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운봉선사심성론(雲峰禪師心性論) /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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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附錄]

병을 가리고 난 후 적은 글(揀病後書)
어떤 경론의 대덕이 나에게 물었다.
중생과 부처는 비록 다르지만, 그 성性은 둘이 아니므로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온전히 중생의 몸에 있다.
이에 응답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 물음이 옳다면, 모든 부처님 여래는 성불한 이후에 다시 미혹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부처님은 곧바로 ‘부처는 다시 미혹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길을 잃은 사람이 어떤 한 마을에서 남쪽을 북쪽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길을 아는 어떤 이가 가르쳐 주어 방향을 제대로 알게 된 것과 같다. 그대 생각에 어떠한가. 이 사람이 설령 길을 잃는다 하더라도 이 마을에서 다시 길을 잃겠는가. 마찬가지로 눈병에 걸린 사람은 허공의 꽃을 보지만, 만일 눈병이 없어진다면 꽃은 허공에서 사라질 것이다. 문득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허공 꽃이 사라진 허공에서 꽃이 다시 생겨나기를 기다린다면, 그대는 이 사람을 보고 어리석다고 하겠는가,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또 마치 금광이 정미로운 금을 섞고 있다가 그 금이 한번 순금이 되면 다시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것과 같고, 나무가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 여래의 지혜 보리도 이와 같다.”1)
부처님은 또 “이미 금이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 광물이 되지 않으며, 무한한 시간이 흘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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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12_c_09L1)[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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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12_c_11L揀病後書

009_0012_c_12L
有經論大德問余曰生佛雖殊其性無
009_0012_c_13L故諸佛智惠全在衆生身中故答
009_0012_c_14L非也此問然則諸佛如來成佛之後
009_0012_c_15L更生迷否故佛便以佛不再迷之意云
009_0012_c_16L譬如迷人於一聚落惑南爲北焂有
009_0012_c_17L悟人指示令悟於意云何此人縱迷
009_0012_c_18L於此聚落更生迷否亦如翳人見空
009_0012_c_19L中華翳病若除華於空滅忽有愚人
009_0012_c_20L於彼空華所滅空地待花更生汝觀
009_0012_c_21L是人爲愚爲惠又如 [18] 金鑛雜於精金
009_0012_c_22L其金一純更不成雜如木成灰不重爲
009_0012_c_23L諸佛如來智惠菩提亦復如是
009_0012_c_24L又云旣已成金不重爲鑛經無窮時
009_0012_c_25L「附錄」二字編者補入

009_0013_a_01L금의 성질은 훼손되지 않으니, 본래 성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2)고 말씀하셨다.
『원각경소』에서는 “그러나 이 금광의 한 비유는 오직 ‘부처님은 다시 미혹하지 않는다’는 것의 힐난에 대해 답한 것일 뿐이다.”3)라고 하였다. 또 “만약 허공 꽃의 비유만을 가지고 본다면 인과因果의 상相을 뽑아 없앤 것이니 사견邪見이 되는 것이요, 만약 금광의 비유만을 가지고 본다면 중생의 각성覺性이 본래 부정하다는 것이 되니, 진리는 항상한다는 이치를 잃게 되어 역시 사견邪見이 된다.”4)고 하였다. 또 앞에서 “허공의 꽃은 끝내 다시 생겨나지 않으니, 과위果位가 어찌 다시 미혹해질 수 있겠는가.”5)라고 하였고, 여기에서 “금광의 비유는, 다만 ‘부처는 다시 미혹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답하였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다시 미혹해진다’는 의심이 너무 심해서 거듭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자성인 여래의 지혜가 온전히 중생의 몸에 있는 것이지, 모든 여래의 지혜가 중생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규봉 종밀이 “부처의 지혜가 온전히 중생의 몸에 원만히 구족하고 있음을 비유하였다.”6)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드러냄의 주체인 생멸문과 드러남의 대상인 삼대三大를 설명하면서 말한 부처님의 보신과 화신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보신과 화신이다.
이에 응답하였다.
심하구나. 이 물음이 옳다면, 후대에 화합식을 깨뜨려 수행자가 성불할 때 보신과 화신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연훈습緣勳習을 설명하면서 “법출리法出離에 의거하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두루 비추어 선근을 닦게 하고 생각에 따라 드러낸다.”7)고 하였겠는가. 현수 법장은 “본각이 장애를 벗어날 때 중생의 근기에 따라 비추어 온갖 교화를 드러내니, 중생에게 외연훈력外緣勳力이 된다.”8)고 하였다. 이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그래서 “이것은 수행자의 보신과 화신이지, 모든 여래의 보신과 화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분명하고 분명하다.
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여래의 원각圓覺은 중생의 원각이고, 중생의 원각은 여래의 원각이다.
이에 응답하였다.
이 무슨 말인가. 여래의 원각은 출전법신으로서, 성인에 즉해 있고 깨끗함(淨)에 즉해 있다. 그러므로 보리·열반의 진여정법을 유출한다. 중생의 원각은 범부에 즉해 있고 물듦에 즉해 있다.

009_0013_a_01L金性不毁不應說言本非成就䟽云
009_0013_a_02L然此一喩唯答佛不再迷之難又云
009_0013_a_03L但用前喩即撥無因果之相便成邪見
009_0013_a_04L若但用此喩即成衆生覺性本來不淨
009_0013_a_05L失眞常理亦成邪見又前云空華終
009_0013_a_06L不再起果位何得還迷此云金鑛喩
009_0013_a_07L即唯答佛不再迷然此再迷之疑過深
009_0013_a_08L故重喩也故知衆生自性如來智惠
009_0013_a_09L在衆生身中非諸如來智惠也故圭山
009_0013_a_10L喩佛智全在衆生身中圓滿具足
009_0013_a_11L正謂此也

009_0013_a_12L
有人問能示生滅門所示三大中佛報
009_0013_a_13L化者此諸佛報化故答甚矣此問
009_0013_a_14L然者後代破和合識行人成佛之時
009_0013_a_15L無報化乎然則何故緣勳習中云
009_0013_a_16L法出離故徧照衆生之心令修善根
009_0013_a_17L隨念示現賢首云本覺出障之時
009_0013_a_18L照物機示現萬化與衆生作外緣勳
009_0013_a_19L此言向1) [65] 麽處着故曰是行人之
009_0013_a_20L報化非諸如來報化灼然灼然

009_0013_a_21L
復有一人云如來圓覺即衆生圓覺
009_0013_a_22L生圓覺即如來圓覺故答是何言也
009_0013_a_23L來圓覺出纒法身即聖即淨故流出
009_0013_a_24L菩提湼槃眞如淨法衆生圓覺即凡即

