006_0548_b_01L仙聖幢相獅子致敬今成正覺在予
006_0548_b_02L一介敢不遵乎遠常誦法華頻有靈
006_0548_b_03L或不加油炷燈數日自明出弘賛第
006_0548_b_04L

006_0548_b_05L爐香不6) [38] 而自熏

006_0548_b_06L
釋智琰俗性朱氏吳郡人也祖獻
006_0548_b_07L散騎侍郞父珉陳奉朝請母張氏
006_0548_b_08L歲出家事通玄寺璩法師爲弟子
006_0548_b_09L煬帝在蕃深如禮異至大唐統宇
006_0548_b_10L歸武丘山寺講念之餘常行法華普
006_0548_b_11L賢等懺又誦法華三千餘徧感應冥符
006_0548_b_12L神瑞非一宵爐未爇自起煙芬夕灌
006_0548_b_13L纔空潜加溢水貞觀八年卒春秋七
006_0548_b_14L十一凡講法華三十餘徧出弘賛第三

006_0548_b_15L瞽叟無目而能覩

006_0548_b_16L
淸信士王梵行瑯瑘臨沂人也少失兩
006_0548_b_17L其母慈念口授法華至年十三
006_0548_b_18L部通利仍晝夜誦習憑心專到誦得
006_0548_b_19L一萬七千遍雖目無覩而行來不須前
006_0548_b_20L自識坑坎能織席簟縫衣書䟽勝
006_0548_b_21L有眼人人咸疑其別有所得年七十一
006_0548_b_22L開皇六年終屍陁草野鳥獸不敢近
006_0548_b_23L肉旣消盡唯餘白骨舌方出口長一
006_0548_b_24L尺餘色如蓮華其弟慧義以塼凾盛

006_0548_c_01L오래도록 썩지 않았다.
『홍찬법화전』 권7
제4단 인연주43) 「화성유품」
1. 날짐승도 『법화경』을 듣고 인간으로 태어나다
동진東晋 때 법지法志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여항산餘杭山에 암자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외워서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때 암자 옆에 둥우리를 치고 있던 꿩 한 마리가 스님의 경 외우는 소리가 들리면 곧 날아와서 스님 옆에 앉는데, 마치 모시고 서서 경을 듣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이 7년을 지냈다. 하루는 꿩이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오니, 스님이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너는 비록 날짐승이지만 경을 잘 들었으니 업의 몸을 벗고서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꿩이 떨어져 죽어 있기에 묻어 주었다.
그날 밤 스님이 언뜻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어린아이가 나타나서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저는 전에 스님 곁에 있던 꿩입니다. 스님이 경 외우시는 것을 들은 인연으로 지금 산 앞의 왕씨 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에 꿩의 솜털 같은 것이 나와 있으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법지 스님이 그 집을 찾아가 물어보았더니, 과연 왕씨 집에서 아들을 낳아 재를 올리고 있었다. 스님이 막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이 아들이 갑자기 말하였다.
“우리 스님(和尙) 오신다.”
모두들 기이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데려다 법지 스님에게 보였다. 스님이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나를 찾아오던 꿩이었습니다.”
이윽고 옷을 벗겨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겨드랑이 아래에 꿩의 솜털이 세 줄로 나 있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자 출가하겠다고 하여 부모가 허락하니, 산으로 들어가 열여섯 살에 머리를 깎았다.

006_0548_c_01L久而不爛7)出弘賛第七 [39]

006_0548_c_02L

006_0548_c_03L第四段因緣周化城喩品

006_0548_c_04L
羽族慣聞而便脫業軀比丘暗誦而即離鬼
006_0548_c_05L感悟前生之師弟通交二世之爺孃
006_0548_c_06L上第一○張

006_0548_c_07L羽族慣聞而便脫業軀

006_0548_c_08L
東晉時有僧法志結庵餘杭山誦法
006_0548_c_09L華經朝夕不懈有雉巢于菴之側
006_0548_c_10L聞誦經聲則翔集于座旁若侍立聽受
006_0548_c_11L如是者七年一日憔悴師撫之曰
006_0548_c_12L汝雖羽族而能聽經苟脫業軀必生人
006_0548_c_13L明旦遽殞8) [40] 及夜方假寐 [7]
006_0548_c_14L童子再拜曰我即雉也因聽師誦經
006_0548_c_15L今生于山前王氏家爲男子右腋猶有
006_0548_c_16L雉毳可驗僧詰朝至其家問之果然
006_0548_c_17L王氏一日設齋志方踵門此子遽然曰
006_0548_c_18L我和尙來也擧衆異之携以示志
006_0548_c_19L撫之曰此我雉兒耳遂解衣周視
006_0548_c_20L腋下果有雉毳三莖至七歲冝聽出
006_0548_c_21L父母唯之至時入山十六落髮
006_0548_c_22L「愽」作「博」{乙}「委」作「隨」{乙}「默」作
006_0548_c_23L「點」又冠註曰點疑默{乙}
「比」作「譬」{乙}
006_0548_c_24L
「惠」作「慧」{乙}」作「熱」{乙}「出弘
006_0548_c_25L賛第七」無有{乙}
「瘞」作「埋」{乙}

006_0549_a_01L겨드랑이 밑에 솜털이 있으므로 이름을 담익曇翼이라 하였는데, 『법화경』을 주자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외웠다. 스님이 되자 곳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도를 물어 종승宗乘44)을 깨달아 대변재大辯才45)를 얻었다.
동으로 회계會稽(강소성과 절강성에 걸쳐 있음) 지방을 돌아다니다 진망산秦望山에 이르렀다. 이 산에 주석할 셈으로 그는 돌을 깨고 띠를 떠서 암자를 짓고 오로지 『법화경』만 외우기를 열두 해(一紀)나 계속했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땅거미가 질 무렵에 몸에 화려한 옷을 입고 손에 흰 돼지 한 마리와 마늘 두 통이 들어 있는 대바구니를 든 한 여인이 스님 앞에 나타나 울면서 말했다.
“저는 산 앞마을 아무개 딸인데 산에 들어와서 고사리를 뜯다가 사나운 호랑이를 만나 여기까지 쫓겨 왔습니다. 날도 이미 저물고 나무가 우거져서 이리와 승냥이가 마구 날뛰니 집으로 돌아가다가는 살아날 도리가 없으니, 어떻게 하룻밤 묵어 갈 수 없겠습니까?”
스님이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하여 완강히 거절하고 들어주지 않자, 여인이 비 오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애절하게 울었다. 그러자 스님은 하는 수 없이 허락했다. 스님은 건초로 만든 침상을 여인에게 내어 주고는 곧 돌아앉아서 경을 읽기 시작했다.
3경更(밤 11시~새벽 1시)쯤 되니, 여자가 배가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스님은 이를 보고 약을 주었다. 그러나 여인은 그래도 배가 아프다고 더욱 외쳐대면서 계속 소리쳤다.
“스님께서 제 배를 좀 문질러 주시면 아픈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곧 죽습니다. 부처님 법은 자비와 방편을 근본으로 삼는다는데, 스님은 가만히 앉아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도움 청하는 것을 보고만 계십니까?”
스님이 말하였다.
“나는 대계大戒46)를 받은 승려이니, 어찌 여인의 몸을 만지겠는가?”
그러나 여인의 애절하고 간곡한 청을 끝내 물리칠 수가 없어서 석장의 앞머리를 수건으로 싸서 멀찌감치 앉아 여인의 배를 문질러 주니, 잠시 후에 여인이,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 여인이 정원에 나서는 순간, 채색 옷은 상서로운 구름으로 변하고, 돼지는 흰 코끼리로, 마늘은 두 송이 연꽃으로 변하였다. 여인은 연꽃을 밟고 코끼리 위에 올라앉아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올라가면서 말하였다.
“나는 보현보살이다. 그대는 오래지 않아 나의 회상에 돌아올 것이니, 특별히 와서 그대를 시험해 본 것이다. 그대의 마음을 살펴보니, 마치 물속의 달과 같아 더럽혀지지 않는구나.”
말을 마치자, 표연히 멀어져 갔다.

006_0549_a_01L腋有毳命名曇翼授與蓮經不遺一
006_0549_a_02L旣爲僧已隨方問道了悟宗乘得
006_0549_a_03L大辯才東遊會稽1) [41] 秦望山遂伐
006_0549_a_04L石誅茅爲住山計專誦法華僅于一
006_0549_a_05L一日將曛有一女子身被彩服
006_0549_a_06L携筠籠內有白豕一隻大蒜兩根
006_0549_a_07L於師前泣而言曰妾山前某氏女
006_0549_a_08L山採薇路逢猛虎奔遁至此日已夕
006_0549_a_09L草木陰翳2) [42] 狼縱橫歸無生理敢託
006_0549_a_10L一宿可乎師稱嫌疑堅却不從女子
006_0549_a_11L雨淚哀鳴師不得已讓以草床即蒙
006_0549_a_12L誦經至3) [43] 三更號呼疾作稱腹疼
006_0549_a_13L4) [44] 師視之師投以藥女子痛益甚
006_0549_a_14L叫不絕聲曰倘得師爲我案摩臍腹間
006_0549_a_15L卷上第一一張庶得小安不然即死
006_0549_a_16L佛法以慈悲方便爲本師忍坐觀
006_0549_a_17L一引手見救耶師曰吾大戒僧摩挲
006_0549_a_18L女身此何理也懇求之切即以巾布
006_0549_a_19L褁錫杖頭遙以案摩斯須告云已瘳
006_0549_a_20L翌晨女出庭際以彩服化祥雲
006_0549_a_21L變白象蒜化雙蓮女子足躡蓮華
006_0549_a_22L象乘雲而謂曰我普賢菩薩也以汝
006_0549_a_23L不久當歸我衆特來相試觀汝心中
006_0549_a_24L如水中月不可汙染言訖縹緲而去

006_0549_b_01L이때 하늘에서 하늘 꽃이 비 오듯 내리고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이날 태수 맹공의孟公顗가 새벽에 일어나 홀연히 남쪽을 보니 상서로운 구름이 어려 있었고, 빛이 뜰을 비추는데 구름 아래에서 음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너무도 신기하여 음악이 들려오는 곳을 찾아가 스님을 만나 보현보살이 교화를 보이고 가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태수는 곧 이 사실과 스님의 도행道行을 나라에 보고하였다. 조정에서 듣고는 칙명을 내려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법화사法華寺’라 하였다. 이때가 진晋나라 안제安帝 의희義熙 13년(417)이었다.
『현응록』, 『법화사비法華寺碑』
2. 비구가 경을 외워 귀신의 난을 면하다
옛날 외국의 어느 산사에 젊은 비구가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절 밖으로 경행經行47)을 하다가 자태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부인으로 변한 나찰녀 귀신을 만났다. 비구에게 다가와서 갖은 교태를 부리자 그만 유혹에 넘어가 드디어 정을 통하게 되었다.
정을 통한 후에 그는 정신이 황홀해지면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귀신은 자기 처소로 데려가 잡아먹으려고 그를 업고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밤이 되어 어느 절 위를 날아가는데 귀신의 등 위에 있던 비구의 귀에 절에서 외우는 『법화경』 소리가 들렸다. 이에 비구는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이미 자신이 익혔던 『법화경』이 기억나서 이내 마음속으로 그것을 암송하였다. 귀신은 곧 무거운 것을 느끼고 점점 땅으로 내려가더니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던지 비구를 놓아주고 가 버렸다. 잠시 후 비구는 잠이 깨어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서 그 종소리 나는 곳을 찾아 절에 이르렀다. 문을 두드리고는 나아가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말하였다. 알고 보니 그곳은 고향에서 2천여 리나 날아온 곳이었다.
그러나 그 절의 스님들은, “이 사람은 중한 계율을 범하였으니 같이 있도록 할 수 없다.”라고 거절하였다. 그런데 한 상좌가 말하였다.
“그것은 귀신에 유혹되어 행한 것이지 자기의 본심은 아닙니다. 또 이미 그로부터 벗어났으며, 『법화경』의 위력까지 드날렸으니, 가히 절에 머물러 참회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하여 머물게 되었는데, 비구는 후에 고향에 갈 기회를 만나 고향으로 보내졌다.
『홍찬법화전』 권6
3. 전생에 사제지간이었음을 깨닫다

006_0549_b_01L爾時天上雨花地皆振動是日5) [45]
006_0549_b_02L孟公*覬方晨起忽見南方祥雲氤
006_0549_b_03L光射庭際而雲下隱有金石絲竹之
006_0549_b_04L訪問得師普賢示化狀遂併師之
006_0549_b_05L道行聞于朝廷即奉勑建寺額號法
006_0549_b_06L時晉安帝義熙十三年也出現應錄及
006_0549_b_07L法華寺碑

006_0549_b_08L比丘暗誦而得離鬼難

006_0549_b_09L
昔外國山寺有年少比丘每誦法華
006_0549_b_10L甞於寺外經行遇羅刹女鬼變爲婦
006_0549_b_11L甚好姿首來嬈比丘比丘被惑
006_0549_b_12L與之通通後精神怳忽無所覺鬼負
006_0549_b_13L之飛行欲還本處䂓䂓將噉於夜前
006_0549_b_14L從一伽藍上過比丘在鬼上聞伽
006_0549_b_15L藍中有誦法華經聲因即少惺憶已所
006_0549_b_16L乃心暗誦之鬼便覺重漸漸近地
006_0549_b_17L遂不能勝弃之而去比丘少時醒窹
006_0549_b_18L聞有鐘聲尋聲到寺扣門求進具陳
006_0549_b_19L本末然計去其鄕已二千餘里諸僧
006_0549_b_20L此人犯重不可同止有一上座云
006_0549_b_21L此鬼神所惑非是自心卷上第一二張
006_0549_b_22L旣脫免現經威力可留住寺令其懺
006_0549_b_23L後遇彼鄕信乃發遣之出弘賛第六

006_0549_b_24L感悟前生之師弟

006_0549_c_01L
담제曇諦 스님은 그 조상이 강거康居 사람으로 후에 오흥吳興으로 이사와 살았다. 스님의 어머니 황씨黃氏가 하루는 낮에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스님이 황씨를 부르기를 어머니라고 하고, 불자(麈尾48)) 하나와 쇠로 만든 서진書鎭49)을 주었다. 황씨가 잠에서 깨어 보니 그 두 가지가 모두 들려 있었다. 신이한 일이라 여기고 혼자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임신을 하여 담제를 낳았다.
담제가 다섯 살이 되어 어머니가 불자(麈尾) 등을 장난감으로 보여 주었더니, 담제가 말하였다.
“그것은 진왕秦王이 제게 준 것입니다.”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너는 이것을 어느 곳에 두었었느냐?”
담제가 대답하였다.
“생각나지 않습니다.”
열 살이 되자 출가하여 스승에게서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힘써서 깨달음이 크게 열렸다. 뒤에 아버지를 따라 번등樊鄧에 갔다가 관중關中의 승략僧䂮50) 도인을 만나자, 갑자기 승략 도인을 불렀다.
승략이 말하였다.
“동자는 어찌 나(宿士)의 이름을 부르는가?”
담제가 말하였다.
“그대(阿上)는 본시 나의 사미였습니다. 당신은 전에 대중 스님들을 위해 나물을 뜯다가 멧돼지에게 물려 기절했는데, 어찌 지금까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까?”
그런데 승략은 전에 홍각弘覺 법사의 제자로 있을 때, 스님들을 위해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멧돼지에게 물린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여 곧 담제의 아버지에게 사정을 물었다. 담제의 아버지가 담제가 태어날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 주고 아울러 서진과 불자 등을 보여 주자 그제야 사실을 깨닫고 울면서 말하였다.
“저의 스승은 홍각 법사였습니다. 스님께서 전에 진나라 임금(秦主) 요장姚萇에게 『법화경』을 강설하실 때 소승은 도강都講51)이었고, 요장이 스님께 두 가지 물건을 드렸었는데,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입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홍각 법사가 돌아가신 날이 바로 황씨 부인이 꿈에 물건을 받은 날이었다. 그는 다시 나물 캐던 일 등을 생각하고는 더욱더 슬퍼하였다.
담제 스님은 그 뒤 국내외를 유학했는데, 눈에 스치는 것을 모두 기억하는 총명이 있었다. 『법화경』ㆍ『대품반야경』ㆍ『유마경』 등을 각각 열다섯 번씩 강의하고 송나라 원가元嘉 말년(453)에 입적하였다.52)
비장방費長房53)이 말하였다.
홍각 법사와 제자 승략 스님은

006_0549_c_01L
釋曇諦者其先康居人也後移吳興
006_0549_c_02L諦母黃氏晝眠夢見一僧呼黃爲母
006_0549_c_03L寄一麈尾幷鐵鏤書鎭黃旣眼覺
006_0549_c_04L二物具存私密異之因而懷孕生諦
006_0549_c_05L諦年五歲母以麈尾等弄示之諦曰
006_0549_c_06L秦王所餉母曰汝置何處答曰不憶
006_0549_c_07L至年十歲出家學不從師悟自天發
006_0549_c_08L後隨父之樊鄧遇見關中僧䂮道人
006_0549_c_09L忽然喚䂮䂮曰童子何以呼宿士名
006_0549_c_10L曰阿上本是諦沙彌汝曾爲衆僧採菜
006_0549_c_11L被野猪所傷不覺失聲耳今何忘耶
006_0549_c_12L然僧䂮經爲弘覺法師弟子爲僧採菜
006_0549_c_13L被野猪所傷䂮初不憶此乃詣諦父
006_0549_c_14L諦父具說諦生本末幷示書鎭麈尾等
006_0549_c_15L䂮乃悟而泣曰即䂮先師弘覺法師也
006_0549_c_16L而師經爲秦主姚萇講法華貧道爲都
006_0549_c_17L姚萇餉師二物今遂在此耳追計弘
006_0549_c_18L覺捨命正是寄物之日復憶採菜之事
006_0549_c_19L彌增悲悼諦遊學內外過目6) [46]
006_0549_c_20L法華大品維摩各十五遍終於宋元嘉
006_0549_c_21L末年費長房曰弘覺法師弟子僧䂮
006_0549_c_22L「抵」作「至」{乙}「豺」作「犲」{乙}「子」作
006_0549_c_23L「于」{甲}{乙}
「覬」作「顗」{乙}次同「大」作「太」
006_0549_c_24L{乙}
「斯」作「則」{乙}

