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집성문헌

ABC_NC_02402_0001_T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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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독
[간독]
바람이 계수나무 건너니 향기가 뜰에 가득하고,
달이 기러기 행렬 뚫어도 공중에 쓰기 어렵네.1)
몇 조각 흰 구름이 옛 절을 감싸는데,
한 줄기 푸른 시냇물은 청산을 돌아가네.2)

0001_0001_b_01L簡牘
[簡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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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錄〉1)

0001_0001_b_02L風渡桂木香滿院
0001_0001_b_03L月穿鴈字難書空
0001_0001_b_04L數片白雲隴[籠]古寺
0001_0001_b_05L一條綠水繞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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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대사에게 보낸 답장
            (봉封)


서찰을 받고 대사大師께서 편안히 잘 지내시는 것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적지 않습니다.
이곳의 나는 피곤하고 지쳐서 지탱할 수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요구한 글은 바빠서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가 지금 서찰을 쓰려고 종이를 대하고서 겨우 몇 구절 지어 서찰의 말미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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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師 奉謝

0001_0002_a_02L       (封)


0001_0002_a_03L

0001_0002_a_04L承書
0001_0002_a_05L師況安好爲慰不淺
0001_0002_a_06L中勞弊不可支奈何所索
0001_0002_a_07L文字汨擾未曾入思今臨書
0001_0002_a_08L聊占數句錄在紙尾

0001_0002_b_01L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6월 15일 귀록 산인歸鹿山人
추신
대사께서 텅 빈 산에 쓸쓸히 지낼 적에는
마른 나무와 타고 남은 재와 같았으니
어찌 그리도 고요했던가
어느 날 칼을 잡고 일어나
왜적을 삼대처럼 베었으니
어찌 그리 용맹하셨던가
나는 부처가 체만 있고 용이 없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네.3)

귀록 산인歸鹿山人4) 찬贊.

별록
하늘과 땅이 검푸르고 넓어 소식이 드무니, 삼가 슬픔이 더욱 깊습니다. 삼가 요즈음의 기력이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0001_0002_b_01L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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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02_b_03L己未 六月 流頭日 歸鹿山人

0001_0002_b_04L

0001_0002_b_05L甁錫空山索然若枯木死灰何其靜也
0001_0002_b_06L一日杖劍而起斫賊如麻何其勇也
0001_0002_b_07L吾不信佛氏之有體而無用也
0001_0002_b_08L歸鹿山人 贊

0001_0002_b_09L

0001_0002_b_10L天地滄濶問聞稀罕伏悵加深
0001_0002_b_11L謹未審此時氣力何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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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께 보냄
화상찬畫像贊을 동봉함


둥실둥실 한 승려가 푸른 바다를 떠가니
물결은 동쪽 바다에 엎드려 있고 악어와 고래도 달아나네
조정 위한 방략이 처음에는 복과 이익을 구하였지만
불심은 원래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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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師

0001_0003_a_02L畫像贊 同封


0001_0003_a_03L

0001_0003_a_04L飄然一衲汎滄溟波伏
0001_0003_a_05L扶桑遁鰐鯨廟算初
0001_0003_a_06L作要福利佛心元欲度

0001_0003_b_01L안개와 노을 속의 절에 바람과 구름도 변하고
병발과 석장이 남은 사당에 제기 늘어져 있네
어찌 능히 부처가 거듭 세상에 나오리오!
남쪽의 요상한 기운 여전히 나쁜데 북쪽에 먼지와 비린내 나네.

기미년(1739) 귀록 산인歸鹿山人5).

0001_0003_b_01L生靈烟霞淨界風雲變
0001_0003_b_02L錫遺祠俎豆幷安得如
0001_0003_b_03L來再出世南氛尙惡北
0001_0003_b_04L塵腥

0001_0003_b_05L

0001_0003_b_06L己未春月 歸鹿山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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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대사의 인사寅史에게 보냄

해海 스님이 서찰을 보내고 산의 음식을 곁들여 보냈으니, 펼쳐 보고 감사한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다만 듣건대 불가의 큰일이 문득 귀신의 장난을 만났다 하여 새로 부임한 관찰사에게 한 통의 서찰을 써서 부쳤습니다.
이곳의 나는 병들어 똑같이 지내니 어쩌면 좋습니까?
갖추지 못합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39) 6월 15일 감옥에서 쓰다.
별록
해질 무렵에 보내주신 물건에 먹이 곁들여 당도한데 나도 모르게 맑고 깨끗하여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겠네.
이곳은 잠시 머물러 있지만 활발한 곳을 보존하지 못하여 그 때에 우선 답장을 쓰지 못하였네. ■ 혹시 가히 상세히 알아주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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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師 寅史

0001_0004_a_02L

0001_0004_a_03L海上人致書
0001_0004_a_04L山味披感如何
0001_0004_a_05L第聞空門大事
0001_0004_a_06L忽遭魔戱
0001_0004_a_07L裁一簡於新伯
0001_0004_a_08L以付耳賤疾一羕
0001_0004_a_09L不具

0001_0004_a_10L

0001_0004_a_11L己六望 獄下

0001_0004_a_12L

0001_0004_a_13L日落之際惠貺帶墨來到
0001_0004_a_14L不覺淸爽不可言此中有少
0001_0004_a_15L住着而未存活潑之地其時姑未
0001_0004_a_16L答書矣■或可詳知否耶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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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법사에게 보내니 펼쳐 보시오
백동栢洞 답장


자네의 서찰을 받고서 장마와 더위에 연이어 무사함을 알았으니 참으로 기쁜 마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네.
이곳의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며, 나머지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보내 준 사찰의 음식은 정으로 받겠네. 먼 길에 이렇게 서찰을 보내 주니 자네의 정을 상상할 만하네.
나머지는 이만 줄이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39) 6월 14일 백동栢洞에서 쓰다.
대사성大司成 김상성金尙星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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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法師 開見

0001_0004_b_02L栢洞 答書


0001_0004_b_03L

0001_0004_b_04L得見汝書以悉霾
0001_0004_b_05L炎連得無事良喜
0001_0004_b_06L難量此處姑保
0001_0004_b_07L何言送饋僧饌
0001_0004_b_08L領情矣遠路有此
0001_0004_b_09L委問可想汝情
0001_0004_b_10L不究 大司成 金尙星

0001_0004_b_11L

0001_0004_b_12L己 六月 十四日 栢洞 書

0001_0004_b_13L

0001_0004_b_14L南方之書飛落城都喜何可量
0001_0004_b_15L憑諦道履淸勝爲荷爲荷此中姑迪
0001_0004_b_16L幸也前日有書所托姑未副
0001_0004_b_17L爲汝愧歎不備書禮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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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사께 보낸 답장
창동倉洞 홍 참판댁洪參判宅에서 보냄


스님께서 한번 떠난 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항상 간절했는데, 서찰이 와서 산에 기대어 살며 탈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원하는 바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니 위안되고 기뻐함을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의 나는 겨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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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寄鵬師

0001_0005_a_02L倉洞 洪參判宅 出


0001_0005_a_03L

0001_0005_a_04L白衲一去戀思常
0001_0005_a_05L書來知憑山無
0001_0005_a_06L所願順成慰喜
0001_0005_a_07L不可言此中堇[僅]保

0001_0005_b_01L□…□
찍어 내면 다시 반드시 한 건을 부쳐 보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언제 마땅히 다시 오시는지요?
나머지는 우선 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1월 초9일 창동倉洞의 병든 서생이.
창동倉洞 병조 판서兵曹判書 홍경보洪景輔7)

0001_0005_b_01L□…□
0001_0005_b_02L印出復必須寄
0001_0005_b_03L送一件也甁錫何
0001_0005_b_04L當復來餘姑不悉

0001_0005_b_05L

0001_0005_b_06L己未元月初九日
0001_0005_b_07L倉洞 病生

0001_0005_b_08L倉洞 兵曹判書 洪景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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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대사께 보낸 답장

해가 바뀌어 그리움이 간절하던 무렵에 서찰이 이르러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답답했던 마음이 확 뚫립니다.
이곳의 나는 병이 심하여 돌아갈 생각을 날마다 재촉하는데, 출발할 기일은 다음 달 보름쯤일 듯합니다.
그 전에 스님이 오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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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寄鵬衲

0001_0006_a_02L

0001_0006_a_03L歲新戀切此際書
0001_0006_a_04L審安可豁
0001_0006_a_05L病谻歸思日催行期
0001_0006_a_06L似在來望其前杖

0001_0006_b_01L별서別書와 산초山椒를 가지고 왔으니 정겨운 맛이 끝이 없었습니다. 산의 향기가 사람을 엄습한다고 할 만합니다.
역서曆書에 산속에 달력이 없으니 산의 푸름으로 봄의 때를 안다8)고 했습니다. 꽃비가 내리는 선방에서 무슨 시를 지어 속세에 걸겠습니까? 우습습니다.
그리고 백력白曆9) 두 건을 부칩니다.
나머지는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39) 1월 27일 취산鷲山의 병든 나그네가.
운산 감림雲山監林

0001_0006_b_01L錫來別書山椒
0001_0006_b_02L帶來無限情味
0001_0006_b_03L山香可謂襲人也
0001_0006_b_04L曆書山中無曆日
0001_0006_b_05L山靑識春時雨花
0001_0006_b_06L禪房何詩俗裏扐
0001_0006_b_07L揲耶好笑然而二件
0001_0006_b_08L白曆付之耳
0001_0006_b_09L餘不多及5)

0001_0006_b_10L

0001_0006_b_11L己元卄七 鷲山 病客 雲山監林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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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대사에게 서찰을 보내니 살펴봐 주십시오
답장을 올리다               (각恪)


뜻밖에 동림東林의 서찰이 멀리 장안의 눈 내리는 집에 떨어졌으니 어루만지며 마주한 것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하시니 그 위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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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闍黎 法案

0001_0007_a_02L心照  奉謝帖      (恪)


0001_0007_a_03L

0001_0007_a_04L意外
0001_0007_a_05L東林楮墨遠落長
0001_0007_a_06L安雪屋摩挲不釋如
0001_0007_a_07L法師□□其爲慰

0001_0007_b_01L감사한 마음이 보배로운 구슬(摩尼珠)을 더듬어 얻는 것 같을 뿐만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지난번 심한 추위에 승상繩床(접을 수 있도록 노끈으로 얽어 만든 의자)에 기대어 지내시는 생활이 잘 적응됨을 알았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사문師門의 큰일이 뜻에 따라 순조롭게 이루어지니, 이것은 산림山林의 경제經濟에 대한 고인高人의 수단이 있어서일 뿐만 아니라, 실로 향 대사向大師의 성실함과 근면함이 관찰사의 마음을 감동시킨 데서 말미암은 것이니, 그지없이 감탄이 나옵니다.
이곳의 나는 삼동三冬에 방에 누워 한결같이 병으로 신음하고 있으니 스님을 향해 말씀 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언급한 삼청三淸의 시축은 겨울 동안에 안산安山으로 가는 인편이 전혀 없어서 베껴 오지 못했습니다. 또 이 스님이 급히 돌아가서 이번에는 요구에 부응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음에 만약 왕래가 있으면 다시 제시해서 찾아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서찰로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기미년(1739) 1월 상현上弦에 영주永冑가.
명례방동明禮方洞(한양 명동) 이 진사李進士

0001_0007_b_01L不啻探得摩尼珠
0001_0007_b_02L況諦向來虐寒
0001_0007_b_03L繩床興居調適
0001_0007_b_04L師門大事從欲順成此不
0001_0007_b_05L但山林經濟有高人手段
0001_0007_b_06L實由於向師誠勤
0001_0007_b_07L牧伯之心爲之感歎不已
0001_0007_b_08L此中三冬臥室一味吟
0001_0007_b_09L無可向法侶言者
0001_0007_b_10L示及三淸詩軸冬間
0001_0007_b_11L絶無安山便未克謄來且此上人
0001_0007_b_12L急歸今番末由依副來頭如
0001_0007_b_13L有往來更示覓去如何
0001_0007_b_14L萬匪書可旣不宣7)

0001_0007_b_15L

0001_0007_b_16L己未元月上弦 永冑

0001_0007_b_17L明禮方洞 李進士8)

0001_0008_a_01L
남 대사께 부치다
영천 수령이 쓰다  (봉封)


지난번 만남이 늦은 탄식이 있었는데, 바쁜 탓으로 온당하게 말을 나누지 못해 지금까지 아쉽고 섭섭합니다. 요사이 참선하시며 지내는 생활이 좋으신지요?
현재 어느 곳에서 사시며, 공역工役은

0001_0008_a_01L
南大師 禪案 奉呈

0001_0008_a_02L永川守書     (封)


0001_0008_a_03L

0001_0008_a_04L頃有見晩之歎而緣忙未穩
0001_0008_a_05L迨用耿悵卽問近來
0001_0008_a_06L禪況平迪否方住何處而工役

0001_0008_b_01L지금 어느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그리운 마음 끝이 없습니다.
군정軍丁10)은 두 절의 승려(緇徒)가 이 같은 흉년을 만나 유랑하는 나머지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이 60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대부 집안에 재실을 지키는 승려를 찾아내어 숫자를 채워 보내니 헤아려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부디 어루만지며 일을 시켜서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르지 말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한 이 뜻을 영문營門에 논보論報11)했습니다.
사師 자 운韻으로 바쁜 가운데 겨우 차운하여 태지胎紙로 올립니다. 보신 뒤에 병마개(覆甁)12)나 삼기를 바랍니다.
어수선함이 심하여 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2월 22일에 영천永川 수령이
별록
서울에서 온 서찰 모음 100여 축은 잘 보관하겠습니다.

