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닦고 배우면 그 위덕의 힘으로 온갖 바라밀다를 굳게 붙들고 온갖 바라밀다를 자라게 하며 온갖 바라밀다를 끌고 이끄나니, 왜냐하면 선현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가운데에 온갖 바라밀다를 간직[含藏]하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비유하여 살가야견(薩迦耶見)은 62가지 소견을 두루 능히 간직하는 것처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그와 같아서 온갖 바라밀다를 간직하느니라. 선현아, 비유하여 온갖 죽은 이들은 생명의 근[命根]이 멸하므로 모든 감관[根]이 따라서 멸하는 것처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이와 같아서 보시 등 다섯 바라밀다가 모두 다 따라 좇아서 만일 반야바라밀다가 없으면 온갖 바라밀다도 없으리라. 그러므로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온갖 바라밀다의 구경(究竟)의 피안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004_0042_a_01L또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면 모든 유정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훌륭하리니,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미 가장 높은 곳을 닦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니라. 또 선현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3천대천세계의 모든 유정들이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남섬부주에는 모든 유정이 오히려 많아서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3천대천세계의 모든 유정이 어찌 많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가령 3천대천세계의 모든 유정이 먼저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게 모두 사람의 몸을 얻고 사람의 몸을 얻은 뒤에는 먼저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게 모두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모든 보살마하살의 행을 닦아서 닦는 행이 원만한 뒤에는 먼저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게 모두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며, 보살마하살이 있어 그의 수명이 다하도록 갖가지 좋고 묘한 화만(花鬘)과 바르거나 뿌리는 향과 의복ㆍ영락ㆍ보배 당기ㆍ번기ㆍ일산ㆍ기악ㆍ등불ㆍ방ㆍ집ㆍ침구ㆍ음식ㆍ의약으로써 이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마하살이 이런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겠느냐?”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항상 즐겨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끝내 막힘이 없이 통달하고, 이치와 같게 생각하고, 가르침에 의하여 수행하고, 베껴 써서 널리 퍼뜨리면 얻는 복취는 앞보다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배수나 되나니,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큰 이치와 작용을 갖추어서 능히 보살마하살이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004_0042_b_01L그러므로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온갖 유정들의 우두머리에 있으려 하거나, 온갖 유정들을 두루 이롭게 하려 하거나, 구호할 이가 없는 이에게 구호하는 이가 되고, 귀의할 곳이 없는 이에게 귀의할 곳이 되고, 나아갈 곳이 없는 이에게 나아갈 곳이 되고, 눈이 없는 이에게 눈이 되고, 광명이 없는 이에게 광명이 되고, 바른 길을 잃은 이에게 바른 길을 보이고, 열반에 얻지 못한 이에게 열반을 얻게 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거나, 여래의 행하는 경계를 행하고자 하거나, 부처님이 노니시는 곳을 노닐고자 하거나, 여래 큰 스승의 제자[大師子]로 부르짖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북을 치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종을 치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나각[法螺]을 불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의 이치를 베풀고자 하거나, 온갖 유정의 의심 그물을 끊어주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묘한 단이슬의 경계에 들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법요를 받고자 하거나, 여래의 수승한 공덕을 증득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하느니라.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울 수 있다면 있는 온갖 공덕과 선근을 포섭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있는 온갖 공덕과 선근을 얻지 못할 것이 없나니,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공덕과 선근의 의지할 곳이기 때문이니라.”
004_0042_c_01L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성문과 독각의 공덕과 선근도 능히 포섭하고 능히 얻으나 그 가운데 머무름이 없고 집착이 없어 수승한 지견(智見)으로 바르게 관찰한 뒤에 성문과 독각의 지위를 초월하여 보살의 바른 성품으로서 생멸을 여읨에 나아가 들어감으로 이 보살마하살들은 있는 온갖 공덕과 선근을 포섭하고 얻지 못함이 없느니라.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울 수 있다면 곧 일체지지에 가까워져서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리라.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울 수 있다면 곧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 등의 진실한 복밭이 되어서 모든 세간의 사문ㆍ바라문ㆍ성문ㆍ독각의 복밭을 훨씬 초월하여서 빨리 능히 일체지지를 증득할 것이며, 태어나는 곳마다 반야바라밀다를 버리지 않고 반야바라밀다를 여의지 않으며 항상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리라.