006_0550_a_01L훌륭한 사제로 두 진나라에 명성이 높았네.
10물十物 삼의三衣54)에 또다시 한정하리오.
오직 서진書鎭과 불자(麈尾)만을 품안에 간직하고
식신識身을 바꾸어 다시 태어날 때에
이 두 물건으로 인해 드디어 서로가 만났네.
『홍찬법화전』 권2, 『고승전』
4. 전생 부모와 현생 부모를 모두 만나다
신라에 김과의金果毅라는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어려서 출가하여 『법화경』을 즐겨 독송하였다. 제2권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로 글자 한 자를 태웠다. 18세에 갑자기 죽어서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그 부모도 역시 김과의金果毅였다. 이곳에서도 출가하여 『법화경』 독송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제2권에 이르러 매번 어느 한 글자를 듣는 대로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말하였다.
“어린 스님은 전생에 아무 마을 김과의의 집에 태어나 출가하여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실수로 한 글자를 태워 버렸으므로 이생에서는 물어서 알았다가도 다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옛날의 『법화경』이 현존하고 있으니, 그곳에 가서 직접 살펴보십시오.”
어린 스님이 꿈에 일러 준 대로 찾아가 보았더니 과연 그 집이 있었고, 들어가서 물어보니 전생의 부모임이 거의 확실하였다. 다시 옛 『법화경』을 찾아내어 제2권을 살펴보니 정말로 한 글자가 타고 없었다.
어린 스님과 전생의 부모는 슬프고도 기쁜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이후로 이 두 집은 서로 친해져서 네 집 내 집 없이 한 집안같이 되었다.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지고 마을에서 나라에 보고하여 온 나라에 회자되었다. (이것은) 당나라 정관(623~649) 때의 일이다.
『홍찬법화전』 권9
제5단 「오백제자수기품」ㆍ「수학무학인기품」

006_0550_a_01L師徒匠1) [47] 名重二秦什物三衣亦復
006_0550_a_02L何限唯書鎭麈尾保惜在懷及移識
006_0550_a_03L托生此之二物遂得同往出弘賛第二
006_0550_a_04L本出高僧傳

006_0550_a_05L通交二世之爺孃

006_0550_a_06L
新羅國有金果毅卷上第一三張 生一
006_0550_a_07L男子從少出家樂讀法華經至第二
006_0550_a_08L誤燒一字年十八忽從天喪2) [48]
006_0550_a_09L生別處金果毅家又得出家即徧3) [49]
006_0550_a_10L讀法華經至第二卷每於一字隨問 [8]
006_0550_a_11L隨忘夢有人云小師前生向某鄕金
006_0550_a_12L果毅家生亦得出家在彼生時讀誦
006_0550_a_13L法華誤燒一字是以今生隨得隨忘
006_0550_a_14L彼舊經現存往彼自看此小師依夢
006_0550_a_15L向彼尋覔果得其家借問投宿前生
006_0550_a_16L父母依俙欲識尋訪舊經乃見第二
006_0550_a_17L實燒一字小師及前父母悲喜交幷
006_0550_a_18L二家遂爲親好彼此無二當即言及州
006_0550_a_19L州縣奏聞擧國傳詠即貞觀時也
006_0550_a_20L出弘賛第九

006_0550_a_21L

006_0550_a_22L第五段五百弟子授記品
006_0550_a_23L授學無學人記品

006_0550_a_24L
野雉忽爾轉身閻王聳然彈指融酥滿器
006_0550_a_25L衛盈庭神人警寢而進船天帝收經而入藏

006_0550_b_01L
1. 들꿩이 홀연히 몸을 바꾸다
스님의 이름은 도생道生으로 호구사虎丘寺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살았는데, 그가 강설하던 바위(講臺石)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어느 때 못의 둑 가운데에서 『법화경』을 외우면 항상 어디선가 꿩 한 마리가 와서 경을 들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꿩이 보이지 않아 웬일인가 걱정이 되었는데, 밤이 되자 꿈에 그 꿩이 나타나 말하였다.
“저는 스님께서 『법화경』 외우시는 것을 들은 공덕으로 마침내 몸을 바꾸는 과보를 얻어서 지금 아무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몇 해가 지나면 다시 와서 스님을 모시겠습니다.”
스님이 알아보았더니 과연 꿈과 같았다. 그 아이는 자라서 출가하였는데, 아무런 병도 없이 어린 동자의 나이로 숨을 거두어 숲속에 묻어 주었다.
어느 날 저녁 별안간 그 무덤에서 휘황한 빛이 나와 둘레를 환히 비추므로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곳을 파보았더니 혀만 남아 있고, 혀에서 푸른 연꽃이 나 있었다.
그 인연으로 여기에 탑을 세웠다가 훗날 절로 만들었는데, 지금의 반당사半塘寺가 바로 그곳이다.
『현응록』 상의 1
2. 염라대왕이 공경하며 기뻐하다
혜도慧度 스님은 오흥吳興 사람이다. 스님은 평생을 채식만 하고 오랫동안 재계하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웠는데,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가 닷새 만에 다시 살아나서 스스로 말하였다.
“내가 염라대왕을 보니, 의관 치장이 지금의 임금과 같고, 모시고 위호하는 이들도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처음은 온화한 태도로 죄인을 다스리다가, 문득 크게 노하면 수염으로 덮인 얼굴이 이상하게 움직입니다. 대왕이 내게 묻기를, ‘그대는 어떤 업을 지었느냐?’라고 하기에, ‘『법화경』을 읽었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대왕이 삼가 공경하여(聳然) 손가락을 퉁기며 금으로 된 상을 내어 오라 하여 나에게 내어 주며 앉아서 『법화경』을 외워 보라고 청하였습니다. 내가 한 편을 다 외우자, 대왕이 말하기를, ‘이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법사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은 것도 이 경의 힘인데, 이제 다시 24년(二紀)을 더 연장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과연 스님은 24년을 더 살고 진陳나라 문제文帝 천가天嘉 때에 입적하였으니, 나이 70여 살이었다.
『홍찬법화전』 권6
3. 잘 익은 우유(融酥)가 항상 그릇 속에 가득 담겨 있다
지장智藏 스님은 하주夏州(陝西省)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대흥선사大興善寺에 머물면서

006_0550_b_01L野雉忽爾轉身

006_0550_b_02L
師諱道生遁蹟虎丘寺有講臺石
006_0550_b_03L今存焉一時居半塘誦法華經忽有
006_0550_b_04L一雉常來聽受一日不見師念之
006_0550_b_05L入夢云某因聽經遂獲改報今在某
006_0550_b_06L家爲兒子待過數年却來奉事洎師
006_0550_b_07L詢之果爾及出家無何童子之年
006_0550_b_08L便命終因瘞于林一夕俄而放光
006_0550_b_09L照塘塢鄕人異之啓看乃獲一舌生靑
006_0550_b_10L蓮華因是起塔後葺成寺即今半塘
006_0550_b_11L寺是也出現應錄上之一

006_0550_b_12L閻王聳然彈指卷上第一四張

006_0550_b_13L
釋慧度吳興人也菜食長齋誦法華
006_0550_b_14L忽染疾暴4) [50] 五日還活自說見閻
006_0550_b_15L羅王服遠遊冠衣纓如今王者侍衛
006_0550_b_16L亦然始時儀容溫雅亦判罪人事便
006_0550_b_17L大瞋怒鬚面動異問度有何業答誦
006_0550_b_18L法華經王聳然彈指召出金床與度
006_0550_b_19L坐請誦一徧究竟王曰此功德不可
006_0550_b_20L思議法師年壽未盡亦以經力扶持
006_0550_b_21L更延二紀後果得二十四年陳文帝元 [9]
006_0550_b_22L嘉時亡春秋七十餘出弘賛第六

006_0550_b_23L融酥滿器

006_0550_b_24L
釋智藏夏州人也年少出家住大興

006_0550_c_01L천 번을 목표로 날마다 『법화경』을 독송하던 중 (정진이 지나쳐) 심장이 아팠고 피를 토하였다. 며칠을 계속하니 이 절의 스님 계모季謨가 지장 스님께 말했다.
“전하는 방문에 의하면 심장이 아플 때는 오줌에 밀가루를 개어 미음을 만들어 먹으면 차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장 스님은 말하였다.
“『법화경』을 천 번 외우기로 맹세했는데, 그 뜻을 이루기 전에 더러운 물건을 먹어 그 기운이 경전에 배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약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마음 먹어 온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물을 뿌려 마당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법화경』을 책상 위에 놓고서 향을 피우고 주위를 돌고 예배하며 정성을 다해 기원하였다.
이날 밤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한 범승梵僧이 나타나 물을 가져다가 밀가루를 개어 미음을 만들어 지장 스님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권하였다.
지장 스님이 절반도 먹지 않아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보통 때보다 힘이 배나 더 솟아나서 다시 『법화경』 독송을 계속하였다.
정관 9년(635)에 하주夏州 스님 석石 법사가, 지장 스님이 『법화경』을 외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소유酥油55) 세 근을 바쳐 공양에 쓰라고 하였다.
지장 스님이 그 소유를 한 그릇에 담아 놓고, 첫날에는 구리 수저로 가운데를 복숭아만큼 퍼냈는데, 다음날 다시 꺼내려고 보니, 본래 모습 그대로 잘 익은 우유(融酥)가 채워져 있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매일 꺼내도 이와 같이 항상 가득해졌다. 지장 스님은 제호醍醐56)가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고 혼자서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8월이 되어 스님은 이 소유를 같은 절에 머무는 영향 선사靈響禪師57)에게도 나누어 드리며 그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또 항상 기이한 향내가 나고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자주 어떤 사람이 스님을 불러서 일어나도록 하니, 그리하여 스님은 이리저리 『법화경』을 독송한 것이 모두 1만 여 번이었다.
스님은 당나라 의봉儀鳳 3년(678)에 나이 88세로 정영사淨影寺에서 입적하였는데, 지계는 구족하여 어그러짐이 없었으나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을 식자識者들은 아쉬워하였다.
『홍찬법화전』 권8
4. 호위병이 정원에 가득하다

006_0550_c_01L善寺每誦法華經以千徧爲限當損
006_0550_c_02L心吐血經數日寺僧李謨告藏曰傳聞
006_0550_c_03L損心用小便和麵作漿服之即差
006_0550_c_04L云誓於千徧之內不以穢物熏經
006_0550_c_05L雖爲藥終乖宿志5) [51] 酒掃庭除
006_0550_c_06L經置案燒香旋繞禮拜6) [52] 尒夜忽
006_0550_c_07L如睡夢見一梵僧與藏取水和麵作
006_0550_c_08L漿授之令服藏飮之未半歘然即悟
006_0550_c_09L乃心力倍常還遵舊貫貞觀九有夏
006_0550_c_10L州僧石法師聞藏誦經奉酥三斤
006_0550_c_11L充供養藏盛以一器初日以銅匙取中
006_0550_c_12L7) [53] 明日更取乃見舊處融酥
006_0550_c_13L凝滿從夏至秋日取如故藏私心慶
006_0550_c_14L始悟醍醐自出到八月分此舊酥
006_0550_c_15L與同寺僧靈響禪師爲響說之又每聞
006_0550_c_16L異香及彈指之響屢爲幽人喚之令起
006_0550_c_17L而前後所誦一萬餘徧儀鳳三年
006_0550_c_18L八十八終於淨影寺焉但以戒足少
006_0550_c_19L不獲深悟識者恨之出弘賛第八
006_0550_c_20L上第一五張

006_0550_c_21L兵衛盈庭

006_0550_c_22L「導」作「道」{乙}「還」作「邊」{乙}「愛」作
006_0550_c_23L「受」{乙}
「亡」作「王」{甲}「及」作「乃」{乙}
006_0550_c_24L「祈」作「析」{甲}
「楪」作「桃」{乙}

006_0551_a_01L
승영僧映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강양현江陽縣(四川省) 영제사永齊寺에 머물며 나이가 들어 늙도록 『법화경』을 외웠다. 외우고 익히기를 끊이지 않자, 옆방의 한 법사가 승영 스님이 큰 소리를 내어 경을 외우는 것을 항상 미워하여 자신이 조용히 책을 읽는 데 피해를 준다며 건사騫師58)에게 못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어느 날 초저녁달이 휘영청 밝은데 승영 스님은 항상 하듯이 『법화경』을 외웠다. 건사가 가서 그치도록 말하려고 방문을 열고 나와 보니, 승영 스님의 방 앞에 갑옷과 투구를 쓰고 활과 막대기를 든 수천 명의 군사가 팔짱을 끼고 꿇어앉아 열심히 경 읽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건사는 급히 자기의 방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튿날 건사는 그 법사에게 어제 저녁 본 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승영 스님에게로 가서 미워하고 원망한 죄를 참회하였다.
승영 스님은 평소에도 어디를 왕래할 때면 언제나 앞뒤에서 갑옷과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스님은 개황開皇 연중(581~600)에 이 영제사에서 입적하였다.
『홍찬법화전』 권7
5. 신인이 잠을 깨우고 배를 저어 주다
보결寶玦 스님은 장효수張孝秀59)의 아우이며, 출가하여 광산사匡山寺에 머물렀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여 자재하게 통달하였으나, 말과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양나라 소릉왕邵陵王이 그를 미워하여 밤에 두 사람의 자객을 보내어 몰래 죽이도록 하였다.
이때 스님은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꿈에 네 사람이 나타나 침상 앞으로 와서는 스님을 손으로 흔들어 깨우며 말하였다.
“소릉왕이 사람을 보내와서 당신을 죽이려 하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태평하게 잠만 자고 있습니까?”
스님이 깜짝 놀라 일어나서 뒷문으로 뛰쳐나갔더니, 이때 이미 앞문으로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은 황급히 집 뒤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본래부터 못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얼마나 깊고 얕은지를 알지 못하였다.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문득 보니 배 한 척이 있고, 두 사람이 삿대를 드리워 기다리고 있었다. 보결 스님이 배에 오르니 순식간에 건너편 언덕에 가 닿았다. 곧 돌아다보니, 소릉왕이 보낸 두 사람은 못가에 다다랐으나 물이 막혀 건널 수가 없었다.
보결 스님은 이때부터 『법화경』을 독송하여 통달했다는 아만을 항복받고 말과 행동을 올바르게 단속하여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006_0551_a_01L
釋僧映少出家住江陽永齊寺誦法
006_0551_a_02L華經至于年老誦習無輟與一法師
006_0551_a_03L竝房法師意常嫌誦經聲高妨癈看讀
006_0551_a_04L請騫師諫之尒日初夜月朗僧映依
006_0551_a_05L常誦經騫師欲往諫止開戶望見映房
006_0551_a_06L前有數千人身著甲鎧持弓帶仗
006_0551_a_07L手胡跪以聽誦經騫師即退歸房
006_0551_a_08L日俻向此法師述昨宵所見共往懺悔
006_0551_a_09L嫌恨之罪映凡常行往恒聞前後有甲
006_0551_a_10L仗之聲開皇年中卒於寺矣出弘賛第
006_0551_a_11L

006_0551_a_12L神人警寢 [54] 而進船

006_0551_a_13L
釋寶玦張孝秀弟也出家住匡山寺
006_0551_a_14L誦法華經甚得通利而不能善攝身口
006_0551_a_15L梁邵陵王嫌之夜遣二人密往殺玦
006_0551_a_16L玦時在床臥息忽夢見四人到床前
006_0551_a_17L搖玦云邵陵王遣人來殺汝汝那得安
006_0551_a_18L玦因驚覺即起向後開門仍覺前
006_0551_a_19L戶有人入聲心轉惶怖出至房後本
006_0551_a_20L有池水由來未經涉入不測深淺怳
006_0551_a_21L忽之間忽見一船二人倚篙待之
006_0551_a_22L乃上船到彼岸竟即見邵陵王所遣二
006_0551_a_23L已在池邊但㝵水不得過自後折
006_0551_a_24L節讀誦善能斷契人所倣効時人呼

006_0551_b_01L당시 사람들이 여산廬山의 살계자殺契者60)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분이었다.
『홍찬법화전』 권6
6. 천제가 경전을 맞아 액리장에 들여놓다정화 택주靜和宅主
정화 택주靜和宅主는 강종 대왕康宗大王의 서녀庶女이고, 권신權臣 진강공晋康公의 아내61)였다. 그녀는 권세는 빙산과 같아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고, 덧없는 인생은 불난 집처럼 편안함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닦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원묘圓妙 스님이 백련사白蓮社를 개창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세우기를 발원하여 힘껏 외호가 되었다.62) 또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조성하여 주전主殿에 모셔 놓았으며, 금자 『법화경』을 조성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온갖 물품을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갖추어 원묘 스님에게 바쳤다. 원묘 스님은 산 속에서 지내는 일여一如를 청하여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다. 뒤에 일여의 꿈에 신인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말하였다.
“그대가 금으로 베껴 쓴 『법화경』은 이미 도리천忉利天63)의 둘째 액리장額梨藏에 모셔 놓았다.”
『해동전홍록』
제6단 「법사품」ㆍ「견보탑품」
1. 귀신도 해치지 못하다
송나라 소흥紹興 28년(1158)에 무위군의 지사指使 이우李遇가 새로 부임해 오는 태수太守를 맞으러 성 서쪽으로 나갔다. 약 10여 리쯤 갔을 때, 갑자기 백여 명이 길옆에서 나타났다. 모두 세 살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이우를 둘러싸고 공격해 왔다. 이우는 처음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해 싸워 주먹을 한 번 휘두르면 10여 명이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아이들은 곧 다시 일어나 흩어졌다가 다시 합세하여 공격해 왔다. 이러기를 서너 차례 하자, 그중 한 놈이 펄쩍 뛰어 어깨 위로 올라와 두건을 빼앗고 머리를 거머잡아 이우는 더욱 곤란한 지경에 빠져서 달아나려고 해도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주먹으로 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나타났다. 도포를 입고 짚신을 신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노인은 큰 소리로 말하였다.

