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동계집(東溪集) /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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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附錄
태허당 대사 행적太虛堂大師行蹟
대사의 법휘는 경일敬一이며, 도명은 태허太虛, 택호는 동계東溪라 하였다. 본래 성은 이씨李氏이니 세조世祖의 후손으로 그 부친은 세주世柱요, 모친은 김씨金氏였다. 한날 어머니 김씨가 꿈에서 한 스님이 나타나 아들 되기를 원하는 꿈을 꾸고는 그를 잉태한 뒤 숭정崇禎 병자년丙子年(1636) 인동부仁同府 약목촌若木村2)에서 태어났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뛰어났으며 누린내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일곱 살에 이르러 어머니를 여의자 오랫동안 통곡하며 슬퍼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지리산의 신해信海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곳에 들렀다가 그 문하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신해 스님이 그를 특이하게 여기고는 “이 아이의 깨끗함과 지혜로움을 보니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진인의 얼굴이구나.”라고 하였다. 마침내 대인이 청을 받아들이고 거두어 주었는데, 신해 대사는 먹을 양식을 풍족하게 챙겨서 관동關東 유점사楡岾寺에서 주석하고 있는 벽암碧巖 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도록 하였다.
벽암 대사의 법제자가 된 그는 널리 깨닫고 막힘이 없으며 만언萬言에 거침이 없었다. 나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스스로 불교를 생각하는 것이 이러하였다. 유교와 도교의 가르침에도 두루 미쳤으니 산문을 나서면 당대 명사들과 교류했으며, 한편으로는 백가百家의 학문도 어려움 없이 이해하여 이로써 벼슬아치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정유년(1657) 영남 관찰사 조계원趙繼遠의 천거로 그는 금오성장金烏城將이 되었고 2년을 머문 후

012_0229_a_08L1)〔附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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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29_a_10L太虛堂大師行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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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師法諱敬一名其道曰太虛號其居
012_0229_a_12L曰東溪本姓在璿源系卽我世祖大
012_0229_a_13L王後裔也父名世柱母金氏夢一佛
012_0229_a_14L請爲子而孕崇禎丙子生於仁同府若
012_0229_a_15L木村幼而頴異不喜羶腥七齡而喪
012_0229_a_16L哭泣哀悲久之會智異山僧信海
012_0229_a_17L偶經其門見而異之曰阿兒淨而慧
012_0229_a_18L有出世眞人相遂得請於大人而提
012_0229_a_19L而去於是厚奉給資粮使之受學于
012_0229_a_20L關東之榆店寺碧岩大師門下所在
012_0229_a_21L爲之遜席愽洽貫通萬言無碍年未
012_0229_a_22L二十矣已而自念佛敎如此儒老盍
012_0229_a_23L亦遍諸出而謁當世名士傍通百家
012_0229_a_24L不勞而解由此藉甚公卿間丁酉嶺南
012_0229_a_25L觀察使趙公繼遠薦爲金烏城將居二

012_0229_b_01L자헌대부資憲大夫에까지 올랐다. 그러자 그는 “이것이 어찌 산인山人으로 있을 곳인가.”라고 탄식하고는 물러나 해인사海印寺 강주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영정사靈井寺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3년을 수행하였다. 그 뒤 다시 여러 제자들과 감로사甘露寺 서암西庵에서 법회를 열었는데, 문인 종민宗敏이 스승을 위해 백련사白蓮舍를 지었다. 무진년(1688)에 중봉사中峰寺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또한 철민哲敏 스님이 내원內院을 세워 스승을 모셨다. 갑술년(1694) 가을 스승은 다시 해인사에서 문도를 모아 화엄법회를 열었는데, 여러 곳의 승려들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하루 사이에 수백 명이 모여들어 석 달의 하안거에 들어갔다. 스승이 장차 큰 강설을 하다가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병을 얻어 법회를 파하고, 비슬산琵瑟山 용천사湧泉寺 극락암極樂庵으로 갔으나 해가 지나도 차도는커녕 병이 더 위중해졌다. 문도들이 스승을 좌우에서 부축해 일으키고 필연으로 글을 쓰되 “스승님이 지금 돌아가시면 저희들이 가는 바는 어디입니까. 청하건대 게송으로 무궁한 세계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스승은 즉시 그 말에 응하여 붓을 쥐고는 사람을 시켜 앞에 천을 펼치게 한 뒤 손수 사구四句를 썼으니 “늘 정문안頂門眼3)을 열어 놓되 생사의 길은 관여하지 말라. 맑은 바람 태허太虛로 불어오니 만고에 도가 살아난다.”라고 썼다. 그때까지 대사의 정신은 밝았으며 글씨의 힘도 평소와 같았는데, 쓰기를 마치자 문득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때는 을해년(1695) 3월 15일이었다.
돌아가신 후 7일 만에 관을 사유대闍維臺로 옮겼는데 상서로운 빛이 관에서 뻗어 나와 원근이 밝게 빛났다. 이를 본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얼굴빛이 환하게 바뀌었다. 그로부터 21일이 지난 후 사중과 스님들이 크게 사유재闍維齋를 올리는데, 흰 비단같이 상서로운 빛이 나와 해와 달도 빛을 잃었다. 그리고 갑자기 정골頂骨 한 조각이 백 보쯤 떨어진 층층 바위 위로 날아갔다. 이에 문인인 운현雲玄 스님이 이를 수습한 뒤 행동거지가 정결한 도인을 불러 단을 깨끗하게 하고 아주 경건하게 꾸몄다. 한참 있다가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오래도록 불고 산골짝이 울리고 어두워지더니 춥고 깜깜해졌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놀라고 두려워하다가 촛불을 켜고 살핀 끝에 사리 9매를 찾아 하얀 사기그릇에 이를 담았다. 사리의 색깔은 마치 유리와 같았고

