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5_0658_b_01L마하반야초경 제4권
005_0658_b_01L摩訶般若鈔經卷第四

담마비ㆍ축불념 공역
이창섭 번역
005_0658_b_02L秦天竺沙門曇摩蜱共竺佛念譯

7. 본무품(本無品)
005_0658_b_03L本無品第七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모든 법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법어(法語)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모든 법에 손상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 실마리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법의 모습은 장애물이 없으며 허공의 법과 같이 생겨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모두 생겨난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법이 생기는 과정이기 때문에 얻을 수 없습니다.”
005_0658_b_04L須菩提白佛言諸法隨次者天中天是爲法語故曰無所損諸法者爲無有端其法相者爲無所㝵如空法者爲無所生諸所生不可得是爲法生故無所得
그때 모든 욕계의 천신과 모든 범천의 천신들도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적멸(寂滅)이라 하신 것은 곧 부처님의 제자인 존자 수보리가 이미 지금 말씀하신 것으로 모두 공(空)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005_0658_b_09L諸欲諸梵天子俱白佛言其寂者卽佛弟子今尊者須菩提所說者悉空
수보리가 모든 천신의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말한 것이 달살아갈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 된다.”
005_0658_b_11L須菩提語諸天子言爲隨怛薩阿竭教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어떻게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인 것을 알았느냐?”
수보리가 다시 말하였다.
“달살아갈처럼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다는 것[本無], 이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모든 과거ㆍ미래ㆍ현재도 모두 본래부터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005_0658_b_12L佛言云何須菩提知隨怛薩阿竭教須菩提復言如怛薩阿竭本無是爲怛薩阿竭教諸過去當來現在悉爲本無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법을 따르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다. 모든 법도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이 본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달살아갈이란 존재도 본래부터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일체의 모든 것이 어떤 것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본래 없었다고 하는 것, 이것이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라고 한 것이며 여기에 다른 점이란 없다. 본래 무라는 법칙을 따르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며, 다른 것이라고는 어떤 것도 없다.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다는 진리를 따르는 일이다.
005_0658_b_15L佛言隨本無者爲隨怛薩阿竭教諸法亦本無如諸法本無怛薩阿竭亦本無一切本無悉爲本無是爲須菩提以隨怛薩阿竭教無有異隨本無者是爲怛薩阿竭教不異無有異隨怛薩阿竭者爲隨本無
005_0658_c_02L‘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은 이것이 달살아갈이 세운 원칙이며, 수보리가 세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달살아갈이 본래부터 어떤 것도 가로막는 장애가 없었던 것처럼 모든 법도 본래부터 어떤 것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으로 그것으로 달살아갈처럼 본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법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다. 다같이 본래 어떤 것도 없었다는 사실에 다른 점은 없다.
005_0658_b_21L本無者是爲怛薩阿竭立須菩提之所立爲隨怛薩阿竭教如怛薩阿竭本無無所㝵諸法亦本無無所㝵是者須菩提爲隨怛薩阿竭教以如怛薩阿竭本無者於法亦本無一本無等無異
아(我) 즉 아자재(我自在), 나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아니한다는 것은 또한 자연 그대로 어떤 작용도 받지 아니하였다는 것[無作]이며,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도 자연 그대로 어떤 작용도 받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모두 본래 무이며 또한 본래 무도 존재하는 것이 없다.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본래 나라는 존재도 그렇게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가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은, 달살아갈처럼 본래 어떤 것도 없고 다르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법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으며 다르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란 없었다.
005_0658_c_05L我者亦無作者本無亦無作者一切皆本無亦復無本無如本無本無我者亦爾故須菩提爲隨怛薩阿竭教如怛薩阿竭本無不異無有異是故諸法亦本無不異無有異
이것이 달살아갈의 본래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에 해당되며 이는 또한 허물어지지도 아니하고, 썩지도 아니하며 나의 것으로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이며, 달살아갈은 모든 법과 더불어 본래 어떤 것도 없었고 다른 것이 없었으며, 이는 다름없는 본래의 무이며 다른 본래의 무란 존재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본래부터 어떤 것도 없었다.
005_0658_c_10L是爲怛薩阿竭本無亦不壞不腐不可得是者須菩提爲隨怛薩阿竭教怛薩阿竭與諸法俱本無無亦無異本無亦不有異本無悉皆是本無
수보리의 말처럼 이 본무를 따르는 사람은 이것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깨달음에 들게 될 것이며, 또한 들어갈 깨달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 된다. 달살아갈이란 본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한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존재도 아니며, 또한 모든 법도 아니어서 모두가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과거도 미래도 지금 현재도 없는 것이다.
005_0658_c_14L如須菩提所隨者以入不可計人亦復無所入是爲隨怛薩阿竭怛薩阿竭者是爲本無亦不過去當來今現在及諸法悉皆本無無過去當來今現在
005_0659_a_02L이와 같은 것이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이며 달살아갈이 본래 존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을 곧 달살아갈의 가르침이라 한 것이다. 달살아갈이란 곧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며 미래도 본무며 과거도 본무며 달살아갈의 가르침도 본무이다. 미래의 본무인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본무에 해당되며 현재의 본무인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본무에 해당한다.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가 본무인 것처럼 달살아갈의 가르침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이다.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가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처럼 달살아갈의 가르침은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에 해당한다.
005_0658_c_18L如是者須菩提爲隨怛薩阿竭教以如來本無者曰怛薩阿竭教怛薩阿竭者卽是本當來亦本無過去亦本無現在亦本無以隨過去本無怛薩阿竭教是爲本無以隨當來本無怛薩阿竭教是爲本無以隨現在本無怛薩阿竭教是爲本無以如過去當來今現在本無怛薩阿竭教是爲本無以如過去當來今現在本無怛薩阿竭教是爲本無
이는 다같이 다른 것이 없으며 모든 법도 이처럼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수보리도 다같이 다름없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며 평등하고 다름이 없다고 말한 내용이다. 이것이 진실한 보살의 본무가 되며 스스로 아유삼불을 이루는 길이며, 또한 다같이 본무의 경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여여(如如)한 본무의 경지로서 곧 본무여래(本無如來)의 이름과 경지를 얻게 되며, 곧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달살아갈은 이 본무에 인연하여 부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가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005_0659_a_05L等無異如諸法本無是者須菩提等無異爲隨怛薩阿竭教等無是爲眞菩薩之本無自致阿惟三亦俱等本無以如本無者便得本無如來名地卽爲六反震動怛薩阿竭因是本無而得成是故須菩提爲隨怛薩阿竭教
또한 수보리여, 색을 따르지 아니하고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을 따르지 아니하며, 수다원의 도(道)도 따르지 아니하고 또한 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의 도와 벽지불의 도도 따르지 아니하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니라.”
005_0659_a_11L復次須菩提爲不隨爲不隨痛痒思想生死識亦不隨須陁洹道亦不隨斯陁含阿那含羅漢辟支佛是者須菩提爲隨怛薩阿竭教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본무란 것은 매우 깊은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본무는 매우 깊은 진리이다.”
005_0659_a_15L舍利弗白佛言本無者甚深天中天佛言如是本無實甚深
부처님께서 본무를 설법하셨을 때 300명의 비구들은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고, 500명의 비구니들은 모두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500명의 여러 하늘의 천신들과 하늘 나라 사람들은 모두 생긴 곳이 없는 법락(法樂)과 법인(法忍)을 얻기에 이르렀으며, 60명의 보살들이 모두 아라한의 도(道)를 얻었다.
005_0659_a_16L說本無時三百比丘皆得阿羅漢五百比丘尼皆得須陁洹道五百諸天及人悉逮得無所從生法樂忍六十菩薩皆得阿羅漢道
005_0659_b_02L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들 보살은 과거 500의 부처님께 공양을 마치고 모두가 보시를 하였고 청정한 계율을 지켰으며 욕된 일을 참는 공부를 이루었고 그들이 지은 정진으로 선정을 충족시켰으나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함으로써 비록 이 보살마하살에게 도(道)에 뜻이 있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구화구사라에서 벗어난 사람은 중도에서 그것을 궁극의 진리라 생각하고 그것을 증험으로 삼아 성문의 과보를 얻는 데 그치게 된다.
005_0659_a_20L佛語舍利弗是輩菩薩供養過去五百佛已皆作施與於淨戒成於忍辱所作精進定足於以不得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雖是菩薩摩訶薩有道意入空無相無願離於漚和拘舍羅者便中道爲本際作證得聲聞
사리불이여, 가령 여기에 큰 새가 있다고 하자, 그 몸의 크기는 혹 4천 리가 되기도 하고 8천 리ㆍ만 2천 리ㆍ만 6천 리ㆍ3만 리에 달하기도 하는데, 이 새가 도리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이 염부리에 이르고자 할 경우 이 새는 새이면서 날개가 없는데도 도리어 도리천 위로부터 스스로 몸을 내던져 아래로 내려온다면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새가 중도에서 다시 도리천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돌아갈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005_0659_b_03L譬如有大鳥舍利其身若四千里若八千里若萬二千里若萬六千里若三萬里從忉利天上欲來下至閻浮利地是鳥而無反從忉利天上自投來下云何利弗是鳥欲中道還上忉利天上能還不
이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돌아갈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舍利弗言不能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새가 염부리에 내려와서 그 몸을 아프지 아니하게 하고자 한다면 아프지 아니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그 새는 내려오면 몸이 안 아플 수 없고, 혹 죽거나 당장 지극히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몸이 몹시 크지만 날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005_0659_b_09L佛言是鳥來下至閻浮利地欲令其身不寧能使不痛舍利弗言不能天中其鳥來下身不得不痛若死若當悶極何故其身甚大而反無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이여, 바야흐로 보살마하살들로 하여금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 많은 영겁의 세월 동안 보시를 하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욕된 일을 참는 공부를 이루고, 지은 정진으로 선정이 충족되어 발심이 매우 커서 모든 진리를 한꺼번에 끌어당겨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고자 하더라도,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한 사람은 곧 중도에서 떨어져 성문과 벽지불의 길목 위에 있게 될 것입니다.
