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어찌 온갖 법이 처음엔 있던 것이 나중에 없어지겠느냐? 그러니 온갖 법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제 성품도 없고 다른 성품도 없느니라. 처음부터 이미 있는 것이 아니요 뒤에도 없는 것이 아니니, 자성(自性)이 항상 공하여 두려워할 것이 없느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처음 배우는 보살들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그들이 모든 법의 자성이 끝내 모두가 공임을 믿고 알게 해야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상제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다를 구했습니까?”
003_0817_a_15L具壽善現白佛言:“世尊!常啼菩薩摩訶薩云何求般若波羅蜜多?”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상제 보살마하살은 본래 반야바라밀다를 구할 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보배와 재물을 돌아보지 않으며, 명예를 구하지 않고, 공경을 바라지 않으며, 반야바라밀다를 구하였느니라. 그는 항상 시끄럽지 않는 곳[阿練若處]에 있기를 좋아하였는데 홀연히 허공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느니라.
003_0817_b_01L‘선남자야, 네가 동쪽으로 가면 결정코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갈 때에는 피로함을 마다하지 말고, 잠자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며, 음식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고, 밤낮을 가리지 말며, 추위와 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안팎의 법[內外法]에 대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다닐 때에는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앞뒤와 위아래와 네 간방을 보지 말며, 위의를 깨트리지 말고, 몸매를 흩어뜨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안식(眼識)의 경계에 동요되지 말고,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의 경계에 동요되지 말며, 눈의 접촉[眼觸]에 동요되지 말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에 동요되지 말며, 눈의 접촉이 연(緣)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受]에 동요되지 말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동요되지 말며,
그때 상제 보살마하살은 공중에서 들리는 소리의 은근한 가르침을 듣고서 뛸 듯이 기뻐하며 처음 있는 일이라 감탄하고 합장 공경하며 허공의 소리에 대답하였느니라.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는 그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온갖 유정들을 위해 큰 광명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고, 저는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수승한 법을 모으려 하기 때문이며, 저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큰 깨달음을 증득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허공에서 다시 상제 보살에게 이렇게 말했느니라.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선남자야, 그대는 마땅히 공ㆍ무상ㆍ무원 매우 심오한 법에 대해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그대는 응당 온갖 모양들을 여읜 마음으로 심오한 바라밀다를 구해야 하고, 그대는 응당 나[我]와 유정(有情)ㆍ목숨[命者]ㆍ나는 것[生者]ㆍ기르는 것[養者]ㆍ장부[士夫]ㆍ보특가라(補特伽羅)ㆍ뜻대로 나는 것[意生]ㆍ어린이[儒童]ㆍ짓는 것[作者]ㆍ받는 것[受者]ㆍ아는 것[知者]ㆍ보는 것[見者]이라는 모양을 여읜 마음으로 심오한 바라밀다를 구해야 하느니라.
그대 선남자야, 모든 나쁜 벗[惡友]들을 응당 방편으로 멀리하고 모든 훌륭한 벗[善友]들을 응당 가까이하여 공양해야 하나니, 만일 그대에게 선교(善巧)로써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생(無生)ㆍ무멸(無滅)ㆍ무염(無染)ㆍ무정(無淨)의 본래 적정한 법을 말해 줄 수 있고, 능히 그대에게 일체지지(一切智智)를 보이고 가르쳐 인도하고 찬탄하며 격려하며 축하하며 기뻐 한다면, 그가 바로 훌륭한 벗이니라.
그대 선남자야, 만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오래지 않아서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들으리니, 혹은 경전 가운데에서 듣거나, 혹은 보살로부터 들을 것이다. 그대는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응당 거기에서 부처님[大師]을 생각해야 하고, 그대는 마땅히 은혜를 알고 거듭 보답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느니라.
003_0818_b_01L 그대 선남자는 응당 이렇게 생각하되, 〈내가 들었던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나의 가장 뛰어나고 진실한 훌륭한 벗이다. 나는 그로부터 이 미묘한 법을 들었기 때문에 빠르게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법에서 물러나지 않게[不退轉] 되었고, 나는 그 때문에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가까이 하여 모든 부처님들의 장엄 청정한 국토에 늘 태어나서 모든 불세존을 공경 공양하고, 바른 법을 들어 뭇 공덕의 뿌리를 심고, 한가롭지 못한 곳[無暇]을 멀리 떠나 한가로운 곳[有暇]을 완전히 갖추어 생각마다 뛰어나고 훌륭한 선근(善根)이 자라게 될 것이다.〉라 하느니라.