009_0013_b_01L그러므로 염법을 유출하여 법신이 오도五道를 유전하는 것이다. 이에 규봉 종밀이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허망하게 혹업惑業을 일으키고 사생四生의 육도六道가 모두 예토穢土이다. 그러나 마음이 깨닫기 때문에 본체로부터 작용을 일으켜서 사무량심·육바라밀, 그리고 사무애변·십력十力으로 오묘한 몸과 깨끗한 국토가 드러나지 않는 바가 없다.”9)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따라서 사람 사람마다의 온갖 덕이 부처님과 다름이 없지만, 미혹함과 깨달음, 범부와 성인은 전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라.
또 여러 대덕들이 물었다.
지난번에 “능히 범부가 되고 능히 성인이 되며, 물듦에 즉하고 깨끗함에 즉한다.”고 말한 것은 모두 한 불성의 작용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에 응답하였다.
아, 그대들은 너무도 알지 못하는구나. 어째서인가. 범부에 즉하고 물듦에 즉하고 난 이후에 성인에 즉하고 깨끗함에 즉한다는 것은 괜찮지만, 성인에 즉하고 깨끗함에 즉한 이후에 범부에 즉하고 물듦에 즉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그 이유를 논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기신론』에서 “법이라는 것은 중생심이다.”라고 한 것은, 이른바 재전의 불성이다. 미迷를 따라 불각을 인연하기 때문에 범부에 즉하고 물듦에 즉하여 다겁의 세월 동안 오도五道에 갇히고 사생四生을 유력하며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다. 오悟를 따라 각의覺義를 인연하기 때문에 성인에 즉하고 깨끗함에 즉하여 아승기겁의 세월 동안 수도하여 깨달음을 이루어 번뇌를 멸하며 흐름을 되돌려 출전出纒한다. 그러므로 규봉 종밀이 “미迷할 때는 깨끗하고 오묘한 덕의 작용이 숨어 있지만, 그것이 없어지지 않으므로 진여본각이 유루식有漏識에 있다. 그러나 오悟했을 때는 진여본각이 결코 유루식에 없기 때문에 무명의 식상識相과 망념妄念의 업과業果 등이 진여문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직 깨끗하고 오묘한 덕의 작용만이 홀로 진여심에 있으므로 부처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미迷와 오悟, 범부와 성인이 비록 다르지만 그 실제는 중생심이다. 어느 누가 홀로 그렇지 않겠는가. 통달한 자들은 잘 생각해 보라.
또 ‘하나의 법신’에 관한 문제 제기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거듭해서 문인들에게 보인다.


009_0013_b_01L故流出染法法身流轉五道故圭
009_0013_b_02L山云心迷故妄起惑業乃至四生六
009_0013_b_03L雜穢國界心悟故從體起用四等
009_0013_b_04L六度乃至四辨十力妙身淨刹無所不
009_0013_b_05L此其證也故知人人萬德與佛無
009_0013_b_06L迷悟凡聖逈不同也思之悉之

009_0013_b_07L
又有諸德問向者能凡能聖即染即淨
009_0013_b_08L之說並是一佛性之作用何故不然也
009_0013_b_09L答曰嗚呼君等甚不知也何則即凡
009_0013_b_10L即染之後即聖即淨可也即聖即淨之
009_0013_b_11L即凡即染則不可然其所以然者
009_0013_b_12L嘗試論之論云所言法者謂衆生心
009_0013_b_13L所謂在纒佛性者也隨迷緣不覺故
009_0013_b_14L凡即染多劫困五道曆四生造業受報
009_0013_b_15L隨悟緣覺義故即聖即淨阿僧祗劫
009_0013_b_16L修道證滅返流出纒故圭峯云迷時
009_0013_b_17L淨妙德用但隱而不滅故眞如本覺
009_0013_b_18L在有漏識中悟時有漏識中必無故無
009_0013_b_19L明識相妄念業果等不生眞如門也
009_0013_b_20L唯淨妙德用獨在眞如心中名爲佛
009_0013_b_21L然則迷悟凡聖雖異其實衆生心也
009_0013_b_22L人獨不然耶達者思之

009_0013_b_23L
又一法身之問過甚故重疊而示諸
009_0013_b_24L門人

009_0013_c_01L
여기 한 가지 일이 있으니, 역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각각 원만하다’는 설은 경전과 논서에서 분명히 설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아직 득得하지 못했으면서 득得했다고 말하고, 증證하지 못했으면서 증證했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로써 ‘하나의 법신’설이 옳다고 판정한다면, 아직 원인과 결과를 따져 보지 않은 것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비방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마도 법을 아는 자가 그것을 본다면 박장대소할 것이니, 삼가도록 하라. 여래는 그들을 가리켜 증상만인增上慢人이라고 하고, 또한 반야를 비방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부처의 혜명을 끊는 사람이라고 하리니, 천불千佛이 세상에 나와도 참회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배우는 자들은 잘 살펴보기 바란다. 만약 요즘 사람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부처와 보살은 자주자주 짚신을 사야 할 것이다.10) 그러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또 지금 ‘선사’, ‘장로’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앞의 말을 고집하여 삼(麻)을 짊어지고 금을 버리는 자이고, 두 번째는 말은 잘하지만 잘못된 것을 꾸며 헛된 것으로써 실제를 삼는 자이다. 둘 다 헛되어 실제로는 결정한 뜻이 없으니, 어찌 바른 지견知見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결정한 뜻이 없다면, 마치 소리를 듣고서 점을 치는 자가 어떤 사람이 동쪽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 그 사람을 따라 동쪽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참으로 가엾고 한심스럽도다.
어떤 사람이 하늘에 있는 달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달’이라고 하여 ‘모두면 하나의 법신이 된다’는 비유로 삼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만약 법신이 하나라면 이것은 성현의 출전법신인가, 범부의 재전법신인가. 만약 범부의 법신이라면 성현의 법신이 아닐 것이고, 성현의 법신이라면 범부의 법신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법신인가. 또 허공의 달을 보는 것처럼 법신이 보신과 화신 밖에 있다는 것을

009_0013_c_01L
更有一事亦不可不知也各各圓滿之
009_0013_c_02L經論所判如今未得謂得未證謂
009_0013_c_03L證底學者便以自所見判定一法身
009_0013_c_04L則且未論招因結果毁謗佛敎墮無間
009_0013_c_05L恐有識法者見之拊掌大笑愼之
009_0013_c_06L如來指爲增上慢人亦謂之謗般若
009_0013_c_07L亦謂之斷佛惠命人千佛出世
009_0013_c_08L通懺悔是故有智學者察而詳之
009_0013_c_09L依今時之差排則佛與菩薩殺着買草
009_0013_c_10L始得然未詳孰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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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如今自稱禪師長老者有二一謂固
009_0013_c_12L執前言擔麻弃金者二謂言足而飾非
009_0013_c_13L以虛爲實者二皆虛頭實無決定志
009_0013_c_14L爲正知見也若無決定志則如聽聲卜
009_0013_c_15L見人說東便隨人向東走可悲可嘆
009_0013_c_16L有人便以上方空月以謂一切人之公
009_0013_c_17L都爲一法身喩非也若一者是賢
009_0013_c_18L聖之出纒法身耶凡夫之在纒法身耶
009_0013_c_19L若凡夫之法身則非賢聖之法身也
009_0013_c_20L賢聖之法身則非凡夫之法身也是誰
009_0013_c_21L法身也又如見空2) [66] 法身在報化身
009_0013_c_22L「湛」作「甚」{甲}「月法身…思之悉之(次頁
009_0013_c_23L中段十行)」甲本缺落