006_0551_b_01L爲盧 [10] 山殺契者是也出弘賛第六

006_0551_b_02L天帝邀經而入藏靜和宅主

006_0551_b_03L
宅主康宗大王之庶女權臣晉康公之
006_0551_b_04L室也知權勢氷山不久歎浮生火宅無
006_0551_b_05L思修出要幸聞圓妙卷上第一六張
006_0551_b_06L始開白蓮社同願剏成力爲外護
006_0551_b_07L塑成無量壽如來下安于主殿又願成
006_0551_b_08L金字蓮經凡百粧嚴無一不俻寄獻
006_0551_b_09L于圓妙妙請山人一如書寫如後夢
006_0551_b_10L感神人自空而下曰所寫金字法華
006_0551_b_11L安忉利天第二額梨藏中出海東傳弘錄

006_0551_b_12L

006_0551_b_13L第六段法師品見寶塔品

006_0551_b_14L
鬼莫能害舌不可耕皂客還輸本錢仙翁
006_0551_b_15L特請一品空中彈指座上生香

006_0551_b_16L鬼莫能害

006_0551_b_17L
紹興二十八年無爲軍指使李遇迎新
006_0551_b_18L郡大守於城西旣行十餘里忽見百許
006_0551_b_19L從路旁出皆如三五歲兒大呼而
006_0551_b_20L合圍擊之李初不懼與相1) [55] 每奮
006_0551_b_21L必十數軰仆地纔仆即起已散復
006_0551_b_22L如是數四有躍而登肩取巾2) [56]
006_0551_b_23L李益窘走不可脫且擊且前俄一
006_0551_b_24L老叟布袍草履不知自何來厲聲咄

006_0551_c_01L
“이 관가에 계신 분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다. 이 사람을 해치면 어찌 누累가 내게 미치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물러나라고 꾸짖었다. 마침내 귀신들이 다 흩어지자, 노인도 역시 사라져 버렸다. 이 노인은 토지신土地神이 아닐까라고 말해진다.
『이견우지夷堅于志』, 『현응록』
2. 혀가 뽑히지 않다
용삭龍朔 연간(661~663)에 당나라 서울에 사는 고문高文이란 사람이 항상 『법화경』을 읽고 있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순의문順義門을 나섰는데, 얼마 안 가서 갑자기 말탄 사람 둘이 쫓아와 잡으므로 그 이유를 물으니, “우리는 염라대왕께서 보내어 당신을 잡으러 왔소.” 하고 대답하였다.
고문이 황급히 달아나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면할 수가 없었다. 곧 붙들어 말에서 끌어내리고 머리채를 잡아채 가는 것이 머리를 칼로 도려 가는 것과 같았다. 소식을 듣고 집안사람들이 급히 달려가 들것에 싣고 집으로 데려왔다. 고문은 한참 만에야 소생하여 말하였다.
“염라대왕이 내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스님의 과자를 훔쳤으며, 어찌하여 삼보三寶의 허물을 말하였느냐?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여 나는 감히 할 말이 없었다. 대왕이 판결 내리기를, ‘과자를 훔친 죄는 철환鐵丸 450개를 삼켜 4년 동안 괴로움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고, 삼보의 허물을 말한 죄는 그 혀를 뽑아내야 할 것이다’ 하고는 석방해 주라고 하여 다시 살아났다.”
이와 같이 말하더니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잃고 무엇을 삼킨 듯 입이 막히고 온몸에 붉은 물집 같은 것이 생기면서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는 다시 정신이 들어 말하였다.
“내가 어떤 지옥에서 나흘 동안 철환을 삼키고 있었는데, 그 괴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 혀를 뽑아 버리려고 하였으나 아무리 뽑으려 해도 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서를 다시 조사해 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항상 『법화경』을 읽었으므로 혀를 뽑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마침내 석방해 주어 다시 살아났다.”
뒤에 고문은 지금 화도사化度寺에 계시는 원만圓滿 스님에게 법을 듣고 참회하였다고 한다.
『남산삼보감통록』, 『홍찬법화전』 권9 「석법안전」, 『현응록』64)
3. 검은 옷의 손님이 돈을 돌려보내다

006_0551_c_01L此官人常持法華經若損他豈不
006_0551_c_02L累我叱令退鬼遂散老人亦不現
006_0551_c_03L人疑土地神云出夷堅于志詳見現應錄

006_0551_c_04L舌不可耕

006_0551_c_05L
龍朔年間京師高文常讀法華經
006_0551_c_06L日乘馬出順義門忽見兩騎追捉問
006_0551_c_07L乃曰我是閻王遣來追汝文慞惶
006_0551_c_08L逃避皆不免即被拽下馬挽却頭髮
006_0551_c_09L如同刀割家人輿歸至晚蘇云閻王
006_0551_c_10L問我何故盜僧菓子因何說三寶之過
006_0551_c_11L遂依法伏罪無敢措言卷上第一七張
006_0551_c_12L王判盜菓之罪合呑鐵丸四百十枚
006_0551_c_13L四年受之說過之罪合耕其舌因令
006_0551_c_14L放釋遂蘇少選還絶口如呑物通身
006_0551_c_15L皰赤有苦楚相又經一日醒云某在
006_0551_c_16L地獄四日呑丸乃盡苦毒不可復言
006_0551_c_17L方欲拔舌耕之拔而不出勘案所乃
006_0551_c_18L常讀法華經舌不可出遂放得活
006_0551_c_19L今現在化度寺圓滿師處聽法懺悔云
006_0551_c_20L出南山三寶感通錄詳見弘賛第九卷釋法眼
006_0551_c_21L傳及現應錄

006_0551_c_22L皀客還3) [57] 本錢4)黿說文云大鼈也 [58]

006_0551_c_23L「歐」作「敺」{乙}「搊」作 「解」{乙}「輸」作
006_0551_c_24L「送」{乙}
「黿說文云大鼈也 」七字無有{乙}

006_0552_a_01L
엄공嚴恭은 자字가 근례近禮인데, 본래 천주泉州 사람이다. 집이 부유하여 재물은 많지만 형제가 없어서 부모가 그를 애지중지하여 무슨 말이나 잘 들어주었다. 진陳나라 대건大建 초(569)에 엄공이 부모에게 청하였다.
“돈 5만 냥만 주시면 양주楊州에 가서 장사를 해 보겠습니다.”
부모가 그 뜻을 따라 돈 5만 냥을 내주었다.
엄공이 돈을 배에 싣고 양주로 수십 리를 내려갔을 때, 강 가운데에서 큰 자라를 싣고 있는 배 한 척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자라를 양주 장에 내다 팔려는 것임을 물어서 알게 되었다. 엄공은 자라가 팔려가 곧 죽을 것이 가엾어서 자라를 팔라고 간청하였다. 자라 임자가 말하였다.
“내 자라는 특별히 크므로 한 마리에 천 냥은 줘야겠습니다.”
“모두 몇 마리인가요?”
“50마리입니다.”
“여기 5만 냥이 있으니, 모두 내게 파시오.”
자라 임자는 크게 기뻐하면서 돈을 받고는 자라를 내어 주고 가 버렸다.
엄공은 그 자라를 모두 강물에 놓아주고 빈 배로 양주로 향하였다. 그런데 먼저의 자라 임자는 엄공과 헤어지고 10리쯤 가서 배가 침몰하여 빠져 죽고 말았다.
이날 해가 질 무렵에 엄공의 본가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손님 50여 명이 찾아와 묵어가게 되었는데, 돈 5만 냥을 엄공의 부모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아드님이 양주에 있는데 이 돈을 돌려드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세어 보시고 받으시지요.”
부모는 엄공이 죽은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드님은 아무 탈 없이 잘 있습니다. 다만 돈이 필요치 않아 부모님께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부모는 돈이 모두 물에 젖어 있어서 이상하기도 하였으나 잘 지내고 가도록 음식을 차려 손님들을 대접하였다. 이튿날 날이 밝자 손님들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아들 엄공이 돌아왔다. 부모가 크게 기뻐하며 돈을 돌려보낸 까닭을 물었더니, 엄공이 말하였다.
“그런 일이 없는데요.”
부모는 여러 손님이 돈을 가져온 전말과 날짜를 자세히 말하였다. 아들이 그 날짜를 따져 보니, 바로 그 자라를 사서 살려 준 날과 같았다. 그러므로 50여 명의 손님이 곧 사서 살려 준 자라였음을 알고 모두 크게 놀라고 감탄하였다.
부모와 엄공은 이 일로 해서 양주로 이사 가서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며 항상 『법화경』을 읽었다. 하루는 엄공이 『법화경』을 읽다가 「견보탑품」에 이르자 책을 덮어 놓고 한탄하여 말하였다.
“보탑 안에는 두 분 여래께서 계시고, 분신의 부처님은 많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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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恭字近禮本泉州人也家富於財
006_0552_a_02L而無兄弟父母愛恭言無所違陳大
006_0552_a_03L建初恭請於父母願得錢五萬往楊
006_0552_a_04L州市物父母從之恭乘船載錢而下
006_0552_a_05L去楊州數十里江中逢一船1)黿 [59]
006_0552_a_06L將詣市賣之恭問知其故念黿將死
006_0552_a_07L因請贖之黿主曰我黿大頭別千錢
006_0552_a_08L乃可恭問有幾頭答有五十恭曰我
006_0552_a_09L有錢五萬願以贖之黿主喜取錢
006_0552_a_10L黿而去恭盡以黿放江中而空船詣
006_0552_a_11L楊州其黿主別恭行十餘里船沒而
006_0552_a_12L是日昏暮2) [60] 衣客五十人詣恭本
006_0552_a_13L家寄宿并以錢五萬付恭父母曰君
006_0552_a_14L兒在楊州附此錢歸願依數受也
006_0552_a_15L父母恠愕疑恭死客曰兒無恙但不
006_0552_a_16L須錢故附歸耳恭父受之記是本錢
006_0552_a_17L而皆水溼留客爲設食客明3) [61] 辭去
006_0552_a_18L後月餘恭還家父母大喜旣而問附
006_0552_a_19L錢所由恭言無之父母說客形狀及附
006_0552_a_20L錢日月乃贖黿之日於是知五十客
006_0552_a_21L卷上第一八張 皆所贖黿也父子驚嘆
006_0552_a_22L因徙家楊州專勤福業常讀法華經
006_0552_a_23L一時讀至見寶塔品輟經嘆曰寶塔之
006_0552_a_24L有二如來分身諸佛其數不少

006_0552_b_01L나는 어째서 그분들을 뵙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탄식하기를 마지않았다. 밤이 되어 꿈에 한 외국 승려(胡僧)가 나타나서 말하였다.
“경을 외우고 여러 부처님을 뵈려면 이 경을 해설하고 베껴 써서 유통하고 공양해야 합니다.”
엄공은 발심하여 『법화경』 1백 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미처 끝내지 못하고 갑자기 중병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다시 천 부를 더 만들 것을 발원하였다.
병이 낫자 그는 곧 자기 집에 조경당造經堂을 만들고, 종이와 붓을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마련하되 결코 속여서 억지로 구하지 않고 얻은 대로 일을 추진하였다. 베껴 쓰는 사람 수십 명에게 법대로 모든 것을 공급하고 엄공이 친히 교정(檢校)하여 조금도 싫증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법화경』 만들 돈 만 냥을 자꾸 빌려 달라고 하여 엄공이 할 수 없어 주었더니, 그 사람이 돈을 얻어 가지고 배를 타고 가다가 중류에서 갑자기 배가 뒤집혀 가라앉아서 돈을 잃었으나 다행히 사람은 살았다.
이날 엄공이 창고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돈이 원래대로 있고 모두 물에 젖어 있어 괴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뒤에 그 빌려 간 사람을 만나 물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80세쯤 되어 보이는 이상한 차림의 스님이 와서 말하였다.
“나는 구자국龜玆國에서 와서 지금 나부산羅浮山(중국 광동성에 있는 산)으로 가는 길인데, 듣자 하니 당신이 『법화경』을 만들고 있다고 하여 한 부만 주었으면 해서 왔습니다.”
엄공이 경을 주니, 이 스님은 무게 40냥이나 되는 금덩이를 주면서 말하였다.
“경을 조성하는 데 쓰십시오.”
말을 마치자 물러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후지候志라는 사람이 파양鄱陽에서 궁정宮亭으로 가는데, 도중에 어떤 사람이 그를 한 묘로 인도하여 들어가 보니, 신인이 칼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다가 후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양주의 『법화경』을 만드는 엄공을 아시오? 내가 돈 만 냥을 그 댁에 보내어 공덕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없어졌다. 이튿날 후지가 길에 나서자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와서 후지인지 묻고는 돈 만 냥을 억지로 받으라고 하고 가 버렸다. 후지는 이 돈이 틀림없이 전의 그 신인이 보낸 돈이라 생각하고 양주에 이르자, 곧 엄공에게 전해 주었다. 엄공은 뜻이 더욱 굳건해져서 『법화경』 3천 부를 만들길 기원하였다.
또 어떤 어부가 밤에 강 가운데에서 불덩어리가 둥둥 떠오는 것을 보고 배를 저어 나가서 맞아보니 『법화경』 한 궤짝이었다.

006_0552_b_01L今何爲不能感見慨歎良久至夜忽夢
006_0552_b_02L一胡僧語曰若誦此經欲見諸佛
006_0552_b_03L解說書寫流通供養斯願可諧恭因發
006_0552_b_04L心造經一百部未及成辦忽得重病
006_0552_b_05L乃更發願增造一千部病旣愈即於
006_0552_b_06L住宅起造經堂若紙若筆必以淨心
006_0552_b_07L不行欺詐隨得便營書生常十數人
006_0552_b_08L如法供給恭親檢校勞不告倦有人
006_0552_b_09L從貸經錢一萬恭不得已與之其人得
006_0552_b_10L船過中流忽尒沉覆錢失人活
006_0552_b_11L日恭入庫見元錢俱溼頗恠之後見
006_0552_b_12L貸人方知沒溺一日忽有異僧年八
006_0552_b_13L十許自云從龜玆國來今往羅浮山去
006_0552_b_14L聞君造經願請一部恭授與經僧贈
006_0552_b_15L金一瓶重四十兩願助造經言已而
006_0552_b_16L退莫知所止又有候志從鄱陽4) [62]
006_0552_b_17L至宮亭有人引入廟見神人案5) [63]
006_0552_b_18L問志還識楊州造法華經嚴恭否
006_0552_b_19L我欲寄錢一萬入其功德語已便隱
006_0552_b_20L志次日至當塗忽有一人來覔候志
006_0552_b_21L乃留錢一萬逼令受之而去志思惟
006_0552_b_22L知是神錢纔到楊州以錢付恭恭志
006_0552_b_23L更彌堅造至三千部又有漁人夜見
006_0552_b_24L江中火熖熖浮來以船迎之乃是經

006_0552_c_01L그것은 엄공이 조성한 것이었다.
엄공은 뒤에 다시, “한 자도 내 눈을 거치지 않은 글자가 없고, 한 자도 마음을 쓰지 않은 글자가 없도록 하리라.” 하는 서원을 세웠는데, 그의 경 조성 사업은 자손에게까지 전해져 세상에서 그를 엄법화嚴法華라고 일컬었다.
수나라 말엽에 도둑이 일어나 각지를 횡행하였는데, 강도江都(楊州)에 이르러서는 서로 약속하기를, 엄법화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하여 덕분에 마을이 무사하였다.
엄공은 전후로 모두 2천5백여 부의 『법화경』을 베껴 조성하였다.
『영서집』, 『감통록』, 『홍찬법화전』 제10권, 『현응록』
4. 신선이 한 품을 독송해 달라고 청하다
옛날 한 법사가 항상 『법화경』을 외우고 있었다. 하루는 정처 없이 각지를 유람하다가 어느 산길을 지나가는데, 한 하인이 산중의 조그마한 집으로 자기를 청하므로 문 앞에 이르러 보니, 용모와 풍채가 보통이 아닌 한 노인이 나와서 법사를 맞아들였다. 노인은 높은 자리를 마련해 놓고 청하였다.
“「견보탑품」을 외워 주시길 바랍니다.”
법사가 자리에 올라 「견보탑품」 한 편을 외웠다. 노인은 듣고 나서 복숭아 한 개와 금덩어리 하나를 주어 보답하고는 하인더러 모셔다 드리라고 하였다.
법사가 골짜기 어귀까지 나와서 물었다.
“그 노인은 누구시오?”
하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법사의 손바닥에다, “성은 손孫이고, 이름은 사막思邈”65)이라고 쓰고는 사라져 버렸다.
법사는 그 복숭아를 먹고서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았고, 금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현응록』
5. 공중에서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들리다
양주楊州 서령사栖靈寺의 스님 도예道藝는 항상 『법화경』을 외웠다. 그런데 매번 「견보탑품」에 이르기만 하면 공중에서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수십 번 들려왔다. 이후로 스님은 전보다 갑절이나 더 정성스럽게 경을 외웠다.

