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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1_a_01L황해도(黃海道之部)김종진 (역)총목차總目次1. 황명 조선국 황해도 장연부 북송월산 학림사 사적지 皇明朝鮮國黃海道長淵府北松月山鶴林寺事蹟誌
2. 성불사 사적 비명 成佛寺事蹟碑銘
3. 안국사 사적 비명 병서 安國寺事蹟碑銘并序
4. 서사암 사적 비문 西捨菴事蹟碑文
5. 황강 모성방 성거산 영축암 신건기 黃岡 慕聖坊 聖居山 靈竺菴 新建記
6. 백록도관사 증건기 白鹿道觀寺增建記
7. 백록 도관사 극락전와 청성루 요사 중수기(白鹿道觀寺極樂殿與請聖樓(序-予+(嘹-口)))舍重修記
8. 심원사 사적 비문 心源寺事跡碑文
29. 신광사 사적 神光寺事蹟
10. 신광사 사적기 神光寺事蹟記
11. 황해도 안악군 연등사 사적 비명병서 黃海道安岳郡燃燈寺事蹟碑銘并序1. 황명 조선국 황해도 장연부 북송월산 학림사 사적지 皇明朝鮮國黃海道長淵府北松月山鶴林寺事蹟誌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태평한 시절1)에 대사가 송월산松月山 학림사鶴林寺2) 기수람원祗樹藍園3)에 수백 명의 비구(苾蒭)와 함께 있었다. 그때 대중 가운데 절의 수리를 맡은 승려(修補僧) 지공志公이 자리를 피해 앉아 합장하고 대사에게 청하여 물었다. “대사께서는 응당 장연읍長淵邑 송월산 학림사의 고적古蹟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이야기해 주소서.” 이와 같은 청을 정성스레 세 번 하며 자세히 듣고자 하였다. 그때 대사는 간청을 사양하지 못하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좌정한 후 몸을 단정히 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비록 동해의 거북이는 아니나, 우물 안의 개구리 안목으로 절 안팎의 역사를 대강 알고 있으니,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먼저 읍지邑誌를 서술하고 이어 사지寺誌를 서술하리다.
이 읍은 신라에 속해 있을 때의 상황은 알 수 없다. 고려가 천하를 통일한 시기, 즉 한漢에서 당송唐宋 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원元 말기인 지정至正 원년4)(1341) 계유년, 도합 36년간은 전승 자료가 없다. 명 홍무明洪武 연간 주씨朱氏 즉위 원년(1368) 무신년, 도합 31년간 재위 기간에 25년 임신년(1392) 7월 16일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이 하늘을 이어받아 법칙을 세웠다. 그 이전에 장택長澤의 장인長人(首長)으로는 고려조의 유지有旨 김을겸金乙謙에서 강인우姜仁雨까지 다섯 명이 모두 안집사安集使5)로 행공行公(공무 집행)하였다. 또 박을송朴乙松에서 이지만李之蔓까지 다섯 명은 감목관監牧官6)으로 부임하여 모두 장택長澤에 있었으니, 이는 고려조 말의 상황이다. 우리 태조 즉위 원년 임신년에 장택을 장연長淵으로 개칭하고 만호萬戶 겸 감목監牧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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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1_a_01L○黃海道之部
0009_0001_a_02L○皇明朝鮮國黃海道長淵府北松月山鶴林寺事蹟誌
0009_0001_a_03L如是我聞。明時。師在松月山鶴林寺祗樹藍園。與數百員苾蒭俱。爾時眾
0009_0001_a_04L中。修補僧志公。避坐合掌。請師問曰。惟願師應知淵邑松月山鶴林之古
0009_0001_a_05L蹟矣。垂慈許說。如是三請。慇懃諦聽。爾時師固不辭懇。默思久坐。整身開
0009_0001_a_06L口曰。吾雖非東海之鼈。只以陷井之見。粗識內外史。沿流溯源。先敘邑誌。
0009_0001_a_07L鱗設寺誌。此邑。新羅分屬之時。未可知。高麗渾一區宇之時。自漢至唐宋
0009_0001_a_08L末。大元立禪末。至正元年癸酉。共三十六載。而亡傳。于皇明洪武朱氏即
0009_0001_a_09L位元年戊申。共三十一年在位之間。二十五年壬申七月十六日。我 太
0009_0001_a_10L祖康獻大王。繼天立極。其前長澤長人。麗朝有旨金乙謙至姜仁雨儕五
0009_0001_a_11L人。皆以安集即行公也。又自朴乙松及李之蔓五儕。以監牧官赴任。皆在
0009_0001_a_12L長澤。麗朝末時也。我 太祖即位元年壬申。以長澤改長淵。萬戶兼監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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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2_a_01L홍무洪武 29년(1396) 병자년에 두견산杜鵑山 아래 토성土城을 축조하여 22년간 읍성으로 삼아 머물렀다. 이자사李自舍에서 강자우姜自雨까지 다섯 명이 태조의 유지有旨로 만호萬戶를 겸하여 부임하였다. 본조本朝 태종太宗은 명明 건문建文 4년(1402)7) 임오년에 즉위하였다. 김미金美에서 오한우吳旱雨까지 다섯 명이 모두 태종의 명을 받아 감목監牧을 겸하여 부임하였다. 태종 2년(1403) 영락永樂 원년 계미년에는 조천부趙天扶를 병사兵使 겸 감목監牧으로 승진시켰다. 영락永樂 12년(1414) 갑오년에는 강령康翎과 병합했으나 오래지 않아 복구되었다. 세종世宗 5년(1423)에는 병사兵使 겸 판현사判縣事로 승급하여 장연과 강령(淵康)을 다스리게 하였다. 영락 14년(1416) 병신년 지유용池有容이 재직할 당시에 두견산杜鵑山 평지에 성을 쌓아 160년간 읍성으로 삼아 머물렀다. 정통正統 8년(1443) 계해년 오신교吳慎交 재직 시에 현감縣監으로 개칭하였다. 만력萬曆 4년(1576) 병자년 박웅집朴雄楫 재직 시에 불타산佛陀山 남쪽 기슭으로 읍성을 옮겨 58년간 머물렀다. 광해조光海朝 천계天啓8) 4년(1624) 갑자년 박로朴𥶇 재직 시에 부사府使로 승급시켰다. 이상이 읍지邑誌 건치연혁建置沿革의 대략이다.
이제 사찰의 근원과 변천 과정을 논해 보자. 우리 석존은 서역西域 정반왕淨飯王의 태자이시다. 주 소왕周昭王(?~B.C.977) 25년(B.C.1028) 계축년 4월 초파일에 어머니 태에 들어가는 상서가 있어 26년(B.C.1027) 갑인년 2월 초파일 탄생하였다. 십구 세에 출가하여 삼십 세에 성도成道 하였고, 세상에 머문 49년 간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한 후, 목왕穆王 43년 임신년 2월 15일 시멸示滅하였다. 그 후 일천 십 년이 지나 동한東漢 명제明帝 원년(A.D.58) 무오년 즉위 후 4년 신유년(A.D.61) 정월 초하루에 (명제는) 꿈에 금인金人을 본 후, 명제 10년 무진년9) 12월 30일에 불경을 받들어 중국에 처음 유통하기 시작하였다.10) 이후 오악五岳의 도경道經을 -
0009_0002_a_01L也。洪武二十九丙子歲。杜鵑山下築土城。二十二年居。自李自舍裊姜自
0009_0002_a_02L雨五公。皆以 太祖有旨。兼萬戶赴任也。本朝太宗。大明建文四年壬午
0009_0002_a_03L即位也。自金美至吳旱雨五儕。皆受太宗命。兼監牧赴任也。太宗二年永
0009_0002_a_04L樂元年癸未歲。趙天扶。陞兵使兼監牧。永樂十二甲午。并於康翔 [1] 。未久各
0009_0002_a_05L復舊。世宗五年。陞兵使判縣事為淵康也。永樂十四丙申年。池有容時。移
0009_0002_a_06L築城杜鵑山平地。百六十年在也。正統八年癸亥。吳慎交時。改為縣監也。
0009_0002_a_07L萬曆四年丙子。朴雄楫時。移邑佛陀山南麓。五十八年在也。光海朝天啓
0009_0002_a_08L四年甲子。朴𥶇時。陞府使也。此其為邑誌建置沿革之大略也。今寺之根
0009_0002_a_09L源枝派論之。惟我 釋尊。西域淨飯王太子也。即周昭王二十五年癸丑
0009_0002_a_10L四月初八日。示入胎之瑞。二十六年甲寅二月初八日誕生。十九出家。三
0009_0002_a_11L十成道。住世四十九年。廣度人天後。穆王四十三年壬申二月十五日示
0009_0002_a_12L滅。後一千一十年來。東漢明帝元年戊午即位後四年辛酉正月初一日。
0009_0002_a_13L夢金人之後。十年戊辰十二月三十日。奉佛經。始通中國。因五岳道經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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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3_a_01L불사른 후 대교大敎와 비교 증험하자11) 불교가 더욱 더 새롭게 유통되었다. 삼백 년 지나 북위北魏 도무황제道武皇帝 즉위 무술년12) 원년에 조서를 내리기를 “불법의 발흥은 그 유래가 멀다. 이롭게 구제하는 공덕은 그 생사에 걸쳐 가호가 있으니, 신령스러운 자취인 유법遺法이야말로 믿고 의지할 만하다.”라고 하면서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서울(京師)에 불상을 장엄하게 세우고 궁사宮舍를 보수하고 삼보에 귀의한 이(信向者)들을 머물게 하였다. 그 해에 승려 숫자는 이백만, 사원은 삼만여 곳에 이르렀고, 경經․률律․론論 천 구백여 권을 번역하였다. 자고로 불화와 불탑의 성행이 이보다 더할 때는 없었다. 당시 대신大臣 아골마阿骨摩가 사신으로 서경西京[평양平壤]에 왔을 때 시녀와 합방을 한 후 돌아갔는데, 시녀는 임신하여 사내아이 묵호자墨胡子13)를 낳았다. 묵호자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위魏 나라로 돌아가 부친을 만났는데, 아골마는 피를 합하여 그 아들임을 확인한 후 열 다섯 살까지 양육하였다. 그 후 아들은 소원에 따라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이름을 아도阿道라 하였다.
화상이 다시 서경西京(평양)으로 돌아온 후 신라로 가서, 눌지왕訥祗王 때 비로소 불법佛法이 유통되었다. 오백 개의 큰 가람伽籃을 세우고 삼천의 무리로 비보稗補하여 차차 이 산에 절을 세울 때, 천문天文을 우러러 보고 지리地理를 굽어 살핌에, 송월산松月山 칠십여 봉우리가 수려하여 참으로 불보살佛菩薩께 기도하는 승가僧伽의 모습과 같았다. 이에 그 산 이름을 승가산僧伽山이라 하였다. 산의 모양은 곧 선인仙人이 소매를 흩날리는 모습으로 풍취라대風趣羅帶14) 형국이다. 안산案山은 묘방卯方에서 입수入首15))하여 감발행룡坎發行龍하고 간좌곤안艮座坤案하여 신득병파辛得丙破한 형세이다. 가장 높은 주봉은 비로봉毘盧峯으로 곧 부처 법신法身의 본체다. 감계방坎癸方(북북동쪽), 우여수牛女宿(우수와 여수, 북방의 별자리)16) 분야로 들이 퍼져 있다. 그 봉우리의 곧은 줄기는 구슬을 꿴 듯 연이어 내려오다가 다섯 봉우리(壘)를 만들었다. 제1은 가섭迦葉으로 우뚝하게 홀笏을 잡고 있는 것이 마치 가섭이 계족산鷄足山17)에서 입정入定한 자세와 같기에 이름한 것이다. 제2는 아난阿難이다. 마치 다섯 개의 나뭇잎이 소라처럼 배열된 것이 마치 오교五教가 유통하는 형세와 닮았기 때문이다. 제3은 향로香爐이다. 형세가 마치 향로(金爐)에 자색 -
0009_0003_a_01L薪後。比驗大教。益新流通。三百年來。北魏道武皇帝即位戊戌元年。下詔
0009_0003_a_02L曰。夫佛法之興。其來遠矣。濟益之功。冥及存歿。神蹤遺法。信可依憑。勅有
0009_0003_a_03L司。于京師建飭 [2] 像容。修整宮舍。令信向者。有所居止。是歲。僧至二百萬。寺
0009_0003_a_04L院三萬餘所。譯經律論一千九百餘卷。自古佛圖塔之盛。無出於此。當時
0009_0003_a_05L大臣阿骨摩。奉使西京平壤時。侍姬宿夜而還後。姬孕生男墨胡子。至七
0009_0003_a_06L歲。轉至魏。遇父阿骨摩。以血合定其子後。養至十五歲。從其所願。出家為
0009_0003_a_07L僧。名曰阿道。和尚還來西京。往于新羅。訥祗王時。始通佛法。營建五百大
0009_0003_a_08L伽籃。三千眾稗補。次次創立於此山此寺時。仰觀天文。俯察地理。松月山
0009_0003_a_09L七十餘峯巒秀麗。儘若請佛菩薩僧伽之態。故號曰僧伽山也。山之形容。
0009_0003_a_10L則仙人舞袖形。風吹羅帶。案卯入首。坎發行龍。艮座坤案。辛得丙破也。最
0009_0003_a_11L高主峯。名毘盧。乃佛法身之體也。坎癸方。牛女宿分也。其峯直脉。貫珠連
0009_0003_a_12L下者。有五壘。第一曰迦葉。崒𡵉秉笏者。如迦葉鷄足山入定之勢故也。二
0009_0003_a_13L曰阿難。形如五葉螺排。有若五教流通之勢也。三曰香爐。形如金爐噴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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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4_a_01L연기가 피어오르는 기세이기 때문이다. 제4는 옥경玉磬이다. 형세가 마치 경쇠를 엎어 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제5는 삼장三藏이다. 봉우리의 간방艮方(동북쪽)에서 기미수箕尾宿(기수, 미수) 두 별자리가 나누어 비춘다. 가운데 볼록한 좌우 어깨 아래 왼쪽은 부처님 손 같아 응당 무릎으로 내리는 형세고, 오른쪽은 손을 든 것 같아 감중련坎中連18)의 형세이며, 백암白巖은 가운데 묘혈(中坎)이 있다. 또 하늘의 삼광三光(해, 달, 별)과 같고 솥의 세 발과 같이 품자品字의 형세이니 마치 부처님이 앉은 모양과 같다. 뜻으로 드러내면 곧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요, 글로 나타내면 곧 경률론經律論 삼장三藏이므로 삼장봉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터는 넓고 평평한 대국大局으로 삼천三千의 부처님이 앉을 만한 대도량이다. 어찌 사방 한 자(一尺)되는 유마維摩의 방장方丈에 만 명의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모여 모의謀議함에 비하겠는가.19) 그러기에 감히 아도가 절을 창립하고 학림鶴林이라 현판을 걸었다.
또 비로봉 동쪽으로 왼쪽 죽지가 솟아났는데, 머리에 일곱 잎의 빈발賓鉢20)이 늘어선 모습이다. 노사나盧舍那 보신報身21)이 타수용신他受用身22)으로 『화엄경』을 설하실 때, 천 길 높이에 만 가지로 장엄한 대 보살상이 일곱 잎 화관을 머리에 인 형세를 보이셨다. 이는 봉우리의 간인간艮寅間(동북쪽), 미심수尾心宿(미수, 심수) 분야分野23)이다. 사나봉舍那峰의 동쪽 인근에는 시왕봉十王峯이 있는데, 인지寅地(동북쪽), 심수心宿 분야에 펼쳐져 있다. 염라왕이 옥규玉圭를 잡고 도산塗山24)에서 회합을 하면, 옥과 폐백을 들고 있는 제후(列侯)가 천자를 조회하는 형상과 같이, 열 개의 우뚝 선 원사園寺가 늘어서 있다. 이는 손사방巽巳方(동남쪽)으로, 내청룡內青龍이 된다. 첫째는 진광秦廣, 둘째는 초강初江, 셋째는 송제宋帝, 넷째는 오관五官, 다섯째는 염라閻羅, 여섯째는 변성變成, 일곱째는 태산泰山, 여덟째는 평등平等, 아홉째는 도시都市, 열째는 전륜轉輪봉이다. 또 진광의 동쪽 갑지甲地(동북쪽), 방수房宿 분야의 들에는 문수봉文殊峰이 서 있고, 꼭대기에는 오대五臺가 늘어 서 있는데, (이름을 오대산이라 한 것은) 청량산清涼山 오대五臺와 같기 때문이다. 산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곧 만 리의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데, 오초吳楚 연제燕齊의 경치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북쪽을 보면 곧 눈이 온 산에 덮인 위로 구월산九月山이 함께 솟아서 머리를 비추는 형국이다. 동쪽을 보면 곧 수양산首陽山 백운봉白雲峯이 태양을 이고 -
0009_0004_a_01L烟之氣也。四曰玉磬。勢若覆磬故也。五曰三藏。峯艮方。箕尾兩宿分照也。
0009_0004_a_02L中凸左右肩低。左如佛手。當垂膝之形也。右如舉手。坎中連之形。白巖有
0009_0004_a_03L中坎也。又如天三光。如鼎三足。品字之形。如佛之坐形。以意所詮。則戒定
0009_0004_a_04L慧三學。以文能詮。則經律論三藏。故名也。其垈廣坦大局。可坐三千佛之
0009_0004_a_05L大道場。豈比論於一尺方丈。萬文殊之謨歟。故敢阿道創立伽籃。華揭鶴
0009_0004_a_06L林也。又毘盧東。左臂聳起。頭排七葉賓鉢之形。盧舍那報身他受用。說華
0009_0004_a_07L嚴時。現千丈萬莊嚴大菩薩像。頂戴七葉華冠之勢也。此峯艮寅間。尾心
0009_0004_a_08L宿分也。舍那東鱗。有十王峯。寅地。心宿分野。閻羅王秉玉圭。如會塗山。執
0009_0004_a_09L玉帛之列侯。朝天之像。羅列十卓園寺。巽巳方。為內青龍也。其一曰秦廣。
0009_0004_a_10L其二初江。其三宋帝。其四五官。其五閻羅。其六變成。其七泰山。其八平等。
0009_0004_a_11L其九都市。其十轉輪也。又秦廣東甲地房宿。野立文殊。頭列五臺。如清涼
0009_0004_a_12L山五臺故也。登臨西望。則見萬里之滄海。吳楚燕齊之景。如入眼豁也。瞻
0009_0004_a_13L北則雪擁千點之上。九月並生照於頭上也。顧東則首陽白雲峯。戴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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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5_a_01L귀를 기울여, 백이伯夷가 주周 나라의 곡물을 먹지 않겠다고 하는 맑은 ‘채미가採薇歌’25)를 듣는 듯하다. 남쪽을 바라보니 가슴이 시원해져 대붕大鵬이 구만리 남쪽 바다(南溟)를 등지고 날아가는 것 같다. 위를 우러러보면 하늘의 삼청각三淸閣 위로 올라가 신령한 옥추경玉樞經26)을 듣는 듯하다. 또 문수봉의 동쪽에 이웃하여 지장봉地藏峯이 있는데, 정묘正卯(동쪽) 방향, 저수氐宿 분야에 펼쳐져 있다. 좌측에 서 있는 도명봉道明峯은 묘을간卯乙間(동남쪽), 저항수氐亢宿 분야에 펼쳐져 있고, 우측에 서 있는 무독봉無毒峯은 갑묘간甲卯間(동북동쪽), 방저수房氐宿 분야에 펼쳐져 있다.
시왕봉十王峰 중 제3 송제봉宋帝峯의 동쪽 편으로 창벽蒼壁이 있는데, 그 좌편엔 업경대業鏡臺가, 우편엔 옥초대沃焦臺가 있고, 가운데는 장군석將軍石, 도명봉道明峯과 동자암童子巖이 서로 마주하여 동문洞門을 형성하였다. 지장봉地藏峯을 향한 정맥正脉 아래로 일국一局이 있어 지장암地藏菴을 세웠다. 지장봉의 동쪽 진지辰地(동남동쪽), 항수亢宿 분야에는 일출대日出臺가 있는데,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떠올라 점차 중천에 이르면 만학萬壑이 환하게 밝아진다. 송 태조가 읊은「바다 밑을 떠나기 전 천 산千山이 어둡더니, 중천에 다다르자 만국萬國이 밝아지네」27)라 한 것이 이를 말함이다. 이 산의 시작 부분은 묘진방卯辰方(동남쪽), 저항수氐亢宿(저수, 항수) 분야로 박석산縛石山이 있고, 서쪽 기슭으로 굴곡지고 올록볼록 길게 뻗어 내려온 것이 이십 리 정도인데, 묘방卯方(동쪽)에서 입수入首하여 겹겹으로 높이 솟아 고조봉高祖峯이 되었다. 내려와서는 일출대가 있어 동쪽과 남쪽이 나뉘는데, 혹 높고 낮게 사슴을 쫓는 듯, 구룡九龍이 물을 마시는 듯, 혹 뾰족한 것들(尖凡)이 이름을 드러내는 듯 이십 개의 봉우리가 있다. 삼층 위로 층이 넷인데, 하나는 사방巳方(동남쪽) 장분수張分宿(장수, 분수) 분야의 금강권보살金剛拳菩薩28)이니, 봉우리가 마치 사람이 주먹을 쥐고 올리는 모양과 같다. 둘째는 손사간巽巳間(동남쪽), 익장수翼張宿(익수, 장수) 분야의 금강삭보살金剛索菩薩29)이니, 봉우리의 형세가 큰 철사를 물 아래로 내려 용을 낚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진손간辰巽間(동남쪽), 진수軫宿 분야의 금강애보살金剛愛菩薩30)인데, 형세가 마치 사람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즐겁게 말하려는 것 같다. 넷째는 진지辰地(동남동), 각수角宿 분야의 금강어보살金剛語菩薩31)인데, 형세가 마치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자태와 같기 때문이다.
중층中層에는 팔금강八金剛32)이 있다. -
0009_0005_a_01L而觸耳。如聞伯夷歎周粟不食採薇之清歌也。南看則胷次快然。大鵬背
0009_0005_a_02L九萬里之南溟也。上仰則綘霄三清之上。如聽玉樞之靈經也。又文殊之
0009_0005_a_03L東隣。地藏峯。正卯地。氐宿分野。左立道明峯。卯乙間。氐亢宿。右立無毒峯。
0009_0005_a_04L甲卯間。房氐宿也。彼十王。其三宋帝峯。東有蒼僻 [3] 。左有業鏡臺。右有沃焦
0009_0005_a_05L臺。中有將軍石與道明峯童子巖。相對為洞門。向地藏峯正脉下。有一局。
0009_0005_a_06L搆地藏菴也。地藏之東。辰地亢宿分野。有日出臺。朝旭先昇。漸至中天。萬
0009_0005_a_07L壑大朗。宋太祖之所吟。未離海底千山暗纔到中天萬國明。此之謂也。此
0009_0005_a_08L山始根卯辰方。氐亢宿分野。有縛石山。西麓屈曲。凹凸迤邐。而來二十里
0009_0005_a_09L許。卯入首。聳起重重。作高祖峯。而來為日出臺。分東南。或高低逐鹿。或九
0009_0005_a_10L龍飲水。或尖凣者顯名。二十峯也。三層上層四。其一。巳方張分宿。金剛拳
0009_0005_a_11L菩薩。峯如人握舉拳之形也。其二。巽巳間翼張宿。金剛索菩薩。峯形若大
0009_0005_a_12L鐵索垂下。釣龍故也。其三。辰巽間軫宿。金剛愛菩薩。形似向人點頭。愛悅
0009_0005_a_13L肯道也。其四。辰地角宿。金剛語菩薩。勢如送別勞勞語態故也。中層八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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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6_a_01L이들은 모두 손사방巽巳方(동남쪽), 장익수張翼宿 분야로, 구룡九龍이 물을 마시니 모두 흰 구름이 흩어지고, 석벽石𤃎의 층층 절벽이 늘어서서 호위하며 읍하는 듯하다. 절 문은 병방丙方(정남동)이며 동구는 별자리(星分)로 나뉘어 진호鎭護하니 외청룡外青龍이 된다. 제1은 사지巳地(정남동), 장수張宿 분야로 청제재금강봉青除災金剛峯이 있다. 제2는 벽독금강辟毒金剛, 제3은 황수구금강黃隨求金剛, 제4는 백정수금강白淨水金剛, 제5는 정제재금강定除灾金剛, 제6은 자현금강紫賢金剛, 제7은 적성금강赤聲金剛, 제8은 대신금강大神金剛이다. 연이어 높고 툭 트인 고개가 이웃하고 이어 우뚝한 세 봉우리를 일으키는데, 이 또한 선인의 춤추는 소매가 절문을 향해 절하는 것이 삼지창三指鎗과 같기에 이름을 창무봉鎗舞峯이라 하였다. 팔금강이 모두 쇠창을 들고 외호하는 모양새다.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2리 정도 가면 몇 길 높이의 바위가 서 있는데, 모습이 용의 뿔 같아 이름을 용각암龍角巖이라 붙였다. 이 바위가 절을 향해 기울다 남쪽에서 봉우리를 일으켜 우진牛津을 누르니, 마치 목마른 용이 물을 얻은 듯하다 하여 용기봉龍氣峯이라 이름 붙였다. 옛말에 이른바 ‘용이 물을 만나 잠기는(龍得水霑)’ 기상(意氣)이다. 홍류동紅流洞 물을 끌어당겨 우진牛津의 물을 마시고 뿜어 아랑포阿郎浦로 굽이져 흐르다 종국에는 함지咸池33)로 돌아간다. 삭금강索金剛과 애금강愛金剛 사이에 오르면 밑으로 벽심현碧樳峴에 이른다. 또 어보살語菩薩봉은 동쪽으로 이어져 돌다 높은 봉우리(孱顏) 하나를 우뚝 일으키니, 이름은 옥소봉玉簫峯으로 익진수翼軫宿(익수, 진수) 분야다. 옛날에 법수法秀 선사34)가 가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후 옥퉁소를 얻은 후 이를 현종에게 바치며 경사로움을 누리도록 기원했는데, 선사가 머문 산을 옥소봉玉簫峰이라 하였다. 지금 두 쌍계안雙溪案이 여기에서 가사를 만들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어보살봉語菩薩峯의 신辛 방향에 있는 옥정봉玉井峯 아래 서편에 옥천玉泉이 있어 칠, 구월 가뭄에도 물이 증감이 없다. 오은지吳隱之35)가 청렴하다 하여도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맑고도 시원하다. 옥정봉 동쪽으로 가는 내(細川)를 넘어 진방각辰方角(동남동쪽)으로 유익봉遊益峯이 솟았으니, 시인과 묵객들이 늘 이 봉우리 아래 큰 반석 위에 쉬고는 한다. 굽이굽이 먼 길에 수고롭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다가, 이리저리 -
0009_0006_a_01L剛。此皆巽巳。張翼宿分野。九龍飲水。皆綻白雲。石𤃎層崖。列立衛揖。寺門
0009_0006_a_02L丙方。洞口星分。鎮為外青龍也。其一曰巳地張宿。有青除災金剛峯。其二
0009_0006_a_03L辟毒金剛。其三黃隨求金剛。其四白淨水金剛。其五定除灾金剛。其六紫
0009_0006_a_04L賢金剛。其七赤聲金剛。其八大神金剛。連有傑爽峴。鱗起卓三峯。亦如仙
0009_0006_a_05L人舞袖。揖向寺門。亦如三指鎗。故名鎗舞峯。八金剛。都執金鎗。而外護之
0009_0006_a_06L儀也。自此峯南去二里許。立數丈巖。形如龍角。曰其巖名也。因此巖。偃向
0009_0006_a_07L寺而南起峯。壓牛津。如渴龍得水。名龍氣峯。古所謂龍得水霑意氣也。控
0009_0006_a_08L挽紅流洞水。吸噴牛津。轉流阿郎浦。終歸咸池也。如上索金剛愛金剛之
0009_0006_a_09L間。低為碧樳峴也。又語菩薩。東連回向。並聳起孱顏一卓。名玉簫峯。翼軫
0009_0006_a_10L宿分野也。昔法秀造袈。奉佛得玉簫。獻玄宗享慶常。居山名玉簫也。今為
0009_0006_a_11L雙溪案造袈於此。故其名也。語菩薩峯。辛有玉井峯下。西有玉泉。七九旱
0009_0006_a_12L雨。無增减。雖吳隱之清。到此一歟。清益爽矣。玉井峯。東越細川。辰方角。分
0009_0006_a_13L起遊益峯。詩彥墨英。每憩此峯下大磐石上。滾滾長程。遊山涉水之勞。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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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7_a_01L배회하며 회포를 풀어 편안하게 쉬는(歇惺) 이익이 있어 유익봉이라 하였다. 비로봉毘盧峰 오른쪽 산줄기에 오르면 서쪽으로 자방子方(정북방), 여수女宿 분야에 봉우리가 솟으니 곧 석가의 화신이다. 그와 이어진 남쪽 영축대靈鷲臺 아래 평평한 일국(平局)이 있는데 기수원祗樹園이 그 안에 자리를 품고 있다. 봉선암의 감좌이향坎座离向은 천왕봉天王峯이다. 석가봉釋迦峯이 서쪽을 향하다 목을 눌러 볼록 솟아 작은 봉우리가 되니 남순봉南巡峯이라 한다. 이로부터 임방壬方(서북쪽), 허수虛宿 분야 들판에 관음봉觀音峯이 솟아나고, 손방巽方(동남쪽)을 향해서 중봉中峯이 있으니 이름을 정주靜住라 하였다. 연이어 아래로 누대가 있으니 이름이 천광千光이다. 만산의 빼어난 색이 모두 비추기도 하고, 또 천광왕정주불千光王靜住佛36)이 관음보살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 원통원圓通苑이 있는데,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쌍계암雙溪菴은 건좌손안乾座巽案이다. 옥소봉玉簫峯에 오르면 왼쪽 사명당四溟堂과 오른쪽 향파당香波堂 사이에 원통문圓通門이 있다. 좌우 협곡으로 맑은 시내와 옥 같은 샘물이 빙빙 섞여 맴돌다가 백로지白鷺池로 교차하여 쏟아진다. 관음봉觀音峯 오른쪽 맥 아래로는 향위向危 해방亥方(북서쪽)으로 봉우리가 있는데 용왕봉龍王峰이다. 건방乾方(서북쪽) 실수室宿 분야 보현봉普賢峯 아래는 남쪽에는 보현암普賢菴이, 동쪽에는 극락대極樂臺가, 아래에는 극락암極樂菴이 있다. 극락암 남쪽 보현봉부터 끼고 있는 고개 하나(一項)가 있는데, 솟구쳐 올라 오성대五性臺가 되었다. 밖으로는 둘러 하나가 되며, 띠 안으로는 다섯 개의 대가 된다. 제1은 보살대菩薩臺, 제2는 벽지대辟支臺, 제3은 나한대羅漢臺, 제4는 신향대信向臺, 제5는 회심대回心臺다. 제2와 제3 사이에는 진향루進香壘가 있는데, 오대에 올라 위에 있는 삼장三藏, 삼신봉三身峯에게 차례로 서서 절하는 것 같아 배축봉拜祝峯이라고 한다. 또 오성五性이 삼신三身에게 향을 올리는(進香) 의미가 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내백호內白虎와 내청룡內青龍이 되어 시왕봉十王峯과 마주하니, 이것이 안쪽의 첫 번째 동구가 된다.
