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집성문헌

ABC_NC_02397_0001_T_001

0001_0001_b_01L
간독
[간독]

0001_0001_b_01L簡牘
[簡牘]

0001_0002_a_01L
붕 상인1)께 답함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여 평소 그리며 생각하던 차에 뜻밖에도 훌륭한 제자 승려가 와서 상인上人(남붕 대사)의 서찰을 전해 주었습니다. 뜯어보고 근래 선황禪況이 편안함을 알았으니 너무나 기쁘고 위안되는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곳의 나는2) 쇠약하고 병들어 해와 함께 모두 깊어 가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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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鵬上人

0001_0002_a_02L

0001_0002_a_03L絶然未聞聲息尋常戀
0001_0002_a_04L料外高弟僧來傳
0001_0002_a_05L上人之札披審邇來
0001_0002_a_06L禪況安勝欣慰何可勝量
0001_0002_a_07L此間衰病與年俱深堇[僅]

0001_0002_b_01L겨우 몰골만 보존하고 있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열여덟 가지 채소와 과실, 자반佐飯 따위를 하나하나 써서 봉하여 이처럼 보내 주셨으니 실로 정다운 뜻에서 나온 것이라 그대로 잘 받았습니다. 지극히 감사합니다.
붓(管城) 세 자루와 먹(陳玄) 하나를 약소하나마 서찰과 함께 보냅니다. 서로 만날 기약이 없는지라 종이를 대하니 암담해집니다. 우선 이만 줄입니다.

경오년(1750) 2월 12일 청사옹淸沙翁3)
{추신}
책력은 비록 이미 때가 지났지만, 산중에 혹 없을까봐 한 건件을 보냅니다.
영상領相4)

0001_0002_b_01L存形慤無足言者十八種菜
0001_0002_b_02L蕈菓實佐飯之屬一一題
0001_0002_b_03L有此寄惠實出情意
0001_0002_b_04L依領感戢良至管城三
0001_0002_b_05L玄一略此伴簡以送相面無
0001_0002_b_06L臨紙黯然姑不具

0001_0002_b_07L

0001_0002_b_08L庚午二月十二日 淸沙翁

0001_0002_b_09L曆書雖已過時山中恐或未有
0001_0002_b_10L一件送之

0001_0002_b_11L領相

0001_0003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소식이 막혔다가 서찰을 받아 보고 새봄에 선황禪況이 매우 좋음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나이가 점차 많아지니 병도 더욱 깊어져서 오랫동안 기력이 떨어져

0001_0003_a_01L
鵬師 禪几 謝寄

0001_0003_a_02L

0001_0003_a_03L阻餘承書審新春禪況
0001_0003_a_04L佳勝欣慰不已此間年
0001_0003_a_05L漸多而病益深長時澌

0001_0003_b_01L거의 이 세상 사람 모습이 없게 되었습니다. 형세가 그러하니 어쩌겠습니까? 고민스럽고 가련할 뿐입니다. 보내주신 각종 채소와 과일은 모두 먼 데서 염려해 주시는 정을 볼 수 있으니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머지는 몸이 아파 대신 쓰게 하고 이만 줄입니다.

경오년(1750) 2월 13일 김희로金熙[希]魯5)
김 판서金參判 희로熙[希]魯
{추신}
붓 두 자루와 먹 하나를 서신과 같이 보냅니다.

0001_0003_b_01L殆無陽界上貌樣
0001_0003_b_02L也奈何悶憐悶憐送惠各
0001_0003_b_03L種菜果俱見遠念之
0001_0003_b_04L深感且謝餘病倩
0001_0003_b_05L不具


0001_0003_b_06L庚午二月十三日 金熙[希]魯

0001_0003_b_07L金參判 熙[希]魯

0001_0003_b_08L

0001_0003_b_09L二筆一墨 伴書1)

0001_0004_a_01L
붕 상인께 올린 답장
동교 서간


지금 문안 서찰을 받고 따뜻한 봄 날씨에 선황禪況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이곳의 나는 엄중한 견책譴責이 내려와 동교東郊에서 숨죽여 지내는 처지라

0001_0004_a_01L
鵬上人 奉謝

0001_0004_a_02L東郊書


0001_0004_a_03L

0001_0004_a_04L卽承
0001_0004_a_05L問字備審春煦
0001_0004_a_06L禪況安吉何等喜
0001_0004_a_07L消息此間 金 兵曹判書
0001_0004_a_08L嚴譴之下屛伏郊

0001_0004_b_01L다만 황송할 뿐입니다.
멀리서 보내 주신 여러 가지 종류는 산촌의 맛을 받아서 맛보았으니 두터운 정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서찰을 보내면서 번번이 선물까지 주시니, 청정한 도인께서도 속세의 인정을 본받아서가 아닙니까?
이만 줄입니다.

경庚자 들어가는 해(1750년 추정) 21일 동쪽 교외에 깃든 나그네가.
{추신}
책력 세 건과 붓 세 자루, 먹 두 홀을 보냅니다.
병조판서兵曹判書 김金

0001_0004_b_01L只自悚惶而已
0001_0004_b_02L遠餉諸種領嘗山
0001_0004_b_03L
0001_0004_b_04L厚意可感
0001_0004_b_05L有書輒有饋
0001_0004_b_06L乃淨界
0001_0004_b_07L道人亦效世情耶
0001_0004_b_08L不具

0001_0004_b_09L

0001_0004_b_10L庚二十一 郊東 寓客

0001_0004_b_11L

0001_0004_b_12L曆書三件

0001_0004_b_13L筆三枝

0001_0004_b_14L墨二笏送之2)

0001_0004_b_15L

0001_0004_b_16L兵曹判書 金3)

0001_0005_a_01L
붕 사께서는 보십시오
소곡 답장


그리워하던 가운데 서찰을 받아 보고는 새봄 편안히 지내시는 상황을 알았으니, 마치 직접 대면한 듯이 기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노인의 질환이 겨울을 지나자 점점 깊어져서 아직까지 상쾌하게 회복되지 못하여 한결같이 근심으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0001_0005_a_01L
鵬師 開見

0001_0005_a_02L小谷答狀


0001_0005_a_03L

0001_0005_a_04L戀中見書憑認新春
0001_0005_a_05L安遣狀欣慰如面此間
0001_0005_a_06L老人疾患經冬沈淹
0001_0005_a_07L未快復一味憂煎□…□

0001_0005_b_01L… 노쇠함이 더욱 심해지니 고민되고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보내 주신 각종 음식은 정이 담긴 것이라 참으로 고맙습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서로 만나지 못하니, 서찰을 쓰면서 슬프고 한탄스럽군요.
눈이 어두워 겨우 쓰고 이만 줄입니다.

경오년(1750) 2월 13일 병생病生. 시직侍直6).
{추신}
붓과 먹 각 한 개씩 보냅니다.

0001_0005_b_01L衰敗益甚悶憐悶憐
0001_0005_b_02L種之惠良感情味
0001_0005_b_03L改而亦無由相見臨紙
0001_0005_b_04L瞻悵眼昏堇艸不具

0001_0005_b_05L

0001_0005_b_06L庚午 二月 十三日 病生 侍直

0001_0005_b_07L筆墨各一送之

0001_0006_a_01L
붕 사께 답장 올림     (함)
현풍에서 사는 노인 서간


작년에 오셔서 만난 것이 지금까지 마음에 잊기 어려운데, 그리워하던 무렵에 다시 서찰을 받아 보고는 새해를 맞아 도 닦으시는 생활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참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요사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만,

0001_0006_a_01L
鵬師 道案 回納 (緘)

0001_0006_a_02L玄寓書


0001_0006_a_03L

0001_0006_a_04L昨年來見迨依依難忘戀際又承
0001_0006_a_05L慧[惠]札審新元
0001_0006_a_06L道履安勝良慰良慰此間粗遣

0001_0006_b_01L나이를 더 먹으니 쇠약함이 더욱 더해지는데 나머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보내 주신 곶감(枯柹)은 잘 받았고 당신의 정을 보았지만, 산에 사는 스님이 어찌 이처럼 세속에 문안 선물을 보내십니까. 답례할 물건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나머지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경오년(1750) 1월 10일 현풍玄風에서 사는 노인이.
{추신}
막내 아이가 상경上京하면서 보내온 김(海衣)을 보내드립니다.

0001_0006_b_01L年添■衰益添餘何足言
0001_0006_b_02L枯柹依領其情可見而山人何爲
0001_0006_b_03L此世俗問遺耶無可答禮者可
0001_0006_b_04L餘俟更面不一一

0001_0006_b_05L

0001_0006_b_06L庚午 元月 初十日 玄風 寓老

0001_0006_b_07L季兒上京所惠海衣當傳送耳

0001_0007_a_01L
미상7)*이 글은 속지에 있는 내용으로서 후대에 연습 삼아 쓴 글이다.

