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집성문헌

ABC_NC_02398_0001_T_001

0001_0001_b_01L
간독
[간독]

0001_0001_b_01L簡牘
[簡牘]

0001_0002_a_01L
붕 상인은 보십시오
동도(경주) 서간


사미沙彌가 떠난 뒤로 다시 보내온 서찰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요즘 선황禪況은 더욱 편안하신지요? 그리워하여 잊을 수가 없습니다.

0001_0002_a_01L
鵬上人 開見

0001_0002_a_02L東都書


0001_0002_a_03L

0001_0002_a_04L沙彌去後更未見
0001_0002_a_05L來信此時禪況益
0001_0002_a_06L毖否溯戀不能忘

0001_0002_b_01L이곳의 나는 질병과 우환으로 어수선하고 답답하여 가련함이 끝이 없습니다.
무환주無患珠1)를 다시 찾아 보내지 않는 일은 앞 서찰에서 부탁했는데 끝내 베풀어 주지 않으니, 어느 곳으로 베풀려고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꼭 구하고자 하는 것은 노스님의 자비스런 마음으로 또한 머리를 끄덕여 승낙했기 때문인데, 어떻게 그렇게 막연히 소식을 듣지 못합니까? 서글프고 우울함이 지극합니다. 심부름꾼을 보내니 아깝다 마시고 당일에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무진년(1748) 5월 14일 동경東京에서 씀.

0001_0002_b_01L此間病憂擾擾悶怜[憐] 不
0001_0002_b_02L無患珠更無覓
0001_0002_b_03L送事未知前書所托
0001_0002_b_04L終不可施而欲施於何
0001_0002_b_05L處耶吾之必欲得
0001_0002_b_06L以老禪慈悲之心
0001_0002_b_07L亦幾點頭矣何其
0001_0002_b_08L漠然不相聞也悵菀
0001_0002_b_09L之極走伻委及幸勿
0001_0002_b_10L惜吝卽日投送也萬萬1)
0001_0002_b_11L不多及

0001_0002_b_12L

0001_0002_b_13L戊辰五月十四 東京 書2)

0001_0003_a_01L
표충사 남 대사께 바로 전함

지난번의 답장은 아직껏 위안이 되고 있는데, 지금 도 닦는 재미가 어떠합니까? 드문드문 군君의 소식은 들었는데, 군도 연계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서찰에서 말한 것은 소홀함이 많음을 면치 못했으니 군도 반드시 의아하게 여겼을 테고 내 입장에 있었어도 겸연쩍은 면이 있습니다.
이곳의 나는 객지에서 지내는 상황이 작년과 같아서

0001_0003_a_01L
表忠祠 南大師 卽傳

0001_0003_a_02L

0001_0003_a_03L頃復迨慰卽問道味如何
0001_0003_a_04L聞君聲未知君係頃書
0001_0003_a_05L云云未免多忽君必致訝
0001_0003_a_06L而在我有歉此間客狀如昨

0001_0003_b_01L말할 것이 없습니다.
보내 주신 두 책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보내왔으니, 군의 정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송운 대사松雲大師2)의 충렬忠烈이 그대를 얻어서 더욱 밝아졌음을 보았으니, 깊이 가상히 여기고 감탄하였습니다.
모감주(木甘)는 과연 좋은 물품을 얻었습니까? 크고 작은 것 각각 한 건을 반드시 얻고자 하는데, 그대가 부응하기 어렵고 구한 것들도 값이 싸지는 않겠지요? 가히 우습습니다.
나머지는 이렇게만 써서 보냅니다. 우선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무진년(1748) 8월 20일 경주慶州 진영鎭營에서.
추신
다음 달 보름께 본부本府로 가려고 하는데 서로 만나볼 수 있겠는지요?

0001_0003_b_01L無可言者送來二冊無求
0001_0003_b_02L而至認君誠款觀此益見松
0001_0003_b_03L師之忠烈得君尤明深庸嘉
0001_0003_b_04L歎矣木甘果得好品耶大小
0001_0003_b_05L各一件必欲得之君或難副
0001_0003_b_06L而所求亦不廉耶可呵餘專此送書
0001_0003_b_07L姑不具式

0001_0003_b_08L

0001_0003_b_09L戊辰八月卄七 慶州 鎭營

0001_0003_b_10L來望間當往本府可以相見否3)

0001_0004_a_01L
붕 상인께 올립니다
동경 서장. 밀양 표충사 남붕


대사가 오래도록 서울로 오지(西來) 않았는데 가을바람이 문득 이르니, 그립고 그리워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서울 가셨다가 이미 산사의 정계淨界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한 번 뵙지도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이곳의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만, 다음 달 사이에 서울로 가려하고, 이어

0001_0004_a_01L
鵬上人奉問

0001_0004_a_02L東京狀 밀양 표츙 남붕


0001_0004_a_03L

0001_0004_a_04L飛錫久不西來
0001_0004_a_05L風焂已至矣戀戀不能
0001_0004_a_06L向來京行聞已
0001_0004_a_07L還棲淨界云恨不得
0001_0004_a_08L一面也此間姑遣而來月
0001_0004_a_09L間欲作京中仍欲解

0001_0004_b_01L벼슬을 그만두고자(解官) 하는데 상인도 오셔서 만나 보지 않으시렵니까? 여름에 보내 주신 무환주無患珠는 비록 좋은 품질이 아니었지만 근근이 숫자를 채워 중품中品을 만들어, 갓끈으로 달고 다니다가 이웃 고을에서 가지고 갔습니다.
이 뒤로 오직 새로 생산된 것을 찾아 얻기를 바랐는데, 시절이 이미 되었는데도 상인이 오지 않으니 부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득이 다시 서찰로 부탁하니, 상인께서 새로 생산된 것 중에서 반쯤은 덜 익고, 반쯤은 익은 것으로, 오색의 반점이 표면에 점점이 찍혀 있는 것을 몇 말(斗)만 널리 구해서 반드시 즉시 부쳐 주십시오. 그래서 세간에 드물게 있는 뛰어난 보물을 만들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달성 판관達城判官3)이 차고 있는 것보다 낫다면 절품絶品(매우 훌륭한 물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니, 아울러 모쪼록 서둘러 마음을 써서 찾아 보내 주십시오. 이를 위해 심부름꾼(專伻)을 보내니, 아울러 헤아려서 그것을 해 주십시오. 우선 많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물건을 모쪼록 오는 8월 10일 전까지 보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戊 자 들어가는 해(1748) 윤閏 7월 20일 동경東京에서 병든 나그네가.

0001_0004_b_01L上人其不來見耶
0001_0004_b_02L夏間寄惠之無患珠
0001_0004_b_03L則雖非佳品堇堇充數作爲
0001_0004_b_04L中品佩纓而今爲隣邑
0001_0004_b_05L之所取去此後惟望新
0001_0004_b_06L産之覓得而時節已屆
0001_0004_b_07L上人不來無以屬托故不得
0001_0004_b_08L又爲書托幸上人廣求
0001_0004_b_09L新産之半生半熟五色斑紋之
0001_0004_b_10L點點着面者數斗必爲趁時覓4)
0001_0004_b_11L俾作世間稀有之絶寶
0001_0004_b_12L如何若勝於達判所佩則可
0001_0004_b_13L爲絶品並須早早用意覓5)
0001_0004_b_14L送也爲此專伻並思量而
0001_0004_b_15L爲之姑不多及
0001_0004_b_16L此物須趁八月旬前送來可也

0001_0004_b_17L

0001_0004_b_18L戊閏七月卄日 東京 病客6)

0001_0005_a_01L
붕 화상께 보내는 답장

당신의 서찰을 받아 보고 위안이 되고 후련함이 깊었으나(慰瀉), 병을 앓고 있는 것(所苦)이 참으로 염려됩니다.
이곳의 나는 독감을 거듭 겪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낫지 않아 참으로 괴롭고 참으로 괴롭습니다.
정 석유鄭碩儒의 일은

0001_0005_a_01L
鵬和尙 答寄

0001_0005_a_02L

0001_0005_a_03L承領
0001_0005_a_04L惠狀慰瀉則深
0001_0005_a_05L所苦誠可慮也此中
0001_0005_a_06L重經毒感尙未穌完
0001_0005_a_07L良苦良苦鄭碩儒事

0001_0005_b_01L과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동경東京이 이번에 행차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왔으니, 비록 그것을 베풀어 주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병중이라 남을 불러 적느라 두루 다 말하지는 못합니다.
보내 주신 황향黃香(송진)은 정미情味가 너무 좋습니다.

