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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1a_a_01L부록附錄(증보增補)충청남도忠淸南道김영봉, 이승현, 이대형총목차總目次1. 갑사甲寺 중수기重修記
2. 충청도忠淸道 계룡산鷄龍山 갑사岬寺
2-1. 불상 개금 시주질施主秩
2-2. 정문正門 중수기重修記 (갑사甲寺)
2-3. 공주 갑사岬寺 종기鍾記
3. 충청우도忠淸右道 서산瑞山 상왕산象王山 개심사開心寺
3-1. 대법당大法堂 중수기重修記
3-2. 개심사 각전各殿 존상尊像 개금改金 개채改彩 공덕기功德記
3-3. 주금고기鑄金鼓記 윤이웅尹已雄·박임진朴壬辰, 송재흥宋再興(개심사)
3-4. 장명등계서長明燈稧序(개심사)
4. 고산사高山寺
4-1. 수계기修稧記
4-2. 고산사高山寺 현판懸板 홍성군洪城郡 결성면結城面 무량리無量里
5. 관촉사灌燭寺 사적명事蹟銘
6. 광덕사廣德寺 사적기事蹟記(묵자墨字)
6-1. 화산華山 광덕사廣德寺 사실비명事實碑銘 병서幷序(금자金字)
6-2. 화산華山 광덕사廣德寺 사리각 기명舍利閣記銘
6-3. 천안 광덕사 청소당 대사淸霄堂大師 탑명塔銘 병서幷序(금자金字)
6-4. 어필御筆(광덕사 소장 세조 어필)
6-5. 광덕사廣德寺 감세기減稅記
7.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 사적事蹟
7-1. 동학사東鶴寺 중수기문重修記文
7-2.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 지장계서地藏稧序
8.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사적事蹟 입안立案
8-1. 마곡사가 불에 탄 뒤 중건 및 중수한 연기록(麻谷寺回祿後改建及重修年記錄)
입안立案 완문完文
8-2.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천불전千佛殿 중수문重修文
8-3. 마곡사麻谷寺 3국사三國師 영당影堂 중건조연문重建助緣文
8-4. 공주군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심검당尋劒堂의 공동 요사채 번와기翻瓦記
8-5. 태화산 마곡사 천왕문天王門 중수기重修記
8-6. 태화산 마곡사 국사당國師堂 현판懸板 조성造成
8-7. 태화산 마곡사 대광무보전大光无寶殿 불량계佛糧稧 현판縣板 서문序文
8-8. 유공불망기有功不忘記(마곡사)
9. 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 갑사甲寺 사적비명寺蹟碑銘
10. 조선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마곡사麻谷寺 헌답기獻畓記
10-1. 대시주영세불망기大施主永世不忘記(마곡사)
10-2. 마곡사麻谷寺 금호화상錦湖和尙 헌답기獻畓記
11. 무량사无量寺 내內 극락전極樂殿 중수기重修記
12. 임천林川 보광사普光寺 중창비重剏碑
13. 보원사普願寺 법인국사法印國師 보승탑비寶乘塔碑
14.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산령각山靈閣 서문
15. 은진恩津 쌍계사雙溪寺 중건비重建碑
16. 성월암城月庵 중건기重建記
17. 남포藍浦 성주사聖住寺 낭혜화상朗慧和尙 백월보광白月葆光 탑비塔碑
당唐의 신라국 고故 양조국사兩朝國師 교시教謚 대 낭혜화상大朗慧和尙 백월 보광白月葆光 탑비명塔碑銘 병서幷序
18. 찬송문 (신원사新元寺)
18-1. 현판 등문 (신원사)
19. 현판 서문 (영은사)
19-1. 영은사 중수기
19-2. 공주산성 영은사 중수기
19-3. 공주 쌍수산성 영은사 중수기
19-4. 공주 쌍수산성 영은사 중수기
19-5. 쌍수산성 영은사 중수기 방관防關
19-6. 영은사 불량답佛粮畓을 새로 매입한 기록
19-7. 공주 우진장방右鎭長房 불량계원佛粮契員 현판 (영은사)
19-8. 불량헌답 시주 불망기(영은사)
19-9. 산성 영은사 불기佛器 시주기
19-10. 영은사에 불량佛粮을 공양하는 서문
19-11. 순영巡營(감영) 헌공청憲公廳 불량기(영은사)
19-12. 공주 남군南郡 허문리虛門里 엄씨嚴氏 불양佛養 시주기(영은사)
19-13. 영은사 불상 개금기
19-14. 영은사 실진기實鎭記
19-15. 영은사 영세불망기
19-16. 예산 이 중군李中軍 영세불망기 (영은사)
19-17. 연년 제사 불망기 (영은사)
19-18. 우진장방右鎭長房의 공을 기록한 글 (영은사)
22. 중수기(흥주사興住寺)
23. 직산 홍경사 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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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1a_a_01L附錄(增補)寺刹 史料集
0012_0001a_a_02L忠淸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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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3a_a_01L9. 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 갑사甲寺 사적비명寺蹟碑銘1)조선국朝鮮國 충청도忠淸道 공주 계룡산 갑사 비명 병서幷序
통정대부通政大夫 행行 여주목사驪州牧使 이지천李志賤이 짓다통정대부 행 공주목사公州牧使 이기징李箕徵이 글씨를 쓰다통정대부 전前 행 무장현감茂長縣監 홍석귀洪錫龜가 전서篆書를 쓰다
무술년(1658, 효종9) 여름 내가 서재書齋에 있을 때 홀연 두 선승禪僧이 문에 이르러 나를 부르며 들어왔는데 흰 수염을 막 자르고 납의衲衣는 새로 해 입었으며2) 긴 옷자락을 땅에 끌고 염주를 가슴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고결하고 출중한 모습이 마치 두 마리의 늙은 학과도 같았으니 참으로 풍류 넘치는 승려들이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대답하기를 “계룡산에서 왔습니다. 계룡산은 공주에 있는데 절은 이미 중수하였고 빗돌도 이미 갈아놓았습니다만 빗돌에 적을 글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연양延陽 이 상공李相公3)의 명도 전하였다.아! 세상에 문장을 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하여 나를 번뇌하게 하는가. 그러나 스님들도 참으로 근실하고 상공의 뜻도 얕지 않으니 어찌 감히 사양하랴. 다만 생각건대 비문을 짓는 일이란 어려운 것이다. 진실로 뜻은 조화造化를 궁구하고 학문은 천인天人을 꿰뚫어, 사림詞林의 근간이자 문원文苑의 뛰어난 사람이 되어, 명성이 빛나고 웅건한 글을 지어, 쇠와 돌에 풍류 넘치는 문장을 새길 능력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어찌 산악에 그 글이 새겨져 사방을 비추고, 범凡을 말해 예例를 일으켜서 사람들의 깊은 바람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4)대개 듣건대 쌍정雙精5)이 우주의 운수를 열 적에 홍몽鴻濛6)에 나아가 참됨으로 삼고, 칠성七聖이 신명에 통할 적에 허무虛無에 획을 그어 머물 곳을 이루었다.7) 법신法身은 유구히 가면서 신령스러운 근원을 가리켜 길을 열고, 교화의 자취는 항상 그 길을 따라 돌다가 청정한 지역에 인연 따라 머물렀다.8)두 마리 용이 일제히 떨치고 나와서 요수瑤樹를 뚫고 날아 바람처럼 내달리고, 땅에서 무지개가 높이 솟아 은하수를 넘고 달까지 뻗쳤다.9) 단풍나무는 하늘이요 대추나무는 땅이니 아직 형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에 화복禍福을 관찰하고, 네모난 괘에 둥근 시초蓍草를 가지고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어두움과 밝음을 살핀다.10) 뜻의 길에 두루 통하니 비야毘耶에서 현묘하고도 현묘한 도가 열리고, 가장 먼저 말의 통로를 막아버리니 오로지 마힐摩詰에게서 침묵하였다.11)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가 열리니 만물을 오묘하게 만드는 조화의 기틀을 누가 잡은 것인가? 만상萬象이 처음 펼쳐진 그 때에 함께 태극太極의 극치로 돌아가는구나.12) 따라가고 맞이하고 가고 오더라도 수많은 의론으로 혹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상性相을 명담名談한들 어찌 학지學地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13) 무無에서 미루어 나가고 유有에서 이끌어 오는 것은 이미 효계爻繫가 해설하였고, 잘못된 것을 물리치고 밝음을 펴는 것은 우러러 피안彼岸에서 설파하였다.14)천상의 요궁瑤宮에서 내리는 특별한 법식은 뭇 별들이 도는 궤도에 밝게 펼쳐지고, 옥 같은 범찰梵刹에서 내리는 상서로운 눈발은 염하閻河의 지역에 은은히 비친다.15) 삼천의 보살들은 바람 부는 바위 위에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앉고, 백억의 천왕들은 도가 펼쳐지는 굴에서 궁궐의 낭묘廊廟를 잃었다.16) 청연靑聯이 우레같이 비추니 드넓은 땅을 편력하며 세 번을 쉬고, 벽우碧羽가 서리 맞아 싸늘하니 광활한 하늘에 기대 한 번 쉰다.17) 아득한 근원에서 흘러온 깊은 물결이라 상제上帝의 술잔으로 퍼내어도 다함이 없고, 우뚝 솟아 허공에 닿은 산이라도 사람들의 정성으로 흔들 수 있었다.18)여래가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으로 팔정도八正道의 문을 평등하게 열었고, 가섭迦葉의 통달한 도는 직접 오연五衍의 수행법에 기대었다.19) 아난阿難의 심오한 견해는 오색五色을 궁구하여 길이 보존하였고, 열반의 단정한 자리에서는 쌍감雙龕을 어루만짐에 이에 고요해졌다.20) 자비가 사독四瀆처럼 깊었던 탓이니 술지게미를 돌아봄에 공연히 남긴 것이요, 인연이 여러 방면으로 합치되니 주항州航을 우러름에 면면히 이어져 -
0012_0003a_a_01L公州 鷄龍山 甲寺 寺蹟碑銘
0012_0003a_a_02L朝鮮國 忠淸道 公州 鷄龍山 甲寺 碑銘幷序
0012_0003a_a_03L通政大夫行驪州牧使李志賤撰。
0012_0003a_a_04L通訓大夫前公州牧使李箕徵書。
0012_0003a_a_05L通訓大夫前行茂長縣監洪錫龜篆。
0012_0003a_a_06L戊戌之夏。余在書齋 [1] 。忽有兩禪踵門。呼而入之。則霜髭初剪。雲衲新磨。長裾
0012_0003a_a_07L曳地。念珞垂膺。昂昂如雙 [2] 老鶴。眞韻釋也。余 [3] 問曰何自。曰自鷄龍山。山在公
0012_0003a_a_08L山。蘭若己修。碑石已磨。所欠者文。是以來耳。仍致延陽李相公之命。噫。世之
0012_0003a_a_09L能於文 [4] 者非一。何惱余耶。師固勤矣。相公之意亦不淺。烏敢辭。第念碑文之
0012_0003a_a_10L作難矣。苟 [5] 非情窮造化。學貫天人。詞林根柢。文苑羽儀。聲華健筆。金石風流。
0012_0003a_a_11L安能追琢山嶽。照暎四裔。拔 [6] 凡起例。得滿深望乎。蓋聞雙精啓運。即鴻濛
0012_0003a_a_12L而爲眞。七聖通神。畫虛無而成宅。法身長往。指靈源而開途。化躅常浮。隨淨
0012_0003a_a_13L域而傾蓋。兩龍齊奮。拂瑤樹而馳風。陸蜺巍臨。超玉津而蹴月。楓天棗地。觀
0012_0003a_a_14L倚伏 [7] 於無形。方卦圓蓍。察幽明於未兆 [8] 。旁通意逕 [9] 。啓重玄於毘耶。首塞言津。專
0012_0003a_a_15L一默於摩詰。三才 [10] 可判。誰持妙物之機 [11] 。萬象初陳。同歸太極之致。隨迎還𨓏。
0012_0003a_a_16L非議林之或窺。性相名談。豈學地之可誌。推無引有。旣爻繫 [12] 之攸筌。拓謬宣
0012_0003a_a_17L昭。仰稱謂於彼岸。瑤宮異典。明揚列 [13] 宿之躔 [14] 。玉刹祥霏。隱 [15] 暎閻河之域。三
0012_0003a_a_18L千菩薩 [16] 。散衽席於風巖。百億天王。失廊廟於道窟。靑聯雷燭。歷大塊以三休。碧
0012_0003a_a_19L羽霜凄。倚 [17] 渾天而一息。遙源濬浪。隨帝酌而不窮。峻岳 [18] 摩空。挾人誠而可撼。
0012_0003a_a_20L如來利想。平開八正之門。迦葉通猷 [19] 。親憑五 [20] 衍之軾。阿難邃 [21] 見。窮五色而長
0012_0003a_a_21L存。涅槃端居。撫雙 [22] 龕而爰靜。慈深四瀆。顧糟粕而空存。契合群方。仰州 [23] 航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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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3b_a_01L갈 것을 알겠다.21) 공덕이 드넓은 겁劫에 넘쳐나니 다툼이 없는 경계에 한 도리를 드리웠고, 감찰함이 항하恒河를 꿰뚫으니 비침이 없는 광명22)에서 찬란함이 거듭 빛났다. 시절 인연이 이미 멀어지니 몸은 사라쌍수에서 옷을 버리고, 능사能事를 이제 막 쉬니 발은 금사金沙에서 신발을 벗었다.23)이에 칠흙 같던 밤에 동이 터 오니 큰 거리에서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밝게 빛나고, 옛날 머무르던 객점에 새벽의 시원함이 찾아오니 진여眞如의 구름 같은 부처님의 법이 그늘을 드리웠다.24) 그러자 연燕나라와 진秦나라의 두 황제가 몸소 밤을 밝히는 등을 나르고, 한漢나라와 초楚나라의 세 왕은 손수 장생長生을 비는 초를 바쳤다.25) 유문遺文이 그 사이에 나와 항상 준조樽俎의 군대에 임하고, 줄지은 사찰이 서로 바라보니 울타리의 한계가 다시는 없다.26) 산서山西의 훌륭한 식자識者들은 인연 맺을 금을 예물로 바치며 줄지어 오고, 강좌江左의 선비들은 마음을 표시하는 비단을 받들고서 수레를 타고 서로 찾아왔다.27)갑사岬寺는 신라 진흥대왕眞興大王이 창건한 절이다. 금인金人이 꿈에 나타나 천축天竺의 특이한 상서를 처음으로 바치고, 백마白馬가 와서 조회하고서 다시 잠궁潛宮의 비결秘訣을 바쳤다.28) 성헌星軒이 사방으로 내달렸으니 아득히 탁 트인 언덕의 터이고, 봉필鳳筆이 세 차례 내렸으니 시원스런 안개 노을의 바깥이로다.29) 산은 만수산萬壽山과 연이어졌으니 오히려 옥부玉斧의 소리를 전하고, 땅은 천방산千方山과 접하였으니 금오金吾의 경계를 모두 차지하였다.30) 옥 같은 불단佛壇의 보배로운 사업이 펼쳐질 이곳은 만세萬世의 기틀이라 다투어 일컬어졌고, 비단 같은 초석礎石의 신이로운 광채는 삼위三危31)의 곁에서 우뚝하였다. 하늘이 붉은 언덕을 펼치니 멀리 뭇 계곡이 내달리는 것이 보이고, 협곡에 푸른 못이 묶여있으니 누가 일천 길이나 되는 깊이를 헤아리겠는가. 구불구불 한 줄기 산맥이 흘러와 속리산의 허리를 곁에서 파고들고, 우뚝한 세 개의 쪽머리 모양 산에서 곧장 금강산의 면모를 마주하였다.원만한 마음을 은밀히 운행하여 자비의 길을 열어서 사람들에게 권하고, 지혜의 칼날을 때때로 휘둘러 삿된 근원을 가르고 자신을 바르게 하였다. 환구圜丘의 장대한 살핌은 철문을 밀치고 현묘한 도리를 찾았고, 연관聯觀의 웅대한 계획은 구리 성가퀴를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다.32) 천삼千三의 탑묘塔廟는 파복巴服의 존귀한 이름을 차지하고, 백억百億의 깃발은 공황邛荒의 보배로운 명을 노래하였다.33) 산천은 가파른 벼랑을 속에 품어 영취산靈鷲山 같은 기이함을 공연히 전하고, 수풀은 삿된 기운을 제거하여 앵림鶯林34) 같은 빼어난 모습임을 알겠다.붉은 가로장을 은밀히 굴려서 겹겹으로 잠긴 문에 신묘한 헤아림을 걸고, 하얀 비녀장을 몰래 풀어서 여러 가마에 새로운 기틀을 만들었다.35) 아로새긴 용마루는 학이 날아오르는 듯 하늘 가운데에서 빠른 날개를 펼치고, 수놓은 서까래는 규룡虯龍이 몸을 편 듯 구름 너머에서 채색 허리를 들썩인다. 새벽이면 옥구슬을 토해 아름다운 소리가 은하수에 떠들썩하고, 밤이면 옥 그물을 드리워 달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밤 그림자를 걸렀다.36) 참된 글인 패엽경貝葉經은 뜰의 나뭇가지에 맺힌 무수한 이슬에 씻기고, 법당의 용화수龍華樹는 섬돌에 난 풀의 새벽빛이 감돈다.37) 층층 누각은 그림자가 거꾸로 땅이 아닌 하늘에 비쳐 은하수에 의지해 서로 부딪히고, 두 전각은 허공에 우뚝 솟아 구름과 무지개를 뚫고서 저 홀로 서 있다. 창두蒼頭가 와서 인사하니 노후魯侯의 은혜로운 윤음綸音을 전하고, 자전紫甸이 종횡으로 펼쳐 있으니 멀리 주왕周王의 아름다운 법을 본받았다.38) 바위에는 하얀 탑을 배열하니 우러러 한 자 다섯 치의 하늘을 올려보고, 들판에는 구리 기둥을 우뚝 세우니 아래로 진근塵根의 인연이 있는 땅을 끊어버렸다.39) 봉기封畿의 구회九會이니 용경龍坰 사위성舍衛城의 도량이요, 취락의 삼분三分이니 녹야원鹿野園의 경행經行하던 장소로다.40) 저 함곡관函谷關의 구름은 거듭 진성眞聖의 기약을 만나고, 수풀처럼 이어진 별들은 다시 창성할 운수를 만났다.41) 두 임금이 상자를 열어 특별한 원당願堂이라 일컫고, 두 스님이 정성을 다해 가사를 나누는 축원에 부합하였다. 숲과 들의 훌륭한 인재들이 강당을 향해 구름처럼 모여들고, 제비 문양을 새긴 띠와 난새 문양을 새긴 치마를 입은 이들이 재齋를 여는 마당에 안개가 뭉치듯 모였다.42) 인황仁皇의 보배 거울은 해와 달을 다 합한 것처럼 빛을 실어 보내고, 범왕梵王과 제석帝釋의 금륜金輪은 우레와 천둥을 끼고서 상서祥瑞를 보였다.43) 상서로운 병을 밤에 부으니 요봉堯封에 옥 물결이 두루 퍼지고, 보배 부채를 새벽에 휘두르니 순력舜曆에 금 바람이 드날렸다.44) 숲과 시내에 생동감이 넘치니 연기 피어오르는 언덕에 학참鶴槧을 날리고, -
0012_0003b_a_01L知緬。功彌浩劫。垂一銓 [24] 於無爭。監徹恒河。煥重昕於勿照。時緣已逈。身離雙
0012_0003b_a_02L樹之衣。能事初休。足脫金沙之履。於是緇昏夜闢。曜慧旭於重衢。舊店晨凉。
0012_0003b_a_03L蔭法雲於眞際。燕秦兩帝。躬輸不夜之燈。漢楚三王。手獻長生之燭。遺文間
0012_0003b_a_04L出。常臨尊俎之師。列刹相望。無復藩維之限。山西群彦。委緣金而隨肩。江左
0012_0003b_a_05L諸生。奉情帛而結轍。岬寺者。新羅眞興大王之所剏也。金人入夢。初呈天竺
0012_0003b_a_06L之殊禎。白馬來朝。更獻潜宮之秘訣。星軒四走。微 [25] 茫爽塏之墟。鳳筆三回 [26] 。灑
0012_0003b_a_07L落烟霞之表。山連萬壽。猶傳玉斧之聲。地接千方。占盡金吾之界。瓊壇 [27] 寶業。
0012_0003b_a_08L爭稱萬世之基。錦礎神光。尙屹三危之側。天開赤岸。遙看衆壑之奔。峽束蒼
0012_0003b_a_09L淵。誰測千尋之竇。蜿蜒一脈。斜侵俗離之腰。歷落三鬟。直對金剛之面 [28] 。圓襟
0012_0003b_a_10L密運。闡慈程而勸人。惠刄時揮。磔妖原而正己。圜丘壯諦。排鐵闥 [29] 而搜玄。聯
0012_0003b_a_11L觀雄圖。破銅堞而得悟。千三塔廟。擅巴服之尊名。百億㫌 [30] 幢。奏邛荒之寶命。
0012_0003b_a_12L山川隱嶙。空傳鷲嶺之奇。灌莽除殘。更覺鶯林之秀。朱衡密轉。鉤妙筭 [31] 於重
0012_0003b_a_13L扄 [32] 。素鍵潜融。剏新機於衆輦 [33] 。雕 [34] 甍鶴翥。披迅翮於天心。繡桷虬 [35] 伸。舞彩腰於
0012_0003b_a_14L雲外。璿璫曉吐。鬧逸響於星津。珠網宵垂。篩晚影於月逕 [36] 。眞文貝葉。蕩溽露
0012_0003b_a_15L於庭枝。寶宇龍花。轉曙色於砌卉。層樓倒影。倚河漢而相磨。二殿凌歊。軼 [37] 雲
0012_0003b_a_16L霓而自得。蒼頭展謁。猶傳魯侯之恩綸。紫甸縱橫。遠倣周王之令典。巖排粉
0012_0003b_a_17L塔。仰瞻尺五之天。野屹 [38] 銅楹。俯絕根囙 [39] 之地。畿封九會。龍坰舍衛之場。聚閈 [40]
0012_0003b_a_18L三分。鹿野經行之所。若乃函關雲物。重逢眞聖之期。林絡星辰。更遇 [41] 平章之
0012_0003b_a_19L運。重宗啓籙 [42] 。 仍稱別願之堂。二衲虔誠。克副分袈之祝。林英野秀 [43] 。攀講序而雲趨。
0012_0003b_a_20L帶燕裙鸞。仰齋庭而霧合。仁皇寶鏡。通日月而流光。梵帝金輪。夾 [44] 雷霆而馳
0012_0003b_a_21L祲。祥瓶宵注。浹玉 [45] 瀲於堯封。寶箑晨揮。振金颷於舜曆。林川動色。飛鶴槧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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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4a_a_01L 산과 큰 강에 광채 빛나니 달빛 비치는 계곡에 홍정虹旌이 기다렸다.45) 현궁玄宮에서 계획을 세우니 신금宸襟에서 조화를 펼치고, 황옥黄屋에서 정신을 모으니 예념睿念에서 경륜을 다하였다.46) 향로봉香爐峯에 자욱한 기운이 감도니 옥궤玉几에 부는 바람에 향기 전해지고, 바위 틈 여울에 급류 소리 울리니 동호銅壺에 담긴 물에도 그 음향 나뉘어 울렸다.47)아아! 시간이 흐르고 일이 변하니 대개 흥성함과 쇠퇴함은 일정함이 없는 법이고, 성대하게 창성하는 운수는 가버리고 막혀서 퇴락하는 운수가 도래하니 실로 서로 교착하여 헤아리기가 어렵구나. 남쪽 오랑캐48)가 제멋대로 물결을 일으키니 본디 교화가 미치는 곳이 아니었고, 올빼미49) 같은 성질로 모래를 머금으니50) 곧장 하늘에 닿는 악독을 부렸다. 그리하여 삼경三京의 문물이 전부 견양犬羊51)의 세상이 되어버리고, 팔수八水에 풍랑이 일었으니 용사龍蛇의 해를 차마 말하랴.52) 미친 듯 부는 폭풍이 산을 흔들더니 곁으로 뻗어 인지忍地의 신령을 놀라게 하고, 치솟는 불길이 산을 태우더니 이미 견림堅林의 색을 변화시켰다.53) 향성香城54)의 보배로운 성가퀴는 옛날의 영화를 잃어버렸고, 무너진 벽과 기운 담장은 오늘날 재로 변해 참혹하였다. 제천諸天은 빛을 잃었으니 잡초 우거진 가운데에서 마음이 아프고, 늘어선 산봉우리는 부끄러움을 머금었으니 바람에 이는 먼지 속에서 보기에 참혹하였다. 가래나무와 오동나무는 원근에 자라 법당이 있던 터에 엇갈려 있고, 벼와 기장은 높고 낮게 자라 절이 있던 땅에 줄 지어 있었다. 시냇물이 한스러움을 하소연하듯 흘러가니 석마石馬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고,55) 언덕의 나뭇잎은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니 용상龍象56)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였다. 날아다니는 새들은 지저귀면서 현묘한 도를 찾던 절이 영영 파묻힌 것을 원망하고, 움츠린 짐승들은 숨어서 신음하면서 순백의 경계가 오랫동안 잡초에 우거진 것을 아파하였다. 진공사眞空寺가 사라진 뒤에는 누가 이보李輔의 시를 전할 것인가. 예천암醴泉菴 앞에서 그저 왕형공王荆公의 탄식만 간절하였다.57) 단풍 진 다리에 달빛 떨어질 때 야밤의 종소리 듣기 어렵고,58) 대나무 언덕에 바람 비껴 불 때 구름 속의 기러기를 헛되이 보내도다. 강남의 장사하는 아낙네는 한스럽게도 옥비녀를 몇 번이나 동여매고, 강북의 장사하는 아이는 생각건대 물가 돌에 낀 이끼를 던졌으리라.59)다행히도 황령皇靈이 떨쳐진 덕분에 왜적들이 패망을 면치 못하고, 제력帝力이 멀리까지 펼쳐지니 변방의 전쟁을 종식시켰다. 검은 활과 붉은 색 화살로 처음 옥루玉壘의 군사를 일으키고, 은빛과 금빛의 갑주甲冑로 이에 동구銅丘의 군대를 받들었다.60) 천지가 다시 소생하니 천운天運이 이에 평탄해짐을 보고, 해와 달이 거듭 운행하니 황계皇階가 크게 열려 빛났도다.61) 낭간瑯玕이 바닷가에 있으니 팔문八門의 –2자 결락- 열고, -3자 결락-62) 천세千世의 역수曆數를 접한다.63) -2자 결락- 비를 부르니 이미 기울어진 형국에서 감여堪輿64)를 회복하고, 정수井宿를 지나고 삼수參宿를 붙드니65) 다스려지지 못하던 형국에서 신극宸極을 바로잡았다.66)삼주三州의 옛 풍속은 백호白虎의 사당을 넓힐 것을 생각하고, 구극九棘의 유민들은 황룡黃龍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67) 이에 산의 승려인 ▣▣, 경순敬淳, 성안性安, 보▣普▣ 등이 한밤중에도 자지 않고 구슬을 줍는 숲을 먼저 찾고, 해가 지도록 피곤함도 잊은 채 다시 모래 드날리는 계곡으로 들어갔다.68) 청전靑錢으로 격분激憤하니 연燕나라 길을 거슬러 감에 바야흐로 다하였고, 백벽白壁으로 은혜를 드리우니 진秦나라 언덕을 두드림에 멀지 않았다.69) 작은 물결이 의탁할 곳이 있으니 –3자 결락-70) 종과 북이 입을 닫음이 없으니 뇌추雷追를 가리키며 잠시 쉬었다.71) 용문龍文이 비록 아득하지만 물소 갑옷을 베는 공력을 끝내 보고, 어안魚眼이 먼저 돌아와 신령스러운 새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다.72)마음에 팔성八聖을 보존하되 오히려 목동牧童의 말을 기뻐하고, 도는 삼잔三殘을 구제하되 대중들의 노래를 멀리하지 않았다.73) -1자 결락-74) 석 달 동안의 진秦나라의 재를 쓸어버리고, 크게 우거진 –2자 결락- 열흘 동안의 노魯나라의 화재를 잘라버렸다.75) 스님들이 건의한 것과 같이 되니, 깊은 계곡을 모두 다 다니면서 읊조리고, 모주謀主가 글로 알린 것대로 본받으니 맑은 시내를 굽어보며 길게 읊조렸다.76) 새 것을 돌아보고 옛날을 생각하며 조주趙州의 정심精心을 뒤따르고, 근래를 찾고 먼 것을 찾으며 무창武昌의 유적을 따랐다.77) -1자 결락-78) 더러운 것을 나르니 동반銅盤을 두드려 계획을 지혜롭게 하고, 구름과 비가 나루에서 걷히니 -
0012_0004a_a_01L烟 [46] 皋。岳瀆生輝。佇虹旌 [47] 於月澗。玄宮畫 [48] 計。敷造化於宸襟。黄屋凝 [49] 神。殫經綸
0012_0004a_a_02L於睿念。爐峯轉靄。香傳 [50] 玉几 [51] 之風。石瀨鳴湍。響分銅壺之水。於戱時移事變。
0012_0004a_a_03L蓋興廢之無常。泰往 [52] 否來。實回互而難測。蠻區擅澥。元非聲教之所臻。梟性
0012_0004a_a_04L含沙。直肆干天之毒。三京文物。盡入犬羊之天。八水風濤。忍說龍蛇之歲。衝
0012_0004a_a_05L颷蕩岳。旁驚忍地之靈。烈火焚山。已變堅林之 [53] ▣ [54] 。香城寶堞。失舊時之榮華。
0012_0004a_a_06L破壁傾墻。慘今朝之灰燼。諸天閉景。傷心蓬艾之間。列峀含羞。慘目風埃 [55] 之
0012_0004a_a_07L裏。楸梧遠近。參差臺殿之墟。禾黍高低。次 [56] 第招提之境。川流訴恨。似聽石馬
0012_0004a_a_08L之鳴。岸葉吟風。如聞龍象之泣。翔禽奏響。怨玄關之長堙。蟄獸潜呻。痛白境
0012_0004a_a_09L之久蕪。眞空寺後 [57] 。誰傳李輔之 [58] 詩。醴泉菴前。徒切王荆之歎。楓橋落月。難聞
0012_0004a_a_10L夜半之鍾。竹陂斜風。虛送雲中之鴈。江南販婦。恨幾纒於玉簪。水北 [59] 商童。計
0012_0004a_a_11L已拋於石髮。幸賴皇靈有振。難逃高柳之誅。帝力遐宣。坐折長楡之銳。玄弧
0012_0004a_a_12L赤羽。初興玉壘之師。月甲金鱗。爰恭銅丘之旅。玄 [60] 黄再造。見天步之載夷。烏
0012_0004a_a_13L兎 [61] 重 [62] 輪。煥皇階之甫闢。瑯玕 [63] 負海。開八門之▣▣。▣▣▣河。接 [64] 千世之曆數 [65] 。
0012_0004a_a_14L▣▣召雨。回坎 [66] 輿 [67] 於旣傾。歷井扶参。正宸極於不宰。三州舊俗。思恢白虎 [68] 之
0012_0004a_a_15L祠。九棘餘 [69] 氓。不負黃龍之約。迺者山之僧▣▣敬淳性 [70] 安普 [71] ▣等 [72] 。中宵不 [73]
0012_0004a_a_16L寐 [74] 。先搜掇 [75] 珠之林。昃 [76] 景忘瘦。更入揚沙之谷。靑錢激憤。遡燕路而方窮。白壁
0012_0004a_a_17L垂恩 [77] 。叩秦原而未遠。涓 [78] 波有托。望▣▣而 [79] ▣誠。鐘鼓無瘖 [80] 。指雷追 [81] 而 [82] 假息。
0012_0004a_a_18L龍門 [83] 雖逈。終看剸兕之功。魚眼先回。可辨靈禽之語。心存八聖。尙欣牧竪之 [84]
0012_0004a_a_19L詞。道濟三 [85] 殘。未隔輿人之頌。商 [86] 於六 [87] ▣。掃三月之秦 [88] 灰。太茂▣▣。剪十日之
0012_0004a_a_20L魯燬。如師建議。窮黛壑而行吟。法主 [89] 申文。俯淸溪而長嘯。回新念昔。 追
0012_0004a_a_21L趙州之精心。吊近尋遙。遵武昌之遺 [90] 蹟。鉏▣輦(葷)穢。叩 [91] 銅盤而 [92] 慧 [93] 圖。屏翳 [94] 收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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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4b_a_01L옥척玉尺을 가져와 기준을 폈다.79) 숲과 뫼의 옛 모습은 봉책鳳册을 살펴봄에 의심이 없고, 기둥과 건물의 남은 향기는 학장鶴帳을 살펴봄에 얻음이 있다.80)봉성蜂城을 비추는 달은 다시 설산雪山의 도량에 임하고, 안탑雁塔에 날아든 구름은 곧장 의무려산醫巫閭山의 봉우리를 마주하였다.81) 현방玄房이 안개처럼 감아 도니 계수나무 바위에 금 문지도리를 올려 메고, 감전紺殿이 별처럼 펼쳐져 있으니 단풍나무 집에 옥 문고리가 깃들었다.82) 담과 벽이 대번에 둘러서니 거듭 목어木魚의 노래를 듣고, 솥과 걸상이 이윽고 높이 솟으니 다시 삼계杉雞의 노래를 새겼다.83) 보배로운 누대에서 내려보고 올려보니 해와 달이 나란히 찬란하게 밝고, -2자 결락-84) 구름과 우레를 달고서 소리를 합하였다.85) 붉은 휘장 안에서 선정禪定에 드니 텅 빈 가슴에 우주를 포괄하고, 비단 휘장 안에서 엄숙하고 존귀하니 무외無外에서 천지의 조화를 온축하였다.86)왕의 은혜가 한번 펼쳐진 것과 같은 경우 동서로 우禹의 밭 경계를 가르고, 황제의 명령이 거듭 펼쳐지니 앞뒤로 종복從僕이 있게 되었다.87) 노향蘆鄕의 결복結卜을 어찌 홍려鴻臚가 마음대로 하겠는가. 죽원竹苑의 사도師徒는 영윤令尹이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88) 한산寒山의 공양供養은 상림上林에서 자수紫水를 나누고, 안국安國의 추령騶鈴은 하읍下邑에서 푸른 신발을 흩었다.89) 네모난 뜰에서 농사지으니 바로 양진兩晋의 강역이고, 아래 자리에서 가르침을 받드니 두 고개의 치솟는 업신여김을 모았다.90) 노란 국화를 헌상하니 온 집안의 명주실과 삼실이 오고, 하얀 쌀에 윤기 흐르니 한 고을의 비옥함을 오로지 가졌다.91) 하늘과 성인의 도움을 받으니 중국에 견주어 공을 자랑하고, 세대를 건너 아름다운 덕을 이으니 궁궐의 계단을 가리키며 덕을 마셨다.92) 형荆 땅의 황금과 초楚 땅의 비단이 오니 복잡한 도회지의 정성이 높이 솟고, 자색 조개와 붉은 향기가 오니 하늘의 비와 이슬 같은 은택이 쏟아졌다.93) 지초芝草처럼 아름다운 집의 높다란 휘장에 거듭 다섯 달의 바람이 전해지고, 혜초蕙草처럼 아름다운 누각에 펼쳐진 장식물에 다시 서른 날의 안개가 머물렀다.94) 신선 세계의 사다리를 이미 차지하니 상서로운 비익조比翼鳥에게 사례를 받을 만하고, 큰 중창 불사를 막 완성하니 다시 하례하는 참새에게서 영광을 걷어잡았다.95) 여러 신들이 새벽에 엄숙하니 은방銀榜을 향해 단정히 연이어 서 있고, 일만 나무가 봄에 높이 솟으니 옥 생황을 바꾸어 엄숙히 늘어섰다.96)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땅을 가르며 늘어선 단단한 성벽에서 적서赤鼠의 재앙을 만나고, 하늘을 경동驚動시키는 옥노玉弩에서 과연 창응蒼鷹의 변고를 징험할 줄을.97) 농성하러 혀를 말아 넣듯이 성에 들어가니 성벽에 누운 연燕나라 군사가 많고, 코끼리와 뱀이 도망치니 성벽을 걸어 잠근 제齊나라 장수와 흡사하였도다.98) 어문魚門에 투구가 떨어지니 땅굴을 누가 방어할까 개탄하고, 마굴馬窟이 병사들로 메워지니 운제雲梯를 막기 어려움을 통탄하였다.99) 승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니 정암鼎巖을 가리키며 탄식하고, 천사闡士100)들이 일제히 도망치니 규봉圭峯을 바라보며 눈물을 뿌렸다.시내와 들판 가득히 몇 년이나 군사들의 깃발을 보았는데도 절의 전각이 높다랗게 보존됨은 실로 여러 신령이 보호해줌이로다. 형강荆江의 학사學士는 원경圓鏡을 우러러보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공락鞏洛의 왕손王孫은 가는 말을 멈추고서 절을 올렸다.101) 어두운 길의 큰 촛불은 여전히 정토淨土의 엄숙함을 경계하고, 고해苦海의 자비로운 배에는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무생無生으로 관觀하니 완연한 법장法藏의 봉함封緘이요, 불퇴전不退轉의 법륜이 걸렸으니 심인心印한 선월禪明의 빗장과 걸쇠로다.102) 삼현三賢의 기각綺閣은 시왕十王의 은밀한 부명符命에 힘입고, 오극五極의 운헌雲軒은 천불千佛이 드러나게 안정시킨 것이다.103) 서쪽 봉우리의 참된 전서篆書는 시방 세계를 꿰뚫어 아직도 빛나고, 북쪽 산의 시라尸羅는 여덟 제단祭壇을 끼고서 드높이 솟았다.104) 법운法雲이 낮게 맺히니 오히려 칠보七寶의 눈썹을 모으고, 지혜의 해가 비껴 임하니 삼명三明의 어려움을 그치지 않았다.105)다만 한스럽기는 장간長干을 지키지 못했으니 상자 안의 그림을 누가 거둘 것이며, 학림鶴林은 비록 남아 있으나 이미 광주리 안의 책은 어그러졌다.106) 산중과 초야에서 기록한 문건들은 포대와 함께 다 사라졌고, 위기位記와 금전衿箋은 의발衣鉢과 함께 다 흩어졌다.107) 평구平丘의 -
0012_0004b_a_01L提玉尺而展準。林巒舊狀。稽鳳册而無疑。棟宇餘香。窺鶴帳而有得。蜂城
0012_0004b_a_02L暎月。還臨 [95] 雪山之場。雁塔尋雲。即對 [96] 醫閭 [97] 之嶺。玄房霧 [98] 轉。抗金樞於桂巖。紺
0012_0004b_a_03L殿星 [99] 開。栖玉鋪於 [100] 楓閣。垣 [101] 墉遽起。重聞木魚之歌。鼎榻俄 [102] 穹 [103] 。更勒杉雞之
0012_0004b_a_04L頌。珠臺俯仰。煥晷 [104] 緯之齊明。▣邑▣靈。翼雲雷而合響。彤 [105] 幃入定。括宇宙於
0012_0004b_a_05L虛襟。繡幰凝尊。蘊陶鈞 [106] 於無外。至若王恩一布。裂禹畛 [107] 於東西。帝命重宣。
0012_0004b_a_06L是廬兒於前後。蘆鄕結 [108] 卜。豈鴻臚之所專。竹苑師徒。非令尹之可問。寒山供
0012_0004b_a_07L養。分紫水於上林。安國騶鈴。散靑鞋於下邑。方園耕稼。正兩晋之封疆。下
0012_0004b_a_08L座趨承。集二嶺之甬 [109] 侮。黃花獻貢。來八口之絲麻。白粲流脂。專一州之腴沃。
0012_0004b_a_09L援天荷聖。控赤 [110] 縣而誇 [111] 功。隔世承徽。指丹 [112] 陛而飲德。荆金楚帛。聳五劇之
0012_0004b_a_10L忧誠。紫貝丹馨。霈 [113] 九天之雨露。芝軒敞幄。重傳 [114] 五月之風。蕙閣張錢。更宿三
0012_0004b_a_11L旬之霧。仙梯已占。可移謝於祥鶼 [115] 。巨剏初成。復攀榮於賀雀。諸神曉儼。傃
0012_0004b_a_12L銀榜而端簪 [116] 。萬樹春掀。替瓊笙而肅隊。豈知金墉裂地。乃逢赤鼠之災。玉弩
0012_0004b_a_13L驚天。果驗蒼鷹之變。城嬰舌卷。多臥墻之燕師。象走蛇犇。類閉壁之齊將。
0012_0004b_a_14L魚門冑 [117] 路 [118] 。慨地道之誰防。馬窟 [119] 兵塡。痛雲梯之難拒。緇徒四散。指鼎巖而興
0012_0004b_a_15L嗟。闡士齊奔。望圭峯而酒涕。川原坱▼(土+莽)。見幾年之旌旗。殿閣巍峩。實群
0012_0004b_a_16L靈之扶護。荆江 [120] 學士。仰圓鏡而齊心。鞏洛王孫。駐征驂而展拜。昏衢巨燭。尙
0012_0004b_a_17L戒淨土之嚴。苦海 [121] 慈航。未絕䟽源之派。無生觀在。宛法藏之緘縢。不退輪
0012_0004b_a_18L懸。印禪明之扃鐍 [122] 。三賢綺閣。賴十王之陰符。五極雲軒。是千佛之顯隲。西峯
0012_0004b_a_19L眞篆。洞十方而猶光。北嶽尸羅。擁八墠而高挹。法雲低結 [123] 。尙攅七寶之眉。慧
0012_0004b_a_20L旭斜臨。不輟三明之難。但恨長干失守。誰收篋裏 [124] 之圖。鶴林雖存。己舛筐 [125] 中
0012_0004b_a_21L之版。山文 [126] 野錄。隨布袋而俱亡。位 [127] 記衿箋。並衣鉢而盡散。平 [128] 丘阡陌。無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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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5a_a_01L밭두렁은 논밭의 경계가 없어졌고, 곡지曲池의 노비는 절기에 따른 공봉功奉이 끊어졌다.108) 밭두둑을 뚫고 경계를 끊어 반은 백성들의 사사로운 경작지가 되고, 성을 갈고 이름을 없애 마음대로 세력가들이 대대로 부리게 되었다.109) 두타장로頭陀丈老는 철문을 밀치고 탄식을 일으키고, 극락사미極樂沙彌는 요진瑤津을 거슬러 올라가 더욱 한탄하였다.110)관찰사觀察使 겸 순찰사巡察使 강공姜公은 휘諱는 백년栢年이고 자字는 숙구叔久이다.111) 평탄하게 높은 관직에 임하니 평소 경상卿相의 재주가 있다고 일컬어졌고, 크게 평탄한 길을 걷다가 곧이어 세상을 정화할 고삐를 잡았다.112) 빛이 옥루玉壘에서 생겨나니 상경霜鏡이 걸린 것을 다투어 올려다보고, 광채가 금성金城을 밝히니 빙호氷壺와 같은 감식鑑識에서 달아나지 못한다.113) 교화가 행해져 풍속이 바뀌니 일찍 상국相國의 장막을 드리웠고, 도가 있어 겸손함을 보존하니 일찍 문후文侯의 빗자루를 잡았다.114) 수괴水恠의 재앙이 사라지니 사물들은 하늘의 뜻 속에서 걸림이 없고, 산정山精의 송사가 끊어지니 억울함은 단필丹筆에서 저절로 신원伸冤되었다.115)목사牧使 신공申公은 휘는 속洬, 자는 호중浩仲이다.116) 명성이 백 리에 퍼지니 중모中牟의 아름다운 법을 본받고, 교화를 쌍천雙川에서 헤아리니 무성武城의 옛 일을 준행하였다.117) 대나무 말이 약속을 기다리니 때때로 허리끈을 떨치며 서로 이어지고, 띠풀 지팡이에 인이 젖어드니 다투어 수레바퀴를 붙잡으며 겨를이 없다.118) 전원田原을 다닐 만하니 들에는 삼태기를 멘 기쁨이 넘쳐나고, 닭과 개가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리니 경계에는 북 두드리는 소리가 끊어졌다.119)이에 해부該府에 문서를 보내 일한一韓이 인연을 닦은 일을 뒤따르고, 담당 관원에게 이치를 분석하니 구로九老가 도를 생각하는 모양이 되었다.120) 조세안을 미루어 밝히니 사백년 세월동안 내려온 옛 법이 있고, 내수사內需司의 관례를 상고하니 한 시대의 새로운 법이 되었다.121) 사시四時의 향화香火 때에 묘대妙臺에서 천화天花를 흩뿌리고, 칠일재七日齋 때 올리는 곡식은 혜전慧殿에서 토적土績을 갚는다.122) 깊은 인仁으로 중생을 제도하니 무량하게 아름다운 이름을 수립하고, 큰 덕으로 생령生靈들을 품으니 불멸의 혜택을 퍼뜨린다.상인上人 사정思淨, 신휘愼徽, 경환瓊環, 일행一行, 정화正華, 상균尙均, 행준行俊 등은 불이문不二門에 마음을 머물러 가장 먼저 초지初地의 방편을 일으키고, 대천세계에 손을 뻗어 대번에 허공에 가득 차는 구족具足을 판가름하였다.123) 공덕은 아득한 옛날을 초월하니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의지하여 함께 돌아가고, 시주는 사시사철에 넉넉하니 삼명三明에 의지하여 홀로 운용하였다.124) 현묘한 기틀을 오묘하게 닫으니 이미 말이 없는 데에서 조짐이 적막해지고, 의義를 사모하고 인仁을 생각하니 송축하지 않는 데에서 소리를 따르기를 청하였다.125) 아아! 성황城隍이 한 번 변했으되 오히려 자운子雲의 명銘을 알고, 능곡陵谷이 세 번 변했으되 팽음彭陰의 글자를 안다.126) 참되고 오묘한 비결은 일이 비록 무명無名을 귀하게 여기나, 아름다운 비문은 도가 불후不朽한 데서 굳어진다.127)이에 마침내 다음과 같이 명문銘文을 짓는다.
鵬霄上廓鰲紀下淸 붕새가 날아오르는 하늘은 위에 드넓고 신선의 자라가 지고 있는 땅은 아래에 맑도다.128)
黑風宵遁綠洺晨渟 검은 바람은 밤에 숨고 푸른 강은 새벽에 멈춘다.129)
攅峯北走巨浸南横 모인 봉우리는 북으로 내달리고 거대한 물결은 남쪽으로 가로지른다.
靑龍帶刃白武銜珩 청룡은 칼을 차고 있고 백호는 노리개를 물고 있다.
玄熊叶夢赤鶴降禎 검은 곰은 꿈에 감응하고 붉은 학은 상서를 내린다.
群名涉器衆族含靈 만물과 관련된 뭇 이름이 있고 영성靈性을 품고 있는 뭇 종류가 있다.130)
乃睠鷄龍聿來迦衛 이에 계룡산을 살펴보고 가유라위迦維羅衛 같은 곳에 왔다.131)
奄有大千遂專三界 문득 삼천대천세계를 포괄하여 마침내 삼계三界를 오로지 하였다.132)
參圖旣正九法可啓 참여하여 계획함이 이미 바르니 구법九法을 열 만하다.
天開碧湫帝獻斑瓊 하늘이 푸른 못을 펼치고 제석帝釋이 아롱진 옥돌을 바친다.133)
恒星夜掩寐日宵成 항성恒星이 밤에 모습을 감추고 해가 잠들어 밤이 되었다.134)
福地陰陽僊都日月 복지福地에는 음양이 어우러지고 선도僊都에는 일월이 비춘다.135)
寶樹枝低祥河浪澈 보배나무는 가지를 낮게 구부리고 상서로운 강물은 물결이 맑다.136)
耆山廣運給園殊錫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불법을 널리 행하고 급고독원給孤獨園에 특별히 주석하였다.137)
金粟來儀文殊戾止 금속金粟은 위의를 갖추고 오고 문수보살이 이른다.138)
應乾動寂順民終始 하늘의 뜻에 응하여 움직이고 잠잠했으며 인성人性을 따라 생멸하는 모습을 보였다.139)
於昭我東夙揚洪烈 아! 밝도다. 우리 동방이여. 일찍부터 성대한 공업을 드날렸도다.140)
法網更維玄津遂泝 법의 그물이 다시 펼쳐지고 심오한 불법佛法의 나루터를 마침내 거슬러 오르도다.141)
倚據崇巖臨睨通壑 절은 높은 바위에 의지하여 기대고 있고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다.142)
溝池湘漢堆阜廬霍 상수湘水와 한수漢水를 해자처럼 두르고 여산廬山과 곽산霍山을 작은 흙더미처럼 여긴다.143)
威明自在棟宇恒存 혁혁한 위령威靈이 자재自在하니 법당의 기둥은 항상 보존되었다.
夷途九相惠路重掀 평탄한 길을 아홉 번 살펴보니 은혜로운 길은 다시 높이 솟았다.
情超六入氣茂䨥明 감정은 육입을 초월하고 -
0012_0005a_a_01L畝之東西。曲池厮娠 [129] 。絕時序之功奉。穿塍斷境。半爲胥氓之私耘。革姓塗名。
0012_0005a_a_02L任作豪强之世使。頭陀丈老。排鐵戶而興嗟。極樂沙彌。遡瑤津而增喟。觀
0012_0005a_a_03L察使兼巡察使姜公。諱栢年。字叔久。平臨上席。素稱卿 [130] 相之才 [131] 。誕步夷途。旋
0012_0005a_a_04L按澄淸之㘘。光生玉壘。爭瞻霜鏡之懸。彩徹金城。莫逃氷壺之鑑。風行俗
0012_0005a_a_05L易。早垂相國之帷 [132] 。道在 [133] 謙存。夙擁文 [134] 侯之篲 [135] 。災消水恠。物無礙於冥機。訟
0012_0005a_a_06L絕山精。寃自伸於丹筆。牧使申公。諱洬。字浩仲。馳聲百里。效中牟之令章。揆
0012_0005a_a_07L花 [136] 雙川。遵 [137] 武城之故事。筠駿 [138] 竚信。時拂綸而相尋。茅杖 [139] 霑仁。競攀輪而不暇。
0012_0005a_a_08L田原可踐。野豊荷篠之驂 [140] 。鷄犬相聞。境絕鳴桴之響。迺飛文該府。追一韓之
0012_0005a_a_09L修緣。析理當官。做九老之思道。推明租案。四百䄵之舊章。考例需司。作一代
0012_0005a_a_10L之新憲。四時香火。撒天花於妙臺。七日粢糧。報土績於慧殿。深仁濟衆。樹芳
0012_0005a_a_11L名於無垠。大德含生。流惠澤於不泯。上人思淨愼徽瓊環一行正華尙均行
0012_0005a_a_12L俊等。棲情不二。首起初 [141] 地之權。授手大千。遽判彌空之具。功超邃古。據二諦
0012_0005a_a_13L而同歸。施洽 [142] 平分。仗 [143] 參明而獨運。玄機妙鍵。已寂兆於無言。慕義思仁。請追
0012_0005a_a_14L聲於匪頌。於戲城隍一變。猶知子雲之銘。陵谷三遷。尙識彭陰之字。眞圖妙
0012_0005a_a_15L訣。事雖貴於無名。翠琰玄碑。道固凝 [144] 於未朽。遂爲之銘曰。鵬霄上廓。鰲紀下
0012_0005a_a_16L淸。黑風宵遁。綠洺晨渟。攅峯北 [145] 走。巨浸 [146] 南横。靑龍帶刃。白武銜 [147] 珩。玄熊 [148] 叶夢。
0012_0005a_a_17L赤鶴降禎。群名涉器。衆族含靈。乃睠鷄龍。聿來迦衛。奄有大千。遂專三界。參
0012_0005a_a_18L圖旣正。九法可啓。天開碧湫。帝獻斑瓊。恒星 [149] 夜掩。寐日宵成。福地陰陽。僊都
0012_0005a_a_19L日月。寶樹枝低。祥河浪澈。耆山廣運。給園殊錫。金粟來儀。文殊戾止。應乾動
0012_0005a_a_20L寂。順民終始。於昭我東。夙揚洪烈。法網更維。玄津遂泝 [150] 。倚據崇巖。臨睨通壑。
0012_0005a_a_21L溝池湘漢。堆阜廬霍。威明自在。棟宇恒存。夷途九相。惠路重掀。情超六入。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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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5b_a_01L기운은 확명䨥明에 뛰어났다.144)
優塡頓顙波慝藏名 우전왕優塡王은 예배를 올리고 파사닉왕波斯匿王은 명성을 숨겼다.145)
丹刻翬飛輪奐離立 단청을 그리고 무늬를 새긴 절은 오색 꿩이 날아가는 것 같고 높고 크고 화려한 모습은 봉황이 서 있는 듯하다.146)
翠拱朱楹文璫寶綴 푸른 두공斗拱과 붉은 기둥 서 있고 아로 새긴 와당瓦當과 보배를 달아놓은 망호網戶의 문설주가 있다.147)
山童獻賮天女持杯 산동山童은 보석을 바치고 천녀天女는 술잔을 잡고 있다.
功書玉板道列瑤臺 공덕은 옥판玉板에 기록하고 도는 요대瑤臺에 나열되어 있다.
松踈夏爽桂深冬暄 소나무 성긴 숲 여름에도 시원하고 계수나무 빽빽한 숲 겨울에도 따뜻하다.148)
雨葉長唫雲蘿可捫 빗방울 떨어지는 잎을 길게 읊조리고 구름처럼 얽힌 넝쿨은 붙잡을 만하다.
神足游息靈心往還 부처의 신통력을 지닌 발이 돌아다니다 이곳에서 쉬고 부처의 신령한 마음이 오고 간다.149)
慈幡東振貞石西刊 자비의 깃발은 동쪽에서 휘날리고 견고한 비석은 서쪽에서 새긴다.150)
謹述眞圖旁傳英淑 삼가 참된 법도를 서술하니 널리 빼어난 사적을 전하도다.
山頹海渴文或不滅 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도 이 비문은 혹 멸하지 않으리라.
숭정崇禎 17년 갑신후甲申後 16년 기해년(1659, 현종 즉위년) 9월 일에 세우다.
1. 갑사甲寺 중수기重修記호서湖西 지방에 명산이 하나 있어 계룡鷄龍이라고 하는데, 웅대하게 굽이치는 산세가 닭이 홰를 치고 용이 날아오르는 형세와 같기 때문에 그 점을 취하여 일컫는 것이다. 산의 최정상은 하늘과 닿아 있고 봉우리의 서쪽에 장엄하고 큰 절이 한 골짜기를 온통 관할하고 있는데, 여러 불전들 간에 종소리며 경쇠 소리가 들리고 수정암水晶菴, 북사암北獅菴, 대자암大慈菴 등 여러 암자들이 모두 여기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갑사甲寺라고 이름 붙였다. 신라 시대에 창건하였는데 부처의 영험이 더없이 저명하여 복을 기원하는 사람은 복을 얻고 후사後嗣를 구하는 사람은 후사를 얻으니 시주가 끊이지 않았다. 다만 지붕을 덮은 뒤로 연도가 오래되어 건물이 허물어지고 비바람이 마구 침범하였다.나는 이 절에 대한 꿈을 꾸고 나서 가보고 개탄을 하였다. 이에 수천 금의 재물을 희사하여 주지 스님에게 감독을 시키고 예전의 모습을 따라 새 재목을 보태고 기와와 기둥을 바꾸니 환하게 면모를 일신하였다. 보리菩提의 제천諸天에 꽃비가 다시 빛나니 이 어찌 저승에서의 복을 구하려고 한 것이겠는가. 오로지 부처의 영령을 무궁토록 편안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대웅전大雄殿의 예전 판각이 마모되었기 때문에 내가 서툰 솜씨를 잊고 ‘극락전極樂殿’ 세 글자를 다시 써서 예전 현판의 왼쪽에 따로 걸었다. 이것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변치 않고 영원히 전하려는 뜻이니 보는 사람들은 용서를 바란다. 절이 이미 대략 수선을 마치니 자초지종을 서술하여 기문記文을 적는다.정묘년(1927) 8월 청암淸菴 김윤환金閏煥151)은 짓고 쓰다.
2. 충청도忠淸道 계룡산鷄龍山 갑사岬寺2-1. 불상 개금 시주질施主秩청신녀淸信女 정해생丁亥生 박씨朴氏 금지련金池蓮. 청신녀 을묘생乙卯生 정씨鄭氏 보경화寶鏡華. 청신녀 경오생庚午生 홍씨洪氏 대지화大智華가 기부記付 -
0012_0005b_a_01L茂䨥 [151] 明。優塡頓顙 [152] 。波慝藏名。丹刻翬飛。輪奐離立。翠拱朱楹。文璫寶綴。山童
0012_0005b_a_02L獻賮 [153] 。天女持杯。功書玉 [154] 板。道列瑤臺。松踈夏爽。桂深冬暄。雨葉長唫。雲 [155] 蘿可
0012_0005b_a_03L捫。神足游息。靈心往還。慈幡東振。貞石西刊。謹述眞圖。旁傳英淑。山頹海渴。
0012_0005b_a_04L文或不滅。
0012_0005b_a_05L崇禎十七年甲申後十六年己亥九月 日立。
0012_0005b_a_06L
0012_0005b_a_07L甲寺重修記
0012_0005b_a_08L
0012_0005b_a_09L湖西有一名山。曰鷄龍。盖其磅磚 [156] 蜿蜒。如鷄搏龍騰之勢。故取以稱馬 [157] 。山之
0012_0005b_a_10L最絕頂連天。峯之西。儼然巨刹。專管一壑。佛殿梵宇。鍾磬相聞。水晶ㆍ北獅ㆍ大
0012_0005b_a_11L慈諸菴。皆屬於此。故以甲寺名之。創自新羅時代。佛靈最著。祈福者獲福。求
0012_0005b_a_12L嗣者得嗣。檀越相望。但修葺年久。殿宇頹圮。風雨交侵。余有夢感。往見慨歎。
0012_0005b_a_13L函捐數千金之財。使主僧監督。因其舊制。增以新材。易瓦改棟。煥然一新。菩
0012_0005b_a_14L提諸天。花雨重光。此豈欲求冥福而爲哉。專爲妥佛靈於無窮者也。殿號大
0012_0005b_a_15L雄。舊刻刓潓 [158] 。故余忘拙。更書極樂殿三字。別揭于舊板之左。此非誇張也。欲
0012_0005b_a_16L爲永傳勿替之意。覽者恕焉。寺旣修略。述顚末而爲之記。
0012_0005b_a_17L丁卯仲秋。
0012_0005b_a_18L淸菴金閏煥記幷書。
0012_0005b_a_19L
0012_0005b_a_20L忠淸道鷄龍山岬寺佛像改金施主秩
0012_0005b_a_21L
0012_0005b_a_22L淸信女丁亥生朴氏金池蓮。 淸信女乙卯生鄭氏寶鏡華。
0012_0005b_a_23L淸信女庚午生洪氏大智華記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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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6a_a_01L돌아가신 친부모님 두 분 영가靈駕. 돌아가신 시부모님 두 분 영가. 건명乾命 을축생乙丑生 박용석朴龍錫, 건명 계해생癸亥生 변씨邊氏 두 분. 청신녀 무인생戊寅生 배씨裵氏 안광명眼光明. 청신녀 갑자생甲子生 김씨金氏 평안▣平安▣. 건명 을축생乙丑生 이잔철李殘鐵 건명 무진생戊辰生 이씨李氏 두 분. 청신녀 을축생乙丑生 정씨鄭氏 정신화正信華. 청신녀 병인생丙寅生 김씨金氏 금봉화金鳳華. 청신녀 기미생己未生 강씨姜氏 관심화觀心華. 청신녀 기미생己未生 화장월華藏月. 청신녀 을유생乙酉生 윤씨尹氏 원명화圓明華. 청신녀 기유생己酉生 최씨崔氏 보조화寶照華. 청신녀 갑인생甲寅生 김씨金氏 일각화日覺華. 청신녀 병자생丙子生 허씨許氏 자비심慈悲心. 청신녀 무오생戊午生 김씨金氏 각명심覺明心. 청신녀 경오생庚午生 이씨李氏 보성普惺. 청신사 병진생丙辰生 이씨李氏 정성正成. 건명 신사생辛巳生 태진성太鎭成. 건명 무술생戊戌生 이씨李氏. 돌아가신 건명 기유생己酉生 장순백張順伯, 돌아가신 건명 을묘생乙卯生 박씨朴氏 두 분 영가.
화주질化主秩
비구比丘 취윤就允 복위伏爲 돌아가신 은사 두선斗先 영가. 돌아가신 건명 신축생辛丑生 윤씨尹氏, 돌아가신 건명 경자생庚子生 권씨權氏 두 분.
-
0012_0006a_a_01L亡親父母主兩位 靈駕。
0012_0006a_a_02L亡媤父母主兩位 靈駕。
0012_0006a_a_03L乾命乙丑生朴龍錫 亡乾命己酉生將順伯兩位
0012_0006a_a_04L乾命癸亥生邊氏 兩位。 亡乾命乙卯生朴氏 靈駕。
0012_0006a_a_05L淸信女戊寅生裵氏眼光明。
0012_0006a_a_06L淸信女甲子生金氏平安▣。 化主秩
0012_0006a_a_07L乾命乙丑生李殘鐵 比丘就允伏爲。
0012_0006a_a_08L乾命戊辰生李氏 兩位。 亡恩師斗先 靈駕。
0012_0006a_a_09L淸信女乙丑生鄭氏正信華。 亡乾命辛丑生尹氏。
0012_0006a_a_10L淸信女丙寅生金氏金鳳華。 亡乾命庚子生權氏 兩位。
0012_0006a_a_11L淸信女己未生姜氏觀心華。
0012_0006a_a_12L淸信女己未生 華藏月。
0012_0006a_a_13L淸信女乙酉生尹氏圓明華。
0012_0006a_a_14L淸信女己酉生崔氏寶照華。
0012_0006a_a_15L淸信女甲寅生金氏日覺華。
0012_0006a_a_16L淸信女丙子生許氏慈悲心。
0012_0006a_a_17L淸信女戊午生金氏覺明心。
0012_0006a_a_18L淸信女庚午生李氏普惺。
0012_0006a_a_19L淸信士丙辰生李氏正成。
0012_0006a_a_20L乾命辛已 [159] 生太鎭成。
0012_0006a_a_21L乾命戊戌生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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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6b_a_01L동치同治 5년 병인(1866) 12월 일
2-2. 정문正門 중수기重修記 (갑사甲寺)계룡산 아래에 절이 있는데 이름을 갑사甲寺라고 한다. 위에는 법당이 있으니 대웅전이요, 아래는 큰 누각이 있으니 우화루雨花樓이다. 가운데 누각 하나가 있어 정문正門이라고 부르는데, 만력萬曆 11년(1583, 선조16) 4월에 중수重修하였다. 이후로 해가 오래되고 세월이 더욱 깊어지면서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곁에서는 바람이 몰아쳐 기와는 부서지고 서까래는 썩었다. 이에 붉은 복사꽃이 물에 떠내려올 때나 푸르던 단풍이 비단 빛을 뿌리는 철이 되면 진리를 찾는 승려들이 개탄하지 않음이 없고 구경하러 온 손님들이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 절이 쇠락한 것에 대해서 입에 담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그런데 다행히 원선圓禪이라는 상인上人이 재목을 모아 중건하여 이전 사람의 공적을 이었으니 정문의 면모가 이로부터 갑절로 새롭게 되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이나 구경을 하는 사람이 이 누각에 오르면 모두 칭찬하기를, “이 절에 큰 ▣이 있는 사람은 원선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하고 하였다. 그 ▣를 논하자면 이 누각과 함께 ▣▣▣▣▣▣▣▣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단 선가禪家에 ▣▣▣……속인 ▣ 함께 기리니……. 어찌 사라지지 않을 성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망령되게도 벽에다 말을 적어 고견을 가진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삼는다.가경嘉慶 2년 무오(1798, 정조22) 4월 일 적다.
2-3. 공주 갑사岬寺 종기鍾記소재 :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월암리 갑사甲寺.
때 : 조선 선조宣祖 17년 갑신(1854).
만력萬曆 11년(1583, 선조16) 7월 ▣▣이 크게 발생하고 병란이 크게 일어나자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충청, 경상, 전라 세 도의 사찰에 있는 철기鐵器를 모두 거두어 나라에 바쳐서 병기兵器와 화보火砲를 주조하였다. 이 때문에 …▣이 없어…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며 말하기를, “크고 작은 절을 가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주상主上을 축수祝壽할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때마침 무안無顔이 권선하여 갑신년(1584, 선조17) 여름 4월 일에 공산公山의 동쪽 계룡산 갑사사岬士寺 대종을 새로 주조하였다. 쇠 8,000근이 들었으니 만세에 전할 것이다.
3. 충청우도忠淸右道 서산瑞山 상왕산象王山 개심사開心寺3-1. 대법당大法堂 중수기重修記 -
0012_0006b_a_01L同治五年丙寅十二月 日。
0012_0006b_a_02L
0012_0006b_a_03L正門重修記(甲寺)
0012_0006b_a_04L
0012_0006b_a_05L鷄龍山下有寺。名曰甲寺。上有法堂。大雄殿也。下有大樓。雨花樓也。中有一
0012_0006b_a_06L樓。名以正門。而粤在萬曆十有一年維夏之月重修。以後年窄久而歲愈深。
0012_0006b_a_07L上雨旁風。瓦碎椽朽。紅桃流水之時。靑楓濺錦之際。衲之尋眞者。莫不慨然。
0012_0006b_a_08L客之遊賞者。無不嘆矣。則此寺之殘敗。不可容口而形言也。幸有上人圓禪。
0012_0006b_a_09L鳩材重建。仍續前人之功。正門之顏色。自此倍新。尋眞遊賞者。登斯樓而咸
0012_0006b_a_10L稱。則大有▣於此寺者。非圓禪而誰也。論其▣則與斯樓而▣▣▣▣▣▣
0012_0006b_a_11L▣▣樓而不朽。非但禪家之有▣▣▣俗人▣與頌。豈非不朽之盛事歟。玆
0012_0006b_a_12L以妄語于壁。以胎 [160] 高見之笑。
0012_0006b_a_13L嘉慶二年戊午 [161] 四月日記。
0012_0006b_a_14L
0012_0006b_a_15L公州岬寺鍾記
0012_0006b_a_16L所在 忠淸南道公州郡鷄龍面月岩里甲寺。
0012_0006b_a_17L年時 朝鮮宣祖十七年甲申。
0012_0006b_a_18L時維萬曆十一年七月。爲以▣▣大熾。兵亂大起。因以得抑。下三道寺刹器
0012_0006b_a_19L鐵。盡取納國。兵器火砲鑄鋪矣。是以口 [162] 無人皆嘆日 [163] 。不小大刹寺。朝暮爲主
0012_0006b_a_20L上祝壽處。時有無顏即勸。甲申夏已 [164] 月日。公山東鷄龍山岬士寺。大鐘新鑄。
0012_0006b_a_21L成鐵八千斤。萬世流傳。
0012_0006b_a_22L
0012_0006b_a_23L忠淸右道瑞山象王山開心寺大法堂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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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07a_a_01L기記는 일을 기록하는 것이니, 그 일을 기술하여 후대의 안목으로 삼는 것이다. 지금 이 전각은 여러 해를 거치면서 거북의 털은 다 쓸려 없어지고 토끼의 뿔은 부여잡기 어려우니152), 해가 오래되어 허물어졌어도 감히 중수를 시작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덕월德月 도문道聞153)이라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혜를 떨치며 뜨거운 정성으로 축軸을 짊어지고 보시를 구하였는데 일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신 영령이 감응하여 ▣ 인정仁定, 부익富益, 현오玄悟 세 사람이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따라 한마음으로 뒤를 이어 병진년(1856, 철종7) 10월에 일을 시작하여 정사년 대재大在의 달에 공사를 마쳤다.그 재력財力을 헤아려보면 물건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고 공사는 귀신을 부린 것이 아니니, 상왕象王이 헌수獻壽하고 사자獅子가 몸을 떨쳤으며 세 사람이 힘을 합쳐 이 큰일을 마쳤다. 이미 그 일을 서술하였으니 어찌 방명록芳名錄이 없을 것인가. 전말을 대략 들어서 실추되지 않을 절의 일로 삼는다.숭정기원崇禎紀元 후 4번 째 정사년丁巳年 4월 일, 마곡사麻谷寺 유나維那154) 경월鏡月 쾌수快守 삼가 적다.판부사대감判府使大監 김공金公 도희道喜.
시주질施主秩
대시주大施主 경거京居 상궁尙宮 우씨禹氏 정사생丁巳生. 서산군수瑞山郡守 윤씨尹氏 자승滋承. 당진현감唐津縣監 홍씨洪氏 자주玆周. 김▣희金▣喜. 김용재金龍載. 김상봉金商鳳. 김상현金商鉉. 김상룡金商龍. 종鍾. 병로秉魯. 장명손張明孫. 남광손南光孫. 유학幼學 서상돈徐相敦.
산인山人 시주질施主秩
비구比丘 성책性策. 마곡사麻谷寺. 서최瑞最 성종誠宗. 인월印月 지행智幸. 비구니比丘尼 원열元悅. 수행修幸. 비구比丘 영인永仁. 서울 신흥사京新興寺. 혜암慧庵 성혜性慧. 인허印虛 쾌명快明. 벽담碧潭 도문道文. 성담性潭 명기明起.
본사질本寺秩
비구比丘 계환戒歡. 비구 철학哲學. 비구 신행信幸. 비구 서일瑞日. 비구 지은智銀. 비구 재순載淳. 비구 지학智學. 비구 ▼훈▼(忄+土)訓. 비구 지성知性. 비구 장흔長欣. 비구 도운道云. 건명乾命 조동趙同. 구칠성具七星. -
0012_0007a_a_01L記。記事也。記述其事。以爲後來之眼目者也。今此殿宇。累歷星霜。龜毛掃盡。
0012_0007a_a_02L兎角雞 [165] 攀。年久頹圮。無敢經始者矣。有一人于玆。德月道聞也。奮智血誠。荷
0012_0007a_a_03L軸求施。未了而逝。亡靈有感。▣以仁完 [166] ㆍ富益ㆍ玄悟三人等。追其已辦之事。同
0012_0007a_a_04L心䟝踵。始役於丙辰亥月。告訖于丁已 [167] 大扗 [168] 之月。計其財力。物非天降。工不
0012_0007a_a_05L役鬼。象王獻壽。獅子奮身。三人同力。訖此大役。旣有其述。豈無芳錄。略擧顚
0012_0007a_a_06L末。以爲不墜之寺業焉。
0012_0007a_a_07L崇禎記 [169] 元後四丁已 [170] 鶉尾月日。麻谷寺維那鏡月快守謹記。
0012_0007a_a_08L判府使大監金公道喜。
0012_0007a_a_09L施主秩
山人施主秩
本寺秩
0012_0007a_a_10L大施主京居尙宮禹氏丁已 [171] 生。 比丘戒歡。
0012_0007a_a_11L瑞山郡守尹氏滋承。 比丘性策。 比丘哲學。
0012_0007a_a_12L唐津縣監洪氏玆周。 麻谷寺。 比丘信幸。
0012_0007a_a_13L金▣喜。 瑞最誠宗。 比丘瑞日。
0012_0007a_a_14L金龍載。 印月智幸。 比丘智銀。
0012_0007a_a_15L金商鳳。 比丘尼元悅。 比丘載淳。
0012_0007a_a_16L金商鉉。 修幸。 比丘智學。
0012_0007a_a_17L金商龍。 比丘永仁。 比丘▼(忄+土)訓。
0012_0007a_a_18L鐘 [172] 。 京新興。 比丘知性。
0012_0007a_a_19L秉魯。 慧庵性慧。 比丘長欣。
0012_0007a_a_20L張明孫。 印虛快明。 比丘道云。
0012_0007a_a_21L南光孫。 碧潭道文。 乾命趙同。
0012_0007a_a_22L幼學徐相敦。性潭明起。具七星。
-
0012_0007b_a_01L환선幻船 도안到岸. 대장암大藏庵. 비구 순정順貞. 비구니比丘尼 정신正信. 본사本寺. 비구 계환戒歡. 추산秋山 부익富益. 상월祥月 인정仁定. 성담性潭 현오玄悟. 비구 영진永眞. 서울 봉은사京奉恩寺. 송암松巖 대원大園. 제성霽成 보성寶成. 서울 내원암內院庵. 용암龍巖 전우典愚. 영암永庵 금경錦絅. 견성암見聖庵. 정월淨月 묘언妙彦. 박두겁朴斗刧. 처사處士 법념念.
화주질化主秩
덕월德月 도한道閒155). 추산秋山 부익富益. 상월祥月 인정仁定. 성담性潭 현오玄悟. 비구 순정順貞.
별좌別座156)
비구 영진永眞.
공양주供養主
비구 지은智銀.
지전持殿157)
추산秋山 부익富益.
삼강三綱158)
주지住持 철학哲學. 삼보三寶 승오勝悟. 지동持同 보명普明.
편수질片手秩
김이선金利善. 권權. -
0012_0007b_a_01L幻船到岸。 朴斗刧。
0012_0007b_a_02L大藏庵。 處士法念。
0012_0007b_a_03L比丘順貞。 化主秩
0012_0007b_a_04L比丘尼正信。 德月道閒。
0012_0007b_a_05L本寺。 秋山富益。
0012_0007b_a_06L比丘戒歡。 祥月仁定。
0012_0007b_a_07L秋山富益。 性潭玄悟。
0012_0007b_a_08L祥月仁定。 比丘順貞。
0012_0007b_a_09L性潭玄悟。 別座
0012_0007b_a_10L比丘永眞。 比丘永眞
0012_0007b_a_11L京奉恩寺。 供養主
0012_0007b_a_12L松巖大園。 比丘智銀。
0012_0007b_a_13L霽成寶成。 持殿
0012_0007b_a_14L京內院庵。 秋山富益。
0012_0007b_a_15L龍巖典愚。 三綱
0012_0007b_a_16L永庵錦絅。 住持哲學。
0012_0007b_a_17L見聖庵。 三寶勝悟。
0012_0007b_a_18L淨月妙彦。 持同普明。
0012_0007b_a_19L片手秩
0012_0007b_a_20L金利善。
0012_0007b_a_21L權。
-
0012_0008a_a_01L방方. 김관첨金寬僉.
3-2. 개심사 각전各殿 존상尊像 개금改金 개채改彩 공덕기功德記무릇 기記라는 것은 일을 기록하는 것이니, 사적事蹟을 기록함으로써 후대 사람의 이목에 전하여 빛나게 하고 후대 사람의 마음을 면려하는 것을 말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지인至人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큰 공은 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이름이라는 것은 실상에 대해서 객客이니, 이 때문에 지인은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상을 귀하게 여기고 객을 천하게 여기는 것인가, 실상을 천하게 여기고 객을 귀하게 여기는 것인가? 큰 공이 공을 드러내지 않는 것 역시 또한 이와 같다. 전傳에 이르기를,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과 형상이 없으나 고금을 관통하며, 하나의 먼지 속에 있으나 동서남북과 상하를 모두 에워싸고 있다. 천天ㆍ지地ㆍ인人 삼재三才의 주인이 되고 만법萬法의 왕이 된다”159)라고 하였는데, 이를 풀이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의 물건이라는 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을 그릴 수도 없으니, 절대絶待 대멸對滅의 영향을 억지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실상을 천하게 여기고 객을 귀하게 여기겠으며, 어찌 실상을 귀하게 여기고 객을 천하게 여기겠는가. 더구나 어찌 실상을 귀하게 여기고 객을 천하게 여기겠으며 더구나 어찌 실상을 천하게 여기고 객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하물며 사적을 기록하여 그치지 않고 도를 전함에랴.오직 우리 본사本寺에 있는 각 전각의 여래상如來像, 보살상菩薩像, 존자상尊者像, 대왕상大王像, 소왕상小王像 및 시위하는 판관判官과 호종하는 여러 반열의 상像 등 모든 분들은 자애로운 용모가 매우 뛰어나고 위엄 있는 모습이 당당하여, 성대하게 베풀어진 도량道場과 장려한 가람伽藍이 호서湖西 지방에서 거의 으뜸이었다. 그러나 성했다가 쇠하고 가득 찼다가 비게 되는 것은 이치가 원래 그런 것이다. 사계절이 바뀌고 해와 달이 교대로 뜨고 지니 지난날 상호相好의 자애로운 얼굴은 도리어 슬픈 모습을 머금고 장엄했던 존상尊像은 자못 위의를 잃었으니, 우러러보고 찬양하는 예불을 올릴 때면 모두들 한탄한 지가 오래 되었다. 마침 비구比丘 부효傅孝 활공活公160)이 이에 큰마음을 발하여, 작은 장부책帳簿冊을 소매에 넣고 큰 소리로 외쳐 사부중四部衆에게 널리 청하기를, “보시를 널리 베풀라.”라고 하였다. 이에 보고 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따라 기뻐하며 찬탄을 하고 아끼고 아끼던 곳간을 열어 무주無住161)의 보시를 행하였다.마침내 약간의 재물을 모아 당해년 5월 7일에 공사를 시작하고 10일 기해己亥에 글을 쓰니, 자금紫金의 빛이 모여서 천상계에 밝게 비치고 용과 봉황의 무늬가 찬란하여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할 만하였다. 구름처럼 보인 승려들이 모두 말하기를, “아름답고 성대하도다, 화주 스님의 원력願力이여.”라고 하니, 화주가 말하기를, “단나檀那162)의 어질고 은혜로움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에 단나가 말하기를, “종문宗門의 큰 운수 덕택이다.”라고 하였는데, 종문의 큰 운수는 말로 형상을 나타내는 법이 없어 아득하고 그윽한 중에 다시 화주에게 공을 돌렸다. 화주는 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이름과 실상의 이치를 충분히 말하고 기문으로 전하는 것을 깊이 거절하였으나, 대중들이 간곡하게 청하기 때문에 이에 기문을 쓴다.신녀信女 대원각大圓覺 역시 따라서 권화勸化163)한 사람이라고 하며, 연화緣化는 비구니 정근淨根이다. -
0012_0008a_a_01L方。
0012_0008a_a_02L金寬僉。
0012_0008a_a_03L
0012_0008a_a_04L開心寺各殿尊像改金改彩功德記
0012_0008a_a_05L夫記者。記事。以記事蹟。傳耀後之人之耳目。勉勵後之人之心腑之謂也。古
0012_0008a_a_06L人曰。至人不名。大功不功。何以爲不名。名者實之賚 [173] 。是故至人不名。然則貴
0012_0008a_a_07L實而賤賓歟。賤實而貴賓歟。大功之不功。亦復如是。傳曰。有一物於此。絕名
0012_0008a_a_08L相ㆍ貫古今。處一塵ㆍ周 [174] 六合。主主 [175] 乎三才。王於萬法。解之者曰。一物者。名不得ㆍ
0012_0008a_a_09L狀得 [176] 。絕待對滅影響。强稱之云云。然則焉庸賤實貴賓乎。焉庸貴實踐賓乎。
0012_0008a_a_10L猶尙焉庸貴實賤賓乎。猶尙焉庸賤實貴賓乎。則何況以記事蹟。傳道不歇
0012_0008a_a_11L耶。惟我本寺各殿。如來像ㆍ菩薩像ㆍ尊者像ㆍ大王像ㆍ小王像。及侍衛判官與護
0012_0008a_a_12L漎 [177] 諸班像。凡幾位慈容甚偉。威相堂堂。道場之盛設。伽藍之壯麗。殆甲湖右。
0012_0008a_a_13L然而盛衰盈虛。理之常者也。四序代謝。二鼠佚役。向之相好之慈顏。還含悲
0012_0008a_a_14L態。莊嚴之尊像。頗闕威儀。其於瞻仰讃禮。咸發恣歎者久矣。適苾芻傅孝活
0012_0008a_a_15L公。爱發大心。袖短軸張大口。普請于四衆曰。廣修檀波羅密。於是見者聞者。
0012_0008a_a_16L隨喜讃歎。開慳悋庫。行無住施。遂聚若干財。當年仲夏七日董工。粤十日己
0012_0008a_a_17L亥點筆。紫金光聚。照耀於天界。龍文鳳彩。怳可乎人目。雲集淨侶僉曰。倚 [178] 歟
0012_0008a_a_18L盛哉。化主師之願力也。化主曰。非檀那之仁惠。莫能就也。檀那曰。宗門之洪
0012_0008a_a_19L運也。宗門之洪運。無有言說相。而冥冥之中。復歸於化主。化主不功者也。飽
0012_0008a_a_20L語名實之理。而深拒記傳之。爲衆請固膠。於是乎記。
0012_0008a_a_21L信女大圓覺。亦隨勸化者云爾。 緣化比丘尼淨根。
-
0012_0008b_a_01L정유년(1897, 고종34) 5월 16일, 사신司晨 식자息慈 삼가 적다.
시주질施主秩
판서공判書公 이재완李載完. 행行 군수郡守 임철재任喆宰. 진사進士 이재익李載翊. 전前 도정都正 윤선좌尹善佐. 유학幼學 박朴. 유학幼學 최재형崔在馨. 해미군수海美郡守 이일李鎰. 판윤判尹 조趙.
연화질緣化秩
증명證明 일허一虛 환묵環默. 용담龍潭 성원性圓.
송주誦呪 영함永咸. 태민泰敏. 영의永宜. 성옥性玉.
지전持殿 지순之淳. 정하定荷.
금어金魚 금호錦湖 약효若效. 송은松隱 해징海澄. 목우牧雨. 정련定鍊. 사눌似訥. 동엽桐葉. 계윤戒允. 만총萬聰. 행인幸仁. 결영抉永. 영선榮善.
공사供司 일준一準.
다각茶角 순선順先. 순용順用. 경념敬念.
별공別供 혜성慧性.
종두鍾頭 경수敬守.
별좌別座 정성定性.
도감都監 영성影城 지은智銀.
화주化主 부효傅孝 의활儀活.
정통淨桶 조정일趙定一.
화대火臺 엄수달嚴水達.
본사질本寺秩
노덕老德 용악龍岳 응전應典.
주지住持 영성影城 지은智銀.
비구比丘 보암寶庵 유문有文. 성윤性潤. 관정寬淨. 상오尙悟. 성호性浩. 선학先學. 영조永照. 수인守仁.
사미沙彌 보혁普赫. 성담性潭.
삼강三綱 지사持事 봉안奉安.
삼강三綱 성완性完.
서기書記 혜성慧性.
-
0012_0008b_a_01L赤鷄仲夏旣望。司晨息慈 謹識。
0012_0008b_a_02L施主秩
緣化秩
本寺秩
0012_0008b_a_03L判書公李載完。 證明 一虛環默。 老德 龍岳應典。
住持 影城智銀。
0012_0008b_a_04L行郡守任喆宰。 龍潭性圓。
比丘 寶庵有文。性潤。
0012_0008b_a_05L進士 李載翊。 誦呪 永咸。泰敏。 寬淨。尙悟。
0012_0008b_a_06L前都正 尹善佐。 永宜。性玉。
性浩。先學。
0012_0008b_a_07L幻 [179] 學 朴。 持殿 之淳。定荷。
永照。守仁。
0012_0008b_a_08L幼學 崔在馨。 金魚 錦湖 若效。松隱 海澄。 沙彌 普赫。性潭。
0012_0008b_a_09L海美郡守李鎰。 牧雨。定鍊。 三綱 持事奉安。
0012_0008b_a_10L判尹 趙。似訥。桐葉。 三綱性完。
書記慧性。
0012_0008b_a_11L戒允。萬聦。
0012_0008b_a_12L幸仁。抉永。
0012_0008b_a_13L榮善。
供司 一準。
0012_0008b_a_14L茶角 順先。 順用。
0012_0008b_a_15L敬念。
別供 慧性。
0012_0008b_a_16L鍾頭 敬守。
別座 定性。
0012_0008b_a_17L都監 影城智銀。
化主 傅孝儀活。
0012_0008b_a_18L淨桶 趙定一。
火臺 嚴水達。
-
0012_0009a_a_01L3-3. 주금고기鑄金鼓記 윤이웅尹已雄ㆍ박임진朴壬辰, 송재흥宋再興(개심사)우리 개원사開元寺164) 법궁法宮은 본디 금고金鼓를 매달아 놓은 것이 없어서 늘 뜻을 가진 사람들이 아쉬워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부처가 도와주어 지금 이 스님 세 사람이 정성을 다해 보시普施하여 재물을 모아 금고를 주조하여 완성하고 후세에 전하게 되었으니, 대중들의 힘이 널리 보시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화주化主의 지극한 정성에도 힘입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공을 궁구해 보면 우리 부처의 힘이 아닌 것이 없다.우렁찬 그 울림은 천 리에 들리고 깊은 그 음사音事는 일시一時에 빛나니 보고 듣는 사람들이 흠앙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불법佛法 운세의 성쇠와도 연관이 있다. 참으로 사람의 힘이 이것을 이룬 것이 아니고, 더욱 석가가 돌보아 준 것이니 그 공덕이 어찌 훌륭하고 성대하지 않겠는가. 화주가 스스로의 공으로 여기지 않고 석가에게 공을 돌리니, 거의 천지와 함께 무궁하고 고금에 걸쳐 다하지 않을 것이다.숭정 기원후 두 번째 무인년(1758, 영조34) 4월 일 쓰다.
유학幼學 한완석韓完石. 김씨金氏 소금小今. 통정대부通政大夫 유▼금劉▼(十/邑)金. 유석담劉石淡. 유석주劉石柱. 유석숭劉石崇. 숙부인淑夫人 전씨田氏. 유씨劉氏 백례百禮. 박종관朴宗寬. 박춘방朴春芳. 한씨韓氏 수례守禮. 송문규宋文奎. 장수봉張壽鳳. 김광태金光兌. 김응오金應五. 장세량張世良. 이성태李成太. 서한광徐漢光. 통정대부 최순만崔順萬. 송차휘宋次揮. 송덕민宋德敏. 통정대부 홍두징洪斗徵. 가선대부嘉善大夫 김봉천金奉天 연화緣化. 통정대부 장춘달張春達 화주化主. 가선대부 이순李淳. 태김▣뢰 兌金▣雷. 조고동趙古東. 김세익金世益. 심익해沈益海. 김씨金氏 신양申陽. 김정계희金正戒熙.
산중노덕山中老德 ▣준▣俊. 처연處演.
비구比丘 지심持心 태총泰摠. 찬숙賛淑 치연致衍. ▣균▣均 홍변弘卞.
산인山人 해은海訔.
비구比丘 형총泂摠. 제밀齊密. 간숙侃叔.
산인 심열心悅.
-
0012_0009a_a_01L鑄金鼓記 尹已雄ㆍ朴壬辰 宋再興(開心寺)
0012_0009a_a_02L惟我開元寺法宮。素無金鼓之懸。每爲有志者久矣。幸賴佛氏之垂祐。今
0012_0009a_a_03L此衲子三人。以誠心普施。鳩聚財力。鑄成金鼓。流布後世。不惟衆力之廣施。
0012_0009a_a_04L亦賴化主之至誠。而究其本源之功。則莫非我 仸/佛氏之力也。鏘鏘其鳴聲。
0012_0009a_a_05L聞于千里。淵淵其音事。光於一時。非特贍聆 [180] 之欽仰。亦關法運之盛衰。則固
0012_0009a_a_06L非人力致此。益以釋氏眷祐。其爲功德。豈不偉故盛哉。化主不自爲。歸功
0012_0009a_a_07L於 釋氏。庶幾乎忝天地而無窮。亘古今而不盡也。
0012_0009a_a_08L崇禎紀元後再戊寅四月日書。
0012_0009a_a_09L幼學韓完石 張壽鳳 嘉善李 淳
0012_0009a_a_10L金氏 小今 金光兌 兌金▣雷
0012_0009a_a_11L 通政劉▼(十/邑)金 金應五 趙古東
0012_0009a_a_12L 劉石淡 張世良 金世益
0012_0009a_a_13L 劉石柱 李成太 沈益海
0012_0009a_a_14L 劉石崇 徐漢光 金氏 申陽
0012_0009a_a_15L 淑夫人田氏 通政崔順萬 金正戒熙
0012_0009a_a_16L 劉氏百禮 宋次揮 山中老德 ▣俊
處演
0012_0009a_a_17L 朴宗寬 宋德敏 比丘 持心 泰摠
賛淑 致衍
0012_0009a_a_18L 朴春芳 通政洪斗徵 ▣均 弘卞
山人 海訔
0012_0009a_a_19L 韓氏 守禮 嘉善金奉天緣化 比丘 泂摠
齊密
侃叔
0012_0009a_a_20L 宋文奎 通政張春達化主 山人 心悅
-
0012_0009b_a_01L김대로미金大老味. 한덕효韓德孝. 유취경柳就慶. 한의홍韓義弘. 김발대金癶大. 장윤명張允明. 조세운趙世云 최의화崔仅和. 절충장군折衝將軍 박시만朴時萬. 박순명朴順明. 황세룡黃世龍. 가선대부 신상원申相元. 가선대부 신광뢰申光雷. 신일동申一東. 송자영宋自永.
별좌別座 산인山人 취문就門. 후총後摠.
지전持殿 총숙摠淑.
편수片手 이달李達.
삼강三綱 시주지時住持 대진大眞.
삼보三補 통열通悅.
지사持事 각현各賢.
조연助緣 우점宇霑.
김씨金氏 수정守正.
비구 돌탄突坦.
현금시공懸金施工 이개남李介男.
3-4. 장명등계서長明燈稧序(개심사)절에 등계燈契가 있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똑똑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즐거이 정성된 마음으로 보시를 하는 것은 대개 복전福田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재물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탑과 사당을 짓고 사신捨身165)하며 승려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 또한 이러한 뜻이다. 그러나 복은 어두운 곳에서 구할 수는 없고, 다만 스스로 그 덕을 밝히는 데에 달려 있으니, 등燈은 바로 밝지 않은 자질資質을 밝히는 것이다.경자년(1900, 고종37) 겨울에 나는 뜻을 같이 하는 대여섯 명과 함께 상왕산象王山 개원사開元寺166)에서 독서를 하였는데, 절의 승려들과 함께 섣달의 안거安居를 하고 각자 글을 익히느라 등잔불을 밝히고 밤을 새웠다. 이에 궁벽한 산, 깊은 협곡에 글 읽는 소리가 나고 비 오는 밤이나 눈 오는 새벽이나 맑은 등불 빛이 환하게 비치니 정경과 정신이 흡족하여 매우 즐거웠다. 한 해가 저물어 돌아갈 때에 짧은 인연의 자취를 증명하려고 하였는데, 다만 공문空門에 누만 끼칠 것이기 때문에 이에 여비 50민緡을 모으고 또 가까운 사社의 여러 벗들이 한 배를 더 보시하여 모두 100민을 본사本寺에 맡겼으며, 여기에 이자를 취하여 부처에게 공양하는 여광餘光을 도왔다. 이 등은 바로 우리 행일幸日의 한 점 스승이고 어두운 거리의 촛불이다.무릇 같은 계원들이 절에 머물러 살건 절을 떠나건, 이 등이 꺼지건 꺼지지 않건, 우리가 스스로 밝을 것임은 참으로 스스로 알고 있으니 어찌 이른바 장명長明이 아니겠는가. 복전福田에 관한 설은 여기서 언급할 겨를이 없으나 복을 구하는 근원은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니, 선을 행하면 복이 내려오는 것은 어찌 밝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서문을 지은 다음 그 계원들을 열거하고, 또 이것을 기록하여 온 세상의 여러 시주들을 권장하는 바이다.대한大韓 광무光武 4년(1900) 12월 일. -
0012_0009b_a_01L 金大老味 折衝朴時萬 別座 山人 就門
後摠
0012_0009b_a_02L 韓德孝 朴順明 持殿 摠淑
片手 李達
0012_0009b_a_03L 柳就慶 黃世龍 三綱 時住持大眞
三補 通悅
0012_0009b_a_04L 韓義弘 嘉善申相元 持事各賢
助緣宇霑
0012_0009b_a_05L 金癶大 嘉善申光雷 金氏守正
0012_0009b_a_06L 張允明 申一東 比丘突坦
0012_0009b_a_07L 趙世云 崔仅和 宋自永 懸金施工李介男
0012_0009b_a_08L
0012_0009b_a_09L長明燈稧序(開心寺)
0012_0009b_a_10L
0012_0009b_a_11L寺之有燈稧。舊矣。無賢愚貴賤。樂爲誠心。檀越者。槩爲福田地。以至不惜巨
0012_0009b_a_12L貲。建塔造潮。捨身飯僧。亦此意也。然福不可求於冥冥。只在自明其德。燈者。
0012_0009b_a_13L乃所以明其不明之資也。庚子冬。余與五六同志。讀書於象王山之開元寺。
0012_0009b_a_14L與寺僧。同爲結臈。各課其文。焚膏繼晷。窮山幽峽。咿唔之聲。相聞。雨宵雪曉。
0012_0009b_a_15L淸炎之熒。通照。境與神愜。甚可樂也。及歲盡而歸。欲證桑宿之跡。而適足爲
0012_0009b_a_16L果於空門。故於是集旅貲五十緍。又有近社諸友。樂施一倍。摠百緍。付本寺。
0012_0009b_a_17L而取息以助供佛之餘光。此燈。乃吾幸日所以爲一點師也。昏衢燭也。凡同
0012_0009b_a_18L契之寓寺去寺。與夫此燈之滅不滅。吾之所以自明者。固自。如豈非所謂長
0012_0009b_a_19L明耶。其謂福田之說。則未暇及此。而求福之源。亦不外此。作善降福。寧不昭
0012_0009b_a_20L然哉。旣爲序。列其人。又記此。以勸普天下之諸檀越云。
0012_0009b_a_21L大韓光武四年子十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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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0a _a_01L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 오용묵吳容默은 서문을 쓰다.
진사進士 김용준金容準.
유학幼學 이효순李孝淳, 김하원金夏元, 김각수金珏洙, 김현제金贒濟, 김승제金昇濟, 이흥규李興珪, 김우제金祐濟.
시어侍御 이항구李桓求.
유학 김태원金泰元, 김동민金東敏, 맹규섭孟奎燮, 이동춘李東春, 김이원金履元, 김황중金黄中, 이한규李漢珪, 김종환金宗煥, 이근구李根求, 이중린李仲麟.
4. 고산사高山寺4-1. 수계기修稧記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이 절은 이미 오래되어 연대를 고증할 수 없는데, 스님들은 가난하지만 다행히 물병과 발우鉢盂를 전해 받으며 맥을 이었다. 기둥과 서까래는 우뚝하고 단청은 바래지 않아 바람과 안개 속에 빛나고 해와 달이 바뀌어도 백호白毫는 그대로 비추어 세상에 빛을 발한다. 삼가 생각건대 여러 사람들이 사물을 보고 그 옛날을 회고하며 재물을 내어 정성을 다하였는데 만날 기약이 없었다. 여러 현자들과 젊은이며 어른들이 모두 모인 것을 보았는데, 이는 계稧를 치르는 일이었으니 옛 사람들이 굿을 하여 재앙을 물리친 일을 흉내 낸 것이다.돌아보건대 평소에 산수山水와 풍월風月이 뛰어난 지역을 차지하고서, 마침내 시주詩酒를 즐기는 사람이나 갖옷 입고 의대衣帶를 두른 사람의 유람지가 되었는데, 저절로 서까래며 기와가 많이 무너지고 비가 새서 바라보면 한탄이 일어났다. 세월이 점점 많이 흘러가고 멀리서 사랑해도 도울 수가 없었으니, 차마 선대의 뛰어난 스님들이 생활하던 옛터를 어찌 지금 사람으로 하여금 -
0012_0010a _a_01L寓人吳容默序。
0012_0010a _a_02L進士 金容準 李東春
0012_0010a _a_03L幼學 李孝淳 金履元
0012_0010a _a_04L金夏元 金黄中
0012_0010a _a_05L金珏洙 李漢珪
0012_0010a _a_06L金賢濟 金宗煥
0012_0010a _a_07L金昇濟 李根求
0012_0010a _a_08L李興珪 李仲麟
0012_0010a _a_09L金祐濟
0012_0010a _a_10L侍御 李桓求
0012_0010a _a_11L幼學 金泰元
0012_0010a _a_12L金東敏
0012_0010a _a_13L孟奎變
0012_0010a _a_14L
0012_0010a _a_15L高山寺修稧記
0012_0010a _a_16L
0012_0010a _a_17L如是我聞。盖此寺己 [181] 古。年代不可考訂。有僧頗貧。瓶鉢幸得傳受。棟桷巍元 [182] 。
0012_0010a _a_18L丹臒不渝。輝於風烟。日月輪環。白毫猶射光於世界。欽惟 僉尊。覽物懷古。
0012_0010a _a_19L出財殫誠。無會期哉。見群賢少長咸集。修稧事也。慕昔人祓稧不祥。顧玆素
0012_0010a _a_20L擅山水風月形勝之區。遂爲詩酒裘帶遊覽之所。自多椽瓦頹漏。瞻之興吁
0012_0010a _a_21L唵。經歲月滋。遙愛而莫助。忍使先釋卓釋之舊墟。胡令今人。翹
0012_0010a _a_22L高山寺―忠南大德郡山內面內城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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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0b_a_01L머리를 쳐들고 부질없이 한탄하게 하겠는가. 이 때문에 우리 동지 한두 사람에게 자문하여 이 큰일을 경영하고 주선하여 약간의 자금을 출연하니, 머릿수대로 헤아려 남김없이 거두어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원만히 계를 결성하였으니, 물의 북쪽과 산의 남쪽에 사는 곳을 정하고 이와 같이 해 나가면 한가히 노닐기에 저절로 넉넉하게 될 것을 얼마 되지 않아 보게 될 것이다. 어찌 재목을 모으는데 힘이 없다고 걱정할 것인가. 장차 장인들에게 토목 공사를 명하여 새롭게 중수하는 일을 마치게 되면 틀림없이 건물의 모습이 날아갈 듯 찬란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니, 이는 이른바 “뜻이 있는 사람은 마침내 일을 이룬다.”167)는 것이다. 누가 감히 그 사람 때문에 그 말까지 무시한다168)고 말하겠는가. 마침내 게偈를 지어 이르기를,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자대비大慈大悲, 보승여래寶勝如來169)에게 귀의합니다.”라고 하다.무술년(1898, 고종35) 정월 하순에 정인형鄭寅亨은 적다.
본군수本郡守 조철하趙哲夏
계장稧長 가선대부嘉善大夫 송종선宋鍾璇
공사원公事員 통정대부通政大夫 김봉이金鳳頤
서기書記 정인형鄭寅享
별유사別有司 임정운林正雲
간찰유사看察有司 이흥득李興得
동임유사同任有司 오상철吳相喆
한개돌韓介乭, 박완성朴完成, 김명현金命鉉, 송인달宋仁達, 김용하金用河, 김홍현金弘鉉, 신재현申在玄, 최정원崔正元, 김봉춘金鳳春, 임흥철林興喆, 임완손林完孫, 김상혁金相赫, 이승하李承夏, 박기환朴琦煥, 임태섭任太變, 정재호鄭在浩, 삼기열森基說, 임윤철林允哲, 임춘득林春得, 정영철鄭令哲, 오현우吳玄祐, 임경섭任瓊燮, 박민환朴民煥, 고현주高玄柱, 이도근李道根, 송규용宋癸用, 하원석河元錫, 서복용徐福用, 박귀만朴貴萬, 오경순吳景淳, 이성룡李成龍, 김황용金黄用, 강봉문姜鳳文, 김칠용金七用, 박덕윤朴德允, 강씨姜氏.
주승主僧 도운당道雲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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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0b_a_01L首而空歎。是以諮我同志一二。營此大事周旋。各出寸金之資。無異於豆 [183] 而
0012_0010b_a_02L會箕而歛 [184] 。圓成盍簪之契。相居則水之北山南。如此做去。自剩燕遊而有餘。
0012_0010b_a_03L未幾見之。何患 鳩材之無力。將命斧鉅 [185] 繩尺。告訖重新之繇工。必使棟宇
0012_0010b_a_04L欄檻。庶見斯飛之章革。是所謂有志者事竟成。孰敢云以其人言其廢。遂詛
0012_0010b_a_05L以偈曰。阿彌陀佛大慈大悲南無寶勝如來。
0012_0010b_a_06L歲在著雍閹茂元月之下澣。鄭寅亨記。
0012_0010b_a_07L本郡守 趙哲夏 金鳳春 高玄柱
0012_0010b_a_08L稧長嘉善大夫 宋鍾璇 林興喆 李道根
0012_0010b_a_09L公事員通政大夫金鳳頤 林完孫 宋癸用
0012_0010b_a_10L書記 鄭寅享 金相赫 河元錫
0012_0010b_a_11L別有司 林正雲 李承夏 徐福用
0012_0010b_a_12L看察有司 李興得 朴琦煥 朴貴萬
0012_0010b_a_13L同任有司 吳相喆 任太變 吳景淳
0012_0010b_a_14L韓介乭 鄭在浩 李成龍
0012_0010b_a_15L朴完成 森基說 金黄用
0012_0010b_a_16L金命鉉 林允哲 姜鳳文
0012_0010b_a_17L宋仁達 林春得 金七用
0012_0010b_a_18L金用河 鄭令哲 朴德允
0012_0010b_a_19L金弘鉉 吳玄祐 姜氏
0012_0010b_a_20L申在玄 任瓊燮 主僧道雲堂
0012_0010b_a_21L崔正元 朴民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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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1a_a_01L4-2. 고산사高山寺 현판懸板 홍성군洪城郡 결성면結城面 무량리無量里무릇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빈부와 귀천, 수요壽夭와 고락苦樂이 모두 인과因果에서 연유한다. 옛날에 지은 것을 지금 받고, 지금 지은 것을 내세에 받고, 전날 부른 것이 훗날 호응한다. 이것을 일러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소리가 메아리에 호응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 달아나 숨을 수가 없다. 미래의 결과 또한 어찌 다르겠는가. 이 때문에 상인上人 학잠學岑이 감개함을 이기지 못하여 신해년(1671, 현종12) 여름에 법당을 중수하였는데 여러 날이 걸리지 않아 완성하였다. 여기에 훌륭한 신도인 가선대부嘉善大夫 송중남宋仲男이 가진 재물을 다 털어서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아 마치게 되었고, 또한 좋은 논을 바쳐 부처의 양식에 쓰게 하니, 이는 만세토록 끝이 없을 복이다. 함께 비신심悲新心170)을 발하여 같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인연을 심었다. 나羅 시대171)에 3중창을 하였고 대시주大施主 안安 판관判官이 4중창을 하였으니 성화成化 21년 을사(1485, 성종16), 화주化主는 ▼행▼(矢+肙)行이다.
