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잡지

佛敎第 四十二號

ABC_BM_00013_0042_T_001

0042_0001_a_01L佛敎第 四十二號

0042_0001_a_02L[표지]

0042_0001_a_03L
THE BUDDHISM

0042_0001_a_04L佛敎第四十二號

0042_0001_a_05L大正十三年七月十五日 第三種郵便物認可

0042_0001_a_06L昭和二年十二月一日(每月一日一囘)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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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_0002_a_01L佛敎第四十二號目次

0042_0002_a_02L
口繪 圓測法師塔

0042_0002_a_03L□囘向
卷頭言

0042_0002_a_04L□東洋佛敎의槪說
金泰洽

0042_0002_a_05L□楊州各寺巡禮記
晩悟生

0042_0002_a_06L□殉敎者追憶

0042_0002_a_07L 故李英宰君追悼文
在東京朝鮮佛敎靑年會 會員一同一五

0042_0002_a_08L 故梵鸞李君을追憶하고
金素荷一七

0042_0002_b_01L 故李君의尊靈의게
市隱生二七

0042_0002_b_02L 故宗圓李英宰兄을追悼
朱太淳二七

0042_0002_b_03L 異域에서잠자는李兄의靈압헤
丁鳳允二九

0042_0002_b_04L 嗚呼!李先生英宰氏여!
朴三千三二

0042_0002_b_05L 渡印에際하야同信諸兄에게
釋宗圓遺稿三七

0042_0002_b_06L 節錄鐔津集哀辭하야爲李君哀
之一生三九

0042_0002_b_07L□佛敎决疑 佛紀의的確한것을뭇슴니다
宋一問權相老答四○

0042_0002_b_08L□읽읍시다
一讀子四八

0042_0002_b_09L□佛敎彙報
五○

0042_0002_b_10L□官報招錄
五四

0042_0003_a_01L朝鮮佛敎學人大會發起準備會

0042_0003_a_02L
 佛紀二九五四年十月二十九日下午七時京城東大門外開運寺에서斯界有志者들이多數叅集하야現下朝鮮佛
0042_0003_a_03L敎事情을長時間討議한决果朝鮮佛敎學人大會發起를滿塲一致로可决하고同準備會를開하야發起人募集委員
0042_0003_a_04L을選定하고發起에對한諸般事項은委員의게一任한바學人大會를開催하기까지는來年三月頃에될터이며佛敎
0042_0003_a_05L를硏究하시는이는朝鮮佛敎의現下退敗原因과未來의發展策을充分深究하사만흔讃同으로連袂同業하심을바
0042_0003_a_06L라나이다(發起人募集委員은趣旨書末尾記載)

0042_0003_a_07L朝鮮佛敎學人大會發起趣旨書

0042_0003_a_08L
 佛敎가무엇인가 正道의了達이그것이며 佛敎는무엇하는것인가 實智를普及하자는것이며 佛敎가어
0042_0003_a_09L대잇는가 慧命의相續에잇지아니합니까。그런데이無盡의燈檠을잡은이가누구이며 正法眼藏의鎻鑰을傳
0042_0003_a_10L授하는이가누구입니까。항상法流의源頭에서서잇는우리三學의主人이야말로 실로이寵任에膺하는選衆이
0042_0003_a_11L아닙니까。

0042_0003_a_12L 毒霧가彌天할때에 勇猛의毘藍을짓는이가 과연우리學人이며 邪燄이燒地할때에 知慧의瀑雨를붓는이
0042_0003_a_13L가 과연우리學人입니다。六師의狂瀾에서 般舟를護全한이가 우리學人이며 三武의殘灰에서 摩尼를
0042_0003_a_14L重光케한이가 우리學人입니다。三千年法運의通塞을가음한이가 진실로진실로우리學人일따름입니다。
0042_0003_a_15L學人잇는곧에 佛敎가잇스며 學人의牢確이잇는곧에 佛道의弘揚이잇나니 佛法에만일憂慮할일이잇다
0042_0003_a_16L하면 그것은다만學人의萎靡함이며 學人의頹墮無氣力함뿐일ㅅ것입니다。

0042_0003_a_17L 봅시다。泡幻文明의火宅은 이제阿耨菩提의甘露를渴求합니다。西燭의幻滅은 저절로東光의久遠을嘆
0042_0003_a_18L仰합니다。諸他에窮塞된人類는 이제正히唯佛에서穌甦하기를潜念默企합니다。古佛五百의願과 本師八
0042_0003_a_19L萬의法이 世界改造人類新生의最高標準으로 大界의昏衢에 놉히놉히그寶光을遍照할때가 이제當前하
0042_0003_a_20L얏습니다。王舍로부터五天으로成長하고 西域으로부터東土로鍛鍊한 吾佛의大敎는 이제世界人類의우
0042_0003_a_21L에서 完成大成하려합니다。這裏에自在한 朝鮮의救濟은 區區히別說할ㅅ것도업슴니다。그런즉그總

0042_0003_b_01L持의門路를잡고 轉輪의責司에잇는 우리學人된者의當務가 다시어떠타하오리까。

0042_0003_b_02L 그러나朝鮮佛敎의實情은어떠합니까。朝鮮學人의意氣는어떠합니까。時代는佛敎의것이되려하건마는이
0042_0003_b_03L를拒斥하는者가 도로혀佛敎自身이오 學人自身인觀이업지안치아니합니까。戒에서어떠하며 定에서어
0042_0003_b_04L떠하며 慧에서어떠합니까 일즉元曉를내여서 綜合佛敎의先驅를짓고 일즉無漏를내여서 世界遊化의
0042_0003_b_05L芳躅을내인 朝鮮佛敎本來의 氣魄과抱負를 이제어대가서摸索하게되엿습니까。가장活潑스러운化導를
0042_0003_b_06L할수잇게되엿건마는 아주無狀한自滅의길을取해가는現狀을볼때에 背敎逆法의무서운呵責이 남아잇는
0042_0003_b_07L佛心으로서湧起치아니치몯할ㅅ것입니다。

0042_0003_b_08L 佛敎의興衰는 필경朝鮮佛敎者의一心입니다。朝鮮佛敎의起倒는 필경朝鮮佛敎者의一心임니다 그런
0042_0003_b_09L▣眞理의扶護者요 正法의把持者인學人에게 그最高責任이잇슬밧게업습니다。學人의省到와自覺과奮發과
0042_0003_b_10L精進如何는 이제朝鮮과世界를 正法으로써살리기도할ㅅ것이며 죽이기도할ㅅ것입니다。學人들아 새
0042_0003_b_11L로히各個의初心에反省하십시다。本師의囑累에惕勵하십시다。一隅山門에囊鉢이偏安함을自幸할ㅅ것아니
0042_0003_b_12L라 弘誓를서로警策하고 衆智를한가지迴向하야 摩訶衍那의一實正道를恢拓弘通하기에 僧伽의本領을
0042_0003_b_13L發揮하십시다。그러지아니하면 垂危한慧命을어하겟습니까。深障된實智를어하겟습니까 어허演若
0042_0003_b_14L의頭를 언제까지狂尋하려합니까 衣裏의珠를언제까지等棄하려합니까。

0042_0003_b_15L 바라건대 이제우리가學人大會를發起하야 十方의龍象을 一會에延請함이 徒爾치아니한것을深燭하
0042_0003_b_16L시와 寒天의一劒을單提各帶하시고 奮然히來集하사 弘敎議壇에恢刀을快試하시면 人天의吉福이 이
0042_0003_b_17L에서클ㅅ것업슬ㅅ가합니다。

0042_0003_b_18L右를謹狀합니다。

0042_0003_b_19L佛紀二九五四年十一月 日

0042_0003_b_20L發起人募集委員(無順) 朴龍夏 李淳浩 鄭賛鍾 金炯琪

0042_0003_b_21L           朴弘權 裵性元 金泰沅 鄭和振

0042_0004_a_01L[寫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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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_0004_a_03L支那西安府에잇는玄奘、基公、圓測師의三磚塔(中央은玄奘塔、압헤는測師塔)

0042_0004_a_04L玄奘塔은中央에南向으로在하니五層의高가七十尺이오基公(慈恩)塔은東에서西向으로、測師(圓測)塔은西에서東向으로되엿스니各三層
0042_0004_a_05L에高約十尺이라測師는新羅國王孫이니諱는文雅요字는圓測이라西明寺大德으로玄奘의譯經과地婆訶羅의譯塲에助譯한有名한古德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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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_0005_a_01L
佛敎第四十二號

0042_0005_a_02L[卷頭言]

0042_0005_a_03L回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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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囘向이라하면 우리佛敎徒는 누구라도佛事의最終齋로생각할ㅅ것이다。通稱袈裟佛事의 囘向
0042_0005_a_05L幀畵佛事의囘向 七日祈禱의囘向 百日精進의囘向等은다-最終齋의意味를明示한것이다。그러
0042_0005_a_06L나 이러한것이囘向의意義가아닌것은아니로대 囘向의眞意義는 釋尊께서入山修道하사大覺成
0042_0005_a_07L道하신後에出山說敎하사 一切의衆生으로하야곰 다-無餘涅槃에들게함에잇슬ㅅ것이다。

0042_0005_a_08L 이것을通俗的으로 現代生活에合하야 생각해를ㅅ것가트면我等의日常行爲、資本產業、如何한
0042_0005_a_09L職業이든지正信正念의밋해서行하게되면 畢竟成佛의原因아닌것이업슬ㅅ것이다。어떠한것이든
0042_0005_a_10L지다-極樂世界를完成할莊嚴佛國의大行으로서 價値잇슬ㅅ것이다 우리는이와가튼正信正念行爲
0042_0005_a_11L에對하야 如何한微事小件어라도踈忽히하지아니하고 誠心誠意를다하야畢生의使命으로盡力할때
0042_0005_a_12L에世界人類의幸福에 貢献이되리라고 痛切히늣기는바이다。門前의塵芥를터러버리고階下에雜草
0042_0005_a_13L를除去하는것이라도 이와가튼信念으로하면 훌륭한菩薩行이될ㅅ것이다。하물며 正直한勞働、
0042_0005_a_14L工塲商店의經營、官衙會社의執務가튼 社會를爲하는 勞働일까보냐?正信正念으로 畢生回向
0042_0005_a_15L의目的으로하면 自己生活을爲하는勞働이라도 반드시社會를爲하는 奉仕가될ㅅ것이요 社會를
0042_0005_a_16L爲하는奉仕ㅣ면더욱히自己의福蔭이될ㅅ것이다。그러키때문에 我等의日常生活에 如何한職業
0042_0005_a_17L이라도 高遠한理想을向하야 各各至善大覺의究竟을成就하는 材料資粮임을 自覺하고 實行함
0042_0005_a_18L이囘向의眞意義가될ㅅ것이다。

0042_0005_a_19L 「須彌泰山은 一塵이라도不捨하기때문에 더욱히놉고 恒河巨海는 細流라도 不擇하기때문
0042_0005_a_20L에더욱히깁다」고하거니와 我等行爲에 半沙一塵、微滴細涓이라또 實로妙覺의 須彌를築上하
0042_0005_a_21L고眞如의大智海를作하는곧에 眞實로尊貴한意義가잇슬ㅅ것이다。그러나만일어느것이라도 하나
0042_0005_a_22L가缺하면 至菩은完全되지못하고말ㅅ것이다。이와가태서晴耕雨讀、沐雨櫛風 이것이다- 天下國
0042_0005_a_23L고 人生宇宙에關한것임을知得할때에「囘向」의大道가 스사로菩薩大七의반드시 履修할바가된
0042_0005_a_24L家에繫하다。그리하야 自己의一善은 他의萬菩을發起케하고 自作의微德은 萬人의大德을激勵
0042_0005_a_25L하야 助作하고完成하야 한가지힘써서 世出世間의偉大한善德 無上한大道를이루게할ㅅ것이다
0042_0005_a_26L囘向은三世를通하고 十方에亘하는廣大한祈禱이다。「願以此功德、普及於一切、我等與衆生、皆
0042_0005_a_27L共成佛道」는囘向을要略한것이니 要컨대囘向은 一切의菩行과凡有의美事로서 自覺覺他共存共
0042_0005_a_28L榮의大自覺의誓願에立脚하야 自他平等의大安樂의理想에進向함이 佛敎의大義인同時에 囘向의
0042_0005_a_29L目的이라고하겟다。

0042_0005_b_01L東洋佛敎의槪說

0042_0005_b_02L東京 金泰洽

0042_0005_b_03L五、日本의佛敎

0042_0005_b_04L第三期 鎌倉時代、南北朝時代、室
0042_0005_b_05L町時代、安土桃山時代(四百餘年間)

0042_0005_b_06L
 第三期에이르러서는 淨土、臨濟、曹洞、眞、日
0042_0005_b_07L蓮宗과믿時宗等의諸宗派가 新興하얏슴니다。從來
0042_0005_b_08L의諸宗派中의律宗、華嚴宗等의再興도 업는바가아
0042_0005_b_09L니나 就中에치우처 淨土、臨濟、曹洞、眞、日蓮
0042_0005_b_10L等의諸宗派가 隆盛의極을呈하얏슴니다。

0042_0005_b_11L 淨土宗 此는觀無量壽經、無量壽經、阿彌陀經의
0042_0005_b_12L三都의經典과 天親의徃生淨土論에依하야 宗義를
0042_0005_b_13L세우고 專히念佛의一行으로써 淨土徃生을目的함
0042_0005_b_14L으로이와가튼宗名이잇게된것임니다 此宗의淵源은
0042_0005_b_15L勿論印度 支那에잇는것이나 日本에서는 空也上人
0042_0005_b_16L으로부터惠信僧都、大原의良忍上人을經하야 法然
0042_0005_b_17L上人源空에至하야大興하얏슴니다。그럼으로日本淨
0042_0005_b_18L土宗의初祖는 空也上人이될ㅅ것이나 法然上人이
0042_0005_b_19L大興식혓다하야 淨土宗의開祖를 圓光大師法然源
0042_0005_b_20L空으로써崇奉함니다。源空의著述로는選擇本願念佛
0042_0005_b_21L集이잇슴니다。

0042_0005_b_22L 淨土宗이一時에興隆함에 道俗이相竸하며歸依함
0042_0005_b_23L으로써 遂히諸宗의排斥을밧게되야 一門의徒가災
0042_0005_b_24L厄을만난적도잇섯슴니다。源空의下에聖光、聖覺、
0042_0005_b_25L金光、證空、源智、隆寬、覺期、幸西等의多數한弟
0042_0005_b_26L子가잇는바 聖光의末은鎭西流를作하고 證空의末
0042_0005_b_27L은西山流를作하고 隆寬의末은 長樂寺流를作하고
0042_0005_b_28L覺明의末은九品寺流를作하얏슴니다。其他幸西의一
0042_0005_b_29L念義와法蓮의諸行義가잇슴니다 就中鎭西流에는良
0042_0005_b_30L忠이出하야 宗風을大揚하얏나니 그의門下에寂惠、
0042_0005_b_31L性眞、尊觀、道光、禮阿、慈心이出하야 各其一流
0042_0005_b_32L를作하얏슴니다。그런가운데寂惠의白旗流와 尊觀

0042_0006_a_01L의名越流가繁榮한바 室町時代에聖冏 聖聰等이出하
0042_0006_a_02L고 드듸여道譽貞把、感譽存貞의二人이出하야 白
0042_0006_a_03L旗流가크게流傳케되엿슴니다。

0042_0006_a_04L 江戶時代에入하야 關東에는存應이잇고 關西에
0042_0006_a_05L는滿譽가잇서서 크게一宗의綱格을定立하엿스며存
0042_0006_a_06L應의밋헤喬龍、廓山、了的、隨波等이잇고 隨波의
0042_0006_a_07L弟子檀通의下에顯譽가잇고 存應을前後하야 道譽
0042_0006_a_08L의末流에雄譽가잇고 다시同流에良定、良照等이잇
0042_0006_a_09L서서 江戶時代에淨土宗의學者가叢出하얏슴으로그
0042_0006_a_10L의隆盛을諸宗으로써따르지묻하게하얏슴니다。그런
0042_0006_a_11L中에도無能、貞極、關通、法岸、德本等이宗風의宣
0042_0006_a_12L揚을힘썻슴니다。

0042_0006_a_13L 眞宗 此는淨土의三部經을正依의經으로하야 그
0042_0006_a_14L의宗義를세우는바 總依三經、(無量壽經、觀無量壽
0042_0006_a_15L經、阿彌陀經)과別依大經(無量壽經)을分하야 無量
0042_0006_a_16L壽經을 特히尊重하게역임니다。그래서此宗은 淨
0042_0006_a_17L土眞宗이라稱하야 淨土徃生의正因을 他力廻向의
0042_0006_a_18L信心에有하다하야 行者歸命의一心을勸함니다。

0042_0006_a_19L 見眞大師親鸞이 顯淨土眞實敎行證文類를撰述하
0042_0006_a_20L야 眞宗을開立하얏슴으로 眞宗의開祖는親鸞上人이
0042_0006_a_21L라함니다。親鸞은法然의門에出하야 念佛行者로一
0042_0006_a_22L生을刻苦精進한바 念佛禁制의法難에連坐한바되야
0042_0006_a_23L越後라는곧으로謫配되얏섯슴니다。그러나後에越後
0042_0006_a_24L로부터東國에入하야敎化에努力하얏슴니다。그의門
0042_0006_a_25L下弟子가數多한中眞佛、性信、顯智、源海等이上首
0042_0006_a_26L弟子라함니다。親鸞大師가滅後 京都及東國地方에
0042_0006_a_27L弟子들이相集하야 數多의小敎團을지엿슴니다。親
0042_0006_a_28L鸞의血族이山城大谷의影堂에 代代로守職하고잇든
0042_0006_a_29L바覺如가出하야 大谷의影堂에據하야 敎團統一의
0042_0006_a_30L大事를畫策할새 此에對抗하야 漸次로分派가生하
0042_0006_a_31L게되엿슴니다。即眞佛의末은高田專修寺派를作하고
0042_0006_a_32L性信의末은錦織寺派를作하고 眞佛의下에顯智、源
0042_0006_a_33L海、專海等이잇서서 各分派를作하얏슴니다。

0042_0006_a_34L 覺如의末流도 또한分하야三派를作하얏슴니다。
0042_0006_a_35L그러나此等各分派는 敎義上에差異가잇슴은아님니
0042_0006_a_36L다 應仁亂以後에各宗衰頹의機를乘하야 覺如의末
0042_0006_a_37L에蓮如가出하야 크게眞宗을興하고 專修寺에眞慧
0042_0006_a_38L가잇서서 蓮如와가치呼應하야 또한眞宗의繁昌을
0042_0006_a_39L致케하얏슴니다。江戶時代에는 兩本願寺의下에宗
0042_0006_a_40L學을振起하고 學者가輩出하엿스니 特히法霖、深

0042_0006_b_01L勵 功存 德龍等은著名한學者들이엿슴니다。

0042_0006_b_02L 時宗 此宗은阿彌陀經의臨命終時云云의文句에依
0042_0006_b_03L하야 宗名을세웟나니 即一遍智眞이熊野權現의神
0042_0006_b_04L勅으로부터 淨土의三部經中 特히阿彌陀經을尊重
0042_0006_b_05L히하고 其外法華經、華嚴經等에 念佛을說한諸經
0042_0006_b_06L에依하야 宗義를세웟다함니다。그러나 開祖一遍
0042_0006_b_07L上人의遺戒에準하야理論보다도 實行을第一義로써
0042_0006_b_08L하며 勸進賊算의遊行을일삼는故로 遊行上人이라
0042_0006_b_09L고도稱함니다。一遍의滅後第二世他阿의時에一宗의
0042_0006_b_10L宗規를具備하얏스며 第七世託阿의時에宗義를大成
0042_0006_b_11L하얏스며 第十二世尊觀親王以後一宗의勢力을갓게
0042_0006_b_12L되야 末流十二派를作하게되엿슴니다。

0042_0006_b_13L 臨濟宗 此는禪宗의一宗派이니 禪宗은以心傳心
0042_0006_b_14L으로써 宗旨를삼는故로 所依經論은업슴니다。그
0042_0006_b_15L러나達摩大師가 楞伽經을師하얏다함으로 楞伽經
0042_0006_b_16L으로所依經이라하야도無妨하며 達摩大師의血脈論
0042_0006_b_17L이잇슴으로 血脈論으로써所依論을삼드래도 無妨
0042_0006_b_18L하겟슴니다。日本에禪宗이傳來케됨은 孝德朝에唐
0042_0006_b_19L僧道昭에依하야비롯하야 奈良時代에道璿、平安時
0042_0006_b_20L代에最澄、圓仁、義空 覺阿等이數次此를傳하야왓
0042_0006_b_21L슴니다。그러나宗風을宣揚하기에는 미치지못하얏
0042_0006_b_22L슴니다。

0042_0006_b_23L 그러다가鎌倉時代의初、千光祖師明菴榮西가 入
0042_0006_b_24L宋하야此를傳하얏슴으로 榮西가日本臨濟宗의開祖
0042_0006_b_25L가되엿슴니다。明菴이비로서 建仁寺를開하고後에
0042_0006_b_26L鎌倉의壽福寺에入하야此를傳할새 未幾에聖一國師
0042_0006_b_27L圓爾辨圓이入宗하야 此를傳하야 東福寺를開하고
0042_0006_b_28L宋僧蘭溪道隆이渡來하아 鎌倉의建長寺를 開하고
0042_0006_b_29L蘭谿의法嗣約翁德儉의下에 寂室元光이잇서서元에
0042_0006_b_30L入하야此를傳한後 近江에永源寺를開하고 宋僧無
0042_0006_b_31L學祖元이此間에渡來하야 鎌倉의圓覺寺를開하고圓
0042_0006_b_32L爾의門下에無關普門이잇서서入宋하얏다가 渡來한
0042_0006_b_33L後南禪寺를開하고 無學의法嗣高峯顯日의門下에正
0042_0006_b_34L覺國師夢窓疎石이잇서서 南北朝時代에天龍寺를開
0042_0006_b_35L하니 그의門下가구름가치輩出하야 宗風을大振하
0042_0006_b_36L얏슴니다。

0042_0006_b_37L 就中春屋妙葩는 相國寺를開하고 이보다先하야
0042_0006_b_38L南浦紹明의法嗣宗峰妙超가 大德寺를開하고 그의
0042_0006_b_39L法嗣關山慧玄이 妙心寺를開하얏스며 後에無文元
0042_0006_b_40L選이遠江에方廣寺를開하고 愚中周及이安藝에佛通

0042_0007_a_01L寺를開하고 法燈國師心地覺心의法嗣慈雲妙意가越
0042_0007_a_02L中에國泰寺를開하고 拔隊得勝이甲斐에 向嶽寺를
0042_0007_a_03L開하얏슴으로 當時에輩出한禪德이 其數를不知할
0042_0007_a_04L만콤만핫스며 京都鎌倉에五山十刹의盛觀을呈케하
0042_0007_a_05L얏슴니다。그러나室町時代의末에至하야 宗風이頹
0042_0007_a_06L廢하얏다가 江戶時代의初에嶺南、澤菴、愚堂、一
0042_0007_a_07L絲等이出하야 겨우 再興하얏스며 同時代의後期
0042_0007_a_08L에白隱慧鶴이出하야 宗風이一時에 振興케되엿슴
0042_0007_a_09L니다。

