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장로(長老) 수보리(須菩提)가 대중 속에 있다가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005_0979_a_08L時,長老須菩提在大衆中卽從座起,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恭敬而白佛言:
“희유(希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보살들을 잘 염려 보호해[護念] 주시고 보살들을 잘 당부하여 위촉해[善付囑] 주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고는 어떻게 머물러야 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수보리야, 네 말과 같이 ‘여래는 보살들을 잘 염려하여 보호하고 보살들을 잘 당부하여 위촉해 주나니’, 정신 차려 들어라. 말해 주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는 이렇게 머물러 있어야 하며,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되나니, ‘이른바 세상에 있는 온갖 중생인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과 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상(有想)ㆍ무상(無想)ㆍ비유상(非有想)ㆍ비무상(非無想)을 내가 모두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2)에 들도록 하리라’ 하라.
수보리야, 보살은 이렇게 보시를 행하여 상(相)7)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만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福德)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동쪽에 있는 허공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러한 말씀[章句]을 듣고서 진실이라는 믿음을 내겠습니까?”
005_0979_b_21L須菩提白佛言:“世尊!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生實信不?”
005_0979_c_02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말라.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 나중 5백 년[後五百年]9)에도 계(戒)를 지키고 복(福)을 닦는 이는 이 말씀에 믿음을 내어 이것을 진실이라 여기리니, 어떤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ㆍ넷ㆍ다섯 부처님께만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ㆍ만 부처님께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는 잠깐 만에 깨끗한 믿음을 내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중생들은 이렇게 한량없는 복덕을 받느니라. 왜냐하면, 이 중생들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전혀 없으며, 법상(法相)10)도 없고 비법상(非法相)11)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이 중생들이 만일 마음이 상에 걸리면 이는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일 법상에 걸리더라도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되나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일 비법상에 걸리더라도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법상에도 걸리지 말아야 하고, 비법상에도 걸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러기에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같이 여겨라’ 하였나니, 법상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상이겠는가?”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여기느냐? 여래가 설법한 것이 있다고 여기느냐?”
005_0979_c_15L“須菩提!於意云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만한 일정한 법이 없으면, 여래께서 말씀하셨다고 할 만한 일정한 법도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가 잡을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비법(非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갖 현인(賢人)이나 성인(聖人)들이 모두 무위의 법[無爲法]12)에서 여러 가지 차별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005_0980_a_02L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매우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의 성품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005_0980_a_02L須菩提言:“甚多,世尊。何以故?是福德卽非福德性。是故如來說福德多”。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4게(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에게 말하여 주면, 그 복덕은 저 7보를 보시한 복덕보다 더 수승(殊勝)하리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여러 부처님들과 부처님들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또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말하되 사구게만 설명하더라도 온 세계의 하늘 무리나 세상 사람이나 아수라(阿修羅)들이 모두가 공경하기를 부처님의 탑과 같이 할 것이거늘, 하물며 어떤 사람이 끝까지 다 지니어 읽거나 외울 때이겠는가? 수보리야,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제일이고 희유(希有)한 법을 성취하게 되리니, 이 경이 있는 곳은 곧 부처님이나 혹은 거룩한 제자들이 있는 곳이 되느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티끌은 티끌이 아니므로 티끌이라 하며, 여래가 말한 세계는 세계가 아니므로 세계라 이름하느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32상(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32상으로는 여래를 보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32상은 곧 상(相)이 아니므로 32상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으나, 만일 다음 세상의 마지막 5백 세[後五百歲]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 희유하리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사람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곧 아상이 곧 상(相)이 아니요, 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온갖 상을 여읜 이를 부처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사람인 줄을 알지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는 제일 바라밀은 제일 바라밀이 아니므로 제일 바라밀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005_0981_b_02L수보리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하노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길 적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기 때문이니라. 만약 내가 옛날에 몸을 찢길 적에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있었더라면 성을 내어 원망하였을 것이니라. 또 저 옛날 5백 생 전에 인욕 선인(忍辱仙人)이었던 일을 기억하건대, 그때에도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온갖 모양을 여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지니, 빛깔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아야 하나니, 마땅히 머무름 없는 마음을 낼지니라. 만일 마음이 머무는 데가 있으면 이것은 머무름이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보살은 마음을 빛깔에 머무르고서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느니라.