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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1_a_01L평안북도(平安北道之部)박재금, 이대형 (역)총목차總目次1-1. 향적산 양화사 고적기문 香積山陽和寺古蹟記文
1-2. 발문跋文
2. 향적산 보국사 대웅전의 개금과 단청, 서문과 함께(香積山保國寺大雄殿改金丹雘 並序)
3. 양화사 사천왕 중수기 陽和寺四天王重修記
4. 향적산 양화사 중건기 香積山陽和寺重建記
5. 향적산 양화사 개건기 香積山陽和寺改建記
6. 양화사 비문 陽和寺碑文
7. 송림사 옛터의 비(松林寺舊基址碑)
삼각산 송림사 불향답비三角山松林寺佛享畓碑 (전자篆字)
8. 향적산 화장암의 칠성 탱화를 다시 만들고 겸하여 성전의 단청을 한 기문 (香積山華藏菴改造七星幀兼聖殿丹艧記)
9. 평안북도 태천군 향적산 보국사 축성전 창건기 平安北道泰川郡香積山保國寺祝聖殿創建記
10. 향적산 상운암 중수기 香積山上雲庵重修記
11. 정월에 향적산 양화사 상운암의 불상을 개금하고 기와를 다시 덮은 기문 (三陽東香積山陽和寺上雲菴佛像改金翻瓦記文)
12. 정월에 향적산 상운암의 중수 및 기와를 갈아 덮은 기문 (三陽東香積山上雲菴重修及翻瓦記文)
13. 향적산 상운암의 중수와 불상을 개포改袍한 기문 (香積山上雲菴重修與佛像改袍記)
14. 천왕사 중수의 대시주인 전 판관 홍정주 공의 은혜를 기록한 글 (天王寺重修大施主前判官洪公正柱氏記惠文)
14-1. (후기)
15. 금강사에 있는 석비의 글(金剛寺所在石碑文)
16. 희천군 원명사 사적기 熙川郡圓明寺事蹟記
17. 희천군 금선사 사적기 熙川郡金仙寺事蹟記
18. 희천군 묘향산 척반대 사적기 熙川郡竗香山擲盤臺事蹟記
19. 심원사 深源寺
19-1. 심원사 현판 1 深源寺懸板
19-2. 현판 2 懸板
19-3. 현판 3 懸板
20. 용운사 龍雲寺
21. 보리산 보광사 菩提山普光寺
21-1. 선천부 보리산 보광사 사적 宣川府菩提山普光寺事蹟
21-2. 보광사 명부전의 사적(普光寺冥府殿事蹟)
21-3. 보광사 명부전 상량문 普光寺冥府殿上樑文
21-4. 보광사 시록암 현판 普光寺諡錄菴懸板
21-5. 보광사 명부전 상량시 冥府殿上樑詩
21-6. 문루 현판의 시(門樓懸板詩)
22. 백벽산 견성암의 편액(白碧山見性菴扁額)
23. 운산군 북면 적리 어첩동 서림사의 편액(雲山郡北面荻里御牒洞西林寺扁額)
24. 보타산 관음 창건기 寶陀山觀音剏建記
25. 청계암 편액문 清溪菴扁額文
27. 고려국 평양도 연산부 묘향산 안심사 석종비 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鐘之碑
28. 검각산 보현사 조사기 釰角山普賢寺調查記
28-1. 보현사의 불상을 개금하고 성전聖殿에 석가여래 16성중十六聖眾을 봉안하고 채색을 다시 한 사실(普賢寺佛像改金 與聖殿奉安釋迦如來十六聖眾 改彩事實)
28-2. 검각산 보현사의 불상에 금을 다시 입히고 16성중을 다시 칠하고 각부의 탱화를 그린 사실의 기록(釰角山普賢寺佛像改金 十六聖眾改彩 各部幀畫事實記)
28-3. 검각산釰角山 보현사普賢寺 응진전應真殿 중수 시주 권선문 釰角山普賢寺應真殿重修施主勸善文
29. 읍내면邑內面 사찰의 유래물由來物 조사기(邑內面寺剎由來物調查記)
30. 약산 서운사의 오래된 비(藥山捿雲寺古碑)
31. 천주사 고적 비문 天柱寺古蹟碑文
32. 명도암의 편액(明道菴扁額)
33. 만합사 편액 萬合寺扁額
34. (묘향산 보현사)
34-1. 묘향산 보현사 사적기 妙香山普賢寺事蹟記34-2. 묘향산 이적 妙香異蹟
34-3. 만세루 시
34-4. 농부가 인장을 주웠는데 고적古蹟이었다
34-5. 어용御容을 봉안한 사적
34-6. 행대보광국숭록대부行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 이조판서政吏曹判書 병조판서兵曹判書 승의병대장僧義兵大將 사자국일도대선사賜紫國一都大禪師 겸팔도선교도총섭兼八道禪教都摠攝 대각등계존자大覺登階尊者 서산西山 청허당清虛堂 대화상大和尚 휘諱 휴정休靜의 진영.
34-7. 행대광보국숭록대부行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 겸육군문도총섭兼六軍門都摠攝 영의병대장군領義兵大將軍 사명송운당泗溟松雲堂 대선사大禪師 휘諱 유정惟政의 진영.
34-8. 국가주석國家柱石 선문목탁禪門木鐸 동시임란同時臨亂 공존사직일체功存社稷一軆 의보제군생義普濟羣生 의병부장義兵副將 가의대부嘉義大夫 중추부사中樞府使 뇌묵당雷默堂 대선사大禪師의 진영. 휘諱 처영處英.
34-9. 정조 대왕 어제 서산西山 대사 화상당畵像堂 명銘서序 병기
34-10. 편액 扁額之部
편액 말암末菴
34-11. 묘향산 극락전을 새로 지은 기문
34-12. 상원암에 올라 세 폭포를 바라보다 登上院觀三瀑
34-13. 편액扁額
35. (묘향산 내원암)
35-1. 묘향산 내원암 중건기
35-2. (심상훈의 기록)
35-3. (이근호의 기록)
35-4. 4절구에 차운하다 次四節句
35-5. 현판 부분 懸板之部
35-6. 탑 부분 塔之部
35-7. 비석 부분
36. 묘향산 보현사 기록(妙香山普賢寺之記)
37. 고려국 평양도 연산부延山府 묘향산 안심사 석종의 비碑 (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鍾之碑)
38. 사리각
39.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사국일대도선사賜國一大都禪師 선교도총섭禪教都摠攝 부종수교扶宗樹教 보제등계존자普濟登階尊者 서산西山 청허당清虛堂 휴정休靜 스님 비명碑銘(并序)
40. 수충사酬忠祠 비碑
41. 보월사寶月寺 사실 기록(寶月寺事實記)
42. 옥파당玉坡堂 대사 진탑真塔 玉坡堂大師真塔
43. 국청사國清寺를 중건하는 상량문(重建國清寺上樑文)1. 양화사 고적陽和寺古蹟1-1. 향적산 양화사1) 고적기문 香積山陽和寺古蹟記文서역의 가르침인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고 동방에 전래된 것이 몇천, 몇백 년인지 모르겠지만, 동방의 사람들은 부처를 받드는데 더욱 힘썼다. 나라가 있은 이래로 명산의 구역에는 모두 사원과 도관道觀이 있었다. 본 현(태천현泰川縣)의 치소 동쪽에 있는 향적산香積山 양화사陽和寺도 규모가 큰 -
0008_0001_a_09L平安北道之部
0008_0001_a_10L○陽和寺古蹟
0008_0001_a_11L香積山陽和寺古蹟記文
0008_0001_a_12L西教之入中國。轉而之東方者。不知其幾千百年。而東之人尤勤於事佛。
0008_0001_a_13L自有國以來。名山大界。皆有寺觀焉。本縣治之東。香積山陽和寺。亦一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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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2_a_01L사찰이다. 패수浿水(대동강)와 살수薩水(청천강) 이북에는 오직 향악香嶽(묘향산)이 가장 웅장하여 국내의 사산四山2)에 든다. 태주泰州3)의 향적산이 또한 그 다음인데, 비록 감히 묘향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취를 함께 하지는 못할지라도, 이곳은 총림의 여러 사찰 중에서 우뚝 솟아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누대와 전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과 탑이 조성된 것이 이 어느 해 어느 시대에 이루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한馬韓, 진한辰韓4) 이후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듭 병화兵火가 미쳐서 지난 시간의 환영처럼 찾을 수 있는 흔적이 없고 재가 되어버려 지난 역사를 고찰할 만한 것이 없으니 후세에 지금을 바라보는 것이 또한 지금 옛날을 돌아보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5) 그러나 원로들의 구전과 옛 판목의 남은 글을 참고하여 옛날 일을 증명한다면 대개 근거할 바가 있을 것이다.원래 향적산은 향악산(묘향산)을 근본으로 삼아 한량없는 큰 공덕의 토대를 쌓았으니 산 이름 향적香積6)은 그 뜻에 깊이 어우러진다. 이 산은 일찍부터 영험함과 신이함을 드러내어 따스한 봄이 먼저 초목에 이르고 온화한 기운이 항상 골짜기 입구에 머무르니, 절의 이름 양화陽和 또한 그 실상에 부합하는 것이다.옛날 중희重熙 11년 임자년, 곧 고려 성종 때7)에 탐밀耽密과 굉확宏廓 두 대사가 있었으니 천인天人이요 성승聖僧으로서 묘향산 남쪽 기슭에 석장을 꽂고 보현사普賢寺를 창건하였다. 사찰들 140개가 경관이 뛰어난 곳에 있었는데 태주泰州에 건립한 사찰은 선화사宣和寺, 고양화사古陽和寺, 신양화사新陽和寺, 송림사松林寺 등 네 곳이 있다. 이른바 선화사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될 정도의 많은 변화를 여러 번 겪어 단지 터만 남았고, 송림사는 향적산 북쪽 40리쯤 되는 삼각산三角山 아래에 있다. 고양화사, 신양화사라 한 것은 바로 이 절(양화사)이다. 이는 곧 편양鞭羊8) 문중의 법제자 월소月昭가 짚은 곳으로 향산사적비香山事蹟碑의 음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절은 앞서 창건된 것을 넓혔는데 묘향산 보현사의 영건과 세월의 선후에서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으며 산 이름도 서로 비슷하니, 이 사실 또한 기이하다.전란의 화재로 불 타 -
0008_0002_a_01L剎也。盖▼(氵+具) [1] 滻 [2] 以北。唯香嶽最雄。叅於封內四山。泰州香積。又其次也。則雖
0008_0002_a_02L不敢與妙香比肩並跡。而斯示叢林諸剎中傑立而雄出者也。樓殿之開
0008_0002_a_03L剏。塔廟之營造。不知其何年何代而辦。馬辰以後。天星屢周。兵燹疊臻。前
0008_0002_a_04L塵影事。無跡可尋。刼灰𨓏牒。無處可攷。則後之視今者。不亦猶今之視昔
0008_0002_a_05L乎。然以耆宿之口傳及古板遺墨叅考而證嚮之。盖有所據者存焉。原夫
0008_0002_a_06L香積。以香岳為祖。而積無量大功德之基也。則山名香積。深叶其義。而是
0008_0002_a_07L山也。夙著靈異。陽春先及於卉木。和氣恒留於洞門。寺號陽和。亦得其實
0008_0002_a_08L矣。而在昔重熙十一年壬子歲。即麗朝成宗時也。有耽密宏廓兩大師。以
0008_0002_a_09L天人聖僧。卓錫於妙香南麓。剏普賢。諸剎百四十。所有奇次之。泰州所營
0008_0002_a_10L寺剎。有宣和古陽和新陽和松林等四處。所謂宣和屢閱滄桑。但有基址。
0008_0002_a_11L松林則在香積北四十里許三角山下。古陽和新陽和云者。即是寺也。斯
0008_0002_a_12L廼鞭半 [3] 門法子月昭。所拈出香山事蹟碑陰來者。而茲寺普先之剏立。其
0008_0002_a_13L與妙香普賢之營建。歲月不甚先後。山名相與伯仲。事亦奇矣。兵火之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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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3_a_01L없어지고 비바람에 기울고 무너져서 몇 번이나 도중에 폐해지고 몇 번이나 중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이에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중수 사적은 뚜렷이 상고할 수 있다. 천순天順9) 연간에 승려 명언明彥이 옛 모습을 따라서 세 번째로 새롭게 하였고, 순치順治 13년(1656) 병신년에 쌍언雙彥, 쌍학雙學 두 승려가 발원하여 네 번째로 중건하였다.이로써 지난 세월을 추측해 보건대, 허다하게 무너지고 세워짐이 무상하였으니 몇 사람의 명언과 몇 사람의 쌍언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동서로 늘어선 무설전無說殿과 용화전龍華殿 두 전각과 서남쪽 모퉁이의 명월당明月堂을 중수하는 등의 일 같은 것이다. 황명皇明 숭정崇禎 기원후 56년(1683)에 승려 초자初子와 운수도인雲水道人(행각승) 신요信撓, 홍현弘玄 등이 중수할 뜻을 품고 재물을 모으고 장인을 불러 모아서 이듬해 병술년에 낙성하여 공사를 마쳤다. 그런데 서쪽 옆의 용화전만 중간에 화재로 불에 타버려서 학승鶴乘, 혜능慧能 등 서너 명의 비구가 뜻을 맞춰 모의해 신속히 새로 만들었으니 바로 강희 갑신년(1704)이었다.보광전普光殿의 서쪽 별실別室은 보광전을 조성할 때 지은 것으로 강희 15년 병진년(1676)에 정精과 눌訥 두 화주가 힘을 합쳐 중건하였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절 앞의 종각의 경우는 혹은 홍하紅霞라는 명호를 걸었다고 하고 혹은 법뢰法雷라고 편액에 썼다고 하는데, 어떤 이름을 얻었는지 어느 해에 만들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연로한 노승에게 물어보니 쌍언雙彥 비구가 중건한 것이라 하였다. 계축년 봄에 이르러 영산후불탱靈山後佛幀10) 1부部와 오로감로왕탱五路甘露王幀11)을 그려서 봉안하여 산문을 안정시켰다. 그리하여 세 번째 중창주인 명언明彥이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 않고 쌍언雙彥 한 사람을 얻어 다시 광채를 살려냈으니, 명언과 쌍언은 이름은 달랐지만 마음은 참으로 같은 이였다.천왕문天王門은 탐밀과 굉확 두 대사가 만들었다고 하며 가정嘉靖 26년(1547)에 -
0008_0003_a_01L焚蕩。風雨之所傾頹。姑未知幾番中廢幾番重新。而其間有第三第四重
0008_0003_a_02L修事蹟之班班可考者。粵若天順間。有釋子明彥仍舊而三新之。順治十
0008_0003_a_03L三年丙申。有雙彥雙學兩沙門。發願而四新之。推此以𨓏日月。許多廢興無
0008_0003_a_04L常。則未知有幾箇明彥幾箇雙彥耶。至如東西翼無說龍華兩殿及西南
0008_0003_a_05L隅明月堂重修等事 皇明崇禎後五十六年。有沙門初子雲水道人信
0008_0003_a_06L撓弘玄等。有志重緝。鳩財聚工。越明年丙戌。落成告功焉。而獨西翼龍殿。
0008_0003_a_07L中為回祿所灾。有鶴乘慧能等數三比丘。叶謀而速新之。即康熙之甲申
0008_0003_a_08L歲也。若夫普光之西別室。或云普光殿成造時所營者。而康熙十五年丙
0008_0003_a_09L辰。有精訥兩化主。合力而重新焉。至若寺前之鍾閣。或以紅霞揭號。或以
0008_0003_a_10L法雷題扁。殊未知何名得。當何年所剏。而質諸古老。則雙彥苾蒭之所重
0008_0003_a_11L新者。逮至癸丑春。繪靈山後佛像 [4] 一部及五路甘露王幀。留鎮山門。然則
0008_0003_a_12L第三重剏主明彥。罔專其美。而得一雙彥。更生光色。明彥雙彥。其真二名
0008_0003_a_13L而一心者耶。若夫天王門。則密廓兩師之所剏云。而嘉靖二十六年。有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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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4_a_01L석지釋智선사禪師가 이전의 문을 고쳐 중건하였다. 광덕廣德 37년 신유년12)에 승려 광운廣雲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고, 200여 년 후에 승려 성운性雲이 다시 중수하였으며, 강희 44년(1705) 을유년에 사문 계운戒雲이 뒤이어 세 번째로 새로 고쳤다. 불문의 삼운三雲13)이 이어서 사천왕상을 조성하였으니 일의 기묘함이 어떤 것이 이보다 더할 것인가.향적전香積殿의 쌀통은 둘레가 4파把14)로 100곡斛15)의 곡식이 들어가는데, 이것으로 영산수륙회靈山水陸會16)에서 찜통으로 삼았다. 이는 불가에서 쓰는 용기 가운데 매우 특이한 것이다. 조계문漕溪門의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 두 소상도 계운이 발원하여 조성한 것이다. 명부전冥府殿의 시왕상十王像은 대화주大化主 혜능慧能이 묘연妙衍, 경주敬周, 종찬宗賛, 행운行雲, 정관靜觀 등 60여 대중과 더불어 무신년과 기유년 사이에 힘을 합쳐 함께 조성한 것이다.도량道場을 가지고 논하자면 향을 사르고 손가락을 태우는 소지 공양을 하며 머리를 깎고 두 손을 맞잡아 차수하는 무리가 서쪽 땅 수백 리를 둘러서 마치 구름이 모이고 물결이 밀려오듯 하기를 하루도 그렇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임진년에 임금의 수레가 서쪽으로 갔을 때,17) 성사聖師 휴정休靜이 팔로도총섭八路都摠攝으로서 이 절에 거점을 두고 천자의 군대18)를 도와 왜구를 섬멸하였다. 아! 우리 선조께서 수레를 돌려 돌아오신 공은 실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풍암楓巖대선사大禪師19)는 서산西山(휴정休靜)의 먼 후손으로서 진정한 법맥을 전하여 상승上乘20)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그 대략이다.또한 절에 딸린 땅의 봉표封標로 말하자면 『여지승람』에 수록된 바로는 서쪽은 송현松峴에서 북쪽으로는 차령車嶺, 향적령香積嶺, 상암上菴(상운암上雲菴)의 뒷고개에 이르며, 동쪽은 화장암華藏庵 뒤편 고개로부터 충점忠店에 이르고 이어 분고개盆古介까지 미친다. 중년 이래로 여러 번 상란喪亂21)을 겪으면서 사우가 혹은 무너지고 혹은 일어나며, 주석하는 승려의 반은 새로 왔고 반은 예전 그대로이다. 금표 내 경역의 땅은 어느샌가 거주하던 백성들이 점유하여 빼앗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곳은 동쪽은 섬이고개暹伊古介의 -
0008_0004_a_01L智禪師。改舊而重新之。廣德三十七年辛酉。僧廣雲塑成四王像。後二百
0008_0004_a_02L有餘年。釋性雲再新之。康熙四十四年乙酉。沙門戒雲。尾以三新之。夫以
0008_0004_a_03L釋門三雲。續成天王四像。事之奇妙。孰過於此。若乃香積殿飯稻槽。厥圍
0008_0004_a_04L四把。容入百斛。取以為靈山水陸會調蒸之具。此其佛家器用中尤異者
0008_0004_a_05L也。若如漕溪門文殊普賢兩塑。亦戒雲發願所成者。而冥府殿十王像。則
0008_0004_a_06L大化主慧能與妙衍敬周宗賛行雲靜觀等六十餘眾。戊申己酉年間。合
0008_0004_a_07L力而共成者也。試以道場論之。燃香燒指祝髮又 [5] 手之徒。環西土數百里。
0008_0004_a_08L若雲會而波奔。靡日不有。而黑龍歲 大駕之西幸也。聖師休靜。以八路
0008_0004_a_09L都摠教 [6] 。宗于此寺。以助天兵。勦殄倭寇。噫。我 宣廟返駕之功。實基於此。
0008_0004_a_10L其後楓巖大禪師。以西山雲孫。仍傳真派而作上乘。此其大較也。且以寺
0008_0004_a_11L位之封標言之。輿地所載。則西自松峴。北至車嶺香積嶺上菴後嶺。東自
0008_0004_a_12L華藏後峴。至忠店。連及盆古介矣。而中年以來。屢經喪亂。寺宇或廢或興。
0008_0004_a_13L居僧半新半舊。標內境土。遽為居民冐占攘奪。即今所執。不過東自暹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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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5_a_01L상암上菴에서 좌청룡과 우백호22)가 서로 마주보는 곳을 경계로 멀리 권희현勸喜峴에 이르며, 이어서 청룡靑龍의 남쪽 끝에서 서쪽으로 넘어가 원적암圓寂庵 아래의 다리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향적령香積嶺에 미치는 데 불과하다. 이후로 백년 천년 사이에 나라에 병화兵禍가 다시 일어나지 않고 거주하는 백성의 무리가 조금씩 빼앗아 가질 일이 없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절의 장로인 신계信戒, 묘연妙衍 등은 이렇게 옛 자취가 점차 사라져감을 우려하고, 옛 봉표가 날로 줄어드는 것을 근심하였다. 이에 나에게 말하기를, “노승의 나이가 지금 지는 해와 같이 만년이라서 입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판목에 남긴 글자는 닳고 좀먹어서 다 없어질 것이니, 양화사의 옛 자취도 장차 흐릿해지고 무너져서 헤아리기 어렵게 될 처지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노승들이 전하는 바와 옛 현판에 남아있는 것으로 나에게 기문을 써서 후세에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유문儒門을 가까이하다가 불문佛門에 들어온 사람인지라, 그 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한번 노스님의 말을 따라 조금 감회를 적었다.
옹정雍正 8년(1730) 경술년 4월 일에 복재산인福齋散人이 삼가 쓰다.1-2. 발문跋文백마白馬가 서쪽에서 온 후로23) 불교가 동쪽으로 흘러와서 유한劉漢24)과 원위元魏25) 사이에 점차 넓혀졌고 이당李唐26)과 조송趙宋27) 무렵에 크게 융성하였으니 명산의 뛰어난 경역에 화려한 사원을 짓지 않은 곳이 드물었다. 이에 선암禪庵과 강원講院이 바위 골짜기에 늘어섰고, 이름난 가람과 큰 사찰이 별처럼 천하에 줄지어서, 곳곳마다 웅장하다 일컬어지며 난타蘭陁,28) 급고원給孤園,29) 죽림정사竹林精舍30)와 비견되니 불법이 일어나서 숭상된 것이 이와 같았다.해외에 미쳐서는 비조鼻祖인 아도阿度화상和尚이 처음으로 경상도 선산善山에 도리사桃李寺를 세웠다. 신라 이후로는 더욱 높이 받들어져서 3천 -
0008_0005_a_01L古介上菴。龍虎相對處為限。逶迤至勸喜峴。仍自青龍南首。西犯至圓寂
0008_0005_a_02L下梁。北及香積嶺。自茲以後。百千年間。焉知其更無國朝兵𥚁之作。而居
0008_0005_a_03L民輩無佛 [7] 攘奪之漸也耶。寺之長老信戒妙衍等。惕茲古蹟之漸泯。憫其
0008_0005_a_04L舊標之日蹙。於是為余而言曰。老僧年今西夕。示寂無日。古板遺墨。磨蝕
0008_0005_a_05L且盡。陽和寺古跡。將至於混落難究之境矣。茲以古老之所傳及舊板之
0008_0005_a_06L所餘者。屬余以記以垂來𥜥 [8] 。余以儒門邇客。捨身於空門者也。於其請也。
0008_0005_a_07L不可揮却。一從老師之言。聊以寓感焉。
0008_0005_a_08L雍正八年庚戌四月 日。 福齋散人謹誌。
0008_0005_a_09L跋
0008_0005_a_10L盖自白馬西來。象教東流。漸弘於劉漢元魏之間。而大盛於李唐趙宋之
0008_0005_a_11L際。名山勝境。鮮不營梵宇華宮。茲以禪庵講院。羅列巖壑。名藍巨剎。星排
0008_0005_a_12L天下。在在稱雄。以配蘭陁給孤園竹林精舍。像法之興崇如此矣。爰及海
0008_0005_a_13L外。鼻祖阿度和尚。首建于慶尚道善山桃李焉。自羅以後。尤尊崇之。三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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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6_a_01L비보소稗補所,31) 7대 가람,32) 5백 선찰禪剎, 억만의 독재獨齋33)가 나라 안에 바둑알처럼 섞여 있었다. 고승과 신이한 승려가 간간이 나와서 (불법을) 일으키고 숭상하였으며, 줄지어 선 사찰이 서로 마주보고 북과 종소리가 서로 들리었으니, 나라는 비록 중국에 비해 좁고 작지만 매우 성대하였다.유독 우리 관서지방(평안도)은 불교가 교화하여 다스렸으니 향적산 양화사는 바로 고려시대 승려 탐밀探密과 굉확宏廓 두 대사가 비로소 천기天機를 살펴 처음 창건하였으며 3천 비보禆補 사원의 하나이다. 이 산의 웅장하고 수려함은 비록 묘향산이나 풍악산에 맞서지는 못해도 백두산의 한 맥이 흘러서 이곳에 이른 것이다. 위로는 푸른 하늘에 닿아 높이 솟았고 아래로는 땅을 눌러서 퍼졌으며, 천 개의 바위가 수려함을 겨루고 만 개의 골짜기가 다투어 흐른다.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34) 좌우전후의 모습이 천태만상이요 뛰어난 운수雲水35)의 고을이며, 신선이 산다는 51개 선산仙山의 계통이 아니겠는가.향기로운 덩굴이 우거지고 봄빛이 사시사철 머물러서 향적香積으로 산 이름을 지었고, 따스한 봄날 온화하여 구름이 비 되어 내릴 때 더불어 한 경내에 음덕을 입으니, 이것(양화陽和)으로 편액을 한 것이다. 문이 한 굽이 맑은 시내를 마주하고 있어 잘잘못을 듣는 이근耳根을 씻을 수 있고, 뜰은 겹겹이 청산에 둘러있으니 색공色空의 안루眼累를 맑게 할 수 있으리라. 옥과 같은 나무들 울창하니 전승戰勝36)이 동산을 산 것과 같고 보배 전각이 우뚝 솟았으니 급고給孤37)가 정사精舍를 세운 것과 같도다. 산사의 뛰어남이 이와 같으니 명성이 온 세상에 널리 퍼졌다.이로 말미암아 서산西山대화상이 임진년에 왜적이 상국上國(명나라)을 침범할 때 임금의 수레가 서쪽으로 행차하던 날, 선교 16종 팔도도총섭禪教十六宗八道都摠攝으로 명을 받들어 의주義州로 갈 때 이 절에 머물렀다. 그리고 왜적을 방어하여 나라의 운수를 늘이고, 불교38)를 펼침에 이 절을 근본으로 삼았는데, 총림의 법도가 있었으니 복지福地인 사찰 81곳 가운데 으뜸이었다. 다만 영험하고 신이한 옛 자취와 절을 건립한 연대年代에 대한 것은,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어서 이전 기록들은 이미 타버렸고 옛사람들도 이미 가고 없으니, 검증할 만한 사람과 글이 없어서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다만 -
0008_0006_a_01L稗補所。七大伽藍。五百禪剎。億萬獨齋。棊錯於域中。高僧異釋。間生興崇。
0008_0006_a_02L列剎相望。皷鍾相聞。國雖褊小比中州。為甚盛矣。唯我關右。道光化治。香
0008_0006_a_03L積山陽和寺者。即麗代僧探密宏廓兩大師。肇覷天奧。俶始剏。禆補三千
0008_0006_a_04L之一也。茲山之雄偉。雖不匹妙香楓嶽。白頭一脉。流至于此。上磨青穹而
0008_0006_a_05L崢嶸。下壓垢土而磅磗。千岩競秀。萬壑爭流。龍盤虎踞之左右前後者。萬
0008_0006_a_06L千其狀。秀出雲水之鄉。無乃仙山五十一之胄也。香蘿積鬱。留春色於四
0008_0006_a_07L時。以香積名其山。陽春和液雲雨時。興 [9] 蒙陰隲於一境。以此額焉。門對一
0008_0006_a_08L曲清流。可洗是非之耳根。庭圍數疊青山。足清色空之眼累。琪樹叢鬱。依
0008_0006_a_09L俙戰勝之賣園。寶殿崢嶸。彷彿給孤之建舍。既山寺之勝若此。名騰八埈 [10]
0008_0006_a_10L之外。由是西山大和尚。粵於壬辰歲。倭寇上國之時 宸駕西幸之日。以
0008_0006_a_11L禪教十六宗八道都摠攝奉勅。灣上之際。留住此寺。而禦寇兵。延國祚。
0008_0006_a_12L肆以安教。宗於此寺。稍有叢林之制。福地八十一之首也。但靈異之古蹟。
0008_0006_a_13L經始之代穓 [11] 。則累經兵燹。前記已燒。前人已沒。人文無徵。茲未詳焉。但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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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7_a_01L듣고 본 것을 가지고 대략 두세 가지를 기록할 뿐이다.아! 만물이 성하고 쇠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번갈아 바뀌니 무너지고 일어남이 무상한 줄을 알겠도다. 불운과 행운이 서로 기우니 차고 비는 것에 운수가 있음을 알겠도다. 그렇기에 중간에 흥하고 폐한 것이 한 사람이 아닐진대 송宋, 원元부터 명明에 이르기까지 위아래로 천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러서 비록 인멸되어 상고할 수 없지만, 가까운 과거에 서너 차례 중건한 사적은 분명히 알 수 있으니 때에 따라 흥하고 쇠함이 그 사이에 어찌 없겠는가.숭정 기원후 56년(1683)에 이르러 기현機玄 등 두 비구가 요사를 중건한 뒤에 모든 폐해졌던 것들이 다 일어났으니 완연히 대찰大刹의 규모와 격식이 있었다. 그러나 또한 서편 위의 건물 하나는 언제 허물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오직 동쪽 위의 사우 하나가 있으니 지금의 응향각凝香閣이 바로 이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법뢰각法雷閣은 크고 웅장하며 화려하여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맑은 감상의 흥취를 낼 만하고, 강학하고 참선하는 무리는 논의의 취지를 펼치기에 충분하다. 창을 열면 마음속이 상쾌하니 천 봉우리의 달이 영롱하게 비추고, 난간에 기대면 서늘함을 맞이하니 만 골짜기의 바람이 소슬히 불어온다. 맑은 시내를 굽어보면 소보巢父39)가 귀를 씻은 생각이 일어나고, 앉아서 성긴 종소리를 들으면 장주莊周 노인이 나비가 된 꿈40)에서 놀라 깨어난다. 하물며 다시 맑은 시내 빠른 여울은 난정蘭亭41)의 정취가 있고, 소나무 꽃 뜰에 가득하니 벽곡辟穀42)의 아취가 있다. 명부전冥府殿에 대한 글은 예로부터 근거할 것이 없다.이때 주지 혜능惠能화상이 뜻을 함께 하는 60명의 승려들과 더불어 함께 도모하여 터를 잡아 조성하고 불상을 조각하였으니 전각은 화려하고 존상은 환히 빛나 근래에 없었던 일로 백세 천세토록 다시 빛을 낼 것이다. 그런즉 귀신이 도와주고 보호하여 기꺼이 숨겨두었다가 오늘날 이 스님을 기다려 이 천추의 천간지비天慳地秘43)에 터를 닦았으니, 훌륭하도다.이 절은 천왕문天王門이며 해탈문解脫門이 문마다 열반으로 들어가는 불가사의한 문이요, 명부전冥府殿, 보광전普光殿은 -
0008_0007_a_01L耳目。粗氣 [12] 二三耳。噫。物盛而衰。固其理也。今古遞代。認廢興之無常。否泰
0008_0007_a_02L相傾。識盈虛之有數。然則中間興廢者。不一其人。而自宋元逮至皇明。上
0008_0007_a_03L下幾千載。代禩𥨊 [13] 遠。雖堙不可攷。近古三四重新者之事蹟。昭昭可見。則
0008_0007_a_04L與時興替者。豈無數於其間哉。以至崇禎後五十六年。機玄等兩比丘。重
0008_0007_a_05L新寮舍之後。百廢俱興。完然有大剎之體裁。然且西上一室。。不知何年月
0008_0007_a_06L之成墟。而唯有東上一室。今之凝香閣者是也。於中法雷一閣。宏壯華麗。
0008_0007_a_07L騷人墨客。可發清賞之興。講輩禪徒。足暢論議之趣。開窓內爽。千峰之月
0008_0007_a_08L玲瓏。倚欄迎凉。萬壑之風蕭瑟。俯臨清澗。起巢攵 [14] 洗耳之思。坐聽疎鍾。驚
0008_0007_a_09L莊叟化蝶之夢。况復清流激湍。有蘭亭之趣。松花滿庭。有僻 [15] 穀之趣。文於
0008_0007_a_10L寘 [16] 府一殿。則自古無基。時住持惠能和尚與其同志者六十開士。合謀眾
0008_0007_a_11L僉。肇基經營。而刻彫王 [17] 像。殿宇華麗。尊容赫赫。近古所未有之者。更生光
0008_0007_a_12L熖於百千世也。然則鬼扶神護喜秘。茲基於千秋天慳地秘。以待此師於
0008_0007_a_13L今日。偉哉。此寺也。天王門解脫門。門門起入涅槃之妙門。冥府殿普光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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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8_a_01L전각마다 깨달음의 증과證果를 이루게 하는 보전寶殿이니, 그 공덕의 큼이 어찌 미로산彌盧山이나 향해香海44)와 더불어 높고 깊은 것을 재겠는가. 또 산문의 여러 암자들은 수가 거의 백 개가 되었으나 다 무너져 버렸고 남아있는 것은 오직 세 곳으로, 동쪽의 화장암華藏庵과 서쪽의 원적암圓寂庵은 예부터 고승들이 교화를 드러내던 곳이며 북쪽의 상암上庵은 선문의 상객上客들이 선정에 들고 고요히 명상하는 곳이다. 이들은 모두 본사와 연이어 창건되었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 밖에 중건한 사적은 『여지輿地』에 조금 있지만, 본기에서 이미 다 기록했으므로 지금 거듭 올리지 않겠다. 다만 그 빠진 것을 드러내고 그 아름다움을 기려서 후세에 거울로 삼도록 전한다.
건륭乾隆 6년 신유년 7월 일에 삼가 발문을 쓰다∎건륭 33년(1768) 무자년에 대법당의 불상 삼존三尊의 금을 다시 입혔다. 또 삼장탱三藏幀,45) 명부탱冥府幀, 천룡제석탱天龍帝釋幀이 동시에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점안點眼하는 새벽에 빛이 비치고 상서가 나타남을 느꼈는데 모두들 여태 없던 일이라고 말하였다.
화주化主 : 휴암실 극련鵂巖室克璉
도감都監 : 비구 한운漢運
별좌別座 : 비구 화염花艷
∎건륭 42년 정유년에 대법당을 중수하고, 동시에 향적전香積殿을 만월당滿月堂의 옛터에 옮겨 세웠다.
화사化師 : 본사 주실籌室46) 휴암 극련鵂巖克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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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8_a_01L殿殿開成證果之寶殿。其功德之大。豈與彌盧香海量其高深哉。又於山
0008_0008_a_02L門諸菴。則數幾盈百。而盡為傾頹。存者幾唯有三所。東之華藏。西之圓寂。
0008_0008_a_03L自古匠伯闡化之塲。北之上庵。則禪門上客。安禪靜慮之處也。此皆與本
0008_0008_a_04L寺鱗次剏建。而尚存者也。自餘重新事蹟。輿地多少。本記中已盡載錄。今
0008_0008_a_05L不重上。而但稱其闕賛其美。以埀來世之觀鑑云爾。
0008_0008_a_06L乾隆六年辛酉七月 日。 謹跋。
0008_0008_a_07L乾隆三十三年戊子。大法堂佛像三尊改金。又三藏幀冥府幀天龍帝釋
0008_0008_a_08L幀。同時畵成時。點眼之晨。感放光現瑞。合云未曾有也。
0008_0008_a_09L化主鵂巖室克璉。
0008_0008_a_10L都監比丘漢運。
0008_0008_a_11L別座比丘花艷。
0008_0008_a_12L乾隆四十二年丁酉。大法堂重修。同時香積殿。移建于滿月堂舊基。
0008_0008_a_13L化師本寺主 [18] 室鵂巖克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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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9_a_01L도감都監 : 통정通政 석釋 광책廣策
별좌別座 : 비구 채헌采軒
∎건륭 54년(1789) 기유년에 대법당의 영산후불탱靈山後佛幀을 새로 그리는 일과 사천왕의 오래된 상像의 중수를 동시에 완성하였다.
대화사大化師 : 본사 주실 휴암 극련鵂巖克璉
도감都監 : 전 총섭 계정戒定
별좌別座 : 비구 성한性閑
∎도광道光 30년(1850) 경술년 2월 일에 대법당의 세 불상의 금을 새로 입혀 중수함.
화주化主 : 화봉 보민華峰寶珉.
도화주都化主 : 농허 영은弄虛永誾.
도감都監47) 별좌別座48) : 취홍 지한就弘智閑.
주지 : 환묵 정잠幻默程潛.
∎함풍咸豐 원년(1851) 신해년 4월 일에 보광전普光殿, 향적전香積殿, 천왕문天王門을 간략히 보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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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09_a_01L都監通政釋廣策。
0008_0009_a_02L別座比丘 采軒。
0008_0009_a_03L乾隆五十四年己酉。大法堂靈山後佛幀新畵成。天王古像重修。同時成
0008_0009_a_04L功。
大化師本寺籌室鵂巖克璉。
0008_0009_a_05L都監前摠攝戒定。
0008_0009_a_06L別座比丘性閑。
0008_0009_a_07L道光三十年庚戌二月 日。
0008_0009_a_08L大法堂三佛像改金重修。
0008_0009_a_09L化主華峰寶珉。
0008_0009_a_10L都化主弄虛永誾。
0008_0009_a_11L都監別座就弘智閑。
0008_0009_a_12L住持幻默程潛。
0008_0009_a_13L咸豐元年辛亥四月 日 普光殿 香積殿 天王門。畧于修補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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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0_a_01L도감都監 두승頭僧 : 석 취홍釋取弘.
삼강三綱49) 전좌典座50) : 환겸幻兼.
수승首僧51) : 지수志守.
영장領將52) : 응선應善.
주지住持 : 환묵 정잠幻默程潛.
∎ 을미년 섣달 보름에 주지의 임무를 맡았는데, 이듬해 병신년 3월에 옛 시운을 따라 두승頭僧(주지) 월송당月松堂과 함께 우연히 읊었다.
年當十五出紅塵 나이 열다섯에 티끌 세상 벗어나서
遠入妙香送幾春 멀리 묘향산에 들어와 몇 봄을 보냈던가
寂滅場中無得賞 적멸한 도량 가운데선 즐길 것이 없어서
退為保國是非人 물러나 보국사의 골칫거리가 되었네
위는 용명龍溟의 시이다.
病衲幼年出世塵 병든 납자 이몸은 어려서 세속을 벗어나
焚香侍佛送多春 향 사르고 부처 모시며 여러 해를 보냈는데
近間所役寺中事 근래에 절의 일을 맡게되면서
心用比前半减人 마음 씀이 전에 비해 반으로 준 사람일세
위는 월송당月松堂 스님의 시이다.
위의 시를 차운하여 연대사璉大師에게 주다.
香積山高出世塵 향적산 높이 솟아 세상 풍파 벗어났고
奇花異樹面面春 기이한 꽃과 나무 곳곳마다 봄이로다
尋真怳入蓬萊界 진경 찾아 황홀하게 신선 세계 들어오니
交得禪壇此上人 선단에서 이 스님을 만나게 되었도다
을사년 3월에 안릉安陵53)의 유람객이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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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0_a_01L都監頭僧釋取弘。
0008_0010_a_02L三網 [19] 典座幻兼。
0008_0010_a_03L首僧志守。
0008_0010_a_04L領將應善。
0008_0010_a_05L住持幻默程潛。
0008_0010_a_06L乙未臘望。登住持之任。而丙申暮春。仍舊韻。與頭僧月松堂偶吟。
0008_0010_a_07L年當十五出紅塵。遠入妙香送幾春。寂滅場中無得賞。退為保國是非人。
0008_0010_a_08L右龍溟。
0008_0010_a_09L病衲幼年出世塵。焚香侍佛送多春。近間所役寺中事。心用比前半减人。
0008_0010_a_10L右月松師。
0008_0010_a_11L次下 [20] 韻贈璉大師。
0008_0010_a_12L香積山高出世塵。奇花異樹面面春。尋真怳入蓬萊界。交得禪壇此上人。
0008_0010_a_13L乙巳暮春。 安陵遊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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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1_a_01L위의 시를 차운하여 능대사能大師에게 주다
烱激心無一点塵 밝디밝은 마음은 한 점 티끌도 없이
頭戴霜雪顏帶春 머리엔 눈 서리 이고 얼굴엔 봄을 띤 채
禪風道骨已成老 선풍도골이 이미 노인 되었어도
自是仙分異於人 원래 신선 연분은 남들과 다르다네
老秘心涯厭世塵 나이 들며 마음은 세속사를 싫어하여
閑居幽僻度幾春 깊숙한 곳에 한거하며 몇 봄을 지났는가
霜自浩帶物仙緣 서리 절로 넓게 둘러 신선의 인연인데
道骨能成遊樂人 도인의 풍모가 능히 노닐며 즐기는 사람 되었구나
신미월(7월) 모일에 공부하는 두 나그네가 짓다.2. 향적산 보국사 대웅전의 개금과 단청, 서문과 함께(香積山保國寺大雄殿改金丹雘 並序)삼양관三陽舘 동쪽에 있는 보국사保國寺는 예전의 양화사陽和寺이다. 보保는 보報이니 왜 보답이라고 하였는가. 뿌리 없이 나오는 것은 없으니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군자君子의 보답이며, 향을 사르고 축수하는 것이 사문沙門의 보응이니, 이 절이 세워진 후 국왕의 만수무강을 빌어온 것이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보답한 것이라 이를 만하다.불화佛畵와 단청은 화재가 난 뒤에 하지 못하였는데 승려 기성畿惺이 주관하여 일을 맡았으니 참으로 보호하고 지킨 것이다. 사방을 바라보면 한 줄기 강이 돌아 흐르는데 화초는 무성히 우거졌으며 몇 겹의 봉우리들이 서 있는데 옥 같은 연꽃이 한들거린다. 형상이 일어난 다음을 보면 구름 사이로 달이 나오고, 형상이 생겨나기 전을 상상하면 구름이 돌아가고 허공이 드러난다. 대중이 형상이 나타나기 전을 어찌 알는지. 만약 일어나기 전의 모습을 안다면 헛되이 형상을 만들지 않으리라. 아! 형상이 생겨나기 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절대로 밭에서 고리54)가 하나라도 나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광무光武 11년(1907) 5월 일에 향악 경담香岳鏡潭의 문인 혼성 포신混惺抱訊이 삼가 쓰다.3. 양화사 사천왕 중수기 陽和寺四天王重修記 -
0008_0011_a_01L次下 [21] 韵贈能大師。
0008_0011_a_02L烱激心無一点塵。頭戴霜雪顏帶春。禪風道骨已成老。自是仙分異於人。
0008_0011_a_03L老秘心涯厭世塵。閑居幽僻度幾春。霜自浩帶物仙緣。道骨能成遊樂人。
0008_0011_a_04L辛未月巳 [22] 。做工兩客。
0008_0011_a_05L○香積山保國寺大雄殿改金丹雘 並序
0008_0011_a_06L夫三陽舘東保國寺。即古之陽和寺也。保者報也。云何為報。物 [23] 莫根而生
0008_0011_a_07L者也。竭忠報國。君子之報也。焚香祝壽。沙門之報也。此寺建後。祝 聖呼
0008_0011_a_08L嵩。可謂報本也。佛畵丹雘。火後未及。畿惺闍梨。主司判事。真是護持也。瞻
0008_0011_a_09L四方。則一帶江回。萼草萋萋。數疊峰起。玉蓉朵朵。見像起之後。雲間月出。
0008_0011_a_10L想未起之前。雲歸空現。大眾還知未起麼。若知未起前樣子。不虛設像矣。
0008_0011_a_11L噫。知其未起前之人有幾麼。切不得作頃出一栲栳。
0008_0011_a_12L光武十一年五月 日。 香岳鏡潭門人混惺抱訊謹誌。
0008_0011_a_13L○陽和寺四天王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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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2_a_01L북쪽으로 청원清源, 서쪽으로 용만龍灣까지, 남쪽으로 패강浿江(대동강), 동쪽으로 함관咸關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명산의 영험한 경계에 있는 절이 수가 100을 헤아리는데, 양화사는 훌륭한 사찰이라고 드문드문 일컬어진다. 이는 오직 사천왕四天王의 소상塑像이 우뚝 서서 범왕梵王의 집(사찰)을 위호하는 것이 다른 절에는 없고 희소하게나마 이 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나무에 칠한 것이 얼룩덜룩 벗겨졌으니 머물거나 지나가는 이들이 탄식하며 근심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기유년 봄에 절의 휴암鵂岩 대사가 중수할 뜻을 품고 주지 풍헌豊軒과 함께 대중을 모아 의논하여 말하기를, “사천왕四天王이 이렇게 무너졌는데, 내 이전 분들은 절이 풍요롭고 사람이 많은 때에 하지 않았고, 내 뒤에 오는 이들은 또한 승려들이 쇠잔하고 절이 폐해질 때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니, 그대들은 힘을 다해 새롭게 하여 제불의 큰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중이 일제히 일어나 손을 맞잡고 말하기를,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구하지도 않았는데 솔선하여 스스로 동전 1백 꿰미를 바친 자가 다섯 명이었으니 중헌衆軒, 보징普澄, 종흡宗洽, 신잠信岑, 도신道信이었다. 그 나머지는 능력에 따라 보시하여 산문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고도 천금이 저절로 모였다.마침내 장인들을 불러 색채를 바꾸게 하였는데 일을 맡은 지 몇 달이 안 되어 영산후불靈山後佛 및 천왕天王의 탱화가 나란히 새로 만들어졌다. 또 남은 재물을 천왕각天王閣에 사용하여 옛 기와를 거둬내고 새 모습으로 바꾸었으니 천왕각과 천왕상을 걸맞게 하여 화려한 단청이 햇빛에 비쳐 산문이 더욱 빛나게 하였다. 아! 이 해에 흉년이 들어 사람이 궁핍한 때에 이것을 만든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로, 조금도 곤란한 상황이 없었던 것은 화상이 절의 일에 오로지 힘을 다했기 때문이며, 세상에서 덕망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이 천왕天王은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광덕廣德55) 신유년에 광운廣雲이 처음으로 조성하였고, 2백여 년 뒤에 성운性雲이 두 번째로 새로 만들었으며, 강희康熙 을유년(1705)에 계운戒雲이 세 번째로 새로 고쳤다. 이것이 이른바 “광대한 소원의 구름은 늘 다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니, 지금 화상이 삼운三雲56)이 다시 온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내가 병이 들어 -
0008_0012_a_01L北至于清源。西至于龍灣。南至于浿江。東至咸關。其間寺於名山靈境者。
0008_0012_a_02L以百數。稀稱陽和為善剎。是惟四天王塑像傑立。衛護於梵王家者。諸寺
0008_0012_a_03L所無。而此寺所稀有也。然歲月逴遠。泥木浪 [24] 籍。居過之嗟傷。有年矣。歲己
0008_0012_a_04L酉春。寺之鵂岩大師。有志重新。與主寺 [25] 豊軒。集眾而議曰。天王之頹毀如
0008_0012_a_05L此。先于吾者。不為於寺豊人殷之日。後于吾者。亦可期於僧殘寺廢之際
0008_0012_a_06L耶。凡二三子。戮力新之。以報諸佛莫大之恩何如。提是一眾齊起。叉手而
0008_0012_a_07L言曰諾。不祈而出班。自薦錢百緡者五。曰眾軒。曰普澄。曰宗洽。曰信岑。曰
0008_0012_a_08L道信。其餘隨力是 [26] 施。而不移山門一步。千金自至矣。遂召工徒貿來色。眡
0008_0012_a_09L事未數月。而靈山後佛及現 [27] 王。而幀併新之。又用羨財於天王閣。脫舊瓦
0008_0012_a_10L換新采。使閣與像稱。丹碧暎日。山門增色。噫。方此歲惡人乏之際。作此大
0008_0012_a_11L幸。少無艱狀。和尚之惟專於寺。而德重於世。可知也已。盖此天王。披諸舊
0008_0012_a_12L誌。廣德辛酉。廣雲始成之。後二百餘年。性雲再新之。康熙乙酉。戒雲三新
0008_0012_a_13L之。此所謂廣大顧 [28] 雲恒不盡者也。今和尚安知非三雲之重來耶。余病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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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3_a_01L이웃한 암자에 조용히 머무르며 비록 보잘것없지만 공덕을 빌고 자리를 깨끗이 하다가, 그 일을 듣고서 그 공을 깊이 찬탄하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기록한 글이 아직 없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절의 승려에게 말하기를, “화상의 이번 일은 절에 큰 공적을 지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이렇게 묻혀둘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 마침내 위와 같이 써서 당시의 승통 도청道清에게 주어서 벽에 걸도록 하였다.
건륭乾隆 54년(1789) 기유년 10월 일에
송파松坡의 문인 서악 돈인西嶽頓認이 기록하다.4. 향적산 양화사 중건기 香積山陽和寺重建記양화陽和는 오래된 절이며 산의 북쪽 물이 굽이지어 흐르는 곳의 왼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기산耆山57)이 생긴 시대에 이름을 처음 지었고 우담바라58)가 피어난 날에 시작되었으니 도는 신묘하고 운수는 기이하다. 유래가 몇백 년인지 천년인지 그 앞의 햇수를 알지 못하는데 더군다나 후대에 기록한 것이랴.오호라. 갑신년 정월 대보름에 산도깨비가 바람을 일으키고 불 머슴(火童)이 불을 끄려다 도리어 잘못되어59) 요사와 법당이 모두 불타 버려서, 눈으로 보면 처참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숨는 것은 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60) 양화사는 불타버렸지만 소중한 것은 일어날 것이니, 이미 보시한 자들은 연태蓮胎61)를 즐거이 받고자 할 것이요 미처 보시하지 않은 자들도 연태를 받고자 할 것이므로 그렇다.그래서 기허당騎虛堂 태웅泰雄과 취봉당翠峰堂 명학明學 두 스님이 여러 스님들과 더불어 대중의 도움을 힘써 구한 지 지금 60-70년 째인데 공사를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장백匠伯인 용담당容潭堂 성오性悟가 동하당彤霞堂 선경善瓊, 비구 정흡定洽과 더불어 서로 도와 기꺼이 일을 도모했다. 지금 양 끝 좌우의 요사寮舍에 벽을 바르고 단청을 칠하여, 새벽에는 징을 울리고 저녁에는 북을 쳐서 후대에 길이 전하게 되었다. 뒤의 사적과 더불어 기문을 거는 것은 공역을 마치기 위한 것이다. 이 해 -
0008_0013_a_01L隣菴。雖末矣。祈功淨席。聞其事。嘆其功深矣。聞未有為文以記其事者。慨
0008_0013_a_02L然語寺僧曰。和尚之此舉。非作寺之大勳耶。何沒沒如此也。遂書如右以
0008_0013_a_03L貽時僧統道清。使揭諸壁。
0008_0013_a_04L乾隆五十四年己酉十月 日。
松坡門人西嶽頓認記。
0008_0013_a_05L○香積山陽和寺重建記
0008_0013_a_06L陽和古山 [29] 也。坐在樂 [30] 北灣左。而創名於耆生之世。鳴運於曇現之日。道也
0008_0013_a_07L其神。數也其奇。由來幾百千年。而未知其前齡。况記乎後年。嗚呼。甲申四 [31]
0008_0013_a_08L月上元日。木容 [32] 吹風。火童抱薪。僐 [33] 寮佛宇。盡見燼入。慘目荒心。孰不其為。
0008_0013_a_09L然尺蠖之屈。以求信也。龍蛇之蟄。以存身也。陽和之燼。所重也興。抑欲已
0008_0013_a_10L有施者。堪受蓮胎。未有施者。又受蓮胎而然哉。故騎虛堂泰雄。翠峰堂明
0008_0013_a_11L學。兩師與諸師。力求眾助。今六七十年。落與成與而未得訖矣。幸哉。有匠
0008_0013_a_12L伯容潭堂性悟。與彤霞堂善瓊。比丘定洽。讚等說設。今之兩際左右幢 [34] 寮。塗
0008_0013_a_13L而穕 [35] 之。晨而錚之。暮而皷 [36] 。永傳于後。後之蹟兼暨揭記。此為訖功毀 [37] 。是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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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4_a_01L가을에 대향각大香閣에서 내게 기문 몇 줄을 청하기에 내 문장에는 견문이 비록 좁지만 그 내용을 대략 기록하였다.
광서光緒 16년(1890) 경인년 9월 9일에 하계 인주荷溪仁注가 삼가 기록하고, 사미 준섭俊涉이 삼가 글씨를 쓰다.5. 향적산 양화사 개건기 香積山陽和寺改建記한 지역에 이름난 사찰로 절산岊山(자비령)62) 이북에는 묘향산 보현사와 본사(양화사)가 가장 뛰어나니, 양종兩宗이 완연하게 동서로 대치되어 승려들이 숲을 이루었고 조사祖師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본사의 주지住持였음은 기허당騎虛堂이 일찍이 말하였다. 하물며 이름난 정자와 우뚝 솟은 건물이 온 산을 밝게 비추고, 연이은 북소리와 종소리가 10리에 울려 퍼지니, 그 한 시절 기상의 높고 빛남이 어떠하였을 것인가.절은 본가에서 10리 떨어져 있는데, 매번 꽃피는 아침이나 바람 부는 저녁에 10여 명의 동지와 약속하여 슬슬 거닐어 골짜기 입구 밖까지 가면 은은한 종소리가 사람을 맑고 개운하게 해주고,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도 그림을 그린 듯 여래如來의 진실한 한 공력을 얻었으니, 고해苦海 속 인생에 세상 번뇌를 이미 떨쳐버린 사람이 10에 7-8명은 되리라.누각에 올라 달을 맞이해 술을 마시고 시를 짓노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황홀하게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듯 정취가 있으니 내 몸이 이미 극락세계에 들어가 있는 줄도 알지 못한다. 이때는 곧 기허騎虛, 혼성混惺 같은 여러 선禪의 노장들이 손님을 맞이하여 시를 읊고 예를 행함에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른바 삼대三代의 위의가 여기에 다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과장이 아니다.불행히도 갑신년에 절의 승려들이 잘 지키지를 못해 화재가 나서 절은 잿더미가 되었고, 겨우 남은 것이 불이문不二門과 명부전冥府殿 뿐이었다. -
0008_0014_a_01L秋。余接大香閣。請記數行。余亦於文。為何管見。然畧記其宲。
0008_0014_a_02L光緒十六年庚寅九月九日。 荷溪仁注謹記。
0008_0014_a_03L沙彌俊涉謹書。
0008_0014_a_04L○香積山陽和寺改建記
0008_0014_a_05L寺剎之名于一區者。岊山以西 [38] 。維香山也本寺也最雄。兩宗莞 [39] 然。東西對
0008_0014_a_06L特 [40] 。緇衲林丘 [41] 。師祖萃出。而西山北 [42] 師之住持本寺。騎虛釋 [43] 常 [44] 言矣。况其名
0008_0014_a_07L榭傑家。照熙一山。疊皷連鍾。嚚咶 [45] 十里。第其一時。氣像之隆隆赫赫為當
0008_0014_a_08L如何哉。寺於本齋十里。而弱每當花朝楓 [46] 夕。約與十數同志。逍遙至洞門
0008_0014_a_09L外。即隱隱鍾聲。令人灑落。而一草一木描畫。得如來真實一功。苦海中人
0008_0014_a_10L生。已减 [47] 却塵累。想十之七八。而及其豋樓。邀月打酒押韻。即神清意閑。怳
0008_0014_a_11L然有羽化登仙之意。未知吾身已入於極樂世界耶。時則即有若騎虛混
0008_0014_a_12L惺諸禪翁。延賓唱嗟。式禮莫愆。所謂三代威儀。盡在此者。誠不誣矣。不幸
0008_0014_a_13L甲申。寺僧失守。一聲鬱攸。梵宮灰空。僅而得在者。經 [48] 二門與冥府殿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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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5_a_01L불상은 모셔서 봉안할 장소가 없고 승도들은 한데에서 거처하는 근심이 있었으니, 사문들이 당우도 없이 모여있는 열악한 상황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취봉 동하翠峰彤霞 화상은 원래 산중의 주인으로, 지난번 불탈 때 구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법계法界(사찰)를 다시 새롭게 할 것을 모의하였다. 위로는 관아에 고하고 권선문을 내어, 물러나서 동지들과 함께 약간의 재물을 거두어 이듬해 봄에 공역을 시작하여 2년이 되자 공사를 마쳤다. 몇 개의 기둥이 차례로 늘어서니 옛날과 거의 비슷했지만 갈고 깎은 기교와 만들어 지은 크기가 힘에 부치고 형편에 구애되어 이전보다 좋지는 못했다.불사를 주관한 용담瑢潭은 묘향산의 승려인데 듣건대 일찍이 계행戒行이 이루어졌다. 한번 보고는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며 여러 번 편지를 보내 간곡히 글을 구하고 정성을 다하였으므로 사양할 수 없어 이 글을 써서 보내니, 보는 자들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주상(고종) 27년(1890) 경인년 동짓달에 녹문경수鹿門耕叟 박문오朴文五가 기록하다.6. 양화사 비문 陽和寺碑文∎풍암당 선사 비명楓岩堂禪師碑銘
숭정 기원후 87년 갑오년(1714) 월 일.
비碑는 높이 4자, 너비 2자이다.
∎보정당 대사普廷堂大師 생사리비生舍利碑63)
건륭 9년(1744) 갑자년 3월 일에 침송 태우枕松泰祐가 쓰다.
비는 높이 2자 5촌, 너비 1자 1촌이다.
∎조선국 광선현光仙縣 나씨羅氏의 비명과 서문 -
0008_0015_a_01L佛像無尊奉之所。僧徒有露處之患。沙門白天會。蔑以加於此矣。翠峰彤
0008_0015_a_02L霞和尚。自是山中主人也。痛往刼之莫救。謀法界之更新。上告官司。出勸
0008_0015_a_03L義之文。退與同志。收如于 [49] 之財。起役於翌年之春。至再期。功告訖。凡若干
0008_0015_a_04L楹。次第排張。彷彿如舊。而礱𣃋 [50] 之奇。結搆之大。以其力短勢拘。不得不讓
0008_0015_a_05L於前耳。主等瑢潭香山釋也。聞其戒行夙成。而一見嗟晚。累書徵文。致意
0008_0015_a_06L申勤。辞不擭。書此以歸之。覽者恕之。
0008_0015_a_07L上之二十七年庚寅南至月。鹿門耕叟朴文五記。
0008_0015_a_08L○陽和寺碑文
0008_0015_a_09L楓岩堂禪師碑銘
0008_0015_a_10L崇禎后八十八 [51] 年甲午月日。
(高四尺廣二尺)
0008_0015_a_11L普廷堂大師生舍利碑
0008_0015_a_12L乾隆九年甲子三月日。枕松泰祐書。
(高二尺五寸廣一尺一寸)
0008_0015_a_13L朝鮮國光仙縣羅氏碑銘 並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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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6_a_01L有一美娥 한 아름다운 여인 있어
金沙寶塔 사원에 보배로운 탑 세웠으니
姓慧心善 천성이 지혜롭고 마음이 선하여
靈績不泯 신령한 공적은 사라지지 않으리건륭乾隆 19년(1754) 3월 일에 노포고인蘆浦故人이 짓다.
비는 높이 2자 5촌, 너비 1자 2촌이다.
∎송담당 비명松潭堂碑銘
옹정雍正 13년(1735) 을묘년64) 4월 일에 통덕랑通德郎 백채권白采權이 쓰다.
비는 높이 3자, 너비는 1자 5촌이다.
∎월심당月心堂 석율대사碩嵂大士의 비
강희康熙 52년(1713)65) 계사년 5월.
비는 높이 2자 5촌, 너비 1자 3촌이다.
∎향적산 양화사 명부전冥府殿 불향답비佛享畓碑66)
영변寧邊 무산방撫山坊 가차봉加次峯의 원승員僧 법일法日, 논 7마지기.
본관本官 남면南面의 가고개씨加古介氏, 논 5마지기.
북면北面 덕삼德三의 원승員僧 선찰善札, 논 5마지기.
영변寧邊 서면西面 갑원승甲員僧 천원天元, 논 6마지기.
본관本官 동면東面 적조赤照의 원승員僧 도청道清, 논 5마지기.
서약수西藥水의 원승員僧 일능一能과 학승鶴乘, 혜능거사惠能居士, 영안靈安, 신준信俊 5인 등이 동참同叅하다. 논 2마지기.
구성龜城 사기소士氣所 구량仇梁 영원令員 탁세무卓世茂, 논 6마지기.
본관本官 동면東面 적조赤照 -
0008_0016_a_01L有一美娥。 金沙寶塔。
0008_0016_a_02L姓慧心善。 靈績不泯。
0008_0016_a_03L乾隆十九年三月 日。 蘆浦故人撰。
(高二尺五寸。廣一尺二寸。)
0008_0016_a_04L松潭堂碑銘
0008_0016_a_05L雍正十三年乙酉 [52] 四月日。
0008_0016_a_06L通德郎白采權書。
(高三尺。廣一尺五寸。)
0008_0016_a_07L月心堂碩嵂大士之碑
0008_0016_a_08L康熙五十三 [53] 年癸巳仲夏。
(高二尺五寸。廣一尺三寸。)
0008_0016_a_09L香積寺 [54] 陽和寺冥府殿佛享畓碑
0008_0016_a_10L寧邊撫山坊加次峯。員僧法日。畓七斗零。
本官南面加古介氏。畓五斗 [55] 。
北
0008_0016_a_11L面德三員僧善札。畓五斗零。
寧邊西面甲員僧天元。畓六斗零。
本官東面
0008_0016_a_12L赤照員僧道清。畓五斗零。
西藥水員僧一能鶴乘。惠能居士。靈安信俊五
0008_0016_a_13L人等同叅。畓二斗零。
龜城士氣所仇梁令員卓世茂。畓六斗零。
本官東 [56] 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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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7_a_01L갑계원甲戒員, 논 7마지기.
공양시주供養施主 김수명金守命, 박천博川 장림長林 원녀員女 영례令禮, 논 5마지기.
옹정雍正 13년(1735) 을묘년 10월 일에 유학幼學 박문훈朴文薰이 쓰다.
화주化主 : 승僧 혜능惠能.
인석引石67) : 승僧 정유廷裕.
비는 높이 2자 6촌, 너비 1자 5촌이다.
∎설심당雪心堂 보안대사普安大師의 비
스님은 성은 안씨安氏로 문성공文成公의 후손 충옥忠玉의 아들이며 어려서 천영天英을 스승으로 삼아 선도禪道를 닦았다. 13년째인 경자년 8월 18일에 입적하였는데, 사리가 빛을 냈고 이곳의 탑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비구인 종손從孫 의율儀律이 융관일融貫日에 제향을 도왔다.
옹정 2년(1724) 갑진년 3월 일.
비는 높이 2자 5촌, 너비 1자 1촌이다.
∎벽담당비碧潭堂碑
대사 지한志閑(1644~1725)은 이씨로 나주羅州 사람이다. 부친 현남玄男은 본읍에 살았는데, 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승려가 되게 하였다. 뒤에 완송당玩松堂 덕가德加에게 수업하였고, 삼승三乘을 배우고 연구하였다. 또 세속의 문장에 능하였고 문인이 매우 많았으며 관직이 (추증되어) 동지同知68)에 이르렀다. 향년 82세인 을사년 5월 2일에 -
0008_0017_a_01L照甲戒員。畓七斗零。
供養施主金守命。博川長林員女令禮。畓五斗落只
0008_0017_a_02L雍正十三年乙卯十月 日。 幼學朴文薰書。
0008_0017_a_03L化主僧惠能。
0008_0017_a_04L引石僧廷裕。
0008_0017_a_05L(右高二尺六寸。廣一尺五寸。)
0008_0017_a_06L雪心堂普安大師之碑
0008_0017_a_07L師安姓。文成公後忠玉子。幼師天英。克盡禪道。年十三。庚子八月十八日
0008_0017_a_08L終。舍利放光。安塔于此云。比丘從孫仅律。佐享融貫日。
0008_0017_a_09L雍正二年甲辰三月日。
0008_0017_a_10L(右高二尺五寸。廣一尺一寸融貫日)
0008_0017_a_11L碧潭堂碑
0008_0017_a_12L大師志閑。李姓𦊓州人。父玄男居本邑。卑從道訓為緇。后受業玩松堂德
0008_0017_a_13L加。學究三乘。又能俗文。門人甚多。官至同知。享年八十二乙巳五月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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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8_a_01L세상을 마쳤다. 5일 후 계묘일에 다비를 치른 후에 상서로운 빛과 기운이 비추지 않는 날이 없었다. 과연 정수리 뒷뼈가 남쪽에서 서쪽으로 18보쯤 되는 바위 위에 놓여 있었으니 더욱 기이하였다. 생전의 공들인 보람을 떠올릴 수 있고 자취를 사라지게 할 수 없어서 사미가 공경스럽게 비석을 다시 세워 영구히 사라지지 않게 계책을 세웠다.
옹정雍正 3년(1725) 6월 일에 전 부감前副監 월성月城69) 후손 김진래金晉來가 글을 짓다.
비는 높이 2자 7촌, 너비 1자 3촌이다.
∎양화사 각소各所의 현판
대웅전大雄殿. 천왕문天王門. 해탈문解脫門. 산왕당山王堂. 화장암華藏庵. 응진전應真殿. 흡이각冾二閣.
명부전冥府殿. 심검실尋釰室. 봉향문奉香門. 축성전祝聖殿. 원적암圓寂庵. 상운암上雲菴. 서래각西來閣. 관서교종향적산양화사關西教宗香積山陽和寺.7. 송림사 옛터의 비(松林寺舊基址碑) -
0008_0018_a_01L終。越五日癸卯。送西之后。祥光瑞氣。無日無之。果有頂后骨。自丙所西向
0008_0018_a_02L十八步許。石上安坐。尤為奇異。可想生前之功效。不可泯迹。沙彌敬再揭
0008_0018_a_03L石。以作永久不朽之計云。
0008_0018_a_04L雍正三年六月日。前副監月城後人金晉來撰。
0008_0018_a_05L(右高二尺七寸。廣一尺三寸。)
0008_0018_a_06L陽和寺各所懸板
0008_0018_a_07L
0008_0018_a_08L大雄殿。天王門。解脫門。山王堂。華藏庵。應真殿。冾二閣。
0008_0018_a_09L冥府殿。尋釰室。奉香門。祝聖殿。圓寂庵。上雲菴。西來閣。關西教宗香積山陽和寺。
0008_0018_a_10L
0008_0018_a_11L○松林寺舊基址碑文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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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19_a_01L삼각산 송림사 불향답비三角山松林寺佛享畓碑 (전자篆字)강희康熙 44년(1705) 을유년 3월 일, 의성義城 후손 통덕랑通德郎 김현도金顯道.8. 향적산 화장암70)의 칠성71) 탱화를 다시 만들고 겸하여 성전의 단청을 한 기문(香積山華藏菴改造七星幀兼聖殿丹艧記)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그 법제法弟인 월송당月松堂 세붕世鵬 대사문大沙門이 말하기를, “마땅히 가람을 수리해야 할 것이니, 백장百丈72)의 풍모요 불자佛子된 자의 직분이 그러하다. 팔짱을 끼고서 무너지는 것을 앉아서 방관하는 폐단을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함께 도모할 사람들을 모으고 권선勸善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처사處士 오공吳公은 처사로 지낸 7년간 선善을 행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였다. 그러므로 월송당의 중수를 위한 권선에 부응하여, 재물을 덜어 기울어져서 급한 곳에 사용하였다. 다른 단월들도 그림자처럼 따라 본 성전이 교화로 이루어진 것 같았으니, 이른바 ‘영대靈臺를 짓기 시작한 지 며칠도 안 되어 이루어졌다’73)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리라. 다만 질박하지만 문채가 없어서 보는 이들이 모두 부족하게 여겼다.2년 후 계유년 4월에 오공吳公이 재물을 보시하려는 마음이 더욱 높아져서, “해야 할 때에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지 또 어찌 감히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스스로 백여 전錢을 내어 솜씨 좋은 장인을 불러 칠성대존七星大尊의 형상을 그려 탱화를 갖추었으니, 그림에 붉고 흰 채색이 어찌 그리도 많으며 이다지도 찬란한가. 산의 고운 빛과 물의 아름다운 색을 더하여, 정情을 머금고 자태를 짓지 않음이 없었으니 제불諸佛과 제천諸天의 경계를 담백하게 꾸몄도다. 위대하여라. 무늬와 바탕이 빛나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두 요소가 모두 월송月松과 오학사吳學士의 하나의 ‘믿음(信)’이라는 글자에서 나와 이루어졌다. -
0008_0019_a_01L三角山松林寺佛享畓碑(篆字)
0008_0019_a_02L康熙四十四年乙酉三月日。義城后人通德郎金顯道。
0008_0019_a_03L○香積山華藏菴改造七星幀兼聖殿丹艧記
0008_0019_a_04L如是我聞。其法弟月松堂世鴅 [58] 大沙門曰。冝當為之。以修舍伽藍。百丈之
0008_0019_a_05L風猷。而為佛子者之所職然也。不冝以拱手坐觀虧弊之弊為之也。於是
0008_0019_a_06L撮被共謀。以韓 [59] 善為己任也。處士吳公。處士之七年。為先 [60] 最樂。故隨應于
0008_0019_a_07L月松軒 [61] 善之重茸 [62] 焉。除其財而資其所虧之急也。餘其檀越等。影而從之。
0008_0019_a_08L本聖之殿。化成如也。所謂經始靈坮。未幾日而成之者。其是之謂歟。但質
0008_0019_a_09L而無文。朴而無彩。見聞 [63] 咸以為欠也。越二年。黑鷄之孟夏。其吳公捨施之
0008_0019_a_10L心。邵而邵謂曰。為可為於可為之時。復焉敢否乎。自出百有餘錢。召之以
0008_0019_a_11L奇功 [64] 。盡 [65] 之以七星大尊像。因設膾 [66] 素。而素膾 [67] 焉。赤白風彩。何以致多。若是
0008_0019_a_12L之燦爛也。加以山之佳光。水之美色。莫不含情作態。而淡粧乎。諸佛諸天
0008_0019_a_13L之境。偉哉。文質彬彬之兩般。惣出于月松與吳學士之一介信字而成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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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0_a_01L두 공公의 업적은 불문佛門에 만분의 일이라도 빛이 되니 어떠한가. 이에 근거해서 본다면 실로 이 칠성전은 당시의 뛰어난 쾌거이다.
화장세계華藏世界74)가 있은 뒤로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이 전각이 있었고, 이 전각이 있은 뒤로 몇 만 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오늘이 있다. 나같이 둔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런 연유와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지 못한다. 화장세계는 (불보살이) 많이 모여 있는 뛰어난 경개이다. 옛사람들이 만든 현판 위의 상측 면에 자세히 실려 있으므로 생략하고 다 기록하지 않는다.시주들의 성명은 아래에 열거하였다.
암주庵主 월전당月團堂 명철明喆이 짓다.건륭乾隆 18년(1753) 계유년 5월 일 월송당月松堂 세붕世鵬이 글씨를 쓰다.9. 평안북도 태천군 향적산 보국사 축성전75) 창건기 平安北道泰川郡香積山保國寺祝聖殿創建記향적산香積山은 해동海東의 명산이요, 양화사陽和寺는 관서지방의 빼어난 사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지 몇 천 몇 백 년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영험하고 기이함의 나타남과 신묘한 감응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이 많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성스럽고 신령하시고 문무를 겸비하시었으며, 덕이 천지에 부합하고 만방에 화합하여 저 초목과 새나 들짐승까지 미치니 이들 또한 교화되는 대상이다. 하물며 청산의 승려로서 ‘임금님의 권력이 나와 무슨 상관 있는가’76)라는 말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렇기에 보잘것없는 정성을 바쳐 축성전祝聖殿을 지으려 하지만, 절이 오래되고 승려는 얼마 되지 않아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도 관찰사 민공 경호閔公京鎬와 군수 조공 정윤趙公鼎允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감독을 하여 임인년 봄에 공사를 시작해서 계묘년 가을에 준공하였다. 이것이 어찌 하늘과 신령의 도움이 감응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위패를 봉안하고 -
0008_0020_a_01L也。二公之績。其有光於釋門之萬一。為如何哉。跡此觀之。實此殿一時勝
0008_0020_a_02L事也。自有華藏世界。不知其幾何年。而有茲殿。自有茲殿。不知其幾萬年。
0008_0020_a_03L而乃有今日也。如我拙愚者。不知其所以然不然也。華藏世界多會之勝
0008_0020_a_04L槩。具載于先人所制板上之上面。畧不盡記咸。若施主之芳名。列在于左。
0008_0020_a_05L主菴月團堂明喆撰。
0008_0020_a_06L乾隆十八年癸酉五月日。 月松堂世鵬書。
0008_0020_a_07L○平安北道泰川郡香積山保國寺祝聖殿創建記
0008_0020_a_08L夫香積山者。海右之名山也。陽和寺者。關西之勝剎也。創置寺宇。不知其
0008_0020_a_09L幾千有餘百年。而靈異之著。感應之妙。有不可盡述者多矣。伏惟我 大
0008_0020_a_10L皇帝陛下。聖神文武。德合兩儀。和恊萬邦。暨彼草木鳥獸。亦是化中之物。
0008_0020_a_11L矧茲青山白衲。豈不知帝力之何有哉。所以欲獻野芹之誠。經營祝聖之
0008_0020_a_12L殿。寺古僧殘。辨費無路。幸賴觀察使閔公京鎬。郡守趙公鼎允施惠。董督。
0008_0020_a_13L始役於壬寅之春。告竣於癸卯之秋。茲豈非天佑神助感應之理歟。奉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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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1_a_01L작은 정성으로 기리어 기도하노니, 옛날 화봉삼축華封三祝77)의 청을 본받고 숭산崇山의 만세 부르기78)를 바라는도다. 여러 군자들이 의롭게 기부해 준 은택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아래에 함께 기록한다.
대한 광무光武 7년(1903) 계묘년 첫 겨울에 홍관해洪寬海가 삼가 쓰다.시주施主 : 군수郡守 조정윤趙鼎允 등 몇 사람.10. 향적산 상운암 중수기 香積山上雲庵重修記우제령牛蹄嶺 남쪽에 우뚝하게 높이 솟은 산이 향적산香積山이다. 상운암上雲庵은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땅이 높고 험하여, 낮은 데서부터 올라오는 자는 마치 구름 가에 오르는 듯하므로 이름 붙인 것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고려조에 법사 굉확宏廓이 본사인 양화사陽和寺와 함께 순차대로 창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암자는 실로 본사本寺의 종맥宗脉을 점하고 있어서 본사의 성쇠가 이 암자의 존망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암자의 수리, 사람의 나가고 들어옴, 향과 등의 공양하는 도구, 일용 집물의 종류 등 아주 사소한 일까지 모두 본사의 규정으로 처리해 왔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아 기울어진 곳이 자못 많았고 머무는 승려들은 병이 들었다.경신년에 절의 동봉대사東峰大師가 절을 중건하려는 간절함으로 마침내 재물을 모아 공사를 지휘하였다. 법당의 기둥과 들보를 거두고 새로 올렸으며 썩은 재목이나 깨진 기와는 모두 바꾸어 새롭게 하였다. 수행하는 방의 칸(間)이 전에는 세 번 꺾여져 곡척曲尺79) 모양 같았고 뒷 처마에 가려져 어두웠는데, 지금은 헐어버리고 주방에 연접하게 지어 2칸으로 넓어졌다. 또한 남은 재물을 사용하여 오색五色의 빛깔로 법당 그림을 그렸는데, 붉고 푸른 빛의 단청이 햇빛에 빛나니 숲과 산이 환히 빛났다. 4월 초에 공사를 시작하여 5월 그믐에 끝마쳤다. -
0008_0021_a_01L闕位。微誠頌禱。倣古華封三祝之請。冀其崇嶽萬歲之呼。僉君子損 [68] 義之
0008_0021_a_02L澤。亦不可泯默。故并錄于左。
0008_0021_a_03L大韓光武七年癸卯肇冬。洪寬海謹誌。
0008_0021_a_04L施主。郡守趙鼎允等數人。
0008_0021_a_05L○香積山上雲庵重修記
0008_0021_a_06L中 [69] 蹄嶺而南。薩 [70] 然高起者。曰香積山。上雲庵居其間。境壤高峻。自卑而豋
0008_0021_a_07L者。如上雲際。故名之。世傳麗朝法師宏廓。與本寺陽和。麟次創立云。然是
0008_0021_a_08L菴。實占本寺之宗脉。而本寺之盛衰。俟 [71] 於是庵之存亡。故自古及今。凡菴
0008_0021_a_09L之繕理。人之出納。香燈供養之具。日用什物之類。毫毛皆本寺規處也。歲
0008_0021_a_10L月風雨。欹徧 [72] 頗夥。居者病焉。歲庚申。山 [73] 之東峰大 [74] 。重建於寺懇。遂鳩財董
0008_0021_a_11L役。徹法堂柱樑以上。材杇而瓦缺者。悉易而新之。辦道間。前則折三如曲
0008_0021_a_12L尺樣。而為後簷所掩昧昧也。今毀而接厨。連建而為二間。其廣豁。又用餘
0008_0021_a_13L財。奏五色彩。於畫法堂。丹碧暎日。林巒煌耀。始於四月初。畢於五月晦。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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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2_a_01L비록 중수하는 공력이 처음 짓는 것보다 배나 든다고 하지만 어찌 그리도 쉽게 이루었던가. 동봉의 덕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렇게 하늘과 땅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며, 또한 일을 맡아 하는 재능에서 누가 이만큼 할 수 있겠는가.옛 판목을 보니 갑자년에 원월圓月 대덕大德이 중건하였고 병신년에 광책廣策과 항규夯圭 등이 기와를 새로 갈았다고 하였다. 아! 건륭乾隆 갑자년(1744)부터 가경嘉慶 경신년(1800)까지 60년이 안 되지만 재차 기와를 갈아 덮은 것이 생각건대 한두 번이 아니겠지만 옛 자취는 쓸어버린 것처럼 어디에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옛사람이 실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름은 귀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전하여 보여줄 것이 없는 것인가. 이것이 내가 기송杞宋의 문헌80)에서 탄식한 이유이다.지금으로 말미암아 장래를 바라보건대 이 암자의 세워짐과 무너짐이 어찌 기한이 있겠는가. 동봉과 같이 어진 사람이 뒤를 이어 나와서 무너지는 대로 수리하고, 수희隨喜81)의 공덕을 지으려는 나와 같은 자가 있어서 암자의 옛 사실들이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노니, 원컨대 여러 대사들은 열심히 노력할지라.동봉의 이름은 취흘翠屹이다. 공사를 감독한 승려는 계정戒定과 신정信淨이다.
