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존께서는 짐짓 욕계와 색계의 중간 큰 보배 궁전 가운데 계시면서 여러 대중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셨다. 이때 대중 가운데에 불가설이란 한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다시 단정하게 하고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 발에 나와 예배하고 합장하고 꿇어앉아 게송으로 말하였다.
걸림 없는 지혜와 걸림 없는 계행 허공의 성품 같아 설할 수 없고 3세에 평등해 각(覺)과 관(觀) 없으니 나 이제 더 없는 높은 이께 예배합니다.
007_0123_a_09L無㝵智慧無㝵行, 如虛空性不可說,
三世平等無覺觀, 我今敬禮無上尊。
무상(無相)을 관하여 고요함 즐기고 온갖 감관 조복하여 모양 여의시며 모든 법성 둘 없음을 밝게 아시니 나 이제 사람의 사자왕께 예배합니다.
007_0123_a_11L觀於無相樂寂靜, 調伏諸根遠離相,
了諸法性無有二, 我禮人中師子王。
중생 성품이나 법의 성품 모두 차별 없음 관하시고 중생을 보는 마음 평등하시니 온갖 성품 끊은 이께 예배합니다.
007_0123_a_13L觀衆生性及法性, 如是二性無差別,
等心觀於諸衆生, 今我永斷一切性。
보리를 얻었으나 얻은 것 없으니 보리의 성품처럼 색(色)도 그러하며 무상(無相)의 장엄으로 모양을 장엄하니 나 이제 더 없는 높은 이께 경례합니다.
007_0123_a_15L所得菩提無所得, 如菩提性色亦爾,
無相莊嚴莊嚴相, 我今敬禮無上尊。
모든 법계는 각과 관 없건만 범부가 보기로는 모양 있는 법이라고 법계의 성품 무너지지 않으니 나 부처님 진실한 지혜에 예배합니다.
007_0123_a_17L一切法界無覺觀, 凡夫觀之有相行,
法界之性不破壞, 佛眞實智故我禮。
여래의 몸의 업 설할 수 없고 입과 뜻의 업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법의 성품과 중생까지도 더 없이 높은 이는 분명히 아시네.
007_0123_a_19L如來身業不可說, 口意等業亦如是,
一切法性及衆生, 無上勝尊了了知。
여래는 진실한 경지에 머무르시어 그 연설하심 음성과 문자 없고 중생들 즐겨 듣고 큰 이익 얻으니 그러므로 여래는 헤아리기 어렵네.
007_0123_a_21L如來住於眞實地, 所可演說無聲字,
衆生樂聞得大利, 是故如來難思議。
007_0123_b_02L
연설하신 여러 법 모양 없으며 중생을 조복하여 온갖 존재 끊고 중생과 법성 공함을 연설하시니 나 대장부께 예배합니다.
007_0123_b_02L所說諸法無相貌, 調伏衆生斷諸有,
善說衆生法性空, 是故我禮大丈夫。
그때 불가설보살이 이렇게 게송으로 찬탄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모인 보살들이 제각기 뜻대로 묻기를 마쳤으니, 제가 이제 이 대집경전에서 조금 묻고자 합니다. 원컨대 여래께서 가엾이 여겨 들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의심나는 대로 물어라. 내 너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그때 불가설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보리는 청정하고 고요하며, 크게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어둠 없이 크게 빛나며, 진실 그대로 성품도 평등하고 미묘하고 매우 깊어서 각과 관이 없으며, 온갖 더러움을 멀리 여의어 연설할 수 없습니다. 또 글자 없고 글귀 없고 음성도 없으며, 넓고 크기가 한량없고 끝과 마디[節]가 없으며, 온갖 가[邊]를 여의어 더하고 덜하지도 않고 나아가거나 물러나지도 않고 머물러 그침도 없으며, 험하고 평평함도 없고 있는 것 없는 것도 없습니다.
