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그리고 모든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도 역시, ‘모든 형상은 분별로 짓는 바라 공하여 있지 않고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다’고 말하리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내공(內空)과 내지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을 잘 배워서 이미, ‘모든 형상은 모두가 다 분별로 짓는 바라 공하여 있지 않고 허망하며 진실하지 않다’고 관찰했기 때문이니,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형상이 모두가 분별로 짓는 바라 공하여 있지 않고 허망하며 진실하지 않다’ 함을 여여(如如)하게 관찰한지라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여의지 않으며, 매우 깊은 바라밀다를 여여하게 여의지 않은지라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얻게 되는 공덕도 한량없고 그지없느니라.”
구수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한량없고[無量] 그지없다[無邊]는 것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한량없다고 함은 이곳에서는 그 분량이 영영 그쳐버렸다는 말이요, 그지없다고 함은 이 안에서는 수효가 다할 수 없다는 말이니라.”
004_0857_b_01L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혹시 인연이 있어서 물질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씀하시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인연이 있기에 물질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무슨 인연 때문에 물질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시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할 수 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선현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비록 항상,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다’고 말씀하셨다손 쳐도 모든 유정들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에 제가 지금 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비단 물질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만이 공한 것이 아니므로, 나는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한량없고 그지없다는 것은 다만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는 것 뿐입니까. 아니면 다시 그 밖의 이치도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어찌 ‘온갖 법문은 모두가 공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여래께서는 언제나 ‘온갖 법문은 모두가 공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004_0857_c_01L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여래는 방편으로써 다함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한량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그지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공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모양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소원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조작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생김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멸함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고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물듦을 여읜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열반이라고 말하기도 하나니, 모든 이와 같은 한량없는 이치에는 실로 차이가 없건마는 모두가 이는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모든 유정을 위하여 방편으로 연설하는 것이니라.”
그 때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심히 기이하십니다. 방편선교로 모든 법의 참성품을 말로는 연설할 수 없는데도 유정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도 모든 법의 참성품은 모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을진대, 응당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6바라밀다에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하면 6바라밀다가 모두 있지 않아야 하고, 이 6바라밀다가 모두 있지 않는다 하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려 하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004_0858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보시 등의 6바라밀다는 모두가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며 또한 있지도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방편선교로, ‘이와 같은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에는 더함도 있고 덜함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생각하기를, ‘오직 이름과 모양이 있으므로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라고 한다’고 할 뿐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와 함께 하는 뜻 지음과 이에 의하여 일어나는 마음과 선근을 모든 유정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함이 마치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미묘하고 매우 깊은데도 회향을 일으키는 것과 같나니, 이 회향하는 방편선교의 뛰어난 세력으로 말미암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그 때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무엇을 말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 합니까?”
004_0858_a_13L爾時,善現便白佛言:“何謂無上正等菩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법의 진여를 바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라 하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법의 진여는 더하거나 덜함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나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자주자주 많이 이와 같은 진여와 상응하는 뜻 지음에 머무르면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졌느니라.
이와 같이 선현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비록 더함과 덜함이 없다 하더라도 진여의 뜻 지음과 바라밀다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비록 더함과 덜함이 없다 하더라도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나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진여의 뜻 지음에 머무르면서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졌느니라.”
만일 처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 하면 처음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나중의 마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지라 화합한다는 이치가 없고, 만일 나중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 하면 나중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앞의 마음은 이미 사라져서 화합한다는 이치가 없으리니, 이와 같이 앞과 뒤의 심심소법(心心所法)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추궁하건대, 화합한다는 이치가 없거늘 어떻게 선근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모든 선근을 쌓을 수 없을진대 어떻게 보살의 선근이 원만해져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심지는 타고 있느냐?” “세간의 현실에서 보건대 그 심지는 실제로 타고 있습니다.”
