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집성문헌

ABC_NC_02401_0001_T_001

0001_0001_b_01L
간독
[간독]

0001_0001_b_01L簡牘
[簡牘]

0001_0002_a_01L
백련암白蓮庵으로 보낸 답장 정 판서주鄭判書主 우량羽良
미천尾泉 상가(制次)1)에서 보낸 답장      (생식省式)


봄이 오니 그리운 생각으로 힘겨운데, 방금 이렇게 서찰이 도착하여 학문하며 지내는 정황(爲況)2)이 편안하고 좋음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구차하게 살고 있어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해 스님(海師)이 만약 와서 방문할 수 있다면

0001_0002_a_01L
白蓮庵 回傳  鄭判書主 羽良

0001_0002_a_02L尾泉 制次 謝書      (省式)


0001_0002_a_03L

0001_0002_a_04L春來思想爲勞卽此書
0001_0002_a_05L以審爲況安勝慰不
0001_0002_a_06L可言此間苟活無可言
0001_0002_a_07L海師若得來訪

0001_0002_b_01L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언제 마땅히 도성에 들어올 인편이 있을는지요?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서찰을 쓰려고 종이를 대하니 더욱 서글퍼집니다.
우선 두서없이 씁니다.

을축년(1745) 2월 29일 미천尾泉의 상가喪家에서
추신
보내 준 산의 음식은 지극한 마음을 담은 것이니 그대로 받았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두 개의 먹을 서찰과 함께 사례로 보냅니다.
판서判書 정우량鄭羽良3)

0001_0002_b_01L何幸如之何感如之
0001_0002_b_02L當有入城之便相逢未
0001_0002_b_03L臨書益悵然姑不
0001_0002_b_04L

0001_0002_b_05L

0001_0002_b_06L乙丑二月卄九日 尾泉 制次
0001_0002_b_07L惠送山味依領至意可感
0001_0002_b_08L可感二墨伴書爲謝

0001_0002_b_09L判書 鄭羽良1)

0001_0003_a_01L
붕 스님이 경전 공부하는 곳으로 보낸 답장

산속에서 보낸 한 통의 서찰이 멀리 서울에 이르러 펼쳐 보고서, 요사이 경전 공부하며 고요히 잘 계심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근래 오래 앓고 있던 병이 더 심해졌으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보내 준

0001_0003_a_01L
鵬上人 經帷 回傳

0001_0003_a_02L

0001_0003_a_03L山中一札遠及洛下
0001_0003_a_04L審近間
0001_0003_a_05L經況佳靜爲慰不已此間近
0001_0003_a_06L添宿病無足言者

0001_0003_b_01L산골의 음식은 먼 곳의 인정을 담은 것이니 그대로 받았습니다만, 산에서 지내는 사람이 문안 서찰을 보내는 것도 일이 많지 않습니까? 감사하는 뜻이 깊습니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합니다.

을축년(1745) 6월 21일 공동公洞에서 병든 나그네4)가.

0001_0003_b_01L送山味依領遠情
0001_0003_b_02L山人問遣無亦多事乎
0001_0003_b_03L感意則深矣餘不具

0001_0003_b_04L

0001_0003_b_05L乙丑六月卄一日 公洞 病客

0001_0004_a_01L
붕 스님 열어 보십시오
소곡小谷에서 보낸 답장


뜻밖에 서찰이 왔습니다. 비로소 새봄에 편안하다는 소식을 받고 펼쳐 보니 위안되는 마음을 가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정동貞洞의 사촌 동생(季從)이 갑자기 요절했으니, 어찌 평소 기대했던 사람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를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좌절하고 애통해하며 슬퍼하고 애석해하는 마음을 오래될수록

0001_0004_a_01L
鵬上人 開見

0001_0004_a_02L小谷 答狀


0001_0004_a_03L

0001_0004_a_04L意外書來始得新春安信
0001_0004_a_05L披慰不可量此間貞洞季從
0001_0004_a_06L奄忽夭殞豈料平日所期望者
0001_0004_a_07L竟至於斯摧痛悼惜久愈

0001_0004_b_01L더욱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모시는 처지에서 종종 참담하고 혹독하니 더욱 어찌 차마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늙으신 부모님께서 숙병宿病을 앓고 있던 중에 슬퍼하고 애통해하다 몸이 손상되었습니다. 봄이 온화하고 점점 화창해지는데도 여전히 병석에 누워 계시니 답답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보내 주신 여러 음식은 정으로 받았으니 깊이 감사드립니다만 또한 편치 못함을 느낍니다.
별지別紙에 말씀하신 것은 잘 알았으니 시험 삼아 마땅히 조용히 만나 뵙고 말씀드려 도모해 보겠지만 시행될지는 기필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바쁘고 어수선하여 이렇게만 서찰을 씁니다. 갖추지 못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을축년(1745) 2월 그믐에 복인服人.
김 참판金參判
추신
붓과 먹을 소략하나마 보냅니다.

0001_0004_b_01L靡抑而侍下情境種種慘毒
0001_0004_b_02L尤何忍形喩老親沈痾之
0001_0004_b_03L悲疚致損春和漸暢而尙
0001_0004_b_04L淹牀席焦悶曷狀所餽
0001_0004_b_05L諸味領情深感而亦覺不安
0001_0004_b_06L別紙所示具悉試當從容面示
0001_0004_b_07L而見施恐難必也忙撓堇[僅]
0001_0004_b_08L不具奉謝

0001_0004_b_09L

0001_0004_b_10L乙丑二月小晦 服人 金參判

0001_0004_b_11L筆墨 略送2)

0001_0005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서찰을 보고 수금囚禁에 관한 일이 벌써 결말이 났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본 사안의 허실을 일찍이 조사하여 밝히지도 않고 다만 소장訴狀을 올려 원통함을 송사訟事한 것으로, 도리어 핍박하여 이전 관리의 죄는 당진唐津으로 정배定配하는 데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래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걱정하고 탄식했지만 또한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직 이치대로 잘 순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보낸 종이와

0001_0005_a_01L
答鵬上人

0001_0005_a_02L

0001_0005_a_03L絶然未聞消息見書知囚禁事
0001_0005_a_04L已爲出場而本事虛實不曾査明
0001_0005_a_05L只以呈訴訟寃反作侵逼前官之
0001_0005_a_06L至於定配唐津云聞來不勝愍歎
0001_0005_a_07L然亦奈何唯善爲理遣爲可所送紙

0001_0005_b_01L초 등의 물건은, 내가 부족한 것은 아닌데 객지에서 어떻게 얻어 보냈는지요? 받아도 편하지 않으므로 돌려보내니 양해해 주십시오.
우선 갖추지 못합니다.

병인년(1746) 2월 14일 청곡淸谷5).

0001_0005_b_01L燭等物此非吾之所乏而客中何以得送
0001_0005_b_02L受之不安故還送諒之姑不具

0001_0005_b_03L

0001_0005_b_04L丙寅二月十四日 淸谷

0001_0006_a_01L
시축 속의 시를 차운해서 붕 스님에게 주다.

섬의 안개와 마을의 연기 아득히 접했는데
황감6)이 가을에 가득하여 날마다 남쪽으로 항해하네
아득한 전쟁터의 먼지에 외로이 칼 들고 떨쳐 일어났고

0001_0006_a_01L
次軸中韻 贈鵬上人3)

0001_0006_a_02L

0001_0006_a_03L島霧村烟接杳茫
0001_0006_a_04L黃柑秋滿日南航
0001_0006_a_05L漠漠風塵孤劍奮

0001_0006_b_01L아득히 먼 북두성에 하나의 뗏목으로 나아갔네
기린각에 일찍이 세 명의 의로운 승려가 없었는데
조대釣臺는 어찌 사명당만 같겠는가?
영겁의 전단향에 산과 강이 고요한데
징 치고 노래하여(鐃歌)7) 승려들의 문장을 번잡하게 하지 마라.

무오년(1738) 10월 하당荷堂 병든 나그네(病客)8).

0001_0006_b_01L蒼蒼星斗一槎長
0001_0006_b_02L獜閣曾無三義釋
0001_0006_b_03L釣臺爭似四溟堂
0001_0006_b_04L檀香浩劫山河靜
0001_0006_b_05L休把鐃歌雜梵章

0001_0006_b_06L

0001_0006_b_07L戊午孟冬 荷堂 病客

0001_0007_a_01L
허리에 지혜의 검을 매달고 깊은 바다를 건너며
겹겹의 파도에 걸터앉아 큰 고래를 잡고자 하네
이교異敎에 어찌 뛰어난 이가 없겠는가?
기이한 공로가 부처의 위엄과 신령함이라 자랑하지 마라
맑은 연못과 서리 내리는 밤의 달 같은 정신이 남아 있으니

0001_0007_a_01L
4)
0001_0007_a_02L腰懸慧劍涉重溟
0001_0007_a_03L跨層波剪巨鯨異敎
0001_0007_a_04L豈無人俊傑奇功休
0001_0007_a_05L詑佛威靈澄潭霜月

0001_0007_b_01L옛 사당의 안개와 구름 속에 화상畵像이 아울러 있네
남쪽의 왜와 북쪽의 여진족의 남은 근심으로 도리어 이 날에도
하늘의 마음은 오히려 비린내를 싫어하지 않네.
무오년(1738) 3월의 상순(上浣) 파평坡平 윤광의尹光毅9) 지음.

