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허집(鏡虛集) / 㧾攝芳啣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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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㧾攝芳啣錄
光武四年庚子四月日
此摠攝芳啣錄者鏡虛親筆本也
[序]
梵魚寺摠攝芳啣錄序
011_0697_a_03L余踈慵無用於世而且病久廢湖西而窩蟄矣有遊方者言其遊必曰金剛頭流伽倻五臺之勝甲於遊翫余笑曰所遊者豈在山水之如何耶言者昧然余厭患乎塵緣日而道業莫就於光武三年暮孤笻短褐揮擲萬累做得乎賤賣風流欲其適於自適過寒熱之際於佛明伽倻之山其翌年逶迤到于梵魚寺有晦玄長老住淸風堂操履淸高文章博雅優遊數月論心事甚相一日謂余曰寺有重任摠攝此是
御勅以
翼宗大王
神貞王后兩位仙龕奉安于本寺以其誕辰使摠攝奉享祭事遵行萬代若非金井之靈淑梵魚之名藍豈有如是特爲勅定也所以下資憲大夫扶宗樹敎十六宗主僧風糾正大覺登階都摠攝資啣限二任遞而禀下其爲摠攝之職之鄭重寔非凡刹例號可知也舊號僧統名位卑寺事不得自擅禀衆長老指揮任亦不甚擇人今職摠攝也異於前凡事皆托周旋有所誤失禮損害不少且寺臨雄州巨關非特來往僧俗之煩多也車盖相連絡于松門非其任不可以爲任以僉議擇其知事能文學堂重者以代其任而欲敍其事爲規而成册書列乎其任人名字傳於久遠子幸爲我序之余曰然且以吾之所遊者言之夫以一林一巒一木一石之自得於天者論之何必取於伽倻五臺金剛頭流之勝妙也而小巘淺麓亦有勝妙者存焉則金剛頭流伽倻五以小巘淺麓而已夫以小巘淺麓無處無之則伽倻五臺金剛頭流亦無處無之何必裏粮趼足而疲弊追逐於百里千里之外哉故曩時遊方者之所以遊者非吾所以遊也遊方者之所謂勝妙者非吾所謂勝妙也吾所謂勝妙與所以遊者何也人也在於人而有賢且能者也今寺之擇人遞代其任奉享
011_0699_a_06L仙廟守護常住可不宜哉故古人云謀事在人又云道由人弘哉言乎晦玄長老曰余曾讀司馬氏諫院記曰書其諫員名刻于石而後之人指其名而議之曰某也忠某也詐某也直某也今書列任人名字傳於久遠後之人亦指某名而評之曰爲摠攝也享廟護寺賢且以禮某爲摠攝也失禮且損害常住芳臭俱傳於久遠爲任字可不愼哉其擇任也豈可泛忽也哉而其爲序而規之也豈非扶護伽藍之大段關係者耶余聞其言而思之有不謀而㳷合於心者不亦善而記其言爲之規戒而敍謹識
011_0699_b_12L大韓光武四年庚子四月上湖西歸禿鏡虛惺牛
御下敎旨
011_0700_a_04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扶宗樹敎國一大禪師僧風糾正八道都摠攝大覺登階禮峰堂洪燁自癸巳八月一日行職至丁酉元月二日淸旦遞等
下皆倣此
011_0700_a_08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都摠攝大覺登階月影堂富潤自庚子淸旦至八月一日
011_0700_a_11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都摠攝大覺登階龍谷堂典昕自庚子八月一日至辛丑八月一日
011_0700_b_02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都摠攝大覺登階晦玄堂錫佺自丁酉元月淸旦至戊戌八月一日
011_0700_b_05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都摠攝大覺登階湛海堂德基自戊戌八月一日至庚子淸旦
011_0700_b_08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大摠攝大覺登階鶴庵堂聖箴自辛丑八月一日至癸卯淸旦
011_0700_b_11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都摠攝大覺登階普明堂智讃癸卯淸旦至甲辰淸旦
011_0701_a_02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都摠攝大覺登階一淡堂桂煥甲辰淸旦至乙巳淸旦
011_0701_a_05L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禪師八道大摠攝大覺登階春谷堂玟悟乙巳淸旦至丙午淸旦
1)隆熙元年丁未七月晦日
011_0701_a_09L大韓十三道寺刹都摠督宗務院大宗正下囑托
九郡寺刹摠督梵魚寺攝理金擎山己酉七月
晦日交遞
六郡寺刹摠督攝理吳惺月己酉七月晦日至辛亥元月
淸旦
六郡寺刹摠督攝理秋一淡辛亥淸旦至十月十七日
此叚似非鏡虛親筆也
[총섭방함록總攝芳啣錄]
서序
범어사 총섭방함록의 서문(梵魚寺總攝芳啣錄序)
나는 무능하고 게을러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 병들어 호서 지방에서 오래 묻혀 지내고 있었는데, 제방을 다녀 본 사람들이 자기가 다녀 본 곳을 말하면 반드시 “승묘勝妙한 땅인 금강산, 두류산, 가야산, 오대산이 유람하기에 으뜸이다.”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제방을 다니는 목적이 어찌 산수가 어떠하냐에 있으리오?” 하였더니, 말한 사람이 그 뜻을 몰랐다.