0001_0007_a_01L
미상

0001_0007_b_01L미상

0001_0007_b_01L미상

0001_0008_a_01L
붕 사께서는 보십시오
이 참판 답장 서간 (봉)


얼마 전에 최심最心8)이 와서 보내 준 서찰을 보고 지금까지 위안이 되고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 뒤로 절서節序가 벌써 바뀌었는데 이때 불법을 닦으시는 생활은 어떠하신지요? 달려가는 마음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노병老病이 점점 심해져 살아갈 의사가 다하여 없어지는 가운데 아이들이 뜻 밖에 사람들의 말을 듣고 무서움에 떨면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어찌 말을 하겠습니까.
비문碑文9)은 중간에 조금 삭제하고 윤색한 부분이 있는데, 윤尹 대감10)

0001_0008_a_01L
鵬師 開見

0001_0008_a_02L李參判 答書 (封)


0001_0008_a_03L

0001_0008_a_04L頃於最心來得見
0001_0008_a_05L惠墨至今慰釋厥后節序已變
0001_0008_a_06L法履如何馳念不置此間
0001_0008_a_07L老病寢甚生意索然中兒輩遭
0001_0008_a_08L意外人言危怖度日餘何可喩
0001_0008_a_09L文中間有些刪潤處而因尹台有

0001_0008_b_01L병이 나서 이렇게 지연되다가 지금 비로소 써 내려갔습니다. 최심 무리가 많은 날을 머물며 지체하니, 고민되고 걱정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새 방백方伯11)이 만약 인정으로 친한 사람이라면 말씀한 뜻에 부응하겠으나, 비록 한 동네에 산다 하더라도 평소 정분이 없다면 간절하게 부탁해 보낼 수 없을 것이니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비석을 다듬는 공역工役을 이미 거의 끝냈다고 들었으니, 글자를 새긴 뒤에 인출(탁본)하여 한 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종이를 대하니 저도 모르게 서글퍼집니다. 예식을 다하지 못합니다.

임술년(1742, 영조 18) 9월 초3일 우신雨臣12).

0001_0008_b_01L致此遲延今始書去最心輩
0001_0008_b_02L滯許久其爲憫憐如何新方伯
0001_0008_b_03L若是情親人則可副
0001_0008_b_04L示意而雖居一洞素無情分
0001_0008_b_05L得懇托以送可勝歎哉碑石
0001_0008_b_06L磨役聞已垂畢畢刻后印送一
0001_0008_b_07L件爲望臨紙不覺邑邑不宣式

0001_0008_b_08L

0001_0008_b_09L壬戌九月初三日 雨臣

0001_0009_a_01L
붕 상인께 올리는 답장

그리며 생각하다가 가을이 다 가 버려서 더욱 머리를 들어 구름 낀 산을 바라봅니다. 이 때 혜慧 상인(廣慧)이 와서 서찰을 전해 주어, 근래 선황禪況을 들었습니다.

0001_0009_a_01L
鵬上人 答書
0001_0009_a_02L

0001_0009_a_03L懸想秋盡尤矯
0001_0009_a_04L首雲山慧上人來
0001_0009_a_05L傳書聞師邇來

0001_0009_b_01L다만 얼마 전 영문營門(감사가 일을 보던 관아)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에 놀라고 탄식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요사이 예전처럼 지내고 있는지라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섭 스님(攝師 : 攝海)이 떠난 뒤에 날마다 찾아오시기를 기다렸는데, 단지 서찰만 받게 되어 너무 섭섭하였습니다. 만일 행권幸勸13)의 사자使者를 만나면 내년 봄에 오셔서 뵙기를 천 만 번 믿고 믿겠습니다.
앞에 주셨던 시의 운자韻字에 관한 한 수를 마침 또 얻었기에 써서 보내니, 덧붙여서 기록 하면 됩니다.14)
나머지는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9월 12일 학남도인鶴南道人.
참판參判 정우량鄭羽良15)

0001_0009_b_01L禪況但營門向來
0001_0009_b_02L所遭爲之驚歎
0001_0009_b_03L已過境亦不足言也
0001_0009_b_04L此間依昨無可言者
0001_0009_b_05L攝師日候來訪
0001_0009_b_06L得書悵然悵然如相逢
0001_0009_b_07L幸勸之使於春間
0001_0009_b_08L來見也千萬專恃專
0001_0009_b_09L前韻一首4)
0001_0009_b_10L又適有所得
0001_0009_b_11L送可付錄也5)
0001_0009_b_12L不能一一
0001_0009_b_13L

0001_0009_b_14L九月十二 鶴南道人

0001_0009_b_15L參判 鄭羽良6)

0001_0010_a_01L
붕 상인 선탑에 올림

백족白足(스님)16)이 먼 곳에서 와 대사의 서찰을 받고는, 겨울 추위 속에 산사 생활이 좋음을 자세히 알았으니 위안되고 기쁨이 참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노쇠하고 병든 날이 벌써 오래되어 기어綺語(교묘하게 꾸며서 말하는 것)를 짓는 인연을 사절 하였으나

0001_0010_a_01L
鵬上人 禪榻

0001_0010_a_02L

0001_0010_a_03L白足遠來承見師札備諳
0001_0010_a_04L冬寒禪誦如宜慰喜良
0001_0010_a_05L不淺衰病日深久已謝綺

0001_0010_b_01L대사의 정성에 감동하여 애오라지 다시 붓을 잡고 바삐 썼지만 비석에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종이와 감을 보내 주셔서 사례하여 마지않습니다.
붓 두 자루를 서찰과 함께 보내는데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두서頭序도 없이 답장을 올립니다.

임술년(1742) 섣달 12일 동호桐湖.
이판서李判書 덕수德守17)

0001_0010_b_01L語緣而感師誠意聊復
0001_0010_b_02L泚筆匆匆寫去未知可合登
0001_0010_b_03L石否紙柿之惠珍謝無已
0001_0010_b_04L筆伴簡良愧良愧不次謝狀

0001_0010_b_05L

0001_0010_b_06L壬戌 臘月 十二日 桐湖

0001_0010_b_07L李判書 德守[壽]

0001_0011_a_01L
붕 사께 답하는 서간

서찰을 받아 보니 마치 얼굴을 뵌 듯합니다. 근래 바람이 불고 날씨가 좋지 못한데 산중 생활은 안온하신지요?
부쳐 주신 책 두 권은 잘 도착했지만, 화답 드린 시는

0001_0011_a_01L
答鵬師書

0001_0011_a_02L

0001_0011_a_03L見書如見面近來風
0001_0011_a_04L日不佳未知山中
0001_0011_a_05L眠食安穩否寄來
0001_0011_a_06L兩冊依到而所和詩

0001_0011_b_01L매우 신기新奇하지 않아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인편이 있으면 평안하다는 소식(二音 : 평안 두 글자)을 보내 주시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너무 어수선하여 이 정도만 쓰고, 이만 줄입니다.

임술년(1742) 4월 3일 청사淸沙18)가 보냄.

0001_0011_b_01L不甚新奇可愧可愧
0001_0011_b_02L頭有便亦寄二音
0001_0011_b_03L望萬萬撓甚略此
0001_0011_b_04L

0001_0011_b_05L

0001_0011_b_06L壬戌 四月 三日 淸沙 出

0001_0012_a_01L
붕 상인 열어 보시오
이 참판 답장 서간


사미沙彌가 와서 서신을 전해 주어 산중에서 지내시는 안부가 평안함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다만 비문의 글자를 잘못 배열하여 낭패를 부르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탄식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보낸 승려는 매우 미혹하고 열등했습니다.

0001_0012_a_01L
鵬上人 開見

0001_0012_a_02L李參判 答書

0001_0012_a_03L

0001_0012_a_04L沙彌來傳
0001_0012_a_05L偈翰以知山中
0001_0012_a_06L梵履平勝欣慰第聞以碑書誤排以致
0001_0012_a_07L狼狠[狽]驚歎頃者所送僧人迷劣特甚

0001_0012_b_01L대사大事에 임하여 왜 일을 잘 처리 하는 승려를 가려서 보내지 않고, 사리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먼 길에 심부름을 보내 공역工役을 어긋나게 하였습니까? 당신들이 잘 주선하지 못한 점을 알 수 있으니, 이루 탄식할 수 있겠습니까?
윤 대감(윤득화尹得華)이 다시 써 주려 하지 않았던 까닭으로 여러 번 왕복하여 간신히 점두點頭(승낙)를 얻어 이제야 비로소 글을 보내지만, 이번에는 잘못되는 근심을 면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의 나는 노병老病이 근래 심해져 날마다 죽으려 함을 일삼으니 스스로 가련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머지는 바빠서 많이 언급 못합니다.

임술년(1742) 섣달 13일 동락東駱의 노옹老翁이. 우신雨臣19)
{추신}
보내주신 초병椒餠20)은 감사합니다.

0001_0012_b_01L臨大事何不擇送解事釋子而不識事
0001_0012_b_02L理之人遠道耑送以至臨役緯繣可見
0001_0012_b_03L爾輩不能善周旋可勝歎哉尹台不欲
0001_0012_b_04L更書而給故累次往復艱得點頭今始
0001_0012_b_05L書送而未知今番能免誤了之患否也
0001_0012_b_06L此間老病近甚日事㱡㱡自憐奈何餘臨忙
0001_0012_b_07L不多及

0001_0012_b_08L

0001_0012_b_09L壬戌 臘月 十三日 東駱老翁雨臣

0001_0012_b_10L

0001_0012_b_11L所惠椒餠可感7)

0001_0013_a_01L

0001_0013_a_01L빈페이지

0001_0013_b_01L
붕 대사에게 답함
              (봉)


얼마 전 서찰을 받아보고, 이 추운 계절에 사찰 생활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참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요즘 노병老病이 날로 심해져 겨우 껍데기만 지탱하고 있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보내 주신 소병素餠은 잘 받았으니 그 정다움을 알겠습니다.
책력 두 건을 보냅니다. 우선 이만 줄입니다.

