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잡지

佛敎第 四十九號

ABC_BM_00013_0049_T_001

0049_0001_a_01L佛敎第 四十九號

0049_0001_a_02L[표지]

0049_0001_a_03L
THE BUDDHISM

0049_0001_a_04L佛敎第四十九號

0049_0001_b_01L佛敎第四十九號目次

0049_0001_b_02L□平等
卷頭言

0049_0001_b_03L□우리의信仰은어떠한가?
無號山房

0049_0001_b_04L□現代思潮와佛敎
金素荷

0049_0001_b_05L□歐米學界와佛典의硏究
鐵啞一四

0049_0001_b_06L□어떤것이大乘佛敎일까?
石顚沙門二四

0049_0001_b_07L□宗敎와社會事業發達의硏究
金泰洽二六

0049_0002_a_01L□大經字數辨决疑
東國經院二九

0049_0002_a_02L□片雲塔과後百濟年號
金包光三三

0049_0002_a_03L□世界文字와佛敎의關係
退耕三三

0049_0002_a_04L□楊州各寺巡禮記
晩悟生四五

0049_0002_a_05L□海陽道隨筆
白陽桓民四八

0049_0002_a_06L□囘顧
一葉五六

0049_0002_a_07L□벙어리굿(削除)
露雀五九

0049_0002_a_08L□冷笑
素然五九

0049_0002_a_09L□佛敎彙報
八五

0049_0002_b_01L우리의信仰은어떠한가?

0049_0002_b_02L

0049_0002_b_03L
 『人類는 社會的動物이갯다』한것인즉 勿論古代學者를 通하야 今日에까지 온것이지마는 現今에
0049_0002_b_04L잇서서 方向을돌리여 思索을加한다면 『人類는 늣김을가진動物이라』하고십다 이늣김이 美的方面
0049_0002_b_05L으로發達될時는 그것을 美學이라하고 다시外力을要求한다거나 한번더 自我의內的 絶對能力 그것
0049_0002_b_06L을發揮할動機를 對象化하여서 一種의思索的經路를經하야 恒心을짓는것을(一種의心理的作用)우리
0049_0002_b_07L는『信仰』이라한다

0049_0002_b_08L 信仰이라는 名辭에잇서서는 누구를 勿論하고宗敎를聯想하나니 이것은 前時代的遺物이다 信仰
0049_0002_b_09L이라는것은 主觀의心理的作用이요 宗敎라는것은 主觀과客觀의中間에서 發生하는事實을 指稱한것이니
0049_0002_b_10L原語에Religion을譯한것이다 이말인즉羅甸語Ligio에서 나왓나니 卽『結』이라는意味이요 다시Religion
0049_0002_b_11L이라면『再結』이다 다시말하면 人類와 最高의神間에 結合한다는것이 宗敎이다 同時에Platon이
0049_0002_b_12L宗敎에對하야 가진斷案으로본다면『自然物에對하야 疑心을가지는것이 哲學의出發點이고 自然物에
0049_0002_b_13L對하야 驚懼를가지는것이 宗敎의出發點이다』라함에依하야본다하드라도 아즉人文이發達치못하엿슬
0049_0002_b_14L時의 一種心理的現像에不過한것이다

0049_0002_b_15L 以上에事實인즉 原始人類로부터 아직人文이幼穉하엿슬때에 實行되든것이지마는 現今은二十世紀
0049_0002_b_16L인지라 우리의事情과 境遇가 달르고 우리의要求가따라서 달은것이닛가 勿論宗敎라는文字는適合
0049_0002_b_17L하다할수업지마는 우리의게 信仰이라는것은 아직도存在한것이다 二十世紀的信仰이라는것은 現代
0049_0002_b_18L가要求하는무엇이기에 라입으니쓰의「모나데」거나 소펜하우어에「願望」과 가튼 一種에眞的對象이아

0049_0003_a_01L니면 現代人類를 慰安주지못하는것이다

0049_0003_a_02L

0049_0003_a_03L
 信仰이라는것은 人類의精神生活的 一部作用인지라 이것이完實 不完實함에 잇서서 人類의精神
0049_0003_a_04L生活의滿足 不滿足을 알수잇는것이다 이러한難問題을 가진 우리에게는 現今에잇서서 略四種의
0049_0003_a_05L引導者가 우리을向하야 自己에依하야 度脫하라하나니 그들은 달은이가 아니요 現今에權威를가
0049_0003_a_06L진 科學者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우리는 너히가要求하는 무엇이든지 줄수잇나니 너
0049_0003_a_07L히의貧弱한 生活은 이로써 滿足할것이다』한다

0049_0003_a_08L 우리는單純한生活에 잇지아니함을 따라서 要求가單純하지아니한지라 더욱彷徨하는中에 잇는지
0049_0003_a_09L라 勿論반가히 마즐것이다 그러나 長久한時間에 잇서서 그들의 內容的不充分이 發露될時는자
0049_0003_a_10L못快感을주지못하고 오히려 自家의無貞操함만 後悔하게된다 即 現今에科學的效果가 임의完成된
0049_0003_a_11L自然物을 破壞함으로 能事를삼은것이요 하나도成立하여논것은업다 幾個의發明品이 업는것은아니
0049_0003_a_12L엿다마는 그것亦是 方式과數字가 아직暗黑하여서 僥倖이엿다할지언정 確實이信憑할무엇은아니엿
0049_0003_a_13L다 그들은 우리의食糧代로 砂礫을줄수잇슬지언정 砂礫代로食糧은만들어 줄수업다 看板만은 好
0049_0003_a_14L奇心을 아니끌게하는것은 아니다마는 그것이 업는것이나 別로差異가업다 적어도 宇宙를支配하
0049_0003_a_15L겟다는 우리로서는 瞬間이라도僥倖的으로 虛僞的으로 살고저아니한다 미테의造金術이 그것이엿
0049_0003_a_16L다면 큘트의 라디움도 그것이요 말콘이의 無線電話가 原來로 木星에가고못가는것을 疑心할바
0049_0003_a_17L에야 쎄펠린의航空船이 星과星間에 運行되지못함을 어찌恨하랴! 우리의바람은 그들로發狂하게
0049_0003_a_18L할지언정 우리를 支配하고 引導한다는것은 발서別問題가되고만것이다

0049_0003_a_19L

0049_0003_b_01L
 우리가 科學者의引導에 落心한꼴을본 第二線에引導者들은 다시우리에게 말하기를『너히는無實
0049_0003_b_02L한科學者를 좃지말고 오즉 우리에依하야 救濟를 받으라하나니 그들은 各敎의僧侶들이다 그들
0049_0003_b_03L은 各各自己의立脚에서 우리를 引導하고저하나니 우리는 不得已 그들을信從하야 檢討하고저한다
0049_0003_b_04L그들의가진福音인즉 모든것이 우리의境遇와 事情이아니요 超自然이라한다 超自然으로온 福音인
0049_0003_b_05L지라 우리의事情을 沒理解할것이니 우리는 或夢寐間에나 그러한것을 보앗섯는지아지못하나 經
0049_0003_b_06L驗으로나 무엇으로나 알수업는것은 그들의說明이다 即 하늘로서 天使가自己의날개로 날러와서
0049_0003_b_07L福音을 주엇다거나 일러주엇다는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科學者들에게 얻은經驗으로 解釋할수업
0049_0003_b_08L는무엇이엿나니 人類의發達이아직은 四肢動物에왓슴에不顧하고 天使인六肢動物을理解할可能性까지
0049_0003_b_09L업고 現在的思想과 方式이 全然이 舊態를바리고서 民本으로되여음에 不顧하고 一神的最高의物
0049_0003_b_10L에 奴隷格을要求하게되기는 넘어도 알어듯지 못할무엇이다 勿論奧妙한眞理는 言語道斷이라하지
0049_0003_b_11L마는 興味까지업는것이 어찌우리를 引導하랴!

0049_0003_b_12L

0049_0003_b_13L
 우리는 兩次에失敗로 다시彷徨을 繼續하는中 다시第三의引導者는 우리에게向하야『너히는不充
0049_0003_b_14L分한 科學者나 우리에게 맛지못하는 現世紀的이아닌 僧侶들을 따루지말고 우리의方式에依하야彷
0049_0003_b_15L徨을쉬이라 우리는 오즉너히의게 方式을 주리라』한다 그들은 科學者도아니요 僧侶도 아니요
0049_0003_b_16L오즉哲學者이다 그들은 칸트、소펜하우어、헤글、스피노사、데칼트、라입으니쓰、엑할트等이다 이
0049_0003_b_17L들의方式은 누구나 딸을수잇나니 그것은 그들의方式이 綜合的直覺인까닭이다 우리는 이方式에依
0049_0003_b_18L하야 이字宙의現象을 思考할수잇슴으로 進行함을따라서 全宇宙가 가장明確하게 理解할수잇스나
0049_0003_b_19L오즉알뿐이요 늣기지는못한다 그럼으로 모든思索이 冷靜에 冷靜을더할뿐이요 따뜻한무엇은 늣

0049_0004_a_01L기지못한다 即우리가 大宇를 理解할수는 잇스나 大宇와調和될수는업는것이다 調和가될수업슴으
0049_0004_a_02L로 그들引導者를 맛나기前이나 맛난後이나 別로히特別한 利益을가지지못하고 同時에孤寂에서孤
0049_0004_a_03L寂을加할뿐이다 이에서우리는 物理、化學、原子、分子、天文學、哲學、心理學、實在學、純全哲學、社
0049_0004_a_04L會學、宇宙學、神學、人類學等을 橫으로 縱으로硏究하엿는지라 아모가와서도 誘引할수업슬만치 되
0049_0004_a_05L엿는 他一面에서는內部的孤寂은 前에比하야倍勝하게되엿다 內部的彷徨이 度를加할때마다 精神生
0049_0004_a_06L活의 貧弱과悲哀는 前에比하야 想像할 餘裕를주지못한다 이것이 現代思潮에 저저서 不充分을
0049_0004_a_07L늣기면서도나갈바를 모르는 全大衆의心理的發作이다 우리가 不斷한努力으로 나아가는中 우리는
0049_0004_a_08L第四引導者를 맛나게되는經路에 잇다 모세의一言으로 카나안을向하야 나아가는 猶太民族에 彷
0049_0004_a_09L徨인들 어찌 이에다 比하랴! 아텐의古基에서 아킬렛쓰를 울든 아렉산더인들 어찌 이에比하
0049_0004_a_10L며! 全一生을 供犧하야 眞을찻고저 努力하든톨스토이인들 어찌 이에比하랴! 압흐고 쓰린것
0049_0004_a_11L은 오즉當하는者 自身이 알지라 第二者로 어찌 그것을 想像하랴! 大宇宙를 統率하자면그것
0049_0004_a_12L이 碌碌지아니하거니 그것을活用하고 運行식이고저하는自我의安身立命이 그다지 쉬울것이냐?

0049_0004_a_13L

0049_0004_a_14L
 最後의指導者들은 우리를向하야 慈悲로臨하나니 그들은 無實際한 科學者도아니요 架空的인僧
0049_0004_a_15L侶도아니요 그다지冷靜하야 알기에만 沒頭하야 自己의立脚까지 발키지못하는 哲學者들도아니요
0049_0004_a_16L그들은 오즉 이宇宙를 內的으로늣기고 外的으로알엇다 內的으로늣기엿는지라 同志를 救濟할方
0049_0004_a_17L便이充分하고 外的으로 알엇는지라 아무疑心이업는것이다 그들을 일홈하야 우리는 實際的神秘
0049_0004_a_18L者라하나니 이들은 칸트나 소펜하우어가아니요 적어도 東亞細亞에는 孔子、老子、中央亞細亞에는
0049_0004_a_19L사라루쓰트라ㆍ니간다 나타푸트라 솨기야무니ㆍ가우다마이요 小亞細亞로는 마호멜、나사렐에서誕

0049_0004_b_01L生한 예수、歐洲에는 소크라데쓰、마이스터 폰 엑칼等이다

0049_0004_b_02L 이들은 森羅萬像의那邊을 보아서늣기엿고 直接손을 대여서 일하엿고 眞理의最高頂을 만지엿
0049_0004_b_03L다 그럼으로 그들의一言一動이 이宇宙의準則이 됨에야 누가異議를 가지며 그들의指導가참인同
0049_0004_b_04L情에서 나온것이라 安穩하엿고 그들의指示가率直한지라 그들의德化에 調和되지못할者누구라 하
0049_0004_b_05L랴!

0049_0004_b_06L 이들 만흔中에도 地方을따라서 民俗을따라서달은方向을 가지엿나니 老子의道可道면 非常道的思
0049_0004_b_07L想이 支那의文化로 征服的形式을 발이고澎漲的形式에 依하야 發展되는것인즉 오즉征服에만依하
0049_0004_b_08L야 文化가宣傳된다든 歐洲一部民衆에게는想像도못할것이나 如何間一部地方에 局限한것이요 全世
0049_0004_b_09L界的이 아니엿스며 사라투쓰트라 인즉中央亞細亞의 游牧民衆을化導한것이라 特別이 이약이하게
0049_0004_b_10L되지못하고 예수인즉 倫理的墮落에잇는社會를 救濟하고저 努力하엿는지라 별로大擧를보이지못한
0049_0004_b_11L것이 遺憾이엿다마는 그의山上說敎篇이나 예루살넴敎堂篇인즉 確實이그의故意所在를 엿볼수잇는
0049_0004_b_12L것이다 其外에도 소크라데쓰의 事情이나 엑칼트의事情과 週圍인즉 史家의임의首肯하는바이라別
0049_0004_b_13L로論하고저 아니한다

0049_0004_b_14L

0049_0004_b_15L
 幸인지 不幸인지 人類의寶藏을 擴張하려함이엿든지 가장複雜하고 가장思索이高尙하고 가장文
0049_0004_b_16L化가發達된社會에 잇서서 그의腐敗를救하고 그들의精神的墮落 倫理的沈滯를 救함으로 全宇宙의
0049_0004_b_17L準則이되여서 地球上近九億의大衆의 精神上慰安를 주는것은 釋迦牟尼가 우리에게준 眞言이엿다
0049_0004_b_18L如言이엿다 實言이엿다 그의說明인즉 오즉簡單하고 明確하야 누구나듯기쉬웁지마는 누구나 그
0049_0004_b_19L것을 가지지아이함이업다 그럼으로 그는神을否認하엿나니 神이라는것은 人類思索의一種產物로慰

0049_0005_a_01L安的對象이라 그것을崇仰하야 自我를拘束하는것은 畵家가 自己의손으로 美人圖를그리여가지고다
0049_0005_a_02L시미치는것이라 率直히說破하엿다 이에서學者間에 佛敎는無神論이라하는것이다 그럼으로그는『天
0049_0005_a_03L上天下唯我獨尊』이라하엿나니 天이라는觀念은 印度의傳習的이라 다시말하면 이宇宙內에는 오즉
0049_0005_a_04L『나』가놉흘뿐이다하엿다 이『나』인즉 누구를論치말고 生氣잇는物像이면含有하여잇나니 오즉이것을
0049_0005_a_05L覺함으로 大宇와調和一致되고 다시말하자면大宇와『나』間에 둘도아니요 하나도아니인論理的方式으
0049_0005_a_06L로調和되는것이다 이것을迷함으로 結縛안한結縛을받으며 苦痛업는苦痛을받는것이다 本是結縛할자
0049_0005_a_07L업거니 結縛을當하는者는 누구일가! 그럼으로 圭峰은悟와迷境을說明하는대에『處生死流、驪珠獨耀
0049_0005_a_08L於滄海、踞涅槃岸、桂輪孤朗於碧天』이라하엿다 每事에 나답게살고 무엇에든지 나부터하고乃至大
0049_0005_a_09L宇를『나』가統御하라하엿나니 그것은『一切唯心造』라거나『無邊虛空ㆍ覺所顯發』이라는것이다 이에覺
0049_0005_a_10L하는經路를說明하고方式을이약이한것인즉 佛敎經典에잇는지라 더말하지아니하고 우리는 오즉이에
0049_0005_a_11L서大衆과함게現代的信仰을硏究할뿐이다(無號山房)

0049_0005_a_12L 夫世俗所尙은仁義禮智信也ㅣ오含生所資는不殺盜婬妄酒也ㅣ라雖道俗이相乖나漸敎通也ㅣ니
0049_0005_a_13L故로發於仁者則不殺하고奉於義者則不盜하고敬於禮者則不婬하고悅於信者則不妄하고師於智者
0049_0005_a_14L則不酒하나니斯蓋接化於一時오非即修本之敎니라修本敎者는是謂正法이니內訓弘道를必始于因
0049_0005_a_15L하나니因者는殺盜婬妄酒也ㅣ라此則在於實法하야指事直言이라故로不假飾詞하고託名顯意니如
0049_0005_a_16L斯而修因하면不期果而果證하고不羨樂而樂彰이어니와若略近而望遠하고棄小而保大하면無所歸
0049_0005_a_17L趣矣리라故로知受持不殺之因하면自證乎仁義之果하리라所以知其然은今見奉戒不殺者ㅣ不求仁
0049_0005_a_18L而仁著하며持戒不盜하면不欣義而義敷하며守戒不婬하면不祈禮而禮立하며遵戒不妄하면不慕信
0049_0005_a_19L而信揚하며受戒捨酒하면不行智而智明하니如斯之寶는可謂振網持綱에萬目이開張하고振機御寓
0049_0005_a_20L하야以離寒暑ㅣ니復何功이可以加之며何德이可以背之리오 (法苑珠林에서)

0049_0005_b_01L現代思潮와佛敎

0049_0005_b_02L金素荷

0049_0005_b_03L

0049_0005_b_04L
 現代의思潮를 一觀할것가트면 確實히混亂한狀
0049_0005_b_05L態에處하야잇는것갓다。무슨主義 무슨學說하는主
0049_0005_b_06L義도만흐며 學說도만흔지라 엇더한主義를信奉하
0049_0005_b_07L며 엇더한學說을쪼차야할는지 歸着點을 알을수
0049_0005_b_08L가업다。그럼으로 吾人은懷疑의情을 禁할수가업
0049_0005_b_09L다。恐怖의心을 그칠수가업다。此로써볼것가트면
0049_0005_b_10L데카르트와흄과가튼 哲學者가 懷疑哲學을세우게
0049_0005_b_11L된것도 까닭이잇다고밋는다。그러나다시一面으로
0049_0005_b_12L觀察할것가트면 整理의狀態에잇는것갓다。何故이
0049_0005_b_13L뇨하면 分析的으로 解割的으로 論究하든思潮는
0049_0005_b_14L漸次로 綜合的으로 統一的으로 歸趣되는듯하며
0049_0005_b_15L近時에至하야 各方面으로 眞理를探求코저하는求
0049_0005_b_16L道熱과 어떠한哲學的宗敎 理智的宗敎 換言하면
0049_0005_b_17L佛敎와가튼宗敎로歸入하랴는 信仰의熱이 매우極
0049_0005_b_18L熱한것갓다。

0049_0005_b_19L

0049_0005_b_20L
 그러한까닭으로 吾人은現代를가르처서 佛敎에
0049_0005_b_21L서이르는 五濁의惡世、三災의世相이라고밋는同時
0049_0005_b_22L에 다시一面으로現世即極樂、娑婆即寂光土라고하
0049_0005_b_23L는 經典의말삼을信奉하는바이다。現代의生活 現
0049_0005_b_24L代의思想을 觀察할것가트면 참으로五濁惡世요三
0049_0005_b_25L災의世相이다。五濁惡世라함은 一은刧濁이니 劫
0049_0005_b_26L은時間을가르친것이다。말하자면 時間即歲月이經
0049_0005_b_27L過함을因하야 人口가增加되며 人口가增加할수록
0049_0005_b_28L經濟生活의破綻을因하야 道德的生活이 頹敗됨을
0049_0005_b_29L이른것이니 刧濁이라함은 時間濁이라하는말이다
0049_0005_b_30L二는見濁이니 見은見解이다。釋할것가트면 現代
0049_0005_b_31L人이各各 放縱한見解에依하야 여러가지主義와思
0049_0005_b_32L想을 主唱하야 思想的으로 時代를攪亂식히는것

0049_0006_a_01L이니 見濁이라함은 思想濁이라함이다。三은煩惱
0049_0006_a_02L濁이니 此는各自放縱邪惡한생각과 或은奇論怪學
0049_0006_a_03L으로써 實行코저하야 懊惱함이니 그런故로 煩
0049_0006_a_04L惱波는 더욱더욱놉하지고 無明濁은더욱더욱깁허
0049_0006_a_05L진다。四는衆生濁이니 人類들의 生命의爭奪戰을
0049_0006_a_06L가르친것이다。即世界的으로 戰爭이그칠사이가업
0049_0006_a_07L시時代相이紛搖한것이다。五는命濁이니 此는人口
0049_0006_a_08L가繁殖할수록 生命이短縮하며 死亡率이多過함을
0049_0006_a_09L이른것이다。

0049_0006_a_10L 次에三災의世相이라함은 刀、疾、飢三災를謂함
0049_0006_a_11L이니 刀는戰爭을謂함이요 疾은疾病을謂함이요 飢
0049_0006_a_12L는飢饉을謂함이니 此는古昔의何時代를 勿論하고
0049_0006_a_13L잇섯든바이나 現代에더욱히만흔現象이다。平和論
0049_0006_a_14L者가續出하나 戰爭은그칠사이가업스며 醫學이發
0049_0006_a_15L達되나 疾病은預防할수가업스며 科學이發明되나
0049_0006_a_16L飢饉은 避할수가업다。由此觀之하건대 現代는確
0049_0006_a_17L實히 濁亂의惡世요 世紀末의澆季라고아니할수가
0049_0006_a_18L업다。그러나整理하야도라가는便으로 觀察하야娑
0049_0006_a_19L婆即寂光土、現世即極樂으로볼것가트면佛敎의五根
0049_0006_a_20L의世相으로볼수가잇다。五根이라함은 一은信根이
0049_0006_a_21L니 此는不邪不惡의正信으로써 一定한信仰下에安
0049_0006_a_22L心立命을갓게되는것이요 二는精進根이니 此는不
0049_0006_a_23L斷努力의精進으로써 法悅의感激한生活을 보내게
0049_0006_a_24L되는것이요 三은念根이니 此正念으로써 正法正
0049_0006_a_25L道를 생각하야 念頭에노치아니함이요 四는定根
0049_0006_a_26L이니 結跏趺坐하야 如山不動하게안저서 煩惱妄
0049_0006_a_27L想을 쉬여버리고 默念默想으로써 如來의本來面
0049_0006_a_28L目과 自己의本地風光을 反照省察하야 安住不動
0049_0006_a_29L의把定의生活을 갓게되는것이요 五는慧根이니正
0049_0006_a_30L見正解로써 批判的哲學의理智를 鍛練케하는것이
0049_0006_a_31L다。그런데以上에論한바 五根으로말하면 現代의
0049_0006_a_32L惡世相으로하야곰 凈化식히는 要素가됨이니 世
0049_0006_a_33L上사람들이 此를如實하게 行하기만하면娑婆即寂
0049_0006_a_34L光土의生活을 느릴수가잇다고생각한다。

0049_0006_a_35L

0049_0006_a_36L
 現代思潮의主要點을 잡아말할것가트면 個人主
0049_0006_a_37L義、功利主義、實利主義、厭世主義 享樂主義 虛
0049_0006_a_38L無主義、破壞主義、理性主義、人道主義、人格主義等
0049_0006_a_39L의諸主義가䟦扈하며 學說로말하면 칼맑스의經濟

0049_0006_b_01L哲學 따윈의進化論、뉘톤의引力說、아인쉬타인의
0049_0006_b_02L相對性 구로포트킨의無政府主義 말으사스의人口
0049_0006_b_03L論스미스의富國論等이 꽤-人心을動搖케하는듯하
0049_0006_b_04L다 그래서物質主義와精神主義가 相互兩極端에서
0049_0006_b_05L서各各窮境의破綻을 招致하고잇는듯하다。

0049_0006_b_06L 就中에個人主義가 現代人心을 뿌리로부터動搖
0049_0006_b_07L식히게되엿나니 個人主義唱說의根元으로말할것가
0049_0006_b_08L트면 니체의哲學上見解라하겟다。니체는 말하되
0049_0006_b_09L무엇이든지 自己가생각한대로 活動코저함은 自
0049_0006_b_10L由의本能이라하며 適者生存 優勝劣敗 弱肉强食
0049_0006_b_11L의 絶對的個人主義을主唱하고 自己의生을爲하야
0049_0006_b_12L서는 他人의生命을 蹴倒하여도 조타고까지하얏
0049_0006_b_13L다。그리고 宗敎的博愛主義는 弱者를懷柔하는道
0049_0006_b_14L德이며 奴隷를撫恤하는手段이라고하야 도라보지
0049_0006_b_15L아니하얏다。이와가튼學說은 따윈의「進化論」「種
0049_0006_b_16L의起原」으로부터出來한듯하다。따윈은말하되 人
0049_0006_b_17L類는 아미바라는下等動物로써 漸次進化한動物이
0049_0006_b_18L니自然陶汰를지나서 適者生存 優勝劣敗의法則으
0049_0006_b_19L로種族을 繼承한것이라고主張하얏다。이것이스펜
0049_0006_b_20L사의哲學을經하야 니체의게이르러서 極端的으로
0049_0006_b_21L主張된바 現代에至하야는 가장猛烈한信仰을갓게
0049_0006_b_22L된듯하다。

0049_0006_b_23L 次에는功利主義、實利主義이니 此는佛蘭西哲學
0049_0006_b_24L者콤트의實證哲學으로부터 源을發한것이다。콤트
0049_0006_b_25L는智識發達을 三時代階段으로써觀察하얏다。第一
0049_0006_b_26L은神學時代이니 一切現象을神力、靈力、超自然力
0049_0006_b_27L으로써說明하얏고 第二는過渡時代이니 人生의頭腦
0049_0006_b_28L로考察한 無形的思想으로 一切를說明하얏고 第
0049_0006_b_29L三은實證時代이니 空理空論을離하고 直接自己經
0049_0006_b_30L驗으로써 一切를說明케되엿스니 即科學、物理學
0049_0006_b_31L이그것이라고主張하고 人間社會에實利가업는學問
0049_0006_b_32L은 極力으로排斥하엿다。그럼으로이것이 社會學
0049_0006_b_33L說의根抵가되게되고 드듸여利己主義、功利主義를
0049_0006_b_34L產出케되엿다。

0049_0006_b_35L

0049_0006_b_36L
 以上의모든主義와모든學說을 다-論하려면 制
0049_0006_b_37L限이업는故로 大略이에마치거니와 이와가튼여러
0049_0006_b_38L가지主義와 여러가지學說이䟦扈하는此時를 들어
0049_0006_b_39L말할것가트면 百家諸子가互相論爭하든 春秋戰國

0049_0007_a_01L時代以上이라고 볼수가잇다。그런까닭으로 複雜
0049_0007_a_02L한社會相을現出하야 生活로하야곰 極度로不安케
0049_0007_a_03L하고 思想으로하야곰 極度로不安케하얏나니 一
0049_0007_a_04L은生存競爭의 鬪爭惱苦를起하야 勞資가分裂하고
0049_0007_a_05L階級이反目하며 人類가爭鬪를 演出케되엿고 二
0049_0007_a_06L는經濟唯物主義萬能으로因하야 學術硏究는 停滯
0049_0007_a_07L를招하고 法權威信은混亂을致하고 理想信念은破
0049_0007_a_08L壞를이르키고 道德友誼는 薄弱을生케되엿스며 三
0049_0007_a_09L은世界宗敎의現相이打擊을蒙케되엿나니 基督敎는
0049_0007_a_10L人本智識進化에破하고 回囘敎는土耳其의失勢에伴
0049_0007_a_11L케되엿다。

0049_0007_a_12L 閑靜한寂夜에 此를생각하면 스사로睡眠을이룰
0049_0007_a_13L수가업다。누구를勿論하고 此를생각하면 時代的
0049_0007_a_14L英雄의出現을 期待하고 宗敎的天才의大聖이 出
0049_0007_a_15L世하기를 所願치아니할수가업다。그러나遺感이지
0049_0007_a_16L마는 如此한英雄과聖者는 나서지를아니하니어찌
0049_0007_a_17L하랴? 나는忌憚업시主張하며 唱道한다。釋迦宗
0049_0007_a_18L으로도라가고 佛敎로歸依하라고

0049_0007_a_19L 佛敎는二千五百年前 釋尊에依하야 創設되여서
0049_0007_a_20L人類歷史에 轉換期를生케하얏다。釋尊께서 生存
0049_0007_a_21L하시여서 佛法을開創하실때로말하면 東으로부터
0049_0007_a_22L西에까지 一齊히改革을이르키엿든것이事實이다。
0049_0007_a_23L支那에서는 孔老를主로한 四派九流가 잇게되고
0049_0007_a_24L印度에는마하이라即大英雄의宗敎改革이잇섯고 유
0049_0007_a_25L다야에서는 五部書가잇서서 舊敎의根本을짓게하
0049_0007_a_26L고 希臘은文化의萌芽를 發하게되엿섯다。然中에
0049_0007_a_27L도 印度가가장宗敎思想、哲學思想의混亂狀態에잇
0049_0007_a_28L섯나니 所謂九十六種의學派가盛行하고 六派哲學
0049_0007_a_29L이爛熟期에入하엿슬때엿다。그런가운데도 印度에
0049_0007_a_30L固有한四階級이잇서서 非人間의行動을作하고 雲
0049_0007_a_31L泥와가튼 水火不相容의階級的觀念이잇서서 水平
0049_0007_a_32L線以下의階級은 塗炭에드러서 말할수업는虐待와
0049_0007_a_33L想像할수업는暴殺을 當하고잇을때엿다。이러할때
0049_0007_a_34L에 釋尊가튼大聖者가나시여서 大慈大悲의平等을
0049_0007_a_35L부르짓고 幽玄深遠한哲理를 敎示하심은 天來의
0049_0007_a_36L福音이요 地上의靈籟라고하겟다。

0049_0007_a_37L

0049_0007_a_38L
 佛敎는創設된지 于今三千年에이르도록 過去無
0049_0007_a_39L數億萬의生靈을 救濟하엿거니와 今後라도 人類

0049_0007_b_01L의歷史가잇슬때까지 未來無數億萬의生靈을 救濟
0049_0007_b_02L할것이다。그런까닭으로 現代人으로써 不安한生
0049_0007_b_03L活界로하야곰解脫케하랴면 恐怖思想界로하야곰救
0049_0007_b_04L度케하랴면 그리하야 永遠한安心立命處를 得하
0049_0007_b_05L랴면 佛敎를버리고 다른곳에求할수업스며 釋尊
0049_0007_b_06L을등지고 他에배울데가업슬것이다。

0049_0007_b_07L 人生의最大問題를 論할것가트면 生活問題와思
0049_0007_b_08L想問題와의두가지로 논을수밧게업나니 此問題로
0049_0007_b_09L말하면 古昔부터論하야왓다。그러나古昔에잇서서
0049_0007_b_10L는 二者를分하야 各各一宗을삼아서力說하엿나니
0049_0007_b_11L例를取할것가트면 管子와商子와가튼이는 產業利
0049_0007_b_12L殖方面에서고 孔子와孟子와가튼이는 儒敎의仁義
0049_0007_b_13L道德方面에서서唱道하야왓스며 또는物質方面을論
0049_0007_b_14L하드래도 道德的으로解釋하야왓다。그리고이것도
0049_0007_b_15L一部知識階級에선사람이 생각하게되엿슬뿐이요 其
0049_0007_b_16L外無知한人民은 如此한問題를 口角에도걸지아니
0049_0007_b_17L하엿다。그러나現代人에잇서서는 相當한常識을 갓
0049_0007_b_18L는同時에生活上에 威脅을받는사람이만흔故로 生
0049_0007_b_19L活問題와思想問題를 交雜하야생각하게되며 따라
0049_0007_b_20L서緩急輕重의差와程度가잇슴을깨닷는故로 唯物主
0049_0007_b_21L義로치우처서 精神的方面을沒却하는 傾向이잇다

0049_0007_b_22L 그러나此는 健全한思潮라할수업스며 妥當한思
0049_0007_b_23L想이라고할수가업다。靈과肉은어데까지든지 一이
0049_0007_b_24L요二가아니며 物과心은어데까지든지合한者요 離
0049_0007_b_25L한者가아니다。그럼으로 佛敎에서는 色心不二라
0049_0007_b_26L는 法則을세우는바이다。또는上述한個人主義라든
0049_0007_b_27L지 利己主義라든지 適者生存의生存競爭의思想가
0049_0007_b_28L튼것은 絶對로取하지못할바이다。何故이뇨하면利
0049_0007_b_29L己主義者는 利己로써亡하고 殺伐을行하는者는殺
0049_0007_b_30L伐로써敗하는法이다。그럼으로佛敎에서는 和合主
0049_0007_b_31L義를 主張하며 利他思想을唱道하며 不殺戒를가
0049_0007_b_32L르치는바이다。不殺戒로말하면 單히消極的으로生
0049_0007_b_33L者를殺하지말나는데 그치는것이아니라 積極的으
0049_0007_b_34L로 愛生主義 生命尊重思想으로써 唱道한것이다。
0049_0007_b_35L一草木一微菌의生物도 殺害함을禁하얏거든 하물
0049_0007_b_36L며 人間同志가殺伐을行함이랴 此는絶對로 禁하
0049_0007_b_37L지아니하면아니될것이며 此를能히禁할者는 宗敎
0049_0007_b_38L의信仰 더욱히모든方面으로徹底한 佛敎의信仰을
0049_0007_b_39L가진者가아니면아니되리라고밋는다。

0049_0008_a_01L

0049_0008_a_02L
 戰鬪를行하며 殺伐을行함이 人類의大罪惡임은
0049_0008_a_03L두말할것도업거니와 過去英雄의末路와感嘆을보드
0049_0008_a_04L래도 알만한일이다。歐州全土를 席捲하든 絶世
0049_0008_a_05L英雄 나폴네온도 오돌노의一戰에慘敗하고 센도
0049_0008_a_06L헬나에 幽閉케된後로 散步區域까지制限되야 嘆
0049_0008_a_07L息하야가로대「一世의英雄나폴네온도 나자렛木手
0049_0008_a_08L의子만도못한가」하얏다하며 古昔에波斯의다리오스
0049_0008_a_09L의子 구셀구세스將軍은 丘上에서戰勝하는自己의
0049_0008_a_10L軍勢를俯瞰眺望하고 熱淚가滂沱하야 默然不語하
0049_0008_a_11L는지라 從者가奇異케역이고 그의理由를問하니喟
0049_0008_a_12L然히歎息하야가로대「而今에나의軍卒이 저와가치
0049_0008_a_13L旗幟槍劍으로 數十萬이싸와그러하되 이것이百年
0049_0008_a_14L後면 그림자도볼수업슬것이아니냐」하며「此丘上
0049_0008_a_15L에서너와나와두사람이問答하는우리도 이자리를지
0049_0008_a_16L나가는 今後百年後에잇서서는 微塵도볼수가업슬
0049_0008_a_17L것이라」고하엿다한다。

0049_0008_a_18L 그리고阿育王가튼 大聖主도 佛敎에歸依케된入
0049_0008_a_19L信의動機는 戰爭의慘敗에因한것이니 大王은가린가
0049_0008_a_20L의大戰爭에 幾多의戰死者를내고 그慘狀에戰慄하
0049_0008_a_21L야 깁히佛敎를信奉하게되야 佛敎弘布의大願을成
0049_0008_a_22L就하고 萬古의聖主로써일카르게되엿다한다 由此觀
0049_0008_a_23L之하면 佛敎는救世의天籟요 釋尊은度生의慈父이
0049_0008_a_24L신지라 더욱히現代思潮에 迷惑한者는 반드시佛
0049_0008_a_25L敎를 硏究할必要가잇고 釋尊을信仰할條件이잇스
0049_0008_a_26L리라고밋는다。(了)

0049_0008_a_27L 竊聞 金玉이異珍이나在人共寶요玄儒가
0049_0008_a_28L別義나遐邇同遵하니豈必孔生自國이라하야
0049_0008_a_29L便欲師從하고佛處遠邦이라하야有心捐棄아
0049_0008_a_30L孔丘辭逝에廟千載之規模하고釋迦言徃에寺
0049_0008_a_31L萬代之靈塔은欲使見形剋念하고面像歸心이
0049_0008_a_32L라敬師忠主가其義ㅣ一也ㅣ니라