011_0697_b_01L내가 속진의 일은 날로 많아지고 도업道業은 이루지 못한 것을 걱정하여 광무光武 3년(1899) 늦봄에 간편한 복장으로 지팡이 하나를 짚고서 모든 세루世累를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풍류를 즐기며 스스로 유유자적하고자 하여 불명산佛明山과 가야산에서 여름과 겨울을 났다. 그리고 그 이듬해 여름에 발길이 범어사에 이르니, 회현 장로晦玄長老가 청풍당淸風堂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문장을 잘하고 박식하며 단정한 분이었다. 며칠 동안 한가로이 지내면서 심사心事를 얘기해 보았더니 매우 뜻이 맞았다. 하루는 회현 장로가 나에게 말하였다.
011_0698_a_01L“이 절에 중임이 있으니, 총섭입니다. 이는 임금이 칙명으로 익종대왕翼宗大王과 신정왕후神貞王后 두 분의 신위를 이 절에 봉안하고, 그 탄신일에 총섭으로 하여금 제사를 모시게 하여 만대토록 준행하게 하였으니, 신령한 기운이 모인 금정산과 이름난 가람인 범어사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이 특별히 칙명으로 제정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자헌대부 부종수교 십육종주 승풍규정 대각등계 도총섭資憲大夫 扶宗樹敎 十六宗主 僧風糾正 大覺登階 都總攝’이란 자급과 직함을 하사하고, 임기를 2년에 제한하여 직임을 교대하게 하니, 총섭이란 직책의 정중함이 다른 사찰의 의례적인 호칭과는 실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예전의 호칭인 승통僧統의 명위名位는 우리 절의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어 반드시 장로들의 지시를 받고 임명할 때도 그다지 사람을 가려 뽑지는 않았습니다.
011_0698_b_01L그러나 지금 총섭이란 직임은 예전과는 달라 모든 일을 맡아서 처리하니,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예의를 잃고 또 손해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절은 큰 고을과 큰 요충지에 있어 왕래하는 승속이 번다할 뿐 아니라 찾아오는 행차가 줄지어 송문松門에 이어지니, 적임자가 아니면 이 직책을 맡을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대중이 의논하여 사리를 알고 글을 잘하며 사내의 위망位望이 무거운 사람을 가려 뽑아서 그 직임을 대행하게 하되, 그 사실을 서술하여 규계規戒로 만들어 책자를 만들고, 이 직책을 맡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하니, 그대가 나를 위해 서문을 써 주시오.”
이에 내가 말하였다.