가경嘉慶 5년(1800) 경신년 6월 일.
송파松坡 문인 서악당西岳堂이 삼가 기록하고,
연일延日의 문인 성철性哲이 글씨를 쓰다.11. 정월에 향적산 양화사 상운암의 불상을 개금하고 기와를 다시 덮은 기문(三陽東香積山陽和寺上雲菴佛像改金翻瓦記文)향적산 상운암은 산중의 특별한 구역으로 선강자禪講者들의 수도처요, 선남선녀들이 예배를 올리고 공양하는 곳이다. 바로 옛날에 운파雲坡조사祖師가 머리를 깎은 곳이니 어찌 예사로운 장소이겠는가. 건륭乾隆 갑자년(1744)에 원일圓日비구가 중건하였고 무술년(1778)에 이르러 유파裕坡대덕大德이 (불상에) 금을 다시 입혔다.40년이 흘러 불탁 위의 관음존상觀音尊相에 입힌 금이 벗겨져 광채를 -
0008_0022_a_01L曰重修功倍初創。何其成之易也。非東峰之德。能有此動天施 [75] 人之心。而
0008_0022_a_02L又有幹事之材。疇克至此哉。閱舊板。甲子圓月大德重建。丙申廣策夯圭
0008_0022_a_03L等翻瓦云。噫。自乾隆甲子。至嘉慶庚申年。未周而再經翻瓦。想非一二。而
0008_0022_a_04L古績 [76] 掃如。而具在無何有之鄉。豈古之人。貴實不貴名。故無所垂視耶。此
0008_0022_a_05L吾之所以發嘆於杞宋之文獻也。凡由今而望將來。是菴之成毀。何限其
0008_0022_a_06L有。如東峯之賢。接跡而出。隨毀隨葺。而隨喜欲功。有如不侫者。則庶期菴
0008_0022_a_07L故實窮劫無缺。冀諸大師勉旃。東峰名翠屹。監事僧曰戎 [77] 定。曰信淨。
0008_0022_a_08L嘉慶五年庚申六月 日。
松坡門人西岳堂謹誌。
0008_0022_a_09L延日門人性 哲 書。
0008_0022_a_10L○三陽東香積山陽和寺上雲菴佛像改金翻瓦記文
0008_0022_a_11L夫香積山上雲菴者。山中之別區。禪講者之修道處。善男善女。禮敬供養
0008_0022_a_12L處也。即古雲坡祖師剃染處。豈其尋常之處耶。乾隆甲子圓日比丘重
0008_0022_a_13L建。逮至戊戌。裕坡大德改金矣。流至四十年。卓上觀音尊相。衣金脫落。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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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3_a_01L잃으니, 형상이 신자들이 공경히 예배하고 공양하기에 마땅치 않았다. 숲이며 시내가 부끄러워하고 용천龍天82)도 부끄러워할 즈음, 다행히 금년 여름에 평양성 내의 대단월인 최씨崔氏 홍련화紅蓮花, 이씨李氏 백련화白蓮花 등이 그 외손자 되는 무오생 홍필섭洪弼燮이 초시初試와 회시回試를 치르고 진사에 급제하는 발원을 칠성七星에게 빌기 위하여, 안주安州 읍내의 처사 보련화寶蓮花 전씨田氏와 함께 이 암자에 와서 성재聖齋를 청하여 베풀었다. 이때 불상의 옷이 오래된 것을 보고 금을 다시 입힐 것을 발심하여, 각기 수십 금金을 내고 아울러 시주들을 모아 윤 6월 13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18일에 끝마쳤다. 점안點眼하는 날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공중에 두루 퍼져서 도량이 환히 밝았으니 이는 일찍이 없었던 상서였다.『화엄경』에 이르기를,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요 공덕功德의 어머니로 일체의 선법善法을 길러 준다. 믿음은 지혜와 공덕을 더욱 크게 하며, 믿음은 여래지如來地에 반드시 이르게 할 수 있다.”83)라고 하였다. 모든 신심을 지닌 단월들이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가 여래如來의 경사스러운 징조에 이를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으며, 어찌 하려고 하지 않겠는가.또 암자의 대웅전은 가경嘉慶 경신년(1800)에 동봉東峰 대사가 기와를 중수했지만, 지금은 비가 새고 서까래가 썩어 파손되어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수리하고 기와를 가는 일은 비록 중수라고 해도 새로 짓는 것보다 공이 크다. 이에 단월들이 귀의하니 용천龍天84)이 기뻐하며, 보고 듣는 이들이 모두 찬탄하니 또한 모두가 여래의 신이한 능력이고 단월의 신심이며 교화승의 공덕이다. 화주승85)은 누구인가. 이 암자의 인찰화상印札和尙이다.원하건대 이 공덕이 일체에 널리 미쳐서 우리와 중생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다만 큰 공은 자랑하지 않고 장담은 하지 않는 것이지만, 비록 공을 자랑하고 말하고자 해도 만일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지 않는다면, 선인의 공을 본받아 신심을 내어 수리하는 후인들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재주가 부족함에도 거부하지 않고 이 -
0008_0023_a_01L明不專。不宜相信者之禮敬供養。林慚澗愧。龍天𢣾㦬之際。幸值今年夏。
0008_0023_a_02L平壤城內大檀越。崔氏紅蓮花。李氏白蓮花等。為其外孫子戊午生洪弼
0008_0023_a_03L變 [78] 。已為初試回試進士及第之願。七星祈祝之行。與安州邑內處士寶蓮
0008_0023_a_04L花田氏。來請此庵。慶設聖齋。而及見佛像之衣古。改金發心。各出數十金。
0008_0023_a_05L兼募檀緣。起始於閏六月十三日。告工於十八日。點眼之辰。祥雲普遍於
0008_0023_a_06L空中。道塲晃朗。此是未曾有之瑞也。華庵 [79] 云。信為道源功德母。長養一切
0008_0023_a_07L諸善法。信能增增 [80] 智功德。信能必到如來地。悉皆信心檀越成就功德。畢
0008_0023_a_08L到如來之慶兆也。豈不美哉。豈不欲哉。又菴之宮 [81] 殿。嘉慶庚申。東峰大師。
0008_0023_a_09L重修盖瓦。而如今雨漏。椽梠朽破。至於癈落之境。修楫翻瓦事。雖重修功
0008_0023_a_10L勝新剏。於是檀信歸依。龍天惟喜。見聞咸讚。亦皆如來之神力。檀越之信
0008_0023_a_11L心。化士功德。勸化者誰。此庵印札尚如 [82] 也。願以此功德。普及於一切。我等
0008_0023_a_12L與眾生。皆共成佛道也。第大功不伐。大言不言。雖欲伐其功言其言。若不
0008_0023_a_13L記示於後。即後人者效前人之功。發信修理者若無。故余不捨不才。受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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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4_a_01L화상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그 전말을 대략 기록하고 시주자의 명단 목록을 아래에 일일이 나열한다.
가경嘉慶 21년(1816) 병자년 10월 초하루
학암鶴岩의 문인 성담 초연聖潭楚珩이 쓰다.12. 정월에 향적산 상운암의 중수 및 기와를 갈아 덮은 기문(三陽東香積山上雲菴重修及翻瓦記文)오호라. 만물의 성쇠는 하늘의 이치요, 일의 흥망은 사람의 운수이다. 만약 한 번 쇠퇴하고 한 번 폐하여 끝내 다시 성행하고 다시 일어날 길이 없다면, 현상에 있어서 만물이 어찌 천지 사이에 오래 존재할 수 있겠는가. 지금 여기 산에 이 암자가 세워진 지 오래이지만, 어느 시대에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며 고증할 만한 사적도 없다. 그러나 그 사이 몇 번이나 보수하였는데, 산의 경관과 암자의 영험함은 이전 사람들의 기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일일이 들 필요는 없다.세월이 오래되고 비바람에 닳고 씻겨서 때워 놓은 기와가 쉬이 터져서, 불상과 천룡天龍이 머리가 드러날 근심을 면치 못한다. 마룻대와 서까래는 썩어 가는데, 머무는 승려와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다만 모두가 어찌할 수가 없이 탄식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을ㆍ병년에 큰 화재를 당하여 산야의 기운이 모두 생기를 잃었으나 빈손으로 무엇을 하겠는가.내가 운수납자로서 우연히 이 암자에 머물게 되었는데, 밤낮으로 마음이 복받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문득 중수할 마음을 내어 스스로 화사化士(화주승)가 되어서 선남선녀들에게 시주를 구하여 얻어 모은 재물이 거의 백여 꿰미가 되었다. 이에 즉시 장인을 불러 썩은 것은 고치고 비가 새는 것은 덮었는데 한 달이 되지 않아 일을 마쳤다. 이것이 이른바 성쇠가 서로 이어지지만 끝이 없는 것이 하늘의 이치요, 흥망이 잇따르지만 때가 있는 것이 사람의 운수라는 것이다. 뒤에 이 암자에 머무는 자는 나와 뜻을 같이하여, 허물어지는 대로 수리하여 이 암자가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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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4_a_01L和尚之強請。略記其巔末。而施緣名目。開列于左。
0008_0024_a_02L嘉慶二十一年赤中土䐗月初吉。
鶴岩門人聖潭楚珩識。
0008_0024_a_03L○三陽東香積山上雲菴重修及翻瓦記文
0008_0024_a_04L嗚呼。物之盛衰。天之理也。事之興發 [83] 。人之數也。若一衰一發 [84] 。而終不更盛復
0008_0024_a_05L興之道。則物之於事。豈能久存乎天地之間耶。今此山茲庵營建久矣。未
0008_0024_a_06L知何代之創設。無蹟可考。而間經幾許之修補。山之景。菴之霛。俱載於前
0008_0024_a_07L人之術 [85] 。故不必歷舉也。歲久月深。風磨雨洗。瓦縫易綻。金像天龍。未免露
0008_0024_a_08L頂之患。棟椽就杇 [86] 。居僧過客。只切袖手之歎。然而巧值乙丙之浩劫。山野
0008_0024_a_09L氣 [87] 皆逸 [88] 生。其於赤手何。余乃雲蹤寒衲。偶棲此菴。晝宵動情。目不忍視。故
0008_0024_a_10L忽發重修之意。自為化士。求施於善男善女。所得鳩財。幾為百餘緍。即為
0008_0024_a_11L召匠。杇 [89] 者改之。漏者覆之。不閱月而成之。此所謂盛衰相尋而無窮者。天
0008_0024_a_12L之理也。興廢相隨而有時者。人之數也。後之居此菴者。與我同志。因以隨
0008_0024_a_13L毀修補。庶此庵之不杇 [90] 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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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5_a_01L도광道光 27년 정미년(1847) 4월 초하루에 영허影虗의 문인 비구 취홍就弘.시주 : 환묵幻默의 문인 사미沙彌.13. 향적산 상운암의 중수와 불상을 개포改袍한 기문(香積山上雲菴重修與佛像改袍記)무술년 가을 7월에 산인山人 삼인三仁비구가 불전을 중수하고 불의佛衣를 다시 입히면서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진공真空은 형태가 없고, 진불真佛은 형체가 없는데 어찌 보수할 수 있겠는가. 산인山人들이 모두 말하기를, ‘맑고 깨끗한 거울 같은 마음에는 푸르고 누른빛이 함께 나타나고, 드넓은 바다 표면에는 길고 짧은 것이 똑같이 드러난다.’고 한다.꾸미는 것이 비록 본래 공하다고 해도 겹겹의 보각寶閣에 당당한 금빛 형상이 출현하여 그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이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또한 신주의 주인이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 불우佛宇를 보수하는 제도이니, 불의佛衣를 입히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불전을 수리하여 하늘과 땅이 비호해 주는 덕을 공경히 받들었다. 지금 불의를 바꾸어 성현이 교화하신 위의를 바르게 보였으니, 어찌 무상無相의 형상, 무형無形의 형태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이에 붓을 잡고 다시 말하기를, “옛사람은 갈대로 만든 삿갓의 공으로 오히려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복을 누렸고,86) 묘안妙眼은 옷을 갈아준 덕으로 길이 천황天皇의 주인이 되니 이와 같은 훌륭한 인연을 그대는 아는가. 봄이 따사로우면 온갖 꽃이 절로 활짝 피어나듯이, 한결같은 본성의 법계(法界)가 몰록 나타나면, 밖으로 그 일을 닦으나 내면은 허공과 같아 마침내 과보를 이룰 것이니, 비유하자면 환히 밝은 허공 가운데 밝디밝은 해와 달과 같이 무심히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 보수공사를 하면서 본래 면목을 잊지 않고 한 생각 한 생각 비추어보면서 일을 하였으니, 어찌 저 갈대 삿갓과 옷을 갈아준 공에 비교할 것인가. 그대는 소중히 여기시오.”라고 하니 산인이 말없이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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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5_a_01L道光二十七年赤羊青蛇月初吉。影虗門人比丘就弘。
0008_0025_a_02L施主。幻默門人沙彌。
0008_0025_a_03L○香積山上雲菴重修與佛像改袍記
0008_0025_a_04L戊戌之秋七月。山人三仁比丘。重修佛宇。改其佛衣。請記於余。余曰。真空
0008_0025_a_05L無相。真佛無形。何可修補哉。山人 [91] 清淨鏡心。青黃同現。汪洋海面。長短齋 [92]
0008_0025_a_06L彰。粧雖本空。何妨於重重寶閣堂堂金容。出現往來于其間哉。且尸木之
0008_0025_a_07L主。出於追遠之誠。繕宇之制。始於覆▼(示+套)之功。前修梵宇。敬承天地庇庥之
0008_0025_a_08L德。今改佛衣。正示聖賢教化之儀。豈非無相之相。無形之形歟。余於是操
0008_0025_a_09L筆更曰。古人以蘆笠之功。猶享輪王之福。妙眼以改袍之德。長作天皇之
0008_0025_a_10L主。如是勝緣。君其知之乎。夫一春和金 [93] 。萬花自暢。一性法界。類蝢 [94] 現。外修
0008_0025_a_11L其事。內若虗空。則畢竟成果。譬如朗朗虗空中明明日月。無心而照應也。
0008_0025_a_12L君今修營。不忘本來面目。念念照顧。而修其事。豈比夫蘆笠改袍之功乎。
0008_0025_a_13L君其珍重。山人無言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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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6_a_01L광무光武 2년(1898) 7월 그믐날에
경담鏡潭의 문인 혼성 포신混惺抱訊이 기록하다.14. 천왕사 중수의 대시주인 전 판관 홍정주 공의 은혜를 기록한 글(天王寺重修大施主前判官洪公正柱氏記惠文)본사의 창건은 세월이 매우 오래되어 바람에 닳고 비에 씻겨서 기울어지고 무너짐이 이미 심하였으나, 일은 크고 힘은 미약하여 비록 정성스러운 마음이 있다 해도 중수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히도 공이 별견관別遣官87)으로 마침 이곳에 오시었다. 이에 지금껏 있지 않았던 선근善根으로 돈과 재물의 물력物力을 넉넉히 베풀어, 사원을 새롭게 중수하는 공사를 반년 만에 이루었다. 이어서 세자 저하를 위한 축원을 소승에게 명하여, 초하루와 보름마다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보시는 유위有為의 정성이니, 세상의 군자들이 모두 홍씨와 같은 한량없는 큰 서원을 본받기를 바랄 뿐이다.
신묘년(1871) 5월 일.
의주義州 용궁산龍宮山 화주승 삼오三悟.14-1. (후기)가만히 생각하건대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니 공덕이 삼천세계에 가득하도다. 한 줄기 마음의 향을 피워 올리니 인과因果가 억만 중생에게 밝도다. 돌아보건대 이 만성灣城88)에서 천왕天王이라 일컫는 절은, 신인神人이 보탑寶搨에 임하여 비로소 일광日光의 몸을 더하였고, 천제의 아들이 이 성에 놀러 와서 직접 사문沙門의 정결함을 보았다. 지금은 세월이 오래 흐른 뒤라 주춧돌이 기울어지고 마룻대가 흔들리니, 재물을 모아 의논하고 점을 쳐서 그에 따랐다.공사를 한 것은 군자들이 베푼 힘이 아님이 없고, 환히 빛남은 다분히 어진 사람들이 기쁘게 보시한 덕분이다. 작은 북을 쳐서 공을 이룬 것을 고하였고, 관리들이 모여 낙성하면서 잔치를 벌였다. 제도는 높고 성대하며 아름다우니 처마 모서리는 날아갈 듯하고, 단청은 매우 기이하여 빛이 나니 제비와 까치가 -
0008_0026_a_01L光武二年七月晦日。
鏡潭門人。混惺抱訊記。
0008_0026_a_02L○天王寺重修大施主前判官洪公正柱氏記惠文
0008_0026_a_03L本寺之剏建。歲久年深。風磨雨洗。傾頹已極。役鉅力微。雖有誠心。而未能
0008_0026_a_04L重修矣。何幸公以別遣官適駕焉。茲以曾未得有之善根。優施錢財之物
0008_0026_a_05L力。惟新寺院之役。半年告成矣。繼以世子邱 [95] 下為祝。命小僧。而每朔朔望。
0008_0026_a_06L孜孜不倦。布施有為之誠。使世之君子。皆願效如洪氏之無量大誓也已。
0008_0026_a_07L辛卯五月 日。
0008_0026_a_08L義州龍宮山化主僧三悟。
0008_0026_a_09L
0008_0026_a_10L竊惟花雨諸天。功德洋洋於三千世界。心香一瓣。因果昭昭於億萬眾生。
0008_0026_a_11L顱 [96] 茲灣城之中。稱以天王之寺。神人臨於寶搨。始倍日光之身。帝子遊於
0008_0026_a_12L北 [97] 城。聿覩沙門之淨潔。迨今年深歲久以後。礎傾而棟撓。鳩材乃議。龜筮
0008_0026_a_13L既從。經之營之。莫非君子舒力。炳若煥若。多賴仁人喜施。奏鞀皷而告厥
0008_0026_a_14L成功。會冠佩而落之以宴。制度美於輪圓 [98] 。翬鳥斯飛。圓 [99] 雘耀於窮奇。燕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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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7_a_01L와서 축하하도다. 장수의 산은 길이 푸르고 복의 바다는 더욱 깊어지리라. 이름은 뭇 신선들과 줄지어 극락세계에서 구름처럼 노닐 것이요, 몸은 대승大乘에 올라 한량없는 길상吉祥을 충분히 누리리라.
광서光緒 17년(1891) 신묘년 5월 일
전 사과89)前司果 허철흠許鐵欽15. 금강사에 있는 석비의 글(金剛寺所在石碑文)만성灣城(의주)의 동쪽 30리에 있는 석숭산石崇山에 금강金剛이라는 절이 있다. 병오년에 화재로 타버렸는데, 승려 묘안竗安이 서슴없이 계획을 세우고 재물을 모아 중건하였다. 선남선녀들이 다투어 금전을 보시하였는데, 가장 큰 것은 관세청管稅廳90)과 향리 사람 안득문安得文으로, 모두 천여 민緡(꿰미)을 보조한 것이다.4년 후 가을에야 공사가 겨우 완공되었으니, 안씨와 향청鄕廳이 앞뒤로 힘을 쓴 덕분이다. 안씨 집안은 효도와 우애에 힘쓰고 삼가하고 조심하며, 의로움을 보면 만금萬金도 아까워하지 않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지금의 행동을 보건대 복을 바라며 부처에게 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베풀기를 좋아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전에 이미 공적인 일을 행했는데 의논하여 수향首鄉91)이 되었고, 그 아들 석범錫範도 성균관 유생으로 천거를 받았다.당시에 내가 이 부府에 윤尹으로 와 있어서 이미 안씨의 의로움을 기특하게 여겼고 절이 낙성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으며, 또한 5백 꿰미를 기부하여 도와주었으므로 위와 같이 사실을 대략 기록하였다. 또한 4개의 큰 금자金字로 쓴 방牓이 산문을 지켜준다고 한다.
도광道光 29년(1849) 9월
양서운향사 규장각검교 대교 지제교兩西運餉司奎章閣檢校待教知製教 이유원李裕元92)이 기록하다. -
0008_0027_a_01L來賀。壽山長翠。福海益深。名列羣仙。雲遊極樂之世界。身豋大乘。充享無
0008_0027_a_02L量之吉祥。
0008_0027_a_03L光緒十七年辛卯五月 日。
前司果許鐵欽。
0008_0027_a_04L○金剛寺所在石碑文
0008_0027_a_05L灣城之東三十里。有石崇山。有寺曰金剛。丙午以燬告。僧竗安慨然經營。
0008_0027_a_06L鳩財而重建之。善男善女。爭施金錢。最管稅廳及鄉人安得文。俱以千有
0008_0027_a_07L餘緡助。越四年秋。工纔完。盖安鄉先後之力也。安家也。孝友事而謹慎。見
0008_0027_a_08L義不惜萬金者屢。顧今之舉。非為徼福祈於佛氏。皆從好施中出。前已屬
0008_0027_a_09L公。議為首鄉。其子錫範。亦以上舍生。豋薦剡。時余適尹是府。既奇安之義
0008_0027_a_10L而幸寺之成。亦捐五百緡助之。略識事實之如右。又四大金字牓而鎮山
0008_0027_a_11L門云。
0008_0027_a_12L道光二十九年季秋。
兩西運餉司奎章閣檢校待教知製教
0008_0027_a_13L李 裕 元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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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8_a_01L16. 희천군 원명사 사적기 熙川郡圓明寺事蹟記군郡의 남쪽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으니 전우殿宇가 매우 화려하고 경관은 뛰어나게 아름답다. 봉우리와 골짜기가 빙 둘러 깊고 아득한데 구불구불 굽었다 다시 멀어진다. 암석이 넓게 퍼졌다가 다시 비탈져 오르는데 기이하고 험준하다. 뭇봉우리들이 죽 늘어서서 함께 읍하니 중생이 부처에게 예배하는 듯하다. 온갖 시내가 다투어 모여 길이 선심禪心을 씻어주니 세속의 마음이 ..... 새벽달 찬 종소리는 남녀의 복을 이루게 하고, 아침 산에 뜬 구름은 영험한 신의 위패를 보호한다. 위성威城93)을 등지고 있고 터는 원만하며, 묘향산을 마주하여 문채가 나고 밝다. 따스한 봄 아름다운 계절에는 새소리가 위아래로 울리고, 보슬비와 봄바람에 꽃과 나무가 무성히 우거진다.불전 옆에 붙어 있던 암자가 임신년에 모두 화재로 타버렸으니, 신인神人이 오염된 것을 싫어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필시 속세의 나그네가 세속의 번뇌를 보였기 때문이리라. 지나는 이와 머무는 사람들이 늘 간절하게 탄식하였다. 그때 영송影松이라고 부르는 승려가 있었는데, 총명하기가 남보다 뛰어났고 성품과 행동이 범인을 넘어섰다.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었고 지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거미의 경륜94)으로 재물을 모을 대책을 생각해 내었고, 토목 기술자가 깊은 골짜기로 자재를 운반하여 갑술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을해년에 완성하였다. 두 해 동안 노력하여 옛 제도를 일신하였으니, 그림 그린 누각과 무늬 넣은 창문에는 아침 햇빛이 밝게 빛나고, 수놓은 감실과 꽃 병풍 속에는 금 불상이 전과 다름없다.아침저녁으로 승려 무리가 정성을 다하여 공경히 예를 올리고, 성城과 시골의 남녀들이 소원에 따라 복을 빌었다. 높이 빛나니 하늘에 해와 달이 다시 새로워지고, 지극히 안락하니 법의 땅에 초목이 무성해지리라. 달이 원만하게 다시 밝았으니 절을 원명圓明으로 이름 지을 만하고, 백성들이 지극히 함께 즐거워하니 불전을 극락으로 이름 짓는 것이 마땅하도다. 내가 이곳에 와서 한가할 때 절에 가서 그 사실을 듣고 성대함을 아름답게 여겨 기문을 써서 끝없이 전하노라.17. 희천군 금선사 사적기 熙川郡金仙寺事蹟記 -
0008_0028_a_01L○熙川郡圓明寺事蹟記
0008_0028_a_02L郡之南有一小菴。殿宇宏華。景槩勝麗。峰壑轉而潗 [100] 邃。逶曲更遠。巖石盤
0008_0028_a_03L而復陁。奇怪且險。羣峰羅列共揖。眾生拜佛之禮。百川爭集。長洗禪心。俗
0008_0028_a_04L塵之意。 [101] 曉月寒鍾聲。功男女之福。朝峦浮雲影。護靈神之位。背威城而基
0008_0028_a_05L圓。面香岳而文明。陽春佳節。禽聲上下。細雨東風。花木重深。殿傍付庵。粵
0008_0028_a_06L自壬申。盡入回祿。豈非神人厭污穢而然耶。必是俗客示塵累之故也。過
0008_0028_a_07L者居人。恒切咨嘆矣。時有一僧號稿 [102] 影松。聰明拔例 [103] 。性行超凡。誠能感天。
0008_0028_a_08L慧足動人。蜘蟵 [104] 經綸。謀出鳩財之策。土木工匠。材運溝壑之深。始於甲戌。
0008_0028_a_09L成於乙亥。兩載勞力。一新舊制。畵榭 [105] 紋▼(囗*夕) [106] 。朝暉照耀。繡龕花屏。金佛依然。
0008_0028_a_10L朝夕緇徒。儘誠講 [107] 禮。城邨士女。隨願禳福。輪焉突 [108] 焉。諸天日月更斯 [109] 。極哉
0008_0028_a_11L樂哉。法地草木向榮。圓其月而復明。寺可號以圓明。極新 [110] 民之 [111] 共樂。殿宜
0008_0028_a_12L名以極樂。余來兹土。暇往其寺。聞其事而美其盛。為之記而傳之無量焉。
0008_0028_a_13L○熙川郡金仙寺事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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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9_a_01L옛 기록에 이르기를, 신라 때 두 사람이 정관貞觀95) 초에 백두산에서 묘향산으로 들어와 산의 북쪽 기슭, 부용봉芙蓉峰 아래에 터를 정해 살았다고 한다. 근래에 서산西山대사가 보수하였다. 동쪽 법왕대法王臺에는 청탑青塔을 세웠고, 서쪽은 금선대金仙臺로 백탑白塔을 세웠다. 법왕대 밖 동쪽은 산화대散花臺로 백탑과 백비白碑를 세웠는데, 비석에는 글자가 없다. 금선대 밖 서쪽은 진락대奏樂臺로 청탑과 청비를 세웠는데, 비석에 글자가 있다. 서쪽에 있는 샘은 이름이 우동芋茼이며, 동쪽에 있는 샘은 이름이 감로甘露이다. 용호龍虎96)에는 각각 석인石人이 바위틈에 있는데 이는 불법을 지키는 것이다.이로부터 용과 뱀이 어지러이 섞여 있지97) 않은 해가 없었다. 백비는 깨지고 부서져서 지금 다듬고 갈아 이어서 기술하였다. 아! 두 대臺를 보수하고 두 샘의 흐름을 늘렸으며, 사방은 푸르르고 영화를 머금은 36개 봉우리는 환히 셀 수가 있다. 만물의 드러남과 숨음은 때가 있으니 이 대가 무너지지 않는 한, 전후의 결연結緣98)으로 함께 여러 덕을 닦고, 복과 지혜를 닦아 사생육도四生六道99)를 같이 하며, 함께 구품九品의 연화대蓮花臺100)에 오르는 것이 소원이다.청나라 강희101) 48년(1709) 기축년 7월 15일에 성하聖河가 스스로 비석을 세웠다. 서산대선사는 절을 창건한 지 수십 년 동안 심불心佛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폈다. 자비와 어짊이 넓고 두터웠으며 자비로운 원이 더욱 깊었다. 팔방의 선객禪客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밤낮으로 번거로이 질문하였으나 스님의 자비는 더욱 새로워졌다. 도道는 금석문이 의심되고102) 공은 아난阿難보다 훌륭하시니, 악신岳神이 경의를 표하고 용천龍天이 수호하며, 단월檀越의 귀의가 아주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제자 성하聖河가 선사의 자취를 정중히 생각하여 비碑의 명銘을 고쳐 세우고자 하였다. 이에 청허清虛의 3세인 동계 월저東溪月渚103)가 손수 명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경물은 예와 같은데, 선객은 영화로움에 올라 뭇 손님들은 격식을 바꾸었다.
봉황이 뛰노는 신선의 땅이요, 용이 훨훨 나는 보배 전각에서
조사의 도를 거듭 빛내며 해는 길이길이 밝으리라.
귀문龜文이 상서로움을 드러내고 봉황의 지팡이가 빛을 발하니
오교五教가 영광을 나누고 팔란八鸞104)이 꽃을 머금었도다.
공은 임제臨濟105)에 맞먹고 업은 원공遠公106)만큼 높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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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29_a_01L古記云。新羅時有二人。貞觀初。自白頭入香山。山之北麓。芙蓉峰下卜居
0008_0029_a_02L焉。近有西山師修葺。東曰法王臺。立青塔。西曰金仙臺。立白塔。法王臺外
0008_0029_a_03L東曰散花坮。立白塔白碑。碑沒字。金仙坮外西曰奏樂坮。立青塔青碑。碑
0008_0029_a_04L有字。西有泉。名芋茼。東有泉。名甘露。龍虎各有石人在岩罅。即鎮法也。自
0008_0029_a_05L是龍蛇混雜。無歲無之。白碑破碎。今為攻磨。以繼述之。吁。二坮之修。二泉
0008_0029_a_06L增流。四圍蒼翠。含榮三十六峰。歷歷可數。凡物之顯晦有時。俟此坮之不
0008_0029_a_07L頹也。前後之結緣。同修等等。修福慧。共四生六道。同登九品之坮。是所願
0008_0029_a_08L也。有清三之四十八年己丑。七月十五日。聖河字 [112] 立石。西山大禪師剏寺
0008_0029_a_09L數十年。以心佛之心。廣佛之教。慈仁博厚。悲願尤深。八方禪衲雲集。日夜
0008_0029_a_10L煩問。師悲尤新。道疑金文。功推阿難。岳神致敬。龍天守護。檀越歸向。千秋
0008_0029_a_11L不滅。於是小弟聖河。敬念先師之迹。欲樹改碑之銘。乃清虛三世東溪月
0008_0029_a_12L渚手撰銘書 [113] 。境物依舊。禪客攀榮。眾賓改律。鳳矯 [114] 仙樞 [115] 。龍迥 [116] 寶殿。重光祖
0008_0029_a_13L道。日明千秋。龜文吐瑞。鳳策揚輝。五教分榮。八鸞含花。功權臨濟。業峻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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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0_a_01L천추만세토록 이 비갈은 없어지지 않으리라.18. 희천군 묘향산 척반대 사적기 熙川郡竗香山擲盤臺事蹟記위성威城107)의 남쪽 묘향산의 북쪽에 절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은 척반대擲盤臺이다. 이름을 정한 자는 누구인가. 신라의 도인 원효元曉가 이곳에서 도를 깨닫고 이곳에서 도를 즐겼다. 하루는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니, 중국에서 크게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아홉 번 출가하고 아홉 번 환속한 자가 증명證明법사로 참여하고 있어 하늘이 벌을 내려 땅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묻힐뻔할 때, 소반 하나가 어딘가에서 와서 높이 솟았다가 낮게 내려왔다가 도량을 넘어가니, 모인 대중들이 모두 괴상하다고 말하면서 따라 나간 뒤에 땅이 무너졌다. 증명법사는 땅속에 빠지는 화를 입었다. 소반이 멈추기에 바라보니 소반 가운데에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救眾’108)이라는 8글자가 있어서 편액을 하였다.산이 이로 인해 중요해지고 절이 이 때문에 기이해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 절이 점차 무너지는 우환이 있었으나 수리할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었으니, 산수山水는 처연하여 머무는 이와 지나가는 이가 탄식하였다. 긍오亘悟선자禪子는 절을 수호한 지 몇 년 되었는데, 기울어지고 무너지는 상황을 개탄하여 중수하려는 뜻을 품고 희유심希有心109)을 내어 먼저 자기의 재산을 다 바쳤다. 마을의 수장長인 최형악崔亨岳, 이문향李文鄉도 그 사실을 듣고서 아름답게 여겨 시주했을 뿐 아니라 남에게 시주를 권유하기까지 하였다. 본 마을에서는 거북점에 맞추어 그에 따라 의논하였고, 이웃마을에서는 풍문을 듣고 도움을 베풀어 한 달이 안 되어 공사를 끝냈다.아! 아름답도다. 천년토록 어린 백운 아래에 구름과 숲 사이에 사찰을 거듭 새로 세우니, 비 갠 하늘에 뜬 달과 맑은 바람이 서로 어울리고 산빛과 물빛 서로 비춘다. 사람인가 하늘인가. 공사는 귀신이 하는 일이 아니며, 만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기억할지라. 보시하고 화주 하신 스님의 공덕은 높은 산과 길게 흐르는 물과 같도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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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0_a_01L公。千秋萬歲。此碣不杇 [117] 。
0008_0030_a_02L○熙川郡竗香山擲盤臺事蹟記
0008_0030_a_03L威城之南。竗香之北。有一精舍。厥號擲盤臺。安名者誰。新羅道人元曉。悟
0008_0030_a_04L道於斯。樂道於斯。一日慧眼觀之。中原有大作佛捨 [118] 。九僧九俗者叅證師。
0008_0030_a_05L天罰地陷。緣此會眾。咸沒之際。有一盤自無何以來。或高或抵。揭道場而
0008_0030_a_06L去。會眾咸言奇恠。而隨出後地陷。證師被陷沒之禍。盤止視之。則盤中有
0008_0030_a_07L海東元曉擲盤救眾人 [119] 字。所以扁額也。山以之重。寺以之奇。不言可想矣。
0008_0030_a_08L然歲久年深。寺有漸頹之患。而人無可葺之心。山水悽冷。居過咨嗟。亘悟
0008_0030_a_09L禪子。守護幾年。慨嘆傾覆之狀。志欲重新。發希有心。先罄己財。里首崔亨
0008_0030_a_10L岳李文鄉。亦聞以嘉。尚為不施。至為引勸 [120] 主。本里龜恊而從議。隣里聞風
0008_0030_a_11L而施助。不閱月而告厥成功。猗與伏 [121] 哉。白雲千載之下。梵宮重新於雲林
0008_0030_a_12L之間。霽月光風相知 [122] 。山光水色互暎。人耶天耶。工不鬼役。物不天來。可記
0008_0030_a_13L乎。施化師之功德。山高水長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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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1_a_01L광서光緒 5년(1879) 기묘년 5월 10일에 보운 자희普運子禧가 삼가 쓰다.19. 심원사 深源寺19-1. 심원사 현판 1 深源寺懸板정주목 봉명산 심원사의 불상개금과 후불 중단의 제석과 천룡 여러 탱화를 조성한 기문기묘년 가을, 어진 재상 홍공洪公이 정주목定州牧에 목사로 나갔는데, 다행히 이 절에 행차하여 사원의 피폐함을 보고 불상의 칠이 벗겨진 것을 한탄하여, 내게 명해 도화주都化主의 일을 맡겨 개금改金을 하게 하였다. 이미 관청의 분부를 거스를 수 없었고 또 불상의 쇠잔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소매 속에 권선문勸善文을 넣고 다녔는데, 절의 승려들과 함께 모의하여 천금千金에 한정하여 재물을 모으기에 힘써 애를 썼다. 이듬해 봄 정월 16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3월의 길한 날 이 시각에 낙성하였다. 날이 길하고 때가 좋아, 날씨는 청명하였으며 상서로운 기운이 재齋를 지내는 동안에 늘 어렸으니 승속이 모두 기뻐하며 기이한 일이라고 외쳤다고 한다.단월의 성씨는 아래에 열거한다.
때는 청 건륭乾隆 25년(1760) 경진년 3월 3일,
청송青松의 문인 남파 육탄南坡𠆾坦이 삼가 기록하다.19-2. 현판 2 懸板불교가 서역으로부터 와서 우리 동방에 이르러 고려에 와서 높이 받들어 섬긴 것이, 우리 유교에서 선성先聖(공자孔子)을 연모하는 것과 거의 같았다. 산 높고 골짜기가 깊어 고요하고 정결한 곳에는 반드시 절을 지었으니, 세상에서 전하는 8만, 9만이라는 설은 참으로 헛된 것이 아니로다.길상산吉祥山에서 흘러온 산줄기인 심원산深源山은 바로 주州의 주산主山이다. 왼편은 굽고 오른편은 퍼져서 용과 범이 서로 껴안고 있는데 가운데에 큰 -
0008_0031_a_01L光緒五年己卯仲夏澣。普運子禧謹記。
0008_0031_a_02L○深源寺懸板
0008_0031_a_03L定州牧鳳鳴山深源寺佛像改金與後佛中壇帝釋天龍諸幀造成記
0008_0031_a_04L歲在己卯秋。賢相洪公。出宰定州牧。幸枉此寺。見寺佛 [123] 之被廢 [124] 。恨佛像之
0008_0031_a_05L漫渙。命余差定都化主任。使之改金。既不逆官符 [125] 之囑。又不忍佛像之殘。
0008_0031_a_06L仍袖勸䟽。與寺僧謀議。拮据壇 [126] 財限千金。越明年春正月既望起始。季春
0008_0031_a_07L之吉日。落成于斯時也。日吉時良。天清明。瑞氣常凝於練齋之間。道俗咸
0008_0031_a_08L嘉之。哮作異事云。檀越姓氏。開列于左。時則
0008_0031_a_09L有清乾隆二十五年庚辰三月三日。
青松門人南坡𠆾坦謹識。
0008_0031_a_10L○深源寺懸板
0008_0031_a_11L夫釋氏之來自西域。至于我東。逮夫勝國。尊崇敬仰。而殆若吾儒之慕先
0008_0031_a_12L聖也。山之高谷之深。邃靜潔處。則必建梵宇。世傳八萬九菴 [127] 之說而誠不
0008_0031_a_13L虛矣。吉祥山來脉深源山。即州之主山也。左屈右伸。龍虎交抱。中有一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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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2_a_01L사찰이 하나 있다. 창건한 연대는 고증할 만한 자취가 없고, 높이 받들던 때를 판별할 만한 것도 없다. 다만 중수한 유적을 살펴보니 연대가 건륭乾隆 25년(1760)이라 하였는데, 이는 바로 우리 조정 때의 일이다. 승려 무리가 점차로 쇠약해지고 사찰이 거의 폐해져서 눈에 닿는 것마다 황량하니 세상 사람들도 탄식하였다. 근래에 산천의 기운이 답답하게 맺혀 재앙이 되고 재해가 만민에게 미친 것은, 승려가 없고 절이 폐하여 명금鳴金111)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때문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본사는 주州의 기운을 진호하는 곳으로 송공宋公, 서공徐公, 박공朴公이 중수하려고 하였으나 재력을 갖추기 어려워 뜻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어진 수령이 부임해 온 후에 봉급을 기부하여 도와주고, 특별히 영을 내려 고쳐 짓게 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다음 향장鄉將, 아전과 종, 고을의 부유한 사람들에게 능력에 따라 부조하게 하여 을묘년 7월 모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병진년 8월에 끝마쳤다. 전우殿宇와 누각은 기울어진 기왓장을 모두 개수하여 많은 이들의 눈에 새로우니 어찌 단월의 공력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이루어 결과를 얻는 것은 기약이 있고, 백성을 재앙에서 구제하기 위함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세상을 미혹하게 하고 복을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졸렬함을 잊고 삼가 기록하였다.
함풍咸豐 7년(1857) 정사년 10월 일, 목사 홍익섭洪翼燮.19-3. 현판 3 懸板심원사深源寺는 영읍營邑의 일을 이롭게 한다. 산 이름은 봉명鳳鳴이요 절 이름은 심원深源이니, 그렇기에 영험하고 신이함을 길러 신神이 큰 부府를 보호하고, 도가 대중에게 전해져 사법師法을 받들도록 하였다. 절은 심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천년의 긴 시간을 지나며 신라와 고려에서 숭상한 곳이었고, 뭇 선善의 발원發願을 나타내어 읍邑과 촌村이 함께 귀의하였다. 원앙 같은 용마루며 무지개 같은 들보며 창건한 것이 광대하고, 그림 속의 용이며 비단 장막이며 제도가 화려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동안 세월이 -
0008_0032_a_01L剎。剏建年代。無跡可考。而無乃崇奉之時可辦者耶。只考其重修遺跡。則
0008_0032_a_02L年代乾隆二十五年云。此即我朝之時事也。僧徒漸衰。寺剎幾廢。觸目荒
0008_0032_a_03L落。世人興嘆。近日山川之氣。拂鬱為殃。害及萬民者。烏知非僧亡寺廢。嗚 [128]
0008_0032_a_04L金之聲。寂然故也。本寺為州之鎮氣處。而宋徐朴公欲為重修。財力難辦。
0008_0032_a_05L有志未就。已為年所矣。何幸賢侯來莅之後。捐廩助給。特令使之修改。其
0008_0032_a_06L次鄉將吏奴令邑之富人。隨力扶助。乙卯七月日始役。丙辰八月訖功。殿
0008_0032_a_07L宇樓閣也。並改欹瓦。萬目有新。豈不曰檀越之功力也。凡之成而果有期。
0008_0032_a_08L而寔出於為民救災。則豈可謂惑世冀福也哉。忘拙謹識。
0008_0032_a_09L咸豐七年丁巳十月日牧使洪公翼燮。
0008_0032_a_10L○深源寺懸板
0008_0032_a_11L夫深源兵 [129] 。營邑之事利也。山名曰鳳鳴。寺名深源也。故毓靈異。而神護雄
0008_0032_a_12L府。道傳眾。教尊師法。而寺稱深源。閱浩刼於千年。羅麗所尚。現發願於眾
0008_0032_a_13L善。邑村同歸。䲶甍虹樑。剏建之宏大。畵合 [130] 龍錦帳。非不制度之繁華。曾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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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3_a_01L얼마나 흘렀으며 얼마나 많이 황폐해졌던가.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고 기울어져서 무너질 듯하였다.본관 사또 이공李公이 승려를 부르니 수일修一과 보상普祥 두 스님이 말하기를, “어찌 승도들이 재산 모으는 일을 함께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주州의 백성들도 탄식하는 것이 오직 중수 때문입니다. 다시 방책을 세워서 꼭 필요한 비용만 써야 할 것인데, 이 외로운 곳 혈혈단신의 신세에 재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삼천세계 아래에는 크나큰 자비가 남아 있고 열아홉 마을에는 선남선녀가 있어서, 절의 빈궁함을 걱정하고 오직 단나가 널리 보시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몇 백의 재물을 날리고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은 덕을 세움만 같지 않으니, 터럭 하나를 뽑아서 이로움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112)”라고 하였다.경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에서야 끝마쳤다. 전우와 누각은 기울어진 기와를 모두 고쳐서 많은 이들의 눈에 새로우니 어찌 단월의 공력이 아니겠는가. 일의 결과는 기약이 있고 진실로 백성을 재앙에서 구원하기 위한 데서 나온 것이니, 어찌 세상을 미혹하게 하여 복을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의 도우심에 힘입어 힘을 합하였으니 바라건대 다시 새롭게 우뚝 세워서 복전福田이 널리 열리어 함께 장수와 평안의 경계에 오르고, 지혜의 달이 다시 개어서 청정한 도량을 두루 비추게 하소서. 진실로 원하노니 인민들에게 한결같이 부드럽게 하고 어질고 선함을 권하여 오래도록 향과 초가 이 당堂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축원하기를.
광서光緒 6년(1880) 경진년 10월 일.
목사牧使 이헌영李𨯶永이 삼가 적고, 묘향산의 승려 천수天秀가 글씨를 쓰다.20. 용운사 龍雲寺1개의 탑비塔碑. “지금의 황제폐하께서 만만세를 누리소서.”라고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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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3_a_01L月之幾何。幾多荒落。而風雨不蔽。若如傾頹之。本官李公呼僧。修一普祥。
0008_0033_a_02L兩僧謂言。豈非僧徒之共憂鳩聚財產。亦為州民興歎。惟其重修故也。更
0008_0033_a_03L建方策。徒費必籌。奈此孤處單身之生涯。難辨財力。三千界下。所樻 [131] 大慈
0008_0033_a_04L大悲。十九坊。自有善男善女。須惱蓮社之貧乏。只望檀那之普施。散幾百
0008_0033_a_05L財還來。莫如樹德。拔一毫而蕩利。庚辰五月分始役。至今訖功。殿宇樓閣。
0008_0033_a_06L道 [132] 改欹瓦。萬目有新。豈非檀越之功力耶。凡事之果有期。而寔出於為民
0008_0033_a_07L救災。則豈可謂惑世冀福也哉。泰 [133] 天之助佑同力。庶幾改觀於更輪。福田
0008_0033_a_08L廣開。共躋壽康之域。慧月更霽。遍照清淨之道場。性 [134] 願一撓人民。善勸仁
0008_0033_a_09L善。千秋香燭。與斯堂共祝始終。
0008_0033_a_10L光緒六年庚辰十月 日。
牧使李𨯶永謹識。
0008_0033_a_11L筆香山僧天秀書。
0008_0033_a_12L○龍雲寺
0008_0033_a_13L一塔碑。 今皇帝陛下萬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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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4_a_01L1개의 편액扁額. 인쇄한 사람은 김정하金鼎夏이다.∎ 편액문삼가 생각건대 우리 성상께서 즉위하시어 처음 자리를 잡으시고 대만년大萬年의 기틀을 도모하시니 태평성대가 계속 이어졌다.113) 아! 성대하도다. 문무를 겸비한 길보吉甫114) 같은 인재는 물고기와 물을 함께 얻은 것과 같고, 안팎의 방패와 성115)같은 인물은 용과 구름이 서로 따르는 듯하도다. 좌방영左防營116)의 제승制勝117)은 예전 고려 때 장정長靜118)이라 불렀으니, 압록강을 옷깃과 띠처럼 둘러 우리나라의 울타리와 기둥이 되었고 주봉冑峯을 진압하여 반석과 태산처럼 변방을 견고하게 하였다.우리 한후韓侯119)를 기다렸으니 어찌 그리도 늦게 오셨는가. 천석千石의 어진 관리 소부召父가 다시 두모杜母에게 전하니,120) 만가萬家에서 부처가 나고121) 하인들도 모두 사마司馬를 알았도다.122) 나랏일로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천하의 근심과 즐거움을 앞서며, 인화人和가 지리의 보장保障에 부합하는 것과 같지 않으니, 한 명이 만 명을 감당할 관關이 차례로 낙성을 고하였고 3리의 성城과 7리의 곽郭으로 필요한 수단을 다 갖추었다. 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교화가 넘쳐 제齊나라 사람들이 감히 침략을 하지 못했고, 시절이 태평하고 해는 풍년이 들어 우리 백성들의 다복함을 구하였다. 흠모하는 정성으로 매번 북두성에 의지하여 서울을 바라보았고, 공무를 보는123) 여가에 혹 구름을 보며 부모님을 그리워하였다.오봉五峰사문은 이 부府의 원당願堂에서 어비御碑에 기쁘게 임하여 임금님을 정성스럽게 축수하니 멀고 가까운 곳이 일체가 되리로다.124) 금빛 신선125)은 대각大覺이시니 인과因果의 공은 삼승三乘126)의 높고 낮음이 있도다. 경물이 바뀌고 별자리가 옮겨지며 장구한 세월을 겪으면서 흩어지고, 바람에 닳고 비에 씻겨서 스님들께 걱정을 끼치며 칠이 벗겨졌다.
이에 알겠도다. 하늘이 감춘 특별한 구역이 덕이 높고 밝은 태수太守를 기다렸음을. 공사를 시작하고 5두五斗의 봉록을 기부하니, 단월들이 두루 보시하여 다투어 천금千金의 도움을 주었다. 날아갈 듯한 보전寶殿은 -
0008_0034_a_01L一扁額。 印刷人金鼎夏。
0008_0034_a_02L一扁額文恭惟我
0008_0034_a_03L聖上一元之初宅。圖大萬年之基。重熙累洽。猗歟盛哉。文武吉甫。猶魚
0008_0034_a_04L水之共得。內外干城。如龍雲之相從。粵若左防營之制勝。古稱高麗氏
0008_0034_a_05L之長靜。襟帶鴨水。奠海邦之屏翰。鎮壓冑峯。鞏邊圉之盤泰。徯我韓侯。
0008_0034_a_06L何其來暮。千石良吏召父。更傳杜母。萬家生佛。走卒亦知司馬。王事靡
0008_0034_a_07L監。先天下之憂樂。人和不如叶地利之保障。一夫當萬夫關。次第告成。
0008_0034_a_08L三里城七里郭。畢張治具。政通化溢。敢齊人之入寇。時和歲豐。求吾民
0008_0034_a_09L之多福。傾蔡 [135] 之悃。每依斗而望京。調梅之暇。或看雲而陟岵。盖五峰沙
0008_0034_a_10L門。寔一府願堂。
0008_0034_a_11L御碑穆臨。呼嵩之誠。遐邇壹軆。金仙大覺。因果之功。高下三乘。物換星
0008_0034_a_12L移。經刼塵而輪奐 [136] 。風磨雨洗。𣛴 [137] 浮圖而剎 [138] 落。乃知天藏別區以竢神明
0008_0034_a_13L太守。經始興工。捐送五斗之廩。檀越普施。爭趍千金之助。翼乎寶殿。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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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5_a_01L옛 기와를 걷어내고 지었으며, 높직한 선단禪壇은 새 제도에 맞추어 면모를 일신하였다. 여덟 개의 창127)을 들이니 산천의 기상을 더하였고, 삼광三光128)이 밝게 비치니 세계의 극락을 보탰다. 청컨대 성인聖人(임금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국가의 운수가 영원하기를 하늘에 기원하며, 모두 중생과 더불어 덕 있는 이는 이웃이 있듯이 큰 복을 누리리로다.아! 나의 증조할아버지 경운卿雲이 일찍이 갑인년에 노고를 다하였기에 후손인 나에 이르러 다행히 두 번 다시 없을 태평성대를 맞이하였다. 경영하는 재주는 부족하나 후손을 유복하게 하여 감히 찬미하고, 계술繼述129)하려는 뜻이 절실하여 선조의 자취를 붙여 더욱 느꺼워 차례로 적어서 삼가 거칠게나마 문장을 엮었다.
寶殿重回泰 보배로운 불전이 다시 태평해지매
靜觀萬化張 만물의 변화가 펼쳐짐을 고요히 관찰하노라
月霞流石面 달빛과 노을이 바위 위에 흐르고
花雨洗山容 꽃비에 산의 모습 말끔히 씻기었도다
飛錫解雙虎 석장 휘둘러 두 호랑이 싸움을 말리고130)
鉢盂藏一龍 발우 속에 한 마리 용을 가두었네131)
靈光任照輝 신령스런 빛이 밝게 비추어
聖壽齊青峰 임금님 수명이 푸른 산봉우리와 함께 하리라
山開壽嶽洞天分 산이 수악을 열어 신선 골짜기가 분명하니
灑落鍾聲到曉聞 맑은 종소리가 새벽 되자 들려오니
麟抱釋教傳寶樹 훌륭한 인재가 나와서132) 불교가 극락세계133)를 전하고
龍飛聖化吐祥雲 임금이 즉위하시어 덕화를 베푸니 상서로운 구름 토하네
道通極樂玄圓界 극락의 오묘하고 원만한 세계로 길이 통하니
妙入大藏錦繡文 대장경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하게 들어가도다
期與後昆垂降遠 바라건대 후손과 더불어 먼 훗날까지 전해져서
千秋誠切憶韓君 오래도록 삼가 간절하게 한군을 기억하기를
경오년 중추에 김정하金鼎夏가 삼가 짓다.
1개의 비碑에 “국왕 세 분 전하 만세를 누리소서.”라고 씌어 있다.
1개의 탑은 7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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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5_a_01L舊瓦而搆成。臭 [139] 然禪壇。合新制而改觀。八窓獻納。增山川之氣像。三光
0008_0035_a_02L照耀。重世界之極樂。請祝
0008_0035_a_03L聖人壽無疆。而祈我 [140] 永命。咸與眾生。德有隣而介爾景祿。於戱。余 皇
0008_0035_a_04L考曰卿雲。曾効勞於甲寅。逮苗裔之不肖。幸盛際之難再。材短營度。裕
0008_0035_a_05L後謨而敢賛。志切繼述。附先蹟而彌感。庶為撰次。謹綴荒蕪。
0008_0035_a_06L寶殿重回泰。靜觀萬化泛 [141] 。月霞流石面。花雨洗山容。飛錫解雙虎。摩▼(打-丁+咢) [142]
0008_0035_a_07L藏一龍。靈光任照輝。
0008_0035_a_08L聖壽齊青峰。山開壽嶽洞天分。灑落鍾聲到曉聞。麟抱釋教傳寶樹。龍飛
0008_0035_a_09L聖化吐祥雲。道通極樂玄圓界。妙入大藏錦繡文。期與後昆垂降遠。千
0008_0035_a_10L秋誠切憶韓君。
0008_0035_a_11L庚午仲秋。金鼎夏謹撰。
0008_0035_a_12L一碑。 王上三殿下壽萬歲。
0008_0035_a_13L一塔壹個。七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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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6_a_01L1개의 편액은 ‘용문사龍門寺’이다.21. 보리산 보광사 菩提山普光寺21-1. 선천부 보리산 보광사 사적 宣川府菩提山普光寺事蹟평안북도 청북清北 선천부宣川府 보리산菩提山 보광사普光寺는 관서關西지방의 명승지이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우리 대각능인大覺能仁134)의 63대손이요 임제臨濟의 적통이신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 서산 청허당 휴정대사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攝扶宗樹教普濟豋階尊者西山清虛堂休靜大師가 머물러 계시던 도량이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서쪽 용만龍灣(의주義州)으로 가셨을 때 국가의 실록實錄을 보관하였던 원찰願剎이다. 산의 둘레는 반백 리로 서린 뿌리는 멀리 장백산長白山에 이어지며, 상서로운 기운은 울창하게 푸른 창공에 가지런하다. 압록강의 남쪽에 우뚝 솟아 구성龜城, 의주義州, 선천宣川, 철산鐵山 네 읍의 접경에 자리잡고 있다.골짜기는 깊고 그윽한데 바위 봉우리는 높이 치솟았고 수목은 우거져 어두우니, 승냥이와 이리가 마구 돌아다니므로 사람들이 오고갈 때는 늘 두려운 마음을 갖는다. 산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많아 사계절에 늘 봄빛이 머물러 있다. 시내는 옥같은 샘이 많아 여름 내내 늘 가을 소리가 들린다. 상서로운 안개 연기가 항상 자욱하게 어려 있고, 천 개의 봉우리에 계수나무 달빛 비치고 덩굴에 바람 불어오니 실로 청정한 세계의 맑고 깨끗함이라, 인간들의 정토淨土요, 운수납자의 낙지樂地라고 할 만하다.가을날 봉우리 정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대양大洋은 아득하고 푸른 바다와 먼 하늘이 모두 시야에 들어오는데 신선의 섬과 구월산九月山이 무릎 아래에서 굽혀 절하는 것은 산의 서남쪽 경관이다. 구름 낀 산은 겹겹이 있고 오랑캐의 요새와 요양遼陽이 손바닥 안에 다 거두어지는데 묘향산妙香山 삼각산三角山이 엷은 아지랑이 속에 아물아물한 것은 산의 동북쪽 경관이다.하물며 또한 노을 지는 넓고 아득한 저 밖 바다 -
0008_0036_a_01L一扁額。 龍門寺。
0008_0036_a_02L○宣川府菩提山普光寺事蹟
0008_0036_a_03L平安北道清北宣川府菩提山普光寺。乃西關名勝地。而 皇明萬曆間。
0008_0036_a_04L惟我大覺能仁六十三代孫。臨濟嫡統 賜國一都大禪師。 [143] 教都摠攝。扶
0008_0036_a_05L宗樹教普濟豋階尊者。西山清虛堂休靜大師之所遊居道場。而壬辰倭
0008_0036_a_06L亂 大駕西幸龍灣時。留藏 國家實錄之願剎也。山之周遭半百里。而
0008_0036_a_07L盤根遙連於長白。佳氣鬱䓗平碧空。而高屹於鴨綠江之南。鎮坐于龜灣
0008_0036_a_08L宣鐵四邑之接境焉。洞壑深邃。岩嶂高峙。樹木陰翳。豺狼縱橫。人物往來。
0008_0036_a_09L常懷恐刧 [144] 焉。山多松栢。四節長留春色。而澗多玉泉。九夏恒聽秋聲矣。湍 [145]
0008_0036_a_10L霧祥烟常曖曖。千峯巒 [146] 桂月蘿風。實蕭洒于淨界。可謂人間之淨土。雲水
0008_0036_a_11L之樂地也。秋日登臨峯項 [147] 。四望瞻顧。則大洋茫茫。碧海長天。摠入眼界。而
0008_0036_a_12L神島九月。屈拜膝下者。而山之西南之景也。雲山疊疊。胡塞遼陽。收盡掌
0008_0036_a_13L中。而妙香三角。沓 [148] 然細靄者。山之東北之景也。矧又落霞蒼茫茫之外。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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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7_a_01L위 외로운 섬이 혹 하얗게 구름에 덮혀 있고, 푸른 봉우리의 변경 요새 속으로 쌍학이 간간이 오고가니, 이것이 또한 보리산의 뛰어난 경치이다. 산 이름은 보리菩提요, 절 이름을 보광普光이라고 한 뜻은 어디에 있는가. 옛날 우리 부처님 대각 세존께서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처음으로 정각正覺을 이루고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대화엄을 연설하셨으니, 옛사람이 터를 열어 사원을 창건하고 그것을 본받아 이 이름을 지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의주부 10리 쯤에 화엄사가 있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아득한 옛날 처음으로 터를 잡아 지은 연대는 전하는 사실이 없으므로 아득하여 상고할 수가 없다.명나라 만력萬曆 임진년에 왜적이 경성京城(서울), 송도松都(개성) 및 평양을 함락하자 모든 신하들은 허둥지둥 분주하고 온 백성들은 허덕이며 죽어갔다. 우리 선조宣祖 조경대왕照敬大王께서 서쪽 용만(의주)으로 피난왔을 때, 나라의 실록을 이 산에 보관하라고 특별히 명을 내렸으니 지금의 일록사鎰錄寺가 바로 이 절이다. 일록鎰錄은 실록實錄의 오류이다.이보다 앞서 기축년(1589)에 요승妖僧135)이 무고하여 끌어들였으니 그 때문에 우리 서산西山 등계대사豋階大師136)가 금부禁府에 구금되었으나, 그 진술한 말이 명쾌하고 절실하였으므로 선조가 그가 누명 쓴 것을 알고 즉시 석방하였으며, 시고詩藁를 가져오게 하여 보고는 아름답다고 감탄하였다. 손수 그린 묵죽墨竹 그림을 내어 하사하고 시를 지어 올리라고 명하였다. 대사가 즉시 아래의 절구를 지어 올렸다.