0001_0007_b_01L精神在古廟烟雲繪
0001_0007_b_02L畫幷南北餘憂還此
0001_0007_b_03L天心猶未厭膻腥

0001_0007_b_04L

0001_0007_b_05L戊午季春之上浣 坡平

0001_0007_b_06L尹光毅 題

0001_0008_a_01L
붕 스님 열어 보십시오
조동棗洞10) 답장


지난여름에 문안 서찰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교외에 나가서 답장을 빠뜨리는 것을 면치 못했으니 여전히 지금까지 한스럽게 생각합니다.
방금 또 서찰을 받아 보니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그런데 다만 접때 고난을 당하여 아직 깨끗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해곡海曲으로 멀리 유배되는 데 이르렀으니, 소식을 들은 이래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라고 탄식했습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송운松雲 대사의 성대한 업적과 위대한 공렬이

0001_0008_a_01L
鵬上人 開見

0001_0008_a_02L棗洞答札


0001_0008_a_03L

0001_0008_a_04L去夏有問書而其時適出郊外
0001_0008_a_05L未免闕答尙今爲恨卽又見書良
0001_0008_a_06L而第向來所遭竟未淸脫
0001_0008_a_07L至於遠配海曲聞來不勝驚
0001_0008_a_08L尤可慨者松雲盛蹟偉烈

0001_0008_b_01L이로 인하여 장차 추락되고 훼손되며 자취가 없어짐을 면치 못하고, 대사께서 여러 해 동안 고심苦心했던 것도 억눌려 펴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충절을 장려하고 포상하는 은전을 한때의 일로 인하여 영원히 폐각하지 않을 듯하니, 믿는 것은 오직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이곳의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보내 준 자반(佐飯)은 정이 담긴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바삐 도망 다니고 유랑하며 떠도는 가운데 어떻게 이런 것을 보낼 수 있답니까? 매우 편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김金 서방에게 보낸 서찰과 보내 준 물건은 마땅히 전달해야 하는데, 현재 시골에 있으므로 지금 인편에 답장을 하지 못합니다.
서찰과 같이 보낼 물품이 없어서 두 자루의 붓을 보내니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병인년(1746) 2월 15일 조동棗洞 책실冊室에서.

0001_0008_b_01L因此而將未免墜毁泯沒師之
0001_0008_b_02L積年苦心亦將抑而不伸也
0001_0008_b_03L然朝家獎忠褒節之典
0001_0008_b_04L似不因一時事而永爲廢閣
0001_0008_b_05L恃唯在此耳此間堇[僅]遣
0001_0008_b_06L無可言所饋佐飯可知情味
0001_0008_b_07L而奔竄流離中何以有
0001_0008_b_08L殊知不安抵金書房書及
0001_0008_b_09L送物當傳致而方在鄕故今
0001_0008_b_10L便未有答耳無可伴書

0001_0008_b_11L

0001_0008_b_12L送去二筆領之爲妙不一

0001_0008_b_13L

0001_0008_b_14L丙寅 二月 望日 棗洞 冊室5)

0001_0009_a_01L
(근謹)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주사랑籌司郞11)이 관산에 도착해 보낸 서간


바빠서 헤어졌지만 지혜로운 말씀이 귓가에 있는 듯합니다. 요사이 경전을 외우시며 탈 없이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0001_0009_a_01L
(謹)  寄上人鵬

0001_0009_a_02L籌司郞 到冠山書


0001_0009_a_03L

0001_0009_a_04L怱怱而別慧語如在
0001_0009_a_05L不審日間
0001_0009_a_06L經無恙否戀戀不

0001_0009_b_01L나는 막 관산부冠山府에 도착했는데 거듭 감기에 걸리고, 온갖 병이 서로 일어나니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송운집松雲集』은 기한대로 도착했으니 애써 생각해 주시는 마음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오직 한결같이 맑고 깨끗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빠서 갖추지 못합니다.

병인년(1746) 10월(陽月) 13일 지나가는 나그네가.

0001_0009_b_01L吾方到冠山府
0001_0009_b_02L重觸風寒百病交
0001_0009_b_03L悶苦何言松雲
0001_0009_b_04L集如期來到
0001_0009_b_05L感勤念惟冀一
0001_0009_b_06L向淸淨忙不具

0001_0009_b_07L

0001_0009_b_08L丙寅陽月十三 過客

0001_0010_a_01L
붕 스님의 유배지(匪所)에 보낸 답장
밀양密陽 용성龍城의 이 서생(李生)의 답장    (봉封)


멀리 떨어져 서로 그리워하고 소식이 아득하니, 풍모를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생각이 날마다 모두 깊었습니다. 그런데 표연히 한 통의 서찰이 내 손에 떨어져 열어서 두세 번 읽어 보니, 천 리 밖에 떨어져 있는 모습을 대한 듯했습니다.
더구나 늦봄에 귀양 간 가운데 참선하면서 건강을 연이어 누리며 잘 지탱하고 계시는 것을 알았으니 나의 마음이 멀리서 매우 위안됩니다.
나는 아직 도성 안에 숨어 있으니, 신세가

0001_0010_a_01L
鵬上人 匪所 回納

0001_0010_a_02L密陽 龍城 李生 謝簡  (封)


0001_0010_a_03L

0001_0010_a_04L涯角相懸音問杳然望風馳想
0001_0010_a_05L與日俱深飄然一札落吾手中
0001_0010_a_06L玩再三如對千里面目況審春暮
0001_0010_a_07L謫裏禪履連享支衛區區遠慰
0001_0010_a_08L啻滿萬生尙此蟄在城中身世

0001_0010_b_01L이로부터 남은 희망이 없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농가에서 애써 살아가는 것이 이와 같아, 결국 거처를 옮길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경영해 나가야겠습니까? 늘 속세를 벗어날 생각을 하면서 파리한 몸으로 도성의 저자에서 허둥지둥 일에만 힘쓰니 어찌 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그 가난하고 고생하는 사람을 위문하는 서찰이 나에게 먼저 이르렀는데, 말뜻이 정중하니 평소 돌봐 주고 아껴 준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더욱 감탄하겠습니까. 조만간에 사면되어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니, 함께 명아주 지팡이를 집고 표충사表忠祠의 깨끗한 곳에서 천천히 걸으며 오래도록 막힌 회포를 풉시다.
나머지 할 말은 많으나 인편이 바쁘고 또 어수선하여 한 가지만 언급하고 백 가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나가는 인편(風便)이 있다면 다시 천금을 보내 주시는 것이 어떻겠는지요?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병인년(1746) 3월 16일 이수李洙.

0001_0010_b_01L從此無餘望柰何柰何田家契活
0001_0010_b_02L如此了想遷居何以經紀每想脫
0001_0010_b_03L瘦骨役役於城市蒼中寧不
0001_0010_b_04L慨慨當問其寒苦之人惠書及於
0001_0010_b_05L先吾辭意鄭重非平日眷愛
0001_0010_b_06L而何尤庸感歎早晩當有赦歸之
0001_0010_b_07L共携黎杖緩步於表忠淨界
0001_0010_b_08L攄久阻懷耳餘萬萬便忙且擾
0001_0010_b_09L一未百如有風便更惠千金如何
0001_0010_b_10L不具式6)

0001_0010_b_11L

0001_0010_b_12L丙寅 三月 十六日 李洙7)

0001_0011_a_01L
붕 대사께 올린 서찰
달성達城에서 씀


뜻밖에 서찰을 보고서 도를 닦으며 편안히 지내심을 알았으니, 위안되고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이곳의 나는 흉년(歉年)이 들어 낭패를 당한 형국인지라 날마다 골치가 아프고 어수선함을 일삼고 있으니, 가련하고 답답하며 가련하고 답답합니다.
말씀하신 뜻은

0001_0011_a_01L
鵬師奉狀

0001_0011_a_02L達城書


0001_0011_a_03L

0001_0011_a_04L料外見書知道況寧過
0001_0011_a_05L爲之慰幸此中歉年
0001_0011_a_06L敗局日事惱撓憐悶憐悶

0001_0011_b_01L마땅히 밀양 원님과 더불어 서로 논의해서 처리하겠습니다.
보내 준 물건은 그대로 받았으며 책력冊曆 한 건을 같이 부칩니다.
어수선함이 심하여 일일이 언급하지 못합니다.

