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5_0023_c_01L방광반야경 제3권
005_0023_c_01L放光般若經卷第三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소진홍 번역
005_0023_c_02L西晉于闐國三藏無羅叉奉詔譯


12. 공행품(空行品)
005_0023_c_03L摩訶般若波羅蜜空行品第十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가 없으면 5음은 행상(行相)이 되며, 만약 5음에 항상함이 있다고 생각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무상하다고 생각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괴로움이라고 생각하고 5음이 이 아소(我所)라고 말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적정하다고 생각해도 행상이 됩니다.
005_0023_c_04L須菩提白佛言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無有漚和拘舍羅於五陰爲行相若念五陰有常爲行相念五陰無常爲行相念五陰苦言五陰是我是爲行相念五陰寂靜爲行相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는 것도 또한 행상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스스로 ‘나는 반야바라밀을행한다’고 생각하고 얻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면 또한 행상이 됩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또한 행상이 됩니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이 보살이 구화구사라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005_0023_c_09L菩薩摩訶薩不以漚和拘舍羅行般若波羅蜜學三十七品佛十八法亦復爲行相世尊若菩薩行般若波羅蜜自念言我行般若波羅蜜設欲有所得是亦爲行相若菩薩念言作是學者爲學般若波羅蜜是亦爲行相作是學者當知菩薩未有漚和拘舍羅故
005_0024_a_01L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이와 같이 배운다면 색에 머무는 것이 되며, 색을 분별하여 앉는 것이 되며, 색을 분별하면 색을 구하는 행을 짓습니다. 이미 이와 같이 행하면, 생로병사의 고통을 여의지 못하게 됩니다. 보살은 다시 구화구사라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에 처하여 6정(情)으로 분별하고 다시 18성(性)으로 분별하고 다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머물고 각각 분별하고 계교하여 색을 구하므로 또한 다시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보살은 오히려 성문ㆍ벽지불도 증득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가 없다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005_0023_c_17L須菩提語舍利弗言菩薩作是學般若波羅蜜爲住色爲分別坐分別色便作行色求已作是行不得離生老病死苦菩薩復不以漚和拘舍羅行般若波羅蜜處於眼耳鼻舌身意分別六情復分別十八性復住於三十七品及佛十八法各分別計挍作色求亦復不能脫生老病死苦是菩薩尚不能逮聲聞辟支佛地證況欲得阿耨多羅三耶三菩事不然以是故當知菩薩行般若波羅蜜無漚和拘舍羅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구화구사라가 있는지 어떻게 마땅히 알겠습니까?”
005_0024_a_06L舍利弗問須菩當云何知菩薩行般若波羅蜜是漚和拘舍羅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서 상행(相行)을 짓지 않고, 또한 5음이 유상(有常)ㆍ무상(無常)하다고 말하지 않고, 5음에서 또한 고락행(苦樂行)을 짓지 않고 또한 아소이다 아소가 아니다라는 행을 짓지 않고, 5음에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라는 행을 짓지 않고 5음에서 또한 적정하다는 행도 짓지 않습니다.
005_0024_a_08L須菩提報言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於色痛想行識不作相行亦不言五陰有常無常五陰亦不作苦樂行亦不作是我所非我所行於五陰不作空無相無願於五陰亦不作寂靜行
이런 까닭으로 사리불이여, 5음을 공하다고 하면 5음이 아닌 것이 되며, 5음이 공을 여읜 것도 아니고 공이 5음을 여읜 것도 아니므로 5음이 바로 공이고 공이 바로 5음입니다. 6바라밀ㆍ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모두 공하며, 가령 공이라 하는 것은 또한 18법을 여의지 않고 18법도 또한 공을 여의지 않습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것이 곧 구화구사라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또한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또한 행함을 보지 않고 행하지 않음도 보지 않습니다.”
005_0024_a_13L以是故利弗以五陰空爲非五陰五陰不離空不離五陰五陰則是空空則是五陰六波羅蜜三十七品及佛十八法皆空假令空者亦不離十八法八法亦不離空菩薩如是行般若波羅蜜則爲是漚和拘舍羅菩薩作是行般若波羅蜜便成阿耨多羅三耶三菩行般若波羅蜜亦不見般若波羅蜜亦不見行者亦不見不行者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는 것입니까?”
005_0024_a_22L利弗問須菩提菩薩摩訶薩何以故行般若波羅蜜亦不見般若波羅蜜
005_0024_b_02L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의 모양은 본래 실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은 모든 법에 있는 바가 없음을 빠짐없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든 법에 생함이 없는 삼매라고 이름하니, 모든 보살마하살의 무량하고 무한하고 광대한 작용으로 성문ㆍ벽지불이 알 바가 아닌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여의지 않으면 곧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입니다.”
005_0024_b_02L須菩提報言以般若波羅蜜狀貌本實不可得見故何以故所有者無所有故是故行般若波羅蜜無所見以者何菩薩悉知諸法所有無所有有三昧名於諸法無所生是諸菩薩摩訶薩無量無限廣大之用非聲聞辟支佛所知菩薩摩訶薩不離是三便疾得阿耨多羅三耶三菩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단지 이 삼매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까, 다시 다른 삼매가 있습니까?”
005_0024_b_10L舍利弗問須菩提但是三昧使菩薩疾成阿耨多羅三耶三菩耶頗復有餘三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또한 다른 삼매가 있어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 합니다.”
005_0024_b_13L須菩提報言亦復有餘三昧令菩薩疾成得佛
사리불이 물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舍利弗問言何者是
수보리가 말하였다.
“수능엄(首楞嚴)이라고 이름하는 삼매가 있는데, 보살이 이 삼매를 행하면 또한 속히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또 보인(寶印)삼매ㆍ사자유보(師子遊步)삼매ㆍ월(月)삼매ㆍ작월당(作月幢)삼매ㆍ제법인(諸法印)삼매ㆍ조정(照頂)삼매ㆍ진법성(眞法性)삼매ㆍ필조당(必造幢)삼매ㆍ금강(金剛)삼매ㆍ제법소입인(諸法所入印)삼매ㆍ삼매왕소입(三昧王所入)삼매ㆍ왕인(王印)삼매ㆍ역진(力進)삼매ㆍ보기(寶器)삼매ㆍ필입변재(必入辯才)삼매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삼매를 보살마하살이 빠짐없이 배우면 곧 속히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005_0024_b_14L菩提言有三昧名首楞嚴菩薩行三昧亦疾得佛復有寶印三昧師子遊步三昧月三昧作月幢三昧諸法印三昧照頂三昧眞法性三昧必造幢三昧金剛三昧諸法所入印三昧三昧王所入三昧王印三昧力進三寶器三昧必入辯才三昧如是等三昧菩薩摩訶薩悉學已便疾得佛
사리불이여, 다시 무앙수의 헤아릴 수 없는 삼매가 있으니, 보살은 마땅히 배워야 하며, 또한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얻게 할 것입니다.”
005_0024_b_22L舍利弗復有無央數不可計三昧薩所應學亦復令菩薩疾得佛
005_0024_c_02L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말하였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행한다면 이미 과거의 부처님께 수기를 받은 것이, 지금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수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삼매를 보지 않고 삼매를 생각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를 높이면서 ‘나는 이 삼매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한 ‘나는 이 삼매에 머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삼매에 대한 생각[三昧想]이 없습니다.”
005_0024_b_24L須菩提承佛威神言若有菩薩摩訶薩行是三昧者已爲過去佛所授決已現在諸佛亦授其決已亦不見三昧亦不念三昧亦不貢高念言我得是三昧亦不念言我住是三昧都無三昧想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런 모든 삼매에 머물러 과거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습니까?”
005_0024_c_07L舍利弗問須菩提言諸有住是三昧者爲已從過去諸佛授記已耶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반야바라밀과 삼매는 보살과 다르지 않으며 보살이 바로 삼매이고 삼매가 바로 보살입니다. 반야바라밀도 또한 이와 동등하며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남자는 모든 법과 삼매가 동등함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보지 않음을 삼매로 삼는 까닭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005_0024_c_08L須菩提言不也舍利弗何以故般若波羅蜜及三昧菩薩無有異菩薩則是三昧三昧則是菩薩般若波羅蜜亦爾等無有異而善男子不知諸法等三昧何以故不知菩薩以不見是三昧是故不知
그러자 세존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내가 찬탄한 것처럼 그대는 저 모든 공적(空寂)을 행함에 제일이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005_0024_c_14L於是世尊讚歎須菩提言善哉善哉如我所歎譽汝於諸空寂行者第一菩薩摩訶薩當作是學六波羅蜜及三十七品及佛十八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이렇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까?”
005_0024_c_18L舍利弗白佛言菩薩摩訶薩當作是學般若波羅蜜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또한 얻을 것도 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005_0024_c_19L佛言當作是學六波羅蜜三十七品及佛十八法不想有所得有所見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얻을 바가 없고 보는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005_0024_c_21L舍利弗白佛言何等爲無所得無所見
005_0025_a_02L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중생을 볼 수 없는 것은 안팎이 공하기 때문이다. 5음ㆍ18성ㆍ12쇠(衰)를 얻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12인연을 볼 수 없는 것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를 볼 수 없는 것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욕성(欲性)ㆍ형성(形性)ㆍ무형성(無形性)을 볼 수 없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볼 수 없는 것은 청정하기 때문이다. 6바라밀과 수다원에서부터 나아가 부처에 이르기까지 볼 수 없는 것도 청정하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005_0024_c_22L世尊報言我及衆生不可得見以內外空故十八性十二衰不可得不可見淨故十二因緣不可見常淨故道不可見常淨故不可見欲性無形性不可得見三十七品佛十八法常淨故不可得見六波羅蜜須陁洹乃至佛常淨故不可見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청정하다고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생하지도 않고 있지도 않고 볼 수도 없고 하는 바가 없는 것을 청정한 것이라고 한다.”