그대 선남자는 세속적 이익과 명예에 대해 마음을 두고 법사를 따르지 말고, 오직 위없는 법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공경 공양하는 마음으로 법사를 따라야 한다. 그대 선남자는 마군(魔軍)의 일을 깨달아야 하나니, 말하자면 악마가 정법(正法)과 법사를 파괴하기 위하여 오묘한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의 경계로써 은근히 받들어 보시할 때 그때 법사는 방편선교로써 그 악마를 조복시키기 위해서, 혹은 모든 유정들에게 선근을 심도록 하기 위해서, 세간과 그 하는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비록 그들의 보시를 받는다 해도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나니, 그대는 이것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을 갖지 말고,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되,
〈나는 설법하는 보살의 방편선교를 알지 못한다. 이 법사는 방편을 잘 알아서 드센 유정들을 조복시키기 위해서, 그 유정들에게 뭇 공덕의 뿌리를 심도록 하기 위해서, 세간 일을 같이 동참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든 욕애(欲愛)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이지만, 이 보살은 법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고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훼손하거나 범하는 일이 없다.〉
003_0818_c_01L그대 선남자는 이때에 마땅히 모든 법의 진실한 이치[理趣]를 관찰해야 하리니,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진실한 이치인가? 이른바 온갖 법의 물듦도 없고 청정함도 없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온갖 법은 자성이 모두 공하여, 나[我]ㆍ유정(有情)ㆍ목숨[命者]ㆍ나는 것[生者]ㆍ기르는 것[養者]ㆍ장부[士夫]ㆍ보특가라(補特伽羅)ㆍ뜻대로 나는 것[意生]ㆍ어린이[儒童]ㆍ짓는 것[作者]ㆍ받는 것[受者]ㆍ아는 것[知者]ㆍ보는 것[見者]이 없으며, 환영[幻] 같고, 꿈에서 본 것[夢]과 같고, 메아리[響] 같고, 형상[像] 같고, 아지랑이[陽焰] 같고, 그림자[光影] 같고, 변화한 일[變化事] 같고, 심향성(尋香城) 같기 때문이니라.
그대 선남자가 만일 능히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진실한 이치를 관찰하고서 법사를 따른다면 머지않아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
003_0818_c_08L汝善男子若能如是觀察諸法眞實理趣隨逐法師,不久成辦甚深般若波羅蜜多。
또 선남자야, 그밖에 마군의 일도 그대는 잘 깨달아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법사가 그대가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청하여 구하는 것을 보고도 도무지 돌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도리어 업신여기며 욕보여도 그대는 이에 대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고고, 더욱 법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공경하는 마음을 더하여 항상 법사를 따르되, 싫어하거나 게으른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때 상제 보살마하살은 허공에서의 음성의 거듭되는 가르침과 경계를 받고서 기쁨이 점점 더하여, 그로부터 동쪽으로 가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나는 어째서 그 허공에서 들리는 음성이 나를 동쪽으로 가라고 할 때 얼마나[遠近] 가야 할지, 어느 성읍(城邑)으로 가야 할지, 또 누구에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들어야 할지를 물어보지 않았던가?’
003_0819_a_01L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 자리에 서서 가슴을 치면서 슬프게 탄식하며 근심 걱정에 사무쳐 잠시동안 슬피 울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여기에 머물면서 하루 낮ㆍ밤 내지 이레 낮ㆍ이레 밤이 지나더라도 피로함을 마다하지 않고, 잠자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음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낮밤을 생각하지 않으며, 추위와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안팎의 법에 대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리라. 만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성읍으로 가야 할지, 그리고 누구에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들어야 할지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끝내 이곳을 떠날 생각을 일으키지 않겠다.’
선현아,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부모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단정하고 지혜가 밝았으며, 재능이 많아 매우 애지중지하였는데, 그 아들이 한창 나이에 갑자기 죽어버리자 그때 부모는 슬피 울고 고통에 시달려 오직 아들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은 없었던 것과 같다. 상제 보살도 그와 같아서 그때 다른 생각은 없고, 오직 생각하되 ‘나는 언제쯤에야 반야바라밀다를 들을 수 있을까? 내가 먼저는 왜 허공에서 소리를 내어 나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할 때에 얼마를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누구에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들어야 할지를 물어보지 않았을까?’라고 했을 뿐이니라.
선현아, 알아야 한다. 상제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슬피 울고 스스로 탄식할 때 그 앞에 홀연히 부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이렇게 상제 보살마하살을 칭찬하며 말하되,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야, 과거의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보살이셨을 때에도 부지런한 고행으로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구하시되 네가 지금 가행(加行)하여 구하는 것처럼 하셨느니라.
또 선남자야, 너는 그와 같이 용맹하게 정진하고 좋아하고 공경하여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기서 동쪽으로 5백 유선나(踰繕那, 由旬)쯤 가다보면 구묘향(具妙香)이라는 큰 왕성이 있으리라. 그 성은 높고 넓으며,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고, 그 성 외곽 둘레에는 모두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일곱 겹의 담장과, 일곱 겹의 누대와,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보배 해자와, 일곱 겹으로 줄지어 선 보배 다라나무가 있는데, 이 담들이 서로서로 뒤섞여 갖가지 광명을 발하면 아주 매우 사랑스럽고 좋으니라.