004_0043_a_01L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되 ‘이는 반야바라밀다요, 이는 닦는 때이요, 이는 닦는 곳이니, 내가 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수 있으며 나는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이와 같이 마땅히 버려야 할 법을 버리고 반드시 일체지지를 증득하리라’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반야바라밀다를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도 없나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생각하되 ‘나는 반야바라밀다요, 이는 닦는 때이요, 이는 닦는 곳이요, 이는 닦는 이요, 이는 반야바라밀다가 멀리 여의는 법이요, 이는 반야바라밀다가 비추어 깨닫는 법이요, 이는 반야바라밀다가 증득하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요’ 하지 않기 때문이니, 만일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니라.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되 ‘이는 반야바라밀다가 아니요, 이는 닦는 때가 아니요, 이는 닦는 곳이 아니요, 이는 닦는 이가 아니요,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온갖 마땅히 버려야 할 법을 멀리 여의는 것이 아니요,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반드시 일체지지를 증득하는 것이 아니니,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온갖 법은 모두가 진여ㆍ법계ㆍ법성ㆍ불허망성ㆍ불변이성ㆍ평등성ㆍ이생성ㆍ법정ㆍ법주ㆍ실제ㆍ허공계ㆍ부사의계에 머물러서 이 가운데는 온갖 것이 모두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하면 선현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으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니라.”
004_0043_b_01L그때에 제석천왕이 가만히 생각하였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반야밀다를 수행하고,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에 머무르고, 진여 내지 부사의계에 머무르고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머무르고, 4념주 내지 8성도지를 수행하고,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을 수행하고, 8해탈 내지 10변처를 수행하고,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을 수행하고, 극희지 내지 법운지를 수행하고,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을 수행하고, 5안과 6신통을 수행하고,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을 수행하고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을 수행하고,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를 수행하고, 보살마하살의 행을 수행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수행하면 오히려 온갖 유정의 위에 뛰어나거늘, 하물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랴.
만일 모든 유정이 일체지지라는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면 오히려 인간에서 좋은 이익을 얻고 세간에서 가장 뛰어난 수명을 얻거늘, 하물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거나 혹은 항상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경전을 듣는 것이랴. 만일 이 모든 유정이 능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거나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을 들으면 모든 다른 유정들이 모두 응당 원하고 좋아하리니, 얻은 공덕은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 등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004_0043_c_01L이때 제석천왕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천상의 미묘한 음성의 꽃[微妙音花]을 가지고 받들어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모든 보살마하살들에게 뿌리고, 꽃을 뿌리고는 서원을 하였다. ‘만일 보살승의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려 나아가면 내가 모은 공덕과 선근으로써 그들이 구하는 위없는 불법과 일체지지를 속히 원만하게 하며, 내가 모은 공덕과 선근으로써 그들이 구하는 자연과 인간의 법과 진실한 무루의 법을 속히 원만하게 하며, 내가 모은 공덕과 선근으로써 그들이 온갖 듣고자 하는 법을 모두 속히 원만하게 하며, 내가 모은 공덕과 선근으로써 성문승과 독각승을 구하는 이들도 소원을 빨리 만족하게 하리라.’
이렇게 서원을 하고는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승의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미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면 저는 끝내 한 생각의 다른 뜻을 내서 그들이 큰 깨달음의 마음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저는 또한 한 생각의 다른 뜻을 내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싫어하며 여의어서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에 물러나 머물게 하지 않으리라.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미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에 바람과 즐거움을 냈다면 저는 그 마음이 더욱 더하여서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길 바라며, 그 보살마하살들이 나고 죽는 가운데서 갖가지 고통을 보고는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 등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자 하여 갖가지 견고하고 큰 서원을 세워 ‘나는 이미 스스로 나고 죽음의 큰 바다를 건넜으니 응당 건너지 못한 이들도 부지런히 힘써 건너게 하며, 나는 이미 스스로 나고 죽음의 결박을 벗어났으니 응당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부지런히 힘써 벗어나게 하며, 나는 갖가지 나고 죽음의 두렵고 무서움에서 이미 스스로 편안하니 응당 편안치 못한 이들도 부지런히 힘써 편안하게 하며, 나는 이미 스스로 마지막 열반을 증득하였으니 응당 부지런히 힘써 증득하지 못한 이들도 모두 함께 증득하게 하리라’ 하길 바라옵니다.
