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5_0034_a_01L방광반야경 제4권
005_0034_a_01L放光般若經卷第四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소진홍 번역
005_0034_a_02L西晉于闐國三藏無羅叉奉詔譯


19. 문마하연품(問摩訶衍品)
005_0034_a_03L摩訶般若波羅蜜問摩訶衍品第十九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큰 서원입니까? 세존이시여, 보살이 대승에 나아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승(乘)을 타고 마땅히 어느 곳에 이르는 것이며, 누가 마땅히 이 승을 이루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6바라밀이 보살마하살의 대승이다. 여섯 가지는 무엇인가? 단(檀)ㆍ시(尸)ㆍ찬(羼)ㆍ유체(惟逮)ㆍ선(禪)ㆍ반야(般若) 바라밀이다.”
005_0034_a_04L是時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摩訶薩大誓世尊云何當知菩薩趣大乘是乘當至何所誰當成是乘者佛告須菩提言六波羅蜜是菩薩摩訶薩之大乘何等爲六惟逮般若波羅蜜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단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보시하는 뜻은 살운야(薩云若)에 상응하여 내외에 가지고 있는 바를 보시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공덕은 중생에게 빠짐없이 베풀며 중생과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발하는 것이 보살마하살의 단바라밀이다.”
005_0034_a_10L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檀波羅蜜佛告言菩薩摩訶薩布施意應薩云若內外所有布施持是功德盡施衆生與衆生共發阿耨多羅三耶三菩是爲菩薩摩訶薩檀波羅蜜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시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계를 지킬 때 살운야에 상응하는 뜻을 발하여 스스로 10선(善)을 가지며, 타인에게도 10선을 행할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또한 그것에 의지함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의지함이 없는 데 응하는 것이 된다.”
005_0034_a_15L須菩提白佛言何等爲尸波羅蜜佛言菩薩持戒發意應薩云若自持十善教他人行十善亦無所倚是爲菩薩不㧗戒應無所倚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찬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스스로 인지(忍地)를 구족하며, 또 타인에게 권하여 인욕을 행하게 하면서도 의지함이 없는 것이 보살마하살이 찬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005_0034_a_18L菩提白佛言何等爲羼波羅蜜佛言菩薩自具足於忍地復勸他人令行忍辱而無所倚是爲菩薩摩訶薩行羼波羅蜜
005_0034_b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유체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은 살운야에 상응하여 다섯 바라밀을 폐하지 않고 또 중생에게 다섯 바라밀을 세우게 하면서도 의지하지도 않는데, 이것이 보살의 유체바라밀이다.”
005_0034_a_22L須菩提白佛言何等爲惟逮波羅蜜佛言菩薩意應薩云若廢五波羅蜜亦復立衆生於五波羅蜜而無所倚是爲菩薩惟逮波羅蜜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선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의 뜻으로써 스스로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를 가지고 모든 선(禪)에 들어가서 선을 따라 생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다시 타인을 가르치며 선을 행하게 해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보살의 선바라밀이다.”
005_0034_b_04L須菩提白佛言何等爲禪波羅蜜菩薩摩訶薩以薩云若意自以漚和拘舍羅入諸禪不隨禪生亦復教他人使行禪而無所倚是爲菩薩禪波羅蜜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입니까?”
005_0034_b_09L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의 뜻으로 모든 법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하면서도 의지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도 모든 법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하게 하면서도 의지함이 없게 가르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다.
005_0034_b_10L佛言菩薩摩訶薩以薩云若意不入於諸法而觀諸法之性而無所倚亦復教他人令不入於諸法而觀諸法之性而無所倚是爲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또 수보리여, 다시 마하연이 있는데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유무공(有無空)이 이것이다.
005_0034_b_15L須菩提復有摩訶衍內空外空乃至有無空是也
어떤 것을 내공이라고 하는가? 내법(內法)으로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를 말하는 것이다. 눈은 본래 공해서 번뇌[垢]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귀에서는 귀가 본래 공하고, 코에 있어서는 코가 본래 공하고, 혀에 있어서는 혀가 본래 공하며, 몸에 있어서는 몸이 본래 공하고, 뜻에 있어서는 뜻이 본래 공하여 또한 번뇌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공(內空)이라고 한다.
005_0034_b_16L何等爲內空內法是謂眼耳鼻舌身意眼本不著垢亦不壞何以故本性爾耳本空鼻鼻本空舌舌本空身身本意意本空亦不著垢亦不壞何以本性爾是爲內空
어떤 것을 외공이라고 하는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ㆍ법(法)을 말하는 것이다. 색은 본래 공해서 번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색의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성ㆍ향ㆍ미ㆍ세활ㆍ법도 모두 그러하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외공이라고 한다.
005_0034_b_21L何等爲外空色聲香味細滑法色本空亦不著垢亦不壞何以故色本性爾聲香味細滑法皆爾何以故本性空故是爲外
005_0034_c_02L 어떤 것을 내외공이라고 하는가? 안으로 6쇠(衰), 밖으로 6쇠가 내외법이다. 외법으로써 하면 내법이 공하며, 내법으로써 하면 외법이 공하다.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외공이라고 한다.
005_0034_c_02L何等爲內外空內六衰外六衰爲內外法以外法故內法空以內法故外法空亦不著亦不壞何以故性爾是爲內外空
어떤 것을 공공(空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 공함과 모든 법이 공하다는 생각을 가진 공도 공하다. 이것을 공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대공(大空)이라고 하는가? 팔방과 상하가 모두 공한 것을 대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최공(最空)이라고 하는가? 니원(泥洹)에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최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위공(有爲空)이라고 하는가?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으니 삼계가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유위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위공(無爲空)이라고 하는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다르지 않음에 머물며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데 모두 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위공이라고 한다.
005_0034_c_05L何等爲空空諸法之空持諸法空空於空是爲空空等爲大空八方上下皆空是爲大空何等爲最空泥洹是不著不壞是爲最空何等爲有爲空從不著不壞本至三界空是爲有爲空何等爲無爲不生不滅住於不異從不著不壞皆空何以故本空故是爲無爲空
어떤 것을 지경공(至竟空)이라고 하는가? 변제(邊際)를 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지경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원공(原空)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 모든 가히 온다고 인정하는 것도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 수 없어서 처소가 없으므로 이것을 원공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무작공(無作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에서 버릴 것이 없는 것을 무작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성공(性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성품과 유위ㆍ무위의 성품은 나한ㆍ벽지불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지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성공이라고 한다.
005_0034_c_12L等爲至竟空所可不得邊際者是爲至竟空何等爲不可得原空諸可來者不知所從來無有處故是爲無有原空何等爲無作空於諸法無所棄是爲無作空何等爲性空諸法所有性及有爲無爲性非羅漢辟支佛佛世尊所不作是爲性空
005_0035_a_02L 어떤 것을 제법공(諸法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란 5음ㆍ12쇠ㆍ18성ㆍ유위법ㆍ무위법이다. 이것이 모든 법이며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 것이 모든 법의 성품이다. 이것을 제법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자상공(自相空)이라고 하는가? 색상(色相)과 소수상(所受相)과 소지상(所持相)과 소유상(所有相)과 느끼는 상[所覺相]과 나아가 유위ㆍ무위상에 이르기까지와 유위ㆍ무위상에서부터 모든 법은 다 공하다. 이것을 자상공이라고 한다.
005_0034_c_19L何等爲諸法空諸法者謂五陰十二衰十八性有爲法無爲法是爲諸法從不著不壞至諸法之性是爲諸法空何等爲自相空色相所受相是所持相爲想所有相便有所覺相是爲識乃至有無爲相從有爲無爲相至諸法皆悉空是爲自相空
어떤 것을 무소득공(無所得空)이라고 하는가? 처음부터 집착함도 없고 파괴됨도 없어서 무소득법에 이르는 것이며, 또 얻을 것이 없는 것을 무소득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공(無空)이라고 하는가? 그 가운데에 소견(所見)이 없는 것을 무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공(有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에는 우연이 없으며, 모든 것이 화합한 가운데도 모두 실(實)이 없다. 이것을 유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유무공(有無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것이 모인 가운데도 또한 실이 없다. 이것을 유무공이라고 한다.
005_0035_a_03L何等爲無所得空無著無壞至無所得法亦無所得爲無所得空何等爲無空於中無所是爲無空何等爲有空諸法無有偶者於諸合會中皆無有實是爲有何等爲有無空於諸聚會中亦無有實是爲有無空
또한 수보리여, 유는 유위공을 쓰고, 무는 무위공을 쓰며, 이(異)는 이위공(異爲空)을 쓴다. 어떤 것을 유(有)라고 하는가? 유라는 것은 5음의 성품[性]을 말하는 것인데, 이 성품은 성품으로써 공하며 이것을 유공(有空)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無)라고 하는가? 무위공이므로 이루는 바가 없고, 이루는 것이 없으므로 공한 것이다. 공이란 지혜로 지은 것이 아니고 견해로 지은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여사공(餘事空)이라고 하는가? 부처가 있든 부처가 없든 법성ㆍ법ㆍ고요함ㆍ여여함과 나아가 진제(眞際)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공(異空)이라고 하며 여사공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5_a_09L復次須菩提有以有爲空無以無爲空異以異爲空等爲有有者謂五陰性性以性爲空是爲有空何等爲無以無爲空無所無所成爲空空者亦非知可作非見可作何等爲餘事空有佛無佛法性法寂如及爾眞際住如故以是異空是爲餘事空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다시 마하연이 있는데 무엇을 마하연이라고 하는가? 107삼매에 각각 이름이 있다. 어떤 삼매를 수능엄(首楞嚴)삼매라고 이름하는가? 무엇을 수능엄삼매라고 하는가? 모든 삼매문이 나아가서 모이는 곳이며, 모두 와서 그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능엄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보인(寶印)이라고 이름한다. 어떤 것을 보인삼매라고 하는가? 모든 삼매가 소유한 인(印)을 모두 인정한다.
005_0035_a_17L須菩提復有摩訶衍何等爲衍百七三昧是各各有名等三昧名首楞嚴三昧何等爲首楞嚴三昧諸三昧門之所趣聚皆來入其中是故名首楞嚴復有三昧名寶何等爲寶印三昧諸三昧所有印皆而印之
005_0035_b_02L 또 삼매가 있으니 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라고 이름한다. 무엇을 사자유희라고 하는가? 이 삼매에 머물면 빠짐없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유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월(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광명으로 모든 삼매를 비출 수 있다. 또 월당(月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지닐 수 있다. 또 제법상(諸法上)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온다. 또 조정(照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광명으로써 모든 삼매 위를 비출 수 있다.
005_0035_a_23L復有三昧名師子遊戲等爲師子遊戲住是三昧者盡遊戲諸三昧中復有月三昧住是三昧者能以光明照諸三昧復有月幢三昧住是三昧者持諸三昧復有在諸法上三昧住是三昧者諸三昧悉從其中出復有照頂三昧住是三昧者能以光明照諸三昧上
또 법성필(法性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을 결정코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필조당(必造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반드시 견고한 당(幢)을 가지게 된다. 또 금강(金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이 삼매를 감당할 수 없다. 또 법소입인(法所入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인(法印)과 서로 상응할 수 있다. 또 안주(安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바로 모든 삼매에 머물 수 있다.
005_0035_b_07L復有法性畢三住是三昧者能決了諸法復有必造幢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中必持堅固幢復有金剛三昧住是三昧者諸三昧無有敢當者復有法所入印三昧住是三昧者與諸法印相復有安住三昧住是三昧者便能住諸三昧
또 방광명(放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곧 모든 삼매를 두루 비출 수 있다. 또 세진(勢進)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 세력으로 모든 삼매를 가르칠 수 있다. 또 등보(等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평등하게 행할 수 있다. 또 입변재교수(入辯才敎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변별하여 알 수 있다. 또 과량음성(過量音聲)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무량한 명자(名字)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005_0035_b_14L復有放光明三昧住是三昧者便能遍照諸三昧復有勢進三住是三昧者能以力勢教諸三昧復有等步三昧住是三昧者能等行諸三昧復有入辯才教授三昧住是三昧者能辯解諸三昧復有過量音聲三昧住是三昧者得入無量名字三昧
005_0035_c_02L 또 조처처(照處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능히 두루 모든 방면을 비출 수 있다. 또 총지인(總持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인(三昧印)을 가질 수 있다. 또 불망(不忘)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잊지 않는다. 또 일체법소취해(一切法所聚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일체 모든 삼매를 평등하게 행할 수 있다. 또 허공보(虛空普)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두루 모든 삼매를 만족하게 할 수 있다.