009_0014_a_01L분명히 보았는가. 달을 본 사람들 중에는 누구도 법신의 지색智色을 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지식智識으로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법신은 ‘관찰하는 주체인 지혜(能觀智)’가 될 뿐만 아니라, 그 관찰하는 지혜와 함께 ‘관찰의 대상인 경계(所觀境界)’가 된다. 비록 주체와 대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 실제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행동거지의 모든 것이 바로 불성이고, 다시 다른 법이 없어서 증득하는 주체이면서 증득의 대상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또 옛사람이 “삼불三佛이 원융하고 십신十身에 걸림이 없다.”11)고 하였는데, 한 분의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 부처님마다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처럼 불보佛寶는 한량없고 끝이 없다.”고 하였으며, 현수 법장은 소䟽에서 “부처님은 삼신을 갖추었다.”12)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또 현수 법장은 “삼대三大에 의거하여 삼보가 무너지지 않음을 믿는다.”13)고 하였다. 그런데 글 가운데 ‘믿는다(信)’는 글자가 있으므로 이것은 수행자의 삼신을 가리킨다. 범부 역시 삼보와 같은 체를 가지고 있어서, 성품이 본래 신령스런 깨달음인 불佛과, 본래의 적멸함에 머물러 있는 법法과, 성품에 어그러지거나 다툼이 없는 승僧을 모으면 모두 삼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 원만하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풍담 의심楓潭義諶14)은 “각각의 사람에게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이치를 설한 사람들로는 또 소요逍遙·벽암碧岩·취미翠微·춘파椿坡·청엄淸嚴·허백虛白 등이 있었는데, 이들 종사宗師들에게 나는 직접 배웠다. 한 나라의 이름난 분들로서 법의 큰 안목이며 선지식들이 설하여 보인 법이 모두 이와 같았으므로 의심할 것이 없다. 또 모든 경전과 논서에서 설한 법문은 일심一心·이문二門·삼대三大와 각의覺義 중의 오수증悟修證과 불각의不覺義 중의 삼세三細와 육추六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심성론」에서 열거한 것도 모두 이러한 가르침과 같다. 그러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법문은 모두 한 중생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 한 중생을 들어 예로 삼았다면 일체 중생에게 열거되는 법문도 이와 같다.


009_0014_a_01L分明見之乎人之見月者阿誰法
009_0014_a_02L身智色無可見也何故智識俱不到
009_0014_a_03L故也然又法身非直成能觀智亦乃
009_0014_a_04L與其觀智作所觀境界雖有能所
009_0014_a_05L實一也故云擧動運爲一切皆是佛性
009_0014_a_06L更無別法而爲能證所證正謂此也

009_0014_a_07L
又古人云三佛圓螎十身無㝵非唯
009_0014_a_08L一釋迦如是佛佛皆然故曰如是佛寶
009_0014_a_09L無量無邊藏䟽云佛具三身此其證
009_0014_a_10L又賢首云約三大中信三寶不壞
009_0014_a_11L然文有信字故是行人三身也凡夫亦
009_0014_a_12L有同體三寶性自靈覺佛住本寂滅法
009_0014_a_13L性無乖諍僧摠爲三身者也然則各各
009_0014_a_14L圓滿之意分明故楓潭曰人各有不亡
009_0014_a_15L者存焉此其證也演者又有逍遙碧岩
009_0014_a_16L翠微椿坡淸嚴虛白此等宗師愚夫面
009_0014_a_17L受之一國名現大法眼善知識者說示
009_0014_a_18L之法悉同此說無可疑者又一切經
009_0014_a_19L論所列法門不過一心二門三大覺義
009_0014_a_20L中悟修證不覺義中三細六麁也然則
009_0014_a_21L此論中所列者皆同此說豈可不信也
009_0014_a_22L如此法門皆屬一衆生擧一衆生爲例
009_0014_a_23L則一切衆生所列法門亦得如是

009_0014_b_01L
갑계동참발원문甲契同叅發願文
願我心性法     바라오니 우리의 심성법으로
上報佛恩德     위로는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고
下濟一切衆     아래로는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여
當生安養國     미래에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同見阿彌陀     같이 아미타불 만나 뵙고
自他成佛道     나와 네가 함께 불도가 이루어지이다.
發願已歸命禮三寶  발원을 마치고 삼보에 귀의하며 예를 올립니다.

위와 같은 법문은 모두 경전과 논서에서 설한 것으로, 다만 초학자들을 위한 것이며, 경론의 대덕으로서 법을 아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병이 없다면 약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이들은 모두 거듭거듭 번거롭게 기록하기를 꺼려하지 말고, 이러한 노력으로 자세히 살피기 바란다. 약을 먹어서 병을 막으려 한다면 건강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잘 생각해 보라.
문인들을 경책함(驚策門人)
일선一禪 등의 제자들아. 세월이 흘러 성인과의 거리가 멀어 우리의 도가 적막함이 오늘날처럼 심한 적이 없었으니,1) 종사들의 설법이 진실로 삼대(麻)와 좁쌀처럼 많은데도 지금 부처님 법을 비방하는 사람들2)은 더욱 많구나. 이번 생애에 철 방망이의 벌은 한 번으로 그만이겠지만, 다음 생애에 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3)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가지 말고 좋은 벗을 받들어 섬기기를 지극히 바라노라.
그대들이 처음 발심하여 걸음을 내디뎠을 때, 본분종사本分宗師를 만나지 못해 여기저기서 나쁜 지각知覺의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고 가르침을 전수받아 하나의 두피肚皮를 만들었는데 악취 풍기는 술지게미 병 같았으니, 나는 역겨운 마음으로 구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들이 만약 그릇됨을 알고 잘못을 깨우쳐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뜻을 세우고 마음속(肚裡)의 나쁜 지견知見을 다 비워 한 점의 기식氣息도 남기지 않는다면 부처님과 조사의 바른 지견을 비로소 전수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지금 잘 들으라.

009_0014_b_01L甲契同叅發願文

009_0014_b_02L
願我心性法上報佛恩德

009_0014_b_03L下濟一切衆當生安養國

009_0014_b_04L同見阿彌陀自他成佛道

009_0014_b_05L發願已歸命禮三寶

009_0014_b_06L
如上法語悉是經論但爲初學不爲
009_0014_b_07L經論大德識法者何故无病不應服
009_0014_b_08L藥也願諸學者勿嫌疊疊繁書之
009_0014_b_09L此努力細細詳之留藥防病不爲健
009_0014_b_10L人也思之悉之

009_0014_b_11L

009_0014_b_12L驚策門人

009_0014_b_13L
一禪等弟子世降聖遠吾道寂寥
009_0014_b_14L出今曰宗師說法誠如麻粟今有訪 [19]
009_0014_b_15L佛法者又多今生鐵捧之罰唯獨一番
009_0014_b_16L而已後世五無間之苦口不可盡言
009_0014_b_17L是故諸人不涉他途承事善友至禱
009_0014_b_18L至禱汝等初發步時不遇本分宗師
009_0014_b_19L遮邊那邊惡知惡覺叅學傳記 1) [67]
009_0014_b_20L肚皮正如臰糟瓶相似我以惡心
009_0014_b_21L免嘔吐汝若知非誨過別立生涯
009_0014_b_22L裡惡知見盡底傾出無一點氣息
009_0014_b_23L祖正知見方堪傳2) [68] 汝今諦聽我爲

009_0014_c_01L내가 그대들을 위해 심성의 도리를 결판하노라.
[시편詩篇]
운봉 노스님이 병인년(1686) 초가을에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가지고 나에게 서문을 요청하였지만, 『심성론』의 한 서문은 이름 있는 자가 이미 작성하였기 때문에 나는 다만 『심성론』에서 하나의 운을 취해서 시를 지어 말하노라.