11월 23일 달성達城 답서答書.

0001_0011_b_01L當與密陽倅相議
0001_0011_b_02L處之耳惠物依
0001_0011_b_03L而一曆伴付耳
0001_0011_b_04L甚不一一

0001_0011_b_05L

0001_0011_b_06L至月 念三 達城 答書

0001_0012_a_01L
붕 대사의 유배지에 답장을 보냄
밀양密陽 상당上堂의 박 서생(朴生)의 답장 서찰


우리 대사가 멀리 행차하는 날에 악수하고 작별하지 못하여 서글프고 멍한 회포가 지금까지 마음에 간절합니다. 곧 보내 주신 서찰을 받았으나 아직 미처 열어 보지 못했으니 도리어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0001_0012_a_01L
鵬大師 配所 回呈

0001_0012_a_02L密陽上堂 朴生謝書


0001_0012_a_03L

0001_0012_a_04L
0001_0012_a_05L師遠行之日不得摻別悵惘之
0001_0012_a_06L迨切于中卽承
0001_0012_a_07L先施情札未及開緘旋庸愧

0001_0012_b_01L인하여 봄철에 귀양살이하는 가운데 참선하며 지내는 생활이 곤경에 처하여도 더욱 형통함을 알았으니 멀리서 위안되는 마음 더욱 지극합니다.
나는 아직 도성 안에 있으면서, 날마다 골치 아프고 어수선함을 일삼고 있으니 어찌 문달聞達한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 되겠습니까?
다만 뜻밖에 대사께서 왕림해 주심을 입었는데 기력이 휴손虧損됨은 없는 듯 했습니다. 밝은 달과 맑은 바람, 백망白望의 산수는 호남과 영남에 서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니, 어찌 유배생활(賦鵩)12)을 한스럽게 여기겠습니까? 오직 연이어 건강을 누리며, 빨리 석방되어 전날의 좋은 모습을 서로 대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보낸 한 개의 물건은 그대로 받았는데 사례할 물건이 없으니, 이것이 한스럽습니다. 황률黃栗 한 되로 정다운 마음을 대략 표현합니다.
나머지 할 말은 만 가지로 많지만 이만 줄입니다. 삼가 정으로 살펴주시기 바라며 답장 서찰을 올립니다.

병인년(1746) 2월 15일 흥신興新.

0001_0012_b_01L就審春事
0001_0012_b_02L纍中禪履處困而愈亨遠慰
0001_0012_b_03L尤至生尙在城中日事惱擾
0001_0012_b_04L爲聞人道者第无妄見枉於
0001_0012_b_05L似無虧損而明月淸風
0001_0012_b_06L望山水湖嶺相惟無聞何可以
0001_0012_b_07L賦鵩爲恨耶惟冀連
0001_0012_b_08L享愼𢜱速蒙
0001_0012_b_09L放赦相對前日好顔面切企
0001_0012_b_10L之耳所送一介之惠
0001_0012_b_11L
0001_0012_b_12L受而無物爲謝是恨黃栗一升
0001_0012_b_13L略表情事餘萬不宣伏惟8)

0001_0012_b_14L
0001_0012_b_15L情亮謝狀

0001_0012_b_16L

0001_0012_b_17L丙寅 二月 十五日 興新9)

0001_0013_a_01L
붕 스님의 유배지에 보낸 답장
밀양 삽포鈒浦의 박 서생(朴生)의 답장 서찰    (봉封)


초봄에 악수하고 헤어졌는데 오래될수록 더욱 서글퍼집니다. 인편이 돌아와 서찰을 받았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영남과 호남은 길이 멀어 순조롭게 인편(便風) 토론하기가 어려워 뜸하게 오래도록 소식을 전하지 못했으니 겸연쩍은 마음 간절할 뿐입니다.
멀리서 묻습니다. 요사이

0001_0013_a_01L
鵬上人 匪所 回傳

0001_0013_a_02L密陽 鈒浦 朴生謝書  (封)


0001_0013_a_03L

0001_0013_a_04L春初摻別久益作悵便回得奉
0001_0013_a_05L華翰良用感戢而嶺湖脩途便風難
0001_0013_a_06L闕然久不報只切歉歎遠問此時

0001_0013_b_01L여행 중에 머무는 곳이 아름답고 좋으신지요? 산에 사는 사람의 떠도는 발자취는 본래 정해진 곳이 없으니, 호남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남김없이 두루 밟았겠습니다. 이때 마음에 유쾌한 일을 하는데 어찌 장사長沙13)에 유배간 것을 한스럽게 여기겠습니까?
나는 마음이 산란하기가 옛날과 같아 나머지는 족히 말할 것이 없습니다.
보내 주신 참빗은 그대로 받아서 많이 감사한데 답례할 아름다운 물건이 없으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나머지는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병인년(1746) 3월 15일 박윤종朴胤宗.
추신
말린 밤 한 되를 보냅니다.

0001_0013_b_01L旅次佳勝否山人浪跡本無定處湖南
0001_0013_b_02L形勝遍踏無餘此時快意事豈恨長
0001_0013_b_03L沙之賦鵩耶生憒憒如昔餘無足道
0001_0013_b_04L惠送眞梳依受多感而無物答來美
0001_0013_b_05L餘不具式

0001_0013_b_06L

0001_0013_b_07L丙寅 三月 望 朴胤宗

0001_0013_b_08L乾栗一升 送似

0001_0014_a_01L
붕 대사에게 보낸 답장

소식이 막힌 끝에 서찰을 보고서 봄에 편안히 지내고 있음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됩니다.
이곳의 나는 운수와 재앙이 너무 참혹합니다. 매우 뜻밖에 이달 초에 막냇동생의 상을 만나 울부짖으며 애통해하고 안타까워한 마음을 오히려 어찌 차마 말하겠습니까?
보내온 곶감과 소자반(素佐飯)은 그대로 받았으니 가히 감사하고 가히 감사합니다. 이전에 보낸 기문記文의 인본印本 및 서찰 한 장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 과연 받아서 보았고, 지금 온

0001_0014_a_01L
答鵬師

0001_0014_a_02L

0001_0014_a_03L阻餘見書知春來安
0001_0014_a_04L慰甚此間運厄孔
0001_0014_a_05L千萬夢寐之外
0001_0014_a_06L初遭季子喪呌呼痛
0001_0014_a_07L尙何忍言惠送乾
0001_0014_a_08L柹及素佐飯依受可感
0001_0014_a_09L可感前送記文印本及書札
0001_0014_a_10L一張非閪失也
0001_0014_a_11L爲領見而今來松

0001_0014_b_01L송운松雲 대사 필적筆跡의 탑본榻本도 그대로 받았습니다. 비록 손수 쓴 것은 아니지만 또한 매우 위안이 됩니다.
갖추지 않습니다.

2월 그믐 정동貞洞에서.

0001_0014_b_01L
서찰을 받아 보고서 산에서의 생활이 편안하고 조용함을 알았으니 가히 기쁩니다.
나는 우선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보내온 세 비석의 인본印本은 그대로 받았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미자五味子도 감사합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8월 30일 호판戶判.

0001_0014_b_01L雲筆跡[搨]本亦依
0001_0014_b_02L雖非手筆亦可慰
0001_0014_b_03L不具

0001_0014_b_04L

0001_0014_b_05L二月晦日 貞洞

0001_0014_b_06L

0001_0014_b_07L承見書知山況安穩可喜
0001_0014_b_08L此中姑得無事矣送來
0001_0014_b_09L三碑印本依領良謝
0001_0014_b_10L五味子亦感不具

0001_0014_b_11L

0001_0014_b_12L八月 卅日
0001_0014_b_13L戶判

0001_0015_a_01L
붕 스님을 위해 제題하다 - 송운 대사 유고

보배를 말한 명성14)이 바다를 진동하는데
자비로운 항해로 동쪽을 떠가며 긴 고래를 짓밟았네
기허騎虛 대사에게 의발이 거듭 전해지고 있고

0001_0015_a_01L
爲鵬上人題

0001_0015_a_02L松雲大師遺稿


0001_0015_a_03L

0001_0015_a_04L說寶聲名震海
0001_0015_a_05L慈航東泛蹙
0001_0015_a_06L長鯨虛師鉢在

0001_0015_b_01L곽재우 장군15)은 마을에서 함께 신주를 나란히 모셨네16)
호걸이 많이 따라서 이교도들이 일어나고
문장은 남겨 주어 법등法燈과 함께하네
요遼 땅의 먼지가 일고자 하는데 먼저 입적하시니
팔방八方은 지금과 같이 비린내로 모두 물들었네.