내백호는 형세가 외부로는 하나의 띠요, 내부로는 다섯 봉우리(凸)가 있으니 사람이 다섯 가지 보물(五寶)37)을 패용한 것과 같으므로 풍취라대안風吹羅帶案이 된다. 보현봉普賢峯에 오르면 왼쪽 맥 초입에 -
0009_0007_a_01L桓消遣。得其歇惺之益故也。如上毘盧右臂。西連子方女宿分野起峯。釋
0009_0007_a_02L迦化身也。厥鱗南靈鷲臺下。有平局。祗樹園。藏其占。鳳僊菴。坎座离向。天
0009_0007_a_03L王峯也。釋迦峯。因向西。鎮壓喉。凸為小壘。名南巡峯。因茲壬方虛宿。野起
0009_0007_a_04L觀音峯。向巽作中峯。號靜住。連下有臺。名千光。萬山秀色摠暎。又千光王
0009_0007_a_05L靜住佛。為觀音之師故也。因伊下有圓通苑。點其內。雙溪菴。乾座巽案。如
0009_0007_a_06L上玉簫峯也。左翼四溟堂。右翼香波堂間。有圓通門也。左右峽谷。清澗玉
0009_0007_a_07L泉洄抱。交注於白鷺池也。觀音峯右脉低下。向危亥方作壘。號龍王峯。因
0009_0007_a_08L乾方室宿。有普賢峯下。南有普賢菴。東有極樂臺。下極樂菴。自極樂南普
0009_0007_a_09L賢。挾為一項。而起聳為五性臺。外繞為一。帶內纍 [4] 為五臺。其一菩薩臺。其
0009_0007_a_10L二辟支臺。其三羅漢臺。其四信向臺。第五回心臺。其二其三兩間。有一進
0009_0007_a_11L香壘。上五臺。列揖拜於上三藏三身峯。名曰拜祝峯。又五性。進香於三身
0009_0007_a_12L之意。謐驗為內白虎與內青龍。十王峯相對。為內第一洞口也。內白虎。形
0009_0007_a_13L若外一帶內五凸。如人佩五寶之故。風吹羅帶案也。如上普賢峯。左脉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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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8_a_01L현경대懸鏡臺가 있으니, 가로지른 바위 섬돌이 마치 거울(鏡石)과 같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그 줄기가 남으로 달려 미방未方, 정수井宿 분야 들판에 볼록하게 하나의 대를 이루었는데, 사방이 툭 트여 때 묻은 마음을 잊게 하기 때문에 이름을 호연浩然(봉)이라 하였다. 곧장 남쪽으로 가면 오방午方(정남쪽), 유수柳宿 들판에 천왕봉天王峯이 있는데, 온 산의 힘을 다하여 몸을 들려 하고, 다시 사왕봉四王峯에 오르니 풍취라대안風吹羅帶案이다. 주봉은 무선舞仙으로 그 남쪽으로 삼봉三峯이 늘어서 있고, 그 북쪽 아래로는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천룡봉天龍峯이며, 서쪽으로 이웃하여 제석대帝釋臺가 있다. 오봉五峯에 오르니 모두 사왕四王을 외호하고, 천룡이 외호하는 위의가 있다. 이것이 두 번째의 외백호外白虎인데, 외청룡外青龍 팔금강八金剛과 함께 막아 바깥 동구洞口가 된다.
병방丙方(남동쪽), 성수星宿 분야로, 또 관음봉觀音峯에 오르면 곧은 어깻죽지가 곧장 술지戍地(서북쪽), 규수奎宿 분야로 향하다가 봉우리를 일으켰는데, 마치 미륵봉彌勒峯 북쪽에 서 있는 수 척의 바위(數丈巖)와 같이 북을 지탱하고 있으니 이름이 헛되이 전하는 것이 아니다. 보현봉普賢峯과 함께 남미륵南彌勒봉의 주산이 되어 평국平局을 여니 도솔내원兜率內院이다. 미륵 서쪽에 이웃하여 신방辛方(북북서쪽), 누수婁宿 방면으로 봉우리가 일어나니 형세가 마치 달마達摩가 짚신 한 짝을 들고 비스듬히 서쪽을 향하여 돌아가는 것 같아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예繄에서 태兌(서쪽) 방향으로, 위수胃宿 분야에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모습이 마치 반주미타般舟彌陁와 같은 고로 이름을 미타봉彌陁峰이라 하였다. 아래쪽으로는 풍간대豐干臺가 있어 미타암彌陁菴을 점장占藏하였다. 대는 연이어 남쪽으로 흘러가서 신지申地(서남서쪽), 삼자수參觜宿(삼수, 자수) 분야로 험준하고 높깊은 봉우리가 줄지어 일어나 다섯 봉우리가 구름 위로 다투듯 솟아오르니 서촉西蜀의 아미산峨嵋山과 흡사하고 여산廬山의 오로봉五老峰과 비슷하다. 절의 서남쪽에는 아랑阿郎과 소양昭陽의 두 포구, 우연虞淵38), 장산長山, 백령白翎, 대청大靑, 소청小青이 띠처럼 눈앞에 비껴 펼쳐졌다. 이태백李太白이 읊은「아미산에 반달 솟은 가을39), 그림자는 평강에 떨어져 강물 따라 흐르네(峨嵋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운운」한 것과 또「여산 서남쪽 오로봉, 맑은 하늘에 금부용을 깎아 세운 듯한데, 구강의 물 맑아 손으로 뜰 만하니, 내 장차 이 땅에 -
0009_0008_a_01L有懸鏡臺。橫巖砌上。如鏡石在故也。因其脉走南。未方井宿野。壘為一臺。
0009_0008_a_02L四隅通望。忘塵心故。名浩然也。直向南去。午方柳宿野。天王峯。欲窮山舉
0009_0008_a_03L軆。更上四王峯。風吹羅帶案。主是舞仙。容連其南列三峯。又其北下有小
0009_0008_a_04L峯。為天龍峯。西隣有帝釋臺。上五峯。皆外護四王。與天龍擁護之儀也。此
0009_0008_a_05L為第二外白虎。與外青龍八金剛。相鎖為外洞口也。丙方。星宿分野也。又
0009_0008_a_06L上觀音峯。直臂直向戍地奎宿分野起峯。形若彌勒峯北立數丈巖。形同
0009_0008_a_07L撐北。故名不虗傳也。與普賢峯。為南彌勒為主。開平局。兜率內院也。彌勒
0009_0008_a_08L西隣。辛方婁宿起峯。形若達摩。携隻履偃向西歸。故名其名也。自繄至兌。
0009_0008_a_09L胃宿野。起峻嶂。貌擬般舟彌陁。故題其為彌陁也。下有豐干臺。占藏彌陁
0009_0008_a_10L菴也。臺連南去。申地參觜宿並野。峭㠔岑巆。嵯峨列作。五嶂競秀雲端。侔
0009_0008_a_11L西蜀之峨嵋。擬廬山之五老。在寺之西南。况帶阿郎昭陽兩浦。虞淵。長山
0009_0008_a_12L白翎大小青。橫襟眼前。太伯之所吟。峨嵋山月半輪秋。影入平羌江水流。
0009_0008_a_13L云云。又廬山西南五老峯。青天削出金芙蓉。九江水碧可纜結 [5] 。吾將此地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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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09_a_01L구름 속 솔에 깃들리라(廬山西南五老峯, 青天削出金芙蓉, 九江水碧可纜結, 吾將此地巢雲松)」40)한 것은 여기에 적당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아미峨嵋, 혹 부용芙蓉, 혹 오로五老, 혹 백운봉白雲峯이라 하였다. 이 봉우리는 절을 향해 곤지坤地(남서쪽)에 서 있어 셋째 겹의 안산案山이 된다. 여기에서 남으로 떠나 이리저리 굽이쳐 가파른 벼랑으로 오르락내리락 흘러가다가 병방丙方(정남동쪽)에 고개 하나(一項)가 있으니 무현巫峴이다. 무현에서 사방巳方(남동쪽), 장수張宿 분야로 장구봉長久峯 남쪽과 용기봉龍氣峯이 대치하여 용의 기운을 상쇄한다. 밖으로는 우진牛津 위로 장구봉이 있고, 안으로는 무현촌 앞에서 서로 막고 있어, 셋째 동구를 이루었다.
또 미타봉彌陁峯 서쪽으로 이웃하여 경지庚地(서남쪽), 묘수昴宿 분야에 반야봉般若峯이 있다. 이름하여 반야다라대세지般若多羅大勢至 보살의 응신應身인 풍간조사豐干祖師, 아미타불의 후신인 달마대사達摩大師, 그리고 관음보살의 응신이다. 1불 2보살이 솥발처럼 삼각형으로 대치하여 참으로 3종의 정관正觀과 같으니, 이름이 괜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또 반야봉般若峯 서쪽으로 이웃하여 신지申地(서남쪽), 필수畢宿 방면에 백련봉白蓮峯이 있다. 흰 돌이 빙 둘러싸여 연못 가운데 봉오리가 터진 것 같은 백련白蓮의 모습이 뚜렷하다. 게다가 미타불은 안양지安養池 백련대白蓮臺 위에 거처하며 곳에 따라 몸을 나타내고 돌아보며 중생을 구제하며, 먼 곳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어 청정해지는 까닭이다. 깊숙하고 구불구불 이어진 곳에 하나의 동천洞天이 있으니 이름은 성재聖齋이다. 또 이웃하여 다라굴多羅窟이 있는데, 그 중심은 십여 인이 앉아 몸을 숨길만 하므로 이름을 소림少林이라 하였다. 소림은 달마가 서천에서 위魏 나라로 와서 소림에 숨어 앉아 9년 동안 의연히 면벽한 곳이다. 그 봉우리 태방兌方(서쪽)에서 경금방庚金方(서남쪽)으로 돌아가면 하나(一項)의 성현城峴이 있다. 과거에 진조 용허秦祖龍虛가 축성했는데 웅장한 성첩城堞이 의구하다. 고개에는 하나의 보루堡壘가 있어 대사臺榭를 설치한 듯 흡사한데, 혹은 사선대四仙臺라 하기도 한다. 신라 때 아랑阿郎, 영랑永郎, 남석징南碩澄, 안석백安碩[忄+百]이라는 네 화랑41)이 서해를 두루 유람할 때 학림鶴林에서 노닐다가 이 산에 올랐는데, 기린 포(麟脯), 깃털 일산으로 덮은 수레(羽盖), 오이 대추瓜棗42)의 유관을 하다 낙조落照에 고래 파도 일렁이는 백사장의 붉은 해당화 풍경을 음영하며 돌아갔다. 백령도는 김극기金克己의 -
0009_0009_a_01L雲松並為當此也。故號峨嵋。或芙蓉。或五老。或白雲峯也。此峯向寺坤立。
0009_0009_a_02L為第三疊案也。自此南去。彼屈伸此屈伸。峭崿偃仰而去。丙方一項。名巫
0009_0009_a_03L峴。因峴巳方張宿野。峙長久峯南。與龍氣峯。相鎖龍氣。在外。牛津上長久。
0009_0009_a_04L在內。巫峴村前交衛。作第三洞口也。又彌陁峯西隣。庚地昴宿分野。有般
0009_0009_a_05L若峯。曰般若多羅大勢至應身豐干祖師。阿彌佛後身達摩大師。觀音菩
0009_0009_a_06L薩應身也。一佛二菩薩。鼎峙品插。儘若三種正觀。故名不虗得也。又般若
0009_0009_a_07L峯之西隣。申地畢宿。有白蓮峯。白石周疊。若池中綻白蓮之的歷。况彌陁。
0009_0009_a_08L居安養池白蓮臺上。應現隨處。隨顧度生故。不在遠而在心淨故也。其窈
0009_0009_a_09L窕。樛藟忐忑。有一洞天。名聖齋。亦有隣多羅窟。心可坐十餘人隱身。故名
0009_0009_a_10L少林。達摩自西至魏。隱坐少林。九載面壁依然也。厥峯兌繞廻庚金方。有
0009_0009_a_11L一項城峴。昔秦祖龍虛築之。雄堞依舊。峴有一壘。如置臺榭胥儲。而或謂
0009_0009_a_12L四仙臺。新羅時阿郎永郎南碩澄安碩▼(忄+百)四郎。徧遊西海。翫鶴林而登此。
0009_0009_a_13L麟脯羽盖瓜棗之遊觀。落照鯨波白沙紅棠之景。吟賞而歸。白翎也。金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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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彌陁峯西隣, 庚地昴宿分野, 有般若峯, 曰般若多羅大勢至應身豐干祖師, 阿彌佛後身達摩大師, 觀音菩薩應身也. 一佛二菩薩, 鼎峙品插, 儘若三種正觀, 故名不虗得也. 又般若峯之西隣, 申地畢宿, 有白蓮峯. 白石周疊, 若池中綻白蓮之的歷. 况彌陁, 居安養池白蓮臺上, 應現隨處, 隨顧度生故, 不在遠而在心淨故也. 其窈窕, 樛藟忐忑, 有一洞天, 名聖齋. 亦有隣多羅窟, 心可坐十餘人隱身, 故名少林. 達摩自西至魏, 隱坐少林, 九載面壁依然也. 厥峯兌繞廻庚金方, 有一項城峴, 昔秦祖龍虛築之, 雄堞依舊. 峴有一壘, 如置臺榭胥儲, 而或謂四仙臺. 新羅時阿郎永郎南碩澄安碩[忄+百]四郎, 徧遊西海, 翫鶴林而登此, 麟脯羽盖瓜棗之遊觀, 落照鯨波白沙紅棠之景, 吟賞而歸. 白翎也, 金克己詩曰.「四仙去後無真賞, 空刷鸚衣立晚輝」(云云). 此為良勘也. 此臺回向, 寺之坤立參觜分野, 鎮作森儼, 青壁巑岏, 難緣攀躋之頂. 天鑿玉井, 清泉自湧, 緇素鑽身鳥道時, 有禩嚮聖齋, 故得其號. 為寺之第四疊案. 對詩曰.「泰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入口痾痊甘如蜜, 青㠔無路難夤緣」. 以此亦名泰華峯也.
0009_0010_a_01L시에「사선四仙이 떠난 후 진정으로 감상한 이 없으니, 앵의鸚衣만 공연히 쓰다듬으며 저녁놀에 서 있노라」(운운) 하였으니, 진실로 잘 묘사한 것이다. 이 대를 돌아가면 절의 곤방坤方(남서쪽)에서 삼자수參觜宿(삼수, 자수) 분야에 진영鎮山이 삼업하고, 푸른 벽이 뾰족하여 잡고 오르기 어려운 봉우리가 있다. 하늘이 옥정玉井을 뚫어 맑은 샘물이 저절로 흘러넘치니, 승속에서 조도鳥道를 찬신鑽身할 때 성재聖齋를 향해 제사하여 그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 절의 넷째 겹의 안산(四疊案)이 된다. 대구하여 시를 읊되,「태화봉泰華峯 정상 옥정玉井의 연꽃, 꽃 피자 열 길 연근蓮根 배(船)만 하더니, 먹으면 묵은 병에 꿀처럼 달 터인데, 청벽에 길이 없어 올라가기 어려워라.」 하였으니 이로써 이름을 태화봉泰華峯이라 하였다.
또 골짜기(洞)에 이름난 곳이 열두 곳이 있다. 동에서 서로 차례대로 적어 보겠다. 제1은 유익봉遊益峯과 옥정봉玉井峯 사이로, 골짜기에 푸른 돌이 좌우에 깔려 있어 그 이름을 쓴 것이다. 제2는 유익봉 간지艮地(동북쪽)와 지장봉地藏峯 남쪽 사이로, 골짜기가 열린 곳에 크고 반반한 돌이 있어 그리 이름하였다. 옛말에「물이 청룡이 되니, 반석제磐石堤가 나란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제3은 지장봉 서쪽과 시왕봉十王峯 동쪽 사이로, 내환희원內歡喜園 지장동地藏洞이라는 이름을 단 곳이다. 그 이름이 실로 속임이 없도다. 제4는 시왕봉 서쪽과 비로봉 동쪽 사이로, 백암동白巖洞이 비점秘占해 둔 백학암白鶴菴이다. 제5는 비로봉 서쪽과 석가봉 동쪽 사이로, 화암동禾巖洞 석가봉釋迦峯이 있고, 그 좌협左脇에 월랑뢰月朗磊가 있고, 또 고장암庫藏巖이 있으니, 이는 수만 개나 되는 돌이 높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제6은 석가봉 서쪽과 관음봉觀音峯 동쪽 사이로, 당산堂山에 국사단國師壇이 있어 그 이름을 달았다. 제7은 관음봉觀音峯 서쪽과 보현봉普賢峯 동북쪽 사이로, 입암笠巖(삿갓바위)이 있어 그 이름으로 부른다. 제8은 대도량大道場으로, 무릎 앞(膝前)에 널찍한데, 봄에는 도화가 붉고 가을에는 단풍이 고우며, 꽃잎이 강물을 물들이며 흘러가 그 이름을 홍류동紅流洞이라 지었다. 이곳은 여러 골짜기 물이 합하여 흘러 들어가는 곳이다. 제9는 내백호內白虎 서쪽과 -
0009_0010_a_01L己詩曰。四仙去後無真賞。空刷鸚衣立晚輝。云云。此為良勘也。此臺回向。寺
0009_0010_a_02L之坤立參觜分野。鎮作森儼。青壁巑岏。難緣攀躋之頂。天鑿玉井。清泉自
0009_0010_a_03L湧。緇素鑽身鳥道時。有禩嚮聖齋。故得其號。為寺之第四疊案。對詩曰。泰
0009_0010_a_04L華峯頭玉井蓮。開花十丈藕如船。入口痾痊甘如蜜。青㠔無路難夤緣。以
0009_0010_a_05L此亦名泰華峯也。又洞顯名處有十二。自東至西。編次嘗試。其一曰遊益
0009_0010_a_06L峯與玉井峯間。穿一谷青石。左右鱗鋪。故署厥號也。其二遊益峯艮地藏
0009_0010_a_07L峯南間。闢一谷。有大磐石扁。伊名。古云。水作青龍。磐石堤較現也。其三地
0009_0010_a_08L藏峯西十王峯東兩間。內歡喜園地藏洞揭之額也。渠實不詭哉。其四十
0009_0010_a_09L王峯西毘盧峯東兩間。有白巖洞秘占白鶴菴也。其五毘盧峯西釋迦峯
0009_0010_a_10L東兩間。有禾巖洞釋迦峯。左脇有月朗磊。亦有庫藏巖。累鉅萬石。露積嵬
0009_0010_a_11L然故也。其六釋迦峯西觀音峯東當 [6] 。有當山 [7] 國師壇。名其名焉。其七觀音
0009_0010_a_12L峯西普賢峯東北間。有笠巖。呼其名也。其八大道場。膝前寬宥。春桃紅秋
0009_0010_a_13L艷楓。染水交流。題其號紅流洞也。此為諸洞水總合者也。其九內白虎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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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1_a_01L외백호外白虎 동쪽 사이 골짜기로, 황룡이 나왔다 하여 그 이름으로 삼았다. 옛날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빚어 만들 때 황색 전단토旃檀土를 여기에서 채취하였다. 또 왕비룡王飛龍 괘卦인 고로 그대로 이름한 것이다. 제10은 보현봉普賢峯 서쪽과 미륵봉彌勒峯 남쪽의 골짜기 사이로, 열 길의 높은 폭포가 있으니 골 이름은 청학동青鶴洞이다. 남쪽으로 기암奇巖 하나가 있어 황홀하게 청학루青鶴樓가 되니, 그것으로 이름을 표한 것이다. 제11은 달마봉達摩峰 남쪽과 미타봉彌陁峰 동쪽 사이로, 금수동金水洞이 있으니 금석金石이 물가에 섞여 있어 그것을 이름으로 한 것이다. 제12는 미타봉 서쪽과 반야般若 백련白蓮 두 봉우리, 남태화南泰華 아미峨嵋 두 봉우리, 그리고 북쪽 오봉五峯 사이에 한 골짜기가 있어 이름을 백운동白雲洞이라 한다. 뭉게뭉게 흰 구름이 흩어져 혹 동쪽으로 뭉쳤다가 서쪽으로 퍼지고, 북쪽으로 담았다가 남쪽으로 열린다. 봉우리는 다섯이요 계절은 사계이니, 베를 짠 듯 찢은 듯 공허하지 않기에 그것을 표방하여 이름한 것이다. 그 골짜기 물은 아미산과 태화산 사이로 주옥같은 물방울을 뿜고 달리는데, 안으며 뚫으며 약목若木과 영발瀛渤(발해) 사이로 흘러 들어간다.
또 골짜기 물(洞水)이 열 줄기로 흐르는데, 총별總別하여 합류하는 것을 묘방卯方(동쪽)에서 태방兌方(서쪽)으로 엮어 본다. 제1은 청석동青石洞 물, 제2는 반석동磐石洞 물, 제3은 지장동地藏洞 물이며, 세 물줄기가 합해진다. 제4는 백암동白巖洞 물로, 오른쪽 세 줄기와 합하여 동쪽 갈래가 된다. 이들은 다시 홍류동紅流洞 물로 유입되어 제5 물줄기의 원류(宗源)가 된다. 제6은 화암동禾巖洞 물, 제7은 국사동國師洞 물, 제8은 입암동笠巖洞 물인데, 세 물줄기가 합하여 흘러들어 홍류동 물의 근원이 된다. 제9는 황룡동黃龍洞 물, 제10은 금수동金水洞 물인데, 오른쪽 세 갈래와 합하여 서쪽 갈래가 된다. 저 동쪽 갈래를 모아 함께 홍류동으로 들어가 종원宗源으로 합류한 후 용기봉龍氣峯 아래 우진牛津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방향을 틀어 아랑포阿郎浦로 들어간 후 마침내 넓은 바다(滄溟)로 돌아간다.또 일곱 우물(七井)이 있는데, 이 또한 동에서 서로 나열한다. 혜惠가 말하기를, 제1은 보응당普應堂 震方(동쪽)에서 샘솟은 옥루정玉漏井, 제2는 대도량 슬하膝下의 -
0009_0011_a_01L外白虎東兩間洞。黃龍出其名者。昔四天王造塑像時。黃色旃檀土。鑿取
0009_0011_a_02L於此。亦乃王飛龍之卦。故立伊實也。其十普賢峯西彌勒峯南兩峽間。有
0009_0011_a_03L十丈之懸瀑。洞名青鶴洞。南有一奇巖。况然青鶴樓。遲作渠標也。其十一
0009_0011_a_04L達摩南彌陁東兩間。有金水洞。金石雜布澗底。揭其題也。其十二彌陁峯
0009_0011_a_05L西般若白蓮兩峯南泰華峨嵋兩峯北五峯間。有一壑。名白雲洞。靉靆白
0009_0011_a_06L綻。或東卷則西舒。北籠則南褰。峯其五。時其四。織裂不空掛其榜也。其洞
0009_0011_a_07L水。峨嵋泰華兩山之間。噴珠跳玉。抱穿流入於若木瀛渤之間也。又有洞
0009_0011_a_08L水十派。緫別合流者。從卯▼(自/衣)兌綴。論其一曰青石洞水。其二磐石洞水。其
0009_0011_a_09L三地藏洞水。三合也。其四白巖洞與右三合為東派。流入紅流洞水。當其
0009_0011_a_10L第五宗源也。其六禾巖洞水。其七國師洞水。其八笠巖洞水。三合流入紅
0009_0011_a_11L流源也。其九黃龍洞水。其十金水洞水。與右三別。合為西派。扼彼東派。總
0009_0011_a_12L入於紅流洞。宗源合流。注入于龍氣峯下牛津。轉入於阿郎浦。終歸滄溟
0009_0011_a_13L也。又有七井。亦自東之西。惠曰。其一普應堂震湧玉漏井。其二大道場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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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2_a_01L명려정明麗井, 제3은 어로御路 아래 있는 척진정滌塵井, 제4는 절의 신방辛方(북북서쪽) 조지소造紙所에 있는 석수정石髓井, 제5는 봉선장鳳仙墻 내 갑방甲方(동북쪽)에 있는 인류정引流井이다. 낙빈왕駱賓王이 읊은,「취령은 울창하고 드높은데, 용궁은 문 닫혀 적료하구나. 덩굴 잡고 탑에 오르는 길 멀어, 나무 통(刳木)으로 먼 샘물 끌어온다네.」43)라 하였으니, 정곡을 찌른 말이다. 제6은 국사단國師壇 태방兌方(서쪽)에 있는 감무정甘霧井이다. 제7은 쌍계원雙溪垣 내 갑방甲方(동북쪽)에 있는 석두용石竇湧이다. ≺옥천수玉泉水≻ 시에 말하기를,「샘물에 구슬이 있으면 마르지 않고, 산에 옥이 있으면 더욱 윤택하다」44)라고 한 것은 이곳에서 읊은 시구로다. 또한 연못, 여울목, 깊은 못 등 서쪽에서 남쪽에 이르기까지 움푹 팬 곳이 일곱 곳이다. 쌍계雙溪의 태금兌金(서쪽)에서 말해보자. 제1은 세삼뢰洗蔘瀨, 제2는 묘촉당妙觸塘, 제3은 화엄대華嚴臺 북쪽 웅덩이 벽송담碧松潭, 제4는 화엄대 서쪽 청계정聽溪亭 아래 백록지白鷺池, 제5는 기수원祗樹園 아래 녹음추綠陰湫, 제6은 절의 경신방庚辛方(서북쪽), 누수婁宿 분야에 있는 사문소赦門沼이다. 물이 흐르며 여러 기이한 곳을 만나니, 만약 이 못이 없었다면 (풍류객이) 소일하기 어려울 것이다. 매번 막힌 웅덩이(防瀦)를 만나면 곧 험한 것도 얼음 녹듯 녹으니 가장 길한 곳이다. 제7은 관감소鸛感沼로, 내청룡內青龍의 서쪽 언덕에 있는 홍류동이 사방巳方(남동쪽)으로 펼쳐진 곳이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옛날에 김춘운金春雲이라고 하는 명문가 인사가 있었다. 이 제방 위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집 앞에는 방죽이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짙푸른 물속에 용 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보였다 안 보였다 하였다. 어느 해인가 소나무 위에서 황새가 새끼를 키우는데, 어느 날 학이 층층 구름을 스치고 구름 속으로 빙빙 돌며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놀라 나와 쳐다보니 소나무 위에 괴물이 꿈틀꿈틀하며 빠르게 올라가 거의 학 둥지에 다가갔다. 이때 학은 백방으로 날개를 휘두르며 침착하게 괴물을 쫓아냈으니, 자식을 보호하는 애달픈 마음은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새가 부리로 찌르고 쫓아버리자 물속의 괴물은 몸이 찢기고 떨어져 죽었다. 부섶(火薪)에 놓여있던 황새는 다시 아무 일 없이 새끼를 기를 수 있었다. 그해 가을 소나무 아래 버섯이 자라났는데, 춘운이 버섯을 땄으나 -
0009_0012_a_01L下明麗井。其三御路下有滌塵井。其四寺辛方造紙所石髓井。其五鳳仙
0009_0012_a_02L墻內甲有引流井。駱賓王之所吟。鷲嶺鬱岹嶢。龍宮鎖寂寥。攀蘿登塔遠。
0009_0012_a_03L刳木取泉遙。此可䟽言歟。六國師壇兌有甘霧井也。七曰雙溪垣內甲石
0009_0012_a_04L竇湧。玉泉水詩云。泉有珠而不枯。山有玉而增潤。到斯朗詠也。又有池塘
0009_0012_a_05L瀨沼潭湫。自西至南。鑿滙七處。自雙溪兌金。有其初洗蔘瀨。其二妙觸塘。
0009_0012_a_06L其三華嚴臺北潴碧松潭。其四華嚴臺西聽溪亭下白鷺池也。其五祗樹
0009_0012_a_07L園下綠陰湫也。其六曰寺庚辛方婁宿野。有赦門沼。運值數奇。若非此沼。
0009_0012_a_08L則難可消遣。每會防瀦。則險若氷銷。最可吉也。其七曰鸛感沼。內青龍之
0009_0012_a_09L西堰。紅流洞之已張也。諺曰。昔者金春雲。為名人家。於此堰上。有一老松。
0009_0012_a_10L家前有一沼。青墨無覷中。有物似龍。非 [8] 蟠蜒隱現矣。年有鸛 [9] 巢。松上養雛。
0009_0012_a_11L而一日鶴拂掠層霄。回翔雲頭。大呌震動。驚出仰瞻。松上恠物。屈伸抱走。
0009_0012_a_12L幾近鶴巢。百般揮之。自若走逼。憐其養之慾。與人無異。趁以鳥衝放。火 [10] 中
0009_0012_a_13L之恠物。裂身墮斃。以火薪之鸛。即還無故養去。厥秋松下生菌。春雲摘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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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3_a_01L이상한 생각이 들어 절의 스님들에게 보냈고, 스님들이 기일忌日에 이를 나누어 부쳐 먹었으나 아무 일이 없었다. 춘운이 절에 도착한 후 스님들이 음식상을 차려 공양을 권하였다. 그가 버섯 그릇에 젓가락을 댈 대, 갑자기 예전의 의심스러운 일이 떠올랐으나 곧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그 버섯 물이 젓가락에 젖어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살과 배가 항아리같이 부풀어 올라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곧 집으로 돌아와 하늘을 우러러 소리쳤다. “황새야, 황새야, 네 새끼 살리려다 이 죽을병에 걸렸구나.” 황새가 이를 듣고 어디선가 날갯짓을 하며 내려와 부리로 이리저리 여러 차례 살과 배 위에 쓰다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점점 배 아래로 쏟아지며 나오는 것이 있었으니 곧 조각조각 끊어진 큰 용(大虬)이었다. 모두 쏟아낸 다음 배는 다시 예전처럼 살아났다. 이는 은혜에 감사하여 덕으로 보답한 것이기에 이름을 관감소鸛感沼라 하였다. 괴물이 방죽에 있을 때는 물이 깊었는데, 죽은 후에는 얕아졌으나 이름은 전하고 있으니, 이는 가히「기러기는 하늘로 날아가나 모래에 자국을 남기고, 사람은 황천으로 떠나나 이름은 집에 남아 있네.」라 할 만한 것이다.
