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때에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서 온갖 법의 모양을 사실대로 관찰하면, 이때의 보살마하살은 나 내지 보는 것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물질 내지 의식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눈의 영역 내지 뜻의 영역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빛깔의 영역 내지 법의 영역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눈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빛깔의 경계 내지 법의 경계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안식의 경계 내지 의식의 경계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눈의 접촉 내지 뜻의 접촉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지계 내지 식계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인연 내지 증상연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무명 내지 늙음과 죽음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보살마하살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004_0400_a_01L또 끊는 경계 내지 함이 없는 경계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4념주 내지 8성도지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8해탈과 9차제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정관지 내지 여래지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극희지 내지 법운지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5안과 6신통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생(異生)과 이생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예류(預流)와 예류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일래(一來)와 일래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불환(不還)과 불환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아라한(阿羅漢)과 아라한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독각과 독각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보살마하살과 보살마하살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며,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법의 생김이 없는 것을 보나니,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004_0400_b_01L그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제가 어진 이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나와 유정 등은 마침내 생기지 않으며, 물질 내지 의식도 마침내 생기지 않으며, 내지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여래의 법도 마침내 생기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이생들이 여섯 갈래[六趣]에서 생명을 받는 일도 차별이 없어야 하며, 예류가 예류과를 얻지도 않아야 하며, 일래가 일래과를 얻지도 않아야 하며, 불환이 불환과를 얻지도 않아야 하며, 아라한이 아라한과를 얻지도 않아야 하며, 독각이 독각의 깨달음을 얻지도 않아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일체상지를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점차로 다섯 가지 깨달음[五種菩提]을 증득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또 선현이여, 만일 온갖 법이 마침내 생기지 않을진댄 어떻게 예류가 예류과를 얻기 위하여 3결(結)을 영원히 끊는 참된 도를 부지런히 닦으며, 어떻게 일래가 일래과를 얻기 위하여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을 곱으로 끊는 도를 부지런히 닦으며, 어떻게 불환이 불환과를 얻기 위하여 순하결(順下結:욕계의 번뇌)을 영원히 끊는 도를 부지런히 닦아서 다섯 가지의 분위(分位) 차별을 건립하며, 어떻게 아라한이 아라한과를 얻기 위하여 순상결(順上結:색ㆍ무색계의 번뇌)를 영원히 끊는 도를 부지런히 닦겠습니까? 또 어떻게 독각이 독각의 깨달음을 위하여 혼자 연기(緣起)의 법을 깨치는 도를 부지런히 닦으며, 어떻게 보살마하살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유정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백천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苦行)을 닦으면서 한량없는 참기 어려운 큰 고통들을 갖추 받으며, 어떻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여 묘한 법륜을 굴리면서 유정들을 제도하겠습니까?”
004_0400_c_01L선현이 대답하였다. “사리자여,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無生法] 가운데서 이생이 번뇌의 업을 타고 여섯 갈래를 오가면서 받아 나는 차별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 가운데 체현관(諦現觀)에 드는 이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예류가 예류과를 얻는 것이 있거나 내지 독각이 독각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보살마하살이 일체상지를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점차로 다섯 가지의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예류가 예류과를 얻기 위하여 3결을 영원히 끊는 참된 도를 부지런히 닦는 것이 있다거나 내지 독각이 독각의 깨달음을 위하여 혼자 연기의 법을 깨치는 도를 부지런히 닦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유정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백천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으면서 한량없는 참기 어려운 큰 고통들을 갖추어 받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보살마하살이 비록 유정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종류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는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고행이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만일 고행에 대하여 고행이라는 생각에 머무르면 끝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유정들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보살마하살들은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모든 유정들에 대하여 부모요 형제요 처자며 그리고 자기 몸이라는 생각에 머물러서 그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요 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유정들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짓는 것입니다.
004_0401_a_01L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나의 제 성품을 온갖 법에서 온갖 종류와 온갖 처소와 때로써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안팎의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도무지 있지 않으며 얻을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에 머무르면 곧 행하기 어려운 고행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이로 말미암아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유정들을 위하여 여러 백천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아서 큰 이익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과 온갖 유정에 대하여 온갖 종류와 온갖 처소와 때로써 구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그 가운데서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자여, 저는 저 생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여 묘한 법륜을 굴리면서 유정들을 제도함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온갖 법이나 온갖 유정은 도무지 있지 않아서 얻을 수 없으므로 증득하는 것도 없고 제도되거나 또는 증득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 대답하였다. “저는 역시 생기는 법으로 생김이 없는 법을 증득한다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또한 다시 생김이 없는 법으로 생기는 법을 증득한다고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004_0401_a_18L善現答言:“我亦不許生法證無生法,亦復不許無生法證生法。”
사리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도무지 얻는 것도 없고 체현관도 없는 것입니까?”
