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 / 禪門五宗綱要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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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
환성 지안 지음(喚惺志安撰)
선문오종강요 서문(禪門五宗綱要序)
가지치고 근본이 없는 가지는 없고, 갈래진 물결치고 근원이 없는 갈래는 없다. 하나의 법이 나뉘어 두 종(兩宗)1)이 되고 두 종 역시 다섯 갈래(五派)를 이루었으니, 그 가지와 갈래에 근본과 근원이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무릇 대각 세존께서 다자탑多子塔2) 앞에서 자리를 반 나눠 주셨으니, 이것이 제1처 전심傳心이며 살인검殺人劒이다.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셨으니, 이것이 제2처 전심이며 활인도活人刀이다. 사라쌍수 사이에서 곽槨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으니, 이것이 제3처 전심이며 살활동시殺活同時이다.
이 소식은 가섭迦葉 이래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전수되면서 조계曺溪3)까지 이르렀고, 조계 문하에 두 분이 있게 되었다. 한 분은 남악 회양南岳懷讓4)이니, 그 ‘살림(活)’을 종지로 하여 온갖 잡동사니를 늘어놓은 가게(雜貨鋪)를 여셨다. 또 한 분은 청원 행사淸源行思5)이니, 그 ‘죽임(殺)’을 종지로 하여 진금만 파는 가게(眞金鋪)를 여셨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법이 살殺과 활活의 두 종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청원 문하에서 하나의 종파가 나왔으니, 바로 조동曺洞이다. 남악 문하에서는 네 종파가 나왔으니, 임제臨濟·운문雲門·위앙潙仰·법안法眼이다. 이렇게 해서 두 종이 다섯 갈래로 나뉘게 된 것이다.6)
다섯 종파는 모두 무無 가운데서 미묘한 곡조를 뽑아내 목청을 고르고 곡조를 바꾸었는데, 그 이름과 모양이 아주 많고 여러 전적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학자들이 그 오묘함을 규명하지 못하는 것이 병이었다. 이에 환성喚惺7) 화상께서 여러 전적들 가운데 요긴한 뜻만 채집하여 ‘오종강요五宗綱要’라 하셨다. 나는 이를 판에 새겨 사라지지 않게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빠진 부분을 보완했으니, 운문삼구雲門三句에 대해서는 청산 수靑山叟 스님의 해석을 인용하였고, 조동오위曺洞五位에 대해서는 형계荊溪8) 스님의 주석을 인용해 그 의미를 통하게 하고 그 요지를 드러냈다.

009_0459_a_01L[禪門五宗綱要]

009_0459_a_02L1)禪門五宗綱要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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盖枝無本之枝派無無源之派
009_0459_a_05L法分爲兩宗兩宗亦爲五派其枝派
009_0459_a_06L有本源固可知也夫大覺世尊
009_0459_a_07L子塔前分半座是第一處傳心殺人
009_0459_a_08L劒也靈山會上擧拈花是第二處傳
009_0459_a_09L活人刀也沙羅雙樹間槨示雙趺
009_0459_a_10L是第三處傳心殺活同時也此箇消
009_0459_a_11L自迦葉以來人傳一人而至于
009_0459_a_12L曺溪曺溪下有二人焉一曰南岳懷
009_0459_a_13L宗其活而開雜貨鋪也二曰淸源
009_0459_a_14L行思宗其殺而開眞金鋪也此乃一
009_0459_a_15L分殺活兩宗者也源下出一宗
009_0459_a_16L曺洞岳下出四宗曰臨濟曰雲門
009_0459_a_17L曰潙仰曰法眼此乃兩宗分爲五派
009_0459_a_18L者也五派之家盡向無中唱出妙
009_0459_a_19L改聲換調名相頗多散在諸篇
009_0459_a_20L學者未窺其奧而病矣喚惺和尙
009_0459_a_21L採集諸篇中要義曰五宗綱要余欲
009_0459_a_22L繡榟宜圖不朽而正其僞補其闕
009_0459_a_23L雲門三句引靑山叟之解於曺洞五
009_0459_a_24L引荊溪師之註通其義顯其要