또한 송월산松月山은 여러 산 중에 가장 존귀한 산이다. 왜 그러한가. 나무 중에 귀한 것은 종려(椶櫚)나무, 대나무, 야자나무(椰), 참죽나무(椿), 가죽나무(樗) 등이니 어찌 희귀하지 않겠는가. 해설에 말하기를「참죽나무와 가죽나무는 장자 노자가 매우 귀하게 여겼고, 야자나무는 곧 진晉 일사逸士의 취흥이로다. 대나무는 곧 왕헌지王獻之45)가 은미한 시를 읊을 때(微詩)46) 뿔잔(觥)을 대신하던 좋은 나무이며, 종려(椶櫚)나무는 곧 칼과 채찍에 장식(刀鞭莊)하기에 귀하게 여기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보면 소나무는 곧 사시四時에 절개를 고치지 않으며, 오랫동안 봄을 띠며 서리와 눈도 이겨내니 군자가 절의를 지키는 것과 같다. 궁궐에 이르러 관곽棺槨에 이 나무가 아니면 무엇을 이용할 수 있으랴. 예로부터(繇繄) 고금古今의 높거나 낮거나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것이다. 달은 긴 밤 어둠을 깨치는 여러 별 가운데 가장 청량한 것으로, 만고의 시인들이 만약 풍월이 없었다면 시구가 청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松, 月)를 겸하여 산 이름으로 삼았으니, 여러 산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다. 또 사실을 말하자면, 곧 신라 진덕왕眞德王 말기, 당 예종睿宗이 붕어崩御하시고 현종玄宗이 즉위한 개원開元 계축년癸丑年에 선황先皇 대행大行이 -
0009_0013_a_01L疑恠。傳給寺僧。僧有忌日。煎用分食。無故。春雲赴後。請具饌排盤中。菌器
0009_0013_a_02L插筋 [11] 。而奄生前疑。即抽筯他物。執而食之。厥菌水。塗筯兼入口中。因膚腹
0009_0013_a_03L如瓮。幾至死境。載而歸家。仰天喟曰。鸛耶鸛耶。欲活爾雛之致遇此死病。
0009_0013_a_04L鸛聞此。自何而來。刷羽而下。以觜縱橫。累劃膚腹上。須臾腹還。漸低下注
0009_0013_a_05L所出者。大虬段斷。流盡腹還。如舊快蘇。此其為感恩報德。故名鸛感沼也。
0009_0013_a_06L恠物在時水深。而斃後水淺而名傳。可謂鴻飛天末跡留沙。人去黃泉名
0009_0013_a_07L在家也。又松月山者。羣山之中最貴也。何以然耶。木亦貴者。椶櫚竹椰椿
0009_0013_a_08L樗等。豈非希貴耶。觧曰。椿樗則莊老家徧貴也。椰子則晉逸士之醉興也。
0009_0013_a_09L竹則王獻之微詩贖觥之好樹也。椶櫚則刀鞭莊之只貴也。今松則四時
0009_0013_a_10L不更節。長帶春而傲霜雪。有若君子之守義也。至於宮闕。棺槨非此。取何
0009_0013_a_11L用也。繇繄。通古今尊卑之所貴者也。月者。破暗永夜。眾辰之中最清涼也。
0009_0013_a_12L萬古詩人。若無風月。詞不得清。兼此二者。名其山額。故為羣山之最勝也。
0009_0013_a_13L又實論則新羅真德王末。大唐睿宗崩。玄宗即位。開元癸丑年。先皇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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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4_a_01L유궁幽宮을 정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근심에 있던 중 꿈에 금인金人을 뵈었는데, 금인이 말하기를「조선 낭주朗州(영암) 월남月南의 도선道詵을 데리고 오라.」 하였다. 현종은 잠을 깬 후 사신을 월남에 파견하여 도선을 데리고 왔다.
유궁幽宮을 정한 후 개원開元 3년(715) 을묘년 오월 초파일, 현종玄宗은 예부중랑禮部中郎 장흡張洽을 재조관賚詔官으로 보내 당양當陽의 산기 사문山起沙門 일행一行47)을 뵙고 국사의 비결을 물었다. 후에 도선은 일행이 있는 곳에 나아가 배우고 견문을 넓히며, 조선의 국도國圖를 바쳤다. 일행은 곰곰이 보고 말하였다.「그대 나라의 산천은 토병土病이 번다하여 만약 그대로 두면 곧 삼한이 구한九韓으로 변하고, 흉년에 백성들은 괴로움을 받고, 병혁兵革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삼천 팔백의 사탑寺塔, 지석支石, 부도浮屠로 나라의 맥을 눌러 바로 잡도록 하라. 토병은 곧 사람의 병맥과 같으니 쑥뜸을 뜨면 묵은 병이 나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도에 삼천 팔백 곳을 붓으로 찍어 주었다. 또 일봉一封의 단서丹書와 봉급封給을 주었다. 도선은 물러나 조선朝鮮 송악산松岳山 아래 왕융王融 집안으로 돌아와 일행이 부탁한 단서를 왕융에게 주며 말했다.「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여덟 살이 되기를 기다려 봉함을 열어 보여주시오.」 그 후 팔 년이 지나 열어 보니 ‘삼한三韓을 통일하여 일국의 왕이 될 왕 모王謀’라 적혀 있었다. 왕융은 즉시 다시 봉하여 감추어두었다. 왕 태조가 등극한 후 도선을 국사로 삼고, 공경公卿을 모아 팔관대재八關大齋를 열었다. 그리고 일행一行의 가르침에 따라 수많은 사탑을 지을 때, 이 절 마당에 있는 이십 칠층 탑도 이때 차례로 지어졌다. 송악에서부터 지을 때 월남도인月南道人의 공훈을 잊지 않은 까닭에 산 이름을 송월이라 했으니, 이것이 그 역사적 사실이다.
학림鶴林이라는 이름에 대해 말해보자. 옛날 붉은 눈썹(紅眉)48)의 도깨비불이 해서海西 의 하늘에 수년에 걸쳐 있어, 절이 등나무 줄기로 덮여 황폐해졌다. 그 후 남도에서 양민을 강제로(勒良) 해서에 이주시키자 승도僧徒들도 모여들어 덩굴 속에서 이 절을 찾아냈다. 몇 년이 지날 즈음 -
0009_0014_a_01L幽宮未占。久憂中。夢見金人云。朝鮮朗州月南道詵。引來應云。玄宗覺而
0009_0014_a_02L命遣使于月南。得道詵而還。占得幽宮後。開元三年乙卯五月初八日。玄
0009_0014_a_03L宗送禮部中郎張洽賚詔。詣當陽山起沙門一行而來。國事問訣。後道詵
0009_0014_a_04L詣一行處。學廣見聞。以朝鮮國圖進呈。則一行熟覽曰。爾國山川。土病繁
0009_0014_a_05L多。若姑置則三韓變為九韓。歲飢民困。兵革不絕矣。以三千八百寺塔支
0009_0014_a_06L石浮屠。以鎮國脉正泄。土病即如人病脉。以艾疚之。即瘥也。以筆點於圖
0009_0014_a_07L三千八百。又以一封丹書并封給。詵辭還朝鮮松岳山下王融家。以一行
0009_0014_a_08L之囑丹書。傳給王融曰。來年必生貴胤矣。年待八歲。開緘示之云。去後八
0009_0014_a_09L年開見。統合三韓為一國主王某云。即還封藏之。王太祖登極後。命道詵
0009_0014_a_10L尊為國師。集公卿。設八關大齋。以一行之垂誨。建立千百寺塔之時。此庭
0009_0014_a_11L中二十七層塔。同時依次。建自松岳。月南道人。不忘勳功故。山號松月。此
0009_0014_a_12L其為實也。曰鶴林者。昔紅眉之鬼燐。海西一空。累經年。此寺為藤藟之所
0009_0014_a_13L蔽矣。厥後南道之勒良。委接於海西。僧徒亦聚。藤蔓中覔得此寺。累年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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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5_a_01L승도가 하루에 한 명씩 사라져 거의 황폐한 곳이 되었다. 변고를 그치지 못한 것을 한탄할 때에 마침 어떤 백발노인이 금계金鷄 한 쌍을 소매에서 꺼내 보이며「이 닭을 길러 천 마리가 되면 곧 절이 흥성하리라.」 하고는 떠났다. 과연 천 마리가 되어 무리를 이루었는데, (나갔던 닭들이) 오후 지나 삼장봉三藏峯 서쪽 고개로 석양이 넘어갈 때 모두 돌아왔다. 자세히 보니 모든 닭의 부리가 모두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모든 이들이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다음날도 이와 같아서 승도들이 닭이 간 곳까지 쫓아가서 가만히 서서 보니, 닭들이 제각기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크고 검은 몸체를 가진, 붉고 큰 물고기를 쪼고 있었다. 큰 것은 용과 같으나 여러 닭이 쪼아 먹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붉은 피가 흥건히 흘러 하얀 돌무더기가 붉은 땅으로 변해버렸다. 뭐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승도들은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중에 아는 스님이 이를 보고 지네라고 하였다. 그후 괴변은 없어지고 승도는 나날이 번성해졌다. 이상의 내용을 갖추어 상부에 보고하자 전계轉啓49)하여 윤허를 받아 고려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불교를 숭상할 때는 닭을 기르던 전답을 절에 획급劃給하여 주었으니, 서쪽 이십 리 쯤에 잇는 학비정鶴飛亭 아래에 있다. 그후 많은 닭이 혹은 바위 머리에 올라, 혹은 소나무 사이에 올라 달을 보며 울었는데, 소나무에 깃든 닭은 학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옛 절의 삼장봉三藏峰 서쪽 고개에 닭이 다니던 길이 있는데, 백학암白鶴巖이 이로써 세워졌고, 백학동과 청학동이 동서에 있다. 이상이 학림사의 사적이다.
또 경에 이르기를「석가모니가 열반하실 때, 구시라국俱尸羅國 사라쌍수裟羅雙樹-4쌍 8척-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누웠는데, 백학 빛 같은 몸으로 시멸示滅하셨다. 그래서 다비(闍維) 후 절을 지어 -
0009_0015_a_01L際。眾僧一日失一僧。而幾為廢境。恨不弭變之際。時有白髮翁。以金鷄一
0009_0015_a_02L雙。袖中出示云。此物養至千首。則俾寺有盛云云而去。果至千而成羣。日
0009_0015_a_03L晡踰後。三藏峯西峙。而斜陽乘柂時。俱還。熟視。則羣鷄各觜。皆如朱筆。眾
0009_0015_a_04L皆恠之。翌日如是故。緇徒追後。趁鷄去處竚視。則鷄各飛騰聳空。各啄於
0009_0015_a_05L一鉅黑體赤鱲。大如龍者。不勝羣鷄咂食而致斃。赤血淋漓。白磊飜成赤
0009_0015_a_06L地入。無可比之物。諸僧皆不知。其中有智者見之。謂蜈蚣也。自此恠變杜
0009_0015_a_07L絕。僧徒日盛。以此具由稟報。轉啓依允。既為麗朝願堂。崇佛之時。養鷄田
0009_0015_a_08L畓。劃給於寺。西二十里許。鶴飛亭下也。爾後羣鷄。或上巖頭。或上松間而
0009_0015_a_09L唳月。栖松化為鶴而上天。故寺之三藏峰西峙。鷄行路存。白鶴巖因立。又
0009_0015_a_10L有白鶴青鶴兩洞。各在東西。此其為鶴之事蹟也。又經云。釋尊臨涅槃。俱
0009_0015_a_11L尸羅國裟羅四雙八隻樹間。北首而臥。身如白鶴色示滅。故闍維後。置寺
0009_0015_a_12L名鶴林。為月域之首剎也。屆在唐。潤州有鶴林寺。唐玄宗時。玄素禪師所
0009_0015_a_13L居寺。許渾詩云。中秋詠月云。輪綵漸移金殿外。鏡光猶掛玉樓前。此為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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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6_a_01L학림鶴林이라 이름하였으니, 인도(月域)의 수찰首刹이 된다. 당나라에 이르면 윤주潤州 땅에 학림사가 있었으니, 당 현종玄宗 때 현소玄素 선사50)가 주석하던 절이다. 허혼許渾51)의 시 ≺중추영월中秋詠月≻에「비단 수레는 점점 궁전 밖으로 지나는데, 거울 빛은 외려 옥루 앞에 걸려있네.」라고 하였다. 이것이 중국 학림의 유래다.이 절에 대해 말해보자. 아도阿道가 창건한 이 절은 인도(月域)에서 근원한 것으로서 우리 동방의 수찰이다. 아! 학은 뭇 조수 중의 우두머리요, 송림은 총림의 군자요, 달은 뭇 별 중의 왕인데, 학은 송월松月의 청수함을 아끼니, 네 가지 뜻이 꼭 들어맞는다. 그 근원은 인도(月房)를 이었고, 형상은 중화에 접했으며, 이름은 해동의 으뜸이니, 송월산 학림사는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하며 만고萬古가 다하도록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하 전료殿寮는 아전鵝殿, 앙려鴦廬, 용각龍桷, 봉미鳳楣, 오두鰲頭, 귀비龜碑, 학첨鶴簷, 홍량鴻樑, 조부鳥府, 봉대蜂臺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목土木의 시종을 세세히 다듬어, 위로는 삼장봉에서 아래로 자리 기단까지 복잡하게 뒤섞이지 않으니, 노반魯般과 공수工倕52)가 두루 기교를 부린 듯하다. 정국正局에 해당하는 곳에 처음 보광전普光殿을 지었는데 팔표八杓의 단층이며, 세로 세 칸, 너비 세 칸, 도합 아홉 칸이다. 박로欂櫨(:기둥 위 도리), 외얼椳闑(:문설주), 미각楣桷, 연려椽梠에 절량梲樑을 세우고 용마루 기와를 얹으니, 아름답고 웅대하여 매우 훌륭하고, 제도制度가 장대하고 화려하다. 또 영롱欞櫳, 유달牗闥, 창합閶闔(:대궐문) 초양椒欀(:나무)이 각기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였다. 오색(五綵)이 찬란하고 윤환輪奐(:규모가 크고 아름다움)하여 마음을 들뜨게 하고 눈을 휘황하게 하니, 모두 용면龍眠53) 고호顧虎54)가 붓을 들어 기예를 뽐낸 것이 아닌가. 전내殿內의 어간御間에는 보탁寶卓을 세웠다. 세 개의 연좌蓮座 중 중좌中座에는 영산교주석가여래靈山教主釋迦如來를 주불로 삼고, 좌측 소좌昭座에는 극락도사아미타불極樂導師阿彌陁佛을, 우측 목좌穆座에는 용화회주미륵존불龍華會主彌勒尊佛을 모셨다. 미타는 과거의 부처님이요, 미륵은 장래에 오실 부처님이요, 석가는 현재에 계시는 부처님이다. 그러기에 석가모니를 가운데 모신 것이다.
대명大明 천순天順 3년(1459) 기묘년에 중수하였다. 삼존불이 탁자를 마주하고 삼원경三圓鏡과 삼전패三殿牌를 봉안하였다. 그 벽 뒤에는 대영산회상탱大靈山一會幀을 걸었다. 항수亢宿 방면에는 관음보살을 만들어 탁자 위에 진좌鎭坐하였고, 그 각수角宿 방면에는 명부회탱冥府會幀을 걸어놓았다. 손수巽宿 방면에는 석제회탱釋提會幀을 걸었고, 그 진수軫宿 방면에는 천룡회상天龍繪像을 세웠다. 그 익수翼宿 방면으로는 현왕위現王位를 진설하였고, 대웅전의 건방乾方에는 -
0009_0016_a_01L國鶴林之來由也。當於此寺。阿道創建。意根於月域。而我東之首剎故也。
0009_0016_a_02L韙懿。鶴為眾禽之酋。松為叢林之君。月為眾星之王。鶴愛松月之清秀。四
0009_0016_a_03L意襯合。根連月邦。形接中華。名冠海東。松月山鶴林寺。名實並行。貫萬古
0009_0016_a_04L而不墜歟。此下殿寮。編緝鵝殿。鴦廬。龍桷。鳳楣。鰲頭。龜碑。鶴簷。鴻樑。鳥府。
0009_0016_a_05L蜂臺。土木端倪細檢。上三藏峯下座基。不費槃錯。▼(仁-二+般)倕運巧周量。當其正
0009_0016_a_06L局。始建普光殿。八杓單層。袤三間。廣三間。闔九間。欂櫨椳闑。楣桷椽梠。工
0009_0016_a_07L梲樑。甍瓦甎。瑰偉絕特。制度壯麗。欞櫳牗闥。閶闔椒欀。各得其美。五綵煥
0009_0016_a_08L爛輪奐。悅意矅目。皆龍眠顧虎之挺毫逞藝哉。殿內御間。設寶卓。三蓮座
0009_0016_a_09L內中座。靈山教主釋迦如來爲首。左昭座。極樂導師阿彌陁佛。右穆座。龍
0009_0016_a_10L華會主彌勒尊佛。彌陁乃過去佛。彌勒將當來主。釋迦今現在主。故坐中
0009_0016_a_11L也。大明天順三年己卯。重修也。三佛面其卓。三圓鏡。三殿牌奉安。背其壁。
0009_0016_a_12L大靈山一會幀掛之。營其亢觀音。鎮坐於卓上。隣其角。冥府會幀搭焉。隣
0009_0016_a_13L其巽。釋提會幀掛也。隣伊軫。天龍繪像建哉。隣其翼。現王位設書 [12] ‘也’。殿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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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7_a_01L칠여래오륜탱七如來五倫幀을 걸었고 그 벽은 위의 관음보살과 같다. 홍치弘治 13년(1500) 기미년에 아랑포阿郎浦 만호萬戶 윤호천尹浩川이 단월을 거느리고 대선사 혜암惠庵을 화주로 모셨다. (이때 만든 것은) 화엄 만성궤華嚴滿盛櫃, 불법승 삼보 인신독佛法僧三寶印信櫝, 선종 인신궤禪宗印信櫃, 제경 청문諸經請文과 제색 위의諸色威儀의 두 궤 등이다. 또 사백 근의 종을 주조하였으니 그 몸체는 제사에 쓰이는 소(齊牛)55)가 근심할 정도는 아니며, 그 제사 종소리(釁鐘)56)는 맑아 수隋나라 임금이 선고先考를 천도할 만하다.57) 종은 팔십 근으로 금구禁口를 주조하였다. 대금大金 황통皇統(1145) 을축년 3월에 고려 인종仁宗이 약사금당불藥師金堂佛과 주발 덮개(鑄鉢盖具) 여섯 근 일좌一座를 봉납하였고 경쇠, 동발, 향로, 찬합 등의 기물을 헌납하였는데, 이루 다 기재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웅전의 동쪽에는 영아근맹榮牙近甍58)의 보응당普應堂이 있는데 가로세로 사십여 칸이다. 대웅전의 남쪽으로는 인각隣桷59)의 무집당霧集堂이 있는데 가로세로 사십여 칸이다. 대웅전의 서쪽에는 영아핍미榮牙逼楣60)의 청심당清心堂이 있는데, 사십 칸이다. 대웅전의 경방庚方(서쪽)에는 인각隣桷의 심인당尋釰堂이 있는데 사십여 칸이다. 대웅전의 어정御庭에는 곤방坤方(서남쪽) 중앙의 가지런한(鴈齒61)) 서까래(榱除?) 앞에 삼십 삼층 탑이 구름을 뚫고 높이 서 있다. 탑의 높이는 십 무武로 땅을 누르고 구름을 밀쳤는데, 적막한 가운데 높고 밝다. 시원하고 화려한 것은 청풍루清風樓인데, 가로 네 칸, 세로 일곱 칸으로 도합 이십 팔 칸이다.
청풍루의 삼자수叅觜宿(삼수, 자수) 분야에는 천왕문天王門이 있는데 세로 세 칸, 가로 두 칸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춘하추동을 각각 맡아 다스리며, 처음에는 증장천왕增長天王으로 태어나 숙살肅殺하고 장살藏殺하며, 방위를 따라 모습을 드러내며, 일월과 함께 존귀하게 거처하며 부처님의 부촉을 우러러 받들고 인간세계를 굽어 살피며, 세상을 보우하고 나라를 복되게 하는 자는 곧 사대천왕四大天王으로, 죽 늘어서서 엄숙하게 지킨다. 청심당清心堂으로 5, 6무를 올라가면 태방兌方(서쪽)에 향로전香爐殿이 서 있고, 7무 정도의 건방乾方(서북쪽)에 명부전冥府殿이 서 있는데, 세로 세 칸, 가로 두 칸이다. 채색한 비단이 장엄하고 화려한 어간御間에 주불로 모신 분은 지장대성地藏大聖이다. 우편은 목목穆穆하고 엄숙하며, 좌편은 소소昭昭하고 나란히 높다(儕嵬). -
0009_0017_a_01L乾。七如來五倫幀搭。其壁如上觀音。弘治十三年己未。阿郎浦萬戶尹浩
0009_0017_a_02L川。領袖檀越。大禪師惠庵化主也。華嚴滿盛櫃。佛法僧三寶印信櫝。禪宗
0009_0017_a_03L卬 [13] 信櫃。諸經請文諸色威儀兩櫃。又四百斤鑄鍾。體非齊牛愁之。釁鐘響
0009_0017_a_04L喨。隋帝孚之薦考。八十斤鑄禁口。大金皇統乙丑三月日。麗朝仁宗。造納
0009_0017_a_05L藥師金堂佛。鑄鉢盖具。六斤一座。磬鈸鑪榼等器用。不盡紀載也。殿之東。
0009_0017_a_06L榮牙近甍普應堂。廣袤四十餘間。殿南隣桷霧集堂。廣袤四十餘間。殿之
0009_0017_a_07L西。榮牙逼楣清心堂。四十間。殿庚。隣桷尋釰堂。四十餘間。殿之御庭坤當
0009_0017_a_08L中。鴈齒榱除前。三十三層塔。陵雲而卓立。塔去十武。壓地排雲。岑寂高明。
0009_0017_a_09L爽塏華麗者。清風樓。廣四間。袤七間。闔為二十八間也。樓之叅觜宿。天王
0009_0017_a_10L門。袤三間廣二間。元亨利貞。春夏秋冬。各掌司位。始生憎 [14] 長。肅殺藏殺。隨
0009_0017_a_11L方現色。與日月尊居。仰承佛囑。俯察人間。祐世福國者。乃四大天王。列立。
0009_0017_a_12L楞守儼然也。上清心堂五六武。兌立香爐殿。隣七武乾立冥府殿。袤三間
0009_0017_a_13L廣二間。繪綵壯麓 [15] 之御間。主其座。地藏大聖。石 [16] 穆穆而嚴肅。左昭昭而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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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8_a_01L좌우에서 문지기가 지키고, 부행副行들이 호위하며 읍하니 모두 조상彫像한 것이다. 명부전의 감방坎方(북쪽) 5무 정도에 용화전龍華殿이 있는데, 안팎으로 크고 작은 방이 모두 사십 칸이다. 용화전의 동원東垣에 이웃하여 향적전香積殿이 있는데, 가로 세로가 모두 여덟 칸이다. 향적전의 동쪽 십무 거리에 칠성전七星殿 여섯 칸이 있다. 그 묘방卯方(동쪽)으로 인접하여 응진전應真殿이 있는데, 가로 세로가 모두 여섯 칸이다. 채색 그림은 선명한데, 주불로는 석가를 모셨고, 좌보처는 미륵불, 우보처는 제화提花(然燈佛)이다. 좌열(昭列)이 여덟이요 우열(穆列)이 여덟62)인데, 양쪽에 석상石像을 함께 배치하였다. 동쪽 인근의 기와(瓦甓) 아래 철조 상이 있는데, 이는 예전 금당金堂의 주불이었던 약사불藥師佛이다. 칠성전七星殿의 감방坎方(북쪽) 수십 무 정도에 원통전圓通殿이 있는데 내외 방사房舍가 모두 오십 여 칸이다. 천왕문天王門 사이 좌우 낭무廊廡는 사십 이 칸이다. 성행당省行堂, 홍려관鴻臚舘, 탁룡구濯龍廐에 좌우 행랑이 안에 부속되어 있다. 해탈문解脫門, 영송문迎送門, 금강문金剛門, 조계문曹溪門, 불이문不二門, 단속문斷俗門에서 벽파루碧坡壘 앞에 이르기까지 감방坎方(북쪽)으로 혹 있는 듯 텅 빈 듯 서 있다. 조산造山 벽파碧坡, 융두融頭 귀부龜趺, 준뢰鐫誄 명옥銘玉은 대, 중, 소로 모두 다섯 개가 우뚝 서 있다. 탑을 세우고 종을 세운 것이 15좌이다. 이상은 토목에 대해 거론한 것이다.
다음으로 뛰어난 인물과 기적奇蹟을 드러낸 일을 논해보자. 월지국(月氏國) 승려 지공指空의 머리카락 한 개에 대해 말하자면, 『화엄경』에「선지식의 두발로 탑을 세우는 것은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신심을 나게 함이다.」라 하였다. 아도阿道는 절을 개창한 창건주이고, 도선道詵은 탑을 건립한 건탑주이며, 공민왕사恭愍王師 나옹懶翁 강월헌江月軒은 절을 중흥시킨 중흥주로서 약 수저(藥匙)가 남아 있다. 태조 왕사 무학 묘엄無學妙嚴은 사리를 남겼다. 이상 여섯 조사는 모두 종문宗門의 비조鼻祖로서, 이 절은 선종禪宗의 수찰首刹이 된다. 명明 가정嘉靖 임술년(가정 41년, 1562)에 화엄종 중덕中德 학상學尚, 화엄종 대선大選 의열義悅, 화엄종 참학叅學 영규靈珪의 세 대덕- -
0009_0018_a_01L嵬。左右閽陪。副行衛揖。皆雕像也。冥府之坎五武。龍華殿。大小內外。并四
0009_0018_a_02L十間也。龍華之東垣。隣香積殿。廣袤并八間也。香積之東十武。七星殿六
0009_0018_a_03L間。其卯隣應真殿。廣袤并六間。繪塗奐然。主其尊釋迦。輔其左彌勒。補其
0009_0018_a_04L右提花。昭列八穆列八。兩部。使並石像也。東隣瓦甓下鐵像。往昔金堂主
0009_0018_a_05L藥師也。七星之坎數十武許。圓通殿。內外房舍。并五十餘間也。天王間左
0009_0018_a_06L右廊廡。四十二間。省行堂。鴻臚舘。濯龍廐。并附左右行廊內也。觧脫門。迎
0009_0018_a_07L送門。金剛門。曹溪門。不二門。斷俗門。至碧坡壘前依坎。或存存而空空也。
0009_0018_a_08L造山碧坡。融頭龜趺。鐫誄銘玉者。大中小。并五卓。樹塔立鐘者十五座也。
0009_0018_a_09L此土木屬論也。此下人物英傑。論顯奇蹟。若曰月氏國師指空。頭髮一枚。
0009_0018_a_10L華嚴云。善知識頭髮樹塔。令人生敬信故也。阿道創寺之主。道詵建塔之
0009_0018_a_11L主。恭愍王師懶翁江月軒重興之主。留鎮藥匙。 太祖王師無學妙嚴。留
0009_0018_a_12L鎮舍利也。此上六祖。皆宗門之鼻祖。是為禪宗之首剎也。粵在大明嘉靖
0009_0018_a_13L壬戌時。華嚴宗中德學尚。華嚴宗大選義悅。華嚴宗叅學靈珪。此三大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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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19_a_01L이분들은 곧 교장教塲 등과登科 출신 스님들-은 당시 승풍僧風을 총괄하여 다스렸고, 법률에 따라 잘못을 바로 잡았으며, 주사主司의 권리를 잡고, 임금의 유지有旨로 관직을 맡은 분들이니, 이 절은 실로 교종敎宗의 중심 사찰이 된다. 그러한즉 이 절은 선교禪教 겸판兼判의 대 가람이다.우리 성종조成宗朝에 이르러 중국 당唐 명종明宗 때 석문釋門의 사과四科를 시행한 예에 따라 해동에도 선교 양과를, 특별히 설치한 과장에서 과거를 시행하였다. 봉은사奉恩寺에서는 선과禪科를, 광릉사光陵寺에서는 교과教科를 나라의 과거와 같은 날 개최하였다. 하관夏官을 파견하여 선교겸판禪教兼判 승려 보우寶祐63)와 함께 시관試官을 가려 정하고, 능력을 가려 인재를 추천하고 주묵朱墨으로 점검하였다. 선의 종지를 출제하여 규정에 통과한 이는 유가로 말하면 문과 등제한 것이다. 교문으로 궁리하여 시강試講과 송경誦經을 통과한 이는 유가로 말하면 무과에 급제한 것이다. 더불어 감시監試를 병설하여 참방叅榜, 참학叅學한 이는 유가로 말하면 생진시生進試에 입격入格한 것이다. 중덕中德은 중시中試와 같고, 대선大選은 대과大科와 같다. 당唐 명종明宗 갑자년 2월에 공덕사功德司가 상주上奏하기를「매년 황제의 탄신일에 여러 주부州府에서 승니僧尼를 천거하기 위해 강경과講經科, 선정과禪定科, 지념과持念科, 문장논의과文章論議科로 능력을 시험하고자 합니다.」라 하여, 황제가 이에 따랐으니, 이것이 곧 중국 사과四科의 시작이다. 이상의 양兩 인신印信이 유래한 의미는 또한 중국의 선례에 따른 것이다.
