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혹시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훌륭한 예가 있겠나이까?”
004_1138_b_04L爾時,舍利子白佛言:“世尊!頗有初心勝後心不?”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너는 여래에게 이와 같이 깊은 이치를 물었다. 잘 들으라. 너에게 말하리라.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훌륭한 일도 있나니, 이른바 아라한들의 온갖 무루의 마음은 비록 자신이 온갖 번뇌를 여의었으나 한량없는 유정을 교화하여 모두가 발심해서 모든 번뇌를 버리게 하지 못하거니와,
또 독각의 온갖 무루의 마음은 비록 자신이 온갖 번뇌를 여의었으나 한량없는 유정을 교화하여 모두가 발심해서 번뇌를 버리게 하지 못하거니와, 보살이 처음으로 큰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 비록 자신이 번뇌는 다 끊지 못하였으나 한량없는 유정을 두루 교화하여 모두 발심해서 번뇌를 버리게 하고, 차츰차츰 한량없는 유정을 이롭게 하나니, 이것이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더 훌륭한 이치이니라.
004_1138_c_01L또 사리자야, 보살들이 일으킨 큰 보리의 마음은 익히거나 닦거나 많이 지음에 따라 보시ㆍ정계ㆍ안인(安忍:인욕)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와 그 밖의 한량없고 끝없는 불법을 일으키어 일체지의 지혜를 빨리 증득하고, 이 까닭에 한량없는 유정들을 교화하여 성문승이나 독각승의 과위를 얻게 하고, 혹은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게 하고, 혹은 인천승의 수승한 선업을 닦아서 인간과 하늘의 즐거움을 얻고 나쁜 길의 괴로움을 버리게 하거니와,
성문이나 독각의 온갖 무루의 마음은 비록 자신이 열반을 증득하게 하나 보시ㆍ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와 그 밖의 한량없고 끝없는 불법을 일으키게 하지 못하며, 또 일체지의 지혜도 얻지 못하고, 또 한량없는 유정을 교화하여 독각승이나 성문승의 과위를 얻게 하지 못하고, 위없는 정등보리도 증득하게 하지 못하고, 또 인간과 하늘의 수승한 선업을 닦아서 인간과 하늘의 즐거움을 얻고, 나쁜 길의 괴로움을 버리게 하지도 못하나니, 이것이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훨씬 훌륭한 이치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일으킨 큰 보리의 마음은 위력이 수승하므로 잘 닦아 익히면 빨리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여 유정들에게 뒤바뀜이 없는 수기를 주나니, 이른바 이러이러한 유정들은 오는 세상에 이러이러한 겁을 지나도록 생사에 헤매면서 보살행을 닦다가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여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리라 하고,
혹은 이러이러한 유정은 오는 세상에 이러이러한 겁을 지나도록 생사에 헤매면서 독각의 행을 닦다가 인간과 하늘에서 인연을 만나면 독각의 보리를 증득하여 6신통을 갖추고, 안락함이 뜻대로 이르리라 하며, 혹은 이러이러한 유정은 오는 세상에 이러이러한 겁을 지나도록 생사에 헤매면서 성문의 행을 닦다가 인간과 하늘에서 인연을 만나면 성문의 과위를 얻는다 하며, 혹은 이러이러한 유정은 오는 세상에 선업이나 악업을 닦으면 이러이러한 겁을 지나면 인간과 하늘의 길에 태어나든지 혹은 나쁜 길에 빠져서 생사에 헤매리라 하거니와,
004_1139_a_01L 독각들은 유정들에게 뒤바뀜이 없는 수기를 주지 못하나니, 이른바 보살을 대하여 그대는 장차 이러이러한 겁을 지나면 부처를 이루리니, 호는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리라 하지 못하며, 또 이러이러한 유정은 장차 이러이러한 겁을 지나면 결정코 독각의 보리를 얻거나 성문의 과위를 얻거나 좋고 나쁜 길에 빠져서 온갖 고락을 받으리라 하지 못하며, 성문들도 남에게 수기를 주지 못하고, 설사 수기를 준다 하여도 모두가 부처님께 듣고서 하는 것이니, 이것이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훨씬 훌륭한 이치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처음으로 큰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어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온갖 유정을 이롭게 하고자 하면 그 즉시에 땅덩이와 산ㆍ바다들이 여섯 가지로 변동하고, 마왕이 놀라고 하늘과 용신들이 모두 기뻐하면서 말하되 ‘보살이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여 우리들을 생사의 고통에서 구제해서 안락을 얻게 하려 한다’ 하거니와, 성문이나 독각이 마지막 무루의 마음에 머무를 때에는 이런 일이 없나니, 이것이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훨씬 훌륭한 이치이니라.