0049_0008_a_33L(法苑珠林에서)

0049_0008_b_01L歐米學界와佛典의硏究

0049_0008_b_02L鐵啞

0049_0008_b_03L
 歐米의佛敎는 아즉大學講室의佛敎요 專門家와
0049_0008_b_04L硏究者들의書齋佛敎이다 勿論紳土와淑女、學者와
0049_0008_b_05L軍人等으로된 眞摯한「론돈」佛敎會라든지 基督敎
0049_0008_b_06L徒들의迫害中에서 惡戰苦鬪하는「라이프칙」佛敎會
0049_0008_b_07L라든지「달케」博士의信心結晶인 伯林郊外의佛敎
0049_0008_b_08L修道院等 敎會史上으로보아 자못興味있는佛敎信
0049_0008_b_09L仰의機關이없는것은아니다 더구나「歡喜慈」「智燈」
0049_0008_b_10L等의法名을가지고 거리의大衆의게釋尊의妙法을熱
0049_0008_b_11L辯하는 碧眼의傳道家들도있다 그러나이것은모다
0049_0008_b_12L一時的興奮과 個人的行動에지나지못하는 敎會史
0049_0008_b_13L初期의斷片的現象이다 硏究와批評의學術圈을떠나
0049_0008_b_14L信仰과傳道로써 實際上의큰勢力을가질날은 아즉
0049_0008_b_15L▼(멀+ㄴ)來頭를 기다려야할것이다 그러나歐米學界의佛
0049_0008_b_16L敎學의地位는 멀리있는우리가想到치못할만콤重大
0049_0008_b_17L한것이다 歐米의어떤큰學府를勿論하고 印度學과
0049_0008_b_18L佛敎學의講座가없는곳이없다 佛敎가歐米에學術的
0049_0008_b_19L으로紹介된지 겨우一世紀餘이나 歷代의碩學天才
0049_0008_b_20L들이輩出하야 畢生의努力을傾注해얻은 今日의硏
0049_0008_b_21L究成績은 東洋의佛學徒로하야곰 驚嘆케할만한것
0049_0008_b_22L이다 이에筆者는 歐米佛敎學의 가장重要한分科
0049_0008_b_23L인 佛典硏究의槪觀을略抄하고저한다

0049_0008_b_24L一、巴梨佛典의硏究

0049_0008_b_25L
 普通佛敎를敎理上으로 大乘小乘의二大敎系로分
0049_0008_b_26L類한다 大乘佛敎는中國、朝鮮、蒙古、西藏、日本
0049_0008_b_27L等北方諸國에流傳되고 小乘佛敎는錫蘭、暹羅、緬
0049_0008_b_28L甸等南方諸國에 傳播되얏다 이地理的關係로부터
0049_0008_b_29L歐洲의佛敎學者는 佛敎를南北兩系에分類하얏다 그
0049_0008_b_30L런데南方小乘敎徒들의 尊奉하는四阿含經、法句經
0049_0008_b_31L本生經等은 모다巴梨(Pali)語로써쓰인것이오 北
0049_0008_b_32L方大乘敎徒들의尊奉하는法華、般若、華嚴、或은淨
0049_0008_b_33L土、密敎等의經典은 모다梵語로된것이다 그럼으

0049_0009_a_01L로聖典語의方面으로부터보면 小乘佛敎는巴梨語佛
0049_0009_a_02L敎이오 大乘佛敎는梵語佛敎이라고할것이다

0049_0009_a_03L 그러나 이敎理的、地理的、言語的分類는모다槪
0049_0009_a_04L觀的이오 硏究或叙述上의便宜로조차한것이다 만
0049_0009_a_05L일精密히考察한다면 北方佛敎中에도 小乘有部의
0049_0009_a_06L戒律이 西藏과日本에現行하고 南方의錫蘭에는일
0049_0009_a_07L즉大乘敎特히密敎가 盛行한歷史가있다 聖典語의
0049_0009_a_08L區分에도同一한模糊가있다 即四阿含과法句經의梵
0049_0009_a_09L語原文의斷片이 最近中央亞細亞에서發掘된것으로
0049_0009_a_10L보면 小乘敎를다못巴梨佛語敎라고할수없으며 大
0049_0009_a_11L乘諸經典도처음에는一種方言으로쓰인것을 後代에
0049_0009_a_12L梵語로곤친痕跡은 法華나華嚴의偈頌中에볼수있은
0049_0009_a_13L즉大乘佛敎를곳梵語佛敎라고할수없는것이다

0049_0009_a_14L 그는何如間 巴梨語와梵語는어떠케區分되는것인
0049_0009_a_15L가 印度文學의用語를 二種으로區別한다 第一은
0049_0009_a_16L雅語、Samakrit即우리가普通말하는梵語인데 高尙
0049_0009_a_17L完全、純粹의意義를가진言語란것이오 第二는俗語
0049_0009_a_18LPrakrit인데 原始、自然、卑俗等을意味하는民間語
0049_0009_a_19L或은方言을말한것이니 巴梨語는이第二俗語의一種
0049_0009_a_20L으로 順序、齊整等의元義로부터 聖典語의意味로
0049_0009_a_21L轉用된것이다

0049_0009_a_22L 이巴梨語의聖典은 錫蘭佛敎의聖史Dipavamsa에
0049_0009_a_23L依하면 耶穌紀元前八十八年에即位한 佛法興隆의
0049_0009_a_24L英主、「無畏밧다가마늬」Abhaya-Vattagamani王朝에
0049_0009_a_25L摩訶毘訶羅大寺院에서 從來口授暗誦으로傳하야오
0049_0009_a_26L든것을 結集筆錄한것이라한다 其后錫蘭島佛敎의
0049_0009_a_27L中興祖師라고 崇仰할偉人覺音Buddhaghosa이出現
0049_0009_a_28L하야 巴梨語로써 浩澣한三藏의注疏를製作함에巴
0049_0009_a_29L梨聖典의大成을보게되얏다 그의內容으로말하면律
0049_0009_a_30L藏 Vinaya-Pitaka에는五大部分이있나니 一渡羅吏
0049_0009_a_31L(Parajika)二、波逸提(Paicttiya)三、大品(Mahavagga)
0049_0009_a_32L四、小品(Cullevagga)五、看屬(Parivara)等인데 僧
0049_0009_a_33L尼의規律制禁、敎會의法律條規를定한法典、及施行
0049_0009_a_34L細則이오 經藏 Suttanta-Pitaka에도五大部分으로
0049_0009_a_35L分하엿는데 各部多數의經典을包含하야있는것이니
0049_0009_a_36L四阿含과小部經藏 Khudda-nikaya이다 四阿含이라
0049_0009_a_37L함은 第一長阿含Digha-Nikaya第二中阿含Majjhima
0049_0009_a_38LNikaya 第三雜阿含(僧述多)Samyutta-Nikaya 第四
0049_0009_a_39L增一阿含Anguttara-Nikaya 即原始佛敎의根本聖典
0049_0009_a_40L이오 小部經藏이라함은 前四大部經藏에對하야小

0049_0009_b_01L部라고稱하는것인데 或派에서는 이를第五의阿含
0049_0009_b_02L이라고한다 이小部經藏中에는 자못重要한聖典을
0049_0009_b_03L類聚한것인데 聖典史上으로보아 大部阿含보다貴重
0049_0009_b_04L한部分이있다 現在의巴梨三藏中에는十五部가있나
0049_0009_b_05L니 一、小誦Khuddaka-Patha 二、法句Dhammapada 
0049_0009_b_06L三、感興語Udana 四、如是語Itivuttaka 五、經集
0049_0009_b_07LSutta-nipata 六、天宮事 Vimana-vatthu七、餓鬼事
0049_0009_b_08LPetta-vatthu 八、長老歌Thera-gatha 九、長老尼歌
0049_0009_b_09LTherigatha 十、本生Jataka 十一、解釋Niddesa 十
0049_0009_b_10L二、無障礙道 Patisamfhida magga十三譬喩Apadena
0049_0009_b_11L十四、佛種姓經 Buddhavamsa 十五、行藏Cariyapit
0049_0009_b_12L-aka等이다

0049_0009_b_13L 論藏 Abhidharma 은七部가있다 一、法聚論Dh
0049_0009_b_14L-ammasangani 二、分別論 Vibhanga 三、界說論
0049_0009_b_15LDhatukatha 四、人施設論 Puggalapannatti 五、說
0049_0009_b_16L事論 Kathavatthu 六、雙對論 Yamaka 七、發趣論
0049_0009_b_17LPattana 等인데 佛敎敎義의系統的說明 或은佛敎
0049_0009_b_18L心理、倫理、宇宙論等의分釋的解說이다

0049_0009_b_19L 上擧한律經論三藏外에 解釋 歷史의著作 準聖
0049_0009_b_20L典의資格을가진것이있다 解釋方面으로는 覺音이
0049_0009_b_21L著述한十九部의注疏、即律藏에二部、四大阿含에各
0049_0009_b_22L一部、小部經藏에十二部、論藏에一部의 자못浩澣
0049_0009_b_23L한典籍이있으며 其他同尊者의名著、佛敎軆系論인
0049_0009_b_24L「淨道」Visuddhimagga 도한聖書로看做할것이다
0049_0009_b_25L史傳方面으로는「大史」Mahavamsa「島史」Dipava
0049_0009_b_26Lmsa를兩大關으로하고 佛牙史、覺音傳等훌륭한史
0049_0009_b_27L料가있으며 典禮祭式에쓰는讃歌式辭等이있다

0049_0009_b_28L 이러한內容을가진巴梨聖典은 錫蘭島가千八百十
0049_0009_b_29L五年에英領으로된뒤로부터 歐米學界에서硏究되기
0049_0009_b_30L비롯하얏다 英國은印度에對한宗敎政策를 錫蘭島
0049_0009_b_31L에그대로適用하야 漸次로佛敎徒懷柔策을實行하얏
0049_0009_b_32L슴으로 自然同島文武의英國官吏及傳道家中에 佛
0049_0009_b_33L敎에關한趣味와同情이생기게되엿다 千八百二十六
0049_0009_b_34L年에聖史「摩訶槃沙」의英譯이 錫蘭判事長「쫀스톤」
0049_0009_b_35L(A.Johnston)의計劃과同島官夷「우괌」(Edward
0049_0009_b_36LUphaim)의編纂으로出版되엿스며 千八百三十三年
0049_0009_b_37L에「우팜」이直接出版者가되여『錫蘭神聖史集』The
0049_0009_b_38LSacred and historical Works of Ceylon 을「론돈」에
0049_0009_b_39L서公表한后 巴梨語의硏究가 歐洲學者들에게熾盛
0049_0009_b_40L하게되얏다 那威人「라센」(Christian Lassen)佛國

0049_0010_a_01L人「뷰루누푸」(Engeue Burnouf)言語學上 特히佛
0049_0010_a_02L敎學上의兩天才의共著인『巴梨語에對한論文』(Ess-
0049_0010_a_03Lai sur le Pali)의學術的硏究가 巴里에서公表되엿
0049_0010_a_04L스며 英人「다ㅣ나」(Georg Turnour)가 千八百三
0049_0010_a_05L十七年에 巴梨原文摩訶槃沙에英譯을付하야出版하
0049_0010_a_06L면서 一邊으로「우팜」前譯의誤謬를指摘하며 他邊
0049_0010_a_07L으로印度歷史의硏究上 錫蘭의史料가重要한것과佛
0049_0010_a_08L敎가錫蘭史上 密接한關係가있는것을考證하얏다千
0049_0010_a_09L八百五十五年에「코펜하겐」大學의「파우스벨」(Viggi
0049_0010_a_10LFaus boll)이巴梨文法句經을公刋하게되니 이는實
0049_0010_a_11L로가장처음으로 巴梨語佛典이 歐洲에서 아니世界
0049_0010_a_12L에서活版된것이다 其后巴梨語硏究와 佛典出版은
0049_0010_a_13L더욱盛大하게되엿다 이에聖典의出版과硏究의發表
0049_0010_a_14L를 集中하기爲하야「만체스터」大學의「데빗스」
0049_0010_a_15L(Rhys Davids)敎授가 千八百八十三年에「론돈」에
0049_0010_a_16L서『巴梨聖典會」Pali Texte Society를組織創立하얏
0049_0010_a_17L다 同會가成立以來四十餘年동안 浩澣한巴梨三藏
0049_0010_a_18L의大部分은 임의出版되얏스며 翻譯과敎理及歷史
0049_0010_a_19L的著述의努力은 참可驚할만하다

0049_0010_a_20L (一)聖典本文의出版「파으스벨」이二十餘年동안(千
0049_0010_a_21L八百七十七年 大集第一卷이公刋)苦心出版한것은
0049_0010_a_22L本生經大集이다 이大事業이한번學界의耳目을 驚
0049_0010_a_23L動함에 巴梨語三藏의公刋이 多數碩學의손에成就
0049_0010_a_24L되얏다

0049_0010_a_25L 律藏本文全部의出版은「께팅겐」大學의「올덴벩」
0049_0010_a_26L(Hermannu Oldenberg)敎授가千八百七十九年으로
0049_0010_a_27L부터同八十三年까지校訂出版하얏고 經藏即四阿含
0049_0010_a_28L의校訂出版은 雜阿含의公刋이 巴梨語聖典出版界의
0049_0010_a_29L事業으로써 千八百八十四年에着手되얏다 그의校
0049_0010_a_30L訂者는巴里의國民圖書舘의司書「페아」(Leon Feer)
0049_0010_a_31L이엿다 其后增一、中、阿含은 千八百八十九年에
0049_0010_a_32L이르기까지다出版되얏고 長阿含의一部分만未刋되
0049_0010_a_33L얏다 論藏의七部로말하면 英國言語學의泰斗「모
0049_0010_a_34L리쓰」(Richard Morris)가 千八百八十三年에「人
0049_0010_a_35L施設論」을出版한것이처음되는것인데「分別論」
0049_0010_a_36L「雙對論」을除한外에 다出版되엿다 小部經藏의十
0049_0010_a_37L五部聖典中 法句經 本生經等의出版은 以上에말
0049_0010_a_39L하얏거니와 千八百七○年부터 千八百九○年까지
0049_0010_a_40L「解釋」「無障礙道」「譬喩」三部를除한外에다公刊
0049_0010_a_41L되얏다

0049_0010_b_01L 다홈三藏의注疏類의公刊으로말하면 覺音의著、
0049_0010_b_02L長阿含의釋論『吉祥悅意論』、論藏法聚論의注疏『豊
0049_0010_b_03L義論』、餓鬼事의注疏『眞諦燈論』、本生、法句經의注
0049_0010_b_04L疏等이 巴梨聖典會에서刊行되엿다 其他藏外의典
0049_0010_b_05L籍、佛牙史、菩提樹史、佛塔史等의敎會史料이며對
0049_0010_b_06L法集要、妙法集要、覺音의『淨道論』等의敎理要論도
0049_0010_b_07L同會에서出刊되엇다

0049_0010_b_08L (二)聖典의翻譯 巴梨佛典의翻譯事業에 對하야는
0049_0010_b_09L「막스、뮬나」(Max Mullen)의大業인 『東方聖書大
0049_0010_b_10L集』과『佛敎聖典集』中에 散在한「올덴벩」「데빗
0049_0010_b_11L스」兩老의律藏英譯을筆頭로「뷰르뉴프」의長阿含
0049_0010_b_12L中沙門果經、大緣方便經의佛譯과「노이만」(K.E.
0049_0010_b_13LNeumann)의中阿含獨譯은著名한것이다 其他論藏
0049_0010_b_14L小部經藏、島史、大史、覺音傳等도或은英譯으로或
0049_0010_b_15L은獨譯으로 或은伊、佛譯으로되얏다 譯者氏名과
0049_0010_b_16L譯刊年代는 넘어나冗長하야省略하거니와 이譯經
0049_0010_b_17L事業에 中央機關은저巴梨聖典會이다 特히우에말
0049_0010_b_18L한「을덴벩」、「데빗스」、「노이만」세學者의努力으로
0049_0010_b_19L聖典原文이 英獨의譯文을得한바 임의적지안타 그
0049_0010_b_20L뿐아니라날로더욱盛行되여가는 이事業의狀態는마
0049_0010_b_21L치唐代漢譯의隆昌과가튼것이라할것이다

0049_0010_b_22L (三)敎理及歷史的著述 歐洲의佛敎에關한著作은巴
0049_0010_b_23L梨聖典을度外視한者는없다 멀게「뷰르누푸」의『佛
0049_0010_b_24L敎史序論』이나 갓가히「케른」의『佛敎提要』이나모
0049_0010_b_25L다巴梨佛敎에關係된見解가 包含되여있다 그러나
0049_0010_b_26L特히巴梨聖典을基礎로하야 佛敎의敎史에一線의빛
0049_0010_b_27L을던진最初의사람은 前述한「大史」의出版者「다
0049_0010_b_28Lㅣ나」라고할것이다 敎理의方面으로는「하ㅣ듸」
0049_0010_b_29L(Robert Spence Hardy)의二名著가 巴梨佛敎硏究
0049_0010_b_30L의첫著述로될것이다 第一은千八百五十年刊인『東
0049_0010_b_31L方僧院生活』(Eastern Manachism)인데 佛敎僧侶의
0049_0010_b_32L得度、戒行、儀式其他僧院制度에對하야詳述한것이
0049_0010_b_33L오 第二는三年后刊인『佛敎提要』(Manuel of Budd-
0049_0010_b_34Lhism)인데 佛敎의敎義에對한重要한著作이다 다
0049_0010_b_35L홈「올덴벩」敎授의『佛陀、其生涯、其敎理、其僧團』
0049_0010_b_36L(Buddha seine Leben seine Lehre seine Gemeinde)은
0049_0010_b_37L特筆할것이다 初版은千八百八十一年에되엇고 九
0049_0010_b_38L十年에第二版、九十九年에第三版을出한爾來 六七
0049_0010_b_39L版이重疊되얏스며 佛譯과英譯乃至日本譯까지있게
0049_0010_b_40L되얏다 또한「노이만」의『佛敎想華集』(Buddhistische

0049_0011_a_01L▣nthologie)은千八百八十年에出刊되엇다

0049_0011_a_02L 「데빗스」翁의諸傑作으로말하면 一、『佛敎』(Bud-
0049_0011_a_03Ldhism)千八百七十八年에 「론돈」에서初刋되엇다
0049_0011_a_04L爾來二十版以上으로重刋되얏스며 獨、和、日譯等
0049_0011_a_05L이있다 二千八百八十一年의講演『印度佛敎史의或
0049_0011_a_06L點으로부터 說明되는宗敎의起原及發達에對하야』
0049_0011_a_07L(Lecturs on the origin and growth of renligion as illus
0049_0011_a_08Ltrated by some points in the History of Indian Bud-
0049_0011_a_09Ldhism)는巴梨佛敎의資料를充分히運用한 歷史的大
0049_0011_a_10L講演이다 其他『佛敎印度』『原始佛敎』等의名著가
0049_0011_a_11L있다 이에特筆할事實은 翁의夫人「카로린」女史가
0049_0011_a_12L一流의佛敎學者인것이다 女史는巴梨語에精通하야
0049_0011_a_13L幾多의譯經及出版을하얏슬뿐아니라 英國의「家庭
0049_0011_a_14L大學叢書」의中에『佛敎』라는著述까지하얏다

0049_0011_a_15L 以上은巴梨佛敎에對한一般的著述이거니와 特殊
0049_0011_a_16L한方面의硏究 例하면佛敎哲理에對한것이라든지 佛
0049_0011_a_17L陀涅槃에關한것이라든지 敎會史에對한等 諸學者
0049_0011_a_18L의論文이 英ㆍ獨ㆍ佛ㆍ米ㆍ露의諸學會의會報에散載되
0049_0011_a_19L엇다「베스터가-드」(Westergaard)의『印度史最
0049_0011_a_20L古의年代에對하야』(Ueber der altesten Zeitraum
0049_0011_a_21Lder Indischen Geschichte)라는論文은 그의代表的
0049_0011_a_22L一例인데 佛陀涅槃의年代를確定한傑作이다(千八
0049_0011_a_23L百六十二年、丁抹語로發表)

0049_0011_a_24L 其他巴梨佛敎硏究에關한 原文出版、著書及論文
0049_0011_a_25L의詳細한書目은 「홉킨스」(Hopkins)의好著、『印度
0049_0011_a_26L宗敎』(千八百九十六年版)의佛敎의註와「에드몬드」
0049_0011_a_27L(Edmunds)가巴梨聖典會報(千九百二年)에 揭載한
0049_0011_a_28L「佛敎書史」(A Buddhist Bibliograplhy)란論文을參
0049_0011_a_29L考할것이다

0049_0011_a_30L二、梵語佛典의硏究

0049_0011_a_31L
 前述함과가치現存大乘佛敎聖典의原本은 다梵語
0049_0011_a_32L詳言하면佛敎特有의 一種梵語로된것이다 그러나
0049_0011_a_33L이것은槪觀的으로말한것이다 法華라든가 楞伽라
0049_0011_a_34L든가 般若、華嚴等大乘經典만 梵語로쓰인것이아
0049_0011_a_35L니며 高昌과于闐의廢址에서 發掘된古寫經을檢하
0049_0011_a_36L면 그가운데 梵語로쓰인小乘經典의斷片이많음을
0049_0011_a_37L忘却하야서는아니된다

0049_0011_a_38L 現在의梵語聖典은巴梨聖典과가치 均一整然한것
0049_0011_a_39L이아니다 그成立된語種으로부터 左記三種類로區

0049_0011_b_01L別할수있다

0049_0011_b_02Lㄱ、一種方言의色彩를띈異軆梵語로쓰인것

0049_0011_b_03Lㄴ、方言의原書를梵語로곤친것이거나 或은敷衍
0049_0011_b_04L한것

0049_0011_b_05Lㄷ、梵語로쓰인것

0049_0011_b_06L 第一種은 佛敎梵語聖典中、가장古代에屬한것이
0049_0011_b_07L다 이것을普通伽陀語(Gatha Language)或은伽陀
0049_0011_b_08L方言(Gatha Dialect)이라고한다 伽陀는佛敎語의
0049_0011_b_09L偈頌、即詩軆의文을가르친것이다 古代의大乘聖典
0049_0011_b_10L은 많이이詩軆로쓰이엇든것이다 가령法華、無量
0049_0011_b_11L壽、十地、行願品等의聖典原文中 偈頌의部分은即
0049_0011_b_12L이伽陀語이다

0049_0011_b_13L 第二種으로말하면 現存의大般若梵本과法華、華
0049_0011_b_14L嚴、無量壽經等의 散文의部分이다 이것은第一種
0049_0011_b_15L의偈頌의部分에比하면 훨신後代에屬한것이다

0049_0011_b_16L 第三種은 純雅한正軆梵語로된것인데 그中에도
0049_0011_b_17L두種類가있다 第一類는精練이缺한古典梵語로된것
0049_0011_b_18L인데 古代로는金剛經、彌陀經、心經等과 中世로
0049_0011_b_19L는大乘莊嚴寶王經、瑜伽論菩薩地等과같은것이오

0049_0011_b_20L 第二類는文學的梵語로된것이니 그中에는一方으
0049_0011_b_21L론哲學的著作、即月稱의中論釋、法稱의金剛針論과
0049_0011_b_22L가튼것과 他方으로는 純粹한文學的藝術品이라할
0049_0011_b_23L만한馬鳴의佛所行讃、聖天의本生鬘、寂天의菩薩行
0049_0011_b_24L經等과가튼것이다

0049_0011_b_25L 이러틋梵語佛敎聖典은 그種類가雜多한지라 巴
0049_0011_b_26L梨聖典과가치整然한것이아니다 此等梵語聖典이어
0049_0011_b_27L떠케歐米學界에 發見、蒐集되얏스며 硏究되얏든
0049_0011_b_28L가 먼저梵語佛典의發見과蒐集의沿革부터말하자

0049_0011_b_29L 梵語佛典、即大乘聖書가 歐洲에紹介된것은英人
0049_0011_b_30L「흣지손」(Brian Houghton Hodgson)의功이다「흣」
0049_0011_b_31L氏는英國의一流文士인同時또한外交官이엇다 氏가
0049_0011_b_32L印度「尼波羅」에公使로二十年동안駐在하면서 印度
0049_0011_b_33L學術을開拓하얏스며 特히佛敎硏究에熱中하얏다 千
0049_0011_b_34L八百二十六年『亞細亞硏究』의第四卷에『尼波羅及西
0049_0011_b_35L藏의國語文學宗敎撮記』를揭載하야 梵語佛典의現
0049_0011_b_36L存을 世界에公布하얏다 其後氏는全力을다하야梵
0049_0011_b_37L語聖典의蒐集에힘썻다 그의『尼波羅佛敎經典上으
0049_0011_b_38L로본佛敎畧論』(Sketch of Buddhism derived from
0049_0011_b_39Lthe Buddha Scriptures of Nepal)은巴梨聖典만이
0049_0011_b_40L佛敎인줄생각하얏든 歐洲學界를驚動케하얏다「흣」

0049_0012_a_01L氏의蒐集한梵語聖典은 三百八十一部의新古寫經이
0049_0012_a_02L엇는데 그中勿論複本도있엇스나이重要한蒐集은當
0049_0012_a_03L時에서는世界無二의珍品이엇다그러나氏는 이珍品
0049_0012_a_04L을左記의學府에分贈하얏다

0049_0012_a_05L「벵갈」亞細亞協會文庫에百四十四部

0049_0012_a_06L「론돈」皇立亞細亞協會文庫에八十五部

0049_0012_a_07L印度局文庫에三十部

0049_0012_a_08L「욱스포-드」大學文庫에七部

0049_0012_a_09L巴里亞細亞協會及「뷰르누푸」文庫에百七十四部。

0049_0012_a_10L 이梵語聖典의新發見卽第一囘의聖典蒐集은 歐洲
0049_0012_a_11L의學壇에큰反響을주엇다 이에「뷰르누푸」의傑作
0049_0012_a_12L『佛敎史序論』과 法華經의佛譯이公刋되엇다

0049_0012_a_13L 千八百七十三年春으로부터同七十六年夏까지 三
0049_0012_a_14L年동안「켐부릿치」大學의「카우엘」敎授의囑托으로
0049_0012_a_15L尼波羅駐剳의醫官「다늬엘、라잇트」(Dr Daniel W-
0049_0012_a_16Lright)가第二囘로蒐集한佛敎聖典은 三百二十五部
0049_0012_a_17L이엇다 種類의豊富、複本의多數―이第二回蒐集은
0049_0012_a_18L第一回보다 優秀한大寫經이많엇섯다 千九百九十
0049_0012_a_19L四年에劒橋大學의「벤돌」(Cocil Bendall)敎授가 尼
0049_0012_a_20L波羅에서五百餘部의古寫經을 第三回로蒐集하얏고
0049_0012_a_21L同九十七年巴里大學의「레비」(Silvain Levi)敎授
0049_0012_a_22L가 尼國에旅行하야第四囘의蒐集을하얏다 無着菩
0049_0012_a_23L薩의大乘莊嚴論의原本를發見하얏슴은「레비」敎授
0049_0012_a_24L의聖典探索으로된것이다 이尼波羅梵語聖典의蒐集
0049_0012_a_25L外에「막스、뮬너」翁의日本所傳梵語佛典의蒐集과西
0049_0012_a_26L域의古梵書의發掘로말미암아 梵語聖典의蒐集은거
0049_0012_a_27L의完成된것이다

0049_0012_a_28L 이제 이러케蒐集된聖典의出版及翻譯의歷史를槪
0049_0012_a_29L觀하건데「홋지손」氏의金剛針論英譯이 梵語佛典의
0049_0012_a_30L歐語譯의嚆矢이다「뷰르누푸」의妙法蓮華經의佛譯
0049_0012_a_31L(Lotus de la bonne Loi)이公刋되자 歐洲의學界는
0049_0012_a_32L더욱聖典出刋과翻譯에熱中하얏다 千八百六十年에
0049_0012_a_33L伯林大學의「베버」(Albrecht Weber)敎授가 前記
0049_0012_a_34L金剛針論의原文을校訂하고 獨譯과註釋을加하야伯
0049_0012_a_35L林學士院에報告하얏다 다홈에牛津大學의「막스뮬
0049_0012_a_36L너」의四十九卷의『東方聖書大集』(Sacred Books of
0049_0012_a_37Lthe East)의刋行이다 그後「劒橋」의「카우엘」(Eㆍ
0049_0012_a_38LB.Cowell)의佛敎因緣談大叢書(Diyavavadana)
0049_0012_a_39L及馬鳴의佛所行讃(Buddhacharita)의刋行과「벤돌」
0049_0012_a_40L의大雲請雨經原本(Megha-Sutra)의校刋이있엇다

0049_0012_b_01L當時佛國의梵語學界로말하면「뷰르누푸」의高弟「새
0049_0012_b_02L나르트」(Emile Senart)의本行集經의異本『大事』
0049_0012_b_03L(Mahavastu)의校訂出版과「푸ㅣ코」(Foucault)「페
0049_0012_b_04L어」(Feer)等偉大한西藏學者들의 大莊嚴經梵本의
0049_0012_b_05L佛譯과 撰集百緣經梵本의佛譯等이續出하얏다「세
0049_0012_b_06L나르트」의『佛陀傳論』은佛陀太陽說을主張한有名한
0049_0012_b_07L것이엇다 이에우리는北極의나라 露西亞의梵語學
0049_0012_b_08L壇을忘却할수없다「미나에푸」(I.PㆍMinaeff)「올
0049_0012_b_09L덴붉」等碩學이輩出하야 佛敎梵語字典의編刋이며
0049_0012_b_10L妙吉祥眞實名經(Namasamgiti)의校刋이며 寂天論
0049_0012_b_11L師의著인 菩薩行經原文(Bodhicariavatara)의出版
0049_0012_b_12L等을하얏다 和蘭의「라이덴」大學의「케른」(Hendric
0049_0012_b_13LKern)敎授는妙法蓮華經의英譯을『東方聖書大集』
0049_0012_b_14L의第二十一卷으로하야 公表하얏스며 本生鬘原文
0049_0012_b_15L(Jatakamala)을米國에서校刋하얏다 그의『印度佛
0049_0012_b_16L敎史』는참世界의名著이라는것이다

0049_0012_b_17L 千八百八十年부터同九十年까지의十年동안은 梵
0049_0012_b_18L語佛典硏究史上重大한事業이創設되엇다 첫재、露
0049_0012_b_19L西亞學士院이「大乘佛敎聖書出版會」를組織하야「佛
0049_0012_b_20L敎文庫」라는大叢書를刋行하얏다 이「佛敎文庫」는
0049_0012_b_21L마치巴梨聖典硏究의中央機關임과가치 梵語佛典의
0049_0012_b_22L中樞學壇이엇다 十萬頌般若梵本을出刋하기비롯한
0049_0012_b_23L것도이「佛敎文庫」의事業이엇다 둘재 印度에서는
0049_0012_b_24L「印度佛敎聖典及人類學會」가創立되야 月稱의中論
0049_0012_b_25L釋、金光明經、楞伽經等의出版을하얏다 셋재 佛國
0049_0012_b_26L의支那學者「아르레」(C.X.Harlez)氏가巴里에서
0049_0012_b_27L金剛般若經의佛譯을公表하얏스며「막스、뮬너」翁
0049_0012_b_28L의無量壽經、阿彌陀經、金剛經、般若心經의英譯이
0049_0012_b_29L續出되얏다 獨逸「하이델벩」大學의「레푸만」敎授의
0049_0012_b_30L方廣大莊嚴經의出版과 巴里「레비」敎授의無着大莊
0049_0012_b_31L嚴論의校刋等은모다當時에된것이다

0049_0012_b_32L 이翻譯과出刋의事業을떠나 梵語佛敎의系統的或
0049_0012_b_33L은歷史的硏究와著作을 槪觀하건대 前述한「흣지
0049_0012_b_34L손」의論文과「뷰르누푸」의名著「印度佛敎史序論」을
0049_0012_b_35L筆頭로「쿗펜」의『佛陀의宗敎』、「케른」의『印度佛敎
0049_0012_b_36L史』는大乘佛敎의硏究를槪括한것이다「야고비」의獨
0049_0012_b_37L譯(Der Buddhismus und seine geschichte in Indien 18
0049_0012_b_38L82-84)과「휴에」의佛譯(Histoire du Bonddhisme
0049_0012_b_39Ldana L’inde 1901-02)이있다 그의內容을略示하건
0049_0012_b_40L대 全書四編으로區分되엇는데 第一編은佛陀及그

0049_0013_a_01L의傳記를論하얏고 第二編은達摩를記述하야大乘敎
0049_0013_a_02L의精要를指摘하얏고 第三編은僧伽를叙述하야敎會
0049_0013_a_03L의條規戒律의槪要를解示하얏고 第四編은佛敎敎會
0049_0013_a_04L史에對한討究인데 敎史를三期로分하야 第一期는
0049_0013_a_05L阿育王時代까지 第二期는迦膩色迦王까지 第三期는
0049_0013_a_06L中世大乘敎經의末期까지로한 大乘敎의歷史的傑作
0049_0013_a_07L이다 爾來「케른」과對立할만한 梵語佛敎學者는稀
0049_0013_a_08L少하얏고 그러나露西亞의「올덴벩」(Sarg Olden
0049_0013_a_09Lberg)과그의門弟「체르바스코이」(Stcherbatskoy)의
0049_0013_a_10L著作、特히後者의佛敎因明에對한硏究를記憶치아니
0049_0013_a_11L치못할것이다 白耳義의碩學「쁘산」(Poussin)의
0049_0013_a_12L『佛敎論』은 特히秘密敎及後代大乘空宗의硏究를槪
0049_0013_a_13L括한것이오 獨逸의大哲學史家「쿠노、피숴」의高弟
0049_0013_a_14L「막스、바레서」(Max Walleser)敎授의『史的發達
0049_0013_a_15L上의佛敎哲學』(Buddhistische Philisophie in ihrer
0049_0013_a_16Lgeschichtlichen Entwicklung)의大著는 大乘佛敎의
0049_0013_a_17L哲學全系를說述論評한것이다

0049_0013_a_18L 이外에도多數碩學의名作이많이있지만 넘어나乾
0049_0013_a_19L燥無味한列擧가 讀者의게煩疲를늣기게할가한다 이
0049_0013_a_20L만만하여도얼마나歐米의學界가 佛典硏究、即佛敎
0049_0013_a_21L學의硏究에熱中하는가를 讀者여러분께서窺知하실
0049_0013_a_22L줄안다 이歷史的、古典學的硏究가 歐米思想界의
0049_0013_a_23L一部를 影響支配함은다시두말할것도없는事實이거
0049_0013_a_24L니와 압흐로갈수록 佛敎學이世界의學壇에 重要
0049_0013_a_25L한位置를가질것은 우리가容易히豫測할수있는것이
0049_0013_a_26L다 今日의世界學壇의趨勢는 希臘思想으로부터產
0049_0013_a_27L出된歐米의文明과 印度、中國의雄大한古代思索으
0049_0013_a_28L로부터誕生된東方文化의調和와 이調和로부터發芽
0049_0013_a_29L될 人類思想의新生面을開拓、展開하려는努力에있
0049_0013_a_30L다 佛敎가輸入된지千五百餘年이오 過去의文化建
0049_0013_a_31L設에不磨의業蹟이있고 現在精神生活에無意識的인
0049_0013_a_32L만콤深刻한土臺가되는 佛敎朝鮮의學界는 將次어
0049_0013_a_33L떠한態度와떠어한努力으로 져世界學潮에臨하려하
0049_0013_a_34L는가아아모든文化의基本이되는 學的寂寞과學的敗
0049_0013_a_35L滅이무엇 무엇의寂寞과敗滅보다 現在의우리로하
0049_0013_a_36L야곰붓그럽게하고압흐게하는것임을 賢明한讀者는
0049_0013_a_37L잘알줄믿는다

0049_0013_b_01L어떤것이大乘佛敎일까?