005_0025_a_06L舍利弗白佛言何等爲淨世尊報言不生不有不可見無所爲是爲淨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은 어떤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보살은 저 모든 법이 배울 바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범인(凡人)이 받아들이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25_a_08L舍利弗白佛言菩薩摩訶薩作是學爲學何世尊報言菩薩作是學於諸法無所學何以故法不爾如凡人所入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은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법의 소유는 지은 바가 없는 것과 같으므로 무소유라고 말한다.”
005_0025_a_11L利弗白佛言法云何世尊佛報言之所有如無所有作是有故言無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무소유이면서 있는 것이라고 합니까?”
005_0025_a_14L舍利弗白佛言何等爲無所有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5음이 무소유인 것은 내외소유가 무소유공이기 때문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무소유인 것은 내외소유가 무소유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을 따라서 애(愛)에 들어가며 그 가운데서 어리석은 행을 지어서 양제(兩際:有無)에 얻는 바 되어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법은 어리석은 바가 없는데 명색(名色)에 들어가고, 6입(入)에 들어가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들어가고 비록 그 가운데에 들어가나 법은 없는 것인데, 다시 생각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005_0025_a_15L世尊報言五陰無所有內外所有無所有空故三十七品佛十八法無所有內外所有無所有空故凡夫愚人隨癡入愛於中作癡行爲兩際所得而不知不見法所不癡者而爲入於名色入於六入入於三十七品及佛十八法雖入其中法所無者及更亦復不知亦不見
“무엇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不知不見何等
005_0025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아는 것이 아니며, 5음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의 범주에 떨어지고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 욕계ㆍ형계(形界)ㆍ무형계(無形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문ㆍ벽지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불신(不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005_0025_a_22L佛言不知五陰不見五陰不見三十七品佛十八法以是法墮於凡夫愚人之數而不出於何不出於欲形界不出於聲聞辟支佛法不出而復不信
무엇을 믿지 않는가? 5음이 공함을 믿지 않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공하며 또한 머물지 않음을 믿지 않는다. 어느 곳에 머물지 않는가? 6바라밀에 머물지 않고, 아유월치지(阿惟越致地)에도 머물지 않고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에도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곧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에 들어가며, 5음ㆍ6쇠(衰)에 들어가며, 18성(性)에 들어가며,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 들어가며, 모든 견[諸見]에 들어가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들어가며, 도(道)에 들어가는 것이다.”
005_0025_b_04L不信何等不信五陰空不信三十七品佛十八法空亦復不住何所不住不住於六波羅蜜不住於阿惟越致地乃至佛十八法不住是故謂爲凡夫愚人便入於眼耳鼻舌身意入於五陰六衰入於十八性入於婬怒癡入於諸見入於三十七佛十八法入於道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하나,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혜(薩云若慧)를 이룰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배워야 하나,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에서 나오지 못한다.”
005_0025_b_11L舍利弗白佛言世尊菩薩作是學爲不學般若波羅不成薩云若慧耶佛言如是學不學般若波羅蜜不出薩云若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째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혜를 이루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가 없어서 상념(想念)으로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들어가며, 이 상념으로 살운야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혜를 생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005_0025_b_14L舍利弗白佛言何以故菩薩不學般若波羅蜜不成薩云若慧佛言以菩薩摩訶薩無漚和拘舍羅以想念入六波羅蜜及三十七品佛十八法以想念入薩云若以是故菩薩摩訶薩不學般若波羅蜜不生薩云若慧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살운야혜를 이루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배워서 살운야혜를 이루려면, 마땅히 보는 바도 없어야 하며 얻을 바도 없어야 한다.”
005_0025_b_20L舍利弗白佛言菩薩當云何學般若波羅蜜而令菩薩成薩云若慧佛言菩薩行般若波羅蜜不見般若波羅蜜是爲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學如薩云若慧如應無所見無所得
005_0025_c_02L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는 바도 없고 얻을 바도 없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법을 보지 않음이니 공하기 때문이다.”
005_0025_c_02L利弗白佛言何等爲無所得無所見佛言不見一切法空故

13. 문환품(問幻品)
005_0025_c_04L摩訶般若波羅蜜問幻品第十三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묻기를, ‘환인(幻人)이 보시ㆍ지계ㆍ정진ㆍ인욕ㆍ일심(一心)ㆍ지혜를 배우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고 살운야(薩云若)를 배우면 살운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한다면, 저는 마땅히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005_0025_c_05L須菩提白佛言世尊若人問言幻人布施持戒精進忍辱一心智慧學三十七品佛十八法學薩云若當成薩云若不乎我等當云何報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의 뜻에 따라 나에게 대답하여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과 환(幻)은 다름이 있는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와 색ㆍ성ㆍ향ㆍ미ㆍ세활ㆍ법과 18성과 환은 다름이 있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05_0025_c_09L佛告須菩我自還問汝隨須菩提意報我須菩提意云何五陰與幻有異無耳鼻舌身意色聲香味細滑法十八性與幻有異不須菩提對曰無有異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37품ㆍ부처님의 18법ㆍ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나아가 도(道)와 환은 다름이 있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5음이 바로 이 환이고 환이 바로 5음이며, 12쇠와 18성이 모두 이 환이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환이며 환이 곧 18법입니다.”
005_0025_c_14L佛言三十七品佛十八法無願及道與幻有異不須菩提答無有異世尊五陰則是幻幻則是五陰十二衰及十八性皆是幻三十七品及佛十八法亦是幻幻則十八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환인(幻人)에게 집착이 있고, 번뇌[縛]가 있고, 생(生)이 있고, 사(死)가 있는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005_0025_c_19L佛告須菩提幻人頗有著有縛生有死不對曰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인은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는데,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운야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얻을 수 없습니다.”
005_0025_c_20L於須菩提意云何幻人亦不生亦不滅學般若波羅蜜當成薩云若不須菩提白佛言不能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명자(名字)에 집착하고, 법과 5음 숫자를 합하여 보살이라고 하는가?”
대답하였다.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005_0025_c_23L於須菩提意云何著字名合法陰數字爲菩薩不對曰如是如是
“명자에 집착하고 5음 생멸을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005_0026_a_02L著字五陰生滅可得見不須菩提對曰不可得見
005_0026_a_02L“또한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명자도 없고 또 신행(身行)도 없고, 의행(意行)도 없고, 집착도 없고, 번뇌[縛]도 없는데 반야바라밀을 배운다고 해서 어찌 살운야를 얻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이룰 수 없습니다.”
005_0026_a_03L亦無起亦無滅亦無亦無身行亦無意行亦無著亦無學般若波羅蜜寧成薩云若不菩提對曰不能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응당 얻을 바가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게 되니, 마치 환인의 배움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5음은 환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005_0026_a_06L佛言菩薩學般若波羅蜜應無所得須菩提白佛言薩如是學般若波羅蜜及阿耨多羅三耶三菩爲如幻人學所以者何知五陰如幻人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으로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살운야를 이루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5음의 소유(所有)는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란 것도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005_0026_a_10L於須菩提意云何陰爲學般若波羅蜜當成薩云若不須菩提白佛言不也世尊何以故陰所有無所有無所有者亦不可得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더울 때의 아지랑이와 같고 변화와 같은데,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겠느냐?”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5음ㆍ6쇠는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무소유이니, 볼 수가 없습니다.”
005_0026_a_14L於須菩提意云何五陰如夢如響如影如熱時炎如化當學般若波羅蜜耶對曰非也何以故五陰六衰夢如幻無所有不可得見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새롭게 대승의 뜻을 발한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법문을 들으면 공포가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새롭게 대승을 배우는 보살은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하고 선지식과 같이 하지 못하여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무서워한다.”
005_0026_a_17L須菩提白佛言新發大乘意菩薩聞作是說般若波羅蜜將無恐怖佛言新學大乘菩薩未得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不與善知識相隨或恐或怖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어떤 구화구사라를 행해야만 보살들로 하여금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005_0026_a_21L須菩提白佛言菩薩當行何等漚和拘舍羅令菩薩不恐不怖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살운야의 행과 상응하며, 5음은 무상하다고 관하여 5음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005_0026_a_23L佛告言菩薩行般若波羅蜜應薩云若行觀五陰無常亦不猗五陰是爲菩薩行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
005_0026_b_02L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뜻으로 살운야의 행과 상응하여 5음이 고(苦)이고, 공하며 아(我)가 없음을 관하며, 5음이 공하고 상(相)이 없고 원(願)이 없음을 관하며, 5음이 적정한 것임을 관하면 마땅히 얻을 것이 없게 되며, 의지할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은 마땅히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를 설하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적정의 법이 응당 얻을 것도 없으며, 의지할 것도 없음을 설하리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보살의 단바라밀이라고 한다.
005_0026_b_03L復次須菩提薩意應薩云若行觀五陰苦非我觀五陰空無相無願觀五陰寂靜無所得無所猗是爲菩薩行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菩薩當作念言當爲一切衆生說無常非我說空無相無願寂靜之法應無所得無所猗是爲菩薩檀波羅蜜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또한 나한ㆍ벽지불의 뜻으로 5음이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하고 아(我)가 없음을 관하지 않으며, 또한 나한ㆍ벽지불의 뜻으로 공ㆍ무상ㆍ무원ㆍ적정을 관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계를 범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공포에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보살이 온 힘을 다해서 봉행하고 능히 참을 수 있으면 이것을 보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005_0026_b_10L復次菩提菩薩亦不以羅漢辟支佛意觀五陰無常非我亦不以羅漢支佛意觀空無相無願寂靜是爲菩薩不越戒以是故菩薩不恐不怖薩盡能奉行能忍是爲菩薩行羼提波羅蜜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뜻으로 살운야의 행과 상응하여 5음이 무상함을 관하나 응당 소견이 없어야 하며, 집착도 없어야 하며, 살운야의 뜻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유체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이 마땅히 이러한 행을 지으면 나한ㆍ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악한 마음에 구속되어도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며,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005_0026_b_16L復次須菩提菩薩意行應薩云若觀五陰無常應無所見無所著不捨薩云若意是爲菩薩行惟逮波羅蜜菩薩適作是行不起羅漢辟支佛意羈他惡意亦不得生是爲菩薩摩訶薩行禪波羅蜜不恐不怖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이렇게 관해야 하는 것이 5음이 공하므로 공이 바로 5음인 것은 아니다. 6정(情)ㆍ18성ㆍ37품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005_0026_b_21L復次須菩提菩薩行般若波羅蜜當作是言不以五陰空空則五陰六情八性三十七品亦復如是是故菩薩行般若波羅蜜不恐不怖
005_0026_c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어떤 선지식과 함께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겠습니까?”