임술년(1742) 섣달 22일 정동貞洞에서
영상領相 김金21)

0001_0013_b_01L
答鵬師

0001_0013_b_02L (封)



0001_0013_b_03L頃見書知寒令禪況
0001_0013_b_04L安勝良慰良慰此間老
0001_0013_b_05L病日甚堇支形殼無足
0001_0013_b_06L言者所送素餠依領
0001_0013_b_07L見情曆書二件送去
0001_0013_b_08L姑不具

0001_0013_b_09L

0001_0013_b_10L壬戌臘之卄二日

0001_0013_b_11L貞洞 領相 金

0001_0014_a_01L
붕 상인에게

광혜廣慧가 와서 당신의 서찰을 받아 보고 근래 편안함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비석의 글을 고쳐 써서 보내니,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보내 준 두 가지 물건은 잘 받았으나,

0001_0014_a_01L
鵬上人

0001_0014_a_02L

0001_0014_a_03L廣慧之來得承汝
0001_0014_a_04L知近日好在慰慰
0001_0014_a_05L石書改書以送
0001_0014_a_06L爲剞劂之至可也
0001_0014_a_07L所送兩物依受而山

0001_0014_b_01L산승이 어떻게 이런 물건을 구하여 한양의 사대부에게 보낸단 말입니까? 받는 것도 매우 편치 않군요.
예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임술년(1742) 12월 15일 공동公洞(소공동)에서 답장 씀.
도승지都承旨 윤득화尹得華22)

0001_0014_b_01L僧何以得此物
0001_0014_b_02L饋京裡士大夫受之
0001_0014_b_03L亦甚不安不具式

0001_0014_b_04L

0001_0014_b_05L壬戌十二月十五日

0001_0014_b_06L公洞答書 都承旨 尹得華

0001_0015_a_01L
붕 상인 선안에 전하는 회신
정동에서 보낸 서간


한 해가 저물어 그리며 생각하였는데, 뜻밖에 혜사慧師(廣慧)가 서찰을 전해 주어, 섣달 추위에 선황禪況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마치 마주하여 정답게 노는 것 같아서 매우 위안이 되고 답답한 마음이 풀렸습니다.

0001_0015_a_01L
鵬上人 禪案 回傳

0001_0015_a_02L貞洞書


0001_0015_a_03L

0001_0015_a_04L歲暮戀想料外慧師
0001_0015_a_05L來傳問札以審窮冱
0001_0015_a_06L禪況淸毖慰瀉當晤

0001_0015_b_01L이곳의 나는 뜻밖에 연이어 상을 당해 마음이 처참하고 애통하여 할 말이 없고, 어른의 안후安候도 오랫동안 편안하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절박합니다.
보내 주신 자반은 정이 담긴 음식으로 잘 받았으니, 매우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혜사慧師가 주간하는 비문의 글자는 바로 받아 돌려보냈으니 무척 다행스럽고 다행스럽습니다.
책력 한 건을 찾아 보내니, 해가 가는 줄도 모른다(不知年)23)는 탄식이 없겠지요.
매우 어수선하여 남의 손을 빌려 어지럽게 적습니다.

임술년(1742) 섣달 22일 소릉少陵의 병객病客이.24)

0001_0015_b_01L此間意外連遭喪慽
0001_0015_b_02L事慘慟無足言者而親
0001_0015_b_03L候亦長時欠寧悶迫悶迫
0001_0015_b_04L送來佐飯依領情味
0001_0015_b_05L謝珍謝慧師所幹
0001_0015_b_06L受而還可幸可幸一曆覓付
0001_0015_b_07L其無不知年之歎耶
0001_0015_b_08L撓甚胡草倩手8)

0001_0015_b_09L

0001_0015_b_10L壬戌臘月二十二日 少陵 病客9)

0001_0016_a_01L
붕 상인께 답함

백족白足(스님)이 와서 먼 곳의 소식을 전해주어, 병발甁鉢(승려의 생활)에 별고가 없음을 알았으니 진실로 그리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우선 예전처럼 지내고 있는데, 아우가 또 연방蓮榜(생원·진사시 급제)에 들어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간청한 대로 주선하려고 했지만, 이 일은 결단코 시행되기 힘들 것입니다.

0001_0016_a_01L
答鵬上人

0001_0016_a_02L

0001_0016_a_03L白足來致遠音細聞
0001_0016_a_04L甁鉢無恙良慰戀思
0001_0016_a_05L間姑如昨舍弟又參蓮榜
0001_0016_a_06L可幸示事非不欲依懇
0001_0016_a_07L周章而但此事決難見

0001_0016_b_01L그리고 예판禮判(예조판서 이수항李壽沆)이 바야흐로 공무公務로 바빠 하루도 집에 있을 틈이 없습니다. 저 역시 이런 까닭으로 아직까지 출입하지 못하여 일이 되어 가는 형세가 이와 같아서 당신의 뜻에 부응할 수 없으니 한탄스럽습니다.
보내주신 두 가지 물품은 그대로 잘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하나하나 다하지 못합니다.

정곡貞谷에서 답장 보냄.
최 진사 홍간崔進士 弘簡

0001_0016_b_01L而禮判且方以公事
0001_0016_b_02L一日在家時生亦以故不得出
0001_0016_b_03L事勢如此不得奉副
0001_0016_b_04L可歎寄來兩種依受
0001_0016_b_05L多荷餘不一

0001_0016_b_06L

0001_0016_b_07L崔進士 弘簡 貞谷謝

0001_0017_a_01L
붕 대사께 올리는 답장
산곡 서간


대사께서 남쪽으로 떠나시어 다만 서글퍼 하던 차에 대사의 서찰이 와서, 근래 편안히 기거하시고 있음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0001_0017_a_01L
鵬大師 奉謝

0001_0017_a_02L山谷書


0001_0017_a_03L

0001_0017_a_04L甁錫南歸只用悵
0001_0017_a_05L梵札來及知近
0001_0017_a_06L來安過慰甚海印

0001_0017_b_01L해인사 승려의 행위25)가 매우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조(예조참판)에서 체직遞職되어 지금 북쪽 고을로 나가 있어서 주선할 수가 없으니 탄식할 뿐입니다.
매우 어지러워 이만 줄입니다.

3월 4일 산곡山谷
예조참판 이수항李壽沆26)

0001_0017_b_01L寺僧所爲極可駭然
0001_0017_b_02L已遞禮曺方出北邑
0001_0017_b_03L無可周旋可歎
0001_0017_b_04L撓不一

0001_0017_b_05L

0001_0017_b_06L三月四日 山谷 禮參判 李壽沆

0001_0018_a_01L
붕 사께 답장 올림
          (선)


지금 보내 준 서찰을 받아 보고 당신께서 무사히 그럭저럭 지내고 계심을 알았으니 기뻤습니다.
나는 매일 더위로 몸이 피곤하여 지금 신음하고 있으니 매우 고민되는 일입니다.
말씀하신 일은 마땅히 주선하겠지만 반드시 이루어질는지는 어찌 알겠습니까.
모쪼록 가까운 날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0001_0018_a_01L
鵬師答寄

0001_0018_a_02L (蟬)


0001_0018_a_03L

0001_0018_a_04L卽見委書知無事
0001_0018_a_05L捱過可喜吾逐日困
0001_0018_a_06L方此呻痛悶事
0001_0018_a_07L悶事示事當周旋而
0001_0018_a_08L其必成何可知也
0001_0018_a_09L須從近更訪餘不
0001_0018_a_10L


0001_0018_b_01L계癸자 들어가는 해(1743년 추정) 6월 5일 서실書室에서 보냄.
영천 책실永川冊室27) 윤심서尹心曙

0001_0018_b_01L
표충사 비석 건립을 주관하시는 여러 상인들께 부치는 답장
                             (함)


최심最心 선사가 와서 여러분들의 서신을 전해 주고, 또 비문을 인출한 탁본을 가져와서, 큰 일이 이제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사先師28)를 위하여 부지런히 수고한 뜻을 상상할 수 있으니 기쁨이 실로 깊습니다.
다만 비문 각자刻字 가운데 오자가 상당히 있어 윤 참판尹參判(윤득화尹得華)이 금방 고쳐 보냈습니다. 그대로 고쳐 새긴 뒤에 혹시 한 건을 인출하여 보내거나 혹은 고쳐서 새긴 글자로 인쇄해서 보내 주길 바랍니다.
우선 이만 줄입니다.

계해년(1743) 5월 9일 영상領相29)이.

0001_0018_b_01L癸六之五 書室 出 永川冊 尹心曙

0001_0018_b_02L

0001_0018_b_03L
寄答表忠祠碑役主管諸上人

0001_0018_b_04L (緘)


0001_0018_b_05L

0001_0018_b_06L最禪來傳僉札且致碑文印本
0001_0018_b_07L知大役已訖可想僉爲先師勤
0001_0018_b_08L勞之至意嘉喜實深第於碑刻
0001_0018_b_09L頗有誤字尹參判今方釐改以
0001_0018_b_10L依此改刻後或更印一件以送
0001_0018_b_11L只以所改刻之字印送爲望姑不具
0001_0018_b_12L

0001_0018_b_13L癸亥五月九日 領相

0001_0019_a_01L
붕 대사께 답하는 서신
경주 진영에서 관아로 회답함


칠원漆原 관아에서 이별한 뒤 소식을 듣지 못하여 밤낮으로 그리워하여 마지않았습니다. 뜻밖에 서찰을 받아 보고 극심한 더위에

0001_0019_a_01L
鵬大師 答書

0001_0019_a_02L慶州鎭營 回衙


0001_0019_a_03L

0001_0019_a_04L柒衙別後未聞
0001_0019_a_05L消息戀懷昕夕不
0001_0019_a_06L意外得見
0001_0019_a_07L手滋以審極炎

0001_0019_b_01L신선같이 기거가 편안함을 알았으니 기쁜 심정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뜻밖에 이 직책을 제수 받은 뒤로 간신히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겨우 진鎭에 도착했으나, 온갖 질병이 서로 일어나니 고민되고 고민됩니다.
보내 준 두 권의 책과 한 봉의 자반은 이같이 무정한데 어찌 이런 데에 이르렀습니까? 너무 감사하여 마지않습니다.
가을에 와서 보겠다는 말씀은 기대하고 기대합니다.
어지러워 이만 줄입니다.