숭정崇禎 9년 무진172) 3월 12일 5중창 공양 대시주 설옥雪玉.
강희康熙 11년 임자(1672) 6월 15일 6중창 화사化士173) 학잠學岑.
공양 보시 대시주大施主 가선대부 송중남宋仲男, 보시 공양 대시주 홍범금洪泛金.
공양주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수희金壽希.
보시 시주 개윤凱伊.
재목材木 시주 김끗산金㖝山.
보시 시주 송막동宋莫同.
공양 시주 김대래金大來.
수장修莊 시주 방국기方國己.
공양 시주 방무익方武益.
보시 시주 한한련韓汗連.
본사질本寺秩 해담海淡.
도지주都持住 유신裕信, 보희寶希.
지사持事 일균日均, 덕해德海.
대사大師 의훈義勳, 종언宗彦, 언규彦圭, 계학戒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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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1a_a_01L高山寺 懸板 洪城郡結城面無量里
0012_0011a_a_02L
0012_0011a_a_03L夫人之斯世也。貧富貴賤。修短苦樂。皆由因果。昔作而今受。作 [186] 而來受。前
0012_0011a_a_04L召而後應。是謂如影之隨形。如群 [187] 之應嚮。不能逃其隱矣。未來之果。何以異
0012_0011a_a_05L乎。由是上人學岑。不勝感慨。辛亥之夏。法堂重修。不曰 [188] 而成。大壇信嘉善大
0012_0011a_a_06L夫宋仲男。盡傾囊財。不數月而告厥。抑亦良畓許納。使之佛粮。此爲萬歲無
0012_0011a_a_07L疆之福矣。共發悲新心。同種不朽之緣。羅之時三重創。大施主安判官四創。
0012_0011a_a_08L則成化二十一年乙巳。化主▼(矢+肙)行。
0012_0011a_a_09L崇禎九年戊辰三月十二日五重創供養大施主雪玉。
0012_0011a_a_10L康熙十一年壬子六月十五日六重創化士學岑。
0012_0011a_a_11L供養布施大施主嘉善大夫宋仲男。布施供養大施主洪泛金。
0012_0011a_a_12L供養主通政大夫金壽希。
0012_0011a_a_13L布施施主凱伊。
0012_0011a_a_14L材木施主金㖝山。
0012_0011a_a_15L布施施主宋莫同。
0012_0011a_a_16L供養施主金大來。
0012_0011a_a_17L修莊施主方國己。
0012_0011a_a_18L供養施主方武益。
0012_0011a_a_19L布施施主韓汗連。
0012_0011a_a_20L本寺秩 海淡。
0012_0011a_a_21L都持住 裕信。寶希。
0012_0011a_a_22L持事 日均。德海。
0012_0011a_a_23L大師 義勳。宗彦。彦圭。戒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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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1b_a_01L5. 관촉사灌燭寺 사적명事蹟銘옛날을 상고하건대, 고려 광종光宗 19년(968) 기사己巳174)에 사제촌沙梯村의 여인이 반약산盤藥山 서북쪽 모퉁이에서 고사리를 캐는데 홀연히 동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나아가 보니 커다란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 나왔다. 마음속으로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집에 돌아와 그 사위에게 말하니 사위가 곧바로 본 고을 현縣에 고하고, 관아에서는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백관에게 명하여 회의를 하게 하니 아뢰기를, “이는 틀림없이 불상을 만들라는 조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상의원尙醫院에 명하여 팔도에 사신을 보내 불상을 만드는 장인을 널리 구하게 하였으니 승려 혜명慧明이 추천에 응하였다. 조정에서는 장인 백여 명을 선발하여 경오년(970, 광종21)에 일을 시작하여 병오년(1006, 목종9)에 일을 끝마치니 모두 37년이 걸렸다.불상이 완공되고 나서 도량道場에 안치하려고 하여 1000여 명이 힘을 합쳐 운반하는데 앞머리 부분이 연산連山175) 땅 남쪽 마을 이십여 리에 도착하자 그로 인해 마을의 이름을 우두牛頭라고 하였다. 혜명은 비록 불상을 완성하였으나 세우지를 못하여 막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사제촌에 도착하자 두 명의 동자가 진흙으로 세 토막으로 된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그들은 평지에 먼저 그 밑동을 세우고 모래흙을 쌓은 뒤 다음 차례로 그 가운데 토막을 세우고 또 이와 같이 하여 마침내 그 윗동도 세우는 것이었다. 혜명은 주의 깊게 보고 크게 깨달아서, 기뻐하며 돌아와 모두 그들이 한 규범과 같이 하여 이에 그 불상을 세웠다. 아마도 동자는 바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화신化身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불상의 신장은 55척 5촌, 둘레는 30척, 귀의 길이는 9척, 눈썹 사이는 6척, 입의 양쪽 길이는 3척 5촌, 화광火光은 5척, 관의 높이는 8척, 큰 덮개는 넓이가 11척, 작은 덮개는 6척 5촌, 작은 금불은 3척 5촌, 연화蓮花의 가지는 11척인데 혹은 황금을 칠하고 혹은 자금紫金176)으로 장식하였다. 이에 사방에 소문이 퍼지고 만백성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공경히 예불하는 사람이 마치 장터와도 같았으므로 그 앞에 흐르는 냇물을 이름 붙여 시진市津(시장 나루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우기를 마치자 하늘에서 비가 크게 쏟아져 불상을 씻어 주었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 21일째에 이르자 미간에 있는 옥호玉毫의 광채가 온 천지 안을 환하게 비추게 되었다.중국의 스님 지안智眼이 그 기운을 살펴보고 찾아와 예를 올리고 말하기를, “가주嘉州177)에 큰 불상이 있어 동쪽을 향해 서 있는데, 광명이 같은 때에 서로 응하였다.”라고 하여, 이에 관촉觀燭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이후로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때때로 불상에서 나와 곧바로 허공 밖으로 꿰뚫고 나가니 온 세상의 승속(僧俗)의 무리들이나 온 나라의 귀하고 천한 사람들이 공경하여 받들지 않은 자가 없었다.옛날 중국이 어지러워졌을 때 적병들이 압록강에 이르렀는데, 이 불상이 갈대 삿갓을 쓴 스님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자 적병들이 수심이 얕은 것으로 알고 물속에 마구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은 자가 절반이 넘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내려쳐서 그 삿갓을 잘랐는데, 불상이 머리에 이고 있는 관도 저절로 부서져 그 표식이 완연하니, 그 국가를 위하는 정성을 알 수 있다. 국가가 태평하면 몸 전체가 윤택하게 빛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서리는데, 흉한 난리가 일어나면 온몸에 땀을 흘리고 손에 들고 있는 꽃에 색이 없어지므로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축원하는 말을 하기를, “재앙을 없애고 나라가 태평하며 백성이 편안하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풍속이 정성을 다하여 높이 받들어 숭배하면 하늘이 드러나지 않게 도와주지 않음이 없어 모든 일을 기도드리면 각각 그 원하는 바를 따라 주니, 이 또한 보응報應하는 뚜렷한 효험인 것이다.옛 사적에 대한 기록이 -
0012_0011b_a_01L灌燭寺事蹟銘
0012_0011b_a_02L
0012_0011b_a_03L稽古高麗光宗之十九年己巳。沙梯村女採蕨于盤藥山西北隅。忽聞有童
0012_0011b_a_04L子聲。俄而進見。則有大石從地中聳出。心驚恠之。歸言其女婿。▣ [189] 即告于本
0012_0011b_a_05L縣。自官覈奏上達。命百官會議。啓曰。此必作梵相之兆也。令尙醫院。遣使八
0012_0011b_a_06L路。敷求掌工人成梵相者。僧慧明應擧。朝廷擢工匠百餘人。始事於庚午。訖
0012_0011b_a_07L功於丙午。凡三十七年也。尊像旣具。欲安道場。遂千餘人並力齊運。而先頭至
0012_0011b_a_08L連山地南村二十里。因名其村曰牛頭也。慧明雖成神相。而方以未立爲慮。
0012_0011b_a_09L適到沙梯。有一雙童子。戲造泥土爲三同佛像。即平地而先立其本。積沙土
0012_0011b_a_10L而次立其中。又如是而竟立其末。慧明熟視大悟。欣然還來。一如其規。乃立
0012_0011b_a_11L厥像。盖童子即文殊ㆍ普賢化爲指教云。佛像身長五十五尺五寸。圍三十尺。
0012_0011b_a_12L耳長九尺。眉間六尺。口角三尺五寸。火光五尺。冠高八尺。大盖方廣十一尺。
0012_0011b_a_13L小盖六尺五寸。小金佛三尺五寸。蓮花核 [190] 十一尺。或塗黃金。或飾紫金。於是
0012_0011b_a_14L乎四方風聞。萬姓雲集。敬禮者如市。故名其前流曰市津也。立畢。天雨大注。
0012_0011b_a_15L洗滌體像。瑞氣盤欎。至三七日。眉間玉毫之光。照曜乾坤內。中國僧智眼。望
0012_0011b_a_16L氣從來。而禮之曰。嘉州有大像。亦東向而立。光明同時相應云。名以觀燭也。
0012_0011b_a_17L自是之淩 [191] 。祥瑞之氣。時從梵相出。直透半空外。八表緇素之徒。一邦貴賤之
0012_0011b_a_18L輩。無不敬奉焉者。昔在唐亂。賊兵至鴨綠江。此像化爲蘆笠僧。蹇衣渡江。衆
0012_0011b_a_19L知其淺。驅入水中。溺死者過半矣。唐將以劍擊之。斷其笠子。而所戴盖冠。自爾
0012_0011b_a_20L破缺。其標宛然。可知其爲國之誠。國家太平。則滿身光潤。瑞氣盤空。凶亂。則
0012_0011b_a_21L遍體汗流。手花無色。朝廷遣官祝辭曰。敬設消災。國泰民安云云。自古風俗。
0012_0011b_a_22L盡誠尊崇。無不陰隲。禱其萬事。則各隨其願。此亦報應之明效也。古蹟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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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2a_a_01L많이 훼손되어 모두 알기는 어려우나 정문正門과 법당은 고려 우왕 12년(1386년, 명 홍무 19년 병인)에 처음으로 지어졌고, 조선 선조 14년(1581년, 명 만력 9년 신사)에 거사居士 백지白只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조선 현종 15년(1674년, 청 강희 13년 갑인)에 승려 지능智能이 개수하였고, 조선 영조 11년(1735년, 청 옹정 13년 을묘)에 승려 성능性能이 개수하였는데, 서담徐潭과 박신朴信 등이 철망을 세웠다고 한다.불상의 회칠은 승려 신총信摠이 하였고, 전에 성벽을 쌓을 때 흙과 돌을 섞었기 때문에 저절로 무너져서 지극히 밝아야 할 도량이 곧 더러운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이에 고을의 노인들이 파손되어 무너지는 폐단을 개탄하여 화주化主가 되어 조선 영조 16년(1740년, 청 건륭 5년 경신)에 돌 성벽을 고쳐 쌓고 아울러 상과 탁자도 역시 모두 새롭게 했다고 한다. 이에 명銘에 이른다.
長身屹屹方冠歲歲 커다란 몸 우뚝하고 네모난 관 드높으니
層三而連丈六之加 삼층으로 연결되고 장육을 넘어섰네
千佛之宗萬像之持 모든 부처의 종주요 만 가지 불상 중에 특출하니
靈效所著冥應靡忒 신령한 효험이 드러나고 속으로 감응하여 어긋나지 않네
有禱莫違無願不從 기도를 올리면 어김이 없고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음이 없으니
潜運化權默輸神工 남몰래 조화의 권한을 운용하여 묵묵히 신령스러운 힘을 다하네
日月明並天地德合 해와 달과 나란히 밝고 천지와 덕이 합하니
四方風聞萬姓雲集 사방에서 소식을 듣고 만백성이 구름처럼 모이네
傾財破產竭誠殫力 온 재산을 다 기울여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니
燈燭煇煌紙錢堆積 촛불은 휘황찬란하고 지전紙錢이 쌓인다네
惠我邦家恤我愚蒙 우리나라에 은혜를 베풀고 우리 어리석은 백성을 돌보아 주시니
傑然之姿卓稱之容 위대한 자태에 빼어난 모습이라
前古所無後今唯有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유일하리니
於休尊像與世同久 아, 아름답도다 존귀한 불상이여 세상과 함께 영원하리라
숭정 후 두 번째 계해년(1743, 영조19) 안동安東 권륜權倫은 쓰다.
불량계원佛粮契員
한충신韓忠信, 방이광方以光, 박태형朴泰亨, 김두발金斗發, 조의상曺懿相, 서유창徐有昌, 전억석全億碩, 김한억金漢億, 김검산金儉山, 오상균吳尙均, 전의영全義英, 오상관吳尙寬, 김태득金泰得, 윤귀민尹貴敏, 염처겸廉處謙, 서두칠徐斗七, 유춘기柳春起, 강위삼姜渭三, 유이룡柳以龍, 송세렴宋世謙, 김성신金聖臣, 한익신韓翼信, 이하영李夏榮, 정상기鄭尙紀, 공여의孔汝義, 김몽경金夢慶, 김덕신金德臣, 문응천文應天, 천재로千載老, 방성구方成矩, 서취달徐就達, 이진번李震蕃, 정후필鄭厚必, 이하무李夏茂, 출신出身 한세일韓世逸, 이득신李得新, 한태선韓泰善, 정시재鄭時載, 과부 한씨韓氏, 양용기梁龍起, 방한령方漢齡, 김해만金海滿, 성무작成無作, 김관성金寬聖, 양인공梁引公, 조만정曺萬鼎, 성탁주론집사城卓主論執事 절충장군 한충신韓忠信, 간역看役 조의상曺懿相, 인권引勸 조한상曺漢相, 박태형朴泰亨, 전억석全億碩, 중군中軍 조연상曺燕相, 한량閑良 방세구方世矩, 조응창曺應昌, 방성구方成矩, 승려 두성斗性, 승려 태일泰日, 화주化主 김석철金錫哲, 승려 혜겸慧兼, 대시주大施主 가선대부嘉善大夫 김두발金斗發, 김검산金儉山, 부호군副護軍 한후신韓後信, 가의대부嘉義大夫 정광석鄭光碩, 절충장군 임진채林震埰, 절충장군 정상기鄭尙紀, 그 아내 양씨梁氏, 절충장군 박승업朴承業, 절충장군 성수만成壽萬, 절충장군 조한우曺漢佑, 절충장군 이정욱李廷郁, 봉조대부朝奉大夫 별제別提 배이재裵以載, 절충장군 배필재裵弼載, 절충장군 강상문姜尙文, 박태파朴泰怕, 유춘기柳春起, 고만추高萬秋.개간開刊
승려 각혜覺慧, 서상건徐相健, 나필재羅必縡, 서울 사는 교서관校書舘 창준唱准 이동번李東蕃, 석수石手 이을산李乙山, 김산석金山碩, -
0012_0012a_a_01L多有破落。難以悉解。正門法堂。初設於洪武十九年丙寅。重修於萬曆九年
0012_0012a_a_02L辛巳。居士白只。康熙十三年甲寅。僧智能改修。雍正十三年己 [192] 卯。僧性能改
0012_0012a_a_03L修。徐潭ㆍ朴信等所造鐵網云耳。佛像塗灰。則僧信摠在前城築。雜以土石。自
0012_0012a_a_04L爲頹落。至明道場。便作糞穢之所。邑底老人。慨然於破壞之弊。爲化主。乾隆
0012_0012a_a_05L庚申。改築石堞。兼於床卓。亦皆一新云稱 [193] 。
0012_0012a_a_06L銘曰。長身屹屹。方冠歲歲 [194] 。層三而連。丈六之加。千佛之宗。萬像之持 [195] 。靈效所
0012_0012a_a_07L著。冥應靡忒。有禱莫違。無願不從。潜運化權。默輸神工。日月明並。天地德合。
0012_0012a_a_08L四方風聞。萬姓雲集。傾財破產。竭誠殫力。燈燭煇煌。紙錢堆積。惠我邦家。恤
0012_0012a_a_09L我愚蒙。傑然之姿。卓稱 [196] 之容。前古所無。後今唯有。於休尊像。與世同久。
0012_0012a_a_10L崇禎後再癸亥。安東權倫書。
0012_0012a_a_11L佛粮契員
韓忠信。方以光。朴泰亨。金斗發。曹懿相。徐有昌。全億碩。金漢億。金
0012_0012a_a_12L儉山。吳尙均。全義英。吳尙寬。金泰得。尹貴敏。兼 [197] 處謙。徐斗七。柳春起。姜渭三。
0012_0012a_a_13L柳以龍。宋世謙。金聖臣。韓翼信。李夏榮。鄭尙紀。孔汝義。金夢慶。金德臣。文應
0012_0012a_a_14L天。千載老。方成矩。徐旣 [198] 達。李震蕃。鄭厚必。李夏茂。出身韓世逸。李得新。韓泰
0012_0012a_a_15L善。鄭時載。寡韓氏。梁龍起。方漢 [199] 。金海滿。成無作。金寬聖。梁引公。曹萬鼎。城卓
0012_0012a_a_16L主論執事折衝韓忠信。看役曹懿相。引勸曹漢相。朴泰亨。全億碩。中軍曹燕
0012_0012a_a_17L相。閑良方世矩。曹應昌。方成矩。僧斗性。僧泰日。化主金錫哲。僧慧兼。大施主
0012_0012a_a_18L嘉善金斗發。金儉山。副護軍韓後信。嘉義大夫鄭光碩。折衝林震埰。折衝鄭
0012_0012a_a_19L尙紀。其妻梁氏。折衝朴承業。折衝成壽萬。折衝曹漢佑。折衝李廷郁。朝奉大
0012_0012a_a_20L夫別提裵以載。折衝裵弼載。折衝姜尙文。朴泰怕。柳春起。高萬秋。
0012_0012a_a_21L開刊。
僧覺慧。徐相健。羅必 [200] 。京居校書舘唱准李東蕃。石手李己 [201] 山。金山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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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2b_a_01L별좌別座 승려 묘휘妙輝.
6. 광덕사廣德寺 사적기事蹟記(묵자墨字)남섬부주南贍部洲178)의 동쪽에 청색 유리세계琉璃世界라고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삼한三韓 지역이다. 삼한의 가운데 지역에 광덕廣德이라고 하는 산이 있는데 일명 화산華山이라고도 한다. 서쪽으로 태화산太華山을 조산祖山으로 하고, 동쪽으로 광상산廣桑山과 짝을 하였는데, 그 사이의 거리는 몇 만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이 처음 혼돈 상태일 때 담무갈曇無竭179)이라는 부처가 있었는데 1만 2000명의 보살을 거느리고 서천축西天竺으로부터 동쪽으로 와 법피안法彼岸에 머물렀으니, 금강산의 1만 2천 봉우리는 바로 그 화신化身이다. 금강산으로부터 곧바로 남쪽으로 가면 태백산太白山이고 태백산에서 방향을 바꾸면 이속산離俗山이고 이속산의 오른쪽 갈래가 화산인데, 호서와 호남 사이에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어 그 땅이 의당 신령스러운지라 승보僧寶가 천불千佛의 도량道場으로 삼기에 족하였다.옛날에 신라의 법사法師 자장慈藏과 화상和尙 진산珍山이 흥덕왕興德王 때 같은 시대에 살면서 대승大乘을 연역하고 법륜法輪을 굴렸는데, 개연히 중생 교화를 자기의 임무로 삼아 고해苦海에 자비의 항해를 하여 미혹의 냇물에 보벌寶筏을 띄웠으니,180) 이 두 스님은 또한 족히 삼한의 불조佛祖가 된다. 당唐나라 문종文宗 태화太和 연간에 자장 법사가 석장錫杖 하나를 짚고 서역에 들어가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정례頂禮를 올리고 몸소 부처의 뜻을 받아 석가의 진신眞身 불골佛骨, 치아 및 진신 사리舍利 100여 매 및 가사袈裟, 불진拂塵, 비단을 짜서 만든 삼천불三千佛 탱화 세 점 및 패엽貝葉 경전, 금은金銀 글자의 화엄경華嚴經ㆍ법화경法華經ㆍ장수경長壽經ㆍ범망경梵網經ㆍ유마경維摩經ㆍ은중경恩重經 등 경전 수백여 상자를 백마에 실어 날라 동쪽으로 본국에 돌아와서 명산을 택하여 보관하였으니, 오대산五臺山의 중암中菴, 취서산鷲西山의 통도사通度寺, 모악산母岳山의 금산사金山寺, 조계산祖鷄山의 송광사松廣寺 같은 곳이 모두 법사가 점지하여 건립한 사찰이다.태화 6년 임자(832, 흥덕왕7) 봄에 이르러 법사가 석가모니 어금니 한 개, 사리 10개 및 승가僧袈 한 벌, 불진 한 개를 친히 진산 화상에게 주고, 또 금은 글자의 화엄경ㆍ법화경ㆍ은중경 각 2부를 가지고 와 화산에 터를 잡고 도량을 열었으니, 종루鍾樓가 8곳, 금당金堂이 9곳, 범각梵閣이 2층, 법전法殿이 3층이었다. 다른 산기슭의 푸른 벼랑 위에 천불전千佛殿을 짓고 진신 사리 및 세 점의 탱화를 봉안하였으니 이는 진산 화상의 원불願佛의 법당이다. 곁에는 만장각萬藏閣 80여 칸이 있으니 이는 판각한 경판經板을 소장한 곳이다. 기이한 기운이 신령한 빛을 내고 상서로운 광채가 하늘에 서려 새들도 그 위를 지나가지 못하였다.북쪽에는 환희암歡喜菴이 있고 동쪽에는 은수암隱水菴과 수월암水月菴 두 암자가 있으니 모두 옛날에 시승詩僧이 살던 곳이다. 서쪽에 문수대文殊臺가 있고 문수대 아래에 한산사寒山寺가 있고 문수대 위에는 여덟 개의 작은 암자가 있으니 보현암普賢菴, 영선암詠仙菴, 금선암金仙菴, 사자암獅子菴, 하선암下禪菴, 선정암禪定菴, 봉두암鳳頭菴, 영주암靈珠菴이다. 이들은 모두 조사祖師들이 선정禪定을 -
0012_0012b_a_01L別座僧妙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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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2b_a_03L廣德寺事蹟記(墨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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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2b_a_05L南贍部洲之東。有曰靑琉璃世界者。即吾三韓之境也。三韓中域。有山曰廣
0012_0012b_a_06L德。一名曰華山。西祖大華山。東配廣桑山。其間相去。吾不知其幾萬里也。混
0012_0012b_a_07L沌之初。佛有曇無竭。率一萬二千菩薩。自西天竺。東住法彼岸。金剛之萬二
0012_0012b_a_08L千峰。即其化身也。自金剛直南爲太白山。自太白轉而爲離俗山。離 俗之
0012_0012b_a_09L右脚。是爲華山。而雄跱於兩湖之間。則宜其地靈。僧寶足以爲千佛道場也。
0012_0012b_a_10L在昔新羅法師慈藏。暨和尙珍山。幷世興德王時。宗演大乘。道轉法輪。慨然
0012_0012b_a_11L以衆敎爲己任。慈航於苦海。寶筏乎迷川。之二釋亦足爲三韓佛祖也。唐文
0012_0012b_a_12L宗太和年間。法師飛一錫入西域。頂禮文殊。躬受佛旨。奉釋迦眞骨ㆍ牙齒。及
0012_0012b_a_13L眞舍利百餘枚。及伽梨ㆍ拂塵。三千佛織錦三畵幀。及貝葉圓詮。金銀字華嚴ㆍ
0012_0012b_a_14L法華ㆍ長壽ㆍ梵網ㆍ維摩ㆍ恩重等經數百餘函。白馬載輸。東還本國。擇名山以藏
0012_0012b_a_15L之。若五臺之中菴。鷲西之通度。母岳之金山。祖鷄之松廣。皆法師卜建之刹
0012_0012b_a_16L也。逮太和六年壬子春。法師以釋迦牙齒一枚。舍利十枚。及僧袈一領。拂塵
0012_0012b_a_17L一衲。親授珍山。又授金銀字華嚴ㆍ法華ㆍ恩重經各二部。來卜華山。創開道場。
0012_0012b_a_18L鍾樓八。金堂九。梵閣二層。法殿三層。異麓之蒼壁上。建千佛殿。奉眞舍利及
0012_0012b_a_19L三畵幀。是爲珍山願佛之堂也。傍有萬藏閣八十餘間。是則鏤梓經版之所
0012_0012b_a_20L藏也。異氣炳靈。瑞彩盤空。禽鳥不能踰於其上矣。北有歡喜菴。東有隱水ㆍ水
0012_0012b_a_21L月二菴。皆上世韻釋之所樓 [202] 也。西有文殊臺。臺下有寒山寺。臺上有八小菴。
0012_0012b_a_22L曰普賢。曰詠仙。曰金仙。曰獅子。曰下禪。曰禪定。曰鳳頭。曰靈珠。皆是祖師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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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3a_a_01L닦던 곳인데, 이른바 영주암은 법계法界의 가장 참된 지경이다. 신암新菴이라고 하는 것은 개돌槩乭이 처음 창건할 때 구식構息하던 곳이다. 동쪽 고개 밖에 만복사萬福寺가 있고 북쪽 고개 아래 개천사開天寺가 있는데 모두 같은 때에 창건한 곳이고 주지를 위한 대찰大刹이다. 하나의 산에 세 개의 대찰이 법계를 펼치는데, 오직 광덕사廣德寺 한 절은 홀로 28개 방과 89개 암자로 일컬어지니, 비록 명산의 큰 절이라도 능가하지 못한다.그 후 540여 년이 지나 원元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갑신년(1344, 충혜왕복위5)에 세 번째로 새롭게 개창하였는데, 절에는 그 당시의 상량上樑 기문記文이 있다. 명明나라 천순天順 원년(1457, 세조3)에 우리 세조대왕께서 온천에 거둥하였는데, 각림사覺臨寺ㆍ광덕사ㆍ개천사에 어필御筆과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는 교지敎旨 및 위전位田181)을 하사해 준 교지가 아직도 본사에 정중히 보관되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세조께서 온천에 거둥하였을 때 관음의 영상影像이 백운봉白雲峯 위에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두 절에 친히 거둥하였다고 한다. 아, 여래如來의 머리뼈와 어금니 및 사리, 가사, 불진 등 보물이 설산雪山에 간직되지 않고 섬부주贍部洲의 동방에 전해진 것은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나는 구마라鳩摩羅182)의 천하지도에서 조선이 천지의 정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바다위의 삼신산三神山이 모두 삼한 지방에 속한 것을 보았는데, 우리 동방의 뛰어난 산수가 천하에 으뜸이라는 것을 여기에 근거해서도 알 수 있으니, 문수보살이 불골을 우리나라에 간직하게 한 것은 참으로 그런 까닭에서이다. 그리고 또 삼한 지역 안에 여래의 진신 불골을 소장한 곳은 네다섯 곳에 불과한데 광덕사가 그 중의 하나로, 이 절이 신령스러운 산의 유명한 사찰로서 크게 빛나게 되었으니, 진산 화상이 도량을 창건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진산 조사祖師가 당나라 무종武宗 회창會昌 3년 갑자甲子(844, 문성왕6)183) 섣달 상현上弦에 광덕사에서 입적하였는데 이때 눈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골짜기가 슬피 울었다. 그러다 이윽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빛이 땅에 닿았으니, 산의 동북쪽 기슭에 석종石鍾을 세워 표시하였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서산西山 휴정休靜 대사가 있었는데 그 제자에 호를 제월당霽月堂이라고 하는 경헌敬憲이 있고 제월당의 제자에 호를 청소淸霄라고 하는 조옥照玉 대사가 있다. 조옥 대사가 신해년(1671, 현종12) 섣달 18일에 여흥驪興의 은흘암隱迄菴에서 입적하였는데 기이한 기운이 상서로움을 드러내고 어두운 밤에 다시 다하였다. 대사의 제자 상민尙敏이 백일 동안 기도하여 3개의 사리를 얻었고 삼산三山184)에 탑을 세웠다. 영주암에서 다시 기도를 하여 신령스러운 구슬 2개를 얻어서 절의 동북쪽 산기슭에 또 부도浮屠를 세웠으니, 만 겁 세월 불법의 정맥正脈을 전하고 하나의 달빛이 수많은 강물에 비쳐서185) 禪門에서 도를 성취한 사람이 대대로 끊이지 않을 것이다.아, 이 절은 신라 중엽에 창건되어 지금까지 천여 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의 사적이 날로 사라져가서 전하는 것이 없게 되었다. 만력 연간에 병란186)이 일어난 나머지 잿더미가 된 옛 터가 태반은 잡목이 우거져서 불교는 침체되고 중창할 기약이 없게 되니, -
0012_0013a_a_01L定之處。而所謂靈珠。則㝡是法界之眞境也。有曰新菴者。槩乭開創時。搆息
0012_0013a_a_02L之所也。東嶺之外。有曰萬福寺。北嶺之下。曰開天寺。皆一時創建之地。而
0012_0013a_a_03L爲住持大刹也。一山三大刹。某布法界。而惟廣德一寺。獨有二十八房。八十
0012_0013a_a_04L九菴之稱。雖名山巨刹。莫之京矣。其後五百四十餘年。至元順帝至正甲申。
0012_0013a_a_05L三創改新之。寺有其時上樑記。至皇明天順元年。我
0012_0013a_a_06L世祖大王。行幸溫泉。覺臨ㆍ廣德ㆍ開天。有御筆蠲役教旨及位田賜給教
0012_0013a_a_07L旨。尙今奉留本寺。世傳。世祖溫幸時。有觀音影相。現於白雲峰之上。以此
0012_0013a_a_08L親幸兩寺云。噫。如來顱骨ㆍ牙齒。及舍利ㆍ衣塵等寶。其不藏於雪山。而傳於
0012_0013a_a_09L部洲之東邦者。豈無以哉。吾見鳩摩羅天下地圖。朝鮮正當天地中央。而
0012_0013a_a_10L海上三神山。皆屬三韓地方。則吾東山水之勝。甲於天下者。據此可知。而
0012_0013a_a_11L文殊之付藏佛骨。固其所以。乃且三韓域內。如來眞骨所藏者。不過四五
0012_0013a_a_12L處。而廣德居一。則是寺之爲靈山名刹。尨大彰明。而珍山之創立道場。亦
0012_0013a_a_13L非偶然而已也。珍山祖師。於唐武宗會昌三年甲子臘月上弦。入寂於廣
0012_0013a_a_14L德。是時風雪大作。澗壑悲咽。俄而瑞氣漫空。祥光燭地。山之艮麓。達 [203] 石鐘
0012_0013a_a_15L以表之。
0012_0013a_a_16L皇明萬曆中。有西山休靜大師。有弟曰敬憲。號霽月堂。霽月有弟曰照玉。號
0012_0013a_a_17L淸霄大師。辛亥臘月十八日。入寂於驪興隱迄菴。異氣呈瑞。昏夜復畵 [204] 。師
0012_0013a_a_18L之弟尙敏。祈禱百日。得三舍利。設塔於三山。再禱靈珠菴。得神殊二枚。寺
0012_0013a_a_19L之良 [205] 麓。又建浮屠。亦可謂燈傳萬刦。月印千江。成道禪門者。世不之 [206] 人也。
0012_0013a_a_20L噫。是寺也。創於新羅中葉。迄于今。千有餘年。而其間事蹟。日就湮滅。世無
0012_0013a_a_21L傳者。至於萬曆兵燹之餘。灰燼遺墟。太半榛莽。而佛敎陵夷。重創無期。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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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3b_a_01L총림에 한을 남긴 것이 지금에 이르러 극심하게 되었다. 우리 세조께서 견복蠲復187)해 주신 하교가 어첩御帖에 밝게 남아 있는데, 수백여 년이 지나 전각殿閣이 없어진 것에 대한 탄식이 없지 않고, 약간의 승도들이 나라에 물품을 공급하는 일의 책임을 견디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일까지 있었다. 마침내 상민 스님이 이에 대해 개탄하여 성상 6년 기미188) 가을에 선왕先王의 수교手敎를 어가御駕 앞에 전달하여 성상에게 윤허를 받고, 결정된 어명을 확실하게 천명하였다. 또 고금의 사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 편의 기문記文을 구하여 장차 영구히 전하고자 하였으니 상민 스님과 같은 사람은 부처를 받드는데 지성스럽다고 말할 만하고 또한 불후의 사업이라고 말할 만하다.숭정기원 후 53년 경신(1680, 숙종6) 3월 일, 안명로安命老189) 짓다.
6-1. 화산華山 광덕사廣德寺 사실비명事實碑銘 병서幷序(금자金字)세존世尊께서 설산雪山에서 도를 이루고 49년 만에 오직 말할 만한 법이 없다 하시며 연꽃을 들고 미소를 지을 뿐이었는데 가섭迦葉 혼자 말없이 그 뜻을 알았다. 대대로 세존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사람마다 가섭인 것은 아니다. 가르침의 밖에 단전單傳190)하는 뜻이 노가나路伽那191)의 세계 안에 있으니 순타純陀192)에게 전승하는 것은 이와 같이 어렵다. 후세에 신학新學을 하는 무리들이 무법無法의 법으로 유법有法의 법을 하고자 하여 말을 분분하게 하고 문채를 휘황하게 하니, 분분하고 휘황한 것은 반차般遮의 도에 있어서 어떠한지 알 수 없다. 분분하고 휘황한 것을 반차인般遮人에게 묻지 않고 불반차인에게 물으니, 위대한 달마達摩도 이조二祖가 처음에는 어려워하였다. 부처가 부처를 아는 것이 이와 같은데, 부처가 아닌 자가 부처를 안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개보介甫193) 선생이 글자를 잘못 풀이하여 여전히 석문釋門의 웃음거리가 되고 지금 산인山人은 나를 웃음거리로 삼으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상민尙敏 스님에게 글을 짓는 까닭이고 이것이 내가 광덕사에 글을 짓는 까닭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광덕사는 금호錦湖 사이에 위치해 있고 화산華山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화산은 백두산白頭山을 종주로 하고 백두산은 곤륜산崑崙山을 종주로 하고 있으니, 산이 뻗어 내려온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월도月都194) 시대에 자장慈藏 법사法師가 있었는데, 조사祖師의 등불195)에서 재가 날리는 것을 개탄하고 부처의 해196)가 광채를 잃은 것을 한탄하여 만백성을 깨우치고 천 겁 세월에 전할 것을 생각하였다. 이에 석장을 짚고 서역으로 갔는데 홀연 금사金師를 만났고, 뜬구름처럼 동쪽으로 돌아와 보배로운 비결을 전하였다. 서천西天 삼매三昧의 법골法骨을 얻었으니, ‘동토東土’ 두 글자의 도체道體가 되었다. 진신 사리 1백여 매와 패엽貝葉 경전 수백 상자를 받들고 진신 불골과 어금니 및 승가리僧伽梨197), 불진, 삼천불을 직조한 비단 탱화 세 벌, 금은 글자의 화엄경華嚴經ㆍ법화경法華經ㆍ장수경長壽經ㆍ범망경梵網經ㆍ유마경維摩經ㆍ은중경恩重經 등 여러 큰 분량의 -
0012_0013b_a_01L叢林遺恨。到此而極矣。我
0012_0013b_a_02L世祖蠲復之敎。昭有 御帖。而歷數百餘年。亦不無廢閣之歎。若干緇徒。不
0012_0013b_a_03L堪責應之役。至有渙散之擧。肆敏師慨然於此。
0012_0013b_a_04L上之六年己未秋。以
0012_0013b_a_05L先王手敎。達于 駕前。蒙允 聖旨。發揮 成命。又紀其今古事蹟。求得一
0012_0013b_a_06L記。將欲以傳永久。若敏師者。可謂誠於奉佛。而亦可謂不朽之業也。
0012_0013b_a_07L崇禎紀元後五十三年庚申暮春日。安命老撰。
0012_0013b_a_08L
0012_0013b_a_09L華山廣德寺事實碑銘幷序(金字)
0012_0013b_a_10L
0012_0013b_a_11L世尊雪山成道四十九年。惟曰無法可說。拈花微咲而已。則獨迦葉默契。世
0012_0013b_a_12L尊非世世也。迦葉非人人也。敎外單傳之旨。在路迦那之界。純陀之傳。若斯
0012_0013b_a_13L之難也。而後世阿夷怡之徒。以無法法。欲有法法。紛紛言語。煌煌文彩。紛紛
0012_0013b_a_14L煌煌者。其在般遮之道。未知如何。而其紛紛煌煌者。不問於般遮人。而問於
0012_0013b_a_15L不般遮人。以達摩之大。二祖初相難之。佛知佛如此。以不佛知佛可乎。介甫
0012_0013b_a_16L先生。以誤解字。尙爲釋門所譏咲。今山人。欲以余爲咲乎。此不佞有辭於尙
0012_0013b_a_17L敏師者也。此不佞有文於廣咲 [207] 寺者也。謹按廣德寺者。處於錦湖之間。居於
0012_0013b_a_18L華山之陽。盖華山宗於白頭。白頭祖於崑崙。山之從來。豈偶然而己 [208] 也。月都
0012_0013b_a_19L之世。有慈藏法師者。慨然祖燈之騰灰。吁嗟佛日之晦彩。思覺萬衆。念垂千
0012_0013b_a_20L刦。飛錫西指。忽遇金師。浮雲東歸。乃傳寶訣。得西天三昧之法骨。爲東土二
0012_0013b_a_21L字之道體。奉眞身舍利百餘枚。貝葉圓詮數百函。得眞骨ㆍ牙齒。及僧伽梨ㆍ拂
0012_0013b_a_22L塵。三千佛織造。錦畵幀三座。金銀字華嚴ㆍ法華ㆍ長壽ㆍ梵網ㆍ維麼ㆍ恩重諸大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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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4a_a_01L경전을 가져와 영남의 통도사通度寺에 안치하였으니, 백마白馬가 처음으로 동경東京에 온 것과 거의 같고198) 흑사黑師가 처음으로 남도南都에 들어온 것과 다름이 없다. 청해靑海가 불씨佛氏가 있는 줄을 알게 되고 백성들이 세존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세존의 법이 이에 이르러 전해지고 불씨의 교화가 이로 말미암아 밝아지게 되었으니 그 또한 성대한 일이다.태화 6년 임자(832, 흥덕왕7)에 또 진산珍山 법사가 친히 자장 법사의 전수를 이어받아 석가의 진신 사리 10매와 치아 1개, 승가리 한 벌, 불진 한 자루, 화엄경 등 여러 경전 두 건을 받들어 광덕사에 가지고 왔으니 이것이 광덕사의 시초이다. 자장 법사가 진산 공公을 얻은 것이며 진산 공이 화산에 의탁한 것이나, 그 해후한 것이며 머물러 산 것은, 어찌 하늘과 신이 도와주어 여기에서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 아, 두 법사가 개창한 공을 지금까지 칭송하면서 장황하게 그치지 않는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그 13년 뒤 회창會昌 갑자년(844, 문성왕6)에 진산 법사가 입적하자 기이하고 상서로운 현상이 많이 일어나서 마침내 석종石鍾을 세웠으니, 지금 산의 동북쪽 기슭이 그곳이다. 그 사이에 있는 전당殿堂들은 휘황찬란하고 금과 옥이 밝게 빛나는데 8종루鍾樓, 9금당金堂이라고 부른다. 그 산 위와 산 아래, 물 북쪽과 물 남쪽에 있는 선실禪室과 암자들은 은자隱者의 거처라고도 하고 덕사德士의 누각이라고도 하는데,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고 일일이 적을 수도 없다. 동쪽에 만복사萬福寺가 있고 북쪽에 개천사開天寺가 있어, 산 하나에 세 개의 사찰이 배열되어 함께 후대에 전해질 것이니, 후대에 함께 우러러보면서 가리킬 것이다. 함께 우러러보면서 가리킬 것이니 누가 스님을 공경하지 않겠으며 누가 제자弟子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500년이 지나오면서 흥했다가 쇠했다가 했는데 지정至正 갑신년((1344, 충혜왕 복위5)에 중수하였고, 명나라 천순天順 연간에 우리 세조대왕께서 친히 왕림하셔서 특별히 어필御筆을 남겨 위전位田을 하사하는 명을 내려 고을에서 부과하는 역役을 면제시켰다. 승려들이 금옥金玉처럼 보배로 여기고 비단으로 싸서 보관하니 용광龍光이 찬란하고 아직까지도 먹빛이 자르르하다.만력萬曆 임진년(1592, 선조25)에 섬나라 오랑캐가 마구 쳐들어와 참혹하게 불에 타버리는 재앙을 겪었으니 누군들 하루아침에 봄풀의 감상이 석양의 가을빛으로 저무는 슬픔이 없었겠는가. 무술년(1598)에 이르러 희묵熙默 상인이 법당을 중건하였는데, 건물이 날아갈 듯한 모습은 예전 당시의 면모와 흡사하고 단청을 다시 칠한 모습은 옛날의 위용과 방불하였다. 아, 상인의 공을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 선왕先王 을미년(1655, 효종6)에 절의 승려 석심釋心 화상이 뒤를 이어 수리를 하니, 금불상과 옥루玉漏를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고 하얀 섬돌과 붉은 창문을 세상에서 모두 눈을 비비고 바라보았다. 두 분 같은 사람은 慈藏 법사, 珍山 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선왕조先王朝 신해년(1671, 현종12)에 청소淸霄 대사가 편안히 입적하였는데 문인인 상민尙敏 등이 사리 3매를 받들어 절의 동쪽 산기슭에 탑을 세웠으니 ≺청소당대사탑명淸霄堂大師塔銘≻에 그 말이 실려 있다. 이것이 광덕사의 결말인데, 서쪽에서 온 불교가 동쪽 바다로 온 지 오래 되었으니, 가구마다 입으로 축원하고 집집마다 손으로 기도하여, 관음보살이 아침저녁으로 내려오는 것 같고 석가모니가 해와 달처럼 임하는 것 같았다. 보리菩提의 스스로 깨달음이란 무슨 깨달음이며, 문수보살이 오묘함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무슨 오묘함인가마는, 천 년토록 전하고 -
0012_0014a_a_01L經。來安于嶺南之通度寺。殆同白馬始來東京。無異黑師初八 [209] 南都。靑海之
0012_0014a_a_02L知有佛氏。黔首之知有世尊。自此。而世尊之法。至是而傳。佛氏之敎。由是而
0012_0014a_a_03L明。其亦盛矣。粤六年太和壬子。又有珍山法師者。親承慈藏之傳。奉釋迦眞
0012_0014a_a_04L身舍利十枚。齒骨一個。僧伽梨一領。拂塵一衲。華嚴等諸經二件。持歸於廣
0012_0014a_a_05L德寺。此廣德寺之始。而藏師之得山公。山公之托華山。其所以邂逅者。其所
0012_0014a_a_06L以樓 [210] 遲者。豈非天授神助。而相待於此者乎。噫噫。兩師開創之功。稱誦至今。
0012_0014a_a_07L娓娓不厭者。良有以也。后十三年會昌甲子。珍山示寂。則多奇祥異徵。遂建
0012_0014a_a_08L石鍾焉。今山之艮麓是也。其間殿堂輝煌。金玉照耀。有八鍾樓。九金堂之稱。
0012_0014a_a_09L其山上山下。其水北水西。禪室庵居。或云隱子之卜。或名德士之樓。而指不
0012_0014a_a_10L可一二。而書亦不可一二也。東之萬福。北之開天。一山而列三刹。而幷垂於
0012_0014a_a_11L浚 [211] 代。浚 [212] 代共瞻仰指點。共瞻仰指點。孰不欽芘蒭也。孰不思宣灑也。五百年
0012_0014a_a_12L來。有興有廢。而至正甲申。 重以修之。 皇朝天順中。我 世祖大王。
0012_0014a_a_13L親屈王 [213] 趾。特留 宸翰。命賜位田。以除郡役。僧徒金玉以寶。錦䌧以藏。龍光
0012_0014a_a_14L煥爛。尙今淋漓也。萬曆壬辰。島夷猖獗。酷被回祿之災。則誰無一朝春草之
0012_0014a_a_15L感。返照秋色之悲。及至戊戌。有熙默上人者。重營法堂。殿宇翼然。依俙當日
0012_0014a_a_16L之面目。丹靑改覩。仿佛昔時之儀容。噫噫。上人之功。其可忘乎。逮我 寧
0012_0014a_a_17L考之乙未。寺僧釋心和尙。從而修之。金像玉漏。人皆加額焉。白陛丹窓。世咸
0012_0014a_a_18L拭目焉。若兩人者。其將與慈藏ㆍ珍山埒矣。至先朝辛亥之歲。淸霄大師。揭示
0012_0014a_a_19L順寂。門人尙敏等。奉舍利三枚。建塔于寺之震麓。語在淸霄塔銘。此廣德寺
0012_0014a_a_20L之終。而西來之敎。東漸于海者久矣。家家而口祝。戶戶而掌拱。觀音若朝暮
0012_0014a_a_21L降也。釋迦若日月臨也。菩提之自覺何覺。文殊之利妙紗 [214] 何妙。而千年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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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4b_a_01L백세토록 쇠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절은 신라 시대로부터 거의 수백 년 세월을 지나왔으며 또 이후로 몇 백 년 세월을 보낼지 모른다. 천지의 명승지며 고금의 현도玄都199)가 어찌 한갓 공작 꼬리털과 황금 꽃으로 만들어졌겠는가마는, 공작 꼬리털과 황금 꽃이 없으면 현도와 명승지는 진정한 현도와 명승지가 되지 못하니, 강산이 여기에 이르렀겠는가, 강산이 여기에 이르렀겠는가.아, 나는 또한 느끼는 바가 있으니, 우리 선생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우리 유학자들은 다만 불교가 그릇되었다고만 들었지 불교가 불교인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논설로는 불교가 우리 유교를 보는 것이 또한 우리 유교가 불교를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말을 할 수 없고 도모할 수 없으니, 오늘 미소를 지으며 연꽃을 든 뜻을 누가 알겠는가. 그 또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 때문에 명銘을 짓는다. 명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惟崇惟華勢突兀 오직 드높은 화산이 그 기세 우뚝하여라
鬼神其護蛟龍穴 귀신이 보호하는 교룡의 굴이라네
誰其屍之是有佛 누가 주간하였는가 부처님이라네
何代而創洎羅室 어느 시대에 창건하였나 신라 왕실 때부터라네
慈師東還道乃率 자장법사가 동쪽으로 돌아와 도가 이내 따르게 되었네
珍公南來山爲闕 진산 공이 남쪽으로 내려오니 산이 궁궐이 되어
睠彼嵯峨擬天闥 돌아보매 우뚝하여 하늘의 궁궐문에 비기겠네
道不在玆藏眞骨 도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진신 불골을 모셨다네
只是妙法▣不達 단지 이는 묘법이 ▣ 달하지 않네
于以傳之千百月 이로써 천백 년 세월 전하면서
或廢或興有伸屈 쇠했다가 흥하여 변화가 있었네
天長地久孰能迾 천지처럼 장구하리니 누가 능히 막으리오
何往不復今崪峍 어디를 간들 돌아오지 않겠는가 드높은 모습
永世有辭銘而述 영원토록 말을 남기려 명문을 짓노라
此山不磨石豈滅 이 산이 닳아지지 않을 것이니 바위가 어찌 사라지랴
경년庚年 8월 진양晉陽 후인 유응운柳應運 짓다.
관란산인觀瀾散人 낭선군朗善君200) 쓰다.6-2. 화산華山 광덕사廣德寺 사리각 기명舍利閣記銘삼가 생각건대, 우리 승천체도열문영무承天體道烈文英武201) 전하께서 천명을 이어받아 국왕의 자리에 올라 국운을 여시니, 천하가 안정되고 비바람이 사시에 순조로웠다. 이에 단정히 앉아 맑고 온화한 태도로 공경히 삼가며 나라 다스리는 도를 생각하시니 지극히 거룩한 덕에 큰 상서로움이 감응하였다.이에 7년 신사(1461, 세조7) 여름 5월 임자(13일)에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사리가 광덕사廣德寺에 분신分身을 하니 상서로운 빛이 하늘에 피어나고 기이한 향기가 무성하게 산골짜기에 가득 퍼졌다.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가 절에 있다가 25매를 바치니 성상과 자성왕비慈聖王妃께서 내전內殿에서 예불을 올렸는데, 또 분신을 하니 함원전含元殿에 봉안하였다. 또 분신을 하자 병진(17일)에 효령대군이 또 얻어서 바쳤고 -
0012_0014b_a_01L百世不衰。今此寺。自新羅幾經累數百歲。而又未知此浚 [215] 又幾累數百歲。則
0012_0014b_a_02L天地之名區。古今之玄都。豈徒爲珠毛金花作。而無珠毛金花。則玄都名區。
0012_0014b_a_03L不爲玄都名區。江山至此哉。江山至此哉。噫噫。不佞抑亦有所感者。吾師孔
0012_0014b_a_04L子之言曰。道不同。不相爲謀。吾儒徒聞佛之不。而不知佛之佛焉。猶如此論
0012_0014b_a_05L說。安知佛之視吾儒。亦如吾儒之視佛也。未可言也。未可謀也。誰知今日微
0012_0014b_a_06L咲拈花之旨。其亦微咲而己 [216] 。是以爲銘。銘曰
0012_0014b_a_07L惟崇惟華勢突兀。鬼神其護蛟龍穴。誰其屍 [217] 之是有佛。何代而創洎羅室。慈
0012_0014b_a_08L師東還道乃率。珍公南來山爲闕。睠彼嵯峨擬天闥。道不在玆藏眞骨。只是
0012_0014b_a_09L妙法▣不達。于以傳之千百月。或廢或興有伸屈。天長地久孰能迾。何往不
0012_0014b_a_10L復今崪峍。永世有辭銘而述。此山不磨石豈滅。
0012_0014b_a_11L歲上章仲秋。晋陽浚 [218] 人柳應運撰。
0012_0014b_a_12L觀瀾散人朗善君 書。
0012_0014b_a_13L
0012_0014b_a_14L華山廣德寺舍利閣記銘
0012_0014b_a_15L
0012_0014b_a_16L恭惟。我
0012_0014b_a_17L承天體道烈文英武殿下。誕膺天命。握符開運。疆宇妥帖。風雨時順。於是。端
0012_0014b_a_18L居淸穆。恭默思道。至聖之德。景瑞以應。乃於七年辛巳夏五月壬子。釋迦
0012_0014b_a_19L如來舍利。分身於廣德寺。祥光瑞氣。熏灼于天。異香勃鬱。遍滿山谷。孝寧
0012_0014b_a_20L大君補在寺。進二十五枚。
0012_0014b_a_21L上與慈聖王妃。禮於內殿。又分身。安于含元殿。又分身。越丙辰。大君又得又
0012_0014b_a_22L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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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5a_a_01L왕비가 내전에서 예불을 올렸다. 또 분신을 하니 정사(18일)에 성상께서 친히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관현악에 올렸다. 왕비와 함께 함원전에서 공양을 하니 또 분신을 하였다. 전후로 얻은 분신 사리가 모두 102매였고, 광덕사에서 설법을 하는 중에 사람들이 스스로 얻은 것은 또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성상께서 크게 기뻐서 죄수를 사면하고 큰 서원誓願을 발하여 친히 능엄경楞嚴經을 언해하였다. 종친宗親ㆍ의정부議政府ㆍ육조六曹ㆍ대간臺諫ㆍ제장諸將들을 거느리고 조종祖宗과 모든 백성들을 위해서 여래의 불상 한 구軀를 만들었다. 또 중궁中宮과 세자를 위해서 미타彌陀 불상 한 구를 만들었다. 또 관음觀音과 지장地藏 두 보살이 서로 마주한 꿈을 꾸고 기이하게 여겨 두 불상을 조성하였다. 불상이 완성되자 그 안에 각각 사리를 안치하고, 선종禪宗 광덕사의 사리각舍利閣에 신주를 편히 모셨다. 성상께서 왕비와 함께 보좌寶座에 예배하고 향을 살라 공양하였고, 작은 종을 만들어서 육시六時202)에 깨우쳐 몽매한 중생을 인도하도록 명하셨다. 이러한 연기緣起를 새겨서 후세에 끝없이 밝게 보이고자 한다. 명銘에 이른다.
惟我聖神夙受佛記 우리 성상聖上께서 일찍이 부처의 기별記別203)을 받았으니
手執金輪繼天出治 손에 금륜金輪을 쥐고 하늘을 이어 다스림을 베푸셨네
嚴恭寅畏不遑暇寐 엄숙 공경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잠 잘 겨를도 없으니
神人恊和靈貺騈至 신과 인간이 화합하여 신령한 복이 나란히 이르렀네
仰惟大覺廣攝緣類 우러러 생각건대 큰 깨달음이 인연을 따라 널리 퍼지어
設利分身現希有事 사리가 분신을 하는 드문 일이 나타난 것이라네
驚動耳目晃曜天地 사람들 이목을 놀라게 하고 온 천지를 비추어
靈瑞震動曠劫䍐比 신령스러운 상서가 진동하니 만고에 견줄만한 일 드물다네
天心恍豫弘擔發誠 천심이 즐겁게도 크게 책임지는 정성을 드러내고
像設睟容演了義經 빛나는 얼굴의 불상을 만들고 경문經文의 뜻을 강연講演하였네
福我列祖延及含靈 우리 열성조列聖朝에 복을 주고 중생에게도 미치리니
宗啚永固彌億萬齡 종실宗室 위한 계책 길이 굳건하여 억만 년에 이르리라
惟佛道弘普拔幽滯 佛道를 널리 전하여 몽매함을 떨쳐버리고자
惟聖體佛大悲曠濟 성상께서 부처를 본받아 대비大悲로 널리 구제하셨네
冶金鑄鍾開覺一切 쇠를 녹여 종을 만들어 일체一切 중생을 열어 깨우치시니
息苦警昏窮未來際 괴로움을 멈추고 혼미함을 깨쳐 미래未來 세계를 궁구하셨네
가정대부嘉靖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한계희韓繼禧204)는 하교를 받들어 짓다.
선교랑宣敎郎 수守 이조좌랑吏曹佐郎 예문봉교藝文奉敎 겸 승문원承文院 부교리副校理 정난종鄭蘭宗205)은 하교를 받들어 쓰다.
천순天順 7년 계미(1463, 세조9) 10월 일. 숭정崇禎 후 경신년(1680, 숙종6)에 옮겨 쓰다.
6-3. 천안 광덕사 청소당 대사淸霄堂大師 탑명塔銘 병서幷序(금자金字) -
0012_0015a_a_01L王妃禮於內殿。又分身。丁巳
0012_0015a_a_02L上親製加陁。被之管弦。偕
0012_0015a_a_03L王妃供養於含元殿。又分身。前浚 [219] 所得分身舍利。摠一百又二。廣德寺會中
0012_0015a_a_04L人自取。又不知其幾。
0012_0015a_a_05L上大歡慶肆赦。發大誓願。親自翻譯楞嚴經。率宗親ㆍ政府ㆍ六曹ㆍ臺省ㆍ諸將。爲
0012_0015a_a_06L祖宗及一切含靈。造如來像一軀。又爲
0012_0015a_a_07L中宮ㆍ世子。造彌陀像一軀。又夢觀音ㆍ地藏二菩薩相對異。乃造二像。旣成。各
0012_0015a_a_08L安舍利於中。妥靈于禪宗廣德寺之舍利閣。
0012_0015a_a_09L上同王妃。禮拜於寶座。燎香供養。令鑄小鍾。以警六時。以導幽滯。刻此緣
0012_0015a_a_10L起。昭示無窮焉。銘曰。
0012_0015a_a_11L惟我
0012_0015a_a_12L聖神。夙受佛記。手執金輪。繼天出治。嚴恭寅畏。不遑暇寐。神人恊和。靈貺騈
0012_0015a_a_13L至。仰惟大覺。廣攝緣類。設利分身。現希有事。驚動耳目。晃曜天地。靈瑞震
0012_0015a_a_14L動。曠劫䍐比。
0012_0015a_a_15L天心恍豫。弘擔發誠。像設睟容。演了義經。福我
0012_0015a_a_16L列祖。延及含靈。宗啚永固。彌億萬齡。惟佛道弘。普拔幽滯。惟
0012_0015a_a_17L聖體佛。大悲曠濟。冶金鑄鍾。開覺一切。息苦警昏。窮未來際。
0012_0015a_a_18L嘉靖大夫吏曹叅判臣韓繼禧奉 敎撰。
0012_0015a_a_19L宣敎郎守吏曺佐郎藝文奉敎兼承文院副校理臣鄭蘭宗奉 敎書。
0012_0015a_a_20L天順七年癸未十月 日。 崇禎後庚申傳書。
0012_0015a_a_21L
0012_0015a_a_22L天安廣德寺淸霄堂大師塔銘幷序(金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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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5b_a_01L부처가 우리 동국과 멀리 떨어진 것이 몇 만 리나 되는지 모르며, 그가 죽은 것이 지금 몇 천 년이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니 도를 전한 것은 희미해졌고 선禪을 말한 것은 시들었다. 보제普濟206)나 도선道詵207) 같은 무리들이 혹은 조점鳥占ㆍ풍각風角208)에 흐르고 혹은 사복射覆209)에 빠져서 일세의 불교를 덮었다. 그리하여 일세의 불교가 문자를 내세워 기이함을 기술함으로써 불교의 진종眞宗을 삼았다. 세존世尊이 염화미소拈花微笑로 단전單傳210)한 것이나 달마達摩가 마음의 본원을 가리킨 것이 어찌 문자였던가. 어찌 기이함이었던가.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는 데에 달려 있지 않고 원력願力을 어떻게 행하는지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청소淸霄 대사를 보니 대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로다. 대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로다.삼가 살펴보건대, 대사는 고故 서원西原211) 한씨韓氏의 아들이니, 이름은 희옥熙玉이고 호는 광택光澤이다. 만력萬曆 계묘년(1603, 선조36)에 모친이 흰 상아의 코끼리를 꿈꾸고 대사를 낳았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정밀하여 세상의 인연을 탐하지 않고 기쁘게 불사佛事를 지었으며 아홉 살 때 봉래산蓬萊山 은적사隱寂寺에 몸을 맡겼다. 천준天俊 상인을 따라 제월당霽月堂에게 참알參謁하였으니, 제월당은 서산西山 법사의 적통 제자라, 그가 전수받은 교지敎旨는 연원淵源이 있다. 9부의 큰 경전을 받아 10년 동안 외우고 10년 동안 가르침을 익혔으며, 20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진주眞珠 대사의 설법 마당에서 노닐면서 선종의 가르침을 크게 드날리고 불교의 종지를 홀로 밝혔다. 이에 대사는 사방으로 나가 노닐면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들으면서 석장 짚고 우산 들고 백운 속으로, 청산 속으로 행각行脚하였다.천계天啓 갑자년(1624, 인조2)에 치악산雉嶽山에 들어갔다가 오대산五臺山으로 나와 다시 제월 대사의 강좌에 참여하였다. 그가 논하여 해설한 것은 낱낱이 오묘한 법이요 가리키는 것마다 말없이 부합하니 제월 대사도 찬탄을 하였다. 이로부터 태백산太白山에 노닐기도 하고, 금강산金剛山에 ▨하기도 하고, 용문산龍門山에 출입하기도 하고, 은해銀海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숭정崇禎 무자년(1648, 인조26)에 문인 40여 명을 데리고 또 오대산 보제암普濟菴에 들어가 3년 동안 결하結夏하였다. 신묘년(1651, 효종2) 봄에 다시 용문산 묘운▣妙雲▣에서 노닐었고 그대로 머물러 살 곳으로 삼았다. 그 사이 방장方丈 순타純陀212)의 의론과 원제源提의 논설은 모두 사람들을 용동聳動시키고 세간의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들이었다. 신해년((1671, 현종12) 봄에 다시 황려黃驪213)의 은적사에 가서 머물렀다.같은 해 가락월嘉樂月214) 16일에 대사는 시자侍者에게 명하여 머리를 깎고 손톱을 자르게 하고, 가사를 입고 벽에 기대어 가부좌를 하고 말하기를, “내 입적入寂을 게시揭示하겠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글을 써서 이르기를, “허공의 뼈를 쳐부수니, 대지는 하나의 구덩이 장원莊園이라네. 한 점 신령스러운 광명은 어디로 가는가. 모든 산의 흐르는 물은 고금에 한결같은 소리라네.”라고 하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상서로운 구름과 안개가 횡으로 뻗쳐 끊이지 않고 오래도록 피어나니 마치 신령한 감응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해 정월 3일에 네 절의 승려를 모으니 수백 인이 이르러서 다비茶毗를 하고 백일재百日齋를 지냈으며, 3개의 손톱과 신주神珠를 얻어 용문龍門의 신륵神勒과 장흥長興 삼산三山의 산기슭에 탑을 세웠다. 진신 불골은 아직 탑을 세우지 못하여 대중의 의견이 모두 아쉽게 여겼는데, 그 문인 지엄智嚴, 희제希濟, 상민尙敏 등이 2년 째 기일忌日 새벽에 재齋를 올리는 예를 베풀었으나 신령스럽고 기이한 조짐이 많지 않아, 즉시 산당山堂에 들어가 7일 동안 다시 기도하여 2매의 사리를 받들고 마침내 광덕사의 동쪽 산기슭에 탑을 세웠다. 대사는 세속 나이 69세이고 법랍은 60세이다. 신해년에 출가하여 -
0012_0015b_a_01L佛之遠東國。不知累數萬里。其沒也距今又不知累數千歲。故傳道微而言
0012_0015b_a_02L禪病。若普濟ㆍ道詵輩。或流於占角。或入於射覆。以掩一世之佛。而一世之佛。
0012_0015b_a_03L以立文字述奇異。爲佛之眞宗。世尊徵 [220] 咲之單傳。達摩指心之本源。何文字
0012_0015b_a_04L也。何奇異也。故曰不在多言。願力行何如云。則今吾觀淸霄大師。大師其人
0012_0015b_a_05L哉。大師其人哉。謹按。大師故西原韓氏子也。名熙玉。號曰光澤。萬曆癸卯。母
0012_0015b_a_06L夢白牙之象。誕大師。大師自少沈密。不貪世緣。喜作佛事。九歲捨身蓬萊山
0012_0015b_a_07L隱寐 [221] 寺。從天俊山人。來叅於霽月堂。即西山法師之嫡弟也。其所傳之旨。有
0012_0015b_a_08L自來矣。受九部諸大經。十年成誦。十年習敎。二十受具足戒。遊眞珠大師之
0012_0015b_a_09L法場。大揚禪詮。獨闡佛宗。於是。師乃出遊四方。以觀其所不觀。以聞其所不
0012_0015b_a_10L聞。杖錫白雲。擔簦靑山。天啓甲子。入於雉岳。出於五臺。再叅霽月大師講座。
0012_0015b_a_11L其所論解者。頭頭妙法。指指玄契。師亦嘖嘖焉。自是之後。或遊太白。或楢 [222] 金
0012_0015b_a_12L剛。或出龍門。或入銀海。歲崇禎戊子。率門人四十餘輩。又入五臺山普濟▣ [223] 。
0012_0015b_a_13L結夏三年。及辛卯之夏。再遊龍門妙雲▣ [224] 。仍爲棲遲之所。其間方丈純陁之
0012_0015b_a_14L論。源提之說。皆可以聳人聽驚世聞者也。及辛亥之春。更至住于黄驪之隱
0012_0015b_a_15L寂寺。粤同年嘉樂月載生魄。師乃命侍者。削髮剪瓜 [225] 。着袈裟。倚壁跌坐。而言
0012_0015b_a_16L曰。吾當揭示入寂。遂書之曰。打破虛空骨。大地一坑莊。一點靈光何處去。諸
0012_0015b_a_17L山流水古今聲。修 [226] 然而化。瑞雲祥靄。横亘不絕。積時乃發。似有靈
0012_0015b_a_18L應者也。明䄵正三。合四寺僧。訖數百人。恭 [227] 毗之百日齊 [228] 。素得三爪神珠。建塔
0012_0015b_a_19L于龍門神勒。長興三山之麓。而眞骨猶未建塔。羣議皆歉。其門人智嚴ㆍ希濟ㆍ
0012_0015b_a_20L尙敏等。乃於再期之晨。設奠祀之禮。無多有靈異之徵。即入山堂。再禱七日。
0012_0015b_a_21L奉二枚舍利。遂建塔于廣德寺之震麓。師俗壽六十九。法臘六十。辛亥而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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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6a_a_01L신해년에 입적하였으니 또한 기이한 일이다.아, 불교의 폐단은 오래되었다. 종문宗門이 떨치지 못하고서부터 부처의 얼굴을 우러르고 부처의 말을 칭양稱揚하면서 바로 추앙하며 말하기를 “도가 여기에 있느니라, 도가 여기에 있느니라.”라고 하지만, 이는 내내 말로만 떠드는 것에 불과하니, 어찌 능히 마음으로 전하는 본질을 알 수 있겠는가. 대사와 같은 사람은 무주無住215)를 종지로 삼고 불사不斯를 이李로 삼아216) 품성이 순박 고아하고 마음 바탕이 부드러우며 순박하여, 밖으로는 지둔支遁217)과 같은 교유가 없고 안으로는 도안道安218)과 같은 의탁이 없으니, 그 하상발河上發219) 이른바 ‘훌륭한 덕을 갖추고도 어리석은 듯하고, 깊이 간직하여 비어있는 것 같이 한다220)’는 것은 대사가 참으로 그런 사람이다. 상민 스님이 찾아와서 내 글로 그 사적을 기록하게 하니, 대사는 비록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평론한 것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 공허한 해탈의 경지를 기록하여 타산의 한 조각 돌에 의탁하는 것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마침내 사양하지 않고 탑명塔銘을 쓴다. 명에 이른다.
惟師之道卓乎羣釋也 대사의 도는 여러 스님들 중에 우뚝하여라
天錫妙悟告自得也 하늘이 오묘한 깨달음을 주셨으니 자득을 고하였네
衣鉢傳承粵自霽月也 의발을 계승하였으니 바로 제월霽月 대사로부터였다네
睠彼華岳乃莊眞骨也 저 화산華山을 바라보니 바로 진신 불골을 모신 곳이라네
來予何從白牙先覩也 나에게 온 것은 무엇을 따라서였나, 하얀 상아를 먼저 보았다네
去予何向瑞雲森列也 나를 떠나 어디로 향하나, 상서로운 구름이 가득한 곳이라네
處處其徒▣表▣迄也 곳곳마다 그 무리들이 ▣…▣…
刻此銘章惟石不滅也 이 탑명의 글을 새기니 오직 비석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경년庚年 8월 진양晉陽 후인 유응운柳應運 짓다.
관란산인觀瀾散人 낭선군朗善君 쓰다.
산인山人 상민尙敏이 일을 진행하다.
6-4. 어필御筆(광덕사 소장 세조 어필)교지敎旨
충청도忠淸道 천안天安의 개천사開天寺는, 감사와 수령에게 일찍이 전지傳旨를 내렸으니, 더욱 완호完護221)하고 잡역을 면제하라. 국왕國王.
천순天順 원년(1457, 세조3) 8월 10일.
교지
충청도 천안의 개천사는, -
0012_0016a_a_01L家。辛亥而入化。其亦異哉。鳴 [229] 呼。佛敎之弊久矣。自宗門之不振。俯仰其容。抑
0012_0016a_a_02L揚其音。即推之曰。道在是。道在是。此不過口耳之長。奚能知傳心之本也。若
0012_0016a_a_03L師者以無住爲宗。以不斯爲李。識性淳雅。質心柔拙。外無支遁之交。內無道
0012_0016a_a_04L安之托。則其河上發。所謂盛德若愚。深藏若虛者。師眞其人也。師眞其人也。
0012_0016a_a_05L尙敏來謁。余文俾記其蹟。師雖己 [230] 逝。詮論猶在。記空虛解脫之迄。托他山一
0012_0016a_a_06L片之石。鳥 [231] 可己 [232] 也。遂不辭而銘之。銘曰。
0012_0016a_a_07L惟師之道。卓乎羣釋也。天錫妙悟。告自得也。 [233] 衣鉢傳承。粵自霽月也。睠彼華
0012_0016a_a_08L岳。乃莊 [234] 眞骨也。來予何從。白牙先覩也。去予何向。瑞雲森列也。處處其徒。▣
0012_0016a_a_09L表▣迄也。刻此銘章。惟石不滅也。
0012_0016a_a_10L歲上章仲秋晋陽浚 [235] 人柳應運 撰。
0012_0016a_a_11L觀瀾散人朗善君 書。
0012_0016a_a_12L山人尙敏經營。
0012_0016a_a_13L
0012_0016a_a_14L御 筆(廣德寺所藏 世祖御筆)
0012_0016a_a_15L敎旨。
0012_0016a_a_16L忠淸道天安地廣德
0012_0016a_a_17L寺乙良。監司守令曾
0012_0016a_a_18L下傳旨。更尤加完
0012_0016a_a_19L護。雜役減除者。
0012_0016a_a_20L國王。
0012_0016a_a_21L天順元年八月初十日。
0012_0016a_a_22L敎旨
0012_0016a_a_23L忠淸道天安地開天寺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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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6b_a_01L감사와 수령에게 이미 전지를 내렸으니, 더욱 잘 살펴서 완호하고 잡역을 면제하라. 국왕.
천순 원년 8월 10일.
6-5. 광덕사廣德寺 감세기減稅記나타남이 있으면 반드시 감추어짐이 있고 베풂이 있으면 반드시 보답이 있는 것은 그 이치가 분명하다. 기미년(1859, 철종10) 겨울에 군郡의 건목乾目222)이 밤에 남몰래 가서 시주施主에게 나아가 토지의 세금을 견감蠲減해 주고, 만약 저승의 부절符節이 이르면 정토淨土에서 각각 한 사람을 헤아려 ▣ 한 지 또한 여러 해가 되었다. 아, 그 베풂은 선하고 그 보답은 편안하니, 좋지 않은가. 일이 본 책에 실려 있기 때문에 우선 교번敎繁223)하고, 단지 그 성함을 써서 아래에 싣는다.
동치同治 11년 임신(1872, 고종11) 8월 상순.
연봉練鳳 문인 누성累星은 삼가 기록하다.
계감질稧減秩
통덕랑通德郞 오명제吳命濟. 김영석金永錫. 맹도권孟道權. 동화同和 김하석金夏錫. 오윤제吳允濟. 순장巡將 맹치권孟致權. 맹의권孟義權. 김우석金禹錫. -
0012_0016b_a_01L良。監司守令曾下傳旨。
0012_0016b_a_02L更審尤加完護。雜役滅
0012_0016b_a_03L除者。
0012_0016b_a_04L國王。
0012_0016b_a_05L天順元年八月初十日。
0012_0016b_a_06L
0012_0016b_a_07L廣德寺滅稅記
0012_0016b_a_08L
0012_0016b_a_09L有現必有隱。有施必有報。其理審矣。▣ [236] 在己未冬。郡之乾目爲冥行。就檀越。
0012_0016b_a_10L田土蠲稅備齊 [237] 。若符到則各度其一人於淨界▣。亦有年耳。噫。其施也善。其
0012_0016b_a_11L報也安。得不善哉。事在本册。故姑敎繁。止書其姓銜。載于左。
0012_0016b_a_12L同治十一年壬申桂月上院 [238] 。
0012_0016b_a_13L練鳳門人累星謹識。
0012_0016b_a_14L稧減秩
0012_0016b_a_15L通德郞吳命濟
0012_0016b_a_16L金永錫 孟敬述
0012_0016b_a_17L孟道權 金濟民 李謙植
0012_0016b_a_18L同和金夏錫 吳榮臣 田世豊
0012_0016b_a_19L吳允濟 孟弘述 鄭奎瓚
0012_0016b_a_20L巡將孟致權 吳觀植 田後植
0012_0016b_a_21L孟義權 金祿潤 徐光賢
0012_0016b_a_22L金禹錫 徐永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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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7a_a_01L맹효권孟孝權. 절충장군折衝將軍 김찬석金瓚錫. 오학제吳學濟. 서명권徐命權. 김명석金命錫. 서재권徐載權. 맹홍권孟洪權. 김기석金畸錫. 오영식吳榮植. 유민태柳民泰. 오영주吳榮周. 장준필張俊弼. 맹한권孟漢權. 맹경술孟敬述. 김제민金濟民. 오영신吳榮臣. 맹홍술孟弘述. 오관식吳觀植. 김녹윤金祿潤. 서영권徐永權. 맹겸술孟謙述. 김제장金濟將. 김제룡金濟龍. 맹유술孟有述. 맹기원孟起遠. 전경식田畊植. 방재응方在應. 안영택安永宅. 홍규연洪奎淵. 한홍준韓弘俊. 이순식李淳植. 방재형方在亨. 이겸식李謙植. 전세풍田世豊. 정규찬鄭奎瓚. 전후식田後植. 서광현徐光賢.
7.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 사적事蹟최승도인最勝道人 초월初月 동조東照224)하늘과 땅이 처음 갈라지고 만물이 이에 힘입어 생겨났는데 사람이 그 가운데 영장靈長이나 일상 생활에서는 오히려 미혹되므로 깨달음의 언덕에서 생사를 겪고 안락한 고향에서 고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게 되었다. 자기 머리가 없어졌다고 여겨 미쳐서 달아난 연야달다演若達多225)가 이르는 곳마다 미치광이 노릇을 심하게 하게 된 것도 이것 때문이고, 어버이를 떠나 빈궁하게 살아가던 자식이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절룩거리고 비틀거리게 된 것도 이것 때문이다.천륜의 도리로 서로 만나 여유 있고 침착하게 감흥을 일으킨 것을 방편으로 부처라 부르고, 자비로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소생하도록 깨우친 것을 이름을 빌려 법이라 하는 것이다. 육화六和와 삼심三心으로 사명을 은밀히 인가印可한 사람이라야 승僧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를 알 것이고, 사찰을 창설하여 불사佛事를 베푼 사람이라야 절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능히 돌아볼 수 있다.처음에 이치를 들어 먼저 하늘, 땅, 사람의 득실을 밝히고 뒤에 삼보三寶의 유래를 설명하였다.부처님께서 처음 인도에서 불법을 펼 때 빈비사라왕의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서역 사찰의 시초가 되었고, 불법이 뒤에 조선朝鮮에 현신했을 때 아도화상阿度和尙의 도리사桃李寺가 한반도 사찰의 시조가 되었으며, 전법傳法하여 온 것은 정법안장正法眼藏226)이며, 의식儀式의 궤범으로는 불경과 불상과 가사와 발우이다.다음으로 종지를 밝히되 먼저 부처님이 이곳과 저곳을 교화하신 것을 밝혔다.세월을 따라 흥하고 쇠퇴하여 도태된 것도 있어서, 살펴보니 15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40여 개의 종파로 변하였다. 그때의 불교를 회상해 보니 -
0012_0017a_a_01L孟孝權 孟謙述
0012_0017a_a_02L折衝金瓚錫 金濟將
0012_0017a_a_03L吳學濟 金濟龍
0012_0017a_a_04L徐命權 孟有述
0012_0017a_a_05L金命錫 孟起遠
0012_0017a_a_06L徐載權 田畊植
0012_0017a_a_07L孟洪權 方在應
0012_0017a_a_08L金畸錫 安永宅
0012_0017a_a_09L吳榮植 洪奎淵
0012_0017a_a_10L柳民泰 韓弘俊
0012_0017a_a_11L吳榮周 李淳植
0012_0017a_a_12L張俊弼 方在亨
0012_0017a_a_13L孟漢權
0012_0017a_a_14L
0012_0017a_a_15L鷄龍山東鶴寺事蹟
0012_0017a_a_16L
0012_0017a_a_17L最勝道人初月東照
0012_0017a_a_18L天地肇判。萬物資生。人長其中。日用楢 [239] 迷。見 [240] 生孔 [241] 於圓窮 [242] 之 [243] 。味 [244] 告勞於安樂
0012_0017a_a_19L之鄕。迷 [245] 演若。到處顚托 [246] 之玆甚。捨爻 [247] 窮子。即自 [248] 而無狀。天倫所 [249] 。油然興感者。
0012_0017a_a_20L權呼之爲佛。慈緊所典。覺爾甦 [250] 者。乃▼(亻+改) [251] 名之爲法。六和之 [252] 心。密印使命者。知
0012_0017a_a_21L僧之所自來。創設伽 [253] 。施作佛事者。顧寺之能由起。初擧理而先明三歲之來得矣 [254] 。後陳三寶之由 [255] 。佛
0012_0017a_a_22L而 [256] 着平 [257] 於印度嚬婆之竹林。爲月邦伽藍之始。法後現身 [258] 朝鮮。度 [259] 之 [260] 李。爲▼(㨷) [261]
0012_0017a_a_23L寺系 [262] 之祖。所傳法來者。曰正法眼藏。軌範儀式者。曰經像衣鉢。明佛化之先宗而次明彼
0012_0017a_a_24L此 [263] 隨時興替。有斯淘汰。案史。年 [264] 五百載。換宗四十 [265] 派。迴想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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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7b_a_01L왕과 신하, 왕자가 출가한 일이 있고, 국사ㆍ왕사의 무리를 배출하였으니, 4대 강과 5대 산이 모두가 부처요, 구산九山 선문禪門의 도량과 삼천세계三千世界 모두가 승려여서 우담바라 꽃이 핀 성지이자 유현 심오한 법풍法風을 드날리는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즐거운 음악과 수놓은 비단이 길거리에 줄을 잇고 그림 새긴 누대와 보배로운 전각이 경향 각지에서 이어지니 만방에 문화를 자랑하고 온 천하에 기예에 뛰어난 장인들을 실어 보냈다.아아,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는 고유한 밀인密印의 주문이 도살되다시피 없어지고, 장엄한 불상과 탑들도 파괴되었으니, 불일佛日이 지고 보리수가 꺾여 버렸다. 겨우 벽계도사碧溪道士만이 남아 그 사이에서 희생의 사명을 발명할 수 있었는데, 그의 법맥을 상고해 보니 임제파臨濟派였다.다음으로 종파의 변화에 응함을 밝혔으니 종지를 밝히는 가운데의 두 번째에 해당한다.대개 이와 같은 일을 당하기 전에는 사찰이 응당 변하여 천만이나 될 만큼 많았으나, 단지 일개 독거사禿居士227)만이 그 법인法印을 은밀히 전하여 900여 개나 되는 작은 깃발을 올리게 하였으니, 아직 표범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나 손가락 하나 정도는 감당할 만할 것이다.세 번째로, 불인佛印의 다행함을 찬탄하였으니, 종지를 밝히는 것 가운데의 세 번째에 해당한다. 독거사는 벽계도사를 가리키는 것이니, 그는 당시의 사태沙汰 때문에 고자동高者洞으로 피하여 머리를 기르고 처자를 두었으므로 ‘대머리 거사’라고 한 것이다. 달마를 가리켜서 ‘늙은 오랑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기록한 사람이 쉽게 쓴 것을 가지고 괴이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학사鶴寺는 천만이 스러지는 가운데 선택된 행운아이자 저 1500여 년 오랜 역사 속에서 으뜸으로 자리한 역사가이다. 많은 책들을 더듬어 보건대, 모두들 골짜기에 학암鶴巖이 있다고 쓰여 있기 때문에 동학사東鶴寺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참고하고 고증하여 스스로 짐작하건대, 실상은 동쪽 언덕에 학이 깃든 나무가 있기 때문에 서학사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것이다.세 번째로 절에 대해 밝히되 처음에는 절의 다행함과 이름의 영예로움을 서술하였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로 종지를 밝힌 차례와 대비시켰다. 처음에는 동학사 절의 다행스러움과 이름의 영예로움을 서술했다. 서학이라고 한 것은, 절을 동학사라고 이름 붙인 것이 그 바위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라 하나 실물을 더듬어 보니 말거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생각하고 관찰해 본다면 부처님께서 학수鶴樹228)에서 열반에 드셨지만 이적은 서역에 있고, 이 절은 동쪽 언덕에 자리하여 부처님의 교화를 전하므로 동학이라고 한 것 같다. 히말라야가 서양에 있으므로 히말라야의 설산처럼 동방에도 반드시 설산이라 부를 만한 곳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위치는 반도의 중심 요지인 계룡산의 복 받은 땅과 금강의 빼어난 모래섬에 자리하였으니 참으로 남섬부주의 명소에서도 귀한 곳이다. 장대한 남매탑이며, 왕과 신하를 모신 왕의 어묘이며, 봄에는 꽃이 웃음을 머금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공양 올리니, 이곳이야말로 어쩌면 신령한 산 중에서도 더욱 빼어난 곳이리라. 가을에는 단풍이 짙게 물들어 단종 대왕의 어포御袍를 울긋불긋 비춘다. 지금도 남몰래 옛날의 슬픔이 이는 듯 은선폭포는 벼랑 끝에 매달려 울고 맑은 여울은 검은 바위들을 씻어낸다. 여름에는 구름이, 겨울에는 눈이 번갈아 치달려서 빛을 다투어 부처님의 6년 고행을 사모하는 듯하니, 스스로 기뻐할 만한 한가한 일임을 증명해준다.신도新都는 앞에 있어 곧바로 정씨를 눌러 진압할 것을 생각게 하는 보배로운 곳인 네 절 가운데 하나이다. 능히 갑사甲寺나 신원사新元寺의 피안에 견줄 만하다. 삼불봉三佛峯은 높은 바위이면서도 희고 오송대五松臺는 허공으로부터 물이 절로 흐른다. 이 때문에 낡은 것이 가고 새 것이 오는 변화의 이치를 벗 삼아 무상함과 진상함, 슬픔과 기쁨이 번갈아 이르는 줄을 알겠다.다음으로 위치와 경치를 들었다. 장대한 탑이란 당唐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연간에 당나라 승려 상원上願 조사祖師가 은혜를 갚으려는 호랑이 때문에 미인을 얻게 되어 남매를 맺고 함께 도를 닦으니 돌아가신 뒤에 제자 화의 화상이 그 분들을 위해 탑을 쌓았는데, 현재 동학사에서 제일 좋은 곳에 있다. 다만 두 탑의 크기가 같지는 않다. 어포란 매월당 김시습이 엄흥도 등과 더불어 단종의 사당을 마련하여 영혼을 불러 절 곁에서 제사하고, 임금의 제삿날마다 어포를 걸어 놓고 통곡하기를 해마다 정례화하였다고 한다. 눌러 진압한다는 것은 한양에서는 이씨를 친다는 벌리촌伐李村이 있고 계룡산에도 정씨를 누른다는 압정사가 있다는 것이다. 네 절이란 갑사, 신원사, 용화사, 동학사이다.먼저 띠풀을 베어 띳집을 지은 이가 회의懷義 화상和尙이니, 이때가 신라 성덕왕聖德王 갑자년(724, 왕23)이다.회의 화상은 상원 조사의 제자로 이 절을 지었으나 그 분의 생존 연대를 알 수 없으므로 상원 조사가 처음 창건한 연대만을 지적하였다.그 뒤를 이은 이가 도선道詵 國師로서 고려 태조의 원당願堂으로 삼으니 이때가 후당後唐 장종莊宗 동광同光 연간이다.어떤 사람은 당나라 대순大順 원년 경술이라 하나 자세하지 않다. 불기佛紀로는 1918년이다. 후진後晉 천복天福 2년 병신(936)에 신라 대승관大承官 유차달柳車達이 초혼각을 마련하여 -
0012_0017b_a_01L陟 [266] 之佛敎。王臣王子而出家。國師王師之輩產。四瀆五岳皆爲佛。九山三年 [267]
0012_0017b_a_02L是僧。開曇花之聖地。扇玄風之炅 [268] 所。樂音錦繡之訟 [269] 街 [270] 寶 [271] 。寶閣方 [272] 聯產 [273] 東 [274] 鄕。誇
0012_0017b_a_03L文化於榮邦。輸藝工於四海。鳴 [275] 呼。至若漢朝。屠 [276] 國 [277] 有的密印呪。破壞莊嚴的
0012_0017b_a_04L像塔。佛日告滅。覺 [278] 。僅留碧溪道士。發剛 [279] 間生的使命者。乃考其法脈。惟 [280] 濟派
0012_0017b_a_05L也。次明宗派之應變。明宗中當六 [281]盖當如斯之前。寺 [282] 應爲繁榮。而子 [283] 之多。只
0012_0017b_a_06L得一介秀居士。密傳其法印。有九百之小幢。未全豹。當 [284] 一指。三嘆佛印之 [285] 。當 [286] 明家 [287] 中當於三。
0012_0017b_a_07L禿居士碧溪道士。以其當時沙汰。避於高者洞。長髮畜妻。故作云禿居士。達 [288] 摩云胡 [289] 之也 [290] 。莫恠 [291] 記者之易 [292] 。顧 [293] 寺也。挑其年 [294] 萬絕滅之
0012_0017b_a_08L寵 [295] 。冠伊子 [296] 五久 [297] 的歷史家。整 [298] 方册。皆以 [299] 有鶴巖。故題頗 [300] 東鶴。參扣自龜。實則
0012_0017b_a_09L東丘鶴捿 [301] 。故命名。非西鶴。三明寺。而初述幸寺榮名。此三對於明家 [302] 之次 [303] 。始述東鶴寺 [304] 榮名。西鶴寺 [305] 名東鶴者。所 [306] 其巖形云。而探甚寶 [307] 物。
0012_0017b_a_10L則 [308] 道也。以余 [309] 觀了 [310] 。佛旣入滅於鶴捿 [311] 。而此在西域。而是寺在於東丘。傳佛化。故小 [312] 得云 [313]
0012_0017b_a_11L東鶴。杜威之西賢雪地。而東方必有東賢當 [314] 地云也。在 [315] 威之在於西洋故耳。位在於半之重要。之 [316] 福地。錦江之勝 [317] 。實
0012_0017b_a_12L貴於贍部三 [318] 名 [319] 。男妹之偉塔。王臣之御廟。花 [320] 而笑。供佛陀之 [321] 。此處何殊靈山。
0012_0017b_a_13L秋楓而濃。照御 [322] 之斑斑。今懷暗暗 [323] 昔悲。隱瀑鳴懸崕。淸湍漱幽石。夏雲 [324] 冬雪。
0012_0017b_a_14L迭馳而爭光。可慕六載之苦行。而只證自 [325] 之逸事。新都而前。伐 [326] 壓之珍所。四
0012_0017b_a_15L寺之一。能對甲新之彼岸。三佛峰高巖愈白。台 [327] 空水自 [328] 。因知友我之道。代謝
0012_0017b_a_16L之理。無常 [329] 眞常。悲 [330] 交臻。次擧位日直 [331] 景槪。▼(亻+常) [332] 塔。唐玄宗開元年 [333] 。唐僧上 [334] 祖師。以有報恩 [335] 。得過 [336] 美人。爲 [337] 男妹。同爲修道。化有移 [338] 。其高 [339] 懷我 [340] 和尙。
0012_0017b_a_17L爲之 [341] 塔。現在干 [342] 東鶴之一 [343] 。但雙塔大小 [344] 齋 [345] 。御 [346] 。金梅月堂 [347] 嚴興道 [348] 。設端廟招魂。祭干 [349] 寺舷。而於上忌 [350] 。掛御袍而慟天。每年爲例故云耳。伐壓。漢有伐李村。
0012_0017b_a_18L有 [351] 壓鄭寺。四寺。甲寺ㆍ新元ㆍ龍 [352] 及此寺。先爲作茅者。曰懷我 [353] 和尙。是在於新羅聖之 [354] 甲子。懷 [355] 高 [356] 。而剏此 [357] 。實 [358]
0012_0017b_a_19L知其年代。故 [359] 願寺初剏之年代。繼 [360] 者道詵國師。而爲高麗太祖願堂。此在後唐莊宗風 [361] 光中。
0012_0017b_a_20L云 [362] 。唐大順元年庚戌。未詳。佛紀一九一八。後晋天福二年丙申。新羅大承官柳車達。設招魂所。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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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8a_a_01L신라 시조와 박충신朴忠臣 등을 제사하고 사당을 세운다.고려 초에 도선 국사가 중창하고 신라 대승관이 사당을 세운 것이 세 번째 창건이라 하나 이것은 맞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책 속에 기록된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비록 그것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의심스러운 바가 없을 수 없다.사당을 지어 삼은三隱의 혼을 불러 제사하고 또 단종과 삼상三相229) 육신 등을 제사했기 때문에 세조 대왕이 잠시 수레를 멈추었고, 고종 황제는 편액을 내리었다.삼은은 포은圃隱, 목은牧隱, 야은冶隱이다. 야은은 길재吉再인데 영월影月 대사와 함께 혼을 불러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을 제사하니 이 뒤로부터 삼은각三隱閣이 되었다. 단종의 사당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육신은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이개李塏, 유응부兪應孚이다. 세조 대왕께서는 김시습이 초혼제를 지낸 다음해인 정축년에 잠시 어가를 멈추게 하였는데, 구름이 일 듯 감회가 일어 ≺병자원기丙子寃記≻를 써서 내리고, 다음해에 25결結을 면세해 주고 주변 20리 둘레를 사패지賜牌紙로 내려 제사 지낼 전각을 세워 초혼각이라고 하였다. 사액이란 광무光武 8년 갑진년에 고종 황제가 숙모전肅慕殿이라고 사액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초혼제 등의 일을 간략하게 적었다.원통함이 저절로 풀리고 황제의 은총을 받은 것은 사람의 하는 일과 혼신의 공이 그윽히 부합한 것이며, 하늘의 은택과 땅의 이치가 함께 모진상하였기 때문이리라. 부처님의 교화는 출세간을 향해 힘쓰는 것이고 유가의 술법은 그때마다의 사정에 들어맞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른 것이지만, 결국 멋대로 자라는 쑥과 곧게 자라는 삼대처럼 서로 도와, 지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불상과 탑을 보존하고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혼령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었으니, 입술과 치아 사이나 광대뼈와 잇몸 사이처럼 편안하게 되었다.그러나 정종 19년(불기2811년 을사 해, 정조 9년으로 1785년이다.)에 갑자기 암울한 변(화재를 말함)을 만나 남은 것 하나 없이 다 타버리고 빈터만 남았었다. 31년 만에 금봉錦峰 상인上人이 다행히 중건하였으나 협소하여 무릎조차 펴기 어려웠다. 아아, 우리 불교 집안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세 번째다. 도리로써 창건, 중수한 것을 감탄했으니 이것은 정종 10년 이전에 해당한다. 네 번째로 운수가 막힌 것을 한탄했으니 이것은 정종 19년 이후에 해당한다. 생각건대 회의, 도선, 유승관柳承官 등은 모두가 그 도리를 잊지 않고 스승을 위하고 임금을 위해서 응당 이와 같이 했으니 아, 장한 일이다. 금봉 상인은 이 절의 승려로서 이름은 인월印月이다. 이웃 노인 조인성趙仁性에게 들으니 이 절이 당한 재앙은 화재만이 아니어서, 심지어 산림마저 다 빼앗겨 열두 번이나 소송하여 마침내 승소하여 중건했으나 아직도 다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탄식이 일게 하였다. 유가와 불가가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모를 일이다.갑자년(1864)을 맞아서는 만화萬化의 아름다운 자취에 힘입어 옛 것은 윤이 나고 집은 산수에 어울리고 불심은 하늘의 뜻과 통하였다. 우운友雲과 호봉虎峰이 가까이서 돕고 남화南化와 운구雲句는 멀리에서 받쳐주어 위로는 궁궐부터 아래로는 뭇 선비에 이르기까지 무주상無住常 보시가 인연 없이 왔으니, 일이란 사람을 기다리고 때를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법인가 보다.다섯번 째로 인연에 맞추어 중창하여 떨친 것을 찬탄하였다. 만화는 금강산 승려로 그 이름은 보선인데, 화주를 권하는 문중의 우두머리이자 뛰어난 선지식이다. 우운은 제자고 운구, 남화, 호봉은 모두 만화와 법 형제간이다. 용암과 호봉의 두 족자가 영각에 있는데 추사가 글씨를 썼고 이들은 만화와의 인연 때문에 왔다. 용암은 만화의 옹사이기 때문에 족자가 있고, 만화의 초상도 영각 안에 있다.하늘의 도리는 돌고 돌아서 가고 오지 아니함이 없고 인간의 도리는 정의로워서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다. 본래 없는 것이면서도 지금은 있고 지금은 있으면서도 본래 없는 것이, 마치 환등이 돌아가며 비추거나 보배 거울들이 서로 비추는 것과 같다.여섯 번째로 이치에 맞게 극복함을 찬탄하였다. 이렇게 도를 깨닫게 되면 한결같이 힘쓰게 되고 이렇게 미망의 구름이 없다면 다같이 나아가게 되어 해가 지면 달이 인도하고 산이 없는 밑바닥에서는 들판이 그것을 잇는 것과 같으리라.아아, 위대하구나. 부처님의 교화를 돌이켜 보건대 방편이면서 실법이라. 그러므로 자성이 둘이 아니며 우주와 부처가 일체임을 알겠도다. 시설하신 법도 거짓이면서 참인, 보배를 간직한 것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어서 궁자와 아버지의 아름다운 재회를 칭송할지어다. 승은 여래의 밀인을 목숨 걸고 전하는 것으로서 사명을 삼는 자로서 마음의 구슬을 쥐고 불사를 베푸는 것이며, 절이란 불사를 베푸는 장소로서 경전과 불상을 받들면서 뭇 중생들의 병을 구제하는 곳이다. 그런 까닭으로 신귀神鬼가 힘입을 만하고, 그로 인하여 세운世運이 평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생사의 미운迷運이 문득 억겁의 꿈 밖으로 벗어나고, 원만하고 적정한 도를 깨달아 거리낌 없이 큰 깨달음으로 시원하게 통하여, 인문과 물화는 진화하며, 지리와 천시는 -
0012_0018a_a_01L新羅始祖ㆍ朴忠臣等。而迂 [363] 祠高麗初。道詵爲重剏。而新羅大承官之 [364] 祠爲三剏。此似不中。而方冊中所記如是。故雖 [365] 存之。不無 [366] 。
0012_0018a_a_02L因諸迂 [367] 祠。而亦得招祭之 [368] 。文 [369] 爲祭端廟及其之 [370] 相六臣等。而世祖 [371] 。高宗賜額。
0012_0018a_a_03L三隱。圃隱ㆍ牧隱ㆍ冶隱。冶隱卽吉再。與影月大師設招魂。祭圃隱鄭夢周ㆍ牧隱李穡。自此而後。爲三隱閣也。端廟如前註。而六臣。成三問ㆍ朴彭年ㆍ河緯地ㆍ柳成源ㆍ李塏ㆍ兪應孚。世祖金梅月設
0012_0018a_a_04L招祭之翌年丁丑 [372] 。油 [373] 興感。書下丙子寃記。其翌年。賜結二十五。而賜俾二十周廻。建閣以祭之。曰招魂閣。賜額光武八年甲 [374] 。高宗皇帝賜額肅慕殿。此略記及招魂祭等事也。
0012_0018a_a_05L自爲伸寃。因爾蒙恩。人事神功之暗符。天澤地理而共奏。一焉 [375] 佛化。而 [376] 驟方
0012_0018a_a_06L外。儒 [377] 術。而希冀時中。雖似水油之相異。終 [378] 蓬麻之互助。保像塔於艱之餘。解 [379]
0012_0018a_a_07L寃 [380] 之中。固 [381] 。輔車之 [382] 。然當於正宗十九年(佛紀二八一 [383] 年)乙巳。奄遭鬱攸之
0012_0018a_a_08L變。燒蕩無餘。只有空墟者。世 [384] 載。有錦峰上人。爲 [385] 。挾難容勝 [386] 矣。鳴 [387] 呼。斯門一何
0012_0018a_a_09L至此。三嘆剏 [388] 以義。此當於正宗十九年以上。四歎運否。剏艱當於正宗十九年以下。盖懷義道詵且柳承官等。皆不忘其義。爲師爲 [389] 。當應如是 [390] 。錦峰當寺僧侣。
0012_0018a_a_10L印月其名。聞諸隣趙仁性。此寺當其 [391] 。非有災餘。至於山林。被 [392] 奪。十二次訴訟。竟得勝利。乃爲 [393] 者。亦爲未盡。故令予呼嗚吁。未知儒佛一至於斯。
0012_0018a_a_11L當於甲子。藉 [394] 化主茅 [395] 踪。潤舊士 [396] 新。堂虛 [397] 水之 [398] 。佛心天意而通。友雲ㆍ虎峰近助。
0012_0018a_a_12L南化ㆍ雲句遠護。上自宮掖。下至士庶。無住之施。無緣而來。待人之事。待時而
0012_0018a_a_13L成。五嘆緣調剏振。萬化金剛山僧。晋善其名。勸化頭門。一善知識。友雲是高足。雲句南化虛峰。皆萬化之 [399] 也。龍巖ㆍ虎峰兩簇子。在於 [400] 閣者。是秋史之筆也。而緣於萬化
0012_0018a_a_14L而來矣。龍巖是曾翁師故也。
0012_0018a_a_15L萬化影在中耳。天道循環。無徃不復。人道正義。無事不成。本無而今有。而 [401] 有 [402] 無。若
0012_0018a_a_16L幻燈之 [403] 照。寶 [404] 鏡之交暎。交 [405] 嘆契現 [406] 復。有斯悟道而一勵。無此迷雲而百進。有日
0012_0018a_a_17L而暮 [407] 。導之以月。無 [408] 而底 [409] 。繼之以野。於戯偉裁 [410] 。顧以佛化。是權而實。仍知自性
0012_0018a_a_18L之不 [411] 。天佛一體。法設法 [412] 是假而眞。以頌寶藏之 [413] 如父子嘉 [414] 。是密印使命者。握
0012_0018a_a_19L心珠而施佛事。爲 [415] 施作佛事所。奉經像而導群 [416] 。以故 [417] 鬼之 [418] 。因爲世 [419] 之平復。生 [420]
0012_0018a_a_20L迷雲。消 [421] 於 [422] 夢之 [423] 。悟 [424] 道。之 [425] 坦通於大覺之中。人文與物貨而進化。地理與天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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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8b_a_01L크게 형통하는 것이다. 제비의 소리와 앵무새의 소리는 비슷하면서도 날갯짓하는 것은 다르지만, 바람을 부르는 호랑이와 구름을 부르는 용은 몹시 다르면서도 돌아가는 곳은 같은 격이다.일곱 번째로 그윽히 큰 방편을 행함을 밝혔다. 비로소 천성의 심지와 불도의 법륜을 얻었으니 세간과 출세간에 남김없이 승僧과 비승非僧이 하나로 화합하여, 이미 여러 종파의 당색이 없어지고 최상의 가풍으로 자유자재하여 평지에서 물결이 일게 하고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치게 하였다.학사鶴寺는 이러한 종지를 연구하는 도량으로, 지금 공부하고 있는 승니僧尼 거의가 모두 그 후예들이다. 이밖의 경우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절은 남쪽을 향하고 앉아 총면적이 300여 정보나 되는 산림 한가운데 자리하여 그 경관이 몹시 빼어나다. 미타彌陀와 길상吉祥 두 암자는 비구니가 수행하고 있는 곳이고, 문수文殊, 실상實相, 적멸寂滅, 정각正覺, 상원上願, 오송五松 등의 암자는 그 보존이 다한지라 은하수처럼 펼쳐진 가람 가운데 단지 한 둘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다섯 번에 걸쳐 중창했다 하지만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일곱 번째로 종지의 극체와 절의 요체에 대해 밝혔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평지에 물결이 인다는 것은 임제종의 종지다. 이미 당색을 띤 40여 개의 종파가 없어지고 이 종만이 독보적 존재이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조선의 불교는 여기에서 그칠 따름이다. 아직까지도 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망령되어 떠드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이밖의 경우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고 한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 코 고는 소리 같다고 할 만하다. 다섯 번의 중창이란 첫 번째는 회의가, 두 번째엔 도선이, 세 번째엔 유승관이, 네 번째엔 금봉이, 다섯 번째는 만화가 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책을 근거로 하여 말한 것이다. 이치로 유추해 보자면 다섯 번만이 아닐 것인데 다만 역사가들이 다 말하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지금 기사년으로부터 성덕왕 갑자년에 이르기까지 1256년이지만, 앞에서 1500년이라 말한 것은 불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를 말한 것이니 의심하지 말라.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일이 쉬우냐 어려우냐가 달려 있다. 진정 절과 암자의 흥망성쇠가 인재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으니, 국가의 도리를 살펴보더라도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많은 글을 동쪽 곳간에 쌓던 나머지 문득 가야伽耶 같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비록 그러나 학수鶴樹의 시듦과 영화로움은 진실로 우리 큰 성인께서도 분명히 아셨던 것이니, 이곳의 흥망성쇠로써 저곳의 시들고 피어남을 살펴본다면 신진대사이면서 파란이 번복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동과 서, 예와 이제의 존재하고 망하는 경위를 어찌하리오.여덟 번째로 이치가 어긋난 것과 바른 것, 이른 것이 풍요함과 박함을 밝혔다. 실상암은 돌아가신 동은東隱 강백께서 창건하신 곳인데 만우萬愚 대사께서 허물어진 것을 복원하였고 정각암도 그런 길을 걸었으므로 말하였다. 가야란 인도에 있는 커다란 탑으로 불제자들이 수호해야 마땅한데도 다른 교도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여러 번 상소했으나 해결되지 않았다. 이것이 이치에 어긋나는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에 두어야 할 일이다. 학수란 네 쌍으로 된 여덟 그루의 나무이다. 반은 시들고 반은 피어나서 항상함이 없는 가운데 진실로 항상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치로써 앉아 저 무상함을 관찰하면 이곳의 시들고 피어남도 헤아릴 수 없지 않을 것이다. 대개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는 성인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어느날 주지인 임연성林然性 상인이 나에게 사적을 써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교연皎然을 스승으로 모시고 비야리성의 유마거사를 본받아 『금강경金剛經』 공부에 힘썼는데, 상인의 그 뜻 때문에 내가 부득이해서 먹과 붓을 빌려 이와 같이 본뜨는 시늉을 하였다.아홉 번째로 보통 일이 아닌 비상한 부탁에 응했음을 밝혔다. 이에 명銘을 지어 이른다.