004_0858_b_16L佛告善現:“於意云何?炷爲燋不?”善現答言:“世間現見其炷實燋。”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처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역시 처음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으며, 나중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역시 나중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나니, 그러면서도 모든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행하면서 모든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고 원만하게 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004_0858_c_01L구수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와 같이 인연이 새기는 이치가 심히 깊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처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처음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고, 나중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나중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으며, 이와 같은 모든 마음이 일어나는 그것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도 아니고, 이와 같은 모든 마음의 일어남을 여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보살마하살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생기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이 이미 사라졌으면 다시는 생길 수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음이 이미 생겼으면 사라지는 법이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이 이미 생겼으면 반드시 사라지는 법이 있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라지는 법이 있는 마음이면 당연히 사라져야 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라지는 법이 있는 마음이면 필연코 사라져야 합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라지는 법이 없는 마음이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라지는 법이 없는 마음은 생겨날 수 있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겨나는 법이 없는 마음이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생겨나는 법이 없는 마음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법이 없는 마음이면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법이 없는 마음은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004_0859_a_01L“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법이 이미 사라졌다면 다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이미 사라졌다면 다시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법이 이미 생겨났다면 다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이미 생겨났다면 다시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법의 참성품은 생겨나거나 사라짐이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참성품은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의 머무름이 마음의 진여와 같은 것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의 진여와 같이 마음은 그렇게 머무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음의 머무름이 진여와 같다면, 이 마음은 진여와 실제(實際)의 성품과 같이 항상 머무르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은 진여와 실제의 그 성품과 같이 항상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법의 진여는 지극히 그리고 매우 깊은 것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진여는 지극히 그리고 심히 깊습니다.”
004_0859_b_01L“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어느 곳을 행하는 것이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모두가 행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도무지 행하는 이와 행할 바와 행하는 때와 행하는 곳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모든 행을 나타내는 법이 모두 움직이지 않은 까닭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행할 바가 무엇이겠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으뜸가는 이치[勝義諦]를 행하는 것이니, 이 안에는 온갖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모양을 취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비록 모양은 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마하살은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모양을 무너뜨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04_0859_c_01L“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마하살은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모양을 버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이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만일 모양을 무너뜨리지 않고 모양을 버리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모양을 취하는 생각을 끊을 수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이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나는 지금 모양을 무너뜨린다. 나는 지금 모양을 버린다. 모양을 취하는 생각을 끊고 또한 모양과 생각을 끊는 길을 닦아 배우지도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행을 부지런히 닦고 배울 때에 생각을 끊는 길을 닦으면, 그 때에는 온갖 부처님 법이 아직 원만하지 못했으므로 의당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 떨어져야 합니다.
004_0860_a_01L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미 반야바라밀다를 얻었고 깨어 있을 때에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을 이미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렀다 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렀다 하리니, 3해탈문이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더 도움이 되는 것도 그와 같아서 꿈 꾸거나 깨어 있거나 간에 그 이치에는 결함이 없습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들이 꿈속에서 업을 지으면 더 불어나거나 혹은 더 줄어짐이 있겠습니까?”
004_0860_a_04L時,舍利子問善現言:“若善男子、善女人等夢中造業,爲有增益或損減不?”
