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연으로 이와 같이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설한 복전(福田)은 차별상(相)이 없는 까닭으로 이러한 상서로운 현상[瑞]이 나타나느니라. 지난 옛날 부처님도 또한 이곳에서 이와 같은 복전의 모양(相)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일체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도다, 그러하도다. 그대는 사리불이 말한 것과 같이 그대가 말한 바는 실로불가사의하도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말할 수 없고 생각함[思議]도 또한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생각하지 못하는[不思議] 성품도 함께 말할 수 없으며, 일체 소리의 모양도 생각함이 아니며, 또한 불가사의도 아닙니다.”
005_0948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사의삼매(不思議三昧)에 들었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곧 생각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있어서 능히 생각하는 것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부사의삼매에 들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저는 처음 마음을 낼 때 이 선정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지금 생각하건대 실로 마음의 모양[心相]이 없이 삼매에 들어갑니다. 마치 사람이 활쏘는 것을 배울 때 오래 익혀 곧 능하여지며 뒤에는 비록 무심히 하되 오래 익힌 까닭에 화살을 쏘면 다 적중하는 것과 같이, 저도 또한 처음 부사의삼매를 익힐 때 마음을 하나의 인연에 집중[繫]하여 오래 익혀 성취하여져서, 다시 무심한 생각이 항상 삼매[定]와 함께 하였습니다.”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또 뛰어나고 미묘한 적멸의 삼매[定]가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약 부사의한 선정이 있다면 그대가 ‘다시 적멸의 선정이 있느냐’고 물으십시오. 내 생각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불가사의한 선정도 오히려 얻지 못하는데 어떻게 적멸의 선정이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물었다. “불가사의한 선정은 얻을 수 없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생각하는[思議] 선정이란 상(相)을 얻는 것이요, 불가사의 선정이란 상을 얻지 아니함입니다. 일체 중생은 실로 불가사의한 선정을 성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마음의 모양[心相]이란 곧 마음이 아닌 까닭이며, 이 이름이 부사의 선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일체 중생의 상과 부사의삼매상 등은 분별이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만약 제가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서 능히 이 말을 한다면, 곧 이것은 생각이 있는 것이며 나란 생각[我想]에 머무는 것이요, 만약 생각이 있어서 나란 생각 가운데 머문다면 반야바라밀은 곧 처소가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이 만약 없는데[無] 머문다 하여도 또한 이것이 나란 생각이요, 또한 처소(處所)라 이름하며, 이 두 곳을 떠나 머무는 바 없는 데[無所住] 머물면 모든 부처님께서 적멸의 편안한 곳에 머물러 생각하지 아니하는 경계와 같습니다.
005_0948_c_02L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것을 반야바라밀의 머무는 곳이라 이름하며, 반야바라밀의 처소에는 일체법이 무상(無相)이요, 일체법이 무작(無作)입니다. 반야바라밀은 곧 생각하지 못함[不思議]이요, 생각하지 못함이 곧 법계(法界)이며, 법계가 곧 무상이며, 무상이 곧 부사의요, 부사의가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바라밀과 법계는 둘이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둘이 아니고 다름이 없는 것이 곧 법계입니다. 각 법계가 곧 무상(無相)이요, 곧 반야바라밀의 경계[界]이며, 반야바라밀의 경계가 곧 부사의 경계[不思議界]요, 부사의 경계가 곧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경계요,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경계가 곧 부사의 경계입니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여래의 경계[界]와 저의 경계가 곧 두 가지 모습[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자는 곧 보리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리의 모양을 여읨이 곧이 반야바라밀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만약 나라는 모양을 알아도 집착하지 않고, 몰라도[無知] 집착하지 않음을 부처님께서는 아실 것인바, 불가사의는 앎도 없고 집착도 없음을 곧 부처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체(體)의 본성이 상(相)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능히 법계를 굴리겠습니까? 만약 본성이 체가 없고 집착이 없음을 아는 자는 곧 만물[物]이 없다고 이름하며, 만약 만물이 없다면 이는 처소가 없으며 의지함이 없으며 머묾이 없음이니, 곧 생김이 없고 멸함도 없음입니다. 생김이 없고 멸함이 없으면 이것은 유위(有爲:작용함이 있는 것)와 무위(無爲:작용함이 없는 것)의 공덕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알면 곧 마음에 생각이 없음이요, 마음에 생각이 없는 자가 어떻게 마땅히 알겠습니까. 유위ㆍ무위의 공덕을 모르는 것이 곧 부사의요, 부사의란 것은 부처님께서 아실 바입니다. 취함도 없고 취하지 아니함도 없으며, 삼세(三世)의 가고 오는 등의 모양은 보지 못하며, 생기고 말하며 모든 일어나고 짓는 것을 취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아니하니, 이와 같이 알면 이를 바른 지혜라 이름합니다. 부사의의 지혜란 허공과 같아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서, 같은 것을 견줄 수 없음이요, 좋고 나쁨도 없고, 같음도 없으며[無等等:부처님 같음이 없음],모양도 없고 모습도 없습니다[相無貌].”