三才三寶一理一事 삼재와 삼보는 한 가지 이치에 한 가지 일이니
初後應變改換其數 처음과 뒤는 변화에 따라 그 운수가 바뀐다네
單傳是宗寺幸幾存 이 종파만이 홀로 전하니 절은 다행히 몇이나 남았는가
位委景勝義重事榮 명승지에 자리하여 대의는 중하고 일은 번성하니
佛儒一道興替同躔 유가와 불가가 한 도리로 흥망성쇠를 함께 밟았다네
旣賴師慈宜有王廟 이미 대사의 자비에 힘입어 마땅히 왕의 사당을 두었으니
循環亨泰往復利貞 순환하여 크게 형통하니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왕복한다네
存亡易難波濤翻覆 생존과 사망, 쉽고 어려움은 파도처럼 반복되니
萬時其使一時伊造 어느 때나 부리기도 하고 일시에 만들기도 하지
金剛牢請爻像響殷 금강같이 굳게 청하여 우렁찬 소리로 표현해 내었으니
千古龜鏡一参諸楣 천고의 귀감이라 여러 문미門楣의 기문記文을 참고하여 적었네
네 번째로 명銘으로 끝맺었다. 여러 문미門楣는 기존의 여러 기문記文들을 가리킨다. 조한익趙漢益, 임필수林弼洙, 김응화金應化, 정재룡鄭在龍, 보봉량寶峰良 등의 기문이고, 그 외에도 책들이 있었는데 모두 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서로 말하는 것이 같지 않고 번거롭고 복잡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에 상인의 요청에 따라 이와 같이 참고하는 형식으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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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8b_a_01L享泰。燕音鶯語之相似而 [426] 翼殊。虎風龍雲之却異而歸趣同。七明暗 [427] 大方。始得
0012_0018b_a_02L性天心地。佛道法輪。世出世而無 [428] 。僧非僧而一和。旣無黨色的 [429] 宗。自有最上 [430]
0012_0018b_a_03L家風。能使平地而波濤。可見靑天之霹靂。顧 [431] 寺也。動 [432] 研究此宗旨的道場。而
0012_0018b_a_04L現今僧尼之九 [433] 者。皆共法 [434] 也。外 [435] 于此。則無足道矣。然寺以坐 [436] 向丁。總面積三
0012_0018b_a_05L百 [437] 町之山林。居其中央。而有盈美之觀。彌陀ㆍ吉祥二菴。是尼居。而文殊ㆍ實相ㆍ
0012_0018b_a_06L寂滅ㆍ正覺ㆍ上願ㆍ五松等。保則盡矣。碁星藍蘭。只剏 [438] 惟一二。雖云五 [439] 。未知幾何。
0012_0018b_a_07L七明宗極寺要。靑天車將 [440] 霹靂。乎 [441] 地起波濤。是 [442] 濟宗旨。而旣無四十 [443] 之黨道 [444] 的。而唯此爲 [445] 步。爲 [446] 在 [447] 是也。朝鮮佛敎。止於此己矣。有 [448] 不達妄鳴者。故云外于此則 [449] 道矣。可謂提 [450] 鼻
0012_0018b_a_08L鼾也。五剏。一懷義。二道詵。三柳承官。四錦峯。五萬化。此據其方冊而言。以理推之。則非惟似五。但史氏之未盡話耳。以今己巳。至聖 [451] 甲子。有 [452] 貳伯伍拾陸年之 [453] 。而前云千五百
0012_0018b_a_09L者。言佛敎初 [454] 入時也。勿疑焉。以人之存 [455] 。有事之易難。固寺庵之興替。但隨人之豊儉。顧家
0012_0018b_a_10L國之道。何有他哉。以其廣文東庚之。績 [456] 。奄作伽倻之 [457] 常。雖然。鶴樹之枯榮。固
0012_0018b_a_11L我大聖。天藻之昭昭。以此之興替。觀彼之枯榮。 新陳代謝。 波瀾翻覆。可
0012_0018b_a_12L知東西今古。存亡經緯。奈何。八明理 [458] 正臻豊儉。實相庵。故東隱講伯之所剏。而萬愚大士還毁。正覺亦當其 [459] 。故云耳。伽倻在印度之大
0012_0018b_a_13L塔。爲 [460] 佛弟子之守護。而入於他徒之手中。累訴不決。是爲反常。而人所不知者。存 [461] 中也。鶴樹有四 [462] 八隻。而半枯半榮。以表無常之眞常。坐此理而觀彼。無不有此之榮枯。盖人世
0012_0018b_a_14L之興替。聖藻之已許。日住持林然性上人。請余以蹟。予以久師晈然。效嚬毗耶。力讀金
0012_0018b_a_15L剛。上人其意。予不獲已。假命彤毫。爻像如是焉。九明託應非常乃爲銘曰。三才三寶。一理
0012_0018b_a_16L一事。初後應變。改換其數。單傳是宗。寺幸幾存。位委景勝。義 [463] 事榮。佛儒一
0012_0018b_a_17L道。興替同躔。旣賴師慈。 宜有王廟。循環亨泰。 往復利貞。 存亡易難。波
0012_0018b_a_18L濤翻覆。萬時其使。一時伊造。金剛牢請。爻像響殷。千古龜鏡。一参諸楣。
0012_0018b_a_19L四結銘。諸楣即諸記文。趙漢益ㆍ林弼洙ㆍ金應化ㆍ鄭在龍ㆍ寶峰良等記文外。又有方冊。皆爲寺史。互出不同。又煩雜。故玆以應上人之講。而有斯之參案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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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9a_a_01L7-1. 동학사東鶴寺 중수기문重修記文계룡산鷄龍山의 동쪽에 골짜기가 있는데 넓고 그윽하며 길쭉하고 깊다. 4개의 이어진 봉우리로부터 내려온 곳이 오송대五松臺인데 온 산의 복판을 독점하고 있다. 오송대의 북쪽으로부터 가로질러 기복을 이룬 곳이 뒤편의 진산鎭山이다. 상봉上峯에서 내려온 줄기가 앞면을 에워싸고 있는데 골짜기가 환히 열리고 물과 바위가 맑고 기이하다. 그 땅에 나아가면 약간 평평한 곳에 절이 있으니 동학사東鶴寺라고 한다. 어느 시대에 창건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대체로 오래된 절이다. 절의 이름을 동학東鶴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동쪽에 학암鶴巖이 있기 때문이다.절은 일찍이 화재로 소실되는 재앙을 겪어 근래에도 이어서 건물을 지었는데, 또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하여서 도량道場은 황폐해지고 법좌法座는 면모를 잃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탄을 하고 놀러온 사람들은 혀를 찬 지가 오래 되었다. 만화萬化라고 하는 시승詩僧은 참된 경전에 오묘하게 통달하고 걸리적거림 없는 방편을 행하였는데, 마침 이 절에 머물다가 불전佛殿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한탄하고 중생들이 시주에 인색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에 그 고족제자 우운友雲과 도반道伴인 호암虎巖과 함께 재물을 모을 것을 발원하여 공덕을 이루었다. 예전 모습을 토대로 해서 새롭게 하고 기와집 몇 칸을 지으니 처마가 툭 트이고 상쾌하며 예전에 비해 더욱 넓어졌다.낙성을 하고 나서 마침내 나에게 그 일을 기문으로 써 주기를 청하였다. 나와는 방외方外의 사람으로 마음이 맞는 사이이다. 내가 생각건대, 산천의 그윽하고 빼어난 정취는 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알 것이며, 건물이 지어지고 훼손된 자취는 이전 시대 사람들이 응당 기문을 지었을 것이니, 장차 무슨 말로 그 간절한 뜻에 부응을 할 것인가. 전해지는 기문을 먼저 상고해 보니, 이 절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위해서 왕실에서 불공을 베풀었다고 하는데, 이른바 초혼각招魂閣이라는 곳으로 지금도 여전히 절의 곁에 남아 있다. 혼록魂錄을 삼가 살펴보니, 전 왕조로부터 우리 왕조에 이르기까지 충신열사로서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모두 이곳에서 초혼하는 불공을 베풀었다. 단종端宗 때의 임금과 신하들 역시 그 안에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지은 기문이 있어 그 당시의 일을 새긴 것이 매우 상세하였는데 불에 타버려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아아, 이 초혼의 불공을 베푼 것은 본래 조정이 명한 것인가. 혹은 의사義士의 감동과 불교의 자비에서 나왔는데 조정에서 금하지 않은 것인가.또 절의 사적事蹟과 읍지邑誌를 살펴보니, “처음에 영월사影月師 운선雲禪이 길야은吉冶隱230)과 함께 제단을 만들어 포은圃隱231)을 제사 지냈으며, 그 후 유방택柳方澤232)이 전각을 건립하여 삼은三隱을 제사 지내고 그 전각을 삼은각三隱閣이라고 불렀다. 또 그 뒤에 매월당梅月堂 공이 뜻을 같이 하는 유생들 및 엄흥도嚴興道233)와 함께 이곳에 와서 매번 상왕上王(단종)의 기일이 되면 어포御袍를 걸어 놓고 통곡을 하였으며, 삼상三相234)과 사육신死六臣을 제사 지냈다. 천순天順 2년(1458, 세조4)에 이르러 혜장惠莊(세조) 대왕이 거둥하여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무럭무럭 일어 전각에 초혼招魂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임금과 신하는 한 몸이라는 의리로 순절한 200여 명의 여러 신하들에게 공양을 베풀었다. 또 토지 25결結에 세금의 면제를 하사하고 동학東學이라고 사액賜額하였다.”라고 하였는데, ▣▣▣ 어찌 그렇겠는가. 지금 모두 족히 증거를 찾을 수는 없으니, -
0012_0019a_a_01L東鶴寺重修記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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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9a_a_03L鷄龍之東有壑。廓而幽。橢而深。自四連峰來者。爲五松臺。㝡檀 [464] 一山之腹。
0012_0019a_a_04L從臺北橫馳起伏。爲其後鎭。而上峯來者。繞抱於前。洞天開朗。水石淸奇。
0012_0019a_a_05L就其地稍平夷處。有寺曰東崔 [465] 。不知剏自何代。而盖古刹也。寺號東崔 [466] 。以
0012_0019a_a_06L其東有崔 [467] 岩故也。寺曾經鬱攸之刧。繼構者近。又歲久頹圮。道場就荒。法
0012_0019a_a_07L座失貃 [468] 。行路咨嗟。遊客咄咄者。厥惟久矣。韵釋號萬化。妙通眞經。方便無
0012_0019a_a_08L碍。適住錫于玆。歎寶殿之鞠茂。悶衆生之吝捨。迺血其高足友雲。及其同
0012_0019a_a_09L伴虎巖。發願鳩財。成就功德。仍舊貫而新之。瓦屋几 [469] 幾間。而軒豁鴨快。視
0012_0019a_a_10L舊加恢。旣落。遂請余以記其事。盖與余者方外契也。余惟山川幽勝之趣。
0012_0019a_a_11L見者自知。而殿宇成毁之蹟。前人應亦有記。則其將何說而答其慇懃之
0012_0019a_a_12L意乎。嘗考傳記。以爲是寺。則
0012_0019a_a_13L祖宗朝。爲寃死人。施供設云。而所謂招魂閣。今猶在寺之傍。謹案魂錄。則自
0012_0019a_a_14L前朝。至于本朝。忠烈之無辜寃死者。皆招魂設供於玆。而
0012_0019a_a_15L端廟君臣。亦錄在其中。舊有記刻。其時事甚詳。燬於火。今無存焉。鳴呼。嘻噫。
0012_0019a_a_16L此招魂設供。本是朝家之命歟。或出於義土之感激。佛氏之慈悲。而朝家
0012_0019a_a_17L不禁歟。又按寺蹟邑誌。則其初影月師雲禪與吉冶隱。設壇祭圃隱。後有
0012_0019a_a_18L柳方澤。建閣祭三隱。而號其關 [470] 曰三隱。又其後梅月公。與同志儒生。及嚴
0012_0019a_a_19L興道來此。每
0012_0019a_a_20L上王忌辰。掛御袍痛哭。而幷祭三相六臣。殆天順二䄵。
0012_0019a_a_21L惠莊大王臨幸。油然興感。賜閣號招魂。而以一體君臣之義。設供殉節諸臣
0012_0019a_a_22L二百若干餘人。又賜稅二十五結。賜額東學云云。▣▣▣豈然。今皆無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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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19b_a_01L혹시 이와 같은 말이 흘러 전해지는 것을 읍지를 만든 사람이 채록한 것일까.무릇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니 어찌 불러올 수 있겠는가. 어쩌면 억울하게 죽은 혼이 수심 어린 구름과 원망에 찬 안개가 응결되어 흩어지지 않는 것처럼 아득한 저승길에서 갈 곳 없이 헤매기 때문에 부처가 특별히 인도하여 미혹의 진세塵世를 건너게 해 주어 그 깊은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게 아니고 단지 티끌 같은 세계의 봉양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정성을 바칠 뿐인 것인가. 참으로 저승과 이승의 연고에 대해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능히 이 슬픔을 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치가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이 또한 타고난 본성이 뿌리를 둔 것으로 예교禮敎가 힘입는 바이니, 소동파蘇東坡가 말한바 “도덕의 높은 풍모는 과연 속세 밖에 있는 것이다.”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중에 단종이 복위되고 순절殉節한 여러 신하들이 원통함을 풀게 된 것은 혹시 여기에서 그 조짐이 있었던 것인가. 주자朱子가 일찍이 말하기를, “천하에는 자연히 바꿀 수 없는 공론이 있다.”235)라고 하였으니, 나도 여기에 대해 역시, “어찌 불가佛家의 일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겠는가. 만화 스님이 이 일에 애를 쓰고 중수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한다. 세금을 감면해 준 토지는 훗날 탐관오리에게 빼앗겨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동치同治 3년 갑자(1864) 8월 일에 금성錦城 임필수林弼洙는 쓰다.
도암道庵의 문손門孫인 상월湘月 천여天如는 써서 새기다.
시주질施主秩
건명乾命 윤태창尹泰昌 양위兩位. 건명 임필수林弼洙. 건명 유형로柳衡魯. 건명 홍재탁洪在鐸. 건명 서준혁徐俊赫. 건명 조재현趙載賢. 건명 임학모林鶴模. 건명 박기환朴基煥. 건명 이용석李龍石. 건명 허승許昇. 이순봉李舜鳳 용일龍一. -
0012_0019b_a_01L徵。則或流傳如此。而爲邑誌者。採之歟。夫人死則魂昇。安有可招之物也。
0012_0019b_a_02L豈寃死之魂。如愁雲怨霧之凝結不散。而落落冥路。靡所底屆。
0012_0019b_a_03L故 佛氏特導濟迷塵。而解釋其幽鬱歟。抑都兦是焉。而祗以塵刹之奉。
0012_0019b_a_04L欲爲報恩之誠歟。苟非通幽明之故者。其孰能斷此悲支 [471] 。然莫論理之有
0012_0019b_a_05L無。是亦秉▣ [472] 之所根。而名敎之所賴。則東坡所云道德高風。果在世外者
0012_0019b_a_06L非耶。而後來
0012_0019b_a_07L端廟之復位。殉節諸臣之雪寃。或其兆於此也歟。朱子嘗曰。天下有自然不
0012_0019b_a_08L易之公論。余於此亦云。豈以 佛家之事而少之哉。宜萬化之眷眷于此。
0012_0019b_a_09L而不憚於重葺也。其 賜稅。後爲貪污者所奪。見存無幾云爾。
0012_0019b_a_10L同治三年季 [473] 甲子八月 日 錦城林弼洙記。
0012_0019b_a_11L旅 [474] 主秩
道庵門孫湘月天如書梓。
0012_0019b_a_12L乾命尹泰昌兩位。 尙宮丁卯生尹氏大心華。
0012_0019b_a_13L乾命林弼洙。 尙宮庚午生金氏普光明。
0012_0019b_a_14L乾命柳衡魯。 坤命乙丑生韓氏。
0012_0019b_a_15L乾命洪在鐸。 山中大德秩
緣化所秩
0012_0019b_a_16L乾命徐俊赫。 蓮坡堂定守。 助緣化主
0012_0019b_a_17L乾命趙載賢。 淨潭堂一原。 比丘尼尙仁。 金剛
0012_0019b_a_18L乾命林鶴模。 漢庵堂定作。 比丘尼尙華。 賛益
0012_0019b_a_19L乾命朴基煥。 淸霞堂明訓。 比丘尼信察。
0012_0019b_a_20L乾命李龍石。 永月堂奉律。 比丘尼定心。
0012_0019b_a_21L乾命許 昇。 性月堂謜翌。 比丘尼元悅。
0012_0019b_a_22L李舜鳳龍一。 鏡松堂性佑。 比丘尼性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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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0a_a_01L건명 장규환張奎煥. 건명 조趙. 연파당蓮坡堂 정수定守. 영월당永月堂 봉률奉律. 남화당南化堂 포흔布昕. 비구니比丘尼 덕징德澄. 비구니 도정道淨. 상궁尙宮 정묘생丁卯生 윤씨尹氏 대심화大心華. 상궁 경오생庚午生 김씨金氏 보광명普光明. 곤명 을축생乙丑生 한씨韓氏.
산중대덕질山中大德秩
연파당蓮坡堂 정수定守. 정담당淨潭堂 일원一原. 한암당漢庵堂 정작定作. 청하당淸霞堂 명훈明訓. 영월당永月堂 봉률奉律. 성월당性月堂 원익謜翌. 경송당鏡松堂 성우性佑. 성봉당性峯堂 주▼主▼(米+生). 남화당南化堂 포흔布昕. 운구당雲句堂 화릉華楞. 영담당影潭堂 현오玄悟. 우운당友雲堂 아준亞俊. 만우당萬愚堂 상경常經. 비구比丘 영찬永讃. 비구 장현壯賢.
연화소질緣化所秩
조연화주助緣化主 비구니比丘尼 상인尙仁. 금강金剛 비구니 상화尙華. 찬익賛益 비구니 신찰信察. 비구니 정심定心. 비구니 원열元悅. 비구니 성왕性往. 비구니 각림覺林.
도편수都片手 침계枕溪 민열敏悅. 부편수副片手 김덕원金德元. 나머지 인원 사십여 인. 공사供司 비구 도진道眞. 비구 지홍智弘. 비구 화일華一. 별좌別座 비구 지호智浩.
7-2.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 지장계서地藏稧序대개 들으니, 지장보살地藏菩薩은 항하사恒河沙 모래알만큼 많은 보살 가운데 자비의 구름을 섬부주贍部洲236)에 더욱 내려, 터럭 같은 무수한 국토 안에 크고 유독 깊은 괴로움을 내신다고 한다. 아득한 겁의 세월로부터 서원을 일으켜 비록 다시 천만 중생을 접인接引237)하지만,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쌓아온 습기習氣가 극성하여 업을 지어내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아침저녁으로 유익한 방편을 쓰고 음계陰界에 계시면서 천 길이나 비추는 밝은 구슬을 쥐어 사문沙門의 모습을 보이는데 부지런히 힘쓰고, 이미 지옥을 다 없애겠다는 큰 서원을 세워 자신을 이루어 공양하는 넉넉한 예를 갖추셨으니, 보살의 출현에 보답하는 것이 어찌 유상有相의 재산과 같겠는가. 그러나 거의 지옥의 원력願力을 돕는데 가깝다면 시주가 보시를 행하는 것에 누군들 찬탄하여 기뻐하지 않겠는가.만약 업보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믿는 마음을 내고 비구들이 괴로움을 그치며 온갖 번뇌를 뛰어넘어 부지런히 삼매를 닦는다면, 이로부터 죽은 영혼들이 저승길을 길이 벗어나 정토의 세계에서 여유롭게 노닐 것이다. 모든 곳에서 인연 있는 참다운 변화로써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할 것이고, 무생無生의 진리를 함께 증득하여 진리의 바다에서 함께 헤엄칠 것이다. 아아, 보잘 것 없는 나는 비록 함께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인연을 맺을 때부터 또한 이미 기쁨으로 따랐으니, 계契가 성사될 즈음에 짧은 글로 그 일의 실마리를 대략 서술한다. -
0012_0020a_a_01L乾命張奎煥。 性峯堂主▼(米+生)。 比丘尼覺林。
0012_0020a_a_02L乾命趙。 南化堂布昕。
0012_0020a_a_03L蓮坡堂定守。 雲句堂華楞。 都片手枕溪敏悅。
0012_0020a_a_04L永月堂奉律。 影潭堂玄悟。 副片手金德元。
0012_0020a_a_05L南化堂布昕。 友雲堂亞俊。 餘員四十餘人。
0012_0020a_a_06L比丘尼德澄。 萬愚堂常經。 供司比丘道眞。
0012_0020a_a_07L比丘尼道淨。 比丘永讃。 比丘智弘。
0012_0020a_a_08L 比丘必悟 比丘華一。
0012_0020a_a_09L 比丘壯賢。 別座比丘智浩。
0012_0020a_a_10L
0012_0020a_a_11L鷄龍山東鶴寺地藏稧序
0012_0020a_a_12L
0012_0020a_a_13L盖聞。地藏是恒沙菩薩之中。悲雲尤贍部。乃産毛刹土之內。苦大偏深。
0012_0020a_a_14L曩刧種願。 雖復接引千萬。有熾 無始積習。其奈造業。朝夕益
0012_0020a_a_15L方。 捿身陰界。掌圓照大 [475] 千之明珠。孜 示相沙門。已立盡地獄之弘誓。成
0012_0020a_a_16L己備資供之贍禮。 可酬菩薩之出。豈同有相之產財。庶獎牢獄之願力。
0012_0020a_a_17L孰不讃喜。 檀越行施。苦 [476] 報 人皆發信。 苾蒭芴息惱。而可超諸漏。而勤修
0012_0020a_a_18L三昧。從玆兦靈。永離冥路。優遊淨界。咸處有緣之眞化。 普▣ [477] 含識。 共證
0012_0020a_a_19L無生之法印。 共泳法海。 嗟余小子。雖未得共叅。結緣之時。 亦己 [478] 爲隨
0012_0020a_a_20L喜。成就之際。
0012_0020a_a_21L俾將短詞。而
0012_0020a_a_22L略叙其端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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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0b_a_01L함풍咸豐 정사년(1857, 철종8) 7월 일. 계룡산 사미沙彌 아준亞俊은 삼가 쓰다.
8.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사적事蹟 입안立案산천의 뛰어난 풍광은 저절로 남다른 것이고, 인물이 남긴 사적은 족히 징험이 되는 것이다. 이제 멀리 옛 고적을 떠올리면서 기록하여 뒷날의 고증에 근거로 남긴다.아, 백두산의 한 줄기가 구불구불 완만히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서 강원도에 이르러 철령鐵嶺이 되었고, 철령은 서쪽으로 양주楊州와 광릉廣陵의 경계로 들어가고, 북쪽으로는 오관산五冠山과 송악산松嶽山이 되었으며, 남쪽으로는 삼각산三角山과 목멱산木覓山이 되었다. 철령의 한 줄기는 동쪽으로 돌아 금강산金剛山이 되고 서쪽으로 돌아 소백산小白山이 되었으며, 소백산은 남쪽으로 돌아 주흘산主屹山과 속리산俗離山이 되었다. 속리산은 서쪽으로 돌아 차령車嶺과 광덕산廣德山이 되고, 광덕산은 남쪽으로 내려와 화산華山이 되었다. 임해壬亥 방위에서 용자龍子가 내려와 무득갑파戊得甲破의 형국이 되었으니, 그 빼어난 절경은 동방 제일의 복된 땅이다.당唐나라 정관貞觀 17년(643)은 바로 신라 여왕女王이 왕위에 오른 지 9년째 되는 해인데,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소판蘇判238) 무림武林239)의 아들로서 해동海東의 불법佛法을 창시한 비조鼻祖가 되었다.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三學240)을 몸을 단속하는 도구로 삼았고 경經ㆍ율律ㆍ론論 삼장三藏을 불법을 배우는 바탕으로 삼았다. 중국에 들어가 태종太宗 황제를 만나 공손히 제자의 예로 참배하여 국통國統의 호칭을 하사받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선덕여왕이 이를 듣고 가상하게 여겨 국통國統 법과사문法果沙門에 제수하고 안성후安城侯 불공법사不空法師에 제수하였으니, 숙국공肅國公이 바로 이 사람이다.토지 200結을 주었는데 동쪽으로는 유치油峙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밀현蜜峴에 달했다. 유치油峙(기름재)라는 것은 기름을 무역하기 위하여 오고가던 고개이고, 밀현密峴(구재241))이라는 것은 꿀을 무역하기 위하여 드나들던 고개이다. 절의 이름을 마곡사麻谷寺라고 한 것은, 보철寶徹 화상이 불경의 도를 득법得法하고 돌아오자 그에게 모인 사람들이 마치 삼대와 같았기 때문에 그 뜻을 취하여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또는 말하기를, 사방에서 불법佛法을 묻고자 배우러 온 사람들이 골짜기 안을 가득 메웠는데 서 있는 모습이 삼대와 같았다고 해서 이를 취하여 절 이름을 지었다고도 한다. 자장율사는 일곱 개의 큰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 절은 바로 세 번째로 세운 것이다. 다섯 개의 사찰에서 세운 탑은 모두 석재로 만들었는데, 가야사伽倻寺와 이 절은 금金으로 상층에 장식을 하였고 순금으로 네 모퉁이의 풍경을 꾸며 이 탑이 더욱 아름답도록 하였다. 층수는 33층이다.무종武宗 회창會昌 2년(842)에 이르러 이 절의 터가 황폐해져 풀이 무성하게 자란 지 100여 년이 되었다. 당나라 승안承安 4년(1199)은 바로 고려 명종明宗 때인데, 신승神僧인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를 맞이하였으니, 철폐된 사찰을 중수하라는 교명敎命을 받아 그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명승지를 두루 돌아보다가 이곳에 이르러 장소를 정하였다. 이에 다리에 올라 춤을 추고는 돌아와 시 한 구절을 읊어 이르기를, “복지福地가 맑은 시냇물에 닿아 있고 금방울이 소나무 사이에 울린다.”라고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전하여 무교舞橋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을 가리켜 말하기를, “은혜가 황금 연못에 젖고, 덕德이 용이龍耳242)처럼 높은 곳이다.”라고 하였다.그 당시에 도적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사찰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우와 더불어 -
0012_0020b_a_01L咸豊七年丁已七月 日。 龍山沙彌。
0012_0020b_a_02L亞俊謹識。
0012_0020b_a_03L
0012_0020b_a_04L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
0012_0020b_a_05L
0012_0020b_a_06L惟山川形勝之自別。而人物事蹟之足徵。今彔緬懷古蹟。以憑後考。噫。白
0012_0020b_a_07L頭一脈。逶選 [479] 南來。至江原爲鐵嶺。鐵嶺西入楊ㆍ廣界。北爲五冠ㆍ松岳。南爲三
0012_0020b_a_08L角ㆍ木覔。鐵嶺一脈。東轉爲金剛。西轉爲小白。小白南轉爲主屹ㆍ俗離。俗離西
0012_0020b_a_09L轉爲車嶺ㆍ廣德。廣德南落爲華山。壬亥龍子坐戊得甲破之局。其明秀絕勝。
0012_0020b_a_10L爲東方之第一福地。唐貞觀十七年。卽新羅女主臨御之九載。而慈藏律師。
0012_0020b_a_11L以律師以 [480] 蘇判武林之子。爲海東佛法剏始之祖。師以戒ㆍ定ㆍ惠三學爲嚴身
0012_0020b_a_12L之具。以經ㆍ律ㆍ論三藏爲識法之資。轉入中華。見太宗皇帝。恭叅弟子之禮。有
0012_0020b_a_13L賜國統之號。而還歸故國矣。善德女主聞而嘉之。封爲國統法果沙門之拜。
0012_0020b_a_14L安城侯不空法師之拜。肅國公是也。給田二百結。東漸油峙。西抵蜜峴。油峴 [481]
0012_0020b_a_15L(기름재)者。貿油往來之峙也。蜜峴(구재 [482] )者。貿蜜出入之峴也。寺號之以
0012_0020b_a_16L麻谷者。寶徹和尙經道得法而來。其會如麻。故取而名之耶。又曰四方問津
0012_0020b_a_17L來玩之人。塡于洞中。其立始 [483] 麻。故取而名之耶。剏設七大伽藍。而此寺即第
0012_0020b_a_18L三所建也。五刹所築之塔。皆以石爲之。而伽倻寺及此寺。則以金爲上層之
0012_0020b_a_19L飾。純金裝飾四角風磬。此塔尤美。層數則三十三也。乃至武宗會昌二年。此
0012_0020b_a_20L寺之基亦鞠爲茂艸者。百有餘年矣。逮至唐承安四年。即麗朝明宗時也。逢
0012_0020b_a_21L神僧佛日普照。受敎命修廢刹。而與其弟子守愚。周覽名勝。到此點得。乃登
0012_0020b_a_22L橋而舞之。回吟一絕曰。福地臨淸澗。金鈴激松間。後人傳以爲舞橋者此也。
0012_0020b_a_23L仍點此地曰。恩沾金池。德峻龍耳。當其時爲賊所據。不能立刹。乃與守愚。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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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1a_a_01L신묘하고 기이한 방법으로 수많은 도적떼를 물리치고 사로잡아 이 절을 세웠다. 이에 국왕이 토지 200결을 하사하고 국통國統에 제수하였다. 국사천國師川 서쪽의 미타주彌陀主와 북쪽의 삼부도전三浮屠殿, 그리고 절 남쪽의 율암栗菴과 여러 묘가 그 남은 유적이라고 한다. 지금 사찰은 승려가 따로 하나의 조그만 사당을 냇가 서남쪽에 세워서 국사당國師堂이라고 이름 짓고 범일梵日과 도선道詵을 함께 봉안하였으니, 그들의 덕을 잊지 않은 것이다. 사당 아래에 천 년 묵은 늙은 잣나무가 있었는데 광풍에 쓰러져 영은암靈隱菴의 큰 기둥에 사용되었다. 비록 헛되이 썩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하나의 고적을 잃었으니 한탄스러운 일이다. 여러 아름이나 되는 마석磨石이 있는데 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갈아서 살기殺氣를 쏜다243)고 한다. 월파당月波堂이 누각을 지을 때에 옮겨서 작은 마석을 만들어 선당禪堂에 사용하였다고 하니 또한 한탄스러운 일이다.그 후 범일梵日 대사가 다시 창건하였고, 도선道詵 대사가 다시 점지하며 감탄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천만 년 오래도록 절을 세울 좋은 땅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삼재三災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라고 하였고, 말하기를, “유구維鳩와 마곡磨谷 두 냇가 사이에 천 사람의 목숨을 살릴 만하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만일에 이 땅을 범하여 집터나 묫자리로 사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재앙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련된 문헌이 병란 중에 모두 없어졌으니 그 애석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는가. 국초에 남사고南師古가 또 가리켜 말하기를, “유구와 마곡의 두 냇가 사이는 만 사람의 목숨을 살릴 곳이다.”라고 하였다. 보조국사普照國師의 비결 祕訣에 이미 “은혜가 황금 연못에 젖고, 덕德이 용이龍耳처럼 높은 곳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신민臣民이 된 자 중에서 이 땅을 택하려는 사람은 어찌 참람한 짓이 아니겠는가. 국가가 반드시 명산의 경승지에 사찰을 세워 성자에게 축원하는 것은, 위로는 사은四恩244)을 갚고 아래로는 삼도三途245)에서 구제하는 것이다.이 절의 희지천希之川 북쪽에 예전에 지은 건물이 대웅전大雄殿, 시왕나한전十王羅漢殿, 진여문眞如門, 범종루泛鐘樓, 향로전香爐殿, 좌우승선당左右僧禪堂, 동서상실東西上室, 약사전藥師殿, 서전西殿, 성현대聖賢臺, 월파당月波堂, 총지료摠持寮, 동별마구東別馬厩, 용간舂間, 측실廁室 등이 있었는데 모두 합하여 그 터는 2결結 69복卜 1속束이었다. 냇가의 남쪽 뒤에 있는 건물은 영산전靈山殿, 흥성루興聖樓, 해탈문解脫門, 천왕문天王門, 영자전影子殿, 양로전香爐殿, 제주실齊厨室, 월명당月明堂, 매화당梅花堂, 낙화당落花堂, 백운당白雲堂, 내외남전內外南殿, 국사당國師堂, 가사당袈裟堂, 만경대萬景臺, 명적암明寂菴, 백련암白蓮菴, 은적○隱寂○, 영은암靈隱菴, 응향각凝香閣인데, 그 터를 새로 줄여서 7결 21복이었다. 후에 동내원洞內院, 상원上院, 가섭대迦葉臺, 상청련上靑蓮은 차례차례 중건한 건물이다.명나라 헌종憲宗 성화成化 연간에 우리 세조대왕께서 이 사찰에 행차하였는데, 응봉鷹峯 아래의 조그마한 봉우리 위에 수레를 멈추고 찬탄해 마지않으면서 말하기를, “만세토록 망하지 않을 땅이로다.”라고 하면서 어필御筆로 특별히 ‘영산전靈山殿’ 세 글자를 써서 편액의 이름으로 하사하였다. 또 수패手牌를 만들어 잡역을 침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
0012_0021a_a_01L神異之術。却虜數萬之衆。以建此寺。國王給田二百結。拜爲國統。國師川西
0012_0021a_a_02L之彌陁主。北之三浮屠殿。及寺南之栗菴諸墓。皆其遺也云。稱至今。寺僧別
0012_0021a_a_03L立一小祠於川之西南。名之曰國師堂。以梵日ㆍ道詵並奉之。盖不忘其德也。
0012_0021a_a_04L祠下有千年老栢。爲狂風所仆。而用之於靈隱菴高柱。則雖曰不虛朽。而失
0012_0021a_a_05L一古蹟。可恨也。有數圍磨石。傳者之言曰。磨射殺氣云。月汲 [484] 堂建樓時。移作
0012_0021a_a_06L小磨。用於禪堂云者。亦可恨也。其後梵日大師又創之。道詵大師復點之。而
0012_0021a_a_07L歎賞之曰。儘千萬古爲刹之大地。又曰。三灾不入之處。又曰。維鳩ㆍ麻谷兩水
0012_0021a_a_08L之間。可活千人之命云。又曰。如有犯用宅墓於此者。必受其殃云。其關節之
0012_0021a_a_09L文蹟。盡失於兵燹之中。可勝惜哉。國初南師古又點之曰。維鳩ㆍ麻谷兩水之
0012_0021a_a_10L間。爲萬人活命之所云。普照國師之訣旣曰。恩沾金池德峻龍耳云爾。則爲
0012_0021a_a_11L臣民者之欲點此地者。豈不濫乎僭乎。盖國家之必於名山勝地。建伽藍而
0012_0021a_a_12L祝聖者。上級四恩。下濟三途者也。盖此寺希之川之北。舊建者曰。大雄殿ㆍ十
0012_0021a_a_13L王羅漢殿ㆍ眞如門ㆍ泛鐘樓ㆍ香爐殿ㆍ左右僧禪堂ㆍ東西上室ㆍ藥師殿ㆍ西殿ㆍ聖賢
0012_0021a_a_14L臺ㆍ月波堂ㆍ摠持寮ㆍ東別馬厩ㆍ舂間ㆍ廁室。合爲基地二結六十九卜一束也。川
0012_0021a_a_15L之南後建者曰。靈山殿ㆍ興聖樓ㆍ解脫門ㆍ天王門ㆍ影子殿ㆍ香爐殿ㆍ齊厨室ㆍ月明
0012_0021a_a_16L堂ㆍ梅花堂ㆍ落花堂ㆍ白雲堂ㆍ內外南殿ㆍ國師堂ㆍ袈裟堂ㆍ萬景臺ㆍ明寂菴ㆍ白蓮菴ㆍ
0012_0021a_a_17L隱寂○ㆍ靈隱菴ㆍ凝香閣。而新減基地七結二十一卜也。後洞內院ㆍ上院ㆍ迦葉
0012_0021a_a_18L臺ㆍ上靑蓮。相次重建者也。粤在
0012_0021a_a_19L皇明憲宗成化年間。我
0012_0021a_a_20L世祖大王。遊幸本寺。駐驛于鷹峰之下小岑之上。嘆賞不己曰。萬歲不亡
0012_0021a_a_21L之地。以御筆特書靈山殿三字額號以賜之。又作手牌。以襍役勿侵之意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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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1b_a_01L하사하였는데, 수패는 병난의 와중에 소실되었으니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지금 이 조그만 봉우리를 표시하여 군주대君主臺라고 하니, 만세의 왕춘王春이 어제와도 같다.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우리 인조대왕仁祖大王 때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산하면 만 60년이 되었다. 승려와 속인이 모두 도망가고 문서는 재가 되었으며 지난날에 나라에서 하사한 토지 200결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 효종대왕孝宗大王 즉위 2년인 경인(1650)246)에 유곡楡谷 사람 감사 이태연李泰淵247)이 본 고을의 목사가 되었는데, 자신의 월봉을 줄여 청동전 2000緡, 백미 300섬으로 절을 보수하는 일을 일으켰다. 지역의 승려를 모집하고 다시 옛 형태로 창건하여 다시 지소紙所248)가 되었으며, 절반만 남은 선당禪堂과 기울어진 약사전藥師殿을 모두 중수하였다.경인년으로부터 기해년(1659, 효종10)에 이르는 십 년간에 전 판사였던 승려 승연勝衍과 현응玄應, 진규眞圭, 각순覺淳, 지원智元, 보경寶敬, 운일雲日, 의전義全, 운혜雲惠, 현징玄澄, 덕휘德輝, 사정思淨, 현이玄頤, 충색冲色, 탁일卓一, 성구性久, 행안幸安, 두운杜雲 등의 많은 사람이 차례로 주지를 맡아 사찰을 운영하였다. 거사 박야외朴野外와 각순覺淳은 재산이 넉넉하였는데, 사재를 출연하여 탁일卓一 등과 함께 운혜雲惠를 묘수장사妙手匠師로 추대하여 여러 공인을 데리고 승당僧堂을 건립하였다. 한 해 한 해 완성되어 사찰의 형태가 갖추어지니 절에 소속된 전토와 법당이 비록 세금을 면제받기는 하였으나 감액된 수가 많지 않고 연이은 흉년을 함께 걱정하여 그 형세를 보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다행히도 연성군延城君 이시방李時防249) 공과 연양부원군延陽府院君 이시백李時白250) 공 형제가 마침 호조판서에게 주달奏達하게 하여 절의 토지 4결 5복 5속이 면세되기에 이르렀으니, 바로 절의 동서남북 사방 경계의 안쪽이다. 경자년(1660, 현종1) 이후부터 태휘太輝, 성흠省欽, 법영法英, 현참玄參, 응률應律, 법희法熙, 사인思印, 쌍언雙彦, 탁일卓一, 태천泰天, 죽림竹林 등이 차례로 주지를 맡았다. 정축년(1697, 숙종23)에 서경조徐敬祖가 7결을 감하여 토지의 세금을 낮추어 주었다. 계미년(1703, 숙종29)에 정무鄭堥가 7결 20복을 해당 관청에 아뢰어 면세하였으니 막중한 일이며 사찰 보존의 토지로 진상하니 이 은덕에 힘입어 절의 모양이 점차 갖추어졌다.우리 정종대왕正宗大王 14년 기유(1789)251)에 이르러 정순왕후定順王后가 궁인에게 시켜 목정穆政252) 토굴로 농산聾山 대사를 초빙하여 국가를 위하여 원자元子를 탄생하게 해 달라고 부처에게 천일기도를 하게 하였다. 매일 밤마다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하기를, “나라가 불행하여 지금 임금께서 후사가 없으니, 우러러 천신天神, 지기地祇, 산령山靈, 수철水哲이 가호해 주는 오묘한 법력에 힘입어, 우리 성상으로 하여금 세자를 탄생시켜 줄 것을 바라나이다.”라고 하였다. 8월 9일 밤 궁인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목에 염주를 걸고 몸에는 가사를 입고 손에는 여섯 고리의 주석 지팡이를 쥐고 표연히 궁중으로 날아 들어가 만세를 불렀다. 이윽고 노승은 용으로 변하여 가순궁嘉順宮253)을 둘러쌌는데, 이후로부터 푸른 안개와 신령한 빛깔이 뭉게뭉게 모여들어 예사롭지 않았다. 대체로 농산 대사가 천일기도를 -
0012_0021b_a_01L賜之。手牌則失於兵燹之中。痛恨無地。至今表其小岑曰君主臺。萬歲王春。
0012_0021b_a_02L有如昨日。壬辰ㆍ丙子以後。及我
0012_0021b_a_03L仁祖大王時。通計滿六十歲。僧俗咸逃。文籍成灰。昔日二百結國賜之田。
0012_0021b_a_04L歸於莫推之地。可勝歎哉。至我
0012_0021b_a_05L孝宗大王卽位之二年庚寅。楡谷李監司泰淵。爲本州牧使。減月俸靑銅
0012_0021b_a_06L二千紙 [485] 白米三百石。以補寺役。募集土僧。再創舊樣。復爲紙所矣。半額之禪
0012_0021b_a_07L堂。傾側之藥師。皆己 [486] 重修矣。自庚寅至己亥十年之間。前判事僧勝衍ㆍ玄應ㆍ
0012_0021b_a_08L眞圭ㆍ覺淳ㆍ智元ㆍ寶敬ㆍ雲日ㆍ義全ㆍ雲惠ㆍ玄澄ㆍ德輝ㆍ思淨ㆍ玄頤ㆍ冲色ㆍ卓一ㆍ性久ㆍ幸
0012_0021b_a_09L安ㆍ杜雲之徒。先後主寺。相次譽建。居士朴野外與覺淳。皆豊饒而出私財。與
0012_0021b_a_10L卓一等。推雲惠以竗手匠師。率諸工人。造成僧堂。逐年成之。刹軆已具。則寺
0012_0021b_a_11L之屬田。佛之坐垈。雖得免稅。減數不多。具憂連凶。其勢難保。幸賴延城李公
0012_0021b_a_12L時防ㆍ延陽李公時伯兄弟。適判度支奏達。免稅四結五十五卜五束。卽寺之
0012_0021b_a_13L東西南北四界之內也。自庚子以後太輝ㆍ省欽ㆍ法英ㆍ玄參ㆍ應律ㆍ法熙ㆍ思印ㆍ雙
0012_0021b_a_14L彦ㆍ卓一ㆍ泰天ㆍ竹林之徒。相繼爲住持者也。歲丁丑。徐侯敬祖權減七結。以緩
0012_0021b_a_15L田賦。歲癸未。鄭侯堥以七結二十卜。帖移該曹入啓免稅。以爲英 [487] 重。進上寺
0012_0021b_a_16L刹保存之地。純此恩德。寺樣稍成矣。及我
0012_0021b_a_17L正宗大王十四年己酉。貞賴 [488] 王后。使宮召聾山大師于穆政土窟。爲 國
0012_0021b_a_18L家誕生元子。千日祈聖。每夜焚香。祝天曰。 國家不幸。今上無嗣。御 [489] 蒙天神
0012_0021b_a_19L地祇山靈水哲加護之竗力。使我 聖上。願生世子。八月初九日夜。宮人夢
0012_0021b_a_20L有老僧。項掛念珠。珠 [490] 身着袈裳。手持六環金錫杖。飃然飛入宮中。呼萬歲。俄
0012_0021b_a_21L而僧變爲龍。繞 嘉頥 [491] 宮。自此以後。淸烟神彩。毫凝異常。大抵聾山千日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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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2a_a_01L끝맺지 못하고 입적하던 날 밤에 궁인이 용꿈을 꾼 것이었다. 나라에서 제봉霽峰 체규體奎를 초빙하여 날짜를 이어 부처에게 기도하게 하였는데, 기도를 마친 뒤에 관찰사를 단단히 타일러서 각별히 수호하였다. 또 관인官印을 만들어주어 승통僧統의 직임을 맡기도록 명하였다. 제봉은 바로 농산의 법제자法弟子이다. 두 대사가 나라를 위해서 바친 정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나라에서 그 덕에 보답하는 은혜가 매우 중하였다.경술년(1790, 정조14) 6월 18일 정묘에 순종純宗(순조의 원래 묘호)이 탄생할 때에 무지갯빛이 묘봉廟封에 빛나고 신령스러운 빛이 궁궐 숲을 에워쌌다. 정조 임금이 크게 기뻐하고 나와 보며 이르기를, “이 아이의 복록은 내가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어려서부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다. 나이가 겨우 2살에 접어들던 동짓날 정조 임금이 새 달력을 하사하고 세자가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기뻐하였다. 왕이 그때 품 안에서 받아 펼쳐 보고 글씨 병풍 위에 있는 같은 글자를 스스로 집어내어 지적하니, 주변에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차츰 자라면서 부왕을 경외하고 여러 모후母后들을 성심으로 섬겼으며, 비록 일상적인 놀이라도 부왕이 원하지 않으면 감히 하지 않아 어긴 적이 없었다. 중전과 후궁을 성심으로 섬겨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효의왕후孝懿王后254)를 더욱 공경하고 사랑하니, 왕후가 정조대왕에게 아뢰어 아들로 삼고 원자元子의 봉호를 책정하였다.경신년(1800, 정조24) 6월 28일 기묘에 정조대왕께서 창경궁昌慶宮의 연춘헌延春軒에서 승하하였다. 순종이 어린 나이에 복상服喪의 예제禮制를 행하는데 이미 성인의 덕을 갖춘 듯하였으며, 찾아가 뵙는 여러 신하들이 선왕을 입에 올리면 왕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복하였다. 몸가짐을 검소하게 갖추고 아랫사람을 너그러움으로 다스렸으며,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취하였으며, 범선泛善이 𣵄과 같았으며255) 작위적으로 해로운 일을 하지 않았다. 교명을 내리는 것은 간략해서 알기가 쉬웠고 정령政令은 통일되어 복잡함이 없었으니, 여러 교화가 당시에 널리 퍼져서 빛나는 업적이 후세에까지 드리워졌다. 다스리는 법령과 정사의 계책이 순수하게 올바름에서 나왔으며, 왕의 덕망이 부처와 합치되었고 왕의 어짊이 보살과 같아서 35년의 태평성세를 이루었다.농산의 고심과 간곡한 정성, 제봉의 힘을 다한 공업功業의 완성은 국가로 하여금 억만 년 무궁한 아름다움이 되도록 하였다. 유념하여 생각해 보면 두 분 대사의 공은 천지와 더불어 넓고 크니, 이 절에 살면서 왕의 물과 흙을 먹는 사람들은 응당 국가의 덕과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며, 이 산의 한 포기의 풀과 한 그루의 나무도 제멋대로 망령되이 베어서도 안 되고 땅을 파서도 안 된다. 부처에 등불을 밝혀 정성을 다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 해야 하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계유년(1813, 순조13)에 이현泥峴 이형원李亨元 상국께서 충청도 안찰사로 와서 금파錦波가 땅을 점지해준 은혜를 갚으려고 금파에게 청동전 700민을 주려 하니, 금파가 받지 않으며 말하기를, “비록 아이를 팔고 부인을 전당 잡혔다[賣兒貼婦]는 기롱256)을 받지 않을 것임은 보장하더라도, 혹시 귀신이 원망하고 사람들이 괴로워한다는 말이 나올까 염려되니, 명하여 이것을 전소錢所에 넣어 중들로 하여금 보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이 상공이 -
0012_0022a_a_01L禱未畢。而聾山入寂之夜。是宮人夢龍之時也。自 國家召霽峰體奎。繼日
0012_0022a_a_02L祈聖。千日了畢後。申飾 [492] 道伯。冬 [493] 別守護。又命鑄印以僧統之任。霽峰乃聾山
0012_0022a_a_03L之法弟也。兩師之爲國獻誠。至矣盡矣。 朝家之報德酬恩重矣。庚戌六月
0012_0022a_a_04L十八日丁卯。純宗誕降。彩虹亘于廟封。神光繞于宮林。
0012_0022a_a_05L正廟大喜。就而視之曰。是兒福祿。非我所及。王自孩提。聰明絕人。年甫入
0012_0022a_a_06L二歲冬至日。 正廟賜以新曆。藎喜 世子將添齡也。王時自抱中受而披
0012_0022a_a_07L覽。目 [494] 拈書屏上同字而指之。左右奠 [495] 不聳異。稍長敬畏父王。誠事羣母。雖尋
0012_0022a_a_08L常娛戱之事。父王所不欲爲。卽不敢爲。未嘗違拂。誠事殿宮。一無間然。 孝
0012_0022a_a_09L懿后敬愛尤著。白于
0012_0022a_a_10L正廟。取而子之。定號元子。庚申六月二十八日己卯。 正廟昇遐于昌慶
0012_0022a_a_11L宮之延春軒。
0012_0022a_a_12L純宗冲年。嗣諒闇之制。已如老成之德。羣臣之進見者。語及先王。則 王
0012_0022a_a_13L女 [496] 泫然流涕。失群 [497] 掩抑。國人服其至孝。幼 [498] 以持身。寬以御下。不遷怒。不貳過。
0012_0022a_a_14L捨己取人。泛善如𣵄。未嘗以作爲害事。敎告簡易而易知。政令絶一而無雜。
0012_0022a_a_15L群敎被於當時。光烈垂於後世。治法政謨。粹然一出於正。王之德與佛合。
0012_0022a_a_16L王之仁與菩薩同。作三十五年太平聖世。聾山之苦心血誠。霽峰之竭力畢
0012_0022a_a_17L功。使國家爲億萬年無彊 [499] 之休。言念思之。兩師之功。與天地于廣于大。居此
0012_0022a_a_18L寺食 王水土者。當扱 [500] 國家之之德之恩。此山之一艸一木。不可忘 [501] 伐。不可
0012_0022a_a_19L掘地。點燈盡誠于佛。竭忠于國。可不勗哉。可不勉哉。歲癸酉。泥峴李相國亨
0012_0022a_a_20L元。按節玆道。欲扱 [502] 錦波相地之恩。以靑蚨七百紙 [503] 給錦波。則錦波不受曰。難 [504]
0012_0022a_a_21L保無賣兒貼婦之識 [505] 。或慮有鬼怨 [506] 之說。令以此錢所。使僧支存何如。李相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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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2b_a_01L금파를 총애하고 예우함이 전보다 더하였다. 이에 700민의 동전과 환곡의 쌀 40섬을 절의 지소紙所에 보내주고 따로 감색監色을 정하였다. 또 변통하여 14결의 세금을 감하여 모두 본사에 주고 공용의 자금이 되게 하였으니 이로부터 절이 모양이 예전과 같아졌다. 12월 12일은 이공의 생일이고 7월 27일은 금파의 생일이니 각별히 향등과 다과를 갖추어 축원하여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였다.갑진년(1784, 정조8)에 상공 심풍지沈豐之가 절도사가 되었을 때 대광보전大光寶殿에 화재가 났는데, 다시 건립한 날에 특별히 황조黃租 200섬과 청동전 300민을 보시하고 또 도내의 사람들에게 권장하여 며칠이 되지 않아 완성하니 그 공덕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정유년(1837, 헌종3)에 이르러 상국 심의신沈宜臣이 이 도의 안절사按節使가 되었는데 옛 뜻을 본받아 100민의 동전을 시주하여 본전을 남기고 이자를 취하도록 하니, 임인년(1843, 헌종8)에 이르러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였다. 경자년(1840, 헌종6)에 매화당梅花堂에 불이 났는데, 신축년(1841)에 상국 김영순金英淳이 100민의 동전을 시주하고 또 각 관아에 권하여 며칠이 되지 않아 완성하니 전에 비하여 더욱 넓어졌다.어람지御覽紙의 진상과 영문營門의 전문지箋文紙 및 기와 등 온갖 책임을 모두 이 절에서 도맡으니, 이 때문에 영문營門 본부의 보살핌이 저절로 각별하였다. 또 더구나 태실胎室로 봉하려는 뜻으로, 을묘년(1795, 정조19)에 내수사內需司와 양제궁良娣宮257)에 하교의 뜻을 전하여 매우 엄하게 이르기를, “너희들의 산 중에 이미 태봉胎封의 의론을 발하였으니 이는 예사로이 금지하여 보호하는 땅이 아니다. 지금 이후로 대소 백성을 막론하고 들어가지 말고 새로 집을 짓거나 나무를 베거나 기르거나 화전火田의 밭을 일구지 말라. 해당 승통僧統에게 더욱 엄하게 금단하게 하라.” 하였으니, 문적文蹟이 매우 분명하다. 예조禮曹로부터 도승통都僧統의 인신印信을 만들어 도내에 별도로 정하여 내려 보내 각 사찰의 수사首寺258)를 바로잡게 하였다. 전후로 성상의 염려와 재상이 돌보아주는 은택이 오늘에까지 미치는데, 승통의 힘으로 하교하신 것처럼 금단하는 것이 어려울까 두려우니, 송구하고 걱정되어 몸 둘 곳이 없다.무릇 이 사찰의 창건은 자장율사慈藏律師이 처음 창건하였고,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다시 조성하였고, 범일梵日이 3차로 건립하였고, 도선道詵이 네 번째로 중수하였고, 각순覺淳과 여러 승려들이 다섯 번째로 지었다. 그 후에 화재가 무수히 일어나고 무너졌다가 재건되고 쇠퇴한 폐단을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다시 건립하고 중수하였던 승려들과 공적이 있는 자들을 모두 본 절의 사적에 바르게 적어 더하거나 빼지 않고자 한다. 금파당錦波堂 묘화妙華는 제봉霽峰의 수제자로서 청암淸巖의 법손法孫이고 청허淸虛의 9세손이다. 금파의 수제자로 홍계당洪溪堂 영일永日이라는 자가 있는데 절이 퇴락한 것에 정성된 뜻을 내어 수리할 것을 기약하고, 흩어져간 승려들로 하여금 편안히 모이게 하였으니 그 공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홍계의 수제자에 인월당印月堂 지행智行이라는 자가 있는데 일을 처리하는 승려 중에 흑의黑衣259) 이걸二傑이요 물외物外에 도를 담당하는 백족白足260) 팔준八俊이니, 절을 보존하고 승려들을 안정시킬 마음을 항상 여기에 두었다. 흰옷을 입은 시주들과 푸른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함께 마음을 베풀어 재물 1000여 금을 모아 전토를 사들이고, -
0012_0022b_a_01L寵待錦波。尤加於前。乃以七百緡緡 [507] 銅。及還未 [508] 四十石。以補紙所。別定監色。
0012_0022b_a_02L而又權減十四結。盡給本寺爲公用之資。自此以後。寺樣依舊矣。十二月十
0012_0022b_a_03L二日。李公之生辰也。七月二十七日。錦波之生辰也。别備香燈茶菓。祈祝以
0012_0022b_a_04L表永世不忘之意也。甲辰之歲。沈相公豊之按節時。大光寶殿失火。改建之
0012_0022b_a_05L日也。特施黃租二百石。靑銅三百緡。又引勸道內。不日成之。其爲功德。不可
0012_0022b_a_06L勝言。及至丁酉。沈相國宜臣按節斯道。仰軆先意。帖給百緡銅。存本取利。至
0012_0022b_a_07L壬寅。重修靈山殿矣。庚子梅花堂失火。辛丑。金相國英淳。帖給百緡。又勸冬 [509]
0012_0022b_a_08L官。不日成之。比前益寬。御覽低 [510] 進上。及營門箋文紙。及瓦百責應。皆備於此
0012_0022b_a_09L寺。故營門本部之顧恤自別。又況以胎室封之意。粤在乙卯。內需司及良姉 [511]
0012_0022b_a_10L宮傳令敎意。至爲截嚴有曰。汝矣山中。已發胎封之議。則此非尋常禁護之
0012_0022b_a_11L地。自今以後。無端大小民人。無致入。莫入宅斫伐養木。火粟起田之意。使當
0012_0022b_a_12L該僧統。嚴加禁斷之意。文蹟昭昭。目 [512] 禮曹▣成都僧統印信。以下别定以道
0012_0022b_a_13L內。糾正各寺之首寺。則前後 上念及宰輔顧恤之澤。洎于今日。以僧
0012_0022b_a_14L統之力。恐難如 敎禁斷。是則悚悶無地處也。
0012_0022b_a_15L大槩此寺初剏於慈藏。再造於普照。三建梵日。四脩於道詵。五成於覺淳
0012_0022b_a_16L諸僧。而其後之回祿無數。頹圮興替之弊。不可勝記。而改建重修之僧徒。有
0012_0022b_a_17L功力者。正載於本寺之事蹟圓中。更不欲架墨。而錦波堂竗華。在霽峰之上
0012_0022b_a_18L足。淸巖之法孫。淸虛之九世孫也。錦波之上足。有洪溪堂永日者。誠意出於
0012_0022b_a_19L凡寺之頹圮。期於修葺。僧之離散。使之安集。其爲功也。豈不大乎。洪溪之上
0012_0022b_a_20L足。有印月堂智幸者。處事僧中。黑衣二傑。擔道物外。白足八俊。保寺安僧之
0012_0022b_a_21L心。念玆在玆。與白衣檀越。靑衲緇徒。同共設心。鳩財千有餘金。買得田土。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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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3a_a_01L세 법당의 불량佛糧과 전에 소용된 불량을 절 안에서 쓰일 보충용으로 돌려 주었다. 승려에게 다른 부역이 없어 안심하고 은적암隱寂菴, 영은암靈隱菴, 영산전靈山殿, 매화당梅花堂의 중창을 전보奠保261)하였으니, 참으로 이른바 “별로 점을 치고 날짜를 헤아리며, 흙을 뒤바꾸어 금을 만들어서 사업을 이룬다.”는 것이다. 내원奈園의 전공前功262)과 단계檀溪의 숙원263)을 대사에게서 징험할 수 있다.인월의 제자 중에 정이淨頤라는 사람은 재능이 중용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마음은 한결같이 정성스러웠으며 그 행동은 한결같이 성실하였다. 절 안에서 한 푼도 보급해 주지 않고 자기와 함께 한 가지 일도 따라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흥성루興聖樓, 해탈문解脫門, 연대암蓮臺菴, 구진전舊眞殿이 무너지는 대로 결손된 곳을 보수하여 위태롭게 비바람을 맞아도 황폐해지지 않게 하였으니 유람하는 사람들은 칭찬하고 선을 닦는 사람들은 즐거워하였다. 그러니 정이의 공은 아마도 세 분 대사의 아래에 있지 않을 것이다. 수성守成의 어려움이 어찌 창업의 어려움보다 더 어렵지 않겠는가. 만약 네 분 대사와 같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계승된다면 천만 년이 지나도 이 절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함풍咸豐 원년 신해(1851, 철종2) 봄은 상국 홍열모洪說謨가 절도사로 있을 때인데, 마침 우리 절의 나한법당이 재건될 때이다. 특별히 100민을 시주하여 일을 마치게 하였으니 그 공덕을 영세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어찌 불가의 어둡지 않은 보응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또한 정이淨頤의 정성된 마음이 이른 것이다. 더욱 ……하고자……8-1. 마곡사가 불에 탄 뒤 중건 및 중수한 연기록(麻谷寺回祿後改建及重修年記錄)건륭乾隆 47년 임인(1782, 정조6) 9월 6일. 대법당 및 1050여 칸이 불에 타버려 4년째인 을사년(1785, 정조9)에서 무신년(1788, 정조12)까지 대법당을 고쳐 짓고, 삼단三壇 탱화 및 단청을 마쳤다. 화주化主는 제봉당霽峰堂 체규軆奎이다.건륭五十六年 신해(1791, 정조15). 나한전羅漢殿을 중창하였다.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건륭六十年 을묘(1795, 정조19). 상원上院을 중건하였다.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가경嘉慶 원년 병진(1796, 정조20). 청련암靑蓮菴을 중건하다. 승려 낙성樂成.가경 원년 병진. 국사당國師堂을 중창하였다.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가경 2년 정사. 심검당尋劍堂을 중건하였다.화주는 제봉당霽峰堂 체규軆奎. 원관元管 일균日均.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가경 19년 갑술(1814, 순조14) 2월 20일. 총지료摠持寮가 불에 타서 지소紙所를 폐쇄하였다.2년 째인 병자년(1816, 순조16) 개건하였다. 일균日均 영감令監과 절이 힘을 함께 하였다.가경 25년 경진(1820, 순조20). 내원內院을 중창하였다. 화주 희구喜久. -
0012_0023a_a_01L三法堂佛粮。前所用佛粮。入于寺中之補用。僧無他賦。安心奠保隱寂ㆍ靈隱ㆍ
0012_0023a_a_02L靈山殿ㆍ梅花堂之重創也。眞所謂點 [513] 星揆日。飜土成金。以成事業者也。奈園
0012_0023a_a_03L前功。檀溪宿願。於師驗之也。印日 [514] 之上足淨頤者。才能不過中庸。而其心則
0012_0023a_a_04L一於誠。其動則一於實。寺中無一金補給。同己無一事隨爲。而興聖樓ㆍ解脫
0012_0023a_a_05L門ㆍ蓮臺菴ㆍ舊眞殿。隨壤補缺。危受風雨。不使荒蕪。遊觀者稱之。安禪者樂之。
0012_0023a_a_06L順 [515] 也之功。恐不在於三師之下矣。守誠 [516] 之難。豈不難於剏業之難乎。若使如
0012_0023a_a_07L四師者。繼繼承承。則於千萬年。玆寺不滅。豈不猗朝 [517] 偉矣。域 [518] 咸豊元年辛亥
0012_0023a_a_08L春。卽洪相國說謨按節日。而際我羅漢法堂改建之時也。特施百緡。使之汽 [519]
0012_0023a_a_09L役。其爲功德。示 [520] 世不忘。寧可無佛家不昧之秋應 [521] 乎。此亦淨頤誠心之所格
0012_0023a_a_10L耶。尤可欲堂
0012_0023a_a_11L麻谷寺回祿後改建及重修年記錄
0012_0023a_a_12L乾隆四十七年壬寅九月初六日。大法堂及一千五十餘間回祿。而越四
0012_0023a_a_13L年乙已。至戊申。大法堂改建。三壇幀及丹靑訖役。 化主霽峰堂軆奎。
0012_0023a_a_14L乾隆五十六年辛亥。羅漢殿重剏。山中共力。
0012_0023a_a_15L乾隆六十年乙卯。上院重建。山中共力。
0012_0023a_a_16L嘉慶元年丙辰。靑蓮重建。尼僧樂成。
0012_0023a_a_17L嘉慶元年丙辰。國師堂重剏。山中共力。
0012_0023a_a_18L嘉慶二年丁巳。尋劍堂重建。化主霽峰堂軆奎。元管日均。山中幷力。
0012_0023a_a_19L嘉慶十九年甲戌二月二十日。摠特 [522] 寮回祿。紙所廢。
0012_0023a_a_20L越二年丙子改建。日均令監。與山中共力。
0012_0023a_a_21L嘉慶二十五年庚辰。內院重剏。化主喜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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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3b_a_01L도광道光 6년 정해(1827, 순조27). 가섭대迦葉臺가 불에 탔다. 3년째인 경인년(1830, 순조30). 절에서 재물을 모으고 곡식을 시주 받아 개건하였다.도광 11년 신묘(1831, 순조31). 2층 하대下臺를 중수하였다.화주 연봉당鍊峰堂 호영灝永.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임진년(1832, 순조32). 이어서 자금을 모아 월영대月影臺 불사를 하였다. 주관 연봉당 호영.도광 16년 병신(1836, 헌종2). 영은암靈隱菴을 중수하다.승려 묵언默彥ㆍ옥인玉仁ㆍ유환有還ㆍ복선福善ㆍ상엽尙燁ㆍ봉흔奉欣ㆍ취흔取欣이 힘을 함께 하였다.도광 20년 경자(1840, 헌종6) 10월 7일. 매화당梅花堂이 불에 타고 다음해 신축년.화주 경월鏡月이 고쳐지었다.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 호가 경월이고 이름은 쾌수快守이다.도광 20년 경자. 은적암隱寂菴을 중건하였다. 화주 인월당印月堂 지행智幸. 당상堂上을 중건하였다. 화주 승려 상엽尙燁ㆍ취흔取欣. 주관 제봉霽峰의 상좌이고 법민法敏의 법손인 경신敬信.도광 22년 임인(1842, 헌종8). 영산전靈山殿 법당을 중수하였다.화주 월인月印ㆍ지행智幸ㆍ연봉鍊峰ㆍ호영灝永.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 향각香閣을 새로 지었다.화주 인월당 지행, 연봉당 호영. 절에서 힘을 함께 하였다.도광 23년 계묘. 백련암白蓮菴을 중창하였다.채류彩流, 청신녀清信女 추대원秋大元.도광 24년 갑진. 흥성루興聖樓를 중수하였다. 화주 정순淨順. 내산內山의 연대蓮臺를 고쳐지었다. 화주 정순, 승려 취흔取欣.도광 26년 병오(1846, 헌종12). 해탈문解脫門을 중수하였다. 화주 정순.도광 29년 기유(1849, 헌종15). 청련암靑蓮菴을 중건하였다.승려 도훈道訓ㆍ수한守閑ㆍ낭보朗實ㆍ원열元悅ㆍ낭교朗敎.함풍咸豊 원년 신해(1851, 철종2). 나한전羅漢殿을 고쳐지었다.정순淨順, 점니승占尼僧 엽燁이 사재를 출연하여 대법당을 완성하고, 향로전香爐殿의 기와지붕 이는 일을 동시에 완성하였다.도광 26년 병오. 매화당梅花堂 공루空樓를 고쳐지었다.화주는 경운당景雲堂 채원이다.도광 26년 병오. 약사전藥師殿을 고쳐지었다.함풍 원년 신해 봄. 백련암을 예전대로 중수하였다.주관 한암각韓巖覺 계종戒宗.
≺마곡사麻谷寺 네 산의 입안立案 범표犯標≻ -
0012_0023b_a_01L道光六年丁亥。迦棄回祿。越三年庚寅。山中鳩財。乞粒改建。
0012_0023b_a_02L道光十一年辛卯。二層下臺重修。化主鍊峰堂灝永。山中幷力。
0012_0023b_a_03L壬辰繼鳩。月影臺佛事。主管鍊峰堂灝永。
0012_0023b_a_04L道光十六年丙申。靈隱重修。尼僧默彥ㆍ玉仁ㆍ有還ㆍ福善ㆍ尙燁ㆍ奉欣ㆍ取欣幷力。
0012_0023b_a_05L道光二十年庚子十月初七日。梅花堂回祿。越明年辛丑。化主鏡月改建。山中幷力。號鏡月。名
0012_0023b_a_06L快守。
0012_0023b_a_07L道光二十年庚子。隱寂重建。化主印月堂智幸。堂上重建。化主尼僧尙燁ㆍ
0012_0023b_a_08L取欣。主管霽峰之上佐法敏孫敬信。
0012_0023b_a_09L道光二十二年壬寅。靈山殿堂重修。化主月印ㆍ智幸ㆍ鍊峰ㆍ灝永。山中幷力。香閣新建。化主印月堂智
0012_0023b_a_10L幸ㆍ鍊峰堂灝永。山中幷力。
0012_0023b_a_11L道光二十三年癸卯。白蓮菴重剏。彩流。清信女秋大元。
0012_0023b_a_12L道光二十四年甲辰。興聖樓重修。化主淨順。內山蓮臺改建。化主靜順ㆍ尼
0012_0023b_a_13L僧取欣。
0012_0023b_a_14L道光二十六年丙午。解脫門重修。化主淨順。
0012_0023b_a_15L道光二十九年己酉。靑蓮重建。尼僧道訓ㆍ守閑ㆍ朗實ㆍ元悅ㆍ朗敎。
0012_0023b_a_16L咸豊元年辛亥。羅漢殿改建。淨順占尼僧燁出私財。大法堂以成耳。盖瓦香爐殿。同建同時。
0012_0023b_a_17L道光二十六年丙午。梅花堂空樓改建。化主景雲堂彩元也。
0012_0023b_a_18L道光二十六年丙午。藥師殿改建。
0012_0023b_a_19L咸豊元年辛亥春。白蓮菴因舊重修。主管韓巖覺戒宗。
0012_0023b_a_20L麻谷寺四山立案犯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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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4a_a_01L2층 전각 10리 뒤 주 산기슭에서부터 동쪽으로 골짜기 아래 두 泉山에 탑을 조성한 곳까지.영산전靈山殿 뒤에서부터 군왕대君王臺의 태실胎室을 봉한 산 뒤편 기슭에 표지를 세운 곳.밀현蜜峴 아래로부터 용교혼동龍橋昏洞 석숙동釋熟洞 위의 탑을 세운 곳.동쪽 청련암靑蓮菴부터 서쪽에 가섭대迦葉臺가 바라다 보이는 땅의 서▼동西▼(氵+年)洞 뒤편 산기슭까지.남쪽 영은암靈隱菴이 바라다 보이는 땅의 묵방동墨房洞 화진치火陣峙 부곡富谷 아래 탑을 세운 곳.마곡사 도승통都僧統에게 내린다. 각 면의 풍헌, 두민頭民264), 동임洞任 등은 이에 준한다.신해년 월 일.
입안立案 완문完文겸사兼史
이 본사의 지세와 산형은 비록 시원하게 툭 트이지는 않았으나 실로 그윽한 정취가 많다. 한줄기 반자천磻藉川이 가로질러 흐르는데, 봄이면 물속에 잠겨 비치는 것은 냇가 언덕의 철쭉이요, 가을이면 비단 수를 놓는 것은 층층 봉우리의 단풍이다. 바위 밑둥에서 콸콸 소리를 내는 것은 사시사철 세차게 흐르는 물이요, 골짜기 안에 층층이 자라고 있는 것은 백 년 묵은 커다란 나무들이다. 남쪽 무치舞峙로부터 앞 시내에 이르기까지는 봄 여름의 행行에 녹음이 서로 어우러지고, 앞쪽 밀현密峴으로부터 서쪽 시내에 이르기까지는 구부러진 비탈길에 기이한 바위들이 빙 두르고 있으니, 산마루의 그윽한 풍경과 냇가의 맑고 고운 모습을 어찌 능히 모두 글로 쓸 수 있겠는가. 이에 서쪽 전각의 처마로부터 수명탄水鳴灘에 이르고 선당禪堂을 지나 월파방月波房 앞에 이르며 명월계月明階 앞에서부터 맑은 물이 고였다가 임료稔寮를 지나 완수루翫水樓 아래에까지 이르는 것들이 모두 층층 너럭바위 위를 경유하면서 진흙모래 가운데에 끝이 없고, 혹은 얕고 깊으며 혹은 고여 있고 혹은 세차게 흐르니, 그 모양을 헤아리기 어렵다.아, 낭떠러지가 깎아지른 듯 서 있고 절벽이 높게 걸려 있으니 누가 남김없이 다 보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진원眞源을 탐색하고 승경勝景을 구경하려는 시인들이나 고요한 품성을 기르고 뜻을 즐겁게 하려는 행각승行脚僧들이 다투어 서로 왕래하며 그 풍치를 실컷 누리는 것들을 어찌 이루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감사監司 병사兵使의 관아에 온 사신들이나 목사 군수 등 수령들 및 이름난 재상과 높은 벼슬아치들이 너도나도 견여肩輿를 타고 길을 돌아서라도 반드시 이곳을 지나가는 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도리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힘들고 괴로운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골짜기 안에 심은 나무는 어느 시대 누가 심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현징玄澄이 만월대滿月臺에 은행나무를 심고 정민淨敏이 시내 남쪽 가에 노송나무를 심은 것은 병오년과 정미년이고, 태천泰天이 서쪽 시내 길가에 무환자나무를 심고 북쪽 정자 좌우에 홰나무를 무더기로 많이 심은 것은 을미년과 경술년이고, 법영法英이 서쪽 물가에 20그루의 홰나무를 심고 -
0012_0024a_a_01L自二層殿十里後主麓。東至洞下兩泉山造塔處。
0012_0024a_a_02L自靈山殿後君王臺胎室封山之後麓立標處。
0012_0024a_a_03L自蜜峴下龍橋昏洞釋熟洞上造塔處。
0012_0024a_a_04L自東靑蓮菴。至西迦棄望見之地。西▼(氵+年)洞後麓。
0012_0024a_a_05L自南靈隱菴望見之地。墨房洞火陣峙富谷下造塔處。
0012_0024a_a_06L各下麻谷寺都僧統。各面風憲ㆍ頭民ㆍ洞任等準此。
0012_0024a_a_07L辛亥 月 日。
0012_0024a_a_08L立案完文
0012_0024a_a_09L兼使
0012_0024a_a_10L盖此本寺地勢山形。雖欠軒敞。而實多幽趣。一磻藉川。流波橫帶。春而涵
0012_0024a_a_11L暎者。汀崖之擲燭 [523] 。秋而錦繡者。層巒之丹楓也。聒聒於石齒者。四時之激流
0012_0024a_a_12L也。層層於谷中者。百年之喬木也。自南舞峙至前川。綠陰交暎於春夏之行 [524] 。
0012_0024a_a_13L自後蜜峴至西川。奇巖圍繞於回轉之斜逕。則山崖之幽閑。澗溪之淸麗。何
0012_0024a_a_14L能盡記。是以自西殿簷下。至水鳴灘。過禪堂。至月波房前。自月明階前。淸波
0012_0024a_a_15L渟滀。過稔寮。至翫水樓下者。皆由於層磻之上。無濱於泥沙之中。或淺或深。
0012_0024a_a_16L渟 [525] 或激。其態難測也。噫。斷崖之削立。絕壁之懸高。誰欲盡覽。而探眞玩勝之
0012_0024a_a_17L騷客。養精 [526] 靜樂志之遊僧。爭來互往。以飽其趣者。何可勝道哉。監兵都營之
0012_0024a_a_18L別星。牧守令監之守宰。及名公巨卿。互乘肩輿。迃途必過。絡續不絕。還爲㞐
0012_0024a_a_19L○之困苦者。信乎宜矣。谷中所種之樹。不知何時何人之所栽者多。若夫玄
0012_0024a_a_20L澄之種銀杏於滿月臺。淨敏之栽檜於川南邊者。丙午丁未也。泰天之種桓
0012_0024a_a_21L於西川路上。多植叢槐於北亭左右者。乙未庚戌也。法英立種二十槐於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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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4b_a_01L덕원德元이 남쪽 물가에 버드나무를 기른 것은 임술년과 신미년이다. 비록 칭찬할 만한 실속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옛 사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이를 편말에 기록해 둔다. 전후로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인물들은 그 소략함이 아쉽지만 본사의 순치順治 입안立案의 원중圓中에 이미 상세하게 실려 있다. 그리고 박야외朴也外, 덕휘德輝, 응탁應卓, 인희印希, 천숙天淑, 홍준弘俊, 일선一善, 지원智元, 의전義全, 신견信堅, 각순覺淳, 충해冲海, 선일先一, 충휘忠輝, 선행善行, 처옥處玉, 거사居士 김돌파지金乭破只 등은 재물을 모아 여러 불전佛殿의 완성을 주관한 사람들이다. 대장전大藏殿의 불상은 정민淨敏으로 인하여 완성되었고, 영산전靈山殿의 천불千佛은 인영印英에게 의뢰하여 지었다. 유민裕敏의 공은 천왕문天王門을 개창한 것이고, 학인學仁의 덕은 범종루泛鍾樓에 울려 퍼진다. 이 근 100명에 달하는 승도들은 재능에 있어 앞뒤와 두텁고 얇음은 다르나, 칭찬할 만한 이름과 포상할 만한 공로는 충분히 후세에 전할 만하며 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이다.아, 각순과 박야외는 사재를 많이 들여서 크게 공덕을 세운 사람이다. 운혜雲惠와 탁일卓一은 곧 공사를 주관하고 감독하여 여러 장인들에게 일을 분담시킨 사람이다. 운일雲日, 현징玄澄, 충색冲色, 태천泰天, 죽림竹林은 공사를 적절하게 잘 계획한 사람들이다. 법희法熙, 설호雪湖, 능안能安은 경향京鄕에서 일을 맡아 결말을 성사시킨 사람들이다. 토지가 면세되어 본사와 각 사찰이 억울한 부세를 면하게 한 것은 죽림이 홀로 훌륭하게 해냈으니 가상하다. 또 인영印英, 가휘可輝, 승언勝彥, 문옥文玉, 일선一善, 충형冲浻, 각무覺無, 청운淸雲, 덕명德明, 택정擇淨, 문우文祐 등은 산중의 빼어난 덕망을 갖춘 분으로 각기 여러 암자에 거주하면서 절을 수호한 사람들이다. 승열勝悅, 법승法勝, 성민性敏, 청안靑眼, 형회浻悔 등은 높은 암자에서 덕을 기르며 절을 지킨 사람들이다. 철현哲玄은 그림의 품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절에서 노닐던 사람이다. 그 중에서 특히 뛰어나고 비범한 사람이 인영印英인데, 나이 여든여덟에 여러 경전에 널리 통달하였고 굳은 지조를 높이 드날렸다. 청안은 나이 쉰셋이었는데 금옥과 같은 뛰어난 자질로 경학에 몰두하기를 즐겨하였다. 성민性敏과 형오浻悟는 젊은 나이에 밝고 총명하였으며 경학 공부에 익숙한 사람이다. 법승法勝과 행안幸安은 깨달음이 크고 많은 모범을 보였으며 고요함을 즐겨하고 번거로움을 피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가 빼어난 옛 인물들이었다. 강희康熙, 옹정雍正 이후로 공을 세워 이름을 남기며 학문에 뜻을 두고 도를 닦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으나 지금 여기에 일일이 기록할 수 없으니 마땅히 후대 사람이 추가로 기재하기를 기다린다.영자전影子殿에 모셔져 있는 세 조사祖師는 첫째가 목우자牧牛子로 이름은 지눌知訥이다. 둘째는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으로 호는 서산西山이다. 셋째는 소요당逍遙堂 태능太能으로 호는 금봉金峰이다. 넷째는 청한당淸寒堂 가휘可輝니 호는 불유不有이다. 다섯째는 각순覺淳 서산西山으로 우리 조선 명종대왕明宗大王과 선조宣祖 때의 승려인데 양주인楊州人이다. 금봉 역시 우리 -
0012_0024b_a_01L汀。德元之養柳於南汀者。壬戌辛未也。雖非可稱之實事。而可爲古蹟。故今
0012_0024b_a_02L此記墨於著末。而至於前後人物之未盡記載。可欠其疎略。而本寺之順治
0012_0024b_a_03L立案。圓中欣 [527] 載。已諱 [528] 悉。而夫朴也外ㆍ德輝ㆍ應卓ㆍ印希ㆍ天淑ㆍ弘俊ㆍ一善ㆍ智元ㆍ義
0012_0024b_a_04L全ㆍ信堅ㆍ覺淳ㆍ冲海ㆍ先一ㆍ忠輝ㆍ善行ㆍ處玉ㆍ居士金乭破只等。則鳩財化物。主成
0012_0024b_a_05L諸殿者也。大藏殿佛像。則因淨敏而成也。靈山殿千佛。則▣印美 [529] 而造也。裕
0012_0024b_a_06L敏之功。開於天王門。學仁之德。鳴於泛鍾樓也。此近百僧徒。品質才能之先
0012_0024b_a_07L後厚薄則異同。而可稱之名。可賞之功。亦足以垂後。而不可泯者也。鳴呼。覺
0012_0024b_a_08L淳及朴也朴 [530] 。多費私財。大樹功德者也。雲惠ㆍ卓一。則主臺工師。分任衆匠者
0012_0024b_a_09L也。雲日ㆍ玄澄ㆍ冲色ㆍ泰天ㆍ竹 [531] 。則謀事得宜者也。法熙ㆍ雪湖ㆍ能安。則任事京外。成
0012_0024b_a_10L事決未 [532] 者也。至於田結免稅。本寺與各寺。俾免寃賊 [533] 者。竹林可尙其獨賢也。
0012_0024b_a_11L且印英ㆍ可輝ㆍ勝彥ㆍ文玉ㆍ一善ㆍ冲浻ㆍ覺無ㆍ淸雲ㆍ德明ㆍ擇凈ㆍ文祐等。則以山中逸
0012_0024b_a_12L德。各住諸菴。而護寺者也。勝悅ㆍ法勝ㆍ性敏ㆍ者 [534] 眼ㆍ浻悔等。則養德高菴。而衛寺
0012_0024b_a_13L者也。哲玄則名著畵格。而遊於寺者也。其中特立不凡者印英。年八十八。博
0012_0024b_a_14L通諸經。介志高擧者也。靑眼年五十三。金精玉質。沉好經學者也。性敏ㆍ浻悟。
0012_0024b_a_15L則年少明敏。慣習經學者也。法勝ㆍ幸安。則魁梧 [535] 多範。樂靜避擾者也。此皆古
0012_0024b_a_16L昔之人傑之。康熙雍正以後。立功垂名。志學修道之人。不知其幾多。而令 [536] 不
0012_0024b_a_17L能一一記載於此。當竢後人之追記焉。
0012_0024b_a_18L影子殿所畵三祖師。一曰牧牛子。名曰知訥。二曰淸虛堂休靜。號西山也。
0012_0024b_a_19L三曰遐 [537] 遙堂太能。號則金峰也。四曰淸寒堂可輝。號則不有也。五曰覺淳西
0012_0024b_a_20L山。則我朝
0012_0024b_a_21L明宗大王及
0012_0024b_a_22L宣廟時僧。楊州人也。金峰亦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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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5a_a_01L선조와 인조 때의 승려이고 가휘는 천안天安 태생으로 이 산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 다섯 조사 중에서 보조와 각순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세 조사만 별도로 기록하여 언급하였다. 성연性衍 스님은 공덕이 비록 각순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힘을 다하여 영은암靈隱庵을 건립하였으니 그 공로를 어찌 다 일컬을 수 있겠는가. 이에 편말에 드러내어 적는다.함풍咸豐 원년 신해(1851) 4월 상순에 유학幼學 임원모任源謨 형보亨甫는 쓰다.
8-2.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천불전千佛殿 중수문重修文무릇 만물은 성했다가 쇠하고 쇠했다가 흥하는 것이니 이치가 원래 그러하다. 강희康熙 21년 임술(1682, 숙종8) 여름에 이 불전을 세웠는데, 여러 차례 풍상風霜을 겪어서 절에 사는 덕이 높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근심한 나머지 힘을 도와 모연募緣265)하였다. 도광道光 임인년(1842, 헌종8) 봄에 이 큰일을 계획하여 그해 여름에 완공을 알렸다. 그 공역功役을 ……하면 물건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고 공은 역役 …▣▣ 아니다. 그 덕이 높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름을 대략 들어서 뒤에다 새긴다.
대시주大施主
유학幼學 김이만金履萬 양주兩主. 유학 유동식兪東植 양주. 최종아지崔從阿只. 박대원朴大元 양주. 봉모奉母 한씨韓氏 기축생己丑生. 곤명坤命 김씨金氏 기사생己巳生. 아들 백기윤白基允. 비구比丘 정순淨順. 봉모 최씨崔氏 기해생己亥生. 구재춘具載春 양주. 이영식李永植 양주. -
0012_0025a_a_01L宣祖及仁祖時僧。可輝胎生於天安。舍身於此山。此五師中。普照與覺淳。
0012_0025a_a_02L更不必言。故以三祖師別錄而稱之。性衍師功性雖未及於覺淳。盡力建立
0012_0025a_a_03L靈隱菴。則其爲功勞。何可盡稱乎。玆以表書于篇末。
0012_0025a_a_04L咸豊元年辛亥四月上浣。幼學任源橫 [538] 享甫書。
0012_0025a_a_05L
0012_0025a_a_06L泰華山麻谷寺千佛殿重修文
0012_0025a_a_07L
0012_0025a_a_08L夫物盛而衰。衰以後興。理之固然也。歲康熙二十一年壬戌之夏。搆此殿也。
0012_0025a_a_09L累逕 [539] 風霜。山中碩德。夙夜憂懼。力助募緣。歲道光壬寅之春。經此大事。告功
0012_0025a_a_10L于其年之夏。嵐 [540] 厥功役。物非天來。功不役▣。略擧其碩德方 [541] 名。開刻于後。
0012_0025a_a_11L 大施主 山中宗師秩 運役秩
0012_0025a_a_12L幼學金履萬兩主 靈岩有▣ 各房緇丁煩不錄
0012_0025a_a_13L幼學兪東植兩主 龍岩補觀 東便丈幸觀
0012_0025a_a_14L 崔從阿只 洪溪永日 西便丈采元
0012_0025a_a_15L 朴大元兩主 性峰善綻 時首僧明賛
0012_0025a_a_16L奉母韓氏己丑生 湖雲貯信 書記祐榮
0012_0025a_a_17L坤命金氏己巳生 鏡月快守 持事道允
0012_0025a_a_18L 子白基允 碧波性幸 三補快洪
0012_0025a_a_19L 比丘淨順 仁性斗▣
0012_0025a_a_20L奉母崔氏己亥生 瑞岩戒宗 山人法敏
0012_0025a_a_21L 具載春兩主 前啣秩
0012_0025a_a_22L 李永植兩主 時僧統藏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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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5b_a_01L박삼손朴三孫 양주. 오복경吳卜慶 양주. 이절벽李絕壁 양주. 손영순孫永順 양주. 이현규李顯奎 양주. 곤명坤命 임씨任氏 기묘생己卯生. 유학 김철근金哲根. 박종면朴宗冕. 정정복鄭正福. 임일갑林日甲. 백정명白定明. 도편수都片手 이근후李根厚. 이태백李太白. 이문호李文浩. 각엄기刻嚴基. 정씨鄭氏 병진생丙辰生 곤명. 김씨金氏 곤명.
산중종사질山中宗師秩
영암靈岩 유▣有▣. 용암龍岩 보관補觀. 홍계洪溪 영일永日. 성봉性峰 선탄善綻. 호운湖雲 저신貯信. 경월鏡月 쾌수快守. 벽파碧波 성생性幸. 인성仁性 두▣斗▣. 서암瑞岩 계종戒宗.
전함질前啣秩
시승통時僧統 장률藏律. 전승통前僧統 종철宗喆. 전승통 보일普日. 설계승통設計僧統 창렴昌濂. 전승통 월첨月沾.
연화질緣化秩
도화주都化主 인월印月 지행智幸. 화주 ▣봉▣鳳 호영灝英. 화주 청선녀淸善女 낙선화樂善花. 화주 정옥定玉 비구니. 두선斗善 비구니. 취흔取欣 비구니. 도훈道訓 비구니. 복선福善 비구니. 도감都監 성월性月 인환仁還. 별좌别座 경신敬信. 화주 성언性彦 윤흡允洽. 공양주 도휘道輝 영훈永訓.
운역질運役秩
각 방의 승도들은 번거로워서 기록하지 않는다.
동편장東便丈 행관幸觀. 서편장西便丈 채원采元. 시수승時首僧 명찬明賛. 서기書記 우영祐榮. 지사持事 도윤道允. 삼보三補 쾌홍快洪. 산인山人 법민法敏.
도광道光 22년계묘266) 2월 일, 화담華潭 문인 경월鏡月 충수忠守는 삼가 쓰다.8-3. 마곡사麻谷寺 3국사三國師 영당影堂 중건조연문重建助緣文무릇 만물은 성하면 쇠하고 이치는 변하면 합치되는 것이니, 본래 그러한 일이다. 지금 이 세 분 국사의 영당影堂이 세워진 것은 연조가 오래 되어서 -
0012_0025b_a_01L 朴三孫兩主 前僧統宗喆
0012_0025b_a_02L 吳卜慶兩主 前僧統普日
0012_0025b_a_03L 李絕壁兩主 設計僧統昌濂
0012_0025b_a_04L 孫永順兩主 前僧統月沾
0012_0025b_a_05L 李顯奎兩主 緣化秩
0012_0025b_a_06L坤命任氏己卯生 都化主印月智幸
0012_0025b_a_07L 幼學金哲根 化主▣鳳灝英
0012_0025b_a_08L 朴宗冕 化主淸善女樂善花
0012_0025b_a_09L 鄭正福 化主定玉比丘尼
0012_0025b_a_10L 林日甲 斗善比丘尼
0012_0025b_a_11L 白定明 取欣比丘尼
0012_0025b_a_12L都片手李根厚 道訓比丘尼
0012_0025b_a_13L 李太白 福善比丘尼
0012_0025b_a_14L 李文浩 都監性月仁還
0012_0025b_a_15L 刻嚴基 别座敬信
0012_0025b_a_16L鄭氏丙辰生坤命 化主性彦 允洽
0012_0025b_a_17L 金氏坤命 供養主 道輝 永訓
0012_0025b_a_18L道光二十二年癸卯二月日華潭門人鏡月忠守謹書。
0012_0025b_a_19L
0012_0025b_a_20L麻谷寺三國師影堂重建助緣文
0012_0025b_a_21L
0012_0025b_a_22L夫物盛則衰。理變則合。乃固然事也。今此 參國師影堂之設建。年有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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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6a_a_01L건물의 벽은 기울어지고 기둥은 썩었다. 매번 중건할 뜻이 있었으나 그럴 만한 사람을 얻기도 어렵고 자금을 모으기도 어려워 감히 수리를 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절의 염원이었다. 마침 임술년(1862, 철종13) 봄을 맞아 도를 사랑하는 한 명의 비구가 있었으니 이름을 취흔取欣이라고 하였다. 손수 그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담당하고 4, 5명의 선사禪師와 함께 자금을 모아 그해 2월에 공사의 시작을 알렸다. 5월에 이르러 장인들이 완성을 ▨하였다.탱화를 안치하니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이전 모습보다 배나 뛰어났다. 조성한 것이 비록 ▣ 마쳤으나 인월印月 대사는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으니 절 안의 동량이 꺾어진 것이다. 나 또한 이로부터 떠날 것이니 그 인연을 도운 아름다운 이름과 근로의 화별化別267)을 기록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재주가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그 사적을 서술하여 후대의 준거로 삼는다. 훗날의 스님들이 웃지 않기를 바란다.동치同治 원년 임술 10월 일. 시총섭時摠攝 경월鏡月 포련抱蓮은 삼가 적다.
산중질山中秩
서룡瑞龍 경신敬信. 인월印月 지행智幸 도감都監. 연봉練峰 호영灝英. 연암蓮庵 치진致眞. 한암漢庵 정일定佾. 원담源潭 행관幸寬. 경운景雲 채원采元 화주化主. 경성景星 쾌일快逸 화주化主. 유월幼月 대기大奇. 질秩 온양군수溫陽郡守 이씨李氏. 곤명坤命 이씨李氏. 곤명 이씨李氏. -
0012_0026a_a_01L矣。而堂壁傾頹。棟樑朽敗。每有重建之意。而得人且難。鳩財亦難。未敢修
0012_0026a_a_02L茸。乃是山中之所念矣。適當壬戌之春。有一愛道尼。名曰取欣也。荷其手
0012_0026a_a_03L䟽。與四五禪師。得之鳩財。乃於其年二月。命工始役。至于五月。匠工▨訖。
0012_0026a_a_04L敉安畵幀。宏麗優儀。陪於舊樣。成造雖畢▣當。印月不幸而逝。寺中之棟
0012_0026a_a_05L樑折矣。吾亦從此而去矣。其助緣之芳名。勤勞之化別。不可無記。故余不
0012_0026a_a_06L揆不才。叙其事蹟。以爲後來之憑準焉。庶其無後師之呵呵哉。
0012_0026a_a_07L同治元年壬戌十月日。時摠攝鏡月抱蓮謹識。
0012_0026a_a_08L山中秩 應眞殿指殿大彦 前靑陽縣監朴氏
0012_0026a_a_09L 瑞龍敬信 德岩浩演化主下山 片手 金文伯
0012_0026a_a_10L 印月智幸都監 暎海海藏化主下山 山役 金淨順兼監都
0012_0026a_a_11L 練峰灝英 應雲壯咸 都化主比丘尼取欣
0012_0026a_a_12L 蓮庵致眞 碧山喜曇 大施主比丘尼應岑
0012_0026a_a_13L 漢庵定佾 普聞大雄 化主國能
0012_0026a_a_14L 源潭幸寬 泰華善學 化主賛俊
0012_0026a_a_15L 景雲采元化主 石帎明賛 化主昌寬
0012_0026a_a_16L 景星快逸化主
0012_0026a_a_17L 幼月大奇
0012_0026a_a_18L秩溫陽郡守李氏 吳物茁己未生 乾命方齊興
0012_0026a_a_19L 坤命李氏 乾命李氏壬申 坤命任氏乙卯生淸信女
0012_0026a_a_20L 坤命李氏 坤命孫氏戊辰 童子魯祥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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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6b_a_01L해미영장海美營將 이씨李氏 면배勉培. 동자童子 임영희任榮熙. 건명乾命 박기환朴基煥. 건명乾命 전흥주全興主 신축생辛丑生. 곤명坤命 박씨朴氏 신묘생辛卯生. 곤명 지씨池氏 신묘생辛卯生. 건명 이정기李正奇 비인庇仁 거주. 곤명 을사생乙巳生 윤옥潤玉. 삼보三補 삼림祥林. 응진전應眞殿지전指殿 대언大彦. 덕암德岩 호연浩演화주化主 하산下山. 영해暎海 해장海藏화주 하산. 응운應雲 장함壯咸. 벽산碧山 희담喜曇. 보문普聞 대웅大雄. 태화泰華 선학善學. 석▼石▼(巾+冗) 명찬明賛. 오물줄吳物茁 기미생己未生. 건명 이씨李氏 임신壬申. 곤명 손씨孫氏 무진戊辰. 곤명 조씨趙氏. 건명 손수득孫壽得. 곤명 신축생辛丑生. 건명 정이호鄭利浩. 각방의 운역運役 승도들 40명은 번거로우니 기록하지 않음. 삼강수승三綱首僧 덕문德汶. 서기書記 창헌暢憲. 화공畵工 두해斗海. 지사持司 석전錫典. 삼보三補 상림祥林. 전前 청양현감靑陽縣監 박씨朴氏. 편수片手 김문백金文伯. 산역山役 김정순金淨順겸도감兼監都. 도화주都化主 비구니 취흔取欣. 대시주大施主 비구니 응잠應岑. 화주 국능國能. 화주 찬준賛俊. 화주 창관昌寬. 건명 방제흥方齊興. 곤명 임씨任氏을묘생乙卯生 청신녀淸信女. 동자童子 노상봉魯祥鳳. 동자 정명환鄭命煥. 순영장방巡營長房 전10냥錢十兩.8-4. 공주군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심검당尋劒堂의 공동 요사채 번와기翻瓦記무릇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같지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니, 대소의 ▣ 힘이 시종 함께 공을 이룬 것은 인화이리라. 이 암자의 공동 요사채는 곤오昆吾의 일268)을 하는 곳인데, 여러 해를 지나서 동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서쪽으로 비뚤어지기도 하며 서까래와 평고대가 썩었는데도 전혀 중수할 계획이 없었다. 다행히도 지난 무신년(1908, 순종2) 겨울에 화엄산림華嚴山林의 영미零米269)를 자본으로 삼아 정산淨山의 여러 인원들이 누차 자금을 모아서 한 달이 되지 않아 일의 완공을 알렸다. 하늘의 신과 땅의 귀신도 이로써 기뻐하고 산수의 광경이 이로부터 더욱 아름다우니, 수많은 선덕禪德들이 염불하고 참선하는데 각각 제 장소를 얻게 되었다. 가히 천시가 이르고 지리를 겸하였으며 인화를 얻었다고 할 만하다. 당시의 공적을 완전히 묻어버릴 수 없어 그 전말을 대략 기록한다.
본산중질本山中秩
주실籌室 월황月艎 거택巨澤 20냥. 금호錦湖 약효若效 80냥. 보명普明 성관性寬 10냥. -
0012_0026b_a_01L 海美營將李氏勉培 坤命趙氏 童子鄭命煥
0012_0026b_a_02L 童子任榮熙 乾命孫壽得 巡營長房錢十兩
0012_0026b_a_03L 乾命朴基煥 坤命辛丑生
0012_0026b_a_04L 乾命全興主辛丑生 乾命鄭利浩
0012_0026b_a_05L 坤命朴氏辛卯生 各房運役緇類四十名煩不錄
0012_0026b_a_06L 坤命池氏辛卯生 三綱首僧德汶
0012_0026b_a_07L 乾命李正奇居庇仁 書記暢憲 畵工斗海
0012_0026b_a_08L 坤命乙巳生潤玉 持司錫典
0012_0026b_a_09L 三補祥林
0012_0026b_a_10L
0012_0026b_a_11L公州郡泰華山麻谷寺尋釼堂公寮翻瓦記
0012_0026b_a_12L
0012_0026b_a_13L夫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大小▣力。始終 同功者。人和歟。此庵公
0012_0026b_a_14L寮。昆吾之役。累經年載。東傾西歪。椽朽梠敗。全無重莬之計矣。幸哉。去戊申
0012_0026b_a_15L冬。華嚴山林零米爲資。淨山僉員。累次鳩聚。不一月而告功。天神地祗。以之
0012_0026b_a_16L而歡喜。山光水色。自此而佳麗。多小禪德。念佛叅禪。各得其所。可謂迨天時。
0012_0026b_a_17L兼地利。得人之和矣。不可全昧其當時之蹟。略記其顚末云爾。
0012_0026b_a_18L梅花堂中 三十兩。
0012_0026b_a_19L本山中秩 明星寶榮 十兩。
0012_0026b_a_20L籌室月艎巨澤 二十兩。 定鍊 五兩。
0012_0026b_a_21L 錦湖若效 八十兩。 上院。
0012_0026b_a_22L 普明性寬 十兩。 荷月昌郁 十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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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7a_a_01L설월雪月 의담義淡 5냥. 활허活虛 유삼宥三 5냥. 포해布海 혜운慧雲 15냥. 혜암慧庵 인성仁性 10냥. 서운瑞雲 대현臺現 15냥. 우화雨和 정호定昊 5냥. 용성龍城 재천在天 5냥. 보암寶庵 일기一機 4냥. 덕해德海 도진道眞 5냥. 남계南溪 월인月印 5냥. 매월妹月 만조晚照 10냥. 혜명慧明 경석敬碩 15냥. 침송枕松 인오仁悟 5냥. 월현月現 도순道順 5냥. 연월蓮月 봉흔奉欣 5냥. 경종鏡峰 민홍敏弘 5냥. 보안普安 5냥. 태훈泰訓 8냥. 보함普咸 5냥. 봉관奉寬 5냥. 환우幻愚 5냥. -
0012_0027a_a_01L 雪月義淡 五兩。 臺山。
0012_0027a_a_02L 活虛宥三 五兩。 晚悟 五兩。
0012_0027a_a_03L 布海慧雲 十五兩。 迦葉。
0012_0027a_a_04L 慧庵仁性 十兩。 德應善掌 十兩。
0012_0027a_a_05L 瑞雲臺現 十五兩。 白蓮。
0012_0027a_a_06L 雨和定昊 五兩。 泰虛性圓 八兩。
0012_0027a_a_07L 龍城在天 五兩。 隱寂。
0012_0027a_a_08L 寶庵一機 四兩。 錦溪雲奎 十兩。
0012_0027a_a_09L 德海道眞 五兩。 靑蓮庵秩。
0012_0027a_a_10L 南溪月印 五兩。 比丘尼世融 十二兩。
0012_0027a_a_11L 妹月晚照 十兩。 妙恩 十五兩。
0012_0027a_a_12L 枕松仁悟 五兩。 泰燁 二十兩。
0012_0027a_a_13L 慧明敬碩 十五兩。 妙德 五兩。
0012_0027a_a_14L 月現道順 五兩。 智淡 五兩。
0012_0027a_a_15L 蓮月奉欣 五兩。 應天 八兩。
0012_0027a_a_16L 鏡峰敏弘 五兩。 通典 八兩。
0012_0027a_a_17L 普安 五兩。 其用 五兩。
0012_0027a_a_18L 泰訓 八兩。 在心 十兩。
0012_0027a_a_19L 普咸 五兩。 幸俊 四兩。
0012_0027a_a_20L 奉寬 五兩。 幸勳 四兩。
0012_0027a_a_21L 幻愚 五兩。 戒天 二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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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7b_a_01L영호永浩 5냥. 성찰性察 5냥. 몽화夢華 3냥. 성엽性燁 5냥. 선의善意 5냥. 재찬在讃 5냥. 일신日新 5냥. 창호昌浩 5냥. 봉찬奉讃 5냥. 성우性友 5냥. 정봉正奉 4냥. 정우正友 3냥. 기원基圓 2냥. 청신녀淸信女 갑진생甲辰生 조씨趙氏 대비운大悲雲 10냥. 정처사鄭處土 4냥. 현호玄鎬 3냥. 매화당중梅花堂中 30냥. 명성明星 보영寶榮 10냥. 정련定鍊 5냥. 상원上院. 하월荷月 창욱昌郁 10냥. 대산臺山. 만오晚悟 5냥. 가섭迦葉. 덕응德應 선장善掌 10냥. 백련白蓮. 태허泰虛 성원性圓 8냥. 은적隱寂. 금계錦溪 운규雲奎 10냥. 청련암질靑蓮庵秩. 비구니比丘尼 세융世融 12냥. 묘은妙恩 15냥. 태엽泰燁 20냥. 묘덕妙德 5냥. 지담智淡 5냥. 응천應天 8냥. 통전通典 8냥. 기용其用 5냥. 재심在心 10냥. 행준幸俊 4냥. 행훈幸勳 4냥. 계천戒天 2냥. 순업順業 4냥. 응찬應賛 4냥. ▣화▣華 10냥. 순욱順頊 4냥. 수인修仁 5냥. 임갑수林甲守 10냥. 김태산金太山 10냥. 염철수廉喆秀 2냥. 김영화金永化 1냥. 구화선具化善 1냥. 비구니 대권大權 8냥. 비구니 상완尙完 20냥.
