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영허집(暎虛集) / 暎虛集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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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집 권4(暎虛集 卷之四)
유산록遊山錄
두류산頭流山
한 해의 날씨가 극도로 추워지고 나면 봄이 태동하고, 괘卦는 비괘否卦에 이르면 태괘泰卦가 움직이며1), 새는 죽으려 할 적에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곤궁하게 되면 근본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세간의 만 갈래 길에 얽매이고 인사人事의 가지각색을 겪다 보니 상장上章의 협종夾鍾2)을 생각하고 삼계三界의 공화空華를 깨달아 자맥紫陌의 홍진紅塵3)을 싫어한 나머지 두류산頭流山의 높은 산비탈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아! 세로世路의 권세는 실로 뜬구름 같은 인생의 화택火宅4)이거늘, 오래도록 그 안에 빠져 있었으니, 이는 격분하고 탄식할 만한 일이라. 이에 장검을 뽑아 손바닥에 침을 뱉고서 흰 구름을 타고 내달려 잠깐 사이에 바람을 몰고 진양晋陽, 곧 진주의 지리산에 이르렀다.
산기슭의 숲은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남해를 넓게 싸며 돌고, 봉우리는 높이 솟아서 북두성에 닿을 듯하다. 대나무는 우수수 소리를 내고 물은 질펀하게 흘러 내 귀를 맑고 깨끗하게 해주지만 어느 게 위고 어느 게 아래인지를 기록하기 어려우며, 숲은 울창하고 바위는 아스라이 높이 솟아서 시야에 그윽하지만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지를 알 수 없다. 천 골짜기 만 골짜기인들 어찌 화개동花開洞과 청학동靑鶴洞5)보다 나을 수 있으며, 백 봉우리 억 봉우리인들 천왕봉天王峯과 반야봉般若峯6)에 미치랴. 크고 작고 깊고 얕은 것을 세어보아도 끝이 없는데, 원류源流가 깨끗한 것은 쌍계雙磎이며,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것을 세어보아도 끝이 없으나 풍광이 절승인 것은 칠불동七佛洞이다.
아스라한 산사에는 선옹仙翁과 불자가 상계上界와 하계下界에 함께 거처하고 있고, 험준한 선경에는 잔나비와 백학이 큰 소나무와 작은 소나무 여기저기에 깃들었다. 좁은 우주에 강과 바다가 둘러 있음이여, 천왕모天王母와 의신조사義神祖師7)는 풍류를 즐기면서 향적사香積寺8)에서 거처하였고,

008_0042_c_01L暎虛集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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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042_c_03L遊山錄

008_0042_c_04L頭流山

008_0042_c_05L
歲極寒而春動卦至否而泰運鳥將死
008_0042_c_06L而哀鳴人値窮而反本膠世間之萬途
008_0042_c_07L閱人事之千差惟上章之夾鍾悟三界
008_0042_c_08L之空華厭紫陌之紅塵入頭流之崇阿
008_0042_c_09L吁嗟乎世路之有權有勢實浮生之火
008_0042_c_10L久溺乎其中其內可慷慨而歎息
008_0042_c_11L拔長劒而唾掌乘白雲而驅馳忽須臾
008_0042_c_12L而卷風到晋陽之智理林麓逶迤
008_0042_c_13L廣包于南溟峯巒束聳而高接于北斗
008_0042_c_14L竹蕭蕭水落落瀟洒乎耳根而難記上
008_0042_c_15L難記下林欝欝巖峨峨窈窕乎眼界
008_0042_c_16L而不知前不知後千洞萬洞豈能過花
008_0042_c_17L開洞靑鶴洞百峯億峯猶未及天王峯
008_0042_c_18L般若峯大小深淺數無盡而源流淸潔
008_0042_c_19L雙磎高低遠近計無窮而地位勝
008_0042_c_20L槩者七佛蓮坊縹緲而仙翁釋子
008_0042_c_21L居干上界下界仙境崎嶇而靑猿白鶴
008_0042_c_22L亂棲于長松短松宇宙陜窄江海回環
008_0042_c_23L天王母義神祖風流而爰居香積

008_0043_a_01L놀랄만한 임천에 경물景物이 빛남이여, 최학사崔學士(최치원)와 원감국사圓鑑國師9)는 바둑을 두면서 늘 불일암佛日庵10)에 머물렀도다. 반야대般若臺와 해탈대解脫臺의 영험한 이름도 금대金臺에는 상대되지 못하고, 금사굴金沙窟과 청사굴靑沙窟의 기이한 자취도 철굴鐵窟에는 미치지 못하구나.
금륜왕金輪王과 사혜왕沙惠王11)이 군자를 사자로 보내어 나라의 덕기德基가 길이 흥성하기를 축수하게 했으며, 백장사百丈師와 덕산사德山師는 연선蓮船을 타고 영원靈源으로 들어와서 적멸寂滅의 참다운 즐거움을 누렸다네.
심원心源이 널리 비춤이여! 옥계玉溪에서 맞이하는 달과 같고, 적조寂照가 원만하게 밝음이여! 물결 위의 수각水閣 같다. 도의 실상實相을 깨침이여, 묘봉妙峯의 백화白花이고, 대승大乘에 원통圓通함이여, 황령黃嶺의 백련白蓮이로다.
취성鷲城의 풍백風伯12)은 법화法華를 펼쳐서 임강臨講·회강會講13)하였으며, 낙탄落灘의 하신河神14)은 실덕實德을 펼쳐서 무수한 시내를 옥같이 맑게 하였다.
원근에 펼쳐 있는 크고 작은 선찰은 몇 천 몇 만이 되고, 위아래로 흩어 벌려 있는 오래된 불상이나 갓 조성한 불상이 십만 백만이 된다. 신승神僧과 도사가 정좌하여 혹은 강講하고 혹은 선禪하며, 공작孔雀과 원숭이는 어지러이 날면서 웃는 듯 우는 듯하며, 감나무 배나무 소나무 참죽나무가 함께 자라 멀리까지 맑은소리를 전하고, 자색 청색의 영지와 차가 같이 심어져 멀리까지 특이한 색을 드러냈다.
허공을 모사하려는 자 붓을 들자마자 상像이 끊어지고, 큰 산을 기록하려는 자 종이에 임하자마자 그 모습을 잊어버리니, 견각見覺의 지극히 오묘함에 부끄럽고, 산천의 무궁함이 부러울 뿐이다. 석문石門으로 들어가면서 크게 탄식하고 최자崔子, 최치원의 고아한 풍치를 우러러볼 뿐이다. 팔영루八詠樓15)는 굳세면서도 시원하며, 사방의 경치는 아름답고도 풍요롭다. 신선이 완폭대翫瀑臺 위에서 바둑을 두는 듯하고, 신인神人의 자취가 향로봉香爐峯에 어렴풋하다. 크게 불러보아도 모습과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재배 삼배하여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 진결眞訣을 전수받기가 어려운 것이 한스럽거늘, 아직도 어리석어서 범부들의 마음에 머무르고 있다니. 비碑16)를 쓰다듬으며 게눈으로 보면서 슬퍼하고 또 슬퍼하고, 불상에 예를 올리며 빙빙 돌면서 읊조리고 또 읊조린다. 방포方袍17)가 삼대 같아졌거늘 지음知音은 더욱 적어지고, 아관峩冠18)은 좁쌀 같아졌거늘 동지同志들은