당唐 헌종憲宗 원화元和 경인년(810)에 황제는 청량국사清凉國師가 화엄의 종지를 설하는 것을 들었다. 하늘이 내린 성명聖明하신 황제는 한 번 현담玄談을 듣고는 확연廓然히 스스로 얻는 바가 있어 바로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예를 갖추고 ‘통관천하도승통인統管天下都僧統印’ 여덟 자를 새긴 황금 주인鑄印을 청량에게 내려 주었다. 원元 중통中統 무오년(1258)64)에 원 헌종憲宗은 해운대사海雲大師에게 불법을 들었는데,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경신년에 국사로 존숭하며 백옥에 -
0009_0019_a_01L乃教塲登科出身之士。當時總領僧風。紏正法律。主司之秉權。有 旨佩
0009_0019_a_02L印者也。此實為教宗之主剎也。然則此寺。禪教兼判之大伽藍也。裊我朝
0009_0019_a_03L成宗時。對中原唐明宗時。試釋門四科之例。海東禪教兩家。試規特設塲。
0009_0019_a_04L于奉恩寺禪科。光陵寺教科。與國試同日開塲。命遣夏官。與禪教兼判僧
0009_0019_a_05L寶祐。抄定試官。選機推才。點檢朱墨。以禪旨出題。入規出身者。則對儒家
0009_0019_a_06L文科豋第也。以教文運籌。試講通 [17] 經出身者。則對儒家武科及第也。鱗設
0009_0019_a_07L監試。叅榜叅學者。則對儒家入格生進也。中德對中試也。大選對大科也。
0009_0019_a_08L曰唐明宗甲子二月日。功德司奏曰。每年帝誕節。諸州府薦僧尼。欲立講
0009_0019_a_09L經科。禪定科。持念科。文章論議科。以試能不。帝從奏焉。此謂中國四科之
0009_0019_a_10L始也。此上兩印信流來意。亦依中國之例也。唐憲宗元和庚寅年。帝聞清
0009_0019_a_11L凉國師說華嚴宗旨。帝天縱聖明。一聽玄談。廓然自得。於是勅有司。備禮
0009_0019_a_12L以黃金鑄印。統管天下都僧統印八字篆。授以清涼也。至於大元中統戊
0009_0019_a_13L午。元憲宗。聞法於海雲大師。帝大悅。庚申年。尊為國師。以白玉鐫任中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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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0_a_01L‘임중원법주통천하교문任中原法主統天下教門’ 열 글자를 새겨 해운에게 내려 주었다. 이것이 다 중원中原 석인釋印(불교의 관인)의 연원이요 이유다. 우리 조선 태조太祖는 자색 구리 주인鑄印을 무학無學에게 수여하여 나라에 공훈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지금 이 인신印信은 과거에 과거에서 배출된 이들이 도道의 선교양종판사禪教兩宗判事로 들어갈 때, 각 읍 각 절에서 수령에게 맡겨 수여하면서 일을 맡겼던 예증이 된다. 또한 사위寺位 전답田畓의 면세하는 규정은 서역에서 중원, 해동에 이르기까지 전적典籍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향교와 서원(校院)과 함께 일체를 면역免役하는데, 대장간(卓程)65)의 토지는 일복一卜을 감하고, 또 효자 열녀 정문旌門의 밭은 삼복三卜을 제하는데, 하물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사찰에 이름에랴. 이 절의 바깥에 있는 범표犯標는 동쪽으로는 일출대日出臺에서 지장봉地藏峯 문수봉文殊峯 유익봉遊益峯 옥정봉玉井峯 지장동地藏洞 반석동磐石洞 청석동青石洞까지다. 남쪽으로는 곧 외청룡外靑龍인 십구금강十九金剛, 창무鎗舞, 사천왕봉四天王峰이다. 서쪽으로는 곧 미륵봉彌勒峰에서 달마達摩, 백련白蓮, 태화泰華, 미타彌陀, 반야般若, 아미峨嵋, 백운봉白雲峰까지다. 북쪽으로는 곧 사나봉舍那峰에서 비로毘盧 석가釋迦 관음봉觀音峰까지다. 안쪽으로 가까운 범표는 북쪽의 주산인 삼장봉三藏峯, 동으로 내청룡內靑龍인 시왕봉十王峯, 남으로 홍류동紅流洞 학감소鶴感沼, 서로 내백호內白虎인 오성대五性臺까지다. 이들 금표 안은 당연히 결복結卜을 예전의 사례와 같이 특별히 면세하고 완절完節을 성치成置해야 한다.
충성으로 보좌(忠輔)했던 일을 소개한다. 옛날 신라 때 왜선 수만 여 척이 남해를 둘러싸 침범했다. 임금의 신하가 병사를 일으켜 만방의 근심거리를 쫓아내고자 했으나 대책이 없었다. 왕은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예부상서禮部尚書 김유신金庾信을 보내 의상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의상이 『화엄경』「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을 1회 강설하자 팔만 신장이 철갑을 두르고 창칼로 삼엄하게 호위하였다. 왜병은 이를 보고 굴복하여 물러가자 신라왕은 그 공을 가상하게 여겨 범어사梵魚寺를 세우고 대사를 국사國師로 책봉하였다. -
0009_0020_a_01L法主統天下教門十字篆。授以海雲也。此並為中原釋印之源由也。我朝
0009_0020_a_02L太祖。以紫銅鑄印。授以無學。為國有勳也。今此印信。昔在設科出身輩。入
0009_0020_a_03L道禪教兩宗判事。列邑各寺。任其主授以掌司之例也。又寺位田畓。免稅
0009_0020_a_04L之規。自西域。至中原。裊海東。昭載典籍。與校院一體蠲。雖一卓程。地减一
0009_0020_a_05L卜。又孝烈旋 [18] 門之田。除三卜。况為國忠輔之寺剎乎。此寺外犯標段。東則
0009_0020_a_06L自日出臺。至地藏峯。文殊峯。遊益峯。玉井峯。地藏洞。磐石洞。青石洞也。南
0009_0020_a_07L則外青龍。十九金剛。鎗舞。四天王峰也。西則自彌勒峰。達摩。白蓮。泰華。彌
0009_0020_a_08L陀。般若。峨嵋。白雲諸峯也。北則自舍那。毘盧。釋迦。觀音諸峰也。內近犯標
0009_0020_a_09L段。北主山三藏峯。東內青龍十王峯。南紅流洞鶴感沼。西內白虎五性臺
0009_0020_a_10L也。此標內勿論。結卜依古例。特為免稅。完節成置焉。忠輔之義。則往昔新
0009_0020_a_11L羅時。倭艘數萬餘隻。圍犯南海。王臣起兵。欲其逐萬方憂。其無策。聞有祖
0009_0020_a_12L師義湘。命遣禮部尚書金廋 [19] 信。迎義湘。說華嚴世主妙嚴品一回。八萬神
0009_0020_a_13L將。鐵騎金甲。劒戟森衛。倭兵見而屈退。羅王嘉其功。立梵魚寺。封以國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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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1_a_01L고려 초 도선道詵은 설토병泄土病을 단속하여 삼한을 규합하고 천하를 한 번 바르게 하고, 절을 세운 공덕을 행하였다. 우리 선묘宣廟조에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임진년 왜적 가등청정加籐淸正과 진중에서 보루를 대치함에 정세를 탐색하여 목책을 불사르자, 왜병이 철수하여 바다를 건넜는데, 왜가 다시 침범하려 하였다. 만력萬曆 갑진년(1604) 3월 초나흘 선조가 이를 근심하여 사명대사를 일본으로 보냈고, 대사는 나라를 평안케 하는 화호和好를 맺은 후 돌아왔다. 나라에서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삼대에 일품一品의 지위를 추증하였고, 입적 후 밀양에 사당祠堂을 세워 세금과 부역을 면하게 하고 노비를 하사하여 수호하였다. 이것이 충성으로 보좌한 연유요, 면세免稅의 근원이다. 또 과거 원元 세조世祖 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사해 내 천하 사원에 전답과 재산(田産)에 부여하는 두 가지 세금을 모두 견면蠲免(세금과 부역을 면제)하여 승려(緇侶)들이 안심하고 도를 닦도록 하라.」 하였으니, 이는 상국上國의 유풍遺風이다.
당唐 대종代宗은 불공삼장不空三藏66)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의 직위를 내리고 숙정공肅國公에 봉하였으며 식읍食邑 삼천 호를 내렸다. 이는 사명당에게 일품을 올리고, 복결 오백 결을 하사하고 세금을 면제하며, 노비 이백 명을 하사하여 수호한 좋은 증표가 된다. 위로는 위魏 천흥天興 원년 무술년(398)부터 지금 천계天啓 8년 무진년(1628)까지 은혜 입은 햇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면 곧 21갑자甲子의 세월이 된다. 시작과 끝을 궁구하고 강물을 떠서 근원으로 회귀해 보면 여섯 가지 조목이 있다. 즉 인물이 영걸하고 많은 것, 토목이 장려하고 잘 수리된 것, 시작에서 끝까지 시대가 유구한 것, 절터에서 해마다 나오는 산출과 부역 면제, 산세의 도국都局이 이름나고 실질 있는 것, 읍지에 실린 건치 연혁建置沿革 등이다. 근원과 유파를 상세히 살펴보면 아도阿道가 창시한 이래 지공志公이 수리하여 마쳤으나, 지공으로부터는 아도로 돌아가지 못하니 본래 흥망이 (세월 따라) 변해가는 것이다. 여섯 가지 조목을 겸비한 것은 사람의 오장육부와 같아, 사지四肢 육근六根을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다 갖추고 난 다음에야 세상에 행세하는 것이다. 이 산은 비록 -
0009_0021_a_01L也。高麗初道詵。檢泄土病。糾合三韓。一匡海宇。為立寺之功也。本朝 宣
0009_0021_a_02L廟時。四溟大師。壬倭清正。陣中對壘。探情焚寨。撤兵渡海後。倭欲更犯。萬
0009_0021_a_03L曆甲辰三月初四日。 宣廟憂其然。命四溟遣日本。寧國和好而還。國家
0009_0021_a_04L嘉其功。追贈三代登一品之秩。卒後立祠密陽。給復免稅。賜奴守護焉。此
0009_0021_a_05L為忠輔之由。免稅之源也。又昔大元世祖皇帝。下詔曰。自有四海。天下寺
0009_0021_a_06L院。田產二稅。盡行蠲免。普令緇侶。安心辦道也。此為上國之遺風也。又唐
0009_0021_a_07L代宗。加不空三藏。至開府儀同三司。肅國公。食邑三千戶焉。此為四溟。登
0009_0021_a_08L一品。給復五百結免稅。賜奴二百口。守護之良證也。上自魏天興戊戌元
0009_0021_a_09L年。裊今天啓八年戊辰。屈指惠載。則二十一甲子餘祀也。若曰原始要終。
0009_0021_a_10L挹流歸源。有其六條。謂人物之靈傑。樹土木之壯麗備葺。年代之攸久始
0009_0021_a_11L終。寺垈之歲產蠲免。山形之都局名實。邑誌之建置沿革。細思根派。自阿
0009_0021_a_12L道創始。至志公修葺而終。自志公末 [20] 歸阿道。本卷舒興亡。 [21] 六條得而兼之
0009_0021_a_13L者。如人之五臟六腑。四肢六根。無大小而皆具。然後立於世而行也。此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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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2_a_01L좁은 모퉁이 땅에 있지만 여섯 가지 몸체를 다 구비하고 있어 태백이나 금강의 산세와 다르지 않다. 사람이 비록 드러나고 안 드러나고의 차이가 있지만 몸체를 구비한 것은 곧 차이가 없다. 산 또한 크고 작은 것이 있어 나란하지 않지만, 여섯 가지 몸체(六體)는 서로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이름은 해동의 으뜸이요, 명성은 중화를 눌렀으며, 근원은 인도(月域)에 두었던 것이다. 장연읍 송월산 학림사는 성조聖祖 신승神僧이 유진留鎭한 기적奇蹟을 수재修載한 현모玄謨이니라.무릇 이때 지공과 이백 대중은 석연釋然히 깨닫고 믿음으로 봉행하였다.
명明 천계天啓 8년(1628) 4월 일에 수보修補하였고, 비구 지공志公의 간청으로 무하자無荷子가 짓다.
신라국 눌지왕사訥祗王師인 묵호자黑胡子 아도화상阿道和尚이 절을 개창하다.
고려 태조왕사太祖王師 월남 도선月南道詵 대사가 탑을 세우다.
고려 말 공민왕사恭愍王師 강월헌 나옹江月軒懶翁 조사祖師가 중창하다.
월지국사月氏國師 지공指空 조사가 자취를 남기다.
아조我朝 태조의 왕사王師 무학묘엄자無學妙嚴尊者가 자취를 남기다. -
0009_0022_a_01L雖處於褊隅。六體全具。與太白金剛之勢。無異。人雖微著不同。具體即一
0009_0022_a_02L也。山亦大小不竝。六體相侔。是故名冠海東。聲扼中華。根於月域。淵邑松
0009_0022_a_03L月山鶴林寺。聖祖神僧。留鎮奇蹟。修載玄謨也。夫爾時。志公與二百大眾。
0009_0022_a_04L釋然了悟。信受奉行也。
0009_0022_a_05L時
0009_0022_a_06L大明天啓八年四月日。因修補。比丘志公懇請。
0009_0022_a_07L無荷子著述。
0009_0022_a_08L新羅國訥祗王師。黑胡子阿道和尚。創寺也。
0009_0022_a_09L高麗太祖王師。月南道詵大師。建塔也。
0009_0022_a_10L麗季恭愍王師。江月軒懶翁祖師。重闡。
0009_0022_a_11L月氏國師。指空祖師。留跡。
0009_0022_a_12L我朝
0009_0022_a_13L太祖王師。無學妙嚴尊者。留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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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3_a_01L명明 가정嘉靖 시時
화엄종華嚴宗 중덕中德 학상學尚
화엄종華嚴宗 대선大選 의열義悅
화엄종華嚴宗 참학叅學 영규靈珪2. 성불사 사적 비명 成佛寺事蹟碑銘67)유명 조선국 황해도 황주군 정방산 겸 천성산 성불사 사적비명 병서서산의 육세 문인 수월 재현이 찬하고, 전액篆額을 쓰다.
우리 동방은 천하(宇內)의 별세계(別乾坤)이다. 오악五嶽68)과 사독四瀆69) 이외에 명산과 기이한 곳이 많고, 옛사람들이 말하는 삼신산三神山이 모두 동국에 있다. 두보杜甫가 말한 ‘방장산은 삼한 땅 밖에 있다(方丈三韓外)70)’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여기 나라의 서쪽에 있는 정방산正方山은 앞으로는 높다란 고래 물결이 임하였고, 뒤로는 굽이굽이 첩첩 쌓인 봉우리가 감싸고 있으니, 이는 바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명의 장정이 열 수 없다’는 곳으로, 산 이름은 이로써 지었다. 절 이름은 성불사라 하는데 이는 진실로 ‘본성을 회복한다(復性)’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또 산 이름을 천성산千聖山이라고도 하는데, 그 사람 많은 것을 이름한 것이다. 예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총림과 도량을 창설할 때, 이곳이 오악五岳과 사독四瀆이 대치하는 형세이자 나라의 문호를 관방關防하는 형세임을 혜안으로 비추어 보고, 천백 세 진호鎭護의 땅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니, 어찌 특별히 법문을 외우는 상문桑門과 이곳에 머무는 치류緇流를 위하는 데 그치겠는가. 이후에 절을 중흥시킨 자는 나옹懶翁이니 아름답게 채색한 전우殿宇, -
0009_0023_a_01L大明嘉靖時
0009_0023_a_02L華嚴宗中德學尚
0009_0023_a_03L華嚴宗大選義悅
0009_0023_a_04L華嚴宗叅學靈珪。
0009_0023_a_05L○成佛寺事蹟碑銘 [22]
0009_0023_a_06L有明朝鮮國黃海道黃州郡正方山兼千聖山成佛寺事蹟碑銘 并序西
0009_0023_a_07L山六世門人水月載 [23] 玄撰 并書篆額
0009_0023_a_08L我東自 [24] 是宇內別乾坤也。五嶽四瀆之外。而多名山異區。古補 [25] 三神。皆在
0009_0023_a_09L東國。杜老所謂。方丈三韓外者。亦有以徵之矣。今茲正方山。在國之西。前
0009_0023_a_10L臨鯨波之▼(山+矞)㟑 [26] 。後擁疊嶂之控挽。直是一夫當關。萬夫莫開。山以之名焉。
0009_0023_a_11L寺稱成佛。是固復性之號。而亦曰千成 [27] 山。多其人而名之也。在昔道詵國
0009_0023_a_12L師。創設叢林道塲。岳瀆流峙之勢。國門開 [28] 防之形。有以燭照於慧眼。要作
0009_0023_a_13L千百世鎮護之地。豈特為誦法桑門。捿息緇流而止哉。踵茲興者懶翁。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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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4_a_01L전하는 수저, 그리고 소나무를 심은 유적이 완연하여 손에 잡힐 듯하다.
승려의 요사채를 세운 지 이십여 년에, 선禪으로 으뜸인 자(禪冠)가 열 명, 여러 암자의 석탑을 계산하면 열다섯 기가 절 안에 있다. 절 바깥에 있는 것도 비슷한 양상이다. 범패가 이어 들리고 울긋불긋 단청(金碧)이 비추니, 절의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비교할 만한 데가 없다. 융경隆慶71) 말년에 이르러 점차 무너져, 남아 있는 것이 한두 개의 전각에 불과하였다. 물物이 성하면 시드는 것이 진실로 운수의 법칙이다. 숭정崇禎 임신년(숭정 5년, 1632) 조정에서 원수元帥에게 명하여 이 성을 쌓게 할 때 참학叅學 의선義禪이 응하여 선당禪堂 건립을 위해 모연을 하였고, 동산대사東山大師는 새로 안국사安國寺를 창설하였다. 인조仁祖 병술년(1646)에 불귀신이 극락전에 요사함을 고하여 바야흐로 세찬 화염이 극렬하게 일어났다. 석釋 쌍균雙均이 높은 기와에 몸을 날려 서쪽 지붕의 불을 갈고리로 떨어뜨려 동쪽 건물에 안치한 불상에 불이 이르지 않도록 하였다. 쌍균 또한 누판樓板 사이에 몸을 숨겨 살아났으니 매우 기이한 일이다.
경인년에 대웅전을 언택彥澤이 보강 공사를 하여 그 체세體勢가 면모를 일신하였고 절 내에 4, 5개의 선료禪寮가 연이어 점차 완성되었다. 숙종 갑자년(1684)에 도행道行이 장육존불 탱화를 제작하였고, 귀민歸敏이 대종大鐘 일구一口를 주조하였으니 무게는 사백 근이다. 이상 몇 가지는 또한 한 사찰의 굉장한 볼거리(嵬觀)다. 기축년에 필동弼同이 육갑계六甲契를 조직하여 명부상을 제작하였고, 신묘년에는 석미釋眉72)가 당堂을 지어 안치하였다. 또 절이 있는 산 주변의 촌민들이 좋은 밭(良畝)을 원납願納하여 삼보三寶를 소융紹隆73)하게 하고, 향화香火를 받들어 성수聖壽가 만세를 누리도록 축원하였다. 이를 보면 곧 이 절이 당시에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대개 알 수 있다. 이제 나라에서 성첩城堞을 덧대어 수리하며 바위 문으로 요새지에 빗장을 걸었고, 그곳 도 닦는 승려의 계戒와 선승禪乘 담론에 또한 휴정대사休靜大師 같은 자가 배출되었다. 성조聖朝 중흥의 큰 위업을 음기陰記에 새김에 어찌 절과 승려를 예우한 것에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빛나고 아름답도다. 이어 명을 쓴다.
峯巒粉雪 湧泉金水 산봉우리에는 가랑눈이요 용천湧泉에는 금수金水로다
仰控禎75) 左右瀜峙 ........ 좌우에 우뚝 솟은 산이로다
維天設險 三韓將統 천혜의 험준함에 삼한 장차 통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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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4_a_01L宇賁彩。傳匙植松。遺跡完然可掬。設僧寮舍者二十餘載。 [29] 禪冠者十 [30] 。計諸
0009_0024_a_02L庵子石塔十五。在寰 [31] ‘內’。在外者。亦彷彿。梵唄相聞 [32] 。金碧交暎。寺之雄偉。異 [33]
0009_0024_a_03L之無倫也。洎乎隆慶垂末。漸覺傾墮。存者一二殿。物盛而衰。固其數也。崇
0009_0024_a_04L禎壬申。朝廷命元帥築斯 [34] 。叅學義禪。應募禪堂。東山大師。新創安國寺。仁
0009_0024_a_05L祖丙戌。回祿告妖於極樂。芳 [35] 其烈熖之極熾也。數 [36] 雙均。騰身峻甍。鉅落西
0009_0024_a_06L宇火。不及佛安東宇。均亦於樓板間。容身獲活。儘奇矣哉。庚寅大雄。彥澤
0009_0024_a_07L補搆。此殿軆勢變前。內四五禪寮。繼是漸成。肅宗甲子。道行造丈六幀。歸
0009_0024_a_08L敏鑄大鍾一口。重四百斤。斯數物。亦一寺傀 [37] 觀也。己丑。弼同設六甲。造冥
0009_0024_a_09L府像。辛卯。釋 [38] 眉建堂邀安。又有環山村泯 [39] 。願納良畝。便 [40] 銘 [41] 隆三寶。奉香火
0009_0024_a_10L祝聖壽於萬歲。則此寺之重於一時者。槩可知也。今國家增修粉雉。以岩
0009_0024_a_11L扄鐍鎮守▼(西/瓦) [42] 。厥道侶之戒讀 [43] 裨 [44] 乘。亦有如靜大師者出焉。陰賛聖朝中興
0009_0024_a_12L之鴻業。豈不於由禮寺僧。光餙美也哉。係以銘曰。
0009_0024_a_13L峯巒粉雪湧泉金水。
仰控禎 [45] 左右瀜峙。
維天設險三韓將統。
一漢將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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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5_a_01L一漢將安 四面奇蹟 일한一漢으로 안정됨에 사면이 기적이다
九苞斯翥 窄堵斯▼(示+聶) 봉황새 날아올라 좁은 담장 지키나니白頭其界 黃海其派 백두가 경계되고 황해가 지파되네
府襟潮汐 南北不忒 밀물 썰물 모여드니 남북이 의심 없어
愛正其芳 國師連塲 올바름 사랑한 명예로 국사國師가 연달았고
王師事與 松匙臺層 왕사 일을 함께 하며 송림, 수저, 층층 누대
依俙法塲 彷彿福城 법 도량인 듯하고 복성福城76)인 듯도 하네
鳳郡經南 黃岡繞北 봉산군鳳山郡은 남을 경유하고, 황강黃岡은 북을 둘러
智異楓岳 分鎮四界 지리, 풍악과 사계四界의 진鎭을 나누었네
廢興萬變 八方風雨 흥망이 만 가지로 변하고 팔방에 풍우 내려
人傑地靈 圓顱與叅 인걸과 지령 좋은 땅에 스님들도 함께 했네
一山一水 揭茲貞珉 산마다 물마다 이 정민貞珉77) 높이 드니
洞仙飛天 德月高懸 골짜기 신선 하늘 날아 덕월德月이 높이 떴네
九月妙香 稽首蕃稱 구월산 묘향산이 머리 조아려 조복하니
山自不莽 一域樂 산은 절로 우거지지 않아 온 구역이 낙樂이로다.옹정雍正 왕목 세월 세우다.78)3. 안국사 사적 비명 병서 安國寺事蹟碑銘并序안국사安國寺79)는 어떤 절인가. 천계天啓(明 熙宗의 연호, 1621~1627) ○년, 정묘호란丁卯胡亂 이후 북쪽 변방에 연이어 싸움이 일어나 한양의 고관(朱紫)이나 재야 서민이나 근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숭정崇禎 6년 계유년(明 毅宗, 1633) 가을(寒蟬)80) 초입에 (나라에서) 사목事目81)을 내려, 먼 지방의 여러 고을에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방책이 있는 자는 진계陳啟하라 하였다. 황강黃岡(황해도 黃州) 사람 송덕신宋德新이라는 자가 돌연히 나와 말하였다. “황강과 봉산 사이에 산이 있는데 성불산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에 도적이 침입하는 요긴한 길목(要害之處)으로 성을 쌓으면 삼군三軍의 무리도 대적할 만합니다.”라고 하며 직계直啟를 하였다. 옥체玉體와 삼○ 육경六卿이 곧바로 계문을 ……하고, 특별히 도원수를 정하여 말을 달려 파송하여 이 성을 처음 쌓았다. 이는 곧 같은 해 8월(雁月)이었다. 대사는 일상을 같이 하면서, 궁리한 바를 척서尺書로 청하였다. 동산東山 송월당松月堂 대사, 응선應禪 대사가 그 문도 삼십여 명을 데리고 왔으니, 때는 갑술년 -
0009_0025_a_01L四面奇蹟。九苞斯翥窄堵斯▼(示+聶)。
白頭其界黃海其派。
府襟潮汐南北不忒。
0009_0025_a_02L愛正其芳國師連塲。
王師事與松匙臺層。
依俙法塲彷彿福城。
鳳郡經南
0009_0025_a_03L黃岡繞北。
智異楓岳分鎮四界。
廢興萬變八方風雨。
人傑地靈圓顱與叅。
0009_0025_a_04L一山一水揭茲貞珉。
洞仙飛天德月高懸。
九月妙香稽首蕃稱。
山自不莽
0009_0025_a_05L一域樂。
離正王穆世月日王 [46]
0009_0025_a_06L○安國寺事蹟碑銘并序
0009_0025_a_07L夫安國寺者。何謂也。盖有天啓△年。丁卯胡亂之後。北邊連以閧閧。京城
0009_0025_a_08L朱紫。在野士庶。莫不愛 [47] 之。至于崇禎六年癸酉。寒蟬之初。輒下事目。遐方
0009_0025_a_09L列邑。如有輔國安民之術者。真 [48] 啟云云。黃岡之人。宋德新稱名者。突然超
0009_0025_a_10L出曰。黃鳳境上有山焉。名曰成佛。我國之中。賊路要害之處。築城。則可敵
0009_0025_a_11L三軍之眾。如是直啟。玉軆與三△六卿。輒△△啟△△△△△△△△△
0009_0025_a_12L△。特定都元帥。趣駕而送。創築此城。然則同年雁月矣。師副坐臥。飾謀以
0009_0025_a_13L尺書固請。東山松月堂大師。應禪大師。率其門徒三十餘名而來。時當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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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6_a_01L 2월(夾鍾) 보름이었다. 대사가 대중들의 인연을 널리 모연하여 1년도 되지 않아 완성하였으니, 대웅전과 좌우의 여러 요사채, 행랑이 일시에 모두 완성되었다. 가히 하늘과 신이 도운 것이라 하겠다. 그 이후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고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은 지가 몇 년 되었다. 곧 신도들이 귀의하여 신심을 표한 것도 일찍이 없었던 일이니, 임신년 이후 각각 전답을 가지고 만나라蔓那羅를 바쳤고, 특별히 좋은 향을 사르며, 정오(日中) 마지摩旨를 하는 등의 일이 왕왕 있었다. 그 단신檀信이 자원하여 헌납한 전답은 다만 종이책에 치부置付할 뿐이니, 방동지중方東之中에 천번만번 생각해도 허술하다. 그래서 지금 부득이하게 각처 시주가 헌납한 전답과 시주의 이름을 비석 위에 새기나니 만세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명은 다음과 같다.
△質堅心 .... 굳센 마음
嵬嵬獨立 높고 높이 홀로 섰네
殿光照耀 전각 불빛 환히 비춰
嗚呼不泯 오호라 사라지지 않으리
壯氣△△ 장한 기운 ....
△桂無柯 계수 나무 가지 ....
碑影婆萬世 비명 그림자 만세에
△△上桂 ... 계수 위 ...
碧落名鐫石 돌에 새긴 이름 ....
上下壓山河 상하에 산하를 눌러
後世餘波 후세의 남은 물결
강희 50년(1711) 신묘년 2월 세우다.4. 서사암82) 사적 비문 西捨菴事蹟碑文성주聖住(성주산)는 곧 동방의 축령鷲嶺83)이요, 사암捨菴(서사암)은 곧 서토西土의 영은靈隱84)이다. 호산湖山이 띠같이 둘러 있어 본디 명승의 구역으로 일컬어졌다. 천석泉石이 비단처럼 고와서 과거에 꽃비 내리는 도량(雨花之場)으로 삼았으니, 마땅히 사령운謝靈運85)의 지팡이와 혜원慧遠86)의 석장이 여기에 노닐며 시를 읊은 적이 많았을 것이나, 그것을 기록한 것이 없는 것은 왜인가? 법당에 걸린 황黃 상사上舍의 편액을 본 즉 다만 자취뿐이었고, 누각에 걸린 이 수재李守齋의 매기枚記를 보면 곧 경물에 관한 -
0009_0026_a_01L戌夾鍾之望矣。大師廣募眾緣。不朞年而搆成。大雄殿及左右眾寮行廊。
0009_0026_a_02L一時俱作。可謂天扶神助者。然後衲子雲集。香火不絕。積有年矣。即未嘗
0009_0026_a_03L有檀越歸依表信者。自壬申以後。各將田畓以獻蔓那羅。特爇茗香。日中
0009_0026_a_04L摩旨之類。往往有之。其檀信所願許納田畓。徒以置付于紙墨。方東之中。
0009_0026_a_05L千思萬想。事涉虛踈。故于今不得已。各處施主許納田畓。與施主芳名。開
0009_0026_a_06L刊于碑石之上。萬世不無云。爾銘曰。△質堅心。嵬嵬獨立。殿光照耀。嗚呼
0009_0026_a_07L不泯。壯氣△△。△桂無柯。碑影婆萬世。△△上桂。碧落名鐫石。上下壓山
0009_0026_a_08L河。後世餘波。
0009_0026_a_09L康熙五十年 歲次辛卯二月所立
0009_0026_a_10L○西捨菴事蹟碑文
0009_0026_a_11L夫聖住。即東方之鷲嶺。捨菴乃西土之靈隱。湖山襟帶。素稱名勝之區。泉
0009_0026_a_12L石綺麗。古為雨花之場。宜有謝之笻。惠之錫。遊於斯。詠於斯。多矣。而無字
0009_0026_a_13L記實何也。於殿見黃上舍扁額。則第跡而已。於樓見李守齋枚記。則境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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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7_a_01L묘사뿐이라, 사람의 마음에 아정雅情이 없을 수 없었다. 최근에 승도들이 비(琬琰)를 세우려고 각수(剞劂)를 모은 뒤 나에게 명을 써달라 하며 말하였다. “그 일을 기록하는 까닭을 기록하고, 그 자취를 새기는 까닭을 새겨주십시오. 이제 선비께서 떠나면, 이 절이 언제 세워졌고 몇 년이 지났는지 까마득히 아득한 지난 일을 징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연하煙霞의 묵은 자취를 곧 미목眉目의 안案에 실으면 이 절의 오랜 역사가 오류없이 전해질 것이니, 이런 이유로 미리 약속을 맺어두고자 합니다.” 나는 “그러지요” 하면서 마침내 기記를 쓴다.