003_0819_b_01L 이 큰 보배 성은 사방으로 각각 12유선나 정도 되는데 청정하고 드넓으며, 사람과 물자가 풍성하고 편안하고 풍요로우며, 그 안에는 5백 곳의 거리와 시전이 있는데 도량이 상당하고, 단정 장엄하기가 그림과 같으며, 모든 거리에는 각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모두 보배 나루로 왕래함에 아무런 걸림이 없으며, 낱낱의 거리는 청정하고 장엄하게 꾸며져서 향물이 뿌려지고 이름난 꽃이 깔려 있으며,
성과 담장에는 모두 망루[卻敵]와 성가퀴[雉堞]와 누각(樓閣)이 자마금(紫磨金)으로 되어 있어 뭇 보배로 비치니, 그 광명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성가퀴 사이사이에는 보배나무가 있는데 이 낱낱의 나무는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새와 꽃과 과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별개의 보배로 이루어졌으며, 성과 담장과 누각과 모든 보배나무 위에는 황금 그물이 덮혔는데 보배 노끈으로 연결해서 금방울을 달고 보배 풍경을 매달았으니, 산들바람이 살랑 불기라도 하면 우아한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다섯가락 곡조의 여러 음악을 잘 연주하는 것과 같고, 이 보배 성 안에 사는 한량없는 유정들은 낮과 밤으로 항상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니라.
성 외곽을 두르고 있는 일곱 겹의 보배 해자에는 여덟 가지 공덕 있는 물[八功德水]2)이 가득한데 차가움과 따뜻함이 잘 어울려 거울 같이 맑고 고요하며, 물 속에는 곳곳마다 일곱 가지 보배로 만들어진 배가 사이사이를 장엄하여 사람들이 보기가 좋으리니, 그 유정들의 전생 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니라.
그들이 함께 배를 타고 물에 떠서 놀 때 여러 해자 안에는 갖가지 묘한 꽃들이 그득한데, 올발라화(嗢鉢羅花)ㆍ발특마화(鉢特摩花)ㆍ구모타화(拘母陀花)ㆍ분다리화(奔陀利花)와 그 밖에 갖가지 여러 종류의 보배 꽃들이 빛깔과 향기가 선명하면서도 그윽하게 물 위를 뒤덮고 있으리니, 요약해 말하자면 삼천대천세계 안의 이름난 꽃들치고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003_0819_c_01L5백 개의 동산이 큰 성을 둘러쌌는데 갖가지로 꾸며져 있어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울 것이며, 낱낱의 동산 안에는 5백 개의 못이 있는데 그 못은 길이와 너비가 1구로사(俱盧舍)로,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서 대중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것이고, 모든 못들 속에는 네 종류의 오묘한 꽃들인 올발라화ㆍ발특마화ㆍ구모타화ㆍ분다리화 등이 있는데 크기가 수레바퀴와 같아 물에 비치어 뒤덮을 것이니라.
모든 동산의 못에는 많은 새들이 있는데 공작ㆍ앵무ㆍ오리ㆍ갈매기ㆍ기러기ㆍ때까치ㆍ왜가리와 꾀꼬리[鶬鶊]ㆍ푸른 따오기ㆍ고니ㆍ봄 꾀꼬리[春鶯]ㆍ두루미와 백로[鶖鷺]ㆍ원앙ㆍ해오라기(鵁鶄)ㆍ물총새[翡翠]ㆍ정위(精衛)ㆍ곤계(鵾雞)ㆍ산까마귀와 독수리(鸀鳿)ㆍ원거(鶢鶋)ㆍ곤봉(鵾鳳)ㆍ묘시(妙翅)3)ㆍ사다새[鶙鶘:펠리컨]ㆍ갈라빈가(羯羅頻迦)ㆍ명명조(命命鳥)4)들로서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그 안에서 노닐 것이니라.
이 모든 동산과 못들은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것으로 거기서 유정들은 오랜 세월동안 심오한 바라밀다를 수행하면서 심오한 법문에 대해 모두가 믿음과 즐거움을 내리니, 그것은 과거 세상에서 모두들 그와 같은 훌륭한 업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에 이런 과보를 함께 받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묘향성(妙香城) 안의 높고 훌륭한 곳에는 법용(法涌) 보살마하살이 머무는 궁전이 있으리니, 그 궁전은 길이와 너비가 1유순이요, 많은 보배로 꾸며져 있어 기이함과 오묘함이 사랑스럽고, 궁전 바깥은 일곱 겹의 담장과, 일곱 겹의 누대와,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보배 해자와, 일곱 겹의 줄지어선 보배 다라나무로 둘러져 있는데, 이 담장 등은 장엄하게 꾸며져 있어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울 것이니라.