또 사리자야, 가령 온갖 유정을 교화하여 모두가 독각이나 아라한의 과위에 머무르게 하여도 바라밀다와 그 밖의 일체지를 거두어들이지 못하거니와, 보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위없는 정등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면 곧 보시ㆍ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와 일체지를 거두어들이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성문이나 독각은 위없는 보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니, 그들의 발심은 극히 미약하기 때문이요, 보살들이라야 위없는 보리를 이루어 마치나니, 이것이 처음의 마음이 뒤의 마음보다 훨씬 훌륭한 이치이니라. 그러므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고자 하면 모두가 발심하여 일체지를 구하려 할지니라.”
004_1139_b_01L그때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야 보살의 모양을 아오며, 어떠한 행을 닦아야 보살의 명칭을 얻나이까?”
004_1139_b_01L時,舍利子復白佛言:“云何應知諸菩薩相?修何等行得菩薩名?”
그때에 세존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큰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어 부지런히 보시ㆍ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를 닦되 마음에 게으르지 않고, 비록 갖가지 나쁜 벗과 물러날 인연을 만나도 물러나지 않으면 이것이 보살의 모습이요, 이런 모습을 갖추면 보살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유정들이 온갖 착한 법을 닦되 게을리 하는 마음이 없고, 계율을 받아 지니되 끝내 범함이 없고, 항상 온갖 유정을 이롭게 하기를 좋아하고, 비록 괴로운 인연을 만나도 겁내지 않고, 닦아 배운 것에 따라 유정들과 함께 보리를 증득해서 끝내 안락하게 하리라고 원하면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모습이니, 이런 모양을 갖추면 보살이라 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시 사리자에게 말씀하시었다. “사리자야, 너는 독각과 아라한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하였으나 때로는 인자함ㆍ가엾이 여김 따위, 한량없음에 들어가서 한량없고 끝없는 유정을 반연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거나 괴로움을 여의게 한다고 여기느냐? 또 그들이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진실로 쾌락을 얻고 괴로움을 여의게 한다고 여기느냐?”
사리자가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니옵니다, 선서시여. 그 독각과 아라한은 그 마음에 도무지 방편 선교가 없거늘 어떻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의 한량없음에 들어가서 두루 한량없고 끝없는 유정을 반연해서 그들로 하여금 진실히 즐거움을 얻고 괴로움을 여의게 하겠나이까? 다만 겉으로 관찰하되 ‘보살들이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어 결정코 일체지의 지혜를 구하여 나아감은 온갖 유정을 이롭게 하여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항상 끊임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하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자비의 정려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유정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고 괴로움을 여의게 하리라 하면 중한 업장이 없는 이는 그 찰나에 모두가 실제로 안락을 얻고 뭇 고통을 여의거늘, 하물며 위없는 정등보리를 얻을 때에 유정들로 하여금 모두가 실제로 안락을 얻고 괴로움을 여의게 하지 못하겠나이까!
이 까닭에 누가 말하기를 보살이 실제로 온갖 유정을 이롭게 하되 잠시도 끊임이 없다 하면 옳거니와, 만일 독각과 아라한이 남섬부주에 가득한데 모두가 8해탈을 갖추고, 동시에 자비의 정려에 들어 한량없는 유정들로 하여금 모두가 안락을 얻게 하리라 하면, 한 유정이라도 실제로 즐거움을 얻게 한다면 옳지 않나이다.”