선현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은 모두가 꿈속에서 보는 바와 같다’고 하셨으므로 꿈에 지은 업에 불어남과 줄어듬이 없다 하면 깨어 있을 적에 지은 업도 불어남과 줄어듬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지은 모든 업에는 딴 때보다 더 불어나거나 줄어듬이 없는 것이며, 반드시 깨어났을 때에 기억하고 분별하여야 꿈속에서 지었던 그의 업을 비로소 더욱 불어나게 하거나 줄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꿈에 남의 생명을 끊고 나서 뒤에 깨었을 때에 기억하고 분별하면서 스스로가 깊이 유쾌히 여긴다면 그 업은 더욱 불을 것이나, 만일 깊이 뉘우치거나 부끄러이 여긴다면 그 업은 곧 더 줄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004_0860_b_01L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에서나 깨어 있거나 간에 반연함이 없는 일에서는 생각이나 업이 생기지 않고 반드시 반연함이 있어야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반드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 가운데서 깨닫는 지혜가 있으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니, 이로 말미암아 물듦을 일으키고 혹은 또 깨끗함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일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모든 법이 없고 깨닫는 지혜의 움직임이 없으면 역시 물듦과 깨끗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꿈이거나 깨어 있거나 간에 반연함이 있는 일이라야 생각이나 업이 비로소 생김을 알 수 있나니, 반연함이 없는 일에는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현이 대답하였다. “비록 모든 생각이나 업이나 반연하는 일이 모두 제 성품을 여의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아 모양을 취하여 분별하고 세속의 것으로 시설하여 반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이 반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는 것이니, 마치 무명(無明)이 반연이 되어 지어감[行]이 생기고 지어감이 반연이 되어 의식[識]이 생긴다는 등과 같아서 모두가 자기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모양을 취하여 분별하면서 반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실제로 존재하는 성품이 아닙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의 말대로 자씨 보살게 공손히 청해 묻자, 때에 자씨 보살은 도리어 선현에게 따졌다. “존자께서는 말씀하기를, ‘자씨 보살이 이 뜻을 대답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어떤 것을 자씨 보살이라 하고, 대답할 수 있다고 하십니까. 물질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드러나게[顯]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형상[形]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물질의 공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004_0860_c_01L우선 자씨라는 이름도 대답할 수 없고, 물질도 대답할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대답할 수 없으며, 드러나게 대답할 수도 없고, 형상도 대답할 수 없고, 물질의 공도 대답할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도무지 어떤 법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어떤 법도 대답할 바와 대답할 곳과 대답할 때와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대답한다는 것도 모두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무지 어떠한 법도 수기할 수 있는 것을 보지 않으며, 어떠한 법도 수기할 바와 수기할 곳과 수기할 때와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수기한다는 것도 모두 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온갖 법의 본성품은 모두가 공하여 도무지 있지 않아서 둘이 없고 차별도 없으며 끝까지 추궁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사리자가 자씨 보살에게 물었다. “어진 이께서 말씀하신 법이 증득한 바와 같습니까?”
004_0860_c_09L時,舍利子問慈氏菩薩言:“仁者所說法爲如所證不?”
자씨 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내가 말한 바의 법은 증득한 바와 같지 않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증득한 바의 법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사리자여, 나는 도무지 증득한 바의 법의 제 성품이 있어서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나니, 마치 마음으로 생각한 바와 같고 마치 말로 말한 바와 같습니다. 또 사리자여, 모든 법의 제 성품은 몸으로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로 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뜻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온갖 법은 제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생각하기를, ‘자씨 보살은 깨닫는 지혜가 심히 깊으며, 오랜 세월 동안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였기에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리자야, 너의 생각과 같으니라. 또 사리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아라한이 되었거니와 이 법을 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증득한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말로는 연설할 수 없느니라.
004_0861_a_02L佛告舍利子:“菩薩摩訶薩行深般若波羅蜜多,所證法性亦復如是不可宣說。
또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나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서 이미 수기를 얻었고 지금 수기를 얻으며 장차 수기를 얻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장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으면, ‘내가 부지런히 정진하면 반드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으리니, 이미 깨달음에서 수승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고 할 뿐이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서, 매우 깊은 법을 들어도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잠기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함이 없음은 필연코 스스로가 ‘나는 증득할 것이다’ 함을 알기 때문이니라.
004_0861_b_01L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이 혹시 너른 들판의 나쁜 짐승들이 있는 곳에 있게 되어도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온갖 안팎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며, 항상 생각하기를, ‘만일 어떤 나쁜 귀신이나 나쁜 짐승들이 나의 몸을 잡아먹으려 하면 나는 의당 베풀어 주어서 그들을 충족시켜 주어야 하며, 이 선근으로 말미암아 나의 보시 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게 되어서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지리라. 나는 이와 같이 부지런히 바른 행을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을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온갖 축생이나 아귀가 없게 되리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혹시 너른 들판의 나쁜 도둑들이 있는 곳에 있게 되어도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온갖 안팎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즐거이 모든 선행을 닦으면서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하여 인색함이 없기 때문이며, 항상 생각하기를, ‘만일 모든 유정이 다투어 와서 나의 모든 살림 기구를 빼앗는다면 나는 공경하고 기뻐하면서 베풀어 주어야 하고, 혹은 어떤 이가 이로 인하여 나의 몸과 목숨을 해칠지라도 나는 끝내 그에게 성을 내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또한 몸과 말과 뜻의 악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이러한 인연으로 나의 보시와 계율과 인욕의 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여져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빨리 가까워지게 하겠으며, 나는 이와 같이 부지런히 바른 행을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온갖 빼앗는 것이나 도둑이 없게 되고, 나의 불국토가 극히 청정하기 때문에 그 밖의 악도 없게 되리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이 혹시 너른 들판의 물이 없는 곳에 있게 되어도 역시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보살은 저절로 모든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며,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의당 모든 유정의 애타는 일을 끊는 법을 배우려 해야 하고 이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한다. 설령 내가 이로 말미암아 목이 말라 타서 죽는다 해도 모든 유정들을 반드시 버리지 않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뜻 지음으로 묘한 법의 물을 베풀리라. 기이하게도 반복하여서 이 모든 유정들은 이렇게 물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구나.