006_0552_c_01L一凾即嚴恭所造後發願云無一字
006_0552_c_02L不經眼無一字不用心然嚴恭造經之
006_0552_c_03L至於子孫猶傳其業世號嚴法華
006_0552_c_04L隋季盜賊卷上第十九張 縱橫至江
006_0552_c_05L都皆相與約勿入嚴法華里里賴之
006_0552_c_06L獲全前後所寫二千五百餘部本出靈瑞
006_0552_c_07L集及感通錄詳見弘賛第十及現應錄

006_0552_c_08L仙翁特請一品

006_0552_c_09L
昔有一法師常誦法華經一日雲遊
006_0552_c_10L經過山路有一僕請入山中小齋
006_0552_c_11L至門有一老人容儀不凡出揖迎入
006_0552_c_12L敷一高座老人請云願聞寶塔品
006_0552_c_13L陞座誦一徧老人以桃一顆金一葉報
006_0552_c_14L仍命一僕送出師出谷口問其僕
006_0552_c_15L老人是誰其僕以指書師掌上
006_0552_c_16L孫名思邈其僕遂不現師食桃不死
006_0552_c_17L賣金暴富出現應錄

006_0552_c_18L空中彈指

006_0552_c_19L
楊州栖靈寺僧道藝常誦此經每至見
006_0552_c_20L寶塔品空中彈指數十下自此之後
006_0552_c_21L精誦倍常

006_0552_c_22L「黿」下有「黿說文云大鼈也」{乙}「皂」作
006_0552_c_23L「烏」{乙}
「且」作「旦」{乙}「未」作「來」{乙}
006_0552_c_24L
「釼」作「劔」{乙}

006_0553_a_01L
6. 자리에서 향기가 나다
만상萬相 스님은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사람이다. 『법화경』을 정성스럽게 외우고 또 그 뜻과 이치를 부연하였는데, 무릇 10여 번이나 강의하였다. 그가 일찍이 처마 밑에서 『법화경』을 외우고 있는데, 홀연 흰 꿩이 날아와 좌우에 넙죽이 엎드렸다. 스님이 손으로 잡아도 처음부터 놀라 푸닥거리지도 않고 따라서 왔다 갔다 하였다.
혹은 화로에 숯불이 저절로 피어나기도 했고, 혹은 평상 뒤에서 자주 기이한 향기가 났다. 또 방 뒤 나무 위에는 어디에서 왔는지 금동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고, 푸른 참새 한 쌍이 양쪽에서 나란히 서 있다가 만상 스님이 그 금동불상을 모셔 들여오니 새는 훌쩍 날아가 버렸다.
또 스님이 한밤중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홀연 비몽사몽간에 서북쪽 하늘에 굉장히 높고 아름답게 장식한 보탑이 나니, 그 장엄함이 볼수록 끝이 없었다. 또 동북쪽을 보니, 일곱 별 속에 일곱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가운데서 나오셨다. 금빛 찬란한 모습이 단아하고 순수하며 밝게 비추어 환히 빛나는데, 서로 기뻐하며 옷깃을 여미고 예배 찬탄하더니 잠시 후에 유유히 사라졌다.
만상 스님은 『법화경』을 4천여 번이나 외웠는데, 입적할 때 제자더러 보현보살의 명호를 부르라고 하더니 갑자기 말하였다.
“보현보살이 오셨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숨을 거두니, 나이는 74세였다.
『홍찬법화전』 권8
제7단 「제바달다품」ㆍ「권지품」
1. 몸을 연꽃의 태에 의탁하다
왕엄은 자字가 공원公遠이고, 낭야瑯瑘 임기臨沂 사람이다. 할아버지 빈份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였고, 왕엄은 벼슬이 황문랑黃門郞에 이르러 신안新安 태수가 되었는데, 불도에 전심하여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나태하지 않고 『법화경』을 여러 해 동안 독송하였다.

006_0553_a_01L座上生香

006_0553_a_02L
釋萬相雍州萬年人也諷誦法華
006_0553_a_03L敷義理凡講十餘徧曾於簷下誦經
006_0553_a_04L忽有白雉馴伏左右以手取之初不
006_0553_a_05L驚擾隨相來去或爐中火炭自然而
006_0553_a_06L或床後薦間異香頻發又於房後
006_0553_a_07L木上金銅龕像無何而至靑雀一雙
006_0553_a_08L兩邊侍立相收得像鳥忽飛去又於
006_0553_a_09L中夜靜坐忽然似夢見西北天中寶
006_0553_a_10L高廣嚴飾望之無際又見東北
006_0553_a_11L七星中七佛從星中出金容端粹朗
006_0553_a_12L照赫然相悲喜交1) [64] 禮拜讃嘆少選
006_0553_a_13L之間倐然而滅其所誦凡四千餘徧
006_0553_a_14L卷上第二○張 將終之際令門人稱
006_0553_a_15L普賢菩薩名俄自云普賢菩薩來
006_0553_a_16L脇而卒春秋七十四出弘賛第八

006_0553_a_17L

006_0553_a_18L第七段提婆達多品2)持品

006_0553_a_19L
身托蓮胎名標花座聖僧敎誦海神請聞
006_0553_a_20L鴿受人身鬼脫厠報

006_0553_a_21L身托蓮胎

006_0553_a_22L
3) [11] 淹字公遠瑯瑘臨沂人也祖份
006_0553_a_23L尙書4) [65] 僕射淹官至黃門郞新安大守
006_0553_a_24L專心佛道無懈晨昏持誦法華積有

006_0553_b_01L그의 아우 고固도 역시 채식을 하며 『법화경』을 독송했다.
그러다가 왕엄이 죽었는데, 아우 고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나는 서방 무량수불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철 잎으로 된 연꽃 안에 태생하여 5백 년 뒤에나 태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다. 애써 『법화경』을 외웠기 때문에 서방에 태어나게 되었지만, 어리석어서 의혹이 많았기 때문에 태생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네게 알려 주는 것이니, 너는 부지런히 『법화경』을 외워라.”
그리고는 작별하였다.
『홍찬법화전』 권6
2. 연화좌에 이름이 내걸려 있다
명주明州 개원사開元寺 스님 가구可久는 늘 『법화경』을 독송하여 당시에 구법화久法華라 불렸다. 평생토록 반복하여 잘 외우고 지녀 정토를 장엄하였다.
원우元祐 8년(1093)에 스님은 아무런 병도 없이 단정히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서 말하였다.
“나는 이미 정신이 정토에 노닐었는데, 그 국토의 모양은 『관무량수경(十六觀經)』에 설해 있는 장엄과 한가지로 똑같았습니다. 칠보로 된 연못 가운데 있는 연화대(蓮臺)에는 그 정토에 날 사람들의 성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 자금대紫金臺에는 송나라 성도부成都府 광교원廣敎院의 훈법화熏法華라고 내다 걸렸는데, 이미 정토에 태어난 것입니다. 또 한 금대金臺에는 명주明州 손십이랑孫十二郞이라 씌어 있었으며, 또 다른 한 금대에는 명주 구법화久法華라고 씌어 있었고, 또 한 은대銀臺에는 명주 서도고徐道姑라 씌어 있었습니다.”
말을 마치자, 다시 단정히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서도고가 과연 단정히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는데, 그가 죽을 때 기이한 향내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12년이 지나 손십이랑이 죽었는데, 이때에는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등 신령스러운 상서가 연이어 일어났다.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 『현응록』
3. 성승聖僧이 독송을 가르쳐 주다
수隋나라 때 병주幷州 사람 고수절高守節은 집안 대대로 불법을 신봉했는데 수절은 더욱더 정성이 지극하였다.
열예닐곱 살 때 대도代都(지금의 북경)에 갔다가 길에서 한 사문을 만났다.

006_0553_b_01L年稔其弟固亦菜食誦法華經
006_0553_b_02L與固夢云吾得生西方無量壽佛國
006_0553_b_03L胎生在鐵葉蓮華內五百歲方得出
006_0553_b_04L胎見佛以誦法華苦到故得生西方
006_0553_b_05L以愚癡多疑故受胎生止報汝知
006_0553_b_06L誦經勿懈也於是別矣出弘賛第六

006_0553_b_07L名標花座

006_0553_b_08L
明州開元寺僧可久常誦法華經
006_0553_b_09L稱久法華平生廻誦持善利莊嚴淨土
006_0553_b_10L元祐八年無病端然坐亡過三日
006_0553_b_11L蘇云吾已神遊淨土其土之相
006_0553_b_12L十六觀經所說莊嚴一同七寶池中所
006_0553_b_13L有蓮臺皆標當生者姓名一紫金臺
006_0553_b_14L標云大宋成都府廣敎院熏法華已生
006_0553_b_15L其中又一金臺標明州孫十二郞
006_0553_b_16L一金臺標明州久法華又一銀臺
006_0553_b_17L明州徐道姑言訖復坐亡至後五年
006_0553_b_18L徐道姑果坐亡亡時聞異香滿室過十
006_0553_b_19L二年孫十二郞卒時聞天樂之聲
006_0553_b_20L瑞重疊此本出龍舒淨5) [66] 詳見現應錄
006_0553_b_21L卷上第二一張

006_0553_b_22L聖僧敎誦

006_0553_b_23L
隋時并州人高守節家代信奉而守節
006_0553_b_24L尤爲精到年十六七時曾遊代都

006_0553_c_01L나이는 60세쯤 되어 보이고, 스스로 해운海雲이라 소개하였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이 물었다.
“소년은 경을 외울 수 있는가?”
“저는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를 데리고 오대산五臺山66)으로 갔다. 한 곳에 이르니 초가집 셋이 있는데, 겨우 몸을 들여놓을 만하였다. 스님은 수절을 이곳에 머물러 있게 하고, 『법화경』을 가르쳐 주어 외우게 하며 밖에 나가 구걸해다가 수절의 의식까지 마련해 주었다.
수절은 호승胡僧이 와서 해운 스님과 한참씩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가곤 하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어느 날 스님이 수절에게 물었다.
“그 호승을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스님은 농담조로 말하였다.
“그분은 문수사리보살이시네!”
수절은 이 말을 여러 번 들었으나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루는 갑자기 스님이 수절에게 산 아래 내려가 무슨 물건을 가져오라고 이르고, 훈계하여 말씀하셨다.
“본래 여자란 모든 악의 근본이다. 여자는 깨달음의 도를 깨뜨리고 열반의 성城을 무너뜨리게 하니, 그대는 세상에 나가거든 항상 깊이 삼가해야 하네.”
수절은 공손히 가르침을 받았다.
산 아래로 중간쯤 내려왔을까 도중에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나이는 열네댓 살 되겠는데, 옷이 화려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흰말을 타고 바로 수절의 앞으로 나오더니 말하였다.
“몸이 갑자기 아파서 말에서 내려야겠는데 이 말이 마구 날뛰어 마음대로 제어할 수가 없으니, 제발 당신이 저를 좀 부축해 내려 주세요.”
그러나 수절은 스승이 경계한 말을 생각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여인이 몇 리를 뒤쫓아와 간절히 애원했으나 수절이 처음과 같이 뜻을 굽히지 않자 갑자기 여인이 사라졌다. 수절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서 스님께 그 일을 이야기하였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대장부로구나! 그렇지만 그 여인은 문수사리보살인 것을!”
수절은 그래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농담으로만 여겼다.
수절은 3년 동안 꾸준히 『법화경』 한 부를 독송하여 그 깊은 뜻을 자세히 터득하였다. 얼마 후 장안長安에서 사람들을 출가(得度)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리라 생각하고

006_0553_c_01L遇沙門年可六十自稱海雲與之
006_0553_c_02L談叙因謂曰兒能誦經不答曰誠其
006_0553_c_03L本心雲即將向五臺至一處見三草
006_0553_c_04L纔得容身乃於中止敎誦法華經
006_0553_c_05L在外乞求給其衣食節屢見胡僧來
006_0553_c_06L與師言笑6) [67] 歸去後雲輒問曰
006_0553_c_07L識向胡僧不曰不識雲貌似戱言曰
006_0553_c_08L是文殊師利菩薩節雖頻承此告未悟
006_0553_c_09L其旨後忽使節下山取物仍誠曰
006_0553_c_10L女人者衆惡之本壞菩提道破涅槃
006_0553_c_11L汝向人間冝其深愼節敬諾受敎
006_0553_c_12L下山中路乃見一女人年十四五
006_0553_c_13L服鮮華慈容雅麗乘一7) [68] 直就其
006_0553_c_14L向節曰身有急患要須下乘馬好
006_0553_c_15L跳躍制不自由希君扶接濟此微命
006_0553_c_16L節遂念師言竟不廻顧女亦追尋數里
006_0553_c_17L苦切其辭節執志如初俄而致失
006_0553_c_18L還本處具陳其事師曰汝眞丈夫矣
006_0553_c_19L雖然此是文殊師利菩薩節尙未悟
006_0553_c_20L謂戱言然於此誦經凡歷三載法華
006_0553_c_21L一部甚得精淳後聞長安度人心希
006_0553_c_22L「衿」作「袷」{乙}「持」上有「勸」{乙}「玉」
006_0553_c_23L作「王」{甲}{乙}
「左」作「在」{乙}「土」作「士」
006_0553_c_24L{乙}
「而」作「日」{乙}「白」作「自」{甲}

006_0554_a_01L아침저녁으로 그 방법(方便)을 스승에게 물어본 다음 장안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이때 스승이 당부하였다.
“너는 『법화경』을 외워 대승의 종자를 이미 성취하였다. 네가 꼭 가고자 하거든 가서 좋은 스승께 의논하여라. 이번에 서로 이별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 너는 서울(장안)에 가거든 선정禪定도량으로 가서 와륜 선사臥倫禪師67)께 의지하여라.”
수절은 서울로 들어가 승려가 되려고 했으나 마음먹었던 대로 되지 않아 와륜 선사 계신 곳을 찾아갔다.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오대산에서 왔습니다. 은사 스님께서 저를 보내 스님의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은사 스님의 존함이 무엇인가?”
“해운이십니다.”
와륜 선사는 크게 놀라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계시는 곳이고, 해운 비구68)는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세 번째 선지식善知識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성인을 떠났는가. 천겁 만겁에도 한 번 만나 뵐 수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가?”
수절은 그제야 비로소 그때까지의 일을 이해하고 힘을 다해 모시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다시 찾아가 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와륜 선사께 하직한 다음 되돌아서서 밤낮을 달려 예전에 있던 곳에 이르렀으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7
4. 바다 신이 강설을 청하다
연광緣光 스님은 신라 사람이다. 양梁나라 공직도貢職圖69)를 살펴보면, “위魏나라에서는 사로斯盧라고 하였고, 송나라에서는 신라新羅라 하였는데, 본래 동이東夷의 진한국震韓國이다.”라고 하였다.
연광은 명문대가에 태어나 어려서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견식과 도량이 남보다 뛰어났으나 중국 주변 나라 땅에서 살고 있어 바른 교의敎義에 융통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수隋나라 인수仁壽 연간(601~604, 신라 진평왕대)70)에 수나라의 오회吳會에 이르니, 마침 지자 대사智者大師71)가 『묘법연화경』을 널리 설하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조석으로 익혀서 몇 해 안 되어 갑자기 크게 깨달으니, 대사가 스님에게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도록 하였다.
스님이 경을 강설하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신기하여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뒤에 스님은 다시 천태별원天台別院에서 묘관妙觀72)을 더 닦았는데, 갑자기 몇 사람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천제天帝께서 스님의 강설을 청하십니다.”
스님이 묵묵히 허락하자 문득 기절하여

006_0554_a_01L剃落晨昏方便諮師欲去師云汝誦
006_0554_a_02L得法華大乘種子今已成就汝必欲
006_0554_a_03L當詢好師此之一別難重相見
006_0554_a_04L京內可於禪定道塲依止臥倫禪師
006_0554_a_05L節入京求度不遂其心乃往倫所
006_0554_a_06L曰汝從何來答從五臺山來和尙1) [69]
006_0554_a_07L與師爲弟子倫曰和尙名誰答曰名海
006_0554_a_08L倫大驚嘆曰卷上第二二張 五臺山
006_0554_a_09L文殊所居海雲比丘即是華嚴經
006_0554_a_10L中善財童子第三善知識汝何以弃此
006_0554_a_11L聖人千劫萬劫無由一遇何其誤耶
006_0554_a_12L節乃始悟由來恨不碎其身骨而遇情
006_0554_a_13L眷眷猶希再覩遂辭倫返迹日夜奔
006_0554_a_14L及至故處都無所見出弘張第七

006_0554_a_15L海神請聞

006_0554_a_16L
釋緣光新羅人也按梁貢職圖云
006_0554_a_17L曰斯盧宋曰新羅本東夷震韓之國也
006_0554_a_18L光世家名族幻歸緇服識量過人
006_0554_a_19L生居邊壤正敎未融以隋仁壽年間
006_0554_a_20L來至吳會正逢智者敷弘妙典光伏膺
006_0554_a_21L朝夕數年之中歘然大悟智者即令
006_0554_a_22L就講妙法華經俊朗之徒莫不神伏
006_0554_a_23L後於天台別院增修妙觀忽見數人云
006_0554_a_24L天帝請講光默然許之於是奄然氣絕