瀟湘一枝竹 소상강의 대나무 한 가지가
聖主筆頭生 우리 임금님 붓끝에서 생겨나
山僧香𤑔處 산승이 향을 사르는 곳에서
葉葉帶秋聲 잎마다 가을 소리를 띠겠구나
선조가 훌륭하게 여겨 칭찬하였다. 또 직접 지은 절구 1수를 주고 상을 매우 후하게 내리고 위로하여 산으로 돌아가게 하였다.임진년의 난리 때 선조의 어가가 서쪽 용만龍灣(의주)으로 행차했는데 문득 저절로 떠올리며 말씀하시기를, “휴정 상인上人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찌 나를 잊었는가.”라고 하니 재상이 불러 오게 하였다. 등계豋階대사가 검을 짚고서 나아가 뵈었다. 선조께서 교시하시기를, “세상이 이같이 어지러운데 그대가 널리 구제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대사가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고 청하기를, “국내의 승려들 중에서 늙고 -
0008_0037_a_01L上孤嶼。或白露雲。青嶂之邊塞裏。雙鶴間往來。此亦菩提山之勝賞也。山
0008_0037_a_02L名菩提而寺號普光者。意在於何。昔者吾佛大覺世尊。初成正覺于菩提
0008_0037_a_03L塲中。而演大華嚴于普光明殿焉。則古人所以開基創院。而模彼名此也
0008_0037_a_04L必矣。故灣府十里許。有華嚴宗。是其證也。邃古之初。肇基年代。既無事實。
0008_0037_a_05L沓 [149] 不可攷。而皇明萬曆壬辰之歲。倭賊陷京城松都及平壤。百僚奔遑。萬
0008_0037_a_06L民魚喁。我宣祖照敬大王。西幸龍灣避亂之節。特命國之實錄留藏此山
0008_0037_a_07L焉。今鎰錄寺是也。鎰錄者。實錄之訛也。先是已五 [150] 之年。妖僧證 [151] 引。故惟我
0008_0037_a_08L西山豋階大師被拘於禁府矣。及其供辭明剴 宣廟知其冤。立釋之。
0008_0037_a_09L徵詩藁。覽之嘉歎。出 御畵墨竹而賜之 命賦詩而進。師即進絕句曰。
0008_0037_a_10L瀟湘一枝竹。聖主筆頭生。山僧香𤑔處。葉葉帶秋聲。宣廟奇而讚之。又
0008_0037_a_11L賜御制一絕。賞齋 [152] 甚厚。慰遺 [153] 還山焉。及壬辰之亂 宣廟大駕西幸龍灣。
0008_0037_a_12L忽自憶曰。靜上人今在何處。豈忘我耶 丞使召來。豋階大師伏 [154] 劒進謁
0008_0037_a_13L宣廟教曰。世亂如此。爾何 [155] 弘濟耶。師泣而拜 命。請曰。國內緇徒之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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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8_a_01L병들어 군대에 편입할 수 없는 자들은 신이 영을 내려, 머무는 곳에서 분향 축원하여 신명의 도움을 빌도록 하고, 그 나머지는 신이 모두 통솔하여 다 군영으로 나아가 충성을 다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선조가 의롭게 여기고 명하여 8도 16종 도총섭으로 제수하고 의승 대원수義僧大元帥로 삼아 각지에 유시하여 예우하게 하였다.송운 유정松雲惟政은 대사의 뛰어난 제자로서, 대사가 의승義僧의 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7백여 승도를 거느리고 관동에서 일어났다. 뇌묵 처영電默處英은 1천여 승군을 거느리고 호남에서 일어났다. 대사는 문도와 스스로 모집한 승군 1천 5백을 거느렸다. 모두 합쳐 5천 여 명이 순안順安 법흥사法興寺에 모여서 명나라 군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양 모란봉牡丹峰에서 싸웠다. 승군은 승리를 많이 거두었고 적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아 전공을 크게 세웠다.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하여 마침내 평양을 탈환하고 송도(개성)를 수복하자 서울의 적들이 밤중에 도주하였다.대사는 용맹한 군사 백 명을 보내어 (선조의) 대가大駕를 맞이하여 환도하게 하였다. 명나라의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이 서찰을 보내 칭송하기를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함에 충성이 해를 꿰뚫을 만하니 존경하여 우러르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대사에게 주었다. “공명과 이로움 꾀하는 데는 뜻이 없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도만 닦다가, 지금 나랏일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총섭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오셨네.” 이에 (명나라의) 장수들 백여 명이 앞을 다투어 대사에게 서찰을 보냈다.적이 물러가고 대사가 아뢰기를, “신의 나이 여든이라 근력이 다하였습니다. 청컨대 군사 일은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맡기고 신은 총섭의 인장을 반납하고 묘향산의 옛 처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선조가 그 뜻을 가상히 여기고 연로함을 염려하며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攝扶宗樹教普濟豋階尊者’라는 호를 내렸다. 우리 대사는 이로부터 의리는 더욱 높아지고 명성은 더욱 귀해지며 도는 더욱 존귀해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산은 국난을 당한 시절에 나라의 실록을 산에 있는 절에 보관하도록 명하였으니 -
0008_0038_a_01L病不任行伍者。臣今 [156] 在地焚修。以祈神助。其餘臣皆統率。悉赴軍前。以效
0008_0038_a_02L忠赤 宣廟義之。命為八道十六宗都摠攝。為義僧大元帥。諭方岳禮遇
0008_0038_a_03L之。於是松雲惟政。乃師之上足也。聞師為義僧元帥。而率七百餘僧起
0008_0038_a_04L於關東。電默處英率一千餘僧起於湖南。師率門徒及自募僧一千五百。
0008_0038_a_05L合五千餘名。會于順安法興寺。與天兵為後 [157] 。戰于平壤牡丹峰。僧軍多捷。
0008_0038_a_06L斬獲甚多。大竪戰功焉。與天兵并力。遂克平壤復松都。京城賊霄 [158] 遁。師以
0008_0038_a_07L勇士百人。迎大駕還京都 天朝提督李如松。送帖嘉獎。有為國討賊。
0008_0038_a_08L忠誠貫日。不勝敬仰之語。又提 [159] 詩贈師曰。 無意圖功利。專心學道仙。今
0008_0038_a_09L聞王事急。摠攝下山巔。詩 [160] 將官百有餘員。爭先送帖于 師前。賊退 師
0008_0038_a_10L啟曰。臣年埀八十。筯力盡矣。請以軍事屬於弟子惟政及處英。臣願納摠
0008_0038_a_11L攝印。還香山舊棲 宣廟嘉其志愍其老。賜號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
0008_0038_a_12L攝扶宗樹教普濟豋階尊者。惟我大師。自是義益高名益重道益尊焉
0008_0038_a_13L云云。然則此山也。當其國亂之節。命藏國之實錄於山之有寺也。重於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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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39_a_01L당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오직 우리 서산대사는 국가가 무너지는 것을 괴로워하였고 수치를 설욕할 길이 없음을 분히 여겨 묘향산에서 나와 묘당에 나아가 알현하고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들었다. 승려들을 불러 모을 때는 이 산에서 왕래하며 몇 달을 머물면서 승군을 조련하였고 청남清南137)으로 나가서는 수제자 유정惟政과 함께 큰 도적을 막는 것을 도와서 종묘사직을 회복하였다. 이로 인해 온 나라의 장수와 재상, 군사와 백성이 모두 그 공을 받들었으며 명나라 장수가 서찰을 보내어 칭찬하고 존경한다는 말까지 하였다. 대사가 군막 속에서 작전 계획을 세워 천리 밖 승리를 결정지을138) 묘책을 짜낸 것이 모두 이 산중에서였으니, 펼쳐놓은 것이 효과를 얻은 것이다.난을 평정한 후에는 사람을 보내어 임금님의 수레를 맞이하여 서울로 돌아가게 했을 때도 다시 이 산에 와서 십여 일을 머물다가 산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옛 노인들이 전해 온 실제 이야기로, 허무맹랑하게 길거리에서 떠도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사람들이 서산도량西山道場이라고 하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서산대사는 일국의 종사宗師이다. 구름의 자취요 학의 모습으로 평소에 정해진 거처가 없었으니 팔도의 명산 중에 어느 곳인들 석장錫杖을 날리지 않았으리요. 난리 뒤에 잠시 거쳐간 곳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오마는, 반드시 이곳을 서산의 도량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내가 대답하기를, “서산은 단지 한 나라의 종사일 뿐 아니라 실로 우리 동방의 크게 깨달으신 스승이시다. 이 말세의 운수를 만나 참으로 부처 한 분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견성명심見性明心139)으로 일대 선장禪匠이 되어 어두운 거리에 부처님의 해(佛日)를 거듭 빛나게 하고, 말세에 깊고 그윽한 풍취를 크게 떨쳤다. 선禪의 강물에서 거세게 이는 물결을 되돌리고, 교학의 그물에서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았으니, 이른바 환골탈태하는 영험한 처방과 각막을 깎아내는 금비金鎞140)는 서산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그러므로 뒤에 먼 후손 된 자들이 그의 도를 그리워하고 덕을 우러러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예에 부합하도다. 해남海南의 대둔사大芚寺는 서산이 한번 가서 그 경역을 잠시 구경하며 즐겼을 뿐인데도 승도들이 -
0008_0039_a_01L時。盖可知也。而唯我 西山大師。悶 國家之顛覆。奮 [161] 雪耻之無路。身出
0008_0039_a_02L香岳。進謁 廟堂之前。岳 [162] 泣拜命。召集緇流時。往來于茲山。住留數月。而
0008_0039_a_03L仍調僧軍。出清南。與高弟惟政。助捍大寇。克復 宗社焉。由是一國將相
0008_0039_a_04L兵民。咸推其功。至于 天將送帖嘉獎。有敬仰之語。則 大師運籌帷幄。
0008_0039_a_05L决勝千里之妙算。皆在此山中。而施設得驗。及平亂之後。遣人迎大駕還
0008_0039_a_06L京都時。亦來此山。留旬餘而還山云。此乃古老相傳之實語。非是孟浪道
0008_0039_a_07L說。則至今人稱 西山道場者。豈偶然哉 或曰。西山一國宗師也。雲蹤
0008_0039_a_08L鶴態。素無定止。八路名山。何處不飛錫。而亂餘暫過之所。豈可盡信 [163] 。而必取
0008_0039_a_09L此為 西山道場也耶。對曰。西山非但一國宗師也。實吾東方大覺師。而
0008_0039_a_10L丁斯末運。真一佛出世也。既以見性明心為一代禪宗 [164] 。而重光佛日於昏
0008_0039_a_11L衢。大振玄風於末季。回在 [165] 瀾於禪河。正頹網 [166] 於教網。則所謂換骨靈方。刮
0008_0039_a_12L膜金鎞者。非西山而誰。故後之作雲孫者。慕其道仰其德。而稱頌不已。宜
0008_0039_a_13L其禮哉。若海南之大芚寺則 西山不過一遊。其境暫時賞玩而已。至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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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0_a_01L사모하여 서산도량이라고 일컬으며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서산 이후 여러 대의 종장宗匠의 사리를 봉안하고 석종石鍾141)을 세워 예배를 드렸다. 하물며 이 산은 임진왜란 때 우리 대사께서 오고 가며 머무른 것이 서너 번이었음에 있어서랴. 성인이 한번 지나가며 사람을 교화하는142) 신속함은 마치 훈훈한 바람에 풍부한 비가 내려 마른 사물을 촉촉히 적셔주듯 하였다.정유재란 때 나라의 실록을 이 산에 보관하였고 나라의 종묘사직도 이 산에 있다가 원래대로 돌아갔으니, 이 산이야말로 당시에 소중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서산의 덕 또한 한 시대에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납자들이 서산도량이라고 일컬으며 진영眞影에 예배하는 것은, 단지 그 도를 사모하고 덕을 우러르며 높이 받들 뿐만 아니라, 또한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이 그 사이에 나와서 장차 후인들에게 그 절개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로다.옛날에 태공太公이 머물던 샘을 사람들이 태공천太公泉이라고 일컬었고, 낭관郎官이 노닐던 호수를 사람들이 낭관호郎官湖143)라고 불렀다. 이 땅은 이미 서산이 석장을 머물렀던 곳이니 어찌 서산도량이라 칭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절의 시초이므로 납자들이 서산을 사모하여 도량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 산에 터를 닦은 지 수백 년이 되지만 앞 사람들이 절을 세운 자취를 기록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근거로 삼아 고찰할 수가 없고, 단지 재연齋筵에서 쓰인 서너 편의 청문請文144)을 볼 수 있을 뿐이다.함허 기화涵虗己和의 『원각경圓覺經』 판목은 현재 세상에 유통되고 있는데, 소장되어 있는 것은 종이 끝에 모두 만력萬曆 연호가 있으며, 보광사普光寺에서 간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예전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는 경전의 판본을 필시 많이 간행하여 보관해 두었을 것이지만, 분명 전란을 당하여 불에 타버려서 남은 것이 없는 것이다. 지금 절의 서북쪽 모퉁이를 사람들이 경전령經殿嶺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사찰에 비록 승료僧寮를 배치하고 -
0008_0040_a_01L徒慕稱。西山道場。而拜祠其忌日。奉安西山以後列代宗匠舍利。而樹
0008_0040_a_02L石鍾瞻禮焉。况此山。壬辰之亂。惟我 大師往返。留宿數三度乎。聖人一
0008_0040_a_03L過而化人之神速。若薰風潤雨之霑洽枯物焉。丁亂之時 國之實錄。既
0008_0040_a_04L藏此山。而 國之宗社。又在此山而匡復。則此山也。重於一時可知也。而
0008_0040_a_05L西山之德。又重於一時。又可知也。至今衲子稱以 西山道場。而畵影瞻
0008_0040_a_06L禮者。非但慕其道仰其德。而尊崇之。抑亦忠君愛國之心。發於其間。而將
0008_0040_a_07L使後人效則其節也歟。昔者有太公所居之泉。而人稱曰太 [167] 泉。有郎官之
0008_0040_a_08L湖。而人稱曰郎官湖。此地也。既為西山住錫之所。則何不稱以西山道塲
0008_0040_a_09L也耶。斯所以是寺之權與 [168] 。而衲子之慕西山。而稱為道場者也。此山開基
0008_0040_a_10L累百年。前人之修建。既無記蹟者。故不可憑考。而只見齋筵所用三四請
0008_0040_a_11L文。及涵虗圓覺經板木。現行於世。而有留藏者。紙末皆有萬曆年號。而留
0008_0040_a_12L刊普光寺云。則疇昔人盛時。經教板本。想必多刊藏置。而必遭兵火之燒。
0008_0040_a_13L而無遺矣。今之寺西北隅。人稱經殿嶺者是也。夫寺剎雖有排置僧寮。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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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1_a_01L총림의 법제를 온전히 갖춘 곳이 있어도 경전經殿은 쉽게 세우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산에는 이미 전부터 경전을 보관한 곳이 있었으니, 사람이 많고 제도가 훌륭함이 이와 같았음을 알 수 있다.명나라 숭정 때 병자호란에 이르러 오랑캐가 크게 침략하여 죽이거나 잡아가니 승려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피난을 갔고, 동쪽과 서쪽의 승려 요사寮舍와 불전, 높은 누각은 일시에 병화로 불타서 쓸어버린 듯 남은 것이 없었으니, 모두 폐허가 되고 시장柴場145)이 된 지 40년이 되었다. 지나가는 길손들은 단지 산새들의 슬픈 울음소리와 고개 위 잔나비의 애절한 휘파람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강희康熙 16년(1677) 정사년에 이르러 운수승雲水僧인 비구 서하瑞霞, 처능處能, 행진行真 등 세 사람이 한마음으로 뜻을 내어 동서 양당을 건립하여 간신히 모양을 갖추었으나, 쇠락하고 무너진 것이 매우 심하였다. 산중에 또 처음 창건한 선원이 있지만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었다.갑자년(1684)에 비구 종운宗雲, 도진道真, 보명普明, 삼언三彥 등 네 사람이 또 단월을 모집하여 대웅전을 창건하였으니 지금의 공전空殿이 바로 이것이다. 당시 산중의 대덕大德으로 태성당泰性堂 의운義雲대사가 있어 그 일을 주관하여 공을 이루었다. 간사는 비구 지흘志屹, 도와陶瓦146)는 비구 처습處習이었다. 또 정묘년(1687)에 삼언三彥, 운제雲霽, 종운宗雲, 도진道真 등 네 사람이 발심하여 권선문을 내어 단월의 재물을 모아 무진년(1688)에 삼남三南에서 뛰어난 장인을 불러왔다.기사년(1689) 여름에 금불상을 조각하여 공역을 마치고 봉안하였으니 지금 대웅전의 석가 존상과 약사, 미타 삼존 불상이 이것이다. 온갖 덕德이 장엄한 훌륭한 형상은 뛰어나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불상을 조성할 때 산중의 대덕大德 월화당月華堂 계징戒澄대사가 있어 그 일을 주관하여 공사를 마쳤다. 대웅전의 단청은 무진년에 비구 각연覺然이 마무리했다.또 경오년(1690)에 -
0008_0041_a_01L圓叢林法制之處。而未易置經殿矣。而今此山。既有前日藏經之所。則人
0008_0041_a_02L眾而盛制。類此而可知也。至于皇明崇禎丙子之亂。胡人大侵。或殺或掠。
0008_0041_a_03L僧徒四散避亂。而東西僧寮及梵殿高樓。一時為兵火所焚。蕩然無遺。鞠
0008_0041_a_04L為丘墟柴場者。埀四十年矣。行客經過者。只聽山鳥悲鳴。嶺猿哀嘯而已。
0008_0041_a_05L至康熙十六年丁巳之歲。有雲水僧比丘瑞霞處能行真等三人。同心發
0008_0041_a_06L意。建立東西兩堂。而僅苟模樣焉。殘廢莫甚。而山中或有草創禪居。而無
0008_0041_a_07L足可觀矣。甲子之年。比丘宗雲道真普明三彥等四人。又募檀緣。而創建
0008_0041_a_08L大雄殿。即今空殿是也。當其時。山中大德有泰性堂義雲大師。主其事而
0008_0041_a_09L成功焉。幹事比丘 [169] 屹。陶瓦比丘處習也。又丁卯之歲。三彥雲霽宗雲道真
0008_0041_a_10L四人發心。出勸文。募合檀財。而戊辰之年。召良工於三南。己巳之夏。雕造
0008_0041_a_11L金像。畢功而奉安。即今殿中釋迦尊像及藥師彌陁三尊佛像是也。萬
0008_0041_a_12L德嚴莊相好。超絕無可比倫也。造像時。山中大德有月華堂戒澄大師。主
0008_0041_a_13L其事而辨 [170] 功焉。又大雄殿丹。戊辰之年。比丘覺然所辨 [171] 也。又庚午之年。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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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2_a_01L승당僧堂을 재건하였는데 화주化主 비구는 처능處能이며 간사는 비구 행진行真이다. 승당을 이어서 또 재건하였는데 화주는 비구 삼언三彥이며 도와陶瓦는 비구 처습處習이다. 간사는 또 지흘이다. 세월이 흘러 강희 41년(1702) 임오년에 이르러 비구 학연鶴蓮, 각순覺淳, 충계冲桂, 석린碩璘, 처우處祐, 응율應律 6인이 한마음으로 모연하여 높은 누각을 세웠으니 바로 지금의 법뢰각法雷閣이 이것이다. 비록 6인이 한마음으로 건립하였으나 학연의 공이 제일 컸다.이 누각은 고승이 여기에 이르면 선정을 이루고, 시인이 여기에 이르면 시구를 고뇌하고, 도사가 여기에 이르면 뼈를 바꾸지 않고도 바로 가벼운 바람을 탄다. 하물며 혹심한 무더위에 이 누각에 오르면 사지의 마디까지 시원해지고, 개인 달 비치고 맑은 바람 불 때 이 누각에 오르면 가슴속이 깨끗해진다. 그러니 이 누각은 사람의 흥취를 도와서 무궁하게 세속의 번뇌를 씻어주리라. 또한 큰 누각 하나가 이루어져서 여러 즐거움이 갖추어지니, 어찌 꼭 현자가 되고서야 이것을 즐길 것인가.147) 보광사의 첫 번째 뛰어난 구경거리라고 할 만하다.누각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솜씨 좋은 장인 삼인三忍이로다. 간사는 비구 두추斗樞이며, 도와陶瓦는 .....(결락). 또 향로전香爐殿을 지을 때는 삼언三彥과 처습處習 두 사람이 주된 화주였고, 불기佛器148)와 유분鍮盆,149) 갖가지의 집물은 비구 삼언이 홀로 마련하였으니 그 공은 칭찬할 만하다. 향로전은 전에는 공전空殿의 오른편에 있었는데 여러 해가 지나 썩어서 파손되었다. 그러므로 을묘년 봄에 절의 승려가 철거하여 범전梵殿의 동쪽으로 옮기고 곧바로 그 터를 넓혀서 명부전冥府殿을 창건하였다.아! 병자호란 뒤에 사찰이 쇠락하여 이름은 남아있으나 경관은 사라졌으니 탱자나무 숲이 땅에 깔리고 뽕나무와 삼이 빛을 가릴 뿐이었다. 다행히도 서하瑞霞, 처능處能의 무리를 만나 부지런히 힘써서 선사禪舍를 건립하니 승려 무리가 점차 모여들었으며, 불전을 창건하여 금불상을 안치하고 승료를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높다란 누각을 지어 총림의 법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뛰어난 사적을 전하여 -
0008_0042_a_01L堂再建。化主比丘處能也。幹事比丘行真也。僧堂仍又再 [172] 。化主比丘三彥
0008_0042_a_02L也。陶瓦比丘處習也。幹事又志屹也。流至康熙四十一年壬午之歲。有比
0008_0042_a_03L丘鶴蓮覺淳冲桂碩璘處祐應律六人。同心募緣。營建高樓。即今之法雷
0008_0042_a_04L閣是也。雖六人同心營建。而鶴蓮之功居多。而斯樓也。高僧到此。洛 [173] 於禪
0008_0042_a_05L定。騷客到此。惱於詩句。道士到此。骨不換而直御輕風也。矧乎酷炎煩𤍠
0008_0042_a_06L臨斯樓。則肢節清凉。霽月光風登斯軒。則腦衿洒落。則斯樓也。助人興也 [174] 。
0008_0042_a_07L無窮滌[卄/塵]累也。亦大一樓之成。眾樂備焉。奚必賢者而後樂此也耶。可謂 [175]
0008_0042_a_08L光寺之一奇賞也。作樓者誰。良工三忍也。幹事比丘斗樞。陶瓦(결락)。又創香爐。
0008_0042_a_09L殿時。三彥處習兩人主化。而佛器鍮盆種種汁物。比丘三彥獨辨 [176] 也。其功
0008_0042_a_10L可賞焉。其香爐殿。前在空殿之右。年多腐破。故乙卯春。寺僧毀撤。移于梵
0008_0042_a_11L殿之東焉。即其所廣其址。創冥府殿焉噫。丙子胡亂之後。精剎雕殘。名
0008_0042_a_12L稱存事去。枳林遍地桑麻掩暎而已。賴遇瑞霞處能輩。勤勞占建禪舍。而
0008_0042_a_13L僧徒漸合。至於創梵殿安金像。再建僧寮。仍作高樓。貌樣叢林法制。傳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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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3_a_01L지금까지 잘 정돈되어 있으니, 성쇠가 서로 이어지고 흥망이 한결같지 않으며 모이고 흩어짐과 존립과 망함이 시운에 관계된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처능, 행진, 지흘 세 사람으로 말하자면 보광사에서 두 번이나 힘써 고생하였고, 삼언과 처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 수고하기를 네댓 번에 이른다. 이 서너 명의 선자들은 아마도 전생에 발원을 함께 하였을 것이니, 깨달음의 도량인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여래의 명을 좇아 서원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라지고 끊어진 것을 일으킬 수 있었으니 그 수고로움이 이와 같은 것이리라.가시덤불을 헤치던 초창기에 서하와 처능이 개창한 공은 지극히 높고도 소중하며, 여러 선자들이 이어서 경영한 공 또한 헤아릴 수 없으니 아! 칭송할 만하도다. 그 후 승려들이 점차 모여들어 많아졌다. 50년을 지나서 절은 점차 부유해졌고 자주 왕래하는 자들도 가리키며 부유한 절이라고 하였다. 절 또한 길손들을 기꺼이 맞이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풍속이 있었다. 그러므로 8도 사방에서 보광사를 칭송하지 않음이 없었고, 청북清北150)에서는 이 산을 가리켜 제일의 순박한 풍속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어찌 대각 세존이 2천 년 전에 남기신 음덕陰德이 이 산의 후손들에게 씌워져서 장엄하게 장식된 도량에 대화엄의 보광명전을 베푼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남기신 음덕과 은택이 멀리 적시고 아득히 입혀져서 이 산과 같이 된 것이니 또한 찬탄할 만하다.21-2. 보광사 명부전의 사적(普光寺冥府殿事蹟)옹정雍正 13년(1735) 을묘년 봄에 보광사 전체 대중이 문득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 산이 비록 변방에 치우쳐 있지만 명성은 8도에 자자한데 예로부터 이 지역에 시왕전十王殿이 없으니, 실로 받들어 모심에 성의가 없고 총림으로서 결함 있는 일인 것을 어찌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비구 방임芳稔이 꿈에서 시왕전을 창건하는 것을 보고는 꿈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장로 명련鳴蓮은 이 일대의 부자로 이름이 사방에 -
0008_0043_a_01L勝事。迄今安頓。豈非盛衰相繼。興廢不一。聚散存亡。關係時運者歟。若夫
0008_0043_a_02L處能行真志屹等三人。則於 [177] 光寺再度勤苦。而三彥處習。則始終勤勞。至
0008_0043_a_03L於四五度。是數三禪者。豈前身同其發願。而遵願如來之命於菩提場中
0008_0043_a_04L普光明殿。故能興滅絕。其勤若是也耶。夫披荊棘草昧之初。霞能開創之
0008_0043_a_05L功。極為高重。而諸禪繼營之功。又不可量焉。吁。可賞焉矣。厥後僧徒漸集
0008_0043_a_06L多。踰半百而寺漸富饒。往來憧憧者。指為富寺。而寺亦有欣迎賓旅。厚待
0008_0043_a_07L之風。故八路四境。莫不稱誦光寺。而清北指此此 [178] 山為第一淳風焉。兹豈
0008_0043_a_08L非大覺世尊二千遺蔭盖覆于此山之兒孫。而設大華嚴之普光明殿。雜 [179]
0008_0043_a_09L嚴飭 [180] 之場。故遺蔭餘澤。遐霑遠被。而能若此山也耶。又可賞矣。
0008_0043_a_10L○普光寺冥府殿事蹟
0008_0043_a_11L雍正十三年乙卯春。普光寺合院大眾。忽相議曰。茲山雖僻在邊隅。而名
0008_0043_a_12L喧八路。從古以來。銀無 十王殿。宲是崇奉之蔑誠。叢林之缺事奈何。比
0008_0043_a_13L丘芳稔。夢見創起。十王之殿。仍說夢事。長老鳴蓮。富饒一方。名傳四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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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4_a_01L알려진 자인데, 그 상서로운 꿈 이야기를 듣고 절에 청하기를 천금의 재물을 희사하여 명부전을 짓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대중 가운데 경안敬眼, 혜규慧圭, 처습處習 등이 격려하며 권하였다. 이에 온 절의 전체 대중과 50호의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합하여, 간절한 정성으로 명부전 짓기를 크게 발원함이 마치 한 입에서 나온 것과 같이 하였고 마침내 각각 권선문을 돌렸다.이에 천주산天柱山 은봉사隱峰寺에서 고승을 한 분 청하여 그에게 주관하고 통솔하게 하였다. (처)능 스님은 평소 (불사佛事의) 공적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는데, 부름에 응해 보광산에 와서 몸소 권축(권선문)을 가지고 산중을 찾아다니며 얻은 것이 수천의 재물에 이르렀다. 원래 덕망이 있어서 젊어서부터 이루어낸 큰 불사가 매우 많았으니, 보광사 명부전의 시주를 모을 때도 으뜸이 되었고, 또 명부전을 지을 때 몸소 주관하는 모주謀主가 되어 시주를 권함에 끝이 없었다.그리고 권면하고 경계하여[勸誡] 올바름을 밝히고 시종일관 부지런히 수고한 것은 장로 혜규慧圭의 공이 매우 중하다. 관청에 출입하며 좋은 말로 안심시키고 일깨워 성주城主의 마음을 돌리게 해서, 결국 관인官人에게 영을 내려 보호하고 도와주게 하니, 성읍에서 공을 거두고 공적의 아름다움을 맺게 한 것은 비구 방임芳稔의 공이 또한 중하다. 의주 사람들을 잘 교화하여, 달려와서 체목体木151) 운반을 청하고 성심으로 뜻을 다하게 한 것은 비구 지윤智允의 공이 또한 중하다.그 다음으로 법률法律, 의찰義察, 지순智淳 등이 모두 처음 시작할 때 온 힘을 쏟았고 정성 어린 마음으로 신중하게 끝마쳤다. 좋은 계절에 읍성과 향촌을 돌아다니며 교화했으니 그 끝을 알지 못한다. 혹은 1-2천에서 4-5천의 재물에 이르기까지 모금하였으니 공이 모두 지극히 소중하다. 공사 감독[監役]은 비구 쌍휘雙輝였고 간사는 비구 법징法澄이었으며 처은處訔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지런히 힘썼으니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그 다음은 온 절의 대중 40여 명이 모두 권선을 담당하며 그림자처럼 도왔다. 비록 되를 모으고 말(斗)을 합하는 것이 바다에 물줄기를 보태는 것임을 모르지 않지만, 금밭에 씨를 뿌려서 많건 적건 마음을 같이하여 큰일을 도모해 이루는 것이니 어찌 작은 물줄기를 보태었다고 꺼리겠는가. 작은 물줄기를 바다에 보태듯 위아래가 힘을 합쳐 -
0008_0044_a_01L者也。聞其夢瑞。請於寺中。許捨千財。願造冥殿。 眾中有敬眼慧圭處習
0008_0044_a_02L等。激勸之。於是合院大眾。半百戶人。同心合志。大發誠懇願造 冥殿。如
0008_0044_a_03L出一口。遂各䟽勸文。乃請開士一張于天柱山隱峰寺。而使其主斷統率。
0008_0044_a_04L能師素以乃 [181] 勣為己任。隨請來至普光山。躬荷勸軸。搜得山中。至數千財。
0008_0044_a_05L盖素有德望。而自少成辦大事無窮。而光寺冥殿募緣中。又居其首焉。又
0008_0044_a_06L創冥府殿時。身為謀主。引勸無窮。而勸誡明正。始終勤勞者。長老慧圭之
0008_0044_a_07L功極重也。出八 [182] 官府。善言慰諭。能使 城主回心。終令 官人護助。收
0008_0044_a_08L功於城邑。結美於乃勣者。比丘芳稔之功。又重也。能化灣人。趨赴而請運体
0008_0044_a_09L木。誠心極志者。比丘智允之功。又重也。其次法律義察智淳等。皆以篤初
0008_0044_a_10L誠心慎終。令節遊化城村。不知其極。或募一二千財。至四五 [183] 財。功並至重
0008_0044_a_11L矣。監役比丘雙輝。幹事比丘法澄。處訔始終勤勞。何可記極耶其次合
0008_0044_a_12L院大眾四十餘員。悉皆荷勸影助。雖以斗聚升合。莫不覺海中添流。金田
0008_0044_a_13L中植種。則多寡同心。謀成大事。何嫌小流之添。小流之添海。上下戮力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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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5_a_01L건립을 도모하였으니, 특별한 공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미세한 티끌이 산을 채웠으니 그 공을 칭찬할 만하도다.단월로 말하자면 학연鶴蓮장로가 천 냥의 재물을 시주한 외에도 비구 각형覺浻이 3백여 냥의 재물을 희사하였고 비구 두추斗樞가 2백 냥 재물을 바쳤다. 그 다음으로 처습處習과 종임宗稔이 공동으로 백냥을 내었다. 비구 서징瑞澄과 천기天機, 신도 박진창朴進昌 등이 모두 5십 냥의 재물을 기부하였다. 신도인 장걸張傑 같은 이는 5백 냥의 재물을 기쁘게 내고 좋은 채색 비단을 사서 순서대로 그린 탱화가 내외왕전內外王殿(시왕전)에 미쳤으니, 그 정성은 깊고 서원은 소중하도다. 천지신명이 아마 이 사람들을 반드시 몰래 도와주실 것이니, 시주는 비록 연공蓮公152)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공적은 도리어 앞을 다투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지니 어찌 기이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전하기를 특별한 공적의 칭송이 사방에 자자하다고 하였다.장로 학연은 천냥의 재물을 희사하였으니 고금에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절에서 공식적으로 의논하여 그의 모습을 그려서 영정으로 남겨두어, 그 공을 공경하여 대우하고 명성이 천추만세토록 없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어찌 명부전의 큰 업적이요 뛰어난 공적이 아니겠는가. 온 절의 대중과 산중의 노소들이 각기 쌀과 돈, 옷과 비단을 희사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개미 뿔 같은 작은 물질이지만 산과 들에 부는 바람에 울리어 응하지 않음이 없었다. 사람들이 시왕전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에 처음 불법을 들은 것과 같이 귀중히 여겨 멀고 가까운 성과 마을에서 앞다투어 보시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실로 부처님과 하늘이 은연중에 몰래 이루어주어 그렇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승려 장인匠人 지희智熙를 불러 시왕전을 창건하였다. 이해 봄에 공사를 시작하여 여름에 공사를 마쳤으니 날 듯한 전각의 형상이 천궁天宮과 같았다.한편으로 영남에서 화승畵僧 여찬侶粲을 청하였다. 여찬이 제자들과 함께 와서 지장地藏의 진용眞容과 열왕列王 등의 상像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이 해(1735) 여름에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가을에 끝마쳤다. 기교가 마치 -
0008_0045_a_01L圖建。奇功孰訝。纖塵之足嶽哉。其功可賞。而若夫擅 [184] 越。則鶴蓮長老施千
0008_0045_a_02L財外。比丘覺浻舍三百餘財。而比丘斗樞舍二百材。其次處習宗稔共捨
0008_0045_a_03L一百。比丘瑞澄天機信士朴進昌等。皆捨半百財。若夫信士張傑捨半千
0008_0045_a_04L財。買得唐綵肺 [185] 。當先後畵幀及內外
0008_0045_a_05L王殿。其誠也深。其源 [186] 也重。 天地神明想必陰祐此人。而施雖不及於蓮
0008_0045_a_06L公。而蹟還爭先於眾人瞻視之間矣。豈不奇哉。人傳為奇功稱籍四方矣。
0008_0045_a_07L長老鶴蓮。則舍施千財。古今希有。故寺中公議。畵其像而影流 [187] 之。敬待其
0008_0045_a_08L功。使其芳名。則杇于千秋萬歲焉。豈非冥殿巨蹟奇功也歟。合院大眾。山
0008_0045_a_09L中老少。莫不各捨米錢衣彩。蟻角之物。山野間風。莫不響應。而人間 [188] 十王
0008_0045_a_10L之說 [189] 。而貴重如漢明時初聞佛法焉。遠近城村。莫不爭先舍施。此實佛天
0008_0045_a_11L陰隲於冥冥之中而致然也。一邊召匠僧智熙而創殿焉。經始於是年
0008_0045_a_12L春。畢初(功)於是年夏。翼然殿閣。狀若天宮也。一邊請畵僧侶粲於嶺南。粲與
0008_0045_a_13L徒俱來。雕造地藏真客 [190] 及列王等像。經始於當年夏。訖功于當年秋。工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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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6_a_01L귀신이 만든 것 같았고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였다. 신이한 형상의 기묘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근래에 비할 것이 없다.이듬해인 건륭乾隆 병진년(1736) 봄에 절의 승려들이 또 상의하여 말하기를, “전각과 조상은 비록 끝마쳤으나 탱화는 어찌할 것인가. 불사가 이미 반을 넘었으니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다시 묘향산에서 화승을 맞이하고 단월의 집에서 좋은 비단을 가지고 와서, 먼저 각부各部의 화상畵像 탱화를 그리고 다음으로 내외왕전을 칠하였다. 부처님, 천신天神과 지기地祇가 어느새 가득히 와서 내려다보고 용과 봉, 거북과 학이 황홀하게 눈앞에서 날아가니, 그리기 어려운 모습을 잘 그렸다고 할 만하다. 그림을 책임진 이는 누구인가. 바로 향악의 승려 혜안慧眼이다.아. 여러 가지 큰 업적을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한두 해에 공사를 끝마쳤다. 전각을 깨끗이 하여 상像을 그린 탱화를 봉안하고 우러러 예배하며 바라보니, 온화한 자비로운 모습으로 연화좌에 가부좌하였는데 수인手印153)이며 연꽃 같은 눈동자에, 아름다운 둥근 원이 가지런하고 수많은 복福이 장엄하여 상호相好가 뛰어난 분은 지장대성地藏大聖이시다.훌륭하고 윤택한 얼굴로 탑상榻床 위에 높이 앉아, 옥으로 된 관을 쓰고 거울을 걸어놓고 저울을 들고 장부를 점검하시니, 속으로는 자비로우나 겉으로는 위엄을 드러내는 분이 시왕전의 염라대왕이시다. 그런즉 찬란하게 빛나는 전각은 편안히 감싸면서 중첩된 속에 부처님, 천신과 지기가 밝게 촘촘히 늘어서 있다. 군자가 보면 양심을 감발感發하고 소인이 보면 방탕한 뜻을 꾸짖고 경계할 것을 의심할 것도 없다. 조각한 난간과 그림 그린 마룻대는, 광채가 서로 비추고 향기가 뒤덮은 사이에 용과 봉이 치달려 날아간다. 은둔한 선비가 보면 덕을 닦아서 홀로 몸을 선하게 함을 생각할 것이요, 통달한 사람이 보면 만물을 번성하게 하고 천하도 선하게 함을 생각할 것임은 또 의심할 것이 없다.천지신명이 여기에 함께 모였고 본산本山의 상서로움이 여기에 모두 이르렀다. 불교의 윤회와 인과응보의 법칙이 여기에 다 베풀어져서 성인이 자기를 바르게 하고154) 타인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 여기에 다 모였으니, 이를 감상하는 자들이 어찌 곰곰히 음미하고 깊이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팔방의 난간 옆의 제불諸佛과 보살은 마치 선정에 들어 멸하지 않을 듯하고, -
0008_0046_a_01L鬼役。儀若天降。神像奇妙。難可形言。而近古無比焉。翌年乾隆丙辰春。寺
0008_0046_a_02L僧又相謂曰。殿像雖畢。畵幀奈何。功既踰半。不可半途而廢。再迎畵僧
0008_0046_a_03L於香岳。來得唐綵於檀家。先畵各部像幀。次艧 [191] 內外 王殿。佛天神祗。依
0008_0046_a_04L俙來臨於塞中。朎 [192] 鳳龜鶴。怳然飛走於眼前。可謂能畵難畵之景矣。主畵
0008_0046_a_05L者誰。乃香嶽僧慧眼也。吁。二一年來。多般巨蹟。具 [193] 專畢功焉。洒殿而奉安
0008_0046_a_06L像幀。贍 [194] 禮望見。則穆穆慈容。跏趺蓮座。印手蓮眸。檀員齒而百福莊嚴。相
0008_0046_a_07L好超絕者。地藏大聖也。皇皇睟面。蹲居榻上。寇 [195] 玉懸鏡。舉秤點簿。而秘慈
0008_0046_a_08L仁。外現威猛者。 十殿閻君也。然則玲瓏殿閣。安苞 [196] 重疊之內。佛天神祗。
0008_0046_a_09L昭布森列。君子見之。感發良心。小人見之。懲創逸志。應無疑矣。雕欄畵棟。
0008_0046_a_10L交彩芬被之際。朎 [197] 龍鳳 [198] 。奔飛馳翔。逸士見之。思修德而獨善其身。達人見
0008_0046_a_11L之。思昌物而兼善天下也。又無疑矣。天地神明。俱會于此。体 [199] 嶽嘉瑞。備
0008_0046_a_12L至于茲。釋氏輪廻報應之條。畢張於此。聖人正己。安物之方。摠萃于斯。
0008_0046_a_13L則賞此者。其可不熟玩而深省哉。八面欄傍。諸佛菩薩。如入禪空 [200] 而不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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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7_a_01L사방 벽 들보 위의 신선과 선동仙童은 마치 단약을 복용하여 늙지 않을 듯하다. 백성들이 복을 심는 땅에서 평범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장애를 없애는 법을 모두 베푸니 이 산에 와서 구경하는 자는 어렴풋이 마치 옥동 선계玉洞仙界와 연화장 불국蓮華藏佛國에 들어가는 듯하여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리라.아! 이 지역의 뛰어난 경관이 이 산이요, 이 산의 내세울 만한 것이 이 시왕전이며, 이 전각이 훌륭한 것은 이 사람들의 공이다. 산은 있는데 절이 없으면 산은 명승지가 될 수 없고, 절이 있지만 전각이 없으면 절은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산은 절을 만나 명승을 오로지하고 절은 전각을 얻어 영광을 차지하며, 사람은 공적을 세워 결실을 드날리니, 부처님이 그윽히 감응하고 길한 운수가 성대히 일어남이 어찌 서산西山 당대의 깊고 깊이 남겨진 은택이 아니겠는가. 왜 그런가. 지금 8도에서 종장宗匠, 학인 및 장로, 승려라고 일컫는 자들은 왕의 국토(王土)에서 성장하여 불계佛戒를 함께 받은 같은 계보가 아닌 이가 없다.서산의 후예인 위에서 말한 연공蓮公, 능공能公, 규윤圭允, 임율稔律 등 수십 명이 여래의 명을 따라 서산 도량을 개창한 것은 앞 사람들이 하지 못한 뛰어난 공적이다. 이름난 도량에 뛰어난 공적을 남겨 만고에 꽃다운 이름을 전할 것이니, 충군애국의 마음이 그동안 발현되었으며 선조의 기풍을 밝게 드러내려는 뜻이 그 사이에 함께 나온 것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기에 이와 같이 뛰어난 공을 세우고 억만년 동안 무궁하게 임금님의 장수를 축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 절이 비록 국가의 실록을 보관하였던 원당願堂이요 서산이 와서 머물던 수승한 도량임에도, 백여 년 동안 이를 알아서 아름답게 여기고 사실을 드러낸 자가 없었다. 지금 연蓮, 능能, 장걸張傑 등 수십 명을 만나 뛰어난 공을 세웠다. 불일佛日을 거듭 밝히고 선원禪院을 증설하여 선대의 유풍을 드날리게 되었으니 부처님과 천신과 지기地祇가 반드시 기쁘고 즐거워할 것이며, 서산의 영령도 9만 리 맑은 하늘에서 필시 기뻐하리라.또한 서산의 -
0008_0047_a_01L四壁樑上。羽客仙童。似服凡丹而不老。蒼生種福之地。畢施凡愚消瘴 [201] 之
0008_0047_a_02L術。斯禪 [202] 臨翫者。靄然如入玉洞仙界。蓮藏佛國。而不覺舞蹈矣。噫。此方之
0008_0047_a_03L勝者。此山也。此山之勝者。此十王殿也。此殿之勝者。此眾人功也。有山而
0008_0047_a_04L無寺。則山不為勝。有寺而無殿。則寺不為勝。山遇寺而擅勝。寺得殿而擅
0008_0047_a_05L光。人樹勳而擅實。豈非佛天冥感。吉運之鬱興。而西山當代深深之餘澤
0008_0047_a_06L也耶。何者。今之八路。稱為宗匠學人及長老凡僧者。莫不成長於 壬 [203] 土
0008_0047_a_07L中。而同受佛戒同係乎。西山之後裔。則若上蓮公能公圭允稔律數十員。
0008_0047_a_08L遵如來之命。西山道場而開創。前人所未有之殊功。而遺勝蹟於名塲。而
0008_0047_a_09L流芳名於萬古者矣。可謂忠君愛國之心。發於其間。而光顯祖風之志。兼
0008_0047_a_10L發間出。故能建奇功若是。而祝聖壽於億萬年而無窮矣。此寺雖國家置
0008_0047_a_11L錄之願堂。 西山遊歷之勝塲。而百有餘年。未曾有知而好而顯實者。今
0008_0047_a_12L遇蓮能張傑等數十員。而開建奇功。重輝佛日。增禪院。顯揚先風。佛天神
0008_0047_a_13L祗。想必歡娛。而西山之靈。亦必欣悅于九萬里之清虛矣。亦可謂西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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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8_a_01L후손이 서산의 도량에서 유유히 지내며 특별한 공훈을 세워 서산의 풍격을 빛내어 유자와 불자들이 그리워하게 했다고 할 만하다. 그런즉 임진년의 난리 때 우리 서산께서 이 산에 계시면서 종묘사직을 회복하고 만년토록 나라의 복을 이어가게 하였다. 또 지금 병진년(1736)에 우리 후손들이 뛰어난 공을 세우고 또 영원토록 임금님의 장수를 축원하리니, 이 해에 어쩌면 그리도 앞뒤로 서로 호응하고 처음과 끝이 신묘하게 부합함이 이와 같은가.지금 이후로 이 산의 이름이 먼 지방까지 퍼져나가고 공적이 만세에 칭송되기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니, 어찌 크게 경사스럽고 매우 아름답지 않은가. 비록 그렇지만 보광산의 빛나는 일은 끝이 없어서 한두 개만 들기는 어렵다. 뒤에 이곳에 머무는 자들은 오늘의 뛰어난 공훈에 감동하고 선조의 유풍遺風을 생각할지어다. 단지 절이 무너지면 중수하고 전각이 허물어지면 다시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거듭 특별히 새로운 공적을 이루어 산문을 빛나게 한다면 이 산과 이 절을 갑절로 빛이 나게 할 것이다. 오늘날도 충분하지만 보광산의 훌륭한 업적은 후인을 기다려 끝마칠 수 있으리라. 바라건대 보광산의 이름은 천만년 동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힘쓸지어다.나는 선림禪林의 후손으로서 구름과 학처럼 돌아다니는지라 본래 머무는 곳이 없었는데, 다행히 이 산을 지나면서 이 절의 순박한 기풍을 아끼고 이 산의 뛰어난 경관을 좋아하게 되어 여기에 머물기를 청하였으니 지금 이미 몇 년이 되었다. 하루는 명부전의 화주였던 능공能公과 지윤智允 등이 나를 찾아와 청하기를, “산에 절이 있은 지 천 백 년이 되지만 이전에 자취를 기록한 것이 없어서 지난 일을 의거해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기록해서 전해주지 않는다면 후세에 상고할 것이 없음이 또한 마찬가지여서 아득하기가 그대로일 것이다. 명승지의 사적이 장차 영원히 없어지게 된다면 어찌 생각 있는 이들이 한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글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에 보이고 내세에 전하는 것은 이것 아니면 따를 것이 없으니, 원컨대 수고로움을 꺼리지 마시고 사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해주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라는 바입니다.”라고 하였다.내가 -
0008_0048_a_01L之後孫。優遊 西山之道場。而樹異勳。光西山之風。而俾儒釋起慕者矣。
0008_0048_a_02L然則壬辰之亂。惟我西山在茲山。而克復宗社。延國祚於萬年。又今丙辰
0008_0048_a_03L歲。惟我後孫。開建奇功。又祝聖壽於億萬。斯年何其想 [204] 應前後。神契始終
0008_0048_a_04L之若是耶。而今以後。則此山名播遠方。功誦 [205] 萬歲。可無愧矣。豈不大慶
0008_0048_a_05L大佳哉。雖然光山之光事。無窮難舉一二焉。後之居斯者。感今日之異動 [206] 。
0008_0048_a_06L念先祖之遺風。非但使寺廢而重葺。使殿頹而重新焉。而又復別開奇蹟。
0008_0048_a_07L以耀山門。則使是山是寺光曜倍。今日十分矣。然則光山能事待後人可
0008_0048_a_08L畢。而庶幾光山之名。不杇 [207] 於千萬年矣。勉之哉。余以禪林之後葉。雲鶴行
0008_0048_a_09L裝。本無定性 [208] 矣。幸過此山。愛此寺之淳風。好此山之勝概。爰請住留。今已
0008_0048_a_10L數年矣。一日冥殿化生 [209] 能公智允等。訪余而請余曰。山有寺也。千有百載。
0008_0048_a_11L而前無記蹟者。故往事無可憑准 [210] 。而今又不記以傳之。則後無可考亦如
0008_0048_a_12L之。茫茫如此。而名區事蹟。將來永沒泯。則豈無達士之恨哉。記事實莫如
0008_0048_a_13L文。盖示當今傳來世。非此無由。願勿憚勞。而記蹟傳後。寔所由望也。余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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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49_a_01L“이미 이전의 자취가 없어졌는데 무엇에 근거하여 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능 스님이 이에 처습處習노장老長에게 청하여 50년 전부터의 일을 자세히 물었다. 임진년에 국가가 실록을 보관한 사실과 서산이 국가의 회복을 도운 자취는 사람들이 훤히 알고 있고, 모두가 또한 널리 칭송하므로 먼저 그 일을 기록한다. 서두에 ‘서산도량’이라고 밝히고 백 년 뒤에절을 창건한 전말과 지금 명부전을 개창한 시종을 후세 사람들이 참고하고 의거할 표적으로 삼게 하고자 한다.
건륭乾隆 원년(1736) 병진년 가을 7월 7일에 서산西山의 4세 문인 월암 흥책月岩興策이 기록하다.21-3. 보광사 명부전 상량문 普光寺冥府殿上樑文부처님이 인도에 나투시니 수달다須達多155)가 금을 깔아 삼천三千의 불찰佛剎을 열었고, 옥황상제가 공리功利에 노니시니 비수毘首156)가 옥을 쪼아 열두 선루仙樓를 차지했도다. 이에 여기 금궐金闕과 은대銀坮가 사찰의 오래된 구역에 웅장하게 빛나고, 옥도玉都157)의 경실瓊室158)이 하늘의 태미원太微垣159) 뜰에 더욱 빛나도다. 이곳은 여러 진인眞人들의 수승한 도량이요 여러 성인들의 훌륭한 집이다. 저 도솔내원兜率內院160)을 보건대 항상 이보다 뛰어나거늘, 하물며 이 보광명전普光明殿161)이 그보다 뒤떨어져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새로 보배로운 전각을 지어 특별히 찬란한 이름을 걸었고 이미 향화(제사)를 지내고는 있으나 묘당廟堂의 장엄하고 화려함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돌아보건대 천하의 나라 가운데 조선은 인의仁義의 고향이요, 국경 내의 산천 중에서 보리산은 보배로운 명승지로 전해진다. 서린 뿌리는 멀리 장백산長白山에서 이어져 신령한 맥이 울창하고, 빼어난 빛은 높이 푸른 하늘을 헤치고 맑은 기운을 키운다. 국가의 실록實錄을 보관하던 전각이 이곳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임금님의 수레를 이 골짜기로 맞이한 자취는 지금은 어렴풋하다.푸르른 -
0008_0049_a_01L既無前蹟。憑何可述哉。能師乃請處習老長。詳問半百年以後事。而壬辰
0008_0049_a_02L國家置錄之事。西山匡復之蹟。昭昭於人之耳目。而人亦藉稱。故先記其
0008_0049_a_03L事。辨于首為西山道場。而百年以後。創寺顛末及今開創冥府殿之始終。
0008_0049_a_04L以為後來之考憑標蹟云爾。
0008_0049_a_05L乾隆元年丙辰 秋七月星會日。 西山四世門人月岩興策記。
0008_0049_a_06L普光寺冥府殿上樑文
0008_0049_a_07L伏以金人現化於竺乾。須達鋪金而闢三千之佛剎。玉帝遊賞於功利。昆 [211]
0008_0049_a_08L首琢玉而占十二之仙樓。仍茲金闕銀坮。壯耀於祗林久視之域。玉都瓊室。
0008_0049_a_09L增光於天京太微之庭。斯乃眾真之殊場。而群聖之甲第者也。瞻彼兜率
0008_0049_a_10L之內院。恒在此先。矧茲普光之明壇 [212] 。肯落他後。是用新營寶殿。別揭華名。
0008_0049_a_11L既屬香火之依歸。可乏廟堂之壯麗.顧惟天下邦國。朝鮮為仁義 [213] 鄉。境內
0008_0049_a_12L山川。菩堤 [214] 傳名勝之寶。盤根遙連於長白。靈脉鬱葱。秀色高撑於碧空。淑
0008_0049_a_13L氣亭毒。留藏國家實錄之殿。分明在彼。迎引仙馭玉洞之跡。希夷自今。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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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0_a_01L잣나무와 소나무는 사계절의 봄 경치가 길이 머물러 있고, 푸른 시내와 맑은 폭포는 오경의 밤 가을 소리를 항상 들려준다. 시내 비파와 솔 거문고는 세속의 근심을 씻어내 주고, 계수나무 부는 바람과 덩굴 위 달은 세상 소식 조용히 멀어지게 한다. 만물이 청정하게 있는 곳을 ‘항아리 속의 복된 곳’162)이라 하는데, 여기 오니 다만 생각날 뿐이다. 이 땅이 이미 뛰어난 명승지를 베풀었건만,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총림叢林의 제도는 자취가 없어졌고, 흉년이 잇따르니 승려들은 흩어지는 폐단이 생겼으며, 물력物力이 거의 없어져 사람들은 목숨을 연명할 수가 없는 것을.그렇기에 법당과 종루는 비록 건립하였으나 명협蓂莢의 나고 지는 것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163), 명부전과 향각香閣은 아직 짓지 못하여 풍운風雲의 만남164)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대중의 기도는 정성을 다하는 공경함이 없었고, 단월檀越의 예배는 복을 심는 공간을 잃었다. 산문山門에 이 전각이 없는 것은, 비유하자면 국가에 형법刑法이 없는 것과 같다.우리가 방법이 없으니 절박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었고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자들도 이를 안타까워하였고,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탄식을 일으킨 지 오래되었다. 대개 천하의 만백성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백성들이나, 세간 중생들의 높고 낮음과 남녀의 지위가 모두 시왕전 염라대왕의 손안에 운명이 달려 있으니, 저승 업경대業鏡臺165)의 빛 속에 그림자가 비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즉 정말로 큰일을 당하면 마음을 다해 오직 뒷일을 두려워해야 하며, 모두가 받들어 섬기는 예를 앞다투어 행해야 한다.삼가 생각건대 성주城主 각하 이공李公은 본래 높은 지위의 무장으로 호걸의 뛰어난 재주를 늠름히 지녔으며, 몸에는 대궐에서 내린 금도장(金章)166)을 차고 한 지방의 장관167)을 맡아 했다. 참으로 국가의 중요한 지역을 지키는 충신이요 이름난 수로水路의 요해처를 방어하는 대장으로, 무리를 관대하고 정성껏 통솔하였으며 교화의 아름다움이 날로 새로웠다. 권위는 관서 지방에 빛났고 호령은 산과 강에 진동하였다. 위로는 봉각鳳閣168)에 정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적막한 물가에서 백성들을 구휼하였다.부임한 지 3년 만에 칭송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났으니, 단지 성읍과 저자에서 덕화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절에서도 은덕을 입었다. -
0008_0050_a_01L栢蒼松。長留四節之春景。碧澗清瀑。恒聽五夜之秋聲。澗瑟松琴。洗去塵
0008_0050_a_02L慮。桂風蘿月。靜隔寰信。謂物淨居。壺中福地。來矣第念。斯地既檀名區之
0008_0050_a_03L勝。慨盍可。叢林之制漠然。 而荒儉連仍。僧有離散之弊。物力彈 [215] 盡。人無喘
0008_0050_a_04L息之問 [216] 。是以梵殿亭 [217] 樓雖卜建。而累換蓂莢之間 [218] 落。冥府香閣未創置。而
0008_0050_a_05L尚待風雲之會臻。四眾祈傾。闕如在之敬。擅起 [219] 瞻禮。失種福之場。山門之
0008_0050_a_06L闕茲殿也。譬若國家之廢典刑。吾人缺手。譬 [220] 緊莫過是 念常在茲。過者為
0008_0050_a_07L之興嗟。居人咸以起歎久矣。盖天下萬性 [221] 。士農工商之民。陽世間眾生。尊卑
0008_0050_a_08L男女之位。皆悉懸命於十殿閻君子之手裡。莫不照影於三 [222] 界業鏡 [223] 之光
0008_0050_a_09L中。則寔當大家 [224] 。盡心惟恐居後。僉皆奉事禮。當爭先者也。恭惟城主閣下
0008_0050_a_10L李公。本以簪纓之甲冑。凜帶豪傑之英才。身佩九重之金章。業樹一方 [225] 玉
0008_0050_a_11L節。寔實國家重地保障之忠臣。名號水路要開 [226] 防禦之大將。御眾既以寬
0008_0050_a_12L簡。化美於日新。權威赫於關西。號令震於河岳。上盡誠於鳳閣。下恤民於
0008_0050_a_13L漠 [227] 濱。下車及於三周。頌聲作於四境。非但清化於城市。又見蒙德於雲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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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1_a_01L밖으로는 불법을 보호하여 지키고, 안으로는 승려들이 본업에 힘쓰는 것을 가상히 여겼다. 권선문 두루마리를 인쇄하여 민간에서 공사를 돕게 하였고, 자재를 쓰도록 관에서 지급하여169) 전우殿宇를 건립하는 데 쓰도록 하였으니, 마침내 귀신도 기뻐하였으며 산을 빛내고 시내를 아름답게 할 수 있었다. 조성을 시작하여 며칠 되지 않아 완성하였으니 모두 성주께서 늘 생각하여 주선해 준 은택이다. 만약 부처님이 옥황상제에게 명하여 음덕을 내리지 않았다면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실로 백세 동안 잊지 못할 은덕이다.하물며 또한 온 고을 향당鄉黨의 유림儒林과 장교將校170)들이 힘써 돌보아 보호해주지 않음이 없었고, 모든 현역 이속吏屬과 나졸羅卒들도 물품을 내어 다 도와주었다. 그런즉 염라대왕의 붓끝에서 누구의 공인지 기록하지 않겠으며, 옥황상제의 책상 위에서 어느 집의 덕인지 드러내 밝히지 않겠는가. 세상의 도道가 서로 일어났고 유불儒佛이 함께 이루었다고 할 수 있으니 이치상 마땅히 명심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여기 장로長老가 있었는데 이름은 학연鶴蓮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스무 살에 세속에서 초탈하였다. 서리 낀 소나무처럼 고결한 절조는 이미 대중을 통솔하는 권도權道를 품었고, 물속 달처럼 빈 마음은 사람을 구제하는 방법을 함께 지녔다. 멀거나 가깝거나 남에게 겸양하고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마음을 다하였으니, 한 지방을 풍요롭게 하여 명성이 사방에 퍼졌다. 항상 고아를 구휼하고 외로운 이를 어루만지며, 잔약한 자들을 구제하고 도와주기를 자신의 소임으로 여겼다.마침 황량한 때를 당하여, 넓고 큰 서원을 발하고자 천금의 재물도 아끼지 않고 시왕十王의 전당을 창건하였다. 부처를 섬기고 하늘을 공경한 것은 수달다須達多의 큰 보시와 자못 비슷하고, 온 재산을 기울여 남김없이 바친 것은 어진 군자의 바른 마음을 사모하여서이다. 단지 천추에 훌륭한 자취를 남길 뿐만 아니라 꽃다운 이름을 만고에 전하고, 또한 정토淨土에 현복玄福171)을 심고 단전丹田에 좋은 인연을 심으니, 어찌 크게 경사스럽고 매우 아름답지 않은가. 선함과 아름다움을 다하였도다.그 넓고 큰 참된 자취는 삼청경三淸境172)의 도사道士 무리와 유사하고, 그 늠름한 높은 품격은 구화산九華山173) 신선과 비슷하다. 공적이 찬란하고 위대하니, 위상은 신선 반열에 오를 만하고 이름은 반드시 신선 명부에 편입되리라. 학이 -
0008_0051_a_01L外作佛法之護衛。內嘉釋子之勤業。印是勸軸。俾山野而助功。帖下費材。
0008_0051_a_02L建殿宇而敘用。遂得鬼歡神悅。山輝川媚。經之營之。成之不日。皆城主鎮
0008_0051_a_03L念周旋之惠澤也。若非金仙使命玉帝遺蔭。豈能及斯也哉。實百世不忘
0008_0051_a_04L之德也。况又一邑鄉黨儒林將校。莫不努力而顧護。百執時任吏廳 [228] 羅卒。
0008_0051_a_05L亦皆舍物而助成。則閻玉 [229] 筆端。何人之功。不記錄矣。玉帝桉上。誰家之德。
0008_0051_a_06L不彰明哉。可謂世道交興。儒佛并作矣。理宜銘心。不忘者也。爰有長老。厥
0008_0051_a_07L號鶴蓮。童真出家。妙年拔俗。霜松潔操。既抱御眾之權。水月虛襟。兼帶濟
0008_0051_a_08L人之術。遐邇讓德。尊卑傾心。富饒一方。名傳四表。常以恤孤撫犻濟扶殘
0008_0051_a_09L弱為己任焉。適丁荒凉之辰。欲發廣大之願。不惜千財之費。創開十王之
0008_0051_a_10L堂。事佛敬天頗類須達多之大施。傾資破產却慕仁君子之正心。非但遺
0008_0051_a_11L勝跡於千秋。流芳名於萬古。抑亦種玄福於淨土。植良緣於丹田。豈不大
0008_0051_a_12L慶大佳。盡善盡美哉。其浩然真趣。紡 [230] 彿三清之述 [231] 流。其凜然高標。依俙九
0008_0051_a_13L華之仙骨。功之燦爛。蹟之巨偉。可以職綴瓊班。名編瑤籍必矣。可謂鶴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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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2_a_01L구고九臯에서 우니174) 천하가 응하여 칭송하고, 연꽃이 상품上品을 여니175) 뭇 성인들이 함께 찬탄하리라 이를 만하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이미 아시고 부처님이 일찍부터 호념護念176)해 주시니, 또한 지극한 위험이 사라지고 오행이 눈 녹듯 할 것을 상상할 수 있다.마침 보살을 만났으니 법호는 일능一能이다. 혜원慧遠177)의 고상한 풍격을 지녔고, 도림道林178)의 큰 기량을 가슴속에 간직하였다. 평소에 선원의 기강을 잡고 총림의 모양을 갖추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며, 선근善根을 깊이 심어 길렀고 깨달음의 길을 널리 닦은 자였다. 때가 되어 삼각산三角山 언덕에 석장錫杖을 울려 만월滿月179)의 진용真容을 조성하였고, 때맞추어 태백太白의 별천지에 구름 같은 옷을 떨쳐 훌륭한 영산전靈山殿을 건립하였다. 선문禪門에 공이 크기 때문에 후세에 사모함을 깊이 일으킬 것이다.아! 상인의 높은 인품은 하늘 끝의 밝은 달이요, 상인의 고상한 품격은 비온 뒤의 맑은 바람이로다. 이 보광산에 와서 저 연화蓮華을 비추어 대강大綱의 원칙을 바로세우니 모든 사람들의 안목이 마침내 커져서 각자 그 맡은 일을 하고 마땅히 할 일을 알맞게 하였다. 산과 들이 메아리쳐 응하고 멀고 가까운 곳에서 바람처럼 달려와, 날짜를 택일할 때 마음속으로 서약하고 일을 할 때 뜻을 맹세하였으며, 막역한 벗을 모아서 이루지 못한 공을 기약하였으니 짧은 시간에 서로 교유함이 용과 호랑이가 서로 어울렸다고 할 만하다.이로부터 모래를 모으고 흙을 쌓아 온갖 권선勸善을 고하니 단월들이 바람에 쏠리듯 하였다. 돌을 꾸짖고180) 재목을 구하여, 많은 장인을 부르니 일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비구 각형覺浻ㆍ두추斗樞ㆍ처습處習ㆍ종임宗稔ㆍ서정瑞汀ㆍ천기天機, 박진창朴進昌은 모두 마음을 같이 한 단월들이다. 비구 혜규慧圭ㆍ방임芳稔ㆍ지윤智允ㆍ법률法律ㆍ의찰義察은 다 시주 모으는 것을 도운 화주승이다. 비구 지희智熙ㆍ옥능玉能은 솜씨 좋은 훌륭한 장인이다. 비구 입법정立法汀ㆍ처은處訔ㆍ쌍휘雙輝ㆍ사정思定은 모두 간사로 일을 맡아 지휘하였다.보시布施 받은 것을 논하자면 2-3백 냥에서부터 아래로는 40-50냥에 이른다. 모연募緣한 것을 말하자면 혹은 1-2천 냥을 모았고 아래로는 4백 냥에 이른다. -
0008_0052_a_01L九臯天下應頌。蓮開上品眾聖共讚者矣。神明已為訂 [232] 知。佛天早當護念。
0008_0052_a_02L亦極之危烟滅。五行之雪消焉。可想也。適值開士。法諱一能。襟帶慧遠之
0008_0052_a_03L高風。胸藏道林之仲 [233] 量。素以紀綱禪院模樣叢林為己任。而栽培善根之
0008_0052_a_04L深。深 [234] 修淨覺路之濶者也。時乎鳴金錫於三角山畔。造立滿月之真客 [235] 。時
0008_0052_a_05L乎拂雲衣於太白洞天。營建靈山之勝殿。其為有功於禪門大矣。起慕於
0008_0052_a_06L後深焉。噫。上人之高標。天端霽月。上人之雅範。雨後清風。來此光山。照彼
0008_0052_a_07L蓮實. [236] 大綱得以斯正。萬目之為畢張。各當其當。遂適其適。山野響應。遠近
0008_0052_a_08L風趍。指日誓心。舉事盟意。結為莫逆之友。期成不成之功。可謂彈知 [237] 相交。
0008_0052_a_09L𡎖 [238] 虎相應矣。因以聚沙累土。控萬善而擅 [239] 那風從。叱石鳩村 [240] 。召百工而役
0008_0052_a_10L夫雲會。比丘覺浻 斗樞 處習 宗稔 瑞汀 天機 朴進昌也者。皆同心擅 [241] 越也。
0008_0052_a_11L比丘慧圭 芳稔 智允 法律 義察也者。皆助緣化士也。比丘智熙 玉能也者。
0008_0052_a_12L善手良工也。比丘 立法汀 處訔 雙輝 思定也者。皆幹事指揮也。論其舍施。
0008_0052_a_13L則出二三百財。下至於四五十財。議其募緣。則或募一二千財。下至於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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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3_a_01L절 전체 대중 40여 명이 모두가 권선을 맡아서 도와준 이후 말(斗)을 모으고 홉(合)을 세며, 자(尺)를 얻고 치(寸)를 거두니, 깨달음의 바다(覺海)에 시냇물을 더하고 금밭(金田)181)에 씨를 뿌리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즉 많건 적건 마음을 같이해 큰일을 이루기를 꾀함에 어찌 티끌 모으듯 적다고 다투겠는가. 위아래가 힘을 다하여 특별한 공을 세우기를 도모함에, 누가 준비할 일이 많다고 의아해하겠는가.이에 기둥 수에 맞게 주춧돌을 놓고 땅의 영기(地靈)을 밟아 터를 열고서, 먹줄을 깎고 도끼를 옮겨 정해진 법칙182)을 따라 집을 지었다. 기둥을 얽고 도리를 새기니 난새가 날개를 펴고 학이 비스듬히 서서, 아득한 하늘의 밝은 해와 같은 성왕聖王을 안치할 만하였다. 겹겹이 포개진 들보와 마룻대에는 호랑이가 걸터앉고 용이 서렸으니, 고해에 빠진 중생을 자비로 구제하는 교주教主를 맞기에 적합하였다.바람 부는 추녀, 달빛 비추는 집은 기원祇園183)의 중각강당重閣講堂184)과 유사하고 난간과 기둥, 터와 주춧돌은 하늘의 도성(天京)에 있는 옥문玉門, 경실瓊室185)과 비슷하다. 이것은 모두 승려 장인 지희智熙의 교묘한 솜씨이니 부처님이 그윽히 다가오고, 문이 열리면 구름 그림자가 추녀에 어린다. 경쇠 소리가 구름 가에서 맑게 울리니 나그네의 꿈이 쉬이 깨고, 옥 같은 샘물 소리 난간 밖에서 찰랑거리니 번뇌의 불꽃이 절로 없어지도다. 공경스러운 진용眞容을 여기에 봉안하여 아름답고 윤택한 얼굴을 향해 예배하리라. 온갖 재앙이 눈 녹듯 사라지고 즐거움과 복이 구름처럼 밀려들며, 부처를 보고 법을 보아 공허한 깨달음의 소문(覺名)이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니, 영산靈山의 수승한 도량이 아니라면 연화장세계와 같으리라.성대한 모임을 여기서 즐기며 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186) 동안 좋은 과보를 얻는 선근善根을 같이 심고, 그 모습을 함께 우러르며 팔만사천년 동안 선량한 덕(良德)을 이어서, 삼천리 바다의 평평한 밭에서 만물을 즐기고 백억 세계의 하늘 음악 공중에 가득하니, 모두가 나에게 갖추어져 있지 남에게 있지 않다.화사化士187)와 시주는 도와줄 인연이 모쪼록 나타나기를 바라며, 이 당堂에 오르는 자는 대상과 나(物我)를 다 잊고 이 방에 들어오는 자는 눈과 귀의 집착을 모두 버린 채 생각하고 말하였으니, 자신 외에 물질 밖의 현묘한 뜻을 이미 깨달아 세상에 있으면서 세간을 벗어난 정을 일찌감치 안 것이다. 그러니 재물을 희사하여 법당을 세운 일이 어찌 헛된 일이겠는가. 성인聖人을 참례하여 이로움을 심는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이다. 마침내 -
0008_0053_a_01L百財。至於合院大眾四十餘員。悉皆荷勸助斯後。則斗聚計合。尺獲寸收。
0008_0053_a_02L莫不覺海添流金田植種。則多寡同心而謀成大事。何境 [242] 小小之合塵。上
0008_0053_a_03L下戮力而圖建奇功。孰訝多多之辦業哉。於是計楹樹礎。 [243] 蹴坤靈而開基。
0008_0053_a_04L削墨運斤。而眾 [244] 天經而結宇。構桶 [245] 雕楣。鸞伸鶴跛。可安冥天白日之聖王。
0008_0053_a_05L重欒複棟。虎距龍盤。冝迎苦海慈航之教主。風軒月戶。彷彿紙 [246] 園之重閣
0008_0053_a_06L講室 [247] 。蘭楹基礎。依俙天京之玉開 [248] 瓊室。此皆匠僧智熙巧妙之手段而佛
0008_0053_a_07L天冥侵。戶綉門開而雲影臨軒。磬聲▼(口+琴)喨於雲端。若 [249] 夢易破。玉泉琮琤於欄
0008_0053_a_08L外。煩火自除。穆穆真儀。將安于此。皇皇睟面。擬禮于斯。千災雪融。藥 [250] 福雲
0008_0053_a_09L進。見佛見法。虗消覺名。將可待矣。若非靈山勝場。疑蓮藏世界。勝會斯玩。
0008_0053_a_10L三生六十劫之同種善根。儀共瞻。八萬四千歲之不杇良德。三千海平
0008_0053_a_11L田賞物。百億累 [251] 天樂盈空。皆備於我而不在於人矣。化士與施主。助緣求
0008_0053_a_12L湏著。念辭昇無 [252] 堂者物我兩忘。入斯室者眼耳俱喪。身外已覺眾外玄旨。
0008_0053_a_13L在世早知出世間情。然則舍物建堂。豈徒然哉。叅聖種移 [253] 。必有以也。遂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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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4_a_01L짧은 노래를 읊어 무지개 들보188)를 올리는 것을 돕는도다.
主上殿下 주상 전하께서는
龍樓萬歲 용루龍樓189)에서 만세를 누리시고
鳳閣千秋 봉각鳳閣190)에서 천추를 누리시며,
金枝聯芳 금지金枝191)가 잇달아 향기롭고
玉葉帶彩 옥엽玉葉192)이 이어서 빛이 나리로다.
王妃殿下 왕비 전하께서는
日有千祥 날마다 온갖 상서가 생기고
時無百害 때마다 모든 해악이 없어지리니,
道同文后 도는 문왕文王의 후비后妃193)와 같고
德勝摩耶 덕은 마야摩耶194)보다 훌륭하시도다.
世子邸下 세자저하께서는
福辰長輝 복진福辰195)이 길이 비추고
壽星永曜 수성壽星196)이 영원히 빛나며,
身輕氣健 몸은 경쾌하고 기운은 강건하며
食穩寢安 음식이며 잠자리도 편안하시리라.
聖子承承 성인의 아들197)이 대를 이음이
如麟趾振振 기린의 발이 인후仁厚함을 상징하는 것198)과 같고
神孫繼繼 신神의 자손199)이 끊임없이 이어짐이
同螽羽詵詵 메뚜기의 깃이 화목하게 모이는 것200)과 같으며,
寶曆天長 나라의 운수가 하늘처럼 영원하고
金輪地久 황금의 수레바퀴가 땅처럼 장구하리로다.
抑願名區長旺 또한 원하옵건대 명승지가 길이 번영하고
梵物咸休 만물이 모두 아름다우며
佛日重輝 부처님의 해가 거듭 밝고
祖灯201) 조사의 등불이 다시 빛나리이다.
玄風吹於百億剎中 현풍玄風이 백억의 사찰에 불어와
群昏一廓 중생의 어리석음이 활짝 걷히고
甘露洒於三千界內 감로甘露가 삼천세계에 뿌려져
眾枯頓蘇 수많은 고목들이 어느새 소생하리라.
蘿月窓前時 덩굴 사이 달 비치는 창가에서
轉西域之金文 늘 불경을 외고
杖叩虎而清聽 석장으로 호랑이를 쳐서 말을 듣게 하며,202)
松風壇上日月 솔바람 부는 단 위에서 날마다 달마다
南山之聖壽 성상의 장수203)를 축원하고
鉢藏龍而伏歸 발우에 용을 담아 귀복시켜 돌아가리.
禪院康泰香火興際 선원禪院이 태평하여 향화香火가 일어날 때
檀信之功 단월의 공은
與青山而不老 청산과 더불어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요
化士之德 화사化士의 덕은
共綠水而長存 푸른 강물과 함께 길이 남으리라.
海晏河清 바다는 잔잔하고 강은 맑으니
君臣共和鄉204)雲之慶 군신君臣이 함께 풍운風雲의 경사205)를 창화하고,
風調雨順 바람은 조화롭고 비는 순조로우니
老幼爭唱太平之歌 노인과 어린이가 다투어 태평가를 부르도다.
옹정雍正 13년 을묘년206) 5월 일에 월암산인月岩山人 흥책興策이 짓다.21-4. 보광사 시록암 현판 普光寺諡錄菴懸板보건대 천년의 명승지인 산은 보리菩提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녔고, 삼한三韓의 영험한 터의 암자에는 시록諡錄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시록이라는 이름은 어떤 이유로 지은 것인가. 임진왜란 때 임금님의 수레가 서쪽으로 행차했을 때, 시록을 보관한 곳이기 때문에 시록암諡錄菴이라고 한 것이다. 그 소중한 자취를 살펴보건대 다른 산의 암자와는 다르다. 처음 창건이 어느 해에 있었는지 누구의 손으로 지었는지 알지 못한다. 기와는 -
0008_0054_a_01L短唱。助舉虹樑。主上殿下。龍樓萬歲。鳳閣千秋。金枝聯芳。玉葉帶彩。
0008_0054_a_02L王妃殿下。日有千祥。時無百害。道同文后。 德勝摩耶。世子邸下。福辰長
0008_0054_a_03L輝。壽星永曜。身輕氣健。食穩寢安。聖子承承如麟趾振振。神孫繼繼同螽
0008_0054_a_04L羽詵詵。寶曆天長。金輪地久。抑願名區長旺。梵物咸休。佛日重輝。祖灯 [254] 。禪
0008_0054_a_05L院康泰。香火興際。 [255] 玄風吹於百億剎中。群昏一廓。甘露洒於三千界內。眾
0008_0054_a_06L枯頓蘇。蘿月窓前時轉。西域之金文。杖叩虎而清聽。松風壇上日月。南山
0008_0054_a_07L之聖壽。鉢藏龍而伏歸。檀信之功。與青山而不老。化士之德。共綠水而長
0008_0054_a_08L存。海晏河清。君臣共和鄉 [256] 雲之慶。風調雨順。老幼爭唱太平之歌。
0008_0054_a_09L雍正十 [257] 年乙卯五月 日。 月岩山人興策撰。
0008_0054_a_10L普光寺諡錄菴懸板
0008_0054_a_11L觀夫千年勝地山。鎮菩堤 [258] 之嘉名。三韓靈基菴。揭諡錄之尊額。諡錄之名。
0008_0054_a_12L何為以作也。壬辰倭變。 大駕西幸時。諡錄所藏之處也。故曰諡錄菴。究
0008_0054_a_13L厥所重之蹟。則異於他山之菴。初剏之已在何年。未知誰手。瓦甍頻閱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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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5_a_01L성상星霜을 여러 번 겪어 벗겨지고 떨어졌으며 기둥과 초석은 비바람을 많이 맞아 기울어지고 무너졌으니 산빛은 처량하고 물소리는 흐느꼈다.마침 비구 정익定益이라는 승려가 머물렀는데, 스스로 결정하여 먼 산에서 이 암자로 바리때를 옮겨왔다. 묵묵히 사방의 외형을 주욱 둘러보니 동쪽은 기울어지고 서쪽은 비스듬히 무너지고 있었다. 스스로 신심을 일으켜 중수 공사를 하자고 사찰 주지에게 고하니, 주지 기허당騎虗堂 월서月西 대화상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 또한 오래전에 계획을 세웠으나 능력이 닿지 않았으니, 공적이 없어 마음이 답답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중수할 계획을 내어 고을 수령207)에게 아뢰고, 삼가 한 축의 권선문을 가지고 단월들에게 널리 알렸다. 맨발로 탁발하고 빈손으로 경영하여 단월들의 재물을 모아 500냥을 얻어, 장인을 불러서 짓기 시작하여 이 해에 공사를 마쳤다.적멸寂滅의 도량에 마룻대와 들보를 새롭게 하고 청정의 경계에 문을 열었으니, 구름 노을과 더불어 함께 맑으며 허령虛靈함과 어우러져 자라니, 황홀하기가 남해南海 보광당普光堂이 새로 건립된 것 같도다. 정익이 힘써 노력함으로써 영원한 좋은 인연을 함께 맺었고, 단월들의 공덕으로 장래의 선한 과보를 얻었으니 그림자나 메아리가 뒤따라 감응하듯 유쾌하지 않겠는가. 공경할지어다.21-5. 보광사 명부전 상량시 冥府殿上樑詩滿月藥師指拜中 만월 세계208)의 약사여래 마음으로 절하는 가운데
欽看壽佛導群迷 미혹한 무리 인도하는 무량수불209)을 우러러보네
金色光明常不滅 금빛 광명은 언제나 없어지지 않아
瓊林琪樹蓮池上 옥같이 아름다운 숲과 나무 연꽃 핀 못 위에 비치네
塵剎那海盡朝宗 티끌처럼 많은 국토와 바다가 모두 모여들고
鸚鵡仙禽向眾啼 앵무새 두루미가 사람들을 향해 우는데
歡喜園中創聖菴 환희원210)에 성스러운 암자를 지으니
台辰耿耿環宸極 별들은 밝디밝게 북극성을 둘러쌌네
示相沙門來作主 모습을 보이며 사문이 와서 주인 되니
幾多慾海沈迷客 얼마나 많은가 욕망의 바다에 빠진 미혹한 나그네들
放光振錫制貪婪 빛을 발하며 석장 흔들어 탐욕을 억제하니
歸仰星壇蒙福力 칠성단에 귀의해 믿고 복의 힘을 입으리
遙望天門何曠蕩 멀리 하늘 문을 바라보니 어찌 그리도 넓은가
丈六金身光照夜 장육존상의 금빛이 어둔 밤을 비추네
細察乾坤化理分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피니 교화로 다스림이 나뉘었는데
呵護龍天數莫窮 가호하는 천룡팔부211)는 그 수가 무궁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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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5_a_01L霜而剎 [259] 落。柱礎多經風雨而傾頹。山色悽凉。水聲嗚咽。適有比丘之居定
0008_0055_a_02L益師子。因自定。遠山移鉢于此菴。默顧四隔之形遍。東傾西側而頹破。自
0008_0055_a_03L發信心。重修經營。告于剎主。主主 [260] 騎虗真 [261] 月西大和尚應之曰。余亦年久
0008_0055_a_04L計之。而力不能遂。意悶所無狀。爰發重修之計。仰訴梅軒。謹將一軸之文。
0008_0055_a_05L普告檀越。白足行乞。赤手經營。鳩聚檀材。得之半千。招匠成造。當禩畢役。
0008_0055_a_06L新棟樑於寂滅之場。開戶闥於清淨之界。與雲霞而偕潔。并虗靈而共長。
0008_0055_a_07L怳惚於南海普光堂之新建也。盖以定益之宜 [262] 力。共結永劫之良緣。以檀
0008_0055_a_08L越之功德。將來得善果。影響相從感應。不快哉。欽哉。
0008_0055_a_09L冥府殿上樑詩
0008_0055_a_10L滿月藥師指拜中。欽看壽佛導群迷。金色光明常不滅。瓊林琪樹蓮池上。
0008_0055_a_11L塵剎那海盡朝宗。鸚鵡仙禽向眾啼。歡喜園中創聖菴。台辰耿耿環宸極。
0008_0055_a_12L示相沙門來作主。幾多慾海沈迷客。放光振錫制貪婪。歸仰星壇蒙福力。
0008_0055_a_13L遙望天門何曠蕩。丈六金身光照夜。細察乾坤化理分。呵護龍天數莫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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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6_a_01L閻君玉帝判形賞 염라대왕 옥황상제는 형세를 판단해 상을 내리니
萬邦統入如來地 만방이 통합되어 여래지如來地212)에 들어가리라21-6. 문루 현판의 시 門樓懸板詩同來青眼客 푸른 눈의 나그네와 함께 와서
信宿白雲家 흰 구름 속 집에서 이틀 밤 잤네
好是題名處 좋구나 이름 쓰는 곳213)
天香也吐花 천향화214)가 또 꽃을 피웠네
위는 인각麟珏의 시이다.
客醉盃中月 나그네는 술잔 속 달에 취했는데
僧問物外家 승려는 속세 밖의 집을 찾아와
吾王千萬壽 우리 임금 천만세 장수를 빌고
金佛點蓮花 금부처의 연꽃 눈에 점을 찍네
위는 문효채文孝菜의 시이다.
溪山詩客路 시내와 산은 시객의 길이요
風月主人家 바람과 달은 주인의 집이라
真境全濃畫 참된 경계는 완전히 무르익은 그림이라
筆生變態花 붓에서 온갖 모양의 꽃이 나왔구나
위는 계보형桂保衡의 시이다.
地鎮江山勝 땅이 지켜주어 강산이 빼어난데
天開造化家 하늘이 조화의 집을 열었네
收欲靈鷲會 영축산의 법회는 마치려는데
尚對未拈花 아직 꽃을 들어 보이지215) 않았도다
위는 승려 융근融勤의 시이다.
乾化年間法宇成 건화 연간에 법당이 지어졌으니
溪山如畫俗塵晴 시내 산은 그림 같아 세속 먼지가 맑아지네
遠峰明月諸天夜 먼 봉우리에 밝은 달 떠 하늘은 밤이 되고
落日寒鍾萬古聲 지는 해에 찬 종소리 만고에 울리고
造物無窮供大觀 조물주는 끝없이 위대한 경관 베풀어
幾人到此誓平生 몇 사람이나 여기 와서 평생 서약했나
長夏庵留猶未足 긴 여름 암자에 머물고도 충분치 않아
更向高坮住姓名 다시 높은 대에 성과 이름을 남기네
위는 김종규金宗圭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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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6_a_01L閻君玉帝判形賞。萬邦統八 [263] 如來地。
0008_0056_a_02L門樓懸板詩
0008_0056_a_03L同來青眼客。信宿白雲家。好是題名處。天香也吐花。
0008_0056_a_04L右麟珏。
0008_0056_a_05L客醉盃中月。僧問物外家。吾王千萬壽。金拂 [264] 點蓮花。
0008_0056_a_06L右文孝菜。
0008_0056_a_07L溪山詩客路。風月主人家。真境金 [265] 濃畫。筆生變態花。
0008_0056_a_08L右桂保衡。
0008_0056_a_09L地鎮江山勝。天開造化家。收欲靈鷲會。尚對未拈花。
0008_0056_a_10L右僧融勤。
0008_0056_a_11L乾化年間法宇成。溪山如畫俗塵晴。遠峰明月諸天夜。落日寒鍾萬古聲。
0008_0056_a_12L造物無窮供大觀。幾人到此誓平生。長夏庵留猶未足。更向高坮住姓名。
0008_0056_a_13L右金宗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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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7_a_01L入洞頓忘步自遲 골짜기 들자 문득 잊고 걸음 절로 느려지니
玲瓏慧月滿香地 영롱한 지혜의 달빛은 향기로운 땅에 가득하여라
鳥傳佛法群群念 새들도 불법 전하는 듯 무리지어 염불하고
螺削天工谷谷奇 구불구불 조물주 솜씨로 깎아 골짝마다 기이하네
蓮社客留同白傅 백련사216)에 나그네 머무니 백거이217)와 같고
梵軒僧起說玄師 사찰218)의 스님 일어나 현사219)를 이야기하네
慈悲欲借觀音聲 자비는 관음보살의 음성을 빌리려 하고
大池生靈賴普施 큰 못의 생령들은 은혜 베풂에 의지하네
위는 김희언金禧彥의 시이다.
萬事無喧此夜間 만사가 잠잠해져 고요한 이 밤에
何來尊佛臥青山 어디서 온 부처님이 청산에 누웠나
僕天曉起行裝促 종은 새벽녘에 일어나 갈 길을 서두르니
始覺人生不暫閒 비로소 깨달았네 인생은 잠시도 한가롭지 않음을
위는 이일李鎰의 시이다.22. 백벽산 견성암의 편액(白碧山見性菴扁額)(견성암은 정해년 12월 일에 지군知郡 신태정申泰鼎이 고쳐 세우고 서문을 썼다.)
(1) 옹정雍正 2년(1724) 갑진년 3월 15일에 승려 청식清式이 중건重建하다.
(2) 광서光緒 12년(1886)220) 병술년 9월 16일에 산신당山神堂을 개건改建하다.
(3) 광무光武 3년(1899) 9월 7일에 칠성당七星堂을 개건하다.
(4) 광무光武 10년(1906) 4월 17일에 승려 김상려金尚麗가 개건하다.
(5) 광무 11년(1907) 4월 일에 불상에 금을 다시 입히다.23. 운산군 북면 적리 어첩동 서림사의 편액(雲山郡北面荻里御牒洞西林寺扁額) -
0008_0057_a_01L八 [266] 洞頓忘步自遲。玲瓏慧月滿香地。鳥傳佛法群群念。螺削天工谷谷奇。
0008_0057_a_02L蓮社客留同白傳 [267] 。梵軒僧起說玄師。慈悲欲借觀音聲。大池生靈賴普施。
0008_0057_a_03L右金禧彥。
0008_0057_a_04L萬事無喧此夜間。何來尊佛臥青山。僕天曉起行裝促。始覺人生不暫閒。
0008_0057_a_05L右李鎰。
0008_0057_a_06L○白碧山見性菴扁額(見性菴 丁亥十二月日 知郡申泰鼎改建 序文謹
0008_0057_a_07L識)
0008_0057_a_08L(一)雍正二年甲辰三月十五日。重建僧清式。
0008_0057_a_09L(二)光緒二 [268] 年丙戌九月十六日。山神堂改建。
0008_0057_a_10L(三)光武三年九月七日。七星堂改建。
0008_0057_a_11L(四)光武十年四月十七日。改建僧金尚麗。
0008_0057_a_12L(五)光武十一年四月日。佛像改金。
0008_0057_a_13L一、雲山郡北面荻里御牒洞西林寺扁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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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8_a_01L(1) 축성전祝聖殿
(2) 서림사西林寺24. 보타산 관음 창건기 寶陀山觀音剏建記내가 이 고을에 와서 보니, 제때가 아니면 살고 있는 백성들이 일정한 재산이 없고 또한 산천도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름난 사찰도 없으니 매번 성절聖節221)을 맞아 경건하게 정성을 다해 재齋를 올릴 곳이 없어서 탄식하였다. 마침 오대산五臺山 승려 해운海雲이 찾아왔기에 그와 함께 의논하고 그에게 터를 택하여 절을 세우게 하니 법당과 요사寮舍가 차례로 이루어졌다. 이에 재를 올릴 곳이 있게 되었고, 복을 닦을 곳을 얻게 되었다.절의 뒤는 관음봉觀音峰이요 오른편은 용왕봉龍王峰, 왼편은 동자봉童子峰, 앞에는 취죽암翠竹巖과 녹양대綠楊臺가 있다. 시냇물이 산 뒤에서 나와서 관음봉을 둘러 좌우로 졸졸 흐르다가 대臺 아래에 이르러 합해져서 서쪽으로 흘러간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으며 산천이 수려하여 어느새 깊은 골짜기의 경치 좋은 곳이 되니 한 고을의 장관壯觀이로다. 이것이 어찌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겨서 때를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그 후에 실제 나의 손님인 전오위장前五衛將 한령韓令 복리復履가 주관하고, 그 다음으로 고을 사람 강세원康世院, 도감都監 김진호金振浩, 아전 이양승李壤承이 감독하였다. 8개 면面 마을의 관리,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기 성심을 다하여 재물을 모으고 힘을 내어,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8월에 끝마쳤으니 며칠 걸리지 않아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절의 법규를 주관하고 원대한 계획을 기약해 도모할 것을 내가 보개사寶盖寺의 승려 인파 자응仁坡慈膺에게 허락하였다.
무자년 10월 일. 지군知郡222) 권응규權應圭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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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8_a_01L(一)祝聖殿
0008_0058_a_02L(二)西林寺
0008_0058_a_03L○寶陀山觀音剏建記
0008_0058_a_04L余來觀此邑。非時居民之無恒產。且無山川之可覽矣。故隨無寺剎之名。
0008_0058_a_05L而每當 聖節。歎缺虔誠致齋之所。適值五臺山海雲僧之來訪。與之謀。
0008_0058_a_06L及使之擇基建寺。院宇寮舍。取次成就。於是焉致齋有所。修福得處。而寺
0008_0058_a_07L之後即觀音峰。右龍王峰。左童子峰。前有翠竹巖綠楊臺。溪水出自山後。
0008_0058_a_08L圍觀音峰。而左右潺湲。至于臺下。合而西流。洞壑之幽邃。山川之秀麗。居
0008_0058_a_09L然為絕峽勝地。一邑壯觀。茲豈非天藏地秘以待其時者歟。是後也。實余
0008_0058_a_10L之客。前五衛將韓令復履主之。其次鄉人康世院。都監金振浩。色吏李壤
0008_0058_a_11L承董之。八面坊憲及士農工商。各盡誠心。鳩財出力。四月始役。八月告功。
0008_0058_a_12L可謂不日成之。而主持寺法。期圖遠規。余於寶盖僧仁坡慈膺許之。
0008_0058_a_13L戊子十月 日。 知郡權應圭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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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9_a_01L∎건물의 칸(間) 수
축성전祝聖殿 : 1칸, 기와.
승방僧房 : 2칸, 나무 기와(木瓦).
주방廚房 : 1칸, 나무 기와.
대청大廳 : 1칸, 나무 기와.25. 청계암 편액문 清溪菴扁額文청암사清岩寺는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위로 홍무洪武223) 연간에 처음 건립하였는데 절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참선하는 승려가 많아 한 고을의 큰 사찰이 되었다. 수백 년의 오랜 세월을 지내다 한번 큰 화재를 겪으면서 잡초만 우거질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건륭乾隆224) 초기에 옛 모습 그대로 개수하였으니 지금 또 백년이 되었다.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들이쳐 날로 기울어지고 다달이 무너졌으나 다시 보수할 가망이 없었다. 시주를 권유하는 일을 맡은225) 임성해林聖楷와 화주승化主僧 성윤性尹이, 승려가 의지하고 탑을 보존할 바가 없음을 개탄하여 재물과 인력을 모아서 몇 달 만에 끝마쳤다.이것이 세 번째 중수로 또한 시운時運과 관련이 있어 반드시 뜻을 품은 자를 기다려 이루어졌으니, 그 마음 씀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점안點眼226)을 마치고 나자 성윤이 나에게 글을 지어 기록할 것을 부탁하였다. 내가 성윤의 청을 아름답게 여기고 또 임군林君의 뜻을 존중하여 전해오는 자취를 간략히 기록하고, 여러 시주들의 명단을 아래에 죽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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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59_a_01L建物間數
0008_0059_a_02L祝聖殿。 一間。 盖瓦。
0008_0059_a_03L僧 房。 二間。 木瓦。
0008_0059_a_04L厨 場。 一間。 同。
0008_0059_a_05L大 廳。 一間。 同。
0008_0059_a_06L○清溪菴扁額文
0008_0059_a_07L清岩寺之說盖古也。上自洪武年剏建者也。而寺宇之宏麗。僧禪之眾庶。
0008_0059_a_08L為一邑之大剎矣。歷數百年之久。一徑 [269] 烈火之炎。將為鞠草之莾。故丁乾
0008_0059_a_09L隆之初。因舊改茸 [270] 。以至于今又百年。上雨傍風。日頹月圮。無復修補之望
0008_0059_a_10L矣。引勸施主林聖楷。化主僧性尹。慨其釋塔之無所依保。鳩聚物力。幾月
0008_0059_a_11L乃畢。凡此三重修。亦關時運而必待有志者成。則其為用心。豈偶然哉。點
0008_0059_a_12L眼既畢。性尹屬余作文以記之。余既嘉性尹之請。而又尚林君之志。畧記
0008_0059_a_13L流蹟。列書諸施主于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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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0_a_01L[계묘년(1843) 4월 17일 신시에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렸다.]
해는 도광道光227) 계묘년 겨울에
하내河內의 사인士人 이승원李昇源이 어리석음을 잊고 삼가 기록하다.26. 직전사 편액문 稷田寺扁額文인권 시주引勸施主 함판담咸判淡.
성조감成造監228) 김양심金陽心.
편수片手229) 김재백金才伯.
광금 시주廣金施主 이적지李迪之.
소종 시주小鍾施主 오선흥吳善興.
개금 시주開金施主 이만길李萬吉.
좁쌀 1석石 이여홍李汝弘.
좁쌀 1석石 김대응金大應.
수수쌀 1말 이성지李成之.
콩 10말 이문소李文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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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0_a_01L(癸卯四月十七日申時。竪柱上樑。)
0008_0060_a_02L歲道光癸卯冬。
河內士人李昇源忘愚謹識。
0008_0060_a_03L○稷田寺扁額文
0008_0060_a_04L引勸施主 咸 判 淡。
0008_0060_a_05L成造監 金 陽 心。
0008_0060_a_06L片 手 金 才 伯。
0008_0060_a_07L廣金施主 李 迪 之。
0008_0060_a_08L小鍾施主 吳 善 興。
0008_0060_a_09L開金施主 李 萬 吉。
0008_0060_a_10L小米一石 李 汝 弘。
0008_0060_a_11L小米一石 金 大 應。
0008_0060_a_12L唐米一斗 李 成 之。
0008_0060_a_13L太十斗 李 文 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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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1_a_01L금 2냥兩 이군중李君仲.
금 2냥兩 이건중李建仲.
금 2냥兩 이처중李處仲.
금 2냥兩 이온중李溫仲.
금 2냥兩 함약운咸若云.
금 17냥兩 공씨公氏.
금 15냥兩 이씨李氏.
금 11냥兩 양씨楊氏.
명주 1필疋 김씨金氏.
흰 무명 1필疋 김씨金氏.
홑옷 1건件 변씨邊氏.
암자의 그릇(菴器) 이씨李氏.
요령230) 시주搖鈴施主 이씨李氏. -
0008_0061_a_01L金二兩 李 君 仲。
0008_0061_a_02L金二兩 李 建 仲。
0008_0061_a_03L金二兩 李 處 仲。
0008_0061_a_04L金二兩 李 溫 仲。
0008_0061_a_05L金二兩 咸 若 云。
0008_0061_a_06L金十七兩 公 氏。
0008_0061_a_07L金十五兩 李 氏。
0008_0061_a_08L金十一兩 楊 氏。
0008_0061_a_09L明紬一疋 金 氏。
0008_0061_a_10L白木一疋 金 氏。
0008_0061_a_11L單衣一件 邊 氏。
0008_0061_a_12L菴 器 李 氏。
0008_0061_a_13L搖鈴施主 李 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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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2_a_01L∎기구조器具調
향로 1개.
경쇠 1개.
사기그릇 3개.
가마솥 2개.
돌 바퀴테(石輞) 1개.
사기로 만든 작은 항아리 2개.
마룻대(枌) 1개.
도끼(斧) 1자루.
