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1506_T_002
-
047_0018_a_01L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 제2권 상
지엄 지음
박서연 번역
[제3회 불승수미정(佛昇須彌頂)]
9) 수미정품(須彌頂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으니,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불(佛)이란 교화의 주체[化主]이고, 승(昇)이란 위로 나아가는 것이며, 수미(須彌)란 묘고산(妙高山)이며, 정(頂)이란 뛰어나고 존귀한 상위에 거처하는 것이다.
【문】어째서 이 이하의 네 회상은 하늘[天]에서 설한 것인가?
【답】덕행의 지위가 성취되어서 장애를 없애고 청정함이 뛰어나기 때문에 천(天)에서 설했을 뿐이다. 이것은 앞에 나온 10주(住) 지위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어째서 왔는가?’라는 것은 믿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니, 이것은 처음에 회상의 온 뜻을 변별한 것이며, 또 ‘어째서 회상이 왔는가?’는 이미 과보의 체(體)를 이룬 것이다. 다음은 반드시 교화를 일으켜 기틀에 부응하기 때문에 온 것이니, 이를 인(因)해서 가르침을 일으켜 나타낸 바를 간략히 요간(料簡)한 것이다. 이제 모든 회상이 다만 본래의 처소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음은 곧 행1)이 과보의 체(體)를 이루어 견고하여 옮기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러나 지나간 모든 회상은 곧 용(用)을 일으켜 기틀에 따름을 나타낸 것이다. 이 해석은 수행의 체(體)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약 이해를 내어 믿음을 일으키는 문을 조망한다면 곧 행위(行位)가 더욱 미세함을 나타낼 뿐이요, 또한 문장을 풀이하는 가운데 부처님을 기준으로 하면 용(用)을 일으켜 기틀에 다다름으로써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선지식의 힘인 것이다. 만약 분위(分位) 등을 기준으로 하면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수행을 기준으로 해서 이해한 것이니,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또 이 회상 이하의 네 회상은 모두 위상(位相)이 증대하는 것이니, 앞의 신행(信行)과는 약간 다르다. 삼승법과 일승법의 뜻이 또한 모름지기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생각해서 준거하라. 나머지 회상은 모두 이러한 뜻과 동일하다. 품이 온 것은 먼저 신법(信法)을 설하고 나서 다음으로 나중의 설(說)에 나아가서 의거하는 바 처소를 변별하였을 뿐이다.
셋째, 종지라는 것은 회상을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둘은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람에는 교화의 주체[化主]와 교화를 돕는 이[助化]가 있어서 각기 체(體)의 덕용(德用)이 있는데, 단지 이 회상에 국한될 뿐이다. 둘째,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은 이른바 10해법(解法)을 말하는데 나중에 마땅히 변별하리라. 처음의 품을 종지라는 것은 만약 이타(利他)의 시기에 의지한다면 처소와 공양을 나타낸 것이 곧 법연(法緣)을 나타낸 것이다. 만약 자리(自利)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는 곧 기틀이 감응하여 서로 응하는 것이니 기연(機緣)의 체용이 이루어짐을 밝힌 것이다.
넷째,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회상에는 여섯 품이 있는데,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품은 방편을 발기(發起)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두 품은 정위(正位)의 상(相)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두 품은 나중에 만족을 이루는 행상(行相)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두 품은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용(用)을 일으켜서 사물에 따르는 것이며, 둘째 ‘제석천이 멀리서 보고’ 이하는 기틀이 감응해서 서로 응함을 변별한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依)와 정(正)이 서로 융섭함을 변별한 것이니, 곧 앞의 체(體)가 청정함을 나타낸 것이다. 둘째는 뒤의 용(用)이 청정함을 다시 나타낸 것이니, 자재하여 걸림 없음이 사(事)를 성취하는 근본이다. 모든 회상에 있는 경문은 다 이 해석과 동일하지만, 다만 뛰어남에 나아가는 것[進勝]이 다를 뿐이다.
【문】이 경문은 왜 처음 회상[初會]의 뒤에 있지 않고 나중 회상[後會]의 앞에 있는 것인가?
【답】만약 초회의 뒤라면 단지 법을 설하는 이익의 뜻을 드러냄을 밝히는 것이라서 나중의 화용(化用)과 더불어 체(體)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後會)의 앞에서 변별한 것일 뿐이다. 나머지 회상도 이와 동일하니, 어째서 제1회상의 뒤에 있지 않은 것인가? 요간(料簡)에서는 앞의 회상이 나머지 의의(義意)를 겸하여 저 해석에 있으며, 나중의 제6ㆍ7ㆍ8회상도 역시 따로 나머지 의의가 있음을 드러내었을 뿐이니, 체(體) 가운데 신(身)ㆍ구(口)ㆍ의(意) 셋인 것이다. 둘째 ‘이 때 세존께서’ 이하는 용(用)이 사물에 감응함을 밝힌 것이니, 곧 용의 청정함이다.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둘째2)의 상응하는 경문에는 다섯 가지 서(序)가 있다. 첫째는 처소에 머무는 서이니, 동정(動靜)의 걸림 없음으로써 이르지 않는 처소가 없다. 이는 법을 설하는 덕 때문이다. 둘째는 부처님에게 청하는 서(序)이고, 셋째는 대중을 모으는 서이며, 넷째는 광명을 놓는 서이며, 다섯째는 찬탄하는 서이다. 만약 아래의 「주품(住品)」을 통튼다면 곧 여덟 가지 서(序)가 있으니, 이른바 정(定)에 들어가는 것과 가피하여 권유하는 것과 정(定)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 품을 기준으로 경문을 나누는 것도 좋다. 처음의 처소에 머무는 서와 부처님께 청하는 서(序)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서 용(用)이 실(實)을 좇아 일어나는 것이니, 곧 발심(發心)의 연(緣)이다. 둘째 ‘곧 묘승전(妙勝殿)에서’ 이하는 천주(天主)가 장엄하여 공양함을 밝히기 때문에 부처님께 청하는 것이다. 해(解)를 좇아서 법공양의 행을 성취함을 갖추어 나타낸 것은 곧 근기[根]를 이루는 것이다. 셋째는 세존께서 곧 청3)을 받아들이셔서 감응에 부응해 교화를 베푸시는 것이다. 넷째는 제석천의 음악소리[釋音]가 적연(寂然)해짐은 혼란은 가라앉히고 진(眞)에 응함을 나타낸 것이다. 다섯째 ‘게송을 설한다’ 이하는 정(定)을 좇아서 혜(慧)를 발함을 나타낸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께서 법좌에 오르시다’ 이하는 화용(化用)의 사(事)가 이루어진 상(相)을 올바르게 밝힌 것이다.
장엄을 갖춘 경문은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 장엄을 갖춘 것은 곧 근기를 이루는 것이며, 둘째 청함은 곧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다. 첫째의 장엄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며, 두 번째는 좌구(坐具)를 장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에서 ‘이 때 제석천’ 이하는 부처님께 청함을 밝힌 것이니, 곧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게송의 경문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본행(本行)을 기억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게송으로 찬탄한 것이며, 세 번째는 시방을 통틀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여섯째의 ‘교화하여 성취함’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법좌에 앉으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용의 상[用相]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나머지 방위를 균등하게 통틀은 것이다.
10) 보살운집품(菩薩雲集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보살이란 사람이며, 운(雲)이란 윤택한 이익을 주기 때문이며, 또한 잇몸의 모습이다. 집(集)이란 한데 모이는 것이며, 묘승(妙勝) 등이란 별개의 처소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어째서 왔는가? 처소를 변별하고 나서 다음으로 모인 대중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모인 대중이 덕을 찬탄하고 법을 따르는 것을 종지로 삼는다.
넷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는 세 가지 서(序)가 있다. 첫째는 대중을 모으는 것이고, 둘째는 광명을 놓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을 찬탄한 것이다. 지금 이 이하의 세 회상에 모인 대중은 어째서 초품(初品)에 있지 않으며, 다시 어째서 하나하나의 방위에 각기 열 가지가 있는가? 또한 ‘광명을 놓음’ 이하에선 어째서 점진적으로 대중을 모으지 않는가?
【답】앞 회상은 위상(位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다만 행의 원만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초품에서 설한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행위(行位)가 갖추어져 성취됨으로써 행위가 이익을 주는 것을 똑같이 밝히기 때문에 함께 이 품에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방위가 열 가지를 갖춘 까닭은 해의 상[解相]이 분명하고 원융한 수(數) 등의 1방(方)이 곧 일체의 방(方)임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광명을 놓음’ 이하에서 점진적으로 대중을 모으지 않은 까닭은 행위(行位)가 원만히 성취되어서 늘거나 줄어드는 상(相)이 있지 않음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따로 늘거나 줄어듦이 있는 것은 그 뜻이 위를 준거하여 이루어 얻은 것이니, 상하를 마땅히 준거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제1 회상에서 모인 대중과 광명을 해석한 것은 역시 처음은 나중의 준칙이 됨을 준거하였을 뿐이다. 처음의, 대중을 모으는 서(序) 안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위를 가리켜서 수(數)를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하나하나의 방위’란 것은 혹은 위의 회상에 통하고, 혹은 위의 회상에 통하지 못하니, 신행(信行)이 또한 위상(位相)을 이루지 못한 것은 이 통하지 못함 때문이고, 아래의 세 회상은 지위[位]가 나타나기 때문에 뜻이 통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세계’ 이하에서 명칭을 열거한 것이다. 명칭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방 불국토의 보살을 밝힌 것이니, 세 종류의 세간4)이 곧 둘이 된다. 두 번째 ‘이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 이하는 모든 보살이 모이는 데 세 가지가 있음을 밝힌 것이니, 청정한 행을 닦고[淨行] 구름처럼 모여[雲集] 방위에 의거해서 앉음[依方坐]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이 세계에서와 같이’ 이하는 시방을 유비(類比)하여 법계의 회상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동일하게 월(月)인 것은 달에 의거해서 광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청량하기 때문이니, 법을 이해해서 준거하라. 보살의 명칭이 동일하게 혜(慧)인 것은 이해[解]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발가락에서 광명을 놓는 것은 해종(解種)5)에서 물러나지 않음을 나타내서 건립하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6)는 찬탄의 서(序)인데 경문에는 10보살이 있다. 서로 차례대로 찬탄을 낳는데, 해상(解相)이 명백하니 알 수 있다. 첫째, 법혜(法慧)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의 긴 행은 생기(生起)하는 것이며, 두 번째의 올바른 게송 이하는 아울러 준거하라.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게송은 대중이 모임[衆集]7)을 거듭 들어서 불력(佛力)의 성취한 바임을 밝혔으니, 곧 앞의 품 중 여섯 단락의 뜻을 매듭 지은 것이다. 다음의 세 게송은 뛰어나게 행하는 자는 부처님을 보게 되고 나머지는 알지 못함을 밝혔으니, 곧 앞의 사량하기 어려움을 통틀어 찬탄한 것이며, 이하 모든 사람의 게송은 모두 이(理)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일체혜(一切慧)의 게송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게송은 이른바 보더라도 참부처는 보지 못함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무생(無生)을 이해해서 법신이 항상 나타남을 드러낸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취하고 집착하는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슬기로 이해하는 자의 이익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부처님의 인연의 성취를 이해하는 것이 곧 어리석음과 미혹을 여의는 것임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功)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셋째, 승혜(勝慧)의 게송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게송은 망령되이 취하는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이해하는 자의 덕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법을 기준으로 해서 관(觀)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공이 부처님께 있음을 추궁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능히 청정한 슬기가 있는 자가 법신을 보는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넷째, 공덕혜(功德慧)의 게송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미혹된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이 한 게송은 뛰어난 방편을 제시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법성(法性)의 이익을 얻음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부처님의 중생을 이롭게 하시는 방편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다섯째, 정진혜(精進慧)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잘못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덕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여덟 게송은 관(觀)이 이루어져 이익을 얻는 상(相)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여덟 게송의 경문 안에서 앞의 네 게송은 서로 생기함이 없는 것이고, 나중의 네 게송은 진실한 성품이다.
여섯째, 선혜(善慧)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이해[解]가 자타(自他)를 제도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진실한 성품에 응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 반은 이해의 뛰어난 능력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 반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일곱째, 지혜(智慧)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가르침을 인(因)해서 올바른 이해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가르침의 이치[敎理]에 미혹한 자의 잘못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이해의 덕[解德]을 거듭 성취한 것이다.
여덟째, 진실혜(眞實慧)의 게송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우수하고 열등함과 얻고 잃음을 교량(校量)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관(觀)하는 경계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이익을 들어서 배움을 권유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아는 자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그 관의(觀儀)를 제시한 것이다.
아홉째, 무상혜(無上慧)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사람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자리(自利)를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이타(利他)의 덕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공이 근본에 있음을 추궁한 것이다.
열째, 견고혜(堅固慧)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부처님이 바로 참다운 귀의처[眞歸]임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덕을 들어서 의거하기를 권유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스스로를 인용해서 사물에 들어가도록 권유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뛰어난 사람을 들어 덕의 다함 없음을 나타냄으로써 의거하기를 권유한 것이다.
11) 십주품(十住品)
다섯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는 10주(住)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곧 온 뜻을 변별한 것이다. 십(十)이란 것은 수(數)이고, 주(住)라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位]이다. 어째서 왔는가? 올바로 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스리는 바를 밝힌 것이니, 이전의 백 가지 장애를 마땅히 이 지위에서 끊기 때문이다. 만약 삼승의 숙교(熟敎)라면 끊는 바가 외도(外道)의 아집(我執)이다. 셋째는 얻는 바이니, 광명이 증대한 정(定)과 정선근(頂善根)이다. 넷째는 성취하는 바이니, 10해(解)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삼승 숙교(熟敎)의 설이니, 바로 이 품의 종지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아래의 제3품부터는 나뉘어 올바른 종지가 된다. 이 중에서 두 품은 곧 두 가지가 되는데, 첫째는 도속(道俗)을 통틀은 것이고, 둘째 「범행품(梵行品)」은 출가의 별행법(別行法)이다. 초품은 만약 뜻으로 경문을 나눈다면 이 품의 처음에 세 가지 서(序)가 있다. 광사(光師)는 여덟 가지 서(序)가 있다고 말하는데 세 가지가 되니, 즉 초품의 둘을 합해서 이름하여 머무는 처소의 서[住處序]라 하고, 다음 품의 셋을 합쳐서 이름하여 대중을 모으는 서[集衆序]라 하고, 이 품의 셋을 합쳐서 설(說)을 일으키는 서[起說序]라고 하는 것이다.
또 「지품(地品)」에 의거하면 이 이하의 세 회상에는 각기 6분(分)이 있다. 첫째는 이름하여 삼매분(三昧分)이고, 둘째는 가분(加分)이고, 셋째는 기분(起分)이고, 넷째는 본분(本分)이고, 다섯째는 설분(說分)이고, 여섯째는 이익분(利益分)이다. 분제(分齊)는 경문에 이르면 마땅히 알 수 있다.
또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삼매의 서(序)를 밝힌 것이며, 다음 ‘온갖 보살에게 고하여 말하길[告衆菩薩言]’ 이하는 올바른 종지이다. 삼매의 서는 가의(加意) 위에서 이미 변별했으니, 정(定)의 명칭은 무량방편정이다. 방편은 지(智)이니, 정이 뛰어난 지혜를 이루어서 법을 알기 때문이다. 법혜보살이 정에 들어가고 설하는 까닭은 아래에서 논한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가서(加序)이니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동가(同加)를 변별한 것이니, 여기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몸을 나타냄을 밝힌 것과 동일한 명칭을 드러낸 것이니, 곧 두 가지가 된다. 둘째, 동일하게 찬탄한 것이니, 역시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유를 얻음을 해석한 것이니, 네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의 ‘그대로 하여금 자세히 설하게 하고자 한다[欲令汝廣說]’ 이하는 가(加)의 하는 바를 밝힌 것인데 열한 구(句)가 있다.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아홉은 개별적인 것이고, 나중의 하나는 매듭 지어서 지위를 성취한 것이다. 제2의 아홉 구 안에서 처음의 다섯 구는 자분(自分)이고, 다음의 네 구는 승진(勝進)일 뿐이다. 세 번째의 ‘선남자’ 이하는 가의 상[加相]을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3업(業)이다. 가상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선남자’ 이하는 구업의 가[口加]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여래께서 곧 수여하시길[如來卽與]’ 이하는 의업의 가[意加]이고, 셋째 ‘각기 펴서[各申]’ 이하는 신업의 가(加)이다.
어째서 의가(意加)라 하는가? 법과 더불어 동일한 연(緣)을 자량하기 때문이다. 의가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10지(智)를 열거한 것이며, 다음 ‘왜냐하면’ 이하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어째서 지자(智者)와 함께 하냐고 묻는 이유는 지(智)가 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起)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선정의 일[定事]을 마치는 것이고, 둘째는 뛰어난 힘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설하는 때가 이르렀음이며, 넷째는 정(定)에는 언설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정설(正說)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성(種性)이 매우 뛰어남을 찬탄한 것과 아울러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한 것이니, 곧 본분(本分)이다.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주(住)의 상(相)을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셋째 ‘이 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爾時佛神力故]’ 이하는 대지의 흔들림으로 실다움을 나타내고 증득하여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게송으로써 거듭 읊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종성의 뜻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니, 곧 성(性)과 습(習) 두 종성(種性)의 체(體)이다. 두 번째 ‘보살의 10주’ 이하는 10해(解)의 상(相)을 열거해서 부처님께서 동일하게 설하심을 밝힌 것이니, 곧 성과 습 두 종성의 상(相)이다. 이것은 극성(剋性)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만약 분위시(分位時)에 나아간다면 곧 여섯 가지 종성이 있다. 첫째는 습(習)종성이니, 10해(解)의 지위에 해당한다. 둘째는 성(性)종성이니, 10행(行)에 해당한다. 셋째는 도(道)종성이니, 10회향에 해당한다. 넷째는 성(聖)종성이니, 10지(地)에 해당한다. 다섯째는 등각(等覺)의 성품이니, 10지의 종심(終心)에 해당한다. 여섯째는 묘각(妙覺)의 성품이니, 불지(佛地)에 해당한다.
다시 이름하여 6견(堅)이 있다. 또한 견신(堅信)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법(堅法)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수(堅修)라 이름하고, 또한 견득(堅得)8)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정(堅頂)이라 이름하고, 또한 견각(堅覺)이라 이름한다. 또한 이름하여 6인(忍)이라 하니, 신인(信忍)ㆍ법인(法忍)ㆍ수인(修忍)ㆍ정인(正忍)ㆍ무구인(無垢忍)ㆍ일체지인(一切智忍)이다. 다시 이름하여 6혜(慧)라 하니,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ㆍ무상혜(無相慧)ㆍ조혜(照慧)ㆍ적조혜(寂照慧)이다. 또한 이름하여 6관(觀)이라 하니, 주관(住觀)ㆍ행관(行觀)ㆍ향관(向觀)ㆍ지관(地觀)ㆍ무상관(無相觀)ㆍ일체종지관(一切種智觀)이다. 이것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지위에 의탁해 말했을 뿐이다.
이 가운데 10해와 10행 중에서 6결정(決定) 안에 단지 대선결정(大善決定)이 없을 뿐이며, 10회향은 단지 관상(觀相)의 선(善)과 대선(大善) 및 겁약(怯弱)하지 않음이 있을 뿐이며, 나머지 셋은 모두 없다. 대선(大善)이 있고 나머지 셋이 없는 까닭은 회향이 방편사(方便事) 중에서 성취를 드러내기 때문에 대선이 나타나는 것이며, 나머지 셋이 없는 것은 뜻이 숨어 있기 때문에 설하지 않는 것이다. 관상 등은 알 수 있다. 10해와 10행 등은 어째서 대선이 없는 것인가? 해행(解行)이 스스로 행해서 뜻이 드러나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처음 체(體)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고한 것이고, 둘째는 6결정을 개별적으로 밝힌 것이다. 둘째, 해상(解相)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數)를 들어 이끌어 증명해서 종지를 세운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열거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셋째는 이끌어 증명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10해의 명칭이란 것에서 첫째 발심(發心)은 위를 기약하는 것이고, 둘째 치지(治地)는 미혹을 소멸해서 자타(自他)의 이익을 낳는 것이고, 셋째 수행(修行)은 정(定)이 앞의 둘을 성취하는 것이고, 넷째 생귀(生貴)는 행이 성취되어 불가(佛家)에 태어나는 것이고, 다섯째 방편구족은 자타의 행이 원만한 것이고, 여섯째 정심주(正心住)는 연기의 바른 이해를 얻는 것이고, 일곱째 불퇴(不退)는 이량(理量)에서 지(止)와 관(觀)을 쌍으로 행하는 것이고, 여덟째 동진(童眞)은 무생(無生)의 묘해(妙解)로써 몸을 건립하는 것이 마치 동자가 물듦이 없는 것과 같고, 아홉째 법왕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훌륭히 베풀기 때문이며, 열째 관정위(灌頂位)는 원만하게 직분을 받아서 상응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아래의 모든 지위의 행상(行相)이다.
둘째,9) 경문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니, 하나하나의 주(住)가 모두 네 단락이다. 첫째는 열거한 명칭을 묻는 것이다. 둘째는 해상을 변별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는 해석이고,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다. 셋째는 승진(勝進)의 조행(助行)을 우러러 닦음을 밝힌 것인데, 역시 세 가지가 있으니, 건립과 해석과 매듭 지음이다. 아래도 모두 이와 같아서 해당되는 지위에서 익힐 수 있다. 넷째 ‘왜냐하면’ 이하는 배우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오직 처음과 열째에만 여섯 구가 있다. 첫째는 질문에 의탁함을 거듭 든 것이고, 둘째는 발심의 연(緣)을 변별한 것인데 여섯 구가 있으며, 셋째는 행체(行體)를 변별한 것인데 여기엔 세 구가 있다.
첫째, 체(體)의 발심에는 4연(緣)ㆍ4인(因)ㆍ4력(力)이 있다. 4연이란, 첫째는 불보살의 신통대사(神通大事)를 보고 듣는 것이며, 둘째는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말세에 법을 수호하는 것이며, 넷째는 고통받는 중생을 보기 때문에 발심하는 것이다. 4인이란 첫째는 종성(種性)의 인연이며, 둘째는 부처님 등이 선우(善友)가 되는 것이고, 셋째는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넷째는 온갖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4력이란 자력(自力)과 타력(他力)과 인력(因力)과 방편력(方便力)이니, 마치 『지지(地持)』의 설과 같다. 두 번째는 나아갈 바이고, 세 번째는 물러나지 않는 것[不退]인데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만약 일승의 통교(通敎)를 기준으로 하면 10주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 곧 네 가지 물러남[四退] 등이 모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만약 삼승에 의거한다면 10지(地) 이후로는 염퇴(念退)가 있고, 지(地) 이전에는 행퇴(行退)와 위퇴(位退)가 있으니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는 것도 역시 물러남이며, 10신(信) 이전에 실퇴(實退)가 있고 이후에는 물러남을 나타냄이 있으니, 이는 지위를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네 번째는 얻은 바를 밝힌 것이고, 다섯 번째는 배움을 밝힌 것이며, 여섯 번째는 앞에서 배운 뜻을 변별한 것이다.
또 이 이하의 모든 경문에도 모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뛰어난 능력을 성취해서 행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따지는 것이고, 다음은 뜻을 변별한 것이며, 셋은 성취한 덕을 밝힌 것이다. 모든 지위도 다 이와 동일하므로 역시 통틀어 해석할 수 있다. 즉 스스로 이해를 연 자는 지위10)가 인과에 통하는데 그 뜻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자의 작은 가르침 등을 말미암지 않고서 이해하는 것이고, 둘째는 타자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서 경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셋째는 타자의 성품을 말미암지 않고서 밖에 따로 모으는 것이다. 나중의 경문이 하는 바는 각기 동이(同異)가 있으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치지주(治地住)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2지(地)의 열 가지 모임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과(果)를 모으는 것과 동일하니, 그 중에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전도(顚倒)됨을 버리고 정견(正見) 등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셋째, 수행주(修行住)의 내용에서 앞의 열은 3지의 번뇌행을 수호하는 것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소승을 수호하는 것과 동일하다.
넷째, 생귀주(生貴住)의 내용에서 처음 열의 상(相)은 4지의 열 가지 법지(法智)와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수도품(修道品)」 등과 동일하다.
다섯째,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5지의 대자(大慈) 등의 관(觀)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대비(大悲)로 깊고 무거운 고통을 관하는 것과 동일하다.
여섯째, 정심주(正心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6지의 열 가지 평등 가운데 제10구와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앞의 아홉 가지 평등과 동일하다.
일곱째, 불퇴주(不退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7지의 열 가지 낙무작대치(樂無作對治)와 동일하고, 나중의 열은 저 장애의 대치와 동일하며, 또한 쌍행분(雙行分)과 동일하다. 물러남[退]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지위[位]이고, 둘은 행(行)이고, 셋은 염(念)이고, 넷은 얻고 얻지 못함에 응하는 것[應得不得]이다. 여기에서는 네 가지 물러남이 없는 것이다.
여덟째, 동진주(童眞住)의 내용에서 처음의 열은 8지 승행분(勝行分)에 있는 하등(何等)의 몸과 나아가 부처님을 공양하는 등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저 3세간의 자재함과 동일하다.
아홉째, 법왕자주(法王子住)에서 처음의 열은 9지에서 지혜[智]를 성취하여 행에 들어가는 등과 동일하며, 나중의 열은 저 구업(口業)과 법사(法師)가 성취하는 등의 경문과 동일하다.
열째, 관정주(灌頂住)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며, 세 번째는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며, 네 번째는 배움에 나아가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잠복해 있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처음의 열은 10지의 삼매분(三昧分)과 동일하며, 다음의 열은 저 수위분(受位分)과 동일하며, 다음의 10구는 저 대진분(大盡分)과 동일하니, 곧 들어가고 머물고 나가는 것이다.
이상은 일승의 믿음을 낳는 것에 의거해서 말을 삼은 것이다. 만약 삼승의 지위에 의탁해서 개별적으로 관(觀)하는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경전의 초주(初住) 가운데 서(序)는 일체의 선근을 모아서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이루어 아직 고(苦)를 제도하지 못한 이를 제도케 하고, 아직 집(集)을 이해하지 못한 이를 이해토록 하며, 아직 도(道)에 안주하지 못한 이를 안주하게 하고, 아직 멸(滅)을 얻지 못한 이에게 멸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2주(住) 중에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 이른바 4념관(念觀)11)으로서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의 이 네 가지가 다 공(空)한 것이다.
제3주 중에선 불도법(佛道法)을 훌륭히 모으는 것이니, 이른바 10일체입(一切入)12)의 4대(大)ㆍ4색(色)ㆍ공처(空處)ㆍ식처(識處)가 다 실상(實相)과 같음을 관하기 때문이다.
제4주 중에선 일체의 부처님 앞에서 법을 받아들여서 8승처(勝處)13)의 관(觀)을 행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실다운 5음(陰) 중에 있는 광상(廣相)과 약상(略相)의 두 가지 승처이고, 밖으로는 가탁된 중생의 법 중에 있는 광상과 약상의 두 가지 승처이며, 4대법(大法)의 광상과 약상의 네 가지 승처이니, 이처럼 일체의 법이 공(空)해서 무상(無相)임을 관하기 때문이다.
제5주 중에선 모든 청백법(淸白法)을 닦는 것이다. 이른바 8대인각(大人覺)14)으로서 소욕(少欲)ㆍ지족(知足)ㆍ적정(寂靜)ㆍ정진(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ㆍ정혜(正慧)ㆍ논쟁하지 않는 것[不諍論]이니, 일체법에 따르기 때문이다.
제6주 중에선 모든 부처님의 수호를 받게 되는 것이니, 8해탈(解脫)의 관(觀)으로 문혜(聞慧)를 얻지만 안으로 가탁된 것[內假]과 밖으로 가탁된 것[外假]의 두 상(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1해탈은 사혜(思慧)이니, 안으로 다섯 가지 법과 밖으로 일체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2해탈은 수혜(修慧)이니, 6관(觀)이 구족하고 색계의 5음이 공(空)하다. 3해탈은 4공(空)ㆍ5음(陰) 및 멸정관(滅定觀)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5해탈은 상(相)과 같기 때문이다.
제7주 중에선 정법을 자세히 하는 것이니, 이른바 6화경(和敬)15)이다. 3업(業)과 동계(同戒)ㆍ동견(同見)ㆍ동행(同行)이 이 법화(法和)에 들어가서 필경에는 공(空)하기 때문에 불퇴위(不退位)에 머무는 것이다.
제8주 중에선 대법(大法)을 믿고 기뻐하는 것이다. 이른바 3공(空)16)은 일체 인(因)이기 때문에 짓는 것이 없고, 일체 과(果)이기 때문에 상(相)이 없는 것이다. 인(因)이 공하고 과(果)도 공하고, 공도 다시 공하기 때문에 공공(空空)이니, 이처럼 법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제9주 중에선 네 가지 동등한 법에 머무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을 교화하는데 4제법(諦法)을 가르치는 것이다. 삼계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무명(無明)의 습인(習因)은 생(生)을 받아서 무궁하며, 3공(空)의 도품(道品)은 무위적멸(無爲寂滅)이니, 사제는 둘이 아닌 일합상(一合相)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이 바로 중생연(衆生緣)ㆍ법연(法緣)ㆍ무연(無緣)인 것이다.
제10주 중에선 부처님의 공덕을 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른바 6염(念)17)인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으로, 일체 부처님의 공덕을 얻어 생각생각마다 불환18)삼매(不幻三昧)에 들어가 항상 앞에서 닦기 때문이다.