005_0949_a_02L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이와 같이 알면 이름하여 물러나지 아니하는 지혜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지음이 없는 지혜를 물러나지 아니하는 지혜라 이름하나이다. 마치 쇳덩이를 먼저쇠망치를 두들겨 보고 좋고 나쁨을 아는 것처럼 만약 두들겨 시험하지 아니하면 능히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물러나지 아니하는 지혜의 모양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 반드시 어떤 경계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아니하고, 일어남도 없고 지음도 없음을 구족하여 움직이지 아니하고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 아니하며 그러하게 이에 나타납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여래가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설하심과 같아 누가 마땅히 능히 믿겠는가.”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이와 같은 지혜란 열반의 법이 아니요, 생사의 법도 아닙니다. 이것은 적멸의 행(行)이요, 움직임이 없는 행이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지 아니하며, 또한 끊지 아니함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생사를 여의지도 않고, 또한 여의지 아니함도 아니며, 도를 닦지도 아니하고, 도를 닦지 아니함도 아니라, 이렇게 아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믿음[正信]이라 합니다.”
005_0949_b_02L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모임의 이 경을 듣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 이와 같은 사람들은 미래세에 만약 이 법을 듣고 반드시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능히 믿고 알아서 이에 능히 읽고 외우고 믿고 알아 받아 가지며, 또한 남을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할 것이다. 비유하면 장자가 마니보배를 잃고 근심하고 고뇌하다가 뒤에 만약 도로 찾으면 마음에 매우 기뻐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가섭아,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라. 만약 법을 듣지 못하면 고뇌가 생길 것이요, 만약 들을 때는 믿고 알아 받아 지니며 항상 읽고 외우며 매우 기뻐할 것이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에 곧 부처님을 볼 것이요, 또한 모든 부처님께 친근(親近)하고 공양하리라.”
부처님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도리천(忉利天) 위[上]에 파리질다라(婆利質多羅:천상의 향나무 일종)라는 수포[樹皰]가 처음 나올 때 이 가운데 모든 하늘은 이 나무를 보고 나서 이 나무가 오래지 않아 활짝 필 것이라고 크게 기뻐하리라.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능히 믿고 앎이 생기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또한 마땅히 일체 부처님 법을 열어 펼 것이며, 오는 세상에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있어 반야바라밀을 듣고 믿고 받아 읽고 외우되 마음이 뉘우침에 빠지지 아니할 것이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이 모임을 따라 이 경을 듣고 받아서 또한 능히 사람을 위하여 부락이나 성읍(城邑)에 널리 설하여 유포할지니, 이 사람은 부처님께서 생각하여 보호하시는 바이다.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능히 밀고 즐겨하며 의혹이 없는 자가 있으면 이 선남자 선여인은 과거 모든 부처님에게서 오랜 동안 이미 배워서 닦아 많은 선근을 심었음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으로 구슬을 뚫는데 우연히 위없는 참 마니보배를 만나 마음에 대단히 기뻐함과 같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일찍이 이와 같음을 이미 보았느니라.