영은암질靈隱菴秩
비구니 홍념弘念 30냥. 비구니 무상無常 30냥. 계헌戒憲 30냥. 욱림頊林 30냥. -
0012_0027b_a_01L 永浩 五兩。 順業 四兩。
0012_0027b_a_02L 性察 五兩。 應賛 四兩。
0012_0027b_a_03L 夢華 三兩。 ▣華 十兩。
0012_0027b_a_04L 性燁 五兩。 順頊 四兩。
0012_0027b_a_05L 善意 五兩。 修仁 五兩。
0012_0027b_a_06L 在讃 五兩。 林甲守 十兩。
0012_0027b_a_07L 日新 五兩。 金太山 十兩。
0012_0027b_a_08L 昌浩 五兩。 廉喆秀 二兩。
0012_0027b_a_09L 奉讃 五兩。 金永化 一兩。
0012_0027b_a_10L 性友 五兩。 具化善 一兩。
0012_0027b_a_11L 正奉 四兩。 比丘尼大權 八兩。
0012_0027b_a_12L 正友 三兩。 比丘尼尙完 二十兩。
0012_0027b_a_13L 基圓 二兩。
0012_0027b_a_14L淸信女甲辰生趙氏大悲雲 十兩。
0012_0027b_a_15L 鄭處土 四兩。
0012_0027b_a_16L 玄鎬 三兩。
0012_0027b_a_17L 靈隱菴秩
0012_0027b_a_18L 比丘尼弘念 三十兩。
0012_0027b_a_19L 比丘尼無常 三十兩。 成玉 五兩。
0012_0027b_a_20L 戒憲 三十兩。 應南 五兩。
0012_0027b_a_21L 頊林 三十兩。 永學 四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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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8a_a_01L운흥雲興 20냥. 녹주彔周 4냥. 순영順英 20냥. 의활義活 20냥. 창전昌典 20냥. 우연偶然 20냥. 선학善學 15냥. 수일守一 10냥. 이진理眞 10냥. 덕준德俊 5냥. 정평正平 5냥. 창문昌文 5냥. 인우仁友 5냥. 순일順逸 4냥. 욱극頊極 10냥. 영환永換 8냥. 덕순德順 4냥. 복현福賢 5냥. 두익斗益 5냥. 재명在明 5냥. 도만道萬 5냥. -
0012_0028a_a_01L 雲興 二十兩。 寬淑 二十兩。
0012_0028a_a_02L 彔周 四兩。 相忍 十兩。
0012_0028a_a_03L 順英 二十兩。 富律 八兩。
0012_0028a_a_04L 義活 二十兩。 宥今 四兩。
0012_0028a_a_05L 昌典 二十兩。 湖然 十兩。
0012_0028a_a_06L 偶然 二十兩。 正法 五兩。
0012_0028a_a_07L 善學 十五兩。 定智 五兩。
0012_0028a_a_08L 守一 十兩。 性淡 四兩。
0012_0028a_a_09L 理眞 十兩。 惠安 四兩。
0012_0028a_a_10L 德俊 五兩。 仁覺 四兩。
0012_0028a_a_11L 正平 五兩。 奉意 五兩。
0012_0028a_a_12L 昌文 五兩。 正浩 五兩。
0012_0028a_a_13L 仁友 五兩。 正照 四兩。
0012_0028a_a_14L 順逸 四兩。 應讃 四兩。
0012_0028a_a_15L 頊極 十兩。 頊云 四兩。
0012_0028a_a_16L 永換 八兩。 依福 十兩。
0012_0028a_a_17L 德順 四兩。 成龍 四兩。
0012_0028a_a_18L 福賢 五兩。 都監瑞雲台現。
0012_0028a_a_19L 斗益 五兩。 別座泰訓。
0012_0028a_a_20L 在明 五兩。 片手 李鍾榮。
0012_0028a_a_21L 道萬 五兩。 片手比丘 智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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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28b_a_01L종수宗修 10냥. 시섭리時攝理 혜암慧庵 인성仁性. 시대웅전時大雄殿 우화雨和 정호定昊. 시신향각時新香閣 설월雪月 의담義淡. 시응진전時應眞殿 용성龍城 재천在天. 시영산전時靈山殿 명성明星 보영寶榮. 성옥成玉 5냥. 응남應南 5냥. 영학永學 4냥. 관숙寬淑 20냥. 상인相忍 10냥. 부율富律 8냥. 유금宥今 4냥. 호연湖然 10냥. 정법正法 5냥. 정지定智 5냥. 성담性淡 4냥. 혜안惠安 4냥. 인각仁覺 4냥. 봉의奉意 5냥. 정호正浩 5냥. 정조正照 4냥. 응찬應讃 4냥. 욱운頊云 4냥. 의복依福 10냥. 성룡成龍 4냥. 도감都監 서운瑞雲 태현台現. 별좌別座 태훈泰訓. 편수片手 이종영李鍾榮. 편수片手 비구比丘 지원智圓. 시서기時書記 환우幻愚. 시삼보時三甫 창호昌浩.
산중수습전문山中收合錢文. 정正 1076냥.
융희隆熙 3년(1909, 순종3) 4월 일.
8-5. 태화산 마곡사 천왕문天王門 중수기重修記경술년(1910, 순종4) 5월 초에 절 안의 한두 명 동지들과 천왕문天王門을 중수하고 단청을 다시 칠하려고 하였으나, 자금이 없고 힘이 부족하여 미루면서 시행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다행히 박인묵朴仁默 씨와 본사 금호당錦湖堂의 대시주에 힘입어 비로소 수리를 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끼친 공을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렵기 때문에 아래에 나열하여 기록해서 영원토록 잊지 않고자 한다.융희 4년 6월 일.
대시주질大施主秩
건명乾命 기해생己亥生 박정택朴廷澤. 곤명坤命 병진생丙辰生 공씨孔氏. 맏아들 경진생庚辰生 인묵仁默. 며느리 무인생戊寅生 서씨徐氏. 차남 정해생丁亥生 원묵元默. 며느리 정해생丁亥生 김씨金氏. -
0012_0028b_a_01L 宗修 十兩。 時書記 幻愚。
0012_0028b_a_02L 時攝理慧庵仁性。 時三甫 昌浩。
0012_0028b_a_03L 時大雄殿雨和定昊。 山中收合錢文。
0012_0028b_a_04L 時新香閣雪月義淡。 正仟七十六兩。
0012_0028b_a_05L時應眞殿龍城在天。
0012_0028b_a_06L時靈山殿明星寶榮。
0012_0028b_a_07L隆熙三年四月 日
0012_0028b_a_08L
0012_0028b_a_09L泰華山麻谷寺天王門重修記
0012_0028b_a_10L
0012_0028b_a_11L歲在庚戌仲夏之初。與寺中一二同志。方欲重修天王改彩。而財殫力少。猶
0012_0028b_a_12L豫莫遂矣。幸蒙朴仁默氏。及本寺錦湖堂之大施主。而始加修輯。其所有功。
0012_0028b_a_13L難可萬一之酬。故列錄於左。以爲永世之不忘玄 [542] 爾。
0012_0028b_a_14L隆熙四年六月 日。
0012_0028b_a_15L大施主秩
0012_0028b_a_16L乾命己亥生朴廷澤。
0012_0028b_a_17L坤命丙辰生孔氏。
0012_0028b_a_18L長子庚辰生仁默。
0012_0028b_a_19L子婦戊寅生徐氏。
0012_0028b_a_20L次子丁亥生元默。
0012_0028b_a_21L子婦丁亥生金氏。
-
0012_0029a_a_01L손자 경자생庚子生 임규任圭. 손자 병술생丙戌生 참수耽壽. 건명 계미생癸未生 임남룡林南龍. 건명 청신녀淸信女 신사생辛巳生 이씨李氏 복덕월福德月. 아들 병오생丙午生 수월壽月. 차남 기유생己酉生 백만석百萬石. 건명 임진생壬辰生 박용득朴龍得. 건명 청신사淸信士 경신생庚申生 강신불姜信佛. 곤명 정사생丁巳生 이씨李氏. 곤명 기미생己未生 최씨崔氏. 청신녀 신유생辛酉生 곽씨郭氏 도황화道怳華. 청신녀 신해생辛亥生 강씨姜氏 정련화淨蓮華. 참봉叅奉 임오생壬午生 이창주李昌周. 금어金魚 비구比丘 금호錦湖 약효若效. 융파融波 법▣法▣. 월암月菴 금지金池. 청응淸應 수우收雨. 동성東星 정연定淵. 몽화夢華. 봉주奉珠. 성엽性曄. -
0012_0029a_a_01L孫庚子生任圭。
0012_0029a_a_02L孫丙戌生耽壽。
0012_0029a_a_03L乾命癸未生林南龍。
0012_0029a_a_04L乾命淸信女辛已生李氏福德月。
0012_0029a_a_05L子丙午生壽月。
0012_0029a_a_06L次子己酉生百萬石。
0012_0029a_a_07L乾命壬辰生朴龍得。
0012_0029a_a_08L乾命淸信士庚申生姜信佛。
0012_0029a_a_09L坤命丁已生李氏。
0012_0029a_a_10L坤命己未生崔氏。
0012_0029a_a_11L淸信女辛酉生郭氏道怳華。
0012_0029a_a_12L淸信女辛亥生姜氏淨蓮華。
0012_0029a_a_13L叅奉壬午生李昌周。
0012_0029a_a_14L金魚比丘錦湖若效。
0012_0029a_a_15L融波法▣。
0012_0029a_a_16L月菴金池。
0012_0029a_a_17L淸應收雨。
0012_0029a_a_18L東星定淵。
0012_0029a_a_19L夢華。
0012_0029a_a_20L奉珠。
0012_0029a_a_21L性曄。
-
0012_0029b_a_01L봉호奉昊. 대흥大興. 지생芝生. 종두鍾頭 상수商睡. 현▣玄▣. 공사供司 현기玄機. 영호永浩. 별좌別座 보함普含. 도감都監 혜월慧月 성주性珠. 대화주大化主 금호錦湖 약효若效. 시섭리時攝理 명성明星 보영寶榮. 삼강三綱 수승首僧 영호永浩. 서기書記 돈함頓含. 삼포三甫 창호昌浩.
8-6. 태화산 마곡사 국사당國師堂 현판懸板 조성造成충청좌도忠淸左道 온양군溫陽郡 읍내면邑內面 좌부리左部里 거주.
대시주질大施主秩
선달先達 용인이씨龍仁李氏 원배源培 무자생戊子生 영가靈駕. 곤명坤命 양주조씨楊州趙氏 을유생乙酉生 단신單身 보체保體. -
0012_0029b_a_01L奉昊。
0012_0029b_a_02L大興。
0012_0029b_a_03L芝生。
0012_0029b_a_04L鍾頭商睡。
0012_0029b_a_05L玄▣。
0012_0029b_a_06L供司玄機。
0012_0029b_a_07L永浩。
0012_0029b_a_08L別座普含。
0012_0029b_a_09L都監慧月性珠。
0012_0029b_a_10L大化主錦湖若效。
0012_0029b_a_11L時攝理明星寶榮。
0012_0029b_a_12L三綱 首僧永浩。
0012_0029b_a_13L書記頓含。
0012_0029b_a_14L三甫昌浩。
0012_0029b_a_15L
0012_0029b_a_16L泰華山麻谷寺國師堂懸板造成
0012_0029b_a_17L
0012_0029b_a_18L忠淸左道溫陽郡邑內面左部里居住。
0012_0029b_a_19L大施主秩
0012_0029b_a_20L先達龍仁李氏源培戊子生 靈駕。
0012_0029b_a_21L坤命楊州趙氏乙西生單身 保體。
-
0012_0030a_a_01L유학幼學 이씨李氏 원시源始 무술생戊戌生. 곤명 해평윤씨海平尹氏 을미생乙未生 양위兩位 보체保體. 유학 이씨李氏 원태源台 병오생丙午生. 곤명 전주이씨全州李氏 계묘생癸卯生 양위 보체. 동몽童蒙 재룡左龍 갑인생甲寅生 보체. 우룡右龍 무오생戊午生 보체. 운룡雲龍 을축생乙丑生 보체. 천룡天龍 을축생乙丑生 보체. 현룡見龍 무진생戊辰生 보체. 시유나時維那 우화당雨花堂 덕우德雨. 시총섭時摠攝 화봉당華峰堂 재첨在沾.
동치同治 7년 무진(1868. 고종5) 10월 일.
삼강三綱 수승首僧 계한戒閑.
서기書記 혜찰惠察.
화원畵員 자은당慈隱堂 상열尙悅. 삼보三甫 삼석三石.
지사持司 묘전妙全.8-7. 태화산 마곡사 대광무보전大光无寶殿 불량계佛糧稧 현판縣板 서문序文무릇 성대한 덕은 외로운 법이 없고 큰 도는 가난하지 않나니, 어째서 그런가. 도가 하늘에 통하면 하늘이 반드시 보호하고 덕이 나라에 성대하면 나라가 반드시 돌아보기 때문이다.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라 형세가 반드시 그러하다. 우리 부처가 중생의 생사를 통섭하여 부모처럼 삼계三界의 병고를 통솔하고 훌륭한 의원처럼 마음에 인자한 공을 베푼다는 것을 참으로 안다면, -
0012_0030a_a_01L幻 [543] 學李氏源始戊戌生。
0012_0030a_a_02L坤命海平尹氏乙未生 兩位保體。
0012_0030a_a_03L幻 [544] 學李氏源台丙午生。
0012_0030a_a_04L坤命全州李氏癸卯生 兩位保體。
0012_0030a_a_05L童蒙左龍甲寅生 保體。
0012_0030a_a_06L右龍戊午生 保體。
0012_0030a_a_07L雲龍乙丑生 保體。
0012_0030a_a_08L天龍乙丑生 保體。
0012_0030a_a_09L見龍戊辰生 保體。
0012_0030a_a_10L時維那雨花堂德雨。
0012_0030a_a_11L時摠攝華峰堂在沾。
0012_0030a_a_12L同治七年戊辰十月 日
0012_0030a_a_13L三綱 首僧戒閑。
0012_0030a_a_14L書記惠察。
0012_0030a_a_15L畵員慈隱堂尙悅 三甫三石。
0012_0030a_a_16L持司妙全。
0012_0030a_a_17L
0012_0030a_a_18L泰華山麻谷寺大光无寶殿佛糧稧縣板序文
0012_0030a_a_19L
0012_0030a_a_20L夫盛德無孤。大道不貧。何則。道通于天。天必護之。德盛于國。國必傾 [545] 之。非言
0012_0030a_a_21L强之。必然之勢也。固知我佛統咸靈死生。父母率三界病苦。良醫慈功于心。
-
0012_0030b_a_01L여러 경전의 설명이 간곡하여 마음에 자비가 깊고 온갖 계획이 곡진하게 통할 것이다. 하물며 한 개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추듯이 백억 개로 분신을 하니, 이 때문에 군웅들도 온갖 시냇물이 동쪽으로 향해 흘러가듯 우러러보고 뭇 별들이 ▣에 의탁하듯 제천諸天이 공경히 옹위함에랴. 아아, 군자들이여 만나기 어렵고 얻기 어렵나니, 내 말이 좋은 계책이 아니라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 세우는 것은 실로 작은 인연이 아니니, 신령에게 정성을 바치면 어찌 다만 복이 새 나가겠는가. 다른 세상의 사찰에 단연 주건主件을 이룰 것이다.270) 이는 이른바 “산은 조그마한 토양도 양보하지 않고 바다는 가느다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니, 기이하도다, 아름답도다. 그치지 않고 경계를 남기지 않으니 지혜 있는 사람들은 경탄을 품고 여러 현인들은 덕을 찬탄하여 조금도 그칠 수 없다. 그 단서를 대략 진술하고 그 연유를 대강 말하여 이 세상 맹인들로 하여금 능히 볼 수 있고 벙어리들로 하여금 능히 말할 수 있게 하여서 부처의 세상이 끝이 없음을 알게 한다.광서光緖 16년 경인(1890, 고종27) 2월 상순에 적다.
계원방함질稧員芳啣錄
오위장五衛將 서유문徐有文. 오위장 이규창李圭昌. 호군護軍 양주용梁柱瑢. 오위장 이흥관李興寬. 오위장 이희민李喜敏. 박준기朴準基. 호군 서홍보徐弘輔. 가선대부嘉善大夫 송채홍宋采弘. 오위장 변계윤邊啓允. 오위장 박형준朴亨俊. 오위장 서현보徐賢輔. 선달先達 일성一成. 양주국梁柱國. 호군 박영운朴英運. 김종경金鍾鏡. 원덕문元德文. 양태희梁台熙. 홍치현洪致鉉. 홍준희洪俊禧. 백용진白用辰. 박윤권朴允權. 선상록宣相祿. 신창균申昌均. 오태준吳泰俊. 조건식趙建植. 김무술金武述. 조봉소趙鳳韶. 조노준趙老俊. -
0012_0030b_a_01L衆詮繾綣。悲深于衷。萬猷曲通。況復一月千江。百億分身。是以群雄瞻望。若
0012_0030b_a_02L百川以向東。諸天欽衛。如衆星之托▣。▣嗟君子。難遇難得。非我言謨。法如
0012_0030b_a_03L是故。如斯立▣。實非小緣。點誠于靈。奚特漏福。異世覺場。斷成主件 [546] 。是所謂
0012_0030b_a_04L山不讓壤。海不擇累 [547] 。奇哉。美哉。莫止爾非餘境界。有智含歎。諸賢歎德。毫不
0012_0030b_a_05L能盡。而略陳其端。粗說其由。使斯世盲者能見。啞者能言。令知佛日不虧。
0012_0030b_a_06L光緒十六年庚寅仲春上浣 記。
0012_0030b_a_07L稧員芳啣錄
0012_0030b_a_08L五衛將徐有文。 五衛將李圭昌。
0012_0030b_a_09L護軍 梁柱瑢。 五衛將李興寬。
0012_0030b_a_10L五衛將李喜敏。 朴準基。
0012_0030b_a_11L護軍 徐弘輔。 嘉善 宋采弘。
0012_0030b_a_12L五衛將邊啓允。 五衛將朴亨俊。
0012_0030b_a_13L五衛將徐賢輔。 先達 一成。
0012_0030b_a_14L梁柱國。 護軍 朴英運。
0012_0030b_a_15L金鍾鏡。 元德文。
0012_0030b_a_16L梁台熙。 洪致鉉。
0012_0030b_a_17L洪俊禧。 白用辰。
0012_0030b_a_18L朴允權。 宣相祿。
0012_0030b_a_19L申昌均。 吳泰俊。
0012_0030b_a_20L趙建植。 金武述。
0012_0030b_a_21L趙鳳韶。 趙老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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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1a_a_01L김상희金相喜. 곽재록郭在祿. 유돈근柳敦根. 이복남李卜男. 한재옥韓載鈺. 장호용張浩用. 서순徐淳. 김영金永. 지광희池光熙. 심희관沈熙寬. 김종태金鍾泰. 이상길李尙吉. 양창헌梁昌憲. 정봉운鄭奉云. 김은종金殷宗. 이복상李福尙. 송재돈宋在敦. 서유선徐有善. 송진희宋鎭喜. 권유진權有辰. 김진혁金鎭焃. 김응천金應天. 첨사僉使 변계성邊啓星. 표치조表穉祚. 첨사 이태제李泰濟. 사과司果 임도상任道常. 오위장 임형진林亨鎭. 사과 안국필安國弼. 첨사 김상근金尙根. 김낙훈金洛訓. 사과 이유문奉裕文. 최상봉崔相鳳. 오위장 김상호金商鎬. 정인순鄭仁淳. 김이정金履禎. 김규종金奎宗. 김익현金翊鉉. 박만진朴萬鎭. 이경호李涇鎬. 배희순裵喜淳. 선달 노홍기盧弘基. 홍룡洪龍. -
0012_0031a_a_01L金相喜。 郭在祿
0012_0031a_a_02L柳敦根。 李卜男
0012_0031a_a_03L韓載鈺。 張浩用
0012_0031a_a_04L徐淳。 金 永。
0012_0031a_a_05L池光熙。 沈熙寬。
0012_0031a_a_06L金鍾泰。 李尙吉。
0012_0031a_a_07L梁昌憲。 鄭奉云。
0012_0031a_a_08L金殷宗。 李福尙。
0012_0031a_a_09L宋在敦。 徐有善。
0012_0031a_a_10L宋鎭喜。 權有辰。
0012_0031a_a_11L金鎭焃。 金應天。
0012_0031a_a_12L僉使 邊啓星。 表穉祚。
0012_0031a_a_13L僉使 李泰濟。 司果 任道常。
0012_0031a_a_14L五衛將林亨鎭。 司果 安國弼。
0012_0031a_a_15L僉使 金尙根。 金洛訓。
0012_0031a_a_16L司果 奉裕文。 崔相鳳。
0012_0031a_a_17L五衛將金商鎬。 鄭仁淳。
0012_0031a_a_18L金履禎。 金奎宗。
0012_0031a_a_19L金翊鉉。 朴萬鎭。
0012_0031a_a_20L李涇鎬。 裵喜淳。
0012_0031a_a_21L先達 盧弘基。 洪龍。
-
0012_0031b_a_01L선달 박선흥朴善興. 김봉택金鳳完. 선달 신현교辛玄敎. 정만기鄭萬基. 선달 안병주安丙柱. 안치홍安致弘. 선달 윤상선尹相善. 김재학金在學. 정재하鄭在河. 박만윤朴萬潤. 이원민李元敏. 우창▣禹昌▣. 양수정梁壽貞. 김한룡金漢龍. 김성흠金成欽. 김인홍金仁弘. 양국환梁國煥. 성공묵成公默. 이영춘李永春. 임백고任百皐. 박채봉朴采鳳. 임백기任百䕫. 안동수安東洙. 임덕상任德常. 강덕형姜德馨. 이승하李承夏. 이돈제李敦濟. 구상순具常淳. 노납완盧衲完.
8-8. 유공불망기有功不忘記(마곡사)심의신沈宜臣 공께서는 본래 문벌 높은 세가世家로 정유년(1837, 헌종3) 봄에 이 도에 부임하셨다. 100민緡의 동전으로 먼저 보시를 도우니, 각 관원들이 이를 본받아 동전이며 쌀을 보시하였다. 이에 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시작하여 이 전각을 지으니 광채가 전보다 배가 되었다. 그 전말을 대략 서술하여 불후의 안목眼目……271)
관찰사觀察使 겸兼 순찰사巡察使 심공沈公 의신宜臣. 신해생辛亥生. -
0012_0031b_a_01L先達 朴善興。 金鳳完。
0012_0031b_a_02L先達 辛玄敎。 鄭萬基。
0012_0031b_a_03L先達 安丙柱。 安致弘。
0012_0031b_a_04L先達 尹相善。 金在學。
0012_0031b_a_05L鄭在河。 朴萬潤。
0012_0031b_a_06L李元敏。 禹昌▣。
0012_0031b_a_07L梁壽貞。 金漢龍。
0012_0031b_a_08L金成欽。 金仁弘。
0012_0031b_a_09L梁國煥。 成公默。
0012_0031b_a_10L李永春。 任百皐。
0012_0031b_a_11L朴采鳳。 任百䕫。
0012_0031b_a_12L安東洙。 任德常。
0012_0031b_a_13L姜德馨。
0012_0031b_a_14L李承夏。
0012_0031b_a_15L李敦濟。
0012_0031b_a_16L具常淳。 盧衲完。
0012_0031b_a_17L
0012_0031b_a_18L有功不忘記(麻谷寺)
0012_0031b_a_19L
0012_0031b_a_20L沈公宜臣。本以縉紳喬木。丁酉春接斯道也。以百緡銅。先爲助施。引効各官。
0012_0031b_a_21L以銅以米。經而營之。搆此殿也。光彩培前。略序顚末。以爲不朽之眼目前耳。
0012_0031b_a_22L觀察使兼巡察使沈公 宜臣。辛亥生。
-
0012_0032a_a_01L아들 영택榮澤.
작위爵位가 높아지고 복록을 더욱 많이 받으며, 자자손손 끝없이 이어져서 만대에 영화를 누리시기 원합니다. 병현炳鉉.
전前 관찰사 겸 순찰사 조공趙公 병현秉鉉. 아들 귀하龜夏, 봉하鳳夏.
작위爵位가 높아지고 복록을 더욱 많이 받으며, 자자손손 끝없이 이어져서 대대로 영화를 누리시기 원합니다.
본 고을 판관判官 이공李公 문영聞榮.
청신녀淸信女 낙선화樂善花 병술생丙戌生 이씨李氏 영가靈駕. 이러한 인연의 공덕으로 왕생극락하시기 원합니다.
전 연기현감燕岐縣監 이공李公 진영進永. 전 목천현감木川縣監 송공宋公 계근啓根. 전 문의현령文義縣令 송공宋公 태희泰熙. 전 황간현감黄磵縣監 송공宋公 내희來熙. 전 서산군수瑞山郡守 홍공洪公 명후明厚. 전 청주목사淸州牧使 이공李公 재▣在▣. 전 충주목사忠州牧使 이공李公 현서玄緒, 전 온양▣▣溫陽▣▣ 성공成公 헌증憲曾, 진사進士 윤력尹櫪.
계묘년(1843, 헌종9) 3월 일 같은 현縣에서 작성함. -
0012_0032a_a_01L子榮澤。
0012_0032a_a_02L爵位援列。福祿益厚。子子孫孫。繼繼承承。萬代榮華之願。 炳鉉。
0012_0032a_a_03L前觀察使兼巡察使趙公 秉鉉。
0012_0032a_a_04L子龜夏。鳳夏。
0012_0032a_a_05L爵位援列。福祿益厚。子子孫孫。繼繼承承。代代榮華之願。
0012_0032a_a_06L本州判官 李公聞榮。
0012_0032a_a_07L淸信女樂善花丙戌生李氏靈駕。以此因緣功德。往生極樂之願。
0012_0032a_a_08L前燕岐縣監李公進永。
0012_0032a_a_09L前木川縣監宋公啓根。 進士尹櫪。
0012_0032a_a_10L前文義縣令宋公泰熙。
0012_0032a_a_11L前黄磵縣監宋公來熙。
0012_0032a_a_12L前瑞山郡守洪公明厚。
0012_0032a_a_13L前淸州牧使李公在▣。
0012_0032a_a_14L前忠州牧使李公玄緒。
0012_0032a_a_15L前溫陽▣▣成公憲曾。
0012_0032a_a_16L癸卯二月日同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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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2b_a_01L10. 조선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마곡사麻谷寺 헌답기獻畓記〔부동산표시〕
소재지명所在地名 지번地番 지목地目 지적地積 공주군 우성면牛城面 목천리木川里 496 논 2185평 공주군 우성면 도천리道川里 65 논 727평 공주군 우성면 신흥리新興里 192-1 논 853평 공주군 우성면 신흥리 152-2 논 30평 공주군 우성면 도천리 161 논 722평 공주군 우성면 도천리 215 논 1075평
총합 5692평272)
이상의 부동산은 공주읍 대화정大和町 58번지에 사는 여사女史 김정한金貞漢 씨의 것이다. 김정한 씨는 본디 사족士族으로 명문가에 시집가서 부귀를 이루었는데 오직 아들이 없고 친정에도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므로 특별히 이상에 기록한 자신의 부동산을 부모 양위兩位의 기일과 자신의 기제사 등 세 차례 향화 올릴 바탕으로 본산의 마곡사에 헌납하였다. 해마다 제사를 행하여 절과 함께 마침이 없을 것이다. 아! 세상 사람들 가운데 생전에 김정한 씨와 같이 하여 죽은 뒤의 일을 이처럼 주밀하게 살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부모에게 보답하는 정성은 극진하고 자신을 위하는 방도도 분명하게 잘 살폈으니 누가 감히 기리지 않겠는가. 의당 서둘러 현판에 걸어 후대에까지 길이 전해지게 해야 한다.
소화昭和 7년(1932) 임신년 4월 3일
마곡사 현임 주지 안향덕安香德이 기록하다.
학생學生 김해金海 김공金公 利伯氏이백씨 3월 초5일
유인孺人 배천白川 조씨趙氏 정월 초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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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2b_a_01L朝鮮忠淸南道公州郡麻谷寺獻畓記
0012_0032b_a_02L
0012_0032b_a_03L〔不動產表示〕
所在地名 地番 地目 地積 公州郡牛城面木川里 四九六 畓 貳千百八拾五坪 公州郡牛城面道川里 六五 畓 七百貳拾七坪 公州郡牛城面新興里 一九二-一 畓 八百五拾參坪 公州郡牛城面新興里 一五二-二 畓 參十坪 公州郡牛城面道川里 一六一 畓 七百貳拾貳坪 公州郡牛城面道川里 二一五 畓 壹千七拾五坪
計五千六百九拾貳坪
0012_0032b_a_04L所在地名。 地番。 地目。 地積。
0012_0032b_a_05L公州郡牛城面木川里。 四九六。 畓。 貳千百八拾五坪。
0012_0032b_a_06L公州郡牛城面道川里。 六五。 畓。 七百貳拾七坪。
0012_0032b_a_07L公州郡牛城面新興里。 一九二-一。 畓。 八百五拾參坪。
0012_0032b_a_08L公州郡牛城面新興里。 一五二-二。 畓。 參十坪。
0012_0032b_a_09L公州郡牛城面道川里。 一六一。 畓。 七百貳拾貳坪。
0012_0032b_a_10L公州郡牛城面道川里。 二一五。 畓。 壹千七拾五坪。
0012_0032b_a_11L計五千六百九拾貳坪。
0012_0032b_a_12L右記不動產。公州邑大和町五八番地居女史金貞漢氏。本以士族。出家名
0012_0032b_a_13L門。身致富貴。而惟無男。親庭亦無嗣子。故特爲左記親產。父母兩位分諱辰
0012_0032b_a_14L及其自身忌祭三次香▣之資。獻納于 [548] 本山麻谷寺。年年以行其事。與 [549] 寺無
0012_0032b_a_15L終。噫。世之人。生前如氏 [550] 之爲。身後事如是周察者。能幾人乎。報親之誠。至矣
0012_0032b_a_16L盡矣。爲身之道。名 [551] 也察也。誰不敢讃乎。宜汲汲揭板以壽未來云爾。
0012_0032b_a_17L昭和七年壬申四月三日。
0012_0032b_a_18L
0012_0032b_a_19L麻谷寺現時住持安香德記。
0012_0032b_a_20L
0012_0032b_a_21L學生金海金公利伯氏。參月初五日。
0012_0032b_a_22L孺人白川趙氏。 正月初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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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3a_a_01L정부인貞夫人 김해 김정한 씨
시종질媤從侄 안동후인安東后人 김유동金有東이 삼가 글씨를 쓰고 새기다.
10-1. 대시주영세불망기大施主永世不忘記(마곡사)대저 미혹됨은 어리석음이 심한 것이고, 깨달음은 선이 지극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체 유정중생有情衆生이 몸을 받아 나올 때 사람이 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여 온갖 종류의 형체를 받아 그 귀천이 천차만별이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아! 사람이 정성을 가지런히 하면 성인이 반드시 감응하여 잠깐 사이에 은연중에 계합하는 것은 그 이치가 틀어짐이 없다. 그러므로 ……273) 어찌 우연이겠는가. 지금 이 법우法宇는 사세가 기운 탓에 불공을 바칠 방도가 없게 되었는데, 사문沙門 응석應釋, 오세悟世, 수선修善이 전 재산을 보시로 내놓아 기울어진 법당을 일으켜 세우게 하고 불공을 올릴 바탕을 마련하였으니, 그 정성이 반드시 신령에 감응함이 있어 발원을 충족할 것이다. 이 어찌 깨닫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이겠으며 선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 정성을 송축하여 후세 사람에게 전한다.
광서光緒 16년(1890, 고종27) 경인년 중춘에 기록하다.
비구比丘 경선당慶船堂 응석 복위伏爲
망은사亡恩師 은봉당隱峰堂 신경信瓊 영가靈駕
망부亡父 김해金海 김씨金氏, 망모亡母 밀양密陽 박씨朴氏 양위영가兩位靈駕
망형亡兄 김해 김씨 영가
망차형亡次兄 김해 김씨 영가
상좌上佐 경산당瓊山堂 창은彰㶏
10-2. 마곡사麻谷寺 금호화상錦湖和尙 헌답기獻畓記소승이 소유한 토지 논 49필지와 전대田垈 도합 12필지를 모두 마곡사에 헌납하니, 아래에 기재한대로 사용하기를 -
0012_0033a_a_01L貞夫人金海金貞漢氏。
0012_0033a_a_02L媤從侄安東后人金有東謹書並刻。
0012_0033a_a_03L
0012_0033a_a_04L大施主永世不忘記 (麻谷寺)
0012_0033a_a_05L
0012_0033a_a_06L夫迷者愚之甚也。悟者善之至也。是故 含靈之爲物也。於人於畜。萬類禀
0012_0033a_a_07L形而 或賤 [552] 。千差不同者。其故當何由哉。噫。人之齊誠。聖必感應。俯仰冥合。
0012_0033a_a_08L其理不背。故人望遂聖道功 [553] 。豈偶然哉。今此法宇。緣是勢寒。進供無計。沙門
0012_0033a_a_09L應釋悟世修善。傾產檀出。使起偃䂓 [554] 。助辦享資。其誠必有感於靈而充乎願
0012_0033a_a_10L也。豈不悟而致哉。非善而能乎。頌其誠以達后人。
0012_0033a_a_11L光緒十六年庚寅仲春日 記。
0012_0033a_a_12L比丘慶船堂應釋。 伏爲
0012_0033a_a_13L亡恩師隱峰堂信瓊 靈駕。
0012_0033a_a_14L亡父金海金氏
0012_0033a_a_15L亡母密陽朴氏 兩位靈駕。
0012_0033a_a_16L亡兄金海金氏 靈駕。
0012_0033a_a_17L亡次兄金海金氏 靈駕。
0012_0033a_a_18L上佐瓊山堂彰㶏。
0012_0033a_a_19L
0012_0033a_a_20L麻谷寺錦湖和尙獻畓記
0012_0033a_a_21L
0012_0033a_a_22L小僧所有土地。畓四十九筆。田垈合十二筆。全部獻于麻谷寺。依志願施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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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3b_a_01L심히 바랍니다.
헌답주獻畓主 김금호金錦湖.
수확되는 쌀 43섬은 마땅히 대향각大香閣에 매년 5섬, 대광전大光殿과 응진전應眞殿과 영산전靈山殿에 매년 각 3섬 6되, 강사講師의 봉급으로 매년 5섬, 염불량念佛粮으로 매년 10섬, 대방大房의 공양주에게 매년 3섬, 다섯 제위祭位에 매년 각 30되, 본인의 초상初喪과 49재와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 약간을 쓸 것. 이상의 헌답은 절에서 매각할 수 없음.불기佛紀 2952년(1925) 10월 15일 성재省齊 홍순승洪淳昇이 쓰다.
11. 무량사无量寺 내內 극락전極樂殿 중수기重修記고을 서쪽 만수산萬壽山 아래에 무량사가 있고 절 안에 극락전이 있으니, 옛날 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것이다. 사방으로 산이 감싸고 일백 시내가 절을 휘감고 있으며 일천 봉우리가 절을 향해 바라보고 있으며 일만 골짝이 그윽하고 깊으니, 도량의 청정함과 전각의 웅장함이 충남에서 가장 수승하다.절을 창건한 초기에 전각에 세 분의 세존世尊을 봉안하였는데 금불상의 장엄함이 해동海東 제일이었으니, 승속僧俗의 공양이 사시에 끊이지 않았고 받들고 우러르는 정성이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더욱 두터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옮겨감에 따라 ……274) 누차 새와 쥐와 비바람으로 훼손되는 우환이 생기니, 지금까지 천백여 년의 세월동안 훼손됨에 따라 중수한 것이 두세 번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나무 하나로 큰 절을 지탱할 수 없는 형세가 되어 우뚝하게 영광전靈光殿만 홀로 선 것275)처럼 될 지경이었다.이에 주지 김동초金東招가 큰 정성을 내어 힘써 시주들에게 보시를 청하고 국고國庫에서 보조금을 얻어 1만원의 자금을 모아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켜 절을 일신하고 보수하니 전각은 장엄하고 화려하며 승사僧舍는 정치精緻하며 불탑과 불등이 구비되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 혜일慧日은 제천諸天에 다시 빛나고 각화覺花는 기림祇林에 다시 피어나니 누군들 공경히 감탄하고 찬미하지 않겠는가. 우리 집안은 이 극락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기도하면 반드시 응험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 역시 극락전에 기도하여 그 응험으로 태어났다. 지난 기해년(1899) 봄, 꿈에 다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276)를 타고 이 만수산을 유람하였는데, 그해 겨울에 한산韓山 군수郡守로 임명되었으니277) 꿈에 응험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자년(1900) 봄에 또 아미타불이 꿈에서 교시하여 주지 유동월兪東月에게 극락전을 중수하게 했을 때 내가 -
0012_0033b_a_01L甚望。獻畓主金錦湖。
0012_0033b_a_02L收入米四十三石。應用 念佛粮每年十石 [555] 。
0012_0033b_a_03L大香閣每年五石。 大房供食主每年三石。
0012_0033b_a_04L大光殿應眞殿靈山殿 五祭位每年各三十斗。
0012_0033b_a_05L每年各三石六斗。 本人初喪七齊小大祥簡約。
0012_0033b_a_06L講師俸給每年五石。 右獻畓。寺中不得賣却事。
0012_0033b_a_07L佛紀二千九百五十二年十月十五日。 省齊洪淳昇書。
0012_0033b_a_08L
0012_0033b_a_09L无量寺內極樂殿重修記
0012_0033b_a_10L
0012_0033b_a_11L州之西萬壽山下。有寺曰无量寺之內。有殿曰極樂。在昔新羅時。梵日國師
0012_0033b_a_12L之剏建者也。四山縈 [556] 回。百川環抱。千峰拱揖。萬壑幽邃 [557] 。道場之淸淨。殿宇之
0012_0033b_a_13L宏傑。最勝於忠南。剏寺之初。奉安三世尊於殿上。金像之莊嚴。第一於海東。
0012_0033b_a_14L僧俗之齋供。四時不絕。崇奉瞻仰之誠。愈久而愈重矣。然因歲月之頻仍。世
0012_0033b_a_15L代之屢遷。香火龍像之距 [558] 。累爲鳥鼠風雨之患。距今千百有餘年之間。隨毁
0012_0033b_a_16L重修者。非止再三。而至於今日。有一木難支之勢。巋然若靈光之獨存。主持
0012_0033b_a_17L金東招。乃發大誠。力請寄附於檀越。得補助於國庫。鳩財一萬圓。大起土木。
0012_0033b_a_18L一新修葺。梵宮之壯麗。僧舍 [559] 之精緻。塔灯之具備。猶勝於前。慧日重輝於
0012_0033b_a_19L諸天。覺花再發於祇 [560] 林。孰不欽歎而賛美哉。余於此殿。自祖考以來。有禱必
0012_0033b_a_20L應。故余亦應生也。往在己亥春。夢乘五車馬。適遊于此萬壽山。該冬叙任韓
0012_0033b_a_21L山倅。而應夢兆。庚子春。又因南無陀佛夢教。使主持兪東月重修此殿。助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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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4a_a_01L500금을 내어 도왔다. 지금 비로소 와서 극락전이 중수된 것을 살펴보았는데, 큰 현고懸鼓가 있었고 그 북은 바로 지난날 우리 모친께서 시주한 것이었다. 북을 보고 감동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절절하였다.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느라 고생하셨도다. 마침내 100원금圓金을 내어 법전法殿 안의 탁자와 산신각의 단청비용으로 보태 쓰게 하고, 또 액자額字 7간판刊板과 12구句의 주련珠聯을 썼다. ……278) 만약 절의 운수가 다시 돌아오고 주지가 부지런하고 정성스럽지 않았다면 큰 불사의 준공을 어찌 이처럼 빨리 마쳤겠는가. 불력佛力의 무량함을 더욱 알겠다. 또 이 절의 이름을 보며 그 뜻을 생각하니, 절을 무량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진실되지 않은가. 자비의 은혜가 이로부터 더욱 커져서 피안으로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태평세월 속에 지극한 즐거움을 길이 누려 무량한 세월동안 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략 전말을 기술하여 적는다.
석가불釋迦佛 탄강誕降 2958년 신미년(1931) 가을 9월일
전前 가선대부嘉善大夫 행行 내장원內藏院 경卿 청암화현淸菴華賢 김윤환金閏煥
12. 임천林川 보광사普光寺 중창비重剏碑소재지: 충청남도忠淸南道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가신리加神里 보광사 터연시年時: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7년 무술년(1358)
조선朝鮮 영조英祖 26년 경오년(1750) 개각改刻고려 임주林州 대보광선사비大普光禪寺碑고려 임주 대보광선사 중창비봉훈대부奉訓大夫 국자감승國子監丞 위소危素279)가 지음.승무랑承務郎 비서감秘書監 비서랑秘書郎 게굉揭汯280)이 글씨를 씀.가의대부嘉議大夫 숭문태감崇文太監 겸 검교서적사檢校書籍事 주백기周伯琦280)가 전자篆字를 씀.
옛날 삼한三韓의 큰 스님인 원명국사圓明國師가 세상의 영화를 사절하고 돌아가서 자신의 뜻을 추구하니, 고려 국왕이 재상 장항張沆을 보내 임주林州까지 뒤쫓아 가게 하였다. 임주에는 옛날부터 보광사라는 절이 있는데 산수가 그윽하고 수승하였다. 고승 혜잠惠湛과 달한達閑등이 상서尙書 전충용田沖用과 함께 국사를 만류하여 이곳에 -
0012_0034a_a_01L五百金。今始來觀此殿之重修。見有一大懸鼓。鼓是曾年先妣所施之物也。
0012_0034a_a_02L見物感慕。尤切於心。哀哀父母。生我劬勞。禱我勤勞。遂以百圓金。補用於法
0012_0034a_a_03L殿內卓子及山神閣丹靑費。且寫額字七刊板及十二句珠聯。助塵刹之切 [561] 。
0012_0034a_a_04L若非寺運之重回。主持之勤誠。巨役之竣功。豈能若是其速究乎。尤知佛力
0012_0034a_a_05L之无量。且顧名思義。則名寺以无量。豈不信乎。慈悲之惠。從此而尤大。廣濟
0012_0034a_a_06L衆生於彼岸 [562] 。永享極樂於太平。傳之无量。故略述顚末而記焉。
0012_0034a_a_07L釋迦佛誕降二千九百五十八年辛 [563] 未秋九月 [564] 日。
0012_0034a_a_08L前嘉善大夫行內藏院卿。淸菴華賢金閏煥。
0012_0034a_a_09L
0012_0034a_a_10L林川普光寺重剏碑
0012_0034a_a_11L
0012_0034a_a_12L所在忠淸南道扶餘郡林川面加神里普光寺址。
0012_0034a_a_13L年時高麗恭愍王七年戊戌。
0012_0034a_a_14L朝鮮英祖二十六年庚午改刻。
0012_0034a_a_15L高麗林州大普光禪寺碑(題額)。
0012_0034a_a_16L高麗林州大普光禪寺重剏碑。
0012_0034a_a_17L奉訓大夫 國子監丞危素撰。
0012_0034a_a_18L承務郎秘書監秘書郎揭汯 [565] 書。
0012_0034a_a_19L嘉議大夫崇文太監兼檢校書籍事周伯琦篆。
0012_0034a_a_20L昔三韓大浮圖圓明國師。謝絕世榮。歸求其志。高麗國王遣宰相張沆。追及
0012_0034a_a_21L於林州。州故有普光寺。溪山幽勝。耆宿惠湛達閑等。與尙書田冲用遮留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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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4b_a_01L머무르게 하였는데 그 문도가 3천 명이나 되어 보광사의 기존 건물로는 수용할 수 없었다. 양광도楊廣道 안렴사按廉使 최군崔君 현우玄祐가 자신의 관속을 데리고 와서 절의 증축과 보수를 도모하니 원근의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이르러 시주하는 이들이 구름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승료僧寮, 빈관賓館. 창고倉庫, 공양간 등 갖추지 못한 것이 없었으니 건물이 모두 1백 여 칸에 달하였다. 그리고 국사의 맏형인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로 퇴직한 김군金君 영인永仁과 둘째 형인 중대광重大匡 평양군平陽君 영순永純이 감격하며 발원하여 가동家童 1백 명과 전답 1백 이랑을 절에 헌납하니 오래도록 성대한 대도량大道場이 되었다. 그 뒤 국사가 입적入寂을 앞두고 문도 소주紹珠와 혜인惠因 등에게 말하기를, “절이 이미 중창되었으니 너희들은 법석法席이 흩어지게 하지 말고 서로 차례대로 이 절의 주지를 맡아라.”라고 하였다. 이에 문도들이 국사의 뜻을 받아 서로 그 뜻을 이으며 무궁하게 전하기로 하였다.국도성國都城의 선원보은선사禪源報恩禪寺282) 주지 굉연宏演이 와서 이 사실을 글로 써달라고 청하였는데, 굉연이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때 이 절에서 경전을 배웠으니, 사실을 기술해달라는 부탁을 진실로 감히 미룰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굉연에게 국사의 본말을 듣고서 아울러 쓴다.국사는 휘諱는 충감沖鑑, 자字는 절조絶照, 호는 설봉雪峯이다. 어린 아이 시절부터 이미 냄새가 강한 채소는 먹지 않았으며 아이들과 놀 때 명주로 가사袈裟를 만들어 불사佛事를 하였다. 조금 장성해서 부모의 명으로 선원사禪源寺에서 머리를 깎고 자오국사慈悟國師에게 예를 올리고 스승으로 섬겼다. 나이 19세에 승과僧科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올랐다. 어느 날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비록 다시 시방세계 부처님의 청정한 가르침을 수행해 지녀 그 수량이 항하사恒河沙와 같다 한들 그저 스스로 노고만 더하는 것이다. 어찌 무루과無漏果를 닦는 것만 하랴.”라고 하고, 드디어 그간 종사하던 것을 버리고 즉시 옷을 털고 일어나 제방諸方을 유력遊歷하였다. 그러다가 오초吳楚에 머물던 중 철산鐵山 경선사瓊禪師의 도행道行이 매우 높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맞아 고려로 돌아왔다. 국사가 경선사를 3년 동안 시봉하였는데 경선사의 국사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경선사가 작별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자 국사는 용천사龍泉寺 주지가 되어 처음으로 백장百丈 해선사海禪師의 선문청규禪門淸規를 시행하였다. 뒤에 선원사禪源寺에서 15년 동안 주지로 있으면서 크게 종지宗旨를 드날리니 온 나라의 모범이 되었다. 국사가 보광사에 왔을 때는 재차 기원紀元한 지원至元283) 2년(1336)이었다. 4년 뒤 8월 24일 입멸入滅하려 할 때 문인들에게 경계하기를 “비석을 세우거나 탑을 조성하지 말라.”라고 하고 갑자기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가부좌로 단정히 앉았다. 소주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상께서는 대중을 위해 설법하소서.”라고 하니 국사가 말하기를 “말후구末後句 한 수를 너희들 분수대로 건져 취하라.”라고 하고, 말을 마치자 초연히 열반하였다. 세수世壽 65세, 승랍僧臘 58년이었다. 태어난 해는 이전 지원 12년 을해乙亥(1275) 을유삭乙酉朔 신유일辛酉日이다.나는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불씨佛氏의 학學은 서역 천축天竺에서 나와 수만 리 먼 거리에 전혀 구애받음 없이 동해 밖까지 퍼졌으니 어쩌면 그리도 성대한가. 원명국사처럼 우뚝하게 법을 성취하여 수립한 이는 그 베푼 것이 더욱 창성하고 더욱 밝아질 것이다. 보광사가 대대로 국사를 모범으로 삼는다면 어찌 쇠락할 때가 있겠는가.이에 삼가 차례대로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명(銘)을 붙인다. 명은 다음과 같다.
高麗開國三韓墟 삼한의 옛 터에 고려가 나라 여니
滄海浩渺連東吳 아득히 바다 너머 동오와 이어졌네
西瞻身毒各天隅 -
0012_0034b_a_01L師於此。其門人三千餘指。室 [566] 屋不足以容。楊廣道按廉崔君玄佑率其官屬。
0012_0034b_a_02L謀爲增葺。遠近聞風而至。施者雲 [567] 委。僧寮賓館倉庫庖橱。無不畢備。爲屋凡
0012_0034b_a_03L五百間。師之伯氏判典客寺事致仕金君永仁。仲氏重大匡平陽君永純感
0012_0034b_a_04L激發願。家童百人口田百頃。歸于寺。久之。蔚然爲大道場矣。其後師示寂。謂
0012_0034b_a_05L其徒紹珠惠因等曰。寺旣重新。汝等以勿散席。甲乙而主之。於是其徒 [568] 以受
0012_0034b_a_06L師志。相繼無窮也。國都城禪源報恩禪寺住持宏演來。求書其事。宏演之言
0012_0034b_a_07L曰。吾少也。受經玆寺。紀述之託。誠不敢後。於是從宏演得師之始終而幷 [569] 書
0012_0034b_a_08L之。師諱冲鑑。字絶照。號雪峰。髫齔時。已不茹葷。與群兒嬉戱。以帛製伽黎衣
0012_0034b_a_09L爲佛事。稍長。禀命父母。祝髮於禪源寺。禮慈悟國師以爲師。年十有九入選。
0012_0034b_a_10L登上上科。一旦喟然歎曰。雖復修持十方如來淸淨教。量 [570] 如恒河沙。只益自
0012_0034b_a_11L勞。曷若脩無漏果。乃舍所事。卽 [571] 拂衣遊諸方。宿留吳楚。聞鐵山瓊禪師道行
0012_0034b_a_12L甚高。迎之 [572] 東還。師執侍三載。瓊公甚期待之。及瓊公辭歸。師主龍泉寺。始取
0012_0034b_a_13L百丈海禪師禪門淸規行之。後住 [573] 禪源寺者十有五年。弘揚宗旨。爲
0012_0034b_a_14L國矜式。其來普光也。寔再紀至元之二年。越四年八月二十有四日。將入滅。
0012_0034b_a_15L戒門人毋 [574] 立碑造塔。遽沐浴更衣。跏趺端坐。紹珠進白。請和尙爲衆說法。師
0012_0034b_a_16L曰。末後一著。汝等有分薦取。言訖。翛 [575] 然而逝。世壽六十有五。僧臘五十有八。
0012_0034b_a_17L生前至元之十有二年乙亥乙酉朔辛西日也。余嘗論佛氏之學。西出於天
0012_0034b_a_18L竺。乃不遠 [576] 數萬里。被于東海之表。何其盛哉。而其卓然樹立如圓明師者。宜
0012_0034b_a_19L其設之益昌而益明。若普光之寺。世世以師爲楷。則尙惡有墮 [577] 廢之時也耶。
0012_0034b_a_20L庸叙次之。而系以銘。其辭曰。高麗開國三韓墟。滄海浩渺連東吳。西瞻 [578] 身毒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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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5a_a_01L서쪽으로 인도 바라봄에 각기 하늘 끝에 떨어져 있거늘
何年貝多傳梵書 어느 해에 패엽貝葉 불경 전해졌던고
學者悟明心地初 학인이 마음자리 깨달아 밝힌 순간에
瓊公飛錫來此都 경선사가 석장 날려 이 나라 오시니
圓明國師侍起居 원명국사가 옆에서 시봉하였도다
曹溪正宗須力扶 조계의 정종을 힘써 부지해야 하나니
一言妙契萬念除 한마디에 묘하게 깨달아 만념을 제거하도다
謂有非有無非無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니
死生一致不可渝 생사가 한 가지라 변할 수 없음이라
普光大刹鳴鍾魚 보광사 큰 절에 범종과 목어 울리니
金碧炫晃雲霞鋪 금색 푸른색 상서로운 빛 찬란하게 구름 노을 펼쳐지네
翩翩學者承風趨 학인들 끊임없이 교화 받으러 달려오니
優游食息明眞如 차분히 거하며 매 순간 진여를 밝히도다
精藍欎欎師己徂 가람은 번창하건만 국사 이미 떠나시니
勒銘紀述昭楷模 명문 새겨 기술하여 전범典範을 밝히도다
乾坤淸夷化日舒 천지가 맑고 깨끗하며 햇살은 화창하니
天子萬壽當禎符 천자께서 만수 누리시어 상서로움에 맞으리라
지정至正 18년 무술년(1358) 6월일문인들이 와서 비석을 세웠고, 글자는 회정懷正이 새겼다.
(비신碑身은 높이 6자 5치, 폭 3자 6치 5푼, 글자 지름은 6푼, 제액題額의 글자 지름은 2촌 8푼이며 전서篆書이다.)
13. 보원사普願寺 법인국사法印國師 보승탑비寶乘塔碑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운산면雲山面 용현리龍賢里 보원사 터연시年時 : 고려高麗 경종景宗 3년 무인년(978)가야산伽耶山 보원사普願寺 고故 국사國師 제증시制贈謚 법인法印 삼중대사三重大師의 비제액題額고려국高麗國 운주運州 가야산 보원사 고국사 제증시 법인 삼중대사 보승탑 비명碑銘. 병서幷序광록대부光祿大夫 태승太丞 한림학사翰林學土 전前 내봉령內奉令 신臣 김정언金廷彥이 제명制命을 받들어 지음.유림랑儒林郎 사천대박사司天臺博士 신 한윤韓允이 제명을 받들어 글씨를 쓰고 아울러 전액篆額을 씀.
삼가 생각건대 각제覺帝284)이신 석가모니께서 사라쌍수에서 입멸하신 후, 다음 세상에 부처님이 되실 미륵보살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기 전까지 대대로 인자仁者가 나왔으니 그들의 마음은 저 부처님들과 같았다. 부처라는 말은 깨달았다는 뜻이니 그를 스승으로 섬겨 그를 따라 행한다. 그러므로 찐 대추가 있는 바다 모퉁이의 이들로 하여금 현묘한 진리를 당겨와 경장更張하게 하고, -
0012_0035a_a_01L天隅。 何年貝多傳梵書。 學者悟明心地初。 瓊 [579] 公飛錫來此都。 圓
0012_0035a_a_02L明國師侍起居。 曹溪 [580] 正宗須力扶。 一言妙契萬念除。 謂有非有無非
0012_0035a_a_03L無。 死生一致不可渝。 普光大刹鳴鍾魚。 金碧炫晃雲霞鋪。翩翩學
0012_0035a_a_04L者承風趨。 優游食息明眞如。精藍欎欎師己徂。 勒銘紀述昭楷模。乾坤
0012_0035a_a_05L淸夷化日舒。 天子萬壽當禎符。
0012_0035a_a_06L至正十八年戊戌六月日。門人等入立石。刻字懷正。
0012_0035a_a_07L(碑身高六尺五寸。幅三尺六寸五分。字徑六分。題額字徑二寸八分。篆
0012_0035a_a_08L書。)
0012_0035a_a_09L
0012_0035a_a_10L普願寺法印國師寶乘塔碑
0012_0035a_a_11L
0012_0035a_a_12L所在 忠淸南道瑞山郡雲山面龍賢里
0012_0035a_a_13L普願寺址。
0012_0035a_a_14L年時 高麗景宗三年 戊寅。
0012_0035a_a_15L伽耶山 普願寺 故 國師制贈謚法印三重大師之碑。(題額)
0012_0035a_a_16L高麗國運州 伽耶山 普願寺 故國師 制贈謚法印三重大師 寶
0012_0035a_a_17L乘之塔碑銘。 幷序。
0012_0035a_a_18L光祿大夫太丞翰林學土前內 奉令臣 金廷彥奉 制撰。
0012_0035a_a_19L儒林郎司 天臺博士 臣 韓允奉 制書幷篆額。
0012_0035a_a_20L恭惟 覺帝釋迦。鵠樹昇遐之後。 儲君彌勒。龍華嗣位之 前。代有 [581] 其仁。
0012_0035a_a_21L心同彼 佛。佛者。 覺也。 師而行之。故使蒸棗海 [582] 隅。引 玄津而更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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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5b_a_01L반도蟠桃가 나는 산 곁의 이들로 하여금 지혜의 광명을 불러와 거듭 빛나게 하니285) 곧장 도가 높은 이를 왕의 스승으로 삼고 덕이 두터운 이를 중생의 어버이로 삼았다. 더구나 석씨釋氏의 삼장三藏에는 육의六義가 있어 안으로는 계정혜戒定慧가 선禪의 근본이 되고 밖으로는 경율론經律論이 교敎의 문이 된다. 누가 이것을 완전히 하였는가? 실로 법인 대사이시다.대사의 법호法號는 탄문坦文, 자는 대오大悟, 속성俗姓은 고씨高氏이니 광주廣州 고봉高㷭 사람이다. 조부 척陟은 무량한 덕을 심고 넉넉한 공적을 이루어 일찍이 일동一同의 관장286)이 되니 과연 세 가지 이적異蹟287)이 향기롭게 나타났다. 부친 능能은 화현花縣의 명문가288)이자 난정蘭庭289)의 명망 있는 일족으로, 마침내 경사스러운 가풍을 이어 성대하게 존귀한 고을 수령이 되었다. 모친 전씨田氏는 오직 성스럽고 선한 마음을 닦으면서 신명하고 통달한 아들을 얻기를 원하였으며, 부녀자의 도리를 받들어 행하고 어머니로서의 행의行儀를 삼가 지켰다. 꿈에 한 범승梵僧이 금색의 기이한 과자를 주었는데, 그리고서는 태기가 있어 산달인 열 달을 다 채우고 아기를 낳았다. 부친 역시 다시 태몽을 꿨는데 뜰 가운데 법당法幢이 세워져 있고 범패梵旆가 그 위에 걸려서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햇살 속에 펄럭였으며 여러 사람이 그 아래에 모여서 마치 담을 두른 것처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서 건녕乾寧 7년 경신년(900) 가을 8월 14일 동이 틀 무렵 대사가 탄생하였는데, 그 태반이 목에 감겨 아래로 드리워져 마치 가사를 입은 모양 같았다. 태어나면서부터 기이한 골상骨相이 있었고 소싯적부터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았으며 불상을 보면 경건한 마음을 가졌고 스님을 만나면 합장하였으니, 그 근기가 자못 순숙純熟함을 알 수 있었다. 선근이 어린 나이 때부터 싹 터서 겨우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속세를 벗어나려는 마음을 돈독히 가지고 티끌 같은 세상을 여의려는 뜻을 두고서 불문에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자 하였다. 이에 먼저 모친에게 아뢰니, 모친이 지난날의 꿈을 생각하고서 울며 말하기를 “알았다. 내세에 제도해 주기를 바랄 것이니 나는 이제 다시는 마을 어귀 문에 기대어 자식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리고서 부친을 뵈니, 부친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훌륭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곧장 머리를 깎고 어버이를 작별하고 마음을 닦고 불법을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나 향산鄕山 대사大寺의 대덕화상大德和尙을 찾아가 뵈었다. 화상은 대사의 봉의 깃털 같이 화려하게 빛나는 기이한 모습과 부처님처럼 트레머리를 한 특이한 자태를 보고는 말하기를 “이처럼 어린 나이에 노성한 덕을 듬뿍 갖추었으니, 그대와 같은 사람이 나를 스승으로 삼는 것은 토끼가 우연히 부딪혀 죽은 나무 등걸에서 다시 토끼가 걸려 죽기를 기다리고 나무에서 물고기가 매달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그대의 스승감이 아니니 다른 고승을 찾아가보라.”라고 하였다. 대사는 바야흐로 참된 스님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참방하고 옛날의 신이한 자취가 남은 곳이면 반드시 찾아가고자 하였다. 마침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을 드렸는데 부모가 말하기를 “옛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향성산鄕城山 안에 절터가 있는데 옛날 원효보살元曉菩薩과 의상대덕義想大德이 함께 머물면서 쉬던 곳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이 성스러운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어찌 저 현묘한 터에 나아가 선을 익히지 않으랴.”라고 하고는 마침내 향성산의 옛 터에서 노숙하면서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을 가두고 말처럼 치달리는 뜻을 억제하여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마음을 다스리며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당시 사람들이 대사를 ‘성스러운 사미沙彌’라고 불렀다.대사는 신엄대덕信嚴大德이 장의산사莊義山寺에 주석하면서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한다는 말을 듣고는 명공名公의 제자가 되고 진불眞佛의 법손法孫이 되기를 바라면서 홀로 대덕이 머물고 있는 처소로 나아가 비로소 곁에서 시봉하게 되었다. 이에 『화엄경』 한 권을 하루 동안에 독송하면서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으니, 신엄공이 대사를 인재로 여기며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옛날 스승이 이른바 현賢이 하루에 서른 명과 맞먹는다는 것290)이니, 뒤에 출발하여 앞질러 이른다는 것이 장차 그대의 경우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과연 징험하여 그 말을 가슴에 새겨 간직하여 스승이 편안히 힘들이지 않고 가르쳐도 제자가 이루는 공효는 배가 되었다. 그리하여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사람들을 교화한 설법에서 곧바로 마음으로 전한 법을 터득하니, 불화佛華에서 도를 논한 이야기에 어찌 눈과 말을 수고롭게 하겠는가.291) 비록 그러하나 묘각妙覺에도 오히려 율의律儀가 있는지라, 나이 열다섯에 -
0012_0035b_a_01L蟠桃山側。撝慧日以重光。即 以道之尊爲 王者師。德之厚。爲衆生父。況
0012_0035b_a_02L乃 釋氏三藏有六義。內爲戒定慧 [583] 。禪之根也。外爲經論律 [584] 。教之門也。誰其全
0012_0035b_a_03L之。實大師矣。大師法號坦文。字大悟。俗緣高氏。廣州高㷭人也。祖陟種 [585] 德無疆。
0012_0035b_a_04L成功有裕。曾作一同之長。果彰三異之芳。父能花縣名家。蘭庭茂族。遂襲家
0012_0035b_a_05L風之慶。蔚爲邑長之尊。母田 [586] 氏。唯修聖善之心。願得神通之 [587] 子。奉行婦道。愼
0012_0035b_a_06L守母儀。魂交覩一梵僧。授金色奇菓。因有娠。誕彌厥月。父亦申夢。法幢堅于
0012_0035b_a_07L中庭。梵旆掛其上。隨風搖曳。映日翩飜。衆人集其下。觀者如堵。乾寧七年龍
0012_0035b_a_08L集涒灘秋八月十四日。天欲曙。誕生大師。其胎遶頸而垂。如着方袍。生有奇
0012_0035b_a_09L骨。弱無放言。覩 [588] 金像以虔心。對桑門而合掌。有 [589] 以見其根殆熟。善芽尙早年。
0012_0035b_a_10L甫五歲。情敦出俗。志 [590] 在離塵。願託蹟於緇門。即寄心於金界。先白母。母念疇
0012_0035b_a_11L昔之夢。泣曰。䚷 [591] 。願度來世。吾不復撓倚門之念也。已後謁父。父喜曰。善。即以
0012_0035b_a_12L落▼(髟/火)辭親。脩心學 佛。去謁鄕 [592] 山大寺大德和 [593] 尙。和尙見 大師鳳毛奇相
0012_0035b_a_13L螺髻殊姿。因謂曰。方當童稚之年。旣飽老成之德。如子者。以吾爲師。是猶守
0012_0035b_a_14L株待兔。緣木求魚。吾非汝師。可往勝處。大師方欲僧之眞者必訪。跡之古
0012_0035b_a_15L者必尋。會歸覲曰。古老相傳。鄕城山內。有佛寺之墟。昔元曉菩薩義想大德
0012_0035b_a_16L俱歷 [594] 居所憇。 大師旣聞斯聖跡。盍詣彼玄基以習善。遂茇于 [595] 其舊墟。檻心
0012_0035b_a_17L猿。抑意馬。于以休足。于以齋心。經歷數年。時號之聖沙彌。大師迺聞信嚴
0012_0035b_a_18L大德住莊義山寺說雜華者。希作名公之弟子。願爲 眞佛之法孫。特詣蓮
0012_0035b_a_19L扉。財執巾 [596] 盥。乃嘗讀以雜華經一卷 [597] 。一日誦無孑遺。嚴公器之大喜曰。古師
0012_0035b_a_20L所謂賢一日敵三十夫。後發前至。將非是歟。果驗拳拳 [598] 服膺。師逸功倍。龍樹
0012_0035b_a_21L化人之說。即得心傳。佛華論道之譚。何勞目語。雖然。妙覺猶有 [599] 律儀。年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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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6a_a_01L마침내 장의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에 앞서 율사律師의 꿈에 한 신인神僧이 나타나 말하기를 “새로 수계하는 사미의 이름이 문文인 자가 있을 것이오. 이 사미는 비상한 사람이니 법에 있어 화엄의 큰 그릇이오. 어찌 반드시 수고롭게 수계할 필요가 있겠소.”라고 하였다. 율사가 꿈에서 깨어나 헤아려 보니 바로 대사의 이름이 신인이 말한 그 이름이었다. 율사가 기이하게 여기고 마침내 지난밤에 꾼 꿈을 말하면서 이르기를 “신인의 경계가 옳으니 어찌 꼭 구족계를 받을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이에 말하기를 “제 마음은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니 어찌 한번 먹은 마음을 퇴전退轉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불타의 자손은 응당 보살계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계향戒香을 마침내 받으니 행의行誼가 더욱 성대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온 천하에 대사의 명성이 널리 퍼지므로 태조太祖가 대사가 치림緇林의 빼어난 꽃이요 각수覺樹의 지혜로운 가지임을 듣고서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이미 유년 시절부터 드러나 ‘성스러운 사미’라는 기이한 이름이 있었다. 이제 드러내기에 마땅하니 별화상別和尙이라 특별히 일컫노라.”라고 하였으니, 이를 일러 이름을 피해도 이름이 나를 따라오고, 명성을 피해도 명성이 나를 쫓아온다고 하는 것이다. 용덕龍德 원년(921)에 해회海會292)를 차려 승도들을 선발하면서 제서를 내리기를 “장의별화상莊義別和尙이 왜 꼭 다시 거사居土가 되어야 하는가. 지금 바로 명승名僧이 되게 하라.”라고 하고 마침내 발탁하여 문자問者293)로 삼으니, 비유하자면 종을 침에 큰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것과 같았다.이에 동광同光 병술년(926) 겨울 10월에 태조가 유왕후劉王后에게 태기가 있음으로 인해 특별한 태몽을 꾼 일로,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발원에 의지해 옥처럼 아름다운 자태의 황태자를 낳기 위하여 마침내 대사에게 청하여 법력을 기원하였다. 이에 금 화로에 향을 사르고 옥축玉軸으로 된 경전을 펼쳐 곰이 나타날 길몽294)을 바라고 새끼 양을 낳는 것처럼 순산하기를295) 한마음으로 빌었다. 과연 이 발원이 징험되어 일각日角296)의 기이한 자태와 천안天顏297)의 특별한 상을 갖춘 태자가 태어나 학금鶴禁298)에서 단정히 거하면서 나라를 다스려나갈 큰 계책을 이어받아 지킴이 있었으니 이 분이 바로 대성왕大成王299)이시다. 이는 실로 대사가 부처님의 마음을 깊이 얻고 하늘의 힘을 두텁게 받들어 신묘한 감응은 후대의 임금에게 넉넉한 덕행을 드리우는 복을 기원하고, 현묘한 공력은 성명聖明한 임금이 이어지는 복을 구한 것이다. 태조가 대사의 공덕에 몹시 감동하여 손수 조서를 내려 노고를 치하하였다.그 후 구룡산사九龍山寺로 옮겨 주석하면서 『화엄경』을 강설하였는데, 새들이 방 앞을 둘러싸고 범이 계단 아래에 엎드리는 일이 있었다. 문인 등이 둘러싸고 보면서 두려워하였는데 대사는 즐거운 안색으로 편안하게 말하기를 “소란을 피우지 말라. 이 진기한 날짐승과 길짐승은 불법에 귀의하고 승단에 의지하려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듬해 봄에 대사가 초계草繫의 마음300)으로 행을 닦고 화엄종에서 으뜸으로 덕이 높자 발탁하여 별대덕別大德을 제수하였다. 이에 대사가 차근차근 사람들을 잘 이끄니 이로부터 대사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자들의 수가 일억 명일 뿐만이 아니어서301) 그 무리가 실로 많았다.태조가 바야흐로 삼한三韓을 통일하고자 하면서 불교를 공경하고 존숭하였는데, 청태淸泰302) 초년에 서백산西伯山의 신랑태대덕神朗太大德이 각현覺賢이 남긴 공렬功烈303)을 계승하여 방광方廣의 비밀스러운 종지를 펼친다는 말을 들었으나 당시 태조의 나이가 노년이었고 몸도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사에게 청하여 낭공朗公에게 가서 옥병玉柄을 휘둘러304)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펼치고 심법心法을 듣고 와달라고 하였다. 대사가 마침내 서백산으로 가서 신랑태대덕으로부터 『화엄경』 세 본305)의 강설을 들었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섭迦葉에게 은밀히 전하고 유마힐維摩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침묵으로 대답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306) 낭공이 대사를 응대하면서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말하기를 “옛날 유동보살儒童菩薩이 이른바 ‘나를 일으키는 자는 상商이로다’라는 경우이다.”307)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침내 화엄의 큰 가르침이 이에 성대하게 일어났다.천복天福 7년(942) 가을 7월에 염주鹽州와 백주白州의 경계에서 해충이 창궐하여 농사에 해를 끼치자 대사가 법주法主가 되어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강설하니, -
0012_0036a_a_01L遂受具於莊義山寺。初。律師夢一神僧謂之曰。其有新受戒沙彌名文者。唯
0012_0036a_a_02L此沙彌。非常之人。於其法。花嚴 [600] 大器。何必勞身受戒。覺推之。迺 大師名是
0012_0036a_a_03L也。律師奇之。乃說前夢。因謂曰。神人警戒其然。何須禀具。 大師迺言曰。我
0012_0036a_a_04L心匪石。其退轉乎。願言佛陁孫合受菩薩戒。戒香遂受。行葉彌芳。由是聲九
0012_0036a_a_05L皐應千里。故乃太祖聞 [601] 大師緇林拔華覺樹慧柯。 制曰。旣幼年之表。異
0012_0036a_a_06L號聖沙彌。宜今日之標。奇稱別和尙。是謂逃名名我隨。避聲聲我追者也。龍
0012_0036a_a_07L德元年。置海會。選緇徒。 制曰。莊義別和尙。何必更爲居土。方作名僧。遂擢
0012_0036a_a_08L爲問者。譬如撞鐘。大鳴舂容。於是乎在同光紀曆丙戍司 [602] 年冬十月。 太
0012_0036a_a_09L祖以劉王后因有娠。得殊夢。爲其賴棗心之丹。願誕玉裕之英姿。遂請 大
0012_0036a_a_10L師祈法力。於是香爇金爐。經開玉軸。願維熊之吉夢。叶如羍之誕生。果驗日
0012_0036a_a_11L角奇姿。天顏異相。有以見端居鶴禁。嗣守鴻圖。是 大成王也。實 大師
0012_0036a_a_12L得佛心深。奉 天力厚。妙感祈褫於垂裕。玄功薦祉於繼明矣。 太 [603] 祖甚恕
0012_0036a_a_13L之。飛手詔優勞。爾後迻住於九龍山寺。講花嚴。有群鳥遶房前。於兎伏階下
0012_0036a_a_14L者。門人等圓視戰慄。 大師怡顏自若曰。無譁。唯此珍飛奇走。歸法依僧而
0012_0036a_a_15L已。明年春。以 大師行修草繫 [604] 之心 [605] 。德冠 [606] 花 嚴之首。擢授別大德。於是循
0012_0036a_a_16L循然善誘。自是請 [607] 益者。其麗不億。寔繁有徒。太祖方欲糺合龍邦。欽崇象
0012_0036a_a_17L教。淸泰初。聞西伯山神 [608] 朗太大德纂覺賢之餘烈。演方廣之秘宗。今年迫桑楡。
0012_0036a_a_18L貌衰蒲柳。遂請 [609] 大師。迨朗公。其麾玉柄 [610] 演金言聞心法者。 大師遂往西
0012_0036a_a_19L伯。聽雜華三本。則何異 善逝密傳於迦葉。淨名默對於 文殊者哉。朗公
0012_0036a_a_20L應對有慙色曰。昔儒童菩薩所謂起予 [611] 者商。故乃花嚴大教於斯爲盛矣。天
0012_0036a_a_21L福七年秋七月。鹽白二州地界。螟蝗害稼。 大師爲法主。講大般若經。一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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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6b_a_01L설법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해충들이 해를 끼치지 않았다. 이해에 풍년이 들어 온 나라가 태평을 이루었다.혜종惠宗이 즉위하여 『화엄경』 세 본을 사경寫經하고 사경이 끝나자 곧바로 천성전天成殿에 불상을 모시고 법석을 열어 대사를 청하여 강론하고 열람하는 한편 경찬慶讚308)을 펼치니, 보게寶偈309)를 드넓게 펼쳐 아름다운 인연을 길이 맺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사경한 경전을 대사가 가는 편에 구룡산사로 보내고 별도로 법의法衣를 증정하고 진귀한 차를 예물로 드리고 선향仙香도 딸려 보냈다.정종定宗이 즉위하자 마침내 구룡산사에 담연譚筵을 차리고 대사가 법주가 되어 …… 310) 대성대왕大成大王이 즉위하자 십선十善311)을 더욱 닦고 삼귀三歸312)를 더욱 힘쓰면서 평소 대사를 향해 지녔던 충실한 마음을 펼치고 간절히 사모하는 정성을 배나 더하였다. 매번 대사의 존귀한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저 부처님의 자비하신 모습을 우러르는 듯이 하였으며 대사를 청하여 법력을 기원하였다. 대사는 승천僧泉이 주미麈尾를 휘두르고 혜필惠弼이 용이龍頤를 움직이듯이313) 천자의 자리에 임하여 펼치는 현묘한 공덕을 연설하고 나라를 교화하는 오묘한 법을 강설하였다. 그러므로 마침내 시절이 평안해지고 도가 넉넉해지고 나라가 부유해지고 집안이 풍성하게 되었다. ……314) 삼가 대왕을 위하여 황금 같은 자태를 받들어 옥과 같은 게송을 펼침에 공경하기를 법왕法王의 도와 같이 하고 찬란하게 군자의 나라를 빛내니, 석가삼존釋迦三尊의 금불상을 조성하였다.광종이 즉위한 지 4년(953) 봄에 대사가 부처님의 사리 3개를 얻어 유리병 안에 담아 법당에 안치해 두었는데, 며칠 후 밤에 꿈 속에서 일곱 명의 승려가 동쪽에서 와서 말하기를 “지금 신묘한 발원이 모두 원만하고 신령스러운 자태가 두루 변화하였기에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꿈에서 깨어 유리병을 보았더니 사리가 차츰차츰 ……315) 보천연석補天練石의 감실316)을 일으키니 임금의 수명을 늘리고 성스러운 교화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현덕顯德 2년(955) 여름에 대사의 법체法軆가 미편하여 병들어 누웠는데 밤에 꿈속에서 거사居士 30여 명이 배를 대고 와서는 대사를 태우고 서쪽으로 떠나려 하였다. 대사는 자신이 인주仁舟를 타고서 서쪽으로 떠나게 생겼다고317) 생각하고는 말하기를 “내가 세상에 나온 때로부터 도에 뜻을 두고 공경히 하늘의 가르침을 펼치고자 발원하였는데 ……318) 세상을 어찌 이리 급하게 떠난단 말이오.”라고 하였다. 거사들이 그 말을 듣고는 배를 돌려 후일을 기약하며 떠났다. 이후 수명은 더욱 길어졌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더욱 성대해졌으니, 이를 일러 몽매夢寐한 중에도 신통하고 유명幽明 사이에 영험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대사가 문인들에게 고하기를 “성군께서 나를 스승이라 칭하시니 부처님의 힘으로 임금께 보답하겠다.”라고 하고서, 삼가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삼존 금불상을 주조하니, 이를 말미암아 봉력鳳曆이 새로워지고 홍도鴻圖가 혁혁하게 빛났다.319) ……320) 대장경 법회를 열었다. 황급히 임금이 직접 쓴 조서를 내려 궁궐로 대사를 불렀다. 대사가 산사의 거처를 작별하고 번화한 도성에 당도하니 대왕이 치소중사緇素重使321)를 보내어 내도량內道場으로 맞아들이고 더욱 융숭하게 예우하고 여래를 만난 듯이 공경하였다. 그리고 별도로 마납가사磨衲架裟322)와 백마노염주白碼碯念珠를 헌상하였다. 이해 가을 9월에 귀법사歸法寺를 새로 창건하니 강물은 넘실넘실 비단처럼 둘렀고 산은 우뚝하게 병풍처럼 펼쳐진 풍광이었다. ……323) 바로 개사開士324)가 편안히 거처할 청정한 경계이자 진인眞人이 고요히 머무를 -
0012_0036b_a_01L纔演法。百螣 [612] 不爲災。是歲即致 年豊。翻成物泰。惠宗嗣位。寫花嚴經三本
0012_0036b_a_02L裁竟。即於天成殿。像設法筵。請 大師講覽。兼申慶讚。爲其弘宣寶偈。永締
0012_0036b_a_03L芳緣。附 大師送納於九龍山寺。別贈法衣 [613] 。贄之珍茗。副以仙香。定宗踐
0012_0036b_a_04L阼。遂於九龍山寺置譚筵。 大師爲法主。▣▣賴之大▣薦 君臨之多福。
0012_0036b_a_05L及大成大王即位。增脩十善。益勵三歸。仰展素衷。倍增丹愿。每覩 吾師之
0012_0036b_a_06L尊貌。如瞻彼 佛之晬容。請 大師祈法力。 大師僧泉之麾麈尾。惠弼之
0012_0036b_a_07L動龍頤。宣莅 阼 [614] 之玄功。講化邦之妙法。故乃時康道泰國阜家殷矣。▣▣▣
0012_0036b_a_08L伏 [615] 爲 大王奉 金姿。宣 玉偈。欽若法王之道。煥乎君子之邦。造 釋迦
0012_0036b_a_09L三尊金像。光宗御宇四年春。 大師得佛舍利三粒。以瑠璃甖盛。安置法宇。
0012_0036b_a_10L數日後。夜夢有七僧自東方來云。今爲妙願俱圓。 靈姿遍化。故來。覺見其
0012_0036b_a_11L甖。舍利旋旋爲三▣▣▣▣▣▣地▣金之刹。起補天練石之龕。所以延
0012_0036b_a_12L帝齡扶 聖化也。顯德二年夏。 大師法軆乖和。嚬容示疾。夜夢有居士 [616] 三
0012_0036b_a_13L十餘人艤舟而來。欲載大師西泛。 大師方謂是吾乘仁舟而西逝矣。乃言
0012_0036b_a_14L曰。吾自出世。志於道。願欲敬敷 天教。誧濟海▣▣▣▣▣▣去世奈何急。
0012_0036b_a_15L其居土等聽之。迴舟有後期而去矣。 爾 [617] 後得年算之遐長。致貫花之益盛。是
0012_0036b_a_16L謂神通夢寐靈驗 [618] 幽明矣。 大師告門人曰。 聖君我稱 師。報 君以 佛。
0012_0036b_a_17L奉爲祝 玉皇之萬壽。鑄 金像之三尊。因得 鳳曆惟新。鴻圖有赫。乾▣
0012_0036b_a_18L▣▣▣▣丈內▣大藏經法會。遽飛 芝檢。徵赴珠宮。 大師別山寺之蓮
0012_0036b_a_19L扉。到京師之金地。 大王遺緇素重使。迎入內道場。禮之加焯然。敬之如
0012_0036b_a_20L如來。別獻磨衲架裟幷白碼碯念珠。是歲秋九月。以新剏歸法寺。水潺湲而
0012_0036b_a_21L練遶。山巘崿而屏開。像殿▣▣▣▣▣▣。乃開士宴居之淨境。寔眞人栖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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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7a_a_01L청량한 집이었으니, 드디어 대사를 청하여 주석토록 하였다. 대사가 가서 거하니 엄연히 화성化城325)과 같았다. 별도로 계금가사罽錦袈裟326)와 법의法衣를 보냈다. 태자도 대사를 믿고 따르며 그 정성이 성상의 뜻과 같은지라 별도로 법의와 한명漢茗(중국차)과 만향蠻香 등을 헌상하였다. 이해 겨울 10월에 대왕이 대사가 승단의 종주이자 험난한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인도하는 스승으로서 조람組纜327)의 비밀스러운 종지를 펼치고 부상扶桑의 –2字 缺- 교화한다고 여겼다. 이에 대사의 도덕을 존숭하고 큰 자비에 깊이 감동하여 마침내 치소중사를 보내어 소장疏狀을 받들어 왕사王師가 되기를 청하였다. 대사가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마음자리는 밝지 못하고 견식은 투철하지 못한데 그릇되이 왕사가 되는 일을 소승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대왕이 이에 말하기를 “높은 산을 우러르는 듯한 마음을 어느 때인들 잊으리까. 장차 혼돈混沌의 근원328)을 열고자 실로 공동崆峒의 청329)을 간절히 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말하기를 “소승은 오직 부처님에게 귀의하는 데에 마음을 두고 있으니 진실로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 힘이 없습니다. ……330) 굳게 사양할 길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태상太相 김존암金尊巖 등으로 하여금 휘호徽號를 받들게 하여 ‘왕사홍도삼중대사王師弘道三重大師’라 하였다. 이튿날 대왕이 몸소 내도량에 나아가 대사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이에 임금이 되어 나라를 경영하는 방도에 있어서는 드넓은 하늘을 본받아 온 뜻을 기울여 말해주고, 부처님에게 의지하여 사람을 교화시키는 도리에 있어서는 드넓은 바다를 살펴 그와 같이 드넓게 임금의 마음을 계발시켜 주고서 마침내 약석과 같은 말로 일깨우고 침을 놓는 듯 경계가 되는 말을 베풀었다. 이 때문에 대왕이 우러러 대사의 법력에 의지하였고 배나 더 정성스러운 마음을 다하여 별도로 계금가사와 황흑마노염주黃黑碼碯念珠를 헌상하였다.개보開寶 5년(972) 대사가 특별히 태자의 수명이 학처럼 장수하고 날마다 용루龍樓331)가 성대해져 제왕을 도와 아름다운 복을 모으고 임금의 빛나는 계책을 보좌하여 경사慶事를 널리 펼치게 하기 위해 천불도량千佛道場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기도하였다. 7일이 지나 밤에 꿈속에서 5백의 승려가 와서 말하기를 “대사가 원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청하여 화사畵師가 공경히 오백나한五百羅漢을 그려 안선보국원安禪報國院에 안치하였다. 대사가 이에 말하기를 “옛날 내가 보원사普願寺에 있을 때 세 본의 『화엄경』을 받들어 수지하고서 매번 한밤중에 법당을 경행經行332)하기를 몇 년이나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다 홀연 어느 날 밤에 삼보三寶333) 앞에 한 승려가 있기에 내가 ‘스님은 어디에서 오셨소?’라고 물었더니, 그 승려가 말하기를 ‘성주원聖住院에 머물고 있는 500의 승려가 인연을 따르고 감응을 좇아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저를 이곳에 머물게 보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삼보로 가서 발을 씻고서는 내 방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방으로 돌아가 들어오시라 청하니 응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갑작스러운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아침에 사존司存334)에게 밤에 객승客僧이 왔느냐고 물어보니 말하기를 ‘밤새 찾아온 승려는 없습니다.’라고 하였고 뜰에는 범 발자국이 가득하였다. 이에 내가 십만 『화엄경』을 수지하고 옥상玉像에 귀의하였기에 오백나한이 이 절로 왕림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신령스러운 자태에 감격하고 성스러운 덕에 보답하고자 매년 봄가을 좋은 때에 나한묘재羅漢妙齋를 차렸으니,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라고 하니, 제자들이 그 일을 기록하였다.개보 8년(975) 봄 정월에 대사가 마침 노쇠한 나이가 되었기에 옛날 머물던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대왕은 자비로운 얼굴을 이별하는 것을 오히려 꺼리며 귀법사에 주석해 주기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마니보주摩尼寶珠의 빛을 감추어 깊은 산에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청컨대 인간 세상에 머무시면서 삼천대천세계를 다 비춰주시는 것이 이 제자의 바람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이에 말하기를 “소승이 푸른 골짜기에 고요히 머무르면서 -
0012_0037a_a_01L之淸齋。遂請 大師住焉。 大師徃居之。儼若化城。別送罽錦袈裟幷 [619] 法衣。
0012_0037a_a_02L儲后信向 吾師。誠如 聖旨。別獻法衣幷漢茗蠻香等。是歲冬十月。 大
0012_0037a_a_03L王以大師釋門宗主險道導師。演組纜之秘宗。化扶桑之▣▣。於是尊 [620] 崇道
0012_0037a_a_04L德。深感大慈。迺遺緇素重使。奉䟽請爲 王師。 大師迺讓曰。心珠靡瑩。目
0012_0037a_a_05L鏡無懸。謬爲 王師。即僧豈敢。 大王乃言曰。高山仰止。何日忘之。將開 [621] 混
0012_0037a_a_06L沌之源。寔切崆 [622] 峒之請。 大師 [623] 乃言。僧唯有心於歸佛。 苟無力於致 君。
0012_0037a_a_07L尙以過沐 ▣▣▣。末由膠讓。迺 [624] 使太相金尊巖等奉徽號爲 王師弘道三
0012_0037a_a_08L重大師。翌日。 大王躬詣內道場。拜爲 師。於是爲 君經國之方。法天注
0012_0037a_a_09L意。依 佛化人之道。觀海沃心。遂乃颺以藥言。施之箴誡。所以仰依 法力。
0012_0037a_a_10L倍罄精心。別獻罽錦袈裟幷黃黑碼碯念珠。開寶五年。 大師特爲 儲后
0012_0037a_a_11L年齊鸛算。日盛 龍樓。扶玉扆以儲休。佐 瑤圖而演慶。迺入 千佛道場
0012_0037a_a_12L焚禱。經七日。夜夢有五百僧來曰。師所願者。 佛之聽之。故奏請畵師。敬畵
0012_0037a_a_13L五百羅漢。安置於安禪報國院。 大師乃言之。昔吾在普願寺。奉持三本華
0012_0037a_a_14L嚴經。每 [625] 以中 [626] 夜。經行像殿。不絕數年。忽一夜。三寶前有一僧。問曰僧來奚自 [627] 。乃曰。
0012_0037a_a_15L聖住院住持五百僧。隨緣赴感。經過此地。遣 [628] 僧起居。乃往三寶。洗脚訖。向吾
0012_0037a_a_16L房而去 [629] 。吾先歸房請入。不應而去。驟雨忽滂沱 [630] 。詰旦。向司存問。夜有客僧來。
0012_0037a_a_17L曰終夜無僧來。滿庭有虎跡。迺 [631] 驗爲吾持十萬雜華。歸依玉像。故 五百羅
0012_0037a_a_18L漢光降蓮宮。故爲感 靈姿醻 聖德。每春秋之佳節。設 羅漢之妙齋 [632] 。所
0012_0037a_a_19L以然而然也。 弟子識之。開寶八年春正月。 大師以適當衰皃 [633] 。請歸故山。
0012_0037a_a_20L大王尙慊別慈顏。請住歸法寺。遂言曰。末尼上 [634] 珍。匿 [635] 耀在深山。其可耶。請見
0012_0037a_a_21L在人間。炤透三千界。弟子之願也。 大師乃言曰。僧不爲栖身碧洞以過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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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7b_a_01L해를 보내고 청산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한가롭게 지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늘 생각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비록 대사의 성스러운 용모를 사모하였으나 연꽃 같은 발걸음을 붙잡기는 어려웠다. 이에 “대사의 몸이 구름과 함께 골짝에 머무르고 마음이 달과 함께 나란히 허공에 있으면서 지혜로 한 방면을 교화하고 덕으로 사방 멀리까지 향기가 뻗어나가리니 참으로 임금과 신하가 그 미칠 수 없는 큰 덕을 앙모하며 본받고 온 나라 사람들이 스승 삼고 모범 삼기에 마땅하다. 모두가 보배로운 달의 광채를 사모하고 다 함께 자비로운 구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니 이는 금생에 해후한 것이요 다겁토록 쌓아온 인연이로다.”라고 생각하고는 겸손하게 공경을 다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말하면서 휘호를 받들어 국사가 되어주기를 청하였다. 대사가 자신은 늙고 병들었다며 사양하니 대왕이 온 마음을 다해 청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대사가 말하기를 “소승은 도를 배운 공력이 미미하고 스승이 되기에 덕이 옅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성상의 얕지 않은 은혜를 입었고 인仁을 당하여 사양할 길이 없습니다.335)”라고 하였다. 이에 대왕이 몸소 도량으로 나아가 면복冕服 차림을 하고 절하고서 ……336) 자리를 피하는 의례儀禮337)를 하고 띠에 말씀을 적는 예338)를 펼쳤다. 이에 도를 묻고 말씀을 청하니 대사가 말하기를 “소승은 단지 창포와 갯버들처럼 일찍 몸이 노쇠하였기에 안개가 낀 덩굴이 있는 청정한 경계에서 쉬려는 것입니다. 몸은 소나무 숲 오솔길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대궐에 있을 것입니다. 우러러 용안을 그리며 오직 복이 내리시기만 기원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법운法雲이 연이어 그늘을 드리우고 감로가 연이어 떨어지니 제자는 불법의 교화를 입으면서 국사께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정성을 펼치며 더욱 간절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길에서 이별할 때에 대사의 행장을 갖추어 꾸리면서 자라법의紫羅法衣339)와 승가모僧伽帽340)와 자결사혜紫結絲鞋341)와 운명雲茗과 천향天香342)과 상겸霜縑343)과 무곡霧穀344) 등을 드리고 이어서 승유僧維345) 혜윤惠允과 원보元輔346) 채현蔡玄 등에게 명하여 호송하도록 하고 대왕은 백관을 거느리고 동교東郊의 전송 자리로 행차하여 태자와 친히 다과를 올렸다. 그리고 이어 대사의 문하승 가운데 명성과 품행이 있는 자로 대사대덕大師大德이 될 만한 사람 20명을 은총으로 허락하고, 남묘南畝 일천 경頃과 불노佛奴 50인을 헌납하였다. 국사가 사례하며 말하기를 “넉넉히 성택聖澤을 더하시니 장대하게 승전僧田347)을 보겠습니다. 일천 생의 복이 줄지 않을 것이요 일만 겁의 공덕을 어찌 이루다 헤아리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대왕이 정배頂拜하며 말하기를 “제자가 자비로운 위신력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닦고, 묘한 법에 귀의하여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필히 바라건대 법체를 본래대로 회복하시고 그 마음이 의구히 변치 않아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셔서 길이 자비와 지혜를 보여주소서.”라고 하니, 대사가 말하기를 “숙세의 인연을 맺어 이번에 대왕의 국토에 태어나 대왕의 무거운 은혜를 입으니 창해의 깊은 파도보다도 더합니다. 지금 옛 산으로 돌아가 여생을 연명하오나 다시 대궐로 와서 천안天顏을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흐르는 물과 같은 세월을 멈추기 어려워 소승의 생명이 이 세상에 머물지 못할진댄 곧 반드시 내세에 다시 사문沙門이 되어 법연法緣을 더욱 징험하고 우러러 대왕의 교화를 갚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해가 저물어 가는지라 절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하니 대왕이 대사의 수레가 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전송하였고 호석虎錫348)을 생각하며 온 마음으로 대사를 생각하면서 어가를 멈추고 머물렀다. 그리고 대사의 안부를 묻는 사신을 계속하여 보내고 대사를 보지 못해 슬프고 그립다는 윤음綸音을 자주 전하였다. 이로부터 승속僧俗의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들고 하늘과 땅의 신령이 길을 옹호하면서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을 우러러 다하니 머리카락을 땅에 펴서 부처님을 맞이하는 것349)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사가 가야산사迦耶山寺에 당도하자 승도들이 마치 부처님을 맞이하듯 선악仙樂을 갖추었다. 이에 번개幡盖가 구름 속에 날리고 바라鉢螺가 우레처럼 울리니,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의 일천 여 사람들이 대사를 맞이하여 절로 들어왔다. 대사가 이에 문제자門弟子 등에게 명하기를 “내가 응당 세상을 떠날 것이니 석실石室을 만들어 -
0012_0037b_a_01L年。寓目靑山而 [636] 閑日日。但緣有始有卒。念玆在玆。大王雖戀玉毫。難留蓮
0012_0037b_a_02L步。乃以爲 大師身與雲栖洞。心齊月在空。慧化一方。德馨四遠。正宜君臣
0012_0037b_a_03L鑽仰。邦國師範▣也。咸懷寶月之光。盡入慈雲之蔭。則是今生際會。多刧因
0012_0037b_a_04L緣。致敬謙謙。言懷懇懇。奉徽號。請爲 國師。大師辭以老且病。 大王傾心
0012_0037b_a_05L請矣。稽首言之。 大師言曰。僧學道功微。爲師德薄。猶且荷 聖之恩不淺。
0012_0037b_a_06L當仁之讓無由。 大王躬詣道場。服冕拜爲 師▣之▣以避席之儀。展之
0012_0037b_a_07L以書紳之禮。于以問道。于以乞言。 大師言曰。僧但緣當蒲柳之先衰。憩煙
0012_0037b_a_08L蘿之淨境。身歸松徑。心在蘂宮。仰戀 龍顏。唯祈鳳祚而已。 大王謝曰。法
0012_0037b_a_09L雲聯蔭。甘露繼垂。弟子蒙 法化以非遙。展精誠而益切。方當別路。爲備行
0012_0037b_a_10L裝。贈以紫羅法衣僧伽帽紫結絲鞋雲茗天香霜縑 [637] 霧穀等。乃命僧維釋惠
0012_0037b_a_11L允元輔蔡玄等衛送。 大王率百官幸東郊祖席。與 儲后親獻茶菓。仍寵
0012_0037b_a_12L許 大師門下僧有名行者。可大師大德二十人。納南畝一千頃。佛奴五十
0012_0037b_a_13L人。 國師謝曰。優加 聖澤。壯觀僧田。千 生之福不唐捐。萬刧之功何勝
0012_0037b_a_14L計矣。 上頂拜曰。弟子倚慈威而修己。歸妙法以化人。必望法體復初。它 [638] 心
0012_0037b_a_15L如舊。再歸京邑。永示慈慧。 大師言。宿締因緣。今生國土。荷 皇王之恩重。
0012_0037b_a_16L勝滄海之波深。今歸故山。得延餘喘。即望再赴 雲闕。更對 天顏。儻若逝
0012_0037b_a_17L水難停。賤生莫駐。即願必當來世。更作沙門。益驗法緣。仰醻 王化。日云暮
0012_0037b_a_18L矣。拜稽首泣別。望象軒而目送。想虎錫以心 [639] 傾。于 [640] 以停鑾。于 [641] 以駐蹕。繼降起居
0012_0037b_a_19L之星使。頻傳愴戀之 綸言。自是黑白奔波。神祗擁路。仰致傾心之敬。何殊 [642]
0012_0037b_a_20L布髮之迎。行至迦耶山寺。其僧徒等如迎 佛具仙樂。於是幡盖雲飛。鉢螺
0012_0037b_a_21L雷吼。教禪一千餘人。迎奉入 [643] 寺。 大師乃 [644] 命門弟子等曰。吾當逝矣。爲石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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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8a_a_01L안치하되 너희들이 적당한 땅을 살펴보거라. 의발衣鉢은 곧 버려서 나와 같이 태우도록 하고 법구法具는 문도 등에게 나누어 주거라.”라고 하였다. 대왕이 상의공봉시랑尙醫供奉侍郞 직문直文에게 명하여 특별히 선약仙藥을 가지고 가서 밤낮으로 대사를 모시면서 간호하게 하니, 대사가 말하기를 “노승의 병은 약을 구할 것이 없습니다. 청컨대 시랑께서는 도로 궁궐로 돌아가시어 대왕을 잘 모십시오. 어찌 노승 때문에 오래 산사에 머물겠습니까. 유마힐維摩詰의 병에는 동군桐君350)의 약을 빌릴 일이 없다고 이를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마음을 몸의 주인으로 삼고 몸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 별미를 먹지 않고 한 벌의 똑같은 옷을 입었으니 60여 년간의 행사行事가 이와 같았다.태사대왕太師大王351)이 반드시 우리 대사에게 예를 융숭하게 하였으니 저 부처님에게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과 무엇이 달랐겠는가. 그러므로 두텁게 예우하고 넉넉한 총애를 내려 계금법의를 드리고 친서親書를 보내 안부를 물었으며 한 달도 빼놓지 않고 예물을 보내고 서신이 끊어지는 법이 없었다. 이는 저 한漢나라 황제가 마등摩騰을 공경하고 오吳나라 임금이 승회僧會를 존경했던 것과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352)개보 8년 을해년(975) 봄 3월 19일에 대사가 장차 왕생하려 하면서 세수와 목욕을 마치고 방앞으로 대중들을 오게 하여 유훈을 남기기를 “사람은 늙고 젊음이 있지만 법에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부처님도 사라쌍수에서 입멸하셨으니, 만법은 공空으로 돌아간다. 내 장차 멀리 떠날 것이니 너희들은 잘 지내면서 여래의 정계正戒를 수호하고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엄숙히 가부좌를 하고 당사當寺 법당에서 입멸하니 세속 나이 일흔 여섯이요 승랍僧臘 예순 하나였다. 이날 새벽 산이 성지聖地에 무너지고 달이 향정香庭으로 떨어지니353) 사람과 신령이 이에 다 슬퍼하고 소나무와 측백나무도 이를 말미암아 비참해하였다. 문하승 등이 기위其萎의 탄식354)을 일으키고 안앙安仰의 슬픔355)을 머금고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니 그 소리가 골짝을 울렸다. 신좌神座를 받들어 가야산 서쪽 언덕으로 옮기고 임시로 돌문을 만들어 봉하여 닫았다. 금지金地356)가 처참한 색으로 바뀌고, 도성에 대사가 세상을 떠난 소식이 들리니 광종대왕이 듣고 크게 슬퍼하면서 각화覺花가 먼저 떨어짐을 탄식하고 혜월慧月이 일찍 잠김을 개탄하였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조문하고 곡식을 내려 부의하였으니 청정한 공양에 이바지하고 명복冥福을 넉넉히 하려는 것이었다. 삼가 대사의 진영眞影 하나를 조성하고 이어 국공國工으로 하여금 사리탑을 높이 쌓게 하였다. 문인 등이 호곡하면서 대사의 색신色身을 받들고 가야산 서쪽 언덕에 탑을 세우니 상법像法을 따른 것이었다.357) 전법대제자傳法大弟子 삼중대사三重大師인 영찬靈撰과 일광一光, 대사大師인 명회明會와 예림芮林과 윤경倫慶과 언현彥玄과 홍렴弘廉, 대덕大德인 법오法悟와 영원靈遠과 현광玄光과 진행眞幸 등이 있어 모두 석문釋門의 귀감龜鑑이자 법원法苑의 대종大鐘으로써 지혜의 횃불의 남은 빛을 잇고 자비의 수레의 지난 자취를 따라서 스승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뼛속 깊이 새기고 성스러운 교화에 귀의하여 항상 마음에 잊지 않았다.삼가 금상今上358)이 옥벽玉璧에 닿아 선조의 제사를 받들고359) 수명을 받는 꿈을 꾸고서360) 선왕의 아름다운 정사를 계승하는 때를 만나 어진 기풍을 드날려 세속을 제도하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드높여 승보僧寶를 존숭하였다. 제서制書를 내려 말하기를 “선조先朝 때의 국사인 고故 가야산 홍도대사弘道大師는 영취산靈鷲山의 현묘한 말씀361)을 고구考究하고 용궁龍宮의 깊은 종지362)를 궁구하였으니 이에 성인의 가르침이 흥성하고 어진 나라가 덕화德化를 입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선왕께서 대사를 받들어 국사로 삼으시고 부처님을 섬기듯 공경하니, 현묘한 교화는 온 누리에 크게 퍼지고 자비로운 풍모는 온 강토를 밝혔다. 내가 항상 하늘이 나라의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중생들에게 배움의 길이 끊어짐을 마뜩찮게 여기고 선왕의 뜻을 계승하여 받들어서 덕을 존숭하는 인연을 밝히고자 시호를 내리는 은전을 멀리서 거행한다. -
0012_0038a_a_01L安厝 [645] 之。汝曹相其地。便捨衣鉢隨身。法具施與門徒等。 大王命尙醫供奉
0012_0038a_a_02L侍郞 [646] 直文。別賚仙藥。晨夕侍護。 大師曰。老僧之病。更無救 [647] 藥。請侍郞旋 [648] 歸
0012_0038a_a_03L象闕。好侍 龍墀 [649] 。何爲老僧久滯山寺。可謂維摩之疾。不假桐君之藥。大師
0012_0038a_a_04L心爲身主。身作心師。食不異粮。衣必均服。其六十餘年。行事也如是。太師
0012_0038a_a_05L大王必當禮足於 吾師。何異歸 [650] 心於 彼佛。故乃禮之厚。寵之優。贈之以
0012_0038a_a_06L罽錦法衣。問之以絲綸仙扎。贄無虛月。笔 [651] 不絕書。彼漢帝之敬摩騰。吳主之
0012_0038a_a_07L尊僧會。不可同年而語哉。開寶八年。龍集乙亥春三月十九日。 大師將化
0012_0038a_a_08L往 [652] 。盥浴訖。房前命衆。迺遺訓曰。人有老少。法無先後。双樹告滅。萬法歸空。吾
0012_0038a_a_09L將遠遊。爾曹好住。如來正戒。護之勗之哉。言畢入 [653] 房。儼然跌坐示滅于 [654] 當寺
0012_0038a_a_10L法堂。俗年七十六。僧臈六十一。是晨也。山頹聖地。月墜香庭。人靈於是哀哀。
0012_0038a_a_11L松栢因而惨惨。門下僧等。起其 [655] 萎之歎。含安仰之悲。擗踴慟哭。聲振巖谷。奉
0012_0038a_a_12L遷神座于迦耶山西崗。權施石戶封閇。色慘金地。聲聞 玉京。 光宗大王
0012_0038a_a_13L聞之震悼。嗟覺花之先落。慨慧月之早沉。吊以書。賵 [656] 以穀。所以資淨供贍玄
0012_0038a_a_14L福。敬造眞 影壹㡧 [657] 。仍令國工封層冡 [658] 。門人等號奉色身。竪 [659] 塔于迦耶山西崗。
0012_0038a_a_15L遵像法矣。厥有傳法 大弟子三重大師靈撰一光大師明會芮林倫慶彥
0012_0038a_a_16L玄弘廉大德法 [660] 悟靈遠玄光眞幸等。並釋門龜鏡。法菀 [661] 鯨鍾。繼智炬之餘輝。
0012_0038a_a_17L踵慈軒之往轍。感 師恩而篆骨。歸 聖化以懸心。伏遇 今上當璧 [662] 承
0012_0038a_a_18L祧 [663] 。夢 齡襲美。扇 仁風而濟俗。撝 佛日以尊僧。 制曰。先朝國師故伽
0012_0038a_a_19L耶山弘道大師。考鷲嶺之玄言。究龍宮之奥旨。聿興 聖教。光化仁方。故乃
0012_0038a_a_20L聖考奉以爲師。敬之如 佛。玄化誕敷於普率。慈風光被於寰瀛。 余尙慊
0012_0038a_a_21L天不憖 [664] 遺。衆其絕學。繼之 先志。奉以遹追。欲旌崇德之因。遠擧易名之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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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8b_a_01L그러므로 추시追謚하여 법인法印이라 하고 탑명塔名은 보승이라 하니, 더욱 아름답게 나타내고 후대에 전하여 민멸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대사의 본말을 비석에 새겨 구름과 소나무의 문호를 빛내도록 허락하였다.363) 이에 문제자 등이 서로 경하하며 말하기를 “선조先朝 때에 내려주신 임금의 은혜에 감동하였으니 대사께서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은총이 망극하였고, 오늘날에 크나큰 은총에 무젖으니 총애가 바야흐로 깊다.”라고 하고 대왕의 은혜를 받들어 대사의 행장을 기술하여 진상하였다. 이에 정언廷彥에게 조서를 내리기를 “그대는 일찍이 국사國史를 편수하는 임무를 맡아 몸소 전적典籍들을 열람하였고, 윤음綸音을 짓는 일을 마침내 관장하면서 접시꽃이 해를 향해 바라보듯이 온 마음을 기울였다. 돌아보건대 선왕께서 그대에게 학사의 직임을 더하여 대우하셨으니 의당 국사의 탑명塔銘을 지어 보답해야 할 것이다. 훌륭한 문장을 지어 후세에 남길 말을 저술하고 귀부龜趺 위의 비석에 그 글을 새겨 국사의 덕을 기록하라.”라고 하였다. 신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신이 채호彩毫로 일을 차례대로 배열하고 제구韲臼로 사적에 따라 문사文辭를 엮는다고 생각하셔서364) 신에게 대사의 비문을 지어 선왕의 덕을 갚되 현묘하고 성대한 대사의 행적을 찾아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의 문장은 유부幼婦에 부끄럽고 학문은 객아客兒에 양보하니,365) 천근한 보잘 것 없는 재주를 가지고 현묘하고 은미한 아름다운 자취를 기록하는 것은, 마치 부실한 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짧은 두레박줄로 깊은 우물을 긷는 것과 같습니다. 공연히 찡그리는 미소만 따라할 것이요 실로 용기를 살 곳이 없습니다.366) 제 마음을 다 열어 대왕의 명을 받들고자 하는 뜻은 비록 간절하지만 재주가 부족하여 일을 그르칠까 부끄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아! 너는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다. 신이 물러나 생각하니, 이는 이른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고 적막 속에서 소리를 찾는다는 것이니, 돌이 말을 하되 산이 빛나는 것은 보지 못하고 거북이 돌아보지 않되 오직 시냇물이 부끄러워하는 소리만 들릴 것이다.367) 감히 붓을 들고 사적을 기록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연히 벌가伐柯에 부끄럽도다.368) 그럼에도 오히려 글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내가 짓고자 하는 대로 지었으니369) 설사 동쪽에서 봉도蓬嶋가 무너지고 서쪽에서 개성芥城이 비더라도370) 대사의 신묘한 자취가 보존되고 현묘한 공덕이 오래 전해지기를 바란다. 이어서 감히 그 뜻을 거듭 펴 마침내 명銘을 짓는다.