무진년(1748) 9월 20일 달성의 병든 군수가.
대구 판관大丘判官 조재연趙載淵

0001_0005_b_01L果是非難而東京此行
0001_0005_b_02L解官決歸雖欲施之
0001_0005_b_03L亦無奈何病中呼倩
0001_0005_b_04L不能周悉
0001_0005_b_05L惠付黃香情味可尙

0001_0005_b_06L

0001_0005_b_07L戊辰菊月念日 達城 病倅

0001_0005_b_08L大丘判官 趙載淵

0001_0006_a_01L
붕 상인께 올림
태촌 산인의 답장  (완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회포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얼마 전 스님(闍利) 편으로 책과 선물을 받아 지금까지 위안이 되고 고마운데, 지금 또 서찰을 받고 산중에서 자중自重하시며 지내시는 정취가 좋음을 알았으니 더욱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전과 같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나머지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서찰 속에서 머지않아 찾아오시겠다는 말씀에 미리 기대됩니다.
많은 사연은 손님들이 찾아와 어수선하고 바빠서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무진년(1748) 11월 20일 안安에서 붙어사는 산인散人의 답장.
추신
사동댁社洞宅의 마혜麻鞋(미투리) 세 켤레는 잘 받았으니, 매우 고맙습니다만 답장答狀 따라 물건을 보냈지만 약소할까 도리어 불안합니다.

0001_0006_a_01L
鵬上人靜所

0001_0006_a_02L泰村散人答書  (完)


0001_0006_a_03L

0001_0006_a_04L積秊阻面之懷不須言
0001_0006_a_05L向者闍利之便有書兼有物
0001_0006_a_06L迨用慰感今又得書細認
0001_0006_a_07L山味自重爲慰千萬此間姑
0001_0006_a_08L依前日樣子餘何可言書中
0001_0006_a_09L匪久來訪之示豫爲欣企
0001_0006_a_10L多少客撓便忙不具式

0001_0006_a_11L

0001_0006_a_12L戊辰 閏月 卄日 安寓散人 答書

0001_0006_a_13L

0001_0006_a_14L社洞宅
0001_0006_a_15L麻鞋三部
0001_0006_a_16L各受多感而隨復
0001_0006_a_17L寄物還用不安7)

0001_0006_b_01L
붕 대사께
수동에서 부치는 서신


남쪽에서 온 스님 한 분이 서찰을 전해 주어, 그동안 산에서 지내시는 상황이 청한淸閑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고 기쁘며 위안이 되고 기뻤습니다. 다만 설송당雪松堂4)의 노병老病이 더욱 심해졌다고 하니 염려됩니다.
이곳의 나는 문득 상제喪制5)에 관련되어 다시는 평상의 사람이 미칠 수 없는 애통함이 되 어, 더욱 다시 끝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보내 주신 종이는 많이 감사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인편이 떠난다는 말을 듣고 대강 이렇게만 쓰고 이만 줄입니다.

무진년(1748) 8월 28일 수곡壽谷에서.

0001_0006_b_01L
鵬大師 經案

0001_0006_b_02L壽洞書


0001_0006_b_03L

0001_0006_b_04L南來一衲傳致
0001_0006_b_05L手書以悉年來
0001_0006_b_06L山況淸閑慰喜慰喜
0001_0006_b_07L第雪松堂老病轉
0001_0006_b_08L甚云慮念此間奄關
0001_0006_b_09L喪制復作恒人靡逮
0001_0006_b_10L之慟益復罔極奈何
0001_0006_b_11L惠來紙束多感多感
0001_0006_b_12L聞便去草此不具

0001_0006_b_13L

0001_0006_b_14L戊辰八月卄八日 壽谷

0001_0007_a_01L
붕 상인께 답장 보냅니다
              (함緘)


스님이 한번 돌아간 뒤로 소식도 막혀 지금 이렇게 서글픈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뜻밖에도 멀리서 친구가 와서 대사의 서찰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름과 가을 이래로 산중에서의 모든 것들이 편안하고 마땅함을 잘 알았으니, 진실로 멀리서 그리워하던 정에 위안이 됩니다.

0001_0007_a_01L
答寄鵬上人

0001_0007_a_02L             (緘)


0001_0007_a_03L筇錫一還之後音信
0001_0007_a_04L亦阻方此悵念意外
0001_0007_a_05L遠朋來傳師札備審
0001_0007_a_06L夏秋來山中凡
0001_0007_a_07L百安宜良慰遠情

0001_0007_b_01L이곳의 나는 우선 작년의 상황과 같습니다. 전각 기문의 탁본6)은 삼가 받았습니다.
글자가 때때로 바뀌고 잘못된 곳이 있는데, 이것은 글자를 잘라서 새겨 넣을 때 이렇게 착란된 듯하지만, 틀린 것은 단지 한두 자이니 깊이 병통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曺 생원을 아직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비록 와서 보겠다 해도 이곳의 형세가 실로 남과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미 그랬으니 조 생원에게 있어서도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또 자기 친족 중에 조 참판과 같은 이가 있는데도 인재 양성을 즐거움으로 삼는 처지(樂育7)之地)에 이 사람을 놔 두고 멀리 제게서 구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간곡한 부탁을 저버렸으니 이것이 겸연쩍을 따름입니다.
우선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무진년(1748) 9월 6일 정곡 산인貞谷散人.
진사進士 최홍간崔弘簡

0001_0007_b_01L此間姑如昨狀耳
0001_0007_b_02L殿記榻本謹領
0001_0007_b_03L時有換誤處
0001_0007_b_04L似是割字入刻
0001_0007_b_05L致此錯亂而所誤
0001_0007_b_06L只一二字不足爲
0001_0007_b_07L深病也曺生員
0001_0007_b_08L姑未見訪而雖來
0001_0007_b_09L此處形勢
0001_0007_b_10L難接人在我旣
0001_0007_b_11L然而於曺君亦無所益且有自家
0001_0007_b_12L親族如曺參判其樂育之地8)
0001_0007_b_13L可舍此而遠求
0001_0007_b_14L於我但孤勤托9)
0001_0007_b_15L是爲歉然耳
0001_0007_b_16L不一一

0001_0007_b_17L

0001_0007_b_18L戊辰九月六日 貞谷散人10)

0001_0007_b_19L進士 崔弘簡

0001_0008_a_01L
붕 상인께
웅천의 답장  (생봉省封)


밀성密城(밀양)에서 만났다 헤어지고 나서 서로가 바빠 지금까지 서글펐는데, 뜻밖에도 서찰을 받아 보고 참선하며 지내는 안부가 맑고 좋으심을 알았으니, 감사함이 이미 많은데다 위안되는 마음도

0001_0008_a_01L
鵬上人靜閑 回傳

0001_0008_a_02L熊川答書     (省封)


0001_0008_a_03L

0001_0008_a_04L密城逢別俱忙迨悵
0001_0008_a_05L外得見書憑悉
0001_0008_a_06L禪況淸勝感旣多矣

0001_0008_b_01L갑절이나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한결같이 여전한데, 힘들고 바쁨이 갈수록 견디기 어려우니 답답하고 한탄스럽습니다. 보내 주신 『분충록奮忠錄』8)을 보려고 할 즈음에 이르러, 이것이 예사로운 친구들 사이에 어찌 무리 지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이른 봄에 오신다는 소식에 까치를 기다리듯 바라고 바랍니다(鵲企). 이른바 관청 부엌을 씻은 듯하다는 말처럼 함께 보낼 물건이 없어 한스럽고 한스럽습니다.
나머지는 마침 관아에 앉아 어수선함이 심하여 많은 말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무진년(1748) 10월 11일 웅천현熊川縣9)에서. 이름은 생략함.
웅천 현감熊川縣監 이광연李光然
추신
감곽甘霍(미역) 네 속을 삼가 보냅니다.

0001_0008_b_01L又倍也此間一味如昔而勞
0001_0008_b_02L碌去益難堪悶歎悶歎
0001_0008_b_03L送奮忠錄及於欲見之
0001_0008_b_04L此豈尋常知舊間所
0001_0008_b_05L可群右耶春初來顧之
0001_0008_b_06L鵲企鵲企所謂官廚如
0001_0008_b_07L未得伴物恨恨餘適
0001_0008_b_08L坐衙撓甚不多及

0001_0008_b_09L

0001_0008_b_10L戊辰十月十一日 熊川縣 欠11)

0001_0008_b_11L熊川縣監 李光然

0001_0008_b_12L

0001_0008_b_13L甘霍四束汗送

0001_0009_a_01L
붕 상인께 드리는 답장
서산댁


산인山人의 소식이 잠시 막히어 그립고도 우울함이 더욱 간절하였는데, 지금 상좌가 와서 서찰을 받아 보고, 가을 기운이 서늘함에 무사히 편안히 지냄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고 기쁜 마음을 형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 달을 습한 곳에서 지냈는데, 돌아온 뒤로 습병濕病이

0001_0009_a_01L
答鵬上人書

0001_0009_a_02L        瑞山宅


0001_0009_a_03L

0001_0009_a_04L山人消息乍阻戀菀
0001_0009_a_05L益切卽者相佐來得見
0001_0009_a_06L知秋涼無事安過
0001_0009_a_07L慰喜不可狀吾閱月
0001_0009_a_08L處濕之地而歸後濕病

0001_0009_b_01L크게 일어나 허리 아래가 많이 부어올라 바야흐로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으니 고민되고 탄식스러우며 고민되고 탄식스럽습니다.
감결甘結(하급 관아에 보내는 공문)을 보내 죄를 다스리겠다는 사또의 기별은 나도 모르게 시 원하고 상쾌해집니다. 이 뒤로 또한 이와 같은 나쁜 행위가 있으면 각별히 징계하여 다스려 주는 것이 어떠하고 어떨는지요?
당신이 달성達城으로 떠나시기 전에 서로 만나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먼저 떠났다고 하니 한탄스러움을 어찌 말로 하겠습니까?
돌아온 뒤에 당일에 와서 방문함이 매우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매우 바빠 일일이 말씀 드리지 못합니다.