004_0401_a_19L舍利子言:“若如是者,豈都無得、無現觀耶?”
004_0401_b_01L선현이 대답하였다. “비록 얻는 것도 있고 체현관이 있기는 하나 이 두 가지의 법에 의하여 증득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간의 언설을 따라 얻는 것과 체현관이 있다고 시설할 뿐이요 으뜸가는 이치[勝義] 안에는 얻는 것과 체현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세간의 언설을 따라 예류와 예류과가 있고 더 나아가서 내지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계시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있다고 시설할 뿐이요 으뜸가는 이치 안에는 이러한 일이 없습니다.”
선현이 대답하였다. “저는 아직 생기지 않은 법을 생기는 것으로도 인정하지 않으며, 이미 생긴 법을 생기는 것으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004_0401_b_11L善現答言:“我不許未生法生,亦不許已生法生。”
사리자가 말하였다. “어떠한 것이 아직 생기지 않은 법이기에 그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004_0401_b_12L舍利子言:“何等是未生法而不許彼生?”
선현이 대답하였다. “물질 내지 의식이 바로 아직 생기지 않은 법이며 저는 그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내지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바로 아직 생기지 않은 법이며 저는 그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사리자가 말하였다. “어떠한 것이 이미 생긴 법이기에 그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004_0401_b_17L舍利子言:“何等是已生法而不許彼生?”
“물질 내지 의식이 바로 이미 생긴 법이며 저는 그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내지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바로 이미 생긴 법이며 저는 그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사리자가 다시 구수 선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기는 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십니까, 생기지 않는 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십니까?”
004_0401_b_22L爾時,舍利子復問具壽善現言:“於意云何?爲許生生,爲許不生生耶?”
004_0401_c_01L선현이 대답하였다. “저는 생기는 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며, 생기지 않는 것을 생기는 것으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생기는 것과 생기지 않는 것의 이러한 두 가지 법은 합한 것도 아니요 흩어진 것도 아니며 빛깔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러한 이치 때문에 저는 생기는 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생기지 않는 것을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때에 사리자가 구수 선현에게 물었다. “어진 이께서는 말씀하신 생김이 없는 법에 대하여 또한 생김이 없는 모양을 즐기어 말하지도 않습니까?”
004_0401_c_05L爾時,舍利子問具壽善現言:“仁者!於所說無生法樂辯說無生相耶?”
선현이 대답하였다. “저는 말한바 생김이 없는 법에 대하여 또한 생김이 없는 모양을 즐기어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생김이 없는 법과 생김이 없는 모양과 즐기는 것과 말하는 것의 이와 같은 모두는 다 합한 것도 아니요 흩어진 것도 아니며 빛깔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이라 말로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생김이 없는 법에서 생김이 없는 말을 일으키는데, 이 생김이 없는 말 또한 생김이 없는 것입니까?”
004_0401_c_11L時,舍利子問善現言:“於無生法起無生言,此無生言亦無生不?”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생김이 없는 법에서 생김이 없는 말을 일으키거니와 이 법과 말은 다 같이 생긴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물질[色] 내지 의식[識]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本性]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눈의 영역[眼處] 내지 뜻의 영역[意處]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빛깔의 영역[色處] 내지 법의 영역[法處]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눈의 경계[眼界] 내지 뜻의 경계[意界]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004_0402_a_01L빛깔의 경계[色界] 내지 법의 경계[法界]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의 경계[眼識界] 내지 의식의 경계[意識界]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눈의 접촉[眼觸] 내지 뜻의 접촉[意觸]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눈의 접촉이 연(緣)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지계(地界) 내지 식계(識界)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인연(因緣) 내지 증상연(增上緣)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무명(無明) 내지 늙음과 죽음[老死]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몸과 말과 뜻의 행[身語意行]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보시바라밀다(布施波羅蜜多) 내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내지 일체지(一切智)ㆍ도상지(道相智)ㆍ일체상지(一切相智)의 모두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이치 때문에 생김이 없는 법에서 생김이 없는 말을 일으키거니와 이 법이나 말은 다 같이 생긴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사리자여, 말할 바의 법과 말하는 말에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모두 생기는 이치가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온갖 법의 본 성품은 모두가 공하며 공한 가운데서는 생기는 이치의 능소(能所)가 없기 때문입니다.”