사리자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알기에는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마음이 더 훌륭하여 한량없는 아라한의 마음으론 견줄 바가 아니라 여기나이다.”
004_1140_a_19L舍利子言:“如我解佛所說義者,不退菩薩心力爲勝,非無數量阿羅漢心。”
004_1140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다, 네 말과 같다. 너는 지금 다시 잘 관찰하라. 이와 같이 온갖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과 아만 따위를 영원히 여읜 한량없는 아라한들의 무루의 마음이 하나하나 다시 백억의 용맹스런 마군을 변화해 내고, 이 무수한 마군들이 그 위신력을 다하더라도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아만 따위 번뇌가 있는 한 보살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게 하나니, 이 까닭에 보살의 마음의 힘은 번뇌가 다한 아라한들의 마음보다 훌륭하느니라.
사리자가 대답했다.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마음에는 비록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아만 따위의 번뇌가 있으나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마음보다 으뜸ㆍ훌륭함ㆍ존귀함ㆍ높음ㆍ묘함ㆍ미묘함ㆍ위ㆍ위없음이 되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이와 같이 번뇌가 다한 한량없는 아라한의 마음과 그들이 변화시킨 이들이 그들의 위신력을 다하더라도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아만 따위 번뇌가 있는 물러나지 않는 한 보살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004_1140_c_01L사리자가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니옵니다, 선서시여. 하나의 폐유리 광채가 가차말니 무더기의 광채를 무색하게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폐유리 보배는 안팎이 훤하게 비치지만 가차말니는 그렇지 못하고, 폐유리 보배는 광채가 윤택하지만 가차말니는 그렇지 못하고, 폐유리 보배는 종류가 수승하지만 가차말니는 그렇지 못하고,
폐유리 보배는 위덕이 광대하지만 가차말니는 그렇지 못하고, 폐유리 보배는 값이 한량없지만 가차말니는 그렇지 못하고, 폐유리 보배는 존귀한 유정들의 업이 뛰어난 힘에 의하여 큰 바다에 태어나지만 가차말니는 귀한 이나 천한 이가 같이 수용하기 위하여 공업으로 이루어진 때문이니, 그러므로 폐유리 보배의 광채는 온갖 가차말니의 광채를 무색하게 하나이다.”
내가 이와 같은 이치를 보았으므로 말하기를, 물러나지 않는 보살마하살들의 마음은 성문이나 독각이 온갖 번뇌를 영원히 여읜 무루의 마음에 견주건대 으뜸ㆍ훌륭함ㆍ존귀함ㆍ높음ㆍ묘함ㆍ미묘함ㆍ위ㆍ위없음이 되느니라.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자비와 함께하는 마음은 유정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고 괴로움을 여의게 하거니와, 성문이나 독각의 자비와 함께하는 마음은 다만 거짓 생각만이 있을 뿐이요, 실제의 작용은 없느니라.
004_1141_a_01L또 사리자야, 어떤 아라한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하고, 6신통과 8해탈 따위 갖가지 공덕을 갖추어서 신통력을 부려 긍가 강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를 입으로 불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수미산이 모두 가루같이 되게 할 수 있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지위의 보살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아라한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하고, 6신통과 8해탈 따위가 갖가지 공덕을 갖추어서 신통력을 부려 긍가 강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를 불면 큰 겁의 맹렬한 불덩이가 아무리 훨훨 타올라도 모두 꺼지게 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지위의 보살들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는 못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시방세계의 모든 유정이 한량없고 끝이 없지만 가령 시방의 한량없고 무수한 긍가 강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에 있는 온갖 긍가 강의 모래가 낱낱이 모두 변해서 그렇게 많은 유정이 되고, 또 시방의 한량없고 무수하고 끝없는 세계의 땅ㆍ물ㆍ불ㆍ바람을 부수어 낱낱이 모두 변해서 그렇게 많은 유정이 되면 이 유정들이 많지 않겠느냐?”