무진년(1748) 윤달 20일 안安에서 붙어사는 산인散人이 답하는 서간.

0001_0009_b_01L大發腰下大浮方在
0001_0009_b_02L苦劇中悶歎悶歎
0001_0009_b_03L甘治罪之奇不覺爽快
0001_0009_b_04L此後亦有如此等惡行
0001_0009_b_05L別懲治如何如何汝達城
0001_0009_b_06L未去之前相逢有相議事
0001_0009_b_07L未得逢見而先去云
0001_0009_b_08L恨歎何喩歸後卽日來
0001_0009_b_09L爲可爲可餘忙甚不能一一

0001_0009_b_10L

0001_0009_b_11L戊辰 閏月 卄日 安寓散人 答書12)

0001_0010_a_01L
붕 사께 드립니다

그리워하던 즈음에 서찰 한 장을 받고, 정이 담긴 음식까지 받았으니 많이 고맙습니다. 다만 질병(所愼)10)으로 염려됨이 적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이곳의 나는 날마다 골치가 아프고 어수선한 것을 일삼고 있으니 가련하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보내 준 체문帖文11)은 미덥고 충실함을 진실로 축하드립니다.
서울로 돌아갈 기일이 가까우니, 어떡하면 악수하고 이별할 수 있을는지요? 서찰을 쓰려고 종이를 대하니 서글플 뿐입니다.
우선 서찰을 이만 줄이고 답장을 올립니다.

무진년(1748) 9월(菊月) 20일 익진益鎭.
진사進士 조趙

0001_0010_a_01L
鵬丈室 玄榻回傳

0001_0010_a_02L戀際
0001_0010_a_03L一翰多荷
0001_0010_a_04L情味第審
0001_0010_a_05L所愼爲慮不淺此間
0001_0010_a_06L日事惱擾可憐
0001_0010_a_07L且苦
0001_0010_a_08L寄示帖文良賀
0001_0010_a_09L信實西歸期邇
0001_0010_a_10L何以則握別臨紙
0001_0010_a_11L用悵姑不宣謝狀
0001_0010_a_12L

0001_0010_a_13L戊辰菊月念 益鎭

0001_0010_b_01L
붕 상인께
의동醫洞 답장


문안 서찰을 막 받아 보고 요즘 지내시는 상황이 좋다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위안이 되겠습니까?
보내 주신 네 종의 맛있는 음식은 두터운 정으로 잘 받았습니다. 다만 어찌 산속의 승려가 물건까지 보내며 문안(饋問)하십니까? 심부름 온 까까머리 스님이 완전하게 돌아가면 나의 뜻을 잘 알 것입니다.
이곳의 나는 병이 오래 낫지 않아(彌留) 매우 고민스럽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기사년(1749) 2월 보름 복인服人.
좌의정左議政 김金

0001_0010_b_01L進士 趙

0001_0010_b_02L

0001_0010_b_03L
南鵬處 回傳

0001_0010_b_04L醫洞 答儀


0001_0010_b_05L

0001_0010_b_06L卽領問書以悉
0001_0010_b_07L履況佳迪何慰
0001_0010_b_08L寄貺四種佳味領悉
0001_0010_b_09L厚意第山僧何須饋問
0001_0010_b_10L爲使來禿還完
0001_0010_b_11L悉此意此間病事彌留
0001_0010_b_12L可悶不具

0001_0010_b_13L

0001_0010_b_14L左議政 金

0001_0010_b_15L己巳二月望 服人

0001_0011_a_01L
붕 대사에게 답함


0001_0011_a_01L
鵬上人 奉謝13)


0001_0011_b_01L지혜롭게 돌봐 주시는 것이 오랫동안 막혀 당신에게 흘러가는 생각이 머물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서찰을 받고 멀리서 새해에 스님께서 탈이 없고 선정禪定과 대오大悟가 날로 새로워짐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담뱃대(煙竹)와 약찬藥饌의 정겨운 음식은 매우 감사하며, 붓과 먹을 사례로 보냅니다.
어느덧 내가 나이가 들어 상자牀笫(병석)12)에서 허약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기사년(1749) 1월 16일 공곡公谷에서 병든 사람.
공조참판工曹參判 김희로金希魯13)

0001_0011_b_01L久阻慧眄不住流想
0001_0011_b_02L接淸札遠審新年錫
0001_0011_b_03L衲無恙定悟日新忻慰
0001_0011_b_04L無極煙竹藥饌情味
0001_0011_b_05L可感筆墨爲謝俺長
0001_0011_b_06L年牀笫尫劣無可言
0001_0011_b_07L不宣

0001_0011_b_08L

0001_0011_b_09L己巳正月十六 公谷 病生

0001_0011_b_10L工曹參判 金希魯

0001_0012_a_01L
붕 상인에게 보내는 답장
            (생함省緘)


방금 문안 서찰을 받고서 새해에 도를 닦으며 지내는 상황이 맑고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무엇이 이처럼 위안이 되겠습니까?
이곳의 나는 어수선하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0001_0012_a_01L
鵬上人 謝狀

0001_0012_a_02L             (省緘)


0001_0012_a_03L

0001_0012_a_04L卽承
0001_0012_a_05L問字以審新元
0001_0012_a_06L道況淸毖何慰如
0001_0012_a_07L此間憒憒無可言

0001_0012_b_01L진귀한 반찬 여러 가지는 산인山人의 두터운 정에 많이 감사합니다. 그러나 물건 종류의 숫자만 많을 뿐이고, 이러한 소찬素饌들은 하나하나가 긴요하지는 않습니다. 산속의 집에서는 긴절하게 쓸 수 있을 것이므로 한 첩의 곶감 및 표고, 송이버섯 세 가지 이외에는 모두 돌려보냅니다. 우선 이만 줄입니다.

기사년(1749) 1월 16일 복인服人.
병조판서兵曹判書 김상로金尙魯14)

0001_0012_b_01L珍饌諸種多謝
0001_0012_b_02L山人厚意而但物種
0001_0012_b_03L數多此等素饌之
0001_0012_b_04L箇箇之不緊
0001_0012_b_05L山家則可以切用故一貼
0001_0012_b_06L乾柿及蔈古松茸
0001_0012_b_07L三種外並還送耳
0001_0012_b_08L姑不具

0001_0012_b_09L

0001_0012_b_10L己巳正月旣望 服人

0001_0012_b_11L兵曹判書 金尙魯

0001_0013_a_01L
붕 대사께 드리는 답장

해가 바뀌니 더욱 그리웠는데, 서찰이 와서 참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새해에 스님의 생활이 맑고도 평온하심을 알았으니 더욱 기쁩니다.
이곳의 나는 부모님의 병환이 겨울을 겪고 나서 더 심해져서 한결같이 근심하며 애태우고 있습니다. 몸에 생긴 병과 슬하의 근심거리가 또 종종 …

0001_0013_a_01L
答鵬師

0001_0013_a_02L

0001_0013_a_03L歲換增想書來良慰
0001_0013_a_04L矧諦新元鉢錫淸穩
0001_0013_a_05L尤可喜也此間親癠
0001_0013_a_06L冬沈淹一味憂煎
0001_0013_a_07L病與膝下憂患亦種種
0001_0013_a_08L□…□

0001_0013_b_01L큰 역사役事가 시작되었다고 들었지만,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까닭에 만나볼 수가 없으니 매우 슬프고 슬픕니다.
보내 주신 무환주無患珠는 보낸 대로 잘 받았으나, 품질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가을 동안에 반드시 품질이 아주 좋은 물건 몇 건을 힘써 구해 보내 주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지난번에 이전 수령15)이 걸고 있는 갓끈을 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대가 올린 것입니다. 이전 수령에게 충성을 다한 뜻이니, 그것을 오늘에 옮겨 베풀어 줄 수는 없겠습니까?
여기에서 그대가 옛것을 아끼는 것의 얕고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우 우습고 우습습니다. 어수선함이 심하여 남에게 대신 쓰게 합니다. 대신 쓰느라 갖추지 못합니다.