大觀沙界 무수한 항하사恒河沙 세계 크게 관찰함에
中有金僊 그 가운데 금선金僊371) 계시니
施仁不測 측량할 길 없는 인仁을 베푸시고
示教無邊 가없는 가르침을 나타내시도다
括囊眞俗 진속眞俗372)을 하나로 묶으시고
光被人天 인천人天에 광명을 베푸시니
恩加百億 은택은 일백억 세계에 더해지고
化度三千其一 교화는 삼천대천세계를 제도하도다제1수
道豈遠而 도가 어찌 멀리 있겠는가
行之則是 행하면 바로 여기에 있나니
誰其識之 누가 그것을 알았던가
唯我大士 오직 우리 대사로다
眞佛傳心 진불眞佛이 심법心法을 전하고
覺賢襲美 각현覺賢이 아름다움을 계승하니
宴坐仁山 인산仁山에 편안히 앉고
優游法水其二 법수法水에 한가로이 노니셨도다제2수
早修勝果 일찍부터 수승한 과보 닦음에
益驗善芽 선근의 싹이 더욱 징험되니
道高龍樹 도는 용수보살보다 높고
識洞佛華 견식은 『화엄경』을 꿰뚫었도다
誘人桃李 사람들 인도하여 복사꽃 오얏꽃 아래 길이 나고373)
濟衆稻麻 중생을 제도하여 벼와 삼이 엉킨 것 같으니374)
爲師王國 왕국의 국사 되시고
垂範邦家其三 나라에 모범 드리웠도다제3수
水上之蓮 물 위의 연꽃이요
星中之月 별 가운데의 달이니
凡有歸心 일체중생이 마음으로 귀의함에
何殊布髮 머리카락을 땅에 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圓照溥天 드넓은 하늘을 원만히 비추되
葆光如佛 부처님과 같이 빛을 감추니375)
仰之彌高 우러를수록 더욱 높고
酌之不竭其四 떠내어도 마르지 않도다제4수
如龍變化 용과 같이 변화하고
似鳳來儀 봉과 같이 문채나니
或爲教父 혹은 교부教父가 되시고
或作導師 혹은 도사導師가 되시도다
千手千眼 천수천안千手千眼이시고
大慈大悲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시니
是則是効 언제나 이것을 본받고
念玆在玆其五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도다제5수
方謂法身 바야흐로 생각하기를 대사의 법신이
只期常住 항상 상주하시기를 기약했더니
傷哉兩楹 슬프도다 두 기둥376)이여
已矣双樹 끝이로다 사라쌍수377)여
法碣唯銘 법갈法碣에 명銘만 남았거니
慈顏曷遇 자비로운 얼굴 어디서 만날까
泣雨空垂 눈물이 비오듯 공연히 쏟아지니
號天莫駐 하늘 향해 부르짖어도 붙들 수 없어라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 무인년(978) 4월 일에 세우다. 김승렴金承廉이 글자를 새기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7자 7치, 폭은 3자 8치, 글자의 지름은 5푼으로 해서楷書이며, 제액題額의 글자 지름은 1촌 3푼으로 -
0012_0038b_a_01L故追謚曰法印。塔名寶乘。爲其示以彌芳。傳之不朽。乃許勒本末石。耀雲松 [665]
0012_0038b_a_02L門。乃門弟子等相慶曰。感玄造於先朝。哀榮罔極。沐 鴻恩於今日。寵遇方
0012_0038b_a_03L深。奉 大王恩。狀 大師行。進上。乃 詔廷彥曰。乃嘗爲國史 [666] 。躬覽載籍。
0012_0038b_a_04L絲綸遂掌。葵 [667] 藿傾心。顧 先王加學士以待之。若宜銘 國師以報之。提鴻
0012_0038b_a_05L筆以立言。勒龜珉而紀德。臣謝曰。殿下謂臣彩毫比事。韲臼屬辭。 俾報德
0012_0038b_a_06L以文。 探玄紀茂。而臣詞慙幼婦。學謝客兒。以淺近之麼才。記玄微 [668] 之芳躅。
0012_0038b_a_07L其猶車之弱也載重。綆之短者汲深。空有効顰。實無賈勇。啓心雖切。傷手是
0012_0038b_a_08L慙。上曰。兪。汝勉之。退惟之。盖所謂當無責有。扣寂求音。石有言而莫覩山輝。
0012_0038b_a_09L龜無顧而唯聞㵎媿。敢言載筆。空媿伐 [669] 柯。尙以如琢如磨。自適其適。設使東
0012_0038b_a_10L陊蓬嶋。西空芥城。期妙蹟之猶存。望玄 [670] 功之可久。因 [671] 敢重宣其義。遂爲銘云。
0012_0038b_a_11L大觀沙界。中有 金僊。施仁不測。示教無邊。括囊眞俗。光被人天。恩加百億。
0012_0038b_a_12L化度三千。其一 道豈遠而。行之則是。誰其識之。唯我 大士。 眞佛傳心。覺賢
0012_0038b_a_13L襲美。宴坐仁山。優游法水。其二 早修勝果。益驗善芽。道高龍樹。識洞佛華。誘人
0012_0038b_a_14L桃李。濟衆稻麻。爲師王國。垂範邦家。 其三 水上之蓮。星中之月。凡有歸心。何
0012_0038b_a_15L殊布髮。圓照溥天。葆光如 佛。仰之彌高。酌之不竭。 其四 如龍變化。似鳳來
0012_0038b_a_16L儀。或爲教父。或作導師。千手千眼。大慈大悲。是則是効。念玆在玆。 其五 方謂
0012_0038b_a_17L法身。只期常住。傷哉兩楹。已矣双樹。法碣唯銘。慈顏曷遇。泣雨空垂。號 天
0012_0038b_a_18L莫駐。
0012_0038b_a_19L太平興國三年龍集攝提四月日立。 金承廉 刻字。
0012_0038b_a_20L(碑身高七尺七寸幅三尺八寸字經五分楷書題額字徑一寸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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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9a_a_01L전서篆書이다.)
14.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 산령각山靈閣 서문영산회상靈山會上의 일천 이백 성현聖賢들 가운데 누군들 수기를 얻지 못했겠으며, 누군들 중생을 제도해야 함을 모르겠는가마는, 우리 불세존佛世尊께서 최후에 중생 제도하는 일을 특별히 부촉하신 경우가 셋이니, 첫 번째는 관세음보살이고 두 번째는 지장보살이고 세 번째는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이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발원이 수승하였으므로 미래세가 다하도록 업보에 사로잡힌 중생을 구제하라고 부촉하는 말씀이 있으셨고, 지장보살 또한 자비로운 발원이 수승하였으므로 미래세가 다하도록 지옥 중생을 제도하라고 부촉하는 말씀이 있으셨고, 지승여래도 자비로운 발원이 수승하였으므로 미래세가 다하도록 산악山岳을 진무鎭撫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업보에 사로잡힌 중생을 구제하라고 부촉하는 말씀이 있으셨던 것이다. 이 때문에 세간의 중생이 세 성자 앞에 신심과 정성을 내는 자가 따로 있다. 그러나 지승여래는 자신의 과위果位를 사양하고 도리어 인위因位로 나아가 산왕대신山王大神의 지위를 받았으니, 이는 불과佛果를 꿰뚫고 인행因行을 수호하는 분이로다. 만약 중생이 산왕대성山王大聖 앞에서 지극히 참된 정성을 가지면 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니 어찌 존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절에는 본래 산신보각山神寶閣이 없어 보는 이들이 흠결로 여겨 탄식해 왔는데 이공李公 남수南秀가 큰 신심을 발하여 새로 이 전각을 세우니 홀로 그 공덕을 차지한 것이다. 그 수승한 공덕을 붓으로는 기록할 수 없으되 대략적으로 이처럼 적는다.
시주施主 통정대부通政大夫 행行 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오위장兼五衛將 덕수후인德水後人 갑자생甲子生 이남수李南秀. 호號 성옹醒翁
아들 신사생辛已生 완권完權
손자 정미생丁未生 철희哲熙
성상 즉위 2년 갑자년378) 4월일에 인담당印潭堂 보휘普暉가 서문을 짓다.
삼강三綱 화주승化主僧 금성당錦城堂 두석斗石
삼보승三寶僧 총률叢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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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9a_a_01L分篆書)
0012_0039a_a_02L
0012_0039a_a_03L
0012_0039a_a_04L泰華山麻谷寺山靈閣序文
0012_0039a_a_05L
0012_0039a_a_06L靈山會上千二百賢聖。孰不得記。孰不知度生。吾 佛世尊臨末。稍頭 [672] 以
0012_0039a_a_07L度生之事別付囑者有三。第一觀音。第二地藏。第三大通智勝如來。觀音
0012_0039a_a_08L菩薩悲願迢勝。故盡未來際。以度生禽衆生有言付囑。地藏菩薩亦悲願
0012_0039a_a_09L迢勝。故盡未來際。以度陰府衆生有言付囑。智勝如來又悲願迢勝。故盡
0012_0039a_a_10L未來際。位鎭山岳。以度生禽衆生有言付囑者也。是故世間衆生。三聖前
0012_0039a_a_11L別有信誠者也。然智勝如來辭其果位。還踐因位。受山王大神之位。是則
0012_0039a_a_12L徹果護因者歟。若有衆生。山王大聖前。極有眞誠。無不獲福。可不尊崇哉。
0012_0039a_a_13L此寺本無山神寶閣。見者欠嘆之餘。李公南秀。發大信。新建此閣。獨擅其
0012_0039a_a_14L功者也。其勝功德。筆不可記。略說云爾。
0012_0039a_a_15L施主通政大夫行龍驤衛副護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德水後人甲
0012_0039a_a_16L子生李南秀號醒翁。
0012_0039a_a_17L子辛已生完權。
0012_0039a_a_18L孫丁未生哲熙。
0012_0039a_a_19L聖上即祚二年甲子四月日。印潭堂普暉序。
0012_0039a_a_20L三綱 化主僧錦城堂斗石。
0012_0039a_a_21L三寶僧叢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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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39b_a_01L15. 은진恩津 쌍계사雙溪寺 중건비重建碑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가야곡면可也谷面 양재리陽材里 쌍계사연시年時 : 조선 영조英祖 15년 기미년(1739)쌍계사 중건비명重建碑銘전액篆題은진 쌍계사 중건비명 병서並序덕은德恩 수령 월성月城 김낙증金樂曾이 지음.노성魯城 수령 한산韓山 이화중李華重가 글씨를 씀.함라咸羅 수령 월성 김낙조金樂祖가 전서篆書를 씀.
불명산佛明山 쌍계사는 오래된 명찰이니, 일명 백암白菴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 이행촌李杏村(이암李嵒)이 발원하여 절을 짓고 목은선생牧隱先生(이색李穡)이 기문을 지었으니, 그 오래되고 이름남을 알 수 있다. 이 절은 비록 산수의 기이한 풍광은 없지만 우거진 숲과 산이 우뚝 솟아있고 시내와 골짜기가 맑고 깊으며 선방과 불전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어 오가는 나그네가 유람하며 감상하고 고승과 운치 있는 승려들이 머물면서 도를 닦는 곳이니, 대개 양호兩湖 지방에서 크고 웅장한 경관이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병진년(1736, 영조12)에 화재가 나서 바람을 타고 불길이 번져 절의 건물과 보물들이 재가 되어 날려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불상은 덮어주는 건물도 없이 밖에 나와 있고 스님들은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신세가 되었다. 절을 찾은 중생들도 애통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절의 승려인 성능性能과 극찰克察 등이 울면서 무리에게 논의하기를 “우리 절처럼 오래되고 이름난 곳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우리들이 일생동안 뿌린 악업惡業 때문입니다. 또 우리 서방대성인西方大聖人 여래께서 일부러 겁화劫火를 날려 우리들로 하여금 이 큰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게 하고 하계下界에 있는 우리의 발원을 시험해보려 하시는 것이 아닐 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하니, 모두가 알겠다고 답하였다. 이에 함께 모연募緣하여 시주할 사람을 매우 많이 얻어 불당과 불전과 승방과 곁채들이 차례대로 건립되니 몇 년 되지 않아 거의 원래 모습의 반을 복구하였다.아! 성주괴공成住壞空은 본디 운수에 달린 것이거니와 이치는 끝내 다함이 없어 생생生生하여 무궁하다. 이 절이 무너졌다가 다시 완성된 것이 어찌 유마힐維摩詰이 말한 “불 속에서 피운 연꽃”379)이 아니겠는가.여러 스님들이 내가 이 지방 수령이라는 이유로 빗돌을 마련해 와서 그 사적을 써주기를 청하였는데 나는 처음에는 선유先儒 중에 불경佛經에 제사題詞를 쓴 사람은 없었다고 사양하였다. 그러다가 돌이켜 생각건대 나는 목은의 외가 후손이라 끝내 사양할 수 없는 점이 있기에 억지로 명을 지으니 다음과 같다.
裕嶽峻天 너른 산과 드높은 하늘
磅礡鍾靈 신령스러운 기운 성대하게 쌓이니
龍騰鳳翥 용과 봉 날아올라
萃于佛明 불명산에 모이도다
中藏巨籃 그 속에 큰 가람 품고 있으니
金碧千楹 일천 기둥은 금과 옥빛이라
杏翁經之 행촌이 절을 짓고
牧老志之 목은이 기문을 지었도다
神擁鬼護 신령과 귀신이 수호하여
山門有煒 산문山門이 찬란히 빛났더니
劫火千年 천년의 겁화 일어나
可憐焦土 가련타 온통 불에 타버렸구나
幻耶妄耶 허깨비인가 망상인가
滅了空了 완전히 사라져 텅 비어버렸더니만
一夕突兀 -
0012_0039b_a_01L恩津雙溪寺重建碑
0012_0039b_a_02L
0012_0039b_a_03L所在忠淸南道論山郡可也谷面陽材里雙溪寺。
0012_0039b_a_04L年時朝鮮英祖十五年己未。
0012_0039b_a_05L雙溪寺 [673] 重建碑銘。(篆題)
0012_0039b_a_06L恩津雙溪寺重建碑銘並序。
0012_0039b_a_07L德恩宰月城金樂曾撰。 魯城長韓山李華重書。 咸羅倅月城金樂
0012_0039b_a_08L祖篆。
0012_0039b_a_09L佛明之雙溪。古名籃也。一名白菴。在勝國李杏村 [674] 發願營之。牧隱先生寔 [675] 爲
0012_0039b_a_10L之記。其古且名可知已。之寺也。縱無水石瓌 [676] 詭之觀。林巒聳拔。磵壑淨邃。禪
0012_0039b_a_11L寮佛 殿巨延。 往來客子之所遊賞。高僧韻釋之所藏修。大抵爲兩湖
0012_0039b_a_12L間大雄觀。不幸歲 [677] 舍赤龍。回祿爲災。因風延爇。金碧珠貝 [678] 。灰飄燼滅。金身無
0012_0039b_a_13L庇。白足露宿。衆生之過之者。亦罔不衋 [679] 心。寺之僧性能克察等。泣而謀諸
0012_0039b_a_14L其徒曰。以吾寺之古且名也而一日墟焉。不復有者。是爲吾徒一生寃業。且
0012_0039b_a_15L安知非吾西方大聖人如來故揚劫火。俾觀大世之變。頫試下界之願耶。咸
0012_0039b_a_16L曰唯。於是相與募 [680] 緣。得捨施者甚衆。堂殿房廂長弟建立。盖不數稔。殆復其
0012_0039b_a_17L半。噫。成住壞空。固數也。而理無終盡。生生無窮。此寺之壞而復成者。豊維摩
0012_0039b_a_18L詰所云火中生蓮花者歟。諸釋以余之守玆土。具石請書其事。余始以先儒
0012_0039b_a_19L不題佛經辭之。旋思余爲牧隱外裔。則有不得終辭者。强爲之銘曰。裕嶽峻
0012_0039b_a_20L天。磅 [681] 礡鍾靈。龍騰鳳翥。萃于 [682] 佛明。 中藏巨籃。金碧千楹。杏翁經之。牧老
0012_0039b_a_21L志之。 神擁鬼護。山門有煒。劫火千年。可憐焦土。 幻耶妄耶。滅了空了。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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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a_a_01L어느 날 우뚝이 다시 서니
慈悲之力 자비의 원력이로세
香林改觀 향기로운 가람은 모습을 일신하고
諸天炫色 제천諸天은 밝게 빛나니
我書穹石 내가 큰 빗돌에 이 일을 적음에
印證千億 천억년토록 증명하리라
백암동白菴洞은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밝히는 도량이다. 절이 오랜 세월동안 손상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탄식해 왔는데 비구 자영自英이 병신년에 중창하였다. 각공刻工 장치량張致良과 노인삼盧仁三과 정심淨心이 스스로 전서篆書 쓰는 일을 담당하였고 ……380)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120년 두 번째 기미년 5월 일381)
별좌別坐 두성斗星, 뇌신雷信
16. 성월암城月庵 중건기重建記성산城山은 고을의 진산鎭山이다. 고을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읍터의 서쪽이 텅 비고 소활하기 때문에 절을 지어 비보裨補했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봄의 재난으로 폐허만 남게 되었다.성주城主 합하閤下께서 온 경내의 정사를 염려하고 헤아려 읍터에 공역을 일으켜 권선문勸善文에 서명하고 시조책施助册에 제사題詞를 지으니 경내 사람들도 한 마음으로 발원하여 법암法菴을 중건하였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제 이 성산의 승경에 다시 진제眞濟의 도량을 만들어 사방에 제때 비가 내리고 제때 볕이 나는 일을 주관하고 만년토록 향화를 받들 인연이 이루어졌다. 삼가 생각건대 함께 향을 올리며 부르는 시에 “한 조각 향을 봉헌하니, 덕스러운 용모가 불가사의하도다.”382)라고 한 구절은 단지 석씨釋氏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암자의 조성을 두고도 참으로 말할 만하다.*성월암-충남忠南 천안군天安郡 직산면稷山面 군서리郡西里
성주 합하의 어진 정사가 미침에 사람과 신령이 함께 기뻐한다. 암자의 이름을 정적淨寂에서 성월로 한 것은 때에 따른 명칭이다. 이전에는 아미타불을 조성했는데 지금은 지장보살을 조성하였으니 자비의 측면에서는 전후로 매 한가지이다. 오직 뭇 생령들을 옹호하고 보배로운 뗏목으로 중생들을 고해에서 제도하기를 기원한다.
17. 남포藍浦 성주사聖住寺 낭혜화상朗慧和尙 백월보광白月葆光 탑비塔碑소재 : 충청남도 보령군 미산면嵋山面 성주리聖住里 성주사지聖住寺址연시 : 신라 진성왕 4년 경술(890년)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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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a_a_01L夕突兀。慈悲之力。 香林改觀。諸天炫色。 我書穹石。印證千億。
0012_0040a_a_02L白菴一洞。慧明道場。梵宮久傷。擧世歎共。比丘 [683] 自英。赤猴重創。刻工張致良
0012_0040a_a_03L與盧仁三淨心。自當書篆。恩咸筆借尼相。
0012_0040a_a_04L崇禎紀元後百二十年再己未五月 日。
別坐斗星。 雷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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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a_a_06L城月庵重建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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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a_a_08L城山。邑法 [684] 之鎭也。耆舊傳言。邑基之西。虛疎之故。以佛宇鎭葆云。而昨春之
0012_0040a_a_09L刧 [685] 。所餘坵墟矣。
0012_0040a_a_10L城主閤下。軫念於闔境之政。經始於邑基。而押於勸善文。題於施助册。境內
0012_0040a_a_11L亦有同心發願。重建法菴。其幸如之何。今此城山勝景。更做眞濟道場。四方
0012_0040a_a_12L雨暘之主。萬年香火之緣。竊以爲和香之詩。奉獻一片香。德容難思議之句。
0012_0040a_a_13L非徒釋氏之謂也。今玆造寔出 [686] 。
0012_0040a_a_14L※城 [687] 月庵-忠南天安 [688] 郡稷山面郡西里。
0012_0040a_a_15L於 城主閤下仁政攸暨。人神胥悅矣。菴名之淨寂城月。隨時之稱。而前塑
0012_0040a_a_16L阿彌陀佛。今塑地藏菩薩。其於慈悲。前後一般。惟祈羣靈擁護。而以寶筏度
0012_0040a_a_17L濟衆生於苦海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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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a_a_19L藍浦聖住寺 朗慈和尙 白月葆光塔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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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a_a_21L所在 忠淸南道保寧郡嵋山面聖住里聖住寺址
0012_0040a_a_22L年時 推定新羅眞聖王四年庚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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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0b_a_01L당唐의 신라국 고故 양조국사兩朝國師 교시教謚 대 낭혜화상大朗慧和尙 백월 보광白月葆光 탑비명塔碑銘 병서幷序
회남淮南에서 본국本國에 들어올 때383) 국서(國信)와 조서詔書 등을 보낸 사신, 전동면도통순관前東面都統巡官 승무랑 시어사 내공봉承務郎侍御史內供奉384) 자금어대紫金魚袋385)를 하사받은 신臣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을 받들어 짓다.
당 황제(소종昭宗)가 무공武功으로 난리386)를 진압하고 문덕文德387)으로 원년을 바꾼 해(888년) 창월暢月(11월), 달이 이지러지기 7일째 되는 날(22일), 해가 함지咸池388)에 빠지는 시각389)에 해동海東의 양조국사兩朝國師390) 선화상禪和尙이 목욕을 하고는 가부좌한 채 시멸示滅391)하였다. 온 나라 사람들이 좌우의 눈을 잃은 듯하였으니, 하물며 문하 제자들은 어떠했겠는가. 아아, 동방에 태어나 산 세월은 89년(春)이오, 서방의 계율(불교)을 지킨 세월은 65년(夏)이었다.세상 떠난 지 3일이 되어도 승좌繩座392)에 기댄 모습이 엄연히 살아 계신 듯하였다. 문인門人 순예詢乂 등이 호곡하면서 유체遺體를 받들어 선방(禪室)에 가사假肂393)하였다. 임금(진성왕)이 듣고서 애도하면서 역마로 조문을 보내고, 곡식을 부조하여 정공淨供(공양)에 보태고 명복을 빌도록 하였다.2년이 지나 돌을 다듬어 탑(層冢)을 쌓는다는 소식이 서울(경주)에 들렸다. 보살계菩薩戒394) 제자인 무주 도독武州都督395) 소판蘇判396) 김일金鎰과 집사 시랑執事侍郎397) 김관유金寬柔, 패강 도호浿江都護398) 김함웅金咸雄, 전주 별가全州別駕399) 김영웅金英雄은 모두 왕손이다. 유성維城400)으로서 임금의 덕을 보필하고, 험도險道에서 스님의 은혜를 입었다. 어찌 반드시 출가한 연후에야 입실入室401)하리오. 드디어 문인 소현昭玄402) 대덕大德 석통현釋通賢, 사천왕사四千王寺403) 상좌上座404) 석신부釋愼符와 논의하기를, “스님께서 돌아가시니 임금께서 슬퍼하신다. 어찌 우리들이 차마 잿빛 마음과 나무 같은 혀로 재삼지의在三之義405)를 연식緣飾406)하지 않으리오.” 하고는, 승속(白黑)이 상응하여 증시贈謚와 명탑銘塔을 청하였다. 이에 좋다는 교시를 내리고, 바로 왕손王孫인 하관夏官(병부兵部) 이경二卿407) 우계禹珪에게 명하여 계원桂苑(한림원)의 행인行人408) 시어사侍御史 최치원崔致遠을 불러 봉래궁蓬萊宮으로 오게 했다. 그래서 기수琪樹409)와 나란히 하여 요지瑤墀410)에 올라 주렴 밖에서 꿇어앉아 명을 기다렸다.임금이 말하기를, “돌아가신 성주聖住(사) 대사는 진정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다. 옛날 문고文考411)와 헌강왕이 모두 스승으로 모시고 나라에 복이 되게 한 지 오래되었다. 내가 처음에 왕위를 이어서는 선친의 남은 뜻을 잇고자 하였는데, 하늘이 남겨주지(憖遺)412) 않으니 더욱 마음이 애석하다. 나는 큰 행적이 있는 이에게는 큰 이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호는 ‘대낭혜大朗慧’, 탑명은 ‘백월 보광白月葆光’이라 추증한다. 그대는 일찍이 서쪽(중국)에서 벼슬하여 사염絲染413)하고 금의환향하였다. 돌아보건대 문고文考(경문왕)께서 국자감國子監에 선발하여 공부하게 하시고, 헌강왕께서는 국사國士로 보아 대우하셨으니,414) 그대는 마땅히 국사國師의 명銘을 지어 보답하라.” 하였다.사양하길 다음과 같이 하였다. “황공합니다.415) 전하께서 곡식에 쭉정이가 많음을416) 용서하시고 계수나무에 남은 향기가 많으리라417) 생각하시어 문장으로 덕을 갚게 하시니 진실로 천행입니다. 다만 대사는 유위有爲418)의 경박한 세상에서 무위無爲419)의 비밀스런 종지를 펼치셨는데 소신이 유한한 작은 재주로 무한히 큰 행적420)을 기록하자니 약한 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거나 짧은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을 긷는421) 것과 같습니다. 혹시 돌이 이상한 말을 하는 일이 있거나422) 거북이가 잘 돌아보는 일이 없다면423) 결코 산이 빛나고 강이 아름답게424) 할 수 없고 도리어 숲이 부끄러워하고 시냇물이 창피하게425) 됨을 끼칠 것이니, 글 쓰는 일을 이에 피하길 청합니다.”임금이 말하길, “사양하길 좋아함은 우리나라 풍습이니 좋기는 좋다. 그러나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어디에 황금방黄金牓426)을 쓰겠는가? 그대는 힘쓸지어다.” 하고는 문득 서까래처럼 큰 글 한 편을 내어 중연中涓 -
0012_0040b_a_01L有唐新羅國故 兩朝國師教謚大朗慧和尙白月葆光之塔碑銘 拜 [689] 序
0012_0040b_a_02L淮南入本國送國信 詔書等使。前東面都統巡官承務郎侍御史內供奉。
0012_0040b_a_03L賜紫金魚袋臣。崔致遠。奉教撰。
0012_0040b_a_04L帝唐揃亂以武功。易元以文德之年。暢月月▼(垂+殳)之七日。日蘸咸池時。海東兩
0012_0040b_a_05L朝國師禪和尙。盥浴已。趺坐示滅。國中人如喪左右月 [690] 。矧門下諸弟子乎。嗚
0012_0040b_a_06L呼。應東身者八十九春。服四 [691] 戒者六十五夏。去世三日。倚繩座。儼然面如生。
0012_0040b_a_07L門人詢又 [692] 等號奉遺體。假肂禪室中。 上聞之震悼。使駛弔以書。賻以穀。
0012_0040b_a_08L所以資淨供。而贍玄福。越二年。攻石封層冢。聲聞 王京。菩薩戒弟子。武
0012_0040b_a_09L卅 [693] 都督蘇判鎰。執事侍郎寬柔。具 [694] 江都護咸雄。全州別駕英雄。皆王孫也。維
0012_0040b_a_10L城輔君德。險道賴師恩。何必出家然後入室。遂與門人昭玄大德釋通賢四
0012_0040b_a_11L千王寺上座釋愼符。議曰。師云亡。 君爲慟。奈何吾脩 [695] 忍灰心木舌。▼(垂+殳)緣飾
0012_0040b_a_12L在三之義乎。迺白黑相應。請贈謚暨銘塔。 教曰可。旋命王孫夏官二卿禹
0012_0040b_a_13L珪。召桂苑行人侍御史崔致遠。至蓬莢 [696] 宮。因得竝琪樹。上瑤塀 [697] 。跽竢命珠箔
0012_0040b_a_14L外。上日 [698] 。故聖住大師。眞一佛出世。昔文考康王咸師事。福國家爲日久。余
0012_0040b_a_15L始克纉承。願繼餘先志。而天不勅心 [699] 遺。益用悼厥心。余以有大行者。授大名。
0012_0040b_a_16L故追謚曰大朗慧。塔曰白月葆光。乃嘗西官 [700] 。絲染錦歸。顧 文考選國子。命
0012_0040b_a_17L學之。康玉視國士。禮待之。若宜銘 國師以報之。謝曰。主臣。 殿下恕栗 [701] 饒
0012_0040b_a_18L浮秕。桂飽餘馨。俾報德以文。固多天幸。第大師於有爲澆世。演無爲秘宗。小
0012_0040b_a_19L臣以有限限麼 [702] 。紀無限景行。弱轅載重。短綆汲深。其或石有異言。龜無善顧。
0012_0040b_a_20L決叵使山輝川媚。反赢得林慙澗愧。請芼 [703] 路斯避。上日 [704] 。好讓也。蓋吾國風。
0012_0040b_a_21L善則善已。然苟不能是。惡用黄金牓爲。爾勉之。遽出書一編大如椽者。俾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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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1a_a_01L427)에게 건네도록 하니, 문제자門弟子들이 올린 행장이었다.다시금 생각해보니, 서쪽에서 공부한 것은 피차 똑같은데, 스승이 된 이는 어떤 사람이고 부역을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가? 마음으로 공부한 이는 높아지고, 입으로 공부한 이는 수고로운 것인가? 그래서 옛날 군자는 배우는 것을 신중히 했다. 마음으로 공부한 이는 덕을 세우고 입으로 공부한 이는 말을 세운다고 할 때, 덕이란 말에 기대어 일컬을 만하고 말이란 덕에 의지하여 불후하게 된다. 일컬을 만하면 (그런) 마음은 멀리 후인에게 보여줄 수 있고, 불후하다면 입 또한 옛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행할 만한 때에 행할 만한 일을 해야지, 또 어찌 전각篆刻428)을 고집스레 사양하겠는가.비로소 서까래만한 행장을 펼쳐보니, 대사께서 서쪽에서 유학하고 동쪽으로 돌아온 시기와 계戒를 받고 선禪을 깨달은 인연, 공경公卿과 수령(守宰)들이 귀의하여 우러른 일, 상전像殿429)과 영당影堂430)의 창건은 고故 한림랑翰林郎431) 김립지金立之432)가 지은 성주사 비聖住寺碑433)에 자세히 적혀 있고, 부처를 위하고 후손을 위하는 덕화德化와 임금을 위하고 스승을 위했던 명성(聲價), 세속을 진정시키고 마귀를 항복받은 위력, 붕새처럼 드러나고 학처럼 돌아온434) 동정은 증贈 태부太傅 헌강대왕獻康大王435)이 친히 지은 심묘사비深妙寺碑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돌아보건대 부유腐儒436)의 이번 글은 대사께서 반열반般涅槃437)에 이른 시기와 임금님이 솔도파窣堵婆438) 호칭을 높인 것을 드러낼 따름이다. 내 입과 손이 의논하여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439) 하는데, 상족上足(제자) 비구(苾芻)440)가 와서 글(虀臼)441)을 재촉하였다. 내가 이런 뜻을 말하자 그가 말했다. “김립지의 비가 세워진 지 오래되었는데 수십 년간의 아름다운 행적이 여전히 누락되어 있습니다. 태부太傅 왕의 신필神筆로 기록한 것은 특별한 예우를 드러냈을 따름입니다. 군자께서는 옛 현인의 책을 입으로 읊조리고 지금 임금의 명령을 면전에서 받았으며, 국사의 행적에 대해 귀로 충분히 듣고 문생의 행장을 눈으로 실컷 보았습니다. 그러니 자세히 넓게 기록하고 자세히 표현하여 후인(可畏)442)에게 남겨주어 시종을 탐색하게 함이 마땅합니다.443) 만약 서도西笑하는 이444)가 지니고 있다가 서쪽 사람의 비웃음을 면한다면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내가 감히 더 구하겠습니까. 번거롭다고 꺼리지 마십시오.”나는 광노狂奴의 버릇445)이 남아 경솔하게 응답했다. “저는 새끼를 꼬려고 하는데 스님은 채소를 사려(買采)하십니까?446)” 그리고는 원숭이 같은 마음을 붙잡아 매고 토한(兔翰, 붓)447)을 억지로 휘두르다가 『한서漢書』「유후전留侯傳」의 말미 부분을 기억하였다. 장량張良448)이 임금과 천하 대사에 대해 조용히 대화한 것이 매우 많은데 천하의 존망에 관계되지 않는 것은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사의 생몰(時順)449) 간 사적으로 뛰어난 것이 별처럼 많지만 후인에게 경계할 것이 아니면 또한 쓰지 않으리라. 이는 반사班史450)에서 일부를 보았다고 자부한다. 이제 관견管見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빛이 성대하고 가득하여 팔굉八紘(세상)을 비추는 자질이 있는 것은 새벽 해보다 고른 것이 없고, 기운이 온화하고 융화하여 만물을 자라게 하는 공덕이 있는 것은 봄바람보다 넓은 것이 없다. 당당한 바람과 아침 해가 모두 동방에서 나오니, 하늘이 이 두 가지 남은 경사를 모으고 산악이 하나의 영성靈性에 내려서451), 군자의 나라에 태어나 범왕梵王의 집452)에 우뚝 서게 하였으니, 대사가 그 분이다.법호는 무염無染으로 원각圓覺453) 조사祖師의 10세손世孫이다. 속성은 김씨로 무열대왕武烈大王454)이 8대조代祖가 된다. 조부(大父) 주천周川은 품골骨品이 진골眞骨이고 지위는 한찬韓粲이다. 고조와 증조는 모두 장수와 재상을 지냈으니, 집집마다 알 정도였다. 부친 범청範淸 때 일족의 품골이 진골에서 한 등급 내려 득난得難나라에 5품品이 있어, 성골聖骨과 진골眞骨, 득난得難이라 하니, 귀한 성姓을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부文賦」455)에 이르길, “혹 구하기는 쉬워도 얻기는 어렵다.”고 했으니 따라서 6두품을 말한다. 수가 많은 게 귀하니 마치 1명命에서 9명에 이르는456) 것과 같다. -
0012_0041a_a_01L涓授受。乃門弟子所獻狀也。復惟之。西學也。彼此俱爲之。而爲師者何人。爲
0012_0041a_a_02L役者何人。豈心學者高。口學者勞耶。故古之君愼所學。抑心學者立德。口學
0012_0041a_a_03L者 立言。則彼德也或憑言而可稱。是言也或倚悳而不朽。可稱則心能遠
0012_0041a_a_04L示乎來者。不朽則口亦無慙乎昔人。爲 [705] 於可爲之時。復焉敢膠讓乎篆刻。始
0012_0041a_a_05L繹如椽狀。則見 大師西遊東返之歲年。禀戒悟禪之因緣。公卿守宰之歸
0012_0041a_a_06L仰。像殿影堂之開剏。故翰林郎金立之所撰聖住寺碑。叙之詩 [706] 矣。爲佛爲孫
0012_0041a_a_07L之德化。爲君爲師之聲價。鎭俗降魔之威力。鵬顯鶴歸之動息。贈太傳獻康
0012_0041a_a_08L大王親製深妙寺碑。錄之備矣。顧腐儒之今作也。武 [707] 宜標 我 [708] 師就般涅槃
0012_0041a_a_09L之期。與 [709] 吾君崇窣堵婆之號而已。口將手議。役將自適其適。這有上足苾芻。
0012_0041a_a_10L來趣靈 [710] 臼。語及斯意則曰。立之碑。立之久矣。尙闕數十年遺美。公傳 [711] 王神筆
0012_0041a_a_11L所紀。盖顯示殊過 [712] 云爾。君子口嚼古賢書。面飲今君命。耳飯國師行。自 [713] 醉門
0012_0041a_a_12L生狀。宜廣記而備言之。殆貽貽 [714] 可畏。俾原始要終。脫西笑者。或袖之。脫西人
0012_0041a_a_13L笑則幸甚。吾敢求益。子無憚煩。狂奴態餘 [715] 。率爾應曰。僕編苦 [716] 者。師買采乎。遂
0012_0041a_a_14L絆猿心。强搖兎翰。憶得西漢書留候 [717] 傳。▣ [718] 云。良所與上。從容言天下事甚衆。
0012_0041a_a_15L非天下所以存亡。故不著。則大師時順間事蹟。犖犖者星繁。非所以警後學。
0012_0041a_a_16L亦不書。自許窺一班於中 [719] 史然。於是乎管述曰。光盛且實而有暉八紘之質
0012_0041a_a_17L者。莫均乎曉日。氣和而且融有孚萬物之功者。莫溥乎春風。惟▣ [720] 風與旭日。
0012_0041a_a_18L俱東方自出也。則天鍾斯二餘慶。嶽降于一靈性。俾挺生君子國。特立梵王家
0012_0041a_a_19L者。 我 [721] 大師其人也。法號無染。於圓覺祖師爲十世孫。俗姓金氏。以 武
0012_0041a_a_20L烈大王爲八代祖。大父周川。品眞骨。位韓粲。高曾出入皆將相。戶知之。父範
0012_0041a_a_21L淸族降眞骨一等。曰得難。國有五品。曰聖。而曰眞骨。曰得難。言貴姓之難得。文賦云。或求易而得難。從言六頭品。數多爲貴。猶一命至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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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1b_a_01L4ㆍ5품은 말할 것도 없다.이 되었다. 만년에 조 문왕趙文王의 자취457)를 따랐다.모친 화씨華氏가 꿈(魂交)458)에 긴 팔이 하늘에서 드리워 연꽃을 주는 것을 보고는 임신하였고, 거의 한 계절 지났을 때459) 거듭 꿈을 꾸었으니, 자칭 법장法藏460)이라는 서역의 도인이 십호十護461)를 주기에 태교에 충당하였다. 돌 지나 대사를 낳았다. 아해阿孩방언方言으로 아이라는 뜻이니, 중국말과 다르지 않다 시절에 걷거나 앉을 때 반드시 합장하거나 가부좌를 하였다. 아이들과 놀 때 벽에 그리거나 모래를 모음에 반드시 불상이나 탑을 모방했다. 그러면서 하루도 슬하를 떠나지 않았다.9세에 비로소 공부(鼓篋)462)하였는데 눈으로 보면 입으로 반드시 외우니, 사람들이 해동의 신동이라 칭찬했다.세성歲星이 끝남에463) 미쳐 구류九流464)가 좁다는 생각이 있어 불도佛道에 들어가고자 먼저 모친께 아뢰었다. 모친은 이전의 꿈을 생각하고는 울면서 ‘예䚷’방언으로 허락을 뜻한다라고 했다. 이후 부친을 뵈니, 부친은 이미 늦게 깨달은 것을 후회하고는 기뻐서 좋다고 말했다. 드디어 설산雪山(태백산) 오색석사五色石寺465)에서 삭발하고 승복을 입었다. 입으로 정밀하게 약을 맛보고466), 힘으로 날카롭게 하늘을 보수했다.467) 법성法性 선사라고 중국에서 능가종楞伽宗468)의 문을 두드린 이가 있어서, 대사가 몇 년간 스승으로 섬기며 빠짐없이 탐색하였다. 법성이 감탄하길, “빠른 발로 치달리니 뒤에 출발해도 앞서 도달한다는 말을469) 그대에게서 확인하였으니, 나는 흡족하다. 그대에게 팔 용기가 남아 있지 않으니,470) 그대 같은 이는 마땅히 서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대사는 알겠다고 하였다.밤중의 끈은 미혹되기 쉽고,471) 허공의 실은 분별하기 어렵다.472) 물고기는 나무에 올라가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토끼는 그루터기를 지키며 기다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473) 그래서 스승이 가르친 바와 자신이 깨달은 바가 서로 장점이 있었다. 진실로 진주와 불을 얻었다면 조개와 부싯돌은 버려도 된다. 도에 뜻을 둔 이에게 어찌 고정된 스승이 있겠는가.이윽고 그곳을 떠나 부석산 석등釋燈 대덕大德에게 표하건나驃訶健拏474)를 물었다. 실력이 하루에 30명을 대적할 정도이니, 쪽풀과 꼭두서니가 본래 색을 잃었다.475) 요배坳盃의 비유476)를 생각하고 말하기를, “동쪽으로 향하여 바라보면 서쪽 담장을 볼 수 없다. 피안彼岸(저 언덕)이 멀지 않은데 어찌 반드시 고향에 있으리오.” 하고는 산을 내려와 바닷가에서 서쪽으로 건너갈 인연을 엿보았다.마침 국사國使가 서절瑞節477)을 지니고 천자의 궁궐로 가기에 그편에 의지하여 서쪽으로 갔다.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파도가 문득 거세지고 큰 배가 부서져 버리니, 다시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다. 대사는 심우心友 도량道亮과 함께 널빤지에 걸터앉아 업보의 바람에 내맡겼다. 밤낮으로478) 보름 남짓 표류하여 검산도劎山島(흑산도)에 이르자, 해안가로 기어올라 한참을 슬퍼하다가 말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위기를 다행히 피하여 용의 턱 아래 구슬에 손을 댈 수 있겠다.479) 내 마음이 돌이 아니거늘480) 뒤로 굴러 물러날 것인가.”장경長慶481) 초에 이르러 조정사朝正使482) 왕자王子 흔昕483)이 당은포唐恩浦484)에 배를 대자, 태워주기를 청하니 허락하였다. 지부산之罘山485) 기슭에 도착하고서, 앞서 어렵다가 뒤에는 쉬웠던 항해를 돌아보고는 바다의 신(海若)에게 인사(土損)486)하며 말했다.
“고래 파도에서 몸을 보존하여 바람 마귀와 잘 싸웠다.”대흥성大興城 남산南山 지상사至相寺487)에 도착하여 잡화雜花(화엄경)를 강설하는 이를 우연히 만나서는 부석산에 있던 때처럼 했다. 검은 얼굴의 노인488)이 붙잡고 말하기를489), “멀리 사물을 취하려 하는490) 것이 너의 부처를 인식하는 것만 같겠는가.”라고 했다. 대사는 그 말에 크게 깨달아서는 이후로 필묵을 놔두고 불광사佛光寺491)를 유력遊歷하며 여만如滿에게 도를 물었다. 여만은 강서江西492)의 심인心印을 차고 향산香山 상서尙書 백락천白樂天의 공문空門 친구였는데493) 응대하다가 부끄러운 빛을 띠며 말했다. “내가 사람을 많이 보았는데 이 신라 사람 같은 이는 드물었다. 훗날 중국에서 선禪이 사라지면 동이東夷에게 묻게 되리라.”이후 마곡 보철麻谷寶徹494) 화상을 뵙고 열심히 힘든 일도 가리지 않았다. 타인이 힘든 것을 자신은 쉽게 여기니, 대중이 지목하기를, “선문禪門의 유검루庾黔婁495)처럼 기이한 행위”라고 했다. 보철 화상이 굳은 절개(苦節)를 어질게 여겨 일찍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일렀다. “옛날 우리 스승 마조 화상께서 내게 영결永訣하며 이르시길, ‘봄날 꽃이 번성한데 가을 열매가 적으니, -
0012_0041b_a_01L其四五品不足言 晚節追蹤趙文業。母華氏魂交。覩脩臂天垂▼(萬+殳)花。因有娠。幾踰時
0012_0041b_a_02L申夢。胡道人自稱法藏。授十護。充胎教。過朞而誕大師。阿孩方言謂兒。與華旡異 時行
0012_0041b_a_03L坐必掌合 [722] 趺對。至與群兒戲。畵墁聚沙。必模樣像塔。而不忍一日違膝下。九
0012_0041b_a_04L歲始鼓篋。目所覽。口必誦。人稱曰神 [723] 東神童。跨一星終。有隘九流意。入道。先
0012_0041b_a_05L白母。母念已前夢。泣曰誇 [724] 方言許諾 後謁父。父悔已晚悟。喜曰跨 [725] 。遂零染雪山五
0012_0041b_a_06L色石寺。口精嘗藥。力銳補天。有法性禪師嘗扣駿 [726] 伽門于中夏者。大師師事
0012_0041b_a_07L數秊。撢索無孑遺。性歎日 [727] 。迅足駸駸。後發發 [728] 前至 [729] 。吾悏矣。無餘勇可賈於子
0012_0041b_a_08L矣。如子者宜西也。 大師曰惟。夜繩易惑。空樓 [730] 難分。魚非緣木可求。兎非守
0012_0041b_a_09L株可待。故師所教。己所悟。互 [731] 所長。苟珠火斯來。則跋 [732] 燧可幷。風 [733] 志於道者。何
0012_0041b_a_10L常師之有。尋迻去。問驃詞 [734] 健拏干 [735] 浮石山釋燈大德。曰 [736] 敵三十夫。藍茜沮本
0012_0041b_a_11L色。顧坳盃之譬。曰。東面 [737] 望。不見西墻。彼岸不遙。何必懷土。遽出山並海。覗西
0012_0041b_a_12L泛之緣。會國使歸瑞節象魏下。任 [738] 足而西。及大洋中。風濤欻㒹怒。巨艑▼(襄+欠)人。
0012_0041b_a_13L可 [739] 復振。大師與心友道亮。跨隻板恣業風。通星半月餘。飄至劎山鳥 [740] 。行厀 [741] 之
0012_0041b_a_14L碕。悵然甚久曰。魚腹中幸得脫身。龍下頷 [742] 庶幾攙手。我心匪石。其退轉乎。沮 [743]
0012_0041b_a_15L長慶初。朝正 [744] 。王子昕。艤舟唐思 [745] 浦。寓 [746] 載。許焉。旣達之罘山㯟。顧先難後易。土
0012_0041b_a_16L損海若曰。
珍重鯨波。好戰風魔。行至大興城南山至相寺。遇說雜花者。猶在
0012_0041b_a_17L浮石時。有一磐 [747] 顏耆年言提之日 [748] 。遠欲取物 [749] 。孰與認而佛。 大師舌底大悟。
0012_0041b_a_18L自是置翰墨。遊歷佛光寺。問道如滿。滿佩江西印。爲香山白尙書樂天空門
0012_0041b_a_19L友者。而應對有慙色曰。吾閱人多矣。罕有如是新羅子。他日中國失禪。將問
0012_0041b_a_20L之東夷耶。去謁麻谷寶澈和尙。服勤無所擇。人所難。己必易。衆目曰禪門庾 [750]
0012_0041b_a_21L異行。澈 [751] 公賢苦節。嘗一日告之日 [752] 。昔吾師馬和尙訣我日 [753] 。春蘤繁。秋實寡。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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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2a_a_01L도의 나무를 붙잡고 오르는 이가 슬퍼 탄식하리라. 이제 네게 심인을 주니 훗날 무리 중에 기특한 공적으로 책봉할 만한 이가 있으면 책봉하고 인끈이 닳도록496) 하지는 말라.’고 하셨다. 또 이르시길, ‘동쪽으로 흐른다는 말497)이 예언(鉤讖)498)에서 나왔는데, 저 해 뜨는 곳 선남자의 근기가 자못 성숙했으리니, 눈짓으로 말할 만한499) 동쪽 사람을 얻게 되면 이끌어주어서, 지혜의 물이 바다 모퉁이까지 닿게 하라. 그 공덕이 얕지 않으리라.’ 하셨다. 스승의 말씀이 귓가에 맴도니, 네가 와서 기쁘다. 이제 심인을 주어, 동녘에서 으뜸 선후禪侯가 되게 하노니, 가서 공경히 행하라. 나는 당년에 강서(마조)의 큰아이였고 후세에는 해동의 큰아버지가 되리니, 선사께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얼마 되지 않아 스승이 입적(化去)하니, 묵건墨巾500)을 머리에 쓰고 말하기를, “뗏목을 버렸는데 배를 어찌 매어 두리오.” 하고는 이후로 자유롭게 유랑하니, 형세를 막을 수 없고 뜻을 빼앗을 수 없었다. 분수汾水501)를 건너고 곽산崞山502)에 올라 옛 자취를 반드시 찾고 참된 승려를 반드시 찾아갔으니, 머무르는 곳은 인가와 멀었다. 위험을 편안히 여기고 고달픔을 달게 여기는 데 요점이 있었다. 사지를 부려 노예로 삼고 일심을 받들어 군주로 삼으니, 이 가운데 오로지 병든 이를 돌보고 고독한 이를 긍휼히 함을 자기 임무로 삼았다. 매서운 추위와 혹독한 더위에 더위를 먹거나 동상이 걸려도 게을리 함이 없었다. 그 명성을 들은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멀리서도 예경을 표하니, 떠들썩하게 동방의 대보살이라 칭하였다. 그 30여 년의 행사가 이와 같다.회창會昌 5년(845)에 귀국하니, 황제가 명한 것이다503). 나라 사람들이 서로 경축하며 말했다. “연성벽連城璧504)이 다시 돌아왔으니 실로 하늘이 한 것이요, 이 땅의 행복이다.” 이후로 가르침을 청하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가득했다. 왕성王城(경주)에 들어가 모친(母社)을 뵈니,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돌아보건대 내 지난날의 꿈이 우담優曇의 출현505) 아니런가. 바라건대 내세에 제도해 주기를 바라고, 다시 의문倚門의 염려506)에 흔들리지 않을 따름이다.”이에 북쪽으로 가서 여생을 보낼 장소를 직접 고르고자 했다. 마침 왕자 흔昕이 벼슬을 그만두고(懸車)507) 산중 재상508)이 되었다가, 대사와 해후하니 소원을 푼 것이었다. “스님과 제가 용수龍樹 을찬乙粲509)을 조상으로 하니, 스님은 안팎으로 용수의 후손(令孫)이 됩니다.510) 참으로 놀라워서 따라갈 수 없는 분인데 창해 바깥에서 함께 소상瀟湘을 거닐었던 옛일이 있으니511), 친구의 인연이 진실로 얕지 않습니다. 웅천주熊川州(공주) 서남쪽(坤隅)에 절이 하나 있는데 우리 조부 임해공臨海公조부의 휘는 인문仁問, 예맥을 정벌한 대가로 당나라에서 임해군공臨海郡公으로 책봉하였다.이 봉지로 받은 곳입니다. 중간에 재해를 입어 사원(金田)512)이 절반은 잿더미가 되었으니, 자비롭고 현철한 이가 아니면 누가 계승하여 일으키겠습니까? 저(朽夫)513)를 위해 억지로 머물러 주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인연이 있으면 머물겠습니다.”대중大中514) 초初에 비로소 가서 머무르며 청소하였다. 이윽고 도가 크게 펼쳐지고 사찰이 크게 성행했다. 이로부터 사방 멀리서 문진問津515)하는 이들이 천 리를 멀다 않고 오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문도가 번성하였다. 대사는 여전히 종처럼 두들기기를 기다리고516) 거울처럼 피로를 잊었다.517) 오는 이들에게 지혜의 횃불로 그 눈을 인도하고 법의 기쁨으로 배를 채워주어, 안절부절못하는 발걸음을 유도하고 어리석은 풍속을 변화시켰다. 문성대왕文聖大王이 그 행적을 들으니 왕화王化에 보탬이 되지 않음이 없어서 매우 바르게 여겼다. 그래서 수교手教518)를 날려 보내 공로를 치하하고, 대사가 산중 재상에게 대답한 네 마디 말519)을 훌륭히 여겨 사찰 명패를 ‘성주聖住’520)라고 바꾸었다. 그리고 대흥륜사大興輪寺521)에 편입시켰다. 대사가 사자使者에게 응대하길, “사찰을 ‘성주’라 명한 것은 초제招提(사찰)에 진실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용렬한 승려를 지극히 총애하시어 높은 자리에서 함부로 불어대게 하니522) 실로 바람을 피하던 새523)와 같고 안개에 숨은 표범524)에 부끄럽습니다.”라고 했다. 당시 -
0012_0042a_a_01L道樹者所悲吒。今授若印。異日徒中有奇功可封者封之。無使刓。復云。東流
0012_0042a_a_02L之說。盖出鉤讖。則彼日出處。善男子根殆熟矣。若若得東人可目語者。畎道
0012_0042a_a_03L之。俾惠 [754] 水丕冐於海隅。爲德非淺。師言在耳。吾喜若往 [755] 。今 [756] 印焉。俾冠禪侯于
0012_0042a_a_04L東大 [757] 。往欽哉。則我當年作江西大兒。後世爲海東大父。其無慙 [758] 先師矣 [759] 乎。屬 [760]
0012_0042a_a_05L無何。國 [761] 師化去。墨巾離首。乃曰。筏旣捨矣。舟何繫焉。自爾浪遊飄飄然。勢不可
0012_0042a_a_06L遏。志不可奪。於 [762] 渡汾水。登 [763] 山。跡之古必尋。僧之眞必詣。凡所止舍。遠心 [764] 煙。大
0012_0042a_a_07L要在安其危甘其苦。役四體爲奴虜。奉一心爲君主。就是中。顒 [765] 以視篤癃恤
0012_0042a_a_08L孤獨爲己任。至祈寒酷暑。且煩暍。或皹▼(疒*豕)侵。曾無倦容。耳名者不覺遙禮。囂
0012_0042a_a_09L作東方大菩薩。其三十餘年行事也其 [766] 如是。會昌五年。來歸。 帝命也。國人
0012_0042a_a_10L相慶曰。連城璧復還。天實爲之。地有幸也。自是請益者所至稻麻矣。入王城。
0012_0042a_a_11L省母社。大歡喜日 [767] 。顧吾疇昔夢。乃非優曇之一顯耶。願度來世。吾不復撓倚
0012_0042a_a_12L門之念也已矣。迺北行。擬目選終焉之 [768] 。會王子昕懸車。爲山中宰相。邂逅適
0012_0042a_a_13L願。謂曰。師與吾俱祖龍樹乙粲。則師內外爲龍樹令孫。眞瞠若不可及者。而
0012_0042a_a_14L滄海外。躡蕭 [769] 湘故事。則親舊緣固不淺。有一寺在熊川州坤隅。是吾祖臨海
0012_0042a_a_15L公祖諱仁問。唐醻伐穢貊。功封爲臨海郡公受封之所。間刧燼流菑 [770] 。金田半灰。匪慈哲。孰興滅繼
0012_0042a_a_16L絕。可强爲朽夫住持乎。大師答曰。有緣則住。大中初。始就居。且口 [771] 飾之。儀 [772] 而
0012_0042a_a_17L道大行。寺大成。繇是四遠問津輩視千里猶 [773] 步。其𣀷不億。寔繁有徙。 大師
0012_0042a_a_18L猶鍾彼 [774] 扣。而鏡忘罷。至者靡不以慧炤導其目。法喜娛其腹。誘憧 [775] 之躅。變蚩
0012_0042a_a_19L蚩之俗。 文聖大王聆其運爲。莫非裨王化。甚㤎之。飛手教優勞。且多 大師
0012_0042a_a_20L答山相之四言。易寺牓爲聖住。仍編錄大興輪寺。 大師醻 [776] 使者日 [777] 。寺以聖
0012_0042a_a_21L住爲名。招提固所爲榮。至寵膚 [778] 僧。濫吹高藉 [779] 。寔避風斯媲。而隱霧可慙矣。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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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2b_a_01L헌안대왕憲安大王525)이 단월檀越526)인 아우 서발한舒發韓527) 위흔魏昕528)과 남북상南北相529)이 되어 멀리서 제자의 예(攝齋禮)530)를 행하고 차와 향을 바쳐 거르는 달이 없었다. 그리하여 대사의 명성이 동국에 두루 미치니, 사류土流들이 대사의 산문을 알지 못하면 일세의 수치로 여겼다. 예족禮足531)한 이들은 물러나서는 반드시 감탄하길, “직접 뵈니 귀로 들은 것보다 백배는 낫다. 입으로 말씀이 나오기 전에 마음에 먼저 들어왔다.”고 했다. 원숭이나 호랑이 같은 사람이라도 또한 그 조급함을 그치고 포악함을 바꾸고는 선한 길로 다투어 달려갔다.헌안대왕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 글을 보내 말씀을 청하니, 대사가 대답하였다. “주풍周豊이 노공魯公에게 한 말이532) 뜻이 있습니다. 『예경禮經』에 기록되어 있으니 자리 옆에 새겨두소서.”태사太師로 추증된 선대왕先大王533)이 즉위함에 이르러, 공경하고 중히 여김이 선조先朝의 뜻과 같았고 날마다 더 두터워졌다. 모든 조치 사항에 대해 반드시 대사께 의견을 물어본 다음에 시행하였다.함통咸通 12년(871) 가을에 곡두서鵠頭書534)를 날리고 역마를 보내 대사를 불렀다. “산림은 어찌 가까이하시고 성읍은 어찌 멀리하십니까.” 대사가 생도生徒에게 말하였다. “갑자기 백종伯宗535)을 명하시니 원공遠公536)에게 매우 부끄럽다. 그러나 도道가 장차 행해지리니 때를 놓칠 수는 없다. 부촉付囑하셨던537) 일을 생각하니 내가 가야겠다.” 훌쩍 서울(轂下)에 이르러 알현하니, 선대왕(경문왕)이 면복冕服으로 절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군부인君夫人(왕비)과 세자世子, 태제太弟 상국相國538)추봉追奉하여 시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 하였다., 여러 공자公子와 공손公孫들이 둘러서 하나같이 우러르니, 한결같이 옛 가람伽藍(절)의 벽면에 그려진 서방 국장國長(군주)들이 발타勃陁(부처)를 모시던 방식과 같았다.임금이 말했다. “제자가 재주가 없으나 글짓기를 조금 좋아하여 일찍이 유협劉勰539)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을 보니, 거기에 이르길 ‘유有에 집착하거나 무無를 고수하면 편벽된 해석에 예리할 뿐이다. 참된 근원에 이르고자 하면 그것은 경계를 끊은 반야이다.’540)고 하였습니다. 경계가 끊어진 것을 혹시 들어볼 수 있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경계가 끊어졌다면 이치 또한 없는 것입니다. 심인心印541)으로 묵묵히 행할 따름입니다.”
임금이 말했다. “과인은 진실로 조금 더 가르쳐주시길 청합니다.”
이에 문도 가운데 쟁쟁한 이들에게 명하여 번갈아 질문하도록 하고, 차분히 답변을 다했다.542) 집착을 베어내고 번거로움을 제거하니 가을바람(商飊)이 음산한 안개를 쓸어버리는 듯했다. 이에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대사를 늦게 본 것을 한탄하며 말했다. “몸을 공손히 하고 남쪽을 향한543) 이에게 남종南宗544)을 가르쳐 주시니545),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546)”대궐을 나오자 경상卿相들이 맞이하여 더불어 논의할 겨를이 없고, 사서인士庶人들이 따라다니니 떠나려 해도 갈 수 없었다. 이로부터 나라사람들이 모두 의주衣珠547)를 인식하였고, 이웃 노인이 무옥廡玉548)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새장 속처럼 괴로워서 즉시 도망치듯 가버렸다. 임금이 강요하지 못함을 알고는 이에 친서(芝檢)549)를 내려, 상주尙州 심묘사深妙寺가 서울에서 멀지 않으니 선나禪郍550) 별관으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대사는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아서 가서 머물렀다. 하루를 머물더라도 반드시 수리하였으니 어엿하게 사찰(化城)551)로 변하였다.건부乾符 3년(876) 봄에 선대왕(경문왕)이 병이 나자 근시近侍에게 명하길, “빨리 우리 대의왕我大醫王을 모셔오라.”고 했다. 사신이 이르자, 대사가 말했다. “산승의 발이 대궐에 닿는 것은 한 번도 심하다 할 것이다. 나를 아는 이들은 ‘성인의 머무름(聖住)은 머무름 없다(無住)’ 하겠지만, 나를 모르는 이들은 ‘무염无染이 유염有染이 되었다’고 하리라. 그러나 돌아보건대 우리 군주와 향화香火의 인연이 있고, 도리천忉利天552)으로 행차할 기한이 되었으니, 어찌 가서 영결하지 않으리오.” 다시 걸어서 왕궁에 이르러 보약 같은 설법을 하고 침 같은 계율을 시행하니, 어느새 병이 나아, 온 나라가 기이하게 여겼다.한 달이 지나자 헌강대왕獻康大王이 익실翌室에 거하여553) 울면서 왕손王孫 훈영勛榮에게 유지諭旨를 전하게 했다. “내(孤)가 어려서 상(閔凶)을 당하여 정치를 알지 못하지만, 군주를 보좌하고 부처님을 -
0012_0042b_a_01L憲安大王與檀越季舒發韓魏昕。爲南北相各居其官。猶左右相。 遙展攝 [780] 禮。贄以茗
0012_0042b_a_02L馞。使無虛月。至使名簽 [781] 東國。土流不識 大師門。爲一世羞。得禮足者。侵 [782] 必
0012_0042b_a_03L唶曰。面謁倍百乎耳聞。口未出而心已入。抑有猴虎而冠者。亦熄其趮。諽其
0012_0042b_a_04L臺 [783] 。而億犇馳善進 [784] 。暨 憲王嗣立 [785] 。賜書乞言。 大師答曰。周豊對魯公之語。
0012_0042b_a_05L有旨哉。著在禮經。諸 [786] 銘座側。逮 贈大 [787] 師先大王即位。欽重如 先朝志。而
0012_0042b_a_06L日加厚焉。㝡 [788] 所施爲。必馳問然後擧。咸通十二年秋。飛鵠頭書。以傳召曰。山
0012_0042b_a_07L林何親。城邑何疎。大師謂生徒曰。遽命伯宗。深慙遠公。然道之將行也。時乎
0012_0042b_a_08L不可失。念付囑故。吾其往矣。欻爾至轂下。及見。 先大王冕服拜爲師。 君
0012_0042b_a_09L夫人世子旣太弟相國追奉尊謚惠成大王 群公子公孫環仰如一。一如古伽藍繢壁
0012_0042b_a_10L面寫出西方諸國長侍勃陁樣式。上日 [789] 。弟子丕佞。小好屬文。嘗覽劉勰文
0012_0042b_a_11L心。有語云。滯有守無。徒銳偏解。欲詣眞源。其般若之絕境。則境之絕者。或可
0012_0042b_a_12L聞乎。
大師對曰。境旣絕矣。理 [790] 無矣。斯印 [791] 默行爾。
上曰。寡人固請少進。
爱命
0012_0042b_a_13L徒中錚錚者。擊更手撞 [792] 。春 [793] 容盡聲。剖滯袪煩。若商飊之劃陰靄 [794] 。於是 上
0012_0042b_a_14L大喜。懊見大師晚曰。恭己南面。司南南宗。舜何人哉。余何人也。旣出。卿相延
0012_0042b_a_15L迓。與謀不暇。庶 [795] 迻 [796] 承。欲去不能。自是國人皆認衣珠。隣叟罷窺廡玉焉。俄苦 [797]
0012_0042b_a_16L樊笯中。即亡去。上知丕可强。迺降芝檢。以尙州深妙寺丕 [798] 遠京。請禪郍別
0012_0042b_a_17L舘。辭丕 [799] 獲。往房 [800] 之。一日必葺。儼苦 [801] 化城。乾符三年春。 先大王不預。命近侍
0012_0042b_a_18L曰。亟迎我大醫王來。使至。 大師曰。山僧足及 王門。一之謂甚。知我者。謂
0012_0042b_a_19L聖住爲無住。不知我者。謂无染爲有染乎。然顧與吾君有香火因緣。忸 [802] 利之
0012_0042b_a_20L行有期矣。盍就一訣。復步至王房 [803] 。設藥言。施箴戒。覺中愈 [804] 。擧國異之。旣踰月。
0012_0042b_a_21L獻康大王居翌室。泣命王孫勛榮諭旨曰。孤幼遭閔凶。未能知政。致君奉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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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3a_a_01L받들어 많은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홀로 자기만 선한 것과는 같이 말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대사께서는 멀리 가지 마시고 거처를 택하기만 하십시오.” 대사가 답하기를, “옛날 스승으로는 육적六籍(육경)이 있고, 오늘 보좌로는 삼경三卿이 있습니다. 늙은 산승이 무엇을 하는 자라고 앉아서 계옥桂玉554)만 축내겠습니까. 남겨 드릴 만한 세 글자가 있으니 ‘제대로 사람을 임명하라.(能官人)’입니다.” 하고는 다음 날 산에 갈 짐을 꾸리고 새처럼 가버렸다. 이후로 역마(騎置)가 소식을 전하느라 그 그림자가 바위와 시내에 이어질 정도였다. 역졸(遽人)들은 성주사에 가는 것을 알면 모두 환호작약하며 손을 모으고 고삐를 바꿔 잡아 왕정王程555)이 지체될까 걱정하면서 짧은 거리처럼 여겼다. 이로부터 기상시騎常侍556) 무리들이 급한 왕명을 쉽게 거행하게 되었다.건부제乾符帝가 석명錫命하던 해(878)557)에 국내에서 혀끝으로 말할 만한 게 있는 이들에게 이로움을 늘리고 해로움을 없앨 방안을 올리게 했다. 별도로 만전蠻牋558)에 글을 써서 말하길, “하늘의 은총을 받은 것은 까닭이 있어서입니다.”라고 했다. 나라를 이롭게 하라는 물음이 내려오자, 대사는 하상지何尙之가 송 문제宋文帝에게 바친 심성心聲559)으로 대답하니, 태부太傅 왕람王覽이 보고는, 개제介弟 남궁상에게 말하길, “삼외三畏는 삼귀三歸에 비견되고, 오상五常은 오계五戒560)와 균등하니, 왕도王道를 실천하는 것이 불심佛心에 부합하는 것이다. 대사의 말씀이 지당하니, 나와 너는 마땅히 삼가야 한다.”고 했다.중화中和의 서수西狩하던 해(881)561) 가을에 임금이 시인侍人에게 이르길, “나라에 큰 보주寶珠가 있는데 세상 마치도록 궤 속에 보관함이 옳은가?562)” 하니, “그렇지 않습니다. 때마다 한 번 꺼내어 만인의 안목을 깨우치고 사방에서 심취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했다. “내게 말니末尼(여의주) 보물(上珍)이 있는데 빛을 감추고 숭암산崇巖山에 있으니 비장秘藏을 열어 놓아 마땅히 삼천세계를 비추게 하리라. 12수레563)를 어찌 족히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문고文考564)께서 정성껏 맞이하여 일찍이 두 번 드러났었다. 옛날 찬후酇侯는 한왕漢王이 대장을 임명하면서 아이 부르듯 함을565) 기롱하였다. 상산商山의 네 노인을 오게 하지 못한566)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들으니 천자가 몽진蒙塵했다 하니, 빨리 달려가 관수官守567)를 위문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천자를 섬김(勤王)에 두터이 하려면 부처님께 귀의함이 먼저이니, 장차 대사를 맞이해야 반드시 바깥 의논에 맞을 것이다. 내 어찌 감히 하나를 믿고 둘을 업신여기겠는가.568)” 그리고는 사신을 거듭 보내고 말씀을 겸손하게 하여 불렀다.대사가 이르길, “외론 구름이 산봉우리에서 나옴이 어찌 마음이 있어서겠는가?569) 대왕의 바람에 인연이 있으니 고집하지 않는 것570)이 상사上士571)의 도道이다.” 하고는 드디어 가서 뵈었다. 선조先朝의 예禮처럼 하였고, 예를 더한 것이 분명하게 손으로 꼽을 만했다. 임금이 대면하여 공양을 올린 것이 하나요, 손수 향을 전한 것이 둘이요, 삼례三禮572)를 세 번 한 것이 셋이요, 작미로鵲尾爐573)를 잡고 세세생생의 인연을 맺은 것이 넷이요, ‘광종廣宗’이라고 법칭法稱을 더한 것이 다섯이요, 다음 날 진로振鷺574)를 명하여 봉수鳳樹575)에 나아가 기러기처럼 줄지어 인사하도록 한 것이 여섯이다. 나라 안에 육의六義576)를 연마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대사를 송별하는 시를 짓게 하니, 재가在家 제자인 왕손王孫 소판蘇判 억영嶷榮이 먼저 읊었고, 시들을 모아 축軸(책)을 만들었고, 시독侍讀 한림翰林으로 자질이 뛰어난 박옹朴邕이 서문을 써서 증정한 것이 일곱이다. 그리고 장차掌次577)에게 거듭 명하여 정실淨室을 마련하여 이별을 나눈 것이 여덟이다.임금이 이별할 때 묘결妙訣을 구하니, 대사가 제자(從者)들에게 눈짓하여 진요眞要(법문)를 올리도록 했다. 순예詢乂와 원장圓藏ㆍ허원虛源ㆍ현영玄影 같은 이는 사선四禪 가운데서 청정淸淨을 얻은 이들인데, 지혜를 실처럼 뽑고 섬세한 뜻을 드러내어 뜻을 기울임에 나태함이 없고 마음을 비옥하게 함에 여유가 있었다. 임금이 매우 기뻐서 손을 들어 경배하며 말했다.
“예전 문고文考께서는 비파를 내려놓는 현명함이 있으셨고, 이제 과인은 자리를 피하는 자식이 되었습니다.578) 계체繼體579)하여 공동崆峒의 청을 얻었고580), 복응服膺581)하여 혼돈混沌의 근원을 열었습니다. 위수渭水의 노옹582)은 -
0012_0043a_a_01L誧濟海人。與獨善其身。不同言也。幸 大師無遠適。所㞐唯所擇。對曰。古之
0012_0043a_a_02L師則六籍在 [805] 。今之輔則三卿在。老山僧何爲者。坐蝗蠧桂玉哉。旣有三言。庸
0012_0043a_a_03L可留獻。曰能官人。翌日。挈山裝鳥逝。自爾騎置傳訊。影綴巖溪。遽人知往抵
0012_0043a_a_04L聖住。即皆雀躍。叢手易轡。慮滯王程。尺 [806] 寸地。由是騎常侍倫伍得急宣。爲輕
0012_0043a_a_05L擧。乾符帝錫命之歲。令國內舌杪有可道者。貢興利除害榮 [807] 。別用蠻牋書
0012_0043a_a_06L言。荷 天寵有所自。因垂益國之問。 大師引出何尙之獻替宋文帝心聲
0012_0043a_a_07L爲對。 太傳 [808] 王覽謂介弟南宮相曰。三畏比三歸。五常均五戒。能踐王道。是
0012_0043a_a_08L符佛心。 大師之言至矣。吾與汝宜惓惓。中和西狩之年秋。 上謂侍人曰。
0012_0043a_a_09L國有大寶珠。畢世 [809] 藏之。其可耶 [810] 。曰。不可。不若時一出。俾醒萬戶眼。醉四隣
0012_0043a_a_10L心。曰。我有末尼上珍。匿曜在嵩嚴 [811] 山。脫闢秘藏。宜照透三千界。何十二乘足
0012_0043a_a_11L之 [812] 道哉。 我文考懇迎。嘗再顯矣。昔酇侯譏漢王拜大將召小兒。不能致商
0012_0043a_a_12L於 [813] 四老人以此。今聞 天子蒙塵。趣令奔問官守。勤王如厚。歸佛居先。將邀
0012_0043a_a_13L大師。必叶外議。吾豈敢倚其一慢其二哉。乃重其使。卑其辭徵之。大師云。
0012_0043a_a_14L孤雲出岫。寧有心哉。有緣乎 大王之風。無固乃上土 [814] 之道。遂來見。見如
0012_0043a_a_15L先朝禮。禮之加。焯然可屈指者。面供饌。一也。手傳香。二也。三禮者三。三也。秉
0012_0043a_a_16L鵲尾爐締生生世世緣。四也。加法稱曰廣宗。五也。翌日。命振鷺。趨鳳樹。鴈列
0012_0043a_a_17L賀。六也。教國中磋磨六義者。賦送歸之什。在家弟子王孫蘇判嶷榮首唱。歛
0012_0043a_a_18L成軸。侍讀翰林才子朴邕爲引而贈行。七也。申命掌次張淨室。要叙別。入 [815] 也。
0012_0043a_a_19L臨告別。求妙訣。乃眴從者。擧眞要。有若詢又 [816] 圓藏虛源玄影。四禪中得淸淨
0012_0043a_a_20L者。緒柚抽其慧。表纖旨 [817] 。注意無怠。沃心有餘。 上甚悅。擡拜曰。
昔文考爲捨瑟
0012_0043a_a_21L之賢。今寡人忝避席之子。繼體得崆峒之請。服膺開混沌之源。則彼渭濱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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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3b_a_01L진정 명예를 낚시하는 자요, 다리 위 아이583)는 자취를 따른 것입니다. 이들이 비록 왕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나 그저 세 치 혀를 놀림이니, 어찌 우리 대사께서 한 조각 마음을 은밀하게 전하신 것과 같겠습니까. 받들어 시행하며 실추하지 않겠습니다.”태부太傅 왕은 평소 중국말을 잘하였는데, 금옥 같은 음성이라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짝이 맞는 말을 이루는 것이 미리 구상해 놓은 것 같았다. 대사가 물러나서 또 왕손 소판蘇判 김일金鎰의 청에 응하여 몇 마디 대화하고는 즉시 감탄하며 말했다.
“예전 임금(人主)들은 원대한 몸은 있어도 원대한 정신이 없는584) 경우가 있었는데, 우리 임금님은 다 갖추셨도다. 신하로서 공재公才는 있어도 공망公望이 없는585) 경우가 있는데, 그대는 온전하니, 나라가 잘 되리라. 의당 덕을 좋아하고 자애自愛하시오.”산으로 돌아가서는 일체 사절하였다. 이에 임금이 사신(輶軒)586)을 보내 방생放生 구역587)을 표시하게 하니 새와 짐승들이 좋아하고, 글씨(銀鉤)588)를 엮어 성주사 편액을 쓰니 용이 꿈틀대듯 하였다. 성대한 일을 마치니 창성한 시기가 홀연 끝났다.589)정강대왕定康大王590)이 자리를 이어 양조兩朝591)에서 우대한 것을 따라 행하여, 승려와 속인으로 하여금 거듭 맞이하게 했으나 나이와 질병을 이유로 사양하였다.태위太尉 대왕592)이 은혜를 내림이 바다와 같고 덕을 우러름이 산처럼 높아서, 자리를 이은 지 90일 동안 말을 달려 안부를 물은 것이 10번이었다. 이윽고 허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어의(國醫)에게 가서 치료하게 하였다. 어의가 와서 아픈 상태를 물으니, 대사가 빙그레 웃으며 “노병일 뿐이니 번거롭게 치료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죽과 밥으로 두 끼를 먹었는데593) 반드시 종이 울린 후에 가져오게 했다. 문도들은 기력이 훼손될까 걱정하여 종 치는 이에게 몰래 말하여, 자주 치게 했다. 그러자 대사가 창문으로 보고는 식사를 거두라고 명했다.입적할 때 시자侍者에게 명하여, 대중들에게 유훈을 내려 경계했다. “이미 중수中壽594)를 넘겼으니 대기大期(죽음)를 피하기 어렵다. 나는 멀리 가니 너희들은 잘 있거라. 선을 그은 듯이 바르게 하여 지키고 잃지 말라. 옛날 관리(史)595)도 이와 같았으니, 오늘날 선승은 마땅히 힘쓸지어다.” 영결을 고하고 나서는 움직임 없이 입적하였다.대사의 성품은 공손하고 근면하며 말투는 화기和氣를 손상하지 않았으니, 『예기禮記』에 이른바, “몸가짐이 겸손하고 말투는 조심스러웠다.”596)고 한 경우이다. 학승들도 반드시 선사禪師로 불렀고, 빈객을 맞이할 때도 존귀하든 비천하든 공경을 달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방에 자비가 가득하고 많은 문도들이 즐겨 따랐다. 5일을 기약으로 찾아와 구하는 이들에게 질의하도록 하였다. 생도들에게 타이르기를, “마음이 비록 몸의 주인이지만, 몸도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도를 생각하지 않는 게 걱정이지, 도가 너희를 어찌 멀리 하겠는가? 설령 농부들이라 해도 번뇌의 얽매임을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달려가면 마음도 달려간다. 도사道師와 교사(教父)에 어찌 따로 종자가 있겠는가?”, “타인이 마신다고 나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타인이 먹는다고 나의 굶주림을 구제할 수 없다. 어찌 노력하여 스스로 마시고 먹지 않느냐? 혹자는 교教와 선禪이 같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종지를 본 적이 없다. 말은 본래 많아서 내가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개 나와 같다고 편들지 않고 다르다고 비난하지 않으며 고요히 앉아 기심機心을 쉬면 누더기 옷 입은 이597)에게 가까우리라.” 하였다. 그 말은 분명하고 순조로우며, 그 뜻은 깊고 미더웠다. 그래서 상相을 찾는 이에게 상 없음을 알게 하고, 도를 찾는 이들이 열심히 행하여 갈림길 속의 갈림길을 보지 않도록 하였다.장성해서 노쇠하기까지 자기 낮추기를 기본으로 하였다. 식사는 남과 다른 양식으로 하지 않고, 옷도 남과 같은 복장으로 하였다. 건물 공사를 할 때 대중보다 앞서면서, 매번 말하길 “조사께서도 진흙을 이기셨는데598) 내 어찌 잠시라도 편히 지내리오.” 하였다. 물을 옮기고 땔감을 지는 일까지 간혹 몸소 하면서, “산이 나 때문에 더럽혀지는데 어찌 내가 몸을 편히 하리오.” 하였다. 사심을 극복하고 타인을 격려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대사는 어려서 유가의 책을 읽어 여운이 입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응수할 때 운문(韻語)이 많았다. -
0012_0043b_a_01L翁。眞釣名者。圯上孺子。盖履迹焉。雖爲王者師。徒弄三寸舌也。曷若吾師語
0012_0043b_a_02L密傳一片心乎。奉以周旋。不敢失墜。太傳 [818] 王雅善華言。金玉音 [819] 不患衆咻
0012_0043b_a_03L聒。而能出口成儷語如宿構云。 大師旣退。且往應王孫蘇判鎰。共言數返。
0012_0043b_a_04L即歎曰。
昔人主有有遠體而無遠神者。而吾君備。人臣有有 [820] 公才而無公望
0012_0043b_a_05L者而吾 [821] 全。國其庶乎。宜好德自㤅。及歸謝絕。於是遣輶軒。標放生場界。則鳥
0012_0043b_a_06L獸悅。紐銀鉤。扎聖住寺題。則龍蛇活。盛事畢矣。昌期忽兮。定康大王莅阼。
0012_0043b_a_07L兩朝寵遇。師而行之。使緇素重使迎之。辭 [822] 老且病。太尉大王流恩表海。仰
0012_0043b_a_08L德高山。嗣位九旬。馳訊十返。俄聞䐴腰之苦。遽命國醫往爲之。至則請苦狀。
0012_0043b_a_09L大師微破顏曰。老病耳。無煩治。糜飱二時。必聞鍾後進。 其徒憂食力虧。陰
0012_0043b_a_10L戒掌枹者。陽 [823] 擊。乃目牗而命撤。將化往。命旁侍。警遺訓于介衆日 [824] 。已過中壽。
0012_0043b_a_11L難逃大期。我儂遠遊。爾曹好住。講 [825] 若畵一。守而勿失。古之史尙如是。今之禪
0012_0043b_a_12L宜勉旃。告訣裁罷。熱 [826] 然而化。大師性恭謹。語不傷和氣。禮所云。中退然。言
0012_0043b_a_13L呐 [827] 然者乎。黌侶必目以禪師。接賓客。未嘗殊敬乎尊卑。故滿室慈悲。烝徒悅
0012_0043b_a_14L隨。五日爲期。俾來求者質疑。諭生 [828] 則曰。心雖是身主。身要作心師。患不爾思。
0012_0043b_a_15L道豈遠而。設是田舍兒。能擺脫塵羈。我馳則必 [829] 馳矣。道師教父。寧有種乎。又
0012_0043b_a_16L曰。彼所啜。不濟我渴。彼所噉。不救我餒。盍努力自飲且食。或謂教殫 [830] 爲無同。
0012_0043b_a_17L吾未見其宗。語本夥頤。非吾所知。大較同弗與。異弗非。晏 [831] 坐息機。斯近縷褐
0012_0043b_a_18L被者歟。其言顯而順。其旨奥而信。故能使尋相爲無相。道者勤而行之。不見
0012_0043b_a_19L有岐中之岐。始壯及衰。自貶爲基。食不異糧。衣必均服。凡所營葺。役先衆人。
0012_0043b_a_20L每言。祖 [832] 嘗踏泥。吾豈蹔安栖。至摙水負薪。或躬親親 [833] 。且曰。山爲我 [834] 塵。安我 [835]
0012_0043b_a_21L得安身。其剋己勵物。皆是類。大師少讀儒家書。餘味在脣吻。故酬對多韻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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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4a_a_01L문하 제자로서 이름을 거론할 만한 이가 근 2천 명이었다. 따로 거처를 마련하여 도량에 앉았다(坐道場)599)고 일컬을 만한 이들로는 승량僧亮과 보신普愼, 순예詢乂, 심광心光 등이 있다. 손제자들이 매우 많아 그 무리가 성대하니, 실로 ‘마조馬祖가 새끼 용을 기르고 동방 바다가 서방 강하를 덮었다.’고 할 만하다.다음과 같이 평론한다.『춘추(麟史)』600)에 이르지 않았는가, 공후公侯의 자손이 반드시 시조의 지위를 회복한다고.601) 옛날 무열대왕武烈大王(태종 김춘추)이 을찬乙粲(아찬)이었을 때 예맥穢貊을 칠 원군을 청할 계책을 위해 진덕여왕의 명으로 소릉황제昭陵皇帝(당 태종)를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정삭正朔602)을 받들고 복장服章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진달하니, 천자가 가상히 여겨 허락하고, 조정에서 중화의 복식을 하사하고 특진特進의 위계를 주었다. 하루는 번국蕃國의 왕자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서 많은 술과 보배를 쌓아두고 마음대로 욕망을 채우도록 하였다. 왕은 술을 마심에 예법으로 어지러움을 방비하고, 비단은 지혜로 많이 획득하였다. 왕이 인사를 하고 나오자, 문황文皇(당 태종)이 눈으로 송별하며, 나라의 그릇이라고 감탄하였다. 귀국할 때는 황제가 쓴 온탕溫湯과 진사晉祠의 비문603) 그리고 황제가 찬술한 『진서晋書』604) 한 부를 하사하였다. 당시 봉각蓬閣(교서관)이 이 책을 필사하여 2본本을 만들어 올리니, 하나는 저군儲君(태자)에게 주고 하나는 우리에게 주었다. 다시 화자관華資官605)에게 명하여 동문(靑門) 밖에서 전송(祖道)606)하게 하였으니, 총애가 대단하고 예우가 두터웠다. 지혜에 귀 멀고 눈먼 이라 해도 또한 귀와 눈이 놀랄 정도였다. 이로부터 우리 땅이 한번 변하여 노나라 경지에 이르렀다.607) 8세世 뒤에 대사가 서쪽에서 공부하고 동쪽에서 교화하여 한 번의 변화를 더해 도道에 이르게 하였으니, ‘그보다 높은 이가 없을 것이다.’608)고 함이 우리 대사 아니면 누구를 말하겠는가. 위도하도다.선조先祖(태종 무열왕)는 적국敵國 둘(백제, 고구려)을 평정하고 사람들에게 바깥 복식을 변하게 하였으며, 대사는 마적 여섯609)을 항복시키고 사람들에게 안쪽 덕을 닦게 하였다. 그래서 천승千乘 군주610)가 양조兩朝에 걸쳐 경배하고, 사방 백성들이 만 리를 달려왔으니, 움직임에 필시 턱으로 부리듯 쉬웠고, 가만히 있음에 비난을 품는 이도 없었다. 어찌 5백년에 응하여611) 삼천대천세계에 현현한 이가 아니겠는가. ‘시조의 지위를 회복한다.’는 말 또한 어찌 흐뭇하지 않을 것인가.저 문성후文成侯612)가 한漢 고조의 사부가 되어 만호후에 봉해지고 제후의 반열에 오름을 크게 자랑하며 한韓 나라 재상의 자손으로서613) 극치를 이룬 것도 보잘것없다. 가령 신선을 배워 처음부터 끝까지 했더라면 과연 대낮에 하늘로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중간에 그만두어 학 등에 탄 하나의 허깨비 몸이 되었을 따름이다. 또 어찌 우리 대사께서 처음에 속세를 벗어나 중간에 중생을 제도하고 마지막에 자기를 깨끗하게 한 것과 같겠는가. 성대한 덕의 모습을 찬미함은 예로부터 송頌으로 하였으니, 송은 게偈의 부류이다. 고요함을 두르려 명銘을 지으니, 가사는 다음과 같다.可道爲常道 도라 할 만해도 영원한 도가 됨은614)
如穿草上露 풀잎 위 이슬을 꿰는 것과 같고
即佛爲眞佛 그대로 부처라 해도 참된 부처가 됨은
如攬水中月 물 속의 달을 움켜잡음과 같네.615)
道常得佛眞 영원한 도를 얻은 참된 부처는
海東金上人 해동의 김씨 스님이라
本枝根聖骨 본래 가지는 성골에 뿌리를 두었고
瑞蓮資報身 상서로운 연꽃 징조가 보신616)을 도왔네.
五百年擇地 5백년 만에 이 땅을 택하여
十三歲離塵 13세에 속세를 여의고
雜花引鵬路 화엄이 대붕의 길을 인도하니
窽木浮鯨津其一 조각배를 고래 나루에 띄웠도다.617)제1수
觀光堯日下 요임금의 해 아래를 관광하고618)
巨筏悉能捨 큰 뗏목을 모두 버릴 수 있었으니619)
先達皆嘆云 선배들 모두 감탄하길
苦行無及者 고행을 따를 수 없다 하네.
沙之復汰之 사태에 또 사태가 벌어져620)
東流是天假 동쪽으로 귀국하니 하늘의 도움이라
心珠瑩麻谷 마음 구슬이 마곡을 빛내고
目鏡燭桃野其二 눈 거울은 신라621)를 밝혔도다.제2수
旣得鳳來儀 봉황이 와서 춤을 추게622) 되니
衆翼爭追隨 뭇 새들이 다투어 따르고
試觀龍變化 용의 변화를 보고자 하나
凡情那測知 범인이 어찌 헤아리리오.
仁方示方便 동방623)에 -
0012_0044a_a_01L門弟子名可名者。塵 [836] 二千人。索居而稱坐道場者。曰僧亮。曰普愼。曰詢乂。曰
0012_0044a_a_02L心光。諸孫詵詵。厥衆濟 [837] 。實可謂馬祖毓龍子。東海淹 [838] 西河焉。論曰。麟史不云
0012_0044a_a_03L乎。公侯之子孫必復其始。則昔 武烈大王爲乙粲時。爲屠穢貊乞師計。將
0012_0044a_a_04L眞德女君命。陛覲昭陵皇帝。面陳願奉正朔。易服章。 天子嘉許。庭賜華
0012_0044a_a_05L裝。受 [839] 位特進。一日召諸番 [840] 王子宴。大置酒。堆寶貨。俾恣滿所欲。王乃杯觴則
0012_0044a_a_06L禮以防亂。繪綵則智以獲多。泉 [841] 辭出。 文皇目送而歎曰。國器。及其行也。以
0012_0044a_a_07L御製幷書溫湯晉祠二碑暨御撰晋書一部賚之。時蓬閣寫是書。裁竟二本
0012_0044a_a_08L上。一錫儲君。一爲我賜。復命華資官祖道靑門外。則寵之優。禮之厚。設聾盲
0012_0044a_a_09L乎智。亦足駭耳目。自玆吾土一變。至於魯。八世之後。 大師西學而東 化。
0012_0044a_a_10L加一變至於道。則莫之與京。捨我誰謂 [842] 。偉矣哉。先祖平二敵國。俾人變外
0012_0044a_a_11L飭。大師降六魔賊。俾人修內德。故得千乘主。兩朝拜起。四方民萬里奔趨。動
0012_0044a_a_12L必頤使之。靜無腹非者。庸詎非應牛千而顯大千者歟。復其始之說。亦何慊
0012_0044a_a_13L乎哉。彼文成侯爲師漢祖。大誇封萬戶。位列侯。爲韓相子孫之極則㑋矣。假
0012_0044a_a_14L學仙有終始。果能白日上昇。去於中止。得爲鶴背上一幻軀爾。又焉踀 [843] 我
0012_0044a_a_15L大師拔俗於始。濟衆於中。潔己於終矣乎。美盛德之形容。古尙乎頌。偈頌 [844] 類
0012_0044a_a_16L也。扣寂爲銘。其詞曰。
0012_0044a_a_17L可道爲常道。 如穿草上露。 即佛爲眞佛。 如攬水中月。 道常得佛
0012_0044a_a_18L眞。海東金上人。本枝根聖骨。 瑞蓮資報身。 五百年擇地。 十三歲離塵。
0012_0044a_a_19L雜花引鵬路。 窽木浮鯨津其一。觀光堯日下。 巨筏悉能捨。 先達皆嘆云。
0012_0044a_a_20L苦行無及者。 沙之復汰之。 東流是天假。 心珠瑩麻谷。 目鏡燭桃
0012_0044a_a_21L野其二。旣得鳳來儀。 衆翼爭追隨。 試觀龍變化。 凡情那測知。 仁方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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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4b_a_01L방편을 보이시고
聖住强住持 성주사에 억지로 주지하시니
松門遍掛錫 솔문에 온통 석장이 걸리고
巖徑難容錐其三 산길에 송곳 꽂을 틈조차 없었도다.제3수
我非待三顧 우리 스님은 삼고초려를 기다리지 않고
我非迎七步 우리 스님은 일곱 걸음으로 맞이하지도624) 않으며
時行則且行 때가 행할 만하면 행했으니
爲緣付囑故 불법을 부촉한 인연 때문이네.
二王拜下風 두 임금이 하풍625)에 절하고
一國滋甘露 온 나라가 감로수를 만끽했으니
鶴出洞天秋 학이 가을에 동천에서 나옴이요
雲歸海山暮其四 구름이 저녁에 해산으로 돌아감이라.제4수
來貴乎葉龍 옴은 섭룡626)보다 귀하고
去高乎冥鴻 감은 명홍627)보다 높았으니
渡水陿巢父 물을 건너면 소보를 좁게 여기고628)
入谷超朗公 골에 들어가면 낭공629)보다 뛰어났네.
一從歸島外 한 번 따라서 섬 바깥으로 돌아와
三返遊壺中 세 번 호중630)에 노닐었으니
群迷漫藏否 군중은 함부로 좋다 나쁘다 하나
至極何異同其五 지극한 경지에 어찌 같고 다름이 있으랴.제5수
是道澹無味 이 도는 담백하여 맛이 없으나
然須强飲食 반드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니
他酌不吾醉 타인이 마신다고 내가 취하지는 않고
他飱不吾飽 타인이 먹는다고 내가 배부르지는 않네.
誡衆黜心何 대중에게 마음을 물리치라고 경계함은 무엇인가
糠名復粃利 명예를 겨처럼, 이익을 쭉정이처럼 여기라는 것
勸俗飭身何 속인에게 몸을 닦으라고 권함은 무엇인가
甲仁復胄義 인을 갑옷으로, 의를 투구로 삼으라는 것제6수631)
汲引無辨遺 제도함에 버려두는 이 없었으니
其實天人師 실로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라
昔在世間時 지난날 세상에 계실 때에는
擧國成瑠璃 온 나라가 유리처럼 환했었네.
自寂滅歸後 적멸632)로 돌아가신 후로는
觸地生疾䔧 닿는 곳마다 가시풀만 나오니
泥洹一何早 어찌 그리 빨리 열반하셨을까633)
今古所共悲 고금에 모두 슬퍼하는 바로다.제7수634)
堪石復刊石 바위를 세우고 또 바위에 새겨
藏形且顯跡 형체는 숨기고 자취는 드러내니
鵠塔點靑山 곡탑635)이 푸른 산에 점을 찍고
龜碑撑翠壁 귀비636)가 푸른 벽을 지탱하네.
是豈向來心 이 어찌 그 때의 마음이리오
徒勞文字視 문자만 보는 것은 헛수고지
欲使後知今 후인에게 지금을 알게 하고 싶지만
猶如今示昔其八 지금 과거를 보는 것과 같도다.637)제8수
君恩千數深 임금638)의 은혜는 천 년 동안 깊고
師化萬代欽 스님의 교화는 만 대가 흠앙하리니
誰持有柯斧 누가 자루 있는 도끼를 잡고639)
誰倚無絃琴 누가 줄 없는 비파640)에 기댈까.
禪境雖沒守 선의 경지는 지킬 게 없다 하더라도
客塵寧許侵 객진 번뇌641)에 어찌 침해되리오
雞峯待彌勒 계봉에서 미륵을 기다리지만
將在東雞林其九 장차 동쪽 계림에 있으리라.642)제9수
종제從弟 조청대부朝請大夫 전수집사前守執事 시랑侍郎 사자금어대賜紫金魚袋 신臣 최인류崔仁流가 교지를 받들어 쓰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8척 3촌, 폭은 4척 9촌 5푼이다. 글자 크기는 5푼으로 해서楷書다. 제액題額의 글자는 마멸되었다.)