0042_0007_a_10L 曹洞宗 此亦禪宗의一宗派이니 日本의曹洞宗은
0042_0007_a_11L承陽大師希玄道元으로써 第一祖를삼슴니다。道元
0042_0007_a_12L은入宋하야 長翁如淨으로부터 此를傳來하야越前
0042_0007_a_13L이라는곧에 永平寺를開하얏슴니다 道元의法嗣에孤
0042_0007_a_14L雲懷奬이잇스며 그의法嗣에徹通義介가잇서서宗風
0042_0007_a_15L宣揚에努力하얏슴니다。그러나그宗風은 北國一部
0042_0007_a_16L에서弘傳함에止할뿐이엿슴니다。그러다가徹通의門
0042_0007_a_17L下에常濟大師瑩山紹瑾이出하야 能登國에總持寺를
0042_0007_a_18L開하얏스니 只今東京附近鶴見總持寺가이것임니다

0042_0007_a_19L 常濟大師門下에明峯素徹、峨山紹磧等이잇스니峨
0042_0007_a_20L山門下에通幻寂靈 太源宗令等이잇서서 크게繁榮하
0042_0007_a_21L얏슴니다。通幻은丹波國에永澤寺를開하얏스며 그
0042_0007_a_22L의門下에十哲이잇섯다함니다。此後부터曹洞宗이各
0042_0007_a_23L地에傳播하야 室町時代에至하야는 全國에瀰漫하게
0042_0007_a_24L되엿슴니다。江戶時代에는 月舟宗胡、卍山道白等
0042_0007_a_25L이 宗弊矯正에努力하얏스며 一方으로天桂傳尊、
0042_0007_a_26L面山瑞方等이出하야 宗風擧揚에 全力을밧치엿슴
0042_0007_a_27L니다。

0042_0007_a_28L 日蓮宗 此는法華經、無量壽經、觀普賢經等의三
0042_0007_a_29L部의經典에依하야 宗義를세운바 特히法華經一部
0042_0007_a_30L를正依經으로써함니다。그런데日蓮宗이라名稱함은
0042_0007_a_31L立正大師日蓮上人으로써開祖를삼는까닭이라함니다
0042_0007_a_32L日蓮은立正安國論、觀心本尊抄等을撰述하야 宗義
0042_0007_a_33L를宣揚한바 그의態度가峻烈하야 諸宗을折伏하려
0042_0007_a_34L함으로써努力하얏슴니다。그런까닭으로 日蓮大師
0042_0007_a_35L는자주자주法難이身邊에迫한바되야 伊豆、佐渡에
0042_0007_a_36L配流한바가되야 그의苦難이적지아니한듯함니다。

0042_0007_a_37L 그러나晩年에延山에잇서서 門徒敎養에努力하얏
0042_0007_a_38L스니 그의弟子中日昭、日朗、日興、日頂、日持、
0042_0007_a_39L日向等의六人은著名한者엿슴니다 日蓮大師가滅한
0042_0007_a_40L後日興은同門의諸弟子와交를絶하고 駿河國에大石

0042_0007_b_01L寺를開하얏스니 이것이同宗分派의始初엿스며 後에
0042_0007_b_02L法華經本迹二門의一致勝劣에就하야 異論이百出한
0042_0007_b_03L지라 此로부터더욱이分派를生하게되엿슴니다 日
0042_0007_b_04L朗의下에는 日像、日印等이出하얏스니 日像은鎌
0042_0007_b_05L倉으로부터上하야宗風을宣揚하고 妙顯寺를開하얏
0042_0007_b_06L스며 日印은越後國에本成寺를開하얏슴니다 南北
0042_0007_b_07L朝時代에는 日什이出하야妙滿寺를開하고 日像의
0042_0007_b_08L後에日隆이出하야 本能寺를開하고 드듸여日直이
0042_0007_b_09L出하야本隆寺를開하얏스며 江戶時代에入하야는日
0042_0007_b_10L奧가不受不施의義를唱하고 備前國에妙覺寺를開하
0042_0007_b_11L얏스며 日講은本覺寺를開하얏슴니다。그리고其後
0042_0007_b_12L에所謂中興의三師日重、日乾、日遠이出하야 宗學
0042_0007_b_13L을興하고一宗의隆昌을致하게하얏슴니다。

0042_0007_b_14L第四期 江戶時代(二百六十餘年間)

0042_0007_b_15L
 此時代에入하야特筆할ㅅ것은 明으로부터 黃蘗
0042_0007_b_16L宗이日本에傳來한것과 修驗道、普化宗이새로成立
0042_0007_b_17L된것임니다。諸宗派는다몯持續의 狀態에處하얏고
0042_0007_b_18L別로히興衰가업슨듯함니다。

0042_0007_b_19L 黃蘗宗 此亦禪宗의一宗派이니 此宗의特徵은禪
0042_0007_b_20L宗에淨土宗을附加한것임니다。明僧眞空大師隱元隆
0042_0007_b_21L琦가閩州의黃蘗山에費隱通容의法을受하고 日本에
0042_0007_b_22L渡來한바 當時臨濟曹洞二宗이한가지不振하는狀態
0042_0007_b_23L에處한故로 크게歡迎을밧게되야 山城國宇治에黃
0042_0007_b_24L蘗山萬福寺를建立하얏슴니다。그러나未幾에法席을
0042_0007_b_25L木菴性瑫에讓한故로木菴은江戶로부터下하야 東國
0042_0007_b_26L에宗風을宣揚하얏슴니다。木菴의門下에鐵牛道機、
0042_0007_b_27L潮音道海、慧道極明等이出하얏스니 이들은著名한
0042_0007_b_28L者이며 特히鐵眼道元은 大藏의開版으로써高名함
0042_0007_b_29L니다。

0042_0007_b_30L 黃蘗山은木菴의後 明僧慧林性機、同獨湛性瑩을
0042_0007_b_31L經하야 漸次로衰退하다가明僧高泉性潡이來하야住
0042_0007_b_32L持가됨으로부터 一時再興하얏슴니다。高泉의後千
0042_0007_b_33L呆性按、悅山、道宗等을經하야 龍統性潜이日本人
0042_0007_b_34L으로서처음法席을嗣하얏스나 宗風이不振하얏스며
0042_0007_b_35L嘉永의頃에良忠如隆이出하야 一時擴張의狀態를呈
0042_0007_b_36L하얏슬뿐임니다。

0042_0007_b_37L 修驗道 此는文武朝에 役小角의開剏이라하는바
0042_0007_b_38L小角은大和國의葛城山에入하야 孔雀明王經을誦持
0042_0007_b_39L하얏다함니다。그런데後에望風慕歸하야修行하는者

0042_0008_a_01L가續出하게되엿다하며 平安時代에는眞言宗의聖寶、
0042_0008_a_02L天台宗의增譽가 大和의大峯(金峯山)에入하야 修
0042_0008_a_03L行하얏슴으로부터 眞言天台二宗의內에興하얏다함
0042_0008_a_04L니다。

0042_0008_a_05L 室町時代以後、出羽國의羽黑山、豊前國의產山等
0042_0008_a_06L에도入하야修行하는者가만핫다하며 江戶時代에入
0042_0008_a_07L하야 眞言宗三寶院 天台宗聖護院에分屬하게된바
0042_0008_a_08L前者를當山派라하고 後者를本山派라고稱하얏다함
0042_0008_a_09L니다。明治初에一次廢止하얏스나 後에再興케된바
0042_0008_a_10L前者는三寶院의惠印部라하며 後者는修驗道라고云
0042_0008_a_11L하게되엿는데 天台宗金峯山寺에서 統轄케되엿다
0042_0008_a_12L함니다。

0042_0008_a_13L 普化宗 此는禪의支派로서 唐의普化로부터起한
0042_0008_a_14L것이라함니다。鎌倉時代에法燈國師心地覺心이 此
0042_0008_a_15L를傳來하얏다하는데 實은同時代로부터 室町時代
0042_0008_a_16L의風流의徒들이洞簫를불고단이면서 修行하는者가
0042_0008_a_17L잇슴으로 此를俗稱薦僧(고모소-)이라고부르게되
0042_0008_a_18L엿는데 江戶時代에入하야 비로서普化宗의名이잇
0042_0008_a_19L게되엿스며 浪人輩들이修行을托하고 寄身하는者
0042_0008_a_20L가不少하얏슴으로 此를虛無僧이라고불럿다함니다
0042_0008_a_21L그런데幕府가그의本山을定하야 下總國一月寺 武藏
0042_0008_a_22L國鈴法寺를設立하고 彼等을管理케하얏다함니다。
0042_0008_a_23L此가明治初에廢止되엿슴으로 今日에는다몯그의遺
0042_0008_a_24L風을私傳하는者잇슴에不過함니다。

0042_0008_a_25L第五期 明治維新時代로부터今日
0042_0008_a_26L에이르기까지

0042_0008_a_27L
 明治時代에入하야는 神佛分離의大事件이起하야
0042_0008_a_28L毀釋排佛의悲慘한歷史가잇섯스나 一時的임에不過
0042_0008_a_29L하얏스며 諸宗派가對立하야 敎學硏究와制度變更
0042_0008_a_30L이잇서서 서로서로奇觀을呈하얏스나 實은舊時代
0042_0008_a_31L의狀態를延長維持하야新時代의思潮와學風을加味함
0042_0008_a_32L에不過하다고하겟슴니다。十三宗五十八派가對立하
0042_0008_a_33L야잇스나 此時代에새로成立한者가아니요 임의前
0042_0008_a_34L時代에旣成된것을維持發展함에止할뿐임니다。

0042_0008_a_35L 그러나舊制度를變更식히고 新制度를採用하야內
0042_0008_a_36L로는小學、中學、大學을세워서 人才를養成하야敎
0042_0008_a_37L學을硏究케하고 外로는布敎所及病院을設立하야佛
0042_0008_a_38L敎를宣傳하는同時에 實際로社會事業을分擔하야濟
0042_0008_a_39L民度生에努力하고잇슴니다。그럼으로日本의現勢를

0042_0008_b_01L볼ㅅ것가트면 學者도佛敎徒요 事業家도佛敎徒요
0042_0008_b_02L敎育家도佛敎徒인지라 果然佛敎로써全國民의思想
0042_0008_b_03L을指導하며 文化를發展식히는觀이잇슴니다。

0042_0008_b_04L 現代日本佛敎徒의努力은 何方面으로보든지 感
0042_0008_b_05L心되지아니하는바가업거니와 特히枚擧할ㅅ것은敎
0042_0008_b_06L理硏究와 宗旨宣揚과事業發展이라하겟슴니다 各
0042_0008_b_07L宗이竸爭하면서 自宗의高僧及撰述을編纂하고敎理
0042_0008_b_08L와歷史를硏究하며 人才를泰西及印度에派遣하야西
0042_0008_b_09L洋哲學을輸入하야 東洋哲學의宗祖인佛敎를科學的
0042_0008_b_10L으로硏究解釋하야 現代人心理에適合하게宣揚하며
0042_0008_b_11L印度本國外 錫蘭、暹羅、西藏等에藏在한 巴利文、
0042_0008_b_12L梵文、西藏文을硏究하야 佛敎原典을發見하는同時
0042_0008_b_13L에漢譯의誤謬를改正하는等 前代에敢히미치지못할
0042_0008_b_14Lㅅ바를敢行하고잇슴니다。大正時代에入하야 大日
0042_0008_b_15L本佛敎全書刋行、大正新修大藏經刋行、東方佛敎叢
0042_0008_b_16L書刋行、支那佛敎史蹟刋行等의新事業은 前代를通
0042_0008_b_17L하야比할수업는大事業이라하겟스며 무엇으로보든
0042_0008_b_18L지日本佛敎는 世界佛敎의先驅者요代表者라고할수
0042_0008_b_19L밧게업스리라함니다。

0042_0008_b_20L六、結論

0042_0008_b_21L
 以上에述한印度、支那、朝鮮、日本四處에分하야
0042_0008_b_22L走馬燈가치 極히大略으로써 東洋佛敎槪說의稿를
0042_0008_b_23L마추엇슴니다。그러나疎漏한點이不少함니다。各各
0042_0008_b_24L佛敎가發達된그나라를따라서 或은三千年或은二千
0042_0008_b_25L年 或은一千五百年、或은一千二三百年式、적어도
0042_0008_b_26L千年以上의長歲月을通하야發達된지라 專門家가一
0042_0008_b_27L處一時代에限하야 硏究하드래도畢生의事業이라하
0042_0008_b_28L거든하물며 初學인筆者가四處를通하야紹介함이릿
0042_0008_b_29L가勿論疎漏함이當然한일이라고생각함니다。

0042_0008_b_30L 然中에도每號에繼續하야 逐號揭載되엿스면조흘
0042_0008_b_31Lㅅ것인데 紙面의關係로二三個月式건너서 記載되
0042_0008_b_32L기때문에 더욱히減興됨이적지안슴니다。그러나우
0042_0008_b_33L리朝鮮에잇서서 우리敎界의恩人인 李無能先生、
0042_0008_b_34L權退耕先生이게시여서 朝鮮佛敎歷史에對하야는十
0042_0008_b_35L數年前부터 깁히敎示하야주시고紹介하야주신바가
0042_0008_b_36L만핫스나 印度佛敎史라든지 支那佛敎史라든지日
0042_0008_b_37L本佛敎史가튼것은 아즉까지紹介된적이업슴니다。
0042_0008_b_38L그럼으로변변치몯한拙稿라도 우리朝鮮以外佛敎史
0042_0008_b_39L硏究의發端이된다할ㅅ것가트면 多幸으로써역이고
0042_0008_b_40L疎漏의責을充하랴하나이다。特히佛敎講院에서修學
0042_0008_b_41L하시는諸友는前號를通하야一次更讀함도無益하지아
0042_0008_b_42L니할ㅅ줄로생각함니다

0042_0008_b_43L佛紀二九五四年七月金剛杵三週年紀念號를發行하고鹿苑齋에서

0042_0009_a_01L楊州各寺巡禮記(續)

0042_0009_a_02L晩悟生

0042_0009_a_03L
 이金谷市라는데는在來로有名하든塲所인데 洪陵
0042_0009_a_04L을奉安함으로부터더욱이繁華地가됨은事實이다 和
0042_0009_a_05L道面으로通한大路를끼고잇서學校、郵便所、金融組合
0042_0009_a_06L所、警察官駐在所等이左右로羅列하고市街의狀况도
0042_0009_a_07L볼만한點이만히잇다 어느旅舘에드러가서午饒를식
0042_0009_a_08L여먹고同行尹君을向하야「우리가偶然히名所를지내
0042_0009_a_09L가게되엿스니 洪陵參拜를하고감이 어떠한가요」「예
0042_0009_a_10L-좃슴니다」「자-그러면지금부터準備합시다」携帶
0042_0009_a_11L品인가방은主人에게맛겨두고 淨襪을改着한後陵所
0042_0009_a_12L入口로드러서게되엿다「우리가朝鮮에잇서尊嚴한陵
0042_0009_a_13L所參拜는오늘날처음임에 그節次를미리아는것이相
0042_0009_a_14L當하다」하고路左商店에드러가서參拜하는順序를무
0042_0009_a_15L러보왓다「예-參拜를하량이면어려운일이잇슴니다
0042_0009_a_16L누구를勿論하고李王職紹介狀이업는同時는 그만拒
0042_0009_a_17L絶을當코마는것임니다」한다「아-그럿슴잇가그러면
0042_0009_a_18L우리는一步라도더드러갈ㅅ것업슴니다」하고그만물
0042_0009_a_19L이업시도라서면서 三年前京都를갓슬때에桃山御陵
0042_0009_a_20L을參拜하든일이몰란결에聯想된다 一行五人이自動
0042_0009_a_21L車를타고御陵入口에下車하야二百餘層의石階를발바
0042_0009_a_22L올라一同이洗手하고 御陵扉下에就하야靜肅히參拜
0042_0009_a_23L하고 다시昭憲皇后의玄宮인東御陵에躬進하야前과
0042_0009_a_24L가치參拜한後囘路를當하야「久欽威德與天長、參拜
0042_0009_a_25L桃山下夕陽、聖代昇平難再見、兩陵松栢已蒼蒼」이
0042_0009_a_26L라는感慕詩까지지어가면서活潑히도라왓든것이다。
0042_0009_a_27L私家로말을하면子女가父母의先塋에省墓하는거와一
0042_0009_a_28L般이라할ㅅ것가튼데 日本에서는그와가튼懷遠의德
0042_0009_a_29L化가融融하거늘 權域은어찌하여서여게까지齷齪함
0042_0009_a_30L인가? 그만主人家에도라와서다시束裝하여가지고
0042_0009_a_31L磨石隅里로通한大路를向하야한고개를넘어선즉 十
0042_0009_a_32L餘家되는酒店이左右로갈려잇다 그곧에서길을누려

0042_0009_b_01L바른손편으로놉다란산을치켜올랏다 비록森林은업
0042_0009_b_02L스나崎嶇한樵路가險하기는이업다 마루턱이에올
0042_0009_b_03L라서서잠깐歇脚하다 다시一里餘나되는골짝운이로
0042_0009_b_04L나려가게되엿다 山비탈을도라개울을건너고 또숩
0042_0009_b_05L풀을헤처目的地에到着하기까지는 여간힘이들지안
0042_0009_b_06L엇다 山路일망정조곰平坦하여지고野氣를띄인地點
0042_0009_b_07L이나서자 右便으로는瓦阜面所所在地德沼로通한길
0042_0009_b_08L을끼고잇는人家가드믄드믄보이고왼켠개울건너저쪽
0042_0009_b_09L에는 上下二棟으로되여잇는十餘間의草家집과但한
0042_0009_b_10L간될락말락하는盖瓦집이뒷山끗을다라잇다 全鮮佛
0042_0009_b_11L敎寺院이라고하면或托鉢은하여먹을지라도草家집이
0042_0009_b_12L절이라하는곧은別로업슴으로疑雲이疊起하야 左右
0042_0009_b_13L로바장일적에마츰村翁이지나감을보고 寺院所在를
0042_0009_b_14L무른즉「예-저게잇는草家집이即妙寂寺임니다」한다
0042_0009_b_15L그제야同行尹君도「當寺가草家집이라는말을듯기는
0042_0009_b_16L들엇는데얼는記憶이아니낫슴니다 다시본즉저盖瓦
0042_0009_b_17L집이山神閣이아니면七星閣이겟고 또三四層의古塔
0042_0009_b_18L이저끗헷집뒤에잇지안슴잇가 건네다보면절터가分
0042_0009_b_19L明한것인데 공연히한참동안을머뭇거렷슴니다 初
0042_0009_b_20L行에例事이지요 그만드러갑시다」하고조그마한돍
0042_0009_b_21L다리를건너서집압헤當到하니 住持任廓雲氏가반가
0042_0009_b_22L히마지면서「이게왼일임잇가어서올라오십시요」한
0042_0009_b_23L다 건넌방으로드러가서行李를整頓하고 차저온因
0042_0009_b_24L由를說明한後잠ㅅ간쉬노라니 발셔서녁床이드러오
0042_0009_b_25L고 뒤를이어京城갇든當寺監院金元洽君이드러서면
0042_0009_b_26L서「오실줄은짐작하엿슴니다마는정말반갑슴니다」한
0042_0009_b_27L다 우리도「監院스님의季氏가 京城學校運動틀에
0042_0009_b_28L떠러저서 손묵을상하엿다함에入院治療를씨기자면
0042_0009_b_29L畢竟더될것이라 이번길에맛나보지못하면 그런遺
0042_0009_b_30L憾이업겟다고걱정을만히하엿드람이다 자-바든밥
0042_0009_b_31L상이닛가시장한김에먹고 從容히이약이합시다」그
0042_0009_b_32L럭저럭두어시간을지낸뒤에 조그마한람포불을압헤
0042_0009_b_33L노코 主客四人이臨時茶話會를開催하엿다「그런데
0042_0009_b_34L우리가食畢休憇을利用하야 四面을둘러보왓스나이
0042_0009_b_35L집에는懸板한조각이업스니 무엇으로憑考할수가잇
0042_0009_b_36L슴잇가 住持스님은年晩하심으로百事를監院에게委
0042_0009_b_37L任하섯다니 不可不金君이口頭로라도仔細히일러주
0042_0009_b_38L서야하겟슴니다」「글세올시다本山에서는이번길이처
0042_0009_b_39L음이지요마는 이걸사절이라고官民間에或차저오는
0042_0009_b_40L사람은 이절創建이언제인가 또는重修는멧해인가

0042_0010_a_01L무슨豫約이나한것가치제각금뭇슴니다그려 對答을
0042_0010_a_02L할라니憑據가업고 모르겟다니참으로땀이흐름니다
0042_0010_a_03L그저나는덕절잇다가여게온지가 얼마아니되잇가먼
0042_0010_a_04L첨갈려간住持가누구이냐하면 金石霽올시다라는對
0042_0010_a_05L答할資料밧게업슴니다」허-엇지하면조흔가 그렷
0042_0010_a_06L타고本末歷史에除外할수는업는것이요 아무리생각
0042_0010_a_07L하여도딱한일이야 輿地勝覽에도參考하여보왓거니
0042_0010_a_08L와 妙寂寺註에金守溫記라한말만잇지 정말記文이
0042_0010_a_09L잇서야지요 그記라는것도李朝世廟當時임을짐작할
0042_0010_a_10L뿐이지 刱建과重修를分別할수업고 東便으로밧한
0042_0010_a_11L땍이를隔하여잇는墓碑를依據하면 墓主李濟冕이李
0042_0010_a_12L朝肅宗四十四年戊戌에死亡하야 翌年己亥에當寺左
0042_0010_a_13L麓至近之處에入葬하고 又明年庚子에竪碑하엿슨즉
0042_0010_a_14L其時부터當寺의凋殘을推定할수잇스며 現在十餘間
0042_0010_a_15L의草葺이라는것도山神閣記文을對照하면「四間十楹
0042_0010_a_16L已閱數百年星霜」이라하엿스니 비록草家일망정발
0042_0010_a_17L셔李氐入葬前에結構임을알수잇다 當時道塲으로되
0042_0010_a_18L엿든數十町의田野에散在한礎石、瓦礫、古塔等은吾人
0042_0010_a_19L으로感慨만자아낼뿐이고 不可不「大朝鮮開國五百
0042_0010_a_20L四年乙未端陽月初吉 庠士金敎憲 誌」라는山神閣
0042_0010_a_21L記文에照하야그것이나마左記할수받게업다。

0042_0010_a_22L妙寂寺(本山奉先寺의方等地)

0042_0010_a_23L
 當寺는楊州郡治의南으로約八里를隔한瓦阜面月文
0042_0010_a_24L里妙寂山下에在하니距今三十二年前

0042_0010_a_25L 李太王三十三年日本明治天皇二十八年
淸德宗光緖二十一年
乙未春에圭旿大
0042_0010_a_26L師가山神閣을始建하다。

0042_0010_a_27L 前記以外에는할수업시되엿스니 인제는다그
0042_0010_a_28L만두고다른것이나무러봅시다 當寺에對하야무슨傳
0042_0010_a_29L說을듯지안엇습잇가「잘모르지요附近古老의傳해오
0042_0010_a_30L는한가지의말을드르면 저-案山말이올시다 한中
0042_0010_a_31L間에낭그도서지안코밧마지기나되여보이는平坦한地
0042_0010_a_32L點이잇지안슴잇가 그것은徃昔壬辰丙子의役에僧侶
0042_0010_a_33L의軍功이浩大하다하야南北漢緇營을設立하고武藝로
0042_0010_a_34L써科擧를보게하든時代에 當寺에서도此에應試하기
0042_0010_a_35L爲하야僧侶로써習射하든塲所임에矢鏃이至今까지間
0042_0010_a_36L間發現된담니다」「그런데寺有山林은幾町步나잇슴잇
0042_0010_a_37L가」「山林을두고말을하면그만긔가막히지요 그前에
0042_0010_a_38L는前後左右에數百町步가모다寺有이든것을 私有山
0042_0010_a_39L測量時代에其時住持는測量費를만히負擔될까刼이나

