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모든 법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법어(法語)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모든 법에 손상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 실마리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법의 모습은 장애물이 없으며 허공의 법과 같이 생겨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모두 생겨난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법이 생기는 과정이기 때문에 얻을 수 없습니다.”
그때 모든 욕계의 천신과 모든 범천의 천신들도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적멸(寂滅)이라 하신 것은 곧 부처님의 제자인 존자 수보리가 이미 지금 말씀하신 것으로 모두 공(空)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005_0658_b_09L諸欲、諸梵天子俱白佛言:“其寂者,卽佛弟子,今尊者須菩提所說者悉空。”
수보리가 모든 천신의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말한 것이 달살아갈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 된다.”
005_0658_b_11L須菩提語諸天子言:“爲隨怛薩阿竭教。”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어떻게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인 것을 알았느냐?” 수보리가 다시 말하였다. “달살아갈처럼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다는 것[本無], 이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모든 과거ㆍ미래ㆍ현재도 모두 본래부터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법을 따르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다. 모든 법도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이 본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달살아갈이란 존재도 본래부터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일체의 모든 것이 어떤 것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본래 없었다고 하는 것, 이것이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라고 한 것이며 여기에 다른 점이란 없다. 본래 무라는 법칙을 따르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며, 다른 것이라고는 어떤 것도 없다.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다는 진리를 따르는 일이다.
005_0658_c_02L‘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은 이것이 달살아갈이 세운 원칙이며, 수보리가 세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달살아갈이 본래부터 어떤 것도 가로막는 장애가 없었던 것처럼 모든 법도 본래부터 어떤 것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으로 그것으로 달살아갈처럼 본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법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다. 다같이 본래 어떤 것도 없었다는 사실에 다른 점은 없다.
아(我) 즉 아자재(我自在), 나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아니한다는 것은 또한 자연 그대로 어떤 작용도 받지 아니하였다는 것[無作]이며,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도 자연 그대로 어떤 작용도 받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모두 본래 무이며 또한 본래 무도 존재하는 것이 없다.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본래 나라는 존재도 그렇게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가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은, 달살아갈처럼 본래 어떤 것도 없고 다르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법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으며 다르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란 없었다.
이것이 달살아갈의 본래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에 해당되며 이는 또한 허물어지지도 아니하고, 썩지도 아니하며 나의 것으로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이며, 달살아갈은 모든 법과 더불어 본래 어떤 것도 없었고 다른 것이 없었으며, 이는 다름없는 본래의 무이며 다른 본래의 무란 존재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었다.
수보리의 말처럼 이 본무를 따르는 사람은 이것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깨달음에 들게 될 것이며, 또한 들어갈 깨달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 된다. 달살아갈이란 본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한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존재도 아니며, 또한 모든 법도 아니어서 모두가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과거도 미래도 지금 현재도 없는 것이다.
005_0659_a_02L이와 같은 것이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이며 달살아갈이 본래 존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을 곧 달살아갈의 가르침이라 한 것이다. 달살아갈이란 곧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며 미래도 본무며 과거도 본무며 달살아갈의 가르침도 본무이다. 미래의 본무인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본무에 해당되며 현재의 본무인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본무에 해당한다.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가 본무인 것처럼 달살아갈의 가르침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이다.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가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처럼 달살아갈의 가르침은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에 해당한다.
이는 다같이 다른 것이 없으며 모든 법도 이처럼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수보리도 다같이 다름없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며 평등하고 다름이 없다고 말한 내용이다. 이것이 진실한 보살의 본무가 되며 스스로 아유삼불을 이루는 길이며, 또한 다같이 본무의 경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여여(如如)한 본무의 경지로서 곧 본무여래(本無如來)의 이름과 경지를 얻게 되며, 곧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달살아갈은 이 본무에 인연하여 부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본무란 것은 매우 깊은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본무는 매우 깊은 진리이다.”
005_0659_a_15L舍利弗白佛言:“本無者甚深。天中天!”佛言:“如是,本無實甚深。”
부처님께서 본무를 설법하셨을 때 300명의 비구들은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고, 500명의 비구니들은 모두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500명의 여러 하늘의 천신들과 하늘 나라 사람들은 모두 생긴 곳이 없는 법락(法樂)과 법인(法忍)을 얻기에 이르렀으며, 60명의 보살들이 모두 아라한의 도(道)를 얻었다.
005_0659_b_02L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들 보살은 과거 500의 부처님께 공양을 마치고 모두가 보시를 하였고 청정한 계율을 지켰으며 욕된 일을 참는 공부를 이루었고 그들이 지은 정진으로 선정을 충족시켰으나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함으로써 비록 이 보살마하살에게 도(道)에 뜻이 있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구화구사라에서 벗어난 사람은 중도에서 그것을 궁극의 진리라 생각하고 그것을 증험으로 삼아 성문의 과보를 얻는 데 그치게 된다.
사리불이여, 가령 여기에 큰 새가 있다고 하자, 그 몸의 크기는 혹 4천 리가 되기도 하고 8천 리ㆍ만 2천 리ㆍ만 6천 리ㆍ3만 리에 달하기도 하는데, 이 새가 도리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이 염부리에 이르고자 할 경우 이 새는 새이면서 날개가 없는데도 도리어 도리천 위로부터 스스로 몸을 내던져 아래로 내려온다면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새가 중도에서 다시 도리천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돌아갈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새가 염부리에 내려와서 그 몸을 아프지 아니하게 하고자 한다면 아프지 아니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그 새는 내려오면 몸이 안 아플 수 없고, 혹 죽거나 당장 지극히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몸이 몹시 크지만 날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이여, 바야흐로 보살마하살들로 하여금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 많은 영겁의 세월 동안 보시를 하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욕된 일을 참는 공부를 이루고, 지은 정진으로 선정이 충족되어 발심이 매우 커서 모든 진리를 한꺼번에 끌어당겨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고자 하더라도,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한 사람은 곧 중도에서 떨어져 성문과 벽지불의 길목 위에 있게 될 것입니다.