005_0035_b_21L復有照處處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能遍照於諸方面復有摠持印三昧住是三昧者能持諸三昧復有不忘三昧住是三昧者不忘諸三昧復有一切法所聚海三昧是三昧者能使一切諸三昧等行有虛空普三昧住是三昧者能遍足諸三昧
또 금강부(金剛部)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부(三昧部)를 가질 수 있다. 또 보승(寶勝)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번뇌[垢濁]로부터 항복받을 수 있다. 또 치염(熾炎)삼매에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빛의 광염(光炎)으로 모든 삼매를 비출 수 있다. 또 무원(無願)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서 취함이 없다. 또 심주(審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 주처(住處)가 있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
005_0035_c_05L復有金剛部三昧住是三昧者持諸三昧部復有寶勝三昧住是三昧者降伏諸垢濁復有熾炎三昧住是三昧者能以光炎遍照諸三昧有無願三昧住是三昧者於諸法無所取復有審住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法有住處
또 선택(選擇)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생각하는 의념상(意念想)이 없다. 또 무구등(無垢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등불과 같이 밝음을 갖는다. 또 무한광(無限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한량이 없다. 또 작광명(作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능히 곳곳을 비출 수 있다. 또 보조명(普照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모두 다 눈앞에 현전한다.
005_0035_c_11L復有選擇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無意念想復有無垢燈三昧住是三昧者爲諸三昧作燈明復有無限光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無有限量復有作光明三住是三昧者能於諸三昧而有所復有普照明三昧住是三昧者諸三昧皆在眼前現
또 정요(淨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등정(等淨)삼매를 체득할 수 있다. 또 무구광(無垢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번뇌를 없애 버릴 수 있다. 또 조락(造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즐거움을 받는다. 또 전명(電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등불과 같이 밝게 비춘다. 또 무진(無盡)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다하지 않음으로 다함을 보지 않는다.
005_0035_c_18L復有淨要三昧是三昧者逮得等淨三昧復有無垢光三昧住是三昧者散諸三昧垢有造樂三昧住是三昧者受諸三昧復有電明三昧住是三昧者爲諸三昧作燈明復有無盡三昧住是三昧者不見盡以不盡
005_0036_a_02L 상위(上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위덕(威德)이 홀로 우뚝하다. 또 필진(畢盡)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보되 볼 수 있는 바를 다해 보지 않음과 같다. 또 부동(不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움직이지 않고, 지각하지도 않고 희론(戱論)도 없다. 또 불별(不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별을 보지 않는다. 또 일등(日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문을 비춘다.
005_0035_c_24L復有上威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中威德獨然復有畢盡三昧住是三昧者見諸三昧盡所可見如不見復有不動三昧住是三昧者令諸三昧不動不覺不復有不別三昧住是三昧者不見離別復有日燈三昧住是三昧者照諸三昧門
또 월무구(月無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의 어둠을 제거할 수 있다. 또 정광명(淨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혜[四無礙慧]를 분별한다. 또 작명(作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문을 위해서 빛을 만든다. 또 조작(造作)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위해서 필경(畢竟)을 짓는다. 또 제혜(諸慧)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혜를 볼 수 있다.
005_0036_a_08L復有月無垢三昧住是三昧者能去諸三昧冥復有淨光明三住是三昧者於諸三昧分別四無㝵慧復有作明三昧住是三昧者爲諸三昧門作明復有造作三昧住是三昧者爲諸三昧作畢竟復有諸慧三昧住是三昧者見諸三昧慧
또 금강(金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결단할 수 있다. 또 주의(住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동요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의상(意想)이 없다. 또 현명(現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밝게 볼 수 있다. 또 안립(安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편하게 처한다. 또 보적(寶積)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널리 모든 삼매의 보배를 볼 수 있다.
005_0036_a_14L復有金剛三昧住是三昧者決斷諸三昧復有住意三昧住是三昧者不動不搖不恐不怖亦無意想復有現明三住是三昧者於諸三昧悉遍見明復有安立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善處復有寶積三昧住是三昧者普見諸三昧寶
005_0036_b_02L 또 법인(法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로부터 나오는 인(印)이나 인 아닌 것도 모두 법인을 할 수 있다. 또 등(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법이 등(等)에서 벗어남을 볼 수 없다. 또 기락(棄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즐거움을 다 버릴 수 있다. 또 과법정(過法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의 어둠을 멸해서 모든 삼매 위에 있게 된다. 또 산결(散結)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나누어 쓸 수 있다.
005_0036_a_21L復有法印三昧住是三昧者印諸三昧從印及不印復有等三昧住是三昧者不見法有等脫復有棄樂三昧住是三昧者悉棄諸復有過法定三昧住是三昧者滅諸法之冥在諸三昧上復有散結三住是三昧者能散用諸三昧
또 해제법구(解諸法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와 모든 법구(法句)를 알 수 있다. 또 등문자(等文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여러 가지 문자를 얻을 수 있다. 또 필자(畢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한 글자도 보지 않는다. 또 단인연(斷因緣)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인연을 끊을 수 있다. 또 무태(無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태(法態)를 얻지 않는다.
005_0036_b_04L復有解諸法句三昧住是三昧者能解諸三昧及諸法句復有等文字三昧是三昧者得諸等字復有畢字三昧住是三昧者不見一字復有斷因緣三昧住是三昧者斷諸因緣復有無態三昧住是三昧者不得諸法態
또 무행(無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의 행을 보지 않는다. 또 무굴행(無屈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굴 속 같은 행이 없다. 또 필음(畢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음(陰)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또 주행(主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행을 볼 수 있다. 또 불기(不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일어남을 보지 않는다.
005_0036_b_10L有無行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法復有無窟行三昧住是三昧者未見諸三昧有窠窟之行復有畢陰三住是三昧者能淨諸陰復有主行三昧住是三昧者見諸三昧行復有不起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三昧
또 도경계(度境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경계를 통과할 수 있다. 또 취제선(聚諸善)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를 얻을 수 있다. 또 지선(止選)삼매가 있으며, 이삼매에 머물면 뜻이 타락하지 않는다. 또 청정화(淸淨華)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청정화를 얻는다. 또 주각(主角)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7각의(覺意)가 있다.
005_0036_b_17L復有度境界三昧住是三昧者過諸境界復有聚諸善三昧住是三昧者能得聚諸法諸三昧復有止選三住是三昧者意不墮落復有淸淨華三昧住是三昧者得諸三昧淸淨復有主覺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有七覺意
005_0036_c_02L 또 무한변(無限辯)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한량없는 변재를 얻을 수 있다. 또 무등등(無等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곧 등차가 없는 평등[無等等]을 얻을 수 있다. 또 도제법(度諸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삼계를 초월할 수 있다. 또 결단(決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법을 볼 수 있으며, 모든 삼매의 일을 결단함을 볼 수 있다. 또 산제호의(散諸狐疑)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삼매가 흩어짐을 체득한다.
005_0036_b_23L復有無限辯三昧是三昧者逮得無量之辯復有無等等三昧住是三昧者便得無等等有度諸法三昧住是三昧者越度三復有決斷三昧住是三昧者能見諸法見諸三昧決斷事復有散諸狐疑三昧住是三昧者逮得散諸法三
또 무주(無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처(法處)를 보지 않는다. 또 일행(一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 둘[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중생소입(衆生所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중생도 보지 않고 또한 들어갈 곳도 보지 않는다. 또 일사(一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일을 보지 않는다. 또 염해중사(厭該衆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다름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005_0036_c_07L復有無住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法處復有一行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法有二復有衆生所入三昧住是三昧者不見衆生亦不見所入復有一事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三昧事復有厭該衆事三昧住是三昧者不見有別
또 산제생사로원(散諸生死勞怨)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것을 싫어하는 삼매를 속히 얻어서 지혜가 들어가는 곳마다 깨닫는 것이 없다. 또 중행음소입(衆行音所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온갖 행의 음성이 모두 다 쫓아옴을 얻는다. 또 탈제음향자(脫諸音響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소리와 문자에서 벗어남을 볼 수 있다. 또 연거(然炬)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위덕이 홀로 밝다.
005_0036_c_13L復有散諸生死勞怨三昧住是三昧者逮得諸厭三昧慧所入處無所覺復有衆行音所入三住是三昧者衆行音聲皆悉隨從復有脫諸音響字三昧住是三昧者見諸三昧脫於音字復有然炬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中威德獨明
또 정상(淨相)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일체의 삼매상(三昧相)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또 무준(無准)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끊어짐을 볼 수 없다. 또 구족중사(具足衆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모두 구족함을 얻을 수 있다. 또 불원고락(不願苦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고락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005_0036_c_19L復有淨相三昧住是三昧者能淨一切三昧相復有無准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不見於准復有具足衆事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皆得具足復有不願苦樂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三昧有苦樂
005_0037_a_02L 또 사불감(事不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다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지적(持迹)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빠짐없이 볼 수 있다. 또 사정취(邪正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사(邪)와 정(正)을 보지 않는다. 또 멸에쟁(滅恚諍)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성냄과 다툼을 보지 않는다. 다시 무에(無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에서 성냄이 있음과 성냄이 없음을 보지 않는다.
005_0037_a_02L復有事不減三昧住是三昧者不見諸三昧有盡復有持迹三昧住是三昧者盡看諸三昧復有邪正聚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不見邪正復有滅恚諍三住是三昧者於諸三昧不見恚諍復有無恚三昧住是三昧者不見於諸法於諸三昧有恚無恚
또 무구광(無垢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광명도 보지 않고 또한 번뇌[垢]도 보지 않는다. 또 주요(主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중요하지 않음을 보지 않는다. 또 명월만무구염(明月滿無垢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을 원만하고 구족하게 함이 마치 보름달과 같다. 또 대장식(大莊飾)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를 보기 좋게 장엄할 수 있다.
005_0037_a_09L復有無垢光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亦不見光亦不見垢復有主要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不見無要復有明月滿無垢炎三昧住是三昧者能使諸三昧滿具足如月十五日時復有大莊飾三昧住是三昧者能使諸三昧嚴好
또 여세간작광명(輿世間作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광명이 널리 시방과 모든 법을 비춘다. 또 삼매가 있는데 삼매등(三昧等)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서 산란함도 보지 않고, 또 선정도 보지 않는다. 또 무분(無忿)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분한 마음이 없다. 또 무의무굴무락(無倚無窟無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소굴(巢窟)을 보지 않는다.
005_0037_a_16L復有與世閒作光明三昧是三昧者光明普照十方及諸法有三昧名三昧等住是三昧者於諸法亦不見有亂亦不見有定復有無忿三昧住是三昧者能使諸三昧而無有忿復有無倚無窟無樂三昧是三昧者於諸三昧不見樔窟
005_0037_b_02L 또 최여(最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여여(如如)함을 굴리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신해(身骸)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러한 삼매의 성품을 보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단구행여공합(斷口行輿空合)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언어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허공본탈무색(虛空本脫無色)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이 본래 공함을 체득한다.
005_0037_a_22L復有最如三昧住是三昧者於諸三昧不轉於如復有三昧名身骸住是三昧者不見此三昧性復有三昧名斷口行與空合住是三昧者不見諸三昧有言復有三昧名虛空本脫無色是三昧者逮得諸法本空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7_b_05L須菩提爲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摩訶衍

20. 다린니품(陀隣尼品)
005_0037_b_06L摩訶般若波羅蜜陁鄰尼品第二十

또한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무엇을 마하연[衍]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의지(意止)가 이것이다. 무엇을 4의지라고 하는가? 보살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하고 타인의 몸도 관하고, 안팎의 몸을 관하고 난 뒤에는 몸에 대한 생각[身想]도 없으며, 의지함도 없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고뇌가 있음을 생각한다. 안의 통(痛)ㆍ의(意)ㆍ행ㆍ법을 관하고, 밖의 통ㆍ의ㆍ행ㆍ법을 관하고, 안팎의 통ㆍ의ㆍ행ㆍ법을 관한다. 행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과 고뇌를 생각한다.