0042_0010_b_01L서집뒤에二三町假量을재여두고 其外는全部棄却을
0042_0010_b_02L하엿드람니다 그래서山下洞民이各各寄附를엇는다
0042_0010_b_03L고惹端이라더니 至今은글로因緣해서 栗城里와月
0042_0010_b_04L文里가서로빼아슬량으로 氷炭間이되엿서요 정말
0042_0010_b_05L主人이든우리로서그꼴을보량이면忿하기도하고우숩
0042_0010_b_06L기도하담니다」「그릴뜻하지요 그래土地는?」「土
0042_0010_b_07L地야무엇잇슴잇가 이압헤보이는밧땍이뿐이지요그
0042_0010_b_08L래도이밥을좀어더먹어볼량으로 昨年부터起墾을하
0042_0010_b_09L엿는데 今年에는大規模로三四斗落이나되는논을푼
0042_0010_b_10L모양닙니다 그러나무슨資本이잇서야 雇人을살수
0042_0010_b_11L잇지요 몸을막드러내노코죽을힘을드렷더니 水勢
0042_0010_b_12L가조흔까닭인지는알수업스나 農事가저만큼은잘듸
0042_0010_b_13L엿담니다 또한가지異常한일이잇습지요 이附近陶
0042_0010_b_14L谷里에李塤氏라는이가잇슴니다 그댁에서每年正租
0042_0010_b_15L六七石을輸送하기때문에 그것을가저佛粮其他維持
0042_0010_b_16L에큰困難이적슴니다 하도感謝한생각으로月前에그
0042_0010_b_17L宅을차저가서 그穀賭輸送理由를무러본즉대답은이
0042_0010_b_18L러합듸다」

0042_0010_b_19L 妙寂寺土地限八斗落假量을우리집에서管理하는
0042_0010_b_20L것이잇느니 자네는赴任한지가不遠하닛가그理由
0042_0010_b_21L를알고십허할터이겟지 다름안일셰前日主僧들은
0042_0010_b_22L私利에만汲汲하야寺院守護에는誠意가업슴으로穀
0042_0010_b_23L賭는보내주엇스나 內容如何는일러주지안엇네 그
0042_0010_b_24L러나자네는비록年少할지라도佛前信向에到底하고
0042_0010_b_25L品行이方正할뿐더러 또한公心이豊富하야寺院을
0042_0010_b_26L盡力修補하며 변변치못한薄田일지라도誠意껏水
0042_0010_b_27L畓으로開墾하니 善善惡惡은人之常情이라 余도
0042_0010_b_28L不知中感動되는바가잇슴에自進하야이약이하고십
0042_0010_b_29L든터일세 그런데우리先妣께서보시든일이고 또
0042_0010_b_30L子息까지關係가잇슴에우리家庭來歷부터說明하겟
0042_0010_b_31L네 우리先親諱字는義字敎字에戊子生이시고 先
0042_0010_b_32L妣께서는咸平李氏이신대甲午生이시며 伯氏께서
0042_0010_b_33L는單字로▣字에丙辰生이시고 余는單名으로塤字
0042_0010_b_34L에己未生이잇가 只今六十九歲가아닌가 그리고
0042_0010_b_35L또余의長男은宅鍾인데伯氏에게出系되고 그다음
0042_0010_b_36L完鍾이가내압흐로잇는모양일세 또舊時代官職으
0042_0010_b_37L로말을하면余가司憲府監察에軍物委員까지行하엿
0042_0010_b_38L고 宅鍾이가度支府主事로다니다가 只今은無任
0042_0010_b_39L으로京城苑洞九六番也에居住하느니 우리집內容
0042_0010_b_40L은이와가튼것인데 일로부터그土地에對한이약이

0042_0011_a_01L를일러줌세 距今七十年前부터우리先妣께서佛敎
0042_0011_a_02L信向이게신故로 妙寂寺에頻數히단엿섯는가보데
0042_0011_a_03L그리자그때主僧具道行이란者가잇서 一日은그土
0042_0011_a_04L地文書를가지고우리집을차저와서하는말이只今寺
0042_0011_a_05L用이窘塞한즉 이文券을典執하고錢幾十兩만貸用
0042_0011_a_06L하여달라함에 先妣께서文書는그만두고金錢이나
0042_0011_a_07L얼마간갓다쓰라하섯다데 그後幾年을經過하야다
0042_0011_a_08Lfms僧侶가主務者되엿슬때에 그土地를이附近어느
0042_0011_a_09L常漢에게賣渡한것을우리집에서探聞하고 即時下
0042_0011_a_10L人을보내그常漢을잡아다가 한번强制手段을쓴일
0042_0011_a_11L이잇섯느니 寺中土地라는것은僧侶가아니고는干
0042_0011_a_12L涉을못하는法인데 네가그논을買受할ㅅ것가트면
0042_0011_a_13L중이되여야할것이라하고 상투를當塲에끈어을리
0042_0011_a_14L라고號令을秋霜가치하닛가 그놈이㥘을내여서예
0042_0011_a_15L-土地文書를宅에밧칠터이오니 살려줍시사고哀
0042_0011_a_16L乞伏乞을하엿네 그래그土地를妙寂寺로返還을시
0042_0011_a_17L키지안엇나 그리고甲午更張以後로土地全部가官
0042_0011_a_18L廳에登錄되고 寺法頒布는아즉아니되엿슬때에其
0042_0011_a_19L時主僧이또他人에게賣渡를씩혓데그려 우리宅鍾
0042_0011_a_20L이가그것을알고 面所에드러가서手續이다되여잇
0042_0011_a_21L는것을그만取消를씩히고 賣買雙方을물러一場惹
0042_0011_a_22L閙를친뒤에寺有로두는것은危險하다생각하고 그
0042_0011_a_23L만우리宅鍾의名義로登錄을식혓다데 그때만하여
0042_0011_a_24L도兩班의勢力이남아잇섯네그려 只今갓해서야直
0042_0011_a_25L接關係가업는境遇에何等의干涉이잇겟는가 이土
0042_0011_a_26L地에對하야우리집과그러한깁흔緣故가잇고 또寺
0042_0011_a_27L况도밋을수가업서數十年을保管하여왓스나 다만
0042_0011_a_28L先妣께서信仰하든盛意를仰軆하야保寺에專力할다
0042_0011_a_29L름이라

0042_0011_a_30L 하옵듸다」어-그兩班은참으로점자는處事이외다
0042_0011_a_31L普通사람가트면 그土地에對하야年來로功도만히드
0042_0011_a_32L리슬뿐外라 自己所有로되여잇슨즉此를奇貨로看做
0042_0011_a_33L하고못된野慾을내는군이 十常八九가될ㅅ것이외다
0042_0011_a_34L李氏宅으로말을하면子孫幾十代까지라도 限量업는
0042_0011_a_35L福을받을兩班이외다 그리고이절은盖瓦로變更할수
0042_0011_a_36L가업슬ㅅ가요」「그야寤寐不忘이지요 그러나내밀것
0042_0011_a_37L이잇습잇가」「왜-이附近에도富豪가더러잇슬테니한
0042_0011_a_38L번차저가서佛田에種福이라든가 또는環境을드러서
0042_0011_a_39L좀이약이하여보지요」「틀렷습니다 이등넘이라하여
0042_0011_a_40L도 即우리洞里임니다마는富豪가업는것이아님니다

0042_0011_b_01L洪判書某氏라하면全觧은몰라도 아마京畿一帶에屈
0042_0011_b_02L指하는富者님니다 至今도數千石을하고그-일곱째
0042_0011_b_03L꼿가튼妾의집도四五百石을한다든가요 그러치마는
0042_0011_b_04L八旬老境임도不拘하고돈이얼마나앗갑던지 이달初
0042_0011_b_05L旬이그兩斑의生辰이라는데 或宴席이될까㥘이나서
0042_0011_b_06L그날은아츰에두패轎軍으로四人轎를타고 우리절로
0042_0011_b_07L避接을온모양입듸다그려 인제는무슨수가크게낫는
0042_0011_b_08L가부다하고 人事를겨우마치고는그만부억으로나아
0042_0011_b_09L가서고비고사리를담근다 취를삼는다素煎骨을準備
0042_0011_b_10L한다보와쥬는사람이업슴에不顧하고 여간법석을아
0042_0011_b_11L니첫슴니다 翌日떠나려할때에每名한끼에二十錢式
0042_0011_b_12L十三名計二圓六十錢式을처서내주는구려 하도어이
0042_0011_b_13L가업서우득허니섯노라닛가 下人도보기에얼마나딱
0042_0011_b_14L하든지 大監진지도小人等의밥갑과가치칠수야잇슴
0042_0011_b_15L잇가 그도그를터이야내밥갑은배를치겟다 그르면
0042_0011_b_16L한끼에四十錢이닛가넷기에 八十錢을더내여준다고
0042_0011_b_17L여간德色이아입듸다 그러니엇지되엿습닛가 그래
0042_0011_b_18L도예전歲月가트면 依例히空食하고 더군드나무슨
0042_0011_b_19L트집을한번부려볼터인대 그만치行下하는것도現時
0042_0011_b_20L代文明制度의德澤이라하고 그만두엇슴니다마는어
0042_0011_b_21L지간하야말이나부처보지요」흥-그도그러켓지요舊
0042_0011_b_22L時代에守令方伯으로다니면서 모흔돈이라는것은相
0042_0011_b_23L當하게쓰기가퍽어러운것입니다 旣徃이약이가낫스
0042_0011_b_24L니말이지예전에엇든兩班은 어느고을留守로갓섯는
0042_0011_b_25L데 그고을에는世傳하야나려오는金塊가木枕덩이만
0042_0011_b_26L한것이잇섯드람니다 새로오는留守마다引繼하는金
0042_0011_b_27L塊를송도리채가저갈수는업고 것흐로멧푼중식가만
0042_0011_b_28L가만히글거가드람니다 그때에赴任된留守는그것을
0042_0011_b_29L아라채리고「自今以後金塊暗削嚴禁」의十大字를深刻
0042_0011_b_30L하엿다나요 그陰刻을깁히하는同時에金屑이얼마나
0042_0011_b_31L쏘다젓겟슴잇가 軆面조흔날탕이지오 쪽곳은먹줄
0042_0011_b_32L이지요 그러케罔上欺下로모흔돈이라는것은 當代
0042_0011_b_33L에흔히亡하는法이건마는그레도二世三世로至于萬世
0042_0011_b_34L나할ㅅ것가치벌벌뜰고相當히쓸ㅅ줄을모른대요 자
0042_0011_b_35L-밤이느젓스니그만잡시다 그리고그이튼랄이러단
0042_0011_b_36L즉뜻밧게雨聲이蕭蕭하다하는수업시該寺에서信宿하
0042_0011_b_37L게되는데 監院은어떠케準備를하엿든지午饒에는칼
0042_0011_b_38L국수이고夕陽에는松편을비저왓다 史料調査出張以
0042_0011_b_39L後로草家집도처음이요 비오기도처음이요 국수와떡
0042_0011_b_40L으로厚待밧기도처음이다 간곧마다麵장을사면할수
0042_0011_b_41L업다는筆者로서그국수가얼마나반가웟스랴 第三日
0042_0011_b_42L되는날은일즉이일어나서그동안貽弊씩인것을無限致
0042_0011_b_43L謝하고寶光寺로떠나게되엿다。(未完)

0042_0012_a_01L殉敎者追憶

0042_0012_a_02L故李英宰君追悼文

0042_0012_a_03L
 아아슬프다君이여 眞이냐假이냐 實이냐虛이냐 君의凶報는넘어도千萬뜻받게ㅅ일이라
0042_0012_a_04L아모리信하랴하야도信할수가업고나 君은果然濁世를버리고 永遠히寂光土를向하고마랏는
0042_0012_a_05L가 今春부터君의微恙을드럿스나 우리會員一同은하로라도 速히平癒하야無事히業을마치
0042_0012_a_06L고歸國하기를 三寶前에祈願하엿슬뿐이엿다 그리하야 不遠間에君의英姿가보힐ㅅ줄로믿
0042_0012_a_07L고 出迎의準備를相論하엿슬뿐이엿다。

0042_0012_a_08L 아아슬프다君이여 君은佛紀二千九百五十二年九月에朝鮮佛敎興隆의使命을지고 七千法
0042_0012_a_09L侶의囑望속에서 華嚴經에서보든善財童子와 高僧傳에서보든玄奘三藏의 慕聖求法하든爲
0042_0012_a_10L法亡軀의精神을본밧고 新羅時代의聖僧 玄泰 慧超의옛자취를조차서 紅海를건느고 葱
0042_0012_a_11L嶺을넘어서 世尊께서說法하시든 楞伽山의所在地인 錫蘭孤島로드러가서 許多한魔障과
0042_0012_a_12L無數한苦難속에서 硏究에硏究를더하더니 短期間에大業을이루려고 極度의精勵와 過勞
0042_0012_a_13L의巡禮를斷行한結果 本月十二日午後二時에 二十八歲를 一期로하고 故國을도라오기도
0042_0012_a_14L前에설옴만코 恨만흔竺天의客地에서 永遠히도라가고마랏고나 海東佛敎의悲運이 어찌
0042_0012_a_15L이러틋甚한가 君의夭逝는 君의前程을爲하야서도 哀慟함을 禁할수업거니와 荒癈한우
0042_0012_a_16L리敎界를爲하야 더욱이 悲嘆을抑制할수가업고나 釋苑에秋晩하야 佛日이欲墮할새 그
0042_0012_a_17L대조차入寂하니 紹燈할者누구이며 回光할者누구이냐 萬法이虛幻하며 人生이無常한들
0042_0012_a_18L어찌이러틋 無常할까 말하고저하니 목이메이고 생각고자하니 가슴이막히노나

0042_0012_a_19L 아아슬프다君이여 湏彌가튼偉業과 恒河가튼經綸을 오즉弱한君외一身의게 맛기고잇
0042_0012_a_20L든우리靑年會員의失望과 敎界의落謄은 무엇으로써比할수업거니와 普賢가튼大願과 法

0042_0012_b_01L藏가튼弘誓로 만히배우고 만히아라서 故國에歸
0042_0012_b_02L來하야 第二玄奘의大業을이루려하다가 그功을다
0042_0012_b_03L하지몯하고 佛祖의付囑을저버리고 아니갈수업는
0042_0012_b_04L길로 向하는君의心情이 果然어떠하얏스랴 드러
0042_0012_b_05L가는날로부터 入寂하든最後의一日까지 同胞兄弟
0042_0012_b_06L를한사람도보지몯하고 三個星霜을 쓸쓸하게孤獨
0042_0012_b_07L히지내다가 病魔에걸리어서외로히床에누엇섯스니
0042_0012_b_08L고마운慰問의말한마듸라도 듯지몯하얏슬ㅅ것이요
0042_0012_b_09L따뜻한죽한그릇、물한목음이라도 받지몯하얏슬ㅅ
0042_0012_b_10L것이다 이와가튼설음과 주리운가운데서 君이最
0042_0012_b_11L後를마칠때에 君의슬픔과怨恨이果然어떠하얏스랴
0042_0012_b_12L君은兄弟도잇고 妻子도잇다。君의兄弟와妻子가三
0042_0012_b_13L個年이나보지몯하고 그리워하고바라다가數萬里를
0042_0012_b_14L隔하야 永訣함으로 遺骸조차보지몯하게되엿스니
0042_0012_b_15L그의怨恨이어떠하얏스랴 君의夭逝는私的으로나公
0042_0012_b_16L的으로나實로徹天의恨事라 생각할수록 熱淚가滂
0042_0012_b_17L沱하야어찌할줄을모르겟다 君은모든것을이저버리
0042_0012_b_18L고彌陀를차저서 永遠히西方으로가고마랏는가 

0042_0012_b_19L 君은資性이温厚하고 心志가堅固하야 말한바는
0042_0012_b_20L반듯이行하고 行한바는반듯이結果를보고야마는希
0042_0012_b_21L世의信仰家요 絶類의實踐家엿다 小學校와農業學
0042_0012_b_22L校를卒業하고 官職에服務하다가 此를버리고入山
0042_0012_b_23L한것도 오즉信仰의結果요 入山한後經學을닥근뒤
0042_0012_b_24L에 東京에來留하야 日本大學宗敎科를 卒業하고
0042_0012_b_25L帝國大學印度哲學科에 드러간것도오즉信仰의結晶
0042_0012_b_26L이요 帝大에잇스면서도 萬難을排除하고 同志를
0042_0012_b_27L紏合하야金剛杵를發行한것이라든지 다시進하야印
0042_0012_b_28L度에留學케됨도 오즉타오르는信仰의불ㅅ결과 實
0042_0012_b_29L踐的精神의結果라하겟다。此로써推想하야 君이業
0042_0012_b_30L을마치고 歸國만하면 敎界를爲하야 非常한貢獻
0042_0012_b_31L이잇고 偉大한 事業이잇스리라고밋고 衷心으로
0042_0012_b_32L君의法身無恙을빌고바라든끗헤 君이이와가치 早
0042_0012_b_33L逝하니 天地가暗黑하고 日月이無光한듯하다

0042_0012_b_34L 顧惟컨대 君의目的은 興敎扶宗에잇섯스며 君
0042_0012_b_35L의思想은 利他濟物에잇섯스니 君의二十八年의짜
0042_0012_b_36L른生涯는 純潔無垢한 求法行者로서 四弘誓願을
0042_0012_b_37L實踐하랴는 利他濟物의菩薩行에잇섯다。그런까닭
0042_0012_b_38L으로 君의肉軆는사라젓드래도 君의靈的生命인爲
0042_0012_b_39L法精神은 永遠히躍動하야 마지아니하리라고믿는
0042_0012_b_40L다。그러나君이志願을 未遂하고 遠方에서 客逝
0042_0012_b_41L함을 痛惜하고哀慟하야 會員一同이모혀서 君을
0042_0012_b_42L爲하야 追悼할새 衷情을 披攊하야 吊辭를올리
0042_0012_b_43L노니 佛土에逍遙하는君이여 君은우리의 衷情을
0042_0012_b_44L照鑑하라

0042_0012_b_45L佛紀二千九百四十五年十月三十日

0042_0012_b_46L在日本朝鮮佛敎靑年會會員 一同

0042_0013_a_01L故梵鸞李君을追憶하고

0042_0013_a_02L金素荷

0042_0013_a_03L
 造物의猜忌인가 人生의無常인가 李君은벌서옛
0042_0013_a_04L날사람이되고마랏다。朝鮮佛敎의寵愛兒요 留學生
0042_0013_a_05L界의花形兒이든 梵鸞李英宰君은 二十八歲를一期
0042_0013_a_06L로하고 竺天孤島 錫蘭客地에서 도라오지몯하고
0042_0013_a_07L아주멀리가버리고마랏다。十月十二日은나의終生토
0042_0013_a_08L록이즐수업는날이라하겟다。왜그러냐하면 나의가
0042_0013_a_09L장사랑하든 李君이世上을 떠나든날인까닭이다。
0042_0013_a_10L李君이下世하엿다는消息은 第一먼저敎務院에잇는
0042_0013_a_11L姜在源君으로부터 到着한葉書로써알게되엿다。나
0042_0013_a_12L는大學史料編纂部에서 엇던博士와가치 精神업시
0042_0013_a_13L무엇을詳考하느라고 밧부게일을하다가 姜君의葉
0042_0013_a_14L書를밧게되엿다。그러나葉書한장볼새도업시밧분몸
0042_0013_a_15L이라 事務床끗헤다노아두고 보든일을다보고나닛
0042_0013_a_16L가 바로正午가되엿다。午食時間을報하는 振鈴소
0042_0013_a_17L리를듯고 食堂에드러가서 밥을먹으면서 葉書를
0042_0013_a_18L보기始作하얏다。平素에便紙가업든 姜君이무엇때
0042_0013_a_19L문에 葉書를보냇는가 생각하면서 文面을읽다가
0042_0013_a_20L본즉 李君이作故하얏다는消息이씨여잇다。밥저ㅅ
0042_0013_a_21L가락을들든나는 靑天에霹靂을만난듯 깜짝놀낫다
0042_0013_a_22L머리가선듯하면서 번개가치異常한感動이 이러낫
0042_0013_a_23L다。하도意外의일이요 꿈가튼일이라 슬픈지만지
0042_0013_a_24L그야말로言語道斷이엿다。魂빠진사람처럼한참이나
0042_0013_a_25L멍-하고안젓섯다 그리다가本精神을 들리키여서
0042_0013_a_26L놀랜마음을 鎭定식인즉 怨痛하게도 君이夭逝를
0042_0013_a_27L하엿구나하는 惻隱한생각이나며 李君의過去事가
0042_0013_a_28L아릿아릿하게 눈압헤보히는듯 눈물이하염업시흘
0042_0013_a_29L러나린다。아모리밥을먹으랴하야도 먹을수가업는
0042_0013_a_30L지라 나는그대로食堂을뒤로두고나와버리고마랏다
0042_0013_a_31L그리하야 庭園에서空然히 뒤ㅅ짐을지고 無意識
0042_0013_a_32L的으로왓다갓다하다가 나의房으로도라와서 知人
0042_0013_a_33L과會員의게 通知를써보내고 나의獨特한無常觀을
0042_0013_a_34L되푸리하기始作하고 過去에屬한 여러友人의死影

0042_0013_b_01L을聯想하얏다。그리고나의運命도저러케될는지모르
0042_0013_b_02L리라고 생각하고 스사로제슬음에북바처서 울기
0042_0013_b_03L를마지아니하엿다。連日流行感冒로써 기침을하고
0042_0013_b_04L滯症을兼하야 가슴아리를하는나이라 壓世悲觀이
0042_0013_b_05L만튼끝헤 이러한消息을드른즉 남의일가치 생각
0042_0013_b_06L이되지를아니한다 死의그림자가方今나를威脅하는
0042_0013_b_07L듯하엿다 그러한反面에는 平素에넘어도 李君의
0042_0013_b_08L게疎▼(氵+闊)하엿다는 罪責을늣기는同時에 다른親故들
0042_0013_b_09L의게도疎遠하게지낸것을 懺悔하야마지아니하엿다
0042_0013_b_10L그러나李君의悲報를信하다가도 疑訝하기를마지아
0042_0013_b_11L니할뿐더러 外國電文은誤謬가만흔지라 或은病이
0042_0013_b_12L重하다는것을誤傳함이나아닌가하고 李君의死를否
0042_0013_b_13L認하엿다。그리하야多幸히 誤報가되엿스면하고새
0042_0013_b_14L로운希望이잇기를바랏다。그래서저덕에 바로學校
0042_0013_b_15L를갈것이지마는 가지를아니하고 私舘으로도라오
0042_0013_b_16L기로하엿다。그것은私館에 或은다른消息이나와서
0042_0013_b_17L잇지아니한가하는 期待를가진까닭이다。그래서집
0042_0013_b_18L으로도라와본즉 期待는水泡로도라가고 確實이死
0042_0013_b_19L去하엿다는訃音이와서잇슬뿐이다 그럼으로空想하
0042_0013_b_20L든希望의줄도속절업시끈어저버리고마랏다。