005_0659_b_13L佛言如是舍利弗正使菩薩摩訶薩如恒邊沙劫作布施護於淨戒成於忍辱所作精進定足於禪發心甚大欲摠攬一切成阿惟三佛不得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者便中道墮落在聲辟支佛道地
005_0659_c_02L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 계신 곳에서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삼매에 들지 아니하고, 지혜이건 해탈의 지혜이건 소견의 지혜이건 어떤 지혜도 얻지 못하였으면서 도리어 생각[想]을 짓게 된다면, 이는 달살아갈의 계율과 삼매와 지혜와 해탈지견을 지니지 아니한 사람이 되며 달살아갈이 된 까닭을 모르면서 깨우쳐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다만 허공의 소리만 듣고 이를 마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간직한 것처럼 생각하고, 이것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알음알이를 짓고자 하지만 이를 얻을 수 없고, 곧 중도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길이 있는 땅에 떨어져 있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005_0659_b_19L如是舍利弗菩薩摩訶薩於過去當來今現在佛所爲不持戒三昧若智慧若脫慧若見慧反作想是爲不持怛薩阿竭戒三昧智慧若脫慧若見慧爲不知怛薩阿竭故而曉知但聞空聲想之如所聞持欲作阿耨多羅三耶三菩會不能便中道在聲聞辟支佛道地何以如是爲不得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故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부처님께서는 혹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떠난 사람은 곧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고자 하는 보살마하살이 있다면 곧 똑똑하게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005_0659_c_05L舍利弗白佛言我念佛之所其離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者便不能自致阿耨多羅三耶三菩有菩薩摩訶薩欲得阿耨多羅三耶三菩阿惟三佛者當黠學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
그때 욕계의 모든 천신들과 색계의 모든 천신들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의 뜻은 매우 깊어 깨우치기도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욕심 없이 고요하게 앉아 있는 사람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천신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반야바라밀의 뜻은 매우 깊어 깨닫기 어렵다. 고요히 있어서는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한다.”
005_0659_c_10L諸欲天諸色天子俱白佛言般若波羅蜜者甚深難曉難泊然者不得阿耨多羅三耶三菩佛語諸天子言如是般若波羅蜜者甚深難曉了泊然不得阿耨多羅三耶三菩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이란 깨닫기 어렵습니다. 천중천이시여, 그러나 저의 생각에는 이 지혜는 혹 욕심 없이 고요히 있는 사람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여기가 아닌 곳에서도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법은 공(空)이며 작용이 없는 자연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유삼불이 쓰는 것은 법공(法空)이기 때문에 법에 있어서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005_0659_c_15L須菩提白佛言般若波羅蜜者難曉了天中天如我念是慧其爲泊然者乃能得阿耨多羅三耶三菩何以故亦不於是有得阿惟三佛者故曰法空無作阿惟三佛用法空故於法亦不能得
곧 아유삼불이 되려 하는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법이 모두 공(空)이어야 하며. 법에서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법에서 말하는 무작아유삼불(無作阿惟三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공(法空)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무작아유삼불은 곧 무득아유삼불(無得阿惟三佛)이기도 합니다. 혹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천중천이시여, 그 사람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아니하고 고요히 있어도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005_0659_c_20L當作阿惟三佛者諸法悉空於法無所有是爲法語作阿惟三佛故曰法空無作阿惟三佛者亦無得阿惟三佛者其念一切諸法悉空隨是者天中天而泊然得阿耨多羅三耶三菩成阿惟三佛
005_0660_a_02L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말대로 고요히 있으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다면 이것을 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공(空)의 경계에서는 ‘나는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아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법이라면 쉽게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게 되나니 왜냐 하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보살들이 자리를 바꾸어 되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러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은 욕심 없이 고요한 것이 되지 아니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005_0660_a_02L利弗謂須菩提如所說者泊然得阿耨多羅三耶三菩是爲甚難何以故空不念我當作阿耨多羅三耶三菩成阿惟三佛如是法者易得阿惟三何以故如恒邊沙等菩薩云何轉須菩提言當作是知不爲泊然者難得阿耨多羅三耶三菩
다시 수보리는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색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작용을 하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사리불은 대답하였다.
“얻지 못합니다.”
005_0660_a_09L須菩提謂舍利弗用色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으로 되돌아가는 작용을 하여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할 수 없습니다.”
005_0660_a_11L用痛痒思想生死識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다른 색의 세계가 있어 거기서 법을 얻어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지을 수 없습니다.”
005_0660_a_12L有異色得法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다른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이 있어 그것에서 법을 얻어, 그 세계로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합니까?”
“얻을 수 없습니다.”
005_0660_a_14L能有異痛痒思想生死識得法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색이란 본래 없는 것이지만 그 없는 것에 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못합니다.”
005_0660_a_16L色本無寧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본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그곳에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못합니다.”
005_0660_a_17L痛痒思想生死識本無寧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능히 다른 세계의 색이 있어 그것도 본래 무(無)라는 사실을 법에서 얻어 그곳으로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지을 수 없습니다.”
005_0660_a_19L云何舍利弗能有異色本無於法得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능히 특별하게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이 있어 그것도 본래 존재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법에서 얻고, 그곳으로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합니까?”
“이루지 못합니다.”
005_0660_a_21L能有異痛痒思想生死識本於法得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答言
“사리불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본래의 무위(無爲)의 세계에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지 못합니까?”
“짓지 못합니다.”
005_0660_a_23L云何舍利弗本無爲還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005_0660_b_02L“능히 특별한 본무(本無)의 세계가 있어 법에서 그 경지를 얻어 그곳으로 되돌아가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합니까?”
“얻을 수 없습니다.”
005_0660_a_24L能有異本無於法得還不作阿耨多羅三耶三菩答言
“가령 이 법에서 얻지 못한다면 어느 법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어야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룹니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말한 대로라면 법에는 보살이 되돌아 갈 곳은 없습니다.”
005_0660_b_03L設於是法不得何所法還者作阿耨多羅三耶三菩舍利弗謂須菩提如所說法無有菩薩還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세 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불연보살(佛衍菩薩)이며 이 경우에는 세 가지 공덕을 헤아리지 아니합니다.”
수보리가 말한 것과 같이 분뇩문타니불(分耨文陀尼弗 : 부루나)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수보리가 말한 일도(一道)에 관해서 마땅히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005_0660_b_06L須菩提言菩薩之人而有三德怛薩阿竭所說一者佛衍菩薩而不計三如須菩提所言分耨文陁尼弗語舍利弗須菩提所說一道者而當問之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수보리여, 말씀하신 바, 일도인 불연보살에 관한 일을 묻고자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가운데서 세 가지 길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곧 성문ㆍ벽지불의 길입니다.”
005_0660_b_10L舍利弗謂須菩提欲問所說一道佛衍菩薩事須菩提欲問所說一道佛衍菩薩事須菩提言云何舍利於本無中能見三道是爲聲聞支佛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가운데서는 두 가지 일을 얻는 것을 보지 못한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리불이여,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은 오직 하나가 되는 것인데, 그렇지 아니하기 때문에 ‘얻는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진리를 듣게 되면,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하게 되고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모여서 보살의 경지를 이루게 되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고 다른 이치는 없다. 그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신통력이 이룩한 것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본무(本無)법문과 다름이 없다. 만약 보살이 마음에 게으름이 없다면 모여들어 보살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005_0660_b_14L佛語舍利弗言不見本無中得二事者須菩提言云何舍利弗本無者爲一不是故曰得若菩薩摩訶薩聞本無心不懈怠是菩薩摩訶薩會致至菩薩佛言善哉善哉須菩提所說無異悉佛威神之所致是爲菩薩摩訶薩本無無有異若菩薩心不懈怠會至菩薩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는 것이 보살이 되는 일이다.”
005_0660_b_21L舍利弗白佛言何謂爲菩薩佛語舍利弗成阿耨多羅三耶三菩則是
005_0660_c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라 하며 이를 이루고자 하면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고 내다보고 그 마음에 다름이 없고 해칠 뜻이 없다고 보고 자비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만약 몸에 다름이 없다면 그 마음도 유연해지고 그 마음에 애처로움이 더해져서 그 마음에는 노여움이 없어지고,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지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어져 사람들을 보기를 부모와 다름없이 보게 된다. 이 마음이 보살마하살이 머무는 마음이며 마땅히 이런 배움을 지어야 하느니라.”
005_0660_b_23L須菩提白佛何謂菩薩摩訶薩欲成者云何住佛言視一切人皆等其心不異無有害意以慈心向人若身無異其心柔軟其心加哀其心無瞋恚無所㝵心無所嬈心之若父母無異是心菩薩摩訶薩所當作是學

8. 아유월치품(阿惟越致品)
005_0660_c_06L摩訶般若波羅蜜阿惟越致品第八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유월치(阿惟越致 : 불퇴전)의 지위(地位)에 오른 보살마하살은 곧 무엇으로 그 모습과 행을 비교해 보아야,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인 줄을 알게 됩니까?”