道不遠人人自遠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멀리하니
吾門夫子誨人深   우리 문의 공자가 사람들 깨우쳐 주심이 깊네.
何須惱結三生夢   어찌 괴롭게 삼생의 꿈을 맺을 필요가 있으리오.
只可精求一箇心   다만 하나의 마음만을 정밀하게 구해야 하리.

千水各流源在地   천 개 강의 지류는 그 근원이 땅에 있고
五音交發體存琴   다섯 음정이 번갈아 발하지만 본체는 거문고에 있네.
渠家妙訣還如此   저 집의 오묘한 비결 도리어 이와 같으니
歸讀稜嚴臥舊林   돌아가 『능엄경』 읽으며 고향에 누우리.

위는 중시重試에서 장원한 판서 호곡 남용익南龍翼(1628~ 1692)의 시이다.

衣似秋雲白     옷은 가을 구름처럼 희고
心如秋水淸     마음은 가을 물처럼 맑네.
何由到寶盖     어찌하여 보개산에 왔는가
更聽讀經聲     다시 경 읽는 소리 듣노라.

위는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시이다.

翠竹和風直     비취색 대나무는 바람과 어울려 곧고
黃花帶露淸     노란 꽃은 이슬로 띠 둘러 맑네.
頭頭皆活路     사물마다 모두 활발한 길이니
何必聽經聲     하필이면 경 읽는 소리 들으리오.

위는 운봉이 백헌 이경석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竹院逢僧話     죽원에서 스님을 만나 이야기하였더니
令人俗慮淸     속된 생각 맑게 해 주네.
欲知心省路     마음 살피는 길 알고자 하였더니
春鳥兩三聲     봄새가 두세 번 지저귀네.


009_0014_c_01L汝等決判心性道3) [20]

009_0014_c_02L[詩篇]
4)雲峯老師丙寅初秋以道不遠人之
009_0014_c_03L請序於余而心性論一序名人已
009_0014_c_04L余但取心性論中一䫟詩以道之

009_0014_c_05L道不遠人人自遠吾門夫子誨人深

009_0014_c_06L何須惱結三生夢只可精求一箇心

009_0014_c_07L千水各流源在地五音交發體存琴

009_0014_c_08L渠家妙訣還如此歸讀稜嚴臥舊林

009_0014_c_09L
右壺谷詩重試狀元南判書 [69]

009_0014_c_10L
5)衣似秋雲白心如秋水淸

009_0014_c_11L何由到寶盖更聽讀經聲 [70]

009_0014_c_12L
右白軒相國詩

009_0014_c_13L
6)翠竹和風直黃花帶露淸

009_0014_c_14L頭頭皆活路何必聽經聲 [71] [21]

009_0014_c_15L
右雲峯敬次白軒相國䫟

009_0014_c_16L
7)竹院逢僧話令人俗慮淸

009_0014_c_17L欲知心省路春鳥兩三聲 [72]

009_0014_c_18L」作「築」{甲}「受」作「授」{甲}此下有
009_0014_c_19L「今時學者問余曰理中豈有多法身耶故余答
009_0014_c_20L一切衆生皆有本覺眞心 動含靈皆有佛
009_0014_c_21L衆生賢聖根本悉是靈明淸淨一法界心
009_0014_c_22L覺寶光各各圓滿云則如何獨有一法身也
009_0014_c_23L未詳孰是達者苟不是此非彼以人癡言試詳
009_0014_c_24L覽之一䚳其當否康熙二十三年甲子元月
009_0014_c_25L雲峯子大智全爲弟資述此私記」{甲}
「雲峯
009_0014_c_26L老師…南判書」無有{甲}
此詩無有{甲}此詩
009_0014_c_27L在「白蓮大師詩」中ㆍ上有小題名「又」{甲}

009_0014_c_28L無有{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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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대제학 호주 채유후蔡裕後(1599∼1660)가 운봉의 시를 차운하여 선풍을 곧장 드러내었다.

實理師知否     실제의 이치를 스님은 아는가.
心源活處淸     마음의 근원 활발한 곳 맑다네.
吾詩方欲就     내 시가 막 완성되려 하는데
啼鳥送春聲     새소리에 봄날이 가네.

위는 예문제학 설봉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또 운봉의 시를 차운하여 역시 선풍을 드러낸 것이다.

善㦲獨負成龍智   훌륭하다, 홀로 용의 지혜를 이루나니
莫與池魚任曝腮   연못의 물고기에게 햇볕을 쬐지 마라.
若得如來眞正見   여래의 진실한 정견을 얻거든
他年應振一聲雷   언젠가 한 번 뇌성을 지르리.

위는 풍담 의심의 시로서 운봉 대지에게 보인 것이다.

好是山中無限興   산속의 끝없는 흥취 즐기나니
蓬萊勝景盡嬋娟   봉래산 뛰어난 경치 곱고 예쁘도다.
名僧若問吾消息   이름난 승려 내 소식 묻는다면
須道花紅萬瀑邊   만폭동에 꽃이 붉게 물들었다고 말하리.

묵도인에게 보인 운봉의 시이다.

誰云遺失已多年   누가 만나 본 지 여러 해 흘렀다고 말하는가.
處處相逢是宛然   곳곳에 서로 만남이 완연하도다.
因憶九淵千里外   천 리 밖에서 구곡연을 생각하노니
海棠花發白鷗邊   해당화가 흰 갈매기 옆에 만발하였네.

위는 운봉의 시 ≺도안상견≻4)인데, 변사숙의 시에서 차운한 것이다.

雲峯才過遠公賢   운봉의 재주 혜원보다 어지나니
結社年來號白蓮   결사한 지 여러 해 백련이라 하였네.
塵跡脫生陶子後   도연명 이후 티끌 구덩이에 태어나
短笻遙訪虎溪邊   짧은 대지팡이로 소요하며 호계를 방문하였네.

운봉 대지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해 시로써 말한 것이다.

我佛西來閱幾年   우리 부처님 서방에서 오신 지 몇 해던가.
庭前栢樹只依然   뜰 앞의 잣나무는 옛날 그대로네.
欲追影響無尋處   그림자 메아리 쫓아 보지만 찾을 곳 없고
竹杖空回夕照邊   대나무 지팡이 부질없이 저녁노을에 돌아다니네.