005_0659_c_02L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 계신 곳에서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삼매에 들지 아니하고, 지혜이건 해탈의 지혜이건 소견의 지혜이건 어떤 지혜도 얻지 못하였으면서 도리어 생각[想]을 짓게 된다면, 이는 달살아갈의 계율과 삼매와 지혜와 해탈지견을 지니지 아니한 사람이 되며 달살아갈이 된 까닭을 모르면서 깨우쳐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다만 허공의 소리만 듣고 이를 마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간직한 것처럼 생각하고, 이것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알음알이를 짓고자 하지만 이를 얻을 수 없고, 곧 중도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길이 있는 땅에 떨어져 있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부처님께서는 혹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떠난 사람은 곧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고자 하는 보살마하살이 있다면 곧 똑똑하게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욕계의 모든 천신들과 색계의 모든 천신들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의 뜻은 매우 깊어 깨우치기도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욕심 없이 고요하게 앉아 있는 사람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천신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반야바라밀의 뜻은 매우 깊어 깨닫기 어렵다. 고요히 있어서는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이란 깨닫기 어렵습니다. 천중천이시여, 그러나 저의 생각에는 이 지혜는 혹 욕심 없이 고요히 있는 사람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여기가 아닌 곳에서도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법은 공(空)이며 작용이 없는 자연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유삼불이 쓰는 것은 법공(法空)이기 때문에 법에 있어서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곧 아유삼불이 되려 하는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법이 모두 공(空)이어야 하며. 법에서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법에서 말하는 무작아유삼불(無作阿惟三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공(法空)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무작아유삼불은 곧 무득아유삼불(無得阿惟三佛)이기도 합니다. 혹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천중천이시여, 그 사람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아니하고 고요히 있어도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005_0660_a_02L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말대로 고요히 있으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다면 이것을 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공(空)의 경계에서는 ‘나는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아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법이라면 쉽게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게 되나니 왜냐 하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보살들이 자리를 바꾸어 되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러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은 욕심 없이 고요한 것이 되지 아니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세 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불연보살(佛衍菩薩)이며 이 경우에는 세 가지 공덕을 헤아리지 아니합니다.” 수보리가 말한 것과 같이 분뇩문타니불(分耨文陀尼弗 : 부루나)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수보리가 말한 일도(一道)에 관해서 마땅히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가운데서는 두 가지 일을 얻는 것을 보지 못한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리불이여,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은 오직 하나가 되는 것인데, 그렇지 아니하기 때문에 ‘얻는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진리를 듣게 되면,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하게 되고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모여서 보살의 경지를 이루게 되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고 다른 이치는 없다. 그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신통력이 이룩한 것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본무(本無)법문과 다름이 없다. 만약 보살이 마음에 게으름이 없다면 모여들어 보살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는 것이 보살이 되는 일이다.”
005_0660_b_21L舍利弗白佛言:“何謂爲菩薩?”佛語舍利弗:“成阿耨多羅三耶三菩則是。”
005_0660_c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라 하며 이를 이루고자 하면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고 내다보고 그 마음에 다름이 없고 해칠 뜻이 없다고 보고 자비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만약 몸에 다름이 없다면 그 마음도 유연해지고 그 마음에 애처로움이 더해져서 그 마음에는 노여움이 없어지고,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지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어져 사람들을 보기를 부모와 다름없이 보게 된다. 이 마음이 보살마하살이 머무는 마음이며 마땅히 이런 배움을 지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범인과 성문승ㆍ벽지불 내지는 달살아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도의 경지에서 모든 것이 본래 없었다는 법문을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또한 다른 마음이 없다면 그 법에 있어서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경지에서의 본무(本無)인 것이며, 이것이 곧 들은 그대로 제도하고 수행을 바꾸지 아니하며 또한 의심도 하지 아니하며 옳다고도 말하지 아니한다. 잘못이라고도 말하지 아니하며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상태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에게는 그 행위에 잘못된 곳이 없고 그 하는 말은 경솔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중도(中道)의 바른 말만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짓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바라보거나 관심 있게 비추어 보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비교하면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곧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a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사문(沙門)이나 바라문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더라도 ‘이것은 사문이다’, ‘이것은 바라문이다’라고 구별하여 모든 것을 밝고 환하게 알고, 끝내 그들의 사당에 참배하여 무릎을 꿇고 절하지 아니하며, 그 밖의 천신들에게도 꽃과 향을 지니고 가서 이들에게 바쳐 올리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비교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곧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이들은 끝내 악(惡)한 곳에 태어나지 아니하며 여자의 몸이 되지 아니한다. 이렇게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끝까지 10선(善)을 떠나지 아니한다. 몸이 스스로 살생을 하지 아니하게[不殺生] 되고, 다른 사람도 살생하지 아니하게 하며, 자신 스스로도 도둑질하지 아니하며[不偸盜], 음행하지 아니하며[不婬行], 결코 한 혀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아니하며[不兩舌], 욕지거리를 하지 아니하며[不惡口],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며[不妄語], 비단같이 꾸며서 말하지 아니하며[不綺語], 질투하지 아니하며[不妬嫉], 탐내지도 아니하고[不貪餘], 그밖에도 의심하거나 어지럽게 행동하지 아니한다[不疑亂]. 자신 스스로 바른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바른 길을 지키게 한다. 이것이 10선(善)이다. 또 꿈속에서도 스스로 이 10선을 지키고 잃지 아니한다. 이것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의 꿈 속 얼굴에서도 저절로 10선이 나타나는 이유이다. 이렇게 비교하면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마하살은 마음에서 배운 법을 간직하여 모든 사람들을 안온하게 하고자 이들을 위해 모조리 말하니 이것이 법보시(法布施)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모두 법이 있는 것을 얻게 하니 이것이 곧 모든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b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은 임금이나 사람들 가운데 영웅과 같아서, 그들이 간직한 명성과 지혜로 깊은 뜻이 담긴 설법을 듣게 되면 끝내 의문이 있을 수 없고, 의문이 없으니 믿지 아니한다고 말하지 아니하게 되며, 그들이 하는 말은 부드럽고 연하며 그들이 하는 말은 꿀같이 달게 들리며, 또한 졸리거나 눕는 일이 적고, 출입하고 걸음을 걸어가도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아니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편안한 걸음걸이로 발을 들어올렸다가 땅을 밟으며, 또한 그들이 입은 옷 속에는 벼룩이 없고 항상 정결하여 먼지나 때묻은 곳이 없고, 또한 근심걱정이 없으며 몸 속에 80가지 벌레가 하나도 없다. 그 까닭은 이 보살마하살에게 있는 공덕은 세간의 공덕을 넘어 그 위로 벗어나서, 조금씩 그 가득한 경지를 이루고자 하여 그 공덕이 더욱 갑절이나 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의 몸은 청결하고 마음도 청결한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의 마음이 청결하며 그것은 어떻게 알게 됩니까?”