稷田寺扁額文 引勸施主咸判淡。成造監金陽心。片手金才伯。廣金施主李迪之。 小鍾施主吳善興。開金施主李萬吉。小米一石李汝弘。小米一石金大應。 唐米一斗李成之。太十斗李文素。金二兩李君仲。金二兩李建仲。 金二兩李處仲。金二兩李溫仲。金二兩咸若云。金十七兩公氏。 金十五兩李氏。金十一兩楊氏。明紬一疋金氏。白木一疋金氏。 單衣一件邊氏。菴器李氏。搖鈴施主李氏。 ∎器具調 香爐一介。種231)磐一介。沙器三介。釜鼎二介。 石輞一機。沙器小瓮二介。枌一機。斧一柄。27. 고려국 평양도 연산부 묘향산 안심사 석종비232) 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鐘之碑추충보절 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 한산부원군 영예문춘추관사推忠保節同德賛化功臣三重大匡韓山府院君領藝文春秋館事 신臣 이색李穡233)이 전교를 받들어 짓다.봉익대부 전 판전교시사 진현관 제학奉翊大夫前判典校寺事進賢錧提學 신臣 권주權鑄234)가 전교를 받들어 글씨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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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2_a_01L器 具 調
0008_0062_a_02L香 爐 一介。
0008_0062_a_03L種 [271] 磐 一介。
0008_0062_a_04L沙 器 三介。
0008_0062_a_05L釜 鼎 二介。
0008_0062_a_06L石 輞 一機。
0008_0062_a_07L沙器小瓮 二介。
0008_0062_a_08L枌 一機。
0008_0062_a_09L斧 一柄。
0008_0062_a_10L○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鐘之碑
0008_0062_a_11L推忠保節同德賛化功臣三重大匡韓山府院君領藝文春秋館事
0008_0062_a_12L臣以下欠字 [272] 。
0008_0062_a_13L奉翊大夫前判典校寺事進賢錧提學臣權△△ [273] 奉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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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3_a_01L지금 주상이 즉위하신 지 11년 여름 5월에 승려 각지覺持가 치의緇衣(승복)를 입고 짚신을 신은 채 묘향산으로부터 와서 국왕의 가까운 신하에게 말하기를, “사문沙門인 신臣 각지가 아뢰고자 합니다. 저의 스승의 스승이신 서천西天(인도)의 지공指空235)이 입적하자 사리가 나왔고, 제 스승이신 나옹懶翁236)도 입적하고 사리가 나왔으니 제가 실로 감격하고 우러러 받드는 바입니다. 의주 만호義州萬戶237) 밀직密直238) 장려張侶와 그 부인 강씨康氏와 더불어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에 석종石鐘239)을 세워 두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였는데, 신륵사神勒寺, 상원사上院寺의 제도와 대략 같게 하였습니다.돌에 새겨서 ..... 후세에 보여야 할 것이니, 글이 없으면 ..... 할 수가 없고 임금의 명령 또한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부디 소승을 위하여 대궐에 들어가 아뢰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근신이 각지를 위해 잊지 않고 새겨두지 못하였기에 각지가 문하시중門下侍中 조창녕曹昌寧에게 가서 고하였다. 창녕이 주상에게 간절히 청하는 각지의 뜻을 아뢰니 주상이 허락하였다.가을 8월 12일에 우부대언右副代言 반덕해潘德海가 신臣 색穡에게 교지를 전하기를, “묘향산의 석종은 그대가 비문을 쓰라.”고 하였다. 근비謹妃240)도 겸교문하평리檢校門下評理 강인부姜仁富를 보내 와서 유시하기를, “내가 안심사에서 내 아들 세자를 위하여 복을 빌 것이니, 경은 그런 줄 아시오.”라고 하였다. 각지 스님이 기쁨에 겨워 와서 말하기를, “선생께서 저에게 비문을 빨리 써서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내가 어찌 감히 게을리하겠습니까. 쓰고자 하는 바를 나에게 말해 주시오.”라고 하니 각지 스님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각지가 우리 스님(나옹)을 서경西京의 광법사廣法寺에서부터 모셨는데 지정至正 무술년(1358)이었다. 스님이 왕사가 되시어241) 회암사檜巖寺242)에 주석하며 전우殿宇를 보수하고 지었는데 각지는 방장실方丈室 공역에 참여하였다. 현릉玄陵(공민왕)243)이 승하하자 어사대御史臺에서 논평하기를, 회암사는 도읍(개경開京)에 매우 가까우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져서 본업을 폐할까 염려된다 하여 곧 거처를 옮길 것을 청하였다. 이에 스님이 길을 떠나며 각지를 불러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여흥驪興244) -
0008_0063_a_01L今上守位之十又一年夏五月。釋覺持。自香山來。披緇衣躡屩。告近臣曰。
0008_0063_a_02L沙門臣覺持。願有奏吾師之師西天指空。沒 [274] 有舍利。吾師懶△ [275] 利。持實感
0008_0063_a_03L慕焉。與義州萬戶張密直侶及其室康氏。樹石鐘香山安心寺。厝二師舍
0008_0063_a_04L利。略同神勒上院之制焉。▼(金+(免/免+免)) [276] 石示後。非文無由△ [277] 。上命又無由也。幸為小
0008_0063_a_05L僧入奏。近臣無為持留意者。持奔告于門下侍中曹昌寧。昌寧上言持之
0008_0063_a_06L志勤乞。
0008_0063_a_07L上可之。秋八月十二日。右副△ [278] 言潘德海。傳 旨于臣穡曰。香山石鐘。汝
0008_0063_a_08L其文之石。
0008_0063_a_09L謹妃又使撿 [279] 校門下評理姜仁富來諭曰。吾於安心寺。為吾兒 世子祈
0008_0063_a_10L福。卿其知之。侍 [280] 師踊躍而來曰。先生早賜吾文幸甚。予△ [281] 。其告我所欲書
0008_0063_a_11L者。持師曰。持事吾師。自西京廣法寺。始至正戊戌歲也。吾師為
0008_0063_a_12L王師。住檜巖。修造殿宇。持與於方丈室之役△ [282] 。玄陵禮陟。臺評檜巖密邇
0008_0063_a_13L國都。士女絡繹。恐癈業。請徙之便。於是師行召持曰。汝其從我。至驪興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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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4_a_01L신륵사神勒寺에 이르러 입적하였으니 병진년(1376) 5월 15일이었다. 이에 회암사에 탑을 세우고 각지가 각오覺悟와 함께 3년간 탑을 지켰으나 마음이 미진하여 또 몇 개월을 머문 후에 떠났다.각지가 생각하기를, ‘내가 우리 스님을 서경西京(평양)에서 만났는데 서경 이북은 우리 스님께서 교화하신 곳이 많았다. 그러나 스님이 입적하신 뒤에는 참례할 곳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내가 장차 사리로 마음과 눈을 밝히어 한 지역의 사람들이 우리 스님을 섬기듯 사리를 모시도록 할 것이다. 더구나 묘향산은 보현普賢보살의 상주처로서 금강산 및 여러 산과 더불어 나란히 일컬어진다. 그 높이는 요동遼東을 진압하고 장백산長白山과 이웃하며 홀로 남방의 지리산과 짝한다. 우리 스님의 도와 덕은 매우 커서 천지사방을 가득 채워도 모자람이 없고, 아주 가는 티끌에 들어가도 남음이 없으니 어찌 장소를 가리겠는가. 그러나 내 눈으로 이 산의 형세를 보면 우리 스님의 풍채가 떠오르는 것을 참으로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이 산에 우리 스님의 사리를 반드시 안치하려고 하는 이유이다. 산중에 사원이 3백여 곳 있지만 꼭 안심사에 하려는 것은, 소림사少林寺의 고사故事245)가 우리들의 경책警策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각지가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지공指空의 이름은 선현禪賢이며, 부친의 이름은 만滿으로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왕이다. (셋째 왕자로 출가하여) 보명본자普明尊者246)의 법을 이어받았다. 우리 스님의 법명은 혜근惠勤, 법호는 나옹懶翁으로 부친은 선관서膳官署의 영令을 지낸 아서구牙瑞具이며, 스님은 평산 처림平山處林 선사247)의 법을 이어받았다. 선생께서 왕사王師의 부도浮圖에 쓴 명銘248)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나 이 석종에도 아울러 드러내기를 바란다.다만 윤필암潤筆菴은 일곱 군데가 있는데, 모두 선생께서 우리 스님을 위하여 기문을 지어 주었다.249) 지림志林이 금강산金剛山에, 승명勝明이 치악산雉岳山에, 각명覺明이 소백산小白山에, 각관覺寬이 사불산四佛山에, 지선志先이 용문산龍門山에, 승철勝哲이 구룡산九龍山에, 각청覺淸이 이 묘향산에 (사리를 모셨고), 묘각妙覺의 옛 터250)에는 이미 안치되어 있었다.우리 스님의 법복法服을 모셔둔 곳은 모두 아홉 군데이다. 연도燕都에서 개당開堂할 때 순제順帝251)가 하사한 가사袈裟 1벌과 마노불자瑪瑙拂子 1개가 금강산 정양사正陽寺에 있고, 공민왕이 내린 가사 1벌과 직철直綴252) 1벌 및 발우 1개가 회암사에 있으며, 가사ㆍ바리때와 불자拂子 모두 1개씩 신륵사에 있고, 가사와 불자 -
0008_0064_a_01L勒寺入寂。丙辰五月△ [283] 五日△ [284] 。△ [285] 覺悟守塔三年。情猶未已。又留數月而
0008_0064_a_02L後去。吾思吾與吾師相遇於西京。西京以北。吾師所化多矣。而師沒 [286] 之後。
0008_0064_a_03L無所瞻△ [287] 。
0008_0064_a_04L豈△△△△ [288] 其心目。使一方之人。事舍利如事吾師焉。况香山
0008_0064_a_05L為普賢菩薩住處。與金剛諸山並稱。而其高也。壓遼左鄰長白。獨△△△
0008_0064_a_06L△△△△ [289] 之大。彌六合而無所欠。入纖塵而無所餘。何擇於方所哉。然在
0008_0064_a_07L持肉眼見此山之形勢。想吾師之風彩。誠不相上下。此△△△△△△△ [290] 。
0008_0064_a_08L山中寺院三百餘所。而必於安心寺者。少林故事。吾輩警策也。又曰。指空
0008_0064_a_09L名禪賢父諱滿。摩竭提國王。嗣法普明尊者。△△△△△ [291] 官署丞 [292] 牙世 [293] 具。
0008_0064_a_10L嗣法平山處林禪師。先生銘二 [294] 師浮圖。已書之矣。於吾石鐘。幸併著之。獨
0008_0064_a_11L潤筆菴凡七所。皆為先生作△△△△△△ [295] 明於雉岳山。覺明於小白山。
0008_0064_a_12L覺寬於四佛山。志先於龍門山。勝哲於九龍山。覺清於此山。妙覺舊基是
0008_0064_a_13L已。吾師法服所△△△△△△ [296] 賜袈裟一瑪瑙拂一在金剛山正陽寺。
0008_0064_a_14L玄陵賜袈裟一直綴一鉢一在檜巖寺。袈裟鉢拂並一在神勒寺。袈裟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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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5_a_01L각 1개씩 오대산에 있다. 가사 1벌이 견암見菴에 있고, 가사와 주장자 각 1개씩 위봉사威鳳寺에 있으며, 가사 1벌이 광법사廣法寺에 있고 가사와 직철 및 주장자와 좌구 각 1개씩 이 산에 모셔져 있다.보현사普賢寺에 사리舍利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각지의 명산名山에 흩어져 있어 사부대중이 받들어 지키며 공양하는 것도 많으니, 어느 겨를에 낱낱이 열거할 수 있겠는가. 각지 스님의 뜻도 다른 데 있지 않고, 위로는 사중대은四重大恩253)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악도三惡途254)의 고통을 구제하는 데 있을 뿐이다. 주상전하께서 만만세를 누리시고 왕비께서도 함께 수를 누리시며 세자저하께서는 천수를 누리소서. 삼공三公과 육경六卿, 사대부와 서민들은 복을 더하고 재앙이 소멸되며, 태난습화胎卵濕化255) 모든 중생은 삿된 견해를 버리고 정법으로 돌아가며, 삼한三韓의 사방 경계에는 외침이 영원히 끊어지고, 시방삼세十方三世256) 모든 중생들이 보현보살의 해탈경계로 들어가는 것이 각지가 바라는 바이다.이에 나 이색은 “위대한 서원이로다.”라고 하였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하게 되어 스승을 배반하고 도리를 어기는 자가 계속 이어서 나오니, 대체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세상의 가르침을 일으켜서 신하가 임금에 대해, 자식에 어버이에 대해, 제자가 스승에 대해 모두 각지 스님이 그 스승 및 그 스승의 스승인 지공을 대함과 같이 하게 한다면 가정과 국가가 도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요, 이 도를 받들어 나간다면 천하가 태평하게 될 것이다. 사리로 말하자면 몸에서 나온 것인가? 마음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나온 곳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인가? 신 이색이 어찌하면 이 의심을 풀 수 있겠습니까. 명銘하노라.
西天指空 서천의 지공 스님과
東國懶翁 동국의 나옹 스님은
同心異跡 마음은 같지만 자취는 다른데
舍利晶明 사리는 맑고 밝아
世乃大驚 세상이 크게 놀랐으니
角立碩德 뛰어나시도다 덕 높은 두 고승이여
巍巍妙香 높고 높은 묘향산은
壓于衆岡 뭇 산들을 압도하는데
賢聖之域 이 성현들의 구역에
斸石爲鍾 돌을 깎아 종을 만들어
舍利在中 사리를 그 속에 모셨으니
流福罔極 끝없이 복을 내려주시리라
我君永年 우리 임금께서는 만수무강하시고
我妃祿延 우리 왕비께서는 복이 이어지시며
我儲毓德 우리 세자께서는 덕을 기르시고
樂職惟臣 신하들은 오직 직분을 즐거워하며
守業惟民 백성들은 오로지 업을 지키어
澤洽于國 은택이 나라를 흠뻑 적실 것이다
惟此願心 오직 이것이 원하는 마음이니
如石如金 돌과 같이 금과 같이 굳건하여
罔或少忒 혹 조금도 어긋남이 없기를
臣作銘詩 신이 명시를 지어
重在祝釐 거듭 복을 비나니
時萬時億 억만년토록 이어지리라
대명大明 홍무洪武 17년(1384) 갑자년 9월.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鐘之碑 推忠保節同德賛化功臣三重大匡韓山府院君領藝文春秋館事臣(以下欠字)257)。奉翊大夫前判典校寺事進賢錧提學臣權△△258)奉教書。今上守位之十又一年夏五月。釋覺持。自香山來。披緇衣躡屩。告近臣曰。沙門臣覺持。願有奏吾師之師西天指空。沒259)有舍利。吾師懶△NaN)利。持實感慕焉。與義州萬戶張密直侶及其室康氏。樹石鐘香山安心寺。厝二師舍利。略同神勒上院之制焉。[金*(免/免*免)]261)石示後。非文無由△262)。上命又無由也。幸為小僧入奏。近臣無為持留意者。持奔告于門下侍中曹昌寧。昌寧上言持之志勤乞。上可之。秋八月十二日。右副△263)言潘德海。傳旨于臣穡曰。香山石鐘。汝其文之石。謹妃又使撿264)校門下評理姜仁富來諭曰。吾於安心寺。為吾兒世子祈福。卿其知之。侍265)師踊躍而來曰。先生早賜吾文幸甚。予△266)。其告我所欲書者。持師曰。持事吾師。自西京廣法寺。始至正戊戌歲也。吾師為王師。住檜巖。修造殿宇。持與於方丈室之役△267)。玄陵禮陟。臺評檜巖密邇國都。士女絡繹。恐癈業。請徙之便。於是師行召持曰。汝其從我。至驪興神勒寺入寂。丙辰五月△268)五日△269)。△270)覺悟守塔三年。情猶未已。又留數月而後去。吾思吾與吾師相遇於西京。西京以北。吾師所化多矣。而師沒271)之後。無所瞻△272)。豈△△△△273)其心目。使一方之人。事舍利如事吾師焉。况香山為普賢菩薩住處。與金剛諸山並稱。而其高也。壓遼左鄰長白。獨△△△△△△△274)之大。彌六合而無所欠。入纖塵而無所餘。何擇於方所哉。然在持肉眼見此山之形勢。想吾師之風彩。誠不相上下。此△△△△△△△275)。山中寺院三百餘所。而必於安心寺者。少林故事。吾輩警策也。又曰。指空名禪賢父諱滿。摩竭提國王。嗣法普明尊者。△△△△△276)官署丞277)牙世278)具。嗣法平山處林禪師。先生銘二279)師浮圖。已書之矣。於吾石鐘。幸併著之。獨潤筆菴凡七所。皆為先生作△△△△△△280)明於雉岳山。覺明於小白山。覺寬於四佛山。志先於龍門山。勝哲於九龍山。覺清於此山。妙覺舊基是已。吾師法服所△△△△△△281)賜袈裟一瑪瑙拂一在金剛山正陽寺。玄陵賜袈裟一直綴一鉢一在檜巖寺。袈裟鉢拂並一在神勒寺。袈裟拂並一在臺山。袈裟一在見菴。袈裟杖並一在威△△△△△△282)直綴杖坐具並一在此山。普賢寺舍利無算 散在名山。四眾奉持。供養者多矣。何暇枚擧。持之志亦非他也。上報四重△△△△△283)。主上萬萬歲。后妃齊年。世子千秋。公卿士庶。益福損戒284)。胎卵濕化。出邪入正。由三韓四境。永絕外侮。△285)十方△△△△△286)之願也。持之願也287)。穡曰。大哉願也。自世教衰。倍師畔道者。比肩而繼踵。天曷故焉。使世教興臣之於君。子之於父。△△△△△△△△288)。師及其師之師指空也。則家國其庶乎。推此道也。天下平矣。若其舍利也。出於身歟。出於心歟。抑無所從出而自△△△△289)。西天指空。東國懶翁。同心異跡。舍利晶明。 世乃大驚。角立碩德。巍巍妙香。壓乎眾岡。賢聖△△290)。△△△△291)。流福罔極。我君永年。我妃祿延。我儲毓德。樂職惟臣。 守業惟民。澤洽于國。惟此願△292)。△△△△293)。臣作銘詩。重在祝釐。時萬時億294)。大明洪武十七年歲次甲子九月 日。 -
0008_0065_a_01L並一在臺山。袈裟一在見菴。袈裟杖並一在威△△△△△△ [297] 直綴杖坐
0008_0065_a_02L具並一在此山。普賢寺舍利無算 散在名山。四眾奉持。供養者多矣。何暇
0008_0065_a_03L枚擧。持之志亦非他也。上報四重△△△△△ [298] 。主上萬萬歲。 后妃齊年。
0008_0065_a_04L世子千秋。公卿士庶。益福損戒 [299] 。胎卵濕化。出邪入正。由三韓四境。永絕
0008_0065_a_05L外侮。△ [300] 十方△△△△△ [301] 之願也。持之願也 [302] 。穡曰。大哉願也。自世教衰。倍
0008_0065_a_06L師畔道者。比肩而繼踵。天曷故焉。使世教興臣之於君。子之於父。△△△
0008_0065_a_07L△△△△△ [303] 。師及其師之師指空也。則家國其庶乎。推此道也。天下平矣。
0008_0065_a_08L若其舍利也。出於身歟。出於心歟。抑無所從出而自△△△△ [304] 。西天指空。[309]
0008_0065_a_09L東國懶翁。 同心異跡。 舍利晶明。 世乃大驚。 角立碩德。 巍巍
0008_0065_a_10L妙香。 壓乎眾岡。 賢聖△△ [305] 。 △△△△ [306] 。 流福罔極。 我
0008_0065_a_11L君永年。我 妃祿延。我 儲毓德。 樂職惟臣。 守業惟民。澤洽于國。
0008_0065_a_12L惟此願△ [307] 。 △△△△ [308] 。 臣作銘詩。 重在祝釐。 時萬時億。
0008_0065_a_13L大明洪武十七年歲次甲子九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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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6_a_01L28. 검각산 보현사 조사기 釰角山普賢寺調查記28-1. 보현사의 불상을 개금하고 성전聖殿에 석가여래 16성중十六聖眾을 봉안하고 채색을 다시 한 사실(普賢寺佛像改金 與聖殿奉安釋迦如來十六聖眾 改彩事實)내가 일찍이 『서국지西國志』295)를 살펴보니 인도는 월지月氏296)의 동쪽, 곤륜산崑崙山의 남쪽에 있는데 넓이가 대체로 3만여 리요 공존하는 나라가 모두 16국이다. 그 땅에는 삼악팔난三惡八難297)이 없고 사람들은 칠전구뇌七纏九惱298)가 없으며, 장생불사長生不死하고 일체의 번뇌와 괴로움이 없다. 그러므로 극락세계極樂世界라고 한다. 그 나라의 5불五佛299)과 무량수여래의 존상이 월지 곤륜산의 바닷가로부터 우리 동방에 이르러 이곳 옛 연주(古延州) 땅, 이 절 옛 도량에 봉안한 지 지금 천여 년이 되었으나 한 번도 개금改金하지 않아 입힌 금이 벗겨졌으니, 이 때문에 산수山水도 빛을 잃어 선비와 승려들은 탄식하였다.지난해에 함께 지내던 승려 한월漢月장로가 문득 개금할 뜻을 내어 여기저기서 재물을 모아 한 달을 넘기지 않고 미타존상彌陁尊像을 개금하였다. 더불어 또한 성전에 봉안된 석가여래 양대보살兩大菩薩300)과 16성중十六聖眾301)의 오래된 칠을 벗겨내고 새로 칠하였다. 산수가 그 때문에 기뻐하고 선비와 승려들도 그로 인해 즐거워하였다. 이름이 동토에 떨치매 서국西國과 다름없이 이곳에 사는 승속들은 불로장생하며 또한 반드시 번뇌가 없어질 것이니, 이는 부처님의 힘이요 스님들의 공이 아니겠는가. 아! 후세 사람들이 이어서 다시 채색하기를 또한 오늘과 같이 한다면, 신령한 물줄기가 마르지 않아 비하毗河302)와 다투어 흐르고, 신성한 터가 길이 평안하여 하늘 끝과 나란히 높으리로다. 아! 후인들은 부디 힘쓸지어다.
가경嘉慶 23년(1818) 무인년 3월 일에 도광道廣의 문인 심암 성탁尋巖性卓이 기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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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6_a_01L○普賢寺調查記
0008_0066_a_02L普賢寺佛像改金。與聖殿奉安釋迦如來十六聖眾。改彩事實。余甞考西
0008_0066_a_03L國志。乾毒在月氏東。崑山南。幅圓則盖三萬餘里。共奉者。凡十六國。而
0008_0066_a_04L其地無三惡八難。其人無七纏九𢞓 [310] 。長生不老。無一切煩苦。故曰極樂世
0008_0066_a_05L界也。其國五佛無量壽如來尊像。自月氏崑山海際。而至吾東方。是地古
0008_0066_a_06L延州。是寺古道場奉安。于今千有餘載。而一不改金。衣金脫落。以此山水
0008_0066_a_07L以然。儒釋歎矣。歲前同住僧漢月長老。忽發改金之志。東西鳩聚。不閱月
0008_0066_a_08L而改金彌陁尊像。而兼且聖殿所奉安釋迦如來兩大菩薩。與十六聖眾。
0008_0066_a_09L脫古彩新。山水以喜。儒釋以樂。名鎮 [311] 東土。無異西國也。居此地僧俗。長生
0008_0066_a_10L不老。亦無煩苦也必矣。茲以非佛之力歟。師之功歟。噫。後之人嗣以改彩
0008_0066_a_11L之。亦如今日。則靈流不渴。與毗河而爭流。神基永固。並極天而比峻。咨焉。
0008_0066_a_12L後尚勉之哉。
0008_0066_a_13L嘉慶二十三年戊寅三月 日。道廣門人 尋巖性卓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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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7_a_01L산인散人303) 강문해康文海가 글씨를 쓰다.28-2. 검각산 보현사의 불상에 금을 다시 입히고 16성중을 다시 칠하고 각부의 탱화를 그린 사실의 기록(釰角山普賢寺佛像改金 十六聖眾改彩 各部幀畫事實記)듣건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시방보살十方菩薩은 모두 험한 길의 길잡이요 고해苦海의 뱃사공이다. 뱃사공 중에서도 으뜸 뱃사공이요 길잡이 중에서도 높은 스승이신 분은 오직 미타彌陁와 석가釋伽 두 존상尊像이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처는 지혜의 등불이 되어 어두운 길을 보여주고 크게 밝혔다. 법法은 자비의 배이니 고해에 깊이 빠진 이들을 구제해준다. 만약 불법佛法에 의지하지 않으면 어찌 인천人天을 이롭게 하겠는가.아름답도다. 철옹鐵瓮의 남쪽, 살수薩水의 북쪽에 검각釰角이라는 산이 있고, 보현普賢이라는 절이 있으니 미타존상과 석가여래, 16성중聖眾을 봉안한 법계法界이다. 옛 연주(古延州)304)에 도량을 창설한 이후 지금까지 천여 년이 되었다. 세월이 오래 되고 성상星霜이 많이 바뀌어, 불상은 금옷이 벗겨진 채 앉아있고 성중은 칠이 벗겨진 채 서 있는데, 일은 크고 힘은 미약하니 매번 아쉬운 탄식을 할 때가 있었다.본사 승려 준俊, 각覺 두 선사가 먼저 2백 냥을 보시하여, 대중과 한 마음으로 모의하여 여기저기서 구해 모아서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완성하였으니, 이는 누구의 덕분인가. 부처님의 은택인가. 산신山神이 도와주신 덕분인가. 단월檀越이 돌보아 보호해 준 덕택인가. 때가 사람을 기다리고 사람이 때를 기다렸다고 할 만하니, 솥의 세 발과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도다. 영원히 변치 않을 공으로 더불어 극락에서 최고의 원만한 깨달음(무상보리無上菩提)을 함께 이루리니 비하毗河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다시는 얼룩지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부족하고 좁은 소견이나 시주의 향기로운 이름을 아래에 벌여 적는다.
동치同治305) 3년(1864) 갑자년 신정월 만일滿日에
인택印澤의 문인 학송 의경鶴松宜敬이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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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7_a_01L散人康文海書。
0008_0067_a_02L○釰角山普賢寺佛像改金。十六聖眾改彩。各部幀畫事實記。
0008_0067_a_03L盖聞三世諸佛。十方菩薩。盡是儉 [312] 道導師。苦海舟師。而舟師中舟 [313] 。導師中
0008_0067_a_04L尊師。其惟彌陁與釋伽兩尊像。然則何以故。佛為慧燭。示昏衢而大明。法
0008_0067_a_05L是慈航。濟苦海之深溺。若不依佛法。豈非 [314] 利益人天。美哉。鐵瓮之南。薩水
0008_0067_a_06L之北。有山曰釰角。有寺曰普賢。彌陁尊像與釋迦如來十六 聖眾。奉安
0008_0067_a_07L之法界。粵自古延州剏設之道場。迄今千有餘禩。歲月屢圓。星霜剝 [315] 換。佛
0008_0067_a_08L像脫金衣而坐。聖眾剝彩繪而立。事鉅力微。每有欠歎之時哉。本寺僧俊
0008_0067_a_09L覺兩禪師。先施二百緍兩。而與大眾同心募 [316] 議。東西鳩聚。不閱月而成就。
0008_0067_a_10L是誰之德耶。覺皇上之澤那 [317] 。山神補佑之德耶。檀越顧護之澤耶。可謂
0008_0067_a_11L時待人人待時。如鼎之三足。如車之二輪。無杇 [318] 之功。同極樂。共成無上。與
0008_0067_a_12L昆 [319] 河齊名。不復点。余亦不贍管見。施化芳御 [320] 列于左。
0008_0067_a_13L同治三年甲子新正月滿日。
印澤門人鶴松宜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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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8_a_01L추파䳡坡의 문인 나은 성임懶隱性稔이 글씨를 쓰다.
∎비문碑文. 탑에는 글자가 없음.晦迹雙脉定古今 자취 숨긴 두 맥이 예나 지금이나 안정되었으니
金鎞刮膜人天眼 금비로 안막 긁은306) 인천의 안목307)이도다
皎皎隱月碧波深 밝디밝은 달을 감춘 푸른 물결은 깊고
寶劒當門佛祖心 문 앞의 보검은 부처와 조사의 마음이라
納納乾坤胸裡藏 넓디넓은 하늘과 땅 가슴속에 간직하니
嗚呼不泯△△外 오호라 ..... 밖으로 사라지지 않으리
重重刹海掌中斂 무한히 겹치며 펼쳐진 세계를 손바닥에 거두니
當寂為先覺樹陰 임종할 때 먼저 깨달음의 나무에 그늘을 드리웠도다308)
(위는) 벽파당碧波堂 신감信堪대사의 석종石鍾.옹정雍正 7년(1729) 기유년 3월 20일에 석종을 세우다.
∎비문. 탑에는 글자가 없음.
경화당慶華堂 성준性睿대사의 비
제자질弟資秩 :
약눌 목열若訥目悅
묘각 혜원妙覺惠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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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8_a_01L䳡坡門人懶隱性稔書。
0008_0068_a_02L碑 文 塔無文字。
0008_0068_a_03L晦迹雙脉定古今。 金▼(錕-日+白) [321] 刮膜人天眼。
0008_0068_a_04L皎皎隱月碧波深。 寶釰 [322] 當門佛祖心。
0008_0068_a_05L納納乾坤胸裡藏。 嗚呼不泯△△外。
0008_0068_a_06L重重利 [323] 海掌中檢 [324] 。 當寂為先覺樹陰。
0008_0068_a_07L碧波堂信堪大師之石鍾。
0008_0068_a_08L雍正七年己酉三月二十日立鍾。
0008_0068_a_09L碑 文 塔無文字。
0008_0068_a_10L慶華堂性睿大師之碑。
0008_0068_a_11L弟 資 秩
0008_0068_a_12L若訥目悅。
0008_0068_a_13L妙覺惠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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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69_a_01L옹정雍正 4년(1726) 병오년 3월 20일에 비를 세우다.
∎탑塔
도광道光 3년(1823) 2월 일, 정암당靜菴堂.
함풍咸豐 2년(1852) 4월 일, 영암당寧菴堂.28-3. 검각산釰角山 보현사普賢寺 응진전應真殿 중수 시주 권선문 釰角山普賢寺應真殿重修施主勸善文한량없이 큰 자비의 옛글은 불가佛家의 게송 법문이라, 한량없는 즐거움을 위하여 지금 군자를 보도다. 사람들이 널리 보시하여 극락도량極樂道場에 8만 법문이 널리 펼쳐졌으니, 여러 장경藏經 속의 광명보실光明寶室은 높이가 3천을 넘는다. 육계六界309)에 이루어지지 않은 기원이 없고 정성은 감응하는 바가 있으니, 큰 전각의 창건은 많은 어진 단월들에게 의지하였도다. 검각산釰角山의 동쪽에 터를 정하니 신령한 광채가 밝게 드러나고, 살수薩水의 북쪽에 자리를 잡으니 신이한 덕이 드러나 떨쳤도다. 부귀와 자손 지극한 정성 있으면 볼 수 있고 장수며 강녕이며 그 어떤 복도 없어지지 않도다. 신령이 굽어살피니 누가 찬탄하지 않겠는가.도를 이루려고 생각하고 문득 특별히 설립하여 지금까지 천만년이 어느덧 지났다. 비에 씻기고 바람에 닳아 마룻대와 들보가 쉽게 썩어버릴까 염려되고, 세월이 -
0008_0069_a_01L雍正四年丙午三月二十日。立碑。
0008_0069_a_02L塔
0008_0069_a_03L道光三年二月 日。
0008_0069_a_04L靜菴堂。
0008_0069_a_05L咸豐二年四月 日。
0008_0069_a_06L寧菴堂。
0008_0069_a_07L釰角山普賢寺應真殿重修施主勸善文
0008_0069_a_08L無量大慈古文。釋氐 [325] 家之偈法。 為善 [326] 量樂。今見君子。人之普施。 極樂
0008_0069_a_09L道場。廣開八萬。 諸藏之內。 光明寶室。高出三千。六界之中。 願無不
0008_0069_a_10L成。誠有所感。 粵以大殿之剏建。 掎 [327] 乃檜 [328] 越之眾仁。 基尊 [329] 釰角之東。
0008_0069_a_11L靈光昭著。 座臨薩水之北。神德闡揚。 富貴兮子孫兮。有至誠則可見。
0008_0069_a_12L壽命也康寧也。其何福之不除。 神所降監。 孰不欽歎。言念成道。
0008_0069_a_13L菴 [330] 之特設。 今千萬年之菴 [331] 過。 雨洗風磨。棟樑易致襄杇 [332] 之患。 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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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0_a_01L흘러 섬돌과 벽도 기울어지고 무너짐을 면하기 어렵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사찰의 승려들이 매번 지키고 보호할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였고, 총림의 선객들 또한 어찌 보수하고픈 마음이 없었겠는가.이 신묘년(1891) 봄에 이르러 중건 공사를 일으켰으니 고해苦海에 깊이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문 앞에 자비의 배가 이르렀고, 어두운 길에 큰 빛을 밝히기 위하여 뜰에 지혜의 등불을 설치하였다. 장인들이 때가 되자 와서 일하니 과연 음즐陰隲310)의 공이요, 법사가 날을 가려서 터를 닦으니 신명의 도움 아님이 없도다. 이에 선善을 권한 도리를 가지고 인仁을 베푼 마음을 그윽히 우러르며 화려한 편액을 나타내 한 편을 엮었으니, 후인들도 뜻을 함께하여 이어서 수리하도록 권하노라.
광서光緒 17년(1891) 신묘년 5월 하순에 전주全州 사인士人 최국항崔國恒이 적고
유학幼學311) 김용삼金用三이 글씨를 쓰다.29. 읍내면邑內面 사찰의 유래물由來物 조사기(邑內面寺剎由來物調查記)∎천주사天柱寺
축성유적비문築成遺跡碑文 1좌坐.
석탑石塔 1좌.
부도浮屠 1좌.
시주 고병施主古屏 1좌.
개금 현판改金懸板 1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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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0_a_01L流月換。砌壁難免傾頹之歎。 所以法境之緇徒。每有衛護之道。 抑亦
0008_0070_a_02L叢林之禪客。詎無補葺之心。迨茲辛卯之春。 庸供重複 [333] 之舉。 濟苦
0008_0070_a_03L海之深溺。門臨慈航。 示昏衢之大明。庭設慧燭。 都匠及時赴役。果是
0008_0070_a_04L陰隲之功。 法師卜日開基。無非神明之助。 肆將勸善之誼。 𥥙 [334] 仰埀
0008_0070_a_05L仁之心。 表厥華額。 為綴一篇。 勉爾後人。 同志嗣葺。
0008_0070_a_06L光緒十七年辛卯 端陽下澣。全州士人崔國恒譜 [335] 。
0008_0070_a_07L幼學金用三書。
0008_0070_a_08L邑內面寺剎由來物調查記
0008_0070_a_09L天柱寺
築城 [336] 遺跡碑文 一坐。
0008_0070_a_10L石塔 一坐。
0008_0070_a_11L浮屠 一坐。
0008_0070_a_12L施主 古屏 一坐。
0008_0070_a_13L改金懸板 一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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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1_a_01L 중수 현판重修懸板 3좌.
풍월 현판風月懸板 4좌.
∎서운사捿雲寺
시주 망혼책施主亡魂冊 1권卷.
불경佛經 12권.
소장축訴狀軸 20장張.
불향답 시주 고비佛享畓施主古碑 1좌.
부도浮屠 4좌.
∎학귀암鶴歸菴
중수 현판重修懸板 2좌.
∎동관암東觀菴
중수 현판重修懸板 1좌.30. 약산 서운사의 오래된 비(藥山捿雲寺古碑)약산藥山에 있는 서운사捿雲寺는 오래된 절이다. 장준壯俊 법사法師가 일찍이 전해 들은 말로 불상에 대해 말하기를, “개금할 때 복장腹藏312)의 서적이 나왔다.”라고 하였다. 원나라 순제順帝의 지정至正 을유년(1345)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다만 대웅전과 좌우의 선승당禪僧堂이 있었을 뿐이다.벽취碧翠라는 이가 있었으니 본성은 백씨白氏이며 영변寧邊 사람이다. 13세에 출가하여 뜻을 오로지 교화敎化에 두었다. 강희 21년(1682) -
0008_0071_a_01L重修懸板 三坐。
0008_0071_a_02L風月懸板 四坐。
0008_0071_a_03L捿雲寺
施主亡魂冊 一卷。
0008_0071_a_04L佛經 十二卷。
0008_0071_a_05L訴狀軸 二十張。
0008_0071_a_06L佛享畓施主古碑 一坐。
0008_0071_a_07L浮屠 四坐。
0008_0071_a_08L鶴歸菴
重修懸板 二坐。
0008_0071_a_09L東觀菴
重修懸板 一坐。
0008_0071_a_10L○藥山捿雲寺古碑
0008_0071_a_11L藥山之有捿雲寺古也。壯俊法師嘗言佛像於傅 [337] 言曰。改金時。以腹藏書
0008_0071_a_12L放之。元順帝至正乙酉歲。創營云爾。其始也。但有大雄殿及左右禪僧堂
0008_0071_a_13L而已。有碧翠者。本姓白氏。寧邊人也。年十三出家。專意化門。於康熙二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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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2_a_01L임술년에 섭청루躡青樓를 지었고, 을유년(1705)에 불상을 개금하였다. 또 무자년(1708)에 도희道熙, 계진戒真 등의 사람들과 더불어 불전에 공양할 무상자無常粢를 모으는데 장차 천주사天柱寺 승려에게 보시를 권유하려던 차에, 석훈碩勳 노덕이 먼저 논을 보시하여 여러 사람들을 인도하니 달려와 응한 자가 10여 집이었다. 마침내 따로 전각 하나를 지었으니 전각 이름을 향로香爐라고 하였다. 그 규모는 대체로 묘향산 보현사 향불전香佛殿을 실제 본보기로 하여 따랐다.벽취 등이 또 생각하기를, 세월이 흐르면 사적이 희미해질 것이므로 큰 석비石碑를 하나 세우고자 하여 나에게 사실을 기록해 주기를 청하니,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다시 생각하였다.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313) 동안 많은 선행을 닦아 복과 지혜가 구족된다는 불교의 설을 믿는 자가 천하의 절반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 도道를 배우지 않은 자는 또한 그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절을 건립한 세월과 화주化主 등의 이름만 기록할 뿐이다.
강희康熙 48년 기축년(1709) 4월 일
성균관 생원 길인화吉仁和가 짓다.31. 천주사 고적 비문 天柱寺古蹟碑文우리 태종대왕 16년(1416)인 영락永樂 병신년에 도안무사都按撫使 신공辛公 유정有定314)이 국왕의 교지를 받들어 이 성을 쌓았다. 3만 6백 명의 인원으로 27일간 공사를 하여 완성하였는데 둘레가 31리였다. 상국相國 황희黃喜가 글을 올려 연산延山과 무산撫山 두 고을을 합하여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삼은 사실이 지리지에 상세히 적혀 있다.315)애석하다. 269년 동안 무너진 채로 있었으나 중수한 사람이 없었으니 식자들이 탄식하였다. 금상(숙종) -
0008_0072_a_01L二 [338] 年壬戌。造躡青樓。乙酉改金于佛像。又於戊子。與道熙戒真人等。斂於
0008_0072_a_02L供佛之無常粢。將勸善於天柱寺僧。碩勳同知先施畓。為諸人倡。▼[(麩-夫+羊)-來+(素-糸)] [339] 應者
0008_0072_a_03L十餘家。遂別構一殿。殿名曰香爐。其規模。大抵實遵妙香山普賢寺香佛
0008_0072_a_04L之義 [340] 也。碧翠等又慮。夫歲月移易。事迹漫漶。造大一石碑。要余以書事。固
0008_0072_a_05L辞不得。因復惟念。夫佛氏歷三剏 [341] 修萬行。福慧其 [342] 足之說。享信者半天下。
0008_0072_a_06L然自非學其道者。亦不能鋪其事也。是以但錄營蘭若歲月與化主等名
0008_0072_a_07L氏焉。
0008_0072_a_08L康熙四十八年己丑四月 日。
成均生員吉仁和撰。
0008_0072_a_09L○天柱寺古蹟碑文
0008_0072_a_10L惟我太宗大王十六年。永樂丙申。都按撫使辛公有定。奉 王旨築斯城。
0008_0072_a_11L以三萬六百人。役二十七日而完。周三十一里。黃相國喜上章。合延撫二
0008_0072_a_12L州。為大都護府。詳在地誌。惜乎。廢墜二百有六十九年。無人修葺。識者歎
0008_0072_a_13L之。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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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3_a_01L 8년 임술년(1682) 겨울에 용계군龍溪君 이광한李光漢316)이 이곳으로 부임해 와서 흔쾌히 중수 공사를 임무로 삼아 이듬해 계해년(1683) 8월에 본부의 민병民兵 3천으로 약산藥山 아래에 새 성을 별도로 쌓았으니, 대개 약산에 산사태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갑자년(1684) 봄에 또 옛 성을 고쳐 쌓고자 하니 관찰사 신공申公 익상翼相이 진실로 찬성하여 운산군수雲山郡守 이집李諿, 희천熙川군수 장한상張漢相, 태천현감泰川縣監 한신철韓信哲 등에게 힘을 모으게 하니 네 읍의 군사를 합쳐 1만 4백 명이었다. 2월 11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24일 만에 공사를 마쳤으니 어찌 사람의 힘이었겠는가. 또 북산北山에 내성內城을 증축하니 약산과 더불어 우열을 겨루었다. 약산의 위아래에 원수대元帥坮를 세웠는데 기둥은 모두 쇠를 사용하였다. 봉우리 아래에는 천주사 80여 칸과 향일헌向日軒, 망월대望月臺를 지어두고 동서로 새 성을 서로 돕게 하였으며, 무쇠로 홍예문虹霓門을 만들었다. 또한 대장군포大將軍砲인 양의포兩儀砲와 입구를 지키는 크고 작은 포 모두 303위位를 주조하였다. 대장군포는 삼군암三軍巖에 걸어두었는데 소리가 백 리에 진동하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웅장한가.관찰사의 장계狀啓로 부사府使를 특별히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급시켰고 운산군수 이집, 중군中軍 이원형李元亨, 군관軍官 허수許琇, 임진표林振彪, 양극도梁克渡, 유상한柳相漢 등은 모두 1계급을 올려주어 그 노고를 치하하였다. 돌에 새겨 사실을 기록하여 장차 영원히 전하려 하였으나 재력이 따르지 않아 사람들이 이를 개탄하였는데, (병마兵馬)절도사節度使 유공柳公 비연斐然이 듣고서 기꺼이 도와주니 어찌 후인들을 격려하고 권면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아울러 기록한다.
가선대부 행 평안도 관찰사 겸 순찰사嘉善大夫行平安道觀察使兼巡察使 유상운柳尚運이 기록하고, 본부本府의 유학幼學 김구성金九成이 글씨를 쓰다. -
0008_0073_a_01L上九 [343] 年壬戌冬。龍溪郡 [344] 李光漢受任于茲。慨然以修舉為任。越明年癸亥
0008_0073_a_02L仲秋。用本府民兵三千。別築新城于藥山之下。盖以藥山有簣 [345] 汁之憂故
0008_0073_a_03L也。甲子春。又欲改築舊城。則方伯申公翼相。實賛成之。使雲山郡守李
0008_0073_a_04L諿。熙川郡守張漢相。泰川縣監韓信哲等并力。為四邑軍合一萬四百。始
0008_0073_a_05L於二月十一日。第二十四工告訖。豈人力耶。又於北山增築內城。與藥山
0008_0073_a_06L為雌雄焉。藥山上下建元帥坮。柱皆用鐵。峰下創置天柱寺八十餘間。向
0008_0073_a_07L日望月。東西相翼新城。鑄鐵為虹霓。且鑄大將軍砲兩儀砲。大小𬒑口。並
0008_0073_a_08L三百三位。而大將軍砲。則掛三軍巖▼[(麩-夫+羊)-來+(素-糸)]震百里。何其壯也。用方伯狀。府使
0008_0073_a_09L特陞資憲。雲山郡守李 諿。中軍李元亨。軍官許 琇。林振彪。梁克渡。柳
0008_0073_a_10L相漢等。並加一階。重其勞也。勒石紀實。將以傳不杇。而財力告絀。人用興
0008_0073_a_11L慨。節度使柳公斐然聞之。樂為助。豈非激勸後人子乎。茲用並誌。
0008_0073_a_12L嘉善大夫行平安道觀察使兼巡察使柳尚運記。
0008_0073_a_13L本府幼學金九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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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4_a_01L숭정崇禎 기원 57년 갑자년(1685)에 세우다.
뒷면에 글자를 새겼다. “동해東海의 송자宋子가 양서兩西317)에 와서 유람하며 고조선의 옛 자취를 궁구하여 살펴보고, 제도의 극처를 구한 것을 살펴보고 이곳을 거쳐서 태백산太白山으로 가다. 때는 무인년 6월이다.”32. 명도암의 편액(明道菴扁額)구봉산 명도암九峰山明道菴은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들이 없는 데에 위치해 있어서, 승려 무리는 뜬구름같이 아침에 모였다가 저녁이면 흩어졌고, 불상의 자리는 빈 단壇이 되어버린 채 비바람이 어지러이 들이침을 면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중생들은 형언키 어려운 상황을 보고 한탄하지 않는 날이 없었고, 따라서 식자들이 탄식한 지 오래되었다.나 또한 산을 유람하는 나그네로서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는데, 마을의 어른 김공金公과 함께 모의하여 마음을 모아 암자의 무너진 곳을 중수하고, 재물을 내어 관음金觀, 지장地藏 두 보살상과 후불탱의 신상神像 및 여러 존상尊像들을 개금하여 새롭게 하였다. 암자의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래와 같이 이르노라.저 묘향산의 구불구불 흘러온 맥이 여기에 이르러 이 산의 영명함이 되었고, 가지를 나누고 줄기를 쪼개어 또한 철옹鐵瓮318)에 모여 공고하게 되었으니, 누가 이 암자의 신령하고 밝음을 공경하지 않겠는가. 가장 특별한 것은 재물을 모으고 정성을 다한 이 동네의 여러 사람들이다. 내가 비록 재주가 없으나 -
0008_0074_a_01L崇禎紀元五十七年甲子立。
0008_0074_a_02L後面刻字。
0008_0074_a_03L東海宋子。來
0008_0074_a_04L遊兩西。究觀
0008_0074_a_05L三 [346] 朝鮮舊蹟。
0008_0074_a_06L考其求制度之所極。歷此以往太伯山。時戊寅六月也。
0008_0074_a_07L○明道菴扁額
0008_0074_a_08L九峰山明道菴。亦處世遠。人亡之中。僧道 [347] 浮雲而朝聚暮散。佛坐空壇。未
0008_0074_a_09L免風雨之紛灑。為此眾生胡無日覩難狀之悵恨。是以識者之歎久矣。余
0008_0074_a_10L亦山遊之客。偶入于斯。與里內父老金公謀議。同心重修菴宇之頹處。施貨
0008_0074_a_11L改金觀音地藏兩位後佛幀神像諸位尊像而一新。菴事於不冀 [348] 之。之下
0008_0074_a_12L曰。彼香山逶迤之脉。中到為是山之靈明。分枝擘脉。亦作鐵瓮之羣鞏固。
0008_0074_a_13L孰不敬斯菴之靈明也。最所特立者。鳩財殫誠。洞內僉員。故余雖不才。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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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5_a_01L사적을 대략 기록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만세토록 전할 뿐이다.
도광道光 7년(1827) 정해년 6월 일에
풍암豊菴의 문인 송악 장율松岳壯律이 기록하다.33. 만합사 편액 萬合寺扁額행관찰사 겸도순찰사 관향사行觀察使兼都巡察使管餉使가 상고相考하라고 한 일은 다음과 같다.이번에 도착한 비변사備邊司의 관문關文에 임금께 아뢰어 받은 하교가 있었다. 이번 4월 20일에 대신大臣과 비국당상備局堂上319)이 대궐에 입시하였을 때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가 마침 말이 나온 김에 감히 이렇게 아뢰었다.“관서의 묘향산은 대여섯 개 읍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크고 작은 사찰이 그 안에 늘어서 있는데, 영역이 매우 넓은데도 평소 의심스러운 무리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사시를 당했을 때는 예로부터 이름난 승려들이 나랏일을 위해 힘을 다 바친 자들이 많았습니다. 신이 영변에 부임해 있을 때 묘향산의 사찰에서 일찍이 한 장의 종이도 받아 쓴 일이 없었습니다. 근래에 지역紙役320)이 크고 중하니 얼마 되지 않는 부유한 승려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각 사찰의 승려들은 이로부터 떠돌아다니게 되어 큰 사찰을 제외한 작은 사찰은 거의 다 텅 비어 버렸습니다. 승려가 있고 없는 것이 그다지 절박하고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매우 깊이 헤아려보고 논하자면, 명산의 깊고 넓은 곳에 승도들이 자리잡고 사는 것은 명산을 지키는 갸륵한 일이며, 유사시에는 반드시 그 뜻을 다함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역紙役을 혁파한 뒤에 그들을 전처럼 편안히 살게 하면, 이후로 힘을 다하게 하는 방도가 될 것 같습니다. 황공하옵게도 감히 아뢰었나이다.”주상이 말씀하시기를, “공조참판이 전에 영변을 지날 때 본 것을 진술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니 공조참판 윤기동尹蓍東이 말하였다. “우리 동방의 명산으로는 묘향산이 -
0008_0075_a_01L其 [349] 事蹟。流芳名於萬世爾。
0008_0075_a_02L道光七年丁亥六月 日。
豊菴門人松岳壯律記。
0008_0075_a_03L○萬合寺扁額
0008_0075_a_04L行觀察使兼都巡察使管餉使為相考事。節到付備邊司關內。節啟下教。
0008_0075_a_05L今四月二十日。大臣備局堂 [350] 引見入 侍時。行知中樞府事。適因言端。敢
0008_0075_a_06L此仰達矣。開 [351] 西之妙香山。處在五六邑之中。山高谷深。大小寺剎。列在其
0008_0075_a_07L間。幅圓甚廣。常時可疑之徒。不能接迹。若當有事之時。自古名僧。為國事
0008_0075_a_08L効力者多矣。待罪寧邊時。香山寺剎。曾無一張紙地捧用之事矣。近來則
0008_0075_a_09L紙役高重。畧干富僧。並皆敗散。各寺諸僧。從此流離。大剎外小剎。幾盡空
0008_0075_a_10L虛。僧之有無。似或不關緊。以深遠之慮論之。則名山深廣之處。僧徒之奠
0008_0075_a_11L居。為守名山之盛事。而有事則必有其効意。則無前紙役革罷後。使之依
0008_0075_a_12L前奠接。似為日後効力之道。惶恐敢啟。
0008_0075_a_13L上曰。工叅曾經寧邊。亦陳所見可也。工曹叅判尹蓍東曰。我東名山妙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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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6_a_01L최고입니다. 그 처음에는 신령하고 기이한 자취를 드러내었고, 그 이후에는 승려들이 충성을 다하여 모두 불후의 고적古蹟이 되었으니, 참으로 봉우리와 골짜기며 샘물이나 폭포가 나라 안에서 절경일 뿐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머물고 있는 승려가 드물고 사찰은 쇠잔해져 산중의 여러 암자들이 모두 비었습니다. 지역紙役에 응한 지 10년도 안 되었는데 온갖 폐단이 나오니 그 형세가 지탱하기 어려워 감영에서 분리시켰습니다.본관에서 기준대로 매긴 값을 지급하면 받아쓰는 것이 승려들인데, 법규에서 정한 외에 자체적으로 쓰는 것도 많은데다 어느 때는 중앙의 관청으로부터 경서經書 인출과 관련하여 갑자기 독촉하니 때를 맞추어 종이를 떠내느라 닥나무를 사서 상납하기에 이르러서는 써서 없어지는 돈이 배가 되니 폐단이 매우 심합니다. 만약 그 값이 원래부터 마련되어 있고 본래 넉넉하다면 비록 먼 읍에서 생산되는 지품紙品을 사서 써도 꼭 날짜가 늦지는 않고 비교하면 도리어 빠릅니다. 이러나저러나 혁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신道臣(관찰사)에 분부하여 종이를 뜨는 역을 영원히 면제하고, 바치지 말라는 금령을 엄히 세워서 조금이나마 짐을 덜어줄 여지를 만든다면, 점차 승려들을 모으는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상이 말씀하시기를, “경들이 아뢴 바에 따라 영을 내려서 영원히 폐지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요사이 책을 인쇄하는 일이 없기에 매우 괴이하여 물어보니, 옥당玉堂(홍문관)에서 몇 해 전에 경서를 한번 새로 찍었다고 하고 내각도 또한 그렇다고 하였다. 그런데 해당 고을이 공무를 빙자하여 사적 이득을 꾀하는 폐단이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후로는 내각, 외각外閣, 옥당, 춘방春坊(세자시강원)은 물론이거니와 영변 고을에서 경서 인출과 책 종이를 납입하게 한321) 절목을 모두 혁파한다.조정에서 이와 같이 조치를 내린 뒤에 본도, 본읍에서 만약 한 장의 종이라도 구습에 따라 강제로 거두는 일이 있다면 해당 수령은 법 외에 염민율斂民律322)로 다스릴 것이며, 이를 타이르고 경계하지 않은 도백道伯(관찰사)도 -
0008_0076_a_01L為最。厥初靈異之著迹。後來緇衲之効忠。俱為不杇 [352] 之古蹟。非真峰壑泉
0008_0076_a_02L瀑之絕勝於國中而已。今則居僧鮮少。寺剎凋殘。山中諸菴十空。紙役之
0008_0076_a_03L應。未滿十年。弊端百出。其勢難支。離於監營。本官之給準價。捧用者僧輩。
0008_0076_a_04L則自多科外之耗費。而或自京上司。有經書印出之關。則不時督責。趂期
0008_0076_a_05L浮出。自貿楮。至上納。浮費倍入。為弊滋甚。若其價本磨鍊。本自優厚。雖貿
0008_0076_a_06L用於所產遠邑紙品。則未必遜日子。則較反速。以此以彼。革罷為好。分付
0008_0076_a_07L道臣永蠲浮紙之役。嚴立冐 [353] 捧之禁。以為一分息肩之地。則似有漸次募
0008_0076_a_08L聚之效矣。
0008_0076_a_09L上曰。依鄉 [354] 等所奏。自令永罷可也。仍
0008_0076_a_10L傳曰。近無印冊之事。甚恠訝問之。則玉堂年前經書一番新印。內閣亦然
0008_0076_a_11L云。然則該邑安知無馮公營私之弊。此後毋論內閣外閣玉堂春坊。寧邊
0008_0076_a_12L一邑。經書印出。冊紙卜定一節。並為革罷。朝家如是申飭之後。本道本邑。
0008_0076_a_13L如以一張紙地。因循侵徵之事。該守令。施以法外斂民之律。不飭之道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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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7_a_01L엄중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폐단을 없앴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암행어사가 갈 때 또한 마땅히 살필 것이다. 이 조목은 묘당廟堂(의정부議政府)으로 하여금 관서(평안도) 어사가 가지고 간 절목에 보태어 기록하게 하고, 이어서 이 뜻을 낱낱이 들어서 조치를 취하게 하여, 해당 도에서 실효가 있게 하라.”라고 전교하였다.전교 내의 일의 뜻을 받들어 살펴서 시행하라. 서쪽 땅은 닥나무가 생산되는 곳이 아닌데 종이를 뜨고 책을 인쇄해야 하니 점점 더 승려들이 달아나고 흩어지게 되어 사찰이 텅 비어버렸다. 전하는 말을 들으면 누가 근심하며 탄식하지 않겠는가. 지금 상신相臣이 아룀으로써 영구히 폐지하라고 전교하셨으니, 지금부터 승도들의 자산인 지통紙桶323)과 지염紙簾324) 외에 이른바 별도로 뜨는 지염은 모두 부수어서 책을 인쇄할 종이를 일절 떠내지 말아 쌓인 고질병을 제거하면, 서울의 관청에서 책을 인쇄하는 것과 관련해 핑계 대는 일이 어찌 다시 일어날 염려가 있겠는가.양영兩營(병영兵營과 수영水營)과 본관本官이 비록 잘못을 답습하여 얻어 쓴 경우가 있었다 해도, 다시는 한 장의 종이라도 금령을 어기고 침책侵責325)하지 말아서 받들어 지킬 방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횡렴橫斂326)의 무거운 형벌은 마땅히 암행어사의 염찰廉察327)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니, 미리 타이르고 권면하여 미리 예고된 법령328)을 따라 자작지얼自作之孼329)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장차 이 성상의 분부를 산의 내외에 거주하는 승려들의 처소에 널리 알리고, 또한 즉시 판목에 새겨서 벽에 걸게 하여 쇠나 돌에 새긴 법전法典과 같이 지키되, 거행한 일의 진행 경과를 즉시 장계를 써서 보고하라는 일로 관문을 보내었다. 지금 이 묘향산에 있는 절의 승려들의 지역紙役을 영구히 폐지하라는 명은, 실로 조정에서 승려들을 품어 보호하여 명산을 수호하게 하는 덕을 베풀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이 관문 내의 말뜻을 하나하나 유시諭示하였으니 경역 내외의 산승들로 하여금 가엾게 여겨 구휼하려는 -
0008_0077_a_01L難免重勘。蘇弊有無。來頭繡衣之行。亦當考察。此欵令廟堂添錄關西御
0008_0077_a_02L史賚去節目。仍令枚舉此意。措辭行會。該道俾有實効事。
0008_0077_a_03L傳教教是置。傳教內事意。奉察施行為乎矣。西土非產楮之地。浮紙印
0008_0077_a_04L冊。滋以致緇衲逃散。寺剎之空虗。傳說所及。孰不憫歎。今仍將 [355] 臣之提奏。
0008_0077_a_05L乃下永革之 傳教教是乎 [356] 如乎。從今以往。僧徒資業之紙桶紙簾外。所
0008_0077_a_06L謂別浮紙簾。並皆毀破。印冊之紙。切勿浮出。以蠲積痼之瘼。為稱京司印
0008_0077_a_07L冊之關。豈有更發之慮。而兩營與本官。雖或有襲謬取用者。更勿以一張
0008_0077_a_08L紙。冐禁侵責。以為奉承之道。而橫斂之重律。决當此照繡行之廉察。預設
0008_0077_a_09L飭礪。須遵先甲之令。母 [357] 犯自作之倖 [358] 。為稱將此聖教。布諭一山內外居僧
0008_0077_a_10L處。又令材木揭諸壁。守之如金石之典為乎矣。舉行形止。即為狀聞事開 [359]
0008_0077_a_11L是置有亦。今此妙者 [360] 山寺僧紙役永罷之 命。寔出朝家懷保緇徒。守護
0008_0077_a_12L名山之 德意教是如乎。以此關內辭意。一一有諭。使境內內外山僧。咸
0008_0077_a_13L知軫恤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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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8_a_01L성은을 모두 알게 하라.이후로는 양영과 본관은 물론이거니와 종이 뜨는 역役과 관계된 모든 일은 일절 혁파하고, 승도 자산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 이른바 별도로 붙는 지통紙桶과 지염紙簾은 모두 부수라는 관문 1통을 또한 즉시 목판에 새기어, 내외 산의 각 사찰에 나누어 걸어서 변치 않는 전례로 삼게 하되, 스스로 운영함에 마땅히 별도로 살피고 단속하는 방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혹 잘못된 습관을 답습하여 다시 침책侵責하는 폐단이 있으면, 드러나는 대로 장계狀啓로 보고하여 죄를 따지기를 결코 그만둘 수 없으니, 예사로이 여기지 말고 각별히 유념하여 봉행할 것이며, 앞뒤의 사정을 먼저 서면으로 보고할 일이다.
건륭 51년(1786) 5월 일
지부知府330) 전문현田文顯이 삼가 쓰다.34. (묘향산 보현사)34-1. 묘향산 보현사 사적기 妙香山普賢寺事蹟記기술하노니, 동국 3백여 주 땅의 지세와 풍경을 논한다면 반드시 묘향산의 절 8만 9난야蘭若를 이르는데, 신령하고 기이한 것으로 말하면 보현사만한 것이 없다. 산봉우리 높이 치솟고 숲과 골짜기 굽이진 것은 천태산天台山331)의 신선 골짜기와 비슷하고, 수많은 폭포가 우렁차게 울리며 산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영축산靈鷲山332)의 도량과 방불하니, 국가를 안정시키는 주맥이요 관방의 중요한 곳이라고 이를 만하다. 시인묵객들이 얼마나 왕래하였던가. 고승과 시승들이 이어져 나왔으니 또한 불법의 으뜸가는 산이요, 신선이 사는 골짜기라고 할 만하다. 『삼국사三國史』333)를 보면 신인神人이 연산부延山府 태백산太白山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와, 변화하여 왕검王儉을 낳으니 대인大人의 기운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세워서 왕으로 삼았는데, 그 태어난 곳에 의거하여 단군檀君이라고 불렀다.산은 세 개의 이름이 있는데 첫째는 태백太白, 둘째는 묘향妙香, 셋째는 아미峨嵋이다. -
0008_0078_a_01L聖恩是遣。此後段毋論兩營與本官。凡係浮紙之役。一切革罷。而僧徒資
0008_0078_a_02L業所用外。所謂別付紙桶紙簾。並為毀罷關文一通。亦即刻板。分揭於內
0008_0078_a_03L外山各寺。俾作金石之典是乎矣。自營當有別般察飭之道。或有因循謬
0008_0078_a_04L習。更為侵責之弊。則隨現狀 聞。論勘。斷不可已。除尋常。各別惕念奉行
0008_0078_a_05L為彌。形止為先牒報向事。
0008_0078_a_06L乾隆五十一年五月 日。
知府田文顯謹書。
0008_0078_a_07L○妙香山普賢寺事蹟記
0008_0078_a_08L述夫東國三百餘州地。論其形勝。則必曰妙香山招提八萬九蘭若。語靈
0008_0078_a_09L異。則莫如普賢寺。峯巒之崢嶸。林壑之盤紆。依俙天台之洞府。眾瀑之琮
0008_0078_a_10L琤。泉石之秀麗。彷彿靈鷲之道場。可謂鎮國主脉関防重地也。騷人墨客。幾
0008_0078_a_11L乎出入。開士韻釋。繼繼承承。亦可謂佛法宗山。神仙洞府也。盖聞三國史。
0008_0078_a_12L神人降于延山府太白山檀木下。化生王儉。有大人之氣。時人立以為君。
0008_0078_a_13L原其所生之處。號曰檀君也。山有三名。一曰太白。二曰妙香。三曰峨嵋。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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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79_a_01L송 태조宋太祖가 천하를 얻어 즉위한 원년인 개보開寶 무진년, 고려 제4대 광종 19년(968)에 용흥군龍興郡 사람 탐밀探密조사가 처음으로 골짜기를 열어 난야를 창건하고 안심사安心寺라고 이름하였다. 또 (북송北宋)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인 고려 제5세 경종 3년(978)에 굉확사宏廓법사가 와서 제자가 되어 동북쪽 백보 쯤에 큰 선찰禪剎을 지었는데, 24곳의 전각을 두었고 3천 명의 승려들을 이끌고 수도하며 편안히 거주하면서 현풍玄風(불교)을 크게 진작시켰으니, 이것이 첫 번째 중창이다. 송 철종宋哲宗 소성紹聖 3년(1096) 병자년인 고려 문종 29년334)에 대덕大德 달보達寶화상이 다시 중건하였는데 그 사이 연수가 128년이니, 이것이 두 번째 중창으로 처음 창건된 후 173년이 된다.고려 예종睿宗 7년(1112)에 김부식金富軾이 사적비寺蹟碑를 찬술하였다. 원 순제元順帝 지정至正 21년(1361) 신축년, 고려 말 공민왕 때 하동河東 사람 지원智圓법사가 고쳐 중건하였는데 그 사이 햇수가 311년이며, 나옹懶翁화상이 이 절의 주지를 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중창이다. 명明나라 영종英宗 황제의 정통正統 14년(1449) 기사년, 우리 조선 제4대 세종대왕 31년에 청주清州 사람 해정海正법사가 고쳐 지었으니 그 사이 햇수가 89년으로 이것이 네 번째 중건이다. 기사년으로부터 효종 홍치弘治 13년(1500) 경신년에 이르러 강진康津 사람 도천道泉선사가 불상에 금을 다시 입혔다. 그때 경성 일선慶聖一禪대사, 청허 휴정清虛休靜대사, 사명 유정泗溟惟政대사가 이어서 나와 나라에 크게 공을 세웠다.숭정崇禎 7년(1634) 갑술년에 또 화재를 당해 -
0008_0079_a_01L宋太祖得天下即位之九 [361] 年開寶戊辰。當高麗第四世光宗王之十九年。
0008_0079_a_02L龍興郡人探密祖師。始開洞府。剏建蘭若。名曰安心寺。又太宗太平興 [362] 三
0008_0079_a_03L年。當高麗第五世景宗王之三年。宏廓法師來為弟子。而東北間百步許。
0008_0079_a_04L剏開大禪剎。二十四所殿閣。領三千僧人。修道安居。大振玄風。妙 [363] 是第一
0008_0079_a_05L剏也。宋哲宗紹聖三年丙子歲。即高麗文宗王之二十九年。大德僧達寶
0008_0079_a_06L和尚改重剏。其間年數一百二十八年。而此是第二剏也。初剏後一百七
0008_0079_a_07L十三年。高麗獻 [364] 宗王之七年。金富軾撰寺蹟碑。 元順帝至正二十一年
0008_0079_a_08L辛丑歲。高麗末恭愍王之時。河東人智圓法師改重剏。其間年數三百十
0008_0079_a_09L一年。懶翁和尚住持此寺。此是第三剏也。 大明英宗皇帝正統十四年
0008_0079_a_10L己巳藏 [365] 。即我朝鮮第四世世宗大王之三十 [366] 年。清州人海正法師改重剏。
0008_0079_a_11L其間年數八十九年也。此是第四剏也。 自己巳至孝宗弘治十三年庚
0008_0079_a_12L申歲。康津人道泉禪師。佛像改金。而其時慶聖一禪大師。清虛休靜大師。
0008_0079_a_13L泗溟惟政大師。相繼而出。大有功於邦家矣。崇禎七年甲戌歲。又當回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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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0_a_01L대덕大德 허백당 명조虛白堂明照대사와 벽암당 각성碧巖堂覺性선사가 재차 중창하였는데, 그 사이 146년이 흘렀으니 이것이 다섯 번째 중창이다. 건륭乾隆 26년(1761) 신사년 가을 9월에 또 실화가 일어나 수천 칸의 사찰이 일시에 재가 되었다. 본부 사또 원공元公 중회重會가 특별히 남파당 육탄南坡堂陸坦대사와 향악당 혜신香岳堂慧信대사에게 명을 내려 거듭 중창토록 하였으니 그 사이 햇수는 122년으로 이것이 여섯 번째 중건이다. 처음 창건한 때부터 도광道光 19년(1839) 기해년까지 그 사이 햇수는 875년이다.34-2. 묘향산 이적(妙香異蹟)서술하노니, 삼신산 가운데 하나로서, 방장산이라 한다.넷 이름 가운데 최고로 아미산이라 한다.태백이 하늘을 범하니 청련青蓮 이백李白335)의 풍채 같도다.묘향산이 세상을 놀래키니 백낙천白樂天336)의 문장 같도다.노봉337)의 볼거리 5경(새벽 4시 전후)의 붉은 해
진주 폭포는 3줄기 은하 같도다.두 강물이 끼고 흐른다. -
0008_0080_a_01L而大德僧虛白堂明照大師。碧巖堂覺性禪師。改重剏。其間年數一百四
0008_0080_a_02L十六年。此是第五剏也。 乾隆二十六年辛巳秋九月。又當失火。數千間
0008_0080_a_03L寶剎。一時成灰。本府使道元公重會。特令南坡堂陸坦大師。香岳堂慧信
0008_0080_a_04L大師。改重剏。其間年數一百二十二年。此是第六剏也。
0008_0080_a_05L自初剏至道光十九年己亥。其間年數。八百七十五年。
0008_0080_a_06L○妙香異蹟
0008_0080_a_07L述夫。三神一。曰方丈。
0008_0080_a_08L四名最云。峨嵋。
0008_0080_a_09L太白凌霄。李青蓮之風彩。
0008_0080_a_10L妙香驚世。白樂天地 [367] 文章。
0008_0080_a_11L爐峯大觀。五更紅日。
0008_0080_a_12L珠瀑勝賞。三道銀河。
0008_0080_a_13L兩江夾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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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1_a_01L10고을의 경계북쪽이 남방의 기운과 교류하여 대나무가 무리지어 난다.지혈이 창해 파도와 통하여 조수로 인해 샘물이 솟아 나온다.아, 옛날 박달나무 아래 환웅이 처음 주인이 되어 신령한 쑥 처방으로 늙은 곰이 여자로 변하였다.신인神人이 왕검王儉이라 칭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정하였으니 도당씨陶唐氏 요堯 임금 무진년이었다. 부루扶婁338)를 보내 도산塗山339) 모임에 참석하였으니 하나라 우禹 임금 갑술년이었다.바위가 옮겨져 금와金蛙가 모습을 드러냈다.340)해가 비추자 주몽이 껍질을 깨고 나왔다.341)행인荇人이 도읍을 정하여 북쪽 경계를 표시했다.342)분노芬奴343)가 방패와 창의 판국이 끝나는 굴을 움직였다.생각건대 참된 근원이 보살로 발현되었다.아름다운 기운이 모여 비로毘盧가 되었다.청구(조선)의 명당에 이미 나무오리가 떠 있다는 것을 술사術士가 징험했다. -
0008_0081_a_01L十州分界。
0008_0081_a_02L北陰交南方之氣。翠竹叢生。
0008_0081_a_03L地穴通滄海之波。潮泉起伏。
0008_0081_a_04L於戲。古檀之下。桓雄初為主人。靈艾之方。老熊便化女子。
0008_0081_a_05L神人稱王儉。而都平壤。即唐堯之戊辰。送扶婁。而會塗山。乃夏禹之甲戌。
0008_0081_a_06L解僊洞府。柳娥水宮。
0008_0081_a_07L石轉而金蛙現形。
0008_0081_a_08L日照而朱蒙破殼。
0008_0081_a_09L荇人定都邑。標北之疆。
0008_0081_a_10L芬奴動干戈局盡之窟。
0008_0081_a_11L原惟。真源發以菩薩。
0008_0081_a_12L秀氣鍾以毘盧。
0008_0081_a_13L術士驗青邱之明堂。已浮木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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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2_a_01L신이한 승려가 백두산 정맥으로부터 와서 비로소 금선金僊(불상)을 세웠다.변화옹이 푸른 사자 두 마리를 몰래 감추어두었다.보현보살의 실상은 여섯 어금니의 흰 코끼리다.344)비밀을 탐지하여 산을 개척해 널따랗게 지역을 차지했다.목석을 삼각으로 운반하니 말 몰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먹줄로 쌍관雙丱을 경영하여 기이함을 다하였다.푸른 기와가 바다의 24범궁梵宮345)을 이루었다.백납白納346)이 구름처럼 모이니 3천대중이라.법계 8만의 난야蘭若(사찰)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다.선교 16종의 장로들이 규정했다.그 비는 문 학사文學士의 절필絕筆이요 김 태사金太師의 고운 표현이다. 세존의 사리가 멀리서 왔으니 내원암은 참된 정토이다.태조의 윤기 있는 얼굴이 잠시 머무른 영대影臺는 최고의 정람精藍347)이다.상원의 사나운 범들이 모두 길들어져 눈을 치워 길을 통하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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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2_a_01L神僧從白頭之正脉。始立金僊。
0008_0082_a_02L化翁秘藏青獅二項。
0008_0082_a_03L普賢實相白眾 [368] 六牙。
0008_0082_a_04L探密開山。宏廓占地。
0008_0082_a_05L木石搬運三角。不待驅馳。
0008_0082_a_06L繩墨經營雙丱。窮其奇巧。
0008_0082_a_07L碧瓦成海廿四梵宮。
0008_0082_a_08L白納如雲三千大眾。
0008_0082_a_09L法界八萬數蘭若參差。
0008_0082_a_10L禪教十六宗長老紏 [369] 正。
0008_0082_a_11L其碑。文學士之絕筆。金太師之妍辭。世尊舍利遠來。內院真淨土。
0008_0082_a_12L太祖晬 [370] 容暫妥。影臺最精藍。
0008_0082_a_13L上院獰虎皆馴。畊雪通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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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3_a_01L독한 용이 또한 제어되어 절벽을 나눠 못이 되게 했다.6불佛이 붉은 화로에서 나오고, 부처에게 공양하는 그릇이 특이했다.독성獨聖348)이 설악으로부터 오니, 신성을 드러내는 꿈이 더욱 기이하다.아, 참고할 기록이 없으니 중창을 몇 번이나 했던가.부도(탑)에 자취가 있으니 견성한 승려가 많았다.원효가 대중을 구하기 위해 소반을 던졌고
어떤 선사는 귀신을 부려 탑을 운용했다.나옹이 진불암에 주석하여 덩굴을 제거했고
개가죽으로 원명사349)에서 발우를 씻고 고사리를 심으니 맛이 좋았다.금강굴 석실에 있는 청허 선사의 선상禪床350).하늘 닭의 소리를 듣고 연꽃의 법을 전했다.철화마351)를 씻어 사명 대사의 공훈을 경계하다.허백의 진실한 마음에 적병이 은자를 던져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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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3_a_01L毒龍亦制。裂崖成湫。
0008_0083_a_02L六佛出紅爐。供佛之器特異。
0008_0083_a_03L獨聖由雪嶽。顯聖之夢尤奇。
0008_0083_a_04L噫傳記無稽。幾經重剏之役。
0008_0083_a_05L浮圖有跡。惟多見性之僧。
0008_0083_a_06L元曉救眾而擲盤。
0008_0083_a_07L一禪役鬼而運墖。
0008_0083_a_08L懶翁卓錫於真佛。蔓葛去根。
0008_0083_a_09L狗皮洗鉢於圓明。種蕨甘味。
0008_0083_a_10L金剛石室清虛禪床。
0008_0083_a_11L聽乎天鷄。而傳芙蓉之法。
0008_0083_a_12L洗鐵火馬。而戒四溟之勳。
0008_0083_a_13L虛白之誠心。敵兵投銀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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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4_a_01L신헐申歇이 의협심으로 타국에 편지를 보냈다.352)맑은 밤에 노니는데 옥피리가 어찌 없으리오.단양에서 공양하니 금 시루가 돌아왔다.대는 강선대353), 암자 또한 윤필암이라.분분히 시인들이 삼연三淵354)의 명시에 화답하였고355)여러 공경대부들이 두실斗室356)의 명시에 화답하였다.357)풍고楓皐358)가 크게 만 냥을 보시하였고
행리에 따로 1백 이랑을 구획하였다.34-3. 만세루359) 시十二花宮瓦海連 12화궁花宮(절)의 기와가 바다로 이어져
晨鐘暮皷各紛然 새벽 종과 저물녘 북이 각기 분분하구나
銀灣日照壺中地 은빛 해안에 햇살 비치는 별천지
翠頂雲凝畫裡天 푸른 산정에 구름 어려 그림 같아라
新柳毿毿鸎四月 산들거리는 버들에 앵무새 우는 사월
古松落落鶴千年 우뚝한 고송의 학은 천 년을 산다네
此生猶有名山福 이생에 그래도 명산을 찾는 복이 있어
竹杖芒鞋訪羽僊 대지팡이와 짚신으로 신선을 방문하였네34-4. 농부가 인장을 주웠는데 고적古蹟이었다도광道光 2년(1822) 임오년 계하季夏(6월) 기망既望(16일)의 다음날에 농부가 풀을 베던 차에 댕그렁 소리가 나서 살펴보고, 인장 하나를 얻었다. -
0008_0084_a_01L申歇之義氣。異國致書封。
0008_0084_a_02L清夜遨遊。玉笛何去。
0008_0084_a_03L端陽供養。金甑復回。
0008_0084_a_04L臺惟降僊。 庵亦潤筆。
0008_0084_a_05L紛紛詞客和三淵之佳篇。
0008_0084_a_06L箇箇公鄉 [371] 和斗室之麗什。
0008_0084_a_07L楓皐大施萬錠。
0008_0084_a_08L杏里另劃百畇。
0008_0084_a_09L萬歲樓詩十二花宮瓦海連。晨鐘暮皷各紛然。銀灣日照壺中地。翠
0008_0084_a_10L頂雲凝畫裡天。新柳毿毿鸎四月。古松落落鶴千年。此生猶有名山福。竹
0008_0084_a_11L杖芒鞋訪羽僊。
0008_0084_a_12L○田民得印輒作古蹟
0008_0084_a_13L道光二年壬午季夏既望之翌日。農人除草之際。錚然作聲。獲得一顆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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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5_a_01L인장은 어제 것처럼 글자가 선명했으니 뒷 면에 “해서海西 요동遼東 백호百戶360) 인印. 지정至正 5년(1345) 2월에 중서예부中書禮部에서 제조.”라고 새겨 있었다. 이제 갑자를 손꼽아 헤아려 보니 480여 년이 지난 것으로 막중한 보물 도장이 비로소 이 해에 드러난 것이니 위대하도다. 밭을 갈고 이랑에 풀을 벰이 사찰이 있은 이후로 하지 않은 해가 없었건만 일찍이 얻지 못했었다. 마침 내보內普를 중수하고 괴질이 크게 일어나는 때를 맞아 들녘 풀밭에서 절로 드러났으니 이렇게 사유를 갖추어 보고서를 올렸다. 부사府使 정공鄭公이 환송한 회제回題361)에, “산에서 얻었으니 산중의 고적古蹟이 될 만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한나라는 솥을 얻어 연호를 명명했고, 숙손叔孫은 적을 이겨 자식을 명명했으니,362) 묘향산에서 이것을 얻었거늘 무엇으로 명명해야 좋은가. 어떻게 달리 명명할 수 없도다. 아름답도다. 급암汲黯363)의 직간이여, 이 인장을 찼도다. 주운朱雲364)의 난간이 부러짐이여, 이 인장을 찼도다. 두소杜召365)의 청렴한 교화여, 이 인장을 찼도다. 공황龔黃366)의 인자한 정치여, 이 인장을 찼도다. 이 인장을 차지 못한 이들은 자리만 채우거나 탐관오리라는 비방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임진년 섬나라 오랑캐의 난리를 당하여 서산西山 대선사께서 힘을 합쳐 의병을 규합해서 드디어 평양을 수복하고 이 인장을 찼도다. 사명泗溟 대장군께서는 멀리 바다를 건너가 항복을 받고 3천 명을 쇄환하여 이 인장을 찼도다. 후에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지니 인간세상에 효험이 있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묘향산의 밭두둑에 떨어져 먼지와 모래 자갈과 함께 묻히게 되었다. 산야의 괴질이 들끓어 발생한 지 얼마인지 막론하고 이제 밭 매는 이의 손바닥에서 얻었으니 괴질이 그치고 산문에 근심이 없어질 것을 이로 미루어 상상할 수 있다. 병사는 인장을 따라 움직이니 고금에 동일하다. 인장이 본사에 보관되어 있으니 무릇 불사를 하는 마당에 그저 공적이나 사적으로 문서(簡牃)를 사용함에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길이 정공이 고적이라는 -
0008_0085_a_01L印。印跡昭詳如昨。而其背銘之曰海西遼東百戶印。至正五年二月日。中
0008_0085_a_02L書禮部造。今以甲子掘指。四百八十餘年。莫重寶印。始現於此年。偉哉。畊
0008_0085_a_03L田稼穡。畎畝除草。有寺以後。無年不有。尚不得矣。適丁內普之改建。怪疾
0008_0085_a_04L之大熾。自露於原草之間。因此具由入呈。本府使 鄭公還送。回題內。以
0008_0085_a_05L為既得於山中。可作山中之古蹟云。然則漢 得鼎。以名其年。叔孫勝敵。
0008_0085_a_06L以名其子。香山之得此。何名可名。奈何他不得名之也。休哉。汲譩 [372] 之直鍊 [373] 。
0008_0085_a_07L佩得此印。朱雲之檻折。佩得此印。杜召之清化。佩得此印。龔黃之仁政。佩
0008_0085_a_08L得此印。苟不得佩此者。備員充位。貪官污吏之謗。胡能免屏哉。第當壬辰
0008_0085_a_09L島夷之搆。 西山大禪師。協力紏義。遂克平壤。 佩得此印。泗溟大將軍。
0008_0085_a_10L遠涉鯨波。受降並刷三千人。佩得此印。 後國泰民安。似 效於人間。落
0008_0085_a_11L在香山之田疇。與塵埃沙石。同埋無辨。母 [374] 論山野怪疾鼎沸生者無幾。自
0008_0085_a_12L今得鋤人掌中。怪疾之止息。山門之無憂。推此可想也。兵境 [375] 印轉。古今同
0008_0085_a_13L轍。并藏本寺。凡諸佛事場中。只用公私簡牃。寸不動着。而永遵 鄭公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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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6_a_01L지금의 법칙을 따르리라. 인장을 얻어 인장을 찍는다.도광道光 10년(1830) 경인년 봄에 순상巡相(관찰사) 김노경金魯敬367) 공이 본사本寺에 행차했을 때 마침 인장을 보고는 봉하여 서울로 가져갔다.34-5. 어용御容을 봉안한 사적선조 대왕 25년(1592)은 즉 신종神宗 황제 만력萬曆 20년이다. 임진년에 대마수對馬守368) 의지義智(요시토시)가 섭진수攝津守369) 행장行長(유키나가)성姓은 소서小西(고니시)이다을 통해 왜적의 괴수 수길秀吉(히데요시)을 찾아가서는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길잡이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수길은 크게 기뻐하여 의지에게 우시羽柴(하시바) 성姓을 하사하였다. 3월 3일에 관동關東의 대수大帥 가강家康(이에야스)과 경서京西의 대수大帥 휘원輝元(데루모토)이 36장군을 인솔하여 침략하였다. 4월에 동래를 함락하니 송상현宋象賢370)이 죽었다. 후에 전라도 금산군錦山郡을 함락하니, 조헌趙憲371)과 고경명高敬命372)이 죽었다.왜적이 승승장구하여 전주를 넘보게 되었는데 당시 경기전慶基殿373)의 우리 태조 강헌대왕康獻大王의 어용御容과 열성조列聖朝의 『실록實錄』이 모두 전주성 안에 있었다. 참봉 오희길吳希吉374)과 유인柳訒 등이 황급하여 어찌할 줄 몰랐다. 태인현泰仁縣에 사는 선비 손홍록孫弘祿과 안의安義는 세록世祿375) 신하로서 일을 듣고는 급히 치달려 전주로 들어가 곧장 경기전에 이르렀다. 6월 3일에 오희길 등과 함께 어용과 『실록』을 짊어지고 전라도 정읍 내장산 용굴암龍窟菴으로 달려가 피했다. 손홍록 등이 본사本寺 의승장義僧將 희묵熙默 등과 함께 밤낮으로 수직守直하였다.계사년(1593) 7월 21일에 조정의 명에 따라 어용을 받들어 충청도 아산현에 이르렀다. 당시 왜적이 모두 물러났다. 충청 검찰사檢察使376) 이산보李山甫377)가 막중한 어용을 원거리 이동하게 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행재소에 치계馳啟(보고)하였다. -
0008_0086_a_01L蹟之今則焉。 得印 踏印。道光十年庚寅春。巡相金公魯敬。行部本
0008_0086_a_02L寺時。 適覽得印。而賚封上京。
0008_0086_a_03L○奉安 御容事蹟
0008_0086_a_04L宣朝大王二十五年。即神宗皇帝萬曆二十年也。壬辰對馬守義智。因攝
0008_0086_a_05L津守行長姓小西也。入見賊魁秀吉。請為我國宼嚮導。秀吉大喜。賜義智姓羽
0008_0086_a_06L柴。三月三日。以關東大帥家康京西大帥輝元。率三十六將軍。入宼。四月
0008_0086_a_07L陷東萊。宋眾 [376] 賢死之。後陷全羅錦山郡。趙憲高敬命死之。賊乘勝長驅。進
0008_0086_a_08L窺全州。時 慶基殿我 太祖康獻大王御容。及列聖朝實錄。皆在本府
0008_0086_a_09L城中。叅奉吳希吉柳訒等。蒼黃不知所為。泰仁縣居士人孫弘祿安義。俱
0008_0086_a_10L以世祿之臣。聞事。急馳入全州。直至慶基殿。六月初三日。與吳希吉等。負
0008_0086_a_11L御容及實錄。避走于本道井邑內藏山龍窟菴。孫弘祿等與本寺義僧將
0008_0086_a_12L熙默等。日夜守直。癸巳七月二十一日。因朝命。奉御容。行至忠清道牙山
0008_0086_a_13L縣。時賊兵皆退。忠清檢察使李山甫。以莫重御容。不冝遠行之意。馳啟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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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7_a_01L선조는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고 임시로 안산현 관사에 안치하게 하였다. 당시 경기전 참봉은 바로 구정려仇廷呂378)와 이도길李道吉이니 어용을 배행陪行한 유신儒臣이었다. 비로소 각자 귀가하였다. 『실록』은 해주목海州牧에 도착하여 임시로 보관하였다.병신년(1596)에 왜적의 괴수 수길秀吉이 또 대거 침략하여, 금오金吾(킨고)와 의홍義弘(요시히로)으로 하여금 38장군과 무장한 군사 26만여 인으로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진격하였다. 나라 안이 다시 진동하였다. 손홍록과 안의는 태인에서 하인 가운데 날랜 이 30여 명을 인솔하여 급히 아산으로 가서, 수복守僕379) 한춘韓春과 함께 어용과 제기祭噐를 짊어지고 강화부江華府로 달려갔다. 안의는 병이 나서 태인으로 돌아갔다.정유년(1597) 1월 21일에 강화부에서 바다를 건너 서해에서 청천강을 거슬러 올라가 곧장 안주로 이동하여 객사에 봉안하였다. 『실록』 역시 해주에서 도착하였다. 손홍록이 안읍安邑 사람들을 불러 어용과 『실록』을 안치할 만한 장소를 물으니, 모두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영변에 묘향산이 있는데 단군이 내려온 곳이고 기자가 하늘 제사(禪) 지내던 곳입니다. 봉우리가 수려하고 바위가 기이하며 골짜기가 그윽하고 길이 험하여 서쪽을 안정시키는 최고의 명산입니다. 그리고 하천이 넓게 펼쳐져 그 안이 비록 평지이지만 바위 모서리가 겹겹이 쌓여 있고 그 외곽은 자못 성곽과 같으며 3면에 통할 만한 오솔길도 없고 서남쪽 한 방향만 수구水口380)로부터 들어올 수 있는데 겨우 한 사람만 홀로 걸어서 다니는 것을 용납합니다. 거란군이 거듭 침략했을 때도 침범하지 못하고 몽고병이 다섯 번이나 와도 침략하지 못했으니 진정 하늘이 만든 신이한 산입니다. 어용을 봉안할 곳은 묘향산 만한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 산까지 거리가 180리나 됩니다. 그곳에 큰 사찰이 있으니 보현사라 하는데 서도(西路)에서 으뜸입니다. 승려와 속인들이 가장 후덕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그리 이안移安하십시오.”손홍록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드디어 한춘과 함께 묘향산으로 급히 갔다. 안읍 사람들이 모두 교외까지 나와 전송하였다.묘향산 승려들이 -
0008_0087_a_01L行在。宣廟痛哭仆地。遣官致祭。仍權 安于牙山縣舘舍。其時叅奉。即仇
0008_0087_a_02L廷呂李道吉也。陪行儒臣。遂各歸家。 實錄行至海州牧權藏焉。丙申賊
0008_0087_a_03L魁秀吉。又大舉入宼。使金吾義弘等。三十八將軍。甲士二十六萬餘人。水
0008_0087_a_04L陸并進。國中復震動。孫弘祿安義。自泰仁率家僮精銳者三十餘名。急往
0008_0087_a_05L牙山。與守僕韓春負 御容及祭噐。走入于江華府。安義以病歸泰仁。丁
0008_0087_a_06L酉正月二十一日。自江華府。浮海而西溯晴川江。直趨安州。奉安于客舍。
0008_0087_a_07L實錄亦自海州來焉。孫弘祿招安邑父老。問 御容實錄可安之處。僉曰。
0008_0087_a_08L寧邊有妙香山。檀君所降。箕子所禪。峯秀岩奇。谷幽路險。作鎮西隅。最稱
0008_0087_a_09L名山。且川濶布。其內雖如平地。石角重疊。其外殆若城郭。三面無蹊徑之
0008_0087_a_10L可通。西南一路。從水口而入。只容一人。單步以行。丹宼再來。而不犯。蒙兵
0008_0087_a_11L五至而不侵。真天作之神山也。奉安 御容。莫若妙香焉。此去其山。遠可
0008_0087_a_12L一百八十里。其中有大剎。名曰普賢。雄於西路。僧俗最厚。伏願移安焉。孫
0008_0087_a_13L弘祿聞而大喜。遂與韓春急趨香山。安邑父老。皆出郊而餞焉。香山諸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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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8_a_01L어용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산 바깥 10리 되는 곳까지 나와서 길을 치우고 영접하여 호위하여 들어갔다. 보현사에 이르러 별전別殿현재 불영정사佛影精舍에 봉안하였다. 손홍록이 큰 사찰과 암자들의 승려 수천 인을 모두 불러서는 수직守直의 규모를 다음과 같이 약정하였다.