0001_0008_b_01L今至何境耶馳溸不已軍丁
0001_0008_b_02L兩寺緇徒値此飢荒流離之
0001_0008_b_03L時存者不過六十名故搜出士
0001_0008_b_04L夫家守齋僧充數起送
0001_0008_b_05L諒察而亦須撫恤使役毋至餓
0001_0008_b_06L死之境如何如何亦以此意論報
0001_0008_b_07L營門耳師字韻倥怱中
0001_0008_b_08L次胎呈覽後覆甁爲望
0001_0008_b_09L擾甚不具9)

0001_0008_b_10L

0001_0008_b_11L己未 二月 念二日 永川守10)
0001_0008_b_12L

0001_0008_b_13L京簡軸百餘𨋀留藏耳11)

0001_0009_a_01L
붕 상인께 올리는 답장

지난겨울에 보낸 답장 서찰은 받아 보셨는지요? 그 뒤로 소식이 막혀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매우 깊었습니다. 이런 무렵에 서찰이 도착하여 펴 보고서 연이어 잘 지내고 계심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럭저럭 지내는데 뜻밖에도 면面과 읍邑에 제수되었습니다. 출발할 기일은 아직 분명하게 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부임하기 전에 올라온다면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니,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온 스님을 바로 불러 보았는데 그 스님이 이미 충주와 광릉 두 곳의 산소를 들러서 보고 왔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오화당약五花糖藥13)과 자반(佐飯)은 보내 주신 대로 받았으니 많이 감사합니다.

0001_0009_a_01L
鵬上人 答

0001_0009_a_02L

0001_0009_a_03L客冬答札見否伊後仍阻聲
0001_0009_a_04L悵戀政深書到此際披審
0001_0009_a_05L連得好過慰不可量吾堇遣
0001_0009_a_06L而意外得面邑之除行期姑未
0001_0009_a_07L的定而若於未赴前上來則可得
0001_0009_a_08L相見企企來釋卽爲招見渠已
0001_0009_a_09L歷見忠州廣陵兩處山所而來
0001_0009_a_10L五花糖藥佐飯依領

0001_0009_b_01L바빠서 우선 일일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미년(1739) 6월 15일에 정동貞洞 책실冊室에서 쓰다.
강서 현령 김金
추신
사당을 세우는 일은 또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표충表忠’으로써 이름을 정했다고 하는 데, 다시 논의할 일은 없을 듯합니다.
붓과 먹 각각 한 개씩을 보냅니다.

0001_0009_b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서찰을 보고 근황近況을 알았으니 위안되고 기뻤습니다.
화상찬畵像贊은 써서 보냈고 기문에 이르러서는 내가 현재 사소한 일로 상경했으니 관아로 돌아간 뒤에 유념하겠습니다.
칭념稱念14)하는 일도 또한 마땅히 천천히 하겠습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3월 22일 세금당洗襟堂에서.

0001_0009_b_01L忙姑不一

0001_0009_b_02L

0001_0009_b_03L己未流月望日 貞洞 冊室

0001_0009_b_04L江西縣令 金12)

0001_0009_b_05L

0001_0009_b_06L立祠事亦悉之矣今日以表
0001_0009_b_07L爲定云似無更議之事矣
0001_0009_b_08L墨各一送之13)

0001_0009_b_01L
鵬師 答

0001_0009_b_02L

0001_0009_b_03L見書以諦近況慰喜畫像
0001_0009_b_04L贊書送而至於記文吾方以
0001_0009_b_05L些小事上京還官後可留
0001_0009_b_06L稱念事亦當徐爲之耳
0001_0009_b_07L不具

0001_0009_b_08L

0001_0009_b_09L己未三月卄二日 洗襟堂

0001_0010_a_01L
붕 스님이 경전 공부하는 곳에 보낸 답장

지난번에 손수 쓰신 서찰을 보고서 경전을 공부하며 지내는 안부가 좋고 편안함을 알았으니 위안이 됩니다. 또 사당의 현판을 장차 건다고 들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나는 부모님께서 병이 들어 여러 달 동안 침울하게 계셔서 애타고 걱정이 됩니다.

0001_0010_a_01L
鵬上人 經幃 回傳

0001_0010_a_02L

0001_0010_a_03L頃見手告
0001_0010_a_04L經況佳好爲慰且聞
0001_0010_a_05L祠板將揭良喜
0001_0010_a_06L親癠積月沈矣

0001_0010_b_01L요청한 시는 병환 때문에 지어 보내지 못했습니다. 우선은 뒤에 오는 인편을 기다릴 뿐입니다.
마음이 어수선하여 이만 줄입니다.

기미년(1739) 1월 1일 소동少洞에서 쓰다.
송주동松柱洞 윤尹 황해 감사黃海監司 윤득화尹得華15)

0001_0010_b_01L煎悶所請詩
0001_0010_b_02L病患不有製送
0001_0010_b_03L姑俟後便耳
0001_0010_b_04L撓不宣

0001_0010_b_05L

0001_0010_b_06L己未 元月 一日 少洞 書

0001_0010_b_07L松柱洞 尹 黃海監司

0001_0010_b_08L尹得華

0001_0011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백족白足이 와서 자네의 서찰을 받아 보고 비로소 경전을 공부하며 편안히 지냄을 알았으니 기쁜 마음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곳의 나는 부모님을 모시며 그럭저럭 편안히 지내고, 조정의 일도 편안하니 이것이 매우 다행스럽네.
부탁한 액판額板은 요사이 조정 일이 어수선하여 아직 부응하지 못했다네. 바라는 대로 베껴 보내겠으니 말하지 말게나.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네.

0001_0011_a_01L
표충사 건축을 경영하는 스님인 남붕은 열어 보시라
조동曹洞의 이 참판李參判 보냄


뜻밖에 서찰을 받고서 요사이 잘 지냄을 알았으니 매우 기쁘네.
이곳의 나는 어제와 같다네.

0001_0011_a_01L
答鵬師 書

0001_0011_a_02L

0001_0011_a_03L白足之來得見汝書始知
0001_0011_a_04L經履平安喜何可量此中侍
0001_0011_a_05L事粗安而朝事亦寧是幸是幸也
0001_0011_a_06L托額板近來朝事紛紜姑未副
0001_0011_a_07L從欲寫送勿道焉餘不具

0001_0011_a_08L

0001_0011_a_09L
表忠祠營建僧鵬 開見

0001_0011_a_10L曹洞 李參判 答書


0001_0011_a_11L

0001_0011_a_12L意外得書知近日
0001_0011_a_13L好過可喜此間如昨

0001_0011_b_01L보내온 후추(胡椒)는 정이 담긴 맛이라 할 수 있는데, 자네는 어느 곳에서 이것을 얻어 이처럼 먼 곳까지 생각해 주었는가? 도리어 편치 못하네.
갖추지 못하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39) 6월 15일 조동曹洞에서.
예조 참판禮曹參判 춘제春躋16)

0001_0011_b_01L送來胡椒
0001_0011_b_02L謂情味而汝何從
0001_0011_b_03L得此若是遠念
0001_0011_b_04L還爲之
0001_0011_b_05L不安也不具

0001_0011_b_06L

0001_0011_b_07L己六 望日 曹洞

0001_0011_b_08L禮曹參判 春躋

0001_0012_a_01L
남붕 스님께 보내니 열어 보시라
홍 진사의 답장


자네가 산으로 돌아간 지가 지금 이미 오래되었구려. 그리운 마음이 날로 깊네.
방금 뜻밖에 자네의 서찰을 받아 보고서 …17)>
□ … □
별록 1
사당祠堂을 세우는 계획은 마땅히 정성된 뜻에서 나왔으나 해가 또 큰 흉년을 맞아 세우기가 용이하지 않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뒷날을 기약하도록 했네.
조정에서 아주 마음을 쓰는 사원祠院을 어찌 주선하고 변통하는 방도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염려 마시고 염려 마시게.
이만 줄이네.
별록2
구름 속 산이 겹치고 겹치니 몇 천 겹인가
그윽한 골짜기에 길도 깊으니 사람의 발자취 끊겼네

0001_0012_a_01L
南上人 開見

0001_0012_a_02L洪 進士 所答


0001_0012_a_03L

0001_0012_a_04L汝之還山今已久
0001_0012_a_05L戀思日深卽於
0001_0012_a_06L意外得見汝書
0001_0012_a_07L號汝近日在安
0001_0012_a_08L□ … □

0001_0012_a_09L立祠之計當出於誠意
0001_0012_a_10L而年且大荒不可容易設立
0001_0012_a_11L使人後期矣朝家珍念之院
0001_0012_a_12L可泛忽周變之道乎勿慮勿慮不宣14)

0001_0012_a_13L雲山疊疊幾千重
0001_0012_a_14L幽谷路深絶人蹤15)

0001_0012_b_01L
붕 스님의 선탑禪榻에 보낸 답장

지금 백족白足이 와서 멀리서 보낸 서찰을 전하여 요사이 도를 닦으며 지내는 생활이 좋음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되고 매우 위안됩니다.
이곳의 나는 상기喪期가 문득 끝났으니 애통함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초煎椒는 보내 주신 대로 받았으니 많이 감사합니다.
인편이 바빠 다만 이렇게만 쓰고 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6월 14일 반곡盤谷에서 병들고 못난 사람이.
유 주서兪注書 언호彦好18)

0001_0012_b_01L
鵬上人 禪榻 回傳

0001_0012_b_02L

0001_0012_b_03L卽者白足來傳
0001_0012_b_04L遠札以審近來
0001_0012_b_05L道況淸勝殊慰殊慰此中
0001_0012_b_06L喪算奄關痛隕何言
0001_0012_b_07L煎椒依受多謝便忙
0001_0012_b_08L只此不具

0001_0012_b_09L

0001_0012_b_10L己未 六月 十四 盤谷 病拙

0001_0012_b_11L兪注書 彦好

0001_0013_a_01L
붕 대사께 부친 답장

스님의 소식이 아득하여 그리워하는 생각이 몹시 간절했는데, 방금 손수 쓰신 서찰을 받고서 불법佛法을 닦으며 지내시는 생활이 좋으심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말할 수가 없습니다.

0001_0013_a_01L
謝寄鵬師

0001_0013_a_02L

0001_0013_a_03L甁錫杳然戀想政
0001_0013_a_04L卽見手偈知法況
0001_0013_a_05L淸勝慰不可言

0001_0013_b_01L『서난록紓亂錄』19)은 여태 일을 마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인쇄하는 것을 경영하시니 수고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짐작할 만합니다.
이곳의 나는 어제와 같이 지내고 있으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운납께서는 언제 마땅히 성안으로 들어오시는지요? 책자는 마치기를 기다려 반드시 한 통을 부치겠습니다.
하나하나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6월 14일 창동倉洞의 병든 서생이.
홍 판서洪判書 익빈 益彬

0001_0013_b_01L亂錄尙未卒業云
0001_0013_b_02L經紀開印勞念可
0001_0013_b_03L此中如昨無可
0001_0013_b_04L喩者雲衲何當入
0001_0013_b_05L冊子待畢必寄
0001_0013_b_06L一通也不一一

0001_0013_b_07L

0001_0013_b_08L己未 六月 十四日  洪判書 益彬

0001_0013_b_09L倉洞 病生

0001_0014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창동倉洞에서 보내다


뜻밖에 서찰을 받으니 위안되고 시원함이 갑절이나 깊습니다. 큰 역사役事가 거의 다 완료되었다니 더욱 기쁨이 샘솟습니다.
이곳의 나는 이전처럼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데, 부모님의 병환이 여러 달 동안 낫지 않으니

0001_0014_a_01L
謝鵬師書

0001_0014_a_02L倉洞 出


0001_0014_a_03L

0001_0014_a_04L意外得書慰浣倍
0001_0014_a_05L大役幾盡完了
0001_0014_a_06L尤可喜聳此間粗如
0001_0014_a_07L前狀而親候屢朔彌留

0001_0014_b_01L근심되고 답답한 심정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찰의 끝에 말씀하신 것은 우선 부모님의 병환이 조금 낫기를 기다려 마땅히 아뢰어 부응하겠습니다.
이곳에 온 승려가 서서 재촉하여 우선 이만 줄입니다.

기미년(1739) 6월 14일 익철益喆20)이.

0001_0014_b_01L憂悶何言書末所示姑俟
0001_0014_b_02L親患少間當稟告應副
0001_0014_b_03L此僧立促姑不宣
0001_0014_b_04L

0001_0014_b_05L

0001_0014_b_06L己未 六月 十四日 益喆

0001_0015_a_01L
붕 대사께 보낸 답장
            (봉지封識)


천 리에서 한번 이별하여 소식이 서로 막혔으니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방금 서찰이 오니 마주하여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 참으로 깊습니다. 무더위에 선방의 창문 아래에서 도를 닦으며 지내시는 생활이 매우 좋으심을 알았으니,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위안되게 하는 마음이 매우 큽니다.
후추(胡椒)는 비록 보냈으나 도리어 심히 편치 않습니다.