005_0661_b_04L須菩提白佛:“云何,天中天!菩薩摩訶薩心淸淨?當何以知?”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이 짓는 공덕이 더욱 갑절로 많아지면 점차 조금씩 최상의 공덕에 접근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그 마음도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아니하는 자유자재한 경지를 이루면서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지고, 그 공덕이 모두 마음에 미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마음이 청정해지고 성문과 벽지불의 도의 경지를 넘어서게 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음의 청정에 해당한다. 이렇게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하면 곧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은 재물을 구하지 아니한다. 만약 부처님께 공양을 드릴 경우 아끼고 인색하지 아니하며, 만약 부처님께서 깊은 뜻을 말씀하실 경우 싫어하는 일이 없이 지극히 바른 행동을 하며, 혹 깊은 뜻이 담긴 법문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간직하고 있는 『반야바라밀경』으로 이들을 위하여 말해준다. 혹 다른 도를 작용하거나 세간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지니고 있는 『반야바라밀경』을 위주로 하여 이들을 바로 잡는다. 혹 그것을 해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야바라밀로써 이를 풀이해 준다. 이렇게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하게 되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c_02L또 수보리여, 이들을 찾아온 것이 폐마(弊魔)일 경우 문득 그들이 보살이 있는 곳에 찾아와 조화를 부려 8대니리(大泥犁 : 8大地獄)를 만들어 놓고, 한 니리(泥犁)에 조화를 부려 수많은 백천(百千)의 보살이 있게 하여 문득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부처로부터 이미 수기(授記)를 받았으며 모두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지만 지금은 모조리 니리(泥犁 : 지옥) 속에 떨어졌다. 이는 모두가 부처가 내려준 수기(授記)가 마련한 결과다. 만약 아유월치의 지위를 이루어 이미 수기(授記)를 받은 사람이라도 빨리 뉘우치고 〈나는 아유월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곧 니리 속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마땅히 하늘 위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또 수보리여, 악마가 변화하여 사문의 모습이 되어 사문과 같은 옷을 입고 보살마하살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말한다. ‘만약 이전에 나의 처소에서 듣고 나에게서 받은 것을 지금 모두 버리고 적용하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지금 당장 스스로 그 허물을 뉘우치거나 빨리 후회하여 나의 말을 따르게 된다면, 나는 날마다 찾아와서 문안을 드릴 것이며 만약 가령 나의 말을 채택하지 아니한다면 나는 끝까지 다시 찾아와 서로 마주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가령 이런 말을 들은 보살이 만약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그런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라. 그것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는 모두 다른 외도들이 조작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듣고 흔들리고 태도를 바꾸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은 과거에 부처님으로부터 수기(授記)를 받지 아니하고 이곳에 와서 보살마하살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 가운데 예를 들면 많은 보살마하살들이 아직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있으며 설사 그 경계가 흔들리고 바꾸어지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법에 대한 염원이 없고 생사윤회에 대한 생각이 없고 생사에 관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사람이다. 비유하면 비구로서 아라한의 과보를 얻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모조리 법을 밝히는 일이며 이것으로 증거를 삼는다.
