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6_1089_a_01L불설보문품경(佛說普門品經)
006_1089_a_01L佛說普門品經


서진(西晉) 월지국(月氏國) 축법호(竺法護) 한역
최봉수 번역
006_1089_a_02L 西晉月氏國三藏竺法護譯


이와 같이 들었다.
006_1089_a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에서 노니시다 영취산(靈鷲山)에서 8백 명의 비구로 이루어진 큰 비구 승단 및 4만 2천 명의 보살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들은 여러 가지 다라니[摠持]를 획득하였고, 신통을 이미 달성하였고, 성스런 지혜를 널리 창달하였으며, 변재(辯才)는 걸림이 없고, 삼매(三昧)에 이미 들었으며, 박학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006_1089_a_04L一時佛遊王舍城靈鷲山中與大比丘衆俱比丘八百菩薩四萬二千得諸摠持神通已達聖智弘暢辯才無㝵三昧已定無所不博
그때 이구장(離垢藏)이라고 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9만 2천 명의 보살과 함께 보화여래(普華如來)의 국토에서 왔다. 그 세계의 이름은 정행(淨行)이라 하였고, 지금 이곳에서 노닐고 있었다. 그는 인계(忍界:사바세계)의 영취산에 나아가 무언가를 질문하고 그 답을 듣고자 하였다.
006_1089_a_07L菩薩名離垢藏與九萬二千菩薩普華如來國來其世界名曰淨行遊在此欲詣忍界靈鷲山有所諮受
그때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보시고 미소를 지으셨다. 부처님의 입에서 밝은 빛이 나왔으니, 그것은 뛰어나고 특이하였으며, 여러 색깔을 지닌 광명이 시방에 두루 비쳐 안팎이 밝고 뚜렷하였으며, 두루 도달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006_1089_a_10L佛遙見卽笑口中光焰乃有殊特異色光明普照十方內外明徹無不通達
그때 대사(大士)인 부수동진(溥首僮眞)보살이 대중들의 모임 가운데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미소를 지으십니까? 미소를 지으신다는 것은 무언가 질문하고 결택할 바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세간 사람이 밝힐 바가 아닌 듯싶으며, 보살대사조차 능히 감당할 바가 아니니, 이를 가엾게 여기십시오. 오직 세존께서 미소를 지으신 데에는 마땅히 어떤 뜻이 있을 것이니, 가르쳐주시기를 원합니다. 미치지는 못하오나 모두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006_1089_a_13L爾時大士溥首僮眞菩薩卽於大衆會中起整衣服偏袒右肩長跪叉手白佛言世尊何笑耶笑乃有咨非世所明非菩薩大士之所能堪憐愇乃如此唯所尊笑當有意願示不及咸亦樂聞
006_1089_b_02L이에 세존께서 부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동방을 향하여 여기서 떠나되,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히 계산할 수 없는 아승기(阿僧祇) 백천해(百千垓:나유타)의 수효만큼 지나가면 한 세계가 있으니, 정행(淨行)이라고 한다. 그곳 부처님의 명호는 보화(普華)여래이신데 항상 셀 수 없는 억억 백천의 보살마하살에게 둘러싸인 채 함께 불퇴전(不退轉)과 부사의(不思議)의 법을 강설하고 계신다.
그곳에 한 존귀한 보살이 있으니, 이구장(離垢藏)이라고 한다. 그는 셀 수 없는 천(千)의 모든 보살대사와 그 권속에 둘러싸인 채 번기[幡]를 들고 허공을 날고 노닐고 걷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으로 그 이구장을 기억하며 사유하고 있었는데, 그가 길을 식별하며 멀리 여러 국토를 걸어 다니면서 보화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의 명령대로 선양[宣]하며 오고 있으니, 그는 「보문품(普門品)」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찾고 있으니, 마땅히 모임 가운데로 되돌아와 보살의 무리에 나아가 그 때마다 그 위대한 성인은 그 모습 그대로 그 가르침을 현양(顯揚)하고 감응을 보이고 셀 수 없고 한량없는 세계의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때에 맞춰서 빠짐없이 오게 한다. 이윽고 인토(忍土: 사바의 국토)에 이르러 대범천(大梵天)에게로 갔으므로 내가 미소를 지은 것이다.”
006_1089_a_18L於是世尊告溥首菩乃東方去此無量無數不可計會阿僧祇百千姟數有世界名淨行佛號普華如來常與無數億億百千菩薩摩訶薩圍遶共講不退轉不思議之法有尊菩薩名離垢藏與無數千諸菩薩大士眷屬圍遶幡飛遊步虛空佛心念斯離垢藏簡別由路遠步諸國宣普華如來至眞等正覺命受「普門品」今尋當還會詣菩薩衆于時大聖卽如其像顯揚其教示現咸應令無數無限世界諸菩薩衆時悉來至斯忍土往於大梵天是故我笑耳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그 이구장보살과 여러 대중들은 홀연히 따로 이 영취산에 도달하여 권속들에 둘러싸인 채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렀다. 그는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밑에 예를 올린 뒤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이 영취산 가운데에 있던 여러 보살 대중들로서 한가하게 지내던 자들도 빠짐없이 와서 집회에 참석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006_1089_b_10L言適竟彼離垢藏菩薩與諸大衆忽然以別到此靈鷲山眷屬圍遶行到佛所稽首足下卻住一面靈鷲山中諸菩薩衆閑居燕者悉來集會禮畢竟卻就坐
그때 이구장보살이 때맞추어 7보로 된 연꽃을 변화로 만들어 냈는데, 그 잎이 천 개나 되었다. 그는 연꽃을 가지고 능인(能仁) 여래ㆍ지진ㆍ등정각 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받들어 올리며 말씀드렸다.
“보화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정행(淨行)세계의 성존(聖尊)이신데, 능인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한량없이 유행을 다니시며, 건강하시고 무강하시며, 기력이 가볍고 편리하시며, 일어나고 거처하시는 데 안온하시며, 구제하신 바는 많으신지’를 공경스럽게 여쭈셨습니다. 지금 친견하도록 보내셔서 제가 온 것입니다. 저는 「보문품」 등 불가사의한 청정한 품을 선양하고 공경하고 가르치고 일깨우고 받고자 하오니, 개사(開士:보살)들을 위하여 설해 주십시오.”그때 이구장보살대사는 모두 질문하여 마친 뒤에 물러나 허공에서 결가부좌(加趺坐)를 하고 앉았다. 여러 개사들도 함께 보배 연꽃 위에 앉았다.
006_1089_b_14L離垢藏菩薩應時化作七寶蓮花其葉有千持詣能仁如來至眞等正覺稽首奉上白普華如來至眞等正覺淨行世界聖尊敬問無量遊步康彊勢力輕利起居安隱多所救濟今見遣來宣敬誨啓受「普門品」等不可思議淸淨之爲開士說離垢藏菩薩大士訊周畢退在虛空結加趺坐與諸開坐寶蓮花上
006_1089_c_02L그때 부수동진이 대중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일어나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앞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한 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보문품」의 불가사의한 도품(道品)의 법을 설해 주십시오. 보살들을 위하여 그것을 분별해서 연설해 주십시오. 이미 지나간 오래된 멀고 먼 과거의 세상을 저는 기억하고 사유합니다. 그때 저는 보증명(普證明)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부터 이 경전을 듣고 84만 백천억해(百千億姟)의 삼매를 일으켰으며, 또한 77억 백천 여러 해(姟) 다라니 법문의 행법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이시여, 여러 보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거듭 그것을 선양해 주십시오.”
006_1089_b_23L爾時溥首僮眞便於大衆會中起更整衣服偏袒右肩長跪叉手而白佛言善哉世尊願說「普門品」不可思議道品法原爲菩薩分別演之憶念往古過久遠世時普證明如來至眞等正覺聞斯經典興立八十四萬百千億姟三昧又還七十七億百千諸姟摠持門行唯願世尊愍諸菩薩重宣揚之
부처님께서 부수동진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도록 해라. 나는 그대를 위하여 마땅히 보문(普門)의 안으로 감추어진 불가사의하고 비밀스러운 보배 가운데 있는 마음의 일에 대하여 갖추어 설하겠다.”
006_1089_c_08L佛告溥首僮眞諦聽善思念之吾當爲汝具說普門內藏不可思議秘寶中心之事
이에 부수보살과 그 대중들은 다 함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기를 원합니다.”그때 부수동진은 여러 보살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가르침을 받고자 경청하였다.
006_1089_c_10L於是溥首菩薩幷其大衆咸共答曰世尊願樂欲聞爾時溥首僮眞諸菩薩一心受教而聽
부처님께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보문품」에 들어가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면 색(色)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음성(音聲)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냄새와 향기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온갖 맛[味]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감촉[細滑]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심계(心界)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한다.
여인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남자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소녀[僮女]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소년[童子]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여러 천신[天]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여러 용(龍)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여러 귀신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건답화(揵畓和:건달바)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한다.
006_1089_c_13L佛告溥首有菩薩摩訶薩欲學「普門品」所入之等遊於色等遊音聲等遊臭香遊衆味等遊細滑等遊心界等遊女等遊男子等遊僮女等遊童子遊諸天等遊諸龍等遊諸鬼神等遊揵沓和
006_1090_a_02L아수륜(阿須倫:아수라)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가루라(迦樓羅)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진타라(眞陀羅:긴나라)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마후륵(摩睺勒:마후라가)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지옥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아귀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축생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한다.
탐착과 음욕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진에(瞋恚)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우치(愚癡)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여러 선한 일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온갖 덕의 근본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고, 온갖 유위(有爲)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하며, 온갖 무위(無爲)에 대해 동등하게 노닐어야 한다.
그와 같이 부수여, 여러 개사들은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해 두루 힘써야 하니 모든 것은 빠짐없이 동등한 것이며, 평등하게 대함으로써 도를 구족하고 도에 이르러 물러서지 않는다. 나아가 심오하고 미묘하고 하나이고 비밀스럽고 공성(空性)이고 없는 것이고 적정한 법의 핵심[法要]에 두루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보문정문(普門定門)의 법에 들어가기 위해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89_c_19L等遊阿須倫等遊迦樓羅遊眞陁羅等遊摩睺勒等遊地獄遊餓鬼等遊畜生等遊貪婬等遊瞋等遊愚癡等遊諸善等遊衆德本等遊諸有爲等遊諸無爲如是溥首諸開士所可周旋爲若此一切悉等以居平等具足至道不轉普入法要深微一密空無寂靜是爲學入普門定門之法
부처님께서 부수동진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색(色)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색은 물거품과 같다고 밝고 명료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하여 색은 얻을 수 없으며, 보호하거나 간직할 수 없으며, 견고한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색은 없다고 의지로 동등하게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색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a_04L佛告溥首僮眞何謂菩薩等遊於色曉了解色如水之沫而不可得可護持無有堅固則爲等意觀無有是謂菩薩等遊於色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음성(音聲)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치 사람이 부르고 소리를 지르면 울리는 메아리가 있지만 찾으면 소멸하여 어떤 형상도 없어 이르는 곳을 알 수 없다. 모든 것에는 약간의 실체도 없어서 차이나는 것이나 특별한 것이 없고, 모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모습이 없음을 깨달아 알면 사람이 말한 것이란 허무하여 실체가 없다. 온갖 소리가 깊은 산 속에서 울리는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을 이미 밝게 알았다면, 그것이 능히 동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음성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a_08L又告溥首謂菩薩等遊音聲如人呼聲而有嚮尋卽消滅則無形像不知所至切無有若干之事而無差特亦無有已了無相人所言者虛無無實曉諸音深山嚮報則能等觀是爲菩薩等遊音聲也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냄새에 대해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두루 힘쓰며 오가기를 백억 겁의 수만큼 하여도 코는 냄새를 맡으면서 싫어하지 않는다. 온갖 향기는 오가되 바람과 비에서 짙어지고 모두 모여 돌아오니, 마치 큰 바다처럼 깊어 가득 찰 줄을 모른다.
그 향기의 모습은 무상하여 백 가지로 변하며, 변화는 환영[幼]과 같아 근원이 없다. 혹은 도덕을 혼란하게 하니 옹호할 수가 없다. 이와 같으니 곧 허위법이며, 진실한 사실[眞諦]이 없으니, 설령 구하고 살피고 시험하여도 역시 어울리고 모이는 곳이 없다.