0001_0015_b_01L仍傳印郭將村
0001_0015_b_02L同比妥靈豪傑
0001_0015_b_03L多從異敎起
0001_0015_b_04L章留與法燈幷
0001_0015_b_05L遼塵欲動先歸寂
0001_0015_b_06L八表如今盡染腥10)

0001_0016_a_01L
붕 스님의 처소에 보낸 답장
조동棗洞 책실冊室에서 보낸 답장


뜻밖에 문안 서찰을 받고서 귀양살이하는 생활이

0001_0016_a_01L
鵬上人 寓所 回傳

0001_0016_a_02L棗洞冊室 答簡


0001_0016_a_03L

0001_0016_a_04L匪意
0001_0016_a_05L審比來

0001_0016_b_01L평온함을 알았으니 위안되고 후련한 마음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의 나는 우선 예전 모습을 보존하고 있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보내온 비자榧子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객지에서 어떻게 능히 이것이 있었습니까? 도리어 마음에 불편함을 깨달았습니다.
붓과 먹 한 건을 같이 보냅니다.
어수선함이 심하여 우선 이렇게만 씁니다.

정묘년(1747) 1월 21일 조동棗洞의 김金 씨 서생이 답장을 쓰다.

0001_0016_b_01L謫況安穩慰寫難
0001_0016_b_02L此間姑保宿狀
0001_0016_b_03L可幸
0001_0016_b_04L送來榧子極感而客
0001_0016_b_05L裏何能有此還覺
0001_0016_b_06L不安于中筆墨
0001_0016_b_07L各一伴往耳擾甚姑此

0001_0016_b_08L

0001_0016_b_09L丁卯 正月 卄一日

0001_0016_b_10L棗洞 金生 謝11)

0001_0017_a_01L
붕 대사는 열어 보십시오

서찰을 보고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았으니 몹시 기쁩니다.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사당祠堂을 세우려는 곡절을 들으니

0001_0017_a_01L
鵬師 開見

0001_0017_a_02L

0001_0017_a_03L見書知好在
0001_0017_a_04L可喜吾姑保
0001_0017_a_05L聞建祠曲

0001_0017_b_01L염려가 됩니다. 만약 삼강동三綱洞에서 그대로 받든다면 홍제당弘濟堂 안에 있는 기문을 고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 중간 두 곳을 고쳐 써서 보냅니다.
보내 준 산의 음식은 정으로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먹 한 정丁을 보냅니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서찰을 받은 즉일에 손재損齋.
호조정랑戶曹正郎 조공趙公 재호載沽[浩]17)

0001_0017_b_01L爲之念焉若仍奉
0001_0017_b_02L于三綱洞則弘濟
0001_0017_b_03L堂中有
0001_0017_b_04L不可不改
0001_0017_b_05L中間二處改書以
0001_0017_b_06L送耳惠山味
0001_0017_b_07L見情貺也墨一
0001_0017_b_08L丁送之耳不一

0001_0017_b_09L

0001_0017_b_10L卽 損齋

0001_0017_b_11L戶曹正郎 趙公 載沽[浩]氏12)

0001_0018_a_01L
붕 대사께 보낸 답장

오래도록 만나 뵙지 못하여 그리움이 깊었는데, 뜻밖에 서찰을 받으니 다시 만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병이 몸에서 떠나지 않아 길게 신음을 일삼고 있으니 편안한 날이 항상 적습니다. 괴롭고 답답한 가운데 이번에 해가 바뀜을 당하여 천 리 밖의 외로운 처지에 있는 몸인지라 마음속의 회포가 좋지 않으니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고 스스로 가련하게 여깁니다.
사면 기일을 나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한번 와서 방문하여 막힌 회포를 풀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묘년(1747) 6월 초7일 귀양 와 있는 사람(纍人)이.

0001_0018_a_01L
붕 대사에게 보낸 답장
삼청三淸 서찰



0001_0018_a_01L
答鵬大師書13)

0001_0018_a_02L

0001_0018_a_03L久未接面戀深意外承
0001_0018_a_04L依若更逢吾病不離身長事
0001_0018_a_05L呻吟寧日恒少苦悶中當此歲
0001_0018_a_06L千里孤蹤心懷丕佳自憐自憐
0001_0018_a_07L赦期吾亦姑未的知矣一者來
0001_0018_a_08L俾攄阻懷庶可餘不一

0001_0018_a_09L

0001_0018_a_10L丁卯 六月 初七日 纍人

0001_0018_a_11L

0001_0018_a_12L鵬師 答寄14)

0001_0018_a_13L
三淸 書狀

0001_0018_a_14L

0001_0018_b_01L해가 가도록 소식이 막혔는데, 뜻밖에 백족白足(승려)이 와서 스님의 서찰을 전해 주었습니다. 인하여 귀양살이 가운데 조용히 지내는 생활이 맑고 고요함을 알았으니, 열어서 읽어 보고 너무나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나라의 경사에 너그러이 탕척蕩滌해 주는 은전을 적용할 것이니 대사의 석방에 대해서는 우려할 만한 일은 없을 듯합니다. 이른바 도교都敎(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가 바뀌었다고 말하니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지방에서 죄를 지어 유배 간 사람을 석방하느냐 석방하지 않느냐는 모두 감영에 달려 있고, 경사京司18)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서 보낸 비자榧子는 모두 정다운 뜻에서 나왔으니 많이 감사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책력 한 건을 서찰과 같이 보냅니다. 나머지 사연은 서찰에 다 쓰지 못합니다.
우선 이렇게만 쓰고 갖추지 못합니다.

정묘년(1747) 1월 20일 김金 진사進士.

0001_0018_b_01L經歲阻音匪意白足來傳
0001_0018_b_02L禪札仍審謫中靜況
0001_0018_b_03L淸寂披讀豈勝欣慰
0001_0018_b_04L示悉之今番邦慶宜用
0001_0018_b_05L廣蕩之典師之放釋似無
0001_0018_b_06L可慮矣所謂都敎換云云
0001_0018_b_07L知指誰而外方罪謫之放未放
0001_0018_b_08L都在於監營非京司之可
0001_0018_b_09L知也遠惠榧子儘出情意
0001_0018_b_10L多謝多謝曆書一件伴簡自餘
0001_0018_b_11L書不能旣姑此不具

0001_0018_b_12L

0001_0018_b_13L丁卯 元月 卄日 金進士

0001_0019_a_01L
붕 스님에게 답장을 보냄

스님이 이르러 손수 쓴 서찰을 보고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았으니 참으로 위안되고 참으로 위안되었습니다.
나는 객지에서 상을 만나 지금 막 운구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종종 슬퍼지는 마음을 어찌

0001_0019_a_01L
答寄鵬上人

0001_0019_a_02L

0001_0019_a_03L闍梨至
0001_0019_a_04L手滋知好在良慰良慰
0001_0019_a_05L客地遭喪今方運柩
0001_0019_a_06L還洛種種悲悼何可

0001_0019_b_01L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보내온 오미환五味丸은 정이 담긴 것이니 그대로 받았습니다.
나머지는 마음이 어수선하여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묘년(1747) 2월 24일 송宋 정자正字19)가 답장을 씀.

0001_0019_b_01L
서찰의 말미를 빌려 씁니다(借尾).20)
요사이 만나지 못해 슬프고 슬펐는데, 방금 손수 쓰신 서찰을 보니 위안되고 후련하여 얼마나 다행인지요? 받들어 전별하지 못하니 스스로 슬프고 암담할 뿐입니다.
호상護喪21)이 곧바로 장단長湍에 도착하여 장례를 치른 뒤에 그날 바로 내려가 서울 안의 소식을 자세하게 듣지 못한 듯하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만약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면 어찌 소식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어수선함이 심하여 갖추지 못합니다.

익호翼顥.

0001_0019_b_01L勝狀送來五味丸
0001_0019_b_02L受領情焉餘心撓
0001_0019_b_03L不多及

0001_0019_b_04L

0001_0019_b_05L丁卯 二月 卄四日 宋 正字 答

0001_0019_b_06L

0001_0019_b_07L
借尾近來阻面悵悵卽見
0001_0019_b_08L手滋何幸慰瀉未克奉別只自悵
0001_0019_b_09L護喪直到長湍過葬后卽日下
0001_0019_b_10L京中消息似不細聞可歎
0001_0019_b_11L若有聞知則何不傳信耶
0001_0019_b_12L甚不具

0001_0019_b_13L

0001_0019_b_14L翼顥

0001_0020_a_01L
남붕 스님은 답장을 보십시오

생각하며 그리워하던 끝에 손수 쓰신 서찰을 얻어 보니 직접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요사이 객지에 살면서 평안한지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이 갑절이나 됩니다.
나는 70세의 쇠약한 늙은이로 일삼는 것이라곤

0001_0020_a_01L
南上人 答見

0001_0020_a_02L

0001_0020_a_03L思戀之餘得見手滋
0001_0020_a_04L對良晤而況審伊辰
0001_0020_a_05L旅居平迪者乎欣慰倍品
0001_0020_a_06L吾七十衰翁所事者公

0001_0020_b_01L공적인 일이고 또 세금을 거두어 꾸려 싣는 일을 담당하여 거의 한가할 겨를이 없는 몸이니, 사람을 답답하게 하고 사람을 답답하게 합니다.
보내온 선당仙礑은 마침 구하기 어려운 가운데에 도착하여 때때로 입맛에 안정되니 옛사람의 정다운 맛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참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음달 10일에서 15일 사이에 장차 서울 걸음을 하려고 하는데 이로부터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한탄과 탄식이 그지없습니다.
나머지는 바쁘고 어수선하여 갖추지 못하며 다만 시절에 따라 진중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묘년(1747) 4월 18일 낭주朗州(영암) 관리가 답장을 씀.