005_0026_c_02L須菩提白佛言菩薩行般若波羅蜜當與何等善知識相得聞說般若波羅蜜不恐不怖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보살은 5음이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하고 아(我)가 없는 것이고, 공하고 모양이 없고 원하는 것도 없으며, 적정하여 희망하는 바가 없으며, 이 희망하는 바가 없는 복을 가지고 나한ㆍ벽지불지의 행은 짓지 않고 단지 살운야만을 구한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6정ㆍ18성ㆍ적정을 설하면서 희망하는 바가 없다. 이 공덕을 가지게 되면 성문ㆍ벽지불지는 원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005_0026_c_05L佛報言菩薩說五陰無常無我無相無願寂靜而無所希望持是無所希望之福不作羅漢辟支佛地行但求薩云若是爲菩薩善知爲說六情十八性寂靜而無所希持是功德不願聲聞辟支佛地爲菩薩善知識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생각하고 살운야를 생각하며 도(道)를 생각하고, 일체 설법에 희망하는 바가 없음으로써 희망하는 바가 없는 복을 가지고 성문ㆍ벽지불지를 위하지 않고 다만 살운야를 위한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005_0026_c_11L復次須菩提菩薩念三十七品佛十八法念薩云若念道以爲一切說法無所希望持無所希望福不爲聲聞辟支佛地但爲薩云是爲菩薩善知識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 구화구사라가 없고 악지식(惡知識)이 되며,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까?”
005_0026_c_15L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學般若波羅蜜無漚和拘舍羅爲惡知識聞說般若波羅蜜爲恐怖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보살이 살운야의 뜻을 여의고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높이고 선ㆍ정진ㆍ인욕ㆍ지계를 행하고 보시를 행하며 단바라밀에 의지하게 되니,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다.
005_0026_c_18L世尊報言菩薩離薩云若意猗般若波羅蜜而自貢高行禪精進忍辱持戒行布施以猗檀波羅蜜而自貢高
005_0027_a_02L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살운야의 뜻을 여의고, 5음의 내외공(內外空)을 생각하며, 이 공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의지하게 된다. 6정(情)이 공함을 생각하고, 18성이 공함을 생각하며, 이로써 스스로를 높이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공함을 생각하고, 18법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가 없고,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들었으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005_0026_c_21L復次須菩提菩薩離薩云若念五陰內外空以空貢高有所猗念六情空念十八性空以是爲貢高念二十七品及佛十八法空猗十八法而自貢高是爲菩薩不行般若波羅蜜無漚和拘舍羅聞說般若波羅蜜爲恐怖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악지식(惡知識)이 됩니까?”
005_0027_a_04L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惡知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을 멀리 여의도록 가르치며, 보살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니 배우지 말라고 하며, 단지 모일 줄만 알고 들으려고 하지 않고, 수지(受持)하지 않고, 경전을 독송하지 않고, 또한 타인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보살에게 악지식이 있어 마군이 즐겨 하는 일을 말하고 마왕 파순(波旬)이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들에게 6바라밀을 멀리 여의라고 말하며, 보살에게 ‘선남자여, 이러한 6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한다.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05_0027_a_05L佛言教令遠離六波羅蜜語菩薩言莫學是非佛所說但合會是不足聽聞不當受持不當諷誦讀亦不當教他人當知是菩薩惡知菩薩復有惡知識與說魔所樂事魔波旬作佛形像往到菩薩所使菩薩遠離六波羅蜜語菩薩言善男子用是六波羅蜜學爲當知是菩薩惡知識
마군이 다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성문에 해당하는 행동과 경을 분별하고 자세히 설하지만 이것은 마군의 일을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군이 다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에게 ‘선남자여, 그대는 또한 보살의 뜻이 없고, 또한 아유월치도 아니다. 그대는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보살을 가르치지도 않고, 마군의 일을 깨닫게 하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이다.
005_0027_a_13L魔復作佛形像往到菩薩所別廣說聲聞所應行經但爲說是魔當知是菩薩惡知識魔復作佛形往到菩薩所語菩薩言善男子亦無菩薩意亦非阿惟越致汝亦不能成阿耨多羅三耶三菩假令不教菩薩令覺魔事者是菩薩惡知識
마왕 파순이 다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에게 ‘선남자여,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공하며, 6쇠ㆍ18성이 모두 공하며,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모두 공한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배운들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하고, 이와 같이 가르친다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인 것이다.
005_0027_a_19L波旬復作佛形像往到菩薩所語菩薩言善男子眼耳鼻舌身意空六衰十八性皆空六波羅蜜三十七品十八法皆空用是阿耨多羅三耶三菩學爲有作是教者是爲菩薩惡知
005_0027_b_02L또한 수보리여, 마군이 다시 벽지불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보살에게 ‘선남자여, 시방은 모두 공하며 부처님도 없고 또한 보살도 없고 또한 성문도 없다’고 말하며, 보살들에게 이러한 마군의 일을 설한다. 이것이 곧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군이 다시 성문의 형상을 하고서 옷을 입고,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들에게 살운야의 뜻을 단절하게 만들고, 성문ㆍ벽지불의 행을 설한다. 이와 같이 지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이다.
005_0027_b_02L復次須菩提魔復作辟支佛形像往至菩薩所語菩薩言善男子十方皆空無有佛亦無有菩薩亦無有聲而爲菩薩說是輩魔事當知是則菩薩惡知識魔復作聲聞形像被服往到菩薩所斷菩薩薩云若意爲說聲聞辟支佛行有作是教者則是菩薩惡知識
마군이 다시 보살의 스승의 몸을 하고서 그에 맞는 옷을 입고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행을 여의도록 가르치고, 살운야ㆍ37품ㆍ부처님의 18법을 여의도록 가르친다. 공하여 모양이 없으며 원하는 것도 없어야 한다 하고, 보살에게 이 법을 가지게 하면서 ‘그대는 마땅히 이 법을 생각해야 하고 성문지(聲聞地)를 증득하는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배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군의 일일 뿐이다.
005_0027_b_09L魔復作菩薩師和上被服到菩薩所教令離菩薩行教令離薩云若三十七品及佛十八法持空無相無願法授菩薩汝當念是法受聲聞地證當用是阿耨多羅三耶三菩學是但魔事耳
또한 수보리여, 마군이 다시 보살의 어머니 모양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아들아, 너는 마땅히 수다원을 증득해야 하고 나한과를 익혀 증득해야 하는데,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무슨 소용인가? 이것을 얻으려면 무량한 겁 동안 생사를 받을 것이며, 응당 손을 끊고, 다리를 끊는 아픔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보살들을 향해서 이러한 마군의 일을 설한다면, 이것이 마군의 일을 짓는 것이다.
005_0027_b_14L復次須菩提魔復作菩薩母形像來至菩薩所言汝當受是須陁洹證習羅漢果證當用是阿耨多羅三耶三菩爲當受是無央數劫生死當受是截手截腳之痛菩薩說是輩魔事是則魔所作
또한 수보리여, 마군이 다시 비구의 형상을 하고서 그대 옷을 입고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에게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는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공하고 아(我)가 없는 것이라 하고, 공하여 모양도 없으며 원하는 것도 없어 적정한 것인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설하는 것은 모두 모양을 설하고 일에 집착한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미 알았으면 마땅히 속히 널리 여의어야 한다.”
005_0027_b_19L復次須菩提魔復作比丘被服至菩薩所語菩薩言眼耳鼻舌身意無常非我無相無願寂靜爲說三十七佛十八法皆爲說相著事當知是菩薩之惡知識覺已當急遠離之

14. 요본품(了本品)
005_0027_b_24L摩訶般若波羅蜜了本品第十四
005_0027_c_02L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라는 호칭이 보살이 되는 것입니까? 그 글 구절의 뜻은 무엇입니까?”
005_0027_c_02L須菩提白佛言菩薩號爲菩薩其句義云何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란 구절[句]의 뜻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도라는 것에는 구절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나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보살이라고 하는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새가 허공을 날지만 발자취가 있지 않은 것처럼 보살이란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꿈과 같고 환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여래가 변화한 것과 같아서 무소유이니, 보살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005_0027_c_04L佛告須菩提菩薩句義無所所以者何道者無有句義亦無我菩薩義者亦如是須菩提譬如鳥飛虛空無有足迹菩薩義者亦如是如夢熱時炎如來所化無所有菩薩義者亦如是
비유하면 법성과 진제(眞際)도 또한 무소유이다. 비유하면 환사(幻士)가 5음을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이란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005_0027_c_09L譬如法性及如亦無所有譬如幻士五陰不可得不可見行般若波羅蜜菩薩摩訶薩其義亦如是譬如幻士行內外空無所有菩薩行般若波羅蜜其義亦如是
비유하면 환사가 내외에 공을 행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무소유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환사가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과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며, 보살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부처님께서 5음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5음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지만 보살이란 글귀의 뜻은 볼 수 없는 것이다.
