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소요당집(逍遙堂集) / 重刊逍遙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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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당집逍遙堂集
소요 태능逍遙太能
이상현 (역)
소요당집 중간 서문(重刊逍遙集序)
소요 선사는 서산 청허西山淸虛 조사祖師의 뛰어난 제자이다. 조사의 문중에서 선사와 편양鞭羊 스님은 선종이요, 송운松雲 스님은 교종으로서 한 시대에 나란히 우뚝하였다. 선사는 음영吟咏을 좋아하여 유집遺集을 남겼는데, 상서尙書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가 그 시집에 서문을 썼다. 그리고 상국相國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비명을 지었는데, 이 모두가 세상에 전송되고 있다. 같은 시대의 학사學士와 대부들이 시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왕래하였는데, 이는 선사의 시법詩法이 불법과 통한다고 왕성하게 일컬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항상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올해 무오년에 선사의 후대 제자인 해남 대흥사의 법려法侶가, 선사의 유집이 빠진 것이 있고 산일散佚되는 것을 우려하여 조만간 중간重刊하려고 생각하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천 리 밖에서 그 유집을 받들고 나의 집으로 찾아와 서문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내가 얼른 받아서 서너 번 반복하여 읽어 보다가 망연자실하였으니, 그 이유는 내가 눈으로 본 것이 귀로 들은 것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권말에 부기附記한바, 조사가 선사에게 써 준 오언五言 일절一絶의 게偈를 보니, “그림자 없는 나무를 찍어, 물속 거품을 모조리 태운다. 우스워라, 소를 탄 사람이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다니.”라고 되어 있었다. 이에 내가 비로소 환히 깨닫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고덕古德이 수시垂示한 것으로 옛날부터 전해 온 글귀인데, 조사가 우연히 이 구절을 읊게 된 것이요, 직접 지어서 특별히 준 것이 아니다. 선사의 전집에 나오는 오언五言ㆍ칠언七言의 절구와 율시 200여 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도道의 내용을 담은 작품들은 『염송拈頌』의 제칙諸則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가 하면, 어떤 것은 몇 글자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서정적인 작품들 역시 가슴속의 생각을 곧장 토로하며 평상적으로 표현하였을 뿐이요, 법어法語로 윤색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 이것은 바로 선사가 선종의 정신에 입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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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185_a_02L1)重刊逍遙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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逍遙禪師西山淸虛祖師之高足弟子
008_0185_a_05L祖師門中禪師與鞭羊師爲禪宗
008_0185_a_06L松雲師爲敎宗一時竝峙而禪師好吟
008_0185_a_07L有遺集海左丁範祖尙書弁卷白軒
008_0185_a_08L李景奭相國撰碑銘俱爲世傳誦同時
008_0185_a_09L學士大夫唱和相徃復槩以禪師詩法
008_0185_a_10L通佛法盛稱之余常以未得寓目爲恨
008_0185_a_11L雅矣今歲戊午海南大興寺法侶
008_0185_a_12L禪師後代者以集有脫落且散2) [2] 無幾
008_0185_a_13L合謀重刊繭足千里外奉其遺集
008_0185_a_14L門求序於余余亟受而讀之至三四遍
008_0185_a_15L茫然自失以其見之與聞異也及閱其
008_0185_a_16L卷末附記祖師書贈禪師偈五言一絶曰
008_0185_a_17L斫來無影樹燋盡水中漚可笑騎牛者
008_0185_a_18L騎牛更覔牛始恍然悟曰此古德垂示
008_0185_a_19L傳來句子祖師偶誦傳非親作而特贈
008_0185_a_20L之也禪師之全集五七律絶二百餘篇
008_0185_a_21L亦猶是焉其寓道之作與拈頌諸則
008_0185_a_22L無甚分別或有不差幾字者其緣情
008_0185_a_23L之作亦惟直寫胸臆平常下字不以法
008_0185_a_24L語潤餙之嗚呼此禪師之爲禪宗而非

008_0185_b_01L문자로 드러내 보이려고 골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겠다. 이 유집을 통해 선사가 본종本宗에 순일하였다는 사실과, 심상한 말씀 역시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서 일원상一圓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아야만 정관正觀이라고 이름할 것이니, 만약 이렇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육조六朝 시대의 휴 상인休上人1)이나 당나라 때의 납자衲子인 무본無本2)과 영철靈澈3)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제군諸君이 이들만 오로지 숭상하면서 이렇게 된 뒤에야 일컫는다면, 어떻게 우리 선사를 중하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항양거사恒陽居士 여규형呂圭亨은 삼가 쓰다.

008_0185_b_01L欲以文字標相也因是集而可以見禪
008_0185_b_02L師之醇於本宗而尋常咳唾之餘及乎
008_0185_b_03L摑口令正之後并可以作一圓相也
008_0185_b_04L是觀者名爲正觀不如是觀直不過六
008_0185_b_05L朝時休上人唐衲子無本靈澈諸君所
008_0185_b_06L專尙而爲後稱述曷足以重吾禪師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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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陽居士呂圭亨謹書
  1. 1)휴 상인休上人 : 남조 송나라 때 시승詩僧인 혜휴惠休의 별칭이다. 속성은 탕湯씨이며, 당시에 시로 명성을 떨친 포조鮑照와 친하게 지냈다.
  2. 2)무본無本 : 당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가 승려였을 때의 법명이다. 나중에 환속하여 한유韓愈의 지우知遇를 받았으며, 장강주부長江主簿를 지냈으므로 가장강賈長江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字는 낭선浪仙이다.
  3. 3)영철靈澈 : 당나라 때 시승으로, 자는 원징源澄이다. 교연皎然과 교유하였으며 포길包佶ㆍ이서李紓의 지우를 받아 도하都下에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