007_0123_c_02L견고하여 무너짐이 없고 나와 내 것이 없고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넓거나 좁은 것은 없고 법 없고 중생 없으며, 다함없고 마지막 다함도 없으며, 공도 아니고 공한 성품도 아니고 그런 이치도 아니고 그런 이치 아님도 아닙니다. 또 마음도 아니고 지음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멸함도 아니며, 흙․물․불․바람과 같아 끝과 짬이 없어 측량할 수 없으며, 평등하고 두루 하여서 장애 없기가 마치 허공 같으며, 눈의 식별의 경계가 아니고 내지 뜻의 식별의 경계도 아니며, 온갖 존재를 끊어 비유할 수 없음은 온갖 비유를 여읨이니,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지혜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 아닌 것이 아님은 온갖 중생이 다 얻기 때문이며, 진리와 다르지 않은 것은 온갖 중생이 다 평등하기 때문이며, 그 성품이 바로 존재란 것은 진실한 성품이기 때문이며, 그 성품이 바로 진실함이란 미래와 현재의 짬이 없기 때문이며, 지음[作] 없어 받음[受] 없고 색(色) 없어 마음[心] 없고 생각[想] 없어1) 수(受)가 없으므로 온갖 감관을 끊고, 상(想)이 없어서 생각을 끊고, 행(行)이 없어서 지어감을 끊고, 식(識)이 없어서 분별을 끊고, 음(陰)․입(入)․계(界)가 없어서 음․입․계를 끊고, 처음․중간․뒤가 없어서 모든 마군의 업을 여의며 유포함이 없고 번뇌[漏]가 없어 거둬줌이 아닙니다.
행함도 아니고 하소연[頌]도 아니며, 다툼도 없고 죄도 없으며, 항상 자성(自性)에 머물러 분별이 없으며, 나는 것도 없고 낼 수도 없고 멸함[滅]도 없고 멸할 수도 없으며, 근본이 없어 위․아래가 없고 집[屋宅]이 없어 모나거나 둥근 것이 없으며, 지혜도 아니고 슬기도 아니어서 슬기로운 행도 아니며, 진리[諦]의 거둬줌도 아니고 생사의 거둬줌도 아니며, 다스림[對治]도 없고 공덕을 갖춤도 없어서 모든 모양[相]을 멀리 여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이러한 이치를 보리라 한다면, 이는 곧 변함없는 글귀, 깨달음 없는 글귀, 탐욕 없는 글귀, 다툼 없는 글귀, 견고한 글귀, 무너지지 않는 글귀, 움직이지 않는 글귀, 짓지 않는 글귀, 몸 없는 글귀, 남[生]없는 글귀, 더함이 없는 글귀, 평등한 글귀, 두 가지 없는 글귀, 실다운 글귀, 존재[有]의 글귀, 참된 글귀, 가장 으뜸 되는 글귀, 분별없는 글귀, 한 맛[一味]의 글귀, 한 일[一事]의 글귀, 1승(乘)의 글귀입니다.
007_0124_a_02L다함없는 글귀, 3세가 평등한 글귀, 3세를 분별하는 글귀, 공(空)한 글귀, 모양 없는[無相] 글귀, 원 없는[無願] 글귀, 지어감 없는[無行] 글귀, 고요한 글귀, 성품의 글귀, 진리[如]의 글귀, 남이 없는[無生] 글귀, 나옴이 없는[無出] 글귀, 다한[盡] 글귀, 집 없는 글귀, 법의 글귀, 진실한 성품의 글귀, 자신(自身)의 성품 글귀, 몸 없는 글귀, 지음 없는 글귀, 모양 없는 글귀, 말다툼 없는 글귀입니다.
끊임없는 글귀, 덧없는[無常] 글귀, 12인연의 글귀, 하관할 만한[下觀] 글귀, 선정의 글귀, 윗[上] 글귀, 훌륭한[勝] 글귀, 죄와 허물이 없는 글귀, 위없는 글귀, 필경의 글귀, 청정한 글귀, 정수리 없는 글귀, 이길 수 없는 글귀, 견줄 수 없는 글귀, 의지함이 없는 글귀, 염하는 글귀, 서로 같음이 없는 글귀, 온갖 세간에 뛰어난 글귀, 글귀 없는 글귀, 온갖 글귀의 의지하는 글귀입니다.