005_0037_b_07L復次須菩提復有摩訶衍何所爲衍所謂四意止是何等四意止菩薩自觀身觀他人身觀內外身已亦無身想亦無所倚若行若寂常念世閒從癡有(病-丙+((句-口+夕)/心))觀內痛意行法觀外痛意行觀內外痛意行法若行若寂常念世閒癡(病-丙+((句-口+夕)/心))
수보리여, 어떻게 보살은 내신행(內身行)을 관하는가? 보살은 스스로 행할 만하면 행할 줄 알고, 머물 만하면 머물 줄 알고, 앉을 만하면 앉을 줄 알고, 누울 만하면 누울 줄 알고, 몸이 행하는 바를 모두 스스로 안다. 이것을 보살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고뇌를 생각한다.
005_0037_b_14L須菩提云何菩薩觀內身菩薩自知可行知行可住知住坐知坐可臥知臥隨身所行皆能自是爲菩薩自觀身行若行若寂念世閒苦惱
또 수보리여, 보살은 출입하고 나아가고 멈출 때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며 망령되지 않게 쳐다보고 좌우로 앉고 누울 때도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고 3법의(法衣)를 입고 위의(威儀)를 잃지 않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살은 스스로 안팎의 몸을 관하고, 행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되 의지함이 없다. 보살은 항상 호흡의 출입을 관하며, 호흡이 긴 줄 알며, 호흡이 짧은 줄 안다. 비유하면 도륜(陶輪)과 같아서 그 느리고 급함을 조절한다. 보살은 뜻과 식이 함께여서 함께 나오고 함께 들어감을 스스로 안다. 이것을 보살이 안으로 몸의 행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는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ㆍ괴로움ㆍ환난을 생각한다.
005_0037_b_18L須菩提菩薩出入進止安詳瞻不忘坐臥左右亦常安詳服三法衣不失威儀行般若波羅蜜菩薩自觀內外身行如是而無所倚菩薩常觀息出入息長亦知息短亦譬如陶輪調其緩急菩薩息知與息俱俱出俱入是爲菩薩觀內身若行若寂常念世閒癡苦受患
005_0037_c_02L또한 수보리여, 이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항상 몸은 지ㆍ수ㆍ화ㆍ풍의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비유하면 소를 잡는데 네 부분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살은 몸이 네 가지로 분별됨을 관해야 하며, 근본으로부터 지말[末]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안팎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함도 없는 것이다.
005_0037_c_02L須菩提用是行般若波羅蜜常當觀身分別四分譬如屠牛分爲四分菩薩觀身分別四事本末從來亦復如是是爲菩薩觀內外身亦無所倚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몸이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단지 부정(不淨)한 것만 있음을 관해야 한다. 머리카락ㆍ털ㆍ손톱ㆍ치아와 근육ㆍ뼈ㆍ5장(藏)ㆍ36물(物)에 어떤 탐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비유하면 농가에 농기구와 오곡이 가득하지만 눈 밝은 선비가 열어 농기구를 분별하여 아는 것과 같다. 보살은 몸을 관하되, 몸 가운데 있는 것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스스로 안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ㆍ애착ㆍ고통을 생각하며 또한 그것을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005_0037_c_07L復次須菩提菩薩觀身頭至足但有不淨髮毛爪齒筋骨五藏三十六物有何可貪譬如田家器盛五穀有目之士若開發器悉見種分別識知菩薩觀身身中所有亦復如是是爲菩薩自觀內身若行若常念世閒癡愛痛苦亦無所倚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사람을 관해야 한다. 처음 죽은 날로부터 닷새가 지나 살이 문드러지고 악취가 나고 신체는 점점 무너져 더러운 물이 줄줄 흘러나오니 깨끗한 곳이 없다. 혹은 날아다니는 새가 쪼아 먹기도 하고 걸어 다니는 짐승이 먹기도 한다. 혹은 반을 먹다가 내버리니 보기 흉하게 드러나서 깨끗하지 못하다. 혹은 어떤 죽은 자는 근육과 뼈가 흩어지며 해골에서 피고름이 흐르기도 하다. 어떤 죽은 자는 피와 살점이 이미 다 없어지고 근육과 뼈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가운데 해골이 으스러진 것은 마디마디가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 혹은 죽은지 오래되어 해골이 청백색인 것도 있으며, 혹은 부패하여 파괴된 것도 있으며, 혹은 썩어서 땅과 같은 색이 된 것도 있다.
005_0037_c_13L須菩提菩薩觀人初死之日至于五日胮脹爛臭體壞汁流互相澆灒無有淨處或爲飛鳥走獸所食或噉其半惡露不淨或有死人筋纏骸骨血澆或有死人血肉已盡筋骨相縺中有骸骨已解離者節節異處見久死骸骨靑白色者或腐壞者或與地土共同色者
005_0038_a_02L 보살은 모두 이와 같이 관해야 하며, 이와 같이 관한 후에는 도리어 내 몸은 이 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며 아직 떠나지도 못했으며, 마땅히 그러하리라고 헤아려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안으로 몸의 법을 관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는 것이며, 의지하여 탐할 것도 없는 것이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ㆍ괴로움ㆍ재난과 환난을 생각한다. 스스로 각의법(覺意法)을 관하며, 또한 타인의 각의법도 관해야 한다. 분별하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미혹의 뜻을 끊어야 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7_c_21L菩薩都作是觀作是觀已還自計挍我身分未脫未離此俱亦當爾是爲菩薩觀內身法他人身無所貪猗若行若寂常念世閒癡苦災患自觀覺意法亦觀他人覺意法分別思念斷癡惑意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점점 4의단(意斷)1)을 수지하여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악의법(惡意法)이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즐겁게 익히고 정진하고 뜻을 섭수하여 생기지 않게 한다. 악의법이 이미 일어났으면 또 즐겁게 정진하고 뜻을 섭수하고 익혀서 끊게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일과 법을 가지려면 기쁜 뜻으로 정진하고 익혀서 생기게 한다. 이미 생긴 선한 법의 생각들은 널리 구족하게 나타내어 잊지 않게 한다. 또한 다시 기쁘게 정진하고 익히고 뜻을 섭수하여 나아가면 이루어진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미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a_04L須菩提有摩訶衍漸御四意斷是何謂爲四惡意法未生樂御習精進攝意使不已起惡意法亦復樂御精進攝意習使斷未生善事法持樂意精進習使得生已生善法念欲處具足廣顯欲使不忘亦復樂習精進攝意御使得成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신족(神足)이 이것이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이미 즐거움의 선정[樂定]을 얻어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總攝)한다. 정진의 선정[精進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뜻을 지닌 선정[持意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지혜의 선정[智之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a_11L須菩復有摩訶衍謂四神足是何謂爲已得樂定除諸所作行摠攝神足以精進定除諸所作行摠攝神足持意定除諸所作行摠攝神足以智之定除諸所作行摠攝神足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5근(根)이 이것이다. 무엇을 5근이라고 하는가?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지근(志根)ㆍ정근(定根)ㆍ지혜근(智慧根)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a_17L須菩提復有摩訶謂五根是何謂五根信根精進根志根定根智慧根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5력(力)이 이것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지력(志力)ㆍ정력(定力)ㆍ지혜력(智慧力)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a_20L須菩提復有摩訶衍謂五力何謂爲五信力精進力志力定力智慧力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005_0038_b_02L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7각의(覺意)가 이것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지각의(志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법각의(法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정진각의(精進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열희각의(悅喜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신각의(信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정각의(定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각의(覺意)를 가졌다는 집착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a_22L菩提復有摩訶衍謂七覺意是何謂爲七以志覺意以法覺意以精進覺以悅喜覺意以信覺意以定覺意以適無以著覺意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현성팔품도(賢聖八品道)가 이것이다. 무엇이 여덟 가지가 되는가? 정견(正見)ㆍ정념(正念)ㆍ정언(正言)ㆍ정행(正行)ㆍ정업(正業)ㆍ정습(正習)ㆍ정지(正志)ㆍ정정(正定)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다.
005_0038_b_04L須菩提復有摩訶衍謂賢聖八品道是何謂爲八正見正念正言正行正業正習正志正定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亦復無所倚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3삼매(三昧)가 이것이다. 무엇이 세 가지가 되는가?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b_07L須菩提復有摩訶衍謂三三昧是何謂爲三空三昧無相三昧無願三昧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또 마하연이 있는데 온갖 지혜[慧]를 갖고 있는 일이다. 고혜(苦慧)ㆍ습혜(習慧)ㆍ진혜(盡慧)ㆍ도혜(道慧)ㆍ소혜(消慧)ㆍ무소기혜(無所起慧)ㆍ법혜(法慧)ㆍ명혜(明慧)ㆍ각각지타인소념혜(各各知他人所念慧)ㆍ진혜(眞慧)이다.
005_0038_b_10L復有摩訶衍謂諸慧事是苦慧習慧盡慧道慧消慧所起慧法慧明慧各各知他人所念眞慧
무엇을 고혜라고 하는가? 고통을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을 고혜라고 한다. 무엇을 습혜라고 하는가? 나쁜 습관은 없애고 끊어버리면 이것을 습혜라고 한다. 무엇을 진혜라고 하는가? 모든 고통스런 일들을 모두 소멸하는 것을 진혜라고 한다. 무엇을 도혜라고 하는가? 현성팔품도를 도혜라고 한다. 무엇을 소혜라고 하는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모두 다하는 것을 소혜라고 한다. 무엇을 불기혜(不起慧)라고 하는가? 생사를 받지 않는 곳을 불기혜라고 한다. 무엇을 법혜라고 하는가? 5음을 끊을 줄 아는 것을 법혜라고 한다.
005_0038_b_13L何等爲苦慧不生苦是爲苦何等爲習慧習滅已斷是爲習慧何等爲盡慧滅諸苦事是爲盡慧等爲道慧賢聖八品道是爲道慧等爲消慧貪婬瞋恚愚癡盡是爲消何等爲不起慧不受生死處是爲不起慧何等爲法慧曉斷五陰是爲法慧
005_0038_c_02L 무엇을 명혜라고 하는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무상하며, 색ㆍ성ㆍ향ㆍ미ㆍ세활ㆍ법도 또한 무상한 것을 명혜라고 한다. 무엇을 각각지타인소념혜라고 하는가?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갖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바를 모두 다 아는 것을 각각지타인소념혜라고 한다. 무엇을 진혜라고 하는가? 여래의 살운야지(薩云若智)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을 진혜라고 하며, 또한 의지할 것도 없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b_20L何等爲明慧眼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細滑法亦復無常是爲明慧何等爲各各知他人所念慧切衆生心中所念所起種種悉知爲各各知他人所念慧何等爲眞慧所謂如來薩云若智是爲眞慧亦無所倚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摩訶
또 마하연이 있는데 3근(根)이 이것이다. 무엇을 3근이라고 하는가? 학사(學士)들이 백의(白衣)에서 수다원에 이르기까지의 5근(根)으로 이것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다함에서 아나함에 이르기까지 또한 5근이 있는데 알아야 할 것을 마땅히 아는 것이다. 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에도 또한 5근이 있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어 다시 배울 것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05_0038_c_04L復有摩訶衍所謂三根是何等爲三根謂學士從白衣至須陁洹五根是未曾知當知從斯陁含至阿那含亦有五根應知當知從阿羅漢辟支佛菩薩至佛亦有五根謂已知無所復學當知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3삼매가 이것이다.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유각유관(有覺有觀)이고, 둘째는 무각유관(無覺有觀)이며, 셋째는 무각무관(無覺無觀)이다. 무엇을 유각유관이라고 하는가? 제1선(禪)을 말하며 이것을 유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유관이라고 하는가? 제1선에서 2선에 이르지 않는 그 중간에 있으며 이것을 무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무관이라고 하는가? 제2선에서 무사상무사상혜선(無思想無思想慧禪)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을 무각무관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c_09L須菩提復有摩訶衍謂三三昧也等爲三第一有覺有觀第二無覺有第三無覺無觀何等爲有覺有觀謂第一禪是爲有覺有觀何等爲無覺有觀謂第一禪未至二禪在其中是爲無覺有觀何等爲無覺無觀從第二禪至無思想無思想慧禪爲無覺無觀是爲菩薩摩訶薩摩訶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10념(念)이 이것이다. 불념(佛念)ㆍ법념(法念)ㆍ승념(僧念)ㆍ계념(戒念)ㆍ시념(施念)ㆍ천념(天念)ㆍ멸념(滅念)ㆍ안반념(安般念)ㆍ신고념(身苦念)ㆍ사망념(死亡念)이며, 의지할 것은 아니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8_c_18L須菩提復有摩訶衍謂十念是法念僧念戒念施念天念滅念般念身苦念死亡念是亦無所倚爲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선(禪)ㆍ4등(等)ㆍ4무형선(無形禪)ㆍ8유무선(惟無禪)ㆍ9차제선(次第禪)ㆍ부처님의 10종력[佛十種力]ㆍ4무소외(無所畏)이다.