0049_0013_b_02L石顚沙門

0049_0013_b_03L
 허어 千年의鳥가 朝生의鳳만 不如하다함을이
0049_0013_b_04L제야알게된다 某沙門의말삼한바와 가치入山修道
0049_0013_b_05L四十年에 다시는더배울것업고 다만寂照가有할다
0049_0013_b_06L름이라 하얏다하나 그따위語調는 一笑에부칠것
0049_0013_b_07L이나 石沙門은 四十年讀書者로서 다만有修할것
0049_0013_b_08L을 게우省得하엿다 然하면頑石이不靈한것을 感
0049_0013_b_09L愧不已 하는同時에 새로은大乘佛敎란 棒喝風을
0049_0013_b_10L當하고보니 勿論이번棒喝이란것은 瞎棒、虗喝、
0049_0013_b_11L로된것을아즉選擇할것업시不覺中에石火는번쩍하엿
0049_0013_b_12L다 石火란것도 아마三昧火는아니겟고 無明인業
0049_0013_b_13L火인가생각된다 然한즉爲他閑事長無明이라할것이
0049_0013_b_14L다 大乘佛敎大乘佛敎 어떤것이大乘佛敎일까 大抵
0049_0013_b_15L大乘二字가 普通文의述語는아니오 獨히佛敎內에述
0049_0013_b_16L語인것은 常識이稍有한人士로서는 함부로佛敎大
0049_0013_b_17L團體에對하야 口氣를恣放한다하면 侮辱을被하는
0049_0013_b_18L朝鮮佛敎團體보담 瞎棒虗喝하는人士부터가 沒常
0049_0013_b_19L識한것을大世에다披露하는것이아닐까 이른바(終
0049_0013_b_20L日詈天한들天何有傷가詈天者만自勞라)하는것이다
0049_0013_b_21L허어大乘佛敎란述語를 언의風聲이그에耳片皮에얼
0049_0013_b_22L는부드친것으로써 自家의偶感인一解半知를 搔痒
0049_0013_b_23L症으로變化되야 아무러커나 朝鮮佛敎團體의 大
0049_0013_b_24L墮落을機會로하얏다僧坊悲曲가튼小說語句에는 佛
0049_0013_b_25L身에對하야侮辱說을 한부로筆之하야도 老比丘들
0049_0013_b_26L은 耳聵無聞하엿고 年少沙彌들은 石橋上春風에
0049_0013_b_27L서 性眞上佐의駘宕한心理로써 同情할好感도잇섯
0049_0013_b_28L다 그럼으로어떠한佛敎靑年은 襍誌에다稱曰 일
0049_0013_b_29L로부터는朝鮮佛敎에도大乘佛敎를均行케하고 그前
0049_0013_b_30L에小乘佛敎의規範은打破할것이라하며 또한某高等
0049_0013_b_31L校에執鞭者一人은稱曰 自此로朝鮮佛敎에서는좀、
0049_0013_b_32L大乘佛敎를하엿스면하엿다한다 一少一長이所對한
0049_0013_b_33L境遇라든지 어떠한感想을가지고 自家의師子吼를
0049_0013_b_34L試放하야보앗다 그러한師子吼는 野干鳴의心理를

0049_0014_a_01L가지고 黔驢의소래가튼것을 放出한것이다 現今에
0049_0014_a_02L朝鮮佛敎를도라볼때에 物腐然後에蟲生之란格言도
0049_0014_a_03L늣겟다腐敗가極度에達한까닭에 그의以上에가는侮
0049_0014_a_04L辱도甘受하겟고 侮辱을甘受할때에 全身에麻木이
0049_0014_a_05L박헛스니 棒喝은말고頂針으로深砭할지라도 四目
0049_0014_a_06L만相覷하고火宅內諸子처럼 泛視할뿐이며 依舊히
0049_0014_a_07L遊嬉할뿐이다 琵琶行尾聲에云하되 江州司馬는靑
0049_0014_a_08L衫濕이라하엿다 허어 아모리朝鮮佛敎에 無人境
0049_0014_a_09L이라한들 若少若長의그사람도「人言이如矢하야一
0049_0014_a_10L入人耳하면 有力難抽를」思惟치아니할수업다 大
0049_0014_a_11L乘佛敎의旨義가 어떠한것을確知하데라도 남의團體
0049_0014_a_12L를對하야難言이라하겟는데 單片句語를風聞만하고
0049_0014_a_13L偶感의謔浪으로 大衆에게公言하는것은 所學이얼
0049_0014_a_14L마되지못한것만 無餘道得한게아닌가한다

0049_0014_a_15L 그것도露西風에所動으로狂吹聲이率直出來한것이
0049_0014_a_16L다 若少若長이모다 間接으로佛敎恩澤이 施及한
0049_0014_a_17L者이다 이러케傳法치아니하면 佛恩難酬라한것이
0049_0014_a_18L다 다시뭇고저함은 어떤것이大乘佛敎인지를槪念
0049_0014_a_19L으로라도正解하겟는가 自家의腦中에나 自家의眼
0049_0014_a_20L簾에나 어렴푸시 그것이大乘佛敎겟지하는 一片
0049_0014_a_21L野心揑造한것이어찌大乘佛敎일까 참으로自家의揑
0049_0014_a_22L造한 大乘佛敎가宣傳된다하면 醍醐上味가爲世珍
0049_0014_a_23L이나 在斯人하면翻成毒藥이라함과一例일것이다 元
0049_0014_a_24L來로大乘이란理行이 佛敎大乘經典에잇스니 아모
0049_0014_a_25L리北風에被扇하야 急燥性이闖發할지라도 具眼者
0049_0014_a_26L를돌보며 識法者를조심하는 德性을培養하야 나
0049_0014_a_27L오는口頭를 訒止하며 나가는筆勢를 藏拙함이어
0049_0014_a_28L떠할가 自家의大乘佛敎는 纎悉이勘破하엿지마는
0049_0014_a_29L긔어히析明할必要는업다 다시새벽바람 웃절鐘梵
0049_0014_a_30L소래에 懺悔를企待한다 그리無意識하게 大乘佛敎
0049_0014_a_31L가 그사람말삼을 誤解하는兄弟가 或有하거든 보
0049_0014_a_32L리술에醉惑치말고 내가참으로大乘理行과奉遵키不
0049_0014_a_33L能하기는 스사로가惑重業重한것이며 世界風潮를
0049_0014_a_34L獨異케最難하다하면 有或可宜어니와 胸臆流出의
0049_0014_a_35L野談을認眞하는것은 이것이反經合塵이다 그러한
0049_0014_a_36L것을不足爲로覺省치아니하면 擔麻棄金의比喩에可
0049_0014_a_37L當할것이다 허어 芝蘭은種不榮하고 荆棘은剪復
0049_0014_a_38L生이라 二者에無奈何하야 徘徊歲將暮라한글句를
0049_0014_a_39L녯제는儒者의一例歎詞로 看過하엿더니 暮年漢旅
0049_0014_a_40L에 桂玉만徒費하고 無端한鬂雪은 갈스록星星하

0049_0014_b_01L구나 世界風波는더욱더욱무서운가운대에 城狐社
0049_0014_b_02L鼠의 本分屋裏에서 䟦扈跳梁한것은 日甚又日甚
0049_0014_b_03L하여간다 잇가지筆舌이나놀리면무얼하나 旱天에
0049_0014_b_04L빗발이나되아 塗炭에呌苦하고잇는 蒼生의解暍을
0049_0014_b_05L하엿스면 解悶解憂가될는가 說食飢夫의 大乘佛
0049_0014_b_06L敎의 어떠한것은 饒舌한들 무삼効果가生할가 一
0049_0014_b_07L杯쯤되는물을뿌려 徧山의焚火를 어찌熄滅할것이
0049_0014_b_08L라妄想할가 이것도水는원래 火를勝하는것이라함
0049_0014_b_09L을 不忘할뿐이오 확실히效果를얻으랴하면 妄中
0049_0014_b_10L妄이라하겟다

0049_0014_b_11L宗敎와社會事業發達의硏究

0049_0014_b_12L金泰洽

0049_0014_b_13L第三章 社會事業의歷史的觀察

0049_0014_b_14L第二節 東洋에在한社會事業의沿
0049_0014_b_15L

0049_0014_b_16L다 朝鮮에在한社會事業의發達

0049_0014_b_17L
 朝鮮에在한 救濟事業은 멀리新羅의古代에잇서
0049_0014_b_18L서 源을王家仁政의餘澤에서 發하게된것이다。即
0049_0014_b_19L新羅儒理王의時(新羅第三王五年、日本垂仁帝五十
0049_0014_b_20L七年、西曆紀元二十八年)에 王이國內巡行의道次
0049_0014_b_21L에 飢寒瀕死의一老嫗를보고 惻隱怜恤하야 衣食
0049_0014_b_22L을下賜하고 此를救하얏스며 또한全國에 鰥寡孤
0049_0014_b_23L獨老病한者로서 自活의길이업는者를 調査하야賑
0049_0014_b_24L恤을施하얏다。이것이朝鮮에在한救濟事業의嚆矢엿
0049_0014_b_25L다。其後三國의仁君賢主가 恩惠的으로 此를救恤
0049_0014_b_26L하얏스나 後에三國爭覇의世가 됨으로부터는 各
0049_0014_b_27L國이軍馬를練하야 兵糧을貯蓄하는一面에는百姓의
0049_0014_b_28L飢饉을救하야 流亡을豫防할必要를늣기고 國庫를
0049_0014_b_29L傾하야 此를賑恤하기로하얏스며 以來救濟事業은
0049_0014_b_30L專히國家事業으로서 行하게되엿다。

0049_0015_a_01L 新羅가三國을統一하고 次에高麗가此를代케됨으
0049_0015_a_02L로부터는 佛敎의影響을받고 慈悲로써 君德을삼
0049_0015_a_03L고 歷代가그善政을 自誇하는事蹟으로써 此를行
0049_0015_a_04L케되엿다。或은常平倉을設하야 備荒의策을講하고
0049_0015_a_05L或은義倉을設하야 施餓救貧을行하고 或은大悲院
0049_0015_a_06L을設하야 醫療를施하는等 各種救濟의制度는 만
0049_0015_a_07L히麗朝에잇서서發達하얏스며 當時救濟의政은 實
0049_0015_a_08L로經國濟民의全部엿든觀을 成한듯하다。一例를들
0049_0015_a_09L것가트면高麗의時에 毅宗二十二年三月(西紀一一
0049_0015_a_10L六八年)에 皇帝께서 百姓의窮乏을 불상히역이
0049_0015_a_11L사 詔書를 天下에下하야 課役을除하며 또는東
0049_0015_a_12L大悲院西大悲院及濟危寮等을設하야 鰥寡孤獨貧窮
0049_0015_a_13L老病한者를 救濟하는機關을삼앗다。이것이後世에
0049_0015_a_14L이르러서는 蠲免이라는制度가되야 或은租庸을減
0049_0015_a_15L하며 雜徭를免하며 或은逋負를免하게하엿다。

0049_0015_a_16L 忠惠王四年(西紀一三四三年)에는 國內가大荒하
0049_0015_a_17L야 飢饉이甚한지라 天下에詔를下하야 傍郡의米
0049_0015_a_18L穀을轉하야 救恤케하고 習射塲을廢하야 東西大
0049_0015_a_19L悲院에屬하고 天下의病人及窮民을集하야 醫藥을
0049_0015_a_20L施하며 又는衣食을施與케하얏다。이것이後世에賑
0049_0015_a_21L給이라하는制度로되야 或은內帑로써 或은正稅로
0049_0015_a_22L써 賑給의制가行케되얏다。此時에在하야 救濟事
0049_0015_a_23L業의中心人物이라고할만한者는 翯仙이라고하는高
0049_0015_a_24L僧이다。高麗時代의救濟事業은 만히此高僧의情願
0049_0015_a_25L에基하야 行케되얏다。

0049_0015_a_26L 李朝時代에이르러서는 麗朝의佛敎精神이 潜在
0049_0015_a_27L勢力이되야 新勢力을 伸長한儒敎의精神이 原動
0049_0015_a_28L力이된지라 斯業은더욱더욱盛行케되얏다。一民이
0049_0015_a_29L라도 飢寒溝壑에轉하는者가잇게됨은 王者의責任
0049_0015_a_30L이라하야 國家는救濟로써 重要한政務를삼고 羅
0049_0015_a_31L麗의遺制를擴張하야 太祖의時(西紀一三九二―一
0049_0015_a_32L三九八年)에는 京畿道廣州及水原地方에 救療院
0049_0015_a_33L施藥院이라는것이 建設되엿스며 世祖의時(西紀
0049_0015_a_34L一四一九―――一四五○)에는 漢陽(今京城)에 惠
0049_0015_a_35L民局 活人院 又는惠民署 活人署 療民院等을設
0049_0015_a_36L하야 窮民及疾病者를 救濟하얏다。그런데 此時
0049_0015_a_37L에잇서서는祖生 宗林 坦宣이라하는三人의高僧이
0049_0015_a_38L非常히救濟事業의活動을行하얏다。就中坦宣이라하
0049_0015_a_39L는高僧은 僧徒三百人과가치 從軍醫師가되야專혀
0049_0015_a_40L傷兵救療에努力하며 後에는貧民窮民及疾病患者를

0049_0015_b_01L爲하야 一生을盡力하얏다。

0049_0015_b_02L 以上을通貫하야 볼것가트면 朝鮮의古代及中世
0049_0015_b_03L近世의社會事業의精神은 王者의仁政과宗敎의慈悲
0049_0015_b_04L에 基本하야行해왓다。그러나羅麗時代及李朝初期
0049_0015_b_05L까지는 一般社會가 佛敎를歡迎한結果 政敎가一
0049_0015_b_06L致하야 官民一般이 社會的救濟事業에 心恤을傾
0049_0015_b_07L注하얏스나 李朝中期에至하야 儒敎가勢力을 엇
0049_0015_b_08L게됨으로부터는 國家는虛禮인形式만을 重히역이
0049_0015_b_09L고 皇室의繁榮만을努力하야 官僚는부즐업시 政
0049_0015_b_10L黨을結하야 階級을作하고 拜儒事大(支那崇拜)主
0049_0015_b_11L義에心醉되야 佛敎를 擯斥하고 市井村落의寺院及
0049_0015_b_12L佛塔을破壊하고 僧侶의入城을禁한結果 僧侶는山
0049_0015_b_13L中으로隱遁케되고 寺院은다못山中에잇는것만남게
0049_0015_b_14L되야 佛敎와社會와는 사이가머러지며 救濟事業
0049_0015_b_15L도次第로衰退하야지게되엿다。그러나僧侶는 社會
0049_0015_b_16L로부터擯斥을받고 山中에잇스면서도 社會事業을
0049_0015_b_17L爲하야 救濟事業에盡力하얏다。卽山門의밧게▣와
0049_0015_b_18L서는 村落의貧者를爲하야 排水를하고 水路를고
0049_0015_b_19L치며 橋梁及道路를지으며 또는耕作의道를가르치는
0049_0015_b_20L等種種한雜役으로서 民間의事業을도으며 寺內事
0049_0015_b_21L業으로는 客室 別舘(今日의無料宿泊所가튼것)等
0049_0015_b_22L을 設하야 行旅 賓客 即巡禮人 商人 詩人 僧侶
0049_0015_b_23L尼僧 托鉢僧 乞人等의게 無料宿泊을提供하며 又
0049_0015_b_24L는病室 延壽院 涅槃堂等을建設하야 疾病患者或은
0049_0015_b_25L貧窮老人 不具者에게 提供하야 極力看護하얏다。

0049_0015_b_26L 此僧侶의外에 民間에서行한 救濟事業으로서는
0049_0015_b_27L地方의縉紳富豪等의義擧에依하야 學堂 書堂 濟
0049_0015_b_28L民所等을修하야 一方에는兒童의敎育을奬勵하고一
0049_0015_b_29L方에는 老人의救護 嬰兒의保育 貞婦의賑恤 窮
0049_0015_b_30L民의救濟等이 行하얏다。그러나此等의事業은 地
0049_0015_b_31L方의村落 或은寺院의一部分이엿고 社會一般으로
0049_0015_b_32L서는 行치못하엿다。此社會事業이 一般으로 認
0049_0015_b_33L定케되기는 明治二十八年頃 佛國舊敎天主敎가輸
0049_0015_b_34L入되야 敎會及學校 病院等을建設하야 福音을宣
0049_0015_b_35L傳하는同時에 救濟事業에着手한것이最初엿다。其
0049_0015_b_36L後에 米國의新敎宣敎帥等이 入鮮하야 한가지學
0049_0015_b_37L校 病院 敎會堂等을建立하야 貧民의子女의게는
0049_0015_b_38L敎育을施하고 疾病患者의게는 醫藥을投하야 專
0049_0015_b_39L혀救濟事業에 努力하게되얏다。日本에在한社會事
0049_0015_b_40L業의沿革도述코저하나 紙面의關係로 略하고 後
0049_0015_b_41L日의機會가잇스면紹介코저하며 그리고宗敎와社會
0049_0015_b_42L事業發達硏究의 總論은此로써 一段을終了한다。
0049_0015_b_43L以下各論은略하고 亦是後日의機會를 待하노라

0049_0016_a_01L投稿歡迎 佛敎決疑

0049_0016_a_02L退耕 相老 解答

0049_0016_a_03L第三十三回問答 大經字數辨

0049_0016_a_04L問者 金剛山楡岾寺東國院經

0049_0016_a_05L 圓極한敎乘이廣多함으로써寶重한바아니오 略少함으로써孤輕한바가아닐뿐더러 讀誦書寫할때에만 隻字片解라도臆見으로敲推하
0049_0016_a_06L지못할뿐아니라 비록稱揚傳佈할때라도 編章字句의廣略多少를 어찌已見으로써延縮을妄加하야 一毫인들大法에毀謗이생기게하릿
0049_0016_a_07L가? 이제略本華嚴經의字數가 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라한것이 懸談八卷과 會玄記四十卷에서는 그出處를보지못하겟고 오즉默
0049_0016_a_08L庵古老의華嚴品目에서만 字數를定指하엿슨즉 此老의以前도 相傳해오든바인지알수업스나 浮虛誕妄하기가 極히滋甚함니다 如
0049_0016_a_09L此한誕妄이 疇昔우리半島의 一叢林一個人의舌端에서 做出되야 全邦에流播하야 雷同一律로習以成俗하얏스니 現今諸方에多數
0049_0016_a_10L有志의 經敎를尋繹하는者가적지아니할터이니 이러한虛僞之說에 어찌嗟歎치아니하릿가? 뿐만아니라 此를因하야 溯計한다하
0049_0016_a_11L면 上本 中本 下本에 모다疑心을 이르켜서 反脣腹非하기가 十分容易할ㅅ것이며 뿐만아니라 廣博한三藏十二部에 이를例하
0049_0016_a_12L야疑를起하면 또한無量한疑點이잇스리라생각함니다 每卷每葉에尋行數墨하지안트라도 假令한冊이百葉이오 每葉上下面에 各各
0049_0016_a_13L十行式이면 計二十行일ㅅ것이오 每行에二十字式이면 上下面을合計하야 四百字이니 十葉에四千字 百葉에四萬字라 一冊에字
0049_0016_a_14L數가四萬字인즉 十冊에四億字 二十冊에八億字 三十冊이라야一兆二億字이니 이것은三十冊即三千葉에 一字許라도 空隙업시計
0049_0016_a_15L算한것임니다 지금略本華嚴이自日至官八十卷中에 䟽鈔上正經이 果然이數가됨닛가? 만일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를가지고 이類
0049_0016_a_16L例로結冊한다면 二百五十二卷이되고 또半卷은되여야 넉넉할ㅅ것임니다 만일梵本의字數라하면 梵本中에잇는 佛名 經名 律
0049_0016_a_17L名 論名 諸法의名이 論이나䟽中에布載하엿스나 梵漢을對照하면 或은字數가相同하며 或梵文四五字가漢文二三字도되며 或梵文
0049_0016_a_18L六七字가漢文三四字로되엿슨즉 이러한類일뿐이오 數十倍의滋蔓되는類例는볼수업스니 梵本이라고도指目할수업는바이며 梵本도
0049_0016_a_19L亦是翻譯家들의 眞言梵字를剏翻한것이오 至今諸經들은 다시그것을重譯하야된것이니 梵字가오히려漢字보다적은것이만흔즉 梵
0049_0016_a_20L本으로 미룰수도업슴니다 品目에는分明히 今經을的指하야 十兆九萬云云하엿스나 數十倍滋蔓이千萬無據한誕妄浮虛가아님닛가

0049_0016_b_01L敝經院에서 此事를切疑하야 十數輩經生들이 幾卷식을分掌하야가지고 數▣數夜를消却하면서 至再至三精算하야본結果自日至官
0049_0016_b_02L八十卷에正經字數는五十四萬七千二百五十字요 經題七字와三十九品品名一百八十二字를幷하야 五十五萬二千九百十九字라 半兆에
0049_0016_b_03L繞過하고 一兆에도逈不及하오니 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云이 謗法님닛가? 護法님닛가? 適足히大法에興謗되야 苦果種于를招
0049_0016_b_04L得하게되엿슴니다 이것은不容不月報上에歸正하야 全邦叢林으로하야곰 承訛襲舊하는稱謂가止息케함이 吾輩의護法上可爲의事라
0049_0016_b_05L하오며

0049_0016_b_06L 且略本華嚴經四萬五千偈云云은 玄談荒字十八葉上面八行에 䟽主의論한現文이的有하나 四句가一偈인즉 經中에잇는七字偈 五
0049_0016_b_07L字偈 四字偈를 各平均으로할지라도 四萬五千偈가되면 經全部의字數보다 大過할ㅅ것이며 會玄記三十八卷十六張下靣九行에 記
0049_0016_b_08L主의所論으로는 經中四萬五千偈라는것이 長行、偈할ㅅ것업시 但三十二字式을一偈로하야 四萬五千偈가된다하엿스니 만일如此
0049_0016_b_09L히計算한다하면 全部字數보다倍多한지라 그亦無稽하지아니함닛가 人字卷行願品䟽第八葉에 䟽主의所引中에는 或五字爲偈七字
0049_0016_b_10L爲偈라하얏스니 斯言이始得이라 此亦月報上에揭載하야 一般으로하야곰正知見을得케함이可함니다。

0049_0016_b_11L 人字卷行願品經은 元來에三十九品八十卷中에入한것이아니나 經題、品題幷하야 總計五千四百八十字님니다

0049_0016_b_12L 自古로吾邦叢林中에 辦事作法이모다 麤而未精하야 經卷印刷結集校正等에 不無其人이엇지마는 冊葉의疊添闕漏가 其間에容
0049_0016_b_13L有한바이라 今般敝經院에서 字敗를計算할때에도 이런것의有無는詳審치못하얏슨즉 字數의的確은 斷言치못하겟사오나 設使增
0049_0016_b_14L損이잇다할지라도 曰兆曰億의大數에至하야는 大過大欠이될ㅅ것업스리라함니다。

0049_0016_b_15L 이것은從前으로도 만흔疑雲을싸아왓슴니다 或
0049_0016_b_16L은漢譯經의字數인가하야 貴下들과가치 글字를세
0049_0016_b_17L여본사람도한두사람이아니며 或은梵本의字數라고
0049_0016_b_18L推測하니도잇고 或은略本經字數가아니라下本經字
0049_0016_b_19L數라고하니도잇섯슴니다 그러나하낫도質定은하니
0049_0016_b_20L가업섯슴니다。

0049_0016_b_21L 이제다시 나의아는대로引證하야 胸中에잇든오
0049_0016_b_22L랜問題를 여러분과한가지發表하랴함니다。

0049_0016_b_23L 華嚴經은여러분이아르시는바와마찬가지로賢首淸
0049_0016_b_24L凉의判斷이 다가치十本으로 되지아니하얏슴닛가
0049_0016_b_25L그러나다른것은다고만두고 上、中、下、略의四本
0049_0016_b_26L經만말할지라도 上本華嚴經은十三千大千世界微塵
0049_0016_b_27L數偈一四天下微塵數品이오 中本華嚴經은四十九萬
0049_0016_b_28L八千八百偈一千二百品이오 下本華嚴經은十萬偈四
0049_0016_b_29L十八品(華嚴孔目章에三十六品이라함은誤謬인듯)이
0049_0016_b_30L오 略本華嚴經은四萬五千偈三十九品이라하는것이

0049_0017_a_01L至今우리들의普通말이아님닛가 그런데 난데업는字
0049_0017_a_02L數세는것이생겨서 華嚴經이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
0049_0017_a_03L라하지마는 從來로우리들의使用하든말을 다시評
0049_0017_a_04L考하야보면「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밋헤는 반듯
0049_0017_a_05L이「一乘圓敎大方廣佛華嚴經」이繼續되야잇고「四
0049_0017_a_06L萬五千偈三十九品」이라던지「十萬偈四十八品」이
0049_0017_a_07L라든지하는文句와는 언제든지接續이되지안는한가
0049_0017_a_08L지만으로도 그字數가단데업시別行하든것임을알수
0049_0017_a_09L가잇습니다。

0049_0017_a_10L 그러나 古人들의말슴을 우리가아니밋을수도업
0049_0017_a_11L는同時에낫나치盲從할수도업는구석이 如干이아님
0049_0017_a_12L니다 글字數를議論하는끗헤 附帶가되야나오는 疑
0049_0017_a_13L點一二를말하려함니다。

0049_0017_a_14L 品數로말하면앗가말과가치 下本華嚴經은「十萬
0049_0017_a_15L偈四十八品」이라는것이아님닛가? 그러기에淸凉
0049_0017_a_16L의華嚴䟽玄字卷「第七部類品會」文에는「二下本經、有
0049_0017_a_17L十萬偈四十八品、龍樹誦得流傳於世、故、智度論、
0049_0017_a_18L名此爲不思議經、有十萬偈、梁攝論中、名百千經、西
0049_0017_a_19L域紀說、拘遮槃國、有此具本」이라하고 淸凉의大華
0049_0017_a_20L嚴經略策「第七經之部類」文中에도 賢首의華嚴探玄
0049_0017_a_21L記第一卷「第一部類傳譯」中文에도 그말이同一하지
0049_0017_a_22L마는 法藏의華嚴內章門等雜孔目章卷第四「顯華嚴經
0049_0017_a_23L部品增减義」에는「下本有千萬偈三十六品、支法領、
0049_0017_a_24L從千奠國、得三萬六千偈三十四品來、現傳此土也」
0049_0017_a_25L라하고 淸凉의「新譯華嚴七處九會頌釋章」에는「五
0049_0017_a_26L下本者、有十萬偈三十八品、龍樹持此本出、現傳天
0049_0017_a_27L竺」이라하엿스니 이것은 四十八品과 三十八品
0049_0017_a_28L과 三十六品中에 어는것을適從해야겟슴닛가

0049_0017_a_29L 字數로말하면「法藏의華嚴內門章等雜孔目章卷第
0049_0017_a_30L四「梵本同異義」에「依大慈恩寺華嚴梵本、檢有五百四
0049_0017_a_31L十一紙葉(註云五十七字爲一行、二十行爲一紙葉)
0049_0017_a_32L一紙葉背面二千二百八十字、十紙計當二萬二千八百
0049_0017_a_33L字、三十二字爲一頌、一百紙當二十二萬八千字、三
0049_0017_a_34L十二萬字爲萬頌、五百四十一紙計當一百二十三萬四
0049_0017_a_35L百八十字、依三十二字爲頌、計當四萬一千九百八十
0049_0017_a_36L頌余十字」라하고 淸凉의「新譯華嚴七處九會頌釋
0049_0017_a_37L章」에「此經八十卷、四萬五千偈、七處九會說、三十
0049_0017_a_38L九品章」이라한頌을釋하는文中에「六略本者、即此
0049_0017_a_39L土所傳六十卷本、是彼十萬頌中、前分三萬六千頌、
0049_0017_a_40L要略所出也、今此四萬五千偈亦然、六本中略本攝也」

0049_0017_b_01L라하고그알에는問答을設하엿스니「問曰偈者長行頌
0049_0017_b_02L合、爲簡長行、答曰初從如是我聞、終至至此懷疑念、
0049_0017_b_03L數之爲偈、問曰數幾字以爲一偈耶、答三十二字爲一
0049_0017_b_04L偈、但梵本字其數減少、漢地譯字其數增多、是故梵
0049_0017_b_05L本四萬一千九百八十頌餘十字唐本四萬五千頌、問曰
0049_0017_b_06L何以知然耶、答曰案儼法師孔目云、依大慈恩寺華嚴
0049_0017_b_07L梵本………(乃至)………餘十字、案云由此明知、梵本文
0049_0017_b_08L字其數減少、唐翻譯時字數增多、是故依梵本經、計頌
0049_0017_b_09L數時四萬一千九百八十頌餘有十字、依唐譯經、計頌
0049_0017_b_10L數時合有四萬五千頌」이라하고 다시註明하되「今
0049_0017_b_11L云梵本經者、非支法領所得三萬六千偈本、依實叉難
0049_0017_b_12L陀所得四萬五千梵本經也」라하엿스나 이제一百二
0049_0017_b_13L十三萬三千四百八十字를 三十二字로除하면 所得
0049_0017_b_14L頌數가不過三萬八千五百四十六頌이오 餘有八字이
0049_0017_b_15L니「四萬一千九百八十頌餘十字」라는것은 어떠케
0049_0017_b_16L計算한것인가? 만일그대로되자면 이즉도十萬九
0049_0017_b_17L千九百九十字가더잇서야四萬一千九百八十頌餘十字
0049_0017_b_18L가되겟스니 古人들이丁寧又丁寧하게 紙葉、行數
0049_0017_b_19L字數를 相乘計算하엿지마는 그것을어데밋을수잇
0049_0017_b_20L슴닛가!

0049_0017_b_21L 그러면 漢字로는勿論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가되
0049_0017_b_22L지안치마는 梵字로도되지못하는것은 前引한文句中
0049_0017_b_23L에「梵本文字其數減少、唐翻譯時字數增多」云云이明
0049_0017_b_24L證이아니며 古人들은分明又分明하게「依梵本經計頌
0049_0017_b_25L數時、四萬一千九百八十頌餘十字、依唐譯經計頌數
0049_0017_b_26L時、合有四萬五千頌」이라고하얏지마는 事實에잇서
0049_0017_b_27L서四萬五千頌이되지못하는것을어찌하랴?漢字經이
0049_0017_b_28L꼭四萬五千頌이되자면 一百四十四萬字(一兆四億四
0049_0017_b_29L萬字)를가저야한다 그런데現存한華嚴經은浩澣汪
0049_0017_b_30L洋한淸凉의䟽鈔까지沒數한대도 十兆九萬五千四十
0049_0017_b_31L八字가되지못하는것은 自來로共認하야오든바이다

0049_0017_b_32L 이에따라 法華經、般若經들도字數의明記가잇스
0049_0017_b_33L니 그經들은檢算을아니하야보앗슨즉맛고아니맛는
0049_0017_b_34L것을알수업스나 古人들이典籍에明證하야노흔것도
0049_0017_b_35L前記와가치맛지안커던 하물며典籍에서볼수업고別
0049_0017_b_36L行하야도라다니는文句야 어찌밋을수가 잇기를바
0049_0017_b_37L라랴!

0049_0017_b_38L 그럼으로나는이러한懷疑를가지고잇슴니다 支那
0049_0017_b_39L宋代에잇서서內典中의阿含諸經에字 [1] 數計算한것이라
0049_0017_b_40L거나 또는前記한雜孔目章等에서華嚴字數計算한것

0049_0018_a_01L을보고 俗書中에大學、論語、孟子、中庸等을모조
0049_0018_a_02L리字數를세여서 몃字니몃字니하고 世上에頒布하
0049_0018_a_03L닛가 好事者이고無事者인 어떤老長님이아마華嚴
0049_0018_a_04L法華、般若等에까지字數를 計算發表하면서 字數
0049_0018_a_05L가만타면 그量과質이豐富하게보이리라하야 그저
0049_0018_a_06L덥허노코 헛푸석하게字數를만히잡은것이아닌가함
0049_0018_a_07L니다。

0049_0018_a_08L 如何間이와가치 한번말하야두는것도 조흐리라
0049_0018_a_09L는생각으로 이러케記錄하야둠니다。

0049_0018_a_10L片雲塔과後百濟의年號

0049_0018_a_11L金包光

0049_0018_a_12L
 全羅北道南原郡山內面立石里實相寺의南隅에在한
0049_0018_a_13L曹溪庵의遺址에片雲塔이라는一座石物이現存하얏다
0049_0018_a_14L이塔의軆裁는他處에서曾見치못하든 異常한石塔이
0049_0018_a_15L다。全軆가三段으로成하야最下에잇는坐板은燭臺形
0049_0018_a_16L으로되고 中間에잇는塔의正軆는上廣下狹의食器形
0049_0018_a_17L으로된데다가 食器盖形으로된相輪을最上에覆하얏
0049_0018_a_18L고 塔의正面에左와如한文字를銘하얏다。

0049_0018_a_19L「創祖洪陟弟子安峯創祖片雲和尙浮屠」

0049_0018_a_20L「正開十年庚午歲建」

0049_0018_a_21L 이銘은塔名과年號의二節에分하야 된것인데塔名
0049_0018_a_22L은實相寺의開創祖되는 南岳洪陟大師의弟子로서星
0049_0018_a_23L州安峰寺의開創祖인片雲和尙의浮屠라는意味로된것
0049_0018_a_24L이다。洪陟大師는謚號를證覺이라하고 塔號를凝寥
0049_0018_a_25L라고稱하야世上에서는南岳祖師라하는이다。新羅憲
0049_0018_a_26L德王時에入唐하야西堂智藏禪師의게就하야「不立文
0049_0018_a_27L字見性成佛」의禪法을傳受하고歸國하야 南岳實相寺
0049_0018_a_28L에休足하얏다時에興德大王과宣康太子가大師의道德
0049_0018_a_29L을銘仰하야 王宮에迎入하야大師의一言之下에王及
0049_0018_a_30L太子는朝凡夕聖의頓證을得하야實相寺를勅修하고大
0049_0018_a_31L師를請住하야西堂의宗旨를宣布케하얏다 이것이後

0049_0018_b_01L에曹溪宗九山의一數인實相山派의根本道塲이다 梵
0049_0018_b_02L音集禪門祖師禮中에左와如히洪陟大師를禮拜하는一
0049_0018_b_03L節의儀文이잇다。

0049_0018_b_04L「至心歸命禮九夏持身洪陟國師

0049_0018_b_05L西堂證覺覺心開 凝寥光中萬慮灰

0049_0018_b_06L最好轉身歸故國 頭流接得片雲來」

0049_0018_b_07L 此에記한一節의儀文과片雲塔에銘한塔名을서로對
0049_0018_b_08L照할時에는洪陟大師는片雲和尙의師傅요片雲和尙은
0049_0018_b_09L洪陟大師의弟子인것이分明한것이다。次에問題되는
0049_0018_b_10L것은正開十年庚午歲라는年號이다 正開라는年號는
0049_0018_b_11L新羅와支那에는勿論업는바이지마는 渤海國에도업
0049_0018_b_12L는것이다 新羅末에泰封弓裔가政開年號를立한것이
0049_0018_b_13L잇다하지마는 弓裔年號는新羅神德王四年甲戌에始
0049_0018_b_14L하야高麗太祖元年戊寅에終하얏스니 政開年號의壽
0049_0018_b_15L命은五年뿐이요 十年이라는것이無하며 甲戌과戊
0049_0018_b_16L寅의間에는 庚午라는것이無하다 그뿐아니라弓裔의
0049_0018_b_17L勢力範圍가此地에까지及한事實이업는바이다。그럼
0049_0018_b_18L으로元來어떠한記事에든지年號를附하는本意는 年
0049_0018_b_19L號에依하야 事實을證明하자는것이지마는 今에는
0049_0018_b_20L此와反하야事實로써서年號를考究하는外에 別道理
0049_0018_b_21L가업는것이다。임의片和尙이洪陟大師의弟子라하면
0049_0018_b_22L即片雲和尙은洪陟大師의弟子되는秀徹國師와法兄弟
0049_0018_b_23L일것이다 또한法兄弟의行列에在하다하면 뉘가兄되
0049_0018_b_24L고뉘가弟되는지는今日에坐하야判斷키不能하다할지
0049_0018_b_25L라도 彼此年齡이그러케過多한差는업슬것이다秀徹
0049_0018_b_26L國師는現今實相寺에在한楞伽寶月碑에依하야 新羅
0049_0018_b_27L眞聖女主七年癸丑에歸寂한것이明確하니 片雲和尙
0049_0018_b_28L도此에前後하야歸寂하얏슬것이다 然이나萬一秀徹
0049_0018_b_29L國師의前에歸寂하얏다하면 文聖王十二年에庚午에
0049_0018_b_30L相當할것이니 片雲和尙과秀徹國師의歸寂은반듯이
0049_0018_b_31L四十三年의過多한差를見케될뿐아니라 文聖王의時
0049_0018_b_32L에는唐의勢力이堂堂하든時代이라 唐의年號以外에
0049_0018_b_33L他年號를用할生意가無하얏섯다 文聖王의時는姑舍
0049_0018_b_34L하고 그後憲安、景文、憲康、定康、眞聖의五朝를經하
0049_0018_b_35L야 孝恭王八年에至하야秀徹國師의碑를立할時에도
0049_0018_b_36L오히려天祐二年이라는唐의年號를用하얏다 然함으
0049_0018_b_37L로今庚午라는것은반듯이秀徹國師의歸寂하든癸丑後
0049_0018_b_38L十七年을隔한孝恭王十四年에相當한것이다。孝恭王
0049_0018_b_39L十四年은即甄萱이가全州에都를定하고 後百濟王이
0049_0018_b_40L라稱하든孝恭五年으로부터十年되든庚午歲이다 此