18. 찬송문 (신원사新元寺)본사의 창건은 유래가 1천여 년이나 되는데, 가람을 수호하며 훼손되는 대로 보수하여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대웅전 삼존불상과 영원전靈源殿 지장보살은 옷643)이 벗겨진 지 오래되어서 주야로 근심하였으나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공주읍 상반정常盤町 김윤환金閏煥644) 상공相公은 젊어서부터 유교와 불교계에서 크게 명망이 있던 분이다. 바다처럼 험난한 벼슬에 종사하다가 호산湖山으로 물러나서는 덕행과 자선이 속세를 뛰어넘어 산문에서 감히 찬양도 못할 정도였다. 작년에는 논산 쌍계사雙溪寺를 중건하고, 갑사 수정암水晶菴을 보수하였으니, 과연 불가에 정성을 들인 것이다.기사년 겨울에 신사년 출생인 부인과 같이 와서 본사에 딸린 암자에서 치성을 드리다가 뜻에 신명님께 감화된 바가 있었다. 그래서 천효天孝를 온전히 하고 돌아와서는 의연금 14,500금 거액을 내서 각전各殿의 불상을 -
0012_0044b_a_01L方便。 聖住强住持。松門遍掛錫。 巖徑難容錐其三。我非待三顧。 我非
0012_0044b_a_02L迎七步。時行則且行。爲緣付囑故。二王拜下風。一國滋甘露。鶴出洞天秋。雲
0012_0044b_a_03L歸海山暮其四。來貴乎葉龍。去高乎冥鴻。渡水陿巢父。入谷超朗公。一從歸島
0012_0044b_a_04L外。三返遊壺中。群迷漫藏否。 至極何異同其五。是道澹無味。 然須强飲食。
0012_0044b_a_05L他酌不吾醉。 他飱不吾飽。誡衆黜心何。 糠名復粃利。勸俗飭身何。甲仁
0012_0044b_a_06L復胄義。祺 [845] 汲引無辨 [846] 遺。 其實天人師。 昔在世間時。擧國成瑠璃。 自寂
0012_0044b_a_07L滅歸後。觸地生疾䔧 [847] 。 泥洹一何早。 今古所共悲。堪 [848] 石復刊石。藏形且顯
0012_0044b_a_08L跡。鵠塔 [849] 靑山。 龜碑撑翠壁。是豈向來心。徒勞文字視 [850] 。欲使後知今。猶如今
0012_0044b_a_09L示昔其八。君恩千數 [851] 深。 師化萬代欽。誰持有柯斧。誰倚無絃琴。禪境雖沒守。
0012_0044b_a_10L客塵寧許侵。雞峯待彌勒。 將 [852] 在東雞林其九。
0012_0044b_a_11L從弟朝請大夫前守執事侍郎賜紫金魚袋臣崔仁流奉 教書。
0012_0044b_a_12L(碑身高八尺三寸。幅四尺九寸五分。字徑五分。楷書。題額字滅。)
0012_0044b_a_13L
0012_0044b_a_14L讃頌文(新元寺)
0012_0044b_a_15L
0012_0044b_a_16L本寺剏建。由來一千餘年。而伽藍守護。隨毁隨補。迄今支吾。然大雄殿三尊
0012_0044b_a_17L佛像。靈源殿地藏菩薩。脫衣己久。晝宵憂懼。莫知所做。何幸公州邑常盤町
0012_0044b_a_18L金相公啣▼(門*壬)煥。自妙歲。大有望於儒佛矣。從宦海。而仗退湖山。德行慈善。超
0012_0044b_a_19L越俗世。山門之不敢讃揚。而至於年前。論山雙溪寺之重建。甲寺水晶菴之
0012_0044b_a_20L修葺。果有誠於佛家矣。當己巳冬。要偕坤命辛巳生。致誠於本寺屬菴。而意
0012_0044b_a_21L以神明所感。乃全天孝以歸。特出義一萬四千五百金之巨款。各殿供像。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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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5a_a_01L새롭게 개금改金하고, 또 목주木柱 수십 조각을 잇대어 직접 글씨를 쓰고 새기고 채색해 각 전각에 걸게 했다. 그리하여 범우梵宇(사찰)가 빛나고 도량이 청정해졌으니, 상공이 하사한 바가 아님이 없다. 이 어찌 범인이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 현달함과 자비는 진실로 ‘태어나 불사에 유익함이 있다’고 할 만하고, 또한 ‘사문에 공로가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보살지장의 전신前身이요, 한편으로는 존자尊者목련의 환겁幻劫645)이다. 높고 높은 공덕을 사라지게 할 수 없으므로 대략 중대한 것만 들어서 글을 지어 새겨 둠으로써 후인의 귀감이 되게 한다.
대시주大施主
충청남도 공주군 공주읍 상반정
건명乾命646) 경오생庚午生 김윤환金閏煥
곤명坤命647) 신미생辛未生 윤연화尹蓮華
곤명坤命 신사생辛巳生 고명화高明華
장자長子 신축생辛丑生 성룡聖龍
장부長婦 계묘생癸卯生 장사룡張思龍
차남次男 을사생乙巳生 성봉聖鳳
차부次婦 계묘생癸卯生 김정숙金貞淑
삼자三子 임자생壬子生 성귀聖龜
손자 갑자생甲子生 대현大鉉
손자 정묘생丁卯生 주현周鉉
석가 탄강 2958년 신미년(1931) 8월 일
공주군 계룡면 신원사 주지 유수명柳秀洺이 삼가 기록하다.
18-1. 현판 등문648) (신원사)무릇 천지신명을 사람들이 지극히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계룡산은 동국의 중앙에 있는 산이다. 하물며 단壇649)을 배설하여 기도한 지가 -
0012_0045a_a_01L新改金。且以木柱。聯數十片。親書刻彩。揭付各殿。梵宇之光明。道場之淸淨。
0012_0045a_a_02L莫非相公所賜也。是豈凡人之所能及哉。其賢達慈悲。眞可謂生有益於佛
0012_0045a_a_03L事也。亦可謂有功於沙門。則一是菩薩地藏之前身。一是尊子 [853] 目蓮之幻劫也。
0012_0045a_a_04L巍巍功德。不可泯默。故略擧大者。而文以刻之。以爲后人之戒鑑焉。
0012_0045a_a_05L大施主
0012_0045a_a_06L忠淸南道公州郡公州邑常盤町
0012_0045a_a_07L乾命 庚午生 金閏煥
0012_0045a_a_08L坤命 辛未生 尹蓮華
0012_0045a_a_09L坤命 辛已生 高明華
0012_0045a_a_10L長子 辛丑生 聖龍
0012_0045a_a_11L長婦 癸卯生 張思龍
0012_0045a_a_12L次男 乙已生 聖鳳
0012_0045a_a_13L次婦 癸卯生 金貞淑
0012_0045a_a_14L三子 壬子生 聖龜
0012_0045a_a_15L孫 甲子生 大鉉
0012_0045a_a_16L孫 丁卯生 周鉉
0012_0045a_a_17L釋迦誕降二千九百五十八年辛未八月 日
0012_0045a_a_18L公州郡鷄龍面新元寺
0012_0045a_a_19L住持柳秀洺謹識
0012_0045a_a_20L懸板謄本 [854] (新元寺)
0012_0045a_a_21L夫天地神祗。人莫至 [855] 敬。而維鷄龍山。即 東國之中嶽也。況且設壇爲 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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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5b_a_01L이미 5백여 년이나 되었으니, 신령의 존중함이 다른 경우와 크게 다르다. 그런데 사찰 형세가 쇠퇴하여 등촉을 얻지 못하니, 긴 밤에 항상 송구하기만 하다. 그래서 별도로 계를 조직하여 영원히 등촉을 밝힐 자원을 마련하였으니, 뒷사람들은650) 미약한 정성이나마 저버리지 말고 서로 도울 것이며, 또한 신심을 지속하여 영구히 쇠퇴하지 말고 지키며 받들어 행하라.
선행 신사善行信土 박중묵朴重默 갑인생甲寅生 경성京城 거주
선행 신사善行信土 이순정李順貞 을묘생乙卯生 경성京城 거주
선행 신사善行信土 조예석趙禮錫 신유생辛酉生 경성京城 거주
선행 신사善行信土 박용진朴瑢進 무진생戊辰生 경성京城 거주
선행 신사善行信土 변태원邊泰源 갑인생甲寅生 경성京城 거주
각기 300냥을 내어 도합 1,500냥에서 200냥은 금년 등촉을 켜는 데 사용하고, 1,300냥은 2할 5푼의 변리邊利로 감영監營 헌공청憲公廳에 부쳐 매년 이자 325냥을 제수祭需로 사용하도록 할 것.
성상聖上(고종) 즉위 29년임진(1892) 3월 일
화주化主 나학懶學
응성應惺
시화상時和尙 일원逸源
봉축불존奉祝佛尊 도인道仁
19. 현판 서문 (영은사)무릇 일에는 도가 달라도 서로 이득이 되는 경우가 있어, 환 자사桓刺史가 혜원慧遠을 위해 사찰을 세워주고,651) 소 내한蘇內翰이 회민懷民을 위해 경전을 만들었던652) 것인데, 유교와 불교가 다르다고 보시하고 보살피는 단서를 폐지할 것인가. 이로 미루어보자면 신령한 부처님께서 사람에게 응하여 보답하는 것에 있어서도 분명 유교와 불교가 다르다고 자비로 보살피는 도를 느슨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
0012_0045b_a_01L已爲五百餘載。則
0012_0045b_a_02L靈神之尊重。與他逈別。而寺樣彫殊。燈燭之不得。遠夜恒所悚閣。故別設一
0012_0045b_a_03L稧。以爲永世長燈之資。渡 [856] 之人不負微誠。互相爲敏。亦壽信心。永久勿替。悟 [857]
0012_0045b_a_04L守奉行爲。
0012_0045b_a_05L善行信土朴重默甲寅生居京城內
0012_0045b_a_06L李順貞乙卯生居京城內
0012_0045b_a_07L趙禮錫辛酉生居京城內
0012_0045b_a_08L朴瑢進戊辰生居京城內
0012_0045b_a_09L邊泰源甲寅生居公州府
0012_0045b_a_10L各誅三百兩。合一千五百兩。內二百兩。今年長燈次所用。一千三百兩。以二
0012_0045b_a_11L五䢘 [858] 所殖次。付之監營憲公廳。每年利條。三百二十五兩。以爲需用事。
0012_0045b_a_12L聖上即祚二十九年壬辰三月 日
0012_0045b_a_13L化主懶學
0012_0045b_a_14L應惺
0012_0045b_a_15L時和尙逸源
0012_0045b_a_16L奉祝佛尊道仁
0012_0045b_a_17L
0012_0045b_a_18L懸板序(靈隱寺)
0012_0045b_a_19L
0012_0045b_a_20L夫事固有道異而相得者。以桓刺史而爲惠遠而立寺。以蘇內翰而爲懷民
0012_0045b_a_21L而做經。則爲可以儒佛之不同而廢其周施眷恤之端乎。以此推之。則靈佛
0012_0045b_a_22L之所以應報於人者。必不以儒佛之有異而弛其慈悲眷恤之道矣。於此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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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6a_a_01L유교와 불교가 도움이 되어 서로 보살핀다는 것을 볼 수 있다.아! 이공李公께서 이 지방에 수령으로 오셔서 선필仙蹕이 예전에 머무심653)에 감동하고 범우가 무너질 듯함을 탄식하여, 특별히 권선문勸善文과 공사公事를 체하帖下654)하고 전문錢文 50금을 더하여 승장僧將655) 월순月旬에게 보시하였다. 월순은 이공이 믿고 좋아하던 이였다. 월순은 이에 권선문으로 널리 시주를 구하여 사찰의 무너져 비가 새는 곳들을 보수하고, 50금으로 불장佛庄을 매입하여 이공의 복록을 기도하고 영원히 시행할 규칙으로 삼았다. 이공은 이 기도에 (누락). 이는 월순이 스스로 원한 것이라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한즉 이 사찰의 중수는 이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월순의 기도는 이공을 위해 마련되었으니, 이공이 복을 구한 것이 아니라 복이 이공을 찾아온 것임을 알겠다. 이것이 이른바 유교와 불교가 서로 도운 것이요, 또한 내가 이른바 신명이 그 사이에 응답한 것이리라.
도순찰사都巡察使 이근우李根友656) 명동明洞
좌막佐幕657) 유성민柳聖民
이경민李景敏
김재온金在溫 고영명高永命
김진金瑨 한용주韓容主
전택희全宅熹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4번째 임자壬子(1852) 9월에 유학幼學 오원락吳源恪이 삼가 쓰다.
19-1. 영은사 중수기『주역』(감괘坎卦)에 이르길, “지형이 험한 것은 산천과 구릉이다. 왕공이 험함을 마련하여 그 나라를 지킨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웅주산성熊州山城(공주산성)이 그러하다. 산성은 웅주 북쪽 3무武658) 남짓에 있는데 산세가 깎아지른 듯하고 또 큰 강을 끼고 있으니, 바로 호령湖嶺659)의 보장保障이다. 게다가 인조께서 머물렀던 곳이니, 실로 남도의 관방關防(요새)으로 중요시했던 지역이다. 이후로 중영中營을 설치하여 지켰으니 바로 한나라의 북문 자물쇠에 해당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여 먹었으니 노나라 교외에 ‘네 양식을 비축하라.’660)함과 같다. 그렇다면 왕실에서 험함을 마련하여 방어하는 뜻이 또한 어떠한가?그곳에 군막을 설치하여 승도들에게 지키게 하였으니 바로 이른바 영은사靈隱寺이다. 그런데 -
0012_0046a_a_01L見儒佛之資而相恤者乎。噫。李公 來守是方。感其 仙蹕之昔駐。嘆其梵
0012_0046a_a_02L宇之將圮。特以勸善文公事幷爲帖下。而加以錢文伍拾金。施于僧將月旬。
0012_0046a_a_03L月旬即公之信愛者也。月旬乃以勸善文文 [859] 廣求施周。以補寺刹之毁漏。以
0012_0046a_a_04L伍拾金之財。買置佛庄。以祈 李公之福祿。仍爲永久之規。而公則▣軍於
0012_0046a_a_05L此禱也。是乃月旬之所自願而不能已也。然則此寺之重修。由公而成。月旬
0012_0046a_a_06L之祈禱。爲公而設。而是知公非求福而福來求公也。此所以儒佛之相資。而
0012_0046a_a_07L亦吾所謂神明之報應於其間者哉。
0012_0046a_a_08L都巡察使李公根友 明洞
0012_0046a_a_09L佐幕 柳聖民
0012_0046a_a_10L李景敏
0012_0046a_a_11L金在溫 高永命
0012_0046a_a_12L金瑨 韓容主
0012_0046a_a_13L全宅熹
0012_0046a_a_14L崇禎紀元後四壬子九月 日 幼學吳源恪謹序
0012_0046a_a_15L
0012_0046a_a_16L靈隱寺重修記
0012_0046a_a_17L
0012_0046a_a_18L易曰。地險山川邱陵。王公設險。以守其國。今夫我國之熊州山城是已。城在
0012_0046a_a_19L州北三武許。山形斗絕。又跨大河。即是湖嶺之保障。況又
0012_0046a_a_20L仁廟駐蹕之所。則實爲南道之關防。而有所重之地也。自是之後。設中營焉 [860] 。
0012_0046a_a_21L以守之。即漢朝之北門鎻鑰也。儲軍粮。以餉之。即魯郊之峙乃糇粮也。然則
0012_0046a_a_22L王家設險守禦之意。又何如哉。間置軍慔 [861] 。以僧徒典守之。即所謂靈隱寺。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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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6b_a_01L흉년이 든 이후로 사찰이 쇠잔해져서 지키는 승려들이 거의 둘도 없어 텅 빌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올 봄에 이 성을 마침 지키게 되었으니, 무릇 보수保守하는 도리에 있어서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는가. 당시 승장僧將 월순月旬이란 이가 또한 사찰을 보수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여 민간에 도움을 구해서 돈과 전답을 모으니 도합 50금, 6섬의 땅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요사채를 보수하고, 한편으로는 사찰의 공물公物을 만들었으니, 이것은 중영의 사람들이 자원하여 바친 것이다. 몇 해 사이 쇠잔하던 사찰이 이로부터 안도하게 되었으니, 또한 폐단 하나를 제거함에 하루를 다툰다는 군정軍政이 아니겠는가? 월순이 내게 와서 말하길, “본사가 다시 모양새를 이루게 된 것은 성사城使660)의 힘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후세에 남길 글을 구합니다.”고 했다. 나는 응답하길, “관리로서 너희 사찰에 실효가 없었는데 어찌 공적을 돌릴 이치가 있겠는가? 경륜하고 조치함에 있어서는 내가 실제 했을 따름이지. 이 사찰의 흥폐는 이 산성의 성쇠盛衰와 관계가 있으니, 성사城使된 이로서 더욱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다. 후에 이 산성을 맡는 이들에게 이 각문刻文을 보고 별도로 더 보호한다면 조정에서 험함을 마련하여 지키는 뜻에 거의 어긋나지 않으리라.” 하였다.
함풍咸豊 2년(1852) 유화절流火節(7월) 본성本城 중군中軍 권인병權寅秉662)이 기록하다.
병교兵校663) 호룡갑號龍甲
서치형徐致亨
홍구헌洪九憲
도군색都軍色 이예갑李禮甲
권인석權仁錫
19-2. 공주산성 영은사 중수기무릇 사물의 흥폐는 대개 사람의 존망에 따른다. 이 사찰은 바로 인조께서 머물렀던 곳이라 중대함이 다른 절과는 다르다. 그런데 근래 이래로 사세가 피폐해져 승도가 쇠잔하고 전각이 무너지니 누군들 한탄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물이 성하고 쇠함은 진정 변화인 것이요, 불운이 다하면 태평해짐이 진실로 이치인 것이다.이 즈음에 가선嘉善 월순月旬이 서울 남한사南漢寺664)에서 왔는데, 불공과 향화香火가 거의 끊어짐을 개탄하고, 전각(梵宇)과 요사채가 -
0012_0046b_a_01L粵自歉荒之後。寺力蕩殘。守僧無幾二。至空虛之境。余於今春。適守是城。凡
0012_0046b_a_02L於保守之道。敢不盡力。而于時有僧將月旬云者。又有誠力於保寺之節。求
0012_0046b_a_03L助民間。鳩聚錢與畓。合爲五十金六石地。一爲僧舍之修補。一爲寺內之公
0012_0046b_a_04L物。此則營底民人之自願所納者也。經年凋殘之刹。自此安接。則亦豈非軍
0012_0046b_a_05L政之去一瘼者爭一日。月旬來余言曰。本寺之能復成樣。同 [862] 非城使之力。而
0012_0046b_a_06L求有辭於後世云。余應之曰。官無實效於汝寺。有何歸功之理乎。至於經綸
0012_0046b_a_07L措畵。余實爲之耳。▣此寺之興替。有關於本城之盛衰。則爲其城使者。尤爲
0012_0046b_a_08L輸念處。而▣ [863] 之臨是城者。視此刻文。另加斗護。則庶不負
0012_0046b_a_09L朝家設險守禦之意云。
0012_0046b_a_10L咸豊二年流火節本城中軍權寅秉記
0012_0046b_a_11L兵校號龍甲
0012_0046b_a_12L徐致亨
0012_0046b_a_13L洪九憲
0012_0046b_a_14L都軍色李禮甲
0012_0046b_a_15L權仁錫
0012_0046b_a_16L
0012_0046b_a_17L公州山城靈隱寺重修記
0012_0046b_a_18L
0012_0046b_a_19L夫物之興廢。盖人之存亡也。此寺即
0012_0046b_a_20L仁廟祝駐蹕之地。而所重與他自別。而▼(扌+袞)近以來。寺樣疲廢。僧徒凋殘。殿閣
0012_0046b_a_21L雖頹。誰不恨嘆哉。然物盛而衰。固其變也。否極而泰。誠其理也。於斯之際。嘉
0012_0046b_a_22L善月旬。來自京城南漢寺也。慨然乎供佛香火之幾絕。矜憫手 [864] 梵宇寮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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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7a_a_01L퇴락함을 근심하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화주(化士)가 되고 한편으로는 일도 주관하여 경술년(1850)을 시작으로 임자년(1852)에 이르기까지 3년 사이에 300여 금을 모아 법당을 중수重修하고 단청과 요사채의 퇴락한 곳을 그 퇴락한 곳에 따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임자년 가을 7월에 불량佛粮 전답 7섬지기를 모으고자 권하였다. 과연 천일염 60두斗와 함께 매년 정례적으로 납입하여 불전佛前에 봉헌하여 분향과 예배가 만 년에 달하도록 끊이지 않게 되었으니, 이것은 진실로 이른바 ‘일대사一大事665)’라 할 만하다. 그러한 즉 앞서 이른바 ‘사물의 흥폐’가 어찌 (사람의) 유무有無에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주의 공덕이 아니라면 폐하다가 흥하였을까? 그리고 화주의 공덕이 없었다면 퇴락하다가 어찌 온전하게 되었을까? 그 공적은 천지와 함께 영원할 것이요, 그 덕행은 바다와 같이 무궁하리라. 그래서 몇 줄 글자를 적어 후인의 안목을 기다릴 뿐이다.
시주질施主秩 아장방亞長房 편수질片手秩 본방질本房秩
순영장청巡營將廳 본부장청本府將廳 이순화李順和 전수좌前首座 경월 쾌수鏡月快守
작청作廳 의생방醫生房 정鄭 시수좌時首座 정담 일원淨潭一原
헌공청憲公廳 배씨裵氏 계홍桂紅, 이씨李氏 화옥花玉 임석후林碩厚 시승장時僧將 가선嘉善 월순月旬
장방청長房廳 입자방笠子房 오정관吳鼎灌 구주장舊住長 묘천妙天
본부통청本府通廳 산성동중山城洞中 치장편수治匠片手 시주장時住長 가선嘉善 묘념妙念
화주질化主秩 해막海幕 유성빈柳聖彬 비구比丘 혜惠
도화주都化主 월순月旬 비구比丘 정운定雲
좌도 화주左道化主 정운定雲 서천舒川 오택진吳澤鎭 비구比丘 정우定祐
정우定祐 비구比丘 학운學云
우도 화주右道化主 묘념妙念 비구比丘 영순永順
상겸尙謙 수승首僧 봉민奉旻
곽사범郭士凡 영진永眞
희률熙律
사미沙彌 선인善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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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7a_a_01L頹敗。一爲化士。一爲幹役。庚戌爲始。至壬子。三年之間。鳩財三百餘金。法堂
0012_0047a_a_02L重修。及丹靑又寮舍頹敗之處。隨其頹處。重修。而壬子秋七月。勸慕 [865] 佛粮田
0012_0047a_a_03L畓七石落只。果與日鹽六十斗。每年例納。奉獻于佛前。焚香拜禮。亘萬世而
0012_0047a_a_04L不絶。此眞所謂。一夫 [866] 之事。然則向者所謂。物之興廢。豈不在於有無耶。然若
0012_0047a_a_05L非施主德。廢向而興。且無化主之功。毁何以成。功與天地之相終。德如河海
0012_0047a_a_06L之無窮。故數行之書。以寺 [867] 後人眼目耳。
0012_0047a_a_07L
0012_0047a_a_08L施主秩 亞長房 片手秩 本房秩
0012_0047a_a_09L巡營將廳 本府將廳 李順和 前首座鏡月快守
0012_0047a_a_10L作廳 醫生房 鄭 時首座淨潭一原
0012_0047a_a_11L憲公廳 裵氏桂紅 林碩厚 時僧將嘉善月旬
0012_0047a_a_11L 李氏花玉
0012_0047a_a_12L長房廳 笠子房 吳鼎灌 舊住長 妙天
0012_0047a_a_13L本府通廳 山城洞中 治匠片手 時住長嘉善妙念
0012_0047a_a_14L化主秩 海幕 柳聖彬 比丘惠
0012_0047a_a_15L都化主月旬 比丘定雲
0012_0047a_a_16L左道化主定雲 舒川吳澤鎭 比丘定祐
0012_0047a_a_17L定祐 比丘學云
0012_0047a_a_18L右道化主妙念 比丘永順
0012_0047a_a_19L尙謙 首僧奉旻
0012_0047a_a_20L郭士凡 永眞
0012_0047a_a_21L 熙律
0012_0047a_a_22L 沙彌善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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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7b_a_01L함풍咸豊 3년 계축(1853) 정월에 영흥永興666) 안불사安佛寺667) 산인山人 혜한慧翰이 쓰다.
19-3. 공주 쌍수산성 영은사 중수기자고로 큰 궁궐과 전각에서 기둥과 들보가 가장 제일이다. 그래서 기둥을 세운 후에 들보를 올리고, 들보를 올린 후에 일이 완성된다. 집에 기둥과 들보가 있음은 사람에게 정강이와 팔뚝이 있는 것과 같다. 집은 기둥과 들보가 있어야 서고, 사람은 정강이와 팔뚝이 있어야 행동한다. 온갖 재목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기둥과 들보이다. 천만 시주하는 사람 중에 더욱 중한 이는 기둥과 들보를 시주하는 이다. 시주한 이는 누구인가? 감영의 이방吏房 양대업梁大業 씨이다. 기둥과 들보를 다스려 사찰이 완성된 후에 바깥문을 절반 열어 놓는 쌍수雙樹의 가을 달과 기둥에 그려진 아침에 금포錦浦를 나는 멋진 구름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치하하지 않음이 없다. 양씨의 은덕이 어찌 성대하고 화려하지 않은가? 승려들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판에 새겨 은공에 대해 만에 하나라도 표시한다.
성상이 즉위한 지 4년(1854) 겨울 10월 승장僧將 월순月旬이 기록한다.
수좌首座 정담 일원淨潭一圓
시승장時僧將 월순月旬
주장主長 묘천妙天
수승首僧 영진永眞
봉민奉旻19-4. 공주 쌍수산성 영은사 중수기속리산에서 수립된 한 맥(離樹一脈)668)이 계룡산에서 서쪽으로 달리다가 가파르게 솟았으니, 산의 이름은 ‘학룡산鶴龍山’669)이고, 사찰의 이름은 ‘영은사靈隱寺’이다. 사찰의 창건 연도가 매우 오래되어 무너진 지가 이제 몇 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시임時任670) 승장僧將 월순月旬이 경성에서 와서는 이 사찰이 쇠락하여 남은 게 없음을 보고는 매우 개탄하였다. 이런 연고를 영문營門(감영)에 아뢰니, 분부하신 내용에, “영은사는 비단 군막軍幕이 -
0012_0047b_a_01L咸豊三年癸丑正月日。永興安佛寺。山人慧翰序
0012_0047b_a_02L
0012_0047b_a_03L公州双樹山城靈隱寺重修記
0012_0047b_a_04L
0012_0047b_a_05L自古。巨關 [868] 雄殿。棟樑最爲第一。故立柱之後上樑。上樑之後成功。舍之有棟
0012_0047b_a_06L樑。如人之有股肱也。含 [869] 有棟樑而立。人有股肱而後行矣。百材之中。最貴者
0012_0047b_a_07L棟樑也。千萬施主之人。尤重者棟樑施主。施主者誰也。營吏房梁氏大業也。
0012_0047b_a_08L治其棟樑。寺宇旣成之後。外戶半開双樹之秋月。畵棟朝飛錦浦之祥雲。來
0012_0047b_a_09L人去客。莫丕致賀。梁氏恩德。豈非盛且華耶。僧徒丕忘其恩。刻于板上。以標
0012_0047b_a_10L恩功之萬一哉。
0012_0047b_a_11L聖上即位四年冬十月。僧將月旬記。
0012_0047b_a_12L首座淨潭一圓
0012_0047b_a_13L時僧將 月旬
0012_0047b_a_14L主長 妙天
0012_0047b_a_15L首僧永眞
0012_0047b_a_16L奉旻
0012_0047b_a_17L
0012_0047b_a_18L公州雙樹山城靈隱寺重修記
0012_0047b_a_19L
0012_0047b_a_20L離樹一脈。自鷄龍西走崢嶸。而山之名曰鶴龍。寺之名曰靈隱也。寺之剏建。
0012_0047b_a_21L䄵深久遠。頹圮者。于玆積年矣。故時任僧將月旬。自京城來。觀於此寺之凋
0012_0047b_a_22L殘無餘。不勝慨憚。以此緣由。禀於營門。則分付教是內。靈隱寺非但留陣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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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8a_a_01L머무를 뿐 아니라, 인조 시절에 행궁이 머물렀던 곳이다.”라고 하면서 특별히 좌도와 우도 군현郡縣과 마을에 공문을 하달하여(行關)671) 돈과 재물을 모아 법당을 중수하고 기와와 단청과 요사채 등을 일제히 수리하게 하였다. 4월 보름께에 일을 시작하여 가을 9월 20일 경에 마쳤다. 사찰의 운세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관찰사 송현松峴 홍공洪公672)의 돌보심이 아니었다면 어찌 큰 일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이런 까닭에 산승 월순은 손을 씻고 삼가 글을 써서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한다.
관찰사觀察使 홍열모洪說謨
중군中軍 강재옥康在鈺
병방兵房 홍의직洪義直
호방戶房 김 식金 湜
영선營繕 오치학吳致鶴
예방禮房 김윤호金允浩
영고營庫 신재기申在璣
공방工房 박신행朴愼行
신해년(1851) 9월 일 화주化主 승장僧將 월순月旬
김도유金道有 기록(識)
19-5. 쌍수산성 영은사 중수기 방관防關673)아, 금성錦城674) 한 면이 높다랗게 솟고 푸른 강물에 수많은 파도 일렁이니, 아름답구나! 우리 동방의 보배여. 쌍수雙樹의 상서로운 모습에서 왕께서 머물렀던 모습을 우러르게 되고, 옛 사찰의 유적은 바로 보장保障의 군막軍幙이니, 중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영은사는 창건한 지 오래되어서 승도가 줄어들고 법당이 여러 칸 무너져 덮어주는 지붕이 없으니, 도량이 황폐해진 게 몇 개월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리할 방도가 없는 듯하니, 누군들 한탄하지 않았으랴. 다행히 우리 안동安洞 최광순崔光淳675) 공 등이 여기에 부임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옛일에 감탄하고 오늘 일을 연민하여 여러 번 -
0012_0048a_a_01L幕。
0012_0048a_a_02L仁廟朝行宮駐蹕之地云。特爲行關於左右道郡縣州里。錢錢鳩財。法堂重
0012_0048a_a_03L修。與盖瓦丹艧。而僚舍及一齊重葺者。始役於夏四月望間。訖功於秋九月
0012_0048a_a_04L念晦。不啻寺運通泰。若非觀察使松峴洪公之顧護。豈能成大功耶。玆故
0012_0048a_a_05L山僧月旬與 [870] 手謹書。永歲不忘云爾。
0012_0048a_a_06L觀察使洪
0012_0048a_a_07L中軍康在鈺
0012_0048a_a_08L兵房洪義直
0012_0048a_a_09L戶房金 湜
0012_0048a_a_10L營繕吳致鶴
0012_0048a_a_11L禮房金允浩
0012_0048a_a_12L營庫中在璣
0012_0048a_a_13L工房朴愼行
0012_0048a_a_14L辛亥九月 日 化主僧將月旬
0012_0048a_a_15L金道有識
0012_0048a_a_16L
0012_0048a_a_17L双樹山城靈隱寺重修記 防關
0012_0048a_a_18L
0012_0048a_a_19L吁。錦城一面巍巍。碧流萬波洋洋。美成。 [871] 我東之寶芳。雙樹瑞色。方仰
0012_0048a_a_20L駐驆之儀範。古寺遺蹟。乃是保障之軍幙也。可不重哉。盖靈隱一寺。剏建許
0012_0048a_a_21L久。僧徒凋殘。法堂數間。頹破無比 [872] 。道場遂荒。不知爲幾箇月日。而其所修葺。
0012_0048a_a_22L苦 [873] 無方策。孰不慨嘆。幸我安洞崔公諱光淳等。內莅玆未周。感舊憐今。屢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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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8b_a_01L상영上營(감영)에 아뢰었다. 그래서 해안가 각읍各邑의 염세鹽稅(소금세) 가운데 300금을 본사에 획부劃付676)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똑같이 반씩 나누어 주도록 감영 절목節目을 만들어 주고, 영고營庫(감영창고)에 맡겨 그것을 거두고 출급하게 하였다. 춘조春條 150냥은 장을 담그는 비용이요, 추조秋條 150냥은 염산鹽山의 비용이었다.이제 춘조 150냥으로 법당을 수리하고, 기와를 갈고 단청을 하였다. 직접 살펴 검사해보니 보름을 지나지 않은 기간에 무너진 건물이 새롭게 되었으니, 가히 천 년 만에 온 기회라 할 것이다. 덕을 심고 은혜를 펼침에 물이 맑고 산이 심중해지며, 새벽 경쇠소리와 저녁 종소리에 무강한 복을 멀리 축원한다. 미미한 정성이나마 피력하고 돌에 새겨, 후인의 이목으로 하여금 길이 전하도록 하노라.
광서光緒 2년 병자(1876) 중하仲夏(5월) 하완下浣(하순)
감중도군읍監重都軍邑677) 김두형金斗衡
화주化主 총섭승摠攝僧678) 영원永願
노전승爐殿僧679) 정지正芝
19-6. 영은사 불량답佛粮畓을 새로 매입한 기록기유년(1849). 사또 김수근金洙根680)이 안도案道681)할 때 걸립전乞粒錢682) 80냥으로 시왕탱을 새로 만들었고, 남은 돈 40냥으로 공주 반포면反浦面 유산소柳山所 바깥 도도평道道坪에 있는(伏在)683) 거자답據字畓 2두斗 5승升 지기(落)를 매입(買付)함.경술년(1850). 사또 조득림趙得林684)이 안도案道할 때 걸립전 80냥으로 공주 진두면辰頭面 향지리香芝里 가남평加南坪에 있는 탐자답耽字畓 4두락斗落과 독자답讀字畓 5두락斗落을 매입함.경술년(1850). 중군中軍 정광우鄭光禹가 공주 반포면反浦面 상신소上薪所 1리里 별정향탄계방別定香炭稧防685)을 노전爐殿686)에 획부劃付함.신해년(1851). 중군中軍 문의행文義行이 자기 돈 20냥을 본사에 주어 법당을 수리할 방법으로 삼게 함.같은 해 가을. 사중寺中 의자계衣資稧687)의 돈 30냥을 절하折下하고, 목동면木洞面 선근리善根里에 있는 전답田畓인데 양반가兩班家에서 늑집勒集하여 -
0012_0048b_a_01L上營。沿海各邑。鹽稅中三百金。劃付本寺。每年春秋。兩等分牛 [874] 上下之意。成
0012_0048b_a_02L出 上營節目。任置營庫。使之收捧出給。而春條一百五十兩。乃是沈醬之
0012_0048b_a_03L資也。秋條一百五十兩。乃是鹽山之資也。以今春條一百五十兩。修葺法堂。
0012_0048b_a_04L反瓦丹艧。 親自看檢。無過一望之內。頹宇復新。可謂千載一時。樹德宣惠。
0012_0048b_a_05L水淸山重。晨磬夕鐘。遐祝無疆之休。敢陳微誠。銘誌于右 [875] 。使後來之耳目。求 [876]
0012_0048b_a_06L世壽傳云爾。
0012_0048b_a_07L光緒二年丙子仲夏下浣
0012_0048b_a_08L監重都軍邑金斗衡
0012_0048b_a_09L化主想攝僧永願
0012_0048b_a_10L爐殿僧正芝
0012_0048b_a_11L
0012_0048b_a_12L靈隱寺佛粮畓新買記
0012_0048b_a_13L
0012_0048b_a_14L己酉年 金使道諱洙根。案道之時。以乞粒錢八十兩。十王幀新造。餘錢四
0012_0048b_a_15L十兩。本州反浦面柳山所外。道道坪。伏在據字畓二斗五升落。買付。
0012_0048b_a_16L庚戌年 趙使道諱得林案道之時。以乞粒錢八十兩。本州辰頭面香芝里
0012_0048b_a_17L加南坪。伏在耽字畓四斗落。讀字畓五斗落。買付。
0012_0048b_a_18L庚戌年 中軍鄭氏諱光禹。本州反浦面上薪所一里。別定香炭稧防。劃村
0012_0048b_a_19L爐殿。
0012_0048b_a_20L辛亥年 中軍文氏諱義行。以自備錢二十兩。出給本寺。以爲法堂修補之
0012_0048b_a_21L方。
0012_0048b_a_22L同年秋。寺中衣資稧錢三十兩折下。木洞面善根里所在田畓。爲兩班家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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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9a_a_01L매년 도조賭租688)를 내지 않는 고로 정영呈營689)하여 팔아서 받은 돈 20냥을 합하여 50냥으로 공주 우정면牛井面 원천평源泉坪 영자답靈字畓 2작作 합하여 9두락斗落을 매입하여 본사에서 후일 만에 하나를 대비하도록 함.
함풍咸豊 원년(1851) 신해 정월에 주사主事 경월당鏡月堂 쾌수快守
전승장前僧將 선익善益
금승장今僧將 월순月旬
19-7. 공주 우진장방右鎭長房 불량계원佛粮契員 현판 (영은사)불가佛家에 밭이 있고 토지가 있고 금金이 있고 사물이 있는데 모두 단문檀門690)에서 나온 것이니, 단재檀財가 어찌 쓸데없는 것이겠는가? 평소 부모를 위해 토지를 헌납한 이가 있었고, 평소 보시를 베푸는 경우에도 자손을 위해 금전을 납입한 이가 있었고, 평소 자기를 위해 재물을 내놓은 이가 있었다.이제 이 우진장방右鎭長房691)의 각 인원이 관청에 매어 있기는 하나 믿음은 오히려 제천諸天692)에 미치리니, 모두 그 마음을 기뻐하여 피안에 이르고자 매년 가을에 정조正租693) 60두斗를 대신하는 6민전緍錢을 본사에 헌납하여, 모든 계원이 죽은 뒤에 성왕聖王께서 이 도시에서 지은 인연을 낱낱이 아시게 하였다.694)승장僧將 월순月旬이 물러나 기도하다가 도중에 나왔으니, 이 사연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재주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 일을 기술하여 후인의 안목을 기다릴 따름이다.
시청임時廳任
이원석李元錫 안인관安仁寬
김대금金大金 김광철金光哲
김진영金鎭永 윤작만尹斱萬
황대선黄大善 오복만吳萬福
김지원金枝元 김행길金行吉
심양순沈良淳 임작달林斱達
이용운李龍云 김돌기金乭基
최귀만崔貴萬 김봉손金奉孫
이춘성李春成 -
0012_0049a_a_01L集。年年未捧賭租。故呈營放買。捧價二十兩。合五十兩。本州牛井面源泉坪
0012_0049a_a_02L靈字畓二作合九斗落。買。本寺以爲後來萬一之補。
0012_0049a_a_03L咸豊元年辛亥正月日 主事鏡月堂快守。
0012_0049a_a_04L前僧將善益。
今僧將月旬。
0012_0049a_a_05L
0012_0049a_a_06L公州右鎭長鎭 [877] 房佛粮契員懸板(靈隱寺)
0012_0049a_a_07L
0012_0049a_a_08L夫佛家之有田有土有金有物。皆自檀門中出。則檀財豈徒然哉。平有爲父
0012_0049a_a_09L母而獻土者。平門之捨施出。有爲子孫而納金者。平有爲自己而出財者。今
0012_0049a_a_10L此右鎭長房各員身。雖係於公門。信猶及於諸天。咸悅其心。欲到彼岸。每年
0012_0049a_a_11L秋以正租六十斗代六緍錢。獻于本寺。以作諸員死後聖王齊具此都緣。僧
0012_0049a_a_12L將月旬。退禱中出則不可無書。故余不挨不才。記述此事。以爲後來之眼目
0012_0049a_a_13L爾。
0012_0049a_a_14L時廳任
0012_0049a_a_15L李元錫 安仁寬
0012_0049a_a_16L金大金 金光哲
0012_0049a_a_17L金鎭永 尹斱萬
0012_0049a_a_18L黄大善 吳萬福
0012_0049a_a_19L金枝元 金行吉
0012_0049a_a_20L沈良淳 林斱達
0012_0049a_a_21L李龍云 金乭基
0012_0049a_a_22L崔貴萬 金奉孫
0012_0049a_a_23L李春成 化主月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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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9b_a_01L김양옥金良玉695)
화주化主 월순月旬
경월 쾌수鏡月快守가 기록하고, 가선嘉善 안영철安永喆이 새겨서
함풍咸豊 4년 갑인(1854) 8월에 현판을 걸다.
19-8. 불량헌답 시주 불망기(영은사)공산公山696) 북쪽에 쌍수산성雙樹山城이 있고, 산성 안에 사찰이 있으니, 영은사라고 한다. 어느 연대에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한 시대의 고찰이다. 그래서 천불千佛이 강림하신 도량이라, 구하면 많은 복을 받았다.본부本府(공주)에 사는 임천군수林川郡守697) 김갑순金甲淳698) 공이 선고先考699) 대감大監의 영령을 천도할 뜻으로 공주 요당면要堂面 내동평內洞坪 논 7두락斗落과 본면本面 종현하평鐘峴下坪 논 5두락斗落을 사중寺中에 기부하였다. 매년 6월 15일에 선고 대감의 생신을 기념하여 존중히 공양을 올려서 길이 오래될수록 더욱 새롭게 하시기를, 정성을 다해 축원함으로써 그 불후의 공덕을 드러낸다.
광무光武 10년 병오(1906) 5월 상순(上澣)에 화주化主 석인담釋印潭.19-9. 산성 영은사 불기佛器700) 시주기건명乾命 안인관安仁寬 아들 춘근春根
곤명坤命 김씨 경인생 아우 창윤昌允
건명乾命 백진영白鎭永
건명乾命 이일복李一福
건명乾命 윤성만尹聖萬
건명乾命 임태성林台星
건명乾命 김기응金基應
건명乾命 임택기林宅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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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49b_a_01L金良玉 [878] 鏡月快守識
0012_0049b_a_02L嘉善安永喆刻
0012_0049b_a_03L咸豊四年甲寅八月日 揭板。
0012_0049b_a_04L
0012_0049b_a_05L佛粮獻畓施主不忘記(靈隱寺)
0012_0049b_a_06L
0012_0049b_a_07L公山之北。有雙樹山城。城中有寺。其名曰靈隱也。未知剏自年代之幾何。而乃三韓古刹。由是千佛降場。自求多福。本府內居時林川郡守金公甲淳氏。以先考大監薦靈之意。公州要堂面內洞坪畓七斗落。本面鐘峴下坪畓五斗落。付諸于寺中。每年六月十五日。先考大監生辰紀念。尊供。使萬稷攸久攸新。盡誠拱祝。以表其不朽云爾。
0012_0049b_a_08L光武十年丙午五月上澣。化主釋印潭。
0012_0049b_a_09L
0012_0049b_a_10L山城靈隱寺佛器施主記
0012_0049b_a_11L
0012_0049b_a_12L乾命安仁寬 子春根
0012_0049b_a_13L坤命金氏庚寅生 弟昌允
0012_0049b_a_14L乾命白鎭永
0012_0049b_a_15L乾命李一福
0012_0049b_a_16L乾命尹聖萬
0012_0049b_a_17L乾命林台星
0012_0049b_a_18L乾命金基應
0012_0049b_a_19L乾命林宅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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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0a_a_01L건명乾命 마부노馬富老
건명乾命 김천봉金天鳳 박춘홍朴春弘
건명乾命 이형석李亨錫
중영장청中營將聽 청중廳中
함풍咸豊 10년 경신(1860) 7월 화주化主 상문尙文
시임 승장時任僧將 봉우奉佑
각수승刻手僧 영진永眞19-10. 영은사에 불량佛粮을 공양하는 서문무릇 옛날부터 물건의 양을 헤아리지 않고 사찰에 시주함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버려진 장토庄土를 갖추기도 하고 부족함을 보완하기도 하여 능히 고풍古風을 이루고 다행히 이전 풍습을 이었다. 공주 읍에 사는 양梁 조이(召使)701)는 심성이 유순하고, 물품을 보시해 사찰을 보호하겠다는 뜻이 없는 날이 없었다. 당시 승장僧將 월순月旬 또한 정성껏 공사公私 간에 시주를 권선勸善하였다. 그래서 믿고 근심하며 마음속에 항상 생각하였는데, 자기 신세를 돌아보니 자식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고 한탄할 데도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논 4포包 4마지기와 4아문衙門(관청)에서 입지立旨702)한 완문첩完文帖703)을 사중寺中에서 기부하여 불량佛粮으로 바쳤다. 그 뜻한 바는 조상 4위位와 자식 각각을 나열하여 현판에 새겨 벽에 걸고, 기일이 되면 불공을 올리며 축원하여 영원토록 잊지 않기 위함이다.
화주化主 혜관惠寬 비구
논을 바친 시주 : 신명神命 정씨鄭氏 을사생(1785) 본관 정주定州.
생모生母 이씨李氏 본관 경주, 7월 28일 입재入齋704).
외조부 김세득金世得 본관 경주, 5월 5일 입재.
외조모 이씨李氏 본관 전주, 8월 18일 입재.
자식 연득連得, 정월 18일 입재.
비구질比丘秩
주사시향각主事時香閣 정담 일원淨潭一圓
승장僧將 절충折衝 월순月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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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0a_a_01L乾命馬富老
0012_0050a_a_02L乾命金天鳳 朴春弘
0012_0050a_a_03L乾命李亨錫
0012_0050a_a_04L中營將聽廳中
0012_0050a_a_05L咸豊十年庚申七月 日化主尙文
0012_0050a_a_06L時任僧將奉佑
刻手僧永眞
0012_0050a_a_07L
0012_0050a_a_08L獻供佛粮靈隱寺序
0012_0050a_a_09L
0012_0050a_a_10L凡自古人以來。不計物之多寡。施給寺刹。繼繼相傳。或備遺庄。或保不足。能
0012_0050a_a_11L成古風。幸績前習。而本州邑居梁召使 [879] 。心性柔純。施物保寺之意。無日無之。
0012_0050a_a_12L間其時僧將月旬者。亦有誠力。勸善公私施周。故信之恤之。念念不已。而自
0012_0050a_a_13L顧身勢。無子無依。咄嘆末由。則特以畓四包四斗落只。四衙門立旨完文帖。
0012_0050a_a_14L付寺中。獻于佛粮。而其所意。則祖先四位及子息。各各列錄。刻板揭壁。及其
0012_0050a_a_15L忌日時。佛供祝願。永世不忘。
0012_0050a_a_16L獻畓施主 化主惠寬比丘
0012_0050a_a_17L神命鄭氏乙已生。本定州。
0012_0050a_a_18L生母李氏。本慶州七月二十八日入齊。
外祖父金世得。本慶州五月五日入
0012_0050a_a_19L齊。
外祖母李氏。本全州八月十八日入齊。
子連得。正月十八日入齊。
0012_0050a_a_20L比丘秩
0012_0050a_a_21L主事時香閣淨潭一圓
0012_0050a_a_22L僧將折衝月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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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0b_a_01L주장主將 묘천妙天
승장首僧 봉민奉旻 영진永眞
함풍咸豊 2년(1852) 9월 남원후인南原後人 출신出身705) 양재수梁在秀가 쓰다(序).19-11. 순영巡營(감영) 헌공청憲公廳 불량기(영은사)무릇 사찰은 산수 깊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름답구나, 이 사찰은 그윽이 공북拱北706)의 뜻을 가지고 능히 빈 산성의 모퉁이를 제어하는구나. 공주 산의 빛이 처마 끝에 조금 푸르고, 비단무늬 강 빛은 감실龕室707) 앞에 활짝 열렸다. 만천의 기상을 다 묘사할 수 없는데다가 겸하여 남쪽으로 큰 고을의 번화함을 진정하고, 서쪽으로 (공)북루(拱)北樓의 뛰어난 경치를 거두도다. 시인과 유람객들이 발걸음을 이으며 찾아와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바쁘지 않은 날이 없으니, 빈약한 사찰로서 폐해를 끼치는 단서가 없지 않겠는가. 이런 사정이 오래되어 사찰의 형세가 쇠락하고 승려들이 가난해져 분향이 끊길 지경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졸승拙僧 월순月旬은 본래 용렬한 재목이지만 복구하려는 뜻을 품고서 마을에 시주를 권하고 공청公廳(관청)에 도움을 청하였다. 얼마간의 재물을 모을 즈음에 영문營門(감영) 헌공청憲公廳에서 매년 조租 5섬씩 의연금을 내어 주어, 천추의 불량佛粮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다. 떠났던 승려가 돌아오고 온갖 폐단이 고쳐지니, 어찌 두 손 모아 축하하지 않으랴. 그저 축원하고 표창만 해서는 안 되므로 월순이 감히 이렇게 기록하여(懸記)708) 불후의 덕을 수립하노라.
증경선생曾經先生709)
김득권金得權
홍완택洪完宅
배경흥裵慶興
서계록徐繼祿
김흥량金興良
임봉의林鳳儀
전대원全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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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0b_a_01L主將 妙天
0012_0050b_a_02L首僧奉旻 永眞
0012_0050b_a_03L咸豊二年九月 日。南原後人出身梁在秀序。
0012_0050b_a_04L
0012_0050b_a_05L巡營憲公廳佛粮記(靈隱寺)
0012_0050b_a_06L
0012_0050b_a_07L凡於寺刹多在於山水之深處。而美哉。此寺暗將拱北之意。能禦虛城之隅。
0012_0050b_a_08L公字山光。半翠於簷端。錦紋江色。廣開於龕前。萬千氣像。不可俱狀。而兼且
0012_0050b_a_09L南鎭雄州之繁華。西收北樓之勝景。騷人遊客。連踵來叩。接應客煩。無日不
0012_0050b_a_10L有。以若貧寺。自不無貽害之端乎。如是者年久。寺形彫落。僧樣貧寠。幾絕焚
0012_0050b_a_11L香。豈不寒心哉。拙僧月旬。本以庸才。敢抱復舊之意。勸施主於村家。請助給
0012_0050b_a_12L於公廳。如干財力。效鳩聚得之際。自營門憲公廳。每年租五石式。出義助給。
0012_0050b_a_13L以補千秋之佛粮。離僧還。百廢俱興。豈不攅手之祝哉。不可但以祝願表彰。
0012_0050b_a_14L故月旬敢此懸記。以樹不朽之德也。
0012_0050b_a_15L曾經先生
0012_0050b_a_16L金得權
0012_0050b_a_17L洪完宅
0012_0050b_a_18L裵慶興
0012_0050b_a_19L徐繼祿
0012_0050b_a_20L金興良
0012_0050b_a_21L林鳳儀
0012_0050b_a_22L全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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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1a_a_01L조명운趙明運
김완혁金完赫
박창엽朴昌燁
김종문金鍾聞
강순철姜順喆
임봉래林鳳來
나계민羅啓敏
양희묵梁喜默
천인권千仁權
임자년(1852) 12월 승장僧將 겸 화주化主 월순月旬
이관효李寬孝가 삼가 기술하다.19-12. 공주 남군南郡 허문리虛門里 엄씨嚴氏 불양佛養710) 시주기(영은사)아, 가부家夫 장공張公은 대를 이을 자손이 없다. 그래서 부인 엄씨가 제사 끊김을 슬피 한탄하여 주야로 근심함에 달리 방도가 없어 불전佛殿에 마음을 의지하여, 네 명절과 기일忌日에 불공을 드리며 축원하고, 양위兩位의 제사에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60민緍을 영은사 불양답佛養畓으로 기부하였으니, 지금부터 영구히 준행하도록 할 것. 감상고甘上古의 석우평石隅坪 논 4두락斗落 도조賭租711) 2섬
곤명坤命 엄씨嚴氏 을유생乙酉生(1825) 정월 10일 생.
생모生母 김씨金氏 경신생庚申生(1800) 8월 3일 생.
망가부亡家夫 장원절張元節 갑신생甲申生(1824) 기일 정월 28일 입入.
시수좌時首座 정담 일원淨潭一原
시승장時僧將 통정通政 상문尙文요당면要堂面712) 함전평咸前坪 6두락斗落을 이매移買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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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1a_a_01L趙明運
0012_0051a_a_02L金完赫
0012_0051a_a_03L朴昌燁
0012_0051a_a_04L金鍾聞
0012_0051a_a_05L姜順喆
0012_0051a_a_06L林鳳來
0012_0051a_a_07L羅啓敏
0012_0051a_a_08L梁喜默
0012_0051a_a_09L千仁權
0012_0051a_a_10L壬子十二月 日 僧將兼化主月旬
0012_0051a_a_11L李寬孝謹述
0012_0051a_a_12L
0012_0051a_a_13L公州南郡虛門里嚴氏佛養施主記(靈隱寺)
0012_0051a_a_14L
0012_0051a_a_15L吁嗟。家夫張公。無子無嗣。故室人嚴氏。哀其乏祀之歎。晝思夜度末由。歸心
0012_0051a_a_16L於佛殿。而四明節忌日之時。供佛祝願。與兩位享祀。不絕香火之致。捐金六
0012_0051a_a_17L十緍。付于靈隱寺佛泰 [880] 畓。從今以後。永久遵行事甘上古之石隅坪畓四斗落賭租二石
0012_0051a_a_18L坤命嚴氏乙酉生正月初十日生。
0012_0051a_a_19L生母金氏庚申生八月初三日生。
0012_0051a_a_20L亡家夫張元節甲申生忌日正月廿八日入。
0012_0051a_a_21L時首座淨潭一原
0012_0051a_a_22L時僧將通政尙文 移買于要堂面咸前坪六斗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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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1b_a_01L주장住長 혜관惠寬경자(1840) 3월 인담당印潭堂
공원公員 묘념妙念
수승首僧 희선希善 광일光日
함풍咸豊 7년 정사(1847) 11월 일, 각수刻手 전승장前僧將 영진永眞.19-13. 영은사 불상 개금기공주의 사찰로는 마곡사와 갑사 두 사찰이 웅대하고 아름다워 이곳(一省)714)에서 저명하다. 영은사는 매우 작고 쇠잔한 사찰인데 그들과 상하를 겨루고 있으니, 소중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갑자년(1624) 역적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께서 이곳에 머무셨다가 신경神京(서울)을 회복하였다. 이후로 쌍수산성이 호서 지역의 보장保障이 되었고, 이 사찰 역시 부속되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여기에 또한 뜻을 기울였으니, 앞서 말한 “소중함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잘못이겠는가? 사찰은 본래 장대하지 않고 다만 원통전圓通殿715) 세 칸(三椽)과 승방僧房이 있을 따름이요, 오래전 조성한 금불상 2위位와 탱화(畵軸) 3본本 뿐이다. 세월이 오래되어 털고 닦다가 손상되고 향 연기의 그을음이 묻어 금불상에 왕왕 벗겨진 곳들이 있으며, 단청 또한 변해서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아는 이들이 한탄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승려 영원英願이란 이가 계약鷄岳(계룡산)에서 와서는 옛 사찰을 관할한 지 10여 년 되었는데, 이를 크게 민망히 여겨 …… 민공閔公에게 (시주를 권해서) 250금을 얻었다. 또 이 일로 널리 시주를 구해 왕씨 ……716) 금전을 받들어 7축의 비단 족자를 제작하고 여러 불상을 그려서 동서 벽 위에 걸어 안치하게 하였다. 이에 불단의 법상法相이 단엄端嚴하고 아름다우며 금빛이 휘황하게 펼쳐져 시방을 비추니, 황홀하여 마치 달마 대사가 다시 총령葱嶺717)을 넘어 서쪽에서 오신 듯했다. 영원英願은 가히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좋아하는 이’라 할 만하다.아, 내가 듣건대, 불성佛性은 지혜로우면서 청정해서 먼지 속에 있어도 항상 빛나니 진흙 속에 있는 보배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금紫金을 바꾸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 불성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일체 중생이 머리 조아려 제도를 바라는 날에 자비로우신 분의 새로워진 참 모습을 다시 우러러볼 수 있게 하면, 그 환희하는 마음의 생각이 분명 예전보다 배는 더할 것이니, 또한 다행이 아니겠는가. 후인들은 이를 계승하여 쇠퇴하지 않게 함이 좋을 것이다.
광서光緒 14년(1888) 가을 7월 석정산인石汀散人 권사원權思遠718)이 기록하다. -
0012_0051b_a_01L住長 惠寬庚子三月日印潭堂
0012_0051b_a_02L公員 妙念
0012_0051b_a_03L首僧希善 光日
0012_0051b_a_04L咸豊七年丁已十一月 日。刻手 前僧將永眞。
0012_0051b_a_05L
0012_0051b_a_06L靈隱寺佛像改金記
0012_0051b_a_07L
0012_0051b_a_08L本州之寺。惟麻岬兩刹。以雄大宏麗。著名于一省。而靈隱以至殘至小之寺。
0012_0051b_a_09L與之相上下焉者。以其所重者存焉。昔在甲子逆适之變。 仁廟駐蹕於此。
0012_0051b_a_10L恢復神京。自玆以後。一片▣樹。爲湖西保障之地。而此寺亦屬焉。故自 朝
0012_0051b_a_11L家。於此亦致意。囊所謂所重在此者。非耶。寺本不壯偉。只有圓通殿三椽。及
0012_0051b_a_12L僧房幾架。而舊▣金佛二位。畵軸三本矣。歲月駸久。拂拭所傷。香畑 [881] 所煤。金
0012_0051b_a_13L像徃徃有脫處。丹靑又浸。不省識爲越。有識者之所嗟嘆。屢矣。有僧英願者。
0012_0051b_a_14L自鷄岳而來。管轄故寺者。十數年。乃發大憫▣▣▣▣相閔公。得財二百五
0012_0051b_a_15L十金。又因此廣鳩。若王氏子秋▼(爿+東)日政。金使花髮 [882] 菩提。殀 [883] 以靑蓮。捧以金▣
0012_0051b_a_16L▣製七軸綃簇。圖書諸位佛像。掛妥於東西壁上。於是▣檀法相。端嚴妙麗。
0012_0051b_a_17L金輝放光。燭照十方。怳若夫▣之身。復自葱嶺西來。英願可謂尊師而好道
0012_0051b_a_18L者也。噫。吾聞佛之性慧而淸淨。雖在塵垢。恒時光明。若泥沙中寶珠。則紫金
0012_0051b_a_19L之改不改。無足與於此佛之性。然使一切衆生。稽首願度之日。得復贍 [884] 必然 [885]
0012_0051b_a_20L慈悲之新眞相。則其歡喜之心想。必尤倍蘭 [886] 日。亦非幸耶。惟後來者。繼此而
0012_0051b_a_21L毋替焉。可也夫。
0012_0051b_a_22L光緒十四年秋七月 石汀散人權思遠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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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2a_a_01L19-14. 영은사 실진기實鎭記대저 사물이 성하고 쇠하는 것은 단지 인간 운세의 잘되고 못됨에 달려 있다. 이 사찰은 성조聖祖(인조)께서 머무신 후로 소중함이 다른 절과 달랐다. 그러나 사찰의 운세가 불행하여 지난 신축년 10월 즈음에 법당의 종을 도둑맞았다. 운파雲波 선사는 매일 크게 탄식하다가 보시하라고(檀那) 권선하면서 두루 근처를 다녔다. 그렇게 모은 재물로 서산 개심사開心寺 동암東菴의 종을 구매하였다. 그래서 그만둘 수 없어 각 시주의 성함을 나열하니, 훗날 시주한 분들의 자손은 보고 선인들의 간절함을 잊지 않도록 하라.
도광道光 23년 계묘(1842) 4월.
시주질施主秩
중흥시주中興施主 권權 상위양주相位兩主719)
개와중수시주改瓦重修施主 김金 상위양주相位兩主
행중군사도行中軍使道 서씨徐氏 임자생壬子生(1792)
본사本寺 비구 인기印己
마곡사麻谷寺 임종근林宗根
갑사甲寺 정득손丁得孫
신원사神院寺 석계종昔桂宗
영천암靈泉菴 이창욱李昌郁
임명대林命大 이명한李命漢
이신우李臣右 김득재金才得
순영작청巡營作廳 조흥세趙興世
장방청長房廳 홍연상洪淵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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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2a_a_01L靈隱寺實鎭記
0012_0052a_a_02L
0012_0052a_a_03L大抵物之盛衰。只在人運之否泰。此寺
0012_0052a_a_04L聖祖駐蹕之後。所重與他自别。然寺運不幸。去辛丑十月之間。法堂中鍾逢
0012_0052a_a_05L賊。雲波禪師每日▣然太息。檀荷 [887] 勸善。而周行近處。以若干鳩聚之財。買得
0012_0052a_a_06L於瑞山開心寺東菴中鍾。故不得已。而各居施主芳名開列。后來頭捨施君
0012_0052a_a_07L子之孫。見而不忘先人之切焉。
0012_0052a_a_08L道光二十二 [888] 年癸卯四月日
0012_0052a_a_09L施主秩
0012_0052a_a_10L中與 [889] 施主權相位兩主
0012_0052a_a_11L改瓦重修施主金相位兩主
0012_0052a_a_12L行中軍使道徐氏壬子生
0012_0052a_a_13L本寺 比丘印已
0012_0052a_a_14L麻谷寺 [890] 宗根
0012_0052a_a_15L甲寺 丁得孫
0012_0052a_a_16L神院寺 昔桂宗
0012_0052a_a_17L靈泉菴 李昌郁
0012_0052a_a_18L林命大 李命漢
0012_0052a_a_19L李臣右 金才得
0012_0052a_a_20L巡營作廳 趙興世
0012_0052a_a_21L長房廳 洪淵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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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2b_a_01L헌공청憲公廳 이복이李福伊
중영작청中營作聽 신산▣申山▣
장방청長房廳 해막海幕
본관장청本官將廳 금송리錦松里
승장청承長廳 관동리官洞里
성내리城內里 정안태평리正安太平里
수촌리水村里
봉황산리鳳凰山里 묘훈妙訓
반죽리班竹里 수승首僧 유진有眞
고성아古城衙 승장僧將 선개善盖
관현리官峴里 효포리孝浦里
허문리許門里
연일후인延日後人 정용채鄭龍采 쓰다.19-15. 영은사 영세불망기옛일을 말하자면, 배도裵度720)가 월주탑越州塔을 조성하고, 사안謝安이 동산전東山殿721)을 세웠으니, 이는 모두 선한 일이다. 이제 한정교韓正教 공이 이 도를 안절按節함에(관찰사) 무릇 민정에 대해 폐단을 고치지 않음이 없었다. 또한 본사의 무너짐과 또 승도에게 땔감이 떨어진 것을 살피고서 권선문을 각 관리들에게 두루 돌렸다. 또 계를 얻어서 본사에 획부劃付722)하고 연름捐廪723)하여 사찰을 도와 훗날의 근심을 막았으니, 큰 덕과 은혜가 천겁千刧을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만세토록 영원하리라.이제 그 일을 대략 들어서 후인들에게 보게 한다.
시향각時香閣 쾌수快守가 삼가 기록하다.
시화주時化主 겸兼 승장僧將 품각禀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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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2b_a_01L憲公廳 李福伊
0012_0052b_a_02L中營作聽 申山▣
0012_0052b_a_03L長房廳 海幕
0012_0052b_a_04L本官將廳 錦松里
0012_0052b_a_05L承長廳 官洞里
0012_0052b_a_06L城內里 正安太平里
0012_0052b_a_07L水村里
0012_0052b_a_08L鳳凰山里 妙訓
0012_0052b_a_09L班竹里 首僧有眞
0012_0052b_a_10L古城衙 僧將善盖
0012_0052b_a_11L官峴里 孝浦里
0012_0052b_a_12L許門里
0012_0052b_a_13L延日後人鄭龍采書。
0012_0052b_a_14L
0012_0052b_a_15L靈隱寺永世不忘記
0012_0052b_a_16L
0012_0052b_a_17L述古。裵度造越州塔。謝安建東山殿。此皆善者也。今於 韓公正教按節斯
0012_0052b_a_18L道。凡於民情。無不矯弊。亦察本數 [891] 之頹圮。又於僧徒之絕薪。以勸文。輪施于
0012_0052b_a_19L各官。又得楔 [892] 。劃付本寺。捐廪助寺。以杜後慮。大德鴻恩。歷千刧。百不古。亘萬
0012_0052b_a_20L世百長。今略擧其事。以爲後來之耳目爾。
0012_0052b_a_21L時香閣快守謹識。
0012_0052b_a_22L時化主兼僧將禀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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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3a_a_01L함풍咸豊 5년 을묘(1855) 11월에 세우다.19-16. 예산 이 중군李中軍 영세불망기 (영은사)옛날 천계天啓 갑자년(1624)에 역적 이괄李适이 사천射天724)하여, 인조가 공주(公山)의 산성에서 머물다가, 이괄이 처형됨에 서울로 돌아왔다. 나라의 보장保障으로서 다른 것보다 긴중한 것이 바로 이 성이다. 사찰이 산성 안에 있어 산성의 문지기와 빗장이 된 일은 장고掌故725)에 실려 있으므로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찰이 오래되어 쇠잔해져 날마다 박락剝落726)되니 운수雲水727)(납자)와 주지住持 납자衲子(승려)가 비록 중창에 마음을 두고는 있었지만 물병과 바리때가 쓸쓸하니 ‘면이 없는 국수’728)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얼마나 다행인지, 병자년(1876) 가을에 중군中軍729) 이공李公이 본영本營(충청감영)에 직임을 맡아 폐단에 관계된 것들을 개혁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고 이 사찰이 훼손된 것을 돌아보고는 수백 청부靑蚨730)를 모아 수리하게 하였다. 몇 년간이나 조치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을 기다린 듯하니, 아 성대하지 않으랴.삼가 기술하고 처마 위에 게시하여 이를 이어 주지하는 납자들이 공의 덕을 무궁하게 칭송하게 하노라.광서光緒 3년 정축(1877)731) 중하仲夏(5월) 4일 계촌桂村.
이 중군李中軍 등내等內732)
도군색都軍色 김두형金斗衡
화주化主 영원永願
총섭摠攝 정지正芝19-17. 연년 제사 불망기 (영은사)충청남도(公忠右道) 공주 남부南部 허문리許門里에 살며 효를 실천하는 외손자 권상진權尙振은 엎드려 추천追薦733)하며 논을 바치고 대전代錢734) 30냥을 영은사 불량답佛粮畓으로 바치니, 돌아가신 외조부 도학삼都學三 신축생辛丑生 기일忌日 6월 5일에 입재入齊, 외조모 진주晋州 강씨姜氏 병진생丙辰生 -
0012_0053a_a_01L咸豊五年乙卯十一月日立。
0012_0053a_a_02L
0012_0053a_a_03L禮山 李中軍永世不忘記(靈隱寺)
0012_0053a_a_04L
0012_0053a_a_05L維昔 天啓甲子逆适射天。
0012_0053a_a_06L仁庙駐蹕于公山之山城。泊 [893] 獻首 還都。保障親他。綦重即此城是已。寺在
0012_0053a_a_07L城之中。爲城守鈐轄。載在掌故。可按而知也。寺舊而殘。日花 [894] 剝落。雲水住持
0012_0053a_a_08L之衲子。雖留心於重新。瓶鉢蕭條。難成無麪之不托矣。何幸。丙子之秋。
0012_0053a_a_09L中軍李公 莅任本營。凡係弊政。靡不釐革。而睠言玆寺之凋毁。鳩集數百
0012_0053a_a_10L靑蚨。使之繕葺。歷幾年未遑之擧。若有待於今日。於不盛哉。謹述。具揭于楣
0012_0053a_a_11L上。使繼此住持之衲子。稱陽 [895] 公德於無窮云。
0012_0053a_a_12L
0012_0053a_a_13L光緒三年丁丑仲夏初四日桂村。
0012_0053a_a_14L李中軍等內
0012_0053a_a_15L都軍色金斗衡
0012_0053a_a_16L化主永願
0012_0053a_a_17L摠攝正芝
0012_0053a_a_18L
0012_0053a_a_19L年年祭祀不忘記(靈隱寺)
0012_0053a_a_20L
0012_0053a_a_21L公忠右道公州南部許門里居。行孝外孫子權尙振。伏爲追薦獻畓。代錢參
0012_0053a_a_22L拾兩。奉獻于靈隱寺佛粮畓。
0012_0053a_a_23L
0012_0053a_a_24L亡外祖父都學三辛丑生忌日外 [896] 六月初五入齊。 亡外祖母晋州姜丙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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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3b_a_01L 기일忌日 9월 17일에 입재入齊하고, 두 분 영가靈駕를 영원히 잊지 않고 축원하리라.
기사년(1869) 3월 23일 시총섭時摠攝 봉우奉佑.19-18. 우진장방右鎭長房의 공을 기록한 글 (영은사)무릇 제천諸天이 윤일輪日735)하는 운수로는 덕과 공에 보답함을 귀하게 여기고, 중생이 복을 구하는 도리로는 덕과 공을 세움을 아름답게 여긴다. 현묘한 이치와 은밀한 과보는 비록 억만 겁이 지나더라도 어찌 변이하겠는가. 만약 사람들이 다 같이 정성을 바쳐 시주하는데 진심으로 축원하지 않는다면, 이 어찌 보응의 도리라 하겠는가.지금 우진장방右鎭長房은 몇 년 전부터 매년 11월에 600문文을 따로 시주하여 향과 종이를 사르는 비용으로 삼게 했다. 장차 수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규례로 삼고자 하니, 그 사려함이 심원하고 정성이 간절하여 족히 신명을 감동시킬 만하다. 알리고 길이 준행할 지위에 있으니, 고찰할 만한 표준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이에 작은 판에다 그 공을 기록하고 그 정성을 드러내며, 아래에 성명을 나열해 드러내고 길이 후인들에게 보여주어 만에 하나라도 보답함이 있게 하노라.
광서光緒 7년 신사(1881) 4월 하순에 영은사 사중四衆736)이 적다.
영은사 시주기施主記
상영장청上營將廳737)
작청作廳738)
장방長房
헌공청憲公廳
서울 거주 임억기林龍基
유대경柳大敬 정사생丁巳生
전치덕田致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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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3b_a_01L生忌日九月十七日入齊。而兩主靈駕。永世不忘祝願。
0012_0053b_a_02L己巳三月二十三日。時摠攝奉佑。
0012_0053b_a_03L
0012_0053b_a_04L右鎭長房記功文(靈隱寺)
0012_0053b_a_05L
0012_0053b_a_06L夫諸天輪曰 [897] 之數。以報德酬功而爲貴。衆生求福之道。以立德施功而爲美。
0012_0053b_a_07L玄竗之理。冥應之科。雖之億萬斯刧。豈可有變易哉。苟有人齊誠施主。而若
0012_0053b_a_08L不爲盡心祝願。則是豈曰報應之道耶。今右鎭長房。自屢年以來。每年十一
0012_0053b_a_09L月。以六百文。別般施主。以爲燒香焚楮之資。而將爲幾百年勿替之規例。則
0012_0053b_a_10L其思慮之久遠。誠力之勤懇。有足以感動神明。其在示達永遵之地。不可無
0012_0053b_a_11L標準之可攷焉。故爱以小板。記其功。著厥誠。列書諸人于左。表而出之。永示
0012_0053b_a_12L表 [898] 人。以爲報酬之萬一云龠 [899] 。
0012_0053b_a_13L光緒七年辛巳四月下洛 [900] 。靈隱寺四衆識。
0012_0053b_a_14L
0012_0053b_a_15L靈隱寺施主記
0012_0053b_a_16L上營將廳
0012_0053b_a_17L作廳
0012_0053b_a_18L長房
0012_0053b_a_19L憲公廳
0012_0053b_a_20L京城居林龍基
0012_0053b_a_21L柳大敬丁已生
0012_0053b_a_22L田致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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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4a_a_01L박길朴吉
김영석金永石 계미생癸未生
이영식李榮植 경진생庚辰生
남상운南相雲 병술생丙戌生
노암회趙岩回 계미생癸未生
김영포金永甫 임신생壬申生
석씨石氏 무자생戊午生
서씨徐氏 갑오생甲午生
개와편수盖瓦片手 박윤지朴允只 김재동金才同
정사(1917) 2월 일20. 직산稷山739) 천흥사天興寺740) 종기鐘記소재 :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舘
시기 : 고려 현종顯宗 원년 경술(1010)
성거산聖居山 천흥사天興寺 종명鐘銘
통화統和741) 28년 경술(1010) 2월
(종의 높이는 5척 5촌, 구경口徑은 3척 2촌, 글자 크기는 6푼)21. 태을암 중수기충남 태안군의 봉우리를 ‘화산華山’이라 하고 꼭대기에 이르면 ‘태을암’이 있으니, 수백 년부터 전래하던 옛 암자이다. 온 마을이 -
0012_0054a_a_01L朴吉
0012_0054a_a_02L金永石 癸未生
0012_0054a_a_03L李榮植 庚辰生
0012_0054a_a_04L南相雲 丙戌生
0012_0054a_a_05L趙岩回 癸未生
0012_0054a_a_06L金永甫 壬申生
0012_0054a_a_07L石氏 戊午生
0012_0054a_a_08L徐氏 甲午生
0012_0054a_a_09L盖瓦片手
0012_0054a_a_10L朴允只
0012_0054a_a_11L金才同
0012_0054a_a_12L丁巳二月 日
0012_0054a_a_13L
0012_0054a_a_14L稷山 天興寺鐘記
0012_0054a_a_15L
0012_0054a_a_16L所在 李王家博物舘
0012_0054a_a_17L年時 高麗顯宗元年庚戌
0012_0054a_a_18L聖居山天興寺 鐘銘
0012_0054a_a_19L統和二十八年 庚戌二月日。
0012_0054a_a_20L(鐘高五尺五寺 [901] 五寺 [902] 。口徑三尺二寸。字徑六分。)
0012_0054a_a_21L
0012_0054a_a_22L太乙庵重修記
0012_0054a_a_23L
0012_0054a_a_24L忠南泰安郡。峯曰華山。至巓曰有太乙菴。自數百年。傳來之古菴也。一邑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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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4b_a_01L흉년이 들었을 때 사부대중이 재를 올리던 곳인데742), 세월이 오래되어 위로 비를 맞고 옆으로 바람을 맞아 원통전圓通殿과 보살당菩薩堂이 동으로 기울고 서로 무너져 스러지지 않음이 없다. 육도六道의 연장蓮場이요,743) 발우의 용을 깊이 감춘 곳이라,744) 시방의 단월檀越(시주)과 범패하는 새들이 허공에서 울었지만, 보수할 사람이 없고, 바칠 재물이 없었다.얼마나 다행인지, 본 군읍郡邑 4리里의 으뜸가는 노장들이 차마 외면하지 못해 함께 의논하고 주선하여 재물 모아 중수를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태안군 동문리東門里에 거주하는 가선嘉善 이기홍李箕洪은 나이 팔순이 다 되어 가는데 노고를 꺼리지 않고 험산 돌길을 조석으로 왕래하면서 성심을 다해 감독해서 마침내 완성하는 데 이르렀다. 이는 가히 탁월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으니, 누가 흠모하지 않겠는가. 한 세대의 이목에 그칠 뿐만 아니라 백 년이 가도 변치 않을 구비口碑745)라 할 것이다. 그래서 삼가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이렇게 찬양하노라.
명치明治 44년 신해(1911) 가을 9월에 창호滄湖 박성호朴聖浩가 기록한다.
감독監督
동문리東門里 이동영李東榮
강홍린姜洪獜
강우흠姜禹欽
옥하리沃下里 백내수白乃水
박종언朴鍾彦
김기선金基善
남문리南門里 신석윤申錫潤
나윤광羅潤光
이종규李鍾奎
서문리西門里 최봉익崔鳳翼
신기옥申基玉
김응모金膺模
목수木手 박정지朴正之
박익삼金益三
주지住持 봉조奉照 -
0012_0054b_a_01L所破荒。四培 [903] 之門致齊者 也。而年舊歲換。上雨傍風。圓通殿。菩薩堂。東傾
0012_0054b_a_02L西圮。無非頹敗。六道蓮場。鉢龍湥藏。十方檀越。唄鳥空啼。然而無人修補。無
0012_0054b_a_03L財供頓矣。何幸。本郡邑四里領首故老。不忍越視。詢讖 [904] 僉同周旋鳩財。經始
0012_0054b_a_04L重修。而其中郡內東門里居。嘉善李箕洪。年近八旬。不憚勞苦。險山石逕。朝
0012_0054b_a_05L往暮還。誠心監督。竟至竣役。此可謂卓越之人也。孰不敢欽慕乎。此不啻一
0012_0054b_a_06L世之目睹。可謂百禩之口碑。故謹以荒詞敢慈 [905] 褒讃焉。
0012_0054b_a_07L明治四十四年辛亥秋九月。滄湖朴聖浩記。
0012_0054b_a_08L監督
0012_0054b_a_09L東門里李東榮
住持奉照
0012_0054b_a_10L姜洪獜
0012_0054b_a_11L姜禹欽
0012_0054b_a_12L沃下里白乃水
0012_0054b_a_13L朴鍾彦
0012_0054b_a_14L金基善
0012_0054b_a_15L南門里申錫潤
0012_0054b_a_16L羅潤光
0012_0054b_a_17L李鍾奎
0012_0054b_a_18L西門里崔鳳翼
0012_0054b_a_19L申基玉
0012_0054b_a_20L金膺模
0012_0054b_a_21L木手 朴正之
0012_0054b_a_22L金益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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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5a_a_01L21-1. 태을암 극락전 중수기무릇 경치 좋은 곳에는 산이 있고, 명산에는 반드시 사찰이 있다. 산에 이름난 사찰이 없으면 산은 산이지만 외롭고, 사찰은 명산이 아니면 사찰은 사찰이지만 비루하다. 우리 소성蘇城746)에는 명산이 있으니 ‘백화산白華山’이라 하고, 백화산에 유명한 암자가 있으니 ‘태을암’이라 한다. 계곡(洞天)이 깊숙하고, 도량(道觀)이 정갈하여 사방 선비들이 경원하고 유람하지 않음이 없고, 경내의 어느 누구도 재를 올리며 복을 빌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산은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으나 암자는 오래되어 무너질 지경이 되니, 보는 이들이 놀라고 아쉬워하지 않음이 없었다.전前 주사主事 김병선金炳善 씨가 법계가 풍우에 손상됨을 개탄하여 경내 자선가들을 선동해 무오년 정월에 다시 보수하였으니, 가히 백화산이 다시 화려하게 되고 태을암이 다시 커졌다 하리라. 그의 정성이 아니면 이를 누가 할 수 있겠는가.공이 이렇게 높은데 기록이 전무한 지 몇 년이나 흘렀다. 다행히 기사년(1929) 4월에 주지 학운鶴雲이 지혜롭게 깨닫고서 이름을 현판에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였다. 이에 빛나는 공이 더욱 빛나고, 도량이 더욱 장관이 되었다. 아아, 먼저 이러한 사람이 있고서 이러한 공이 있는 것이로다. 뒤에도 이런 사람이 있어 이런 공적이 있으리라.
임신(1932) 4월 8일 안상민安相敏이 쓰고, 심상두沈相斗가 새기다.
동문리東門里 영좌領座 김창민金昌敏
남문리南門里 영좌領座 신석윤申錫潤
주무主務 주사主事 김병선金炳善
남문리南門里 나윤광羅潤光
김규항金圭恒
동문리東門里 유기현柳基炫
이기한李鍾漢
김경문金敬文
목수木手 김상린金商獜
주지住持 박학운朴鶴雲 -
0012_0055a_a_01L太乙庵極樂殿重修記
0012_0055a_a_02L
0012_0055a_a_03L夫勝地有名山。名山必有寺刹。山無名寺。山自山而孤。寺非名山。寺自寺而
0012_0055a_a_04L陋矣。唯我蘇城有一名山曰白華。白華有一名菴曰太乙。洞天深邃。道觀精
0012_0055a_a_05L禪。四方之土。無不敬遠遊賞。一境之一無不致齊祈福。然而山雖古而不變。
0012_0055a_a_06L菴至久而將頹。觀者無不骸 [906] 然遺憾。前主事金炳善氏。慨然乎法界風雨之
0012_0055a_a_07L慮。扇動于境內慈善之力。戊午年正月更玆修繕。可謂華山重華。太菴復太
0012_0055a_a_08L矣。非駭 [907] 氏之誠。是誰能之。功高如此。而記蹟全無。式至數年矣。幸玆己巳四
0012_0055a_a_09L月。住持鶴雲慧然覺悟。題名懸板。以鑑其來。於是乎功烈復烈。而道觀尤壯
0012_0055a_a_10L觀矣。鳴 [908] 呼先有此人而有此功。後有此人而有此蹟也夫。
0012_0055a_a_11L壬申四月八日 題安相敏。
0012_0055a_a_12L刻沈相斗
0012_0055a_a_13L東門里領座 金昌敏
0012_0055a_a_14L南門里領座 申錫潤
0012_0055a_a_15L主務 主事 金炳善
0012_0055a_a_16L南門里 羅潤光
0012_0055a_a_17L 金圭恒
0012_0055a_a_18L東門里 柳基炫
0012_0055a_a_19L 李鍾漢
0012_0055a_a_20L 金敬文
0012_0055a_a_21L木手 金商獜
0012_0055a_a_22L住持 朴鶴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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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5b_a_01L22. 중수기(흥주사興住寺747))이 흥주사는 삼국시대 고찰748)이며 고을의 원당願堂이다. 원통전 바깥의 만세루는 위로 임금님을 위해 축원하고 아래로 무량수불을 염하여 영원히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뜻이 있으니, 어찌 중차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추위와 더위를 여러 차례 겪고 비바람을 맞다 보니, 올봄에 이르러서는 건물이 기울고 기와가 부서졌다. 이 누각에 오르는 이로서 누가 크게 두렵고 놀라 한탄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보수하고 고쳐 세워야 하는데, 재물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네 마을의 부로들이 보수하려는 뜻을 전前 군수 이희중李熙重749) 씨에게 아뢰니, 공문을 내주고 보시를 하였다. 새 군수 이일李鎰 씨가 일꾼들에게 지시하여 기와를 바꿔 덮고 누각이 수리를 마치게 되니, 중춘에 시작하여 중추에 완성되었다. 7개월의 일이 바로 영원을 기약할 계획인 것이다. 아, 후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또 수리를 하게 되면, 이 누각이 만세에 전해져 사라지지 않으리라.정유년(1897) 8월 일
전 군수 이희중李熙重
신 군수 이일李鎰
동문東門 최경린崔景麟
옥하沃下 김진완金振琓
남문南門 이희렬李希烈
서문西門 방진호方鎭浩
화주化主 이기홍李箕洪
가덕인賈德寅
손상초孫相楚
유진태兪鎭台
유희순柳熙舜
김재일金在一
김재구金在九
김규현金奎鉉
김영선金永善
이봉순李鳳淳
이규원李桂元
조사현趙士顯
안병덕安炳德
한장리韓章履
김홍제金鴻濟
김상은金相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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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5b_a_01L重修記(興住寺)
0012_0055b_a_02L
0012_0055b_a_03L盖此興住三號 [909] 古刹。一邑願堂。圓通殿外。萬歲樓者。上而爲 君祝壽。下而
0012_0055b_a_04L念佛無量。愈久愈遠之意也。豈不重且大歟。屢經寒暑。且被風雨。迄于今春。
0012_0055b_a_05L棟宇傾頹。屋瓦破碎。登斯樓也。孰不夏懼而驚歎乎。宜其重修而改建。緣於
0012_0055b_a_06L財力之未瞻 [910] 。邑四洞父老。以因葺之樣。禀於前郡守李熙重氏。出公文。奉施
0012_0055b_a_07L主。而新郡守李鎰氏。申飭工匠。瓦乃改覆。樓畢修治。始自仲春。成於仲秩 [911] 。其
0012_0055b_a_08L七箇月之役。是永爲年之計也。噫彼後人觀此前䂓。而更加修葺。則庶斯樓
0012_0055b_a_09L傳之萬歲而不朽云爾。
0012_0055b_a_10L歲在丁酉八月 日
0012_0055b_a_11L前郡守李公熙重
金在一
0012_0055b_a_12L新郡守李公 鎰
金在九
0012_0055b_a_13L東門崔景麟
金奎鉉
0012_0055b_a_14L沃下金振琓
金永善
0012_0055b_a_15L南門李希烈
李鳳淳
0012_0055b_a_16L西門方鎭浩
李桂元
0012_0055b_a_17L化主李箕洪
趙士顯
0012_0055b_a_18L賈德寅
安炳德
0012_0055b_a_19L孫相楚
韓章履
0012_0055b_a_20L兪鎭台
金鴻濟
0012_0055b_a_21L柳熙舜
金相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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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6a_a_01L김익모金益模
심석홍沈錫洪
김주하金柱河
나구현羅求賢
이동영李東榮
원순목元享穆
이연덕李淵德
김상옥金商玉
한치직韓致稷
문인희文仁喜
방원규方元䂓
전상규田相奎
이영석李永石
박숙호朴叔浩
박경돈朴敬敦
백태백白台白
김판옥金判玉
편수片手 명충신明忠新
화주승化主僧 선흡善洽
주승主僧 창수昌壽23. 직산 홍경사 비갈소재 : 충청남도 천안군 함환면咸歡面 대홍리大弘里 홍경사 터
시기 : 고려 현종 17년 병인(1026)
봉선奉先750) 홍경사 갈기碣記(전제篆題751))
봉선 홍경사 비갈 기록
한림학사翰林學士 선의랑宣議郎 내사사인內史舍人 지제고知制誥 겸 사관史館 수찬관修撰官 사자금어대賜紫金魚袋 신臣 최충崔冲752)이 교지를 받들어 찬술하다.봉의랑奉議郎 국자승國子丞753) 신臣 백현례白玄禮가 교지를 받들어 글씨를 쓰고 전액篆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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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6a_a_01L金益模
李淵德
0012_0056a_a_02L沈錫洪
金商玉
0012_0056a_a_03L金柱河
韓致稷
0012_0056a_a_04L羅求賢
文仁喜
0012_0056a_a_05L李東榮
方元䂓
0012_0056a_a_06L元享穆
田相奎
0012_0056a_a_07L片手明忠新
李永石
0012_0056a_a_08L化主僧善洽
朴叔浩
0012_0056a_a_09L主僧昌壽
朴敬敦
0012_0056a_a_10L白台白
0012_0056a_a_11L金判玉
0012_0056a_a_12L
0012_0056a_a_13L稷山 弘慶寺碣
0012_0056a_a_14L
0012_0056a_a_15L所在 忠淸南道天安郡咸歡面大弘里弘慶寺址
0012_0056a_a_16L年時 高麗顯宗十七年丙寅
0012_0056a_a_17L奉先弘慶寺碣記(篆題)
0012_0056a_a_18L奉先弘慶寺碣記
0012_0056a_a_19L翰林學士宣議郎內史舍人知 制誥兼史館
0012_0056a_a_20L修撰官。賜紫金魚袋
0012_0056a_a_21L臣。崔冲。奉 教撰。
0012_0056a_a_22L奉議郎國子丞。臣白玄禮。奉 教▣▣▣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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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6b_a_01L신이 내전內典(불경)을 삼가 살펴보니, 초제招提754)는 시방의 영준英俊한 이들을 부르고 이끌어서 불법을 널리 펼치고 머물게 하는 장소라고 합니다. 또 장자莊子의 말에 “거처(蘧廬)로 인의仁義를 보인다.”755)고 했고, 『진서晋書』에는 “여관으로 공사公私를 구제한다.”756)고 했습니다. 지금 직산현 성환역成歡驛 북로北路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757)에 새로 사찰 건물을 지은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처음 이곳에 장정長亭이나 단정短亭758)이 없어 인적이 끊어지고, 갈대 늪이 있어서 도적들이 파다했다. 그래서 갈림길 요충지였지만 실제로 왕래하기가 불편해서 태평성대에 끝내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우리 임금님께서 자리를 인의로 지키고 문文의 덕을 잡으니, 방패와 창ㆍ도끼(干戈戚揚)759)가 모두 스러졌고, 예악과 형벌을 모두 다스렸다. 이에 희사喜捨의 인연과 선대의 뜻을 따르는 업적은 지난 시대에 비교해도 더한 경우가 없었다.일찍이 좌우양가左右兩街 도승통都僧統 통진광교通眞光敎 원제홍도圓濟弘道 대사大師 신臣 형긍逈兢에게 명하여 말하길, “옛적 황고皇考760) 헌경효의영문대왕憲景孝懿英文大王761)이 왕자 시절(初九潜身)762)에 크게 귀명歸命763)하여 『법화경』의 오묘한 설법을 볼 때마다 중도中道의 화성化城764)을 매우 기뻐하여, 본받아 행하고자 하였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짐은 바로 그 뜻을 잘 계승하여 그 성공을 영원히 보아서, 한편으로는 행인들을 구제하여 험지에서 걱정하지 않게 하고 한편으로는 승려(緇侶)들을 불러서 법의 수레를 출발하게(載轄)765) 하려고 합니다. 스님께서 마땅히 힘써 살피고 도와서 친히 터를 잡아(胥宇)766) 내 올바른 명에 맞춰 주시고, 그 일에 대한 권한을 주관하시오.” 하였다.형긍逈兢이 임금의 말씀을 받자마자 바로 계획을 짜고 시작했는데, 아홉 번을 돌아다녀도 피곤해하지 않았지만 100인(百足)이 있어야 쓰러지지 않을 일이었다. 귀한 것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 준걸들을 불렀다. 이에 광리증현廣利證玄 대사大師 사자사문賜紫沙門 신臣 득총得聦과 정려수진오리靜慮修眞悟理 대덕大德 사자사문賜紫沙門 신臣 장림藏琳 등이 엎어진 수레를 다투어 지탱하고 요긴한 방안들을 추천하자, 무리 지어767) 이곳에 와서 실로 이 공사(我役)를 일으켰다.임금이 추성치리推誠致理 익대공신翊戴功臣 금자흥록대부金紫興祿大夫 병부상서兵部尙書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겸 태자태부太子太傅 상주국上桂國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 식읍食邑 3백호 신臣 강민첨姜民瞻768)과 중추부사中樞副使 중대부中大夫 비서감秘書監 겸 태자빈객太子賓客 주국柱國 의춘현개국남宜春縣開國男 식읍 300호 사자금어대賜紫金魚袋 신 김맹金猛769) 등을 계속 별감사別監使로 임명하였다.이에 일을 함께 처리하니, 비방과 교만이 끊어졌다. 인부를 쓸 때 농번기를 침탈하지 않고, 물품 구함에 나랏돈을 소비하지 않았으니, 도인陶人770)들은 기와를 시주하고, 목재상(木客)은 목재를 공급하고, 톱질(雪鋸)과 도끼질(風斤)771)에는 방탕한 장인들을 벌떼처럼 모으고, 가래질(雲鍬)과 삽질(電鍤)에는 노는 무리들을 말처럼 달려오게 했다. 병진년(1016) 가을에 시작하여 신유년(1021)에 이르기까지 조성한 법당과 전각, 문, 행랑 등이 총 200여 칸이고, 흙으로 빚고 그림으로 그려 안치한 공덕상功德像772)과 종, 경쇠, 번개幡盖가 모두 현재와 같으니, 그 수량이 실로 많았다.이에 칙명으로 사액賜額하여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라고 하니, 공적이 모이지 않음이 없고, 형세가 날아올 듯하였다. 상전像殿과 경루經樓773)가 아름다우니 도솔천인가 의아하고, 부동鳧銅과 안탑雁塔774)이 장엄하니 사찰(爛陁)775)임을 멀리서도 알아본다. 삼보三寶(불법승)가 발흥하게 되었으니, 실로 -
0012_0056b_a_01L臣謹按內典云。招提者。謂招引提擕十方英俊。弘闡 佛法。居武之所焉。又
0012_0056b_a_02L莊子說 [913] 。邃 [914] 廬而視仁義。晋 書論逆旅以濟公私。今之於稷山縣成歡驛北
0012_0056b_a_03L路一牛鳴地。新置寺舍者。即其類也。初是地 [915] 長短之亭。人煙隔絕。有灌 [916] 蒲之
0012_0056b_a_04L澤。刧賊頗多。雖歧路之要衡。實往來之艱梗。不可終否屬於 盛時。惟 我
0012_0056b_a_05L聖上。守位以仁。秉文之德。干戈戚揚。皆偃之矣。 禮樂刑政。畢修之矣。若乃
0012_0056b_a_06L喜捨之緣。遹追之業。求諸往代。無得而踰。嘗 詔左右兩街都僧統通眞光
0012_0056b_a_07L教圓濟弘道大師臣逈兢。而曰。昔者 皇考 憲景孝懿英文大王。初九潜
0012_0056b_a_08L身。大于 歸命。每覽法華之妙說。深嘉中道之化城。方欲 効行。未能 勳
0012_0056b_a_09L集。朕即善繼其 志。永觀厥成。一則救濟征人。莫憂於險地。一則招擕緇侶。
0012_0056b_a_10L載轄於法輪。師宜力視賛襄。躬親胥守 [917] 。副我書貞之命。主其盧 [918] 事之權。兢纔
0012_0056b_a_11L受 綸言。便圖經始。縱九迴而無倦。須百足以不僵。所貴同心。用將籲俊。爰
0012_0056b_a_12L有廣利證玄大師賜紫沙門臣得聦。靜慮修眞悟理大德賜紫沙門臣藏
0012_0056b_a_13L琳等。競扶願 [919] 轂。枚卜要途。蒸然來斯。實興我役。上續羞 [920] 誠致理翊戴功
0012_0056b_a_14L臣金紫興祿大夫兵部尙書知中樞院事兼 太子太傅上桂國天水縣
0012_0056b_a_15L開國男食邑三百戶臣姜民膽 [921] 。中樞副使中大夫秘書監兼 太子賓客柱
0012_0056b_a_16L國宜春縣開國男食邑三百戶賜紫金魚袋臣金猛等。爲別監使。於是事諧
0012_0056b_a_17L共理。謗絕宣驕。庀徒勿奪於農時。程物免煩於公帑。陶人施瓦。木客供材。雪
0012_0056b_a_18L鋸風斤。蜂聚蕩心之匠。雲鍬電鍤。駿奔游手之群。起自丙辰秋。迄于辛酉歲。
0012_0056b_a_19L凡造得堂殿門廊等。共二百餘間。所置塑晝 [922] 諸功德像。及鍾磬幡盖。具如見
0012_0056b_a_20L在。其數寔繁。乃 勑賜額爲奉先弘慶寺。莫不功由鳩僝。勢若飛來。像殿經
0012_0056b_a_21L樓麗異。而宛疑兜率。鳧銅雁塔莊嚴。而遙認爛陁。旣當三寶勃興。實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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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_0057a_a_01L천등千燈이 이어지도다.776). 그리고 사찰 서쪽에 마주하여 객관客舘(여관)을 세우니 1구역이 80칸 정도 되고 이름은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 하였다. 이에 또한 따뜻한 집이라 겨울에도 사람이 많고, 시원한 가옥이라 여름에도 넉넉하였다. 양식을 쌓아두고 건초를 저장하였으며, 궁박한 이들을 구제하려고 옹백雍伯의 의장義漿777)을 마련하고, 도적을 방비하느라 진류陳留의 누고樓鼓778)를 나열하였다. 무릇 이와 같으니, 방포方袍(가사) 입은 무리들이 빈 채로 와서 채워 갈 뿐만 아니라 또한 발을 싸매고 먼 길 가는 이들이 밤에 자리 잡고 낮에 쉴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진리를 증득하는 지역을 보게 되고, 분차焚次779)할 근심에 대해서는 듣지 않게 되었다.앞서 고금을 참작하여 선황先皇의 큰 바람을 완성하고,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펴서 불법의 오묘한 문을 숭상하지 않았다면 두루 구제하는 인仁이 거의 사라질 뻔하였다. 아아, 시작(權輿)에 뜻이 있고 계승(祖述)에 흠이 없으며, 창건한 공적이 이미 있고 봉행하는 도리 또한 넓도다. 선善을 다하고 미美를 다하여 생각이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하리라(念玆在玆).780)지금 유생들에게 다시 명하여 이 성대한 일을 기록하게 하셨다. 신은 생각이 더디고 마른 입술이며 배움이 얕고 힘이 약하여 사마장경司馬長卿781)처럼 묘사하는 문장을 쓸 수는 없습니다만 학생들의 빛나는 문장(小子斐然之作)782)은 써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실마리를 대략 기술하여 역사 기록에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때는 성상聖上(현종)께서 자리에 오르신 지 18년 태평太平 기력紀曆 6년(1026) 여름 4월에 삼가 기록한다.봉선권지사주奉宣權知寺主783) 원혜지광圓慧智廣 보관선변普觀善辯 통제득리通濟得理 삼중대사三重大師784) 사자사문賜紫沙門785) 신臣 언숭彦崇과 도감都監786) 해행무구대사解行無垢大師 사자사문賜紫沙門 신 낭숭朗崇, 부도감副都監 부사주副寺主 사문沙門 신臣 성보成普, 사문 신 혜연慧延。승僧 은묘殷妙ㆍ섬원暹遠ㆍ의현義玄ㆍ봉겸奉兼 등이 칙명을 받들어 (비를 세우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6척 4촌, 폭은 3척 3촌, 글자 크기는 8푼, 해서楷書. 전액篆題의 글자 크기는 3촌) -
0012_0057a_a_01L千燈相續。區 [923] 於寺西。對立容 [924] 館。一區計 [925] 八十閒 [926] 。號日 [927] 廣緣通化院。斯亦溫廬
0012_0057a_a_02L冬密。凉屋夏寬。積以糇糧。貯之芻秣。施賙窮急。設雍伯之義漿。防備盜 [928] 。列陳留
0012_0057a_a_03L之樓鼓。夫如是則不獨方袍之衆。虛往實歸。亦令褁 [929] 足之徒。宵盤晝憇。終見
0012_0057a_a_04L證眞元 [930] 境。蔑聞焚次之虞。向若非酌古㳂今。賽先皇之弘願。隨機設教。崇
0012_0057a_a_05L彼佛之妙門。則兼濟 之仁。幾乎而息。於戱權輿有旨。 祖述無虧。肯搆之
0012_0057a_a_06L功旣存矣。 奉行之道亦廣矣。盡善盡 [931] 。念玆在玆。今則申命儒生。俾書盛
0012_0057a_a_07L事。臣思避 [932] 燥吻。學淺嚼筋。雖長 鄕 [933] 形似之文。無能爲也。而小子斐然之作。
0012_0057a_a_08L竊敢効焉。略述端倪。聊裨實錄。時 聖上御囿之十八載。太平紀曆之第六
0012_0057a_a_09L年夏四月 日謹記。
0012_0057a_a_10L奉宣權知寺主圓慧智廣普觀善辯通濟得理三重大師賜紫沙
0012_0057a_a_11L門臣彦崇。都監解行無垢大師賜紫沙門臣朗崇。副都監副寺主沙
0012_0057a_a_12L門臣慧延 [934] 成普。沙門臣慧延。僧殷妙。暹速 [935] 。義玄。奉兼等。奉 ▣▣▣
0012_0057a_a_13L(碑身高六尺四寸。幅三尺三寸。字徑八分。楷書。篆題字徑三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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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체로 이 글은 각종 전거를 인용하여 표현이 난삽하고 과장된 비유를 사용하여 이해가 어려우며 뜻을 하나로 꿰뚫기 매우 어렵다. 이 글은 대개 남제南齊의 왕건王巾이 쓴 「두타사비문頭陀寺碑文」과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의 대가인 당唐나라 왕발의 여러 사륙변려문, 그리고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사륙변려문, 당나라 양형楊炯의 작품 등을 대다수 모방하였다. 이런 여러 작품을 거의 모방하거나 약간 변용하였기에 이 글은 순수한 창작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그 모방과 활용에 있어서도 정밀하고 적실한 것이 아니라 거의 짜깁기와 변칙적 변용에 가까워 고사와 비유가 적절하다는 느낌이 없으며 그저 현란한 문사만이 나열되어 있다. 이 비문을 번역하면서 과연 저자는 뜻을 다 알고 지었는지 의문이 드는 때가 많았다. 이는 모방하면서 명백한 글자를 비문 자체에 오자로 기록한 부분이 몇 군데 보이는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의심이 든다. 또한 보통은 사적에 대해 압축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할 명문銘文 부분에서조차도 각 작품의 구절을 뒤섞어 사용하였을 뿐 갑사의 사적을 제대로 서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타사비문」은 『문선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문제는 「두타사비문」은 그나마 『문선』의 주석이 자세하고 유신의 작품도 문집에 주석이 자세하여 이해가 가능하지만 왕발과 양형의 여러 작품들은 주석이 부족하거나 없고 작품 자체로 이미 뜻을 이해하기가 난해하다. 본 번역은 최대한 이 글의 전거와 내력을 밝히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 뜻을 해설하는데 주력하였다. 이 글의 완전한 이해와 번역은 왕발의 작품이 완전히 해독되고 난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아무쪼록 독자는 이 비문의 이해를 위해 「두타사비문」과 각주에 명기한 왕발과 양형의 여러 작품을 참조하기 바라며, 이러한 초기 작업에 근거하여 후일의 군자가 번역을 완정 짓기를 기다린다. 미력하나마 이 작업이 작은 도움이나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본 비문을 번역함에 있어 해설이 그래도 가능한 부분은 의미가 닿는 대로 주석으로 해설하였거니와, 난삽하고 현란하여 해석이 어려운 부문은 글자 그대로 새기고 억지로 해설하지 않았다. 구절들에 대한 해설의 근거는 대개 『문선주文選注』와 청淸나라 장청익蔣淸翊의 『왕자안집주王子安集註』, 『유자산집庾子山集』의 주석 등을 참조하였다.
- 2)흰……입었으며 : 이 구절은 소식(蘇軾)의 「차운승잠견증次韻僧潛見贈」에 “납의를 새로 해 입고 산수를 나오니 흰 수염을 자르지 않아 아이들이 놀란다.[雲衲新磨山水出, 霜髭不翦兒童驚.]”라는 구절을 차용하여 막 산을 나온 스님들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마磨’는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납의가 매우 촘촘하고 좋은 것이다.[衲甚精好]”라고 한 풀이에 의거하여 해석하였다.
- 3)연양延陽 이 상공李相公 : 효종 때 연양 부원군에 봉해진 이시백李時白이다. 이시백은 영의정을 지낸 바 있다.
- 4)진실로……있겠는가 : 이 구절은 대체로 두보杜甫의 「증비서감강하이공옹贈秘書監江夏李公邕」의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범凡을 말해 예例를 일으킨다는 것은 두예杜預의 『춘추경전집해春秋經傳集解』 서문에 나오는 말로, 본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대체로[凡]’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역사적인 사실의 예를 설명한다는 뜻인데 후대에는 문장의 체제를 확립한다는 말로 쓰였다.
- 5)쌍정雙精 : 미상이나, 문맥상 우주의 시초인 태극의 두 정기精氣인 음양을 가리킨 듯하다.
- 6)홍몽鴻濛 :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원기元氣, 천지가 나뉘기 이전의 아득한 혼돈의 상태를 뜻한다.
- 7)쌍정雙精이……이루었다 : 쌍정은 미상이나, 문맥상 우주의 시초인 태극의 두 정기精氣인 음양을 가리킨 듯하다. 홍몽은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원기元氣, 천지가 나뉘기 이전의 아득한 혼돈의 상태를 뜻한다. 칠성은 가리키는 대상이 다양하여 미상이나 저자의 사상적 배경을 고려할 때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ㆍ무왕武王ㆍ주공周公의 유가의 성인을 가리킨 듯하다. 허무에 획을 그어 머물 곳을 이룬다는 것은 곧 『주역周易』에서 형체가 없는 형이상의 도리를 획을 그어 괘로 표현하여 나타낸 것을 가리킨 듯하다. 즉, 이 구절은 유가적 관점에서 우주의 생성과 현현顯現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8)법신法身은……머물렀다 : 영원한 법신이 화신을 나투어 인연 따라 중생들에게 교화를 펼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구절은 불가적 관점에서 법法의 근원적 성질과 방편적 나툼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9)두……뻗쳤다 : 음양에서 삼라만상이 펼쳐지고, 법신에서 천백억 화신을 나투는 것을 비유로 묘사한 것이다.