0001_0020_b_01L而又當收稅裝載
0001_0020_b_02L無暇身悶人悶人送來仙
0001_0020_b_03L適及於難求之中時時
0001_0020_b_04L定於口味古人情味正謂此
0001_0020_b_05L良可深感開月旬望間
0001_0020_b_06L將作京行自此相逢未
0001_0020_b_07L恨嘆不已餘忙擾不
0001_0020_b_08L而只冀侍[對]時珍重耳

0001_0020_b_09L

0001_0020_b_10L丁卯 四月 十八日 朗州官 答書15)

0001_0021_a_01L
붕 대사에게 보낸 답장
달성 관아(達府)에서 씀


뜻밖에 백족白足이 와서 손수 쓰신 서찰을 전해 주었는데 마치 모습을 접한 듯했으니 기쁜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한결같이 골치 아프고 어수선하니 근심스럽고 답답하며 근심스럽고 답답합니다.
사면을 입은 일에 대해 어찌 일찍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미 문건을 작성해 아뢰어

0001_0021_a_01L
答鵬師

0001_0021_a_02L達府書


0001_0021_a_03L

0001_0021_a_04L意外白足來傳手字如接
0001_0021_a_05L眉宇欣喜不可量此中
0001_0021_a_06L一向惱撓愁悶愁悶蒙赦事
0001_0021_a_07L何不早報耶今已修

0001_0021_b_01L밀양密陽에서 논의함에 이르렀지만, 아마도 때늦은 탄식이 있을까 걱정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보내 준 여러 가지 물건을 객지에서 마련하여 보냈으니 도리어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끼겠습니다. 뒤에는 이와 같이 하지 마십시오.
매우 바빠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丁 자 들어가는 해(1747) 3월 28일 달성達城에서 쓰다.
추신
부채(箑子) 두 자루, 붓 두 자루, 먹 한 정.

0001_0021_b_01L致議密陽恐有後時
0001_0021_b_02L之歎奈何惠來諸種
0001_0021_b_03L地辦送還覺不安
0001_0021_b_04L勿如是也忙甚不一

0001_0021_b_05L

0001_0021_b_06L丁三之卄八日 達城 書

0001_0021_b_07L箑子二柄

0001_0021_b_08L筆二枝

0001_0021_b_09L墨一丁

0001_0022_a_01L
붕 대사는 보십시오

서찰을 보고 새해에 귀양살이하는 생활이 편안하고 좋음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의 나는 해가 가도 병은 떠나가지 않아

0001_0022_a_01L
鵬師開見

0001_0022_a_02L

0001_0022_a_03L
0001_0022_a_04L審得新
0001_0022_a_05L
0001_0022_a_06L謫況安佳
0001_0022_a_07L不可量此中
0001_0022_a_08L歲去而病不

0001_0022_b_01L오랜 시간 동안 신음하며 한숨만 내쉬고 있으니 괴롭고 답답합니다.
서울의 기별은 오래도록 듣지 못했습니다.
나머지는 바빠 답장에 일일이 언급하지 못합니다.

1월 초7일 인계仁溪에 귀양한 나그네(遷客)가.
송宋 정언正言

0001_0022_b_01L長時呻喟
0001_0022_b_02L苦悶京奇
0001_0022_b_03L
0001_0022_b_04L未得聞矣
0001_0022_b_05L餘忙謝不
0001_0022_b_06L一一

0001_0022_b_07L

0001_0022_b_08L正月初七日

0001_0022_b_09L仁溪 遷客

0001_0022_b_10L宋 正言

0001_0023_a_01L
붕 대사에게 보낸 답장
달성에서 쓰다


접때 서로 송별한 뒤에 아득히 소식이 없어 자못 서글펐습니다. 뜻밖에 서찰을 얻어 보고 귀양지에 도착하여 편안히 지내고 있음을 대략 알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만합니다.
나는 봄 석 달 동안 진휼하느라 골치가 아팠는데

0001_0023_a_01L
答鵬師

0001_0023_a_02L達城書


0001_0023_a_03L

0001_0023_a_04L向來相送後漠然無聲息
0001_0023_a_05L頗以爲悵料表得見書字
0001_0023_a_06L知到謫安過可謂不幸
0001_0023_a_07L中幸也吾三春惱

0001_0023_b_01L가뭄이 또 이와 같으니, 앞으로의 염려가 이르지 않을 데가 없을 것이니 재앙을 어찌하겠습니까?
보내 준 감태甘苔는 객지에서 이같이 서로 염려함이 있으니 애써 주시는 뜻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부채 두 자루를 보내니 받아 주기 바랍니다.
어수선하여 능히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6월(流月) 18일 달성達城에 체류하는 나그네가.

0001_0023_b_01L旱又如此前頭之慮
0001_0023_b_02L無所不至厄也奈何
0001_0023_b_03L送甘苔客中有此相念
0001_0023_b_04L意可感也兩箑送去
0001_0023_b_05L領之望也撓不能盡

0001_0023_b_06L

0001_0023_b_07L流月之十八日 達城 滯客

0001_0024_a_01L
붕 스님에게 보낸 답장
동해상東海上 게으른 관리의 답장


그리워하던 즈음에 비인祕印이 와서 천 리 밖의 정다운 서찰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대가 천태산天台山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데 주석한 이래로 다행히 질병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니, 멀리서 염려하던 마음을 조금 내려가게 했습니다. 다만 아직 사면을 입지 않아 청안靑眼을 뜨고22) 반갑게 만날 기약이 없으니, 비록

0001_0024_a_01L
鵬上人 鉢錫 回傳

0001_0024_a_02L東海上 倦吏 謝狀


0001_0024_a_03L

0001_0024_a_04L戀際祕印來傳千里外情書
0001_0024_a_05L聞君謫㞐[居]乃在天台山住錫以
0001_0024_a_06L幸無憂病足令遠心稍降
0001_0024_a_07L但未蒙赦至今拭靑無期

0001_0024_b_01L한스러워한들 어찌하겠습니까?
이곳의 나는 괴상한 고을에서 고된 벼슬살이를 하며 아직까지 벼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거쳐 지나가는 것이 난생에 처음 보는 근심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궁벽한 사람의 운명과 분수가 스스로 피하기 어려움을 알았으니, 구레나룻 위에 서리 맞은 듯한 백발白髮을 한 사람이 어찌 부끄러움을 품지 않겠습니까?
지난번 설송雪松 대사와 하룻밤의 정겨운 대화를 나누어 반드시 도모해서 풀려나서 가게 하려고 했습니다. 만일 가야산 아래에서 호남에서 온 그대를 다시 만난다면 세상의 인과를 설파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바라고 바랍니다.
돌아가는 스님이 답장을 재촉하여 바삐 쓰느라 뜻을 마치지 못하고 이렇게만 씁니다.

정묘년(1747) 6월 8일 청천靑泉 노생老生23).
추신
비자榧子는 비록 긴요하게 쓸 데는 없지만 그대가 정으로 주신 물건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붓 두 매를 서찰과 같이 보내고, 또한 모름지기 만나 보는 것을 대신합니다.