011_0699_a_01L“우선 내가 노닐어 본 곳으로 말해 보겠소. 대저 하나의 숲, 하나의 산, 하나의 나무, 하나의 돌이 천연적으로 절로 생겨난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무엇 하러 굳이 가야산, 오대산, 금강산, 두류산과 같이 승묘한 곳을 찾으리오. 작은 산봉우리나 얕은 산기슭에 빼어난 경치가 있으니, 그렇다면 금강산, 두류산, 가야산, 오대산도 작은 산봉우리와 얕은 산기슭일 뿐이리다. 작은 산봉우리와 얕은 산기슭은 없는 곳이 없으니, 가야산, 오대산, 금강산, 두류산도 없는 곳이 없는 셈입니다. 굳이 식량을 싸 가지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지친 몸으로 백 리, 천 리 밖을 찾아다닐 필요가 있으리오. 따라서 예전에 제방을 다녔던 이들이 다니던 목적은 내가 다니는 목적이 아니고, 제방을 다녔던 이들이 승묘하다고 한 것은 내가 승묘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승묘하다 하고 제방을 다니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니, 사람으로서 어질고 유능한 이에게 있습니다. 지금 이 절에서 사람을 가려 뽑아 교대로 이 자리에 임명하여 왕실의 신위神位를 봉향奉享하고 사찰을 수호하게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옛사람이 이르기를, ‘일을 도모함은 사람에 달렸다’ 하였고, 또 ‘도는 사람을 말미암아 크게 넓어진다’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회현 장로가 말하였다,
011_0699_b_01L“내가 사마광司馬光의 「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를 읽어 보았더니, ‘간원諫員의 이름을 쓰고 돌에 새기노니, 후세 사람들이 그 이름을 가리켜 논평하기를, 아무개는 충성스러웠고 아무개는 거짓되고 아무개는 정직하고 아무개는 사특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직책을 역임한 사람들의 이름을 써서 후세에 길이 전하면, 후세 사람들이 또한 아무개의 이름을 가리키며 논평하기를, ‘아무개는 총섭으로 있으면서 왕실의 신위를 봉향하고 사찰을 수호하여 어질고 예의가 있었으며, 아무개는 총섭으로 있으면서 예의를 잃고 또 사찰에 손해를 끼쳤다’라고 하여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이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될 터이니, 이 직책을 맡은 이가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직책을 맡을 사람을 가려 뽑는 것도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 서문을 써서 규계하는 것이 가람을 수호하는 데 크게 관계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 말을 듣고 보니 생각지도 않았는데 은연중 내 마음과 맞는 것이 있기에 “또한 좋지 않은가!”라 하고, 주고받은 말을 기록하여 규계하고 서문을 삼노라.
대한 광무 4년 경자년(1900) 4월 상순에 호서 승려 경허 성우는 삼가 쓰노라.
임금이 내린 교지(御下敎旨)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부종수교 국일대선사 승풍규정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예봉당 홍엽계사년 8월 1일부터 행직行職하여 정유년 섣달 이튿날 아침에 체직遞職하였다. 아래도 모두 이와 같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월영당 부윤경자년 아침부터 무술년 8월 1일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용곡당 전흔경자년 8월부터 1일부터 신축년 8월 1일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회현당 석전정유년 섣달 아침부터 무술년 8월 1일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담회당 덕기8월 1일부터 경자년 8월 1일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용곡당 전흔경자년 8월 1일부터 신축년 8월 1일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대총섭 대각등계 학암당 성잠신축년 8월 1일부터 계묘년 8월 1일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보명당 지찬계묘년 8월 1일 아침부터 갑진년 8월 1일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일담당 계환갑진년 8월 1일 아침부터 을사년 8월 1일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대총섭 대각등계 춘곡당 민오을사년 8월 1일 아침부터 병오년 8월 1일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융희 원년 정미년 7월 그믐에 대한십삼도사찰도총섭·종무원대종정은 위촉하노라.
구군사찰총독 범어사섭리 김경산기유년 7월 그믐에 교체되었다.
육군사찰총독 범어사섭리 오성월기유년 7월 그믐에서 신해년 섣달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육군사찰총독 범어사섭리 추일담신해년 섣달 아침부터 그해 10월 17일까지 직책을 맡았다.
  1. 1)此摠攝芳啣錄者。鏡虛親筆本也。
  2. 1)此叚。似非鏡虛親筆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