005_0949_c_02L가섭아,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다른 법을 배워 익히다가 홀연히 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능히 기쁨이 생기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일찍이 들은 까닭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있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마음에 능히 믿고 받아 대단히 기뻐하면 이와 같은 사람들도 또한 일찍이 헤아릴 수없는 여러 부처님을 친근하여 따라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나서 배워 익힌 까닭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먼저 지나가면서 성읍과 부락을 보고난 뒤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 성 안에 있는 꽃동산과 가지가지 연못과 샘ㆍ꽃ㆍ과일ㆍ숲과 나무를 남녀 사람들이 다 사랑하며 즐거워하더라고 함을 듣고 나서는 곧 대단히 기뻐하면서 다시 권하여 이 성 안에 꽃동산을 여러 가지로 좋게 꾸며 놓은 온갖 꽃ㆍ연못ㆍ샘ㆍ여러 가지 많은 단 과일이며 가지가지 보배롭고 아름다운 일체 사랑스럽고 즐거웠던 것을 말하게 한다. 이 사람은 거듭 들으면서 매우 기뻐함이라.
이와 같은 사람은 다 일찍이 본 까닭이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들음에 마음에 믿고 듣고 받아들여 능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싫어하지 아니하고, 다시 권하고 설하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알라, 이런 무리[輩]는 이미 문수사리를 따라 일찍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들은 까닭이니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은 지음이 없고 모양도 없어 제일 적멸한 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능히 이와 같이 자세히 이 뜻을 알고 들음과 같고, 설하심과 같이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찬탄하면 법의 모양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이며, 이것이 곧 부처님의 설법이며, 또한 이것이 맹렬[熾燃]한 반야바라밀의모양이요, 또한 맹렬하고 구족한 불법이며, 실상을 통달하는 불가사의이옵니다.”
005_0950_a_02L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본래 보살도를 행할 때 모든 선근을 닦고 물러나지 아니하는[阿鞞跋致] 경지에 머물고자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닦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닦았느니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일체법의 모양을 알고자 하고, 일체중생의 마음의 세계가 다 동등함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문수사리여, 일체 불법이 구족하고 걸림이 없음을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일체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 상호(相好)와 위의(威儀)와 무량한 법식(法式)을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일체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일체 법식 및 모든 위의를 이루지 못한 것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왜냐하면 이 공한 법 가운데는 모든 부처님과 보리 등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와 같은 등의 모양을 의혹이 없게 알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반야바라밀에는 모든 법이 혹은 생기거나 혹은 멸하거나 혹은 더럽거나 혹은 청정함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선남자 선여인이 응당히 이와 같이 지어서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일체법이 과거ㆍ미래ㆍ현재 등 모양이 없다는 것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왜냐하면 법계의 성품과 모양은 삼세(三世)가 없는 까닭이니라.
005_0950_b_02L일체법이 같이 법계에 들어가 마음에 걸림이 없음을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요,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 고ㆍ집ㆍ멸ㆍ도를 보여 권하고 증득하게 하는 방법)의 법의 수레를 얻고, 또한 스스로 증득하여 알고 취(取)하여 집착하지 아니함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자비심이 일체중생을 두루 덮음에 한계가 없고 또한 중생이란 모양이 있다고 생각으로 짓지 아니함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일체 중생이 토론하여 다툼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또한 다시 토론하여 다툼이 없다는 모양을 취하지 아니함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이 도리와 도리가 아님[處非處]과 십력(十力 :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ㆍ두려움 없음[無畏 : 설법에 두려움이 없는 네 가지]을 알고부처님의 지혜에 머물러 걸림 없는 변재를 얻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이때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정법을 보건대 작위[爲] 없고, 모양[相]도 없고, 얻음[得]도 없고, 이익[利]도 없고, 생김[生]도 없고, 멸함[滅]도 없고, 오는 것[來]도 없고, 가는 것[去]도 없으며, 앎[知]도 없는 것이요, 보는 것[見]도 없는 것이요, 지음[作]도 없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고 또한 반야바라밀의 경계도 보지 못하며, 증득함도 아니요 증득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희론을 짓는 것도 아니요, 분별도 없고 일체에 다함을 없고, 다함도 여의며, 범부의 법도 없고, 성문의 법도 없고, 벽지불의 법도 없고, 얻음도 아니요, 얻지 아니함도 아니고, 생사를 버리지도 아니하고, 열반을 증득함도 아니며, 생각함도 아니요, 생각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지음도 아니요, 짓지 아니함도 아니니라. 법의 모양을 이와 같이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웁니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알면 이것을 이름하여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운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만약 보리자재삼매(菩提自在三昧)를 배우고자 하면이 삼매를 얻고 나서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알아 밝게 비추고, 또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훤히 통달하여 장애됨이 없음이 마땅히 문수사리가 설한 바 반야바라밀 중에서 더불어 배울 것이니라.”