0042_0013_b_21L 李君은才士엿다。따라서勉學家엿스며 熱誠家엿
0042_0013_b_22L스며 信仰家엿섯다。生者必滅의理를 가지고난人
0042_0013_b_23L生이라 出生하는때에 임의死刑宣告를바든것인즉
0042_0013_b_24L누구나 一生一死를免할수잇스며 死의門으로부터
0042_0013_b_25L永遠히 囘避할者가잇스랴마는 그러나一生一死하
0042_0013_b_26L는그것이나마 常道를乖하며 順次를越하니 넘어
0042_0013_b_27L도怨抑하고 痛憤한일이라하겟다 李君의夭死는君
0042_0013_b_28L을爲하야 可惜하고불상할뿐아니라 朝鮮佛敎를爲
0042_0013_b_29L하야痛惜한일이다。君의夭逝는 實로朝鮮佛敎의一
0042_0013_b_30L大損失이라하겟다。現今우리敎界에 才士가업는것
0042_0013_b_31L은아니다。學識이나才幹은 李君보다더나흔사람이
0042_0013_b_32L잇슬ㅅ지도모른다。그러나僧心을가진사람 徹㡳하
0042_0013_b_33L게佛恩을늣기는사람 어데까지든지佛敎事業을해보
0042_0013_b_34L겟다는사람은 君을버리고 얻어보기어려우리라고
0042_0013_b_35L생각한다。學路에잇섯든君이라 其間에이루어노코
0042_0013_b_36L싸아노흔功績은업스나 그의發心과 願力과勤行은
0042_0013_b_37L微少한그대로라도 佛陀의길을발브려고하엿다。이
0042_0013_b_38L사람이아니면 家事를整理할수가업고 이사람이아
0042_0013_b_39L니면妻子를扶養할수업슴에도不拘하고 勇猛스럽게
0042_0013_b_40L家庭을버리엿스며 年齡도不多不少한十九에出家하

0042_0014_a_01L엿다 出家하면서라도 熱心으로經學을硏究하엿고
0042_0014_a_02L東京留學을하면서라도 宗敎科를選擇하고 宗敎科
0042_0014_a_03L를卒業하고라도 普通實社會에用處가업는 帝國大
0042_0014_a_04L學印度哲學科에入學하야 㭝巴二語를專攻하엿스며
0042_0014_a_05L그러는가운데도 微弱한것이나마金剛杵를發行하엿
0042_0014_a_06L스며 外國留學을가면서도 獨逸이나佛國이나 英
0042_0014_a_07L米國을버리고 印度로가게된것은 君이徹頭徹尾하
0042_0014_a_08L게 佛敎의信仰이깁헛스며 佛敎를爲하야일해보자
0042_0014_a_09L는願力이컷든까닭이라하겟다。勝已者厭으로 李君
0042_0014_a_10L의精神과思想을알기도前에 批評하는사람은 李君
0042_0014_a_11L이東京留學을하기爲하야 出家를하엿느니 英語를
0042_0014_a_12L硏究하기爲하야印度를갓느니하야 冷評熱罵하며까
0042_0014_a_13L닭업시猜忌하는사람도잇스나 李君은오즉信、願、
0042_0014_a_14L力三者로써 徹頭徹尾하게 行하랴다가 犧牲된者
0042_0014_a_15L이다。東京으로留學을오든때라든지 印度로留學을
0042_0014_a_16L가는때라도 外面으로는華麗한壯擧엿스나 內面에
0042_0014_a_17L잇서서는 血淚를흘릴만한 複雜한事情과 李君이
0042_0014_a_18L아니면 到㡳히成功할수업는忍耐와努力의㾗跡이감
0042_0014_a_19L추어잇섯다。그리고李君이平素에使用하든 三號가
0042_0014_a_20L잇스니 白光、梵鸞、宗圓이엿다。白光은暗黑한朝
0042_0014_a_21L鮮宗敎界에 白光이되여보겟다는意味요 梵鸞은印
0042_0014_a_22L度哲學硏究에龍樹大士나 馬鳴大士나 世親無着과
0042_0014_a_23L가튼巨匠이되어보겟다는意味요 宗圓은우리佛敎宗
0042_0014_a_24L旨로하야곰圓滿하게宣揚하야 扶宗成圓하겟다는意
0042_0014_a_25L味엿다 近年에는俗姓까지라도改稱하야釋이라하고
0042_0014_a_26L雜誌上이든지 知人의게書信할때에는 반듯이釋宗圓
0042_0014_a_27L이라고 施行하엿다。此를微少한笑話로돌릴ㅅ지는
0042_0014_a_28L모르나 이것을보드래도 君의佛敎思想이어떠하엿
0042_0014_a_29L든것을 알수잇는일이라하겟다。李君의三號에對하
0042_0014_a_30L야는언제든지 君이號를지을ㅅ적마다 나의게와서批
0042_0014_a_31L評을乞하며 意味를說明하얏다。그런까닭으로나는
0042_0014_a_32L李君의號에對하야서도 君의信仰이깁흔것을驚服하
0042_0014_a_33L엿다。그리고君은 六七年前에 金正完君으로부터
0042_0014_a_34L金身觀音佛像을얻어모시게된後로는 印度에갈때까
0042_0014_a_35L지 하루도闕하지아니하고 朝夕으로禮敬하엿스며
0042_0014_a_36L祈禱하엿다。實은筆者가七八歲時로부터 今日까지
0042_0014_a_37L의觀音信仰의行者인지라 十年前에君을만날때부터
0042_0014_a_38L觀音信仰을勸하고 功德을말한바엿다。그리한것이
0042_0014_a_39L原因인지는모르나 李君은나보다도 一層具軆的으
0042_0014_a_40L로 觀音信仰을 實現하엿다。이러한것을 考察하

0042_0014_b_01L야 보드래도 李君의佛敎信仰은 우리佛敎靑年中
0042_0014_b_02L에도 模範이되리라고생각한다。

0042_0014_b_03L 李君과나의關係는 師弟의分도되며 兄弟의分도
0042_0014_b_04L되며 親故의分도될뿐더러 李君은나의苦學成功을
0042_0014_b_05L指示한恩人이엿다。그런까닭으로 君의略歷을드러
0042_0014_b_06L서 李君이어떠한사람이엿든가를 紹介코저하며同
0042_0014_b_07L時에李君과가튼 佛敎의志士가나서 君의未遂한事
0042_0014_b_08L業으로하야곰 斷續完成할者가잇기를바라는바이다
0042_0014_b_09L君의履歷書가 나의手中에업는지라 出家以前의事
0042_0014_b_10L는未詳하나 平素에君의게드른대로 略述하고出家
0042_0014_b_11L以後의略歷에對하야는 나의아는대로仔細히詳述코
0042_0014_b_12L저한다。

0042_0014_b_13L 君의出生地는 古來에班鄕으로著名한 忠淸北道淸
0042_0014_b_14L州郡淸州面外山里엿다。君은明治三十三年에 이곧
0042_0014_b_15L에出生하야 裕福하게자라난듯하다。君의家庭은嚴
0042_0014_b_16L格한頑固舊式으로 土班의名家로써代代로울리여나
0042_0014_b_17L려온듯하다 그것은君이出家하엿다는말을듯고 君
0042_0014_b_18L의親戚들이憤慨하야 族譜로부터 君의名字를削除
0042_0014_b_19L하고祭祀席上에도 參與치몯하게하얏다함을보아도
0042_0014_b_20L알만하다。君은五六歲로부터 十歲前後까지獨先生
0042_0014_b_21L을안치여노코 漢文을工夫식힌바 君은어텨서부터
0042_0014_b_22L聰明하고 記憶力이날카라운故로 神童으로써일카
0042_0014_b_23L럿다한다 此는君이十一歲時에 濟州公立普通學校
0042_0014_b_24L에入學한後 卒業때까지 七十餘名兒童가운데서學
0042_0014_b_25L年마다一番으로修了하고 卒業도一番으로하얏스며
0042_0014_b_26L其後農業學校에서도 入學하든해로부터 卒業때까
0042_0014_b_27L지一號最優等으로 卒業하엿다는 事實에徵하야도
0042_0014_b_28L君이얼마나 聰明하고 才氣가잇섯든것을 推測하
0042_0014_b_29L겟다。君의夭死는 實로才人薄命이라는俗諺에마친
0042_0014_b_30L것인지도모르겟다 君은十五歲時에小學校를卒業하
0042_0014_b_31L고 結婚한後十八歲時에 農業學校를卒業하고 京
0042_0014_b_32L城留學의뜯을가젓스나 家庭의形便이許諾지몯하는
0042_0014_b_33L故로 淸州道廳學務係에 雇員이되여서 公務에從
0042_0014_b_34L事케되엿다。

0042_0014_b_35L 君은本來文學嗜好의 靑年인故로 文學方面의書
0042_0014_b_36L籍을蒐集하야耽讀하며 同窓會의機關誌인 某雜誌
0042_0014_b_37L의編輯을擔任하엿다한다。그러는中에 自己의同窓
0042_0014_b_38L卒業生이太半이나 基督敎의信者인까닭으로 또는
0042_0014_b_39L「天路歷征」이라는 基督敎小說을읽고 어린가슴에
0042_0014_b_40L크게感激한바가잇서서 基督敎를信仰하고 新舊約

0042_0015_a_01L聖書와 讃美歌를硏究하고 神學講義를購讀하얏다
0042_0015_a_02L그러나情熱的이고도 理知的인君의게는 基督敎로
0042_0015_a_03L서는君의信仰을滿足식힐수업섯다 여러가지敎理의
0042_0015_a_04L矛盾과 外國人宣敎師及神父의專橫과 麁惡한行動
0042_0015_a_05L을發見할때마다 反抗의생각이떠돌고 改宗의思想
0042_0015_a_06L이萌芽를發하얏다。그래서日曜日마다가든 敎會에
0042_0015_a_07L도가지아니하고 金條玉科와가치역이든聖經도 보
0042_0015_a_08L기가시려젓다。그러든차에君이學務局에잇는關係로
0042_0015_a_09L當時俗離山法住寺住持南坡大禪師를 보게되고 따
0042_0015_a_10L라서白初月金包光兩和尙을보게되엿다。君은그때부
0042_0015_a_11L터佛敎를硏究하고 佛敎를미더볼ㅅ가하는생각이번
0042_0015_a_12L개가치나며 君의思想上一大轉機를作하게되엿다。
0042_0015_a_13L그래서淸州邑에서 얼마머지아니한龍華寺에住하신
0042_0015_a_14L當時布敎師白初月和尙께 자주다니면서 佛敎의敎
0042_0015_a_15L理를硏究하며 週日마다說敎를드럿다。그리한즉원
0042_0015_a_16L청강佛敎가 深玄難測하야알수는업스나 基督聖書
0042_0015_a_17L라든지 基督敎理보다는 무겁고 깁고 크다는信
0042_0015_a_18L念과不可思議한神秘의法門이라는自覺과 罪業이深
0042_0015_a_19L重한衆生으로는佛敎가아니고서는救濟를얻을수업스
0042_0015_a_20L며 解脫을얻을수업다는 决心이생기게된지라其後
0042_0015_a_21L부터出家하기로决意하고 兄弟와妻子도 아지몯하
0042_0015_a_22L게俗離山으로入山하게되엿다

0042_0015_a_23L 君과나와相從하기는 이때로부터엿다 이제로부
0042_0015_a_24L터十年前 大正七年度엿다 내가所謂履歷을마치고
0042_0015_a_25L通方衲子로다닐때엿다。當時金包光和尙의게 十地
0042_0015_a_26L經의難處를배우며 兼하야智旭解의唯識行相相宗八
0042_0015_a_27L要를硏究할때엿다。君은當時十八九歲의少年으로評
0042_0015_a_28L制의美少年이엿슬뿐더러 才氣가팔팔한素質에新舊
0042_0015_a_29L常識을가추운 前途有望한少年이엿다。그러나君은
0042_0015_a_30L그때에까지得度는아니하고 道廳에잇스면서佛敎信
0042_0015_a_31L仰과得度의决心을가지고 徃來하기만할따름이엿다
0042_0015_a_32L當時에나와가치잇는 講堂동모들의게드른즉「李君
0042_0015_a_33L은淸州道廳나리로 新學問에無所不知하는사람인데
0042_0015_a_34L初月스님의法門을듯고 發心出家하랴한다」하며畏
0042_0015_a_35L敬들한다。나는그런가보다할뿐이요 구태혀人事를
0042_0015_a_36L請하고面會를求하지는아니하엿다。그러다가어느날
0042_0015_a_37L偶然히人事를하고 其後부터자주자주相從하게되며
0042_0015_a_38L古今東西의偉人論 英雄論으로부터 聖賢哲人의思
0042_0015_a_39L想談論으로써 또는佛敎의敎理談으로 日課를삼ㅅ
0042_0015_a_40L게되엿다 그래서君과가치月夜의水晶峯에올라가서

0042_0015_b_01L새로한時나두時가되도록밤을새운때도잇섯다

0042_0015_b_02L 그러나나는君과갈리여서 智異山華嚴寺로나려가
0042_0015_b_03L서 靑雲講伯下에 다시十地經을보다가 萬歲騷動
0042_0015_b_04L에分散되여서 京畿道安城郡靑龍寺內院으로와서잇
0042_0015_b_05L게되엿다。그리다가다시四佛山大乘寺로나려가서林
0042_0015_b_06L濟應講伯下에 다시行相의要處를차려가며 兼하야
0042_0015_b_07L四書와古文을차리고잇다가 그해가을(大正八年度)
0042_0015_b_08L에俗離山法住寺로부터 所謂講師請狀을바다가지고
0042_0015_b_09L俗離山으로가게되엿다。그래서金宥信 李順奉等學
0042_0015_b_10L人과가차 法住寺로드러간즉 君이그간에出家得度
0042_0015_b_11L하얏노라하며 검은長衫을입고마저준다。이때에나
0042_0015_b_12L는再逢親友의늣김을가지고 君의손목을잡고반가운
0042_0015_b_13L情을못내하엿다 나의생각에는君이出家하얏드래도
0042_0015_b_14L南坡和尙압흐로하얏슨즉智異山으로나려갓슬줄로아
0042_0015_b_15L랏더니 家庭上其他여러가지일의複雜한關係로法住
0042_0015_b_16L寺에잇게되엿스며 當時住持護庵大禪師의弟子가되
0042_0015_b_17L기로하얏다고한다。

0042_0015_b_18L 그때로부터 君은나의게 楞嚴經을배와읽으면서
0042_0015_b_19L兼하야 沙彌科 四集科를차리기로하엿다。그런데
0042_0015_b_20L君은원청강聰明한才質에다가 俗家에잇슬때에 임
0042_0015_b_21L의通古文、小學、四書를배우고 兼하야普通學校를
0042_0015_b_22L卒業하고 農業學校를卒業하고 道廳에잇스면서早
0042_0015_b_23L稻田大學文科講義를 購讀하든君이라 文理도具足
0042_0015_b_24L하려니와 解悟性이如干이아니엿다。첫번에는法數
0042_0015_b_25L名辭及佛敎熟語에서투러서 二三個月間은苦心하는
0042_0015_b_26L듯하더니 其後부터는二三年式을 專門으로講堂에
0042_0015_b_27L從學하든사람보다도 優勝하엿다。楞嚴經을前五卷
0042_0015_b_28L이나배우다가 一日은履歷보는格式으로보겟다고한
0042_0015_b_29L다。그래서科目찻는法과 私記을리는法이며 覆講
0042_0015_b_30L中講 發起하는格式을細密하게가르치엿다 그리한
0042_0015_b_31L즉君은 다시序文으로부터楞嚴經의履歷을보기로하
0042_0015_b_32L엿다。그後부터君은全力을다하야 看經의妙味를얻
0042_0015_b_33L게된바 파내어알기도잘하려니와 을리여서외오기
0042_0015_b_34L도잘하엿다。七處徵心、遣拂客塵、業果起始、衆生
0042_0015_b_35L起始、世界起始를 看過할때에는 君이冊章마다奇
0042_0015_b_36L哉快哉를부르며 宗敎라도佛敎가튼宗敎는업고 哲
0042_0015_b_37L學이라도 佛敎에지내가는哲學은업겟다고 感激함
0042_0015_b_38L을마지아니하엿다。君은當時二十歲요 나는二十一
0042_0015_b_39L歲인 자치同甲의少年이엿는지라 둘의사이에는我
0042_0015_b_40L相人相의애성이여간이아니엿다。七八年間이나專門

0042_0016_a_01L講院에서짜드러낫스며 南北講堂을차즐적마다남의
0042_0016_a_02L게一毫라도지기는실허하든나이라 好奇心으로써君
0042_0016_a_03L을對하며 君의才幹이얻더한가를試驗하느라고 君을
0042_0016_a_04L시달릴대로시달리고 精力을쏘들만치쏫게하엿다 그
0042_0016_a_05L런까닭으로君은 해볼ㅅ대로해보자는애성으로조곰
0042_0016_a_06L도屈하지아니하고 精力을드려서看經하엿스며君이
0042_0016_a_07L經文과私記外에心理學이니 哲學이니 宗敎學이니
0042_0016_a_08L科學이니하는新學問으로써 經文에配合하야 論難
0042_0016_a_09L할때에는내가오히려面目이업게될쩍도잇섯다。只今
0042_0016_a_10L생각하면 그것이講義錄에서 나온知識인듯하다。
0042_0016_a_11L그러나當時의나는 講義錄을볼만한語學의힘이업섯
0042_0016_a_12L는지라期於히新學을배우지아니하면 아니되겟다는
0042_0016_a_13L决心을갇게되엿다。

0042_0016_a_14L 그리하야 君은楞嚴을마치고 般若經과 圓覺經
0042_0016_a_15L의大文을배우면서 起信論을二卷까지인가보다가金
0042_0016_a_16L包光和尙의게 依賴한結果 南坡和尙의周旋으로泉
0042_0016_a_17L隱寺公費遊學生으로 東京을드러오게되엿다。그런
0042_0016_a_18L데君은俗離山에잇슬때에 한가지奇異한行動이잇섯
0042_0016_a_19L다그것은다론것이아니라 아침저녁이면 어느곧으
0042_0016_a_20L로가는지 자취를감추는일이엿다。그래서하로는내
0042_0016_a_21L가尾行하야 追跡한즉 大雄殿큰法堂에드러가서觀
0042_0016_a_22L音呪力을하며 無數히禮拜를하고 祝願을하고잇다
0042_0016_a_23L나는그때부터君의信仰에對하야 속으로은근히敬服
0042_0016_a_24L하엿다。그리고또한가지는 千手心經、禮懺文가튼
0042_0016_a_25L것을讀誦하며 次例法門가튼것도 사양치아니하고
0042_0016_a_26L行하얏다。아울리지도아니하는목소리로 偈頌을읆
0042_0016_a_27L프느라고애쓰든것은 只今도나의눈압해昭然하게나
0042_0016_a_28L타나는듯하다。

0042_0016_a_29L 나는其後二十二歲되든해봄에 四佛山大乘寺로부
0042_0016_a_30L터講主請狀을바다가지고 四佛山으로가서 數十名
0042_0016_a_31L의學人으로더부러 履歷을보와주고잇섯다。그런데
0042_0016_a_32L李君은東京와서잇스면서도 나를잇지아니하고사흘
0042_0016_a_33L이멀다십히 便紙를보내주며 나의게東京苦學을慫
0042_0016_a_34L慂하엿다。그래서나는 大乘寺에서七月百種齋까지
0042_0016_a_35L마치고 無一分의赤手空拳으로東京을드러오게되엿
0042_0016_a_36L다。東京驛에서나린즉囊中에八十錢받게업섯스니내
0042_0016_a_37L가생각하야보아도 엉터리업는일이엿다。東京驛에
0042_0016_a_38L나려서 方向도모르고 宮城前廣場에까지나와서헤
0042_0016_a_39L매다가 어느巡査의게 李君의住所封皮를내여보히
0042_0016_a_40L며 筆談으로案內를求하니 神田區仲猿樂町中村方

0042_0016_b_01L으로다려다준다。그러나와서본즉 李君은夏期放學
0042_0016_b_02L에歸省하러가서아즉까지드러오지아니하엿다고한다
0042_0016_b_03L그럼으로어찌할ㅅ수가업서서 다시나와서 定處업시
0042_0016_b_04L彷徨하다가 어느鐵工塲에가서 職工募集이라는廣
0042_0016_b_05L告를보고 筆談으로哀乞伏乞事情을하고잇다가 幾
0042_0016_b_06L日後에君을차저가서본즉 君이마침드러와서잇다그
0042_0016_b_07L때의반가운말은 이로측량할ㅅ수없섯다。君도목을
0042_0016_b_08L노코우렷스며 나도목을노코우럿섯다。其後부터君
0042_0016_b_09L은나의게職業이라든지 學校案內가튼것을 無限히힘
0042_0016_b_10L써주엇다 내가東洋大學印度哲學科로入學한것이라
0042_0016_b_11L든지 其後日本大學宗敎科에入學된것은 다李君의
0042_0016_b_12L指示엿다。그러나職業가튼것은 그때이나只今이나
0042_0016_b_13L容易치아니한지라 나혼자뱃심만밋고 工場으로商
0042_0016_b_14L店으로土工으로行商으로 新聞配達로 人力車軍으
0042_0016_b_15L로 轉輾流浪하얏스나 어느職業이든지 떠러지기
0042_0016_b_16L만하면 當分間갈데가업는지라 李君을찻게되엿다
0042_0016_b_17L君은나를爲하야 걱정과근심도만이하야주고 눈물
0042_0016_b_18L도만이흘려주엇다 李君이四疊房을얻어가지고잇슬
0042_0016_b_19L쩍에도 걱정을식혀주엇고 三疊房을얻어가지고잇
0042_0016_b_20L슬쩍에도 걱정을식혀주엇다。내가吳京律君과가치
0042_0016_b_21L失業이되여서 낫이면해가지도록 求職하느라고市
0042_0016_b_22L內市外로도라단이다가 밤이면李君의工夫도몯하게
0042_0016_b_23L굴든생각이 只今도昨日과가치생각한다。

0042_0016_b_24L 君은其時의補缺試驗을처볼ㅅ가 또는專門學校入
0042_0016_b_25L學檢定試驗을처볼ㅅ가하고 無限히煩悶하얏다。그래
0042_0016_b_26L서正則英語學校、日進英語學校、普及英語學校、硏
0042_0016_b_27L修學舘으로단이며 凖備를하엿다。그리다가專門的으
0042_0016_b_28L로나가는것이捷徑이라하야 大正九年度九月에日本
0042_0016_b_29L大學宗敎科에入學하야 十二年度四月에同大學을卒
0042_0016_b_30L業하고即時帝國大學印度哲學科選科로드러가서 高
0042_0016_b_31L楠博士及長井博士의게梵語와巴利語를專攻하며 兼
0042_0016_b_32L하야 英語를硏究하엿다 君은그때부터印度行의志願
0042_0016_b_33L이잇섯는듯하다。그리하면서 君은多年間靑年會에幹
0042_0016_b_34L事를보고잇섯다。그런中大正十三年度春季부터 同
0042_0016_b_35L志間에무슨雜誌를하나하야보자하며 軆裁를定해가
0042_0016_b_36L지고 東奔西走하며 同人을求하기始作하엿다。그리
0042_0016_b_37L하야發行된것이곳金剛杵이다。君은이와가치努力하
0042_0016_b_38L면서 無言中에印度行의準備를 가추어노코 大正
0042_0016_b_39L十四年九月에 同志들의게 印度行을宣言하고出發
0042_0016_b_40L하기로决定하엿다。그래서會員一同은 神田區中央