모든 못의 네 면은 각각 한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는데, 첫째는 금이고, 둘째는 은이며, 셋째는 폐유리(吠琉璃)이고, 넷째는 파지가(頗胝迦)이다. 못의 밑바닥은 갈계도(羯鷄都:水晶) 보배로 되어 있고, 위에는 금모래가 깔렸으며, 묘한 물이 맑고, 낱낱의 못가에는 갖가지 묘한 보배로 장식된 여덟 계단이 있으며, 댓돌은 가장 훌륭하고 비싼 금으로 만들어졌고, 섬돌 양쪽에는 자마금으로 된 파초나무가 사이사이 줄지어 섰으며, 이 모든 못에는 올발라화ㆍ발특마화ㆍ구모타화ㆍ분다리화 등의 네 가지 묘한 꽃들이 갖가지 빛깔로 사이사이 섞여서 물 위에 떠있고, 못의 네 주변으로는 향기로운 꽃나무가 있는데, 맑은 바람이 불면 꽃이 떨어져 물 위에 흩어질 것이니라.
모든 못에는 여덟 가지 공덕 있는 물이 가득한데 향기는 전단(栴檀) 같고 색과 맛을 갖추었으며, 오리와 기러기들이 그 안에서 노닐 것이다. 법용 보살마하살은 이 궁전에 머물면서 항상 6만 8천 시녀와 함께 여러 동산과 못을 노닐며 미묘한 다섯 가지 욕락을 함께 서로 즐길 것이고, 묘향성 안에 사는 남녀노소는 모두 법용 보살을 뵙고 법을 듣기 위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상희(常喜苑) 등의 동산이나 현선지(賢善池) 등의 못에 들어가 그들 또한 다섯 가지 욕락을 함께 서로 즐길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법용 보살마하살은 여러 시녀들과 함께 미묘한 욕락을 즐기고 나서는 밤낮으로 세 차례씩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해 줄 것이니라. 그러면 묘향성 안에 있는 모든 남녀들은 그 성 안에서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좌대(座臺) 위에다 법용 보살마하살을 위해 사자좌(師子座)를 펴고, 많은 보배로 그 사자좌의 네 다리를 장식하되 각각 한 가지 보배로 하리니, 첫째는 금이고, 둘째는 은이며, 셋째는 폐유리이고, 넷째는 파지가이니라.
그 자리의 높이와 너비가 반 구로사(俱盧舍)인데 그 위의 허공에 길게 비단 휘장을 치고, 그 안에는 구슬 장막을 쳐서 자리의 크고 작음에 맞추고, 많은 꽃과 끈에 매달은 금방울로 드리우며, 법을 공경하기 위한 까닭에 자리의 네 모퉁이에 5색의 꽃을 뿌리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향을 사르며, 다시 갖가지 바르는 향과 가루향을 그 땅에다 바르고 뿌리며, 갖가지 많은 보배 당기와 번기와 일산을 벌려 세웠는데, 법용 보살께서 때때로 이 보배 자리에 올라가서 대중에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나니,
매번 설법할 때마다 한량없는 하늘ㆍ용ㆍ약차(藥叉:夜叉)ㆍ건달박(健達縛:乾闥婆)ㆍ아소락(阿素洛:阿修羅)ㆍ게로다(揭路茶:迦樓羅)ㆍ긴날락(緊捺洛:緊那羅)ㆍ마호락가(莫呼洛伽:摩睺羅迦)ㆍ인간인 듯하나 인간이 아닌 무리[人非人]들이 함께 모임에 와서 법용 보살께 공경 공양하면서 반야바라밀다를 경청하고 받느니라.
모든 대중들은 설법을 듣고서 외워 지니는 이도 있고, 베껴 쓰는 이도 있으며, 전독(轉讀 : 처음ㆍ중간ㆍ끝의 몇 줄만 읽거나 책장을 넘기면서 띄엄띄엄 읽음)하는 이도 있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며, 말씀과 같이 수행하는 이도 있고, 남을 깨우쳐 주는 이도 있나니, 이런 까닭에 그 유정들이 모든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얻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게 되느니라. 그대 선남자는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속히 법용 보살마하살께서 계신 곳으로 가라. 그러면 그대가 구하는 반야바라밀다를 듣게 될 것이니라.
003_0820_c_01L또 선남자야, 법용 보살께서는 바로 그대의 오랫동안 참되고 청정하며 훌륭한 벗으로서 보이고 가르쳐 인도하며, 찬탄하여 격려하고, 반가워하고 기뻐해서 그대가 구하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속히 증득하게 할 것이니라. 법용 보살께서도 과거 세상에서 부지런한 고행으로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구하되 지금 그대가 구하는 것과 같은 방편으로 하셨나니, 그대는 마땅히 속히 법용 보살마하살께서 계신 곳으로 가되, 의혹하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낮밤을 헤아리지도 말라. 오래지 않아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듣게 되리라.’