005_0950_c_02L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여, 무슨 까닭으로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관대하여 끝이 없고[無邊], 깊이도 끝이 없고[無際],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못하고, 귀의함도 없고, 섬[洲渚]도 없고, 밝음도 없어, 법계는 분별[分齊]이 없으며, 또한 한계가 있는 수도 없으니[限數], 이것을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이라 하고, 또한 보살마하살의 행할 도리[行處]라 하느니라. 도리도 아니요[非處], 행하지 못할 도리도 아니며[非不行處], 모두 일승(一乘)에 들어가니 이름하여 비행처(非行處)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생각도 없고 지음도 없는 까닭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반야바라밀은 설하는 바와 같이 수행하면 능히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다시 일행삼매(一行三昧)가 있으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삼매를 닦으면 또한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계는 한 모양이라 인연을 법계에 얽매는 것[繫緣法界],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일행삼매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반야바라밀을 듣고 설함과 같이 배워 닦은 연후에 능히 일행삼매에 들어가면 법계의 인연과 같아 물러나지 아니하고, 무너지지 아니하고, 생략하지 못하며, 걸림이 없고, 모양도 없느니라.
005_0951_a_02L선남자 선여인이 일행삼매에 들어가고자 하면 응당히 비고 한적한 곳에서 모든 산란한 뜻을 버리며 모양[相貌]을 취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한 부처님에게 매어[繫心] 오로지 이름[名字]을 부르며, 부처님께서 계신 방향을 따라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향하여 능히 한 부처님을 끊임없이 계속 생각하면서 곧 이 생각 중에 능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보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한 부처님을 생각하는 공덕은 무량무변하며 또한 무량한 모든 부처님의 공덕과 둘이 없고 불가사의하며, 불법과 같이 분별이 없어 모두 태우는 것이 한결 같아[乘一如] 최정각(最正覺)을 이루고 모두 무량한 공덕과 무량한 변재를 갖추며, 이와 같이 일행삼매에 들어가는 자는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다 아느니라.
아난이 들은 부처님 법은 생각에 변재와 지혜를 다 갖추어 얻어서 성문 가운데 비록 가장 뛰어날지라도 오히려 수를 헤아리는데 머물러 있으므로 한계와 막힘[限碍]이 있으나, 만약 일행삼매를 얻으면 모든 경의 법문을 하나하나 분별하여 다 깨달아 알아 결정하여 걸림 없고 주야로 항상 설하여도 지혜와 변재가 마침내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난의 많이 들은 변재에 비하면 백천 등분을 하여도 그 하나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하여야 일행삼매의 불가사의한 공덕과 무량한 명칭을 좇아 얻을까’라고 응당 생각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일행삼매를 염하여 항상 근면히 정진하되 태만[懈怠]하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 차례로 점점 배워 닦으면 곧 능히 일행삼매에 들어가서 불가사의한 공덕을 증득하리라. 정법을 비방하고 악업을 믿지 않은 중한 죄장(罪障)이 있는 자는 제외하니 능히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또 문수사리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마니주를 얻어서 구슬을 가공하는 사람에게 보이니 구슬을 가공하는 사람이 이것은 값을 말할 수 없는 참 마니보배라고 하여 곧 그에게 말하기를 ‘저를 위하여 가공하여 빛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가공하고 나면 그 빛이 밝고 겉과 속이 투명하게 비침과 같다. 문수사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일행삼매의 불가사의한 공덕과 무량의 명칭을 배우고 닦음에 배우고 닦음을 따를 때 모든 법의 모양을 알아 밝게 통달하여 걸림이 없고 공덕이 증장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비유하면 태양과 같아 광명이 두루 차서 비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만약 일행삼매를 얻으면 다 능히 일체 공덕을 구족하여 모자라거나 적음이 없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도다. 부처님의 법을 비추어 보낸 태양의 빛과 같으니라.