이상은 삼승의 지위에 의탁해서 관(觀)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19) 실다움을 나타내고 증득하여 성취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지를 진동해서 실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 다시 말하기를 ’부처님의 신력’이라 한 이하는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대지가 진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꽃비가 내리는 것이며, 셋째는 나머지 시방세계 등과 동등한 것이다. 둘째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회상의 평등함이 법계에 광대하게 두루 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네 구가 있음은 알 수 있으며, 둘째의 회상을 매듭 지음 중에서도 두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넷째,20) 거듭 읊는 경문에는 203개의 게송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185게송은 10해(解)의 상(相)을 읊는 것이고, 둘째 ‘이처럼 10주의 모든 보살[如是十住諸菩薩]’ 이하는 열여덟 게송이 있는데, 총체적으로 10주를 읊어서 수행을 권유함을 찬탄하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 정송(正頌)의 경문에 열 가지가 있다. 처음의 90게송은 초주(初住)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제2 치지[第二治地]’ 이하는 제2주를 읊은 것이니,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있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35사(事)를 대(對)해서 발심의 체(體)를 자세히 성취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와 같이 발심하고는[菩薩如是發心已]’ 이하는 초주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것이 보살의 ≺발심주를≻ 설한 것으로[是說菩薩]’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치지주(治地住) 안에서 처음의 네 게송은 해(解)를 읊은 것이고, 나중의 여덟 게송은 배워서 행하는 바를 읊은 것이다. 수행주(修行住)에서 앞의 네 게송은 해(解)를 읊은 것이고, 나중의 여섯 게송은 배워서 행하는 바이다. 생귀주(生貴住)에서 앞의 여섯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여섯 게송은 행(行)이다.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에서 앞의 여섯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세 게송은 행(行)이다. 정심주(正心住)에서 앞의 여덟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두 게송은 행(行)이다. 불퇴주(不退住)에서 앞의 네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네 게송은 행(行)이다. 동진주(童眞住)에서 앞의 여섯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네 게송은 행(行)이다. 법왕자주(法王子住)에서 앞의 네 게송은 해(解)이고, 나중의 두 게송은 행(行)이다. 관정주(灌頂住)에서 앞의 열 게송은 덕의 체[德體]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주위(住位)의 상(相)을 읊은 것이며, 아래의 네 게송은 나중의 방편행이다.
둘째의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열네 게송은 10주의 알기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설함이 다함 없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12) 범행품(梵行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행(行) 가운데 최상의 청정이기 때문에 범행(梵行)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요컨대 범(梵)을 논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보(報)와 방편(方便)이다. 처음의 수행은 정(淨)이 되고, 성취는 범(梵)이 된다. 만약 보(報)라는 것에 의거한다면 욕천(欲天)은 정(淨)이 되고 색천(色天)은 범(梵)이 된다. 만약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리는 정(淨)이 되고 이타는 범(梵)이 된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는 “3학(學)은 뛰어난 성행(聖行)이 되고, 4무량(無量)은 범(梵)이 된다”고 하였다.
둘째는 온 뜻을 밝힌 것이다. 어째서 온 것인가? 그 도에 나아가는 데는 방편이 다양한데 상(相)에 따라서 둘로 나누니, 이른바 하나는 치(緇)이고, 하나는 소(素)이다. 소(素)는 이타를 따르면서 방소가 없이 사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분제(分齊)의 행에 머물지 않는다. 치(緇)는 자리(自利)를 따르기 때문에 세간을 벗어난 용의(容儀)를 가볍게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오직 내관(內觀)을 성취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품(地品)」에서는 출가인은 오직 삼매를 이룰 뿐이라고 변별하였다.
【문】앞의 모든 회상에서는 어째서 또한 이 품을 설하지 않았는가?
【답】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이 중에선 행이 열등한 것이며, 둘째는 처음이 마지막까지 통하기 때문이다.
【문】어째서 10신(信)에서 이 품을 밝히지 않았는가?
【답】이것의 올바른 종지는 법으로써 사람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지, 사람으로써 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이 법을 성취한다고 이름짓겠는가? 법은 높고 낮음이 없으니, 사람과 기물(器物)에 따라서 법의 정밀하고 거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0신의 법해(法解)는 아직 밝히지 못했으나, 법으로써 사람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신의 해(解)가 열등하기 때문에 다만 신근(信根)을 따라서 법을 정할 뿐이다. 만약 형국(形局)을 말하면, 곧 모든 견(見)이 더욱 증대해서 올바른 믿음[正信]을 이루지 못한다.
【문】범행의 발심은 법을 밝힌 것인데 어째서 아래의 세 회상에 통하지 못하는 것인가?
【답】이(理)가 있으니, 이것으로써 저것을 유비(類比)할 뿐이다.
셋째는 종지를 변별한 것이다. 무념(無念)의 이관(理觀)은 마땅히 자체(自體)의 과(果)인 열반의 원적행(圓寂行)이니, 곧 이 품의 종지가 된다.
【문】이 중에서 처음으로 10주 초발심의 인(因)을 밝혔는데 어째서 이를 과행(果行)이라고 말하는가?
【답】이는 자체의 참된 발심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후제(後際)에 계합해서 체(體)가 포함되어 밖이 없는[無外] 것이다. 또 이 자체의 발심[自體發] 가운데의 과(果)는 희론(戱論)의 행이 없을 뿐이니, 그러므로 이 품 아래에서 매듭 짓기를 “초발심 때에 문득 정각을 이루니, 혜신(慧身)을 구족해서 다른 사람이 깨우쳐 줌을 말미암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나중은 답이다. 정념(正念) 천자(天子)가 질문한 까닭은 정(定)이 이(理)를 드러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정념의 망령되지 않음은 청정한 과보를 감당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질문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질문이고, 둘째는 사(事)를 거듭 든 것이며, 셋째는 자분(自分)이 출가행을 성취한 것이고, 넷째 ‘속히 성취하다[速成]’ 이하는 승진이니, 타분(他分)과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감21)을 밝힌 것이다. 또 묻기를 “위의 「정행품」은 어째서 재가와 출가를 합쳐서 밝혔는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니, 위에서는 신근(信根)이 약하기 때문에 처음에 연(緣)과 수(修)가 서로 바뀌는 처소를 기준으로 해서 쌍으로 밝힌 것이다. 이 중에서 이미 지나간 회상의 법이 출가의 상(相)을 밝힌 것은 자체의 연기가 성품을 여의는 것은 끊음이 아니기 때문에 여읨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유마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답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앞의 자분에 답한 것이고, 둘째 ‘또한 증상의 10법을 닦아 익혀서[又復修習增上十法]’ 이하는 앞의 타분(他分)의 질문에 답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한다면[菩薩如是觀者]’ 이하는 범행(梵行)이 이익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심사(尋思: 곰곰이 생각함)를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정념’ 이하는 정관(正觀)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것을 이름하여[是名]’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심사를 변별한 것이고, 둘 ‘또한 과거를 안다[又知過去]’ 이하는 여실(如實)을 밝힌 것이다. 처음은 다시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10법을 들어서 소관(所觀)을 밝히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은 개별적인 것이다. 둘째 ‘마땅히 이와 같이[應如是]’ 이하는 올바르게 관(觀)을 밝힌 것이며, 셋째 ‘당연히 이와 같이[當如是]’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무엇이 범행의 체(體)인가? 이실(理實) 자체의 발심 가운데 정지(正智)가 그에 해당된다. 어째서 법혜보살이 설했는가? 원만히 통하는 성품의 덕은 법에 따르는 혜(慧)가 아니면 밝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 가운데 앞의 여섯은 행과 행연(行緣)이며, 뒤의 넷은 믿는 바의 경계이기 때문에 치우쳐 설한 것이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실(如實)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행(觀行)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이 범행법’ 이하는 반험(反驗)이다. 제2 보살의 정념에 장애가 없다는 것은 정관(正觀)을 변별한 것이니,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무상(無相)을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이와 같이 관한다면[如是觀者]’ 이하는 의타무생(依他無生)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일체의 부처님[一切佛]’ 이하는 진실무성(眞實無性)의 법을 변별한 것이니, 비유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승진(勝進)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자리(自利)에는 네 구가 있으니, 이른바 문답을 세워서 매듭 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와 같이 관찰하면[如是觀察]’ 이하는 이타(利他)에 다섯22) 구(句)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 ‘요술과 같고[如幻]’ 이하는 비유해서 설한 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체(體)가 없어서 허깨비와 같고, 실다움[實]을 나타냄이 꿈과 같으며, 용(用)을 일으킴이 번개와 같고, 연(緣)의 뭉침이 메아리와 같고, 사(事)를 이룸이 화(化)와 같다.
셋째, 자타를 이롭게 하는 경문을 매듭 지은 것이다. 또한 위의 속히 성취함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은 이익을 매듭 지음이다. 이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앞의 행은 적고 능(能)은 많음을 매듭 지은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초발심 때’ 이하는 빠름을 이루는 이유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보리에 즉(卽)한다고 말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곧 10해(解)의 보리이다. 두 번째는 해(解)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정리(正理)를 깨닫는 것이다. 나머지 신(信)ㆍ행(行)ㆍ증(證) 등은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또 보현에 즉하는 것은 자체의 원만히 밝고 궁극적인 인과를 증득하는 것이니, 이러한 해(解)는 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13) 발심공덕품(發心功德品)
이 이하는 이 주(住)의 승진의 덕을 변별한 것이다.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발심은 행의 체(體)를 거듭 든 것이고, 공덕행은 성취한 바의 공덕이니, 네23) 가지 뜻에 나아가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둘째, 온 뜻이다. 온 까닭은 앞의 행을 이미 성취하고 나서 이제 덕의 상(相)을 찬탄해서 변별했기 때문이다.
셋째, 공덕의 분량(分量)은 이 품의 종지가 된다.
넷째,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답이며, 세 번째는 증득해서 성취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게송이다.
제석[帝]이 질문한 까닭은 하늘[天]에 있기 때문이니, 또한 공덕의 자재로움에 즉한 것이며, 또 청정한 해(解)의 자재로움이 바야흐로 덕을 감당해서 받아들일 뿐이다. 법혜보살이 설한 까닭은 법에 칭합하는 혜(慧)가 바야흐로 공덕을 궁진(窮盡)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24) 답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간략함인데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분제를 허락하는 것이다. 가르침의 양[敎量]은 알기가 어렵고, 뜻의 심오함은 믿기가 어렵고, 사유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가르침에 응한 것은 설하기가 어렵고, 증득하고자 한 것은 통하기가 어렵고, 수(數)가 지극하기 때문에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음 ‘가령[假使]’ 이하는 자세히 답한 것이다. 자세함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열두 가지 비유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이 마음을 발하고 나서[發是心已]’ 이하는 합쳐서 비유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비유이고, 둘째는 징(徵)이고, 셋째는 답이고, 넷째는 교량(校量)이다. 나머지 경문은 정해지지 않았다. 열두 가지 비유 중에 다섯이 있다. 처음은 5계(戒)이고 둘째는 10선(善) 등이니, 이 둘은 이익된 바를 취해서 정황으로 삼는 것이며, 셋째는 신통(身通)이 곧 중생을 이롭게 하는 처소이며, 넷째는 생성과 파괴를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시(法時)를 아는 것이다. 이하의 근기와 희망 등 일곱 가지 비유는 근기를 이롭게 하는 바가 두텁고 엷음을 밝힌 것이며, 아래의 하나는 모든 행의 덕이 넓어서 뛰어난 지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제2의 합쳐진 경문은 길게 일곱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덕의 능력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처음이 열등하지 않으면 평등하고 뛰어남을 성취한다는 뜻을 따진 것이며, 셋째는 말미암는 바를 답한 것이고, 넷째 ‘어째서’ 이하는 처음과 마지막이 동일함을 거듭 따진 것이며, 다섯째 ‘이 초발심’ 이하는 마지막으로써 처음을 섭수한 것이며, 여섯째 ‘다 삼세의 모든 여래와 평등하며[悉與三世諸如來等]’ 이하는 자세히 변별한 것이고, 일곱째 ‘저 초발심’ 이하는 뛰어난 연(緣)의 말미암음을 인(因)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또 증득을 얻는다는 것은 행증(行證)이며, 신증(身證)이란 위증(位證)이다. 또 증득을 얻는 것은 지(智)가 상응하는 것이며, 신증이란 것은 신(身)이 상응하는 것이다. 여기에선 모두가 보현의 실다운 덕[實德]이다.
【문】모든 세계 등이 보살의 마음을 잘 따르면서 전(轉)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답】보살이 모든 인연의 화합인 자재한 마음을 얻은 것이 바로 모든 법의 인연이기 때문에 전(轉)을 따르는 것이니, 이는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위의 경문에서 열 가지 욕망[十欲] 등이라 한 것은 하나의 선한 욕망이 있음을 따라서 위의 열 가지 덕을 갖추는 것이니, 나머지는 준거할 수 있다. 또 신증(身證)으로써 삼세를 통하는 까닭은 아래 경문의 보살이 항상 삼세 부처님의 앞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3의 대지를 진동해서 증득을 성취하는 등의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등이며, 둘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동일하게 증명하시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이롭게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인데 세 가지가 있으며, 넷째는 동일하게 설함을 인용해서25) 앞의 뜻을 증명하여 성취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다섯째는 성취함의 말미암는 바를 변별한 것인데 열 가지가 있다.
【문】어째서 부처님께서 증명하시는가?
【답】승진을 위해서 과(果)를 들어 거두어 이룬 것이기 때문이며, 또 믿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며, 또 인과 과가 동일한 성품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나머지 사(事)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제4의 거듭 읊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생기(生起)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처음의 경문에 여덟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송의 경문은 241게송 반인데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발심이 공덕을 나타내 이룸을 자세히 찬탄한 것이며, 둘째 ‘시방세계 중에서’ 이하는 앞의 열두 가지 비유를 거듭 들어서 덕을 사량하기 어려움을 술회한 것이며, 셋째 ‘삼세 인간 중의 존귀한 이[三世人中尊]’ 이하는 해당되는 과[當果]를 능히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보살의 초발심’ 이하는 매듭 지은 것이다.
이 중에서는 상세한 과단[細科]을 얻지 못한다. 만약 상세히 한다면 곧 지취(旨趣)를 잃는 것이다. 또 해위(解位)26) 이후에 있는 해행(解行)ㆍ이사(理事)ㆍ교의(敎義) 등의 법문은 모두 다 항상 행하면서 간단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신위(信位)를 성취한 이후의 보현행과 나아가 8상(相)과 부처님 이후는 모두 차별이 없는 것이니, 이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삼승행의 뜻 등은 모두 개별적이라서 의심이 없다.
14) 명법품(明法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는 명칭을 변별한 것이다. 명법(明法)을 말한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르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아함법은 이(理)를 비추어 나타나기 때문에 명(明)이라 이름하였고, 법은 곧 뜻이다. 둘째는 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행의 더욱더 뛰어남을 말미암아서 나중 지위의 상(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이전 지위의 법의(法義)와 해행(解行) 등으로 명(明)을 삼고, 나중 지위의 교의 등으로 법을 삼는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흥기한 까닭은 이전의 행덕(行德)으로 다시 수행하고, 나중의 지(地)와 더불어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행교(行敎)ㆍ법의(法義) 등이 그대로 이 품의 종지가 된다.
넷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정진으로써 질문한 까닭은 만약 정진행이 아니면 능히 이 승진의 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혜보살이 답한 까닭은 법에 칭합하는 혜(慧)가 능히 이 가르침을 펴기 때문이다.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고, 세 번째 말후(末後)의 약간 긴 행은 유통(流通)을 대략 매듭 지은 것이다. 질문의 경문은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한 것이고, 다음은 거듭 읊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먼저 앞의 주위(住位) 가운데 행덕(行德)을 거듭 들어서 생(生)한 뒤의 차례로 삼은 것이며, 다음 ‘저 보살이 어떻게 닦아 익혀야[彼菩薩云何修習]’ 이하는 승진 가운데 선제(先際)의 행덕을 올바로 질문한 것이니, 처음에 경문을 거듭 든 것에 여섯 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승진의 선제(先際)를 질문한 것인데 경문에 열한 구가 있으니, 네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여섯 구는 자리(自利)이고, 다음의 ‘그를 따라서[隨其]’ 이하의 세 구는 이타행이며, 다음의 ‘일으켜 융성하게 하여[興隆]’ 이하의 한 구는 주지(住持)의 건립이고, 다음의 한 구는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은 것이다.
제3의 승진 중에서 후제(後際)의 이타분법(利他分法)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성숙한 덕을 밝히는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리의 성숙한 행덕(行德)이고, 두 번째 ‘불찰(佛刹)을 구족하고’ 이하는 이타의 성숙한 중생 행법(行法)이다. 처음의 자리분(自利分)에 네 구가 있다. 첫째는 장애를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체(體)를 이루는 것이며, 셋째는 덕을 성취하는 것이고, 넷째는 용(用)을 성취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이타(利他)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체(體)ㆍ덕(德)ㆍ용(用)이다. 체에는 12사(事)가 있으니, 이를 준거해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천왕(天王)’ 이하는 권속의 행법을 밝힌 것인데, 네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선근의 힘을 얻는다[得善根力]’ 이하는 자타의 덕을 원만히 성취해서 헛되지 않는 뜻을 변별한 것인데, 네 구가 있다.
둘째,27) 거듭 읊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22게송이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먼저 앞의 초발심 보살이 이전의 주위(住位)에서 모은28) 바 덕의 경문을 거듭 든 것이다. 다음 ‘무엇을 말하는가?[云何]’ 이하의 일곱 게송은 두 번째의 ‘저 보살’ 이하의 올바른 질문과 승진 중에 있는 선제(先際)의 정행(正行)을 읊은 것이다. 다음 ‘부처님[人雄]’ 이하의 열한 게송은 ‘착하도다[善哉]’ 이하에 있는 후제(後際)의 과덕(果德)인 이타의 경문을 읊은 것이다.
두 번째의 ‘무엇을 말하는가?’ 이하에 나아가면 선제의 자분(自分) 중에서 처음에 있는 세 게송은 위의 자리(自利)의 여섯 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이타행 가운데 세 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건립의 경문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과행(果行)의 성취되어 헛되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두 번째 답 중에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긴 행이고, 나중은 게송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한 바가 때에 맞아 이익이 많음을 찬탄한 것이니,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듣기를 명하고 설하기를 허락한 것이다. 셋째 ‘불자야, 이 보살’ 이하는 올바르게 답한 것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승진 중에 있는 선제(先際)의 자분(自分)의 올바른 행에 답한 것이며, 둘째 ‘보살마하살이 만약 성취하게 된다면’ 이하는 위의 승진 중에 있는 후제(後際)의 과행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는 170구가 있으며, 또한 180구라 할 수도 있는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110구는 위의 열한 구 중 처음의 여섯 구인 자리행(自利行)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40구는 이타행의 세 구에 답한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주지(住持)의 건립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10구는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은 것에 답한 것이다. 자리에 답한 경문 중에서 처음의 100구는 앞의 다섯 행(行)에 답한 것이며, 나중의 10구는 여섯 번째 행에 답한 것이다. 앞의 다섯 행에 답한 경문 가운데 하나하나는 모두 20구로 답한 것이다. 20구 중에서 앞의 10구는 스스로의 행이 상응하는 법이며, 다음의 10구는 승진의 수행법이다.
청정한 혜(慧) 등을 구족했다고 말한 것은 앞의 자리행이 나중의 이타를 생기함을 거듭 든 것이니, 형세[勢]가 서로 연결되게 한 것이다. 모든 10의 경문은 각기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질문이고, 셋째는 답이고, 넷째는 매듭 지음이다. ‘또한 정해지지 않음이 있다’는 것은 준거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이타(利他)의 앞의 질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 답 중에는 40구가 있고, 또한 50구라고 할 수도 있다. 처음의 20구는 세 가지 중의 초구(初句)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모든 바라밀을 버리지 않는다’는 10구는 앞의 제2구에 답한 것이며, 다음의 ‘불자야’ 이하의 10구는 앞의 제3구에 답한 것이다. 앞의 20구는 또한 30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처음의 다섯 구는 기(器)의 마땅한 바를 아는 것이고, 다음의 10구는 모든 병에 응해서 약을 주는 것이며, 다음의 열다섯 구는 기(器)에 응해서 법을 주는 것이다.
‘능히 이렇게 행하는 자라면 삼보를 일으켜 융성케 하는 것이다[能如是行者則興隆三寶]’라고 말한 것 아래29)에는 10구가 있는데, 제10구 안에 있는 주지(住持)의 건립에 답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이 개별적인 경문을 네 가지로 나눈다. 앞의 세 가지는 개별적인 것이고, 네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다. 앞의 세 가지의 경문에서 처음은 교도(敎道)에 의거한 것이고, 다음은 증도(證道)에 의거한 것이며, 나중은 부주도(不住道)에 의거한 것이다.
6화경(和敬)이란 것은 신자(身慈)ㆍ구자(口慈)ㆍ의자(意慈)30)와 동견(同見)ㆍ동계(同戒)ㆍ동시(同施)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삼보를 끊지 않는다[菩薩如是不斷三寶]’ 이하에 있는 10구는 위의 자분행(自分行)의 제11구인 행(行)이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음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째의 10은 행이 사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음을 변별한 것인데, 차례대로 앞의 다섯 구에 답한 것이다. 둘째에 있는 10은 덕으로써 스스로 장엄한 것이니, 곧 앞의 헛되지 않은 구(句)에 답한 것이다. 셋째에 있는 10은 스스로 장엄했기 때문에 능히 섭화(攝化)하여 헛되지 않은 것이니, 역시 한 구에 똑같이 답한 것이다. 이 가운데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가지 경문이 있다.
다음으로 ‘만약 성취함을 얻으면[若得成就]’ 이하의 제2는 후제(後際)의 과덕행(果德行)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보살마하살’ 이하는 먼저 어리석음의 어둠[癡闇]을 없앰으로써 과(果)가 성숙하는 덕행법에 답한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스스로 성숙하는 행을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차례의 방편[次第方便]’ 이하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밝힌 것이다. 둘째 ‘대중 중에서[於大衆中]’ 이하는 권속의 행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은 뛰어나고 오묘한 법을 성취하고 나서[成就如是勝妙法]’ 이하는 행의 성취가 헛되지 않음을 변별한 것이다. ‘오직 여래를 제외한다[唯除如來]’는 것은 아래가 위를 능가하는 것이다.
셋째, ‘행의 헛되지 않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건립이고, 둘째는 따지는 것이고, 셋째는 답하는 것이다. 답 중에는 열한 구가 있는데, 앞의 여섯 구는 인(因)이고 나중의 다섯31)은 과행(果行)이다. 제2의 거듭 읊음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올바르게 게송을 읊는 것이다.
승진 중에는 스무 게송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열세 게송은 선제(先際)의 연기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일곱 게송은 위의 답 중에서 승분(勝分)의 과덕과 자분(自分)의 행법을 읊은 것이다. 전자 중에서 처음의 여섯 게송 반은 자리행(自利行)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 반은 이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주지(住持)의 건립을 읊은 것이고, 아래의 두 게송은 사(事)를 성취해서 헛되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나중의 일곱 게송 중에서 처음의 한 게송 반은 자리(自利)의 과(果)와 이타의 과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 반은 권속행을 읊은 것이며, 아래의 두 게송은 행의 성취가 헛되지 않음을 읊은 것이다.
[제4회 불승야마천(佛僧夜摩天)]
15) 자재품(自在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불(佛)이란 교화의 주체[化主]이고, 승(昇)이란 위로 나아가는 것이며, 야마(夜摩)는 시천(時天)이라 하며 또한 희락(戱樂)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천(天)이란 밝기 때문이며, 자재(自在)란 공(空)에 노닐어 걸림이 없는 것이다. 행을 기준으로 준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니, 곧 위에 나온 10행(行)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온 까닭은 이해[解]에 의지해서 행(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회상이 온 뜻이고, 둘째는 품(品)이 온 뜻이다. 모두 제3회상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준거하라.
셋째, 종지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람을 기준으로 하고 법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위와 같으니, 준거해서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이 품의 종지는 처소와 공양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의 네 품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서(序)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하나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하나는 승진의 방편을 밝힌 것이다. 이 처음의 서문은 앞의 회상과 하나같이 동일하지만, 다만 더욱 뛰어나게[增勝] 전전(展轉)하는 위에서 법에 의탁함이 같지 않을 뿐이다.
‘이 때 여래의 위신력 때문에 시방 일체의 모든 부처님 세계와 모든 사천하와 하나하나의 염부제 나아가 현현하지 않음이 없는 등’이란 것은, 만약 삼승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 때라면 염부제[閻浮]는 고통이 공(空)하고 더러움을 싫어하며, 고통을 싫증내고 정(情)이 민감하며, 위를 흠모하는 뜻이 맹렬하기 때문에 염부에서 도를 이루니, 불신(佛身)은 출세간이 아니다. 만약 일승과 삼승의 공통된 가르침을 기준으로 할 때라면 염부는 실다움이 곧 공(空)이니, 이는 흡사 가(假)를 이룬 듯하여 사(事)의 얽힘이 되는 것이라서 성인은 항상 가엾이 여기고 부처님은 본원력으로써 중생을 가엾이 여겨 마땅히 세간의 처소에서 도를 성취하고, 불신(佛身)은 변화해서 나타나기[現化]32) 때문에 몸이 곧 출세간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만약 일승을 기준으로 할 때라면 이 염부의 처소는 곧 일심법계(一心法界)의 경계라서 부처님이거나 처소이거나 둘 다 물듦에 처하여 더러움이 없는 최고의 부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곳에 있으면서 도를 성취함을 나타낸 것이다. 다만 모든 응화(應化)의 사의(事義)는 모두 이에 준거해서 구별할 뿐이다.
두 번째, ‘공양이 기틀을 성취함’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양을 일으킴이 곧 근(根)임을 밝힌 것이며, 둘째 ‘합장(合掌)’ 이하는 부처님께 청함이 곧 욕망임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공양행(供養行)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장엄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에 23사(事)가 있으니, 첫째는 사(事)의 장엄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선근(善根)’ 이하는 행의 장엄이며, 셋째 ‘여래’ 이하는 부처님의 덕이 가(加)하여 공양을 장엄함으로써 인(因)이 과(果)와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나머지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문】10해(解)의 찬탄하는 게송은 개별적으로 부처님을 열거했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답】해(解)의 상(相)은 개별적으로 알지만 행은 곧 통틀어서 성취하기 때문이다.
16) 보살설게품(菩薩說偈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처음은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자체(自體)의 묘인(妙因)과 행이 모인[行集] 경문의 지혜와 교칙(敎則)을 드러내 밝히므로 보살이 게송을 설한다[菩薩說偈]고 말한 것이니, 나머지 뜻은 알 수 있다.
온 뜻과 종지는 모두 위에서 준거한 것과 동일하다.
【문】만약 뜻이 차례대로 서로 생기한다면 뜻은 동일하나 다만 나타낸 바가 다른 것인데, 어째서 명목(名目)이 위와 더불어 동일하지 않은가?
【답】이것은 다만 서로 엇갈려 의의(義意)를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만 증승(增勝)과 법에 의탁함이 다른 것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내용에서 첫 번째인 대중을 모으는 서[集衆序] 중에서 세계가 동일한 혜(慧)인 것은 앞의 해혜(解慧)를 쓴 것이 행의 궤칙이 되기 때문이며, 부처님이 동일한 안(眼)인 것은 행하는 마음이 법을 보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며, 보살의 이름이 똑같이 임(林)인 것은 다만 이 행으로 사물을 이롭게 함이 치열해서 갖추어 모으는[備集] 상(相)을 모두 일으켜 나타내기 때문이다.
【문】두 번째 단락 중에서 발가락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앞의 회상과 어떻게 다른가?
【답】발가락에 행(行)과 주(住)의 두 가지 힘이 있음을 비유한 것인데, 앞에서는 주(住)를 밝혔고 여기서는 행을 나타냈기 때문에 비유가 다른 것이다.
세 번째의 게송을 설하는 서(序) 안에서는 열 사람이 각기 스스로 이미 연기의 진여법(眞如法)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함으로 인하여 곧 행상(行相)에 귀의하는 것이다.
처음 공덕림(功德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 ‘게송을 설한다’ 이하는 모두 준거한 것이다. 이 경문은 법신의 자재한 공덕을 찬탄한 것인데 열한 게송이 있다. 처음의 여섯 게송은 앞의 천(天)에 올라가 구름처럼 모이는 자재한 상(相)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법신의 자재로움이 매우 깊은 것이다.
둘째, 혜림(慧林)의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부처님께서 갖추신 덕[具德]을 만나기 어려움을 변별한 것이다. 다음의 여덟 게송은 앞의 갖추신 덕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 여덟 게송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위의 구덕문(具德門)을 밝힌 것이며, 둘째 ‘여래는 그와 동등한 이가 없거늘[如來無與等]’ 이하의 네 게송은 위의 만나기 어려움을 해석한 것이며, 셋째 ‘불가사의한 겁[不可思議劫]’ 이하의 두 게송은 양(量)을 계교해서 수행하길 권한 것이다.
셋째, 승림(勝林)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설함이 미묘하고 깊음을 비유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법에 맞는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깊은 까닭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그 뛰어난 용[勝用]을 찬탄한 것이다.
넷째, 무외림(無畏林)의 게송 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체(體)의 뛰어남을 든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용(用)의 뛰어남을 든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배우길 권유한 것이다. 처음의 체(體)와 용(用)의 두 경문에는 각기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의 깊음을 든 것이고, 둘째는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다섯째, 참괴림(慙愧林)의 게송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게송은 불법(佛法)의 뛰어난 이익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뛰어난 용의 상(相)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뛰어난 용의 소이(所以)를 반대로 성취한 것인데, 이 중에서 처음의 한 게송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개별적인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사람의 덕용(德用)을 성취함을 거듭 따르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사람이 보기 어려움을 매듭 지은 것이다. 반대로 성취하는 경문의 내용에서 처음의 한 게송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성품을 개별적으로 비유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똑같이 허망함을 이룬다는 비유이며, 세 번째는 두 성품이 서로 어긋나는 비유이고, 네 번째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연(緣)이 떨어져 있다는 비유이며, 다섯 번째는 용(用)이 서로 감응치 않는다는 비유이다.