005_0662_a_02L이것이 무소유의 경지에 해당하며 이런 사람은 끝내 그 마음이 흔들릴 수 없다. 이 보살마하살의 마음도 이와 같이 흔들릴 수 없으며 성문ㆍ벽지불의 도의 경지와 같은 경지에서 생각하는 법과 대중 속에는 다시는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살운야를 향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악마가 보살이 있는 곳에 이르러 조화로 다른 사람[異人]이 되어 요구하는 것이 몹시 피곤하고 고달프며 살운야의 행이 아니거나 또한 부과된 책임이 피곤하고 고달픈 일을 하게 하거나 작용한다면 이 피곤한 괴로움이 작용하여 당장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가 보살도를 싫어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면 당장 다시 어느 곳에서 이 몸을 찾겠으며, 일찌감치 나한(羅漢)을 취하여 부처님의 도를 구하지 아니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여기서도 흔들리고 자세를 바꾸지 아니한다면 악마는 다시 이곳을 버리고 떠나서 다시 방략을 꾸며 조화를 부려서 많은 보살이 되어 그의 옆에 서 있으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손가락질하며 이를 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 때도 만약 이 보살들이 모두 행동을 같이 하지 않고,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보살들에게 공양드리고 나서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와구와 의약품을 주어 모두를 구족하게 하고, 모두가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모조리 청정한 계율을 수행하고, 모두가 받은 일에 따라 그 가운데 담긴 지혜를 듣고, 마땅히 시행할 곳에서 그 구하는 바를 모두 배워 머무는 곳이 법과 같아도 지금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배움을 이루고 나서 이 받음을 이루고 나서 이 행을 이루고 나서도 살운야를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다른 방도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고자 하여서야 되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가령 여기서도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악마는 문득 그곳을 떠나 비구로 화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이들은 모두 아라한이며 과거세에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지금은 모두 아라한의 지위를 취하였지만 지금도 아직 이와 같은 비구로 있으니 당장 어느 곳을 따라야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은 다른 곳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도 계속 그 수행을 지으며 마음이 흔들리거나 바꾸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마음이 없으며 그것이 악마가 짓는 장난임을 마음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005_0662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배워 그 행을 따르는 사람이 살운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어느 곳에서 살운야를 얻겠느냐? 부처가 말한 것에는 차이가 없다. 이 배움을 이루고 이 행을 이루어 반야바라밀과 같이 된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 가령 이 사람이 살운야를 얻지 못한다면 부처님의 말씀에 차이가 있다는 결과가 된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끝까지 사람을 속이지 아니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러한 배움을 지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을 적용하여 비교하면서 그 모습과 행동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하게 되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악마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즉, ‘살운야란 허공과 같아서 이 법은 그 가장자리나 폭을 알 수 없다. 이 법은 그 궁극을 알 수 없지만 또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왜냐 하면 아유월치의 지위란 없는 것이고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보기에는 그 법이란 도무지 모두가 공허한 것이다. 만약 그 허공에서 작용하려면 이것은 고달픈 고통뿐이며 어떤 것도 당장 깨닫고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악마가 하는 일에서 어떻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겠느냐?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곳 선남자ㆍ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마땅히 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악마가 하는 일에서도 그의 마음이 바르고 곧아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다.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이 초선(初禪)ㆍ이선(二禪)ㆍ삼선(三禪) 내지는 사선(四禪)에 이르기까지의 삼마월三摩越 : 삼매(三昧)]를 이루고자 한다면, 이 사선(四禪)의 경지부터는 선(禪)의 종목에 기록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삼마월의 경지를 넘은 경지이다. 이는 사람들을 위한 바람[欲]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2_c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명예나 칭찬을 구하지 아니한다. 그의 이름을 만약 칭송하여 말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의 마음은 넓고 크며 오직 모든 중생들이 모두 편안하기를 염원할 따름이다. 걷거나 앉아 있거나 일어서거나 그의 마음은 어지럽지 아니하며, 세간에 출입하면서도 마음 씀씀이가 온당하고 정성스럽다. 힘있는 위치를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음욕도 지니지 아니한다. 만약 세간에 왕래하고자 할 경우에는 스스로 그 욕망을 근심하여 욕망에 대하여 항상 공포심이 있다.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지나치게 큰 빈 못 가운데서 음식을 먹고자 할 경우 도적이 올까봐 두려워하여 빨리 그곳에서 떠나고자 하고, 스스로 언제나 마을이 모여 있는 안온한 곳에 이르게 되어 빨리 도적 떼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의 마음도 이와 같다. 근심과 욕망에 오고가는 마음이 있을 때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가 짓는 마음은 지어서는 안 되는 마음이며, 이는 잘못이며 모두가 부정한 것이며 나의 법이 짓는 마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악한 마음도 생각하지 아니하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안온함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005_0663_a_02L또 수보리여, 화이라원(和夷羅洹) 열차(閱叉 : 夜叉)가 항상 물러서지 아니하는 경지에 이른 보살마하살의 뒤를 따라다니니 그 밖의 다른 귀신들은 감히 이 보살의 몸에 붙을 수 없는데, 끝까지 뜻을 잃지 아니하며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아니하며 그 몸도 역시 망령되지 아니하며, 일어서면 신체가 완전히 구비되어 이지러진 곳이 없고 모자라는 곳이 없으며, 사람들의 영웅이 되고 다른 사람의 부인을 유혹하지 아니한다. 만약 부적을 만들거나 주문을 외우거나 약을 짓는 일 등은 모두 이런 행위를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도 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도 아니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살의 청정한 행이다. 남자에 관한 일도 말하지 아니하며 부인에 관한 일도 말하지 아니하며 허물이라고는 어떤 것도 없다.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모이지 아니하고 종사하는 일도 더불어 하지 아니하고 임금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도적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병정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군사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고을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큰 성곽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한다. 세속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여자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남자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한다. 다른 도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곡식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물건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사당(祠堂)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잡색(雜色)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꽃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향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놀이를 조종하는 사람도 따라가지 아니하며 바다도 따라가지 아니하며 이익도 만들지 아니한다. 이밖에도 수많은 종류의 일에 간여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갖고 종사하는 일은 오직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하며 종사하는 일도 살운야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늘 염원하며 잊지 아니하고 또한 싸우지 아니하고 또한 자기가 종사할 일을 스스로 지키고 법 그대로 늘 중도의 바른 길을 걸어가며 법이 아닌 것을 따르지 아니하고, 늘 현명한 사람을 칭송하고 높여서 그들의 우두머리로 삼는다. 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자 하고 원한과 악한 관계를 만들지 아니하며, 오직 달살아갈의 법만을 구하고 곧 그곳에 태어나기를 구하고, 타방의 부처님의 국토에서 이 구하는 마음을 지으면서 장차 그곳에는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마음을 쓰는 까닭에 늘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또한 공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혹 경우에 따라 욕계ㆍ색계ㆍ무색계로부터 그곳을 떠나 중국 땅에 와서 태어나게 되면, 혹 착한 사람의 집에 태어나게 되거나 또 지혜 있는 사람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또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러한 환경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혹은 불경에 통달한 집안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는 태어나면서 작은 일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한다. 또 변두리 땅에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큰 나라 안에 태어나게 되며 끝까지 법을 범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을 관찰한다면 그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될 것이다.
005_0663_b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이다’라고 말하지 아니하며 또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이다’라고 생각하지도 아니하며 또 스스로 ‘나는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다’고 의심하지도 아니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수다원의 도과(道果)를 얻게 되면 그 도의 경지에서 끝내 의심을 품지 아니하고, 악마가 하는 일이 비록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곧 모두 그것이 악마의 소행임을 깨닫고, 일단 이런 깨달음이 일어난 사람은 악마의 계교(計較)에 따라가지 아니하게 된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의 경우도 그러하다. 스스로 그의 도의 경지에서 끝까지 의심을 품지 아니하며, 또한 수행을 게을리 하지도 아니한다.