004_0861_c_01L나는 이와 같이 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이와 같은 온갖 목이 말라 타고 물이 없는 들판이 없게 되리라. 나는 방편을 써서 모든 유정에게 수승한 복된 일을 닦도록 하여서 살고 있는 데마다 모두가 여덟 가지 공덕의 물[八功德水]이 구족하게 하겠으며, 나는 이와 같은 견고하고 용맹스런 정진으로 말미암아 방편으로 온갖 유정을 교화하고 이러한 인연으로 나의 정진 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여져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빨리 가까워지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이 혹시 흉년으로 곡식이 부족한 나라에 있을 때도 역시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공덕의 갑옷을 입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며 불국토를 장엄하면서 서원하기를, ‘장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을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이러한 온갖 흉년으로 굶주리는 일이 없고 모든 유정들이 쾌락을 두루 갖추며 마음대로 바라는 것은 생각하자마자 이르는 것이 마치 모든 천상에서 생각하면 모두 얻는 것과 같게 하리라. 나는 의당 굳고 용맹스런 정진을 일으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법과 소원이 만족하게 하겠으며, 언제 어디서나 온갖 유정들의 온갖 종류의 생활에 쓰는 살림살이면 모자람이 없게 하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질병을 만났을 때에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자세히 관찰하기를, ‘병이라 하는 어떤 법이 없고, 병든 이라 할 만한 어떤 법도 없다. 온갖 모두는 공한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이 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모든 유정들이 온갖 재앙이나 질병이 없으면서 수승한 바른 행을 부지런히 수행하게 되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004_0862_a_01L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혹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은 오랜 세월을 지나야 비로소 얻는다’고 생각되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지나간 세상의 겁의 수효가 비록 한량이 없이 있었다 하더라도 한 생각 동안에 기억하고 분별하여 쌓아서 된 것이라 오는 세상의 겁의 수효도 역시 그러한 줄 알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이것에 대하여 오래 걸려야 한다는 생각을 내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은 반드시 오랜 세월을 지나야 비로소 증득한다’고 하여 곧 두려운 생각을 내거나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과거 세상이나 미래 세상의 겁의 수효의 깊고 짧음은 모두가 한 찰나(刹那)에 내는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비록 오랜 세월을 지나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살피면서 두려운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온갖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두려워할 만한 법에 대해서도 두려운 생각을 내지 않으면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속히 증득할 줄 알아야 하리니, 그러므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빨리 증득하고자 하면 응당 여래의 진실하고 청정한 공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의 갑옷을 입고 부지런히 닦아 배워야 하며, 온갖 법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 때 대중 가운데 한 천녀(天女)가 있었는데, 이름이 긍가천(殑伽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말에 머리 조아리고 왼쪽 어깨만을 덮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곳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모든 법 안에서도 의혹이 없습니다. 저는 오는 세상에 역시 유정들을 위하여 두려움이 없고 의혹이 없는 법을 말하여 주리이다.”
그 때 세존께서 경희(慶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이 천녀는 미래 세상에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이루게 되리니, 겁의 이름은 성유(星喩)요, 부처님의 명호는 금화(金花)이리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지금의 이 천녀는 맨 마지막으로 받은 여자의 몸이며, 이 몸을 버린 뒤에는 바로 남자의 몸을 받아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다시는 여자의 몸이 되지 않으리라.
여기서 죽은 뒤에는 동방의 부동 여래(不動如來)께서 계신 심히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그 부처님 처소에서 부지런히 범행(梵行)을 닦으리니, 이 여인은 그 세계에서의 이름이 금화(金花)이니라. 부동불의 세계에서 죽은 뒤에는 다시 부른 부처님께서 계신 세계에 가 나되 한 불국토에서 한 불국토로 옮아가면서 항상 모든 부처님ㆍ세존을 여의지 않으리라.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한 대관(臺觀)으로부터 한 대관으로 옮아가면서 재미있게 놀고 쾌락을 누리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발을 땅에 대지 않는 것처럼, 금화 보살도 그와 같아서 한 불국토로부터 한 불국토로 옮아가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태어나는 곳마다 언제나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리라.”