0001_0024_b_01L恨奈何此間恠邑酸官尙未脫
0001_0024_b_02L日日所經過者莫非此生刱見
0001_0024_b_03L之憂窮人命分自知難逭而髩
0001_0024_b_04L上霜毛寧不懷慙頃與雪松師
0001_0024_b_05L一宵情話必欲速圖解去若於
0001_0024_b_06L伽倻山下更逢君自湖南來
0001_0024_b_07L以說破世間因果是企是企歸僧
0001_0024_b_08L促答卒卒未竟意只此

0001_0024_b_09L

0001_0024_b_10L丁卯 六月 八日 靑泉老生

0001_0024_b_11L

0001_0024_b_12L榧子雖無緊用感君情貺筆二

0001_0024_b_13L枚伴書亦須替面看也16)

0001_0025_a_01L
붕 스님에게 보낸 답장
낭주朗州의 병든 나그네가 씀   (함緘)


선계禪界와 속계가 길이 달라서 오래도록 맑은 모습을 마주하여 현묘한 도리를 이야기하지 못했으니 그리운 생각이 바야흐로 간절하여 다만 스스로 바라보며 그리워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뜻밖에 동암東巖의 백족白足(승려)이 정겨운 서찰을 소매에서 꺼내어 전했습니다. 그래서 봉투를 바삐 뜯어 열어 보니

0001_0025_a_01L
鵬上人 梵榻 卽傳

0001_0025_a_02L朗州 病客書  (緘)


0001_0025_a_03L

0001_0025_a_04L禪俗路殊久謝對淸儀
0001_0025_a_05L談玄方切戀想只自瞻
0001_0025_a_06L萬千意外東巖白足
0001_0025_a_07L袖傳情訊書忙手開

0001_0025_b_01L마주한 것같이 기쁘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 서찰로 인해 산속 서재의 맑은 풍미와 여러 가지 정황이 매우 아름답고 좋음을 알았으니, 기뻐하는 마음 참으로 많습니다.
나는 한결같이 힘들고 바빠 아직껏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고 벼슬에서 벗어나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병든 사내가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꺾는24) 부끄러움에 스스로 웃음이 나옵니다. 만약 그리워하며 돌봐 주는 정의가 아니라면 먼 곳에서 여기까지 심부름꾼을 보내 문안하겠습니까? 많이 감사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기한 전에 청안靑眼을 뜨고 반갑게 만날 것을 기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찰에 임하여 크게 슬픕니다.
나머지는 바삐 쓰느라 서찰의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정묘년(1747) 5월 24일 낭주朗州(영암) 관아의 병든 사내가 씀.
추신
김(海衣) 세 톳, 미역(甘藿) 한 속을 소략하나마 보냅니다.

0001_0025_b_01L如對欣釋憑認山齋
0001_0025_b_02L淸味諸節佳勝爲喜
0001_0025_b_03L良多俺一味勞碌尙此
0001_0025_b_04L淹滯未得稅[脫]歸
0001_0025_b_05L笑病夫折腰五斗之羞
0001_0025_b_06L倘非戀眷之誼遠地伻
0001_0025_b_07L問至此耶多感多感前期拭
0001_0025_b_08L靑未易期臨書浩悵
0001_0025_b_09L忙草不具狀例

0001_0025_b_10L

0001_0025_b_11L海衣參吐

0001_0025_b_12L甘藿壹束略送

0001_0025_b_13L

0001_0025_b_14L丁卯 五月 卄四日 朗衙 病夫 書17)

0001_0026_a_01L
붕 대사의 객지 처소로 부치다
관산冠山의 답장        (완完)


지난날 잠시 만남은 여러 해 동안 서로 막힌 끝에서 나온 것인데, 곧바로 이별을 고했으니 지금까지 매우 슬펐습니다. 그런데 방금 손수 쓰신 서찰을 받고 겸하여 제자 스님까지 마주했으니 황홀하기가 다시 마주한 듯 했습니다. 다만

0001_0026_a_01L
鵬師 旅寓 回傳

0001_0026_a_02L冠山 答札     (完)


0001_0026_a_03L

0001_0026_a_04L前月霎逢出於積年
0001_0026_a_05L相阻之餘而卽告別迨極
0001_0026_a_06L悵然卽得手札兼對
0001_0026_a_07L弟子僧怳如更對而第

0001_0026_b_01L더위로 인해 생긴 병으로 신음하며 괴로워한다니 그립고 염려되는 마음 적지 않습니다.
나의 행차는 영문營門이 연고를 만난 탓으로 아직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관리가 영에 부임했으니 아마도 이달 20일 뒤에 즉시 출발하여 돌아가는 것을 결정할 듯합니다. 그 전에 만약 한번 찾아 주신다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어찌 기필할 수 있겠습니까?
남겨 둔 비문碑文을 이렇게 위임해서 보내 주셨으니 다정한 마음을 깊이 알았습니다만, 답례할 것이 없습니다. 박가 놈의 의심스러운 사건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그대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간폭簡幅(서찰지)은 마침 관청에 비축해 둔 것이 모자라고, 또 20폭을 먼저 보냈으니, 우선 뒤의 인편을 기다려 찾아서 요구에 부응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어수선하여 갖추지 못합니다.

정丁 자 들어가는 해(1747) 6월 초3일 수갑手甲25) 답장 서찰.
민광우閔光遇26)
추신
간지簡紙 20폭, 붓 한 자루, 먹 한 정.

0001_0026_b_01L以暑病呻楚傃慮不些
0001_0026_b_02L吾行以營門之遭故尙此
0001_0026_b_03L未發而今則新使莅營
0001_0026_b_04L於今念後卽發決歸之行
0001_0026_b_05L其前若一顧則可得穩吐
0001_0026_b_06L而何可必也留碑文有此
0001_0026_b_07L委送深認多情無以爲謝
0001_0026_b_08L朴漢致疑事豈可忘諸
0001_0026_b_09L依施之耳簡幅適乏官儲亦以卄幅
0001_0026_b_10L先送姑待後便覓副矣餘擾不具18)

0001_0026_b_11L

0001_0026_b_12L丁六 初三 手甲 謝札19)

0001_0026_b_13L閔光遇20)

0001_0026_b_14L

0001_0026_b_15L簡紙二十幅

0001_0026_b_16L筆一枝

0001_0026_b_17L墨一丁21)

0001_0027_a_01L
붕 스님의 선탑에 답장을 보냄
조천棗泉27) 김 씨 서생의 답장


소식이 막혀 그립고도 우울하였는데, 방금 뜻밖에 손수 쓰신 서찰을 얻어 보고 가뭄 더위에 귀양살이하는 형편이 좋고 괜찮다는 것을 알았으니, 매우 기쁘고 위안되었습니다.
보내온 두 가지 물건은 그대로 받았으니,

0001_0027_a_01L
鵬上人 禪榻 回呈

0001_0027_a_02L棗泉 金生 答狀


0001_0027_a_03L

0001_0027_a_04L阻信戀鬱卽其料外
0001_0027_a_05L得見
0001_0027_a_06L手字以審旱熱
0001_0027_a_07L謫況佳宜何等欣慰
0001_0027_a_08L送來兩種依領

0001_0027_b_01L멀리서 부친 정이 담긴 음식에 많이 감사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별지別紙에 말씀하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 너무나 불쌍하고 측은하지만 지금 새로운 관찰사를 힘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 이것이 염려스럽고 염려스럽습니다.
이곳의 나는 예전의 모습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부채 한 자루를 보내니 정으로 받아 주십시오.
일일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丁 자 들어가는 해 5월 14일 김金 씨 서생이 답장을 씀.
진사進士

0001_0027_b_01L遠寄之情餉多感多感
0001_0027_b_02L別紙示意備悉極可
0001_0027_b_03L愍惻然今新伯力無
0001_0027_b_04L可動是慮是慮此間姑保
0001_0027_b_05L宿狀良幸一扇送
0001_0027_b_06L可以領情也不一

0001_0027_b_07L

0001_0027_b_08L丁五十四 金生 謝

0001_0027_b_09L進士

0001_0028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완完)

매우 간절하였는데 뜻밖에 정겨운 서찰이 선단仙丹을 띠고 이 무렵에 갑자기 떨어져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보고 많이 감사했습니다. 하물며 심한 더위에 수련하시는 형편이 매우 좋음을 알았으니 많이 위안이 됩니다.
나는

0001_0028_a_01L
答鵬上人書  (完)

0001_0028_a_02L

0001_0028_a_03L阻戀方切意外情問
0001_0028_a_04L以帶仙丹怱[忽]墜此際
0001_0028_a_05L圭復多減[感]況審極
0001_0028_a_06L
0001_0028_a_07L鍊味佳勝多慰俺自

0001_0028_b_01L15일부터 거듭 더위로 인한 병과 감기를 얻어 사람과 귀신의 갈림길에 드나든 것이 거의 5, 6일 동안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오늘부터 비로소 조금 생기를 찾긴 했으나 완전하게 소생하는 것은 기약하기가 어려우니, 스스로 가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계禪界와 속세가 길이 다르고 산과 하천으로 막혀 있는데, 심부름꾼을 보내어 문안해 주시니 감사하고 위안되며 감사하고 위안됩니다.
시권詩卷은 보낸 대로 받았습니다. 병중에서 쓸쓸함을 달래는 거리로 삼을 만하니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나머지는 병으로 누워서 불러 주며 대신 쓰게 하므로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묘년(1747) 6월 20일 낭주朗州 관아에서 병든 나그네가 답장을 씀.