그리하여 악마가 하는 일이 비록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곧 모두 그것이 악마의 일임을 깨닫고 알게 되며, 일단 이런 마음이 일어난 사람은 악마의 계교에 따라가지 아니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악하고 사리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데, 그의 마음에 끝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없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내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의 마음도 끝내 그의 마음을 옮길 수 없고, 충직하고 바르게 마음을 세워 아유월치의 보살의 마음에서 끝내 그 마음을 흔들 수 없게 된다. 천상천하에 아무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고, 악마의 일이 비록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곧 모두 이를 깨닫고 알게 되며, 일단 이런 깨달음이 일어난 사람은 악마의 계교에 따라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자기의 도의 경지에서 끝까지 의심을 품지 아니한다.
또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이 없으며 끝내 부처의 경지가 얻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아니하여, 그 경지는 안온하고 단정하게 스스로 굳게 그 자리에 머물러 아마도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된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이 머무는 사람을 아무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악마가 크게 근심하여 조화를 부려 부처의 모습이 되어서 그가 있는 곳을 찾아가 말하였다. ‘만약 곧 아라한들을 모아 증인으로 삼는다면 부처님에게서 수기(授記)를 받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었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만약 이와 비슷한 경지를 얻지 못하였다면 그러한 모습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 가령 그 마음이 비슷하여 이를 작용하면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어 능히 보살마하살이 될 수 있다. 혹 아직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하였다면 곧 무엇으로 어떤 인연으로 얻을 수 있겠느냐?’”
005_0663_c_02L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가령 이런 말을 듣고도 보살마하살의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과거의 세계에서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로부터 이미 수기를 받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가령 여기에서 또 이런 생각을 짓게 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악마가 부처의 모습을 지어 찾아온 것이며 이 사나이는 곧 부처님이 아니고 악마가 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그가 짓는 이 작위로써 아유월치의 보살의 경지에 상응하게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악마가 하는 일과 다를 것이 없고 그가 이러한 눈으로 이 일을 관찰하고 그가 이러한 생각으로 이 일을 내다본다면 이것이 악마가 짓는 것임을 알게 되며 그를 부처님의 말씀에서 태도를 바꾸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이러한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과거의 세계에서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로부터 수기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아유월치의 경지에 머물게 된 보살이 된 것이다. 왜냐 하면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의 모습과 행을 비교해 보고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고 알게 되며, 이와 같은 비교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에 이른 보살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가진 것을 탐내지 아니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다.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모두 법을 받아들이고자 하며 과거와 미래와 현존하는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거와 미래와 현존하는 불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으로 사람들을 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곧 수기이며 수기하는 작용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끼는 것이 없고 또한 목숨과 몸도 아끼지 아니하며 일찍이 한 번도 게으른 때가 없었으며 지극히 싫어한 일도 없었다. 이와 같이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을 구족하였는지를 관찰한다면 그가 아유월치의 지위의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내용에 의심을 품은 일이 없었으며 또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도 아니하였다.”
005_0664_a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대하여 의심을 품은 일도 없고 아니라고 말하지도 아니하였다면, 성문승에게 하신 설법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은 일이 없고 아니라고 말하지도 아니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성문승들에게 말한 설법도 그 가운데서 의심하지 아니하였고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왜냐 하면 수보리여, 이 보살마하살은 생겨난 곳이 없는 법에서 이를 즐기고 인정하고 작용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들의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그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위대합니다. 큰 공덕을 따라서 스스로 아유월치의 지위를 이루었고, 마침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행으로써 이 모습에 응하였으니, 지금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깊고 깊은 뜻이 담긴 법문은 보살마하살이 베푸는 행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그대가 마음 속에 품은 생각 그것은 매우 깊은 진리이다. 이것이 곧 공해탈(空解脫)ㆍ무상해탈(無相解脫)ㆍ무원해탈(無願解脫)4)이니, 이 세 가지 해탈은 생사의 윤회도 없고 태어나는 곳도 없으며 소유(所有)도 없고 욕구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적멸(寂滅)이며 니원(泥洹 : 열반)이라는 것도 이 적멸로써 한계를 삼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니원이란 여기에 한정된 것이고 모든 법은 이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란 그 뜻이 매우 깊다. 왜냐 하면 색이란 것도 매우 깊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매우 깊은 뜻을 담고 있고, 5음도 매우 깊은 뜻이 있다. 가령 색에 매우 깊은 뜻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수보리여,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에 매우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은 색에 담겨 있는 매우 깊은 뜻은 아니다. 이러한 것이 색의 매우 깊은 뜻이다.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것이 인식 작용이 담고 있는 매우 깊은 뜻이다.”