선현아, 알아야 한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괴로움이 절박하면 다른 생각이 없고 오로지 ‘나는 언제쯤에나 좋은 의원을 만나 이 화살을 뽑아 이 괴로움을 면하겠는가?’라는 이런 생각만 하리니, 상제 보살도 이와 같아서 그때 다른 생각이라고는 아주 없었고 오로지 ‘나는 언제쯤에나 법용 보살마하살을 뵙고 가까이하여 공양하고서 반야바라밀다를 들으며, 들은 뒤에는 곧 갖가지 허망분별과 얻는 것이 있다는 견해를 영원히 끊고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겠는가?’라는 이런 생각만 하였느니라.
003_0821_a_01L 이른바 온갖 법의 자성을 관하는 삼마지[觀一切法自性三摩地]ㆍ온갖 법의 자성에 대해 얻을 바 없는 삼마지[於一切法自性無所得三摩地]ㆍ온갖 법에 대해 지혜 없음을 깨뜨리는 삼마지[破一切法無智三摩地]ㆍ온갖 법의 차별 없음을 얻는 삼마지[得一切法無差別三摩地]ㆍ온갖 법이 변함 없다고 보는 삼마지[見一切法無變異三摩地]ㆍ능히 온갖 법을 비추는 삼마지[能照一切法三摩地]ㆍ온갖 법에서 어둠을 떠난 삼마지[於一切法離闇三摩地]ㆍ온갖 법에 대해 차별된 뜻이 없음을 얻는 삼마지[得一切法無差別意趣三摩地]ㆍ온갖 법은 도무지 얻을 바 없음을 아는 삼마지[知一切法都無所得三摩地]ㆍ온갖 꽃을 흩뿌리는 삼마지[散一切花三摩地]ㆍ
온갖 법에서 나 없음을 이끌어 내는 삼마지[引發一切法無我三摩地]ㆍ환을 여읜 삼마지[離幻三摩地]ㆍ거울 속의 형상 같이 비치는 지혜를 이끌어 내는 삼마지[引發鏡像照明三摩地]ㆍ온갖 유정들의 언어를 이끌어 내는 삼마지[引發一切有情語言三摩地]ㆍ온갖 유정들을 기쁘게 하는 삼마지[令一切有情歡喜三摩地]ㆍ온갖 유정들의 말을 잘 수순하는 삼마지[善隨順一切有情語言三摩地]ㆍ갖가지 말과 문구를 이끌어 내는 삼마지[引發種種語言文句三摩地]ㆍ두려움 없고 끊어짐 없는 삼마지[無怖無斷三摩地]ㆍ
온갖 법의 본 성품은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능히 설명하는 삼마지[能說一切法本性不可說三摩地]ㆍ걸림 없는 해탈을 얻는 삼마지[得無礙解脫三摩地]ㆍ온갖 티끌을 멀리 여읜 삼마지[遠離一切塵三摩地]ㆍ명칭[名]과 구절[句]과 문장[文]과 말에 공교로운 삼마지[名句文詞善巧三摩地]ㆍ온갖 법에 대해 수승한 관법을 일으키는 삼마지[於一切法起勝觀三摩地]ㆍ온갖 법의 걸림없음과 끝없음을 터득한 삼마지[得一切法無礙際三摩地]ㆍ허공 같은 삼마지[如虛空三摩地]ㆍ금강 같은 삼마지[金剛喩三摩地]ㆍ비록 행색(行色)을 나타내더라도 범함이 없는 삼마지[雖現行色而無所犯三摩地]ㆍ수승함을 얻는 삼마지[得勝三摩地]ㆍ물러남이 없는 안목을 얻는 삼마지[得無退眼三摩地]ㆍ
법계를 뛰어넘는 삼마지[出法界三摩地]ㆍ안위하고 조복하는 삼마지[安慰調伏三摩地]ㆍ사자가 떨치며 빠르게 입 벌리고 포효하는 것 같은 삼마지[師子奮迅欠呿哮吼三摩地]ㆍ온갖 유정들을 밝게 비쳐서 무색하게 하는 삼마지[映奪一切有情三摩地]ㆍ온갖 때를 멀리 여읜 삼마지[遠離一切垢三摩地]ㆍ온갖 법에 대해 물듦이 없는 삼마지[於一切法無染三摩地]ㆍ연꽃 장엄 삼마지[蓮花莊嚴三摩地]ㆍ온갖 의심을 끊은 삼마지[斷一切疑三摩地]ㆍ온갖 견고함을 수순하는 삼마지[隨順一切堅固三摩地]ㆍ온갖 법을 벗어나는 삼마지[出一切法三摩地]ㆍ
003_0821_b_01L신통의 힘을 얻어서 두려움이 없는 삼마지[得神通力無畏三摩地]ㆍ현전에 온갖 법을 통달하는 삼마지[現前通達一切法三摩地]ㆍ온갖 법인(法印)을 무너뜨리는 삼마지[壞一切法印三摩地]ㆍ온갖 법의 차별 없음을 나타내는 삼마지[現一切法無差別三摩地]ㆍ온갖 견해가 빽빽한 숲을 떠난 삼마지[離一切見稠林三摩地]ㆍ온갖 어둠을 여읜 삼마지[離一切闇三摩地]ㆍ온갖 모양을 여읜 삼마지[離一切相三摩地]ㆍ온갖 집착을 벗어난 삼마지[脫一切著三摩地]ㆍ온갖 게으름을 여읜 삼마지[離一切懈怠三摩地]ㆍ