“불행히 적병이 석권하여 온다면 3면은 험준하므로 믿을 만하더라도 1면이 평탄하니 실로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선사禪師는 비록 산에 거하는 한가로운 승려이지만 하늘이 부여한 양심이 있고 또 조종祖宗381)의 교화를 입었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 편히 볼 수 있겠습니까. 오직 바라건대 선사께서 용맹한 승도僧徒들을 가려서 우리 하인과 함께 각기 활과 창칼을 가지고 생사를 한 마음으로 맹세하여 만약 완급이 있을 시엔 소리쳐 함께 모여 일제히 힘을 내서 우리 어용과 『실록』을 보호하여 만세의 공을 수립하게 함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또한 정성을 다해 이야기하며 충의로써 권면하니, 사승寺僧들이 모두 울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라가 불행하여 대가大駕(임금)가 서쪽으로 온 것은 천운이다. 어용과 『실록』을 이 사찰에 모셔 온 것도 천운이다. 그러나 느슨하게 하다가 불우의 화망이 있게 되면 이는 사람의 잘못이다. 우리들이 비록 한가한 승려들이지만 대대로 성군의 교화를 받았는데 유독 충의忠義의 소재를 생각하지 않고 죽음으로 받들어 호위하지 않겠는가.”드디어 날래고 용맹한 승도들 수백 인을 가려 손홍록이 데려온 하인들 30여 인과 함께 날마다 돌아가며 수직하였고 앞장서서 죽음을 함께 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그리고 수직하는 선비들과 함께 수시로 주선하니, 기사箕師의 남은 풍모가 여전히 적막한 산사에 남아 있음을 또한 볼 수 있었다. 손홍록과 승도들이 밤낮으로 지켜 강개히 힘을 냈고, 사운시四韻詩를 읊었다.382)
聖繼神承二百春 성군들께서 나라를 이은 지 2백 년
那知金闕鎖腥塵 대궐에 비린내가 자욱할지 어찌 알았으랴
怏怏真殿棲岐下 안타깝게도 진전真殿383)이 골짜기에 깃들고
咄咄前旒寓漆濱 아아, 임금님이 칠수384) 가에 우거하시도다
義士荷戈忘雨雪 의사는 창을 들고 눈비를 무릅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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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8_a_01L聞御容奉來。皆出山外十里之地。除道以迎。護衛以入。至普賢寺。奉安於
0008_0088_a_02L別殿即今佛影精舍也。孫弘祿悉召大寺及諸菴僧數千。約定守直規模曰。
不幸
0008_0088_a_03L賊兵席捲而來。則三面阻險。雖若恃。一面平坦。實為可憂。且禪師雖是山
0008_0088_a_04L居閑僧。既有天賊 [377] 良心。又蒙 祖宗化育。則當此之世。豈冝恬視耶。惟願
0008_0088_a_05L禪師擇僧徒之勇壯者。偕我家僮。各弓釰創槊。推言以一心生死。而如有
0008_0088_a_06L緩急。則吶喊同聚。一齊奮力。以保我 御容實錄。而俾樹萬歲之功。豈不
0008_0088_a_07L休哉。又瀝血陳告。勉以忠義。寺僧咸泣。相謂曰。
國家不幸。 大駕西巡
0008_0088_a_08L者天也。御容實錄奉來此寺者天也。如或緩。忽至有不虞之禍者。人之過
0008_0088_a_09L也。吾等跡雖閑僧。世被 聖化。獨不念忠義所在。而不以死奉護乎。遂擇
0008_0088_a_10L僧徒之驍勇者數百人。與孫弘祿帶來家僮三十餘人。輪日遆直。而挺身
0008_0088_a_11L有同死之志。又與守直儒士。隨時周旋。箕師餘風。猶在於寂寞山寺。亦可
0008_0088_a_12L見矣。孫弘祿與僧徒。日夜守衛。慷慨愈功。吟成四韻一詩曰。聖繼神承
0008_0088_a_13L二百春。那知金闕鎖腥塵。怏怏真殿棲岐下。咄咄前琉 [378] 寓漆濱。義士荷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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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89_a_01L腐儒嘗膽守昏晨 선비들도 와신상담하며 밤을 지새네
從來天道還歸順 종래에 천도는 순조로이 돌아오나니
佳氣方葱繞紫宸 아름다운 기운이 바야흐로 대궐을 감싸네
이 사람의 충의가 성정에서 나온 것이 이와 같다. 사승寺僧 가운데 문자를 조금 아는 이들은 매번 박자를 맞추며 감탄하며 읊었다.하루는 승도들이 떠들썩하여 손홍록이 그 까닭을 물으니 승도들이 대답하길, “서산西山 대사와 제자 유정惟政 대사가 오셨습니다.” 하여 손홍록이 흔연히 맞아들이고는 물었다.
“대사께서는 법도에 깊이 통하셔서 세상에서 신승神僧이라 일컫고 나라를 위해 공을 수립하며 백성들을 보호하여 목숨을 살린 경우가 많습니다. 장래 일도 밝히 아시리니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나라 일이 이와 같으니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대사가 말하였다.
“액회厄會가 거의 다하였으니 조만간 왜적이 필시 물러갈 것입니다. 바라건대 염려하지 마십시오.”그리고는 수직守直하는 모습과 규모가 주밀한 것을 보고는 대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 산이 아니었다면 어용과 『실록』이 위태로울 뻔 했습니다. 그 규모와 규약이 만전지책이니 공은 진정 지혜로운 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 리 긴 여정에 만단으로 고초를 겪고 한 조각 깊은 산에서 온갖 신고를 겪으니, 그 보호하고 받드는 도리와 청결히 하고 인사하는 예절에 있어서 오래되어도 나태하지 않고 끝내 지키며 떠나지 않으니 송백松栢이 시들지 않음을 알겠습니다.”손홍록이 말했다.
“마침 그러했을 뿐입니다. 제 어찌 대사의 말씀에 미치겠습니까.”그렇게 서로 토론하며 노고도 잊은 채 며칠을 보냈다. 이후로 연일 왕래하면서 평상을 나란히 하여 같이 눕기도 하고 같이 앉기도 했다. 그렇게 산중 상우上友가 되어 대화함에 시사에 미칠 때는 서로 분하고 울적하여 한숨을 크게 쉴 뿐이었다. 대개 그 수호하는 범절에 있어서 서산 대사의 도움과 주선한 힘이 많았다. 비록 적병이 갑자기 몰려온다 해도 또한 근심이 없을 정도였다.다행히 이 해 7월에 적장 의홍義弘(요시히로)385)과 청정清正(키요마사)ㆍ행장行長(유키나가)386) 등이 명나라 장수에게 크게 패하였고, 원수元帥 금오金吾가 또한 곽재우郭再佑에게 -
0008_0089_a_01L忘雨雪。腐儒嘗膽守昏晨。從來天道還歸順。佳氣方葱繞紫宸。云云。此人
0008_0089_a_02L忠義。出自性情者。如此。寺僧稍觧文字者。每擊節詠歎焉。一日僧徒喧曄。
0008_0089_a_03L孫弘祿問何故。僧徒曰。西山大師。及其弟子惟政大師。至耳。孫弘祿欣然
0008_0089_a_04L迎入。而問曰。
大師深通法道。世稱神僧。其為國樹功。保民活命者。多矣。將
0008_0089_a_05L來之事。亦冝曉知。不必隱諱。今國事如此。後將如何。大師曰。
厄會幾盡。早
0008_0089_a_06L晚賊必撤去。幸勿憂慮焉。及見守直凡節規模調密。師乃嘆曰。
若非是山。
0008_0089_a_07L御容實錄。幾乎殆矣。然其規模豫定。有萬全之策。公真所謂智慮之士也。
0008_0089_a_08L且千里長程。萬端勤楚。一片深山。百節艱苦。其陪護擎奉之道。灑掃拜謁
0008_0089_a_09L之禮。久而不怠。終始守不去。乃知松栢之後凋矣。孫弘祿曰。
是適然耳。吾
0008_0089_a_10L何以及師言耶。遂相與討論。忘勞移日。自是連日來往。或聯榻同臥。或連
0008_0089_a_11L擘共坐。遂作山中上友。而每語及時事。則相對憤鬱。噓唏太息而已。盖其
0008_0089_a_12L守護凡節。多有西山大師賛助彌縫之力。雖賊兵驟至。亦無憂矣。何幸。是
0008_0089_a_13L年七月。賊將義弘。及清正行長等。大為天將所敗。元帥金吾。又為郭再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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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0_a_01L패하였다. 주사舟師(수군) 대장 이순신李舜臣은 명량鳴梁과 노량露梁ㆍ벽파정碧波亭387) 등에서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적장 내도수來島守388)를 참살했다. 그 소장小將 민부대부民部大夫389)는 바다에 추락하였다가 몸을 빼어 달아났다. 적장 수웅秀雄(히데오) 또한 노량해전에서 죽었다. 나머지 왜장들이 도처에서 모두 패하여 달아나니, 왜적 괴수 수길秀吉이 듣고서 크게 분노하며 10월에 왜병들을 급히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병사兵使 김흥서金興瑞가 도망자들을 추격하여 무수히 참살하였다.왜적이 드디어 물러가고 하늘이 다시 밝아지며 해양이 다시 맑아지니, 서산 대사의 말이 이에 이르러 부합하였다. 어용과 『실록』이 드디어 안전하게 되고, 수백 년 종묘사직이 다행히 무너지지 않았으니 실로 만세무강한 아름다움이도다.34-6. (실록 보관)손홍록孫弘祿과 서산 대사는 적병이 모두 물러갔다는 말을 듣고는 한춘韓春을 보내 행재소에 가서 전후에 봉안한 실상과 묘향산에서 승도들과 수직守直하는 일을 자세히 진술하도록 했다. 선조는 한춘의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네 공이 아니라면 성조聖祖의 어용御容을 내가 다시 뵐 날이 없었겠구나.”하고는 특별히 한춘을 경기전 참봉으로 제수했다. 한춘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하길, “소신은 본래 천민인데 어찌 이 직책을 감당하겠습니까. 그리고 용안을 보존한 것은 소신의 공이 아니옵니다.”라고 했다.임금이 말했다. “네가 어용을 봉안하여 종시 보호하였으니 공이 아니면 뭐라 말이냐?”한춘이 말했다. “전라도 태인현에 선비 송홍록과 안의安義가 있으니 임진년(1592)부터 정읍 내장산에 봉안하였다가 계사년(1593)에 아산현 관사에 임시로 봉안하였고 병신년(1596)부터는 강화부 별관에 이안移安하였으며, 지금에는 영변 묘향산에 온전히 봉안하였으니 모두 이 두 사람의 공입니다. -
0008_0090_a_01L所敗。舟師大將李舜臣。大破倭兵於鳴梁露梁碧波亭等處。而斬賊將來
0008_0090_a_02L島守。其小將民部大夫。落於海潮。脫身遁走。賊將秀雄。亦死於露梁之戰。
0008_0090_a_03L其餘倭將。到處皆敗。望風奔潰。賊魁秀吉。聞而大恕 [379] 。十月急召諸倭歸。兵
0008_0090_a_04L使金興瑞。追亡逐北。斬殺甚眾。倭遂撤去。而天日復明。海洋復清。西山大
0008_0090_a_05L師之言。到此沕合。 御容實錄。遂得全安。數百年宗社。幸而不傾。實萬世
0008_0090_a_06L無疆之休矣。
0008_0090_a_07L○孫弘祿及西山大師。聞賊兵皆退。乃遣韓春。奉詣行在所。悉陳前後奉
0008_0090_a_08L安實狀。及至香山與僧徒守直之事。 宣廟執韓春之手。泫然泣謂曰。若
0008_0090_a_09L非汝功。 聖祖晬容。予無更謁之日矣。特除韓春為 慶基殿叅奉。韓春
0008_0090_a_10L叩頭辭曰。小臣本以賤僕。安敢當是職。且保全晬容。非小臣之功也。上曰。
0008_0090_a_11L汝奉晬容。終始保護。非功而何。韓春曰。全羅道泰仁縣。有士人孫弘祿安
0008_0090_a_12L義者。自壬辰。奉安于井邑內藏山。而至癸巳權安于牙山縣舘舍。自丙申。
0008_0090_a_13L移安于江華府別舘。而至于今。全安于寧邊之妙香山者。皆是二人之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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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1_a_01L그리고 두 사람은 평소 학문이 독실하고 지혜를 겸비하여 어렵사리 멀리 이동하면서 임기응변의 지혜를 내었고 적막한 산에서 힘과 정성을 다해 종시 수직守直하여 초연히 병화를 피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보자면 용안을 보전한 것은 실로 두 선비의 힘에 따른 것이지 소신 같은 경우는 일개 수복守僕일 따름입니다.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선조가 손을 어루만지며 감탄했다. “모르겠도다. 두 선비가 어떻길래 이처럼 할 수 있었단 말이냐?”한춘이 말했다. “계사년에 어용御容을 받들어 아산현에 왔을 때 두 신하가 행재소에 와서 중흥책中興策 6가지를 올렸고 전하께서 가상히 여겨 각자 별제직別提職을 제수하셨던 적이 있습니다.”임금이 말했다. “당황하던 당시 일이 아득히 한바탕 꿈 같아서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구나.”한춘이 말했다. “소인이 수복守僕의 직책을 잘했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공을 논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저 두 신하는 충의가 저처럼 아름답고 공적이 저처럼 탁월하니, 상으로 벼슬을 내리시려면 두 선비에게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선조가 감탄하며 말했다. “현명하도다, 수복이여! 너는 공을 사양하고 또 공을 추천하니 네 공이 아니면 내가 어찌 두 사람의 공을 알 수 있겠느냐. 나는 잊지 않고 환궁하기를 천천히 기다렸다가 공을 논하고 직책을 수여하는 것이 좋겠다. 오늘 일은 가상하여 상을 주는 것이니 너는 사양하지 마라.”한춘이 머리를 조아려 사양한 것이 두세 번이지만 임금은 끝내 듣지 않고 한춘에게 참봉 인장을 매어 주었다. 한춘은 배사拜謝하고 말했다. “묘향산에 승려가 있는데 법호를 ‘서산 대사’라 합니다. 그 승려가 불도에 해박하면서 시사를 통달하여 신승이라 일컬어지는데 어용을 봉안한 후에 공력을 많이 들였으니 또한 나라 일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어용과 『실록』이 비록 안전하지만 묘향산 위치가 -
0008_0091_a_01L也。且二人以素有家之人。學問純篤。智慮兼備。間關遠遁。出奇應變。寂寞
0008_0091_a_02L深山。竭力殫誠。終始守直。而超然免於兵燼之外。由是觀之。保全晬容。實
0008_0091_a_03L賴二士之力。至如小臣。即一守僕而已。何功之有。宣廟拊手而歎曰。不
0008_0091_a_04L識不知二士何狀而乃能如是耶。韓春曰。癸巳年奉。來 御容于牙山縣
0008_0091_a_05L時。二臣赴于 行在。上中興策六條。
0008_0091_a_06L殿下嘉之。各授別提職者是耳。上曰。蒼黃當年事。杳如一塲夢。 予不
0008_0091_a_07L能記之矣。韓春曰。小人能稱守僕之職者可。論功則不可。彼二臣者。忠義
0008_0091_a_08L如彼其美矣。功勢如彼其卓矣。若欲爵償。則行於二士可也。宣廟嘆曰。
0008_0091_a_09L賢哉守僕。汝能讓功。又能薦功。若非汝功。予安知二人之功乎。予則不忘。
0008_0091_a_10L徐待還宮。論功賞職。可矣。今日之事。嘉乃而賞之。汝則勿辭。韓春叩頭謙
0008_0091_a_11L讓者再三。 上終不聽。而佩韓春以叅奉印。韓春拜謝曰。香山有一僧。法
0008_0091_a_12L號曰西山大師也。伊僧通曉釋道。鍊達時事。世稱神僧。而 御容奉來後。
0008_0091_a_13L多有功力。亦有志於國事者也。今 御容實錄。雖得全安。香山之地。近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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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2_a_01L북쪽 변경에 가까워 또한 심려됩니다. 그리고 『본조문기本朝文紀』 30여 바리(駄)와 『고려사』 20여 바리가 함께 묘향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소신이 홀로 수호하기 어려우니 서산 대사를 총섭摠攝하여 수호하게 하면 우려가 없겠습니다.”임금이 허락하고는 서산 대사를 금강방장金剛方丈즉 묘향산 총섭摠攝으로 삼아 방장 인장을 봉해 보내서 『실록』과 『고려사』와 『본조문기』를 수호하게 하고, 그 제자 유정 대사를 불러 국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한춘은 묘향산으로 돌아가게 했다.손홍록은 한춘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어용을 배알하고는 한춘과 작별하고 서산 대사와 울며 이별하며 하인들을 인솔하여 돌아갔다. 서산 대사는 유정 대사와 함께 큰 사찰과 암자들의 승려들을 인솔하여 한춘과 함께 산 바깥까지 나와 전송하며 이별할 때 손을 쥐고 차마 헤어지지 못할 정도였다. 한춘은 이에 홀로 참봉 일을 행하며 어용을 수직하였다. 서산 대사는 금강방장 일을 행하여 『실록』을 수호하였다. 당시 5전殿390)의 어용과 여러 곳의 『실록』들이 모두 불에 탔는데 홀로 우리 경기전 어용과 『실록』만은 묘향산에서 보전되었으니, 아 또한 기이하도다.무술년(1598)에 경기전에 화재가 났는데 갑인년(1614)에 비로소 중창하였고, 한춘이 어용을 받들어 묘향산에서 돌아와 봉안하였다. 당시 서산 대사는 이미 거세하였고 북방에서 자주 일이 발생했는데 묘향산이 변경에 가까웠기에 드디어 『실록』은 강원도 강릉부 오대산으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 손홍록이 귀가한 후에 유정 대사는 왕명에 응하여 행재소로 갔다.
청나라 도광道光 2년(1822) 임오년 중추(8월) 상현上絃(8일)에 베껴 쓰다. -
0008_0092_a_01L北塞。亦為深慮。且本朝文紀三十餘駄。高麗史二十餘駄。并藏于香山。小
0008_0092_a_02L臣獨難守護。若以西山大師。摠攝守護。則可無憂矣。上曰。諾。乃以西山
0008_0092_a_03L大師。為金剛方丈 即香山摠攝也。封方丈印以送。俾得守護 實錄及高麗史
0008_0092_a_04L本朝文記。而召其弟子惟政大師。與國事。令韓春歸香山。孫弘錄待韓春
0008_0092_a_05L歸。遂拜謁 御容。留別韓春。泣辭西山大師。而率家僮。乃歸。西山大師與
0008_0092_a_06L惟政大師。率大寺及諸菴僧。偕韓春出山外。餞送相別之際。握手揮 [380] 。不忍
0008_0092_a_07L留不忍去矣。韓春仍獨行叅奉事。守直 御容。而不遆。西山大師行金剛
0008_0092_a_08L方丈事。守護 實錄。時五殿御容。諸處實錄。盡入灰燼。獨我 慶基殿御
0008_0092_a_09L容實錄。保全於香山。吁亦異矣。戊戌年。慶基殿災。甲寅始重剏。而韓春奉
0008_0092_a_10L御容。自香還安。時西山大師。已去世。而北警屢起。以香山近塞。遂移奉
0008_0092_a_11L實錄於江原道江陵府五臺山。以安焉。孫弘祿歸家。後惟政大師應命往
0008_0092_a_12L行在所。
0008_0092_a_13L大清道光二年壬午。仲秋上絃。謄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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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3_a_01L양파陽坡 제3세世 침월枕月 문인門人 송학 책홍松鶴策鴻이 시임時任 총섭摠攝으로서 명허冥虛의 문인 인허 정붕印虛正鵬에게 부탁하여 베껴 쓰다.34-6. 행대보광국숭록대부行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 이조판서政吏曹判書 병조판서兵曹判書 승의병대장僧義兵大將 사자국일도대선사賜紫國一都大禪師 겸팔도선교도총섭兼八道禪教都摠攝 대각등계존자大覺登階尊者 서산西山 청허당清虛堂 대화상大和尚 휘諱 휴정休靜의 진영.34-7. 행대광보국숭록대부行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 겸육군문도총섭兼六軍門都摠攝 영의병대장군領義兵大將軍 사명송운당泗溟松雲堂 대선사大禪師 휘諱 유정惟政의 진영.34-8. 국가주석國家柱石 선문목탁禪門木鐸 동시임란同時臨亂 공존사직일체功存社稷一軆 의보제군생義普濟羣生 의병부장義兵副將 가의대부嘉義大夫 중추부사中樞府使 뇌묵당雷默堂 대선사大禪師의 진영. 휘諱 처영處英.34-9. 정조 대왕 어제 서산西山 대사 화상당畵像堂 명銘서序 병기석가釋家의 통칭을 ‘사미沙彌391)’라고 한다. 사미란 의역하면 ‘식자息慈’이니, 자비의 지역에서 안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불교에 삼장三藏이 있는데 수다라修多羅392)가 으뜸이고 불교에 10회향393)이 있는데 중생 구제가 으뜸이다. 대개 계율과 선정과 지혜는 -
0008_0093_a_01L陽坡第三世。枕月門人。松鶴策鴻。以時任摠攝。請冥虛門人印虛正鵬謄
0008_0093_a_02L書。
0008_0093_a_03L○行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吏曹判書。兵曹判書。僧義兵大
0008_0093_a_04L將。賜紫國一都大禪師。兼八道禪教都摠攝。大覺登階尊者。西山清虛堂
0008_0093_a_05L大和尚。諱休靜之真影。
0008_0093_a_06L○行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行兵曹判書。兼六軍門都摠攝。
0008_0093_a_07L領義兵大將軍。泗溟松雲堂大禪師。諱惟政之真影。
0008_0093_a_08L○國家柱石。禪門木鐸。同時臨亂。功存社稷一軆。義普濟羣生。義兵副將。
0008_0093_a_09L嘉義大夫。中樞府使。雷默堂大禪師之真影。諱處英。
0008_0093_a_10L○正宗大王御製
0008_0093_a_11L西山大師畵像堂銘并序
0008_0093_a_12L釋家之通稱曰沙彌。沙彌者。息慈也。謂安息於慈悲之地也。故佛有三藏。
0008_0093_a_13L而修多羅為首。佛有十回向。而救眾生為首。槩戒律也。禪定也。智慧也。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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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4_a_01L어느 것 하나 자비를 구경방편(究乘)으로 삼지 않는 것이 없고, 법계의 공덕이 여기에 있고 항하사 같은 복전福田이 여기에 있다. 그보다 위가 없도다, 자비의 가르침이여. 후세 사미들은 그렇지 않다. 구름하늘과 물병으로 실상 바깥에서 마음을 노닐고, 푸른 대와 노란 꽃처럼 무정한 사물에 몸을 비유하니, 우리 유자들이 드디어 고목이나 죽은 재라고 기롱한다. 이는 우리 유자들이 기롱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 사미들이 스스로 기롱하게 만든 것이다.서산 대사 휴정 같은 경우는 그 사미 됨이 또한 ‘식자息慈’의 뜻에 부끄럽지 않으리라. 처음에는 허리에 석장을 끼고 두루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법당法幢394)을 세워 인천안목人天眼目이 되어 운장雲章과 보묵寶墨을 하사하니 특별하여 지금까지 정관貞觀과 영락永樂395)의 서序와 함께 도솔난야兜率蘭若에서 휘광을 다투는도다. 중간에는 종풍宗風을 펼쳐 널리 국난을 구제하고 의병을 창도하여 근왕勤王의 으뜸 공훈을 세웠으니 비린내와 요사한 기운을 응수하여 맑게 하였다. 지금까지 방편으로 세상을 제도한 공은 영원히 염부제閻浮提(인간세상)에서 무량겁無量刧에 이르도록 의지가 되리라. 끝으로 인연 따라 몸을 드러내고 과실(過)에 따라 몸을 추슬러, 인과를 찾아 상승 교주教主로 삼으니, 매실이 익고 연꽃이 향기나듯 홀연 피안에 도착하였다. 지금까지 바라보면 의젓하고 가까이 가면 온화한 형상이 남아 있어 서남西南의 향화香火 장소에서 정례頂禮396)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연후에야 대천세계를 구제하고 속세에 은혜를 끼친 것에 근사하리라. 어찌 면벽하여 염주를 굴리거나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을 자비라 하겠는가. 어찌 탑묘를 널리 세우고 경률을 많이 필사한 것을 자비라 하겠는가.나는 서남西南 도신道臣(관찰사)의 청을 받고, 그 영당影堂에 사액賜額397)하길 남쪽은 ‘표충表忠’, 서쪽은 ‘수충酬忠’이라 하고, 관청에 명하여 제수를 공급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했다. 지금 갑인년(1794)에 홍무洪武 갑인년(1374) 시절 선세善世 선사에게 시詩를 하사한 일을 추억하며 서문과 명銘을 지어 영당에 걸게 한다. 내 비록 불교에 익숙하지는 않으나 일찍이 『법화경』의 의해義解398)를 들은 적이 있는데, 게偈의 뜻이 이쪽(유학)의 -
0008_0094_a_01L一不慈悲乎究乘。而法界之功德。在此。恒沙之福田。在此。無上哉。慈悲之
0008_0094_a_02L為教也。後世之沙彌。則不然。雲天水瓶。遊心於實相之外。翠竹黃花。比身
0008_0094_a_03L於無情之物。而吾儒遂以枯木死灰譏之。非吾儒譏之。後世沙彌。自詒其
0008_0094_a_04L譏也。若西山大師休靜之為沙彌也。其亦不愧天 [381] 息慈之義乎。始焉腰包
0008_0094_a_05L杖錫。徧叅諸方。樹法幢。為人天眼目。則雲章寶墨。寵賚優異。至今與貞觀
0008_0094_a_06L永樂之序。爭耀於兜率蘭若間。中焉顯發宗風。弘濟國難。倡義旅。為勤王
0008_0094_a_07L元勳。則腥羶妖氣。應手廓清。至今使方便度世之功。永賴於閻浮提無量
0008_0094_a_08L刧。終焉隨緣現身。像 [382] 過攝身。尋因果。為上乘教主。則梅熟蓮香。倐到彼岸。
0008_0094_a_09L至今有望儼即溫之像。受頂禮於西南香火之所。如此然後。方庶幾乎濟
0008_0094_a_10L大千惠塵境。曾面壁數珠。磨磚作鏡之謂慈悲乎。曾廣建塔廟。多寫經律
0008_0094_a_11L之謂慈悲乎。予因西南道臣之請。其影堂賜額。南曰表忠。西曰酬忠。命官
0008_0094_a_12L給祭需。歲祀之。今歲甲寅。追洪年 [383] 甲寅。賜詩善世之故 [384] 禪師之事。為之序
0008_0094_a_13L若銘。俾揭諸堂。予雖未習佛諦。而嘗聞法華之義解矣。曰。揭 [385] 之義如此。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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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5_a_01L서문 뒤에 오는 명銘과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쪽의 명은 진실로 범어의 게偈에 해당한다. 명은 다음과 같다.
佛日初照 부처 태양이 처음 비추니
慈雲為經 자비 구름이 법이 되도다
浩刼單傳 오랜 세월 홀로 전하여
囑付丁寧 부촉함이 틀림없네
問其誓願 서원을 묻노라니
孰非施舍 누군들 자비 아니랴만
義海茫茫 이치의 바다 망망하여
津逮者寡 건너는 이 적구나
福國多佑 나라 복되게 도움 많아
高僧應期 고승이 때를 응하였네
卓錫一喝 석장 세워 꾸짖으니
魔軍難披 마군의 난리 흩어져서
天晶月朗 하늘이 밝고 달 밝아
波恬浪平 파도 물결도 평온해지네
優曇鉢華 우담바라가
涌現東瀛 동해에서 솟아올라
歸慶赤縣 적현399)은 경사로 돌아가고
返真青蓮 청련은 진실로 돌이키네
肅穆鍾魚 엄숙한 종과 목어
禪燈孤懸 선등이 외롭게 달렸네
名流竹簡 이름은 죽간에 전하고
道存貝葉 도리는 패엽에 남았네
寂鄉鉢寺 적막한 마을의 사찰에
交暎眉睫 영정이 빛나는구나
報祀伊何 보답하는 제사 어떠한가
蒲饌自官 제수를 관에서 마련하리
倘布靈貺 혹시 영험한 복을 베풀면
長蔭旃檀 길이 전단400)을 보호하리
麻稻竹葦 마와 벼, 대, 갈대
匝域蓊若 온 나라에 무성하여
匹周富庶 주나라 부유함에 필적하고
媲唐耕鑿 당나라 경작에 나란하리니
八萬四千 8만 4천 법문을
子孫同樂 자손들이 함께 즐기리
내가 즉위한 지 18년 되는 갑인년(1794) 4월 8일에 표충사表忠祠와 수충사酬忠祠에 봉안하노라.숭록대부崇祿大夫 행行 예조판서 겸 지경연사知經筵事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성균관사知成均舘事 신臣 홍량호洪良浩가 받들다.34-10. 편액 扁額之部대웅전大雄殿 건륭乾隆 28년(1763)
명부전冥府殿 건륭乾隆 51년(1786)
응향각凝香閣 가경嘉慶 10년(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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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5_a_01L之序後。銘則此之銘。固梵之偈也。 銘曰。
佛日初照。慈雲為經。浩刼單傳。
0008_0095_a_02L囑付丁寧。問其誓願。孰非施舍。 義海茫茫。津逮者寡。福國多佑。高僧應
0008_0095_a_03L期。 卓錫一喝。魔軍難披。天晶月朗。波恬浪平。優曇鉢華。涌現東瀛。歸慶
0008_0095_a_04L赤縣。返真青蓮。 肅穆鍾魚。禪燈孤懸。名流竹簡。道存貝葉。寂鄉鉢寺。交
0008_0095_a_05L暎眉睫。 報祀伊河 [386] 。蒲饌自官。倘布靈貺。長蔭旃檀。 麻稻竹葦。匝域蓊
0008_0095_a_06L若。匹周富庶。媲唐耕鑿。 八萬四千。子孫同樂。
0008_0095_a_07L予即祚之十有八年。甲寅四月初八日。安于表忠酬忠之祠中。崇祿大夫
0008_0095_a_08L行禮曹判書。兼知經筵事弘文官大提學。藝文舘大提學。知成均舘事。臣
0008_0095_a_09L洪良浩奉。
0008_0095_a_10L扁額之部
0008_0095_a_11L大雄殿 乾隆二十八年
0008_0095_a_12L冥府殿 乾隆五十一年
0008_0095_a_13L凝香閣 嘉慶十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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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6_a_01L만세루萬歲樓 향악루香嶽樓 자운루慈雲樓
수월당水月堂
심검당尋劒堂
천왕문天王門
해탈문解脫門
조계문曹溪門 순치順治 10년(1653)
명월당明月堂
진상전真常殿
관음전觀音殿
만수각萬壽閣
길상각吉祥閣
심진정尋真亭
대장전大藏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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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6_a_01L萬歲樓 香嶽樓 慈雲樓
0008_0096_a_02L水月堂
0008_0096_a_03L尋劒堂
0008_0096_a_04L天王門
0008_0096_a_05L解脫門
0008_0096_a_06L曹溪門 順治十年
0008_0096_a_07L明月堂
0008_0096_a_08L真常殿
0008_0096_a_09L觀音殿
0008_0096_a_10L萬壽閣
0008_0096_a_11L吉祥閣
0008_0096_a_12L尋真亭
0008_0096_a_13L大藏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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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7_a_01L영산전靈山殿
봉향각奉香閣
극락전極樂殿 편액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음. 사적은 별책에 첨부함. 扁額不記名。事蹟別冊添
총회문總會門
수충사酬忠祠 홍량호洪良浩의 글씨
운한각雲漢閣
어서각御書閣
여시문如是門
귀인재歸仁齊
수의재修義齊
연교루演教樓
팔도십육종교규정문八道十六宗教紏正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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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7_a_01L靈山殿
0008_0097_a_02L奉香閣
0008_0097_a_03L極樂殿 扁額不記名
0008_0097_a_04L事蹟別冊添
0008_0097_a_05L總會門
0008_0097_a_06L酬忠祠 洪良浩之書
0008_0097_a_07L雲漢閣
0008_0097_a_08L御書閣
0008_0097_a_09L如是門
0008_0097_a_10L歸仁齊
0008_0097_a_11L修義齊
0008_0097_a_12L演教樓
0008_0097_a_13L八道十六宗教紏正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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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8_a_01L의중당義重堂
편액 말암末菴
축성전祝聖殿
상원암上院菴
내원암內院菴
청허구택清虛舊宅 금선錦(船-口+工)의 글씨
금강방장金剛方丈
원효암元曉菴
팔상전八相殿 도광道光 경인년(1830) 가을 7월 기망既望(16일) 이수彝叟401) 쓰다. 道光庚寅秋七月既望彝叟書
안심사安心寺
보윤암普潤菴
계조암繼祖菴
백운암白雲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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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8_a_01L義重堂
0008_0098_a_02L扁額之部 末菴之部
0008_0098_a_03L祝聖殿
0008_0098_a_04L上院菴
0008_0098_a_05L內院菴
0008_0098_a_06L清虛舊宅 錦▼(船-口+工)書
0008_0098_a_07L金剛方丈
0008_0098_a_08L元曉菴
0008_0098_a_09L入相殿 道光庚寅秋七月既望彝叟書
0008_0098_a_10L安心寺
0008_0098_a_11L普潤菴
0008_0098_a_12L繼祖菴
0008_0098_a_13L白雲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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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9_a_01L일출암日出菴
남정암南精菴
단군굴檀君窟
화장암華藏菴
빈발암賓鉢菴
내보현암內普賢菴
불지암佛智菴
불영대佛影臺
법왕대法王臺
상비로上毘盧
중비로中毘盧
하비로下毘盧
삼성대三聖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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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099_a_01L日出菴
0008_0099_a_02L南精菴
0008_0099_a_03L檀君窟
0008_0099_a_04L華藏菴
0008_0099_a_05L賓鉢菴
0008_0099_a_06L內普賢菴
0008_0099_a_07L佛智菴
0008_0099_a_08L佛影臺
0008_0099_a_09L法王臺
0008_0099_a_10L上毘盧
0008_0099_a_11L中毘盧
0008_0099_a_12L下毘盧
0008_0099_a_13L三聖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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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0_a_01L설령대雪嶺臺34-11. 묘향산 극락전을 새로 지은 기문월저月渚402) 선사가 입적한 지 31년은 바로 설암雪巖403) 화상이 해탈(蟬蛻)한 지 40년 되는 을축년(1745)으로, 봄에 청송青松404) 대사가 화엄법회를 보현사 심검당에서 크게 개최하였다. 승려(玄侶)들이 모두 대단했는데 그 가운데 성곡城谷과 천연天然ㆍ월암月巖ㆍ남월南月ㆍ안곡安谷 대사 등이 회중을 이끄는 대덕이었다. 덕풍德風이 사방으로 미치고 안팎으로 크게 교화시키던 이들인데 법속法屬(문인)으로서 숙질叔侄이나 형제 항렬에 속했다. 하루는 개탄하며 모두 의논하길, “우리 선사先師께서는 비단 우리 문중의 비조만이 아니시고 또한 총림의 대들보로, 명망이 팔방에 가득하고 덕망이 온 세상에 존중되었으니, 가히 당시에 드러났다고 할 만합니다. 입적하신 이래 세월이 점차 멀어지고 자취가 사라져 잠잠해진다면 어찌 제자들이 통탄할 바가 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식영息影의 장소를 마련하여 향화를 올려서 후인들에게 선사께서 불세출의 고승이셨음을 알게 한다면 우리 후손들이 근본에 보답하는 정성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는 이에 시주 재물을 열심히 모으니, 문정門庭이 실로 번성하여 별처럼 팔도에 퍼져 있던 이들과 원근에서 소문을 듣고는 각기 다투어 재화를 들였다. 그리하여 병인년(1746) 봄에 시작하여 톱을 든 자와 도끼를 든 이들이 각기 역할을 수행하여 기사년(1749) 여름에 완공하였다.감전紺殿(사찰) 가운데 편액을 높이 달아 ‘극락전’이라 하였다. 그에 나란한 건물들도 날아오를 듯했는데 월저月渚와 설암雪巖으로 편액을 달고 각기 초상화를 그려 그 속에 봉안하였다. 겸하여 선사 휘하의 이름난 이들의 진영을 그려서 좌우에 배열하니 모습이 완연히 살아 있는 듯하였다. 주반主伴405)이 중첩되고 소목昭穆406)이 가지런하니 -
0008_0100_a_01L雪嶺臺
0008_0100_a_02L○妙香山極樂殿新建記
0008_0100_a_03L月渚禪師。既就寂之三十一年。即雪巖和尚。蟬蛻之四十年乙丑之春。青
0008_0100_a_04L松大師。大開華嚴法會於普賢寺之尋釰堂。玄侶盡華。而其中城谷天然
0008_0100_a_05L月巖南月安谷等諸大師。乃會中領首大德。德風四被。大化中邊者也。以
0008_0100_a_06L法屬中叔侄從昆季之行耳。一日興嘅。僉謀曰。唯我先師。非獨吾門之鼻
0008_0100_a_07L祖。亦是叢林之柱石。名滿八表。德尊一世。可謂當時現矣。奄忽以來。代禩
0008_0100_a_08L浸遠。軌躅湮沒。寂然無聞。則豈不為門弟子之痛心者哉。特設息影之所。
0008_0100_a_09L以供香火。使後人皆知先師。不世之高致。則吾等來孫。報本近仰之誠。為
0008_0100_a_10L如何哉。於是發希抽䟽。拮据檀財。則門庭寔蕃。星居八域。遠近聞風。各爭
0008_0100_a_11L薦貨。權輿於丙寅之春。刀鉅者斧斤者。各執其役。斷工於己巳之夏。紺殿
0008_0100_a_12L中。峙扁曰極樂。駢室翼然。以月渚雪巖揭額。各模肖像。以安于中。兼畫先
0008_0100_a_13L師下諸彥。名可名之真。以垂于左右。形儀完爾如在。主伴重重。昭穆濟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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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1_a_01L가히 법의法儀(법도)가 찬연하다 이를 만하다.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 이 진영(靈儀)을 대하면 절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동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당주堂主를 극락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선사의 신神이 극락국에 깃들어, 아비발치阿鼻跋致407) 등 대성자大聖者들과 함께 자금산紫金山408)의 옥호광玉毫光409)을 공경히 바라보리니, 지금 이 초상화를 설치함에 감히 무량수불410)을 벗어날 수 있는가. 극락전이라 이름 붙임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진실과 거짓이 혼융하고 청정과 더러움이 섞이도다. 특별히 사람들이 발걸음을 들지 못하게 하고 멀리 도정道程에 이르러 곧장 함께 연못 위 보각寶閣에 올라 자애롭고 엄숙한 모습을 공경히 받들도록 하리라.아, 일에 귀졸을 부리지 않고 물건은 하늘에서 오지 않았지만 1년이 되지 않아 덤불과 가시나무 숲을 청정한 연화계로 바꾸었다. 기둥과 서까래 등에 학 무늬와 용이 깃들고 황금색과 녹색을 바르며 그림에 단청빛이 흐르니 이에 급고원給孤園411)의 형상을 취하였다. 청정한 강당이 높고 널찍하여 서도(西關) 수 천리 바깥의 사찰 가운데 자못 으뜸이었다. 이에 시인ㆍ문인들과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군자들이 여기를 유람하고 여기서 쉬며 호탕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아 허벅지를 두드리며 껑충껑충 뛰면서412) 기한이 되도 돌아갈 줄 몰랐다. 삼삼오오 와서 완상하던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합장하며 말하길, “이것은 대사大師들이 삼매의 힘으로 하늘궁전을 가져다가 승금주勝金洲413) 가에 옮겨 놓은 것이로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신이함이 이처럼 뛰어나단 말인가.” 하였다.그러하니 대사들이 비바람을 무릅쓰는 괴로움과 손발이 부르트는 수고를 꺼리지 않고 들어오면 몸소 일을 하고 나가면 권유하여 재물을 모아, 전각을 일으킨 공력이 수미산(彌盧)이나 향해香海414) 같아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도다. 완공한 이래 묘향산 빛이 당년보다 더 빛나고 보현사의 풍광이 오늘보다 더하리라. 그렇다면 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 산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요, -
0008_0101_a_01L可謂法儀粲然者也。若使思師恩之人。對此靈儀。則不覺泫然投涕。而感
0008_0101_a_02L發近誠者多矣。堂主極樂。何謂也。既先師栖神樂國。與阿鼻跋致等諸大
0008_0101_a_03L聖者。瞻敬紫金山玉毫光。則今此肖設。敢外乎無量乎。以極樂安名者。盖
0008_0101_a_04L有深旨也。迹此觀之。真假混融。淨穢相即。特使人人。不曾擡步。遠涉道程。
0008_0101_a_05L直下齊躋蓮池上寶閣裡。欽奉慈嚴也。噫工不鬼役。物不天來。不彌年。而
0008_0101_a_06L化榛莽荊棘之藪。儼成蓮界淨方。則若乃棟宇甍桷。鶴紋龍盤。塗金抹綠。
0008_0101_a_07L繪畫流丹。乃取象乎給孤園。清淨講堂。高曠宏廣。殆甲于西關數千里外
0008_0101_a_08L諸剎。於是騷人墨客。樂山樂水君子。遊於斯。憩於斯。豪氣不除。拊脾雀躍。
0008_0101_a_09L而克日忘歸。以至黑白之日。三三五五而來翫者。不覺合瓜 [387] 靡然曰。此乃
0008_0101_a_10L諸大師。以三昧力。搏取天宮。徙置於勝金洲畔也。不然。何其幻恠神異。如
0008_0101_a_11L此之超邁乎。然則諸大師。不憚櫛風沐雨之苦。手駢足胝之勞。入則躬自
0008_0101_a_12L服役。出則輸語鳩財。倡啟之功。與彌盧香海。不能測其高深也。落成以來。
0008_0101_a_13L妙香之光。轉曜於當年。普賢之風。益增於今日。然則此天不壞。則此山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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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2_a_01L이 산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 전각은 부서지지 않을 것이며 이 전각이 부서지지 않는 한 이 대사들이 애써 경영한 자취는 천지와 함께할 것이다. 다만 전각의 풍경은 사계절 변화하는 수많은 모습인데 모두 와서 보는 이들의 시선과 심취함에 있으리니, 그저 좋아할 수 있을 뿐 타인에게 가져다 줄 수는 없으므로 감히 덧붙이지 않는다.일이 끝나서 내게 기록을 청하니, 글 못한다고 사양하지 못하고 대략 그 전말을 기록하고 아울러 시주의 방명을 아래 나열한다.
건륭乾隆 14년 기사년(1749) 9월
운파雲坡의 문인 환암 선흠幻庵善欽415)이 기록하다.34-12. 상원암에 올라 세 폭포를 바라보다(登上院觀三瀑)蘭若岧嶢絕世攀 사찰이 아스라이 세상과 절연하고
飛湍忽自天中落 폭포는 홀연 하늘에서 떨어지듯
層巖斷壑路難分 층암절벽에 길을 나누기 어렵고
空響時從地底聞 허공에 소리가 땅에서 들리듯
灑向峯頭讖作雨 봉우리 씻어내려 가늘게 비 되네
香山十勝皆仙境 묘향산 십승은 모두 신선 경치
磨來石面皚如雲 바위는 닦은 듯 구름처럼 희고
三瀑由來迴不羣 세 폭포는 초연히 특출나도다
임자년(1792) 국월菊月(9월)에 노산자蘆山子 홍양호洪良浩417)
上院庵居第一層 상원암은 제일 높은 곳에 있으니
砯厓虎引開雲徑 절벽에 범이 인도하는 구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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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2_a_01L壞。此山不壞。則此殿不破。此殿不破。則此諸大師。近劬經營之迹。與天地
0008_0102_a_02L相終始矣。但殿之八字風是四時貿遷萬千景狀。而都在登覽者之目覽
0008_0102_a_03L心醉。而只可怡悅。不堪持贈他人。故不敢贅也。功既斷于。請余誌之。不以
0008_0102_a_04L不文為辭。略識其顛末。兼寫檀邦之芳御。開列左于。
0008_0102_a_05L乾隆十四年己巳九月日。
0008_0102_a_06L雲坡門人幻庵善欽 識。
0008_0102_a_07L登上院觀三瀑
0008_0102_a_08L蘭若岧嶢絕世攀 [388] 。飛湍忽自天中落。
0008_0102_a_09L層巖斷壑路難分。空響時從地底聞。
0008_0102_a_10L灑向峯頭讖 [389] 作雨。香山十勝皆仙境。
0008_0102_a_11L磨來石面皚如雲。三瀑由來迴 [390] 不羣。
0008_0102_a_12L壬子菊月蘆山子洪良浩
0008_0102_a_13L上院庵居第一層。砯厓虎引開雲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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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3_a_01L法王峯勢太虛憑 법왕봉의 형세는 태허에 기대고
石窟龍吟送雨徵 석굴에서 용이 울어 비를 보내도다
始信西方真淨土 비로소 믿겠네, 서방에 정토 있음을
深夜更覺靈光發 심야에 다시 깨네 신령한 불빛에
回看下士似蒼蠅 돌이켜 범부를 보니 파리 같은데
悄坐蒲團睡未能 고요히 앉아 있으니 수마도 못 오네
김조순金祖淳418)
佛力何年發秘慳 불력으로 어느 해에 비장한 곳 풀었나
千迴路轉青林暗 천 번이나 굽이 돌아 푸른 숲이 어둑하네
如無上院失香山 상원암이 없다면 묘향산이 빛을 잃으리니
一面雲開翠壁環 한쪽에서 구름 개어 푸른 절벽을 두르네
鶴翥▼(帝+尤)盤中抱寺 학이 날고 용이 서려 사찰을 안는데
空門寂寞終難住 공문이 적막하여 머물기 어렵네
瓊鋪玉散下成灣 주옥을 흩어 펼쳐 물굽이를 만들었나
僧自留奇我自還 승려는 머물고 나는 돌아가누나
정미년 여름에 호우毫宇 이원조李源祚419)
不覺叫奇意爽然 나도 몰래 기이함에 소리치며 상쾌하니
人攀鐵索千尋棧 사람들이 쇠줄 잡고 천길 잔도를 가네
法王峯勢薄420)青天 법왕봉 형세는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하니
庵在銀河萬丈巔 암자는 은하수 걸린 만길 꼭대기에 있네
誰敢窺側龍竇下 누가 엿보랴, 용의 굴 아래
石光如玉無纖穢 옥처럼 빛나는 돌은 티끌도 없다네
吾能平步虎臺前 내 능히 호대 앞으로 걸어가
都欲同磨凡俗緣 속세의 인연을 같이 갈마하길 바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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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3_a_01L法王峯勢太虛憑。石窟龍吟送雨徵。
0008_0103_a_02L始信西方真淨土。深夜更覺靈光發。
0008_0103_a_03L回看下士似蒼蠅。悄坐蒲團睡未能。
0008_0103_a_04L金祖淳
0008_0103_a_05L佛力何年發秘慳。千迴路轉青林暗。
0008_0103_a_06L如無上院失香山。一面雲開翠壁環。
0008_0103_a_07L鶴翥▼(帝+尤)盤中抱寺。空門寂寞終難住。
0008_0103_a_08L瓊鋪玉散下成灣。僧自留奇我自還。
0008_0103_a_09L丁未夏毫宇 李源祚
0008_0103_a_10L不覺叫奇意爽然 人攀鐵索千尋棧
0008_0103_a_11L法王峯勢薄 [391] 青天。庵在銀河萬丈巔。
0008_0103_a_12L誰敢窺側龍竇下。石光如玉無纖穢。
0008_0103_a_13L吾能平步虎臺前。都欲同磨凡俗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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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4_a_01L푸른 바위를 지나는 나그네(蒼巖過客)34-13. 편액扁額상원암上元庵 세 글자는 추사秋史 김정희의 친필
칠성각七星閣 세 글자는 김재찬金載瓚421)의 글씨
향산운사香山雲舍 현액懸額은 만윤灣尹422) 이건필李建弼423)의 글씨
서래각西來閣 현액은 만윤 이건필의 글씨李建弼書 한 암자에 4개의 현액.
청허영각清虗影閣 현액은 만윤 이건필의 글씨
점무진처漸無塵處 현액은 내각학사內閣學士 박봉빈朴鳳彬424)의 글씨35. (묘향산 내원암)35-1. 묘향산 내원암 중건기나라에 묘향산이 없으면 조선이 될 수 없다. 산에 내원암이 없으면 묘향산이 될 수 없다. 묘향산은 태백산이다. 처음에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와 임금이 되었으므로 ‘단군檀君’이라 하고 도읍을 평양으로 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실로 동방을 개척한 군주였다. 이 산의 사적이 나라에 독보적으로 웅장하고 빼어나 두류산(지리산)에 필적하고 개골산(금강산)에 맞설 만한데, 은거하여 고상한 절조를 지키며 끝내 세상에 뜻이 없는 경우는 두 산보다 거의 낫다고 하겠다. 나라에 묘향산이 있음은 또한 위대하지 않은가.산의 심복에 거하여 -
0008_0104_a_01L蒼巖過客
0008_0104_a_02L扁額
0008_0104_a_03L上元庵 三字金秋史親筆
0008_0104_a_04L七星閣 三字金載瓚筆
0008_0104_a_05L香山雲舍 懸額灣尹李建弼書
0008_0104_a_06L西來閣 懸額灣尹李建弼書 一菴四額
0008_0104_a_07L清虗影閣 懸額灣尹李建弼書
0008_0104_a_08L漸無塵處 懸額內閣學士朴鳳彬書
0008_0104_a_09L
0008_0104_a_10L○妙香山內院菴重建記
0008_0104_a_11L國無香山。無以為朝鮮。山無內院。無以為妙香。妙香太白也。初有神人。降
0008_0104_a_12L于檀木下。出而為君。故號曰檀君。都平壤。國號朝鮮。實東方開荒之主也。
0008_0104_a_13L山之事。可以獨步國中。雄壯奇秀。可以匹頭流。可以伯仲皆骨。捿托養高。
0008_0104_a_14L終無人世意者。庶幾出二山右也。國之有香山。不亦偉乎。據山之心腹。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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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5_a_01L산으로서의 자격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내원암이다. 높은 곳은 좁아서 대중을 용납할 수 없고 낮은 곳은 번거로워 고요함을 익힐 수 없다. 가운데 거하여 온산의 기세를 기대니 호쾌하게 아래를 보는 듯하고 가볍게 하늘을 거니는 듯하다. 순조로워 험지를 오르는 어려움이 없고 평탄하여 위태로운 근심이 없으니 진실로 큰 복지라 할 만하다. 원효가 좌선하던 곳(宮)과 무학이 묵언 수행하던 굴이 아직도 있고, 중세에 서산 노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개당開堂425)하여 소요하다가 입적하셨으니 비단 문하 제자들만의 존경이 아니라 또한 우리 동인東人(조선)들이 우러르는 바이다. 사방에서 참선하는 이들이 항상 모여드니 올 때는 번개 같고 갈 때는 구름 같아, 올 때 품은 바가 없고 갈 때 집착이 없다. 겨울에 머리 숙여 3개월 동안 나가지 않고 여름에는 금족禁足하여 90일을 안거安居하면서 미타彌陁 염불을 하거나 자성을 밝힌다. 그리하여 굳센 자는 연마하여 부드러워지고 거친 자는 변화되어 오묘하게 된다. 산에 내원암이 있는 것이 또한 중대하지 않은가.신유년(1861) 12월 6일 밤에 홀연 화재로 모두 타버렸다. 대중이 정신을 수습하고 물고기와 새들이 흩어질 때 주법主法 혼성混惺과 지무知務 벽운碧雲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음 해 임술년(1862) 봄 산중의 노소(耋艾)가 모두 모여 의논하길, “산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내원암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여 한마음으로 회복을 도모하였다. 대덕大德들이 힘을 아끼지 않았고 원담圓潭이 비록 늙었으나 일을 좌우했는데 불행히도 입적하였다. 청파清坡가 뒤를 이어 감독하여 일을 마쳤다. 하봉荷峯은 출납을 맡고, 경담鏡潭은 관북으로 나갔는데 수좌 윤倫이 따라갔다. 용봉蓉峯은 관동으로 나갔는데 납승 교教가 따라 갔다. 인암麟巖은 의주義州로 들어가 주윤州尹 이건필李建弼 공 덕택에 약간 재물을 힘써 모았다. 지주地主(수령) 이휘중李彚重 공이 이웃 고을 수령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 진真을 찾다가 일하는 것을 보고는 긍휼히 여겨 스스로 보시하고 타인에게도 권유하였다. 춘봉春峯이 먼 길을 다니며 실로 고생하였고, 하봉荷峯과 월영月影ㆍ혼성混惺이 평양에 들어가 도백道伯(평안감사) 홍우길洪祐吉426) 공의 도움을 받고 또 42고을로 내려갔다. 벽운碧雲은 본부本府와 -
0008_0105_a_01L不失其所以為山者。內院也。高者狹而不能容眾。卑者煩而不能習靜。處
0008_0105_a_02L中而憑一山之氣勢。快如臨下。輕如躡空。順而無涉險之難。坦而無阽危
0008_0105_a_03L之愁。真可謂大福地。元曉宴坐之宮。无學杜口之窟。尚在。中世西山老住
0008_0105_a_04L持而開堂。逍遙而入寂。非惟門弟子之所尊。抑亦我東人之所仰也。四方
0008_0105_a_05L禪者。恒聚會。其來也如電。其去也如雲。來无所懷。去无所着。冬則低頭而
0008_0105_a_06L三月不出。夏則禁足而九旬安居。或念彌陁。或明自性。頏者磨而為軟。麤
0008_0105_a_07L者化而為妙。山之有內院。不亦重乎。歲辛酉十二月六夜。忽驚失火。焚蕩
0008_0105_a_08L无餘。眾収拾餘魂。魚鳥散時。主法混惺。知務碧雲。蒼黃無所措。翌年壬戌
0008_0105_a_09L春。山中耋艾。咸聚議曰。无山則已。不可无內院。一心圖復。諸德不惜力。圓
0008_0105_a_10L潭雖老。左右事。不幸死。清坡踵而監之。終其事。荷峯出納物。鏡潭出關北。
0008_0105_a_11L首座倫隨之。蓉峯出關東。衲僧教從之。麟巖入義州。賴州尹李公建弼。力聚
0008_0105_a_12L若干。地主李公彚重與鄰邑宰。入山尋真。目役而恤之。自施引他。春峯實勞
0008_0105_a_13L跋涉。荷峯月影混惺入平壤。荷道伯洪公祐吉力。且下四十二州。碧雲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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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6_a_01L청북清北427)으로 갔고, 하봉荷峯은 잠깐 청남清南428)으로 갔으나 마치지 못했다. 혼성混惺은 신노信老와 함께 황해도로 갔다가 신노는 돌아오고 혼성은 서울로 올라가 4년을 머물렀다. 왕대비王大妣 김씨가 소문을 듣고 불쌍히 여기고 서궁徐宮이 전력하고 차궁車宮이 도와 두루 산야에 모집하고는 돌아왔다. 그 사이에 얻은 것에 많고 적음을 비교하지는 않는다.가을 8월에 나무를 베어 5년 지난 병인년(1866)에 마쳤다. 풍우에 공사를 중단하기도 하고 재정이 부족해서 세월을 허비하기도 했다. 하봉의 고생과 벽운의 노고를 어찌 다 말하랴. 서산의 영각影閣이 옛 규모에 비하면 조금 줄었으나 형상들이 찬란하니 모두 혼성의 힘이었다. 송宋 목공의 마음이 부정해서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후에 아쉬움을 삼키게 되었다. 송 목공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병자년(1876)에 나는 이름난 자취를 찾아 서쪽을 다니다가 병 때문에 사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인들이 위로하고 편하게 해주니 보양하는 데 매우 편리했다. 어찌 나뿐이겠는가. 오는 이들이 모두 그러할 것이다. 지난 대덕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편안함이 있겠는가. 거처하는 이들은 염불하며 정진하고 대덕들의 노고에 보답할 방법을 도모하고 있다. 훗날은 무상하게 올 것인데 대덕들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산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영남嶺南 사문沙門 초마草摩가 삼가 적는다.
도감都監 : 청파 설감清坡說鑑
별좌別座 : 하봉 서백荷峯瑞伯
화주化主 : 인암 문성麟巖文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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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6_a_01L府與清北。荷峯乍行清南。梗不得終。混惺與信老出黃海道。信老歸。混惺
0008_0106_a_02L上京師。棲遲四載。
0008_0106_a_03L王大妣金氏。聞風而憐之。徐宮專力。車宮助之。旁募山野。乃還。其間所得。
0008_0106_a_04L不較多寡。秋八月伐木。越五年丙寅竣。或阻風雨。或停艱匱。至費歲月。荷
0008_0106_a_05L峯之辛。碧雲之勞。可勝言哉。西山影閣。依舊規而稍减位數。塑像煒煌。皆
0008_0106_a_06L混惺力。木工宋持心不正。督繩失宜。為後茹恨。宋之不善終宜矣。丙子愚
0008_0106_a_07L西歷名跡。以病入院。諸道人慰而安之。調養甚便。豈惟止愚。來者皆然。向
0008_0106_a_08L使無德之苦。安有今日之穩乎。居者念佛精進。務圖所以報諸德之勤。異
0008_0106_a_09L日无常到來。且以諸德之心為心。則幾乎不負山矣。
0008_0106_a_10L嶺南沙門草摩謹識
0008_0106_a_11L都監清坡說鑑
都片手金承鉅
0008_0106_a_12L別座荷峯瑞伯
副片手宋雲峯
0008_0106_a_13L化主麟巖文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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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7_a_01L혼성 포신混惺抱信
주사主事 : 벽운 혜수碧雲惠修
도편수都片手 : 김승거金承鉅
부편수副片手 : 송운봉宋雲峯35-2. (심상훈의 기록)묘향산은 동국 제일의 명산이다. 크고 수려하며 기운과 영험함이 모여 있으니 단군과 동명왕이 이어서 탄강하였다. 그 가운데 상원암이 있으니 법왕봉 아래 있다. 용연龍淵과 호대虎臺 등 기이한 자취가 매우 많다. 임신년에 궁인宮人을 보내 이 산에서 기도하게 하니 갑술년에 원량元良(왕세자)가 태어났다. 을해년에 중국(中朝)에서 책봉하고 황제의 보살핌이 성대하여 특별히 장수불長壽佛을 하사했다. 조사詔使429)가 받들어 와서 이 산에 안치하고는 승려 정희靜禧를 불렀다. 대궐에서 8천 꿰미(緡)를 하사하여 신臣에게 상원암 용각龍角 동쪽에 전각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시종 10개월이 걸려 일을 마치고는 ‘축성전祝聖殿’이라 하였다. 칠보七寶를 채우고 팔복八福의 전답을 넓게 두어 청정한 법계에서 향을 이고 공양을 드리며 천만 세를 외쳤다. 옛날에 (부처를) 갈대로 덮어주었어도 과보를 누렸다고 하니 하물며 이렇게 건물을 지어 받드는데 어찌 영험한 도움이 없겠는가.공경히 생각건대 저하께서는 무량한 복을 얻으시고 종묘사직을 반석 위에 두시며 바다처럼 오래 사심이 부처에 보답하는 은혜가 되리라. 이는 우리나라의 무강한 아름다움이 되지 않겠는가. 두 손 모아 절을 하며 축원하고 삼가 사찰 벽에 기록한다.
신사년 8월 지부知府 내각학사內閣學士 심상훈沈相薰.430)35-3. (이근호의 기록)니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성인(공자)이 나시고431) 화華에서 축원하여 성인(요임금)이 장수하심을 역사가가 삼가 기록하였는데432) 우리 동방의 묘향산은 니구산이나 화와 병립할 만하다. 왜 그런가. 지난 신임년433)에 대내大內434)에서 궁인宮人을 보내 여기서 기도하게 하였고, 갑술년(1874)에 세자(순종)가 탄생하였다. -
0008_0107_a_01L混惺抱信
0008_0107_a_02L主事碧雲惠修
0008_0107_a_03L
0008_0107_a_04L○香嶽是東國第一名山也。磅磚 [392] 秀麗。 毓氣鍾靈。檀君東明相斷而誕。
0008_0107_a_05L中有上院庵。在法王峯下。龍淵虎臺。異蹟頗多。歲在壬申。遣宮人。禱于本
0008_0107_a_06L山。越甲戌 元良誕降。乙亥中朝 冊封。皇眷隆厚。特賜長壽佛。詔使奉
0008_0107_a_07L來。妥于是山。乃召僧靜禧。內下八千緡。命臣搆殿于上院龍角之東。首尾
0008_0107_a_08L十箇月。工告訖。扁曰祝 聖。盛七寶之物。廣置八福之田。清淨法界。頂香
0008_0107_a_09L禮供。呼千萬歲。古人蘆笠之覆。猶享果報。矧此繕宇之奉。豈無靈佑。恭惟
0008_0107_a_10L邸下。獲福無量。奠 宗社於盤泰。添壽考於海屋。以為報佛之恩。茲非我
0008_0107_a_11L邦無疆之休歟。拜手攢祝。謹識寺壁。
0008_0107_a_12L辛巳八月日。知府內閣學士。沈相薰
0008_0107_a_13L
0008_0107_a_14L禱於尼而聖人生。祝於華而聖人壽。史氏所謹書。而我東之香山。足與尼
0008_0107_a_15L華並也。何者。粵在辛壬。自 大內遣宮人。處禱于此。甲戌 世子誕降。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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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8_a_01L을해년(1875)에 상국 이유원李裕元435) 공이 주청사奏請使로서 황조(청)에서 하사한 장수불長壽佛을 받들어 와서 이 산에 안치하였다. 산승 정희靜禧가 절을 하고 전경轉經436)을 하니 정성이 아름다웠다. 신사년(1881)에 미쳐 지부知府 심상훈沈相薰 공이 대궐에서 하사한 8천 꿰미(緡)로 상원암 뒤 용각龍角 동쪽에 전각을 짓고 복전을 설치하여 천향天香을 사르며 공양했다. 기축년(1889)에 관찰사 민영준閔泳駿437) 공이 1천 꿰미로 땅을 사서 공양을 도왔다. 이제 나도 1천 금을 내어 위답位畓438)을 사서 해마다 부족함을 채우는 자료가 되게 했다.한漢나라 노래의 ‘거듭 빛나고 거듭 윤택하다(重光重潤)’439), 주아周雅의 ‘산마루와 같고 구릉과 같다(如岡如陵)’440) 구절이 어찌 옛날에만 아름다움을 차지하랴. 생각건대 이 상공이 불상을 받들어 오고 심 공이 전각을 지어 완성하고 민 공이 토지를 사서 부치고, 이제 내가 희사하여 도우니, 『논어』에서 이른바 ‘비심裨諶이 처음 짓고, 세숙世叔이 토론하고 자우子羽가 수식하고 자산子產이 윤색한다.’441)는 말과 멀리서 대응한다. 비록 그러하나 나로서는 윤색했다는 것에 실로 많이 부끄럽도다.
경인년(1890) 8월 하순에 지부知府 이근호李根澔442)가 삼가 기록한다.35-4. 4절구에 차운하다 次四節句藥山太守上禪樓 약산 태수가 선원 누각에 오르니
翠壁中間三瀑出 푸른 절벽 중간에 세 폭포 나오네
遙向春宮壽福求 멀리 춘궁을 향해 수복을 축원하는데
白雲咫尺一鍾浮 백운은 지척이요 종소리가 떠가네
祗園蒼鬱晴猶雨 울창한 사찰은 맑은 날도 비 오는 듯
民事關情無夢寐 세상의 사정은 꿈에도 관여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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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8_a_01L亥故相國李公裕元。以奏請使奉來 皇朝所賜長壽佛。妥安于此山。山
0008_0108_a_02L之僧靜禧拜佛轉經。其誠可嘉。逮夫辛巳。知府沈公相薰。以內下錢八千
0008_0108_a_03L緡。建殿于上院之後龍角之東。置福田。爇天香。己丑觀察使閔公泳駿。以
0008_0108_a_04L一千緡買土助享。今余又捐一千金。買置位畓。以為課歲補缺之資。漢歌
0008_0108_a_05L之重光重潤。周雅之如岡如陵。豈特專美於古也哉。竊惟李相之奉佛以
0008_0108_a_06L來。沈公之搆殿以成。閔公之買土以付。今余之捐廩以助。與魯論所謂。裨
0008_0108_a_07L諶草創之。世叔討論之。子羽修飾之。子產潤色之。遙遙相對。而雖然余則
0008_0108_a_08L於潤色之也實多愧焉已。
0008_0108_a_09L庚寅八月下澣。知府李根澔謹識。
0008_0108_a_10L次四節句
0008_0108_a_11L藥山太守上禪樓。翠壁中間三瀑出。
0008_0108_a_12L遙向春宮壽福求。白雲咫尺一鍾浮。
0008_0108_a_13L祗園蒼鬱晴猶雨。民事關情無夢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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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09_a_01L法界清凉夏亦秋 법계는 청량하여 여름에도 가을 같은데
扁舟明日下長洲 조각배로 밝은 날 장주로 내려가네
攬鐵歷虎臺 쇠밧줄 잡고 호대를 오르니
汗流透春衫 땀이 봄 적삼에 흘러 적시누나
捫蘿涉龍瀑 넝쿨 잡고 용폭포를 건너니
喘息撑脅腹 숨이 차서 가슴을 움켜쥐네
玉笛杳仙蹤 옥피리 아득히 신선의 자취런가
不由攀躋勞 잡고 오르는 수고가 없겠구나
鍾磬宛西竺 종과 경쇠소리는 서축 느낌이라
安有清爽福 편안히 맑은 복이 있도다
蹔憩祗樹陰 사찰 나무 그늘에 잠시 쉬며
援筆題為時 붓을 잡아 시를 쓸 때에
斜陽轉巖麓 지는 해가 바위 기슭으로 옮기니
留與運師讀 머물러 보운 스님과 함께 읽노라
계사년 봄 안핵사按覈使 김인식金寅植이 보운 정희普運靜禧에게 써주다.35-5. 현판 부분 懸板之部운한각雲漢閣鍾聲夜息聞天語 종소리 밤에 잦아들어 하늘 소리를 듣나니
鑪氣晨飄接御香 화로 기운이 새벽에 날려 어향443)을 맡는다
귀인재歸仁齊 -
0008_0109_a_01L法界清凉夏亦秋。扁舟明日下長洲。
0008_0109_a_02L攬鐵歷虎臺。汗流透春衫。
0008_0109_a_03L捫蘿涉龍瀑。喘息撑脅腹。
0008_0109_a_04L玉笛杳仙蹤。不由攀躋勞。
0008_0109_a_05L鍾磬宛西竺。安有清爽福。
0008_0109_a_06L蹔憩祗樹陰。援筆題為時。
0008_0109_a_07L斜陽轉巖麓。留與運師讀。
0008_0109_a_08L癸巳春按覈使金寅植為題普運靜禧。
0008_0109_a_09L○懸板之部
0008_0109_a_10L雲漢閣
0008_0109_a_11L鍾聲夜息聞天語。
0008_0109_a_12L鑪氣晨飄接御香。
0008_0109_a_13L歸仁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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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0_a_01L千年國祚文明世 천 년 국운의 문명 세상에
八域禪法教授門 팔도의 선법을 가르치는 문
世間亦有平田地 세간에 또한 평탄한 밭이요
月明天上玉樓空 달이 천상에 밝으니 옥루 비네
春暮仙間花雨紅 늦은 봄 선계에 붉은 꽃비 내리고
端坐虛懷泯是非 단정히 앉은 마음엔 시비가 없으니
固知忠節驚人世 충절이 세상을 놀라게 함을 알겠네
의중당義重堂能使倭將識姓名 왜적 장수도 성명을 알게 할 수 있으나
誰知王舍一輪月 왕사성의 둥근 달을 누가 알까
萬古光明長不滅 만고의 광명은 길이 감소하지 않고
寶筏流通三法界 보배 뗏목444)은 세 법계에 유통하며
慈航普濟億生靈 자비 배가 억만 중생을 널리 구제하네
水流花發非空性 물 흐르고 꽃 핌은 공성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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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0_a_01L千年國祚文明世。
0008_0110_a_02L八域禪法教授門。
0008_0110_a_03L世間亦有平田地。
0008_0110_a_04L月明天上玉樓空。
0008_0110_a_05L春暮仙間花雨紅。
0008_0110_a_06L端坐虛懷泯是非。
0008_0110_a_07L固知忠節驚人世。 [393]
0008_0110_a_08L義重堂能使倭將識姓名。
0008_0110_a_09L誰知王舍一輪月。
0008_0110_a_10L萬古光明長不滅。
0008_0110_a_11L寶筏流通三法界。
0008_0110_a_12L慈航普濟億生靈。
0008_0110_a_13L水流花發非空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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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1_a_01L海晏河清是佛靈 바다 고요하고 하천 맑음이 불성이라네
여시문如是門觀空有色西方月 허공을 바라보니 색이 있는 서방의 달
聽世無聲南海潮 세상을 들으니 소리 없는 남해의 조수
도규정문都紏正門玄風惣領三千界 현풍으로 거느리는 삼천대천 세계
丹悃指揮十萬兵 충성445)으로 지휘하는 십만 병사
수의재修義齊口是禍門必可嚴守 입은 화망의 문이니 엄히 지켜야 하고
身乃災本不應輕動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어서각御書閣碧窓宿霧濛濛濕 푸른 창에 묵은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니
本拱浮雲細細輕 본래 구름을 잡으면 작디 작고 가볍다네 -
0008_0111_a_01L海晏河清是佛靈。
0008_0111_a_02L如是門
0008_0111_a_03L觀空有色西方月。
0008_0111_a_04L聽世無聲南海潮。
0008_0111_a_05L都紏正門
0008_0111_a_06L玄風惣領三千界。
0008_0111_a_07L丹悃指揮十萬兵。
0008_0111_a_08L修義齊
0008_0111_a_09L口是禍門必可嚴守。
0008_0111_a_10L身乃災本不應輕動。
0008_0111_a_11L御書閣
0008_0111_a_12L碧窓宿霧濛濛濕。
0008_0111_a_13L本拱浮雲細細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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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2_a_01L35-6. 탑 부분 塔之部화강석 구층탑 1기基
요遼 중희重熙 13년(1044) 축조
화강석 13층 대탑
만력萬曆446) 연간 축조35-7. 비석 부분평안북도 영변 묘향산 보현사 안의 사적비寺蹟碑 금金나라 황통皇統 원년(1141) 기록.