산 이름은 성주聖住이니 현사賢師가 일찍이 주석하였던가. 절 이름이 사암捨菴이니 옛 암자를 버리고 이전을 하였던가. 순치順治(청 세조의 연호, 1644~1661) 시절에 중수를 하였으니 화주는 누구인가, 이름을 잊었구나. 옹정雍正 계묘년(1723)에 해총海惚 대화상大和尚이 있어 터를 잡고 개척하여, 옛 모습보다 더 크고 훌륭해졌다. 이에 보광전普光殿은 우뚝하게 위엄을 드러냈고 관해루觀海樓는 성대하게 빛이 났다. 또 동서로 상사上舍가, 좌우로 선당禪堂이 세워졌고 절의 위토位土의 경계가 바로 잡히고, 불공을 드리는 땅과 밭은 넓어졌으며, 종과 경쇠 및 여러 기물이 많아진 것은 다 기록할 수가 없다. 또 도량의 규모가 커졌으니, 진실로 계산溪山의 면모(顔色)가 더욱 배가되었다. 지금은 곧 천년에 한 번 만나는 새로운 기회인 것이다. 이른바 삼한을 통틀어 으뜸이며 양서兩西(關西와 海西, 평안도와 황해도)를 통해서 비교할 만한 절이 없다는 말이 어찌 우스갯소리겠는가. 그러니 과거의 암자가 지금의 절이 된 것은, 작은 것에서 크게 되고, 은미한 것에서 시작하여 현달한 것으로서, 어찌 외부의 보호가 불가佛家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아, 부처의 가피가 사람 뼛속에 미친 것은 과연 단월의 공이니, 사람들의 입으로 멀리 전파한 즉 일이 비록 문채나고 혁혁하다 하더라도 과거의 자취를 누가 펼쳐 내세에 밝게 드러낼 것인가. 한 조각 돌에 공력을 들이는 것도 이와 같아서 가벼운 일이 아니다. 오래된 절의 자취를 서술하는 도리는 또한 그대들의 인연이 아니면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이에 명을 쓴다.
(송산松山은 산 이름. 용해龍海의 동쪽에 있다.) 범당梵堂은 높고 높아
(예전엔 작은 암자, 지금은 대찰이다.) 성주산의 자취 의구하다
(청산은 무너지지 않고, 벽해는 장구히 흐른다.) 이 돌 영원히 무너지지 않으리
숭정崇禎 기원 후 임술壬戌 곤춘坤春 상순(上沈)에 -
0009_0027_a_01L而已。不能無人情者雅矣。乃者僧徒竪琬琰。集剞▣ [49] 。請余記以銘余曰。記
0009_0027_a_02L所以記其事。銘所以銘其跡。今夫之去也。創何代。閱幾霜。而劫浩往事。杳
0009_0027_a_03L莫徵矣。烟霞陳迹。則眉目案載。此古實之無訛。因舉預結云云。余曰唯唯。
0009_0027_a_04L遂為記曰。山名聖住。賢師之曾住歟。寺稱捨菴。舊菴之捨移歟。粵在順治
0009_0027_a_05L時。值重修。則化者誰。忘其名。逮夫雍正癸卯時。則有若海惚大和尚。仍基
0009_0027_a_06L而開拓之。依樣子湧大之。於是普光殿之巍然。觀海樓之奐焉。又有東西
0009_0027_a_07L上舍。左右禪堂。又有寺位之經界正。佛供之土田廣。又有鍾磬器用之屬
0009_0027_a_08L多。不盖錄。而道場之規模大。苟溪山之顏色倍增。今則千載一新之會也。
0009_0027_a_09L所謂經三韓。不廢甲。兩西尠雙者。豈虛語哉。然則昔之菴。今焉寺。自小而
0009_0027_a_10L大。始微而顯者。庸非他護而佛結也歟。噫。佛氏之浹人骨。課檀越之功。播
0009_0027_a_11L人口遠。則事雖文而爀爀。若前日跡。雖陳而昭昭乎來世。功一片石同。不
0009_0027_a_12L足為輕。在古寺。敘蹟之道。又安得不爾係也。以銘曰。松山山者。龍海以東。梵堂岌崇。
0009_0027_a_13L昔之小菴。今也則剎。依聖住跡。青山不崩。碧海長流。不瀾者石。崇禎記元年後壬戌坤春上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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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8_a_01L모단주인慕斷主人이 짓고 쓰다.
불상. 삼존후불탱三尊後佛幀 1부, 중단탱中壇幀 1부, 제석탱帝釋幀 1부, 칠성탱七星幀 1부, 삼단련三壇輦 3좌, 나팔羅叭 1쌍, 바라鈸囉 8쌍, 불기佛器 55, 촛대(立燭臺) 3쌍, 쟁반錚盤 1좌. 욕읍浴[木*邑] 1좌, 놋화로(銅爐) 1좌, 이위李位.... [이하 결문]5. 황강 모성방 성거산 영축암87) 신건기 黃岡 慕聖坊 聖居山 靈竺菴 新建記당저當宁(순조) 14년 을해乙亥년에 삼산三山의 승려 계총桂摠이 지팡이와 차가운 바루 차림으로 송와松窩(소나무 움집)에 머물며 삼보를 수호하고자 했으나, 송지렴宋之濂88)이 절을 훼손하여 옛 도량에 보리 이삭만 무성한 것을 보고 가슴 사무치게 분개하는 마음이 도도히 일어나 그치지 않았다. 계사년 봄에 바야흐로 성거봉聖居峯 자락에 새 터를 얻었으니, 호산湖山이 띠처럼 두르고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화려하여 천지간 광대하고 맑은 기운이 화려하게 모인 곳이었다. 이곳은 마땅히 도내道內의 신령한 영부靈腑요 조화옹의 진실한 자취라 할 만하였기에 난야蘭若를 이전할 뜻을 가지고 설계雪髻 스님에게 권유하였다. 설계는 말하였다. “옛날에 노魯나라 사람이 장부長府89)를 만들었는데, 민자건閔子騫90)이 ‘원래 있던 것(舊貫91))이 어때서 꼭 다시 지어야만 하는가?’ 하자, 부자(공자)가 말하기를 ‘말이 이치에 맞는구나.’92) 하였습니다.” 대사는 성품이 바르고93) 감히 간언을 거절하지 않았으니 스스로 재물 수백 금을 희사하여 장인과 석공을 초치하고 인하여 원래 있던 재목을 나르고 나무 무성한 마당을 개간하여, 스스로 감독하고 톱으로 자르고 맥질하며 집을 지어 몇 달 만에 완성하였다.
암자를 영축靈竺이라 하고, 누각을 영호暎湖라 하니 세상에 둘도 없는 것이다. 영축과 영호의 의미는 현묘함에 있지 않고 산수에 부친 것이다. 그 처마의 통창通彰함과 창문의 -
0009_0028_a_01L慕斷主人撰而書。
0009_0028_a_02L不 [50] 像三尊後佛幀一部。中壇幀一部。帝釋幀一部。七星幀一部。三壇輦三
0009_0028_a_03L坐。羅叭一雙。鈸囉八雙。佛器五十五。立燭臺三雙。錚盤一坐。浴▼(木+邑)一坐。銅
0009_0028_a_04L爐一坐。李位則〔以下缺文〕。
0009_0028_a_05L○黃岡慕聖坊聖居山靈竺菴新建記
0009_0028_a_06L當宁十四年乙亥。三山釋桂摠。一笻寒鉢。來住松窩。守護三寶。而仍見宋
0009_0028_a_07L之濂毀寺。舊塲麥秀穰穰。而竊竊憤慨之歎。滔滔不已。逮夫癸巳春。昉得
0009_0028_a_08L新基於聖居峯脘。而湖山襟帶。泉石綺麗。最得天地磅礡清淑之氣。華而
0009_0028_a_09L鍾焉。宜其為道內之靈腑。造化之真蹟。故移建蘭若之意。詢於雪髻。髻曰。
0009_0028_a_10L肆昔魯人之為長府也。閔子曰。仍舊貫如之何。何必改作。夫子稱言之有
0009_0028_a_11L中。師也性是秉彝。莫敢諫拒。而自䬳物財數百金。招致匠石。仍輸舊材。拓
0009_0028_a_12L其樵塲。而自其董役。鉅之斷之。塈之築之。閱月成之。菴之靈竺。樓之暎湖。
0009_0028_a_13L世之尠雙也。靈竺。暎湖之意。不在玄妙。而寓於山水。其簷寓之通彰。戶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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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9_a_01L병랑炳烺함이 곧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 것 같아 새로이 난야蘭若를 지었다. 이 암자에 거처하는 자는 인으로써 욕심을 막고 덕으로써 몸을 윤택하게 하며, 위로 나는 솔개(鳶)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물고기가 약동하는 것을 굽어보며, 즐거움에 살아가는 자체를 잊으니, 태백太白의 호승胡僧94)과 같이 인지仁智의 즐거움을 마음에서 얻어 경치에 부치기를 기약할 만하였다. 산수의 심성을 오롯이 하여 산수 가운데 숨고, 심성의 산수를 오롯이 하여 심성 위에 드러내니, 견문見聞 각지覺知가 심성心性 산수山水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산으로써 말을 삼가고, 물로써 욕심을 씻어내며,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일세를 오만하게 여기며 삼공三公을 업신여기는 것을 배격하니, 그 연하煙霞의 참된 자취는 진晉, 당唐의 고승과 비슷하다.
무릇 그런 연후에 지령地靈은 그 인물을 얻고, 풍월風月은 그 주인을 얻으며, 운수雲水는 그 자재함을 얻는다. 그런 까닭에 물物은 그 생을 얻고 성인의 교화를 입어 바다같이 넓은 가운데 좌정한 이를 운수승雲水僧이라 하나니 그렇지 않겠는가. 대개 오래된 절은 왕왕 자취를 밟으면 자료가 민멸하여 고찰할 거리가 없고 다만 옛 비갈碑碣에 기록된 것뿐이라, 옹정雍正 연간 계묘년(1723)에 운수도인雲水道人 해총이 사암捨庵의 터를 처음 열었다는 기록뿐이다. 곧 과거 허현도許玄度95)가 월주탑越州塔을 세울 때, 원택圓澤이 삼생석三生石을 기약96)한 것과 같다. 앞서 해총海摠이 천 백년 전에 떠나갔고, 후에 계총桂摠이 천 백년 뒤에 나타났으니, 대개 인간의 윤회와 사물의 순환이 인연을 기다려 숨고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과와 물物의 감응이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호겁浩劫토록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앞서 해총의 박옥璞玉을 여기에서 자를 이는 과연 뒤에 온 계총이 아니겠는가. 두 어진 스님의 후손을 위하여 즐거이 기문을 쓴다.芳洲一曲 層巒數疊 아름다운 섬 한 구비, 층층 봉우리 겹겹
一片名區 丹青莫狀 한 조각의 이름난 구역, 단청으로 그릴 수 없네
尋其緩步 洽入畵中 느릿 걸으며 진경 찾다 그림 속에 빠져 드네
四時佳景 造化無窮 사시의 좋은 풍경, 조화는 무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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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29_a_01L之炳烺。即一鳥革暈飛之。新建蘭若也。居是菴者。以仁遏欲。以德潤身。上
0009_0029_a_02L察鳶飛。俯瞰魚躍。樂以忘生。可與太白胡僧。等期仁智之樂。得於心。而寓
0009_0029_a_03L於景。全山水之心性。隱於山水中。全心性之山水。顯於心性之上。見聞覺
0009_0029_a_04L知。無非心性山水也。故山以慎言。水以濯慾。排巢父拉許由。傲一世。蔑三
0009_0029_a_05L公。其烟霞真蹟。倚俙晉唐高師也。夫然後。地靈得其人。風月得其主。雲水
0009_0029_a_06L得其自在。所以物遂其生。咸囿於聖化。洋洋之中。而靜以坐者。雲水僧之
0009_0029_a_07L名。不其然乎。盖故寺。往往陳蹟。泯莫可考。而但舊碣所著。粵在雍正癸卯。
0009_0029_a_08L雲水道人海摠。鼻基捨寺云云。則昔許玄度築越州塔。圓澤期三生石。前
0009_0029_a_09L乎海摠千百歲之已往。後乎桂摠千百歲之當來。槩言人之輪廻。物之循
0009_0029_a_10L環。有待緣而顯晦者也。人之因果。物之感應。影響相從。浩劫不可無也。前
0009_0029_a_11L乎海摠。剖璞於此。果非後乎桂摠者歟。後二師之賢。樂為之記。
0009_0029_a_12L芳洲一曲層巒數疊。一片名區丹青莫狀。
0009_0029_a_13L尋其緩步洽入畵中。四時佳景造化無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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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0_a_01L山削筆峯 千年屹立 산은 필봉 깎아내어 천년을 우뚝 섰네
閭閻撲地 炊烟朝暮 민가는 땅에 가득, 아침저녁 밥 짓는 연기
湖開墨澤 百里流通 저수지는 시퍼런 물 쏟아 백 리를 흐르고
樹木叅天 濃陰北東 수목들은 하늘로 솟아 북동쪽 짙게 그늘지네
秋色躍金 江清月白 가을빛은 약동하는 금빛, 강은 푸르고 달은 은백색
年鶯得句 青襟詞客 해마다 꾀꼬리 좋은 시구요, 유생들(青襟)은 시객이라
春光錯繡 柳綠桃紅 봄빛 수놓으니 버들 푸르고 도화 붉어라
觀魚垂釣 白髮漁翁 고기 보고 낚싯대 드리우는 백발의 어옹이여
卜居勝景 管領風物 좋은 경치에 복거하며 풍물을 다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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偃仰其間 樂在摠公 그 사이에 안락하는 즐거운 총공이여
도광道光 14년(1834) 갑오년 8월 길일吉日에 연당蓮堂 소계小髻가 짓고, 송계거사松溪居士 이종억李宗檍이 쓰다.6. 백록도관사97) 증건기 白鹿道觀寺增建記삼가 주부자朱夫子(朱子)의「백록동부白鹿洞賦」98)를 살펴보니, 백록동白鹿洞은 성자현星子縣 여산廬山에 있다. 선생이 남강군의 지사(知南康軍)로 있을 때 서원을 건립하였으니, 여산은 곧 도가서道家書에서 말하는 제16 동천99)으로 과거에 선궁禪宮과 범우梵宇가 많았던 땅이다. 그러므로 주자의 시 아송雅誦100) 가운데 만삼사萬杉寺, 낙생사落生寺, 원공대遠公臺가 등장했던 것이니, 곧 선생이 아침저녁으로 몸소 쓸고 다니며 유람을 넉넉하게 했던 곳이다. 유자와 승려는 비록 서로 다른 도리를 추구하나, 모두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욕심을 덜어내며, 세상 얽매임을 절연하는 것에서 보면 그 도는 하나다. 그러므로 서원書院과 범천梵天이 -
0009_0030_a_01L山削筆峯千年屹立。閭閻撲地炊烟朝暮。
0009_0030_a_02L湖開墨澤百里流通。樹木叅天濃陰北東。
0009_0030_a_03L秋色躍金江清月白。年鶯得句青襟詞客。
0009_0030_a_04L春光錯繡柳綠桃紅。觀魚垂釣白髮漁翁。
0009_0030_a_05L卜居勝景管領風物。△△△△△△△△。
0009_0030_a_06L偃仰其間樂在摠公。
0009_0030_a_07L道光十四年 甲午 八月 吉日 蓮堂小髻識。
0009_0030_a_08L松溪居士 李宗檍 書
0009_0030_a_09L○白鹿道觀寺增建記
0009_0030_a_10L謹按 朱夫子白鹿洞賦。則洞在星子縣廬山下。 先生知南康軍時。建
0009_0030_a_11L書院。廬山即道書所謂第十六洞天。向禪宮梵宇。多在其地。故 朱詩雅
0009_0030_a_12L誦中。有萬杉寺落生寺遠公臺。即先生朝暮。濟拚以窮。以遊覽之富者也。
0009_0030_a_13L儒釋。雖為異塗之要。皆清心寡欲。絕其俗累。則其道一也。故書院及梵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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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1_a_01L모두 깊고 고요한 곳, 거마車馬가 이르지 못한 땅에 있는 것은 진실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황주 땅 동쪽 5리쯤에 백록동이 있으니, 좌우에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고, 앞쪽으로는 굽이진 시내가 펼쳐져 있어 무이武夷101) 계곡과 은연중에 흡사한 느낌을 준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에 그 읍의 선비가 백록동에 나아가 서원을 건립하여 주자를 제사드리는(亨祝)하는 곳으로 삼아 율곡栗谷 이李 선생(李珥)과 한훤寒喧 김金 선생(金宏弼)102)을 배향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백록서원白鹿書院이라는 사액을 내렸다. 그리고 그 남쪽 기슭에 급유給儒를 두었으니, 전날 송宋에서 역마驛馬를 달려 경經을 하사했던(馳驛賜經) 곳으로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서원 아래 백百 무武 거리에 사찰이 있으니 도관사道觀寺다. 봄가을로 서원에서 제향을 지낼 때, 절의 승려들이 제수용 반찬(饌需)이나 그릇 씻는 사역을 하던 곳이고, 사원 유자들이 현송絃誦103)할 때 혹 승방에서 휴식(遊息)을 취하기도 한 곳이다. 그러므로 서원과 절은 일체가 되어 천석泉石과 초목을 보호하였고, 물길을 내고 나무를 심어, 서로西路의 명승지가 되었다. 도관사는 본래 협소하여 다만 공전空殿만 있을 뿐 낭무廊廡가 갖추어지지 않아, 승도들이 편안히 머물 방이나 불서를 배열할 장서각이 없었다. 곧 모든 승려들이 이를 답답하게 여겼고, 유생들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무술戊戌년에 문택文澤 스님이 이곳에 와서 개연히 증축, 수리할 생각을 가지고 터와 형세를 살폈으나 이로부터도 몇 년이 흘렀다. 마침내 무오년과 기미년에 이르러 자비 천여 금으로 두 전각을 지었으니 칠성전七星殿과 향로전香爐殿이다. 높이 솟은 지붕은 툭 트여 시원하고, 여러 첩으로 빙빙 둘렀다. 부처님을 받들어 그 영험을 기도하고, 관승館僧으로 하여금 그 일을 맡게 하였으니, 문택 스님이 절의 중건에 힘썼다 하겠다.
서원에서도 또한 도움이 있었으니, 그 적선함이 어찌 크다 하지 않겠는가. 또한 승려된 이는 석문釋門에 마음을 다하고, 유자된 이는 유문儒門에 마음을 다하니, 비록 각자 자신들의 교문敎門은 위하지만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또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문택 스님이 자신의 낭탁囊橐을 비우고, 아침저녁으로 고심하여 유자와 -
0009_0031_a_01L皆在於幽邃閴寐。車馬罕到之地者。良以此也。惟東國黃州治東五里許。
0009_0031_a_02L有洞名白鹿。左右峯谷。前案溪曲。與武夷。無不暗令坂。自數百年前。邑之
0009_0031_a_03L士。即洞建院。以為朱夫子享祝之所。配以栗谷李先生。寒暄金先生。自朝
0009_0031_a_04L家賜額曰。百鹿書院。則此之南鹿。置曰給儒。前宋馳驛賜經。尤其有光矣。
0009_0031_a_05L院底數百武之地。有一坐寺。即道觀寺也。春秋院享時。寺僧給其饌需。滌
0009_0031_a_06L器之役。院儒之絃誦者時。或游息於僧房。故院與寺。一軆相護泉石草木。
0009_0031_a_07L䟽濬庇植。以為西路之勝地矣。道觀寺。自來挾小。只有空殿。而廊廡未具。
0009_0031_a_08L僧徒無燕居之室。佛書無架閣之所。則諸釋皆以鬱悶。而儒生亦多貽羞。
0009_0031_a_09L粵在戊戌之歲。有僧文澤來住。慨然有於增修。相址而勢。盖亦有年。而至
0009_0031_a_10L于戊午已未。自費其千有餘。則創建二殿。曰七星。曰香爐。迴翔軒敝。繚繞
0009_0031_a_11L複疊。奉佛以要其靈。舘僧以𨽻其業。澤之於寺。可謂勤矣。其在書院。亦為
0009_0031_a_12L有助。其積豈不偉矣乎哉。且為釋者。盡心於釋門。為儒者。盡心於儒門。雖
0009_0031_a_13L各為其門。馬 [51] 可稱者。亦人所難。而况澤師之罄其囊橐。朝夕殫慮。以為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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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2_a_01L승려 양쪽을 위한 것은 지극히 가상한 일이다. 옛날 주부자朱夫子가 가사可師104)의 달관헌達觀軒105)에 유숙할 때, 연평延平 이李 선생에게 왕래하며 가르침을 얻었으니, 옛 서림西林에서 노래한 것이 주자의 시에 자주 나온다. 그런데 지금 여기의 도관사와 서원은 서로 마주 서서 바라보고 있으니, 이 또한 후생의 서림이다. 또한 여산에 백록원이 없더라도 만삼사와 낙생사 등 여러 절의 이름이 함께 드러나는 것은 실제와 기록이 서로 유사한 즉, 이러한 일을 사람들을 위해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경신년 8월 일 서序를 쓰다.
향헌鄉憲 안전安銓
유부헌儒副憲 김항규金恒奎
집강執網 김경철金敬哲
색장色掌 이회여李會汝
향집망鄉執網 최경조崔敬祖7. 백록 도관사 극락전와 청성루 요사 중수기(白鹿道觀寺極樂殿與請聖樓(序-予+(嘹-口)))舍重修記황강黃岡 땅 동쪽 십 리 정도에 우람하게 우뚝 솟아 있는 것은 천주산天柱山이다. 산 아래 백록동白鹿洞이 있고, 그 서남쪽 여러 봉우리의 임학林壑이 더욱 아름다워 울창하게 보이는데, 그 사이에 절이 하나 있으니 곧 도관사道觀寺다. 도관사는 과거 회암晦菴 주희朱熹 선생이 강송講誦하던 -
0009_0032_a_01L釋之兩便者。極為可尚矣。昔 朱夫子。嘗舘於可師之建 [52] 觀軒。往來受教
0009_0032_a_02L於延平李先生。故西林之咏。屢見於朱詩。而今道觀寺與院。相堂供其眺
0009_0032_a_03L瞰。則此亦後生一西林也。且與廬山之不既有白鹿院。而杉生諸寺。併著
0009_0032_a_04L其名者。事文相類。則此皆不可不為人說者也。
0009_0032_a_05L歲在庚申八月 日序
0009_0032_a_06L鄉憲 安 銓
0009_0032_a_07L儒副憲金恒奎
0009_0032_a_08L執網 金敬哲
0009_0032_a_09L色掌 李會汝
0009_0032_a_10L鄉執網崔敬祖
0009_0032_a_11L
0009_0032_a_12L白鹿道觀寺極樂殿與請聖樓▼(序-予+(嘹-口))舍重修記
0009_0032_a_13L黃岡之地治東十里許。磅磚 [53] 高卓者。天柱山也。山下有白鹿洞。其西南諸
0009_0032_a_14L峯林壑尤美。望之蔚然。而寺于其間者。道觀也。道觀寺。昔朱晦菴講誦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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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3_a_01L곳이다. 창건한 지 상당히 오래되어 채색한 들보에 방에서 별이 보이며, 푸른 이끼 낀 기와에 주추는 갈라져, 전날 등림登臨하여 시를 읊던 무리들이 누대에 기대어 읊던 감흥이 사라지고, 모두 애처로운 탄식만 내뱉었으니 하물며 그곳에 거처하는 스님들은 어떠했겠는가. 이에 본사의 승려 지택智澤과 지수𤥴輸, 징률瞪律 두 스님이 함께 모의하여 시주를 모으고 솜씨 좋은 장인(倕巧)을 모아 단청을 하고, 지붕을 잇는 이는 지붕을 잇고, 경영하여 오래지 않아 완성을 이루었다. 산은 후덕한 얼굴로 객을 맞이하고 주인은 객을 맞는 예의를 갖추니 객은 번뇌심이 없어졌다. 이에 이르러 객은 기뻐 미소 짓고 주인도 기뻐 즐거워하여 그 즐거움을 즐기니, 주인과 손님이 모두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금 후에 객이 말하였다. “산허리 굳세니, 절이 아름답구나.” 노사老寺가 말하였다. “그렇다.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산은 태백太伯 보다 못하지 않으니 고사高士들이 도를 깨치는(悟道) 곳이요, 절은 청량淸涼에 버금가지 아니하니 신승神僧들이 천성을 따르는(率性) 곳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도에 통달한 대사들이 이곳에서 쉼을 얻고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동쪽 뫼에서 솔잎을 따고 아침노을로 요기를 채우고, 서쪽 뫼에서 찬 샘물 떠서 달무리 마시며 마음을 씻으니, 정신은 극락의 경계에서 노닐며 마음은 희황羲皇의 하늘로 들어가니, 주인과 객이 함께 즐거워하고 즐거움을 마음에 새기며 스스로 자적하도다.
그러나 동쪽으로는 한양길이 닿아 있고 패강浿江(대동강)으로 이어져 공자와 왕손이 백구를 매어놓고 배회하며, 시인과 묵객이 꽃다운 시를 읊으며 돌아오기를 잊는다. 별실에는 겨우 자리를 말아 서쪽의 승당僧堂은 늘 객들로 가득하다. 열 섬(十石)을 방아 찧어 열흘을 먹으니 솥은 선비들에게 흠이 되지 않고, 구하는 것은 한 말이니 쌀 항아리가 늘 계록繫綠106)할 때가 없다. 취하고 깨는 것은 객이요, 맞이하고 보내는 것은 스님이다. 이 도관사를 개시하여 경영하는 여러 승려들의 공을 어찌 높은 삼공三公에 비교하겠는가. 그러나 주인과 객이 서로 얻는 즐거움과 희사하는 재물은 삼공의 힘이 아니요, 주부자朱夫子가 끼친 은택이 점점 스며든 것이다. 이 도관사는 서원과 절과 마을과 함께 흥폐를 함께할 만하니 -
0009_0033_a_01L處也。肇基許久。畵樑星房。碧瓦龜坻。前日登臨之輩。聊無倚樓之興。咸起
0009_0033_a_02L忨愾之嘆。况居僧乎。此乃本寺僧智澤與𤥴輸瞪律二上人。同共暮 [54] 議。鳩
0009_0033_a_03L財檀信。倕巧輻輳雘之。葺者葺之。經之營之。不日成之。山以厚顏以段。客
0009_0033_a_04L主相對客之禮。客無煩惱之心。於是乎。客而戱以笑。主而喜而樂。樂其樂。
0009_0033_a_05L而主客偕得以享其樂也。小焉。客而曰。山阿之固兮。寺之美矣。老寺曰。然。
0009_0033_a_06L客亦知否。山不下於太白。高士悟道之地。寺不亞於請 [55] 凉。神僧率性之處
0009_0033_a_07L也。由來達道之師。息肩於斯。點茶於斯。摘松葉於東岑。餐朝霞而饒飢。掬
0009_0033_a_08L寒泉於西峯。飲月霞而洗心。魂游極樂之界。心入羲皇之天。主客偕樂樂。
0009_0033_a_09L考樂而自適也。然而東連漢路。暨沮 [56] 江。公子王孫。繫白駒而盤桓。騷人墨
0009_0033_a_10L客。詠譖葩而忘歸來。別室纔捲席。而西僧堂。常盈客也。舂十石而終旬。鼎
0009_0033_a_11L不瑕冠也。需而一斗之。不時壺長繫綠也。醉之醒之者。客也。迎而送之者。
0009_0033_a_12L僧也。是道觀也。經始之功。諸僧何與崇三公。然主客相得之樂。捨施之物。
0009_0033_a_13L非三公之力也。乃是朱夫子餘澤之所漸也。此道觀。可與院寺洞興廢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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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4_a_01L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도광道光 5년(1825) 을유년 초추 7월8. 심원사107) 사적 비문 心源寺事跡碑文유명조선국 황해도 황주 동면 자비산 심원사 사적비명 병서 有明朝鮮國黃海道黃州東面慈悲山心源寺事跡碑銘并序세사歲舍108) 알봉돈상閼逢敦祥109), 섭제攝提의 달110)에 나는 황강黃岡의 제안당齊安堂에 있었는데, 극평克評이라는 승려가 여러 차례 찾아왔다. 나는 함께 앉아서 물었다. “나는 일찍이 공문空門의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스님 또한 나에게 얻을 것이 없을 것이오. 그런데 어찌 계속 찾아와(于于) 쓸데없는(空空) 말을 하는가.”
극평은 정례하고 말하였다. “해일海日111) 땅 동쪽에 소금강小金剛이 있으니, 해서海西의 으뜸가는 명산입니다. 그 산에 심원사心源寺가 있는데, 절이 중창된 지가 몇 년 흘렀으나 그 자취를 기록한 기문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한 마디 말씀으로 후대에 알려주십시오.” 나는 이에 적연適然히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모르고, 심원사 또한 내 발걸음이 미친 곳이 아니오. 지금 내가 갑자기 듣고 대충 이야기하면, 그대와 나는 결국 경박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오. 나는 진실로 글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대가 나의 병을 따라 한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극평은 말하였다. “절의 흥성함과 쇠함은 운수에 달려 있고, 물物의 성패는 ▣▣에 있습니다. 절이 처음 창건된 때는 그 연대를 알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홍무洪武 갑인년(1374)에 목은牧隱 이공李公112)이 작은 계곡이 험조險阻한 것을 보고 여기에 성을 쌓아 나라를 보장保障하는 계획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돌아갈 때 수근水根이 잠시 말라 법도에 따라 일을 하고 잠을 자며, 청나라로 가는 조천사朝天士의 임명 소식을 듣고 이곳에 원당願堂을 두고자 하였습니다. 보광전普光殿, -
0009_0034_a_01L豈休哉
0009_0034_a_02L道光五年。乙酉秋七月。
0009_0034_a_03L○心源寺事跡碑文
0009_0034_a_04L有明朝鮮國黃海道黃州東面慈悲山心源寺事跡碑銘并序歲舍閼逢
0009_0034_a_05L敦祥。攝提之月。余在黃岡之齊安堂。有僧克評者。重研而至。余乃與之坐
0009_0034_a_06L而問焉。曰。余未嘗有空門之度。爾亦無求於我在也。何其來之于于。而言
0009_0034_a_07L之空空也。評乃征 [57] 禮。海日州治之東。有小金剛。此乃海西之第名山。山之
0009_0034_a_08L中有心源寺。寺之重剏有年。而無以記其跡。願借一言。以詔後。余於是適
0009_0034_a_09L然一笑。而謂之曰。子非知我者也。心源寺亦非吾屣及之處也。今乃驟聞
0009_0034_a_10L而函言之。則爾與吾。皆為浮浪之歸耳。余固有喜書之癖。而爾欲盖吾病
0009_0034_a_11L為焉。世咲乎。評曰。寺之癈興也有數。物之成敗也在 [58] 矣。欺 [59] 初經始。在未知
0009_0034_a_12L其代。人往。在洪武甲寅歲。牧隱李公。以其小溪之險阻。築城于此。欲為保
0009_0034_a_13L障之計。為適回。水根固涸。事守中寢。因聞于朝清。置願堂耶。謂謂。普光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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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5_a_01L`청풍루清風樓와 동서의 양 요사(窩)는 이때 일시에 추진하여 세운 것입니다.
