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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24_a_12L괄허 대화상 유고 후발括虛大和尙遺稿後跋덕이 없는데도 일컫는 것은 그 조상을 속이는 것이요, 덕이 있는데도 일컫지 않는 것은 그 어짊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돌아가신 스승 괄허括虛 화상和尙은 나에게는 5세조世祖가 된다.잠영簪纓의 후예로 일찍이 상문桑門(불문)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재주와 덕이 무리 가운데 뛰어나서 지혜가 통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백가百家의 예림藝林에서 깊고 오묘한 의미를 탐색하였고, 팔만八萬의 해인海印에서 깊은 기미幾微를 끝까지 궁구하였다.꽃은 만행萬行으로 피고, 마음은 육근六根을 제거하였다.이로써 당세에 칭찬받았고 일찍 대성함에 이르렀다.환암幻庵 장로長老에게서 선법을 전해 받고 환응喚應 선사禪師에게서 의발을 전해 받았다.이 두 분의 선사는 우리 동토에서 선과 교를 크게 천양하신 분들이다.스승이 이와 같으니 조계曺溪의 연원을 또한 알 만하도다.교남嶠南(영남)의 이름난 사찰에서 왕래해 달라는 청을 받아 경전을 가지고 묻고 논박했으니, 빈손으로 왔다가 채워서 돌아간 이를 어찌 하나하나 일컬을 수 있겠는가?오호라, 시율詩律과 문장은 화상이 여사餘事로 하던 것이니 어찌 권질卷帙을 이루어 세상에 전파하려는 뜻이 있었겠는가? 다만 강의에서 물러난 여가에 때때로 내방한 현사대부賢士大夫들과 더불어 수창한 것을 문인이 수집하여 책으로 만들었다.그 언사는 자신의 뜻을 완미하게 드러냈고, 그 지조와 아량을 맑게 드러냈는데, 부화浮華하게 새기는 모양이 없이 자연히 흘러나오는 메아리에 의지하였으니, -
010_0324_a_12L括虛大和尙遺稿後跋
010_0324_a_13L無德而稱者。誣其祖也。有德而不稱者。
010_0324_a_14L泯其賢也。先師括虛和尙。於我爲五世祖。
010_0324_a_15L而簪纓後裔。早托桑門。才德出倫。知無
010_0324_a_16L不通。百家藝林。▼(扌+突)賾索隱。八萬海印。極
010_0324_a_17L㴱硏幾。花敷萬行。心除六根。以是見稱
010_0324_a_18L於當世。而至其早成。受禪於幻庵長老。
010_0324_a_19L傳鉢於喚應禪師。此兩禪師。吾東土大闡
010_0324_a_20L禪敎者也。有師如此。曺溪爲源。亦可知
010_0324_a_21L矣。被請徃來於嶠南名刹。執經問難。虛
010_0324_a_22L來實去者。豈可一一稱之哉。嗚呼。詩律
010_0324_a_23L文章。和尙之餘事。則詎有卷帙播世之意
010_0324_a_24L也。但講退之暇。與賢士大夫之有時來訪。
010_0324_a_25L而酬應唱和者。門人收集成卷。其辭婉其
010_0324_a_26L志。淸其操雅。無雕刻浮華之態。依自然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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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24_b_01L재주와 덕이 무리보다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무자년(1888) 봄에 후손 혜운 치민惠雲致敏 등이 유고를 간행하여 영원히 전하고자 하면서 나에게 발문을 구해 책 끝을 꾸미고자 하였다.나 같은 불초한 자가 어찌 감히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적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는 것에 매여 선조의 덕에 대해 글을 쓰지 않고 끝내 한마디도 없으면 안 될 것이다.그러므로 고루함을 꺼리지 않고 졸렬함을 잊고 삼가 발문을 쓴다.화상의 관향과 자호는 행록에 갖추어 실려 있으므로 더 쓰지 아니한다.무자년 3월 하순에 후손 만선 포순滿船抱淳이 삼가 쓰다. -
010_0324_b_01L出之響。非才德之出倫。烏能如此。戊子
010_0324_b_02L春。後孫惠雲致敏等。以其遺藁。欲繡梓
010_0324_b_03L而圖不朽。謀我求跋。以藻卷尾。以吾之
010_0324_b_04L不肖。何敢點毫於其間哉。然而係是同祖
010_0324_b_05L之孫。其於先祖之德。不可以不文。終無一
010_0324_b_06L言故。不嫌孤陋。忘拙謹跋。而和尙姓貫
010_0324_b_07L字號。備載於行錄。故不爲架床云爾。
010_0324_b_08L歲戊子三月下瀚。後孫滿船抱淳謹跋。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종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