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lete Works of Korean Buddhism

운곡집(雲谷集) / 雲谷詩稿小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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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집雲谷集
운곡시고雲谷詩稿 소서小序
내가 조정에 있을 때부터 남방에 시승詩僧 휘공徽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끔 편지를 전하여 소식을 부쳤으나 그 시편들을 널리 수집할 기회가 없음을 한스러워하였다. 금년 가을에 금성錦城(나주)으로 좌천되어 고을에 이른 지 한 달 남짓 만에 완산完山의 시승 회옥懷玉이 대둔大芚으로부터 내방하여 소매에서 운곡시편雲谷詩編을 꺼내 주니 운곡은 바로 휘공의 호다. 살펴보니, 여러 거공巨公(왕공·대신이나 큰선비)과 수창한 것이 많은데, 시조詩調가 맑고 다듬어져 자못 당인唐人의 풍취가 있었다. 내가 보니, 석문釋門에 시에 능한 자는 탕휴湯休,1) 보월寶月2)을 최초로 삼고 그 후에 당나라로부터 오계五季3)에 이르기까지 교연皎然,4) 영철靈徹,5) 구승九僧6)의 무리가 있었으며 송나라에는 도잠道潛,7) 총수聰殊8)의 무리가 있어 파공坡公9)과 노닐어 마침내 세상에 이름났다. 그러나 능히 소순蔬筍의 기미10)를 탈피한 자는 대개 드물었다. 우리나라는 전대에 시승이 많았으나 근래에는 매우 쓸쓸하여 서산西山과 송운松雲이 때때로 유희함이 있긴 하나 모두 시의 격조에 합당한 작품은 아니었다. 운곡雲谷과 같은 이는 거의 쉬이 얻을 수 없으니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축전竺典(불경)에서는 기어綺語(꾸미는 말)를 구업口業으로 여긴다. 그러나 세상의 계율에 묶이고 공견空見에 탐착하는 자가 반드시 모두 참된 도리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다. 사강락謝康樂11)이 말하기를, 도를 얻으려면 반드시 혜업慧業을 닦아야 한다12)고 하였다. 하물며 시로 (성정과 득실을) 볼 수 있고13) 성령을 도야하는 오묘함이 있으니 마음 밝히는 선비가 어찌 시를 가벼이 여길 것인가?
내가 이 시권을 가려 뽑고 정리하여 가히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으나 병으로 겨를이 없어 우선 서문을 지어 돌아가는 상인上人에게 부친다.
숭정崇禎 기사己巳(1629년, 인조 7년) 맹동孟冬에 병든 몸으로 계곡谿谷14)이 금성군재錦城郡齋에서 쓰다.


008_0264_a_01L[雲谷集]

008_0264_a_02L1)雲谷詩稿小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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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余在朝時聞南方有2)▣▣ [1] 徽公
008_0264_a_05L徃傳筒寄聲恨無3) [2] 博采其什今年
008_0264_a_06L貶官4)▣▣ [3] 至州之月餘完山韵5)
008_0264_a_07L▣▣ [4] 6) [5] 自大芚7) [6] 袖出8)▣▣▣ [7]
008_0264_a_08L雲谷乃徽公號也 9)▣▣ [8] 多與諸巨
008_0264_a_09L酬唱詩調淸刻頗有唐人風致余觀
008_0264_a_10L釋門能詩者以湯休寶月爲稱首其後
008_0264_a_11L自唐至五季有皎然靈徹九僧之流
008_0264_a_12L有道潛聰殊軰與坡公遊遂以名世
008_0264_a_13L然其能盡脫蔬筍氣者盖鮮矣我東前
008_0264_a_14L代多詩僧近頗寥落西山松雲時有
008_0264_a_15L遊戱不盡合作若雲谷者殆不易得
008_0264_a_16L良可賞也竺典以綺語爲口業然世
008_0264_a_17L10) [9] 縛戒律耽空見者未必皆眞得也
008_0264_a_18L謝康樂有言曰得道須慧業文人况詩
008_0264_a_19L可以觀有陶冶性靈之妙明心之士
008_0264_a_20L11) [10] 薄詩爲哉余欲删次是卷爲可12) [11]
008_0264_a_21L傳於後13) [12] 病未暇也姑叙而付諸14)
008_0264_a_22L人之歸 [13]

008_0264_a_23L
崇禎己巳孟冬谿谷15)病夫 [14] 書于錦城
008_0264_a_24L郡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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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64_b_01L{底}崇禎六年開刊本(國立圖書館所藏又同本
008_0264_b_02L在서울大學校圖書館但序文無有而卷末有跋
008_0264_b_03L文)
▣▣底本磨滅谿谷集作「詩僧」{編}
008_0264_b_04L底本磨滅谿谷集作「因」{編}
▣▣底本磨滅谿
008_0264_b_05L谷集作「錦城」{編}
▣▣▣底本磨滅谿谷集作
008_0264_b_06L「釋懷玉」{編}
「人」谿谷集無有{編}▣底本
008_0264_b_07L磨滅谿谷集作「來」{編}
▣▣▣底本磨滅谿
008_0264_b_08L谷集作「雲谷詩」{編}
▣▣底本磨滅谿谷集作
008_0264_b_09L「閱之」{編}
▣底本磨滅谿谷集作「之」{編}
008_0264_b_10L「惡」上谿谷集有「又」ㆍ下谿谷集有「可」{編}