이로 인하여 살펴보면 그것은 무소유이며 간직할 수 없는 것이며, 허무한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며, 홀리는 것이며, 공허한 것이다. 환영과 같고 변화와 같고, 역시 본래의 형상도 없는 것이다. 그림자에 대한 상념과 식별과 집착에 의지하여 일어나 이루어진 형체이니, 만일 능히 허무하여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분별한다면, 이것을 보살이 냄새에 대해 동등하게 관찰하여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a_14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臭香周旋往返百億劫數鼻之所嗅而無有厭衆香來趣劇於風雨皆集歸身如大海淵無有充滿其香之像無常百變變化如幻無有根原或亂道德而不可擁如此則爲虛僞法也無有眞諦設求審試亦無合會由是倫之斯無所有而不可持無無實恍惚若空如幻如化亦無本影想識著緣起成形若能分別虛無無實是爲菩薩等觀則遊於臭香
006_1090_b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온갖 맛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목구멍에서는 짠맛을 알지 못하지만 또한 맛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인연 분별에 따라 단지 혀로 달게 여길 뿐이며, 인연이 화합하고 모임으로 인해 백천 종류의 맛이 된 것으로 그것은 환영이며 변화이다. 땅에서 생한 것은 그 맛이 동일하여 약간의 차이도 없다. 그러한 것을 밝고 명확하게 지각해서 일체의 같은 맛에 대해 생각도 기억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온갖 맛에 대해서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a_24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衆味至於喉咽不知鹹味亦無不味從因緣分別舌之所甘耳由緣合會百千種味爲幻化地之所生滋同一味無若干曉了覺知無想不念一切同甘爲菩薩等觀遊於衆味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촉감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의지가 있어 존재하는 대로 연기(緣起)하여 그것을 추구하니, 몸에 꽃과 구약나물[蒻]로 물들이고 영화롭고 좋은 색을 첨가해서 만든 옷을 입어 진귀하고 보배롭고 기이해도 그것에서 부드럽고 연한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미 모두 그러한 인연이니, 촉감이나 신발에도 마땅히 머물 바가 없고, 역시 집착할 바도 없다. 그리하여 촉감은 헤아려도 이미 이익되는 바가 없으며, 세상 사람들이 욕심내고 어리석고 사악해서 그것을 탐내는 것이다. 나고 죽는 일의 근본이 확립되는 것은 모두 그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니, 밝고 지혜로운 대사들은 그 부족함을 알아서 그것과 관련된 일에는 종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영원히 세간에 근심할 것이 없다.
006_1090_b_07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細滑者有所存緣起求之身服華蒻加榮好珍寶異奇其柔軟者而不可得都斯緣細滑䩕%(革*亢)無所適住亦無所計于細滑無益已世之慾愚惡所立生死本皆由斯起明智大士知其舋不與從事永世無患
모든 존재하는 것은 땅이 싣고 있는 것이다. 형태를 지닌 무리들은 하나이고 동등한 것이지 둘이 아니다. 단지 색들이 화합하여 문득 인민을 이루었다고 들었다. 갖가지 다른 색을 만들어 그에게 입혀 보지만 이는 도덕을 미혹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어진 무리들과 친하지 못한다. 통달한 자는 그것을 지각해서 그것과 관련된 일에는 종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숨어살면서 굵은 베옷을 입고 지혜를 품고 있어도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만일 바깥에 오랑캐가 있는데 안으로 밝은 구슬을 품고 있다면 천억만 겁 동안 도(道)와 더불어 한 몸일 것이다. 나의 자아를 멀리 여의면 역시 자아라는 상념도 없을 것이다. 촉감과 자아, 이 둘은 동등한 것이며, 허무하고 실체가 없어 환영과 같고 변화와 같아서 역시 의지할 바도 못 되고 머물 곳도 못 된다. 옷을 입음으로 해서 아름다운 것 같지만 통달한 자는 그것을 보고 무소유임을 깨닫는다. 이것을 보살이 촉감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b_14L一切所有地之所載有形之屬一等無二也但聞色所造撗作人民使作種種已被服之迷亂道德不親賢衆者覺知不與從事也隱居被褐懷智作愚外若夷人內懷明珠千億萬劫與道同軀遠離吾亦無我想細滑與我二者同無虛無實如幻如化無所依亦無住處因著被服乃有所猗達士睹之覺無所有是爲菩薩等觀遊於細滑
006_1090_c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마음의 법[心法]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음의 법이란 삼계에 있는 사람들이 보호하는 것이다. 편안하게 하고 위로하고 권유하고 즐겁게 하며 빠짐없이 모이게 한다. 덕으로써 편안하게 하고, 방편으로써 권유하며, 지혜로써 수용하고, 널리 범행(梵行)을 닦아 삼계에 있어 담담하게 한다.
그러나 한 장소에서 확립하여 존재하게 하되 역시 합치는 것도, 여의는 것도 없어야 한다. 잡힌 마음으로 하여금 영원히 아는 바가 없도록 해야 한다. 실로 마음의 형상은 소리가 오가는 것처럼 볼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주저하는 것도 없다. 마땅히 마음과 같은 것은 그 무리가 합치는 것도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알 수 없고 역시 적절한 장소도 없다.
몇 가지 색깔이 드러나 색깔이 각각 다르다고 해도 안에도 역시 처소가 없다. 처소도 역시 머무는 바가 없어 환영과 같고 변화와 같아서 허무하니, 처소에는 처소가 없고 거처하는 것도 없다.
통달한 자는 그것을 보고 무소유임을 깨달아 안다. 즉 스스로 잡은 마음에는 기억도 없고 추구하는 것도 없으며, 보거나 보지 않거나 듣거나 듣지 않거나 담담하게 스스로를 지킨다. 이것을 보살이 마음의 법을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b_24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心法心法者三界人之護也安慰勸樂悉令集會安之以德勸之以㩲授之以慧普修梵行於三界澹然在一處亦無合離使永執心莫知所不見形像音聲往來亦無猶豫應如心衆無合散不知住處亦無所若現若干種色色色各異於內亦無處處亦無有住如幻如化虛無處無處無所處達士睹之了無所有便自執心無念無求見若不見聞若不澹然自守是爲菩薩等觀遊於心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의지[意]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의지로 여인에게서 노닐되 4대(大)라고 관찰하면 여인이란 없다. 그러나 의지가 어리석고 미혹한 자는 항상 애욕에서 거칠어지고 허무하게 된다.
그 당체[體]는 하나로 동등하여 훼손할 수 없는 것이며, 여인은 마치 환술사가 사람의 모습을 화작하되 높낮이와 곧고 굽은 부분을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일으킨 것과 같다고 여긴다. 가는 곳에 따라 즐기는 바가 있겠지만 여인은 환영과 같아서 색욕(色欲)의 의지를 일으키지만 그곳에 여인은 없다.
사람이란 같고 하나이며 동등하다. 어리석음에는 미혹한 바가 있고 의지에는 애욕을 따르는 것이다. 애욕은 문득 갈애[愛]에 이르고, 갈애는 쾌락에 이르니, 이것은 결코 의지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빨리 그것을 조절하고 다스려야 할 것이다.
밝은 자[明者]는 그것에 통달하니, 허공과 같음을 분별한다. 공성[空]이고 없는 것이고 적정한 것이어서 형상이 없다고 분별한다. 연기한 까닭에 상대[對]를 인해서도 상대함이 없으니 일어남도 없다. 만일 능히 이와 같은 것을 분별한다면 이것을 보살이 여인에 대한 의지의 법[意法]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c_13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於意遊女人察于四大則無女人志癡惑悉於愛欲荒于虛無其體一等無可毀者計有女者猶如幻士化作人低昂鞊曲隨人意起因彼所行其所樂女人如幻起色欲意彼無有女也人同一等癡者所惑意者從欲欲便致愛愛致樂此不可猶放急宜調之羈靽明者達之分別如空空無寂靜而無有形緣起因對無對無起若能分別如斯者是爲菩薩等觀遊於女人意法
006_1091_a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청정한 법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청정이라는 것은 남자와 같은 것이다. 마치 남자로 하여금 동등하게 스스로 의지를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다. 그 마음은 금강과 같아서 오로지 그 의지는 홀로 영웅 같고 용맹하고 발흥한다.
저 여인을 상념하되 욕심은 색이 없는 것이니 그 실체를 획득할 수 없으며, 역시 여인의 모습 등은 드러낼 수 없으니, 오직 여러 가지 색으로 욕구하여 저 여인 등으로 생각하고 상념 했어도 이는 마치 들판의 말[野馬:아지랑이], 물속의 달과 같다. 그와 같이 관찰한다면 곧 남녀가 없는 것이며, 남자의 형상도 없고 여인도 역시 그렇다고 깨달아 안다. 허위로 세워진 것이어서 오래 머물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단지 변화이자 환영으로써 황망함을 드러내고 문득 멸진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로써 능히 남자의 의지[男意]와 여자의 의지를 분별하고 지각하게 되니, 이 두 가지는 공성이고 무소유이다. 이 두 가지가 이미 능히 평등해지면 여인을 드러낼 수 있고 다시 변화하여 남자를 이루어낸다. 이것을 보살이 남자에 관련한 청정한 법[男子淨法]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0_c_24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淨法也淨爲如男子如令男子自發意其心如金剛專意獨雄猛念斯女人欲心爲無色其實不可亦不現女像等惟諸色欲發起女人想設欲所思想斯男斯女人等野馬水中月如是觀者則無男女無男形女人俱然虛僞而立如無久但化幻示現慌現便滅以能分別覺知男意女意此兩者空無所有也已能平等則能現女復化成男是爲菩薩等觀遊於男子淨法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소녀[童女]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치 나무뿌리를 뽑아 버리면 싹은 끝내 다시 날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에 따라 멈추어 버린다. 그러한 밝은 지혜를 갖춘 자는 열매를 구하지 않거니와 열매란 실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좋은 집안의 훌륭한 아들이 총명하고 통달하고 분별력이 있고 논의를 잘하고 사리에 밝다면 일체의 용맹한 생각을 일으키되 괘념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마치 오래된 나무에서 꽃과 열매가 생기지 않는 것과 같고, 마치 오래되어 마른 강과 하천의 물이 흐르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소녀와 여인에 있어 동등하니, 이는 드러난 바가 평등한 것과 같다. 또한 공성이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과 같으니, 그 여인의 근본 역시 청정함을 관찰하고, 그 남자의 근본 역시 청정함을 관찰하고, 그 니원(泥洹:열반)의 근본 역시 청정함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을 소녀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1_a_12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僮女也拔樹根萌終不復生心不復起從是則止其明智者不於求果果亦不可若有種姓之家詪詪之子聰達別曉發一切勇猛想無念如枯樹不生花實如枯竭江河水不流斯等於僮女女子如此所現平等如空無無觀彼女人本亦淸淨觀彼男子本亦淸淨觀彼泥洹本亦淸淨如是等則爲等觀遊於僮女
006_1091_b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소년[僮男]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약 수목과 같아서 싹이 없다면 뿌리나 줄기도 없으며, 설령 뿌리나 줄기가 없다면 꽃과 열매도 없으며, 설령 꽃과 열매가 없다면 열매에 관한 이름도 없는 것이다.
여인도 그와 같아서 설령 여인이 없으면 곧 남자가 없으며, 남녀에 대해 동등하게 여기면 곧 내 자신도 없다. 호칭에 연하여 글자를 세우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을 상념한 것이다. 여인이 생기지 않으므로 자식의 성품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없음을 이해하면 없음이 동등한 것이 되고, 그것이 평등한 것이 된다. 이것을 보살이 소년에 대하여 그와 같이 동등하게 관찰하여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1_a_22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僮男若如樹木設無有萌牙則無根莖設無有根莖則無華實設無華實則無果名字也女人如是設無女人則無男子等於男女則無吾緣號立字想於無知覺女無生不有子性解一切人無則爲等則平等是爲等觀菩薩如是遊於僮男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여러 천신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여러 천신은 장엄되어 있고 청정하니, 그 공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의지는 신선하고 청결하며 마음도 청정하고 입도 청정하니 도대체 더러운 것이란 없다.
천신의 궁전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만 만들고 세운 자가 없으며, 마음에 미묘한 꽃을 심어도 씨앗이 없다. 복덕이 자연스러워서 환영이나 변화와 같다.
부사의하고 청정한 광명의 유리가 생겨 있으니, 그것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청정하고 명료하다. 또한 시체도 없고 잘못된 것도 없다. 그러나 허무하게 성립된 것으로 천상은 거짓된 형체이며 자연스럽게 형태가 생기되 황홀하게 나타난다. 뛰어나게 평등을 설하니 여러 천상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은 허무한 것이긴 하나 그곳에는 밖에서 빌린다는 비유조차 없다.
32천(天)의 궁전과 누각을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 보지만 그것은 자연에 속하는 것이다. 그곳을 본 자는 없지만 오직 도인(道人)만이 알고 얻을 뿐이다. 이것으로 보살은 안팎이 평등하고 다름이 없음을 깊게 관찰한다. 이것을 보살이 여러 천신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1_b_07L又告溥首何謂菩薩遊於諸天諸天嚴淨功德自然其意鮮潔心淨口淨無有瑕穢宮殿綺飾無造立者心樹妙華亦無種者福德自然若如幻化生無思議淨光琉璃械度淨了亦無尸爽虛無成立天爲僞體自然生形恍惚而現勝說平等現諸天像是爲虛無無借外之喩案內觀歷三十二天宮殿樓閣自然之數無有見者得道人乃知之耳是以菩薩深觀內外平等無異是爲菩薩等遊諸天
006_1091_c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여러 용(龍)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물이 없음을 보고 구름을 일으켜 7일 동안 비를 내리니, 모두 이슬로 윤택해진다. 물이 담담하여 목욕하지 못할 곳이 없고, 바깥도 안도 없이 모든 염부제[閻浮]는 두루 큰 바다로 돌아간다. 가득 찬 물은 그 원천에서 온 것이니, 중생은 그와 같이 배워야 한다.