여섯째, 정진림(精進林)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뛰어남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여덟 게송은 법을 들어서 사람을 성취함을 자세히 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사람과 법이 깊기 때문에 보기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여덟 게송 중에서 첫 번째는 법의 체(體)가 다르지 않다는 비유이고, 두 번째는 법의 체가 공하여 없다는 비유이며, 세 번째는 법의 체에 실(實)이 없다는 비유이고, 네 번째는 법의 체가 상(相)을 여읜 비유이며, 다섯 번째는 법의 체가 진(眞)을 성취하는 비유이고, 여섯 번째는 하나가 많음의 용(用)을 성취하는 비유이며, 일곱 번째는 용을 일으킴이 연(緣)에 의거하는 비유이고, 여덟 번째는 체(體)가 견고해서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비유이니, 처음에 준거해서 설한 것이다.
일곱째, 역성취림(力成就林)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의타연기(依他緣起)의 관(觀)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분별에 모양이 없는 것[分別無相]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마음을 기준으로 해서 용(用)을 찬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은 두 가지로 나누니, 처음의 두 게송은 법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관(觀)이다.
여덟째, 견고림(堅固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게송은 부처님의 성(性)과 상(相)의 두 몸이 의론하기 어려움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전자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비유는 성신(性身)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에 있는 다섯 비유와 합(合)은 응화(應化)를 찬탄함을 변별하는33) 것이다.
아홉째, 여래림(如來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아홉 게송은 법과 비유가 쌍으로 나타난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배우길 권유한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다섯 비유는 전전(展轉)하여 다섯 가지 현묘(玄妙)한 의심에 답한 것이다. 하나는 법이 실답다고 의심하는 것을 첫 행에서 답한 것이고, 둘은 봄[見]에 다르다는 이해를 내어서 법이 인(因)을 여읜다고 의심하는 것이며, 셋은 분별의 실다운 법이 마음을 여의어서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고, 넷은 이미 마음이 지은 것이 어떻게 있음이 아님[非有]이 되느냐고 의심하는 것이며, 다섯은 이른바 마음이 법을 지어서 앎이 있다는 것이니,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다음의 네 게송은 법에 맞는 것이다. 여래를 짓는다는 것은 이른바 무작불(無作佛)을 말한다. 소이(所以)라는 것은 앞의 온 뜻을 타는 것이니, 유작불(有作佛)이 되질 못하기 때문이다.
열째, 지림(智林)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의 여덟 게송은 법신의 매우 깊음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찬탄을 매듭 지으면서 배우길 권유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세 게송은 체(體)를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용(用)을 찬탄한 것이다.
17) 공덕화취보살십행품(功德花聚菩薩十行品)
다섯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는 10행의 명칭과 온 뜻을 해석한 것이다. 둘째, 다스릴 바는 일승은 앞의 해석과 같고 삼승의 종교(終敎)는 성문이 고통과 장애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셋째, 얻은 바는 정(定)과 인(忍)의 선근을 통틀어 행하는 것이다. 넷째 성취할 바는 곧 10행의 지위이니, 곧 이 품의 종지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다. 공덕(功德)이란 것은 행의 체(體)이고, 화취(花聚)라는 것은 비유의 이름이니, 행이 뛰어나고 오묘해서 능히 과(果)와 더불어 온갖 행에 의지하여 모이게 됨을 찬탄하기 때문이다. 온갖 덕이 모여들어 능히 위없는 보리의 과를 장엄하니, 이 인(因) 때문에 보살이 안락한 것이다. 10행이란 것은 행(行)의 본래 상[本相]을 헤아렸기 때문이니, 경문에서는 “비유하자면 수법(數法)의 10과 같은 것이니, 하나를 더해서 무량(無量)에 이르기까지 다 이 본수(本數)이며, 지혜이기 때문에 차별된다”34)고 하였으니, 다섯 가지 뜻을 좇아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앞에서 대중은 이미 모였고, 다음으로 모름지기 설함을 밝혔기 때문에 다음에 온 것이다.
넷째는 이 품이 닦는 바의 행의 체(體)와 지위[位]로써 종지를 삼은 것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변별한 것이니, 이 경문은 일곱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삼매분(三昧分)이며, 두 번째는 가분(加分)이며, 세 번째는 기분(起分)이며, 네 번째는 본분(本分)이며, 다섯 번째는 설분(說分)이며, 여섯 번째는 이익분(利益分)이며, 일곱 번째는 게송을 읊는 것이다.
훌륭히 조복하는 정(定)이란 행의 힘이다. 가하여 권하는 서[加勸序]라는 것은 이 행법(行法)을 밝힌 것인데 그 지취가 매우 깊어서 분(分)이 비(非)에 있고 나서는 스스로 모든 부처님께서 도력(道力)을 가지(加持)하시는 것이 아니라서 이를 설하는데도 말미암음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 밝히는 것이다. 이 내용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加)의 소위(所爲)를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 ‘불자야, 마땅히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서[佛子當承佛]’35) 이하는 가상(加相)의 차별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의 가(加)를 찬탄함을 밝힌 것이고, 둘째 ‘시방’ 이하는 가(加)의 소이(所以)를 밝힌 것이며, 셋째 ‘그대로 하여금 자세히 설하게 하려는 것이니[欲令汝廣]’36) 이하는 가(加)의 소위를 변별한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는데 위의 회상과 동일하다. 소이(所以) 중에 네 구가 있는데 알 수 있다. 소위(所爲) 중에는 10구가 있다. 처음의 한 구인 ‘욕령(欲令)’ 등이란 것은 총체적인 것이다. 다음의 여덟 구는 자세한 것이고, 다음의 한 구는 차별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의 가상(加相)의 차별은 3업이니 알 수 있다.
【문】어째서 의가(意加)는 법과 함께 하는가?
【답】법이 올바른 행의 근본이기 때문에 법과 함께 하는 것이다.
【문】앞의 회상에선 어째서 법과 함께 하지 않고, 지혜와 함께 한 것인가?
【답】법은 지혜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몸소 능히 행을 성취하고, 지혜와 경계는 그대로 통하기 때문에 앞의 회상에선 다만 지혜와 함께 한 것이다. 이는 지(地) 이전을 기준한 것으로서 증위(證位)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지었을 뿐이다. 둘째의 의가(意加) 중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알 수 있는 것이다.
넷째,37) ‘모든 보살에게 고하여 말하길[告諸菩薩言]’ 이하는 곧 본분이니,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10행의 종본(宗本)이 광대함을 찬탄한 것이니 곧 체(體)이며, 둘째는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한 것이니 곧 상(相)이다. 여섯 가지 결정(決定)은 앞의 해석과 같지만 다만 행이 다를 뿐이다.
【문】앞에서는 상(相)을 관하는 데 성(性)을 기준으로 했는데, 지금 여기서는 행업(行業)을 기준으로 하니 무슨 까닭인가?
【답】앞의 해상(解相)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성(性)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여기서의 행상(行相)은 뛰어나기 때문에 상(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무상(無常)의 과인(果因)으로써 한 것은 유류(有流)의 인위(因位)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둘째38)의 본분의 상(相)에 나아가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간략히 답한 것이며, 셋째는 거듭 질문한 것이고, 넷째는 답한 것이며, 다섯째는 매듭 지음이다. 네 번째의 답 중에서 처음에 환희(歡喜)를 해석한 것은 보시가 자타의 기쁨을 이루는 것이고, 두 번째 요익(饒益)이란 것은 지계(持戒)가 이익을 섭수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 성냄이나 원한이 없는 것[無恚恨]은 인욕으로 자타의 한(恨)을 쉬기 때문이며, 네 번째 다함이 없다[無盡]는 것은 정진으로 무궁한 덕을 획득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 어리석음과 산란을 여읜다는 것[離癡亂]은 정(定)을 얻기 때문이며, 여섯 번째 선현(善現)이란 것은 지(智)가 연기법을 나타내는 것이며, 일곱 번째 집착이 없는 것[無着]은 곧 방편으로 제도하기 때문이며, 여덟 번째 존중(尊重)은 곧 원(願)을 이루는 것이며, 아홉 번째 선법(善法)이란 것은 역지(力智)로 훌륭히 설하는 것이며, 열 번째 진실(眞實)이란 것은 지(智)를 얻어서 이(理)에 따라 훌륭히 설하는 것이다.
다섯째,39) 설분(說分) 중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불자야, 어떤 것이[佛子何等]’란 것은 이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을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은 해석이며, 셋째는 해석을 매듭 지은 것이다.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보시의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행상에 열일곱 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보살이 환희행을 닦을 때[菩薩修歡喜行時]’ 이하는 행이 성숙하여 널리 섭수함으로써 남을 기쁘게 함을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의 의식[施儀]을 닦는 것이고, 둘째는 허물을 여의는 것이며, 셋째는 방편을 시설하는 것이고, 넷째는 소위(所爲)를 밝히는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구가 있으니, 이른바 스스로의 인과와 생(生)이 되는 것이다. 제3구에 있는 두 가지는 알 수 있다. 셋째 ‘모든 아상을 여의고[離諸我相]’ 이하는 3륜(輪)을 여의어서 단도(檀度: 布施波羅蜜)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 두 구가 있으니,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이다.
두 번째,40) 요익상(饒益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둘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품의 성취를 밝힌 것이고, 둘째는 계체(戒體)이니 여덟 구가 있다.
둘째,41) ‘보살이 이처럼 계를 지닐 때[菩薩如是持戒時]’ 이하는 연(緣)을 대해서 지니는 상(相)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계의 의식[持戒儀]이며, 둘째는 방편을 변별하는 것이다. 셋째는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여기엔 다섯 구가 있는데 초구를 둘로 나눈 것은 알 수 있다. 넷째는 성취한 바를 밝힌 것인데, 여기에 있는 두 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업이며[何以故是我業]’ 이하는 행이 상(相)을 여읨을 들어서 계도(戒度)를 성취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觀)을 밝힌 것인데 다섯 구가 있으며, 둘째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未度者]’ 이하는 의(意)를 밝힌 것이며, 셋째 ‘내가 마땅히[我當]’ 이하는 향할42) 바를 밝힌 것이다.
셋째, 무에(無恚)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행(忍行)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여덟 구가 있으며, 둘째 ‘보살이 이 같은 청정한 인욕43)을 성취하면[菩薩成就如是淨忍]’ 이하는 연(緣)을 대해서 인상(忍相)을 변별한 것이다. 상(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불요익인(他不饒益忍)인데 이것은 능소(能所)의 둘로 나누며, 능(能) 중에선 구(口)와 신(身)의 둘로 나눈다. 둘째 ‘보살이 이같이 사유한다[菩薩作是思惟]’ 이하는 안고인(安苦忍)44)인데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수립하고 따지고 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다시 또 사유하길[復更思惟]’ 이하는 법인(法忍)을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의 ‘그러므로[是故]’ 이하는 소위(所爲)인데 세 구가 있으며, 세 번째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법[佛所行法]’ 이하는 의심을 변별한 것이다.
넷째, 무진상(無盡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질문과 답과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진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곧 부지런히 용맹정진하는 것으로서 열한 구가 있다. 둘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菩薩復作是念]’ 이하는 가행(加行)의 나아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여의는 바를 밝힌 것이고, 둘은 향하는 바를 변별한 것이다. 셋째 ‘보살이 이 같음을 성취해서[菩薩成就如是]’ 이하는 난괴무족(難壞無足) 등을 변별한 것이니,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 있는 두 가지 문답은 난괴(難壞)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분제(分齊)를 해석한 것은 알 수가 있다.
다섯째, 어리석음을 여의는 상[離癡相]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理)에 들어가서 주(住)의 정(定)에 안주해서 즐김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보살이 적정을 성취하여 이하는 이끌어 정(定)에 통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능히 무너뜨림을 듣고서’ 이하는 이타(利他)의 정(定)을 따르는 것이다.
여기서 첫째의 내용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정체(定體)에 잘못이 없음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 ‘보살이 이 같은 등을 성취해서’ 이하는 정(定)의 업용(業用)을 변별한 것이니,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왜냐하면’ 이하는 까닭[所以]을 해석한 것이며, 세 번째 ‘이 보살’ 이하는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으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이고 다음은 인(因)을 대해서 밝힌 것이며, 네 번째 ‘이 같은 등’ 이하는 포괄적인 것으로 간략함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보살이 삼매 중에서’ 이하는 관행(觀行)의 앞의 자재로움을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상(相)과 성(性)이 다스림을 성취함은 세 가지로 나누니,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여섯째, 선현(善現)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행(加行)의 반야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의거하는 바도 없고 머무는 바도 없다’ 이하는 올바른 증지(證智)이며, 셋째 ‘일체의 세간법을 분별한다’ 이하는 후지(後智)의 반야이다.
첫째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지체(智體)를 밝힌 것이고, 다음의 ‘무소유(無所有)’ 이하는 앞의 뜻을 해석하여 이룬 것이다.
올바로 증득함의 경문에는 18구가 있는데 네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일곱 구는 지(智)와 이(理)가 서로 상응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업보를 여의어서’ 이하의 여섯 구는 올바른 증득이 모든 상(相)을 여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의지하여 머무는 바가 없다’ 이하의 두 구는 머무는 바의 분량(分量)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허망함을 여의는 데 들어간다’ 이하의 세 구는 관성분(觀成分)이 무성(無性)의 질문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후지(後智)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량지(如量智) 가운데 이(理)와 같음을 변별한 것이니, 곧 아는 바의 법을 나타낸 것이며, 둘째 ‘삼세의 평등에 안주한다’ 이하는 여량지 가운데 양(量)과 같음을 변별한 것이니, 곧 교화받는 바의 중생을 대(對)한 것이며, 셋째 ‘이 보살이 이 행에 머물 때’ 이하는 덕용(德用)이 자재한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일곱째, 집착이 없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리(自利)의 방편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처음으로 수기(受記)를 얻는다’ 이하는 이타의 방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같이 관찰한다’ 이하는 자리와 이타의 선교(善巧)가 만족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두 행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하는 까닭을 변별한 것이니, 알 수가 있다.
자분(自分)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분의 지위에서 닦는 것이며, 둘째 ‘보살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이하는 승분위(勝分位)의 수행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분의 지위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청정한 법 중에서 집착이 없는 행을 닦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청정하지 못한 국토[刹]를 본다’ 이하는 염행(念行) 중에서 청정하지 못한 수행을 보는 것이다.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앞의 무착(無着)의 까닭을 변별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문답은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자세히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대해서 허물을 여읨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45) 이타의 경문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대비(大悲) 방편으로 관(觀)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집착하지 않는 몸 등’ 이하는 집착하지 않는 행을 올바로 밝힌 것인데, 이 중에는 10구가 있다.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집착하지 않는 까닭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대비관(大悲觀)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대비가 깊고 중후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이 때 보살이 저 중생을 보고서’ 이하는 증상(增上)을 밝힌 것이며, 셋째 ‘이 때 보살이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 이하는 첫머리가 됨을 밝힌 것이다.
여덟째, 존중(尊重)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고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준수하는 바의 법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이 보살행 때에’ 이하는 향할 바를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취향함이고, 다음은 이익이다. 이익에는 세 가지 이익이 있다. 하나는 원(願)을 성취하는 것이고, 둘은 생(生)을 성취하는 것이고, 셋은 이(理)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理)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법(法)ㆍ비유[喩]ㆍ합(合)이니 곧 종지를 세운 것이고, 둘째는 두 가지 따지는 것[責]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셋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성취한 바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다. 법ㆍ비유ㆍ합에 세 가지 경문이 있다. 처음의 법 가운데 첫 행(行)은 행이 비(非)를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얻어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셋째는 공(功)을 이루어서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넷째 ‘보살마하살’ 이하는 행의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고, 다섯째 ‘이같이 보살이 성취한다’ 이하는 용(用)이 둘이 아님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네 번째 뜻의 답에서 법ㆍ유ㆍ합의 세 경문은 알 수 있다. 여섯째 ‘이 보살’ 이하는 행의 성취를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리이고, 둘은 이타이다. 이타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가르침이고, 둘은 자기 뜻을 펴서 의심을 제거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뜻을 펴는 것이고, 둘째는 두 가지 따지는 것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아홉째, 선법(善法)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이익이다.
답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법을 드는 것으로써 부처님의 종지를 삼는 것이고, 둘째 ‘청정한 다라니’ 이하는 행의 체[行體]를 해석하여 이룬 것이며, 셋째 ‘보살이 선법의 행에 안주한다’ 이하는 수행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의 행의 체를 해석해 이룬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둘째 ‘이 때 보살’ 이하는 행의 작용을 밝힌 것인데 작용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세 번째의 수행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함을 변별한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인데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며, 다음의 ‘불자여’ 이하는 개별적인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 같은 열 가지 몸을 성취한다’ 이하는 행의 용[行用]을 맺어 이룬 것이다.
열째, 진실(眞實)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과 행이 상응하기 때문에 진실이며, 둘째 ‘이 보살’ 이하는 행이 상응하는 것이니, 이는 곧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다. 셋째 ‘보살이 중생을 성취한다’ 이하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건립이고, 다음의 ‘그러므로’ 이하는 뛰어남을 매듭지은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각기 따지는 것과 답을 건립한 것이다. 넷째 ‘버리지 않는다’ 이하는 행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신(身)ㆍ구(口)ㆍ의(意)가 곧 세 가지가 된다. 다섯째 ‘보살마하살이 대비에 머물러서’ 이하는 지위에 즉(卽)하여 인(因)으로써 과(果)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여섯째 ‘이 이름이’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일곱째 ‘이 보살이 안주해서’ 이하는 이익을 성취한 것이다.
이상은 일승의 신행(信行)의 상(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약 삼승의 지위에 의탁해서 개별적으로 관(觀)하는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경(經)과 같다.
처음의 행에서는 스스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기 때문에 네 가지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니, 두 가지 선(善)을 부지런히 닦고 두 가지 악(惡)을 부지런히 끊는 것은 불과(佛果)를 구하기 때문이다.
제2의 행에선 자신이 대력(大力)이 있음을 얻기 때문에 4여의족(如意足)이 되는 것이니, 염(念)으로 경계를 지키고, 정진으로 치열히 추구하며, 정(定)으로 단속하고 거두며, 혜(慧)로 경계를 비추어 법의 무생(無生)을 얻어서 자재롭기 때문이다.
제3의 행 중에선 무외(無畏)의 구족을 염원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5근(根)의 신(信)ㆍ진(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가 모두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제4의 행에선 3보의 구족을 구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5분법신(分法身)에서 계(戒)는 형체의 그릇됨[形非]을 제거하고, 정(定)은 마음의 산란을 없애며, 혜(慧)는 상(相)의 허망함을 깨닫고, 해탈은 누(累)가 없고, 지견(知見)은 일체 중생이 속박이 없고 해탈임을 알아보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허공 같아서 둘이 없기 때문이다.
제5의 행에선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8정도(正道)에서 스승을 좇아서 혜(慧)를 낳는 것을 이름하여 정지견(正知見)이라 하고, 법을 얻어서 사유를 낳음을 이름하여 정사유(正思惟)라 하며, 출가하여도 도(道)를 받아서 3도분(道分)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이라 하고, 법성의 공(空)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정정(正定)ㆍ정각(正覺)이라 하니, 남도 없고[無生] 둘도 없는[無二] 데서 일합상(一合相)을 관하기 때문이다.
제6의 행에선 대비(大悲)하기 때문에 7관(觀)을 일으키니, 택법(擇法)ㆍ염법(念法)ㆍ정진(精進法)ㆍ관법(觀法)ㆍ희법(喜法)ㆍ정법(定法)ㆍ혜법(慧法)이 하나의 상[一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7의 행에선 4무애(無礙)를 얻게 되기 때문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 선근의 정관(正觀)ㆍ난관(煖觀)ㆍ정관(頂觀)ㆍ인관(忍觀)ㆍ삼계공제일관(三界空第一觀)으로 능히 10지(地)의 상(相) 없는 크고 밝은 슬기를 낳아서 성인의 태(胎)가 제1공(空)의 평등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8의 행에선 일체 불국(佛國) 가운데 행을 행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4화법(化法)의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어변(語辯)ㆍ요설변(樂說辯)의 이 네 가지를 이름하여 슬기라 하니, 성품이 일체법의 무생(無生)을 비추어 제일의제(第一義諦) 중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제9의 행에선 일념 가운데 일체법을 비추니, 이른바 삼세의 12인연이 모두 임시로 합쳐 모여 성품을 이루어서 실제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10의 행에선 자재롭게 대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 이른바 보살의 3보는 지혜가 중도를 깨달아서 일체법이 무생(無生)인 것이 불보라면 용(用)은 법보가 되고, 항상 6도(道)에 다니면서 사물과 더불어 상응하는 것을 이름하여 승보라 하니, 모든 중생을 굴려서 불해(佛海)에 흘러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지위에 의탁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째,46) ‘이 때 부처님의 신력으로’라는 것은 설한 바를 증득하여 성취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등이다.
둘째 ‘이 같은 사천하(四天下)’ 이하는 회상의 평등을 매듭 지은 것이다.
셋째 ‘이 때 각기 지나’ 이하는 시방의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이 시방의 보살이 증득하여 성취하는 경문으로써 곧 아는 것이다. 모든 회상의 뒤에는 단지 이 처소의 명칭이 동일하고, 불보살이 모두 증의(證義)가 되기 때문에 오는 것이고, 회상의 처음에서 시방이 동일한 명칭인 집(集)인 것은 단지 영향(影響)이라서 지위의 분제가 아직 증법(證法)이 아님을 표시한 것이니, 나머지는 준거할 수 있다.
넷째는 시방을 통틀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7중(重)의 염송하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게송을 설하는 뜻을 변별한 것이다.
【문】이 중에서 부처님의 종성(種性)과 보살의 종성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답】인위(因位)의 보살이 부처님을 말미암아서 이루면 곧 불성이고, 보살을 말미암아서 스스로 이루면 곧 보살의 성품이다. 이런 것 등은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게송을 설한 것에는 112게송이 있는데,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 일곱 자(字)의 게송은 총체적인 찬탄이고, 두 번째는 개별적인 찬탄이며, 세 번째 뒤에 있는 네 행은 대정(大情)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니, 생각하라. 또 이 온갖 덕은 위에서 10행의 하나하나의 지위 가운데 모두 갖추어져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 제2권 하
지엄 지음
박서연 번역
18) 보살십무진장품(菩薩十無盡藏品)
네 가지 문은 앞과 같다. 보살이란 사람이고, 십이란 것은 본수(本數)이니 다함 없는 분제(分齊)이다. 장(藏)이란 것은 축적하는 것이다. 진실로 체(體)는 헤아려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행은 끝내 다함이 없어서 생하고 멸하여 바꿀 수 없는 바이기 때문에 다함 없음[無盡]이라 말하는 것이다. 하나가 일체를 섭수해서 밖이 없음[無外]을 전체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에 장(藏)이라 말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둘째는 온 뜻이다. 온 까닭은 정위(正位)의 자분(自分)이 이미 이루어지고, 다음으로 승진(勝進)이 나중의 지위에 들어감을 밝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앞의 질문이 회향의 뒤에 있는 까닭은 이제 앞에 있는 것에 답해서 행통(行通)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니, 또한 회향은 조방편(助方便)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장(藏)은 행의 근본을 따르기 때문에 처음의 앞에 있는 것이다.
셋째, 품(品)은 능소(能所)의 매우 깊은 공덕이 모든 뜻을 축적하는 것으로써 종지를 삼는다.
넷째, 경문을 변별하는 것이니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數)를 들어서 인증(引證)하고 간략히 찬탄하면서 명칭을 열거한 것이다. 둘째 ‘무엇 등이 보살이 되는가?’ 이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 장(藏)에 열 가지가 있다’ 이하는 찬탄하여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열 가지 명칭이란 것은, 첫째 신(信)은 곧 10지(地)의 첫 번째와 『섭론(攝論)』 중의 서지(書持)이며, 둘째 계(戒)는 곧 지(地) 중의 자비와 논(論) 중의 여섯 번째 다른 이로 하여금 얻게 하는 것이고, 셋째인 참(慙)과 넷째인 괴(愧)는 곧 지(地) 중의 행과 논 중의 아홉 번째인 독처(獨處)의 공한(空閑) 등이며, 다섯째 문(聞)은 곧 지 중에서 모든 경법(經法)을 아는 것과 논 중의 네 번째인 공경히 들어서 받아들이는 것이며, 여섯째 시(施)는 지에서 사(捨)라고 이름하는 것과 논 중의 타자에게 베풂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일곱째 혜(慧)는 곧 지(地) 가운데 열 번째인 법대로 닦는 것과 논(論) 중의 열 번째인 닦아서 서로 들어간다는 뜻이며, 여덟째 정념(正念)은 곧 지 중의 피로하고 게으르지 않은 것과 논 중의 스스로 독송하는 것이며, 아홉째 지(持)는 곧 지 중의 견고한 힘과 논 중의 일곱 번째인 설한 바대로 일심으로 익히는 것이며, 열째 변(辯)은 곧 지 중의 여섯 번째인 세간의 법을 잘 아는 것이니 곧 4변(辯)이며, 논 중의 여덟 번째인 타자를 위해 이치대로 자세히 해석하는 것이다. 『지론(地論)』과 『섭론』에는 모두 공양이 있는데, 어째서 이 가운데에는 없는 것인가? 여기에서는 참(慙)과 괴(愧)를 구분하여 둘이 되었기 때문이니, 또한 여기서의 장(藏)과 저곳의 한결같음의 뜻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자세히 변별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相)을 해석한 것이며, 둘째 ‘이것이……이다[是爲]’ 이하는 행용(行用)이 능히 대과(大果)를 성취함을 찬탄해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인 믿음의 창고[信藏]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두 번째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고, 네 번째는 행용(行用)을 거듭 찬탄한 것이다.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이 불성에 머무는 것이며, 둘째 ‘부처님께서 이렇게 아신다’ 이하는 과(果)의 성품에 이르게 됨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셋째 ‘이 보살이 이같이 성취해서’ 이하는 인출(引出)의 성품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첫째의 자성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理)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음은 신(信)의 견고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로 ‘왜냐하면’ 이하는 의심을 해결하는 것이다. 둘째1)인 과(果)에 이르게 된 경문에서 처음은 신(信)의 경계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보살이 성취해서’ 이하는 신해(信解)로 상(相)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인 인출(引出)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앞을 거듭 든 것이고, 다음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이하는 곧 신의 경계의 분제를 밝힌 것이며, 다음으로 ‘수호하여 지킨다’ 이하는 신행(信行)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계율의 창고[戒藏]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셋째 ‘시위(是爲)’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이하 모든 경문의 세 단락은 이에 준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2) 개별적으로 해석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열 가지 명칭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으로 ‘하등(何等)’ 이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 보살이 이 같은 등을 지닌다’ 이하는 대비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용(用)이다. 다투지 않는 계율[不諍戒] 가운데 나아가면 먼저 바로잡지 않음이 없어서 다시 조작하여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를 수순(隨順)하여 체(體)가 집기(集起)하지 않으며, 마음이 항상 수순하여 열반을 향하는 것이니, 일체의 모든 사(事)가 곧 열반의 상(相)이라서 다시 또 멸(滅)하지 않는 것이다.
참(慙)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은 앞과 같으니,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나간 허물을 아는 것이고, 둘째 ‘일체’ 이하는 중생에게 죄가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며, 셋째 ‘스스로 생각하길’ 이하는 상성(上聖)이 알아보는 것이며, 넷째 ‘그러므로’ 이하는 허물을 여의어서 부끄러운 마음[慙心]을 드러내는 것이다.
괴(愧)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은 앞과 같으니,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나간 허물을 아는 것이고, 둘째 ‘다시 짓는다’ 이하는 중생에게 죄가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며, 셋째 상성(上聖)이 알아보는 것이고, 넷째 ‘나는 반드시’ 이하는 허물을 여의어서 부끄러움(愧)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문(多聞)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 가운데 첫째는 들은 바 열 가지 사(事)를 열거한 것이며, 둘째는 열 가지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생각을 짓는다’ 이하는 타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12인연이 무위(無爲)’라는 것을 바사(婆沙)의 어느 스승은 “유위(有爲)는 자립하지 못하니 무위를 인(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중의 경문에는 여섯 가지 무위가 있다. 또 해석하길, 첫째 공(空)은 사상(事相)을 기준으로 하여 변별한 것이며, 둘째 열반은 지위를 기준으로 논한 것이며, 셋째 수(數)의 소멸은 성품이 흩어짐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넷째 수의 소멸이 아님은 사(事)의 흩어짐에 나아간 것이며, 다섯째 연생(緣生)은 이(理)가 사(事)를 따름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여섯째 법계의 이(理)는 사(事)를 대하지 않은 것이다. 정(情)을 대하면 곧 유위의 소이(所以)이니, 나머지 뜻은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등의 뜻은 모두 자체의 연기라서 섞여 있으면서도 잡란(雜亂)하지 않으니 사상(事相)으로써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승의 교상(敎相)은 만약 방편으로 깨달아 들어감을 논할 때면 모든 교상의 요체와 정황을 언전(言詮) 가운데에서 취한다. 만약 바르게 아는 것[正解]을 논할 때라면 반드시 비밀교의 언전이라야 바야흐로 대승의 의상(義相)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뜻을 얻어야지 그 소리에 미혹되지는 말라. 무기(無記)에는 60가지가 있다.
시(施)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것 가운데, 무릇 시(施)라 말한 것은 버리고 구제하는 자량의 이익으로 뜻을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문에서 말한 것과 나아가 스스로 자량의 용[資用]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施) 아님이 없다. 만약 사상(事相) 가운데 나아가 밝힐 때라면 경문에서 열거한 바와 같다. 만약 언전의 표현에 의거해서 밝힌다면 다만 원대하고 궁극적인 종지를 이해시키는 것이니, 함부로 현상(玄想)으로써 정지(正智)를 묻지 말라. 일단 정(情)을 열고 나서 3업에 이르기까지는 동(動)을 일으켜 나아가 섞여서 연(緣)을 따라 지은 바이니, 여실함[如實]과 무진장(無盡藏)을 수순해서 서로 응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능히 위없는 깨달음[無上菩提]의 근본 종자를 건립하는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열거하는 것이고, 나중은 자세히 변별하는 것이다. 앞의 시법(施法) 중에는 세 종류의 시법이 있으니,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나머지 경문의 상(相)의 나타남은 알 수 있다.