006_0554_b_01L열흘이 다 되도록 얼굴빛이 평상시와 같더니 본래대로 깨어났다. 이미 불도 수행을 마친 스님은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수십 명과 함께 큰 배를 타고 떠났다. 바다 가운데 이르렀을 때 배가 갑자기 꼼짝을 않더니,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물결을 헤치며 뱃머리로 다가와서 말하였다.
“바다 신(海神)께서 스님을 청하십니다. 잠시 수궁으로 가셔서 경을 강설해 주십시오.”
스님이 말하였다.
“빈도貧道의 이 몸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겠다고 서원을 세웠지만, 이 배와 배에 타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사람들도 같이 갈 것이고, 이 배 또한 염려치 마십시오.”
그래서 모두 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니 똑바르고 평탄한 큰 길이 나왔고, 길가에는 향기로운 꽃이 가득하였다.
바다 신이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스님을 맞아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구슬 벽이 휘황찬란하게 빛나 눈과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스님이 『법화경』 한 번을 강설하고 나니, 바다 신은 진귀한 보배를 크게 베풀어 주고 다시 배까지 데려다 주어 배에 올랐다.
본국으로 돌아온 연광 스님은 『법화경』을 널리 폈으며, 어릴 때부터 날마다 한 번씩 해 오던 『법화경』 독송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빠뜨리지 않았다.
나이 80에 주석하던 곳에서 입적하였는데, 다비茶毘를 하였더니 두골에 혀만이 타지 않고 남아 온 나라 사람들이 와서 보고 듣고는 모두 드문 일이라고 감탄하였다.
연광 스님에게는 누이동생이 둘이 있었는데, 일찍부터 불교를 독실히 믿었다. 스님의 두골과 혀를 거두어 모셔 놓고 공양하였는데, 가끔 두골과 혀에서 『법화경』 외우는 소리가 들렸고, 누이동생이 모르는 글자가 있어서 물으면 모두 일러 주었다.
『홍찬법화전』 권3
5. 집비둘기가 사람으로 태어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노승이 병주幷州 석벽사石壁寺에서 선관禪觀을 잘 닦고 있었다.
정관貞觀 말엽(649)에 스님의 방 대들보 위에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있어 노승은 매일 남은 음식으로 먹여 길렀다.
얼마 후 어느 정도 자라기는 했지만 아직 날개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았는데 나는 것을 배우다가 그만 둘 다 땅에 떨어져 죽었다. 스님은 거두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1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밤 꿈에 어린아이 둘이 나타나 말하였다.
“저희들은 전생에 죄가 있어 집비둘기로 태어났다가 스님의 『법화경』 읽는 소리를 듣고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006_0554_b_01L經于旬日顔色如常還歸本識旣而
006_0554_b_02L器業成就將歸故國與數十人同乘
006_0554_b_03L大舶至海中船忽不行見一人乘馬
006_0554_b_04L凌波來至船首云海神請師暫到宮中
006_0554_b_05L講說光曰貧道此身誓當利物船及
006_0554_b_06L餘伴未委如何彼云人並同行船亦
006_0554_b_07L勿慮於是擧衆同下行數步但見通
006_0554_b_08L衢平直香花徧道海神將百千侍從
006_0554_b_09L迎入宮中珠璧焜煌映奪心目因爲
006_0554_b_10L講法華經一徧大施珍寶還送上船
006_0554_b_11L光達至本鄕每弘玆典自少誦持
006_0554_b_12L餘一徧迄於報盡此業無虧年垂八
006_0554_b_13L終於所住闍維旣畢髏舌獨存
006_0554_b_14L國見聞咸歎希有光有妹二人早懷
006_0554_b_15L淸信卷上第二三張 收之供養數聞髏
006_0554_b_16L自誦法華妹有不識字處問之皆噵出弘賛第三

006_0554_b_17L鴿受人身

006_0554_b_18L
有一老僧失其名住并州石壁寺
006_0554_b_19L觀爲業貞觀年末房楹上有二鴿雛
006_0554_b_20L老師每以餘食飼之後雖漸長羽翼未
006_0554_b_21L乃並學飛俱墮地而死僧因收葬
006_0554_b_22L經旬日後夜夢有二小兒告曰兒等爲
006_0554_b_23L先有罪遂受鴿身比來聞師讀法華經

006_0554_c_01L저희들은 이 절에서 10리 떨어진 어느 마을 어느 집에 아들로 태어나는데, 열 달 후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열 달이 지나 스님이 그 집을 찾아가 보니, 과연 그 집 부인이 아들 쌍둥이를 낳고 만월재滿月齋73)를 베풀고 있었다. 스님이 두 아이들에게, “비둘기야!” 하였더니, 아이들 둘이, “예.” 하고 대답한 뒤로는 돌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말을 하였다.
『홍찬법화전』 권9
6. 귀신이 뒷간의 업보를 벗어나다
혜과慧果 스님은 예주豫州(중국 安徽省에 있었음) 사람이다. 어려서는 채식을 하며 스스로 선업을 닦았다. 송나라 초에 서울로 가서 와관사瓦冠寺에서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어느 날 뒷간 앞에서 한 귀신을 만났다.
귀신은 스님에게 조용히 절을 하고 나서 말하였다.
“옛날에 제가 여러 스님들의 유나維那74)가 되었을 때 법에 어긋나는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른 죄로 뒷간에서 똥을 먹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법사께서 덕이 높으시고 또한 자비로우시니, 원컨대 제가 구제받을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귀신이 또 말하였다.
“제가 옛날에 돈 3천 냥을 감나무 아래에 묻어 두었습니다. 스님께서 꺼내다가 복 되는 일에 쓰십시오.”
혜과 스님이 곧 여러 사람을 불러 가서 그곳을 파 보니, 정말로 3천 냥이 나와 『법화경』 1부를 만들고, 법회를 베풀었다. 얼마 후 꿈에 그 귀신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저는 이미 생을 다시 받았는데 옛날보다 훨씬 좋습니다.”
혜과 스님은 송나라 대명大明 6년(462)에 나이 76세로 입적하였다.
『홍찬법화전』 권6
제8단 「안락행품」

006_0554_c_01L得受人身兒等今於寺側十餘里
006_0554_c_02L村某甲家托生爲男十月之外當即
006_0554_c_03L誕育僧乃依期往視見此家一婦
006_0554_c_04L生二男作滿月齋僧呼二2) [70] 子曰鴿
006_0554_c_05L並應曰諾一應之後歲餘始言也
006_0554_c_06L出弘賛第九

006_0554_c_07L鬼脫厠報

006_0554_c_08L
釋慧果豫州人也小以蔬苦自業
006_0554_c_09L初遊京師至瓦冠寺誦法華經甞於厠前
006_0554_c_10L見一鬼致敬於果云昔爲衆僧
006_0554_c_11L而作維那小不如法墮在噉糞鬼中
006_0554_c_12L法師德業高明又慈悲爲意願助以拔
006_0554_c_13L濟之方也又云昔有錢三千埋在杮樹
006_0554_c_14L根下願取爲福果即告衆掘之實得
006_0554_c_15L三千爲造法華一部并設法會後夢
006_0554_c_16L見此鬼云已得改生大勝昔日果以
006_0554_c_17L宋大始 [12] 六年卒春秋七十有六出弘賛
006_0554_c_18L第六

006_0554_c_19L

006_0554_c_20L第八段安樂行品

006_0554_c_21L
龍天請講鬼虎欽風仙鶴來儀野雞轉報
006_0554_c_22L瓶水自滿興香普熏經字放光鴆毒無驗
006_0554_c_23L卷上第二四張

006_0554_c_24L「遣」作「遺」{乙}「姟」作「孩」{乙}

006_0555_a_01L
1. 용천이 강설을 청하다
현광玄光75) 스님은 해동 웅주熊州(지금의 공주 지방) 사람이다.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선법禪法을 구하러 가서 형산衡山(중국 절강성에 있음) 혜사慧思 대선사가 선정과 지혜가 모두 뛰어나고, 아울러 계율(毗尼)도 청정하다는 말을 듣고 한 뜻으로 바로 남악南岳(형산을 말함)으로 가 선사를 찾았다. 선사는 현광 스님을 보자 그 근기를 알아보고 『법화경』의 사안락행四安樂行76)을 가르쳐 주었다. 현광 스님은 근기가 영리하여 마치 송곳이 아무리 견고해도 뚫지 못할 것이 없는 것과 같았다. 그는 가르침 받은 대로 수행하고 항상 정진하여 닦으니, 마침내 법화삼매法華三昧77)를 증득하였다.
선사가 수행의 성취를 인가해 주며 말하였다.
“그대가 증득한 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방편을 베풀어 나의 가르침을 널리 펴도록 하라.”
현광 스님은 정중히 절하여 하직하고 곧 강남으로 가서 주석하다가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바다 한가운데에 나왔을 때 오색구름이 일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더니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천제께서 해동의 현광 선사를 용궁으로 부르시니, 가셔서 친히 증득한 법을 강설하소서.”
스님이 그저 양손을 맞잡고 겸손히 사양하는데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였다. 이윽고 용궁에 들어가 보니, 인간의 관청과는 달리 시위하고 있는 군사가 모두 어류와 귀신들이었다. 스님이 보배 전각에 올라 높은 대에 앉아서 『법화경』을 강설하고 묻는 대로 대답해 주기를 이레 동안 계속하였다. 강설이 다 끝나자, 용왕이 친히 나와서 전송해 주었다. 스님이 다시 배에 오르니 뱃사공이 말하였다.
“배가 바다에 떠서 나아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 겨우 한나절일 뿐입니다.”
현광 스님이 마침내 웅주에 도착하여 옹산翁山에 암자를 짓고 머물러 있으니, 여러 스님들이 자주 왕래하여 큰 절(梵刹)이 되었다. 남악 조사당에는 28현성賢聖을 모셨는데, 현광 스님이 그중 한 분으로 모셔져 있다.
『현응록』78)
2. 호랑이가 흠모하다
홍명弘明 스님은 회계會稽 산음山陰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산음 운문사雲門寺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부지런히 예참禮懺하는데, 하루 여섯 때 거르는 일이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물병의 물이 저절로 가득 채워졌으니, 실은 여러 하늘의 동자들이 시중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스님이 일찍이 운문사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와서 스님 방으로 들어와

006_0555_a_01L龍天請講

006_0555_a_02L
釋玄光海東熊川人也越滄溟求中
006_0555_a_03L國禪法聞衡山思大禪師雙弘定慧
006_0555_a_04L兼善毗尼一志徑造南岳思察其根器
006_0555_a_05L授以法華四安樂行光利若神錐無堅
006_0555_a_06L不犯稟而行之常修精進俄證法華
006_0555_a_07L三昧思印之曰汝之所證眞實不虛
006_0555_a_08L當還本國施設善權敷揚吾敎光頂
006_0555_a_09L禮而別即住錫江南附舶至于大洋
006_0555_a_10L偶見彩雲雅樂降節而至空中聲曰
006_0555_a_11L天帝召海東玄光禪師於龍宮說親證
006_0555_a_12L法門光拱手避讓唯見靑衣前導
006_0555_a_13L入宮城不類人間官府羽衛之設無非
006_0555_a_14L鱗介鬼神師旣登寶殿次陟高臺
006_0555_a_15L問而談者凡七日事畢龍王躬自送別
006_0555_a_16L光復登舟舟人謂泛洋不進者半日
006_0555_a_17L而已光遂至熊川 [13] 翁山結芧卓錫
006_0555_a_18L類相從乃成梵刹南岳祖堂列二十
006_0555_a_19L八賢光居一焉出現應錄

006_0555_a_20L鬼虎欽風

006_0555_a_21L
釋弘明會稽山陰人也小出家止山
006_0555_a_22L陰雲門寺誦法華經精勤禮懺六時
006_0555_a_23L不輟1) [71] 瓶水自滿實諸天童子
006_0555_a_24L爲給使也明甞於雲門寺坐禪虎來入

006_0555_b_01L평상 아래 들어가 엎드려서 스님만 바라보며 단정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다가 한참 만에야 가곤 하였다.
또 한번은 어린아이가 와서 스님의 독송을 듣고 있었다. 스님이 물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저는 옛날 이 절의 사미였는데 휘장 아래 음식을 훔쳐 먹고 지금 뒷간의 귀신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도가 뛰어나시다는 말을 듣고 와서 독송을 듣고 있습니다. 방편을 쓰시어 이 누추한 업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스님이 곧 법을 설하여 교화하니, 아이는 단박에 이해하고 바로 사라졌다. 홍명 스님은 제齊나라 영명永明 4년(486)에 백림사栢林寺에서 입적했는데, 나이 84세였다.
『홍찬법화전』 권6
3. 학이 날아오다
현벽玄璧 스님은 소주蘇州(중국 사천성에 있음) 오현吳縣 사람이다. 유수사流水寺에 머물면서 항상 『법화경』을 강설하고 있었는데, 사나운 짐승ㆍ독충ㆍ요망한 귀신ㆍ악한 도둑 따위가 자주 해치려 했으나 스님은 조금도 증오하는 감정을 품지 않았다. 늘 사방 4자밖에 안 되는 단 하나뿐인 평상에 정좌하고서 한 번도 기대거나 눕는 일이 없었다.
『법화경』을 20여 번이나 강설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와서 들었는데, 갑자기 학(仙鶴) 한 마리가 밖에서 날아와 뜰에 내려앉아 세 번 못의 물을 물어다가 땅에 뿌리고 바로 부처님 옆의 성승聖僧 자리로 가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똑바로 서서 듣고 설법을 다 들은 후에 날아갔다. 이렇게 1년을 계속하였다. 나중에는 항상 상당에 와서 날개를 치기도 하여 앞으로 끌어내렸더니, 강의하면 곧 몸을 굽혀 인사를 하였다. 또 법사가 하라는 대로 춤을 추라고 하면 날개를 폈다 오그렸다 하고, 발을 들썩들썩 하고 머리를 쳐들었다 숙였다 하고 왔다 갔다 하였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여 인근 여러 고을 선비들이 모여와서 보고는 그 기이함을 찬탄하고 시를 지어 읊었다. 현벽 스님은 뒤에 어디서 입적하였는지 알 수 없다.
『홍찬법화전』 권3
4. 들꿩이 사람의 몸을 받다
계부성桂府城에서 5리쯤 되는 곳에 치산사雉山寺가 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스님이

006_0555_b_01L明堂內伏于床下見明端然不動久久
006_0555_b_02L乃去又時見一小兒來聽明誦經
006_0555_b_03L曰汝是何人答云昔時此寺沙彌盜帳
006_0555_b_04L下食今墮圊中聞上人道業故來聽
006_0555_b_05L願助方便使免斯累也明即說法
006_0555_b_06L勸化2) [72] 解方隱明以齊永明四年
006_0555_b_07L於栢林寺春秋八十四卷上第二五張
006_0555_b_08L出弘賛第六

006_0555_b_09L仙鶴來儀

006_0555_b_10L
釋玄璧蘇州吳縣人也住流水寺
006_0555_b_11L講法華猛獸毒虫3) [73] 精惡賊頻繁遘
006_0555_b_12L未甞忤其情守常坐一床方四尺
006_0555_b_13L未甞倚臥每講法華二十餘徧州咸來
006_0555_b_14L聽受忽有一鶴從外飛來於殿下池
006_0555_b_15L三度含水噴酒於地徑詣佛邊
006_0555_b_16L僧座上一立不動直至講了然始
006_0555_b_17L飛去如此經年後乃恒住上堂即皷
006_0555_b_18L翼引前下講即傾身隨從法師或令
006_0555_b_19L其舞即振翮頓足顧影低頭乍起乍
006_0555_b_20L或來4) [74] 變態殊絕難以具名
006_0555_b_21L數州文翰之士莫不偉而同詠璧後不
006_0555_b_22L知所終出弘賛第三

006_0555_b_23L野雞轉報

006_0555_b_24L
桂府城五里有雉山寺其始者昔有

006_0555_c_01L이곳에 암자를 짓고 날마다 『법화경』을 독송하여 나중에는 강설도 하게 되었다. 홀연히 꿩 한 마리가 늘 와서 날개를 다소곳이 하고 강설을 듣더니, 제5권을 마치자 다시 오지 않았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산 아래 어느 민가에서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여덟 살이 되어서는 비린 것을 먹지 않고 장난도 치지 않고 꼭 그 스님에게 가서 출가하겠다고 하여 부모가 허락하였다.
그래서 스님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단의袒衣79)하게 하니, 아이는 기어코 하지 않으려 하였다. 스님이 그 까닭을 물으니, 아이가 대답하였다.
“저는 전생에 꿩이었습니다. 스님의 『법화경』 독송과 강설을 들은 과보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지금도 겨드랑이 아래에 꿩의 솜털이 있어 단의하기가 곤란합니다.”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법화경』을 주니, 앞의 5권까지는 전에 익힌 대로 읽고 뒤의 2권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로부터 산 이름을 치산雉山이라 하고, 절을 지어 산 이름을 따라 ‘치산사’라고 하였다. 절은 지금도 남아 있다.
『계살류戒殺類』, 『현응록』
5. 병의 물이 저절로 가득 채워지다
승정僧定 스님은 어디 사람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강양江陽 선중사禪衆寺에서 즐겨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독송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지 못하여 세속의 곡조로 흐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여러 하늘의 동자들이 감복하여 그를 위해 시중을 들어 주었다.
어느 땐 술에 취해 누웠는데, 법의法衣가 벗겨져 저절로 걷어 올려지고 이불이 덮였으며, 의복에 때가 끼면 빨지 않아도 다시 깨끗한 옷이 되었으며, 오래도록 청결한 향내가 났다. 어떤 때는 물병에 물이 저절로 가득 차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땅이 항상 깨끗이 청소되어 있기도 하였다.
스님은 자면서 침을 잘 흘렸다. 한번은 잠이 깨어 보니까 하늘의 동자가 앞에 앉아 있는데, 온몸이 침에 젖어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제멋대로 하는 고집을 버리고 계율을 부지런히 닦았다. 훗날 스님이 어디에서 입적하였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6