0001_0015_a_01L
謝 鵬師書

0001_0015_a_02L     (封識)


0001_0015_a_03L

0001_0015_a_04L一別千里音問相阻戀可勝卽玆
0001_0015_a_05L書來如對穩討喜慰良深憑認
0001_0015_a_06L盛炎禪囱道味超勝尤令
0001_0015_a_07L人慰意萬萬胡椒雖送還甚

0001_0015_b_01L절에서 어떻게 얻은 것이 있었습니까? 또한 다정한 마음에 감사드리며, 먹 한 정丁을 보내어 나의 정성을 표현합니다.
전날에 드린 낙구落句는 “불가에서도 스승을 높이는 뜻이 있으니, 내가 남붕을 위하여 짧은 글을 지었네.(空門亦有尊師意。我爲南鵬寫短章。)”라는 구절로 고쳐 주시는 것이 어떻겠는지요?
나머지는 더위에 병을 앓고 있어 누워서 서찰을 써서 격식을 다 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6월 16일에 소곡少谷에서 병든 노인이.
첨직僉直 윤득신尹得辛

0001_0015_b_01L欠安禪家於何有得耶亦感
0001_0015_b_02L多情陳玄一丁送表我忱耳
0001_0015_b_03L前日所贈落句空門亦有尊
0001_0015_b_04L師意我爲南鵬寫短章此以
0001_0015_b_05L句改之如何餘病暑臥艸
0001_0015_b_06L不盡式

0001_0015_b_07L

0001_0015_b_08L己未 六月 旣望 少谷 病叟

0001_0015_b_09L僉直 尹得辛

0001_0016_a_01L
남붕 스님께 보낸 답장

북쪽 창가에 병들어 누워 있어 부채질을 할 겨를이 없는데, 갑자기 달이 내려와 창문을 두드립니다. 다만 보내 주신 서찰을 받고서 위안되고 기뻐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듣건대 『분충록』은

0001_0016_a_01L
寄謝南鵬上人

0001_0016_a_02L

0001_0016_a_03L頹臥北窓搖扇不
0001_0016_a_04L忽地月下敲門
0001_0016_a_05L只承惠字慰喜
0001_0016_a_06L可知第聞奮忠錄

0001_0016_b_01L아직 판각을 시작하지 않았다 하고, 표충사表忠祠도 다툼의 실마리가 있는 듯하니, 염려되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우선 일일이 쓰지 못합니다. 스님께서는 먼지 낀 도성에 언제 당도하시는지요?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미년(1739) 5월(榴夏) 16일 남록 산인南麓散人.

0001_0016_b_01L姑未始剞劂表忠
0001_0016_b_02L亦恐有爭端
0001_0016_b_03L爲之慮念不已
0001_0016_b_04L餘姑不一一何當
0001_0016_b_05L飛錫於城塵
0001_0016_b_06L企翹企

0001_0016_b_07L

0001_0016_b_08L己未榴夏十六日

0001_0016_b_09L南麓散人

0001_0017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왔을 때 서로 보지 못하여 지금까지 한이 되었습니다. 방금 관아의 인편으로 인해 서찰을 받아 보고서 구름처럼 떠돌고 놀면서 무사하고, 주관하시는 일도 거의 끝나 가는 것을 알았으니 기쁜 마음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별 탈 없이 연이어 편안히

0001_0017_a_01L
答鵬師 書

0001_0017_a_02L

0001_0017_a_03L來時不相見至今爲
0001_0017_a_04L卽因官便見書
0001_0017_a_05L雲遊無事所幹
0001_0017_a_06L將垂畢喜不容言
0001_0017_a_07L吾還家無撓連得安

0001_0017_b_01L보낼 수 있으니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이에 □ … □ 나를 마주하여 … 지난봄에 다하지 못한 회포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안眼 스님(취안翠眼)과 현玄 스님(상현尙玄)의 서찰을 모두 보았으나 바빠서 아직 각각 답장 을 하지 못하고 다만 이 뜻을 전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방금 손님이 와서 어수선하여 일일이 쓰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6월 18일 종남 산인終南散人.

0001_0017_b_01L可幸此■更■■■
0001_0017_b_02L對我說前春未盡之
0001_0017_b_03L懷耶眼師玄師
0001_0017_b_04L書俱見而忙未各答
0001_0017_b_05L第傳此意也餘方客擾
0001_0017_b_06L不一一

0001_0017_b_07L

0001_0017_b_08L己未 六月 十八日 終南散人

0001_0018_a_01L
붕 스님의 선탑에 보낸 답장
회동晦洞 임 진사任進士가 씀


■■■ 서찰을 받고 함을 알았으니, □ … □

기미년(1739) 6월 18일 회동晦洞에서 보냄.
임첨任瞻

0001_0018_a_01L
鵬禪榻

0001_0018_a_02L晦洞 任進士 書


0001_0018_a_03L

0001_0018_a_04L■■■札 知
0001_0018_a_05L□ … □

0001_0018_a_06L

0001_0018_a_07L己未六月十八日 晦洞 出

0001_0018_a_08L任瞻

0001_0018_b_01L
□ … □ 산중에서 참선하는 정황이 편안하신지요. 전령을 보내어 그 차지次知21)를 놓아 주게 하고 장차 영원히 면제하려는 계획을 했습니다.
본관이 며칠 뒤 관아에 돌아간 뒤에 그 승려와 좌수 무리들이 또 무소誣訴하여 그 아버지를 다시 가두는 데 이르렀으니 그것을 듣고 놀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서찰을 써서 신녕新寧(영천)에 매우 간청했는데 그 답이 이처럼 무심하니, 이것을 또한 어떻게 하겠습니까? 앞으로 선처하는 방도는 순상巡相에게 고하고, 순상이 신녕으로 별도 관문關文을 보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힘을 다해 도모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사都事가 관아로 들어가나 바쁘고 어수선하여 답장의 격식을 갖추어 쓰지 못합니다.

0001_0018_b_01L
□ … □
0001_0018_b_02L山中禪況■萬■■傳令
0001_0018_b_03L其次知將爲永頉之計矣本官數日後
0001_0018_b_04L還官後其僧徒座首輩又爲誣訴以至
0001_0018_b_05L更囚其父聞之驚歎卽修書苦懇新寧
0001_0018_b_06L則其所答如是邁邁此亦奈何此後
0001_0018_b_07L善處之道不如告于巡相別關新
0001_0018_b_08L寧之爲愈極力圖之如何如何都事
0001_0018_b_09L入官忙擾不宣謝式

0001_0019_a_01L
붕 대사의 도안道案으로 보낸 답장

서찰을 받고서 이별한 이래로 도를 닦으며 지내는 생활이 매우 좋음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되고 매우 위안됩니다. 하물며 절의 큰일이 점점 잘 되어 간다고 들은 데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만약 대사의 정성된 마음과 부처님께 기원하여 이루려는 힘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 인연을 마칠 수 있겠습니까? 공경하고 감탄하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오吳 학사의 기문記文은 아직 붓을 대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조만간에 반드시 묵은 빚을 갚아 야 할 것입니다. 윤尹 학사는 강교江郊에 있는데 요사이 서로 보지 못했습니다. 보면 마땅히 대사의 뜻을 전해 주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기미년(1739) 1월 7일 진암晉菴22).

0001_0019_a_01L
鵬師 道案

0001_0019_a_02L

0001_0019_a_03L承書審別來
0001_0019_a_04L道履佳勝殊慰殊慰況聞山門大
0001_0019_a_05L漸爾就緖若非
0001_0019_a_06L師血心願力則何能了此因緣耶
0001_0019_a_07L欽歎不已吳學士記文聞姑未屬
0001_0019_a_08L早晩必酬宿債而尹學士
0001_0019_a_09L則在江郊近未相見見當傳致
0001_0019_a_10L師意耳不宣

0001_0019_a_11L

0001_0019_a_12L己未 元月 七日 晉菴

0001_0019_b_01L
□ … □
지난해의 사람이 아니니 어찌할는지요?
두 권의 책자를 보내 주셨으니 정중하게 매우 감사드립니다. 다만 언뜻 보니 글자에 오자가 많아23) 한번 다듬어야 할 듯합니다.
사당의 편액은 내가 이미 늙고 지쳐서 글씨 연마를 그만두어 대사의 은근한 정성에 부응할 방법이 없으니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부디 사문斯文24) 이광사李匡師25)를 따라서 구하십시오.
채소와 죽순을 보내신 것은 그대로 잘 받았는데, 객지에 있어서 물건으로 회답하는 의례 를 하지 못합니다.
□ … □

0001_0019_b_01L
□ … □
0001_0019_b_02L非去年人奈何兩冊
0001_0019_b_03L投寄多謝鄭重但驟看
0001_0019_b_04L字多魚魯恐費一遭梳洗
0001_0019_b_05L祠匾吾已老倦斷筆
0001_0019_b_06L無由副
0001_0019_b_07L師勤誠可歎須從李
0001_0019_b_08L斯文匡師求之蔬筍之
0001_0019_b_09L依領客中無物作回儀
0001_0019_b_10L□ … □

0001_0020_a_01L
붕 대사께 보낸 서찰
소고嘯皐에 칩거하는 나그네의 답장 서찰


소식이 아득하여 늘 그리워하는 정이 있었는데, 방금 백족白足이 대사의 서찰을 전해 주어 대사께서 서울에 들어옴을 알았습니다. 비록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기쁘고도 위안되는 마음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0001_0020_a_01L
鵬師禪史

0001_0020_a_02L嘯皐 蟄客 謝柬


0001_0020_a_03L

0001_0020_a_04L消息渺然每有懸情卽者
0001_0020_a_05L白足傳致
0001_0020_a_06L禪札以審
0001_0020_a_07L杖錫入洛雖未相奉欣慰

0001_0020_b_01L죄로 숨어 사는데 담병痰病이 매우 심해져서 괴로운 상황입니다.
『분충록』은 이에 인쇄본을 받았으니 진귀하게 여기며 완상하는 마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축사祝詞는 처음에 능히 시율詩律을 짓지 못하다가 병으로 피폐해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엮어 글을 짓겠습니까? 부끄러움이 심하고 부끄러움이 심합니다.
대략 이렇게 써서 답장을 올립니다. 서찰을 갖추지 못합니다.

기미년(1739) 12월 초4일 소고嘯皐 포객逋客26)이.
좌상左相 서명균徐命均27)
추신
두 건의 달력을 서찰과 같이 부칩니다.

0001_0020_b_01L可言■罪屛蟄而痰病方
0001_0020_b_02L劇苦狀奮忠錄荷此
0001_0020_b_03L印貽珍玩豈勝爲言示祝
0001_0020_b_04L初不能成詩律病廢至此
0001_0020_b_05L何以結撰耶愧甚愧甚把筆
0001_0020_b_06L甚艱略此奉復不具狀   左相 徐命均

0001_0020_b_07L

0001_0020_b_08L己未 臘月 初四   嘯皐 逋客

0001_0020_b_09L二曆附書

0001_0021_a_01L
붕 대사에게 보낸 서찰

백족白足이 와서 서찰을 받아 술잔을 띄워 한강을 건넜음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 지극하여 다시 작년 모습을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
두 권의 책은 보내 주신 대로 받았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서산 대사西山大師의 비문은 요사이 병으로 나른하여 문필을 포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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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師 旅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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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1_a_03L白足來領書知浮盃渡
0001_0021_a_04L欣慰之極如復對昨年
0001_0021_a_05L眉宇也兩冊依受甚幸
0001_0021_a_06L西山碑文近因病懶抛棄

0001_0021_b_01L은근히 부탁하신 뜻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계곡谿谷28) 상공이 이미 문장의 뛰어남이 바로 최호崔顥29)가 지은 시가 머리 위에 있다30)는 것과 같으니, 더욱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대략 써서 답장을 부칩니다. 이만 줄입니다.

기己 자 들어가는 해(1739) 12월 11일 양강 노인楊江老人.
이판吏判 이덕수李德壽31)

0001_0021_b_01L筆硏無以副勤托之意
0001_0021_b_02L谿谷相公已有文英正如
0001_0021_b_03L崔顥題詩在上頭尤何
0001_0021_b_04L敢唐也艸艸寄謝不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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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1_b_06L己臘之十一 楊江老人

0001_0021_b_07L吏判 李德壽

0001_0022_a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2_a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2_b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2_b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3_a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3_a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3_b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0001_0023_b_01L원본이 유실되고 먹으로 황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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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대사께 보낸 서찰

대사가 오가면서 서찰을 전해 주어, 돌아간 곳이 얼마나 편안한 지경인지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됩니다.
이곳의 늙고 병든 사람은 어제와 같을 뿐입니다.
비석을 인각印刻한 본은 보내 주신 대로 받았으나 모두 몇 곳에 잘못된 것이 있으니 고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내 주신 산의 음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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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師 道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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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4_a_03L師往來傳
0001_0024_a_04L審歸稅何安境
0001_0024_a_05L此間老病者如昨爾
0001_0024_a_06L碑印却本依領俱有數處
0001_0024_a_07L訛舛改之如何山味之饋

0001_0024_b_01L더욱 감사하고 더욱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3월 3일 도곡陶谷.
영의정領議政 이李32)
추신
비碑 1장丈 말행末行의 궐厥 자는 마땅히 고顧 자가 되어야 하고, 3장丈 8행의 배徘 자는 비 緋 자가 되어야 하고, 13행의 원은 마땅히 원猿이 되어야 합니다.
별록
5월 초4일에 67냥 5전을 환전換錢하여 점복군店卜軍에게 출급出給했습니다.