005_0660_c_07L須菩提白佛言阿惟越致菩薩摩訶當何以比觀其相行知是爲阿惟越致菩薩摩訶薩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범인과 성문승ㆍ벽지불 내지는 달살아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도의 경지에서 모든 것이 본래 없었다는 법문을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또한 다른 마음이 없다면 그 법에 있어서도 본래 어떤 것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경지에서의 본무(本無)인 것이며, 이것이 곧 들은 그대로 제도하고 수행을 바꾸지 아니하며 또한 의심도 하지 아니하며 옳다고도 말하지 아니한다. 잘못이라고도 말하지 아니하며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상태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에게는 그 행위에 잘못된 곳이 없고 그 하는 말은 경솔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중도(中道)의 바른 말만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짓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바라보거나 관심 있게 비추어 보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비교하면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곧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0_c_10L佛語須菩提於凡人及聲聞辟支佛乃至怛薩阿竭道聞悉本無而不動搖亦無有異其法亦本無是爲本無於不動搖卽爲度如所聞不轉亦不有疑亦不言是亦不言非如本無者爲無所失其所語不輕不說他事但說中正人有所作亦不觀視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
005_0661_a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사문(沙門)이나 바라문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더라도 ‘이것은 사문이다’, ‘이것은 바라문이다’라고 구별하여 모든 것을 밝고 환하게 알고, 끝내 그들의 사당에 참배하여 무릎을 꿇고 절하지 아니하며, 그 밖의 천신들에게도 꽃과 향을 지니고 가서 이들에게 바쳐 올리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비교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곧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또 수보리여, 이들은 끝내 악(惡)한 곳에 태어나지 아니하며 여자의 몸이 되지 아니한다. 이렇게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0_c_19L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者不形沙門婆羅門面類是爲沙是爲婆羅門所見知悉諦了終不祠祀跪拜餘天不持華香而奉上之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終不生惡處不作婦人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끝까지 10선(善)을 떠나지 아니한다. 몸이 스스로 살생을 하지 아니하게[不殺生] 되고, 다른 사람도 살생하지 아니하게 하며, 자신 스스로도 도둑질하지 아니하며[不偸盜], 음행하지 아니하며[不婬行], 결코 한 혀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아니하며[不兩舌], 욕지거리를 하지 아니하며[不惡口],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며[不妄語], 비단같이 꾸며서 말하지 아니하며[不綺語], 질투하지 아니하며[不妬嫉], 탐내지도 아니하고[不貪餘], 그밖에도 의심하거나 어지럽게 행동하지 아니한다[不疑亂]. 자신 스스로 바른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바른 길을 지키게 한다. 이것이 10선(善)이다. 또 꿈속에서도 스스로 이 10선을 지키고 잃지 아니한다. 이것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의 꿈 속 얼굴에서도 저절로 10선이 나타나는 이유이다. 이렇게 비교하면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a_04L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終不離十善身自不殺教人不殺身自不盜不婬不兩舌不惡口不妄言不綺語妒嫉不貪餘不疑亂身自作正教人守正是爲十善又於夢中自護不失十善是爲阿惟越致菩薩摩訶薩於夢中面自見十善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마하살은 마음에서 배운 법을 간직하여 모든 사람들을 안온하게 하고자 이들을 위해 모조리 말하니 이것이 법보시(法布施)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모두 법이 있는 것을 얻게 하니 이것이 곧 모든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a_12L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心所學法持欲安隱一切人悉爲說是爲法施令一切皆得法所是卽爲法施於一切如是比觀其相行具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005_0661_b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은 임금이나 사람들 가운데 영웅과 같아서, 그들이 간직한 명성과 지혜로 깊은 뜻이 담긴 설법을 듣게 되면 끝내 의문이 있을 수 없고, 의문이 없으니 믿지 아니한다고 말하지 아니하게 되며, 그들이 하는 말은 부드럽고 연하며 그들이 하는 말은 꿀같이 달게 들리며, 또한 졸리거나 눕는 일이 적고, 출입하고 걸음을 걸어가도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아니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편안한 걸음걸이로 발을 들어올렸다가 땅을 밟으며, 또한 그들이 입은 옷 속에는 벼룩이 없고 항상 정결하여 먼지나 때묻은 곳이 없고, 또한 근심걱정이 없으며 몸 속에 80가지 벌레가 하나도 없다. 그 까닭은 이 보살마하살에게 있는 공덕은 세간의 공덕을 넘어 그 위로 벗어나서, 조금씩 그 가득한 경지를 이루고자 하여 그 공덕이 더욱 갑절이나 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의 몸은 청결하고 마음도 청결한 것이다.”
005_0661_a_17L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王者爲人中之雄持所知名慧聞說深法終不有疑不有疑不言不信言柔軟所語如蜜復少睡臥出入行步其心不亂徐行安步擧足蹈地擇地而行及所被服衣中無蚤常而淨潔無有塵垢亦無有憂身中都無八十種虫所以者何是菩薩摩訶薩所有功德過出世閒功德上稍稍欲成滿其功德轉倍故其身淸淨心亦淸淨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의 마음이 청결하며 그것은 어떻게 알게 됩니까?”
005_0661_b_04L須菩提白佛云何天中天菩薩摩訶薩心淸淨當何以知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이 짓는 공덕이 더욱 갑절로 많아지면 점차 조금씩 최상의 공덕에 접근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그 마음도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아니하는 자유자재한 경지를 이루면서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지고, 그 공덕이 모두 마음에 미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마음이 청정해지고 성문과 벽지불의 도의 경지를 넘어서게 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음의 청정에 해당한다. 이렇게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하면 곧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b_06L佛語須菩提薩摩訶薩所作功德轉倍益多稍稍極上其心自在而無所㝵其功德悉逮心故淸淨過聲聞辟支佛道地爲菩薩摩訶薩心淸淨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은 재물을 구하지 아니한다. 만약 부처님께 공양을 드릴 경우 아끼고 인색하지 아니하며, 만약 부처님께서 깊은 뜻을 말씀하실 경우 싫어하는 일이 없이 지극히 바른 행동을 하며, 혹 깊은 뜻이 담긴 법문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간직하고 있는 『반야바라밀경』으로 이들을 위하여 말해준다. 혹 다른 도를 작용하거나 세간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지니고 있는 『반야바라밀경』을 위주로 하여 이들을 바로 잡는다. 혹 그것을 해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야바라밀로써 이를 풀이해 준다. 이렇게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하게 되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b_11L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不求財物若供養者無有慳貪說深法時無有厭極正作在知其欲聞深法持般若波羅蜜爲說之其有作餘道若世事者持般若波羅蜜主爲正其不解者以般若波羅蜜便爲解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005_0661_c_02L또 수보리여, 이들을 찾아온 것이 폐마(弊魔)일 경우 문득 그들이 보살이 있는 곳에 찾아와 조화를 부려 8대니리(大泥犁 : 8大地獄)를 만들어 놓고, 한 니리(泥犁)에 조화를 부려 수많은 백천(百千)의 보살이 있게 하여 문득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부처로부터 이미 수기(授記)를 받았으며 모두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지만 지금은 모조리 니리(泥犁 : 지옥) 속에 떨어졌다. 이는 모두가 부처가 내려준 수기(授記)가 마련한 결과다. 만약 아유월치의 지위를 이루어 이미 수기(授記)를 받은 사람이라도 빨리 뉘우치고 〈나는 아유월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곧 니리 속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마땅히 하늘 위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005_0661_b_19L復次須菩提者弊魔便來致所化作八大泥犂泥犂化有若干百千菩薩便指示言是輩人者皆從佛受決已皆是阿惟越致今悉墮泥犂中皆佛之所授決設若作阿惟越致受決已者當疾悔≺我非阿惟越致≻設若言爾者便不入泥犂當生天上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꾸밈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이는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이다.”
005_0661_c_03L佛語須菩提設心不動者是阿惟越致菩薩摩訶薩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의 말에는 다른 미련이 없다. 당장 악(惡)한 곳에 태어나게 된다면 부처의 말에 차이가 있는 결과가 된다. 이와 같이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c_04L我所語者無有異設當生惡處者佛語爲有異如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악마가 변화하여 사문의 모습이 되어 사문과 같은 옷을 입고 보살마하살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말한다.
‘만약 이전에 나의 처소에서 듣고 나에게서 받은 것을 지금 모두 버리고 적용하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지금 당장 스스로 그 허물을 뉘우치거나 빨리 후회하여 나의 말을 따르게 된다면, 나는 날마다 찾아와서 문안을 드릴 것이며 만약 가령 나의 말을 채택하지 아니한다면 나는 끝까지 다시 찾아와 서로 마주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가령 이런 말을 들은 보살이 만약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그런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라. 그것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는 모두 다른 외도들이 조작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005_0661_c_07L復次須菩提弊魔化作沙門若用被服菩薩摩訶薩所言若前從我所聞我所受今悉棄捨皆不可用若今當自悔其過若疾悔之隨我言者我日日自來問訊若設不用我言者我終不復來相視若莫復說是語非佛所是皆他餘外道之造作今我所語是佛所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듣고 흔들리고 태도를 바꾸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은 과거에 부처님으로부터 수기(授記)를 받지 아니하고 이곳에 와서 보살마하살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 가운데 예를 들면 많은 보살마하살들이 아직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있으며 설사 그 경계가 흔들리고 바꾸어지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법에 대한 염원이 없고 생사윤회에 대한 생각이 없고 생사에 관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사람이다. 비유하면 비구로서 아라한의 과보를 얻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모조리 법을 밝히는 일이며 이것으로 증거를 삼는다.
005_0661_c_15L佛言聞是說而動轉者知其人不從過去佛受決來在菩薩摩訶薩擧中多有菩薩摩訶薩未在阿惟越致其界設不動轉者念法無有生死念無有生死信他人言譬若比丘得羅漢者不隨他人所言眼悉見法以爲作證
005_0662_a_02L이것이 무소유의 경지에 해당하며 이런 사람은 끝내 그 마음이 흔들릴 수 없다. 이 보살마하살의 마음도 이와 같이 흔들릴 수 없으며 성문ㆍ벽지불의 도의 경지와 같은 경지에서 생각하는 법과 대중 속에는 다시는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살운야를 향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1_c_21L是爲無所有終不可是菩薩摩訶薩亦不可動如聲聞辟支佛道地所念法衆不復還是菩薩摩訶薩正向薩芸若不可復還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악마가 보살이 있는 곳에 이르러 조화로 다른 사람[異人]이 되어 요구하는 것이 몹시 피곤하고 고달프며 살운야의 행이 아니거나 또한 부과된 책임이 피곤하고 고달픈 일을 하게 하거나 작용한다면 이 피곤한 괴로움이 작용하여 당장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가 보살도를 싫어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면 당장 다시 어느 곳에서 이 몸을 찾겠으며, 일찌감치 나한(羅漢)을 취하여 부처님의 도를 구하지 아니하겠느냐?”