이 시구들은 이 사인이 운봉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雲峯路險人皆滑   운봉 가는 길 험하여 사람들 모두 미끄러지고
智海深於海水深   지혜 바다는 깊기가 바닷물보다 깊네.
誰識龍駒千里足   용구5)의 천 리 내달림을 누가 알겠으며
豈諳鵬鳥九霄心   붕조의 하늘같이 높은 마음을 어찌 알리오.
碁無敵手空藏局   바둑에 적수 없어 바둑판은 부질없이 창고에 있고
世乏知音久廢琴   세상에 소리 알아주는 이 없어 가야금 오래도록 켜지 않았네.
好是白蓮庵下月   백련암 아래 달빛이 좋으니
兒孫應有翫禪林   법손들이 선림에서 놀아야 하리.

위는 호월의 경법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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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大提學葵 [22] 湖洲次雲峯詩直示禪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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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實理師知否心源活處淸

009_0015_a_03L吾詩方欲就啼鳥送春聲 [73]

009_0015_a_04L
右藝文提學姜雪峯又次雲峯詩亦示禪風

009_0015_a_05L
2)善㦲獨負成龍智莫與池魚任曝腮

009_0015_a_06L若得如來眞正見他年應振一聲雷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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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風潭詩示智禪子

009_0015_a_08L
3)好是山中無限興蓬萊勝景盡嬋娟

009_0015_a_09L名僧若問吾消息須道花紅萬瀑邊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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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示默道人是雲峯詩 [76]

009_0015_a_11L
5)誰云遺失已多年處處相逢是6) [77]

009_0015_a_12L因憶九淵千里外海棠花發白 [78]

009_0015_a_13L
7)右雲峯以道眼相見次卞師叔詩 [79]

009_0015_a_14L
8)雲峯才過遠公賢結社年來號白蓮

009_0015_a_15L塵跡脫生陶子後短笻遙訪虎溪邊 [80]

009_0015_a_16L
尋智師不逢詩以道之

009_0015_a_17L
9)我佛西來閱幾年庭前栢樹只依然

009_0015_a_18L欲追影響無尋處竹杖空回夕照邊 [81]

009_0015_a_19L
此等詩句李舍人次雲峯詩

009_0015_a_20L
雲峯路險人皆滑智海深於海水深

009_0015_a_21L誰識龍駒千里足豈諳鵬鳥九霄心

009_0015_a_22L碁無敵手空藏局世乏知音久廢琴

009_0015_a_23L好是白蓮庵下月兒孫應有翫禪林

009_0015_a_24L
右皓10) [82] 慶法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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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峯四面磨天滑   운봉의 사면은 하늘 간 듯 반드럽고
中有拈花別曲深   그 가운데 꽃을 드니 노랫가락 그윽하다.
魏帝輕裝難接足   위나라 황제의 가벼운 차림 발길 접하기 어렵고
梁皇鈍滯豈留心   양무제의 둔하고 막힘으로 어찌 마음을 잡겠는가.
三韓不市和公壁   삼한은 화공의 옥을 팔지 못했고
千載誰知伯子琴   천 년 동안 누가 백아의 거문고를 알아주었는가.
賴得泛舟淸海客   떠가는 배에 의지하여 맑은 바다의 객이 되어
欽然微笑舞山林   공경히 미소 지으며 산림에서 춤추리.

위는 응진의 시이다.

人人介介皆圓滿   사람마다 각각 모두 원만하거늘
多小諸方眼未醒   많은 제방의 안목 아직 깨어나지 못했네.
但向雲峯心擬絶   운봉 스님 뵙고서 마음 헤아림 끊는다면
目前無法亦無盲   눈앞에 법도 없고 맹인도 없으리.

含靈本具經中說   중생이 본래 갖추었다고 경전에서 설하였건만
南北禪門總未然   남북의 선문이 모두 그렇지 않다고 여기네.
若不吾師眞正眼   만약 우리 스님의 진정한 안목이 아니었다면
誰知先佛法如然   누가 부처님의 법을 여여하게 알게 하리오.

위는 운봉이 여러 문인들에게 보인 시이다.

沙界衆生云一性   모래알 세계의 중생들이 ‘일성’이라 말하지만
釋迦成道幾人醒   석가모니 성도하실 적에 몇 사람이나 깨쳤나.
山山庵主皆同說   산마다 암주들 모두 똑같이 말하나니
若不雲峯我亦盲   만약 운봉이 아니었다면 나도 맹인이 되었으리.

歸依丈室問其然   방장실에 귀의하여 그 연고를 여쭈니
性覺皆圓說朗然   성각이 모두 원만하다는 그 말씀 낭랑하네.
最奇今日談玄處   오늘 설하신 가장 현묘한 자리에
無限心緣盡判然   끝없는 마음 인연이 모두 다 분명해지네.

위는 숭곡 대사의 시이다.

世尊一見明星日   세존이 한번 새벽별 보신 날에
多小人天夢不惺   많은 인천들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네.
若也同時咸自悟   만약 동시에 함께 깨닫는다면
豈將言敎示群盲   어찌 가르침을 뭇 맹인들에게 보이겠는가.


如來晦迹雙林後   여래가 쌍림에서 열반하신 후에
末代兒孫揔暗然   말세의 사람들 모두 깜깜하네.
早得雲峯眞正見   어서 빨리 운봉의 진정한 견해를 얻어
群心應不尙茫然   모든 마음 더 이상 아득하지 말아야 하리.


009_0015_b_01L
雲峯四面磨天滑中有拈花別曲深

009_0015_b_02L魏帝輕裝難接足梁皇鈍滯豈留心

009_0015_b_03L三韓不市和公11) [83] 千載誰知伯子琴

009_0015_b_04L賴得泛舟淸海客欽然微笑舞山林

009_0015_b_05L
右應12) [84]

009_0015_b_06L
13)人人介介皆圓滿多小諸方眼未醒

009_0015_b_07L但向雲峯心擬絕目前無法亦無盲

009_0015_b_08L含靈本具經中說南北禪門總未然

009_0015_b_09L若不吾師眞正眼誰知先佛法如然

009_0015_b_10L
右雲14) [85] 示諸門人

009_0015_b_11L
沙界衆生云一性釋迦成道幾人醒

009_0015_b_12L山山庵主皆同說若不雲峯我亦15)

009_0015_b_13L歸依丈室問其然性覺皆圓說朗然

009_0015_b_14L最奇今日談玄處無限心緣盡判然

009_0015_b_15L
右嵩谷大師詩

009_0015_b_16L
雲峯各各皆圓說南北禪門固不惺

009_0015_b_17L如我方今逢此老是同浮木接龜*盲

009_0015_b_18L箇箇靈心皆具足古今人物盡茫然

009_0015_b_19L雲峯痛切分同異多小諸方意豁然

009_0015_b_20L
右玉峯大師詩

009_0015_b_21L
世尊一見明星日多小人天夢不16)

009_0015_b_22L若也同時咸自悟豈將言敎示群*盲

009_0015_b_23L如來晦迹雙林後末代兒孫揔暗然

009_0015_b_24L早得雲峯眞正見群心應不尙茫然

009_0015_c_01L
위는 월봉 대사의 시이다.