- 10)단풍나무는……살핀다 : 이 구절은 당(唐)나라 장작(張鷟)의 『용근봉수판龍筋鳳髓判』「태복太卜」에 나오는 구절을 약간 변용한 것이다. 점을 치는 도구를 만들 때 단풍나무로 뚜껑을 만들기 때문에 하늘이라 한 것이고 대추나무로 밑의 소반을 만들기 때문에 땅이라고 한 것이다. 이 구절은 유가적 관점에서 드러나지 않은 미묘한 도를 찾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 11)뜻의……침묵하였다 : 언어문자를 여읨으로써 도를 깨닫는 득의得意의 길을 열었다는 말이다. 비야리성毗耶離城의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에게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문병 가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묻자 유마힐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이에 문수보살이 크게 깨달아 “아무런 문자나 언어도 없는 경지가 참된 불이법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불가적 관점에서 언어와 문자를 여읜 미묘한 도를 찾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유마경維摩經』「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 12)천지인天地人의……돌아가는구나 : 유가적 관점에서 삼재가 구분되고 만상이 펼쳐지는 그 모습 속에서 궁극적인 이치가 드러나는 것이므로 드러난 현상 속에서 도를 찾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말이다.
- 13)따라가고……것이겠는가 : 불가적 관점에서 근본 종지는 언어와 지혜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가고 맞이하고 가고 온다는 것은 유무의 형상을 벗어난 법의 실체를 알기 위해 그 법에 매달려 형상을 따라 동분서주함을 말한 것이다. 성상을 명담한다는 것은 곧 근본적인 법성法性과 법상法相을 각종 언어적 해석과 담론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학지는 불도를 배울 때 아직 배워야 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경지를 말한다. 소승小乘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수다원과須陀洹果,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나함과阿那含果의 전삼과前三果가 이 학지에 해당하고 아라한과阿羅漢果의 제4과에 나아가야 무학無學의 경지이다.
- 14)무無에서……설파하였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활용하되 다소 의미를 바꾸었다. 효계는 『주역周易』의 효사爻辭와 계사繫辭를 뜻하고, 피안은 곧 불법을 뜻한다. 「두타사비문」에서는 유와 무에 대한 것은 불교에서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 글에서는 유무의 경계에 대해서 『주역』에서 언어와 문자로 이미 말하였다고 표현하여 유가의 가르침에도 의미를 부여하였다.
- 15)천상의……비친다 : 염하는 염부(閻浮) 나무 아래로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곧 인간세상인 염부제(閻浮提)를 가리킨다. 이 구절은 불법의 연설로 하늘과 땅에 천상의 상서가 펼쳐지는 것을 형용한 듯하다.
- 16)삼천의……잃었다 : 석가모니의 출현으로 불법이 연설되자 보살과 천신들이 자리를 내어주고 공경하는 모습을 형용한 듯하다.
- 17)푸르게……쉰다 : 이 구절은 양형楊炯의 「당 우장군 위철 신도비唐右將軍魏哲神道碑」의 구절을 사용한 것이다. 양형의 『영천집盈川集』에는 ‘청연’이 ‘청사靑絲’로 되어 있다. 양형의 글에서도 자세한 뜻은 미상이나 아마도 불법이 널리 퍼져나감을 형용한 듯하다.
- 18)아득한……있었다 : 부처의 가르침은 깊은 샘과 같아 다함이 없고, 산과 같이 부동不動한 자리이지만 사람들의 간절한 정성에 응하여 세상에 불법을 펼쳐졌다는 뜻인 듯하다.
- 19)여래가……기대었다 : 석가여래와 가섭이 팔정도와 오연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길을 열었다는 말이다. 오연은 오승五乘과 같은 말로 인승人乘, 천승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뜻한다.
- 20)아난阿難의……고요해진다 : 오색은 여기에서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색신色身, 즉 물질적 육체를 가리킨 듯하다. 이러한 오온을 궁구하여 길이 보존했다는 것은 아난의 장수를 말한 것이다. 아난은 120세까지 장수하였고, 더 오래 살 수도 있는데 스스로 열반에 들었다고 전한다. 아난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있을 때, 어느 젊은 비구가 “사람이 백년을 살더라도 물가의 늙은 학을 보지 못한다면 하루를 살더라도 그것을 보는 것만 하다.[若人生百歲, 不見水老鶴, 不如生一日, 而得覩見之.]”고 게송을 외우는 것을 보고는 “사람이 백년을 살더라도 생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루를 살더라도 이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만 못하다.[若人生百歲 不解生滅法 不如生一日 而得解了之]”고 바로잡아 주었다. 그 젊은 비구가 자신의 스승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젊은 비구의 스승이 “늙어빠진 아난의 말은 믿을만한 게 못된다.”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아난은 자신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스스로 열반에 들기로 마음먹었다. 또, 아난이 열반할 즈음 마가다국과 바이샬리국의 왕이 서로 아난을 모셔가려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아난이 이에 공중으로 몸을 띄워 자신의 몸을 둘로 나누어 두 나라의 왕이 각각 가져가 사리탑을 세울 수 있게 함으로써 전쟁을 그치게 하였다. 감龕은 여기서 감실의 뜻이 아니라 감관龕棺, 즉 시신을 담는 관을 뜻한다.
- 21)자비가……알겠다 : 사독四瀆은 양자강揚子江, 제수濟水, 황하黃河, 회수淮水의 중국 4대강이다. 주항州航은 무슨 뜻인지 미상이다. 의미상 舟航이 아닌가 의심되나, 비석의 원본 글자는 州航이 틀림없다. 이 구절은 진제眞諦의 관점에서 보면 부처가 중생을 생각하는 자비심이 깊어서 남겨놓은 숱한 방편설은 불필요한 술지게미처럼 장황한 것에 불과하지만, 속제俗諦의 관점에서 보면 중생의 인연에 따라 유용하고 적절한 가르침 아님이 없으므로 면면히 이어져갈 것이라는 말인 듯하다.
- 22)비침이 없는 광명 : 진여眞如의 참된 지혜를 비유한 것이다. 비침이 없다는 것은 곧 불법의 참된 광명을 뜻한다. 밝음으로 사물을 비추면 그 밝음이 미치는 범위가 한계가 있지만 참된 광명은 비침이 없음으로써 만물을 빠짐없이 비춘다는 뜻이다. 이는 무위無爲함이 모든 것을 다 해낸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 23)시절……벗었다 : 석가모니의 열반을 말한 것이다. 사라쌍수는 석가모니가 발제하跋提河에서 입멸할 때 양 옆에 서 있던 사라수이다. 금사는 발제하의 한어漢語 의역 표기이다.
- 24)이에……드리웠다 : 밤과 객점은 모두 석가모니가 법을 펼치기 이전의 암흑 같던 상태를 비유한 말이다. 문맥상 불법이 전해지기 이전의 중국의 상태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 25)연燕나라와……바쳤다 : 이 구절은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불교가 수용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에 이민족에 의해 세워진 왕조들이 불교를 신봉하고 불교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불교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때의 연, 진, 한, 초는 모두 오호십육국 시대의 전연前燕과 후연後燕, 전진前秦과 후진後秦, 후에 전조前趙가 되는 한나라와 환초桓楚 등을 말한 것이다. 등을 나르고 초를 밝힌 것에 대한 자세한 전고는 미상이다.
- 26)유문遺文이……없다 : 불경이 중국에 번역되어 중국에서 불법이 흥성함을 말한 것이다. 앞서 말한 오호십육국 시대에 구마라집鳩摩羅什 등이 중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역경譯經이 이루어져 중국의 불교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유문은 곧 부처님이 남긴 글인 불경을 말한 것이다. 준조의 군대란, 직접 전투를 벌이지 않고도 외교와 담론을 통해 승부를 결정지어 승리하는 군대를 뜻한다. 준조는 술병과 고기 담는 도마라는 뜻으로 연회의 자리, 즉 외교 담판을 뜻한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준조의 사이를 벗어나지 않고 천 리 밖에 있는 적을 제압할 줄 아니, 이는 안자를 두고 말한 것이다.[夫不出於樽俎之間 而知千里之外 其晏子之謂也]”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뛰어난 언변으로 각종 외도사설外道邪說을 제압한 논사論師들을 비유하였다. 울타리란 곧 외도사설이 자신의 방어막으로 삼는 그릇된 견해들을 비유한 것이다.
- 27)산서山西의……찾아왔다 : 중국의 인재들이 불법을 배우기 위해 승려들을 찾아왔다는 말이다. 산서는 곧 장안과 낙양이 있는 지역이다. 서진西晉 말엽부터 불도징佛圖澄, 구마라집鳩摩羅什 등의 서역승이 건너와 이곳에서 전법하였다. 강좌는 강동江東 지역이다. 동진東晉 시대에 지둔支遁, 혜원慧遠 등의 명승名僧들이 이곳에서 불법을 크게 펼쳤다.
- 28)금인金人이……바쳤다 : 불법이 중국으로 전래되는 시초를 말한 것이나 여기에서는 우리나라로 불법이 들어옴을 말한 것이다. 다소 적절하지 않은 고사 사용이다.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밤에 신장이 6장丈이나 되는 금인金人이 목덜미에 일륜日輪을 두르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꿈을 꾼 뒤에, 서방에 불佛이라는 신神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천축天竺에 사신을 보내어 불교를 수입하였고, 이때 서역의 승려인 섭마등攝摩騰, 축법란竺法蘭 등이 백마에 불상과 불경을 싣고 낙양으로 들어온 고사가 있다.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 잠궁이라는 것은 아마도 용궁을 표현한 말인 듯하다.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에 들어가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수많은 불경을 보고 그 가운데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가지고 돌아와 전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다만 ‘잠궁의 비결’은 『화엄경』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불경佛經 전반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 29)성헌星軒이……바깥이로다 : 절터를 찾기 위해 임금이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고 세 차례에 걸쳐 글을 내렸다는 뜻인 듯하다. 성헌은 본래 왕후를 상징하는 말이지만 문맥상 여기에서는 성사星使의 수레, 즉 임금의 사신을 가리키는 듯하다. 봉필은 임금이 쓴 글을 뜻한다.
- 30)산은……차지하였다 : 갑사가 자리한 계룡산이 주변에 옛 백제의 도성인 부여와 공주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만수산은 부여에 있는 산이고 천방산은 공주에 있는 산이다. 옥부는 임금의 의장대가 들고 다니는 도끼이고, 금오는 임금의 호위대이다.
- 31)삼위三危 : 중국 돈황에 있는 산 이름이다. 굳이 여기에 중국의 산 이름을 쓴 것은 무슨 별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비문이 모방한 「두타사비문」에서 이 삼위가 부처의 신통력이 행해지는 지명으로 쓰였기 때문에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 32)환구圜丘의……얻었다 : 환구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의 고유명사이므로, 연관 역시 고유명사로 생각된다. 관觀에는 궁문宮門의 뜻이 있고, 전하여 궁궐의 의미로도 쓰이는바 연이은 궁궐의 뜻이 아닌가 한다. 본문의 환구나 연관은 모두 법왕法王의 궁궐이라 할 수 있는 사찰을 비유한 것인 듯하다. 이 구절은 당唐나라 왕발王勃의 「팽주彭州 구룡현九龍縣 용회사비龍懷寺碑」에 “이에 사선의 깊은 관찰로 구리 성가퀴를 깨뜨리고 무명을 벗어나며, 삼매의 웅대한 도모로 철위를 밀치고 비상을 없앤다.[於是四禪幽觀 破銅堞而出無明 三昧雄圖 排鐵圍而泯非相]”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사선과 삼매의 깊은 수행으로 구리 성가퀴와 철위산鐵圍山처럼 견고한 번뇌의 장애를 깨부수고 도를 얻는다는 표현이다.
- 33)천삼千三의……노래하였다 : 파복과 공황은 모두 변경을 뜻하는 말이다. 파巴와 공邛은 모두 지명으로 중국의 서남쪽 변방이다. 복服과 황荒은 모두 변경을 뜻하는 단위명칭이다. 이 구절은 당나라 왕발의 「팽주 구룡현 용회사비」에 “파복의 존귀한 이름을 의지하고, 공황의 보배로운 명을 쪼갠다.[仗巴服之尊名 裂邛荒之寶命]”라는 구절에서 말을 따온 것인데, 왕발의 글의 뜻은 천자가 변방을 정벌한 의미이므로 이 글의 뜻과는 맞지 않는다. 짐작건대 이 글의 뜻은 천자의 정벌과 교화가 먼 변방에 행해지듯 불법의 교화가 먼 변방에까지 미쳤다는 뜻일 듯하다.
- 34)앵림鶯林 : 석가모니가 마갈제국摩竭提國으로 갈 때 앵무새의 왕이 나타나 자신의 숲에 하루를 머물고 가기를 청하여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앵무새들의 숲에서 하루를 좌선한 적이 있다.『찬집백연경撰集百緣經』「제천래하공양품諸天來下供養品」
- 35)붉은……만들었다 :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불법의 오묘한 뜻을 탐구하는 갑사를 창건했다는 뜻인 듯하다. 이 구절은 당나라 왕발의 「재주梓州 통천현通泉縣 혜보사비惠普寺碑」에 “현진을 묵연히 움직여 삼정에서 준열을 열고, 소건을 몰래 풀어 만휘에서 신공을 연다.[玄津黙運 披睿烈於三精 素鍵潛融 肇神功於萬彚]”라는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때 현진이나 삼정은 모두 현묘하고 가장 근원적인 도리를 뜻하는바, 본 글의 붉은 가로장이나 흰 비녀장 역시 이와 같은 뜻일 듯하다.
- 36)새벽이면……걸렀다 : 이는 모두 창건 당시 갑사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건물을 형용한 말이다. 옥 구슬이나 옥 그물은 모두 건물의 화려함을 빗댄 것이다. 당나라 왕발의 「익주益州 덕양현德陽縣 선적사비善寂寺碑」에 “아로새긴 용마루는 학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으니 은하수에서 옥 그물을 끌고, 수놓은 서까래는 규룡이 몸을 편 듯하니 달이 지나가는 길에서 옥 구슬을 토한다.[琱甍鶴翥 曳珠網於星津 繡桷虯伸 吐璿璫於月徑]”라고 하였다.
- 37)참된……옮겨간다 : 이 또한 갑사의 정경을 말한 것으로,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에 “새벽빛이 풀에 감도니 법당의 용화수로 옮겨가고, 무수한 이슬이 가지를 무겁게 하여 낮추니 패엽경의 참된 글을 씻는다.[晨光轉卉 翻寶宇之龍花 溽露低枝 蕩眞文於貝葉]”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 38)창두蒼頭가……본받았다 :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절에 딸린 노비와 전답이 모두 왕실에서 내려준 것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창두는 심부름하는 노비를 뜻한다. 주왕의 법을 본받았다는 것은 주나라 때의 정전井田처럼 반듯한 전답이 절의 주위에 펼쳐져 있다는 뜻인 듯하다.
- 39)바위는……끊어버렸다 : 높은 바위에 석탑을 세우고 철당간을 세워 사찰의 경계를 세속과 구분하였다는 말이다. 한 자 다섯 치의 하늘이란 보통 하늘 또는 임금과 매우 가까운 자리에 있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인데, 여기에서는 탑이 드높아 하늘과 가깝다는 뜻으로 쓰였다.
- 40)기내畿內에서……장소로다 : 절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왕래하는 곳에 있었다는 말이다. 이 역시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에 “봉기의 사회이니 용경 사위성의 단이요, 취락의 삼분이니 녹야원 경행하던 땅이라.[封畿四會 龍坰舍衛之壇 里閈三分 鹿野徑行之地]”라고 한 구절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이때 사회는 곧 사방으로 뚫린 길이라는 뜻이니 본 글의 구회는 그보다 더욱 많은 아홉 방향으로 뚫린 곳이라는 말이고, 삼분이란 것은 『예기禮記』「왕제王制」의 ‘삼분거일三分去一’에서 온 말로서 곧 천하의 땅을 삼분한 것에서 성곽이나 도로 등의 삼분의 일을 뺀다는 뜻인데 많은 땅이라는 의미이다. 용경에 대해서 왕발의 글에 주석을 낸 청淸나라 장청익蔣淸翊은 용원龍垣의 오자라고 하였다. 이는 용처럼 두른 담이라는 뜻으로 곧 사위성을 둘러싼 담을 뜻한 것이다.
- 41)저……만났다 : 이 구절 역시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에 “함곡관의 구름은 진성의 기약을 다시 만나고, 펼쳐진 별들은 태평성세의 운수를 거듭 모은다.[函關雲物 更逢真聖之期 井絡星辰 重集會昌之運]”라는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구름이나 별은 모두 운세와 기운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다. 곧 이런 자연물들에서 불법이 융성하고 시절이 태평한 기운이 보인다는 말이다.
- 42)숲과……모였다 : 뛰어난 인재들이 불법을 배우기 위해 절로 모여든다는 말이다. 이 역시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에 “민과 촉 땅의 빼어난 인재들이 강당을 향해 구름처럼 달려오고, 제비 문양 띠와 난새 문양 치마를 한 이들이 재를 여는 마당에 우러르며 안개처럼 합친다.[岷英蜀秀 攀講序以雲趨 帶鷰裙鸞 仰齋庭而霧合]”라고 한 구절을 거의 그대로 쓴 것이다. 제비와 난새 문양의 옷은 모두 귀족 자제들을 일컬은 것이다.
- 43)인황仁皇의……보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에 “인왕의 보배 거울을 잡으니 해와 달이 동시에 빛을 비추고, 범왕 제석의 금륜을 몰아 우레와 천둥은 상서를 고요히 보인다.[握仁王之寶鏡 日月重光 驅梵帝之金輪 雷霆靜祲]”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인황은 곧 부처를 가리킨다. 원문의 ‘침祲’은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나 「건원전송乾元殿頌」 등에서 모두 보통의 뜻인 요기妖氣가 아니라 상서祥瑞의 뜻으로 쓰였다. 이 구절은 절이 창건되어 불법이 빛을 발하고 제천諸天이 옹호하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 44)상서로운……드날렸다 : 이 구절은 왕발의 「팽주 구룡현 용회사비」에 “보배 병을 밤에 부으니 요순에 윤택하게 적시고, 옥 불자拂子를 새벽에 휘두르니 순력에 바람이 조화롭다.[寶瓶宵注 潤浹堯旬 玉塵晨麾 風調舜曆]”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보배 병과 상서로운 병은 같은 뜻으로 『찬집백연경撰集百緣經』에 욕불浴佛하는 물을 담는 병을 보배 병이라고 한 바, 여기에서는 의미상 불법이 세상에 널리 펼쳐지는 것을 형용한 것이다. 요봉은 『서경書經』「순전舜典」에 요임금이 순舜으로 하여금 천하 12주를 순시하면서 각 주마다 산 하나씩을 봉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곧 중국 전역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우리나라 전역을 비유한 것이다. 보배 부채 역시 옥 불자와 같은 뜻으로 곧 법회나 법담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 이 역시 불법이 펼쳐짐을 형용한 것이다. 순력은 『논어論語』「요왈堯曰」에 요임금이 순에게 천하를 물려주면서 천하의 역수曆數가 이제 순임금의 몸에 있게 되었다고 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이 역시 천하를 가리킨다. 종합하면 이 구절은 이 절에서 불법이 퍼져나가 온 나라와 천하를 두루 적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 45)숲과……기다렸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구성궁송九成宮頌」에 “달빛 비치는 계곡에 홍전이 기다리니 산과 큰 강에 광채가 빛나고, 연기 피어오르는 언덕에 학참을 날리니 강호에 생동감이 넘친다.[佇虹旃於月澗 岳瀆生光 飛鶴槧於烟臯 江湖動色]”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학참은 학판鶴板과 같은 말이며, 홍정의 정旌은 『시경詩經』「간모干旄」에 간정干旌과 같은 뜻으로, 학참과 홍정은 모두 현사賢士를 초빙할 때 보내는 의장儀仗이다. 이는 곧 나라에서 고승대덕高僧大德을 초빙한다는 의미이다.
- 46)현궁玄宮에서……다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구성궁송」에 “현궁에서 은밀히 움직이니 신령스러운 심회에서 조화를 펼치고, 황옥에서 정신을 모으니 보배로운 생각에서 경륜을 시작한다.[玄宮密運 敷造化於靈襟 黄屋神凝 創經綸於寶思]”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현궁은 궁궐의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황옥은 천자가 타는 황옥거黃屋車를 가리키는 바, 모두 임금을 비유한 것이다. 신금과 예념도 모두 임금의 마음과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임금이 불법에 깊이 귀의하고 신봉하여 불사불사佛事를 펼쳤다는 뜻이다.
- 47)향로봉香爐峯에……울렸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구성궁송」의 구절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향로봉은 중국 산동에 있는 향로산香爐山 봉우리를 가리킨다. 옥궤는 임금의 좌우에 놔두는 궤안이다. 동호는 현호縣壺와 같은 뜻으로 도성의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이다. 이 구절은 곧 절이 있는 곳의 향기와 소리가 임금이 있는 도성까지 전해졌다는 뜻이다.
- 48)남쪽 오랑캐 : 일본을 가리킨 것이다.
- 49)올빼미 : 올빼미를 어미 새를 잡아먹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보통 배은망덕하고 흉악한 이를 비유할 때 쓰였다.
- 50)모래를 머금으니 : 흉악한 간계로 남을 해친다는 뜻이다. 『시경』「하인사何人斯」의 “도깨비도 되었다가 물여우도 되었구나.[爲鬼爲蜮]”라는 구절에 주희朱熹가 “역蜮은 단호短狐이니 강수江水와 회수淮水에 모두 있다. 모래를 머금고 있다가 물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에 뿜으면 그 사람이 문득 병들지만 그 형체를 보지 못한다.”라고 주석하였다.
- 51)견양犬羊 : 오랑캐를 비유하는 말이다.
- 52)팔수八水에……말하랴 : 팔수는 중국의 경涇, 위渭, 패灞, 산滻, 노澇, 휼潏, 풍灃, 호滈의 여덟 하천으로 중국의 문명 중심지인 관중關中 지역을 일컫는다. 여기에서는 문명국인 조선을 비유한 말로 쓰였다. 용사의 해는 곧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과 그 이듬해인 계사년을 뜻한다.
- 53)미친……변화시켰다 : 이 구절은 왕발의 「팽주 구룡현 용회사비」에 “미친 듯 부는 바람이 산을 흔드나 어찌 인지의 신령을 옮기겠으며, 치솟는 불길이 산을 태우나 견림의 색은 흔들지 못하도다.[衝飆蕩嶽 寧移忍地之靈 烈火焚山 不撓堅林之色]”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인지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 말한 감인지堪忍地로, 수행자가 4념처念處를 얻은 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추위와 더위와 굶주림과 목마름 등의 신심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지위를 가리킨다. 견림은 견고림堅固林으로, 사라수娑羅樹 숲을 가리킨다. 곧 인지와 견림은 수행이 깊은 스님들과 스님들이 거처하는 절을 비유한 것이다. 이 구절은 임진왜란의 병화가 갑사에까지 미쳤다는 뜻이다.
- 54)향성香城 : 중향성衆香城의 준말이다. 『대반야바라밀경』과 『화엄경』 등에 나오는 성 이름으로, 구묘향성具妙香城이라고도 한다. 법용보살法涌菩薩 즉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이곳에 상주하며 마하반야바라밀을 항상 설한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사찰을 비유한 말로 쓰였다.
- 55)석마石馬의……듯하고 : 절이 폐허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두보杜甫가 황폐한 옥화궁玉華宮 터를 지나다가 지은 「옥화궁」 시에 “당시에 미인들이 금여를 모셨는데, 이제 옛 물건은 석마뿐이네.[當時侍金輿 故物獨石馬]”라고 하였다.
- 56)용상龍象 : 고승高僧, 나한羅漢 등의 대덕大德을 비유하는 말이다.
- 57)진공사眞空寺가……간절하였다 : 왕형공은 송宋나라 때 인물인 왕안석王安石이며, 이보 역시 송나라 때의 시인이다. 이보의 「진공사」 시에 “괄창산 위의 구름, 산이 좋으니 구름도 좋아라. 어여뻐라 산 아래 승려, 구름 보며 늙는 줄도 모르네.[括蒼山上雲 山好雲亦好 可憐山下僧 看雲不知老]”라고 하였다. 왕안석의 「예천관을 유람하는 승려 혜잠에게 화답하다和僧惠岑遊醴泉觀」에 “우연히 서로 만나 하루를 한가로이 지내니, 혹 향화 올리기 위해 영산에 머무르네. 석양 질 때 누런 먼지 이는 거리에서 흥이 다하니, 그저 봉래에서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 듯하여라.[邂逅相逢一日閒 或縁香火住靈山 夕陽興罷黄埃陌 直似蓬萊墮世間]”라고 하였다.
- 58)단풍……어렵고 : 당나라 장계張繼의 시 「풍교야박楓橋夜泊」에 “저 멀리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배에 들려오네.[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원용하여 갑사가 사라진 것을 표현하였다.
- 59)강남의……던졌으리라 : 전쟁의 여파로 상인들이 장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돌에 낀 이끼를 던진다는 것은 상선을 띄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 60)검은……받들었다 : 이 구절은 양형楊炯의 「원주原州 백천현령百泉縣令 이군李君 신도비神道碑」에 “황제의 군대가 곧장 진군하여 검각劍閣의 잔도棧道를 올라 오래도록 적을 몰아내고, 조정의 계책이 멀리 펼쳐져 동량산銅梁山의 언덕을 가리키며 승리를 결정지었다.[王師直進 陵劍棧以長驅 廟略遐宣 指銅邱而決勝]”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양형의 글에서 검잔劍棧이 중국 촉蜀의 지명인 바, 본 구절의 옥루 역시 촉의 옥루산玉壘山을 가리킨 것으로 봐야 한다. 동구는 동량산銅梁山으로 이 역시 촉 땅의 지명이다. 즉 중국의 지명을 들어 말했지만, 결국 본 구절은 명나라의 원조를 받아 왜적에게 승리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 61)천지가……빛났도다 : 이 구절은 당나라 양형의 「원주 백천현령 이군 신도비」에 “황계를 크게 열되 오히려 위후의 빔을 위로하고, 천보가 막 평탄해지되 오히려 풍진의 경계가 있다.[皇階甫闢 猶勞尉候之虛 天步初夷 尚有風塵之警]”라는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황계는 문맥상 황위皇威와 같은 뜻이 아닌가 하며, 전체적으로 이 구절은 명나라의 원조로 왜적을 물리치고 다시 평안을 찾은 것을 비유한 듯하다.
- 62)결락된 글자 다음에 河가 더 있으나,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63)낭간瑯玕이……접한다 : 이 구절은 당나라 양형의 「원주 백천현령 이군 신도비」에 “琅玕負海 八門都督之榮 王彰頴河 百代封侯之貴”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낭간은 보석의 이름이고 팔문은 도성의 여덟 방위의 문이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문맥상 이 역시 나라가 다시 태평해짐을 비유한 말일 듯하다.
- 64)감여堪輿 : 감堪은 천도天道이고 輿는 지도地道이다.
- 65)정수井宿를……붙드니 : 정수와 삼수는 모두 이십팔수 가운데 하나이다. 보통 ‘문삼역정捫參歷井’이라고 하여 지극히 높고 험한 곳을 지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며, 또한 세상이 매우 험난한 시기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도 쓴다.
- 66)신극宸極을 바로잡았다 : 신극은 임금의 자리를 뜻한다. 곧 난리를 평정하고 나라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는 말이다.
- 67)삼주三州의……않았다 : 이 구절은 당나라 양형의 「원주 백천현령 이군 신도비」에 “남주의 옛 풍속은 백수의 사당에서 부정한 제사를 지내고, 서극의 유민들은 나의 황룡의 약속을 저버렸다.[南州舊俗 淫其白獸之祠 西棘餘氓 背我黃龍之約]”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옛날 진秦나라에 백호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죽이는데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자 소왕昭王이 현상금을 걸었는데 이때 파군巴郡의 이인夷人이 호랑이를 잡고서 별다른 보상을 바라지 않고 중국과 이민족 간의 우호와 선린을 요구하여 진나라가 이족을 침범하면 황룡 한 쌍을 보상하고 이족이 진나라를 침범하면 청주 한 종을 보상하기로 맹약한 고사를 활용한 것이다. 황룡은 황동으로 만든 용을 가리킨다. 이는 『후한서後漢書』 권86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에 보인다. 양형의 글에서 백수 즉 백호의 사당에서 부정한 제사를 지낸다는 말은 옛날 진나라를 범했던 백호처럼 남쪽 고을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이고, 황룡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 역시 침범하지 않고 우호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서극 지방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뜻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본 구절의 뜻과는 맞지 않다. 우선 삼주는 갑사를 둘러싼 세 고을을 가리키는 듯하다. 구극은 본래 고대에 조정에서 아홉 그루의 가시나무를 심어 신하들이 서는 자리를 표시했던 데서 온 말로 보통은 구경九卿을 뜻하는데 그래서는 본 구절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확한 뜻은 미상이다. 지금으로서는 다만 ‘유민’을 수식하는 말 정도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본 구절에서 백호의 사당은 양형의 글과 같은 뜻으로 보기는 어렵고 문맥상 절을 중건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듯한데 이 역시 후일에 의미가 밝혀지기를 기다린다. 이 구절은 대략적으로 절의 중창을 백성들이 바랐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 68)이에……들어갔다 : 구슬 줍는 숲이나 모래 드날리는 계곡은 전거가 미상이나, 문맥상 스님들이 절의 중건을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뜻일 듯하다.
- 69)청전靑錢으로……않았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상무시극계上武侍極啓」 두 번째 글에 “비록 황금으로 격분시키나 진나라 길을 가리킴에 바야흐로 다하였고, 푸른 옥벽으로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니 초원에 엎드림에 멀지 않다.[雖黄金激憤 指秦路而方窮 蒼璧慚恩 伏焦原而未遠]”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왕발의 글은 『전국책戰國策』에 소진蘇秦이 진秦나라에 등용되지 못하여 황금이 다 떨어진 고사와 『시자尸子』에 거국莒國의 초원이라는 큰 바위의 고사를 든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와는 다른 고사를 사용하여 뜻이 같지 않다.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아마도 절을 중건하려는 스님들의 정성에 권력을 가진 이들이 호응하였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 70)결락된 글자 전후로 ‘望’과 ‘而’와 ‘誠’이 있으나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71)작은……쉬었다 : 이 글은 왕발의 「상무시극계」 첫 번째 글에 “작은 물결이 의탁할 곳이 있으니 해가 뜨는 탕곡湯谷을 바라보면서 멀리서 정성을 바치고, 종과 북이 베풀어짐이 없으니 뇌문 앞에 엎드려 잠시 쉰다.[涓波有託 望日谷以馳誠 鐘鼓無施 伏雷門而假息]”라고 한 구절을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결락된 글자 역시 왕발의 글의 글자 그대로일 듯하다. 본 구절의 뇌추雷追는 의미가 잘 통하지 않으므로 왕발의 글대로 뇌문雷門이 되어야 할 듯하나 미상이다. 전체적으로 왕발의 글 뜻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이 윗사람의 큰 은혜를 바라고 혜택을 입는다는 뜻이므로 본 구절 역시 그와 같은 뜻으로 보인다. 곧 절의 중창을 위해 윗사람으로부터 은택을 받는다는 뜻인 듯하다.
- 72)용문龍文이……있었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상무시극계」 첫 번째 글에 “용문이 이미 멀어지니 물소 갑옷을 베는 공력을 쉽사리 도모하고, 물고기 눈알을 넘치게 가지니 신령스러운 뱀이 준 구슬의 색깔인냥 스스로 생각한다.[其有龍文已遠 輕圖剸兕之功 魚目濫持 自擬靈蛇之色]”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용문은 용문검龍文劍으로 옛날의 명검이다. 왕발의 글의 뜻과는 조금 다르게 본 구절의 뜻은 용문검과 같은 명검은 비록 지금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물소 갑옷을 벨 수 있는 검을 만들어냈다는 뜻으로 썼다. 곧 이는 절을 중창하면서 옛날과 같은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은 없었지만 그래도 스님들의 노력과 시주들의 헌신으로 훌륭한 중창을 이루어냈다는 뜻이다. 뒤의 구절은 왕발의 글과도 고사가 달라 어떤 고사인지 알 수 없으나 앞의 구절과 유사한 뜻일 듯하다.
- 73)마음에……않았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상이상백계上李常伯啓」에 “조정에 팔성이 빛나되 오히려 목동의 말을 기뻐하고 도는 오잔을 구제하되 대중들의 여론을 멀리하지 않는다.[朝光八聖 尚欣牧豎之詞 道濟五殘 未隔輿人之誦]”라고 하였다. 왕발의 글에 주석을 낸 청淸나라 장청익蔣淸翊은 팔성八聖은 칠성七聖의 오류일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칠성은 『장자莊子』「서무귀徐无鬼」에 나오는 황제黃帝를 포함한 일곱 명의 성인들이다. 이들은 대도大道를 찾아 길을 나섰다가 목마동자牧馬童子를 만나 그로부터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듣게 되었다. 오잔은 별 이름으로 흉성凶星이다. 본 구절의 삼잔도 오잔의 오류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왕발의 글은 조정에 있는 고관이 비록 훌륭한 자질과 세상을 구제할 능력을 지녔지만 그래도 아래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말도 경청해 듣는다는 뜻이다. 이에 의거하면 본 구절 역시 절을 중창하고자 하는 아랫사람들의 소원에 윗사람들이 경청한다는 뜻일 듯하다.
- 74)결락된 글자 앞에 ‘商於六’이 더 있으나,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75)석……잘라버렸다 : 자세한 고사는 미상이나, 화재로 재가 된 사찰을 일신했다는 뜻인 듯하다.
- 76)스님들이……읊조렸다 : 절의 중창이 여의如意하게 잘 이루어졌다는 뜻인 듯하다.
- 77)새……따랐다 : 자세한 고사는 미상이나, 조주趙州 종심從諗 선사가 주석하던 관음원觀音院이나 무창에 있던 한산사寒山寺를 모범으로 삼아 절을 중창하였다는 뜻인 듯하다.
- 78)결자 앞에 ‘鉏’가 더 있으나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79)더러운……폈다 : 자세한 의미는 미상이나, 문맥상 절의 중창 과정을 읊은 구절인 듯하다.
- 80)숲과……있다 : 자세한 의미는 미상이나, 아마도 옛 기록을 참조하여 절을 중창했다는 내용일 듯하다.
- 81)봉성蜂城을……마주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재주梓州 처현郪縣 도솔사兠率寺 부도비浮圖碑」에 “봉대에 비치는 달은 다시 사위성에 임하고, 안탑에 찾아든 구름은 곧장 기사굴산을 마주한다.[蜂臺映月 還臨舍衛之城 鴈塔尋雲 即對耆闍之嶺]”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왕발의 글에 주석을 단 청나라 장청익은 봉대蜂臺에 대해서는 미상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왕발의 글은 지금 있는 곳에서 인도에 석가모니가 설법을 펼치던 곳을 마주한다는 뜻일 듯한데, 다만 본 구절에서 요동에 있는 의무려산을 언급한 것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 82)현방玄房이……깃들었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재주 처현 도솔사 부도비」에 “현방이 안개처럼 감아도니 계수나무 산 앞에 금 문지도리를 올려 메고, 감전이 별처럼 펼쳐지니 매화 숲 아래에 옥찰이 깃들었다.[玄房霧轉 抗金樞於桂岊之前 紺殿星開 栖玉刹於梅林之下]”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현방’과 ‘감전’은 모두 승방과 불전을 가리킨 말이다. 이 구절은 사찰의 모습을 형용한 듯하다.
- 83)담과……새겼다 : 자세한 의미는 미상이나 이 역시 사찰의 모습을 형용한 듯하다. 삼계는 삼나무 아래에 서식하는 특정 품종의 닭을 뜻한다.
- 84)결락된 글자 전후로 ‘邑’과 ‘靈’이 더 있으나,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85)보배로운……합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乾元殿頌」에 “규대에 앉아서 맑게 올려보고 내려보니 해와 달이 나란히 밝고, 정읍에 임하여 거듭 위령을 떨치니 바람과 우레가 소리를 합한다.[坐圭臺而清俯仰 晷緯齊明 臨鼎邑而重威靈 風雷合響]”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 구절 역시 사찰의 위용을 형용한 듯하다.
- 86)붉은……온축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 “자정에서 순일함을 합하니 임금의 마음에 우주를 포괄하고, 붉은 병풍 뒤에서 엄숙하고 존귀하나 보배로운 생각에 천지의 조화를 운행한다.[紫庭合粹 括宇宙於宸襟 丹扆凝尊 運陶鈞於寶思]”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 구절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 87)왕의……되었다 : 자세한 고사는 미상이나, 아마도 절에 전답과 노비가 하사된 것을 말한 듯하다.
- 88)노향蘆鄕의……아니다 : 노향과 죽원은 미상이나 문맥상 사찰을 가리킨 듯하다. 결복은 전답의 단위이다. 홍려는 사신의 접대를 담당하는 관직이다. 영윤은 재상이다. 아마도 이 구절은 절의 전답과 승도들을 조정에서 함부로 부릴 수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
- 89)한산寒山의……흩었다 : 고사와 의미 모두 미상이다.
- 90)네모난……모았다 : 고사와 의미 모두 미상이다.
- 91)노란……가졌다 : 자세한 고사는 미상이나 의미상 절에 보시가 많음을 말한 듯하다.
- 92)하늘과……마셨다 : 자세한 고사는 미상이나 의미상 하늘의 보우와 나라의 도움으로 절이 크게 흥성함을 말한 듯하다.
- 93)형荆……쏟아졌다 : 자세한 고사는 미상이나 의미상 절에 보시와 은택이 많음을 말한 듯하다.
- 94)지초芝草처럼……머물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 “지초 같은 누각 마주한 휘장에 닷새의 바람이 많이 불고, 향초 같은 누각 늘어선 장식물에 서른 날의 안개가 다채로이 불어난다.[芝樓對幄 蕃傳五日之風 芸閣列錢 彩鍛三旬之霧]”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본 구절의 다섯 달도 혹 오일五日의 오류가 아닌가 한다. 전錢은 동전이 아니라 궁궐 담벼락의 장식을 일컫는 말이다. 닷새의 바람은 『논형論衡』에 “닷새 만에 한번 바람이 불고 십 일 만에 한번 비가 온다.[五日一風 十日一雨]”라고 한 것으로 바람과 비가 고르게 내리고 불어 조화로운 것을 뜻한다. 서른 날의 안개에 대해 청淸나라 장청익蔣淸翊은 『제왕세기帝王世紀』에 황제黃帝가 사흘 동안 큰 안개가 끼자 낙천洛川에서 큰 고기를 잡고 초제醮祭를 지내니 큰 비가 내려 마침내 도서圖書를 얻었다는 고사를 들었으나, 서른 날과 완전히 부합되지 않아 의문이다. 짐작컨대 본 구절의 뜻은 절의 중창으로 상서가 모여드는 것을 형용한 듯하다.
- 95)신선……걷어잡았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 “선단이 멀리 비밀스러우니 이미 상서로운 비익조에게 많은 사례를 받고, 큰 집을 막 완성하니 다시 하례하는 참새에게서 영광을 끌어잡는다.[仙壇遠秘 已多謝於祥鶼 大廈初成 復攀榮於賀雀]”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 옛날에 봉선封禪의 의식을 지내면 서해에서 비익조가 날아왔다고 하였고, 『회남자淮南子』「설림훈說林訓」에 “큰 집이 완성되자 제비와 참새가 서로 하례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절의 중창 불사가 이루어져 비익조와 참새가 와서 축하함을 형용한 것이다.
- 96)여러……늘어섰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 “일천 관원이 새벽에 차례 지어 서니 은방을 향하여 단정히 연이어 있고, 일만 집이 밤에 열리니 경고를 기다리며 엄숙히 둘러 있다.[千官曉次 傃銀榜而端簪 萬戶宵披 候瓊膏而肅帶]”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은방은 궁궐이나 사당 등에 걸린 휘황찬란한 편액을 뜻한다. 옥 생황을 바꾸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미상이나 아마도 나무들이 옥 생황처럼 늘어섰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이 구절은 여러 신이 사찰을 옹호하고 나무들이 사찰을 감싼 모습을 형용한 듯하다.
- 97)땅을……줄을 : 절의 중창 이후 병자호란을 겪은 상황을 말한 것이다. 적서는 간지로 병자丙子를 뜻하는 말이다. 병丙은 색깔에서 적색에 해당하고, 자子는 열두 동물에서 쥐에 해당한다. 단단한 성벽이란 남한산성을 가리킨 듯하다. 옥노는 유성流星을 뜻하는데, 이는 변란이 발생할 징조였다. 창응은 보통 혹리酷吏를 상징하는데, 이 구절의 뜻과는 맞지 않아 정확한 의미는 미상이다.
- 98)성을……흡사하였도다 : 성벽에 누운 연나라 군사와 성벽을 걸어 잠근 제나라 장수와 코끼리와 뱀은 모두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나오는 표현을 가져다 쓴 것이다. 코끼리와 뱀이 도망친다는 것은 전란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 성벽에 누운 연나라 군사는 후연後燕의 모용보慕容寶가 삼합參合의 전투에서 병사 육십만을 잃은 상황을 가리킨 것으로 병사들이 모두 죽어 널브러졌다는 말이며, 성벽을 걸어 잠근 제나라 장수는 연나라의 공격을 받은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즉묵卽墨에서 성을 걸어 잠그고 농성籠城한 상황을 가리킨 것으로 적군에게 포위당하여 농성한다는 말이다. 이는 모두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혀 병사들이 죽고 포위된 상황을 말한 것이다.
- 99)어문魚門에……통탄하였다 :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에게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이 구절은 북주 유신의 「애강남부」와 「주대장군의흥공소공묘지명周大將軍義興公蕭公墓志銘」에 나오는 표현을 반반씩 섞어 사용하였다. 어문은 춘추春秋 시대 주邾나라의 성문이다. 노魯나라 희공僖公이 주나라와 싸우다가 패전하여 투구를 떨어뜨렸는데 주나라 사람들이 그 투구를 성문에 매달았다는 것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 22년에 보인다. 마굴은 진秦나라가 쌓은 만리장성 아래에 있던 샘이 솟아나는 굴이다. 투구가 떨어지고 병사들이 굴을 메운다는 것은 곧 패전을 의미한다. 땅굴을 파고 운제를 성벽에 대어 공격하는 것은 적군들의 공세를 말한 것이다.
- 100)천사闡士 : 승려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 101)형강荆江의……올렸다 : 형강은 남쪽 지방을 뜻하는데, 우리나라 금강錦江의 이칭이 형강이기도 하다. ‘원경圓鏡’은 ‘대원경大圓鏡’의 준말로 곧 진여眞如인 부처님 마음을 뜻한다. 공락은 낙양 일대 지역을 뜻한다. 곧 사대부와 왕족들이 갑사가 전란에도 무사함을 보고 공경한 마음을 가졌다는 뜻인 듯하다.
- 102)무생無生으로……걸쇠로다 : 불법과 선禪이 단단하고 완정하게 보존되었다는 말인데 갑사에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을 보관하는 보장각이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듯하다.
- 103)삼현三賢의……것이다 : 자세한 전거는 미상이나 갑사의 법당들이 시왕과 천불의 보호로 건재함을 말한 것인 듯하다.
- 104)서쪽……솟았다 : 아마도 갑사를 둘러싼 풍광을 말한 듯한데 자세한 뜻은 미상이다. 시라는 계율을 뜻하는 말이다.
- 105)법운法雲이……않았다 : 자세한 전거와 의미는 미상이다. 삼명은 부처나 아라한이 업보와 윤회와 번뇌를 정확히 알고 벗어나는 3가지 지혜를 뜻한다.
- 106)다만……어그러졌다 : 장간은 그 뜻이 미상이다. 학림은 사찰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문맥상 절은 병란 속에도 보존되었지만 절의 사적 등을 담은 기록물은 모두 사라지고 이지러졌다는 말인 듯하다.
- 107)산중에서……흩어졌다 : ‘위기’와 ‘금전’은 미상이다. 이 역시 사찰에 있던 다양한 문헌의 일종일 듯하다. ‘의발衣鉢’은 삼의일발三衣一鉢로 살아가는 승려를 뜻하는 말이다. 이 구절의 뜻 역시 앞의 구절과 마찬가지로 사찰의 문서들이 포대에 담겨 도둑을 맞고 승려들이 흩어지면서 따라서 사라졌다는 말인 듯하다.
- 108)평구平丘의……끊어졌다 : 평구나 곡지는 어떤 전거가 있어 고유지명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우선 원문 그대로 썼다. 전거는 미상이나 문맥상 사찰의 문건이 다 사라져 사찰 소유의 토지나 노비를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는 뜻일 듯하다.
- 109)밭두둑을……되었다 : 증빙할 사찰 문건이 사라져 사찰 소유의 토지와 노비들이 백성들과 세력가들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일 듯하다.
- 110)두타장로頭陀丈老는……한탄하였다 : 두타장로와 극락사미의 칭호는 미상이나 특정인물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두타행을 하는 장로와 극락을 추구하는 사미라는 뜻으로 짐작된다. ‘장노丈老’는 방장노인이란 뜻이다. 문맥상 앞서의 부당한 상황에 대해 절의 승려들이 관아에 바로잡아줄 것을 호소했다는 의미일 듯하다.
- 111)관찰사觀察使……숙구叔久이다 : 강백년姜柏年(1603~1681)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 호는 설봉雪峯ㆍ한계閑溪ㆍ청월헌聽月軒,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동부승지, 충청도 관찰사, 이조 참판,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설봉집雪峯集』 등이 있다.
- 112)세상을……잡았다 : 관찰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때 범방范滂이 어지러운 기주冀州의 정정政情을 안찰하라는 명을 받고 출발할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손에 쥐고서는 천하를 정화시킬 뜻을 개연히 품었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라고 한 고사가 있다.『후한서後漢書』 권67 「범방열전范滂列傳」
- 113)빛이……못한다 : 강백년이 관찰사 겸 순찰사로 부임하여 밝은 정사를 펼쳤다는 말이다. 옥루와 금성은 모두 감영監營과 순영巡營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 상경은 명경明鏡과 같은 말로, 밝게 감찰하고 청렴한 관리를 비유하는 말이다. 빙호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정신을 비유하는 말이다. 강백년의 밝은 감식안 앞에서 부정한 일이나 잘못을 숨길 수 없다는 말이다.
- 114)교화가……잡았다 : 강백년이 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재상감이 될 만한 자질을 보여주었고, 겸손한 도로써 덕 있는 스승에게 예를 표했다는 말이다. 문맥상 이때의 덕 있는 스승은 스님을 가리킬 수도 있을 듯하다. 공자가 죽은 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자하를 스승으로 섬겨서 자하가 오면 빗자루를 들고 앞섰다고 한다.『진서晉書』 권49 「완적전阮籍傳」
- 115)수괴水恠의……신원伸冤되었다 : 이 구절은 당나라 왕발의 「익주부자묘비益州夫子廟碑」에 “하늘의 현묘한 뜻이 사물에 응하니 수괴의 재앙이 어느새 사라지고, 단필로 억울함을 신원하니 아래로 산정의 송사가 끊어졌다.[玄機應物 潛消水怪之災 丹筆申冤 俯絕山精之訟]”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수괴의 재앙이 사라졌다는 것은 진秦나라 때 이빙李氷이 촉군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돌로 물소 다섯 마리를 세워서 물의 정령을 진압하여 수해를 막았다는 고사를 말한 것이다. 단필은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죄인의 죄상을 기록하는 붓인데, 후한後漢 때 성길盛吉은 마음이 어질어 죄수의 죄안을 판단할 때 부인이 곁에서 촛불을 밝혀주었는데, 두 사람 모두 죄수를 가엾게 여기며 단필을 쥐고 눈물을 흘리며 마주 보았다고 하는 고사를 말한 것이다. 산정의 송사는 미상이다. 왕발의 글에 주석을 단 청淸나라 장청익蔣淸翊 역시 미상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강백년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재해가 사라지고 옥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뜻이다.
- 116)목사牧使……호중浩仲이다 : 신속申洬(1600~1661)은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二知이다. 공주목사公州牧使, 청주목사淸州牧使 등을 지냈다. 저서에 『농가집성農家集成』이 있다.
- 117)명성이……준행하였다 : 이 구절은 당나라 왕발의 「익주 덕양현 선적사비」에 “절로 백리에 명성을 헤아리고 쌍천에 교화를 헤아렸다. 무성의 옛 일을 거두고 중모의 아름다운 법을 택하였다.[自裁聲百里 揆化雙川 收武城之故事 擇中牟之令典]”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곧 신속이 지방관으로 선정을 펼쳤다는 말이다. 중모의 아름다운 법이란 후한後漢 장제章帝 때 전국에 병충해가 들었으나 노공魯恭이 수령으로 있던 중모 지방은 그의 덕화로 인해 병충해가 들지 않았던 고사를 말한 것이다.『후한서後漢書』「노공열전魯恭列傳」 교화를 쌍천에서 헤아린다는 것은 진秦나라 때 이빙李氷이 촉군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비강郫江과 검강檢江 두 물줄기를 뚫어 지류가 촉군 아래를 지나게 하여 선박이 다닐 수 있도록 지혜로운 정사를 펼쳤던 일을 가리킨다.『화양국지華陽國志』 무성의 옛 일이란,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의 수령이 되어 예악禮樂으로 고을을 다스려 고을 사람들이 군자의 도를 알게 되었던 일을 가리킨다.『논어論語』「양화陽貨」
- 118)대나무……없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 “대나무 말이 약속을 기다리니 뛰어난 선비들이 죽마를 쪼개며 서로 이어지고, 갈대 지팡이에 인이 젖어드니 노인들이 수레바퀴를 붙잡으며 겨를이 없다.[筠驂佇信 髦士剖竹而相尋 葦杖霑仁 鮐叟攀輪而不暇]”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곧 지방관의 선정에 백성들이 감동하여 지방관을 맞이하고 전송할 때 모두 모여든다는 말이다. 후한 때 곽급郭伋 병주幷州에 있으면서 은혜로운 정사를 폈는데, 순시를 하다가 미직美稷에 도착하자, 어린아이 수백 명이 각자 죽마를 타고 길가에서 절을 하면서 맞이하였고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언제 다시 오느냐고 물었다. 곽급이 날짜를 알려주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약속한 날짜보다 하루 먼저 일찍 당도하게 되자 고을에 들어가지 않고 고을 밖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고 약속한 날짜에 들어갔다.『후한서』「곽급열전郭伋列傳」 허리띠를 떨치며 서로 이어졌다는 것은 돌아오는 곽급을 맞이하기 위해 아이들이 서로 연이어져 줄 서 있었다는 말이다. 띠풀 지팡이는 포편蒲鞭, 즉 부들 채찍과 같은 뜻이다. 후한 때 유관劉寬은 남양태수南陽太守로 있으면서 관리와 백성들이 혹 과실을 범하더라도 형벌 대신 하나도 아프지 않은 부들 채찍으로 매를 때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감화시켰다.『후한서』「유관열전劉寬列傳」 수레바퀴를 붙잡으며 겨를이 없었다는 것은 선정을 펼친 지방관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백성들이 길가에 나와 떠나는 수레를 붙잡으며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 119)전원田原을……끊어졌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 “용과 뱀을 밟을 만하니 야인은 삼태기를 멘 기쁨이 넘쳐나고, 닭과 개가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리니 성위는 북 두드리는 소리를 그쳤다.[龍蛇可踐 野人豐荷杖之驩 雞犬相聞 城尉輟鳴桴之響]”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지방관이 정사를 잘 하여 백성들이 즐거움을 누리고 도둑을 방비할 일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삼태기를 멘다는 것은 『논어』「미자微子」에 삼태기를 멘 장인에서 가져온 말로, 여기에서는 전원에 은거해 살면서 걸림 없는 즐거움을 누리는 백성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닭과 개의 울음소리가 서로 들린다는 것은 『노자老子』에서 인구가 조밀하게 형성되어 서로 이웃집의 닭과 개가 우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형용한 데서 가져온 말로, 이 역시 백성이 번성하여 평화롭게 지내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북 두드리는 소리가 끊어졌다는 것은 도적이 발생했을 때 관아에서 치는 북을 칠 일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 120)이에……되었다 : 일한과 구로 등은 모두 전거가 미상이다. 이 구절은 문맥상 앞에서 말한 강백년과 신속이 어질고 훌륭한 관원이므로 절에서 이들에게 문서를 보내고 이치를 따져 절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호소했다는 뜻일 듯하다.
- 121)조세안을……되었다 : 문맥상 관아에서 여러 문서와 관례를 조사하여 절의 상황을 개선해주었다는 뜻일 듯하다.
- 122)사시四時의……갚는다 : 문맥상 관아의 조치로 절의 일이 바로잡혔다는 의미일 듯하나 토적은 의미가 미상이라 우선 원문대로 두었다.
- 123)불이문不二門에……판가름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재주 통천현 혜보사비」에 “불이문에 마음을 머물러 홀연 초지의 방편을 일으키고, 대천 세계에 손을 뻗어 오히려 하늘에 가득 차는 구족을 끌어 안았다.[棲情不二 忽起初地之權 援手大千 猶擁彌天之具]”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초지의 방편을 일으킨다는 것은 희망悕望이 청정한 것을 뜻한다. 『상속해탈지바라밀요의경相續解脫地波羅密了義經』에 “희망이 청정함은 초지를 섭수한다.[悕望淸淨攝初地]”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아마도 상인들이 절의 정비를 위해 발원하고 불력佛力에 의지하여 구족하게 갖춤을 말한 듯하다.
- 124)공덕은……운용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재주 통천현 혜보사비」에 “삼명에 의지하여 홀로 운용하니 보시는 사시사철에 넉넉하고, 진제와 속제에 의거하여 함께 돌아가니 공덕은 아득한 옛날을 초월한다.[仗三明而獨運 施洽平分 據二諦而同歸 功超邃古]”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올바른 지혜를 가지고 보시물을 운용하고 승속이 함께 공덕을 쌓음을 말한 것이다.
- 125)현묘한……청하였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구성궁송」에 “비록 현묘한 기틀은 오묘하게 닫혀 이미 말을 잊은 경지에서 조짐마저 적막해지만, 덕을 노래하고 공을 진술하여 송축할 수 없는 것을 소리를 따르기를 청한다.[雖玄機妙鍵 已寂兆於忘言 而詠德陳功 請追聲於匪頌]”라고 한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현묘한 기틀을 오묘하게 닫는다는 것은 인위적인 개입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응하여 일을 잘 운용함을 뜻이니, 『도덕경道德經』에 “잘 닫는 사람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 수 없게 한다.[善閉 無關楗而不可開]”라는 말과 같은 문맥이다. 말을 잊는다는 것은 이미 뜻을 깨달아 언어가 필요 없다는 말이니, 『장자莊子』「외물外物」에 “말이란 그 목적이 뜻에 있는 것이니,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라고 한 말과 같은 문맥이다. 조짐이 적막하다는 것도 곧 실제로 모든 일이 구족되었으므로 불필요한 수식은 사라진다는 뜻일 듯하다. ‘송축할 수 없는 것을 소리로 따르기를 청한다.’는 것도 이미 다 실상이 이루어져 굳이 언어와 문자로 송축함이 없더라도 실제는 송축함이 된다는 뜻일 듯하다. 이 구절은 갑사의 스님들이 절을 정비하고 찾아와, 실상實相에서 보면 굳이 언어와 문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관찰사와 목사와 여러 스님들의 공로를 생각해 비문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인 듯하다.
- 126)성황城隍이……안다 : 성황은 성벽과 해자이다. 능곡은 세상이 크게 변함을 뜻하는 말이다. 자운은 한漢나라 때의 저명한 학자인 양웅揚雄의 자이다. 팽음은 미상이다. 이 구절은 자세한 전거와 의미는 미상이나, 문맥상 세상이 변천하고 시절이 흘러도 훌륭한 비문은 후세에도 전해진다는 뜻일 듯하다.
- 127)참되고……굳어진다 : 참된 진리는 언어와 문자가 필요 없는 것이기는 해도, 훌륭한 비문에 새겨짐으로써 후세에 불후하게 전해져 그 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 128)붕새가……맑도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건원전송」에서 ‘鵬霄上廓’과 ‘鼇紀下清’ 구절을 떼어 활용한 것이다.
- 129)검은……멈춘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광주廣州 보장엄사寶莊嚴寺 사리탑비舍利塔碑」에서 ‘黒風宵遁’과 ‘緑洺晨開’를 떼어 활용한 것이다.
- 130)만물과……있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涉器千名 含靈萬族”을 활용한 것이다.
- 131)이에……왔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乃睠中土 聿來迦衛”을 활용한 것이다. 가유라위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나라이다.
- 132)문득……하였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奄有大千 遂荒三界”를 활용한 것이다.
- 133)하늘이……바친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帝獻方石 天開淥池”를 활용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나무 아래에서 길에 버려진 옷을 빨려고 하자 제석이 그 뜻을 알고 산 위의 정사각형의 좋은 돌을 가져다가 연못가에 두고 석가모니에 그것으로 옷을 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석가모니가 발우를 가지고 가섭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려 하니 제석이 그 뜻을 알고 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그곳에서 물이 나와 연못이 펼쳐져 석가모니가 사용했다고 한다.『중본기경中本起經』
- 134)항성恒星이……되었다 : ‘항성이 밤에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은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중국에서 관찰된 서상이다. 『불조통기佛祖統紀』 제2권 「시강생示降生」 각주에 “『좌전左傳』에 ‘노魯 장공莊公 7년 갑오 4월 신묘, 한밤중에 항성이 사라지고 별똥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하였으니, 곧 주周 장왕莊王 10년에 있었던 일이다.”라고 하였다. ‘해가 잠들어 밤이 되었다.’는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중국에서 관찰된 서상이다. 『불정존승다라니경교적의기佛頂尊勝陀羅尼經教跡義記』 상권에 “주周 목왕穆王 52년 임신년 2월 15일 아침에 갑자기 검은 바람이 휘몰아치고 해가 정기를 잃더니 집이 들썩이고 나무가 꺾이면서 온 대지가 진동하였고, 지진이 그친 후에는 온 천하가 아주 캄캄해지더니 서쪽에서 열 두 가닥의 하얀 광명이 나타나 좌우를 관통하였다. 목왕이 태사 호다扈多에게 ‘이게 무슨 상서인가?’ 하고 묻자, 호다가 ‘서방에 큰 성인이 계시는데, 장차 멸도하려 하시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 135)복지福地에는……비춘다 : 당나라 양형楊炯의 「화유시랑입융당관和劉侍郎入隆唐觀」 시에 “福地隂陽合 仙都日月開”라고 한 구절을 활용한 것이다.
- 136)보배나무는……맑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祥河輟水 寶樹低枝”를 활용한 것이다. 보배나무는 석가모니가 잡았다는 가화수迦和樹이다. 앞서 제석이 만들어준 연못에서 석가모니가 목욕을 하고 나오려고 할 때 마땅히 잡고 나올 것이 없자 가화수가 저절로 가지를 구부려 석가모니에게 향했다고 한다.『불설중본기경佛說中本起經』 상서로운 강물은 이련하尼連河이다. 이련하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루기에 앞서 목욕했던 강 이름이다.
- 137)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주석하였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耆山廣遠 給園多士”를 활용한 것이다.
- 138)금속金粟은……이른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금속은 유마힐維摩詰을 뜻한다.
- 139)하늘의……보였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 140)아……드날렸도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於昭有齊 式揚洪烈”을 활용한 것이다.
- 141)법의……오르도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釋網更維 玄津重枻”을 활용한 것이다.
- 142)절은……있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 143)상수湘水와……여긴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溝池湘漢 堆阜衡霍”을 활용한 것이다.
- 144)감정은……뛰어났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氣茂三明 情超六入”을 활용한 것이다. 육입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에 들어가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확명은 무슨 말인지 뜻이 통하지 않는다. 「두타사비문」의 삼명은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을 아는 밝은 지혜를 뜻한다.
- 145)우전왕優塡王은……숨겼다 : 이 구절은 왕발의 「광주 보장엄사 사리탑비」의 ‘優填頓顙’과 ‘波匿投身’ 구절을 떼서 활용한 것이다. 우전왕은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최초로 불상을 만들어 봉헌한 왕이다. 파사닉왕이 석가모니에게 보시에 대해 물었을 때 석가모니가 명성이 있는 집안의 힘없는 이가 제대로 싸우지 못하면 상을 주지 않는 반면 명성이 없는 이가 용감하게 싸운다면 상을 주듯이 겉으로 보이는 명성이 아니라 실제적인 덕을 닦아 실제적인 보시를 해야 한다고 설해 준 일이 있다.『잡아함경雜阿含經』
- 146)단청을……듯하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 147)푸른……있다 : 이 구절은 왕발의 「재주梓州 현무현玄武縣 복회사비福會寺碑」의 ‘文璫寶綴’과 ‘翠栱丹楹’을 떼서 활용한 것이다.
- 148)소나무……따뜻하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앞뒤 순서만 바꾼 것이다.
- 149)부처의……간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 150)자비의……새긴다 : 이 구절은 「두타사비문」의 “勝幡西振 貞石南刊”을 활용한 것이다.
- 151)김윤환金閏煥 : 1870∼1936. 본관은 통천通川. 충남 보령 출생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내장원內藏院의 책임자인 종2품 내장원 경을 지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공주에 거주하며 자선사업 등 사회활동을 하였다.
- 152)거북의~어려우니 : 『수신기搜神記』에 “상商나라 주紂 임금 때에 큰 거북에게서 털이 나고 토끼가 뿔이 났으니, 이는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었다.[商紂之時, 大龜生毛, 兔生角, 兵甲將興之象也.]”라고 한데서 유래하여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이란 본디 전쟁의 징조를 말하는데, 전하여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 혹은 유명무실한 사물을 비유하기도 한다.
- 153)도문道聞 : 아래 화주질化主秩에는 道閒으로 되어 있는데, 고증하기 어려워 원문대로 놓아둔다.
- 154)유나維那 : 도유나都維那와 같은 말로, 절에서 재齋의 의식을 지휘하는 소임. 또는 그 소임을 맡아 하는 사람. 북위北魏 시대 설치한 승관僧官의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 155)도한道閒 : 앞의 중수기重修記에는 ‘도문道聞’으로 되어 있는데, 고증하기 어려워 원문대로 놓아둔다.
- 156)별좌別座 : 불사佛事가 있을 때에 불전佛前에 음식을 차리는 일. 또는 그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다.
- 157)지전持殿 : 불전의 향화香火와 불공佛供, 기도, 관리 등 불전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 158)삼강三綱 : 사원의 관리와 운영의 임무를 맡은 세 가지 승직. 승정, 승도, 율사를 이르거나 상좌, 사주寺主, 유나維那를 이른다.
- 159)여기에~관통한다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서설序說에 나오는 말이다.
- 160)부효傅孝 활공活公 : 아래 연화질緣化秩에 나오는 화주化主 부효傅孝 의활儀活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161)무주無住 : 梵語 aniketa의 번역어. 마음이 일정한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막힘 없는 작용을 잃지 않음을 말한다.
- 162)단나檀那 :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 163)권화勸化 : 불교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설득하여 불도에 들게 함.
- 164)개원사開元寺 : 개심사開心寺의 별칭이다. 654년(의자왕14) 혜감慧鑑이 창건하여 개원사라고 하였고 1350년(충숙왕2)에 처능處能이 중창하여 개심사라고 하였으나, 여전히 별칭으로 개원사라고도 부른다.
- 165)사신捨身 : 불사佛事 또는 불도의 수행을 위하여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버림.
- 166)개원사開元寺 : 개심사開心寺의 별칭이다. 654년(의자왕14) 혜감慧鑑이 창건하여 개원사라고 하였고 1350년(충숙왕2)에 처능處能이 중창하여 개심사라고 하였으나, 여전히 별칭으로 개원사라고도 부른다.
- 167)뜻이……이룬다 : 후한後漢 때 대장군 경감耿弇이 축아祝阿를 공격하여 성공을 거두자, 광무제光武帝가 그에게 이르기를 “장군이 앞서 남양南陽에 있을 때 이 큰 계책을 세운 데 대하여 나는 그대가 항상 다른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아 이루기 어려우라고 여겼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끝내 성취하는구려[有志者事竟成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 168)그 사람……무시한다 :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 169)보승여래寶勝如來 : 보승여래(寶勝如來) : 지장보살 본원경에서 지장보살의 서원을 찬탄하는 스물세분의 부처님 가운데 하나. 지장원찬地藏願讚 이십삼존二十三尊이라고 한다.
- 170)비신심悲新心 : 의미가 통하지 않아 오자가 있는 듯하다.
- 171)나羅 시대 : 오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172)숭정崇禎 9년 무진 : 숭정 9년은 간지가 병자丙子이고 이즈음의 무진년은 숭정 원년이어서, 전후에 오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173)화사化士 : 화주化主와 같은 말로, 인가에 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법연法緣을 맺게 하고, 시주를 받아 절의 양식을 대는 승려이다.
- 174)광종光宗 19년 기사己巳 : 광종 19년의 간지는 무진戊辰이며, 기사己巳는 광종 20년이다. 둘 중 하나는 오류이므로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 175)연산連山 : 충청남도 논산의 옛 지명이다.
- 176)자금紫金 : 적동赤銅. 구리에 약간의 금을 더한 합금. 녹청, 황산구리, 백반, 물 따위를 섞은 다음 끓이면 검은 보라색을 띠게 된다. 예로부터 불상, 장식품 따위의 금속 공예에 썼다.
- 177)가주嘉州 : 중국의 지명으로, 현재 사천성四川省 낙산樂山 지역이다.
- 178)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남쪽에 있다는 대륙으로 인간들이 사는 곳, 즉 현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 179)담무갈曇無竭 : 담무갈보살을 말한다. 담무갈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모가타(Dharmogata)’의 음역으로, 법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법성法性, 법용法勇, 또는 법상法尙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법기法起라고도 한다. 따라서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음역이다.
- 180)미혹의……띄웠으니 : 보벌寶筏은 보배로운 뗏목이나 배라는 뜻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여 고해苦海를 건너 피안彼岸에 이르는 불법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 〈춘일귀산기맹호연春日歸山寄孟浩然〉에 “황금 노끈은 깨달음의 길을 열고, 보벌은 미혹의 냇물을 건네주네.[金繩開覺路, 寶筏度迷川.]”라고 하였다.
- 181)위전位田 : 관아, 학교, 사원 등의 유지를 위하여 마련한 토지. 신라 때의 승위전僧位田, 고려 시대의 섬학전贍學田, 조선 시대의 공수전公須田 등이 있다.
- 182)구마라鳩摩羅 : 동자童子라는 뜻으로 대략 4세 이상부터 20세 이하의 소년과 청년을 가리킨다. 일반명사이므로 여기의 문맥에는 맞지 않으며, 고유명사인 구마라습鳩摩羅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천하지도와의 관련성은 미상이다.
- 183)무종武宗……갑자甲子 : 회창會昌 3년은 간지干支가 계해癸亥이고, 갑자甲子는 회창 4년이다. 이 아래 ≺광덕사廣德寺 사실비명事實碑銘≻에도 입적한 해가 갑자甲子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의 3년은 4년의 오류로 보인다.
- 184)삼산三山 :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관산읍冠山邑의 지명이다.
- 185)하나의……비쳐서 : 원만한 불성의 진리가 온 시방세계에 두루 비치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 186)병란 : 임진왜란을 가리킨다.
- 187)견복蠲復 : 견감蠲減과 복호復戶. 견감은 조세租稅의 일부를 감면시켜 주는 것이고, 복호는 군인이나 궁중의 노비 등 특정인에게 요역 이외의 부담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 188)성상 6년 기미 : 성상은 숙종肅宗을 가리키는데, 숙종 6년의 간지는 경신庚申이며, 기미己未는 숙종 5년이다. 둘 중의 하나는 착오여서 고증이 필요하다.
- 189)안명로安命老 : 1620~?.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덕수德叟이며,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봉상시정奉常寺正이 되었다가,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변방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 190)단전單傳 : 말이나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불법을 말하는 것으로, 선종禪宗의 전법傳法인 “문자와 언어를 쓰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여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된다.[不立文字, 見性成佛]”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 191)노가나路迦那 : 노가나타路迦那他를 줄인 표현으로 보인다. 석가의 별칭 중 하나이다.
- 192)순타純陀 :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리불舍利佛 존자의 친동생이며 시자이다.
- 193)개보介甫 : 송나라 문인 왕안석王安石의 자이다.
- 194)월도月都 : 문맥상 신라新羅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나, 의미가 통하지 않아 오자가 있는 듯하다.
- 195)조사祖師의 등불 : 불가에서 법맥을 이은 조사들이 서로 전해오는 불법을 가리키는데, 불법이 어둠을 깨뜨려주는 등불 같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 196)부처의 해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광명을 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197)승가리僧伽梨 : 설법을 하거나 걸식할 때에 입는 승려의 옷. 삼의三衣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이른다
- 198)백마白馬가……같고 :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일찍이 꿈에 1길 6자 되는 거구에 부처라 호칭하는 금신金神을 보고는 서역西域에 사자를 보내서 당시 서역의 고승이었던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을 통하여 불경 및 불상과 사리舍利를 구해서 백마에 싣고 돌아온 일을 가리킨다. 이것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시초이며, 백마에 불경을 싣고 왔다 하여 명제가 도성 문 밖에 정사精舍를 세워 가섭마등을 여기에서 거처하도록 하고 이 정사를 백마사白馬寺라 이름 지었으니, 이것이 또한 중국에 사원이 세워진 시초이기도 하다. 『洛陽伽藍記 白馬寺』
- 199)현도玄都 : 전설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신선이 사는 곳이다. 신선이 살 만한 아름다운 곳을 비유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 200)낭선군朗善君 : 이오李俣(1637~1693). 종실宗室로 선조宣祖의 손자이다. 7, 8세 때 이미 한묵翰墨에 뜻을 두어 각체各體의 명필이 되었으며 묵란墨蘭, 묵죽墨竹에도 능하였다.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어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를 편찬하였다.
- 201)승천체도열문영무承天體道烈文英武 : 세조世祖의 존호尊號이다.
- 202)육시六時 :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한 해를 여섯으로 나눈 기간으로. 점열, 성열, 우시, 무시, 점한, 성한이고, 또 하나는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 독경의 시간으로. 신조, 일중, 일몰, 초야, 중야, 후야이다.
- 203)기별記別 : 부처가 수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미래에 성불할 시기, 국토, 불명佛名, 수명 등을 낱낱이 구별하여 예언하는 일을 말한다.
- 204)한계희韓繼禧 : 1423~1482.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순子順이다. 좌승지, 우승지, 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예종 때 서평군西平君에 봉하여졌다. 조선 초기의 명문거족으로서 벼슬길에 가문의 배경이 큰 힘이 되기도 하였지만, 세종 때 집현전 장서각藏書閣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박람강기로 쌓은 학식이 큰 바탕이 되었다. 학식과 단정한 성품으로 주위로부터 추앙받았으며, 특히 서거정徐居正과 교분이 두터웠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 205)정난종鄭蘭宗 : 1433~1489.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국형國馨.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고 서예에도 뛰어났다.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 206)보제普濟 : 나옹懶翁 혜근惠勤의 법호法號이다.
- 207)도선道詵 : 827~898. 통일 신라 말기의 승려로 풍수지리설의 대가이다. 그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 208)조점鳥占ㆍ풍각風角 : 모두 고대의 점치는 술법이다. 조점은 새가 날면서 우는 소리를 가지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풍각은 오음五音으로 사방의 바람을 점쳐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 209)사복射覆 : 그릇 속에 물건을 숨겨 두고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유희로, 종종 점을 치는데 이용하기도 하였다.
- 210)단전單傳 : 글이나 말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줌. 또는 그런 일.
- 211)서원西原 : 청주淸州의 옛 이름으로, 후대에도 별칭으로 쓰인다.
- 212)순타純陀 :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리불舍利佛 존자의 친동생이며 시자이다.
- 213)황려黃驪 : 여주驪州의 옛 이름으로, 후대에도 별칭으로 쓰인다.
- 214)가락월嘉樂月 : 미상인데, 앞의 ≺광덕사廣德寺 사적기事蹟記≻에 의거하여 섣달(12월)로 판단된다.
- 215)무주無住 : 무엇에도 집착함이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 216)불사不斯를 이李로 삼아 : 의미가 통하지 않아 전후로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17)지둔支遁 : 동진東晋 때 고승으로, 자는 도림道林이다. 그는 일찍이 지형산支硎山에 들어가 수도하고 뒤에 낙양洛陽의 동안사東安寺에 거주했는데, 특히 당시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청담淸談을 잘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 218)도안道安 : 동진東晉의 고승이다. 그가 의탁했다는 전고는 미상이다. 효무제孝武帝 영강寧康 1년(373)에 양양襄陽에서 제일가는 단계사檀溪寺를 세우고, 다시 양주자사梁州刺史 양홍충洋弘忠으로부터 구리 1만 근을 시주 받아 장륙불상丈六佛像을 주조한 뒤에, 이제는 숙원을 이뤘으니 언제 죽어도 좋다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 219)하상발河上發 : 미상. 오탈자가 있는 듯하다.
- 220)깊이……같다 : 『사기史記』「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노자老子가 공자孔子에게, “내가 들으니,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이 감추어 놓고 없는 듯이 하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가지고도 용모를 바보처럼 보인다고 한다.[吾聞之, 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 容貌若愚.]”라고 하였다.
- 221)완호完護 : 나라에서 법률로 특수한 집단의 생명이나 생활의 안전을 유지하게 해 주던 일. 또는 그런 제도. 주로 야인野人이나 왜구, 또는 승려들에게 이 제도를 적용하였다.
- 222)건목乾目 : 미상.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23)교번敎繁 : 미상.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24)최승도인最勝道人 초월初月 동조東照 : 1878~1944. 일제 강점기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초월白初月이다. 최승도인은 백초월의 별칭이고, 초월은 법호法號, 동조는 법명法名이다. 속명은 백인영白寅榮, 아명은 백학명白學明, 족보상에는 백도수白道洙로 되어 있다.
- 225)연야달다演若達多 : 『능엄경楞嚴經』 4권에 나오는 이야기로, 실라벌성에 연야달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미목眉目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다가 머리를 돌리니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광기가 발동한 연야달다는 자기의 머리가 없어졌다고 머리를 찾아 거리를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다.
- 226)정법안장正法眼藏 : 올바른 법을 눈에 갈무리한다는 뜻에서, 진리의 형용으로 일반화된 말이다.
- 227)독거사禿居士 : 겉으로만 삭발한 승려의 모습일 뿐 계율을 어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 또는 생계를 위해 출가하여 삭발한 자를 비웃는 말.
- 228)학수鶴樹 :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사방에 한 쌍씩 서 있었던 사라쌍수沙羅雙樹를 말한다. 동쪽의 한 쌍은 상주常住와 무상無常을, 서쪽의 한 쌍은 진아眞我와 무아無我를, 남쪽의 한 쌍은 안락安樂과 무락無樂을, 북쪽의 한 쌍은 청정淸淨과 부정不淨을 상징한다.
- 229)삼상三相 : 계유정난 때 죽은 세 정승, 즉 삼상신三相臣인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정분鄭苯을 가리킨다.
- 230)길야은吉冶隱 : 고려 말 삼은三隱 중의 한 명인 길재吉再를 가리킨다.
- 231)포은圃隱 : 고려말 삼은 중의 한 명인 정몽주鄭夢周를 가리킨다.
- 232)유방택柳方澤 : 1320~1402. 본관은 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관리, 천문학자, 공신이다. 좌명공신佐命功臣에 녹훈錄勳되고 서산군瑞山君으로 봉해졌다.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취령산鷲嶺山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다 생을 마쳤다.
- 233)엄흥도嚴興道 : 본관은 영월寧越. 영월의 호장으로,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가 시해되자,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 지냈다. 그 절의를 인정받아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자손을 등용하게 하였다. 숙종 때 공조참의에 증직贈職되었고, 영조 때 정문旌門을 내렸다. 뒤에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 234)삼상三相 : 계유정난 때 죽은 세 정승, 즉 삼상신三相臣인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정분鄭苯을 가리킨다.
- 235)천하에는~있다 : 주희朱熹가 1199년 8월 하순에 진사석陳師錫이 올린 표문을 소재로 삼아 왕안석王安石의 학술 경향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朱子大全 卷70 讀兩陳諫議遺墨》
- 236)섬부주贍部洲 : 불교에서 말하는 사주四洲의 하나로, 수미산須彌山 남쪽에 있다는 대륙이다. 인간들이 사는 곳이며, 여러 부처가 나타나는 곳은 사주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237)접인接引 : 부처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중생을 인도하여 서방정토로 들어가게 하는 것.
- 238)소판蘇判 : 신라 때에 둔 십칠 관등 가운데 셋째 등급으로,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었다.
- 239)무림武林 : 문헌에 따라 ‘茂林’으로 표기된 곳도 많다.
- 240)삼학三學 : 청정하여 물들지 않는 것이 계戒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한 것이 정定이고, 선악善惡을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않고 자재를 얻는 것을 혜慧라고 한다.
- 241)구재 : 원문 표기대로 두었으나, ‘꿀재’의 오자인 듯하다.
- 242)용이龍耳 : 풍수지리에서 특별히 풍수가 좋은 장지葬地를 가리킨다. 곽박郭璞의 『금낭경錦囊經』에서 “용이에 장례 지내면 3년 안에 백의천자白衣天子가 문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 243)갈아서 살기殺氣를 쏜다 : 의미가 통하지 않아 전후로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44)사은四恩 :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받는 네 가지의 은혜, 즉 삼보三寶, 국왕, 부모, 중생의 은혜를 말한다. 또는 부모, 스승, 국왕, 시주의 은혜를 말하기도 한다. 앞의 것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갚아야 할 은혜이고, 뒤의 것은 승도僧徒들이 갚아야 할 은혜이다.
- 245)삼도三途 : 악인이 죽어서 가는 세 가지의 괴로운 세계로,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를 말한다.
- 246)즉위 2년 경인 : 여기서 2년은 즉위년부터 계산한 것이며, 경인년은 일반적인 계산으로는 효종 원년에 해당한다.
- 247)이태연李泰淵 : 1615~1669.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 248)지소紙所 : 고려와 조선 시대에, 지장紙匠이 모여 살며 나라에 공물로 바치는 종이를 만들던 구역.
- 249)이시방李時昉 : 1594~1660. 조선 중기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季明이다. 인조반정의 공신인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의 아들이자 이시백李時白의 아우이다. 인조반정 때 유생으로 아버지와 함께 가담해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으로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 250)이시백李時白 : 1581~1660. 조선 중기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돈시敦詩, 호는 조암釣巖으로, 이시방李時昉의 형이다. 연양부원군延陽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 251)정종대왕正宗大王 14년 기유 : 정종대왕은 正祖의 변경되기 전 묘호廟號이다. 기유년은 정조 13년인데, 여기서 14년이라고 한 것은 즉위년부터 계산한 것이다.
- 252)목정穆政 : 미상.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53)가순궁嘉順宮 : 정조正祖의 후궁이자 순조純祖와 숙선옹주叔善翁主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朴氏의 궁호宮號이다.
- 254)효의왕후孝懿王后 : 正祖의 정비正妃. 10세 때에 세손빈世孫嬪으로 책봉되어, 장헌세자의 비妃인 혜경궁 홍씨를 잘 섬겨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정조 즉위 후 왕비로 책봉되었다.
- 255)범선泛善이 𣵄과 같았으며 : 미상.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56)아이를……기롱 : 남조南朝 송宋의 명제明帝가 상궁사湘宮寺를 화려하게 세우고는 큰 공덕을 지었다고 자랑하자, 우원虞愿이 옆에 있다가 “폐하가 이 사원을 세운 것은 모두 백성들이 아이를 팔고 부인을 전당 잡힌 돈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부처가 만약 이런 사실을 안다면 응당 슬피 울며 애통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 죄가 탑보다도 더 높이 쌓였을 것인데, 무슨 공덕이 있다고 하겠습니까.[陛下起此寺, 皆是百姓賣兒貼婦錢, 佛若有知, 當悲哭哀愍, 罪高佛圖, 有何功德.]”라고 반박한 고사를 가리킨다. 『南齊書 卷53』「良政列傳 虞愿」.
- 257)양제궁良娣宮 : 양제는 조선시대 종이품從二品 내명부內命婦 세자궁의 내관內官에게 주던 품계이다. 세자의 부실副室이다.
- 258)수사首寺 : 미상. 전후로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59)흑의黑衣 : 치의緇衣와 같은 말로 승려를 뜻한다.
- 260)백족白足 : 세속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수도승修道僧을 말한다. 위魏나라의 승려 담시曇始는 발이 얼굴보다도 깨끗했는데 흙탕물을 걸어가도 발이 전혀 더러워지지 않아 백족화상白足和尙이라고 불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琅琊代醉篇 白足』.
- 261)전보奠保 : 미상.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62)내원奈園의 전공前功 : 내원은 내녀奈女(㮈女)의 동산이라는 말인데, 범어 āmra의 의역으로, 암몰라원菴沒羅園으로 음역된다. 내수㮈樹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내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하는데, 뒤에 마갈다국摩竭陀國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의 왕비가 되었으며, 양의良醫 기바耆婆를 낳았다고 한다. 그 동산은 중인도中印度 폐사리吠舍釐(Vaiśālī) 성 부근에 있었으며, 내녀가 불타에게 바치자 불타가 이곳에서 『유마경維摩經』을 설했다고 한다. 『出曜經 卷3』
- 263)단계檀溪의 숙원 : 사원을 중수하려는 소망을 말한다. 동진東晉의 고승 도안道安이 효무제孝武帝 영강寧康 1년(373)에 양양襄陽에서 제일가는 단계사檀溪寺를 세우고, 다시 양주자사梁州刺史 양홍충洋弘忠으로부터 구리 1만 근을 시주 받아 장륙불상丈六佛像을 주조한 뒤에, 이제는 숙원을 이뤘으니 언제 죽어도 좋다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高僧傳 卷5 釋道安傳』.
- 264)두민頭民 : 동네에서 나이가 많고 식견이 높은 사람. 원로.
- 265)모연募緣 : 승려가 시주에게 돈이나 물건을 기부하게 하여 좋은 인연을 맺게 함.
- 266)도광道光 22년 계묘 : 도광 22년은 임인년이다. 둘 중 하나는 오류이므로 고증이 필요하다.
- 267)화별化別 : 미상.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68)곤오昆吾의 일 : 지혜를 찾는 수행을 의미한다. 곤오는 칼이란 뜻으로, 원래는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산 이름이며, 적동赤銅이 많이 난다고 알려진 곳인데, 이 적동으로 칼을 만들면 단단한 옥도 마치 물렁한 흙을 베듯이 잘 든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지혜의 칼을 의미하며,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단절하여 부처의 혜명慧明을 증득하게 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을 가리킨다.
- 269)영미零米 : 세곡이나 환곡을 받을 때에 창번倉番과 고지기의 식량으로 얼마쯤 더 받는 곡식이다.
- 270)단연……것이다 : 의미가 통하지 않아 전후로 오자가 있는 듯하다.
- 271)원문은 문장이 성립되지 않아 전후로 오탈자가 있는 듯하다.
- 272)총합 5692평 : 상기 평수를 계산하면 도합 5592평이다. 착오가 있는 듯하다.
- 273)이 구절의 원문은 ‘人望遂聖道功’이다. 문리가 순하지 않고 뜻이 잘 통하지 않아 오탈이 있는 듯하여 억지로 번역하지 않았다.
- 274)원문은 ‘香火龍像之距’이다. 오탈이 있는 듯하여 억지로 번역하지 않았다.
- 275)우뚝하게……것 : 사찰이 폐사의 위기에 놓인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왕연수王延壽가 지은 「노영광전부서(魯靈光殿賦序)」에 “서경西京의 미앙궁未央宮과 건장궁建章宮 등 궁전이 모두 파괴되어 허물어졌는데도, 영광전만은 우뚝 홀로 서 있었다.”라는 글이 있다.
- 276)다섯……수레 : 한漢나라 때 지방 태수가 부임할 때는 다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탔으므로, 이후로 다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는 지방 수령이 되는 것을 상징했다.
- 277)그해……임명되었으니 : 『승정원일기』 고종 36년 기해(1899) 12월 16일에, 이 중수기를 쓴 김윤환金閏煥을 한산 군수에 임용하는 기사가 보인다.
- 278)원문은 ‘助塵刹之切’이다. 오탈이 있는 듯하여 억지로 번역하지 않았다.
- 279)위소危素 : 1303~1372. 원元나라 문신文臣이다. 임천臨川 사람으로 자字는 태박太樸이다. 공부시랑工部侍郎, 한림학사翰林學士, 국자감승 등을 역임하였다.
- 280)게굉揭汯 : 1304~1373. 원나라 문신이다. 용흥龍興 사람으로 자는 백방伯防이다. 태상박사太常博士, 형부시랑刑部侍郎, 비서랑 등을 역임하였다.
- 280)주백기周伯琦 : 1298~1369. 파양鄱陽 사람으로 자는 백온伯温이다. 원나라의 저명한 서예가이며 한림수찬翰林修撰, 숭문태감 등을 역임하였다.
- 282)국도성國都城의 선원보은선사禪源報恩禪寺 :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를 참고할 때 이때 도성은 원나라 도성인 대도大都를 가리킨다.
- 283)재차 기원紀元한 지원至元 : 지원이라는 연호는 본래 원나라 세조世祖 쿠빌라이 칸이 섰던 연호인데, 이때 와서 원나라 혜종惠宗이 다시 사용하였다.
- 284)각제覺帝 : 깨달은 자에 대한 존칭으로, 각황覺皇이나 법왕法王과 같은 뜻이다.
- 285)찐……하니 : 찐 대추가 있는 바다와 반도가 나는 산은 모두 동쪽을 뜻하는 바, 고려를 가리킨 것이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안평중安平仲에게 동해에 물이 붉고 열매를 맺지 않는 대추가 나는 곳이 있어 그 까닭을 물으니 안평중이 진秦나라 목공繆公이 옛날 누런 베에 찐 대추를 가지고 동해에 배를 띄우고 가서 빠뜨린 적이 있는데 누런 베의 색이 빠져 물이 붉고 찐 대추였으므로 대추가 열매를 맺지 않게 되었다고 답한 일이 있다.『晏子春秋 外篇』 또 동해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삼천리를 굽이굽이 뻗쳐있다고 하였다.《史記集解 卷1》
- 286)일동一同의 관장 : 사방 백리의 땅을 일동이라고 한다. 국사의 조부가 사방 백리의 땅을 관할하는 지방관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 287)세……이적異蹟 : 지방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상서로운 기적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중모 영中牟令 노공魯恭이 덕정德政을 베풀자 하남 윤河南尹 원안袁安이 그 소문을 듣고는 인서연仁恕掾 비친肥親으로 하여금 염탐해 보게 하였다. 그러자 해충이 고을을 침범하지 않고, 꿩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사람 곁에 내려앉고, 아이는 꿩이 새끼를 기르고 있음을 가엾게 여겨 꿩을 잡지 않는 기이한 일을 목격하였다.『後漢書 卷25 魯恭列傳』
- 288)화현花縣의 명문가 : 화현은 지방 수령으로 나가 고을을 다스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의 반악潘岳이 하양 영河陽令이 되었을 때 그 고을에 오얏과 복숭아 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하양은 온 고을이 꽃이다.〔河陽一縣花〕”라고 칭했다는 말에서 온 것이다. 『白氏六帖 卷21』 이는 조부 때부터 명성 있는 지방관의 집안이었다는 말인 듯하다.
- 289)난정蘭庭 : 난실蘭室과 같은 뜻으로, 어진 선비가 거처하는 집안을 뜻한다.
- 290)옛날……것 : 인도의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스님이 경전을 잘 외워 다른 사람은 한 달 30일이 걸려 외울 것을 하루 만에 다 기억하였다. 그러자 그 스승이 찬탄하며 “하루 동안의 배움이 서른 명과 맞먹는다.”라고 하였다. 불타발타라는 한어漢語로 각현覺賢이라고 한다.『緇門警訓』
- 291)용수보살龍樹菩薩이……하겠는가 : 법인대사가 『화엄경』에서 심인心印을 터득하여 더 이상 경전을 눈으로 보고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화엄경』은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가져와 세상에 전파하였다고 일컬어진다. 불화佛華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표현한 말로 여기에서는 『화엄경』을 가리킨 것이다.
- 292)해회海會 : 모든 물줄기가 바다로 흘러들 듯, 대중이 크게 운집하여 열리는 성대한 법석을 가리킨다.
- 293)문자問者 : 승과에서 시험 내용을 묻는 주재자가 되었거나 또는 법문을 거량하며 묻는 높은 위치에 올랐다는 뜻인 듯하다.
- 294)곰이 나타날 길몽 : 아들을 낳을 길몽을 뜻한다. 『시경詩經』「사간斯干」에 “태인이 꿈을 풀이하니, 곰이 꿈에 나타나면 아들을 낳을 조짐이고 뱀이 꿈에 나타나면 딸을 낳을 조짐이네.[大人占之 維熊維羆 男子之祥 有虺有蛇 女子之祥]”라고 하였다.
- 295)새끼……순산하기를 : 원문의 ‘羍’은 ‘達’과 같다. 『시경詩經』「생민生民」에 “아기 낳으실 달이 모두 차자, 첫아기를 새끼 양처럼 순산하였다.[誕彌厥月 先生如達]”라고 하였다.
- 296)일각日角 : 이마의 중앙이 해처럼 융기隆起한 골상骨相을 말하는데, 관상학觀相學에서 대귀大貴의 상으로 여겼다.
- 297)천안天顏 : 천자의 용안龍顏을 가졌다는 말이다.
- 298)학금鶴禁 : 태자가 거처하는 궁을 가리킨다.
- 299)대성왕大成王 : 고려 광종光宗이다. 대성은 광종의 시호이다.
- 300)초계草繫의 마음 : 철저히 계행戒行을 지켜 굳건히 수행한다는 말이다. 초계는 묶인 풀도 함부로 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 때에 비구들이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옷을 빼앗기고 풀에 묶이게 되었는데 비구들은 풀을 풀려고 움직이면 풀이 상할까 염려하여 모든 생명을 아끼겠다는 계를 지키기 위해 뜨거운 햇빛과 해로운 짐승들 속에서도 몸을 풀지 않고 그대로 묶여 있었다. 그때 국왕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이 모습을 보고 그 사연을 듣고는 감동하여 불법에 귀의하였다.『대장엄경론大莊嚴經論』
- 301)일억……아니어서 : 이는 『시경』「문왕文王」의 “상나라의 자손이 그 수가 일억 명일 뿐만이 아니었다.[商之孫子 其麗不億]”라는 표현을 가져온 것으로, 실제로 일억을 넘었다기보다 그만큼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 302)청태淸泰 : 중국 후당後唐 말제末帝의 연호로 934~936년에 사용되었다.
- 303)각현覺賢이 남긴 공렬功烈 : 각현은 인도의 승려인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를 한어漢語로 표기한 것이다. 『화엄경』의 최초 한문 번역은 바로 불타발타라에 의해 나온 것이다. 따라서 각현이 남긴 공렬이라는 것은 곧 각현이 번역한 『화엄경』을 뜻한다.
- 304)옥병玉柄을 휘둘러 : 옥병을 불자拂子의 손잡이를 뜻한다. 옥병을 휘두른다는 것은 고도 불자를 흔들면서 법담을 펼친다는 말이다.
- 305)『화엄경』 세 본 :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60권본,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본, 반야般若가 번역한 40권본을 가리킨다.
- 306)석가모니……다르겠는가 : 법인국사가 신랑으로부터 『화엄경』을 전수받은 것이 석가모니와 유마힐이 가섭과 문수보살에게 법을 전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 307)옛날……상商이로다 : 유동보살은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상商은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이다. 공자의 해당 언급은 『논어論語』「팔일八佾」에 보인다. 이는 제자의 수준이 스승을 일깨울 정도로 뛰어남을 칭찬하는 말이다.
- 308)경찬慶讚 : 깨달음을 얻은 자를 찬탄하는 것을 가리킨다.
- 309)보게寶偈 : 게송偈頌을 높여 부르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문맥상 『화엄경』을 가리킨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서문에 “한번 보게를 엿봄에 경사가 심령에 넘쳐난다.[一窺寶偈 慶溢心靈]”라고 하였다.
- 310)원문은 ‘▣▣賴之大▣薦君臨之多福’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11)십선十善 : 살생을 하지 않는 불살생不殺生, 도둑질을 하지 않는 불투도不偸盜,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불사음不邪淫,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 불망어不妄語, 이간질을 하지 않는 불양설不兩舌, 저주를 하지 않는 불악구不惡口, 무의미한 잡설을 지껄이지 않는 불기어不綺語, 탐욕을 없애는 무탐욕無貪慾, 분노를 없애는 무진에無瞋恚, 바른 견해인 정견正見이다.
- 312)삼귀三歸 :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이다.
- 313)승천僧泉이……움직이듯이 : 전거는 미상이다. 문맥상 승려가 설법하여 군주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뜻으로 보인다.
- 314)원문에 缺字가 있다.
- 315)원문은 ‘爲三▣▣▣▣▣▣地▣金之刹’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16)보천연석補天練石의 감실 : 사리를 보관하는 감실의 이름을 ‘보천연석’이라고 하였거나, 감실에 ‘보천연석’의 뜻을 담아 세웠다는 의미인 듯하다. ‘보천연석’은 돌을 연단하여 하늘을 메운다는 뜻으로 보통 큰 재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형세를 다시 굳건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옛날 중국 신화에 공공씨共工氏가 전욱顓頊과 싸우다가 화가 나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치받자 하늘 기둥이 부러지면서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쪽으로 꺼졌는데, 이에 여와씨女媧氏가 오색의 돌을 연단하여 터진 하늘을 메우고, 자라의 다리를 잘라서 땅의 사방 기둥을 받쳐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
- 317)인주仁舟를……생겼다고 :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서쪽 극락세계로 떠난다는 말이다.
- 318)원문은 ‘誧濟海▣▣▣▣▣▣’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19)봉력鳳曆이……빛났다 : 나라의 정치가 새로워지고 태평해졌다는 말이다. 봉력은 봉건 시대 때 정치를 펼치는 근간이 되는 역수曆數와 정삭正朔을 뜻하는 말이며, 홍도는 나라를 경영할 드넓은 계책을 가리킨다.
- 320)원문은 ‘乾▣▣▣▣▣丈內▣’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21)치소중사緇素重使 : 치緇는 검은색 옷을 입는 승려를 뜻하고 소素는 흰색 옷을 입는 선비를 뜻하며 중사重使는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신을 뜻한다. 곧 승직僧職에 있는 승려와 관직에 있는 일반 관리에게 대사를 맞이하는 중요한 책임을 부여한 사절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 322)마납가사磨衲架裟 : 마磨는 곧 자마紫磨로, 비단을 뜻하는데 승려들이 입는 비단 가사이다. 이는 고려의 특산품이기도 했다.
- 323)원문은 ‘像殿▣▣▣▣▣▣’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24)개사開士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한어漢語 의역 표기이다.
- 325)화성化城 : 『법화경法華經』에서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에 이르게 하기 위해 임시로 환술로서 만들어낸 성을 뜻하는데, 보통 중생을 교화하는 사찰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 326)계금가사罽錦袈裟 : 금실로 짠 가사이다.
- 327)조람組纜 : 불경을 뜻한다. 보통 인도어인 수트라sūtra를 음역하여 소다라蘇多羅, 소달람素呾纜 등으로 표기한다. 조組를 달呾의 오자로 볼 수도 있으나, 수트라를 의역하면 사물을 연결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는 밧줄의 뜻이므로 오자가 아닌 의역의 표기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 328)혼돈混沌의 근원 : 혼돈은 우주가 개벽하기 이전의 근원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여기에서는 도의 근원을 비유한 것이다.
- 329)공동崆峒의 청 : 도인에게 도를 묻고자 하는 청이다. 공동은 중국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 이름이다. 이곳에 광성자廣成子라 하는 신선이 살고 있었는데 황제黃帝가 광성자를 찾아 공동산으로 가서 도를 물었다 한다.『장자莊子』「재유在宥」
- 330)원문은 ‘尙以過沐▣▣▣’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31)용루龍樓 : 태자가 거처하는 곳, 즉 태자를 뜻한다. 한漢나라 태자궁의 누각 명칭이 동룡루銅龍樓인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 332)경행經行 : 일정한 장소를 계속해서 걸어다닌다는 뜻의 불교 용어이다. 보통 좌선하다가 피로를 풀기 위해 일정한 장소를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 333)삼보三寶 : 서산의 보원사지 발굴에서 ‘보원사삼보普願寺三寶’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키와가 발굴되었는데, 학계에서는 대체로 이를 삼보전이라는 전각의 명칭이나 불법승 삼보를 상징하는 법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334)사존司存 : 손님 접대를 담당한 스님을 가리킨 말이다.
- 335)인仁을……없습니다 : 광종이 대사를 국사로 받들려는 어진 일을 사양할 길이 없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에 “인을 당하여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다.[當仁不讓於師]”라고 하였다.
- 336)원문은 ‘爲師▣之▣’이다. 缺字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337)자리를 피하는 의례儀禮 : 상대를 경외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나는 행위를 뜻한다.
- 338)띠에……예 : 제자의 예를 행했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에 “자장(子張)이 공자의 가르침을 듣고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큰 띠에 써서 기록하였다.[書諸紳]”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 339)자라법의紫羅法衣 : 자주색 비단으로 만든 법의이다.
- 340)승가모僧伽帽 : 승려들이 쓰는 모자이다.
- 341)자결사혜紫結絲鞋 : 자주색 실로 만든 신발이다.
- 342)운명雲茗과 천향天香 : 각각 차와 향의 이름이다.
- 343)상겸霜縑 : 서리처럼 하얀 비단이다.
- 344)무곡霧穀 : 안개처럼 얇고 가벼운 비단이다.
- 345)승유僧維 : 승직僧職의 일종이다.
- 346)원보元輔 : 고려 초기 16관등제에서 여덟 번째에 해당하던 관직이다. 시기에 따라 등급의 차이는 있었다.
- 347)승전僧田 : 8복전福田 가운데 하나로, 사람이 승려를 공경하고 공양하여 얻는 복전을 말한다.
- 348)호석虎錫 : 승려의 석장錫杖을 가리킨다. 북제北齊의 승조僧稠와 수隋나라 때 담순曇詢이 모두 싸우고 있는 범을 석장으로 흩어버린 일이 있는데 이를 해호석解虎錫이라 한다.『속고승전續高僧傳』
- 349)머리카락을……것 : 석가모니의 전생 때에 연등불燃燈佛이 진흙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진흙땅에 자신의 머리를 펴서 깔았던 일이 있다.『오등회원五燈會元』
- 350)동군桐君 : 황제黃帝 때에 살았던 명의名醫의 이름이다.
- 351)태사대왕太師大王 : 광종을 가리킨다. 중국의 후주後周 세종世宗이 광종을 태사로 봉한 일이 있기 때문에 태사대왕이라고 한 것이다.
- 352)한漢나라……것이다 : 한나라 황제는 명제明帝이고 오나라 임금은 손권孫權이다. 마등과 승회는 모두 인도의 스님들이다. 이들이 불교를 전법하기 위해 중국에 왔을 때 명제와 손권이 모두 존숭하였다.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광종의 대우가 이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는 말이다.
- 353)산이……떨어지니 : 성지와 향정은 모두 법인국사가 머문 보원사를 높여 말한 것이고, 산과 달이 무너지고 떨어졌다는 것은 국사의 죽음을 천지자연이 함께 슬퍼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354)기위其萎의 탄식 : 철인哲人의 죽음을 슬퍼하는 탄식이다. 공자孔子가 자신이 죽을 꿈을 꾸고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죽게 되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다.『예기禮記』「단궁 상檀弓上」
- 355)안앙安仰의 슬픔 : 철인哲人의 죽음을 슬퍼하는 탄식이다. 공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자 자공子貢이 이를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가 장차 어디를 우러를 것인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라고 하였다.『예기禮記』「단궁 상檀弓上」
- 356)금지金地 : 황금이 깔린 땅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대사가 머물던 사찰을 가리킨다. 부처님이 코살라국의 사위성舍衛城 남쪽 동산에 절을 지으려고 하자, 동산의 주인인 기타태자祇陀太子가 땅에 황금을 깔면 그만큼 팔겠다고 하였는데, 이에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황금을 깔고 땅을 구입하여, 그 땅에 절을 지어 부처에게 바쳤다. 이 절이 최초의 사찰인 기원정사(祇園精舍)이다.『불국기佛國記』
- 357)상법像法을 따른 것이었다 : 상법은 정법正法 시대가 지난 후 1천년 동안 지속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도 교법敎法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믿음이 형식에 치우쳐 절과 탑을 세우는 데만 힘쓴다고 한다. 상법을 따랐다는 것은, 대사가 세상에 있거나 없거나 간에 올바른 법의 차원에서 보면 자유자재하게 대사의 법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세상이 쇠퇴하여 상법 시대가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믿고 따를 대상이 있게 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뜻이다.
