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동계집(東溪集) / 東溪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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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집東溪集
동계집東溪集 서序
내가 어렸을 때 문예를 좋아하여 가끔씩 당시 문인들과 노닐었는데 사모하고 기뻐함이 심하였다. 명공名工이라 하는 자는 채색을 화려하게 하고 노랫가락을 옥 소리처럼 내어 눈과 귀를 사로잡는 데만 마음을 쓴다. 번잡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미소를 순풍에 소리를 얹듯이 하여 아침에는 천금을 자랑하더라도 저녁때가 되면 마음이 매우 불편해진다. 산림의 우두머리 중에는 반드시 큰선비들이 있었으니, 세상 사람들의 입맛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 말은 담박하였다. 이때에 서방의 가르침을 구하였는데…(결락)…태허자太虛子 경일敬一은 법문의 뛰어난 인재로 원래부터 선을 익히고 장삼과 지팡이를 구름과 솔 사이에 두었는데, 세상에는 전하는 자취가 없다. 그러나 영탄하고 유양揄揚1)하는 것에 이르면 정감이 있어 천뢰天籟2)를 드러내는즉 다 씻어 내지 못한 것을 텅 비우게 하니, 당시 여러 명사로서 사모하고 사귀고자 하는 이들이 뒤꿈치가 닳도록 모여들었다. 대사는 또한 붓끝의 구름과 안개로서 우화지장雨花之場3)에 뛰어들어 갔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나는 대사가 여러 도를 섭렵하였다고 들었다. 대사는 다른 산에서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지은 것들이 감추어져 전해지지 않았으니 심히 개탄스러웠다. 올봄에 익상益祥 상인이 사문의 의발衣鉢로서 유언을 두루 갖추어 판각하기로 하고, 내 방을 찾아와 상자를 내놓으며 무릎 꿇고 말하길 “제 스승의 이름이 유소有素인데 어찌 감히 현안玄晏의 칭송4)을 바라시겠습니까. 오직 몇 가지 시문에 그치지만 이것들은 군자의 기호에 맞아서 감히 덮어 둘 수 없는 것입니다.”라면서 대사의 불후함을 전해 주기를 나에게 청하니 사양할 수 없었다. 또한 익상의 무리들이 애쓰는 것을 갸륵하게 여겼다.

012_0188_a_01L[東溪集]

012_0188_a_02L1)東溪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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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少而好談藝徃徃與當世修詞者游
012_0188_a_05L卽其沾沾慕悅號爲名工者采色爛如
012_0188_a_06L節族琅如也要其耳目心思托之
012_0188_a_07L紛華倩笑而沽之於順風加聲之地
012_0188_a_08L立肆而千金者夕徃私心甚狹之以爲
012_0188_a_09L山林之畏隹必有碩大之士不艶情於
012_0188_a_10L世味而澹乎其言者於是復求之西方
012_0188_a_11L之敎▣▣▣▣▣▣▣州之▣▣▣
012_0188_a_12L太虛子敬一法門翹楚也旣習于禪衲
012_0188_a_13L錫在雲松間世無能跡之者然乃至泳
012_0188_a_14L歎揄揚情有所感而發之於天籟
012_0188_a_15L不得盡洗而空之一時諸名士慕而交
012_0188_a_16L踵相磨也師亦以筆下雲烟闌入
012_0188_a_17L雨花之場甚奇也蓋余聞諸道蹃師之
012_0188_a_18L示寂於它山十數年于今而所撰述
012_0188_a_19L而不傳又甚慨也是歲春有上人益
012_0188_a_20L以師門衣鉢網羅遺言將事剞劂
012_0188_a_21L乃庚造余室發篋而跽曰吾先師
012_0188_a_22L之諱名也有素豈敢望玄晏之賜唯是
012_0188_a_23L瑣篇零句寔中君子之嗜不敢終閟
012_0188_a_24L以先師不朽請余旣未獲辭且喜祥之