平生所學求成道   평생 배운 것은 성도를 구한 것이지만
虛歷諸方夢未醒   부질없이 제방을 유력하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네.
若不雲峯眞善友   진정한 선우 운봉이 아니었더라면
幾人金鎞刮迷盲   몇 사람이나 금비로 미혹한 맹인의 각막을 벗겨 내리오.

위는 광평 스님의 시이다.

爲僧本願叅知識   승려의 본원으로 선지식을 참예하면서
虛走天涯未返醒   헛되이 하늘 낭떠러지 내달리다 돌아올 줄 몰랐었네.
若不我師眞惠眼   우리 스승의 진정한 혜안 아니었다면
誰將聖敎示迷盲   뉘라서 성스러운 가르침을 미혹한 맹인에게 가르쳐 주리.6)

위는 완월 스님의 시이다.

塵塵刹刹恒沙佛   티끌같이 많은 세계에 모래알같이 많은 부처님
佛佛皆依自性醒   부처님들 모두 자성에 따라 깨치셨네.
間張三敎無餘事   평범한 가르침 살펴보니 별다른 방편 없고
盡是群生刮眼盲   모두 뭇 중생들의 먼 눈 비비는 것이네.

위는 금봉 스님의 시이다.

그러므로 “한산이 가리키는 손끝에 달이 맺혀 있건만, 곁에서 바라보는 많은 이들 (손끝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끝만을 바라보니) 눈먼 맹인 같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마다 본래 갖추고 있음의 뜻’을 알지 못한 사람들을 묶어서 책망한 것이다. 위에서 ‘진정한 견해’라고 말한 것은, 지눌이 “비록 알음알이(識解)라고 말하지만 지견知見의 정직함이 진정한 깨달음의 자리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속이는 말이겠는가.


009_0015_c_01L
右月峯大師詩

009_0015_c_02L
平生所學求成道虛歷諸方夢未醒

009_0015_c_03L若不雲峯眞善友幾人金鎞刮迷盲

009_0015_c_04L
右廣坪17) [86]

009_0015_c_05L
爲僧本願叅知識虛走天涯未返醒

009_0015_c_06L若不我師眞惠眼誰將聖敎示迷18) [87]

009_0015_c_07L
右翫月師 [23]

009_0015_c_08L
塵塵刹刹恒沙佛佛佛皆依自性醒

009_0015_c_09L19) [88] 張三敎無餘事盡是群生刮眼盲

009_0015_c_10L
20)右金峯 [89] 21) [90] [91]

009_0015_c_11L
22)故云寒山指頭月團團多少傍觀眼如
009_0015_c_12L此不知人人本具之意者結責上
009_0015_c_13L所謂眞正見者知訥云雖曰識解
009_0015_c_14L見正直是眞正悟處豈欺 [92] 人㦲 [93]

009_0015_c_15L此詩無有{甲}此詩無有{甲}此詩在雲峯
009_0015_c_16L詩「道眼相見」中ㆍ上有小題名「又」{甲}
此文
009_0015_c_17L無有{甲}
此上有小題名「道眼相見」{甲}「宛」
009_0015_c_18L作「完」{甲}
此文無有{甲}此詩無有{甲}
009_0015_c_19L詩無有{甲}
「月」下有「大師」{甲}「壁」作
009_0015_c_20L「璧」{甲}
「眞」下有「大師」{甲}此詩在「道眼
009_0015_c_21L相見」中ㆍ上有小題名「又」{甲}
「峯」下有「病
009_0015_c_22L老」{甲}
「盲」下有小題名「又」{甲}次同「惺」
009_0015_c_23L作「醒」{甲}
「師」上有大{甲}「盲」下又有
009_0015_c_24L一首如下「飄然南北尋眞客到處參方尙闇然好
009_0015_c_25L是雲峯峯上月令人千載盡昭然」{甲}
「間」作
009_0015_c_26L「開」{甲}
「右」底本作「下」編者改作「右」ㆍ「右
009_0015_c_27L金峯師詩」底本在於「右翫月師詩」之下編者移
009_0015_c_28L置於此ㆍ作「右」{甲}
「師」上有「大」{甲}「故
009_0015_c_29L云…心性道理」無有{甲}

009_0016_a_01L
청허의 후예이며 우화雨花의 상족上足인 운봉 대지가 마음 깊이 후학들을 위해 이 심성의 도리를 서술하였다.

願我世世生生處   바라오니 이내 몸이 세세생생 날 적마다
常於般若不退轉   언제나 반야에서 물러서지 아니하고
如彼本師勇孟智   저 석가모니 부처님의 용맹한 지혜같이
如彼舍那大覺果   저 노사나 부처님 큰 깨달음의 과보같이
如彼文殊大智慧   저 문수보살의 크고 밝은 지혜같이
如彼普賢廣大行   저 보현보살의 넓고 크신 행같이
如彼地藏無邊身   저 지장보살의 끝없는 몸같이
如彼觀音三十應   저 관음보살 같은 삼십이응신을 갖추어7)
十方世界无不現   시방세계 온갖 곳에 빠짐없이 다니면서
普令衆生入无爲   모든 중생 이끌어 무위도에 들게 하리.
聞我名者免三途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벗어나고
見我形者得解脫   내 모양을 보는 이는 생사고해 해탈하며
如是敎化恒沙劫   이와 같이 교화하여 갠지스 강의 모래같이 많은 겁 지나가면
畢竟无佛及衆生   마침내는 부처 중생 차별 없어지이다.
願諸天龍八部衆   바라오니 천룡팔부중은
爲我擁護不離身   이내 몸을 옹호하여 떠나지 마옵시고
於諸難處无諸難   어려운 일 당할 때에 어려움이 없게 하여
如是大願能成就   이와 같은 큰 서원 성취하여지이다.
發願已       발원을 마치고,
歸命禮三寶     삼보에 귀의하며 예를 올립니다.

위는 나옹 혜근(1320~1376)의 발원문이다.

오호라, 불법佛法의 불행함이 오늘날처럼 심한 적이 없었다. 파순들이 다투어 일어나 지난날의 판본을 모두 불에 태워 버렸도다. 아, 새로 논문을 보태어 산문에 보관하노라. 이 『심성론』은 모두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니, 어느 곳에 이와 다르게 설한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근본법에서 증득을 취할 것이요, 말단의 습기에서 증득을 취하지 마라.”8)고 하였느니라. 후학들은 불언량佛言量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옳게 여겨야 할 것이다. 잘 생각해 보라.

願我臨終滅罪障   바라오니 임종 시에 죄업장을 멸하여
徃叅西方大慈尊   서방에 가서 큰 자비의 아미타불을 뵈옵고
金色光中蒙授記   금빛 광명 가운데 수기 받아
盡未來除度衆生   미래세가 다하도록 중생을 제도하리.
虛空有盡願不盡   허공은 다할지라도 원력은 다하지 않으리니
十方諸佛作證明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發願已       발원을 마치고,
歸命禮三寶     삼보에 귀의하며 예를 올립니다.