004_1141_b_01L사리자가 아뢰었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겠나이다, 선서시여.”
004_1141_b_02L舍利子曰:“甚多!世尊!甚多!善逝!”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온갖 유정이 일시에 아라한을 이루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하여 6신통과 8해탈 따위 갖가지 공덕을 갖추고, 광대하고 자재한 신통을 성취하여 모두가 큰 목건련같이 되고, 이러한 낱낱 아라한이 모두 그와 같이 많은 악마를 변화해 내고, 낱낱 악마가 다시 그렇게 많은 용맹한 코끼리ㆍ말ㆍ수레의 군사와 걷는 군사를 변화해 낸다면 이렇게 많은 군사의 수효를 알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여기에서 말한 선남자나 선여인이 앞에서 말한 유정들의 수효와 같고, 이러한 낱낱 선남자나 선여인들이 제각기 시방으로 한량없는 무수하고 끝없는 세계의 긍가 강에 있는 모래 같은 큰 겁 동안 머물러서 생각생각에 앞에서 말한 한량없는 악마를 변화해 내고, 낱낱 악마가 다시 앞서 말한 한량없는 용맹한 코끼리ㆍ말 따위 군사를 변화해 내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있는 보살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러나지 않는 지위의 보살마하살들의 마음에 있는 위신력은 일체지에 상응하는 마음의 위신력을 가진 이가 아니면, 아무도 미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이 까닭에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마음에 있는 위신력이 다른 이의 위신력보다 으뜸ㆍ훌륭함ㆍ존귀함ㆍ높음ㆍ묘함ㆍ미묘함ㆍ위ㆍ위없음이 되는 것은 부처님만이 아시고 부처님만이 말씀하시나이다.”
004_1142_a_01L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옳다, 네 말이 옳다. 무슨 까닭이겠느냐. 사리자야,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마음은 다른 유정이 변하게 할 수 없고, 또는 여실히 알거나 말할 수도 없나니, 오직 여래ㆍ응공ㆍ정등각만이 그 보살들의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알아서 유정들에게 여실히 연설해 주시느니라.”
또 만자자여,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일 처리를 잘하므로 일찍부터 장자ㆍ거사ㆍ장사꾼 사이에서 자주자주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이 모자라는 때가 있어 가끔 장자ㆍ거사들에게 가서 물건을 꾸어 왔는데 그들이 받으러 올 것이 두려웠으나 갚을 힘이 없으므로 왕의 세력에 붙어서 구속을 면하려 했습니다.
그때에 빚쟁이들은 왕이 두려워서 그 사람을 끌어다가 욕을 보이지 못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의지한 왕의 세력이 몹시 커서 당할 이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아서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하거나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무를 때엔 모두가 일체지의 지혜에 의지하여 큰 위신력을 변동케 하지 못합니다.
004_1142_b_01L또 만자자여, 어떤 사람이 왕에게 의지하면 비록 빈궁하여도 곤욕을 당하지 않나니, 이와 같아서 보살이 일체지의 지혜에 의지하면 2승이나 악마가 그를 요동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 온갖 악마를 항복시키나니, 그들 2승에 대하여 으뜸ㆍ훌륭함ㆍ존귀함ㆍ높음ㆍ묘함ㆍ미묘함ㆍ위ㆍ위없음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물러나지 않고자 하면 항상 일체지의 지혜에 의하여 보살행을 닦을지언정 다른 법을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리자가 대답했다. “어떤 보살이 독각이나 성문의 좋은 점을 듣고 흠모하는 마음을 내어 생각하기를, 나는 어찌하여야 이러한 법을 얻을꼬 하거나, 또는 2승의 교법에 깊이 맛들여 칭찬하면,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 뜻 지음을 일으킨 까닭에 온갖 성문이나 독각에게 지게 됩니다.”