고려 인종 어필御筆로 쓴 액자. 김부식金富軾 찬술.
석종비石鍾碑 명나라 홍무洪武 17년(1384) 기록
고려 시대 이색李穡 찬술.
사리부도비舍利浮圖碑 만력萬曆 31년(1603)
서산西山 대사 청허清虛 찬립撰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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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2_a_01L○塔之部
0008_0112_a_02L花崗石 九重層塔 壹基
0008_0112_a_03L遼 重熙十三年 築造。
0008_0112_a_04L花崗石 十三重大塔
0008_0112_a_05L萬曆年間 築造。
0008_0112_a_06L○碑之部
0008_0112_a_07L平安北道寧邊妙香山普賢寺中
0008_0112_a_08L寺蹟碑 金 皇統元年記
0008_0112_a_09L高麗仁宗御筆題額 金富軾撰。
0008_0112_a_10L石鍾碑 明 洪武十七年記
0008_0112_a_11L高麗代 李穡 撰。
0008_0112_a_12L舍利浮圖碑 萬曆三十一年
0008_0112_a_13L西山大師 清虛撰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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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3_a_01L서산대사비西山大師碑 숭정崇禎 후後 84년447)
이조李朝 이정귀李廷龜448) 찬술.
수충사비酬忠祠碑이조李朝 이병모李秉模449) 찬술.36. 묘향산 보현사 기록450)(妙香山普賢寺之記)황통皇統 2년(1142) 임술년 11월 내강內降451)한 어필御筆로 편액을 쓰다
개부의開府儀 동삼사同三司 검교태사檢校大師 수태위守大尉 문하시중門下侍中 집현전태학사集賢殿太學士 판상서이조부사判尚書吏禮部事 겸兼 태자태사太子太師 감수국사監修國史 상주국上柱國 신臣 김부식金富試이 왕명(宣)을 받들어 짓다.
문림랑文林郎452) 시상서병부시랑試尚書兵部侍郎 겸兼 동궁시강학사東宮侍講學士 사금어대賜金魚袋 신臣 문공유文公裕453)가 왕명을 받들어 쓰다.
묘향산 보현사는 탐밀探密과 굉확宏廓 두 스님이 처음 지은 것이다. 탐밀의 본성은 김씨로 황주黃州454) 용흥군龍興郡 사람이다. 나이 25에 출가하여 힘써 고행하니 하나의 장삼과 하나의 발우로 생활했다. 큰 추위가 아니면 신을 신지 않고 하루에 한 번만 식사하면서 계율을 확고히 하고 -
0008_0113_a_01L西山大師碑 崇禎後八十四年
0008_0113_a_02L李朝 李廷龜撰。
0008_0113_a_03L酬忠祠碑
0008_0113_a_04L李朝 李秉模撰。
0008_0113_a_05L○妙香山普賢寺之記
0008_0113_a_06L皇統二年丙 [394] 戌十一月日內降
0008_0113_a_07L御筆題額。
0008_0113_a_08L開府儀。同三司。檢校大師守 [395] 尉。門下侍中。集賢殿太學士。判尚書吏禮部
0008_0113_a_09L事。兼 太子太師。監修國史。上柱國。臣金 富試奉 宣撰。
0008_0113_a_10L文林郎。試尚書兵部侍郎。兼 東宮侍講學士。 賜金魚袋。臣文 公裕
0008_0113_a_11L奉 宣書。
0008_0113_a_12L妙香山普賢寺。探密宏廓二師之所始作也。探密本姓金氏。黃州龍興郡
0008_0113_a_13L人。年二十五出家。刻意苦行。一衲一鉢。非大寒則不履。日一食。確乎戒。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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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4_a_01L학업에 근면하여 이름난 스승에게 나아가 화엄의 교관教觀을 전수받았다. 거란 태평太平 8년 무신년(1028)에 연주延州(영변) 산에 들어가 난야蘭若(절)를 짓고 머물렀다. 굉확은 탐밀의 조카로서 중희重熙 7년 무인년(1038)에 와서 제자가 되었다. 뜻이 동일하여 기운이 합해지고 덕이 채워지니 명성이 굉장했다. 배우는 이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드니 장소가 비좁았다. 임오년(1042)에 동남쪽 1백여 보步 되는 곳에 장소를 가려 정사精舍(절) 243칸을 짓고는, 그 산을 ‘묘향산’이라 하고 사찰을 ‘보현사’라 했다. 이후로 경전을 읽으며 밤낮으로 쉬는 때가 없었다. 두 스님이 입적하자 제자들이 서로 이어서 주지를 맡았는데 불사를 함에 처음처럼 받들지 않음이 없었다.함옹咸雍 3년 정미년(1067)에 성조聖祖 문종이 듣고서 가상히 여겨 담당관에게 명하여 토지를 하사했다. 그리고 주지 자리가 빌 때는 문인門人이 무리 가운데 경전에 밝고 행실을 닦아 조사의 도를 이을 수 있는 이를 뽑아 주차奏差하여 좌우가左右街455)에 내려서 삼강三剛456)에 전하여 그대로 실행하고 바꾸지 말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도인道人(승려) 창선暢先과 각린覺隣, 승총勝聰, 혜쌍惠雙, 성각性覺 등이 세월이 지나 문서가 마멸되면 조사의 행적과 선왕의 명령이 잊혀 없어질까 염려되어 비석에 새겨 후인들이 볼 수 있게 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름을 나란히 하여 주청하여 신하(김부식)에게 그 일을 기록하게 하니, 전교하여 허락하셨다. 신하는 사양하지 못하고 말하였다.“공자께서 일민逸民을 서술할 때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앞에 두고 이후 유하혜柳下惠를 언급하였습니다.457) 맹자가 세 성인을 서술할 때도 백이를 이윤과 유하혜의 앞에 두었습니다.458) 사마천司馬遷은 70권의 열전을 지을 때 특별히 백이를 맨 처음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양자楊子459)의 『법언法言』460)에서는 ‘옛날에는 굶어서 드러난 사람을 높게 여기고 벼슬하며 숨은 사람은 낮게 여겼다.’고 하였다.461) 그러나 공자는 말하길, ‘나는 이와 다르니 괜찮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고집함이 없다.’고 하였다. 무릇 성인의 행실은 구슬이 -
0008_0114_a_01L乎學。就名師。 傳華嚴教觀。於契丹太平八年戊辰歲。八 [396] 延州山。營蘭若。
0008_0114_a_02L以居△。宏廓。探密之猶子。以重熙七年戊寅歲。來而為弟子。志一而氣
0008_0114_a_03L合。德充而聲宏。學者聞風福 [397] 湊。地不足容。以△△△△ [398] 年壬午歲。於東南
0008_0114_a_04L隅一百許步。擇地 [399] 精舍。凡二百四十三間。名其山曰妙香。其寺曰普賢。自
0008_0114_a_05L後△△△△△△△△△ [400] 佛▼(繙-釆+水)經。曰 [401] 夜無 [402] 。時二師沒。弟子相續任持。其
0008_0114_a_06L為佛事。無不承權輿。至 [403] 咸雍三年△△△△△△△△△△ [404] 聞而嘉之。命有
0008_0114_a_07L司錫土田。文 [405] 教△ [406] 主者闕焉。則門人於眾中。簡經明信 [407] 修。龍 [408] 紹祖師之道
0008_0114_a_08L△△△△△△△△△△ [409] 三剛。行之勿昔 [410] 。至是道人暢先覺隣勝聰惠雙
0008_0114_a_09L性覺等。慮歲月移易。文墨漫滅。祖師△△△△△△△△△△△△ [411] 明欲
0008_0114_a_10L刻之石。此 [412] 為來者之觀。遂聯名奏請。令臣書其事。教可之。臣不敢辭。乃曰
0008_0114_a_11L△△△△△△△△△△△△△ [413] 惠孟子敘三聖人。亦以伯夷居伊尹柳
0008_0114_a_12L下惠之前。司馬遷作七十列傳。特以伯夷為△△△△△△△△△△△
0008_0114_a_13L△ [414] 顯。下祿隱。而孔子曰。我則異於是。無可無不可。夫聖人之行。如珠之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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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5_a_01L쟁반 위를 달리는 것과 같아서 종횡으로 기울이고 바르게 함에 따라서 천변만화하지만, 요컨대 쟁반을 벗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길, ‘마음이 바라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했다. 장주莊周(장자) 또한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해도 법도(大方)를 행한다.’고 했다. 굶어서 드러나고 벼슬하여 숨는다고 할 때 그 고하를 기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공자의 일민逸民과 맹자의 세 성인462)에 대해 그 순서가 동일하고 양자가 고하를 평가한 것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은 장차 고결한 이들을 내세우고 탐욕자들을 물리침으로써 천하 만세의 가르침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하물며 불교의 이야기를 들으니, 여래께서는 3겁劫 동안 만행萬行을 닦아 도를 이룸에 이르셔서 복과 지혜가 두루 갖추어지고 의보依報463)와 정보正報464)가 장엄하였으며, 세상에서 교화하실 때에는 맨발에 발우를 들고서 걸식으로 생활하셨다고 하니 ‘영예를 알고 욕됨을 지킨’465) 사람이런가. 그렇다면 그 무리가 된 이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지금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악한 일을 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보다 나은 사람들도 혹은 탐욕과 인색으로 많은 재산을 모으고서, 무릇 생활도구에 있어서 세속의 사람들과 다름이 없고 사치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더 심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족하게 여겨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물건을 빌려주어 이자를 취함에 살과 뼈를 벗겨낼 정도로 하여 죽고 나서야 그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설혹 부처가 다시 나온다고 하여도 반드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탐밀과 굉확 같은 분들을 어찌 존경하고 내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성조聖祖께서 크게 칭찬하셨고 지금 밝은 임금님께서 이를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게 하신 것 역시 마땅하다. 스님들의 생애에 부처님을 보고 사리를 얻거나 신비한 빛을 내어 산신들을 감동시킨 일과 같은 많은 영험한 일들이 있음을 들었지만 이각李角이 지은 행장行狀에 자세하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만 사찰을 만든 시기와 스님의 덕행으로 사람들로부터 (추앙받은 것)을 기록한다.
금나라 황통皇統 원년 신유년(1141) 가을 7월 11일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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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5_a_01L盤。縱橫斜△△△△△△△△△△△△ [415] 。孔子曰。縱心所欲。不踰 [416] 。莊周亦
0008_0115_a_02L曰。猖狂妄行。蹈乎大方。則餓顯也。祿隱也。其高下不可必也。然則△△△
0008_0115_a_03L△△△△ [417] 之三聖人。其次序同。而楊子高下之。文 [418] 如此者。將以進高士退
0008_0115_a_04L貪夫。以為天下萬世之教者也。△ [419] 聞△△△△△△△ [420] 如來歷三却 [421] 。修萬
0008_0115_a_05L行。以至於成遂 [422] 。福慧具足。依正藏嚴。而其化於世也。則跣足持鉢。乞△△
0008_0115_a_06L△△△△△△△△△ [423] 其辱耶 [424] 。則為其道 [425] 也。可 [426] 思乎。今之人種種△△ [427] 。無
0008_0115_a_07L不為己 [428] 。其善於此者。或貪△△△△△△ [429] 資其 [430] 與△△△△△△ [431] 其後 [432] 靡
0008_0115_a_08L則遏 [433] 之。然猶以不足。舉物以取利於眾 [434] 民。剝肉刻骨。死而後已者。往往有
0008_0115_a_09L之。△△△△△△ [435] 豈 [436] 必不能△△△ [437] 。則如探密宏廓者。差 [438] 可不尊而進之
0008_0115_a_10L歟。則 聖祖褒嘉之甚渥。 明△△△△△△△△△ [439] 師△△△ [440] 多△△
0008_0115_a_11L△△ [441] 佛。得 舍利。放神光。感山精。具於爾 [442] 所述行狀。故今略之。但△△△
0008_0115_a_12L△△△△△△△△△△△ [443] 。
0008_0115_a_13L時大金白 [444] 統元年。歲次辛酉。秋 [445] 七月十一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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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6_a_01L주지 비구 신臣 석釋 각린覺隣 등이 비를 세움.
왕륜사王輪寺466) 대사大師 혜참惠參이 글자를 새김.
참고)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467)
고려국 연주 묘향산 보현사 탐밀과 굉확 두 조사의 기록 뒤에 다음과 같이 기록함.도인道人 향진向眞과 홍간弘侃, 현재賢載, 균선均善, 혜소慧炤, 연진演眞, 혜관慧觀, 응진應眞, 응여應如, 공웅(功+言)雄, 창선暢禪, 각린覺隣 등은 가르침을 받고 서로 이어 주지를 맡은 사람들이다.
명관明觀, 원걸元傑, 현오玄悟, 혜소慧紹, 사혜思慧, 선수善修, 자묘資妙, 상준尙俊, 탐웅探雄, 혜탐惠探, 진원進元, 선응善應, 종간宗幹, 승량承亮, 지원志圓, 현심顯心, 쌍묘雙妙, 남정南正, 진간眞幹, 낭명朗明, 창영暢英, 지준智俊, 의정義貞, 영선令宣, 연경連景, 법영法英, 정심正心, 종혜宗惠, 영우靈祐, 증원證元, 증명證明, 종현宗賢, 선청善淸, 청오淸悟, 교자敎資, 청담淸湛, 도훈道訓, 지견志堅, 영충令冲, 승총勝聰, 준오俊悟, 덕충德冲, 수영守英, 심오尋奧, 선원善元, 연수延壽, 청예淸銳, 현각玄覺, 교남敎南, 창명暢明, 선충善沖, 연원演元, 여현麗賢, 의명義明, 지철至哲, 영오英悟, 석진釋眞, 자원資元, 일여一如, 석명釋明, 진오眞悟, 연묘延妙, 의린義鱗, 소관紹觀, 선겸善謙, 균오均悟, 효관曉觀, 계원戒元, 순린順隣, 각융覺融, 개린介鱗, 자교資敎, 선자善慈, 혜지惠知, 일선一先, 응관應觀, 혜주惠珠, 원신元信, 지남志南, 의함善含, 요공了空, 각종覺宗, 혜선惠先, 혜철惠哲, 원오元悟, 시각始覺, 억원億元, 계선戒宣, 승린勝麟, 영언靈彦, 정유定猷, 승공承(功+言), 묘원妙元, 응균應均, 영영令英, 상종尙宗, 견일堅一, 영준靈俊, 품관稟觀, 혜쌍惠雙, 언류彦流, 견신堅信, 응선應先, 혜평惠平, 각혜覺惠, 혜원惠元, 지선智詵, 보원甫元, 자균資均, 도혜道惠, 지현之玄, 홍민洪敏, 의균義均, 현준玄俊, 의종義宗, 영소靈炤, 의가義可, 도숭道崇, 요비了非, 요원了元, 관원觀元,468) 영순靈順, 덕명德明, 광숭廣崇, 승관昇貫, 지염智琰, 상겸尙謙, 효종曉宗, 승회承誨, 혜여惠如, 신관信寬, 석룡釋龍, 언청彦淸, 승선勝宣, 홍준洪俊, 혜각惠覺, 신선信先, 명계明戒, 성관成貫, 법명法明, 영담令湛, 명대明大, 오여悟如, 연자演資, 선창善昌, 계승戒升, 이승理升, 명오明奧, 승언僧彦, 지초智超, 지오至悟, 성진性眞, 승필承弼, 관청貫淸, 의혁義赫, 신정神正, 자관資觀, 경련景連, 이소理紹, 신연信緣, 학초學初, 지량志良, 도현道賢, 우청祐淸, 영균令均, 혜량惠良, 지혁之赫, 언의彦義, 의운義469)雲, 신원信元470), 영여令如, 선여善予, 사천思泉, 법혜法惠, 종예宗銳, 해현海賢, 도추道樞, 혜교惠敎, 지명至明, 경승景升, 지일之一, 숭언崇彦, 원소元炤, 통관洞觀, 지여智如, 이심理心, 지수志修, 원도元道, 성준成俊471), 종겸宗謙, 신전信全, 도상道常, 혜연惠然, 원청元淸, 학진學眞, 성현性賢, 언경彦卿, 도웅道雄, 선엄善嚴, 언웅彦雄, 존정存正, 혜염惠琰, 학관學觀, 언유彦猷, 성선誠善, 혜아惠牙, 정림正林, 특현特賢, 영혜令惠, 우현祐賢472), 의룡義龍, 상현尙賢, 종보宗輔, 신수信守, 도균道均, 언자彦資, 학묘學妙, 의향義香, 원실元實, 혜사惠思, 순심順心, 언립彦立, 승겸勝謙, 혜민惠敏, 경부景夫, 승효承曉, 정해正解, 성연性延, 신현信賢, 의인義仁, 처△處△473), 언종彦宗, 처원處元, 언승彦升, 영주令周, 혜부惠夫, 정상定常, 사남師南, 선학善學, 언혜彦惠, 겸상謙常, 승연勝延, 의지義池, 지종智宗, 승연承延, 혜당惠幢, 광선光善, 언실彦實, 언혁彦赫, 학순學純, 경△景△, △△474), 이혁里奕, 혜겸惠謙, 혜택惠澤, 지청智淸, 성량性良, 의연義延, 언소彦素, 언관彦寬, 영필令必, 순사順思, 소남炤南, 경소景素, 계향戒香, 경남景南, 관의寬義, 일초日初, 순자順資, 응남應南, 득남得南, 영남令南, 혜엄惠嚴, 학충學冲, 준서俊胥, 의준義俊, 도석道碩, 석련釋蓮, 혜명惠明, 이약理若, 효장孝長, 언남彦南, 형연瑩然, 성담性潭, 성서性胥, 처신處神, 학영學英, 존의存義, 준혁俊赫, 종필宗必, 혜혁惠赫, 승민承敏, 언상彦常, 정선正先, 순오純悟, 신남信南, 연우連祐, 개혜開惠, 준소俊少, 혜심惠心, 성혁性赫, 달혜達惠, 도청道淸, 학련學連, 혜묘惠妙, 소현少賢, 신량信良, 일승日升, 경숭景崇, 현의玄義, 승실承實, 소현炤玄, 순인順仁, 일충日冲 등은 불법의 교화를 도운 이들이다.
종간宗幹과 종혜宗惠, 각융覺融, 성각性覺, 선함善含, 상겸尙謙, 혜각惠覺 등은 대중의 인연을 모아서 대사大事를 도와 완성한 이들이다.
이와 같이 문도들을 분류하여 새기는 것을 시행함.
금나라 황통皇統 원년 신유년(1141) 7월 일에 세움.
문림랑文林郎 시상서병부시랑試尙書兵部侍郎 겸동궁시강학사兼東宮侍講學士 사자금어대賜紫金魚袋 신臣 문공유文公裕가 왕명을 받들어 씀.37. 고려국 평양도 연산부延山府 묘향산 안심사 석종의 비碑(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鍾之碑)추충보절推忠保節 동덕찬화공신同德賛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영예문춘추관사領藝文春秋館事475) 신臣 이색李穡476)이 왕명(教)을 받들어 찬술함
봉익대부奉翊大夫 전판전교시사前判典校寺事477) 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 신臣 권주權鑄478)가 왕명을 받들어 필사함
지금 주상(우왕)께서 자리에 오르신 지 10년 하고도 1년 지난 여름 5월에 승려 각지覺持가 묘향산에서 와서는 승복을 입고 짚신을 신고 근신近臣에게 고하였다.“사문沙門(승려) 신 각지는 주청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스승의 스승이신 서천西天(인도)의 지공指空479)께서 입적하심에 사리가 나왔고 우리 스승 나옹懶翁도 입적하심에 사리가 나왔으니 저는 실로 감동하고 흠모하였습니다. 그래서 의주義州의 만호萬戶480) 밀직密直481) 장려張侶와 그의 아내 강씨康氏와 함께 묘향산 안심사에 석종을 세우고 두 스승의 사리를 안치하여 신륵사와 상원암의 규모와 대략 비슷하게 했습니다. 비석을 세워 후세에 보이고자 할 때 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결락) 임금께서 명령내리게 할 방법 또한 없습니다. 소승을 위해 근신近臣에게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그런데 각지를 위해 뜻을 두는 이가 없어서, 각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조 창녕曹昌寧에게 달려가 고하였다. 창녕이 각지의 뜻을 상언上言하여 간절히 구하자 임금이 윤허하였다.가을 8월 12일 우부대언右副代言482) 반덕해潘德海483)가 신臣 이색에게 교지를 전하기를, “묘향산 석종에 대해 네가 글을 쓰라.”고 하였다. 근비謹妃484) 또한 검교 문하평리檢校門下評理485) 강인부姜仁富486)를 보내 이르길, “나는 안심사에서 내 아들 세자를 위해 -
0008_0116_a_01L住持比丘敘 [446] 覺隣等立 [447] 。
0008_0116_a_02L번역문에 “참고)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라고 시작하는 부분에서 다음 제목전까지 내용이다.: 高麗國延州妙香山普賢寺探密宏廓二祖師記。後錄如左。
道人向眞。弘侃。賢載。均善。慧炤。演眞。慧觀。應眞。應如。𧦪雄。暢禪。覺隣等。承稟敎訓。相繼住持者也。
明觀。元傑。玄悟。慧紹。思慧。善修。資妙。尙俊。探雄。惠探。進元。善應。宗幹。承亮。志圓。顯心。雙妙。南正。眞幹。朗明。暢英。智俊。義貞。令宣。連景。法英。正心。宗惠。靈祐。證元。證明。宗賢。善淸。淸悟。敎資。淸湛。道訓。志堅。令冲。勝聰。俊悟。德冲。守英。尋奧。善元。延壽。淸銳。玄覺。敎南。暢明。善沖。演元。麗賢。義明。至哲。英悟。釋眞。資元。一如。釋明。眞悟。延妙。義鱗。紹觀。善謙。均悟。曉觀。戒元。順隣。覺融。介鱗。資敎。善慈。惠知。一先。應觀。惠珠。元信。志南。善含。了空 [448] 。覺宗。惠先。惠哲。元悟。始覺。億元。戒宣。勝麟。靈彦。定猷。承(功+言)。妙元。應均。令英。尙宗。堅一。靈俊。稟觀。惠雙。彦流。堅信。應先。惠平。覺惠。惠元。智詵。甫元。資均。道惠。之玄。洪敏。義均。玄俊。義宗。靈炤。義可。道崇。了非。了元。觀元, [449] 靈順。德明。廣崇。昇貫。智琰。尙謙。曉宗。承誨。惠如。信寬。釋龍。彦淸。勝宣。洪俊。惠覺。信先。明戒。成貫。法明。令湛。明大。悟如。演資。善昌。戒升。理升, [450] 明奧。僧彦。智超。至悟。性眞。承弼。貫淸。義赫。神正。資觀。景連。理紹。信緣。學初。志良。道賢。祐 [451] 淸。令均。惠良。之赫。彦義。義 [452] 雲。信元 [453] 。令如。善予。思泉。法惠。宗銳。海賢。道樞。惠敎。至明。景升。之一。崇彦。元炤。洞觀。智如。理心。志修。元道。成俊 [454] 。宗謙。信全。道常。惠然。元淸。學眞。性賢。彦卿。道雄。善嚴。彦雄。存正。惠琰。學觀。彦猷。誠善。惠牙。正林。特賢。令惠。祐賢 [455] 。義龍。尙賢。宗輔。信守。道均。彦資。學妙。義香。元實。惠思。順心。彦立。勝謙。惠敏。景夫。承曉。正解。性延。信賢。義仁。處△ [456] 。彦宗。處元。彦升。令周。惠夫。定常。師南。善學。彦惠。謙常。勝延。義池。智宗。承延。惠幢。光善。彦實。彦赫。學純。景△。△△ [457] 。里奕。惠謙。惠澤。智淸。性良。義延。彦素。彦寬。令必。順思。炤南。景素。戒香。景南。寬義。日初。順資。應南。得南。令南。惠嚴。學冲。俊胥。義俊。道碩。釋蓮。惠明。理若。孝長。彦南。瑩然。性潭。性胥。處神。學英。存義。俊赫。宗必。惠赫。承敏。彦常。正先。純悟。信南。連祐。開惠。俊少。惠心。性赫。達惠。道淸。學連。惠妙。少賢。信良。日升。景崇。玄義。承實。炤玄。順仁。日沖等。助揚法化者也。
宗幹。宗惠。覺融。性覺。善含。尙謙。惠覺等。募集衆緣。助成大事者也。
右伴門徒科第彫錄施行。
時大金皇統元年歲次辛酉七月日立。
文林郎試尙書兵部侍郎兼東宮侍講學士賜紫金魚袋。臣文公裕奉宣書。
0008_0116_a_03L○高麗國平壤道延山府妙香山安心寺石鍾之碑
0008_0116_a_04L推忠保節同德賛化功臣。三重大匡。韓山府院君。領藝文春秋館事。
0008_0116_a_05L臣李 穡奉 教撰。奉翊大夫。前判典校寺事。進賢館提學。臣權
0008_0116_a_06L鑄奉 教書。
0008_0116_a_07L今上守位之十又一年夏五月。釋覺持自香山來。披緇衣躡屩。告近臣曰。
0008_0116_a_08L沙門臣覺持。願有奏。吾師之師西天指空。歿有舍利。吾師懶翁。歿亦有舍
0008_0116_a_09L利。持實感慕焉。與義州萬戶張密直侶。及其室康氏。樹石鍾香山安心寺。
0008_0116_a_10L厝二師舍利。略同神勒上院之制焉。鑱 [458] 石示後。非文無有。得 [459] 上命又無由也。幸為小僧。入
0008_0116_a_11L奏近臣。無為持留意者。持奔告于門下侍中曹昌寧。昌寧上言持之 志。
0008_0116_a_12L勤乞。上可之。秋八月十二日。右副代言潘德海傳 旨于臣穡曰。香山石
0008_0116_a_13L鍾。汝其文之石。
0008_0116_a_14L謹妃又使檢校門下評理姜仁富來諭曰。吾於安心寺。為吾兒 世子。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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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7_a_01L복을 빌 것이니 경은 그리 아시오.”라고 했다. 각지 스님은 기뻐 뛰며 와서 말했다. “선생이 빨리 내게 글을 주면 좋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내 어찌 게을리 하겠소. 쓰고자 하는 것을 일러주시오.” 각지 스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지가 우리 스님(나옹)을 섬긴 것은 서경西京(평양) 광법사廣法寺에서 시작하였으니 지정至正 무술년(1358)입니다. 우리 스님이 왕사王師가 되어 회암사에 주석하면서 사찰 건물을 지었는데 각지는 방장실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현릉玄陵(공민왕)이 예척禮陟(승하)하자, 어사대에서 평하기를, 회암사는 수도(개경)에 매우 가까워서 남녀의 왕래가 끊이질 않아 생업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라며 스님을 옮기길 청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이 가시면서 각지를 불러 이르길, ‘나를 따라오라.’ 하셨는데, 여흥 신륵사에 이르러 입적하셨으니 병진년(1376) 5월 15일입니다. 회암사에 탑을 세우고 각오覺悟와 함께 탑을 지키며 3년이 되도 정이 가시질 않아 또 몇 개월 머무르다가 떠났습니다. 나와 우리 스님이 서경에서 만난 것을 생각하니, 서경 이북은 우리 스님이 교화한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입적한 후에 바라보며 예를 올릴 곳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내가 스님의 사리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빛나게 하여 지역 사람들이 사리를 섬기길 우리 스님을 섬기는 것처럼 하게 하고자 합니다. 하물며 묘향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금강산과 함께 나란히 일컬어지며, 높이로 요좌遼左487)를 진압하여 장백산을 이웃하니 남쪽 지리산의 짝이 될 뿐이겠습니까. 우리 스님의 큰 도와 덕은 육합六合(천하)을 채워도 부족함이 없으며 티끌에 넣어도 남음이 없으니 어찌 장소를 가리겠습니까. 그러나 각지의 육안으로 이 산의 형세를 보고 우리 스님의 풍채를 생각함에 진실로 서로 우열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가 반드시 이 산에 우리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겠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산중에 사원 3백여 곳이 있는데 반드시 안심사로 하겠다는 것은 소림少林의 고사故事를 우리들이 경책警策으로 삼고자 함입니다.”그리고 또 말하였다.
“지공指空의 이름은 선현禪賢이고, 부친의 이름은 만滿으로 마갈제국摩竭提國(마갈타) 왕입니다. 보명 존자普明尊者의 법을 이었습니다. 우리 스님의 이름은 혜근惠勤이고 호는 나옹懶翁입니다. 부친은 선관서膳官署의 승丞488) -
0008_0117_a_01L福。卿其知之。持師踊躍而來曰。先生早賜吾文。幸甚。予曰。吾何敢慢。 [460] 吾師。自
0008_0117_a_02L西京廣法寺始。至 正戊戌歲也。吾師為 王師。住檜巖。修造殿宇。持與
0008_0117_a_03L於方丈室之役焉。
0008_0117_a_04L玄陵禮陟。臺評。檜巖密迹國都。士女絡繹。恐癈業。請徙之便。於是師行。召
0008_0117_a_05L持曰。汝其從我。至驪興神勤寺。入寂。丙辰五月十五日也。樹塔檜巖。持與
0008_0117_a_06L覺悟守塔。三年情猶未已。又留數月。而後去。吾思吾與吾師。相遇於西京。
0008_0117_a_07L西京以北。 吾師所化多矣。而師歿之後。無所瞻禮。豈不悲哉。吾將以舍
0008_0117_a_08L利。耀其心目。使一方之人。事舍利。如事吾師焉。况香山為普賢菩薩住處。
0008_0117_a_09L與金剛諸山並稱。而其高也壓遼左。鄰長白。獨為南界智異之匹乎。吾師
0008_0117_a_10L道德之大。彌六合無所欠。入纖塵而無所餘。何擇於方所哉。然在持肉眼。見
0008_0117_a_11L此山之形勢。想吾師之風彩。誠不相上下。此吾師之必於是山。置吾師舍
0008_0117_a_12L利也。山中寺院三百餘所。而必於安心寺者。少林故事。吾輩警策也。又曰。
指
0008_0117_a_13L空名禪賢。父諱滿。摩竭提國王。嗣法普明尊者。吾師名惠勤。號懶翁。父膳官亟 [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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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8_a_01L아세구牙世具입니다. 평산 처림平山處林489) 선사의 법을 이었습니다. 선생께서 왕사王師의 부도490)를 쓸 때 이미 기록하였는데, 우리 석종에도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윤필암潤筆菴을 제외하고 7곳 모두 선생께서 우리 스님을 위해 글을 지어주셨습니다. 지림志林은 금강산에, 승명勝名은 치악산에, 각명覺明은 소백산에, 각관覺寬은 사불산에, 지선志先은 용문산에, 승철勝哲은 구룡산에, 각청覺清은 이 산에, 묘각妙覺은 옛 터(천보산 회암사)에, 각신覺信은 봉미산 신륵사에491) 우리 스님의 법복을 안치하였으니 모두 9곳입니다.연도燕都(북경)에서 개당開堂492)할 때 황제가 하사한 가사 한 벌과 마노瑪瑙 불자拂子 하나는 금강산 정양사正陽寺에 있고, 현릉玄陵이 하사한 가사 한 벌과 직철直綴 하나와 발우 하나는 회암사에 있으며, 가사와 발우, 불자 하나씩 신륵사에 있고, 가사와 불자 각각 하나가 오대산에 있고, 가사 한 벌이 견암見菴에 있고, 가사와 석장 각각 하나가 위봉사威鳳寺에 있고, 가사 하나가 광법사廣法寺에 있고, 가사와 직철과 석장과 좌구 각각 하나씩 이 산 보현사에 있다. 사리는 무수히 많아 명산에 흩어져 있고 사부대중이 받들어 공양하는 곳이 많으니 어느 겨를에 다 열거하겠는가. 각지의 뜻은 또한 다른 게 아니다. 위로 사중은四重恩493)에 보답하고 아래로 삼도고三途苦를 제도하여, 주상께서는 만만세를 영위하시고 후비도 같은 해를 누리시고 세자는 천세를 누리시고 공경대부와 일반인은 복을 더하고 재앙이 덜어져, 태생과 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 모두 사특함에서 벗어나 바름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삼한이 사방 경계로부터 영원히 외적의 침입을 끊고, 시방 삼세를 다하여 보현보살의 해탈경계에 들어가는 것이 각지의 바람이요 각지의 바람입니다.”이색 내가 말했다. “크도다 바람이여. 세교世教가 쇠퇴한 이후 스승과 도리를 배반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하늘이 어찌 그러했겠는가. 세교가 일어나게 하여 신하는 임금에 대해, 자식은 부모에 대해, 제자는 스승에 대해 모두 각지 스님이 그 스승에게 하고 그 스승이 스승 지공을 대하는 것처럼 한다면 -
0008_0118_a_01L牙世具。嗣法平山處林禪師。先生銘王師浮圖。已書之矣。於吾石鍾。幸並著
0008_0118_a_02L之。獨潤筆菴凡七所。皆為先生作。為吾師也。志林於金剛山。勝名於雉岳山。
0008_0118_a_03L覺明於小白山。覺寬於四佛山。志先於龍門山。勝哲於九龍山。覺清於此
0008_0118_a_04L山。妙覺舊基是已。吾師法服所鎮。凡九所。燕都開堂。
0008_0118_a_05L帝賜袈裟一。瑪瑙拂一。在金剛山正陽寺。
0008_0118_a_06L玄陵賜袈裟一。直綴一鉢一。在檜巖寺。袈裟鉢拂並一。在神勒寺。袈裟拂並一。
0008_0118_a_07L在臺山。袈裟一在見菴。袈裟杖並一在威鳳寺。袈裟一在廣法寺。袈裟直
0008_0118_a_08L綴杖坐具並一。在此山普賢寺。舍利無筭。散在名山。四眾奉持供養者多
0008_0118_a_09L矣。何暇枚舉。持之志。亦非他也。上報四重恩。下濟三道苦。而
0008_0118_a_10L主上萬萬歲。 后妃齊年。 世子千秋。公卿士庶益福損烖。胎卵濕化。出
0008_0118_a_11L邪入正。由三韓四境。永絕外侮。盡十方三世。入普賢解脫境界。持之願也。
0008_0118_a_12L持之願也。穡曰。大哉願也。自世教衰。倍師畔道者。比肩而繼踵。天曷故馬 [462] 。
0008_0118_a_13L使世教興。臣之於君。子之於父。弟子之於其師。皆如持師之於其師。及其師之師指空也。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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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9_a_01L집안과 나라가 흥성할 것이요, 이 도리를 미루어나가면 천하가 태평하리라. 그 사리 같은 경우는 몸에서 나온 것인가, 마음에서 나온 것인가. 또는 나온 곳 없이 절로 나온 것인가. 나는 어찌 이 의문을 풀 것인가.”명銘은 다음과 같다.
西天指空 서천의 지공 스님
東國懶翁 동국의 나옹 스님
同心異蹟 같은 마음, 다른 자취라
舍利晶明 사리가 찬란하여
世乃大驚 세상이 크게 놀라네
角立碩德 걸출한 큰 스님이여
巍巍妙香 높디높은 묘향산
壓于眾岡 여러 산들을 앞도하니
賢聖之域 성현이 머물 곳이라
斸石為鍾 돌을 깎아 종 만들어
舍利在中 그 속에 사리 보관하니
流福罔極 복이 끊임없이 흘러
我君永年 우리 임금님 영원하시고
我妃祿延 우리 왕비님 복 받으시고
我儲毓德 우리 세자님 덕을 기르시고
樂職惟臣 신하들은 직책을 즐기고
守業惟民 백성들은 가업을 지키니
澤洽于國 은택이 나라에 흡족하네
惟此願心 이렇게 바라는 마음은
如石如金 바위 같고 쇠 같아서
罔或少忒 조금도 변하지 않고
臣作銘詩 신이 명과 시를 지어
重在祝釐 거듭 축원을 하니
時萬時億 만 년 가고 억 년 가리
숭정嵩禎 기원후 84년 신묘(1711) 5월에 다시 세우다.
평해平海 황자현黃自顯이 모사模寫하다.38. 사리각사바교주娑婆教主 석가존釋迦尊 금골사리金骨舍利 부도비浮圖碑494)
금강퇴은金剛退隱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 교도총섭教都總攝 사자부종수교賜紫扶宗樹教 겸兼 등계보제대사登階普濟大師 병노病老 휴정休靜이 삼가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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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19_a_01L家國其庶乎。推此道也。天下平矣。若其舍利也。出於身歟。出於心歟。抑無
0008_0119_a_02L所從出。而自出歟。穡何當决此疑乎。銘曰。
0008_0119_a_03L西天指空 東國懶翁 同心異蹟 舍利晶明 世乃大驚
0008_0119_a_04L角立願德 巍巍妙香 壓于眾岡 賢聖之域 △ [463] 石為鍾
0008_0119_a_05L舍利在中
0008_0119_a_06L△△△池 [464] 福罔極我 君永年我 妃祿延我
0008_0119_a_07L儲毓德 樂職惟臣 守業惟民 澤洽于國 △此願心
0008_0119_a_08L如石如金 罔或少忒 臣作銘詩 重在祝釐 時萬時億
0008_0119_a_09L嵩禎紀元後八十四年辛卯五月 日改立。
0008_0119_a_10L平海黃自顯模。
0008_0119_a_11L○舍利閣
0008_0119_a_12L娑婆教主釋迦尊金骨舍利浮圖碑
0008_0119_a_13L金剛退隱國一都大禪師禪教都總攝 賜紫扶宗樹教兼登階普濟大師
0008_0119_a_14L病老休靜。謹撰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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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0_a_01L공경히 생각건대, 우리 현겁賢劫495)의 존자 석가모니불은 천축국天竺國 정반왕淨飯王의 태자이시다. 지난 세世에 도를 이루어 진상真常496)을 증득하였으니 법신法身497)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번역하자면, ‘석가’는 성이니 한자로는 ‘능인能仁’이며 자비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고, ‘모니’는 자字이니 한자로는 ‘적묵寂默’이며 지혜가 이치에 명합冥合한다는 뜻이다.자비와 지혜를 함께 운용하시므로 생사와 열반에 모두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로지 중생을 이롭게 함을 임무로 삼았으므로 시방세계에서 수월水月 같은 응신應身을 드러내어 겁이 다하도록 중생을 제도하면서 싫증을 내지 않았다. 보처補處498)에 오르고 나서 도솔천에 나서는 ‘호명대사護明大士’라 하고 천중天眾을 제도하였다.『보요경普耀經』499)에 이르길,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왕궁으로 강생하여 몸에서 광명을 내며 발로 연꽃을 밟고 사방으로 7걸음을 거닐고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사자후를 토하고 세 방편을 보이셨다.”고 하였다. 이는 주나라 소왕照王 24년 갑인년에 해당한다.태자는 호를 ‘실달悉達’이라 하였으니 한문으로는 ‘길吉’이다. 문무에 능하고 음양을 잘 알았으며 무릇 사람과 하늘의 일과 법에 대해 익히지 않아도 자연히 하나하나 이해하였다. 부왕이 지극히 사랑하여 7일을 기한으로 왕위를 전하려고 하였다. 태자가 하루는 4문門 밖에 노닐면서 기쁘거나 슬픈 일을 보고는 출가할 마음을 내었다. 부왕이 듣고는 놀라서 나라 사람들에게 더욱더 호위하여 출입을 엄금하게 하고 다만 정거천인淨居天人500)하고만 통하게 했다.어느 날 밤 성을 넘어서 나오니 당시 나이는 19세였다. 처음에 단특산檀特山501)에 들어가 세 가지 선정을 닦았고 상두산象頭山502)에 들어가 6년간 앉아서 고행을 하다가 샛별을 보고 도를 깨우쳐 ‘천인사天人師’라 불리게 되니 당시 나이 30세였다. 이윽고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矯陳503) 등 5인에게 도과道果를 논하였다. 그리고 영취산靈鷲山에 나아가 대법인大法因을 설법하고 세상에 49년 동안 머물렀다. 미묘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대가섭大迦葉에게 부촉하고, 아울러 아난阿難에게 당부하여 보좌하여 교화함으로써 -
0008_0120_a_01L恭惟我
0008_0120_a_02L賢劫尊釋迦牟尼佛。乃天竺國淨飯王太子也。往世成道證真常。法身已
0008_0120_a_03L久矣。訣 [465] 曰。釋迦姓也。此云能仁。慈悲利物義。牟尼字也。此云寂默。智慧冥
0008_0120_a_04L理義。悲智並運。故生死涅槃。俱不住。然佛專以利物為己任。故於十方界。
0008_0120_a_05L現水月應身。窮刧度生。無厭爾。既登補處。生兜率天。名護明大士。方度天
0008_0120_a_06L眾。普耀經亦 [466] 釋迦從兜率。降王宮。身放光明。足踏蓮花。四方行七步。指天
0008_0120_a_07L指地。作獅子吼。示三方便云。乃周照王二十四年甲寅歲也。太子號悉達。
0008_0120_a_08L此云吉也。能文武。善陰陽。凡及人天事法。不習而自然一一神解。父王愛
0008_0120_a_09L極。限七日。欲傳位也。太子日遊四門。見悲喜事。生出家心。父王聞而駭之。
0008_0120_a_10L令國人尤加衛護。洞禁出入。只與淨居天人通焉。一夜逾城而出。時年十
0008_0120_a_11L九也。初入檀特山。捨二 [467] 種定。遂入象頭山。坐六年苦行。見明星。悟道。號天
0008_0120_a_12L人師。時年三十也。既而鹿野苑中。為矯陳五人輩。證 [468] 道果。俄就靈鷲山。說
0008_0120_a_13L大法因。住世四十九年。以㣲妙正法眼藏。付大迦葉。并勅阿難。副貳傳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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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1_a_01L단절되지 않게 하고, 각기 법게法偈를 부촉하였다. 이후 구시라拘尸羅504)에 이르러 희련선하熙蓮禪河505)의 쌍수雙樹506) 아래서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고 담담하게 입적하였다. 그리고 다시 관에서 일어나 모친을 위해 설법하고 무상게無常偈를 설하니, “제행무상諸行无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為樂”507)이다. 이윽고 금관金棺이 자리에서 들려져 삼매의 불로 저절로 몸을 불사르니 공중에서 사리가 비처럼 쏟아져 수량이 8곡斛 4두斗에 이르렀다. 이때는 목왕穆王 53년 임신년이다.아, 이제 부처님이 세상에 머무심에 중생들이 감응하면 만덕의 몸으로 응하시고 감응이 없으면 삼매의 선정에 들 뿐이니 왕래에 간여하지 않는다. 앞서 강생하시고 출가하시고 성도하시고 설법하신 이러한 법들은 노파가 잎사귀로 우는 아이를 달랬던 것인가. 이후 꽃을 잡고 자리를 나누고508) 열반에 들고 발을 보이신509) 이러한 법들은 아비가 자식을 다스린 것인가. 의사가 약을 남기고 타향에 간 것인가.510) 당시 사리는 모임의 보살과 연각緣覺ㆍ성중聖眾 그리고 인천人天의 팔부신중八部神眾들이 각기 나누어 지니고 미진수의 세계로 흩어져 들어가 탑을 세우고 석종에 안치하여 공양한 것이 부지기수다.애석하다, 인연 없는 국토인은 이때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사위삼억舍衛三億511) 집안과 중국 한 모퉁이 부류 같은 경우이다. 다만 중국은 천 년이 지난 후 한나라 영평永平 8년(65)에 황제가 꿈을 꾸고는 신하를 시켜 불교를 전하게 했을 따름이다.오직 영남 통도사의 신승神僧 자장慈藏이 옛날에 안치한 석가세존의 금골金骨 사리 부도는 신이한 영험이 매우 많아서 마침내 수많은 집으로 하여금 선善에 들어가고 또 온 나라로 하여금 인仁을 일으키게 하였으니 가히 세상의 존귀한 보배라 하겠다.불행히도 만력萬曆 20년(1592)에 이르러 일본 해병이 남쪽으로 들어와 분탕질을 하여 억조창생이 고기밥이 되고 화망이 부도에 미쳐 그 보배가 산실될 위기에 처했다. 걱정할 때에 마침 의승義僧 대장 유정惟政이 -
0008_0121_a_01L無令斷絕。各付法偈。後至拘尸羅。熙連雙樹下。古 [469] 脇累足。泊然而寂。復從
0008_0121_a_02L棺起。為母說法。因說無常偈。諸行无常。是生滅法。生滅滅已。寂 [470] 為樂。已而
0008_0121_a_03L金棺從座而舉。以三昧火。自焚身。空中舍利如雨。數至八解 [471] 四斗。乃穆王
0008_0121_a_04L五十三年壬申歲也。吁。今佛之住世。羣生有感應萬德身。無感。則入三昧
0008_0121_a_05L定而已。非于 [472] 往來也。其前際。降生也出家也成道也說法也。此䓁法。老婆
0008_0121_a_06L將葉止兒啼耶。其後際。拈花也分座也涅槃也示跌也。此䓁法。老父治狂
0008_0121_a_07L子耶。醫師留藥。去他鄉耶。當時舍利。則會上菩薩緣覺聖眾及人天八部
0008_0121_a_08L神眾。各分受持。散入㣲塵諸剎。建塔安鍾。供養者。不知其幾。可惜。无緣國
0008_0121_a_09L土人。則當此時不見不聞。如舍衛三億家及支邦 [473] 一隅類是也。但支邦 [474] 則
0008_0121_a_10L過千年至後漢永平八年。常 [475] 感一夢。使臣傳教而已。唯嶺南通度寺神僧
0008_0121_a_11L慈藏。古所安釋迦世尊金骨舍利浮圖。頗多神驗。竟使千門入善。又令一
0008_0121_a_12L國興仁。可謂世之尊寶也。不幸。至萬曆二十年。日本海兵。入國之南。焚之
0008_0121_a_13L蕩之。億兆為魚肉。禍及浮圖。其寶將為散失。悶鬱之際。適義僧大將惟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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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2_a_01L병사 수 천을 이끌고 마음을 다해 보호하여 완전할 수 있었다. 유정은 이후의 근심이 없지 않아 금골사리 2함函을 비밀리에 금강산으로 옮겨 병노病老인 내게 안치하게 했다. 병노는 감격스레 받고서 안치하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금강산은 물길에 가까워 후에 필시 이런 근심이 있으리니 금강산에 안치하는 것은 오래 갈 방책이 아니었다. 지난번 해병이 부도를 파헤침은 금보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지 사리는 아니라서 보배를 취한 후에 사리를 흙덩이 보듯 하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옛터를 닦아서 안치함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함 하나를 다시 유정에게 맡기니, 유정이 계획을 수긍하여 함을 받아서 옛 터에 돌아가 안치했다.다른 함 하나는 병노病老 내가 수지하고 삼가 태백산으로 들어가 부도를 세우고자 했으나 휴정休靜 나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문인 지정智正과 법란法蘭 무리에게 명하여 그 일을 꾸려서 안치하게 했다. 두 선자禪子는 지성으로 널리 시주를 모집하여 몇 개월이 되지 않아 부도를 닦아 안치하게 되었다. 아름답다, 그 공덕이여. 『연경蓮經(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가운데 이미 나열되어 있으니 내 어찌 덧붙이리오.그리고 우리 동방의 시초에 임금이 없고 제후들도 없을 때 신인 단군檀君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 출현하여 시조 왕이 되어, 요임금과 병립하였다. 그렇다면 태백, 태백은 한 나라의 왕을 처음 배태하여 조선의 나라 백성들에게 동이東夷라는 호칭을 영원히 탈피하게 하였고, 끝내 삼계三界의 스승을 안치하여 또한 동방 백성들에게 성불의 인연을 잃지 않게 하였다. 이는 산의 영험이 아니런가. 위대하도다. 산만 중한 것이 아니라 나라 또한 중하다. 나라만 중한 것이 아니라 사람 또한 중하다. 품질을 논하자면 유정 선자는 자장 법사보다 못하지 않고, 태백산이 영취산보다 못하지 않다.다음날 지정과 법란 두 선자가 부도를 개설하여 큰 재齋를 마련했다. 병노는 법석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금일 모임에 세존께서 탑묘塔廟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아는 -
0008_0122_a_01L領兵數千。盡心可護。得完全然。政不无後慮。故以金骨舍利二亟 [476] 。密使 [477] 于
0008_0122_a_02L金剛。使病老安焉。病老感受。念 [478] 安之。然病老竊念。金剛山近水路。後必有
0008_0122_a_03L此患。安金剛非長久計也。向海兵之撥浮圖。全在金寶。不在舍利也。取寶
0008_0122_a_04L後。視舍利。如土也。然則不可寧修古基。而安鍾 [479] 焉。其一函則還付于政。政
0008_0122_a_05L然其計。受函即還古基而安焉。其一函。病老自受持。謹入太白山。欲建浮
0008_0122_a_06L圖。靜獨力无何。命門人智正法蘭之輩。幹其事。使安鐘。二禪子。至誠廣募。
0008_0122_a_07L不數月。鍊浮圖而安之。美矣其功德。蓮經壽量品中。已開列。余何贅焉。且
0008_0122_a_08L我東方初无君間 [480] 。不列諸侯。神人檀君出興於太白山神檀樹下。為始祖
0008_0122_a_09L王。與堯并立也。然則太白。太白始胎乎一國王。使朝鮮國民。永脫東夷之
0008_0122_a_10L號。終安于三界師。亦使東方羣氓。不失成佛之因。此非山之靈也耶。偉哉。
0008_0122_a_11L非徒山重。國亦重也。非徒國重。人亦重也。於 [481] 諸品秩。則唯政禪子。不下於
0008_0122_a_12L慈藏法師也。太白山不下於靈鷲山也。翌日正蘭二禪子。開設浮圖。為成
0008_0122_a_13L大齋。病老乘座法席。謂諸人曰。今日會中。其有丈夫。還知世尊不入塔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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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3_a_01L장부가 있는가? 부처님이 탑묘에 계시지 않은 것을 안다면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만하리라. 고인이 견고한 법신法身에 대해 물으니 종사宗師가 답하길, 산의 꽃과 시냇물이라 하였는데512) 오늘 병노는 혀를 찬다.” 붓을 들어 말한다. 대중에게 청하나니 세존께 참례하라. 석가의 진신을 들자면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히 오묘하며 지극히 크고 지극히 작으며 함이 없고 하지 않음도 없어, 백억 성중(眾聖)의 찬탄은 허공을 재려는 것 같고 팔만 마군의 훼방은 바람을 매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오늘 모임에 더함이 있고 덜함이 있으니 알겠는가? 믿는 이는 부처님을 경배하는 고로 낙원(樂岸)에 오르고 믿지 않는 이는 법을 방해하는 고로 고해苦海에 떨어진다. 유교 경전에 이른 바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513)는 것과 같다. 쯧쯧, 각기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판단해보라. 예전 공부자孔夫子가 상商나라 태재太宰의 물음에 답하길, 서방에 큰 성인은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으니 크고 커서 백성들이 형언할 수 없었다514)고 하였으니, 가히 성인만이 성인을 알 수 있다 하겠다.휴정은 올해 84세로 정신이 어릿하고 눈은 어둡고 손이 떨리는데 바깥사람의 간청에 구애되어 글을 지어 비석에 쓴다. 문자는 모두 거칠어 후인의 기롱을 피하지 못하리니 두렵고 부끄럽다. 통달한 군자들은 바라건대 용서하시라.만력萬曆 31년(1603) 3월 초길初吉(1일)에 세우다.39.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사국일대도선사賜國一大都禪師 선교도총섭禪教都摠攝 부종수교扶宗樹教 보제등계존자普濟登階尊者 서산西山 청허당清虛堂 휴정休靜 스님 비명碑銘(并序)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우의정議政府右議政 겸兼 영경연사領經筵事 감춘추관사監春秋舘事 이정귀李廷龜515)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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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3_a_01L中者麼。若知佛不在塔廟中。則堪受人天供養爾。古人問堅固法身。宗師
0008_0123_a_02L荅曰。山花澗水。今日病老咄。舉輩 [482] 曰。諸 [483] 大眾。叅禮世尊。若舉釋迦真身。則
0008_0123_a_03L至寂至妙。至大至小。無為無不為。百億眾聖之讚歎。如量空也。八萬魔軍
0008_0123_a_04L之毀謗。如繫風也。雖然今日會中。有益有損。還知麼。信者敬佛。故决登樂
0008_0123_a_05L岸。不信者謗法。故必落苦海。如儒傳所謂。出乎爾者。反乎爾。咄。各回光自
0008_0123_a_06L斷看。昔孔夫子答商太宰問曰。西方大聖人不治 [484] 亂。蕩蕩乎民无能名焉
0008_0123_a_07L云。則可謂唯聖能知聖也。休靜今年八十四歲。精神恍惚。眼昏手戰。拘於
0008_0123_a_08L外人之懇。撰文書石。文字但 [485] 荒。不免後譏。惶愧𤾗 [486] 愧。唯通達君子。幸恕焉。
0008_0123_a_09L萬曆三十一年三月初吉建。
0008_0123_a_10L○有明朝鮮國 賜國一大都 [487] 禪師禪教都摠攝扶宗樹教普濟登階存 [488]
0008_0123_a_11L者西山清虛堂休靜師碑銘并序
0008_0123_a_12L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舘事李廷龜
0008_0123_a_13L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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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4_a_01L숭록대부崇德大夫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516)이 쓰고 새기다
나는 불교의 진벌津筏517)을 알지 못하므로 평소에 불교 얘기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불교를 배척하는 데 뜻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돌아보건대 내 문장이 허명을 도둑질하여 문단의 맹주가 된 지 30여 년이다. 승려 가운데 명성을 좇아 시를 구하는 이들이 날마다 집에 왔는데 개승開僧518)이나 운석韻釋519)을 만나면 매번 흔연히 응하였으니, 또한 불교를 탐닉하는 데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나이 젊었을 때 이미 휴정休靜 스님의 명성을 들었고 그 시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낭송되었기에 항상 한번 뵙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송운 유정松雲惟政은 바로 스님의 전법傳法 사문沙門(승려)이다. 일본에 건너갈 때에 서울로 여러 번 나를 찾아왔다. 내가 연산燕山에 갈 때는 청천강 가에서 시를 주면서 스님에 대해 밤낮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치질 않았다. 이 당시 벌써 스님이 입적하신 지 몇 년 되었으니, 청분清芬520)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만 때때로 오고갔다.하루는 업무 마치고 홀로 앉아 있는데 승려 셋이 밖에 공손히 서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불러서 앞으로 오게 했더니 바로 스님의 제자 보진葆真과 언기彥機, 확흘䨥仡이었다. 상자 속의 글을 꺼내 보여주면서, ‘청허당유고’라고 했다. 그리고는 합장하여 인사하고는 말했다. “우리 스님의 도업道業이 후대에 전할 만한데 구름산이 깊고 적막하여 오래 갈수록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문도들이 기재한 것으로 행장을 삼아 하루 전에 재계하고 봉해서 천 리 멀리 와서 드립니다. 상공의 한 말씀을 얻어 비석에 새겨 우리 스님을 영원하게 하고 싶습니다.”내가 말했다. “그대 스님의 도는 무無를 유有로 삼고 허虗를 실實로 삼으며 존재하길 기다리지 않아도 존재하고 사라짐을 기다리지 않고 사라지는데, 누가 사라지게 하고 누가 영원하게 할 수 있겠소. 우리 부자夫子(공자)께서.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521)고 하셨소. 스님의 도에 대해 내 어찌 말을 하겠소.”세 승려가 일어나 대답했다. “도는 본래 다르니 감히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같으면서 다른 것이 있고 다르면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가섭伽葉의 정전正傳522)과 -
0008_0124_a_01L崇德大夫東陽尉申翊聖書并篆。
0008_0124_a_02L余不識釋家津筏。故平生不喜談釋。非故有意於排釋也。顧以文字竊虛
0008_0124_a_03L聲。主盟騷壇三十餘年矣。釋子之逐名求詩者。日踵門。如遇開僧韻釋。輒
0008_0124_a_04L欣然應之。亦非故有意於耽釋也。余年尚少。已聞 休靜師之名。其詩多
0008_0124_a_05L誦人間。恒願一見。而不可得。松雲惟政。即師之傳法沙門也。其渡 [489] 本也。數
0008_0124_a_06L訪我於京城。我之赴燕山也。贈詩於清川江上。亹亹說師。窮日夜不倦。是
0008_0124_a_07L時師之亡。已數年矣。緬挹清芬。時往來于懷。一日公退獨坐。聞有三僧。拱
0008_0124_a_08L立於外。呼使前。乃師之弟子葆真彥機䨥 [490] 仡也。出示笈中書云。是清虗堂
0008_0124_a_09L遺稿。仍叉手而拜曰。吾師道業。有之 [491] 傳後。雲山深寂。恐久益泯泯。敢以門
0008_0124_a_10L徒所紀載者。為狀。宿齊緘封。千里來獻。願得相公一言。鑱之于石。以不杇
0008_0124_a_11L吾師。余曰。爾師之道。以無為有。以虗為實。不待存而存。不待滅而滅。誰得
0008_0124_a_12L而杇。誰得而不杇。吾夫子曰。道不同。不相為謀。於師之道。吾何言哉。三僧
0008_0124_a_13L起而對曰。道本不同。非敢為同。然有同而異者。異而同者。伽葉正傳獨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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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5_a_01L홀로 종풍宗風을 드날리는 것은 진실로 같으면서 다른 경우입니다. 집에서 효도하는 것과 나와서 충성하는 것은 어찌 다르지만 같은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상공께서는 다름을 다르다 하고 같음을 같다고 하시는데 우리 스님께서 항상 상공의 풍모를 그리워하셨으니, 말없이 통하고 느끼는 것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상공께서 마지막까지 은혜를 베푸시길 바랍니다.”그렇게 거듭 절을 하며 해가 지나도록 가지 않았다. 나는 그 정성이 아름다워 감탄했다. “불교에서 한마음으로 일삼는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로다.”행장을 살펴보니 스님의 법명은 휴정休靜, 자는 현응玄應, 자호自號는 청허자清虗子이다.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또 호를 서산西山이라 했다. 속성은 완산完山 최씨로서 이름은 여신汝信이다. 외조부 현감(縣尹) 김우金禹가 연산군 때 죄를 얻어 안릉安陵에 유배되었고 그렇게 안주安州 사람이 되었다. 부친 세창世昌은 향시 합격(鄉舉)으로 기자전箕子殿523) 참봉叅奉이 되었는데 나아가지 않고 시와 술로 즐겼다. 모친 김씨는 늙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하루는 꿈에 어떤 노파가 와서는, 장부를 잉태할 것이므로 아미娿㜷524)께 축하하러 왔다고 하였다. 다음 해 경진년(1520) 3월에 과연 스님이 탄생하였다.세 살 때 부친이 등불 아래 취해 누워 있는데 어떤 노인이 와서는, ‘어린 사문을 찾아왔습니다.’ 하고는 두 손으로 아이를 들어 주문을 몇 마디 외우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운학’이라고 이름 지으라 하더니,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어려서 자를 ‘운학’이라 하였다. 아이들과 놀 때 돌을 세워 부처라 하기도 하고 모래를 모아 탑을 만들기도 했다. 조금 자라자 풍신風神이 빼어나고 힘써 공부하며 게을리하지 않고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니, 고을수령이 이뻐했다.9세에 모친이 사망하고 10세에 부친이 사망하여 홀로 의지할 데가 없어지니 고을수령이 데리고 서울로 와서 성균관(泮齋)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뜻에 맞지 않아 답답하여 동학 몇 사람과 함께 남쪽으로 지리산을 유람하며 명승지를 구경하고 경전을 탐독하였다. 부모를 일찍 여읜 것을 매번 슬퍼하며 생사의 이치를 더욱 느끼다가 문득 선가의 돈오법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영관靈觀525) 대사께 법을 듣고 숭인崇仁 장로께 머리를 깎았고, 7ㆍ8년간 명산을 두루 다녔다. -
0008_0125_a_01L宗風者。是固同而異者矣。居家為孝。出世為忠。豈非異而同者乎。唯相公
0008_0125_a_02L之異其異而同其同者焉。吾師常慕相公之風。益 [492] 有默契而冥感者。願相
0008_0125_a_03L公之終惠也。僕僕跪拜。經歲不去。余嘉其誠而歎曰。釋教之專心所事。乃
0008_0125_a_04L如是夫。按狀。師法名休靜。字玄應。自號清虗子。以多在香山。故又號西山。
0008_0125_a_05L俗姓完山崔氏。名汝信。外祖縣尹金禹。得罪燕山朝。謫居安陵。遂為安州
0008_0125_a_06L人。父世昌。鄉舉為箕子殿叅奉。不就。詩酒自娛。母金氏老無子。一日夢一
0008_0125_a_07L婆來曰。胚胎丈夫子。故為娿㜷來賀云。明年庚辰三月。果誕師。三歲父於
0008_0125_a_08L燈下醉臥。有老翁來謂曰。委訪小沙門耳。遂以兩手舉 [493] 呪數聲。摩其頂曰。
0008_0125_a_09L以雲鶴名此兒。言訖出門。莫知所之。以故小字稱雲鶴。與羣兒遊戲。或立
0008_0125_a_10L石為佛。或聚沙成塔。稍長風神英秀。力學懈不 [494] 。事親至孝。主倅愛之。九歲
0008_0125_a_11L母亡。十歲父歿。仃伶無所依。主倅携至京。就學於泮齋。鬱鬱不適意。與同
0008_0125_a_12L學數人。南游智異山。窮覽形勝。探賾諸經。每愴早失怙恃。益感死生之義。
0008_0125_a_13L必 [495] 得禪家頓悟法。遂廳 [496] 法於靈觀大師。剃髮於崇仁長老。七八年間。遍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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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6_a_01L30세에 선과禪科에 급제하여 대선大選526)에서 선교양종판사禪教兩宗判事에 이르렀다. 하루는 탄식하기를 “내가 출가한 본의가 어찌 여기에 있는가.” 하고는 바로 직함을 내려놓고 지팡이 하나 들고 금강산으로 돌아와 「세 꿈 이야기(三夢詞)」를 지었다.
主人夢說客 주인이 꿈에 객에게 말하고
客夢說主人 객이 꿈에 주인에게 말하니
今說二夢客 지금 말하는 두 꿈의 객은
亦是夢中人 또한 꿈속의 사람이로다
향로봉에 올라가서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萬國都城如蟻垤 만국의 도성이 개밋둑 같고
千家豪傑若醯鷄 천가의 호걸이 초파리 같네
一窻明月清虗枕 밝은 달 창가에 청허하게 누우니
無限松風韻不齊 무한한 솔바람 소리 들리누나
이후로 광채를 숨기고는 산문을 나서지 않았는데 도를 물으러 오는 이는 날마다 더욱 많아졌다. 기축옥사己丑獄事527) 때 요사한 승려 무업無業이 스님을 무고하여 체포되었는데 진술서가 명백해서, 선조 임금이 무고함을 알고 바로 석방하였다. 그리고 시고詩稿를 가져오게 하여 보고는 감탄하고 손수 그린 묵죽墨竹을 하사하면서 시를 지어 올리라 했다. 스님이 바로 절구를 지어 올리니 선조 또한 절구 한 수를 지어 주고 상을 후하게 내리고서 위로하며 산으로 돌아가게 하였다.임진년(1592)에 대가大駕(임금)가 서쪽 용만龍灣(의주)으로 행행하자, 스님이 칼을 집고 알현하였다. 선조가 전교하길, “세상 난리가 이 같으니 네가 널리 구할 수 있느냐.” 하였다. 스님은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들고 청하였다. “국내 치도緇徒(승려) 가운데 노쇠하거나 병들어서 전열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은 해당 지역에서 분수焚修528)하여 신의 도움을 기도하라고 제가 명령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제가 모두 통솔하여 다 군대 앞으로 달려가 충성을 바치게 하겠습니다.” 선조가 의롭게 여기고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으로 임명하고 방악方岳529)에게 예우하도록 유시하였다. 이에 송운이 7백여 승려를 이끌고 관동에서 기병하였고, 처영處英은 1천여 승려를 이끌고 호남에서 기병하였다. 스님은 문도와 자신이 모은 승려 1천5백 명 도합 5천여 명을 이끌고 순안順安530) 법흥사法興寺531)에 모여 명나라 군대와 앞뒤로 세력을 도와 모란봉으로 출전하여 적을 참획한 것이 매우 많았다. 명나라 군대가 드디어 평양을 극복하고 송도를 회복하자, 경성의 적들이 밤에 달아났다. 스님은 -
0008_0126_a_01L名山。年三十中禪科。自大選陞至禪教兩宗判事。一日歎曰。吾出家本意。
0008_0126_a_02L豈在此乎。即觧綬。以一笻還金剛。作三夢詞曰。主人夢說客。客夢說主人。
0008_0126_a_03L今說二夢客。亦是夢中人。登香鑪 [497] 峯。作詩曰。
萬國都城如蟻垤。千家豪傑
0008_0126_a_04L若醯鷄。一窻明月清虗枕。無限松風韻不齊。自此韜光鏟彩。不出山門。問
0008_0126_a_05L道者日益眾。己丑之獄。妖僧無業。誣引師△ [498] 逮。供辭明剴。宣廟知其冤。
0008_0126_a_06L立釋之。徵詩稿。 覽之嘉歎。 御畫墨△ [499] 賜之。 命賦詩以進。△ [500] 即進絕
0008_0126_a_07L句。 宣廟亦 賜 御製一絕。賞賚甚厚。慰遣還山。壬辰 大駕西幸龍
0008_0126_a_08L灣。師即杖劒進謁。 宣廟教曰。世亂如此。爾可弘濟耶。師泣而拜 命。請
0008_0126_a_09L曰。國內緇徒之老病。不任行伍者。臣令在地焚修。以祈神助。其餘臣皆統
0008_0126_a_10L率。悉赴軍前。以效忠赤。 宣廟義之。命為八道十六宗都摠攝。 諭方岳
0008_0126_a_11L禮遇之。於是松雲率七百餘僧。起關東。處英率一千餘僧。起湖南。師率門
0008_0126_a_12L徒及自募僧一千五百。合五千餘名。會于順安法興寺。與 天兵後先。以
0008_0126_a_13L助 [501] 勢。出戰牡丹峯。斬獲甚多。 天兵遂克平壤。復松都。京城賊宵遁。師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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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7_a_01L勇士百百 [502] 人。迎 大駕還京都。 天朝提督李如松。送帖嘉獎。有為國討
0008_0127_a_02L용사 1백 인으로 대가大駕를 맞이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명나라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이 첩帖을 보내 칭찬하였는데,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한 충성이 해를 뚫을 듯하니 공경해 마지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보냈다.
無意圖功利 공리를 도모할 마음 없어서
專心學道仙 한마음으로 선도를 배웠는데
今聞王事急 이제 나라 일이 급함을 듣고
惣攝下山巔 총섭 직임으로 산을 내려왔네
이에 장관들이 다투어 첩을 보내고 선물을 주었다. 적이 물러나자 스님이 계啟를 올려 말했다. “제 나이 80이라 근력이 다하였습니다. 군대 일은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맡기길 청하옵니다. 저는 총섭 직임을 반납하고 묘향산 처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선조가 그 뜻을 가상히 여기고 늙음을 안타까이 여겨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攝扶宗樹教普濟登階尊者’라는 호를 내려주었다. 이로부터 의가 더욱 높아지고 이름이 더욱 중해지고 도가 더욱 존중되었다. 두류산과 풍악산ㆍ묘향산 등을 왕래하였는데 항상 제자 1천여 명이 수행하였고 세상에 나간 이도 70여 인이다.갑진년(1604)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菴에 제자들을 모이게 하고 향을 사르며 설법하였다. 자신의 영정을 가져다가 그 뒤에 쓰기를, “80년 전에 네(渠)가 나이더니 80년 후에 내가 너로구나.” 하였고, 송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는 가부좌한 채로 서거하였다. 나이 85세요 법랍은 67이었다. 기이한 향이 방 안에 가득하여 21일이 지난 후에야 사라졌다. 제자 원준圓峻과 인영印英 등이 다비(闍維)하고 영골靈骨 한 조각과 사리 3매를 받들어 보현사와 안심사에 부도를 세워 안치했고, 또 한 조각은 제자 유정과 자휴自休 등이 봉래산(금강산)에 모셔 와서는 신주神珠 여러 매枚를 얻어 유점사 북쪽에 안치(窆石)했다.우리 동방의 태고太古532) 화상이 중국 하무산霞霧山에 들어가 석옥 청공石屋淸珙533)을 이어 환암 혼수幻菴混修에게 전하고 환암이 구곡 각운龜谷覺雲에게 전하고, 구곡이 등계 정심登階正心에게 전하고, 정심이 벽송 지엄碧松智嚴에게 전하고, 지엄이 부용 영관芙蓉靈觀에게 전하고, 영관이 서산西山에게 전하였으니, 이것이 실로 임제종의 정파로서 -
0008_0127_a_01L勇士百百 [502] 人。迎 大駕還京都。 天朝提督李如松。送帖嘉獎。有為國討
0008_0127_a_02L賊忠誠貫日。不勝敬仰之語。又題詩贈之曰。
無意圖功利。專心學道仙。今
0008_0127_a_03L聞王事急。惣攝下山巔。諸將官爭先送帖贈遺。賊退。師啟曰。臣年垂八十。
0008_0127_a_04L筋力盡矣。請以軍事。屬於弟子惟政及處英。臣願納惣攝印。還香山舊棲。
0008_0127_a_05L宣廟嘉其志。憫其老。賜號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攝扶宗樹教普濟登
0008_0127_a_06L階尊者。自是羲 [503] 益高。名益重。道益尊。往來於頭流楓岳妙香諸山。常隨弟
0008_0127_a_07L子千餘人。出世者七十餘人。甲辰正月二十三日。會弟子於妙香圓寂菴。
0008_0127_a_08L焚香說法。取自家影幀。書于其背曰。八十年前渠是我。八十年後我是渠。
0008_0127_a_09L付書謝松雲訖 [504] 。趺坐而逝。年八十五。法臘六十七。異香滿室。三七日後始
0008_0127_a_10L歇。弟子圓峻印英等閭 [505] 維奉靈骨一片。舍利三枚。樹浮圖於普賢安心寺。
0008_0127_a_11L又一片弟子惟政自休等奉來蓬山。得神珠數枚。空 [506] 石於榆岵 [507] 之北。吾東
0008_0127_a_12L方太古和尚。入中國霞霧山。嗣石屋而傳之幻菴。幻菴傳之龜谷。龜谷傳
0008_0127_a_13L之正心。正心傳之智嚴。智嚴傳之靈觀。靈觀傳之西山。此實臨濟之正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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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8_a_01L. 오직 서산이 홀로 그 종지를 얻었다 하겠다. 저서로는 『선가귀감禪家龜鑑』과 『선교석禪教釋』ㆍ『운수단雲水壇』 각 1권, 『청허당집清虗堂集』 8권이 나와 있다.아, 스님의 도에 대해 나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스님의 원고는 내가 감상하며 다 살펴 보았다. 시를 보면 스님이 자득한 경지를 알 수 있고, 문장을 보면 스님이 나아간 경지를 알 수 있다. 비록 그 어휘가 아순雅馴하지는 않더라도 어휘마다 살아있고 구절마다 날아 움직이니 고검古釰이 칼집에서 나오고 서릿바람이 부는 것과 같아서, 개원開元과 대력大曆534) 연간의 시와 흡사한 경우가 많다. 불가의 혜휴惠休나 도림道林535)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환난을 만나 그 지키는 바를 잃지 않았으니, 옥중에서도 임금이 알아주어 원고를 가져오고 시를 지으라는 영예와 임금이 쓴 시화를 하사해주는, 실로 전고에 없었던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 국난에 미쳐서는 의병을 규합하여 명나라 군대를 도와 세 도읍을 수복하고 대가大駕를 맞이하였으며, 직인을 반납하고 산으로 돌아갔으니 그 나서고 머무는 절개가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도다.무릇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군들 임금께 대우를 받아 공명을 세워 드러내고 싶지 않으랴마는 재주를 품은 채 펴지 못하고 세월이 다 가도록 업적이 없는 경우라도 어찌 한탄하겠는가. 이제 산속에서 승복을 입고서 능히 이름이 구중궁궐에까지 이르고 명성이 후세에 드리워지니, 선문禪門에서 이러한 공업을 해낼 줄 누가 생각했으랴. 이와 같은 이의 명銘을 쓰는 것은 내 붓을 부끄럽게 하지 않도다.명은 다음과 같다.
金天之西 금천의 서쪽
薩水之濱 청천강 가에서
淑氣亭毒 맑은 기운 길러
乃降真人 진인이 하강하니
仙婆抱送 신선이 안아주고
釋老提携 노승이 이끌었네
天開寶光 하늘이 빛을 내고
帝借金鎞 상제는 금비536)를 주니
靈符妙契 영험한 길조가 부합하여
秀骨超凡 수려한 골격이 뛰어나네
蚌珠出海 진주가 바다에서 나오고
龍鏡發函 용거울이 함에서 나온 듯
失恃無依 부모 여의어 홀로 되니
千里負笈 천 리 멀리 공부하러 가
淹貫諸家 여러 방면 두루 읽고서
卓然自立 높이 자립하였네
乃超覺路 깨달음의 길 뛰어넘고
遂登法席 드디어 법석에 올랐네
祖月重輝 조사의 달이 다시금 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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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8_a_01L而惟西山獨得其宗云。所著禪家龜鑑。禪教釋。雲水壇。各一卷。清虗堂集
0008_0128_a_02L八卷。行于世。噫。師之道。余雖未詳其淺深。師之稿。余既玩繹。以卒業矣。觀
0008_0128_a_03L乎詩。足以知師自得之趣。觀乎文。足以知師造詣之高。雖其語或不雅馴。
0008_0128_a_04L言言皆活。句句飛動。有似古釰出匣。霜風颯然。䢓䢓 [508] 酷似開元天 [509] 曆。渠家
0008_0128_a_05L惠休道林不論也。况也遇患難。不失其守。乃能結 主知於縲絏之中。
0008_0128_a_06L徵稿 命製之榮。御筆詩畫之 賜。誠前古所未有之殊眷。而逮乎
0008_0128_a_07L國危。糾義旅助 天兵。取復三都。迎還 大駕。便納賜印。拂衣還山。其出
0008_0128_a_08L虛之節。無愧古人。夫士生斯世。孰不欲遇知於時君。立功名以自顯。然而
0008_0128_a_09L抱才不售。沒世無聞者。何恨。今以山中一緇衣。乃能名達 九重。聲施後
0008_0128_a_10L世。孰謂禪門能辨此功業歟。銘如是。不愧吾筆歟。其銘曰
0008_0128_a_11L金天之西。薩水之濱。 淑氣亭毒。乃降真人。仙婆抱送。釋老提携。 天開
0008_0128_a_12L寶光。帝借金鎞。 靈符妙契。秀骨超凡。 蚌珠出海。龍鏡發函。 失恃無
0008_0128_a_13L依。千里負笈。 淹貫諸家。卓然自立。 乃超覺路。遂登法席。 祖月重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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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9_a_01L羣昏一廓 우둔한 중생들 밝게 하네
餘事詩聲 여가로 지은 시의 명성
上徹颯宸 위로 임금께 알려지니
殊恩異渥 특별한 은혜 두터워
榮耀千春 영화가 길이 빛나네
身雖巖穴 몸은 굴속에 있어도
忠不忘君 충성은 임금 잊지 않아
遇難一呼 난리에 한 번 소리치니
義旅如雲 의병들 구름처럼 모였네
協助天戈 명나라 군사와 협력하고
憑仗靈佑 영험한 도움에 의지하여
驅餘腥穢 남은 왜적 몰아내니
福我寰宇 우리 세상 복이 되어
出而濟世 나가서 세상 구제하니
名動華夷 명성이 천지에 들썩이고
入而修定 앉아서 선정을 닦으니
法門宗師 법문의 종사로다
在掌明珠 손바닥의 밝은 진주
虛明自玩 밝게 완상하노라니
儻來榮辱 영화롭거나 치욕이거나
如夢一幻 하나의 환몽 같아라
瞻彼妙香 저 묘향산 바라보니
與夫金剛 금강산과 함께
寔惟淨界 실로 청정한 세계니
宜我法王 우리 법왕에게 맞는 곳
來往諸天 제천을 왕래하니
百靈獲持 온갖 신령이 보호하였네
乘化返真 변화하여 입적하였으나
去又何之 간들 또 어디로 가리
功紀人間 공적은 세상에 기록되고
道在山中 도는 산중에 남았네
一片貞珉 한 조각 비석이여
萬古莫滅 만고에 사라지지 않으리
황조皇朝(명나라) 숭정崇禎 3년(1630) 경오년 9월에 세우다.