005_0662_a_03L復次須菩提弊魔到菩薩摩訶薩所化作異人若所求者甚爲勤苦非薩芸若行若致負是勤苦爲若用是勤苦爲作不當自還厭當復於何所更索是軀汝何不早取羅漢用佛爲求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여기서도 흔들리고 자세를 바꾸지 아니한다면 악마는 다시 이곳을 버리고 떠나서 다시 방략을 꾸며 조화를 부려서 많은 보살이 되어 그의 옆에 서 있으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손가락질하며 이를 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 때도 만약 이 보살들이 모두 행동을 같이 하지 않고,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보살들에게 공양드리고 나서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와구와 의약품을 주어 모두를 구족하게 하고, 모두가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모조리 청정한 계율을 수행하고, 모두가 받은 일에 따라 그 가운데 담긴 지혜를 듣고, 마땅히 시행할 곳에서 그 구하는 바를 모두 배워 머무는 곳이 법과 같아도 지금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배움을 이루고 나서 이 받음을 이루고 나서 이 행을 이루고 나서도 살운야를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다른 방도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고자 하여서야 되겠느냐?”
005_0662_a_08L佛言設不動轉弊魔復棄捨去更爲方略化作若干菩薩在其邊立復生指語之若見是菩薩不皆供養如恒邊沙佛已與衣服飯食牀臥醫藥悉具足皆於恒邊沙佛所悉行淸淨戒皆從受事聞其中慧當所施行其所求者爲悉學已所住如法今皆不能得阿耨多羅三耶三菩作是學已作是受已是行已不能得薩芸若何況若欲得阿耨多羅三耶三菩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가령 여기서도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악마는 문득 그곳을 떠나 비구로 화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이들은 모두 아라한이며 과거세에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지금은 모두 아라한의 지위를 취하였지만 지금도 아직 이와 같은 비구로 있으니 당장 어느 곳을 따라야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은 다른 곳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도 계속 그 수행을 지으며 마음이 흔들리거나 바꾸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마음이 없으며 그것이 악마가 짓는 장난임을 마음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005_0662_a_18L佛言設是不動弊魔便去更化作比丘作是言語是悉羅漢過去世時皆行菩薩道悉取羅漢今是尚如是比丘若當從何所得阿耨多羅三耶三菩佛言菩薩摩訶薩雖從異處聞是言續作其行心不動轉亦無有異心覺知魔
005_0662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배워 그 행을 따르는 사람이 살운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어느 곳에서 살운야를 얻겠느냐? 부처가 말한 것에는 차이가 없다. 이 배움을 이루고 이 행을 이루어 반야바라밀과 같이 된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 가령 이 사람이 살운야를 얻지 못한다면 부처님의 말씀에 차이가 있다는 결과가 된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끝까지 사람을 속이지 아니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러한 배움을 지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을 적용하여 비교하면서 그 모습과 행동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하게 되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2_b_02L佛言若有學波羅蜜隨其行者得薩芸若當從何所得佛所語者爲無有異其作是學其作是行如般若波羅蜜者心不動搖設是不得薩芸佛語爲有異佛所語者終不有欺是菩薩摩訶薩當作是學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악마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즉, ‘살운야란 허공과 같아서 이 법은 그 가장자리나 폭을 알 수 없다. 이 법은 그 궁극을 알 수 없지만 또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왜냐 하면 아유월치의 지위란 없는 것이고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보기에는 그 법이란 도무지 모두가 공허한 것이다. 만약 그 허공에서 작용하려면 이것은 고달픈 고통뿐이며 어떤 것도 당장 깨닫고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악마가 하는 일에서 어떻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겠느냐?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005_0662_b_09L復次須菩提弊魔往到阿惟越致菩薩所作是曉言薩芸若者如是法不可得邊幅是法不可得窮極有所可得何以故無阿惟越致無得阿惟三佛者今我觀視其法盧皆空若之所作是爲勤苦不當覺知是魔所爲云何欲得阿耨多羅三耶三菩是非佛所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곳 선남자ㆍ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마땅히 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악마가 하는 일에서도 그의 마음이 바르고 곧아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다.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될 것이다.
005_0662_b_16L佛言是善男子善女人當如是知當作是念爲魔事其心正直而不動搖用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오른 보살마하살이 초선(初禪)ㆍ이선(二禪)ㆍ삼선(三禪) 내지는 사선(四禪)에 이르기까지의 삼마월三摩越 : 삼매(三昧)]를 이루고자 한다면, 이 사선(四禪)의 경지부터는 선(禪)의 종목에 기록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삼마월의 경지를 넘은 경지이다. 이는 사람들을 위한 바람[欲]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2_b_19L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欲作第一禪第二禪第三至于第四禪三摩越隨是四禪而不錄禪目爲三摩越爲人欲故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
005_0662_c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명예나 칭찬을 구하지 아니한다. 그의 이름을 만약 칭송하여 말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의 마음은 넓고 크며 오직 모든 중생들이 모두 편안하기를 염원할 따름이다. 걷거나 앉아 있거나 일어서거나 그의 마음은 어지럽지 아니하며, 세간에 출입하면서도 마음 씀씀이가 온당하고 정성스럽다. 힘있는 위치를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음욕도 지니지 아니한다. 만약 세간에 왕래하고자 할 경우에는 스스로 그 욕망을 근심하여 욕망에 대하여 항상 공포심이 있다.
005_0662_c_02L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不求稱譽其名字者若稱說者念所欲其心廣大但念一切悉令得行步坐起其心不亂出入用意當而至誠不求有力不他婬欲若欲往來自患其欲於欲常有恐怖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지나치게 큰 빈 못 가운데서 음식을 먹고자 할 경우 도적이 올까봐 두려워하여 빨리 그곳에서 떠나고자 하고, 스스로 언제나 마을이 모여 있는 안온한 곳에 이르게 되어 빨리 도적 떼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의 마음도 이와 같다. 근심과 욕망에 오고가는 마음이 있을 때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가 짓는 마음은 지어서는 안 되는 마음이며, 이는 잘못이며 모두가 부정한 것이며 나의 법이 짓는 마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악한 마음도 생각하지 아니하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안온함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005_0662_c_07L譬若男子過大空澤之中若欲飮食畏於賊盜疾欲發去自念何時當到聚落安隱之處疾得脫去阿惟越致菩薩摩訶薩亦復如是於愛欲有往來時念所作是爲不可是卽爲非皆悉不非我法之所作亦不念餘惡何以欲使一切皆得安隱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반야바라밀의 위력과 신통력이며,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임을 알게 될 것이다.
005_0662_c_14L佛言其作是皆是般若波羅蜜威神之力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005_0663_a_02L또 수보리여, 화이라원(和夷羅洹) 열차(閱叉 : 夜叉)가 항상 물러서지 아니하는 경지에 이른 보살마하살의 뒤를 따라다니니 그 밖의 다른 귀신들은 감히 이 보살의 몸에 붙을 수 없는데, 끝까지 뜻을 잃지 아니하며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아니하며 그 몸도 역시 망령되지 아니하며, 일어서면 신체가 완전히 구비되어 이지러진 곳이 없고 모자라는 곳이 없으며, 사람들의 영웅이 되고 다른 사람의 부인을 유혹하지 아니한다. 만약 부적을 만들거나 주문을 외우거나 약을 짓는 일 등은 모두 이런 행위를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도 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도 아니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살의 청정한 행이다. 남자에 관한 일도 말하지 아니하며 부인에 관한 일도 말하지 아니하며 허물이라고는 어떤 것도 없다.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된다.
005_0662_c_17L復次須菩提和夷羅洹閱叉常隨從阿惟越致菩薩摩訶薩其餘鬼神不敢附之終不失志其心不亂其身亦不妄起身體完具無所缺減爲人雄不誘他人婦女若爲作符若呪若藥都不爲是亦不自爲亦不教人爲是爲菩薩之淨不說男子亦不說婦人事都無是愆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모이지 아니하고 종사하는 일도 더불어 하지 아니하고 임금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도적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병정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군사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고을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큰 성곽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한다. 세속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여자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남자의 일에도 관여하지 아니한다. 다른 도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곡식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물건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사당(祠堂)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잡색(雜色)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꽃에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향에도 관여하지 아니하며, 놀이를 조종하는 사람도 따라가지 아니하며 바다도 따라가지 아니하며 이익도 만들지 아니한다. 이밖에도 수많은 종류의 일에 간여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갖고 종사하는 일은 오직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하며 종사하는 일도 살운야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005_0663_a_03L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不與聚會人從事亦不與王者亦不與賊亦不與兵亦不與軍亦不與聚邑亦不與城郭亦不與世亦不與女人亦不與男子亦不與餘道亦不與穀亦不與須亦不與祠亦不與雜色亦不與華亦不與香不與調戲亦不從海亦不從利亦不作若干種亦不與所有從事但與般若波羅蜜從事不離薩芸若
늘 염원하며 잊지 아니하고 또한 싸우지 아니하고 또한 자기가 종사할 일을 스스로 지키고 법 그대로 늘 중도의 바른 길을 걸어가며 법이 아닌 것을 따르지 아니하고, 늘 현명한 사람을 칭송하고 높여서 그들의 우두머리로 삼는다. 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자 하고 원한과 악한 관계를 만들지 아니하며, 오직 달살아갈의 법만을 구하고 곧 그곳에 태어나기를 구하고, 타방의 부처님의 국토에서 이 구하는 마음을 지으면서 장차 그곳에는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마음을 쓰는 까닭에 늘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또한 공양을 얻게 되는 것이다.