005_0038_c_21L須菩提復有摩訶衍謂四四等四無形禪八惟無禪九次第佛十種力四無所畏
005_0039_a_02L 10종력이란 것은 부처님의 몸과 상호에 나타난 신족변화를 말한다. 많은 삿된 무리를 감동시켜서 올바른 곳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첫 번째의 힘이다. 입에서 말하는 것은 온갖 지혜의 위에 있어서 의심 맺힌 것을 열어서 해탈케 하는 것이 두 번째의 힘이다. 뜻이 공의 선정[空定]에 들어가며 청명(淸明)하여 6달(達)하게 되며, 삿된 신[邪神]이 도의 뜻을 요란하게 하여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의 힘이다. 묵연하여 생각을 끊으며 신족(神足)도 하는 것이 없으며 삼천대천과 일월을 감동시키되 사람에게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이 네 번째의 힘이다. 도의 뜻이 총명하고 슬기롭고 법을 연설하여 포교하니, 시방이 두루 유익하게 되고 각각 그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 다섯 번째의 힘이다.
005_0038_c_23L十種力者佛現身相好神足變化感動衆邪迴使入正一力也口之所說在衆智上能變疑結開令解脫二力也意入空定淸明六達邪神嬈亂道志不搖力也默然斷想神足無爲感動三千大千日月人無驚悚四力也道意聰睿演法布化流盈十方各得其所力也
온갖 뜻을 거슬러 알고 사람들이 행하는 취향을 깨달아서 묶여 있거나 벗어나거나 빠짐없이 해산시킬 수 있는 것이 여섯 번째의 힘이다. 삼세에 지은 재앙과 복의 근본과 받는 과보를 큰 지혜로써 모두 알며 걸림이 없는 것이 일곱 번째의 힘이다. 일체 인민들의 온갖 행위의 근원과, 각양각색으로 몸을 받는 것이 다른 그 본제(本際)의 인연이 일어난 곳을 모두 깨닫는 것이 여덟 번째의 힘이다. 혜안이 청정하여 통찰하는 바가 무한하여 모든 생사에 왕래하고 떨어짐을 보는 것이 아홉 번째의 힘이다. 큰 지혜는 이미 구족했고, 방편도 이미 갖추었고 생사는 이미 끊어졌고 집착하는 행은 이미 다했고 지은 바를 이미 마쳐서 받지 않는다. 자연히 스승 없는 일체지라고 말하는 것이 열 번째의 힘이다.
005_0039_a_08L逆知衆意曉人行趣若縛若脫悉能解散六力也三世所作殃福本際報受之未大慧悉知無有罣㝵力也一切人民衆行根源種種各異受身不同悉覺本際因緣起處八力慧眼以淨所察無限見諸生死往來所墮九力也大慧已足方便已備生死已斷著行已盡所作已訖不復還受自然無師稱一切智是謂十力
4무소외(無所畏)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었을 때 혹은 사문(沙門)이나 바라문, 혹은 마군, 혹은 천(天), 혹은 범(梵), 다른 대중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에게 와서 힐난하는 자가 없으며, 부처님께서는 또한 이러한 뜻을 일으키는 자도 보지 못하신다. 이와 같이 증득했으므로 부처님의 행은 안온하여 두려움이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 첫 번째의 무소외이다. 정진을 행해서 최고의 장소를 얻을 줄 알며,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師子吼)를 얻어서 능히 범륜(梵輪)을 굴린다. 모든 사문ㆍ바라문과 모든 천[諸天]ㆍ범(梵)ㆍ마(魔)는 일체의 다른 법을 굴리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굴릴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의 무소외이다.
005_0039_a_17L四無所畏者佛爲正覺或有沙門婆羅門或魔或天或梵若復有餘衆無有能來難詰我者佛亦不見有起是意者以是證故佛行安隱逮無所一無畏也逮精進行得知最處衆人中得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諸天梵魔一切餘法所不能獨佛能轉二無畏也
005_0039_b_02L 부처님께서는 이미 번뇌[漏]를 다했다.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혹은 천ㆍ마ㆍ범이 감히 부처님의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자가 없는 것이 세 번째의 무소외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처럼 진실하여 어긋남이 없고 선악의 과보가 행해짐을 잃지 않으며, 일체의 나머지 대중들과 모든 천ㆍ마ㆍ범은 감히 부처님의 말씀이 위배됨을 보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처럼 현성팔도(賢聖八道)를 행하면, 득도하고 온갖 괴로움을 제도할 수 있다. 일체의 나머지 무리들과 모든 천ㆍ마ㆍ범은 또한 이 가르침을 위배할 자도 없으며, 부처님께서도 또한 이러한 곳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 네 번째의 무소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005_0039_a_24L佛漏已盡有沙門婆羅門或天魔梵無有敢言佛漏未盡者三無畏也如佛所說言無諱善惡之報不失所行一切餘衆諸天魔梵不見能敢違佛言者佛所說賢聖八道行是得道得度衆一切餘衆諸天魔梵亦無有能戾此教者佛亦不見有此處者四無所畏也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亦無所倚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무애혜(無礙慧)가 이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법의 일을 아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모든 경구의 뜻을 아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변재로 분별하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말씀하시는 것이 분명하게 확실하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39_b_10L須菩提復有摩訶衍謂四無㝵慧是何等爲四知諸法事其慧無㝵解諸句義其慧無㝵分別辯才其慧無㝵所說了了其慧無㝵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부처님의 18법(法)을 말한다. 무엇을 18법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신 이래로 처음부터 그릇됨이 있을 때가 없었다. 두 번째는 성불하신 이래로 말에 추함이 없었으며 누실(漏失)됨도 없었다. 세 번째는 뜻을 잊어 버린 적이 없었다. 네 번째는 여러 가지 생각이 없었다. 다섯 번째는 뜻에 선정 아닌 때[不定時)가 없었다. 여섯 번째는 처음부터 다른 것을 관한 적이 없었다. 일곱 번째는 자재함이 줄어듦이 없었다. 여덟 번째는 정진함이 줄어듦이 없었다. 아홉 번째는 지념(志念)이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 번째는 지혜가 줄어든 적이 없었다.
005_0039_b_14L須菩提復有摩訶衍謂佛十八法何等爲十八法一者謂佛從得佛以來初無誤時二者從得佛以來言無麤無漏失三者無忘志四者無有種種想五者意無有不定六者初無他觀七者自在無有減八者精進無有減九者志念無減者智慧無減
005_0039_c_02L 열한 번째는 해탈이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두 번째는 견해탈혜가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세 번째는 일체의 몸으로 행하는 바가 지혜로워서 가장 앞에 있었다. 열네 번째는 입으로 말한 것이 지혜로워서 언제나 앞에 있었다. 열다섯 번째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 지혜로워서 가장 앞에 있었다. 열여섯 번째는 과거의 일을 보아서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열일곱 번째는 미래의 일을 보아서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열여덟 번째는 현재의 일을 보아서 지혜가 걸림이 없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함이 없다.
005_0039_b_21L十一者解脫無減十二者見解脫慧無減十三者一切身所行智慧最在前十四者口所言事智慧最在前十五者意所行事智慧最在前十六者見過去事其慧無㝵七者見當來事其慧無㝵十八者見現在事其慧無㝵是爲摩訶衍亦無所倚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다린니목거(陀隣尼目佉)가 이것이다. 무엇을 다린니목거라고 하는가? 글자의 무리와 말의 무리가 들어가는 문이다. 무엇을 자문(字門)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아아(阿阿)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와서 들어가지만 일어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두 번째는 라라(羅羅)라는 것인데, 번뇌[垢]의 모양이 모든 법 속에는 어떤 티끌도 없다. 세 번째는 파파(波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니원이 가장 제일임을 가르친다. 네 번째는 차차(遮遮)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생사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005_0039_c_05L須菩提復有摩訶衍所謂陁鄰尼目佉是何等爲陁鄰尼目佉與字與言等字所入門何等爲字門者阿阿者謂諸法來入不見有起者二者羅羅者垢貌於諸法無有塵者波波者於諸法泥洹最第一教度四者遮遮者於諸法不見有生死
다섯 번짼는 나나(那那)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모든 글자를 다 마쳤으니, 글자의 본성은 또한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다. 여섯 번째는 라라(羅羅)라는 것인데, 세상을 건너 애정의 가지와 각 인연을 이미 멸한 것이다. 일곱 번째는 타타(陀陀)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여여해서 단절한 때가 없었다. 여덟 번째는 파파(波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이미 지옥을 여의었다. 아홉 번째는 다다(茶茶)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번뇌가 이미 다했다. 열 번째는 사사(沙沙)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 걸림이 없다.
005_0039_c_11L者那那者於諸法字已訖字本性亦不得亦不失六者羅羅者得度世愛枝各因緣已滅七者陁陁者諸法如無斷絕時八者波波者諸法已離獄九者茶茶者諸法垢已盡十者沙者諸法無有罣㝵
열한 번째는 화화(和和)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언행이 이미 끊어졌다. 열두 번째는 다다(多多)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열세 번째는 야야(夜夜)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진리[諦]여서 생겨남이 없다. 열네 번째는 타타(吒吒)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강한 번뇌를 볼 수 없다. 열다섯 번째는 가가(加加)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조작되는 것을 또한 볼 수 없다.
005_0039_c_17L十一者和和者諸法言行已斷十二者多多者諸法如動十三者夜夜者諸法諦無所生十四者咤咤者諸法强垢不可見五者加加者諸法造作者亦不可得
005_0040_a_02L 열여섯 번째는 사사(娑娑)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얻을 때가 없으며, 굴릴 것도 없다. 열입곱 번째는 마마(摩摩)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는 나를 볼 수 없다. 열여덟 번째는 가가(伽伽)라는 것인데, 모든 법을 수지함을 볼 수 없다. 열아홉 번째는 타타(他他)라는 것인데, 모든 법처를 얻을 수 없다. 스무 번째는 사사(闍闍)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생하는 것도 얻을 수 없다.
005_0039_c_22L十六者娑娑者諸法不可得時不可轉十七者摩摩者諸法吾我不可得見十八者伽伽者受持諸法者不可得見十九者他他者諸法處不可二十者闍闍者諸法生者亦不可
스물한 번째는 습파습파(濕波濕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선한다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스물두 번째는 대대(大大)라는 것인데, 모든 법성(法性)은 얻을 수 없다. 스물세 번째는 사사(赦赦)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적정함을 얻을 수 없다. 스물네 번째는 거거(佉佉)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허공과 같아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 번째는 차차(叉叉)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소멸됨을 얻을 수 없다.
005_0040_a_04L二十一者濕波濕波者諸法善不可得二十二者大大者諸法性不可二十三者赦赦者諸法寂不可得二十四者佉佉者諸法虛空不可得二十五者叉叉者諸法消滅不可得
스물여섯 번째는 치치(侈侈)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각각 처한 곳에 있어 동요하지 않는다. 스물일곱 번째는 약약(若若)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지혜는 얻을 수 없다. 스물여덟 번째는 이타이타(伊陀伊陀)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뜻은 얻을 수 없다. 스물여덟 번째는 번번(繁繁)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한가할 때가 없다. 서른 번째는 거거(車車)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가히 버릴 것이 없다.
005_0040_a_08L二十六者侈侈者諸法各在其所處不可動搖二十七者若若者諸法慧不可得二十八者伊陁伊陁者諸法義不可得二十九者繁繁者諸法無有閑時三十者車車者諸法無可棄
서른한 번째는 마마(魔魔)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구릉이나 분묘가 없다. 서른두 번째는 파파(叵叵)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분별할 수 없다. 서른세 번째는 차차(蹉蹉)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 사망이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서른네 번째는 아아(峨峨)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붕당(朋黨)이 없다. 서른다섯 번째는 타타(咃咃)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각각 다름이 있어 장소가 있지 않음이 없다.