008_0043_a_01L林泉駭愕景物耀榮兮崔學士鑑國師
008_0043_a_02L列局而常住佛日般若臺解脫臺靈名
008_0043_a_03L無敵於金臺金沙窟靑沙窟異跡不逮
008_0043_a_04L於鐵窟金輪王沙惠王使君子祝壽國
008_0043_a_05L長興德基百丈師德山師乘蓮船入靈
008_0043_a_06L寂滅眞樂心源普照兮似玉溪迎
008_0043_a_07L月寂照圓明兮若凌波水閣悟道實
008_0043_a_08L相兮妙峯白花圓通大乘兮黃嶺白
008_0043_a_09L鷲城風伯展法華而臨講會講
008_0043_a_10L灘河神宣實德而玉川百川大小禪刹
008_0043_a_11L遠近星羅者幾千幾萬新舊佛像
008_0043_a_12L下霧列者乃億乃百神僧道士正坐
008_0043_a_13L而或講或禪孔雀靑猿亂飛而如笑如
008_0043_a_14L杮梨松椿並植而遠傳淸聲紫靑芝
008_0043_a_15L同種而遙逞異色摸寫虛空者
008_0043_a_16L1)茟而絕像傳記太山者臨紙而忘容
008_0043_a_17L愧見覺之至妙羡山川之無窮入石門
008_0043_a_18L而太息仰崔子之高風八詠健且淸爽
008_0043_a_19L四景麗又豊濃仙碁髣髴于翫瀑䑓上
008_0043_a_20L神迹依俙于香爐峯中高呼遠唱而不
008_0043_a_21L見形影三拜再拜而未聞言音恨眞訣
008_0043_a_22L之難傳尙蒙滯乎凡心摩碑蠏目而惆
008_0043_a_23L悵又惆悵禮像周旋面沉吟且沉吟
008_0043_a_24L袍如麻而知音轉少峩冠似粟而同志

008_0043_b_01L더욱 드물구나. 아무 일도 없이 괜히 날랜 말을 타고 큰길을 분주히 오가는 자는 진취도 알지 못하면서 한갓 하찮은 시나 읊조리고, 세상의 원정圓頂, 즉 스님의 귀감을 순환하는 자는 한갓 뜻과 기개만 높을 뿐 현기玄機에는 또 어둡구나.
오호라! 산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사람이 산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고운孤雲( 최치원)과 방장方丈(지리산의 별칭)은 천년을 두고 함께 하였구나. 스님이 선비를 만나는 것이 어렵고 선비가 스님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어사御史와 진감선사眞鑑禪師19)는 한 시대에 함께 기뻐했도다. 나는 두 공公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또한 옛것을 좋아하느라 겨를이 없는지라, 단서丹書의 청건淸健함을 돌아보면서 억지로 발걸음을 떼며 천천히 돌아가노라.
붓을 적시는 게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자세히 살펴보니 청학이 날갯짓하는구나. 침묵 속에서 마음에 느낌이여, 선옹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알겠구나, 알겠어! 이것은 신선이 청학으로 화한 것이니라. 이 짧은 문장을 끌어다가 두류산에 대한 유기遊記로 삼는다.
묘향산(香山)
공자가 철환천하轍環天下20)하다가 마침내 산정刪定과 찬수贊修의 공功을 이루어서 백세百世의 스승이 된 것을 공경하고, 선재善財21)가 남쪽으로 백 개의 성을 넘어서 마침내 교리행과敎理行果22)의 덕을 이루어 만겁의 존자尊者가 된 것을 흠모한다. 하물며 나 같은 못난 자질이 어찌 석덕碩德의 대은大恩을 찾아 참례하지 않겠는가. 해는 갑술년(1574)이요 달은 정월이라, 비로소 두류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묘향산의 고원에 도달하게 되었다.
묘향의 천만 산봉우리와 시냇물을 두루 다녀서 내 눈과 마음에 훤하게 남았는데, 그중 가장 장대한 경관은 삼도三島의 한 꼭대기가 연기와 노을 밖으로 우뚝 솟아있는 것이었다. 별처럼 늘어선 누대와 전각은 모두 사위舍衛23)의 궁궐이요, 흩어져 위치한 사찰은 영취산靈鷲山의 아름다운 법회가 아님이 없다. 삼선암三禪庵의 세 사자獅子는 위아래의 도솔사兜率寺를 향해 있고, 두 무주암無住庵과 두 빈발암賓鉢庵은

008_0043_b_01L尤稀無端馹騎之紛綸大路者未諳眞 
008_0043_b_02L趣而徒吟小詩八表圓頂之循環龜鏡
008_0043_b_03L空尙志槩而又昧玄機嗚呼山遇
008_0043_b_04L人難人遇山難孤雲方丈千載同般
008_0043_b_05L僧逢士難士逢僧難御史眞鑑一代
008_0043_b_06L同歡惟我揆二公之未及亦好古而無
008_0043_b_07L回視乎丹書之淸健强緩步而徐歸
008_0043_b_08L濡*茟未了白日西飛東首詳觀靑鶴
008_0043_b_09L翅垂默然心納兮仙翁之不我棄
008_0043_b_10L乎知乎兮是仙之化爲鶴易控引短章
008_0043_b_11L寫遊山之勝記

008_0043_b_12L

008_0043_b_13L香山

008_0043_b_14L
欽夫子轍環天下終成删㝎賛修之功
008_0043_b_15L而爲百世之師慕善財南逾百城竟遂
008_0043_b_16L教理行果之德而作萬劫之尊况眇末
008_0043_b_17L▼(米+弟)粟之微質盍尋叅碩德之大恩年當
008_0043_b_18L閼逢閹茂之啓運月屬柔兆攝提之正
008_0043_b_19L始發于頭流之深壑終逮于妙香之
008_0043_b_20L高原厥中經歷千山萬水昭昭於心目
008_0043_b_21L之間最上壯大三島一頂屼屼於烟
008_0043_b_22L霞之外䑓殿星羅盡是舍衛之城闕
008_0043_b_23L蓮坊霧列無非靈鷲之勝會三禪庵三
008_0043_b_24L獅子盡向上下之兜率兩無住兩賓鉢