이색이 조천朝天113)하는 길에 오도자吳道子114)가 그린 관음영탱觀音影幀 한 축軸을 얻어 한양으로 돌아올 때 절의 한쪽 벽에 걸어두도록 하였는데, 아직도 엄연儼然히 살아있는 듯합니다. 어찌 불교를 숭상하거나 믿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대개 치도緇徒들이 영구히 귀의하는 곳이 있기 바랐기 때문이다. 만력萬曆 계유년(1573)에 계묵戎默115)이란 승려가 중수하였고, 이듬해 갑술년(1574)에 마무리하였는데, 준공할 때 53불을 이곳에 받들어 모셨습니다. 이상이 이 절이 흥하고 쇠락한 역사의 대략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백여 년 간 무너지고 새고 흩어지고 사라진 것이 여러 번이어서 뜻이 있는 이들이 이를 보고 개연慨然한 심정을 가졌습니다. 이에 인印과 묵默 스님, 그리고 몇 동지가 재물을 모으고 곡식을 쌓은 후 길일을 택해 개창하여 옛 모습보다 더 좋게 만들었는데, 시작하자마자 일이 완성되어 계사년(1593년인 듯)에 완공하였습니다. 토목이 잘 갖추어지고 단확丹臒도 일신하니 강산은 생생한 빛을 띠고, 누각은 그 풍경을 변화시켰다. 이 어찌 천신天神과 지령地靈이 하나의 사찰을 잘 갖추는 데 마음을 써서, 우리들에게 오래되고 소박하고 누추한 땅 한 곳의 면목을 새롭게 바꾸어 놓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 절을 세운 것은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과거에 풀이 무성한 터를 보면 어찌 이 절이 있으리라 알았겠으며, 그 당시 무너지고 썩고 퇴색(黝堊116))한 것을 보고 어찌 화려하고 아름다운 볼거리로 변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범인凡人의 정은 기이한 꽃과 담초曇草가 눈앞에 활짝 피어 빛나는 것을 보면 곧 그 장소를 물어 스스로 찾아와 노래 부르고 그 아름다움을 상찬하나니, 이는 곧 시인 묵객(翰墨)의 일입니다. 하물며 이 심원心源이라는 절 이름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시捨施하는 신도들의 뜻을 모아 천금으로 비석을 매입하고 일의 실제를 기록하여 그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있게 되면, 선善에 어둡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찌 그 물의 흐름을 트이게 하여 그 물결을 드러내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마침내 깜짝 놀라 깨닫고 말하였다. “마음(心)은 한 몸을 주재하는 것이요, 근원(源)은 만류萬流의 근본이로다. 저 공적空寂의 남은 물결로써 우리 정맥正脉의 연원을 -
0009_0035_a_01L清風樓。及東西兩窩。皆其一時之營結也。朝天之路。得吳道子所畵觀音
0009_0035_a_02L之影▼(巾*卓)一軸。為歸命揭寺壁。尚今儼然。豈其崇信為然也。盖欲緇徒之永
0009_0035_a_03L有依歸也。逮至萬曆癸酉。有僧戎默者重修。越明年甲戌。斷手。返於竣事。
0009_0035_a_04L以五十三佛。奉留于此。此乃斯寺興廢之大略也。距今數百餘歲。而壞漏
0009_0035_a_05L漫滅者多矣。有志者。亦尚慨然于斯矣。斯僧印僧默與其數三同志者。鳩
0009_0035_a_06L材峙粮。卜吉剏改。而增其舊制。始而成。終于癸巳。土木既該。丹雘亦新。江
0009_0035_a_07L山動色。樓閣改觀。此豈非天神地靈。有意於侈飭一剎。而使我年久樸陋
0009_0035_a_08L之地一所。而煥然易新其面目乎。然則是寺之建。亦非偶然也。昔日原野
0009_0035_a_09L草。豈知有此寺。曩時之頹腐黝堊。豈意變作華美觀乎。凡人之情。見一奇
0009_0035_a_10L花曇草。榮耀於視瞻。則必詢其所。自來歌詠稱賞之者。此是翰墨間事也。
0009_0035_a_11L况此心源之名名好矣。而有志於舍施之走。千金買碑。願記事實。則可見
0009_0035_a_12L其心之源。於善而不昧者。亦章章矣。盍亦開其流。而揭其波乎。余遂矍然
0009_0035_a_13L而悟曰。心者。一身之主宰。源。萬流之根本。以彼寂之餘派。揆吾正脉之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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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6_a_01L헤아려보면, 곧 그사이의 거리가 천양지차로 멀 뿐이 아니고 발자취도 그 방향이 나뉘니 그 근원이 서로 심하게 멀지 않도다. 그러므로 여기에 그 전말을 대략 적어 산중의 보잘것없는 글의 자료로 삼고자 하노라.”명銘을 쓴다.
地形磅礡 山靈▼(挖-乙+稚)衛 땅 형세 웅장하고 산신령 옹위하니
心源為號 面場其勢 심원은 그 이름, 면장面場은 그 형세
逸士韻釋 相繼遊憩 일사逸士와 운석韻釋들, 서로 이어 쉴만한 곳
粵惟牧老 創開影堂 목은 노인께서 진영당을 개창하여
暨厥嘿師 重繕普光 묵 스님에 이르러 보광전 중수했네
興廢數 成毀無常 흥폐는 운수이고, 이루고 무너짐은 무상하여
棟宇傾頹 金碧漫漶 건물은 퇴락하고 금벽은 흩어져서
緇徒合辭 銳意輪興 치도들이 말을 맞춰 견고한 뜻 일어나니
琳宮隱暎 寶璀璨 임궁琳宮은 은은히 비치고 보최寶璀는 찬란
恒沙日月 萬古長燭 항하사 같은 일월이여, 만고에 길이 빛나리
煙開翠微 塔聳丹壑 푸른 연기 펼쳐지고, 탑은 단청 위로 솟아
紀蹟貞珉 永垂無極 절의 역사 비에 새기니 영원토록 끝없으라.9. 신광사 사적 神光寺事蹟신광사神光寺117)는 북숭산北嵩山118)에 있으니, 곧 원 순제元順帝의 원찰願剎이다. 순제가 대감大監 송골아宋骨兒에게 장인 37인을 인솔하도록 하고, 고려高麗 시중侍中 김석견金石堅, 밀직부사密直副使 이수산李壽山 등과 함께 감독하여 법당法堂과 보광명전寶光明殿을 건립하였다. 보광명전의 좌우에는 긴 회랑 따라 못을 만들었는데, 높낮이의 경사가 정밀하고 교묘함이 극치에 달하였다. 보광명전의 동쪽에는 누각과 재료齋寮가 있고, 북쪽에도 하나의 전殿이 있는데 그 앞에 석탑이 있다. 서쪽에는 나한전羅漢殿이 있는데, 6층의 시렁 가운데, 나무로 산을 만들어 진흙으로 칠하고, 여기저기 산의 동굴 모양을 만들고 단청을 칠하였다. 산 굽이에는 나한소상羅漢塑像 천여 기를 안치하였다. 나한전의 굉장宏壯함은 다른 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나한전 앞에는 침실이 있고, 밖에는 명헌동明軒洞이 있는데, 온 산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오고 가는 유람객이 반드시 이곳에 올라 조망하였다. 나한전 뒤쪽에는 별전別殿이 있는데 그 뒤쪽에도 해장전海藏殿이 있다. 이곳에는 석불경판石佛經板을 안치하였고, 중문 돌계단 위로는 좌우의 긴 회랑과 종루가 있다. 종루 아래로는 -
0009_0036_a_01L源。則其間相距。不啻若天壤之懸絕。跡其趣向之所分。則其源不甚相遠
0009_0036_a_02L也。故於是乎。略舉其顛末。以為山中覆瓶之資爾。銘曰。
0009_0036_a_03L地形磅礡。山靈▼(挖-乙+稚)衛。心源為號。面場其勢。逸士韻釋。相繼遊憩。粵惟牧老。
0009_0036_a_04L創開影堂。暨厥嘿師。重繕普光。興廢數。成毀無常。棟宇傾頹。金碧漫漶。緇
0009_0036_a_05L徒合辭。銳意輪興。琳宮隱暎。寶璀璨。恒沙日月。萬古長燭。煙開翠微。塔聳
0009_0036_a_06L丹壑。紀蹟貞珉。永垂無極。
0009_0036_a_07L○ [60]神光寺在北嵩山。即元順帝願剎也。遣大監宋骨兒。率工匠三十七人。
0009_0036_a_08L與高麗侍中金石堅。密直副使李壽山等。監董。營建法堂。寶光明殿。殿前
0009_0036_a_09L左右。長廊因池。高下傾斜。而極其精巧。殿東有樓及齋寮。北有一殿。前有
0009_0036_a_10L石塔。西有羅漢殿。六架當中。以木為山。塗以粘土。亂為山窟之形。漆以丹
0009_0036_a_11L青。山之曲處。坐以羅漢塑像千餘。殿之宏壯。他山所未有也。殿之前有寢
0009_0036_a_12L室。外有明軒洞。見一山上下。去來游客。必於此登眺焉。羅漢殿後有別殿。
0009_0036_a_13L又其後有海藏殿。安石佛經板。中門石階上。有左右長廊及鍾樓。樓下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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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7_a_01L 돌거북(石龜)의 옛 비석이 있는데, 그 좌우로 측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아래쪽으로 대문이 있는데 앞쪽의 시내를 굽어볼 수 있다. 동쪽 서쪽에 각각 대전大殿이 있는데, 동전東殿 아래에는 양진당養真堂이 있고 또 산신사山神寺, 영마전影磨殿, 그리고 둥글게 도는 맷돌(石磨)이 있다. 절의 사면으로 만산이 빙 둘러 모이고, 삼나무 잣나무가 숲을 이루며 등나무 덩굴이 둘러쌌다. 큰 물줄기는 밑으로 떨어지며 천지를 진동하는데, 골짜기 안으로 흘러들어 둥근 반석이 골짜기에 가득하고 맑은 강물이 평평하게 흐르다 단풍나무 상수리나무를 맴돌며 품에 안으니, 이른바 승선암昇仙岩이다. 그 위에 장선동藏仙洞이 있어 흰 바위와 맑은 시내가 좌우에서 연이어 비치고, 소나무 노송나무는 창창하고 연하는 자욱하니 참으로 별천지(別境)다. 강희康熙 정사년(강희 16년, 1677) 4월 초5일 불이 일어나 전우殿宇, 불상과 승방僧房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이듬해 무오년(1678)에 보광전普光殿, 설법전設法殿, 약사전藥師殿, 시왕전十王殿, 만세루萬世樓와 승료僧寮를 중건하였다. 병술년(1706)에는 또 나한전羅漢殿을 건립하였다.10. 신광사 사적기 神光寺事蹟記신광사神光寺의 사적기事蹟記원 순제元順帝가 초년(등극 전)에 서해西海 대청도大青島로 귀양을 왔다. 서해의 산천을 두루 유력하다가 해주의 북숭산北嵩山 아래 이르렀는데, 풀숲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맑은 기운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살펴보니 그곳에 불상 하나가 있었다. 마침내 불상을 향해 기도하며 말하기를 “만약 부처님의 가피(冥祐)를 입어 환궁還宮하여 등극登極하면 이곳에 절을 지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 순제가 환궁하여 등극한 지 2년째 되던 해 그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어찌 나를 잊었는가?” 하였다. 순제는 꿈을 깬 후 이상히 여기고, 마침내 중국의 재력을 크게 기울여 신광사를 세웠으니, 절의 장려함이 동방에 으뜸이었다. 고려사를 보면, 충혜왕忠惠王 4년, 곧 순제順帝 원년119)에 (충혜왕이) 해주에 행차하여 신광사에 축수하기를 부탁하였다. 그런즉 과거에 이미 절이 있었는데, 순제가 특별히 중수하고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
0009_0037_a_01L石龜古碑。所植處左右。側栢列立。下有大門。俯臨前溪。東西有大殿。東殿
0009_0037_a_02L下有養真堂。又有山神寺。又有影磨殿。有圓轉石磨。寺之四面。萬山環合。
0009_0037_a_03L杉栢成林。藤蘿籠絡。大川流下。震動天地。至于洞內。盤石滿壑。清流平鋪。
0009_0037_a_04L楓櫟回抱。所謂昇仙岩也。其上有藏仙洞。白石清川。映帶左右。松檜蒼蒼。
0009_0037_a_05L烟霞蓊蓊。真別境也。康熙丁巳四月初五日。火起。殿宇佛像及僧房。沒為
0009_0037_a_06L灰燼。翌年戊午。重建普光殿設法殿藥師殿十王殿萬世樓及僧寮。丙戌
0009_0037_a_07L年。又建羅漢殿。
0009_0037_a_08L○ [61]神光寺。寺之事蹟記。元順帝初。被謫于西海大青島。游遍西海之山川。
0009_0037_a_09L至州之北嵩山下。見草樹中。放光明氣。異而尋之。有一佛在草中。遂禱之
0009_0037_a_10L曰。若獲冥祐。還宮登極。則當剏寺。以報恩。其後順帝還宮。登極之二年。其
0009_0037_a_11L佛見於夢曰。何相忘耶。覺而異之。遂大傾中國之財力。以造神光寺。壯麗
0009_0037_a_12L甲於東方。按麗史。忠惠四年。即順帝之元年。幸海州托言祝壽于神光寺。
0009_0037_a_13L然則古已有之。而順帝特修剏增飾之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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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8_a_01L향적봉香積峯 암석 사이에 향나무가 있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나옹선사懶翁禪師120)가 승전암勝戰岩에서 신이한 도술로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쳤는데, 적이 반드시 묘자사妙慈寺를 침범할 것으로 보고 쫓아가서 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무현舞峴에 이르러 연기와 불꽃이 이미 치성하여 마침내 바위 위에 앉아 향나무를 꺾어 앉은 자리를 표시하였다고 한다. 화상이 앉았던 바위에 단단한 가지가 밑에 있으니, 세속에 나옹암懶翁岩이라 전해진다.신광사가 화재를 당하지 않았을 때 어떤 지나가는 객이 절의 누각에 기대 남쪽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절을 세운 초기에 돌 항아리를 남산에 묻어 물을 담아 화재를 막았는데, 지금은 항아리가 기울어져 물이 새는구나. 몇 년 안 돼 절에 불이 날 것이다.”라고 했다. 정사丁巳년에 그 말이 과연 맞아떨어졌다. 신광사는 예전에 내전內殿에서 강향降香121)한 적이 많았다. 융경隆慶 신미년(1571)에 환관宦官이 강향한다고 하며 몰래 해주성을 지나갔다. 감사監司 윤두수尹斗壽122)가 소문䟽文을 써서 진정하였다. 선왕先王 말년부터 이교異敎를 두절하고 정도正道를 한결같이 숭앙하였는데, 지금 갑자기 이러한 일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듣고 놀라 미혹되었으니 이단이 점점 흥하고 쇠함이 실로 두려운 일이다. 선묘宣廟가 우답優答을 내려 절대 금하도록 하였다.11. 황해도 안악군 연등사 사적 비명병서123) 黃海道安岳郡燃燈寺事蹟碑銘并序절 이름을 연등사燃燈寺124)라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나라 명제明帝 때부터 서토西土에서 불교(釋迦)가 처음 나라에 들어온 이후 연등燃燈이라는 승려(佛師)125)가 처음 동토에 와서 양산군楊山郡126) 서쪽 십 리 땅에 터를 잡고 절을 지어 선교禪敎를 제창, 천명(倡明)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승려가 머무르던 곳을 따라 절 이름을 지었으니, 절이 창건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일도 잊혀 남은 터만 홀로 남았으니, 고승高僧과 석자釋子들이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던 세월이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른다. 대당大唐 정관貞觀 13년(639), 고구려 광종조光宗朝127)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
0009_0038_a_01L香積峯岩石間。有香樹。世傳懶翁禪師。以神術却紅巾賊。于勝戰岩。仍料
0009_0038_a_02L賊必犯妙慈寺。又欲往救之。至舞峴見烟熖已漲。遂坐岩石上。折香樹以
0009_0038_a_03L識所坐處云。所坐岩。以鉄支其下。俗傳懶翁岩。
0009_0038_a_04L神光寺。未遭火。有過客。倚寺樓。南望曰。剏寺之初。埋石瓮於南山。貯水以
0009_0038_a_05L防火灾。今瓮傾水泄矣。不數年。寺其火乎。至丁巳。其言果驗云。神光寺。舊
0009_0038_a_06L多內殿降香。隆慶辛未。宦官以降香。暗過州城。監司尹斗壽䟽陳。自先王
0009_0038_a_07L末年。杜絕異教。一崇正道。而今忽有此等事。人聽驚惑。異端興衰之漸。實
0009_0038_a_08L可畏也。 宣廟優答。痛禁之。
0009_0038_a_09L○黃海道安岳郡燃燈寺事蹟碑銘并序
0009_0038_a_10L寺號燃燈寺何。自漢明時。西土釋迦。肇入國之後。有燃燈佛師。始來東土。
0009_0038_a_11L卜築於楊山郡西十里地。仍以唱 [62] 明禪教焉。時人咸以佛師所住。因以名
0009_0038_a_12L寺焉。寺之所剏。其來久矣。厥後時移事往。遺址獨存。高僧釋子之收淚而
0009_0038_a_13L咨嗟者。不知其幾載矣。至大唐貞觀十三年。高句麗光宗朝 [63] 。有自無何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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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39_a_01L한 범승梵僧 ▣▣이 석장을 짚고 이곳에 와서 탄식하며 말하였다.
“부처님의 정기가 머무는 곳은 없는 곳이 없지만, 오직 이 연등사는 실로 신선이 환골換骨128)하는 마당이요, 치류緇流들이 연정鍊精129)하는 땅이다. 진실로 하루라도 황폐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 퇴락하여 버려진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불사佛師가 설치한 불단佛壇과 가르침을 편 자취를 찾고자 하나, 그 누가 나를 도와 구할 것인가. 천봉千峯은 근심을 띠고 만수萬水는 오열하는 듯하니, 정성 있는 사문 중 누가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으며, 재물 없는 단월檀越도 다 부끄러움을 품으니, 이것이 내가 중수重修하려는 뜻을 새기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마침내 온 마을에 석장을 날려 재물과 비단(財帛)을 모으니, 땅의 신령(坤靈)을 평안하게 하여 지혜 있는 이를 초빙하고 대장장이(大冶)를 초청하여 기교를 운용하여 땅을 파고 터를 열었다. 그때 홀연히 한 물건이 쨍하는 소리를 내며 나왔으니, 곧 석비 한 조각으로 크기가 밥상(食盤)만 한 것이었다. 그 비에 적히기를 “한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15년(72년)에 창건하다.”라고 하였다. 비록 위전답位田畓과 노비를 하사받은 일과 국내局內의 넓고 좁은 지형이 다 기재되지 못하였으나, 수록된 열 글자가 명약관화하여 곧 승려가 절을 창건한 것이 과연 영평永平 15년임을 알 수 있다. 장부와 전적은 의거할 것이 없고, 절의 흥폐는 고증할 자료가 없는데, 오늘날 이 비석을 얻게 되니 어찌 신이 아끼고 귀신이 감추어두어 불사佛師의 유적遺蹟을 사라지지 않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범승梵僧이 놀라 탄식하며 어루만지며 더욱 슬퍼하면서도 기뻐하였다. 신이 베풀고 귀신이 역사役事하여 열흘 만에 완성을 고하였다. 법천法天이 다시 열리고 불일佛日이 거듭 밝아져 영평永平의 남은 자취를 황홀하게 다시 볼 수 있었고, 영평永平 창사創寺 시절의 남은 가르침을 다시 떨치게 되었다. 심성을 기르는 고승과 도류道流가 이곳을 귀의처로 삼지 않음이 없었으니, 바라기는 만 년 동안 썩지 않고 호겁浩劫토록 영원히 남아 있을지니, 무릇 어찌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무상함이 있겠는가. 지팡이를 짚고 살펴보니, 강희康熙 3년, 즉 조선 현종顯宗 7년130) 갑진년(1664)에 이유를 알 수 없는 -
0009_0039_a_01L梵僧其號 [64] 。杖錫到此。喟然長歎曰。佛精所住。無處無之。而惟燃燈寺。實是
0009_0039_a_02L神仙換骨之塲。緇流鍊 [65] 精之地也。固不可一日荒廢。而今之頹棄。乃至於
0009_0039_a_03L此。欲尋佛師設壇。施教之蹟。其孰從而求之。千峯帶愁。萬水如咽。有誠沙
0009_0039_a_04L門。疇不汗顏。無財檀越。亦皆懷慚。此所以余之不可不刻意重修者也。遂
0009_0039_a_05L乃飛錫千村。廣募財帛。坪坤靈而聘智。召大治 [66] 以運巧。鑿地開基之際。勿
0009_0039_a_06L日 [67] 然有物。鏗轟而出。乃石碑一片。大如食盤者也。其碑有曰。漢明帝永平
0009_0039_a_07L十五年。剏建云。雖不具載其受賜位田畓 [68] 奴婢之事。及局內廣狹地形。而
0009_0039_a_08L十字所載。有若觀火。乃知佛師剏築。果為永平之十五年也。簿籍無所凭。
0009_0039_a_09L廢興無所攷也。而此碑之得。乃在今日者。豈非神慳而鬼秘之。使佛師遺
0009_0039_a_10L蹟。得以不泯於此也。茲以梵僧驚歎撫翫 [69] 。益自悲喜。神施鬼沒 [70] 。浹一旬而
0009_0039_a_11L功告成。法天再廓。佛日重月 [71] 。永平遺蹟。况 [72] 然再覩。永平遺教。得以再振。高
0009_0039_a_12L僧道流之養性頤心者。罔不以此為歸。庶將萬載不朽。浩劫長存。而夫何
0009_0039_a_13L廢興無常。倚仗相尋。粵枉 [73] 康熙三年。我 朝 [74] 顯宗七年甲辰。無端回祿。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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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0_a_01L불이 나 거찰이 모조리 불에 탔다. 그슬린 얼굴의 귀왕鬼王은 구멍 난 판목을 지고 달리지 못하였고, 몸에 불붙은 보살은 불타는 편액을 구할 길이 없었다. 불사佛師의 남기신 교화는 탕연蕩然히 잿더미가 되어, 산마루 원숭이는 애타게 울부짖고 골짝 새는 슬피 울 따름이었다.
이때 재상 유정柳頲이 눈물을 닦으며 자취를 찾아 마음속에 중건할 뜻을 굳게 품은 후 사문을 널리 불러 모아 권선문을 배포하여 재물을 모으고 절을 수선하도록 하였다. 3년이 지난 병오년(1666)에 선승당禪僧堂을 완공하였고, 법당은 곧 그 후 갑자년 겨울에 세웠으니, 옛 규모보다 더하여 크고 웅장하게 하였다. 3년 지나 병인년에 공사를 마치고 낙성하였다. 명부전은 군郡에 거주하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讓衛副護軍 이교필李校弼이 권선하여 갑술년 가을에 시왕상十王像을 조성하였고, 6년 지난 기묘년에 마쳤다. 궁전宮殿은 경진년에 단청하였고 대종大鍾은 곧 무진년 봄에 권선문을 주어 경오년 봄에 주조를 마치고 남루南樓에 걸었다.
옛 절터를 복원하고 다시 신궁神宮을 축조한 것은 그대들 공이 아니면 누가 하사한 것이겠는가. 그대들의 거룩한 공덕이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절의 경계 구분과 위전位田으로 말하면, 동남쪽 2, 3리 정도의 경계에 사선대四仙臺가 있다. 그 안은 곧 모두 부처님께 바치는 위전답位田畓이다. 동남쪽은 곧 불현佛峴에서 유현柔峴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고령쟁古靈崢까지 이르니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을 받은 문수보살이 상시 묘법을 설하는 봉우리다. 남쪽으로는 검산령檢山嶺과 환희쟁歡喜崢에 이른다. 곧 원성비지圓成悲智 보살이 지옥에 떨어지는 문에서 석장을 떨치며 인간의 선악을 검찰하는 봉우리다. 북쪽은 형제봉兄弟崢에 이르니, 자씨慈氏와 제화提花, 양대兩大 보살이 부처님 가르침을 서로 도와 이룬 봉우리다. 동쪽으로는 차일쟁遮日崢이 있으니 곧 연등燃燈 불사佛師가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할 때 팔부중八部衆131)이 와서 듣던 날 상서로운 구름이 빽빽이 펼쳐지고 상서로운 해가 공중에 서린 봉우리다. 아, 절을 창건한 지 오래인 데다 또 -
0009_0040_a_01L剎燒盡。 鬼王焦面。不見竅板受荷之奔。菩薩然 [75] 身。絕無焦頭爛額之捄 [76] 。佛
0009_0040_a_02L師遺化。蕩然為燼。嶺猿哀號。各 [77] 鳥悲嗚而已。時宰柳公𨗶 [78] 。拭淚尋蹟。銃 [79] 意
0009_0040_a_03L重搆。遍召沙門。授以勸䟽。使之鳩材營繕。而越三載丙午。乃得禪僧堂訖
0009_0040_a_04L功焉。法堂則後之甲子冬。乃增其舊制而宏大。三越丙寅。乃畢工而落成
0009_0040_a_05L焉。冥府殿則因郡居折衝將軍行龍驤 [80] 衛副護軍李枝 [81] 弼勸。至甲戌秋。造
0009_0040_a_06L成十王像。越六歲己卯乃畢。宮殿 [82] 至庚辰丹雘焉。大鍾則戊辰春授勸文。
0009_0040_a_07L庚午春畢鑄。而懸諸南樓焉。其所以克復 [83] 墟。再造神宮在 [84] 。微諸公之功。伊
0009_0040_a_08L誰之賜。諸公盛德。猗與 [85] 休哉。以寺之分界及位田畓 [86] 言之。則界至東南二
0009_0040_a_09L三 [87] 許。四仙臺焉。其內則并皆洞夕 [88] 供佛之位田畓 [89] 也。東南則佛峴至柔峴。
0009_0040_a_10L西限古靈崢。乃年利 [90] 佛勅 [91] 之文殊。常說妙法之崢也。南限檢山嶺及歡喜
0009_0040_a_11L崢。乃圓成悲智菩薩。振錫捺 [92] 落之門。檢察人間善惡之崢也。北限兄弟崢。
0009_0040_a_12L乃慈氏提花兩大菩薩。助成佛教之崢也。東有遮日崢。乃燃燈佛師設 [93] 法
0009_0040_a_13L度生之時。八部來聽之日。祥雲密布。瑞日蟠空之崢也。噫。肇剏年久。又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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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1_a_01L병화를 입었기에 자취를 기록한 글이 없다면 누가 다시 절을 세운 공을 기록하리오. 비를 세워 그것을 기록하는 까닭이다. 명銘을 쓴다.
維此燃燈 因佛獲名 이 연등사는 부처로 인하여 얻은 이름.
永平肇宅 貞觀再營 영평 연간에 절을 짓고 정관 연간에 중건했네
云胡中葉 天勿日降禍 어쩌다 중엽에 하늘이 홀연 화를 내려
萬間禪宮 三月楚火 만 칸의 선궁이 삼월의 초화楚火 되었네
時宰柳公 鳩財重設 당시 재상 유공께서 재물 모아 중건하니
物若夫來 工似鬼沒 재물은 하늘서 온 듯, 장인은 귀신 솜씨
華搆依昔 嵬觀光前 화려하게 복구하니 장한 광경 더욱 좋다
久矣師教 子載永傳 오랠세라 스님 설법, 앞으로도 천년 전하리
茲銘一碣 用眎羣賢 이에 비석에 새겨서 여러 현인 보이리라
찬하여 말한다.
山名九月並生東 산 이름 구월은 우리나라에서 나왔으나
寺號燃燈繼佛燈 절 이름 연등은 불등佛燈을 계승하니
月照長空光不滅 하늘 비추는 달빛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燃燈暗室照無窮 어두운 방 연등은 무궁히 비추리라
관찰사觀察使 겸 순찰사巡察使 이병인李寅丙
온양溫陽 후학後學 방순方珣이 서문을 짓고 명銘을 쓰다.
읍재邑宰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석관李碩寬
정영당靜影堂 월송대사月松大師가 행습行習하다.
가선嘉善 삼남三南 (훈)섭 석釋 평중平仲이 전서篆書를 새기다.