005_0951_b_02L문수사리여, 내가 설한 법은 다 한맛[一味]으로, 맛을 여의어서 해탈의 맛이요, 적멸의 맛이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일행삼매를 얻으면 그가 연설하는 바도 또한 이 한맛으로 맛을 여읜 맛이요, 해탈의 맛이요, 적멸의 맛이요, 정법을 순순히 따라서 어긋나거나 틀림이 없는 모양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일행삼매를 얻으면 다 서른일곱 가지 도를 돕는[助道法] 법을 만족하여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느니라.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이 법계의 분별상 및 같은 상[一相]을 보지 못하면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상(相)의 불가사의함을 얻느니라. 이 보리 가운데는 또한 부처도 얻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아는 자는 빠르게 아뇩다라삼보리를 얻느니라. 만약 일체법이 다 이 부처님의 법임을 믿어 놀라거나 두려움이 생기지 아니하고, 또한 의혹하지 아니하며 이와 같이 참는 자는 빠르게 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005_0951_c_02L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원인[因]을 가지면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원인을 가지지 않아도 얻고[不以因得] 원인을 가져도[不以非因得] 얻느니라. 왜냐하면 불가사의한 경계[界]는 원인을 가지지 않아도 얻고 원인을 가져도 얻기 때문이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태만하지 아니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먼저 과거 부처님에게서 모든 선근을 심었느니라. 그러므로 비구와 비구니가 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함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곧 이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였느니라. 만약 우바새ㆍ우바이가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마음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곧 이에 참된 귀의처를 성취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익히지 아니하면 곧 이는 불승(佛乘)을 닦지 아니함이니, 비유하면 대지와 같아 일체의 약 나무가 다 땅에 의지하여 성장함과 같으니라.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 일체 선근이 다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증장함을 얻되 새로 위배되지 아니하느니라.”
이 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염부제(閻浮提)의 성이나 읍ㆍ부락 중에 마땅히 어느 곳에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연설하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모임 가운데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다 맹서하여 말하되 ‘미래세에 항상 반야바라밀을 얻어 함께[相應]하며 이로부터 믿고 이해하여 미래세 중에 능히 이 경을 들을 것이다’라고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다른 적은 선근 중에서 온 것이 아니요, 능히 받아 듣고 나서 환희하여 견뎌낸 바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다시 어떤 이가 있어 너를 따라 이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응당히 이런 말을 하리라.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성문ㆍ벽지불의 법ㆍ부처님의 법이 없고 또한 범부의 생멸 등의 법도 없도다’라고.”