005_0027_c_14L須菩提譬如幻士行六波羅蜜三十七品及佛十八法無所有菩薩義者亦如是須菩提譬如佛五陰不可得何以故無有五陰故菩薩行般若波羅蜜不見菩薩之句義
수보리여, 비유하면 달살아갈(怛薩阿竭)ㆍ아라하(阿羅訶)ㆍ삼야삼불(三耶三佛)의 6정(情)이 무소유인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부처님께서 내외공을 행하는 것과 같아서 그 끝[際]을 볼 수 없는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니, 보살이란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성품도 또한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처럼 짓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단절하는 것도 없는 것이니, 그 뜻은 또한 있는 것이 아니다.”
005_0027_c_18L須菩提譬如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六情無所有菩薩行般若波羅蜜其義亦如是須菩提譬如佛行內外空際不可得見行三十七品及佛十八不可得見菩薩其義亦如是有爲無爲性亦無有義須菩提譬如不生不滅無所有無作無著無斷其義亦無所有
005_0028_a_02L“어떤 것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있지도 않고 짓지도 않는 것입니까?”
005_0028_a_03L何等不生不滅不著不斷有不作
“5음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18성ㆍ6정ㆍ6쇠ㆍ5음도 볼 수 없는 것이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집착할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고 끊어버릴 뜻도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005_0028_a_04L報言五陰不生不滅亦不著亦不斷亦不可見十八性六情六衰五陰無著三十七品佛十八法無著無斷義不可得行般若波羅蜜菩薩其義亦如是
수보리여, 비유하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본래 청정해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란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아(我)가 청정한 것처럼 아에 변제(邊際)가 있지 않으므로 우리의 수명도 청정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이 변제가 없으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해가 뜰 때 모두 어두운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005_0028_a_08L須菩提譬如三十七品佛十八法本淨無有義菩薩義者亦如是譬如吾我淨以吾我無有邊際我人壽命淨不可得見衆生無邊際故菩薩行般若波羅蜜其義亦如譬如日出時諸冥迹不復現菩薩亦如是
비유하면 천지겁(天地劫)이라 해서 불이 타오를 때에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은 모두 다 타서 그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세존께서 계(戒)를 구족하셨을 때에 악계(惡戒)의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삼매를 얻으면 어지러운 뜻의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지혜를 얻으면 어리석음[愚癡]의 자취는 없고, 해탈을 얻으면 해탈하지 못한 자취는 다시 볼 수 없고, 이미 해탈의 지혜를 보았으면 해탈하지 못한 지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005_0028_a_14L譬如天地劫盡火燒時世間諸所有皆燒盡其迹不可見菩薩行般若波羅蜜其義亦如是須菩提如世尊戒具本時惡戒迹不復現三昧亂意迹不復現得智慧無有愚癡迹得解脫不復見未解脫迹已見解脫慧不復見不解脫慧
005_0028_b_02L 비유하면 불광(佛光)이 나올 때에 일월(日月)과 도리(忉利)의 모든 천왕과 아가니타천의 광명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그 글귀의 뜻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라는 것과 보살ㆍ보살의 뜻은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으며,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상대[對]가 없는 한 가지 모양[一相]이며, 한 가지 모양은 곧 모양이 아니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배워야 하며,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을 깨달아야 한다.”
005_0028_a_20L譬如佛光出時日月忉利諸天王阿迦膩咤天光明不復現菩薩行般若波羅蜜句義不可見何以故道及菩薩菩薩是亦不合亦不散無有形不可見無有對一相一相者則爲非相須菩菩薩於諸法當學無所著亦當覺知諸法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모든 법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법에 집착함이 없음을 배우는 것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법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까?”
005_0028_b_04L須菩提白佛言何等爲諸法何等爲菩薩於諸法學無所著何等爲菩薩覺知諸法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란 이른바 선법(善法)ㆍ악법(惡法)ㆍ기법(記法)ㆍ미기법(未記法)ㆍ속법(俗法)ㆍ도법(道法)ㆍ유루법(有漏法)ㆍ무루법(無漏法)ㆍ유위법ㆍ무위법이다. 이것을 보살이 마땅히 모든 법에 집착이 없음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005_0028_b_06L佛告須菩提諸法謂善法惡法記法未記法俗法道有漏法無漏法有爲法無爲法爲菩薩當於是諸法學無所著亦當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세속의 선법입니까?”
須菩提白佛言何等爲世俗善法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선법이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과 도인에게 공양하고, 장로(長老)를 양육하고 모든 복을 베풀고 몸을 단속하여 수절하고, 정근하고 선한 뜻을 생각하고 방편으로 10선(善)을 수행하는 것, 속인의 내상(內想)ㆍ부패상(腐敗想)ㆍ청어상(靑瘀想)ㆍ혈상(血想)ㆍ식불초상(食不消想)ㆍ어지러운 상(亂想)ㆍ골상(骨想)ㆍ반초상(半燋想)ㆍ4선(禪)ㆍ4등(等)ㆍ4무형선상(無形禪想)ㆍ불상(佛想)ㆍ법상(法想)ㆍ비구승상(比丘僧想)ㆍ계상(戒想)ㆍ시상(施想)ㆍ천상(天想)ㆍ정근상(精勤想)ㆍ안반상(安般想)ㆍ신상(身想)ㆍ사상(死想)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세간의 선법이라고 한다.”
005_0028_b_10L佛告須菩提俗善法者謂孝順父母供養沙門道人養育長老施諸福約身守節精勤念善意崇方便行十善有俗內想腐敗想靑瘀想食不消想亂想骨想半燋想四禪四等四無形禪想佛想法想比丘僧戒想施想天想精勤想安般想死想須菩提是謂世閒善法
“어떤 것이 세속의 악법입니까?”
“살생하는 것ㆍ도둑질ㆍ음욕ㆍ성내는 것ㆍ악구(惡口)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ㆍ질투ㆍ사견 등을 세속의 악법이라고 한다.”
005_0028_b_18L何等爲世俗惡法惡口妄言嫉妒邪見是爲世俗惡法
“어떤 것이 기법입니까?”
“선법이든 선법이 아니든 이것을 기법이라고 한다.”
005_0028_b_20L何等爲記法若善法若不善法是爲記法
“어떤 것이 미기법입니까?”
“신(身)ㆍ구(口)ㆍ의(意)가 있지 않고, 4대(大)가 있지 않고, 5음ㆍ18성(性)ㆍ12쇠(衰)가 있지 않은 것을 미기법이라고 한다.”
005_0028_b_21L等爲未記法未有身口意未有四大未有五陰十八性十二衰是爲未記
“어떤 것이 세속법입니까?”
“5음ㆍ12쇠ㆍ18성ㆍ10선(善)ㆍ4선(禪)ㆍ4등ㆍ4무형선을 세속법이라고 한다.”
005_0028_b_24L何等爲世俗法五陰十二衰十八十善四禪四等四無形禪是謂世俗法
005_0028_c_02L“어떤 것이 도법입니까?”
“37품ㆍ3해탈문ㆍ3근(根)ㆍ3삼매(三昧)ㆍ해탈섭의(解脫攝意)ㆍ8해탈문ㆍ9차제선(次第禪)ㆍ18공(空)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無所畏)ㆍ부처님의 18법을 도법이라고 한다.”
005_0028_c_03L何等爲道法三十七品三解脫三根三三昧解脫攝意八解脫門九次第禪十八空佛十力四無所畏佛十八法是爲道法
“어떤 것이 누법(漏法)입니까?”
“5음ㆍ12쇠ㆍ18성ㆍ12인연ㆍ4선ㆍ4무형선을 누법이라고 한다.”
005_0028_c_06L何等爲漏法十二衰十八性十二因緣四禪無形禪是爲漏法
“어떤 것이 무루법입니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무루법이라고 한다.”
005_0028_c_08L何等爲無漏法十七品佛十八法是爲無漏法
“어떤 것이 유위법입니까?”
“욕계(欲界)ㆍ형계(形界)ㆍ무형계의 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을 유위법이라고 한다.”
005_0028_c_09L何等爲有爲法欲界形界無形界三十七品乃至佛十八法是爲有爲法
“어떤 것이 무위법입니까?”
“무위법이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멸하는 것도 아니며, 마침[終]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시작이 있는 것도 아니며, 상주(常住)하여 변화도 없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다하여 법성과 진제(眞際)와 같아 다름이 없는 것을 무위법이라고 한다.”
005_0028_c_11L何等爲無爲法無爲法者不生亦不滅終亦不始常住而不改婬怒癡盡無有異法性及眞際是謂無爲法
“보살마하살은 공상(空相)의 법에 집착함이 없으며, 경동(傾動)함이 없으며, 모든 법이 둘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005_0028_c_14L薩摩訶薩當於是空相之法無所著而不傾動覺諸法而不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마하살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대중들에는 반드시 상수(上首)가 있으므로 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05_0028_c_16L須菩提白佛言何等爲摩訶薩佛告須菩提諸大衆必有上首是故名爲摩訶薩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중생이 상수가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대중이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에서 아유월치지에 머무는 자에 이르기까지가 대중의 모임이며, 이 가운데서 보살이 상수이며, 이 가운데서 마땅히 금강의 뜻[金剛意]을 발하여 곧 상수가 되는 것이다.”
005_0028_c_18L須菩提白佛言當爲何等衆生而作上首佛告須菩提大衆者謂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初發意菩薩摩訶薩至阿#惟越致地住者是爲大衆之聚菩薩當於是中作上於中當發金剛意便爲上首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금강의 뜻입니까?”