004_0402_b_01L그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모든 법에는 모두가 의지할 바가 없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물질 내지 의식의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안에 의지하지도 않고 밖에 의지하지도 않고 두 사이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이와 같이 하여 내지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도 본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안에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사리자여, 이러한 이치 때문에 나는 ‘모든 법에는 도무지 의지할 바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와 같아서, 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응당 물질을 맑게 하여야 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도 맑게 하여야 하며, 이와 같이 하여 내지 응당 일체지를 맑게 하여야 하고 도상지와 일체상지도 맑게 하여야 하며, 이와 같이 하여 또한 보리도(菩提道)도 맑게 하여야 합니다. ”
사리자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세간의 보시바라밀다이며 어떤 것이 세간 밖의 보시바라밀다입니까?”
004_0402_b_13L舍利子言:“云何世間布施波羅蜜多?云何出世間布施波羅蜜多?”
선현이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큰 시주[大施主]가 되어서 온갖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가난한 이나 병든 이나 외로운 이나 길을 다니면서 구걸하는 이에게 의복과 음식과 그 밖의 살림 기구를 보시하며, 또는 어떤 이가 와서 남자를 구하면 남자를 주고 여자를 구하면 여자를 주며 처첩(妻妾)을 구하면 처첩을 주고 벼슬자리를 구하면 벼슬자리를 주며 국토를 구하면 국토를 주고 왕위를 구하면 왕위를 주며 머리를 구하면 머리를 주고 눈을 구하면 눈을 주며 손을 구하면 손을 주고 팔다리를 구하면 팔다리를 주며 뼈마디를 구하면 뼈마디를 주고 피와 살을 구하면 피와 살을 주고 가죽과 뼈를 구하면 가죽과 뼈를 주며 하인을 구하면 하인을 주고 산 짐승들을 구하면 산 짐승들을 줍니다. 이와 같이 온갖 것을 그가 구하는 대로 안팎의 물건을 모두 다 보시합니다.
004_0402_c_01L비록 이런 보시를 한다손 치더라도 의지하는 바가 있나니, 이를테면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보시하고 그는 받으며 나는 시주가 되었고 나는 간탐하지 않는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두를 잘 버려 보시하며 나는 보시바라밀다를 행한다’ 하며, 그는 보시를 행할 때에 얻을 바 있음으로 방편을 삼아 모든 유정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도 회향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 복을 가져서 모든 유정에게 보시하여 이 세상과 뒷세상의 안락을 얻게 하고, 내지 남음 없는 열반[無餘涅槃]을 증득하게 하리라’ 하면, 그는 세 가지 바퀴[三輪]에 집착하여 보시를 행하는 것이니, 첫째는 자기라는 생각이요, 둘째는 남이라는 생각이며, 셋째는 보시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 가지 바퀴를 집착하면서 보시를 하기 때문에 세간의 보시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어찌하여 이런 보시를 세간이라 하느냐 하면, 세간의 것과 수행함이 동일하기 때문이요 세간의 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것을 세간의 보시바라밀다라 합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행할 때에 세 가지 바퀴가 청정한 것으로서 첫째 내가 보시하는 이라고 집착하지 않으며, 둘째 그가 받는 이라고 집착하지 않으며, 셋째 보시와 보시의 과보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 보살마하살은 보시를 행할 때에 세 가지 바퀴가 청정한 것입니다.
004_0403_a_01L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비(大悲)의 마음으로써 으뜸을 삼아 수행한 보시의 복을 널리 유정에게 베풀되 모든 유정에게 도무지 얻을 바가 없으며, 비록 모든 유정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조그마한 모양도 보지 않으면, 도무지 집착함이 없이 보시를 행하기 때문에 세간 밖의 보시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어찌하여 이 보시를 세간 밖이라 하느냐 하면, 세간의 것과 수행함이 같지 않기 때문이요 세간의 법을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것을 세간 밖의 보시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선현이 대답하였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정계 내지 반야를 수행할 때에 의지하는 바가 있는 이면 세 가지 바퀴에 집착하기 때문에 세간의 바라밀다라 하나니, 세간의 것과 수행함이 같기 때문이요 세간의 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정계 내지 반야를 수행할 때에 의지하는 바가 없는 이면 세 가지 바퀴가 청정하기 때문에 세간 밖의 바라밀다라 하나니, 세간의 것과 수행함이 같지 않기 때문이요 세간의 법을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또 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닦는 반야바라밀다에는 세간의 것이 있고 세간 밖의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세간의 반야바라밀다라 하고 어떤 것을 세간 밖의 반야바라밀다라 하느냐 하면,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닦을 때에 얻을 바가 있음에 의지하여 보시를 행하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능히 간탐하는 마음을 조복하면서 보시를 한다’고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나와 유정과 보시라는 생각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비록 온갖 안팎의 물건들을 보시한다 하더라도 세간 밖의 반야라 하지 못합니다.