009_0459_b_01L이 모두가 앞선 현자들의 저술에 의존한 것이지, 내 흉중의 소견은 조금도 없다.
스승의 자리에 걸터앉아 불자를 쥔 자가 이를 도외시한다면 종풍을 판별하고 증명할 방법이 없으리라. 하지만 근본과 근원을 투철한 자가 있다면 곧 이러한 갈등葛藤이 붙을 자리가 없다. 앞서 환성 화상께서 채집하시고, 지금 내가 판각하는 것이 까마귀가 참새를 키운 꼴이라는 그들의 비방을 초래할까 두려울 뿐이다.
북해 함월北海㴠月9)이 서문을 짓다.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두 번째 기사년(1749, 영조 25) 가을에 남원南原의 양일하梁一厦가 쓰다.


009_0459_b_01L依前賢之述而少無胷臆之見也
009_0459_b_02L師位執拂柄者外是則無以辨驗宗風
009_0459_b_03L若有箇漢透徹本源則伊麽葛
009_0459_b_04L藤也無着處前之採集今之壽榟
009_0459_b_05L頭養雀恐招其謗爾北海㴠月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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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紀元後再己巳秋南原梁一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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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59_b_08L{底}崇禎紀元後再己巳關北釋王寺刊本(東國
009_0459_b_09L大學校所藏)
  1. 1)두 종(兩宗) : 흔히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남종南宗과 북종北宗을 양종으로 칭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육조 혜능慧能(638~713)을 종조로 하는 남종에서 형성된 두 파, 즉 청원 행사淸源行思와 남악 회양南岳懷讓을 살殺·활活 양종이라 칭하였다.
  2. 2)다자탑多子塔 : ⓢ Pahuputraka. 중인도 비야리성毘耶離城에 있던 네 개의 탑 중 서쪽에 있던 탑 이름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탑 앞에서 가섭을 만났을 때 자리를 나누어 가섭에게 앉기를 권했다고 전한다.
  3. 3)조계曺溪 : 육조 혜능慧能을 지칭한다.
  4. 4)남악 회양南岳懷讓(677~744) : 당나라 스님. 속성은 두씨杜氏며, 금주金州 안강安康 사람이다. 15세에 형주荊州 옥천사의 홍경弘景에게 출가하여 율을 배웠다. 뒤에 탄연坦然의 권고로 숭산 적안嵩山覿安을 만났고, 다음에 육조 혜능을 만나 시자로 15년을 모셨다. 713년에 남악 반야사에 들어가 30년을 주석하며 선풍禪風을 선양하고, 당 천보 3년에 68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대혜 선사大慧禪師.
  5. 5)청원 행사淸源行思(?~740) : 당나라 스님. 속성은 유씨劉氏며, 길주吉州 여릉廬陵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육조 혜능에게 법을 받고 상수 제자가 되었다. 뒤에 길주의 청원산 정거사에 주석하며 종풍을 크게 선양하고, 당 개원 28년 12월에 입적하였다. 당 희종이 홍제 선자弘濟禪者라 시호를 내렸다.
  6. 6)운문종과 법안종은 실제로 남악 회양 계통이 아니라 청원 행사 계통에 속한다. 이와 같은 법계에 대한 오류는 『선가귀감』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은 중국에서도 일찍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7. 7)환성喚惺(1664~1729) : 자세한 전기는 이 책의 해제 참고.
  8. 8)형계荊溪 : 청나라 스님으로 생몰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해석하고 행책行策이 기술한 『보경삼매본의寶鏡三昧本義』(X63)가 전한다.
  9. 9)북해 함월北海㴠月(1691~1770) : 법명은 해원海源, 호는 함월涵月, 자는 천경天鏡이다. 속성은 이씨며, 함흥咸興 사람이다. 14세에 도창사道昌寺에서 출가해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녔고, 뒤에 환성喚惺을 모시고 종문宗門의 묘한 뜻을 얻었다. 조선 영조 46년에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으며, 탑과 비가 석왕사 동쪽에 있다. 저서로 『천경집天鏡集』 2권(『한국불교전서』 제9책 수록)이 있다.
  1. 1){底}崇禎紀元後再己巳。關北釋王寺刊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