이러한 보리(菩提)는 푸르고 누른 것도 아니고 붉고 흰 것도 아니고 색도 아니고 색 아닌 것도 아니며, 길고 짧은 것도 아니고 둥글고 모진 것도 아니고 어떤 표준이 있는 것도 아니며, 삼계의 거둠이 아니고 도가 아니고 필경이 아니고 행함이 아니고 이르는 것이 아니며, 처소가 아니고 취함이 아니고 버림이 아니며, 온갖 번뇌를 여의어 수심이나 두려움이 없으며, 온갖 기쁨을 끊어 참과 거짓이 없으며, 온갖 감관을 여의어 나[我]와 내 것[我所]이 없으며, 중생․수명․장부가 없으며, 한량없고 그지없고 헤아릴 수 없고 분단과 한계가 없음이 마치 허공 같아서 그 성품은 마침내 연설할 수 없나니, 이러한 한량없는 법을 성취함을 보리라 합니다.”
007_0124_b_02L이 법을 말할 때에 삼천대천세계의 온 땅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온갖 하늘은 향․꽃․풍악으로 큰 공양을 베풀면서 제각기 말하였다. “참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이 말씀을 잘 하셨습니다.” 그때 모임 가운데 8만 4천의 보살이 무진기(無盡器) 다라니․일체자재(一切自在)삼매․무애해탈문(無礙解脫門)을 얻었으며, 어떤 사람이나 이러한 신심을 내는 이는 다 이 법의 이익을 얻었다.
그때 불가설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계(戒)는 가히 설할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몸의 본 성품을 설할 수 없으므로 몸의 계를 설할 수 없으며, 입의 본 성품도 설할 수 없으므로 입의 계를 설할 수 없으며, 뜻의 본 성품도 설할 수 없으므로 뜻의 계를 설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더 없는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열 가지 착한 법[十善法]을 보호하는 것도 설할 수 없나니, 만약에 열 가지 착한 것으로써 중생들에게 권한다면 중생들에게 권하는 것도 설할 수 없으며,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마음을 닦음도 설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서 중생을 없다고 관하고, 슬픔을 닦아서 지음과 느낌이 업고, 기뻐하는 마음을 닦아서 교만에 취(醉)함을 여의고, 평정한 마음을 닦아서 이 두 가지 모양을 멀리 여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4무량심(無量心)을 닦으면 곧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아 범도(梵道)에 머물리니, 이 범(梵)의 방편은 온갖 범에 뛰어나므로 항상 여러 범천의 공양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범행에 뛰어나기 때문이며, 중생 인연의 사랑을 닦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법 인연의 슬픔을 닦지 않기 때문이며, 두 가지 형상 인연의 기쁨을 닦지 않기 때문이며, 안팎 인연의 버림을 닦지 않기 때문이며, 온갖 세간의 행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세간의 모든 범행을 버리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항상 여러 범천의 공양을 받게 됩니다.
007_0124_c_02L세존이시여, 이 인연으로써 보살의 계는 설할 수 없나니 보살의 계란 마침내 스스로 속이지 않고 부처님을 속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란 것은 곧 성품 없음이요, 성품 없음은 곧 없음이요, 없음이란 나옴[出]이 없음이요, 나옴이 없음이란 곧 인연이 없음이요, 인연이 없음이란 글자 없음이요, 글자 없음이란 곧 설할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보살이 이렇게 배운다면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을 모든 부처님 여래를 속이지 않음이라 하느냐? 일체 모든 법은 법이 아니고 법 아님도 아님을 분명히 깨달음이니, 만약에 법이 아니고 법 아님도 아니라면 곧 평등함이요, 이러한 평등은 설할 수 없으므로 보살이 만약에 이렇게 배우면 모든 부처님 여래를 속이지 아니한다 하겠습니다.