대구 판관大丘判官 송순명宋純明

0001_0013_b_01L聞始大役久未還來
0001_0013_b_02L不得逢見可悵可悵
0001_0013_b_03L送來無患珠依受
0001_0013_b_04L品甚不好秋間必須力求
0001_0013_b_05L極品數件以惠爲望爲望
0001_0013_b_06L見舊官所懸纓子此乃
0001_0013_b_07L君之所納者盡忠於舊
0001_0013_b_08L官之意其不可移施於
0001_0013_b_09L今日耶於此可知君舊
0001_0013_b_10L惜之淺深矣好笑好笑擾甚
0001_0013_b_11L倩艸不具14)


0001_0013_b_12L大丘判官 宋純明

0001_0014_a_01L
붕 대사께 올립니다
성현省峴의 답장


응주헌凝州軒(응주 : 밀양)에서 처음 만났으나, 대사의 이름을 들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잠깐 만났다가 바로 작별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에 상좌를 보내

0001_0014_a_01L
鵬大師 經案 回傳

0001_0014_a_02L省峴 答簡


0001_0014_a_03L

0001_0014_a_04L凝州軒上始識面然聞
0001_0014_a_05L師名則久矣乍接卽別
0001_0014_a_06L然于中不自意遣上佐

0001_0014_b_01L문안 서찰을 주고, 겸하여 두 권의 책까지 주었으니, 대사의 지극한 뜻이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이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송운松雲 대사의 성대한 업적이 붕 대사에 힘입어 더욱 세상에 드러났던 것임에랴? 나는 항상 탄식하고 한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이 세상에 행해진 것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우선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을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지금 다행히도 손에 넣었으니 대사의 높은 의기에 감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사가 선사先師(송운 대사)를 존경하고 추모함이 오래되어도 더욱 돈독함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침 병이 들어 다른 이를 불러 서찰을 씁니다. 쓰노라니 빠뜨린 게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다시 만나 이 늦게 만난 회포를 풀 수 있을는지요?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기사년(1749) 4월 초3일 병든 사람.

0001_0014_b_01L委書以問兼致二冊
0001_0014_b_02L師至意何以獲此
0001_0014_b_03L松雲盛蹟賴師而益顯于
0001_0014_b_04L世者生常嗟歎而此錄之
0001_0014_b_05L行于世者雖久以姑未得見
0001_0014_b_06L爲恨今幸入手不但感
0001_0014_b_07L師之高義亦可推
0001_0014_b_08L師之尊慕
0001_0014_b_09L先師久而彌篤也適病呼
0001_0014_b_10L漏萬何以則速得更面
0001_0014_b_11L此見晩之懷也不具式15)

0001_0014_b_12L

0001_0014_b_13L己巳 四月 初三日 病生16)

0001_0015_a_01L
붕 대사께 드리는 서신
              (완完)


지난날 만나 뵙고 지금까지 바쁜 것이 한스러운데, 스님 편으로

0001_0015_a_01L
鵬大師 經案 回傳

0001_0015_a_02L         (完)


0001_0015_a_03L

0001_0015_a_04L向面迨恨艸艸上佐便見

0001_0015_b_01L서찰을 받아 보니 완연히 다시 마주 대한 듯합니다. 게다가 산속에서의 한가한 정황이 아름답고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지극히 위안이 됩니다.
이곳의 나는 어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초2일 사이에 밀주密州(밀양) 행차가 있을 것이니, 서로 방문할 수 있을까요? 이로부터 자주 서로 만나는 방법이 된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소지小紙(별지)의 일은 마땅히 유념할 뿐입니다.
오미환五味丸은 정을 담은 음식이니 가히 고마울 뿐만 아니라, 더위를 맞아 위장의 기운 이 심히 나빠졌는데 고량膏粱(좋은 음식)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에 힘입어 진정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만들기가 어렵더라도 반드시 아무쪼록 계속해서 보내 주십시오. 정말 그렇다면 약로藥爐16)와 금단金丹17)은 있는지 없는지 아득한 사이에서 구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습습니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합니다.

기사년(1749) 4월 그믐 저녁에 병든 사람.

0001_0015_b_01L宛若更對且審山裏
0001_0015_b_02L閑況佳勝極可慰也此中
0001_0015_b_03L依昨而初二間作密州之行
0001_0015_b_04L可以相訪否從此爲頻頻相面
0001_0015_b_05L之道可喜小紙事當留念耳
0001_0015_b_06L五味丸情味不唯可感
0001_0015_b_07L暑胃氣甚惡非膏粱可醫
0001_0015_b_08L此而鎭定良幸如難製得
0001_0015_b_09L必須繼惠也果然則藥爐
0001_0015_b_10L金丹不欲求之於有無渺茫
0001_0015_b_11L之間也好笑餘不悉17)

0001_0015_b_12L

0001_0015_b_13L己巳四月晦日夕 病生18)

0001_0016_a_01L
표충사 붕 대사께

지난번 방문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한데, 곧 산중 생활은 평안하신지요? 염려되는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어제와 같은데, 진영鎭營 사택에 화재가 일어나(回祿) 다시 짓는 데 관심과 염 려가 되니 고민스럽고 답답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특별한 품질의 무환자無患子를 구해 보내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으니

0001_0016_a_01L
表忠祠 鵬大師 卽傳

0001_0016_a_02L

0001_0016_a_03L頃訪尙依卽問山味平安
0001_0016_a_04L爲念不已此間如昨
0001_0016_a_05L鎭舍回祿重建關念
0001_0016_a_06L愁悶可言頃有別品無
0001_0016_a_07L患覓送之約而尙無動

0001_0016_b_01L어찌된 까닭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니, 반드시 다수를 구해 보내 주십시오.
바빠서 이만 줄입니다.

기사년(1749) 5월 초2일 경주 진영에서.

0001_0016_b_01L未知何故耶
0001_0016_b_02L玆以委人必爲多數覓
0001_0016_b_03L送焉忙姑不宣

0001_0016_b_04L

0001_0016_b_05L己巳 午月 初二日 慶鎭

0001_0017_a_01L
서찰을 보고 잘 계신 것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나도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무환영無患纓은 대구 판관18)에게 빼앗겼는데 끝내 찾아 보내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지금 두 비구가 천 리 먼 길을 와서 서로 만나니 매우 기쁘지만, 감영과 병영은 모두 서찰 쓰기가 어려워, 여기에서 만들어 준 문서를 첨부하여 주고(成給) 관계서류를 붙여(粘連) 소장을 올리니 … 

0001_0017_a_01L
19)
0001_0017_a_02L見書知好在可慰此亦
0001_0017_a_03L無事度遣矣無患纓
0001_0017_a_04L得見奪於大丘判官而
0001_0017_a_05L終不覓送者何也今此
0001_0017_a_06L二比丘千里遠來相見
0001_0017_a_07L可喜而監兵營俱難作
0001_0017_a_08L以此所成給文字粘連
0001_0017_a_09L而呈訴□…□

0001_0017_b_01L이것으로써 서로 논의해서 할 것입니다.
붓 두 자루를 보냅니다. 보내 주신 종이 묶음은 그대로 잘 받았으니 많은 정에 감사드립니다.

기사년(1749) 1월 15일 무수無愁 주인主人.
좌부승지左副承旨 유최기兪最基19)

0001_0017_b_01L以此相議爲之
0001_0017_b_02L筆二枝
0001_0017_b_03L送之所送
0001_0017_b_04L紙束依受多
0001_0017_b_05L

0001_0017_b_06L

0001_0017_b_07L己巳 正月 卄日

0001_0017_b_08L無愁主人

0001_0017_b_09L左副承旨 兪最基

0001_0018_a_01L
붕 상인은 보십시오

스님이 와서 대사의 서찰(手字)을 전해 주어서, 요즘 대사께서 아무 일없는 상황을 잘 알았으니 매우 기쁩니다.
매헌梅軒 가운데에서 좋은 밤에 유쾌하게 이야기했던 것을 회상해 보면서 일찍이 서운한 마음을 흘려보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와

0001_0018_a_01L
鵬上人 開見

0001_0018_a_02L

0001_0018_a_03L和尙來傳手字備知
0001_0018_a_04L師無事狀可喜回思
0001_0018_a_05L梅軒中良夜劇談未嘗不
0001_0018_a_06L流悵也此間罷官歸來

0001_0018_b_01L오히려 전과 같은 상황이니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언제 마땅히 서로 방문할 수 있을까요? 서찰을 마주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섭섭하게 합니다.
보내 주신 산의 음식은 정으로 받았으니 많이 감사합니다. 서책은 간행을 마치면 모쪼록 바로 부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일이 갖추어 말하지 못합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6월 16일 전동20) 서실磚洞書室
이조 참의吏曹參議 신만申晩21)

0001_0018_b_01L猶如前狀無足言者
0001_0018_b_02L何當相訪臨書令人依
0001_0018_b_03L惠來山味領情多謝
0001_0018_b_04L冊子刊訖須卽寄來
0001_0018_b_05L爲妙不一

0001_0018_b_06L

0001_0018_b_07L己六月旣望
0001_0018_b_08L磚洞書室

0001_0018_b_09L吏曹參議 申晩

0001_0019_a_01L
붕 대사께 부친 서찰  (완完)
허 낭청 서간


고개를 넘으면 곧바로 대사를 만나서 지난겨울에 다하지 못한 회포를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본부本府에 이르러 즉시 대사에 대해 안부를 물었으나, 순영巡營으로 가느라 눈길을 얻지 못했습니다.