유가사(瑜伽師)는 ‘실제(實際)를 증득하고자 하는 이가 바른 성품으로써 생멸을 여의는 지위를 좋아하여 닦아 들어가면 탐ㆍ진ㆍ치가 인연을 만나서 일어날 때엔 아라한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므로 장애가 있게 되고 점점 멀어지게 되나니,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 뜻 지음이라 한다’ 하였나니, 이와 같이 보살이 큰 보리를 구할 때에 2승에 상응하는 뜻 지음을 일으키면 일체지를 장애하고 보리의 마음을 해칩니다. 이 까닭에 이치를 맞지 않는 뜻 지음이라 하나니, 보살들에게 이러한 뜻 지음이 있으면 곧 2승에게 항복을 합니다.”
004_1142_c_01L그때에 만자자가 구수 사리자에게 말했다. “만일 모든 보살들이 2승과 상응하는 뜻 지음을 일으키면 곧 2승에게 항복을 당하리니, 보살의 수효에 들지 못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보살이라 함은 오직 위없는 정등보리만을 구해야 하는데, 만일 2승과 상응하는 뜻 지음을 일으키면 본래의 욕망에 어긋나서 일체지를 증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류에게 번뇌가 움직이면 구하고 있는 지혜나 끊음에 어긋나나니, 지혜와 끊음을 부지런히 구하기 때문에 예류라 할지언정 번뇌의 움직임에 부지런히 구하는 이치가 있지는 않습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사리자여, 예류라 함은 두 가지 변지(遍知)를 구해야 하나니, 하나는 지혜의 변지요, 둘은 끊음의 변지어니와 번뇌가 움직이면 두 가지 구함이 모두 무너지기 때문에 예류는 항상 부지런히 지혜의 변지를 구해서 모든 번뇌를 소멸해야 합니다.
이와 같아서 보살이 2승과 상응하는 뜻 지음을 일으키면 곧 보살이 본래 바라던 일체지를 어기나니, 만일 보살이 일체지의 지혜를 구하려는 마음과 심소(心所)를 멀리 여의면 진실한 보살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사리자야, 보살이라 함은 항상 일체지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 끊임없어야 하는데 보살들이 보살의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2승이나 악마가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그가 2승이나 악마를 항복시킵니다.
만일 그가 2승의 교법을 들으면 생각하기를 ‘내가 장차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면 나도 여러 유정들에게 이와 같은 교법을 연설해 주리라. 지금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독각이나 성문 종성이나 보특가라들에게 2승에 상응하는 교법을 연설해 주시는데, 나도 오는 세상에 부처를 이루거나 이와 같이 유정들에게 이와 같은 교법을 연설해서 이로움을 얻게 하리라’ 합니다.
이와 같으므로 보살이 보살의 마음에 머무르면 2승과 악마에게 굴복되지 않고 도리어 2승과 악마를 굴복시킵니다. 유가사에 말하기를 ‘경계와 정려에서 모두 방편 선교를 얻으면 굴복시킬 이가 없나니, 무슨 까닭인가. 마음이 경계와 정려에 대하여 이미 잘 닦고 다스리어서 자재하게 된 까닭이다’ 하였거니와, 이와 같아서 보살이 보살의 마음에 머무르면 2승과 악마가 굴복시키지 못하나니,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이 보살들은 보살의 마음에서 항상 멀리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자자가 말했다. “온갖 보살들이 처음 발심했거나 물러나지 않게 되었거나 보리의 자리에 앉았거나 모두 굴복시킬 이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사리자여, 이 보살들에게 온갖 나쁜 인연이 모두 본래의 서원을 버리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보살이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유정들에게 항상 이로움을 주고자 하나니, 이러한 두 가지 서원이 견고하면 온갖 나쁜 인연이 그를 요동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마음에 머무르면 2승이나 악마가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004_1143_b_01L또 사리자여, 부처님들이 처음으로 부처를 이루셨거나, 오래전에 부처를 이루셨거나, 백천 세 동안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에는 모두가 일체지를 이루시는 것같이,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했거나 이미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들었거나 보리의 자리에 앉았거나 언제든지 일체지를 반연하여 증득하려는 뜻 지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습니다.”