또 스스로란 것은 나 없고 내 것 없음이요, 나 없고 내 것 없음을 아는 것이니, 만약에 이와 같이 닦아서 배운다면 나 없고 내 것이 없을 것이며, 이와 같이 생각하여 관한다면 스스로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래는 능히 진리[如]에 따르나니, 진리에 따름이란 곧 중생에 따름이요, 중생에 따름이란 일체 법에 따름이요, 일체 법에 따름이란 곧 나지 않고 멸하지 않고 머물지 않음이니, 만약에 법이 나지 않고 멸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면 곧 함이 없는 것[無爲]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이 없는 법을 말하는데 세 가지 모양[相]이 있으니, 이른바 나옴이 없고 멸함이 없고 머무름이 없음인데, 이런 이치를 함이 없음이라 하나니, 함이 없음은 곧 성(聖)이요, 성은 원수가 없음이요, 여래는 온갖 원수를 여의므로 성이라 합니다.
007_0125_a_02L원수란 것은 무명(無明)을 말함이니, 여래는 온갖 원수를 여읨으로써 원수들의 침해를 당하지 않지만, 범부는 무명을 갖추므로 항상 원수의 침해를 받습니다. 여래 세존께서는 원수의 경계와 지혜의 경계를 관하고 번뇌의 경계와 고요한 경계를 알며, 생사의 경계와 열반의 경계를 알고 중생계와 법계를 알며, 마군의 경계와 부처님 경계를 분명히 알고 색의 경계, 눈의 경계, 귀의 경계, 소리의 경계, 코의 경계, 냄새의 경계, 혀의 경계, 맛의 경계, 몸의 경계, 촉감의 경계, 뜻의 경계, 법의 경계를 분명히 압니다. 무명(無明)의 경계와 지혜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곧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생사와 열반의 두 경계가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이름과 색[名色]의 경계나 이름과 색을 아는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임을 압니다.
또 6입(入)의 경계와 6신통(神通)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곧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닿음[觸]의 경계와 멸함[滅]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느낌[受]의 경계와 멸함의 경계가 다 평등하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애욕의 경계와 멸함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취함[取]의 경계와 멸함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입니다. 존재[有]의 경계와 멸함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생(生)의 경계와 사라짐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이며, 늙고 병들고 죽는 경계와 멸함의 경계가 다 평등하다면 부처님 경계는 설할 수 없는 경계임을 알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이 관한다면 온갖 경계에 들어가게 되고 이러한 여러 경계에 들면 탐냄[貪] 있는 이를 보고 성내지 않고 탐냄 끊은 이를 보아도 사랑하지 않으며, 성냄[瞋] 있는 이를 보고 성내지 않고 성냄 끊은 이를 보아도 사랑하지 않으며, 어리석음[癡] 있는 이를 보고 미워하지 않고 어리석음 끊은 이를 보아도 사랑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세 가지 경계 속에서 분명히 아는 까닭에 이와 같이 세 덩어리[三聚]를 다 압니다.