약간의 인연이 있으니, 그 인연은 수가 많다. 일어나는 것을 추구해도 멸해 버리니 근심에 빠지게 된다. 셀 수 없는 죄가 나타나 있는데 여러 종류라서 같지가 않다.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 보아야 하는데, 용은 도리어 교경(鮫驚)하였다. 사람들마다 모두 그러하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부서지는 것은 모두 용의 흥기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안의 용[內龍]은 반대하지 않고, 밖의 용[外龍]은 따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중생이 지니지 않는 그러한 복은 없다. 어리석고 어두운 이는 허위로써 진실을 삼는다. 그러나 보살대사들은 용이란 평등하여 안팎으로 상응하며, 자비가 동일하다고 본다. 이것을 보살이 용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1_b_18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諸龍也無水興雲七日雨所露潤無不澹浴在外內遍閻浮利漸歸大海所滿水所由來衆生如是學若干緣緣此多求起滅致憂現無數罪種種不同內觀歷瞋怒何從龍反鮫驚人人皆崩天破地皆從龍興內龍不反龍不從福無自然衆生無有愚冥之以虛爲實菩薩大士睹龍平等外相應慈同一等是爲菩薩等遊於龍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귀신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음은 문이 열린 것과 같고 색과 더불어 형상이 있다. 그 몸은 높고 커서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온갖 생각이 한번 모이면 백천의 무리가 역시 형상도 음향도 상응하는 것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독을 마셔 스스로를 해친 뒤에 그 마음은 한 종류로 무서워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모두는 방자하고 돌아다니면서 도둑질하고 스스로 방종한 데서 말미암는 것이니, 나중에는 곤란해지고 금지하는 것을 만나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 법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온갖 상념이 함께 되돌아오니 그 상념은 불가사의한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을 공허하게 설하는 것이다. 귀신은 무엇을 따라 흥기하는지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그 안의 귀신[內鬼神]이 몇 백천의 무리를 이루고, 그 밖의 귀신[外鬼神]도 그러하다.
006_1091_c_05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鬼神心如門開與色有像其身高大爲不可及諸念一會百千之衆亦無形像音響爲應譬如飮毒自害其已其心一類無可畏者皆由放恣遊盜自縱因難所禁會有恐懼此法無有實也衆想竝來歸其想不可議無實爲空說內觀歷鬼神從何興也其內鬼神干百千之衆其外亦然
안으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일으키지 않으면 밖으로도 무서움이란 없다. 그 안으로 슬퍼하고 애도하지 않으면 밖으로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안으로 귀신의 상념을 일으키면 밖으로 몇 백천의 귀신의 무리가 있게 된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 돌아가니 이것에 연하여 병에 이르고 혹 사망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받는다. 모든 것이 사악한 마음에서 비롯되어 바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대사는 허무하여 귀신이란 없는 것으로 일체가 마음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지각한다. 그리하여 능히 마음을 평등하게 하고 의지를 청정하게 하니, 고요하고 평등하고 사악하지 않다. 그러므로 보살을 괴롭히고 해치는 자는 없다. 만일 무언가가 갖가지 변화를 일으켜 귀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안으로 스스로 귀신이 없음을 관찰하고 요지해야 하며, 밖으로 이것이 소멸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귀신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1_c_14L內不發恐懼則無畏其內不悲哀外則不淚出內發鬼神之想外有若干百千鬼神之衆皆來歸之緣此致病或至死亡受無數苦皆由邪心不正故也菩薩大覺知虛無無鬼神一切從心意起則能平等心淨意寂平等不邪是以無有嬈害菩薩者若現鬼像種種變內自觀察了無鬼神外者尋滅之謂也是爲菩薩等遊鬼神
006_1092_a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건답화(揵沓和)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그 법은 성품이 없으니 소리로 설할 뿐이다. 과거의 밝음은 오가는 것도 없고 역시 되돌아가는 것도 없다. 허공과 같아서 형태가 없으며, 소리를 따라 세울 뿐이다. 만일 보살대사가 있어 안으로 그것을 관찰해서 생각과 식별이 없으면 건답화도 없다. 건답화는 귀신을 인도하는 우두머리이다. 안으로 생각[想]을 일으키지 않으면 밖으로 사악한 염(念)은 없다.
어떤 이유로 이러한 온갖 병에 이르게 되는가? 요컨대 건답화를 모아 놓은 것은 이름은 있되 형상이 없으니 음향이 가고 되돌아올 뿐 본 자는 없다. 동등하게 설한 바의 요점은 무소유임을 깨달아서 알라는 것이다. 건답화란 허무하여 실체가 없으니, 보살은 그것이 환영과 변화에서 연유한 것임을 동등하게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건답화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1_c_23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揵沓和法無性而音說往曉無往來亦無還如空無形隨聲如立若有菩薩大內觀察之若無想識則無揵沓和揵沓和者鬼神之導首也內不起想外無邪念何緣致此衆病要集揵沓和者有名無形音響往返無有見者等說之要了無所有揵沓和者虛無無實菩薩等觀斯由幻化是爲菩薩等遊揵沓和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아수륜(阿須倫:아수라)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사건은 증명할 원인을 지니는 까닭에 아수륜의 마음은 동등하고,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고, 생하는 것도 아니고 다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평등하게 모든 분노[瞋怒]와 독기[毒意]를 드러내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아수륜에 기인하는 것이다. 아수륜은 용의 신이다. 질투심이 많은 것으로서 평등을 드러낸다. 이것을 보살이 아수륜에 있어서의 의지와 법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2_a_10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阿須倫有證因阿須倫心等無無滅生無盡而現平等一切瞋怒毒意皆由阿倫阿倫者龍神也多嫉妒心現平等是爲菩薩等觀遊於阿須倫爲意法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가루라(迦樓羅)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언사[辭]와 명호를 알리고 수용하고 세운다. 설령 명색(名色)이 없다고 하여도 명색으로 말미암아 혀가 있고, 혀를 따라 화(禍)에 이르고, 죄의 근본을 세우게 된다.
보살대사는 배운 것이 깊고 아는 것이 넓다. 그것이 공(空)이고 없는 것임을 지각한다. 이처럼 환영이고 변화이니, 의지를 따라 형상을 일으킬 뿐이어서 본 자가 없다.
음성은 오가는 것으로 인하여 미약하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자는 그와 같이 변화하는 억백천의 무리를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공성이어서 무소유이다. 따라서 보살은 가루라는 없다고 동등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가루라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2_a_16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迦樓羅受立辭名號設無名色由舌舌致禍立罪根本菩薩大士學深智覺之爲空無如斯幻化從意生形無有見者音聲往返因羸弱耶心不政者如是變化億百千衆案內觀歷二者俱空無所有也菩薩等觀無迦樓羅是爲菩薩等觀遊於迦樓羅
006_1092_b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진타라(眞陀羅)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법은 지은 바 없이 짓는 것이며, 지은 바 없고 짓지도 않는데 역시 능히 세워지고 능히 부서진다. 허공에서 비행하나 미치는 자가 없어서 단지 이름을 세워 진타라라고 한다.
일체의 것이 손으로 말미암는다. 손으로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잡으니, 의지가 일어나면 손이 움직이고 움직이면 대승(大乘)을 어기게 된다. 이것이 지옥의 고통을 만드는 것이니, 모두 진타라에 말미암은 것이다.
만일 보살이 생하는 바가 없음을 분별하여 해야 할 일을 모두 여읜다면 손은 스스로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인연으로 진타라가 있는 것인가를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면 멸하지 않고, 생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안으로 움직이면 밖으로 일어나고, 의지가 달리면 손이 일을 꾸미고, 일은 문득 괴로움으로 떨어진다. 괴로움으로 떨어지면 병들고, 병든 자는 모두 귀신이 되며, 그 귀신이 곧 진타라이다. 보살대사는 공성에 대하여 명료하게 요지해야 한다. 공성도 다시 공하며, 공성도 없고 실체도 없다. 진타라를 동등하게 관찰해야 하니, 일체의 것은 변화로 말미암은 것이며 실로 바른 법의 형상이란 없으니,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평등하게 하면 진타라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진타라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2_a_24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眞陁羅也法無作而作無作不作亦能有所立復能有壞飛行於虛空無有及者號眞陁羅一切皆由手手執諸作事意生手則動動則犯大乘是使有獄皆由眞陁羅若菩薩分別無所生離於作事手自不動搖何因有眞陁羅也案內觀歷不動則不搖不起則不滅不生則不死內動則外發走手則作事事便墮苦墮苦則有病病者皆有鬼神鬼神者則眞陁羅也菩薩大士曉了於空空而復空無空無實等觀眞陁羅一切皆由化無有正法形平等諸作事則無眞陁羅爲菩薩等觀遊於眞陁羅
006_1092_c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마후륵(摩睺勒)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그 법은 이름 불림으로 세워지니, 몇 사람이 갖가지 형체를 받게 하나 결코 그것에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류(本類)는 그 갖가지 범주에 따르는 것이다. 약간의 법을 드러내나 그 모든 것은 형체를 세워 이름하는 것이므로 그 법은 무소유이며, 직위와 호칭도 그와 같다.
형체가 있으면 가슴이 되고, 형체를 여의면 마후륵이 된다. 생각한 것은 허무한 것이 되고, 도는 가슴에서 이루어지되, 그 가슴은 큰 복록을 잡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얻으면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온갖 생각[想]과 식별[識]을 분별하고 온갖 염(念)을 분별한 뒤 역시 함께 멈추게 해야 한다.
생각이 없으면 자연에 이르게 되어 단지 평등한 소리를 설하게 되니, 모든 것이 결정과 의혹을 단절하기 위한 것인 까닭에 마후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깊이 들어가 동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하여 안으로 일어나는 바가 없고, 밖으로 조작하는 바도 없다. 이는 곧 마후륵이라는 명자(名字)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마후륵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2_b_16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摩睺勒法所名立若干人種種受形莫不由之人之本類隨其種數現若干法一切立形其名故法無所有職號如是形爲胸臆離形爲摩睺勒所想爲虛道成於胸臆胸臆執大祿心正得成道分別諸想識諸念亦俱止無想致自然但說平等音一切爲斷決疑現摩睺勒是爲菩薩深入等觀內觀歷內無所起外無所造是則無摩睺勒之名字也是爲菩薩等觀遊於摩睺勒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지옥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법이 없으면 지옥도 없다. 생각과 식별이 형상을 이루며 지옥에는 주인도 구하는 자도 없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마치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가 나방이 등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말은 해보지만 그 수만큼 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몸과 입이 그것을 부르니 자연히 저항하며 도달하지만 실제는 공하여 지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생각을 따르고 생각과 함께할 뿐 무소유이며, 공하게 되돌아가고 공하게 되돌아온다. 액난의 연유는 스스로 자기를 좇아 일어난 것이다.
자신 스스로가 현명하면 병이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 몸과 입으로 범한 것이 없고 죽음도 없는 자는 지옥에서조차 청정하고 신선하고 정결하고 때[垢]가 없다. 보살대사는 그런 까닭에 나고 죽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에게는 지옥의 연이 없다.
006_1092_c_05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地獄也無無地獄想識成形地獄無主求者自然如呼聲響應蠅投燈火自然之無可救者所以者何身口招之自然對至空無造者從己想與想無所空返往空返厄難之緣自從己起己自賢勅病無從入身口無犯亦無死者地獄淸淨鮮潔無垢菩薩大士所以不畏生死者無地獄之緣
왜냐하면 금하는 것을 범하지 않으므로 환영과 같고 또한 무소유임을 지각한다. 비록 온갖 모습을 세우더라도 모습은 없는 것이며,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모습 아닌 것도 없으니, 모습이란 무소유인 것이다.
환영과 변화로 형상을 이룬 것이니, 그 모습을 보는 자로서 희열하지 않는 자가 없다. 희열은 자애로운 마음에 이르고, 그것으로 인하여 큰 서원으로 올라가게 되며, 허공과 같고 평등하고 적정함을 분별하게 된다. 그런데 지옥의 온갖 고뇌와 우환이 드러나니, 그것을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006_1092_c_14L所以者何不犯禁故知覺如幻亦無所有雖立諸相相無不著相亦無不相無所有幻化成象其見相者無不喜喜悅至慈因登大願別如虛空平等寂然而現地獄諸苦惱患案內觀
006_1093_a_02L입은 몸의 원수가 되니 입은 지옥의 문으로서 단지 들어갈 뿐 나오지 못하며, 들어가면 문득 소멸되고 쇠진하여 나올 때는 진흙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와 같이 은근히 괴로워하는 것이 마땅히 다시 수억 번에 이른다. 그러므로 보살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물어보지 않으면 입은 먹고 씹는 곳이며,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스스로 지킬 뿐이다. 온갖 모임에도 들어가지 않고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는다. 입은 두 말을 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지어야 할 바를 참고 실천한다.
보살은 그와 같아서 지옥이란 없다. 지옥의 인연은 반드시 입으로 말미암음이어서 말이 나오면 죄로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이 없으니, 이 우환을 여읜 것이다. 보살은 입을 지키니 그 맛을 결택하지 않는다. 자애로운 마음이 동일하고 동등하니, 미세하거나 부드러운 것이 따로 없다. 입으로는 먹고 씹어서 몸을 채우고 형체를 지탱할 뿐이다. 이것을 보살이 지옥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고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006_1092_c_20L口致身怨口爲獄戶但入不出便消盡出爲泥土如是懃苦當更億是以菩薩閉口不語不以咨口有所食噉亦無言說澹而自守不入衆不稱爲己口無二言忍諸所作薩如是則無地獄地獄之緣但由口言出罪入無離此患菩薩守口不擇其味慈同一等無有細軟食噉充軀支形而已是爲菩薩等觀遊於地獄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아귀(餓鬼)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아귀란 형체도 없으며, 또한 이름도 없는 것이다. 본래 처소도 없고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 인색함으로 인하여 탐욕을 세워 그것에 이르렀지만 인색함도 머무는 바가 없다. 그것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위대한 법을 알지 못하게 한다. 나의 아(我)를 헤아리면 결코 무상(無常)함을 보지 못한다. 냄새 맡고 소리 듣는 것이 억만 번이면 늙음이라는 것이 비로소 심각해진다.