숭정崇禎 기원후 84년(1711) 신묘년 9월에 다시 세우다.40. 수충사酬忠祠 비碑유명조선有明朝鮮 사賜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 선교도총섭禪教都摠攝 부종수교扶宗樹教 보제등계존자普濟登階尊者 서산西山 청허당清虛堂 휴정休靜 수충사酬忠祠 비명碑銘 병서并序
자헌대부資憲大夫 행평안도관찰사行平安道觀察使 겸兼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 도순찰사都巡察使 관향사管餉使 평양부윤平壤府尹 이병모李秉模537)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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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29_a_01L羣昏一廓。 餘事詩聲。上徹颯宸。 殊恩異渥。榮耀千春。 身雖巖穴。忠
0008_0129_a_02L不忘君。 遇難一呼。義旅如雲。 協助天戎。 [510] 憑仗靈佑。 驅餘腥穢。福我
0008_0129_a_03L寰宇。 出而濟世。名動華夷。 入而修定。法門宗師。 在掌明珠。虛明自
0008_0129_a_04L玩。 儻來榮辱。如夢一幻。 瞻彼妙香。與夫金剛。 寔惟淨界。宜我法王。
0008_0129_a_05L來往諸天。百靈獲持。 乘化返真。去又何之。 功紀人間。道在山中。 一
0008_0129_a_06L片貞珉。萬古莫滅。
0008_0129_a_07L皇朝崇禎三年歲庚午九月 日 建。
0008_0129_a_08L崇禎紀元後八十四年辛卯九月 日 改立。
0008_0129_a_09L○酬忠祠碑
0008_0129_a_10L有明朝鮮 賜 國一都大禪師 禪教都摠攝 扶宗樹教 普濟登階尊者 西山
0008_0129_a_11L清虛堂 休靜 酬忠祠 碑銘 并序
0008_0129_a_12L資憲大夫 行平安道觀察使 兼 兵馬水軍節度使 都巡察使 管餉使 平壤
0008_0129_a_13L府尹 李秉模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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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0_a_01L통정대부通政大夫 행영변대도호부사行寧邊大都護府使 영변진병마첨절제사寧邊鎮兵馬僉節制使 서영보徐榮輔538) 쓰다.
장주莊周(장자)가 말하길, 자식이 부모를 사랑함은 천명이라 마음에 풀 수 없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은 의리라 천지간에 피할 데가 없다539)고 하였다. 무릇 천지간에 피할 데가 없다는 것은 어디를 가든 이 의리가 아닌 곳이 없다는 뜻이다. 고금이나 귀천, 유자나 묵가, 명가나 법가, 도교나 불교를 막론하고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 불교에서 군신君臣이 없고 천하 국가를 도외시하는데 그 법으로는 그렇지만 이치로는 아니다. 법은 사람에게 나오지만 이치는 하늘에 근원한다. 사람이 하늘을 이길 수 없고 법은 이치를 이길 수 없다. 거스르고 따르는 형세가 그러하다. 그래서 이지夷之는 묵가墨家 부류이지만 부모를 후하게 장례치르고, 진량陳良은 초나라 태생이지만 주공周公과 중니仲尼의 도를 즐거워했고,540) 몽장蒙莊541)이 성현의 지혜를 없애려 하면서도 인의仁義는 미루어 제시했으니, 말이 바름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이로써 불교의 법 또한 이치가 이겨서 빼앗을 수 있으니, 서산西山의 일에서 단연코 알 수 있다.무릇 서산은 처음에는 역시 그 학문에 종사하여 구름과 물로 거처를 삼고 병과 발우로 가풍을 삼고서 당시의 치란과 득실 보기를 막연히 마음을 동요시킬 것이 없는 것처럼 하였다. 그러다 봉시封豕가 침식하고542) 육비六飛543)가 서쪽으로 행행함에 백성들이 가슴을 치며544) 갈 곳이 없자, 스님이 이에 칼을 잡고 용만龍灣(의주)로 가 임금을 알현하고 눈물을 쏟으니 그 눈물은 타인을 위한 눈물이 아니요 자비 때문도 아니요, 충성이 마음에서 발현하고 의리가 밖에 드러난 것이니, 그 천연스러움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근왕勤王545)의 군대가 모이지 않았는데 요동을 넘어오는 칼이 먼저 넘어지고, 숙위宿衛546)는 외로이 비었고 큰 적이 옆에서 엿보는데, 스님이 먼저 용기 있게 외쳐 의병을 규합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 아뢰었으니 군사는 단련되지 않았고 병기는 날카롭지 않았다. 공문空門(불교)의 -
0008_0130_a_01L通政大夫 行寧邊大都護府使 寧邊鎮兵馬僉節制使 徐榮輔書。
0008_0130_a_02L莊周稱。子之愛親命也。不可解於心。臣之事君義也。無所逃於天地之間。
0008_0130_a_03L夫無所逃於天地之間。即無所往而非是義也。無古今貴賤。無儒墨名法
0008_0130_a_04L道釋。而無乎不在。釋氏之無君臣外天下國家也。其法也然。其理則否。法
0008_0130_a_05L出於人。理原於天。人不能勝天。法不能勝理。逆順之勢。然也。故夷之墨者
0008_0130_a_06L也。而厚葬其親。陳良楚產也。而悅周公仲尼之道。且以蒙莊氏之蔑絕聖
0008_0130_a_07L智。推提仁義。言不能不出於正者。若是。以此知釋氏之法。亦可以理勝而
0008_0130_a_08L奪之也。西山之事。斷可見矣。夫西山其初亦嘗從事于其學。以雲水為廬
0008_0130_a_09L居。以瓶鉢為家風。視時之治亂得喪。漠然若無足以動其心者。及乎封豕
0008_0130_a_10L荐食。六飛西幸。元元叩心。無可往。則師乃扶 [511] 釰追謁于龍灣之上。而泣涕
0008_0130_a_11L氿 [512] 瀾。其涕也非為人涕也。非為慈悲也。忠發於中。而義形於外。其天者見
0008_0130_a_12L矣。當此之時。勤王之師未集。渡遼之鋒先蹶。宿衛單虛。大敵旁侗。而師能
0008_0130_a_13L首先唱勇。糾率義旅。以奔奏先後。而士非拊脩 [513] 也。兵不犀利也。驅空門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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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1_a_01L오합지졸을 몰아서, 깊이 들어와 날마다 불어나는 왜적과 싸웠다. 그러면서도 참획한 수가 많았고 패배하지 않았다. 세 도읍의 수복을 힘쓴 것은 스님과 공적 있는 이들이 다만 의로운 소리에 감동한 것이다. 아아, 전쟁이 격렬함에547) 무기를 가지고도 조회하지 않고 성을 버리고 생존을 도모한 이들도 역시 있었다. 남녀가 파도처럼 달아나고 조야朝野가 왜적을 피할 때 스님처럼 산림에서 고요하게 경영의 책임이 없는 이들이 비록 꿩이나 토끼처럼 피신하여 깊이 숨어 있더라도 누군들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눈물을 흘리고 달려 나가고 힘써 싸웠으니 그런 연후에야 그 마음에 편안한 바를 얻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이른바 ‘피할 곳이 없고 풀 수 없다’는 것인가. 세상에서 간혹 말하길, 목릉穆陵(선조)이 스님에게 은혜를 베풀어 감옥에서 풀어주었으니, 스님이 감격하여 보답하기를 도모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근본을 따르지 않은 말이다. 어찌 족히 군신이라는 폐지할 수 없는 큰 인륜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살펴보니, 스님은 안주安州 사람이다. 법명은 휴정休靜, 자호自號는 청허자清虛子, 또 다른 호는 서산西山이니, 서산은 묘향산이다. 태어남에 신인神人이 머리를 쓰다듬었고, 조금 자람에 모습이 빼어났다. 어려서 지극한 성품이 있었고 부모를 여의자 부도浮屠(불교)의 말에 감동하여 드디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국내 명승지를 두루 돌아다녔는데 정여립鄭汝立 옥사에 연루되었으나 목릉이 무고함을 살펴 바로 풀어주었다. 이후 시고詩稿를 가져오게 하고 임금이 지은 시와 묵죽 그림을 하사하니, 총애가 매우 두터웠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스님이 용만에서 알현하니, 임금이, “왜적이 깊이 들어왔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돕겠는가.” 하니, 울면서 말했다. “국내 치도緇徒(승려) 가운데 늙고 병들어 행렬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이제 소재지에서 분향 수도하여 복을 빌도록 하고 나머지 장정들은 청컨대 모두 행렬에 편입시켜 국난에 나가고자 합니다.” 임금이 허락하고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으로 명하였다. 이에 제자 유정惟政이 관동에서 기병하고 처영處英이 호남에서 기병하였으며, 스님은 스스로 모집하고 문도들 도합 -
0008_0131_a_01L合之眾。戰深入日滋之寇。然猶馘居多。未嘗折北。三都之勉 [514] 復。師與有功
0008_0131_a_02L者。徒以義聲而感之也。嗚呼方事之殷。擁兵而不朝。棄城而圖存者。亦且
0008_0131_a_03L有之。士女奔波。朝野避寇。若師之寂寥山林。無營無責者。雖雉免 [515] 逃竄。潛
0008_0131_a_04L深而伏隩。誰得以非之。而必泣涕也奔走也力鬪也。然後迺所謂無所逃
0008_0131_a_05L而不可解者歟。世或謂得其心之所安。夫何為而然哉。豈非穆陵嘗有德
0008_0131_a_06L於師 [516] 。脫縲絏之厄。故師之感激圖報由此。此 [517] 不脩 [518] 本之論也。慈 [519] 足與議於君
0008_0131_a_07L臣不可廢之大倫也耶。按師安州人。法名休靜。自號清虛子。又號西山。西
0008_0131_a_08L山香山也。既生。神人撫頂。稍長。風儀英秀。幼有至性。既喪父母。有感於浮
0008_0131_a_09L屠之說。遂出家為僧。遍遊國內名山水。嘗有汝立獄逮。穆陵察其誣。而立
0008_0131_a_10L出之。後詩稿以進。賜御詩御畵墨竹。所以寵嘉之甚厚。壬辰難作。師進謁
0008_0131_a_11L於灣上。上曰。寇深矣。若何以助予。泣曰。國中緇徒之老病。不任征行者。
0008_0131_a_12L今所在焚修祈禳。其餘丁壯。請悉編行伍。以赴國難。上許之。命為八道
0008_0131_a_13L十六宗都摠攝。於是弟子惟政起關東。處英起湖南。師所自募及門徒。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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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2_a_01L5천여 명을 인솔하여 순안順安 법흥사法興寺에 모였다. 명나라 군대와 항상 협력하여 평양을 크게 유린하고 드디어 세 도읍을 수복하였고, 군사 백 명을 뽑아 임금을 호위하여 돌아왔다.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으로부터 이하 장수들이 첩을 보내 노고를 경하하지 않음이 없었다. 군대가 돌아가자 임금께 아뢰었다. “저는 늙었습니다. 진실로 힘쓸 근력이 없으니 청컨대 군대 일을 유정 등에게 맡기고 묘향산 거처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드디어 총섭 직함을 바치고 힘써 물러나길 청하였다. 임금이 그 늙음을 안타까워 하고 그 뜻을 가상히 여겨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攝扶宗樹教普濟登階尊者’라고 호를 내려주고 예를 갖춰 보내주었다. 이 일은 월사月沙 이 상국李相國이 지은 비문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이제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스님은 나이 85세, 법랍 67세로 가부좌하여 설법하고서 서거하였다. 기이한 향이 방에 가득했고 영골靈骨 사리와 신주神珠의 응함이 있었다. 제자 70여 인 가운데 유정과 처영이 가장 드러났다. 유정은 바로 세상에서 일컫는 ‘송운松雲 대사’다. 임진란 이후 왜인들이 후회하고 옛날처럼 수호修好를 청했을 때 바닷길이 험하고 멀며 왜적이 간사해서 조정에서는 사신을 보내 대응하고자 해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웠다. 송운이 이에 석장을 한 번 날려 만 리를 건너 예측할 수 없는 연못 같은 땅으로 달려 들어가서는 위엄 있는 신의를 보이니, 왜인倭人이 크게 경복하였다. 마침내 요령을 얻어 돌아오니, 조정에서 그 노고를 기려 밀양에 사당을 세워 ‘표충사表忠祠’라 하였다. 당저當宁548) 기유년(1669)에 비로소 해남에 휴정 스님의 사당을 세우고 나라에서 충성을 장려하는 전례가 또한 갖추어졌다.돌아보건대 묘향산은 스님이 불자拂子를 걸고 주지를 하던 곳이며, 의병을 일으켜 적을 베었던 것도 이 지역 경계에서 있었다. 어려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늙어서 돌아와 쉬었고, 입적하는 등 모두 이 산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유독 사옥祠屋 하나 짓지 않은 것은 비록 스님 일에 손익이 되지는 않더라도 승속 간에 끊어짐은 끝내 어찌할 것인가. 계축년에 관찰사 -
0008_0132_a_01L五千餘名。會于順安之法興寺。與天兵常為椅 [520] 角。大蹂平壤。遂復三都。選
0008_0132_a_02L士百人。扈駕以還。自 天將李提督以下。莫不送帖敬勞。軍還。白于 上
0008_0132_a_03L曰。臣老矣。誠無以筋力為勞。禮請以軍事屬惟政等。還歸香山舊栖。遂上
0008_0132_a_04L摠攝印。丐退益力。上憫其老。嘉其志。賜號國一都大禪師禪教都摠攝扶
0008_0132_a_05L宗樹教普濟登階尊者。禮遣之。事具載月沙李相國所撰碑文中。今不備
0008_0132_a_06L論。師年八十五。法臘六十七。趺坐說法而逝。異香滿室。有靈骨舍利神珠
0008_0132_a_07L之應。弟子七十餘人。惟靜處英最著。惟政者即世所稱松雲大師也。壬辰
0008_0132_a_08L之後。倭人悔褐欵邊。請修舊好。而海途險遠。夷情狡詐。朝廷欲遣使報之。
0008_0132_a_09L而難其人。松雲迺飛一錫。抗 [521] 萬里。馳入不測之淵。視 [522] 以威信。倭人大服。竟
0008_0132_a_10L得其要領而還。朝廷記其勞。立祠於蜜陽。牓曰表忠。當宇 [523] 己酉。始祠休
0008_0132_a_11L靜師於海南。國家獎忠之典。亦寢備矣。顧惟香山。師所掛拂住持之處。而
0008_0132_a_12L提兵斬級。又在乎是州之境。少而祝髮。老而歸宿。示寂皆不離於茲山。而
0008_0132_a_13L獨無一祠屋之建。雖非事之損益。盖終無奈僧俗之斷斷何也。癸丑觀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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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3_a_01L이병모李秉模 내가 다니다가 산에 이르렀는데 승도들이 사옥을 짓고 내원에 있던 스님의 초상을 옮겨 거는 것을 보았다. 이에 장계를 올려 사액賜額과 제수를 관에서 지급하고 유정을 함께 제사할 것을 청했다. 주상이 특별히 윤허하여 ‘수충酬忠’이라 사액하시고 내게 비문을 지으라 명하셨다. 욕불일浴佛日549)에 초상에 제사를 올렸다. 예관禮官이 겸사兼史550)로 이르렀고 산 근처의 수령들이 모두 집사로 참여하니 선문禪門이 꽉 찼고 사부대중이 뛸 듯이 기뻐했다. 이에 감영과 고을에서 함께 힘을 합치니 규모가 크게 갖추어졌다. 아아, 스님의 진실한 절개와 나라의 공에 대한 보답이 모두 유감이 없게 되었도다.옛날 역사에서 장이張耳551)의 현명함을 칭찬하였으니 그 빈객과 하인(廝役)들이 모두 뛰어나서 천하의 장수나 재상이 되지 않음이 없었다. 저 처영과 유정은 또한 치류緇流(승려)의 영웅이며 한 시대의 위인이거늘 종신토록 스님에게 복역하였으니 스님의 현명함에 대해 어찌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애석하다, 뛰어나고 특별한 자질로 어려서 상문桑門(승려)의 공고空苦한 학문을 일삼아 비록 때를 만나 한 번 떨쳐서 대략 그 기이함을 보였으나 세상에 그 쓰임을 다할 수는 없었다. 스님은 불상 앞에서 항상 임금님 장수를 축원하였고 묘향산 승려들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수기手旗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가 식사할 때 펼쳐놓음으로써 적개심을 잊지 않았음을 보이는 것이니, 스님의 유풍이 있는 것이다.명銘은 다음과 같다.
西嶽矗天 서산이 하늘 높이 솟아
金精𡷾峻 금 정기552)가 준엄할 때
鍾生異人 기이한 인물이 태어나
緇流之俊 승려 가운데 뛰어나니
雲鶴浩湯 호탕한 운학이라
八表周瞬 팔방을 두루 살피고
蓬萊暮宿 봉래산에서 저녁에 묵고
方丈朝軔 방장산에서 아침에 출발
俯視醯鷄 초파리들을 굽어 보면서
啞然一哂 말없이 한 번 웃고서
薩摩州人 사쓰마주(일본) 사람들이
操戈犯順 창을 잡고 침범하여
踐我疆塲 우리 강토를 짓밟고
停我耄齔 우리 백성 핍박하니
師時奮然 스님이 이때 분연히
杖劒趣覲 칼을 잡고 나아가
洒泣龍灣 용만에서 눈물 뿌리고
忠赤披進 충성으로 나아가
號召義旅 의병들을 부르니
雷動風迅 번개 치고 태풍 불 듯
釋爾稻帔 승복553)을 벗고서
蒙以甲楯 갑옷 입고 방패 들고
捨爾軍持 군지554)를 버리고
鍛乃予刃 칼날을 단련하여
錞于勒兵 병사들을 모이게 하니
山谷皆震 산골짜기 모두 진동하네
法興之會 법흥사의 모임이여
牡丹之陣 모란봉의 진영이여
賊遇敗逃 적들이 패배 도주하니
大肆蹂蹸 크게 유린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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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3_a_01L使臣秉模。行部至山。見僧徒搆祠屋。移揭師像之舊在內院者。乃狀請賜
0008_0133_a_02L額。而官給祭需。并祀惟政。上特允之賜額曰酬忠。命臣撰碑。浴佛之日。致
0008_0133_a_03L祭于像。禮官以兼吏 [524] 至。附山守宰。咸與執事。禪門填擁。四眾抃聳。於是營
0008_0133_a_04L邑并力相役。規模大備。嗚呼。師之真 [525] 節。國家之報功。而皆無憾焉爾也。昔
0008_0133_a_05L史稱張耳之賢。其賓客廝役。皆俊傑無不為天下將相。彼處英惟政。亦緇
0008_0133_a_06L流之雄。一時之傑也。而終身服役於師。師之賢。豈待問哉。惜乎魁琦絕異
0008_0133_a_07L之資。早事桑門空苦之學。雖遭時一奮。略見其奇。而莫能竟其用於世也。
0008_0133_a_08L師於佛前。設牌常祝 聖壽。香山之僧。至今行之。人持一手旗。飯則陳之。
0008_0133_a_09L示不忘敵愾也。盖有師之風云。銘曰。西嶽矗天。金精𡷾峻。 鍾生異人。
0008_0133_a_10L緇流之俊。雲鶴浩湯。八表周瞬。蓬萊暮宿。方丈朝軔。 俯視醯鷄。啞然一
0008_0133_a_11L哂。薩摩州人。操戈犯順。踐我疆塲。停我耄齕 [526] 。師時奮然。杖劒趣覲。洒泣龍
0008_0133_a_12L灣。忠赤披進。 號召義旅。雷動風迅。釋爾稻帔。蒙以甲楯。 捨爾軍持。鍜 [527]
0008_0133_a_13L乃予刃。錞于勒兵。山谷皆震。法興之會。牡丹之陣。賊遇敗逃。大肆蹂蹸。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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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4_a_01L奕奕三都 혁혁하게 세 도읍을
載歸載迅 복귀함이 신속하네
鯨觀既築 경관555)을 쌓고서
鑾駕旋軫 임금 수레 돌아왔네
凱還之日 개선하여 돌아오는 날
飄然納印 표연히 직함을 반납하고
丐老甚力 늙었다고 힘써 사양하니
上亦垂愍 주상도 걱정하시고
進義退勇 의리에 나아가고 물러나니
動合繩準 모두 법도에 합당하네
亦有松雲 또한 송운이 있으니
高弟之遴 스님의 뛰어난 제자라
跨越重溟 거친 바다를 건너가
風曉威信 위엄과 신의로 깨우치니
南蠻守條 남쪽 오랑캐 조약을 지켜
永絕邊釁 영원히 침략을 않겠다네
師弟二人 스님과 제자 두 사람이
并效忠藎 함께 충성을 바쳤으니
於皇聖祖 아름답다,556) 선조께서
既紆獎引 크게 장려하셨도다
我后曠感 우리 임금님 감동하여557)
祠典罔恡 사당 전례 아끼지 않고
海南密陽 해남과 밀양에
祠屋嶙嶙 사당 높다랗게 세웠네
我儀茲邦 이 나라에서 우리 의례는
即境愈襯 지경에서 더욱 친근하네
焚唄遺音 범패의 남은 음색
風猷未泯 풍모가 사라지지 않아
煌煌賜額 찬란하게 사액하니
榮若被袗 비단옷558) 입은 듯 하네
遺像在堂 초상이 남아 있으니
凜若英藺 늠름하게 인상여 같네
咨爾西人 아, 너희 서쪽 사람들아
來瞻來認 와서 보고 알아서
各勉爾忠 각기 충성에 힘쓰고
蚤夜敬慎 아침저녁으로 공경하라
如大寶珠 마치 큰 보배구슬 같아
作山門鎮 산문의 진이 되어
五兵自鎖 5병기559)로 잠갔네
國威益振 나라 위엄을 더욱 떨치고
南金大貝 남금과 대패560)를
歸我琛賮 우리에게 보배로 돌이키네
福我壽我 우리를 복 주고 장수시켜
年穀熟牣 해마다 풍년들게 하여
於千萬春 천만 년 세월 동안
祝我堯舜 우리 임금님 축원하네
성상聖上 2년 병진년561) 4월에 세우다.41. 보월사寶月寺562) 사실 기록(寶月寺事實記)전교傳教를 판에 걸다.
행관찰사行觀察使 겸도순찰사兼都巡察使 관향사管餉使가 처리한 일이다. 이번에 도부到付563)한 비변사 관문關文 내에, 계하啓下564) 받은 수교는 다음과 같다.이번(1786년) 4월 20일에 비국당상備局堂上565)을 인견하여 입시할 때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구선복具善復566))가 아뢰었다. “마침 말이 나온 김에 감히 이렇게 우러러 아룁니다. 관서 지역 묘향산에 5,6 읍이 있는 가운데 산 높고 골 깊어 크고 작은 -
0008_0134_a_01L奕三都。載歸載汛 [528] 。鯨觀既築。鑾駕旋軫。凱還之日。飄然納印。丐老甚力。上
0008_0134_a_02L亦垂愍。進義退勇。動合繩準。 亦有松雲。高弟之遴。跨越重溟。風曉威信。南蠻
0008_0134_a_03L守條。永絕邊釁。師弟二人。并效忠藎。於皇聖祖。既紆獎引。我后曠感。祠典
0008_0134_a_04L罔恡。海南密陽。祠屋嶙嶙。我儀茲邦。即境愈襯。焚唄遺音。風猷未泯。煌煌
0008_0134_a_05L賜額。榮若被袗。遺像在堂。凜若英藺。咨爾西人。來瞻來認。各勉爾忠。蚤夜
0008_0134_a_06L敬慎。如大寶珠。作山門鎮。五兵自鎖。國威益振。南金大貝。歸我環賚 [529] 。 福
0008_0134_a_07L我壽我。年穀熟物 [530] 。於千萬春。祝我堯舜。
0008_0134_a_08L聖上二年丙辰四月日 立。
0008_0134_a_09L○寶月寺事實記
0008_0134_a_10L傳教揭板
0008_0134_a_11L行觀察使兼都巡察使管餉使為相考事。節到付備邊司關內。節 啟下
0008_0134_a_12L教。今四月二十日備局堂上引見入侍時。行知中樞府事
0008_0134_a_13L啟。適因言端。敢此仰達矣。關西妙香山處。在五六邑之中。山高谷深。大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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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5_a_01L사찰이 그 사이에 벌려 있고 면적이 상당히 넓어서 항상 의심할 만한 무리가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유사시에는 자고로 명승들이 나라를 위해 힘을 바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영변에서 근무할 때는 묘향산 사찰에 1장의 종이라도 봉용捧用567)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지역紙役이 무거워서 약간 부유한 승려도 모두 파산하여 흩어지고 각 사찰의 승려들이 이로부터 흩어져서, 큰 사찰 외에 작은 사찰은 거의 텅 비게 되었습니다. 승려의 있고 없음이 중요하지 않은 듯하나 심원한 근심으로 논하자면, 명산의 깊고 넓은 곳에 승려들이 머물러 살면 명산을 지키는 성대한 일이 될 것이요, 유사시에 필시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전에 없던 지역紙役을 혁파한 후 이전처럼 머물러 살게 하면 이후 효력이 있을 듯하여 황공하게 아룁니다.”임금이 말했다. “공조참판이 영변 경력이 있으니 또한 소견을 진술하는 것이 좋겠소.”공조참판 윤기동尹耆東568)이 말했다. “우리나라(我東) 명산으로 묘향산이 최고이니 처음 영험한 자취와 후대 승려들이 충성한 일이 모두 불후의 고적이요, 비단 봉우리와 계곡 샘물과 폭포가 국내에 뛰어난 경치일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거승居僧이 매우 적고 사찰이 쇠잔하여 산중 암자들은 열에 7,8이 비었습니다. 부역에 응한 지 10년이 되지 않았는데 폐단이 온갖 가지로 생겨나니 그 형세를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감영과 본관本官에 공급하려고 준가準價569) 봉용捧用하는 것에 대해 승려들이 과외로 소비하는 것들이 많고, 간혹 경상사京上司570)에서 경서를 인출하라는 관문이 오면, 불시에 독촉하고 기한 내에 부출浮出571)하게 하니, 닥나무를 사서 상납하기까지 부비浮費572)가 배로 들고 폐단이 매우 심합니다. 원가(價本)로 마련한다면 본래 많이 듭니다. 먼 읍 생산지에서 무용貿用573)하더라도 종이 품질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을 것이고 날짜는 비교적 빠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혁파하는 것이 좋습니다. -
0008_0135_a_01L寺剎。列在其間。幅圓甚廣。常時可疑之徒。不能接跡。若當有事之時。自古
0008_0135_a_02L名僧。為國事効力者多矣。臣待罪寧邊時。香山寺剎。曾無一張紙地捧用
0008_0135_a_03L事矣。近來則紙役高重。略干富僧。并皆敗散。各寺諸僧。從此流離。大剎外
0008_0135_a_04L小剎幾盡空虛。僧之有無。似或不關緊。以深遠之慮論之。則名山深廣之
0008_0135_a_05L處。僧徒尊 [531] 居。為守名山之盛事。而有事必其効 [532] 。臣意則無前紙役。革罷後。
0008_0135_a_06L使之依前尊 [533] 接。以為日後効力之道。惶恐敬 [534] 啟。
0008_0135_a_07L上曰。工叅曾經寧邊。亦陳所見。可也。工曹叅判尹耆東曰。我東名山。妙香
0008_0135_a_08L為最。厥初靈異之著跡。後來緇衲之效忠。俱為不朽之古蹟。非直峯壑泉
0008_0135_a_09L瀑之絕勝於國中而已。今則居僧尠少。寺剎凋殘。山中諸菴。十空七八。持
0008_0135_a_10L役之應。未滿十年。幣端百出矣。其勢難支。雖於監營本官之給。準價捧用
0008_0135_a_11L者。僧輩則自多科外之耗費。而或自京上司有經書印出之關。則不時督
0008_0135_a_12L責。趂期浮出。自貿楮。至上納。浮費倍。而 [535] 為弊滋甚。若其價本磨鍊。本自優
0008_0135_a_13L厚。雖貿用於所產遠邑。紙品則未必遜。日子則較反速。以此以彼。革破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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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6_a_01L관찰사(道臣)에게 분부하여 부지浮紙574) 부역을 영원히 없애시고, 봉용捧用 금지를 엄하게 하여 조금 어깨를 가볍게 한다면 점차 모이는 효험이 있을 듯합니다.”임금이 말했다. “경卿들이 말한 대로 지금부터 영원히 혁파함이 옳다.” 그리고 전교하였다. “근래 책을 인쇄한 일이 없었는데 매우 괴상하도다. 물어보니, 옥당에서 작년에 경서를 한 번 새로 인쇄했고 내각에서도 그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당 읍에 공사를 핑계로 사적으로 영위한 폐단이 없는지 어찌 알겠는가. 이후로는 내각이나 외각, 옥당과 춘방春坊을 물론 영변 읍에서 경서를 인출하거나 책지冊紙를 복정卜定575)하는 것을 모두 혁파한다. 조정(朝家)에서 이와 같이 신칙申飾한 후에 본도本道와 본읍本邑에서 한 장의 종이라도 계속 침징侵徵576)하는 일이 있으면 해당 읍의 수령은 불법으로 염민斂民한 형률로 다스리고, 신칙하지 못한 관찰사는 중감重勘577)을 면하지 못하리라. 폐단의 유무를 이후 어사(繡衣) 행차 때 또한 마땅히 고찰하도록 하라. 이 조항을 묘당廟堂(비변사)에서 ‘관서어사재거절목關西御使齎去節目’578)에 첨가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 뜻을 하나하나 들어서 표현하여 해당 도道에 행회行會579)하여 실효가 있도록 하라.”이와 같이 전교하셨으니, 전교의 뜻을 살펴 시행한다.서토西土580)는 닥나무 생산지가 아니니 종이를 뜨고 책을 인쇄하는 것은 논할 바가 아니지만, 특별히 산천이 깊고 맑아 종이색이 또한 청결하므로 처음에는 박지薄紙(얇은 종이)를 뜨다가 후에 후지厚紙581)에 이르게 되었다. 좋아하게 되자 승려들의 폐단이 따라서 심해져서 승려(緇衲)들이 흩어져 달아나고 사찰이 텅 비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하는 이야기에 미치면, 누군들 걱정하지 않겠는가. 이제 장신將臣582)의 제주提奏(보고)로 인해 이에 영원히 -
0008_0136_a_01L好。分付道臣。永蠲浮紙之役。而嚴立胃 [536] 捧之禁。以為分 [537] 息肩之地。則似有
0008_0136_a_02L漸次募集之效矣。
0008_0136_a_03L上曰。依卿等所奏。自今永破。可也。仍 傳曰。近無印冊之事。事甚怪訝。問
0008_0136_a_04L之。則玉堂年前。經書一番新印。內閣亦然云矣。然則該邑安知無憑公營
0008_0136_a_05L私之弊。此後無論內閣外閣玉堂春坊。寧邊一邑。經書印出。冊紙卜定。並
0008_0136_a_06L為革破。 朝家如是申飾之後。本道本邑。如以一張之紙。仍循侵懲 [538] 之事。
0008_0136_a_07L該邑守令。施以法外斂民之律。不飾之道伯。難免重勘。所弊有無。來頭繡
0008_0136_a_08L衣之行。亦當考察。此一欵。令廟堂添錄關西御使賚 [539] 去節目。仍令枚舉此
0008_0136_a_09L意措辭。行會該道。俾有實效事。傳教是置。
0008_0136_a_10L教傳內辭意。奉審施行為乎矣。西土非產楮之地。浮紙印冊非所論。特以
0008_0136_a_11L山泉深清。紙色亦潔。故始浮薄紙。終至厚紙。入所愛好。僧弊隨滋。以致緇
0008_0136_a_12L衲之逃散。寺剎之空虛。傳說所及。孰不憫歎。今因將臣之提奏。乃下永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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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7_a_01L혁파하라는 전교를 하시었다.지금부터 승려들이 본업으로 삼는 지통紙桶583)과 지렴紙簾584) 외에 이른바 별도로 뜨는 지렴은 모두 혁파하고, 책을 인쇄하는 종이를 절대 뜨지 말도록 하여 고질병을 없애도록 하며, 경사京司에서 책을 인쇄하는 관문이 다시 발생하는 염려가 어찌 있겠는가. 감영과 본관은 비록 오류를 답습하여 취용取用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다시는 한 장의 종이라도 침책侵責585)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받드는 도리에 있어서 횡렴橫斂586)이라는 무거운 형벌로 마땅히 비조比照587)하고, 따라서 염찰廉察588)을 행할 때 미리 칙려飭礪를 시행하여 모름지기 선갑先甲의 영令589)을 준행하고 스스로 죄를 범하지 말게 하도록 하라. 이 성교聖教를 산 전체 내외 거승居僧의 처소에 포유布諭하고 또 현판을 만들어 사찰 벽에 걸어 두어 금석 같은 법전으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것을 거행한 상황에 대해 즉시 장문狀聞590)하라고 하시었다. 이제 이 묘향산 사찰과 승려의 지역紙役을 길이 혁파하는 명령이 실로 조가朝家에서 승려를 보호하고 명산을 수호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로다. 이러한 관문의 뜻을 경내의 내외 산승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서 진휼하는 성은聖恩을 모두 알게 한다.이후로는 양영兩營과 본관本官에서 부지浮紙에 연계된 모든 부역을 일체 혁파하고, 승려들이 본업으로 쓰는 것 외에 이른바 별도로 뜨는 지통紙桶과 지렴紙簾은 모두 혁파한다. 이 관문 1통을 또한 즉시 판에 새겨서 내외 산의 각 사찰에 나누어 걸어서 금석 같은 법전으로 삼게 하도록 하라. 영문營門에서 마땅히 별도로 살피고 단속하는 도리가 있어야 하며 혹 잘못된 습관을 반복하여 다시 침책侵責하는 폐단이 있다면 드러나는 대로 장문狀聞하여 논감論勘591)하기를 결단코 그만둘 수 없다. 심상하게 하지 말고 각별히 척념惕念592)하여 봉행할 -
0008_0137_a_01L之傳教教是如乎。從今以往。僧徒資業之紙桶紙簾外。所謂別浮紙簾。並皆
0008_0137_a_02L毀破。印冊之紙。切勿浮出。以蠲痼之瘼為𣃥。京司印冊之關。豈有更發之
0008_0137_a_03L慮。而營與本官。雖或有襲謬取用者。更勿以一張紙冐禁侵責。以奉承之
0008_0137_a_04L道。而橫斂之重律。决當比照。隨行廉察。預施飾 [540] 礪。須遵先甲之 令。母 [541] 犯
0008_0137_a_05L自作之罪為爾。將此
0008_0137_a_06L聖教。布喻一山內外居僧處。又令榟木揭寺壁。守之如金石之典為好矣。
0008_0137_a_07L舉行形止。即為狀 聞使關是置有亦。今此妙香山寺僧紙役。永破之
0008_0137_a_08L令。寔出 朝家護保緇徒守護名山之德意教是如乎。以此關內辭意。一
0008_0137_a_09L一布喻境內內外山僧。咸知軫恤之
0008_0137_a_10L聖恩是遣。此後段。兩營與本官。凡繫浮紙之役。一切革破。而僧徒資業所
0008_0137_a_11L用外。所謂別浮紙桶紙簾。並為毀破。關文一通。亦即刻板。分揭於內外山
0008_0137_a_12L各寺。俾作金石之典為如矣。自營門。當有別般察飾 [542] 之道為𣃥。或有仍循
0008_0137_a_13L謬習。更為侵責之弊。則隨現狀 聞。論勘斷不可已。除尋常恪別惕念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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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8_a_01L 것이며 상황을 우선 첩보牃報할 것.
건륭乾隆 51년(1786) 5월 지부知府 전문현田文顯593)이 삼가 쓰다.42. 옥파당玉坡堂 대사 진탑真塔 玉坡堂大師真塔옥파당 대사의 속성은 충주 서씨이다. 모친은 밀양 조씨趙氏이다. 겨우 15살에 출가하여 중습中習 선사先師에게 머리를 깎았고, 월저月渚594)의 3대代 자응慈應 대사에게 법을 받았다. 도가 천하에 퍼지자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나이 82, 임오년 4월 10일에 입적하였는데 생전에 나온 사리 2매가 묘향산 남쪽 기슭에 보관되어 있다.건륭乾隆 27년(1762) 임오년 5월에 세우고, 유학幼學595) 김제탁金提鐸이 쓰다.
육허당六虛堂 설봉당雪峯堂 취호당翠湖堂 육화당六和堂 성총당性聦堂 보성당普晟堂
설총당雪聰堂 혜원당惠元堂 대규당大圭堂 영잠당靈岑堂 성언당性彥堂 대활당大活堂
여견당呂堅堂 성초당性初堂 묘관당妙寬堂 법훈당法訓堂 활엄당活嚴堂 축란당竺蘭堂
두성당斗星堂 태윤당泰允堂 벽초당碧楚堂 벽담당碧湛堂 정각당淨覺堂
위로부터 본사本寺에 와서 수도하고 입적한 분들의 사리부도舍利浮屠와 비석 등이 셀 수 없이 많은데 글자가 마멸된 것이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하고 생략한다. -
0008_0138_a_01L行為𣃥。形止為先牃報向事。
0008_0138_a_02L乾隆五十一年五月 日 知府田文顯謹書。
0008_0138_a_03L玉坡堂大師真塔
0008_0138_a_04L玉坡堂大師。俗姓。忠州徐氏。母密陽趙氏。年甫十五歲出家。祝髮於中習
0008_0138_a_05L先師。受法於月渚三代慈應大師。道播天下。衲子雲集矣。人壽八十二。壬
0008_0138_a_06L午四月初十日寂。而生前自出舍利二枚。藏錄于妙香之南麓焉。
0008_0138_a_07L乾隆二十七年壬午五月 日 立 幼學金提鐸書
0008_0138_a_08L六虛堂 雪峯堂 翠湖堂 六和堂 性聦堂 普晟堂
雪聰堂
0008_0138_a_09L惠元堂 大圭堂 靈岑堂 性彥堂 大活堂
呂堅堂 性初堂
0008_0138_a_10L妙寬堂 法訓堂 活嚴堂 竺蘭堂
斗星堂 泰允堂 碧楚堂
0008_0138_a_11L碧湛堂 淨覺堂
0008_0138_a_12L自上來本寺。修道入寂。舍利浮屠碑石諸物。不可勝數。字多磨滅。未能盡
0008_0138_a_13L記。故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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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39_a_01L43. 국청사國清寺를 중건하는 상량문(重建國清寺上樑文)살펴보건대, 4만8천596)의 말로 경전을 설파해 사람을 제도하고, 스스로 드러나 보리수에 있었으니 360주州 명산과 승지勝地에 공덕림功德林597)을 만든 경우가 많아, 중생이 귀의하고 제불諸佛이 기뻐하시도다.이 국청사는 운암산雲暗山에 성598)을 쌓은 후로부터 요충지 관문(關防)에서 봉화를 올렸으니 동산부銅山府(철산) 10리에 있다. 주지가 괘탑掛塔599)한 곳에 승려(雲衲)들을 모아 금용계金湧界 삼승지三乘地를 세우니 국가의 보장保障이 중대하다. 이름에 백운이 해를 바라는 것뿐만 아니라 전각이 나열한 청정한 색이 있으니 그 형세가 얼마나 웅장한가. 극락전과 대웅전은 빼어난 경치가 상방上方600)에 많지만 그윽한 감상은 서로西路에서 최고다. 가낭선賈浪仙601)이 한담하던 죽원竹院602)처럼 얼마나 많은 과객들이 오고 갔는가. 왕중서王中書가 식사하던 난재蘭齋처럼 무수한 학생들이 책을 짊어지고 왔다.이후 해가 가고 날이 오래되니 드디어 누대가 부서지고 스러지며, 성감星龕과 운탑雲塔603)이 동쪽에서 거꾸러지고 서쪽에 기울어지니 진진찰찰塵塵剎剎604)에서 세월(浩劫)을 겪음이요, 임궁琳宮과 범우梵宇605)의 단청이 떨어지니 색색공공色色空空에서 법계法界를 변화(幻)함이라. 반일半日에 삼과 보리606)가 쓸쓸하니 향부香府는 비로 젖었고, 제천諸天의 연꽃이 흩날리며 채색한 벽에 바람이 울도다.다만 나는 호부虎符607) 분우分憂608)의 직임으로 용궁(사찰)이 무너지는 때를 맞아 선남선녀와 마음을 같이 하여 발원하면서, 금속여래金粟如來의 후신後身인 이적선李謫仙609)인가 스스로 의아해하였고, 당시 대시주로서 중수重修하면서는 문득 (산문山門에) 옥대玉帶를 남긴 소학사蘇學士610)를 상상하였다. 이에 재목을 모아 건축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드디어 구전龜篆 권선문을 발행하니, 계산한 재물이 여러 단월檀越(시주)에게 나와서 소악小樂 대악大樂611)을 울리며 족히 구름과 나란한 높은 누각을 이루었다. 일을 시작하고 끝내기까지 며칠 되지 않아 전당과 곁채가 이루어져서 장엄하게 옛 모습을 회복하였다. -
0008_0139_a_01L○重建國清寺上樑文
0008_0139_a_02L原夫四萬八千言。說經度人。粵自現在菩提樹。三百六十州。名山勝地。多
0008_0139_a_03L是蓋造功德林。眾生歸依。諸佛惟喜。惟茲國清之盖自雲暗之築成 [543] 。謹烟
0008_0139_a_04L燧於要衝關防。迺在銅山府十里。聚雲衲於住持掛塔。為設金湧界三乘
0008_0139_a_05L地。重國家之保障。名不啻白雲望日。殿列清淨之色。目勢何壯。極樂大雄
0008_0139_a_06L肆勝景。已多於上方。而幽賞甲稱於西路。賈浪仙之間 [544] 話竹院。幾多過客
0008_0139_a_07L之住笻。王中書之趂飯蘭齊。無數學生之負笈。邇來年深而歲久。遂致樓
0008_0139_a_08L壞而臺傾。星龕雲塔之東倒西歪。閱浩劫於塵塵剎剎。琳宮梵宇之丹謝
0008_0139_a_09L青落。幻法界於色色空空。半日之麻麥蕭條。香府雨溼。諸天之蓮花散亂。
0008_0139_a_10L畵壁風鳴。惟余以虎符分憂之任。值龍宮頹圮之際。心同善男女發願。自
0008_0139_a_11L疑李謫仙之金粟後身。時當大施主重修。翻想蘇學士之玉帶留鎮。爰思
0008_0139_a_12L鳩材營建之術。遂發龜篆勸善之文。累銖筭婚 [545] 。皆出諸家檀越。小樂大樂。
0008_0139_a_13L足成高樓雲齊。始役訖役。若干日為堂為廡若干間。儼然首塲之依舊。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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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_0140_a_01L왕세往世ㆍ내세來世의 무량계無量界와 대자대비大慈大慈의 무량불無量佛이 찬란하게 그 형상이 새로워졌고, 날아갈 듯612) 크고 아름답게 다시 드러나, 원근에서 모두 축하(燕賀)613)가 들끓었다. 용을 가두고 범 싸움을 풀듯614) 설법하는 조사에게서 옛 자취를 생각하고, 소를 풍자하고 기린을 통하게 할 오묘한 진리를 들으러 남녀가 달려왔다. 칠보 장식은 햇살만큼이나 휘황찬란하고, 백 척尺 건물은 구름을 스치듯 높고 크다. 이에 불력佛力이 광대함을 알겠고, 산성의 높고 견고함이 더욱 드러났다.선종과 교종은 모두 서산을 종주로 삼으니 몸을 잊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의리를 누가 모르겠는가. 사찰 이름은 남한산성에 실로 부합하니,615) 동일한 마음으로 성을 지킨 공을 더욱 징험할 수 있도다.드디어 짧은 노래를 이루어 긴 대들보 올림을 돕고자 하노라.
兒郎偉拋樑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大池扶輿淑氣融 큰 못에 좋고 맑은 기운 서리니
欲問舍人曾駐處 사인이 머물던 곳 묻고 싶은데
蒼然老石碧雲中 짙푸른 바위가 구름 속에 있네
兒郎偉拋樑南 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져라
一㭑山光碧似藍 일말의 산빛이 푸른 쪽 같은데
兵馬中營何處是 병마절도사의 중영616)이 어디인가
徵茫嶺樹帶晴嵐 아득한 고개 나무가 맑게 보이네
兒郎偉拋樑西 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져라
雉堞連雲望裹迷 성가퀴 구름으로 이어져 아득하니
仗義將軍勝戰處 의로운 장군이 승전한 곳이어늘
龜頭埋沒草萋萋 비석은 매몰되어 풀만 스산하네
兒郎偉拋樑北 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져라
高峯嶻蘖叅天直 고봉이 아스라이 하늘을 찌르고
佛堂夜絡紗燈一 불당은 밤에도 등불이 한결같아
炷心香通紫極 한 줄기 심향이 궁궐로 통하네
兒郎偉拋樑上 어영차, 들보 위로 던져라
法雨清塵慧月朗 법우가 먼지 씻어 혜월이 밝으니
正是如來說偈時 진정 여래가 설법하던 시절이라
三千大界毫光放 삼천대천세계에 호광617)이 발하네
兒郎偉拋樑下 어영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粉然金帛爭施捨 무수히 금백을 다투어 시주하니
迷津寶箋福田橋 보배 뗏목이요 복전의 교량이니
指與堂間問路者 건물 사이에서 길묻는 이 가리키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이후 보배탑이 영원히 견고하고 숲은 더욱 빛이 나서, 81난難에 마귀를 제압하여 서교西教(불교)를 빛나게 하고 백천만 겁에 신통(靈通)을 드리워 모두 동방을 도우소서.
신해년(白猪年) 겨울 동양 후인東陽後人618) 신숙申橚619) -
0008_0140_a_01L世來世無量界。大慈大慈 [546] 無量佛。煥乎塑像之重新。壯麗復見於翬飛。遠
0008_0140_a_02L近咸騰於燕賀。想舊跡於藏龍解虎。說法祖師。聽妙諦於諷牛通麟。奔波
0008_0140_a_03L士女。七寶之粧△▼(光+星)日。炫轉熒煌。百尺之結搆拂雲。嗟峨盤鬱。是知佛力
0008_0140_a_04L之廣大。益見山城之高堅。禪教皆宗於西山。孰不知忘身殉國之義。寺名
0008_0140_a_05L實符於南漢。尤可驗同心守堞之功。遂成短章之歌。用助修樑之舉。
0008_0140_a_06L兒郎偉拋樑東。大池扶輿淑氣融。欲問舍人曾駐處。蒼然老石碧雲中。
0008_0140_a_07L兒郎偉拋樑南。一㭑 [547] 山光碧似藍。兵馬中營何處是。徵茫嶺樹帶晴嵐。
0008_0140_a_08L兒郎偉拋樑西。雉堞連雲望裹迷。仗義將軍勝戰處。龜頭埋沒草萋萋。
0008_0140_a_09L兒郎偉拋樑北。高峯嶻蘖叅天直。佛堂夜絡紗燈一。炷心香通紫極。
0008_0140_a_10L兒郎偉拋樑上。法雨清塵慧月朗。正是如來說偈時。三千大界毫光放。
0008_0140_a_11L兒郎偉拋樑下。粉然金帛爭施捨。迷津寶箋福田橋。指與堂間問路者。
0008_0140_a_12L伏願上樑之後。寶塔永固。棰林增輝。伏魔妖於八十一難者。彰西教。垂靈
0008_0140_a_13L通於百千萬劫。咸佑東方。白猪年冬東陽後人申橚。
- 1)양화사陽和寺 : 평안도 태천 향적산에 있는 절로, 일제강점기 31본산의 하나였던 묘향산 보현사의 산외 말사末寺 가운데 으뜸 사찰이었다. 양화사의 산내 말사로는 상운암上雲庵ㆍ화장암華藏庵ㆍ원적암圓寂庵ㆍ내원암內院庵ㆍ축성전祝聖殿 등이 있다.
- 2)사산四山 : 조선시대에는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을 삼산三山이라고 했고, 여기에 구월산 등을 더해 4대 명산이라고 했다.
- 3)태주泰州 : 현재는 평안북도 태천군泰川郡이다.
- 4)마한, 진한 : 신라를 가리키는 것 같다. 양화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12년(872)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5)후세에~않겠는가 :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후세에 지금을 바라보는 것이 또한 지금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같을 것이니, 슬픈 일이다.(後之視今。亦猶今之視昔。悲夫。)”라는 말이 있으니,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것이다.
- 6)향적香積 : 향적여래香積如來는 중향衆香의 부처로서 법의 향기가 온 세상에 두루 미쳤다고 한다. 향적여래가 공양하는 것이 향적반香積飯인데, 『유마경維摩經』에서는 향적여래가 바리때에 향반香飯을 가득 담아 보살들에게 주면서 교화했다고 한다.
- 7)중희重熙~때 : 연대에 오류가 있다. 중희重熙 11년은 1042년(고려 정종 8년)으로 임자년이 아닌 임오년이며, 고려 성종 때는 임자년이 없다. 중희(1032~1055)는 요遼 흥종興宗 야율종진耶律宗眞의 치세에 쓰던 연호이다.
- 8)편양鞭羊 :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말년 제자 편양 언기鞭羊彦機(1581-1644)를 가리킨다.
- 9)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로 1457~1464년이다.
- 10)영산후불탱靈山後佛幀 : 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그린 탱화로, 대웅전 등 법당에 후불화로 봉안되었다.
- 11)오로감로왕탱五路甘露王幀 : 감로탱甘露幀, 감로도甘露圖, 감로왕도甘露王圖는 영가단靈駕壇에 봉안하는 불화이다. 『우란분경于蘭盆經』과 『목련경目連經』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영혼들에게 감로와 같은 법문을 베풀어 해탈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로五路는 망자의 혼령을 인도하는 다섯 방향인 동서남북과 중앙의 길을 가리킨다.
- 12)광덕廣德 37년 신유년 : 광덕은 중국 당나라 대종 때의 연호(763~764년)이지만, 37년이나 신유년은 해당되지 않는다.
- 13)삼운三雲 : 광운廣雲, 성운性雲, 계운戒雲의 ‘운’자로 끝나는 세 명의 승려를 가리킨다.
- 14)파把 : 길이 단위로 약 1.5m이다.
- 15)곡斛 : 곡식 10말 분량이다.
- 16)영산수륙회靈山水陸會 : 영혼을 천도하는 영산재靈山齋와 수륙회(수륙재)를 말한다. 영산재는 49재 중에서 가장 큰 의식이다. 수륙회는 물과 육지를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법회이다.
- 17)임진년에~때 :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군이 서울로 향해 오자 선조가 평안도 의주로 피난을 떠난 것을 말한다.
- 18)천자의 군대 : 명나라 군대를 가리킨다.
- 19)풍암楓巖 : 풍암 세찰楓巖世察(1688~1767)로 부휴 선수의 법맥을 계승한 고승이다. 그의 문하에서 사걸四傑로 불리는 묵암 최눌黙庵最訥, 응암 낭윤應庵郞允, 제운 해징霽雲海澄, 벽담 행인碧潭幸仁 이 배출되었고 그 후손들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 20)상승上乘 : 최상의 교법을 말한다. 대승大乘의 다른 말이다.
- 21)상란喪亂 : 전쟁이나 전염병, 천재지변 등으로 사람이 많이 죽는 일을 말한다.
- 22)용호龍虎 : 풍수에서 말하는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이다.
- 23)백마白馬가~온 후로 : 영평 11년(68) 인도의 승려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등이 후한 명제明帝의 사신 채음蔡愔의 청으로 불상과 경전을 흰말에 싣고 낙양洛陽으로 들어왔고, 이듬해 사찰이 건립되어 백마사라고 하였다. 백마사는 중국 최초의 불교 사원이다.
- 24)유한劉漢 : 유방劉邦이 세운 전한前漢으로 기원 전 202~기원 후 8년이다.
- 25)원위元魏 : 남북조 시대 북조北朝 최초의 나라(386~534)로 북위北魏, 후위後魏의 별칭이다. 선비족鮮卑族 탁발씨拓跋氏가 세웠는데 효문제孝文帝가 낙양으로 천도한 뒤에 성姓을 탁발씨拓跋氏에서 원씨元氏로 바꾸었다.
- 26)이당李唐 : 이연李淵이 세운 당나라로, 618~907년이다.
- 27)조송趙宋 :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나라로, 960~1279년이다.
- 28)난타蘭陁 : 인도의 나란타사那爛陀寺를 가리킨다.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의 북쪽에 있던 절이다. 405년 이후에 지었으며, 7세기 초 현장이 인도에 유학하였을 무렵에는 인도 불교의 중심지였다.
- 29)급고원給孤園 :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 즉 기원정사로 석가모니가 설법한 곳이며 왕사성의 죽림정사와 함께 불교 최초의 양대 가람이다.
- 30)죽림정사竹林精舍 : 인도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중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에 있는 가란타 죽림에 석가모니가 머물면서 설법하였는데, 가란타 장자가 그 설법을 듣고 귀의하여 이 죽림을 승단에 기증하였고 빔비사라 왕이 가람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 31)3천 비보소稗補所 : 고려시대에 도선道詵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에 의해 지정되거나 건립한 사원을 비보사찰이라 한다. 지기地氣가 쇠퇴하면 사람의 운수도 나빠지고 국가도 쇠망하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해 산천의 역처逆處나 배처背處에 사탑을 건립해 지기를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도선밀기道詵密記』에 지정된 비보소는 전국의 유명 사찰을 망라하여 3,800개소에 달했다.
- 32)7대 가람 : 신라 때의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천왕사, 담양사를 말한다.
- 33)독재獨齋 : 홀로 수행하는 사적 공간을 말한다.
- 34)용이~듯한 : 웅장한 지세를 형용한 말이다. 원문은 “龍盤虎踞”로, 제갈량諸葛亮이 남경南京의 형세를 보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 35)雲水: 구름과 물이 흐르듯이 정처 없이 다니며 탁발하는 운수 납자를 가리킨다.
- 36)전승戰勝 : 기타태자祇陀太子를 가리킨다.
- 37)급고給孤 : 사위국舍衛國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로 기원정사祇苑精舍를 지어 보시하였다. 부처님이 머물 정사精舍를 지으려고 기타태자祇陀太子에게 동산 80경頃을 사겠다고 하자 태자가 “그 땅에 금을 가득 깔아주면 주겠다.”라고 했는데 과연 금을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땅을 주고 원림까지 희사하여 최초의 불교 사원인 기원정사를 건립하였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6권.
- 38)안교安敎 : 자신과 타인을 편안하게 하는 가르침으로 불교를 가리킨다.
- 39)소보巢父 : 허유許由의 오류이다. 소보巢父와 허유許由는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이다. 요 임금이 일찍이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했는데 이를 거절하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은거하였고, 그 뒤에 또 그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고 하자, 귀를 더럽혔다 하여 영수潁水에 가서 귀를 씻었다. 이때 마침 소보가 송아지에 물을 먹이려고 나왔다가 허유가 귀 씻는 것을 보고는 그 물도 더럽다고 여겨 송아지를 데리고 상류로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고 한다.
- 40)장주莊周~꿈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호접몽蝴蝶夢을 말한 것이다. 장주가 꿈속에 나비가 되어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유쾌했는데 자기가 장주인 것은 몰랐다. 잠을 깨고 보니 장주의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의 꿈속에 장주가 된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물아物我의 변화라고 한다.”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 41)난정蘭亭 : 중국 소흥紹興에 있는 왕희지王羲之(303~361)의 정자이다. 353년 3월 3일에 사안謝安, 왕헌지王獻之 등 명사 40여 명과 모여 시를 지으며 봄날의 정취를 즐겼는데, 이때 왕희지가 짓고 글씨를 쓴 「난정기蘭亭記」가 유명하다.
- 42)벽곡辟穀 : 도가道家의 수련술修鍊術 중 하나로 곡식을 먹지 않고 솔잎ㆍ대추ㆍ밤 등을 조금씩 먹음.
- 43)천간지비天慳地秘 :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었다는 뜻으로, 아주 귀하고 훌륭한 곳을 말한다.
- 44)향수의 바다 : 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싸고 있는 내해內海를 말한다.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향수해와 사바세계 향수해가 있음.
- 45)삼장탱三藏幀 : 삼장보살三藏菩薩을 그린 탱화이다. 중앙의 천장보살天藏菩薩을 중심으로 지지보살持地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 그리고 세 보살을 둘러싼 그 권속을 그린 불화이다.
- 46)주실籌室 : 교화하고 지도하는 방장方丈을 말하며 조실祖室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우바국다 존자憂波鞠多尊者가 많은 이들을 교화하였는데, 한 사람을 이끌 때마다 산가지(籌) 하나씩을 둔 것이 높이와 너비 각각 6장丈이 되는 방에 가득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 47)도감都監 : 불사와 관련된 일을 총괄하는 소임이다.
- 48)별좌別座 : 사찰에서 대중의 좌구坐具 ‧ 침구寢具 ‧ 공양간의 일을 감독하고 음식 등을 마련하는 실무 소임이다.
- 49)삼강三綱 : 사찰의 전반적 관리와 운영을 맡은 소임으로 법랍이 있는 승려가 담당한다.
- 50)전좌典座 : 선종 사찰에서 공양 등을 담당하는 소임으로 별좌와 유사한 직책이다.
- 51)수승首僧 : 승려들 가운데 수행이 높은 이를 말한다.
- 52)영장領將 : 승장僧將을 가리킨다.
- 53)안릉安陵 : 경기도 개성 인근에 있는 고려 3대 정종(定宗)의 능.
- 54)고로栲栳 : 고리. 고리버들 가지나 대오리 등으로 엮은 상자 같은 물건이다.
- 55)광덕廣德 : 광덕은 당 대종의 연호로 763(계묘)~764(갑진)이며, 여기서는 오류로 보인다.
- 56)삼운三雲 : ‘운雲’자 돌림인 광운廣雲, 성운性雲, 계운戒雲 세 명을 가리킨다.
- 57)기산耆山 : 기사굴산耆闍崛山의 약칭으로 세존이 설법한 곳이다.
- 58)우담바라 : 우담바라 꽃은 매우 상서로운 징조를 뜻한다. 3천 년마다 한번, 여래가 태어날 때나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만 그 복덕으로 꽃이 핀다고 한다.
- 59)불을~잘못되어 : 원문 ‘포신抱薪’은 ‘포신구화抱薪救火’를 말한다.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끈다’는 말로, 잘못된 방법으로 재난을 구제하려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함을 뜻한다.
- 60)자벌레가~위함이다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나온다.
- 61)연태蓮胎 : 서방 극락極樂의 변지邊地 연꽃 속에 태어나는 것으로, 정토왕생을 뜻한다.
- 62)절산岊山 : 절령岊嶺으로 황해도 자비령慈悲嶺을 가리킨다.
- 63)생사리비生舍利碑 : 생사리生舍利는 살아있는 몸에서 나온 사리를 말한다.
- 64)옹정 13년은 을묘년으로, 원문의 을유년은 오류이다.
- 65)계사년은 강희 52년으로, 원문의 53년은 오류이다.
- 66)불향답비佛享畓碑 : 불향답佛享畓은 불공佛供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절 소유의 논이다.
- 67)인석引石 : ‘당긴 돌’로 印石이라고도 한다. 능의 병풍석에 대는 길쭉한 돌을 말한다.
- 68)동지同知 : 조선 시대 종2품의 관직이다.
- 69)월성月城 : 본관을 말한 것이다.
- 70)화장암華藏菴 : 양화사의 산내 말사이다.
- 71)칠성七星 : 칠성신으로, 인간의 수명과 재복(財福)이나 강우(降雨)를 관장한다. 전통 사찰 대부분이 칠성각을 두어 칠성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 72)백장百丈 : 당나라의 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 6조 혜능의 남종선 정통 계보를 이은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이다. 백장산百丈山에 머물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교화했는데, 특히 율원律院에서 선원禪院이 독립하는 것을 주도하였고 선종 사찰의 독자적 규율인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만들어, 수행승들이 자급자족하며 집단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 73)영대를~이루어졌다 : 『시경詩經』 「대아大雅 영대靈臺」에 “영대를 세우려고 경영하시니, 백성들이 달려들어 하루도 안 되어 완성했네.(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라고 하였다.
- 74)화장세계華藏世界 :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약칭. 『화엄경』에 나오는 정토淨土이다.
- 75)축성전祝聖殿 : 사찰에서 임금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비는 곳이다.
- 76)임금님의~있는가 : 임금의 지극한 다스림으로 인해 태평성대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요임금 때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쉬면서,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나니, 임금님의 권력이 나에게 무슨 상관 있으랴.(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飮。耕田而食。帝力於我何有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 77)화봉삼축華封三祝 : 옛날 요임금 때 화華 땅에 봉해진 사람이 요임금에게 수명ㆍ재부ㆍ많은 아들 세 가지를 축원했던 데서 나온 말로, 이후 송축頌祝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 78)숭산의 만세 : 임금을 축수함을 뜻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숭산崇山에 올라가 제사를 지낼 때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들렸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 79)곡척曲尺 : 직각으로 굽은 자이다.
- 80)기송杞宋의 문헌 : 선대先代의 일을 상고할 만한 문헌이 없는 것을 뜻한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멸한 뒤에 앞서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인 동루공東樓公을 봉하여 하우의 제사를 받들게 한 나라가 기杞이고, 은의 성탕成湯의 후손인 미자微子를 봉한 나라가 송宋이다. 공자가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제禮制를 고증하려 하였으나 기와 송의 문헌이 없어 고증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 81)수희隨喜 : 남의 선함, 선행善行을 보고 따라서 좋아하기를 마치 자기 일과 같이 여기는 마음.
- 82)용천龍天 :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八部의 이류異類 가운데 용중龍衆과 천중天衆을 가리킨다.
- 83)믿음은~한다 : 『화엄경』 「현수품賢首品」에 나오는 구절이다.
- 84)용천龍天 : 불법을 수호하는 신 천룡팔부天龍八部를 가리킨다.
- 85)권화자勸化者 : 화주승化主僧을 말한다.
- 86)옛~누렸고 : 갈삿갓으로 불상을 덮어 주어서 전륜성왕에게 복을 받았다는 고사가 있다.
- 87)별견관別遣官 : 조정에서 특수한 임무를 위하여 별도로 파견한 관원을 말한다.
- 88)만성灣城 : 의주성義州城을 말한다. 천왕사는 의주성내에 있다.
- 89)사과司果 : 오위五衛의 정6품 관직이다.
- 90)관세청管稅廳 : 의주부義州府의 무역세 수납을 담당한 기관으로 1814년(순조 14) 의주부윤 오한원吳翰源이 창설하였다. 처음에는 의주 상인의 책임하에 포삼세包蔘稅 등의 무역세를 거두어 사행시 필요한 공용을 담당하였다.
- 91)수향首鄕 : 좌수座首를 말한다. 지방의 주州ㆍ부府ㆍ군郡ㆍ현縣에 둔 향청鄕廳의 우두머리이다.
- 92)이유원李裕元 : 1814~1888.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ㆍ묵농默農으로 조선후기 함경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이 있다.
- 93)위성威城 : 희천煕川의 옛 이름이다.
- 94)거미의 경륜 : 명나라 중기의 문인인 서애西涯 이동양李東陽(1447~1516)이 어렸을 때 신동으로 소문났는데 황제가 그를 불러 시로 시험해보았다. 황제가 “게는 온몸이 갑주로 덮여 있네.(螃蟹渾身甲冑)”라고 하자, 이동양이 “거미는 뱃속에 경륜이 가득 찼네.(蜘蛛滿腹經綸)”라고 답하였다. 『원명사류초元明事類鈔』 40권.
- 95)정관貞觀: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때의 연호(626-649년).
- 96)용호龍虎 : 좌청룡左靑龍ㆍ우백호右白虎를 말한다. 혈의 좌측 내맥來脈을 청룡이라 하고, 우측 내맥을 백호라고 한다.
- 97)용과~있지 : 원문의 ‘龍蛇混雜’으로, 사찰에 승려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용과 같은 큰 도인과 뱀과 같은 중생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 98)결연結緣 : 불문에 든 인연을 말한다.
- 99)사생육도四生六道 : 중생이 태어나는 네 가지의 형태로 육도六道의 윤회를 말한다. 사생은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계를 말한다.
- 100)구품九品의 연화대蓮花臺 : 극락세계의 칠보 연못에 있다. 9품은 정토의 연화대에 태어나는 중생의 품위品位로서 아홉 가지가 있다.
- 101)청나라 강희康熙 : 원문은 ‘有清三之’로 강희제는 청의 4대 황제이지만 태조 누르하치에 이어 실제로 청을 세운 태종으로부터 3대째 황제이다. 강희 48년은 기축년으로 1709년이다.
- 102)도道는 금석문이 의심되고 : 도가 금석문에 기록된 것보다 더 높음을 말한 것이다.
- 103)동계 월저東溪月渚 : 동계東溪는 미상이지만 청허의 3세 후손인 월저 도안月渚道安(1638~1715)을 가리키는 것 같다.
- 104)팔란八鸞 : 네 필의 말에 달린 여덟 개의 방울로, 천자가 타는 수레를 말한다. 여기서는 임금의 행차를 말한 것이다. 『시경』 「열조烈祖」에 “팔란이 화락하게 울린다.(八鸞鶬鶬)”라고 하였다.
- 105)임제臨濟 : 임제 의현臨濟義玄(?~867). 당나라의 선승으로 황벽 희운黃璧希運에게 사사하여 그의 법을 이어 받았으며, 임제종臨濟宗의 시조이다. 우리나라 선종은 임제종의 선풍을 이어받았다.
- 106)원공遠公 : 혜원惠遠(334~416)을 가리킨다. 중국 동진 때의 승려로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일으켜 승속을 초월하여 염불 수행을 일으켰다.
- 107)위성威城 : 희천煕川의 옛 이름이다.
- 108)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救眾 : “해동의 원효가 소반을 던져 대중을 구하다.”는 뜻이다.
- 109)희유심希有心 : 드물게 있는 마음.
- 110)높은~같도다 : 원문은 ‘山高水長’으로, 영원히 전해질 고결한 인품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는 말로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비유하였다.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 “구름 낀 산 푸르고 푸르듯, 저 강물 곤곤히 흐르고 흐르듯, 선생의 기풍 역시 산고수장이로세.(雲山蒼蒼。江水泱泱。先生之風。山高水長。)”라고 하였다.
- 111)명금鳴金 : 종이나 경쇠 등을 쳐서 소리가 울리는 것을 말한다.
- 112)터럭~것입니다 : 전국 시대 사람 양주楊朱는 극단적인 이기주의利己主義를 주장하였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양자는 자신을 위함을 주장하여, 내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해도 하지 않는다.(楊子取爲我。拔一毛而利天下。不爲也。)”라고 하였다.
- 113)태평성대가 계속 이어졌다 : 원문의 ‘중희루흡重煕累洽’은 앞뒤 임금의 공덕이 서로 이어져 대대로 태평함을 칭송하는 말이다. 반고班固의 「동도부東都賦」에 “영평 즈음에 이르러 거듭 빛나고 누차 넉넉해졌다.(至永平之際。重熙而累洽。)”라고 하였다.
- 114)문무文武를 겸비한 길보吉甫 :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 북벌北伐을 담당한 장군 윤길보尹吉甫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유월六月」에 “문무를 겸비한 장군 길보여, 만국의 법도가 되리로다.(文武吉甫。萬邦爲憲。)”라고 하였다.
- 115)방패와 성 : 국가를 위하여 방패가 되고 성이 되는 훌륭한 장수를 뜻한다. 《시경》 〈주남周南 토저兎罝〉에 “굳세고 굳센 무부여, 공후의 간성이로다.(赳赳武夫。公侯干城。)”라고 하였다.
- 116)좌방영左防營 : 평안도 창성도호부昌城都護府에 설치되어 있었던 병영이다. 창성은 평안북도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 117)제승制勝 :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을 말한다.
- 118)장정長靜 : 평안도 창주昌州의 고려시대 때 이름으로 현縣이었다. 조선 태조 때 이성泥城을 창주에 합하여 창성군으로 하였고, 세종 때 도호부로 승격시켰으며, 세조 때 이곳에 진鎭을 두었다.
- 119)한후韓侯 : 당시 한씨韓氏 성의 창성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120)천석千石의~전하였으니 : 어진 태수의 선정을 칭송한 말이다. 천석千石은 이천석의 오류인 것 같다. 한 나라 때 고을 수령의 녹봉이 이천석이었던 데서 고을 수령을 가리킨다. 전한前漢의 소신신召信臣과 후한後漢의 두시杜詩는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다 같이 덕정德政을 베풀었으므로 남양 백성들이 “앞에는 소부가 있고 뒤에는 두모가 있다.(前有召父。後有杜母。)”라고 칭송한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卷89 「순리전循吏傳 소신신召信臣」, 『후한서後漢書』 卷31 「두시열전杜詩列傳」.
- 121)만가萬家에서 부처가 나고 : 은덕을 널리 베풀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보살이 생기게 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관리의 은택이 널리 미침을 말한다.
- 122)하인들도~알았도다 : 덕망이 높고 명성이 자자하기가 옛날 사마광司馬光과 같았다는 말이다. 사마광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양洛陽에 독락원獨樂園을 짓고 한가로이 지내는 동안에, 심지어 아동이나 미천한 하인들까지도 모두 사마군실司馬君實의 성명을 다 알았다고 한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시 〈사마군실의 독락원(司馬君實獨樂園)〉에 “아동들도 군실을 칭송하고, 하인들도 사마를 알았네.(兒童誦君實。走卒知司馬。)”라고 하였다. 군실은 사마광의 자이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 3권.
- 123)공무를 보는 : 원문의 ‘調梅’는 매실을 조리한다는 뜻으로, 원래 정승의 업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지방관의 업무를 말한 것이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삼으면서 “만일 국의 맛을 맞춘다면 너는 소금이요 매실이니라. (若作和羹。 爾惟鹽梅。)”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 124)멀고~되리로다 : 임금의 덕화가 멀리 미치는 것을 말한다.
- 125)금빛 신선 : 금불상, 부처를 가리킨다.
- 126)삼승三乘 : 깨달음을 이루는 세 가지의 교법으로,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이 있다. 성문승은 부처의 설법을 들어 깨닫고, 연각승은 과거로부터의 인연에 의해 홀로 수행하여 깨달으며, 보살승은 이타적 자비의 실천을 통해 깨닫는 것을 말한다. 성문승과 연각승을 소승小乘, 보살승을 대승大乘이라 하며, 연각승을 따로 독각승獨覺乘이라 하기도 한다.
- 127)여덟 개의 창 : 사방에 난 여덟 개의 창문으로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누각을 말한다.
- 128)삼광三光 : 해, 달, 별을 말한다.
- 129)계술繼述 : 계지술사繼志述事로, 선왕이나 선조가 품은 뜻과 하던 일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19장에 “효도란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고 부모의 일을 잘 전술하는 것이다.(夫孝。善繼人之志。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하였다.
- 130)석장~말리고 : 원문은 ‘揮錫解虎’이다. 제齊나라 혜조慧稠가 회주懷州 왕옥산王屋山에 있을 때 호랑이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는 석장으로 말렸고, 또 담순曇詢이 산행하다가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며 여러 날이 되도록 쉬지 않기에 석장을 집어다 그들을 갈라놓으며 “숲속에서 함께 살면서 어찌 크게 어긋나려 하는가. 각기 길을 나누어 가라.” 하였더니 두 호랑이가 머리를 숙여 가르침을 받고 떠났다고 한다. 『치문경훈緇門警訓』
- 131)발우~가두었다 : 당나라 때 태백산 중봉中峯 꼭대기에 고승이 살았는데 인도에서 왔고 나이는 수백 살이 되는데, 깊은 못에 사는 악독한 용이 오랫동안 못된 짓을 하자 잡아서 그릇에 가둬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잠가주시岑嘉州詩』 권2 「태백호승가太白胡僧歌」에 “창가에서 석장으로 두 호랑이 싸움 말리고 침상 밑의 바리때엔 한 마리 용을 가뒀다네.(窓邊錫杖解兩虎。牀下鉢盂藏一龍。)”라고 하였다.
- 132)훌륭한 인재가 나와서 : 원문 ‘麟抱’는 ‘麒麟抱送’으로, 두보杜甫의 「서경의 두 아들(徐卿二子歌)」에서 “그대는 못 보았나. 서경의 두 아들 뛰어나게 잘난 것을, 길한 꿈에 감응하여 연이어 태어났네. 공자와 부처가 친히 안아 보내주었으니, 두 아이는 모두가 천상의 기린아일세.(君不見徐卿二子生絶奇。感應吉夢相追隨。孔子釋氏親抱送。竝是天上麒麟兒。)”라고 한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10
- 133)극락세계 : 원문의 ‘寶樹’는 극락정토에 일곱 줄로 늘어서 있다는 보배 나무를 말한다.
- 134)대각능인大覺能仁 : 석가모니를 말한다.
- 135)요승妖僧 : 무업無業을 가리킨다. 선조 22년(1589)의 기축옥사는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이다. 정여립은 역모 혐의를 받아 자살하였고 무리가 모두 잡혔는데, 이 무리 중에 무업이라는 승려가 있어 문초를 받던 중에 휴정과 제자 유정이 역모에 가담했다고 무고하였다.
- 136)서산등계대사西山豋階大師 : 선조가 서울로 돌아온 후 연로함을 이유로 팔도도총섭 직에서 물러나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선조는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라는 존칭과 함께 정2품 당상관의 작위를 내렸다.
- 137)청남清南 : 청천강 이남 지역을 가리킨다.
- 138)군막~결정지을 : 한漢 고조高祖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장막 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리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자방만 못하다.(運籌策帳幄之中 決勝千里之外 吾不如子房 )”라고 말한 데서 나온 말이다. 『사기史記』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
- 139)견성명심見性明心 : 명심견성明心見性과 같다.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본다는 뜻이다.
- 140)금비金鎞 : 인도에서 장님의 눈을 고치기 위해 망막을 깎아낼 때 사용했던 의료도구이다. 중생의 무지를 없애고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해주는 방편의 교설, 또는 고승을 비유한다. ‘金篦’나 금주金籌ㆍ금비金錍ㆍ금배金拜 등으로도 쓴다.
- 141)석종石鍾 : 종 모양의 사리탑이다.
- 142)성인이~교화함 : 원문의 과화過化는 과화존신過化存神의 준말로, 성인이 이르는 곳마다 그 가르침에 백성들 모두가 감화되어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의 “군자는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교화되고 머물러 있는 곳마다 신령스럽게 변화된다.(夫君子所過者化 所存者神)” 라는 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 143)낭관호郞官湖 : 호북성湖北省 한양漢陽에 있는 호수인데, 당나라 이백李白이 상서랑尙書郞 장위張謂, 면주목沔州牧 두공杜公, 한양재漢陽宰 왕공王公 등과 함께 뱃놀이를 즐겼던 곳이다. 본래 이름은 남호南湖였는데, 이백이 장위로부터 영원히 전해질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낭관호라 했다고 한다. 『이태백집李太白集』 卷19 「면주성 남쪽 낭관호에 배를 띄우며泛沔州城南郞官湖」
- 144)청문請文 : 불보살을 청하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글을 말한다.
- 145)시장柴場 : 땔나무를 베는 지정된 장소. 각 관아의 땔나무를 대도록 지정한 삼림을 말한다.
- 146)도와陶瓦 : 기와를 빚어 구워 만드는 일이다.
- 147)기러기와 사슴이 뛰노는 왕의 연못가에서 맹자가 “현인이 된 뒤에야 이것을 즐길 자격이 있지, 그렇지 못하면 이것이 있다 하더라도 즐기지 못한다.(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不樂也)”고 말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
- 148)불기佛器 : 부처를 공양할 때 쌀을 담아 바치는 구리 그릇이다.
- 149)유분鍮盆 : 놋쇠로 만든 주발이다.
- 150)청북清北 : 청천강 이북 지역을 가리킨다.
- 151)체목体木 : 집을 짓는 데 쓰는 기둥, 도리 등의 재목을 가리킨다.
- 152)연공蓮公 : 학연 장로를 가리킨다.
- 153)수인手印 : 부처의 덕을 표시하기 위해 열 손가락으로 여러 모양을 만드는 표상이다.
- 154)자기를 바르게 하고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세상에는 대인大人이 있으니, 그는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남이 저절로 바르게 되게 하는 자이다.(有大人者。正己而物正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 155)수달다須達多 : 사위국舍衛國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로 기원정사祇苑精舍의 시주施主이다. 부처님이 계실 정사精舍를 지으려고 기타태자祇陀太子의 동산 80경頃을 사겠다고 하니 태자가 장난으로 “그 땅에 금을 가득 깔아주면 주겠다.”라고 하였다. 과연 금을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땅을 주고, 태자도 원림을 희사하여 최초의 불교 사원인 기원정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6권.
- 156)비수毘首 : 비수갈마毘首羯摩. 제석천의 신하로 여러 수공품을 만들고 건축을 담당하는 천신.
- 157)옥도玉都 : 도교에서 천제가 사는 곳을 말한다.
- 158)경실瓊室 : 화려한 궁궐을 말한다.
- 159)태미원太微垣 : 사자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별자리로,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궁정이며, 오제가 명을 집행하는 곳이다.
- 160)도솔내원兜率內院 : 보살이 최후에 머무는 곳이다. 석가여래가 보살 시절에 마지막으로 이곳에 있다가 생을 마치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였다.
- 161)보광명전普光明殿 : 석가모니가 마갈타국의 보리도량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고, 보광명전의 연화장 사자좌蓮華藏師子座에서 설법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화엄경』을 3회 설하였다.
- 162)항아리~곳 : 별천지, 선계仙界로 호중천지壺中天地를 말한다.
- 163)명협蓂莢의~바뀌었고 :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뜻한다. 명협은 ‘역협曆莢’이라고도 한다. 중국 요 임금 때에 이 풀이 대궐 뜰에 났는데, 매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는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날까지는 매일 한 잎씩 떨어져서 이것으로 날짜를 계산하여 달력을 삼았다고 한다.
- 164)풍운의 만남 : 원문의 ‘風雲之會’는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風從虎。)”고 한 데서 온 말로, 한 시대에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 의기투합함을 뜻한다.
- 165)업경대業鏡臺 : 명도(冥途: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세계)에서 죄인의 업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 명부전 안에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업경대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 166)금도장(金章) : 금으로 된 도장으로 고관高官을 의미한다.