0001_0019_a_01L
寄 鵬師禪案   (完)

0001_0019_a_02L許郞廳 書


0001_0019_a_03L

0001_0019_a_04L踰嶺也意以爲卽見
0001_0019_a_05L以盡前冬未盡
0001_0019_a_06L之懷到本府卽問訊
0001_0019_a_07L迬巡營不得

0001_0019_b_01L총섭總攝이 대사를 대신해서 시첩을 가지고 와서 보고, 무릎을 부딪치며 온화하게 이야기를 했으니, 대사의 맑은 풍모에 충분히 해당되어, 진실로 위안이 되고 흐뭇했습니다.
다만 대사께서 경영하는 것이 그대로 힘이 미약해서 장차 중간에 그만둘 것 같아서 그것이 염려됩니다.
시첩은 뒤에 마땅히 서울로 올려 보내야 할 듯하니, 거의 다시 만나서 무한한 회포를 펼 수 있겠습니까?
나머지는 마침 적간摘奸22)하는 곳에 가니 시끄러움이 심합니다.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7월 초6일 허 낭청許郎廳.
비변랑備邊郞허좌許佐

0001_0019_b_01L捴攝替師而携
0001_0019_b_02L詩帖而來見促膝
0001_0019_b_03L穩話足當
0001_0019_b_04L師淸儀良庸慰沃
0001_0019_b_05L第師之所經營
0001_0019_b_06L力綿似將中掇
0001_0019_b_07L之慮念詩帖則當
0001_0019_b_08L似當上洛庶可
0001_0019_b_09L重逢以攄無限懷抱
0001_0019_b_10L餘去摘奸
0001_0019_b_11L擾深不備式20)

0001_0019_b_12L

0001_0019_b_13L己七月初六 許郞廳21)

0001_0019_b_14L備邊郞 許佐

0001_0020_a_01L
붕 대사는 열어 보십시오
달성에서 보낸 서간    (봉封)


요사이 계속 잘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오래도록 서로 보지 못해 매우 서글픕니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 지내고 있는데, 가을에 들어 힘들고 바쁜 것(勞碌)이 배로 심해지니 매우 고민됩니다.
전에 언급했던

0001_0020_a_01L
鵬師 開見

0001_0020_a_02L達城所出     (封)


0001_0020_a_03L

0001_0020_a_04L未知近日連得好過
0001_0020_a_05L久未相見
0001_0020_a_06L吾依遣而入秋勞
0001_0020_a_07L碌倍甚可悶可悶前及

0001_0020_b_01L무환주無患珠는 이미 가을을 기다려 찾아서 보내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이렇게 매우 기다리고 있는데, 장차 과연 널리 구해서 좋은 품질을 얻어 낼 방도가 있습니까? 만약 이것이 보통 품질이라면 처음부터 그것을 얻고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드시 알갱이는 작고 둥글며, 색깔은 자줏빛이면서 누런색이고, 무늬가 서로 섞여 있는 것을 힘을 다해 찾아 구해 주기를 지극히 바라고 지극히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이에 또 언급합니다.
나머지는 우선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9월 16일 달성達城 판관判官23)

0001_0020_b_01L無患珠旣有待秋覓
0001_0020_b_02L送之約矣方此苦待
0001_0020_b_03L果廣求而有得出好
0001_0020_b_04L品之道耶若是
0001_0020_b_05L例品則初不欲得之
0001_0020_b_06L必以體小而圓色紫
0001_0020_b_07L而黃紋相雜者渴[竭]
0001_0020_b_08L力覓求之極企
0001_0020_b_09L極企卽今正當其時
0001_0020_b_10L玆又提及之
0001_0020_b_11L餘姑不多及22)

0001_0020_b_12L

0001_0020_b_13L己九月十六日 達判23)

0001_0021_a_01L
붕 대사께 드립니다

그리워하던 중에 손수 쓴 서찰이 문득 책상으로 떨어졌습니다. 바쁜 손길로 뜯어보니 나도 모르게 속이 후련했습니다. 하물며 요사이

0001_0021_a_01L
鵬大師 回傳

0001_0021_a_02L

0001_0021_a_03L戀頭
0001_0021_a_04L手札忽落床頭
0001_0021_a_05L忙手披玩不覺
0001_0021_a_06L欣瀉矧審伊

0001_0021_b_01L한가히 지내는 상황이 맑고 좋음을 알았음에랴.
이번에 돌아갈 기일은 이달 그믐께 있을 것 같은데, 이 뒤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약이 없으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보내온 무환자無患子는 그대로 잘 받았으나 그 품질이 하나도 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되돌려 보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므로 그런 까닭에 우선 놓아두었습니다.
우선 이렇게만 씁니다.

기사년(1749) 9월 초7일 한양으로 돌아가는 나그네.
대구 영장大丘營將 신사엄申思儼

0001_0021_b_01L
0001_0021_b_02L閑況淸勝者乎
0001_0021_b_03L此歸期似在今
0001_0021_b_04L晦間從此穩
0001_0021_b_05L討無期可歎
0001_0021_b_06L送來無患子
0001_0021_b_07L而其品無一
0001_0021_b_08L可用還送非禮
0001_0021_b_09L故姑置之耳
0001_0021_b_10L姑此

0001_0021_b_11L

0001_0021_b_12L己巳九月初七 漢陽歸客24)

0001_0021_b_13L大丘營將 申思儼

0001_0022_a_01L
붕 상인께 답하는 서간

막 서찰을 보고 나니, 지난날 잠깐 본 나머지 회포에 자못 위안이 되었습니다. 서찰 끝에 한 말씀은 마땅히 영천永川 군수를 만나 언급하겠습니다.
무환주無患珠는 묘한 이치를 알게 해 주는 것인데, 취하여 보니 거의 반이 쓸 수 없고, 게다가 품질까지

0001_0022_a_01L
鵬師 答狀

0001_0022_a_02L

0001_0022_a_03L卽見書頗慰頃日暫
0001_0022_a_04L見之餘懷也書末所
0001_0022_a_05L示之語當逢永川倅
0001_0022_a_06L言及之耳無患
0001_0022_a_07L珠使知妙理者
0001_0022_a_08L之則太半不用且品

0001_0022_b_01L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에는 ■■, 이웃 고을의 태수太守들이 많이 모였는데, 현풍玄風 수령에게 빼앗겨 버려 나는 매달 물건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최고 품질의 물건을 반드시 구하고자 하는데, 단지 응당 보통 품질의 물건을 구하여 책임만 때우고 정성을 다해 요구에 부응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니, 참으로 매우 개탄스럽고 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오직 대사의 성의가 어떠한지에 달려 있으니, 내가 어찌 억지로 내게 마음을 다하도록 하겠습니까? 나머지는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10월 19일 달성 판관(達判).
대구 판관大丘判官 송순명宋純明

0001_0022_b_01L甚不好頃日習■■
0001_0022_b_02L隣邑太守多爲
0001_0022_b_03L聚會爲玄風倅
0001_0022_b_04L所奪去吾無所懸
0001_0022_b_05L之件奈何極品之
0001_0022_b_06L必欲得之而只以
0001_0022_b_07L應求例品塞責不思
0001_0022_b_08L盡誠覓副之道良可
0001_0022_b_09L慨歎慨歎然惟在師
0001_0022_b_10L誠意之如何吾何可
0001_0022_b_11L强使盡心於我耶
0001_0022_b_12L餘不多及25)

0001_0022_b_13L

0001_0022_b_14L己十月十九日 達判26)

0001_0022_b_15L大丘判官 宋純明

0001_0023_a_01L
붕 대사의 경안經案 드리는 서간
                 (봉封)


타향에서 헤어진 후 소식이 갑자기 막혀

0001_0023_a_01L
鵬大師 經案 回傳   (封)

0001_0023_a_02L

0001_0023_a_03L他鄕相別後消息頓阻

0001_0023_b_01L멀리 구름 덮인 산을 바라보며 다만 스스로 슬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이 담긴 서찰이 문득 적막한 물가에 있는 외로운 관사館舍에 떨어졌습니다. 바삐 손을 놀려 뜯어서 읽어 보니 마치 맑은 풍모를 대하는 듯하여 위안이 되고 속이 후련함이 끝이 없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전과 다름없이 객지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나머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머지않아 다시 영남루嶺南樓24)에 오를 터인데, 그때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말씀한 일은 마땅히 나리(進賜主)25) 앞에 여쭈어보고 힘껏 도모할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4월 29일 수월정에 머무는 나그네가 보냄.
판관判官 자제子弟 송 참봉宋參奉