006_0555_c_01L一僧5) [75] 此地日誦法華經仍能講
006_0555_c_02L忽有一雉常來伏翼聽受終第五
006_0555_c_03L雉即不來後八年山下民家生一
006_0555_c_04L男子年始八歲不葷不戱堅欲投其師
006_0555_c_05L出家父母聽之一日僧浴令兒淨背
006_0555_c_06L堅不肯6) [76] 僧問其故答曰某前身
006_0555_c_07L即雉也因聽師講誦故報爲人7) [77]
006_0555_c_08L猶有雉毳故不*袒也僧因授是經
006_0555_c_09L前五卷覽同舊習後二卷則不能也
006_0555_c_10L從此山以雉名因山置寺寺猶存也
006_0555_c_11L此本出戒殺類見現應錄

006_0555_c_12L瓶水自滿

006_0555_c_13L
釋僧定不知何許人也住江陽禪衆寺
006_0555_c_14L誦法華經甚好8) [78] 不能謹節流宕
006_0555_c_15L塵俗卷上第二六張 然每感諸天童子
006_0555_c_16L爲之給使有時醉臥法衣離身自然
006_0555_c_17L卷襞引被整覆9) [79] 塵垢未暇浣治
006_0555_c_18L乃復取之久以香潔或瓶水自滿
006_0555_c_19L地恒掃淨定眠喜唾一時酒醒見天
006_0555_c_20L童子在前徧身10) [80] 自尒折節遵修
006_0555_c_21L戒業後不知所終出弘賛第六

006_0555_c_22L「且」作「旦」{乙}「領」作「頓」{乙}」作
006_0555_c_23L「妖」{乙}
「或」無有{乙}「菴」作「庵」{乙}
006_0555_c_24L「袒」作「祖」{甲}次同
「今」作「令」{乙}「韻」
006_0555_c_25L作「韻」{乙}
「脫」作「服」{乙}「沾」作「咕」{乙}

006_0556_a_01L
6. 기이한 향기가 널리 퍼지다
청신사 앙가담央呵擔은 서울 서남쪽 풍곡향豊谷鄕에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착한 마음을 품고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안락행을 하였으며, 자비심이 많아서 짐승을 타지 않았고, 세상이 늘 허망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겼다.
그는 영사令史80)에 발탁되어 서울에 있는 관청으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송을 그대로 계속하자니 오가는 길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으면 독송을 그만두게 될까 걱정되어 반드시 좁은 골목길로 다니면서 낮은 소리를 내어 기쁜 얼굴로 한 생각도 끊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가 임종할 때에는 기이한 향내와 신이한 기운이 온 마을에 가득 찼고, 10년 뒤에 그의 아내가 죽어 합장하려고 무덤을 파 보니, 다 썩고 오직 혀만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홍찬법화전』 권8
7. 경전의 글자에서 빛이 나다
후위後魏의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81)이자 어사중승御史中丞이었던 육재陸載는 본래 오吳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위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재주가 있고 농담을 잘하고 성품이 소탈하고 깨끗하였다.
항상 불법에 마음을 두고 『법화경』을 독송하더니, 말년에는 깊은 경지에 도달하여 『법화경』의 글자에서 광채가 나거나 자주 사리舍利가 나오기도 하였다.
『홍찬법화전』 권6
8. 짐새의 독도 효력이 없어지다
법상法相 스님은 하남河南 사람이다. 동진東晋의 의희義熙 연중(405~416)에 갑자기 무상함을 깨닫고 초연히 속세를 떠나 한가한 곳에 들어앉아서 친구도 만나지 않고 밤낮으로 『법화경』을 독송하여 잠시도 쉬지 않았다.
스님이 일찍이 태산泰山의 사당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사당 옆의 민가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밤에 일어나서 『법화경』을 외우는데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이 나가 보니, 검은 옷에 무인의 관을 쓴 사람이 서 있다가 스님을 보자 공손히 예를 하고 나서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태산부군인데, 스님이 『법화경』을 읽으시기에 들으러 왔습니다. 저의 사당 안에 돌로 된 함이 하나 있는데, 제가 그 속에 재물을 많이 넣어 두었습니다. 스님께 보시하겠으니 열어서 가져가십시오.”
스님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돌 함이 있었는데, 그 뚜껑의 무게가 1천 균(1鈞은 30근)이나 되어 사람들이 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님이 시험 삼아 들어 보니 어렵지 않게 열렸다.

006_0556_a_01L異香普熏

006_0556_a_02L
淸信士央呵擔 [14] 住京城西南豊谷鄕
006_0556_a_03L懷善念常誦法華行安樂行慈悲在
006_0556_a_04L不乘畜産1) [81] 爲心名霑令史
006_0556_a_05L往還京省以誦業相仍恐路逢相識
006_0556_a_06L人事暄凉便廢所誦故所行必由小徑
006_0556_a_07L低聲怡顔綠念相續及終之時感異
006_0556_a_08L香殊氣充於村曲後十年2) [82] 重發
006_0556_a_09L舌鮮好餘皆杇盡出弘賛第八

006_0556_a_10L經字放光

006_0556_a_11L
後魏太子中庶子御史中承 [15] 陸載本吳
006_0556_a_12L人也仕魏有才調善談謔而性愛虛
006_0556_a_13L常以佛法爲意誦法華經末年精
006_0556_a_14L經字放光頻感舍利出弘賛第六

006_0556_a_15L鴆毒無驗

006_0556_a_16L
釋法相河南人也東晉義熙中忽悟
006_0556_a_17L無常超然出俗廓尒幽閉不偶朋
006_0556_a_18L誦法華經日夜不懈曾因經行泰山祠
006_0556_a_19L日暮因宿廟側民家夜起誦經忽聞扣
006_0556_a_20L門聲相時出看見有一人玄衣武
006_0556_a_21L見相致敬云是泰山府君聞師誦
006_0556_a_22L故來叅聽弟子廟中一石凾在多
006_0556_a_23L有財物以布施師師可開取其石蓋
006_0556_a_24L重過千3) [83] 人莫勝擧相試提之飄然

006_0556_b_01L그래서 스님은 비단 1백 필가량과 돈 1백여 관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고, 곤궁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구제해 주었다.
법상 스님은 뒤에 양자강을 건너 월성사越城寺에 가서 머물러 있었는데, 웬일인지 갑자기 지조를 잃고 절도가 없이 방탕하게 돌아다녔다. 이때 진북장군鎭北將軍 사마염司馬恬이 그의 무도함을 미워하여 불러다가 짐새82)의 독毒을 쐬었다. 그러나 세 병이나 쐬어도 스님은 얼굴빛이나 정신이 전혀 변하지 않고 담담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마염이 크게 놀라 부끄럽고 두려워 참회하고 항상 스님을 공양하였다.
『홍찬법화전』 권6
제9단 「종지용출품」ㆍ「여래수량품」ㆍ「분별공덕품」
1. 경문의 빠뜨린 부분을 꿈에 일러 주다
경릉왕竟陵王 소자량簫子良이 제나라 영명永明 7년(489)에 운부雲副 스님을 청하여 스승으로 삼았다. 운부 스님은 왕과 함께 『법화경』 1천 부를 조성하였다. 왕도 목욕재계하고 『법화경』 1부를 친히 베꼈다. 영명 11년(493년) 4월 그믐께 운부 스님의 꿈에 어떤 사람이 『법화경』 1부를 주면서 말하기를, “경 가운데 틀린 데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튿날 스님이 우연히 『법화경』 1부를 얻어 시험 삼아 펴 보았더니, 과연 제5권 「수량품」에 ‘일진일겁一塵一劫’83)이라는 부분에 이상이 있었다. 급히 전에 만든 『법화경』 수십 부를 가져다가 펴 보니, 다른 곳에는 이 구절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뜻으로 미루어 말하면, 그것은 『법화경』의 지극한 도리에 해당하였다. 그래서 곧 경문을 모두 찾아다가 태웠는데, 이때 흰 학이 날아와서 좋은 상서에 응답하는 듯하였다. 운부 스님은 그 뒤 어디에서 입적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10
2. 황제가 친히 시험을 보아 통과하다
권적權適84)은 자字가 지정持正이고, 안동安東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는데,

006_0556_b_01L而開卷上第二七張 於是取得絹一百
006_0556_b_02L匹許錢百餘貫以施貧人濟諸窮者
006_0556_b_03L後渡江止越城寺忽然失志遊宕無
006_0556_b_04L時鎭北將軍司馬恬惡其無度
006_0556_b_05L而鴆之頻傾三鍾神色不變湛然無
006_0556_b_06L4) [84] 大異之慚懼悔愧每加供養
006_0556_b_07L出弘賛第六

006_0556_b_08L

006_0556_b_09L第九段從地涌出品如來壽量品
006_0556_b_10L分別功德品

006_0556_b_11L
冥授補闕帝親試通賜壽題肩應病授藥
006_0556_b_12L相師已定豈期延壽5)主相邀却向西方

006_0556_b_13L冥授補闕

006_0556_b_14L
竟陵王簫子良齊永明七年請僧雲副
006_0556_b_15L爲善知識副共王造法華經千部
006_0556_b_16L亦澡潔中表手寫法華經一部永明十
006_0556_b_17L一年四月末副夢一人送經一卷
006_0556_b_18L言有誤明日偶得一部法華試略披看
006_0556_b_19L遂見第五卷壽量品有一句異云一塵
006_0556_b_20L一劫于時募集數十部經悉無此句
006_0556_b_21L即言推義乃是法華之極致是以即
006_0556_b_22L6) [85] 經文便有白鶴來翔以應7) [86]
006_0556_b_23L副後不知所終 出弘賛第十

006_0556_b_24L帝親試通

006_0556_b_25L
權適字持正安東府人也少業文才

006_0556_c_01L정화政和(송 휘종 연호) 연중(1111~1117)에 조공하러 가는 사신으로 송나라에 들어갔다가 국학國學(大學)에 입학하여 갑과甲科85)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관상가가 그를 보고서, “당신은 재주는 많은데 수명이 짧습니다. 나이는 겨우 40을 넘기지 못하고, 벼슬은 5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대승경을 독송하여 수명을 늘리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고서 사흘 동안 『법화경』을 모두 외웠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그를 불러 황제 앞에서 외워 보라고 하였다. 권적이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므로 황제는 크게 기뻐하고 관음상觀音像과 법화탑法華塔을 각각 한 폭씩 주었다.
본국으로 돌아온 권적은 계속해서 『법화경』을 독송하여 장수를 누렸고, 좋은 벼슬을 두루 거쳐 벼슬이 쌍학사雙學士(翰林學士)까지 올랐다.
『해동전홍록』, 『적본전適本傳』
3. 수명을 늘려 주고 어깨에 기록해 두다
법랑法郞 스님은 하북河北 무성武城 사람이다.
팽성彭城 정도사淨道寺에 가서 사미가 되어 그때부터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독송하여 익히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53세가 되던 수나라 개황開皇 13년(593)에 죽었는데, 이레 만에 염라대왕을 만났다. 대왕 앞에는 여섯 도인이 있었는데, 대왕이 첫 번째 스님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대는 어떠한 덕업을 지으셨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예, 『유마경』을 독송했습니다.”
이에 대왕은 “남쪽으로 가 서 있으시오.”라고 말하였다.
다시 두 번째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떠한 업을 행하였습니까?”
“저는 『열반경』 10권86)을 독송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역시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하였다.
세 번째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떠한 업을 행하였습니까?”
“저는 『금광명경』을 독송했습니다.”
왕은 역시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했다.
왕이 다시 네 번째 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열반경』을 강설하였습니다.”
왕은 서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 스님에게 물으니, “저는 『십지론』을 강설하였습니다.”라고 답하자, 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북쪽으로 가 서 있으시오.”
여섯 번째 법랑 스님에게 물었다.

006_0556_c_01L政和年中以賓貢入宋配國學擢爲
006_0556_c_02L甲科第一人將還本國相者曰君才
006_0556_c_03L高命短年不過四十位不過五品
006_0556_c_04L誦大乘經以資笇祿公心然之約三
006_0556_c_05L了誦法華經皇帝聞之呼令前誦
006_0556_c_06L無一字錯皇情大悅賜觀音像法華塔
006_0556_c_07L各一軸及還本國享壽攸久歷盡淸
006_0556_c_08L拜爲雙學士出海東傳弘錄及適本傳
006_0556_c_09L卷上第二八張

006_0556_c_10L賜壽題肩

006_0556_c_11L
釋法朗河北武城人也住彭城淨道寺
006_0556_c_12L爲沙彌時誦法華經自少至老誦習
006_0556_c_13L無懈至年五十三開皇十三年死
006_0556_c_14L七日見閻羅王王前有六道人王問
006_0556_c_15L初一僧8) [87] 何德業初人答誦維摩經
006_0556_c_16L王曰度南邊立問第二僧有何9) [88]
006_0556_c_17L答誦涅槃經十卷王曰亦南邊立問第
006_0556_c_18L三僧有何德業答誦金光明經王曰
006_0556_c_19L亦南邊立問第四僧答講涅槃經
006_0556_c_20L曰度西行立問第五僧答講十地論
006_0556_c_21L王歛眉而言度北行立第六問法朗云
006_0556_c_22L「幼」作「幼」{甲}{乙}「妻」下有「亡」{乙}「鈞」
006_0556_c_23L作「鈎」{乙}
「恬」作「括」乙「主」作「帝」乙
006_0556_c_24L
「燒」作「燒」{甲}ㆍ作「」{乙}「佳」作「嘉」{乙}
006_0556_c_25L
「有」無有{乙}「行」作「德」{乙}

006_0557_a_01L
“어떠한 업을 행하였습니까?
“『법화경』을 독송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동쪽으로 가 서 계십시오.”
왕은 여섯 스님에게 묻는 것을 마치자, 사람을 시켜 북쪽에 있는 사람은 지옥도地獄道로 데려가게 하고, 서쪽에 서 있는 자는 축생도畜生道를 받게 하고, 남쪽에 있는 세 스님은 인도人道로 데려가게 하였다. 다음 법랑 스님은 천도天道로 데려가서 그 태어날 곳을 보게 해주고 나이를 85세로 늘려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87)
법랑 스님은 천궁에서 돌아오자 갑자기 깨어났는데 왼쪽 어깨 위에 ‘85세’라는 붉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나 보였다.
『홍찬법화전』 권7
4. 병에 맞게 약을 주다
청신녀淸信女 장씨章氏는 수隋나라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궁중 고문) 진릉陳陵의 아내였다. 그는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몸이 쇠약하여 오래 독송하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스님이 노란 약 한 사발을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하였다. 장씨가 약을 받아 마시니, 잠시 후에 배가 아파 놀라 깨었다. 복통이 더욱 심해지고 이내 노란색 설사를 했다. 꿈에 본 약 빛깔과 똑같았다.
설사가 멎고 아픈 것도 없어지더니, 그때부터 몸이 아주 건강해져서 항상 『법화경』을 독송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한 번을 독송하였는데도 다시는 피곤해지는 일이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7
5. 관상가가 이미 정해 주었는데 어찌 더 살기를 기약하랴
유홍인劉弘仁은 18세 때 국자감 학생(國子學生)에 뽑혔다. 하루는 뜻이 맞는 친구들 10여 명과 함께 관상 보는 사람을 찾아가 길흉상을 봐 달라고 하였다. 관상가가 한 사람 한 사람 그 부귀해지고 빈천해질 때라든가, 요절하고 장수하는 수명의 날짜까지를 모두 말해 주었다. 홍인에게는, “나이 51세가 되면,

006_0557_a_01L有何行業答誦法花經王曰度東行立
006_0557_a_02L王問第六僧竟遣人領北行立者
006_0557_a_03L地獄道領西行立者向畜生道領南
006_0557_a_04L行三僧向人道次語法朗領往天道
006_0557_a_05L令見其生處可放還家賜壽八十五歲
006_0557_a_06L朗從天宮還忽然而活看左臂上
006_0557_a_07L隱有赤字作八十五歲字出弘賛第七

006_0557_a_08L應病授藥

006_0557_a_09L
淸信女章氏隋右光祿大夫陳陵妻也
006_0557_a_10L誦法華經每恨四體羸乏不堪久誦
006_0557_a_11L忽夢僧持一梡藥作黃色來在章前
006_0557_a_12L與之令服章服已經小時因腹痛驚
006_0557_a_13L腹痛旣甚須臾下痢純作黃色
006_0557_a_14L夢所見痢竟所患都差自後四體休
006_0557_a_15L常能讀誦日夜一徧無復困極也
006_0557_a_16L出弘賛第七

006_0557_a_17L相師已定豈期延壽

006_0557_a_18L
劉弘仁年十八時任國子學生與同
006_0557_a_19L志十人於相師處求相吉凶相師皆
006_0557_a_20L剋其富貴貧賤之時夭壽年月之數
006_0557_a_21L弘仁曰年至五十一其年四月十一日
006_0557_a_22L必死弘仁時任蘇州嘉興縣令其餘九
006_0557_a_23L皆如相師之說禍福不差及弘仁
006_0557_a_24L十八已來吉凶皆驗至今正年五十一

006_0557_b_01L그해 4월 11일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홍인은 51세 당시에 소주蘇州 가흥현嘉興縣의 현령이었다. 함께 관상을 보러 갔던 나머지 아홉 사람들은 말한 대로 화와 복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고, 홍인도 18세 이후 지금까지 길흉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홍인은 이제 51세가 되었으니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4월 1일에 소주로 가서 여러 관원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때 한왕韓王 원가元嘉가 소주 자사蘇州刺史였는데, 그 까닭을 묻게 되었다. 홍인이 지금까지의 사실을 모두 이야기하니, 한왕이 말하기를 복을 닦으라고 하였다.
4월 8일 마침내 홍인이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해졌다. 한왕이 여러 절의 스님들을 청하여 홍인을 위해 『법화경』 1천 번을 독송하도록 하였는데, 11일에 이르러 1천 번의 독경을 모두 마쳤다. 여러 스님들이 또 홍인을 위해 다시 『법화경』 1백 번을 독송하였다. 그랬더니 홍인이 땀을 흠뻑 흘리고는 병이 모두 나았다. 평소와 같이 회복하니, 복력이란 진실로 헤아릴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믿게 되었다.
『홍찬법화전』 권9
6. 천제가 도리천으로 초청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방정토로 가다
발징跋澄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정신이 몹시 우둔하였으나 오랫동안 채식만 하고 재계하였다. 25세 때 발심하여 『법화경』 독송을 하며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하였다. 하루에 한 줄 또는 반 게송씩을 외웠는데, 어떤 때는 전혀 외우지 못하기도 하였다. 나이 80이 되더니 비로소 근기가 날카롭게 통했다.
하루는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 붉은 옷을 입고 무관의 모자를 쓴 사람이 청하는 글(請䟽)을 가지고 와서 펴 보이며 말하였다.
“천제께서 저를 보내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빈도貧道는 서방에 왕생하는 것을 발원하고 있으니, 도리천이 비록 좋은 곳이긴 하더라도 빈도가 소원하는 것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말하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그대로 가 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여러 제자들을 불러 꿈에서 본 일을 이야기했다. 이튿날 밤에 또 꿈을 꾸었다. 칠보로 된 부도가 있고, 스님 자신은 5층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서쪽을 바라보니 보배 줄로 된 계단 길이 끝이 없는데, 두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양쪽 곁에 서 있고, 여러 청의 동자靑衣童子가 흰 불자拂子를 가지고 계단 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스님이 동자에게 말하였다.
“여기가 어디인가?”
그러자 대답하였다.
“서방정토입니다. 보배 줄로 된 계단 길로 법사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스님이 잠에서 깨어 여러 제자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말하였다.