005_0028_c_24L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爲金剛意
005_0029_a_02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뜻을 발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생사를 받는 동안 정진행을 지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해서 일체의 소유(所有)를 버릴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히 할 것이다. 나는 삼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며 해탈케 하고, 반니원(般泥洹)에 이르게 할 것이며, 또한 중생이 반니원에 드는 것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법이 어느 곳으로부터 와서 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항상 살운야혜(薩云若慧)의 뜻으로 6바라밀을 행할 것이다. 나는 마땅히 배워서 반드시 일체를 구할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금강의 뜻을 발한 것이라고 한다. 즉 대중을 위하는 최고의 상수가 되는 것이다.
005_0029_a_02L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發意言我當受無央數生死作精進行我當爲衆生故捨一切所有我當等心於一切衆我當以三乘度脫衆生當令般泥亦不見衆生般泥洹我當覺諸法無所從生常當以薩云若慧意行六波羅蜜我當學當救濟一切須菩提是爲菩薩發金剛意便爲大衆最上
보살이 다시 다음과 같이 뜻을 발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니리(泥犁:지옥)와 벽려(薜荔:축생)에서 죄인이 받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해서 무량한 겁 동안 고통을 대신 받을 것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니원(無餘尼洹)과 반니원에 이르게 한 후에 나 자신 스스로 몸으로 선한 근본을 지어 억백천 겁 후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금강의 뜻을 발한 것이며, 대중들 가운데 상수(上首)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은 마땅히 묘의(妙意)를 가지며 묘의로써 중생 가운데 상수가 되는 것이다.
005_0029_a_11L菩薩復發意言我當爲泥犂薜荔中罪人所受苦痛我當爲衆生代受無央數劫苦痛盡令衆生於無餘泥洹而般泥洹然後我自爲身作善本億百千劫乃成阿耨多羅三耶三菩須菩提是爲菩薩發金剛意於大衆而爲上首菩薩當爲妙意以妙意故於衆生爲上首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또한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뜻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중생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또한 성문ㆍ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묘한 뜻을 가져서 대중 가운데서 상수가 되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스스로 높이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보살은 마땅히 살운야의 뜻에서 동요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 높이지도 않는다. 보살은 항상 중생을 호념(護念)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또한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법을 행하니, 응당 법락(法樂)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005_0029_a_18L從初發意已來亦不當生婬怒癡意亦不當嬈衆生亦不起聲聞辟支佛意是爲菩薩摩訶薩妙意而爲大衆作上首亦不念貢高菩薩當於薩云若意而不動亦不貢菩薩常當起護念於衆生亦不捨衆生菩薩摩訶薩當爲法行當爲法
005_0029_b_02L“어떤 것이 법락입니까?”
“그 아는 바를 따라서 외우고 수지하며,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공(法空)에 머물고, 대중을 위해서 인도하지만 또한 의지하지도 않고, 또한 얻을 것도 없는 것이다. 보살은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머물고, 대중을 위해서 상수가 되지만 의지함도 없고, 어떠한 소견도 없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금강과 같은 삼매를 행함에 머물고 나아가 허공 끝이 다하도록 물들지 않는 해탈삼매를 체득하여 곧 대중 가운데 상수가 되지만 얻을 바도 없고, 또한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와 같은 법지(法地)에 머무므로 곧 능히 중생을 위해서 상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005_0029_b_02L何等爲法樂隨其所知而諷誦受菩薩行般若波羅蜜住於諸法空大衆作導亦無所倚亦無所得菩薩住於三十七品及佛十八法爲大衆作上首無所倚而無所見菩薩行般若波羅蜜住於行如金剛三昧乃至盡虛空際無所染逮解脫三昧便爲大衆作上首而無所得亦無所倚菩提菩薩住於是法地故便能爲衆生而作上首是故名爲摩訶薩

15. 마하살품(摩訶薩品)
005_0029_b_11L摩訶般若波羅蜜摩訶薩品第十五

이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또한 마하살이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설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설해 보아라.”
005_0029_b_12L是時舍利弗白佛言我亦當復說所以爲摩訶薩者何佛告舍利弗便說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은 모든 망견(妄見)을 다 끊었으므로 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모든 견[諸見]ㆍ망견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견(我見)과 인견(人見)과 중생견이 있고, 단견(斷見)이 있고, 상견(常見)이 있고, 유견(有見)ㆍ무견(無見)ㆍ5음견(陰見)ㆍ18성견(性見)ㆍ12쇠견(衰見)ㆍ제견(諦見)ㆍ12인연견ㆍ37품과 부처님의 18법견이 있고, 육양중생견(育養衆生見)이 있고, 정불토견(淨佛土見)이 있고, 도견(道見)이 있고, 불견(佛見)ㆍ전법륜견(轉法輪見) 등이 있는데, 일체의 모든 견을 모두 끊으며 이와 같이 설법을 하므로 마하살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005_0029_b_14L舍利弗言菩薩於諸妄見悉斷是故名爲摩訶薩何謂諸見妄見吾我見有人見及衆生見有斷見有常見見無見五陰見十八性見十二衰見有諦見十二因緣見有三十七品十八法見有育養衆生見有淨佛土有道見有佛見轉法輪見一切諸見悉斷作如是說法是故名爲摩訶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무슨 이유로 5음ㆍ12쇠ㆍ18성ㆍ12인연의 견해가 있으며, 무슨 이유로 37품ㆍ부처님의 18법견, 나아가 망견이 있는 것입니까?”
005_0029_b_23L須菩提問舍利弗言菩薩摩訶薩何以故有五陰十二衰十八性十二因緣見何以故有三十七品佛十八法見及有妄見
005_0029_c_02L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므로 5음ㆍ6정ㆍ18성ㆍ12인연에 힘쓰고, 6바라밀ㆍ37품ㆍ부처님의 18법에 의지하여 모든 견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로써 모든 견해를 끊고 사람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되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005_0029_c_03L舍利弗對曰菩薩摩訶薩不以漚和拘舍羅行般若波羅如務五陰六情十八性十二因緣猗六波羅蜜三十七品及佛十八法起諸見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斷是諸見爲人說法而無所猗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마땅히 마하살이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설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설해 보아라.”
수보리가 말하였다.
“도의 뜻과 동등함이 없음은 성문ㆍ벽지불이 아는 바와 다릅니다. 왜냐하면 살운야의 뜻은 무루(無漏)여서 뜻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마하살이 되는 것입니다.”
005_0029_c_09L須菩提白佛言我亦當說所以爲摩訶薩者何佛告須菩提樂說者便說須菩提言道意無有與等者非聲聞辟支佛所知何以故以薩云若意無漏故意亦不著是故爲摩訶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동등함이 없는 뜻으로 모든 나한과 벽지불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005_0029_c_14L舍利弗問須菩提何等爲菩薩意無有與等者諸羅漢辟支佛所不能及者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법에 생멸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증감(增減)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집착도 보지 않고 또한 단절함도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나한ㆍ벽지불의 뜻도 없고, 또한 도의 뜻도 없고, 또한 부처의 뜻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동등함이 없는 뜻은 나한ㆍ벽지불이 알 수 있는 것과 다르다고 합니다.”
005_0029_c_16L須菩提報言菩薩摩訶薩從初發意以來不見法有生滅亦不見有增減亦不見著亦不見斷舍利弗法不生不滅不增不減不著不斷者亦無羅漢辟支佛意亦無道意亦無佛意是爲菩薩摩訶薩意無有與等非羅漢辟支佛所能及知者
005_0030_a_02L사리불이 말하였다.
“수보리의 뜻처럼 나한ㆍ벽지불지에 집착하지 않고 5음에도 집착치 않고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가령 살운야의 뜻이 무루라고 한다면, 범인의 뜻도 또한 마땅히 무루이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나한ㆍ벽지불과 모든 부처님 세존의 뜻도 또한 마땅히 무루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005_0029_c_22L舍利弗言如須菩提意不著羅漢辟支佛五陰亦不著三十七品佛十八法亦不著舍利弗語須菩提假令薩云若意無漏者凡人意亦當無漏性空羅漢辟支佛及諸佛世尊意亦當無漏須菩提言如所言
사리불이 말하였다.
“5음도 또한 무루이니 그 성품이 본래 공하기 때문입니다. 37품ㆍ부처님의 18법도 또한 무루(無漏)이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005_0030_a_05L舍利弗言五陰亦無漏其性本空故三十七品佛十八法亦復無漏性空故須菩提如舍利弗所言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뜻이 없어서 뜻과 합하지 않습니까? 색ㆍ통ㆍ상ㆍ행ㆍ식이 없어서 식과 합하는 것이 아닙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습니다.”
005_0030_a_08L舍利弗問須菩提無意爲不與意合耶無色痛想行識爲不與識合耶須菩提言如所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과 18법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유무의 일은 모두 합하는 것입니다.”
005_0030_a_11L舍利弗復問三十七品佛十八法與非十八法爲不著不合耶須菩提報言有無之事皆合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도의 뜻을 갖지 않은 이와 나한ㆍ벽지불은 능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높이지도 않고 의지함도 없으며 의지함에도 법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005_0030_a_13L須菩提語舍利弗言菩薩摩訶薩作如是行般若波羅蜜不持道意及羅漢辟支佛所不能及知意亦不貢高而有所猗於猗於法而無所入

16. 문승나품(問僧那品)
005_0030_a_17L摩訶般若波羅蜜問僧那品第十六

그때 빈누문타니자(邠耨文陀尼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마땅히 마하살이 되는 까닭을 설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설하고자 하면 곧 설하라.”
빈누가 말하였다.
“보살은 큰 공덕을 지어서 대승에 연류하여 오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하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005_0030_a_18L是時邠耨文陁尼子白佛言世尊當說所以爲摩訶薩者佛言汝樂欲說者便說之邠耨言菩薩爲大功德所纏絡乘於大乘以是故謂爲摩訶
사리불이 빈누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큰 공덕으로써 연류하여 마하살이 되는 것입니까?”