계癸자 들어가는 해(1743) 6월 21일 호수헌虎睡軒30)에서 답함.

0001_0019_b_01L仙履有相喜不可
0001_0019_b_02L吾意外得
0001_0019_b_03L除此職艱辛跋涉
0001_0019_b_04L堇堇到鎭而百病交
0001_0019_b_05L是悶是悶送來兩
0001_0019_b_06L卷冊及一封佐飯
0001_0019_b_07L豈無情如是
0001_0019_b_08L此耶感多
0001_0019_b_09L無已秋間來見
0001_0019_b_10L之示預企預企
0001_0019_b_11L不宣

0001_0019_b_12L

0001_0019_b_13L癸流月卄一日 虎睡軒 答10)

0001_0020_a_01L
붕 대사 행중에 전함
구촌 정진사 서간  (근봉)


여러 해 동안 서로 소식이 막혀 운수지회雲樹之懷31)가 간절합니다. 요즘 어느 곳에서 머물러 계시면서 경전 공부를 하고 더욱 청고淸高한지 자나 깨나 그리운 마음 얕지 않습니다.
나는 초토草土32)를 치른 끝에 다행히 겨우 실낱같은 목숨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0001_0020_a_01L
鵬大師 行中 傳納

0001_0020_a_02L龜村 鄭進士書 (謹封)


0001_0020_a_03L

0001_0020_a_04L積年相阻雲樹依依邇來泊
0001_0020_a_05L在何處
0001_0020_a_06L經學益淸高否寤寐之間
0001_0020_a_07L戀不淺走草土之餘幸保一縷

0001_0020_b_01L집안의 재앙이 또 지극하여 지난 섣달 22일에 당형堂兄(종형)의 죽음에 곡했는데, 대전大田의 단애丹崖 큰 상喪이 일시에 거듭되니, 요사이 나의 처참한 몰골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유가와 불가가 비록 다르지만 그대와 내가 교유하는 정의情誼는 한 줄기 서로 이어지는 맥과 같을 뿐만 아닌데도, 지난날 거상居喪 중인 동안에 한 번도 문안하지 못하였고, 게다가 작년 영중營中에서 그대는 내가 물러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만나지 못했으니, 그대의 선학仙學은 태전太巓 선사보다 아래에 가지 않으나 나는 한창려韓昌黎만도 못한 것이 깊이 부끄럽습니다.33) 우습고 우습습니다. 마침 큰 절에 우거寓居하다가 신선의 석장錫杖이 안국사安國寺에 머문다는 것을 듣고서 이에 잊지 못하는 정성을 덧붙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이 정도만 쓰니, 정으로 살펴주시기 바라며 삼가 올립니다.
{추신}
서찰 끝에 또 소록小錄이 있으니,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계해년(1743) 정월正月 초8일 복인服人34) 중직重稷.35)

0001_0020_b_01L家禍又極去臘念二奄哭堂兄
0001_0020_b_02L大田丹崖大喪一時稠疊此間
0001_0020_b_03L爻象何可容言儒釋雖異
0001_0020_b_04L君我間交誼不啻一派之相連
0001_0020_b_05L而前日居憂中一不相詗且於
0001_0020_b_06L昨歲營中君知其我之退到
0001_0020_b_07L而亦不接遇深愧君之仙學
0001_0020_b_08L下於太巓而吾不如韓昌黎也
0001_0020_b_09L好笑好笑適寓巨寺獲聞
0001_0020_b_10L仙錫歷住安國玆寓不忘之忱
0001_0020_b_11L不宣只此
0001_0020_b_12L情管謹狀
0001_0020_b_13L書末又有小錄
0001_0020_b_14L幸照管如何

0001_0020_b_15L

0001_0020_b_16L癸亥正月初八日

0001_0020_b_17L服人 重稷11)

0001_0021_a_01L
붕 상인에게

사당祠堂의 문에서 작별한 것이 아직도 꿈결 같은데, 홀연히 혜각慧脚 스님이 찾아와 문안 서찰을 받았으니, 그 기쁨이 다시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0001_0021_a_01L
鵬上人

0001_0021_a_02L

0001_0021_a_03L祠門之別尙如夢境
0001_0021_a_04L忽地慧脚叩門
0001_0021_a_05L承問書其喜當復

0001_0021_b_01L소식을 들은 뒤로 도를 닦는 상황은 어떠하십니까? 선가禪家에서는 이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대사의 자취를 드러내려 했다가 도리어 재앙을 부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삼장三藏 법사(현장玄奘)도 80 남짓한 어려움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거듭 희希 상인上人을 위하여 가엾게 여깁니다.
보내 주신 초전椒煎은 담을 삭이는 데 효험이 있는데, 내려 준 것이 많아 매우 감사합니다. 한 개의 참먹(眞玄 : 품질이 아주 좋은 먹)으로 겨우 멀리서 정을 표하니, 받아 주세요.
나머지는 바빠서 이만 줄입니다.

경庚자 들어가는 해(1740년 추정) 국월菊月(음력 9월) 초10일 미美자 달린 누각에 우거寓居하는 나그네가.연지동蓮池洞 대사간大司諫 오언주吳彦冑36)

0001_0021_b_01L信後
0001_0021_b_02L道況如何禪家不貴
0001_0021_b_03L欲顯師蹟反招
0001_0021_b_04L此是三藏免不
0001_0021_b_05L得八十餘難者重爲
0001_0021_b_06L希上人可矜送來椒
0001_0021_b_07L有消痰之效
0001_0021_b_08L賜多矣可感一眞玄
0001_0021_b_09L聊表遠情領之
0001_0021_b_10L餘忙不具12)

0001_0021_b_11L

0001_0021_b_12L庚菊初十 美閣寓客

0001_0021_b_13L蓮池洞 大司諫 吳彦冑13)

0001_0022_a_01L
남 상인께 보낸 답장 서간
관동에서 보냄


금방 서찰을 받아 보고 동짓달 추위에 산중에서 지내시는 생활이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아내의 상사喪事를 만나 아직 장례도 지내지 못하고 있으니, 비통한 마음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보내온 약초藥椒는

0001_0022_a_01L
答南上人書

0001_0022_a_02L館洞 出


0001_0022_a_03L

0001_0022_a_04L卽見手書仍知至
0001_0022_a_05L山居況味佳安
0001_0022_a_06L欣慰欣慰此間纔遭亡
0001_0022_a_07L室喪事姑未過葬
0001_0022_a_08L悲痛何言送來藥

0001_0022_b_01L보낸 대로 잘 받았으니, 매우 감사하고 매우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일은 앞으로 만일 오가는 인편이 있으면 마땅히 서찰로 간청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대신 쓰게 하느라 많이 언급하지 못합니다.

계해년(1743) 11월 16일 기복인朞服人37) 흠欠38)
한림 이익보李益輔39)

0001_0022_b_01L椒依領多謝多謝示事
0001_0022_b_02L前頭若有往來
0001_0022_b_03L便當書懇耳
0001_0022_b_04L餘倩草不多及
0001_0022_b_05L

0001_0022_b_06L癸亥十一月十六日

0001_0022_b_07L朞服人

0001_0022_b_08L翰林 李益輔

0001_0023_a_01L
붕 사께 답장 드립니다
장삭에서 답장     (근봉)


지난날 장석杖錫(석장)을 짚고 찾아주셔서 지금까지 위안이 되고 마음이 풀리는데, 금방 스님(闍梨)이 와서 서찰을 받아 보고

0001_0023_a_01L
鵬師 答寄

0001_0023_a_02L長朔謝書 (謹封)


0001_0023_a_03L

0001_0023_a_04L向者
0001_0023_a_05L杖錫委訪迨痛慰釋
0001_0023_a_06L於▼(者/兆)利之來得見
0001_0023_a_07L手翰細審

0001_0023_b_01L도를 닦는 상황이 좋음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일 장차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돌아가려는 뜻이 커서 막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다시 작별하게 되어 서글픕니다.
『유마경維摩經』은 부친께서 전한 것인데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들었으니 이 말을 전할 따름입니다. 조린 콩잎을 보내 준 것은 산중 진미를 볼 수 있었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길을 떠나느라 바빠서 서찰을 이만 줄입니다.

계해년(1743) 9월(菊秋) 10일 화산花山으로 돌아가는 나그네가.
오무吳武40)

0001_0023_b_01L道履佳吉深慰深慰生明將啓
0001_0023_b_02L歸意浩然難禦
0001_0023_b_03L以不得更別爲悵摩維經14)
0001_0023_b_04L聞儼15)
0001_0023_b_05L也之所傳則有故未
0001_0023_b_06L果來云而傳此言耳
0001_0023_b_07L藿之惠可見山中瀞味
0001_0023_b_08L深感深感餘臨行怱怱不宣狀

0001_0023_b_09L

0001_0023_b_10L癸亥菊秋十日 花山 歸客 吳武16)

0001_0024_a_01L
붕 상인께 답하는 서간

그리워하던 무렵에 서찰을 받고, 이에 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나는 병영兵營으로 올라온 뒤로 몸은 우선 탈이 없으나, 이처럼 잔악殘惡한 병영兵營을 맡아 형세를 자세히 탐문하니 공사 간에 수응酬應하는 것이 형세로 보아 맡기 어려워 앞날의 걱정이

0001_0024_a_01L
答鵬上人書

0001_0024_a_02L

0001_0024_a_03L思想之際得見手滋
0001_0024_a_04L知好在喜不可言吾上
0001_0024_a_05L營後身姑無恙當此殘
0001_0024_a_06L詳探形勢則公私酬
0001_0024_a_07L勢難擔當前頭之

0001_0024_b_01L실로 작지 않습니다.
보내 주신 비문과 약찬藥饌(약이 되는 반찬거리)은 잘 도착하였습니다. 가을 사이에 순점巡點(순회점고) 행차를 혹시 하게 된다면 길이 좌도左道(경상좌도)의 각 고을을 경유할 테니, 그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온 승려는 일찍이 서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 영외嶺外(죽령 바깥, 영남 북쪽)에서 만났으니 “하늘이 그 인편을 빌려 준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연은 마음이 어수선하여 이만 줄입니다.