008_0264_b_11L「世」谿谷集作「者」{編}
「以」谿谷集無有{編}
008_0264_b_12L「上人之歸」谿谷集作「懷玉歸之」{編}「病
008_0264_b_13L夫」谿谷集作「張持國」{編}
  1. 1)탕휴湯休 : 탕혜휴湯惠休. 남조南朝 송宋의 시인이다. 생몰년 미상으로 일찍이 출가하여 ‘혜휴 상인惠休上人’이라 불렸다. 현재 11수의 시가 남아 있는데, ≺怨詩行≻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2. 2)보월寶月 : 송宋나라 승려 희백希白의 자字이다. 호는 혜조慧照. 호남 장사長沙 사람으로 서화에도 능통했다.
  3. 3)오계五季 : 당나라 멸망 후 송나라 건국 이전에 출현했던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오대五代를 말한다.
  4. 4)교연皎然 : 중당中唐 때의 저명한 시승詩僧으로 저작에 『儒釋交游傳』과 『内典類聚』 40권이 있다. 사영운謝靈運의 10대손이라 한다.
  5. 5)영철靈徹 : 당나라 승려로 교연皎然과 교유했던 도반이다. 저서에 『律宗行源』 21권이 있다.
  6. 6)구승九僧 : 시를 잘 지었던 9인의 승려를 총칭하는 말로서, 회남淮南의 혜숭惠崇, 검남劍南의 희주希晝, 금화金華의 보섬保暹, 남월南越의 문조文兆, 천태天台의 행조行肇, 여주汝州의 간장簡長, 청성靑城의 유봉維鳳, 강동江東의 우소宇昭, 아미峨眉의 회고懷古를 말한다. 『六一詩話』.
  7. 7)도잠道潛 : 송宋나라의 고승으로 자는 참료參寥이다. 『參寥子集』 12권을 남겼다.
  8. 8)총수聰殊 : 송나라의 시승이다.
  9. 9)파공坡公 :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1037~1101)을 말한다.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10. 10)소순蔬筍의 기미 : 야채와 죽순만을 먹는 스님을 지칭하는데, 시에 꾸밈과 윤택함이 적다는 것을 일컫는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도잠道潛의 시를 평하여 “한 점 소순의 기미도 없다.”고 일컬었다.
  11. 11)사강락謝康樂 :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시인 사영운謝靈運을 말한다. 사영운은 주로 자연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멸망한 남조 귀족가문의 자제로, 동진東晉과 유송劉宋에서 벼슬하여 영가 태수永嘉太守를 지냈다. 그러나 파쟁으로 인하여 자주 면직당하다가 결국 유배 중에 사형을 당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는 여산사廬山寺를 지원했는데 경전을 번역하고 불교적 시와 산수시山水詩를 썼다. 일찍이 비평가들은 그와 동향이자 같은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목가적 전원시와 그의 산수시를 견주어 높이 평가했다. 『文選』에도 그의 시는 다른 육조 시인의 시보다 많이 실려 있다.
  12. 12)도를 얻으려면~닦아야 한다 : 『南史』 권19에 “회계 태수會稽太守 맹의孟顗가 불교를 독실하게 신봉하였으나 사영운에게 경시를 당하였다. 영운이 일찍이 맹의에게 ‘도를 터득하려면 혜업을 쌓아야만 한다. 어르신이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나보다 먼저이지만 성불하는 것은 분명히 내 뒤일 것이다.(得道應須慧業。 丈人生天當在靈運前。 成佛必在靈運後。)’라고 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13. 13)시로 볼 수 있고 : 『論語』 「陽貨篇」에 “시詩는 일으킬 수 있으며, 살필 수 있고, 무리 지을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다.(子曰。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라고 하였다.
  14. 14)계곡谿谷 : 장유張維(1587~1638)의 호다. 본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판서 운익雲翼의 아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효종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05년(선조 38)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문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공조판서로서 최명길崔鳴吉과 함께 강화론을 주장했다. 이듬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모친상으로 끝내 사직했으며 장례 후 과로로 죽었다. 천문·지리·의술·병서 등에 능통했고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 중기 한문학의 4대가로 불린다.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정묘호란 때 거의 분실되고 『谿谷漫筆』·『谿谷集』·『陰符經注解』가 전한다.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 1){底}崇禎六年開刊本(國立圖書館所藏。又同本在서울大學校圖書館。但序文無有而卷末有跋文)
  2. 2)▣▣底本磨滅。谿谷集作「詩僧」{編}。
  3. 3)▣底本磨滅。谿谷集作「因」{編}。
  4. 4)▣▣底本磨滅。谿谷集作「錦城」{編}。
  5. 5)▣▣▣底本磨滅。谿谷集作「釋懷玉」{編}。
  6. 6)「人」谿谷集無有{編}。
  7. 7)▣底本磨滅。谿谷集作「來」{編}。
  8. 8)▣▣▣底本磨滅。谿谷集作「雲谷詩」{編}。
  9. 9)▣▣底本磨滅。谿谷集作「閱之」{編}。
  10. 10)▣底本磨滅。谿谷集作「之」{編}。
  11. 11)「惡」上谿谷集有「又」ㆍ下谿谷集有「可」{編}。
  12. 12)「世」谿谷集作「者」{編}。
  13. 13)「以」谿谷集無有{編}。
  14. 14)「上人之歸」谿谷集作「懷玉歸之」{編}。
  15. 15)「病夫」谿谷集作「張持國」{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