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극암집(克庵集) / 克庵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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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암집 서克庵集序
팔공산은 교남嶠南(영남)의 명산이다. 고명한 선사가 있으니 ‘극암克庵’이라고 하는데, 달성達城의 명망 있는 집안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 결국에 여래의 제자가 되어 부도浮圖(탑)에 몸을 숨겼다. 도력이 높고 문장 또한 높아서 고귀한 선생들이 다투어 그 얼굴을 알고자 했다. 나 또한 누차 그 암자에 나아가서는 사귐을 허락받았다. 저술한 문집 몇 권을 손제자 달현達玄이 발행해서 세상에 전하고자 했다.

011_0565_a_17L克庵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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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公嶠南之名山也有高師曰克庵
011_0565_a_20L達城之望族也幼而失怙恃無所於托
011_0565_a_21L卒爲如來弟子而隱於浮圖道高
011_0565_a_22L而文亦高薦紳先生爭欲識其面
011_0565_a_23L亦屢造其廬許之交雅矣所著文集若
011_0565_a_24L干卷其孫達玄將鋟梓壽於世余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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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사기史記』 한 부部를 명산대천에 두었으니 명산대천을 보면 그 문장을 알 수 있다. 창려昌黎17)의 문장은 천 리의 강과 같아서 강을 보면 그 문장을 알 수 있다. 동파東坡18)의 문장은 만 곡斛19)의 샘과 같아서 샘을 보면 그 문장을 알 수 있다. 그러한즉 명산대천은 사마천司馬遷20)의 문집이요, 천 리의 강과 만 곡의 샘은 창려와 동파의 문집이다. 이제 극암의 문장은 팔공산과 같으니, 팔공산은 극암의 문집이다. 그 유구함은 천지와 같으리니 어찌 꼭 발행할 필요가 있겠는가. 대개 극암은 깊고 빼어난 곳을 찾아 선택하여 이 산에서 늙었다. 기거함이 이 산에서 연속되었고 호흡이 이 산과 통하였으니, 그 문장이 산과 같음은 진정 그러하다. 왼쪽으로는 금호강을 끼고 오른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며, 여덟 고을(州)에 걸쳐 수많은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으니 기세가 웅장함이요, 높고 낮으며 험하고 평탄하니 산세가 갖추어짐이요, 수려하고 명랑하니 이치가 통창함이요, 울창하고 빽빽하니 지역이 그윽함이요, 휑하니 어두움은 뜻이 깊음이요, 지역이 멀고 티끌이 없음은 말(辭)이 청결함이요, 바위가 무더기로 야위며 나무들이 울퉁불퉁 늙어 감은 격이 기이함이요, 이슬 맞은 꽃이 봄에 흐드러짐은 색이 고움이요, 서리 맞은 과일이 가을에 익어 감은 맛이 짙음이요, 찬 샘이 차디차고 그윽이 새들이 지저귐은 소리가 맑음이라. 이렇게 말하자면 팔공산의 풀 하나 나무 하나가 모두 극암의 한 글자 한 구절이다. 산이 무너지지 않으리니 문장 또한 썩지 않으리라. 또한 어찌 『극암집』을 별도로 저술하겠는가. 별도로 저술함이란 복사본이요 정본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팔공산을 보지 못한 자가 또한 많다. 팔공산이 어떠한지 알고자 하면 먼저 『극암집』을 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또한 『극암집』을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드디어 한마디 말로 서두를 꾸며

011_0565_b_01L史記一部在名山大川觀於名山大川
011_0565_b_02L其文可知也昌黎之文如千里之河
011_0565_b_03L觀於河其文可知也東坡之文如萬
011_0565_b_04L斛之泉觀於泉其文可知也然則名
011_0565_b_05L山大川史遷之文集也千里之河
011_0565_b_06L斛之泉昌黎東坡之文集也今夫克庵
011_0565_b_07L之文如八公之山八公之山克庵之
011_0565_b_08L文集也其悠久可以與天地同何必
011_0565_b_09L鋟梓爲哉蓋克庵尋幽選勝老於是山
011_0565_b_10L起居與山接呼吸與山通其文之與出
011_0565_b_11L同固也左挾琴湖右控洛江亘八州
011_0565_b_12L而列千嶂氣之雄也有高有低有險
011_0565_b_13L有夷軆之具也粹麗明朗理之暢也
011_0565_b_14L蒼欝蕭森境之幽也谽呀黝㝠旨之
011_0565_b_15L深也地逈而無塵辭之潔也石碨磊
011_0565_b_16L而癯樹擁腫而老格之奇也露花春
011_0565_b_17L色之艶也霜果秋熟味之濃也
011_0565_b_18L泉冷冷幽易 [3] 咬咬聲之淸也由是言
011_0565_b_19L八公之一草一木皆克庵之一字一
011_0565_b_20L句也山不壞文亦不朽又何克庵集
011_0565_b_21L之別著乎若別著副本也非正本也
011_0565_b_22L然世之不見八公者亦多矣苟欲知八
011_0565_b_23L公之何如先觀克庵集爲可是克庵集
011_0565_b_24L之又不可以不傳於後也遂以一語

011_0565_c_01L팔공산에 감춰 둔다.
을사년(1905) 7월 초하루 임신일에 운파거사雲坡居士 조병유趙秉瑜21)가 구산龜山(마산) 근민헌近民軒22)에서 쓰다.


011_0565_c_01L其卷藏于八公山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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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七月朔日壬申雲坡居士趙秉
011_0565_c_03L瑜題于龜山近民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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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창려昌黎 : 한유韓愈(768~824). 당나라의 문인이자 사상가. 자는 퇴지退之이며, 선조가 창려昌黎 출신이므로 ‘한창려’라고도 했다. 문장에 있어서는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고문운동을 주도하고,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머리를 차지하였다. 사위이자 문인인 이한이 한유의 사후에 그의 시문을 모아 『昌黎先生集』을 간행한 것이 전해진다.
  2. 18)동파東坡 : 소식蘇軾(1037~1101).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사천四川 미산眉山 사람으로, 아버지 순洵, 아우 철轍과 함께 ‘삼소三蘇’라고 불리며 모두 당송팔대가에 속했다.
  3. 19)곡斛 : 옛날에 곡식을 계량하던 10말들이 그릇(휘) 또는 용량을 재는 단위이다.
  4. 20)사마천司馬遷 : 전한 시대의 역사가. 한무제의 태사령太史令이 되어 『史記』를 집필하였고, 기원전 91년에 완성하였다.
  5. 21)조병유趙秉瑜 : 고종 광무光武 원년(1897)에 무주 군수를 지내고 다음 해에 무주군 읍지 『赤城誌』를 간행한 기록이 있다.
  6. 22)근민헌近民軒 :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으로 부사가 행정을 처리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