0001_0028_b_01L望日重得暑症與輪
0001_0028_b_02L減[感]出入人鬼關頭者
0001_0028_b_03L殆至五六日幸自今日
0001_0028_b_04L始尋生差而蘇完難
0001_0028_b_05L自憐自憐禪塵路殊
0001_0028_b_06L山川隔之專价伻問
0001_0028_b_07L慰感慰詩卷依領而可爲
0001_0028_b_08L病中罷寂之資幸幸
0001_0028_b_09L餘病臥呼倩不多及

0001_0028_b_10L

0001_0028_b_11L丁卯 六月 卄日 朗衙 病客 答書22)

0001_0029_a_01L
붕 대사에게 부치다
천곡의 귀양살이하는 객이 답장을 씀  (완完)


오래도록 서로 만나지 못하여 그립고 슬픈 마음 몹시 간절하였는데, 뜻밖에 손수 쓰신 서찰을 받고서 서늘한 가을에 한가히 지내는 생활이 매우 좋음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되며 기쁘고 위안됩니다.
나는 병이

0001_0029_a_01L
寄鵬大師

0001_0029_a_02L泉谷 纍客 答書  (完)


0001_0029_a_03L

0001_0029_a_04L久未相逢戀悵正切匪意獲
0001_0029_a_05L承手字以審秋涼
0001_0029_a_06L閑況佳勝欣慰欣慰纍拙病不

0001_0029_b_01L몸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부르짖으며 괴로워함을 일삼고 있습니다. 다리 벤 일(股事)을 사면하는 기일이 이렇게 지연됨에 이르렀습니다. 우울한 회포는 피차彼此가 마찬가지이니 어찌하겠습니까? 늘 한번 가서 막힌 회포를 풀고자 했으나, 일이 뜻과 같지 않아 아직 실행하지 못했으니 더욱 한스럽고 더욱 한스럽습니다.
보내 준 물건은 정이 듬뿍했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진중히 감사드리며 진중히 감사드리는 것은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는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정丁 자 들어가는 해 8월(觀月) 24일 민경閔景 흠사欠謝28).

0001_0029_b_01L離身長事叫苦股事之
0001_0029_b_02L赦期至此稽延鬱懷彼此一般
0001_0029_b_03L奈何每欲一往以叙阻懷
0001_0029_b_04L事不稽意尙未之果尤恨
0001_0029_b_05L尤恨惠物可感情厚謝珍
0001_0029_b_06L謝珍不獨在物也餘不具式

0001_0029_b_07L

0001_0029_b_08L丁觀月 卄四日 閔景 欠謝

0001_0030_a_01L
천 리 밖에서 서찰이 있어 뜻이 깊고 정중하니, 흡사 마주하여 샘물 소리와 산의 경치를 이야기하는 듯했습니다.

0001_0030_a_01L千里有書意甚
0001_0030_a_02L鄭重怳然如相
0001_0030_a_03L語泉聲山色

0001_0030_b_01L스님은 또 언제 서울에 오려고 합니까. 간절히 기다려지고 간절히 기다려집니다.
나의 서투른 시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병으로 아직 짓지 못했습니다. 조만간에 마땅히 두텁게 생각해 주는 뜻에 한번 부응하겠습니다.
심부름 온 스님이 서서 재촉하여 우선 갖추지 못합니다.

6월 14일 미천尾泉29)* 정우량鄭羽良(1692∼1754) :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9번 참조. 에서.

0001_0030_b_01L甁錫又欲以
0001_0030_b_02L何間西指殊爲
0001_0030_b_03L之懸企拙詩有
0001_0030_b_04L而病憂未果
0001_0030_b_05L早晩當一副厚
0001_0030_b_06L意也來僧立促
0001_0030_b_07L姑不具

0001_0030_b_08L

0001_0030_b_09L六月十四日 尾泉23)

0001_0031_a_01L
붕 대사에게 보낸 답장
정鄭 가평加平의 답장       (근봉謹封)


송운松雲 대사가 전해 준 의발이 우리 대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보기를 원했으나 보지 못했습니다. 접때 우연히 와서 방문했으니 하늘이 실제로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심기일전心機一轉하는 대화를 펴지 못하고 쉽사리 이별을 했으니

0001_0031_a_01L
鵬大師 旅榻 回納

0001_0031_a_02L鄭 加平 謝狀     (謹封)


0001_0031_a_03L

0001_0031_a_04L松雲傳鉢知有吾
0001_0031_a_05L願一見之而不可得向也
0001_0031_a_06L偶然來訪天實與之
0001_0031_a_07L而未展一轉話居然作別

0001_0031_b_01L마음속이 암담하고 슬퍼 지금까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뜻밖에 보내 준 서찰을 받고서 스님께서 아직 옛 처소에서 지내고 장차 여름이 지나가려고 하는데 도를 닦으며 지내는 형편도 다시 맑고 넉넉함을 알았으니 얼마나 위안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요.
이곳의 나는 홀아비로 혼자 불쌍하게 살아가며 병과 짝을 하여 속세에 대한 생각이 모두 재가 되었으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쳐 준 시축詩軸은 속세의 눈을 씻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병들어 갖추지 못합니다.

정묘년(1747) 6월 3일 재춘再春30)이.

0001_0031_b_01L中心黯悵至今未已
0001_0031_b_02L卽此意外獲承
0001_0031_b_03L惠翰以審
0001_0031_b_04L錫杖尙淹舊寓將以過
0001_0031_b_05L
0001_0031_b_06L道味亦復淸裕何等慰慰
0001_0031_b_07L此間鱞獨窮生與病爲
0001_0031_b_08L世念都灰無足言者
0001_0031_b_09L所寄詩軸可洗塵眼
0001_0031_b_10L病不具

0001_0031_b_11L

0001_0031_b_12L丁卯 六月 三日 再春24)

0001_0032_a_01L
붕 대사께 보낸 답장

석방이 되었으니 하늘같은 임금의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방금 서찰을 보고서

0001_0032_a_01L
鵬師答

0001_0032_a_02L

0001_0032_a_03L蒙放
0001_0032_a_04L天恩感激卽此見
0001_0032_a_05L

0001_0032_b_01L잘 지내고 계시는 상황을 알았으니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보내온 앞뒤의 여러 물건은 모두 진귀한 맛입니다. 그 정이 담긴 맛이 비록 매우 좋긴 하지만 이곳에 앉아 산에서 지내는 사람의 음식을 받으니, 이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돌아올 때 들러서 뵙기를 이에 바랍니다.
바쁘고 어수선하여 갖추지 못합니다.

서찰을 받은 당일에 선칠宣七31) 답장.

0001_0032_b_01L好在狀良慰
0001_0032_b_02L送來前後各種
0001_0032_b_03L是珍味
0001_0032_b_04L情味雖甚佳坐此
0001_0032_b_05L
0001_0032_b_06L山人之餉此心豈安
0001_0032_b_07L歸時歷見是企
0001_0032_b_08L忩撓不具

0001_0032_b_09L

0001_0032_b_10L卽 宣七 答狀25)