0042_0017_a_01L佛敎會舘에서 餞別會를開하고 紀念撮影까지하엿
0042_0017_a_02L스며 나는君의印度行이 어떠케도반갑고깁브든지
0042_0017_a_03L君의將來를爲하야 以下와가치餞別辭를지여서 金
0042_0017_a_04L剛杵第七號에揭載하얏다。

0042_0017_a_05L 「印度! 印度는말만드러도 피가끌코 熱이타
0042_0017_a_06L두록 그록한곧이요 고마운곧이다。衆生의靈泉
0042_0017_a_07L을지어준佛敎가發生한곧도 印度요 三界의苦難
0042_0017_a_08L을救하야주신 釋尊께서 誕生하신곧도 印度엿
0042_0017_a_09L다。世上사람은 猶太를가르처서 荒廢한亡國이
0042_0017_a_10L라한다 그러나基督敎徒는 救主의誕生한聖地라
0042_0017_a_11L하야 아직도 敬虔한情을다하지몯하야한다。이
0042_0017_a_12L것이야말로 聖者를思慕하는者의心理가아니면알
0042_0017_a_13L수업는것이라하겟다

0042_0017_a_14L 世上사람은 印度를가르처서 亡國이라하고보
0042_0017_a_15L잘ㅅ것업는英領의一部라고하야 도라볼價値가업
0042_0017_a_16L다고할는지도모른다 그러나우리는 人事的世間
0042_0017_a_17L의俗情을超越하야 敎主가出現하신 精神的活命
0042_0017_a_18L泉의聖地靈界로써보아서 敬虔한思慕와忠實한情
0042_0017_a_19L義를다하야 渴仰함을不已한다

0042_0017_a_20L 文化의發達과 交通의便利를極한今日에 歐米
0042_0017_a_21L를徃來하는者 隣家와가치하는지라 印度의徃來
0042_0017_a_22L가决코 難事가아닌줄을안다。그러나우리는 今
0042_0017_a_23L日로써觀察하지아니하고 西遊記古談에서본바와
0042_0017_a_24L가치 險難한印度로觀察코자한다。換言하면支那
0042_0017_a_25L에잇서서는 法顯 玄奘等이 求法의熱誠으로모
0042_0017_a_26L든艱難을무릅쓰고 親徃한거와가치 朝鮮에잇서
0042_0017_a_27L서는 新羅時代에 玄泰 慧超等이 慕聖의渴仰
0042_0017_a_28L으로모든障碍를무릅쓰고 親徃한것과가튼 慕聖
0042_0017_a_29L求法者의態度로써 觀察코저한다。

0042_0017_a_30L 日本에잇서서는 輓近十數年來에 印度에가서
0042_0017_a_31L留學하는者 或은業을마치고도라온者 或은巡禮
0042_0017_a_32L를마치고도라온者 其數를아지못한다고한다 그
0042_0017_a_33L러나우리朝鮮은如何한가 近代에와서는 한사람
0042_0017_a_34L도업다 이러케寂寞하든 우리敎界에 今日이란
0042_0017_a_35L今日을當하야 無言中에 諸般準備를整頓하고壯
0042_0017_a_36L快한印度留學의길을떠나게된 李英宰君을爲하야
0042_0017_a_37L實로慶賀하는바이다 今番李君의印度行이近世朝
0042_0017_a_38L鮮佛敎界의嚆矢인同時에 君은印度留學에가장適
0042_0017_a_39L任者인것을疑心치아니하고 우리敎界를爲하야깁
0042_0017_a_40L히깁히信賴하야마지아니한다

0042_0017_b_01L 君의略歷을들건대 普通中等敎育을마친秀才로
0042_0017_b_02L徹底한自發的信仰下에서 佛門에入한後 數年間
0042_0017_b_03L山에서 佛經을專攻하다가 일즉히日本東京으로
0042_0017_b_04L드러와서 宗派의拘束이업는 新進自由講壇의銳
0042_0017_b_05L氣가날카라운 日本大學宗敎科를마치고 日本의
0042_0017_b_06L最高學府인 東京帝國大學에入學하야 特히印度
0042_0017_b_07L哲學科梵文學科宗敎學科에選擇專攻하야 印度學
0042_0017_b_08L의基礎를얻은 今日을當하야 印度留學의壯擧에
0042_0017_b_09L就케되엿다。

0042_0017_b_10L 君은印度에留學하야 古聖의精神을본받는同時
0042_0017_b_11L에우리나라의古祖께서 誠이타고 피가마르도록
0042_0017_b_12L보지몯해서안타까와하든 靈鷲山이며恒河水에釋
0042_0017_b_13L尊께서 머무시엿든모든靈地도 遺感업시발불ㅅ
0042_0017_b_14L것이요 이름놉흔修道處인 金剛座이며 傳法處
0042_0017_b_15L인鹿野苑等을모조리親見할ㅅ것이다。同學伴侶인
0042_0017_b_16L余는 松茂柏悅의欽羡한情을 의이지몯하는同時
0042_0017_b_17L에水陸遠路멀고먼길에 君의法身無恙을衷心으로
0042_0017_b_18L祝禱하야마지아니한다

0042_0017_b_19L 이와가치祝辭를바치고 君의成功을빌고 君의歸
0042_0017_b_20L來만을바라든끝헤 君이그러케도 無常하게夭逝하
0042_0017_b_21L게되야 君을보내든 中央佛敎會舘이자리에서 다
0042_0017_b_22L시追悼會를開하며「眞이냐假이냐」하는 追悼文을
0042_0017_b_23L읽게되니 生滅無常의感慨가無量할뿐더러 우리佛
0042_0017_b_24L敎界의衰運을 悲觀치아니할수가업다 그러나古徃
0042_0017_b_25L今來로모든 聖業에犧牲이업고는成功이업스니君은
0042_0017_b_26L우리佛敎復興運動에先驅者로우리佛敎를爲하야 尊
0042_0017_b_27L貴한犧牲者가되고마랏다。二十八年間을終始一貫하
0042_0017_b_28L야 佛法을爲하야 奮鬪努力하다가 爲法亡軀의犧
0042_0017_b_29L牲者된 同志李君을追憶하는同時에 압흐로압흐로
0042_0017_b_30L李君과가튼 新發意菩薩行聖者가 續出하기를바란
0042_0017_b_31L라。

0042_0017_b_32L二九五四年十一月四日夜江戶旅窓에서

0042_0017_b_33L歸竺諸師讃

0042_0017_b_34L天竺天遙萬疊山、可憐遊士力登攀。

0042_0017_b_35L幾囘月送孤影去、未見雲隨一杖還。

0042_0017_b_36L三國遺事에서

0042_0018_a_01L故李君의尊靈의게

0042_0018_a_02L市隱生

0042_0018_a_03L
벗님을 보내노코 밤낫으로 바랏드니

0042_0018_a_04L온단말 듯기전에 죽엇단말 웬일인가

0042_0018_a_05L원통코 분한내마음 것잡을수 업도다

0042_0018_a_06L

0042_0018_a_07L道를찻고 法을무러 굳은믿음 정성속에

0042_0018_a_08L산설고 물설은땅 멀리멀리 차저가

0042_0018_a_09L客舍에 도라간님아 을마나 슬펏든가

0042_0018_a_10L

0042_0018_a_11L사람의 한世上이 草露가치 無常컷만

0042_0018_a_12L百年千年 두고볼뜻 音信을 끈엇더니

0042_0018_a_13L親한벗 冥路로갈녀 一生을 몯보누나

0042_0018_a_14L

0042_0018_a_15L그대가 사랏드면 더말할께 무엇이랴

0042_0018_a_16L그대는 죽엇스나 精神만은 永遠코나

0042_0018_a_17L사라도 죽음만몯한 내몸이 가엽소라

0042_0018_a_18L故宗圓李英宰兄을追悼

0042_0018_a_19L朱太淳

0042_0018_a_20L
 아! 이게참인가? 꿈인가? 꿈이어던빨리깨
0042_0018_a_21L워주소서 사람이란한번왓다가 오던길을도로밟고
0042_0018_a_22L가는것은 제아모리升天入地를하드래도 그것을拒
0042_0018_a_23L絶하기는不可抗力의일이라하겟지오만 사람이六十
0042_0018_a_24L이나七十을當하야 同胞가사는땅 사랑이넘치는自
0042_0018_a_25L己의家庭에서 다시오지몯할길을밟게되드래도 오

0042_0018_b_01L히려그에對하야 同情의悲哀의눈물보다 더-만흔
0042_0018_b_02L것은없을ㅅ줄아나이다

0042_0018_b_03L 하물며 朝鮮佛敎의慧光이 漸漸가느러가는것을
0042_0018_b_04L哀惜히생각하야 가진精誠과 끌는피로 六七餘星
0042_0018_b_05L霜을 저-扶桑異域에서 非凡의天禀을發揮하야無
0042_0018_b_06L盡의寶藏을蘊蓄하고도 오히려 기여히 初志를貫
0042_0018_b_07L徹키爲하야 海陸數萬里 져-聖地를차져 우리海
0042_0018_b_08L東敎界를爲하야서는 第二三藏法師를私淑케하시든
0042_0018_b_09L當年二十八歲를一期로하고 不歸의客을지으신 宗
0042_0018_b_10L圓英宰兄에게드리는눈물이야 恒河水로더부러말삼
0042_0018_b_11L하오릿가!

0042_0018_b_12L 더욱 어린져의쓰라린가삼을 무슨말로그悲哀의
0042_0018_b_13L뜻을表하오릿가!

0042_0018_b_14L 멀이게시는兄님의靈을 追悼하는이자리에 와서
0042_0018_b_15L무슨말삼으로그哀痛하시고抑鬱하심을 慰勞하온들
0042_0018_b_16L무엇하오릿가

0042_0018_b_17L 實로天道가難測하고 浮世의人事가無常함만 恨
0042_0018_b_18L嘆하올뿐이로소이다

0042_0018_b_19L 胡馬도北風에울고 越鳥도南枝에꿈구거든 하물
0042_0018_b_20L며 兄님은山슬고물다른 져-萬里異域에서 멀-
0042_0018_b_21L리東天을向하야 病床에서呻吟하실그때에야 그무
0042_0018_b_22L잇으로悲痛에싸인孤寂을形容하리오 그때에는아마
0042_0018_b_23L錫蘭島中天에아무리無心한天道일지라도 愁雲의그
0042_0018_b_24L림자가彌滿하얏슬ㅅ것이외다

0042_0018_b_25L 아! 有意多望하시던英宰兄이시여! 가시는兄
0042_0018_b_26L님의靈인들 얼마나억울하얏사오릿가? 漸漸사그
0042_0018_b_27L러지는海東敎界에 오래된慧光을다시밝혀주사기를
0042_0018_b_28L멀리안져빌든二千三百萬同胞兄弟의 哀痛인들어떠
0042_0018_b_29L하오럿가?

0042_0018_b_30L 아! 宗圓兄이시여! 東京震災의大火聚를幸免
0042_0018_b_31L하고 漢陽城一隅에서 月餘를한가지한房안에서펄
0042_0018_b_32L더거리든가심을어루만지면서 무어라고하섯나잇가
0042_0018_b_33L「부대工夫하야가지고 判檢事로나아가지말고 우리
0042_0018_b_34L敎界를爲하야 一生을바처다오」하시든金科玉條는
0042_0018_b_35L尙今토록耳膜에耿耿하는듯십사외다 五年前에對面
0042_0018_b_36L하야주시든그말삼이 어찌면而今에最後의遺言으로
0042_0018_b_37L變할ㅅ줄이야 꿈인들思料하얏사오릿가? 兄님이
0042_0018_b_38L시여 聖地巡禮의길을떠나신지 二週年을當하는오
0042_0018_b_39L늘날까지 何等의音信을올리지못하고 오즉오늘이
0042_0018_b_40L나또다시 確實한住所가發表될ㅅ가 來日이나發表

0042_0019_a_01L될ㅅ가 躊躇하야오든오늘에는 참인지꿈인지 兄
0042_0019_a_02L님께서 不歸의客이되섯다는 訃音을들음애다만茫
0042_0019_a_03L然히精神을일흘뿐이외다 數朔前부터宿患이게시다
0042_0019_a_04L는말삼은들엇사오나 年齡과志氣가 방야흐로强壯
0042_0019_a_05L하시고 事業과前途가아득하온 二十八歲의靑年時
0042_0019_a_06L代로 最後의一期를삼으시고 忽然히떠나섯다는말
0042_0019_a_07L삼은 차라리虛報라하야밋고십지아니하외다 兄님
0042_0019_a_08L이시여! 友愛가類달리두터우신 親家에서는勿論
0042_0019_a_09L哀悼의情을익이지몯할ㅅ것이외다마는 平素에交情
0042_0019_a_10L이特別히달은弟로서도 私分의痛惜을익일수가없삽
0042_0019_a_11L거든 하물며英特하신才分은 一般의囑望도적지안
0042_0019_a_12L헛스니 우리社會의失望도 무어라말삼하오면시원
0042_0019_a_13L하오릿가?

0042_0019_a_14L 果然우리敎界에 얼마한打撲傷을當하얏는지! 아
0042_0019_a_15L무리먼-不歸의길을떠나신兄님일지라도 한번다시
0042_0019_a_16L우리敎界를도라보신다하면 앞장이막히여발ㅅ길을
0042_0019_a_17L떼노치몯하오리다 그를생각하오면 天日이無光하
0042_0019_a_18L고山河가無色할뿐이외다

0042_0019_a_19L 바로靈輿앞헤나아가 哭餞치몯하고 오즉慈悲至
0042_0019_a_20L仁하신佛陀前에여러분과가치蒼天을부르짓고 끗업
0042_0019_a_21L는悲哀를表白하옵나이다

0042_0019_a_22L슬프도다宗圓英宰兄이시여!

0042_0019_a_23L萬里異域에서이것이웬일인가?

0042_0019_a_24L平生의理想은刹那異生이오

0042_0019_a_25L十年勤勞는心香一炷뿐이로다!

0042_0019_a_26L海深山高에사모친억울을

0042_0019_a_27L무슨말로써慰勞하오리오

0042_0019_a_28L우리理想이實現되는날

0042_0019_a_29L寂寞한靈前에꽃이피오리다

0042_0019_a_30L異域에서잠자는李兄의靈압헤

0042_0019_a_31L東京 丁鳳允

0042_0019_a_32L
 R兄! 永遠한極樂의世界에잠자는R兄! 오늘
0042_0019_a_33L은十月도하로밧게남지안이한일은아츰이외다 나는

0042_0019_b_01L下志津(陸軍練習地)벌판에서 C君으로부티R兄의
0042_0019_b_02L逝去여消息을듯게되얏다 아나는푸른하늘을向하야
0042_0019_b_03L無邊한曠野를부여잡고 無常한生滅法을하소연하얏
0042_0019_b_04L다 아-이것이眞이냐?否이냐? 어쩌면 世上이
0042_0019_b_05L이와가차도無情하단말가? 兄은異域에서不歸의客
0042_0019_b_06L이되고 나는異域에서총을메고섯단말가? 그다홈
0042_0019_b_07L날나는집에도라와서 追悼會한다는回章도밧고 華
0042_0019_b_08L山에서온訃告도보왓다 웬宇宙에는肅殺의氣運이돌
0042_0019_b_09L뿐이며 나의가슴에는붉은피ㅅ줄이 心臟의皷動을울
0042_0019_b_10L릴뿐이다 R兄! 내가이제이글쓴들무엇하랴만은
0042_0019_b_11L그러나나는 兄과조곰이라도즐겁던 以前일을생각
0042_0019_b_12L하며 이글을아니쓸수가업는것이다 R兄?兄은나를
0042_0019_b_13L비웃지아니하겟지…………R兄웨이다지 世上이뜻과
0042_0019_b_14L갓지안터란말이오? 兄과내가華山으로부터 兄은
0042_0019_b_15L東京으로 나는서울로떠날때에 世上에꽂이되랴고
0042_0019_b_16L바래지안엇느냐? 成功을祝한다고말하지안엇느냐
0042_0019_b_17L그러나꼿피랴는世上에죽엄이오고 成功을빌든땅에
0042_0019_b_18L눈물이올ㅅ줄을누가뜻하엿단말가? 아이無情한世
0042_0019_b_19L上을누의게呼訴하며 나는이쓰린가슴을어떠케慰勞
0042_0019_b_20L한단말가? 하늘도無情하고 公道도野俗하다 閻
0042_0019_b_21L王의鐵槌로꼿피는靑春을때려부시는 不幸한이運命
0042_0019_b_22L아………R兄 나는兄이죽엇다는 消息을드른후에도
0042_0019_b_23L정말兄이죽엇다고는생각하지안엇다 兄은살엇스리
0042_0019_b_24L라 다시만나보리라 시드러진우리敎會에曙光을지
0042_0019_b_25L으리라고 꿈가튼생각을하얏다 이야말로꿈이아니
0042_0019_b_26L냐?죽은兄이어찌다시살어온단말가? R兄은죽엇
0042_0019_b_27L다 R兄은다시오지못할異域의손님이되얏다 이려
0042_0019_b_28L한생각이 分明히머리에떠오를때에는 그만天地는
0042_0019_b_29L문허지는듯하얏다 모든것이근치고 모든것이쓸떼
0042_0019_b_30L업시되얏다 이제는그만이다 나는이것을意識할때
0042_0019_b_31L에이가슴에남은것이야 무엇이잇섯스랴 시퍼럿고
0042_0019_b_32L힘업는 살덩어리밧게야무엇이잇섯스랴 R兄나는
0042_0019_b_33L兄과함께異世의客이되고십다 兄은나를마저주겟지
0042_0019_b_34L그러나兄은웨말이업느냐 대답이라도좀하여다오! 
0042_0019_b_35LR兄웨우리가 이無情한世上에낫더란말인고? 그
0042_0019_b_36L리고웨눈물만코苦痛만흔朝鮮에낫스며 腐敗하고내
0042_0019_b_37L암새나는佛敎社會에낫드란말인가?우리가적어도딴
0042_0019_b_38L社會에낫드라면 우리의사이에는苦痛도업섯스며幸
0042_0019_b_39L福의꼿도피엿스리라 敎會의繁榮도보왓스리라 그
0042_0019_b_40L러나이것도 運命이라할ㅅ가팔ㅅ자라할ㅅ가?아-

0042_0020_a_01L兄은죽어무엇이되얏느냐? 兄이죽어Himalaya(히
0042_0020_a_02L말나야)山이되얏다면 힌구름이 兄의머리를돌며
0042_0020_a_03L落照에저문놀이兄의허리를덥허주겟지? 兄이죽어
0042_0020_a_04LHindustan(印度平原)이되얏다면 푸른하늘 밝은달
0042_0020_a_05L밤에 苦痛에몯익이는印度의大衆이 平和의춤을추
0042_0020_a_06L며 Utopia(理想鄕)의 꿈을꾸게하겟지 兄이죽어
0042_0020_a_07LClombo港이되얏다면 南方佛敎를求하려가는사람 石
0042_0020_a_08L炭실러가는사람 世界를구경하러단이는모든사람들
0042_0020_a_09L로하야곰 잘잠자게하야주겟지? 아-나는길이길
0042_0020_a_10L이울고십다 아兄을생각하면 모든것이運命인것이
0042_0020_a_11L다 우리가죽어異域의魂이되야 기럭이날아가는밝
0042_0020_a_12L은달밤에 故國의山川을바라보며 바람불고서리찬
0042_0020_a_13L아츰에 父母兄弟의溫情을그리워한다할지라도 우
0042_0020_a_14L리가서로만나지아니하얏섯드랴면 이다지도설은怨
0042_0020_a_15L恨을가슴에품ㅅ지아니하리라 아-묻노니 徃古及今
0042_0020_a_16L에法을求하려고 印度에가서不歸의怨客이된사람이
0042_0020_a_17L몃몃이나잇섯던고? 아R兄 그러나 녯날일이나
0042_0020_a_18L다시한번記憶하야보자 歲月이란이처럼 모든幸福
0042_0020_a_19L과즐거움을몰아가지고 永遠한구렁으로자최업시가
0042_0020_a_20L는것인가보다 三年前여럼이엇지 兄과내가몸을담
0042_0020_a_21L그든 華山의시내가에는 맑은물이흐르고 새가놀
0042_0020_a_22L애하며 蒼松은바람에울고 뜰菊花는소리업시웃고
0042_0020_a_23L잇다 아R兄! 兄은이것도모르고 무엇하리黃泉
0042_0020_a_24L으로갓단말인가? 내가兄의게 이런말은하얏섯지
0042_0020_a_25L………「우리는佛敎로써 人生의眞理를찻고 事業을完
0042_0020_a_26L成하자고」………兄은이러한말을하얏지………「우리는
0042_0020_a_27L佛敎로써 人類의모든것을解决하며 佛陀의큰뜯을
0042_0020_a_28L永遠한生命우에빗나게하자고」………그러나 우리의
0042_0020_a_29L말은虛僞를꾸미는말이아니엿스며 Chance을얻으려
0042_0020_a_30L는巧言이아니엿다 人生을찻고 敎會를爲하자는奮
0042_0020_a_31L鬪의誠意인것은 다시말할必要가업는것이다 그러
0042_0020_a_32L나R兄참말人生이란 넘어도짜르고 眞理란정말찻
0042_0020_a_33L기어렵다 R兄! 녯생각은그만두련다 녯생각을암
0042_0020_a_34L만하면무엇하랴 가슴만이럿케메여지는것갓다 R
0042_0020_a_35L兄! 兄이朝鮮을떠나 東京에서 印度를向할때에
0042_0020_a_36L兄의가슴은얼마나쓰럿스랴? 兄의눈에는소리업는
0042_0020_a_37L눈물이흘러나렷스며 머리에는恨만흔늣김이떠을랏
0042_0020_a_38L스리라 저녁하늘에떠오로는구름ㅅ발가치 나는이
0042_0020_a_39L것을像想만하야도 가슴을문헛드리는離別이엿든것
0042_0020_a_40L을짐작할수잇다 兄은印度로가고 나는東京으로난

0042_0020_b_01L호어진後라도 故國의달을그리워하얏스며 때아닌
0042_0020_b_02L꿈도꾸웟스리라 이제생각하면理想이니 主義이니
0042_0020_b_03L하는것도 다一塲春夢이엿든것이다 그러나R兄? 
0042_0020_b_04L兄은理想에서살고 主義에서산사람이다 兄은兄의
0042_0020_b_05L理想과主義을爲하야 따뜻한사랑과 多情한故國을
0042_0020_b_06L떠난것이다 그러나理想을實現하기前에 主義를일
0042_0020_b_07L우기前에 兄의압헤죽음이왓다는것은 이얼마나하
0042_0020_b_08L늘에사무치는압흠이라하랴 R兄 죽음을말하는때
0042_0020_b_09L에 이무슨어리석은말이랴마는 나는夏期歸國하엿
0042_0020_b_10L슬때에 兄이佛陀의古跡地을巡禮한다하기로 나는
0042_0020_b_11L퍽도깁버하얏다 어찌나뿐이엇스랴 華山아니! 全
0042_0020_b_12L朝鮮佛敎徒가 다信念과囑望을가지고 精神과物質
0042_0020_b_13L로써 兄의將來를期待하고 成功을祝福하얏다 兄
0042_0020_b_14L도勿論잘알앗겟지? 그리하야 兄도힘잇게살아보
0042_0020_b_15L리라고 애도썻스리라 그러나 죽음의땅에는項壯
0042_0020_b_16L士인들엇지하랴 아-이무서운죽음아? 이죽음을
0042_0020_b_17L깨치는우리人類야 참말Utopia를建設하리라 이無
0042_0020_b_18L情한죽음이얼마나만흔生靈을죽여바렷는지? 自由
0042_0020_b_19L를찻는者 밥을求하는者 그모든사람을다죽여버리
0042_0020_b_20L고 그해골우에 그시톄우에는 어떤무엇의 줄거
0042_0020_b_21L운노래가놉하지랴는지?