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침나절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점심나절에도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나절에도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만억 겁(劫) 동안 보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그르다고 하지만 않아도 그 복이 저 보시한 복보다 더 많거늘 하물며 이 경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에게 일러 주기까지 함이겠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러 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알고 보나니, 모두가 한량없고 말할 수 없고 끝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이룰 것이며, 이런 사람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감당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소승법(小乘法)을 좋아하는 이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의 소견에 집착되므로 이 경을 듣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고 남에게 일러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나는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 연등(然燈)부처님을 만나기 전에 8백4천만억 나유타(那由他)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그냥 지내보낸 적이 없음을 기억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다음 말법(末法) 세상20)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은 내가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억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산수(算數)나 비유(譬喩)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다음 말법 세상에서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공덕을 내가 모두 말하면, 이 말을 듣는 이는 마음이 미치고 어지러워서 믿지 아니하리라. 수보리야, 이 경의 이치는 말이나 생각으로 미칠 수 없고[不可思議], 과보(果報) 또한 말이나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와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거든 마땅히 이러한 마음을 낼지니, ‘내가 온갖 중생들을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리라’ 하라. 온갖 중생들을 모두 제도한다지만 실제로는 한 중생도 제도될 이가 없나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만일 보살이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있으면 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제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005_0982_b_02L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然燈佛)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을 것이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불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진실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있다면,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시지 않았으련만,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없으므로 연등불이 내게 수기하시기를 ‘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셨느니라.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의 몸이 동떨어지게 크다’ 하신 것은 큰 몸이 아니므로 큰 몸이라 하십니다.”
005_0982_b_19L須菩提言:“世尊!如來說人身長大,則爲非大身,是名大身。”
“수보리야, 보살들도 역시 그러하여 만일 말하기를, ‘내가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하면, 보살이라고 이름하지 못할지니, 무슨 까닭이냐? 수보리야, 진실로 보살이라고 이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온갖 법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다’ 하느니라.
005_0982_c_02L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불국토를 장엄하리라’ 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할지니, 무슨 까닭이냐?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의 장엄은 장엄이 아니므로 장엄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나와 법이 없음을 통달하면, 여래는 그를 참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많은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노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여래가 말한 모든 마음은 모두가 마음이 아니므로 마음이라 이름할 뿐이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005_0983_a_02L“수보리야, 만일 복덕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아니하련만 복덕이 없는 것이므로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말하였느니라.”
005_0983_a_03L“須菩提!若福德有實,如來不說得福德多;以福德無故,如來說得福德多。
20. 이색리상분(離色離相分)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부처를 모두 갖춘 모습[具足色身]으로서 볼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모두 갖춘 모습으로서 볼 수 없사오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두 갖춘 모습이란 모두 갖춘 모습이 아니므로 모두 갖춘 모습이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를 모두 갖춘 거룩한 몸매[具足諸相]로서 볼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모두 갖춘 거룩한 몸매로서 볼 수 없사오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두 갖춘 거룩한 몸매는 모두 갖춘 거룩한 몸매가 아니므로 모두 갖춘 거룩한 몸매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생각하기를, ‘내가 말한 법이 있다’ 하리라고 너는 생각지 말라. 그런 생각을 말지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이 있다’ 한다면, 이는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 나의 말뜻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법을 말한다는 것은 말할 만한 법이 없으므로 법을 말한다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나니, 아상도 없고 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어 온갖 착한 법을 닦으면 즉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야, 착한 법이란 것은 여래가 말하기를, ‘착한 법이 아니므로 착한 법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여러 수미산들처럼 그렇게 큰 7보로 보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에게 일러 준다면 앞의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서는 수효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여기지 말라. 수보리야, 그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진실로 어떤 중생도 여래가 제도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을 여래가 제도할 것이 있다면, 이는 여래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있다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기를, ‘아상이 있다’ 한 것은 곧 아상이 아니거늘, 범부(凡夫)들은 아상이 있다고 여기느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여래는 말하기를, ‘범부가 아니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항하의 모래 수같이 많은 세계에 7보를 가득히 채워 보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온갖 법이 나 없는 줄 알아서 확실한 지혜[忍]25)를 이룬다면, 이 보살은 저 보살의 공덕보다 썩 나으니, 수보리야,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도 세계가 아니므로 세계라 이름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만일 세계가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한 덩어리[一合相]26)가 된 것이려니와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한 덩어리는 한 덩어리가 아니므로 한 덩어리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1) 이하 소제명들은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없는 것인데, 역자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입한 것이다.