강희康熙 39년(1700) 경진년 5월 일日 세우다.12. 연등사132) 사적 燃燈寺事蹟혼혼混混하고 돈돈沌沌한 가운데 천지 만물의 이치가 존재하였고, 자회子會의 시간에 이르러 하늘이 열렸다.133) 그 당시 처음에는 천지天地라는 이름도 없었으니, 어찌 사람과 사물의 품별이 있었겠는가. 반고盤古134)가 왕으로서 가장 먼저 나왔는데, 그 형체는 천지와 하나였으니, 무극無極을 마음의 본체(心體)로 삼고, 태극太極을 마음의 작용(心用)으로 삼으며, 음양陰陽으로 호흡을 삼았다. 하늘로 머리를 삼고 땅으로 배를 삼으며, 일월日月로 두 눈을 삼고 동서東西로 두 귀를 삼았다. 동으로 왼손을 삼고 서로 오른손을 삼으며, 남으로 왼발을 삼고 북으로 -
0009_0041_a_01L兵火。倘微記蹟之文。誰識再造之功。樹碑所以誌之也。 銘曰。維此燃燈。
0009_0041_a_02L因佛獲名。永平肇宅。貞觀再營。云胡中葉。天勿日 [94] 降禍。萬間禪
0009_0041_a_03L宮。三月楚火。時宰柳公。鳩財重設。物若夫 [95] 來。工似鬼沒 [96] 。華搆依昔。嵬
0009_0041_a_04L觀光前。久矣師教。子 [97] 載永傳。茲銘一碣。用眎 [98] 羣賢。讚曰。山名九月並
0009_0041_a_05L生東。寺號燃燈繼佛燈。月照長空光不滅。燃燈暗室照無窮。觀察使兼
0009_0041_a_06L巡察使李公寅丙
溫陽後學方珣撰序銘書
邑宰通政大夫李公碩
0009_0041_a_07L寬 [99]
靜影堂月松大師行習
嘉善 三南動 [100] 攝釋平仲篆 篆 篆 [101]
0009_0041_a_08L康熙三十九年庚辰五月日。 立。
0009_0041_a_09L○燃燈寺事蹟
0009_0041_a_10L混混沌沌之中後。天地萬物之理存焉。至子會又生天矣也夫哉。其時初
0009_0041_a_11L無天地之名焉。何有人物之品乎哉。盤古 [102] 王之首出。其形與天地為一。以
0009_0041_a_12L無極為心軆。以太極為心用。以陰陽為呼吸。以天為頭。以地為腹。以日月
0009_0041_a_13L為兩眼。以東西為兩耳。以東為左手。以西為右手。以南為左足。以北為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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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2_a_01L오른발을 삼았다. 강해江海로 피를 삼으며 토석土石으로 골육骨肉을 삼았다. 그 후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 출현하여 천하의 도道에서 왕 노릇 하였다. 또 그 후 뿌리 없는 나무가 공중에서 생겼는데 그 가지에 다섯 개가 있었으니 동, 서, 남, 북, 중앙이다. 그 각각의 주인이 되는 이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금천金天, 전욱顓頊, 헌원軒轅이다. 그들은 각각 다섯 가지 덕(五德)으로 천하에 왕으로 군림했으니,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그것이다. 반고盤古와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삼불三佛로 화하였으니, 그 마음(心)은 곧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요, 그 성性은 곧 청정법신비로자나불清淨法身毘盧遮那佛이며, 그 정情은 곧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다. 연둥불燃燈佛은 곧 마음과 성과 정(心性情)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이는 가히 삼제三締135), 삼규三規136), 삼덕三德137)의 부처님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연등사燃燈寺라는 것은 곧 연등불燃燈佛이 머무는 곳인 고로 그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 후 동한東漢 현종顯宗 효명황제孝明皇帝 영평永平 14년(71)에 석가모니의 그림과 불상이 중국에 영입迎入되었고, 임금과 신민들이 실제의 부처님처럼 받들어 지금까지 삼천 여년이 흘러 대당大唐 정관貞觀 12년(638)에 이르렀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나뉘며, 풍운의 변화를 몇 번이나 보았던가. 이때는 곧 고려 광종대왕光宗大王138) 때다. 그러나 고금이 나뉜 것은 이치의 운수요, 이룸과 무너짐이 있는 것은 자연(物)의 운수로다. 이 절이 개창된 지 많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무너진 건물(廢宅)을 서둘러 완성했으나, 빈 터가 오히려 남아 있었으니, 승려와 선비(黑白)가 함께 탄식할 따름이었다. 이럴 때 어느 고을에서 왔는지 모르는 범승梵僧이 그 사이를 왕래하며 웅얼거리며 앉아 있기도 하고, 천천히 멀리 걷기도 하다가 몇 마디의 소리를 읊조렸다. “이곳은 곧 위음불威音佛의 증손이요, 염승불熖勝佛의 적손이고, 등명불燈明佛의 제자이자 석가불釋迦佛의 스승이며, 문수文殊 보현普賢을 조화불助化佛로 삼은 연등불燃燈佛이 머무시는 곳이다. 또한 신선이 환골換骨하는 -
0009_0042_a_01L足。以江海為血。以土石為骨肉矣。其後天皇地皇人皇出焉。王天下之道
0009_0042_a_02L矣。又其後有無根樹子。空中生焉。其枝有五焉。東西南北中。各是主者。伏
0009_0042_a_03L羲神農金天顓頊軒轅也。各有五德而王天下。金木水火土是也。般古與
0009_0042_a_04L三皇及五帝。化為三佛。其心則圓滿報身盧舍那佛是也。其性則清淨法
0009_0042_a_05L身毘盧遮那佛是也。其情則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是也。燃燈佛則皆
0009_0042_a_06L具心性情也。是可謂三締三規三德之佛也。今燃燈寺者。乃燃燈佛之住
0009_0042_a_07L處故。仍以安名焉。厥後東漢顯宗孝明皇帝永平之十四年。釋迦影像。迎
0009_0042_a_08L入中土。國君臣民。奉之如真佛焉。于今三千餘載。而至大唐貞觀十二年
0009_0042_a_09L矣。幾見地坼天分。風雲變態耶。此乃高麗第朝光宗大王時也。然而有古
0009_0042_a_10L有今。理之數也。有成有壞。物之數也。此寺之來。多歷春秋。倐成廢宅。空墟
0009_0042_a_11L尚存。黑白咸歎而已。不知自何有鄉之來。梵僧杖屨其間。而喁喁而坐。踽
0009_0042_a_12L踽而步長。嘯數聲曰。茲乃威音佛之曾孫。熖勝佛之嫡孫。燈明佛之弟子。
0009_0042_a_13L釋迦佛之師。以文殊普賢。為助化佛。燃燈佛之住處。而亦是神仙換骨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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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3_a_01L마당이요, 석자釋子들이 정련鍊精하는 땅이니, 어찌 텅 비게 놓아둘 수 있겠는가. 산이 슬퍼하고 물이 오열하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이때부터 위의 사람이 천인千人의 재물을 널리 모연하고 만가萬家의 곡물을 모은 후, 좋은 장인을 모으고 일꾼을 모집하여 도끼질하는 이는 도끼질하고, 톱질하는 이는 톱질하여 기반을 닦고 땅을 파는 때, 굉장히 큰 소리가 울렸다. 이에 비갈碑碣 한 조각을 얻었는데, 밥상(食盤)만한 크기에 모서리는 떨어지고 글자는 쪼개졌다. 이리저리 만지고 살펴보니 곧 그곳에 ‘한 명제 영평 15년 창건漢明帝永平十五年剏建’이라는 열 글자가 있었다. 그러나 연후에 중창한 일이나 위전 및 노비를 하사받거나 사방 산천의 경계 및 장생표長生標와 석적石蹟 등은 알 수 없었다. 위의 범승이 더욱 슬프고 기뻐하여 일을 계획하고 이루어 오래지 않아 완성하였다. 이에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일으켜 세워 해가 지나도록 편안하고 태평하였다. 강희康熙 4년(1665)에 우리 성상 현종顯宗대왕 즉위 6년, 알봉집서閼逢執徐(갑진년)139), 고세집서姑洗執徐(3월)에 갑자기 불이 나서 온 숲을 다 태웠으니 절이야 말할 것 있으랴. 전몽대황旃蒙大荒(을사년)에 읍의 수령(邑倅) 유정柳亭 공公이 개연히 탄식하며 여러 승려에게 권선을 요구하여 각각 그 소疏를 들고 권선하여 재물을 모으고 비단을 모으게 하였다. 유조돈장柔兆敦牂(병오년)에 예전의 규모를 다시 복구하였다. 이에 성상聖上 즉위 12년 알봉곤돈閼逢困敦(갑자년)에 영풍루迎風樓와 태양문太陽門을 세워 과거의 규모를 서서히 갖추어갔다. 전 주지 선한善閑, 당시 주지 영묵靈嘿 등은 가히 일을 맡길만한 스님으로, 기초와 마룻대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으며 꾸미고 단청하였다. 3년 지난 유조나제柔兆攝提(병인년)에 공사를 마치고 이어 낙성落成하였다.
또 양산군楊山郡(안악군)의 대성大姓인 이장李丈, 김익길金益吉, 유광욱劉光旭, 채대남蔣大男 등이 있었다. 산이 있고 사승寺僧이 있는데 시왕전十王殿과 명부전冥府殿이 없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건립을 권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특별히 산의 승려 현민玄敏, 현책玄策, 도심道心, 밀선密禪, 석인碩印 등에게 부탁하였다. -
0009_0043_a_01L場。釋子鍊精之地。何以空然掃如耶。山以之悲。水以之咽。而况於人乎。由
0009_0043_a_02L乎是乎。右人廣乞千人之財。爰合萬家之粟。而召良工。募役夫。斧者斧之。
0009_0043_a_03L鉅者鉅之。肇基鑿地之時。轟轟然有聲也。得蹟碣一片。大如食盤。而邊破
0009_0043_a_04L字裂。撫翫逾時。乃中有漢明帝永平十五年剏建十字也。然後不知重創
0009_0043_a_05L之事。受賜位田畓奴婢之事。四方山川及長生標石蹟也。右梵僧益而悲
0009_0043_a_06L喜。經之營之。不日成之。百廢具興。過年安泰也。康熙四年。乃惟我聖上顯
0009_0043_a_07L宗大王即位之六年。閼逢執徐。姑洗執徐。丙丁童忽起。禍及林木。而况寺
0009_0043_a_08L乎。旃蒙大△ [103] 。邑倅柳亭公。慨然嘆息。徵勸諸僧。各授其䟽。鳩材聚帛。柔兆
0009_0043_a_09L敦△ [104] 。增復前規。而綿歷于迄。乃令聖上即位之十二年也。閼逢困敦。迎風
0009_0043_a_10L樓太陽門。遲遲前規。前住持善閑。時住持靈嘿等。可為僧可令任。礎之棟
0009_0043_a_11L之。柱之瓦之。莊之丹雘之可之者。越三年柔兆挪 [105] 提畢之。因以落成之。而
0009_0043_a_12L又有楊山郡大姓李丈。金益吉劉光旭蔣大男等云。有山有寺僧。而不可
0009_0043_a_13L無十王及冥府殿也。勸之不已。特命山之僧玄敏玄策道心密禪碩印。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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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4_a_01L이름을 거명한 여러 공公들은 보리심菩提心이 성품으로 발현하여 감로수甘露水가 마음에 흐르는 자들이다. 이에 권선문을 내니, 때는 곧 소양작악昭陽作噩(계유년)의 해였다. 이듬해 알봉엄무閼逢閹茂(갑술년) 대연헌월大淵獻(9월)에 다 완성하여 점안點眼하였다. 또 대종大鐘을 주조하였는데, (두 번을 단련한 후 완성하였다.) 달빛 흐르는 성루星樓에 높은 틀 고리(𥲤)에 매달아 큰 마룻대(大桴)로 치면 곧 달빛 흐르는 밤 맑은 종소리가 구름 가까지 통하여 유명간幽冥間에 두루 통하였다. 가히 법왕法王의 호령號令이요, 부자夫子의 업業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권선勸善한 이는 누구인가. 지승志僧과 지상志尚 스님이다. 무진년 봄에 권선문을 받은 후 2년 지난 경오庚午년에 일을 마쳤다. 절의 위답位畓을 보면, 곧 동남 2,3리 정도에 사선대四仙臺가 있으니, 그 안은 곧 조석朝夕으로 행하는 부처님 공양에 쓰는 세전답稅田畓이다. 사방의 산천과 석적石積, 장생표長生標140)를 보면, 곧 절의 동남쪽 2리 정도에 석적과 장생표가 있다. 두 절의 서쪽에는 고령봉古靈峯이 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머무실 때 문수사리文殊師利를 보내어 묘법妙法을 항상 설하게 한 봉우리가 이곳이다.
남쪽으로는 검산령檢山嶺과 환희봉勸喜峯이 있으니, 지장보살이 나락捺落141)의 문 앞에서 석장을 떨치며 인간의 선악을 검찰檢察하던 곳이 이곳이다. 북으로는 형제봉兄弟峯이 있으니, 자씨慈氏와 제화提花 양대 보살이 서로 도와 불교를 현양하던 봉우리가 이곳이다. 동으로는 차일봉遮日峯이 있으니, 연등불燃燈佛이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함에 팔부중八部衆이 찾아와 들을 때 상서로운 구름이 가득 퍼지고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서린 것에서 차일봉이라 이름하였다. 절의 자취와 사적이 없음을 근심하고 있을 때, 회중의 여러 선덕禪德과 장로들이 줄지어 찾아와 탄식하며 말하였다. “석존이 오신 임신년 이후 지금까지 사천여 년인데, 우리들은 말세에 변방에 태어났으니 그 불행이 큽니다. 또 금일에 그 중창한 사실을 기억 해보면 튼튼하고 장대한 집으로 바꾸어 위아래로 들보와 처마의 규격을 드러내고 시와 글로 -
0009_0044_a_01L名者諸公等。菩提發性。甘露流心者也。因授勸䟽。其時則昭陽作噩也。明
0009_0044_a_02L年閼逢閹茂大淵獻月畢受。因以點眼之。又其鑄大鍾。而二歷爐錘之城 [106] 。
0009_0044_a_03L月邊星樓。懸高𥲤。動大桴。則月夜清響。徹於雲際。通於幽間也。可謂法王
0009_0044_a_04L之號令。而夫子之業大成也云爾。勸化者誰。有志僧志尚者。戊辰之春。受
0009_0044_a_05L勸踈。而越二年庚午之年畢焉而已。寺之位畓。則東南二三里之許。有四
0009_0044_a_06L仙臺。其內則皆以朝夕供佛之稅田畓也。四方山川。石蹟長生標。則寺之
0009_0044_a_07L東南二里許。石蹟長生標。二寺之西。有古靈峯焉。牟尼在世之日。勅送文
0009_0044_a_08L殊師利。常說妙法之峯是也。南有檢山嶺及勸喜峯。地藏菩薩。振錫捺落
0009_0044_a_09L之門。檢▼(仁-二+察)人間善惡之所。是也。北有兄弟峯。慈氏與提花兩大菩薩。助以
0009_0044_a_10L聲 [107] 教之峯。是也。東有遮日峯。燃燈佛。說法度生之時。八部東 [108] 聽之際。祥雲
0009_0044_a_11L密布。瑞氣蟠空。仍名遮日云云矣。悄無蹤蹟時。會中僉禪德與𩷪齒之列。
0009_0044_a_12L咸歎曰。自釋尊壬申之後。四千餘年之間。我等當於末季。生於邊鄙。其為
0009_0044_a_13L不幸大矣。又記得今日見其重創。而易取大壯。著上斯下棟字 [109] 之規。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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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5_a_01L 비바람과 조서鳥鼠를 쫓아 막았으니142) 그 행운이 또한 크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후인들은 언제 개산開山했으며, 어느 대에 창건했는지 묻고자 하여도 무엇에 기대어 알며 누구에게 물어 알 수 있겠습니까. 이곳 원문院門에는 모두 비어있을 따름입니다.” 대선사大禪師 금봉당 이열金峯堂怡悅, 노덕老德 태추太樞, 노덕 일령日玲, 노덕 방신芳信, 노덕 홍인弘印, 노덕 대화상大和尚 상원尚元, 광윤廣允, 법안法眼, 청렬清烈, 유찬裕賛, 지형志浻, 지택智澤, 법종法宗, 석문釋文과 당시 축란사竺蘭寺 주지가 나에게 말하였다.
“전란을 거친 후라 절의 흥폐 역사를 기록한 사적을 다시 기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께서는 속히 그 사적을 기록하여 뒤에 오는 각자覺者들에게 절의 중창이 어떠한지 알게 해 주십시오.” 나는 역사의 연대를 헤아리지 못한 채, 또 내 문장의 졸렬함도 잊은 채 잠시 그 대략을 적는다. 말하기를 “자취 있는 것을 찾아 기록하고자 하나, 그 일은 막막하고 문장은 비루하니 후대에 감히 전승할 만하지 않다. 하늘과 땅이 다하도록 만물이 폐해도 사라지지 않고 그 날을 보존하는 것으로 여기 한 물건이 있도다. 광탄탄光坦坦하고 활발발活潑潑하며 형체가 없어 찾을 수 없으며, 안팎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어 고금에 이어지며 끊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을 바로 부처님과 연등불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성품이 원래 부박하여 설석爇石과 염호炎湖, 사산蛇山, 혈수血水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구름처럼 달나라(月邦)를 떠돌다가 우연히 이곳에 왔을 따름이다.”하고 하였다.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 같은 이를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그대가 진실로 그분입니다.” 하며 손을 잡고 간곡하게 말하였다. “이절이 무너졌다 중수되고, 완성되었다 무너진 것이 오랜 세월을 겪어 왔습니다만, 그 자취를 기록한 것(記蹟)이 조금도 없으니, 선생께서 거칠게라도 지어주시면 이를 후대에 보여주고자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어서 어서 붓을 들어 써 주십시오.” 여러 사람의 청에 못 이겨 그 기적記蹟을 대략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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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5_a_01L期干。駕風雨鳥鼠之去。其幸亦大矣。然而後人。雖欲問開山何世。創寺之
0009_0045_a_02L何代。憑何以知之。熟從而求之。以此院門。盖闕如也。大禪師金峯堂怡悅。
0009_0045_a_03L老德太樞。老德日玲。老德芳信。老德弘印。老德大和尚尚元。廣允。法眼。清
0009_0045_a_04L烈。裕賛。志浻。智澤。法宗。釋文。于時任持竺蘭寺。請余日 [110] 。經亂而後。寺之興
0009_0045_a_05L廢事蹟。還得不可不錄。願公速其記蹟。而使後之覺者。知寺之重創之如
0009_0045_a_06L此如何。余不揆史代。而忘其文拙。而姑敘大略云爾。日 [111] 。蹟者蹟之。實蹟之。
0009_0045_a_07L而其事浮。其文鄙。則後代莫敢承焉。消天消地。廢物而不滅者。存其日。有
0009_0045_a_08L一物於此。
0009_0045_a_09L光坦坦。活潑潑。勿形段。無模索。無內外。無大小。亘古今。無斷滅也。是可謂
0009_0045_a_10L佛與燃燈佛是也。余性元浮。不喜栖泊爇石炎湖。蛇山血水。雲遊月邦。偶
0009_0045_a_11L到於斯。諸公等云。望如師者久矣。公真是也。握手欵語曰。此奇 [112] 之毀而成。
0009_0045_a_12L成而壞者。屢經春秋矣。少無略其記蹟。師可以粗述。厥以叭示後來。正當
0009_0045_a_13L此時也。早早抽毫。早早抽毫。拘諸人請。略其記蹟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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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6_a_01L대명大明 후 260년, 금金 60년이요, 우리 성상聖上 즉위 22년,
전몽대연헌旃蒙大淵獻(을해년) 정월 말일 연등사 백운당白雲堂에서 한밤중 화로를 끼고 기록하다.
이후 사산산인四山山人 월송 정영月松靜影이 행습行習하다.
지은 날짜는 소양대연헌昭陽大淵獻(계해년) 도유단알屠維單閼(기묘)월 소양협흡昭陽恊洽(계미)일이다.
入室三應 입실 후 세 번 응하여
流通師教 스승의 가르침 유통하니
傳道沙門 전도하는 사문들
欽自願書 공경히 쓰기 원하네
때는 대명大明 후 267년, 金 66년, 우리 성상 즉위 28년이다.연월의 별호는 권미에 상세히 기록하여 뒤에 오는 이에게 보인다.
알봉집서閼逢執徐【갑진년甲辰年】ㆍ고세집서姑洗執徐【3월】ㆍ전몽대△旃蒙大△【을사년乙巳年】ㆍ유조돈첩柔兆敦牒【병오년丙午年】ㆍ알봉곤돈閼逢困敦【갑자년甲子年】ㆍ유조섭제柔兆攝提【병인년丙寅年】ㆍ소양작악昭陽作噩【계유년癸酉年】ㆍ알봉엄무閼逢閹茂【갑술년甲戌年】대연헌大淵獻【9월】
본사 소속 각 암자의 기록 本寺所屬各菴錄
안곡安谷 일소一所 원당사院堂寺 조자대助字垈
이소二所 운령암雲領菴 고자대顧字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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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6_a_01L大明後二百六十年。
0009_0046_a_02L金之六十年也。我
0009_0046_a_03L聖上即位之二十二年也。
端 [113] 蒙大淵獻歲寅月。既生魄日。燃燈白雲堂中
0009_0046_a_04L宵。擁爐而錄之。
于后四山山人月松靜影行習。
撰重光昭陽大△歲。屠
0009_0046_a_05L維單閼月昭陽恊洽日。入室三應。流通師教。傳道沙門。欽自願書。時
0009_0046_a_06L大明後二百六十七年。
0009_0046_a_07L金之六十六年。我
0009_0046_a_08L聖上即位之二十八年也。年月別號。細錄于卷尾。以示後來。
0009_0046_a_09L閼逢執徐甲辰年姑洗執徐三月旃蒙大△乙巳年柔兆敦牒丙午年閼逢困敦甲子
0009_0046_a_10L年柔兆攝提丙寅年昭陽作噩癸酉年閼逢閹茂甲戌年大淵獻九月也。
0009_0046_a_11L本寺所屬各菴錄
0009_0046_a_12L安谷 一所 院堂寺 助字垈
0009_0046_a_13L 二所 雲領菴 顧字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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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7_a_01L행촌杏村 상운암上雲菴 사자대斯字垈
굴사암窟寺菴 취자대取字垈
일봉암日奉菴 취자대取字垈
대덕大德 일소一所 석문암石門菴 존자대尊字垈
삼정암三井菴 측자대惻字垈
초교草郊 송림암松林菴 명자대明字垈
자광사紫光寺 괴자대槐字垈
안양사安陽寺 곡자대轂字垈
정토암淨土菴 괴자대槐字垈
문일聞一 두타암頭陀菴 이자대伊字垈
보광사普光寺 숙자대孰字垈
은적암隱寂菴 숙자대孰字垈
양수사梁水寺 구자대驅字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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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7_a_01L杏村 上雲菴 斯字垈
0009_0047_a_02L 窟寺菴 取字垈
0009_0047_a_03L 日奉菴 取字垈
0009_0047_a_04L大德 一所 石門菴 尊字垈
0009_0047_a_05L 三井菴 惻字垈
0009_0047_a_06L草郊 松林菴 明字垈
0009_0047_a_07L 紫光寺 槐字垈
0009_0047_a_08L 安陽寺 轂字垈
0009_0047_a_09L 淨土菴 槐字垈
0009_0047_a_10L聞一 頭陀菴 伊字垈
0009_0047_a_11L 普光寺 孰字垈
0009_0047_a_12L 隱寂菴 孰字垈
0009_0047_a_13L 梁水寺 驅字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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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_0048_a_01L흘홍屹紅 장흥사長興寺 사자대肆字垈
석대암石臺菴 사자대肆字垈
양수암兩水菴 울자대鬱字垈
천봉암千峯菴 반자대盤字垈
판교板橋 원통암元通菴 설자대設字垈
안성사安城寺 동자대同字垈
수도암修道菴 동자대同字垈
청파青坡 진봉암真峯菴 장자대章字垈
대원大元 이소二所 견불암見佛菴 숙자대叔字垈
은선암隱仙菴 동자대同字垈
세동細洞 고정암高井菴 ▣자대▣字垈 -
0009_0048_a_01L屹紅 長興寺 肆字垈
0009_0048_a_02L 石臺菴 肆字垈
0009_0048_a_03L 兩水菴 鬱字垈
0009_0048_a_04L 千峯菴 盤字垈
0009_0048_a_05L板橋 元通菴 設字垈
0009_0048_a_06L 安城寺 同字垈
0009_0048_a_07L 修道菴 同字垈
0009_0048_a_08L青坡 真峯菴 章字垈
0009_0048_a_09L大元二所 見佛菴 叔字垈
0009_0048_a_10L 隱仙菴 同字垈
0009_0048_a_11L細洞 高井菴 字垈
- 1)태평한 시절(明時) : 명시明時는 정치가 청명淸明한 시대, 흔히 자신이 살고 있는 왕조의 시대(本朝)를 지칭한다.
- 2)학림사鶴林寺 : 황해도 장연군에 있는 전통 사찰.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고 하며, 고려시대에 웅장한 사격을 자랑했고, 사적지가 기록된 17세기(?)의 묘사로 보아 대찰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6.25때 전소되어 현재는 오층석탑과 사적비만 남아 있다. 오층석탑은 구도, 수법, 조각 등 전체적인 면에서 정제되고 균형 잡힌 고려 석탑으로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 3)기수람원祗樹藍園 : 기수와 룸비니를 합성한 사찰 이름이다. ‘기수’는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에서 왔다. 이를 줄여 기원정사라 하는데, 석가모니가 재세 시에 자주 머물면서 설법을 행한 장소다. 초기 불교의 정사로 가장 유명하다. ‘비람’은 룸비니 동산을 말한다. 팔상도 중 두 번째 그림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다.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에서 싯다르타 태자를 출산하는 장면, 싯다르타가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하늘을, 왼쪽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 4)지정至正 : 원 혜종元惠宗의 연호. 원년은 1341년. 재위 28년(1341~1368)
- 5)안집사安集使 : 고려 때 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고 관하의 수령을 감독하던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 6)감목관監牧官 : 지방의 목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6품의 무관 벼슬.
- 7)태종의 실제 즉위년도는 1401, 신사, 건문 3년.
- 8)천계天啓 : 명 희종明熹宗의 연호, 재위 7년(1621~1627).
- 9)무진년은 실제로는 즉위 11년, 즉 68년이다.
- 10)후한後漢 명제明帝(재위 58∼75)는 꿈속에서 체격이 크고 정수리에서 광명을 발하는 황금색 사람(金人)을 보고 신하들에게 물으니, 서역에 있는 부처라 하는 신인데, 키가 1장 6척에 황금색이라고 대답하였다. 재위 10년 차인 67년, 명제는 채음蔡愔을 인도로 보냈고, 그의 간청으로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등이 경전과 석가불의 형상을 그린 그림을 백마에 싣고 낙양에 들어왔다. 명제는 불교를 신봉하여 절을 세워 백마사라 하고, 그들을 머물게 한 후 『42장경四十二章經』1권을 번역하게 하였다.
- 11)후한 명제가 백마사白馬寺를 건립하자 오악도사五岳道士 저선신褚善信 등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불쾌하게 여기고서, 황제가 조회를 열 때 표表를 올려 불교와 도교의 우열을 가려낼 것을 청하였다. 이에 칙명으로 백마사 남문에서 큰 집회를 개최하여 도교와 불교의 우열을 가리도록 하였다. 저선신 등은 『영보진문(靈寶)』 등의 모든 경전을 길 동쪽 단 위에 놓고, 명제는 불경, 불상, 사리를 길의 서쪽 칠보행전七寶行殿 위에 놓았다. 저선신 등은 천존天尊에게 기도하며 불쏘시개로 경전에 불을 붙이고, 경전에 아무런 손상이 없어서 신이함이 드러나길 빌었으나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때 부처님 사리에서 오색광명이 솟구쳐 곧장 공중으로 올라가서 빙빙 도는 등의 이적이 일어났다.(『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紀』 1권)(ABC, K1059 v31, p.920b01)
- 12)즉위 원년은 실제로는 386년, 병술년이다.
- 13)묵호자墨胡子 : 신라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신라 일선군一善郡으로 들어와 모례毛禮의 집에 거주하며 신라에 최초로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 14)풍취라대風吹羅帶의 형국形局 : 풍수지리에서 명당으로 꼽는 곳 중의 하나. 비단 옷고름이 바람에 휘날리는 형국을 말한다. 바람에 휘날리는 여자의 옷고름처럼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가 길게 늘어져 있고, 옷고름 매듭 부분에 혈穴이 있는 명당을 가리킨다.
- 15)입수入首 : 풍수지리에서 산줄기가 혈穴로 들어가는 부분을 말한다.
- 16)수宿는 별자리. 별자리는 모두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있는데, 이를 동서남북으로 나누면 한 방향에 일곱 별자리(七宿)가 있다. 각수, 항수, 저수, 방수, 심수, 미수, 기수(角亢氐房心尾箕宿)는 동방에 있고, 두수, 우수, 여수, 허수, 위수, 실수, 벽수(斗牛女虛危室壁宿)는 북방에 있으며, 규수, 누수, 위수, 묘수, 필수, 자수, 삼수(奎婁胃昴畢觜參宿)는 서방에 있고, 정수, 귀수, 유수, 성수, 장수, 익수, 진수(井鬼柳星張翼軫宿)는 남방에 있다. 이 글에서는 땅의 방향을 먼저 제시하고 그 구역의 하늘에 있는 별자리를 제시하였다. 그 방향은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에 각 별자리의 방향은 일일이 소개하지 않는다.
- 17)계족산鷄足山 : 인도 중부의 마가다 왕국 가야성伽倻城 동남쪽에 있는 산. 마하가섭이 입적한 곳으로,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마치 닭의 발과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일명 영취산靈鷲山. 부처의 수제자인 가섭迦葉이 여래의 의발을 전수받고는 이를 부처님의 부촉咐囑에 따라 미륵彌勒에게 전하기 위해 계족산에 가서 선정禪定에 든 뒤에 가부좌하고 입멸하자 계족산 세 봉우리가 하나의 산으로 합쳐졌는데, 장차 미륵불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 하생下生하여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 산이 다시 열리면서 가섭이 선정에서 깨어나 의발을 전하게 된다는 불교 설화가 전해 온다. (『佛祖統記』 권5「始祖摩訶迦葉尊者」)
- 18)감중련坎中連 : 팔괘八卦의 하나. 음효陰爻 가운데 양효陽爻가 끼어 있는 감괘坎卦 모양이다. 산의 모습이 마치 감괘처럼 위아래는 떨어져 있고 가운데만 연하여져 있는 형세를 말한다.
- 19)유마 ~ 비하겠는가 : 인도 비야리성의 방장실에 거주하는 유마거사가 중생의 병이 다 낫기 전에는 자신의 병도 나을 수 없다면서 드러눕자 석가모니가 문수보살을 보내 문병하게 하였다. 여러 문답이 오가던 끝에 문수가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유마는 말없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문수는 탄식하며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으로 들어간 것이다.(是眞入不二法門也)”라고 하였다. (『維摩經』「入不二法門品」)
- 20)일곱 잎의 빈발賓鉢 : 가섭迦葉이 아난과 함께 불경(貝葉)을 결집한 곳의 이름이 빈바라굴이다. 왕사성 근교의 기사굴산에 있다. 빈바라를 번역하면 칠엽암七葉巖이다.
- 21)노사나盧舍那 보신報身 : 노사나불은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나타난 부처이다. 부처의 몸은 영원불변의 진리를 몸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수행에 의해 부처가 된 보신불報身佛,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화신불化身佛 등 삼신불로 나타나는데, 노사나불은 이 중 보신불이다.
- 22)타수용신他受用身 : 깨달음의 경지를 중생들에게 설하여 그들을 즐겁게 하는 부처. 반대로 자수용신自受用身은 깨달음의 경지를 되새기면서 스스로 즐기는 부처.
- 23)분야分野는 별자리에 대응하는 땅의 구역을 말한다. 고대에는 열두 별자리(十二星次)의 위치에 따라 지상에서 해당하는 지역이나 나라의 위치를 대응시켰는데, 이것을 천상에서는 분성分星이라고 하고 지상에서는 분야分野라고 한다.
- 24)도산塗山 : 고대의 나라 이름. 전설에 따르면 하우夏禹는 도산의 여자에게 장가들고, 그곳에 제후들을 집합시켰는데, 옥과 비단을 폐백으로 가지고 온 자가 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 25)채미가採薇歌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주 무왕이 은殷을 멸망시키고 천자의 지위에 오르자, 주나라의 녹봉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수양산에 은둔하며 ≺채미가≻를 지어 부르며 굶어 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저 서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도다. 폭력으로 폭력과 바꾸면서 자기의 그릇됨을 모르도다. 신농과 우순과 하우가 이제는 없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登彼西山兮. 採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사기』「백이열전伯夷列傳」)
- 26)옥추경玉樞經 : 도가의 경전.
- 27)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영일시詠日時」
- 28)금강권보살金剛拳菩薩 : 금강계 만다라 37존 가운데 북방에 있는 불공성취여래 사친근四親近의 한 분.
- 29)금강삭보살金剛索菩薩 : 금강계 37존 중 사섭보살四攝菩薩의 한 분.