0001_0023_b_01L遙望雲山只自悵然而
0001_0023_b_02L情帖忽墜於孤舘
0001_0023_b_03L寂莫之濱忙手披讀
0001_0023_b_04L如對淸儀慰豁無已此間
0001_0023_b_05L姑依客狀而餘何言
0001_0023_b_06L更上嶺南樓其時
0001_0023_b_07L何以則相面耶示事
0001_0023_b_08L當稟于
0001_0023_b_09L進賜主前力圖計耳
0001_0023_b_10L餘不具式27)

0001_0023_b_11L

0001_0023_b_12L四月卄九日 受月亭 留客 書28)

0001_0023_b_13L判官子弟 宋參奉

0001_0024_a_01L
붕 대사께 보냅니다
하동 유인의 답장   (봉封)


여름에 지나다 방문했던 것은 뜻밖에서 나왔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었습니다만, 오직 번개처럼 만나는 바람에 평온하게 회포를 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지금 스님이 와서 보내 준 서찰을 받아 보고, 근래

0001_0024_a_01L
鵬大師 經案 卽傳

0001_0024_a_02L河東纍人 答書   (封)


0001_0024_a_03L

0001_0024_a_04L夏間歷訪出於意外深用
0001_0024_a_05L喜幸而惟以電逢未穩爲
0001_0024_a_06L歎也今於白衲來得承
0001_0024_a_07L惠字以知近間

0001_0024_b_01L참선하며 지내는 형편이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되고 위안됩니다.
나는 한결같이 병으로 신음하면서 자리에 누워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이는 염라대왕(鬼伯)이 장부를 정리한다는 것을 알겠으니, 답답하고 가련함을 어찌하겠습니까?
보내 주신 종이를 많이 얻었습니다. 정을 담고 온 것을 그대로 받았으니 매우 고맙습니다. 김해金海로 보낼 서찰은 마침내 써 보냈습니다.
나머지는 바빠 일일이 언급하지 못합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9월(菊月) 20일 하동에 귀양 온 사람(纍人).
추신
붓과 먹 각각 하나씩을 서찰과 같이 보냅니다만 매우 부끄럽습니다.
경주 부윤慶州府尹 정홍제鄭弘濟

0001_0024_b_01L禪況安迪可慰可慰纍人一味
0001_0024_b_02L吟病負席涔涔知是鬼伯
0001_0024_b_03L修簿悶憐奈何所送紙地
0001_0024_b_04L多得帶情來依受可感
0001_0024_b_05L金海簡了書送耳餘忙
0001_0024_b_06L不一

0001_0024_b_07L

0001_0024_b_08L己菊月卄日 河東 纍人
0001_0024_b_09L筆墨各一伴簡可媿

0001_0024_b_10L慶州府尹 鄭弘濟

0001_0025_a_01L
붕 대사의 고요한 서안에
달성 진영에서 보냄


장맛비가 괴롭게 내리는데 근래 한가롭게 지내시는 상황은 평안하십니까? 마음이 달려가 그리는 마음(馳溯)이

0001_0025_a_01L
鵬大師 靜案

0001_0025_a_02L達城鎭營 書


0001_0025_a_03L

0001_0025_a_04L霖雨作苦伊來
0001_0025_a_05L閒況勝安否

0001_0025_b_01L끝이 없습니다. 이번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가을보다 앞서 재촉하니, 답답하고 가련한들 어쩌겠습니까?
무환자無患子의 묵은 약속은 오래되었지만 응답이 없으니, 산인도 신의가 없기 때문입니까? 아마도 혹시 찾아 두었는데 인편이 쉽지 않아서인 듯합니다.
이번 인편에 반드시 붉고 윤기 나고, 색이 기이한 것으로 100여 개를 딸이 찾아뵐 때 주어서, 이 귀밑머리 주변을 빛나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된다면 때때로 문지르고 만지면서 먼저 대사를 생각할 것입니다. 대사께서는 범범히 여기지 마시고 반드시 그것을 베풀어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합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6월(流月) 초6일 진세 교우(塵交).
대구 영장大丘營將 신사엄申思儼

0001_0025_b_01L溯不已此歸思
0001_0025_b_02L秋而催悶憐奈何
0001_0025_b_03L無患子宿諾久而無
0001_0025_b_04L皀白山人亦爲無信
0001_0025_b_05L似或覓置而便信
0001_0025_b_06L未易矣此便必以紅潤
0001_0025_b_07L色奇者百餘箇投惠
0001_0025_b_08L於女謁時耀此鬢邊
0001_0025_b_09L然則時時摩挲先憶
0001_0025_b_10L大師大師毋泛必施之
0001_0025_b_11L幸甚29)
0001_0025_b_12L不具30)

0001_0025_b_13L

0001_0025_b_14L己之流月初六 塵交31)

0001_0025_b_15L大丘營將 申思儼

0001_0026_a_01L
붕 사께 보내는 답장

뜻밖에 백족白足(스님)이 와서 대사의 서찰을 전해 주어, 귀양가 있는 동안에 편안히 보내는 것을 알았으니, 참으로 위안이 되고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나는 요사이 몸이 쇠함이 점점 심하고, 질병도 오래도록 위독하여 늘 침상과 이부자리를 떠나지 못하니 스스로 가련함을 어쩌겠습니까?
보내 주신 동백冬柏 기름과 비자榧子는 그대로 잘 받았으니, 정다운 뜻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소지小紙(별지)에서 말씀하신 일은 잘 알았습니다만, 과연 사면을 반포하는 경사가 있으면 그대는 마땅히 석방되는 가운데 포함될 것이니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관찰사가 으레 방면할 부류와 방면하지 않을 부류에 대한 계본啓本26)을 작성하니, 경사京司27)에서 간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력 두 건은 비록 늦었으나 찾아 보냅니다.
이만 줄입니다.

정묘년(1747) 1월 19일 청곡淸谷.
영의정領議政 김재로金在魯28)

0001_0026_a_01L
答鵬師


0001_0026_a_02L料外白足來傳禪札憑審
0001_0026_a_03L中安遣良慰良慰吾比來衰朽轉
0001_0026_a_04L疾病沈篤長不離床褥自憐
0001_0026_a_05L奈何所送冬栢油榧子依受
0001_0026_a_06L感情意小紙見悉而果有頒赦
0001_0026_a_07L之慶則女當在放釋之中何慮
0001_0026_a_08L之有道伯例爲放未放啓本非京
0001_0026_a_09L司所可干也曆書二件雖晩
0001_0026_a_10L不具

0001_0026_a_11L

0001_0026_a_12L丁卯元月十九日 淸谷 領議政 金在魯

0001_0026_b_01L
붕 대사는 열어 보십시오

몸이 구속되어 있을 때 술을 들고 서로 문안하였으니, 정으로 돌봐 주신 것에 지금까지 감사합니다. 곧 섣달의 겨울(窮陰)에 도 닦으며 지내는 형편이 맑고 좋으리라 생각하니, 위안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얕지 않습니다.
늙은이는 곤궁한 재앙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죽음이 드리운 나이에 또 무한한 수치와 모욕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당신께서 청동靑銅(동전)을 꾸어서 보낸 것은 급하고 어려운 때 도와준 높은 의리(急難高義)가 아님이 없습니다.
마땅히 완전하게 돌려줄 것이지만 가난함에 저촉되어 지금까지 지체되었습니다. 이는 거의 서로 본받는 의미가 아니니, 도리어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이에 숫자대로(準數) 돌려 드리니 확인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기사년(1749) 12월 12일 이李 인장29)

0001_0026_b_01L
在拘時攜酒相問迨感情眷卽惟窮
0001_0026_b_02L
0001_0026_b_03L道味淸勝慰傃不淺老物窮厄未了
0001_0026_b_04L垂死之年又遭無限之羞辱也然至於今
0001_0026_b_05L靑銅推貸之惠莫非急難高義
0001_0026_b_06L宜還完而爲貧窶所坐致稽至此殆非
0001_0026_b_07L相效之意還可歉愧玆以準數委還
0001_0026_b_08L考納是望餘不宣式

0001_0026_b_09L

0001_0026_b_10L己巳十二月十二日 李 〖印章〗

0001_0027_a_01L
붕 상인께 답장

지난번에 소식이 막힌 나머지에 만났지만, 마침 그때 바쁘고 어수선하여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돌아온 뒤 슬프고도 그리워함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았는데, 뜻밖에 스님이 와서 손수 쓴 서찰을 소매 속에서 내어 전해 주었으니,

0001_0027_a_01L
答鵬上人書

0001_0027_a_02L

0001_0027_a_03L頃逢[出]於阻餘適際忩撓
0001_0027_a_04L未克穩討歸後悵戀
0001_0027_a_05L今未解料外沙彌袖傳

0001_0027_b_01L마치 다시 마주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기쁘고 후련한 마음 끝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참선하며 지내시는 상황이 편안하며 좋고, 주간하고 있는 공사에 대해 고했으니, 더욱 기쁘고 더욱 기쁩니다.
다만 듣건대 각 사찰의 승려들이 모두 흩어져 장차 지탱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매우 불쌍하고 매우 가련합니다.
장지壯紙30)는 보내 준 대로 왔는데, 요사이 한양과 시골에서 서찰이 오고갈 때 쓰이는 종이가 이미 지극히 구차하고 가난했습니다. 지금 이에 보내 주셨으니, 이것으로써 대사께서 나를 향한 정성이 적지 않음을 상상할 수 있어, 많이 고맙고 많이 고맙습니다.
이제는 일을 마쳤으니 반드시 한가하여 쉬고 계시리라 생각되어 한번 방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5월 21일 약락재約樂齋 주인 보냄.