위는 서산 휴정의 발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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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虛後裔雨花上足雲峯子大智心爲
009_0016_a_02L後學述此心性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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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願我世世生生處常於般若不退轉

009_0016_a_04L如彼本師勇孟智如彼舍那大覺果

009_0016_a_05L如彼文殊大智慧如彼普賢廣大行

009_0016_a_06L如彼地藏無邊身如彼觀音三十應

009_0016_a_07L十方世界无不現普令衆生入无爲

009_0016_a_08L聞我名者免三途見我形者得解脫

009_0016_a_09L如是敎化恒沙劫畢竟无佛及衆生

009_0016_a_10L願諸天龍八部衆爲我擁護不離身

009_0016_a_11L於諸難處无諸難如是大願能成就

009_0016_a_12L發願已歸命禮三寶 [94]

009_0016_a_13L
右懶翁發願

009_0016_a_14L
2)嗚呼佛法不幸無出今日波旬競起
009_0016_a_15L前者板本盡數燒火吁 新加論文
009_0016_a_16L鎭山門然此論悉是佛語何處又有
009_0016_a_17L他說者㦲故古人云當取證於本法
009_0016_a_18L無取證於末習後之學者以佛言量
009_0016_a_19L在我心中爲可思之悉之願我臨終滅
009_0016_a_20L罪障徃叅西方大慈尊

009_0016_a_21L
金色光中蒙授記盡未來3) [95] 度衆生

009_0016_a_22L虛空有盡願不盡十方諸佛作證明

009_0016_a_23L發願已歸命禮三寶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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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西山發願文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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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上泥牛耕日色   물 위의 진흙 소 햇빛을 갈고
雲中木馬掣風光   구름 속의 목마는 풍광을 끌고 가네.
威音劫外眞消息   공겁 이전의 위음왕불 진실한 소식
月皎靑松鶴夢長   밝은 달 푸른 소나무에 학의 꿈 한창이네.



山川從假入空門   산천은 거짓으로부터 공에 들어가는 문이요,
雙放雙收殺活機   서로 방출하고 서로 거두며 죽이고 살리는 기틀이네.
第二文殊覔無覔   두 번째의 문수보살을 찾아도 찾을 수 없고,
一聲孤鶴拂雲飛   외로운 학 크게 한 번 울며 구름 떨쳐 날아가네.

위는 소요 태능의 시이다.

斫來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베어다가
燋盡水中漚     물거품을 불에 다 태웠네.
可笑騎牛者     가소롭다. 저 소를 탄 사람이여
騎牛更覔牛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구나.



瀟湘一枝竹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대나무
聖主筆頭生     성스러운 임금님의 붓끝에서 나왔네.
山僧香爇處     산승이 향불 사르는 곳에
葉葉帶秋聲     잎마다 가을 소리 띠었네.

위는 서산 휴정의 시이다.

明月千秋色     밝은 달은 천추의 색이요
淸風萬古顔     맑은 바람은 만고의 얼굴이네.
無人知此意     이러한 뜻 아는 사람 없어
令我憶圭山     규봉 종밀을 생각나게 하네.



翠竹和風直     비취색 대나무는 온화한 바람에 곧고
黃花帶露淸     연노랑 국화는 이슬 맺혀 맑네.
頭頭皆活路     사물마다 모두 활발하게 살아 있으니
何必聽經聲     어찌 반드시 경 읽는 소리 들으리.



嗚呼丈夫兒     오호라, 장부 아이여
何處未明而     어딘들 그대를 밝히지 않으리.
二覺因吾決     시각과 본각은 나를 통해 결정되거늘
三乘自點之     삼승이 스스로 그것을 욕되게 하네.

위는 백련 대사의 시이다.

塵塵刹刹恒沙佛   티끌같이 많은 세계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같이 많은 부처님
佛佛皆依自性醒   부처님들 모두 자성에 따라 깨치셨네.
開張三敎無餘事   삼교를 열어 펼치니 별다른 것 없고
盡是群生刮眼旨   모두 뭇 중생들의 눈 비비는 뜻이네.

위는 금봉 대사의 시이다.

含靈本具先賢說   중생들 본래 갖추었다고 선현들이 설하였건만
多小人天未了然   많은 저 인천의 중생들 아직 깨닫지 못하였네.
若不雲峯眞道眼   만약 운봉의 진정한 도안이 아니었다면
如今禪納捴茫然   지금의 선납들 모두 아득했으리.

위는 설봉 대사의 경법시이다.

강희 23년 갑자(1684, 숙종10) 4월 제자 신회神會가 삼가 명을 받들어 글씨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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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水上泥牛耕日色雲中木馬掣風光

009_0016_b_02L威音劫外眞消息月皎靑松鶴夢長

009_0016_b_03L

009_0016_b_04L山川從假入空門雙放雙收殺活機

009_0016_b_05L第二文殊覔無覔一聲孤鶴拂雲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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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逍遙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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斫來無影樹燋盡水中漚

009_0016_b_08L可笑騎牛者騎牛更覔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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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16_b_10L瀟湘一枝竹聖主筆頭生

009_0016_b_11L山僧香爇處葉葉帶秋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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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西山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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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月千秋色淸風萬古顏

009_0016_b_14L無人知此意令我憶圭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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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16_b_16L嗚呼丈夫兒何處未明而

009_0016_b_17L二覺因吾決三乘自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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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金峯大師詩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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含靈本具先賢說多小人天未了然