0001_0024_b_01L尤謝尤謝餘不宣

0001_0024_b_02L領議政 李 三月三日 陶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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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4_b_04L一丈末行厥當作顧

0001_0024_b_05L  三丈八行徘當作緋

0001_0024_b_06L  十三行當作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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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4_b_08L五月 初四日

0001_0024_b_09L換錢六十七兩五戔店卜軍處出給耳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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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께 보낸 답장

곧 서찰을 보고서 경전 공부하며 지내시는 안부가 맑고 고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되고 매우 위안됩니다.
나는 병들어 누워 있어 즐거운 마음이 없으니 다른 것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보내 준 서리 맞은 유자(霜柚)는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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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上人 回答

0001_0025_a_02L

0001_0025_a_03L卽見書
0001_0025_a_04L經況淸靜殊慰殊慰
0001_0025_a_05L病伏無悰不足他喩
0001_0025_a_06L所惠霜柚珍感

0001_0025_b_01L스님께서도 인정에 이끌려 멀리서 서찰로 문안함을 면치 못하시는군요? 우습고 우습습니다.
광혜廣慧 스님이 돌아감으로 인하여 대략 답장을 씁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임술년(1742) 1월 8일 현玄 노인이.

0001_0025_b_01L深謝而山人亦不免
0001_0025_b_02L於牽情遠問耶
0001_0025_b_03L呵呵因廣師歸
0001_0025_b_04L餘不宣

0001_0025_b_05L

0001_0025_b_06L壬戌元月八日 玄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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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께 보낸 답장

앞뒤로 보낸 두 통의 서찰을 아울러 보고 잘 알았으나 돌아가는 인편이 없어 아직 답장을 못했습니다. 지금 해가 바뀌었는데 참선하며 지내는 마음이 한결같이 맑고 깨끗하신지요?
만날 기약이 없으니 그리워하며 멍해집니다.
이곳의 나는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오랜 시간 동안 더욱 괴로워하고 편안한 날이 항상 드무니, 답답하고 절박한 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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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上人 答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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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6_a_03L前後兩書並見悉而無歸
0001_0026_a_04L便未有答語矣卽此歲換
0001_0026_a_05L禪況一味淸淨否合面無
0001_0026_a_06L瞻焉悵惘此間親患長
0001_0026_a_07L時彌苦寧日恒鮮悶迫

0001_0026_b_01L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통도사通度寺의 부역을 면제해 주는 일(復戶)은 조정의 논의가 한결같지 않아 끝내 이루지 못했으니, 실망스럽게 여기리라 생각됩니다.
아우(令弟)가 돌아간다고 고하여 바쁜 일을 제쳐 놓고 이렇게만 씁니다. 할 말은 매우 많지만 일일이 다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임술년(1742) 1월 초8일 망청자望淸子.

0001_0026_b_01L不可狀言通度復戶
0001_0026_b_02L廟議不一竟未得成
0001_0026_b_03L想以爲落寞矣令弟告
0001_0026_b_04L撥忙只此萬萬不一

0001_0026_b_05L

0001_0026_b_06L壬戌 元月 初八日 望靑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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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대사께서 참선하는 곳에 보낸 답장
정동貞洞 거이재居易齋에서 답장을 보냄     (함緘)


오래도록 소식이 막히어 항상 슬픔과 그리움이 깊었습니다. 뜻밖에 묘妙 스님이 대사의 서찰을 소매 속에서 꺼내어 전해 주어 펼쳐 보고서 참선하며 지내시는 공력이 연이어 맑고 깨끗함을 알았습니다.
비석은 흔들림 없이 운반했으니 매우 위안이 됩니다.
이곳의 나는 달포 전에 큰어머니의 상을 당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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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大師 禪榻 答寄

0001_0027_a_02L貞洞 居易齋 答書    (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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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7_a_04L許久阻音恒深悵戀意外妙
0001_0027_a_05L衲袖傳禪札披審禪功
0001_0027_a_06L得淸淨碑石無撓運致
0001_0027_a_07L可慰也此間月前遭伯母喪事

0001_0027_b_01L가슴이 무너지는 아픔과 쓰라림을 오히려 다시 어찌 말하겠습니까? 이 밖의 우환도 종종 마음을 쓰게 하니 답답하고 골치 아픈 심정을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친정親庭에서 보낸 종이는 그대로 도착해서 올렸는데 서찰이 없으니 전달하는 사람이 혹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의아합니다.
언제 혹시 서울로 들어올 일이 있습니까?
많은 사연은 바쁘고 어수선하여 우선 이렇게만 씁니다. 묵묵히 이해하기 바랍니다.

임술년(1742) 4월 28일 정동貞洞 거이재居易齋에서.
추신
내가 또한 서읍西邑으로부터 올라와서 서찰을 보니 위안되고 기쁩니다. 회포가 똑같은 까닭으로 이에 별도의 서찰을 쓰지 않습니다.

0001_0027_b_01L摧痛酸苦尙復何言此外憂
0001_0027_b_02L亦種種關心悶惱不可狀
0001_0027_b_03L親庭所送紙地依到奉納而書
0001_0027_b_04L則無有未知傳者或遺失耶
0001_0027_b_05L可訝那間或有入洛之事耶
0001_0027_b_06L多少忙撓姑此惟在黙會

0001_0027_b_07L

0001_0027_b_08L壬戌 四月 卄八 貞洞 居易齋

0001_0027_b_09L吾亦自西邑上來見書慰喜所懷一般故玆不別幅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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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께 보낸 답장

지난번에 뵙고서 평온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하였으니 지금까지 아쉽습니다. 방금 서찰을 보니 무사히 산으로 돌아가셨군요. 더욱 기쁘고 더욱 기쁩니다.
온 비장裨將은 보낸 대로 와서 힘을 내어 한결같이 와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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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 鵬上人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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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8_a_03L頃見未穩迨依卽見
0001_0028_a_04L無事還山尤喜
0001_0028_a_05L尤喜來裨依來現力
0001_0028_a_06L一向來畫可謂畫

0001_0028_b_01L‘호랑이를 그리다가 완성하지 못했다’33)고 할 만합니다. 그리하여 그대로 둘 뿐입니다.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임술년(1742) 5월 24일 병영兵營에서

0001_0028_b_01L虎不成者也
0001_0028_b_02L留之耳不多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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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8_b_04L壬戌 五月 卄四日 兵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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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緘)  붕 스님께 보낸 답장

멀리서 생각하던 중에 서찰을 받으니 많이 기쁩니다. 다만 괴로운 것이 있어서 이것이 염려됩니다.
비석을 세우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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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緘)  答鵬上人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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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9_a_03L遠念中得書多喜
0001_0029_a_04L但有所苦是慮碑事

0001_0029_b_01L송운松雲 대사의 큰 발자취에 감동하고 스님의 성의에 감사하여 반드시 붓을 대어 받들어 부응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지금 병으로 붓을 잡기 어렵고 또 오래지 않아 장차 행차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일도 중요하고 시기도 급하니 의리상 다른 날로 지연하여 기다리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내온 종이를 돌려보내는 것을 면치 못했으니 마침내 처음의 계획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글을 부탁 받을 때에 세상에 적임자가 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겸연쩍고 부끄러운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정으로 보내 준 종이 묶음과 소박한 음식은 그대로 받았으니 많이 감사합니다. 한 개의 모자를 서찰과 같이 보내 주니 정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온 비석 가운데 초고에 정확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한 본本을 고쳐 썼습니다. 초고와 고친 것을 아울러 보내어 취사에 대비하게 합니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합니다.

임술년(1742) 8월 11일 이호 산인梨湖散人.
김진상金鎭商34)

0001_0029_b_01L歆雲師之偉蹟
0001_0029_b_02L上人之誠意必欲下筆
0001_0029_b_03L奉副矣不意見今病
0001_0029_b_04L難把筆且非久將有
0001_0029_b_05L行役而念此事重時
0001_0029_b_06L義難遲待他日
0001_0029_b_07L故未免奉還來紙
0001_0029_b_08L違始計非不知屬筆
0001_0029_b_09L之世有其人而此心歉愧
0001_0029_b_10L不可勝言情餽紙束
0001_0029_b_11L素饌依受多謝一帽伴
0001_0029_b_12L可領情也所來碑石中17)
0001_0029_b_13L草有不精者
0001_0029_b_14L書一本矣並此送
0001_0029_b_15L以備取舍耳18)
0001_0029_b_16L餘不具

0001_0029_b_17L

0001_0029_b_18L壬戌 八月 十一日 梨湖散人 金鎭商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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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省式)  붕 스님께 경전 공부하는 곳에 보낸 답장
                       (근봉謹封)


지난번에 서찰을 받으니 위안되는 마음이 서로 만난 것 같았습니다. 경전을 공부하며 지내는 마음이 맑고 좋으신지요?
이곳의 나는 여름 동안에 위험을 겪은 것은 없으나 병들어 아직껏 이렇게 기운이 빠져 있고, 부모님의 병환도 매우

0001_0030_a_01L
(省式) 鵬上人 經帷

0001_0030_a_02L          (謹封)


0001_0030_a_03L

0001_0030_a_04L
0001_0030_a_05L慰若相見卽問
0001_0030_a_06L經況淸勝此間夏
0001_0030_a_07L間無經危病尙
0001_0030_a_08L此沈頓親癠亦極

0001_0030_b_01L작지 않아 밤낮으로 걱정하고 애태우니 다른 것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비문은 병환이 이와 같아 간곡하게 말씀하며 부탁한 것을 써서 보내지 못하니, 다시 다른 곳에서 구해 보십시오. 보내온 종이는 그대로 받았으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임술년(1742) 8월 18일 공동公洞에서 병든 서생이.
참판參判 윤득화尹得華35)

0001_0030_b_01L不細日宵憂煎
0001_0030_b_02L他何喩也碑文病
0001_0030_b_03L患如此不得書送
0001_0030_b_04L曲敎更求他處
0001_0030_b_05L送來紙地
0001_0030_b_06L依受良感不宣

0001_0030_b_07L

0001_0030_b_08L壬戌 八月 十八日 公洞 病生

0001_0030_b_09L參判 尹得華

0001_0031_a_01L
붕 스님께 답을 올립니다
소공동小公洞 여차廬次36)에서 보냄


이곳의 나는 죄를 지은 것이 깊고 중대한데 문득 어머니 상을 당하는 애통함을 만나 장례를 이미 마쳤습니다.
가을이 또 깊어 가니 부여잡고 부르짖으며 애통한 마음이 갈수록 망극罔極합니다.
지난번에 위문 서찰을 받았고, 게다가 두 속束의 부지賻紙(부의로 보내는 종이)까지 받았으니,
서글픈 감정에 젖어 있던 끝에도 그리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황망하고 혼미하여 갖추지 못합니다.

임술년(1742) 8월 30일 김金 상인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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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上人 奉答20)
0001_0031_a_02L

0001_0031_a_03L小公洞 廬次 出


0001_0031_a_04L

0001_0031_a_05L此間罪逆深重奄遭失恃之慟襄禮已訖
0001_0031_a_06L秋序又深攀號痛隕去益罔極頃見問書
0001_0031_a_07L且領兩束賻紙哀感之餘亦慰戀思耳
0001_0031_a_08L荒迷不具

0001_0031_a_09L

0001_0031_a_10L壬戌 八月 三十日 金 喪人

0001_0031_b_01L
『붕사집鵬師集』 제이第二

만년토록 본원本院에서 진중하게 보관할 것이니, 만약 잃어버리는 폐단이 있으면 스스로 당시 임장任掌에게 추심推尋할 것.

황산黃山 찰방察訪 조상겸趙相謙이.
별록
밝은 달은 긴 하늘을 비춤이 있기 때문이다.

0001_0031_b_01L
鵬師集 第二21)

0001_0031_b_02L

0001_0031_b_03L萬歲珍莊于本院如有遺失
0001_0031_b_04L之弊自當時任掌處推尋者
0001_0031_b_05L

0001_0031_b_06L黃山 察訪 趙相謙
0001_0031_b_07L

0001_0031_b_08L爲有明月照長天

0001_0032_a_01L
붕 대사가 참선하는 곳에 보낸 서찰
순행 중인 감영의 사첩謝帖


지난번에 바삐 만나 매우 서글프게 여겼는데, 지금 젊은 스님이 소매 속에서 문안 서찰을 꺼내 전하여 열어 보니 위안되는 마음이 참으로 깊습니다.