004_0403_b_01L보살마하살이 정계를 닦을 때에 얻을 바가 있음에 의지하여 정계를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두다(杜多)의 공덕에 능히 머무른다. 나는 몸과 말과 그리고 마음을 잘 조복한다. 나는 10선업도(善業道)를 수행한다’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나라는 소견과 유정이라는 소견과 모든 착한 법이라는 소견에 의지되어 있는지라 비록 갖가지 정계를 잘 수행하고 또한 그를 가져서 온갖 유정에게 베풀어 평등하게 함께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한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대하여 실제로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모든 공덕에 의하여 자기를 헐뜯고 남을 칭찬하나니, 역시 세간 밖의 반야라 하지 못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안인을 닦을 때에 얻을 바가 있음에 의지하여 인욕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유정이 나에게 행하는 갖가지의 나쁜 일을 능히 참고 받는다’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나와 유정과 안인이라는 소견에 의지하여 있기 때문에 비록 다른 이가 짓는 나쁜 일을 참으면서 받고 또한 이 안인의 착한 뿌리를 가져서 모든 유정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한다 하더라도 얻을 바 있음으로 방편을 삼기 때문에 역시 세간 밖의 반야라 하지 못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정진을 닦을 때에 얻을 바가 있음에 의지하여 정진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몸과 마음이 정진을 일으키어 복과 지혜의 두 가지 양식을 부지런히 닦고 있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으로 복과 지혜의 모양을 얻고 나라는 모양과 모든 유정이라는 모양을 얻고 그리고 구하고 있는 깨달음의 모양을 얻어서 얻을 바 있음으로 삼기 때문에 아직은 세간 밖의 반야라고는 하지 못합니다.
004_0403_c_01L보살마하살이 정려를 닦을 때에 얻을 바가 있음에 의지하여 선정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와 등지(等持)와 등지(等至)와 정려(靜慮)와 신통(神通)을 잘 수행하여 들고남이 자유자재하다’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정려에 대하여 깊이 맛에 애착되어 있으므로 비록 얻은 정려의 착한 뿌리를 모든 유정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한다 하더라도 얻을 바 있음으로 방편을 삼기 때문에 아직은 세간 밖의 반야라고는 하지 못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를 닦을 때에 얻을 바가 있음에 의지하여 반야를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법의 공함을 능히 관찰하나니, 이른바 물질이 공하고 내지 의식이 공하며, 이렇게 하여 내지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또한 모두가 공하니라’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얻을 바가 있음으로 방편을 삼는지라 비록 온갖 것이 모두가 공임을 관찰하고 또한 그 착한 뿌리를 유정에게 베풀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고 또한 자기와 다른 이가 닦은 착한 법에 대하여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평등하게 일으키고 또한 자기가 지은 나쁜 행을 참회하여 없애고 또한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 청하여 묘한 법륜을 굴리어 유정들을 제도하게 하고 또한 훌륭한 신통을 일으켜 모든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지어 준다 하더라도, 얻을 바 있음으로 방편을 삼기 때문에 아직은 세간 밖의 반야라고는 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세간의 보살마하살이라 합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수행할 때에 미묘한 지혜로써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나와 유정과 보시 등에 있어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하여 삼륜(三輪)이 청정하면서 보시바라밀다를 수행하고 보리도(苦提道)를 맑히면, 이것을 곧 세간 밖의 반야라 합니다.