2) 육체 등 생존의 계약에서 완전히 이탈된 상태, 완전한 절대 무(無)의 경지로서 고뇌 없이 영원한 평안만이 있는 열반.
3) 5온(蘊)으로 된 이 몸을 참 나라고 집착하는 것.
4)나는 사람이요, 축생이 아니라는 집착이며, 또는 나에 대하여 남이라는 집착이다.
5)나는 5온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집착.
6)일정한 기간 동안 살아가는 목숨이 있다고 하는 집착.
7)마음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온갖 물건과 일의 모양을 말한다.
8) 몸의 생긴 모양이니, 부처님께서는 서른두 가지 뛰어난 모습이 있다고 한다.
9)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부터 다섯 번의 5백 년씩을 기한하여, 한 5백 년마다 한 가지가 굳어진다고 말하여 불법의 쇠하는 모양을 보였으니, 첫 번째 5백 년에는 해탈이 굳어지고, 두 번째 5백 년에는 선정이 굳어지고, 세 번째 5백 년에는 많이 아는 것이 굳어지고, 네 번째 5백 년에는 절 짓고 탑 쌓는 일이 굳어지고, 다섯 번째 5백 년에는 다투는 일이 굳어진다고 하였다. 나중 5백 년이란 것은 다섯 번째의 5백 년을 말한 것이다.
10)마음과 경계의 온갖 법에 집착하는 것.
11)법이란 고집이 없어지고, 진리가 나타나는 것을 집착하는 것.
12)인연으로 생겨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닌 법을 말함이니, 곧 진여 이치를 말한다.
13)성문의 네 가지 과(果)의 첫 계급이니, 처음으로 성인 측에 참예한 것이다.
14)네 가지 과의 둘째 계급, 하늘이나 인간 세상에 다시 환생하여 깨닫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천계(天界)나 인간계에 출생하는 일이 없는데, 이와 같이 반드시 한 번 천상과 인간계를 왕래하기 때문에 일왕래과(一往來果)라 하기도 한다.
15)네 가지 과의 셋째 계급, 불환(不還)ㆍ불래(不來)라 번역하기도 하는데, 욕계에서 죽어 색계ㆍ무색계에 나고는 번뇌가 없어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계급.
16)성문의 마지막 과(果)로, 삼계의 견도혹ㆍ수도혹을 모두 끊고 공부가 완성되어서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한 계급.
17)공한 이치에 평안히 머물러 다른 이와 다투지 아니하는 선정.
18)아란야라고도 하며, 고요하다. 다투는 소리가 없다고 번역한다.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시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두타행을 말한다.
19)마음이나 온갖 물건의 본체(本體)를 말하는 것이니, 진여(眞如)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 하고, 법성ㆍ법신ㆍ열반ㆍ진성ㆍ진제라고도 한다.
20)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정법(正法) 시대 천 년과 상법(像法) 시대 천 년이 지난 이후 1만 년 동안을 말한다.
21)하늘 세계의 하늘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 사람도 선정을 닦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밤에나 낮이나, 겉이나 속이나 다 볼 수 있는 눈이다.
22)진공(眞空)의 모양 없는 이치를 비추어 보는 지혜를 말한다.
23)부처님의 몸에 육안ㆍ천안ㆍ혜안ㆍ법안을 갖춘 것.
24)부처님의 몸에 육안ㆍ천안ㆍ혜안ㆍ법안을 갖춘 것.
25)사람도 공하고 법도 공한 이치를 깨닫고 거기에 편안하게 머물러 있어 움직이지 않는 지혜를 말한다.
26)미진들이 모여서 세계를 조성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또 5온이 화합하여 사람이 된 것도 한 덩어리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