0042_0020_b_22L 아兄 나는兄이죽은二十二日만에 兄을吊喪하노
0042_0020_b_23L라 兄은어데서나의뜻을받아주랴는지? 나는兄의
0042_0020_b_24L理想에서길이살고저하며 後繼者가되려한다願하
0042_0020_b_25L노니 兄은죽은魂이라도 理法의길을 잘引導하야
0042_0020_b_26L라 敎旗의빗을빗나게하야라 아-이可憎한죽음을
0042_0020_b_27L咀呪하면서…………。

0042_0020_b_28L嗚呼李先生英宰氏여

0042_0020_b_29L朴三千

0042_0020_b_30L
 險難한印度洋一隅 외로운錫蘭島旅窓에 留學하
0042_0020_b_31L든 李英宰先生이 丁卯十月十二日午後二時에 恨
0042_0020_b_32L만흔人世를등지고 寂然한涅槃에入하엿슴니다。

0042_0020_b_33L 嗚呼先生이여! 造物의猜忌런가 惡魔의咀呪런

0042_0021_a_01L가? 어찌그다지 住世가短縮하섯스며 어찌그다
0042_0021_a_02L지運命이迅速하섯는가요?

0042_0021_a_03L 嗚呼先生이여! 先生의英靈은永遠히人間을離하
0042_0021_a_04L엿고 先生의謦咳는永遠히 世間에消하엿슴닛가-
0042_0021_a_05L아아! 朝에如花紅顏이 暮에數片白骨로 幻滅하
0042_0021_a_06L는것이 無常迅速의人世인줄은짐작하얏사오나 先
0042_0021_a_07L生의運命이 그처럼迅速할ㅅ줄이야 어찌夢中엔들
0042_0021_a_08L생각하엿스릿가? 昨에珠樓瓊殿이 今에麥秀廢墟
0042_0021_a_09L로化作하는것이 虛假幻影의浮世인줄은 짐작하얏
0042_0021_a_10L사오나 先生의浮世가 그처럼虛假할ㅅ줄이야 어
0042_0021_a_11L찌瞬間인들 생각하엿스릿가? 아아! 渭水秦山
0042_0021_a_12L에不歸客을지은 春風杜宇의벗이되럇든가요 陰山
0042_0021_a_13L黃沙에秋風落木인 쓸쓸한幽宅佳城이그립든가요!

0042_0021_a_14L 嗚呼先生이여! 異風殊俗낫서른異域! 形單影
0042_0021_a_15L隻외로운旅窓에서 그립운故國과 情다운親友를다
0042_0021_a_16L시한번만나지몯하고서 永遠히 草露로化하며 暮
0042_0021_a_17L烟으로消하고말럿슴니다그려! 아아! 「生也一片
0042_0021_a_18L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軆本無實 生死去
0042_0021_a_19L來亦如然」으로 透徹히觀察하는哲人이아닌 凡人
0042_0021_a_20L凡行의나어린 이沙彌로서는 더구나先生에게 特
0042_0021_a_21L別한사랑을받든 이 沙彌로서는 䐉裏에는萬愁百
0042_0021_a_22L憂의悲哀가冲冲하고 胷中에는悄悄悵悵의情懷가杳
0042_0021_a_23L然하며 兩眼에는漣漣熱淚가솟아나고 面門에는涕
0042_0021_a_24L泗哽咽의號泣이 連發함을禁치못하겟나이다 오-
0042_0021_a_25L天은無心히蒼蒼할뿐이오 神은無情히 冥冥할뿐인
0042_0021_a_26L가……………

0042_0021_a_27L 嗚呼先生이여! 先生은怯懦麁浮한情塵의人物이
0042_0021_a_28L아니엇섯고 剛明精美한高尙的人物이엇스며 風絮
0042_0021_a_29L雨花의浮輕한人物이아니엇섯고 泰山高岳의鎭重한
0042_0021_a_30L人物이엇스며 紅粉翠黛의假粧한人物이아니엇섯고
0042_0021_a_31L有頭有尾의眞正한人物이엇스며 虹橋蜃樓의虛假한
0042_0021_a_32L人物이아니엇섯고 精金璞玉의眞實한人物이엇섯슴
0042_0021_a_33L니다 아-西風殘照에氣息이奄奄하고 空山凉月에
0042_0021_a_34L子規가凄凄하며 敗垣殘礎에野蒿가蕭瑟하고 沙塲
0042_0021_a_35L草岸에荒漠한廢墟만남은 우리敎界로하야금 和風
0042_0021_a_36L慧雨에慶雲이絢爛하고 芳花薰香의奇觀을含蓄한理
0042_0021_a_37L想의大殿堂을建設하야 歡喜가動天하고 喜悅이振
0042_0021_a_38L地케할 槿花江山佛敎界에 업지못할先生이아니엇
0042_0021_a_39L슴닛가? 怒濤狂瀾이掀天動地하는 危險한大海에
0042_0021_a_40L遭難漂流하는 우리年少沙彌에게업지못할 唯一한

0042_0021_b_01L指南針이며 鐵甲船인先生이아니엇슴닛가? 아아
0042_0021_b_02L! 그러나 大厦에一柱를일헛스니 새집에棟樑은
0042_0021_b_03L何處에求하며 迷津에指南을일헛스니 中流에舟楫
0042_0021_b_04L은何處에得할ㅅ가!

0042_0021_b_05L 嗚呼先生이여! 眩幻한先生의三十光陰이란 逆
0042_0021_b_06L境인가요 順境인가요? 아아! 先生의그짧은一
0042_0021_b_07L生에서 巍巍한嶮山과荒茫한怒濤! 凛凛한寒威와
0042_0021_b_08L烈烈한朔風이 太半이엇섯슴니다! 凌凌한暗礁에
0042_0021_b_09L餘地업시 破碎되는 片舟의運命가튼逆境도잇섯슬
0042_0021_b_10Lㅅ것이오 裂石蒼崖에毒風을만난 老衰한古松의嶮
0042_0021_b_11L難도잇섯슬ㅅ것이며 氷山雪樹의極目荒遠한 것츠른
0042_0021_b_12L벌판도漂泊하섯슬ㅅ것이오 髑髏披靡하고蕭瑟凄凉
0042_0021_b_13L한北邙附近도彷徨하섯슬ㅅ것임니다! 그러나 剛
0042_0021_b_14L毅果斷과勤勉奮鬪로 爲力하시는先生으로서는 刻
0042_0021_b_15L一刻萎縮하야지고 步一步退却하야지는敎界를爲하
0042_0021_b_16L야 가진險難과온갓逆境으로더부러 惡戰苦鬪를꾸
0042_0021_b_17L준히繼續하시엇섯다 아-그러나 逆境의痛과惡運
0042_0021_b_18L의悲가 勝利런가? 敬愛하옵든先生은 印度洋의
0042_0021_b_19L彼岸! 錫蘭島의旅窓에서 永遠한別世界로永遠히떠
0042_0021_b_20L나시고말럿슬뿐이올시다! 아-이沙彌는 先生께
0042_0021_b_21L서처음에靈鷲의授記와恒河의灌頂을얻으시랴고 險
0042_0021_b_22L難한印度洋을無事히근느섯다는喜報를接하고 그얼
0042_0021_b_23L마나汪洋한前途를羡慕하얏스며 그얼마나鵬程萬里
0042_0021_b_24L의好運을祝福하엿스릿가? 아아! 그러나 精誠끋
0042_0021_b_25L期待하고希望하든바는 그만속절업시 虹橋蜃樓의
0042_0021_b_26L虛幻泡影으로化하고말엇슴니다그려! 아!刹那人
0042_0021_b_27L生의事跡이여! 이러틋幻華의夢事며! 風燭의虛
0042_0021_b_28L跡일넌가?

0042_0021_b_29L 嗚呼先生이여! 最後의運命을異域旅窓에서맛추
0042_0021_b_30L실刹那! 親族愛友의熱熱한情淚의所有者이신先生
0042_0021_b_31L이아니엇슴닛가? 挾泰山超北海의勇敢한氣槪의所
0042_0021_b_32L有者이신先生이아니엇슴닛가? 아! 當時에 눈물만
0042_0021_b_33L코義氣만튼先生으로서 故國의情景을聯想하시고敎
0042_0021_b_34L團의處地를追憶하시면서! 흐릿한兩眼에는悲壯慷慨
0042_0021_b_35L의熱淚가 주룩주룩흐르섯슬ㅅ것이고 힘업는兩手
0042_0021_b_36L에는義氣잇는 大動脉이펄떡펄떡 뛰섯슬ㅅ것이올
0042_0021_b_37L시다! 아! 先生이여 先生에게 特別한사랑을받
0042_0021_b_38L든 이沙彌로서는漠然한悲懷와追憶의哀想이 쉴새
0042_0021_b_39L업시 뒤끄러소사오르며 千思萬念의얼키고얼킨哀
0042_0021_b_40L愁의心火는 高山深谷에불부튼森林가치 꺼질줄모

0042_0022_a_01L르나이다 오-先生이여 先生의英靈이 根塵을逈
0042_0022_a_02L脫하야 이宇宙間에아직安住하시나잇가? 萬一아
0042_0022_a_03L직安住하시거든 海東半島湖西一隅에 年少한一沙
0042_0022_a_04L彌가 萬斛의哀愁와千絲의悲淚를 뿌리는쥴이나알
0042_0022_a_05L아주소서………

0042_0022_a_06L 嗚呼先生이여…先生이俗離山에서 이沙彌와情
0042_0022_a_07L義잇게지내다가 서로南北으로헤여진지가 于今얼
0042_0022_a_08L마오닛기? 物換星移하고 花開葉落하는사이에
0042_0022_a_09L벌서六七의星霜이지내엿슴니다! 아! 이沙彌의
0042_0022_a_10L薄福한緣由의所致일넌가 그때에別後로 그만永氷
0042_0022_a_11L다시拜見치묻하얏슴니다그려! 아아! 先生이여
0042_0022_a_12L! 그때의離別이永永最後의離別이될ㅅ줄이야 뉘라
0042_0022_a_13L서아랏스릿가?……… 萬端情懷가杳然히소사오름을
0042_0022_a_14L참지몯하야 或先生의筆蹟이나보오면 마음에慰安
0042_0022_a_15L을얻을ㅅ가하고 낡은冊匣를一一히 뒤지엇슴니다
0042_0022_a_16L結果에一枚의寫眞과 五六通의書信을發見하얏슴니
0042_0022_a_17L다 그中에한通은 그언젠가 千紫萬紅이녹으러진
0042_0022_a_18L雲淡風輕自然의春光이 무루녹엇슬때에온것이엇슴
0042_0022_a_19L니다

0042_0022_a_20L「君아! 君이내의얼골를記憶하는가? 이름이나
0042_0022_a_21L잇지나아니하얏는가? 君아! 어찌그대지踪跡
0042_0022_a_22L을감추고지내는가? 君을思慕함이때가업거던어
0042_0022_a_23L찌戀戀한생각이 古今이잇슬理가잇나! 君도아
0042_0022_a_24L마나의消息을알지몯하얏스리라 나는年年히歸省
0042_0022_a_25L하지마는 君을저-俗離山깁푼눈속에서 말읍시
0042_0022_a_26L離別한後로다시만나보지몯하얏네그려(下略)」
0042_0022_a_27L또한通은 그언젠가? 金莖玉露와 玉宇凉風에
0042_0022_a_28L黃菊丹楓이爛然하야蕭瑟淸楚의感懷를이르키든때
0042_0022_a_29L에온것이엇슴니다

0042_0022_a_30L「金剛洞에丹楓나무 몃번이나붉엇스며 文長臺의
0042_0022_a_31L검은바위 몃번이나희엿던고 水晶峯의솔나무는
0042_0022_a_32L늙엇스리라 江淸水에고기는컷스리라 君도예보
0042_0022_a_33L든 君이아니요 나도그때의내가안일것일세 생
0042_0022_a_34L각하면 모도落謝塵 꿈결略)그리하고 生이라
0042_0022_a_35L貴下라하닛가 어짠지그사이가千里萬里나서이한
0042_0022_a_36L것갓데 더情답게할代名詞가업는가? 일홈을쓰는
0042_0022_a_37L것도조치 弟라兄이라쓰면더情답지아니할ㅅ가? 
0042_0022_a_38L옛적三千이가아닌君에게 이런말하기도좀짓적네
0042_0022_a_39L마는 그래도사랑의한조각이남아서이런말이라도
0042_0022_a_40L하네 容恕하게(略)」

0042_0022_b_01L한通은昨年여름에印度에서온것이엇슴니다

0042_0022_b_02L「昨年인가? 언제上海를가느니 日本을가느니惹
0042_0022_b_03L端을하고는 도모지消息이업기로 이어린바람둥
0042_0022_b_04L이가또어대로굴러갓는가? 갓스면갓단말이라도
0042_0022_b_05L잇서야情에오를것인데(略)君에게愛着이 意外에
0042_0022_b_06L깁흔識君이야 어찌조곰인들君을이젓스리요 간
0042_0022_b_07L절히기다리든次에 君의親書를意外에얻어보니 녜
0042_0022_b_08Lㅅ을追憶하는 萬端情懷가杳然히소사나서 나히
0042_0022_b_09L붓그러움을깨닷지몯하니 나의情에溺함이 大盖
0042_0022_b_10L이러하에(略)아! 果然나는끗업시迷路로彷徨
0042_0022_b_11L하는細音일세 이러나저러나 그이름이 이리저
0042_0022_b_12L리아름답게變할뿐이오 其實은 同一한放浪일세
0042_0022_b_13L그래도世上은 나를過히責하지아니하고 君까지
0042_0022_b_14L나를辯護하려고하니 世亦迷乎아 君亦世人이로
0042_0022_b_15L다 나의밟어온經路가 迷路임을判然히意識하면
0042_0022_b_16L서도 오히려도리키지를몯하니 果然人生은弱한
0042_0022_b_17L것일세 佛性이有哉아 어찌否定하리요만은 一
0042_0022_b_18L乘主義까지는疑問일세 왜? 나가튼弱한무리에
0042_0022_b_19L게 乘一乘의機會가 업슬뜻하매(畧)宿緣이라
0042_0022_b_20L凡生의힘으로어찌할수업는냥하야 當分間放浪을
0042_0022_b_21L繼續하려네 아니永遠일ㅅ지도모르지(略)자세한
0042_0022_b_22L것은日後歸國하여서 그립든君을내품안에꼭끌어
0042_0022_b_23L안ㅅ고 情談석거서說話코저하네 君의나히古稀
0042_0022_b_24L에다다른들 君의氣力이泰山을뒤집은들 내압헤
0042_0022_b_25L서奈何오 내가迷情이오 君亦解脫치몯하엿거던
0042_0022_b_26L彼此이기지묻할 渴愛의무서운引力은 君을恒時
0042_0022_b_27L내품안으로 잡이되리고말ㅅ것일세(略)……」

0042_0022_b_28L아아! 그러나追憶의萬想과 漠然한悲懷는 倍一
0042_0022_b_29L層소사남을禁치묻하겟나이다! 오先生이여? 이
0042_0022_b_30L一枚의寫眞과 五六通의親書는 나어린이沙彌가頭
0042_0022_b_31L白齒黃의古稀에다다르고 更一層 北邙一隅에煙氣
0042_0022_b_32L로化할때까지 永永先生으로 뫼시겟나이다

0042_0022_b_33L 嗚呼先生이여! 日暮道遠에至痛在心한 今日에
0042_0022_b_34L處하야 起死回生의一粒靈丹인先生을일흔 이어린
0042_0022_b_35L沙彌가 雪寒風이冷酷한寂寞한僻地! 넓고넓은荒
0042_0022_b_36L野에서 悲哀의눈물과 裂地의太息으로 漂浪할時
0042_0022_b_37L에 그누구의게慰撫를받으릿가? 落日이海底로沈
0042_0022_b_38L沒하고 團圓한氷輪이黃道에오를새 秋山暮煙의戀
0042_0022_b_39L戀한情懷를 그누구에게이약이하릿가? 아人生의
0042_0022_b_40L그迅速함이여! 石火電光의閃忽보다도 오히려迅

0042_0023_a_01L速함이로소이다 아! 人生의그危脆함이여! 懸崖
0042_0023_a_02L峭壁의朽木보다도 오히려危脆함이로소이다!

0042_0023_a_03L 嗚呼先生이여! 先生은平時에 品行이高潔淡泊
0042_0023_a_04L하시엇고 性慧가朗然澄淸하시엇스니 明妙한그英
0042_0023_a_05L靈이 宏遠한저宇宙 蒼茫한저天地에冥合하야 永
0042_0023_a_06L劫에서永劫으로 흐르고흐르나닛가 洋洋한印度洋
0042_0023_a_07L嵬嵬한大雪山에 颯然한天風을타고 如如自在하나
0042_0023_a_08L닛가? 先生은金剛가튼正信과 流水가튼精進으로
0042_0023_a_09L徹頭徹尾히 佛敎를爲하야勤勉하시엇고 佛敎를爲
0042_0023_a_10L하야 犧牲하시엇스니彌陁如來의 蓮花世界에서
0042_0023_a_11L共坐遊戱하시나닛가! 寂照莊嚴의常寂光土에서逍
0042_0023_a_12L遙安住하시나닛가!

0042_0023_a_13L 嗚呼先生이여! 安在하소서 靈山의白雲은千古
0042_0023_a_14L에희엿고 恒河의流水는永刼에흐르며 蕭蕭한松籟
0042_0023_a_15L는淸風을宣揚하고 無形한樹頭에百花가爛熳함니다
0042_0023_a_16L嗚呼! 敬愛하옵든 李先生英宰氏여!。()

0042_0023_a_17L李英宰先生의悲報를接하고䑃朧한過去를追憶하면서

0042_0023_a_18L渡印에際하야同信諸兄에게

0042_0023_a_19L釋宗圓

0042_0023_a_20L 막한이글은 故李英宰君이 印度로出發할때에 우리會員의게주고간 君의願力과 計劃을宣言한遺稿이다。나는 이
0042_0023_a_21L글을볼ㅅ적마다君의생각이새로우며 君을앗가와하는情이 가슴을찌르는지라 눈물을지우면서 抄錄하야佛敎에紹介하
0042_0023_a_22L는바이다―――素荷識―――

0042_0023_a_23L 兄님。아우는宿志인佛蹟을巡禮코저 方今渡印凖
0042_0023_a_24L備中임니다。無始刧來의發願이 成就됨이라면 歡
0042_0023_a_25L喜스럽기도 限量이업거니와 諸業이未盡한自身을
0042_0023_a_26L돌아보아서 또한만흔慚愧와悲哀를늣김니다。

0042_0023_a_27L 兄님 歸命者가 그敎祖을慕仰하는마음 幼兒가
0042_0023_a_28L慈母를思慕함과한가지 이世上에서 가장懇切하고
0042_0023_a_29L또純眞할ㅅ것임니다。天山葱嶺의險을넘어서 西天
0042_0023_a_30L에道를求함도 滄浪葦葉의難을무릅쓰고 東土에法

0042_0023_b_01L을傳함도 다이歸依心의發露일ㅅ것이며 木像土偶
0042_0023_b_02L에五軆를投하고 石塊瓦片에生命을犧함도 다-이
0042_0023_b_03L渴仰心의延長일ㅅ것임니다。

0042_0023_b_04L 兄님 아우야勿論 그와가튼矢心的求法과 殉敎
0042_0023_b_05L的精神을 아즉軆得치몯하얏슴니다。그러나 佛祖
0042_0023_b_06L를慕仰하는마음 내홀로懇切함에야 어찌하오릿가
0042_0023_b_07L佛恩이깁허갈사록 時流가머러갈사록 末世가混濁
0042_0023_b_08L하야聖道의闡揚이 容易치몯함을늣길사록 聖祖를
0042_0023_b_09L追憶하고 渴仰하는마음 聖地를차저가서 雪山의
0042_0023_b_10L흰눈이라도 한번치어다보앗스면 죽어도餘恨이업
0042_0023_b_11L겟다는區區하고 懇切한마음은 生命이라도아서갈
0042_0023_b_12L뜻한 强硬한態度로 아우를强要함니다。아우의이
0042_0023_b_13L번巡禮ㅅ거름은 이要請의所使임니다。

0042_0023_b_14L 兄님 그러나巡禮의길에臨하야 一種悲感을익이
0042_0023_b_15L지몯하는바는「去者成百歸無十」이든 先賢의辛酸
0042_0023_b_16L苦楚를二十世紀文明이 千里를咫尺化한 今日에잇
0042_0023_b_17L는아우로 어찌다想像이나하릿가마는 그래도그때
0042_0023_b_18L가 聖道의全盛期이엿든것임니다。그러나只今當하
0042_0023_b_19L여서는 三惠 四玄의求法諸賢도 雞貴의古人이요
0042_0023_b_20L那蘭 信者의轉法道塲도 摩竭의舊蹟임니다。千年
0042_0023_b_21L의時間을經한 五邦八域에 다先賢배우는者가적엇
0042_0023_b_22L스며 萬里의空間을隔한西天彼土에 一蘭若一沙門
0042_0023_b_23L이업게되엿스니 聖道의末路가 어찌寒心치아니함
0042_0023_b_24L닛가 先人은邊土에나심을 怨하시엿더니 아우는
0042_0023_b_25L末法에因緣지음을恨함니다。이러한늣김이 깁허갈
0042_0023_b_26L사록 聖道를渴仰함이 切切急急함니다。

0042_0023_b_27L 兄님 아우는 中天竺의聖蹟을 叅拜하기前에몬
0042_0023_b_28L저錫蘭에留學코저함니다。그는印度佛敎의餘脈이그
0042_0023_b_29L곧에 머물어잇슬뿐만아니라 復古의曙光도 오즉
0042_0023_b_30L그곧에잇슴으로써임니다。또아우가 一生을獻身코
0042_0023_b_31L저하는 敎學硏究의基礎인 梵巴二聖語를 硏究힘
0042_0023_b_32L에가장便宜한까낡임니다。또梵巴語의世界的權威인
0042_0023_b_33L니냐나ㆍ지루카長老와 明春에그곧에서 맛나同居
0042_0023_b_34L하기로言約한것도 그理由의하나임니다。또스망가
0042_0023_b_35L라僧正在世時에 보입지몯함은大遺感이나 그의高
0042_0023_b_36L足에碩德이만코 또信者階級에도 年前에來訪한達
0042_0023_b_37L磨婆羅居土以下 法을물을만한곧이 만흔것도아우
0042_0023_b_38L를錫蘭으로끄는 한磁力임니다。

0042_0023_b_39L 兄님 以上과가튼期待로 約二年間을 그곧에서
0042_0023_b_40L硏究코저함니다。그런後에 天竺의聖蹟을 巡禮코

0042_0024_a_01L저함니다。南으로부터北으로 그리하는동안에 印
0042_0024_a_02L度哲學과 考古學을硏究코저함니다 또聖典에關係
0042_0024_a_03L잇는 動植物學도상고하고저함니다。또印度는宗敎
0042_0024_a_04L와哲學으로만우리의先進이될뿐만아니라 民族運動
0042_0024_a_05L에도 배울ㅅ것이만흐리라고믿슴니다。

0042_0024_a_06L 兄님。그期間은 또한얼마나될는지요? 그리하
0042_0024_a_07L고될수만잇스면 西으로異敎를視察함보다 北으로
0042_0024_a_08L東으로 西域과中華에서 先賢의 자취를찻고저함
0042_0024_a_09L니다。

0042_0024_a_10L 兄님。이것이 아우의區區한發願의全幅임니다。
0042_0024_a_11L언제나 이리한任務를다하고 다시槿原에도라와서 
0042_0024_a_12L兄님과한가지 末法을爲하야 奉仕할는지요。「未見
0042_0024_a_13L雲隨一杖還」의古日에比하면 今日에巡禮는反掌의
0042_0024_a_14L易事나 그래도氣候風土가설고 言語習俗이달은天
0042_0024_a_15L竺行脚은 아직도許多한冒險을要한다하니 將來가
0042_0024_a_16L果然어찌될는지요 오즉命을三寶前에바치고 同信
0042_0024_a_17L諸兄의愛護만바랄뿐임니다。

0042_0024_a_18L 兄님。法候來來安寧하시압 아우는聖蹟을차저서
0042_0024_a_19L멀리멀리 가럄니다。

0042_0024_a_20L 兄님。聖道를爲하야 끗끗내奮鬪하시압 佛祖를
0042_0024_a_21L차저가는 아우 반듯이 慈父를차저서 돌아을날
0042_0024_a_22L이잇슬ㅅ것임니다。

0042_0024_a_23L南無大聖釋迦牟尼佛―――

0042_0024_a_24L節錄鐔津文集哀辭中三節

0042_0024_a_25L爲李君哀

0042_0024_a_26L之一生

0042_0024_a_27L

0042_0024_a_28L別去一年 志氣方壯 豈悟其忽然而已亡耶
0042_0024_a_29L古人以人生 比之浮雲奄忽 不可常保 如此
0042_0024_a_30L信之矣。

0042_0024_a_31L

0042_0024_a_32L嗚乎 交道之而已乎 哀其人不可復見矣。

0042_0024_a_33L

0042_0024_a_34L嗚乎 辱公之顧待異矣 不復覩矣。
0042_0024_a_35L老成之人兮 已與化移。典型雖在兮 奚可
0042_0024_a_36L邇窺。大夜奄夕兮 復曉何時。神明一去兮
0042_0024_a_37L寂然何知。伊我所傷兮 賢者寢稀。顧此別
0042_0024_a_38L離兮 杳杳長違。

0042_0024_b_01L投稿歡迎 佛敎决疑

0042_0024_b_02L第二十八回問答 佛紀의的確한것을뭇슴니다

0042_0024_b_03L問者 江原道江陵邑內 宋

0042_0024_b_04L佛紀에對하야는 二九五四年說과 二四九五年說이 有하온즉 어兩說中에 어것이 正確한것임닛가?