005_0952_a_02L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저에게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여래께서 설하신 반야바라밀인가’라고 하면 저는 마땅히 ‘모든 법은 다투어 토론할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여래가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설하셨다고 하느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이 있어서 법과 쟁론할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고, 또한 중생의 마음과 알음알이[心識]는 능히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다시 궁구(究竟)의 실제(實際)를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법의 모양이 함께 실제에 들었으며 아라한도 특별히 훌륭한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아라한 법과 범부의 법은 같은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설한 것입니다. ‘중생이 없이 열반을 얻고 지금도 얻고 앞으로도 얻을 것이다’라고. 왜냐하면 중생이라고 결정한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듣고자 하면 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듣는 이에게 설할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말고, 집착도 하지 말며, 들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마치 허깨비와 같아 분별할 수 없다’라고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 진실한 설법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자가 두 가지 모양을 짓지 말 것이며, 모든 견해를 버리지 아니하고 불법을 닦으며 불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범부의 법도 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과 범부, 두 법의 모양이 공하여 취하고 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에게 묻는다면 마땅히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안위하고, 이와 같이 주장[建立]할 것입니다.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묻고, 이와 같이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말고 빠지지도 아니하여 마땅히 법의 모양과 같이 반야바라밀의 설법에 수순하라고 할 것입니다.”
005_0952_b_02L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의 설한 바와 같도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응당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여 법대로 공양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만약 ‘여래는 나의 세존이시다’라고 말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만약 여래는 ‘나의 세존이 아니다’라고 말하고자 해도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 하면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다.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 하지 아니하여도 또한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만약 일체 삼매를 성취하고자 하면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다. 만약 일체 삼매를 성취하고자 아니하여도 또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무작삼매(無作三昧: 생사의 법에서 원하는 생각을 여읜 선정)에는 다른 모양이 없는 까닭이며, 일체법은 생김도 없고 나옴도 없는 까닭이니라.
만약 일체법이 가명(假名)임을 알고자 하면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만약 일체 중생이 보리의 도를 닦음에 보리의 모양을 구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물러나거나 빠지지 아니하는 것을 알고자 하면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일체법은 다 보리의 상(相)인 까닭이니라. 만약 일체 중생의 행(行)과 비행상(非行相) 비행(非行)이 곧 보리요, 보리는 곧 법계이며, 법계가 곧 실제이며, 마음이 물러나거나 빠지지 아니함을 알고자 하면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며, 만약 일체 여래의 신통변화가 모양이 없고, 걸림이 없고, 또한 방향과 처소가 없음을 알고자 하면 꼭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것이니라.”
005_0952_c_02L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악도[惡趣]에 떨어지지 아니함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의 한 4구게(句偈)라도 배워서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실상을 수순하게 하여야 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곧 부처님 나라에 머무는 것임을 알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마음에 믿고 아는 것[信解]이 생기면 마땅히 알라, 이들은 부처님께서 인가(印可:認定)하실 것이며, 이는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 대승 법인(法印)이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법을 얻어 악도[惡趣]를 뛰어넘으면, 성문이나 벽지불도에 들어가지 아니하나니, 이는 뛰어넘는 까닭이니라.”
그때에 제석(帝釋)이 삼십삼천(三十三天)의 묘한 하늘 꽃인 우발라화(優鉢羅華)ㆍ구물두화(拘物頭華)ㆍ분타리화(分陀利華)ㆍ천만다라화(天曼陀羅華) 등과 하늘의 전단향(旃檀香) 및 다른 가루향[末香]과 가지가지 금과 보배며 하늘의 음악[天伎樂]으로 반야바라밀과 아울러 모든 여래 및 문수사리에게 공양하고 그 위에 흩으며 이와 같이 공양하고 나서 ‘나는 항상 반야바라밀의 법인(法印)을 듣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석제환인(제석천)은 다시 이렇게 원하였다. ‘염부제의 선남자 선여인으로 하여금 항상 이 경을 듣고 불법을 결정하여 다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연설하게 하며 일체 하늘은 옹호하여지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礬尸迦)여, 그러하도다. 그러하도다. 선남자 선여인이 마땅히 결정코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받아가지는 선남자 선여인은 큰 이익을 얻어 공덕이 한량없을 것입니다.”
그때에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일체의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곧 이것이 여래의 인(印)이며, 반야바라밀의 모습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나면 다 이런 상서로움이 나타나서 반야바라밀을 인가하는 까닭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 지니고 칭찬하거나 헐뜯음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모양이 없는 법인(法印)은 칭찬하거나 헐뜯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내가 지금 이 법인을 가지고 모든 하늘의 마귀가 능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