012_0188_b_01L그리하여 대사를 드러낼 것들을 거두어들여 일을 마무리하였는데, 바야흐로 낮에는 판각하고 저녁에는 편집하니 네 권이 되었다. 시는 한 권인데, 오언절구는 유연하면서 맑으며 칠언율시는 질박하면서도 아름답다. 많지 않은 서序는 너그러우며, 비명碑銘과 잡기雜記는 거칠면서도 넉넉하고, 설說과 녹錄은 풍성하여 차라리 미천함을 건너뛸지언정 공교로움에 머물려 하지 않았으며, 차라리 말이 고졸할지언정 진실이 훼손되지 않았다. 깊고도 넓도다. 그 이치를 알 수 없으나 자연으로 돌아와 세상의 색채·소리와 더불어 같이한 것은 연영燕郢5)의 끌채가 된 것과 같다. 앞서 대사는 세상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거니와 말의 담박함이야말로 대사에게 찾아야 한다. 비록 그러하나 세상 사람들은 바야흐로 갖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주현朱絃6)의 음악을 느릿하게 연주하며 외물과 접하여 이익을 다툰다. 그 기질에서 벗어난 자들이 떼 지어 일어나 왁자지껄하게 “어찌하여 이 어지러운 것으로 말을 지어 오래도록 백성을 젖게 하는가. 밝은 기세가 고목膏沐7)을 부질없게 하고 중매를 하려고 하면 무염無鹽8)이 될 터이니 장차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라고 하였다. 장자는 “오성이 어지러워지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육률에 맞출 수 있으며, 오색을 어지럽히지 않고서야 누가 아름다운 임금의 예복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나는 무릇 공교한 소리와 아름다운 색채로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도랑에 버려진 것을 영원히 전해질 것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후세 군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병통이다. 내가 미치광이 같은 말을 늘어놓았노라.
신묘년 여름 한복판의 음력 초하루에 예주 사람 신주백申周伯9)이 쓰다.


012_0188_b_01L徒汲汲然以其師顯因受而卒業
012_0188_b_02L稍日删而夕次之卷凡四詩得其一
012_0188_b_03L五言絕之油然而澹也七言律之
012_0188_b_04L也文而爲小序之涵也碑銘雜記之麁
012_0188_b_05L而衍也說錄之富也寧涉於野而不
012_0188_b_06L欲居于巧寧拙於言而不欲病其眞
012_0188_b_07L冲乎漠乎莫知其所爲而乃返自然與
012_0188_b_08L世之爛如琅如者燕郢之轅矣日余
012_0188_b_09L所謂不艶情於世味而澹乎其言者
012_0188_b_10L在師乎果在師乎雖然世之人方且
012_0188_b_11L靑黃而藻梲方且朱絃而疏越方且與
012_0188_b_12L物交而爭利彼其於質中而匏外者
012_0188_b_13L起而呶之曰惡用是貿貿爲斯言也
012_0188_b_14L民久矣彜光廢膏沐而當蹇修卽化
012_0188_b_15L爲無鹽將斯集之謂何莊生有言
012_0188_b_16L聲不亂孰應六律五色不亂孰爲黼
012_0188_b_17L余惡夫巧聲婾色亂天下矣故以溝
012_0188_b_18L中之斷而並存於不朽後之君子
012_0188_b_19L亦移病我狂言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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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仲夏初吉禮州人申周伯書

012_0188_b_21L{底}康熙五十年密陽載岳山靈井寺開刊本(南權
012_0188_b_22L熙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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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유양揄揚 : 임금의 덕을 드러내어 칭송함.
  2. 2)천뢰天籟 : 자연현상에서 나는 소리. 여기서는 아름다운 시문을 말한다.
  3. 3)우화지장雨花之場 : 옛날에 부처가 설법說法할 때 하늘에서 꽃들이 내려 공중에 가득하였다는 고사가 있는데, 우화지장에 뛰어들었다고 말함으로써 시승으로서 동계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4. 4)현안玄晏의 칭송 : 현안은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호이다. 황보밀이 일찍이 좌사左思를 위해 삼도부三都賦의 서문序文을 써서 명성을 얻었다는 고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다른 사람에 의해 시문이 훌륭하게 평가되는 것을 말한다.
  5. 5)연영燕郢 : 연燕은 북쪽에, 영郢은 남쪽에 있는 나라로, 상호 먼 관계를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는 동계의 시문이 승속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높은 문학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6. 6)주현朱絃 : 『禮記』 「樂記」에 “청묘의 거문고는 붉은 줄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해서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음餘音이 있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 壹倡而三嘆。 有遺音者矣。)”라는 대목에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동계의 글을 칭송하기 위해서 쓰이고 있다.
  7. 7)고목膏沐 : 머리 감은 후 기름을 바르고 꾸미는 것을 말한다. 『詩經』 「衛風」 ≺伯兮≻에 “남편이 동으로 간 이후로 내 머리는 쑥대강이 되었노라. 어찌 감고 기름칠 못할까마는, 누구를 위해 모양을 낸단 말인가.(自伯之東。 首如飛蓬。 豈無膏沐。 誰適爲容。)”라는 대목이 보인다.
  8. 8)무염無鹽 : 전국 시대의 추녀醜女를 말한다.
  9. 9)신주백申周伯 : 주백周伯은 신유한申維翰(1681~1752)의 자이다. 호는 청천靑泉이며, 1713년(숙종 39)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저술로 『海遊錄』이 있으며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의 『奮忠紓難錄』을 편찬하였다.
  1. 1){底}康熙五十年密陽載岳山靈井寺開刊本(南權熙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