혜(慧)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구는 아는 바의 경계인데, 앞의 네 구에 각기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색고(色苦)이니 보색(報色)이며, 둘째는 색집(色集)이니 업색(業色)이며, 셋째는 색멸(色滅)이니 분별성색(分別性色)이며, 넷째는 색도(色道)이니 도공선색(道共善色)이다. 두 번째에서 색고라는 것은 색의 무상(無常)이며, 둘째의 색집은 나중을 낳는 것이며, 셋째의 색멸은 즉 여(如)이고, 넷째의 색도는 이른바 성도(成道)의 갖춤이니, 나머지는 준거하라.
성문과 보살 등이란, 처음은 사람을 아는 것이고, 다음은 궤칙의 법을 아는 것이며, 셋째는 도인(道因)을 아는 것이니 번뇌의 습기를 섞기 때문에 집(集)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이다. 넷째는 멸과(滅果)를 아는 것이다. 체상(體相)은 아래의 설과 같다. 다음으로 ‘어떻게 아는가?’ 이하는 가행(加行)이 모든 법을 관함을 변별한 것이니, 곧 자리(自利)에 질문과 답의 두 가지 경문이 있는 것이다. 답에 여섯 구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자세히 설한다’ 이하는 이타로서 다섯 구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문답으로 뜻의 분제를 밝힌 것이며, 셋째는 문답으로 설하는 의식[說儀]을 나타낸 것이며, 넷째는 따지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미암는 바를 답한 것인데 네 구가 있다. 네 번째 ‘보살이 성취하면’ 이하는 자타를 이롭게 하는 행이 상(相)을 성취함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 ‘이 지혜의 창고[智慧藏]에 열 가지가 있다’ 이하는 슬기로 거둠에 다함이 없음을 변별한 것인데, 네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염장(念藏)에서 두 번째의 상(相)을 변별하는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염(念)한 바의 청정한 법을 변별한 것이니, 염불이라 말한 것은 실다운 각(覺)을 수순하는 것이다. 수기(授記)라 말한 것은 실다운 각의 미묘한 궤칙[妙軌]이 이 마음의 회포를 나타낸 것이다. 수다라(修多羅)를 염하여 지닌다고 말한 것은 원각(圓覺) 등의 원만한 상(相)이 밖에 드러나는 것이니, 미묘한 궤칙이 때[時]를 갖추는 것으로써 세칙(世則)을 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보살이 이 같은 염(念)을 짓는다’ 이하는 10념(念)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 보살이 이런 염(念)에 머무른다[此菩薩住是]’ 이하는 염(念)의 견고하고 강함을 밝힌 것이다. 묘(妙)라고 말한 것은 미묘함이 나머지 사람을 넘어서는 것이며, 정념(淨念)이란 기(記)한 바가 분명한 것이다. 불탁(不濁)이란 어둠의 장애가 섞이지 않은 것이며, 청정을 두루 하는 염[遍淨念]이란 법에 대해 모두 밝은 것이다. 티끌을 여의는 염[離塵念]이란 염한 바의 사(事)에서 탐착의 염오[貪染]를 낳지 않는 것이며, 갖가지 티끌을 여의는 염[離種種塵念]이란 나머지 결박을 낳지 않는 것이다. 때를 여의는 염[離垢念]이란 나의 능함을 계교하지 않는 것이며, 광명이 비추는 염[光曜念]이란 널리 비추어 극(極)이 없는 것이다. 낙념(樂念)이라 말한 것은 수행을 즐겨서 쉬지 않는 것이며, 장애가 없다는 것은 뜻을 발하면 곧 알아서 사량 등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지(持)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상(相)을 변별하는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한 것이다.
상(相)을 변별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지니는 사람[持人]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은 부처님께서 들으신 바의 연처(緣處)를 밝힌 것이며, 셋째 ‘한 품을 들어 지니고[聞持一品]’ 이하는 들은 바의 법을 변별한 것이다.
변재로 상(相)을 해석한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거듭 든 것이고, 둘째는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한 것이다.
두 번째의 자세히 변별한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후지(後智)가 체(體)를 변별함을 밝힌 것이며, 둘째 ‘널리 위하여[廣爲]’ 이하는 변재의 공능(功能)을 밝힌 것이며,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해석해 이룬 것이며, 넷째 ‘이 장(藏)을 성취하기 때문에’ 이하는 변재의 덕이 성취한 사(事)를 자세히 밝힌 것이며, 다섯째 ‘이 보살이 백만(百萬)……성취하고는’ 이하는 변재의 다함 없는 용사(用事)를 성취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의 질문과 답은 의심을 제거한 것이다. ‘불자야, 이것은’이라 말한 것 이하는 덕용(德用)이 능히 대과(大果)를 성취해서 다함이 없음을 두 번째로 매듭 지은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장(藏)에 열 가지가 있다’ 이하는 변장(辯藏)의 심오함으로써 덕을 낳음이 다함 없음을 세 번째로 찬탄하여 매듭 지은 것이니, 네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제5회 불승도솔천궁(佛昇兜率天宮]
19) 일체보전품(一切寶殿品)
이것은 곧 위의 회향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지족천(知足天)은 행을 기준으로 해서 준거한 것이다. 또 앞의 제3회상은 다만 그 궁전[殿]을 설했을 뿐이며, 제4회상은 다만 장엄을 논했을 뿐이며, 제5회상은 일체보장엄(一切寶莊嚴)을 말했으며, 제6회상의 마니보(摩尼寶) 등은 자비의 덕상(德相)이 사물에 따라서 더욱 증대함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온 까닭은 만약 회향하지 않으면 진행하여 말미암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회상이 온 뜻이고, 둘째는 품이 온 뜻이니, 앞과 동일하게 준거하면 알 수 있다. 제3회상의 종지[宗]라는 것은 두 가지로 분별하니, 사람과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체(體)ㆍ상(相)ㆍ용(用)이 있는 것도 동일하니, 위를 준거하면 알 수 있다. 또 이 회상의 종체(宗體)를 인(因)해서 다시 상하의 모든 회상의 다름을 드는 것이다.
종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보현 성기(性起)의 실다운 덕이 차별의 연(緣)을 따름으로써 신심을 일으키기 때문에 설함을 든 것이다. 즉 첫 회상에서 세계해를 밝힌 것과 제2회상의 10신(信)과 제3회상의 10해(解)와 제4회상의 10행과 제5회상의 방편회향과 제6회상의 본래 갖춘[本有] 무루 인과의 두 행법(行法) 등을 닦아서 성취함을 밝힌 것이며, 제7회상은 법에 의거해서 인과의 행덕을 성취한 것이며, 제8회상은 사람에 의거해서 지위[位] 차별의 덕을 성취한 것이니, 이상은 모두 일승과 삼승이 함께 배우는 법이다.
둘은 차별의 연(緣)을 섭수하여 본래의 실(實)을 따르는 것이다. 즉 첫 회상은 뚜렷하고 밝은 5해(海)의 10지(智)를 관함으로써 설함을 일으키는 것이며, 제2회상의 신위(信位)는 본래의 실다운 인과의 분량(分量)의 덕을 성취하는 것이며, 제3회상의 해위(解位)는 성덕(性德)인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제4회상의 행위(行位)는 본성(本性)인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며, 제5회상의 방편회향위(方便廻向位)는 법계 진여의 상[法界如相]인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며, 제6회상의 증위(證位)는 성기(性起)의 보현인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며, 제7회상은 법에 의거함으로써 통교(通敎)의 보현인과의 행덕의 분제를 나타낸 것이며, 제8회상은 사람에 의거해서 보현인과 연기(緣起)의 이사(理事)의 덕위(德位) 분량(分量)의 차별된 뜻을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경문의 세 가지 품(品)은 둘로 나눈다. 처음의 두 품에서 앞은 방편의 서(序)이고, 나중의 한 품은 올바른 종지이다. 이 처음의 품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체용(體用)이고 둘째는 융체(融體)이다. 융(融)의 내용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신(身)ㆍ구(口)ㆍ의(意)이며 또한 인과가 상응하여 나중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상은 모두 이와 같을 뿐이다.
두 번째 ‘그 때 저 천왕은’ 이하는 연(緣)에 나아가 거두어 교화하는 것이다. 이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 ‘그 때 저 천왕’ 이하는 체(體)로부터 용(用)을 일으켜 섭화(攝化)의 연(緣)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 ‘즉어(卽於)’ 이하는 왕이 공양구를 닦아 곧 근(根)을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이 때 세존께서는 부처님의 장엄으로써’ 이하는 부처님께서 청(請)을 받아들이시어 법좌에 오르심을 밝혀 기틀이 감응하는 상(相)을 밝힌 것이다. 넷째 ‘이 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천왕을 위하여’ 이하는 뛰어난 힘의 가피(加被)가 혼란을 가라앉혀 고요함에 머물게 함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이 때 천왕’ 이하는 정정(靜定)으로부터 지(智)를 발해서 게송으로 찬탄함을 밝힌 것이다. 여섯째 ‘이 때 세존께서는 일체의 보전(寶殿)에 오르셔서’ 이하는 부처님의 법신이 평등하게 이익을 섭수하시고 사(事)를 성취하심이 헛되지 않음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根)을 성취하는 것이고, 둘째 ‘이 때 천왕은 여래를 위해 자리를 펴고 나서’ 이하는 천왕이 나아가서 여래를 맞이한 것이니, 공경하는 의식을 변별한 것이다. 즉 근기가 성숙해서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다.
처음 공양구[供具]를 장엄하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장엄하여 종지를 세운 것이고, 둘째 ‘이른바[所謂]’ 이하는 수행해 들어가는 방의(方儀)를 개별적으로 자세히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 같은 사천하’ 이하는 동등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기틀이 법에 감응함을 나타냄에서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좌를 장엄함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둘째 ‘과거에 닦아 익혀서’ 이하는 인연을 변별한 것이다. 인연에는 13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고 나머지는 개별적인 것으로서 차례대로 의심을 제거함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에 나아가면 ‘이른바’ 이하는 보전(寶殿)에 있으면서 공양의 행을 닦아서 방의(方儀)를 성취함을 자세히 설한 것이니, 그 중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세간(器世間)의 장엄자재행(莊嚴自在行)을 설한 것이며, 둘째 ‘백만억의 모든 천신왕(天神王)’ 이하는 중생세간의 장엄자재행을 밝힌 것이니, 이는 능히 공양하는 사람이다. 셋째 ‘백만억의 모든 대보살’ 이하는 지정각(智正覺)의 장엄자재행이니, 이는 이(理)를 나누어 증득하기 때문에 다름이 있는 것이다. 해석에서는 ‘이 중에 58중(衆)이 있다’고 했는데, 알 수 있다.
처음 기(器)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외진(外塵)의 장엄구(莊嚴具)이며, 둘째 ‘백만억 신력(神力)의 자재로움으로’ 이하는 내법(內法)의 장엄을 밝힌 것이다. 지정각(智正覺) 중에서 처음의 13구는 사람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20구는 덕을 행한 것이니, 모든 대보살이란 것은 도량의 회상에 들어간 사람이며, 화수(華手) 등은 신해위(信解位)이다.
두 번째 부처님을 맞이하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나아가서 맞이함은 공경하는 의식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이른바 처음은 앞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은 나중을 낳는 것이다. 둘째는 공양을 시설하는 것이며, 셋째는 올바르게 청(請)을 드리는 것이다.
두 번째의 공양을 시설하는 경문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자분행(自分行)의 공양을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밖이고 다음은 안이란 걸 알 수 있다. 둘째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이하는 승진분행(勝進分行)의 공양을 밝힌 것이며, 셋째 ‘이 때 모든 천중(天衆)’ 이하는 두 행이 불계(佛界)에 들어감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 승분(勝分)의 덕 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허공을 장엄한 것이며, 셋째는 꽃을 내서 여래에게 공양한 것이다.
셋째 ‘이 때 모든 천중’ 이하는 불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타(利他)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그 때 모든 천(天)이 여래의 몸에 있는 하나하나의 털구멍을 보고서’ 이하는 자리(自利)의 덕이며, 셋째 ‘이 때 여래께서’ 이하는 자타의 평등과 원극(圓極)의 자재로움을 변별한 것이다.
앞의 단락에 나아가면 처음은 이타의 덕을 아는 것이고, 둘째 ‘이 같은 정념(正念)’ 이하의 10구는 관해(觀解)의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앎 속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웅(人雄) 등 보신의 덕이고, 둘째 ‘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불신(佛身)을 나타내게 된다’ 이하는 화신의 덕이다. 보신 중에서 처음은 신업(身業)의 덕이고, 다음의 ‘일체지(一切智)에 머문다’ 이하는 구업의 덕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부처님은 지혜의 달’ 이하는 의업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의 화불(化佛) 가운데 처음은 신업이고, 둘째 ‘항상 법시(法施)로써’ 이하는 구업을 밝힌 것이며, 셋째 ‘모두가 마음을 따라 일어남을 말미암아서’ 이하는 의업을 변별한 것이다. 이러한 높고 고원한 부처님의 경계가 곧 회향이니, 사람을 인(因)해서 사(事)를 쓰는 것은 준거할 수 있다.
둘째, 자리(自利)의 덕 중에는 여섯 구가 있다. 첫째는 광명을 놓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의 ‘자연(自然)’ 이하는 광명으로 게송을 설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아승기를 현현한다’ 이하는 장엄의 상(相)을 밝힌 것이며, 넷째 ‘불가사의를 현현한다’ 이하는 화신의 설법을 낸 것이며, 다섯째 ‘또 불신(佛身) 중에서’ 이하는 보배 광명을 내어서 그 인행(因行)을 나타낸 것이며, 여섯째 ‘또 자재한 신력을 본다’ 이하는 설법의 교화를 밝힌 것이다.
셋째, 자타의 평등과 원극(圓極)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자비로운 덕을 거듭 든 것이며, 둘째 ‘한량없게 하고자 한다’ 이하는 기틀에 따라 이익을 섭수하는 것이며, 셋째 ‘여래를 성취한다’ 이하는 불계에 들어가서 덕을 성취하는 것이며, 넷째 ‘여래께서 현현하신다’ 이하는 다하기 어려움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셋째의 연(緣)에 나아가 섭화(攝化)하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올바로 나아가는 것이며, 둘째는 나머지 방향과 동등한 것이며, 셋째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니, 알 수 있다.
다섯째인 지혜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억념(憶念)이 그대로 지체(智體)인 것이고, 둘째의 게송을 설함은 지상(智相)을 밝힌 것이다. ‘어떤 뜻으로 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가?’라는 것은 회향의 많은 방편이 하나의 자비선교(慈悲善巧)로 돌아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셋째는 나머지 방향에 동등하게 통하는 것이다.
여섯째인 섭화(攝化)가 사(事)를 성취하는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틀에 나아감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는 올바로 섭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익을 성취하는 것인데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이(理)를 따르는 것이며, 다음은 사(事)를 따르는 것이다. 다만 갖춰진 덕을 변별함으로써 전(殿)인 여래의 처소를 넓히지 않은 것은 방편의 개별적인 장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넷째는 시방에 동등하게 통하는 것이다.
20) 도솔천궁보살운집찬불품(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인데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처소이고, 둘째는 사람이며, 셋째는 신의(身儀)이며, 넷째는 구업이다. 혹 여섯 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온 뜻은 앞과 같으나 다만 소위(所爲)가 다를 뿐이다.
셋째, 종지는 앞과 같으니 준거하라. 다만 이 품에 돌이켜 들어가서 방편의 불행(佛行)을 찬탄함이 다를 뿐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품은 세 가지 서(序)가 있다. 처음 경문에 있는 대중을 모으는 서[集衆序]의 내용은 우선 부처님의 신력을 들어서 분제를 나타낸 것이고, 다음은 모인 대중을 변별한 것이며, 나중의 ‘이처럼’ 이하는 모인 대중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두 번째의 내용인 3세간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중생세간 중에는 다섯 구가 있다. 처음은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다음은 근본에 의거해서 행을 닦는 것이며, 셋째는 함께 온 것이며, 넷째는 방향에 의거해서 앉는 것이며, 다섯째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덕을 찬탄함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리(自利)의 행을 밝힌 것이고, 둘째 ‘모든 중생들이 보고 싫증냄[厭足]이 없으며’ 이하는 이타행이며, 셋째 ‘이 모든 보살’ 이하는 자타의 덕용(德用)이 자재로움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 광명을 놓는 서[放光序] 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광명의 출처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는 비추는 바의 처소를 밝힌 것이며, 셋째 ‘저 모든 보살’ 이하는 광명이 섭수하는 이익이니, 곧 덕을 찬탄한 것이다. 두 무릎으로 뛰어난 광명을 놓는 것은 법신의 행 가운데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뛰어나고 미묘한 상(相)을 증장하는 것이다. 무릎이란 것은 나아가는 방편의 상(相)을 표현한 것이다. 덕을 찬탄함 속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리(自利)이고, 둘째 ‘교화하여 성취한다’ 이하는 한 구의 이타(利他)이며, 셋째는 승진이니, 알 수 있다.
부처님을 찬탄한 서[讚佛序] 중에서 금강이란 것은 인행(因行)이 견고한 것이다. 당(幢)이란 것은 행이 고출(高出)함을 이룬 것이니, 또한 섭수하여 조복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또 열 보살 중에서 첫째의 명칭이 금강당(金剛幢)인 것은 자체가 진실하여 능히 상의 누[相累]를 소멸하고, 세간의 도를 초월하여 개별적으로 이기고 짐을 표방함을 밝히기 때문에 금강당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모든 게송은 다 회향의 방편을 기준으로 해서 그 부처님의 덕을 나타낸 것이니, 곧 이 가르침으로써 언전의 선교상(善巧相)을 삼은 것이다. 나머지는 준거해서 생각하라.
모든 게송의 경문은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생기(生起)이고, 둘째는 올바로 게송을 설한 것이다. 처음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다섯 구는 자리의 덕이고, 다음의 세 구는 이타이며, 다음의 두 구는 수행을 권하는 것이다.
견고(堅固)의 게송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구는 부처님의 자리(自利)가 견고함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네 구는 이타의 견고함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수행을 권한 것이다.
용맹(勇猛)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법계의 바다가 깊음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다섯 구는 이용(利用)이 광대함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체용(體用)이 원만하고 지극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야광(夜光)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구는 법신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 구는 화용(化用)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다.
지(智)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구는 즉위(卽位)의 덕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아홉 구는 보는 바[所見]의 뛰어남을 변별한 것이다. 소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여덟 구는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구는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네 구는 부처님의 수(數)를 여읜 상(相)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세간을 여읜 상을 변별한 것이다.
보(寶)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한 구는 화신이고, 다음의 두 구는 법신이며, 다음의 일곱 구는 보신이다.
【문】이 경문을 조목별로 분류하는데 삼승에 많이 의거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답】사람됨이 삼승인 자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일승의 뜻의 경문은 이에 준거하면 알 수 있다.
정진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여섯 구는 3신(身)의 자재로움을 통틀은 것이고, 다음의 네 구는 네 가지 비유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하여 성취한 것이다.
이구(離垢)의 게송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일곱 구는 지신(智身)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구는 법신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해석이다.
진실(眞實)의 게송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화신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법성신의 자재로움이며, 다음의 네 구는 앞의 화신을 거듭 성취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방의(方儀)에 취향함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몸이 상(相)을 여읨을 매듭 지어 이룬 것이다.
법(法)의 게송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분명한 과제를 닦는 자의 뜻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손해와 이익을 총체적으로 들어서 해석해 이룬 것이며, 다음의 네 구는 손해와 이익의 상을 자세히 변별함으로써 덕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덕의 상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이 열 보살의 덕을 찬탄함은 반드시 과(科)를 구별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나하나 구(句)의 뜻이 곧 하나의 방편법이다. 이는 일승의 뜻을 기준으로 해서 경문을 취한 것이다.
21) 금강당보살회향품(金剛幢菩薩廻向品)
다섯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10회향의 명칭과 온 뜻을 해석한 것이다. 둘째는 다스리는 바를 변별한 것이다. 일승은 앞에서처럼 삼승에 준거하는데 독각(獨覺)이 대비의 장애를 버리는 것은 제외한다. 셋째는 얻을 바이며, 무간정(無間定)과 세간 제1의 선근이다. 넷째는 10회향의 행위(行位)를 성취한 것이니, 곧 종지의 체(體)인 것이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회향이라는 것은 이전의 행을 돌이켜서 보리를 향하는 것이니, 또한 중생과 법성에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 등은 사람이고 회향 등은 법이니, 두 뜻에 나아가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온 뜻은 앞과 같다. 다만 법의 체만이 앞과 다를 뿐이다.
이제 이 논(論)에서 다스리는 바와 성취해 얻는 등은 모두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다. 만약 일승의 별교(別敎)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다면 다스리는 경우나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 등을 준거하여 생각해서 섭수할 수 있다.
넷째의 종지라는 것은 총체적인 상(相)은 알 수 있다. 자세히는 아래의 경문에 있다.
다섯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니, 이 경문에는 7분(分)이 있다. 첫째는 입정삼매분(入定三昧分)이며, 둘째는 가분(加分)이며, 셋째는 출정분(出定分)이며, 넷째는 본분(本分)이며, 다섯째는 설분(說分)이며, 여섯째는 이익분(利益分)이며, 일곱째는 게송을 읊는 것이다.
첫째에서 입정(入定)이라 말한 것은 법의 체가 사량의 경계가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명지정(明智定)이란 것은 행의 미혹이 없어서 밝음을 비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방편의 정지(淨智)가 다만 능히 정지를 이룸에 의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서(加序)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加)를 찬탄하는 인연의 상(相)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인데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모든 부처님의 현신(現身)과 동일한 명칭의 증법(證法)을 총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그 때 저’ 이하는 올바로 찬술(讚述)한 것이며, 셋째 ‘선남자’ 이하는 현정(現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加)로써 정(定)에 들어가는 것에 다섯 가지 인연이 있다. 첫 번째는 모든 불력(佛力)의 가(加)이며, 두 번째는 노사나의 본원력이며, 세 번째는 노사나의 금신력(今神力)이며, 네 번째는 금강당의 자지정력(自智淨力)이며, 다섯 번째는 나머지 보살의 선근력(善根力)이다.
둘째 ‘욕령(欲令)’ 이하는 가(加)의 소위(所爲)를 변별한 것인데, 이 중에 22구가 있다. 처음의 열두 구는 자분의 덕이며, 다음의 10구는 승진이다. 지금 이 22구 안에 있는 모든 경문과 상하의 의가(意加) 내에 있는 경문의 상(相)은 하나하나 갖추어 해석할 수는 없으나, 다만 오직 아래 「지품(地品)」의 처음 가분(加分)내에 있는 논주(論主)가 판단한 바에서 이 경문을 나누어 기준으로 한다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속에 있는 경문의 상(相)은 혹은 과(果)와 인(因)을 통틀은 것이고, 혹은 처음은 총체적이고 나중은 개별적이며, 혹은 자타의 이익이 다른 것이며, 혹은 동이성괴(同異成壞)이다. 이와 같이 일체와 위의 회상의 모든 경문이다. 『지론(地論)』의 처음 6상(相)을 준거해서 취한 것이라서 명료치 않음이 없으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선남자여, 그대는 반드시’ 이하는 3업의 가상(加相)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다. 그 중에서 첫째인 구(口)의 내용에 10구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의가(意加) 또한 10구가 있으니, 처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문】어째서 이 의가가 법과 더불어 섞여 있는 것인가?
【답】방편의 사(事)는 마음의 경계가 정해지지 않았고 아울러 이사(理事)가 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니, 준거하면 알 수 있다.
본분(本分)3)을 올바로 설한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체(體)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는 명칭을 열거하고 상(相)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둘째는 방편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니, 곧 6결정(決定)이다. 이 중에서 다만 관상(觀相)의 대선(大善)과 나약하지 않음만이 위를 말미암고 나서 변별한 것이다. 둘째, 상(相)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수(數)를 드는 것과 이끌어 증명한 것이며, 셋째는 거듭 질문한 것이며, 넷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며, 다섯째는 매듭 지음과 증득하여 성취함이다. 부사의한 대원(大願)이란 지(地) 위의 원인(願因)이니, 곧 10회향의 원(願)이다.
넷째,4)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한 것이다. 첫째는 모든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의 상(相)을 여의는 회향이니, 화사(化事)는 2아(我)를 여의는 것이다. 회향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중생에 회향하는 것이니, 사물과 더불어 똑같이 성취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니, 모든 세간의 소유를 버리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실제(實際)에 회향하는 것이니, 용(用)이 극체(極體)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세 가지 상(相)을 성취한다. ‘이 세 가지가 있음을 아는 까닭’ 이하는 미륵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보살을 보게 해서 세 종류의 회향을 닦게 한 것이다. 『반야경』 중에서도 이를 설했으니, 아래는 모두 이 뜻을 통틀은 것이다.
둘째, 불괴(不壞)라는 것은 스스로의 행이 견고한 것이다.
셋째, 일체의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은 자타가 부처님 경계에 동등하게 들어가는 것이니, 또한 양(量)이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일체 처소에 이른다는 것은 분(分)이 부처님의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다섯째, 다함 없는 공덕장이란 것은 닦아 쓰면서 생(生)을 낳는 것이 무궁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평등한 선근을 수순한다는 것은 또한 견고한 덕용(德用)이 다함이 없어서 3견고(堅固)를 획득하여 열반을 수순한다고 이름한다.
일곱째, 일체 중생을 동등하게 관(觀)함을 수순한다는 것은 대열반을 얻어도 세간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덟째, 여상(如相)이란 것은 행을 여(如)에 의거해서 닦기 때문이다.
아홉째, 해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理)로 동등하게 속박을 여의고, 탈(脫)에는 탈상(脫相)이 없기 때문이다.
열째, 법계의 한량없음이란 성품의 용(用)을 칭한 것이다.
이 열 가지 상(相)의 성취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10문으로써 모든 행의 회향을 섭수하는 것이니, 이 문을 기준으로 하면 곧 행이다. 둘째는 행이 10문에 의거함으로써 회향을 밝히는 것이다. 회향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실제와 보리와 중생의 회향이다. 실제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닦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곧 진여이며, 둘은 진여를 나타내게 되기 때문에 모든 행을 닦는 것이다. 중생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살행을 닦는 것이니 곧 중생의 도구(道具)이며, 둘은 보살이 성취한 바가 곧 중생의 소여(所與)인 것이다. 보리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닦은 것이 대과(大果)를 이루게 되는 것이고, 둘은 보살과 중생의 모든 행이 곧 보리의 아과(芽果)인 것이다. 하나하나의 회향에는 모두 이 문이 있으나 우선 총체적인 뜻을 서술하였으니, 준거해서 생각하라.
첫 번째5)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열거한 명칭을 물은 것이고, 둘째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시위(是爲)’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게송으로 거듭 읊은 것이다. 둘째의 상(相)을 변별한 내용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행의 체(體)를 밝힌 것이고, 두 번째 ‘마하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보리심의 보배를 발하는 것은’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세 번째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일천자(日天子) 등은’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네 번째 ‘이 같은 등의 선근의 회향으로써’ 이하는 뛰어나고 미묘한 덕용(德用)의 자재로움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 번째의 체(體)를 변별한 내용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6도(度:6바라밀)와 4섭(攝) 등은 중생을 제도하는 법이 되고, 둘째 ‘선근을 닦는다’ 이하는 중생을 구호함을 밝힌 것이고, 셋째 ‘이 보살은 원수나 친한 이[怨親]를 위해’ 이하는 의탁함으로써 행을 일으킴을 밝힌 것인데, 이 중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중생의 상(相)을 여의게 되기 때문에 3회향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고, 둘은 중생을 여읨을 말미암기 때문에 3회향인 것이니, 이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중생을 올바로 구원하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등이고, 둘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법신의 즐거움을 얻는 것인데 이 중에서 인과는 둘로 나눈다. 셋째의 의탁함으로써 행을 일으키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중생에게 잘 회향함으로써 원친(怨親)을 가리지 않는 것이니, 여기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건립하는 것이고, 다음의 문답은 의심을 푸는 것이며, 셋째 ‘항상 사랑스런 눈[愛眼]으로써’ 이하는 연(緣)을 대하여 행을 성취한 것이다. 전전(展轉)에 네 가지 의심을 변별함이 있다. 네 번째 의심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건립이고, 다음은 따지는 것이며, 그 다음은 답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보살은 하나의 중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하는 뜻의 광대함을 나타낸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게 행하는 것과 마음의 구경(究竟)을 일으키는 것이니, 곧 둘이 된다. 이 두 개의 단락 중에서 다시 각기 둘이 됨은 알 수 있다.
둘째 ‘보살이 모든 선근으로써 회향할 때’ 이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갈래[趣]를 얻게 하는 것이다.
셋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선근으로써’ 이하는 중생에게 부처님을 보게 해서 이익을 얻게 한 것이다. 7재(財)의 청정한 만족이란 것은 이른바 신(信)ㆍ계(戒)ㆍ문(聞)ㆍ시(施)ㆍ지(智)ㆍ혜(慧)ㆍ참괴(慙愧)이다.
넷째 ‘이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일체의 고통을 대신 받는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사물을 대해서 마음을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왜냐하면’ 이하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며, 셋째 ‘큰 회향으로써[以大]’ 이하는 선교(善巧)를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이하는 중생을 위해 고통을 받음을 올바로 밝힌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고통을 대신해서 받는 것이다. 둘은 의심을 없애는 것인데,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두 번째 경문 가운데 네 가지가 있고, 세 번째의 경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의 ‘그러므로……않고[是故不以]’ 이하는 매듭 지음이니, 알 수 있는 것이다. 셋6)의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이하는 성취한 바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보살이 이 한량없음으로써’ 이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조도(助道)의 인연을 갖추게 하는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뜻을 일으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유의 정황이며, 세 번째는 합(合)이니, 알 수 있다.