0001_0032_a_01L
鵬師 禪案 回傳

0001_0032_a_02L巡中營謝帖


0001_0032_a_03L

0001_0032_a_04L頃面草草方以爲
0001_0032_a_05L今此少衲袖傳
0001_0032_a_06L問札披慰良深

0001_0032_b_01L이 서찰로 인해 온화한 봄날에 참선하며 지내시는 생활이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더욱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보내 준 무관자無串子 등 세 가지 물품은 실로 정이 담긴 선물이니 그대로 받았습니다만, 고맙게 여겨 잊지 않을 뿐 사례할 것이 없습니다.
이곳은 아직 무사하지만 오래 머물며 돌아가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고 답답한 노릇입니다. 언제쯤 감영으로 오시는지요?
나머지는 이렇게만 쓰고 일일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경오년(1750) 2월 순행巡行 중인 감영監營에서 보냄.
추신
붓과 먹 하나씩과 당지唐紙 20폭幅을 보냅니다.

0001_0032_b_01L審春和
0001_0032_b_02L禪況佳勝馳慰
0001_0032_b_03L尤不可言
0001_0032_b_04L惠及無串子等三種
0001_0032_b_05L實出情貺依受
0001_0032_b_06L感佩無以爲謝
0001_0032_b_07L處姑無事而久滯
0001_0032_b_08L不歸悶事悶事
0001_0032_b_09L間來到營下否
0001_0032_b_10L只此不一22)

0001_0032_b_11L

0001_0032_b_12L庚午仲春 巡中營 出

0001_0032_b_13L

0001_0032_b_14L筆墨各一
0001_0032_b_15L唐紙卄幅送之23)

0001_0033_a_01L
붕 스님은 열어 보십시오

요사이 스님이 오기를 기다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으니 의아하고 우울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때 참선하며 지내는 생활이 어떠신지요?
이곳의 나는 장차

0001_0033_a_01L
鵬上人 開拆

0001_0033_a_02L

0001_0033_a_03L近日待上人之來
0001_0033_a_04L已久而尙無消息
0001_0033_a_05L能無訝菀之心此時
0001_0033_a_06L禪履如何此間方以望

0001_0033_b_01L15일에 말미를 받아 서울로 가서 만나려고 합니다. 만약 대사와 다시 만나 보지 못한다면 그 슬픔이 더욱 마땅히 어떻겠습니까?
전에 부탁한 무환주無患珠37)는 새로 생산되는 것이 이미 주렁주렁 열렸으리라 생각됩니다. 과연 사람을 보내 구해 오겠습니까? 이번 걸음에 만약 가지고 가지 못한다면 다시 희망이 없습니다. 부디 꼭 아주 좋은 품질의 무환자를 몇 말(斗) 구해 보내 주십시오. 전날 대사께서 보낸 것은 모두 품질이 떨어집니다. 꼭 달성 판관達成判官38)이 찬 것과 똑같은 좋은 품질을 가려서 보내 주십시오.
할 말은 많지만 서찰에 다 쓰지 못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9월 9일(重陽日) 경주에 머무는 나그네가. 이름은 생략함(欠).39)

0001_0033_b_01L日受由還京仍欲解
0001_0033_b_02L若與師不再見
0001_0033_b_03L則其悵尤當如何前托
0001_0033_b_04L無患珠新産想已爛
0001_0033_b_05L熳矣果送人覓來耶
0001_0033_b_06L今行若不得持去則更
0001_0033_b_07L無所望幸須以絶品
0001_0033_b_08L數斗覓送也前日師
0001_0033_b_09L之送惠者皆劣品
0001_0033_b_10L以達制[判]所着者一般好
0001_0033_b_11L品擇送也萬萬非書可旣
0001_0033_b_12L不具24)

0001_0033_b_13L

0001_0033_b_14L重陽日 慶客 欠25)

0001_0034_a_01L
붕 대사 장실丈室40)에 답장함
                (봉封)


섣달 그믐이 이미 정수리에 바짝 다가왔으니 그리운 마음이 매우 깊습니다. 뜻밖에 스님이 와서 전해 준 손수 쓰신 서찰과 보내 준 백개자白芥子41)를 전해 주니 위안되고 감사하며 위안되고 감사합니다.

0001_0034_a_01L
鵬師 丈室 回傳

0001_0034_a_02L        (封)


0001_0034_a_03L

0001_0034_a_04L臘月三十日已迫頂門戀[條]
0001_0034_a_05L係方深意外闍梨來傳手
0001_0034_a_06L書及送餉白芥慰荷慰荷

0001_0034_b_01L요사이 조용한 곳에서 경전을 보신다 들었는데, 생각건대 이미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셨으리라42) 생각됩니다. 이로부터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매우 슬픕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경庚 자 들어가는 해(1750) 12월 27일 임고臨皐의 지나가는 나그네가.
영천永川 군수郡守 윤봉오尹鳳五43)
추신
봄 뒤에 장차 함께 오셔서 방문하실 것이라 하니 매우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0001_0034_b_01L聞近日靜處看經想已吸
0001_0034_b_02L盡西江水麽從此相逢未
0001_0034_b_03L可悵餘不一

0001_0034_b_04L

0001_0034_b_05L庚臘 卄七 臨皐 過客

0001_0034_b_06L永川 郡守 尹鳳五

0001_0034_b_07L春後將與同爲來訪云企甚企甚

0001_0035_a_01L
밀양의 붕 대사께 보낸 답장
현풍에서 보냄


지난번에 바쁘게 보아 지금까지 서글픕니다. 방금 서찰을 보고서 참선하시는 몸이 편치 않음을 알았으니 염려됩니다. 그 동안에 이미 차도가 있어 회복되셨습니까?

0001_0035_a_01L
答密陽 鵬師

0001_0035_a_02L玄風 出


0001_0035_a_03L

0001_0035_a_04L頃見草草迨今爲悵
0001_0035_a_05L見手字以知禪履欠安
0001_0035_a_06L爲慮其間已得差復耶

0001_0035_b_01L이곳의 나는 그대로 그럭저럭 지내는데, 객지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마음이 심히 언짢으니 스스로 가련한 마음이 듭니다.
보내온 세 가지 물품은 그대로 받았으니 그 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산에 계시는 스님께서 어찌 이런 물품을 마련했습니까?
새 달력 한 건을 서찰과 같이 보냅니다.
나머지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다 쓰지 못합니다.

경庚 자 들어가는 해(1750) 1월 10일.
홍洪

0001_0035_b_01L此間依遣而客地逢新
0001_0035_b_02L心緖甚作惡自憐
0001_0035_b_03L惠來三種依到可見
0001_0035_b_04L其情而山僧何以辦此耶
0001_0035_b_05L新曆一件伴簡耳
0001_0035_b_06L對客不究

0001_0035_b_07L

0001_0035_b_08L庚正 旬日

0001_0036_a_01L
다만 스님이 □ … □ 매우 슬픕니다. 보내 준 약찬藥饌은 매우 □ … □.

0001_0036_a_01L
第聞甁錫 □ … □
0001_0036_a_02L斷將不得 □ … □
0001_0036_a_03L可悵 送餉藥饌 殊
0001_0036_a_04L□ … □

0001_0036_b_01L□ … □ 스님에게 힘쓰지 못했습니다.
요사이 스님이 어느 산에 우뚝 있습니까? 한번 헤어지고 해가 지나가니 그립고 그리운데 어느 때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 준 초단椒團은 정이 담긴 음식이니 많이 감사합니다. 지금 혜惠 스님(광혜廣慧)이 돌아감으로 인하여 대략 이렇게 써서 서찰을 부칩니다.
우선 일일이 다 쓰지 않습니다.

신유년(1741) 1월 22일 한남漢南의 나그네가.

0001_0036_b_01L□ … □
0001_0036_b_02L不亹亹於師也近日
0001_0036_b_03L甁錫卓在何山一別經
0001_0036_b_04L戀戀何時可忘送餉
0001_0036_b_05L椒團多謝情味今因惠
0001_0036_b_06L略此寄音姑不一

0001_0036_b_07L

0001_0036_b_08L辛酉 元月 卄二 漢南 客

0001_0037_a_01L
남붕 스님께 보낸 답장

광혜廣慧 스님이 자네의 서찰을 손수 전해 주어 편안히 지냄을 알았다네. 새봄에 총섭첩總攝帖 5장丈을 만들어 보냈네.

0001_0037_a_01L
答南釋

0001_0037_a_02L

0001_0037_a_03L廣釋手致
0001_0037_a_04L汝書審安
0001_0037_a_05L新春捴
0001_0037_a_06L攝帖五丈

0001_0037_b_01L무환자無患子는 그대로 도착했으니 그 정을 느낄 만하네. 다만 붉은 색과 누런색이 없으니 흠이라 하겠네.
격식을 갖추지 못하네.

신유년(1741) 1월 7일 소동小洞 우객寓客.

0001_0037_b_01L成送無患
0001_0037_b_02L子依到可感
0001_0037_b_03L其情但無紅
0001_0037_b_04L黃色可欠
0001_0037_b_05L不式

0001_0037_b_06L

0001_0037_b_07L辛酉 元月 七日 小洞 寓客

0001_0038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뜻밖에 산의 스님(山衲)이 대사의 문안 서찰을 소매 속에서 꺼내어 전해 주어 펴 보고서 요사이 참선하는 공부가 연이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되고 후련한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은 알았습니다. 지난번 경연經筵 중에 요사이 사원祠院이 조정의 명을 받들지 않고

0001_0038_a_01L
鵬上人 答

0001_0038_a_02L

0001_0038_a_03L意外山衲袖傳師問札
0001_0038_a_04L審近日禪工連安慰瀉不可
0001_0038_a_05L所示悉之頃日
0001_0038_a_06L筵中以近來祠院之不處朝家

0001_0038_b_01L사사로이 건축하는 것은 갑오년(1714) 금령禁令을 어김이 있다는 것으로, 아울러 훼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해인사의 경우에도 당연히 스스로 훼철해야 하는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지금 표충사는 향화香火를 온전히 받들고 있고 다툼의 단서도 마땅히 이로부터 그쳤으니, 붕 대사에게 있어서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오화당五花糖은 서찰이 있을 때마다 문득 보내니 산속에서 어찌 이것을 얻었습니까? 그 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언제 혹시 올라올 일이 있습니까? 올라오시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이곳의 나는 그럭저럭 보내고 있으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우선 이만 줄입니다.

신유년(1741) 4월 24일 망청 산인望淸散人.

0001_0038_b_01L私自營建有違甲午禁令
0001_0038_b_02L倂命毁在海印亦當自在
0001_0038_b_03L毁撤之中今則表忠可以
0001_0038_b_04L全奉香火爭鬧之端亦當自
0001_0038_b_05L此休息於鵬師可謂幸耶
0001_0038_b_06L五花糖有書輒寄來山中
0001_0038_b_07L何以得此可感者其情耳
0001_0038_b_08L何間或有上來之事耶
0001_0038_b_09L是企是企此間堇遣無足言餘姑
0001_0038_b_10L不具26)

0001_0038_b_11L

0001_0038_b_12L辛酉 四月 卄四日 望淸散人27)

0001_0039_a_01L
남붕 스님이 참선하는 곳으로 답장을 보냄
                  (완完)


지난겨울에 서찰이 있었으나 온 사람이 답장을 구하지 않아 여전히 아직 답장을 쓰지 못 하여 지금까지도 슬프고 탄식스럽습니다.
뜻밖에 심안尋眼 스님이 와서 서찰을 전해 주어, 주관하는 표충사表忠祠 일은 해인사海印寺 승도들이 저지함으로 인해 아직까지 지체되고 있음을 자세히 알았으니, 너무나 개탄스럽고 안쓰럽습니다.

0001_0039_a_01L
南鵬上人 禪案 奉復

0001_0039_a_02L         (完)


0001_0039_a_03L

0001_0039_a_04L頃於昨冬有書而來人不索答尙未作
0001_0039_a_05L至今悵歎卽於意外尋眼白足來
0001_0039_a_06L傳書細審所幹表忠祠事緣海印
0001_0039_a_07L寺僧徒輩沮戱尙今遷就可勝慨憐

0001_0039_b_01L이곳의 나는 한결같이 숨이 끊어질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과거科擧에 합격한 경사가 한꺼번에 겹쳤으니 가득 차면 기운다44)는 두려움이 심하여 기쁨이 됨을 알지 못합니다.
보내 준 초병椒餠45)은 가히 애써 주시는 뜻에 감사드립니다. 붓과 먹 각각 한 개씩을 서찰과 함께 보내니 받아서 쓰면 좋겠습니다.
참의參議와 두 주서注書가 모두 다른 곳에 나갔으니, 온 서찰은 마땅히 전해 보여 주겠습니다. 나머지는 바빠서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6월(流月) 유두일流頭日 하루 전에 병든 서생이. 판결사判決事46) 이우신李雨臣47).