- 358)금상今上 : 고려 5대 임금 경종景宗이다.
- 359)옥벽玉璧에……받들고 : 태자에 책봉되어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뜻이다. 초楚나라 공왕共王이 여러 왕자의 길흉을 점치기 위하여 종묘에 몰래 옥벽을 묻어놓고 왕자들을 시켜 절을 하게 했는데, 다른 왕자들은 모두 옥벽이 묻힌 자리를 비껴가고 오직 다섯째 왕자 기질棄疾은 구슬의 정면에서 절을 하니, 이는 왕위를 계승할 조짐이라 하였다.『春秋左氏傳』「소공昭公13년」
- 360)수명을……꾸고서 : 태자로 있을 때 장차 장수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아들인 무왕武王에게 어떤 꿈을 꾸었느냐고 묻자 무왕이 “꿈에서 상제上帝가 저에게 이빨 9개를 주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후에 무왕은 90여 세의 장수를 누렸다.『예기禮記』「문왕세자文王世子」
- 361)영취산靈鷲山의 현묘한 말씀 :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화엄경』을 가리킨다.
- 362)용궁龍宮의 깊은 종지 : 마찬가지로 『화엄경』을 가리킨다.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지고 왔다는 설화가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363)이에……허락하였다 : 이 구절의 원문은 ‘乃許勒本末石耀雲松門’이다. 문장의 뜻이 잘 통하지 않아 우선 원문의 글자대로 새겨두었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소장 탁본을 보면 이 부분의 글자에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대체적인 뜻은 비석을 세워 불문佛門을 빛낸다는 뜻인 듯하다.
- 364)채호彩毫로……생각하셔서 : 채호는 오색 붓이라는 뜻으로 훌륭한 문장 솜씨를 가리킨다. 남조南朝의 문학가 강엄江淹이 당대에 문명文名을 떨쳤는데, 만년에 꿈속에서 곽박郭璞이라고 자칭하는 이에게 다섯 가지 채색 붓을 돌려주고 난 뒤로는 재주가 크게 감퇴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남사南史』「강엄열전江淹列傳」. 제구 역시 절묘한 문장 솜씨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한단순邯鄲淳이 효녀 조아曹娥를 위해서 지은 이른바 조아비曹娥碑 뒷면에 후한의 채옹蔡邕이 ‘절묘호사絶妙好辭’, 즉 절묘하게 좋은 문장이라는 뜻으로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韲臼’라는 여덟 글자의 은어隱語를 써넣은 일이 있다. 황견黃絹은 ‘오색 실[色絲]’이니 ‘절絶’이 되고, 유부幼婦는 소녀小女이니 ‘묘妙’가 되고, 외손은 ‘딸의 자식[女子]’이니 ‘호好’가 되고, 제韲는 ‘매운[辛] 부추’이고 구臼는 ‘무엇을 받아들이는 물건[受]’이니 ‘사(辭)’의 약자인 ‘辤’가 된다.『세설신어世說新語』. 일을 배열하고 문사를 엮는다는 것은 특별히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법인국사의 탑문을 저술하는 일을 가리킨 것이다. 『예기禮記』「경해經解」에 “사적에 따라 문사를 엮고 사건을 차례로 배열하는 것은 춘추의 가르침이다.[屬辭比事 春秋敎也]”라고 하였다.
- 365)신의……양보하니 : 유부에 부끄럽다는 것은 절묘한 문장에 부끄럽다는 뜻으로 위의 주석의 ‘절묘호사絶妙好辭’의 은어隱語이다. 객아는 남조南朝 때에 문장가이자 다방면에 학식이 깊었던 사령운謝靈運의 어릴 때 이름이다.
- 366)공연히……없습니다 : 글솜씨가 부족하여 괜히 다른 사람의 문장이나 흉내내다가 글을 망칠 것이고, 달리 다른 곳에서 글솜씨를 빌려올 곳도 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천운天運」에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가슴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자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이를 보고 아름답게 여겨 자기도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가 하면 처자를 데리고 그 곁을 떠났다.”라고 하였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성공成公 2년」에, 제齊나라 고고高固가 진晉나라 군대에게 돌진하여 혼자서 휘젓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온 뒤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나의 남은 용기를 사 가라.[欲勇者 賈余餘勇]”라고 말한 기사가 있다.
- 367)돌이……것이다 : 자신의 모자란 글이 비석에 새겨져 부끄럽다는 말이다. 돌이 말을 한다는 것은 미천한 솜씨로 지은 글이 비석에 새겨져 비석이 불만을 표시한다는 뜻이다. 『설원說苑』「변물辨物」에,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말을 하는 돌에 대해 사광師曠에게 묻자 “돌은 말을 하지 못하니, 신령이 돌에 깃들어서 말을 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이 잘못 들었을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때에 맞지 않게 공역을 일으켜 백성들의 원망과 비방이 일어나면 말하지 않는 사물도 말을 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산이 빛나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비석에 적을 자신의 글이 훌륭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바위가 옥을 품으면 산이 빛난다.[石蘊玉而山輝]”라고 하였다. 거북이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비석을 이고 있는 귀부의 거북은 비석의 글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고, 시냇물이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비석의 글을 시냇물이 수치스러워한다는 말이다. 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숲의 부끄러움이 다하지 않고 시냇물의 부끄러움이 그치지 않는다.[林慚無盡 澗愧不歇]”라고 한 표현에서 가져온 말이다.
- 368)공연히 벌가伐柯에 부끄럽도다 : 벌가는 『시경詩經』「벌가」에 “도끼 자루를 베고 베나니, 그 법이 멀리 있지 않도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도끼 자루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낼 때 그 기준이 되는 도끼 자루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손에 쥔 도끼 자루에 있다는 말로, 보통 기준이 되는 법칙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곧 대사의 행적을 기술한 자신의 문장이 오히려 대사의 행적에 부끄럽다는 말이다.
- 369)내가……지었으니 : 훌륭한 재주는 못되지만 그저 자신의 능력이 닿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글을 지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변무騈拇」에 “남이 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 못하는 자[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 370)동쪽에서……비더라도 :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무수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는 말이다. 봉도는 동해 바다에 떠있다는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인 봉래산蓬萊山이다. 개성은 겨자씨를 가득 채운 성이라는 뜻으로 『잡아함경雜阿含經』 등에 실려 있는 개자겁芥子劫의 비유에 나오는 성이다. 둘레가 약 1유순由旬쯤 되는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놓고 장수천인長壽天人이 3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1겁이라 한다.
- 371)금선金僊 :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 372)진속眞俗 : 진眞은 출세간出世間의 도리이고 속俗은 세속의 도리이다.
- 373)복사꽃……나고 : 사람들이 법인국사의 덕을 앙모하여 자연스레 모여들었다는 말이다. 『사기史記』「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고 찾아와 그 아래에 자연히 길이 이루어진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하였다.
- 374)벼와……같으니 : 무수히 많은 중생을 제도했다는 말이다. 벼와 삼과 대와 갈대가 서로 엉킨 듯이 무수한 물건이 엉킨 모양을 도마죽위稻麻竹葦라고 한다.
- 375)빛을 감추니 :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나 무궁하여 다함이 없는 빛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고 아무리 떠내어도 마르지 않는데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나니, 이를 일컬어 내면에 감추어진 빛이라 한다.[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而不知其所由來 此之謂葆光]”라고 하였다.
- 376)두 기둥 : 대사의 죽음을 의미한다. 공자가 죽기 전에 두 기둥 사이에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예기禮記』「단궁 상檀弓上」
- 377)사라쌍수 : 대사의 죽음을 의미한다. 석가모니가 입멸할 때 사라쌍수 사이에서 입멸하였다.
- 378)성상……갑자년 :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승정원일기』 고종 23년 병술(1886) 3월 15일 기사에 “가감역관 이남수李南秀ㆍ김유일金裕鎰ㆍ이윤식李潤植, 이상은 이번에 통정대부를 초자하였는데, 조관朝官으로서 나이 80세이므로 법전에 따라 가자한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고, 고종의 즉위년이 1863년 계해년 12월인 점을 고려할 때, 고종이 즉위한 다음 해인 1864년 갑자년이 아닐까 추측한다.
- 379)불……연꽃 : 희유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고난 속에서 불사를 완성한 것을 칭찬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불도품佛道品」에 “불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것은, 매우 드물고 힘든 일이라네. 오욕 속에서 선을 닦는 것은, 매우 드물고 힘들기가 역시 마찬가지라네.[火中生蓮華, 是可謂希有, 在欲而行禪, 希有亦如是.]”라는 게송이 나온다.
- 380)생략된 부분의 원문은 ‘恩咸筆借尼相’이다. 뜻이 통하지 않아 억지로 번역하지 않았다. 또 ‘백암동’ 이하 운운한 부분은 정확히 어느 해인지 특정할 수 없는 병신년의 중창 기사를 다루고 있고 본 비문과는 한 줄이 띄어져 있다. 이 구문이 왜 들어갔는지는 미상이다.
- 381)숭정기원후……일 : 숭정기원후 120년은 1749년(영조25) 기사년이고, 기미년은 1739년(영조15)으로 숭정기원후 110년이다. 120년과 기미년 둘 중의 하나는 잘못 기록한 것이다.
- 382)한……불가사의하도다. : 상단권공上壇勸供에서 향을 올리며 부르는 게송이다. 부처님의 32상은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다며 그 용모를 찬탄한 것이다.
- 383)본국本國에 들어올 때 : 최치원은 884년에 당나라 회남을 떠나 885년에 3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 384)내공봉內供奉 : 대궐 내에서 국왕과 왕실을 위해 행차ㆍ건강ㆍ점복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당나라에서 받은 벼슬.
- 385)자금어대紫金魚袋 :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어있는 주머니. 공복公服의 띠에 매달아 관직의 귀천을 구분하였음. 최치원이 882년에 당나라에서 하사받음.
- 386)난리 : 황소黃巢의 난. 희종僖宗의 건부乾符 - 중화中和 연간(875∼884)에 일어났다. 당시 당나라에는 환관들의 횡포와 지방 번진의 세력이 늘어나고, 부상富商과 토호土豪는 땅을 모았으며, 부세賦稅와 소금ㆍ차의 독점 판매에 의한 수탈이 매우 심하였다. 이에 땅을 잃은 유민들과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던 소금 밀매 상인들은 도적이 되었다. 황소의 난은 난이 일어난 지 10년 만에 평정되었지만 이로 인해 당나라는 결국 멸망하였다.
- 387)문덕文德 : 당 희종僖宗의 연호인데 그해 3월에 죽고 이복동생인 소종이 즉위하였다.
- 388)함지咸池 : 해가 멱감는다는 하늘 위의 못. 해가 지는 곳, 서쪽바다.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
- 389)해가 함지咸池에 빠지는 시각 : 11월에 해질 무렵은 오후 4-5시 신시申時.
- 390)양조국사兩朝國師 : 두 임금에 걸쳐 국사를 맡았다는 뜻.
- 391)시멸示滅 : 뇌와 육신이 함께 소멸된 평온한 상태를 보인다는 뜻으로, 석가나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 392)승좌繩座 : 승상繩床.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등받이 없이 걸상 비슷하게 만든 물건.
- 393)가사假肂 : 가빈假殯. 임시로 관을 안치함.
- 394)보살계菩薩戒 : 대승불교 수행자가 지키는 계율. 출가자 위주의 계율인 소승계의 반대어로서, 대승계라고도 불린다.
- 395)무주도독武州都督 : 무주는 신라 구주九州의 하나. 15군郡과 43현縣을 관할했음. 지금의 광주시와 광산군. 도독은 각 주의 최고 벼슬.
- 396)소판蘇判 : 진골眞骨만이 받을 수 있는 관등으로, 공복公服의 빛깔은 자색紫色이었다.
- 397)집사 시랑執事侍郎 : 집사부는 최고 행정관서. 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직. 시랑에 임명된 자는 대개 진골과 6두품 출신이었다.
- 398)패강 도호浿江都護 : 패강浿江은 예성강 혹은 대동강 유역. 도호는 변경邊境의 위무慰撫나 정벌의 일을 맡아보던 벼슬.
- 399)전주 별가全州別駕 : 전주의 벼슬. 별가는 도독 밑의 차관직.
- 400)유성維城 : 본래는 왕위를 이을 적자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왕손의 뜻으로 해석된다. 『시경』「판板」의 “종자는 나라의 성이다.(宗子維城)”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 401)입실入室 : 수행자가 친히 스승의 지도를 받기 위해 그의 방에 들어감. 종지를 이은 제자가 된다는 뜻이다.
- 402)소현昭玄 : 소현서昭玄署. 소현정서昭玄精署라고도 함. 승려를 총괄하는 곳. 『수서隋書』「백관지百官志」.
- 403)사천왕사四千王寺 : 경주 낭산狼山의 동남쪽 기슭에 있던 절.
- 404)상좌上座 : 승려 직책. 삼강三剛의 하나.
- 405)재삼지의在三之義 : 군사부君師父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정성을 다하는 도리.
- 406)연식緣飾 : 본래는 겉치레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 407)이경二卿 : 차관인 시랑侍郞을 뜻함.
- 408)행인行人 : 조근朝覲ㆍ빙문聘問의 일을 맡은 관직.
- 409)기수琪樹 : 옥같이 아름다운 나무. 여기서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 410)요지瑤墀 : 옥같이 아름다운 대궐의 섬돌.
- 411)문고文考 : 망부의 존칭. 경문왕을 가리킴. 『서경』「강고康誥」의 “지금 백성들을 다스리려면 선친인 문왕의 언행을 공경히 따라야 한다.(今民將在祗遹乃文考)”에서 유래한 것이다.
- 412)남겨주지(憖遺) : 하늘이 국가를 위해서 원로를 이 세상에 남겨 두지 않고 일찍 데려갔다는 말이다. 『시경』「시월지교十月之交」의 “원로 한 분을 아껴 남겨 두어서, 우리 임금을 지키게 하지 않는구나.(不憖遺一老, 俾守我王.)”에서 유래한 것이다.
- 413)사염絲染 : 흰 실을 물들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최치원이 당나라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묵자墨子가 염색할 실을 보고서 “푸른 물에 염색하면 푸르게 되고 누런 물에 염색하면 누렇게 되니, 어디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색이 함께 변하는구나.(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 所入者變, 其色亦變.)”라고 탄식한 데서 유래했다. 『묵자墨子』「소염所染」.
- 414)헌강왕께서는……대우하셨으니 : 최치원이 28세 때 헌강왕 11년(885)에 귀국하여 ‘시독겸한림학사수병부랑지서서감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郎知瑞書監’에 임명되었다.
- 415)황공합니다. : 원문은 ‘主臣’. 『고운집孤雲集』에 “군주가 때리면 신하는 엎드리니 황공하다는 뜻이다.(主擊臣伏 惶恐之意)”라는 협주가 있다.
- 416)곡식에 쭉정이가 많음을 : 실력이 없음을 뜻하는 겸사. 『서경』「중훼지고仲虺之誥」의 “벼 싹에 가라지가 섞여 있는 것과 같았고, 벼 곡식에 쭉정이가 섞여 있는 것과 같았다.(若苗之有莠, 若粟之有秕.)”를 전용한 것이다.
- 417)계수나무에 남은 향기가 많으리라 : 아직 과거 급제한 실력이 있을 것이라는 뜻. 계수는 과거 급제를 비유하는데, 진 무제晉武帝 때 장원壯元을 한 극선郤詵이 소감을 묻는 무제의 질문에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옥돌 한 조각이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답변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진서晉書』 권52 「극선열전郤詵列傳」.
- 418)유위有爲 : 범어 saṃskṛta.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곧 모든 현상(諸相)이라 하며,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환화幻化라 하고, 스스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생멸무상生滅無常하다.
- 419)무위無爲 : 범어 asamskrta. 인연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절대의 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열반涅槃과 허공虛空이다. 실체이기 때문에 진여眞如라 하고, 스스로 존립하기 때문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 420)큰 행적 : 원문 ‘京行’은 『시경ㆍ소아』「거할車舝」의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길을 걸어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에서 나온 말이다.
- 421)짧은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을 긷는 :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을 뜻한다. 『장자』「지락至樂」의 “주머니가 작으면 큰 물건을 담을 수가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가 없다.(褚小者不可以懷大, 綆短者不可以汲深.)”를 인용한 것이다.
- 422)돌이 …… 있거나 :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뜻함. 진나라 위유 지방에서 돌이 말을 했다(石言于晉魏楡)는 소문이 나자, 사기궁虒祁宮을 화려하게 짓느라고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대변한 것이라고, 진나라 태사 사광師曠이 임금에게 해설했다는 이야기가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8년 기사에 나온다.
- 423)거북이가 …… 없다면 : ‘빗돌을 짊어진 거북이가 자꾸 돌아볼 만큼 자랑스러운 글이 되지 못한다면’이란 뜻이다. 또한 ‘희유한 징험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이란 뜻이다. 진晉나라 공유孔愉가 거북이를 돈 주고 사서 방생放生을 하자, 그 거북이가 고맙다는 뜻으로 물속에서 몇 차례나 왼쪽을 돌아보고 사라졌는데(龜中流左顧者數四), 공유가 나중에 여부정후餘不亭侯에 봉해져서 인장印章을 주조할 적에 그 인장의 거북이가 세 번이나 왼쪽을 돌아보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진서晉書』 권78 「공유열전孔愉列傳」.
- 424)산이 빛나고 강이 아름답게 :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지은 「문부文賦」에 “돌이 옥을 감추고 있으면 그 때문에 산이 빛나고, 물이 진주를 품고 있으면 강이 그 때문에 아름답게 된다.(石韞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라는 말이 나온다. 『문선文選』 권17.
- 425)숲이 부끄러워하고 시냇물이 창피하게 : 남조 제齊나라의 공치규孔稚珪가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숲은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시냇물은 한없이 창피해 한다.(林慙無盡, 澗愧不歇)”
- 426)황금방黄金牓 ; 문과 급제. 『고운집』 협주에 “문과 급제자를 알리는 방牓은 황금으로 꾸미고 무과 급제자를 알리는 방은 은으로 꾸몄다”고 하였다.
- 427)중연中涓 : 궁중에서 소제하는 것을 맡은 직책. 한나라 때 만석군이 중연이 되어 문서를 전달하고 알현을 주선하였다고, 『고운집』 협주에 전한다.
- 428)전각篆刻 : 전서篆書로 새긴다는 뜻인데 비문 찬술을 가리킨다.
- 429)상전像殿 : 불상을 봉안한 불전.
- 430)영당影堂 : 조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집.
- 431)한림랑翰林郎 : 외교문서를 담당한 한림대翰林臺의 관리.
- 432)김립지金立之 : 헌덕왕憲德王 17년(825)에 김흔金昕을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하였다. 855년에는 한림랑翰林郎으로 추성군 태수秋城郡太守에 있으면서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 보광탑 비문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文」을 지었다.
- 433)성주사 비聖住寺碑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지에 비편碑片이 잔존한다. 국보. 황수영,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 일지사, 1976, 86~91쪽.
- 434)붕새처럼……돌아온 : 당나라에 갔다가 신라에 돌아온 행적을 가리킨다. 대붕大鵬이 9만 리 창공 위로 올라가 남명南冥에서 북명北冥으로 날아간 이야기가 『장자』「소요유逍遙遊」에 나온다. 또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술을 닦은 뒤 천년 만에 한 마리 학이 되어 고향을 찾은 이야기가 『수신후기搜神後記』에 나온다.
- 435)헌강대왕獻康大王 : 신라의 제49대 왕(재위 875∼886). 성은 김金, 이름은 정晸이며 시호는 헌강憲康이다. 신라의 제48대 경문왕景文王(재위 861∼875)의 맏아들. ‘증 태부’는 당나라에서 추증한 벼슬을 뜻한다.
- 436)부유腐儒 : 썩은 선비라는 뜻인데, 유자가 겸칭으로 하는 말.
- 437)반열반般涅槃:범어 parinirvāna의 음역. 육신까지 소멸한 완전한 열반을 뜻한다.
- 438)솔도파窣堵婆 : 범어 stūpa의 음사. 탑. 주로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것에 붙이는 명칭인데, 여기서는 승탑僧塔 즉 부도를 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 439)스스로……하려고 : 『장자』「변무騈拇」의 “남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지 못하는 자(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 구절을 활용함.
- 440)비구(苾芻) : 범어 bhikṣu의 음사.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
- 441)글(虀臼) : 후한後漢 한단순邯鄲淳이 효녀 조아曹娥를 위해서 지은 이른바 「조아비曹娥碑」 뒷면에 후한後漢의 채옹蔡邕이 ‘절묘호사絶妙好辭’라는 뜻으로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齏臼’라는 여덟 글자의 은어隱語를 써넣었다. 황견은 오색 실(色絲)이니 ‘절絶’이 되고, 유부는 소녀小女이니 ‘묘妙’가 되고, 외손은 딸의 자식(女子)이니 ‘호好’가 되고, 제는 매운(辛) 부추이고 구臼는 받는 것(受)이니 ‘사辭’의 약자가 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첩어捷悟」.
- 442)후인(可畏) : 『논어』「자한子罕」의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할 것이다. 앞으로 후생들이 지금의 나보다 못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에서 나온 말.
- 443)자세히……마땅하다 : 진晉나라 두예杜預가 『춘추좌전』「서序」에서 저자인 좌구명左丘明의 글에 대해서 쓴 “必廣記而備言之, 其文緩, 其旨遠, 將令學者, 原始要終.”을 인용한 것이다.
- 444)서도西笑하는 이 : 원래는 서쪽의 장안長安을 향해 웃음 짓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서쪽 즉 중국을 사모하여 건너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후한後漢 환담桓譚의 『신론新論』「거폐祛蔽」에 “사람들이 장안의 음악을 들으면 문을 나서면서 서쪽을 향해 웃음 짓고, 고기 맛이 좋은 것을 알면 푸줏간을 대하고서 입맛을 크게 다신다.(人聞長安樂, 則出門西向而笑, 知肉味美, 則對屠門而大嚼.)”라는 관동 속담을 소개하는 말이 나온다.
- 445)광노狂奴의 버릇 : 꾸밈없는 태도를 가리킴. 한 광무제가 친구 엄자릉嚴子陵을 두고 한 말.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엄자릉에게 사도司徒 후패侯覇가 후자도侯子道를 보내 초청하였는데, 엄광이 후패를 매도하면서 간단히 대답하자 후자도가 보고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을 걱정하여 몇 마디만 더 해 달라고 요청하니, 엄광이 “채소를 사냐? 더 달라고 하게.(買菜乎, 求益也.)”라고 핀잔을 주었다. 후패가 이 사연을 적어서 광무제에게 보고하니, 광무제가 웃으면서 “미친 작자의 옛날 하던 버릇 그대로이다.(狂奴故態也)”라고 했다.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 『후한서後漢書』「일민전逸民傳」 ‘엄광嚴光’.
- 446)저는……사려 하십니까? : 글을 짧게 쓰려고 하는데 많은 것을 원한다는 뜻. 『고운집』 협주에 “새끼 꼬는 이는 이전보다 짧게 하고자 하고, 채소 사는 사람은 조금 더 구하려고 한다.”라고 하였다.
- 447)토한(兔翰, 붓) : 조식曹植의 「악부시樂府詩」, “먹은 푸른 솔 연기에서 나오고, 붓은 교활한 토끼의 털에서 나오네(墨出靑松煙, 筆出狡兔翰)”에서 유래.
- 448)장량張良 : 한 고조의 명신. 자는 자방字方, 시호는 문성文成. 한 고조를 섬겨 천하를 평정하고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 449)생몰(時順) : 태어나고 죽는 것으로, 사람의 일생을 말한다. 『장자』「양생주養生主」에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요,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니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픔과 기쁨이 들어올 수 없다.(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라고 하였다.
- 450)반사班史 : 후한 때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 451)산악이……내려서 : 『시경ㆍ대아大雅』「숭고崧高」에 “높은 산악이 하늘에 이르도다. 산악이 신령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백申伯을 낳았도다.(崧高惟嶽, 駿極于天. 惟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한 데서 온 말.
- 452)범왕梵王의 집 : 부처를 모신 집, 즉 사찰.
- 453)원각圓覺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달마達磨에게 당 대종唐代宗이 내린 시호. 달마로부터 혜가慧可, 승찬僧瓚, 도신道信, 홍인弘忍, 혜능慧能, 남악 회양南嶽懷讓, 마조 도일馬祖道一, 마곡 보철麻谷寶徹을 거쳐 무염에 이른다.
- 454)무열대왕武烈大王 : 신라의 제29대 왕. 재위: 654~661년. 성은 김씨. 이름은 춘추春秋.
- 455)문부文賦 : 당나라 육간지陸柬之의 글. 육기陸機 당 태종 ~ 고종조(626~683년) 경에 활약. 관직은 자사의랑子司議郞에 이름. 육원방陸元方의 백부 우세남虞世南의 조카에 해당한다. 서는 우세남에게 배웠고,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과 나란히 초당 4대가에 들어간다.
- 456)1명命에서 9명에 이르는 : 주周나라 때의 관원 임명의 차례. 자남子男의 대부大夫가 1명命이고 상공上公이 9명이다.
- 457)조 문왕趙文王의 자취 : 검술을 좋아했던 일을 말한다. 『장자』「설검說劍」에 “옛날 조 문왕이 검술을 좋아하였으므로 문하에 식객으로 있는 검사가 3천 명이 넘었다.(昔趙文王喜劍, 劍士夾門而客三千餘人.)”라는 말이 나온다.
- 458)꿈(魂交) : 『장자』「제물론齊物論」 “잠을 자니 혼백이 교류하고, 깨어나니 형체가 열린다.(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에서 나온 말.
- 459)얼마쯤 지났을 때 : 『고운집』 협주에 “3개월(三月)”이라 하였다.
- 460)법장法藏: 범어 Dharmākara.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 보살 때의 명칭이다. 아미타불은 본래 국왕으로서 발심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법장이라 하였다.
- 461)십호十護 : 『고운집』 협주에 “십계十戒”라 하였다. 십계는 속인이나 어린 사미沙彌ㆍ사미니沙彌尼가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 곧 중생을 죽이지 말 것, 도둑질 말 것, 음란한 짓 말 것, 거짓말 말 것, 술과 고기 먹지 말 것, 몸에 향유을 바르며 꾸미지 말 것, 노래와 춤을 말 것, 높은 평상에 앉지 말 것, 때가 아니면 밥을 먹지 말 것, 금은보배를 잡지 말 것의 열 가지를 말함.
- 462)공부(鼓篋) : 『예기』「학기學記」의 “학궁에 들어가면 북을 쳐서 (학생들을 모으고) 책 상자를 열어 책을 편다(入學鼓篋)”에서 나온 말.
- 463)세성歲星이 끝남에 : 12살을 가리킴.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9년의 “나이가 12세라면 이것을 일종이라고 이르니, 세성(목성木星)이 일주를 끝냈다는 것이다.(十二年矣. 是謂一終, 一星終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464)구류九流 : 선진先秦 시대의 9개 학술의 유파로,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묵가墨家,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의 학파를 말한다.
- 465)오색석사五色石寺 : 영주 부석사浮石寺. 『고운집』 협주에서 “오색 바위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 하였다.
- 466)입으로……맛보고 : 경전의 뜻을 잘 이해한다는 뜻으로, 신농씨神農氏가 온갖 풀의 맛을 보고 그 독성을 알아본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 467)힘으로……보수했다 : 여와씨女媧氏가 오색 바위를 다듬어 무너진 하늘을 보수했다는 신화를 가져와, 대사가 가공架空(허구) 설법하였다는 뜻을 비유하였다.
- 468)능가종楞伽宗 : 달마 대사가 중국에 와 세운 초기 선종.
- 469)빠른……말을 : 서진西晉의 장재張載가 촉군蜀郡 태수로 부임하는 부친 장수張收를 따라 촉으로 들어가서 「검각명劍閣銘」을 지었는데, 익주益州 자사 장민張敏이 이를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그 글을 위에 아뢰니, 세조世祖가 사신을 보내 그 글을 돌에 새기게 했다. 이와 관련하여 양梁나라 유협劉勰이 지은 『문심조룡文心雕龍』「명잠銘箴」에 “장재의 「검각명」을 보건대, 그 재능이 탁월하다. 빠른 발로 치달려서 뒤에 떠나 먼저 도착하였으니, 민한 지역에 그 명이 새겨진 것도 온당하다.(惟張載劍閣, 其才淸采, 迅足駸駸, 後發前至, 勒銘岷漢, 得其宜矣.)”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 470)그대에게……않으니 : 더 이상 가르칠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에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교전할 때, 제나라 고고高固가 진나라 진영을 유린하며 기세를 떨치고 돌아온 뒤에 “용기가 필요하면 나의 남은 용기를 사라.(欲勇者, 賈余餘勇)”고 소리쳤던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成公 2년.
- 471)밤중의……쉽고 : 망상妄想을 일으키기 쉽다는 뜻이다. 유식唯識 계통의 불교 종파에서 말하는 삼성三性 중 하나인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설명할 때 흔히 거론하는 사례의 하나이다. 한밤중에 길에 떨어진 노끈을 뱀으로 오인하는 것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있다고 인식하면서 집착하는 오류를 말한다.
- 472)허공의……어렵다. : ‘허공의 실’은 존재하지 않는 실이란 뜻으로 원래 대승의 공空 사상을 비판하며 쓴 표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미묘한 대승의 이치는 깨닫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였다. 구마라집이 대승을 배운 후에 자신의 옛 스승인 반두달다盤頭達多에게 대승大乘의 가르침을 전하자, 반두달마가 “길쌈을 하여 실을 매우 가늘게 만들었는데도 ‘거칠다(麤)’고 항의하는 광인狂人에게 허공을 가리키면서 ‘이 실은 너무도 가는 실이라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자, 광인이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하며 공 사상을 비판한 이야기가 『고승전高僧傳』 제2권 「구마라집전鳩摩羅什傳」에 나온다.
- 473)물고기는……아니다. : 물고기 부분은 『맹자』「양혜왕梁惠王」의 연목구어緣木求魚, 토끼 부분은 『한비자韓非子』「오두五蠹」의 수주대토守株待兎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 474)표하건나驃訶健拏 : 화엄華嚴. 『화엄경華嚴經』의 범어 표기는 mahāvaipulya-buddha-ganda-vyūhasūtra이다. 이를 한역漢譯에서 마하비불략발타건나표하수다라摩訶毘佛略勃陀健拏驃訶修多羅로 음역하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또는 대방광각자잡화엄식경大方廣覺者雜華嚴飾經으로 의역한다. 즉 ‘마하비불략摩訶毘佛略(mahāvaipulya)’은 대방광大方廣, 발타勃陀(buddha)는 불佛 또는 覺者. 건나建拏(ganda)는 화華 또는 잡화雜華, 표하驃訶(vyūha)는 엄嚴 또는 엄식嚴飾, 수다라修多羅(sūtra)는 경經으로 번역하였다. 이를 약칭하여 건나표하수다라 즉 화엄경華嚴經 또는 잡화엄식경雜華嚴飾經이라 한다. ‘건나표하’라고 해야 마땅한데, 찬자가 ‘건나’와 ‘표하’의 순서를 바꿔 표기하였다.
- 475)실력이……잃었다 : 재능이 스승을 능가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한 달에 걸쳐 외울 분량을 각현覺賢이 하루에 모두 외워 버리자, 그의 스승인 구바리鳩婆利가 “하루에 30명의 몫을 감당했다.(一日敵三十夫也)”라고 찬탄한 이야기가 『고승전高僧傳』 권2 「불타발타라전佛陀跋陀羅傳」에 보인다. 쪽풀과 꼭두서니가 본래 색을 잃었다는 말은, 쪽(藍)과 꼭두서니(茜)에서 나온 청색과 홍색이 쪽과 꼭두서니보다 더 진하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비유로 쓴 말이다. 『순자』「권학편勸學篇」.
- 476)요배坳盃의 비유 : 움푹 팬 마루에 담긴 한 잔의 물이라는 뜻. 『장자』「소요유逍遙遊」의 “물이 쌓인 것이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우기에 역부족이다. 한 잔의 물을 움푹 팬 마루 위에 부어 놓으면, 지푸라기야 배처럼 뜨겠지만 잔을 놓으면 달라붙을 것이다. 이는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477)서절瑞節 : 옥으로 만든 부절符節.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신표로 주는 것. 당나라 목종의 생일에 축하차 보내는 신라의 사신 행차를 가리킨다.
- 478)밤낮으로 : 원문은 ‘通星’인데 『고운집』 협주에 “주야를 통한다(晝夜通也)”라고 했다.
- 479)용의……있겠다. : 『장자』「열어구列禦寇」에 “천금의 구슬은 반드시 깊은 못 속에 숨어 사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는 법이다.(夫千金之珠, 必在九重之淵而驪龍頷下)”라는 말이 나온다.
- 480)내 마음이 돌이 아니거늘 : 마음이 돌과 같이 구르지 않고 결심이 굳은 것을 말한다. 『시경ㆍ패풍邶風』「백주柏舟」에 “내 마음이 돌이 아니니, 구를 수 없다네.(我心匪石, 不可轉也.)”라고 하였다.
- 481)장경長慶 : 당나라 목종穆宗의 연호. 821-824년.
- 482)조정사朝正使 : 제후가 정월에 천자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는 사신.
- 483)왕자王子 흔昕 : 김흔金昕(803~849). 당시의 조공사나 숙위학생 가운데 왕자로 지칭된 인물들이 반드시 왕자가 아닌 경우가 많았는데, 김흔도 이와 마찬가지로 왕자가 아닌 무열왕 9세손으로 김양金陽의 종부형從父兄이었다. 그는 장경長慶 2년(822)에 조공사로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귀국하여 남원태수南原泰守ㆍ강주대도독康州大都督 등을 역임하였고, 마침내 이찬이 되어 상국相國에 보임되었다. 『삼국사기』 권44 「김양전金陽傳」. 이기동, 「신라 하대의 왕위계승과 정치과정」, 앞의 책, p.159.
- 484)당은포唐恩浦 :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있던 포구.
- 485)지부산之罘山:산동성山東省 복산현福山縣 동북부에 있는 산. 지부산 또는 속칭俗稱 지부도芝罘島라고도 한다.
- 486)인사(土損) : 손을 조금 내려서 인사하는 방식. 『주례周禮』「추관秋官 사의司儀」 “왕이 남면하여 제후들을 볼 때 서성에게는 토읍을 하고, 이성에게는 시읍을 하고, 동성에게는 천읍을 한다. 주석에 ‘토읍은 손을 조금 내리는 것이고, 평읍은 손을 수평으로 하는 것이고, 천읍은 손을 조금 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南面見諸侯, 土揖庶姓, 時揖異姓, 天揖同姓. 註: 土揖, 推手少下也. 時揖, 平揖手也. 天揖, 推手少擧也.)”
- 487)지상사至相寺:섬서성 장안의 종남산에 있던 화엄종 사찰. 중국 화엄종 제2조인 지엄智儼(600~668년)이 이곳에 주석하였다.
- 488)검은 얼굴의 노인 : 원문 ‘䃜眼耆年’의 ‘예䃜’는 검은 색의 아름다운 돌이고, ‘기년耆年’은 60세 정도의 노인을 말한다. 『예기』「곡례曲禮」에 “60살을 기라고 한다.(六十曰耆)”고 했다.
- 489)붙잡고 말하기를(言提之) : 원문 ‘言提之’는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는 뜻이다. 『시경』 ≺억抑≻에 “손으로 잡아줄 뿐만 아니라 일을 보이며 말해 주고, 대면하여 명령할 뿐만 아니라 그 귀를 붙잡고 말해 주노라.(匪手攜之, 言示之事, 匪面命之, 言提其耳)”라는 말이 나온다.
- 490)멀리……하는 : 『주역』「계사전 하繫辭傳下」에 “가까이는 자신에게서 상象을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를 만들었다.(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始作八卦.)”라고 했다.
- 491)불광사佛光寺:낙양洛陽에 있던 사찰로, 『조당집』 권17에서는 불상사佛爽寺라 했다.
- 492)강서江西 : 강서 지방에서 돈오頓悟의 선풍禪風을 떨친 마조 도일馬祖道一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禪宗 남종南宗의 제7조祖 남악 회양南嶽懷讓의 제자.
- 493)여만은……친구였는데 : 여만은 마조 도일에게 인가를 받았다. 당 무종唐武宗 때에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있다가 치사致仕한 뒤에 향산으로 들어가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자호하고 여만 등과 함께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하고 만년을 보냈던 고사가 전한다. 『구당서舊唐書』 권166 「백거이열전白居易列傳」.
- 494)마곡 보철麻谷寶徹 : 마조 도일의 제자로 소주蕭州의 마곡사麻谷寺에 주석하였다. 『조당집』 권15.
- 495)유검루庾黔婁 : 남조 양梁의 효자이다. 부친이 병들자 자기 목숨을 대신 바치겠다고 기도했고, 병의 증세를 살피기 위해 부친의 대변을 맛보기도 하였다. 부친이 죽자 여묘살이를 하며 극진히 거상居喪하였다.
- 496)인끈이 닳도록 : 원문 ‘刓’은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에게 항우項羽를 평가한 이야기에 나온다. “항왕은 사람을 만나면 공경하고 자애로운 태도로 대하고, 말 역시 인정이 넘치게 하며, 누가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부하가 공을 세워 작위를 내려 봉해 주어야 할 경우에는 그 인끈이 닳아 없어지도록 손에 쥐고서 차마 주지 못하니, 이것이 이른바 부인의 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項王見人恭敬慈愛, 言語嘔嘔, 人有疾病, 涕泣分食飮, 至使人有功, 當封爵者, 印刓敝, 忍不能與, 此所謂婦人之仁也.)”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497)동쪽으로 흐른다는 말 : 불법이 동쪽으로 흐른다고 한 육조 혜능의 예언을 가리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혜능惠能」에 의하면 혜능은 입적하기 전에 두 가지 예언을 남겼다. 하나는 사후 5, 6년이 지나 ‘만滿’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자기의 두골을 훔쳐 가리라는 것과, 또 하나는 70년이 지나면 동방에서 두 보살이 와서 자기의 법통을 이을 것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예언은 김대비金大悲라는 도당유학생渡唐留學生이 722년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역사力士 장정만張淨滿에게 돈 2천 냥을 주고 조계사 육조탑에서 육조의 두골을 훔쳐내게 한 뒤 이를 가지고 신라로 돌아와 쌍계사의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에 안치함으로써 회자가 되고 있고(『조당집』 권18 「앙산仰山」), 두 번째 예언은 무염 화상과 범일 화상이 850년 경에 입당入唐하여 그의 법통을 이은 것을 가리킨다.
- 498)예언(鉤讖) : ‘구참鉤讖’이란 현기懸記, 참기讖記와 같은 뜻으로 장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을 일컫는다. 『고운집』 협주에 따르면, “옛 병기에 구鉤와 양鑲이 있는데 모두 칼의 종류로 끌어당기는 것을 ‘구’, 밀어 없애는 것을 ‘양’이라 한다. 미래 이야기를 끌어오므로 ‘구참’이라 한다.(古兵有鉤有鑲, 皆劒屬, 引來曰鉤, 推去曰鑲. 蓋引當來說, 故曰鉤讖.)”라고 하였다.
- 499)눈짓으로 말할 만한 : 이심전심할 수 있는 상대를 말한다.
- 500)묵건墨巾 : 상복을 가리킴.
- 501)분수汾水 : 산서성山西省에서 나와 황하黃河로 들어가는 강.
- 502)곽산崞山:산서성 곽현 서남에 있는 산.
- 503)황제가 명한 것이다 : 당 무종武宗이 도교의 도사道士 조귀진趙歸眞의 말을 듣고 당시의 국가 재정난이 불교 탓이라 여겨 폐불을 단행하였다. 이를 회창폐불會昌廢佛이라 한다. 이때 사찰 4만여 개를 파괴하고, 승려 26만 명을 환속시켰으며, 외국 승려는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렸다.
- 504)연성벽連城璧 : 전국 시대 진 소왕秦昭王이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15성과 바꾸자고 청한 화씨벽和氏璧으로, 나라의 진귀한 보배를 뜻한다. 조나라 인상여藺相如가 이 구슬을 가지고 진나라에 갔다가 성을 주겠다는 진나라의 약속이 미덥지 못하자, 다시 화씨벽을 온전히 보전해서 조나라로 돌아왔다. 『사기史記』 권81 「염파ㆍ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505)우담優曇의 출현 : 부처님의 출현을 뜻한다. ‘우담’은 우담발라화優曇跋羅華의 약칭. 『고운집』 협주에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에 염부제 안에 존귀한 나무가 있으니 이름이 우담바라이다. 금꽃이 피면 부처님이 세상이 나오신다고 했다.(『般泥涅經』云: 閻浮提內有尊樹, 名優曇鉢羅, 若生金花, 則有佛出世.)”는 내용이 있다.
- 506)의문掎門의 염려 : 어머니가 문에 기대어 아들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전국책戰國策』 권13 「제책齊策」에, “왕손가가 15세에 민왕을 섬기다가 왕이 달려 나갔는데 간 곳을 알지 못했다. 그 모친이 말하길, ‘네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때면 내가 집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내가 마을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 왕이 달려 나갔는데 네가 그 간 곳을 모르고 어찌 돌아왔느냐고 하였다.(王孫賈年十五事閔王, 王出走, 失王之處, 其母曰, 女朝出而晚來, 則吾倚門而望; 女暮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女今事王, 王出走, 女不知其處, 女尚何歸.)”라고 하였다.
- 507)벼슬을 그만두고 : 원문 ‘懸車’는 『한서』「설광덕전薛廣德傳」에 한나라 설광덕이 관직을 사퇴하고 은거한 이후 패沛에 돌아가 임금이 하사한 안거安車를 매달아 놓고, 자손에게 전하여 영광을 보인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 508)산중 재상 : 산중에 은거하면서 국정의 자문에 응하는 현사賢士. 남조 제齊의 고사高士 도홍경陶弘景이 고제高帝 때에 제왕시독諸王侍讀을 지내다가 관복을 벗어서 신무문神武門에 걸어 놓고 사직소를 남긴 뒤에 구용句容의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하였는데, 양 무제梁武帝가 즉위하여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자문을 구하였으므로 산중 재상이라고 일컬어졌다. 『남사南史』 권76 「은일열전 하隱逸列傳下 도홍경陶弘景」.
- 509)용수龍樹 을찬乙粲 : 용수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한다. 진지왕의 아들이자 무열왕 김춘추의 부친이다. 을찬은 이찬伊湌의 이칭. 용수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이찬을 맡았다.
- 510)스님은……됩니다. : 무염 화상이 용수의 10세손인 동시에, 용수보살의 후손이므로 내외에 다 용수의 후손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용수보살은 선종禪宗에서 제13조로 추앙되었다.
- 511)소상을……있으니 : 당나라 유운柳惲의 시에 “동정호에서 돌아온 손이 있어, 소상강에서 고인을 만나도다(洞庭有歸客, 瀟湘逢故人)”라고 하였으니 당은포唐恩浦에서 만났던 일을 말한다. 『고운집』 협주.
- 512)사원(金田) : 금전은 황금을 땅에 깐 지역이라는 뜻으로 사원을 가리킨다. 금지金地라고도 한다.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석가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하여 정사精舍를 세워 주려고 기타 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을 구매하려고 하였다. 이에 태자가 장난삼아서 “황금을 이 땅에 가득 깔면 팔겠다.”라고 하였는데, 수달 장자가 실제로 집에 있는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그 땅을 매도하는 한편 자기도 원중園中의 임목林木을 희사하여 마침내 최초의 불교 사원인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건립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6.
- 513)저(朽夫) : 원문 ‘후부朽夫’는 썩은 사람이라는 뜻의 겸칭이다.
- 514)대중大中 : 당 선종唐宣宗의 연호로 847년에서 859년까지이다.
- 515)문진問津 : 나루터를 묻는다는 말인데 진리의 길을 묻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논어論語』「미자편微子篇」에,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는데, 공자가 지나가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 하였다.(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라는 구절에서 나왔다.
- 516)종처럼……기다리고 : 『예기』「학기學記」에 “질문에 잘 대응하는 자는 종을 치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작게 두드리면 작게 울려 주고, 크게 두드리면 크게 울려 준다.(善待問者如撞鍾, 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라는 말이 나온다.
- 517)거울처럼……잊었다. : 동진東晉의 효무제孝武帝 때 사안謝安과 사석謝石이 『효경』을 강습하였는데 차윤車胤이 사씨謝氏에게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하면서 원교袁喬에게 “묻지 않으면 덕음德音에 손상되는 점이 있을 것이고, 많이 물으면 두 분 사씨를 귀찮게 할 것이다.”라고 하니, 원교가 “필시 그런 혐의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차윤이 “그런 줄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하니, 원교가 “밝은 거울이 자주 비춰 준다고 피곤해한 적이 있었던가? 맑은 강물이 온화한 바람을 마다한 적이 있었던가?(何嘗見明鏡疲於屢照, 淸流憚於惠風)”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언어言語」.
- 518)수교手教 : 임금이 손수 쓴 교서敎書. 훈공勳功을 봉할 때 공신에게 내려는 임금의 명령.
- 519)네 마디 말 : “인연이 있으면 머물겠습니다.(有緣則住)”를 가리킴.
- 520)성주聖住 : 성인이 머문다는 뜻.
- 521)대흥륜사大興輪寺 : 경주시 사정리沙正里에 있던 절. 544년(신라 진흥왕 5) 창건, 혹은 528년(법흥왕 15)에 개기開基하고, 534년(법흥왕 21)에 천경림天鏡林에서 벌목하여 공사했다고도 한다. 『고운집』 협주에 “흥륜사는 나라의 원당이니 노비와 전답이 성주사에 예속되었다(興輪,國之願堂,奴婢田畓,屬於聖住寺)”고 했다.
- 522)높은……하니 : 자격도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뜻의 겸사이다.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합주하게 하자, 남곽처사南郭處士가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피리 부는 흉내만 내면서 국록을 타 먹곤 하였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하게 하자 본색이 드러날까 겁낸 나머지 도망쳤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비자韓非子』「내저설 상內儲說上」.
- 523)바람을……새 :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뜻. 원거鶢鶋라는 바다 새가 바람을 피해 노魯나라 교외에 날아와 앉자, 임금이 그 새를 정중히 모셔다가 종묘宗廟에서 환영연을 베풀면서, 순舜 임금의 소악韶樂을 연주하고 소와 양ㆍ돼지고기로 대접하니, 그 새는 3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장자』「지락至樂」에 나온다.
- 524)안개에 숨은 표범 : 남산의 검은 표범은 안개비(霧雨)가 계속된 7일 동안 먹을 것이 없어도 그 속에 가만히 숨어 있을 뿐, 게걸스러운 멧돼지와는 달리 산 아래로 내려가서 먹을 것을 구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의 털 무늬를 아름답게 보전하기 위해서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열녀전列女傳』 권2 「현명전賢明傳ㆍ도답자처陶答子妻」.
- 525)헌안대왕憲安大王 : 신라 제47대 임금(857~860)으로 휘諱는 의정誼靖(또는 우정祐靖)이다. 숙부인 문성왕의 유조遺詔로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5년 만에 사위인 응렴膺廉(경문왕景文王)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병사病死하였다.
- 526)단월檀越 : 범어 dāna-pati의 음역. 시주施主. 여기서는 불교신자라는 뜻으로 쓰임.
- 527)서발한舒發韓:신라 17관등의 최상위 관등인 이벌찬伊伐飡의 다른 명칭. 주다酒多에서 유래되어 각우角于, 우벌찬于伐飡, 각찬角粲, 서벌감舒伐邯 등으로도 쓰인다.
- 528)위흔魏昕:김양金陽(808-857년)의 자字. 그는 무열왕 9세손. 흥덕왕 3년(828) 고성군固城郡 태수太守로 부임한 이래로 중원 대윤中原大尹, 무주 도독武州都督 등을 역임하였다. 대중大中 11년(857) 50세의 나이로 죽자 서발한舒發韓에 추증되었다. 『삼국사기』 권44 「김양전」.
- 529)남북상南北相 : 『고운집』 협주에, 좌상과 우상이라고 하였다.
- 530)제자의 예(攝齋禮) : ‘섭재례攝齋禮’는 공경의 예를 표하기 위하여 당에 오를 때 옷자락을 잡아 살짝 들어 올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논어』「향당鄕黨」
- 531)예족禮足 : 두면례족頭面禮足. 얼굴을 상대방 발에 대어 지극한 경의를 표하는 행위.
- 532)주풍周豊이……말이 : 노 애공魯哀公이 은사 주풍에게 유우씨有虞氏와 하후씨夏后氏가 백성에게 신임과 공경을 받은 이유를 묻자, 주풍이 “잡초 우거진 무덤 사이에서는 백성들에게 슬퍼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슬퍼하고, 사직과 종묘 근처에서는 백성들에게 공경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공경합니다. 은나라 사람이 맹서하는 글을 짓자 백성들이 배반하기 시작하였고, 주나라 사람이 회합하는 일을 행하자 백성들이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예의와 충신과 정성스럽고 진실한 마음이 없이 백성의 위에 군림한다면, 비록 굳게 약속한다 할지라도 백성들이 풀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墟墓之間, 未施哀於民而民哀, 社稷宗廟之中, 未施敬於民而民敬. 殷人作誓, 而民始畔, 周人作會, 而民始疑. 苟無禮義忠信誠慤之心以涖之, 雖固結之, 民其不解乎.)”라고 대답하였다. 『예기』「단궁檀弓」
- 533)태사太師로 추증된 선대왕先大王 :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년. 당 황제가 경문왕을 태사로 추증하였다.
- 534)곡두서鵠頭書 : 왕의 교서敎書. 천자天子의 조서詔書는 자니색지紫泥色紙로 봉封하여 단봉두丹鳳頭를 그린 다음 오색사五色絲로 묶고, 왕의 조서는 황니색지黃泥色紙로 봉하여 황곡두黃鵠頭를 그린 다음 채사綵絲로 묶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 535)백종伯宗 :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부로 진 경공晉景公을 섬겼다. 경공 14년에 양산梁山이 무너지는 변고가 발생했을 때, 백종이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는 현상이라고 위무하면서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춘추좌씨전』 성공成公 5년에 “양산이 무너지자 진나라 군주가 역마를 보내 백종을 급히 불렀다.(梁山崩, 晉侯以傳召伯宗)”라는 말이 있다.
- 536)원공遠公 : 진晉 나라의 고승 혜원慧遠.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머물면서 산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 537)부촉付囑하셨던 :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불법의 유통을 국왕과 대신들에게 부탁하셨다.
- 538)태제太弟 상국相國:경문왕의 아우로 재상을 지낸 김위홍金魏弘(?~888년).
- 539)유협劉勰:465~520년. 양나라 거현莒縣(산동성 일조시) 출신으로 자字는 언화彦和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집이 가난하여 사문沙門에 의지해 의식衣食을 해결하였고, 널리 경론에 통달하였다.
- 540)유有에……경지이다 : 『문심조룡』「논설論說」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서 인용한 것이다. 원문은 “滯有者, 全繫於形用; 貴無者, 專守於寂寥. 徒銳偏解, 莫詣正理. 動極神源, 其般若之絶境乎.”
- 541)심인心印 : 언어를 떠난 깨달음.
- 542)질문하도록……다했다. : 원문에서 질문하는 것을 종 치는(撞擊) 것에 비유하고 모두 답변하는 것을 ‘盡聲’이라 표현한 것은 『예기』「학기學記」에서 유래한다. “잘 배우는 자는 스승이 편안하면서도 공功이 배가 되고 또 따라서 그것을 스승의 공으로 여기는데, 잘 배우지 못하는 자는 스승이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절반이고 또 따라서 스승을 원망한다. 잘 묻는 자는 단단한 나무를 다루는 것과 같아서 그 쉬운 곳을 먼저 하고 그 나무 마디를 뒤에 해서 오래되면 서로 설명되어 이해되나, 잘 묻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이다. 물음에 잘 대응하는 자는 종을 치는 것과 같아서 작은 것으로써 칠 경우에는 작게 울려주고 큰 것으로써 칠 경우에는 크게 울려 주어, 여유롭기를 기다린 뒤에 그 소리를 다해 주나, 물음에 잘 대답하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로 한다. 이것은 모두 학문을 진전하는 방도이다(善學者, 師逸而功倍, 又從而庸之; 不善學者, 師勤而功半, 又從而怨之. 善問者如攻堅木, 先其易者, 後其節目, 及其久也, 相說以解. 不善問者反此. 善待問者如撞鐘, 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 待其從容, 然後盡其聲. 不善答問者反此, 此皆進學之道也.)”
- 543)몸을……남쪽을 향한 : 『논어』「위령공衛靈公」에 나오는 말로, 원래는 공자가 순舜 임금을 찬양한 말이지만, 여기서는 그저 임금 자리만 지키고 있다는 뜻의 겸사로 쓰였다.
- 544)남종南宗 : 선종禪宗 가운데 6조祖 혜능慧能 계열의 돈오頓悟를 위주로 하는 종파를 가리킨다. 북종北宗은 점수漸修를 위주로 하는 신수神秀 계열의 종파를 가리킨다.
- 545)가르쳐 주시니(司南) : ‘사남司南’은 나침반 또는 정확한 지도指導를 뜻한다.
- 546)순舜은……사람인가 : 『맹자』「등문공滕文公」에 나오는 안연顔淵의 말인데, 상대방을 공경하고 부러워하며 자신을 경책한 말이다.
- 547)의주衣珠 : 옷 속의 보주寶珠라는 말로, 불성을 뜻하는 말이다.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 “속옷 속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주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不覺內衣裏有無價寶珠)”라는 말이 나온다.
- 548)무옥廡玉 : 처마 아래에 놓인 옥돌이라는 말로, 타인의 보배를 뜻하는 말이다. 직경이 1자나 되는 옥돌을 얻은 농부가 불길한 괴석이라고 속이는 이웃집 사람의 말을 듣고 처마 아래에 놔두었다가 다시 발광하는 현상에 놀라 들판에 버린 것을 이웃집 사람이 몰래 왕에게 바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윤문자尹文子』「대도大道」에 나온다.
- 549)친서(芝檢) : 『고운집』 협주에, “『서명기瑞命記』에, 왕이 인덕이 있으면 지초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왕의 친서를 지검이라 한다.(瑞命記云, 王者德仁則芝艸生. 故王之手書, 謂芝檢.)”고 했다.
- 550)선나禪郍 : 범어 dhyāna의 음사. 정定ㆍ정려靜慮ㆍ사유수思惟修라 번역.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과 같음.
- 551)사찰(化城) : ‘화성化城’은 법화法華 칠유七喩의 하나. 사찰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여러 사람이 보배 있는 곳을 찾아가다가 길이 험악하여 사람들이 피로해 하자, 길잡이가 신통력으로 큰 성을 화현하여 여기가 보배 있는 곳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기뻐하며 성에서 쉬었다. 길잡이는 사람들의 피로가 풀리자 화성을 없애고 다시 참으로 보배 있는 곳에 이르게 하였다.
- 552)도리천忉利天 : 욕계 6천의 두 번째 하늘.
- 553)헌강대왕獻康大王이 익실翌室에 거하여 : 헌강왕이 부왕父王인 경문왕의 상을 당하여 정전正殿 대신 익실에 거하면서 상복을 입었다는 말이다. 익실은 정전 옆의 좌우에 있는 방이다.
- 554)계옥桂玉 : 땔나무와 식량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초책楚策」.
- 555)왕정王程 ; 임금을 위한 일로 나아가는 여정.
- 556)기상시騎常侍:임금을 시종하는 관명官名. 선전관宣傳官과 같은 직책.
- 557)건부제乾符帝가 석명錫命하던 해 : ‘건부제’는 당 희종僖宗, ‘석명’은 제후에게 국왕國王 등을 책봉冊封하는 것. 즉 희종이 헌강왕의 즉위를 승인하는 조서를 내린 해를 가리킴.
- 558)만전蠻牋 : 『고운집』 협주에 “남만에서 생산한 좋은 종이(南蠻所出美牋)”라고 했는데, 당나라 때 신라에서 생산한 종이를 지칭하기도 했다.
- 559)하상지何尙之가……심성心聲 : 남조 송 문제가 불경佛經을 받들어 태평 시대를 이루고 싶다면서 그 대책을 묻자, 시중侍中 하상지가 혜원 법사慧遠法師의 말을 인용한 뒤에 사람들에게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을 행하도록 하고 이를 나라의 정치에 확대 적용하면 감옥의 죄수가 없어지고 아송雅頌의 정치가 흥할 것이라고 대답한 말이 양나라 승우僧祐가 지은 『홍명집弘明集』 권11에 수록된 하상지의 「답송문황제찬양불교사答宋文皇帝讚揚佛敎事」에 나온다. ‘심성’은 말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권5 「문신問神」의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소리와 그림으로 나타나니, 군자인지 소인인지 알 수 있다.(言心聲也, 書心畫也. 聲畫形, 君子小人見矣.)”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 560)삼외三畏는……오계五戒 : 유교와 불교가 추구하는 목적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삼외’는 군자가 두려워하는 세 가지 일로,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을 두려워하는 것(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이다. ‘삼귀三歸’는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오상五常’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이다. ‘오계五戒’는 불살생不殺生ㆍ불투도不偸盜ㆍ불사음不邪淫ㆍ불망어不妄語ㆍ불음주不飮酒를 말한다.
- 561)중화中和의 서수西狩하던 해 : ‘중화’는 당 희종唐僖宗 때의 연호. ‘서수’는 서쪽으로 왕이 사냥을 나갔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희종이 황소黃巢의 난을 피해 서촉西蜀 성도成都로 피했던 일을 말한다.
- 562)나라에……옳은가 :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을 궤 속에 넣어서 보관해 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有美玉於斯, 韞櫝而藏諸, 求善賈而沽諸)” 하고 묻자, 공자가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라고 대답한 말이 『논어』「자한子罕」에 나온다.
- 563)12수레 : 전국 시대 양 혜왕梁惠王이 자신의 야광주를 자랑하며 “전후로 각각 12채의 수레를 비출 수 있는 구슬이 10개나 된다.(照車前後, 各十二乘者, 十枚)”라고 자랑한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권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564)문고文考 : 돌아가신 부친. 경문왕을 가리킴.
- 565)찬후酇侯는……함을 : ‘찬후’는 한나라 소하蕭何의 봉호封號. 소하가 유방劉邦에게 “왕께서는 평소에 거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계시는데, 지금 대장을 임명하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한신韓信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떠나간 것입니다.(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去也.)”라고 충고하였다.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566)상산商山의……못한 : ‘상산商山의 네 노인’은 진秦나라 말기에 전란을 피해 상산에 들어가서 은거했던 상산사호商山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을 가리킨다. 이들은 한 고조漢高祖가 초빙할 때에는 응하지 않다가 나중에 장량張良의 권유를 받고서 태자로 있던 혜제惠帝를 보필했다. 『사기史記』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
- 567)관수官守 : 천자를 좌우에서 모시는 신하들. 천자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 존칭 어법. 주周나라 양왕襄王이 난리를 피해 정鄭나라 시골 마을인 범氾에 머물면서 노魯나라에 그 사실을 알리자, 장문중臧文仲이 “천자께서 도성 밖의 땅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계시니, 어찌 감히 달려가서 관수에게 문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天子蒙塵于外, 敢不奔問官守)”라고 대답한 내용이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24년에 나온다.
- 568)하나를……업신여기겠는가. : ‘하나’는 벼슬(爵)이고, ‘둘’은 나이(齒)와 덕德이다. 왕이 나이와 덕망을 지닌 무염 화상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맹자』「공손추公孫丑」, “세상에서 누구나 존경해야 할 대상이 세 가지 있으니, 작위와 연치와 덕성이 그것이다. 조정에서는 작위만 한 것이 없고, 향리에서는 연치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의 어른 노릇을 하는 데에는 덕성만 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중 작위 하나를 가지고서 연치와 덕성의 둘을 지닌 사람을 업신여기겠는가(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惡得有其一以慢二哉)”.
- 569)외론……있어서겠는가? : 동진東晉의 도잠陶潛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아무 생각 없이 봉우리 위에서 나오고, 새는 날다 지치면 돌아올 줄을 안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구절에 근거한 표현이다.
- 570)고집하지 않는 것 : 공자절사孔子絶四 즉 무의無意(恣意가 없고), 무필無必(기필이 없고), 무고無固(고집이 없고), 무아無我(독존이 없다)의 하나. 『논어』「자한子罕」,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 571)상사上士 :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하는 보살을 가리킨다. 『석씨요람釋氏要覽』 권1에 “자리와 이타의 행이 없는 자를 하사라 하고, 자리는 있고 이타는 없는 자를 중사라 하고, 자리와 이타의 행이 있는 자를 상사라 한다.(無自利利他行者, 名下士; 有自利無利他者, 名中士; 有二利, 名上士.)”라고 했다.
- 572)삼례三禮 : 예경문을 외우며 불ㆍ법ㆍ승에 예경함.
- 573)작미로鵲尾爐 : 『고운집』에 “긴 손잡이가 있는 향로(香爐有長柄者)”라는 협주가 있다.
- 574)진로振鷺 : 해오라기가 떼로 나는 것으로, 조정의 현인을 말한다. 『시경ㆍ주송周頌』「진로振鷺」에 “떼 지어 백로가 날아, 서쪽 못으로 가도다.(振鷺于飛, 于彼西雝)”라고 하였다.
- 575)봉수鳳樹 : 『고운집』에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으니, 봉황 나무는 대사의 숙소를 가리킨다.(鳳非梧桐不棲, 鳳樹指大師留宿之所)”는 협주가 있다.
- 576)육의六義 : 시를 가리킴. 『시경』에 근거한 시론詩論으로 풍風, 아雅, 송頌, 부賦, 비比, 흥興이다. 『주례周禮』「춘관春官 종백宗伯」과 『모시毛詩』「대서大序」에서 비롯되었다.
- 577)장차掌次:왕실에 관계된 일을 맡아 하는 관청.
- 578)예전……되었습니다. : 증점曾點과 증삼曾參 부자父子가 공자의 제자였던 것처럼, 선왕先王인 경문왕과 헌강왕 자신도 똑같이 대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비파를 내려놓았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로 예의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공자가 비파를 연주하던 증점에게 포부를 묻자, 증점이 비파를 내려놓고 일어나서(舍瑟而作) 자신의 뜻을 말했다. 『논어論語』「선진先進」. ‘자리를 피한다.’ 역시 공손히 예의를 갖춘다는 뜻이다. 증점의 아들인 증삼에게 공자가 이르기를 “선왕先王들은 지덕至德과 요도要道가 있어서 천하를 순하게 다스렸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화목하여 상하가 서로 원망함이 없었다.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라고 하자, 증자가 자리를 피해 일어나면서(避席) “삼參이 불민하니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효경孝經』「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 579)계체繼體 : 조상의 대를 이음. 특히 제왕의 자리를 잇는다는 뜻으로 쓰임.
- 580)공동崆峒의 청을 얻었고 : 지인至人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선인仙人인 광성자廣成子가 공동산崆峒山의 석실石室에 은거하였는데, 황제黃帝가 재위在位 19년 만에 그를 찾아가 도를 묻고 수도 끝에 지도至道의 정수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장자』「재유在宥」에 나온다.
- 581)복응服膺 :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
- 582)위수渭水의 노옹 : 위수渭水에서 항상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보냈던 강태공姜太公을 말한다. 『사기』「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 583)다리 위 아이 : 한나라 장량張良을 가리킨다. 장량이 젊었을 때, 하비下邳(강소성江蘇省 북부에 위치한 비주邳州의 옛 이름) 땅의 다리 위에서 도사 황석공黃石公을 만나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전해 받고, 이 책을 익힘으로써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다. 『사기』「유후세가留侯世家」.
- 584)원대한……없는 : 『진서晉書』 권9 「태종간문제기太宗簡文帝紀」에 “회계 왕은 원대한 몸이 있으나 원대한 정신이 없다.(會稽有遠體而無遠神)”는 기록이 나온다.
- 585)공재……없는 : ‘공재’는 삼공三公이 될 만한 재능을 말하고, ‘공망’은 그 인망을 말한다. 진晉나라 승상 왕도王導가 우비虞𩦎에게 “공유는 공재는 있어도 공망이 없고, 정담은 공망은 있어도 공재가 없다. 둘을 겸비한 사람은 바로 그대이다.(孔愉有公才而無公望, 丁潭有公望而無公才, 兼之者, 其在卿乎.)”라고 했다. 『세설신어世說新語』「품조品藻」.
- 586)사신(輶軒) : ‘유헌輶軒’은 왕의 사자가 타는 수레를 가리킨다.
- 587)방생放生 구역 : 나라에서 유명 사찰 주위에 경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는 살생 즉 사냥 등을 금하는 게시판과 같은 표시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장생석표長生石標와도 같다.
- 588)글씨(銀鉤) :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서법書法을 논하면서 “멋지게 휘돈 것이 흡사 은 갈고리와 같다.(婉若銀鉤)”라고 초서草書를 평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진서晉書』 권60 「색정열전索靖列傳」.
- 589)창성한 시기가 홀연 끝났다 : 헌강왕의 승하를 가리킴.
- 590)정강대왕定康大王 : 헌강왕의 동생. 재위 886~887년.
- 591)양조兩朝 ; 신라 48대 경문왕과 49대 헌강왕을 가리킴.
- 592)태위太尉 대왕 : 정강왕을 가리킴. 『고운집』에 “(정강왕) 즉위 첫해에 황제가 명하여 태위를 하사하였다.(卽位之初, 帝命錫太尉)”는 협주가 있다.
- 593)죽과……먹었는데 : 계율에 따라 아침에는 죽, 점심에는 밥을 먹고 오후 불식으로 저녁은 먹지 않았다는 말이다.
- 594)중수中壽 : 80세. 『장자』「도척盜跖」에 “인생은 상수上壽가 100세요 중수中壽가 80세요 하수下壽가 60세이다.”라고 했다.
- 595)옛날 관리 : 한漢나라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을 가리킨다. 상국相國인 소하가 죽자 조참이 그 직책을 계승하여 소하의 법도를 그대로 준행하다가 3년 뒤에 죽었는데, 백성들이 이를 찬양하여 “소하의 법도는 바르기가 선을 그은 것 같았네. 조참이 그 뒤를 이어 이를 지켜서 잃지 않았네.(蕭何爲法, 顜若畫一, 曹參代之, 守而勿失.)”라고 했다. 『사기史記』 권54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596)몸가짐이……조심스러웠다. : 진晉나라의 현인賢人 조문자趙文子에 대해서 “몸가짐이 겸손하여 마치 옷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하였으며, 말은 어눌하여 마치 입으로 말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其中退然, 如不勝衣, 其言吶吶然, 如不出諸其口.)”라고 칭찬한 말이 『예기』「단궁檀弓」에 나온다.
- 597)누더기 옷 입은 이 : 성인을 가리킴. 『노자老子』 70장에 “성인은 누더기를 입고 있지만, 보배 구슬을 품고 있다.(聖人被褐懷玉)”라는 말이 나온다.
- 598)조사께서도 진흙을 이기셨는데 :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로 일컬어지는 가섭迦葉이 어느 날 진흙을 발로 밟아 이기고 있자, 한 사미沙彌가 보고는 왜 손수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서 해주겠느냐.(我若不爲, 誰爲我爲)”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 「일조마가가섭존자一祖摩訶迦葉尊者」
- 599)도량에 앉았다(坐道場) : 스승을 찾아 행각行脚하던 일을 끝내고 한 곳에 정착하여 교화를 편다는 뜻이다.
- 600)춘추(麟史) : ‘인사麟史’는 『춘추』가 애공哀公 14년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서 기린을 붙잡았다.(西狩獲麟)”라는 문장으로 끝나기 때문에 생긴 별칭이다.
- 601)공후……회복한다고 : 『춘추좌전』 민공閔公 원년 맨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이다.
- 602)정삭正朔 : 정월과 삭일朔日, 곧 정월 초하루. 왕조가 바뀔 때면 정삭을 달리 정했다. 하夏는 정삭이 음력 정월, 은殷은 12월, 주周는 11월, 진秦과 한漢은 10월이었다.
- 603)온탕溫湯과 진사晉祠의 비문 : 당 고조가 여산驪山 온천에 가서 세운 온탕비溫湯碑와 당태종이 정관貞觀 2년(628)에 산서성山西省 태원현太原縣에 있는 사당에 가서 세운 진사비晉祠碑의 비문을 말한다.
- 604)진서晋書 : 당 태종이 방현령房玄齡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역사서.
- 605)화자관華資官 : 『고운집』 협주에 “호빈관護賓官인 듯하다”고 하였다.
- 606)전송(祖道) : 고신씨高辛氏 황제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하다가 길에서 죽고 나서, 후인들인 여행을 떠날 때 제사를 지내면 다른 귀신들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한다.
- 607)우리……이르렀다. : 성군의 교화로 일신하였다는 뜻이다. 『논어』「옹야雍也」에 “제나라를 한번 변화시키면 노나라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노나라를 한번 변화시키면 도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고 했다.
- 608)그보다……것이다.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의중懿仲이 자기 딸을 진경중陳敬仲에게 출가시키려 할 때 점을 쳐서 얻은 괘卦 중에 “8세 뒤의 후손에 그보다 높은 이가 없을 것이다.(八世之後, 莫之與京)”라는 말이 나온다. 『사기史記』 권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609)마적 여섯 : 육근六根의 대상인 육경六境을 말한다. 경계에 미혹하면 마음의 보물을 빼앗기기 때문에 도적(賊)이라 칭한다.
- 610)천승千乘 군주 : 제후 즉 신라 왕을 가리킴. 주周나라 제도에 천자의 경우는 기내畿內의 사방 천리에서 전쟁을 할 때, 병거兵車 만승萬乘을 동원하고, 제후는 천승千乘을 동원하였다.
- 611)5백년에 응하여 : 5백 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올 시운時運에 맞추어 대사가 출현하였다는 말이다. 『맹자』「공손추 하公孫丑下」에 “5백 년마다 반드시 왕자가 나온다.(五百年必有王者興)”라는 말이 나오고, 「진심 하盡心下」에 요순堯舜과 탕湯과 문왕文王과 공자孔子 사이의 세월이 각각 5백여 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 612)문성후文成侯:장량張良. 자字는 자방子房이고, 문성은 시호이다.
- 613)한韓 나라 재상의 자손으로서 : 장량張良의 조상이 한韓나라에서 5대에 걸쳐 승상承相을 역임하였다.
- 614)도라……됨은 : 『노자老子』 1장에 “도라고 명명할 수 있는 도라면 항상 불변하는 도가 아니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이라면 항상 불변하는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는 말이 나온다.
- 615)그대로……같네. : ‘물 속의 달(水中月)’은 불교 경전에서 자주 사용하는 비유이다. 법신ㆍ진여ㆍ본질 등은 하늘의 달에 비유하고, 화신ㆍ만법ㆍ현상 등은 물에 비친 달에 비유한다.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제7권에 500마리의 원숭이가 우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손에 손을 잡고 우물 아래로 내려갔다가 붙잡은 나뭇가지가 꺾여 모두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616)보신報身 : 본래는 과보와 수행의 결과로 주어지는 불신佛身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스님의 잉태를 가리킴.
- 617)조각배를 고래 나루에 띄웠도다. : 『고운집』 협주에 “널빤지로 검산도劒山島에 이른 사실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 618)요임금의……관광하고 : ‘요임금의 해’는 요임금 때처럼 태평한 시절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태평한 당나라를 가리킨다. 관광은 『주역』「관괘觀卦 육사六四」의 “나라의 휘황한 빛을 봄이니, 왕에게 나아가 손님이 되는 것이 이롭다.(觀國之光, 利用賓于王)”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선진 문물을 접하여 견식을 넓힌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 619)큰……있었으니 : 『고운집』 협주에 “마곡보철麻谷寶徹 밑에서 수도하다가 그가 입적하자, 그곳을 떠나 유력하였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620)사태에 또 사태가 벌어져 : 회창會昌 연간에 당 무종이 불교를 탄압한 사태를 말한다.
- 621)신라 : 원문 ‘桃野’는 도도桃都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동쪽 지역을 가리킨다. 도도는 전설에 나오는 나무 이름이다. 『현중기玄中記』에 의하면 “동남쪽에 도도산이 있고 그 위에 큰 나무가 있어 도도라 이름하는데, 가지 사이의 거리가 삼천 리나 되고, 그 위에는 하늘닭 한 마리가 있어 아침 해가 막 돋아 올라 햇살이 이 나무를 비추면 하늘닭이 즉시 울고 뭇 닭이 그를 따라 일제히 운다.(東南有桃都山, 上有大樹, 名曰桃都. 枝相去三千里, 上有一天鷄, 日初出, 光照此木, 天鷄則鳴, 群鷄皆隨之鳴.)”라고 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918.
- 622)봉황이……추게 : 『서경』「익직益稷」에 “소소簫韶를 아홉 번 연주하자, 봉황이 와서 춤을 추네.(簫韶九成, 鳳凰來儀)”라고 하였다.
- 623)동방 : 원문은 ‘인방仁方’. 인仁은 오행五行 중 목木, 방위로 볼 때 동쪽에 해당한다.
- 624)일곱 걸음으로 맞이하지도 :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가 승조僧稠를 만나러 왔을 때 영접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자 제자들이 의아해하면서 그 이유를 물으니, 승조가 “옛날 빈두로 존자가 아육왕阿育王을 영접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일곱 걸음을 걸은 탓으로 7년 동안 나라가 잘못되었다.(昔賓頭盧迎王七步, 致七年失國)”라고 대답하였다. 『속고승전續高僧傳』 권16 「승조전僧稠傳」.
- 625)하풍下風 : 대개 낮은 지위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편지에서는 상대방을 높이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 626)섭룡葉龍 : 섭공葉公에게 나타난 용이라는 뜻이다. 섭공자고葉公子高라는 사람이 용을 좋아해서 집안 이곳저곳에 용을 새겨 장식해 놓자 진짜 용이 내려와서 머리를 내밀고 꼬리를 서렸는데, 섭공이 이를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한漢나라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잡사雜事 5」에 나온다.
- 627)명홍冥鴻 : 하늘 높이 솟아 날아가는 기러기라는 뜻이다.
- 628)물을……여기고 : ‘물을 건넌다(渡水)’는 것은 산문을 나선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고승 혜원慧遠이 동림사東林寺에 거주하면서 호계虎溪라는 시냇물을 건너지 않았는데, 도잠陶潛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할 때에 자신도 모르게 그 물을 건넜으므로, 세 사람이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소보巢父’는 기산箕山 영수潁水에 숨어살았는데, 요堯 임금이 제위를 맡기려 하자 허유許由가 이를 거절하고서 귀를 씻었고, 이 말을 들은 소보는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마시게 할 수 없다고 하여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 629)낭공朗公 : 전진前秦 때의 고승 승랑僧朗이 금여곡金輿谷에서 수도하면서 승단僧團을 엄격하게 이끌었으므로, 그곳을 낭공곡朗公谷이라고 일컬었다. 『고승전高僧傳』 권5 「승랑전僧朗傳」.
- 630)호중壺中 : 호리병 속의 선경仙境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궁중을 가리킨다. 후한後漢의 술사術士인 비장방費長房이 선인仙人 호공壺公의 총애를 받아 그의 호리병 속에 들어가서 선경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후한서後漢書』 권82 「비장방費長房」.
- 631)제6수 : 원문에는 없다. 문맥을 고려해 삽입하였다.
- 632)적멸寂滅 : 열반涅槃의 의역이다.
- 633)어찌……열반하셨을까 :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 권22에 “『고본화호경』에서 이르길 ‘나의 출생이 어찌 그리 늦고, (부처님의) 열반은 어찌 그리 빠른가, 석가의 글을 보지 못하니, 마음이 허전해 번뇌하도다.’라고 하였다.(古本化胡經云, 吾生一何晩, 泥洹一何早, 不見釋迦文, 中心空懊惱.)”라 하였다.
- 634)제7수 : 원문에는 없다. 문맥을 고려해 삽입하였다.
- 635)곡탑鵠塔 : 사리탑. 부처님이 입적한 쌍림雙林이 하얗다고 해서 곡림鵠林이라고도 하며, 그곳에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웠다.
- 636)귀비龜碑 : 거북 모양의 석좌石座 위에 세운 비석.
- 637)지금……같도다 :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후세에 지금을 보는 것이 또한 지금 과거를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프도다.(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悲夫.)”라는 말이 나온다.
- 638)임금 : 여기에서는 낭혜 화상의 선조인 태종 무열왕을 가리킨다.
- 639)누가……잡고 : 누가 태종 무열왕을 본받아 치국의 법도를 바로 세울 것인가라는 뜻이다. 『고운집』 협주에 “원효의 시에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어, 하늘 떠받칠 기둥을 만들게 하리오’라고 했다.(元曉詩, 誰許沒柯斧, 以作撑天柱)”는 말이 있는데, 문맥에 알맞은 설명은 아니다.
- 640)줄 없는 비파(無絃琴) : 『고운집』 협주에 “대사의 무생설법을 비유한다(喩大師無生說法也)”고 했다.
- 641)객진 번뇌 : 번뇌는 본래부터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힌다는 뜻.
- 642)계봉에서……있으리라. : ‘계봉雞峯’은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을 말한다. 가섭이 계족산에서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륵불은 장차 신라에서 출현할 것이라는 뜻이다. 즉 낭혜 화상을 마하가섭 또는 미륵불로 칭송한 표현이다. 세존께서 열반하시면서 마하가섭에게 훗날 미륵에게 전하라며 금란가사를 부촉하셨고, 마하가섭이 열반할 때 이를 수지하고 계족산 동굴에 들어가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선정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643)옷 : 불상에 입히는 금박을 말한다.
- 644)김윤환金閏煥 : 1870~1936. 자는 문화文和, 호는 청암淸菴. 고종 때 한산군수, 의성군수, 만경군수, 충청북도관찰부 총순忠淸北道觀察府摠巡, 내장원 경內藏院卿 등을 역임하였다. 내장원은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곳이다.
- 645)환겁幻劫 : 변하고 바뀌는 끝없는 세월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목련존자가 긴 세월을 지나 환생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 646)건명乾命 : 남자의 사주.
- 647)곤명坤命 : 여자의 사주.
- 648)현판 등문 : 신원사 중악단 내부에 걸려있다.
- 649)단壇 : 신원사에 있는 중악단中嶽壇을 말한다. 계룡산신鷄龍山神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묘향산과 지리산 산신각을 각각 상악단과 하악단이라 하고 두 산 사이에 있는 계룡산 산신각을 중악단이라 하였다.
- 650)뒷사람들은 : 원문은 “渡之人”이나 문맥으로 보아 ‘渡’는 ‘後’의 오자인 듯하다.
- 651)환 자사桓刺史는……세워주고 : 동진東晉의 강주 자사江州刺史 환이桓伊가 혜원을 위해 동림사東林寺를 건립하여 머물게 했다.
- 652)소 내한蘇內翰이……지었던 : ‘내한內翰’은 한림학사를 뜻하니 소식蘇軾의 벼슬이다. 장회민張懷民은 황주黄州로 좌천되어 승천사承天寺에서 지낼 때 소식과 만났다. ‘회민’은 승려가 아닌데 작자가 승천사 때문에 승려로 착각한 듯하다. ‘경전을 만들었다(做經)’는 것은 미상이다.
- 653)선필仙蹕이 예전에 머무심 : ‘선필’은 신선이 행차할 때 앞장서서 사람을 쫓는 일. 뜻이 바뀌어 임금의 행차를 가리킴. 이괄李适의 난(1624) 때 인조가 이 절에 피신했었다.
- 654)체하帖下 : 관아에서 하인이나 상인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줄 때에 그 표로 종이에 적어 주던 일.
- 655)승장僧將 : 광해군 8년(1616)에 영은사에 승장을 두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고, 여기서 훈련된 승병은 영규 대사의 인솔 아래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 656)이근우李根友 : 철종실록에 따르면 1852년 1월에 충청도관찰사로 임명되었고, 1853년 4월에 이조참판이 되었다.
- 657)좌막佐幕 : 비장裨將. 감사ㆍ유수ㆍ병사ㆍ수사 등을 따라다닌 수행원.
- 658)무武 : 반보半步, 석 자.
- 659)호령湖嶺 : 충청도와 경상도.
- 660)노나라……비축하라 : 『서경』「비서費誓」에 “갑술일에 나는 서융을 정벌하리니 너의 양식을 비축하여 미치지 못함이 없도록 해라. 너는 큰 형벌이 있으리라. 노나라 백성들의 삼교 삼수야.(甲戌, 我惟征徐戎, 峙乃糗糧, 無敢不逮, 汝則有大刑. 魯人三郊三遂.)”라고 했다. 정약용은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에서 향鄕(도성) 바깥이 ‘수遂’이고 수 바깥이 ‘교郊’라 했다. 『정본 여유당전서』 37, 725~726쪽.
- 660)성사城使 : 산성을 맡은 관리.
- 662)권인병權寅秉 : 『충청감영계록忠淸監營啓錄』 철종 3년(1852) 11월 2일자 일식 관련 보고문에 “공주公州 겸임 쌍수 중군雙樹中軍 권인병權寅秉”이라고 하였다. ‘쌍수’는 이괄의 난 때 공주 공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난의 평정 소식을 기다리며 기대던 나무로서 이후 공산성을 ‘쌍수산성’이라 부르고 나무가 늙어 사라진 자리에 쌍수정을 세웠다.
- 663)병교兵校 : 품계가 없는 하급 무관武官.
- 664)남한사南漢寺 : 남한산성 사찰을 가리키는 듯함.
- 665)일대사一大事 : 가장 중요한 일.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일대 목적. 『법화경』에 ‘모든 부처님은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한 것에서 유래된 말.
- 666)영흥永興 : 함경남부 남부의 지명.
- 667)안불사安佛寺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8 함경도 영흥대도호부永興大都護府 편에 “광성령光城嶺 동쪽에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 668)속리산에서 수립된 한 맥(離樹一脈) : 원문의 ‘離樹’는 의미가 분명치 않다.
- 669)학룡산鶴龍山 ; 공산. 높이 110미터.
- 670)시임時任 : 현재 직무상 맡은 책임.
- 671)공문을 하달하여(行關) : ‘행관行關’은 상급 관아에서 동등 또는 하급 관아로 보내던 공문인 관문關文을 보내는 일.
- 672)관찰사 송현松峴 홍공洪公 : 홍열모洪說謨를 말한다. ‘송현’은 안동에 있는 고개. 본관 안동. 1804년 출생,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850년 11월 1일에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1월 11일에 경상도 관찰사로 옮겼다. 대신 이근우李根宇가 충청도 관찰사로 왔다.
- 673)방관防關 : 관방關防과 같은 뜻이다. 요새.
- 674)금성錦城 ; 대개는 나주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공주를 가리킴.
- 675)최광순崔光淳 : 1876년에 충청 중군에 임명되었다.
- 676)획부劃付 : 돈이나 곡식 따위의 일부를 떼어 내어 줌.
- 677)‘邑’은 ‘色’의 오자일 수 있다.
- 678)총섭승摠攝僧 : 큰 사찰이나 실록을 보관한 사찰의 주지를 일컫던 말.
- 679)노전승爐殿僧 : 법당에서 아침저녁으로 향불을 피우는 일을 맡아보는 승려.
- 680)김수근金洙根 : 1847년 3월 22일에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됨.
- 681)안도案道 : 도道를 살피는 관찰사 임무를 수행한다는 뜻.
- 682)걸립전乞粒錢 : 걸립승乞粒僧이 민가를 돌면서 경문이나 염불을 외워 주고 기부 받은 돈.
- 683)있는(伏在) : ‘복재伏在’는 전답이나 가대家垈의 소재지를 표시할 때 쓰는 말.
- 684)조득림趙得林 : 1848년 11월 1일에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됨.
- 685)별정향탄계방別定香炭稧防 : 계방은 백성들이 부역의 면제나 다른 도움들을 얻으려고 관아의 아전들에게 뇌물로 줄 돈이나 곡식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직한 계.
- 686)노전爐殿 : 불전佛殿을 관리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하는 승려.
- 687)의자계衣資稧 : 의복 등의 물자를 마련하기 위한 계.
- 688)도조賭租 : 한 해 동안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대가로 해마다 얼마씩 내기로 한 벼.
- 689)정영呈營 : 관찰사가 있는 감영에 직접 소장을 내던 일.
- 690)단문檀門 : 단월檀越. 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푸는 불교신자.
- 691)우진장방右鎭長房 : 우진영의 서리들. 장방長房은 서리들이 집무하거나 거처하던 방.
- 692)제천諸天 : 모든 하늘의 신들.
- 693)정조正租 : 수확하여 탈곡된 직후의 벼. 도정에 의해 왕겨를 벗겨내지 않은 상태의 벼 낟알이다.
- 694)모든 계원이……아시게 하였다. : 원문은 “以作諸員死後聖王齊具此都緣”이다.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다. 일단 ‘죽은 뒤 염라대왕에게 생전의 삶을 검증받을 때 제시할 선업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짐작하고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성왕聖王’은 사후의 세계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을 칭한 말로 짐작된다.
- 695)김양옥金良玉 : 원문에는 “화주化主 월순月旬”이 있으나 문맥을 고려해 앞으로 옮겼다.
- 696)공산公山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산.
- 697)임천군수林川郡守 : 임천은 충청남도 부여군 남부에 있는 면.
- 698)김갑순金甲淳 : 1872년(고종 9) 5월 김현종金顯宗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말기에 내장원봉세관內藏院捧稅官을 거쳐, 1906년에는 공주군수, 1911년 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 699)선고先考 : 돌아가신 아버지. 선군先君. 선친先親.
- 700)불기佛器 : 부처나 보살에게 공양을 올리거나 재를 올릴 때 쓰는 그릇 전반을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향로, 촛대, 다기를 포함하기도 한다.
- 701)조이(召史) : 양민의 아내 혹은 과부를 일컫는 말.
- 702)입지立旨 : 신청서 끝에 신청한 사실을 입증하는 뜻을 부기附記하는 관부官府의 증명.
- 703)완문첩完文帖 : 증명ㆍ허가ㆍ인가ㆍ명령 등의 처분 사안에 대해 당해 관청이 발급한 승인문서들을 모은 첩.
- 704)입재入齋 : 재를 시작하는 의식.
- 705)출신出身 ; 문과文科(大科)ㆍ무과武科ㆍ잡과雜科 등의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는 말.
- 706)공북拱北 : 모든 별이 북극성으로 향하는 것과 같이 사방의 백성들이 임금의 덕화德化에 귀의하는 것.
- 707)감실龕室 : 작은 불상 등을 모셔둔 곳. 승려들의 거처나 작은 사찰 등을 일컬을 때 흔히 사용한다.
- 708)기록하여(懸記) : ‘현기懸記’는 부처님이 미래의 일에 대하여 미리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그저 기록한다는 뜻으로 사용함.
- 709)증경선생曾經先生 : 일찍이 그 벼슬을 지낸 사람.
- 710)불양佛養 : 불량佛糧과 같음.
- 711)도조賭租 :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
- 712)요당면要堂面 : 공주 북쪽의 지명.
- 713)이매移買 : 가졌던 땅을 팔아서 다른 땅을 사는 일.
- 714)이곳(一省) : ‘일성一省’은 공주를 가리킴. 성省은 중국 지방행정 구획의 명칭. 한漢의 주州, 당唐의 도道, 송宋의 노路에 해당함.
- 715)원통전圓通殿 : 관음전.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 716)원문은 “若王氏子秋▼(爿+東)日政。金使花髮菩提。殀以靑蓮”이다. 뜻을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 717)총령葱嶺 : 파미르고원. 위魏나라의 송운宋雲이라는 이가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달마 대사를 만났는데, 귀국해서 보니 이미 입적한 지 3년이 지난 때였다고 한다.
- 718)권사원權思遠 : 본관 안동.
- 719)상위양주相位兩主 : 재상 부부를 뜻하는 듯함.
- 720)배도裵度 : 765~839년. 자 중립中立. 시호 문충文忠. 산시성山西省 출생. 815년 살해된 재상 무원형武元衡을 대신하여 중서시랑中書侍郞ㆍ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재상)가 된 뒤 절도사를 억압하고, 환관宦官에 대해서도 강경책을 취하여 헌종憲宗ㆍ목종穆宗ㆍ경종敬宗ㆍ문종文宗의 4조朝에 걸쳐 활약하였다.
- 721)동산전東山殿 : 진晉나라 사안이 회계會稽 땅 동산東山에서 20여 년 동안 한가히 은거하였으니, 이때 세운 전각을 가리키는 듯함.
- 722)획부劃付 : 돈이나 곡식 따위의 일부를 떼어 내어줌.
- 723)연름捐廩 : 공익公益을 위하여 벼슬아치들이 봉록의 한 부분을 덜어내어서 보태는 일.
- 724)사천射天 : 천명天命을 거역하고 왕위王位를 탐낸다는 말이다. 전국戰國 시대 때 송宋 나라 강왕康王이 스스로 왕이 된 뒤 가죽 부대에 피를 담아 걸어놓고는 활을 쏘면서 하늘을 쏜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사기史記』「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 725)장고掌故 : 국가의 전고典故ㆍ고사古事ㆍ관례慣例, 또는 전장典章ㆍ제도制度를 관장하는 관명 또는 그 일을 말한다.
- 726)박락剝落 : 오래 묵어 긁히고 깎여서 떨어지다.
- 727)운수雲水 : 구름이나 강물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수행자를 지칭한다. 주지住持에 상대되는 말.
- 728)면이 없는 국수 : 원문 ‘無麪之不托’에서 ‘不托은 탕병湯餅, 탕면湯麪의 별칭이다.
- 729)중군中軍 : 조선시대 종2품 무관직으로 각 군영의 대장 또는 이에 버금가는 장관.
- 730)청부靑蚨 : 구멍 뚫린 동전, 즉 돈을 말한다. 청부충靑蚨蟲 모자母子의 피를 동전에 발라 놓으면, 어디에 있든 서로 날아와 같은 장소로 모여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신기搜神記』 권13.
- 731)광서光緒 3년 정축(1877) ; 정축년은 광서 4년에 해당한다.
- 732)등내等內 : 벼슬아치가 벼슬을 지내는 동안을 이르던 말.
- 733)추천追薦 : 죽은 사람의 명복을 바라며 청함.
- 734)대전代錢 : 물건 대신으로 주는 돈.
- 735)윤일輪日 : 무슨 일을 날을 바꾸어 돌려가면서 함.
- 736)사중四衆 : 대부대중四部大衆의 약칭이다.
- 737)상영장청上營將廳 : 상영의 장교들. 장청은 감영에 딸린 장교의 집무소.
- 738)작청作廳 : 아전이 집무하는 청사.
- 739)직산稷山 :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
- 740)천흥사天興寺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성거산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 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시대까지 유지되다가 조선 전기에 폐사된 사찰이다.
- 741)통화統和 : 요나라의 제6대 황제인 성종이 사용한 첫 번째 연호(983~1012년).
- 742)온 마을에서 재를 올리던 곳인데 : 원문은 “一邑之所破荒四培之門致齊者也”인데, 뜻이 분명치 않다. ‘培’를 ‘部’의 오자로 보고 일단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사부지문四部之門’은 ‘四部之衆’ 즉 대중大衆 또는 승가僧伽의 뜻으로 쓴 듯하다.
- 743)육도六道의 연장蓮場이요 : 육바라밀을 닦는 연꽃처럼 청정한 도량이라는 뜻이다. 매우 소중한 도량이라는 말이다.
- 744)발우의 용이 깊이 잠겨있는 곳이라 : 훌륭한 스님들이 머물던 곳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유서 깊은 도량이라는 말이다. 외도였던 우루빌라 가섭이 부처님을 질투해 독룡毒龍이 있는 사당에 묵게 하였는데, 그날 밤 독룡을 항복받은 부처님이 그 용을 발우에 담아 다음날 우루빌라 가섭에게 보여주었던 고사가 있다. 또 선종 제6조 혜능대사가 보림사寶林寺 앞 못에 있던 악룡惡龍을 발우에 가둔 고사가 『법보단경法寶壇經』의 부록인 「육조대사연기외기六祖大師緣記外記」에 나온다. 그래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식기인 발우를 항용발降龍鉢이라고 한다.
- 745)구비口碑 : 비석에 새긴 것처럼 오래도록 세상 사람들의 말로 전해 내려온다는 뜻.
- 746)소성蘇城 : 태안의 옛 이름.
- 747)흥주사興住寺 :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백화산에 있는 사찰.
- 748)삼국시대 고찰 : 전설에 따르면 222년(백제 구수왕 9) 중국에서 건너온 흥인興仁이 흥주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 749)전前 군수 이희중李熙重 : 1894년 10월에 태안군수로 임명되어 1897년 3월에 면관되었다.
- 750)봉선奉先 : 선조의 덕업을 이어받아 지킴.
- 751)전제篆題 : 전서篆書로 쓴 제목.
- 752)최충崔冲 : 984~1068년. ‘해동공자海東孔子’라 칭송받는 인물.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ㆍ월포月圃ㆍ방회재放晦齋. ‘한림학사’는 한림원의 정4품 관직, ‘선의랑’은 종7품 상계문관의 품계, ‘내사사인’은 내사문하성의 종4품 벼슬, ‘지제고’는 조서詔書ㆍ교서 등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한 관직, ‘수찬관’은 사관의 관직이고, ‘자금어대’는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어있는 주머니인데 공복公服의 띠에 매달아 관직의 귀천을 구분하였다.
- 753)봉의랑奉議郎 국자승國子丞 : ‘봉의랑’은 종6품 상계上階의 품계, ‘국자승’은 국자감國子監의 종6품 벼슬이다.
- 754)초제招提 : 범어 catur-diśa의 음사. 사방四方 또는 사방승四方僧이라 번역. 승단의 공유물 즉 스님이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 755)거처로……보인다. : 『장자』「天運」에 “인의는 선왕의 거처이다.(仁義, 先王之蘧廬也)”라고 했다.
- 756)여관으로……구제한다. : 『진서』 권23 「지志」 악하樂下에 실린 「석갈편碣石篇」에 “여관을 설치하여 상인들을 통하게 하니 다행함이 지극하다(逆旅整設, 以通賈商, 幸甚至哉.)”고 하였다.
- 757)소 울음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 : 범어로 구로사拘盧舍(krośa)라 한다. 마을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로 아련야阿練若 즉 사찰을 짓기에 적당한 위치를 뜻한다.
- 758)장정長亭이나 단정短亭 : 여행의 편의를 위해 10리마다 세운 숙소를 ‘장정’, 5리마다 세운 숙소를 ‘단정’이라 한다.
- 759)방패와 창ㆍ도끼(干戈戚揚) : ‘간과척양干戈戚揚’은 『시경ㆍ대아大雅』「공유公劉」의 구절로, 무기를 높이 든다는 뜻인데 문맥상 ‘揚’은 생략하고 번역했다.
- 760)황고皇考 : 임금의 돌아가신 아버지, 또는 돌아간 아버지의 높임말.
- 761)헌경효의영문대왕憲景孝懿英文 : 안종安宗. 시호는 성덕헌경효의대왕聖德憲景孝懿大王. 태조 왕건의 아들. 추존 황제. 현종 원문대왕의 부친.
- 762)왕자 시절(初九潜身) : ‘초구잠신初九潜身’은 『주역』「건괘乾卦」 “初九, 潛龍勿用”을 원용한 표현이다.
- 763)귀명歸命 : 삼보에 돌아가 몸과 마음을 의지함.
- 764)중도中道의 화성化城 : 중도中道는 유ㆍ무, 고ㆍ낙 등 두 가지 대립ㆍ집착을 떠나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화성化城은 『법화경』「화성유품化城喩品」의 내용을 뜻함. 목적지에 가는 도중 지친 사람들에게 요술로 성을 만들어서 쉬게 한 다음 다시 목적지로 가게 함.
- 765)출발하게(載轄) : ‘재할載轄’은 수레바퀴에 빗장을 꽂아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을 뜻한다.
- 766)터를 잡아(胥宇) : ‘서우胥宇’는 『시경ㆍ대아大雅』「면綿」의 “聿來胥宇”에서 나온 말.
- 767)무리 지어(蒸然) : ‘증연蒸然’은 『시경ㆍ소아小雅』「남유가어南有嘉魚」의 “蒸然罩罩”에서 나온 말.
- 768)강민첨姜民瞻 : 963~1021년. 본관 진주晋州. 목종穆宗 때 문과에 급제, 1012년(현종3)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하였다. 1018년(현종9) 거란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격파하였으며, 거란군이 바로 개경으로 쳐들어가자 이를 추격하여 자산慈山에서 크게 이겼다. 그 공으로 응양상장군 주국 우산기상시鷹揚上將軍柱國右散騎常侍가 되고, 추성치리 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이 되었다. 이듬해 지중추사知中樞事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랐고,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가 추증되었다.
- 769)김맹金猛 : 미상~1030년. 자는 정고貞固. 양주梁州 의춘현宜春縣 출신. 과거에 급제한 뒤 좌습유左拾遺가 되었다. 1015년 왕가도王可道를 도와 김훈金訓ㆍ최질崔質의 난을 진압하여 공신이 되었고, 다음 해에는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에 올랐으며, 1020년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1021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郎, 이듬해에 중추부사中樞副使가 되고, 1020년 의춘현개국남宜春縣開國男에 봉하였고 식읍 300호를 받았다. 1027년 중추사가 되고, 1030년 5월 태자소부太子少傅, 이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왕의 측근에 있으면서 공을 많이 세워 김맹의 죽음에 왕이 크게 슬퍼하고, 아들 김덕부金德符를 특별히 등용하였다. 문종 때 태자태사 문하시중太子太師門下侍中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 770)도인陶人 : 옹기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 771)도끼질(風斤) : 초楚 나라 영郢 땅 사람이 자기 코끝에다 흰 흙을 마치 파리 날개만큼 얇게 발라 놓고, 장석匠石을 불러 그 흙을 닦아 내게 했더니, 장석이 바람이 휙휙 나도록 도끼를 휘둘러 그 흙을 완전히 닦아 냈으나, 그 사람의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그저 도끼질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다. 『장자莊子』「서무귀徐無鬼」.
- 772)공덕상功德像 : 공덕을 갖춘 분들의 형상이란 뜻으로 곧 불보살상佛菩薩像 등을 가리킨다.
- 773)상전像殿과 경루經樓 : 불상이 있는 전각과 경전이 있는 누대.
- 774)부동鳧銅과 안탑雁塔 : ‘부동鳧銅’은 구리로 만든 종鐘인데 주周 나라 때 음악을 맡은 부씨鳧氏가 종을 만들었기에 하는 말이고, ‘안탑’은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었다고 하는 탑이다. 옛날 보살이 정육淨肉을 먹는 중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러기로 화하여 하늘에서 떨어진 흔적이라고 전한다. 사찰의 탑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 775)사찰(爛陁) : ‘난타爛陁’는 나란타那爛陀 즉 Nālandā로서 인도 비하르 주의 파트나 남서쪽, 옛 마가다 왕국의 수도 왕사성 북쪽에 있던 사찰.
- 776)천등千燈이 이어지도다. : 불법이 이어짐을 뜻함.
- 777)옹백雍伯의 의장義漿 ; 한漢 나라 때 양옹백楊雍伯이 의장義漿 즉 물을 목마른 행인에게 마시게 하였더니, 3년 후에 어떤 사람이 옥玉을 주면서, ‘이 옥을 심어 두면 반드시 아름다운 옥을 얻게 될 것이다.’ 하기에 심었더니, 과연 옥이 나왔다고 한다.
- 778)누고樓鼓 : 도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누각에 매달아 놓은 북.
- 779)분차焚次 : 집을 불태우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도적과 싸운다는 뜻으로 사용됨. 『좌전左傳』 양공襄公 26년.
- 780)생각이……하리라(念玆在玆). : ‘염자재자念玆在玆’는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의 구절이다.
- 781)사마장경司馬長卿 : 사마상여司馬相如. BC 179년 - BC 117년. 장경長卿은 자. 경제景帝 때에 무기상사武騎常仕가 되었다가 관계에서 물러나 후량後梁에 가서 「자허지부子虚之賦」를 지어 이름을 떨쳤다. 무제武帝 때는 중랑장中郎將이 되어 신愼(운남雲南)ㆍ야랑夜郎(귀주貴州)에 부임하였고 그 후 쓰촨의 무릉茂陵에서 살았다. 그의 사부辭賦는 화려한 것으로 유명, 후육조後六朝의 문인들이 이를 많이 모방하였다.
- 782)학생들의 빛나는 문장(小子斐然之作) : ‘소자비연小子斐然’은 『논어』「공야장公冶長」에서 “우리 마을 학생들이 뜻은 크나 행동은 허술하여 찬란하게 문채만 이루고 재단할 줄은 모른다.(吾黨之小子, 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에서 나온 표현이다.
- 783)봉선권지사주奉宣權知寺主 : ‘봉선’은 임금의 명을 받든다는 뜻이고, ‘권지’는 임시직을 나타냄. ‘사주’는 신라시대 국통의 다른 이름이었으므로 고려시대에도 그와 유사한 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 784)삼중대사三重大師 : 나라에서 수여한 승계僧階의 하나.
- 785)사자사문賜紫沙門 : ‘사자賜紫’는 자의紫衣를 하사받는다는 뜻으로, 나라에 공훈을 세웠거나 국가적으로 존숭하는 승려에게 내려준 호칭. 사자사문 직함을 보유한 승려는 사원 창건의 관리자나 비문의 각자刻字로 불사에 참여한 이들, 불서의 찬술자나 교감자 등이 다수였다.
- 786)도감都監 :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기 위해 수시로 설립한 임시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