0049_0019_a_01L와如함으로 今正開十年庚午歲라는것은分明히後百
0049_0019_a_02L濟王甄萱의年號이다 此時는支那亦是李唐은滅亡하
0049_0019_a_03L고五委의亂世를當하야各處에群雄이割據하야或은帝
0049_0019_a_04L라或은王이라稱하야正朔을朝鮮에까지頒布하게되지
0049_0019_a_05L못하얏섯다。弓裔도支那의年號를不用하고 武恭、
0049_0019_a_06L聖冊、水德、萬世、政開라는 年號를次第로稱하얏
0049_0019_a_07L다。임의弓裔가年號를稱하얏다하면 當時의實勢力이
0049_0019_a_08L오히려弓裔를凌駕하든後百濟王으로써 年號가업섯
0049_0019_a_09L슬理는萬無할것이다。그러치마는世上事라하는것은
0049_0019_a_10L事實과歷史가서로 背馳되야成功된便에잇서서는업
0049_0019_a_11L는事實도뀌며가면서誇張하지만失敗된便에잇서서는
0049_0019_a_12L千萬人의耳目을驚動케하든큰事業큰名譽라도그사람
0049_0019_a_13L의彫落과한가지泯滅되고마는것이다 後百濟王甄萱
0049_0019_a_14L이가孝恭王五年에立國하야當年에全羅道와忠淸道의
0049_0019_a_15L一部를平定하고桐華寺之戰에高麗太祖를困難케하야
0049_0019_a_16L慶尙道善山郡以南의地를取하야官制를定하고 年號
0049_0019_a_17L를稱하야 三十六年의英雄生活을변변히하얏지마는
0049_0019_a_18L今日에至하야는後百濟라는名義조차記憶하는사람이
0049_0019_a_19L幾人에不過하게되얏다 多幸히片雲和尙의塔으로因
0049_0019_a_20L하야後百濟의年號가施行되얏든것을知케되는것은歷
0049_0019_a_21L史硏究上에一種興味잇는것이기에今에이것을一言하
0049_0019_a_22L는바이다。

0049_0019_a_23L世界文字와佛敎의關係

0049_0019_a_24L雲陽沙門

0049_0019_a_25L文字의起源

0049_0019_a_26L
 鴻荒이버러지고 混沌이뚜러진지가 언제인지는
0049_0019_a_27L알수업지마는 땅이잇스면人生이잇고 人生잇스면
0049_0019_a_28L따라말이잇고 말이잇슴과함께일이잇고 일이잇는
0049_0019_a_29L同時에이저버리지안흐려하고 어쩨면아니이즐까하
0049_0019_a_30L는생각에서어떠케標識하기를硏究하야標識할方式을
0049_0019_a_31L定한것이이것이이른바文字라는것이되여난것이다。

0049_0019_a_32L 支那史를볼지라도 上古에는노(繩)를매저서일을
0049_0019_a_33L記憶하엿다하니 노를어떠한方式으로 매젓든지는至

0049_0019_b_01L今에알수업스나(큰일에는큰노를맷고 적은일에는
0049_0019_b_02L적은노를매젓다고하는말도잇지마는 가령그러타하
0049_0019_b_03L면 일의大小는 노의大小로標할수잇지마는 複雜
0049_0019_b_04L한事物에 일의그軆相이어찌되엿든것을 備忘하기
0049_0019_b_05L는 아마各各如何한方式이잇섯슬것이다)쉽게말을
0049_0019_b_06L하면 只今우리들의「옷고롬맷고내기」하는데서 지
0049_0019_b_07L낼것이업슬것이다 그것이一變하야 伏羲氏는비롯
0049_0019_b_08L오畫을그어서長短의斷續이不一하게하야 이것으
0049_0019_b_09L로天、地、水、火、風、雷、山、澤等의象을보혓스
0049_0019_b_10L니 이것이이른바八卦라는것이라 다시말하면이것
0049_0019_b_11L이文字의前提이엿섯다。그後에蒼頡이라하는 大硏
0049_0019_b_12L究家가出生하야 하늘에서는奎星의 圜曲을살피고땅
0049_0019_b_13L에서는鳥迹의錯雜을보와서 文字(象形한것이文이
0049_0019_b_14L오 諧聲한것이字요 竹帛에올린것이書라」하는것을
0049_0019_b_15L刱造하니 곳象形、諧聲、轉註、會意、指事、假借로
0049_0019_b_16L된우리들의이른바漢字라는것이다。그러나오즉字形
0049_0019_b_17L과音義만잇슬뿐이오 音의高低淸濁、平上去入、唇齒
0049_0019_b_18L牙喉舌의分揀은업시내려온지도적잔이오래되엿섯다

0049_0019_b_19L佛敎와關係

0049_0019_b_20L
 이르는곳마다 文化의使命을혼자차지하고 民人
0049_0019_b_21L의利益을己任으로역이는佛敎가 支那에輸入된지얼
0049_0019_b_22L마만에 北魏高僧了義가梵本悉曇章에依하야 漢字
0049_0019_b_23L에端溪郡疑等三十六字母와 唇、齒、牙、喉、舌의
0049_0019_b_24L韻母를製定하야 一切字의高低淸濁을分析한後에사
0049_0019_b_25L비로소漢土의音律이協和되엿고

0049_0019_b_26L 蒙古의文字로말을하면 元世祖年間에帝師發思八
0049_0019_b_27L이製作하얏는데 字數는겨우千餘字에不過하고 字
0049_0019_b_28L母는四十一이니 곳우리들의일은바畏吾兒字라는것
0049_0019_b_29L이그것이라 趙崡石墨鐫本에는 蒙古字法도모다梵
0049_0019_b_30L天伽盧書의變軆라하엿고

0049_0019_b_31L 日本의假名도 奈良朝에某聖僧 或云印度梵僧)의
0049_0019_b_32L손으로造出한者니 그最初에는漢字를그대로써서音
0049_0019_b_33L만을假借하고 뜻은取하지아니하여서 眞假名又는
0049_0019_b_34L萬葉假名이라고하엿스니 比컨대新羅때에쓰든吏讀
0049_0019_b_35L에 臥(와)隱(은)伊(이)那(나)厓(애)들이나 支那
0049_0019_b_36L梵譯에 唵(옴)吽(훔)喃(남)啊(아)等字와가탓섯다
0049_0019_b_37L그러든것이 次次로簡便하게쓰기始作하야 只今에
0049_0019_b_38L流行하는五十音片假名으로된것이오。

0049_0020_a_01L한글의製作

0049_0020_a_02L
 朝鮮의할글(舊稱諺文)은 歷史로나口碑로나 傳
0049_0020_a_03L해오기를 朝鮮世宗大王의聖智로 蒙古字典에依하
0049_0020_a_04L야剏造한것이라하고 大王도「訓民正音」이라는것을
0049_0020_a_05L親製하야中外에頒布한序文에

0049_0020_a_06L「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0049_0020_a_07L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爲此憫然
0049_0020_a_08L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0049_0020_a_09L 라고도하얏지마는 나는여러곳에서 疑論을드른
0049_0020_a_10L적이잇다 一二를紹介하건대 諺文은决코世宗大王
0049_0020_a_11L의創作이아니요 佛敎가全盛하든 新羅或高麗時代
0049_0020_a_12L에高僧의손에서 製出된것이라고 推想的으로立論
0049_0020_a_13L하는者도적지안치마는 나는正確한異議를 두곳에
0049_0020_a_14L서드럿다

0049_0020_a_15L 첫재 智異山華嚴寺에잇는 湖南八才子의一數인
0049_0020_a_16L玄广大師의말은 新羅高僧(名은忘함)이剏造하얏스
0049_0020_a_17L나 綴字의法과活用의力이 完全치못함을말미함으
0049_0020_a_18L로世人들은 이것을重視치안헛다가 世宗大王은終
0049_0020_a_19L聲(卽所謂밧침)을案出하야 綴字法을便利케하고音
0049_0020_a_20L調의淸濁이昭明케하엿슬뿐이라고하며

0049_0020_a_21L 둘째 金剛山에잇든金滄江先生의말에는 일즉이新
0049_0020_a_22L羅時代에著述된元曉行蹟一冊을가젓섯는데 그傳中
0049_0020_a_23L에朝鮮諺文을元曉의指導에依하야 薛聦이創製하얏
0049_0020_a_24L다는것을 昭昭히記載하엿던것인데 그傳을偶然히見
0049_0020_a_25L失하고現今에는 가지지못하엿슴으로 明證이업는
0049_0020_a_26L말뿐만을남들은곳듯지안는同時에 나亦世人들이諺
0049_0020_a_27L文에對하야 囂囂함을귀담아듯지안는다고한다。

0049_0020_a_28L 이제 前引한二說을꼭遵信하는것은아니지마는二
0049_0020_a_29L說의外에도可疑處가업지는아니하니

0049_0020_a_30L 一、世宗二十六年甲子(諺文을製作하든癸亥의翌
0049_0020_a_31L年이오訓民正音을頒布하든丙寅의二年前)二月辛巳
0049_0020_a_32L朔庚子에集賢殿副提學崔萬理等의諺文反對上䟽中에

0049_0020_a_33L「儻曰諺文 皆本古字 非新字也」

0049_0020_a_34L라하얏스니「古字」는古篆字를指함인지? 又는그
0049_0020_a_35L前에使用하든 諺文을指함인지未詳하나
0049_0020_a_36L 二、淸州申景濬舜民이撰한訓民正音圖解叙에

0049_0020_a_37L「東方舊有 俗用文字 而其數不備 其形無法 不
0049_0020_a_38L足以形一方之言 而備一方之用也」

0049_0020_a_39L 라함을觀할진대 한글以前에도 特別히俗用하든

0049_0020_b_01L文字가잇섯슨즉 前引한「古字」라는것이 决크古篆
0049_0020_b_02L字가튼것을指한것이아니며「舊有俗用文字」라는것
0049_0020_b_03L은 或者는薛聰의吏讀라고하지마는 만일吏讀라하
0049_0020_b_04L면「其數不備」라고는할는지알수업스나「其形無法」
0049_0020_b_05L이라고는할수업슬것이며

0049_0020_b_06L 三、方便子柳僖의諺文志에

0049_0020_b_07L「諺文、雖剏於蒙古、而成於我東」

0049_0020_b_08L이라함도 世宗以前에는 蒙古字비젓한것이잇든것
0049_0020_b_09L을世宗이改良大成시킨것이아닌가하는 疑心을惹起
0049_0020_b_10L케하고

0049_0020_b_11L 四、高麗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第八譯歌
0049_0020_b_12L現德分에

0049_0020_b_13L「而所恨者 我邦之才子名公 解吟唐什 彼土之鴻
0049_0020_b_14L儒碩德 莫解鄕謠」

0049_0020_b_15L라하엿스니 鄕謠는吏讀文字와 同一한書法인즉中
0049_0020_b_16L土의鴻儒碩德이라도 이것을알수업는것은事實이지
0049_0020_b_17L마는 그다홈에

0049_0020_b_18L「矧復唐文如帝網交羅 我邦易讀 鄕札似梵書連布
0049_0020_b_19L彼土難諳」

0049_0020_b_20L이라하얏스니 梵書가連布한듯한「鄕札」이라는것은
0049_0020_b_21L果然무엇을가르친것인가 그것이或是한글의前身인
0049_0020_b_22L무엇이아닌가

0049_0020_b_23L 五、高麗時代에模鑄한 元祐通寶의 背文에잇는
0049_0020_b_24L」字와가튼것은 十分의七八이나「한글」의前身
0049_0020_b_25L인것을表示하는것이며

0049_0020_b_26L 六、日本人行智의訓釋諺文解에

0049_0020_b_27L「此文有古今二軆 古軆則自三韓國初製傳 今軆則
0049_0020_b_28L李朝世宗時改削古文 卽今其國 古文失其傳 但
0049_0020_b_29L行今文 古文即今所傳肥人書是也 古文亦有二軆
0049_0020_b_30L一則等 一則
0049_0020_b_31L高麗模鑄元祐通寶背文字 如今文오字 前代遺
0049_0020_b_32L文 可以實見」

0049_0020_b_33L 이라하얏스니 等字는영낙업시 近日우리들
0049_0020_b_34L이한글의子母音을뜯어서 橫書해노흔것인즉 於
0049_0020_b_35L是乎에 한글의古文을過半이나 思할수잇스며

0049_0020_b_36L 七、推測上으로도 女眞、渤海、契丹、日本이모
0049_0020_b_37L다 各各國字가잇섯는데 오즉堂堂한新羅나高麗에
0049_0020_b_38L서 호을로 國字를製定치아니하엿슬理가萬無한까
0049_0020_b_39L닭이며

0049_0020_b_40L 八、正音이라는일홈부터가創作이아닌氣分이잇다

0049_0021_a_01L다시말하면從來로流行하든 正답지못한것이잇섯지
0049_0021_a_02L마는 이것은다시校正한것인즉 差錯업시똑바로되
0049_0021_a_03L엿다는意味인듯하다。

0049_0021_a_04L 已上의여러가지理由로써 한글이世宗의創作이아
0049_0021_a_05L니요 改良한것임이十分明白한터인즉 이제다시玄
0049_0021_a_06L广大師의하든말을 詳細히紹介하면 이러하다。

0049_0021_a_07L 甲、世宗以前의國字가普及되지못한理由

0049_0021_a_08L 一은綴字와讀法의不便이니 例하면「가」字의밋헤
0049_0021_a_09L「가」字가接續되면 이것을「각」으로發音하고「가」字
0049_0021_a_10L의밋헤「나」字가接續되면 그것은「간」으로發音하며
0049_0021_a_11L만일「가가가」三字가連書되면 그것은「깍」으로「사사
0049_0021_a_12L사」三字가連書되면 그것을「쌋」으로읽기때문에만
0049_0021_a_13L일「사나」라고쓴境遇에는 이것은「산」(山)으로볼
0049_0021_a_14L지「사나」(男)로볼지알수업서서 困難이如干이아
0049_0021_a_15L닌것이 마치假名에「カク」를「각」으로도「가구」로도
0049_0021_a_16L發音되는것이나 마찬가지이며

0049_0021_a_17L 二는著作者의權力微弱이니 그것을考案創作한者
0049_0021_a_18L가아모리高僧일지라도終是君師의位에잇지못하야群
0049_0021_a_19L下의게指揮할權能이업섯스니 古人의이른바「無其
0049_0021_a_20L位無其權」인까닭이며

0049_0021_a_21L 三은活用의範圍不廣이니 換言하면即一個人의文
0049_0021_a_22L學家가自己의私著나 그러치아니하면 自己의暗表
0049_0021_a_23L로쓰는符號에지나지못하엿고 그것으로써書籍을解
0049_0021_a_24L釋한다던지 文字를著作한일은업섯든까닭이다。

0049_0021_a_25L 乙、世宗以後의한글이普及된理由

0049_0021_a_26L 一은綴字와讀法의便利니 世宗은天縱의▣聖智로
0049_0021_a_27L써前記의不完全不便利한國字에對하야 어찌하면그
0049_0021_a_28L綴字와讀法을 完全且便利케할가하야 硏究하고考
0049_0021_a_29L案한結果에 드듸여「ㄱㄴㄷㄹㅁㅂㅅㅇㅣ」의九個字
0049_0021_a_30L의終聲(即俗所謂바침)을案出하야「가가」를「각」으
0049_0021_a_31L로「가나」를「간」으로 이러케綴字의便法을成功하
0049_0021_a_32L엿스며

0049_0021_a_33L 二는著作者의權利偉大니 正宗은王位에居하야天
0049_0021_a_34L縱의聖聦으로 萬機의暇에謨劃을세워 國字를改定
0049_0021_a_35L頒布함으로 그流布가可謂「風行草偃」으로되엿스며

0049_0021_a_36L 三은活用의模範完全이니 正宗大王은此를政令으
0049_0021_a_37L로써頒布할뿐만아니라 一邊으로는諺文廳을設하고
0049_0021_a_38L經典을翻譯하며 一邊으로는成三問等文官을命하야
0049_0021_a_39L玉篇▣韻攷等字書에音을부치며 黃纉의게보내서音
0049_0021_a_40L韻을質正하기 數三次에이르럿섯든까닭이라고한다

0049_0021_b_01L한글과梵文

0049_0021_b_02L
 그러나 한글을旣是蒙古字典에依하얏다하나 字
0049_0021_b_03L는梵字古篆에依하엿다함으로 나는이제蒙古字와한
0049_0021_b_04L글의關係는略해버리고 梵字와한글의關係를 말하
0049_0021_b_05L려한다。

0049_0021_b_06L 그理由는 蒙古字典을가지고 한글에對하야對照
0049_0021_b_07L헤볼때에는 그字樣과構造가 마치아모聯絡이잇는
0049_0021_b_08L듯하지아니하나 梵字即悉曇章을가지고 한글과對
0049_0021_b_09L照할때에는宛然히 相似한感을늣기게되는까닭이다

0049_0021_b_10L 그럼으로 한글母音十七字中에 오즉「ㄱㄴㅁㅅ
0049_0021_b_11Lㅇ」의五個字만을 梵字에依하야土臺를삼아가지고
0049_0021_b_12L그남어지는 이土臺에加工하야 成就한것이라고立
0049_0021_b_13L論한者도잇스니

0049_0021_b_14L한글
ㄱ ㄴ ㅁ ㅅ ㅇ

0049_0021_b_15L
ka na ma sa ya

0049_0021_b_16L梵字
    

0049_0021_b_17L 五個의梵字中에서 均一하게「ㅜ」을除去하고 오
0049_0021_b_18L즉「」만을取하야 한글의「ㄱㄴㅁㅅㅇ」로
0049_0021_b_19L姿勢를變하고 字音은梵字音을因襲한後에 다시이
0049_0021_b_20L것을敷衍하야

0049_0021_b_21Lㄱㄴㅁㅅㅇ
土臺의五個字

0049_0021_b_22Lㅋㄷㅂ△
土臺字우에技

0049_0021_b_23L ㅌㅍㅈ
巧를施하야敷

0049_0021_b_24L ㄹ ㅊㅎ
衍製出한者

0049_0021_b_25L 그러나 나의생각으로는 旣是梵字에模型을떳다
0049_0021_b_26L할진대 반듯이個個字가모다 梵字로부터變幻流出
0049_0021_b_27L하엿슬터이지 어찌五個字만에限하엿스랴한다 그
0049_0021_b_28L럼으로 나는이러케한번說明을하는터이니 이것은
0049_0021_b_29L臆測이며 傅會며 穿鑿이라고할사람도 잇슬줄은
0049_0021_b_30L미리自信하는바이다。

0049_0021_b_31L한글
梵字

0049_0021_b_32L「ㄱ」
」에서「」를取한것

0049_0021_b_33L「ㄴ」
」에서「」를取한것

0049_0021_b_34L「ㄷ」
」에서「」를取한것

0049_0021_b_35L「ㄹ」
」의小梵「」를取한것

0049_0021_b_36L「ㅁ」
」에서「」을取한것

0049_0021_b_37L「ㅂ」
」에서「」를取한것

0049_0021_b_38L「ㅅ」
」의小梵「」에서「」를取한것

0049_0022_a_01L「ㅇ」
」에서「○」를取한것

0049_0022_a_02L「ㅈ」
」에서「」를取한것

0049_0022_a_03L「ㅊ」
」에서「」를取한것

0049_0022_a_04L「ㅋ」
」의小梵「」에서「」를取한것

0049_0022_a_05L「ㅌ」
」의小梵「」를取한것

0049_0022_a_06L「ㅍ」
」의小梵「」를取한것

0049_0022_a_07L「ㅎ」
」의小梵「」를取한것

0049_0022_a_08L「ㅏㅓ」
」의小梵「」를取하야「ㅣ」에合한것

0049_0022_a_09L「ㅑㅕ」
」字小梵「」를取하야「ㅣ」에合한것

0049_0022_a_10L「ㅗㅜ」
」의「ㅜ」를取한것

0049_0022_a_11L「ㅛㅠ」
」의「」를取하야「」의小梵「ㅡ」에合한것

0049_0022_a_12L「ㅡ」
」의小梵「ㅡ」를取한것

0049_0022_a_13L「ㅣ」
」의小梵「」를取한것

0049_0022_a_14L
」의小梵「」를取한것

0049_0022_a_15L 决定코이러케된것이오 조곰도異議할것이업는바
0049_0022_a_16L이다마는 그래도 앙탈할어떤분이 잇슬는지도알
0049_0022_a_17L수업슨즉 나는이에서 한가지傍證을引出하려한다
0049_0022_a_18L무엇即現今우리들의通用하는 亞拉比亞數字도 梵
0049_0022_a_19L文數字에模倣한것임을引用하겟다。

0049_0022_a_20L梵文數字
         

0049_0022_a_21L亞拉比亞數字
1 2 3 4 5 6 7 8 9 0

0049_0022_a_22L 이數字中에1、4、5、8가튼것은 梵文字와훨
0049_0022_a_23L신差違가잇지마는 그러타고 이것이저것의後身이
0049_0022_a_24L아니라고할수는업다 그런즉 한글의初中聲에 梵
0049_0022_a_25L字와조곰다른듯한것도잇지마는 그것을變幻한것이
0049_0022_a_26L아니랄수가 亦是업슬만치되엿다。

0049_0022_a_27L 그러케區區히 個個字를모다梵字에서라지말고 또
0049_0022_a_28L는單五個字만을取하야 土臺를삼앗다고도하지말고
0049_0022_a_29L나는이러한別論을한번말하고십다。即「ㄱ」字하나만
0049_0022_a_30L을梵字「」字에서取하야가지고 그남여지는 죄다
0049_0022_a_31L「ㄱ」字로부터 或正或倒或斜或裂或减하야된것이라
0049_0022_a_32L하노니

0049_0022_a_33L 「ㄱ」는前說과가치「」에서「」를取하고

0049_0022_a_34L 「ㄴ」「ㄱ」를倒置한것

0049_0022_a_35L 「□」ㄱ와ㄴ를合한것

0049_0022_a_36L 「∧」ㄱ를斜置한것

0049_0022_a_37L 「○」已上의正、倒、斜等의規則外의것「即空○」

0049_0022_b_01L 「一ㅣ」ㄱ를破裂한것

0049_0022_b_02L 「ㄱ」의一畫으로써 已上의六個字를先製하고 다
0049_0022_b_03L시此에轉輾增衍하엿스니

0049_0022_b_04L

0049_0022_b_05L
ㄷㅌㄹ

0049_0022_b_06L
ㅂㅍ

0049_0022_b_07L
△ㅈㅊ

0049_0022_b_08L

0049_0022_b_09L
ㅗㅜㅛㅠ

0049_0022_b_10L
ㅏㅓㅑㅕ

0049_0022_b_11L

0049_0022_b_12L各國文字와梵文

0049_0022_b_13L
 그러나 나의呶呶하기를사양치안코 支離한說話
0049_0022_b_14L를한것은 그要點이어데잇느냐하면 한글그것이梵
0049_0022_b_15L字에서幻化된것이냐아니냐하는데는잇지안는것이니
0049_0022_b_16L訓民正音에도「字倣梵字古篆」이라하엿슴일세다 그
0049_0022_b_17L럼으로이제말하는主旨는 한글의創作家가正宗大王
0049_0022_b_18L이아니오 新羅그러치아니하면 적어도高麗時代의
0049_0022_b_19L高僧일것이라는것이다

0049_0022_b_20L 이한글이만일高僧의手中에서 創作되엿다하면於
0049_0022_b_21L是乎에世界文字가 幾乎全部나 佛敎와의關係가깁
0049_0022_b_22L허젓노니 漢字의字母、韻母가그러하고 蒙古字가
0049_0022_b_23L그러하고 假名이그러하고 한글이그러하고 亞拉
0049_0022_b_24L比亞數字가그리하며

0049_0022_b_25L 世界文字作者中에最古한者가三人인데 曰蒼頡、
0049_0022_b_26L曰梵、曰伽盧니 梵은梵字를作하야印度에서行하는
0049_0022_b_27L데 그書法이右行하고 伽盧는伽盧書를作하야 西域
0049_0022_b_28L에서行하는데 그書法은左行하고 蒼頡은漢字를作
0049_0022_b_29L하야中夏에서行하는데 그書法은下行한다는古記錄
0049_0022_b_30L도잇거니와 梵과蒼頡과伽盧가三兄弟라는說도잇슨
0049_0022_b_31L즉 만일三兄弟라하면 梵書、漢書、伽盧書(即蒙古
0049_0022_b_32L字의前身)의三種이 根本的으로깁흔脉絡이相連하
0049_0022_b_33L지아니하엿슬는지도알수업는터이다。

0049_0022_b_34L 然하면 漢字가그러하고 蒙古字가그러하고 한
0049_0022_b_35L글이그러하고 假名(カナ)이그러한즉 이로미루에
0049_0022_b_36L서 女眞字가그러할것이오 渤海字가그러할터이오
0049_0022_b_37L巴利文이그러할터이오 緬甸字、暹羅字、錫蘭字、
0049_0022_b_38L羅馬字가모다그럴것이니 於是乎에世界의文字가或
0049_0022_b_39L은直接으로或은間接으로佛敎의힘을비러創作도되고
0049_0022_b_40L改良도發達도되여서 드듸어끗업는文明과 갓업는敎
0049_0022_b_41L化를產出하야宇宙에벗을내인것이다라고斷言한다。

0049_0023_a_01L楊州各寺巡禮記(續)

0049_0023_a_02L晩悟生

0049_0023_a_03L
 東豆川으로부터議政府驛에내리니때는上午十時頃
0049_0023_a_04L이다 即時雙岩寺를무러南으로約一里되는柴芚面長
0049_0023_a_05L巖里에到着하니該寺는그洞里뒤로限三四町距離가되
0049_0023_a_06L는山골작이에잇는모양이다 不慌不忙으로洞口에드
0049_0023_a_07L러서니크다른바우가서로뛰여건네리만콤溪流를隔하
0049_0023_a_08L야서잇는데巖上에는層臺가잇서此를七星臺라일홈한
0049_0023_a_09L다하며數百丈으로나려다보는巖下에는淸泉이湧出하
0049_0023_a_10L야飮者는百病을除祛云이다 압흐로는京咸線鐵道를
0049_0023_a_11L건너道峰山을對하엿고뒤로는海㧞數千尺인水落山이
0049_0023_a_12L巍峩이다 該寺全景을大槪觀覽하고寺門에直入하니
0049_0023_a_13L住持趙善明氏가欣然히迎接한다 四五間되는法堂에
0049_0023_a_14L드러가서叅拜를마치고따라記文等을살펴본後沿革이
0049_0023_a_15L라고記抄하니

0049_0023_a_16L雙巖寺 (本山奉先寺方等地)

0049_0023_a_17L
 當寺는距今四十七年前

0049_0023_a_18L李太王十七年庚辰春에佛雲化主가有願比丘尼와引勸
0049_0023_a_19L信女孔氏普月華로더부러倂力重建하엿다

0049_0023_a_20L 俗離山月波和尙의著述인記文을叅考하여보왓스나
0049_0023_a_21L創建年代는無憑可考이기但重修한것만右와如히記入
0049_0023_a_22L하고其他寮舍도三四間되는것이잇스나沿革叅考의價
0049_0023_a_23L値는업는듯하다 다시躊躇할必要가업기에그만告別
0049_0023_a_24L하고石林寺를찻게되엿다 該寺는雙巖寺左便山麓으
0049_0023_a_25L로한등성이를넘어서니조그마한골작우니가잇고草家
0049_0023_a_26L十餘戶가左右로羅列하엿다 그洞里中央으로數武地
0049_0023_a_27L를올라가니왼켠山지실그로盖瓦집한채가보히는대그
0049_0023_a_28L것이即石林寺라한다 큰房前面에到着하야現住持和
0049_0023_a_29L尙을차즈니御間門압헤서藁鞋를삼고잇든동무한분이
0049_0023_a_30L이러서며住持和尙은數日前出他하엿고自己혼자집을
0049_0023_a_31L보고잇는中이라한다 頹窓破壁이되야完全한것은볼
0049_0023_a_32L수업고後院으로도라간즉山祭閣이라고一所가잇는모

0049_0023_b_01L양인데그역시頹落한光景이다 當寺는不動產이라고
0049_0023_b_02L盖瓦집두어채잇슬뿐인데沿革이라고는調査할可望이
0049_0023_b_03L업다 오직前面쪽으로다-날근懸板한조각이부터잇
0049_0023_b_04L는대仔細히살펴보니潘南朴南源의著述인三笑閣重修
0049_0023_b_05L記라한것이熹微하게도나타난다 이三笑閣은法堂도
0049_0023_b_06L아니고무슨집을어느곳에세워잇섯든가생각도渺然이
0049_0023_b_07L다 또어찌해서三笑閣이라하엿는가「石林精舍虎溪
0049_0023_b_08L東、夜扣禪扉謁遠公」이라는古詩가잇섯슨즉此는必
0049_0023_b_09L然코石林寺를相對로하야虎溪三笑를意味하엿거니하
0049_0023_b_10L엿다及其也記文을一讀한즉생각든바와는딴판이다該
0049_0023_b_11L記文을節錄하건대

0049_0023_b_12L是歲之春余負笈來遊居一月僧裕淡向余而言曰甍墮
0049_0023_b_13L則柱圮必至之勢今甍已墮其何能樓哉且有樓而無閣
0049_0023_b_14L窃甞病之力雖寡約敢辭其責將以鳩財有所爲也我聽
0049_0023_b_15L而笑其言之迂(中略)其後數旬試徃觀之伐木於南山
0049_0023_b_16L蓄土於前庭其聲呼耶而出余又笑之曰不量乎力其亦
0049_0023_b_17L愚矣居未幾來告厥成遂與之徃其犂然若魚鱗者前之
0049_0023_b_18L所墮也其翼然而翬飛者前之所無也於是哄然捧腹而
0049_0023_b_19L前曰夫子之於我甞有微笑㡳意今觀某之成就果何如
0049_0023_b_20L也曰坐吾語汝夫物不激鮮能化故石之所激流者呈態
0049_0023_b_21L風之所▣植者動韻矢激則遠絲激則淸今汝之僝功▣
0049_0023_b_22L知非余之所有以激之也仍請閣名以題其額强名曰三
0049_0023_b_23L笑盖取前後相笑之意也我以歌曰前可笑笑其迂後可
0049_0023_b_24L笑笑其愚笑迂者迂笑愚者愚却敎見笑者笑其笑吾未
0049_0023_b_25L知孰迂而孰愚

0049_0023_b_26L嘉慶二年七月 日化主釋裕淡 木手釋法靈

0049_0023_b_27L三綱比丘守靜外三人

0049_0023_b_28L上來記文을根據로하야沿革이라고記入하니如左

0049_0023_b_29L石林寺 (本山奉先寺方等地)

0049_0023_b_30L
 當寺는距今一百三十年前

0049_0023_b_31L李朝正宗二十年日本光格天皇寬政八
年淸仁宗嘉慶二年
丙辰에裕淡化主가三
0049_0023_b_32L笑閣을重修하엿다

0049_0023_b_33L 當寺創修는何代를未詳이나附近에서는朴절이라稱
0049_0023_b_34L謂하는것을보면山下洞潘南朴氏의齋寺가的確인듯하
0049_0023_b_35L다 本山에서望月、水鐘、龍門、神勒等相當한有名
0049_0023_b_36L寺刹이末寺가될까㥘이나서專力으로拒絶하고이러한
0049_0023_b_37L有耶無耶의名字寺庵은무슨趣味로末寺에編入하엿는
0049_0023_b_38L지? 一▣分排라야最高額이一圓五十錢인데그나마文
0049_0023_b_39L字上記▣뿐이고받아볼수는非可望이며本末關係라는
0049_0023_b_40L것은官廳으로서住持選報하라는督促을頻頻히當할뿐

0049_0024_a_01L이다열네번죽어도노치못할住持印章이것마는當寺는
0049_0024_a_02L希望하는사람이잇서야擧論이나하여보지 기리한숨
0049_0024_a_03L짓고도라서서드러오든길로나려오는데洞里를다지내
0049_0024_a_04L고서幽僻處를當到하니一曲溪流에盤石이깔려잇고有
0049_0024_a_05L亭翼然한데詩句가半間이다 觀光兼歇脚하기爲하야
0049_0024_a_06L飄然히올라가서左顧右眄타가그原韻이라는것을記抄
0049_0024_a_07L하엿다

0049_0024_a_08L「問君結屋竟奚爲 勞苦辛勤意可知 聊且徃來西澗
0049_0024_a_09L上 十年同賞此中奇」

0049_0024_a_10L 筆者가調査에着手한以來로汨沒無暇되야溲渤의字
0049_0024_a_11L모듬이라도해본적이업섯지마는今日은하도無聊하니
0049_0024_a_12L前記原韻이나다라볼까하고되고말고적어노왓다

0049_0024_a_13L「處世無爲即有爲 昔人趣味箇中知 半千里外嶠南
0049_0024_a_14L釋 此日登臨更覺奇」

0049_0024_a_15L 萬年筆을다시꼿고 緩步로도라오니議政府塲市에
0049_0024_a_16L는交易而退한者가折半이다 今日은當地에宿泊을하
0049_0024_a_17L기로豫料하엿스나한곳나문절을얼는調査해마칠양으
0049_0024_a_18L로日力에依하야今番에는塲軍을따라石窟庵을차자가
0049_0024_a_19L게되엿다 西山方面으로限二里를進行하고는그만大
0049_0024_a_20L路를바른편으로비켜두고山谷小路로드러서게되엿다
0049_0024_a_21L山嶝성이를넘어서니櫛比한村落이左右로갈라잇는데
0049_0024_a_22L이곳은知事大監들이居住하는洞里라한다 키로는記
0049_0024_a_23L者보다倍나되여보이는無髯男子에게길을무러五峯山
0049_0024_a_24L을차자가는데 夕陽山路에尋寺歸僧이라어떠케밧벗
0049_0024_a_25L든지엽도도라볼수업시되엿다 山을넘어골작운이로
0049_0024_a_26L드러서니해는발서떠러젓고어데가어데인지重重山谷
0049_0024_a_27L에물소래만요란할다름이다 無人空山에信地를못찻
0049_0024_a_28L고보면初冬日氣에어떠한厄會가잇슬는지알수업서차
0049_0024_a_29L라리山寺는明日로미루워두고村落을차저一夜를安息
0049_0024_a_30L할수밧게업다하고有形無形한山路를緣하야平地로나
0049_0024_a_31L려오는대어떠한樵夫一名이나무짐을나려노코개울가
0049_0024_a_32L에서담배를피우고잇다 여보시요이사람은石窟庵절
0049_0024_a_33L을차자가다가길을일헛습니다 담배갑시나限三十錢
0049_0024_a_34L보태드릴터이니 그절까지案內하여줄수가잇슴잇가
0049_0024_a_35L예-나도집에가기느젓지요마는길을일코고생하심을
0049_0024_a_36L본이상에어찌拒絶할수잇습잇가하며欣然히이러선다
0049_0024_a_37L내얼골이一色이아니라돈이입부다하는말과가치記者
0049_0024_a_38L의活人之佛도오늘날은金錢이로다하면서暗暗裡에뒤
0049_0024_a_39L를따라信地附近에이르러서는樵夫에게돈을주어돌려
0049_0024_a_40L보내고컴컴한길을차저寺門에到着하니방안으로서는