005_0664_b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대하고 미묘합니다. 미묘한 색의 말단도 니원(열반)을 따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의 작은 말단 작용도 니원(열반)을 따라 매우 깊은 뜻을 지닌다. 매우 깊다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말한다. 보살마하살이 깊이 생각하고 이를 잊지 아니하고 거기에 머물며 반야바라밀의 가르침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운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 생각 따라 오직 허공과 같은 가르침을 생각하고 이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만 하더라도, 그 공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매우 깊은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보살마하살이 가르침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 동안 쌓게 되면 몇 겁의 생사윤회를 물리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음탕한 사람에게 소중하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 함께 만나기를 기약하였는데, 여자가 자유로운 시간을 얻지 못할 경우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남자는 그래도 여자를 잊지 못하고 생각하겠느냐, 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마음의 작용이 여자에게 있는 까닭에 잊지 못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매우 많을 것이며 잊을 때가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 남자가 생각하는 것은 하루도 그 마음이 바꾸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일이며 반야바라밀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만 하더라도 수많은 영겁의 세월에 걸친 생사의 윤회를 물리치고 말 것이다. 그가 가령 반야바라밀의 가르침 가운데 말한 법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생각하고 염원하며 이에 따라 하루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보살은 이미 악(惡)을 물리치고 죄를 면제받게 될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떠난다면, 바야흐로 그로 하여금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영겁의 세월에 걸쳐 보시를 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에 따라 이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 동안 한 사람만 같지 못하며, 그 공덕은 보시의 공덕 위에 우뚝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005_0664_c_02L또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의 수명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영겁의 세월 동안 유지되어 그가 보시한 공덕으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의 과보로 부여받았다고 하더라도 반야바라밀을 떠날 경우, 가령 다른 보살이 있어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 공덕은 앞에서 말한 보살의 공덕 위로 솟아날 것이며, 수명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영겁에 유지되면서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하는 사람의 위에 있게 될 것이다. 또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있어서 반야바라밀을 염원하여 일어나 곧 설법을 하게 된다면 그 공덕은 다시 앞에서 말한 보살의 공덕 위에 솟아날 것이다.
또 수보리여, 이 보살마하살은 법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그 공덕은 더욱 갑절이나 더해지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로서 법보시를 한다면 이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해당된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있어 법보시를 한다 하더라도 그가 중도(中道)를 지키지 아니한다면 이는 보살로서 법보시를 하면서 중도를 지키는 사람만 못하며 이 보살마하살의 공덕은 매우 많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경우에 생사의 번뇌가 없는 사람과 만약 흔들리지 아니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천중천이시여, 이 두 가지 일 가운데 어느 쪽의 공덕이 더 많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복덕의 생사윤회와 공덕의 생사윤회에 있어서 그가 수행한 반야바라밀로, 공(空)의 경지에서 즐기고 무소유의 경지에서 즐기고 ,번뇌가 다한 경지에서 즐기고 무소득의 경지에서 즐기면서 이 반야바라밀을 생각할 때는 이는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아니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의 공덕을 지니게 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의 공덕’이란 어떤 공덕을 말하는 것입니까? 다른 공덕과는 어떤 특별한 차이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승기라 하는 것은 그 수효를 끝까지 다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며, 그 가장자리와 폭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005_0665_a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색도 헤아릴 수 없으며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헤아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색도 헤아릴 수 없으며,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허공과 같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으며, 모습이 없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으며 원(願)이 없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곧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 곧 공(空)에 해당되며 또한 다른 것이 없는 법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보리여, 일체 법은 모두가 공이며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각각 다른 법은 없으며 차이가 나고, 특별한 법이 있다면 분별하면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얻을 수 없는 법이 곧 달살아갈이 얻은, 다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허공과 같이 모습도 없고 소원도 없고 생사도 없고 생겨난 곳도 없으며, 가진 것도 없고 일어난 곳도 없고 소멸하는 곳도 없는 여여한 니원(열반)의 세계이다. 상대방이 기뻐하는 곳을 따라 그곳에서 설법하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대하십니다. 천중천께서 설법하신 법은 법보(法寶)이며 우리들이 미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저의 생각 같아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우리들이 미칠 수 없는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모든 법은 미칠 수 없다. 모든 법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미칠 수 없느니라.”
수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하면 본래부터 미칠 수 없는 것입니까? 소원과 알음알이에도 미칠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005_0665_a_20L須菩提言:“如佛說本不可逮?願解不可逮?”佛言:“不。”
005_0665_b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6바라밀도 미칠 수 없는 것에 해당됩니다. 6바라밀에서 보시바라밀도 불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는 바라밀이며, 시(尸)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유체(惟逮)바라밀ㆍ선(禪)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불어나지 아니하고 줄어들지도 아니하니, 이는 곧 6바라밀이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6바라밀이 모두 불어나지도 아니하고 줄어들지도 아니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 6바라밀로써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 가까이에 앉는가 하면,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여여(如如)한 근본이란 미칠 수 없고 불어나지도 아니하고 줄어들지도 아니한다.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에 해당되며,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를 지닌 사람은 이것을 단(檀)바라밀이 증감(增減)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생각한다. 단바라밀이란 다만 그러한 명칭만 있을 뿐이며 이것이 단바라밀에 해당한다. 단바라밀이란 가진 것을 지니고 보시하면서 마음으로 이 공덕을 지니기를 염원하면서 보시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기를 염원하면서 그 보시가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같아진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한 사람에 해당되며 그가 행한 반야바라밀은 그것이 구화구사라가 된 것이다.
또 시바라밀(지계바라밀)의 증감도 생각하지 아니하며 다만 시바라밀이란 명칭만 있을 따름인 것이 곧 시바라밀이며, 이는 계율을 지키면서 마음으로 이 공덕을 베풂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겠다고 염원하는데, 그 베푼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같아진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한 사람이 된다.
찬제바라밀ㆍ유체바라밀ㆍ선바라밀도 역시 그렇다.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수행한 사람이다. 또 반야바라밀의 증감도 생각하지 아니하며 오직 그러한 명칭만 있다고 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반야바라밀이란 곧 지혜로 발심하는 일이며 이 공덕을 지니고 베풀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겠다고 염원하고 그 베푼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같다면 이는 능히 반야바라밀을 베푼 사람이다.”