세 번째 실제에 회향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두 회향을 간택하는 것이며, 둘째 ‘일체에 집착하지 않게 한다’ 등의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별의 모양 없음[分別無相]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허망한 인연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하는 의타의 생기하지 않음[依他不生]이며, 셋째 ‘일체 중생의 평등을 관찰한다’ 이하는 진실의 성품 없음[眞實無性]이니, 저것은 모든 법을 낳지도 않고 모든 법을 소멸하지도 않는다.
이 같은 등의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 곧 네 번째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이니,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수행’ 이하는 개별적인 것이며, 나중의 ‘보살’ 이하는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처음의 수행대치법 등은 초행(初行)의 체(體)를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일체를 관함’은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나중의 ‘저 선근에서 두 상(相)을 짓지 않는다’ 이하는 실제를 매듭 지은 것이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거듭 읊은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뜻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게송에 56게송이 있는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열두 게송은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이 개별적인 것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열한 게송은 행의 체(體)를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의 열세 게송은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매듭 짓는 경문이며, 다음의 열다섯 게송은 실제를 매듭 지은 것이다. 세 번째 나중의 여섯은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니, 준거해서 해석을 취할 수 있다.
둘째,7) 불괴(不壞)라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함이고,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에도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모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덕을 성취하신다’ 이하는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처럼 어리석음을 버리고 여의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다섯째 ‘이와 같이 보살이 선근을 성취한다’ 이하는 덕용(德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 체(體)의 경문8)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緣)을 대해서 신(信)을 성취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종지를 세우는 것이며, 두 번째 ‘왜냐하면’ 이하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둘째 ‘이같이 안주해서’ 이하는 신(信)에 의거해서 행인(行因)을 성취하는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등의 선(善)’ 이하는 행이 성취하는 과(果)를 변별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 같은 정근(精懃)으로’ 이하는 행을 흥기하는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섯째 ‘보살이 선근을 회향하고 나서’ 이하는 행에 의거해서 원사(願事)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불괴이기 때문에 3회향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고, 둘은 불괴이기 때문에 3회향인 것이니,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둘째,9) 중생에 회향하는 등의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실제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두 회향을 가려내는 것이며, 둘째 ‘평등을 관찰한다’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항상 모든 부처님을 위해서’ 이하는 공(功)이 성념(聖念)에 감응하는 것이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은 내용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행의 체(體)를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마하살이 이처럼’ 이하는 중생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구경(究竟)에 청정하여’ 이하는 보리에 회향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평등을 얻는다’ 이하는 실제의 경문을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보살은 이렇게 행하고’ 이하는 뛰어나고 미묘함을 통틀어서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긴 행이며, 다음은 게송으로서 50게송이 있는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21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중생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보리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11게송은 실제의 경문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14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 등을 읊은 것이다.
셋째,10) 일체의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고,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찬탄함이고,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회향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동등하기 때문에 세 종류의 회향을 성취하는 것이며, 둘은 먼저 3회향에 응하게 되기 때문에 동등함을 얻는 것이니, 준거할 수 있다.
둘째,11) ‘이 보살이 이 같은 즐거움을 얻을 때’ 이하는 불보살과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인데,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을 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보살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고, 넷째 ‘보살이 섭수해서 취하여 행하되 평등하게 행하고’ 이하는 의식(儀式)을 밝힌 것이다. 보살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셋째의 중생에게 회향하는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의식에 회향하는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악(惡)을 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선(善)을 낳는 것이다.
셋째 ‘보살이 만약 집에 있을 때라면’ 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분제를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의 ‘이처럼 보살이 지금 모여서’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집에 있으면서 중생을 섭수하여 회향하는 것이며, 둘째 ‘보살이 이렇게 생각하고 나아가 개[小犬]에 이르기까지’ 이하는 대비가 깊고 중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연(緣)을 대해서 섭수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행을 이룸에 틈이 없는 것이 곧 지(智)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것임을 밝힌 것이며, 네 번째는 매듭 지음이다. 둘째의 깊고 중후한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고통을 여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니, 알 수 있다.
넷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가령 저’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인데,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두 회향을 거듭 든 것이고, 둘째 ‘그러나 집착하는 바가 없다’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한 것이며, 셋째 ‘마하살’ 이하는 부처님의 회향과 동등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실제에 올바로 회향한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관지(觀智)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해서 회향하는 것이며, 둘째 ‘항상 보문(普門)을 즐겨 습행(習行)하였다’ 이하는 관지에서 나옴으로써 회향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의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 중에서 첫째는 앞의 행체(行體)를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의 ‘제1의 회향’ 이하는 통틀어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인데 48게송이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34게송은 부처님과 중생 등에 회향하는 경문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덟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음이다.
넷째,12) 일체의 처소라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고, 셋째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덕을 찬탄함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은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이 같은 장엄’ 이하는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보살은 이렇게 선근을 회향하되 있는 바가 없음을 요달하여’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 같은 선근의 회향으로’ 이하는 덕용(德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체(體)는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밝힌 것인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법이고, 둘은 비유이며, 셋은 합(合)이고, 넷은 성취한 바를 변별한 것이다. 여기에 세 구가 있으니, 법유(法喩)와 합유(合喩)가 모든 천(天)과 같다는 것은 제일의천(第一義天)이며,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일체를 수순하기 때문에 3회향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3회향을 수순하기 때문에 일체의 처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둘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행상(行相)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의거하는 방토(方土)와 부처님을 밝힌 것이며, 두 번째 ‘보살이 모든 여래에게’ 이하는 행상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경계를 대해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곧 둘이 되는 것이니, 앞은 경계를 대해서 마음을 밝힌 것이요, 다음은 마음의 덕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경계를 대해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니, 곧 다시 둘이 될 뿐이다. ‘이 같은 장엄’ 이하는 중생에게 회향하는 경문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理)와 사(事)의 두 문을 열어서 종지를 세우는 것이며, 두 번째 ‘일체 등으로 하여금’ 이하는 일체의 처소에 이름을 성취하게 된 까닭을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인데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경문이 있으니, 알 수 있다.
셋째,13) 실제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행체(行體)와 두 회향을 거듭 든 것이고, 다음의 ‘있는 바가 없음을 요달한다’ 이하는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며, 세 번째 ‘이와 같이 보살은 즐겨 관찰하고’ 이하는 회향이 성취하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다. 올바른 실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관지(觀智)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다음의 ‘이처럼 보살은 원만하게’ 이하는 관지에서 나옴을 말한 것이다. 일체 법중(法衆)의 인연지(因緣地)란 것은 인연에 의거해서 일체법을 알아 증득하기 때문이다.
넷째, 총체적으로 찬탄해서 매듭 지음 중에서 처음은 행의 체를 매듭 지은 것인데, ‘부처님의 자재로움을 얻는다’ 이하는 보리를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으로 중생을 교화함은 중생을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의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실제를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인데 22게송이 있다. 처음의 여덟 게송은 행의 체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보리와 중생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다섯째,14) 다함 없는 공덕장이란 것은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다함 없음을 낳은 것이고, 두 번째는 성취한 것이며, 세 번째는 자체(自體)이다. 이 세 가지로써 준거하면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변별한 것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의 모든 선근이 다’ 이하는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고, 넷째 ‘보살이 이 같은 선근으로’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행의 체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인데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참(懺)이고, 둘은 권하여 청한[勸請] 것이며, 셋은 수희(隨喜)이고, 넷은 회향이다. 수희에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불이고, 둘은 설법이며, 셋은 열반이고, 넷은 유통 등이다.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고, 둘째는 권청해서 수희하는 회향이다. 이 세 가지 뜻은 유위의 덕의 의분(義分)이 서로 교차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동일한 처소에서 합쳐서 설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다. 개별적인 것에서 수희의 네 가지 뜻에 의지하면 곧 네 단락이 된다.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행이 3회향을 수순하게 되기 때문에 무진장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 다함 없음을 성취하게 되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니, 이는 준거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땅을 장엄한 것이고, 둘째는 성취한 사람을 장엄한 것이다. 땅을 장엄하는 것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세계의 땅을 성취하는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뛰어난 선근을 닦아서’ 이하는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며, 세 번째 ‘저 모든 세계 속에서’ 이하는 삼세의 장엄이고, 네 번째 ‘마치 하나의 세계와 같아서’ 이하는 구경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두 번째의 ‘보살이 다시 이와 같이’ 이하는 사람을 장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한 것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변별함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이고, 두 번째 ‘이 모든 보살’ 이하는 간략한 도구로 덕을 나타낸 것이며, 세 번째 ‘성취’ 이하는 개별적으로 덕을 나타낸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네 번째 ‘성취 등’ 이하는 매듭 지음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가령 하나의 불찰(佛刹)’ 이하는 간략함을 매듭 지음으로써 자세함을 나타낸 것이니, 알 수 있다.
둘째,15)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계의 방편으로 두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 ‘이렇게 보살은 선근을’ 이하는 방편의 분제를 변별한 것이다.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회향으로 살바야제(薩婆若際)에 취향함을 거듭 든 것이며, 둘째 ‘보살이 이렇게 행하고’ 이하는 개별적으로 실제에 회향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관지(觀智)에 들어감으로써 회향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며, 두 번째 ‘보살은 이렇게 일으키고’ 이하는 관지에서 나온 회향이다.
‘생사가 섞여 어지럽지 않고 열반은 적정(寂靜)이 아니라는 것’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파상(破相)에 나아가는 것이니, 생사의 체(體)가 공(空)하기 때문에 섞여 어지럽지 않고, 열반의 체가 여(如)이기 때문에 적정이 아니다. 둘째는 적용(寂用)의 이해이니, 생사의 체가 고요하기 때문에 섞여 어지럽지 않다. 무엇을 체(體)라 하는가? 비근하게는 공(空)이 그것이라 설하고, 깊게는 불공(不空)의 여래장이 그것이다. 대열반이 능히 대의(大義)를 건립하고, 묘용(妙用)이 무성히 흥기해서 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에 적정이 아니다. 지금은 나중의 해석에 의거한다. 이 두 부처님의 경계와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의 도(道)를 이름하여 경계의 도라 하니, 따로 생사가 없기 때문에 타자의 지음[他作]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의 체(體)가 정해진 상[定相]이 없기 때문에 무법(無法)이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성인이 똑같이 의지해서 명칭이 동지(同止)가 되니, 저 뜻은 앞서의 해석과 같다.
넷째,16)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경문을 매듭 지음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의 ‘보살이 처음으로 발해서’ 이하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앞의 행체(行體)를 거듭 들어서 보리와 중생에게 회향함을 맺어 이룬 것이다. 두 번째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앞의 중생에게 회향함을 거듭 들어서 실제를 맺어 이룬 것이다. 세 번째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눈은 끝내[菩薩如是迴向眼終]’ 이하는 얻은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며, 네 번째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이하는 행의 덕이 뛰어나고 미묘한 것이다. 네 번째의 덕용(德用)을 찬탄한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數)를 든 것이고, 둘째는 해석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임을 알 수 있다.
게송의 내용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의 게송에는 50게송이 있다. 처음의 18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4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12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여섯째,17) 일체의 견고한 선근을 수순하여 회향하는 것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나중의 ‘이 명칭’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덕용을 찬탄한 것이고, 다섯째는 게송을 설한 것이다.
두 번째인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문[施門] 중에서 행체(行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의 선근 회향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보살마하살이 이 선근으로써 회향할 때’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일체의 선근으로써 이같이 회향해서’ 이하는 덕용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윤왕(輪王)의 지위를 버림을 들어서 행덕(行德)의 체(體)를 성취함을 찬탄한 것이니,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만약 음식을 보시하면’ 이하는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이니,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한 모든 물건의 명칭을 간략히 열거한 것이고, 둘째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수행의 뜻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만약 마실 것을 보시할 때라면’ 이하는 보시의 의칙(儀則)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이 중에서 혹 넷ㆍ다섯ㆍ여섯은 정해지지 않았다. 넷이라는 것은 첫 번째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소유의 사(事)이며, 세 번째는 회향이고, 네 번째는 앞을 매듭 지음이다. 다섯이라는 것은 제3의 밭을 증장함이며, 여섯이란 것은 제3의 사(事)의 덕을 찬탄함을 증장한 것이니, 또한 보시의 마음을 성취한 것이다. 넷째 ‘이 보살이 이 같은 등의 한량없음으로써’ 이하는 이익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의 보시한 것의 명칭을 열거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60장문(章門)에서 보시한 재물을 열거한 것이고, 두 번째 ‘마음이 탐착하지 않았다’ 이하는 보시하는 마음의 물들지 않음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만약 모든 중생이’ 이하는 보시하는 밭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의 뜻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 회향의 뜻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하고 나서’ 이하는 성취한 바를 회향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의 자세한 경문은 비록 120사(事)가 있더라도 모두 60문(門)에서 섭수하지 않음이 없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3회향을 수순하기 때문에 견고함을 수순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견고함을 수순하기 때문에 3회향을 얻는 것이니, 이는 준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지금 여기서 버리는 바는 모두 세 가지 뜻을 통틀은 것이니, 첫째는 분단(分段)의 의정(依正)이며, 둘째는 변화의 의정이고, 셋째는 변역(變易)의 의정이다. 이는 준거해 생각해서 섭수할 수 있는 것이니, 지(地) 이전에 5생신(生身)을 갖추기 때문이다.
넷째, 윤승(輪乘)이란 8난(難)을 옮겨 제도하는 것이다. 첫째는 정국(正國)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3악도(惡道)ㆍ북단월(北單越) 및 장수천(長壽天)을 제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사(正士)가 부처님의 전후를 제도하는 것이며, 셋째는 본래의 공덕이 모든 근(根)이 갖추어지지 않음을 제도하는 것이며, 넷째는 평등원(平等願)이 세간의 지혜와 변재와 총명을 제도하는 것이다. 또 정국륜(正國輪)이란 진여의 법성토(法性土)이며, 정사륜(正士輪)에 의거한다는 것은 반야의 정관(正觀)이며, 본공덕륜(本功德輪)이란 보시 등의 5바라밀이며, 평등원륜(平等願輪)이란 보살의 열 가지 다함 없는 대원(大願)이니, 보살의 청정한 행은 이로 말미암아서 만족한다. 또 사(肆)라는 글자는 방자하다는 것이다.
넷째의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것 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익을 찬탄하는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 때’ 이하는 경사로 이익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경문에 각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구경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앞의 행체(行體)를 거듭 든 것이고, 둘째 ‘몸[身]ㆍ입[口]ㆍ뜻[意]의 업에서 속박과 집착이 없다’ 이하는 실제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이다. 이 올바른 회향 중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지(觀智)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해서 행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안에도 집착하지 않고’ 이하는 여의는 바를 밝힌 것이며, 셋째 ‘보살이 만약 이 법 중에서’ 이하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왜냐하면’ 이하는 해석해 이룬 것이며, 다섯째 ‘보살이 이와 같이 법을 보아서’ 이하는 시비(是非)를 설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이 경문에 아홉 구가 있는데, 상생(相生)함을 알 수 있다. 앞의 경문에서 선두(禪頭)를 말한 것은 중생에게 형(形)이 있고 체(體)가 있는 것을 이름하여 선두라 한 것인데, 지금은 이런 상념이 없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음 중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보살 등은 체용(體用)을 총체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둘째 ‘회향이란 것은 무슨 뜻인가?’ 이하는 회향의 명칭과 뜻을 매듭 지은 것이며, 셋째 ‘보살이 만약 능히 이것으로써’ 이하는 회향의 덕을 행함을 찬탄한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하고 나서’ 이하는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다.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82게송이 있다. 처음의 48게송은 행의 체와 두 가지 회향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보살이 관하기를’ 이하의 32게송은 실제의 경문을 읊은 것이며, 나중의 두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보리를 요달해서 연기를 따르면서도 법의 참성품에 대해 파괴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용(用)이 체(體)를 어기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18) 평등한 마음[等心]으로 일체 중생을 수순하는 것에서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는 덕용(德用)을 찬탄함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둘째인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의 때를 여읜[離垢] 청정’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보살이 이 같은 선근을 수행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해서’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인 체(體)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이 같은 등을 행해서’ 이하는 행의 용(用)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악을 여의는 것이고, 둘은 덕을 낳는 것이다. 세 번째 ‘천(天)에 나기를 구하지 않는다’ 이하는 수행의 뜻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다른 중생이 지은 바의 선근을 따르는 것이니, 선(善)을 거스르지 않고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둘은 보살 스스로의 선근이 중생 근성(根性)의 3품을 따르는 것이니, 수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둘째인 중생과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행을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써’ 이하는 회향을 올바로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분(自分)이고, 둘째 ‘평등을 닦아서 익힌다’ 이하는 증상(增上)의 닦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의거하는 바의 연(緣)을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선근이다. 두 번째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연에 의거해서 마음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니, 이 중에서 세 가지로 나눈 것은 알 수 있다. 세 번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마음에 갖춘 덕을 나타낸 것이며, 네 번째는 시분(時分)을 변별한 것이고, 다섯 번째 ‘다시 또 보살이’ 이하는 보시한 물건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둘째19)의 증상의 보시[增上施] 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보시하는 마음을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마음에 갖춘 덕을 밝힌 것이다.
둘째20)의 올바른 회향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올바른 회향이고, 두 번째 ‘이처럼 보살은’ 이하는 덕의 자재로움을 매듭 지은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분(自分)이고, 다음의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승진이니, 알 수 있다.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이익을 거듭 든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 같은 등’ 이하는 실제를 올바르게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때를 여의는[離垢] 것이고, 두 번째는 얻은 바를 밝히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무등(無等)을 밝히는 것이며, 네 번째는 과(果)를 대해서 양(量)을 헤아리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다섯 번째는 덕을 갖춤을 맺어 이룬 것이다. 둘째는 법계에 올바로 회향하는 것인데, 경문의 상(相)에 드러난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음의 경문은 알 수 있다.
다섯째,21)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42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17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일곱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16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이다.
여덟째,22) 여상(如相)이란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이익을 변별함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둘째의 답 중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행의 체이고, 두 번째 ‘보살이 이로써’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세 번째 ‘보살은 선근을 이렇게’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며, 네 번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 번째인 체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근의 체를 모은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도움을 섭수해서 올바른 행을 성취하는 것이니, 또한 인(因)을 섭수해서 과(果)를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섭수하는 것이고 다음은 관상(觀相)을 변별하는 것이다. 세 번째 ‘보살이 이 같은 등으로써’ 이하는 3업의 대용(大用)이 자재로움을 성취한 것이다. 이 대용의 내용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이 나아갈 바를 밝힌 것이니, 곧 간략함[略]이다. 3업은 곧 셋이 되니, 처음의 한 구는 신(身)이고, 다음의 한 구는 구(口)이고, 다음으로 이하는 모두 의(意)일 뿐이다. 둘째 ‘하나의 부처님 세계’ 이하는 간략함을 매듭 지어 자세함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이 선근이 집의 상[家相]과 같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相) 등의 체(體)가 걸림이 없기 때문에 셋에 회향하는 것이다.
둘째,23) 중생과 보리에 회향하는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회향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은 이렇게 회향하고 닦는다’ 이하는 행의 광대함과 구경을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다시 또 보살’ 이하는 사(事)를 대해서 행의(行儀)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 있는 두 가지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보살은 선근을 이렇게’ 이하는 수행의 뜻을 변별한 것이며, 다섯 번째 ‘이처럼 보살이 길이 양육해서’ 이하는 공력(功力)의 성취한 바를 회향한 것이다.
셋째24)는 실제의 경문이니, 이 중에서 회향과 상하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모든 회향은 상(相)을 섭수해서 체(體)를 따르는 것인데 이 중에서는 상(相)을 섭수해서 상(相)을 따르는 것이니, 이것은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회향의 체용(體用)을 밝힌 것이며, 두 번째 ‘회향을 잘 이해한다’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성취하는 까닭이며, 세 번째 ‘여여(如如)’ 이하는 법을 기준으로 해서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첫 번째 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여래의 도(道)를 따른다’ 이하는 용(用)을 밝힌 것이며, 셋째 ‘적멸을 관찰한다’ 이하는 앞의 둘을 매듭 지은 것이다. 두 번째의 뛰어난 용의 까닭 중에서 처음은 뜻을 든 것이고, 다음의 ‘이처럼 보살’ 이하는 해석이며, 셋째 ‘법문과 같이[如法門]’ 이하는 법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세 번째의 자세히 변별함 중에는 1백 구(句)의 경문이 있다. 처음의 한 구인 궤칙(軌則)인 바 이하는 모든 구가 회향에 의지하는 것이다. 또 자세히 변별한 경문 속에는 세 종류의 언설이 있다. 첫째는 집착 없음을 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시설함을 취하는 것이며, 셋째는 언설의 가르침의 일[敎事]을 올바로 취하는 것이다. 경문 중에서 세 종류의 시(時)라는 것은 첫째는 오직 법을 가려 시를 취한 것이고, 둘째는 시(時)를 가려내서 법을 논하는 것이며, 셋째는 시(時)와 법(法)을 쌍으로 논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경문의 차례에 의거한 것이니, 조사하면 곧 말미암는 바를 알 것이다.
‘과거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동일한 소멸이 아니라는 것이며, ‘미래가 아니기 때문에’라는 것은 현재의 뒤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전후의 2세(世)와 스스로의 동류법(同類法)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또한 외부의 사람이 보는 것과 반대이니,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넷째, 찬탄해서 매듭 지음 중에서 처음의 세 구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며, 다음의 ‘모든 부처님을 동등하게 관(觀)함에 둘이 있지 않다’ 이하는 실제의 덕용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넷째25)의 이익을 성취하는 경문은 두 가지로 나뉘니, 처음은 덕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니, 알 수 있다.
다섯째,26) 게송을 거듭 읊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29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아홉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14게송은 이용(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아홉째27)는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의 마음이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덕을 변별한 것이며, 다섯째는 게송이다.
두 번째,28)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마하살이 속박과 집착이 없음으로써’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마하살이 이 같은 속박 없음으로써’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며, 넷째 ‘마하살이 이 같이 회향할 때’ 이하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인 체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선(善)을 경시하지 않음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보살이 항상 즐겁게 섭수하고 받아들여서’ 이하는 돈(頓)을 경시하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행의 섭수에서 자재로움을 성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선근에 속박과 집착이 없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근으로 세 처소를 수순하기 때문에 집착이 없는 것이다.
둘째29)인 중생과 보리에 회향함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현의 3업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이 생(生)에서부터 미래제(未來際)의 생이 다하도록’ 이하는 개별적인 사(事)를 자세히 기준으로 해서 자재로움을 성취함을 나타낸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는 신(身)이며, 세 번째는 구(口)이고, 네 번째는 의(意)이니, 알 수 있다. 둘째의 자세히 나타낸 내용에는 3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과의 지위를 얻은 것이고, 두 번째는 방편을 얻은 것이며, 세 번째는 신업(身業)을 얻은 것이고, 네 번째는 구업(口業)을 얻은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의업(意業)을 얻은 것이고, 여섯 번째는 근(根)을 성취한 것이며, 일곱 번째는 신력(神力)을 얻은 것이고, 여덟 번째는 불찰(佛刹)에서 자재한 것이며, 아홉 번째는 집을 얻은 것이고, 열 번째는 인다라의 지(智)를 얻은 것이며, 열한 번째는 시(時)의 자재로움을 얻은 것이고, 열두 번째는 신(身)을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며, 열세 번째는 과위(果位)의 자재로움에 들어가는 것이고, 열네 번째는 세계의 자재로움에 들어가는 것이며, 열다섯 번째는 상(想)을 아는 것이고, 열여섯 번째는 마음을 아는 것이다. 이들 중에 각기 두 가지 경문이 있으니, 처음은 아는 것이고, 다음은 덕을 앎[知德]을 찬탄한 것이다. 열일곱 번째는 처소를 아는 것이고, 열여덟 번째는 업을 아는 것이며, 열아홉 번째는 법을 아는 것이고, 스무 번째는 성(聲)을 아는 것이며, 스물한 번째는 자재로움을 설하는 것이고, 스물두 번째는 근(根)의 자재로움을 아는 것이고, 스물세 번째는 지혜의 방편이 미세(微細)를 아는 것이다. 이 경문들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앞과 같음은 알 수 있다. 스물네 번째는 행의 방편이 미세를 아는 것이고, 스물다섯 번째는 해위(解位)에 들어가서 보살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스물여섯 번째는 초지(初地)의 미세를 아는 것이고, 스물일곱 번째는 중생 성품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스물여덟 번째는 세계의 미세를 아는 것이고, 스물아홉 번째는 법계지(法界智)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서른 번째는 겁지(劫智)의 미세를 아는 것이고, 서른한 번째는 법지(法智)의 미세를 아는 것이며, 서른두 번째는 출생잡법(出生雜法)의 미세를 아는 것이다.
위의 미세를 아는 것 중에서 지(智)를 알면서도 법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지(智)가 능히 법을 성취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30) 실제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觀)에 들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관에서 나옴을 기준으로 하였으니, 알 수 있다.
넷째,31) 뛰어난 용(用)을 찬탄해서 매듭 지음이다. 만족(滿足) 등이란 것은 인과의 행을 만족한 것이니, 지위를 기준으로 하면 이것과 같으나 만약 행을 기준으로 한다면 곧 일체에 통할 뿐이다.
게송의 경문32)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긴 행은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에는 102게송이 있다. 처음의 여섯 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70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이 같은 일체의 모든 법왕’ 이하의 18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덟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짓는 경문이다.
열째,33) 법계의 한량없음이니, 이 경문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뛰어난 용(用)을 찬탄한 것이며, 다섯째는 증득하여 성취한 것이며, 여섯째는 게송이니, 또한 이 두 단락은 회상의 첫 과(科)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인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룬 바 행의 체(體)이고, 둘째 ‘다시 또 보살이 법시(法施)로써’ 이하는 중생과 보리에 회향한 것이며, 셋째 ‘다시 또 보살이 법계에 안주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한 것이며, 넷째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이하는 뛰어난 이익을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문】이 열 번째의 회향은 앞의 여덟 번째ㆍ아홉 번째와 어떻게 다른가?
【답】여덟 번째는 이(理)에 나아가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닦아서 성취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열 번째는 둘 다 통틀어 포함해서 지은 바의 사(事)에 미친 것이다.
첫째34)의 체(體)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장애를 제거해서 덕을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수기를 받아서 지위를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는 이익의 용(用)을 밝힌 것이다. 다음의 ‘보살이 법시(法施)를 행해서’ 이하는 수행해서 나아갈 바인 것이다. 세 번째로 ‘보살이 저 선근에서’ 이하는 행의 광대함을 변별한 것이니, 성취한 바의 자재로움은 복과 지혜의 장엄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행체(行體)의 회향이 법계에 의거함으로써 세 처소에 이른 것이며, 둘째는 있는 바의 행체가 곧 법계이기 때문에 세 처소에 회향해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의 광대함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혜의 장엄을 행함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둘째 ‘모든 불보살이 찬탄한 바’ 이하는 장엄의 행을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스스로의 행을 성취하는 까닭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다시 ‘왜냐하면’ 이하는 스스로의 성취가 능히 사물을 이롭게 하는 연유를 해석한 것이다.
둘째,35) 중생 등에 회향하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경함에 틈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3업이 항상 행하기 때문이다. 둘째 ‘보살이 이 법시(法施)로써’ 이하는 3업이 용(用)을 일으킴이 공(空)하지 않은 것이다.
첫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의업(意業)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것이며, 두 번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다 구족하게 해서’ 이하는 구업(口業)이 공(空)하지 않은 것이며, 세 번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법신을 얻게 한다’ 이하는 신업(身業)이 공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의 의업 가운데 10문이 있는데, ‘법을 아는’ 등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자타로 하여금 부처님의 다함 없는 법문을 얻게 한 것인데, 이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종지를 건립한 것이고, 두 번째 ‘이로써[以此]’ 이하는 그 덕용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세 번째 ‘다 얻는다[悉得]’ 이하는 불법을 얻는 것이다. 네 번째 ‘하나하나에서’ 이하는 자기의 능력을 서술한 것인데, 그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10문을 총체적으로 연 것인데, 이 경문 가운데 10해(海)라는 것에서 첫째는 낳은 법을 이름하여 의상(義相)을 건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증의 상(相)이고, 셋째는 방언(方言)의 어칙(語則)이며, 넷째는 뜻에 대해 명칭을 시설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경문의 가르침이 궤칙을 이루는 것이며, 여섯째는 규칙을 설함이며, 일곱째는 의거하는 바의 문(門)이며, 여덟째는 능히 지(智)에 들어감이고, 아홉째는 경계와 지혜가 자량하여 성취하는 상(相)이고, 열째는 의주(義住)를 세워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보살의 선근이 이처럼’ 이하는 성취하는 바를 밝힌 것이다. 다음으로 자세히 변별하는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36) ‘다시 또 보살’ 이하는 스스로 회향해서 성취한 덕을 밝힌 것이다.
셋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자기와 동등함 등을 얻게 하는 것이다.
넷째 ‘다시 또 보살이 이러한 등으로써’ 이하는 연(緣)이 성품의 덕을 이루는 것이다.
다섯째 ‘다시 또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써’ 이하는 행의 성취로 부처님의 수희(隨喜)를 얻는 것이다.
여섯째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써 이처럼’ 이하는 회향이 의거하는 바를 변별한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과 법계임을 알 수 있다.
일곱째 ‘다시 또 보살’ 이하는 나아가는 바의 뜻을 변별한 것이다.
여덟째 ‘보살마하살’ 이하는 용(用)의 자재로움을 얻는 것이다.
아홉째 ‘보살이 이러한 선근으로 이처럼 회향해서’ 이하는 행으로써 지위[位]를 성취하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여읜 바를 밝힌 것이고 다음은 얻은 바를 변별함을 밝혔으니, 알 수 있다.
열째 ‘보살이 이 같은 평등한 마음으로’ 이하는 지위에 의거해서 승진의 행용(行用)을 성취하는 것인데,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행체(行體)에 회향함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회향의 뜻을 밝힌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 경문이 있다. 하나는 자분(自分)이고 둘은 승진이니, 알 수 있다. 세 번째 ‘보살의 선근이 이처럼’ 이하는 여읜 바를 밝힌 것인데,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건립이고, 다음은 따지는 것이며, 셋은 답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보살이 이처럼 회향할 때’ 이하는 행을 일으킨 이익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는 구업이니, 알 수 있다.