004_0404_a_01L보살마하살이 미묘한 지혜로써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나와 유정과 정계 등에 있어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하여 삼륜이 청정하면서 정계바라밀다를 수행하고 보리도를 맑히면, 이것을 곧 세간 밖의 반야라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미묘한 지혜로써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나와 유정과 몸과 마음의 정진과 복과 지혜의 양식 등에 있어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하여 삼륜이 청정하면서 정진바라밀다를 수행하고 보리도를 맑히면, 이것을 곧 세간 밖의 반야라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미묘한 지혜로써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나와 유정과 그리고 모든 정려와 등지(等持)와 등지(等至) 등에 있어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하여 삼륜이 청정하면서 정려바라밀다를 수행하고 보리도를 맑히면, 이것을 곧 세간 밖의 반야라 합니다.
004_0404_b_01L이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등의 온갖 착한 뿌리를 가져서 모든 유정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면, 이와 같은 회향이 바로 위없는 회향이여 차별 없는 회향이요 같을 이 없되 같은 회향이요 불가사의한 회향이요 상대 없는 회향이요 한량없는 회향이요 미묘한 회향인 줄 알아야 하리니, 이와 같은 것을 세간 밖의 반야라 합니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무슨 연유로 세간의 것이라 하고 또 무슨 연유로 세간 밖의 것이라 하느냐 하면, 사리자여, 세간이라 함은 그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바로 세간의 것이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고 세간을 짓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며 세간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고 세간에 속하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며 세간에 의하기 때문에 세간이라 합니다.
사리자여, 세간 밖이라 함은 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바로 세간을 뛰어나기 때문에 세간 밖이라 하고 세간을 벗어나기 때문에 세간 밖이라 하며 세간으로 말미암아 벗어나기 때문에 세간 밖이라 하고 세간을 위하여 벗어나기 때문에 세간 밖이라 하며 세간으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세간 밖이라 하고 세간에 의한 벗어남이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며 세간에 의하여 벗어나기 때문에 세간 밖이라 합니다. 사리자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보리도가 청정하게 됩니다.”
004_0404_c_01L선현이 대답하였다. “사리자여, 보시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입니다.
4념주 내지 8성도지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8해탈과 9차제정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극희지 내지 법운지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입니다.
5안과 6신통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이며,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가 바로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입니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등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큰 공덕 더미의 온갖 모두가 바로 모든 보살마하살의 보리도입니다.”
004_0405_a_01L선현이 대답하였다. “이와 같이 말한 큰 공덕 더미는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착한 법의 어머니여서 온갖 성문ㆍ독각ㆍ보살 및 여래의 착한 법이 이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두루 온갖 착한 법을 포섭한지라 온갖 성문ㆍ독각ㆍ보살 및 여래의 착한 법이 이에 의하여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사리자여, 과거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배워서 극히 원만해졌으므로 이미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였고, 미래의 보살마하살들이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배워서 극히 원만해질 것이므로 장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것이며, 현재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의 한량없는 보살마하살들이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서 극히 원만해지므로 지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합니다.
또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가 설법을 듣고 마음에 의혹이 없으면서 답답하지도 않으면 이 보살마하살이야말로 이와 같은 머무름[住]에 머물러서 항상 여의지 않으리니, 바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은 줄 알 것이요, 항상 부지런히 온갖 유정들을 구제하면 이 보살마하살이야말로 이와 같은 가장 훌륭한 뜻 지음[作意]을 성취한 줄 알 것이니, 이른바 대비(大悲)와 상응한 뜻 지음입니다.”
그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머무름에 머물러서 항상 여의지 않고 대비와 상응한 뜻 지음을 성취할진대 온갖 유정도 보살마하살을 성취해야겠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온갖 유정도 이 머무름과 이 뜻 지음을 항상 여의지 않기 때문이니, 모든 보살마하살과 온갖 유정은 의당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004_0405_b_01L그때에 구수 선현이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참으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가 말한 뜻을 사실대로 아셨으니, 비록 저를 힐난한 것 같으나 도리어 저의 뜻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유정 내지 보는 것[見者]은 있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있지 않은 줄 알 것이며, 유정 내지 보는 것이 실제가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실제가 없는 줄 알 것이며, 유정 내지 보는 것이 성품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성품이 없는 줄 알 것입니다.
유정 내지 보는 것이 공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공한 줄 알 것이며, 유정 내지 보는 것이 멀리 여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멀리 여읜 줄 알 것이며, 유정 내지 보는 것이 고요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고요한 줄 알 것이며, 유정 내지 보는 것이 깨달아 앎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깨달아 앎이 없는 줄 알 것입니다.