계癸가 들어가는 해 6월(流月) 23일 병영兵營에서.
{추신}
영營에 속하는 각 사찰들은 각별히 돌봐줄 일이 있으니, 안곡사安谷寺만 어찌 누락될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채를 구하여 보내고자 하였는데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붓과 먹 각 한 개씩을 보냅니다.

0001_0024_b_01L實非細也送來碑
0001_0024_b_02L文與藥饌依到耳
0001_0024_b_03L秋間巡點之行若或
0001_0024_b_04L爲之則路由於左道各
0001_0024_b_05L其時可以得見耶
0001_0024_b_06L今來僧人曾有相知
0001_0024_b_07L意外相逢於嶺外
0001_0024_b_08L可謂天借其便萬萬
0001_0024_b_09L心擾不一

0001_0024_b_10L

0001_0024_b_11L癸 流月 卄三日 兵營
0001_0024_b_12L營屬各寺有各別顧見之事安谷
0001_0024_b_13L寺豈有落漏之患耶17)
0001_0024_b_14L扇子欲爲得送
0001_0024_b_15L無一餘儲筆墨18)
0001_0024_b_16L各一送似耳19)

0001_0025_a_01L
붕 상인께 답하는 서간

서찰을 보고 근래 잘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니, 참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노쇠하고 질병이 날로 심해져 세상에 오래 못 버티리라 스스로 생각이 드니 어쩌겠습니까.
별지別紙에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근래 병으로 자리에 나아가지 못했고, 다른 대신들이 엄격한 말로 감영監營에 배관背關41)하라고 제사題辭42)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감영에서 만일 엄중하게 금한다면 수영水營(수군절도사의 군영)에서 어찌 어길 수 있겠습니까? 영문營門에

0001_0025_a_01L
答鵬上人

0001_0025_a_02L

0001_0025_a_03L見書知近日好在良慰此間衰病日甚
0001_0025_a_04L量不能久於世奈何別紙所示吾近日病未
0001_0025_a_05L赴坐他大臣以嚴辭背關監營爲題云
0001_0025_a_06L營若嚴禁則水營何敢違越乎營門許

0001_0025_b_01L서찰을 써서 부치기를 허락할 뿐입니다.
서산西山 대사의 친필은 보고 난 뒤에 돌려보냅니다. 얼마 전에는 비록 여기에 보관해 두고 싶었으나, 이것이 너무 커서 첩帖에 붙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서산西山과 사명四溟 두 대사의 친필로 쓴 작은 문서들을 구하여 보내 주신다면 다행스럽겠습니다.
산에서 난 다섯 종의 음식은 잘 받았으며, 매우 감사드립니다. 병으로 남에게 대신 쓰게 하느라 갖추지 못합니다.

갑자년(1744) 9월 초2일 청사淸沙.43)

0001_0025_b_01L作書付之耳西山親筆見後還送
0001_0025_b_02L向雖欲留置此則太大不合於付帖西山四溟
0001_0025_b_03L兩師親筆小紙若得送則幸也五種山味
0001_0025_b_04L依領深感病倩不具

0001_0025_b_05L

0001_0025_b_06L甲子九月 初二日 淸沙

0001_0026_a_01L
붕 사께서는 열어 보십시오
미천44) 여차45)에서 답한 서간. (생식)


예식은 생략합니다.
죄인의 죄역이 깊고 무거워서 갑자기 화변을 만났으니, 울부짖으며 상여를 부여잡는 아픔을 오히려 다시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먼 곳에서 서찰을 보내 주시고 겸하여 부의賻儀와 문상問喪까지 있었으니, 애통하고 감사 한 정이

0001_0026_a_01L
鵬師 開見

0001_0026_a_02L尾泉 廬次 答疏 (省式)


0001_0026_a_03L

0001_0026_a_04L省式罪人罪逆深重奄遭禍變
0001_0026_a_05L叫號攀慕之慟尙復何言
0001_0026_a_06L惠委疏兼有賻問哀感之情

0001_0026_b_01L단지 남을 위한 것이라, 산인山人이 이와 같아 더욱 감탄스럽습니다.
이곳의 나는 작년 변고를 당했을 때에 길지吉地를 구하지 못해 권조權厝46)의 예만 하고, 일 년 동안 산소 자리를 찾았으나 여태 겨우 가능한 땅도 얻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지사地師(지관)가 없어 이제까지 지연되었으니, 더욱 망극합니다.
섭해攝海 대사는 사제舍弟와 더불어 일찍이 한 번 방문하겠다는 굳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때 붕鵬 대사께서 만약에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함께 오신다면 그 감사하고 다행스러움을 어떻게 말로 다하겠습니까? 붕 대사께서 만약 가서 이 일을 섭해 대사에게 말하면 섭해 대사도 벌떡 일어나 찾아오실 것이니, 부디 천만 번 나를 위하여 특별히 도모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극히 바라고 지극히 바랍니다.
사적비 탁본 세 건은 잘 받았습니다.
백모白帽(상중에 쓰는 흰 모자) 한 닢을 서찰과 함께 보내니, 받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각각 문안 서찰을 보냈는데 함께 답장을 하니 양해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차서次序를 맞추지 못합니다.47)

갑자년(1744) 9월 초2일 미천尾泉에서 답한 서간
정 판서鄭判書

0001_0026_b_01L則但爲物山人有信如此尤可
0001_0026_b_02L感歎此間昨年遭變時
0001_0026_b_03L不得吉地行權厝之禮
0001_0026_b_04L一年求山尙不得僅可之地而無
0001_0026_b_05L地師遷延至此尤爲罔極
0001_0026_b_06L海大師與舍弟曾有一訪之
0001_0026_b_07L牢約當此之時師若不遠千
0001_0026_b_08L里同來則其爲感幸何可
0001_0026_b_09L盡言師若往說此事於攝
0001_0026_b_10L則攝師亦必翻然來訪
0001_0026_b_11L幸千萬爲我另啚[圖]如何
0001_0026_b_12L至望至望寺蹟碑三本並依
0001_0026_b_13L白帽一立伴送領之如何20)
0001_0026_b_14L各問同答幸諒之餘不次

0001_0026_b_15L

0001_0026_b_16L甲子九月初二日 尾泉答疏 鄭判書21)

0001_0027_a_01L
붕 상인의 선안에 올림

고족高足48)이 와서 서찰을 받아 보고, 맑은 가을에

0001_0027_a_01L
鵬上人 禪案22)

0001_0027_a_02L

0001_0027_a_03L高足之來承見
0001_0027_a_04L問字審悉淸秋

0001_0027_b_01L선정禪定에 든 정황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되어 마지않습니다.
이곳의 나는 공무가 번거롭고 어수선하여 병을 조리하기가 편안하지 못하니, 매우 답답하고 가련합니다.
보내 주신 여러 가지는 모두 산중의 맛있는 음식이니, 잘 받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한데 사례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잘 알았습니다만, 지난번 보낸 관문關文(상관이 하관에게 보내는 문서)이 아직 감영에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요사이 유사有司의 직임職任에서 벌써 교체되어 낭무廊務(조정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으니, 일을 이룰 방법이 없습니다.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어수선하여 남에게 대신 쓰게 하느라 이만 줄입니다.

갑자년(1744) 9월 3일  추판秋判(형조판서).
서종옥徐宗玉49)

0001_0027_b_01L定況安勝慰釋無已此中
0001_0027_b_02L公務繁撓調病非便悶憐
0001_0027_b_03L悶憐惠來各種俱是山中佳味
0001_0027_b_04L依領多感不知爲謝
0001_0027_b_05L示事知悉頃者關文尙未到營
0001_0027_b_06L近來已遞有司之任不關廊
0001_0027_b_07L無由施成可歎撓倩不一

0001_0027_b_08L

0001_0027_b_09L甲子九月三日 秋判

0001_0027_b_10L徐宗玉23)

0001_0028_a_01L
붕 사께서는 열어 보십시오

그리워하던 가운데 서찰을 받아 보고, 맑은 가을에 참선하며 지내는 형편이 편안함을 알았으니, 참으로 기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몇 달 전부터 연이어 공복功服50)을 입는 슬픔을 당하여 비통함도 견디기 어려웠고, 석 달 동안 종기를 앓아 온갖 고생을 겪었지만 오히려 아직도

0001_0028_a_01L
鵬師 開見

0001_0028_a_02L

0001_0028_a_03L戀中見書審秋淸禪況
0001_0028_a_04L安佳良用欣慰此間數月
0001_0028_a_05L以來洊遭功慽悲痛難勝
0001_0028_a_06L而三朔患腫備經辛苦尙未

0001_0028_b_01L완전하게 낫지 않았으니, 답답하고 절박한 심정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보내 주신 사탕과 후추(糖椒)는 정으로 잘 받았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일은 마땅히 인편을 통하여 영남 감영으로 서찰을 보내 부탁해 보겠지만, 능히 말씀한 대로 시행될지는 어찌 가히 기필할 수 있겠습니까?
나머지는 바쁘고 어수선하여 대략 이렇게만 쓰고 이만 줄입니다.