005_0663_a_12L常念不亦不與鬪從事自守如法常行中不從非法常稱譽賢者以爲上頭常於人欲作親厚不作怨惡但求怛薩阿竭法則欲求生異方佛剎作是將不生彼閒用是故常得見佛得供養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혹 경우에 따라 욕계ㆍ색계ㆍ무색계로부터 그곳을 떠나 중국 땅에 와서 태어나게 되면, 혹 착한 사람의 집에 태어나게 되거나 또 지혜 있는 사람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또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러한 환경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혹은 불경에 통달한 집안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는 태어나면서 작은 일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한다. 또 변두리 땅에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큰 나라 안에 태어나게 되며 끝까지 법을 범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점을 적용하여 그 모습과 행을 관찰한다면 그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될 것이다.
005_0663_a_18L阿惟越致菩薩摩訶薩或從從色從無色去其彼閒來生中國若在善人家若黠慧中生若在生談語之中若在曉經書之家不喜豫少有生於邊地悉生大國中終不犯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005_0663_b_02L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이다’라고 말하지 아니하며 또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이다’라고 생각하지도 아니하며 또 스스로 ‘나는 아유월치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다’고 의심하지도 아니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수다원의 도과(道果)를 얻게 되면 그 도의 경지에서 끝내 의심을 품지 아니하고, 악마가 하는 일이 비록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곧 모두 그것이 악마의 소행임을 깨닫고, 일단 이런 깨달음이 일어난 사람은 악마의 계교(計較)에 따라가지 아니하게 된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의 경우도 그러하다. 스스로 그의 도의 경지에서 끝까지 의심을 품지 아니하며, 또한 수행을 게을리 하지도 아니한다.
005_0663_a_24L復次須菩提惟越致菩薩摩訶薩亦不言我是阿惟越致亦不念我是阿惟越致亦不自疑我不在阿惟越致地譬若男子得須陁洹道於其道地終不有疑事雖起卽悉覺知旣起者不隨其計阿惟越致菩薩摩訶薩亦如是自於道地終不有疑亦不懈怠
그리하여 악마가 하는 일이 비록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곧 모두 그것이 악마의 일임을 깨닫고 알게 되며, 일단 이런 마음이 일어난 사람은 악마의 계교에 따라가지 아니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나이가 악하고 사리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데, 그의 마음에 끝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없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내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이,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의 마음도 끝내 그의 마음을 옮길 수 없고, 충직하고 바르게 마음을 세워 아유월치의 보살의 마음에서 끝내 그 마음을 흔들 수 없게 된다. 천상천하에 아무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고, 악마의 일이 비록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곧 모두 이를 깨닫고 알게 되며, 일단 이런 깨달음이 일어난 사람은 악마의 계교에 따라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자기의 도의 경지에서 끝까지 의심을 품지 아니한다.
005_0663_b_08L魔事雖起卽悉覺知旣起者不隨其計譬若男子作惡逆者其心終不有忘至于命盡其心終不可轉阿惟越致菩薩摩訶薩者終不可移其心忠正立於阿惟越致菩薩心終不可動天上天下終不可轉魔事雖起卽悉覺知旣起不隨其計自於道地終不有疑
또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이 없으며 끝내 부처의 경지가 얻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아니하여, 그 경지는 안온하고 단정하게 스스로 굳게 그 자리에 머물러 아마도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된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이 머무는 사람을 아무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악마가 크게 근심하여 조화를 부려 부처의 모습이 되어서 그가 있는 곳을 찾아가 말하였다.
‘만약 곧 아라한들을 모아 증인으로 삼는다면 부처님에게서 수기(授記)를 받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었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만약 이와 비슷한 경지를 얻지 못하였다면 그러한 모습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 가령 그 마음이 비슷하여 이를 작용하면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어 능히 보살마하살이 될 수 있다. 혹 아직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지 못하였다면 곧 무엇으로 어떤 인연으로 얻을 수 있겠느냐?’”
005_0663_b_15L無聲聞辟支佛心終不念言佛之難其地安隱端自堅住無有勝者以故如是住者無有能過弊魔大愁便化作佛往到其所言若當聚羅漢證證如來受決得阿耨多羅三耶三何以故若不得比亦不得相其如心比者用是相行具足能爲菩薩摩訶薩或尚不得阿耨多羅三耶三菩若當何當因得
005_0663_c_02L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가령 이런 말을 듣고도 보살마하살의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과거의 세계에서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로부터 이미 수기를 받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가령 여기에서 또 이런 생각을 짓게 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악마가 부처의 모습을 지어 찾아온 것이며 이 사나이는 곧 부처님이 아니고 악마가 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그가 짓는 이 작위로써 아유월치의 보살의 경지에 상응하게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악마가 하는 일과 다를 것이 없고 그가 이러한 눈으로 이 일을 관찰하고 그가 이러한 생각으로 이 일을 내다본다면 이것이 악마가 짓는 것임을 알게 되며 그를 부처님의 말씀에서 태도를 바꾸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005_0663_b_24L佛言設是菩薩摩訶薩心不動轉知是菩薩摩訶薩從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所受決已設復作是念者知魔作佛像來是男子卽非佛是魔所爲其作是作以應阿惟越致地如佛所說魔事無有異其作是視其作是念知魔所爲欲使我轉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이러한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과거의 세계에서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로부터 수기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아유월치의 경지에 머물게 된 보살이 된 것이다. 왜냐 하면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의 모습과 행을 비교해 보고 구족되었는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고 알게 되며, 이와 같은 비교로 그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이 사람이 아유월치에 이른 보살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005_0663_c_08L佛言設不動者是菩薩摩訶薩從過去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所以受決住阿惟越致地已以故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審阿惟越致如是比觀其相行具足是卽阿惟越致菩薩摩訶薩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가진 것을 탐내지 아니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다.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모두 법을 받아들이고자 하며 과거와 미래와 현존하는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거와 미래와 현존하는 불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으로 사람들을 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곧 수기이며 수기하는 작용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끼는 것이 없고 또한 목숨과 몸도 아끼지 아니하며 일찍이 한 번도 게으른 때가 없었으며 지극히 싫어한 일도 없었다. 이와 같이 비교하여 그 모습과 행을 구족하였는지를 관찰한다면 그가 아유월치의 지위의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수보리여,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내용에 의심을 품은 일이 없었으며 또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도 아니하였다.”
005_0663_c_13L復次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用法故不貪所有亦不惜身壽命是菩薩摩訶薩欲悉受法爲護過去當來今現在佛所有法其欲護過去當來今現在佛法以爲人數是卽爲決是爲護法用是故無所惜亦不惜命身未曾懈時無有厭極如是比觀其相行具知是阿惟越菩薩摩訶薩復次須菩提阿惟越致菩薩摩訶薩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之所說未曾有疑亦不言非
005_0664_a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대하여 의심을 품은 일도 없고 아니라고 말하지도 아니하였다면, 성문승에게 하신 설법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은 일이 없고 아니라고 말하지도 아니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성문승들에게 말한 설법도 그 가운데서 의심하지 아니하였고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왜냐 하면 수보리여, 이 보살마하살은 생겨난 곳이 없는 법에서 이를 즐기고 인정하고 작용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적용하여 그들의 모습과 행이 구족되었는가를 관찰한다면 그가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005_0663_c_24L須菩提白佛怛薩阿竭之所說法亦不疑不言非爲於聲聞說法亦不有疑亦不言非諸聲聞之所說法於其中亦不疑亦不言非何以故須菩提是菩薩摩訶薩爲逮無所從生法樂忍用是比觀其相行具足知是阿惟越致菩薩摩訶薩

9. 항가조우바이품(恒架調優婆夷品)
005_0664_a_08L摩訶般若波羅蜜恒架調優婆夷品第九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유월치의 지위에 올라선 보살마하살은 위대합니다. 큰 공덕을 따라서 스스로 아유월치의 지위를 이루었고, 마침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행으로써 이 모습에 응하였으니, 지금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깊고 깊은 뜻이 담긴 법문은 보살마하살이 베푸는 행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그대가 마음 속에 품은 생각 그것은 매우 깊은 진리이다. 이것이 곧 공해탈(空解脫)ㆍ무상해탈(無相解脫)ㆍ무원해탈(無願解脫)4)이니, 이 세 가지 해탈은 생사의 윤회도 없고 태어나는 곳도 없으며 소유(所有)도 없고 욕구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적멸(寂滅)이며 니원(泥洹 : 열반)이라는 것도 이 적멸로써 한계를 삼는 것이니라.”
005_0664_a_09L須菩提白佛言大哉阿惟越致菩薩摩訶薩從大功德自致阿惟越致從恒邊沙等爲以應相今天中天說深法是菩薩摩訶薩之所施行佛言善哉善哉須菩提汝之所內是爲甚是卽爲空無相無願無生死無所無所有無所欲是爲滅泥洹者是爲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니원이란 여기에 한정된 것이고 모든 법은 이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란 그 뜻이 매우 깊다. 왜냐 하면 색이란 것도 매우 깊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매우 깊은 뜻을 담고 있고, 5음도 매우 깊은 뜻이 있다. 가령 색에 매우 깊은 뜻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수보리여,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에 매우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은 색에 담겨 있는 매우 깊은 뜻은 아니다. 이러한 것이 색의 매우 깊은 뜻이다.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것이 인식 작용이 담고 있는 매우 깊은 뜻이다.”
005_0664_a_17L須菩提白佛泥洹者是限非是諸法佛語須菩提諸法甚深何以故色者甚深須菩提痛痒思想生死識亦甚深陰亦甚深如色甚深者何謂須菩提痛痒思想生死識之甚深甚深者非色之甚深是爲色之甚深痛痒思想生死識亦爾是識爲甚深
005_0664_b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대하고 미묘합니다. 미묘한 색의 말단도 니원(열반)을 따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의 작은 말단 작용도 니원(열반)을 따라 매우 깊은 뜻을 지닌다. 매우 깊다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말한다. 보살마하살이 깊이 생각하고 이를 잊지 아니하고 거기에 머물며 반야바라밀의 가르침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운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 생각 따라 오직 허공과 같은 가르침을 생각하고 이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만 하더라도, 그 공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매우 깊은 것이다.”