- 30)금강애보살金剛愛菩薩 : 금강계 만다라 제1 성신회成身會 가운데 東方月輪의 아촉여래의 왼편에 있는 보살.
- 31)금강어보살金剛語菩薩 : 금강계 만다라 37존 가운데 북방에 있는 불공성취여래 사친근四親近의 한 분.
- 32)팔금강八金剛 : 팔대금강명왕八大金剛明王의 약칭. 혹은 팔대명왕八大明王이라 한다. 팔대 보살은 정법을 호지하고 중생을 옹호하는 8보살을 말한다. 본문에 나열한 보살들이다. 이들이 각각 광명륜光明輪을 드러내어 팔대금강으로 나타난다. 금강수金剛手는 항삼세降三世를, 묘길상妙吉祥은 대위덕大威德을, 허공장虛空藏은 대소大笑를, 자씨慈氏는 대륜大輪을, 관자재觀自在는 마두馬頭를, 지장地藏은 무능승無能勝을, 항일체개장降一切蓋障은 부동不動을, 보현普賢은 보척步擲을 나타낸다.
- 33)함지咸池 : 해가 목욕을 한다는 바다. 『淮南子』「天文訓」에 “해가 양곡에서 나와 함지에서 목욕한다(日出於暘谷, 浴於咸池)”라고 하였다.
- 34)법수法秀 선사 : 원통 법수圓通法秀(1027~1090). 운문의 정종을 이은 법운사法雲寺의 선사.
- 35)오은지吳隱之 : 진晉의 유명한 양리良吏. 그가 일찍이 광주 자사廣州刺史로 부임했을 때, 그 근방에 탐천貪泉이란 샘이 있어 이 물을 마신 자는 끝없는 욕심을 품게 된다는 전설이 있었으므로, 그가 일부러 탐천을 찾아가 그 물을 떠 마시면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에게 마시게 한다면 그들은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라는 시를 지어 청렴할 것을 다짐하고 이후로 더욱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 36)『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에 “관세음보살이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세존이시여, 제가 기억하건대 과거 무량억겁 전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셨으니, 이름이 천광왕정주여래千光王靜住如來 응공應 정등각正等覺 명행원만明行圓滿이셨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저와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신 까닭에 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廣大圓滿無㝵大悲心陁羅尼를 송하시고는 황금빛 손으로 저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선남자야, 너는 이 대비심주大悲心呪를 가지고 널리 미래의 험악한 세상에 죄업이 무거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매우 이로운 공덕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는 구가 있다.
- 37)다섯 종의 보물 : 금, 은, 호박, 수정, 유리.
- 38)우연虞淵 : 전설상에 해가 지는 곳. 『淮南子』「天文訓」에 “태양이 우연으로 떨어질 때를 황혼이라고 한다(日至于虞淵, 是謂黃昏)”라고 하였다.
- 39)이백의 ≺峨嵋山月歌≻에 “아미산에 반달이 뜬 가을, 그 그림자 평강의 물굽이에 비치누나. 밤에 삼계를 출발해 삼협으로 향하노니, 임 그리워도 보지 못하고 유주를 내려가네(峨嵋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三溪向三峽. 思君不見下渝州)”라고 한 것을 차용하였다. (『고문진보』 前集)
- 40)이백의 ≺望廬山五老峯≻에 “여산의 동남쪽 오로봉은, 푸른 하늘에 금부용을 깎아 우뚝 세워 놓은 듯하네. 구강의 빼어난 경치 손에 잡힐 듯하니, 나는 장차 이곳 구름 속 소나무에 깃들어 살리라(廬山東南五老峯. 靑天削出金芙蓉. 九江秀色可攬結. 吾將此地巢雲松)”이라 하였다.
- 41)사선四仙 : 신라의 네 국선國仙으로, 술랑述郎, 남랑南郎, 영랑永郎, 안상랑安祥郞을 가리킨다.
- 42)오이 대추瓜棗 : 바다의 봉래산蓬萊山에는 안기생安期生이란 신선이 살고 있어 크기가 마치 오이만 한 대추를 먹는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史記』 권28「封禪書」) 신선의 유람을 말한다.
- 43)낙빈왕駱賓王의 ≺靈隱寺≻이다. “취령鷲嶺은 울창하게 높이 솟았고/ 용궁 같은 절은 굳게 닫혀 적막하네./ 누대에 올라 넓고 큰 바다의 해를 보고/ 창문에서 절강의 파도를 대하네./ 계수나무 씨 달에서 떨어지니/ 고상한 향기는 구름 너머로 날리네./ 여라 덩굴 잡고 탑에 올라가는 길 멀고/ 나무에 홈을 파 먼 곳에서 샘물을 끌어 오네./ 서리 엷게 내려 꽃은 다시 피고/ 얼음 얇아서 잎은 아직 시들지 않았네./ 젊은 나이에 불교를 숭상하여/ 찾아와 마주하니 번민이 씻겨지네./ 천태산 길에 들어가기 기다려/ 내가 돌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게 되리라. (鷲嶺鬱岧嶢. 龍宮鎖寂寥. 樓觀滄海日. 門對浙江潮. 桂子月中落. 天香雲外飄. 捫蘿登墖遠. 刳木取泉遙. 霜薄花更發. 冰輕葉未凋. 夙齡尚遐異. 搜對滌煩囂. 待入天台路. 看余度石橋)” 『全唐詩』 권53)
- 44)『화엄경연의소초』 권 제8에도 “川有珠而不枯, 山有玉而增潤”이라는 표현이 있다.
- 45)왕헌지王獻之(348~388) : 晉나라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7번째 아들이다. 관직은 중서령까지 지냈다. 여러 가지 서체에 정통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행서와 초서로 명성을 떨쳤다. 장지와 왕희지를 계승하여 이를 토대로 삼고 더 나아가 당시 서예의 고졸한 풍격을 변화시킴으로써, '파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의 글씨는 영준하고 호방하며, 기세가 넘쳐흐른다. 아버지 왕희지와 더불어 '2왕'으로 일컬어진다. 세상에 전하는 작품으로는 행서로 쓴 ≺압두환첩鴨頭丸帖≻이 있으며, 소해각본 ≺십삼행十三行≻이 있다. 그의 해서ㆍ행서ㆍ초서의 글씨는 송대 사람이 판각한 총첩에서 발견되기도 한다.(다음 백과사전 인용)
- 46)뜻 미상. 혹 원문의 微詩가 微時의 오자라면 ‘아직 명성을 드러내지 못했을 때’로 해석되나 미상이다.
- 47)일행一行(683~727) : 당唐의 고승으로 시호는 대혜선사大慧禪師이다. 역법와 천문의 대가로, 개원대연력開元大衍曆을 지었다.
- 48)붉은 눈썹(紅眉) : 단순한 묘사로 보인다. 참고로 홍미적紅眉賊은 명나라 말기에 일어났던 난적亂賊이다. 서한西漢 말기에는 번숭樊崇 등이 주동하여 일어난 농민 반란군인 적미적赤眉賊이 있었다고 한다.
- 49)전계轉啓 : 다른 사람을 거쳐 임금에게 보고하는 것.
- 50)학림현소鶴林玄素(668~752) : 당나라의 선사. 선종 오가의 하나인 우두종牛頭宗이 종파로 확립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학림현소는 5조 지위智威의 제자로서, 속성이 마馬씨였기 때문에 마소馬素라고도 불리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 덕을 높이 사서 영아행보살嬰兒行菩薩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학림사鶴林寺에 주석했기 때문에 학림현소라고 한다.
- 51)허혼許渾 : 당나라 사람. 자는 중회仲晦. 목주睦州, 영주郢州 자사를 역임하였고 시에 능했으며 저서에 『丁卯集』이 있다.
- 52)노반魯般과 공수工倕 : 고대의 유명한 목수.
- 53)용면龍眠 :송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1049~1106). 자는 백시伯時, 호는 용면거사龍眠居士. 이공린이 벼슬을 그만두고 용면산에 들어가 지내며 용면거사라 자호하였다. 시서화에 모두 능한 문인화가인데, 불상, 인물, 산수, 화조 등의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 54)고호顧虎 : 고호두顧虎頭, 고개지顧愷之. 호두는 그의 호이다. 진晉나라의 저명한 화가. 송의 육탐미陸探微, 양梁의 장승요張僧繇와 함께 육조 시대의 3대 화가라 일컬어지며, 특히 초상화와 인물을 잘 그려 중국 회화사상 인물화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일찍이 금릉金陵 와관사瓦棺寺의 벽에 유마힐의 초상을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려 넣을 즈음에 관중들에게 3일 동안 백만 전錢을 얻어 절에 보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宋書』 권81, 『南史』 권35)
- 55)제사에 쓰이는 소(齊牛) : 제사에 쓰이는 소. 『예기』「곡례 상曲禮上」에 “나라의 임금은 제우를 보면 수레에서 내리고, 종묘를 지날 때면 공경을 표한다(國君下齊牛式宗廟)”라고 하였다.
- 56)흔종釁鐘 : 짐승을 죽인 다음에 그 짐승의 피로 새로 주조한 종의 빈 틈새를 메우는 제의祭儀. (『孟子』「梁惠王上」)
- 57)이 문장은 어색하다. 혹 원문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역자)
- 58)영아근맹榮牙近甍 : 미상
- 59)인각隣桷 : 미상
- 60)영아핍미榮牙逼楣 : 미상
- 61)가지런한(鴈齒) : 안치鴈齒는 계단 주위에 정연하게 배열한 장식품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의역을 하였다.
- 62)소목昭穆은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를 말한다. 종족 내부의 장유長幼와 친소親疎 및 원근遠近을 구분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왼쪽 줄을 ‘소昭’, 오른쪽 줄은 ‘목穆’이라고 한다. 시조의 신주는 한복판에 모시고 2, 4, 6대를 소에, 3, 5, 7대를 목에 모신다.
- 63)寶祐는 나암 보우懶庵普雨(1509~1565)의 오기이다. 보우는 법명으로,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이다. 명종의 모후母后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섭정할 때 봉은사와 봉선사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수사찰로 지정하고 승과僧科를 회복시켰으며, 승려에게 도첩度牒을 주고 불교를 부흥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죽은 뒤 유신儒臣의 참소로 1565년(명종 20)에 제주도로 유배되어 목사 변협에게 피살되었다.
- 64)원 헌종의 연호는 보우寶祐이다. 무오년은 보우 6년. 원 헌종 8년이다.
- 65)대장간(卓程) : 탁정은 전국 시대와 진시황秦始皇 때 촉蜀 땅 임공臨邛에서 대장간 사업으로 거부가 된 탁씨卓氏와 정정程鄭를 가리킨다. 이를 비유적으로 해석하였다.
- 66)불공삼장不空三藏(705~774) : 북인도 출신으로 720년 낙양에 와서 스승 금강지金剛智를 도와 역경에 전념하였는데 주로 밀교 경전을 번역하였다. 불공삼장이 대력大曆 9년에 질환을 보이자 칙사가 문안 와서 開府儀同三司 벼슬을 더하고 숙국공肅國公에 봉하였다. 칠십 세에 입적하자 대변광지삼장大辯正廣智三藏이라는 시호를 내렸다.(『宋僧傳』)
- 67)성불사사적비, 『조선금석총람』 하, pp.1115-1116.
- 68)오악五嶽 : 중국에서는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을 말하고, 한국에서는 동쪽의 금강산(金剛山), 서쪽의 묘향산(妙香山), 남쪽의 지리산(智異山), 북쪽의 백두산(白頭山), 중앙의 삼각산(三角山)을 말한다.
- 69)사독四瀆 : 중국에서는 양자강(揚子江), 제수(濟水), 황하(黃河), 회수(淮水)를 말하고, 한국에서는 동독(東瀆)인 낙동강(洛東江), 남독(南瀆)인 한강(漢江), 서독(西瀆)인 대동강(大同江), 북독(北瀆)인 용흥강(龍興江)을 말한다.
- 70)두보杜甫의 시에 “방장산은 삼한의 밖에 위치하고, 곤륜산은 만국의 서쪽에 솟아 있네.[方丈三韓外 崑崙萬國西]”라는 구절이 있다. 『全唐詩』 권224 ≺奉贈太常張卿二十韻≻
- 71)명나라 12대 穆宗의 연호. 1537~1572년.
- 72)『조선불교통사』에는 秋眉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인명인지 불분명하다.
- 73)소융紹隆 : 법을 이어 더욱 계승 발전시킨다는 의미.
- 75)이 구에는 결자가 있는 듯하다.
- 76)복성福城 :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가르침을 받은 문수보살의 처소.
- 77)정민貞珉 : 미상.
- 78)자료에 따르면 현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 성불사 입구에는 성불사기적비가 서 있다고 한다. 아마도 본문과 같은 비문으로 보이는데, 그 비는 1727년 세운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미디어한국학)
- 79)안국사安國寺 : 성불사의 산내 말사. 황주군 소재. 성불사는 신라말 고려초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 인조 10년 임신년(1632)에 정방산에 성을 쌓은 이후 해서의 종찰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1911년 사찰령 체제에서 30본산 중 하나가 되었다. 이때 종지는 선교양종대본산 성불사이며, 등규는 성불사의 본말사는 청허 휴정대사의 법손이 주지가 된다고 하였다. 성불사는 보나사 모두 합해 37개의 절이 있는데, 안국사도 그 중 하나이다.
- 80)한선寒蟬 : 일반 매미들보다 몸이 작고 청적색靑赤色을 띤 매미로 초가을에 운다. 『禮記』「月令」에 “맹추의 달에는 ……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백로가 내리고 한선이 운다.”고 하였다.
- 81)사목事目 : 공사에 관하여 규정한 관청의 규정이나 규칙을 이르는 말.
- 82)황주 정방산 성불사의 산외 말사 중 하나. 서사암西舍庵(『조선불교통사』, 성불사 조. 번역서 상편2, p.667)
- 83)축령鷲嶺 : 영취산靈鷲山,
- 84)영은靈隱 : 절강성 항주 서쪽에 있는 산과 절. 허유 갈홍이 모두 이 산의 서쪽에 은거하였고 영은사가 유명하다.
- 85)사령운謝靈運 :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시인. 주로 자연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멸망한 남조 귀족가문의 자제로, 동진東晉과 유송劉宋에서 벼슬하여 영가태수永嘉太守를 지냈다. 그러나 파쟁으로 인하여 자주 면직당하다가 결국 유배 중에 사형을 당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는 여산사廬山寺를 지원했는데 경전을 번역하고 불교적 시와 산수시를 썼다. 일찍이 비평가들은 그와 동향이자 같은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목가적 전원시와 그의 산수시山水詩를 견주어 높이 평가했다. 『文選』에는 그의 시가 다른 6조 시인의 시보다 많이 실려 있다.
- 86)혜원慧遠 : 동진東晉의 고승.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유유민, 뇌차종 등 명유名儒를 비롯하여 승속의 18현賢과 함께 서방정토西方淨土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백련사白蓮社라는 염불念佛 결사를 맺은 고사가 유명하다. 승려와 유자의 교류를 상징하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도 이와 관련이 있다.
- 87)『조선불교통사』(2권, p.671)에 영축암은 평안남도 평원군 법홍산法弘山 법흥사法興寺(30본산 중의 하나)의 말사로 개천군 소재로 기록되어 있다.
- 88)송지렴宋之濂 : 미상. 이현일李玄逸의 문집 『갈암집』에 다음같은 구절이 있다.「그 전에 전 현감 송지렴이라는 자가 죄를 지어 본주本州에 유배되어 왔었는데 공이 그가 탐음貪淫하고 음험한 것을 미워하여 좋게 보지 않았고 법으로 제재하기도 했었다. 지렴이 항상 원한을 품고 있다가 일로 인하여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를, 공이 죄인의 뇌물을 받고서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놓아준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송지렴은 탐욕스럽고 음란하다는 평을 받은 인물로 불교에 대해서도 과도한 탄압과 만행을 일삼은 것으로 보인다.
- 89)장부長府 : 재화와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
- 90)민자건閔子騫 :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덕행德行으로 이름이 났다.
- 91)구관舊貫 : 원래의 모습. 구 제도.
- 92)출전은 『論語』「先進」이다. 노나라 사람이 장부라고 하는 창고를 개축했다. 민자건이 말했다. “예전 그대로 놔두면 어때서 그러는가. 하필 고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말하면 반드시 이치에 적중하는구나.”
- 93)‘병이秉彝’는 : 인간 본연의 변하지 않는 도리를 굳게 지키거나, 지키는 사람. 또는 인간의 항상적(恒常的)인 도리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본래 『詩經』「大雅」 ≺蒸民≻의 시구에서 유래한 말이다. (民之秉彛, 好是懿德).
- 94)태백太白의 호승胡僧 : 태백은 중국 섬서陝西 주질현盩厔縣 남쪽에 있는 태백산으로, 흔히 종남산終南山이라 부른다. 당나라 때 태백산 중봉中峯에 수백 살 먹은 인도에서 온 고승이 살았다고 하는데 세상과 발을 끊고 풀과 잎으로 옷을 삼았다고 한다. 잠삼岑參의「태백호승가太白胡僧歌」에 나온다.
- 95)허현도許玄度 : 동진東晉 허순許詢. 승려 지도림支道林과 교유하면서 청담淸談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는데, 유윤劉尹이 그에 대해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하노라면, 문득 현도가 생각난다.(淸風朗月, 輒思玄度)”라고 평한 말이 유명하다. (『世說新語』「言語」)
- 96)삼생석三生石을 기약 : 삼생은 전생, 금생, 내생. 당唐의 간의대부諫議大夫 이원李源이 일찍이 낙양洛陽 혜림사惠林寺에 있을 적에 원택圓澤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하루는 둘이 배를 타고 남포南浦에 놀러 갔다가, 비단 배자를 입고 물을 긷는 한 부인을 보고는 원택이 울면서 이원에게 말하기를, “저 부인이 임신한 지 3년이 되었는데, 내가 의당 그의 아들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뒤의 중추일 달밤에 항주杭州 천축사天竺寺 뒤에서 공과 다시 서로 만나기로 하자.” 하였는데, 원택이 그날 밤에 과연 죽었고 그 부인은 과연 그날 아이를 낳았다. 이원은 그로부터 12년 뒤에 과연 그곳을 찾아가 보니, 갈홍천葛洪川 가에서 한 목동이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나는 삼생석 위의 그 옛날 정혼이거니, 음풍농월하는 건 굳이 논할 것도 없네. 친한 벗이 멀리 찾아주매 진정 부끄럽지만, 이 몸은 달라졌으나 본성은 그대로 있다오.”라고 하여, 서로 친구였음을 확인했다는 고사가 있다. 삼생석은 곧 친구 간의 재회를 의미한다.
- 97)도관사道觀寺 : 황해도 황주 정방산 성불사의 산외 말사 있다. (『조선불교통사』 2권 p.667.「성불사」 조) 본래 백록도관사인데, 백록동 주자 서원이 혁파된 뒤에 서원암이라 고쳤다 한다.
- 98)백록동부白鹿洞賦 : 주자朱子가 지은 부賦. 백록동은 복건성福建省 여산廬山에 있는 골짜기로, 여기에는 남당南唐 때 지은 여산국학廬山國學이 있었으며, 주자가 남강南康의 지현知縣으로 있을 때 여기에서 강학하였는데, 주자가 서원을 다 짓고 나서 이 부를 지어 학자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 99)제16동천 :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의 하나.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거주하는 36곳의 명산.
- 100)아송雅誦 : 조선의 정조가 주자의 시 가운데 사부詞賦와 금조琴操와 고체시 근체시 등 359편編을 뽑고, 그 끝에 명銘, 잠箴, 찬贊, 제題, 사辭 등의 글을 부록으로 실어(총 415편)을 수록하여 8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 101)무이武夷 : 무이산, 무이동, 무이계곡. 주희는 순희淳熙 10년(1183)에 무이산武夷山 아래 은병봉隱屛峰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저술과 강학을 하였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주희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받아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에 집을 짓고 그 주변의 승경 아홉 곳을 골라 구곡九曲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주희의 <武夷棹歌≻를 차운한 시를 지었다. 이이가 황해도 고산군 석담리에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조성한 고산구곡高山九曲과 이황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송시열의 화양구곡華陽九曲 등이 그 예이다.
- 102)김굉필金宏弼 : 1454~1504.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 또는 한훤당寒喧堂,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소학』에 심취해서 ‘소학동자’로 불렸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했다. 갑자사화로 극형에 처해졌으나, 뒷날 정여창鄭汝昌, 조광조,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과 함께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됨으로서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로 인정받았다. 문집에 『한훤당집』, 저서에 『景賢錄』, 『家範』 등이 있다.
- 103)현송絃誦 : 현가絃歌와 같은 말. 옛날 『詩經』을 배울 때, 거문고와 비파 등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는데 이를 현가絃歌라고 한다. 악기의 반주 없이 낭독하는 것을 송誦이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합하여 현송이라고 칭한다. 곧 수업하고 송독하는 것을 말한다.
- 104)가사可師 : 승려 이름. 주희가 강서성江西省 여산廬山에 있는 서림원西林院에 머물 때 이 절의 승려인 가사可師와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한다.
- 105)서림西林 : 절 이름. 주자가 연평延平 이통李侗에게 수학하면서 서림원西林院이라는 절의 달관헌達觀軒에서 유숙하였다고 한다.(『朱子大全』 권2, ≺題西林可師達觀軒≻)
- 106)계록繫綠 : 뜻이 미상이다.
- 107)심원사心源寺 : 황해도 황주군 여계산餘界山에 있다. 이색李穡이 조천사朝天士로 중국을 다녀올 때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관음상 한 축을 가지고 돌아오며 이곳의 산벽山壁에 걸어 놓았다는 기록이 『梵宇攷』에 전한다. 역사정보통합 사이트의 소개를 인용한다.「심원사 사적비는 황해도 황주에 있는 심원사心源寺의 내력을 기록한 비문이다. 심원사는 고려 말에 이색이 중수하도록 했던 절인데 1506년과 1580년에 중창을 하여 절이 퇴락하자 수옥 등이 주선하여 중수한 사실을 서술하였다. 일반인이 대부분인 시주들과 승려들이 대부분인 불량답을 시주한 이들을 10여 명씩 열거하고 토지 면적도 실어 좋은 자료가 된다. 이밖에도 석수 공양주 성조 도감 등 제작과 관련된 인사들을 함께 실었다. 전면의 비문은 숙종 35년(1709년)에 이여택李汝澤이 짓고 썼다.」
- 108)세사歲舍 : 세재歲在, 세차歲次와 같은 말이다.
- 109)알봉돈상閼逢敦祥 : 갑오년甲午年을 말한다. 고갑자古甲子로 알봉은 갑甲이요, 돈상敦祥은 오午이다.
- 110)섭제攝提의 달 : 섭제는 고갑자古甲子로 십이지十二支의 인寅에 해당한다. 정월에 해당한다.
- 111)해일海日 : 지명인 듯하다. 오자가 있는 듯하다.
- 112)목은牧隱 이공李公 : 이색李穡(1328~13976).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名士와 조선 왕조 창업에 공헌한 사대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정몽주, 길재, 이숭인 등 제자들은 고려 왕조에 충절을 다하였으며, 정도전, 하륜, 윤소종, 권근 등 제자들은 조선 왕조 창업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색-정몽주ㆍ길재의 학문을 계승한 김종직金宗直, 변계량卞季良 등은 조선 왕조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저서에는 『牧隱文藁』와 『牧隱詩藁』 등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13)조천朝天 : 명나라, 청나라의 황제에게 나라에서 보내는 사신의 행차를 말함. 연경燕京 가는 사신으로 후에는 청나라 때는 연행燕行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 114)오도자吳道子(685~758) : 오도현吳道玄을 말한다. 당 현종 때 활약한 민간화가. 중국에서 화성畫聖이라 일컬어진다. 궁정화가와 달리 자유로운 입장에서 그림을 그려 궁정화가의 그림처럼 엄숙하지 않고 자유로운 화풍의 생동감이 있는 그림을 그렸다. 도교의 도관과 사원의 불교벽화 및 인물상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 115)원문의 戎은 戒의 오자로 보고 번역한다.
- 116)유악黝堊 : 유黝는 흑색이고 악堊은 백토白土로 담장에 흑색과 백색을 바르는 것. 여기서는 퇴색하여 빛을 잃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 117)신광사 : 황해도 벽성군 서석면(지금의 황해남도 해주시) 신광리 북숭산北嵩山에 있던 절. 일제강점기에는 패엽사貝葉寺의 말사였다.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 923년(태조 6) 입조사入朝使 윤질尹質이 중국에서 오백나한상五百羅漢像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이 절에 모셨다고 한 것으로 보아 창건연대 또한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문화재로는 1324년(충숙왕 12)에 세워진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22호인 신광사오층탑과,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23호인 신광사무자비神光寺無字碑가 있다. 무자비는 글자가 없는 비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18)황해도 해주 서쪽 31리에 있는 절.(신증동국여지승람 황해도)
- 119)충혜왕은 1331년 왕위에 올라 2년 재위하였으나 1332년 충숙왕 복위하여 물러났다. 다시 1340년 복위하여 1344년까지 5년간 재위하였다. 충혜왕 재위 중에는 원 문종文宗과 혜종惠宗이 재위하였다. 충혜왕 복위 4년은 1343년, 혜종 등극 후 새 연호 지정至正 원년은 1341년이다.
- 120)나옹선사懶翁禪師(1320∼1376) : 고려 말 삼사三師 중의 한 분. 법명은 혜근惠勤, 또는 혜근彗勤.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 중국의 지공指空과 평산 처림平山處林에게 인가를 받고 고려로 귀국하여 무학無學에게 법을 전하여,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웠다.
- 121)강향降香 : 황제가 봉산封山할 때에 향을 하사하는 의식. 혹은 유명한 사원이나 묘우廟宇에 내리는 치전致奠.
- 122)윤두수尹斗壽(1533~1601) : 본관은 해평.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성수침成守琛ㆍ이중호李仲虎ㆍ이황李滉 등에게 배웠다. 1558년(명종13)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를 호종扈從하였는데, 어영대장ㆍ우의정을 거쳐 평양에서 좌의정에 올랐다. 평양에 있을 때 명나라에 대한 원병 요청을 반대하고 평양성의 사수를 주장했으며, 함흥피난론을 물리치고 의주행을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킴으로써 함흥이 함락된 뒤에도 선조가 무사하게 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다. 1605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추록追錄되었다. 저서로는 『梧陰遺稿』, 『成仁錄』, 편서로는 『箕子志』, 『平壤志』, 『延安志』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이다.
- 123)『조선불교통사』에 같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역주 조선불교통사』 5권, p.764. ≺안악연등사사적비명 병서≻)
- 124)연등사燃燈寺 :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구월산九月山에 있었던 사찰. 패엽사貝葉寺의 말사. 중국에서 온 승려 연등燃燈이 고구려에 창건하였다. 639년(영류왕 22) 절을 중수하였고, 조선 후기인 숙종 때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패엽사貝葉寺의 말사였다. 연등사 절터에는 연등사비가 있는데, 조선 후기에 세워진 중건비로 절의 건축과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비문에 의하면 중국 승려 연등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연등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현재 북한의 문화재 분류인 보존급 제997호이다. 절터에 있는 5층 석탑은 높이가 3.13m, 기단 한 변의 길이는 2.19m이고 탑신의 맨 위층은 파괴된 상태로 있다. 탑머리는 원통형의 밑동과 보주(구슬)로 되어 있다. 탑의 형식과 건축기술로 볼 때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전당이 6ㆍ25전쟁 때 폭격으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25)연등燃燈이라는 승려(佛師) : 이 글에서는 연등사를 창건한 역사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원래 연등불燃燈佛은 과거 7불의 한 분의 이름으로 연등불, 보광불普光佛, 정광불錠光佛이라고도 하는데, 과거세에 수행하던 보살 석가모니에게 성도하리라 하는 수기를 준 부처님이다.
- 126)양산군 : 安岳의 옛 이름이다.(조선불교통사의 협주)
- 127)고구려 광종조光宗朝 : 『조선불교통사』에서 이능화는 “이 부분은 오류다”라는 협주를 달았다. 정관 13년은 고구려 영류왕榮留王 22년이다.
- 128)환골換骨 : 도가에서 신선주나 금단金丹을 복용하면 탈바꿈하여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 129)연정 : 도가에서 양생養生하는 법 중의 하나. 여기서는 승려가 선정에 들어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 130)강희 3년(갑진)은 현종 5년으로 1664년이다.
- 131)팔부중八部衆 : 불법을 지키는 여덟 분의 신장神將. 즉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迦.
- 132)연등사燃燈寺 :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패엽사貝葉寺의 산외 말사로 안악군安岳郡에 있다.
- 133)자회子會의 시간 ~ 열렸도다 : 송나라 소옹邵雍이 세운「원회운세설元會運世說」에 나온다. 1회會는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모두 12회가 있는데, “하늘은 자회子會에서 열리고, 땅은 축회丑會에서 열리며, 사람과 만물은 인회寅會에서 생겨난다.(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라고 하였다. 『皇極經世書』
- 134)반고盤古 : 중국의 전설상에 나오는 임금으로, 천지가 개벽하던 처음에 이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 135)삼제三締 : 미상. 혹 삼제三諦를 말한 것일 수 있다. 삼제三諦는 세 가지 진리. 천태종의 이론에 근거하면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진리는 진제(空), 세속제(假), 제일의제(中)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 136)삼규三規 : 미상
- 137)삼덕三德 : ①부처님의 덕을 세 방면에서 나타낸 것. 즉 은덕恩德(중생을 위해서만 은혜를 베푸는 것), 단덕斷德(번뇌를 제거하는 것), 지덕智德(지혜를 갖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②대열반에 갖추어야 할 3종의 덕상德相. 법신法身, 반야般若, 해탈解脫의 세 가지.
- 138)고려 광종대왕 : 사실과 어긋난다. 정관 12년, 당태종 12년(639)은 고구려 영류왕榮留王 22년에 해당한다.
- 139)연표에 보면 갑진년은 1664년으로 강희 3년, 현종 5년이다.
- 140)장생표長生標 : 사찰이 소유하고 있거나 또는 수조권收租權을 행사하던 토지와 여타의 토지를 구별하기 위해 그 경계지역에 세웠던 경계 표지.
- 141)나락捺落 : 나락那落이라고도 쓴다. 나락가捺落迦(나락가那落迦로도 쓴다)에서 유래하였고, 어원은 범어 naraka를 음역한 것이다. 지옥으로 번역한다.
- 142)조서鳥鼠를 쫓아 막았으니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에는 굴과 들판에서 살았는데, 후세에 성인이 집으로 바꾸었다.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처마를 늘여 비와 바람을 막았으니, 대개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한 것이다.” 하였다. 대장은 장대하고 튼튼함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뜻을 취하여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대한 집을 지었음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