004_0044_a_01L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킨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는[隨喜] 마음을 일으키면 얼마나 되는 복을 얻습니까? 오래도록 마음을 일으킨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얼마나 되는 복을 얻습니까? 물러나지 않는 지위의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얼마나 되는 복을 얻습니까? 한 생 동안만 얽매인[一生所繫]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얼마나 되는 복을 얻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憍尸迦)야, 4대주(大洲) 세계의 무게와 수효는 알 수 있더라도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의 함께 기뻐함과 함께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교시가야, 내지 3천대천세계의 무게와 수효는 알 수 있더라도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의 함께 기뻐함과 함께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교시가야, 가령 3천대천세계를 하나의 큰 바다로 삼고 하나의 터럭을 취하여 백분으로 쪼개서 한 부분을 가지고 끝으로 큰 바닷물을 적시어내서 물방울의 수를 알 수 있더라도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의 함께 기뻐함과 함께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004_0044_b_01L제석천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유정이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모두 악마에게 홀린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유정이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모두 악마의 무리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유정이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모두 악마의 세계에서 죽어 이 세간에 와서 태어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려 나아가 모든 보살마하살의 행을 닦고, 만일 모든 유정이 그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고 회향하면 모두 온갖 악마의 군대나 궁전이나 권속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유정이 깊은 마음으로 불ㆍ법ㆍ승의 보배를 공경하고 사랑하면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부처님을 뵙고자 하고 항상 법을 듣고자 하고 승가를 만나고자 하고 모든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마땅히 함께 기뻐함을 내며, 이미 함께 기뻐하고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며 둘이나 둘 없는 생각을 내지 않을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여 유정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 마군들을 깨뜨릴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교시가야, 만일 모든 유정이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깊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면 이 모든 유정들은 모든 보살의 행을 속히 능히 원만케 하여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리라. 만일 모든 유정이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깊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면 이 모든 유정은 큰 위력을 갖추어서 항상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선지식을 능히 받들어 섬기며 항상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을 들어 그 이치를 잘 알리라.
004_0044_c_01L교시가야, 이 모든 유정은 이와 같이 함께 기뻐하고 회향하는 공덕과 선근을 성취하여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 등이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나쁜 빛깔을 보지 않고 나쁜 소리를 듣지 않고 나쁜 냄새를 맡지 않고 나쁜 맛을 맛보지 않고 나쁜 감촉을 느끼지 않고 나쁜 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항상 모든 불세존을 멀리 여의지 않고 한 불국토에서 다른 불국토로 나아가서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모든 선근을 심으며, 유정을 성숙시키고 불국토를 장엄 청정하게 하리니,
왜냐하면 교시가야, 이 모든 유정들은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가장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킨[初發心]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깊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며, 능히 헤아릴 수 없는 초지(初地) 내지 십지(十地)에 이미 머무는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깊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며, 능히 헤아릴 수 없는 한 생 동안만 얽매인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 대하여 깊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이 모든 유정의 선근이 늘어나서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것이며, 이윽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여 능히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유정을 여실히 이롭고 안락하게 하여 남음 없는 반열반[無餘般涅槃]의 경계에 머무르게 하리라.
이러한 까닭에 교시가야, 보살승에 머무른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킨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나 오래도록 마음을 일으킨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나 물러나지 않는 지위의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나 한 생 동안만 얽매인 보살마하살들의 공덕과 선근에나 모두 마땅히 함께 기뻐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해야 하며, 함께 기뻐하고 회향하는 마음을 낼 때 마땅히 마음에 나아가거나 마음을 여읨에 집착하여 함께 기뻐하고 회향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마음에 나아가 수행하거나 마음을 여의어 수행함에 집착하지 말지니, 만일 능히 이렇게 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이 함께 기뻐하고 회향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행을 닦으면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여서 능히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모든 유정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여 모두 마지막 열반에 머무르게 하리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요술이 없고 요술 같은 마음이 없는 곳이라면 너는 이러한 마음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보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요술이 없고 요술 같은 마음이 없는 곳이 있고 다시 이러한 마음이 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도무지 보지 못합니다.”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요술을 여의고 요술 같은 마음을 여읜 곳이 있고 다시 이러한 법이 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보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도무지 나아가거나 여의는 마음의 법을 보거나 어떤 법이 있거나 없다고 말하지 못하오니, 온갖 법이 끝내 멀리 여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온갖 법이 끝내 멀리 여읜다면 이 법이 있다거나 이 법이 없다고 시설할 수 없고, 만일 법이 있고 없음을 시설할 수 없다면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있지 않은 법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004_0045_b_01L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온갖 법은 모두 있지 않아서 성품을 얻을 수 없고 남이 없고 멸함이 없고 물들임이 없고 청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4념주 내지 8성도지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8해탈 내지 10변처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극희지 내지 법운지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5안과 6신통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일체지지도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옵니다.