0049_0024_b_01L전역禮敬을마치고念佛하는북소래가야단이다 前面
0049_0024_b_02L에다行具를나려노코動靜을살피랴니年晩한一婦女가
0049_0024_b_03L검정장삼을둘러닙고誦呪를하는판인데언제다-工夫
0049_0024_b_04L하엿든지前後誦에한句段이라도別로差錯이업는모양
0049_0024_b_05L이다 그러나무신試驗이나보는듯이門밧게서竊聽하
0049_0024_b_06L노라니언제치여다보왓든지깜작놀라며일어나서왼사
0049_0024_b_07L람이냐하고뭇는모양이다 예-나는本山職員으로서
0049_0024_b_08L末寺調査다니는사람이라하엿다 그제는마음이노히
0049_0024_b_09L든지誦呪하든것을從容히거더치우고새로나와서人事
0049_0024_b_10L를한다 日前에납분사람이드러와서道具를죄-훔처
0049_0024_b_11L간일이잇슴니다 놀랜가슴이라도적놈도사람가트니
0049_0024_b_12L까어데分揀할수가잇서야지요 자-뒷방으로드러갑
0049_0024_b_13L시다나는夕飯을凖備할터이니한다 主人의指揮에依
0049_0024_b_14L하야한편방을치우고안젓노라니居未幾에夕飯이드러
0049_0024_b_15L왓다 應供을마치고는主賓이對坐하야問來答去에時
0049_0024_b_16L間이느저감을깨닷지못하엿다 어찌하여서이곳은男
0049_0024_b_17L僧이업고婦人이계시십닛가 이절住持金永峯和尙은
0049_0024_b_18L咸鏡道어데인가가서잇담니다 절이비여잇자하니날
0049_0024_b_19L가튼사람이라도집이나직히고잇는모양이지요 本宅
0049_0024_b_20L은어데시고子與孫은몃이나잇습닛가 우리아들金範
0049_0024_b_21L仲이라고하는사람이京城黃金町四丁目에居住하는데
0049_0024_b_22L日本女子를얻어生男養女하고그대로사는모양이지요

0049_0024_b_23L 그러시면子弟를依托해서사실터인데 이孤寂한山
0049_0024_b_24L中에서무슨趣味로지내심닛가 子息內外도나에게는
0049_0024_b_25L孝誠이極盡하지요또孫子男妹도여간따르지안습니다
0049_0024_b_26L그리고우리집이그리구차한살님도아니람니다 그러
0049_0024_b_27L치마는남의집가타여서暫時도留連하기실코이곳을오
0049_0024_b_28L면사람이잇거나업거나먹을것이不足하거나말거나모
0049_0024_b_29L든것이마음에길겁습니다그려 내손으로盖瓦ㅅ장을
0049_0024_b_30L가라덥고도량소쇄와여러가지任務를兼行하여도괴로
0049_0024_b_31L운생각은조금도업습니다 그것은다-宿世因緣인가
0049_0024_b_32L하옵니다 그리고앗가불너튼사람과단둘이잇는모양
0049_0024_b_33L이지요 예-그사람은負木名色으로각금남기나하여
0049_0024_b_34L주고자긔집에가서農事를짓는담니다 노-혼자잇는
0049_0024_b_35L세음이지요 이와가치여러가지이약이를繼續하다가
0049_0024_b_36L婦人은자긔處所에도라가고혼자無聊히누엇다가잠이
0049_0024_b_37L들지안허서앗가乘暮到寺하든光影으로四律一首를構
0049_0024_b_38L成하여볼까하다가儔字를得하엿다

0049_0024_b_39L石門斜日訪仙儔 好是楓林點綴秋 山如馬耳雙峯
0049_0024_b_40L出 溪似羊膓九曲流 誦經誰道男居士 法服今來

0049_0025_a_01L女比丘 沿革精査從此畢 楊州寺現一笻頭

0049_0025_a_02L 이와가치唫詠하여마치고는그만睡魔의征服을받앗
0049_0025_a_03L든것이다 翌朝木鐸소리에잠을깨서禮敬을가치하고
0049_0025_a_04L懸板올記取한後沿革을적어보왓다

0049_0025_a_05L石窟庵 (本山奉先寺方等地)

0049_0025_a_06L
 當寺는楊州郡治의西方으로約三里되는長興面橋峴
0049_0025_a_07L里五峰山中에在하니驢年月日에雪庵寬益大師가重修
0049_0025_a_08L하엿다

0049_0025_a_09L 當寺記文을叅考하건대端宗王后願刹이요初創年代
0049_0025_a_10L는不知라하엿스니前事는渺茫에付할다름이나더욱이
0049_0025_a_11L遺憾되는것은記文末에乙丑癸酉乙亥等의干支만付하
0049_0025_a_12L엿스니端宗三年乙亥以後로七回甲이지내간今日에坐
0049_0025_a_13L하야何代의乙丑等임을未詳이라古人의歷史上생각이
0049_0025_a_14L업섯든것은寃望을아니할수업시되엿다旣徃歷史의말
0049_0025_a_15L이낫스니말이지年代의糢糊함은어찌이절에만限할뿐
0049_0025_a_16L이랴 발바온十八個寺가一律雷同이되여잇다 例를
0049_0025_a_17L들면約四種으로分할수잇다

0049_0025_a_18L一、上之十五年己丑暢月上澣 蘭史 書

0049_0025_a_19L二、黃猿流火月

0049_0025_a_20L三、閼逢攝提格三月日

0049_0025_a_21L四、崇禎紀元後再甲午五月日

0049_0025_a_22L 이와가튼奇奇怪怪한文字를記入하여두엇스니叅考
0049_0025_a_23L者의心理는如干複雜이아니엿다 假令上之十五年己
0049_0025_a_24L丑이라하엿스니麗鮮어느人君의登極十五年이己丑이
0049_0025_a_25L든가 또黃猿은戊申이라하겟스나어느人君의戊申이
0049_0025_a_26L든가 또閼逢攝提格은甲寅의古甲이라하겟스나亦是
0049_0025_a_27L어느時代甲寅이든가 崇禎紀元도明史를보와아라내
0049_0025_a_28L겟스나亦是時間虛費가如干이아니엿다 더욱기맥히
0049_0025_a_29L는것은記文만버려노코年月까지업는것도或有한즉그
0049_0025_a_30L네의心膓은참으로알수업다 그러나外他各寺는距今
0049_0025_a_31L幾年前을아라내엿스나唯獨當寺에이르러서는記者의
0049_0025_a_32L管見으로알길이茫然이다 此를생각하는同時에主人
0049_0025_a_33L마누라는負木을急히불러本洞區長家에단여오되아침
0049_0025_a_34L밥床을밧기前에囘還하라申託하고무슨말을귀에대이
0049_0025_a_35L고가만가만일러준다 强知他事할것업고다만무슨急
0049_0025_a_36L한일이잇는가부다짐작만할다름이더니負木이단여오
0049_0025_a_37L고아침밥을먹은뒤에야記者에게顚末을일러준다 우
0049_0025_a_38L리本末寺에거륵한일을준비한다하오매旅費몃圓이라
0049_0025_a_39L도보태여드릴가하나 手中에一錢도업습니다그래日
0049_0025_a_40L前稅金六拾錢으로해서一圓金을區長에게맛긴일이잇

0049_0025_b_01L섯든바 그殘金이나마바다오라하고앗가負木을보내
0049_0025_b_02L엿드니이것을바다왓슴니다그려 薄弱하나마車費에
0049_0025_b_03L보태여씨라하고 金四拾錢을내여준다 末寺十七個
0049_0025_b_04L所를단엿스되 路資보태여주는곳은當寺가처음이다
0049_0025_b_05L原來貧弱한本末이라相當한出張費가업고但實費에依
0049_0025_b_06L하야若干支拂하는中일뿐더러또巾幗丈夫의紀念을하
0049_0025_b_07L기爲하야구지辭讓을아니하고그대로받아간수한後倉
0049_0025_b_08L洞停車塲時間을利用하야불이나케뛰여왓다 소귀동
0049_0025_b_09L(牛耳洞)에이르자 汽車소리가발서뛰하고山川을울
0049_0025_b_10L리인다 「乞飯山僧聞鐘笑」라함과가치한번웃고다시
0049_0025_b_11L걸음을느추어서徒步로議政府、祝石嶺을經由하야發
0049_0025_b_12L程所在地로부터略八里되는本山에到着하니 발서下
0049_0025_b_13L午六點鐘이뎅뎅한다。()

0049_0025_b_14L 奉先末寺에懸燈、興龍、五峰、鳳岩、彌陀、守國等의 外郡六個寺가
0049_0025_b_15L殘在이나題目에奉先本末寺巡禮라아나하고 다만楊州各寺巡禮記
0049_0025_b_16L라할뿐더러변변치못한記事로支離하게도 끄을어왓슴에讀者여러
0049_0025_b_17L분의煩瀆을是恐하야 外他名寺는機會를미루워두고此에擱筆하는
0049_0025_b_18L바님니다

0049_0025_b_19L海陽道隨筆

0049_0025_b_20L白陽桓民

0049_0025_b_21L康津灣으로부터大口面까지
0049_0025_b_22L高麗磁器의窯跡을探査

0049_0025_b_23L
 여게서다시一葦를隔한 莞島를건너서 新羅의弓
0049_0025_b_24L福과鄭年의鎭守하든 淸海鎭故地를巡訪할豫定이엿
0049_0025_b_25L스나日程上關係로中止하고 다시康津大口面으로轉
0049_0025_b_26L向하기로되여 發動機의船客을件하야 康津灣으로
0049_0025_b_27L出帆하기되엿다 船上에서古耽津縣을 바라볼적에
0049_0025_b_28L한가지史的追感이업슬수업다 新羅朝에客星이南方
0049_0025_b_29L으로빗치자 耽羅王子昆弟三人이 多島海를건너新
0049_0025_b_30L羅國을訪問할려고 이航路를通過하야 耽津에碇泊
0049_0025_b_31L한古事이며 鄭年과金陽이 新羅王子祐徵을擁立하

0049_0026_a_01L기爲하야 金明의亂을討平하려고 兵土五千人을실
0049_0026_a_02L고 進軍할때도 이海面을 덥기된것을想象키된다
0049_0026_a_03L배는大口面水洞里에寄着되자 바로나려面役所를訪
0049_0026_a_04L問하엿다 此地의主要한探査地는 本邦唯一인高麗
0049_0026_a_05L窯址그것이다 東洋美術的工業品으로世界의耳目을
0049_0026_a_06L驚動키함이 高麗의靑磁器이다 此地는高麗時代의
0049_0026_a_07L磁器를 製造하든本塲인까닭이다

0049_0026_a_08L 一日를費하야 所在를踏査하는同時에 磁器破片
0049_0026_a_09L을拾取도하여보왓다 華麗奇絶한磁片이 田圃原野
0049_0026_a_10L에在在分布되여 진실로燦爛하며愛惜도하다 近千
0049_0026_a_11L年의風雨에磨洗한露野의破片일망정 物色이鮮麗하
0049_0026_a_12L고隱紋이透明한그대로 人物、花草、禽獸、雲霞、
0049_0026_a_13L文字等의紋樣이 조금도變色업시 그精巧한手法을
0049_0026_a_14L볼때에 우리의今昔對照上 오놀날退步狀態를 切
0049_0026_a_15L痛慨嘆을아니할자ㅣ그누구이랴 今日內外國人을勿
0049_0026_a_16L論하고 高麗燒硏究에熱中하지마는 到㡳히이와가
0049_0026_a_17L튼眞品을模造할수업슬뿐아니라 現下中央試驗所其
0049_0026_a_18L他窯業會社에서 此地의原料를가저다가製造에 애
0049_0026_a_19L를쓰는모양이나 그靑色과隱紋을이와갓히할수업다
0049_0026_a_20L한다 余는일즉博物舘이나高墳속에서서나 其他出
0049_0026_a_21L土品으로 高麗磁器를 大約얻어볼뿐이엇스나 여
0049_0026_a_22L게와서破片(或完全品도잇다)일망정 質的量的으로
0049_0026_a_23L의本物을보고서야 高麗磁器의性質과價値의如何를
0049_0026_a_24L晩覺으로 料得하엿다 調査의槪略은左와가틈

0049_0026_a_25L高麗磁器窯跡

0049_0026_a_26L一、窯跡在地은 康津郡大口面、七良面、地方一帶

0049_0026_a_27L大口面沙堂里龍雲里(巷洞、尾山)

0049_0026_a_28L七良面明珠里三興里鳳凰里

0049_0026_a_29L郡東面金沙里等으로其數ㅣ數百에達함

0049_0026_a_30L二、大口面沙堂里附近地勢

0049_0026_a_31L北은女鷄山 南은觀察山 東은萬景山 西은康津
0049_0026_a_32L灣을對한一平地로써 窯跡은거의山麓에存在하
0049_0026_a_33L야 東西十里半에連亘한數百의窯跡이現存함 其
0049_0026_a_34L中最完한것은 沙堂里第一窯第二窯等으로 現
0049_0026_a_35L下總督府에서設柵鎻門하고 保存中이다(同築
0049_0026_a_36L窯는稍히最古한良質高麗靑磁라함)

0049_0026_a_37L三、窯跡의特徵

0049_0026_a_38L沙堂里第一窯 薄平靑磁

0049_0026_a_39L同 第二窯 象眼靑磁道具類大作品等

0049_0026_b_01L巷洞窯………支那風의靑磁로서荼碗皿類

0049_0026_b_02L尾山窯………後代의靑磁로서椀型의器物等

0049_0026_b_03L其他窯………三島燒와類似한靑磁로서李朝初期의
0049_0026_b_04L것으로思料함

0049_0026_b_05L四、築窯의新古와技術의傳來期

0049_0026_b_06L窯의新古를稽하건대 龍雲里의窯가最古期라할
0049_0026_b_07L수잇고 支那風의器物이多하며 沙堂里並觀察
0049_0026_b_08L山麓의窯는 高麗燒로서 最盛期에在하야그製
0049_0026_b_09L品이가장精巧하고 尾山窯는高麗末期의製品인
0049_0026_b_10L듯하며其他는靑磁로써 最終期로부터 李朝初
0049_0026_b_11L期의것과가티三島燒類가多함 技術傳來의迹을
0049_0026_b_12L考하건대(支那宋時代)麗初에同地龍雲里에在한
0049_0026_b_13L凈水寺와何等의關係가有하야 當時政府의直營
0049_0026_b_14L으로써 堂前里에築窯하고製品은朝鮮特有의靑
0049_0026_b_15L磁器를製造하엿다가 그後時勢變遷과技術衰退
0049_0026_b_16L함에따라 三島燒風이各地에流行됨에至한것가
0049_0026_b_17L트며

0049_0026_b_18L五、原料와窯業의現在

0049_0026_b_19L本道에는良質의原料가豊富함에따라 特히本地
0049_0026_b_20L에는各種의原料를마음대로採取할수잇스며 또
0049_0026_b_21L한對岸道岩面에硅沙土가잇스며 海南郡에는石
0049_0026_b_22L灰石이잇스며 海南珍島地方에는高嶺土를產하
0049_0026_b_23L여燃料-또한豐富함으로 磁器는勿論各種窯業
0049_0026_b_24L上企業이容易하며 現在窯業으로는七良面永東
0049_0026_b_25L里鳳凰里에各一個所가잇서 附近의陶土로써 甕
0049_0026_b_26L皿壺甁等製造에從事하고잇다

0049_0026_b_27L沿海長城

0049_0026_b_28L
 大口面九修里南端海邊에서起하야 觀察山을經由
0049_0026_b_29L하고同龍雲里山腹及鞍部를連亘하야 長興郡大德面
0049_0026_b_30L新月里海岸까지約三十里를延袤한長城을 實査하여
0049_0026_b_31L보기로하엿다 城堞은純石築으로 大規模的物力을
0049_0026_b_32L費한것이다 城壁은稍히完全하며 橫斷面은矩形이
0049_0026_b_33L다 本地帶는南으로海岸에斗入한半島로써 南端에馬
0049_0026_b_34L良鎭이有한地域이다 그런대此城의防禦面(追手)이
0049_0026_b_35L反對的北方으로向하고 山의中腹或은溪谷平地를通
0049_0026_b_36L過하여 마치무슨限界를定하드시連亘하야 長城으
0049_0026_b_37L로築한것은 所要의目標를 얼른推定할수업는일이
0049_0026_b_38L며 間或城의石面에務安郡潭陽郡等文字를刻한것을
0049_0026_b_39L볼수잇스니 此는畢竟同郡民들의分擔區域表인듯도

0049_0027_a_01L하다 本城에對한記錄으로는

0049_0027_a_02L(東憲錄)에「沿海長城은古時石城으로珍島에서起
0049_0027_a_03L하야康津大口面海邊과長興大德面을經過하고 海
0049_0027_a_04L를越하야興海의沿海諸山에至하고 延하야慶尙道
0049_0027_a_05L沿海에至하엿다」云云

0049_0027_a_06L(高麗史)「高麗文宗元年 自東海至海南 築造城
0049_0027_a_07L堡農塲以振海賊之衛」云

0049_0027_a_08L이라하엿스나 此外에는何等의口碑를傳치아니하엿
0049_0027_a_09L다 此는다시考古家硏究에맛길뿐이다

0049_0027_a_10L淨水寺를거처康津邑까지

0049_0027_a_11L
 翌日此地를出發하야 康津邑으로向하는途中에暫
0049_0027_a_12L時大口面龍雲里에在한 凈水寺에를들엿다 그殘礎
0049_0027_a_13L의廢墟로보와徃昔의隆盛을넉넉히엿볼수잇스나 그
0049_0027_a_14L러나現狀으로는凡百이凋殘한 一小末寺로서 僧侶
0049_0027_a_15L數名이겨우維持하고잇는狀態이다 當寺는年代가오
0049_0027_a_16L래된歷史를가진그만콤 手法이精緻한 썩오래된金
0049_0027_a_17L銅佛像과 古石碑等이多하며 記錄에依하면 新羅
0049_0027_a_18L哀莊王元年乙酉에道詵國師의剏建한古伽藍이다 日
0049_0027_a_19L程의關係로大略의巡禮를마치고 北行의길을促進하
0049_0027_a_20L엿다 康津邑을이르기約十里를距한 無人家途中에
0049_0027_a_21L서 瞥眼間가을하늘뒌소낵비를맛나 衣裳과밋携帶
0049_0027_a_22L品을沒沾하고 물귀신모양한가지로 耽津江津船을
0049_0027_a_23L벌벌떨며건너서 直走邑內어느旅舘으로投入하엿다
0049_0027_a_24L여러군대서摘記한草稿는 포켓트속에서 제대로납
0049_0027_a_25L작하게反古紙가되고말엇다 天幸으로主人집안房짤
0049_0027_a_26L짤끌는溫突을만난덕분으로 寒竦症은 治療가되고
0049_0027_a_27L저진옷은대강마른모양이다 아즉午後四時前임을利
0049_0027_a_28L用하야 郡廳訪問까지마첫다 旅舘에도라와 海邑
0049_0027_a_29L土產으로俱進한康津料理를맛보왓다 다시明日順序
0049_0027_a_30L를豫定하다가 今番에꼭巡訪할目的地가 豫算밧그
0049_0027_a_31L로버서나게됨이遺憾이다 이는곳兵營과修仁山城이
0049_0027_a_32L다 兵營은 本郡의前身인道康縣古地로現在古郡面
0049_0027_a_33L이되여잇다 李朝開國二十四年에兵馬節度使營을設
0049_0027_a_34L置하는同時에 道康縣과耽津縣을廢合하여 康津으
0049_0027_a_35L로改稱하고 縣治를耽津(現在康津邑)에移置하고五
0049_0027_a_36L百四年에다시 郡으로改稱된것이며 修仁山城은이
0049_0027_a_37L곳兵營의鎭城이라한다

0049_0027_a_38L 翌日아침일즉 靈岩行自働車를約束하고 月出山
0049_0027_a_39L南에잇는 李奎報의碑만남은月南寺址와 道詵國師

0049_0027_b_01L의所創으로그後다시重營으로因하야 水陸社가되엿
0049_0027_b_02L든無爲寺를經由하야 바로道岬寺로넘어가려고豫定
0049_0027_b_03L하엿다가 城田面永豐里에서下車하고보니中間의泰
0049_0027_b_04L嶺海㧞三七五米의道岬峙가가슴이답답하다 뿐만아
0049_0027_b_05L니라 時間經濟上에도問題이다 다시路程을變更하
0049_0027_b_06L야 無爲寺는無爲로돌리고 가는車그대로 月出山
0049_0027_b_07L前後左右를둘러 全體를洞觀하기兼하여 火峙를넘
0049_0027_b_08L어靈岩邑內로直走하엿다 旅舘에行具만던저두고선
0049_0027_b_09L거름으로다시道岬寺를向하고南行하엿다

0049_0027_b_10L月出山과道岬寺

0049_0027_b_11L
 靈岩郡은百濟의月奈郡으로서 新羅에서靈岩郡으
0049_0027_b_12L로改稱하엿다 高麗成宗十四年에朗州府로改稱하엿
0049_0027_b_13L다가顯宗九年에靈岩郡으로復稱하고 李朝에서此를
0049_0027_b_14L仍稱하여왓다 月出山은郡南五里에在하니 그깍가
0049_0027_b_15L세운듯한奇巖異石이 中霄에挺秀森列하고 蒼栢丹
0049_0027_b_16L楓이其間에點綴하여 萬千氣像을能言할수업는 南
0049_0027_b_17L國의名山이며靈嶽이다 新羅에서月奈岳이라稱하고
0049_0027_b_18L高麗에서月生山이라改稱하엿스며 別名으로小金剛
0049_0027_b_19L山이라도하고一名으로曹溪山이라도하며 諺傳하기
0049_0027_b_20L를我邦外華盖山이라고한다 또그最高峯인天皇峯은
0049_0027_b_21L海拔八○三米의高程이라그압흐로山頂에九井峯이잇
0049_0027_b_22L스니 中天에屹立한奇岩이 高가二丈이나되며그겻
0049_0027_b_23L해또한 한사람식能히容入할수잇는岩穴이잇서 그
0049_0027_b_24L岩穴로부터올나가면 그巖巓에는二十人이可히안즐
0049_0027_b_25L수잇스며 그平面에凹部가天成되여 貯水함이마치
0049_0027_b_26L井泉가튼것이九個임으로 此를九井또는九井華이라
0049_0027_b_27L稱한것이며 비록大旱일지나마르지아니하여 諺傳
0049_0027_b_28L하기를 아홉룡이 그속에잇다고하엿다 또한九井
0049_0027_b_29L峯압흐로 層岩우에는 놉히질반이되며 周圍가열
0049_0027_b_30L네아람이나되는 三個의巖石이鼎立하야 西便으로
0049_0027_b_31L山巓에겨우付着하고 東으로絶壁에危臨하야 그重量
0049_0027_b_32L이비록千百人이搖하여도 能히動搖되지아니할지나
0049_0027_b_33L한사람이搖하면搖動되며 떠러질듯하여도 떠러지
0049_0027_b_34L지아니함으로 此를動石이라稱하며또한靈岩郡의得
0049_0027_b_35L名함이 此에서起因된所以라하며 或은녜전에支那
0049_0027_b_36L人이와서三石을다떠러트럿스나 一石이다시故處에
0049_0027_b_37L도로올나안젓다고한다 그아래에는녜전에 動石寺
0049_0027_b_38L가잇섯스며 그엽흐로는月出山神祠가잇섯스나 至
0049_0027_b_39L今은다만遺址만잇슬뿐이라하며 東便으로는또한養

0049_0028_a_01L子巖이잇스니 巖上이高大하고廣平함으로녜전壬亂
0049_0028_a_02L에傍邑人民들이妻子들을끌고 巖上으로사다리를노
0049_0028_a_03L코올라가서 避亂하야子孫을保養하엿슴으로써養子
0049_0028_a_04L巖이라稱하엿다한다 이月出山의鍾毓한淑氣를띄고
0049_0028_a_05L山南으로一大洞府를天成한곳은오즉 이道岬寺이다
0049_0028_a_06L寺는邑에서西南方約二十里인 郡西面道岬里에在하
0049_0028_a_07L며寺의入口는仙人洞이라稱한다 洞口를初入하는左
0049_0028_a_08L右路側에는 直徑約一間平方의天然石五六個가 礎
0049_0028_a_09L石처럼規則的으로排列되여잇서 石面에는人工的穿
0049_0028_a_10L孔이間間잇는것으로보와 아마徃昔에本寺初入의關
0049_0028_a_11L門이잇섯든모양갓다 洞口를드러서며 域內溪山를
0049_0028_a_12L살펴볼때에 深邃한洞府에 一條淸溪는杳然하기흐
0049_0028_a_13L를지나 叢林의本色인樹木이缺如하여 禿山露岩이
0049_0028_a_14L보이기에 넘어나蕭條한氣分을띄고잇다 그러나岡
0049_0028_a_15L巒의體勢雄渾하야 深深한長谷을抱擁하고 南北의
0049_0028_a_16L兩脉이서로連鎻되여 水口를固開한兩方으로 山城
0049_0028_a_17L을石築하엿스니 延長이約三百間으로서諺傳하기를
0049_0028_a_18L道詵國師가築하엿다하며 此를道岬山城이라稱한다
0049_0028_a_19L洞口안으로二個의立石이 路傍에마조서서잇슴을보
0049_0028_a_20L왓다 이곳「輿覽」에載在한바「其一刻國長生三字其
0049_0028_a_21L一刻皇長生三字」란그것이다 挑發되는好奇心으로
0049_0028_a_22L實物을얻어본오늘이라 한갑세달려드러 前後左右
0049_0028_a_23L를 再三더듬어보왓스나 刻字는아조볼수가업다아
0049_0028_a_24L-春風秋雨一千星霜에磨洗되고 또한刻字의部分이
0049_0028_a_25L苔衣와한가지還生된모양갓다 寺下를漸入함애路側
0049_0028_a_26L에서잇는古碑는依然히 녯빗을띄고잇다「輿覽」에
0049_0028_a_27L載한바와가치「碑字缺不可讀」이다 例의冬栢과修竹
0049_0028_a_28L이蕭森한속으로 金碧이退色된殿閣이내닷는다 階
0049_0028_a_29L段을놉히하고멀즉하게갓다지은 外玄閣은大伽藍格
0049_0028_a_30L의버금을차리고잇다 첫눈에印象된것은 階段兩側
0049_0028_a_31L石面에 太極을雕刻한것이 古代遺物로서 한異彩
0049_0028_a_32L를띄고잇다 門閾안으로兩方에갈나선 守門大將은
0049_0028_a_33L邪不犯正이란意味로 몹시눈을흘껴본다 左右에는
0049_0028_a_34L殘礎遺墟가太半으로서 古瓦破片이 落葉과한가지
0049_0028_a_35L滿地한一面에 古碑와古塔이녯歷史를 진이고잇다
0049_0028_a_36L中央에大雄寶殿하나만은 規模宏壯하고手法이精緻
0049_0028_a_37L한古建物로서雄偉한風度를가지고잇다 權主持의丁
0049_0028_a_38L寧한案內로佛前에瞻禮를드렷다 三尊佛像은모다紙
0049_0028_a_39L製金佛로軆裁가特히精巧함은 他에서못보든古代美
0049_0028_a_40L術的價値를暗示하고잇다 다시東壁에모서잇는 道

0049_0028_b_01L詵國師와守眉大師의畵像을叅拜하엿다 平素에傳說
0049_0028_b_02L로만귀가익게듯든 道詵國師를오늘에와보왓다 자
0049_0028_b_03L섯보고또다세보며 內心에그리반가운것이 도리여
0049_0028_b_04L이상하다하엿다

0049_0028_b_05L本寺의沿革으로는 寺蹟에依하면

0049_0028_b_06L「昔 文殊菩薩 物色訪文殊庵然後 大建寺刹 號
0049_0028_b_07L爲道岬寺 道岬者 實佛道之居甲云 後道詵國師
0049_0028_b_08L生於鳩林 爲僧於是寺 益張大之」云

0049_0028_b_09L(鄭斗卿碑記)「靈巖郡有月出山 山之奇秀盖一道
0049_0028_b_10L國師道詵郡人也 山有寺曰道岬 世傳師所創 大
0049_0028_b_11L明天順元年丁丑 有信眉守眉兩師者 重剏焉 藝
0049_0028_b_12L文提學尹公土昀爲之記 天順丁丑去今壬辰一百九
0049_0028_b_13L十餘年矣 寺有詵師碑 不知立始何代 碑已磨滅 玉
0049_0028_b_14L習師者 重刻焉 白軒李相國爲之銘 習師又請余
0049_0028_b_15L志碑陰 余常見天中記 記鳩林 鳩林志天中記
0049_0028_b_16L聞天下久矣 詵師厥生奇異 又名聞天下 智知未
0049_0028_b_17L來成麗祖一統五百載之基 所謂通釋氏天眼者 豈
0049_0028_b_18L可以一術稱哉」(下略)

0049_0028_b_19L等에依하야 寺歷의大要를推想할수잇다 다시法堂
0049_0028_b_20L엽헤잇는妙覺和尙의碑文과北便墻下에잇는五層石塔
0049_0028_b_21L을爲始하야 寺의後方山下에따로設立한 道詵國師
0049_0028_b_22L守眉大師碑을拜觀하엿다 此는全北礪山에서採取한
0049_0028_b_23L美麗한大理石으로製作한 長十八尺、廣九尺의大碑
0049_0028_b_24L이다 李朝中葉에成就한雕刻物이지만 螭首와龜跌
0049_0028_b_25L가튼것이 特히精緻하야 李朝期의代表的美術標本
0049_0028_b_26L이될뿐아니라 羅麗의美術을凌駕할雕刻品이랄수잇
0049_0028_b_27L다 李景奭撰吳竣의書로具成한碑文이다 同碑銘에
0049_0028_b_28L「獨神乎神 孰覺其覺 難以知知 難以識識 碑無碑
0049_0028_b_29L有 何損何益 久而愈尊 今復如昔」이라함도 不敢
0049_0028_b_30L賛으로차라리 그러케쓰는것이妥當할뜻하다 碑의
0049_0028_b_31L後面에列記한氏名中 淸陰愼獨齋兩賢의姓諱을어떤
0049_0028_b_32L不道者流가剝滅하엿다 此는必是迃儒의所爲일것이
0049_0028_b_33L다其後金箕昶의改刊함이 더욱아름다운일이다

0049_0028_b_34L 다시도라右便彌勒殿으로들어 石佛을拜觀하엿다
0049_0028_b_35L固定된天然岩石으로 그대로雕刻한것인데 그우에다
0049_0028_b_36L가殿堂을덥허지엇다 그石像은마치慶州石窟庵釋迦
0049_0028_b_37L坐像처럼 그精巧한手法은 新羅式美術의色彩를띄
0049_0028_b_38L고잇다 南便의小庵인上東林을잠간단녀 다시寒山
0049_0028_b_39L의石逕斜路로 白雲深處를멀리올라셧다 여게는月出
0049_0028_b_40L山主脈이자 正面이며絶頂아래이자 絶壁우에잇는上

0049_0029_a_01L見性(庵名)이다 世間이아닌天上이며 梵宇라하기
0049_0029_a_02L보담 仙扃이랄수잇다 압흐로萬里南海에多島가浮
0049_0029_a_03L萍갓고뒤으로千丈高峯이金芙蓉을削揷한듯하다 此
0049_0029_a_04L間의一衲은 그만仙子로볼수밧게업다 이와가튼俗
0049_0029_a_05L心으로도人世味를아주끈을듯이 人間是非를갈지말
0049_0029_a_06L고 赤松子를다라서고저하엿다 발서西海의落日은
0049_0029_a_07L각구로서게되자 저문복소래는 山中寂寞을깨트린
0049_0029_a_08L다 仙界의緣이아즉깁지못한塵客으로 그만下界로
0049_0029_a_09L도라서지아니할수업섯다 本寺에도라와信宿하는同
0049_0029_a_10L時에寺蹟抄錄하기에밧벗섯다 翌日은고마운뜻을叨
0049_0029_a_11L謝하고 바로洞口밧約十里인鳩里로 向字를불넛다

0049_0029_a_12L鳩林과國師巖

0049_0029_a_13L
 道岬寺의洞口밧기되자 郡에서二十里인現下郡西
0049_0029_a_14L面東鳩林里에鳩林과國師巖과崔氏園이잇다한다此地
0049_0029_a_15L는道詵國師의發祥의地이라 道岬寺를본나의好奇心
0049_0029_a_16L에 이聖蹟을除해둘수가업섯다 그의史蹟으로는

0049_0029_a_17L(輿覽)「諺傳新羅人崔氏園中 有苽長尺餘 一
0049_0029_a_18L家頗異之 崔氏女 潜摘食之 歆然有娠 彌月生
0049_0029_a_19L子」(下畧)

0049_0029_a_20L(邑誌)「崔氏女 未嫁 甞冬日浣紗於村南聖基洞槽
0049_0029_a_21L岩 有靑苽一顆漂來 呑之有娠 及生以爲無人道而
0049_0029_a_22L生 棄之於叢林間盤石上 過數日徃觀之 有鳩來
0049_0029_a_23L覆翼之得不死 以爲神 遂收而養之 時則新羅眞
0049_0029_a_24L德王末年 及長入禪學入唐 唐帝特拜國師 傳一行
0049_0029_a_25L禪師地理之法 及其東還 以爲我國地形 山勢鬱
0049_0029_a_26L拂橫奔 如行舟 乃建寺竪塔 立佛像於各要處 
0049_0029_a_27L壓地脉 此舟行有載物然後 無欹危漂沒之狀也 
0049_0029_a_28L於是三韓統合 邦基鞏固 民物安阜云 後名其村
0049_0029_a_29L曰鳩林 又曰飛鷲 名其石曰國師岩」云

0049_0029_a_30L等記錄이잇슴에依하야 歷歷한事蹟이잇슬뿐아니라
0049_0029_a_31L至今鳩林은東西二洞으로分하야 人家數百餘戶가櫛
0049_0029_a_32L比하며 聖基와槽岩의稱이 아즉依然한 그아래에
0049_0029_a_33L「古崔氏園今曹家庄」이란大刻字가잇스며 西鳩林里
0049_0029_a_34L의前面海岸에一大岩石이잇스니 此를道詵巖이라고
0049_0029_a_35L한다。(續)

0049_0029_b_01L囘顧

0049_0029_b_02L一葉

0049_0029_b_03L
 생각하면 나의지난일은 어제일도 昨年일도 十年前일도 二十年前일도 모다그저멀고 아득하게
0049_0029_b_04L늣기여질뿐이다 나의지난半生은참으로 波瀾만코고닯프고어리석고 어리둥절한生活이엿다。

0049_0029_b_05L 修養도 知識도 智慧도 아모것도업고 그리고나를爲하야 左右間叅見하여줄한사람도 가지지못한
0049_0029_b_06L다만홀로인나는 生活에 휘둘니여 그야말로바람에불리고 물결에밀리는 뜬풀과도가탓섯다。

0049_0029_b_07L 그러타고 그저다수굿하고 압헤닥처오는 不滿과不幸을견듸여가겟다는 溫順한性味의所有者도아니
0049_0029_b_08L엿섯다。智略도預算도업시덥허노코 現在不滿을깨트려버리고 當한不幸을뒤집어노앗섯다。그러나代身
0049_0029_b_09L에와야할滿足과幸福은오지도안코 남들의批難과是非만몰켜올뿐이엿다。

0049_0029_b_10L 남들가트면父母무릅에서 응석하고잇슬나희에 벌서차듸찬世上에 홀로남께되엿섯고 남의나라女子
0049_0029_b_11L들가트면 한창前途가洋洋한 女學生으로冊褓끠고 校門出入이나할 나희에 어느새 女子界에先導者
0049_0029_b_12L로 文士로 問題에人物로 어쨋든 成人의取扱 한거름 더나아가 先進의 取扱을받앗섯다。

0049_0029_b_13L 한동안은 自信도 만핫고 남의期待도 적지안엇섯지마는 나의私的生活이 저의들마음에 들지안
0049_0029_b_14L는다하야 世上에서는 넘어도苛酷하게나에게 對하엿섯다。나무에오르라고오르라고하여노코 흔드러떠
0049_0029_b_15L러트리는世上이엿다 如意하게되지안는怨恨 無理하다고 생각되는 남들의批難 압헤닥처오는 모든
0049_0029_b_16L困難은외로운나에게 더한층외로움과 悲哀를주엇섯다。

0049_0029_b_17Lx   x   x

0049_0029_b_18L 배호면무엇을하고 成功을하면무엇을하며 名譽가무슨所用이며 富貴가무슨所用이랴 그저이世上에

0049_0030_a_01L는사랑한가지가 잇슬뿐이다하고 생각하엿섯다。

0049_0030_a_02L 차고 薄한世上에서 무엇을求하랴 아침에웃든꼿이저녁때시드러지고 오날붉든얼골이 來日보기실
0049_0030_a_03L은 주름살▣디가되는世上에 허덕어리고 무엇을얻어본대야 무슨시원한일이잇스랴 그동안이나마따
0049_0030_a_04L뜻한가슴을 헤처주는이에게안겨서 한世上지나보내는것이 第一즐거운일이오 幸福스러운일일것이다
0049_0030_a_05L하고 생각하엿섯다。

0049_0030_a_06L 萬사람에게排斥을받고 千사람에게미움을받고 온世에서버림을받드래도 다만한사람의참된理解와사
0049_0030_a_07L랑을받는다면 그것으로滿足할뿐이다라고하엿섯다。그리하야 남이야무엇이라고하거나 말거나 사랑
0049_0030_a_08L에對象이發見되는때는 아모것도不顧하고 선선이따라나서기로决心하엿섯다。

0049_0030_a_09L 그사람이 참으로사랑다운 사랑을주는지 또한내가그사람이면은 마음을바처사랑해지는지도알아볼
0049_0030_a_10L겨를이업시 그저熱情的인듯한그사람의表情이나 말에迷惑되엿고 스사로의好奇心과 그럴뜻한感情에끄
0049_0030_a_11L을리여 이것이사랑이다하고 所謂사랑의보금자리라는것을만드러보기도하엿섯다。

0049_0030_a_12L 그러나 얼마되지아니하여 두리서붓잡고야단이든 보드러운말과 아름다운表情으로곱게싸노앗든사
0049_0030_a_13L랑의헛갑이는 벌서살아저버리고 보기실흔利己와虛僞가 우리를코우슴치고안젓슬뿐이엿섯다。

0049_0030_a_14Lx   x   x

0049_0030_a_15L 또다시알몸둥이가된나는 貧寒에쪼들리고 愛慾에부닥기는 짓밟힌生活을니어가지안흐면 아니되엿
0049_0030_a_16L섯다 모다를버리고 모다가 살아저버린 空漠한廢墟에호을로 남어잇는나의可憐한姿態가 發見되는
0049_0030_a_17L때 나는寂寂한微笑와함끠 끗업시失心하고잇을뿐이엿다。

0049_0030_a_18L 人生에無常함과 矛盾덩어리인 社會相을뼈에사모치도록늣기인나는 이世上에서는아모것도얻어지지
0049_0030_a_19L아니할것을깨다렷다 모든것이 웃읍고 서들하엿다 멀리멀리다라나버릴가 그만죽어버릴가하든생각
0049_0030_a_20L조차斷念해버리고 어차피如意치못한世上이니 마음을끄린대야 아모效果가업고 걱정을한대야 아모

0049_0030_b_01L所用이업슬바에는 차라리 뷔인웃음이나웃고 한世上보내는것이 가장약은일이라고 생각이되엿섯다
0049_0030_b_02L그러나눅으러진性味의所有者로 그러케조비비듯焦慮하지는 안는다하더래도뭉클하게 끄러오르는煩惱
0049_0030_b_03L는그래도살아지지아니하엿섯다。

0049_0030_b_04L 그리하야 마음을수구럽게할일은 애써避하고 마음에慰安되는 일을애써차저보기로하엿섯다。

0049_0030_b_05L 그러나마음에 慰安은 쉽게얻어지지안는것이 事實이엿다。

0049_0030_b_06L 陰鬱한房구석에서 괴롭게지날수가업서서 밧게를나아가면니르는곳마다 젊은女子의肉香을탐내는男
0049_0030_b_07L性의눈이번득어릴뿐이오 衣服이나物件으로마음을滿足식이랴는 淺薄한女子들의얄미운視線이부듸칠뿐
0049_0030_b_08L이엿다 如前이늣겨지는마음에空虛와 指定할수업는 애닯음이늘나의精神을 수구럽게할뿐이엿섯다。

0049_0030_b_09Lx   x   x

0049_0030_b_10L 窮狗는難逐이라고 思索과 苦憫이極度에감에는 오즉「사느냐 죽느냐」가問題이다 그러면나에게는
0049_0030_b_11L아모것도업는터이라 오는대로利益을줄수잇나니 生路이라면安穩! 死線이라면永遠의未知일것이다。
0049_0030_b_12L다행하게도 나에게一條活路가보이엿스니 다른것이아니라 곳『나답게산다는것이다』이말은實狀死線
0049_0030_b_13L을通過하여본사람이아니면 理解치못할만치高級이라할수잇다 前日에不安과恐怖가잇섯다면 오즉내가
0049_0030_b_14L나답게살줄을몰으는데서 온것이요 決코다른무엇이준것은아니다 준것이아닐뿐만아니라 自縳에不過한
0049_0030_b_15L것임으로 『覺來觀世間 猶如夢中事』라는말이切實하엿다 그리하야나는이에서 다시愛人을얻엇고 父
0049_0030_b_16L母를얻엇고 滿足을얻엇고 勇氣를얻엇다 모든일에 前日에업든 自尊心이생기고 모든思索이『나아
0049_0030_b_17L니고는 이宇宙가뷔일것이라』하는 밧괴인생각을가지게되엿다 天上天下에唯我獨尊이라는『我』가곳
0049_0030_b_18L나이거니 어찌卑㥘하랴!