- 167)장관 : 원문의 옥절玉節은 임금이 지방관에게 내린 부절을 가리킨다.
- 168)봉각鳳閣 : 대궐을 말한다. 여기서는 임금을 가리킨다.
- 169)관에서 지급하여 : 원문의 ‘帖下’는 관아에서 전곡錢穀이나 물품을 지급할 때 발급하는 글이나 증명서를 말한다.
- 170)장교將校 : 각 군영에 속해 있는 군관軍官.
- 171)현복玄福 : 죽은 뒤 저승에서 누리는 행복을 말한다.
- 172)삼청경三淸境 : 도교에서 삼동三洞의 교주가 있는 최고의 선경仙境인 옥청경玉淸境, 상청경上淸境, 태청경太淸境을 말한다.
- 173)구화산九華山 : 중국 안휘성安徽省 청양현靑陽縣에 있는 산으로, 아미산峨眉山ㆍ보타산普陀山ㆍ오대산五臺山과 함께 중국 불교의 4대 영산靈山으로 꼽힌다.
- 174)학이 구고九臯에서 우니 :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울어도, 소리가 하늘에 들리도다.(鶴鳴于九皐。聲聞于天。)”라 하였다. 구고九皐는 아홉 웅덩이로 매우 깊고 먼 곳을 의미한다. 아무리 깊고 멀어도 명성이 크게 알려짐을 뜻한다.
- 175)연꽃이 상품上品을 여니 : 극락정토에 있는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의 상품에 왕생한다는 뜻이다. 구품연화대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상품, 중품, 하품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상생上生, 중생中生, 하생下生으로 나누었다.
- 176)호념護念 : 밖에서 악惡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호護라고 하고, 안에서 선善이 생기게 하는 것을 염念이라고 한다.
- 177)혜원慧遠 : 334~416. 중국 동진東晉 때의 승려로,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승속이 함께 염불수행을 일으켰다.
- 178)도림道林 : 314~366. 동진東晉의 고승 지둔支遁의 자字이다. 왕희지王羲之 및 허순許詢 등과 교유하였다.
- 179)만월滿月 : 만월보살로, 관음보살의 화현이다. 보름달처럼 공덕이 원만하고 중생을 골고루 비춰준다고 한다.
- 180)돌을 꾸짖어 : 원문의 ‘叱石’은 돌을 꾸짖어 양을 만들었다는 ‘질석성양叱石成羊’을 줄인 말이다. 옛날에 황초평皇初平이라는 사람이 양을 길렀는데, 어떤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의 굴속으로 가서 4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 형이 찾아가서 보니 양은 없고 흰 돌만 보여서 연유를 묻자 “양이 있는데 형이 보지 못하는 것이오.”라고 하고는 “워! 양들아, 일어나거라.”라고 하니, 흰 돌이 모두 일어나 수만 마리 양이 되었다고 한다. 『신선전神仙傳』 2권.
- 181)금밭(金田) : 황금으로 깐 땅으로 사원을 가리킨다. 인도 사위성의 수달다 장자가 부처님을 위해 사원을 지을 때 부지를 얻으려고 황금을 땅에 가득 깔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금지金地라고도 함.
- 182)정해진 법칙 : 원문의 ‘天經’은 정해진 도리와 법칙인 상도常道를 뜻한다.
- 183)기원祇園 :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가리킨다.
- 184)중각강당重閣講堂 : 중인도 비야리성의 숲에 있던 절. 석가모니가 이곳에서 설법과 강경을 하였다.
- 185)옥문玉門, 경실瓊室 : 신선이 사는 곳의 화려한 문과 방을 말한다.
- 186)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 : 성문聲聞이 깨달을 때까지 필요한 수행 기간이다. 가장 빠른 자는 세 번 태어나는 삼생三生이며, 가장 느린 자는 육십겁六十劫의 기간이 지나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는다.
- 187)화사化士 : 화주승化主僧으로, 불사佛事에 필요한 재물을 구하는 승려이다.
- 188)무지개 들보 : 원문 ‘虹樑’은 무지개처럼 굽어 모양이 용과 같은 들보를 말한다.
- 189)용루龍樓 : 대궐을 뜻한다.
- 190)봉각鳳閣 : 대궐을 뜻한다.
- 191)금지金枝 : 임금의 자손을 말한다.
- 192)옥엽玉葉 : 임금의 자손을 말한다.
- 193)문왕文王의 후비后妃 : 원문은 ‘文后’로, 주나라 문왕의 후비이며 무왕武王의 어머니인 태사太姒를 가리킨다. 현숙한 왕비의 전형으로 칭송된다.
- 194)마야摩耶 :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말한다.
- 195)복진福辰 : 복성福星으로, 행복을 주관하는 별 목성木星을 가리킨다.
- 196)수성壽星 : 장수를 상징하는 별로 남극성南極星 또는 노인성老人星이라고도 한다.
- 197)성인의 아들 : 원문은 ‘聖子’로 왕위를 계승하는 자손을 높이어 일컫는 말이다.
- 198)기린의 발이 인후仁厚함 : 『시경』 「주남 인지麟趾」에 “기린의 발이여, 인후한 공자이니(麟之趾。振振公子。)”라고 하였다. 이는 문왕의 후비가 덕을 닦아서 자손과 종족이 모두 선에 교화되었음을 뜻한다.
- 199)신神의 자손 : 원문은 ‘神孫’으로, 왕위를 계승하는 자손을 높여서 일컫는 말이다.
- 200)메뚜기의 깃이 화목하게 모임 : 『시경』 「주남 종사螽斯」에 “메뚜기의 깃이 화목하게 모였으니, 너의 자손이 번성함이 당연하도다.(螽斯羽。詵詵兮。宜爾子孫。振振兮。)”라고 하였다. 메뚜기는 한 번에 알을 90개 정도 낳으므로 자손이 번창함을 비유한 것이다.
- 201)2자 결락된 듯함.
- 202)석장으로~순종시키고 : 당나라 이백李白의 「태백산 호승가太白贈胡僧歌」에 보인다. 태백산 중봉中峯 꼭대기에 인도에서 온 고승이 풀옷을 입고 능가경을 끼고 살았는데, 어느 날 동쪽 봉우리에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약한 놈이 죽을뻔하자 호승이 지팡이로 갈라놓았고, 서쪽 못에 독룡毒龍이 오래도록 못된 짓을 하자 잡아서 그릇에 가두어 놓았다 한다. 이백은 시에서 “창가에서 석장으로 두 마리 호랑이를 갈라놓고, 침상 아래 바리때에 용 한 마리를 가두어 놓았네.(窓邊錫杖解兩虎。床下鉢盂藏一龍。)”라고 하였다. 신승神僧의 신통력을 말한 것이다.
- 203)성상의 장수 : 『시경』 「소아 천보天保」에서 “남산의 장수함과 같아 이지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도다.(如南山之壽。不鶱不崩。)”라고 하였다. 이는 신하가 임금을 축수하는 뜻이다.
- 204)鄉은 風의 오자.
- 205)풍운風雲의 경사 : 임금과 신하가 서로 의기투합함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왔다.
- 206)옹정 10년(1732)은 임자년이며, 을묘년은 옹정 13년(1735)이다.
- 207)매헌梅軒 : 매당梅堂. 고을 수령을 가리킨다.
- 208)만월세계滿月世界 : 약사여래가 머무는 곳이 동방 만월세계이며 정유리정토淨琉璃淨土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갠지스강 모래알 수의 10배에 해당하는 국토를 지나면 정유리정토가 있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을 닦는 이에게 무상보리의 묘과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 209)무량수불無量壽佛 :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말한다.
- 210)환희원歡喜園 : 도리천忉利天에 있는 제석帝釋의 네 정원 가운데 하나이며 희견성 밖 북방에 있는데, 제천이 이곳에 들어가면 스스로 환희의 정을 일으킨다고 한다. 환락원ㆍ희림원이라고도 한다.
- 211)천룡팔부天龍八部 : 불국佛國 세계를 지키는 천신天神과 용신龍神 등 8명의 선신善神을 통칭하는 말이다. 팔부중八部衆ㆍ팔부신장八部神將ㆍ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도 한다.
- 212)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와 같다. 보살이 최후로 성도成道하는 지위이다. 미세한 번뇌와 앎의 장애를 영원히 끊고, 집착과 걸림이 없이 일체의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해 정등각正等覺을 얻는 지위이다.
- 213)이름 쓰는 곳 : 유람객들이 이름을 써놓는 곳이다.
- 214)천향화天香花 : 원문의 ‘天香’은 모란의 비범한 향기와 빛깔을 나타낸 ‘국색천향國色天香’을 말한 것 같다.
- 215)꽃을 들어 보이지 : 염화미소拈花微笑를 말한다. 세존이 영축산의 법회에서 꽃을 들어 보이자 마하가섭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짓자 세존이 그에게 심인心印을 전수하였다는 고사이다.
- 216)백련사 : 원문의 ‘蓮社’는 백련사白蓮社의 약칭으로, 동진東晉 때 여산 동림사東林寺의 혜원慧遠이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 유학자들을 초청해 승속을 초월하여 함께 염불 수행을 하기 위해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였다.
- 217)백거이 : 원문의 ‘白傅’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를 가리킨다. 그가 태자소부太子小傅를 지냈으므로 부르는 명칭이다. 백거이는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내다 사직하고 향산으로 들어가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스스로 부르며 승려 여만如滿 등과 함께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해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 218)범헌梵軒 : 절을 뜻한다.
- 219)현사玄師 : 진晉나라 때 선인仙人이며 명필이었던 양희楊羲를 가리킨다. 전설에 의하면 구용산句容山에 은거하다가 득도하여 승천했다고 한다.
- 220)원문의 2년은 병자년으로 오류이다. 병술년은 12년이다.
- 221)성절聖節 : 임금의 생일.
- 222)지군知郡 : 지군사知郡事로 군수郡守의 전신이다.
- 223)홍무洪武 : 명 태조의 연호로 1368~1398년이다.
- 224)건륭乾隆 : 청나라 고종의 연호로 1736~1795년이다.
- 225)시주를~맡은 : 원문의 ‘引勸施主’는 사람들에게 시주하기를 권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 226)점안點眼 : 불상을 만들거나 불화를 그리고 나서 주문을 외며 눈동자를 그리는 것을 말한다.
- 227)도광道光 : 청나라 선종의 연호로 1821~1850년이다.
- 228)성조감成造監 : 절을 지을 때의 공사 감독을 말한다.
- 229)편수片手 : 목수木手를 말한다.
- 230)요령搖鈴 :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불구佛具의 하나이다. 작은 종같은 모양으로 놋쇠로 만들며 손으로 잡고 흔든다.
- 231)種은 鍾의 오자인 듯함.
- 232)원문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歷代高僧碑文』 고려편 4,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 233)이색李穡 : 1328~1396.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생으로 원나라에 유학해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또 원에 서장관으로 갔을 때 회시에 장원급제하였다. 대사성, 정당문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1373년에 한산군에 책봉되었고 1377년에 우왕의 사부가 되었다.
- 234)권주權鑄 : ?~1394. 고려후기의 문신, 서예가로서 전공판서, 지신사, 밀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유필로는 여주 신륵사의 「신륵사대장각기神勒寺大藏閣記」,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의 「지공나옹사리석종비指空懶翁舍利石鐘碑」, 고양시 태고사太古寺의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가 있다.
- 235)지공指空 : ?~1363. 인도 출신의 승려로 보명普明의 법을 이어받아 서천 제108조가 되었고, 1324년에 중국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에 머물렀다. 1326년 고려에 와서 숭복사崇福寺에 머물렀으며 연복정延福亭에서 계戒를 설하고 연경으로 돌아갔다. 회암사檜巖寺에 부도가 있다.
- 236)나옹懶翁 : 1320~1376. 법명은 혜근惠勤으로 고려 말의 선사禪師이며 지공指空 ㆍ 무학無學과 함께 삼대화상三大和尙으로 일컬어진다. 원나라로 가서 9년 동안 머물며 지공指空화상으로부터 법을 받아 돌아왔다. 공민왕 때 왕사王師를 지냈으며, 우왕의 명을 받고 밀양密陽 영원사瑩原寺로 가던 도중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였다. 이색李穡이 비문을 쓴 비碑와 부도浮屠가 양주楊州 회암사檜巖寺에 남아 있다.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과 『가송歌頌』이 전한다.
- 237)의주 만호義州萬戶 : 만호萬戶는 무관직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만호부의 관직이다.
- 238)밀직密直 : 고려 시대 밀직사密直司의 장관으로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 등에 관한 직무를 맡아보았다.
- 239)석종石鐘 : 종 모양의 부도이다.
- 240)근비謹妃 : 고려 32대 우왕禑王(재위 1374~1388)의 왕비로 이임李琳의 딸이다. 그 아들이 창왕昌王이다.
- 241)왕사가 되시어 : 1371년 왕사에 봉해지고,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조 풍복국우세보제존자大曹溪宗師禪敎都摠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의 시호를 받았다.
- 242)회암사檜巖寺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절이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우왕 4) 나옹 혜근이 중건하였다.
- 243)현릉玄陵(공민왕) : 현릉은 공민왕恭愍王의 능호陵號이다.
- 244)여흥驪興 : 지금의 경기도 여주이다.
- 245)소림사少林寺의 고사故事 : 절 이름 ‘안심安心’에 대한 유래로서 선종의 화두 안심법문安心法門을 말한 것이다. 안심법문은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와 2조 혜가와의 문답에서 나왔다. 혜가가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자 달마가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 오너라” 하니 혜가가 “마음을 못 찾겠다.”고 하자 이에 달마가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었다.”라고 답하였다는 고사이다.
- 246)보명본자普明尊者 : 당시 능가국, 지금의 스리랑카의 고승이었다. 지공이 인도 나란타대학에서 교학을 공부하고 난 뒤 그를 찾아가 선禪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 247)평산 처림平山處林 선사 : 1279~1361. 중국 선종의 제30조이다. 임제종의 제18대조인 석옥청공石屋淸珙, 1271-1351)의 법을 이었다.
- 248)왕사王師의~명銘 : 이색이 찬한 「보제존자 시선각 탑명普濟尊者諡禪覺塔銘」을 가리킨다. 『나옹집懶翁集』에 수록되어 있다.
- 249)윤필암은~주셨다 : 당시 나옹의 사리탑이 있던 신륵사와 회암사 외에도, 묘향산妙香山‧금강산金剛山‧소백산小白山‧사불산四佛山‧치악산雉岳山‧용문산龍門山‧구룡산九龍山의 일곱 곳에 나옹의 진영을 모신 진당眞堂을 세우고 사리를 나누어 모셨는데, 이 일곱 곳에 모두 이색이 기문을 써 주었고 윤필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윤필암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제8 지평현砥平縣의 ‘불우佛宇’ 조에 나와 있다. “이색이 왕명을 받들어 나옹의 부도명浮屠銘을 지었는데, 나옹의 문도들이 윤필물潤筆物, 즉 집필료를 마련하여 사례하니 이색이 받지 않고 그것으로 허물어진 절을 수리하게 하였기 때문에 암자 이름으로 삼았다.(李穡以王旨撰懶翁浮屠銘。其徒致潤筆物。穡不受使修廢寺。因名之。).”라고 하였다.
- 250)묘각妙覺의 옛 터 : 나옹 선사가 머물며 수행했던 회암사와 신륵사를 가리킨다.
- 251)순제順帝 : 1320~1370. 원元 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 252)직철直綴 : 승복의 한 종류이다. 장삼으로, 불전에 예배하고 법식을 행할 때 입었던 법복이다.
- 253)사중대은四重大恩 : 네 가지의 큰 은혜를 말한다. 즉 부모, 스승과 연장자, 나라, 시주의 은혜이다.
- 254)삼악도三惡途 :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을 말한다. 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어리석음이 있다.
- 255)태난습화胎卵濕化 : 사생四生으로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육도六道의 중생이 태어나는 네 가지 방식으로, 모든 중생을 가리킨다.
- 256)시방삼세十方三世 : 동서남북 사방四方과 동남, 동북, 서남, 서북의 사유四維와 상하를 합하여 시방十方이라 한다. 삼세三世는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다. 즉 모든 시공간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 257)(以下欠字)는 ‘李穡奉敎書’.
- 258)△△는 鑄.
- 259)沒은 歿의 오자.
- NaN)△는 翁歿亦有舍.
- 261)[金*(免/免*免)]은 鑱. 뒤에 5자 결락. 판독불가.
- 262)△은 得 및 6자 결락. 판독불가.
- 263)△은 代.
- 264)撿는 檢.
- 265)侍는 持의 오자.
- 266)△는 曰吾何敢慢.
- 267)△는 焉.
- 268)△는 十.
- 269)△는也.
- 270)△는 樹塔檜巖。持與.
- 271)沒은 歿.
- 272)△는 禮.
- 273)△△△△은 不悲哉。吾將以舍利耀。
- 274)△△△△△△△는 爲南智異之匹乎。吾師道德。
- 275)△△△△△△△는 吾之必於是山置吾師舍利也。
- 276)△△△△△는 吾師名惠勤號懶翁。父膳。
- 277)丞은 令의 오자.
- 278)世는 瑞의 오자.
- 279)二는 王.
- 280)△△△△△△는 爲吾師也。志林於金剛山。勝.
- 281)△△△△△△는 鎭凡九所。燕都開堂帝.
- 282)△△△△△△는 鳳寺。袈裟一在廣法寺。袈裟.
- 283)△△△△△는 思下済三途苦而已.
- 284)戒는 災의 오자.
- 285)△는 盡.
- 286)△△△△△는 三世入普賢解脫境界。持.
- 287)持之願也는 연자인 듯함.
- 288)△△△△△△△△는 弟子之於其師。皆如持師之於其.
- 289)△△△△는 出歟。臣穡何當決此疑乎。銘曰.
- 290)△△는 之域.
- 291)△△△△는 斸石爲鍾。舍利在中。
- 292)△는 心.
- 293)△△△△는 如石如金。罔或少忒。
- 294)臣作銘詩。重在祝釐。時萬時億。는 영상정보시스템 자료에는 없음.
- 295)서국지西國志 : 인도에 관하여 기록한 책이다. 서국은 인도를 가리킨다.
- 296)월지月氏 : 고대 중앙아시아에 있던 나라로 인도 유러피안 계통의 유목 민족이 건국한 것으로 추증된다. 月支, 大月氏, 大月支라고도 한다.
- 297)삼악팔난三惡八難 : 삼악三惡이란 교화하기 어려운 세 부류 사람의 악심惡心이다. 심성이 패려하고 방자하여 바른말을 듣지 않는 것, 질투심을 품고 남을 시기하는 것,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에게 부끄러워하거나 겸손할 줄 모르는 것을 말한다. 팔난八難은 불교의 정법을 배우는데 장애가 되는 여덟 가지 조건으로, 지옥地獄, 축생畜生, 아귀餓鬼, 장수천長壽天, 맹롱음아盲聾瘖瘂, 울단월鬱單月, 세지변총世智辨聰, 생재불전불후生在佛前佛後다.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三惡道, 장수를 즐겨 구도심이 생기지 않는 것, 시각장애 청각장애 벙어리 등 감각기관의 결함, 즐거움이 너무 많은 곳, 세속지世俗智 뿐이라 바른 이치를 따르지 못하는 것, 불교가 없는 곳이나 없을 때에 태어나는 것 등은 불법을 가까이 하여 공부하는데 큰 장애가 되므로 이러한 것이 없는 삶을 보살의 청정국토라고 하였다.
- 298)칠전구뇌七纏九惱 : 구뇌九惱는 구난九難과 같다. 석가모니가 겪은 아홉 가지의 번뇌를 말한다. 음녀 손타리에게 비방 받은 일, 전차마나라는 브라만족 여인에게 비방 받은 일, 제바달다에게 엄지 발가락을 다친 일, 나무에 다리를 찔린 일, 비루리왕에 의해 석가족이 멸족당한 일, 아기달다 브라만의 청으로 말이 먹는 보리를 먹은 일, 찬바람으로 인하여 곱사병을 앓은 일, 성도 전 6년의 고행, 브라만의 마을에서 먹을 것을 얻지 못한 일이다.
- 299)5불五佛 : 중앙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동방에 아섬불阿閃佛, 남방에 보생불寶生佛, 서방에 아미타불阿彌陀佛, 북방에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의 다섯 부처를 말한다.
- 300)석가여래 양대보살兩大菩薩 : 석가여래의 왼쪽의 문수보살, 오른쪽의 보현보살을 가리킨다.
- 301)16성중聖眾 : 성중聖眾은 부처를 따르는 여러 성자聖者들을 말한다.
- 302)비하毗河 : 갠지스강인 항하恒河의 다른 명칭인 가비리하迦毗梨河를 말한다.
- 303)산인散人 : 벼슬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 304)옛 연주(古延州) : 평안북도 운산군雲山郡에 있는 지명으로 군의 동쪽 40리에 있다. 본래 고려의 연주延州였는데 조선조에 와서 영변부에 합치되었다가 세조 때에 떨어져 나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4권.
- 305)동치同治 : 청나라 목종穆宗 동치제同治帝의 연호이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이다.
- 306)금비로 안막 긁은 : 금비金鎞는 고대 인도에서 안질眼疾을 치료하는 도구로 화살촉처럼 생겼는데, 이것으로 눈에 낀 막을 제거한다고 한다. 『열반경涅槃經』 권8에 “맹인이 눈을 치료하기 위하여 훌륭한 의원에게 가면 의원이 금비로 눈에 낀 막을 제거해 준다.”라고 하였다. 이는 불가에서 중생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무지無智의 막膜을 제거해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 307)인천안목人天眼目 : 인간계와 천상계의 일을 환히 꿰뚫어 보는 지혜, 또는 그러한 지혜를 갖춘 사람을 말한다. 인천人天은 중생이 윤회하는 육도六道 가운데 인도人道와 천도天道를 가리킨다.
- 308)깨달음의 나무에 그늘졌도다 : 「종경록서宗鏡錄序」에, “만약 신령한 구슬이 손에 있다면 빨리 구하려는 마음이 영원히 멈추리니, 마치 깨달음의 나무에 그늘이 드리우면 그림자의 자취조차 완전히 소멸된 것과 같다. (若神珠在手。永息馳求。猶覺樹垂陰。全消影跡。)
- 309)육계六界 : 육도六道.
- 310)음즐陰隲 : 하늘이 보이지 않게 보살펴주는 복을 말한다.
- 311)유학幼學 : 사족士族으로서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거나 벼슬을 하지 않은 유생을 말한다.
- 312)복장腹藏 : 불상佛像을 만들 때 가슴이나 배 속에 경전 등의 불서佛書나 발원문, 물품 등을 넣어 두는 것을 말한다.
- 313)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아승지는 무량수無量數라는 뜻으로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말한다. 보살이 발심한 뒤 수행을 완성해 부처가 되기까지의 아주 긴 시간을 가리키며, 이 기간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말한 것이다.
- 314)신공辛公 유정有定 : 신유정辛有定(1353~1426).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무공을 세워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태조가 즉위하자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1407년에 의주도병마사가 되었고, 충청도 병마도절제사ㆍ평안도 도안무사를 지냈다.
- 315)상국相國~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4권 평안도 ‘영변대도호부’에 의하면, 1429년(세종11) 무산과 연산을 합하여 영변대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약산성藥山城에 도절제사都節制使를 두었다고 한다.
- 316)이광한李光漢 : ?~1689. 허견許堅(?~1680)의 옥을 일으켜 남인 세력에 타격을 주고 그 공으로 보사공신保社功臣 3등에 추록되어 용계군龍溪君에 봉해졌으며 이어 영변부사에 임명되었다.
- 317)양서兩西 : 관서關西와 해서海西. 즉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을 가리킨다.
- 318)철옹鐵瓮 : 평안북도 영변寧邊의 약산藥山을 말한다. 모양이 마치 쇠독(鐵甕)과 같이 생긴 요새로서 경치 좋기로도 유명하다. 약산산성을 철옹성이라고도 한다.
- 319)비국당상備局堂上 : 조선시대 비변사備邊司의 당상관堂上官을 일컫는 말.
- 320)지역紙役 : 종이를 만들어 내는 잡역으로 조선후기에는 주로 사찰에 부담시켰다.
- 321)납입하게 한 : 원문의 ‘卜定’은 부역이나 공물 외의 필요한 물품 등을 하급 관청에 납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 322)염민율斂民律 : 염민斂民에 관한 법률로, 백성들에게 조세나 물품 등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 323)지통紙桶 : 종이를 뜰 때 원료를 물에 풀어 담는 큰 나무통.
- 324)지염紙簾 : 종이를 뜨는 발.
- 325)침책侵責 : 강제로 물건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 326)횡렴橫斂 : 법률에 따르지 않고 마구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 327)염찰廉察 : 은밀히 살펴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 328)미리 예고된 법령 : 원문은 ‘先甲之令’으로 ‘先甲’은 법령을 제정해서 시행하기 전에 미리 내용을 알리는 일을 말하는데,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 과오를 범하지 않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 329)자작지얼自作之孼 : 자기가 저지른 일로 말미암아 생기는 재앙을 말한다.
- 330)지부知府 : 부사府使를 말한다.
- 331)천태산天台山 : 중국 절강성에 있는 경치가 빼어난 산으로 선계仙界로 여겨져 신선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 332)영축산靈鷲山 : 중인도에 있는 산으로 석가세존이 『법화경法華經』ㆍ『무량수경無量壽經』을 강설하였다고 한다.
- 333)삼국사三國史 :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가리킨다.
- 334)송 철종宋哲宗~29년 : 간지와 연대가 서로 맞지 않는다. 고려 문종 29년은 1075년 을묘년이다.
- 335)이백李白 : 당나라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 336)백낙천白樂天 :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자는 낙천樂天, 만년에는 스스로를 향산거사香山居士, 취음醉吟선생이라고 하였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長恨歌」 등이 유명하다.
- 337)노봉 : 묘향산 향로봉. 서산 대사가 머물렀던 묘향산 보현사의 봉우리 이름.
- 338)부루扶婁 : 단군 임검의 태자. 단군조선 2대 임금.
- 339)도산塗山 : 하夏나라 우 임금이 도산에 제후를 불러 모았을 때, 옥백玉帛을 가지고 참석한 나라가 만국萬國이나 되었다고 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애공哀公 7년.
- 340)바위~드러냈다 :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하던 부여왕 해부루解夫婁에게 어느 날 곤연鯤淵 못가의 큰 돌 밑에서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고 개구리 모양을 한 옥동자가 발견되어 해부루의 태자가 되었으며, 해부루가 죽은 뒤 왕이 되었다. 뒤에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나 데려다가 깊숙한 방에 가두었더니 주몽朱蒙을 낳았다 한다.
- 341)해가~나왔다 : 유화가 왼편 겨드랑이로 5되 되는 알을 낳았고 그 알을 깨고 주몽이 나왔다.
- 342)행인荇人 : 행인국은 태백산太白山 즉 백두산 동남쪽에 있었던 고대 국가 이름으로, 고구려 동명성왕東明聖王 6년(기원전 32)에 정벌하여 성읍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3 「동명성왕본기東明聖王本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4 「평안도平安道 영변寧邊」.
- 343)분노芬奴 : 고구려 유리類利가 즉위하여, 부분노扶芬奴의 꾀를 써서 선비鮮卑를 항복시키고 속국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기언記言』 제34권 외편 동사東事 3, 고구려세가高句麗世家.
- 344)보현~코끼리다 :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에 “이 경을 읽으면 보현보살이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고 나타난다.”고 했다.
- 345)범궁梵宮 : 색계 초선천初禪天의 왕인 범천梵天이 사는 궁전. 여기서는 사찰을 가리킴.
- 346)백납白納 : 승려. 『조정사원祖庭事苑』 권8 「辨服色」에 “남방의 선객들이 백납을 입었다.”고 하였다.
- 347)정람精藍 : 사찰. 정사가람精舍伽藍의 준말.
- 348)독성獨聖 : 다른 나라에선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말세 중생의 복전福田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불교계에서는 독성을 나반那畔존자라 부른다.
- 349)원명사圓明寺 : 자강도 희천시 유중리에 있는 절. 968년에 창건하였다. 묘향산에 보현사를 세우고 그 주변에 360여 개의 절들을 지을 때 함께 세웠으며 둥근 달이 밝게 비친다 하여 원명사라고 하였다.
- 350)선상禪床 : 승려가 설법說法할 때 올라앉는 법상法床. 여기서는 침상인 듯함.
- 351)철화마鐵火馬 : 일본에 간 사명 대사를 곤란하게 하려고 철화마를 타라고 하니, 사명 대사가 비를 내리게 하여 일본이 물에 잠기고 왜왕이 항복했다는 전설이 있다.
- 352)신헐~보냈다 : 임경업은 호란 후부터 항상 명나라와 몰래 통하고자 하였으나 중간에서 연락할 사람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향산에 있는 승려 독보獨步의 속명은 신헐申歇이라 하였다. 의기가 있어 쓸 만하다는 소문을 듣고 불러서 환대하고 명나라와 통신할 일을 알려주니 독보가 가기를 청하였다. 『대동기문』.
- 353)강선대 : 묘향산 바리로지구에 있는 기암. 묘향산의 명소로서 금강굴에서 서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능선에 솟아 있다. 강선대라는 이름은 먼 옛날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묘향산의 절경을 즐겼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 354)삼연三淵 : 김창흡金昌翕의 호. 1653-1722년. 서울 출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다.
- 355)분분히~화답하였고 : 예를 들면 조현명趙顯命(1691-1752)의 「追次上院庵三淵韻」 등이 있다.
- 356)두실斗室 : 심상규沈象奎의 호. 1766-1838년. 본관은 청송靑松. 초명은 상여象輿. 자는 가권可權ㆍ치교穉敎. 아버지 심염조에 이어 사명賜名을 받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질을 보였는데, 시문의 내용이 깊고 치밀하여 18세에 이미 타인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 357)여러~화답하였다 : 예를 들면 김조순의 시 「竹里叔。示和經山學士次斗室太史別香山詩韻。喜其醇眞。率步成之。乞同藏山寺」 등이 있다.
- 358)풍고楓皐 : 김조순金祖淳. 1765-1832년. 본관은 안동.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 문장이 뛰어나 초계문신이 되었고, 비명ㆍ지문ㆍ시책문ㆍ옥책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죽화竹畵도 잘 그렸다.
- 359)만세루 :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 앞에 있는 누각.
- 360)백호百戶 : 관직명. 명나라 때에는 병사 120인을 통솔한 정6품직이었다.
- 361)회제回題 : 아뢴 내용에 대한 회답.
- 362)한나라는~명명했으니 : 송나라 소식蘇軾의 「희우정기喜雨亭記」에 “한 무제는 보정寶鼎을 얻고는 그것으로 연호를 지었고, 숙손득신叔孫得臣은 오랑캐를 이기고는 그것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으니(漢武得鼎, 以名其年, 叔孫勝狄, 以名其子)”라 하였다.
- 363)급암汲黯 : 전한 중기의 관료로, 자는 장유長儒이며, 복양현濮陽縣 사람이다. 무제의 간신諫臣으로, 황로지도와 무위의 정치를 주장했으나 황제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양태수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 364)주운朱雲 : 전한 성제成帝 때 사람. 주운은 당시 권세를 마음대로 하던 무리를 배척하였는데, 특히 안창후安昌侯 장우張禹를 참斬하도록 주장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어사에게 끌려가게 되었을 때 난간을 붙잡고 버티면서 극언極言하다가 난간이 부러졌다. 후에 난간을 고치려 하니 성제가 고치지 말라고 명하여 직신直臣을 정표旌表했음.
- 365)두소杜召 : 후한 때 두시杜詩와 전한 때 소신신召信臣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편안한 삶을 영위하게 하니, 이곳 백성들이 “앞에는 소부召父가 있고, 뒤에는 두모杜母가 있다.”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31 「두시열전杜詩列傳」.
- 366)공황龔黃 : 전한 때의 순리循吏인 공수龔遂와 황패黃覇. 공수는 선제宣帝 때 수형도위水衡都尉로서 훌륭한 치적을 남겼다. 황패는 율령律令에 밝았으며, 영천 태수潁川太守 등을 거쳐 승상에 이르고 건성후建成侯에 봉해졌다. 『한서漢書』 권89.
- 367)김노경金魯敬 : 1766–1840년. 본관은 경주. 자는 가일可一, 호는 유당酉堂. 김정희金正喜의 부친. 1805년 현감으로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을 거쳐 승지ㆍ이조참판 및 경상도와 평안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익종이 대리청정을 할 때 김로金鏴ㆍ홍기섭洪起燮 등과 같이 중직에 있으면서 전권을 행사하고, 이조원李肇源의 옥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1830년 지돈녕부사 재직 중 삼사와 의정부의 탄핵을 받아, 강진현의 고금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1833년에 귀양에서 풀려났다.
- 368)대마수對馬守 : 대마주對馬州 태수太守.
- 369)섭진수攝津守 : 세츠츠의 태수. 세츠츠는 지금의 오사카 일대.
- 370)송상현宋象賢 : 1551-1592년.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 동래 부사로서, 임진왜란 때 남문에 올라가 싸움을 독려하고 순절하였다.
- 371)조헌趙憲 : 1544-1592년.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ㆍ도원陶原ㆍ후율後栗.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문인 이우李瑀ㆍ김경백金敬伯ㆍ전승업全承業 등과 의병 1,600여 명을 모아, 8월 1일 영규靈圭의 승군僧軍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尹國馨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해산당하고 불과 700명의 남은 병력을 이끌고 금산으로 행진, 영규의 승군과 합진해서,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왜군과 8월 18일 전투를 벌인 끝에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하였다. 후세에 이를 숭모하여 금산전투라 일컬었다.
- 372)고경명高敬命 : 1533-1592년.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峰ㆍ태헌苔軒ㆍ태사苔槎,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시호는 충렬忠烈.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도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금산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 373)경기전慶基殿 : 조선 태조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전각.
- 374)오희길吳希吉 : 1556-1625년. 본관은 나주. 고창 출신. 자는 길지吉之, 호는 도암鞱庵. 기효간奇孝諫ㆍ정여립鄭汝立의 문인이다.
- 375)세록世祿 : 대대로 나라에서 녹봉을 받음.
- 376)검찰사檢察使 : 국가에 관계되는 대사나 군사상의 중대한 일을 검찰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하던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 377)이산보李山甫 : 1539-1594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거仲擧. 호는 명곡鳴谷. 시호는 충간忠簡. 1592년 임진왜란 때 대사간 ㆍ이조판서를 역임하고 명나라 원군이 당도하였으나 군량이 떨어지자 왕명으로 도검찰사都檢察使가 되어 삼남三南 지방에 내려가 군량을 수집하여 위기를 면하게 하였고 1594년 대기근을 수습하던 중 과로로 순직하였다.
- 378)구정려仇廷呂 : 본관은 창원. 호는 봉암鳳巖. 전북 김제군 금구金溝에 거주. 직제학直提學 구종길仇宗吉의 8대손.
- 379)수복守僕 : 묘廟나 사社ㆍ능陵ㆍ원園ㆍ서원 등의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구실아치. 수복이.
- 380)수구水口 : 풍수지리에 있어서 물줄길의 끝부분을 말함.
- 381)조종祖宗 : 임금의 시조始祖와 중흥中興의 조상.
- 382)아래 시는 『백수집白水集』 권5 「한계손공행장寒溪孫公行狀」에 따르면 두 개의 시가 합쳐져 있다. 1ㆍ2구는 손홍록이 군사들의 옷에 넣을 솜을 모집하면서 지은 시의 구절이고, 이후가 어용을 호종하면서 지은 시다.
- 383)진전真殿 : 선원전璿源殿. 어진을 봉안한 곳.
- 384)칠수漆水 : 주 문왕周文王의 조부모가 되는 태왕太王 부부가 일찍이 주周 나라의 터전을 닦던 처음에 거주했던 곳.
- 385)의홍義弘(요시히로) :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1535-1619년. 남원에서 도공陶工 80명을 납치하고, 순천에 고립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을 구출하기 위해 5백 척의 함대를 끌고 갔다가 노량해전에서 퇴로 확보는 성공하나 50여 척만 살아 도주함.
- 386)청정清正(키요마사)ㆍ행장行長(유키나가) :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총책임자 역할을 했고, 가토기요마사(加籐淸正)는 히데요시의 인척으로 둘이 임진왜란 때 선봉장을 다투었다.
- 387)벽파정碧波亭 : 전라도 진도에 있던 정자 이름.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거둔 곳으로 유명함.
- 388)내도수來島守 : ‘내도출운來島出雲(구루시마 미치후사) 수전守殿(존칭)’의 약칭.
- 389)민부대부民部大夫 : 모리毛利 민부대부民部大夫(民部太輔). 좌군의 행정담당관 모리고정毛利高政(모리 타카마사).
- 390)5전殿 : 태종 10년인 14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세종 24년인 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 391)사미沙彌 : 범어 śrāmaṇera의 음역.
- 392)수다라修多羅 : 범어 sūtra의 음역. 경전.
- 393)10회향 : 보살이 닦은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돌리는 열 가지.
- 394)법당法幢 : 지금 설법 중이라는 표시로 세우는 깃발.
- 395)정관貞觀과 영락永樂 : 정관은 당 태종의 연호(627-649년), 영락은 명 성조의 연호(1403~1424년). 둘다 융성한 시대로 일컬어짐.
- 396)정례頂禮 : 두 무릎을 꿇고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손을 펴서 상대편의 발을 받아 그 발에 자신의 머리를 대는 인도의 예법.
- 397)사액賜額 : 왕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
- 398)의해義解 : 글의 뜻을 밝힌 풀이.
- 399)적현赤縣 : 중국.
- 400)전단旃檀 : 향나무 이름. 여기서는 사찰을 가리킴.
- 401)이수彝叟 : 권돈인權敦仁의 호. 1783-1859년. 본관은 안동. 자는 경희景羲. 1845년에 영의정에 올랐다. 1851년 철종의 증조인 진종眞宗의 조천례祧遷禮에 관한 주장으로 인해 파직당하고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서화에 능하여 일생을 친밀히 지냈던 김정희金正喜로부터 뜻과 생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 402)월저月渚 : 도안道安의 호. 1638-1715년. 금강산에 들어가 의심義諶의 지도를 받으면서 휴정休靜의 밀전密傳을 연구하여 화엄학에 통달하였다. 『화엄경』 번역을 완성하고 간행하여 전국 사찰에 반포하였다. 문집에 『월저집』이 있다.
- 403)설암雪巖 : 추붕秋鵬의 호. 1651-1706년. 평안남도 강동 사람. 묘형산 보현사에서 화엄을 강론하는 월저 도안 대사를 찾아가 10년 정진한 후 남방을 순회하며 가르침.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과 『설암잡저雪岩雜著』, 『설암난고雪岩亂藁』가 전한다.
- 404)청송青松 :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보현사에 ‘화엄종 청송대사비’가 남아 있다. 보존급 제1577호.
- 405)주반主伴 : 주인과 동반자.
- 406)소목昭穆 : 사당에서 신주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 줄의 소, 오른쪽 줄의 목을 통틀어 일컫는 말.
- 407)아비발치阿鼻跋致 : 범어 avinivartanīya. 불퇴不退ㆍ무퇴無退ㆍ불퇴전不退轉ㆍ불퇴위不退位란 말로, 반드시 성불成佛됨과 동시에 보살위에서 타락하지 않을 위치.
- 408)자금산紫金山 : 『현우경賢愚經』 등에 여래의 몸이 자금산처럼 찬란하다는 표현이 있다.
- 409)옥호광玉毫光 : 부처의 미간 사이에 난 털이 내는 빛.
- 410)무량수불 :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 아미타불.
- 411)급고원給孤園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기원정사祇園精舎(Jetavana). 중인도 교살라국憍薩羅國(Kosala) 사위성舍衛城(śrāvastī) 남쪽에 있는 승원僧園.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곳.
- 412)허벅지를~뛰면서 : 원문 拊脾雀躍. 『장자』 「재유在宥」에 나오는 구절.
- 413)승금주勝金洲 : 인간세계. 수미사주須彌四洲의 하나로 염부제閻浮提ㆍ섬부주贍部洲라고도 함.
- 414)향해香海 :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 바다.
- 415)환암 선흠幻庵善欽 : 1706-1773년. 속성은 김씨. 평안남도 안주 출신. 14세에 출가하여 평안북도 개천에 있는 고야산에서 출가하여 25세에 정책貞策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묘향산으로 가서 운파 의준雲坡義俊의 법맥을 계승하였다.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고 불경에 통달하였으며, 평생 『금강경』과 『원각경』을 독송하였다. 40년 동안 불교전문강원의 강주講主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였고, 많은 존경을 받았다. 또 화엄대회를 세 번 개회하였다. 제자로는 월파 태눌月波泰訥, 운곡 성심雲谷性諶, 누암 기억陋巖機億 등이 있다
- 417)홍양호洪良浩 : 1724-1802년. 본관은 풍산. 초명은 양한良漢. 자는 한사漢師, 호는 이계耳溪. 1747년(영조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791년 여름에 평안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1799년에는 홍문관ㆍ예문관 양관(兩館)의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북경을 다녀오면서 청국의 석학들과 교유해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고증학을 수용ㆍ보급하는 데 기여하였다.
- 418)김조순金祖淳 : 1765-1832년.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순조의 장인으로서, 대제학을 지냈으며,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죽화竹畫를 잘 그렸다. 저서에 『풍고집楓皐集』이 있다.
- 419)이원조李源祚 : 1792-1871년. 본관은 성산星山.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호우毫宇. 1809년(순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주부윤에 오르고, 185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정헌定憲이다.
- 420)‘薄’은 ‘搏’의 오자인 듯함.
- 421)김재찬金載瓚 : 1746-1827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국보國寶, 호는 해석海石. 1773년(영조 49)에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고, 1794년에 규장각직제학으로 재임명되었고, 형조판서ㆍ이조판서ㆍ예조판서ㆍ한성부판윤ㆍ병조판서ㆍ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 422)만윤灣尹 : 의주義州 부윤府尹의 별칭.
- 423)이건필李建弼 : 1830-?. 본관은 전주. 자는 우경右卿, 호는 석범石帆. 1849년(헌종 15)에 식년시 급제. 1865년에 의주부윤에 이르렀고, 1868년에는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며, 1872년에는 정사 민치상과 함께 부사로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 424)박봉빈朴鳳彬 : 1838-?.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한사漢四. 서울 출신. 1872년 부수찬ㆍ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에 제수되었고 협판내무부사ㆍ이조참판ㆍ대사헌, 봉상사 제조, 함경남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 425)개당開堂 : 처음으로 강의하거나 설법함.
- 426)홍우길洪祐吉 : 1809-1890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여成汝, 호는 애사靄士ㆍ춘산春山ㆍ연탄硏灘.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정언ㆍ지평ㆍ사간을 거쳐 1856년에 대사성이 되었다. 그 뒤 이조참의ㆍ예방승지를 거쳐 1859년 경상도관찰사, 1860년 이조참판, 공조ㆍ이조ㆍ예조ㆍ형조의 판서, 한성부판윤, 대호군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 427)청북清北 : 청친강淸川江 북쪽이라는 뜻으로 평안도의 청천강 이북 지방을 이름.
- 428)청남清南 : 청친강淸川江 남쪽이라는 뜻으로 평안도의 청천강 이남 지방을 이름.
- 429)조사詔使 : 중국 천자의 조서를 가지고 온다는 뜻으로, 중국에서 온 사신을 이르던 말.
- 430)심상훈沈相薰 : 1854-미상.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가舜歌. 1893년 이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에 올랐다. 1895년 삼국간섭 이후, 친러적 경향을 띠던 수구당내에서 궁내부특진관의 직책을 맡았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탁지부대신으로 재직하다가, 1898년에 체직 처분을 받았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 431)니구산~나시고 : 『사기』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기록되어 있다.
- 432)화에서~기록하였는데 : 요堯 임금이 순행巡行하여 화華 땅에 왔을 때 봉강封疆을 지키는 봉인封人이 요임금의 장수와 부富, 다남자多男子를 축원했다고 한다. 『장자』 「천지편天地篇」.
- 433)신임년 : 문맥상 임신년(1872)의 오류인 듯함.
- 434)대내大內 : 임금을 비롯하여 왕비, 왕대비들이 거처하는 곳을 두루 이르는 말. 임금이 거처하는 곳은 대전大殿, 왕비가 거처하는 곳은 중전中殿이라 하고, 대비가 거처하는 곳은 대비전大妃殿이라 하는데, 대내는 이들을 모두 일컫는 말임.
- 435)이유원李裕元 : 1814-1888년. 본관은 경주. 자는 경춘景春, 호는 귤산橘山ㆍ묵농默農.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ㆍ규장각대교를 거쳐 1845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ㆍ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 436)전경轉經 : 기복을 목적으로 독경을 하는 의식.
- 437)민영준閔泳駿 : 고종高宗[재위 1864~1907] 때 민씨 세도의 거두였고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선혜당상宣惠堂上 및 통위사統衛使의 직위에 있었다.
- 438)위답位畓 : 제향 또는 이와 관련된 사항들을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답.
- 439)거듭 빛나고 거듭 윤택하다(重光重潤) : 태자를 찬양하는 표현이다. 한 명제漢明帝가 태자로 있을 적에 악인樂人이 일중광日重光, 월중륜月重輪, 성중휘星重輝, 해중윤海重潤이라는 4장章의 가시歌詩를 지어 태자를 찬양하였다.
- 440)‘산마루와 같고 구릉과 같다(如岡如陵)’ : 만수무강을 축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 「소아小雅ㆍ천보天保」에 “如山如阜 如岡如陵”이라 하였다
- 441)‘비심~윤색한다’ : 『논어』 「헌문憲問」의 구절.
- 442)이근호李根澔 : 1861-1923년. 본관은 전주. 자는 문옥文玉, 호는 송은松隱ㆍ규제奎齊. 1878년(고종 15) 3월 과거에 급제하였고, 1887년 승정원 승지, 자산부사를 맡았다. 1888년 좌부승지ㆍ부평부사ㆍ통진부사로 임명되었고, 1889년 좌부승지, 평안도 영변부사로 발령을 받았다.
- 443)어향御香 : 임금이 내려준 향.
- 444)보배 뗏목 : 불법을 비유함.
- 445)충성 : 원문 ‘단곤丹悃’은 충성스럽고 거짓이 없이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을 뜻함.
- 446)만력萬曆 : 명나라 제13대 황제인 만력제 때의 연호. 1573-1620년.
- 447)숭정崇禎 후後 84년 : 1728년에 해당하므로 이정귀李廷龜의 생애와 어긋나이 오류가 있는 듯하다.
- 448)이정귀李廷龜 : 1564-1635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ㆍ보만당保晩堂ㆍ치암癡菴ㆍ추애秋崖ㆍ습정習靜. 시호는 문충文忠. 1577(선조 10) 14세 때에 승보시陞補試에 장원. 벼슬은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한문학의 대가로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 449)이병모李秉模 : 1742-1806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이칙彛則, 호는 정수재靜修齋. 대사성과 함경도관찰사ㆍ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794년 우의정에 임명되고, 좌의정을 거쳐 1799년 영의정이 되었다.
- 450)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에 탁본이 소장되어 있고, 1861년에 제작된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451)내강內降 : 임금이 재상과 상의하지 않고 교서敎書를 내리는 것.
- 452)문림랑文林郎 : 고려 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1076년(문종 30) 문산계文散階 종9품 상계로 정해져 전체 29등급 중 제28계였으며, 충렬왕 때까지 존속하였다.
- 453)문공유文公裕 : 1088-1159년. 본관은 남평南平. 개명改名은 문고수文顧壽, 자는 항적亢迪. 인종이 묘청의 도참설에 현혹되자, 그를 배척하는 데 앞장섰다. 벼슬은 지문하성사, 집현전 대학사에 이르렀다.
- 454)황주黃州 : 현재 황해도 북쪽에 있는 군.
- 455)좌우가左右街 : 승록사僧錄司. 고려시대 불교의 제반 사무를 맡아보기 위하여 중앙에 설치되었던 관서. 좌우양가左右兩街로 구분되어 있었다.
- 456)삼강三剛 : 사찰의 행정을 담당하는 기구.
- 457)공자가~두었습니다 : 『논어』 「 미자微子」에서 “逸民, 伯夷ㆍ叔齊ㆍ虞仲ㆍ夷逸ㆍ朱張ㆍ柳下惠ㆍ少連.”이라 하였다.
- 458)맹자가~두었습니다 : 『맹자』 「고자하告子下」에서 “孟子曰, 居下位, 不以賢事不肖者, 伯夷也; 五就湯, 五就桀者, 伊尹也; 不惡汚君, 不辭小官者, 柳下惠也.”라 했다.
- 459)양자楊子 : 양웅揚雄. 전한前漢의 유학자. 자字는 자운子雲. 찬탈자 왕망王莽의 위조僞朝에 벼슬하여 대부大夫가 되었기 때문에 후세에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들었다.
- 460)법언法言 : 『논어』의 체재를 모방한 문답체의 저서. 고성古聖과 경서經書에 어긋나는 법가法家나 음양가陰陽家 등 제자諸子의 사조思潮를 바로잡고 선왕先王이나 고성古聖이 정한 전칙典則에 의해 대도大道를 밝히려고 하였다.
- 461)법언에서는~하였다 : 『법언』 「연건淵騫」에 “古者, 高餓顯, 下祿隱.”이라 하였다.
- 462)맹자의 세 성인 : 백이와 이윤과 유하혜를 말한다.
- 463)의보依報 :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
- 464)정보正報 :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
- 465)영예를~지킨 : 원문 ‘知其榮。守其辱 ’은 『도덕경』의 구절이다.
- 466)왕륜사王輪寺 :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 죽선대 입구에 있었던, 고려 태조가 창건한 사찰.
- 467)국립중앙도서관 소장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 따름. 사진은 원각사성보박물관에 소장. 허흥식, 『韓國金石全文 中世上』, 아세아문화사, 1984 참조.
- 468)‘관원觀元’이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69)‘義’가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70)‘元’이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71)‘俊’이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72)‘賢’이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73)‘處△’가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74)‘△, △△’가 「文敬靖公妙香山普賢寺記帖」에는 누락되었다.
- 475)추충보절推忠保節 동덕찬화공신同德賛化功臣 : 우왕 1년(1375) 8월에 추충보절 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 한산군에 진봉되고, 영예문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에 임명되었다. 『목은집牧隱集』 연보.
- 476)이색李穡 : 1328-1396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포은圃隱.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진사가 되고,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國子監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351년(충정왕 3) 아버지 상을 당해 귀국하였다. 원나라에 가서 1354년 제과制科의 회시會試에 1등, 전시殿試에 2등으로 합격해 원나라에서 응봉 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 겸국사원편수관應奉翰林文字承事郎同知制誥兼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귀국해 전리정랑 겸 사관편수관 지제교 겸예문응교典理正郎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藝文應敎ㆍ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 477)전판전교시사前判典校寺事 : ‘전前’은 전직前職, 판전교시사는 전교시의 정3품 으뜸 관직.
- 478)권주權鑄 : 미상-1394년. 일찍이 등제하여 충주목사ㆍ황주목사를 역임하였는데, 백성들을 잘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 479)지공指空 : 미상-1363년. 인도 출신의 승려. 본명은 dhyāna-bhadra, 제납박타提納薄陀라고 음사, 선현禪賢이라 번역. 마갈타국왕摩竭陀國王 만滿(pūrṇa의 셋째 아들로, 8세에 나란타사那爛陀寺의 율현律賢(vinaya-bhadra)에게 출가하여 대반야경을 배움. 19세에 남인도 길상산吉祥山에 가서 보명普明(samanta-prabhāsa)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아 서천西天 제108조祖가 되고, 호를 지공指空(śūnyā-diśya)이라 함. 1324년경에 원元의 연경燕京에 도착함. 1326년(충숙왕 13)에 고려에 와서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주처住處라고 하는 금강산에 예배하고 숭복사崇福寺에 머무름. 1328년에 연복정延福亭에서 계戒를 설하고, 경기 양주 천보산天寶山 자락에 절을 세울 것을 부탁하고 원元으로 돌아가 연경에 법원사法源寺를 창건하고 머무름. 귀화방장貴化方丈에서 입적함. 1372년(공민왕 21)에 그의 사리 일부가 고려에 전해 오니, 왕명으로 양주 회암사에 부도를 세움.
- 480)만호萬戶 : 외침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만호부의 관직.
- 481)밀직密直 : 밀직사密直司의 준말. 또는 그 장관. 고려시대 몽고의 간섭 하에서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의 정사를 맡아보던 관서.
- 482)우부대언右副代言 : 고려 시대, 밀직사의 정삼품 벼슬.
- 483)반덕해潘德海 : 본관 거제. 조반趙胖의 옥사 이후 반목이 심해진 최영崔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아버지 반익순潘益淳을 비롯하여 동생 반복해潘福海 등과 함께 모두 참살당하고 멸문의 화를 입었다.
- 484)근비謹妃 : 고려 제32대 우왕의 왕비. 이씨.
- 485)검교 문하평리檢校門下評理 : 검교는 정원 이외에 임시로 증원할 때나 실제 사무는 보지 않고 이름만 가지고 있게 할 때에 그 벼슬 이름 앞에 붙이던 말. 문하평리는 문하부門下府의 종2품 관직.
- 486)강인부姜仁富 : 환관. 공양왕 때 술이 취해 간언하는 이염李恬을 대호군 김정경金鼎卿과 함께 붙잡아 물리쳤다. 1392년(공양왕 4) 6월 조선이 개국할 때 이성계의 반대파로 몰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탄핵을 받아 전판삼사사前判三司事 우현보禹玄寶, 종실 남평군南平君 왕화王和 등 20여 명과 함께 유배되었다. 뒤에 기용되어 1398년(태조 7)에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넷째아들인 이방간李芳幹의 처의 아버지라 하여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 유배당하였다.
- 487)요좌遼左 : 요동遼東의 왼쪽으로 곧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 488)선관서膳官署의 승丞 : 선관서는 제사나 연회에 쓰이는 음식을 맡아보던 관청이고 승은 종8품 벼슬.
- 489)평산 처림平山處林 : 1279-1361년. 원나라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의 법손. 1350년 나옹이 항주杭州 정자사淨慈寺에서 친견하였다.
- 490)부도 : 양주 회암사지에 있는 산각왕사비禪覺王師碑.
- 491)각신覺信은 봉미산 신륵사에 : 이 부분은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1997)에 따라 보완함.
- 492)개당開堂 : 새로 취임한 주지 스님이 절에 들어가 처음으로 설법하는 행사.
- 493)사중은四重恩 : 우리 중생들이 입고 있는 네 가지 큰 은혜. 부모, 스승, 임금, 중생의 은혜.
- 494)이 비문은 「明高麗釋迦金骨舍利浮圖碑」라는 제목으로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 495)현겁賢劫 : 현재의 겁. 겁劫이란 본래 천지가 한번 개벽한 후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
- 496)진상真常 : 진여상주眞如常住. 열반의 경지.
- 497)법신法身 : 보신ㆍ응신과 더불어 삼신의 하나. 이 ‘진신’은 덧없는 생사윤회의 지배를 받는 역사적 석가모니가 아니라, 진리를 스스로 증득證得한 ‘영원의 몸’을 말한다.
- 498)보처補處 : 부처의 자리를 보충한다는 뜻. 한 번의 미혹한 생을 마치면 다음 생에는 성불하는 보살의 최고 경지. 예를 들어 미륵보살은 지금 도솔천에서 수행 중인데, 그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를 보충한다고 함.
- 499)보요경普耀經 : 308년 서진에서 축법호竺法護가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의 한 이본을 바탕으로 한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
- 500)정거천인淨居天人 : 정거천은 색계 제4선천第四禪天의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을 통틀어 일컬음.
- 501)단특산檀特山 : 탄다락가산彈多落迦山. 북인도 간다라(Gandhara)국에 있는 산.
- 502)상두산象頭山 : 중인도 가야伽耶 성城 서쪽에 있는 산.
- 503)교진矯陳 :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범어 ājñāta-kauṇḍinya의 음사. 요본제了本際ㆍ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는 이름, 교진여憍陳如는 성姓.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우유죽을 얻어 마시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곳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됨.
- 504)구시라拘尸羅 : 구시나가라拘尸那揭羅. 쿠시나가라. 범어 Kusinagara. 인도에 있는 성 이름.
- 505)희련선하熙蓮禪河 : 『장아함경』 제4권 『유행경』 제2에 부처님께서 구이성의 차루동산 안에 있는 쌍수 사이에서 멸도하시고 이후 아나율阿那律이 말라유들에게 전하는 말에 “서쪽 성문으로 나가 희련선하를 건너 천관사天冠寺에 가서 다비에 붙이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본문 문맥 상 ‘발제하跋提河’를 가리키는 듯함. 발제하의 원명은 ‘아시다발제하阿恃多跋提河’로서 구시나가라 성 서북쪽을 흐른다.
- 506)쌍수雙樹 : 사라쌍수沙羅雙樹, 사라쌍수娑羅雙樹라고도 함. 중인도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跋提河언덕에 있던 사라수림.
- 507)제행무상~寂滅為樂 : 모든 일은 덧없으니 이것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법이다. 생겨나고 없어짐을 버리면 적멸이 즐거움이 된다.
- 508)자리를 나누고 :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부처님께서 다자탑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 존자迦葉 尊者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했다. 다른 제자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를 불러 앉았던 자리를 나누었다고 한다.
- 509)발을 보이신 : 니련하반곽시쌍부泥連河畔槨示雙趺.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 가섭 존자가 뒤늦게 이르러 슬퍼하니, 석가모니가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였다고 한다. 『대열반경』 「다비품茶毘品」
- 510)의사가~것인가 : 『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어떤 의사가 타국에 간 사이에 자식들이 독약을 잘못 먹었는데, 그 부친이 돌아와서 약을 주어 모두 먹고 나았으나 실성한 자식은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이에 그 부친이 타국으로 다시 떠나며 거짓으로 죽었다고 말하니, 그 아들이 지극히 슬퍼하다가 정신이 깨어 약을 먹고 낫게 되었다고 한다.
- 511)사위 삼억舍衛三億 : 사위성 사람들 가운데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이들을 말한다. 『지도론智度論』에 “사위성에 9억의 가옥이 있는데 3억은 부처님을 보고 들었고, 3억은 듣기만 하고 보지는 못하고 3억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으니, 부처님이 사위국에 25년 동안 계실 때에 이 중생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으니 하물며 멀리 있는 이들이야.(舍衛城中九億家, 三億家眼見佛, 三億家耳聞有佛而眼不見, 三億家不聞不見. 佛在舍衛國二十五年, 而此衆生不聞不見, 何況遠者.)”라 했고, 『종경록宗鏡錄』에 “중국 온 나라에서 알지 못했고, 사위 삼억이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震旦一國, 不覺不知. 舍衛三億, 不聞不見.)” 하였다.
- 512)고인이~하였는데 : 송나라 대룡 지홍大龍智洪 선사에게 “색신은 무너지니 어떤 것이 견고한 법신입니까.(色身敗壞, 如何是堅固法身)”라고 물으니, “산꽃은 비단처럼 피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푸르다.(山花開似錦, 澗水湛如藍)”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벽암록碧巖錄』 제82칙.
- 513)네게서~돌아간다 : 『맹자』 「양혜왕梁惠王」 편에 나온다.
- 514)예전~없었다 : 상나라 태재 비嚭가 공자에게, 선생님이 성인이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박학강기博學強記할 뿐 성인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또 삼왕三王과 오제五帝와 삼황三皇이 성자인지 묻자 훌륭하긴 하나 성인인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태재가 크게 놀라면서, 그렇다면 누가 성인이냐고 묻자, 공자가 “내가 듣기에, 서방에 대성인이 계시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절로 행해지니, 크고 커서 사람들이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丘聞西方有大聖焉. 不治而不亂, 不言而自信, 不化而自行, 蕩蕩乎人無能名焉.)”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불조강목佛祖綱目』 권10 「震旦國孔丘示寂」.
- 515)이정귀李廷龜 : 1564-1635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ㆍ보만당保晩堂ㆍ치암癡菴ㆍ추애秋崖ㆍ습정習靜. 시호는 문충文忠. 1577(선조 10) 14세 때에 승보시陞補試에 장원을 하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해 병조판서ㆍ예조판서와 우의정ㆍ좌의정 등 조정의 중요한 직책을 두루 역임했다.
- 516)신익성申翊聖 : 1588-1644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樂全堂ㆍ동회거사東淮居士. 병자호란 때의 척화오신斥和五臣의 한 사람이다. 문장ㆍ시ㆍ서에 뛰어났으며, 특히 김상용金尙容과 더불어 전서의 대가였다.
- 517)진벌津筏 : (나루를 건너는) 뗏목. (목적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방법.
- 518)개승開僧 : 미상. 문맥상 ‘깨우친 승려’라는 뜻으로 보임.
- 519)운석韻釋 : 시를 잘 짓는 승려.
- 520)청분清芬 : 맑고 향기로움. 고결한 덕행.
- 521)도가~않는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의 구절.
- 522)가섭伽葉의 정전正傳 : 선종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 523)기자전箕子殿 : 기자사箕子祠. 기자의 제향을 위해 평양에 세웠던 사당.
- 524)아미娿㜷 : 대개 모친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문맥상 ‘마님’을 뜻함.
- 525)영관靈觀 : 1485-1572년. 경상남도 사천 출신. 호는 부용芙蓉 또는 은암隱庵, 연선도인蓮船道人이라고도 한다. 지리산의 지엄智嚴을 찾아가 지엄의 가르침으로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였던 마음속의 의문을 풀었다. 3년 동안 지엄을 모시고 수행한 뒤 황룡산ㆍ팔공산 등에서 40여 년 동안 후학을 지도하였다.
- 526)대선大選 : 법계法階. 승과僧科에는 교종선敎宗選과 선종선禪宗選이 있었는데, 이에 합격한 자는 교敎와 선禪의 구별 없이 대선이란 법계를 받았음.
- 527)기축옥사己丑獄事 : 기축년인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고변告變에서 시작해 그 뒤 1591년까지 그와 연루된 수많은 동인東人의 인물들이 희생된 사건,
- 528)분수焚修 : 향을 피우고 불도를 닦음.
- 529)방악方岳 : 사방의 진산. 여기서는 사방의 관리를 가리킴.
- 530)순안順安 : 평안남도 평안 지역의 옛 지명.
- 531)법흥사法興寺 : 평안남도 평안군 공덕면公德面 법홍산法弘山에 있는 절. 31본산本山의 하나. 신라 때 광통光統이 창건하고 고려 때 법흥法興 선사가 중건.
- 532)태고太古 : 보우普愚의 호. 1301-1382년. 1346년(충목왕 2) 원나라 연경燕京 대관사大觀寺에 머물 때, 궁중에서 『반야경』을 강설하였다. 1347년 7월 호주湖州 천호암天湖庵에서 석옥石屋에게 도를 인정받고, 「태고암가」의 발문과 가사袈裟를 받았다. 1348년 귀국하여 중흥사, 양산사陽山寺 등에 머물렀다.
- 533)석옥 청공石屋淸珙 : 1272-1352년. 원나라 때의 승려. 임제臨濟의 18세世 법손. 보우가 충목왕 2년(1346)에 중국에 들어가 호주湖洲 하무산 천호암天湖庵에 살던 그를 찾아 배웠는데, 법기法器를 인정하여 가사를 전해 받아 고려 임제종의 적통을 이었다.
- 534)개원開元과 대력大曆 : 개원은 당唐 현종玄宗의 연호로서 713년부터 741년까지이고, 대력은 당唐 대종代宗의 네 번째 연호로서 766년에서 779년까지. 이백과 두보 등이 활동한 성당盛唐 시기에 해당함.
- 535)혜휴惠休나 도림道林 : 혜휴는 남조 유송劉宋 때의 승려로 원명은 탕휴湯休. 남긴 작품들이 화려했는데, 포조鮑照와 이름을 나란히 했다. 도림은 수당隋唐 교체기 때의 승려. 수문제隋文帝가 여러 차례 불렀지만 나가지 않고 양산梁山 남쪽으로 피해 도를 행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廣宣上人以應制詩 見示因以贈…居安國寺紅樓院 以詩供奉」에 “도림의 담론과 혜휴의 시가 한 번 인천에 이르자 곧 스승이 됐네.(道林談論惠休詩 一到人天便作師)”라고 하였다.
- 536)금비金鎞 : 맹인의 눈꺼풀을 의사가 섬세하고 예리한 금 칼로서 떼어낸다는 말이 『열반경』 권8에 나옴.
- 537)이병모李秉模 : 1742-1806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이칙彛則, 호는 정수재靜修齋. 1773년(영조 49) 진사시를 거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함경도관찰사ㆍ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794년 우의정에 임명되고, 좌의정을 거쳐 1799년 영의정이 되었다.
- 538)서영보徐榮輔 : 1759-1816년.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재景在. 호는 죽석竹石. 시호는 문헌文憲. 1789년(정조 1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하였다. 이듬해 진하사은사進賀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함경도 암행어사 등을 거쳐 1794년 호남위유사湖南慰諭使가 되었다. 1804년(순조 4)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이어서 홍문관제학 ㆍ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수원의 지지대비遲遲臺碑 비문을 지었고, 『어사고풍첩御射古風帖』과 『사례사전문射禮謝箋文』을 짓고 썼다.
- 539)자식이~없다 : 『장자』 「인간세人間世」의 구절.
- 540)이지~즐거워했고 : 『맹자』 「등문공滕文公」에 나오는 내용.
- 541)몽장蒙莊 : 몽현蒙縣의 칠원리漆園吏를 지낸 장주莊周.
- 542)봉시封豕가 침식하고 : 봉시封豕 즉 큰 멧돼지는 왜적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좌전』 정공定公 4년 조에 “오나라는 봉시 장사라서 상국을 거듭 침범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라는 말이 나온다.
- 543)육비六飛 : 천자의 수레를 끄는 여섯 필의 말.
- 544)백성들이 가슴을 치며 : 원문 ‘元元叩心’은 『자치통감』 권39 “노략질을 자행하자, 백성들이 가슴을 치며(虜掠自恣 元元叩心)”에서 온 것이다.
- 545)근왕勤王 : 임금에게 충성을 다함.
- 546)숙위宿衛 : 궁궐에서 군주를 호위하며 지키는 제도 및 지키는 사람.
- 547)전쟁이 격렬함에 : 원문 ‘方事之殷’은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16년에 나옴.
- 548)당저當宁 : 현재 임금.
- 549)욕불일浴佛日 : 초파일. 불상의 정수리에 향수를 뿌리거나 물을 붓는 의례 날.
- 550)겸사兼史 : 각 도의 재난과 선악에 대한 상벌 기록 등을 자세히 적어 내사에 참고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관직.
- 551)장이張耳 : ?-기원전 202년. 전국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진나라 말기에 부활한 조나라의 대신이자, 한나라의 무장이자 제후왕으로 조나라 왕을 지냈다. 시호는 조경왕趙景王이다.
- 552)금 정기 : 서방의 기운, 즉 숙살지기肅殺之氣가 몰아치는 가을 기운.
- 553)승복 : 원문 ‘稻帔’는 ‘稻衲’과 같은 말인 듯함. 도납은 볏짚으로 만든 납의衲衣를 말한다.
- 554)군지軍持 : 범어 kuṇḍikā의 음사. 승려들이 가지고 다니던 물병.
- 555)경관鯨觀 : 경관京觀. 무공 및 전과戰果를 과시하기 위하여 전쟁이 끝난 뒤에 적의 시체를 쌓아 놓고 흙으로 덮은 큰 무덤을 말함.
- 556)아름답다 : 원문 ‘於皇’은 『시경』 「신공臣工」의 구절로, 오於는 탄사歎詞이고, 황皇은 미美의 뜻임.
- 557)감동하여 : 원문 ‘曠感’은 후세 사람으로서 존모尊慕하여 세대를 건너뛰어 느끼는 바가 있음. 동시대에 태어나지 못해 서로 만나지 못한 데 대한 감회를 이른다. 광세지감曠世之感.
- 558)비단옷 : 원문 ‘被袗’은 순임금이 천자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형용한 표현이다. 여기서는 왕의 은혜를 입은 것을 뜻하는 듯하다. 『맹자』 「진심盡心」 “순 임금이 천자가 되어서는 진의를 입고 거문고를 뜯고 두 여인의 시중을 받는 것을 원래 그러던 것처럼 태연히 누리셨다.(及其爲天子也, 被袗衣, 鼓琴, 二女果, 若固有之.)”
- 559)5병기 : 과戈ㆍ수殳ㆍ극戟ㆍ추모酋矛ㆍ이모夷矛의 다섯 가지 병기.
- 560)남금과 대패 : 인재를 가리킴. 남금은 형주荆州와 양주揚州에서 생산된 금, 대패는 큰 조개껍질인데 옛날에는 보배로 여겼다.
- 561)병진년 : 병신년의 오류인 듯하다. 헌종 2년 병신년(1836).
- 562)보월사寶月寺 : 평안북도 구장군 묘향산에 있는, 975년(광종 26) 창건된 사찰.
- 563)도부到付 : 문서가 도착함.
- 564)계하啓下 : 임금의 재가를 받음.
- 565)비국당상備局堂上 : 비변사 당상관.
- 566)구선복具善復 : 1718-1786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초士初. 최고 군사실력자로 병조판서ㆍ판의금부사가 되었으나, 1786년(정조 10년) 반란을 일으켜 처형당했다.
- 567)봉용捧用 : 세금으로 곡식 등을 거두어들이거나 거두어들인 것을 사용하는 것.
- 568)윤기동尹耆東 : 1744-?.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인수仁叟. 1762년에 식년시에 합격.
- 569)준가準價 : 기준의 한도에 맞게 값을 매김. 또는 그 매긴 값.
- 570)경상사京上司 : 중앙에서 명령을 하달하는 관아.
- 571)부출浮出 : (종이를) 떠냄.
- 572)부비浮費 : 일을 하는 데 써서 없어지는 돈.
- 573)무용貿用 : 물건을 사서 씀.
- 574)부지浮紙 : 종이를 뜨다.
- 575)복정卜定 : 조선 시대 별공別貢이 있을 때 감영 등이 민호民戶를 임의로 정하여 부과하던 불법적인 조세.
- 576)침징侵徵 : 불법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아 들임.
- 577)중감重勘 : 처벌을 엄중한 편으로 함.
- 578)관서어사재거절목關西御使齎去節目 : 관서 지역의 어사가 가지고 가는 항목들.
- 579)행회行會 : 공문서를 보내 알림.
- 580)서토西土 : 서북 지방인 황해도와 평안도.
- 581)후지厚紙 : 종이를 뜰 때 합치거나 또는 수공으로 맞대어 만든 2층 이상의 비교적 두꺼운 종이. 지질은 굳고 탄력이 좋아 주로 포장 재료로 사용한다.
- 582)장신將臣 : 군영의 우두머리 장수를 지칭하는 말.
- 583)지통紙桶 : 종이를 뜰 때에 원료를 물에 풀어 담는 큰 나무통. “桶”은 “筩”으로도 쓴다
- 584)지렴紙簾 : 종이를 뜨는 발.
- 585)침책侵責 : 물품 수납에서 각종 트집을 붙여서 강요함.
- 586)횡렴橫斂 : 무법하게 조세를 마구 징수함.
- 587)비조比照 : 비의조감比擬照勘의 준말. 죄에 맞는 정조正條가 없을 때 비슷한 조문條文에 비의해서 처결함. 인률비부引律比附해서 처리함.
- 588)염찰廉察 : 자세히 조사함.
- 589)선갑先甲의 영令 : 창제創制한 영을 미리 발포한다는 뜻이다. 『주역』 「고괘蠱卦」에 “갑에 앞서 3일에 한다.(先甲三日)”라는 말이 보이는데, 그 소疏에서 “갑甲은 창제한 영을 가리키니, 백성들이 아직 익히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이 영을 선포하기 3일 전에 미리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라고 풀이하였다.
- 590)장문狀聞 : 임금에게 장계狀啓를 올려 보고함.
- 591)논감論勘 : 죄의 경중을 따져서 판정함.
- 592)척념惕念 : 경계하여 두려워하는 생각.
- 593)전문현田文顯 : 1741-? 본관은 담양. 영조 41년(1765) 식년시 병과 급제.
- 594)월저月渚 : 도안道安의 호. 1638-1715년. 9세에 출가하여 천신天信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금강산에 들어가 의심意諶의 지도를 받으며 휴정休靜의 밀전密傳을 연구하여 화엄학과 삼교三敎에 두루 통하였다. 1664년(현종 5) 묘향산에 들어가 하였는데, 그 때부터 사람들이 화엄종주華嚴宗主라고 불렀다.
- 595)유학幼學 : 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儒生.
- 596)4만8천 : ‘8만4천’의 오류인 듯함. 대개 부처님의 법문을 대략 ‘8만4천법문’이라 통칭한다.
- 597)공덕림功德林 : 공덕을 많이 쌓은 것이 마치 무성한 숲과 같음을 이르는 말. 범어梵語를 음역한 선나禪那 또는 선禪을 뜻함. 여기서는 선찰禪刹을 가리킴.
- 598)성 : 운암산성. 평안북도 철산군 원세평리의 운암산에 있는 옛 성터. 1631년에 축성하였는데, 운암산의 북쪽은 자연지세를 이용하고 다른 면들은 돌로 축조하였다. 철산성이라고도 한다.
- 599)괘탑掛塔 : 괘석掛錫. 휴대하고 다니던 지팡이를 벽에 걸어 둔다는 뜻. 곧, 수행승이 돌아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한곳에 머무는 것을 말함.
- 600)상방上方 : 사찰의 주지가 거처하는 곳으로, 보통 사찰을 뜻한다.
- 601)가낭선賈浪仙 : 가도賈島. 779-843년. 당 나라 때 시인. 낭선은 자. 진사 시험에 성공하지만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 602)죽원竹院 : 대나무 숲속에 있는 집. 주위에 대를 많이 심은 집.
- 603)성감星龕과 운탑雲塔 : ‘별같은 감실과 구름 같은 탑’. 감실과 탑을 아름답게 표현한 말.
- 604)진진찰찰塵塵剎剎 : 티끌 같은 세계 즉 우주의 무수한 삼라만상을 뜻한다.
- 605)임궁琳宮과 범우梵宇 : 사찰을 아름답게 표현한 말.
- 606)삼과 보리 : 원문 ‘麻麥’은 『시경』 「생민生民」에서부터 줄곧 같이 언급되었다.
- 607)호부虎符 : 군사를 발병할 때 사용하던 병부兵符. 한 면에는 ‘발병發兵’이라 쓰고 다른 면에는 모도관찰사某道觀察使, 또는 모도 수륙절제사某道水陸節制使라고 쓰고, 그 한가운데를 쪼개어 우부右符는 그 책임자에게 주고, 좌부左符는 중앙의 상서사尙瑞司에 두었다가, 임금이 발병할 때 이 좌부를 내려보내어 우부와 맞추어 본 뒤 동병動兵하였음.
- 608)분우分憂 : 걱정을 나눈다는 뜻으로, 지방관地方官을 가리킴.
- 609)이적선李謫仙 :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답족질승중부 증옥천선인장다(答族侄僧中孚贈玉泉仙人掌茶」에서 자신은 금속여래의 후신이라 하였다.
- 610)소학사蘇學士 :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이 불인佛印 선사를 방문하러 금산사金山寺에 갔는데 마침 성대한 향화회香火會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멀리서 소식을 본 불인 선사가 소식에게, 어떻게 왔는가, 여기는 앉은 곳이 없다고 하자, 소식이 선기禪機임을 알고 스님의 사대육신으로 禪床을 삼아 앉겠다고 하니, 불인 선사가 그럼 일구一句 전어轉語로 물을 테니 바로 답을 하지 못하면 옥대를 풀어 산문山門(사찰)에 유진留鎭하라고 했다. 소식이 좋다고 하자 선사는, 산승의 사대는 본래 없고 오온이 모두 공이거늘 학사는 어디에 앉고자 하는가 물으니, 소식은 답을 하지 못하고 옥대를 풀어 주었다. 『소동파외전蘇東坡外傳』.
- 611)구전~대악大樂으로 : 이 부분은 문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착간이 있는 듯함.
- 612)날아갈 듯 : 원문 ‘翬飛’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시경ㆍ소아小雅』 「사간斯干」에, “(건물의 모양은) 마치 새가 깜짝 놀라서 날개를 펴는 듯하고(如鳥斯革), (추녀는) 마치 꿩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如翬斯飛)”는 표현이 나온다.
- 613)축하(燕賀) :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목욕할 채비가 갖추어지면 이들이 서로 슬퍼하고, 큰 집이 이루어지면 제비와 참새들이 서로 축하한다.(湯沐具而蟣蝨相弔, 大厦成而燕雀相賀)”라고 한 데서 온 말. 본디 제비와 참새가 사람의 집을 자기들의 깃들 곳으로 삼아 서로 축하한다는 뜻에서, 흔히 남이 새로 집을 지은 것을 축하하는 말로 쓰이며, 또는 일반적인 축하의 뜻으로도 쓴다.
- 614)용을 가두고 범 싸움을 풀 듯 : 「증도가證道歌」에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 싸움 말린 석장이여(降龍鉢解虎錫)” 구절이 있다. 용을 항복 받은 발우는 부처님께서 삼가섭三迦葉을 제도하셨다는 『본행경本行經』 이야기와 육조六祖의 일화가 있다. 육조 혜능이 보림사寶林寺에 있을 때 절 앞 뜰에 큰 용소龍沼가 있어서 거기에 독룡毒龍이 살았는데 육조가 그 독룡을 발우에 담아 법당으로 가서 설법하니, 그 용이 드디어 몸을 벗어 제도를 받았다고 한다. 싸움하는 범을 말린 석장이란, 승조僧稠 선사가 길가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두 범을 보고 육환장으로 범을 몇 번 툭툭 건드리니 서로 헤어져 갔다고 한다.
- 615)사찰~부합하니 : 남한산성에도 국청사가 있음을 뜻한다. 남한산성의 국청사는 1625년(인조 3)에 각성覺性을 팔도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八道都摠攝總節制中軍主將에 임명하고, 팔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남한산성의 축조를 담당하게 할 때 7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국청사이다.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담당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비밀리에 군기軍器와 화약ㆍ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 616)중영中營 : 전, 후, 좌, 우, 중 등 5영五營의 중영中營. 곧 중군中軍의 영문營門이나 진영鎭營.
- 617)호광毫光: 백호광白毫光.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에서 나오는 밝은 빛. 부처님의 위신력을 상징한다.
- 618)동양 후인東陽後人 : 동양은 황해도 평산군을 옛 명칭. 본관이 평산임을 가리킴.
- 619)신숙申橚 : 1864년에 공충도公忠道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는 등의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