004_0045_c_01L세존이시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이미 끝내 멀리 여의는데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도 끝내 멀리 여의는데 어떻게 멀리 여의는 법으로 멀리 여의는 법을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응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선현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끝내 멀리 여의고, 이와 같이하여 내지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이 끝내 멀리 여의고,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도 끝내 멀리 여의며, 일체지지도 끝내 멀리 여의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끝내 멀리 여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하여 내지 일체지지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끝내 멀리 여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선현아, 만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끝내 멀리 여의지 아니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아니며, 이와 같이하여 내지 일체지지가 끝내 멀리 여의지 아니하면 마땅히 일체지지가 아니니라.
004_0046_a_01L선현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에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라 이름하며, 이와 같이하여 내지 일체지지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에 일체지지라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지 않고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 아니니라.
선현아, 비록 멀리 여의는 법으로 멀리 여의는 법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함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이르지[依止] 않는 것은 아니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들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항상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법의 이치[法義]는 모두가 매우 깊사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법의 이치는 모두가 매우 깊어서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워서 살피고 생각할 바가 아니며 살피고 생각하는 경계를 초월하여 미묘하고 은밀한 슬기로운 이들이 스스로 안으로 증득하는 바이니 베풀어 설할 수 없느니라. 선현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은 능히 어려운 일을 하나니, 비록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의 이치를 행하더라도 성문과 독각의 지위의 법을 능히 작증하지 않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이해하기로는 모든 보살마하살의 하는 바에 어려움이 없으니, 그들이 마땅히 능히 어려운 일을 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보살마하살이 증득할 법의 이치는 도무지 얻을 수 없으며, 능히 증득하는 반야바라밀다도 얻을 수 없으며, 증득하는 법과 증득하는 이와 증득하는 곳과 증득하는 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004_0046_b_01L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을 관찰하건대 이미 얻을 수 없거늘 어떠한 법의 이치가 있어서 증득할 바가 되며, 어떠한 반야바라밀다가 있어서 증득하는 이가 되며, 다시 무엇이 있어서 증득하는 법과 증득하는 이와 증득하는 곳과 증득하는 때를 시설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그러할진대 어떻게 이것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리라 집착할 수 있겠습니까.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은 오히려 증득할 수 없거늘 하물며 성문과 독각의 지위의 법을 증득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행하면 이를 보살마하살의 얻을 바 없는 행이라 하리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와 같이 얻을 바 없는 행을 행하면, 온갖 법에 막힘이 없고 어두움이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말을 듣고 그 마음이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고 침체하지 않고 잠기지 않으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리이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할 때 모든 모양을 보지 않으며, 내가 행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행하지 않음을 보지 않으며, 반야바라밀다를 나의 행할 바라고 보지 않으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나의 증득할 바라고 보지 않으며, 또 증득하는 때와 곳 등도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여 허공이 생각하되 ‘나는 저 법과 떨어져 멀거나 가깝다’ 하지 않은 것 같으니, 왜냐하면 허공은 움직임이 없고 차별도 없고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며 생각하되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이한다’ 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4_0046_c_01L세존이시여, 비유하여 요술쟁이가 생각하되 ‘요술의 바탕과 요술의 스승과 구경꾼은 나와 떨어져 멀거나 가깝다’ 하지 않은 것 같으니, 왜냐하면 요술쟁이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며 생각하되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나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가까이한다’ 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여 영상(影像)이 생각하되 ‘나는 본바탕과 나의 의지하는 곳에 떨어져 멀거나 가깝다’ 하지 않은 것 같으니, 왜냐하면 나타난 영상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며 생각하되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가까이한다’ 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온갖 분별과 갖가지 분별과 두루한 분별을 모두 끝내 끊은 것과 같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온갖 분별과 갖가지 분별과 두루한 분별을 모두 끝내 끊으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4_0047_a_01L세존이시여,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생각하시되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가까이한다’라고 하지 않는 