0049_0030_b_19L 이제사랑이라함은 내가사람을사랑할지언뎡 사랑하는무엇은아니다 사랑을받는무엇은아니다 甚하
0049_0030_b_20L게는 밥도내가먹어야지 먹여지는내가되여서는 아니될줄로알엇다

0049_0030_b_21L 이것이나로써 다시이宇宙에 갈임업시 거리낄것업시 즐겁게살아잇게하는 原動力이다 이것이빗
0049_0030_b_22L이되여서 나의압길을밝히여준다면 나는다만압흘向하야나아갈뿐이다。

0049_0030_b_23L 나는어리석엇든 過去는알고저도아니하는 同時에 未來를充實이하고저 精誠스럽게살고저할뿐이다
0049_0030_b_24L임의 精誠스럽게사는나이어니 두려울것이무엇이랴!

0049_0031_a_01L벙어리굿

0049_0031_a_02L露雀

0049_0031_a_03L
(全文二十二頁削除)

0049_0031_a_04L冷笑全一幕

0049_0031_a_05L素然

0049_0031_a_06L
人物

0049_0031_a_07L崔松實
(某劇塲의花形女優)十八歲

0049_0031_a_08L
(松實의)五十四歲

0049_0031_a_09L崔昌植
(松實의兄)三十歲

0049_0031_a_10L方漢永
(不良者)二十三四歲

0049_0031_a_11L白南哲
(靑年富豪)二十三歲

0049_0031_a_12L李良善
(某劇塲의舞臺監督)二十五六歲

0049_0031_a_13L電車監督
四十八歲

0049_0031_a_14L巡査
四十五六歲

0049_0031_a_15L電車乘務員
二十六七歲

0049_0031_b_01L時代

0049_0031_b_02L現代
느진봄午后三時頃

0049_0031_b_03L場所

0049_0031_b_04L 松實의집안

0049_0031_b_05L昌植 (술을 잔에부으며) 자-어서들게 이잔은자네가 먹을차렐세

0049_0031_b_06L 아니야 고만먹겟서 넘어취하는걸!

0049_0031_b_07L昌植 앗다 이사람 잔말말고 어서들게 자네가 술사양할가 다잇나 웨-안쥬가
0049_0031_b_08L업스닛가―――

0049_0031_b_09L 원 千萬에 酒客이안쥬찻는것 보앗나 술만조흐면 고만이지 그러나 저사람
0049_0031_b_10L도 기다릴터이닛가 어서 자네하고 할이약이나하고 얼는가서 下囘를일러주
0049_0031_b_11L어야 아니하겟나

0049_0031_b_12L昌植 (잔을들어 내여밀며)자-잔사설 고만캐고 어서술이나들게 들어

0049_0031_b_13L 허!! 明日이來無盡이라는데 다음날맛나 우리실컨 먹어보세 그려 엇던놈이
0049_0031_b_14L죽던지

0049_0031_b_15L昌植 이사람아 자네술권하다가 내팔러지겟네 어서마시게 요새 생은 일업서
0049_0031_b_16L김장나 일이잇지

0049_0031_b_17L 에-참-그럼 먹기는먹겟네만은 이번만 먹을터이니 다시는勸하지말게

0049_0031_b_18L昌植 그래 아니勸할게 이것만마시게

0049_0032_a_01L 그럼 먹지(밧어마신다 술잔을고나서)카-술맛이야 참조타 목구녕이 르
0049_0032_a_02L르하는것이사람이 고만녹는단말이야

0049_0032_a_03L昌植 (싱긋웃으며)그런데 웨 작고만 실타나 어서 안주나들게

0049_0032_a_04L (라웃으며 잔을노코 젓가락을들어 안주를집어먹으며)그러치만 오늘은 자
0049_0032_a_05L네하고 할이약이가잇서 왓는데 들어닷는마드로 듸립더 퍼먹이니 어듸 견
0049_0032_a_06L딀수가잇서야지

0049_0032_a_07L昌植 이사람 애기고 기고 우리네가 맛나면 이러케 술이나 먹는게조치 그래
0049_0032_a_08L할이약이는 무엇인가 어서

0049_0032_a_09L 글세 술도먹을가잇지 그런게아니야

0049_0032_a_10L昌植 안이긴 무에 아니야

0049_0032_a_11L 글세 말을점들어요 요-日前에 安定寺에 나갓슬에도 자네에게 대강말은한
0049_0032_a_12L것이지만은(卷煙을부처 한목음을어 天井을向하고내고)자네妹氏말일세 그
0049_0032_a_13L동안 만히생각도 해보앗겟네만은 엇더케할여나?

0049_0032_a_14L昌植 응 글세 나도그 자네에게 그말을듯고  그만안이라 거기서 白氏를
0049_0032_a_15L맛나보고 와서 곰곰生覺해보니 내마음에는 다시두말할것이업시 可合하데 그
0049_0032_a_16L래서 우리어머니도말슴을햇더니 어머니도 그럴사하게 녁이시나 當者가 들
0049_0032_a_17L어먹어야지!그애는 절대로 反對를하네그려 그래서 이제껏 囘答을못한것일
0049_0032_a_18L

0049_0032_a_19L 이사람 그게다 무슨소린가 아레ㅅ사람이되여 어른들이식히는대로할것이지 거
0049_0032_a_20L기에 무슨소리를할나구 그것은 다-자네의핑게이지

0049_0032_b_01L昌植 아니야 핑게가 다-무슨핑게인가 萬一마음에 不合當하면 그當席에서 拒絶
0049_0032_b_02L을햇슬것이지 집에가서 의론을해본다구 하엿겟나? 아모리 在下者이기로이
0049_0032_b_03L런일은 달은일과도달라 엇더케 내마음대로 處斷을 할수가잇나 저도 나희가
0049_0032_b_04L한두살도아니요 대가리가 점점 굵어가겟다  時代가前보다 닯으닛가 엇
0049_0032_b_05L지 當者의意見을 아니들어볼수야잇나 그래서 議論처럼 意見을 물어보앗더
0049_0032_b_06L니 웽결 千길萬길이나 데그려 그러니 나인들엇지하나 댕기리가 커-다
0049_0032_b_07L란것을려줄수도업고―――그거참!

0049_0032_b_08L (입맛을다시며)그러나 이런자리를 노치는것이 앗갑지아니한가 生覺해보게 財
0049_0032_b_09L產이 豊足해人物이豪傑男兒야  게다가 자네妹氏를 그와가치 思慕하겟다
0049_0032_b_10L무엇이걱정인가 이런자리야말로 에인들 엇어볼내야 엇어보겟나? 두말말고
0049_0032_b_11L어서决定하게 내가만일 그런누의만 잇섯더면 두무릅을코 바치겟네

0049_0032_b_12L昌植 (한숨을길게쉬이며)원 요새계집애덜은 집안어른들의말을 잘 들어먹어야지―――
0049_0032_b_13L되지도못한 것덜이 걸핏하면 무슨 獨立生活을 하는둥 自由結婚을하는둥 사
0049_0032_b_14L랑하는사람이 안이면 마음에 맛지안는다 別別 怪常망측한 소리를 다-하지
0049_0032_b_15L참코ㅅ마루가시여서―――

0049_0032_b_16L (同感인듯이)안인게아니라 요새 所謂 新女性이란것덜은 넘어도 테를해―――

0049_0032_b_17L昌植 우리松實이로 말하드래도 家勢關係로해서 學校에는 더 보낼수가업고해서 어듸참
0049_0032_b_18L다운곳으로 시집이나 보내줄가 햇더니 제가 平生所願인 俳優나되여 趣味잇난 일
0049_0032_b_19L이나하며 薄俸이나마 밧어 지내겟다고 하기에 말니다못하여 許諾을하엿더니 조
0049_0032_b_20L와라고 제은 熱心것 단이나보데만은 긋짓것은 질내해서 무엇하나 한달

0049_0033_a_01L설흔날 줄곳단여야 月給이라고 四五十圓밧어오니 그것으로 家計도아니되고
0049_0033_a_02L사람만못되여가니―――자네말대로 白氏에게로나가서 잘살엇스면 좀조켓나만
0049_0033_a_03L은 어듸 고계집애가 들어야지―――(무엇을생각하다가)참 자네이닛가 말일세
0049_0033_a_04L만은가만히 눈치를보닛가 劇塲의 舞臺監督으로잇는 李良善이란者가잇느니 아
0049_0033_a_05L마 그놈의子息과 무슨 內應이 잇는모양이야-

0049_0033_a_06L (異常한듯이)內應이라니?

0049_0033_a_07L昌植 흥 다시말하면 戀愛를하나보아

0049_0033_a_08L (작놀나며)아-니그래 그런것을알고도 자네는 가만히두나

0049_0033_a_09L昌植 가만두지안으면 엇지하나 그곳에서 데려내오기前에야  저희리 죽자사
0049_0033_a_10L자하니 아모리 兄이기로 그것을 엇지하나 죽이지도못하고………

0049_0033_a_11L 에이 못생긴사람 그게말인가? 절인가? 그래 그런줄을 알고도 가만히잇서 나
0049_0033_a_12L가트면 단박에 擧措를하겟네

0049_0033_a_13L昌植 그러케 할수도업고 그래서 그애가 이번일에 아마 反對를하는게야

0049_0033_a_14L 여보게 두말말고 結定하게 해―――자네가 承諾만하면―자네지금 삭을새집
0049_0033_a_15L에잇지? 기와집도 生길것이요  營業미천으로 數千圓이올것이요  자
0049_0033_a_16L네나지미―앗다 玉香이말이야………

0049_0033_a_17L昌植 (이玉香이말에 입이여진다)玉香이―――

0049_0033_a_18L 이런 玉香이라면 조와서 그래 玉香이도 여듸려서 가튼 사랑을 주고 밧고
0049_0033_a_19L할수가잇단말이다 그런데 왜 이런밧은밥상을 내차느냐말이야 내게 이런일이
0049_0033_a_20L생기면 단박에 小人네하고 달겨들겟네 그러니 한時밧비 承諾을하게 어서 응

0049_0033_b_01L昌植 그야 글세………

0049_0033_b_02L 글세고 갱미돈이고 그러케하게 이번일이 다-누의조코 妹夫조코하다는세
0049_0033_b_03L옴으로 자네는 그러케만되면 八字고치니조코  나는 親舊하나 八字고처
0049_0033_b_04L주니 조치안은가? 그러타고 나는 이일에 銅錢한푼 아니생기는일일세 나종에
0049_0033_b_05L일만잘되면 술은석잔 생길는지는모르지만―――

0049_0033_b_06L昌植 (입맛이 밧작당기는듯이)글세 자네말과가치되엿스면 잭히나조켓나만은―――고
0049_0033_b_07L계집애가―――에이 속상해―(火가나서 卷煙을 다시부처 다)

0049_0033_b_08L 여보게 昌植이 妹氏가 지금 집에잇나

0049_0033_b_09L昌植 (고개를흔들며)아니―――劇塲에서 아직 아니도라왓서

0049_0033_b_10L 아니 낫에도 劇塲에를가?

0049_0033_b_11L昌植 흥 오늘이 初日이라나―――카르멘인지 우멘인지를 한다는데 舞臺練習을 하
0049_0033_b_12L러가서 이때지 아니오네그려

0049_0033_b_13L 그럼 招待券이나 한 두어장 엇어주게그려 오래간만에 德分에 求景좀가게

0049_0033_b_14L昌植 실혀―――昌皮슬어워서 入塲券달라기도실혀

0049_0033_b_15L (빙그레웃으며)여보게 女俳優의오라버니로서 그만한 權利도업나―――(웃으며)그
0049_0033_b_16L것은 다-弄談이거니와 잇다가 자네妹氏가 도라오거든 잘 달내서  되도록
0049_0033_b_17L하게

0049_0033_b_18L昌植 글셰……

0049_0033_b_19L (조곰바트기 다가안지며)여보게 昌植이―――

0049_0033_b_20L昌植 (方을치여다보며)응

0049_0034_a_01L 자네 妓生잘녹이지? 이러케말하면 語弊가잇슬는 지몰으겟네만은 그 妓生녹
0049_0034_a_02L이는 그手段을써서 자네누의하나이야 못삶을것무엇잇나? 응

0049_0034_a_03L昌植 (빙긋이웃으며)에이 미친사람 사람을엇더케삶나? 호박인가

0049_0034_a_04L(두사람 同時에웃는다)

0049_0034_a_05L 南哲이도 기달일터이닛간 어서가보아야하겟네 그러니 잇다가 잘해가지고 그
0049_0034_a_06L사람이잇는 旅舘으로오게 萬一거기업거든 食道園으로 電話를걸고 오게 앗가
0049_0034_a_07L그사람이 오날저녁밥은 거기가서먹겟다고 햇스닛가 거기로가게되기도 쉬우닛가

0049_0034_a_08L昌植 그래보지 그런데 이 남어지술이나 마저먹고가게

0049_0034_a_09L 에-실혀 지금은 넘어취햇서 일만잘되거든 우리실컨먹세 자네가조와하는 玉
0049_0034_a_10L香아씨도불으고

0049_0034_a_11L昌植 (빙그레웃으며)에이 미친사람! 안방에서 어머니가 들으실이

0049_0034_a_12L (안房을向하여 짐짓 조곰큰소리로)將來며누리감인데 들으신들 相關잇나

0049_0034_a_13L昌植 (方의입을 손바닥으로 막으며)쉬-

0049_0034_a_14L (昌植의손을 이면서)쉬-는 왜 왕파리 구멍인가?

0049_0034_a_15L昌植 (方의게 帽子를씨여주며)그런弄談 작작하고 가려거든 얼는가보게 오래지안어
0049_0034_a_16L松實이도울터이니

0049_0034_a_17L (일어나 나오며)이것은 逐客이 자심해그려 엇재ㅅ든 일이나 잘맨드러가지고
0049_0034_a_18L오게그러 잇다가맛나세

0049_0034_a_19L(方漢永이退塲하며 昌植은 마루에서서 그뒤를 바라보며 무엇을 生覺하고섯다 그에 그의母親은
0049_0034_a_20L안房에서 나온다)

0049_0034_b_01L昌植 (혼자말로)그것이 대로 잘되엿스면 참 조켓다만은-

0049_0034_b_02L 그사람이 누구냐?

0049_0034_b_03L昌植 (뒤로도라스며)方漢永이란 사람이야요

0049_0034_b_04L 그런데 무슨이약이를 그러케하고갓늬?

0049_0034_b_05L昌植 차차할 술床이나치우서요(하며 마루헤 크리고안는다)

0049_0034_b_06L(어머니거는房으로들어간다)

0049_0034_b_07L (房안에서 酒煎子겅 여는소리나며)아이구! 술이 곳만히 남엇구나 이러케 남
0049_0034_b_08L을줄알엇더면 공연히 더사왓지(술床을가지고 나온다)

0049_0034_b_09L昌植 남엇스면 잇다가먹지요 그 술상을얼는 부억에 갓다두고오서서 내이약이나
0049_0034_b_10L들으서요

0049_0034_b_11L(어머니술상을가지고 북으로갓다)

0049_0034_b_12L昌植 (中門間을 한번바라다보고나서)松實이는 웨 이아니와―――

0049_0034_b_13L (부억에서나오며)글세다 오늘은 아침밥도 아니먹고가서 퍽 시장할터인데 왜
0049_0034_b_14L입대 아니올가? (올너와 안방미다지를 열어보고)아니-벌서 네시를 치러들어
0049_0034_b_15L가네!

0049_0034_b_16L昌植 어머니 게좀 안즈서요(어머니는 안房편에안는다)지금 왓다간 사람이 바로요-日
0049_0034_b_17L前에 나를 엇던 全羅道富者에게 紹介할여고 安定寺에 가치나갓던 方漢永이란 사
0049_0034_b_18L람인데 웨 어머니도 임이 말슴햇거니와 松實이 그婚姻말닭에 왓다갓담니다

0049_0034_b_19L 그래―――

0049_0034_b_20L昌植 (便히안지며)그래엇더케 할터이냐고 작고 졸르겟지요

0049_0035_a_01L 그래 너는 무엇이라고 對答을하엿늬?

0049_0035_a_02L昌植 무어라고 對答을해요! 이런일을 當者에게 아니물어볼수가 업서서 그애에게
0049_0035_a_03L물어보닛 가拒絶을하니 엇더케하겟느냐고 햇더니 그사람말이〔그게 다-무슨
0049_0035_a_04L소리냐고 그런일은 다-어른들이 하기에잇지〕하며〔가서기달일터이니 잇다
0049_0035_a_05L가와서 通知해달라〕하고 갓서요(잠간동안을여)그러니 온 이걸 엇더케하
0049_0035_a_06L면 조와요

0049_0035_a_07L 글셰 그이가 富者라닛가 자리는 더 고를것이업시 조켓다만은―――그러나 어듸
0049_0035_a_08L그애가 들어먹어야지………그와갓치 죽기를한하고 실타는것을 아모리 어른
0049_0035_a_09L이기로 엇지할수가잇늬? 그애가 日前에 그말을 들은뒤로는 도모지 朝夕
0049_0035_a_10L도 잘먹지안코 집안에들어오면 조곰도 웃는빗이업시 나날히 얼골만 못해
0049_0035_a_11L가니 그아니 걱정이냐

0049_0035_a_12L昌植 (卷煙을 붓처물고)어머니………그애가 웨 그러는줄아서요?

0049_0035_a_13L 몰으지 웨그러는지 아마 시집이 가기실혀 그러는것이지―――

0049_0035_a_14L昌植 (픽 웃으며)시집이 가기실혀서요? 제맘에 안맛는곳으로 가라닛가 그러지요
0049_0035_a_15L그 李良善이란놈에게로 못가게될터이닛가

0049_0035_a_16L (놀나며)그 李先生말이지?

0049_0035_a_17L昌植 그러치요 그애는 그 李哥놈에게 홈닥 반햇담니다

0049_0035_a_18L 반하다니―――어린것이 어느새 그런맘을 먹을리가잇니 아마 제 先生이닛가
0049_0035_a_19L좀 多情히 구는것이겟지………

0049_0035_a_20L昌植 (批笑)어린것이 어느새요? 그애가어려요? 흥속으로는 배포를하고 잇담니다

0049_0035_b_01L제가 그李哥놈에게로만 가보십시요 身勢가 무엇이되나 그놈이 지금 돈이잇
0049_0035_b_02L나요 집한間이잇나요 父母兄弟가잇나요 孑孑單身으로 엇더케 劇塲구석에서 비
0049_0035_b_03L러먹고잇는놈인데 아-그놈을 무엇에醉해서 知覺업는 미친년가트니 오라비가
0049_0035_b_04L제게 害롭게할가

0049_0035_b_05L (걱정스려히)아이고! 그런줄은 전혀몰낫구나 그래도 나는 제 先生이닛가 그
0049_0035_b_06L러케多情히구는줄만아럿지 그러닛간 제 속중은 판이로군? 그러나 몰랏
0049_0035_b_07L스면 이여니와 알고서야 엇더케 그가티 할수업는 사람에게로 보낸단말이냐

0049_0035_b_08L昌植 그러닛가 方漢永이말대로 白氏의집으로 들여보내잔말이지요 앗가도 그사람
0049_0035_b_09L이 말햇지만 그리로婚姻만하면 기와집도 하나 사주고 내營業민천으로 數千
0049_0035_b_10L圓을준다하니 그러케되면 우리집은 고만 거리는판이 안이야요 단지 무
0049_0035_b_11L엇한것은 白氏에게 本室이잇는것이나 아모려면 엇대요 요새세상에

0049_0035_b_12L (작놀내며)本室이잇서! 그러면 엇더케 보내겟늬 아모리 남의妾으로야 줄수
0049_0035_b_13L잇나

0049_0035_b_14L昌植 (조곰 목소리를 크게하며)무슨相關이잇서요 남의正室이든 副室이든 나만 잘
0049_0035_b_15L살엇스면 고만이지 남위해사나요 그 李哥놈에게 주는것보다야 아니 날가

0049_0035_b_16L 그러치만 남의耳目도 좀 보아야지

0049_0035_b_17L昌植 그 쓸대업는말슴 고만하서요 남의耳目보다가 나굴머죽게요 저만가서 아들
0049_0035_b_18L나코 잘살면 고만이지 그런 所用업는것은 다-가릴必要업서요

0049_0035_b_19L 그도그러킨하지만………

0049_0035_b_20L昌植 그러닛간 어머니도 그아시고 잇다가 松實이가 도라오거든 잘 달내보서요

0049_0036_a_01L萬一 정ㅣ듯지안으면 강제로라도 하고야 말겟서요

0049_0036_a_02L(이 大門여는소리가 직하고난다)

0049_0036_a_03L女聲 그래 걱정마서요

0049_0036_a_04L男聲 아모튼 나도 곳단여오지요

0049_0036_a_05L女聲 그래서요

0049_0036_a_06L (반가운듯이 中門間을내다보며)松實이냐-

0049_0036_a_07L女聲 (中門間에서 목소래만)네-

0049_0036_a_08L(구두소래나며 松實登塲)

0049_0036_a_09L (의오페라과 陽傘을밧으며)오작이나 시장하겟늬―――어서 무엇좀먹어야지

0049_0036_a_10L松實 (마루에 올라안지며)괜-치안어요 劇塲에서 冷麵을먹엇스닛

0049_0036_a_11L昌植 긋가짓冷麵이 배불으냐 무엇좀 먹으렴으나

0049_0036_a_12L松實 실혀요 먹고십지안어요

0049_0036_a_13L 그래도 어듸그러냐 오작 시장할라구! 어린것이 그놈의俳優질 해먹기에 골
0049_0036_a_14L아죽겟다

0049_0036_a_15L松實 골키는 무에골아요 저조와하는일인데

0049_0036_a_16L 저조와하는일이면 그런가? 이번에도  그런 거지복색하고 남한테 어더마
0049_0036_a_17L저 죽는것하늬?

0049_0036_a_18L 안-이―――

0049_0036_a_19L 밤낫 그게 무어야 숭업게 아직 시집도아니간 계집애가………툭하면 엇던놈하
0049_0036_a_20L고 붓터 별질알을 다-하다가 야종엔 藥을먹고죽는것이거나 그러치안으면

0049_0036_b_01L제손으로 子息을죽여발인 거지년이 巡檢한테 잡혀가는것이거나………모다 보
0049_0036_b_02L기에 지긋 지긋한것만―――

0049_0036_b_03L松實 그러면 엇대요 演劇인데!

0049_0036_b_04L 암만 演劇이라도 넘어 사위스럽지 에미눈엔 그런것이 아조 보기실터라 인
0049_0036_b_05L저 그진 놈에짓 그만둘道理를 하든지해야지………

0049_0036_b_06L松實 왜요 나는 生前 그것만 할걸! 내몸은아조 藝術에다 바친몸이야요

0049_0036_b_07L 무어? 커-다란계집애가 시집을안가고 平生 그것만해?

0049_0036_b_08L松實 나는 시집도안가요

0049_0036_b_09L 철업는소리 작작하고 시장한데 무엇이나 좀 먹어라 이거 어멈도 내를
0049_0036_b_10L가고업스니 온 누굴식혀 무얼 좀 사온담………

0049_0036_b_11L松實 실혀요 어멈도업다면서 무얼―――

0049_0036_b_12L昌植 앗다 실타는데 고만두시구려 저녁이나 일즉지여먹지………

0049_0036_b_13L (할수업는듯이)아모리나 그럼 그럴가

0049_0036_b_14L松實 (옵바의얼골을 치여다보며)옵바-오늘도 藥酒잡수섯구려

0049_0036_b_15L昌植 웨?

0049_0036_b_16L松實 얼골이 붉은수가

0049_0036_b_17L昌植 손님이와서 대접하느라고 좀먹엇다

0049_0036_b_18L松實 옵바-인제 藥酒잡숫지마서요 허구-한날 무엇하러 그러케잡수서요

0049_0036_b_19L昌植 (눈을바로고)걱정마러 나 술먹어서 안되는것 무엇잇늬………

0049_0036_b_20L松實 (조곰 샐죽하여지며)걱정이아니야요 그저 그러탄말이지요 (동안)

0049_0037_a_01L昌植 (音調를 좀 和順하게 고치며)松實아-

0049_0037_a_02L松實 (옵바의音聲이 별안간 和順하여짐을 異常히생각하고 옵바를겻눈으로보며)
0049_0037_a_03L녜-

0049_0037_a_04L昌植 이 오라비가 너를 글으게 指導하지는안켓지?

0049_0037_a_05L松實 ………………

0049_0037_a_06L昌植 달은것이안이라 요-日前에도 네게 말을하엿거니와 이제부터는 劇塲에도 가
0049_0037_a_07L지말고 白南哲氏에게로 시집을가거라 그러케하는것이 네게는 幸福이된다

0049_0037_a_08L松實 (그말을듯고 별안간 上氣가되며)幸福이요? 다-고만두서요

0049_0037_a_09L昌植 다-고만두다니?

0049_0037_a_10L松實 저는 이대로사는것아 幸福이야요 아닌幸福을 일부러 求하긴실혀요

0049_0037_a_11L 얘-야 그러지말고 오라비의말을좀 들어라

0049_0037_a_12L松實 (火를벌억내며)어머니마저 이러서요

0049_0037_a_13L 그런게아니라 앗가 方主事가 다녀갓는데 그이의말이 婚姻만하면 기와집도
0049_0037_a_14L사주고 네오라비 장사미천으로 여러千金을 준다고하드구나 에덕에 府院
0049_0037_a_15L君한다는 세음으로 네덕에 늙게 나도 호강좀 해보잣구나

0049_0037_a_16L松實 (아모말업시 어머니의얼골만 물럼이 바라다볼이다)………

0049_0037_a_17L昌植 그야 우리집은 何如햇던지 네가 白氏의집으로 시집을가야 너의八字가 幸福이 된
0049_0037_a_18L단말이다 다만 남의副室이되는것이 좀 무엇하지만은 요새世上에 相關잇늬 너만
0049_0037_a_19L가서 잘살엇스면 고만이지 演劇塲에다니며 俳優노릇하는것보다야 아니 날가―――

0049_0037_a_20L松實 웨요? 俳優가엇대서요? 남의妾노릇하는것에다 대요

0049_0037_b_01L昌植 (조곰 嚴格한語調로)그래 永永 못하겟단말이냐?

0049_0037_b_02L松實 녜 못하겟서요

0049_0037_b_03L昌植 (조곰머리를 松實의便으로 다그며)엇게서?

0049_0037_b_04L松實 ………(머리만숙이고잇다)

0049_0037_b_05L昌植 웨 대답을아니하니 무슨理由로실혀?

0049_0037_b_06L松實 (그대로 옷고름만 만지고잇다)………

0049_0037_b_07L (의억개를어루만지며)웨 말을못하니 오라비가 그러케뭇는데

0049_0037_b_08L松實 실혀요(울듯이)

0049_0037_b_09L昌植 (응덩이를들석하며)웨 실히냐 웨실혀 글세 웨실혀 갑갑하다 어서 말을좀
0049_0037_b_10L해보아라

0049_0037_b_11L松實 (마지못하야 니는音聲으로)저는 발서 定해노흔사람이 로잇서요 그러닛
0049_0037_b_12L가 다른데에는 못가겟서요

0049_0037_b_13L(母子 同時에 짐짓 놀란다)

0049_0037_b_14L 定해노타니 아이고 망측해라 編髮處女로 제맘대로定하는것은 다-무엇이야(혀
0049_0037_b_15L를차며)이얘 남이들을가무섭다 온 그게무슨소리냐 世上이末世가되닛가 별
0049_0037_b_16L소리를 다듯겟고나 그래 演劇塲에 당긴답시고 그위잣만햇구나

0049_0037_b_17L昌植 (怒氣를이며)그러면 定해노앗다는놈이 누구이냐?

0049_0037_b_18L松實 제가 사-사랑하는사람이야요

0049_0037_b_19L 이계집애가 살매가 들렷나

0049_0037_b_20L昌植 사랑하는사람? 그러면 네말대로 사랑하는 그사람의일홈이 무엇이냐

0049_0038_a_01L松實 李先生님이야요

0049_0038_a_02L 아-니 그舞臺監督말이지!

0049_0038_a_03L昌植 응-그李哥놈하고? 劇塲舞臺구석에서 밥비러먹는 그거지가된놈하고-그래 언
0049_0038_a_04L제부터

0049_0038_a_05L松實 웨 남더러 거지래서요 마음만하고 참된사람이면 고만이지 그의마음은
0049_0038_a_06L헌누덕이에싸힌거지가 안이람니다

0049_0038_a_07L昌植 잔말말고 내가뭇는대로 대답을해

0049_0038_a_08L松實 벌서부터야요

0049_0038_a_09L昌植 벌서면 언제란말이냐?

0049_0038_a_10L松實 昨年가을부터야요

0049_0038_a_11L昌植 그러면 누구의許諾으로―――

0049_0038_a_12L松實 許諾이 무슨許諾이야요 마음과마음이 合致하면 하는것이닛가 그의마음과 나
0049_0038_a_13L의마음이 許諾한것이지요

0049_0038_a_14L昌植 그러케 할수가잇슬가!?

0049_0038_a_15L松實 못할것이 무엇이야요

0049_0038_a_16L昌植 (참다못하야 주먹을들어 리려한다)에이 못된년………

0049_0038_a_17L (얼른아들의손을 붓잡으며)이애 이게무슨 상스러운짓이냐 어런것이잘못하면
0049_0038_a_18L말로일르지

0049_0038_a_19L昌植 (어머니를리치려하며)노으서요 이런년은 버릇을가라처야지요

0049_0038_a_20L (아달을밀치며)그래도 그러는구나

0049_0038_b_01L昌植 (마지못하여 주저안지며)이 고약한년가튼니 어머니를속이고 오라비를속이고
0049_0038_b_02L네마음대로 그러케하는것이 罪惡이안일가!?