0001_0039_b_01L間一味㱡㱡兒輩科慶一時稠疊惧[懼]甚盈滿
0001_0039_b_02L不知爲喜所送椒餠可感勤意筆墨各
0001_0039_b_03L各一伴書以送領用可也參議及兩注書
0001_0039_b_04L出他來書當傳示耳餘忙不多及

0001_0039_b_05L

0001_0039_b_06L流月 流頭前一日 病生

0001_0039_b_07L判決事 李雨臣

0001_0040_a_01L
붕 대사 선탑에 보낸 답장

이별한 지 오래인데, 참선하시며 지내는 마음이 더욱 능히 맑고 깨끗하신지요? 구름이 낀 먼 산이 아득하여 생각해도 볼 수 없으니 이 마음만 한가로이 오갈 뿐입니다.
듣건대 순찰사가 표충사表忠祠를 위하여

0001_0040_a_01L
鵬上師 禪榻

0001_0040_a_02L

0001_0040_a_03L別久禪況益得淸淨
0001_0040_a_04L雲山邈然思之不可見
0001_0040_a_05L則只有此心悠悠來往
0001_0040_a_06L聞巡相爲表忠

0001_0040_b_01L힘을 씀이 많이 있고, 접때 붕 대사께서도 정성껏 살펴주었다고 하니, 깊이 하례賀禮 드리고 깊이 하례 드립니다.
앞으로 또 혹시 방해하는 일이 있으면 올라가서 주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의 나는 병으로 어지러운 채 날을 보내고 있어 전혀 좋은 마음이 없으니 우리 대사님께 말씀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
마침 인편이 있다고 들어서 잠시 이렇게만 쓰고 이만 줄입니다.

신유년(1741) 6월 27일 망청 산인望淸散人.

0001_0040_b_01L多有宣力向鵬師亦
0001_0040_b_02L款視云爲之深賀深賀
0001_0040_b_03L又或有掣肘之事
0001_0040_b_04L似不可不上來周旋
0001_0040_b_05L知如何也此間病憒度
0001_0040_b_06L苦無好悰羞向吾
0001_0040_b_07L師道也適聞有便蹔[暫]
0001_0040_b_08L此不備28)

0001_0040_b_09L

0001_0040_b_10L辛酉 六 卄七日 望淸散人29)

0001_0041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경주 부윤 서간


관청 일(朱墨)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가운데 문득 한 스님이 와서 회동灰洞의 서찰과 스님의 서찰을 전해 주고, 겸해서 『서난록紓難錄』까지 보내 주셨으니,

0001_0041_a_01L
答寄鵬上人

0001_0041_a_02L慶尹 書


0001_0041_a_03L

0001_0041_a_04L朱墨埋頭中飄然
0001_0041_a_05L一衲來傳灰洞札及
0001_0041_a_06L上人書兼有紓難錄

0001_0041_b_01L바쁜 손길로 열어 보고 송운松雲 대사의 기이한 발자취에 공경하고 감탄했습니다. 스님께서 멀다 여기지 않고 심부름꾼을 보내어 문안해 주신 데 대해 많이 감사드립니다.
방금 들으니, 스님께서 현재 관룡사觀龍寺48)에 머물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곳과 거리가 멀지 않으니 한가한 틈을 타 한번 방문하여 속된 마음을 모두 씻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바쁘고 어수선하여 이만 줄입니다.

신유년(1741) 7월 26일 경주 부윤(慶尹).
추신
후백지厚白紙(두꺼운 백지) 두 묶음, 진묵眞墨(참먹) 다섯 정丁, 붓 다섯 자루를 부쳐 보냅니다.

0001_0041_b_01L之惠忙手披閱
0001_0041_b_02L歎松雲師之奇蹟
0001_0041_b_03L多謝上人之不遐伻問
0001_0041_b_04L卽聞錫杖方駐觀
0001_0041_b_05L去此不遠乘閒一訪
0001_0041_b_06L渾滌塵襟如何
0001_0041_b_07L餘忙擾不一

0001_0041_b_08L

0001_0041_b_09L辛酉 七月 卄六日 慶尹

0001_0041_b_10L厚白紙二束

0001_0041_b_11L眞墨五丁

0001_0041_b_12L筆五柄付送30)

0001_0042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미정동49) 이 진사의 서장   (근봉謹封)


서리 내리는 가을이 점점 높아지는데, 조용히 지내시는 생활이 더욱 좋으신지요? 전날에 부탁한 축원은 꼭 정성된 마음을 보았습니다.

0001_0042_a_01L
鵬上人 寄書

0001_0042_a_02L尾井洞 李進士 書狀   (謹封)


0001_0042_a_03L

0001_0042_a_04L霜秋漸高
0001_0042_a_05L靜味益勝否前日所託
0001_0042_a_06L祝願須見誠心也三大

0001_0042_b_01L세 분 대사50)의 사적事蹟 가운데 볼만한 것을 꼭 빠른 인편에 부쳐 보내십시오. 초初 대사(연초演初)의 답장도 빨리 보게 해 주십시오.
4, 5년 전 대영大英 선사가 그 도학이 높고 밝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감여가堪輿家(풍수가)에 대해서도 매우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대가 나를 위해 대신의 집안에 와서 볼 때에 미정동尾井洞으로 들러 주도록 권유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을 이름과 내가 사는 곳을 그대가 부디 자세히 말씀드려 꼭 방문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초 대사가 만약 이 같은 부탁을 듣는다면 또한 반드시 권유해서 보낼 것입니다. 이런 뜻도 초 대사에게 전해 주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교지는 간청한 대로 창녕부昌寧府로 보냈습니다. 나머지는 우선 서찰의 격식을 갖추지 못 합니다. 대영大英 선사가 모년 모월에 마땅히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는 뜻을 또한 뒤 인편에 써서 부쳐 주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신유년(1741) 9월 초4일 미동尾洞의 병든 서생이.

0001_0042_b_01L師事蹟可觀者須於
0001_0042_b_02L速便付送初大師答狀
0001_0042_b_03L亦使速見也四五年前
0001_0042_b_04L得聞大英禪師非但其道
0001_0042_b_05L學之高明尤於堪輿
0001_0042_b_06L極精云君爲我勸得
0001_0042_b_07L大臣家來見時使之歷訪
0001_0042_b_08L於尾井洞如何洞名及
0001_0042_b_09L吾所住處君須詳敎
0001_0042_b_10L於必訪之地如何如何初大師
0001_0042_b_11L若聞此等請則亦必勸送矣31)
0001_0042_b_12L此意亦傳
0001_0042_b_13L于初大師
0001_0042_b_14L如何
0001_0042_b_15L旨依懇
0001_0042_b_16L付昌寧
0001_0042_b_17L府耳
0001_0042_b_18L姑不備
0001_0042_b_19L32)

0001_0042_b_20L大英禪師某月某日當上京
0001_0042_b_21L之意亦於後便書寄如何

0001_0042_b_22L

0001_0042_b_23L辛酉 九月 初四日 尾洞 病生33)

0001_0043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이 참판李參判이 씀


지난번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마침 의금부에 가서 조사를 받는 중에 있어서 능히 서로 보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한이 됩니다. 뜻밖에 보내 주신 서찰을 받고서 불법을 닦으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고, 힘써서 대사를 잘 경영함을 알았으니, 두 손 모아 축하드리는 마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상복을 입고 있는 나는

0001_0043_a_01L
答鵬上人書

0001_0043_a_02L李參判 書


0001_0043_a_03L

0001_0043_a_04L頃日上京也適在就理中
0001_0043_a_05L不得相見至今爲恨謂外
0001_0043_a_06L得慧[惠]札以知法履安迪
0001_0043_a_07L辦經營大事攢賀不容

0001_0043_b_01L올해에 재앙을 만남이 예사롭지 않아 연이어 크고 작은 상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지리하게 살면서 죽지 않아 이런 참혹한 지경을 당하고 보니, 일찍 죽지 못한 것이 한스럽게 여겨집니다.
부탁한 서산대사비명西山大師碑銘은 이미 행록行錄이 없고, 또 여든을 바라보고 죽음을 드리운 나이에 연이어 상을 만나니 정신과 근력이 전혀 여지餘地가 없어 문자를 지어 낼 방법이 없어 받들어 부응하지 못하니, 매우 탄식스럽고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귀 스님이 오로지 이 일을 위하여 발이 부르트도록 올라왔으나 헛되이 돌아감을 면치 못 하였으니 또한 안타깝습니다.
보내 준 여섯 개의 배(梨)는 정을 듬뿍 담은 뜻을 볼 수 있으니 매우 감사드립니다.
한 건의 달력을 같이 올리니 정으로 받아 주십시오.
나머지는 바빠서 대신 쓰게 하느라 많이 언급하지 못합니다.

신유년(1741) 11월(至月) 25일 복인服人, 이름은 생략(欠).
이우신李雨臣51) 참판參判

0001_0043_b_01L服人今年厄會非常連遭
0001_0043_b_02L大少喪慽此生支離不死
0001_0043_b_03L見此慘境恨不得早死也
0001_0043_b_04L所托西山碑銘旣無行錄
0001_0043_b_05L且望八垂死之年連遭慘慽
0001_0043_b_06L精神筋力殆無餘地末由撰
0001_0043_b_07L出文字不得奉副可歎可歎
0001_0043_b_08L貴沙彌專爲此事繭足上來
0001_0043_b_09L免虛還亦可憫然惠來六梨可見盛
0001_0043_b_10L可感一曆伴呈領情焉餘忙倩34)
0001_0043_b_11L多及35)

0001_0043_b_12L

0001_0043_b_13L辛酉至月卄五 服人 欠

0001_0043_b_14L李雨臣 參判36)

0001_0044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이 부제학(李副學)이 씀   (함緘)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치고 눈송이가 손바닥 같은데 그리운 생각이 산 속에서 더욱 간절합니다.
뜻밖에 손수 쓰신 서찰이 마침 이르러 비로소 심한 추위에 스님의 생활이 연이어 좋음을 알았으니 기쁘고 위안되며 기쁘고 위안됩니다.
병든 나는 몸에 재앙이 쌓인 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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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上人 答寄

0001_0044_a_02L李副學 書   (緘)


0001_0044_a_03L

0001_0044_a_04L寒風打窓雪片如掌瞻想山
0001_0044_a_05L中政切意外手字適至
0001_0044_a_06L始知嚴沍釋況連勝
0001_0044_a_07L慰忻慰病俺積殃在身才遭

0001_0044_b_01L병든 아들의 요절夭折을 만났습니다. 인정과 도리가 참혹하고 지독하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곳에 온 스님(雲衲)은 지금 정신이 혼미하여 자리에 지쳐 누워 인사를 모두 폐한지라 불러서 만날 수 없으니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매우 정신이 혼미하여 누워서 씁니다. 더욱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신유년(1741) 11월 25일 병엄病俺 이필보李弼補.

0001_0044_b_01L病子之夭㭬情理慘毒
0001_0044_b_02L更復何言來雲衲見方昏
0001_0044_b_03L頓床席人事都廢不得
0001_0044_b_04L招接須諒之也餘昏極臥艸
0001_0044_b_05L惟冀益迪不具

0001_0044_b_06L

0001_0044_b_07L辛酉 至月 卄五 病俺

0001_0044_b_08L李弼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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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께 참선하는 곳에 보낸 서찰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수완李壽抏


그대가 내려가고 나서 소식을 들을 방법이 없어 매우 답답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스님이 와서 손수 쓴 서찰을 받아 보고 연이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몹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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鵬上人 禪榻

0001_0045_a_02L兵曹參判 李壽抏


0001_0045_a_03L

0001_0045_a_04L君之下去音信無由
0001_0045_a_05L得聞甚庸泄泄
0001_0045_a_06L彌釋來得見手
0001_0045_a_07L以知連得無事

0001_0045_b_01L표충사表忠祠를 다시 짓는 것은 그대의 지극한 정성과 보시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에 이르렀겠습니까? 매우 가상합니다. 여러 해 동안 겨를이 없어 미뤘던 일을 지금부터 다시 새롭게 하니, 그 불도의 행운이 되는 것이 더욱 어떻겠습니까? 부디 여러 스님들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숙舍叔 영감께서 바야흐로 광교光敎(수원)에 머물고 계시는데, 무덤(楸下)의 기문이 완성되었는지 완성되지 않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내년 봄에 올라올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때에 받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일일이 언급하지 못합니다.

12월 21일 춘와春窩.