것같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가까이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변화한 이가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이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니, 왜냐하면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변화한 이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생각하되 ‘나는 성문과 독각 등의 지위를 멀리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가까이한다’라고 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변화로 만든 변화한 이에게 그 일을 하게 하여 그 변화한 이는 생각하되 ‘나는 능히 이러한 사업을 조작한다’고 하지 않는 것 같으니, 왜냐하면 모든 변화한 이는 조작하는 업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그와 같아서 하려는 바가 있으므로 부지런히 닦아 익히고, 부지런히 닦아 익힌 뒤에 비록 능히 하는 사업을 이루나 지은 바에 분별이 없으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으레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4_0047_b_01L세존이시여, 공교로운 장인[工匠]이나 혹은 그의 제자가 하려는 일이 있으므로 모든 기구[機關]로 혹은 여자나 혹은 남자나 혹은 코끼리와 말 등을 만들면 이 모든 기구는 비록 하는 것이 있으나 그 일에는 분별이 없는 것 같으니, 왜냐하면 기구는 으레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이와 같아서 하려는 일이 있어서 성립시키고 성립한 뒤에는 비록 능히 지을 바와 말할 바를 이루나 그 가운데서 도무지 분별이 없으니, 왜냐하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으레 법에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4_0047_c_01L사리자가 말하였다. “6바라밀다만이 분별이 없습니까?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분별이 없으며, 눈의 영역 내지 뜻의 영역도 분별이 없으며, 빛깔의 영역 내지 법의 영역도 분별이 없으며, 눈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도 분별이 없으며, 빛깔의 경계 내지 법의 경계도 분별이 없으며, 안식의 경계 내지 의식의 경계도 분별이 없으며, 눈의 접촉 내지 뜻의 접촉도 분별이 없으며,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도 분별이 없으며, 지계 내지 식계도 분별이 없으며, 무명 내지 늙음과 죽음도 분별이 없으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도 분별이 없으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도 분별이 없으며,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도 분별이 없으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도 분별이 없습니까?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도 분별이 없습니까?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도 분별이 없으며, 8해탈 내지 10변처도 분별이 없으며, 4념주 내지 8성도지도 분별이 없으며,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도 분별이 없으며, 정관지 내지 여래지도 분별이 없으며, 극희지 내지 법운지도 분별이 없으며, 5안과 6신통도 분별이 없으며,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도 분별이 없으며,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도 분별이 없으며,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지지도 분별이 없으며, 예류과 내지 독각의 깨달음도 분별이 없으며,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도 분별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도 분별이 없으며, 유위(有爲)의 경계도 분별이 없으며, 무위(無爲)의 경계도 분별이 없습니까?”
004_0048_a_01L사리자가 말하였다. “만일 온갖 법이 모두 분별이 없다면 어떻게 다섯 갈래의 차별을 분별하여 이른바 이는 지옥이요, 이는 축생이요, 이는 아귀요, 이는 인간이요, 이는 하늘이요 하며, 어떻게 성인들의 차별을 분별하여 이른바 이는 일래요, 이는 불환이요, 이는 아라한이요, 이는 독각이요, 이는 보살이요, 이는 여래요 하겠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유정이 뒤바뀌어서 번뇌 때문에 갖가지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일으키고, 이 까닭에 욕망이 근본의 업이 되어 다르게 익어[異熟] 과를 느껴서 얻으며[感得], 이에 의하여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하늘의 다섯 갈래의 차별을 시설합니다. 또 물으시기를 ‘어떻게 성인들의 차별을 분별하는가’ 하시니, 사리자여, 분별이 없는 까닭에 예류와 예류과를 시설하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일래와 일래과를 시설하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불환과 불환과를 시설하며, 분별이 없는 까닭에 아라한과 아라한과를 시설하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독각과 독각의 깨달음을 시설하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보살마하살과 보살마하살의 행을 시설하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그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시설합니다.
사리자여, 과거의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분별이 없어서 분별이 끊어진 까닭에 갖가지 차별이 있다 시설(施設)할 수 있었고, 미래의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도 분별이 없어서 분별이 끊어진 까닭에 갖가지 차별이 있다 시설할 수 있으며, 현재 계시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의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인 지금 설법하시는 분께서도 분별이 없어서 분별이 끊어진 까닭에 갖가지 차별이 있다 시설할 수 있습니다. 사리자여, 이러한 인연으로 모든 법은 모두 분별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니, 분별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진여와 법계와 널리 말하여서 내지 부사의계를 한정하는 분량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004_0048_b_01L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분별하는 바 없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야 하리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분별하는 바 없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으면 곧 분별하는 바 없는 미묘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고, 온갖 법의 분별 없는 성품을 깨달아 미래의 끝[未來際]이 다하도록 유정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할 것입니다.”