008_0043_c_01L모두 안팎의 보현사普賢寺24)에 속해 있다. 웅장한 상원암上院庵은 그림자를 인호대引虎臺의 용연龍囦에 떨어뜨리고 있고, 크고 웅장한 내원암內院庵은 빛을 의상대義相臺의 구름 꼭대기에 떨치고 있다.
자성을 깨쳐서 부처가 되는 일이 어찌 정혜定慧를 빌리겠으며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의 영신靈神이 어찌 은선隱仙과 관계있으랴. 영롱한 구슬이 널리 비추고, 마음에 달린 거울이 밝게 비추고 있을 뿐.
불지佛地와 불정佛頂은 원시圓示, 계조繼祖, 조도造道의 길이며, 원적圓寂과 원통圓通은 묘절妙絶, 정수正修, 선정禪定의 길이었다. 이들 삼형삼제三兄三弟는 맑은 물과 구름고개에 그 정신을 숨겼고, 사굴사적四窟四積은 비로화장毗盧華藏에서 인仁을 도왔다.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 신령한 구름과 가랑비에 눈썹을 씻고, 자성을 보고 도를 이룸에는 적멸의 실상을 곧장 깨달았다. 겹겹의 흰 구름은 그 빛이 오봉五峯과 칠봉七峯에서 빛나고, 첩첩의 부도浮圖는 일출日出과 월출月出에 접해 있다. 원효元曉의 천진天眞은 불가사의의 문수매굴文殊埋窟 같고, 삼정三淨의 지혜는 두타봉頭陀峯의 조계曺磎에서 적신 붓 같다. 조원祖院은 수도하여 국진굴國進窟 안에서 향로에다 공경히 향을 살랐고, 상운上雲은 극락하여 대웅전에서 지장보살을 널리 드러냈다지.
추생鯫生25)은 나이가 아직 쇠하지 않았음을 기뻐하고, 묘향산의 장관이 더할 나위 없음을 경하하노니, 삼춘三春의 꽃이 난만한 계절에 여기서 한가롭게 거닐면서 즐기고, 버들개지 어지러이 날리는 때에 이 산 여기저기를 다녔다네. 산은 높디높고 물은 차디찬데 푸른 버들과 향기로운 풀은 산빛과 물빛으로 어울렸고, 바람이 솔솔 불고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황금 기둥과 벽옥의 연못이 얽혀 빛났지. 금판자金板子에 은범자銀梵字로 절들은 저마다 새로운 게 단청을 어제 한 듯하고, 은채상銀彩像과 금소상金塑像의 부처님들이 함께 광명을 발하여 미묘한 설법을 지금 하고 계신 듯하다. 우뚝 솟은 봉우리는 팔만여 개는 돼 보이고, 깊은 그늘이 드리워진 골짜기는 구천여 개에 달하였다.
선화禪和와 선백禪伯26)은 모두 선정에 들어가 덕을 닦고, 교주敎主와 교사敎師는 모두

008_0043_c_01L皆屬內外之普賢壯哉上院影落引虎 
008_0043_c_02L之龍囦▼(宀/尤)哉內院光壓義相之雲巓
008_0043_c_03L頓悟自性之成佛豈假乎㝎慧阿難迦
008_0043_c_04L葉之靈神奚涉乎隱仙靈珠兮普照
008_0043_c_05L懸鏡兮普明佛地佛頂圓禾繼祖造道
008_0043_c_06L之路圓寂圓通妙絶正修禪㝎之行
008_0043_c_07L三兄三弟隱神於白水雲岾四窟四積
008_0043_c_08L輔仁於毗盧華藏浮鶴登天洗眉於靈
008_0043_c_09L雲細雨見性成道即知於寂滅實相
008_0043_c_10L重重白雲光耀於五峯七峯疊疊浮圖
008_0043_c_11L氣接於日出月出元曉天眞不思議之
008_0043_c_12L文殊埋窟三淨智慧峯頭陀之曺磎潤
008_0043_c_13L*茟祖院修道香爐敬▼(蓻/火)於國進窟中
008_0043_c_14L上雲極樂地藏普現於大雄殿上欣鯫
008_0043_c_15L生之年齒未暮慶香山之壯觀無尙
008_0043_c_16L游乎悞樂乎三春花爛熳之節行於斯
008_0043_c_17L遊於斯五柳絮紛飛之時山屹屹水泠
008_0043_c_18L交光於綠楊芳草風蕭蕭月皓皓
008_0043_c_19L互暎於金楹玉池金板子銀梵字寺寺
008_0043_c_20L皆新而丹靑如昨銀彩像金塑像佛佛
008_0043_c_21L並耀而妙說長今峯峯束聳大數八萬
008_0043_c_22L餘嶺谷谷深陰多計九千餘潯禪和
008_0043_c_23L禪伯盡是入㝎而修德敎主敎師
008_0043_c_24L「茟」通用「筆」{編}次同

008_0044_a_01L좌선을 하여 마음을 비추었다. 석감石龕을 열고 예불하니, 절할 때마다 아만我慢이 꺾어지고, 맑은 산이 단풍으로 불타는 듯하면 산문을 나서서 여기저기를 다니는데, 걸음걸음마다 번뇌를 돌이켜 깨달음으로 향하게 한다.
잠 귀신이 자주 놀라니 풍경과 석경石磬이 댕그랑거리며 귀를 어지럽히고, 이상한 소리가 자주 들리니, 백학과 잔나비가 슬퍼하면서 애절하게 우는구나. 홍진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세속 영욕의 일이 어찌 귀에 들리겠으며, 푸른 하늘이 머리맡에 있는 양 가까우니 북두성 별빛이 바로 문에 임해 있는 듯하다. 진실로 여기가 신선이 산다는 봉래蓬萊이니, 어찌 멀리 약수弱水27)를 찾아가리오.
발원하노라, 천축天竺은 쌍수雙樹28)에서 노닐 만하노니 천생만겁千生萬劫의 심원한 바람을 거기에 심어 영원한 칠보七寶의 높은 산봉우리를 유람하리라.
또 노래한다.