006_0557_b_01L卷上第二九張 自度至期必死以四
006_0557_b_02L月一日遂詣州與諸官僚取訣時韓
006_0557_b_03L王元嘉爲蘇州刺史問其所由弘仁
006_0557_b_04L具陳其事王敎之修福弘仁至四月八
006_0557_b_05L遂即遇疾甚篤王請諸寺僧尼
006_0557_b_06L弘仁轉法華經一千徧至十一日
006_0557_b_07L經數畢諸增又爲弘仁更讀一百遍
006_0557_b_08L弘仁流汗 1) [89] 所患都愈平復如常
006_0557_b_09L信知福力誠不可量也出弘賛第九

006_0557_b_10L天帝2)相邀 [90] 却向西方

006_0557_b_11L
釋跋澄少出家精神暗鈍而長齋蔬
006_0557_b_12L年二十五發心誦法華經願生西
006_0557_b_13L日誦一行或至半偈或都不得
006_0557_b_14L登八十方始通利後因眠息夢見一
006_0557_b_15L著朱衣武冠手抱請䟽開示澄云
006_0557_b_16L天帝遣來奉請澄答云貧道願生西方
006_0557_b_17L且忉利天雖是勝處然不稱貧道所願
006_0557_b_18L朱衣人於是即去睡覺召諸弟子
006_0557_b_19L向所夢明日又夢七寶浮圖澄身居五
006_0557_b_20L層上向西望見寶繩階道無有涯際
006_0557_b_21L有二金剛執杵在兩廂立數箇靑衣童
006_0557_b_22L子捉白拂拂此階道問童子云此是何
006_0557_b_23L答云此是西方寶繩階道來迎澄
006_0557_b_24L法師睡覺述斯以語諸弟子云汝可

006_0557_c_01L
“너희들은 내 삼의三衣와 육물六物88)을 팔아서 재齋 올릴 준비를 하라.”
스님이 이르는 대로 모든 것이 마련되었는데 재齋에 앞서 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1천 부처님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대중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스님이 다시 물었다.
“이상한 향기가 나지 않느냐?”
대중들이 “좋은 향기가 납니다.”라고 하니, 스님은 단정히 앉아 정념正念하고 입적하였다.
『홍찬법화전』 권6, 『현응록』

006_0557_c_01L貿吾三衣六物作一供齋依語營辦
006_0557_c_02L齋前問大衆云見千佛以不衆云不見
006_0557_c_03L復問聞非常香氣以不衆云咸聞於是
006_0557_c_04L端坐正念而終出弘賛第六及現應錄卷上
006_0557_c_05L第三○張