심오한 법의 밝음을 얻는 삼마지[得深法明三摩地]ㆍ묘고산 같은 삼마지[如妙高山三摩地]ㆍ빼앗을 수 없는 삼마지[不可引奪三摩地]ㆍ모든 마군을 항복시키는 삼마지[摧伏一切魔軍三摩地]ㆍ삼계에 집착하지 않는 삼마지[不著三界三摩地]ㆍ온갖 수승한 광명을 이끌어 내는 삼마지[引發一切殊勝光明三摩地]와, 이와 같이하여 내지 현재에 모든 부처님을 뵙는 삼마지[現見諸佛三摩地]였느니라.
상제 보살은 이와 같은 삼마지 가운데에 머물러 시방의 한량없고 무수하고 끝없는 세계의 모든 불여래께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시는 것을 현전에 뵈었느니라. 그때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모두 함께 이렇게 상제 보살마하살을 찬탄하고 위로하고 경계하고 가르치며 말씀하시되,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우리들도 본래 보살도(菩薩道)를 행할 때 지금의 너와 같이 부지런한 고행(苦行)으로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구하였으며, 부지런히 구할 때에도 네가 지금 현전에 이와 같은 모든 삼마지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때 그런 한량없이 수승한 삼마지를 얻어 끝까지[究竟] 닦은 뒤에야, 능히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方便善巧)를 성취하였으며, 이런 까닭으로 능히 온갖 불법(佛法)을 성취하여 곧 불퇴전지(不退轉地)에 머물게 되었느니라.
우리들이 이 모든 삼마지에 주어진 자성(自性)을 관찰해보건대 들어감[入]도 없고 나옴[出]도 없으며, 또한 그 어떤 법이 능히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보지 못했고, 여기서 능히 보살마하살의 행을 닦는 이도 보지 못했으며, 여기서 능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는 이도 보지 못했느니라. 우리들은 그때 모든 법에 대해 집착이 없어졌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곧 반야바라밀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003_0821_c_01L 우리들은 이 집착이 없는 데 머물렀기 때문에 이내 능히 진실한 황금색이 나는 몸을 얻어 항상 광명이 한 길[尋]이나 되었고, 32대장부상(大丈夫相)을 갖추었으며, 80수호(隨好)를 원만히 장엄하였느니라. 또 불가사의하면서도 위없는 부처님의 지혜[佛智]와, 위없는 부처님의 계율[佛戒]ㆍ위없는 부처님의 선정[佛定]ㆍ위없는 부처님의 슬기[佛慧]를 얻었고, 온갖 공덕과 바라밀다를 원만히 하지 않은 것이 없었느니라. 온갖 공덕과 바라밀다를 원만히 한 것은 부처님도 오히려 이루 다 헤아려 설명할 수 없거늘 하물며 모든 성문과 독각들이겠는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상제 보살에게 ‘법용 보살마하살이 바로 그대의 오랫동안 참되고 청정하며 훌륭한 벗으로서 그대를 보호해주고, 그대로 하여금 구하고자 하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성취하게 해주고 그대로 하여금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배우게 하리니, 그는 능히 오랜 세월동안 그대를 보호해서 이롭게 하기 때문에 바로 그대의 훌륭한 벗이라 하나니, 그대는 마땅히 가까이하여 공경하고 공양해야 하느니라.