인색함으로부터 탐착에 이르고, 탐착으로부터 욕심에 이르고, 욕심으로부터 갈애에 이르고, 갈애로부터 쾌락에 이르고, 쾌락으로부터 근심에 이르고, 근심으로부터 괴로움에 이르고, 괴로움으로부터 아픔에 이르고, 아픔으로부터 맺힘[結]에 이르고, 맺힘으로부터 병에 이르고, 병으로부터 죽음에 이른다.
006_1093_a_05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餓鬼也鬼無形亦無有名本無處所亦無所因慳而立貪欲致之慳亦無所住不解所有不知大法計有吾我不睹無常香聞億萬老之甫甚從慳致貪從貪致欲從欲致愛從愛致樂從樂致憂從憂致苦從苦致痛從痛致結從結致病病致死處
세 가지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서 옷과 음식을 얻지 못한다. 몸은 헐벗고 굶주리며 마실 것조차 얻지 못한다. 그런 것에 대해 호칭을 세워 명자[字名]로 삼은 것이 말하자면 아귀이다.
보살대사는 모든 것이 본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귀는 없으니 적정하고 공성과 같다는 것을 요지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항상 평등하게 행하기 때문이다. 코를 익숙하게 하여 온갖 향기를 냄새 맡지 않으며, 한 가지도 그리워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이 없다. 인색함이 코를 따라 들어가 큰 재앙에 이르게 되는 것이며, 코는 마음이 오직 하나로 굽이쳐 흐르는 것의 핵심이다. 또한 들어가는 것도 없고 나오는 것도 없다.
보살은 냄새와 색을 수용하지만 탐착하지 않고 설령 탐착하더라도 인색하지 않다. 이것을 보살이 아귀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3_a_13L在三難之中得衣食身裸飢乏不得水漿立號爲名曰餓鬼菩薩大士知悉本無無餓鬼寂靜如空所以者何菩薩常行平等摜鼻不嗅衆香一無所慕慳從鼻入致斯大殃鼻爲心壹混淪之精亦無所入亦無所出不受香則無所貪設無所貪則無慳惜爲菩薩等觀餓鬼
006_1093_b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축생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법에는 축생이 없으니, 축생이란 인연을 따라 일어난 것이다. 마치 구름과 안개의 모습이 약간의 색을 나타내는데 색이 각각 같지 않아 그것을 보는 자가 희열하는 것과 같다. 문득 생각에 이르니, 생각이 나고 죽으며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다. 분노가 그 가운데서 일어나니, 생각과 기억과 식별이 일어나되 열두 가지로 연결되며 집착한다. 그렇게 닫히고 묶여 풀리지 않으니, 그것이 축생을 초래하여 축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이 없는 것으로 모두 무소유이다. 마음의 의도는 허무한 것이니, 모두 여러 가지 색에서 말미암는다. 색은 애욕의 근본으로 5도[道:지옥도(地獄道)ㆍ아귀도(餓鬼道)ㆍ축생도(畜生道)ㆍ인도(人道)ㆍ천도(天道)]를 내달리게 된다. 그리하여 나고 죽는 데서 윤회하며 받은 형상은 셀 수 없으며, 혹은 나는 새가 되거나 혹은 뛰는 짐승이 된다.
그러나 공하고 무상한 이름은 형상으로 인하여 명자를 세운 것이며, 마치 음지에서 안개가 갖가지 색깔과 형상을 지닌 것과 아주 똑같은 것이다. 축생의 의지가 지닌 속성에서는 죄와 복이 환영과 같다. 미혹하고 허망하여 축생의 형태대로 설하는 것이다.
006_1093_a_21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畜生法無畜生從因緣起如雲霧像現若干色色各不同見之悅喜便致想生死起恚從中起起想念識十二連著結不解招致畜生彼則無根悉無所心思虛無皆由諸色色則德根走五道宛轉生死受形無數或爲飛或爲走獸空無常名因形立字如陰霧種種色像畜生志性罪福迷惑虛妄而說畜形
보살대사는 나의 아(我)를 헤아리지 않고, 명자(名字)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안다.
눈으로 먼저 색을 본다고 해도 의지로 색을 탐착하지 않고, 마음으로 색을 기억하지 않고, 몸으로 색을 이익되게 하지 않는다.
보살은 그 4등심(等心:무량심)으로써 안의 색과 밖의 색을 관찰한다. 시방을 날아다니며 저 깊고 어두운 곳이라도 두루 이르지 않은 곳이 없으니, 모두 눈을 따라 출입한 것이다. 눈이란 해와 달의 정수로서 두 가지 이름이 있다. 들어간 색은 금시조(金翅鳥)가 되고, 나온 색은 문수사리(文殊師利)가 된다. 그러한 것을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모든 이름은 다 눈을 따라 들어온 것이다. 나고 죽는 일의 근본을 움직이면 문득 지어진 바가 있게 되는데, 모두 금시조로 말미암는 까닭에 축생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축생은 군맹(群萌)의 부류이고 꿈틀거리고 헐떡거리고 기어 다니는 무리이다. 일체의 변화된 형태를 모두 축생이라고 부른다. 보살은 사람의 몸 가운데를 동등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모두 합하여 본다. 또한 삼천대천세계의 국토에는 나라가 백억의 수에 이르러서 하나하나 그것을 세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로는 삼십삼천이 있고, 아래로는 금강찰토(金剛刹土)에 이르고, 그 가운데 18대니리(大泥犂:지옥)의 어려움이 있다.
006_1093_b_08L菩薩大士無吾了無名目初視色意不貪心不念色身不利色菩薩以是四等心亦觀內色外色飛行十方窈冥之處無不通達皆從眼出入眼者日月之精有二名入色爲金翅鳥出色爲文殊師利案內觀歷一切諸名從眼入動生死根本撗有所造皆由金翅鳥故號畜生畜生群萌之類動喘息%(立*奇)行之屬一切變化皆號畜生菩薩等觀人身中都計合之亦爲三千大千國土國有百億之數如是不可一一計之上有三十三天下至金剛剎土其中間有大泥犂十八之
006_1093_c_02L여러 천신과 인민이 거주하는 곳에는 각각 궁전이 있으며, 사람 아닌 것[非人]ㆍ귀신ㆍ용ㆍ날아다니는 새ㆍ뛰어다니는 짐승 그리고 아래로 수목과 풀들까지 형체를 지닌 무리들은 모두 사람의 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수는 정해져 있으며, 한 사물이 동등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좀 모자란 사람이 되고, 몸속의 사물과 사물이 서로 어울려 차이가 없고, 특별한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총명하고 날카로운 지혜를 갖춘 자가 된다.
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호랑이ㆍ이리ㆍ독을 내뿜는 짐승이 되고, 또는 구덩이나 도랑에 떨어지고 나무에 걸리기도 하고 뱀이나 개에게 해를 입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안의 원인에 따라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신체가 훼손되는 일이 있게 되거니와 이것도 마땅히 현재의 일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 세상 과거의 원수에게 의지하고 집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스스로의 안과 밖을 사유해야만 하니, 호래(%(號-虎+毛)來)의 생멸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으로 던져서 보면 안의 중생이든 밖의 중생이든, 안의 형태이든, 밖의 형태이든, 같고 동등하여 다를 것이 없다. 사람마다 모두 그와 같으니, 안으로 악한 의지를 일으키면 밖에서 찾아와 응하는 것이 있다. 안으로 반대하는 신하가 있으면 바깥의 신하도 문득 반대하여 사람의 몸을 해친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알지 못하지만 원한 있는 귀신과 함께 앉아 있다. 모든 것은 색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눈에 들어가는 사물이다. 그리고 눈은 마음의 징후이며, 백 가지 흉한 것의 주인이라고 불린다. 유쾌한 마음으로 환호하지만 반드시 후환이 있게 되니, 모든 것은 이에 말미암는다. 그러한 축생에 대하여 고요한 소리로 동등하게 설한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축생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3_b_22L諸天人民所居處各有宮殿及非鬼神飛鳥走獸下及樹木草茅其有形之屬皆在人身中其數這停一物不等者其人便其短物物相無差特者其人便聰明有黠慧人盜賊毒獸若墮溝坑樹木所蛇犬所害皆從發外乃有應崩身碎體當責現在之事不可倚著前世宿仇當自內外思惟%(號-虎+毛)來之生滅投盲冥地內衆生外衆生內形外形等等無異人人皆如是內起惡意尋來應內有反臣外臣便反害便人愚癡之人不能自知坐怨鬼神切由色入眼之物眼爲心候主名百快心之歡必有後患一切由之致斯畜生等說寂聲是爲菩薩等遊畜生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탐착과 음욕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법에는 탐착과 음욕이 없으며 인연을 따라 일어난 것으로 연을 따라 일어나 탐착에 이른 것이다. 탐착과 갈애와 애욕 등의 욕심은 생각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생각한 것에 생각은 없으며 허공과 같이 비었고 그 장소조차 없다.
욕심으로 인하여 미혹함에 이르고 본성을 매우 혼란하게 흐려 놓아 우환의 근본을 세우게 된다. 탐착과 음욕은 허공과 같아서 얻을 수 없으며 형태에 따라 생긴 그림자처럼, 소리에 따라 생긴 메아리처럼 실체가 없고 구체적인 형상도 없으니, 획득하려고 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부류들에게는 뒤바뀐 의도와 생각으로 번뇌가 있지만 법에는 번뇌와 더러움이 없으며, 공허한 것이고 없는 것이고 적정한 것이다. 욕심은 비어서 허공과 같으니, 능히 구하여 다할 자는 없다. 시방으로 나아가 구하여도 볼 수 없으니, 탐착과 음욕은 형상이 없으며, 단지 어리석고 어두운 자들이 탐착한 것일 뿐이다.
006_1093_c_15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貪婬也無貪婬從因緣起緣起致貪貪愛欲欲從想起所想無有想如虛空空無處所因欲致惑賊亂本性立憂患本貪婬如空處不可得隨形如影隨聲如響無實無像獲不可得愚類顚倒思想塵勞法無塵垢空無寂靜欲虛如空無能救盡者至於十方求不可貪婬無形愚冥所貪
006_1094_a_02L탐욕은 스스로 사람의 형상을 상하게 하고 망실하게 한다. 그리하여 두렵고 불안해져 감추어져 있고 가려져 있는 곳으로 숨게 만든다. 세상과 슬프게 이별해서 오랫동안 다시 만나지 못하게 한다. 뛰어다니는 짐승처럼 항상 두려움과 놀람을 품게 된다. 비유하면 장부가 적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움과 무서움에 도망가려는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린 채 재빨리 달아나 자신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我)도 역시 공성이어서 피곤하도록 바쁘게 달아나지만 역시 추적하는 자가 없으며, 오직 스스로가 괴로움의 본체이다. 그와 같이 잡고 노력하는 것도, 집에 있으면서 누리는 은혜와 애욕도 공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애하고 그리워하니, 그것은 탐욕 때문이다.
욕심은 얽매여서 폐쇄된 감옥의 우환이 되기도 하고, 용맹스러운 의지가 되어 여러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구휼하고자 하고 집착하거나 음탕함이 없기도 하다. 일체가 우환이 없는 가운데 수많은 악함조차 두루 안온함을 얻게 되고, 일체는 모두 공하고 무소유인데 공함도 결국 공하므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006_1093_c_24L貪欲自喪失人形懼不安隱在藏匿處與世悼別長不復會若如走獸常懷畏懅如丈夫向敵心懷怖懼走棄捨馳走得無見我也我者亦空奔走疲極無追者唐自苦體執勞如斯居家恩愛是亦復空然人慈慕用貪欲故爲繫閉牢獄之憂欲爲猛志存恤群無著婬泆一切無患中惡之兆得安隱一切皆空而無所有空復遂未之有也
우치하여 뒤바뀐 자에게는 해탈이 없으며, 반대로 그 생각은 어둡고도 어둡다. 법은 허공과 같아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망실되는 것도 아니라고 깨달아 알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께서는 온갖 탐욕에서 벗어나셨다.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면 온갖 어려움에 결박된다. 애욕은 모두 공하고 허무한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 탐착과 음욕을 나무라는 것이 애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애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는 두 가지 염[二念]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모든 것에는 근본이 없으니, 본래 근본은 없으며 본래 자연으로 청정하여 젖거나 오염된 것이 없다. 이는 마치 부처님 도량이 평등하여 생각할 바가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음탕함을 보는 자는 여의지 못하며, 여여하고 적정함을 따르는 자는 애욕을 여의는 것을 사모한다. 생각되는 것은 모두 공한 것이니, 곧 온갖 생각을 여의어야 하며, 염을 일으키는 것처럼 염에는 염한 바가 없다. 요행히 탐착과 음욕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은 마땅히 애욕에의 생각을 제도하여 구할 바가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본래에 탐욕을 마음속에 품지 않았으므로 탐욕의 의도[思]를 지니지 않으며, 본래 청정하여 이와 같으니 벗어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애욕에서 제도된다면 청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탐욕은 공성이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둘이 없는 것이다.