005_0040_a_14L三十一者魔魔者諸法無有丘墓三十二者叵叵者諸法不可分別三十三者蹉蹉者諸法死亡不可得三十四者峨峨者諸法無有朋黨三十五者咃咃者諸法各有異無不有處
서른여섯 번째는 나나(那那)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머물지도 않고 또한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며 구별하지도 않는다. 서른일곱 번째는 파파(破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삼계에서 불안한 것이다. 서른여덟 번째는 가가(歌歌)라는 것인데, 모든 법성을 얻을 수 없다. 서른아홉 번째는 차차(嵯嵯)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항상함을 얻을 수 없다. 마흔 번째는 차차(嗟嗟)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분리되어 나가 버리니 얻을 수 없다.
005_0040_a_18L十六者那那者諸法無來無去亦不住亦不坐亦不臥亦不別三十七者破者諸法皆於三界不安三十八者歌歌者諸法性不可得三十九者嵯者諸法不可得常四十者嗟者諸法分捨不可得
005_0040_b_02L 마흔한 번째는 타타(吒吒)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제도함이 없다. 마흔두 번째는 노노(嗏嗏)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변제(邊際)가 다한 곳에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많은 글자가 있지만 노(嗏)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수(數)가 없으며 또 이 글자를 생각하고 말하지 않아도 잃지 않으며 또한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설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서사[書]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나타나지도 않는다.
005_0040_a_24L四十一者咤者諸法無有度者四十二者嗏嗏者諸法邊際盡竟處亦不生亦不死字數無有過嗏上者何以故是字無有數亦不念言是字有失亦不可見亦無所說亦無所書亦不現
수보리여, 일체 법은 비유하면 허공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문자를 배워 들어가는 것은 모두 다린니에 들어가는 문이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문자의 일을 깨달아 알았다면 언수(言數)에 머물지 않고 곧 말의 지혜를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42자(字)가 들어가는 구절을 듣고 인(印)자를 소지하여 풍송(諷誦)하고 만약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하여 망령되지 않게 소지하고 독송하면 마땅히 스무 가지 공덕을 얻는다.
005_0040_b_06L須菩提當知一切法譬如虛空是字教所入皆是陁鄰尼所入門若有菩薩摩訶薩曉了是字事者不住於言數便曉知言數之慧若有菩薩摩訶薩聞是四十二字所入句印者持諷誦者復爲他人解說其義不以望見持諷誦者當得二十功德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첫 번째는 강하게 생각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괴수치의 힘[慚愧羞恥力]을 얻는 것이고, 세 번째는 견고하게 행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네 번째는 깨달아 아는 힘을 얻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변재(辯才)가 있어서 교묘하게 말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다린니(陀隣尼)가 어렵지 않은 힘을 얻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말하는 바가 급하지 않은 일을 설하지 않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끝내 경에 대해서 여우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아홉 번째는 선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을 듣고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열 번째는 또 스스로 높이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낮추지도 않는 것이다. 열한 번째는 나아가고 멈출 때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여 위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005_0040_b_13L何等爲二十者得强識念力二者得慚愧羞恥力三者得堅固行力四者得覺知力者得辯才工談語力六者得陁鄰尼不難力七者所語不說不急之事者終不狐疑於經九者聞善不喜聞惡不憂十者亦不自貢高亦不自畀十一者進止安詳不失威儀
005_0040_c_02L 열두 번째는 5음(陰)과 6쇠(衰)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열세 번째는 4제(諦)와 12연기를 잘 아는 것이다. 열네 번째는 인연의 일을 잘 아는 것이다. 열다섯 번째는 법혜를 잘 알아 능히 모든 감관[根]을 만족하게 갖추는 것이다. 열여섯 번째는 타인의 생각하는 바 길흉의 인과응보를 아는 것이다. 열일곱 번째는 천이(天耳)로 명확하게 들으며, 스스로 숙명을 아는 것이다. 열여덟 번째는 중생이 생하는 바를 잘 아는 것이다. 열아홉 번째는 능히 모든 번뇌[漏]를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스무 번째는 왕래하는 곳곳마다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다.
005_0040_b_20L十二者曉了五陰六衰十三者善於四諦二緣起事十四者善知識因緣事五者善於法慧能滿具諸根十六者知他人所念吉凶報應十七者善於天耳徹聽自識宿命十八者善知衆生所生十九者能消諸漏二十者善於往來處處教授
수보리여, 이것이 다린니문이고 자문(字門)이고, 들어가는 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005_0040_c_04L須菩提是爲陁鄰尼門是爲字門是爲來入門是爲菩薩摩訶薩是爲摩訶衍

21. 치지품(治地品)
005_0040_c_06L摩訶般若波羅蜜治地品第二十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이 마하승나승녈로 마하연에 나아가는 것[摩訶衍三拔致]에 대해서 물었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면서 한 지[一地]에서 다른 한 지에 이르는 것이다.”
005_0040_c_07L佛告須菩提如汝所問菩薩摩訶薩摩訶僧那僧涅摩訶衍三拔致者薩行六波羅蜜過從一地至一地
“무엇을 보살이 한 지에서 다른 한 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까?”
005_0040_c_10L何菩薩過從一地至一地
“모든 법에는 지나간 법이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또 지나감이 없고 지나가지 않음도 없다. 모든 법에는 무너짐이 없으며 또 높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머무는 지(地)의 일을 다스리며 또한 지(地)를 보지 않는다. 무엇을 보살이 지의 일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는가? 제1지(地)로부터 머물면서 열 가지 일[事]을 행한다.
005_0040_c_11L以諸法無所過法無來者亦無去者亦無有過亦無不過諸法亦無有壞亦不貢高亦不念但治住地事亦不見地何等菩薩爲治地事始從第一地住當行十事
무엇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우선 세 가지의 번뇌[垢]로부터 깨끗해야 하며, 또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둘째는 베풀고 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또 의지해서도 안 된다.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4등심(等心)으로 청정하게 하지만 또한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셋째는 보시를 하지만 주는 것이 있지 않으며, 받는 자가 있지 않다. 넷째는 선지식과 함께 하고 또한 아만을 부리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법을 얻으려고 하지만 모든 법은 있지 않다.
005_0040_c_16L何等爲十一者先當淨於三垢亦無所倚二者所作施與不自爲身所念無倚爲一切衆生淨於四等心亦不有衆生三者爲布施不有所與不有受者四者當與善知識從事亦不貢高五者欲得爲法不有一切法
여섯째는 출가를 하고자 하니 애욕이 있지 않다. 일곱째는 부처님의 몸이 되고자 하지만 상호(相好)는 있지 않다.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니 법에는 무너짐이 없다. 아홉째는 아만[虜怙]에서 스스로 법재(法財)가 아닌 것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열째는 진실되게 설하고자 하나 언교(言敎)가 없기 때문이다.
005_0040_c_21L六者欲爲出家不有愛欲七者欲爲佛身不有相好八者欲爲分流法教終不壞法九者常欲滅於虜怙自用不有法財十者欲爲諦說不有言教
005_0041_a_02L 수보리여, 이것이 지(地)를 다스리는 것이며, 보살은 마땅히 이 열 가지 일을 해야 한다.
須菩提是治地菩薩當爲是十事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2지(地) 가운데서 항상 여덟 가지 법[八法]을 염(念)해야 하고 또 마땅히 이루어야 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계(戒)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보은(報恩)을 생각하는 것이고, 셋째는 인욕에 머무는 것이고, 넷째는 환희하는 뜻을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체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대자비로 시작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사존(師尊)을 공경하고 섬기며 독실히 믿는 것이고, 여덟째는 모든 바라밀에 대해서 항상 세존을 받들어 모시듯이 숭상하고 익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2지 가운데서 마땅히 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005_0041_a_03L須菩提菩薩摩訶薩於二地中常當念八法亦當成之何等爲八一者當淨其戒二者常念報恩三者住於忍四者得歡喜意五者不捨一切者大慈爲始七者恭於師尊敬事篤八者於諸波羅蜜如奉世尊常欲崇習須菩提菩薩摩訶薩於二地中當具足是八法
또 수보리여, 보살은 3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다섯 가지 법에 머물러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배우고 묻기를 많이 하여 싫어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문자법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법시(法施)를 베풀되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선의 근본[善本]을 베풀되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수치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지(地)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3지 가운데서 다섯 가지 법에 머무는 것이다.
005_0041_a_11L復次須菩提菩薩於三地中當住於五法何等爲五一者多學問無厭足二者不入字法分布法施亦不貢高三者淨佛國土四者施於善本而不貢高五者住於羞恥慚愧之地須菩提是爲菩薩於三地中住於五法
수보리여, 보살은 4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10사법(事法)을 봉행하여 버리지 않아야 한다. 첫째는 연좌(宴坐)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이고, 셋째는 만족할 줄 아는 것이고, 넷째는 사문의 12법행(法行)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계(戒)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욕망을 더러움으로 보는 것이고, 일곱째는 니원과 같은 뜻을 일으키는 것이고, 여덟째는 몸에 소유한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고, 아홉째는 게으름이 없는 것이고, 열째는 소유(所有)하고 있는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이 4지 가운데서 마땅히 10사를 봉행하고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005_0041_a_17L須菩提菩薩於四地中當不捨奉行十事法一者不捨宴坐二者少欲三者知足四者不捨沙門十二法行五者不捨於戒六者見欲污穢七者於起意如泥洹八者不惜身所有九者無有懈慢十者不慕所須菩提是爲菩薩於四地中當奉行十事而不捨離
005_0041_b_02L수보리여, 보살은 5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여덟 가지 법을 여의어야 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가업(家業)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비구니를 멀리 여의는 것이고, 셋째는 공덕을 쌓되 멀리 질투를 여의는 것이고, 넷째는 세상의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다섯째는 분쟁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섯째는 싸우는 것과 소송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일곱째는 높은 데 머무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덟째는 사람을 멸시함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5지 가운데 머물면서 여덟 가지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005_0041_a_24L須菩提菩薩於五地中當離八法何等爲八一者當遠離家業二者當遠離比丘尼三者善於功德遠離嫉妒四者遠離世會者遠離忿諍六者遠離鬪訟七者遠離高住八者遠離蔑人須菩提是爲菩薩住五地中遠離八事
수보리여, 보살은 6주지(住地)에서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그것은 6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다. 또 여섯 가지의 일이 있는데, 행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성문(聲聞)의 뜻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의 뜻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적은 뜻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찾던 것을 보고도 만족하는 뜻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다섯째는 소유한 좋은 물건을 보시한 후에 후회하는 뜻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섯째는 나[我]라고 하는 생각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이 6주지 가운데서 여섯 가지 일을 구족하고, 또 여섯 가지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005_0041_b_07L須菩提薩於六住地當具足六法何等爲六所謂六波羅蜜復有六事所不應爲何等爲六一者不爲聲聞意二者不爲辟支佛意三者不爲小意四者見有所索者遠離有厭足意五者所有好物施與之後遠離悔意六者遠離吾我想須菩提是爲菩薩於六住中當具足六事遠離六事
수보리여, 보살은 7주지(住地)에서 해서는 안 되는 스무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나라는 것이 있고, 중생이라는 것이 있고, 수명(壽命)이라는 생각이 있고, 끊어짐[斷]이 있고, 항상함이 있고, 염상[念想]이 있고, 온갖 상[種想]이 있고, 음(陰)에 들어가고, 성(性)에 들어가고, 쇠(衰)에 들어가고, 삼계에 태어나고자 하고, 부처님의 견해에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법견(法見)을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승견(僧見)을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계(戒)를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공(空)에 들어가지 않고, 무상(無相)에 들어가지 않고 무원(無願)에 들어가지 않고, 도(道)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스무 가지의 일들이다.