003_0822_a_01L 또 선남자야, 그대가 만일 1겁이나 2겁ㆍ3겁 이와 같이하여 내지 백천겁, 혹은 그보다 더 지나도록 법용 보살을 공경하여 머리에 떠받들고서, 또 온갖 빼어나고 묘한 좋아하는 기구를 가지고 내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묘한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이 다하도록 공양한다 할지라도 그의 잠깐동안의 은혜도 갚지 못하리니,
또 ‘법용 보살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닦고 배워서 이미 한량없는 다라니문과 삼마지를 얻었고, 모든 보살의 자재한 신통을 이미 끝까지 다하였으며, 한량없는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도 이미 공양하였고,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큰 서원을 세워 모든 선근(善根)을 심었으며, 오랜 세월동안 나의 훌륭한 벗이 되어 항상 나를 보호해 주고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셨다. 나는 속히 법용 보살마하살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아까 뵈었던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먼저는 어디서 오셨다가 지금은 어디로 가셨는지를 여쭈어 보아야겠다. 그분이라면 나를 위해 이런 의문을 없애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결코 빈손으로 법용 보살마하살께 갈 수도 없으니, 내가 빈손으로 간다면 내 스스로도 기쁘지 않겠거늘 어떻게 지성으로 법을 구하는 뜻을 나타내 알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내 몸을 팔아서 그 몸값으로라도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께 공양할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오랜 세월동안 여러 세계로 가 태어나면서 끝없이 몸과 목숨을 잃었었는데, 시작도 알 수 없는 나고 죽음 가운데에서 애욕의 인연으로 온갖 지옥에 떨어져 숱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이와 같이 묘한 법과 법을 설하는 스승께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목숨을 버렸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지금 기필코 몸을 팔아서 재물을 구해 가지고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께 공양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003_0822_c_01L그때 상제 보살마하살은 이런 생각을 하고서 차츰차츰 동쪽으로 걷다가 어떤 큰 성에 이르렀는데, 청정하고 드넓으며, 사람들도 많았고 편안하고 풍요롭고 즐거웠다. 상제 보살은 저자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큰 소리로, ‘내가 지금 저를 팔려고 합니다. 누구 사실 분 계십니까? 제가 지금 저를 팔려고 합니다. 누구 사실 분 계십니까?’라고 외쳤느니라.
그때 악마가 이 일을 보고는, ‘상제 보살은 법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팔아서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마하살에게 공양하겠다고 하는구나. 이 일로 인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이치에 맞게 청하여 묻게 되리니, 말하자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어떻게 보살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방편 수행해야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고 나면 법용 보살은 당연히 매우 심오한 법요(法要)를 말해주어 마치 큰 바다와 같은 많은 지식을 얻게 하여 마군과 그 권속들이 도저히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고, 점차로 온갖 공덕을 원만하게 할 것이요, 이로 인해 모든 유정들을 이익되게 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모든 유정들에게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게 하여 차례차례 서로 계승해 나가면 나의 경계는 텅비고 말 것이다. 내 지금 당장 방편을 써서라도 그의 소리를 감춰버려 이 성 안의 장자ㆍ거사ㆍ바라문들이 모두 듣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그런데 오직 그 성 안에 한 장자의 딸만은 전생의 선근(善根)의 힘 때문에 악마가 은폐할 수 없었다.
상제 보살은 이런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몸을 팔려 했으나 흥정해오는 이가 없어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하다가 한 곳에 서서 슬피 울면서 ‘나는 무슨 죄가 있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을 공양하기 위해 아무리 몸을 팔려고 해도 몸을 사는 사람이 없을까?’라고 말하였느니라.
003_0823_a_01L그때 제석천왕이 이를 보고서, ‘이 선남자는 법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마하살을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려고 하는구나. 진실로 법을 사모해서인지,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기 위해서인지 내 그를 시험해 봐야겠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젊은 바라문으로 둔갑하여 상제 보살에게 가서, ‘여보시오, 당신은 지금 무슨 이유로 이처럼 슬피 울며 근심하고 걱정하고 속상해 합니까?’라고 물으니, 상제 보살이 ‘젊은이여, 저는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께 공양하고 싶었지만 저는 가난하여 아무런 재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법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까닭에 제 몸이라도 팔려고 이 성을 두루 헤매었지만 아무도 묻는 이가 없으니, 그저 제 자신의 복이 없음을 여기에 서서 걱정하고 슬퍼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느니라.
상제 보살이 이 말을 듣고서, ‘나는 이제서야 대단히 큰 이익을 얻게 되었구나. 왜냐 하면 저 사람이 사려고 하는 것은 내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가로 값을 받아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께 공양하면 나로 하여금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구족하여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게 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003_0823_b_01L 그런데 장자의 딸이 높은 누대에 있다가 먼저는 상제 보살이 자기의 몸을 팔겠다고 외치는 것을 보았었는데, 뒤에는 다시 스스로 자기의 몸을 해치는 것을 보자, ‘이 선남자는 무슨 이유로 그 몸을 괴롭히는 걸까? 내 마땅히 그것을 물어보아야겠다’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누대에서 내려와 상제 보살에게 가서, ‘당신은 무슨 이유로 아까는 자기를 팔겠다고 외치다가 이제는 피와 골수를 내고, 다시 심장을 가르려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상제 보살이 ‘아가씨, 모르시겠지요? 저는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께 공양하고 싶었지만, 저는 가난하여 아무런 재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법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에 아까부터 내 몸이라도 팔려고 했으나 아무도 사는 이가 없다가, 이제서야 세 가지를 바라문에게 팔아 넘겼습니다’라고 대답하였느니라.