天作高山      하늘이 높은 산을 만들고
地養大澤      땅은 큰 연못을 길러
人在兩間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普觀景色      널리 그 경치를 구경하네
景色雖多      훌륭한 경치야 많지만
孰若香山      어느 곳이 향산과 같으리요
香山之高      향산의 드높음이여
高貫廣寒      드높음이 광한전을 꿰뚫었고
香山之大      향산의 웅대함이여
大包乾端      웅대함이 하늘 끝까지 감싸고 있구나
且行且吟      걷기도 하고 읊기도 하며
盡日貪看      종일토록 탐하여 보지만
貪看不足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여
留後人觀      후인에게 이 글 남겨 보게 하리
금강산金剛山
색은행괴索隱行怪29)는 공자의 가르침에선 배척을 당했지만, 그윽한 곳에 살면서 고상함을 기르는 일은 원컨대 불가에서 선양함을 경모한다. 명산을 찾아서 큰 도를 묻는 것은 선재善財가 남쪽으로 가서 물었던 일30)을 본받고자 함이며, 진심을 닦고 본성을 기르는 것은 진량陳良이 북쪽으로 가서 익힌 일31)로 돌이켜 배우고자 함이다.
오묘하고 높은 금강에 들어 아스라한 열반涅槃, 즉 금강산에 오르니 그 기이한 형상은 나라 안의 으뜸이며, 절벽과 낭떠러지는 사방 천하에 최고로다. 불경에서 영이한 자취를 맛보고 이에 발심하여 뗏목을 타고 단발령斷髮嶺32)에서 도파刀波를 갈며, 일만 이천 담무갈曇無竭33)의 진불眞佛에게 참례하고, 환희점歡喜岾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53의 화신 석가釋迦의 적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양심대兩心臺와 삼심대三心臺는

008_0044_a_01L爲坐禪而觀心開龕禮拜拜拜而折慢
008_0044_a_02L山淸欲火出門遊行行行而回煩惱向
008_0044_a_03L菩提眠魔屢驚兮風鍾石磬丁撞而
008_0044_a_04L亂耳異響頻聞兮白鶴靑猿哀怨而
008_0044_a_05L能啼紅塵逈遠榮辱之事那聞碧天
008_0044_a_06L低邇星斗之光臨門信是蓬萊豈遠
008_0044_a_07L訪於弱水誠曰天竺可遊戱於雙樹
008_0044_a_08L千生萬劫之深願遊一期七寶之峻岫
008_0044_a_09L歌曰天作高山地養大澤人在兩間
008_0044_a_10L普觀景色景色雖多孰若香山香山
008_0044_a_11L之高高貫廣寒香山之大大包乾端
008_0044_a_12L且行且吟盡日貪看貪看不足留後
008_0044_a_13L人觀

008_0044_a_14L

008_0044_a_15L金剛山

008_0044_a_16L
索隱行怪雖被乎魯誥之所訶栖幽養
008_0044_a_17L願慕乎竺墳之所讃尋名山訪大道
008_0044_a_18L欲效乎善財南詢修眞心養本性返學
008_0044_a_19L于陳良北翫入金剛之妙高登涅槃之
008_0044_a_20L嵯峨奇形異狀一國中之巨擘絕壁
008_0044_a_21L懸崖四天下之崇阿擅靈跡於金文
008_0044_a_22L爰發心而乘査磨刀波斷髮嶺叅禮萬
008_0044_a_23L二千曇無竭之眞佛聞鍾聲歡喜岾
008_0044_a_24L首五十三化釋迦之寂滅兩心三心

008_0044_b_01L성불의 정성을 발원했고, 금광대金光臺와 방광대放光臺는 모두 수도의 넓은 덕이다. 세 내원암內院庵과 세 견성암見性庵의 그림자는 구연동九淵洞 안으로 내비추고, 두 수미암須彌庵과 두 송라암松蘿庵의 빛은 만폭동萬瀑洞 주변을 밝힌다. 내외의 천덕암天德庵은 영신암靈神庵에서 안양암安養庵으로 가는 데 있고, 신구의 원통암圓通庵은 길상암吉祥庵에서 능인암能仁庵으로 가는 데 있다. 금장암金藏庵과 은장암銀藏庵에서는 부처의 마하연摩訶衍을 안내하고, 송림암松林庵과 신림암神林庵에선 부처의 진도솔眞兜率을 볼 수 있다. 원각암圓覺庵과 영원암靈源庵은 신계사神溪寺34)와 윤필봉潤筆峰을 끌어당기고 있고, 개심대開心臺와 경대鏡臺는 정양사正陽寺35)와 백운봉白雲峰을 타고 있다. 석가세존의 온갖 법회는 보문봉普門峰과 안문봉鴈門峰이며, 백전百巓의 오현五賢36)은 금대金臺와 은대銀臺이다. 신선의 은적隱寂은 장안사長安寺37)에 앉아서 향불을 피웠고, 화발火鉢과 울연鬱淵은 관음에게 빌어서 구름을 얻었다지. 천친암天親庵과 표훈사表訓寺38)를 거치면 대장암大藏庵에 오르고, 장경암長慶庵과 명적암名籍庵을 거치면 청련암靑蓮庵 길이 열린다. 또 문수암文殊庵과 돈도암頓道庵은 불정대佛頂臺까지 채 3일이 걸리지 않으며, 영은암靈隱庵과 가섭암迦葉庵은 무학無學의 경지에서 선禪을 닦는다. 금강의 기묘한 봉우리는 상원암上院庵에서 크게 빛나니 빛이 비치지 않아도 기기묘묘하며, 회정懷正 스님은 꿈에 들어가서 삼생을 파하고 공공空空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비로봉毗盧峯·백마봉白馬峯·미륵봉彌勒峯·구정봉九井峯 등등 어지럽게 펼쳐진 봉우리들은 그 몇천만인지 알 수 없고, 수미대須彌臺·망고대望高臺·계수대桂樹臺·만경대萬頃臺 등등 번쩍번쩍하는 게 언뜻 세어보아도 백억은 되어 보인다. 연화국蓮花國의 장엄한 정토인들 이 풍악楓岳의 연구품蓮九品39)금팔도金八道보다 나을 수 있을까? 향적방香積方의 청정한 불계佛界도 오히려 이 금강의 산 만 첩, 물 천 굽이에 미치지 못하리라.
솔가지, 잣나무 가지, 전나무 가지들이 엇섞여서 혹은 성하고 혹은 시들며, 매화와 배꽃, 진달래가 어지러이 피고 진다. 수많은 바위가 저마다 빼어나고 온갖 골짜기 물이 다투어 흐르는 게, 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사찰은 별처럼 벌여있고 연방蓮坊이 안개처럼 퍼져있는 것을 직접 보니 종래 전해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르다.
금빛 은빛은 불보살에게서 밝게 빛나니, 이는 모두 축리祝釐40)의 보전寶殿이며 향화香火는 아침저녁으로 청명하니