005_0041_b_15L須菩提菩薩於七住地有二十事所不當爲何等二十有吾我有衆生有壽有命想有常有念想有種想入陰入性欲生三界不入依佛見不入依法不入依僧見不入依戒不入空入無相不入無願不入道是爲二十事所不當爲
005_0041_c_02L또 마땅히 스무 가지의 일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공ㆍ무상(無相)을 깨닫고, 바람이 없는 지혜[不願慧]를 증득하고, 몸[身]ㆍ입[口]ㆍ뜻[意]을 청정하게 하고, 일체 중생을 자비로 보살펴야 하고, 또한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고, 비록 그렇다 하여도 들어감이 없어야 하고, 인도하여 모시려고 하여도 또한 아만을 부리지 않고, 무소생인(無所生忍)이고, 한 도(道)로써 교화하고, 모든 분별을 끊고, 생각을 전환하고, 견(見)을 전환하고, 모든 구견(垢見)을 멸함을 전환하고, 혜지(慧地)에서 스스로 조절하고, 의혜(意慧)는 걸림이 없고 욕사(欲事)에서 물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7주지(住地)에서 마땅히 구족해야 하는 스무 가지의 법이다.
005_0041_b_22L當復具足二十事何等爲二十覺空無相證不願慧淨身口慈哀一切衆生亦不念有衆生視諸法雖爾無所入欲爲導御亦不貢高無所生忍一道教化斷諸分別轉於想轉於見轉於滅垢見慧地自調意慧無所㝵不染於欲事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於七住行地當具足是二十法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8주지(住地)에서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신통으로 두루 관하여 중생의 뜻에 들어가는 것이며, 모든 불국토에 이르러서 기특(奇特)한 일들을 관하는 것이며, 그 불국토는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며, 실제로 부처님의 몸을 관하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께 가서 뵙고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한다.
005_0041_c_07L復次須菩提菩薩當復於八住地具足四法何等爲四以神通爲遊觀入於衆生之意到諸佛國觀其奇特當自莊嚴其佛國土往見禮敬供養諸佛如其實觀佛身當具足是四法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8주지에서 마땅히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만 한다.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고 하는가? 지혜로써 모든 감관을 구족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항상 여환(如幻)삼매에 들어서 중생이 본래 지은 공덕을 알고, 얻고자 하는 바에 따라 응해서 성취하게 한다. 수보리여, 보살은 8주지에서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005_0041_c_12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於八住地當復具足四法何等四法以智具足諸根淨佛國土常坐如幻三昧知其衆生本所作功德所應得者各隨其所而成就之須菩提菩薩於八住地具足四法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9주지(住地)에서 열두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무한한 곳에서 광대한 원(願)을 가졌으므로 각자에게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 증득을 주는 것이며, 천ㆍ용ㆍ열차(閱叉:야차)ㆍ건다라 등이 모두 구족하며, 음성을 알아서 변재(辯才)로써 원인이 되는 바를 가르쳐 주고, 포태(胞胎)를 성취하고, 집에 기거하는 것을 성취하고, 부모를 성취하고, 종성(種姓)을 성취하고, 종친을 성취하고, 태어남을 성취하고, 출가를 성취하고, 불수(佛樹)를 장엄함을 성취하고, 모든 선한 공덕을 성취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9주지에서 마땅히 이 열두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005_0041_c_17L復次須菩提薩摩訶薩於九住地當具足十二法何等爲十二持無限處廣大之願所應各授其證閱叉揵陁羅悉皆具足知其音聲以辯才教授所因胞胎成就居家成就父母成就種姓成就宗親成就得生成就出家成就莊嚴佛樹成就諸善功德成就須菩菩薩摩訶薩九住地當成就十二
005_0042_a_02L수보리여, 10주(住)의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라고 불린다.”
005_0042_a_03L須菩提十住菩薩摩訶薩當名之爲如來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선을 지어서 살운야의 뜻과 상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005_0042_a_04L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爲菩薩淨其所有佛言所作衆善應薩云若意是爲菩薩淨其所有
“무엇을 보살이 중생에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4등심(等心)으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 중생에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005_0042_a_06L何等爲菩薩等於衆生佛言淨於四等心等於衆生
“무엇을 보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베푸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에게 베풀어 주되 분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005_0042_a_08L何等爲菩薩施於所有佛言施與衆生而不分別
“보살은 어떻게 선지식과 함께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하여금 살운야에 들어가게 하도록 부지런히 수행하고 힘써 도와주어야 한다. 마땅히 이런 사람과 함께하여 스승을 공경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005_0042_a_09L何等爲菩薩當與善知識從事佛言教人入薩云若勤修勸助當與是人共從事恭敬師是爲菩薩善知識
“무엇을 법을 얻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행하되 단지 살운야법을 구하면 나한ㆍ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005_0042_a_12L何等爲欲得爲佛言所行法但求薩云若法不墮羅漢辟支佛地是
“무엇을 보살이 항상 출가해서 도를 닦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출생하는 곳마다 언제나 사문이 되어 중도(中道)를 행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며, 처음부터 출가할 일을 잊지 않는 것이다.”
005_0042_a_14L何等爲菩薩常欲出家爲道佛言在所生處常欲作沙無能中道爲作㝵者初不忘失出家之事
“무엇을 뜻으로 부처님의 신상(身相)을 발원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보면 뜻은 항상 부처님께 두어야 하고, 살운야를 얻을 때까지 이것을 여읜 때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005_0042_a_17L何等爲意願佛身相佛言見佛形像意常在佛至得薩云若未曾有離時
“무엇이 법을 교화하는 것을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나 반니원에 드신 후에도 보살이 12부(部)의 경전을 수지하고 가르치는데, 처음의 가르침도 또한 진실하고 중간의 가르침도 진실하고 마지막의 가르침도 또한 진실하며 본말(本末)의 뜻을 알아서 청정함을 구족하는 것이다.”
005_0042_a_19L何等爲分流法化佛言佛在世若般泥洹後菩薩持十二部經教授上教亦眞中教亦眞竟教亦本末義解具足淸淨
“보살이 어떻게 해야만 스스로 서고 포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냄과 분노를 멸한 이래로는 처음부터 하천한 곳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005_0042_a_22L何等爲菩薩不虜怙自用佛言從滅恚怒以來不復墮下賤之處
“무엇을 보살이 진제(眞際)를 설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입에서 설하는 말이 행동과 상응(相應)하면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행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005_0042_a_24L何等爲菩薩所說如諦佛言如口所說言行相應是爲菩薩十法事行
005_0042_b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계(戒)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ㆍ벽지불의 뜻과 다른 나쁜 계와 도를 비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005_0042_b_03L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淨戒佛言不念羅漢辟支佛意及餘惡戒誹謗道者是爲淨戒
“무엇을 보살이 보은(報恩)하고 염은(念恩)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도를 행하면 작은 은혜도 오히려 잊지 않는데 하물며 큰 은혜를 잊겠는가? 이것을 염은(念恩)이라고 한다.”
005_0042_b_05L何菩薩報恩念恩佛言行菩薩道者小恩尚不忘何況於大者是爲念恩
“무엇이 보살이 인욕력을 세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에게 침입함이 없고, 성냄이 없으면 이것이 인욕의 힘이다.”
005_0042_b_07L云何菩薩立忍辱力佛言於諸衆生無侵無恚是爲忍力
“무엇이 보살이 환희하는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는 것이다.”
005_0042_b_09L云何菩薩得歡喜樂佛言教授衆生以是爲樂
“무엇이 보살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를 구원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005_0042_b_10L云何菩薩不捨衆生佛言欲救一切故
“무엇이 보살이 대비를 가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마음속으로 ‘나는 마땅히 한 명 한 명의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지옥에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 동안 많은 고통을 대신 받더라도 한 명 한 명의 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도를 얻어 반니원에 들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즐거움이며 대비(大悲)이다.”
005_0042_b_11L何菩薩而有大悲佛言菩薩心念當爲一一衆生故在地獄中恒邊沙劫代受勤苦一一衆生皆得佛道令般泥洹以是勸樂是爲大悲
“무엇이 보살이 스승을 존경하고 믿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기듯 하고, 세존을 생각하듯 하는 것이다.”
005_0042_b_15L云何菩薩順尊師父於信恭敬佛言事於事父如世尊想
“무엇이 보살이 모든 바라밀을 익히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일을 멀리 여의고 단지 모든 바라밀만을 구하는 것이다.”
005_0042_b_17L云何菩薩欲習諸波羅佛言遠離餘事但求諸波羅蜜
“무엇이 보살이 배우기를 즐겨하며 싫어함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시방의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모두 수지(受持)하는 것을 싫어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005_0042_b_18L謂菩薩多學無厭佛言諸十方佛世尊所說盡當受持是爲無厭
“무엇이 보살이 희망하는 바 없이 법시(法施)를 널리 유포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시를 베풀고도 도(道)를 희망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이겠는가?”
005_0042_b_20L何謂菩薩持無所希望法施分布佛言持所法施不希望道何況其餘
“무엇을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선의 근본의 갖가지 공덕을 행하며, 이 공덕을 가지는 것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005_0042_b_22L何謂菩薩淨佛國土佛言爲諸善本種種功德持是功德淨佛國土
005_0042_c_02L“무엇을 보살의 생사는 무량하여 아승기겁의 제한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공덕을 구비하였으므로 중생을 양육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살운야를 구족할 때까지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는 것이다.”
005_0042_b_24L何謂菩薩生死無量阿僧祇劫不以爲限佛言以諸功德備具持是育養衆生淨佛國土至具足薩云若不厭不懈
“무엇이 보살이 참괴(慚愧)에 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ㆍ벽지불의 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005_0042_c_04L何謂菩薩立於慚愧佛言恥於羅漢辟支佛意
“무엇이 보살이 연좌(宴坐)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나한ㆍ벽지불은 여기에 이르지 못하며 이것이 보살이 연좌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005_0042_c_05L何等爲菩薩不捨宴坐佛言諸羅漢辟支佛所不能及是爲菩薩不捨宴
“무엇이 보살이 하고자 하는 것에 욕심을 적게 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도(道)도 오히려 원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 욕심이겠는가?”
005_0042_c_08L何謂菩薩少於所欲佛言菩薩道尚不欲何況餘欲
“무엇이 보살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살운야를 얻는 것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다.”
005_0042_c_09L何謂菩薩而自知佛言得薩云若是爲知足
“무엇을 보살이 사문의 두타덕행(頭陀德行:탁발)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깊이 법인(法忍)에 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005_0042_c_10L何謂菩薩不捨沙門頭陁德行佛言入深法忍者是
“무엇을 보살이 계를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계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계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005_0042_c_12L何謂菩薩不捨於戒佛言薩不復用戒是爲不捨於戒
“무엇을 보살이 색욕을 더러워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음욕과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005_0042_c_13L何謂菩薩污穢色欲佛言於婬妒無所生
“무엇을 보살의 뜻과 니원이 동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일체의 모든 법이 없는 것이다.”
005_0042_c_14L謂菩薩意與泥洹等佛言菩薩不有一切諸法
“무엇을 보살이 소유한 것을 버린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팎의 소유를 받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이다.”
005_0042_c_16L何謂菩薩棄捨所有佛言不受內外所有是爲棄捨
“무엇이 보살에게 싫어함도 없고 게으름도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를 식별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 것이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005_0042_c_17L何謂菩薩不厭不懈佛言不生二識之處是爲不厭
“무엇을 보살이 모든 소유하고 있는 것을 연모(戀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물건에 생각이 없는 것이다.”
005_0042_c_19L何謂菩薩於諸所有無所戀慕佛言於諸物無念故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이 보살의 거업(居業)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불국토를 다니면서 출생하는 곳마다 항상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는다. 이것이 가업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005_0042_c_20L須菩提白佛言何等爲菩薩遠離居業佛言遊諸佛轉所生處常下鬚髮被著袈裟爲遠離家業
“무엇이 보살이 비구니의 무리를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튀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머물지 않으며 손가락을 튀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그런 뜻을 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비구니를 여의는 것이다.”
005_0042_c_23L何謂菩薩遠離比丘尼佛言彈指之頃不與共止彈指之頃不得生意是爲菩薩離比丘尼
005_0043_a_02L“무엇이 보살이 질투를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중생을 안온하게 해야 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
005_0043_a_02L謂菩薩離於妒嫉佛言菩薩當作是我當安隱衆生不宜生嫉
“무엇이 보살이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모임에 있을 때 나한ㆍ벽지불의 뜻을 가진다면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한다.”