0049_0038_b_03L松實 (冷情한태도로)罪惡? 罪惡이 무슨罪惡이야요 良心을속이지안코 참다운길을
0049_0038_b_04L밟어가는것이 罪惡일가요 옵바말슴대로 黃金의勢力으로 虛榮에니여 分數
0049_0038_b_05L밧게幸福을 억지로탐내는것은 罪惡이아니고………

0049_0038_b_06L昌植 네 아모리 그래도 아니된다 네가 고집을세면 나도 고집을세울터이닛가 네
0049_0038_b_07L가 네마음대로하면 나도 내마음대로할터이야

0049_0038_b_08L松實 옵바의自由대로 해보시지요 나는决心한것이 잇스닛가요

0049_0038_b_09L昌植 (冷笑하며)决心………장-한决心햇다 오늘부터는 劇塲에도가지말고 그李哥놈과 서
0049_0038_b_10L로 交際도어발여라 아마 앗가도 그놈이 바레다주엇겟지? 올적갈적 바래
0049_0038_b_11L다주기에 매우 親切한사람이라고햇더니 그陰凶한놈의속에 野心이잇서서그
0049_0038_b_12L랫다! 이놈의子息 오기만해보아라 다리를 분질러놀테니

0049_0038_b_13L松實 (울음석긴목소리로)웨 劇場에를 가지말어요? 웨 그이를너요 내가 平生을
0049_0038_b_14L두고할일이고 내몸을죽을지맛길 사랑하는사람을 무단히허발여요? 옵
0049_0038_b_15L바가 질기는술은 울지언정 나는나의 그두가지일은 못켓서요

0049_0038_b_16L 글세 웨울고이러니 집안이 騷亂하여지는구나 어미하나 나문것 말녀죽이려
0049_0038_b_17L고이러니 어서 울지말고 올아비에게 그리로 가겟다고 대답이나 해 그러
0049_0038_b_18L케되면 네八字도고만이지 무얼그래

0049_0038_b_19L松實 八字조흔것실혀요 나는 이러케 살다죽는것이 上八字요잇는生活이야요

0049_0038_b_20L昌植 네가 正히그러면 강제로라도 나는그여코그리로 보내고야말겟다

0049_0039_a_01L松實 (冷笑하며)강제를 當할년은 이世上에 생겨나지도안엇서요

0049_0039_a_02L昌植 무엇이 엇재―――

0049_0039_a_03L松實 (울음에북바처 하소연처럼)옵바는 웨 이어린몸이를 못살게구서요 그 凶
0049_0039_a_04L惡하고 컴컴한구렁텅이로 집어너치마서요 내가 이世上에생겨나 父母와오라
0049_0039_a_05L버니의사랑가운데에서 十八年동안이란 긴-歲月을 살아온것은 限업시 고마
0049_0039_a_06L웁지만 이번이일만은 服從할수가업스니 그것만은 容恕하여주서요(흙흙늣기
0049_0039_a_07L여운다)

0049_0039_a_08L(이情景을본어머니도 라울으며)

0049_0039_a_09L 이애 昌植아 어린것이 엇더케生覺을하고 이러는지는몰으겟다만은 죽기를한
0049_0039_a_10L하고 실타고하니 財物도重하지만 그사람에게 拒絶을해라 이것은송구해죽겟
0049_0039_a_11L구나

0049_0039_a_12L昌植 (핀잔주듯키)아니될말이야요 혹달은일가트면 몰으겟지만 이번일에는 도저히
0049_0039_a_13L저하는대로 내여발여둘수는업서요(松實이를치여다보며)女俳優의 오래비소리도듯
0049_0039_a_14L기실힌데 게다가 거지놈의妻男소리지들어 할수업다 나는그런 아니본다

0049_0039_a_15L松實 (울음을치며 冷情하게)보기실흐면 제가나가지요

0049_0039_a_16L 나가긴 어대를나가 계집아희가 그런쓸대업는소리말내도 그러는구나 온

0049_0039_a_17L昌植 (성이잔나서)한다할수록 점점 그우소리만하는구나 네가 나가긴 어대로
0049_0039_a_18L나가 그러케 네맘대로―――

0049_0039_a_19L松實 (다시울며)그럼 웨 이어린 몸동이를 못살게구서요 옵바는 애처러운마음도
0049_0039_a_20L안이나서요 그몹쓸 不良者 方가놈의 임에저서 어린누의를 팔녀고 하서요

0049_0039_b_01L露西亞의 엇던늙은술장사는 사람의고기로 料理를 맨들어판다더니 옵바는 이
0049_0039_b_02L어린누의의 殘弱한고기ㅅ덩어리가 안이면 술갑이업서요? (운다)

0049_0039_b_03L昌植 (참고듯다못하여 벌덕이러나 누의를발ㅅ길로차며)에- 이고약한년 을아비
0049_0039_b_04L더러 너를팔아먹는다고 나는 너를 어듸지 잘되도록 引導를하는데

0049_0039_b_05L (업흐러진을 어루만지며)아가 우지말아 글셰 이게무슨짓들이냐(아들을치
0049_0039_b_06L여다보며)글세 洞里가 남붓그럽구나 리기는 왜하니 이弱한 몸이에다
0049_0039_b_07L어듸 손댈대가잇다고

0049_0039_b_08L昌植 (건너방에들어가 두루막을입고 帽子를여쓰고나오며)ㅅ작말고 집에잇서………

0049_0039_b_09L(댓돌에나려스며 구두를신는다 松實은업드러진채로 늣겨운다)

0049_0039_b_10L 어듸가늬?

0049_0039_b_11L昌植 남하고 약조를햇스닛간 가보아야지요 오늘은 그여코 歸定을내고야 말터이
0049_0039_b_12L야요 그사람들을 데리고올테니 松實이 아모데도못나가게하서요

0049_0039_b_13L 歸定을 엇더케짓늬?

0049_0039_b_14L昌植 데리고와서 定婚을 아조해놀터이야요

0049_0039_b_15L(昌植退場한다)

0049_0039_b_16L (松實이를 이리켜안치고 치마자락으로 눈물을씻어주며 위로한다)이애글세
0049_0039_b_17L올아비말을들엇스면 이러치안치 이게무슨모양이냐 어서 세수하고 새옷이나
0049_0039_b_18L가라입어라 나는 저녁을질테니………좀시장하겟늬 그러고 조곰잇스면 오라비
0049_0039_b_19L가 그사람들을데리고 올텐데 이 울든얼골을 보여서야 쓰겟너냐(부억으로
0049_0039_b_20L나려간다)

0049_0040_a_01L松實 (말업시 주책업는어머니의擧動만 바라볼이다)

0049_0040_a_02L(어머니는 부억에가서 솟을가신다)

0049_0040_a_03L(松實이는 멸거니안저잇다가 눈물을씻고 살그머니일어나 안房으로 들어가서 잉크 鐵筆 便箋紙
0049_0040_a_04L封套를가지고나와 무엇을쓰고잇다)

0049_0040_a_05L (함지박을가지고 쌀을가질러 마루위로올러오다가 의쓰는것을 물럼이나려
0049_0040_a_06L다보더니)그게 무엇이냐 어듸 便紙하늬?

0049_0040_a_07L松實 (작놀라며)네-동무에게해요

0049_0040_a_08L (異常한表情으로)웨 울며쓰늬 그조희에 눈물방울 러지는것보아라

0049_0040_a_09L松實 (壓紙로 눈물방울을 누르며)어머니는 어서밥이나 지으서요

0049_0040_a_10L (쌀을가지고가며)오냐 밥을지을게 너는어서 漱洗나해라(부억으로 날여간
0049_0040_a_11L다)

0049_0040_a_12L松實 (松實은 무엇인지 簡單히두장을써서 한장은 작은色封套에느어 皮封을써서
0049_0040_a_13L다른한장과 同封하여 그것에도 皮封을써서 마루바닥에 사람이얼는볼만한位
0049_0040_a_14L置에 노아두고 살그머니나려와 신을소리업시 신으며 연방 부억을 흘금흘
0049_0040_a_15L금바라본다 신을 다신ㅅ고나서 기둥을안고 소리업시울다가 무엇을 결심한
0049_0040_a_16L듯이문을향하고나가다가 다시발을멈추고 부억을 향해눈물을지운다)

0049_0040_a_17L(松實退塲)

0049_0040_a_18L 온 어멈은 잇대아니오니 손님은온다는데 이늙은게 혼자엇더케하노

0049_0040_a_19L(부억에서 물푸는소리 불타는소리 도마질소리)

0049_0040_a_20L(李良善登塲)

0049_0040_a_21L (中門안에서은근한소리로)송실씨(小間)송실씨―오늘은 점일즉가서야함니다 

0049_0040_b_01L(小間)송실씨송실씨어듸 가섯슴니가(小間)방에서자나―――마루압지 와서 房
0049_0040_b_02L을기웃이드려다보더니 방에 두업는데

0049_0040_b_03L 송실아―――

0049_0040_b_04L (녀청으로)녜―――

0049_0040_b_05L 그 찬ㅅ장에잇는 기름병하구 달결(鷄卵)셰개만 내오너라

0049_0040_b_06L(여청으로)닭이아직 알을안낫셰요

0049_0040_b_07L 亡할계집애 그것이 무슨소리야 얼는가저오너라 손님은 온다는데 술안주ㅅ
0049_0040_b_08L감이 무어잇서야지 온 손이술을먹는지는 몰라두

0049_0040_b_09L(停 電)

0049_0040_b_10L 으응 電氣ㅅ불이 왜질가

0049_0040_b_11L 송실아―――이게 무슨장난이야 얼는불켜라

0049_0040_b_12L 내가 안세요(역시여청으로)

0049_0040_b_13L 그럼 이게누구짓이야(부억에서나오며)은 눈은 갓어둔데 연기는내워서
0049_0040_b_14L눈물이 다나네

0049_0040_b_15L 나도 눈물이나요(역시여청)

0049_0040_b_16L 그게 누구요―

0049_0040_b_17L 송실이예요(여청으로 하다가)아하하………그런데 송실이 어대갓서요

0049_0040_b_18L (쓸쓸한 대답)으-ㅇ 李先生이유

0049_0040_b_19L 오늘은 初日이라 좀일즉가야 것는데

0049_0040_b_20L 오늘은 걔가 극장에안가요

0049_0041_a_01L 왜요

0049_0041_a_02L 집안에 일이좀 잇서서(혼자말로) 그런데 이애가 금방 잇섯는데 어듸를 갓
0049_0041_a_03L슬가(크게)방에잇니―――방에도업나분데 뒤간에를갓나 아니 올치 참 편지붓
0049_0041_a_04L치러간게로군

0049_0041_a_05L(昌植、白、方登塲)

0049_0041_a_06L昌植 자 이리들어오십시요 집이좀 좁아서 사랑도업고 미안한일이 만슴니다
0049_0041_a_07L白 온 천만의말슴을 다하십니다

0049_0041_a_08L昌植 어머니 집안의 불은왜 죄다노앗소

0049_0041_a_09L 이사람 밧게두 모다 停電이아니든가

0049_0041_a_10L昌植 올치참 그러면 초ㅅ불이라도 점켜노시우 어머니………

0049_0041_a_11L 그 안방영창틀우에잇는데 나는눈이어두어서………

0049_0041_a_12L 그럼 내 들어가지

0049_0041_a_13L昌植 아니 이분은 누구야-

0049_0041_a_14L 나요

0049_0041_a_15L 李先生이 시방이러케와 안젓단다

0049_0041_a_16L昌植 오날은 송실이가 좀 일이잇스니 먼첨가시우

0049_0041_a_17L 초가 반동강밧게업는데

0049_0041_a_18L 앗다 아모거나 얼는켜시구려 위선켜노코 야종에  사오더라도

0049_0041_a_19L(불을켠다)

0049_0041_a_20L昌植 (李를보고)어서가요 (白을보고)이리올너안즈십시요

0049_0041_b_01L 여보!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연극하는사람이 연극하는일보다 더급한일이
0049_0041_b_02L잇드란말이요  송실이는 자긔맛흔것을 내버리고 달어날 그런 책임업는
0049_0041_b_03L배우는 안이닛가!

0049_0041_b_04L昌植 듯기실여 안보낸다는데도 공연이추군추군 성가시러웁게 참 별다보겟군!
0049_0041_b_05L 여보 내 돈여줄 그머리나 좀 고오 리발소가 모다사철 열일헤ㅅ날
0049_0041_b_06L을맛낫나 정말 돈이업서그러나

0049_0041_b_07L 그것도 멋이라는걸!

0049_0041_b_08L昌植 멋▣ 장이가물어가다 놋친건아니구

0049_0041_b_09L 얘 애편쟁이가 그래구 댕기더라

0049_0041_b_10L昌植 흥 저게 그래도 무대감독 왜 투천의 녈監督이엇더냐

0049_0041_b_11L 참불상한것들 잘두논다

0049_0041_b_12L 머-이자식!

0049_0041_b_13L昌植 응 감안이좀잇게 무어 어머님과 오라버님전(冊床의편지封套를 지버는다)

0049_0041_b_14L 뭣? 앗가 동무한테 편지한다구 하더니………무어라썻니 어서점 보아라

0049_0041_b_15L昌植 (무엇을 豫想하고 일부러마음을 진정하는듯)어머님 오라버님두분(小間)저는
0049_0041_b_16L이세상에서 도저히 살수가업슴으로 할수업시 두분의 슬하를나 자유스러운
0049_0041_b_17L나라를 차저감니다 마지막나는 이길에 눈물인지 슬품인지 흐로엿줍는것은
0049_0041_b_18L리선생님을 원망치마시고 동봉하온것을 전해주옵소서 먼길을 나는 송실은

0049_0041_b_19L (펄석주저안지며)얘 이게 엇전일이냐

0049_0041_b_20L昌植 여보게 일은 급하게되엿는데 漢永인 조 李哥놈을 작도못하게 좀 붓들고안

0049_0042_a_01L젓게 나는 곳뒤를 차나가 보아야할것이니가

0049_0042_a_02L 여보시우 나도이런 편이안저 잇슬수가업스니 다ㅣ가치 각방면으로 활동
0049_0042_a_03L을해봅시다

0049_0042_a_04L 암 그러치 나는 여긔안젓서도 이놈을붓들고 잇는것이 큰일이닛가

0049_0042_a_05L 자-시간이 너머 가면 아니됨니다 내 이압헤나가 전화로 자동차세대만 불
0049_0042_a_06L너올것이니 다각각 차저나가봅시다 각방면으로

0049_0042_a_07L 탈사람도 업는빈자동차가 어되로활동을 한단말이요 두대만하면넉넉하지 나
0049_0042_a_08L는이놈을직히고 안젓스닛가

0049_0042_a_09L 앗다그럼 그녀석도 다갓치車에 실어가지고 댕깁시다그려

0049_0042_a_10L 나도 가자 온 이게 무쓸變이냐

0049_0042_a_11L 로인이 어대를가심닛가

0049_0042_a_12L(電車監督、乘塲員、巡査等登塲)

0049_0042_a_13L 이집이 극장녀배우집임닛가

0049_0042_a_14L昌植 그렷슴니다 왜 무슨일이………

0049_0042_a_15L 시방막 電車事故가잇서서

0049_0042_a_16L昌植 母 李 뭐요

0049_0042_a_17L 녜- 들으시면 매우놀라시겟지요마는 금방 차에치여서 죽엇슴니다

0049_0042_b_01L昌植 뭐요?

0049_0042_b_02L 아이고더니(운다)

0049_0042_b_03L(둘이同時에)

0049_0042_b_04L 안-이올시다 시방은 이럴가 아니라 사람은 이왕죽엇스니 그것이 설
0049_0042_b_05L기도 하겟지만 시방은 그 죽엄이 자살이냐 과실치사냐 그것이 문제임니다
0049_0042_b_06L여긔 그차를 운전하든 운전수도 왓슴니다

0049_0042_b_07L 무어! 이놈아 사람을막(주먹을쥐고監督에게로덤븬다)

0049_0042_b_08L 아니올시다 이러실것이아님니다 警官서 그럼 분명히 조사를좀해보십시요 
0049_0042_b_09L그 죽은방법이 암만보아도 자살의혐의가 만어

0049_0042_b_10L 댁은성명이 뉘슈

0049_0042_b_11L昌植 최창식이올시다

0049_0042_b_12L 밧갓문패가 당신의문패로구려 직업은?

0049_0042_b_13L昌植 아직무직임니다

0049_0042_b_14L 댁이호주요?

0049_0042_b_15L昌植 녜―――

0049_0042_b_16L 죽은자와 관계는

0049_0042_b_17L昌植 내동생임니다

0049_0042_b_18L 당신은?

0049_0042_b_19L 方漢永임니다

0049_0042_b_20L 직업은 무엇이요?

0049_0042_b_21L 그저하로쉬고 하로놀구하며 그저그러케삼니다

0049_0043_a_01L 그럼 松實氏는 안이 그죽은屍軆는 어듸잇서 응 어듸(엇절줄을몰라 門으로
0049_0043_a_02L나가랴한다)

0049_0043_a_03L (李를보고)여보 당신은?

0049_0043_a_04L (못들은듯이)이게다-무슨짓이냐

0049_0043_a_05L 적이는 무대감독이랍니다

0049_0043_a_06L 무대감독이라니 그게 무엇이란말이요

0049_0043_a_07L 무대감독이란말이야 하하하………여보 이친구 아하하-그러나 내말슴좀 들어보
0049_0043_a_08L아요 나는연극을보앗소 에-이 천하에 죽일놈들 사람 사랑 죄 이놈의 세
0049_0043_a_09L상일은 그에 이러케 이나고 말엇구나(미친다)

0049_0043_a_10L 이놈이 매첫나! 이놈아(귀를 붓친다)

0049_0043_a_11L 안-이 이럴것이아님니다 시방이

0049_0043_a_12L 밋첫나?시방이?이놈들아 남의일에 긴치안케 잔소리만말어라 아(노래처럼)『가
0049_0043_a_13L엽시도 우는새 일홈은 사랑 하염업시 사랑새 구슬피우네 울려하나 울려하나 울
0049_0043_a_14L수업서라 애처러워 애처러워 사랑에우는새』하하하………그러나 이것은 무엇이야 
0049_0043_a_15L올치 시방 송실이가 칼멘연극을한다 칼멘이 죽을야고 오늘밤에는 죽으랴고………

0049_0043_a_16L 이거 엇더커나

0049_0043_a_17L 멀 엇더캐 아하하………

0049_0043_a_18L 아모튼 위선 이事件의 원인과범인이나 어서조사해보지요 그럼이밋친놈을좀

0049_0043_a_19L 犯人? 그러치 어서 조사해봐라 그러나 그것은 매우 쉬운일이지 올타 나
0049_0043_a_20L는 연극을보앗다 佛蘭西詩人메르메가 집시의사랑을 그리여볼적에 엇더한

0049_0043_b_01L을 엇섯드냐 여보시요 푸른잔듸밧 고흔보금자리에다 한마리종달새는 어엿
0049_0043_b_02L분알을 나어노앗다 할머니는 달결을가저오라고? 아니 심술구진산양ㅅ군은 종
0049_0043_b_03L달새의그알을 술안주ㅅ감으로 구어먹겟다는말이야 어엽분동무 노구지리가 그
0049_0043_b_04L알을 감추어주려 애를쓸에 날개가 구나 목구멍이 메는고나 모진바람
0049_0043_b_05L을 무릅쓰고 허공중천으로 훨훨날러가든 어엽븐종달새는 고만 산양의 살
0049_0043_b_06L에 인넉시되여 번개ㅅ불이번 술안주ㅅ감으로 구어먹엇다 동、호제야
0049_0043_b_07L그래도 네가 칼멘을 죽이지안엇다고 바등바등 발만하겟느냐 하하하………얼
0049_0043_b_08L마나 웃어운일일가 송실씨-당신도 그것을 보앗소? 그래 그것을 보고우섯소?
0049_0043_b_09L안이 송실이가 종달새가 눈물겨운 쓸쓸한우슴을 우스며 그만 그 연극을
0049_0043_b_10L하얏지 연극의 무대감독은 연극의주인공은 큰소리를위여처 이러케 불으짓는
0049_0043_b_11L다 시들푼人生을 冷笑하는者여! 너희는을싸리라 하하하………아니 그러나송
0049_0043_b_12L실아 불상한 종달새야 가엽슨목숨아 갓느냐? 갓느냐! ……幕……

0049_0044_a_01L佛敎彙報(附錄)

0049_0044_a_02L日本佛敎視察記

0049_0044_a_03L綺山 林錫珍

0049_0044_a_04L一、動機

0049_0044_a_05L
 우리는朝鮮사람입니다。朝鮮사람은새로改造하고
0049_0044_a_06L建設할일이만케되얏슴은言을不俟할事實입니다。就
0049_0044_a_07L中우리의朝鮮僧侶로서는李朝의被壓階級中에잇든特
0049_0044_a_08L殊한一數입니다。함으로三國時代의燦爛한佛敎의文
0049_0044_a_09L化와高麗의그것이餘地업는蹂躙을當케되얏습니다。
0049_0044_a_10L따라우리數爻가줄어지고人材가줄어지고威儀가解弛
0049_0044_a_11L해지고知識이薄弱해진結果、自然威信까지墮落케되
0049_0044_a_12L얏습니다。할사록더욱남의蔑視를받게되고스스로挫
0049_0044_a_13L縮을짓게되야漸漸有耶、無耶의劣等한社會를일우게
0049_0044_a_14L되얏습니다。함으로近世에至하얀新出家의資格까지
0049_0044_a_15L가 거의寒微한門閥의出身이만케되얏습니다。따라
0049_0044_a_16L志操가高尙치못하고氣魄이勇敢치못하야遊食이多하
0049_0044_a_17L고厭世가甚하얏슴으로以上不振한만콤萬般이退步케
0049_0044_a_18L되고寺門이蕭凉케되야實로其亡其亡한碩果不食의危
0049_0044_a_19L境에處케되얏슴은隱匿치못할事實입니다。

0049_0044_a_20L 하다가凛冬을보내고 東風을맛는春堤의模樣으로
0049_0044_a_21L우리는문듯이가튼束縛을벗고 自由를얻는一遇의機
0049_0044_a_22L를얻게되얏습니다。한즉跼天蹐地하던 우리朝鮮僧侶
0049_0044_a_23L의處地로서는 아모리數爻가적고微弱하다할지라도
0049_0044_a_24L이러한好機를蹉逸하아서는아니되게쯤되얏습니다。

0049_0044_b_01L함으로全鮮僧侶는이에大志를决하고大願을誓하야모
0049_0044_b_02L든方面으로活動을開始하야百度의更張에武腕을試運
0049_0044_b_03L케되얏습니다。하나以上에말함과가치긴刼波를격그
0049_0044_b_04L면서가진慘敗를備悉한동안 物質界로精神界로忘殺
0049_0044_b_05L하고毀損된者ㅣ率多함으로改造하고建設함에別個의
0049_0044_b_06L完全한그것을叅考치아니치못하게되얏습니다。한데
0049_0044_b_07L現代의佛敎로世界的代表가될만한日本佛敎에向하야
0049_0044_b_08L此를求치아니치못하게되얏스니此는即古代支那의僧
0049_0044_b_09L侶가印度를徃來치아니하면그價値가업섯고三國과麗
0049_0044_b_10L代의僧侶가支那를徃來치아니하면그行世가難하얏슴
0049_0044_b_11L과갓게되얏습니다。함으로去大正六年度에는三十本
0049_0044_b_12L山住持中、有志幾員이朝鮮僧侶로서의第一囘日本佛
0049_0044_b_13L敎視察團을組織하야日本各地의佛敎狀况을視察한事
0049_0044_b_14L가잇섯스나時期의尙早와經濟의關係로何等의特殊한
0049_0044_b_15L效果를示치못하게되얏습니다。함으로去一月即新年
0049_0044_b_16L祝賀時에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의主催로다시
0049_0044_b_17L三十一本山의本末寺間、住持、非住持中、有志諸員
0049_0044_b_18L을網羅하야第二回의日本佛敎視察團을組織케됨과同
0049_0044_b_19L時에現學務局長을비롯하야宗敎課長、同社寺係主任
0049_0044_b_20L外諸位의甚深한援護를얻게되얏습니다。한데今番視
0049_0044_b_21L察團의本旨는以上에累言함과가치即日本의名所와寺
0049_0044_b_22L院만을玩景하기때문이아니라 모든叅考材料를蒐集
0049_0044_b_23L하야어떠케하얏스면朝鮮佛敎를改造하고建設하야世
0049_0044_b_24L界的으로光揚케하며朝鮮僧侶를向上시키고紹介하야
0049_0044_b_25L世界的으로活躍케할가함에一助가되도록努力함에잇
0049_0044_b_26L습니다。함으로우리의動機는그意味가深長하고우리
0049_0044_b_27L의使命은그範圍가廣大케되얏습니다。하나우리의今
0049_0044_b_28L番行으로말미암아果然이러틋遠大한目的을達成할가
0049_0044_b_29L가疑問입니다。하나우리의志願은반드시이가튼動機
0049_0044_b_30L에符合한目的을達成하기에章를刻하고念을專하야東
0049_0044_b_31L行의初步를擧하려하는바입니다。

0049_0044_b_32L二、凖備會

0049_0044_b_33L
 三月二十二日 晴 各地方에散在한우리의團員一
0049_0044_b_34L同은先般敎務院에서 發한通知書에依하야二十三日
0049_0044_b_35L에京城으로부터出發할량으로去十七日을期하야京城
0049_0044_b_36L에會集한바團員으로서敎務院의評議員責任을가진이
0049_0044_b_37L는今般開催된定期評議員會에出席까지를兼行케되얏
0049_0044_b_38L습니다한데 우리는그風土가다르고習俗이다른遠邦
0049_0044_b_39L에가서不知、不識中、不意의嗤笑를사게될일이或有

0049_0045_a_01L할가하야行ㆍ住ㆍ坐ㆍ臥ㆍ語ㆍ默ㆍ動ㆍ靜의모든節次에關
0049_0045_a_02L한一切規模를商論評定코저敎務院의二階에서團員一
0049_0045_a_03L同이會集하야準備會를開催하니團員의氏名은下와如
0049_0045_a_04L합니다。白羊寺前住持宋宗憲、海印寺住持白景霞、
0049_0045_a_05L乾鳳寺住持李大蓮、釋王寺住持張河應、法住寺住持
0049_0045_a_06L柳護庵、桐華寺住持黃普應、華嚴寺住持河龍華、寶
0049_0045_a_07L石寺住持李海筌、金龍寺住持崔仁澤、歸州寺住持柳
0049_0045_a_08L寶庵、通度寺監事黃耕雲、梵魚寺監事吳梨山、楡岾
0049_0045_a_09L寺監務鄭大庵、仙巖寺監務崔鍾山、奉恩寺監務姜性
0049_0045_a_10L仁、龍珠寺監務李震海、孤雲寺監事李壯祐、奉先寺
0049_0045_a_11L監務玄祥奎、中央敎務院事務員金法龍宗敎課社寺係
0049_0045_a_12L主任出口勇吉、同囑託洪錫謨及本記者(松廣寺監務)
0049_0045_a_13L合二十二人。먼저一切行爲에對한論題를上程한바大
0049_0045_a_14L槪-우리의團員中、留學生의出身으로서曾前의經驗
0049_0045_a_15L이만히잇는幾位의指導를愼遵한外에各自의機律을敏
0049_0045_a_16L用하기로하고次에는佛前叅拜에다맛三頂禮를奉行하
0049_0045_a_17L기로하고次에는視察中、巡務責任을履行케하기爲하
0049_0045_a_18L야臨時役割을定하니任別及氏名은下와如합니다。團
0049_0045_a_19L首宋宗憲、執禮李大蓮、世話李海筌、崔鍾山、警護
0049_0045_a_20L吳梨山、通譯金法龍、宣傳幷記錄姜性仁、李震海、
0049_0045_a_21L金法龍、林綺山。한데特히當局으로부터社寺係主任
0049_0045_a_22L出口勇吉氏를導員으로命派하고洪錫謨氏를官費團員
0049_0045_a_23L으로叅加케하얏는대 氏의말을드르면 비록日本視
0049_0045_a_24L察의內命이數年前부터잇섯스나 맛당한機會를얻지
0049_0045_a_25L못하야今次의團行을利用함이라합니다。次에敎務院
0049_0045_a_26L서朝鮮佛敎宣傳書類로豫備하야두엇던書物을發布하
0049_0045_a_27L니 그著者及書名은下와如합니다。西山祖師著三家
0049_0045_a_28L龜鑑、退耕先生著朝鮮佛敎一覽表、包光先生著朝鮮
0049_0045_a_29L佛敎各宗沿革圖、우리는西林에걸린落照의붉은光線
0049_0045_a_30L을讃歎하면서우와가튼事項을論决하야거의다마치여
0049_0045_a_31L갈즈음에學務局長李軫鎬氏와宗敎課長俞萬兼氏는自
0049_0045_a_32L働車를命乘하고 우리의會席에光臨합니다。

0049_0045_a_33L 이윽고局長으로부터우리의一同을對하야 첫재今
0049_0045_a_34L番議會의議决成績이良好함을譽賛하고둘재今番視察
0049_0045_a_35L의結果多數한叅考를齎來하야 朝鮮佛敎의發展上、
0049_0045_a_36L莫大한恩益이잇게하기를深切히希望한다는旨의訓辭
0049_0045_a_37L를마친後自邸로歸駕하니時는正히家家의星燈이輝煌
0049_0045_a_38L한光明을點照케始作할때입니다。우리는이로부터明
0049_0045_a_39L朝七時頃에京城驛二等待合室로會集하기를約束하고
0049_0045_a_40L제각기二十餘日동안窘塞업시需用할만한旅裝을治東

0049_0045_b_01L키爲하야匇匇한마음으로各自의宿舍를찻게되얏습니
0049_0045_b_02L다。

0049_0045_b_03L三、京城에서釜山까지

0049_0045_b_04L
 二十三日 晴 나는어제의約束을굿게직히여上午
0049_0045_b_05L六時頃에起床하야未備한行裝을단속하야가지고同三
0049_0045_b_06L十分즘되야旅窓을떠나서燈影을밟고烟塵을허치면서
0049_0045_b_07L霧海中으로부터急航하야오는京城驛前行이란電車를
0049_0045_b_08L搭乘하고同驛前에下車하야豫定한塲所에다다르니마
0049_0045_b_09L치부텨님아니모신大伽藍에投入한感懷가솟아남니다
0049_0045_b_10L就中宗敎課長을비롯하야 龍珠寺住持姜大蓮、奉恩
0049_0045_b_11L寺住持羅晴湖、開運寺講伯朴映湖、佛敎主幹權退耕
0049_0045_b_12L外在京同侶朴大輪等諸氏와今番議會에出席코저上京
0049_0045_b_13L하얏던各地方의評議員諸氏(歸鄕兼)와在京佛敎留學
0049_0045_b_14L生諸君等五十餘位의出餞이잇섯슴은 다만우리를爲
0049_0045_b_15L하고禮儀를飾함이라함보다 차라리佛敎의威勢를도
0049_0045_b_16L옵고團員의使命을무겁게함이라함이妥當하겟습니다
0049_0045_b_17L小焉에出口氏의案內로改札口를들어釜山行의 二等
0049_0045_b_18L車에몸을던지니발서二等乘客들이우리보다 몬저올
0049_0045_b_19L낫슴을말미암아座席이매오複雜케되얏습니다。함으
0049_0045_b_20L로우리는밧분마음으로爲先가방等物만을安頓하야두
0049_0045_b_21L고 이곳저곳秩序업시 서잇는동안에어느듯發車의
0049_0045_b_22L正刻인七時半이되야發車를命促하는電鈴이報鳴케되
0049_0045_b_23L얏습니다。이에보내는主人側과떠나는賓客側이모다
0049_0045_b_24L訣別의霎刻을緊惜하야『그간잘게시오!』『그간잘단
0049_0045_b_25L여오오!』하는人事말슴을交換할판에汽車는발서汽
0049_0045_b_26L笛一聲을의치면서北漢、三角、木覔等모든山岳을등
0049_0045_b_27L지기始作함니다。우리는차챠멀어가는車窓만을바라
0049_0045_b_28L보는諸位의面影을窓밧그로내다보면서「어서가오!」
0049_0045_b_29L「感謝하오!」를불으즈젓습니다。汽車는문듯龍山을
0049_0045_b_30L지나汽笛을울리면서그지박한큰몸을漢江鐵橋에안김
0049_0045_b_31L으로轉輪의聲調가激高하야吾人의耳膜을震動함은勿
0049_0045_b_32L論、水國의龍宮까지를驚動할念慮가不無함니다。漢
0049_0045_b_33L江의汀堤를俯瞰하매아즈랑이가아른거리고 아침놀
0049_0045_b_34L이가득한사이에亂飛하려는柳絮의暗粉과和坼하려는
0049_0045_b_35L櫻花의保甲、黃色을자랑하는迎春花、綠氈을자랑하
0049_0045_b_36L는잔듸밧들은 모도다平和스려운春國의消息을우리
0049_0045_b_37L의眼前에말업시알려줌이다。이밧게보리밧치푸르러
0049_0045_b_38L나고 나무ㅅ끗이붉어짐도또한그러합니다。눈에드
0049_0045_b_39L러오는것、낫헤붓으치는것、어느것이봄긔운아닌것

0049_0046_a_01L업시 모든것그대로가윈통봄긔운닙니다。하나 나
0049_0046_a_02L는이가튼春和의慰安을보면서文化의國을向함에도不
0049_0046_a_03L拘하고不覺에背汗이鬆然함을禁치못하게되얏습니다
0049_0046_a_04L이는곳高麗佛敎의全盛을極하든京畿地方을背恝하고
0049_0046_a_05L이번길을떠남으로섬니다。이러한懷古가나의胷海에
0049_0046_a_06L徃來할즈음에문듯夢幻世界의刼外春에서無事한閑道
0049_0046_a_07L人을짓게되얏습니다。汽車는그동안쉬일새업시南으
0049_0046_a_08L로南으로疾走한바람에발서水原、成歡、天安等地를
0049_0046_a_09L지나太田驛을다달으매변또장사의「太田이요변또-」
0049_0046_a_10L하고高聲으로喧唱하는소리가閑道人의耳膜을震盪케
0049_0046_a_11L되얏습니다。나는이로부터다시刼內의囂世人이됨과
0049_0046_a_12L同時에第二次의背汗을禁치못하게되얏습니다。이곳
0049_0046_a_13L은곳日本佛敎를傳授하든聖明王의百濟古都가咫尺의
0049_0046_a_14L사이에잇슴일새임니다。當驛을떠나山峽을뚤고한참
0049_0046_a_15L동안을疾走하다가若木、倭舘의兩驛사이에서元來―
0049_0046_a_16L印象이깁든洛東江의腰部格인一部를가로근너게되얏
0049_0046_a_17L스니 이것이即나와洛東江과의사이에初對面임을늣
0049_0046_a_18L김과同時에깃붐을익이지못하얏습니다。나는이에이
0049_0046_a_19L러케讚歎하얏습니다。아! 그대가源을太白山에發하
0049_0046_a_20L야終을金海의南端인朝鮮海峽에告한者인가 아! 그
0049_0046_a_21L대가延長七百里를가지고서五大江의一에叅與하고十
0049_0046_a_22L大江의一에並列한者인가、아! 그대가舟楫의利를줌
0049_0046_a_23L으론半島諸江中의第一位를占하얏스며灌漑의利를줌
0049_0046_a_24L도또한極大한者인가 하얏습니다。다시두어停車塲
0049_0046_a_25L을지내니문듯一個의曠野가展開되기始作함니다。이
0049_0046_a_26L에異常한생각을익이지못하야녑헤안즌海筌和尙께附
0049_0046_a_27L近의地理를물어본즉이것이即大邱벌판의初入이라합
0049_0046_a_28L니다。나는이로부터第三次의背汗을禁치못하게되얏
0049_0046_a_29L습니다。이곳은곳新羅佛敎의搖籃地인慶州古都가不
0049_0046_a_30L遠할새임니다。다시當驛을떠나漸次로沃野가만하짐
0049_0046_a_31L과麥色이도타와짐을感歎하면서 몃時間을가노라니
0049_0046_a_32L「이것이密陽邑이요」「저것이洛東江이요」하고指點
0049_0046_a_33L들을함니다。이곳은即泗溟和尙의胎生地로서나의오
0049_0046_a_34L랜동안欽仰하든곳이라 이機會에瞻禮나잠깐드릴양
0049_0046_a_35L으로窓밧글내다보매夕炊의烟波中에잠게잇는嶺南樓
0049_0046_a_36L는同郡의西에서東南으로내민山비탈에屹立하야密
0049_0046_a_37L陽江을압헤두고녓자최를애오라지자랑함은보는者로
0049_0046_a_38L하야곰無量한感慨를자야내게함니다。이로부터다시
0049_0046_a_39L洛東江의東岸을끼고도라가면서日暮를憂慮하는船夫
0049_0046_a_40L의밧비젓는搖櫓와風檣의빨이나부끼는帆布를趣味잇

0049_0046_b_01L게바라보는동안에발서馬山線을갈러보낸三浪津에到
0049_0046_b_02L着하얏습니다。이로부터黃昏을마지면서勿禁驛에이
0049_0046_b_03L르러團員中에黃耕雲氏가當驛의東쪽六十里許에新羅
0049_0046_b_04L의慈藏律師가舍 [2] 利塔을奉安하고戒律宗을嚴崇하든即
0049_0046_b_05L나의本寺인通度寺가잇슴니다하고 未久에釜山鎭을
0049_0046_b_06L當到하매 또한團員中의吳梨山氏는當驛의東北五十
0049_0046_b_07L里許에新羅義湘祖師가華嚴十大寺刹을創建하고華嚴
0049_0046_b_08L宗을大揚하든때의一寺인即나의本寺인梵魚寺가잇다
0049_0046_b_09L고함니다。나는이말을듯고實로悲喜의交感을익이지
0049_0046_b_10L못하얏슴니다。