0001_0045_b_01L表忠祠重剏
0001_0045_b_02L非君至誠報施何以
0001_0045_b_03L至此極可尙也而屢年
0001_0045_b_04L未遑之事自今更新
0001_0045_b_05L其爲佛道之幸尤如何哉
0001_0045_b_06L須與諸禪師弩力
0001_0045_b_07L終始爲可舍叔令監
0001_0045_b_08L方留光敎楸下記文
0001_0045_b_09L之成不成姑未得知聞君
0001_0045_b_10L將於來春上來云伊時受去似好不一37)

0001_0045_b_11L

0001_0045_b_12L十二月 念一日 春窩38)

0001_0046_a_01L
붕 대사께 보낸 서찰

며칠 전 하룻밤의 대화가 거의 반 속세의 생각을 닳아 없어지게 하였으니, 지금까지 생생하여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0001_0046_a_01L
鵬師 禪案

0001_0046_a_02L

0001_0046_a_03L日前一宵話太半使塵
0001_0046_a_04L念消磨迨依然有不能忘

0001_0046_b_01L이별 뒤에 참선하며 지내시는 마음이 더욱 맑고 깨끗하신지요?
산으로 돌아가는 행차가 정확하게 내달 초에 있습니까? 이 뒤로 구름 같은 발자취가 성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니 아련한 이 회포가 다만 저절로 오갈 뿐입니다.
부탁한 당액堂額은 다만 이 졸필로 선실禪室에 게시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이에 은근한 뜻을 받들어 부응하지 못합니다. 혹시 우리 대사께서 허물로 삼지는 않겠지요?
예부禮部의 공문은 막 작성해서 갔다고 들었습니다. 내려가는 날에 해인사에서 짓는 것은 마땅히 즉시 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로부터 표충사表忠祠가 향화를 오로지 받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연은 땀을 흘리며 겨우 이 정도만 쓰니, 이에 깊이 바랍니다.
자주 서찰로 서로 문안드려 천 리 밖의 면목을 대신합니다. 우선 이만 줄입니다.

신유년(1741) 11월(復月) 그믐에 망청자望淸子가.
추신
별선別扇52) 한 자루를 부쳐 보냅니다.

0001_0046_b_01L者矣別後禪況益得淸
0001_0046_b_02L淨否返山之行的在來初耶
0001_0046_b_03L此後雲蹤使不容易入城
0001_0046_b_04L悠此懷只自往來所托堂
0001_0046_b_05L顧此拙筆不堪爲禪室
0001_0046_b_06L之揭玆未得奉副勤意
0001_0046_b_07L倘吾師不以爲咎否禮部
0001_0046_b_08L公文聞方成去下去日海印所
0001_0046_b_09L似當卽毁自此表忠
0001_0046_b_10L以專奉香火矣多少揮汗
0001_0046_b_11L堇此深望頻以書相問以替千
0001_0046_b_12L里之面目也姑不宣39)

0001_0046_b_13L

0001_0046_b_14L辛酉 復月 晦日 望淸子

0001_0046_b_15L一別扇付送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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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 도안에 보낸 답장

그리워하던 차에 스님의 서찰을 받으니 위안되고 후련하였습니다.
이곳의 나는 병으로 몹시 괴롭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비루한 나의 시를 마침내 인쇄하는 데 이르렀으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사재思齋의 양역良役53)은 가을을 기다렸다가 마땅히 사세를 관망하고 탈감頉減54)하겠습니다.
병이 심하여 우선 이만 줄입니다.

4월 22일 병든 서생이.
추신
「표충사비명表忠祠碑銘」을 혼자만 외람되이 기념하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한 건을 인출印出하여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연일延日 관아에서 변익로邊益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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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스님께 보낸 답장


0001_0047_a_01L
鵬上人 道案

0001_0047_a_02L

0001_0047_a_03L戀想得承
0001_0047_a_04L道札慰沃此間病憂
0001_0047_a_05L可苦欲歸未歸奈何
0001_0047_a_06L鄙詩終至入梓可愧可愧
0001_0047_a_07L思齋良役待秋當觀勢
0001_0047_a_08L頉減矣病劇姑不宣

0001_0047_a_09L

0001_0047_a_10L四月 卄二 病生

0001_0047_a_11L

0001_0047_a_12L表忠祠碑銘獨溽記念
0001_0047_a_13L可欠歎幸爲印出一件
0001_0047_a_14L送惠也延日官 邊益老

0001_0047_a_15L
鵬大師 仙案

0001_0047_a_16L

0001_0047_b_01L늦봄에 벽사壁寺(신륵사)에 가서 지내는 스님의 마음이 맑고 좋으시니 그리운 마음 매우 깊습니다.
졸렬한 나는 스스로 속세에 바빠서 빨리 찾아뵙지 못하니 몹시 슬픕니다.
다름이 아니라 『분충록』은 볼 곳이 자못 있으니 한 건을 인출하여 보내 주시기를 오로지 믿습니다.
나머지는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신유년(1741) 3월(季春)의 하현下弦에 창녕昌寧 벽갑서碧甲曙 신 졸인申拙人.

0001_0047_b_01L㒲春
0001_0047_b_02L往壁仙味淸勝馳戀良深
0001_0047_b_03L拙自汨塵裡未亟相尋
0001_0047_b_04L可悵就奮忠錄頗有
0001_0047_b_05L所觀者一件印而相惠
0001_0047_b_06L專恃餘不一
0001_0047_b_07L仙照

0001_0047_b_08L

0001_0047_b_09L辛酉 季春之下弦 昌寧 碧甲曙 申 拙人

0001_0048_a_01L
붕 스님께 보낸 답장

작별한 지 벌써 해가 지나 그리운 생각이 매우 깊어 가는데, 앞뒤로 보내 준 서찰을 연이어 보고 겨울에 여행하는 정황이 안온함을 알았으니 펼쳐 보고 위안되는 마음 어찌 끝이 있겠는가?
나는 근래 가을에

0001_0048_a_01L
答鵬師

0001_0048_a_02L江原監司 沈聖監


0001_0048_a_03L

0001_0048_a_04L別已經年戀想方深續見
0001_0048_a_05L前後書以認冬令雲遊況味
0001_0048_a_06L安穩披慰何已吾頃一秋送

0001_0048_b_01L수천 리를 보내고 풍상에 피곤한 나머지 기침으로 고생이 심하여 밤낮으로 앓고 있으니 매우 답답하고 답답하다네.
사서四書 인본은 지난번에 자네가 보낸 서찰을 보고 이제 막 사람을 보내 찾아오려고 했네.
그런데 뜻밖에 사람을 멀리까지 보내 주고, 또 장황裝潢(제본)을 부탁하여 보냈는데, 모두가 지극한 뜻에서 나왔으니 매우 감사하다네. 그러나 그 노고에 한 번도 보답하지 못하니 매우 한스럽고 한스럽네. 겸하여 보내 준 3책은 선본禪本55) 대문大文은 펼쳐서 읽어 보니 매우 기뻤다네. 이 책으로 인하여 자네가 선사先師를 위하여 성의를 다하고 몸을 바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네. 언제 다시 표충사表忠祠로 향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경산京山(성주)에 머물려고 하는가?
서찰을 쓰려고 종이를 대하니 서글퍼지네. 인정을 표시할 물품이 없어서 붓 두 자루와 먹 두 개, 해선海善 200립立을 서찰과 같이 보낸다네.
나머지는 병들고 피곤하여 일일이 다 쓰지 못하네.

기미년 복월復月(음력 11월) 22일 원영原營(강원 감영) 답장 서간.
강원 감사 심성감沈聖監

0001_0048_b_01L數千里風霜撼頓之餘咳嗽
0001_0048_b_02L苦劇晝夜呻痛可悶可悶四書
0001_0048_b_03L印本頃見汝私書方欲送人覓
0001_0048_b_04L來矣不意專人遠致且托潢以送
0001_0048_b_05L俱出至意感謝萬萬無一酬其
0001_0048_b_06L可恨可恨兼送三冊■禪本大文
0001_0048_b_07L幸披覽可喜因此書可知汝爲先
0001_0048_b_08L師盡誠致身誠爲可嘉何間更
0001_0048_b_09L向表忠祠耶仍留京山耶■■
0001_0048_b_10L■■臨紙可悵無物表情二筆二墨
0001_0048_b_11L海善貳百立伴書餘病憊不一一41)

0001_0048_b_12L

0001_0048_b_13L己未復卄二日 原營 答書42)

0001_0049_a_01L
붕 대사께 보낸 답장

오래도록 소식이 막혀 매우 슬픕니다. 요사이 어느 산에서 살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간절히 잠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곳의 나는 우선 전과 같아 다행입니다. 대사께서

0001_0049_a_01L
鵬大師 卽傳

0001_0049_a_02L

0001_0049_a_03L久阻悵甚未諦近
0001_0049_a_04L住何山耶只切得眠
0001_0049_a_05L此處則姑依幸也大師

0001_0049_b_01L언제 한번 서울로 올라올 기약이 있습니까?
붓과 먹은 정情으로 받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바쁘고 슬퍼서 일일이 쓰지 못합니다.

경신년(1740) 8월 예동禮洞에서 씀.

0001_0049_b_01L何乃一者戾洛之期
0001_0049_b_02L筆墨各一送
0001_0049_b_03L領情可耳
0001_0049_b_04L忙愴不一一