005_0664_a_23L須菩提白佛言大哉微妙色之稍從泥洹佛語須菩提痛痒思想生死識爲稍從泥洹甚深甚深者般若波羅蜜菩薩摩訶薩思惟念是爲住般若波羅蜜教爲學般若波羅蜜菩薩摩訶薩隨是思想惟念如空教應行一日甚深不可言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보살마하살이 가르침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 동안 쌓게 되면 몇 겁의 생사윤회를 물리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음탕한 사람에게 소중하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 함께 만나기를 기약하였는데, 여자가 자유로운 시간을 얻지 못할 경우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남자는 그래도 여자를 잊지 못하고 생각하겠느냐, 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마음의 작용이 여자에게 있는 까닭에 잊지 못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매우 많을 것이며 잊을 때가 없을 것입니다.”
005_0664_b_07L須菩提白佛是菩薩摩訶薩應行一日者爲卻幾劫之生死佛語須菩提譬若婬泆有所重愛端正女人與共期會女人不得自在云何須菩提其男子寧念須菩提言用女人故思念甚多有忘時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 남자가 생각하는 것은 하루도 그 마음이 바꾸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일이며 반야바라밀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만 하더라도 수많은 영겁의 세월에 걸친 생사의 윤회를 물리치고 말 것이다. 그가 가령 반야바라밀의 가르침 가운데 말한 법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생각하고 염원하며 이에 따라 하루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보살은 이미 악(惡)을 물리치고 죄를 면제받게 될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떠난다면, 바야흐로 그로 하여금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영겁의 세월에 걸쳐 보시를 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에 따라 이에 부응하는 수행을 하루 동안 한 사람만 같지 못하며, 그 공덕은 보시의 공덕 위에 우뚝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005_0664_b_13L佛言如是男子所念一日其心不轉是菩薩摩訶薩念般若波羅應行一日卻生死若干劫已其如般若波羅蜜教如中所說學思念隨行一日者是菩薩爲卻惡除罪已菩薩摩訶薩離般若波羅蜜者正使布施如恒邊沙劫不如菩薩摩訶薩隨般若波羅蜜教應行一日者其功德出彼上
005_0664_c_02L또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의 수명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영겁의 세월 동안 유지되어 그가 보시한 공덕으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의 과보로 부여받았다고 하더라도 반야바라밀을 떠날 경우, 가령 다른 보살이 있어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 공덕은 앞에서 말한 보살의 공덕 위로 솟아날 것이며, 수명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영겁에 유지되면서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하는 사람의 위에 있게 될 것이다. 또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있어서 반야바라밀을 염원하여 일어나 곧 설법을 하게 된다면 그 공덕은 다시 앞에서 말한 보살의 공덕 위에 솟아날 것이다.
005_0664_b_21L復次須菩提若菩薩摩訶薩壽如恒邊沙等劫持所布施與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而離般若波羅蜜若有菩薩摩訶薩隨般若波羅蜜教其功德出彼菩薩壽如恒邊沙劫布施持戒者上若有菩薩摩訶薩念般若波羅蜜起便說其功德復出彼菩薩上
또 수보리여, 이 보살마하살은 법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그 공덕은 더욱 갑절이나 더해지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로서 법보시를 한다면 이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해당된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있어 법보시를 한다 하더라도 그가 중도(中道)를 지키지 아니한다면 이는 보살로서 법보시를 하면서 중도를 지키는 사람만 못하며 이 보살마하살의 공덕은 매우 많다.”
005_0664_c_05L復次須菩是菩薩摩訶薩爲以法施其功德復轉倍若菩薩摩訶薩作法施者爲阿耨多羅三耶三菩若有菩薩摩訶薩法施者而不守中其功德不如菩薩摩訶薩作法施而復守中若有持般若波羅蜜者不離守中是菩薩摩訶薩其功德甚多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경우에 생사의 번뇌가 없는 사람과 만약 흔들리지 아니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천중천이시여, 이 두 가지 일 가운데 어느 쪽의 공덕이 더 많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복덕의 생사윤회와 공덕의 생사윤회에 있어서 그가 수행한 반야바라밀로, 공(空)의 경지에서 즐기고 무소유의 경지에서 즐기고 ,번뇌가 다한 경지에서 즐기고 무소득의 경지에서 즐기면서 이 반야바라밀을 생각할 때는 이는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아니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아니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의 공덕을 지니게 된다.”
005_0664_c_12L須菩提白佛切無生死若有不動天中天此二事何功德爲甚多佛語須菩提菩薩摩訶薩於福生死於功德生死所行般若波羅蜜樂於空樂於無所有樂於樂於無所得念是時爲不離般若波羅蜜若不離般若波羅蜜者是菩薩摩訶薩得不可計阿僧祇功德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의 공덕’이란 어떤 공덕을 말하는 것입니까? 다른 공덕과는 어떤 특별한 차이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승기라 하는 것은 그 수효를 끝까지 다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며, 그 가장자리와 폭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005_0664_c_19L須菩提白佛天中天之所說何謂不可計阿僧祇功德有何差特佛語須菩提阿僧祇者其數不可盡極不可計者不可量計之了不可得邊幅爾故不可計阿僧祇
005_0665_a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색도 헤아릴 수 없으며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헤아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색도 헤아릴 수 없으며,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005_0664_c_24L須菩提言佛說不可計者色亦不可計痛痒思想生死識亦不可計佛語須菩提如所言色亦不可計痛痒思想生死識亦不可計
이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허공과 같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으며, 모습이 없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으며 원(願)이 없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곧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 곧 공(空)에 해당되며 또한 다른 것이 없는 법이기도 하다.”
005_0665_a_04L須菩提白佛何謂爲不可計佛語須菩提如空故不可計無相無願故言不可計如是者不可計卽爲是空無異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말한 모든 법은 모두가 공(空)하겠느냐, 그렇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중천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가 공으로 다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005_0665_a_08L佛言云何須菩提我言諸法悉空不須菩提言如是天中天所說法悉空不可盡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보리여, 일체 법은 모두가 공이며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각각 다른 법은 없으며 차이가 나고, 특별한 법이 있다면 분별하면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얻을 수 없는 법이 곧 달살아갈이 얻은, 다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허공과 같이 모습도 없고 소원도 없고 생사도 없고 생겨난 곳도 없으며, 가진 것도 없고 일어난 곳도 없고 소멸하는 곳도 없는 여여한 니원(열반)의 세계이다. 상대방이 기뻐하는 곳을 따라 그곳에서 설법하는 것이 달살아갈의 가르침이니라.”
005_0665_a_10L佛言如是須菩提法悉空不可計無有法各各異者所差特分別可得不可得者卽怛薩阿竭得不可盡不可計如空無相無生死無所生無所有無所起所滅如泥洹隨所喜在所說是爲怛薩阿竭教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대하십니다. 천중천께서 설법하신 법은 법보(法寶)이며 우리들이 미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저의 생각 같아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우리들이 미칠 수 없는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모든 법은 미칠 수 없다. 모든 법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미칠 수 없느니라.”
005_0665_a_16L須菩提白佛大哉天中天之所說法是法實不可逮如我念佛之所語諸法亦不可逮佛語須菩提如是諸法不可逮悉法如空故不可
수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하면 본래부터 미칠 수 없는 것입니까? 소원과 알음알이에도 미칠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005_0665_a_20L須菩提言如佛說本不可逮願解不可逮佛言
005_0665_b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6바라밀도 미칠 수 없는 것에 해당됩니다. 6바라밀에서 보시바라밀도 불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는 바라밀이며, 시(尸)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유체(惟逮)바라밀ㆍ선(禪)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도 불어나지 아니하고 줄어들지도 아니하니, 이는 곧 6바라밀이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6바라밀이 모두 불어나지도 아니하고 줄어들지도 아니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 6바라밀로써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 가까이에 앉는가 하면,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005_0665_a_21L須菩提言六波羅蜜爲不可逮是爲布施無增無減尸波羅蜜羼波羅蜜惟逮波羅蜜禪波羅般若波羅蜜爲不增不減是卽爲六波羅蜜不增不減何謂於六波羅蜜不增不減是爲菩薩摩訶薩自致阿耨多羅三耶三菩何緣近佛坐是菩薩摩訶薩而不離般若波羅蜜自致阿耨多羅三耶三菩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여여(如如)한 근본이란 미칠 수 없고 불어나지도 아니하고 줄어들지도 아니한다. 이것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에 해당되며,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를 지닌 사람은 이것을 단(檀)바라밀이 증감(增減)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생각한다. 단바라밀이란 다만 그러한 명칭만 있을 뿐이며 이것이 단바라밀에 해당한다. 단바라밀이란 가진 것을 지니고 보시하면서 마음으로 이 공덕을 지니기를 염원하면서 보시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기를 염원하면서 그 보시가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같아진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한 사람에 해당되며 그가 행한 반야바라밀은 그것이 구화구사라가 된 것이다.
005_0665_b_06L佛語須菩提如本不可逮不增不減是菩薩摩訶薩爲行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者不念是爲檀波羅蜜之所增減是爲般若波羅蜜但爲有字是爲檀波羅蜜所有而布施心念持是功德施作阿耨多羅三耶三菩其施如阿耨多羅三耶三菩者是菩薩摩訶薩爲行般若波羅蜜其行般若波羅蜜是爲漚和拘舍羅
또 시바라밀(지계바라밀)의 증감도 생각하지 아니하며 다만 시바라밀이란 명칭만 있을 따름인 것이 곧 시바라밀이며, 이는 계율을 지키면서 마음으로 이 공덕을 베풂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겠다고 염원하는데, 그 베푼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같아진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한 사람이 된다.