005_0030_a_23L舍利弗問邠耨言何等爲菩薩摩訶薩以大功德所纏絡而爲摩訶薩
005_0030_b_02L빈누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사람에게만 제한하지 않으므로 단(檀)바라밀에 머물러서 보시를 하며,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단바라밀과 시ㆍ찬ㆍ유체ㆍ선ㆍ반야 바라밀을 행하는 데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이며, 겸손하게 고행을 합니다.
005_0030_a_24L邠耨報言菩薩摩訶薩不爲齊限於人故住檀波羅蜜而爲布施普爲一切衆生故行檀波羅蜜惟逮般若波羅蜜普爲衆生故作謙苦行
보살은 승나승녈(僧那僧涅)1)을 이루어서 중생에게만 제한하지 않고, 또한 ‘나는 마땅히 약간의 사람만을 제한적으로 제도하고 나머지 사람은 제도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약간의 사람만 가르쳐 도(道)에 이르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나머지 사람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하므로 큰 서원을 일으켜 ‘나는 스스로 6바라밀을 구족해서 마땅히 타인을 가르쳐 6바라밀을 구족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할 때 보시는 살운야의 뜻에 상응하고 서원을 세워 ‘이 공덕을 일체 중생들과 함께 가져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시를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0_b_05L菩薩成僧那僧涅不限衆生亦不言我當限度若干人不能度餘人亦不我當教若干人至道亦不言我不能教餘人菩薩爲衆生故起大誓願我自當具足六波羅蜜亦當教他人使具足六波羅蜜菩薩行檀波羅蜜所布施應薩云若意願言持是功與一切衆生俱共得阿耨多羅三耶三菩舍利弗是爲菩薩行般若波羅蜜而習布施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의 보시는 살운야에 상응하며, 나한ㆍ벽지불지를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보시를 행할 때 시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0_b_15L復次舍利弗菩薩布施應薩云若不求羅漢辟支佛地爲菩薩行般若波羅蜜布施習於尸波羅蜜
005_0030_c_02L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살운야를 지으며, 법이 상응하는 바의 행을 생각합니다. 이것을 찬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진과 상응하는 바의 행을 유체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심(一心)으로 하는 보시는 살운야와 상응하며, 마침내 성문ㆍ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음을 생각합니다. 이것을 선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시하는 것은 환상(幻相)과 같은 것이니, 베푸는 자도 보지 말고, 또 베푸는 물건도 보지 말고, 또 받는 자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살이 보시를 하면서 반야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살운야의 뜻으로 모든 반야바라밀을 생각하지 않고 또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보살의 승나승녈이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005_0030_b_18L復次舍利弗菩薩布施時作薩云若念法所應行是爲習羼波羅如精進所應行是爲習惟逮波羅一心布施應薩云若念終不起聲辟支佛意是爲習禪波羅蜜所可布施如幻相不見施者亦不見所施亦不見受者是爲菩薩布施而習般若波羅蜜菩薩以薩云若意不想諸波羅蜜亦不猗舍利弗是故當知菩薩爲僧那僧涅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살운야에 상응하는 뜻을 보시하고 보시 공덕을 중생과 더불어 가져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합니다.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단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0_c_04L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波羅蜜意應薩云若布施持布施功德與衆生共求阿耨多羅三耶三菩是爲菩薩行尸波羅蜜而具檀波羅蜜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능히 정성을 다하여 봉행하고 능히 인욕해야 하니,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찬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0_c_08L復次舍利弗菩薩行尸波羅蜜盡能奉行能忍辱是爲菩薩行尸波羅蜜具足羼波羅蜜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유체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을 보살이 정진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시바라밀을 행할 때 나한ㆍ벽지불의 뜻을 받지 않으며, 보살은 시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바라밀을 환상같이 여기고 스스로 높이지 않고, 또한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005_0030_c_10L復次利弗菩薩行尸波羅蜜具足惟逮波羅蜜是爲菩薩習精進菩薩行尸波羅蜜不受羅漢辟支佛意菩薩行尸波羅蜜於諸波羅蜜如幻相不貢高亦無所倚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반야바라밀을 총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승나승녈이라고 이름합니다. 보살은 인욕바라밀을 행할 때 살운야의 뜻에 상응하여 보시하고 보살은 무형선(無形禪)에 들어가며, 또한 그 가운데 처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구화구사라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0_c_15L舍利弗是爲菩薩行尸波羅蜜如習般若波羅蜜是爲菩薩行尸波羅蜜摠持諸波羅蜜是故名爲僧那僧涅菩薩行羼提波羅蜜應薩云若布施菩薩入無形禪亦不處其是爲菩薩行漚和拘舍羅而爲般若波羅蜜
005_0031_a_02L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선을 행하면서 공ㆍ무상ㆍ무원을 분별합니다. 이것을 보살이 승나승녈을 행하면서 반야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승나승녈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승나승녈을 지으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모두 큰 음성으로 이 보살을 찬탄하여 ‘어떤 국토의 보살은 모든 공덕을 갖추고 승나승녈을 세워서 마땅히 중생을 양육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005_0030_c_21L復次舍利弗菩薩行禪分別空無相無願是爲菩薩行僧那僧涅而爲般若波羅蜜以是故名爲僧那僧涅舍利弗菩薩作是僧那僧涅十方諸佛世尊皆以大音聲讚歎是菩薩言某國土菩薩具諸功德爲僧那僧涅當育養衆生淨佛國土
사리불이 빈누문타니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삼발치(摩訶衍三拔致)입니까? 마하연삼발치라는 것은 진(晋)나라 말로는 발취대승(發趣大乘)이라 합니다. 무엇이 대승을 발하여 일으키는[發起] 것입니까?”
005_0031_a_04L是舍利弗問邠耨文陁尼子何等爲菩薩摩訶薩摩訶衍三拔致摩訶衍三拔致者晉言發趣大乘云何爲發起大乘
빈누가 대답하였다.
“6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선(禪)을 따라 상응하여 행하고 정성들여 봉행하고 살운야를 구해야 합니다. 보살은 살운야의 뜻으로 8선(禪)에 들어서 무상을 관하고 고ㆍ공ㆍ비아ㆍ무원을 관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마하연이 되는 것입니다. 보살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염(念)하는 것이 보살마하연입니다. 보살의 뜻은 나한ㆍ벽지불지를 가까이 하지 않고 뜻은 단지 살운야만을 숭상합니다. 이것이 보살이 4등(等)2)을 행해서 찬바라밀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1_a_08L邠耨報言行六波羅蜜隨諸禪所應行盡奉行持求薩云若菩薩以薩云若意於八禪觀其無常觀其非我無願是爲菩薩行般若波羅蜜爲摩訶衍菩薩念三十七品十八法是爲菩薩摩訶衍菩薩意不近羅漢辟支佛地志但崇薩云若爲菩薩行四等而爲羼波羅蜜
보살이 살운야를 행하는 뜻에 게으름이 없을 때 이것을 보살이 유체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비록 4선(禪)과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와 9선(禪)을 행하지만 또한 보살은 동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화구사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005_0031_a_15L菩薩行薩云若意無懈時是爲菩薩惟逮波羅蜜菩薩雖行四禪慈悲喜護亦不能動搖菩薩所以者何以漚和拘舍羅故
보살이 4등을 행할 때 중생을 위해 모든 번뇌[漏]를 소멸하게 하는 것을 보살이 4등을 행할 때 단바라밀이라고 합니다.
005_0031_a_19L菩薩行四等爲衆生消諸漏是爲菩薩行四等而爲檀波羅
모든 법에 선(禪)을 지으며 나한ㆍ벽지불을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살운야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이 4등을 행할 때 시바라밀을 그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005_0031_a_21L諸法所作禪不持求羅漢辟支佛何以故常求薩云若故是爲菩薩行四等而不㧗尸波羅蜜
005_0031_b_02L 보살에게는 또한 마하연이 있어 내외공(內外空)에서 그 지혜가 전(轉)해지는 것도 아니며, 의지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으며, 볼 바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연이라고 합니다. 또 마하연이 있는데, 모든 법도 아니며, 지혜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어지러운 것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선정[定]에 있는 것도 아니며, 지혜는 또한 유상(有常)에 있는 것도 아니며, 무상(無常)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고락(苦樂)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유아(有我)와 무아(無我)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005_0031_a_23L菩薩復有摩訶衍於內外空其慧不轉無所倚所得無所見是爲菩薩摩訶衍復有摩訶衍不於諸法慧不在亂亦不在慧亦不在有常亦不在無常慧亦不在苦樂亦不在有我無我是爲菩薩摩訶衍而應無所倚
또한 마하연이 있는데 지혜는 미래ㆍ과거ㆍ현재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삼세(三世)를 여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마하연이란 지혜가 삼계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삼계를 여읜 것도 아닙니다. 또한 마하연이 있는데 지혜는 속법(俗法)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 도법(道法)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유위(有爲)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위(無爲)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 유루(有漏)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루(無漏)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의지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인 것입니다.”
005_0031_b_06L復有摩訶衍慧不在當來過去今現在慧亦不離三世是爲摩訶衍應無所倚摩訶衍慧不在三界亦不離三界復有摩訶衍慧不在俗法亦不在道法亦不在有爲亦不在無爲亦不在有漏亦不在無漏是爲無所倚舍利弗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17. 마하연품(摩訶衍品)
005_0031_b_13L摩訶般若波羅蜜摩訶衍品第十七

그때 사리불이 빈누문타니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탄다[乘]고 합니까?”
005_0031_b_14L爾時舍利弗問邠耨文陁尼子言等爲菩薩摩訶薩乘於大乘
빈누가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단ㆍ시ㆍ찬ㆍ유체ㆍ선 바라밀을 타고 이 6바라밀을 타지만 6바라밀을 보지 않으며 또한 보살은 의지함도 없다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대승을 탄다고 하는 것입니다.