006_1094_a_11L彼無解脫愚癡顚倒告想闇冥不解法如虛空無存無亡今佛解諸貪欲貪欲無脫結在衆難愛欲悉空虛無無實其譏貪婬則求脫欲欲脫欲者不起二念斯皆無本本無有本本自然淨無有沾污如佛道場平等無想睹婬泆者不離殃舋從如寂者彼慕離欲所想皆空乃離諸想如所發念念無所念僥脫貪婬謂當度欲想無所求不懷本際貪欲無思本淨如斯則不想脫假令度欲則謂爲淨貪欲空無計此無二
006_1094_b_02L어리석고 어두운 자는 그것을 요해하지 못하여 둘이라는 생각을 짓는다. 법에는 남녀가 없으며 평등한 한 몸이며, 하늘은 아버지가 되고 땅은 어머니가 된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서 생긴 것에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보살은 동등하게 나아가니 남녀를 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환영과 같고 변화와 같아서 처음도 끝도 그러한 것이다. 모든 남녀를 구별하는 것은 근본을 여의는 것이며, 곧 의미 있는 구절을 잃게 된다.
여러 상념(想念)을 일으키면 온갖 번뇌가 와서 치성하게 된다. 그런데 탐욕이 일어나지 않고 상념이 흥기하지 않으면 온갖 번뇌가 없어서 모든 결박이 치성하지 못하고, 결박을 풀지 못하게 하는 온갖 그물도 없게 된다.
탐착과 음욕에서 벗어난 자는 거짓 이름에 불과한 애욕에 의해 오염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여러 이름에 걸림이 없고 애욕에 대해 알고 있으니, 진실하고 궁극적인 것[眞究竟]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다. 고요히 닦는다는 생각을 품지 않으니, 안팎으로 동등한 의지를 지녀서 거짓으로 보는 일은 없다.
탐욕을 벗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알며, 탐욕은 부처님의 법과 동등하며, 열반이란 탐욕을 벗어나 제거하는 것과 나의 아(我)를 여의는 것과 동등하다. 탐욕이 고요한 것을 알면 담백함과 같으며, 이러한 것을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006_1094_a_22L愚冥不解便作二想法無男女平等一體天之爲父地之爲母天地所生有何異者菩薩等行則無男女之求如幻如化本末如斯睹男女別者爲離本則失議句發諸想念衆網來貪欲無起不興想念則無衆網燒諸結衆網不解解貪婬者假號愛欲無染著諸名無㝵知欲無無得睹眞究竟不懷靜修等志內外無假見貪欲者知不得脫貪欲佛法等如泥洹解貪欲除等離吾知貪欲寂術澹泊案內觀歷
006_1094_c_02L온갖 탐욕은 귀로부터 있게 되고 귀는 의지와 통하는 데 돌아가며 서로 이어받는 것이며 용맹하여 능히 그것을 감당할 것은 없으니, 그것은 어떤 것이라도 항복시키지 못하는 것이 없다.
두 가지 이름이 있으니, 탐욕에 들어가는 것은 사자왕(師子王)이며,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유마힐(維摩詰)이다. 삼계에서 벗어난 듯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나오지 못하는 곳도 없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청정하고 더러움에 대하여 동등할 수 있는 것이다.
귀는 다섯 가지 소리를 수용하지 않으니, 시방 천상ㆍ천하의 지도자가 되고 크게 지도함을 조성하면서도 그 때문에 피로하거나 권태로운 적이 없다. 법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먼저 먹어야 한다.
시방의 안팎에 있는 삼천대천 국토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과 사물이 있어서 해와 달이 비록 밝더라도 그것들을 모두 비출 수 없으며, 사람이 비록 눈[眼目]을 가지고 있어도 아주 멀리 있는 사물은 볼 수 없다.
귀는 한가한 곳에 처해 있어서 빛을 보지는 못하지만 눈과 얼굴과 색에 속한 것들 중에서 제일이 된다. 시방의 위와 아래, 안팎에 있는 세밀하고 미묘한 일들이 먼저 와서 귀로 돌아간다. 그 귀는 그리워하거나 즐기는 바가 없으며, 이것을 무구칭(無垢稱)이라고 이름한다.
동등하게 여러 법을 관찰하니 법으로써 음식을 삼는다. 귀가 먼저 들으니 법을 들은 자가 먼저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다만 듣지 않음으로써 음식을 삼고, 보지 않음으로써 미음[漿]을 삼고, 적게 말함으로써 백 가지 맛을 삼는다.
평등하게 탐욕이 정화되어 탐욕은 허공과 같으니, 허공에는 티끌이 없다. 또한 니원과 같아서 담백하며, 여러 견해에 대하여 이는 환영이나 변화와 같다고 안다. 이것을 보살이 여러 법에 대하여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고, 탐착과 음욕에 대하여 평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4_b_11L諸欲從耳耳與意轉相承受勇猛無能當者一切無不降伏有二名入欲爲師子王出欲爲維摩詰於三界猶出無所不入所不出是以菩薩等於淨穢耳不受五音爲十方天上天下之導造成大導不以勞惓要聞法者當先食十方內外三千大千國土其中人物類數日月雖明由不能照人雖有眼目能見遠遠之事耳處在閑居之地睹光目顏色之數而爲第一十方上下內外細微之事先來歸耳耳者無所慕樂是號無垢之稱等觀諸法法爲食耳之先聞聞法者爲先食也所以菩薩得不飢渴但以無聞爲食無見爲漿少語言以爲百味平等欲欲如虛空空無塵埃如泥洹而澹於諸見如幻化是爲菩薩平等觀於諸法遊於貪婬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진에(瞋恚)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법에는 진에가 없으니, 그것은 인연에 의한 것이다. 부수여, 성냄은 걸리는 것을 따라 일어나니, 걸리는 것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으며, 의지할 만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걸리는 것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내가 아닌데도 나라고 부르며 한량없는 사물들을 세운다.
수목이 생기는 것과 같이 먼저 싹의 부류에서 시작하나 한이 맺히면 급속히 독이 된다. 소리란 자연히 공한 것이고 생각할 것도 기억할 것도 없다. 한가하게 있던 나무도 불을 일으키면 그 불이 도리어 그 나무를 태우듯이 인연이란 비록 흩어져도 각자 본래 생겼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불은 소멸하여 나타나지 않고, 몸을 일으키는 것도 허무하며, 사슴의 소리 또한 그러하다. 탐욕으로 말미암아 칭량(稱量)하나 두 가지가 모두 공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요해해서 성냄과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006_1094_c_06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瞋恚也無瞋恚因緣溥首恚從對起無對不倚生對無我號我立無量事樹木生先從萌類結恨急毒聲自然無想無念如閑居樹坐自相揩火然還燒其樹因緣雖散各歸本生火滅不現虛無起身鹿聲亦然因欲稱量二者俱空智者解之不興恚怒
연(緣)을 따라서 소리가 일어나니 그것은 몸 안에 처한 것도 아니고, 밖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공한 것에 말미암은 것이니, 다른 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다. 걸리는 것을 원인으로 하여 세워진 것인데 각각 분별해 보면 여러 종류의 수가 있으니, 그것이 승부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보살은 이것을 동등하게 관찰하여 진에가 없으니, 마치 바람의 대종(大種)이 지나간 것과 같다. 한스러움이 있고 교만함이 있어도 만일 방편으로 인해서 생각이 세워지는 연유를 안다면 더러운 소리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성냄은 공한 것을 원인으로 생겼다가 도리어 스스로를 불태우니, 그것을 대신할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몸은 색이고 스스로 방일한 것이 가능하고 자기를 말미암아 악한 말을 하고 스스로 방종하고 방자하니, 스스로를 막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복은 다하고 화에 이르게 되니, 마치 삼기름[麻油]으로 켜는 등불은 그것이 다하면 도리어 자신의 심지를 불태우되 구해 주는 자가 없는 것과 같으니, 진에도 그러한 것이다.
006_1094_c_14L從聲起不處內身不從外來不由空從他緣起因對而立各各分別種種類數引勝負者菩薩等觀則無瞋如風種過有恨有慢若知方便因想立緣穢聲如是恚因空生恚還自無有代者而色其身放逸自可己惡言坐自縱恣不能自禁福盡禍如然燈生麻油以盡還燒其炷有救者瞋恚如是
006_1095_a_02L진에와 분노를 능히 분별해 보면 마침내는 형상이 없다. 평등하게 소리를 관찰하며 들어 보면 진에와 분노의 근본이 되는 끝은 동등하게 근본되는 것도 없고 간직할 만한 것도 없다. 법계(法界)를 분별해 보면 모두 평등한 것이다.
의지[意]는 네 가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잡아당기니, 그 첫째가 진에와 분노이다. 그런데 진에와 분노는 결국 조작된 것이고, 의지라는 것도 공한 것이고, 없는 것이다. 생하는 것을 찾아보면 문득 멸진해 버린다. 그리하여 그것에 궁극적인 것은 없다.
황홀한 순간에도 의지는 물어볼 수 없으며, 그것을 물어보아도 덕스러운 것을 혼란하게 한다. 억제된 의지로 염하는 것을 없애면 탐착과 음욕이 없어진다. 탐착과 음욕의 욕망은 모두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탐착과 음욕의 욕망은 없는 것이며, 그렇다면 진에와 분노는 어디에서 오겠는가.
의지가 움직이면 마음이 일어나고 독룡이 원인을 지어서 문득 진에와 분노에 이르러 입을 열면 죄에 빠지게 된다. 마치 강과 하천이 바다에 들어가고 작은 불로 하늘과 땅을 불태우는 것과 같아서 형태도 없고 다함도 없다. 이것을 안내하고 관찰하고 편력해야 한다.
006_1094_c_23L能分別瞋怒者無形像平等察聲聽瞋怒恨本際無本無持分別法界則睹平等意由四懼攬竟第一瞋怒瞋怒撗有所造意者空無尋生便滅而無究竟恍惚之間意不可咨咨之亂德剬意無念則無貪婬貪婬之欲皆從意起無貪婬者瞋怒何從來意動心起毒龍因作便致瞋怒口開罪入如江河投海如揵燒天地無形不盡案內觀歷
그런데 진에를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시방이 같고 함께하고 동등하면 3도(塗)가 없어지는 것이다. 의지가 동등하면 진에가 없고, 진에가 없으면 3독(毒)이 없고, 3독이 없으면 어떤 연으로 병이 있겠는가? 그 병이 있는 자는 마땅히 훼손되니, 삼계의 중생은 의지를 따라 형태를 이루고, 진에와 분노를 원인으로 하여 그 병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후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다가 75일 낮ㆍ75일 밤을 매일 세 번씩 스스로 탄식하고 자책하게 된다.
지금 현재에 세워진 형태는 의지를 따라서 조작된 것인데, 그것으로 삼계의 인민을 해치고 있다. 또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 해도 날짐승과 길짐승을 활을 쏘며 사냥하고, 물고기는 그물을 던져 잡고, 날아다니는 새를 바구니로 덮어서 잡고, 그 신체를 칼로 상처 내며 사지(四支)를 나누어 죽게 한다.
지금 다리를 절거나 손발이 자유롭지 않고 거기에다 통증까지 있는 사람은 이전에 남을 해치며 환희하였던 것에 대응하여 나타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와 자신을 해치고 있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10년의 세월 동안 그 몸은 무거운 병을 앓게 되니, 그러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서 거처하는 장소에서는 부축조차 받지 못한다.
006_1095_a_09L可瞋恚者所以者何十方同共等無三塗等意者無瞋恚無瞋恚者無三毒無三毒者何緣等有病也其有病者當毀三界衆生從意生形因瞋怒入此病不自悔責七十五日七十五夜日日三自歎責今在現世立形從意所作犯三界人民及非飛禽走獸射獵魚網或籠繫飛鳥傷剜身體或逝四支至今蹇跘手足不任加痛於而對歡喜愚癡之人不知己還害己身旬歲之中身被重病如其所害處所不掖
006_1095_b_02L만일 진에와 독한 의지를 일으키면 한번 일으키는 의지가 날쌔더라도 답답한 것이 되어 혹은 칼을 든 병사로서, 혹은 활과 화살을 지닌 자로서 서로 치고 쏘려고 한다. 혹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사람의 목을 베려고 한다. 의지가 그와 같이 일어나니, 그것은 이미 삼계와 중생을 범한 것이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의 신체에 병과 아픔이 있다면 작은 병이든 큰 병이든 하나이고 동등하여 차이가 없으며, 삼계의 중생을 범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는 그 아픈 곳에 따라서 삼계 중생의 이름을 불러야 하고, 깊이 스스로 고찰하고 자책해야 하며 몸을 던져 머리를 풀고 눈물을 흘리면서 3존(尊)에 대하여 참회해야 한다.
안에 있는 3존은 여섯 가지 일을 지니며, 그것은 안의 병을 치유하는 6도무극(度無極:바라밀)이라고 불린다. 밖에 있는 3존도 역시 여섯 가지 일을 지니며, 그것은 밖의 병을 치유하는 6도무극이라고 불린다.”
006_1095_a_21L若起瞋恚毒意一作意勇怫鬱或以刀兵或持弓矢欲相挌射或以鐮斧欲斬人頭首擧意如是爲犯三界衆生已若有菩薩摩訶薩身體病痛小病大病一等無異當知犯三界衆生隨其痛處呼三界衆生名字深自考責投身散髮墮淚自懺悔三尊三尊者內有六事名曰六度無極治內病外有三尊亦有六事曰六度無極治外病
부수가 다시 질문하였다.