0049_0046_b_11L 이윽고우리는京釜線의終點인釜山棧橋에서下車하
0049_0046_b_12L니時는임의下午七時半이되얏습니다。한데通度寺住
0049_0046_b_13L持宋雪牛和尙과梵魚寺監務金蓉峰氏가歡迎에餞別을
0049_0046_b_14L兼하야 일부러山巓을下하섯슴은그感荷함을盡謝키
0049_0046_b_15L難한一事입니다。加之以雪牛和尙으로부터 老軀를
0049_0046_b_16L不惜함에도不拘하고菓子代幾許를慈助함은우리의感
0049_0046_b_17L心을더욱深刻케하야줌니다。
0049_0046_b_18L (續)

0049_0046_b_19L各地聖誕奉讃一束

0049_0046_b_20L京城의聖誕奉祝灌佛式

0049_0046_b_21L
 京城에서는陰四月八日을際하야 朝鮮佛敎
0049_0046_b_22L中央敎務院、朝鮮佛敎靑年同志會、朝鮮佛敎
0049_0046_b_23L團、京城商工組合聯合會、中央繁榮會等五個
0049_0046_b_24L團軆가合하야 京城釋尊降誕奉讚會를組織하
0049_0046_b_25L고朝鮮銀行前廣塲과 光化門通廣塲과 奬忠
0049_0046_b_26L壇의三個所에花▣堂(佛閣)을臨時로 建築하
0049_0046_b_27L고灌佛式을行한바 第二會塲光化門通廣塲花
0049_0046_b_28L御堂法要는敎務院에서擧行하얏스며 奬忠壇
0049_0046_b_29L會塲에는 總督閣下及政務總監學務局長以下
0049_0046_b_30L官民一同이總出動하야 灌佛式을行하얏스며
0049_0046_b_31L鐘路一帶에는 特設電燈粧飾에不夜城을이루
0049_0046_b_32L엇스며 店鋪마다天上天下唯我獨尊을刻字하
0049_0046_b_33L야걸고五色의明燈을莊嚴하얏슴으로 三國時
0049_0046_b_34L代의佛敎를再觀하는늣김이잇섯다하며 더욱
0049_0046_b_35L히天雨曼多羅花의奉祝飛行이잇섯슴으로 奉
0049_0046_b_36L讚紀念式에異彩를放하얏다더라 (京城)

0049_0046_b_37L覺皇敎堂의聖誕奉祝式

0049_0046_b_38L
 市內壽松洞覺皇敎堂에서는 陰四月八日에
0049_0046_b_39L五十餘名의佛敎專修學生과 數百名의普成學
0049_0046_b_40L校生徒及佛敎少年會員과 數千名의敎徒가한
0049_0046_b_41L敎堂에會集하야說敎 講演 音樂 舞踊으로
0049_0046_b_42L써式을마춘바出演한講師는左와如하더라

0049_0047_a_01L午前說敎
布敎師 金大隱

0049_0047_a_02L午後講演

0049_0047_a_03L 釋尊의立身
佛專敎授 金包光

0049_0047_a_04L 觧脫의道
都鎭鎬

0049_0047_a_05L放送局講演

0049_0047_a_06L 釋尊降誕에對하야
金泰洽

0049_0047_a_07L覺皇敎堂의音樂及舞踊
佛敎少年會員

0049_0047_a_08L放送局音樂出演
佛敎少年會員

0049_0047_a_09L光化門通廣塲花閣灌佛
0049_0047_a_10L

0049_0047_a_11L
 去陰四月八日 聖誕奉祝時光化門通廣塲花
0049_0047_a_12L閣灌佛式法要는敎務院에서擔任하야 宋宗憲
0049_0047_a_13L權相老 吳梨山 金包光 金大隱 朴大輪六
0049_0047_a_14L法師가式을擧行한바 그式次는左와如하더라

0049_0047_a_15L一、開式(爆竹) 一、歸敬三寶 一、加持(般
0049_0047_a_16L若心經) 一、讚佛歌 一、灌佛 一、八相(齊
0049_0047_a_17L唱) 一、獻花(各團軆代表) 一、讚佛歌 一、回
0049_0047_a_18L向(宣言朗讀) 一、閉式 以上

0049_0047_a_19L京城釋尊降誕奉讚會와
0049_0047_a_20L敎務院側의役員

0049_0047_a_21L
 五個團軆가合하야 組織된京城釋尊降誕奉
0049_0047_a_22L讚會는永久히常設機關을두고 今年과가치每
0049_0047_a_23L年年中行事로盛大한降誕奉讚灌佛式을 擧行
0049_0047_a_24L하기로决定한바敎務院側으로는李混惺氏가
0049_0047_a_25L顧問으로曹學乳 金法龍 金尙昊 金泰洽氏
0049_0047_a_26L가 委員으로役員이되엿다더라

0049_0047_a_27L昌原敎堂에서

0049_0047_a_28L
 慶南昌原郡布敎堂에서는 四月八日을際하
0049_0047_a_29L야二晝夜를亘하야 布敎師朴萬善師서說敎
0049_0047_a_30L와講演을行하며 燈明莊嚴을行하얏다더라
0049_0047_a_31L (馬山)

0049_0047_a_32L晉州敎堂에서

0049_0047_a_33L
 慶南晉州郡佛敎布敎堂에셔는 陰四月八日
0049_0047_a_34L을際하야 佛敎少年會及靑年會의卍字旗行列
0049_0047_a_35L과提燈行列로써市內를圍繞하고放生、活擒
0049_0047_a_36L不殺生、布施、救恤을實施宣傳하얏스며 布
0049_0047_a_37L敎師吳澤彥氏의說敎와 金賛成、▣淳浩両氏
0049_0047_a_38L의講演이잇엇다더라 (晉州)

0049_0047_a_39L榮州敎堂에서

0049_0047_a_40L
 慶北榮州郡佛敎布敎堂과 平恩敎堂에서는
0049_0047_a_41L李震雲師의說敎와敎徒의讚佛歌로써 盛大한
0049_0047_a_42L式을擧行하얏다더라 (榮州)

0049_0047_a_43L馬山敎堂에서

0049_0047_a_44L
 馬山佛敎布敎堂에서는 五月二十六日(陰
0049_0047_a_45L四月八日)에聖誕紀念式을行하얏다는데 布
0049_0047_a_46L敎師梁大應氏의說敎와敎徒의 聖誕歌로써莊
0049_0047_a_47L嚴한가운데서式을무추엇다더라 (馬山)

0049_0047_a_48L法住寺에서

0049_0047_a_49L
 忠北報恩郡法住寺에서는 年中行事로陰曆
0049_0047_a_50L四月八日을際하야 盛大한奉祝式을行하든바
0049_0047_a_51L今年에는 鄭重한儀式을行하고朴湖暎君의佛
0049_0047_a_52L敎에對하야라는講演이잇슨後에 宗敎劇二幕
0049_0047_a_53L及其他喜劇、悲劇을出演하엇다더라 (報恩)

0049_0047_a_54L公州布敎堂에서

0049_0047_a_55L
 忠淸南道公州郡佛敎布敎堂에서는 陰四月
0049_0047_a_56L八日에釋尊降誕을紀念코저하야 아리다라夫
0049_0047_a_57L人會百二人과能仁夜學生百三人과 能仁少年
0049_0047_a_58L會四十餘名合二百餘人이 當日午後八時로부
0049_0047_a_59L터 九時까지卍字旗行列과提燈行列을擧行하
0049_0047_a_60L고▣連劇을行하얏다더라 (公州)

0049_0047_b_01L南海敎堂에서

0049_0047_b_02L
 慶南南海郡佛敎堂에서는五月二十六日(陰
0049_0047_b_03L四月八日)에 男女敎徒數百名이 會集하야金
0049_0047_b_04L瑛周氏司會下에金法雨氏說敎와 鄭点植氏講
0049_0047_b_05L演과少年會의歌劇舞踊으로써 盛大한奉祝式
0049_0047_b_06L을擧行하얏다더라 (南海)

0049_0047_b_07L海印寺에서

0049_0047_b_08L
 慶南陜川郡大本山海印寺에서는 去陰四月
0049_0047_b_09L八日에法寶稧의主催로 說敎와講演과演劇으
0049_0047_b_10L로써盛大히式을擧行하얏다더라 (陜川)

0049_0047_b_11L普賢寺에서

0049_0047_b_12L
 平北寧邊郡大本山普賢寺에서는 陰四月八
0049_0047_b_13L日에盛大히 聖誕奉祝式을 擧行하얏다더라
0049_0047_b_14L (普賢)

0049_0047_b_15L通度寺에서

0049_0047_b_16L
 慶尙南道梁山郡通度寺에서는 去四月八日
0049_0047_b_17L에九百餘名의 常隨禊員이說敎及講演으로盛
0049_0047_b_18L大하게聖誕奉祝式을擧行하얏다더라 (通度)

0049_0047_b_19L仙岩寺에서

0049_0047_b_20L
 全南順天郡大本山仙岩寺에서는 去四月八
0049_0047_b_21L日에誕日稧員千餘名이說敎及講演으로 盛大
0049_0047_b_22L히聖誕奉祝式을擧行하얏다더라 (仙岩)

0049_0047_b_23L義城敎堂에서

0049_0047_b_24L
 慶北義城郡佛敎布敎堂에서는 四月八日에
0049_0047_b_25L聖誕奉祝式을擧行하되 晝夜二囘에分하야說
0049_0047_b_26L敎及講演으로盛大히式을 擧行하얏다더라
0049_0047_b_27L (義城)

0049_0047_b_28L奉恩寺에서

0049_0047_b_29L
 京畿道慶州郡大本山奉恩寺에서는 去陰四
0049_0047_b_30L月八日에羅晴湖大禪師의說敎와 姜性仁氏의
0049_0047_b_31L講演으로 盛大하게式을擧行하얏다는데五千
0049_0047_b_32L餘名의 信男信女及拜觀者가會集하얏슴으로
0049_0047_b_33L寺內는人山人海로化하얏섯다더라 (奉恩)

0049_0047_b_34L乾鳳寺에서

0049_0047_b_35L
 江原道高城郡大本山乾鳳寺에서는 陰四月
0049_0047_b_36L八日에維新會 講友會 少年會等三大會가團
0049_0047_b_37L合하야 李大蓮禪師金鏡峰禪師兩師의說敎와
0049_0047_b_38L其他假▣行列、提燈行列、素人劇으로써 盛
0049_0047_b_39L大히奉祝式을擧行하얏다더라 (高城)

0049_0047_b_40L中和敎堂에서

0049_0047_b_41L
 平安南道中和郡佛敎布敎堂에서는 去陰四
0049_0047_b_42L月八日에 朴宗均氏講演及當地普通學校學生
0049_0047_b_43L一同의讚佛歌로써 盛大히式을擧行하얏다더
0049_0047_b_44L라 (中和)

0049_0047_b_45L羅南敎堂에서

0049_0047_b_46L
 咸北羅南生駒町釋王寺布敎所에서는 去四
0049_0047_b_47L月八日에 曉星幼稚園 明星女子學院生徒二
0049_0047_b_48L百餘名과二千餘名의信徒가 合心同力하야聖
0049_0047_b_49L誕을奉祝하얏다는데 새로赴任한布敎師崔其
0049_0047_b_50L正師의「釋尊의誕生과自我의發見」이라는獅
0049_0047_b_51L子吼가잇섯다더라 (羅南)

0049_0047_b_52L英京론돈에서

0049_0047_b_53L
 英國서울론돈에서는 去四月八日에五六百
0049_0047_b_54L名의佛敎徒가「스토란도」의「에셋구스홀」에
0049_0047_b_55L集會하야盛大한釋尊降誕奉祝式을 擧行하엿
0049_0047_b_56L다는데「함후엘」氏의開會辭와印度人의讀誦
0049_0047_b_57L과英國人의聖典朗讀과 其外合唱 默禱 講

0049_0048_a_01L演어잇섯는바聽衆가운데는 佛恩을感激하야
0049_0048_a_02L悲泣한者까지잇섯다하며 當日三人辯士의講
0049_0048_a_03L演의要旨는左와如하다더라

0049_0048_a_04L一、佛敎는우리의儀表되는 佛陀의軆驗의
0049_0048_a_05L宗敎니라

0049_0048_a_06L二、佛敎는大慈悲와 平和의宗敎니라

0049_0048_a_07L三、佛敎는科學의進步를調和하는 合理的
0049_0048_a_08L宗敎니라

0049_0048_a_09L四、佛敎는一切의 種族階級及國家에普遍
0049_0048_a_10L한宗敎니라 特히「吾는一切智者佛陀라」
0049_0048_a_11L하신敎訓은萬古不變 [3] 의眞理니라

0049_0048_a_12L五、情智意三者의調諧와平行은 佛敎心理
0049_0048_a_13L의基礎的事實이니라

0049_0048_a_14L六、佛敎는身心의「中道」를가르친精神的
0049_0048_a_15L及實行的宗敎니라 (東京)

0049_0048_a_16L「부텨님말삼」發行

0049_0048_a_17L
 京城壽松洞四四 朝鮮佛敎 中央敎務院內에
0049_0048_a_18L在한朝鮮佛敎靑年會에서는 陰四月八日을際
0049_0048_a_19L하야 同會의事業으로布敎施本「부텨님말슴」
0049_0048_a_20L이과는 小冊子萬部를印刷하야實價로全鮮各
0049_0048_a_21L布敎堂에提供함으로 注文이殺到한다더라

0049_0048_a_22L佛專校友會創立

0049_0048_a_23L
 去五月二十八日에 京城府崇一洞佛敎專修
0049_0048_a_24L學校內에서 佛敎校友會를創立하얏다는데그
0049_0048_a_25L役員은左와如하다더라

0049_0048_a_26L會長
宋宗憲

0049_0048_a_27L總務
金暎遂

0049_0048_a_28L宗敎部長
朴漢永

0049_0048_a_29L  幹事
朴暎熙 朴允進 金載元

0049_0048_a_30L學藝部長
尹泰東

0049_0048_a_31L  幹事
姜裕文 周東勳 韓性勳

0049_0048_a_32L辯論部長
金振麟

0049_0048_a_33L  幹事
文奇錫 金海潤 權曾源

0049_0048_a_34L軆育部長
李熙祥

0049_0048_a_35L  幹事
朴根燮 朴奉石 朴成熙 方奎錫

0049_0048_a_36L會計
曹學乳 鄭載璂

0049_0048_a_37L覺皇敎堂의日曜講演報
0049_0048_a_38L

0049_0048_a_39L五月二十七日
波羅密多心經에對하야
0049_0048_a_40L哲學博士
金重世

0049_0048_a_41L六月二日
觀無量 [4] 壽經布敎師金大隱

0049_0048_a_42L同 三日
新時代의宗敎

0049_0048_a_43L六月十日
菩薩의道

0049_0048_a_44L覺皇敎堂의街上傳道

0049_0048_a_45L
 覺皇敎堂에서는 去五月二十六日夜에布敎
0049_0048_a_46L師金大隱氏가佛敎專修學生數十人과가치 佛
0049_0048_a_47L敎傳道隊를組織하고 光化門通廣塲과鐘路通
0049_0048_a_48L四街路上에서三四時間을 亘하야屋外傳道를
0049_0048_a_49L行하얏다더라

0049_0048_a_50L覺皇敎堂의法華山林

0049_0048_a_51L
 市內覺皇敎堂에서는 去五月二十三日부터
0049_0048_a_52L同二十五日까지三日間觀音禮文을行하며 金
0049_0048_a_53L大隱師의法華經普門品說敎가잇섯다더라

0049_0048_a_54L榮州敎堂에도法華山林

0049_0048_a_55L
 慶北大本山金龍寺의經營인 榮州布敎堂에
0049_0048_a_56L서는布敎師李震雲師서 閏二月八日부터同
0049_0048_a_57L十五日까지法華山林을하고 同三月八日부터
0049_0048_a_58L十五日까지同郡恩平敎堂에가서 高王經大會
0049_0048_a_59L를開하얏다더라 (榮州)

0049_0048_b_01L欝陵島의大願寺新創

0049_0048_b_02L
 近日慶北蔚陵島로부터 來한某信書의報道
0049_0048_b_03L를依하건대 朴德念이라하는師는 多年間辛
0049_0048_b_04L苦를備甞하면서 同島道洞에大願寺라하는寺
0049_0048_b_05L院을建築하고島民의게 布敎를盡力한다더라
0049_0048_b_06L (欝陵島)

0049_0048_b_07L北方의唯一禪院摩訶
0049_0048_b_08L衍의開堂

0049_0048_b_09L
 江原道淮陽郡金剛山摩訶衍은 北方의唯一
0049_0048_b_10L한禪院이엿스나 財政困難으로不得已閉鎻캐
0049_0048_b_11L되엿든바 今番에大本山榆岾寺住持李混惺師
0049_0048_b_12L서大英斷을下하야 當寺에專任住持를置케
0049_0048_b_13L하고獨立으로維持케하얏다는데 維持方法은
0049_0048_b_14L本來該寺所有二百五十三石밧는것을 表訓寺
0049_0048_b_15L에서管轄하게된것이잇슴으로 그것을還附케
0049_0048_b_16L하랴하나 表訓寺가債務에困難함으로債務를
0049_0048_b_17L淸帳할지 當分間爲先每年五十石式辦出
0049_0048_b_18L하야摩訶衍을維持케하고 債務가淸帳되는
0049_0048_b_19L는二百五十三石을 還附하기로하엿다더라

0049_0048_b_20L奉國寺의改金佛事

0049_0048_b_21L
 高陽郡奉國寺에서는 化主金聖元師의願力
0049_0048_b_22L으로去五月中에改金佛事를始作하야 定光如
0049_0048_b_23L來 阿彌陀佛 地藏菩薩三位를改金하고 地
0049_0048_b_24L藏菩薩幀 十八羅漢幀二軸를造成하얏다더라

0049_0048_b_25L大本山奉先寺
0049_0048_b_26L重修落成式擧行

0049_0048_b_27L
 去六月三日에 京畿道楊州郡奉先寺에서는
0049_0048_b_28L大雄殿重修 三聖閣新建 各殿飜瓦 道塲石
0049_0048_b_29L築鍾閣移建 事務室修繕等의一新重修에 對
0049_0048_b_30L하야盛大히落成式을擧行하얏다더라 (奉先)

0049_0048_b_31L白雲庵의千日
0049_0048_b_32L念佛會囘向式

0049_0048_b_33L
 逍遙山白雲庵에서는 去大正十四年에檀信
0049_0048_b_34L徒의自願金을募集하야七星閣과白雲庵을 新
0049_0048_b_35L建하고繼續하야 千日念佛會를組織奉行이든
0049_0048_b_36L바去陰四月十五日이 滿千日임으로盛大히囘
0049_0048_b_37L向式을擧行하앗다더라 (白雲)

0049_0048_b_38L天柱山聖殿庵의重修

0049_0048_b_39L
 黃海道黃州郡 大本山成佛寺末寺天柱山聖
0049_0048_b_40L殿庵에서는昭和二年三月부터 重修에着手하
0049_0048_b_41L야同年四月末에畢役하고 同五月二十七日에
0049_0048_b_42L落成式을擧行하얏다는데 平壤府居住李法蓮
0049_0048_b_43L華氏가自願金七百圓의基本金을 同寺住持金
0049_0048_b_44L光弼氏의게委托하야 佛事를作하얏슴으로李
0049_0048_b_45L氏에對한稱頌에藉藉하다더라 (黃州)

0049_0048_b_46L實相寺의十王改彩佛事

0049_0048_b_47L
 全北南原郡實相寺에서는 林禮庵長老의喜
0049_0048_b_48L捨로去四月八日부터十五日間을限하야 十王
0049_0048_b_49L改彩佛事를行하엇다더라 (實相)

0049_0048_b_50L月初和尙의謝恩式

0049_0048_b_51L
 大本山奉先寺에서는 去六月三日에前住持
0049_0048_b_52L月初和尙의當寺에對한功勞에對하야 本末一
0049_0048_b_53L同이右和尙의게 紀念品及謝恩狀을올리엿다
0049_0048_b_54L는데紀念品은廻轉式椅子一個 刺繡謝恩狀一
0049_0048_b_55L面 銀盃一個 九疊飯床器一組라더라 (奉先)

0049_0048_b_56L吾魚寺의法脈相續式

0049_0048_b_57L
 慶北慶州郡大本山 祇林寺末寺吾魚寺에서
0049_0048_b_58L는五月三日에左記와가치 法脈相續式을擧行
0049_0048_b_59L하엿다더라

0049_0048_b_60L龍海禪師 法嗣 幻山李範宰

0049_0048_b_61L鶴松禪師 法嗣 鏡湖金明鎭

0049_0049_a_01L枕虛禪師 法嗣 萬惺具馥書 (吾魚)

0049_0049_a_02L海印寺의法脈相續式

0049_0049_a_03L
 海印寺에서는去陰四月八日에 聖誕奉祝式
0049_0049_a_04L을際하야 法脈相續式을擧行하얏다는데그氏
0049_0049_a_05L名은左와如하더라

0049_0049_a_06L桂月禪師 法嗣 性海金逸仙

0049_0049_a_07L景霞禪師 同  大愚鄭永信

0049_0049_a_08L混鏡禪師 同  敬峰鄭弘權 (海印)

0049_0049_a_09L奉恩寺의本末總會

0049_0049_a_10L
 京畿道廣州郡大本山奉恩寺에서는 去五月
0049_0049_a_11L十八日에第十八回本末住持定期總會를 開하
0049_0049_a_12L고布敎에關한件、敎育에關한件、寺法改正에
0049_0049_a_13L關한件、財團第一種引用金分排納入에關한
0049_0049_a_14L件、本末負擔未收金徵收에關한件、敎務院評
0049_0049_a_15L議員選擧에關한件、寺刹帳簿整理에關한件、
0049_0049_a_16L僧籍整理에關한件、等을討議하엿다더라
0049_0049_a_17L (廣州)

0049_0049_a_18L孤雲寺本末總會

0049_0049_a_19L
 去四月二十一日 午前九時慶北義城郡大本
0049_0049_a_20L山孤雲寺에서는 本末寺第十六囘定期總會를
0049_0049_a_21L開하고 財團法人出資에關한件、年末分排金
0049_0049_a_22L未收에關한件、布敎에關한件、敎育에關한件、
0049_0049_a_23L本年度豫算에關한件、敎務院評議員選擧에關
0049_0049_a_24L한件、等을討議하얏다더라 (義城)

0049_0049_a_25L乾鳳本末寺第十七囘定
0049_0049_a_26L期總會

0049_0049_a_27L
 江原道高城郡乾鳳寺에서는 去五月十日에
0049_0049_a_28L本末寺第十七囘定期總會를開하고 寺法改定
0049_0049_a_29L通過의件、本末寺沿革誌編輯의件、僧規에關
0049_0049_a_30L한件、財團金整理에關한件、本末分排에關한
0049_0049_a_31L件、本末評議員選擧에關한件、等을討議하얏
0049_0049_a_32L다더라 (高城)

0049_0049_a_33L中央敎務院에
0049_0049_a_34L幼稚園設置

0049_0049_a_35L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에서는 布敎
0049_0049_a_36L機關의社會事業으로써 今秋九月부터幼稚園
0049_0049_a_37L을設置하기로하고 三十一本山에公文을發하
0049_0049_a_38L얏다는데經費는爲先今年에限하야 三十一本
0049_0049_a_39L山으로부터壹千五百圓을負擔케하고 其外는
0049_0049_a_40L保兒의月謝金을徵收하야 經營케하얏다더라

0049_0049_a_41L金貞熙女史의美擧

0049_0049_a_42L
 江原道襄陽郡道川面神興寺 現住金貞熙女
0049_0049_a_43L史는平生을念佛에熱中하든바 去三月에自己
0049_0049_a_44L所有畓三拾石落只을神興寺中에 寄附獻納하
0049_0049_a_45L야永遠토록念佛堂을經營케하엿다더라
0049_0049_a_46L (神興)

0049_0049_a_47L布敎師崔其正氏歡迎會

0049_0049_a_48L
 大本山釋王寺羅南布敎所에서는 去六月二
0049_0049_a_49L日에새로布敎師로赴任된崔其正師의 歡迎會
0049_0049_a_50L가잇섯다더라 (羅南)

0049_0049_a_51L本誌는先金이아니면 絶對
0049_0049_a_52L로發送치안슴니다 그럼으
0049_0049_a_53L로보시랴거든

0049_0049_a_54L振替口座京城五四八二番
0049_0049_a_55L으로先金을보내십시오

0049_0049_b_01L寺有土地讓與處分許可

0049_0049_b_02L許可年月日
五月五日

0049_0049_b_03L讓與의目的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에 寄附行爲로出資하기
0049_0049_b_04L爲하야寺有土地의讓與

0049_0049_b_05L讓與할土地
慶尙北道星州郡月恒面仁村洞八五六番地畓一、二九三
0049_0049_b_06L坪外三筆合計四、二七四坪

0049_0049_b_07L出 願 人
慶尙北道星州郡月恒面仁村洞禪石寺住持郭禮雲

0049_0049_b_08L

0049_0049_b_09L許可年月日
同七日

0049_0049_b_10L讓與의目的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敎務院에對하야 寄附行爲로出
0049_0049_b_11L資하기爲한讓與

0049_0049_b_12L讓與할土地
全州郡華山面雲梯里四○四番地畓六四四坪外 五筆合
0049_0049_b_13L計四、四五七坪

0049_0049_b_14L出 願 人
全羅北道全州郡雲東下面華嚴寺住持 鄭萬春

0049_0049_b_15L(已上昭和三年五月二十一日官報)

0049_0049_b_16L寺有建物廢棄處分許可

0049_0049_b_17L許可年月日
五月八日

0049_0049_b_18L處分의目的
自然腐朽倒壊의虞잇슴으로써廢棄코저함

0049_0049_b_19L建物의種類及坪數
羅漢殿三坪九合一勺

0049_0049_b_20L出 願 人
慶尙北道達城郡公山面桐華寺住持 黃普應

0049_0049_b_21L(已上昭和三年五月二十一日官報)

0049_0049_b_22L布敎所設置屆

0049_0049_b_23L屆出年月日
昭和二年十月十九日

0049_0049_b_24L所屬敎宗派
朝鮮寺刹

0049_0049_b_25L布敎所名稱
大本山通度寺宜寧布敎堂

0049_0049_b_26L布敎所所在地
慶尙南道宜寧郡宜寧面中洞六

0049_0049_b_27L

0049_0049_b_28L屆出年月日
昭和三年二月二十七日

0049_0049_b_29L所屬敎宗派
朝鮮寺刹

0049_0049_b_30L布敎所名稱
大本山金剛山榆岾寺京城布敎所

0049_0049_b_31L布敎所所在地
京畿道京城府諫洞一一二○

0049_0049_b_32L

0049_0049_b_33L屆出年月日
昭和三年四月六日

0049_0049_b_34L所屬敎宗派
朝鮮寺刹

0049_0049_b_35L布敎所名稱
龍珠寺末寺修理寺京城布敎所

0049_0049_b_36L布敎所所在地
京畿道京城府樓下洞二二七

0049_0049_b_37L(已上昭和三年五月二十一日官報)

0049_0049_b_38L布敎擔任者屆

0049_0049_b_39L屆出年月日
昭和三年二月二十七日

0049_0049_b_40L所屬宗派及布敎所의名稱
朝鮮寺刹大本山金剛山榆岾寺京城布敎所

0049_0050_a_01L所在地
京畿道京城府諫洞一一二

0049_0050_a_02L住所氏名
所在地와同 朴世榮

0049_0050_a_03L

0049_0050_a_04L屆出年月日
昭和三年四月六日

0049_0050_a_05L所屬宗派及布敎所의名稱
朝鮮寺刹龍珠寺末寺修理寺京城布敎堂

0049_0050_a_06L所在地
京畿道京城府樓下洞二二七

0049_0050_a_07L住所氏名
所在地와同李暢東

0049_0050_a_08L(已上昭和三年五月二十一日官報)

0049_0050_a_09L布敎屆

0049_0050_a_10L屆出年月日
昭和二年十一月二十二日

0049_0050_a_11L所屬敎宗派又는本寺의名稱
朝鮮寺刹

0049_0050_a_12L布敎者의住所氏名
忠淸南道公州郡本町佛敎布敎所內
0049_0050_a_13L 吳擎皓

0049_0050_a_14L

0049_0050_a_15L屆出年月日
昭和三年四月六日

0049_0050_a_16L所屬宗派又는本寺의名稱
朝鮮寺刹

0049_0050_a_17L布敎者의住所氏名
京畿道京城府樓下洞二二七
0049_0050_a_18L 李暢東

0049_0050_a_19L

0049_0050_a_20L屆出年月日
昭和三年二月二十七日

0049_0050_a_21L所屬宗派又는本寺의名稱
朝鮮寺刹

0049_0050_a_22L布敎者의住所氏名
京畿道京城府諫一一二
0049_0050_a_23L 朴世榮

0049_0050_a_24L(已上昭和三年五月二十一日官報)

0049_0050_a_25L社告

0049_0050_a_26L 우리先師네의作品中에 어는것이所用아니되릿가
0049_0050_a_27L마는 本社에서左記의것을 至急히要求하으니 누
0049_0050_a_28L구던지 가지신분은精寫하야보내주옵소서

0049_0050_a_29L叅禪曲、自責歌、西徃歌、勸徃歌、土窟歌、夢幻
0049_0050_a_30L歌、回心曲、念佛曲、念佛還鄕曲、이外에도이와
0049_0050_a_31L가튼先師들의作品

0049_0050_a_32L한가지잇거던한가지、두가지잇거던두가지、잇
0049_0050_a_33L는대로보내주십시오 先到又精寫者의게는 薄
0049_0050_a_34L謝를드리겟슴니다

0049_0050_b_01L佛敎第五十(特大)號重要目次豫告

0049_0050_b_02L■卷頭言

0049_0050_b_03L■朝鮮佛敎의三大特色
退耕

0049_0050_b_04L■十二因緣에對하야
鐵啞

0049_0050_b_05L■大宇의生的準則과人類의生的準則
無號山房

0049_0050_b_06L■菩薩의道
金泰洽

0049_0050_b_07L■敎家의自信
都鎭鎬

0049_0050_b_08L■現代의宗敎
大隱

0049_0050_b_09L■어感情
崔象德

0049_0050_b_10L■水陸齋緣起에對하야(佛敎决疑)
問者尹永完

0049_0050_b_11L■戱曲白乳(全六幕十四塲)
白牛

0049_0050_b_12L■大覺國師
梁建植

0049_0050_b_13L■題未定
石顚沙門

0049_0050_b_14L■病者心理와宗敎
李智英

0049_0050_b_15L■傳說影池
金一葉

0049_0050_b_16L■神聖한敎化와敎育者의人格問題
白雷

0049_0050_b_17L■나의信仰
李能和、崔南善、梁建植、金鼎卨、其他諸大家

0049_0050_b_18L■其他文藝滿載

0049_0050_b_19L 宗敎로哲學으로歷史로文藝로ㆍ차즈라보아라읽으라들으라

0049_0051_a_01L社友募集趣旨와規定

0049_0051_a_02L佛敎社社友募集趣旨

0049_0051_a_03L
○朝鮮에모든일이왜失敗에도라갑닛가。同志를서
0049_0051_a_04L로求得지못하고團結이업는닭입니다

0049_0051_a_05L○이제佛敎社事業의抱負와計劃이크거나적거나그
0049_0051_a_06L거슬論할必要업시모다諸位의事業인즉諸位의努
0049_0051_a_07L力이크면커지고적으면적어질거시외다

0049_0051_a_08L○그런즉諸位는專力하셔서이事業의한모통이를질
0049_0051_a_09L머지시고가치나아가시기를바람니다

0049_0051_a_10L○佛敎社는여러분이社友가되셔서여러분自由로利
0049_0051_a_11L用하시고여러분의것으로만드러서무슨事業이던
0049_0051_a_12L지하시기를懇切히바람니다。

0049_0051_a_13L○社友募集員을京城市內와全鮮各地方으로出張할
0049_0051_a_14L時엔諸位는사랑하시고社友되시기를許諾하여주
0049_0051_a_15L소서

0049_0051_a_16L佛敎社社規定

0049_0051_a_17L
一、每六個月에一圓六十錢을先給하시면普通社友
0049_0051_a_18L每年三圓을先給하시면特別社友、一時三十圓以
0049_0051_a_19L上을내시면永年維持社友가됨니다。

0049_0051_a_20L二、社友가되시면社友券을드리고氏名과住所를本
0049_0051_a_21L誌에發表함니다。

0049_0051_a_22L三、社友에게는左의特典이잇습니다。

0049_0051_a_23L社友特典

0049_0051_a_24L一、「佛敎」를無料로進呈함니다。

0049_0051_a_25L二、社友의投稿文은特別取扱함니다。

0049_0051_a_26L三、朝鮮서出版되는書籍은一割을减하야提供함니
0049_0051_a_27L다。

0049_0051_a_28L四、本社及本社關係團軆의出版物은半價로提供합
0049_0051_a_29L니다。

0049_0051_a_30L五、每年社友會를開하고音樂講演其他事業計劃及
0049_0051_a_31L親睦을圖힙니다。

0049_0051_a_32L六、巡回講演會、夏期修養講座、演劇興行等에叅
0049_0051_a_33L席하실수잇슴니다。

0049_0051_a_34L七、其他本社主催의集會、經營事業에自由行動을
0049_0051_a_35L할수잇슴니다。

0049_0051_b_01L社友題名錄 (第一囘報告)

0049_0051_b_02L○特別社友

0049_0051_b_03L一、崔文鉉
抱川一三、自在庵楊州二五、金松月釜山鎭三七、同講院四九、松廣寺順天

0049_0051_b_04L二、興國寺
楊州一四、李栢月二六、李泰俊京城三八、宋宗憲五○、金休庵務安

0049_0051_b_05L三、佛巖寺
一五、鄭海運京城二七、李萬海三九、鞠默潭五一、金海恩通川

0049_0051_b_06L四、華溪寺
高陽一六、開運寺高陽二八、洪祥根四○、雲門庵五二、崔仁昊寧邊

0049_0051_b_07L五、興天寺
一七、二九、朴霞潭高陽四一、鳳南佛敎堂振威五三、萬年寺龜城

0049_0051_b_08L六、奉先寺
楊州一八、田雨運三○、奉恩寺廣州四二、龍門寺醴泉五四、

0049_0051_b_09L七、洪月初
一九、東鶴寺公州三一、羅晴湖四三、鄭義山高城五五、

0049_0051_b_10L八、申允泳
二○、興龍寺抱川三二、神勒寺驪州四四、趙宗泫高陽五六、崔龍鎭咸興

0049_0051_b_11L九、全西耕
二一、康啓龍高陽三三、奉元寺高陽四五、水晶布敎堂釜山五七、洪泰賢海州

0049_0051_b_12L一○、玄祥奎
二二、內院庵楊州三四、白蓮寺四六、吳梨山東萊五八、玉觀彬上海

0049_0051_b_13L一一、金泰旿
二三、妙寂寺三五、李古鏡陜川四七、碧松寺咸陽

0049_0051_b_14L一二、金定庵
京城二四、鶴到庵三六、白羊寺長城四八、實相寺南原

0049_0051_b_15L○普通社友

0049_0051_b_16L一、洪炳殷
京城七、申暎山一三、金石頭一九、李錦溪禮山二五、李龍虛

0049_0051_b_17L二、
八、鄭和振一四、康道峯二○、林彰燮寶城二六、朴三千

0049_0051_b_18L三、徐丙宰
九、檜巖寺楊州一五、吳始弘二一、孫炳俊義州二七、羅日▣公州

0049_0051_b_19L四、金永宣
一○、黃河石高陽一六、朴允進二二、觀海寺鏡城二八、金虛翁金溝

0049_0051_b_20L五、李雲松
一一、一七、隱跡庵達城二三、朴冕右報恩

0049_0051_b_21L六、朴永春
一二、金虎山京城一八、表忠寺密陽二四、金炳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