005_0665_b_15L不念尸波羅蜜之增減爲有字是爲尸波羅蜜是爲持戒心以是功德施作阿耨多羅三耶三施如阿耨多羅三耶三菩是菩薩摩訶薩爲行般若波羅蜜
찬제바라밀ㆍ유체바라밀ㆍ선바라밀도 역시 그렇다.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를 수행한 사람이다. 또 반야바라밀의 증감도 생각하지 아니하며 오직 그러한 명칭만 있다고 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반야바라밀이란 곧 지혜로 발심하는 일이며 이 공덕을 지니고 베풀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겠다고 염원하고 그 베푼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같다면 이는 능히 반야바라밀을 베푼 사람이다.”
005_0665_b_19L羼波羅蜜惟逮禪波羅蜜亦爾是菩薩摩訶薩爲行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者念般若波羅蜜之增減但爲有字般若波羅蜜者卽是智慧發心持是功德施作阿耨多羅三耶三菩施如阿耨多羅三耶三菩者是能爲施
005_0665_c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베푸는 일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본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해당하며, 이것은 불어나지도 아니하며 줄어들지도 아니하는 것에 해당한다. 늘 이 생각을 따르면서 끝내 행을 떠나지 아니한다면 지금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수보리여, 그 본래 어떤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은 미칠 수 없는 경계이며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아니한다. 이를 깊이 생각하고 잊지 아니하는 것이 잃어버리는 것이 없는 것[無所失]에 해당하며, 이것이 줄어들지 아니하는 바라밀에 해당된다. 이 보살마하살이 이것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앉을 자리에서 떠나는 일이 된다.”
005_0665_c_02L菩提白佛言何等爲阿耨多羅三耶三菩施佛語須菩提本無者是爲阿耨多羅三耶三菩是爲不增不減隨是念終不離行今近阿耨多羅三耶三菩坐如是須菩提其本無者可逮亦不增不減思惟念是爲無所是爲波羅蜜不減是菩薩摩訶薩思惟念是爲離阿耨多羅三耶三菩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지닌 마음은 처음 발심하였을 때 곧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됩니까? 그렇지 아니하면 마지막 마음[後心]을 지닐 때 아뇩다라삼야삼보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됩니까? 처음 발심한 마음과 마지막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에는 상대성이 없습니다. 마지막 마음에도 처음 발심한 마음에도 상대성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공덕으로 이러한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등불의 심지가 타오르는 것과 같다. 그 심지의 작용으로 처음 불을 밝혀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 작용의 마지막에 불을 밝혀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005_0665_c_11L須菩提白佛菩薩摩訶薩持心初發心當近阿耨多羅三藐三菩坐持後心近阿耨多羅三耶三菩坐後心是二者無有對後心初心亦無有對何等功德而出生者佛語須菩提譬如燈炷之然其炷用初明得若用後明得然
수보리가 말하였다.
“처음 밝혀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니며 또한 처음 작용을 벗어나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 밝혀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으로 밝힌 작용을 벗어나서 타오르게 된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와 같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와 같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5_c_17L須菩提言亦非初明得然亦不離初明得然亦非後明得然亦不離後明得然佛言云何菩提爲如是不須菩提言如是如是天中天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처음 발심할 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이 아니며, 또한 처음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아니다. 또 마지막 마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다.”
005_0665_c_21L佛語須菩提菩薩摩訶薩亦不初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亦不離初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亦不後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亦不離後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
005_0666_a_02L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처음 발심이 작용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음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마지막 마음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마지막 마음을 떠나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005_0666_a_02L須菩提白佛言因緣者甚深天中天菩薩摩訶薩不用初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薩亦不離初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亦不後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亦不離後心得阿耨多羅三耶三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경우 앞에서 일어났던 마음은 소멸되었겠는가? 또 뒤에 일어난 마음은 다시 생긴 마음이겠는가?”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08L云何須菩提前心爲滅耶後心復生耶須菩提言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보리여, 마음이 처음 생긴 것은 소멸하겠느냐, 아니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그러한 법은 생멸하는 법이 됩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09L云何菩提心初生者爲滅不須菩提言法爲滅法天中天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 법이 곧 소멸될 법이라면 그것이 소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1L云何須菩提其法當所滅者寧可滅不須菩提言中天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것이 본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과 같이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혹 머물고자 한다면 곧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005_0666_a_13L云何須菩提寧可住如本無菩提言其欲住者當如本無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설사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에 머물게 하더라도 장차 거기에 다른 것이 없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4L云何菩提設令住如本無將無有異須菩提言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었던 경계는 매우 깊은 경계가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매우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6L云何須菩提本無爲甚深不須菩提言甚深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곳에 마음이 있었다고 하겠느냐, 아니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7L云何須菩提本無爲有心不答言無有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것과 다른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하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19L云何須菩提能有異本無有心者不答言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본래 어떤 것도 없는 것에서 마음을 보겠느냐, 아니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20L云何須菩提無見意不答言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혹 이런 행을 짓는다면 그 행은 깊은 행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혹 이런 행을 짓는다면 그것은 행하는 것이 없는 것이 됩니다. 천중천이시여, 왜냐 하면 이 행을 지으면 보이지 아니하는 행이며 볼 수 없는 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005_0666_a_21L云何須菩其作是行爲深行不答言其作是天中天爲無所行何以故作是不見行爲不可見行
005_0666_b_02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어떤 행에 해당되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 행은 진리를 살피는 행이 될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a_24L佛語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者爲行何等須菩提言爲行審諦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 행의 진리란 것은 행을 생각하는[想] 일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b_03L云何菩提其行諦者爲行想不答言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인식[識]을 생각하고 염두에 두겠느냐, 두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6_b_05L云何須菩提菩薩摩訶薩爲識想念不答言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인식[識]을 생각하지 않고 염두에 두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라면 이런 일을 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005_0666_b_06L云何須菩提爲不識想念爲念須菩提言菩薩摩訶薩而不爲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도 법을 얻고 법에 응하여 수행하여 모든 불법이 구족되었다면 그 사람은 성문승이 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는 무상(無想) 즉 아무 생각이 없는 데서 탐내는 것이 없습니다.”
005_0666_b_08L云何須菩提不作想而得應行具足一切佛法不爲聲聞須菩提言菩薩摩訶薩漚和拘舍羅於無想爲無所貪
그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도 3사(事 : 戒ㆍ定ㆍ慧)ㆍ삼매(三昧)ㆍ염원(念願)ㆍ해탈문(解脫門)ㆍ공공(空空)ㆍ무상무상(無相無相)ㆍ무원무원(無願無願)을 향하면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으니, 반야바라밀은 낮에도 밤에도 이익이 있으며 꿈속에서도 이익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말씀에 낮이나 밤이나 꿈속이나 모두가 같고 다른 것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낮에 반야바라밀을 잊지 않고 생각한다면 밤에 꿈속에서도 또한 갑절이나 더 반야바라밀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005_0666_b_11L舍利弗問須菩若菩薩摩訶薩於夢向三事三昧念脫門空空無相無相無願無願昧是爲有益般若波羅蜜於晝日夜復有益若夜夢中時亦復有益何以佛之所說晝日若夜夢中俱等無有異須菩提語舍利弗若菩薩摩訶薩晝日念般若波羅蜜夜於夢中亦復倍益念般若波羅蜜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수보리여, 만약 꿈속에서 지은 일이 있다면 그것에도 소유(所有)자가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005_0666_b_19L舍利弗言須菩提若於夢中有所作寧有所有不答言
사리불이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법의 설법도 역시 꿈속에서의 소유물(所有物)과 같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꿈속에서 지은 일이 거룩한 일이었다면 꿈을 깨고 나면 크게 기쁘니 이는 이익이 되는 꿈이지만, 꿈속에서 지은 일이 만약 악한 일이었다면 깨고 나서 기쁘지 아니한 것이니 이는 손해가 되는 꿈입니다.”
005_0666_b_21L一切諸法說亦如夢中之所有須菩提語舍利弗夢中所作覺卽大喜是者爲益若所作惡而不喜者是卽爲減
005_0666_c_02L사리불이 말하였다.
“가령 꿈속에서 살생한 일이 있었는데도 그의 마음은 크게 기뻤고, 깨고 나서도 말하기를 ‘나는 살생을 했지만 이는 크게 통쾌한 일이었다’라고 한다면 이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거짓이 아닌 것에는 모두 인연이 있습니다. 마음이 비어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침 인연하는 것이 있게 되면 그것이 듣는 것이든 보는 것이든 생각한 것이든 깨고 나면 곧 이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는 까닭에 사람의 마음에 집착하는 곳이 있게 하고, 거기에서 곧 얻는 것이 있게 됩니다. 무엇을 얻는 것이라 말하는가 하면, 그 인연한 곳에 따라 마침내 그 죄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연이 없는 것으로부터는 그 죄를 받지 아니하나니,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기기 때문입니다.”
005_0666_b_24L舍利弗言設於夢中有殺其心大喜覺已言我殺是是者云何須菩提言不妄皆有因心不空爾會有所緣若見若聞若覺卽知之是爲因緣故令人心爲所著便有所得何謂所得從所因緣乃受其罪不從無因緣受其罪皆從因緣生故
사리불이 말하였다.
“모든 지어지는 인연은 모두가 황홀한 것이며 모두가 공허할 뿐인데, 천중천(天中天 :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태어나셨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생각[想]의 인연 따라 생(生)을 얻으셨습니다.”
005_0666_c_08L舍利弗言一切所作因緣皆爲恍忽皆爲空耳云何天中天從何因緣而得所生答言爲從想因緣得生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보시를 하고 이 보시를 간직하여 더불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게 된다면 이 보시는 보시한 공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위대하신 미륵보살마하살님이 지금 우리 가까이에 계시며, 그는 조만간 부처님 자리를 대신하실 분이니 그대가 질문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곧 지혜가 일어나 의심을 멀리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005_0666_c_11L舍利弗言菩薩摩訶薩於夢中布施持是施與作阿耨多羅三耶三爲有施與無須菩提報舍利弗言大彌勒菩薩摩訶薩今近在是旦暮當補佛處所問者可問之卽能發遣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아뢰었다.