0001_0033_a_01L

0001_0033_a_01L
26)
0001_0033_a_02L實相竗法 巧喩蓮花 內則卽指乎一心 外則該統乎萬境
0001_0033_a_03L方花郞果處染常淨 此心之相實也 生佛本有淪變 未隨此境
0001_0033_a_04L慧禪之來 承書 敢渴喜瀉耶
0001_0033_a_05L玆敢護頌光朗明藏然(……)
0001_0033_a_06L紙善送之也 領情焉 不備伏惟
0001_0033_a_07L失也 願諸同半 果勿尋常示之 而■寶守護
0001_0033_a_08L寶藏錄深藏于表忠寺中 任之相傳 固勿遺
0001_0033_a_09L寶藏錄 久在於本院中
0001_0033_a_10L藏之久靑以欲聳出白雲丹霞之中 敢格堂者
  1. 1) 상가喪家 : 원문의 제차制次는 상제喪制를 당한 상주喪主가 거처하는 곳을 가리킨다.
  2. 2) 위황爲況 : 학문하는 상황. 위爲는 학學과 같음. 학문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말.
  3. 3) * 정우량鄭羽良(1692~1754) :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9번 참조.
  4. 4) 공동公洞에서 병든 나그네 : 공동 산인公洞散人. 호조 참판 윤득화(권1 서간 14번 참조).
  5. 5) * 김재로金在魯 : 권1의 서간 2번 참조.
  6. 6) 황감黃柑 : 감귤. 잘 익어서 황금빛이 나는 홍귤.
  7. 7) 요가鐃歌 : 징을 두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로, 군악軍樂이다. 진양陳暘의 『악서樂書』에 “『주관周官』 「고인鼓人」에 ‘금요로 북을 그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소리가 요요譊譊하기 때문에 요라고 이름을 지었다.”라고 했다. 『설문說文』에 이르기를, “요는 소정小鉦(작은 징)이다. 자루가 속에서 위아래로 통한다. 한漢나라의 고취곡鼓吹曲에 요가라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무무武舞를 물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8. 8) * 이존중李存中(1703~1761)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경이敬以, 호는 하당荷堂·척재惕齋.
  9. 9) * 윤광의尹光毅(169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 자는 사홍士弘. 1742년(영조 18) 교리에 제수되었으나 조경趙璥의 처치를 옥당玉堂(홍문관)과 대간이 서로 미룬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부수찬으로 복귀하였다. 정조 때 판중추부사 윤숙尹塾에 의해 청백리에 추천, 선발되었다.
  10. 10) 조동棗洞 : 권3의 23번 서간 각주 21번 참조.
  11. 11) 주사랑籌司郞 : 비변사備邊司 낭관郎官.
  12. 12) 부복賦鵩 : 〈복조부鵩鳥賦〉를 짓다. 곧 유배 생활을 의미한다. 한 문제漢文帝 때 태중대부太中大夫 가의賈誼가 참소를 입어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폄척되어 나간 지 3년째 되던 어느 날 올빼미가 그의 집에 날아들어 자리 한구석에 앉았다. 장사 지방은 본래 땅이 낮고 습기가 많아서 가의는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데다 겸하여 그의 집에 올빼미가 날아들자, 올빼미는 본디 상서롭지 못한 새라서 불길한 생각에 〈복조부〉를 지어 스스로 위안했다.
  13. 13) 장사長沙 : 앞의 서간 각주 10번 부복賦鵩 참조.
  14. 14) 보배를 말한 명성(說寶聲名) : 사명당 유정이 일본에 협상차 갔을 때 일본의 가토가 “너희 나라에 보배가 있느냐”고 묻자 대사는 “우리나라에는 보배가 없다. 보배는 일본에 있다.”고 대답했다. 가토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사명은 “우리나라에서는 네 머리를 보배로 알고 있다. 그러니 보배는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답하여 놀라 탄복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 때문에 사명은 설보 화상說寶和尙, 즉 ‘보배를 말한 스님’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15. 15) 곽재우郭再祐 장군 : 권3의 195쪽, 7번 시고詩稿 주석 참조.
  16. 16) 신주를 … 모셨네 : 원문의 ‘타령妥靈’은 죽은 사람의 위패를 일정한 곳에 잘 모셔 놓고 섬기는 것이다.
  17. 17) * 조재호趙載浩(1702∼1762)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경대景大. 호는 손재損齋. 1739년(영조 15) 우의정 송인명宋寅明의 천거로 세자시강원에 등용되었다. 그 뒤 홍산 현감鴻山縣監으로 있으면서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 승지로 특진되었고 이어 경상도 관찰사· 이조 판서 등을 거쳐 1752년 우의정이 되어 『천의소감闡義昭鑑』의 편찬을 주관하였다. 저서로 『손재집』 15권이 있다.
  18. 18) 경사京司 : 서울에 있는 관청의 총칭. 정1품부터 종6품까지의 관청. 경각사京各司.
  19. 19) 정자正字 : 조선 시대 홍문관·승문원·교서관(뒤에 규장각에 소속)의 정9품 관직.
  20. 20) 차미借尾 : 상대방이 보낸 서찰의 꼬리 부분을 빌려 쓰는 것.
  21. 21) 호상護喪 : 상주를 대신하여 초상初喪 치르는 모든 일을 관장하여 보살피는 일을 맡아 보는 사람.
  22. 22) 청안靑眼을 뜨고 : 원문의 식청拭靑은 식청안拭靑眼과 같은 말로 반가운 눈빛을 말한다. 진晉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예교에 얽매인 속된 선비가 찾아오면 백안을 뜨고, 맑은 고사高士가 찾아오면 청안을 뜨고 대했다고 한다. 『진서晉書』 권49 「완적열전阮籍列傳」.
  23. 23) * 신유한申維翰(1681~1752) : 조선 후기의 문인. 권4의 서간 45번 참조.
  24. 24)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꺾는 : 녹봉을 받기 위해 윗사람의 비위를 맞춤을 이르는 말. 동진東晉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다가 “내 어찌 녹미祿米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독우에게 절을 할 것이냐.”라는 내용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뒤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을 안빈낙도하며 살았다.
  25. 25) 수갑手甲 : 『영조실록』 65권, 1747(영조 23) 4월 28일(丁亥) 세 번째 기사에 장령掌令 안식安栻이 상소하여 잘못이 있는 지방관을 사판에서 삭제할 것을 청하는 조목에 “장흥 부사 민광우閔光遇는 외람되게 청현직淸顯職에 올라 오로지 아첨하기만 일삼았는데, 더구나 이러한 흉년에 자목지임字牧之任에 배치하는 것은 곤란합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그 아래 비답批答에는 “민광우는 부임하여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아무리 탐욕스럽다 하더라도 어느 겨를에 미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어떤 법률상의 제재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해 6월 13일(병인) 승지承旨에 제수되었다.
  26. 26) * 민광우閔光遇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군회君會. 민경閔璟의 아들로 영조 때 지평 持平과 정언正言 등을 거쳐 장흥 부사를 역임했다.
  27. 27) 앞의 16번 조동棗洞 서간 참조.
  28. 28) 흠사欠謝 : 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보낸다는 뜻으로, 편지 사연을 다 쓰고 자기 이름 아래에 쓰는 말.
  29. 29) 미천尾泉 : 앞의 권5 서간 2번 참조. 미천에서 보낸 편지에 ‘판서判書 정우량鄭羽良’이란 첨지籤紙가 붙어 있다.
  30. 30) * 정재춘鄭再春 : 영조 대의 문신으로 예조 좌랑과 기사관記事官을 거쳐 가평 군수를 역임했다.
  31. 31) 선칠宣七 : 전라남도 강진康津과 나주 남평南平의 동헌을 선칠당宣七堂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누구의 자字로도 보인다.
  1. 1) 원본에는 ‘判書 鄭羽良’이 ‘0002_a’에 있음.
  2. 2) 원본에는 ‘乙丑’이하 ‘略送’까지가 ‘0004_a’에 있음.
  3. 3) 이 시는『표충사제영表忠祠題詠』 권7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4. 4) 이 시는『표충사제영表忠祠題詠』 권5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5. 5) 원본에는 ‘乙丑’이하 ‘略送’까지가 ‘0004_a’에 있음.
  6. 6) 원본에는 ‘不具式’이 ‘00010_b’의 상단에 있음.
  7. 7) 원본에는 ‘丙寅’이하 ‘李洙’까지가 ‘00010_a’에 있음.
  8. 8) 원본에는 ‘受而’이하 ‘伏惟’까지가 ‘00012_b’의 상단에 있음.
  9. 9) 원본에는 ‘情亮’이하 ‘興新’까지가 ‘00012_a’에 있음.
  10. 10) 마지막 두 구(遼塵欲動先歸寂。 八表如今盡染腥。)는 편지에서는 누락되었는데,『표충사제영表忠祠題詠』 권5의 원문을 참조하여 보충하고 번역하였다.
  11. 11) 원본에는 ‘棗洞’이하 ‘謝’까지가 ‘00016_a’에 있음.
  12. 12) 원본에는 ‘卽’이하 ‘氏’까지가 ‘00017_a’에 있음.
  13. 13) 이 글은 속지에 있다.
  14. 14) 이 글은 속지에 있다.
  15. 15) 원본에는 ‘丁卯’이하 ‘答書’까지가 ‘00020_a’에 있음.
  16. 16) 원본에는 ‘榧子’이하 ‘看也’까지가 ‘00024_b’의 상단에 있음.
  17. 17) 원본에는 ‘忙草’이하 ‘書’까지가 ‘00025_a’에 있음.
  18. 18) 원본에는 ‘依施’이하 ‘不具’까지가 ‘00026_b’의 상단에 있음.
  19. 19) 원본에는 ‘丁六’이하 ‘謝札’까지가 ‘00026_a’에 있음.
  20. 20) 원본에는 ‘閔光遇’가 ‘00026_a’의 상단에 있음.
  21. 21) 원본에는 ‘簡紙’이하 ‘一丁’까지가 ‘00026_a’에 있음.
  22. 22) 원본에는 ‘丁卯’이하 ‘答書’까지가 ‘00028_a’에 있음.
  23. 23) 원본에는 ‘姑不具’이하 ‘尾泉’까지가 ‘00030_a’에 있음.
  24. 24) 원본에는 ‘丁卯’이하 ‘再春’까지가 ‘00031_a’에 있음.
  25. 25) 원본에는 ‘卽’이하 ‘答狀’까지가 ‘00032_a’에 있음.
  26. 26) 이 글은 속지에 있다. 후대에 누군가가 연습 삼아 쓴 것으로 보인다. 번역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