004_0862_c_01L부처님께서 그의 뜻을 아시고 경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생각과 같으니라. 금화 보살이 부처님이 되었을 때에도 대중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실 것이며, 그 모임에 있는 보살마하살들도 그 수효의 많고 적음이 지금의 부처님과 보살들의 모임과 같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희야, 지금의 이 천녀는 먼저 과거의 연등 부처님(燃燈佛)께 처음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선근을 심고 회향하고 원을 세웠으며, 그 때에도 금꽃을 부처님께 뿌리고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기를 구하였느니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과거에 연등 부처님 처소에서 다섯 송이의 꽃을 그 부처님께 받들어 뿌리고는 회향하고 발원하여 그 때에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었는데, 연등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나의 근기가 성숙됨을 아시고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리니, 명호는 능적(能寂)이요, 세계 이름은 감인(堪忍)이며, 겁의 이름은 현겁(賢劫)이리라’고 하셨느니라.
004_0863_a_01L천녀는 그 때에 부처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의 수기를 주시는 것을 듣고 기뻐 날뛰면서 곧 금꽃을 부처님 위에다 뿌리고는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선근을 심고 회향하고 발원하면서 ‘저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이 보살이 부처님이 되셨을 때에 역시 지금의 부처님과 같이 그 앞에서 저에게 큰 깨달음의 수기를 주시게 하소서’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에게 수기를 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응당 물질의 공함을 관찰해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함을 관찰해야 하나니, 이렇게 관찰을 할 때에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하되 만일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법을 보지 않을 것이요, 법을 보지 않으면 증득하려고 하지 않으리라.”
그 때 선현이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법의 공함을 관찰하면서 증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시는데,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공의 등지(等持)에 머무르면서 증득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004_0863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서 법의 공함을 관찰할 때에는 먼저 생각하기를, ‘나는 의당 법의 모든 모양이 모두가 공함을 관찰해야 하고 증득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배우기 위하여 모든 법의 공함을 관찰하는 것이요 증득하기 위하여 모든 법의 공함을 관찰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바로 배우는 때요 증득하기 위한 때가 아니다’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아직 정(定)에 들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을 경계에 매어 두고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하는 것이요, 정에 들었을 적에 마음을 경계에 매어두고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하는 것이 아니니, 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할 때에 온갖 보리분법(菩提分法)에서 물러나지 않고 번뇌의 다함[漏盡]도 증득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광대한 지혜를 성취한지라 법의 공함과 온갖 종류의 보리분법에 잘 머무르면서 항시 생각하기를, ‘지금의 이 때는 배워야 하고 증득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때에 보살마하살이 공의 삼마지에 머무르면서 공을 증득하지 아니한다면 이 때의 보살마하살은 역시 무상삼마지(無相三摩地)에 머무르면서도 모양이 없음을 증득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수승하고 굳고 깨끗한 선근을 성취하고서 항상 생각하기를, ‘지금의 이 때는 배워야 하고 증득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의당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하고서 온갖 법에 대하여 공하고 모양이 없음을 관찰하여서 온갖 보리분법을 원만하게 해야 하리니, 지금의 이 때는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이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고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004_0863_c_01L선현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용맹하고 건장하여 위엄이 있고 세운 바가 견고하여 동요하기 어려우며, 형색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여러 사람들이 보기 좋아하며, 많고도 가장 수승한 공덕과 시라(尸羅)를 갖추었고 총명하여서 교묘한 말로 잘 대답하며, 변재를 갖추고 행을 갖추어서 처소를 알고 시기를 알며, 병법을 배워서 끝까지 이르렀고 방어함이 견고하여 많은 적을 능히 꺾으며, 온갖 기능을 모두 잘 성취하고 모든 교묘한 일을 배워서 끝까지 이르렀으며,
생각하는 지혜를 갖추어서 행동이 날래고 법다우며, 모든 경전(經典)에서는 두려운 바가 없음을 얻고 자비와 의협을 갖추어서 큰 세력이 있으며, 온몸에 결함이 없고 모든 감관이 원만하며, 권속과 재물을 두루 갖추지 아니함이 없고 뭇 사람이 존경하고 복종하면서 모두가 다 우러러 사모하며, 하는 일들은 모두를 이루어 마치고 사업을 잘하기 때문에 공이 적으면서도 이익은 많으며, 이런 인연으로 재물이 많은지라 온갖 유정들에게 잘 베풀어주나니, 공양해야 할 이면 잘 공양하고 공경해야 할 이면 잘 공경하며, 존중해야 하 이면 잘 존중하고 찬탄해야 할 이면 잘 찬탄하느니라.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은 이로 말미암아 갑절 더 뛰놀고 깊은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스스로가 경하해하지 않겠느냐?”