갑甲자 들어가는 해 8월 그믐에 공곡公谷의 노인老人.
희로希魯 김 참판金參判51)
{추신}
붓 두 자루 먹 두 개 보냅니다.

0001_0028_b_01L快完悶迫不可言送來糖椒
0001_0028_b_02L領情多謝示事當因便
0001_0028_b_03L托于嶺營而其能準施何可
0001_0028_b_04L必耶餘怱撓草此不具

0001_0028_b_05L

0001_0028_b_06L甲 八月 晦日 公谷老人

0001_0028_b_07L熙魯 金參判 二筆二墨送去

0001_0029_a_01L
붕 상인께 즉시 전함
연동 이 승지 서간 (봉)


오랫동안 상인上人과 더불어 운수雲樹 사이의 일을 의논하지 못해, 티끌 같은 마음에 쌓인 장벽의 뿌리(垜根)를 삭힐 수가 없었습니다. 또 생각건대 상인 쪽에서도 부지런하지 않은 날이 없으니, 상인 역시 이와 같지 않습니까?
인쇄해 보낸 책자는 잘 받았지만,

0001_0029_a_01L
鵬上人 卽傳

0001_0029_a_02L蓮洞 李承旨 書 (封)


0001_0029_a_03L

0001_0029_a_04L久不與
0001_0029_a_05L上人論雲樹間事塵心之
0001_0029_a_06L垜根末由消也且想
0001_0029_a_07L上人邊無日不勤上人
0001_0029_a_08L亦如是否印送冊子依

0001_0029_b_01L간혹 가운데가 터지거나 혹은 찢겨나간 곳이 있으니 이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표충사의 승려들은 응당 이렇게 하지 않았을 터이니, 해인사 승려들의 소행인지 묵묵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대는 부디 상세히 알아보고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비록 표충사 승려들이 한 짓이라 하더라도 무거운 형벌(重科)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내가 장차 경상감영慶尙監營에 기별하여 엄중하게 다스릴 생각입니다. 온 책을 두루 살펴보니 여러 대신들이 제영題詠한 부분은 조금도 손상된 곳이 없는데, 유독 내가 제題한 곳만 이처럼 찢겨 손상이 있으니, 매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갑甲자 들어가는 해 8월 27일 진암晉菴. 이천보李天輔52)

0001_0029_b_01L而或有中坼
0001_0029_b_02L有削割處此是何爲
0001_0029_b_03L事耶表忠僧應不爲此
0001_0029_b_04L黙想海寺僧所爲爾須
0001_0029_b_05L詳知告我也雖表忠僧
0001_0029_b_06L所爲未免重科吾將寄
0001_0029_b_07L慶尙監營重治計料
0001_0029_b_08L遍覽渾冊諸大臣題
0001_0029_b_09L小無傷處獨吾之所題處有此
0001_0029_b_10L坼傷甚所不便者也餘不多及

0001_0029_b_11L

0001_0029_b_12L甲八念七 晉菴 李天輔24)

0001_0030_a_01L
붕 사께 답하는 서간

서찰을 받고 무사히 날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으니, 매우 기쁩니다.
이곳의 나는 예전대로 지내며

0001_0030_a_01L
答鵬書

0001_0030_a_02L

0001_0030_a_03L得書知無事
0001_0030_a_04L度日可喜可喜
0001_0030_a_05L中依昨無

0001_0030_b_01L다른 소란이 없습니다.
보장報狀53)에 대해서는 사실로써 하라고 제사題辭를 적어 보냈는데, 보통 양자 사이에 죄를 규명하고 심문하는 도리는 피차를 대면對面시켜 논변하되 변명하는 말이 없는 뒤에야 징추徵推54)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서찰 가운데서 대질시켜 논변(對辨)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고쳐서 인출한 비문 탁본은 잘 도착하였습니다.
나머지는 하나하나 말하지 않습니다.

갑자년(1744) 4월 초8일 김해金海 부사.

0001_0030_b_01L撓矣報狀
0001_0030_b_02L實題送而凡間
0001_0030_b_03L究問之道彼此
0001_0030_b_04L對辨無辭發明
0001_0030_b_05L然後可以徵推
0001_0030_b_06L而汝之書中
0001_0030_b_07L爲對辨云
0001_0030_b_08L未可知也改印之本
0001_0030_b_09L依到耳餘不一一25)

0001_0030_b_10L

0001_0030_b_11L甲子 四月 初八日 金海 倅26)

0001_0031_a_01L
붕 사께 부침
현서 답장


백족白足이 소매 속에서 서찰을 꺼내 전해 주어서, 펼쳐 보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대사께서는 청진淸眞한지요?
부쳐 온 세 비문을 인출한 탁본은 애써 준 뜻에 깊이 가상하게 여깁니다.
오미환五味丸을 주신 것은 더욱 감사하고 더욱 감사합니다.

0001_0031_a_01L
寄鵬師

0001_0031_a_02L賢西謝帖


0001_0031_a_03L

0001_0031_a_04L白足袖傳慧音
0001_0031_a_05L披慰甁錫淸
0001_0031_a_06L寄來三碑印
0001_0031_a_07L深嘉勤意
0001_0031_a_08L五味丸之惠尤謝

0001_0031_b_01L바삐 적느라 이만 그칩니다.

갑甲자 들어가는 해 8월 초3일 현서賢西의 병든 서생이.

0001_0031_b_01L尤謝忙艸止此
0001_0031_b_02L

0001_0031_b_03L甲八月初三 賢西 病生

0001_0032_a_01L
붕 상인의 경소에 회답함

그리워하던 중에 당신의 서찰을 받고, 근래 불경을 공부하며 지내시는 상황이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예전대로 지내고 있으니 달리

0001_0032_a_01L
鵬上人 經所 回傳

0001_0032_a_02L

0001_0032_a_03L戀頭得承
0001_0032_a_04L淸札審近間
0001_0032_a_05L經況佳安爲慰此間依過他無

0001_0032_b_01L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내가 근래 외직에 있는 까닭으로 비국備局(비변사)에 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겠습니까?
보내 주신 산미山味(산나물, 과실)는 멀리서 보내 주시는 성의를 크게 입었습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갑자년(1744) 9월 초하루 병든 서생이.
윤 참판尹參判

0001_0032_b_01L足言所示悉之而吾近在外
0001_0032_b_02L故不得往備局何以成出文書
0001_0032_b_03L惠及山味甚荷
0001_0032_b_04L遠意餘不宣

0001_0032_b_05L

0001_0032_b_06L甲子菊月初吉 病生

0001_0032_b_07L尹參判27)

0001_0033_a_01L
붕 사께 드리는 답장

뜻밖에 서찰이 와서, 돌아가신 뒤에 한결같이 편안히 지내고 계심을 알았으니, 이별할 때의 아쉬운 마음에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집안의 상을 연이어 당하고 병도 많이 거듭되어, 비통과 고뇌로 날을 보내고 있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0001_0033_a_01L
寄答鵬師

0001_0033_a_02L

0001_0033_a_03L意外書來知歸后
0001_0033_a_04L一向安遣殊慰別懷
0001_0033_a_05L此間連遭一家喪戚
0001_0033_a_06L病憂亦稠仍悲惱
0001_0033_a_07L度日無可言者所示

0001_0033_b_01L모두 잘 알겠습니다. 마땅히 제기하고 아뢰어서 주선하겠습니다.
세 가지 보내 준 음식은 정다운 뜻에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잊지 않는 정성을 느낍니다.
한 자루의 부채는 비록 늦었지만, 이에 부쳐 보냅니다.
병들고 또 바빠서 겨우 적었습니다. 이만 그칩니다.

갑甲자 들어가는 해 8월 그믐 복인服人.
김 시직 치만金 侍直 致萬55)

0001_0033_b_01L具悉當提禀周旋
0001_0033_b_02L三種之餽
0001_0033_b_03L感情意而亦覺不
0001_0033_b_04L一箑雖晩玆以付
0001_0033_b_05L病且忙堇草只此

0001_0033_b_06L

0001_0033_b_07L甲八月晦 服人 金侍直 致萬

0001_0034_a_01L
붕 상인께 보낸 답장
망청헌에서 보낸 서간


뜻하지 않게 선사의 서찰이 멀리서 와 펼쳐 보고 서늘한 가을에 공과功課가 맑고 좋으심을 알았으니, 매우 기뻐 쓰러질 정도입니다.
이곳의 나는 부모님의 안부가 여름과 가을 이후로 질환이

0001_0034_a_01L
答寄 鵬上人

0001_0034_a_02L望淸軒 出書


0001_0034_a_03L

0001_0034_a_04L匪意禪札遠至披審秋
0001_0034_a_05L功課淸勝極庸欣倒
0001_0034_a_06L此間親候夏秋以來疾患

0001_0034_b_01L거듭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근래 또 복통과 설사 증세로 여러 날 신음하고 지쳐서 줄어들 기세가 없으니, 답답하고 절박한 마음을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바는 잘 알겠습니다만, 수영水營의 관문關文도 없이 승도들을 침책侵責56)한 일은 사체事體가 비록 심히 온당하지 않았으나, 서간을 쓰는 한 가지 일에 이르러서는 이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국備局에서 엄한 말로 감영에 배관背關을 보냈습니다. 우리 가친께서도 또 이러한 뜻으로 영문에 서찰을 보냈으니, 이제는 이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두 가지 산미山味는 정으로 받았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나머지 사연은 서찰로는 다 말할 수 없기에 우선 갖추지 못합니다.

갑자년(1744) 9월 초2일 망청헌望淸軒.