0042_0024_b_05L退耕 相老 解答

0042_0024_b_06L 佛紀에對하야는細論하면 썩多種의異說이잇슴니
0042_0024_b_07L다 朝鮮近古의考古家金正喜(秋史)氏도 此에對하
0042_0024_b_08L야如此한辯證이잇스니

0042_0024_b_09L「釋迦生滅年時 無一定論 以爲周莊王九年桓星不
0042_0024_b_10L見時生魏書釋
老志
 又以爲周桓王時生釋道
 又以爲平
0042_0024_b_11L王時生法苑
珠林
 又以爲穆王時生通歷云佛以孝
王元年涅槃
 又以
0042_0024_b_12L爲昭王時生一唐僧智深續集古今佛道論衡
二法苑珠林三宋契崇傳法正宗
 又以爲
0042_0024_b_13L殷末生晉法顥云佛涅槃當周成
王時則生當在殷武乙時
 又以爲夏時生唐道
宜感
0042_0024_b_14L通記蒙古源流又云元太祖距佛涅
槃時三千三百餘年當生于夏初
 唐玄奘以爲佛
0042_0024_b_15L滅之歲 諸部異議 言佛滅及至唐龍朔三年 經千二
0042_0024_b_16L百年 或千三百年 或云千五百年 或云未滿千年
0042_0024_b_17L又如道家老子化胡成佛之說 謂佛生周敬王二年 
0042_0024_b_18L滅于考王三年 其生滅年時 尙不能明確 又况其
0042_0024_b_19L涅槃之地 又况其涅槃時事實耶」

0042_0024_b_20L아하얏지마는 大槪東洋昔日에相傳하든敎典中에는

0042_0024_b_21L「周昭王二十六年甲寅四月八日에釋尊이誕生하시
0042_0024_b_22L고 周穆王五十二年壬申二月十五日에釋尊이涅槃
0042_0024_b_23L하시니 西歷紀元前九百五十年前에(滅度)當하고
0042_0024_b_24L距今丁卯하면二千九百五十四年(誕生)」

0042_0024_b_25L이라하는것이 눈에익고 귀에저저서 支那及朝鮮
0042_0024_b_26L에는 그러케施行하게되엿슴니다마는 佛祖通載第

0042_0025_a_01L九卷에「衆聖點記」를引証하엿스되

0042_0025_a_02L「梁武帝時에 僧伽䟦摩가傳來한 善見律의 卷
0042_0025_a_03L末에 無數한黑點이잇스니 相傳하기를 佛의滅
0042_0025_a_04L度하시든해로부터起始하야 佛弟子優波離가 이
0042_0025_a_05L卷末에一點을찍고 以後로는 師弟가代代相傳하
0042_0025_a_06L야 每年에一點式을찍어서 齊永明六年에 僧伽
0042_0025_a_07L䟦摩가最後의一點을찍기까지 共計九百五十七點
0042_0025_a_08L이라 此로써推上하면 佛滅度가周敬王三十五年
0042_0025_a_09L에當한다」

0042_0025_a_10L하엿스니 舊說에相差되는것이 五百三十餘年이되
0042_0025_a_11L는지라 舊說의僞誤가明明한 有力한反證이되엿지
0042_0025_a_12L마는 이「衆聖點記」만을 어찌可信하랴하야 異說
0042_0025_a_13L로볼뿐이오 遵信치아니하엿더니 近古에와서는歐
0042_0025_a_14L人들이佛敎硏究에着手하야 西藏文의「釋迦傳」으로
0042_0025_a_15L阿闍世王의 年代를考定하고 印度「石柱刻文」으로
0042_0025_a_16L阿育王의年代를考定하고 巴利文의「錫蘭島史」로써
0042_0025_a_17L錫蘭諸王의年代를考定하고 그諸種中에나타나는佛
0042_0025_a_18L滅年代를 各王年代와比較追算하야 佛滅年이西紀
0042_0025_a_19L四百八十五年임을確定하니「衆聖點紀」의價値가이
0042_0025_a_20L에비로소十倍나暴騰되엿슴니다 蔽一言하고 二九
0042_0025_a_21L五四說은 우리들의習慣에저저온것이오 的確하기
0042_0025_a_22L는 二四九二說임니다

0042_0025_a_23L 그러나 紀元二字로말을할ㅅ지라도 우리朝鮮에
0042_0025_a_24L서는 釋尊의生年으로써紀元을삼찌마는 다른데서
0042_0025_a_25L는 모다釋尊이入滅하시든그翌年으로써 佛敎의紀
0042_0025_a_26L元을삼슴니다

0042_0025_a_27L 그러나 다시仔細한報道를하기爲하야 望月信亨
0042_0025_a_28L氏의編輯한「佛敎大年表序論」에記載된入滅年代를節
0042_0025_a_29L錄하야드리겟슴니다

0042_0025_a_30L(前略) 釋尊의入滅年代에關하야는 法顯傳ㆍ歷
0042_0025_a_31L代三寶記ㆍ破邪論ㆍ西域記ㆍ釋迦方志ㆍ法苑珠林ㆍ
0042_0025_a_32L鷲嶺聖賢錄ㆍ僧史畧ㆍ飜譯名義集並錫蘭ㆍ緬甸ㆍ
0042_0025_a_33L西藏等所傳及泰西諸學者가各各그說이異하야 그
0042_0025_a_34L最古한者는 西紀前二千四百二十二年이라하고最
0042_0025_a_35L近한者는 西紀前三百二三十年頃이라하야 그間
0042_0025_a_36L의差異가實로二千八百餘年이되니 어찌可驚할바
0042_0025_a_37L아니랴 그러나 近代에至하야 希臘亞歷山大王
0042_0025_a_38L의印度侵入의事實에依하야 阿育王의出世年代를
0042_0025_a_39L確定할수잇스니 이것이印度史上에一道의光明이
0042_0025_a_40L되여서 이로써그前後의 事實을살필수가잇도다

0042_0025_b_01L이제阿有王을中心으로하고 佛入滅에至하는年代
0042_0025_b_02L를考하건대 北方所傳의諸經論에는 擧皆百年又
0042_0025_b_03L는百餘年이라하고 南方所傳에는 二百十八年이
0042_0025_b_04L라하야 그間에約百年의差가生하니 이것을取捨
0042_0025_b_05L하기에大惑이업지안치마는 南傳에이른바二百十
0042_0025_b_06L八年이라는數字가 衆聖點記의年數와符合함으로
0042_0025_b_07L써 지금에衆聖點記의說을取하야 佛滅元年을西
0042_0025_b_08L紀前四百八十五年에置하노라 衆聖點記라는것은
0042_0025_b_09L費長房의歷代三寶紀第十一에「齊武帝의世에外國
0042_0025_b_10L沙門僧伽䟦陀羅는 齊言에僧賢이니 師資相傳으
0042_0025_b_11L로 佛涅槃後에優婆離가旣히法藏을結集하고 其
0042_0025_b_12L年七月十五日에自恣를마치고는 香華로써律藏에
0042_0025_b_13L供養하고 문득一點을下하야 年年이如是하다가
0042_0025_b_14L優婆離가 涅槃하려할제 弟子陀寫俱의게付囑하
0042_0025_b_15L고 陀寫俱가涅槃할때에는 弟子須俱의게付囑하
0042_0025_b_16L고 須俱가涅槃할때에는 弟子悉伽婆의게付囑하
0042_0025_b_17L고悉伽婆가涅槃할때에는 弟子目犍連子帝須의게
0042_0025_b_18L付囑하고 目犍連子帝須가涅槃할때에는 弟子旃
0042_0025_b_19L陀䟦闍의게付囑하야 如是히師資相付하야 지금
0042_0025_b_20L三藏法師에至하니 三藏法師는律藏을가지고 廣
0042_0025_b_21L州에至하야 上陸하려하다가 도로歸去하고 律
0042_0025_b_22L藏으로써弟子僧伽䟦陀羅의게付與하엿더니 羅는
0042_0025_b_23L永明六年에沙門僧猗와한가지 廣州竹林寺에서이
0042_0025_b_24L善見毘婆沙律을譯出하고 因히安居하야 永明七
0042_0025_b_25L年庚午歲七月半夜에 自姿를마치고는 前의師法
0042_0025_b_26L과가치 香으로써律藏에供養하고 곧一點을下하
0042_0025_b_27L니 그해까지에計九百七十五點이라 一點이곧一
0042_0025_b_28L年이러라 趙伯林이梁大同元年에 廬山에서苦行
0042_0025_b_29L律師弘度를맛나니 이는佛涅槃後로衆聖點記에得
0042_0025_b_30L한 年月을齊永明七年까지라한다 伯林은弘度의
0042_0025_b_31L게말하되 永明七年以後는 어찌다시點을볼수업
0042_0025_b_32L느냐한즉 弘度의對答이 그以前에는皆是得道한
0042_0025_b_33L聖人들이 自手로下點하얏지마는 貧道는凡夫임
0042_0025_b_34L으로 奉持頂戴할뿐이오 敢히點은輒下치못하노
0042_0025_b_35L라함애 伯林은그舊點下에因하야 推求한結果梁
0042_0025_b_36L大同九年癸亥歲까지 合一千二十八年을 得하엿
0042_0025_b_37L다」云한것이라 大唐內典錄第四에도亦同하나干
0042_0025_b_38L支를推求하건대 齊永明七年은己巳요 庚午는八
0042_0025_b_39L年이며 開元釋敎錄第六、貞元釋敎錄第八에는永
0042_0025_b_40L明七年說을取호대 長房의干支를改하야己巳라함

0042_0026_a_01L으로써 一年의差가生하얏지마는 이제干支에依
0042_0026_a_02L하야 庚午歲되는永明八年을起點으로하고 九百
0042_0026_a_03L七十五年을溯上하야 佛滅元年을定한것이라 그
0042_0026_a_04L러나 出三藏記集第十一에잇는善見律毘婆沙後記
0042_0026_a_05L에는「齊永明十年歲次實沈(申)三月十日에 禪林
0042_0026_a_06L比丘尼淨秀가 僧伽䟦陀羅法師의廣州에서 僧褘
0042_0026_a_07L法師와한가지 梵本善見毘婆沙律一部十八卷을譯
0042_0026_a_08L出하얏다함을聞하고 京師에 未曾有한바임으로
0042_0026_a_09L渴仰欲見하얏스나 僧伽䟦陀羅는其年五月에南還
0042_0026_a_10L하얏슴으로 十一年歲次大梁(酉)四月十日에사律
0042_0026_a_11L을得하고還都하야 頂禮執讀하고敬寫流布하노라
0042_0026_a_12L仰惟컨대 世尊泥洹已來로 每載七月十五日에至
0042_0026_a_13L하야 受歲를已竟하고는 衆前에서一點식을謹下
0042_0026_a_14L하야 年年如此라하니 感慕心悲하야 不覺流淚
0042_0026_a_15L라」하얏슨즉 이것도衆聖點記의說을傳한것은言
0042_0026_a_16L을竢치안켓지마는 만일凈秀尼가永明十一年에 善
0042_0026_a_17L見律을得하고建康으로還하야 그해七月에衆前에
0042_0026_a_18L서一點을下하엿다하면 弘度律師의永明七年以後
0042_0026_a_19L로는다 시下點치아니하엿다는說에乖하고만일弘
0042_0026_a_20L度律師의말을信할진대 이記文에「謹下一點、年年
0042_0026_a_21L如此」에는符合치안는것이다 案하건대 歷代三
0042_0026_a_22L寶記에이른바 永明七年이라는것은 或善見律後
0042_0026_a_23L記에이른바 永明十一年의誤寫又는訛傳이아닌가
0042_0026_a_24L한다 아모러커나 永明十一年을起點으로하고九
0042_0026_a_25L百七十五年을溯上하면 西紀前四百八十二 을得
0042_0026_a_26L하게되니 이것은佛陀伽倻碑文第一에 西紀前四
0042_0026_a_27L百八十一年이라는說과 僅히一年의差가잇스니或
0042_0026_a_28L是歷代三寶記를否定할만한疑點이잇는者이다 그
0042_0026_a_29L러나道宣ㆍ智昇ㆍ圓照等은 모다長房을祖述할뿐
0042_0026_a_30L이오 一言도善見律後記에는及하지아니하엿슬새
0042_0026_a_31L아즉歷代三寶紀를從하야 上과如히佛滅을規定하
0042_0026_a_32L노라

0042_0026_a_33L 佛滅年代의異說中에 法上ㆍ道安ㆍ費長房ㆍ法
0042_0026_a_34L琳及賛寧等은 春秋又는周書異記等에基하야 推定
0042_0026_a_35L한年代라 진실로價値가업지마는 譯經三藏並外國
0042_0026_a_36L所傳의說일지라도 그由來를難審한者가不少하니
0042_0026_a_37L玄奘所傳으로도 무릇四說이잇다(一)西域記第六
0042_0026_a_38L에「佛涅槃으로부터 諸部에異議가잇스니 或云千
0042_0026_a_39L二百餘年 或云千三百餘年 或云千五百餘年 或
0042_0026_a_40L云已過九百未滿千年」이라하고 慈恩傳第三ㆍ釋迦

0042_0026_b_01L方志卷上ㆍ法苑珠林第二十九等에도同一한記事이
0042_0026_b_02L지마는 慈恩傳ㆍ法苑珠林에는 單으로一千二百
0042_0026_b_03L一千三百ㆍ一千五百이라하고 餘字가업스며 釋
0042_0026_b_04L迦方志에는 오즉一千五百年에餘字가잇다 그러
0042_0026_b_05L나 이런諸年代의 起點들은 果然那邊에잇는가
0042_0026_b_06L따라서餘字가 잇는것이正인가 업는것이正인가
0042_0026_b_07L釋迦方志에는 今貞觀二十年에至하기까지 一千
0042_0026_b_08L二百十二年을 經하얏스니 此는菩提寺石柱記에
0042_0026_b_09L依한것이라」하엿다 이것은貞觀八年곧玄奘이拘
0042_0026_b_10L尸那揭羅佛涅槃處에詣하얏든時는 滿一千二百年
0042_0026_b_11L을經하얏다함으로써 그로부터十二年後 即貞觀
0042_0026_b_12L二十年을 一千二百一十二年이라할것이니 만일
0042_0026_b_13L此說에依하면 佛滅은西紀前五百六十六年에當할
0042_0026_b_14L것이며 法苑珠林에서는「今龍朔三年에至하기까
0042_0026_b_15L지 一千二百年을經하얏스니 此는菩提寺石柱記
0042_0026_b_16L에依한것이라」하얏다 만일此說에從한다하면佛
0042_0026_b_17L滅은 西紀前五百三十七年에當할것이니 이兩說
0042_0026_b_18L은推算의起點이相異하지마는 一千二百年을實數
0042_0026_b_19L로보는데잇서서는一致하다 그러나 吾人의思考
0042_0026_b_20L하는바로는 此說은아마 佛陀伽倻碑文第二 西
0042_0026_b_21L紀前五百四十三年說을傳한者이니 곧錫蘭所傳에
0042_0026_b_22L符合하며 古來印度에서 가장有力한立說이엿섯
0042_0026_b_23L스나 그러나 이것은오즉大數만을示한것에不過
0042_0026_b_24L한것이니 佛陀伽倻碑文第一說은 龍朔三年과六
0042_0026_b_25L年의相去가잇는 顯慶元年을起點으로하야 滿一
0042_0026_b_26L千二百年을得한것이다

0042_0026_b_27L (二)一千三百年은 곧羅什의年紀說에符合하니 羅
0042_0026_b_28L什年紀라함은 後周道安의二敎論에「又什法師年
0042_0026_b_29L紀及石柱銘에依하면 幷히春秋에符同하니 如來
0042_0026_b_30L는周桓王五年歲次乙丑에生하고 桓王二十三年歲
0042_0026_b_31L次癸亥에出家하고 莊王十年歲次甲午에成佛하고
0042_0026_b_32L襄王十五年歲次甲申에滅度하니 至今一千二百五
0042_0026_b_33L年이라」한것이是라 그러나周襄王十五年甲申은
0042_0026_b_34L西紀前六百三十七年에當하니 龍朔三年으로부터
0042_0026_b_35L一千三百年을溯上하는數와符合되고 一年의差違
0042_0026_b_36L가有하도다 是가어찌可驚할計數가아니랴

0042_0026_b_37L (三)一千五百年說은 龍朔三年으로 推算한것인
0042_0026_b_38L데西藏所傳인西紀前八百三十七年說에符合하고또
0042_0026_b_39L一年의差違가잇스니 이것을말미암아보건대 龍朔
0042_0026_b_40L三年을起點으로한것이 决코偶然이아님을알ㅅ지

0042_0027_a_01L로다

0042_0027_a_02L (四)一千年未滿說은「已過九百未滿千年」이라하얏
0042_0027_a_03L스니진실로正確한數字를얻을수업스나 아마도迦
0042_0027_a_04L濕彌羅地方에서行하는 一種의傳說이아닌가한다
0042_0027_a_05L案컨대 西域記第二ㆍ慈恩傳第二及大毘婆沙論第
0042_0027_a_06L二百等에 迦膩色迦並婆沙結集을 佛滅四百年에
0042_0027_a_07L置한것은 他의傳說에比하면差早함을覺하겟지마
0042_0027_a_08L는 이제一千年未滿을九百八十五年쯤으로假定하
0042_0027_a_09L고 釋迦方志에依하야 貞觀八年에서此를推算하
0042_0027_a_10L면 佛滅은西紀前三百五十一年에當하니 만일此
0042_0027_a_11L說을取하면 迦膩色迦王의出世는 西紀五十年頃
0042_0027_a_12L에在할ㅅ것이니 이것은大數에잇서서 大槪妥當
0042_0027_a_13L할ㅅ것이다 又案컨대 上座大衆根本二部의分裂
0042_0027_a_14L에는 異說이잇지마는 만일大智度論第二를依한
0042_0027_a_15L다하면「後百年에 阿輸迦王이 般闍于瑟大會를
0042_0027_a_16L作함애 諸大法師의論議가相異한故로 別部의名
0042_0027_a_17L字가잇다」하엿스니 南方所傳에는阿育王의治下에
0042_0027_a_18L異部分裂의事를記八치아니하엿지마는 阿育王即
0042_0027_a_19L位第十七年에 目犍連子帝須가上首가되여서 波
0042_0027_a_20L吒釐子城에서法藏을結集하엿다하고 又阿育王刻
0042_0027_a_21L文에 王은即位第十二年에五年大會를開한事를記
0042_0027_a_22L하엿스니 그第十七年은次回의五年大會即般闍于
0042_0027_a_23L瑟大會에相當함으로써 此를大智度論에合考하면
0042_0027_a_24L南傳에이른바第三結集에際하야 無端히諸大法師
0042_0027_a_25L의論議가相異한故로 異部分裂의端을啓하얏다고
0042_0027_a_26L想像할수잇도다그러나 阿育王即位第十七年은
0042_0027_a_27L西紀二百五十一年에當하니 만일此를佛滅後滿一
0042_0027_a_28L百年이라하면 即一千年未滿의說에符合하는도다
0042_0027_a_29L다시唐日比丘의所傳인 一說이잇스니 西晉白法
0042_0027_a_30L祖가譯出한 佛般泥洹經後記에「佛般泥洹으로
0042_0027_a_31L到永興七年二月十一日이 凡已八百八十七年餘七
0042_0027_a_32L月十有一日이라 至今丙戌歲合爲九百一十五年이
0042_0027_a_33L니 是는比丘康日의所記也-라」한거이라 記文
0042_0027_a_34L이甚簡하야 그由來는究할수업스나 임의西晉譯
0042_0027_a_35L經의後記라할진대 그傳承이極古함을足히알겟도
0042_0027_a_36L다 文中에永興七年이라하얏스나 支那의年號에
0042_0027_a_37L永興으로稱한者ㅣ무릇四次이니 即後漢桓帝의
0042_0027_a_38L世에二年 西晋惠帝의世에二年 前秦符堅의世에
0042_0027_a_39L二年 北魏明元帝의世에五年이니 모다七年까지
0042_0027_a_40L간때는업슨즉 이것이疑惑나는바이다 그러나八