012_0229_b_01L職帖至資憲嘆曰此豈爲山人地
012_0229_b_02L去而爲海印寺講主又移鉢於靈井
012_0229_b_03L結夏三年又與諸法子設會甘露
012_0229_b_04L寺西庵門人宗敏爲師築白蓮舍
012_0229_b_05L辰移中峰寺又有哲敏比丘立內院以
012_0229_b_06L事師甲戌秋復聚門徒於海印寺廣設
012_0229_b_07L華嚴法會諸方釋流不召而集日得
012_0229_b_08L數百人結夏九旬且大講講未半而
012_0229_b_09L疾作罷而之琵瑟山湧泉寺極樂庵
012_0229_b_10L年不愈疾且革諸門徒翼而起以筆
012_0229_b_11L硏屬曰師今示寂後生何所放請爲
012_0229_b_12L偈語以詔無窮世界師卽應聲操毫
012_0229_b_13L使人伸帋而前手書四句曰常開頂門
012_0229_b_14L不關生死路淸風吹太虛萬古活
012_0229_b_15L一道精神朗然筆勢如常寫畢奄然
012_0229_b_16L坐化旹則乙亥三月十五日也化之七
012_0229_b_17L運棺於闍維臺有祥光出其中
012_0229_b_18L近晃耀觀者無不灑然變色日且三七
012_0229_b_19L衆比丘大設闍維齋瑞彩如白練日月
012_0229_b_20L無光俄而頂骨一片超卓層岩上相去
012_0229_b_21L百步許門人雪玄得之輒募淨行道人
012_0229_b_22L修壇儀甚盛久之風忽急山谷震動
012_0229_b_23L夜色夾寒而黑衆心聳惧明燭而視之
012_0229_b_24L得舍利九枚盛之白沙盂中色如瑠璃

012_0229_c_01L크기는 콩알만 했으니 찬란한 것이 눈길을 빼앗았다. 이때에 여러 산의 절에서 이 이적을 듣고 이르는 자가 폭주하였으니, 사리를 맞아다가 탑을 세운 데가 여섯 군데이다. 즉 대흥大興·영정靈井·감로甘露·중봉中峰·흥국興國·용천사湧泉寺가 그것으로 이들 절은 스승이 평생 동안 강법한 장소로 인연이 있어 사리와 진골로서 모두 부도를 세운 곳이다.
스승이 진신이나 명사에게 준 시, 주고받은 시와 문장 잡록은 무려 천만 언에 이르나 『동계집東溪集』 네 편만이 세상에서 간행되었다. 스승의 세수는 60세이고 법랍은 45세이다.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우리 스승을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데, 기록한 것 역시 만에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숭정후崇禎後 84년 신묘년(1711) 초여름에 문인인 반운도인伴雲道人 자감慈鑑이 삼가 쓰다.

012_0229_c_01L其大如豆離離可賞於是乎諸山寺刹
012_0229_c_02L聞而至者輻湊迎而樹塔者六所卽大
012_0229_c_03L興靈井甘露中峰興國湧泉諸寺師之
012_0229_c_04L生平因果講法之場而舍利眞骨皆建
012_0229_c_05L浮屠其所與縉紳名士酬唱之詞及文
012_0229_c_06L章散錄無慮千萬言有東溪集四篇
012_0229_c_07L行于世師壽六十法臘四十五所傳
012_0229_c_08L於世耳者不足以盡吾師而記之者
012_0229_c_09L亦不能萬一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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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後八十四年辛卯孟夏門人伴
012_0229_c_11L雲道人慈鑑謹識

012_0229_c_12L「附錄」二字編者補入
  1. 2)약목촌若木村 : 지금의 경북 칠곡군漆谷郡 약목면若木面으로, 구미시 인동동에서 남쪽으로 30리 지점이다.
  2. 3)정문안頂門眼 :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 눈 외에 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외눈이 정수리에 있다는 데서 나온 말.
  1. 1)「附錄」二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