005_0031_b_16L邠耨報舍利弗言菩薩行般若波羅蜜乘於惟逮禪波羅蜜乘是六波羅不見六波羅蜜亦不倚菩薩而無所倚是爲乘於大乘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일심으로 살운야를 배우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구족하고 비록 이루었다고 생각해도 이것을 의지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대승을 탄다고 합니다.
005_0031_b_20L復次舍利弗薩摩訶薩一心學薩云若具足三十七品佛十八法雖念欲成不有所倚是爲菩薩乘於大乘
005_0031_c_02L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보살이란 단지 글자일 뿐이며, 5음이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5음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정(情)이라 하는 것도 글자일 뿐이니, 6정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7품이라 하는 것도 다만 글자일 뿐이니, 37품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외공이라 하는 것도 글자일 뿐이니, 내외공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18법이라 하는 것도 다만 글자일 뿐이니, 부처님의 18법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법(如來法)이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법성(法性)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제(眞際)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진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나 도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부처님에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한다고 합니다.
005_0031_b_23L復次舍利弗薩作是念言菩薩者但是字耳五陰者但有字耳不倚五陰故六情者但有字耳不倚六情故三十七品者但有字耳不倚三十七品故內外空者但有字耳不倚內外空故佛十八法者但有字耳不倚佛十八法故如來法者但有字耳不見法性故眞際者但有字耳眞際不可見故佛及道者但有字不倚佛故是爲菩薩摩訶薩乘於大乘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후로 보살의 신통을 구족하고 있으며, 구족한 후에는 군생(群生)들을 양육하고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로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예배하며,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법의 가르침[法敎]을 듣습니다.”
005_0031_c_10L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從初發意以來具足菩薩之神通具足已欲育養群生從一佛國遊至一佛國供養禮拜事諸佛世尊從諸佛聽受法教
“무엇을 법의 가르침이라고 합니까?”
何謂法教
대답하였다.
“보살대승(菩薩大乘)은 보살승(菩薩乘) 대승이며, 모든 불찰들을 다니면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양육하지만 처음부터 불국토에 대한 생각이 없고 또한 중생에 대한 생각도 없고, 또 2지(地)에 머물지 않습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그 형상을 변화하며, 일체 지혜를 얻지 못해도 끝내 보살승을 여의지 않고, 일체 지혜를 체득했으면 곧 능히 법륜을 굴립니다. 이것은 나한ㆍ벽지불, 나아가 모든 천ㆍ용ㆍ열차(閱叉:야차)ㆍ아수륜(阿須倫)ㆍ세간 사람들은 능히 굴리지 못합니다.
005_0031_c_14L報言菩薩大乘是菩薩乘是大乘遊諸佛剎淨佛國土養衆生初無佛國想亦無衆生想不住二地菩薩爲衆生故隨其所應而變其形像不得一切智終不離菩薩乘逮一切智已便能轉法輪非羅辟支佛及諸天閱叉阿須倫及世閒人所能轉
이때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찬탄하여 ‘어떤 나라의 어떤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타고 살운야를 체득하여 법륜을 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탄다고 합니다.”
005_0031_c_21L是時聞十方恒邊沙諸佛世尊讚歎聲言某國某菩薩摩訶薩乘於大乘逮薩云若轉於法輪利弗是爲菩薩摩訶薩乘於大乘

18. 승나승녈품(僧那僧涅品)
005_0031_c_24L摩訶般若波羅蜜僧那僧涅品第十八
005_0032_a_02L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승나승녈입니까?”
005_0032_a_02L爾時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摩訶薩僧那僧涅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6바라밀ㆍ37품ㆍ내외공ㆍ유무공(有無空)ㆍ부처님의 18법ㆍ일체 지혜는 모든 공덕의 갑옷을 입어 불신(佛身)을 이루고 광명은 삼천대천세계를 명확하게 비춘다. 또 이 광명으로써 두루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들을 비추면 삼천대천세계를 여섯 갈래로 흔들고, 다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들을 여섯 갈래로 흔든다. 이미 이 광명을 받았으면, 단바라밀에 머물러 대승의 갑옷으로 곧 능히 삼천대천찰토를 변화시켜 유리(琉璃)로 만들고 스스로 그 형상을 변화시켜서 차가월왕(遮迦越王:전륜성왕)이 된다.
005_0032_a_04L佛告須菩提六波羅三十七品內外空及有無空佛十八法及一切智被諸功德之鎧成佛光徹三千大千剎土復以光普遍十方恒邊沙佛國土便爲六反震動三千大千剎土復六反震動十方恒邊沙佛國土菩薩已受是光明住於檀波羅蜜以大乘之鎧便能變化三千大千剎土化爲琉璃自變其形爲遮迦越王
원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을 보시한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에는 음식을 주며, 옷을 얻고자 하면 옷을 주며, 향화(香華)와 의약을 얻고자 하면 보시하고, 갖가지로 각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 즐겁게 모든 것을 준다.
005_0032_a_13L布施一切隨其所欲飢渴與飮食欲得衣者與衣欲得香華醫藥布施種種隨衆人身所便樂盡給與之
이와 같이 보시하고 난 뒤에는 곧 중생을 위해서 6바라밀을 행할 것을 설법한다. 중생은 보살의 가르침을 듣고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6바라밀의 행을 여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이 대승의 갑옷을 입은 것이라고 한다.
005_0032_a_16L作是布施已便爲衆生說六波羅蜜行衆生聞菩薩教已至得阿耨多羅三耶三菩不離六波羅蜜行是爲菩薩被大乘之鎧
수보리여, 비유하면 마치 교묘한 환사(幻師)가 네 거리의 중요한 길목에서 대중들 앞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음식ㆍ의복ㆍ돈ㆍ재물을 보시하고 사람들의 뜻에 따라서 구하는 바를 환인(幻人)이 빠짐없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환사가 정말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인가?”
005_0032_a_19L須菩提譬如工幻師在四要道頭於大衆人前布施人所欲飮食衣被錢財隨人意所索幻人盡與於須菩提意云何是幻師頗有所布施於人不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시한 것도 없으며, 또한 얻은 것도 없습니다.”
005_0032_a_23L須菩提白佛言無所施亦無得者
005_0032_b_02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스스로 몸을 변화하여 차가월왕이 되어서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바에 따라서 보시하며,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베풀어 준다. 비록 베풀었다고 하지만 준 것이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법이 환법(幻法)과 상응했기 때문이다.
005_0032_a_24L佛告須菩提菩薩自化身作遮迦越王布施隨人所樂而在所與恣人所欲而施與雖施而無所與亦無得者何以故須菩提之幻法應爾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시바라밀에 머물러 차가월라(遮迦越羅)로 시현해서 그 가운데서 사람으로 하여금 10선법(善法)을 지니게 한다. 사람들을 가르쳐서 4선(禪)ㆍ4등ㆍ4무형선을 행하게 하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세우게 하여 중생들이 이 법의 가르침을 듣고 도를 얻을 때까지 마침내 법의 가르침을 여의지 않게 한다.
005_0032_b_05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於尸波羅蜜示現作遮迦越羅於中使人持十善法教人使爲四禪四等四無形禪立於三十七品至佛十八法衆生聞是法教至得道終不離是法教
수보리여, 비유하면 환사가 대중을 변화로 지어서 환인에게 10선을 지니라고 가르치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세우게 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말 사람들이 10선ㆍ4선ㆍ4무형선을 세우는가? 진정 사람들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세우는가?”
005_0032_b_10L須菩提譬如幻師化作大衆人教幻人持十善立以三十七品至佛十八法於須菩提意云何頗有人立於十善四禪四無形禪頗有人立於三十七品及佛十八法者不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세우는 자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05_0032_b_14L菩提對曰無有立者也世尊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모든 중생들에게 10선지(善地)ㆍ37품ㆍ부처님의 18법을 세우게 하되, 또한 어떤 사람도 이 법에 머문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이 법과 자연히 상응하여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대승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
005_0032_b_15L佛告須菩提菩薩立諸衆生於十善地三十七品佛十八法亦不見有人住是法所以者何法幻之法自應當爾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爲被大乘之鎧
005_0032_c_02L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찬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중생도 찬바라밀을 세우게 한다. 보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서원을 세워 ‘가령 중생이 칼과 막대기로 해치려고 해도 나는 모두 받으며 끝내 잠깐동안도 악의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마땅히 다시 인욕지(忍辱地)에 중생을 서게 함도 또한 이와 같다. 비록 중생에게 찬바라밀을 세우게 하나, 또한 환사(幻師)와 같고, 또한 중생상이 없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대승의 갑옷을 입는 것이라고 한다.
005_0032_b_20L復次須菩提菩薩住羼波羅蜜亦立衆生於羼波羅蜜菩薩從初發意以來作誓言假令衆生持刀杖害我悉受終不起惡意如彈指之頃復立衆生於忍辱地亦復如是雖立衆生於羼波羅蜜亦復如幻師亦無衆生想須菩提是爲菩薩大乘之鎧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유체바라밀에 머물러서 중생에게 정진의 뜻을 세우게 하고 살운야에 상응하게 함도 또한 환사와 같은 것이며, 이것을 보살대승의 갑옷이라고 한다.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심(一心)을 행하게 하고, 보살은 등법(等法)에 머물러서 법에 산란함이 있는지 일심이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선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사람들에게 일심을 가르쳐서 선(禪)을 행하게 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끝내 일심을 여의지 않게 하는데, 이것도 또한 환사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승나승녈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05_0032_c_03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於惟逮波羅蜜立衆生精進意應薩云若復如幻師是爲菩薩大乘之鎧菩薩住於禪波羅蜜亦復教一切人行一菩薩住於等法不見法有亂者一心者須菩提是爲菩薩住於禪波羅蜜亦復教一心人行禪乃至阿耨多羅三耶三菩終不離是一心亦復如幻師是故名爲僧那僧涅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모든 사람들을 권조하고 가르쳐서 반야바라밀을 세우게 된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에 차안과 피안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중생들을 권조하고 가르쳐서 반야바라밀을 세우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도 또한 환사와 같은 것이다. 배우는 자가 있다고 보아도 안 되며, 받는 자가 있다고 보아도 안 된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의 승나승녈이 되는 것이다.