004_0863_c_12L善現!於意云何?彼人由此倍增喜躍,深心歡悅自慶慰不?”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겠습니다, 선서시여.”
004_0863_c_13L善現對曰:“如是!世尊!如是!善逝!”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 용맹하고 건장한 사람은 이와 같이 크고 왕성한 일을 성취한 이거니와, 어떤 일이 있어서 그의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거느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중로에 험난한 벌판을 지나게 되었고 거기에는 나쁜 짐승과 도둑과 원수가 숨어 있는 등의 온갖 두려운 일이 많이 있었으므로 권속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지마는 그 사람만은 스스로가 온갖 기술이 많음을 믿음으로 위엄이 씩씩하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면서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위로하되,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괴로움이 없어 빨리 벌판을 지나서 편안한 곳으로 닿게 하겠습니다’고 하리라.
004_0864_a_01L또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벌판 가운데서 나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할 적에, 그 사람은 이미 용맹과 기능을 갖추어 있고 어른과 권속을 사랑하며 모든 무기가 갖추어졌는데도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버리고 자기 혼자만이 그 험난한 곳을 지나가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그는 재주가 많으므로 능히 그 벌판에서 변화로 무기와 용맹한 정에 군사를 만들어 그 원수나 도둑들을 만났을 적에 그들이 그것을 보고서 저절로 물러나게 할 것이요, 사랑하는 권속들을 버리고 자기만이 혼자 그 험난한 들판을 지난다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장사는 벌판 가운데서 나쁜 짐승이나 원수와 도둑들을 해치려는 뜻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스스로가 용맹스럽고 모든 재주를 갖추어서 두려울 것이 없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은 모든 유정들을 불쌍히 여기어 생각을 사랑함[慈]과 가엾이 여김[悲]과 기쁘게 함[喜]과 버림[捨]에 머무르고 반야바라밀다의 수승한 선근을 섭수하여 방편선교로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바와 같이 모든 공덕을 가져다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며, 비록 공함과 모양이 없음[無相]과 소원이 없음[無願]을 갖추어 닦는다 하더라도 실제에 대하여 증득하려는 마음이 없으므로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큰 세력을 갖추어서 정진함이 견고하고 반야바라밀다의 수승한 선근을 섭수하여 방편선교로 맹세코 온갖 유정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 이로 말미암아 반드시 안온하여 험난함이 없으면서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느니라.
004_0864_b_01L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약 때에 보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온갖 유정을 불쌍히 여기면서 모든 유정을 반연하여 안락을 베풀려고 하면, 이 때의 보살은 번뇌를 뛰어나고 악마의 무리와 2승의 지위를 초월하게 되나니, 비록 삼마지(三摩地)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번뇌를 다함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공을 잘 익힌다손 치더라도 증득하려고 하지 않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때에 보살이 공의 해탈문에 잘 머무르면 이 때의 보살은 모양이 없는 선정에서도 능히 머무르며,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방편선교로 모양이 없음을 증득하지 않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2승의 지위를 초월하고 반드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날개가 굳은 새는 허공에 날아 올라 자유로이 날개를 치면서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으며, 비록 허공을 의지하여 유희하면서도 허공에 머무르지 않고 허공에게 구애받지도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의 해탈문을 익힌다 하더라도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내지 부처님 법이 극히 원만해지기 전에는 끝내 그것에 의하여 영원히 모든 번뇌를 다하지 않는 줄 알지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어떤 장부가 활쏘기에 능숙하여서 자기의 기술을 나타내기 위하여 허공을 향해 활을 쏘고는 공중에 있는 화살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시 뒤의 화살을 앞의 화살 꼭지에 다 쏘고, 이렇게 차츰차츰 오래오래까지 화살과 화살이 서로 잇닿아서 떨어지지 않게 하다가 만일 떨어지게 하려고 뒤의 화살을 쏘지 않으면 그 때에 그 화살들은 한꺼번에 떨어져버리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수승한 방편선교를 섭수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인행(因行)의 선근이 아직 모두 성숙되지 못했으면 끝내 중도에서 실제를 증득하지 않고 있다가 만일 때에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인행의 선근이 모두 성숙되면 그 때의 보살은 비로소 실제를 증득하고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줄 알지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들을 맹세코 버리지 않으면서 이와 같이 수승하고 묘한 서원을 세우되, ‘만일 모든 유정이 해탈하지 못하면, 나는 끝내 버리지 않으면서 선근을 더욱 행하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004_0865_a_01L또 선현아, 만일 모든 보살이 매우 깊은 곳에서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의 삼마지의 3해탈문이 행할 바의 곳을 혹은 이미 관찰했거나 혹은 장차 