세 번째 신업에 나아가면 경문은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은 신(身)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신의 덕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신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다. 이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둘째37)의 3업의 용(用)을 일으킴이 공(空)하지 않다는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다시 또 보살이 선근을 닦아서’ 이하는 3업을 갖추어서 변별한 것이며, 두 번째 ‘이처럼 보살이’ 이하는 행의 성취가 공(空)하지 않은 것이다.
첫 번째의 3업을 갖추어 밝힌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보배 장엄을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로 ‘향화(香華) 등을 자세히 설한다’ 이하는 10문의 장엄을 종류별로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양할 바의 경계를 변별한 것이니 이른바 부처님 등이며, 둘째 ‘저 하나하나의 찰(刹)’ 이하는 공양구이며, 셋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간략함으로써 자세함을 제시한 것이며, 넷째 ‘이것이 보살[是爲菩薩]’ 등의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에 있는 공양의 경계 중에서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의(依)과 정(正)의 둘로 나눈다.
둘째의 공양구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1백 구(句)의 개별적인 보배로 공양하는 것이며, 둘째 ‘보배 몸의 장엄’ 이하의 여덟 구는 3업의 행을 밝힌 것이며, 셋째 ‘보안(寶眼)’ 이하는 6근(根)의 묘용이며, 넷째 ‘보배 몸의 업’ 이하는 나중의 세 구로써 3업의 지용(智用)을 성취하는 것이다.
두 번째38)인 3업의 공하지 않은 행의 성취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분(自分)의 행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승분행(勝分行)을 성취하게 한 것이다. 이상은 각기 두 단락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셋째39) ‘다시 또 보살이 법계에 안주해서’ 이하는 실제에 회향하는 것이니, 알 수 있다.
넷째,40) 이용(利用)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모든 행을 거듭 든 것이며, 다음의 ‘법계 등의 한량없는 청정한 몸에 안주해서’ 이하는 행에 의거해 뛰어난 3업을 성취하는 것이다. 대단락의 세 번째가 아래의 매듭 짓는 경문이 되니 알 수 있다.
넷째, 덕을 찬탄한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현의 광대한 온갖 덕을 이미 성취했음을 밝힌 것이고, 둘째 ‘생각생각 중에서’ 이하는 자타의 뛰어난 용이 일체 행의 사(事)를 이미 나누어 성취했음을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을 밝힌 것이다.
이상은 경전에 의거한 것이니, 이는 일승법을 통틀은 것이지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삼승의 지위에 의탁한 법을 밝히는 것은 경전과 같다.
처음의 회향하는 마음 안에 1, 2제(諦)의 정직은 이른바 제일의제(第一義諦)를 학습하여 일체법의 상(相)을 관하는 것이니, 얻을 수 없음과 같기 때문이다.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써 여섯 천인(天人)에게 가르쳐 주고, 머리를 깎고 3보의 옷을 입은 출가한 보살은 일체의 승(僧)ㆍ불(佛)ㆍ법(法)과 함께 하여 둘이 없으니, 제일의 청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회향 안의 제일의지(第一義智)에서 이른바 5신통은 슬기의 성품이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니, 곧 6통(通)으로 관(觀)의 경계를 삼는 것이다.
세 번째의 회향 중에서 남이 없는 슬기[無生慧] 안에는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청정이 있으니, 불ㆍ법ㆍ승의 계(戒) 가운데 신(信)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의 회향 중에선 양(量)이 불력(佛力)과 동일한 것이니, 이른바 세 가지 상(相)은 모든 법이 본래 없기 때문에 가짜로 생(生)이라 이름 붙이고, 이미 있던 것은 도로 무(無)가 되기 때문에 가짜로 멸(滅)이라 이름 붙이며, 공(空)하지 않은 법이 있기 때문에 가짜로 주(住)라 이름 붙인다. 그러므로 일체가 공(空)에 통하여 미치면서도 둘이 아닌 것을 이름하여 세제의 상[世諦相]이라 하니, 공도 공한 일제의 상[一諦相]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의 회향 중에서는 중생의 힘을 잘 계량하는 것이니, 이른바 5음(陰)이다. 색(色)이란 것은 공과 다르나 색이 모여 대색분(大色分)을 이루기 때문에 색상(色相)이 공하고, 찰나찰나가 마음을 이루기 때문에 심상(心相)이 공하다. 수(受)ㆍ상(想)ㆍ행(行)은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하나의 상[一相]은 상이 없기[無相] 때문이다.
여섯 번째의 회향 중에선 부처님의 교화하는 힘이니, 이른바 12입(入)이다. 외부의 6경(境)과 내부의 6근(根)이 식(識)이 들어가는 처소가 되기 때문에 입(入)이라 이름한다. 그 혜관(慧觀)이란 것은 외부에 있지도 않고 내부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으니, 일체법에 자타가 없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의 회향 중에선 걸림 없는 지(智)에 취향하는 것이니, 18불공법(不共法)이 된다. 6경(境)과 6근(根)과 6식(識)이 일합상(一合相)이니, 일체법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덟 번째의 회향 중에선 자연지(自然智)를 수순하는 것이니, 이른바 인과이다. 선악을 이름하여 인(因)이라 하고, 고통과 즐거움을 이름하여 과(果)라 한다. 말미암는 바는 인(因)이 되고, 일어나는 바는 과(果)가 된다. 인과 과는 둘 다 공(空)해서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니, 모두가 일합상이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의 회향 중에선 불ㆍ법ㆍ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2제(諦)가 공(空)한 것이다. 인연이 모이기 때문에 유(有)라 일컫는 것이지 유(有)를 유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무(無)라 일컫는 것이지 무(無)를 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두 상(相)이 없는 것이다.
열 번째의 회향 중에선 자재한 슬기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른바 중도의 제일의제이다. 반야가 중(中)에 처해서 일체법을 요달해서 두 상(相)이 없으니 더욱 증장하여 성지(聖地)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상사제일의제관(相似第一義諦觀)이라 하는데, 진제관(眞諦觀)은 아니다. 초지(初地) 이상이 바로 진관(眞觀)이니, 이는 삼승의 지위에 의탁한 설이다. 그것을 알게 된 까닭은 경 속에서 이전의 30심(心)이 모두 범부의 법이지 성위(聖位)가 아님을 밝혔기 때문이다. 초지 이상은 경에선 본래 삼승에 통함이 없이 그 교의를 세웠는데 경문의 상(相)이 다분히 동일하기 때문에 굳이 요간(料簡)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대지가 진동한다’ 등의 이하는 다섯 번째41)의 실(實)을 증명해서 성취함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등은 증득하여 성취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시방의 보살이 다 운집했다고 말한 것은 두 번째의 모든 성인이 증득하여 성취한 것과 믿음을 권해서 유통함을 밝힌 것이다. 두 경문에서도 각기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상(相)을 변별한 것과 나머지 방향을 맺어 통한 것이다.
여섯째,42) 게송에서 처음은 뜻이고 나중은 게송이다. 게송의 경문에는 94게송이 있다. 처음의 14게송은 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다. ‘무상(無相)의 미묘한 지혜가 법의 진상(眞相)을 관한다’는 것은 무용(無用)이 체에 의지한 것이니, 세간의 행을 궁진하기 때문에 가장 묘한 것이다. 다음의 ‘보살의 법시(法施)’ 이하의 68게송은 중생과 보리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비유하면 여여한[譬如如]’ 이하의 두 게송은 실제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이와 같이 특출하고 미묘한[如是殊妙]’ 이하의 10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보리와 중생의 내용에 나아가면 처음의 여덟 게송은 3업이 지행(智行)을 따르는 것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시방의 일체’ 이하의 20게송은 신업의 공하지 않음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공경’ 이하의 22게송은 구업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중생의 수와 같은[衆生數等]’ 이하의 18게송은 의업 등을 읊은 것이다. 이 회상은 위의 회향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 047_0018_a_01L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上終南山至相寺沙門 智儼 述第三會佛昇須彌頂品第九四門同前。一釋名者,佛者化主,昇上進也。須彌者妙高山,頂者居勝尊上也。問:‘何故此下,四會在天說者?’荅:‘德行位成,除障淨勝故,在天說耳。’此荅前十住位問也。二來意,何故來者,信故解也。此初辨會來意。又何故會來,旣報體成已。次須起化赴機故來也。因此略料簡教興所表,今諸會但不捨離本處,卽表行,成報體,堅固不移也。而往諸會#卽表起用隨機。此釋約修行體,若望生解起信門,卽顯行位增微耳。又解文中,約佛起用,赴機以解者,卽善知識力也。若約分位等解者,卽約自修行解也。可思准之。又此會已下四會竝位相增,與前信行少別。於三乘、一乘法義,亦須交絡,思准之。餘會竝同此意。品來者,前說信法已,次辨赴後說所依處耳。三宗者,約會分別有二。一約人,二約法。人有化主及助化,各有體德用,但局此會。二約法者,謂十解法,後當辨耳。初品宗者,若依利他時,現處及供養,卽顯法緣。若約自利時,此卽機感相應,明機緣體用成也。四辨文。此會有六品分三。初二品明方便發起,次二品明正位相,次二品明後成滿足行相。初二品分二。初起用隨物,二帝釋遙見下辨機感相應。前文有二。初辨依、正二融,卽顯前體淨。二復顯後用淨,自在無㝵,成事之本也。諸會有文,竝同此釋耳,但進勝異也。問:‘此文何故不在初會後,乃在後會前?’荅:‘若初會後,卽但顯說法利益義明,與後化用體義不顯。故在後會前辨耳。’餘會同此。何故不在第一會後?料簡爲前會,兼餘義意,在彼釋。後第六、七、八會亦顯別有餘義意耳。體中身口意三也。二爾時,世尊下彰用應物,卽用淨也。餘相可知。第二相應文有五序。一住處序以動靜無㝵,無處不至,爲此說法德也。二請佛序,三集衆序,四放光序,五讚歎序。若通下住品,卽八序,謂入定加勸及起定也。又約品分文亦好也。初住處序及請佛序有六。一見佛來用從實起,卽發心緣,二卽於妙勝殿下#明天主嚴供養故請佛。具顯從解成法供養行,卽成根也。三世尊卽受請赴感施化。四釋音寂然,表息亂應眞也。五說偈下表從定發慧,六佛昇座下,正明化用事成相,嚴具文分二。初嚴具,卽成根也。二請卽成欲也。初嚴中有三。初摠,次嚴座具,三結。二爾時,帝釋下明其請佛,卽表欲也。偈文有三:一憶本行,二偈讚,三結通十方。六化成中有三:初處座,二辨用相,三等通餘方也。菩薩雲集品第十四門同上。一釋名,菩薩者是人。雲者潤益故。又齗齶貌也。集者聚集,妙勝等者別處也。二來意者,何故來?辨處已次明集衆。三集衆歎德,順法爲宗。四辨文者,此文有三序#一集衆,二放光,三歎佛。今此下三會集衆,何故不在初品,復‘何故一、一方各有十?又放光下何以不漸集衆荅前會位相未成但顯行圓故在初品說。’今此行位俱成,同彰行位利潤益故,共在此品也。所以一、一方具十者,欲顯解相分明圓融數等一方,卽一切方也。所以此放光下不漸集衆者,欲顯行位圓成無有增減之相故也於中別有增減義用上准,成卽得也。上下應可准思之。上第一會釋集衆放光者,亦是准,初爲後則耳。初集衆序內有二。初指方辨數,此中一、一方者,或通上會,或不通上,信行又不成位相,爲此不通。下三會位顯故通義也。二其世下列名耳,名有三。初明十方佛土菩薩,三種世間,卽爲二也。二此諸佛神力下明集諸菩薩有三。淨行雲集,依方坐可知。三如此世界下結類十方,成法界會。佛同月者,依月起光故,淸涼故,解法准之。菩薩同名慧者,解之始故,足指放光者,表立解種不退故,有二可知。三讚歎序,文有十菩薩,相生次第歎,解相明白耳可知。一法慧偈有二。初長行生起,二正偈頌。下竝准之。此文有二。初七牒衆,集明是佛力所成,卽結前品中六段義。次三明勝行者,得見佛。餘莫知者,卽通讚前難思。下諸人偈竝約理成也。二一切慧偈有六。初三明謂見之徒,不見眞佛。次三顯解無生法身常現。次一明取著者失次一明慧解者益次一明解佛因緣成卽離癡惑次一推功在本。三勝慧偈有六。初三明妄取者失,次一明有解者德,次一約法辨觀益,次三推功在佛。次一能淨慧者,見法身,次一推功在本。四功德慧偈有五。初四明迷者失,次一示勝方便,次三明得法性益,次一歎佛利生方便。次一推功在本。五精進慧偈有三。初一彰失,次一辨德,次八廣辨,觀成獲益相。八文內前四無相生,後四眞實性也。六善慧偈有四。初二明有解能度自他,次五明無生故,應眞實性,次一半歎解勝能。次一半推功在本,七智慧偈有三。初一明因教成正解,次六明迷教理者失,次三重成解德。八眞實慧偈有五。初二挍量勝劣得失,次二辨所觀境,次一擧益勸學。次一釋知者名,次四示其觀儀,九無上慧偈有四。初一釋人名,次六歎自利,次二歎利他德,次一推功在本。十堅固慧偈有四。初四歎佛,是眞歸,次二擧德勸依,次二引自勸物令入,次二擧勝人,顯德無盡,以勸依也。十住品第十一分別有五。一釋十住名,卽辨來意,十者數。住者不退位也。何故來正說故?二明所治,是前百障應位斷故。若三乘熟教所,斷外道我執。三所得光增定及頂善根。四所成卽十解成,卽是三乘熟教說,卽此品宗五釋文。自下第三品分爲正宗,此中二品卽爲二。初通道俗,二梵行品,是出家別行法。初品若義分文。此初有三序,光師云有八序爲三。初品二合名住處序,次品三合名集衆序。此品三合名起說序。又依地品此下三會各有六分。初名三昧分,二加分,三起分,四本分,五說分,六利益分。分齊至文應知。又此文有二。初明三昧序,次告衆菩薩言下正宗。三昧序,加意上已辨,定名名無量方便定,方便是智,定成勝智知法故,所以法慧菩薩入定及說者如下論應知。二加序有三。初辨同加,此有三。一明現身,及顯同名,卽爲二也。二同讚亦有二可知。三釋得所以,有四可知。二欲令汝廣說下明加所爲,有十一句。一摠,九別後一結成位也。第二九句內,初五自分。次四勝進耳。三善男子下辨加相,謂三業也。加相文有三。初善男子下辨口加二如來卽與下明意加,三各申下身業加。云何意加?與法同緣資故也。意加文有二。初列十智,次何以故下釋所以也。問何故,與智者,爲智解法故也。起有四意:一定事訖,二得勝力,三說時至,四定無言說故也。第二正說文有四。初歎種性深勝,幷列十名,卽本分。二何者下廣解住相,三爾時佛神力故下明地動,顯實證成。四以偈重頌,初文有二。初摠歎種性義,卽性習二種性體也。二菩薩十住下列十解相,明佛同說也。卽性、習二種種性相也。此約剋性爲語,若就分位時,卽有六種性。一習種性當十解位,二性種性當十行,三道種性當十迴向,四聖種性當十地,五等覺性當十地終心,六妙覺性當佛地,復名六堅,亦名堅信,亦名堅法,亦名堅修,亦名堅得,亦名堅頂,亦名堅覺,亦名六忍。信忍、法忍、修忍、正忍、無垢忍,一切智忍。復名六慧。聞慧、思慧、修慧、無相慧、照慧寂照慧,亦名六觀。住觀、行觀、向觀、地觀、無相觀、一切種智觀。此約三乘,寄位語耳。此中十解、十行中,六決定內,但無大善決定;十迴向、但有觀相善大善及不怯弱,餘三竝無。所以有大善及無餘三者,爲迴向,是方便事中,顯成故,大善顯也。餘三無者,爲義隱故,不說。觀相等可知。十解十行等,何故無大善?解行自行義顯故無也。餘者思之可知。初體文有二。初摠告,二別明六決定也。第二解相文有三。初擧數引證立宗。二別列有二可知。三引證結也。十解名者,一發心上期,二治地滅惑,生自他利。三修行定成前二耳。四生貴行成生佛家,五方便具足自他行滿。六正心住得緣起正解。七不退理量,止觀雙行。八童眞無生妙解,以立身。如童無染。九法王子善施佛教故。十灌頂位滿受職相。應故也。此卽是下諸位行相也。第二廣辨文一、一住皆四段。一問列名,二辨解相有三。初摠、次釋、三結。三明仰修勝進助行亦三。立釋結,下竝同此,亦可當位所習。四何以故下釋學意?唯初及十有六句。一牒寄問,二辨發心緣有六句。三辨行體,此有三句。一體發心,有四緣、四因、四力四緣者,一見聞佛菩薩神通大事,二聞法,三末世護法,四見苦衆生故發心,四因者一種性因緣,二佛等爲善友,三起大悲心,四不畏衆難。四力者,自力、他力、因力、方便力。如地持說也。二所趣、三不退此有二義。若約一乘通教,入十住位,卽四退等皆無。二若依三乘,十地已來,有念退。地前有行退、位退,不進退,亦十信已前有實退,已後有示現退也。此約位語,四明所得。五明學,六辨前學意。又此下諸文竝有三。一問,二荅,三辨成行勝能也。此文有三初責,次辨意,三明所成德也。諸位竝同此,亦可通釋耳。卽自開解者,位通因果,其義有三。一不由他小教等解,二不由他教境成,三不由他性,外別集也。後文所爲各同異。思之可知耳。二治地內,初十同二地十種集後十同集,果中,令諸衆生,捨倒住正見等。三修行內,前十同三地護煩惱行,後十同護小乘,四生貴內,初十相同四地十種法智。後十同修道品等,五具足方便內,初十同五地大慈等觀。後十同大悲,觀深重苦,六正心內,初十同六地十平等中第十句。後十同前九平等也。七不退內,初十同七地十種樂無作對治,後十同彼障對治,亦同雙行分。退有四種。一位,二行,三念,四應得不得。此中無四退等,八童眞內,初十同八地勝行分,何等身乃至供養佛等,後十同彼三世間自在?九法王子,內初十同九地智成就入行等,後十同彼口業法師成就等文。十灌頂有五。初列名,二廣釋,三顯勝,四進學,五除伏疑。初十同十地三昧分,次十同彼受位分,三十句同彼大盡分,卽入住出也。上來依一乘生信爲言。若約三乘寄位別觀時,如經初住中厚,集一切善根,成四弘誓。未度苦令度,未解集令解,未安道令安,未得滅,令得滅。第二住中修習無量善行謂四念觀身受心法此四皆空第三住中善集佛道。法謂觀十,一切入四,大四色空處識處皆,如實相故第,四住中一切佛前,受法而行八勝,處觀內實#五陰中。廣相略相二,勝處外,假衆生法中廣相、略相二,勝處四大,法廣略四勝,處如是觀一,切法空無,相故第五,住中修諸,淸白,法謂八。大人覺少欲,知足寂靜,精進正念正。定正慧,不諍論順,一切、法故第六住中爲諸,佛所護八解,脫觀聞慧,得內假外假二相。不可得故一,解脫思慧,內五法外一,切法不、可得、故二解脫修慧,六觀具足色。界五陰空三解,脫四空五,陰及滅,定觀皆不。可得、故五、解脫、如相,故第七住中廣正法謂,六和敬三。業同戒同,見同行同,入此法和必竟空故#住不。退位第八住中,信喜、大法、所謂三空一切。因故無作一切果。故無相因,空果空空,復空故空,空如是法。如虛空故第九,住中住四等法謂化。衆生教四諦法、三界,非樂爲苦,無明習因,受生無窮三、空道、品無爲。寂滅四諦,無二一合相,故卽是衆生緣,法緣無緣也第十住中好求佛,功德謂六,念佛法僧戒。捨天得一切佛功德。念念入不幻,三昧常所。前修故此約,三乘寄位觀也,第三顯實證。成文有二初動地顯實二復云佛神力下菩薩證成前文有三一動地,二雨花三等,餘十方世。界第二文有二初菩薩證成,二結會平。等廣周法界前文有四句可知。二結會中有二可知第四重頌文有二百三偈有二初一百八十五頌十解相,二如是十住諸菩薩下有十八摠頌十住結歎勸修初正頌文有十初九十頌初住,次第二治地下頌第二住,餘竝可知。初文有三。初對三十五事,廣成發心體。二菩薩如是發心已#下辨初住用。三是說菩薩下結也。治地內初四頌解,後八頌所學行,修行前四頌解。後六所學行,生貴前六解。後六行方便具足前六解,後三行,正心前八解。後二行#不退前四解,後四行,童眞前六解。後四行,法王子前四解,後二行。灌頂前十德體。次二頌住位相,下四頌後方便行,第二結歎文有二。初十四摠頌十住難知,次四結說無盡也。梵行品第十二四門同上。一釋名者,行中上淨故,名梵行也。要論梵有二。謂報及方便,始修爲淨,成就爲梵。若據報者,欲天爲淨,色天爲梵,若約自利、利他,自利爲淨,利他爲梵。故涅槃經云;三學爲勝聖行,四無量爲梵也。二明來意,何以來?其進道多方,便從相分二:謂一緇,一素。素從利他,無方利物故,不住分齊行。緇從自利故,不可輕壞出世容儀故,唯成內觀也故地。品辨出家人唯成三昧。問前諸會,何不亦說此品?荅有二意#一此中行劣,二以始通終故也。何不十信明此品?荅此正宗,爲彰以法成,人不以人成法,何名人成法。者法無高下,隨人器物,顯法精麤故十信法解未明。不可以法成,人十信解劣故,但隨信根定法。若語形局,卽諸見更增不成正信也。問:‘梵行發心明法,何故不通下三會?’荅:‘理有。以此類彼耳。三辨宗者,無念理觀,當是自體果,涅槃圓寂行也。卽爲此品宗。’又問:‘此中,始明十住初發心因,何故乃言是果行也?’荅:‘此明自體眞發心故,契於後際,體包無外也。’又是自體發中果,無戲論行耳。故品下結云:‘初發心時,便成正覺,具足慧身,不由他悟。’四釋文者,此文有二。初問、後荅。所以正念天子問者,表定顯理故。又正念不妄淨報堪受也。問文有四。初摠問,次牒事,三自分成出家行,四速成下勝進明他分。入佛境界,又問上淨行品,何故在家、出家合明?此卽不爾者,上爲信根弱故,始約#緣修相易處雙明。此中已去會法明出家相者,欲明自體緣起性離非斷故離也。此如維摩經說。荅文有三。一荅前自分,二又復修習增上十法,下荅前他分問,三菩薩如是觀者,下結梵行成益耳。初文有三。初辨尋思,二正念下辨正觀,三是名下結。初文有二。初辨尋思,二又知過去下明如實。初復分三。初擧十法,明所觀,此有二。初摠、次別。次應如是下正明觀。三當如是下結。何者梵行體理實自體發中,正智是也。何故法慧菩薩說者,圓通性德,非順法之慧,不明也?十中前六是行及行緣後四所信境故,偏說也。餘相可知。如實文有二。初辨觀行,二此梵行法下反驗第二菩薩正念無障㝵者,辨正觀。文有三。初辨無相。二如是觀者,下辨依他無生。三一切佛下辨眞實無性法。喩可知。第二勝進文有三。一自利有四句,謂立問荅結可知。二如是觀察下明利他有五句。三如幻下喩。況前二無體如幻。現實如夢,起用如電。緣聚如響,成事如化也。第三結利自他文#亦可荅上速,成問也有二。初牒次結益益,文有二。初結前少行多能,有二可知。二初發心時下成疾,所以有二可知。言卽菩提者。有二。一約位,卽十解菩提。二約解覺正理也。餘信、行、證等,准以知之。又卽普賢證得自體圓明究竟因果。此解約一乘耳。發心功德品第十三此下辨此住勝進德,四門同上。一釋名,發心牒行體,功德行所成功德也。就四義得名。二來意,所以來,前行已成,今辨歎德相故。三功德分量爲此品宗,四辨文。此文有四。初問、次荅、三證成、四偈頌。所以帝問者,在天故,亦卽功德自在也。又淨解自在方堪受德耳。所以法慧菩薩說者,稱法之慧方窮功德。二荅文有二。初、略,此中有三。初摠、次別、三許分齊。教量難知。義深難信,思惟難解,應教難說。欲證難通,數極故,難分別也。次假使下廣荅,廣文有二。初辨十二喩,次發是心已下合喩。初文有四。初喩、次徵、三荅、四挍量。餘文不定。十二喩中有五。初五戒、二十善等,此二取所益,爲況。第三身通,卽所利生處。四知成壞,五知法時也。下根悕望等,七喩明所利根器厚薄。下一明諸行德廣入勝位也。第二合文,長分爲七。初摠辨德能,二何以故,下責初非劣成等勝義。三荅所由,四何故,下重責始同終。五此初發心下以終攝始。六悉與三世諸如來等下廣辨。七彼初發心下結因勝由耳。又得證者行證也。身證者位證也。又得證者智相應,身證者身相應也。此中竝是普賢實德也。又問:‘何故,諸世界等,善順菩薩心轉者何也?’荅:‘爲菩薩得諸因緣和合自在心。是諸法因緣故,隨轉也。’此可思准。又上文十欲等者,隨有一善欲,卽具上十德也。餘可准之。又所以身證通三世者,爲下文菩薩常不離三世佛前故也。第三動地成證等,文有五。初動地雨花等,二諸佛同證有二可知。三利生獲益有三耳。四引同說證成前義有二可知五辨成所由有十耳問何故佛證荅‘爲因勝進,擧果攝成。又恐不信。又表因與果同一,性故,餘事可知。’第四重頌有二。初長行生起,次偈頌初文有八可知。偈文有二百四十一半分四。初廣歎發心現成功德。二十方世界中,下重擧前十二喩,述德難思。三三世人中;尊下辨能成當果。四菩薩初發心下結。此中不得細科。若細卽失旨也。又解位已去、所有解行理事教義等法門竝皆常行無間應知之。又從信位,成已去普賢行,及八相與佛已來,竝無差別。此可思之。餘三乘行義等,竝別不疑也。明法品第十四四門同上。一辨名。言明法者有二。一約教,阿含法照理現故名明。法卽義也。二約行,由行增勝後位相現故,卽用前位法義解行等爲明。用後位教義等,爲法也。二來意,所以興者,用前行德,更修。與後地,爲方便故也。三卽行教法,義等,爲此品宗。四辨文者,所以精進問者,若不精進行,不能受此、勝進法也。所以法慧菩薩荅者,稱法之慧能申,此教故。文有三。初問,次荅、三末後,少長行略結流通也。問文有二。初問,次重頌。初文有三。初先牒前住位中#行德,爲生後次第#次彼菩薩云何修習下正問勝進中先際行德,初牒文有六句可知。次問勝進先際,文有十一句分四。初六自利次隨其下三利他行,次興隆下一住持建立,次一成事不虛。第三勝進中,後際利他分法有二。初摠、次別#別文有三。初明成熟德。此文有二。初自利,成熟行德。二具足佛剎下利他成熟衆生行法。初自利分有四句:一離障,二成體,三成德,四成用也。二利他中有三。謂體、德、用。體有十二事,准比可解耳。第二天王下明眷屬行法,有四可知。三得善根力下辨自他德滿成就不虛義,有四句也。第二重頌文有二。初生起、次偈頌偈。有二十二偈,初四頌前牒前初發心菩薩前住位中所集德文。次云何下七頌第二彼菩薩下正問勝進中先際正行。次人雄下十一頌善哉下後際果德利他文,就第二云何下先際自分中。初有三偈頌上自利六句,次二頌利他行中三句。次一頌建立文。次一頌果行成就不虛。第二荅中有二。先長行,後偈頌。初文有三。初歎所問,合時多益,有三可知。二勅聽許說。三佛子此菩薩下正荅。荅文有二。初荅勝進中,先際自分正行。二菩薩摩訶薩若得成就下荅上勝進中,後際果行。初文有一百七十句,亦可百八十句耳有四。