008_0044_b_01L非成佛之興誠金光放光盡是修道之 
008_0044_b_02L普德三內院三見性影落于九淵洞內
008_0044_b_03L兩須彌兩松蘿光暎于萬瀑洞邊內外
008_0044_b_04L天德安養于靈神新舊圓通能仁于
008_0044_b_05L吉祥金藏銀藏知佛之摩訶衍松林
008_0044_b_06L神林見佛之眞兜率圓覺靈源引神
008_0044_b_07L溪潤1)開心鏡䑓乘正陽白雲大尊
008_0044_b_08L之萬會普門鴈門百巓之五賢金䑓
008_0044_b_09L銀䑓神仙隱寂坐長安而香爐火鉢
008_0044_b_10L鬱淵乞觀音而得雲天親表訓而轉大
008_0044_b_11L長慶名籍而開靑蓮文殊頓道
008_0044_b_12L三日佛頂靈隱迦葉無學入修禪
008_0044_b_13L剛妙峯巨彬上院不日而奇奇懷正
008_0044_b_14L入夢破三而空空毗盧峯白馬峯彌勒
008_0044_b_15L峯九井峯紛不知其幾千萬峯須彌臺
008_0044_b_16L望高𡋛桂樹𡋛萬頃𡋛 羌暫記乎唯百
008_0044_b_17L億臺蓮花國粧嚴淨土豈能過此楓岳
008_0044_b_18L之蓮九品金八道香積方淸淨佛界
008_0044_b_19L未及斯涅槃之山萬疊水千回松條栢
008_0044_b_20L條翠檜條交雜而或榮或枯梅花梨花
008_0044_b_21L杜鵑花亂植而乃敷乃衰千巖竟秀
008_0044_b_22L萬壑爭流*茟舌之所未盡梵宇星羅
008_0044_b_23L蓮坊霧列見說之所不同金銀晄耀於
008_0044_b_24L佛菩薩全是祝釐之寶殿香火淸明於

008_0044_c_01L이도 모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임궁琳宮이다. 노승은 편안하게 앉아서 선을 행하고 있고, 벽안碧眼은 면벽面壁하여 입을 닫고 있다. 까마귀와 까치 소리, 바람과 물소리, 종과 북소리는 소리마다 반야를 굴리는 원음圓音이며, 봉우리의 색, 구름과 안개의 색, 소나무 홰나무의 색은 색색마다 화엄을 드러내고 있는 묘질妙質이다.
봄꽃이 이미 붉었어도 우뚝 솟은 산은 눈으로 덮여있으며, 버들은 푸릇푸릇해졌으나 가파른 절벽은 아직 얼음으로 덮인 상태이다. 솔잎을 씹고 차를 권하면서 여기서 세월을 맞이하고, 영지를 캐고 백석白石을 끓여 구순九旬 동안의 기갈을 다스린다. 선심이 밝아지니 상쾌한 기운이 가슴에 가득해지고, 불법이 성해지니 온화한 마음이 아득히 퍼져 몸에 가득하네.
가볍게 흐르는 땀방울에 미풍이 솔솔 부니 멀리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서 먼 유람을 나서고, 신선의 소매가 표표히 나부끼니 오색구름을 밟고서 하늘로 오르려는 듯하다. 해 아래에서 부상扶桑, 즉 일본을 바라보며, 구름 속에서 민지澠池41)를 가리킨다. 가까워진 하늘을 우러러보고, 창해의 굽이치는 물결을 굽어본다. 이렇게 지극히 신령하고 정묘한 자질을 안고 명산의 장관을 두루 맛보았다.
이에 노래한다.

序屬三秋      때는 삼추三秋가 되니
良辰再遇      좋은 시절을 다시 만났네
粧新故木      고목이 새로 단장하고
畵活荒阜      황량한 언덕은 그림같구나
且行且吟      걷고 읊조리며
乃寫乃休      글을 쓰다가 쉬다가
四耽看顧      사방을 탐하여 바라보네
十步淹留      열 걸음마다 발을 멈추며
盤恒莫去      서성 서성이면서 가지 못하고
悵白日之西沉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아쉬워하노라

영허집 권4 끝(暎虛集卷之四終)
보응당 영허대사 행적普應堂暎虛大師行蹟
대사大師는 법휘法諱는 해일海日이고 별호는 영허暎虛이며 거처한 방의 이름은 보응普應이다. 성은 김씨金氏로 본래 사족士族의 후손으로 만경현萬頃縣의 불기不欺라는 마을에서 살았으며, 유학을 업으로 삼았었다. 모친 홍씨洪氏가 꿈꾸기를, 이인이 명주明珠를 주면서 ‘이것을 잘 간직하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는데, 이윽고

008_0044_c_01L晨朝夕皆爲祀天之琳宮厖眉宴坐而
008_0044_c_02L安禪碧眼面壁而杜口烏鵲聲風水聲
008_0044_c_03L鍾鼓聲聲聲轉般若之圓音峯巒色雲
008_0044_c_04L霧色松檜色色色露華嚴之妙質春花
008_0044_c_05L已紅而雪岳崢嶸綠楊初敷而氷崖屼
008_0044_c_06L噉松葉餞靑茗迎歲月於一局
008_0044_c_07L紫芝煮白石療飢渴於九旬禪心耿耿
008_0044_c_08L爽氣鬱鬱而盈胷義海洋洋冲情浩浩
008_0044_c_09L而滿身輕汗習習駕長風而遠遊
008_0044_c_10L袂飄飄躡綵雲而騰神望扶桑於日下
008_0044_c_11L指澠池於雲間仰長天於咫尺俯蒼海
008_0044_c_12L之汍瀾扶至靈之眇質閱壯觀于名山
008_0044_c_13L歌曰序屬三秋良辰再遇粧新故木
008_0044_c_14L畵活荒阜且行且吟乃寫乃休四顧
008_0044_c_15L耽看十步淹留盤恒莫去悵白日之
008_0044_c_16L西沉

008_0044_c_17L
暎虛集卷之四終

008_0044_c_18L

008_0044_c_19L普應堂暎虛大師行蹟

008_0044_c_20L
大師法諱曰海日別號曰暎虛所居室
008_0044_c_21L曰普應姓曰金氏本士族子居于萬
008_0044_c_22L頃縣不欺之鄕以儒爲業母洪氏
008_0044_c_23L有異人持明珠授曰善自保護仍而
008_0044_c_24L「茟」通用「筆」{編}次同