사리자여, 물질 내지 의식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가 없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멀리 여의기 때문에 고요하기 때문에 깨달아 앎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있지 않고 실제가 없고 성품이 없고 공하고 멀리 여의고 고요하고 깨달아 앎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이와 같이 하여 내지 성문과 독각과 위없는 깨달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가 없기 때문에 성품이 없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멀리 여의기 때문에 고요하기 때문에 깨달아 앎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도 있지 않고 실제가 없고 성품이 없고 공하고 멀리 여의고 고요하고 깨달아 앎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사리자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머무름과 뜻 지음에서 항상 떠나지 않으며 모든 유정과도 차별이 없나니, 온갖 법과 모든 유정이 모두 마침내 공하여서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4_0405_c_01L그때에 세존께서 선현을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너는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잘 연설하였는데, 이 모두는 여래의 위신의 힘이니라. 만일 어떤 이가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고자 하면 모두 네가 연설한 바와 같이 해야 하고,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배우고자 하면 모두 네가 말한 바에 따라 배워야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네가 말한 대로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면 이 보살마하살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속히 증득하여 묘한 법륜을 굴리면서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온갖 유정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리라.”
구수 선현이 대중을 위하여 심히 깊은 보살마하살을 연설할 때에, 이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서 동쪽에서 솟구쳐서 서쪽으로 가라앉고, 서쪽에서 솟구쳐서 동쪽으로 가라앉고, 남쪽에서 솟구쳐서 북쪽으로 가라앉고, 북쪽에서 솟구쳐서 남쪽으로 가라앉고, 중간에서 솟구쳐서 변두리로 가라앉고, 변두리서 솟구쳐서 중간으로 가라앉았다.
그때에 세존께서 미소를 지으시자 구수 선현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미소를 지으십니까?”
004_0405_c_15L爾時,世尊卽便微笑,具壽善現白言:“世尊何因何緣現此微笑?”
004_0406_a_01L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에게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는 것같이 지금 시방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세계에 계신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각각 그 곳의 보살마하살들에게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고 계시며, 내가 지금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여 12 경(京)의 하늘과 인간들이 온갖 법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것 같이 지금 시방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세계에서도 각각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지없는 유정들이 있으면서 저 모든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에게 연설하시는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공한 법 가운데서 깊이 믿고 이해하여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마음을 일으키면서 보살마하살의 행을 부지런히 닦고 있느니라.”
그때에 이 삼천대천의 부처님 세계에 있던 모든 사대왕천과 모든 천제(天帝)와 나아가 색구경천(色究竟天)들이 저마다 한량없는 백천 구지 나유타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이 모임으로 함께 와서 앉았다. 이 모든 하늘들은 맑은 업[淨業]으로 얻은 몸의 광명이 환히 빛났으나 여래의 몸에서 나타나는 항상한 광명[常光]에 비교하면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오파니살담분(鄔波尼殺曇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며, 부처님 몸에서 나타나는 항상한 광명은 위덕이 왕성하여 모든 광명 가운데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으뜸가고 가장 묘하며 견줄 데가 없고 같을 이가 없으며 위없고 첫째이기 때문이니, 모든 하늘들은 광명을 가리어 모두 나타나지 않게 함이 마치 가을의 보름달이 뭇 별빛을 빼앗아버린 것과 같았다.
004_0406_b_01L그때에 천제석이 선현에게 아뢰었다. “지금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사대천왕과 천제와 나아가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권속들과 함께 모두가 와 모여서 대덕(大德)께서 말씀하시는 반야바라밀다를 듣고자 하니, 원하건대 대덕께서는 가엾이 여기셔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무엇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라 하며,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합니까?”
그때에 구수 선현이 천제석에게 말하였다. “교시가(憍尸迦)여, 그대들 하늘들은 모두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할지니라. 나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여래의 뜻에 맞게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말하리니, 보살마하살과 같게 그 가운데서 그와 같이 머물러야 하고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교시가여, 그대들 모든 하늘이 아직 위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내지 않은 이는 지금 모두 내어야 하느니라. 교시가여, 어떤 이들이 이미 성문이나 독각의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갔으면 다시는 큰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나니, 왜냐하면 교시가여, 그들은 나고 죽는 흐름에서 벌서 일정한 막이를 설정했기 때문이니, 그 가운데서 만일 위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이가 있으면 나도 따라 기뻐하리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법을 구해야 하고 나는 끝내 남의 훌륭한 일을 막지 않기 때문이니라.
