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용암당유고(龍巖堂遺稿) / 龍巖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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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당유고龍巖堂遺稿
용암 체조龍巖體照
용암집 서문龍巖集序
스님들과 교유하던 한 선비 벗이 소매에서 용암龍巖 대사의 행장과 시집을 꺼내 보여 주었다. 이에 나는 용암 대사라는 분을 알게 되었고 또 용암을 호로 삼은 까닭도 알게 되었다. 대사의 한평생은 용으로 시작하여 부처로 마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잉태할 때는 용이 꿈으로 들어왔고 입적할 때는 부처와 함께 돌아갔으니, 앞의 조짐으로 보면 곧 용이요 이미 변한 것으로 말하면 곧 부처이니 이것이 바로 일암日庵 장로가 용암이라는 호를 내려 준 이유인 것이다. 그 행장을 살펴보건대 행실은 순박하고 찬찬하며(淳備), 시집을 열람하건대 그 시는 청아하고 빼어났으니(淸逸), 비록 선비들 소문에서 이 정도의 시인을 구한다 해도 여럿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애석하도다, 금세에 이 같은 법사가 계셨는데도 내 직접 뵙지 못했음이여! 대사의 영명한 성품과 지혜로운 식견으로서 이기理氣의 균부均賦1)를 근본으로 하고 색물色物의 구공俱空2)에 귀의했으니 용이 또한 부처인가, 부처가 또한 용인가? 그것은 진정 좋은 변화라 할 만한가, 좋지 않은 변화라 할 만한가?
내가 일찍이 듣기로 대사는 호남의 선비 집안 출신으로 집안이 화를 만나 마침내 불가로 들어왔으니 가히 좋지 않은 변화라 할 만하다. 총명한 재주와 지혜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난즉, 공과 이익이 사람들에게 미칠 만한데도 불교에 머물고 말았으니 이 역시 좋지 않은 변화라 할 만하다. 그러나 천하의 네 갈래 길(四道) 중에 불교가 최고이며, 인생의 세 가지 어려움(三難)3) 중에 부처를 만나기가 가장 어려운데, 저 고해를 벗어나 극락을 밟으니 곧 좋은 변화라 할 만하다. 또 비록 당대에 입신양명하지 못했으나 법의 바다에서 자비의 배를 띄워 중생을 널리 제도하였으니

009_0783_a_01L[龍巖堂遺稿]

009_0783_a_02L1)龍巖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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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友之從浮屠游者袖示龍巖行狀與
009_0783_a_05L詩集余乃知有龍巖大師而且知以
009_0783_a_06L龍巖爲號之義也盖師之平生可謂
009_0783_a_07L始於龍而終於佛也其胚也龍入於夢
009_0783_a_08L其寂也佛與之歸自其先朕而觀之
009_0783_a_09L即龍也及其已變而言之則佛也
009_0783_a_10L其日庵所以錫號龍巖者也按其狀
009_0783_a_11L行也淳備覽其集其詩也淸逸
009_0783_a_12L求之章甫之聞亦不易多得者也
009_0783_a_13L今世有如此法師而余未之得見
009_0783_a_14L師之靈性慧識根於理氣之勻賦
009_0783_a_15L而歸於色物之俱空龍亦佛耶佛亦
009_0783_a_16L龍耶其可謂善變化耶抑可謂不善
009_0783_a_17L變化耶吾甞聞師也湖南之士族
009_0783_a_18L家禍迫之終入於釋則可謂不善變
009_0783_a_19L化也以其聦明才智遇風雲世
009_0783_a_20L功利之及於人可也而止於佛亦可謂
009_0783_a_21L不善變化也然而天下有四道佛爲
009_0783_a_22L最高人生有三難釋爲難逢而脫
009_0783_a_23L彼苦海踏于極樂即可謂善變化也
009_0783_a_24L雖不能立揚當世而普濟衆生於法海

009_0783_b_01L역시 좋은 변화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용이 꿈에 나타난 것은 장차 부처가 되려는 것이니, 부처로 변화한 것은 저 용에서부터라 할 수 있다. 내 일찍이 살펴보건대, 전국시대의 선비들은 호협에 뛰어났고 위진魏晉 시대의 선비들은 몸을 술에 숨겼으니 이는 그들이 귀의할 참된 성인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사같이 현명한 분이 저 불도에서 나와 이곳(유학)으로 들어왔다면 곧 조예와 성취가 어찌 적막한 부도浮屠(불교계)에만 그쳤겠는가? 나는 그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노라. 그러나 용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요 부처로 변화한 것은 적연寂然이 아니니, 대사의 이름이 꽃비와 물에 비친 달그림자 사이에 길이 빛날 줄을 비로소 알겠노라. 이 또한 용의 좋은 변화요, 부처의 좋은 교화로서 적멸 중에서 진실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나는 그 재능을 아끼고 그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창려韓昌黎4)가 태전太顚의 글에 머리말을 쓴 뜻에 의거하여 행장 뒤에 적는다.
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판刑曹參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김조윤金朝潤이 서문을 쓰다.


009_0783_b_01L慈航之間即亦可謂善變化也然即
009_0783_b_02L龍之現將爲佛也佛之化自夫龍也歟
009_0783_b_03L窃甞觀戰國之士踊於俠魏晋之士
009_0783_b_04L隱於酒是不得眞聖人與之依歸也
009_0783_b_05L使師之賢出于彼而入于此即其造詣
009_0783_b_06L成就豈止於寂寞門浮屠而已哉
009_0783_b_07L悲其不遇而龍之現也非偶然佛之
009_0783_b_08L化也非寂然始見師之名長耀於
009_0783_b_09L花雨水月之間即是亦龍之善變
009_0783_b_10L之善化而實於寂滅者也余故愛其
009_0783_b_11L憐其遇而依韓昌黎冠太顚之意
009_0783_b_12L題于行狀之後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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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刑曹參判同知義禁府事五
009_0783_b_14L衛都摠府副摠管金朝潤序

009_0783_b_15L{底}崇禎後壬寅忠州白雲山刊本(李智冠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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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이기理氣의 균부均賦 : 이理와 기氣가 고르게 조화를 이룬 본성. 호남의 선비 집안에서 자란 용암의 유교적 자양분을 말한다.
  2. 2)‌색물色物의 구공俱空 : 물질이 곧 공임. 여기서는 이러한 사유에 기반을 둔 불교를 말한다.
  3. 3)‌세 가지 어려움(三難) : 사람으로 태어나는 어려움(人身難得), 남자로 태어나는 어려움(丈夫難得), 불법을 만나는 어려움(佛法難逢).
  4. 4)‌한창려韓昌黎 : 창려昌黎는 당나라의 문인·정치가인 한유韓愈(768~824)의 봉호. 자는 퇴지退之이며 창려 사람이다. 육경六經의 문장을 지을 것을 선비들에게 제창하였으며, 벼슬이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공文公이며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졌다. 처음에는 불교를 배척하여 형부시랑刑部侍郎에 있을 때 헌종憲宗이 불사리를 영접하자 극렬하게 반대하는 표(佛骨表)를 올려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태전太顚 선사의 이름을 듣고 편지글을 통해 도에 대해 문답하였으며, 이후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되었다. 『名公法喜志』(X88, 338a).
  1. 1){底}崇禎後壬寅忠州白雲山刊本(李智冠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