008_0045_a_01L임신을 하여 신축년辛丑年(1541) 9월 4일 갑진시甲辰時에 대사가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파초의 잎으로 책갑册匣을 삼았으며 말을 할 때면 글 읽는 소리 같았다. 나이가 겨우 8세였을 때 『대학大學』을 읽었는데,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열 눈이 보는 바(曾子曰十目所視)’”42)라는 본문에 대하여 여러 존귀한 어른들이 ‘엄嚴’의 뜻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사가 ‘두려워한다(恐怖)’는 의미임을 설파하자, 모두 ‘기동奇童’이라며 칭찬하였다.
열다섯 나이에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열아홉 살에 마침내 출가하여 능가산楞迦山의 실상사實相寺로 들어가 대선겸중덕 인언대사大選兼仲德印彦大師을 좇아 머리를 깎고 5년간 모시게 되었다. 여러 경론經論을 열람하다가 하루는 문득 무상함을 느껴 한 곳에만 오래 머물러서는 옳지 않다고 하여 지리산으로 가서 부용대사芙蓉大師를 찾아뵙고 교敎를 열람하고 선禪을 찾으면서 3년간 곁에서 모셨다. 이후 다시 풍악산楓岳山으로 가서 학징대사學澄大師를 찾아뵙고 여러 일용日用 간의 일에 대해 물었다. 또 묘향산으로 가서 서산대사西山大師를 찾아뵙고 팔만진전八萬眞詮의 의심나는 곳에 대해 물었으며, 상비로암上毗盧庵에 10년간 머물렀다. 기축년己丑年(1589)에 다시 능가산楞迦山의 옛 거주지로 돌아와 『지장경地藏經』을 읽다가 어느 날 밤 지장보살이 꿈에 나타나 감로수甘露水를 머리에 부어 주었다. 꿈에서 깨자 마음속이 확 트이며 걸리는 게 없어졌다. 신묘년辛卯年(1601)에 은사인 대선大選이 입적하자 다비를 마치고 다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천지를 집으로 삼았다. 묘향산으로부터 들르는 산마다 하안거에 들어 혹은 비구들에게 혹은 거사들에게 모두 정토업을 닦아서 실질을 이루었다. 그리고 을사년乙巳年(1605) 봄에 다시 실상사로 들어가서 여러 승려를 모아놓고 경론을 강하였다. 정미년丁未年(1607) 봄에 광덕산廣德山 연대암蓮臺庵으로 가서 그곳에서 3년을 머물렀다. 무신년戊申年(1608) 6월에 두류산 대암臺巖으로 들어갔다. 기유년己酉年(1609) 2월 5일에 방장을 닫았다가 한 시간이 지난 뒤 방장을 열고서 대중들을 불러 일렀다.
“그대들은 각자 무상이 순식간이라는 것을 염念으로 삼아서 진중하고 진중하시오!”.
그리고 침묵 속에 입적하였으니 이때 보령 69세였다. 열반하던 저녁에 동천洞天에 상서로운 빛이 빛났고

008_0045_a_01L有娠辛丑年九月四日甲辰時生焉孩 
008_0045_a_02L提之年將蕉葉爲册匣聲常如讀書之
008_0045_a_03L聲也年纔八歲時讀大學至曾子曰
008_0045_a_04L十目所視大文諸尊貴人問其嚴之意
008_0045_a_05L師有恐怖之說諸人皆稱曰奇童年十
008_0045_a_06L五擧而不中十九遂出家入楞迦山實
008_0045_a_07L相寺從大選兼仲德印彥大師祝髮
008_0045_a_08L侍五年閱諸經論一日忽念無常
008_0045_a_09L宜久住一處訪智異山叅芙蓉大師
008_0045_a_10L閱敎搜禪執侍三年又往楓岳山
008_0045_a_11L學澄大師問諸日用之事又入妙香山
008_0045_a_12L叅西山大師問八萬眞詮疑惑處住上
008_0045_a_13L毗盧庵十載己丑還入楞迦舊栖讀地
008_0045_a_14L藏經夜夢地藏將甘露水灌頂夢罷
008_0045_a_15L心中豁然無礙辛卯年恩師大選入寂
008_0045_a_16L茶毗後還巡八▼(土+表)天地爲家自妙香山
008_0045_a_17L一山結一夏或比丘或居士咸使修淨
008_0045_a_18L土業以之成實而乙巳春又入實相
008_0045_a_19L大集僧侶講諸經論丁未春往廣
008_0045_a_20L德山蓮臺庵住過三春秋戊申年六月
008_0045_a_21L入頭流山臺巖己酉年二月五日丈室
008_0045_a_22L閉閤逾時而開召大衆云汝等諸人
008_0045_a_23L各以無常迅速爲念珍重珍重默然圓
008_0045_a_24L年六十九歲送終之夕祥光洞天

008_0045_b_01L서기瑞氣가 허공에 감돌았다. 칠칠재七七齋 동안 문인들이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는데, 일재一齋마다 서기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숭정崇禎 을해년乙亥年(1635) 중춘에 함영당涵影堂이 삼가 적다.
발문跋文
스스로 불멸不滅이라고 말하여도 불멸할 수 없는 것은 육신이다. 오직 그 말만이 남게 되는데 말 중의 오묘한 것으로 어찌 시詩 같은 게 있으리오. 그러니 그 육신은 볼 수 없어도 그 시를 보면 되는 것이다. 종래 유불儒佛을 막론하고 모두 그 몸이 이미 멸했으면 그 따르던 무리가 남은 시를 수습하여 이를 간행해서 불후不朽로 삼아왔다.
4, 5년 전 가을에 내가 마을 서쪽 작은 암자에 묵었는데, 행각도인行脚道人 중 법운法雲이란 이가 찾아와 함께 공양을 하게 되었다. 밤은 길고 달은 밝아서 주고받은 청담淸談에 잠들 줄 몰랐다. 그러던 중 법운이 그의 스승 영허暎虛가 도道 뿐만 아니라 시에도 능했다고 하면서 탄식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지금 법운은 이미 입적하였고, 그 동문인 승일勝一과 홍주弘珠, 그의 제자인 도극道克과 계언戒彦, 도혜道惠가 대사의 시를 판각하였다. 이는 본래 법운의 소원이었는데, 홍주와 계언이 성사시킨 것이다.
비록 영허일지라도 만약 법운을 만나지 못했고, 법운에게 홍주와 계언이 없었다면 그의 시가 전해졌을지 여부는 모를 일이다. 문인과 재자로서 암혈에 처하여 시를 읊어서 시집詩什을 이룬 자가 어찌 한둘에 그치겠는가마는 그 유운遺韻과 남은 소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없어지고 마는 법,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을해년(1635) 중하中夏 1일에 신파거사新坡居士가 쓰다.