初一百一十荅上十一句中,初六句自利行#次四十荅利他行三,句次十荅住持建立。次十荅成事不虛,荅自利文中,初一百荅前五行。後十荅第六行,荅前五文中,一、一皆二十句荅之。二十內前十自行相應法。次十勝進修行法,云具足淨慧等者,牒前自利行,生起後利他,令勢相連也。諸十文各有四。初生起,次問,三荅,四結。亦有不定者,可准思之。利他前問有三。此荅中有四十,亦可五十句。此初二十荅三中初句#次不捨諸波羅蜜十句荅前第二句。次佛子下十荅前第三句,前二十句,亦可三十句也。初五知器所宜。次十應諸病授藥,次十五應器與法,言能如是行者,則興隆三寶者,下有十荅第十句內,住持建立。此中有二。初摠、次別。此別文中分四。前三別,第四摠,前三文初依教道。次依證道,後依不住道。六和敬者,身口意慈及見戒施同也。菩薩如是不斷三寶下有十句,荅上自分行第十一句行,成事不虛有三。初十辨行,成事不虛,次第荅前五句。二有十以德自嚴,卽荅前不虛句。三有十以自嚴故,能攝化不虛。亦同荅一句,於中法、喩、合三文。次若得成就下第二荅後際果德行中有三。初菩薩摩訶薩下荅前滅除癡闇果,熟德行法,此文有二。初辨自成熟行,二次第方便下明利生行耳。二於大衆中,下辨眷屬行。三成就如是勝妙法下辨行成不虛。唯除如來者,以下過上也。第三行不虛文有三。初立,次責,三荅。荅中有十一句。前六因,後五果行,第二重頌有二。初長行生起。二正頌偈,勝進中有二十偈有二。初十三頌先際緣起,次七頌上荅中勝分果德自分行法。前中初,六半頌自利行,次三半頌利他。次一頌住持建立,下二頌成事不虛。後七中初一半自利果及利他果。次三半頌眷屬行,下二頌行成不虛也。第四會佛昇夜摩天自在品第十五四門同上。一釋名。佛者化主昇者,上進夜摩者時,天亦云戲樂。天者明故,自在者遊空無㝵也。約行准之可知。卽荅上十行問。二來意者,所以來依解起行也有二意。一會來意,二品來意。竝如第三會說准之。三宗者有二。約人、約法同上。准思之可知也。此品宗爲明處及興供養。四辨文者,此文四品分三。初二辨序,次一明行體。次一明勝進方便也。此初序文一同前會,但增勝轉上寄法不同耳。爾時,如來威神力故,十方一切諸佛世界諸四天下一、一閻浮提,乃至無不顯現等者。若約三乘教辨時,閻浮苦、空、穢惡,厭苦情敏,忻上志猛。故在閻浮,成道佛身,非出世。若約一乘三乘共教時,欲顯閻浮是實卽空,是似成假,爲事纏緜,聖恒悲愍,佛以本願,力悲愍衆生,應於世處,成道佛身。現化故,身卽出世也。若約一乘時,此閻浮處,卽一心法界境界,若佛若處俱顯處染無穢之最佛故,顯在此方成道也,但諸應化事義,竝皆准此別之。第二供養成機中,有四。初文有二。初明興供養卽根也。二合掌下明請佛卽欲也。初供養行中有二。初嚴、次結。初有二十三事,初辨事嚴。次善根下行嚴。三如來下佛德加嚴供養,顯因同果,餘可知也。問:何故,十解讚偈別列佛,此卽不者何也?荅:解相別知,行卽通成故也。菩薩說偈品第十六四門同上。初釋名。自體妙因,行集文班,教則顯彰故,言菩薩說偈也。餘義可知。來意及宗竝同上准也。又問若義,次第相生,意同但所顯別者:‘何故名目不與上同?’荅:‘此但欲交絡顯義意故爾也。’但增勝及託法爲異者可知。四釋文者,此內第一集衆序中,世界同慧者,用前解慧,卽爲行所軌故。佛同眼者,行心見法明白故。菩薩同名林者,但以此行益物,熾燃俱興顯備集之相故也。‘第二段中足指放光,與前會何別?’荅:‘況足指有行住二力,前彰住,此顯行故,況別也。’第三說偈序內十人卽各以自已得緣起眞如,法因歎佛,卽歸行相也。初功德林偈有二。初長行生起,第二說偈下竝准之。此文歎法身自在功德,有十一偈。初六牒前昇天雲集自在之相,次五法身自在甚深。二慧林偈文有二。初二辨佛具德難遇,次八釋前具德難遇。八中分三。初二明上具德門,二如來無與等下四釋上難遇,三不可思議劫下二挍量勸修。三勝林偈有四。初二喩說微深,次一法合,次二辨深所以,次五歎其勝用,四無畏林內有三。初二擧體勝,次五擧用勝,次三勸學。初體、用二文各有二。初擧法深,二歎勝。五慚愧林偈有五。初一摠歎佛法勝益,次一歎佛勝用相,次六反,成勝用所以。此中初一摠,次五別,次一重順成人德用,五結人難見也。反成文內,初一愚智性別喩,次一同成虛妄喩,三二性乖違喩,四愚智緣隔喩五用無相感,喩也六精進林有三一。摠歎人勝次八廣擧法成人,次一明人法深故難見。八中一法體無異喩,二法體空無喩,三法體無實喩,四法體離相喩,五法體成眞喩,六一成多用喩,七起用依緣喩,八體堅難壞喩。准初說之。七力成就林有三。初四依他緣起觀,次五分別無相,次一約心歎用也。初文分二。初二法,次二觀。八堅固林有二。初七辨佛性相,二身難議。次三歎勝,前有二。初二喩辨性身,次有五。喩合辨歎應化也。九如來林偈有二。初九法喩雙顯,次一勸學。前文有二。初五喩展轉,荅五玄疑。一疑法是實,初行荅之。二見生異解,疑法離因。三疑分別實法,離心有之。四疑旣是心作,何爲非有?五謂心作法有知。此可思准。次四法合,造如來者,謂無作佛也。所以者乘前來意,不得爲有作佛故。十智林有二。前八歎法身甚深,次二結歎勸學。初文有二。初三歎體,次五歎用也。功德花聚菩薩十行品第十七分別有五。一釋十行名及來意。二所治一乘,如前解。三乘終教者,聲聞畏苦障,三所得通行定及忍善根。四所成卽十行位,卽此品宗。五釋文。一釋名者,功德者行體,花聚者喩名也,歎行勝妙能與果爲依衆行集故也。衆德聚集,能嚴無上菩提果。是因故,安菩薩也。十行者,數行之本相故。文云:‘譬如數法十增一,至無量,皆悉是本數,智慧故差別,從五義,得名耳。前衆旣集。次須彰說故,次來也。四此品以所修行體及位爲宗。五辨文者,此文有七分。初三昧分、二加分、三起分、四本分、五說分、六利益分、七偈頌。善伏定者,行力也。加勸序者,明此行法,其旨甚深分,在非已,自非諸佛加其道力,說之莫由故,次明也。此內有二。初摠辨加所爲,二佛子當承佛下明加相差別。初文有三。初明佛加讚,二十方下明加所以。三欲令汝廣下辨加所爲。初文有三。同上會,所以中有四句可知。所爲中有十句,初一欲令等者摠也。次八句廣,次一句結差別,二加相差別,三業可知。問:‘何故意加與法?’荅:‘法是正行之本故,與法也。’又問:‘前會何以不與法,乃與智者?’荅:‘法從智生故,親能成行。智境卽通,故前會但與智也。’此約地前,非證位故,作此解耳。二意加中,有三可知。四告諸菩薩言下卽本分。文有二。初歎十行宗本廣大,卽體也。二列十名卽相也。六決定同前解,但行異耳。問:‘何故前觀相約性?今此約行業者。’荅:‘前解相非勝故約性。此行相卽勝故,約相也。’此可思准。所以竝無常果因者,爲顯在有流因位耳。第二就本分相中有五。初問,次略荅,三重問,四荅,五結也。第四荅中,一釋歡喜者,施成自他喜。二饒益者,持戒攝益故。三無恚恨者,忍息自他恨。四無盡者,精進獲無窮德。五離癡亂者,得定故也。六善現者,智現緣起法。七無著卽方便度故。八尊重卽成願。九善法者力,智善說。十眞實者,得智順理善說。五說分中,有十可知。佛子,何等者?此初文有三。初牒問,次釋,三結釋。文有三。初辨布施行相有二。初釋次結,行相有十七句可知。二菩薩修歡喜行時下明行熟廣攝,令他喜也。此文有四。一修施儀,二離過,三設方便,四明所爲。此文三句。謂自因果及爲生。第三句有二可知。三離諸我相下明離三輪成檀度也。此有二句。自利、利他也。二饒益相文有三。初問,次荅,三結。第二文有三。初明性成,二戒體有八句,二菩薩如是持戒時下對緣辨持相。此有四。初持戒儀,二辨方便,三離過。此有五句。初句分二可知。四明所成,此有二句可知。三何以故是,我業下擧行離相,成戒度也。此中有二。初問、次荅。荅文有三。初明觀,有五句。二未度者,下明意。三我當下明所趣,三無恚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二。初辨忍行體,有八句。二菩薩成就如是淨忍下對緣辨忍相,相文有三。一他不饒益忍,此能所分二。能中口身分二也。二菩薩作是思惟下安苦忍有三。謂立責荅可知。三復更思惟下辨法忍,此中初法。次是故,下所爲有三句。三佛所行法下辨疑也。四無盡相文有三。謂問、荅結。荅文有三。初辨精進體,卽懃勇進有十一句。二菩薩復作是念下加行進有二。初明所、離。二辨所趣。三菩薩成就如是下辨難壞無足等也。此有二。初有二問荅,辨難壞。二釋分齊可知。五離癡相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三。初辨入理,安樂住定。二是菩薩成就寂靜下引通定。三菩薩聞此能壞下隨利他定。此初內有三。初辨定體無失。二菩薩成就如是等下辨定業用。此中有四。初摠辨,二何以故下釋所以,三此菩薩下別辨有二。初辨,次對因明也。四如是等下以廣顯略也。三菩薩於三昧中下辨觀行成前自在耳。此中相性成治分三。餘文可知也。六善現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三。初辨加行般若。二無所依無所住下正證智,三分別一切世閒法下後智般若。初文有二。初明智體,二無所有下釋成前義,正證文有十八句有四。初七辨智與理相應。二離業報下六辨正證離諸相。三無所依住下二句辨所住分量。四入離虛妄下三句明觀成分入無性問也。後智文有三。初辨如量智中如理,卽顯所知法。二安住三世平等下辨如量,智中如量卽對所化生。三是菩薩住此行時下德用自在,餘文思之可知。七無著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三初辨自利方便二初得受記,下辨利他方便。三菩薩如是觀察下自他二利善巧滿足有二。初辨二行,二所以者何?下辨所以可知也。自分文有二。初自分位中修。二不捨菩薩心下辨勝分位修有二可知。自分位有三。初於淨法中,修無著行,有二可知。二見不淨剎下於染行中見不淨修。三何以故下辨前無著所以有三。初問荅摠辨,二廣辨,三對生明離過。二利他文分三。初辨大悲方便觀。二不著身等下正明不著行,此中有十句。三何以故下明不著所以。初大悲觀有三。初辨大悲深重。二爾時菩薩見彼生下明增上,三爾時菩薩作如是念下明爲首耳。八尊重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六。初辨所遵法。二此菩薩行時,下辨所趣。此有二。初趣,二益。益有三益。一成願,二成生,三顯理。理中有二。初法、喩合卽立宗。二有二責可知。三菩薩如是下辨所成用,有法、喩、合三文,初法中初行,行離非。二得法爲人。三成功入法界。四而菩薩摩訶薩下明行自在。五如是菩薩成就下辨用無二。此文有四義。第四義荅中法、喩、合三,文可知。六此菩薩下明行成就有二。初自利,二利他他。文有二。初教,二申己意,以去疑。有二。初申意,二有二責可知也。九善法文有四。初問次荅,三結,四利益。荅文有三。初擧善法,以爲佛種。二淸淨陁羅尼下釋成行體。三菩薩安住善法行下約修辨成,第二釋成行體,文有二。初辨行體,有二可知。二爾時菩薩下明行作用,作用有二可知。三約修辨成文有二。初摠,次別。別文有三。初摠,次佛子下別有二可知。三成就如是十種身下結成行用。十眞實文有二。初問,次荅。荅文有七。一言行相應故眞實。二此菩薩下行相應,此卽釋名。三菩薩成就衆生下辨行體,此有二。初立次,是故下結勝,前文有二。各有立責荅。四不捨下辨行用,謂身口意,卽爲三也。五菩薩摩訶薩住大悲下辨卽位以因成果。六是名下結。七此菩薩安住下成利益也。上來約一乘信行相。若約三乘寄位別觀時如經。初行之中爲自得一切種智故,起四精進,懃修二善。懃斷二惡,爲求佛果故。第二行中爲得自身有大力故,爲四如意足。念守境,精進馳求,定撿攝,慧照境,得法無生自在故。第三行中願無畏具足故,謂五根、信進、念、定、慧,皆無相故。第四行中求具足三寶故。謂五分法身戒除形非,定無心亂。慧悟相虛,解脫無累。知見一切衆生無縛,知見解脫故。諸法、虛空無二故。第五行中,爲化一切衆生故。謂八正道從師生慧,名正知見,得法生思名正思惟。出家受道,得三道分,名正語、正業、正命。入法性空,名正定、正覺,於無生、無二,觀一合相故。第六行中大悲故,起七觀。擇法念法,精進法觀,法喜法定,法慧法入一相故。第七行中,爲得四無㝵故,謂五善根,止觀煖觀,頂觀忍觀,三界空第一,觀能生十地無相,大明慧,聖人胎未變第一空平等故。第八行中,一切佛國中,行行故。謂四化法,法辯、義辯、語辯樂說辯。此四名慧。性照一切法無生,第一義諦中行故。第九行中,於一念中,照一切法,謂三世十二因緣,皆假合會,以成性。實不可得故。第十行中,爲自在轉大法輪故,謂菩薩三寶。智覺中道,一切法無生佛寶。則用爲法寶。常行六道,與物相應,名僧寶。轉一切衆生流入佛海故。此約三乘寄位語也。六爾時佛神力故者,證成所說。此文有四。初動地雨花等,二如是四天下結會平等,三爾時各過下明十方菩薩證成,以此十方菩薩證成文卽知。諸會後,但此處同名佛菩#薩竝爲證義故,來會初十方同名集者,但是影響標位分齊未是證法。餘可准之。四結通十方,七重頌文有二。初長行辨說偈意,問:‘此中佛種性、菩薩種性何別?’荅:‘因位菩薩由佛,而成卽是佛性,由菩薩,自成卽菩薩性也。’此等可思准耳。二說偈有一百一十二偈,此中有三。初七字偈摠歎,二別歎三後有四行、摠結大情、思之。又此衆德上十行一、一位中,皆具有也。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上乙巳歲分司大藏都監彫造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下文圭終南山至相寺沙門 智儼 述菩薩十無盡藏品第十八四門同上菩薩者人十者本數無盡分齊也藏者蘊積也良以體非數分行無窮竭而生滅所不易故云無盡。一攝一切統含,無外故曰,藏也餘可准知二,來意者。所以來正位自分已,成次明勝。進入後位。故來也所,以前問,在迴向後今荅。在前者欲顯行通故也亦。可迴向屬助方便藏,從行本故在,初前耳三品以。能所甚深功德蘊積,諸義爲宗四,辨文者此。文有三初擧數引證略歎,列名二何等。爲菩薩下,辨相三此。藏有十下結,歎也初文。有二可知十名者一信。卽十地第一及攝論中。書持二戒卽地。中慈悲,及論中第六教他,得三慚四愧卽。地中行及論中第,九獨處空閑等五聞。卽地,中知諸經法及,論中第四恭,敬聽受六施。卽地名捨及,論中名施。他七慧卽地中第十如。法修卽論中第,十修相,入意八。正念卽地中不疲,倦及論,中自讀誦九持卽地中。堅固力卽論中第七如,所說一心習#也。十辯卽地中六善解,世法卽,四辯也卽論,第八爲他。如理廣釋地,論及攝論皆,有供養此。中何故無者此,中分慚愧。爲二故也亦可此藏與。彼一向義別也?二廣辨文有二一釋相。二是爲下結歎,行用能成大。果初信藏文有:四初列,名二辨相,三結四重,歎行用二。辨相有三初自。性住佛,性二佛,如是,知下約至得。果性三此菩。薩成就如是下。約引出性初自,性文有三初。入理次辨信堅固三何,以故下決。疑也第二至得:果文初,辨信境次,菩薩,成就下明,信解成相。第三引出文有三。初牒前。次不退下,卽明信境界分齊,次護持下,辨信行成,戒藏有三。初列名,次別釋三是爲下結已下諸,文三段,准此可知。二別釋文有三。初牒十名,次何等下辨。相#三此菩薩持如是等下,大悲利物用,就不諍戒中,不非先制。不更造立者,隨順實際,體非集起。心常隨順,向涅槃者,一切諸事,卽涅槃相不復更滅也慚文有三同前第二辨相內有四。初知已過。二一切下,識生有罪。三自惟下,上聖知見。四是故,下離過顯慚心。愧文三同前。耳愧文第二辨相內有四。初知已過,二復作下知生有罪。三上聖見知,四我當下離過顯愧耳。多聞第二辨相內,初列所聞十種事。二辨十相。三菩薩作如是念下利他。十二因緣,是無爲者,婆沙一師云:‘有爲不自立因,無爲故也。’此中文有六無爲,又解一空約事相辨。二涅槃約位論。三數滅約性散。四非數滅,就事散。五緣生約理從事。六法界理不對事耳。對情卽有爲所以,及餘意思之可解也。此等義竝,是自體緣起,參而不雜,不可以事相論也。是以大乘教相若論方便解入時,一切教相要況詮中取也。若論正解時,要是祕密教詮,方得顯大乘義相也。甚須得意,勿惑其聲。無記有六十也。施第二辨相。夫言施者,以捨濟資益爲義故,文言乃至自受取資用,無非是施。若就事相中明時,如文所列。若據詮表以明,但使解達窮宗,莫問玄想之以正智。一開情已,乃至三業起動進,參隨緣所作。無不隨順,如實與無盡藏相應。故能建立無上菩提根本種子。文有二。初列名,後廣辨。前施法中,有三種施法,准可知。餘文相顯可知。慧第二辨相內有五。初七句所知境,前四各有二義。一色苦是報色,二色集是業色。三色滅是分別性色。四色道是道共善色。第二色苦者色無常。二色集生後,三色滅卽如,四色道,謂成道具也。餘准之。聲聞菩薩等者初知人。次知所軌法,三知道因,雜煩惱習故,得集名。四知滅果也。體相如下說,次云何?知下辨加行觀諸法,卽自利有問荅二文。荅中有六句可知。三廣爲說下利他有五句。初摠,二問荅明義分齊,三問荅顯說儀,四責,五荅所由有四句耳。四菩薩成就下辨利自他,行成相。有二可知。五此智慧藏,有十種下辨慧攝無盡,有四可知。念藏第二辨相文有三。初辨所念淨法,云念佛者,隨順實覺也。云授記者,實覺妙軌,顯此心懷也。云念持脩多羅,者圓覺等滿相彰於外。妙軌備時,以爲世則故也。次菩薩作如是念下辨十念體。三此菩薩住是下,明念堅强也。言妙者,妙過餘人,淨念者,所記分明。不濁者,不雜闇障,遍淨念者,於法悉明。離塵念者,於所念事,不生貪染。離種種塵念者,不生餘結,離垢念者,不計我能。光曜念者,廣照無極,言樂念,樂修不息。無障㝵者,發意卽知。不待思量等也。持文有四。初問,二辨相,三結,四歎德耳。辨相文有三。初辨持人。次佛明所聞緣處。三聞持一品下辨所聞法。辯釋相有四。初牒,次辨,三結,四歎德。第二廣辨文有五。初明後智辯體二廣爲下明辯功能。三何故下釋成?四成就此藏故,下廣明辯德所成之事。五此菩薩成就百萬下,成辯無盡之用事也。此文有二。初釋,次問荅去疑。云佛子,是爲下第二結德用能成,大果無盡。次此藏有十種下,第三結歎辯藏深奧,生德無盡,有四可知也。第五會佛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第十九此卽荅上迴向問,四門同上。一釋名者,知足天約行准之。又前第三會,但說其殿,第四會,但論莊嚴。第五會云一切寶莊嚴。第六會摩尼寶等者,欲顯慈悲德相隨物轉增故也。二來意者,所以來者,若不迴向進行,莫由故也。一會來意,二品來意,同前准之可知。第三會宗者分別有二。約人法,同有體、相、用,准上可知。又因此會宗體,更擧上下諸會別,宗有二義。一擧普賢性起實德隨差別緣,以起信心故說,卽初會明世界海。第二會十信,第三會十解,第四會十行,第五會方便迴向,第六會明修成本有無漏因果二行法等。第七會依法,成因果行德。第八會依人成位差別德也。此竝是一乘、三乘共學法。第二攝差別緣,以從本實。卽初會觀圓明五海、十智,以起說。第二會信位,成就本實因果分量德。第三會解位顯證性德普賢因果。第四會行位,顯證本性普賢因果。第五會方便迴向位顯證法界,如相普賢因果。第六會證位,顯證性起普賢因果。第七會依法,以顯通教普賢因果行德分齊。第八會依人顯證普賢因果緣起理事德。位分量差別義也。四釋文者,此文三品分二。初二前方便序,後一正宗。此初品有二。初體用,二融體。融內有三。謂身、口、意,又因果相應,爲後方便也。上皆同此耳。第二時,彼天王下赴緣攝化。此文有六。一時彼天王下從體起用,爲攝化緣。二卽於下,辨王修供養具,卽成就根。三爾時,世尊以佛莊嚴下,明佛受請昇座,明機感相。四爾時,佛神力爲天王故,下明勝力加被,息亂住靜。五爾,時天王下明從靜定,發智偈歎也。六爾時,世尊昇一切寶殿下辨佛法身平等攝益,成事不虛。第二文有二。初成根,二爾時,天王爲如來敷座竟,下天王出迎世尊,辨敬儀也。卽根熟成欲。初嚴供具。文有三。初摠嚴立宗,二所謂下別廣辨修入方儀,三如是四天下結歎同等,顯機應法。初文有二。初摠明嚴座,二過去修習下辨因緣。因緣有十三。初一摠,餘別次第除疑可知。就第二所謂下廣說在殿,上修供養行成方儀中。大文有三。初辨器世間莊嚴自在行,二百萬億諸天神王下,明衆生世間莊嚴自在行。此能供養人,第三百萬億諸大菩薩下智正覺莊嚴自在行。此分證理故,有異解云:‘此中有五十八衆可知。’初器文有二。初外塵莊嚴具。二百萬億神力自在下明內法莊嚴,智正覺中初十三辨人。次二十句行德,諸大菩薩者,入道場會人。華手等信解位也。第二迎佛文有三。初出迎辨敬儀有二,謂一結前,二生後也。二設供養,三正申請。二設供文分三。初明自分行供養。有二。初、外。二內可知。二佛神力故,下明勝進分行供養。三爾時,一切諸天衆下辨二行,入佛界也。二勝分德中有三。初摠,二別莊嚴虛空,三出花,供養如來也。三爾時,一切諸天衆下明入佛界中有三。初辨利他,二時諸天見如來身一、一毛孔下,自利德。三爾時,如來下辨自他平等圓極自在。就前段中,初知利他德。二如是正念下十句結觀解益。初知中有二。初人雄等報身德,二順衆生根爲現佛身下,化身德。報身中,初身業德。次住一切智下辨口業德。三佛智慧月下明意業。二化佛中,初身業。二常以法施下明口業,三皆由從心起下辨意業。此等上達佛境,卽是迴向因人用事,可准之。二自利德中,有六句。初辨放光相,二自然下辨光說偈。三顯現阿僧祇下明莊嚴相,四顯現不可思下出化身說法。五又佛身中下出寶光明,顯其因行。六又睹自在神力下明說法教化。三自他平等圓極文有四。初牒前慈悲德,二欲令無量下隨機攝益。三成就如來下入佛界德成。四如來顯現下結歎難盡。第三赴緣攝化文有三。初正赴,二等餘方,三辨益可知。第五智文有三。初長行憶念,卽是智體。二說偈明智相,何意歎一佛德者,爲彰迴向多方便,歸一慈悲善巧也。三等通餘方。第六攝化成事文有四。初辨赴機,二正攝化,三成益文有二。初二句順理,次順事,所以但辨具德,不廣殿如處者,爲顯方便別莊嚴也。四等通十方也。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第二十四門同上。一釋名者,有四義。一處,二人,三身儀,四口業。或六句可知。二來意同前,但所爲別耳。三宗亦同前准之。但迴入此品,歎方便佛行,爲異耳。四釋文者,此品三序。初文集衆序內,先擧佛神力,顯分齊。次辨所集衆,後如此下結所集衆。第二內三世間可知。衆生世閒中,有五句。初列名,次依本修行,三俱來,四依方而坐,五歎德。歎德有三。初明自利行。二一切衆生觀無厭足下利他行。三此諸菩薩下辨自他德用自在。第二放光序中有三。初辨光出處,二明所照處,三彼諸菩薩下光所攝益卽歎德也。兩膝放勝光者,法身行中,入佛境界,增長勝妙相也。膝者表進方便相也。歎德中有三。初摠,次別,三結。別中有三。初自利。二教化成就下一句利他三勝進可知耳讚佛序中金剛者,因行堅也。幢者,行成高出也。亦有攝伏義耳。又十菩薩中,初名金剛幢者;明自體眞實,能消殄相累,超世之道,標別勝負故,名金剛幢也。餘相可知。此中諸偈竝約迴向云便,顯其佛德。卽以此教,爲詮善巧相也。餘准思之。諸偈文各有二。初長行生起,第二正說偈。初偈有三。初五自利德,次三利他,次二勸修也。堅固偈有三。初三歎佛自利堅固。次四歎利他堅固。次三勸修也。勇猛偈有三。初二辨法界海深。次五辨利用廣大。次三結體用圓極也。夜光偈有二。初四歎法身自在。次六歎化用自在。智偈有二初一歎卽位德,次九辨所見勝。所見文有二。初一摠,次八別。別文有三。初二歎佛德,次四明佛離數相,次二辨離世相耳。寶偈有三。初一化身,次二法身,次七報身。又問:‘何故科此經文?多依三乘者何也?’荅:‘所爲人三乘者多,故爾也。一乘義文准之可知。’精進偈有二。初六通三身自在,次四約四喩辨成,離垢偈有三。初七歎智身,次二歎法身,次一摠釋。眞實偈有五。初二歎化身自在,次二法性身自在,次四重成前化,次一辨趣方儀,次一結成身離相。法偈有四。初二辨明策修者意,次三摠擧損益釋成,次四廣辨損益相,以歎德,次一顯德相也。又亦可此十菩薩德,歎不須別科,一一句義,卽一方便法也。此約一乘意,取文也。金剛幢菩薩迴向品第二十一分別五門。一釋十迴向名及來意。二辨所治,一乘如前准三乘,除獨覺,捨大悲障。三所得無閒定及世閒第一善根。四所成十迴向行位,卽宗體也。五釋文。一釋名者,迴向者迴前行,向菩提,亦可通衆生及法性。金剛等是人迴向等是法,就二義,得名也。來意同前耳,但法體異前耳。今此論所治及成得等,竝約三乘說之。若約一乘別教辨者,卽或治,或不治等,可准思攝。四宗者摠相可知。廣在下文。五釋文者,此文有七分。初入定三昧分,二加分,三出定分,四本分,五說分,六利益分,七偈頌。初云入定者,顯法體,非思境也。明智定者,顯行無惑,照明故也。亦可方便淨智依止能成淨智。加序有三。初摠明讚加因緣相。此文有三。初摠諸佛現身及同名證法有二可知。二時彼下正讚述。三善男子下得入現定,所以加入定,有五因緣。一諸佛力加,二盧舍那本願力,三盧舍那今神力,四金剛幢自智淨力,五餘菩薩善根力也。二欲令下辨加所爲中,有二十二句。初十二自分德,次十勝進。今此二十二句內,所有諸文及上下意加內所有文相,不可一、一具解。但唯下地品初加分內論主所判,約分此文,意卽可知。仍此中,文相或通果及因,或初摠後別,或自他利異,或同異成壞。如是一切及上會諸文竝准地論初六相取之,無不明了,餘相可知。三善男子,汝當下辨三業加相差別,就中初口內,有十句可知。意加亦十句。初一摠,次別。問何故此意?加與雜法者,爲方便事不定,心、境及理、事非一法故也。准之可知。本分正說文有二。初摠辨體,二列名辨相,初文有二。初摠歎。二辨方便體。卽六決定於中,但有觀相大善及不怯弱,所由上已辨也。二相文有五。一問,二擧數及引證,三重問,四列名,五結及證成。不思議大願者,是地上願因,亦卽十迴向願也。四列十名者,一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者,化事離二我也。迴向有三。一迴向衆生與物同成故,二迴向菩提捨諸世有故,三迴向實際用歸極體故。此三相成,所以知有此三,下彌勒令善財見菩薩修,三種迴向也,般若經中,亦說此也。下竝通此意。二不壞者,自行堅固也。三等一切佛者,自他等入佛境,亦可量等。四至一切處者,分得佛力故。五無盡功德藏,者修用出生,不窮盡故。六隨順平等善根者,亦名堅固德用,無盡獲得。三堅固隨順涅槃也。七隨順等,觀一切,衆生者,得大涅槃,而不捨世閒故。八如相者,行依如修故。九無著解脫者,理等離縛脫、無脫相故。十法界無量者,稱性用也。此十相成,共有二。一以十門,攝諸行迴向,約此門,卽是行。二以行依十門,明迴向也。迴向有三。所謂實際菩提及衆生迴向,實際有二種。一現修諸行,卽是眞如。二爲顯眞如故,修諸行也。衆生亦二種。一爲度生故,修菩薩行,卽是衆生道具。二菩薩所成,卽衆生所與。菩提亦二。一所修諸行爲成大果,二菩薩衆生諸行,卽是菩提芽果。一、一迴向竝有此門,且述摠意,准以思之。第一中有四。初問列名,二辨相,三是爲下結,四以偈重頌。二辨相內有四。初明行體,二摩訶薩復作是念,發菩提心寶下迴向衆生及菩提。三菩薩復作是念,如日天子等,下迴向實際。四以如是等,善根迴向下結歎勝妙德用自在。初辨體內有三。初以六度,四攝等,爲濟衆生法。二修善根下明救護衆生。三此菩薩爲怨親故,下明託依起行。此中有二意。一爲離衆生相故,得成三迴向。二由離衆生故,是三迴向也。此可思之。二正救衆生,文有二。初令生不墮地獄等。二復作是念下得法身樂,於中因果分二也。三託依,起行文有二。初以善迴向衆生,不揀怨親,有三。初立,次問荅釋疑,三常以愛眼下對緣成行,展轉有四辨疑。第四疑文有三。初立次責三荅可知。二菩薩不爲,一衆生。下顯意廣大有二可,知第二。迴向衆生及菩提有五一行等諸,佛及起心究竟卽爲二也此二子段中,復各爲二可知。二菩薩以諸善根迴向時,下令生得淸淨趣。三復作是念以此善根下爲生得見佛獲益七財淨滿足者謂信戒聞施智慧慚愧四此菩薩復作是念下代受一切#苦,此文有四。初對物生心。次何故,下除疑。三以大下明善巧,有二可知。四復作是念:我當爲下正明爲生受苦。此中有三。初代受苦,二除疑此文有三。第二文中有四。第三文有三可知。三是故,不以下結可知。三復作是念:我當以下辨所成也。有二可知。五菩薩以是無量下令生得具助道因緣有三。初起意,二喩況,三合可知也。第三迴向實際文有二。初簡擇前二迴向。二令一切不著等下正迴向實際。此文有三。初辨分別無相。二不起虛妄因緣下依他不生。三觀察一切衆生平等下眞實無性,彼不生諸法,不滅諸法,以如是等善根迴向者,卽第四摠結文有三。初摠。次修行下別後菩薩下結歎,別中初修行對治法等,結初行體。次觀一切結迴衆生。及菩提。後於彼善根不作二相下結實際餘相可知。重頌有二。初長行辨意。次偈頌有五十六偈有三。初十二摠結,次、別。此別有三。初十一結行體。次十三結迴衆生及菩提文。次十五結實際,第三後六㧾結之。可准取解。二不壞者#有五。此中初問,次荅,三結,四歎德,五偈頌。荅文中有五。一辨行體,二欲令一切衆下迴向衆生。三諸佛成就無量德下迴向菩提。四菩薩如是捨離癡下迴向實際。五如是菩薩成善根下結歎德用。體文有五。一對緣成信有二。初立宗,二何故,下除疑。二如是安住下依信,成行因。三菩薩如是等善下辨行所成果,四菩薩如是精懃下結興行益。五菩薩善根迴向已下辨依行成願事。此有二意。一爲不壞故,得成三迴。二爲不壞故,是三迴也。此可思准。二迴衆生等文可知。實際文有三。初簡前二迴向、二觀察平等下正迴實際#三常爲諸佛下功感聖念。四結歎內有五。初結行體。次摩訶薩如是下結衆生。次究竟淸淨下結迴菩提。次得平等下結實際文。次菩薩行如是下通結勝妙。偈文有二。初長行,次偈頌有五十有五。初二十一頌行體,次二頌衆生,次二頌菩提,次十一頌實際文,次十四頌結歎文等。三等一切佛者有五。初問,次荅,三結,四歎德,五偈頌。荅文有五。初辨行體,有二可知。此迴向有二意。一爲等故,成迴三種。二爲先應三迴故,得等也。可准之。二此菩薩得如是樂時#下迴佛菩薩及衆生。此文有四。初向佛,二迴菩薩,三迴衆生,四菩薩攝取行等行下明儀式也。菩薩文有二可知。第三迴衆生文中有三。初迴儀式,此有二可知。二滅惡,三生善,三菩薩若在家時下辨起心分齊。此文有二。初釋。次如是菩薩今集下結。初文有二。初在家攝生迴向。二菩薩作是念:乃至小大下,大悲深重。初文有四。初起心。二對緣辨攝,有二可知。三明成,行無閒,卽顯智堅固四結。第二深重文有二。初離苦,二得樂可知。四復作是念,如彼下迴向實際,文有三。初牒前,二迴向。二而無所著下正迴實際,三摩訶薩下結同佛迴,正迴實際有二。初約入觀智迴。二常樂習行普門下出觀智以迴向。第五㧾結中,初牒前行體。次第一迴向下通結偈有二。初長行,次偈有四十八。初二頌體。次三十四頌迴佛衆生等文。次四頌實際,次八頌結歎。四一切處者。有五。初問,次荅,三結,四歎德,五偈頌。荅文分四。初辨體。二如是莊嚴下迴向菩提及衆生。三菩薩如是善根迴向了無所下迴向實際。四菩薩如是善根迴向下結歎德用,初體中分二。初明行體有四。一法,二喩,三合,四辨所成。此有三句。