만자자가 대답했다. “보살의 여러 지위는 마음의 차별이 없지만 성불하는 데 빠르고 더딤이 있을 뿐이니, 이른바 보살의 마음은 처음ㆍ중간ㆍ뒤의 지위에서 언제나 위없는 보리를 이끌어 일으키고, 이 마음에 머물러서 항상 물러나지 않습니다. 또 사리자여, 아라한은 끝내 아라한의 마음을 잃지 않나니, 이른바 무루의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같이 보살도 큰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습니다.
만자자가 말했다. “보살도 그러하여서 어떤 보살이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면 그는 먼저부터 보살이라 자칭했지만 진실한 보살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뛰어난 체 함으로써 보살들을 더럽히는 것이니, 마치 더러운 개구리나 달팽이가 깨끗한 물을 더럽히어 마실 수 없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비유하건대 어떤 남자가 남근이 있기는 하나 결함이 있으면 자칭 장부라고 하나 빈말뿐이요, 진실한 이치가 없는 것같이 보살도 그러하여서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면 헛된 이름만이 있을 뿐이요, 진실로 보살이 아닙니다. 마치 남근이 결함된 이를 불남[半擇迦]이라 하는 것같이,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난 이는 거짓 보살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처음ㆍ중간ㆍ뒤의 지위에서 결정코 큰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지 말지니, 만일 이 마음에서 물러나면 보살이 아닙니다.”
온갖 보살들은 으레 이와 같은 뜻 지음에 머물러야 합니다. 만일 어떤 보살이 이러한 뜻 지음에 머물러서 보시를 닦으면 이 보살들은 곧 일체지의 지혜에 회향할 것입니다. 보살들이 이와 같은 일체지의 지혜에 회향하면 이 보살들은 보시바라밀다를 받아들이게 되거니와 어떤 보살들이 일체지의 지혜로 회향하지 않으면 그 보살이 행하는 보시는 보시바라밀다라 하지 못합니다.
또 만자자여,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에 생각하되 ‘나는 조금만 버리겠다. 또는 조금도 버리지 않겠다’ 하거나, ‘나는 이 물건을 버리겠다. 나는 이 물건을 버리지 않겠다’ 하거나, ‘나는 저들에게는 보시하고, 저들에게는 보시하지 않겠다’ 하면, 이 보살들은 이렇게 생각한 까닭에 일체지를 장애하여 오랜만에야 일체지를 증득하고, 오래도록 보시를 닦아야 원만해집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한량없는 불법을 증득하고자 하면 보시바라밀다를 행해야 하거니와, 보시할 때에 마음에 한량이 있으면 결정코 한량없는 불법을 증득하지 못하니, 보살들이 마음에 한계를 두고 보시하면 이 보살들은 결정코 일체지의 지혜를 증득하지 못하고, 보시바라밀다도 끝내 원만히 되지 못합니다.
004_1144_b_01L 그러므로 보살이 한량없는 일체지의 지혜를 증득하지 못하고, 보시바라밀다는 끝내 원만히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한량없는 일체지의 지혜를 증득하고자 하면 한량없는 마음을 일으키어 보시할지니, 보살들이 한계가 있는 마음을 보시하면 이 보살들은 인색한 마음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고 일체지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에 어기어야 일체지의 지혜를 증득하고 보시바라밀다도 원만케 합니다.
마치 세상 사람이 임금을 섬기면 먼저는 의식을 얻어서 처자를 부양하고, 뒤에는 왕의 사랑을 얻어 많은 재물을 얻는 것같이, 보살이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고자 하여 백천 가지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많이 닦으면 먼저는 재물로써 유정들을 거두어 주어 세간의 온갖 빈궁과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고, 뒤에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고는 물듦 없는 법으로 유정들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생사의 뭇 고통을 벗어나게 합니다.