0001_0027_b_01L手筆如得更對討話欣豁
0001_0027_b_02L無涯而況
0001_0027_b_03L禪況安勝所幹告工尤喜尤喜
0001_0027_b_04L第聞各寺刹擧皆渙散
0001_0027_b_05L難支撑云可矜可憐也壯紙
0001_0027_b_06L依來而近來京鄕書尺之往來時
0001_0027_b_07L所用紙已極苟艱今玆
0001_0027_b_08L惠之以此足想於師之向我
0001_0027_b_09L情悃之不泛多感多感
0001_0027_b_10L今至竣事想必閑歇
0001_0027_b_11L訪是企耳不能一一32)

0001_0027_b_12L

0001_0027_b_13L己之中夏念一 約樂齋主人 書33)

0001_0028_a_01L
서봉 대사께 부치는 답장

훌쩍 찾아왔다 꿈결처럼 서봉西峰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바람은 대나무 숲에서 쓸쓸히 불고 비는 노란 잎을 적시니, 그립고 그리운 마음에 갑절이나 힘듭니다.
한 스님이 문을 두드리고는 문득 서찰과 감을 전해 주었으니, 쓸쓸하게 떠도는 마음에 깊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무환자無患子는 끝내

0001_0028_a_01L
寄答西峰師

0001_0028_a_02L

0001_0028_a_03L飄然來訪夢歸西峰
0001_0028_a_04L風蕭竹林雨濕黃
0001_0028_a_05L戀戀倍勞一衲叩
0001_0028_a_06L忽傳書與柿深慰
0001_0028_a_07L寥漂之懷無患子終

0001_0028_b_01L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돌려보낼 것을 아주 꼼꼼하게 골랐습니다. 가까운 때에 방문하는 것은 수고롭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곶감(乾柿)은 이미 온 물건이라, 한 접은 정으로 받아서 두고, 한 접은 도로 돌려보냅니다. 만약에 정을 표현하고 싶다면 곶감이 아니고 당연히 무환자를 보내 주어야 하니, 이것을 기다릴 뿐입니다.
어제 본부本府 인편에 방문하겠다는 뜻을 언급했는데, 전달 받았습니까? 20여 개가 갈고 닦다가 부서져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을 보내 알립니다.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49) 10월(陽月) 초1일 취성鷲城을 지나는 나그네.

0001_0028_b_01L不入眼故還送極擇
0001_0028_b_02L近來訪毋勞企待也
0001_0028_b_03L旣來之物一貼置以領
0001_0028_b_04L一貼還送若欲表情
0001_0028_b_05L非柿當在無患子以此
0001_0028_b_06L待之耳昨日本府便
0001_0028_b_07L以來訪之意言及矣傳之否
0001_0028_b_08L卄餘介磨琢時見破不可用故有
0001_0028_b_09L所委報耳不多及34)

0001_0028_b_10L

0001_0028_b_11L己陽初吉 鷲城 過客35)

0001_0029_a_01L
붕 사께 보내는 답장

오래도록 소식을 듣지 못해 한창 그립고 울적하던 차에 방금 서찰을 받아 보고서 요사이 눈 내리는 추위에 참선하며 지내는 형편이 좋고 편안함을 알았으니, 위안되고 기쁜 마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예전대로 지내고 있으나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더욱

0001_0029_a_01L
答鵬師

0001_0029_a_02L

0001_0029_a_03L久未聞消息方此懸菀[鬱]
0001_0029_a_04L見委書知近日雪寒
0001_0029_a_05L禪況佳安慰喜不可言
0001_0029_a_06L此間依遣而公私酬應

0001_0029_b_01L견디기 어려우니, 답답하고 가련함을 어쩌겠습니까?
무환자無患子는 이번 심부름꾼(專人)에게 짊어지워 보내주셨으니 고맙습니다만, 그 품질이 좋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물품을 만약 구하고자 했다면 어찌 대사께 자주 부탁하는 데 이르렀겠습니까? 대사가 나를 향한 정이 끝내 부족하기 때문에 구하는 물품을 최상품으로 찾아 보내지 못했으니 매우 탄식스럽고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새해 달력 한 건을 보냅니다. 이것으로 산속에서의 세월을 잘 살펴볼 수 있을는지요? 약과 자반佐飯은 정으로 보내 주신 것이니 그대로 잘 받았습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기사년(1749) 12월 초9일 달성 판관(達判).
대구 판관大丘判官 송순명宋純明

0001_0029_b_01L難堪耐悶憐奈何無患子
0001_0029_b_02L荷此專人惠送可感而但
0001_0029_b_03L其品不佳如此之品若欲得
0001_0029_b_04L則何至屢托於師耶
0001_0029_b_05L師之向我之情終欠用極
0001_0029_b_06L故所求之物不能以極品覓
0001_0029_b_07L可歎可歎新曆一件送之
0001_0029_b_08L是可考覽於山中之日月
0001_0029_b_09L藥佐飯情餉依領
0001_0029_b_10L餘不具36)

0001_0029_b_11L

0001_0029_b_12L己巳臘月初九日 達判37)

0001_0029_b_13L大丘判官 宋純明

0001_0030_a_01L
붕 상인께 드리는 답장 (함緘)

여름에 영남嶺南 스님이 와서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서찰을 전해 주었는데, 열어 보고서 위안되는 마음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즉시 답장을 써서 절삽節箑31)까지 아울러 싼 다음, 그 인편이 찾아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종적이 없어 부쳐서 보내지 못했으니, 지금까지도 의아하고 탄식스럽습니다. 즉시 또 … .

0001_0030_a_01L
答鵬上人    (緘)

0001_0030_a_02L

0001_0030_a_03L夏間嶺衲袖致一札披慰良
0001_0030_a_04L旋卽裁答幷裹節箑
0001_0030_a_05L以待其討去而竟無蹤跡
0001_0030_a_06L果付送至今訝歎卽又得
0001_0030_a_07L□…□