관찰한다면,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유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얻을 바 있음[有所得]을 행하면서 갖가지의 삿되고 나쁜 소견을 끌어내어 바퀴 돌 듯이 나고 죽고 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의 삿되고 나쁜 소견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깊은 공의 법을 말해주어 그들이 집착을 끊고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리라’고 하나니, 그러므로 공의 해탈문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이러한 생각의 방편선교를 일으키는 까닭에 비록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 가지 한량없는 선정[四無量定]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섭수되기 때문이니, 깨끗한 법[白法]이 갑절 늘어나고 모든 감관이 점차로 영리하여지면서 힘[力]과 깨달음 갈래[覺支]와 도의 갈래(道支)가 더욱더 불어나느니라.
또 선현아,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모든 모양[相]을 행하면서 갖가지의 집착을 일으키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바퀴 돌 듯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의 모든 모양의 집착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모양이 없는 법을 말해 주어서 모양에 대한 집착을 끊고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리라’고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자주자주 모양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가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먼저 방편선교와 일으키는 생각을 성취한 까닭에 비록 자주자주 모양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자함ㆍ가엾이 여김ㆍ기쁘게 함 및 버림과 그 밖의 모든 선정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섭수되기 때문이니, 깨끗한 법이 갑절 늘어나고 모든 감관이 점차로 영리하여지면서 힘과 깨달음의 갈래와 도의 갈래가 더욱더 물어나느니라.
004_0865_b_01L또 선현아,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그 마음에 늘 항상하다[常]는 생각과 즐겁다[樂]는 생각과 ≺나(我)≻라는 생각과 깨끗하다[淨]는 생각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뒤바뀐 집착을 끌어 내어서 바퀴 돌 듯이 나고 죽고 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의 네 가지의 뒤바뀜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나고 죽음은 항상 함이 없고 즐거움이 없고 나가 없고 깨끗함이 없으며, 오지 열반만이 미묘하고 고요하면서 갖가지의 진실한 공덕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뒤바뀜이 없는 법을 말해 주리라’고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자주자주 소원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가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먼저 방편선교와 일으키는 생각을 성취한 까닭에 비록 자주자주 소원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모든 부처님 법이 극히 원만해지기까지는 끝내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자함ㆍ가엾이 여김ㆍ기쁘게 함 및 버림과 그 밖의 모든 선정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섭수되기 때문이니, 깨끗한 법이 갑절 늘어나고 모든 감관이 점차로 영리하여지면서 힘과 깨달음 갈래와 도의 갈래가 더욱더 불어나느니라.
또 선현아,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먼저 이미 얻을 바 있음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얻을 바 있음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모양이 있음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모양이 있음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뒤바뀐 일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뒤바뀐 일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화합한다는 생각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화합한다는 생각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허망한 생각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허망한 생각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삿된 소견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삿된 소견을 행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바퀴 돌 듯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이 이와 같은 허물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매우 깊은 법을 말해 주어 그들의 허물을 모두 영원히 끊어 없애고 다시는 바퀴 돌 듯하면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지 않고 속히 항상하고 즐겁고 참으로 깨끗한 열반을 증득하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004_0865_c_01L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온갖 유정을 몹시 불쌍히 여기면서 수승한 방편선교를 성취하고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섭수되기 때문에 깊은 법 성품에 대하여 언제나,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고 작용이 없고 생김이 없고 멸함이 없고 일어남이 없고 다함이 없고 성품이 없는 실제’를 관찰하기 좋아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