008_0045_b_01L瑞氣盤空七七之齋門人設無遮大會 
008_0045_b_02L無一齋而無瑞氣矣

008_0045_b_03L
時大明崇禎八年乙亥仲春
008_0045_b_04L影堂謹誌

008_0045_b_05L

008_0045_b_06L

008_0045_b_07L
自謂不滅而不能不滅者身矣獨其言
008_0045_b_08L而言之妙者孰若詩不見其身見其
008_0045_b_09L斯可已由來儒典釋偈皆其身已滅
008_0045_b_10L其徒相與追輯存者刊以爲不朽也前四
008_0045_b_11L五年秋余偶宿村西小庵行脚道人
008_0045_b_12L法雲者亦來共齋飯時夜長月明淸話
008_0045_b_13L無夢雲仍及其師暎虗有道能詩嘖嘖
008_0045_b_14L不自止今雲乃寂其同門勝一弘珠
008_0045_b_15L弟子道克戒彥道惠實能剞劂其詩本雲
008_0045_b_16L之願而珠彥之遂矣雖暎虗使不得雲
008_0045_b_17L無珠彥則詩傳不傳亦未可卜也文人
008_0045_b_18L才子處巖穴吟咏成什者何限而留韻遺
008_0045_b_19L久復歇滅寧不爲之耶