0001_0034_b_01L連仍而近又以腹痛泄痢之症
0001_0034_b_02L累日呻委未得減勢
0001_0034_b_03L迫之私有不可狀言所示悉
0001_0034_b_04L水營之不有關文侵責僧
0001_0034_b_05L事体雖甚未安而至於
0001_0034_b_06L作簡一事此是決不可爲
0001_0034_b_07L之事故自備局嚴辭
0001_0034_b_08L關于監營家親又以此
0001_0034_b_09L作書于營門今則可以無此患
0001_0034_b_10L兩種山味領情可感可感28)
0001_0034_b_11L多少書不能盡姑不具

0001_0034_b_12L

0001_0034_b_13L甲子九月初二 望淸軒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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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산인께 답하는 글

잠깐 만났던 일이 지금까지도 생생한데, 지금 또 서찰을 받으니 마치 직접 만난 듯합니다. 하물며 불경을 연구하며 탈 없이 잘 지내신다 하니, 얼마나 위안이 되고 후련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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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鵬山人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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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35_a_03L頃面迨依今又見書
0001_0035_a_04L對形況知
0001_0035_a_05L經味無恙何等慰豁

0001_0035_b_01L이곳의 나는 예전 모습이 지금도 같습니다.
비명碑銘은 잘 받았습니다. 다소 어수선하여 다하지 못합니다.

갑甲자 들어가는 해 19일 달성達成에 머무는 나그네가 보낸 답장.

0001_0035_b_01L此昨狀今如矣碑銘
0001_0035_b_02L依受耳多少撓不盡
0001_0035_b_03L

0001_0035_b_04L

0001_0035_b_05L甲之旬九 達城 留客 答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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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 속의 운을 써서 붕 사鵬師에게 주다.

바리때 하나로 멀리 만 리 바다를 건너
한 치 혀로 큰 고래57)를 제압했네
지금 동국을 천균처럼 중하게 했으니
비로소 서산의 귀감58)이 신령함 징험하네
백 년에 없던 전례 사당 편액 빛나는데59)
몇 스님들 같은 때에 의로운 소리 아울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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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軸中韻 贈鵬師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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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36_a_03L隻鉢遙凌萬里溟能將
0001_0036_a_04L寸舌制長鯨卽令東國
0001_0036_a_05L千勻重始驗西山一鑒靈
0001_0036_a_06L曠典百年祠額煥同時
0001_0036_a_07L數子義聲幷至今更

0001_0036_b_01L이제 와서 다시 사문의 일을 생각하니
이 세상 풍진은 모두가 비린내라네.

무오년(1738) 계춘季春(음력 3월)에 엄계장嚴季長60) 지음.