005_0043_a_04L何謂菩薩離於聚會佛言菩薩所住聚會有羅漢辟支佛意者常遠離之
“무엇이 보살이 성냄과 분한 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화를 내고 해치고 투쟁하는 마음이 틈을 얻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005_0043_a_06L何謂菩薩遠離瞋恚佛言不令恚害鬪諍得其便
“어찌하여 보살이 자기를 과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법(內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a_08L云何菩薩遠離自擧佛言法不可得見故
“어찌하여 보살이 타인을 멸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외법(外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a_09L云何菩薩遠離訾蔑他人佛言亦不見外法故
“어찌하여 보살이 10악(惡)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10악의 일은 항상 현성의 도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부처님의 도로서 멀리 여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10악을 멀리 여의어야 하는 것이다.”
005_0043_a_10L何謂菩薩遠離十惡佛言此十惡事常欲壞於賢聖之道何況佛道而不遠離是故當遠離十惡
“무엇이 보살이 포악한 것을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높일 만한 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포악한 것을 여의는 것이다.”
005_0043_a_13L何謂菩薩遠離戾不見有法可貢高者是爲離於𢤱
“어찌하여 보살이 스스로 사용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상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대로 사용하겠는가?”
005_0043_a_15L何謂菩薩遠離自用佛言尚不見有形當於何所而行自用
“어찌하여 보살이 전도(顚倒)됨을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형상으로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a_16L何等爲菩薩遠離顚倒佛言以形不可得見故
“어찌하여 보살이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형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005_0043_a_17L云何菩薩離婬怒癡佛言不復見婬怒癡形故
“무엇을 보살이 6주(住)에 있으면서 6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세존과 성문ㆍ벽지불은 6바라밀에 머물러 피안(彼岸)에 이른다. 이것을 보살이 6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는 것이다.”
005_0043_a_19L云何菩薩在於六住具足六波羅蜜佛言住於六波羅蜜諸佛世尊及聲聞辟支佛所可度彼岸爲菩薩具足六波羅蜜
“어찌하여 보살이 성문의 뜻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의 일은 평등한 도가 아니므로 작은 뜻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또한 평등한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005_0043_a_22L云何菩薩不爲聲聞意佛言以聲聞事非平等道不爲小意何以故亦非平等道故
005_0043_b_02L“무엇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싫증을 내는 것도 또한 평등한 도가 아니므로 버리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것도 평등한 도가 아니다. 처음 뜻을 발하면 곧 베풀어 주어야 하고, 또한 아까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005_0043_a_24L云何不厭厭者亦非平等道故棄捨不悔悔者非平等道初發意者便當施與亦不當惜
“어찌하여 보살이 나라는 상[我想]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본래부터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중생과 수명상(壽命想)이 있다는 것도 본래부터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04L云何菩薩不當作吾我想從本際以來不可見故乃至衆生有壽命想從本以來亦不可見故
“어찌하여 보살이 생겨난다는 견을 끊지 않는다고 합니까?”
“모든 법에는 단절(斷截)이 없으며, 처음부터 생기함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06L云何菩薩不斷所生見以諸法無有斷截從有本以來無所生故
“어찌하여 보살이 상견(常見)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까?”
“법에는 생하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또한 항상함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08L云何菩薩不爲常見見法所不生者亦無有常故
“어찌하여 보살이 염상(念想)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10L云何菩薩不作念想以無有垢
“어찌하여 보살이 종상(種相)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모든 견(見)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11L云何菩薩不作種相以諸見不可得見故
“어찌하여 보살이 명색(名色)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형상이 있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b_12L云何菩薩不入名色不見有形故
“어찌하여 보살이 5음(陰)에 들어가지 않고 또한 성(性)에 들어가지 않고 또한 쇠(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그 실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13L云何菩薩不入五陰亦不入性亦不入衰其實不可得見故
“어찌하여 보살이 삼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삼계 또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14L云何菩薩不入三界以三界亦無眞故
“어찌하여 보살이 주처(住處)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까?”
“허공과 같아서 기한을 짓지 않으며 의지함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b_15L云何菩薩不作住處亦不與虛空作期所依怙何以故無有形像故
“어찌하여 보살이 불견(佛見)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을 보려고 하는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b_17L云何菩薩不入佛見不從所依得見佛故
“어찌하여 보살이 헛된 쟁론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일체법은 공하고 공하여 헛된 쟁론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b_18L何菩薩不與空諍一切法空空不與空諍故
“무엇을 보살이 공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상(相)을 구족하려고 함이 공을 구족하는 것이다.”
005_0043_b_20L云何菩薩具足於空其欲具足相者是爲具足空
“어찌하여 보살이 무상(無相)을 증득한다고 합니까?”
“모든 상(相)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b_21L云何菩薩得無相證不念於諸相故
“어찌하여 보살이 무원지(無願智)를 얻는 것입니까?”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b_22L云何菩薩得無願智不著三界故
“어찌하여 보살이 3사(事)2)를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10선(善)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005_0043_b_23L云何菩薩淨於三具足十善故
“어찌하여 보살이 혜(慧)로써 중생을 애민히 생각하는 것을 구족하는 것입니까?”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005_0043_b_24L云何菩薩以慧具足哀念衆生以大悲利之故
005_0043_c_02L“어찌하여 보살이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005_0043_c_02L云何菩薩無衆生念欲淨佛國故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는 것입니까?”
“모든 법에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c_03L云何菩薩等觀諸法以不高下諸法故
“어찌하여 보살이 도를 깨닫는 것입니까?”
“모든 법을 따라서 깨닫게 하고 해탈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005_0043_c_04L云何菩薩得於道覺隨諸法所覺而度脫之故
“어찌하여 보살이 무소생인(無所生忍)을 얻는 것입니까?”
“모든 법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참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c_05L云何菩薩得無所生忍得諸法所有無生無滅無所忍故
“어찌하여 보살이 무소생혜(無所生慧)를 얻는 것입니까?”
“명색(名色)은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005_0043_c_07L云何菩薩得無所生慧知名色無所起故
“어찌하여 보살이 한 도[一道]의 가르침을 얻는 것입니까?”
“두 가지 가르침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c_08L云何菩薩得一道之教無有二教故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분별을 멸하는 것입니까?”
“모든 법에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c_09L云何菩薩滅諸分別於諸法無所分部故
“어찌하여 보살이 전견(轉見)을 닦지 않는 것입니까?”
“나한ㆍ벽지불을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c_10L云何菩薩不修轉見以不轉求羅漢辟支佛意故
“어찌하여 보살이 번뇌[垢濁]을 전환하는 것입니까?”
“모든 익혀진 번뇌[漏]를 멸하기 때문이다.”
005_0043_c_12L云何菩薩轉於垢濁滅諸所習漏故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번뇌[垢]를 멸해서 청정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까?”
“살운야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005_0043_c_13L云何菩薩得滅諸垢而得淸所謂薩云若慧是
“어찌하여 보살이 스스로 뜻을 조절하는 것입니까?”
“삼계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005_0043_c_14L云何菩薩而自調意不厭三界故
“어찌하여 뜻을 멸하는 것입니까?”
“6근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005_0043_c_15L云何菩薩而得滅制六根故
“어찌하여 보살의 지혜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까?”
“불안(佛眼)을 얻었기 때문이다.”
005_0043_c_16L云何菩薩慧無有㝵得佛眼故
“어찌하여 보살이 정욕(情欲)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아는 것입니까?”
“6쇠(衰)를 관하기 때문이다.”
005_0043_c_17L云何菩薩知情欲不堅固觀六衰故
“어찌하여 보살이 중생의 뜻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오로지 하나의 뜻을 가져 중생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아는 것이다.”
005_0043_c_18L云何菩薩能入衆生意一意悉知衆生所念故
“어찌하여 보살이 신통에서 노니는 것이라고 합니까?”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3_c_19L云何菩薩遊於神通從一佛國至一佛國初無有佛國想故
“무엇이 보살이 불국토를 관하는 것입니까?”
“그 국토에 머물러 두루 모든 불국토를 보되, 또한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005_0043_c_21L云何菩薩得佛國觀於是國住遍見諸佛國亦無佛國想故
“어찌하여 보살이 그 소견을 따라서 모든 불국토를 스스로 이루는 것입니까?”
“차가월라지(遮迦越羅地)3)에 머물러 모든 삼천대천국토에 노닐기 때문이다.”
005_0043_c_22L何菩薩隨其所見諸佛國土自成其住於遮迦越羅地遊諸三千大千國土故
“무엇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뵙고 모시는 것입니까?”
“법을 보는 것이 부처님을 뵙는 것이다.”
005_0044_a_02L云何菩薩奉見諸佛以見法是爲見佛
005_0044_a_02L“무엇이 보살이 참으로 불신(佛身)을 보는 것입니까?”
“법성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보는 것이다.”
005_0044_a_03L云何菩薩眞見佛身法性故是爲眞見
“무엇이 보살이 지혜가 구족한 힘을 가지는 것입니까?”
“이미 세존의 10력의 지위에 머물렀으면 곧 능히 중생력을 구족한 것이다.”
005_0044_a_04L云何菩薩以智具足力已住世尊十力之地便能具足衆生力故
“무엇이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까?”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005_0044_a_06L云何菩薩能淨佛國能淨衆生故
“어찌하여 보살의 환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입니까?”
“응해주는 곳을 따라 지어서 움직이지[動轉] 않기 때문이다.”
005_0044_a_07L云何菩薩如幻三昧所作隨所應無有動轉故
“어찌하여 보살이 항상 삼매에 머무는 것입니까?”
“이미 보응(報應)을 얻었기 때문이다.”
005_0044_a_08L云何菩薩常住三已得報應故
“무엇이 보살이 모든 공덕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도법(道法)을 따라서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005_0044_a_09L云何菩薩入諸功德隨其道法而度脫之故
“어찌하여 보살이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스스로 능히 일체를 성립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005_0044_a_10L云何菩薩不復思議能自成立教授一切故
“무엇이 보살이 원하는 바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6바라밀을 구족하게 행하는 것이 해우(諧偶)이다.”
005_0044_a_11L云何菩薩所願諧偶具足行六波羅蜜是故諧偶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천ㆍ용ㆍ귀신의 아는 것과 말을 아는 것입니까?”
“변재혜(辯才慧)를 가지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005_0044_a_13L云何菩薩知諸天鬼神所知所言以辯才慧無所不了故
“어찌하여 보살이 태 안에 듦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태어남에서 항상 화생(化生)하기 때문이다.”
005_0044_a_14L云何菩薩得胞胎成就在所生常化生故
“태어나는 보살이 가문[居家]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부자이면서 귀한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005_0044_a_15L云何菩薩居家成就生於豪貴家故
“어찌하여 보살이 부모를 성취하는 것입니까?”
“찰제리와 바라문가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005_0044_a_16L云何菩薩父母成就得生剎利婆羅門家故
“어찌하여 보살이 종성(種姓)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모든 보살의 종성을 이었기 때문이다.”
005_0044_a_18L云何菩薩種姓成就得繼過去諸菩薩種故
“어찌하여 보살의 종친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많은 보살들의 권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005_0044_a_19L云何菩薩宗親成就以衆菩薩爲眷屬故
“무엇이 보살이 출생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태어날 때 광명이 무량한 국토를 두루 비추고, 무량한 국토를 진동하게 하는 것이다.”
005_0044_a_20L云何菩薩得生成就生時光明普遍無量國土震動無量國土故
“무엇이 보살이 출가를 성취하는 것입니까?”
“보살이 출가할 때 모든 무량한 백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고, 삼승의 원을 원만하게 구족하기 때문이다.”
005_0044_a_22L云何菩薩出家成就薩出家時安諸無央數百千衆生滿具足是三乘之願故
005_0044_b_02L“무엇이 보살이 불수(佛樹)를 장엄하는 것입니까?”
“황금으로 나무를 삼고, 7보(寶)로 줄기와 잎을 삼으며, 그 줄기와 잎의 광명이 시방의 무량한 찰토(刹土)를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이 불수를 성취하는 것이다.”
005_0044_a_24L云何菩薩莊嚴佛樹以黃金爲樹七寶爲枝葉其枝葉光明悉遍照十方無央數剎土爲佛樹成就
“무엇이 보살이 모든 선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보살마하살이 불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모든 공덕을 청정하게 성취하는 것이다.”