008_0045_b_20L
乙亥中夏一日新坡居士書
  1. 1)비괘否卦에 이르면 태괘泰卦가 움직이며 : 비괘는 막힌다는 뜻이며, 태괘는 통한다는 뜻이다.
  2. 2)상장上章의 협종夾鍾 : 상장은 이민吏民이 군신君臣이나 관부에 올리는 표문表文을, 협종夾鍾은 십이율十二律의 하나로, 2월 달에 해당해 바야흐로 양의 기운이 발동하여 만물이 소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인사人事의 번거로움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3. 3)자맥紫陌의 홍진紅塵 : 자맥은 번화한 도성의 길을, 홍진은 거마가 일으키는 먼지로 번화한 세속을 뜻한다.
  4. 4)화택火宅 : 번뇌가 많은 세상을 일컫는다. 사람의 모든 괴로움과 어지러움이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처럼 괴롭다는 의미이다.
  5. 5)화개동花開洞과 청학동靑鶴洞 : 모두 지리산 골짜기로 유명한 곳으로, 하동과 구례 사이에 위치해 있다.
  6. 6)천왕봉天王峯과 반야봉般若峯 : 천왕봉의 지리산의 주봉이며, 반야봉은 지리산의 남서쪽 봉우리 중에 하나로 구례와 남원 경계지역에 위치한다.
  7. 7)의신조사義神祖師 : 미상. 6세기 신라의 고승으로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를 창건한 의신조사義信祖師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경상남도 하동군 지리산 쌍계사 북쪽에 지금도 의신암義神庵이 있다.
  8. 8)향적사香積寺 : 지리산에 있었던 사찰이나 현재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다.
  9. 9)원감국사圓鑑國師 : 고려 충렬왕대의 고승 충지冲止(1226∼1292). 원감은 그의 시호이다. 속성은 위씨魏氏로,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다가 원오국사圓悟國師 천영天英에게 사사하고 출가하였다. 뒤에 조계종의 6세 법주法主가 되었으며, 명성이 알려져 원나라 세조世祖의 극진한 예우를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 『圓鑑集』이 있다.
  10. 10)불일암佛日庵 : 쌍계사 위쪽에 위치한 암자로 현재도 남아 있다.
  11. 11)금륜왕金輪王과 사혜왕沙惠王 : 금륜왕은 사륜왕四輪王의 하나로 기세계 중 지계地界를 다스리는 왕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우주를 공空ㆍ풍風ㆍ수水ㆍ금金 등 사륜四輪으로 나누어 이해했는데, 세계의 가장 아래가 허공이고, 그 허공 위에 풍륜風輪이 있고, 풍륜 위에 수륜水輪이 있으며, 수륜 위에 금륜, 즉 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혜왕은 미상이다.
  12. 12)취성鷲城의 풍백風伯 : 취성은 석가모니가 설법한 곳으로 유명한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을, 풍백은 그곳을 관장하는 신을 말한다.
  13. 13)임강臨講·회강會講 : 임강은 책을 보면서 강독하는 것, 회강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독하는 것을 말함.
  14. 14)낙탄落灘의 하신河神 : 앞의 취성의 풍백은 산을 관장하는 것을 말한데 반해, 여기 낙탄의 하신은 강을 관장하는 것으로 지칭하나 낙탄은 미상이다.
  15. 15)팔영루八詠樓 : 쌍계사 안의 누각으로, 840년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세웠다. 범패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진감선사가 이곳에서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 음률로 된 범패인 「魚山」을 작곡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16. 16)비碑 : 즉 「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진감선사의 공덕을 기린 비문으로 최치원崔致遠이 887년에 지은 것이다. 그의 명문인 사산비명四山碑銘 중에 하나인데 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남아 있다.
  17. 17)방포方袍 : 비구승이 입는 각진 모양의 가사. 일반적으로 승려가 입는 가사를 지칭하기도 한다.
  18. 18)아관峩冠 : 사대부가 쓰는 높은 관.
  19. 19)진감선사眞鑑禪師 : 774∼850. 신라 후기의 고승으로, 804년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830년 귀국하였다. 그는 특히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널릴 보급하여 대중화시킨 공적이 있다. 그는 이곳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는데, 그가 세웠을 때는 ‘옥천사’라고 불렀다가 후대에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20. 20)철환천하轍環天下 :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님.
  21. 21)선재善財 : 즉 선재동자善財童子이니 화엄경에 나오는 불도佛道를 구하는 보살의 하나다. 복성 장자福城長子의 아들로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아보았고, 맨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서 10대원大願을 듣고 아미타불 국토國土에 왕생하여 입법계立法界의 지원志願을 채웠다 한다.
  22. 22)교리행과敎理行果 : 교敎ㆍ리理ㆍ행行ㆍ과果의 합칭.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 가운데 법보法寶의 별칭. 일반적으로 사법보四法寶라고 칭함. 능전能詮인 언교言敎, 소전所詮인 의리義理, 능성能成인 수행修行, 소성所成인 증과證果. 수행과 증과의 차례는, 가르침에 의해 이치를 드러내고 이치에 의해 수행을 일으키고 수행에 의해 증과를 이루므로 이어서 칭함.
  23. 23)사위舍衛 : 고대 인도에 있었던 나라 이름. 원래 교살라국憍薩羅國의 도성 이름이었으나, 남방 지역의 또 다른 교살라국과 구별하기 위해서 도성 이름을 국호로 불렀다. 이 나라에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불법을 행했던 곳 중에 하나이다.
  24. 24)보현사普賢寺 : 평안북도 영변군에 있는 묘향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서산대사가 입적하고 일제강점기 31본산 중에 하나로 유명하다. 968년에 창건된 이래 주로 학승을 양성하는 대가람으로 발전하여 고려 시대에는 300여 칸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였다. 보현사 9층 석탑이 유명하다.
  25. 25)추생鯫生 : 소생小生, 자신에 대한 겸칭.
  26. 26)선화禪和와 선백禪伯 : 선화는 16세기 고승 일선선사一禪禪士(1488∼1567). 경상남도 울산 출신으로 속성은 장씨이며, 호가 선화자禪和子ㆍ휴옹休翁이다. 그는 어려서 출가한 후 24세에 묘향산에 들어와 수행하였다. 중종 31년(1536)에 능가산楞伽山에서 교화를 펼쳤으나 관에서 불법이라고 하여 구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강설과 경론을 펼쳐 선풍禪風을 불러일으켰다. 선백禪伯은 미상이다.
  27. 27)약수弱水 : 중국에 약수라고 불리는 강 이름이 많으나, 크게 곤륜산崑崙山에서 발원하는 약수와 서해西海의 약수가 알려져 있다. 두 곳 모두 이른바 신선 세계로 알려져 있는바, 여기 약수 또한 선계에 있는 강이란 뜻이다.
  28. 28)쌍수雙樹 : 사라쌍수娑羅雙樹로 부처가 입적入寂한 곳이다.
  29. 29)색은행괴索隱行怪 : 은벽隱僻한 이치를 구하고 괴이한 행동을 하는 것. 『中庸』에 “공자가 이르기를 ‘색은행괴를 후세에 칭양함이 있으나 나는 이러한 것을 하지 않노라’라 하였다.(子曰: 素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고 나와 있다.
  30. 30)선재善財가 남쪽으로 가서 물었던 일 : 화엄경華嚴經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도道를 구하여 남방으로 다니며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방문하였다 하였다.
  31. 31)진량陳良이 북쪽으로 가서 익힌 일 : 유학儒學을 뜻한다. 『맹자』「등문공상」에 진량은 초나라 출신인데 북쪽 중원으로 가서 주공周公과 중니仲尼의 학문, 즉 유학을 배웠다 하였다.
  32. 32)단발령斷髮嶺 : 철원, 김화를 거쳐 내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고개로, 이곳은 금강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몇 군데 가운데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누구나 할 것 없이 머리를 깎고 이곳에 머물려고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하 금강산에 있는 암자와 누대, 골짜기 등이 거론되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33. 33)담무갈曇無竭 : Dharmodgata. 법기法起 등으로 번역. 내금강 만폭동에 있는 법기봉을 가리킴. 금강산에 상주하는 법기보살法起菩薩, Dharmodgata에서 연유함. 『新華嚴經』권45「諸菩薩住處品」.
  34. 34)신계사神溪寺 : 금강산 외금강에 있는 사찰로, 유점사楡岾寺의 말사이다. 신라 법흥왕 때에 보운普雲이 창건했으며, 김유신이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의 4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6.25 동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현재 남북 공동으로 복원하고 있다.
  35. 35)정양사正陽寺 : 금강산 내금강에 위치한 사찰로, 표훈사의 말사이다. 진평왕대인 600년에 창건되었으며, 내금강 가운데서도 가장 경관이 좋은 위치에 있어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이곳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며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36. 36)백전百巓의 오현五賢 : 미상.
  37. 37)장안사長安寺 : 금강산 내금강의 장경봉長慶峰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법흥왕 대에 조성되었다는 설과 551년 고구려의 승려 혜량惠亮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여러 번 중수되었는데, 고려 시대에는 고려 말 원나라 순제順帝의 황후였던 기황후奇皇后에 의해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38. 38)표훈사表訓寺 : 금강산 내금강의 만폭동 어귀에 있는 사찰로, 금강산 4대 사찰 중 유일하게 보존된 사찰이다. 670년경 표훈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규모가 크고 수많은 문화재가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거의 약탈을 당했다.
  39. 39)연구품蓮九品 : 연꽃으로 이루어진 서방정토의 모습. 『관무량수경』에 따르면,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사람은 그 선근善根이나 이승에서의 공덕에 따라 정토에서 받는 과보가 다르고, 보리심을 내어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누구나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 또한 출가하여 이를 지킨 사람과 출가하지 않더라도 공덕을 쌓으며 이를 지킨 사람, 이를 지키기만 한 사람이 각각 그 과보가 다른데, 이것을 3생三生이라 한다. 그리고 삼생에는 다시 상·중·하의 3품이 있어서, 이를 합하면 3품 3생의 9단계가 된다. 이들이 극락정토에 가서 연대蓮臺에 앉을 때는 그 단계에 따라 자리를 배치받는다. 그래서 연지를 9품연지라 한다.
  40. 40)축리祝釐 : 부처에게 제사를 지내 복을 비는 일이다.
  41. 41)민지澠池 : 연못 이름이다. 전국시대에 진왕秦王과 조왕趙王이 민지澠池에서 모여 놀았다고 한다. 이때 진왕이 조왕에게 비파 타기를 청하니, 조왕이 거역하지 못하여 비파를 탔다. 조왕의 신하 인상여藺相如가 진왕에게 장구 치기를 청하니, 진왕이 치지 않았다. 인상여가 위협하여 말하기를 “만일 대왕大王께서 장구를 치지 않으면 신臣이 칼로 목을 찔러 대왕에게 뿌리겠습니다.” 하니, 진왕이 할 수 없이 장구를 쳤다.
  42. 42)“증자가 말씀하기를 ‘열 눈이 보는 바(曾子曰, 十目所視)’” :『대학』「釋誠意」장의 내용으로, 원문은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이다. 이 내용은 홀로 있을 때도 선악을 가릴 수 없는 법이니 두려워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1. 1)「茟」通用「筆」{編}次同。
  2. 1)「茟」通用「筆」{編}次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