상제 보살은 ‘법용 보살께서는 매우 심오한 법에 대해 자재함을 얻으셨으니, 마땅히 저를 위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와 보살이 배워야 할 것[所學]과, 보살이 타야 할 것[所乘]과, 보살이 수행해야 할 것[所行]과, 보살이 지어야 할 것[所作]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003_0823_c_01L 잊음이 없는 법ㆍ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ㆍ다섯 가지 청정한 눈ㆍ6신통과,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계율[戒蘊]ㆍ선정[定蘊]ㆍ지혜[慧蘊]ㆍ해탈[解脫蘊]ㆍ해탈지견[解脫智見蘊]ㆍ막힘 없는 지견[無障智見]ㆍ위없는 지견[無上智見]을 갖출 것이요,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를 얻을 것이며, 온갖 위없는 법보(法寶)를 구족하여 온갖 유정들에게 나누어 보시해 주고, 모든 유정들의 의지할 곳이 되어 주게 되리니, 제가 몸과 목숨을 버려 그 분께 공양하면 마땅히 이러한 공덕과 수승한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느니라.
그때 장자의 딸은 수승하고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불법(佛法)을 듣고서 뛸 듯이 기뻐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다. 그는 공경해 합장하며 상제 보살에게 ‘대사(大士)의 말씀은 가장 으뜸이고 광대하며, 가장 수승하고 미묘하며, 매우 보기드문 일이어서 이러한 하나하나의 불법을 얻기 위해선 소중한 몸과 목숨을 긍가의 모래알만큼이라도 숱하게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한 번쯤 버리는 것이겠습니까? 왜냐 하면 만일 이와 같이 미묘한 공덕을 얻으면 능히 온갖 유정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사께서는 집이 가난한 형편에 이렇게 미묘한 공덕을 위해서는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시는데 하물며 저의 집은 부자여서 값진 재물이 많은 처지에 이런 공덕을 위해 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사께서는 지금부터 다시는 자신을 해치지 마십시오. 필요한 공양거리들을 모두 드리겠으니,
말하자면 금ㆍ은과 보배 폐유리ㆍ파지가와, 마니ㆍ진주ㆍ저장(杵藏)ㆍ석장(石藏)ㆍ나패(螺貝)ㆍ벽옥(壁玉)ㆍ제청(帝靑)ㆍ대청(大靑)ㆍ산호(珊瑚)ㆍ호박(虎珀)과, 그 밖에 한량없는 다른 종류의 값진 재물과 꽃ㆍ향ㆍ영락ㆍ보배 당기ㆍ번기ㆍ일산ㆍ음악ㆍ등불ㆍ탈 것ㆍ의복, 그리고 갖가지 비싸고 묘한 공양거리로서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법을 설하는 스승인 법용 보살께 공양할 만한 것들입니다.
1)산스끄리트어로는 sadāpralāpa이며, 살타파륜(薩陀波崙)이라 음역함. 어렸을 때 울기를 잘 했는데, 중생들이 고통의 세계에 있는 것을 보고 운다고도 하며, 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 세상에 태어나서 공한림(空閑林) 속에서 걱정하며 울기 때문에 용과 귀신들이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다고도 함.
2)여덟 가지의 뛰어난 효과와 특성을 가진 물.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연못과 수미산(首彌山)을 둘러싼 일곱 바다에 채워져 있는 물. 여덟 가지의 공덕이란 달고[甘], 차고[冷], 부드럽고[軟], 가볍고[輕], 맑고[淸淨], 냄새 없고[無臭], 마실 때 목을 손상시키지 않고[飮時不損喉], 다 마시고 나서는 배가 아프지 않은[飮已不傷腹]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3)산쓰끄리트어 garuḍa의 한역어로서 가루라(迦樓羅)ㆍ금시조(金翅鳥)ㆍ정앵조(頂癭鳥)라고도 한다.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새라는 뜻으로 인도신화에서는 슬픔과 고통스런 소리를 뱉어내는 신령스런 새로 등장한다. 용(龍)을 상식하고, 양 날개를 펴면 336만리나 되는 가공의 큰 새로서 대승경전에서는 천룡인부(天龍人部) 대중의 하나이고, 밀교에서는 범천(梵天)ㆍ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으로 변화해 나타났다고 한다. 또는 문수(文殊)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4)산쓰끄리트어로는 jīvaṃ-jīvaka라고 하며, 일명 공명조(共命鳥)ㆍ명공조(命共鳥)ㆍ생생조(生生鳥)라고도 한다. 몸 하나에 머리 둘이 달린 새로서 생사(生死)를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