004_0406_c_01L교시가여, 그대는 묻기를 ‘무엇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라 하느냐’ 하는데,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그대들을 위하여 말하겠느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一切智智)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물질의 쌓임[色蘊] 내지 의식의 쌓임[識蘊]이 덧없고 괴롭고 나 없고 깨끗하지 못하고 공하고 모양 없고 소원 없고 고요하고 멀리 여의고 질병과 같고 종기와 같고 화살과 같고 상처와 같고 뜨겁게 번거롭고 몹시 핍박하고 헐어 무너지고 쇠하여 썩고 변동하고 속히 소멸하고 두렵고 싫증나고 재앙이 있고 횡액이 있고 염병이 있고 나쁜 병이 있고 편안치 않고 믿을 수 없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지음도 없고 함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느니라.
또 눈의 영역 내지 뜻의 영역을 생각할 때와 빛깔의 영역 내지 법의 영역을 생각할 때와 눈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를 생각할 때와 빛깔의 경계 내지 법의 경계를 생각할 때와 안식의 경계 내지 의식의 경계를 생각할 때와 눈의 접촉 내지 뜻의 접촉을 생각할 때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을 생각할 때와 지계 내지 식계를 생각할 때와 무명 내지 늙음과 죽음을 생각할 때에도 역시 그와 같이 하느니라.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의 연(緣)이 되고, 지어감은 의식[識]의 연이 되고, 의식은 이름과 물질[名色]의 연이 되고, 이름과 물질은 여섯 가지 감관[六處]의 연이 되고, 여섯 가지 감관은 접촉[觸]의 연이 되고, 접촉은 느낌[受]의 연이 되고, 느낌은 애욕[愛]의 연이 되고, 욕망은 취함[取]의 연이 되고 취함은 존재[有]의 연이 되고, 존재는 태어남[生]의 연이 되고, 태어남은 늙음과 죽음[老死] 내지 순수하고 큰 고통 뭉치[純大苦蘊集]의 연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느니라.
그러한 뒤에 다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무명이 소멸하기[滅] 때문에 지어감이 소멸하고, 지어감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이름과 물질이 소멸하고, 이름과 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관이 소멸하고, 여섯 가지 감관이 소멸하기 때문에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애욕이 소멸하고, 애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함이 소멸하고, 취함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 내지 순수하고 큰 고통 뭉치가 소멸한다는 것을 생각하나니, 이와 같은 모든 소멸은 나 없고 공하고 모양 없고 소원 없고 고요하고 멀리 여의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지음도 없고 함도 없느니라.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004_0407_a_01L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이 나와 내 것이 없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고 고요하고 멀리 여의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지음도 없고 함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나니,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진여 내지 부사의계가 나와 내 것이 없고 모양이 없고 소원 없고 고요하고 멀리 여의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지음도 없고 함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나니,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끊는 경계[斷界] 내지 함이 없는 경계[無爲界]가 나와 내 것이 없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고 고요하고 멀리 여의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지음도 없고 함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나니,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004_0407_b_01L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보시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생각하고, 4념주 내지 8성도지를 생각하고,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을 생각하고, 8해탈과 9차제정을 생각하고,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을 생각하고, 정관지(淨觀地) 내지 여래지(如來地)를 생각하고, 극희지(極喜地) 내지 법운지(法雲地)를 생각하고,
5안과 8신통을 생각하고,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을 생각하고,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을 생각하고,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을 생각하고,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를 생각하나니, 모두가 이는 덧없고 나 없고 공하고 모양 없고 소원 없고 고요하고 멀리 여의고 변동하고 속히 소멸하고 믿을 수 없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지음도 없고 함도 없느니라.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에 머무르고, 끊는 경계 내지 함이 없는 경계에 머무르고,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내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머무르나니,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
004_0407_c_01L또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와 상응한 마음을 일으켜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 보시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 4념주 내지 8성도를 수행하고, 4정려ㆍ4무량ㆍ4무색정을 수행하고, 8해탈과 9차제정을 수행하고, 공ㆍ무상ㆍ무원 해탈문을 수행하고, 극희지 내지 법운지를 수행하고, 5안과 6신통을 수행하고, 여래의 10력 내지 18불불공법을 수행하고, 잊음이 없는 법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을 수행하고, 온갖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을 수행하고, 일체지ㆍ도상지ㆍ일체상지를 수행하고,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을 수행하고,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수행하나니,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