0042_0027_b_01L百八十八年(八百八十七年餘七月十有一日은 八百
0042_0027_b_02L八十七年과 七個月又十有一日을意味함임으로써
0042_0027_b_03L八百八十八年으로看做함)으로부터 二十七年의
0042_0027_b_04L後 即九百一十五年은丙戌歲에當할ㅅ것이며 또此
0042_0027_b_05L經이西晋惠帝의代에在世한 百法祖의譯出한바라
0042_0027_b_06L하면 반듯이그干支는惠帝前後에잇슬ㅅ줄로像想
0042_0027_b_07L하고 年曆을案하야 惠帝의永建元年已後二十七
0042_0027_b_08L年(即惠帝의永興元年已後二十四年)되는 東晋成
0042_0027_b_09L帝咸和元年丙戌歲가잇슨즉 永興七年이란말은全
0042_0027_b_10L혀無意味하게되엿지마는 白法祖의譯經이기때문
0042_0027_b_11L에 이해에相當하다고 是認하지아니할수업다
0042_0027_b_12L만일이것을是認한다하면 佛滅은西紀前五百八十
0042_0027_b_13L九年에當하니 이것은緬甸에서傳하는一說과附合
0042_0027_b_14L된다。(下略)

0042_0027_b_15L 已上과가치 種種의說이잇슨즉 此를列表하건대
0042_0027_b_16L아래와갓슴니다

0042_0027_b_17L佛敎紀元衆說一覽略表

0042_0027_b_18L佛滅(即紀元)
距今丁卯

0042_0027_b_19L支那王代
干支西紀前佛滅后佛誕后備考

0042_0027_b_20L一、
二四二二四三四九四四二八最古說話(朝鮮檀君보다도八十九年前)

0042_0027_b_21L二、周穆王五二
壬申九四九二八七六二九五四朝鮮及支那普通說話

0042_0027_b_22L三、周共和四
癸亥八三八二七六五二八四三衆聖點記를弘度說에依하야永明七年을起點으로함

0042_0027_b_23L四、周共和五
甲子八三七二七六四二八四二衆聖點記를弘度說에依하야永明八年을起點으로함

0042_0027_b_24L五、周共和六
乙丑八三六二七六三二八四二翔三年龍을起點으로한一千五百年說、玄奘第三說

0042_0028_a_01L六、周共和八
丁卯八三四二七六一二八三九出三藏紀集說

0042_0028_a_02L七、東周襄王一五
甲申六三七二五六四二六四三春秋、羅什記、菩提寺石柱記

0042_0028_a_03L八、東周襄王一六
乙酉六三六二五六三二六四一龍翔三年을起點으로한一千三百年說、玄奘第二說

0042_0028_a_04L九、東周定王一八
壬申五八九二五一六二五九四惠日說、緬甸一說

0042_0028_a_05L十、東周靈王六
乙未五六六二四九二二五七一貞觀二十年을起點으로한說、釋迦方志、玄奘第一說

0042_0028_a_06L十一、東周景王元
戊午五四三二四七○二五四八顯慶元年을起點으로한說 佛陀伽倻碑第二

0042_0028_a_07L十二、東周景王八
甲子五三七二四六四二五四二說、法苑珠林、菩提寺石柱記

0042_0028_a_08L十三、東周景王九
乙丑五三六二四六三二五四八龍翔三年을起點으로한一千二百年說

0042_0028_a_09L十四、東周敬王二
癸未五一八二四四五二五二三化胡成佛說

0042_0028_a_10L十五、東周敬王三四
乙卯四八六二四一三二四八二費長房歷代三寶記

0042_0028_a_11L十六、東周敬王三五
丙辰四八五二四一二二四九○衆僧聖點記僧伽䟦陀羅說

0042_0028_a_12L十七、東周敬王三八
己未四八二二四○九二四八七永明十一年을起點으로한淨秀比丘尼說

0042_0028_a_13L十八、東周敬王三九
庚申四八一二四○八二四八六佛陀伽倻碑第一說

0042_0028_a_14L十九、東周敬王一八
庚午三五一二二八七二三六五貞觀八年을起點으로한 千年未滿說、玄奬第四說

0042_0028_b_01L읽읍시다

0042_0028_b_02L一讀子

0042_0028_b_03L
 닥지안는 거울에는 몬지가 안슴니다 쓰지안는機械에는 힘이나지안슴니다 읽지안는 마음하날
0042_0028_b_04L에는 迷雲이 떠돔니다 迷雲이 떠둘거던 慧日을어찌보릿가 慧日을 묻보거던 光明을 어찌얻으
0042_0028_b_05L릿가 光明을 몯얻거던 보아알고 차자얻으며 삷혀黑白을가리고 생각하야 是非를判斷함을 어찌
0042_0028_b_06L얻으럿가

0042_0028_b_07L 보십시요! 化粧室한귀퉁이에서 美人의纎細한曲線을 遺漏업시 비추어내는明鏡을 얼마나닥겟습닛
0042_0028_b_08L가 朝朝夕夕에 닥지안흘때가잇겟습닛가 보십시요! 큰工塲의한구석에서 萬夫의굿센힘을 자아내
0042_0028_b_09L고 남음이잇는發動機는 얼마나 부즈런히 돌아감닛가 쓰이여짐닛가

0042_0028_b_10L 보십시요! 文明國人의文明人된所以를、얼마나讀書하기를 정성껏함닛가 우리사람은 古賢의 「手
0042_0028_b_11L不釋卷」을稀罕타생각할만침 讀書熱이高潮되지못하얏지만은 저-所謂文明國人으로自處하는사람들은
0042_0028_b_12L이를例事로늣길만침 讀書熱이高潮됨을 보지안습닛가 店頭에서도 田間에서도 野外에서도 車上에
0042_0028_b_13L서도 爐邊에서도 枕頭에서도 읽지안습닛가보지안슴닛가 或은新聞 或은雜誌 或은小說 或은宗
0042_0028_b_14L敎 或은哲學 或은農 或은工 或은商 이러케自己專業에關한것 自己嗜好에關한것 職業的으로 娛
0042_0028_b_15L樂的으로 온갓的으로 더알고 더向上할 自己를만들기爲하야 틈나는대로 環境이許하는대로 온갓
0042_0028_b_16L대로 읽지안습닛가 보지안습닛가

0042_0028_b_17L 그리고 돌아보십시요 紫水明山의勝地佳處를 독차지하고잇는 우리朝鮮僧侶를、얼마나읽슴닛가 얼

0042_0029_a_01L마나보십닛가 고요한곧에 맑은空氣속에서 얼마나읽슴닛가 얼마나보심님가 그래서 時代思潮를 世
0042_0029_a_02L界大勢를 얼마나삷혀아심닛가 이에나는滿足스러운答을받지 못할ㅅ것을알고(받을곳도잇겟지마는)크
0042_0029_a_03L게설어함니다 울고십슴니다 땅이꺼저라고 주먹을치고십슴니다

0042_0029_a_04L 朝鮮佛敎機關雜誌로「佛敎」(內容이좀貧弱한觀이업지몯하나마)가잇지만는이를읽어지내는이가 果
0042_0029_a_05L然얼마나됨닛가 爲先三十一本山住持스님 其他老스님네치고「佛敎」를每月보아지내치는이가 몃분이
0042_0029_a_06L나게시갯습닛가 몃분몯되갯다는생각이 엇득 머리속에떠오름니다 하물며其他新聞雜誌이릿가(經
0042_0029_a_07L典은얼마나보실찌)이에나는「佛敎」의內容이 더좀健實하야지기를 切願하는同時에 우리朝鮮老少
0042_0029_a_08L男女法侶의게 大呌하야告하노니 한달치고 佛敎한권이라도 읽읍시다 그래서 더아는길로 나아갑
0042_0029_a_09L시다。

0042_0029_a_10L―――十一月八日밤洛東江畔에서―――

0042_0029_a_11L讀書

0042_0029_a_12L讀書老何爲、更讀聊遮眼。此意雖等閑、高情寄無限。

0042_0029_a_13L錯磨千古心、飜覆幾忘飯。不知白雲去、春靜山中晩。

0042_0029_a_14L契嵩禪師鐔津集에서

0042_0029_b_01L佛敎彙報

0042_0029_b_02L評議員臨時總會

0042_0029_b_03L財團을促成하기爲하야

0042_0029_b_04L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에서 財團을促成하
0042_0029_b_05L기爲하야十一月一日二日의兩日을繼續하야 臨時評
0042_0029_b_06L議員總會를召集하야 議事를進行하엿는데 그議程
0042_0029_b_07L과决案은如左하더라

0042_0029_b_08L議程

0042_0029_b_09L 一、一二種財產及過年度未收完納에關한件

0042_0029_b_10L 一、普成舊校舍賣却處分에關한件

0042_0029_b_11L 一、佛敎專修學校許可及維持에關한件

0042_0029_b_12L决案

0042_0029_b_13L 一、一二種完納에關하야는本山別로一團을삼고그
0042_0029_b_14L滯納總額의二分一에相當한本寺所有畓을財團法人에
0042_0029_b_15L提供하야所有를移轉호대그所要되는登記料金은關係
0042_0029_b_16L의寺刹이負擔하고本年十二月二十日까지에手續을完
0042_0029_b_17L了하기로

0042_0029_b_18L 手續을完了하야提供한土地를該本寺로부터還退코
0042_0029_b_19L자할時는十年以內에그原額을五回에拂込하야還退하
0042_0029_b_20L기로

0042_0029_b_21L 出資額五百圓已上의末寺는該末寺土地를 五百圓
0042_0029_b_22L未滿의末寺는本寺土地를提供하기로하다

0042_0029_b_23L 二、普成舊校舍處分에關하야는賣却하되標準價額
0042_0029_b_24L을十萬圓以上으로하게하다

0042_0029_b_25L 三、佛敎專修學校에關하야는理事의게一任하다

0042_0029_b_26L附議로威鳳寺處理問題가發論되야亦是理事의게一任
0042_0029_b_27L하엿더라

0042_0030_a_01L李英宰君追悼會

0042_0030_a_02L中央敎務院에서

0042_0030_a_03L
 印度에留學하든李英宰君이錫蘭島古倫母에서十月
0042_0030_a_04L十二日下午二時에涅槃하엿다함은已報한바어니와朝
0042_0030_a_05L鮮佛敎中央敎務院主催로十一月二日下午四時覺皇敎
0042_0030_a_06L堂內에서三十一本山住持及評議員諸氏와한가지追悼
0042_0030_a_07L會를行하엿더라

0042_0030_a_08L式順

0042_0030_a_09L一、開式 轉鐘一下

0042_0030_a_10L一、三歸依 會衆一同

0042_0030_a_11L一、歷史報告 姜在源

0042_0030_a_12L一、追悼詞 權相老

0042_0030_a_13L一、哀詞 金寶輪 姜性仁

0042_0030_a_14L一、答辭 金正源

0042_0030_a_15L一、轉經 會衆一同

0042_0030_a_16L一、焚香

0042_0030_a_17L一、閉式

0042_0030_a_18L在日佛敎靑年會에서도

0042_0030_a_19L
 十月三十日午後一時부터東京市神田區中央佛敎會
0042_0030_a_20L舘에서在日本朝鮮佛敎靑年會主催로故李英宰君의追
0042_0030_a_21L悼會를開하고法要를執行하며追悼辭가잇슨後追悼文
0042_0030_a_22L을朗讀할세一般會員은모다눈물을흘리며悲泣하는가
0042_0030_a_23L운데서各其燒香하고懷舊感想을述하고閉會하엿다더
0042_0030_a_24L라。(東京)

0042_0030_a_25L忠北本山法住寺에서도

0042_0030_a_26L
 忠北大本山報恩郡法住寺에서는 同寺佛敎靑年會
0042_0030_a_27L主催로 去十月三十日下午四時에故李英宰君의薦魂
0042_0030_a_28L式을擧行한後同七時에追悼會를開催한바同君의略歷
0042_0030_a_29L朗讀이잇슨後 朴三千 鄭基煥 姜元準 金敎賞 
0042_0030_a_30L朴戒成 李七萬 朱太淳七氏의眞情으로울어나오는
0042_0030_a_31L凄慘한追悼辭가쏘다지자立錐의餘地가업시 모여잇
0042_0030_a_32L든會衆은모다 暗淚가흘러나림과 太息이불어나옴
0042_0030_a_33L을禁치묻하야 會塲은一時間 慘憺凄楚한氣分이들
0042_0030_a_34L▣깨닷지묻하얏다더라。(法住)

0042_0030_b_01L佛敎靑年會再現

0042_0030_b_02L
 旣徃부터잇서오든朝鮮佛敎靑年會는近年에如何한
0042_0030_b_03L關係업시自然的으로有耶無耶中에數年을經過한것이
0042_0030_b_04L遺憾이라기보다欠典이라하야在京佛敎靑年某某氏의
0042_0030_b_05L發起로今般臨時評議員總會를利用하야그復興의趣旨
0042_0030_b_06L를一般에通過하고十一月三日부터壽松洞四十四番地
0042_0030_b_07L에看板을걸고事務를執行하게되엿더라

0042_0030_b_08L布敎所出張

0042_0030_b_09L
 慶北榮州邑布敎堂에布敎師로現住하는李震雲法師
0042_0030_b_10L는布敎에熱心努力한結果 人民의信仰과布敎의發展
0042_0030_b_11L이날로向上함으로 同郡平恩面平恩里에布敎所出張
0042_0030_b_12L所를設立하야陰九月廿二日에 奉佛式까지擧行하고
0042_0030_b_13L即時夜學校를設立하야 男女學生이六七十名에達한
0042_0030_b_14L다고。(榮州)

0042_0030_b_15L神興寺住持選擧

0042_0030_b_16L
 江原道襄陽郡道川面神興寺第六世住持選擧顚末을
0042_0030_b_17L듯건대 去九月二十五日에同神興寺內에서住持選擧
0042_0030_b_18L會를開한바出席員은 董讃法 朴東杲 洪興雲 黃
0042_0030_b_19L龜岩 鄭祥雲 崔觀洙 尹淳相 金明虛 朴鼎陽 
0042_0030_b_20L金昌河 魏弼煥 李用信 吳在錫 金壽松 芮昌洽
0042_0030_b_21L禹順福 金順培 金應薰 張龍珠 崔東旿 金南灝
0042_0030_b_22L이며 選擧를執行하는 開票管理者崔觀洙 開票主
0042_0030_b_23L務者張龍珠 開票立會者朴鼎陽의檢査下에 投票한
0042_0030_b_24L結果 金明虛十一點으로被選되고 李昌林은八點 
0042_0030_b_25L黃龜岩은二點이오 同下午三時半에 開會되엿다더
0042_0030_b_26L라。(神興)

0042_0030_b_27L文學博士南條文雄先生逝去

0042_0030_b_28L
 日本佛敎의碩德大谷派의耆宿文學博士南條文雄先
0042_0030_b_29L生은宿患으로十一月九日에逝去한바十三日淺草本願
0042_0030_b_30L寺에서告別式을行하얏다는데博士는印度梵文學大家
0042_0030_b_31L로世界的權威엿스며世界佛敎의恩人이엿는지라今番
0042_0030_b_32L博士의逝去는世界佛敎의一大損失이라더라。(東京)

0042_0030_b_33L金龍本末臨時總會

0042_0030_b_34L
 慶北大本山聞慶郡金龍寺本末臨時總會를去十一月
0042_0030_b_35L十八日金龍寺에開催하고財團法人一二種及年來滯納

0042_0031_a_01L金納入의件을議决하얏는데該本末區域은法定地價가
0042_0031_a_02L가장低廉하야從來一斗落이라는土地에對하야平均約
0042_0031_a_03L二十圓에不過함으로 五分之一을標凖으로한財團의
0042_0031_a_04L寄附行爲를履行하기爲하야 五分之四를提供하기는
0042_0031_a_05L果然抑鬱하다하야 本末이거의現金으로納付하게하
0042_0031_a_06L얏는데 그方法은一律的으로俸給其他一切를縮少하
0042_0031_a_07L며 金龍寺及南長寺는個人의土地를銀行에抵當하고
0042_0031_a_08L金額을貨出하기로하엿스며單獨末寺는그現任住持의
0042_0031_a_09L任期를延長할지라도專責任으로 方法을講究하야或
0042_0031_a_10L은先賭租或은自己의私財를充當케하엿다더라 (金龍)

0042_0031_a_11L孤雲本末臨時總會

0042_0031_a_12L
 今般京城評議會로서財團法人一二種財產을一時納
0042_0031_a_13L付하라는決議件에對하야 本月十四日孤雲講院에서
0042_0031_a_14L本末臨時總會를開催하고 此를討議한바 原來當本
0042_0031_a_15L末에서는大正十三年度에土地를承認斥賣하야 一時
0042_0031_a_16L拂込을準備하엿더니 其時學務當局으로부터該金額
0042_0031_a_17L은다시土地를買受하고 法人出資는十五個年年賦로
0042_0031_a_18L하라는訓示가잇섯슴으로 賣渡買受二囘手續에費用
0042_0031_a_19L이夥多함도不拘하고 唯命是從하엿든바小作料减收
0042_0031_a_20L穀價暴落 金融枯渴의今年을適期하야 年末이라는
0042_0031_a_21L最少短期內에 萬餘圓의巨額을一時拂或은土地로無
0042_0031_a_22L償讓與하라하엿스나 孤雲本末이現所有를持하고도
0042_0031_a_23L每年維持上苦痛이不少한즉土地로決코提供할수업는
0042_0031_a_24L지라 可成的地方事業을廢止或은停止하며 任員俸
0042_0031_a_25L給과一切經費를緊縮케하고 本末寺中에一二種財產
0042_0031_a_26L을早已淸帳한 寺院도多數이나 爲敎團結을主로하
0042_0031_a_27L는同時全本末이今年收入中六割을一律的控除하야至
0042_0031_a_28L歇된現價이나마 抵當又는賣渡케하고그래도四千圓
0042_0031_a_29L假量이不足되는것은 本山에서 三千圓首班地鳳停
0042_0031_a_30L廣興兩寺에서 一千圓을臨時負擔한後느저도昭和三
0042_0031_a_31L年一月을넘기지안코 一時淸帳하긔로可決하엿다드
0042_0031_a_32L라。(孤雲)

0042_0031_a_33L寺院視察延期

0042_0031_a_34L
 大本山義城郡孤雲本末寺主催로寺院視察團을組織
0042_0031_a_35L한것은本誌를通하야 業已報道하엿거니와該團員이
0042_0031_a_36L同日字에京城評議會로 出席하게되는瞥眼間冲突이
0042_0031_a_37L發生함에前記視察은 不得已明春으로延期하엿다드
0042_0031_a_38L라。(孤雲)

0042_0031_b_01L官報抄錄

0042_0031_b_02L○住持就職認可

0042_0031_b_03L
 全羅南道長城郡北下面白羊寺住持로柳錦海就職의
0042_0031_b_04L件 慶尙南道陜川郡伽倻面海印寺住持로白景霞就職
0042_0031_b_05L의件及江原道平昌郡珍富面月精寺住持로金一雲就職
0042_0031_b_06L의件모다十月二十日認可하다

0042_0031_b_07L(已上昭和二年十月二十五日官報)

0042_0031_b_08L○寺有土地建物賣却許可

0042_0031_b_09L許可月日
十月二十二日

0042_0031_b_10L賣却의目的
私立釋王寺學校改築費用에充當

0042_0031_b_11L賣却土地建物
京城府一一二番地垈一八五坪

0042_0031_b_12L
同 上 一一三番地垈二九坪

0042_0031_b_13L
同 上 一一二番地建物四二坪二

0042_0031_b_14L
同 上 一一三番地建物九坪四

0042_0031_b_15L出願人
咸鏡南道安邊郡文山面釋王寺住持 崔煥應

0042_0031_b_17L(已上昭和二年十月二十八日官報)

0042_0031_b_18L○本末寺法中改正認可

0042_0031_b_19L
江原道平昌郡珍富面月精寺本末寺法中改正의件十
0042_0031_b_20L月二十五日認可하다

0042_0031_b_21L(已上昭和二年十月二十九日官報)

0042_0031_b_22L○寺有建物毀撤處分許可

0042_0031_b_23L許可月日
昭和二年十月二十五日

0042_0031_b_24L毀撤의目的
賣主되는李王職에서契約에基하야建物의撤去를要求하기때문

0042_0031_b_26L毀撤할建物
京城府貞洞一ノ八番地

0042_0031_b_27L
木造瓦葺平家建本家 一棟 一六坪四○

0042_0031_b_28L
同上 事務室 一棟 一一九、五○

0042_0031_b_29L
同上 本家 一棟 三六、五五

0042_0031_b_30L
同上 同 一棟 五、五二

0042_0031_b_31L
附屬木造瓦葺平家建 納屋 一棟 二、○五

0042_0031_b_33L出願人
慶尙南道陜川郡伽倻面海印寺住持 金萬應

0042_0031_b_35L(已上昭和二年十月二十九日官報)

0042_0032_a_01L本社地方通信記者配置

0042_0032_a_02L
安錫淵 慶尙北道義城郡孤雲寺

0042_0032_a_03L金敎賞 忠淸北道報恩郡法住寺

0042_0032_a_04L金宗煥 全羅南道海南郡大興寺

0042_0032_a_05L金正完 江原道高城郡檢岾寺

0042_0032_a_06L徐丙武 全羅南道順天郡仙巖寺

0042_0032_a_07L陳相一 忠淸南道公州郡麻谷寺

0042_0032_a_08L趙極尙 江原道高城郡乾鳳寺

0042_0032_a_09L劉二淸 咸鏡南道安邊郡釋王寺

0042_0032_a_10L呂運暎 全羅南道求禮郡華嚴寺

0042_0032_a_11L鄭弘權 慶尙南道陜川郡海印寺

0042_0032_a_12L柳慧明 慶尙南道咸陽郡龍湫寺

0042_0032_a_13L崔文錫 慶尙北道聞慶郡金龍寺

0042_0032_a_14L金東燮 慶尙北道聞慶郡大乘寺

0042_0032_a_15L朴鼎陽 江原道襄陽郡神興寺

0042_0032_a_16L金泰洽 東京 金剛杵社

0042_0032_a_17L投稿及送金規定

0042_0032_a_18L
一、範圍 政治의範圍를脫하고敎理와直接間接으로關係잇는者

0042_0032_a_19L一、期限 每月十日以内

0042_0032_a_20L一、註記 住所와姓名을明記하시며或匿名을要하실지라도本社까지
0042_0032_a_21L는明示하시압

0042_0032_a_22L一、權限 投稿者의意思를尊重히하는範圍内에서載、停、評、証의
0042_0032_a_23L權利는本社에讓하시압

0042_0032_a_24L一、往復 問議又는質問等返信을要하는通信은返信料를添付하시압

0042_0032_a_25L一、送稿 原稿는封套를半封하고皮封에「原稿在中」이라쓰고二錢切
0042_0032_a_26L手를부치시오

0042_0032_a_27L一、送金 必히左의振替口座를利用하시압

0042_0032_a_28L振替口座京城一三六四七番

0042_0032_a_29L加人者氏名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

0042_0032_a_30L[판권지]

0042_0032_a_31L
昭和二年十一月三十日印刷

0042_0032_a_32L昭和二年十二月一日發行

0042_0032_a_33L「佛敎四十二號定價二十錢」(送料不要)

0042_0032_a_34L京城府壽松洞四十四番地

0042_0032_a_35L編輯兼發行人 權相老

0042_0032_a_36L京城府堅志洞三十二番地

0042_0032_a_37L印刷人 金在涉

0042_0032_a_38L京城府堅志洞三十二番地

0042_0032_a_39L印刷所 漢城圖書株式會社

0042_0032_a_40L京城府壽松洞四十四番地

0042_0032_a_41L(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內)

0042_0032_a_42L發行所 佛敎社

0042_0032_a_43L電話光化門一○二二番

0042_0032_a_44L振替口座京城一三六四七番

0042_0032_b_01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