또 만자자여, 비유하건대 백천 유정들이 왕자를 섬기되 밤낮으로 부지런히 하면 왕자는 자기 힘에 따라 의복ㆍ음식ㆍ침구 따위를 나누어 주다가 뒤에 왕위에 오르면 지난날에 수고한 바에 따르고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헤아려서 무서운 벼슬을 주거나, 어떤 사업을 주관케 하거나, 산천을 관리하게 하거나, 국방(國防)을 맡기거나, 혹은 마을ㆍ읍 혹은 군사를 맡깁니다.
004_1144_c_01L 이와 같이 보살이 일체지를 구할 때에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기 전에는 재물로써 유정을 거두어 주고,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할 때는 유정들의 깨달음과 지혜의 차별에 따라 위없는 법으로 가르치고 경계하여 그로 하여금 아라한ㆍ불환ㆍ일래ㆍ예류 들의 과위나 혹은 열 가지 착한 법의 도나 혹은 보살의 수승한 지위에 머무르게 합니다.
또 만자자여, 이 보살들이 큰 보리를 구할 때에 보살행으로서 구하는데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하기 전에도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고,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한 뒤에도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고, 열반에 든 뒤에도 한량없는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나니, 비유하건대 왕자가 왕위를 받기 전에도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고, 왕위를 받은 뒤에도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고, 죽은 뒤에도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것 같습니다.
004_1145_a_01L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한 뒤에 유정들을 법으로 거두어 주나니, 이른바 갖가지 보시ㆍ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와 그 밖의 한량없는 불법으로 거두어 주어 이롭게 하거나, 혹은 갖가지 염주(念住)ㆍ정단(正斷)ㆍ신족(神足)ㆍ근(根)ㆍ력(力)ㆍ각지(覺支)ㆍ도지(道支)와 그 밖의 갖가지 보시ㆍ계율ㆍ수행의 복스러운 사업과 그 밖의 한량없는 세간의 좋은 법으로 거두어 주어 이롭게 합니다.
열반에 든 뒤에는 한량없는 유정들에게 큰 이익을 주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사리[設利羅]에게 공양하기 위해서나 혹은 여래의 위없는 법을 얻기 위해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말씀과 같이 수행하면 모두가 끝없고 광대한 이익, 즉 인간과 하늘의 쾌락이나 열반에 드는 것이나 큰 보리의 구경(究竟)의 즐거움입니다.”
004_1145_b_01L 위없는 정등보리를 증득한 뒤에도 묘한 법 수레를 굴리어 큰 이익을 주나니, 이른바 물질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다 하며, 눈의 영역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다 하며,
눈의 접촉의 항상함과 덧없음을 얻을 수 없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도 얻을 수 없다 하며,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도 얻을 수 없다 하며,
004_1145_c_01L 무명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고, 지어감ㆍ의식ㆍ이름과 물질ㆍ여섯 감관ㆍ접촉ㆍ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과 죽음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도 얻을 수 없다 하며, 나의 항상함과 덧없음 따위를 얻을 수 없고, 유정ㆍ목숨ㆍ나는 것ㆍ기르는 것ㆍ장부ㆍ보특가라ㆍ뜻대로 나는 것ㆍ어린이ㆍ짓는 것ㆍ받는 것ㆍ아는 것ㆍ보는 것의 항상함과 덧없음도 얻을 수 없다 하며, 욕계의 항상함과 덧없음을 얻을 수 없고, 색계와 무색계의 항상함과 덧없음도 얻을 수 없다 합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말씀하시니, 구수 사리자와 만자자와 아난과 그 밖의 성문과 보살들과 그 밖의 세간의 하늘ㆍ용ㆍ약차(藥叉)ㆍ건달박(健達縛)ㆍ아소락(阿素洛)ㆍ갈로다(揭路茶)ㆍ긴날락(緊捺洛)ㆍ마호락가(莫呼洛伽) 등 인비인(人非人)들이 모두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