005_0665_c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베푸는 일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해당하며, 이것은 불어나지도 아니하며 줄어들지도 아니하는 것에 해당한다. 늘 이 생각을 따르면서 끝내 행을 떠나지 아니한다면 지금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수보리여, 그 본래 어떤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은 미칠 수 없는 경계이며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아니한다. 이를 깊이 생각하고 잊지 아니하는 것이 잃어버리는 것이 없는 것[無所失]에 해당하며, 이것이 줄어들지 아니하는 바라밀에 해당된다. 이 보살마하살이 이것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앉을 자리에서 떠나는 일이 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지닌 마음은 처음 발심하였을 때 곧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됩니까? 그렇지 아니하면 마지막 마음[後心]을 지닐 때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됩니까? 처음 발심한 마음과 마지막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에는 상대성이 없습니다. 마지막 마음에도 처음 발심한 마음에도 상대성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공덕으로 이러한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등불의 심지가 타오르는 것과 같다. 그 심지의 작용으로 처음 불을 밝혀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 작용의 마지막에 불을 밝혀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처음 밝혀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니며 또한 처음 작용을 벗어나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 밝혀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으로 밝힌 작용을 벗어나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와 같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와 같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처음 발심할 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이 아니며, 또한 처음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아니다. 또 마지막 마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다.”
005_0666_a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처음 발심이 작용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음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 마음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마지막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경우 앞에서 일어났던 마음은 소멸되었겠는가? 또 뒤에 일어난 마음은 다시 생긴 마음이겠는가?”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08L“云何,須菩提!前心爲滅耶?後心復生耶?”須菩提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보리여, 마음이 처음 생긴 것은 소멸하겠느냐, 아니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그러한 법은 생멸하는 법이 됩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09L“云何,須菩提!心初生者爲滅不?”須菩提言:“其法爲滅法。天中天!”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 법이 곧 소멸될 법이라면 그것이 소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1L“云何,須菩提!其法當所滅者,寧可滅不?”須菩提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것이 본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과 같이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혹 머물고자 한다면 곧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005_0666_a_13L“云何,須菩提!寧可住如本無?”須菩提言:“其欲住者,當如本無。”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설사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에 머물게 하더라도 장차 거기에 다른 것이 없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4L“云何,須菩提!設令住如本無,將無有異?”須菩提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경계는 매우 깊은 경계가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매우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6L“云何,須菩提!本無爲甚深不?”須菩提言:“甚深。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곳에 마음이 있었다고 하겠느냐, 아니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7L“云何,須菩提!本無爲有心不?”答言:“無有。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것과 다른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9L“云何,須菩提!能有異本無有心者不?”答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것에서 마음을 보겠느냐, 아니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20L“云何,須菩提!本無見意不?”答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혹 이런 행을 짓는다면 그 행은 깊은 행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혹 이런 행을 짓는다면 그것은 행하는 것이 없는 것이 됩니다. 천중천이시여, 왜냐 하면 이 행을 지으면 보이지 아니하는 행이며 볼 수 없는 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 행의 진리란 것은 행을 생각하는[想] 일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b_03L“云何,須菩提!其行諦者,爲行想不?”答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인식[識]을 생각하고 염두에 두겠느냐, 두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b_05L“云何,須菩提!菩薩摩訶薩爲識想念不?”答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인식[識]을 생각하지 않고 염두에 두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라면 이런 일을 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005_0666_b_06L“云何,須菩提!爲不識想念爲念?”須菩提言:“菩薩摩訶薩而不爲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도 법을 얻고 법에 응하여 수행하여 모든 불법이 구족되었다면 그 사람은 성문승이 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는 무상(無想) 즉 아무 생각이 없는 데서 탐내는 것이 없습니다.”
그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도 3사(事 : 戒ㆍ定ㆍ慧)ㆍ삼매(三昧)ㆍ염원(念願)ㆍ해탈문(解脫門)ㆍ공공(空空)ㆍ무상무상(無相無相)ㆍ무원무원(無願無願)을 향하면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으니, 반야바라밀은 낮에도 밤에도 이익이 있으며 꿈속에서도 이익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말씀에 낮이나 밤이나 꿈속이나 모두가 같고 다른 것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낮에 반야바라밀을 잊지 않고 생각한다면 밤에 꿈속에서도 또한 갑절이나 더 반야바라밀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수보리여, 만약 꿈속에서 지은 일이 있다면 그것에도 소유(所有)자가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005_0666_b_19L舍利弗言:“云何,須菩提!若於夢中有所作,寧有所有不?”答言:“不。”
사리불이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법의 설법도 역시 꿈속에서의 소유물(所有物)과 같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꿈속에서 지은 일이 거룩한 일이었다면 꿈을 깨고 나면 크게 기쁘니 이는 이익이 되는 꿈이지만, 꿈속에서 지은 일이 만약 악한 일이었다면 깨고 나서 기쁘지 아니한 것이니 이는 손해가 되는 꿈입니다.”