선현이 대답하였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며 견고하지 않은 법을 행하고 견고한 법을 행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사리자여,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4념주 내지 8성도지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8해탈 내지 10변처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극희지 내지 법운지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004_0048_c_01L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5안과 6신통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이 견고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며,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며, 일체지지가 견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입니다.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있는 견고하지 않음을 얻을 수 있다고 오히려 보지 않거늘 하물며 견고함을 얻을 수 있다고 보겠으며, 이와 같이하여, 내지 일체지지를 행할 때 일체지지에 있는 견고하지 않음을 얻을 수 있다고 오히려 보지 않거늘 하물며 견고함을 얻을 수 있다고 보겠는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있던 한량없는 욕계와 색계의 하늘 무리는 모두 생각하였다. ‘보살승에 머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능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깊은 반야바라밀다에서 말씀하신 이치와 같게 행하되, 실제와 평등한 법성을 증득하지 않으며, 성문과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매우 희유하고 능히 어려운 일을 하므로 우리들은 마땅히 공경히 예를 올리리라.’
그때 선현이 그 모든 하늘들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곧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실제와 평등한 법성을 증득하지 않으며, 성문과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매우 희유하지 않으며 어렵지도 않습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과 모든 유정들이 모두 얻을 수 없음을 아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정진의 갑옷을 입고 맹세하되 ‘한량없고 그지없는 유정을 제도하여 남음 없는 반열반의 경계[無餘般涅槃界]에 들게 하리라’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에 매우 희유하고 능히 어려운 일을 합니다.
004_0049_a_01L모든 하늘들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은 비록 유정이 도무지 있지 않음을 알더라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정진의 갑옷을 입고, 모든 유정들을 조복시키고자 함이 허공을 조복시키고자 함과 같으니,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허공이 여읜 까닭에 온갖 유정도 마땅히 여읜 줄 알아야 하며, 허공이 공한 까닭에 온갖 유정도 마땅히 공한 줄 알아야 하며, 허공이 견실치 않은 까닭에 온갖 유정도 마땅히 견실치 않은 줄 알아야 하며, 허공이 있지 않는 까닭에 온갖 유정도 마땅히 있지 않는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 보살마하살은 이에 매우 희유하고 능히 어려운 일을 합니다.
모든 하늘들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대비(大悲)의 갑옷을 입고 온갖 유정을 조복시키고자 하나 모든 유정이 도무지 있지 않으므로 마치 갑옷을 입고 허공과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하늘들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대비의 갑옷을 입고 온갖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자 하나 모든 유정과 대비의 갑옷을 모두 얻을 수 없으니,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유정이 여읜 까닭에 이 대비의 갑옷도 마땅히 여읜 줄 알아야 하며, 유정이 공한 까닭에 이 대비의 갑옷도 마땅히 공한 줄 알아야 하며, 유정이 견실치 않은 까닭에 이 대비의 갑옷도 마땅히 견실치 않은 줄 알아야 하며, 유정이 있지 않은 까닭에 이 대비의 갑옷도 마땅히 있지 않은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하늘들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유정을 조복시켜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도 얻을 수 없나니,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유정이 여의고, 공하고, 견실치 않고, 있지 않는 까닭에 이 모든 유정을 조복시켜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도 여의었고, 공하고, 견실치 않고, 있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물질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눈의 영역 내지 뜻의 영역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빛깔의 영역 내지 법의 영역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눈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빛깔의 경계 내지 법의 경계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안식의 경계 내지 의식의 경계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눈의 접촉 내지 뜻의 접촉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지계 내지 식계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인연 내지 증상연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무명 내지 늙음과 죽음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보시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4념주 내지 8성도지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004_0049_c_01L8해탈 내지 10변처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기 때문이며,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정관지 내지 여래지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극희지 내지 법운지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5안과 6신통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서른두 가지 거룩한 모습[三十二大士相]과 여든 가지 좋은 모습[八十隨好]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예류과 내지 독각의 깨달음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며, 일체지지를 여읨이 곧 유정을 여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