0001_0036_b_01L想沙門業宇內風塵
0001_0036_b_02L盡是腥

0001_0036_b_03L

0001_0036_b_04L戊午季春 嚴季長 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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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에 이르도록 끊이지 않으리라.
밀양 표충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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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于萬萬歲不絶
0001_0037_a_02L密陽表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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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붕 상인鵬上人 : 송운대사松雲大師의 5대 법손인 태허당泰虛堂 남붕南鵬을 가리킨다. 당시 송운대사의 행적이 잊혀지고 드러나지 않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김재로金在魯와 조태억趙泰億, 송인명宋寅明 등에게 고하였다. 마침내 어전御前에서 아뢰어 특별히 복호復戶 5결結을 주고, 또 본도本道에 명하여 사우祠宇를 중수하도록 하였는데, 승려 취안翠眼과 상현尙玄 등이 그 일을 맡아 처리하였고 남붕이 총괄하였다. 남붕이 또 경산慶山에서 돌을 깎되 승려 초윤楚玧으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하게 하고, 영조 때 상신相臣인 도곡陶谷 이의현 李宜顯이 글을 짓고,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이 글씨를 썼으며, 영상領相을 지낸 지수제知守齊 유척기兪拓基가 전액篆額을 썼다.
  2. 2)이곳의 나는 : 원문은 차간此間인데, 이는 간찰에서 발신자가 수신자보다 나이가 상당히 많거나 윗사람일 때 자 신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차중此中이라고도 한다. 아래도 같음.
  3. 3)*김재로金在魯(1682~1759)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 1710년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740년 영의정에 올랐다. 50여 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거의 절반을 재상으로 지냈으며, 영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난여爛餘』, 편서에 『금석록金石錄』·『예기보주禮記補註』 등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4. 4)후대에 서간첩을 엮고 정리하면서 발신자를 명기한 부분을 괄호로 표시하였다. 그 위치는 대부분 편지글 끝에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겉봉투에 있는 경우도 있다.
  5. 5)*김희로金希魯(1673~1753)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성득聖得. 1702년(숙종 2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04년 빙고별검氷庫別檢·경력經歷 등을 지냈다. 왕의 다병무자多病無子함을 들어 왕세제王世弟(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다가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로 형 재로在魯와 함께 파직당하여 위원渭原에 유배당하였다. 그러나 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세력을 얻게 되자 공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호조참판·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6. 6)시직侍直 : 조선시대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정8품 무관 벼슬.
  7. 7)서간이 첨부된 쪽과 지질이 전혀 다르다. 배접한 종이가 갈라져서 속지가 드러난 것이다. 속지에 쓰인 편지는 무시해도 좋으나, 참고삼아 제시하기로 한다. (이하 동일)
  8. 8)최심最心 : 남붕 대사의 제자로 표충사 중건을 도운 승려.
  9. 9)비문碑文 : 표충비表忠碑를 말하는데, 이 비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조직하여 왜군을 무찌르고, 전쟁이 끝 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3,500여 명의 조선 포로를 귀환시키는 데 큰 공헌을 세운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1544~161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2년(영조 18)에 사명당의 5대 법손인 남붕 선사南鵬禪師가 주간하여 건립하였다.
  10. 10)윤尹 대감 : 서산 대사의 비문을 쓴 윤득화尹得華를 가리킨다. (권1 서간 14번 참조)
  11. 11)새 방백方伯 : 새로 부임한 관찰사를 말함. 영조 18년 임술(1742) 7월 12일(기사)에 박사창朴師昌을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12. 12)*이우신李雨臣(1670∼1744) : 서산 대사 비문을 지은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 자는 백열伯說, 호는 십탄十灘. 이희조李喜朝의 문인으로 문장에 능하고 특히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났다.
  13. 13)행권幸勸 : 여러 가지 일을 독려하는 직분의 관리.
  14. 14)앞에 … 됩니다 : 별지에 적어 보낸 시고詩稿는 유실되었다.
  15. 15)*정우량鄭羽良(1692~1754)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 자는 자휘子翬, 호는 학남鶴南. 32세 때인 1723년(경종 3)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1727년(영조 3) 사간원 정언이 되었으며, 이듬해 백성들을 효유하는 왕의 교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각 도에 반포하였다. 1749년(영조 25)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그 뒤 판중추부사에 전임되었다. 글씨에 능하였다고 전해지며, 개성 「계성사비문啓聖祠碑文」을 남겼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 16)백족白足 : 승려를 가리킨다. 백족은 발이 희다는 뜻으로, 승려인 담시曇始의 발이 얼굴보다 희다 하여 백족 화상白足和尙이라 칭한 데서 유래하였다.
  17. 17)*이덕수李德守(1673∼1744) : 사명당四溟堂 송운 대사의 비문을 지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전의. 자는 인로仁老, 호는 벽계蘗溪 또는 서당西堂. 1734년 왕명을 받아 여사서女四書를 한글로 풀이해 민간에 반포했다. 1741년부터 유수원柳壽垣의 참여 하에 국조오례의의 수정작업에 착수했다. 1735년 동지 겸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문장이 출중해 홍문관과 예문관 관직에 여러 차례 올랐다. 저서로 『서당집』, 『서당사재西堂私載』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8. 18)*김재로 : 권1 서간문 2번 참조.
  19. 19)*이우신 : 권1의 서간 8번 참조.
  20. 20)초병椒餠 :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전병을 국수처럼 썰어서 볶아 낸 것이다.
  21. 21)*김재로 : 권1 서간 2번 참조.
  22. 22)*윤득화尹得華(1688∼1759) : 서산 대사의 비문을 쓴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덕휘德輝. 1725년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731년 진위사陳慰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부교리로 있을 때 이광좌의 죄를 논하면서 갑산에 유배된 민형수를 변호 하여 고원군수로 좌천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23. 23)부지년不知年 : 태상 은자太上隱者가 어떤 사람에게 답한 시에, “우연히 오게 된 소나무 아래 돌베개를 높이 베고 잠이 들었네. 산속에는 달력이 없으니 추위가 다 가도 해가 감을 모르네.(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曆日 寒盡不知年)”라는 구절이 있다.
  24. 24)*김재로 : 권1 서간 2번 참조.
  25. 25)해인사 승려의 행위 : 전후 서간을 살펴보면 당시 해인사 승려들이 남붕 스님이 주관하여 표충사에 비석을 세우는 일을 시기하여 방해했던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합천 해인사 홍제암弘濟庵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 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 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諡號에서 따왔는데, 광해군 6년(1614)에 혜구 대사가 사명 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四溟大師塔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탑이다. 석장비石藏碑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광해군 4년 (1612)에 세웠으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이 비문을 지었다.
  26. 26)*이수항李壽沆(1685∼미상)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주. 자는 숙겸叔謙이고, 호는 삼신재三愼齎이며, 초명은 이수익李壽益이다.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병과 급제하고 1727년(영조 3) 사과司果로서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도승지를 비롯하여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27. 27)책실冊室 : 고을의 원이 사사로이 임명하여 비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책사冊史 또는 책아冊衙라고도 불렀다.
  28. 28)선사先師 : 세상을 떠난 스승. 여기서는 서산西山 대사와 사명당四溟堂 대사, 영규靈圭 대사 세 분.
  29. 29)*김재로 :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2번 참조.
  30. 30)호수헌虎睡軒 : 경주慶州 성의 서문 밖에 있는 건물 이름이다.
  31. 31)운수지회雲樹之懷 :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말로,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이라는 시에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에는 저문 날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에서 유래하였다. 
  32. 32)초토草土 : 거적자리와 흙 베개란 뜻으로, 거상居喪 중임을 가리키는 말.
  33. 33)그대의 … 부끄럽습니다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768~824)의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한유는 태전太巓 선사에게 발심해서 귀의했다. 이 글에서는 한유와 태전 선사의 유불을 초월한 교류에 빗대어 남붕 스님은 태전 선사보다 부족하지 않는데, 자신은 한유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는 겸사를 표현했다. 
  34. 34)복인服人 : 상복喪服을 입는 사람.
  35. 35)*정중직鄭重稷(1694∼1765) : 조선 중기의 유학자. 본관은 영일. 자는 윤문允文, 호는 인재忍齋. 횡계서당에서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형제를 사사하였다. 이인좌의 난이 발발하자 스승을 따라 의병에 참여하였고,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정중기鄭重器의 문하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썼다. 정제鄭梯·정간鄭幹·윤봉구尹鳳九·윤봉오尹鳳五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며 학문적 성장을 이루었다. 문집으로 『인재집忍齋集』이 전한다.
  36. 36)*오언주吳彦冑(1688~1741)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백경伯敬 또는 백교伯敎, 호는 번천樊川. 1729년(영조 5)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지평에 올랐다. 이어 부수찬副修撰·수찬·부 교리副校理·교리·헌납獻納 등 삼사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36년에는 이조정랑이 되어 전주銓注를 장악하였다. 그 뒤 사간·승지를 거쳐 1738년에는 대사간에 승차하여 활발한 언론 활동을 폈다.
  37. 37)기복인朞服人 : 기년복朞年服을 입은 사람. 기년복은 상을 치르는 기간이 1년인 상례에 입는 상복. 조부모의 상례에 입는다.
  38. 38)흠欠 : 상중이기 때문에 성명을 적지 않고 빠트린다는 뜻이다.
  39. 39)*이익보李益輔(1708∼1767) : 원본에 보輔자가 분명하지 않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익보로 추정된다. 본관은 연안. 자는 사겸士謙.
  40. 40)*오무吳武 : 미상.
  41. 41)배관背關 : 소속 관청의 첩보牒報 뒤에 기록된 관문關文.
  42. 42)제사題辭 : 조선 시대에 백성이 올린 소장訴狀, 청원서請願書, 진정서陳情書의 좌편 하단 여백에 관에서 써 주는 판결문 또는 처결문을 말한다. 주로 관찰사나 순찰사에게 올린 의송議送에 내리는 판결문을 말하며, 수령에게 올린 민원서에 쓴 처분處分은 뎨김(題音)이라고 한다.
  43. 43)*김재로金在魯 : 권1 서간 2번 참조.
  44. 44)미천尾泉 : 한성부 서대문 밖에 위치한 서부西部 반송방盤松坊에는 초리 우물이 있었다. 이곳을 미정동尾井洞·미동尾洞 혹은 미천동尾泉洞이라고 불렀다. 현재의 미동渼洞이다.
  45. 45)여차廬次 : 상중喪中에 상주가 거처하는 처소이다. 상차喪次라고도 한다.
  46. 46)권조權厝 : 좋은 산소 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임시로 장사를 지냄.
  47. 47)차서次序를 맞추지 못합니다 : 오복五服의 상에 거상居喪하는 동안에는 서소書疏에 모두 ‘불차不次’라고 칭한 다. 불차라는 것은 마음이 애통스러워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함을 뜻한다.
  48. 48)고족高足 : 고족제자高足弟子의 준말로 학식과 품행이 우수한 제자를 말한다.
  49. 49)*서종옥徐宗玉(1688∼174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달성. 자는 온숙溫叔, 호는 인재訒齋 또는 학서鶴西. 1725년(영조 1)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제수받은 뒤 이조좌랑·경연검토관·대사성·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황해도관찰사 등을 거쳐 평안도관찰사와 예조·이조판서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50. 50)공복功服 : 상복喪服의 굵은 베로 지은 대공大功과 가는 베로 지은 소공小功의 총칭. 9개월 상과 5개월 상을 말한다.
  51. 51)*김희로 : 권1 서간 3번 참조.
  52. 52)*이천보李天輔(1698∼176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 자는 의숙宜叔, 호는 진암晉庵이다. 이조판서·병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재임 기간 동안 탕평책을 추진하는 데 앞장섰으며, 노론의 김재로金在魯와 조현명趙顯命의 추천으로 영상 자리에 올랐다. 담론을 잘하여 허식을 차리지 않고 남과 희소喜笑하기를 즐겼으며, 시와 문학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 『진암집』 8권 4책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53. 53)보장報狀 : 어떤 사실을 윗 관원에게 알려 바치는 공문.
  54. 54)징추徵推 : 세금이나 물품 따위를 내라고 요구함.
  55. 55)*김치만金致萬(1697~1753)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회일會一, 호는 고은당高隱堂. 1720년(경종 즉위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강릉참봉이 되었으며, 동몽교관童蒙敎官·시직侍直 등을 역임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그의 딸과 영조의 조카 낙천군 온洛天君縕과의 혼인을 반대하다가 파직되고 투옥되었다. 글씨로 「이도곡묘갈명李陶谷墓碣銘」을 남겼다.
  56. 56)침책侵責 : 조선 시대에 물품을 거두어들일 때 트집을 잡아 술이나 돈을 청하던 일.
  57. 57)큰 고래 : 원문의 ‘장경長鯨’은 큰 고래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큰 도적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왜적을 가리킨다.
  58. 58)서산의 귀감 : 서산 대사西山大師가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 1564년 간행하였고, 1579년 금화도인金華道人이 국문으로 번역하였는데, 현재까지 불가에서 불도 수행의 거울로 삼고 있다.
  59. 59)백 년에 … 빛나는데 :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 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당시 서원과 동격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당表忠祠堂’으로 불렀다.
  60. 60)*엄계장嚴季長 : 호조참의戶曹參議 엄경하嚴慶遐인 듯하다.
  1. 1) 원본에는 ‘0003_a’에 있음.
  2. 2) 원본에는 ‘曆書’이하 ‘送之’까지가 ‘0004_a’에 있음.
  3. 3) 원본에는 ‘0004_a’에 있음.
  4. 4) 원본에는 ‘來見’이하 ‘一首’까지가 ‘0009_b’의 상단에 있음.
  5. 5) 원본에는 ‘又適’이하 ‘餘’까지가 ‘0009_a’의 상단에 있음.
  6. 6) 원본에는 ‘不能’이하 ‘鄭羽良’까지가 ‘0009_a’에 있음.
  7. 7) 원본에는 ‘所惠’이하 ‘可感’까지가 ‘0012_a’에 있음.
  8. 8) 원본에는 ‘其無’이하 ‘倩手’까지가 ‘0015_b’ 상단에 있음.
  9. 9) 원본에는 ‘壬戌’이하 ‘病客’까지가 ‘0015_a’에 있음.
  10. 10) 원본에는 ‘癸流’이하 ‘答’까지가 ‘0019_a’에 있음.
  11. 11) 원본에는 ‘情管’이하 ‘重稷’까지가 ‘0020_b’의 상단에 있음.
  12. 12) 원본에는 ‘餘忙不具’가 ‘0021_b’의 상단에 있음.
  13. 13) 원본에는 ‘蓮池洞’이하 ‘吳彦冑’까지가 ‘0020_b’의 상단에 있음.
  14. 14) 마유경摩維經 :『유마경』의 오기로 보인다.
  15. 15) ‘엄儼’은 ‘엄嚴’과 같다. ‘가엄家嚴’, 즉 부친을 지칭한다.
  16. 16) 원본에는 ‘癸亥’이하 ‘吳武’까지가 ‘0023_a’에 있음.
  17. 17) 원본에는 ‘營屬’이하 ‘患耶’까지가 ‘0024_b’의 상단에 있음.
  18. 18) 원본에는 ‘扇子’이하 ‘筆墨’까지가 ‘0024_a’의 상단에 있음.
  19. 19) 원본에는 ‘各一。送似耳’가 ‘0024_a’에 있음.
  20. 20) 원본에는 ‘師’이하 ‘如何’까지가 ‘0026_b’의 상단에 있음.
  21. 21) 원본에는 ‘各’이하 ‘鄭判書’까지가 ‘0026_a’에 있음.
  22. 22) 상하의 봉인란에 “不易心”이라 새겨져 있다.
  23. 23) 원본에는 ‘甲子’이하 ‘徐宗玉’까지가 ‘0027_a’에 있음.
  24. 24) 원본에는 ‘詠’이하 ‘李天輔’까지가 ‘0029_b’의 상단에 있음.
  25. 25) 원본에는 ‘未可’이하 ‘一一’까지가 ‘0030_b’의 상단에 있음.
  26. 26) 원본에는 ‘甲子’이하 ‘倅’까지가 ‘0030_a’에 있음.
  27. 27) 원본에는 ‘尹參判’이 ‘0032_a’에 있음.
  28. 28) 원본에는 ‘也’이하 ‘可感’까지가 ‘0034_b’의 상단에 있음.
  29. 29) 원본에는 ‘多少’이하 ‘望淸軒’까지가 ‘0030_a’에 있음.
  30. 30) 이 시는『표충사제영表忠祠題詠』 권5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