005_0044_b_04L云何菩薩諸善功德成菩薩摩訶薩淨佛土淨衆生是爲成就淨諸功德也
“무엇을 10주(住) 보살이라 하며, 여래(如來)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6바라밀을 구족하고, 부처님의 18법(法)을 모두 익혀서 얻으며, 살운야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런 까닭으로 보살마하살은 이미 10주를 얻어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05_0044_b_06L云何十住菩薩名爲如來用具足六波羅蜜諸習緖盡得佛十八法具足薩云若慧須菩提是故菩薩摩訶薩已得十住名爲如
“무엇이 보살이 이미 10지(地)에 머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로써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37품과 18법을 행하며, 멸정지(滅淨地)ㆍ종성지(種性地)ㆍ팔지(八地)ㆍ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멸음노치지(滅婬怒癡地)ㆍ이작지(已作地)ㆍ벽지불지(辟支佛地)ㆍ보살지(菩薩地)를 지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이 9지(地)를 지나 곧 불지(佛地)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10주의 지(地)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삼발치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05_0044_b_10L云何菩薩已住十地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漚和拘舍羅行六波羅蜜乃至三十七品行十八法過滅淨種性地八地見地薄地滅婬怒癡已作地辟支佛地菩薩地須菩提菩薩摩訶薩過是九地便住佛地菩提是爲菩薩摩訶薩十住之地知是爲菩薩摩訶薩摩訶衍三拔致

22. 문출연품(門出衍品)
005_0044_b_17L摩訶般若波羅蜜問出衍品第二十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에게 연(衍)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마땅히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인가를 질문하였다. 지금 이것을 설하겠다.”
005_0044_b_18L佛告須菩提汝所問菩薩摩訶薩從何所出衍中當住何所今當說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계를 나와서 살운야를 따라서 머무니 의지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하연과 살운야라는 이 법은 함께 평등하기 때문이다. 또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고, 또한 형상도 없고 견해도 없고, 또한 한 가지 모양[一相]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모양이란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양이 없는 법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005_0044_b_20L佛言當出三界隨薩云若住而無所何以故摩訶衍與薩云若是法共亦不別亦不同亦無形亦非見非㝵一相一相者謂無相何以故菩提無相之法亦不出亦非不出
005_0044_c_02L 수보리여, 만약 무상법(無相法)을 출현하게 한다면 법성도 또한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가령 무상법이 출생한다면 여여함도 또한 마땅히 다시 출생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하면 진제(眞際)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만약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다시 불가사의한 성품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다시 안온한 성품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005_0044_c_02L菩提若無相法出者法性亦當復出假令無相法出生者如亦當復出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眞際若欲出生無相法者爲復欲出生不可思議性欲出生無相法者爲復欲出生安隱之性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멸진(滅盡)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멸진의 체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색의 공함과 통ㆍ상ㆍ행ㆍ식의 공함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색의 공함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통ㆍ상ㆍ행ㆍ식의 공함도 또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005_0044_c_08L欲出生無相法者欲出生滅盡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滅盡之體欲出生無相法者欲出生色空痛想行識空何以故空者亦不出三界亦不住薩云若想行識空亦爾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색은 색 자체가 공하고 통ㆍ상ㆍ행ㆍ식도 자체가 공한 까닭이다. 무상법을 출생하려고 한다면 안공(眼空)을 출생하려고 하는 것이며, 의공(意空)을 출생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6쇠(衰)와 12인연이 공함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6쇠가 공하다는 것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005_0044_c_13L何以故須菩提色色自空痛想行識識自空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眼空爲欲出意空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六衰及十二因緣空何以故六衰空者亦不出三界亦不住薩云若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꿈ㆍ허깨비ㆍ불꽃ㆍ메아리ㆍ광명ㆍ그림자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여래가 지은 변화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꿈ㆍ허깨비ㆍ불꽃ㆍ메아리ㆍ광명ㆍ그림자와 여래가 지은 변화는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꿈은 몽사(夢事)로써 공하고, 염사(炎事)ㆍ환사(幻事)ㆍ향광사(響光事)ㆍ영사(影事) 나아가 여래께서 변화한 일도 모두 자체가 공하기 때문이다.
005_0044_c_18L欲出生無相法者欲出生夢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如來之所作化何以影及如來所化亦不出三界亦不住薩云若何以故夢以夢事空炎事幻事響光事影事乃至如來所化事皆自空
005_0045_a_02L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단(檀)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시(尸)바라밀ㆍ찬(羼)바라밀ㆍ유체(惟逮)바라밀ㆍ선(禪)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6바라밀의 일은 또한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6바라밀은 6바라밀이 공하기 때문이다.
005_0044_c_24L欲出生無相法爲欲出生檀波羅蜜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尸波羅蜜羼波羅蜜惟逮波羅蜜禪波羅蜜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般若波羅蜜何以故須菩提六波羅蜜事亦不出三界亦不住薩云若何以故六波羅蜜六波羅蜜空故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내외공(內外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유공(有空)ㆍ무공(無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외공의 일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는 스스로 공하며 또한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외공은 공한 것이며, 나아가 유무공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005_0045_a_08L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內外空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有空無空何以故須菩提內外空事至有無空事自空亦不出三界亦不住薩云若何以故內外空空乃至有無空空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4)ㆍ5근(根)ㆍ7각의(覺意)ㆍ8정행(正行)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18법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나한ㆍ벽지불과 위로는 여래ㆍ등정각(等正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한ㆍ벽지불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한은 나한의 모습이 공한 것이며, 벽지불은 벽지불의 모습이 공하며, 부처는 부처의 모습이 공하기 때문이다.
005_0045_a_13L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四意止四意斷四神足五根五力七覺八正行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十八法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羅漢辟支佛上至如來等正覺也何以故羅漢辟支佛事上至佛亦不出三界亦不住薩云若何以故羅漢羅漢事空辟支佛辟支佛事空佛佛事空
005_0045_b_02L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수다원과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벽지불과ㆍ불과(佛果)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살운야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명상(名相)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행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법을 설하고 가르치는 일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이름은 공한 것이고, 나아가 시설된 가르침과 법과 행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름의 공함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005_0045_a_21L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辟支佛果佛果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薩云若欲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名相欲出生行者爲欲出生設法教數何以故須菩提名空及設教法行空空何以故名空空故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생함이 없음과 멸함이 없음과 집착함이 없음과 끊음이 없음과 소유가 없음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마하연은 삼계로부터 나와서 움직임이 없는 곳인 살운야에 머무는 것이다.
005_0045_b_04L出生無相法者爲欲出生無所生所滅無所著無所斷無所有以是故須菩提摩訶衍從三界出住薩云若不動處
수보리여, 그대는 마하연은 어느 곳에 머무느냐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하연은 머무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도 또한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연이 머무는 것은 머묾이 없음과 같다. 비유하면 법성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연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함이 없음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는 것이다. 소유함이 없음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의 모습[法性事]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법성의 모습 자체가 스스로 공하며 나아가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러므로 마하연은 머묾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머묾이 없이 머물러서 움직임이 없다.
005_0045_b_08L須菩提汝所問衍住何所言衍無所住何以故如諸法亦無所衍所住如無所住譬如法性亦不住亦不不住衍者不住亦不不住所生亦不住亦不不住不生不滅著不斷無所有亦不住亦不不住亦如是何以故法性事亦不住亦不不住法性事自空故乃至無所有所有亦自空須菩提衍無所住何以諸法無所住而住而不動
수보리는 누가 마하연을 출생시키는가를 물었다. 마하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나오는 것과 마하연이 마땅히 나오는 것은 또한 없는 것이며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 또한 볼 수 없는 것인데 어느 곳으로부터 법이 나오겠는가?
005_0045_b_17L如須菩提所問誰當出衍者無有從衍中出何以故須菩提所可出者及衍當出者亦無所有是亦不可見諸法亦不可見當從何法出
005_0045_c_02L 왜냐하면 나를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수명ㆍ지견의 일도 근본에서부터 지말에 이르기까지 청정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서부터 지견(知見)과 법성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으며, 이와 같음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진제(眞際)라 하는 것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불가사의한 성품ㆍ음(陰)ㆍ쇠(衰)도 볼 수 없고 6바라밀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內外空)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005_0045_b_21L何以故吾我不可見故乃至壽命知見之事從本至竟淨從我人至知見及法性不可見如亦不可見眞際亦不可見至竟不可思議衰不可見六波羅蜜亦不可見至竟淨內外空至有無亦不可見至竟淨三十七品佛十八法亦不可見至竟淨
수다원에서부터 나한ㆍ벽지불에 이르고 위로는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나한ㆍ벽지불도에 이르고, 위로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무소유도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과거ㆍ미래ㆍ현재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가고 머물고,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러도 또한 무소유이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늘어나고 줄어듦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005_0045_c_05L從須陁洹至羅漢辟支佛上至佛亦不可見至竟從須陁洹道至羅漢辟支佛道至阿耨多羅三耶三菩亦不可見至竟淨不生不滅不著不斷無所有可見至竟淨過去當來今現在亦無所有至竟淨去住從此至彼亦無所有至竟淨增減亦不可見至竟淨
그러면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 것이며, 볼 수 없는 것인가? 법성은 생하지 않으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다는 그 소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공ㆍ진제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내외공(內外空)에서 유무공(有無空)에 이르기까지도 무소견(無所見)이고 볼 수 없는 것이다. 37품과 18법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005_0045_c_12L誰不生而不可見法性不生不可見何以故法性亦不可見亦不不可見如不可見無所見眞際至般若波羅蜜無所有不可見內外空至有無無所見亦不可見三十七品及十八法無所有不可見從須陁洹至佛無所有不可見
수다원에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불도ㆍ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며, 생하는 것도 없고 볼 수 없어야 무소유에 이르는 것이며, 무소유에서 무소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무소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초주지(初住地)에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고, 십주지(住地)에 이르러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며, 무소유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005_0045_c_19L從須陁洹道至佛道阿耨多羅三耶三菩無所有不可見無所生不可見至無所有從無所有無所有不可見何以故須菩提無所有不可見初住地亦不可見至十住無所有不可見無所有不可見至竟常淨
005_0046_a_01L무엇을 초주지(初住地)ㆍ멸정지(滅淨地)ㆍ종성지(種性地)ㆍ제팔지(第八地)ㆍ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제구지(除垢地)ㆍ소작이작지(所作已作地)ㆍ벽지불지ㆍ보살지ㆍ불지라고 하는가? 내외공에서도 볼 수 없고 초지(初地)에서도 볼 수 없고, 나아가 내외공ㆍ유무공도 무소유이다. 제2주지와 제3ㆍ제4ㆍ제5 제6ㆍ제7ㆍ제8ㆍ제9, 나아가 제10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다. 내외공ㆍ유무공에서 제10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1주(住)에서 10주에 이르러도 또한 무소유이며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 청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005_0046_a_01L何等爲初住地滅淨地種性第八地見地薄地除垢地所作已作地辟支佛地菩薩地佛地於內外空亦不見初地不可見至內外空有無空無所有第二住地第三第四第五第六第七第八第九乃至第十內外空有無空至第十住亦不可見何以故須菩提從一住至十住亦無所有亦不可見至竟淨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중생을 청정하게 함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함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ㆍ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5안(眼)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005_0046_a_09L內外空至有無空衆生淨無所有至竟淨內外空至有無空佛國淨無所有至竟淨外空有無空五眼無所有至竟淨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에 의지함이 없으므로 마하연으로써 살운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005_0046_a_12L菩提如是菩薩摩訶薩以無所倚事令諸法以摩訶衍出薩云若
放光般若波羅蜜經卷第四
丁酉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나온 말로서 첫째는 몸이 신정계(身淨戒)를 갖는 것을 말하는데, 몸으로 모든 계를 받아지키고 궐(闕)함이 없으며 법을 범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언정계(言淨戒)이고, 셋째는 의정계(意淨戒)이다.
  2. 2)『화엄경』에 나오는 42자문(字門)에서 마흔 번째의 실자문(室字門)이며, 실(室) 자(者)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차(遮)라고 나온다. 범어로는 차라지(遮羅地)라 하며, 중국말로는 동(動)이다. 일체법이 부동상(不動相)인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 3)3) 4정근(正勤)과 같다. 범어로 catvāri-samyak-prahānāni. 또는 4정단(正斷)ㆍ4의단(意端)이라고도 한다. 열반에 나아가기 위하여 수행함에 서른일곱 가지 종류가 있는데 4념처(念處) 다음에 닦는 법이다.
  4. 4)4여의족(如意足)을 말한다. 욕여의족(欲如意足)ㆍ염여의족(念如意足)ㆍ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ㆍ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