0001_0030_b_01L

0001_0030_b_01L

0001_0031_a_01L

0001_0031_a_01L

0001_0031_b_01L
  1. 1) 무환주無患珠 : 무환자나무과의 관목형灌木形으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열매 안의 씨앗이 검고 갈수록 단단해 져 염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무환수無患樹라 하여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나무로 통한다. 옛날 매우 신통력 있는 이름난 무당이 무환자나무 가지로 귀신을 때려죽였는데 나쁜 귀신들은 그 나무를 보면 싫어하여 도망갔다고 한다. 이를 안 사람들은 다투어 그 나무를 베어다 그릇을 만들고 집 안에 심기도 했다. 열매는 구슬과 같아서 흔히 이것을 무환주라고 한다. 그 씨로 염주를 만들 수 있다.
  2. 2) 송운 대사松雲大師 : 조선 중기 승려 유정惟政(1544∼1610)의 시호다. 속성은 임任,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泗溟堂·송운松雲·종봉鍾峯,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휴정의 휘하에서 왜군과 싸웠다. 평양을 수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의령에서 왜군을 격파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울산의 도산과 순천 예교에서 전공을 세웠다. 1604년 일본으로 건너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3. 3) 달성 판관達城判官 : 송순명宋純明을 지칭한다. 대구 판관이라고도 불렀다. 본서 권2의 13번, 22번, 29번에 소개한 송순명宋純明의 편지 참조.
  4. 4) 설송당雪松堂 : 청도 운문사를 비롯해 밀양 표충사, 양산 통도사에 주석한 설송당雪松堂 연초 演初(1676∼1750)를 말한다. 1688년(숙종 14) 13세의 나이로 석제釋霽를 은사로 모시고 청도 운문사에서 출가한 후 환성 지안喚醒志安 아래서 수학하였다. 만년에는 학인들을 받지 않고 참선만 하다가 1750년(영조 26) 세수 75세, 법랍 63년으로 입적하였다. 다비한 뒤 사리는 통도사와 운문사에 나눠 분장했는데, 4년 뒤 이천보李天輔가 지은 비가 운문사에 세워져 오늘날 운문사와 통도사 두 곳에 부도가 전하고 있다. 
  5. 5) 상제喪制 : 부모나 조부모의 거상居喪 중에 있는 사람. 여기서는 발신자가 상중임을 뜻한다.
  6. 6) 전각殿閣 기문記文의 탁본 : 표충비表忠碑를 말한다. 권1의 각주 7번 참조. 
  7. 7) 낙육樂育 : 교육을 즐거움으로 삼다. 인재의 양성을 즐겨 하다. 『맹자』의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材而敎育之。 三樂也。)”에서 취했다.
  8. 8) 『분충록奮忠錄』 :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의 활동을 담은 서적. 7권. 목판본. 1739년(영조 15) 밀양 표충사에서 개판하였다. 유정의 5대 법손인 남붕南鵬이 전하여 오던 유정의 유고를 이 시기에 새로 출간하였다. 원래는 ‘골계도滑稽圖’라는 제명이었던 것을 편자인 신유한申維翰이 평석을 가하고 체재를 갖추면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내용은 적진을 탐지한 보고서와 상소문, 왜승에게 보낸 서한 등으로 편집되어 있다.
  9. 9) 웅천현熊川縣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의 옛 행정구역이다. 190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창원부, 진해군과 통합되어 창원부로 개편되었다.
  10. 10) 소신所愼 : 질병.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조심하신 것은 재계齋戒와 전쟁과 질병이었다.(子之所愼。 齊戰疾。)”는 구절이 있다.
  11. 11) 체문帖文 : 관아에서 발급하는 임명장·증명서·영수증 등을 말함.
  12. 12) 상자牀笫 : 상자床笫와 같은 말로 평상과 삿자리이다. 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상태이므로 여기서는 병상을 가리킨다.
  13. 13) *김희로: 권1 서간 3번 참조.
  14. 14) * 김상로金尙魯(1702∼?)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경일景一, 호는 하계霞溪 또는 만하晩霞. 1734년(영조 10)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일생 동안 강원도감사·대사성·부제학·경상도관찰사·한성우윤·대사헌·도승지·병조판서·예조참판·공조판서 및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역임하였다. 1762년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해 영조의 동조를 얻었으나 이로 인해 청주로 귀양갔으며 특명으로 풀려난 뒤 봉조하가 되었다. 죽은 뒤에 정조가 즉위하자 관작이 삭탈되었으나 고종 때 다시 신원되었다.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15. 15) 이전 수령 : 1748년 대구 판관을 역임한 조재연趙載淵을 가리킨다. 권2의 5번 편지 참조.
  16. 16) 약로藥爐 : 차나 약을 달일 때 쓰이는 풍로나 화로.
  17. 17) 금단金丹 :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영약, 또는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약藥.
  18. 18) 대구 판관 : 송순명宋純明을 지칭한다. 앞의 4번 서간 각주 3번 참조.
  19. 19) * 유최기兪最基(1689∼1768)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양보良甫, 호는 자락헌自樂軒·무수옹無愁翁.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쳤다. 그는 노론 의 여러 언관들과 함께 신임사화의 전말을 상소하고 소론의 거두인 이광좌의 관작추탈을 강 력히 주장하다가 탕평책에 역행하는 자라고 지목되어 웅천현감으로 좌천되었다. 영조가 그의 강직함을 가상히 여겨 다시 기용함으로써 그 뒤 동부승지·대사성·대사헌·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문에 능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20. 20) 전동磚洞 : 중부中部 견평방堅平坊 부근에 있던 지명. 행정구역명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으나 조선 후기 지도에는 전동磚洞, 또는 박동礡洞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원래는 박석礡石고개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는 발신자 신만申晩이 거처하던 서실을 가리킨다.
  21. 21) * 신만申晩(1703∼176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여성汝成·성백成伯. 개성유수·경기관찰사·예조판서·이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역임하였다. 1755년 찬수당상纂修堂上으로 『천의소감闡義昭鑑』을 편찬하였다. 시호는 효정孝正이다.
  22. 22) 적간摘奸 : ① 난잡한 죄상이 있나 없나를 살피어 조사함. ② 난잡한 것이 있나 없나를 알아내려고, 무엇을 발리거나 파헤치거나 하여 드러냄.
  23. 23) 달성達城 판관判官 : 서체와 내용으로 보아 송순명宋純明의 서찰이다. 그는 유난히도 무환주에 대하여 집착하였다. 앞의 4번 서간 각주 3번 참조.
  24. 24) 영남루嶺南樓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누각. 보물 제147호.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고 편액된 누각답게 밀양강을 끼고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린다.
  25. 25) 나리 : 원문의 진사주進賜主는 ‘나으리님’이라는 의미의 이두 표기다.
  26. 26) 계본啓本 : 조선 시대에 임금에게 큰일을 아뢸 때 제출하던 문서 양식.
  27. 27) 경사京司 : 서울에 있던 관청의 총칭.
  28. 28) * 김재로 : 권1 서간 2번 참조.
  29. 29) 인문印文은 “영촌야로榮村野老”이다.
  30. 30) 장지壯紙 : 우리나라에서 만든 종이의 한 가지. 두껍고 질기며 품질이 매우 좋은 종이.
  31. 31) 절삽節箑 : 원래 단오절에 선사하는 부채로 절선節扇 또는 단오선端午扇이라고도 함.
  1. 1) 원본에는 ‘之極’이하 ‘萬萬’까지가 ‘0002_b’의 상단에 있음.
  2. 2) 원본에는 ‘不多及’이하 ‘書’까지가 ‘0002_a’에 있음.
  3. 3) 원본에는 ‘來望’이하 ‘否’까지가 ‘0002_b’의 상단에 있음.
  4. 4) 원본에는 ‘新産’이하 ‘時覓’까지가 ‘0004_b’의 상단에 있음.
  5. 5) 원본에는 ‘寄’이하 ‘用意覓’까지가 ‘0004_a’에 있음.
  6. 6) 원본에는 ‘送也’이하 ‘病客’까지가 ‘0004_b’에 있음.
  7. 7) 원본에는 ‘社洞宅’이하 ‘不安’까지가 ‘0006_a’의 앞쪽에 있음.
  8. 8) 원본에는 ‘然而’이하 ‘不’까지가 ‘0007_b’의 상단에 있음.
  9. 9) 원본에는 ‘可’이하 ‘托’까지가 ‘0007_a’의 상단에 있음.
  10. 10) 원본에는 ‘是’이하 ‘人’까지가 ‘0007_a’에 있음.
  11. 11) 원본에는 ‘戊辰’이하 ‘欠’까지가 ‘0008_a’에 있음.
  12. 12) 원본에는 ‘戊辰’이하 ‘答書’까지가 ‘0009_a’에 있음.
  13. 13) 우측에 별도의 서간이 있었으나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14. 14) 원본에는 ‘官’이하 ‘不具’까지가 ‘00013_b’의 상단에 있음.
  15. 15) 원본에는 ‘師之尊慕’이하 ‘不具式’까지가 ‘00014_b’의 상단에 있음.
  16. 16) 원본에는 ‘己巳’이하 ‘病生’까지가 ‘00014_a’에 있음.
  17. 17) 원본에는 ‘必’이하 ‘不悉’까지가 ‘00015_b’의 상단에 있음.
  18. 18) 원본에는 ‘己巳’이하 ‘病生’까지가 ‘00015_a’에 있음.
  19. 19) 속지에 적힌 글이다. 피봉도 보이지 않는다.
  20. 20) 원본에는 ‘重逢’이하 ‘不備式’까지가 ‘00019_b’의 상단에 있음.
  21. 21) 원본에는 ‘己’이하 ‘廳’까지가 ‘00019_a’에 있음.
  22. 22) 원본에는 ‘玆’이하 ‘及’까지가 ‘00020_b’의 상단에 있음.
  23. 23) 원본에는 ‘己’이하 ‘達判’까지가 ‘00020_a’에 있음.
  24. 24) 원본에는 ‘己巳’이하 ‘歸客’까지가 ‘00021_a’에 있음.
  25. 25) 원본에는 ‘强’이하 ‘及’까지가 ‘00022_b’의 상단에 있음.
  26. 26) 원본에는 ‘己’이하 ‘達判’까지가 ‘00022_a’에 있음.
  27. 27) 원본에는 ‘進賜’이하 ‘式’까지가 ‘00023_b’의 상단에 있음.
  28. 28) 원본에는 ‘四月’이하 ‘書’까지가 ‘00023_a’에 있음.
  29. 29) 원본에는 ‘於’이하 ‘餘’까지가 ‘00025_b’의 상단에 있음.
  30. 30) 원본에는 ‘不具’가 ‘00025_a’의 상단에 있음.
  31. 31) 원본에는 ‘己’이하 ‘塵交’까지가 ‘00025_a’에 있음.
  32. 32) 원본에는 ‘情悃’이하 ‘一一’까지가 ‘00027_b’의 상단에 있음.
  33. 33) 원본에는 ‘己’이하 ‘書’까지가 ‘00027_a’에 있음.
  34. 34) 원본에는 ‘所委’이하 ‘及’까지가 ‘00028_b’의 상단에 있음.
  35. 35) 원본에는 ‘己’이하 ‘過客’까지가 ‘00028_a’에 있음.
  36. 36) 원본에는 ‘謝’이하 ‘不具’까지가 ‘00029_b’의 상단에 있음.
  37. 37) 원본에는 ‘己巳’이하 ‘達判’까지가 ‘00029_a’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