“어떤 것을 안에 있는 3존으로 여섯 가지 일을 지니는 것이라고 합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안에 있는 3존이란, 첫째 존귀한 마음[心尊]이다. 이것은 안의 삼계에 있어서 중생들을 안온하게 한다. 큰 밝음을 열어 보여 주어 빠짐없이 안온하게 하므로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믿음[無上正眞之信]이라고 이름하며, 또한 여래ㆍ등정각이라 부르는 것이다.
둘째는 존귀한 귀[耳尊]이다. 항상 적정한 땅에 거처하니 얽매이거나 꾸밈이 없다. 시방을 비행하고 빙빙 돌고 가서는 되돌아온다. 천상천하와 아주 어두운 곳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그 가운데에 도달한다. 듣지 못하는 것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말하는 것은 없으나 담백하고 무위(無爲)이다. 오직 왕래하고 빙빙 돈 뒤 정(情)으로 마음에 돌아간다.
하나하나 알리기 위해 설하되 처음에는 다른 말이 없으며 무구칭(無垢稱)이라고 하고, 두 번째는 두루 계율을 간직함[普持律]이라고 하고, 세 번째는 널리 열고 제도함[廣開度]이라고 하고, 네 번째는 대인욕(大忍辱)이라고 하고, 다섯 번째는 여러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고, 여섯 번째는 여래의 마음이라고 하고, 일곱 번째는 청정하고 또 청정함이라고 하고, 여덟 번째는 움직이거나 구르지 않음이라고 하고, 아홉 번째는 즐겁지 않음이 없음이라고 하고, 열 번째는 유나리(惟那離)라는 큰 성에는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열 가지 덕행[十德之行]이 여래와 같은 몸을 일으킨 것이다.
006_1095_b_07L溥首復問何等爲三尊內六事也答曰內三尊者一心尊於內三界安慰衆生開示大悉令安隱名曰無上正眞之信號如來等正覺第二耳尊常居寂靜之地而無縛飾飛行周旋往返十方天上天下窈冥之處悉到其中無所不聞無所不知而無言說澹泊無爲惟往來周旋以情歸心一一告說無異言名無垢稱二名普持律三名廣開度四名大忍辱五名諸佛信名如來心七名淨復淨八名不動轉九名無所不樂十名惟那離大城無所不容受如是十德之行與如來同
006_1095_c_02L셋째는 존귀한 눈[眼尊]이다. 항상 색계ㆍ욕계의 땅에 거처하면서 스스로 교만하여 높이는 일이 없다. 모든 옳지 못한 것을 인도하려고 하니 시방을 날아다니며 안팎으로 명료하나 그를 보는 자가 없다. 역시 열 가지 덕행을 갖추고 있으니, 첫 번째는 문수사리(文殊師利)라고 하고, 두 번째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음이라고 하고, 세 번째는 깨끗하여 더러운 것이 빠짐없이 제거됨이라고 하고, 네 번째는 항상 청정함이라 하고, 다섯 번째는 해와 달의 정수[精]라고 하고, 여섯 번째는 일체의 옳지 못한 것을 열고 인도함이라고 하고, 일곱 번째는 젖거나 오염되는 것이 불가능함이라고 하고, 여덟 번째는 장차 시방의 사람을 인도함이라고 하고, 아홉 번째는 여러 가지 치솟는 번뇌가 다하여 온갖 더러운 것이 존재하지 않음이라고 하고, 열 번째는 여래에 대한 믿음이 장차 일체의 것을 보호함이라고 한다.
이것이 안에 있는 3존이니, 항상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행하고 생사의 괴로움을 근심스럽게 염한다. 삼계 중 군맹(群萌)의 부류를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훼손한 자는 3존을 훼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3존이 있으니, 항상 마땅히 그 앞에 귀의하고 참회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어떤 것이 3존인가? 첫째는 의지가 청정한 자이니 파순(波旬)이라 하고, 둘째는 애욕이 청정한 자이니 사자왕(師子王)이라 하고, 셋째는 색(色)이 청정한 자이니 금시조(金翅鳥)라고 한다.”
006_1095_b_21L第三眼尊常居色欲之地不自貢將導一切非飛行十方內外明了無有見者亦有十德之行一名曰文殊師利二名無所不入三名淨穢悉四名常淸淨五名日月精六名開導一切非七名無能沾污者八名將導十方人九名諸漏已盡無有衆穢十名如來信將護一切是爲內三尊常行大慈大悲憂念生死苦當知三界中群萌之類而不可毀毀者爲毀三尊已復有三尊常當歸命懺悔慚愧何謂三尊第一意淨名波旬二欲淨名師子王第三色淨名金翅
다시 질문하여 말씀드렸다.
“그와 같은 3존은 마땅히 무엇을 일러 법이라고 합니까?”
又問曰如是三尊爲應何謂法也
006_1096_a_02L답하여 말씀하셨다.
“의지가 단절된 자는 진에와 분노가 없어 온갖 악마를 모두 항복시킨다. 의지는 몸의 신[身神]으로 파순이라고 하니, 진(晋)나라 말로 온갖 생각이 마음에 따라 보호되는 것이 선하다는 것이다.
사자왕은 귀의 신[耳神]이니, 귀는 온갖 티끌과 먼지를 수용하지 않으며, 삼계에서 홀로 참으며, 여러 가지 생각과 더불어 한 우리 속에서 모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사자왕(師子王)이라고 하니, 진(晋)나라 말로 일체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항상 시방세계를 위하여 지도자가 되니,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다. 깨달음의 자리를 만들어 앉은 다음에 걱정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다.
금시조는 눈의 신[眼神]이다. 그의 눈에 온갖 색이 들어오면 색이 단절된다. 시방으로 날아다니지만 능히 아는 자가 없으며, 여러 악마를 항복시키고 온갖 용을 밟고 다닌다. 용신이 반대하여 진에와 분노의 의지를 일으키려고 할 때에 금시조가 바다 위에 있으면서 그 그림자만 물 가운데 드러내어도 여러 용들은 두렵고 무서워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파순이 용을 일으켜 무언가를 소유하고 수용하고자 하지만 눈의 근간[眼陰]이 문득 단절된 금시조가 위에 있으면서 항상 백천 종류의 색으로써 두렵게 하는 것이다. 마치 금빛도 밝은 달의 정수와 동등할 수 없으며, 밝은 달의 정수라 하더라도 능히 금시조의 깃털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금시조로 하여금 삼계에서 홀로 존귀한 영웅이 되게 하니, 그는 지도자가 되고 마땅히 부처를 이루는 것이다.
나 또한 마땅히 위에 있으면서 몸의 금색 털로 그것을 비추며, 그것으로 몸이 모두 황금색이 되게 하니, 일체의 존재들이 서로 보고 환희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006_1095_c_11L答曰意斷者無瞋怒衆魔皆降伏爲身神名曰波旬晉言衆想心隨護爲善者師子王者耳神耳不受衆塵於三界獨忍一切諸想不與挍會故名曰師子王晉言一切無畏常爲十方爲導當作佛者爲作座席而不患厭金翅鳥者眼神也眼入衆色則斷飛行十方莫能知者降伏諸魔踐踏衆龍龍神欲反興瞋怒意金翅在海上影現水中諸龍恐怖不敢出外波旬興龍欲有所受眼陰以斷金翅鳥在上常以百千種色懼如金不能等於明月之精明月之精能當金翅鳥之毛是使金翅鳥於三獨尊雄其有爲導當作佛者我皆當在上以身金毛照之使令身皆黃金色一切相見之莫不歡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3존ㆍ여섯 명의 사람이며, 안에 있는 일로서 6도무극(度無極)이다. 이것으로써 보살은 6도무극을 행한다. 부서지는 일이 없을 듯하지만 색[色]은 무상(無常)하고 아프고 가려움[痛痒:수(受)]에 가까운 것이다. 아프고 가려움으로부터 주관적인 생각[思想:상(想)]이 있고, 나고 죽음[生死:행(行)]이 있다. 주관적인 생각 및 나고 죽음으로부터 인식 작용[識]이 있다. 이것이 있으면 6도무극은 없는 것이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그 몸이 안온하지 않다면 안의 도무극에 대하여 위배되고 착오되어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한 스스로 나형(裸形) 외도가 되는 것은 찌꺼기와 같은 짓이라고 머릿속에서 이야기된 것을 마땅히 생각하여 스스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강압적인 성품으로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 성실히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몸이 죽게 되니, 이 일은 훌륭한 의사라도 능히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006_1096_a_05L佛言三尊六人者是內事六度無極是以菩薩行六度不壞色無常視痛痒想生死痛痒思想生死識者則無六度無極若菩薩摩訶薩身軀不安隱當知與內六度無極違錯不順其當思上頭所語滓自綶形勿以自可用剛强之性自言無罪若不詪詪至心懺悔者殺身不久此事非良醫所能治也
부수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밖에 있는 3존이며, 여섯 가지 일입니까?”
006_1096_a_14L溥首復問佛言何謂外三尊六事也
답하여 말씀하셨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존귀한 것[佛尊]이고, 둘째는 교법이 존귀한 것[法尊]이고, 셋째는 승단이 존귀한 것[比丘僧尊]이다. 다시 3존이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청정함이 존귀한 것[淨尊]이고, 둘째는 색이 존귀한 것[色尊]이고, 셋째는 욕심이 존귀한 것[欲尊]이다.”
006_1096_a_15L答曰第一佛尊第二法尊第三比丘僧尊是復有三尊何等爲第一淨尊第二色尊第三欲尊
부수가 다시 여쭈었다.
“이 3존은 모두 어디에 상응하는 것입니까?”
006_1096_a_17L首復問曰此三尊皆何應也
006_1096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심을 버리고 보시하면 몸이 그 복을 얻는다. 이것이 시도무극(施度無極:보시바라밀)이다. 둘째, 색을 버리고 계율을 지키면 몸이 청정함을 얻는다. 이것이 계도무극(戒度無極:지계바라밀)이다. 셋째, 모든 번뇌[塵勞]를 없애고 큰 인욕을 행하며 온갖 생각을 떠나면 청정한 지혜를 얻는다. 이것이 인도무극(忍度無極:인욕바라밀)이다.
넷째, 비구 승단은 청정하니 여러 원인이 일어나고 멸하는 인연의 일을 버리고 정진력을 굳건히 하여 깨달음의 도량에 이르러 청정지(淸淨地)에 머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도무극(進度無極:정진바라밀)이다.
다섯째, 법은 청정하니 온갖 사악한 염(念)을 버리는 것이다. 생각의 소연들에 대하여 삼매[定]에 들어 한마음이 되어 몸이 안온함을 얻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알게 된다. 이것이 선도무극(禪度無極:선정바라밀)이다.
여섯째, 부처님은 청정하니 빠짐없이 여러 집착을 버리고 머무는 바가 없이 깊이 법의 핵심[要法]으로 들어가며, 공성이어서 상념(想念)이 없으니 니원의 일은 일체가 본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지도무극(智度無極:지혜바라밀)이다.”
006_1096_a_18L佛言欲布施身得其福是爲施度無極曰捨色持戒身得淸淨是爲戒度無三曰捨諸塵勞行大忍辱而離衆得淸淨慧是爲忍度無極四曰知比丘僧淸淨捨諸因起滅因緣之事而建精進得至道場住淸淨地是爲進度無極五曰知法淸淨捨諸邪想之緣而定一心身得安隱知去來今是爲禪度無極六曰知佛淸淨悉捨諸著適無所住深入要法空無想念泥洹之事一切本無是爲智度無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밖에 있는 6도무극이다. 그와 같이 안팎의 법에 있는 열두 가지 일을 이해한다면 문득 열두 가지 문을 여는 것이 된다. 그러나 비록 이해하여도 억제하지 못함으로 인해 걸리는 것을 원인으로 하여 생각을 일으킨다.
방자한 의지에서 노닐면 인욕이 불가능하며 마음과 입과 뜻을 놓아버리고 진에와 악한 말을 하면 문득 12인연을 이루게 된다. 이로써 세속의 세 가지 흐름[三流]을 따라가서 5취(趣)를 떠나지 못한다.
보살대사들은 안팎에서 역시 나무랄 데가 없으며, 일체에 걸림 없음이 물에 비친 달의 형상과 같다. 평등하게 소리를 관찰하니 진에와 분노와 한스런 소리가 없으며, 본제(本際)가 동등하니 실로 과거[本]도 없고 궁극[際]도 없다. 법계(法界)를 분별하니 모두가 평등하다. 이것을 보살이 진에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닐어 의지의 법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006_1096_b_07L佛言是爲外六度無極也如是內外法十二事解者便爲開十二門雖解由不制因對起想遊於恣意不能忍辱放心口意瞋恚惡言便爲十二因緣隨俗三流不離五趣菩薩大士等於內外亦無所譏一切無㝵水月形平等察聲無瞋怒音恨本際無本無際分別法界則睹平等菩薩等遊瞋恚爲意法也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우치(愚癡)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우둔함은 일어남이 없는 것이어서 살펴보아도 어리석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무소유라고 설정되면 우치는 본래 없는 것이며, 영원히 미치거나 어두워지지 않으며, 그에게는 폐단이 될 만한 원(願)은 없으며 걸림이 없으니, 허공이 비어 있고 담백한 것과 같다. 그러나 생각에 얽매여 허공에서 구하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우둔함을 일으키는 것이다.