0001_0049_b_05L

0001_0049_b_06L庚申 八月 禮洞 書

0001_0050_a_01L

0001_0050_a_01L
  1. 1) 공중에 쓰기 어렵네 : 원문의 서공書空은 괴이한 일을 표시하는 말이다. 진晉 나라 은호殷浩가 제명除名되어 평민으로 전락한 뒤에 하루 종일 공중에다 뭔가 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래 엿보니 바로 ‘돌돌괴사咄咄怪事’라는 네 글자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黜免」.
  2. 2) 『종감법림宗鑑法林』 2권에 수록되어 있다.
  3. 3) 이 글은 〈진찬眞贊〉이라는 제목으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에 수록되어 있다.
  4. 4) * 조현명趙顯命(1690∼1752)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 산인歸鹿山人·녹옹鹿翁.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자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였다. 그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녹훈, 풍원군豊原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대사헌·도승지를 거쳐 1730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저서로 『귀록집』이 있고 『해동 가요』에 시조 1수가 전하고 있다.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5. 5) * 조현명趙顯命(1690∼1752) : 조선 후기의 문신. 앞의 서간 참조.
  6. 6) * 김상성金尙星(1703∼1755) : 본관은 강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도계陶溪·손곡損谷. 1727년(영조 3)에 병조 좌랑이 된 뒤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부교리副校理·헌납獻納·응교應敎를 거쳐, 1734년 부평부사富平府使가 되었고, 1736년에는 대사간이 되었다. 이어서 승지·대사성大司成을 거쳐 1744년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소장疏章을 잘 지어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7. 7) * 홍경보洪景輔(1692∼174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 자는 대이大而, 호는 창애蒼厓. 1734 년 7월에는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11월 4일 정사 윤유尹游, 서장관 남태온南泰溫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736년 3월 도승지가 되었고, 그 뒤 호조 참판이 되었다가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1740년 한성부 우윤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지의금부사·대사헌·경기감사를 거쳐 1743년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8. 8) 산속에 … 안다 : 태상 은자太上隱者가 지은 〈사람에게 답함(答人)〉이라는 시에 “산중에 달력이 없으니 해가 가도 날짜를 모른다네.(山中無曆日。寒盡不知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책력을 보내면서 농담 삼아 한 말이다.
  9. 9) 백력白曆: 흰색 종이나 비단으로 겉장을 꾸민 책력, 즉 백장력白粧曆이다. 지질과 꾸민 모양에 따라 청장력靑粧曆·백력白曆·중력中曆·상력常曆·월력月曆 등으로 구분한다.
  10. 10) 군정軍丁 : 군적軍籍에 있는 지방의 장정.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정남丁男으로, 국가나 관아의 명령으로 병역이나 노역에 종사하였다.
  11. 11) 논보論報 : 아래 관청에서 윗 관청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붙여 보고하던 일.
  12. 12) 병마개(覆甁) : 남에게 자신이 지은 글이 볼품이 없으므로 병마개나 하라는 겸사이다.
  13. 13) 오화당五花糖 : 상제喪制 때에 올리던 당류糖類의 하나로 과자 이름이다.
  14. 14) 칭념稱念 : 관원이 외방에 나아갈 적에 고관들이 사적으로 은근히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15. 15) * 윤득화尹得華(1688∼1759) : 서산 대사의 비문을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14번 참조
  16. 16) * 이춘제李春躋(1692∼1748)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희仲熙. 1717년(숙종 4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사헌부 집의에 배수되고, 1731년 진위 겸 진향정사進慰兼進香正使 양평군陽平君 이장李檣을 따라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46년 비변사의 탄핵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후에 지돈녕부사에 임명되었다.
  17. 17) 보고서 … : 이하는 글자 판독이 불가하여 문맥이 연결되지 않아 번역하지 않는다.
  18. 18) * 유언호兪彦好 : 영조 대의 문신으로 정언正言과 지평持平을 거쳐 부수찬을 역임했다.
  19. 19) 『서난록紓亂錄』 : 송운 대사松雲大師(泗溟堂) 유정惟政(1544~1610)의 일기와 상소문上疏文 등을 수록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다. 권2권의 8번 서간 각주 참조.
  20. 20) * 홍익철洪益喆 : 바로 앞의 서간을 보낸 홍익빈洪益彬의 막내아우이다.
  21. 21) 차지次知 : 각 궁방官房의 일을 맡아 보던 사람. 높은 벼슬아치의 집일을 맡아 보던 사람. 주인이나 상전이나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던 하인.
  22. 22) * 이천보李天輔 :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 권1 서간 29번 참조.
  23. 23) 오자가 많아(字多魚魯) : 원문의 어로魚魯는 어로불변魚魯不辨의 생략인데, 어魚 자와 노魯 자를 구별하지 못 한다는 뜻으로, 아주 무식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4. 24) 사문斯文 : 유교의 도의道義나 문화를 일컫는 말. 또는 유학자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25. 25) 이광사李匡師(1705∼1777) : 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 본관은 전주.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또는 수북壽北. 정제두鄭齊斗에게 양명학陽明學을 배웠고, 윤순尹淳의 문하에서 필법을 익혔다. 시·서·화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글씨에서 그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圓嶠體를 이룩하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의 저서를 남겼다.
  26. 26) 포객逋客 :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사람.
  27. 27) * 서명균徐命均(1680∼174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달성.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1731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이듬해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1734년 진주사陳奏使, 1736년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청렴하기로 이름 높았다. 글씨로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김주신 묘표金柱臣墓表」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28. 28) 계곡谿谷 : 조선 중기의 문장가이자 명신인 장유張維의 호. 본관은 덕수. 자는 지국持國.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천문·지리·의술·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통했고, 서화와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 이식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저서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계곡만필』·『계곡집』·『음부경주해陰符經注解』가 전한다.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29. 29) 최호崔顥(704~754) : 당나라 변주汴州 사람. 현종玄宗 개원開元 때 진사가 되었다. 천보天寶 때 태복시승太僕寺丞과 사훈원외랑司勛員外郞을 지냈다. 악부시를 잘 지었고 민간의 가사를 즐겨 채용했다. 초기에는 부염浮艶한 시풍을 보였다가 나중에 변새邊塞를 다니면서 시풍도 웅혼하게 바뀌었다. 〈황학루黃鶴樓〉는 당나라 7언 율시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밖에 〈장간행長干行〉과 〈증왕위고贈王尉古〉, 〈증양주장도독贈梁州張都督〉 등이 있다.
  30. 30) 최호가 …… 있다 : 이백李白이 황학루를 지나면서 “눈앞에 경치가 있는데 시를 짓지 못하니, 최호가 쓴 시가 머리 위에 있기 때문(眼前有景道不得。崔顥題詩在上頭。)”이라는 구절을 짓고 금릉에 이르러 드디어 〈봉황대〉 시를 지어서 〈황학루〉 시에 견주었다는 말이 있다.
  31. 31) * 이덕수李德壽(1673∼1744) :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10번 참조.
  32. 32) * 이의현李宜顯(1669~174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경종 때 신임사화에 연루, 유배되었다. 영조 때 우의정에 올랐으나 정미환국으로 쫓겨났다가 박필몽 등의 반란을 평정, 영의정이 되었다. 표충비表忠碑를 지었다. 청백리로 알려졌고, 글씨도 뛰어 났다. 『경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문집에 『도곡집陶谷集』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33. 33) 호랑이를 그리다가 완성하지 못했다 : 원문의 ‘화호불성畵虎不成’은 서투른 솜씨로 남의 언행을 흉내 내려 하거나 어려운 특수한 일을 하려다가 도리어 잘못됨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조카 마돈馬敦에게 글을 보내어, “용술龍述은 신중하고 위엄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본받으면 행검行檢 있는 선비는 될 수 있으니, 이른바 ‘고니를 새기다가 완성을 못하더라도 집오리처럼 될 수는 있다.(刻鵠不成。尙類鶩。)’는 것이다. 하지만 두보杜保는 호협豪俠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본받다가는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다가 완성하지 못하면 도리어 개같이 되어 버린다.(畵虎不成。反類狗。)’는 것이다.”라고 경계한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
  34. 34) * 김진상金鎭商(1684∼175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1729년(영조 5) 기유처분己酉處分으로 실시된 탕평책에 반발하여 퇴거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환로에 진출하여 1735년 부제학副提學, 1738년 대사성, 1740년 대사헌을 거쳐 1753년 좌참찬에까지 이르렀다. 표충비表忠碑를 썼다. 글씨에 능하여 많은 비문을 썼다. 문집으로 『퇴어당유고』가 전한다.
  35. 35) * 윤득화尹得華 : 권1의 서간 14번 참조. 서산 대사의 비문은 이우신李雨臣이 짓고, 윤득화가 글씨를 썼다.
  36. 36) 여차廬次 : 상중喪中에 상주가 거처하기 위해 초가집으로 만든 막차幕次.
  37. 37) 무환주無患珠 : 무환자나무과의 관목형灌木形으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권2의 2번 서간의 주석 참조.
  38. 38) 달성 판관達成判官 : 송순명宋純明을 지칭한다. 대구 판관이라고도 불렀다. 본서 권2의 13번, 22번, 29번에 소개한 서간 참조.
  39. 39) 흠欠 : 이름을 생략한다는 뜻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찰을 보낼 경우에 서찰 끝에 쓰는 표현.
  40. 40) 장실丈室 : 『유마경維摩經』에 있는 말인데,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거처하는 방이 사방으로 한 발(一丈)이므로, 그 방을 방장方丈, 또는 장실丈室이라 한다. 뒤에 고승의 거처하는 방을 그렇게 부른다.
  41. 41) 백개자白芥子 : 갓의 씨. 구형이며 지름은 0.15~0.25cm이다. 표면은 회백색이나 연한 황색이다. 미세한 그물무늬가 있고 점 모양의 배꼽점이 뚜렷하다. 씨 껍질은 얇으면서 약하고 쪼개면 안에 백색의 떡잎이 있다. 기름기가 있고 냄새가 없으며 맛은 맵다.
  42. 42)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셨으리라 : 『전등록』에 의하면 거사 방온龐蘊이 도일 선사道一禪師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어떤 사람입니까?(不與萬法爲侶者是什麽人。)” 하자, 마조가 이르기를 “네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시고 나면 그때에 너에게 일러 주겠노라.(待汝一口吸盡西江水。卽向汝道。)”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만법에 관통한 것을 의미한다.
  43. 43) * 윤봉오尹鳳五(1688∼1769)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 자는 계장季章, 호는 석문石門. 1746년(영조 2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필선이 되고 부수찬·교리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홍천 현감으로 나갔다가 1759년 동지의금부사·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763년 특진관特進官으로 판돈녕부사를 겸하고 1768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석문집』 8권이 있다.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44. 44) 가득 차면 기운다 : 만사가 다 이루어지면 도리어 화를 가져오게 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주역』 「박괘剝卦」 ‘단전彖傳’에, “군자가 소식영허를 숭상함은 천도에 합치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치는 소쇠消衰하고 식장息長하고 영만盈滿하고 허손虛損하는데 군자는 이 이치에 순종하여 하늘을 섬긴다는 뜻이다.
  45. 45) 초병椒餠 :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전병을 국수처럼 썰어서 볶아 낸 것을 말한다. 사찰 음식 중의 하나.
  46. 46) 판결사判決事 : 조선 시대 장예원掌隷院의 으뜸 벼슬로 정3품 당상관이며 정원은 1인이다. 조선 초까지는 도 관都官에서 노비전적과 노비송사를 담당하였으나, 1467년(세조 13)에 노비송사가 늘어나면서 장예원이 전담 기관으로 독립하였고 그 장으로 판결사를 두게 되었다.
  47. 47) * 이우신李雨臣(1670∼1744) :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8번 참조.
  48. 48) 관룡사觀龍寺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산觀龍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관룡산은 구룡산九龍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로서 많은 문화재와 경치 좋은 사찰로 널리 알려졌지만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49. 49) 미정동尾井洞 : 중구 의주로1가·의주로2가와 서대문구 미근동·충정로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이 지역에 물이 많이 나서 늘 넘쳐흘러 마치 꼬리가 있는 것 같아 꼬리우물 혹은 한자명으로 미정尾井이라고 하던 우물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미동尾洞.
  50. 50) 세 분의 대사 : 서산 대사, 사명 대사, 영규 대사.
  51. 51) * 이우신李雨臣(1670∼1744) : 조선 후기의 문신. 권1 서간 8번 참조.
  52. 52) 별선別扇 : 모양이나 용도가 다른 부채. 보통 것보다 특별히 잘 만든 부채.
  53. 53) 양역良役 : 조선 시대에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 장정에게 부과하던 공역公役. 노역에 종사하는 요역徭役과 군사적인 목적의 군역軍役이 있다.
  54. 54) 탈감頉減 : 능력이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라 하여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
  55. 55) 선본禪本 : 『선문염송禪門拈頌』의 본문을 가리킨다. 앞의 권3 21-2 화동 노부의 편지, 28-2 조 서방이 보낸 편지 참조.
  1. 1) 〈別錄〉 : 원래 장정한 서간첩 이외에 후대에 앞뒤나 상하, 기타 여백에 적은 글을 이렇게 명명하여 정리했다. 대부분 격식에 맞지 않고 글씨도 서툴다. 이하 같음.
  2. 2) 원본에는 ‘天地’이하 ‘何似’까지가 ‘0002_a’에 있음.
  3. 3) 원본에는 ‘日落’이하 ‘否耶’까지가 ‘0004_a’의 상단에 있음.
  4. 4) 원본에는 ‘南方’이하 ‘書禮’까지가 ‘0004_b’의 상단에 있음.
  5. 5) 원본에는 ‘白曆’이하 ‘不多及’까지가 ‘0006_b’의 상단에 있음.
  6. 6) 원본에는 ‘己元’이하 ‘監林’까지가 ‘0006_a’에 있음.
  7. 7) 원본에는 ‘白曆’이하 ‘不多及’까지가 ‘0006_b’의 상단에 있음.
  8. 8) 원본에는 ‘己未’이하 ‘進士’까지가 ‘0006_a’에 있음.
  9. 9) 원본에는 ‘次’이하 ‘不具’까지가 ‘0008_b’의 상단에 있음.
  10. 10) 원본에는 ‘己未’이하 ‘永川守’까지가 ‘0008_a’의 상단에 있음.
  11. 11) 원본에는 ‘京’이하 ‘耳’까지가 ‘0008_a’에 있음.
  12. 12) 원본에는 ‘己未’이하 ‘縣令金’까지가 ‘0009_a’에 있음.
  13. 13) 원본에는 ‘立祠’이하 ‘送之’까지가 ‘0009_a’의 상단에 있음.
  14. 14) 원본에는 ‘立祠’이하 ‘不宣’까지가 ‘00012_a’의 상단에 있음.
  15. 15) 원본에는 ‘雲山’이하 ‘人蹤’까지가 ‘00012_a’에 있음.
  16. 16) 원본에는 ‘五月’이하 ‘出給耳’까지가 ‘00024_a’의 상단에 있음.
  17. 17) 원본에는 ‘不可’이하 ‘碑石中’까지가 ‘00029_b’의 상단에 있음.
  18. 18) 원본에는 ‘草有’이하 ‘取舍耳’까지가 ‘00029_a’의 상단에 있음.
  19. 19) 원본에는 ‘餘不具’이하 ‘金鎭商’까지가 ‘00029_a’에 있음.
  20. 20) 이 글은 속지에 있다.
  21. 21) 이 글은 속지에 있다.
  22. 22) 원본에는 ‘只此不一’이 ‘00032_b’의 상단에 있음.
  23. 23) 원본에는 ‘庚午’이하 ‘送之’까지가 ‘00032_a’에 있음.
  24. 24) 원본에는 ‘品擇’이하 ‘不具’까지가 ‘00033_b’의 상단에 있음.
  25. 25) 원본에는 ‘重’이하 ‘欠’까지가 ‘00033_a’에 있음.
  26. 26) 원본에는 ‘是企’이하 ‘不具’까지가 ‘00038_b’의 상단에 있음.
  27. 27) 원본에는 ‘辛酉’이하 ‘散人’까지가 ‘00038_a’에 있음.
  28. 28) 원본에는 ‘此不備’가 ‘00040_b’의 상단에 있음.
  29. 29) 원본에는 ‘辛酉’이하 ‘散人’까지가 ‘00040_a’에 있음.
  30. 30) 원본에는 ‘辛酉’이하 ‘付送’까지가 ‘00041_a’에 있음.
  31. 31) 원본에는 ‘吾所’이하 ‘送矣’까지가 ‘00042_b’의 상단에 있음.
  32. 32) 원본에는 ‘此意’이하 ‘狀’까지가 ‘00042_a’의 상단에 있음.
  33. 33) 원본에는 ‘大英’이하 ‘病生’까지가 ‘00042_a’에 있음.
  34. 34) 원본에는 ‘貴沙’이하 ‘倩不’까지가 ‘00043_b’의 상단에 있음.
  35. 35) 원본에는 ‘多及’이 ‘00043_a’의 상단에 있음.
  36. 36) 원본에는 ‘辛酉’이하 ‘參判’까지가 ‘00043_a’에 있음.
  37. 37) 원본에는 ‘將於’이하 ‘不一’까지가 ‘00045_b’의 상단에 있음.
  38. 38) 원본에는 ‘十二’이하 ‘春窩’까지가 ‘00045_a’에 있음.
  39. 39) 원본에는 ‘以專’이하 ‘不宣’까지가 ‘00046_b’의 상단에 있음.
  40. 40) 원본에는 ‘辛酉’이하 ‘付送’까지가 ‘00046_a’에 있음.
  41. 41) 원본에는 ‘■■’이하 ‘一一’까지가 ‘00048_b’의 상단에 있음.
  42. 42) 원본에는 ‘己未’이하 ‘答書’까지가 ‘00048_a’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