法、喩、合、喩如諸天者、第一義天,餘相可知也。此有二意。一爲順一切故,得迴三。二爲順三故,得至一切處也。二菩薩復作是念下廣明行相。此文有二。初明所依方土及佛。二菩薩於諸如來下廣明行相。此中有二。初對境興心,卽爲二也。前對境明心,次辨心德。二復作是念:下對境成行,則復爲二耳。如是莊嚴下迴衆生文有二。初開理、事二門立宗。二令一切等#下別辨得成至一切處所以。有法喩合。三文可知。三實際文有三。初牒前行體及二迴向。次了無所有下正迴向。三如是菩薩樂觀下結迴成益。正實際有二。初約入觀智。次如是菩薩圓滿下出觀智辯也。一切法衆因緣地者,依因緣解,證一切法故。四㧾結歎中,初結行體,得佛自在下結菩提。次教化衆生結衆生。次菩薩如是下結實際,偈文有二。初長行,次頌偈文二十二。初八頌行體,次六頌菩提及衆生,次六頌實際,次二頌結歎文。五無盡功德藏者,此有三義。一出生無盡,二所成,三自體。以此三准之。初問,次荅,三結,四辨德,五偈頌。荅文有四。初辨行體。二菩薩諸善根,皆悉下迴向菩提及衆生。三菩薩以如是等下迴向實際。四菩薩如是善根下結歎勝用。此初行體文有二#初辨行體有四。一懺,二勸請,三隨喜,四迴向也。隨喜有四。一成佛,二說法,三涅槃,四流通等文有二。初悔過。第二勸請、隨喜、迴向也。此三義由是有爲德義分相交故。同處合說。此文有二。初摠擧,二別辨。別中依隨喜四義,卽爲四段耳。此有二意。一爲行順三迴故,得成無盡藏。二爲成無盡故,迴三處也。此可准之。二菩薩作如是念:下辨行相有二。初嚴土,二嚴成人。嚴土有四。初成世界土。二菩薩修勝善根下莊嚴佛國土。三彼諸世界中下三世莊嚴。四如一世界下結成究竟。二菩薩復如是下嚴人有二。初辨次結。辨中有四。一人。二此諸菩薩下略具顯德。三成就下別顯德。有二可知。四成就等下結有三可知。二如一佛剎下,以結略,顯廣可知。迴向菩提衆生。文有二。初以法界方便,迴向二處。二如是菩薩善下辨方便分齊。實際文有二。初牒摠迴向趣向薩婆若際。二菩薩行如是下別迴實際。此文有二。初入觀智以迴向。此有二可知。二菩薩如是起下出觀智迴,生死非雜,亂涅槃。非寂靜者,此有二解。一就破相,生死體空故,非雜亂。涅槃體如故,非寂靜。二寂用解生死體寂故,非雜亂。何者是體?近說空是,深則不空如來藏是。大涅槃能建大義,妙用繁興無所不爲。故非寂靜。今依後釋。此二佛境、佛所行道,名境界道。無別生死故,非他作。生死、涅槃體無定相故,曰無法。諸聖同依,名爲同止。如義同先解。第四結歎文有二。初牒結前文。次菩薩初發下摠結。初文有四。初牒前行體,結成迴向菩提及衆生。二以如是等下牒前迴衆生,結成實際。三菩薩如是迴向眼終下結所得益。四菩薩如是迴向時,下行德勝妙。第四歎德用文有三。初擧數,二釋,三結可知。偈內有二。初長行生起,次偈。偈有五十偈。初十八頌行體,次六頌迴向衆生及菩提,次十四頌實際。次十二頌結歎文也。第六隨順一切堅固善根,迴向者#有五。初問,次荅,後是名下結,四歎德用,五說偈。第二荅有四。一施門中,辨行體。二菩薩善根迴向,令一切衆生下迴衆生及菩提。三菩薩摩訶薩以此善根迴向時下迴實際。四菩薩以一切善根,如是迴向下結歎德用。初文有二。初擧輪王位,捨歎成行德體#有二可知。二若施飮食下辨行相。此文有四。一略列所施諸物名。二作如是念:下辨修行意。三若施飮時下廣辨施儀則。於中或四、五、六不定。四者#一人,二所有事,三廻向,四結前。五者第三增田、六者第三增歎事德。又有成施心。四此菩薩以如是等無量下摠結利益也。初列所施名、文有三。初列六十章門所施財。二心不貪著下辨施心無染。三若諸衆生下辨所施田。第二意文有二。初辨施迴向意。二菩薩如是迴向已下明迴所成。三廣文雖有一百二十事,無不皆在六十門攝也。此有二意。一爲順三迴向故,得順堅固。二爲順堅固故,得三迴。此可准之。又今此所捨竝通三義。一是分段依正,二變化依正,三是變易依正。可準思攝也。地前具五生身故。四輪乘者,運度八難也。一住正國,此度三惡道北單越及長壽天。二正士度佛前後。三本功德度諸根不具。四平等願度世智辯聰。又正國輪者,眞如、法性土也。依正士輪者,般若正觀也。本功德輪者,施等五波羅蜜也。平等願輪者,菩薩十種無盡大願也。菩薩淨行由斯滿足。又字肆者恣也。第四結歎中有二。初歎益。二菩薩爾時,下慶得成益。此二文各有二。初釋,次結成究竟也。二實際文有二。初牒前行體。二於身口意業無縛著下正迴實際。於此正向中有五。初約入觀智,辨行成。二菩薩如是迴向時,不著內下明所離。三菩薩若於此法中,下辨利益。四何以故,下釋成。五菩薩如是見法下結說是非。此文有九句,相生可知。前文言禪頭者,衆生有形有體,名禪頭。今無此想也。四結歎中有四。初菩薩等摠釋體用。二迴向者,何義下結迴向名義。三菩薩若能以此下歎行迴向德。四菩薩如是迴向已下結益。偈有二。初長行,次偈。偈有八十二。初四十八頌行體及二種迴向。次菩薩觀下三十二頌實際文。後二頌結歎文。了達菩提,從緣起於法、眞性無所壞者,用不違體也。七等心隨順一切衆生。初問#次荅,三結,四歎德用,五偈頌。第二荅文有四。初辨行體,二菩薩離垢淸淨下迴向衆生及菩提。三菩薩修行如是善根下迴實際。四菩薩行如是下結歎勝用。初體文有三。初辨行體。二菩薩行如是等下辨行用有二。初離惡#二生德也。三不求生天下辨修意。此有二意。一隨他衆生所作善根,不逆善,令進故。二菩薩自善根,隨衆生根性三品,授與故。此可思准之。二衆生及菩提文有二。初辨修行。二菩薩以此善根下正明迴向。初文有二。初自分。二修習平等下增上修也。初文有五。初辨所依之緣,謂善根也。二菩薩復作是念:下明依緣起心。於中分三可知。三菩薩如是下顯心具德。四辨時分。五復次,菩薩下廣辨所施之物。第二增上施中有二。初辨施心。二菩薩復作是念:下明心具德。二正迴向中有二。初正迴向。二如是菩薩下結德自在。此有二。初自分。二以如是等下勝進可知也。實際文有二。初牒前利益。二菩薩如是等下正明實際。初文 有五。初離垢,二明所得,三明無等,四對果校量。此有二。初摠,次別,五結成具德也。二正迴法界,文相顯可知。四結歎文可知。偈有二。初長行,次偈頌。偈有四十二。初二頌體。次十七頌衆生及菩提。次七頌實際。次十六頌結歎文。八如相者有五。初問,次荅,三結,四辨利益,五偈頌。第二荅中有。四初行體。二菩薩以此下迴向衆生及菩提。三菩薩善根如是下迴實際。四菩薩如是迴向時,下結歎勝用。初體文有三。初集善根體。二菩薩如是下攝助成正行,亦可攝因,助果也。此中有二。初攝次辨觀相。三菩薩以如是等下成三業大用自在也。此大用內有二。初明心所趣,卽略也。三業卽爲三也。初一句身,次一句口,次下竝意耳。二一佛世界下結略顯廣也。此有二意。一此善根是如家相故,迴三處。二以相等體無㝵故,迴向三也。二迴衆生及菩提,文有五。初摠明迴向。二菩薩如是迴向修下辨行廣究竟。三復次,菩薩下對事辨成行儀。此有二可知。四菩薩善根如是下辨修意也。五如是菩薩長養下迴向功力所成。三實際文。此中迴與上下,何異者#諸迴攝相從體。此中攝相從相。此可思准之,文有三。初明迴向體、用。二善解迴向下成勝用所以。三如如下約法廣辨。初門有三。初辨體,二順如來道下明用,三觀察、寂滅下結前二。第二勝用所以中,初擧意,次如是菩薩下釋,三如法門下,約法辨成。第三廣辨中,有一百句文。初一句所軌,則下諸句依迴耳。又廣辨文中,三種言說。初取無著。第二取施設法。第三正取言說教事。文中三種時者,初唯揀法取時。二揀時論法。三時法雙論耳。此等依文次第撿之。卽知所由。過去非同者,非同一滅也。未來非故者,非現後故也。現在非異者,非異前後二世及自同類法也。此亦反外人見,思之可知。四結歎中,初三句結歎迴衆生及菩提。次等觀諸佛無有二下結歎實際德用。第四成益,文分二。初辨德,二結可知,第五重頌有二。初長行,次偈頌。偈有二十九。初二頌行體。次四頌生及菩提。次九頌實際。次十四頌結,歎利用。九無縛、無著、解脫心。初問,次荅,三結,四辨德,五偈頌。初荅文有四。初辨行體。二摩訶薩以無縛著下迴衆生及菩提。三摩訶薩以如此無縛下迴實際。四摩訶薩如是迴向時,下結歎勝用。初體文有二。初摠辨不輕衆善。二菩薩常樂攝受下由不輕頓故。於行攝成自在。此有二意。一爲善根無縛著故,迴三處。二以善根順三處故,無著也。二迴衆生及菩提中有二。初辨普賢三業。二從此生,盡未來際生下廣約別事,顯成自在。初文有四。初摠,次身,三口,四意可知。二廣顯內,有三十二。一得因果位,二得方便,三得身業,四得口業,五得意業,六成根。七得神力,八於佛剎自在。九得家。十得因陁羅智。十一得時自在。十二身容受。十三入果位#自在。十四入世界自在。十五知想。十六知心。此等中,各有二文。初知,二歎知德,十七知處,十八知業,十九知法,二十知聲,二十一說自在,二十二知根自在,二十三智方便,知微細。此文等有二。如前可知。二十四行方便,知微細。二十五知入解位#菩薩微細。二十六知初地微細。二十七知生性微細。二十八知世界微細。二十九知法界智微細三十知劫智微細。三十一知法智微細。三十二知出生雜法微細也。上知微細中,何故知智而不知法者,爲智能顯成法故也?三實際文有二。初入觀。二約出觀,可知耳。四結歎勝用文。滿足等者,滿因果行也。約位如此。若約行#卽通一切耳。偈文有二。初長行生起,二正頌偈有一百二。初六頌行體,次七十頌衆生及菩提。次如是一切諸法王下十八頌實際。次八頌結歎文,十法界無量者。此文有六。初問,次荅,三結,四歎勝用,五證成,六偈頌。亦可此二段從會初科,第二荅文有四。初所成行體。二復次,菩薩以法施下迴衆生及菩提。三復次,菩薩安住法界下迴向實際。四菩薩如是迴向時,下結歎勝利。問:‘此第十迴向與前八、九何別?’荅:‘第八趣理。第九約修成。第十二俱通含及所作事也。’初體有三。初㧾除障顯德。此文有二。初受記辨位。次明益用也。次菩薩行法施下修行所趣。三菩薩於彼善根下辨行廣大。所成自在福智莊嚴也。此有二意。一以行體迴依法界,至於三處。二所有行體,卽是法界故,可迴至三處也。此廣大文有四。初摠明行智莊嚴。二諸佛菩薩所讚下別辨莊嚴行。三何以故?下辨成自行所以。四復何以故?下釋自成能得利物所由也。第二迴向衆生等,文中有二。初明恭敬無閒。三業恒行故也。二菩薩以此法施下三業起用不空。初文有三。初意業隨智慧行。二令一切衆生,皆悉具足下口業不空。三令一切衆生,得淨法身下身業不空。初意業中,有十門#知法等可知。一令自他,得佛無盡法門。此文有五。初立宗。二以此下,摠辨其德用。三悉得不得佛法。四於一、一下述自能。於中有二。初摠開十門,於此文中,其十海者,一名生法,立義相。二引證相。三方言語則。四施名於義。五文教成軌。六說則。七所依門。八能入智。九境智資成相。十義住立不動也。五菩薩善根如是下明所成也。次廣辨文可知耳。第二復次,菩薩下明自迴向所成德。三菩薩復作是念:下令同己等得。四復次,菩薩以此等下緣成性德。五復次,菩薩以此善根下行成得佛隨喜。六菩薩以此善根,如是下辨迴向所依。此文有二。謂佛及法界可知。七復次,菩薩下辨所趣意。八菩薩摩訶薩下得用自在也。九菩薩以此善根,如是迴向下以行成位有二。初明所離。二明辨所得可知。十菩薩如是平等心下依位成勝進行用。此文有四。初辨迴行體。二令一切衆生,下明迴意。此有二文。一自分。二勝進可知。三菩薩善根如是下明所離。此文有三。初立,次責,三荅可知。四菩薩如是迴向時,下明起行益也。第二口業可知。第三就身業文分三。初辨身體。二明身德。三辨身用。此有三。初摠,次別,三結。二三業起用不空。文有二。初復次,菩薩修善下具辨三業。第二如是菩薩下不空行成。初具明三業文有二。初辨寶莊嚴。二廣說香華等,下類辨十門莊嚴。初文有四。初辨所供境,謂佛等。二彼一、一剎下供養具。三菩薩復作是念:下以略示廣。四是爲菩薩等下結。初供境中,初摠次別,別中依正分二。二供養具有四。初明百句別寶供養。二寶身莊嚴下八句明三業行。三寶眼下六根妙用。四寶身業下後以三句成三業智用。二三業不空行成中有二。初令生成自分行。二菩薩復作是念:下令成勝分行。此上各有二段應知。三復次,菩薩安住法界下迴實際可知也。四利用文有二。初牒前諸行也。二安住法界等,無量淨身下依行成勝三業。大段第三,是爲下結文可知。四歎德文有二。初明已成就普賢廣大衆德。二於念念中,下明別歎已分成自他勝用,一切行事也。上來依經。是一乘法通而非局。次明三乘寄位法者,如經。初向心內。一二諦正直,所謂學習第一義諦,觀一切法相,如不可得故。以慈悲喜捨,教授六天、人,剃頭被三寶衣,出家菩薩共一切僧,佛、法無二。第一淸淨故。第二向內,第一義智,謂五神通,是慧性差別用,卽以六通,爲觀境也。第三向中,於無生慧內,四不壞淨。於佛、法、僧戒中,信不可壞故。於第四向中,量同佛力,所謂三相諸法本無故,假名生。已有還,無假名滅。不空有法,假名住。是故一切通達空,而不二,名世諦相。空空一諦相故。第五向中善計量衆生力,所謂五陰。色者異空,色集成大色分。故色相空,剎那剎那成心。故心相空。受想行無集無散,一相、無相故。第六向中,佛教化力,所謂十二入。外六境內,六根爲識所入處。故名爲入。其慧觀者,不在外,不在內,不在中閒,一切法無自他故。第七向中,趣無㝵,智爲十八不共法。六境、六根、六識,一合相一切法亦爾。第八向中,隨順自然智,所謂因果、善惡名因,苦樂名果。所由爲因,所起爲果,因、果二空,無生無滅。皆一合相故。第九向中,受佛、法、僧故,謂二諦空因緣集故,謂之有,非曰有是有。因緣散故,謂之無,非曰無是無故,有無無二相也。第十向中,以自在慧化一切衆生,所謂中道第一義諦。般若處中,而達一切法,而無二相。轉增入聖地,名相似第一義諦觀非眞諦觀。初地已上,是眞觀,此是三乘寄位說。所以知者,爲經中,明已前三十心,竝爲凡夫法非聖位故也。初地已上經,本無通三乘,立其教義,文相多同故,不須料簡也。爾時,佛神力故,動地等,下第五明證實顯成。此文有二。初動地雨花等證成。次云十方菩薩,悉雲集者,第二明諸聖,證成勸信,流通也。於二文,各有二。謂辨相及結通餘方也。偈初意後頌。頌文有九十四。初十四頌行體,云無相妙智觀法眞相者,無用依體也。世行窮故最妙。次菩薩法施下六十八頌衆生及菩提。次譬如如下二頌實際。次如是殊妙下十頌結歎。就菩提衆生內,初八頌三業隨智行。次十方一切下二十頌身業不空。次恭敬下二十二頌口業。次衆生數等,下十八頌意業等也。此會荅上迴向問耳。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二之下乙巳歲分司大藏都監彫造
- 1)신수대장경에는 ‘행(行)’ 앞에 ‘기(起)’자가 더 있다.
- 2)처음의 두 품을 둘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이다.
- 3)신수대장경에는 ‘청(請)’자가 없다.
- 4)3종세간이란 기세간(器世間)ㆍ중생세간(衆生世間)ㆍ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을 말한다.
- 5)신수대장경에는 ‘해위(解位)’로 되어 있다.
- 6)경문의 세 가지 서(序) 가운데 세 번째이다.
- 7)신수대장경에는 ‘집(集)’자가 없다.
- 8)신수대장경에는 ‘견덕(見德)’으로 되어 있다.
- 9)정설(正說)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이다.
- 10)신수대장경에는 ‘위(位)’자가 없다.
- 11)4념처(念處) 또는 4념주(念住)를 말한다. 37도품(道品) 중 첫 번째의 실천 수행하는 방법으로, 몸[身]은 부정(不淨)하고, 느낌[受]은 고(苦)이며, 마음[心]은 무상(無常)이고, 법(法)은 무아(無我)라고 관하는 것이다.
- 12)10일체처(一切處) 또는 10변처(遍處)라고도 한다.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공(空)ㆍ식(識)의 10가지를 말한다.
- 13)8제입(除入)ㆍ8제처(除處)라고도 한다. 욕계(欲界)의 색처(色處)를 관하고 이것을 이겨내서 탐심(貪心)을 제거하는 8단계의 과정을 가리킨다.
- 14)대인팔념(大人八念)이라고도 한다. 보살ㆍ연각ㆍ성문 등의 역량이 큰 이들이 일으키는 8가지의 생각으로서, 소욕각(少欲覺)은 얻지 못한 5욕법 가운데서 널리 구하려 하지 않는 생각이고, 지족각(知足覺)은 이미 얻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며, 적정각(寂靜覺)[또는 원리각(遠離覺)]은 세속의 번뇌를 여의고 적정한 곳을 좋아하는 생각이며, 정진각(精進覺)은 선법을 닦는데 용맹정진하여 그치지 않는 생각이고, 정념각(正念覺)은 바른 이치를 일심으로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섞지 않는 것이며, 정정각(正定覺)은 선정을 닦아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함을 얻어 삼매가 앞에 나타나는 것이며, 정혜각(正慧覺)은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를 닦아 참되고 바른 지혜가 발생하는 것이며, 무희론각(無戱論覺)은 쓸데없는 말을 멀리 여의고 정어(正語)에 머무는 것이다.
- 15)대승(大乘)에서는 보살이 중생과 화동(和同)하여 애경(愛敬)하는 데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즉 신업동(身業同)ㆍ구업동(口業同)ㆍ의업동(意業同)ㆍ동계(同戒)ㆍ동시(同施)ㆍ동견(同見)을 말한다. 또 동계화경(同戒和敬)ㆍ동견화경(同見和敬)ㆍ동행화경(同行和敬)ㆍ신자화경(身慈和敬)ㆍ구자화경(口慈和敬)ㆍ의자화경(意慈和敬)의 여섯 가지로도 말한다.
- 16)3삼매(三昧) 또는 3해탈(解脫)을 말한다. 삼매에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2가지가 있으며, 유루정(有漏定)을 3삼매라 하고 무루정(無漏定)을 3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한다. 공(空)삼매란 온갖 것은 모두 인연에 따라 생기는 것이므로 나[我]나 나의 것[我所]도 역시 그 실체와 자성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하는 삼매이고, 무상(無相)삼매란 열반은 상(相)이 없는 것이라고 관하는 행(行)과 함께 일어나는 정심(定心)이며, 무작(無作)삼매[또는 무원(無願)삼매]란 모든 법을 관하고서 원하고 바랄 것이 없다는 관혜(觀慧)와 함께 일어나는 정심(定心)이다. 신수대장경에는 ‘공(空)’자가 ‘처(處)’자로 되어 있다.
- 17)6념법(念法) 또는 6수념(隨念)이라고도 한다. 염불(念佛)이란 부처님은 10호(號)를 구족하고 대자대비의 광명을 갖추었으며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신통이 한량없는 분이므로 우리도 부처님과 같기를 염원하는 것이고, 염법(念法)이란 여래가 설한 3장(藏) 12부경(部經)은 큰 공덕이 있으므로 모든 중생들의 대묘약(大妙藥)이 되는데, 우리가 능히 이것을 깨달아서 중생들에게 베풀고자 염원하는 것이며, 염승(念僧)이란 스님은 여래의 제자로서 무루법(無漏法)을 얻었고 계(戒)ㆍ정(定)ㆍ혜(慧)를 구족해서 세간의 거룩한 복전(福田)이 되니 내가 스님의 행을 닦고자 염원하는 것이고, 염계(念戒)란 모든 계행(戒行)은 큰 위력이 있어서 중생의 악(惡)과 불선(不善)의 법을 없애주므로 나도 능히 그것을 호지(護持)하고 정진하고자 염원하는 것이며, 염시(念施)란 보시행의 큰 공덕이 중생들의 간탐(慳貪)하는 중병을 능히 없애므로 나도 보시하여 중생을 섭수하고자 염원하는 것이고, 염천(念天)이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하늘이 자연히 쾌락을 받는 것은 다 전세에 지계ㆍ보시의 선근을 쌓았기 때문이니 나도 이와 같은 공덕을 갖추어 저 하늘에 나고자 염원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염(念)을 닦으면 선정을 얻어 열반에 이른다고 한다.
- 18)신수대장경에는 ‘불약(不約)’으로 되어 있다.
- 19)정설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이다.
- 20)정성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네 번째이다.
- 21)여기서의 ‘입(入)’이 신수대장경에는 ‘우(又)’로 되어 있다.
- 22)신수대장경에는 ‘오(五)’자가 없다.
- 23)신수대장경에는 ‘이(二)’로 되어 있다.
- 24)경문을 변별하는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 25)고려대장경 원문의 ‘인동설(引同說)’이 신수대장경에는 ‘별불동설(別佛同說)’로 되어 있다.
- 26)신수대장경에는 ‘주위(住位)’로 되어 있다.
- 27)경문을 셋으로 나눈 가운데 처음의 질문에 둘이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28)신수대장경에는 ‘진(進)’으로 되어 있다.
- 29)신수대장경에는 ‘하(下)’자가 없다.
- 30)고려대장경의 원문은 ‘신구의자(身口意慈)’로 되어 있는 반면에, 신수대장경에는 ‘신구의업(身口意業)’으로 되어 있다.
- 31)신수대장경에는 ‘오(五)’자가 없다.
- 32)신수대장경에는 ‘현불(現佛)’로 되어 있다.
- 33)고려대장경의 ‘변(辨)’이 신수대장경에는 ‘병(幷)’으로 되어 있다.
- 34)60권본 『화엄경』 「夜摩天宮菩薩說偈品」 (『대정장』 9, p.465 상).
- 35)60권 『화엄경』 원문에는 “불자당승불신력광설묘법(佛子當承佛神力廣說妙法)”으로 되어 있다.
- 36)60권 『화엄경』 원문에는 “욕령여광설심심법고(欲令汝廣說甚深法故)”로 되어 있다.
- 37)이 품을 다섯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 경문을 변별함에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 38)본분을 둘로 나눈 가운데 그 두 번째이다.
- 39)경문을 변별하는 일곱 가지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 40)본분의 상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 답 중에서 두 번째이다.
- 41)설분의 열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 42)고려대장경에는 ‘취(趣)’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기(起)’로 되어 있다.
- 43)신수대장경에는 ‘정혜인(淨慧忍)’으로 되어 있다.
- 44)신수대장경에는 ‘안인(安忍)’으로 되어 있다.
- 45)답의 경문 세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 46)경문을 변별하는 일곱 가지 가운데 여섯 번째이다.
- 1)신장(信藏)의 네 가지 경문에서 두 번째 상을 변별하는 경문 세 가지 중에 두 번째이다.
- 2)계장(戒藏)의 두 번째이다.
- 3)다섯째 경문을 해석하는 가운데 7분(分)이 있는데 그 중 네 번째이다.
- 4)상(相)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 5)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첫 번째이다.
- 6)넷째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이하의 경문을 셋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이다.
- 7)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두 번째이다.
- 8)불괴의 다섯 가지 가운데 두 번째 답의 경문에도 다섯이 있는데 그 첫 번째이다.
- 9)불괴의 다섯 가지 가운데 두 번째 답의 경문에도 다섯이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10)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세 번째이다.
- 11)일체의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12)열 가지 명칭을 열거해서 가운데 네 번째이다.
- 13)일체의 처소를 다섯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 답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세 번째이다.
- 14)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 15)답의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 16)답의 네 가지 가운데 네 번째이다.
- 17)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여섯 번째이다.
- 18)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일곱 번째이다.
- 19)중생과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수행을 변별하는 것의 두 가지 중 그 두 번째이다.
- 20)중생과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21)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수순함을 다섯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 22)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여덟 번째이다.
- 23)답 중의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 24)답 중의 네 가지 가운데 세 번째이다.
- 25)여상(如相)의 다섯 가지 가운데 네 번째이다.
- 26)여상의 다섯 가지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 27)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아홉 번째이다.
- 28)원문에는 ‘처음’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상 두 번째라야 하므로 이에 고친다.
- 29)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30)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세 번째이다.
- 31)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 32)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의 마음에 다섯이 있는데 그 다섯 번째이다.
- 33)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는 가운데 열 번째이다.
- 34)답의 네 가지 가운데 첫 번째이다.
- 35)답의 네 가지 가운데 두 번째이다.
- 36)의업(意業)의 10【문】가운데 두 번째이다.
- 37)중생 등에 회향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38)3업의 용을 일으킴이 공하지 않다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번째이다.
- 39)답의 네 가지 경문 가운데 세 번째이다.
- 40)답의 네 가지 경문 가운데 네 번째이다.
- 41)법계의 한량없음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다섯 번째이다.
- 42)법계의 한량없음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여섯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