허망한 것을 세워서 실체를 삼으니 분노와 원한을 일으키고 어리석게 행하면서 이름을 구하고 명자를 얻는다. 청정하고 순백한 이름을 향하여 가며 매우 기뻐하지만 획득하기란 어렵다.
모든 법은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생각이 번뇌[塵]가 되고, 생각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고 헛된 것이고 형태조차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남자가 허공을 건너려고 하지만 날개가 없어서 가더라도 길과 합치하지 않고 공중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억 겁이 지나더라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능히 허공과 만나더라도 허공의 처음과 끝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006_1096_b_15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愚癡也從無起察癡無有設無所有愚癡本永無狂冥人無弊願無㝵如空虛澹泊想㝵求空方面造愚立虛爲而起忿恨愚癡所行求名達字淸白名忻忻難獲諸法無明因想爲想爲㝵慚虛無形譬如丈夫欲度虛空亦無羽翅行不合道不入於空億劫不得也能會不能知空本末
006_1096_c_02L우치도 역시 이와 같아서 과거의 궁극[本際]을 생각할 수 없으며 어둠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번뇌에 대해서는 뜻이 없었으나 곧 성취되어 충만해져 있다. 허공에 머무는 것과 같아 어느 방면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며, 구족한 사람도 없고 능히 나아가 건너는 사람도 없다.
백천억 겁 해(垓) 동안 어둡고 은폐된 것을 익히고 즐겼던 것처럼 그 역시 싫어하거나 만족해하는 일이 없으며, 항상 배가 고파 포만한 적이 없으니, 동자(僮子)와 같다. 그리고 색을 좋아하는 것은 바람을 불어 넣어 부풀어 오른 배[吹胞]와 같으니, 그 속을 가득 채운 기운은 작아서 입 속에서 나오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죄와 복은 빈 배[空胞]와 같아 뛰어나고 진실되고 고매한 것을 구하여도 역시 그러하고 비천하고 하열하고, 청정한 것을 구하여도 역시 그러하다. 우둔한 자에게서 익힌 자는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면서 죄악과 애욕을 품게 될 뿐이다.
좋아도 행하고 싫어도 버리지 않는다. 선한 일을 보아도 익히려 하지 않고 오로지 뒤바뀐 견해 속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를 우둔하여 바닥이 없는 자라고 한다. 뿌리를 잘라도 뿌리의 형상이 없으며, 뿌리도 없고 머묾도 없다.
그런 까닭에 다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우둔함이 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리석음이 다함도 역시 얻을 수 없다. 비유하면 중생은 환영[幻]과 같고 변화[化]와 같다. 그러한 것은 줄 수 없는 것이니, 설령 있다 해도 비유[喩]할 수 있을 뿐이다.
006_1096_b_24L癡亦如是本際無思議蔽冥不生無所志而成滿如住於虛空不知方面處亦無具足人無能出度者如百千億劫姟習樂闇蔽者彼亦無厭足常飢無飽滿如僮子者好色如吹胞滿中氣短解脫口中無所有罪福如空胞求勝眞高亦然卑忑淸淨亦然習於愚者求不可得空來空去懷抱罪欲喜亦行惡亦不捨見善不習入倒見如是行者謂愚無底也斷根無根形無根無住故不可盡設愚不可盡癡亦不可得猶如衆生如幻如斯不可賜設有造喩
삼계의 중생 무리들은 하루 동안에 모든 것으로부터 제도하여 니원에 들게 하며, 세상에 머무시는 부처님의 수명이 헤아릴 수 없는 억 겁을 지나는 동안에 제도하고 해탈 시켜도 지옥에서 제도할 사람의 수는 다함이 없다. 만남을 원인으로 세우고 심지만 사람의 세계에 생각이란 없다.
어리석음과 어두움은 환영과 같은 것이어서 얻을 수가 없다. 부처님의 청정함과 우치는 동등하며 둘이 아니라고 관찰한다. 능히 동등하다고 관찰하면 능히 도를 염하는 것이다. 우치[癡]와 지혜는 하나로 동등하니 여러 가지 은폐되거나 장애가 없으며, 온갖 중생ㆍ군맹(群萌)들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006_1096_c_14L三界衆生類日度一切令得泥洹佛壽住世億劫難計濟脫梨度人不可盡因遇立種人界無想癡冥如幻是不可得佛淨與愚癡觀斯無二設能等觀則能念道癡慧一等無諸蔽㝵衆生群萌等無思議
006_1097_a_02L어리석음으로는 사념과 의지의 자취를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 마음도 본래 없는 것이어서 그 끝도 최후도 없다. 우둔하고 어두운 것도 한계가 없으니 얻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허공에 들러붙어 이름이 없으며, 원인에 의지하여 형체가 있어도 보는 자도 없고 영원히 간직하는 자도 없다.
뜻의 성품[志性]은 무명(無明)이니 무소유임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어디로부터 일어나 진에가 있게 되었는가? 나의 자아가 없음을 헤아리면 어리석더라도 어떤 부류에 대해서도 어두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어리석음에 처소가 없듯이 부처님의 도 역시 그러하다. 낭떠러지도 바닥도 없으니 모든 법은 둘이 아님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소리의 평등함을 구별하고 어리석음[癡]의 메아리에 대해 동등하게 관찰해야 한다. 구름이 하나이고 동등하듯이 우둔함과 어두움도 구름과 같음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평등하다고 분별하면 선정의 의지[定意]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우치에 대하여 평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6_c_20L癡不可計思念意迹其心無有邊際愚冥無限由不可得著無名因倚有形無有見者永不可志性無明了無所有何從致起有瞋恚計無吾癡已不起闇冥何類如癡無處佛道亦爾了無崖底諸法無二別聲平等等察癡響了雲一等愚冥如雲分別平等則曉定是爲菩薩等遊愚癡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불선(不善)한 것에 대해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탐욕[欲]의 행은 형상이 없고, 진에[瞋]의 행은 처소가 없으며, 행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음의 행이다. 모든 것은 평등하고 온갖 번뇌도 역시 동등함을 아는 것이다. 모든 생하고 멸하는 것은 빠짐없이 동등하며 허무하고 공하며 무소유임을 동등하게 깨달아 알아야 하며, 그와 같이 밝게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불선한 것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7_a_05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不善欲行無形瞋行無處不行癡行知衆平等諸塵亦等諸生滅悉等等解虛無空無所有了淨如是是菩薩等遊不善也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여러 선한 덕의 근본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중생들은 선심의 행[善心行]을 약간 닦는다. 그러나 온갖 행은 하나이고 동등해서 동등하지 않은 행은 없다. 한 가지 행으로 행하니 걸림 없이 지금 행한다. 행이 둘이 없으며 능히 평등한 것임을 요지한다.
이것으로써 온갖 행이 환영과 같음을 평등하게 알아야 한다. 색과 소리가 한 가지로 동등하면 말과 음성을 요지한 것이며, 말과 음성에는 둘이 없으니 그로 말미암아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오가고 빙빙 돌아도 역시 처소는 없으며, 덕의 근본도 역시 그러해서 환영이나 변화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온갖 선한 덕의 근본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7_a_09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諸善德本衆生修善心行若干諸行一等無不等行一行而行無㝵現行了行無二則能平等以知平等衆行如幻色聲一等則了語音語音無二由如影響往來周旋亦無處所德本亦然如幻化是爲菩薩等遊衆善德本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유위(有爲)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재하는 것은 존재가 아니니 일체는 염(念)을 따르는 것이다. 염은 공허한 염[空念]이니 헤아려도 측량이 불가능하고,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가 없고, 끝이 없고 궁극적인 것[際]이 없다.
일어나는 것은 생각이 되니, 생각은 염이라는 인연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것의 수효도 역시 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평등함을 깨달아 알고 셀 수 없이 많은 수이며, 행이 없고 모습이 없음을 깨달아 안다. 동등하고 적정함을 해설하면 일체는 편안해짐을 본다. 이미 편안해지고 이미 영화로운 까닭에 무상함을 헤아리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이 유위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7_a_16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有爲也有無有一切從念念者空念計不可無量難計無邊無際所起爲想從念緣是之數亦不可盡曉平等者了無央數無行無像解說等寂睹一切安已安已榮不計無常是等菩薩等遊有爲
006_1097_b_02L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무위(無爲)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본래 깨끗한 법은 적정하여서 역시 인연이 모이고 합함이 없다. 무명(無明)의 형태는 거짓된 소리이며, 음성에는 말도 없고 가르침도 없음을 동등하게 관찰하여 무위를 모두 깨달아 안 것이다. 말과 소리에 대한 온갖 집착도 그와 같이 동등하게 관찰한다. 이것을 보살이 무위에 대하여 동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7_a_23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無爲本淨法寂亦無合會無明之形假聲等察音聲無言無教皆了無爲衆著言聲等觀如是是爲菩薩等遊無爲
다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이 평등(平等)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하는가? 유위 가운데에 처하여도 유위에 머물지 않는다. 온갖 행은 평등하여 허공과 같아 걸림이 없는 것이니 삼계에 머물지 않는다. 삼계도 본래 없었던 것이니, 어디에서 니원을 구하겠는가?
니원은 적정하여 나오지 않고 들어가지 않는다. 말할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으며, 큰 편안함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한 것이다. 해탈에는 약간의 차이도 없다. 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다. 역시 오가는 것도 없고 돌아오고 돌아가는 것도 없다. 허공과 같아서 적정하고 고요하다. 이것을 보살이 평등에 대하여 동등하게 노니는 것이라고 한다.”
006_1097_b_04L又告溥首何謂菩薩等遊平等處有爲中不住有爲諸行平等如空無㝵不住三界三界本無何求泥洹泥洹寂靜不出不入無言無說乃至大安度脫衆生解無若干法身如空不合不散亦無往來亦無還返如空寂寞是爲菩薩等遊於平等
여기에서 세존은 이러한 문장과 구절을 설하셨으니, 그것은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던 일이며, 그대로 순응하여 행한 것이고 불가사의한 것이고 세간에서 드문 것이다.
그때 1만 2천 보살이 있었는데 모두 불기법인(不起法忍:無生法忍)을 얻었고, 72억 백천의 천인들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無上正眞道]에의 의지를 일으켰다. 260만의 비구들은 번뇌가 다하여 그 의지에서 벗어났다. 6천의 비구니들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에의 의지를 일으켰다. 2천2백의 청신사(淸信士)와 1천8백의 청신녀(淸信女)도 역시 모두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에의 의지를 일으켰다.
006_1097_b_11L於是世尊斯章句至未曾有順如應行不可思議世之希有時有萬二千菩薩皆得不起法忍七十二億百千天人皆發無上正眞道意二百六十萬比丘盡意解有六千比丘尼皆發無上正眞道意有二千二百淸信士千八百淸信女亦皆發無上正眞道意
006_1097_c_02L그때 부수동진이 다시 세존께 말씀드렸다.
“원하오니 위대한 성자시여, 이 삼매(三昧)의 이름을 연설해 주십시오. 보살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덕에 이르러 여러 감관이 명료해지고, 이 삼매의 명호를 들은 것으로 인해서 마땅히 일체의 법을 획득하게 되고 명확하게 알아서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고 빠짐없이 일체의 미혹과 사견의 무리들로부터 항복받게 될 것입니다.
한 문자만 좋아하여도 일체의 문자를 분별하고 명료하게 깨달아 알며, 일체의 문자로써 한 문자를 깨달아 알고, 그 변재의 지혜는 제한을 두거나 측량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온갖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경의 법[經法]을 강설해 주시고, 연기[緣]에 상응하는 법인(法忍)을 명확하게 깨달아 알도록 분별해 주십시오. 일체의 행으로서 한 가지 모습에 들어가니, 한량이 없고 제한이 없는 의미를 체득하고 네 가지 분별의 변[四分別辯]을 명확하게 깨달아 알며, 식별하고 논의하도록 분별하여 주소서.”
006_1097_b_18L爾時溥首僮眞復白世尊曰唯願大演是三昧號菩薩由斯而致至德諸根明了聞三昧所因名號則當獲得一切法明靡不通達而悉降伏一切迷惑邪見之衆樂一文字分別曉了一切諸文以一切文而了一文辯才之慧不可限量爲諸群生講說經法分別曉了緣應法忍以一切行入于一相逮得無量無限之議曉了識議四分別辯
이에 세존께서 부수동진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을 주의 깊게 듣고 잘 생각하여라. 지금 너희를 위하여 그 처음과 끝을 분별하겠다.”
006_1097_c_05L於是世尊告溥首僮眞善思念之今當爲仁分別本末
부수가 답하였다.
“매우 좋은 일입니다. 원하건대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006_1097_c_06L首答曰甚善願樂欲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매가 있으니 한량없는 번뇌를 여읨[離無量垢]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두루 일체의 색이 청정함을 보게 된다.”
006_1097_c_07L佛言有三昧名離無量垢假使菩薩逮得斯定見一切諸色淸淨
부처님께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또 삼매가 있으니 약간 파괴함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지혜의 광명이 일체의 해와 달의 광명을 덮고 가릴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광명을 갖추어 성취함[成具光明]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그 위력과 밝음이 제석ㆍ범천왕ㆍ삼계의 보배를 덮고 가릴 것이다. 모두가 안온함을 입게 되니, 여러 천상의 광명과 밝음이 문득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다.