005_0032_c_12L復次菩提菩薩摩訶薩住於般若波羅蜜亦復勸助教一切人使立於般若波羅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於諸法不見有彼此岸是爲菩薩住於般若波羅蜜亦復勸助衆生化立人於般若波羅蜜教化衆生亦復如幻不見有學者不見有受者以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僧那僧
005_0033_a_02L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대승의 갑옷을 입고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의 중생들을 편안한 곳에 처하게 하고, 6바라밀을 세워서 중생을 위하여 6바라밀법을 설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이것을 듣게 하고, 들은 후에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이 법을 여의지 않게 하는데 또한 환(幻)과 같아서 또 법을 받을 자도 보지 못하며, 또 가르침을 받을 자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대승의 갑옷이 되는 것이다.
005_0032_c_21L復次須菩提菩薩被大乘鎧以安處十方恒邊沙佛國衆生立於六波羅蜜爲衆生說六波羅蜜法使衆生聞之聞已至阿耨多羅三耶三菩不離是法亦復如幻亦不見受法者不見受是教者以是故菩薩爲大乘之鎧
보살은 또 대승의 갑옷을 입고 뜻은 살운야와 상응하여 보살은 ‘나는 마땅히 약간의 사람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세우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마땅히 약간의 사람을 가르쳐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약간의 사람은 가르칠 수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약간의 사람을 가르쳐서 수다원(須陀洹) 나아가 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을 얻게 하겠다’고도 말하지 않으며, ‘나는 약간의 사람은 아라한에 이르도록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는 저 사람들을 모두 가르치지 않겠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005_0033_a_04L菩薩復被大乘之鎧意應薩云菩薩不言我當教若干人立於六波羅蜜亦不言我當教若干人行三十七品佛十八法亦復不言我不能教若干人亦復不言我教若干人得須陁洹乃至阿羅漢辟支佛不言不教若干人至阿羅漢亦不言我立若干人至薩云若不言我不悉教爾所人
왜 그런가? 보살은 제도하는 데 한계와 장애가 없으며 좋아하고 싫어함도 없다. 보살이 제도하는 데는 또한 그 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 양도 정해져 있지 않다.
005_0033_a_12L何以故菩薩所度無有限㝵亦無適莫菩薩所度亦無有數亦無有
수보리여, 보살은 비유하면 환사가 환인을 가르치는 것과 같아서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없으며, 또한 가르침을 받는 자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승나승녈인 것이다.”
005_0033_a_14L須菩提菩薩譬如幻師教幻人見有所教亦不見有受者是爲菩薩摩訶薩僧那僧涅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뜻대로라면 보살은 승나승녈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공하기 때문입니다. 색ㆍ통ㆍ상ㆍ행ㆍ식이 공하며,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와 색ㆍ성ㆍ향ㆍ미ㆍ세활ㆍ법과 18성이 각각 그 상을 따라 각자 스스로 공합니다.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스스로 공하며, 내외공이 모두 스스로 공하며, 37품에서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하며, 보살도 또한 공하며, 승나승녈도 또한 스스로 공합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은 승나승녈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005_0033_a_16L須菩提白佛言我從佛所聞義當知菩薩非爲僧那僧涅何以故諸法空故色痛想行識眼耳鼻舌身意色聲香味細滑法十八性各隨其相各自空檀波羅蜜至般若波羅蜜亦自空內外空皆自從三十七品至佛十八法皆空薩亦空僧那僧涅亦自空以是故當知菩薩爲非僧那僧涅
005_0033_b_01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것과 다름이 없다. 수보리여, 살운야는 행하는 것도 아니고, 짓는 것도 아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마하승나승녈을 짓지만 중생이 또한 행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짓는 것도 아니다.”
005_0033_a_24L佛告須菩提如所言無有異須菩提薩云若非爲非作菩薩爲衆生作摩訶僧那僧涅者是衆生亦非爲非作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까닭으로 살운야와 중생들은 행하는 것도 아니고 짓는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까?”
005_0033_b_03L須菩提白佛言何以故薩云若及衆生非爲非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운야는 행함도 없고 지음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5음은 또한 지어짐도 있지 않고 짓지 않음도 아니며, 6정(情)과 6쇠(衰)도 행하는 바도 없고 지어짐도 없다. 나와 남, 수명도 행함도 없고 지어짐도 없다. 왜냐하면 변제(邊際)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05_0033_b_05L佛言不見有人故是故薩云若無爲無作何以故須菩提五陰亦不有所作亦非不作六情六衰亦無所爲亦無所作壽命亦無所爲亦無所作何以故邊際不可得故
수보리여, 꿈ㆍ메아리ㆍ그림자ㆍ허깨비ㆍ아지랑이가 지음이 없고 행함이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내외공ㆍ37품ㆍ부처님의 18법도 행하는 바가 없고 짓는 바도 없다. 왜냐하면 그 본제(本際)는 얻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성(法性)과 진제(眞際)에 이르기까지 또한 짓는 바가 없고, 또한 행하는 바도 없다. 보살의 살운야도 또한 지을 것도 없고, 또 행하는 바도 없다. 왜냐하면 본제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살운야와 중생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을 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하승나승녈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05_0033_b_09L須菩熱時炎化無所作亦無所爲內外空三十七品佛十八法亦無所爲亦無所作何以故其本際不可得見故如及法性眞際亦無所作亦無所爲菩薩薩云若亦無所作亦無所爲何以故無有本際故以是故須菩提薩云若及衆生無所有無所以是當知菩薩非爲摩訶僧那僧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설법하신 뜻을 관한 대로라면 5음은 또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005_0033_b_18L須菩提白佛言如觀世尊所說義五陰亦無縛無脫
빈누문타나자가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5음에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다고 합니까?”
005_0033_b_19L邠耨文陁尼子問須菩提何等五陰無縛無脫
005_0033_c_01L수보리가 대답하였다.
“5음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환과 같고 변화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서 미래ㆍ과거ㆍ현재의 5음은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것입니다. 5음은 단서(端緖)도 없고 묶임도 없으며, 벗어남도 없습니다. 5음은 고요해서 생하는 바도 없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5음의 선과 불선(不善)ㆍ5음의 속(俗)과 도(道)ㆍ5음의 유무ㆍ무루에도 또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일체 모든 법이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끝[際]이 없고 적정하여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005_0033_b_20L須菩提報言五陰如夢如響如影如幻如化如熱時炎當來過去今現在五陰無縛無脫五陰無端緖無縛無脫五陰寂無所生無縛無脫五陰善不善五陰道五陰有漏無漏亦無縛無脫一切諸法無縛無脫無際寂靜無縛無脫
6바라밀도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끝이 없고 적정합니다. 내외공에도 묶임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37품에도 묶임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부처님의 18법에도 묶임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끝도 없고 적정합니다. 그러므로 도와 보살ㆍ살운야의 일체 지사(智事)에도 끝이 없어 적정하며 생하는 바도 없으며, 또한 묶이지도 않고, 또한 벗어남도 없습니다. 저 법성ㆍ진제는 함도 없으며 또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끝이 없고 적정하여 생하지도 않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005_0033_c_04L六波羅蜜無縛無脫無際寂靜內外空無縛無脫三十七品無縛無佛十八法無縛無脫無際寂靜故道及菩薩薩云若一切智事無際寂無所生亦不縛亦不脫法性無爲亦無縛無脫無際寂靜不生無縛無脫
이와 같이 빈누여, 보살마하살은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6바라밀 가운데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살운야에 머물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중생을 양육하고, 집착도 없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합니다. 집착할 것도 없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모든 세존들을 뵙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법을 들음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 세존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모든 신통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5안(眼)을 끝내 여의지 않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법을 굴리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중생을 삼승에 안립(安立)시킵니다.
005_0033_c_10L如是邠耨菩薩摩訶薩於無縛無脫六波羅蜜中住無縛無脫薩云若於無縛無脫育養衆生無著無縛無脫淨佛國土無著無縛無脫見諸世尊以無縛無脫聞法終不離無縛無脫諸佛世尊終不離無縛無脫諸神通終不離無縛無脫五眼終不離無縛無脫轉無縛無脫法輪縛無脫安立衆生於三乘
이와 같이 빈누여, 보살마하살은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6바라밀에서 모든 법을 체득하여 깨닫는데 끝이 없고 적정하며 생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누는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승나승녈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005_0033_c_18L如是邠耨菩薩摩訶薩於無縛無脫六波羅蜜於諸法得逮覺無際寂靜無所生故邠耨當知是爲菩薩摩訶薩無縛無脫之僧那僧涅
放光般若波羅蜜經卷第三
丁酉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범어로는 Saṃnāha-saṃnad-dha. 승나는 홍서(弘誓) 또는 대서(大誓)라 번역하고, 승녈은 자서(自誓)라 번역한다. 곧 보살의 사홍서원을 말한다. 스스로 사홍서원을 맹서하는 것을 승나승녈이라 한다. 또 승나는 개(鎧), 승녈은 착(着)이라 하기도 하는데, 갑옷을 입는다는 뜻이고, 피갑(被甲)이라 번역한다. 사홍서원을 갑주에 비유한 말이다.
  2. 2)『능가경(楞伽經)』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제불여래의 명자 언어와 현신설법과 평등불이(平等不二)와 불불이도가 같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