“지금 제가 질문한 일을 수보리가 말하기를, 위대하신 미륵보살님은 곧 이를 풀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의 이름이 미륵인 것처럼 마땅히 풀어야 할 의문은 색으로 풀어야 할 것은 색으로 풀고,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으로 풀어야 할 것은 인식함으로 풀어야 한다. 색이란 것은 곧 공허한 것이니 이는 마땅히 무소유로 이를 해석하여야 한다. 만약 통양과 사상과 생사와 식도 공(空)으로 해석할 경우 또한 밝혀지는 법도 없으니 마땅히 풀어야 할 의문은 무엇이겠습니까? 얻는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해석하여도 역시 밝혀지는 법은 없으니 이 해석에서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005_0666_c_15L舍利弗白彌勒菩薩今我所問須菩提言大彌勒菩薩卽能解之彌勒菩薩語舍利弗如我字爲彌勒當所解當以色解若當以痛痒思想生死識解色者卽空當以無所有解之痛痒思想生死識空解亦不見法當所解者何所得解亦不見法所解得阿耨多羅三耶三菩
005_0667_a_02L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아뢰었다.
“말씀하신 것은 이미 증험(證驗)을 얻은 것에 해당됩니까?”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 법은 증험을 얻은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사리불은 곧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륵보살이 들어간 경지의 지혜는 매우 깊다. 그 까닭은, 반야바라밀을 얻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005_0666_c_23L舍利弗白彌勒菩薩所說者爲已得證彌勒菩薩語舍利弗所說法不言得證舍利弗便作是念彌勒菩薩所入慧爲甚深所以者何般若波羅蜜以來久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이여, 그가 능히 아라한이 된 것을 볼 수 있느냐, 아니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005_0667_a_04L云何舍利弗若能見彼作羅漢者舍利弗言天中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그와 같다. 보살은 결코 ‘나는 이 법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다’ 또는 ‘나는 이 법에서 수기를 얻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만약 이 법에서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되면 스스로 아유삼불(阿惟三佛)의 경지를 이루게 되나니, 이 보살마하살은 그가 지은 이 작위(作爲)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 그는 아유삼불의 경지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이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일이 되며 이 보살마하살은 이것으로 두려운 것이 없게 된다. 왜냐 하면 만약 대단히 심하고 어려운 재난이 있는 곳, 호랑이나 이리가 우글거리는 곳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서워하지도 아니하며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이르기를 ‘설사 나를 잡아먹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곧 그들을 위하여 내 몸을 보시하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완전히 갖추어진 단바라밀을 행하는 일이며, 이 경지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깝다. 이 경지에서는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게 하여 그 국토 안에서는 금수(禽獸)의 도(道)는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005_0667_a_06L佛語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亦如是不念我從是法受決不從是法得決若於是法當得阿耨多羅三耶三菩自致阿惟三佛是菩薩摩訶薩其作是作爲行般若波羅蜜不恐不得阿惟三佛隨是教者爲行般若波羅蜜是菩薩摩訶薩爲以無所畏何以故若至大劇難處虎狼之中不畏不怖心念言設有噉我者當爲布施是爲具足行檀波羅蜜近阿耨多羅三耶三菩願我作佛令其剎中無禽獸之
만약 보살마하살이 크게 혹독한 도적들이 있는 가운데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이 보살은 역시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무서워하지도 아니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설사 그 속에서 죽게 되더라도 마음속으로 혼자 염원하면서 이르기를 ‘나의 몸이 때마침 버릴 때를 당하였구나. 설사 나를 죽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성내고 노여워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족된 인욕이며 찬제바라밀을 행하는 일이라 곧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경지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 그 국토 안에는 도적이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005_0667_a_18L若菩薩摩訶薩至大劇賊之中亦不畏怖何以故設令於其中死心念言我身會當棄捐設殺我者我不瞋恚是爲具足忍辱行羼波羅蜜當近阿耨多羅三耶三菩願我作佛時令其剎中人無有賊盜
005_0667_b_02L또 만약 보살마하살이 크게 물이나 장(漿 : 마실 것)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역시 마음에 두려움과 무서움이 없이 마음속으로 염원하고 혼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의 생각이 모두 덕이 없기에 물과 장이 없게 한 것이니,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 그 국토 안에는 항상 여덟 가지 맛이 나는 공덕수(功德水)가 있게 하여 모든 사람이 이를 사용하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간 사람에게 염원을 작용하는 까닭에 이 보살은 항상 정진하게 되는 것이다.
005_0667_a_23L若菩薩摩訶薩至大無水漿之處亦不畏怖心念言切人念悉無德使無水漿願我作佛令其剎中常有八味之水使一切人悉得用之用世閒人故常爲精進
또 만약 보살마하살이 곡식이 귀한 곳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역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서워하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이르기를 ‘나는 마땅히 그 정진을 굳게 지켜, 스스로 이루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고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었을 때, 나의 국토 안에서는 악한 일이 없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곳에 있으며, 음식을 먹으면서 모든 음식이 그들 앞에 있게 하여 마치 도리천 위에 있는 세계와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염원한다. 이 선남자는 그의 염원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까닭에 정진하게 되며,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룩하여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005_0667_b_04L若菩薩摩訶薩至穀貴之處亦不畏心念言我當堅其精進自致得阿耨多羅三耶三菩成阿惟三佛時我剎中無有惡皆使一切人在所願飮食悉令在前如忉利天上所有善男子用一切人故精進自致阿耨多羅三耶三菩成阿惟三佛
또 만약 이 보살마하살이 악한 도적 속에 있게 되더라도 역시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며 무서워하지도 아니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곧 고통이 될 법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용을 하는 까닭에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설사 나의 몸이 병을 만나 죽게 된다 하더라도 마음에 다른 생각이 없고, 반드시 곧 정진하게 될 것이라 믿으며 ‘원컨대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아유삼불이 되었을 때 그 국토 안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악하고 더러운 것이 없고 죽어 없어지는 사람이 없게 하소서’라고 염원하게 된다. 이 보살마하살이 말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고 다른 것이 없다.
005_0667_b_11L若菩薩摩訶薩在惡賊時亦不畏怖何以故不見法當所痛者用是故無所畏使我身遭是病死心不有異必當精願我作阿耨多羅三耶三菩成至佛時令其剎中一切人皆無惡穢者死亡者是菩薩摩訶薩之所言如佛語而無異
또한 사리불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오래지 아니하여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스스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룩하여 스스로 그의 법문에서 무서워하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가장 궁극의 본지(本地) 때부터 그 이후 줄곧 발심하고 부처님 이름을 부르며 부처님 말씀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 궁극의 본지라는 것은 결코 오랜 세월이 아니다. 본지의 끝이란 시간의 개념이 수많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 오래 되고 먼 시간이 되기도 하고, 크게 오래된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마음은 마치 한 번 회전하는 사이처럼 가까이 느껴진다. 이것이 궁극의 본지이다. 이 보살마하살은 지금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져서 아유삼불의 경지를 이루는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아니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05_0667_b_18L復次舍利弗是菩薩摩訶薩不久當成阿耨多羅三耶三菩致阿惟三佛自於其法亦不恐怖以故從本際已來發心呼言不久本際者爲若干爲久遠爲甚大久如一轉頃是爲本際是菩薩摩訶薩今近阿耨多羅三耶三菩成阿惟三故日聞是而不恐怖
005_0667_c_02L그때 한 우바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앞으로 나와 부처님을 위하여 절을 하고 길게 꿇어 엎드려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었으나 무섭지도 아니하고 두렵지도 아니하였습니다. 훗날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모든 사람들도 무섭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게 하겠습니다.”
그때 때맞추어 부처님께서 웃으시니 입 안에서 5색의 광명이 뻗어 나왔고, 웃음을 멈추니 이 우바이는 곧 금빛 꽃을 지녔다가 부처님 위에 뿌렸고, 부처님의 위력과 신통력이 작용하여 그 꽃이 부처님 위에 있으면서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005_0667_c_02L爾時優婆夷從坐起前爲佛作禮長跪白佛我聞是語不恐不怖必後欲爲一切人說法令不恐怖應時佛笑口中五色光笑竟訖以優婆夷者卽以金華持散佛上用佛威神其華在佛上亦不墮地
이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의복을 바로잡고 앞으로 나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물러나서 길게 꿇어 엎드려 여쭈었다.
“달살아갈께서 웃으신 것은 그냥 웃으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가조우바이(恒架調優婆夷)는 훗날 미래의 세계, 그 겁(劫)의 이름을 성수겁(星宿劫)이라 할 것인데, 아마도 그 겁 속에서 부처가 될 것이며 그 부처의 이름은 금화불(金華佛)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우바이는 훗날 아마도 여자의 몸을 버리고, 다시 남자의 몸을 받아 아촉불국(阿閦佛國)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005_0667_c_08L阿難從坐起整衣服前爲佛作卻長跪問佛怛薩阿竭所笑不妄必有所說佛語阿難是恒架調優婆夷者卻後當來世其劫名爲星宿於是劫中作佛號字曰金華佛佛語阿難是優婆夷者後當棄女人形體更受男子身便生阿閦佛國
摩訶般若鈔經卷第四
戊戌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4)3해탈문을 말한다. 곧 ①공해탈(空解脫) :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 인연(因緣)ㆍ화합(和合)으로 생긴 것이고, 본래 실체(實體)와 자성(自性)이 없어 공(空)하다고 관(觀)하는 것. ②무상해탈(無相解脫) : 모든 법(法)의 무상(無相)을 보고 집착과 번뇌와 차별(差別)의 상(相)을 떠났다고 관(觀)하는 것. ③무원해탈(無願解脫) : 모든 법(法)을 관(觀)하고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관혜(觀慧)와 함께 일어나는 정심(定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