006_1097_c_09L佛告溥首有三昧名壞若干假使菩薩逮得斯定智慧光明覆蔽一切日月之明有三昧成具光明假使菩薩逮得斯定威曜覆蔽帝釋梵王三界之寶悉蒙安隱諸天光曜忽不復現
또 삼매가 있으니 사계(捨界)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온갖 모임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 일체의 음탕함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병을 밝히고 제거하게 될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당해낼 수 없음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일체의 8방(八方:4방과 4유)과 상하에 있는 여러 부처님 국토를 밝게 비추게 될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모든 법은 생하는 바가 없음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여러 부처님의 경전을 다 관람하고 일체를 가르치고 훈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온갖 모임을 위하여 핵심이 되는 의미를 분별하고 미묘하고 집착함이 없는 업을 부연하게 될 것이다.
006_1097_c_14L有三昧名捨界假使菩薩逮得斯定處於衆會蠲除一切婬癡病有三昧名莫能當使菩薩逮得斯定照明一切八方上諸佛國土有三昧名諸法無所生假使菩薩逮得斯定摠攬諸佛經典訓誨一切爲衆會分別要義敷演微妙無著之業
006_1098_a_02L또 삼매가 있으니 염할 수 없는 우레 소리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언어와 음성이 범천에까지 창달되고 시방에 연설하는 것을 능히 초과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아주 깊은 곳의 덮이고 막힌 곳까지 듣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일체가 마음의 즐거움에 상응함을 밝게 요지함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중생은 그 즐거워하는 바에 따라 희열하게 될 것이며, 묶이고 막힌 것을 벗어나게 하여 해탈의 연(緣)이 될 것이고, 온갖 모임이 두루 안온함을 얻게 될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모임이 없이 현재에 정진함을 기뻐함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모두 무위를 볼 것이고, 미혹의 끝과 시작에 한계나 셀 수 있는 수효가 없음을 볼 것이다. 그리고 듣거나 보는 바가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고, 일체에 들어간 것을 능히 초과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006_1097_c_21L有三昧名無念雷音使菩薩逮得斯定言語音聲暢于梵十方所演無能過者窈冥蔽㝵無不聞者有三昧名曉了一切應心所假使菩薩逮得斯定悅可衆生其所樂而令解脫拘㝵之緣一切衆普得安隱有三昧名無會現悅精假使菩薩逮得斯定睹見無爲無有限數終始之惑所聞所見莫不通一切所入莫能過也
또 삼매가 있으니 무념의 보배와 덕이 세계를 즐겁게 함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여러 가지 신족[神足]을 나투고 보시로써 중생을 즐겁게 할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온갖 소리의 연(緣)들의 모임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여러 가지 말과 소리를 깨달아 셀 수 없는 문자로써 한 문자를 요지하고, 한 문자로써 셀 수 없는 문자를 설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써 안의 문자와 밖의 문자를 요지할 것이며, 안의 것을 요지했는데 밖의 것을 통달하지 못하거나 요지하지 못한다는 일은 없다. 안팎이 상응하여 다른 문자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온갖 선한 덕을 쌓음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죄와 복을 분별하여 평등함을 일으키고 현현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중생을 희열하게 하는 것이 많을 것이며, 부처님의 소리[佛音], 법의 소리[法音], 온갖 성문의 소리[衆聲聞音], 연각의 소리[緣覺音], 보살의 소리[菩薩音], 도무극의 소리[度無極音], 일체지의 소리[一切智音]를 듣게 할 것이다. 그에게는 설한 바가 있어도 음성은 없으며, 그러면서도 일체의 깊고 핵심이 되는 업을 요지할 것이다.
006_1098_a_07L有三昧名無念寶德樂於世界假使菩薩逮得斯定者放諸神足施化衆生有三昧名諸音緣會假使菩薩逮斯定者覺諸言音以無數字了一文字以一文字說無數字以了內字外字悲了於內不達亦不了內外相應無有異文有三名積衆善德假使菩薩逮斯定者分別罪福興顯平等多所悅可一切衆生使聞佛音法音衆聲聞音緣覺音菩薩音度無極音一切智音有所說亦無音聲一切了知深要之
또 삼매가 있으니 여러 가지 다라니[總持]를 일으켜 일체의 왕이 됨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일체의 무량한 다라니를 분별하고 온갖 지혜의 핵심과 걸림 없는 법을 빠짐없이 명료하게 할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여러 가지 변재를 깨끗이 하는 무위의 행이라고 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를 체득하면 일체의 음성과 언설을 고요히 제거하게 되니, 모두에게 말과 가르침도 없고 그것에 응대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말과 가르침이 없으니 곧 무소유일 것이다.”
006_1098_a_19L有三昧名起諸摠持爲一切王使菩薩逮得斯定者分別一切無量摠持衆慧之要無㝵之法悉令明了有三昧名淨諸辯才無爲之行假使菩薩逮斯定者寂除一切音聲言說皆無言教亦無響應無言無教亦無所有
006_1098_b_02L이에 부수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오직 그러합니다. 위대한 성자시여, 비천한 몸이 정녕 이 경전을 강설하고 그것의 공덕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006_1098_b_02L於是溥首白世尊唯然大聖鄙身應講斯典訓之功德乎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강설해야 한다.”
告曰宜講
부수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일 보살이 이 경전을 듣고 깊이 의심하지 않고 마음을 일으키고 받아 지니고 암송하고 강설하고 읽는다면, 그 사람은 현재에 미묘한 변재, 총명의 변재ㆍ희열의 변재ㆍ깊고 미묘함의 변재를 얻을 것입니다. 합하거나 모이는 일이 없어도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여러 중생들에게 더하여 주는 일을 행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의지를 훼손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슬픈 염(念)이 미래의 갈 곳[趣]을 야기하여도 그와 같은 행을 받들어 행한다면 진리가 몸을 따르기에 일찍이 버리거나 떠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006_1098_b_04L首白佛假使菩薩聞斯經典而不狐發心受持而諷誦講讀其人現在得妙辯才聰明辯欣豫辯深妙辯合會常行慈心加諸衆生無毀復意所以者何設使憂念所作趣奉行其知諦隨身未曾捨離
그때 세존께서 부수를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유쾌하게 이러한 말로 설하는구나. 진실로 여여한 의지를 지니고 있구나. 비유하면 보시로 큰 부귀를 획득하고 큰 부귀에 도달함은 허망하거나 거짓이 아니며, 계율을 지녀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도 허망하거나 거짓이 아니며, 이 경전을 역시 그와 같이 다루어 변재를 배우고 변재에 도달하게 하는 것도 허망하거나 거짓이 아니다.
또한 빠짐없이 본래의 뜻을 얻으니, 마치 태양의 광명이 나와 천하를 비추어 온갖 어둠을 남김없이 제거하는 것과 같다. 이 경은 그와 같으니, 암송하고 배우는 자는 변재를 품고 와서 통달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또한 비유하면 보살이 도량에 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를 얻어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러하다. 이 경을 배우고 암송하면 반드시 변재를 얻어 여러 가지 깊이 의심하는 것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부수여, 만일 보살이 지금 변재를 일으키려 한다면 여러 가지 법을 밝게 단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경전을 듣고 마음이 주저하지 않는다면 곧 마땅히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강설하고 암송하여 여러 모임을 위하여 그 의미를 널리 연설하여야 한다.”
006_1098_b_10L爾時世尊讚溥首曰善哉善哉快說此言誠如之意譬如布施獲致大富而不虛假持戒生天亦不虛假令斯經典亦復如茲學致辯才亦不虛假悉得本志猶如日光出照天下衆冥悉除斯經如是諷誦學者懷來辯才靡不通達喩如菩薩坐于道場於佛樹下還得無上眞正之道成最正覺薩如是學誦斯經必得辯才除諸狐是故溥首假使菩薩現欲興辯曉練諸法聞斯經典心不猶豫卽當受講說諷誦爲諸衆會廣演其義
006_1098_c_02L그때 이구장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이 경의 법을 받아 지니고 암송하고 강설하는 자가 있으면 온갖 모임을 위하여 그 뜻을 부연하고, 비루하거나 친하거나 가리지 않고 마땅히 그들을 위하여 되돌아가야 할 바를 이해하여 깊이 의심하지 않게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재빨리 변재를 얻을 것입니다.”
006_1098_b_22L爾時是離垢藏菩薩前白佛言滅度其有受持諷誦講說斯經法者衆會敷演其義鄙親當爲宣解所歸使不狐疑疾得辯才
그때 패악무도한 악마가 얼굴빛을 바꾸고 독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세존께 말씀드렸다.
“저에게는 이 경이 건립된 바가 없습니다.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항상 큰 애절함을 지니시고 그 괴로움과 근심에 대해서 큰 편안함으로 보시하십니다. 다행입니다, 위대한 성자시여. 원하건대 저의 의혹을 제거해 주십시오. 과거에 세존께서 처음 도량에 거처하시며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으셔서 이 경전의 법을 연설하셨던 것처럼 지금 다시 거듭하여 이 경전을 설하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우울한 마음에 고뇌를 품고 있습니다. 여래께서 처음부터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셔서 구제하고 계실 때에 저는 그것에 반대하였으나 능히 스스로 이기지를 못하였습니다.
일체가 모두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를 얻고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를 체득하여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였습니다. 서민들조차 귀로 이 경을 듣되 소리를 듣고 이름을 간직한 자는 빠짐없이 도를 얻어 멸도(滅度)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경계를 허공에 들어가게 하고 악마의 궁전을 허망하게 하였습니다. 위대한 성자시여, 저를 어루만지고 가르쳐 주시고 대비를 일으키고 세우셔서 오직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제하여 주십시오.”
006_1098_c_03L於時弊魔愁毒垂淚來詣佛所白世尊曰唯無建立於斯經如來至眞等正覺常懷大哀其有苦患施以大安幸哉大聖願除吾惑如昔世尊初坐樹下處于道場演此典法今復重加說斯經典我今憂鬱心懷懊惱其於如來始得佛道所救濟時我之反側不能自勝一切皆當得不退轉逮無上正眞之道最正覺其有黎庶耳聞斯經聽音服悉當得道至于滅度空我境界虛魔宮殿大聖撫育興建大悲唯見矜
부처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파순(波旬)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라. 일체 중생은 모두가 멸도하지 않는다. 여래도 역시 그러한 경전을 건립한 바가 없다.”
006_1098_c_15L佛告魔曰波旬莫恐勿怖勿懅切衆生不悉滅度如來亦不建立斯
악마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환희하였다. 그리하여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는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006_1098_c_17L魔聞佛教踊躍歡喜善心生矣然不現
부수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어떤 이유로 악마를 위해서 그러한 가르침을 설하셨습니까?”
006_1098_c_18L溥首白佛何故爲魔而說斯
부처님께서 부수에게 말씀하셨다.
“그 경전은 머무는 바 없이 머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악마를 위하여 그런 말로 설한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경전을 건립하지 않으니, 이것은 지극히 정성스런 말로서 허망하지 않다. 실로 모든 법은 머무는 바 없이 머물고 체득할 수 없고 말과 가르침도 없다. 두 가지 일을 여의어 본제(本際)는 평등하고 마땅한 진리는 없음을 근본으로 한다. 법계는 저울과 같으니 평평하여 허공과 같다. 적절한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으니 진실하고 바른 것으로 다른 것이 없다. 지금 경전이 염부제(閻浮提)에 유포되니 천하에 바로 상서로운 징조가 있는 것이다.”
006_1098_c_19L佛告溥首斯經典者住無所住故爲魔而說斯言吾不建立斯經典至誠不虛一切諸法住無所住不可逮得無有言教離於二事本際平等當諦無本法界如稱平若虛空無適無莫眞正無異今經流布斯閻浮提於天下當有瑞應
006_1099_a_02L세존께서 적절하게 정성스러운 진리의 가르침을 건립하시니, 자연히 공중에서 소리가 나서 두루 널리 들렸다. 그것은 부처님 말씀처럼 정성스러우니 지극히 정성스러워 허망하지 않았다.
006_1099_a_02L世尊適建誠諦之教自然空中音普廣聞誠如佛言至誠不虛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문품경』의 핵심을 받아 지니고 암송하고 읽고 같이 배우는 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006_1099_a_04L佛告阿難受斯『普門品經』之要持諷誦讀宣示同學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8만 4천 법의 품목들이 들어 있는 곳간[藏]이다. 그것들을 이 경전과 비교하고 헤아려 보아도 동등하여 차이나 특별함이 없다. 왜냐하면 이 경의 한 구절이 한량없는 지혜의 문과 법계의 모든 핵심에 두루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여래만이 분별하고 명확하게 요지하며, 중생은 이 경전을 요해하여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게 된다. 그런 뒤에 8만 4천 여러 경의 품목의 곳간을 강설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아난이여, 마땅히 이 경의 소식(消息)을 수용해야 하며, 장차 삼가며 진실하게 여러 사람들을 위하여 간직하고 암송해야 한다.”
006_1099_a_05L又言阿難是經八萬四千法品之藏計比斯典等無差特所以者何此經一句普入無量之慧門法界諸要唯如來分別曉了衆生解斯經典而成佛道然後講說八萬四千諸經品藏是故阿難當受斯經消息將愼諦持諷誦爲衆人
이렇게 설하여 마치시자 이구장보살과 부수동진과 현자 아난과 여러 천신과 세간의 인민과 건답화(揵沓和)와 아수륜(阿須倫)이 경을 듣고 환희하고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린 뒤 물러갔다.
006_1099_a_11L此已離垢藏菩薩溥首僮眞賢者阿諸天世人揵沓和阿須倫聞經稽首作禮而退
佛說普門品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