006_0557_c_06L
法華靈驗傳卷上

006_0557_c_07L」作「」{乙}ㆍ疑「霡」{編}「相邀」作「邀
006_0557_c_08L相」{乙}
  1. 1)『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 : 약칭 『법화전法華傳』이라고도 한다. 동진東晉에서 중당中唐 시기에 이르는 『법화경』 지송자持誦者들의 전기傳記와 감응感應 사례들을 싣고 있다. 모두 10권이며, 내용은 도상圖像ㆍ번역ㆍ강해講解ㆍ수관修觀ㆍ유신遺身ㆍ송지誦持ㆍ전독轉讀ㆍ서사書寫의 여덟 부분으로 되어 있다.(T51)
  2. 2)종효宗曉(1151~1214) : 천태종 제17조인 사명 존자四明尊者 법지法知의 상족인 상현尙賢의 6대손 혜순慧詢의 제자로 사명四明 왕씨王氏 출신이다. 『불조통기』 권18에 그의 전기가 전한다. 저서로는 『사명존자교행록四明尊者敎行錄』ㆍ『낙방문류樂邦文類』 등이 있다.
  3. 3)『현응록顯應錄』 : 『법화경현응록』을 말한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법화경』에 출현하는 다보여래ㆍ석가여래ㆍ상불경보살 등 일곱 인물을 비롯하여 법화 관련 고승으로 비구 173인, 비구니 113인, 재가의 남성 32인과 여성 14인에 대한 영험담을 연대순으로 기술하였다.(X78)
  4. 4)진정 국사眞淨國師(1206~?) : 성은 신씨申氏, 자는 몽차蒙且, 법명은 천책天이다. 충선왕 때 승려로 23세에 만덕산 백련사의 원묘圓妙 국사 문하로 출가하여 법을 이어받아 백련사 제4대 조사가 되었다. 시호가 진정 국사이다. 저서로는 『해동전홍록』 외에도 『실부록室簿錄』ㆍ『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ㆍ『호산록湖山錄』 등이 있다.
  5. 5)『해동전홍록海東傳弘錄』 : 이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동문선』 권1에 서명만 보인다. 법화영험담 중 우리나라에 관한 것만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법화영험전』에 수록된 8편의 내용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
  6. 6)107가지 : 실제로는 총 118화에 이른다.
  7. 7)요원了圓 : 고려 후기 만덕산 백련사 계통의 천태종 승려이다. 충혜왕 1년(1331)에 왕사가 되었다. ‘관식觀識’이란 천태종의 지관止觀을 뜻하므로 ‘천태사문 요원’임을 나타낸다.
  8. 1)월지국月支國 :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지방에서 살다가 흉노에게 쫓겨 열하 지방으로 옮겼으나, B.C. 158년경에는 지금의 사마르칸트 지방에 정착하여 대왕국을 건설하였다. 건타라乾陀羅 왕국 때는 불교를 적극 보호하여 5백 아라한을 모아 『대비바사大毘婆沙』를 편찬했다. 그 후 지루가참支婁迦懺 등 많은 승려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이 나라는 라집 법사가 살던 5세기까지 존속되었다.
  9. 2)『홍찬법화전』 권2에는 라집을 회임하였을 때 아라한 달마구사達麽瞿沙를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T51, 15b)
  10. 3)연리수連理樹 : 두 그루의 나무가 합하여 한 그루로 된 나무. 임금의 덕이 세상에 두루 퍼졌을 때 나타난다고 한다.
  11. 4)『감통전感通傳』 : 『도선율사감통록道宣律師感通錄』을 가리킨다. 당나라 인덕麟德 원년(664) 남산 도선南山道宣이 찬술한 법화영험집이다. 이때 찬술된 또 다른 영험집으로 『집신주삼보감통록集神州三寶感通錄』(줄여서 『三寶感通錄』)이 있다.
  12. 5)위천인韋天人 : 위천장군韋天將軍이라고 한다. 사천왕 밑에 각각 여덟 장군이 있는데, 이는 남방천왕의 여덟 장군 중 하나이며, 사천왕에 소속된 32천왕 중 우두머리이다.
  13. 6)과거칠불 : 과거세에 출현하여 중생을 교화하신 부처님으로 경전마다 명호가 약간씩 다르다. 『약왕경』에서는, 비바시불毘婆尸佛ㆍ시기불尸棄佛ㆍ비사정불毘舍淨佛ㆍ구류손불拘留孫佛ㆍ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ㆍ가섭불迦葉佛ㆍ석가모니불의 일곱 부처님을 들고 있다.
  14. 7)삼현보살三賢菩薩 : 10주十住ㆍ10행十行ㆍ10회향十廻向의 깨달음을 얻은 보살을 말한다.
  15. 8)광택사光宅寺 : 강소성(지금의 南京)에 위치했던 절로 양 무제 천감天監 원년(502) 건립설과 3년 건립설이 있다.
  16. 9)법운 법사法雲法師(465~527) : 속성이 주씨周氏이며, 7세에 출가하여 13세부터 불교를 깊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30세에는 묘음사妙音寺에서 『법화경』ㆍ『유마경』 등을 강의하였다. 보통普通 6년(525)에 대승정大僧正에 올랐다. 승민僧旻ㆍ지장智藏과 함께 양梁나라 3대 법사로 알려져 있다.
  17. 10)등명불燈明佛 :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을 가리킨다. 과거세에 출현하여 여섯 가지 상서(六瑞相)를 보이고, 묘광보살妙光菩薩(문수보살의 전신)에게 『법화경』을 설하였다.
  18. 11)「사법품四法品」 :동진 법현法顯역, 『불설대반니원경佛說大般泥洹經』 6권본에 들어 있다.
  19. 12)본 영험담은 출전이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속고승전』 권5의 법운전 끝부분(T50, 465a)에 실린 법화영험담을 발췌한 듯하다. 유사한 내용이 『신수과분육학승전新脩科分六學僧傳』(X77, 170c)에도 보인다.
  20. 13)『홍찬법화전』 권10에는 혜초慧超가 아니라 도초道超 스님의 일화로 되어 있다.(T51, 42c)
  21. 14)부군府君 : 태산부군泰山府君ㆍ태산부군太山府君이라고 한다. 태산은 불교ㆍ도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영산靈山으로, 이곳에 태산부군이 머문다고 한다. 그는 『시왕경十王經』에서 설하는 제7 염라왕의 서기書記로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
  22. 15)반승飯僧 : 법회를 열어 승려들에게 재식齋食을 베푸는 일을 말한다.
  23. 16)철성지옥鐵城地獄 : 『철성니리경鐵城泥犂經』에서 설해지는 지옥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자, 승려나 도인에게 불경스러운 자, 금지하는 계戒를 두려워하지 않고 범하는 자, 금세와 후세의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등이 죽은 후 이 성에 떨어진다고 한다.
  24. 17)확탕지옥鑊湯地獄 : 쇳물이 펄펄 끓는 지옥.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파괴 훼손시키고 살생하여 고기를 먹으며, 산야山野를 태워 중생에게 해를 입히고 태워 죽인 자들이 가는 곳이다.
  25. 18)주부主簿 : 저승에서 문서 장부를 맡은 관리에 해당한다.
  26. 19)아란야阿蘭若 : 범어 araṇya의 음사. 다투는 소리가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는 뜻으로, 사원寺院을 일컫는 말이다. 절은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좀 떨어져 있으면서 수행하기 적당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27. 20)변길보살徧吉菩薩 : 보현보살普賢菩薩의 다른 번역.
  28. 21)『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 제28에서는, “이 경을 읽고 외우면 나는 그때 여섯 이빨의 흰 코끼리를 타고 큰 보살들과 함께 그가 있는 곳으로 가서 스스로 몸을 나타내어 공양하고 지켜서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29. 22)천제天帝 : 제석천帝釋天ㆍ천제석天帝釋으로 도리천忉利天의 왕을 말한다.
  30. 23)청신사淸信士 : 우바새優婆塞라고 한다. 재가자로서 삼귀의계와 오계를 받고 청정한 신심信心을 가진 남자 신도를 말한다.
  31. 24)법설주法說周 : 천태 지의가 『법화경』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설한 ‘삼주설법三周說法’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한다. 지의는 제2 「방편품」부터 제9 「수학무학인기품」까지를 경의 전반부(迹門)의 정종분으로 보았다. 그중 제2 「방편품」과 제3 「비유품」의 앞부분에서는 상근기를 위하여 개삼현일開三顯一(삼승을 열어 일승의 뜻을 드러냄)의 법을 직접 설하므로 이것을 법설주法說周라고 한다. 다음 제3 「비유품」부터 제6 「수기품」까지는 중근기를 위하여 비유를 들어 거듭 설하므로 비설주譬說周라 하고, 제7 「화성유품」부터 제9품까지는 하근기를 위하여 과거로부터의 인연을 들어 자세하게 설해 보이므로 인연주因緣周라고 한다. 요원 역시 이러한 삼주설법에 의거하여 『법화경』의 구성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2. 25)흥선사興善寺 : 중국 섬서성 서안시에 있는 절. 수나라 문제 때 창건된 후 수당 이래 장안 제일의 대찰大刹이었다.
  33. 26)『법화경현응록』 권하에는 『법화경』과 『금강경』을 함께 암송한 것으로 나온다.(X78, 57a)
  34. 27)8만蠻 : 문물이 보잘것없는 중국 남쪽에 있는 나라를 지칭한 말이다. 보통 천축天竺ㆍ해수咳首ㆍ초요僬僥ㆍ피종皮踵ㆍ천흉穿胸ㆍ담이儋耳ㆍ구지狗軹ㆍ방춘旁春을 가리킨다.
  35. 28)예참禮懺 : 삼보三寶를 청하여 예배드리고 자기 잘못을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을 모시고 예참하는 방법은 천태 지의天台智顗의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에 자세히 설해져 있다.
  36. 29)원문은 ‘臘月’이니, 음력 섣달의 별칭이며, 가장 추운 겨울을 의미한다.
  37. 30)법융法融 스님(594~657) : 당唐대의 선승禪僧으로 우두선牛頭禪의 개조이다. 『대품반야경』을 읽고 진공眞空의 묘리를 터득하였다. 정관 17년(643)에 우두산 유서사幽棲寺로 들어와 바위 아래에 선실禪室을 짓고 수행하였다.
  38. 31)『홍찬법화전』 권3에서는, “스승을 찾아 나서 풍락사豐樂寺 대명 법사大明法師에게 삼론三論을 들었고, 『화엄』ㆍ『대품大品』ㆍ『대집大集』ㆍ『유마維摩』ㆍ『법화』 등 여러 경전을 배웠다.”라고 하였다.(T51, 18c)
  39. 32)『홍찬법화전』 권3에서는, 경전 강의가 끝나자 연꽃도 사라지고 항상 오던 사슴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고 한다.(T51, 19a)
  40. 33)실제로 법융은, 이 문장과는 달리, 현경顯慶 2년(657) 윤閏 정월 23일 건초사建初寺에서 춘추 64세로 입적하였다.(『속고승전』 권20, T50, 604b)
  41. 34)염마천焰摩天 : 욕계欲界의 여섯 하늘 중 제3천으로, 야마천夜磨天이라고도 한다. 도리천忉利天에서 360만 리 위에 있다고 한다.
  42. 35)삼주설법으로 보면, 제3단의 네 품은 비유로 법을 설하는 부분인 비설주譬說周에 해당한다.
  43. 36)법화칠유法華七喩 중 「비유품」에 나오는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이다.
  44. 37)부도浮圖(buddha stūpa) : 부도浮屠ㆍ불도佛圖라고도 표기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이나 불상을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묘탑廟塔이나 승려들의 사리탑舍利塔까지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45. 38)혜원慧遠 : 여기에 나오는 혜원은 동림사東林寺 혜원(334~416)이나, 수나라 때 정영사淨影寺 혜원(523~592, 속성 李氏)과는 연대나 속성으로 보아 일치하지 않는다. 또 법장法藏의 제자 혜원慧苑(673~743?)과는 출신지는 같으나 연대 차이가 있어 다른 사람인 듯하다.
  46. 39)박씨朴氏 : 『홍찬법화전』 권3에는 두씨杜氏로 되어 있다.(T51, 19b)
  47. 40)길장吉藏(549~623) : 당나라 때 고승으로 안식국安息國 출신이다. 삼론三論을 대성하여 삼론종을 부흥시켰다. 『삼론』 1백여 편, 『법화경』 3백여 편, 『대품경』 등 각 10여 편을 강설하였고, 『중론소中論疏』ㆍ『십이문론소十二門論疏』ㆍ『삼론현의三論玄義』ㆍ『법화현론法華玄論』 등의 수많은 저술이 있다.
  48. 41)번국蕃國 : 중국 황제가 파견한 제후들이 통치하던 나라를 말한다.
  49. 42)원문 ‘普賢等懺’은 보현도량普賢道場 또는 보현참법菩賢懺法을 말한다.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 권28의 내용에 의거한 것으로 천태 지의의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에 수행법이 자세하게 설해져 있다.
  50. 43)인연주 : 삼주설법의 세 번째에 해당한다. 상권 각주 24 ‘법설주’ 참조.
  51. 44)종승宗乘 : 각 종宗에서 널리 펴고자 하는 궁극적 가르침과 교전敎典을 말한다.
  52. 45)대변재大辯才 : 설법하는 솜씨가 막힘이 없이 자재自在한 것을 일컫는다.
  53. 46)대계 : 구족계具足戒를 말한다. 출가자가 받아 지킬 계법戒法으로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가 있다. 오계ㆍ10계에 상대하여 ‘대大’라는 말을 붙였다. 혹은 대승계大乘戒를 말하기도 한다.
  54. 47)경행 : 행도行道나 좌선坐禪 중에 졸음이 오거나 몸에 병의 기운이 있을 때 일정한 장소를 조용히 거니는 것.
  55. 48)주미麈尾 : 법요法要를 전할 때 사용하는 법구. 곧 불자拂子를 말한다. 주미란 고라니의 꼬리로서, 먼지가 잘 털린다 하여 털이개로 만드는데, 불교에서는 불자拂子로 사용한다.
  56. 49)서진書鎭 : 책장이나 종이가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 놓는 물건. 무거운 납 등으로 만든다. 문진文鎭이라고도 한다.
  57. 50)승략僧䂮 : 승략僧略이라고도 한다. 요진 승려로 속성이 전씨傳氏이고, 어려서 출가하여 홍각弘覺 대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삼장三藏과 육경六經에 박통하고 계행이 청정하였다. 한때 도안道安의 역경을 돕기도 했다. 홍각 대사가 요장에게 『법화경』을 강의할 때 도강을 맡았고, 요장姚萇ㆍ요흥姚興이 그 덕을 흠모할 정도였다고 한다.
  58. 51)도강都講 : 강회講會를 맡아서 주재하는 사람을 말한다.
  59. 52)『고승전高僧傳』 권7(T50, 371a)과 『홍찬법화전』 권2(T51, 17a)에서는 입적 당시 춘추가 60세가량이었다고 한다.
  60. 53)비장방費長房 : 중국 성도成都 출신으로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역경譯經을 하였다. 위의 시는 『홍찬법화전』 권2(T51, 17a)에서 일부만 발췌한 것이다.
  61. 54)10十物 삼의三衣 : 출가자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말한다. 즉 승가의僧伽衣(가사)ㆍ울다라승鬱多羅僧(윗옷)ㆍ안타회安陀會(속옷)의 삼의와 발우鉢盂ㆍ좌구坐具ㆍ삭도削刀ㆍ칼(刀子)ㆍ물 거르는 주머니(漉水袋)ㆍ발우 싸는 보자기(鉢袋)ㆍ약품통(針筒) 등인데, 10물과 삼의를 따로 보는 경우도 있다.
  62. 55)원문에는 ‘酥’로만 되어 있어 어떤 음식인지 확실치 않다. 소유酥油는 우유에서 정제한 기름으로 먹거나 바르며, 소밀酥蜜은 타락(酪)과 꿀을 가리킨다.
  63. 56)제호醍醐 : 경전에서는 우유가 발효되는 과정을 ‘유乳ㆍ낙酪ㆍ생소生酥ㆍ숙소熟酥ㆍ제호’의 5단계로 말하며, 이것으로써 법法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제호는 우유가 가장 잘 발효된 상태로서 최상의 맛, 최상의 법, 가장 진실한 가르침 등을 상징한다.
  64. 57)영향 선사靈響禪師 : 『홍찬법화전』 권8(T51, 39b)에는 ‘영경음 선사靈卿音禪師’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뒤의 구절에서 마찬가지로 ‘위향설지爲響說之’라고 하였으므로, 『홍찬법화전』의 ‘영경음靈卿音’은 영향‘靈響’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65. 58)건사騫師 : 사중寺衆의 일체 생활제도인 ‘건도犍度(khandhaka)’를 담당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인 듯하다.
  66. 59)장효수張孝秀: 양梁나라 사람으로 경전에 정통했다고 한다.
  67. 60)살계자殺契者 : 근심과 괴로움을 없앤 사람.
  68. 61)고려 22대 강종 대왕은, 최씨 무신집권 시절 최충헌이 희종을 폐하여 등극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왕의 서녀 정화가 최충헌에게 시집간 것으로 보인다. 진강현(강화도의 속현)은 최충헌이 희종(2년, 1206)에게서 식읍食邑으로 받았으므로 진강공이라고 하였다.
  69. 62)원묘는 최씨 일가의 귀의와 지원으로 만덕사를 개창하고, 이어 백련사 도량을 열어(고종 8년, 1221) 백련사에서 결사(고종 19년, 1232)하고, 법화삼매와 정토왕생을 구하였다. 정화 택주도 이때 불사에 시주한 것으로 보인다.
  70. 63)도리천忉利天 : 욕계 육천의 제2천이다. 삼십삼천이라고도 하며, 남섬부주의 위 8만 유순 되는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
  71. 64)『홍찬법화전』 권9(T51, 42a)에는 이 일이 당나라 낙양 백마사 법안法眼 스님이 출가 전에 겪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현응록』 권하(X78, 57c)에는 ‘서울에 사는 고문(京師高文)’이란 제목으로 재가자의 부분에 기술되어 있다.
  72. 65)손사막孫思邈 : 당나라 화원華原 지방 출신. 여러 학문에 통달하였고, 노장의 학문을 즐겼으며, 특히 음양추보陰陽推步와 의학ㆍ천문에 밝았다. 나라에서 국자박사國子博士,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벼슬을 주었으나 마다하고 은둔하였다. 『천금방千金方』 93권을 지었다.
  73. 66)오대산五臺山 : 문수보살이 시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대五臺란 산봉우리에 흙을 쌓아 놓은 대臺와 같은 지형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형상이 연꽃과 같고, 동ㆍ남ㆍ서ㆍ북의 사대가 중대에서 뻗어 나가서 형세가 용이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문수도량 혹은 문수보살의 주처住處라고 일컫는다.
  74. 67)와륜 선사 : 고역사高力士의 아들로 선풍을 드날렸다고 한다.
  75. 68)해운 비구 :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설하고 있는 선지식으로, 선재동자가 찾아가 가르침을 받은 53선지식 중 제2 선지식(여기서는 세 번째로 되어 있음)으로 알려져 있다. 해문국海門國에 살면서 항상 바다를 관觀한다고 알려져 있다.
  76. 69)공직도貢職圖 : 조공朝貢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
  77. 70)이 연대는 지의智顗(538~597)가 입적한 후이므로 기록에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연광이 실제로 지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수 개황 연간(581~600)’이어야 하며, ‘인수 연간’이라면 지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78. 71)지자 대사智者大師 : 지의智顗(538~597)의 법호로서 천태종의 개조이다. 형주荊州 사람으로 대소산大蘇山의 남악 혜사南嶽慧思에게서 법화안락행과 보현도량을 전수받았다. 혜사는 그를 보고 영산에서 『법화경』을 들은 숙연으로 지금 다시 만난 것이라고 하였다. 법화삼매를 체득하고, 금릉으로 내려와 강설하다가 돌연히 천태산으로 들어가 11년을 수학하였다. 그 후로는 천태삼대부라 일컫는 『법화현의』ㆍ『법화문구』ㆍ『마하지관』을 강설하여 법화원융의 교관敎觀을 집대성하였다.
  79. 72)묘관妙觀 : 천태의 일심삼관一心三觀, 곧 원융삼관圓融三觀을 말한다. 한 마음에 공空ㆍ가假ㆍ중中의 삼제三諦를 관하여 실상實相을 증득하는 수행법이다.
  80. 73)만월재滿月齋 : 아이를 낳고 올리는 재를 말한다.
  81. 74)유나維那 : 절에서 여러 스님들의 잡일이나 사무를 감독, 지도하는 승직僧職.
  82. 75)현광玄光 : 백제 위덕왕 때 중국으로 건너가 천태 지의의 스승인 남악 혜사로부터 법화삼매를 전수받았다. 중국에서는 제자로 혜민慧旻을 배출하였고, 백제에 돌아와 승당수별자升堂受莂者와 화광삼매火光三昧ㆍ수광삼매水光三昧를 증득하는 이들을 길러냈다. 중국 국청사國淸寺 조사당祖師堂에 28조사의 한 분으로 모셔졌다. 그의 전기는 『송고승전』ㆍ『불조통기』 등에 전한다.
  83. 76)사안락행四安樂行 : 『법화경』 「안락행품」에 설해진 신身ㆍ구口ㆍ의意ㆍ서원誓願의 네 가지 안락행을 말한다.
  84. 77)법화삼매法華三昧 : 『법화경』에 설해진 제법실상의 경지에 들어가는 삼매. 그 수행법은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에 자세히 설해져 있다.
  85. 78)동일한 내용이 『불조통기』 권9(T49), 『송고승전』 권18(T50) 등에도 실려 있다.
  86. 79)단의袒衣 : 승복이나 가사를 한쪽(오른쪽) 팔이 드러나도록 입는 것을 말한다.
  87. 80)영사令史 : 난대상서蘭臺尙書의 속관으로 문서를 처리하는 벼슬.
  88. 81)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 : 태자 수하의 관원으로 황제의 시중과 비슷하게 태자를 가까이 모시면서 고문 역할을 했던 직책.
  89. 82)짐새 : 중국 광동성에 사는 독조毒鳥로, 이 새의 날개로 담근 술(鴆毒)을 마시면 죽는다고 한다.
  90. 83)「여래수량품」의 해당 부분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모든 세계의 미진微塵이 떨어진 곳이나 떨어지지 않은 곳을 모두 먼지 가루로 만들어서 그 한 가루(一塵)를 1겁이라고 하여도 내가 성불해 온 것은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겁보다 더 지난다.(是諸世界,若著微塵及不著者, 盡以爲塵,一塵一劫,我成佛已來,復過於此百千萬億那由他阿僧祇劫.)”(T9, 42b)
  91. 84)권적權適 : 고려 인종 때 학자(1094〜1146). 청평산 문수사文殊寺에서 이자현李資玄과 함께 학문을 닦았고, 예종 때 유학생으로 송나라에 가서 태학太學에 들어가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종 12년에 귀국하였다.
  92. 85)갑과甲科 : 과거의 문과 복시覆試 합격자에게 전시殿試를 보여 합격자의 성적을 셋으로 나눈 중 최상 등급이다.
  93. 86)『열반경』 10권 : 현전하는 『열반경』 중 10권으로 된 것은 없다. 열반경류로는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이 있다. 소승열반경의 번역본으로는 『불반니원경』과 『대반열반경』이 있으며, 대승열반경으로 대표적인 것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동진東晋의 법현法顯이 번역한(418년) 6권본 『대반니원경』이고, 둘째는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421년) 40권본 『대반열반경』으로 ‘북본北本 열반경’이라 하고, 셋째는 남송南宋 때 혜엄慧嚴ㆍ혜관慧觀 등이 북본에 의지하여 법현의 『대반니원경』과 대조해 가면서 다시 번역한 36권본의 『대반열반경』으로 강남 지방에서 번역되었다 하여 ‘남본南本 열반경’이라 한다. 후대에는 ‘남본’이 주로 유통되고 연구되었다.
  94. 87)이상에서 여섯 도인이 닦은 덕업으로 각각 다른 세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홍찬법화전』이나 『법화영험전』을 편찬할 당시의 불교관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우선 수행 유형으로 독송과 강설을 언급하였는데, 독송자는 인간계나 천상에 태어나고, 강설자는 축생이나 지옥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 중 ‘독송’을 우위에 두어 더욱 권장하려 했던 의도로 보인다. 다음에 수행의 대상으로 삼았던 경전을 보면, 『법화경』을 천상계에 배대하고, 『유마경』ㆍ『열반경』ㆍ『금광명경』을 인간계에, 그리고 『십지론』을 지옥계에 배대하였다. 이렇게 하여 여러 경론 가운데 『법화경』이 최상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재로 이러한 배열은 천태의 오시교판과 일치하지도 않으며, 또한 법화우월론의 경우도 천태종의 6조인 형계 담연에 이르러 확립되어 천태 지의의 입장을 바르게 천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이야기의 구성은 법화영험담을 설한다는 의도를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편협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95. 88)삼의三衣와 육물六物 : 삼의는 승려가 입도록 되어 있는 세 가지 옷으로 승가리僧伽梨(가사)ㆍ울다라승鬱多羅僧(상의)ㆍ안다회安陀會(내의)를 말한다. 육물은 승려가 지니도록 허용된 여섯 생활 필수품으로, 앞의 세 가지 옷과 발우ㆍ녹수낭漉水囊(물을 걸러 벌레를 제거하는 기구)ㆍ이사단尼師壇(깔개)이다.
  1. 1){底}順治九年。全羅道寶城郡五峯山開興寺重刊本{甲}嘉靖十三年甲午全南高敞文殊寺重鋟。伽耶山鳳棲寺留板 {乙}續藏經。第二{編}乙第七套第四冊。
  2. 2)撰者名補入{編}。
  3. 3)目次。編者作成。甲乙本亦有目次。
  4. 1)「朝」無有{乙}。
  5. 2)冠註曰詳異作祥{乙}。
  6. 3)冠註曰現現流本作顯{乙}。
  7. 4)「苢」作「苡」{乙}次同。
  8. 5)「母」作「每」{乙}。
  9. 6)「茝」作「苡」{乙}。
  10. 7)「侍以」作「待以以」 又冠註曰以衍文歟{乙}。
  11. 8)「什」無有{乙}。
  12. 9)「果」作「界」又冠註曰界疑果{乙}。
  13. 10)「之」下有「一」{乙}。
  14. 11)「花」作「華」{乙}。
  15. 12)「三」作「二」{乙}。
  16. 13)「出弘…應錄」十字無有{乙}。
  17. 1)「㴉」作「濟」{乙}。
  18. 2)「曰」作「言」{乙}。
  19. 3)「集」下有「又出弘賛傳第十及現應錄」{乙}。
  20. 4)「出弘…應錄」十字無有{乙}。
  21. 5)「宵」作「霄」{乙}。
  22. 6)「入」作「人」{乙}。
  23. 7)「傳」下有「又出弘䝺傳第十及現應錄」{乙}。
  24. 8)「去」作「志」{甲}。
  25. 9)「大平廣記出」作「出大平廣記」{乙}。
  26. 10)冠註曰鱗疑麟{乙}。
  27. 1)「是」作「言」{乙}。
  28. 2)「戾」作「跋」{乙}。
  29. 3)「道」作「首」{乙}。
  30. 4)「捋」作「將」{乙}。
  31. 5)「看」作「者」{乙}。
  32. 6)」作「」{乙}。
  33. 7)「其」下疑脫「夫」{編}。
  34. 1)「拪」作「栖」{乙}。
  35. 2)「瞹」作「暖」又冠註曰暖疑緩{乙}。
  36. 3)「爇」作「熱」{乙}次同。
  37. 4)「比」作「譬」{乙}次同。
  38. 1)「愽」作「博」{乙}。
  39. 2)「委」作「隨」{乙}。
  40. 3)「默」作「點」又冠註曰點疑默{乙} 。
  41. 4)「比」作「譬」{乙}。
  42. 5)「惠」作「慧」{乙}。
  43. 6)」作「熱」{乙}。
  44. 7)「出弘賛第七」無有{乙}。
  45. 8)「瘞」作「埋」{乙}。
  46. 1)「抵」作「至」{乙}。
  47. 2)「豺」作「犲」{乙}。
  48. 3)「子」作「于」{甲}{乙}。
  49. 4)「覬」作「顗」{乙}次同。
  50. 5)「大」作「太」{乙}。
  51. 6)「斯」作「則」{乙}。
  52. 1)「導」作「道」{乙}。
  53. 2)「還」作「邊」{乙}。
  54. 3)「愛」作「受」{乙}。
  55. 4)「亡」作「王」{甲}。
  56. 5)「及」作「乃」{乙}。
  57. 6)「祈」作「析」{甲}。
  58. 7)「楪」作「桃」{乙}。
  59. 1)「歐」作「敺」{乙}。
  60. 2)「搊」作 「解」{乙}。
  61. 3)「輸」作「送」{乙}。
  62. 4)「黿說文云大鼈也 」七字無有{乙}。
  63. 1)「黿」下有「黿說文云大鼈也」{乙}。
  64. 2)「皂」作「烏」{乙}。
  65. 3)「且」作「旦」{乙}。
  66. 4)「未」作「來」{乙}。
  67. 5)「釼」作「劔」{乙}。
  68. 1)「衿」作「袷」{乙}。
  69. 2)「持」上有「勸」{乙}。
  70. 3)「玉」作「王」{甲}{乙}。
  71. 4)「左」作「在」{乙}。
  72. 5)「土」作「士」{乙}。
  73. 6)「而」作「日」{乙}。
  74. 7)「白」作「自」{甲}。
  75. 1)「遣」作「遺」{乙}。
  76. 2)「姟」作「孩」{乙}。
  77. 1)「且」作「旦」{乙}。
  78. 2)「領」作「頓」{乙}。
  79. 3)」作「妖」{乙}。
  80. 4)「或」無有{乙}。
  81. 5)「菴」作「庵」{乙}。
  82. 6)「袒」作「祖」{甲}次同。
  83. 7)「今」作「令」{乙}。
  84. 8)「韻」作「韻」{乙}。
  85. 9)「脫」作「服」{乙}。
  86. 10)「沾」作「咕」{乙}。
  87. 1)「幼」作「幼」{甲}{乙}。
  88. 2)「妻」下有「亡」{乙}。
  89. 3)「鈞」作「鈎」{乙}。
  90. 4)「恬」作「括」乙。
  91. 5)「主」作「帝」乙。
  92. 6)「燒」作「燒」{甲}ㆍ作「」{乙}。
  93. 7)「佳」作「嘉」{乙}。
  94. 8)「有」無有{乙}。
  95. 9)「行」作「德」{乙}。
  96. 1)」作「」{乙}ㆍ疑「霡」{編}。
  97. 2)「相邀」作「邀相」{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