009_0016_b_20L若不雲峯眞道眼如今禪納捴茫然

009_0016_b_21L
右雪峯大師慶法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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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16_b_23L
康熙二十三年甲子四月日門弟子
009_0016_b_24L神會謹命而書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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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016_c_01L此懶翁發願文無有{甲}此西山發願文
009_0016_c_02L有{甲}
「除」當作「際」{編}此詩底本無有
009_0016_c_03L者依甲本補入
「金峯」作「白蓮」{甲}
  1. 1)『수능엄경』(T19, 120bc) 참조.
  2. 2)『원각경』(T17, 915c) 참조.
  3. 3)『원각경소』(T39, 549b).
  4. 4)『원각경소』(T39, 549b).
  5. 5)『원각경소』(T39, 549a).
  6. 6)『선원제전집도서』(T48, 404c).
  7. 7)『기신론』(T32, 576c).
  8. 8)『대승기신론의기』(T44, 261c).
  9. 9)『선원제전집도서』(T48, 405c).
  10. 10)부처와 보살이 설법하러 다니느라 짚신이 자주 닳는다는 의미이다.
  11. 11)『화엄경소』 권49(T35, 872a). 이 부분에 대해 청량 징관은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 권79(T36, 615上)에서 “삼불로 십불을 거두니, 삼신을 벗어나지 않는다. 삼신이 이미 원융하고, 십신이 곧 삼신이니, 자체가 걸림 없다.(謂以三佛收十佛。不出三身。三身既融。十身即三。自體無礙。)”고 하였다.
  12. 12)『대승기신론의기』(T44, 274b).
  13. 13)『대승기신론의기』(T44, 248c).
  14. 14)풍담 의심楓潭義諶(1592~1665) : 조선 시대의 승려로서 16세에 출가하여 편양 언기鞭羊彦機(1581~1644)의 문하에서 심법心法을 전수받았다. 그 이후 소요 태능逍遙太能(1562~1649), 벽암 각성碧巖覺性(1575~1660) 등에게 참구하였으며, 현종 6년(1665)에 금강산 정양사正陽寺에서 입적하였다.
  15. 1)『대혜보각선사어록』 권29(T47, 936b) 참조.
  16. 2)저본에는 “부처님 법을 찾는 사람들(訪佛法者)”이라고 되어 있고, 고려대본에는 “부처님 법을 비방하는 사람들(謗佛法者)”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고려대본의 글자를 채택하여 번역하였다.
  17. 3)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은 ① 시무간時無間(지옥의 시간이 연속하여 중단하지 않는 것), ② 신형무간身形無間(한 사람이든 백 사람이든 지옥의 넓이와 몸의 넓이가 같아서 조금도 여유가 없는 것), ③ 수고무간受苦無間(괴로움을 겪는데 조금도 끊어짐이 없는 것), ④ 취과무간趣果無間(업을 지어 받는 죄과에 사이가 없는 것), ⑤ 명무간命無間(지옥의 수명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18. 4)≺도안상견道眼相見≻은 운봉이 지은 시다. 그런데 고려대본에서는 같은 제목의 더 긴 시를 싣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誰云遺失已多年   누가 만나 본 지 여러 해 흘렀다고 말하는가.
    處處相逢是完然   곳곳에 서로 만남이 완연하도다.
    因憶九淵千里外   천 리 밖에서 구곡연을 생각하노.
    海棠花發白鷗邊   해당화가 흰 갈매기 옆에 만발하였네.

    又또
    好是山中無限興   산속의 끝없는 흥취 즐기나.
    蓬萊勝景盡嬋娟   봉래산 뛰어난 경치 곱고 예쁘도다.
    名僧若問吾消息   이름난 승려 내 소식 묻는다.
    須道花紅萬瀑邊   만폭동에 꽃이 붉게 물들었다고 말하리.

    又또
    人人介介皆圓滿   사람마다 각각 모두 원만하거.
    多小諸方眼未醒   많은 제방의 안목 아직 깨어나지 못했네.
    但向雲峯心擬絶   다만 운봉에게 마음 헤아림을 끊어 버리면
    目前無法亦無盲   눈앞에 법도 없고 맹인도 없으리.

    又또
    含靈本具經中說   중생 본래 갖추었다고 경전에서 설하였건.
    南北禪門總未然   남북의 선문이 모두 그렇지 않다고 여기네.
    若不吾師眞正眼   만약 우리 스님의 진정한 안목이 아니었다면
    誰知先佛法如然   누가 부처님의 법을 여여하게 알게 하리오.
  19. 5)용구龍駒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6, 「영월군」 ≺고적조古跡條≻에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고을의 부호 엄비嚴庇가 육말陸末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암말을 못 가에 두었더니 용이 나와서 교접하여 망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그 망아지는 걸음이 빨라서 무리에서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용구龍駒는 용과 말 사이에 태어난 상상의 동물임을 알 수 있다.
  20. 6)고려대본에는 이 시 아래에 다음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飄然南北尋眞客   표연히 남북으로 진객을 찾아 떠나
    到處參方尙闇然   이르는 곳마다 참방하지만 오히려 암울하더니,
    好是雲峯峯上月   운봉의 봉우리에 있는 달이 좋더라.
    好是雲峯峯上月   운봉의 봉우리에 있는 달이 좋더라.
    令人千載盡昭然   천년토록 모든 사람들을 비추어 밝히누나.
  21. 7)고려대본에는 ‘三十應’이라고 하였으므로 번역하면 ‘삼십응신’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하여 ‘三十二’ 혹은 ‘三十三’에서 ‘二’자 혹은 ‘三’자를 뺀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능엄경』에서 관세음보살의 삼십이응신을 이야기하고 있고, 『법화경』에서는 삼십삼응신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율이 있는 시나 가사에서는 흔히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하여 변화를 주기도 한다. 본 번역문에서는 『수능엄경』의 ‘삼십이응신’을 따랐다.
  22. 8)배휴, 「선원제전집도서서」(T48, 399a).
  1. 1)「附錄」二字。編者補入。
  2. 1)「湛」作「甚」{甲}。
  3. 2)「月法身…思之悉之(次頁中段十行)」甲本缺落。
  4. 1)」作「築」{甲}。
  5. 2)「受」作「授」{甲}。
  6. 3)此下有「今時學者問余曰。理中豈有多法身耶。故余答曰。一切衆生。皆有本覺眞心 動含靈。皆有佛性。衆生賢聖根本。悉是靈明淸淨。一法界心。性覺寶光。各各圓滿云。則如何獨有一法身也。然未詳孰是。達者苟不是此非彼。以人癡言。試詳覽之。一䚳其當否。康熙二十三年甲子元月。日雲峯子大智。全爲弟資述此私記」{甲}。
  7. 4)「雲峯老師…南判書」無有{甲}。
  8. 5)此詩無有{甲}。
  9. 6)此詩在「白蓮大師詩」中ㆍ上有小題名「又」{甲}。
  10. 7)此詩。無有{甲}。
  11. 1)此詩無有{甲}。
  12. 2)此詩無有{甲}。
  13. 3)此詩在雲峯詩「道眼相見」中ㆍ上有小題名「又」{甲}。
  14. 4)此文無有{甲}。
  15. 5)此上有小題名「道眼相見」{甲}。
  16. 6)「宛」作「完」{甲}。
  17. 7)此文無有{甲}。
  18. 8)此詩無有{甲}。
  19. 9)此詩無有{甲}。
  20. 10)「月」下有「大師」{甲}。
  21. 11)「壁」作「璧」{甲}。
  22. 12)「眞」下有「大師」{甲}。
  23. 13)此詩在「道眼相見」中ㆍ上有小題名「又」{甲}。
  24. 14)「峯」下有「病老」{甲}。
  25. 15)「盲」下有小題名「又」{甲}次同。
  26. 16)「惺」作「醒」{甲}。
  27. 17)「師」上有大{甲}。
  28. 18)「盲」下又有一首如下「飄然南北尋眞客到處參方尙闇然好是雲峯峯上月。令人千載盡昭然」{甲}。
  29. 19)「間」作「開」{甲}。
  30. 20)「右」底本作「下」編者改作「右」ㆍ「右金峯師詩」底本在於「右翫月師詩」之下。編者移置於此ㆍ作「右」{甲}。
  31. 21)「師」上有「大」{甲}。
  32. 22)「故云…心性道理」無有{甲}。
  33. 1)此懶翁發願文。無有{甲}。
  34. 2)此西山發願文。無有{甲}。
  35. 3)「除」當作「際」{編}。
  36. 4)此詩。底本無有。編者依甲本補入。
  37. 5)「金峯」作「白蓮」{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