005_0666_c_02L사리불이 말하였다. “가령 꿈속에서 살생한 일이 있었는데도 그의 마음은 크게 기뻤고, 깨고 나서도 말하기를 ‘나는 살생을 했지만 이는 크게 통쾌한 일이었다’라고 한다면 이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거짓이 아닌 것에는 모두 인연이 있습니다. 마음이 비어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침 인연하는 것이 있게 되면 그것이 듣는 것이든 보는 것이든 생각한 것이든 깨고 나면 곧 이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는 까닭에 사람의 마음에 집착하는 곳이 있게 하고, 거기에서 곧 얻는 것이 있게 됩니다. 무엇을 얻는 것이라 말하는가 하면, 그 인연한 곳에 따라 마침내 그 죄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연이 없는 것으로부터는 그 죄를 받지 아니하나니,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보시를 하고 이 보시를 간직하여 더불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게 된다면 이 보시는 보시한 공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위대하신 미륵보살마하살님이 지금 우리 가까이에 계시며, 그는 조만간 부처님 자리를 대신하실 분이니 그대가 질문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곧 지혜가 일어나 의심을 멀리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아뢰었다. “지금 제가 질문한 일을 수보리가 말하기를, 위대하신 미륵보살님은 곧 이를 풀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의 이름이 미륵인 것처럼 마땅히 풀어야 할 의문은 색으로 풀어야 할 것은 색으로 풀고,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으로 풀어야 할 것은 인식함으로 풀어야 한다. 색이란 것은 곧 공허한 것이니 이는 마땅히 무소유로 이를 해석하여야 한다. 만약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공(空)으로 해석할 경우 또한 밝혀지는 법도 없으니 마땅히 풀어야 할 의문은 무엇이겠습니까? 얻는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해석하여도 역시 밝혀지는 법은 없으니 이 해석에서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005_0667_a_02L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아뢰었다. “말씀하신 것은 이미 증험(證驗)을 얻은 것에 해당됩니까?”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 법은 증험을 얻은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사리불은 곧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륵보살이 들어간 경지의 지혜는 매우 깊다. 그 까닭은, 반야바라밀을 얻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이여, 그가 능히 아라한이 된 것을 볼 수 있느냐, 아니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7_a_04L佛言:“云何,舍利弗!若能見彼作羅漢者不?”舍利弗言:“不。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그와 같다. 보살은 결코 ‘나는 이 법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다’ 또는 ‘나는 이 법에서 수기를 얻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만약 이 법에서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되면 스스로 아유삼불(阿惟三佛)의 경지를 이루게 되나니, 이 보살마하살은 그가 지은 이 작위(作爲)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 그는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이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이 되며 이 보살마하살은 이것으로 두려운 것이 없게 된다. 왜냐 하면 만약 대단히 심하고 어려운 재난이 있는 곳, 호랑이나 이리가 우글거리는 곳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서워하지도 아니하며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이르기를 ‘설사 나를 잡아먹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곧 그들을 위하여 내 몸을 보시하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완전히 갖추어진 단바라밀을 행하는 일이며, 이 경지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깝다. 이 경지에서는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게 하여 그 국토 안에서는 금수(禽獸)의 도(道)는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크게 혹독한 도적들이 있는 가운데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이 보살은 역시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무서워하지도 아니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설사 그 속에서 죽게 되더라도 마음속으로 혼자 염원하면서 이르기를 ‘나의 몸이 때마침 버릴 때를 당하였구나. 설사 나를 죽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성내고 노여워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족된 인욕이며 찬제바라밀을 행하는 일이라 곧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경지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 그 국토 안에는 도적이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005_0667_b_02L또 만약 보살마하살이 크게 물이나 장(漿 : 마실 것)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역시 마음에 두려움과 무서움이 없이 마음속으로 염원하고 혼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의 생각이 모두 덕이 없기에 물과 장이 없게 한 것이니,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 그 국토 안에는 항상 여덟 가지 맛이 나는 공덕수(功德水)가 있게 하여 모든 사람이 이를 사용하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간 사람에게 염원을 작용하는 까닭에 이 보살은 항상 정진하게 되는 것이다.
또 만약 보살마하살이 곡식이 귀한 곳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역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서워하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이르기를 ‘나는 마땅히 그 정진을 굳게 지켜, 스스로 이루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고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었을 때, 나의 국토 안에서는 악한 일이 없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곳에 있으며, 음식을 먹으면서 모든 음식이 그들 앞에 있게 하여 마치 도리천 위에 있는 세계와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염원한다. 이 선남자는 그의 염원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까닭에 정진하게 되며,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룩하여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또 만약 이 보살마하살이 악한 도적 속에 있게 되더라도 역시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며 무서워하지도 아니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곧 고통이 될 법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용을 하는 까닭에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설사 나의 몸이 병을 만나 죽게 된다 하더라도 마음에 다른 생각이 없고, 반드시 곧 정진하게 될 것이라 믿으며 ‘원컨대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아유삼불이 되었을 때 그 국토 안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악하고 더러운 것이 없고 죽어 없어지는 사람이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된다. 이 보살마하살이 말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고 다른 것이 없다.
또한 사리불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오래지 아니하여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스스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룩하여 스스로 그의 법문에서 무서워하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가장 궁극의 본지(本地) 때부터 그 이후 줄곧 발심하고 부처님 이름을 부르며 부처님 말씀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 궁극의 본지라는 것은 결코 오랜 세월이 아니다. 본지의 끝이란 시간의 개념이 수많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 오래 되고 먼 시간이 되기도 하고, 크게 오래된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마음은 마치 한 번 회전하는 사이처럼 가까이 느껴진다. 이것이 궁극의 본지이다. 이 보살마하살은 지금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져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는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아니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05_0667_c_02L그때 한 우바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앞으로 나와 부처님을 위하여 절을 하고 길게 꿇어 엎드려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었으나 무섭지도 아니하고 두렵지도 아니하였습니다. 훗날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모든 사람들도 무섭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게 하겠습니다.” 그때 때맞추어 부처님께서 웃으시니 입 안에서 5색의 광명이 뻗어 나왔고, 웃음을 멈추니 이 우바이는 곧 금빛 꽃을 지녔다가 부처님 위에 뿌렸고, 부처님의 위력과 신통력이 작용하여 그 꽃이 부처님 위에 있으면서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이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의복을 바로잡고 앞으로 나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물러나서 길게 꿇어 엎드려 여쭈었다. “달살아갈께서 웃으신 것은 그냥 웃으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가조우바이(恒架調優婆夷)는 훗날 미래의 세계, 그 겁(劫)의 이름을 성수겁(星宿劫)이라 할 것인데, 아마도 그 겁 속에서 부처가 될 것이며 그 부처의 이름은 금화불(金華佛)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우바이는 훗날 아마도 여자의 몸을 버리고, 다시 남자의 몸을 받아 아촉불국(阿閦佛國)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4)3해탈문을 말한다. 곧 ①공해탈(空解脫) :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 인연(因緣)ㆍ화합(和合)으로 생긴 것이고, 본래 실체(實體)와 자성(自性)이 없어 공(空)하다고 관(觀)하는 것. ②무상해탈(無相解脫) : 모든 법(法)의 무상(無相)을 보고 집착과 번뇌와 차별(差別)의 상(相)을 떠났다고 관(觀)하는 것. ③무원해탈(無願解脫) : 모든 법(法)을 관(觀)하고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관혜(觀慧)와 함께 일어나는 정심(定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