007_0125_b_02L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이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여래를 속이지 않으리니, 왜냐하면 모든 여래의 깨닫는 법을 알고, 또 이 보살은 배움에 수순(隨順)함으로써 여래를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임 가운데에 무소외(無所畏)라 하는 한 보살이 불가설보살에게 물었다. “어떻게 배우는 것이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합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보살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계(戒)를 가지는데 저 사람은 계를 깨뜨린다’고 하면 이러한 보살은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할 것이며, ‘나는 보시하고 저 사람은 인색하며 나는 인욕을 닦고 저 사람은 성내며, 나는 정진하고 저 사람은 게으르며, 나는 선정을 닦고 저 사람은 산란하며, 나는 지혜롭고 저 사람은 어리석으며, 나는 만족을 알고 욕심이 적은 사람으로서 고요함을 즐기고 몸 가꾸기를 검소하게 하며, 걸식하고 더러운 옷을 입되 3의(衣)를 갖추고, 대중 속에 처하지 않으며,
많이 듣고 청정한 말로써 고운 말씨를 쓰며, 중생들이 즐거이 받고 지혜를 염(念)하게 하고, 모든 위의와 입의 업(口業)을 깨끗이 하며, 4섭법(攝法)과 자비희사(慈悲喜捨)를 갖추며, 진실하게 말하되 말함과 같이 머물며, 마군의 경계를 알고 알고는 멀리 여의며, 항상 6바라밀을 배우고 설법을 잘 하여서 여러 중생을 위해 큰 서원을 내고 중생을 교화시켜 방일하지 않게 한다’고 이와 같이 자기를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는다면, 이 보살은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007_0125_c_02L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나는 이러한 법을 관찰하고 멀리 여의어서 멸함[滅]을 닦는다’고 말한다면, 이도 또한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여러 부처님들이 출세하거나 출세하지 않거나 법의 성품은 언제든지 머무르는 까닭에 일체 법계는 알아볼 수 없고 멀리 여읠 수 없고 멸함을 닦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만약 나와 내 것을 말한다면 이도 또한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두 가지 모양이 없기 때문이며, 만약에 말하기를 ‘나는 이미 증(證)을 얻었고 나는 능히 멀리 여읜다’고 한다면 이도 또한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성품은 청정하기 때문이며, 또 ‘나는 4념처(念處)가 있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여래는 일체 법을 분명히 깨달아서 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4정근(正勤)이 있다’고 말하는 자도 또한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여래는 일체 법을 깨달아서 본 성품을 여의기 때문이며, ‘나는 4여의분(如意分)이 있다’고 말하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여래는 일체 법을 깨달아서 분별이 없기 때문이며, ‘나는 이미 5근(根)․10력(力)․7각분(覺分)․8정도를 갖추었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여래 세존은 성품이 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르고 도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몸이 바로 이 도이기 때문이며, ‘무명(無明)이 유애(有愛)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무명과 유애는 곧 지혜이고 해탈이기 때문이며, ‘3독(毒)은 3해탈문과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이 곧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요, ‘네 가지 뒤바뀜[四倒]이 네 가지 과[四果]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네 가지 뒤바뀜이 곧 네 가지 도과(道果)이기 때문입니다.
007_0126_a_02L‘8사(邪)가 8정도(正道)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8사를 헐기 위하여 8정도를 닦기 때문이며, ‘중생의 9거지처(居止處)가 부처님의 9차제(次弟)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두 가지 성품이 없기 때문이요, ‘부처님이 10선법(善法)이 무학(無學)의 10선법과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도 여래를 속이는 것이라 하리니 왜냐하면 일체 법을 수학(修學)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에 이러한 여러 법을 배운다면 이것을 이르러 여래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과 한 중생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나니, 왜냐하면 그 성품이 나가 없기[無我] 때문에 한 중생이나 모든 중생이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에 한 법과 일체 법계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한 부처님 세계와 일체 법계도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음이요, 한 부처님 세계와 모든 부처님 세계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말하며, 한 복밭[福田]과 온갖 복밭이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온갖 복밭과 허공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성인이 번뇌를 멀리 여의고 모든 범부가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어서 본 성품이 청정하며, 한 중생의 마음과 온갖 중생의 마음이 둘이 아니고 차별 없어서 본 성품이 청정하며, 한 세계와 온갖 세계․한 감관과 온갖 감관․한 중생의 행과 온갖 중생의 행도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007_0126_b_02L만약에 모든 법 내지 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머무름이 없다고 말하면 뭇 악함을 짓지 않고 착한 법에 집착하지 않고 교만을 내지 않으며, 얻지 못한 가운데에서 얻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증득하지 못한 가운데에서 증득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생사와 열반에는 지음 없고 느낌 없음을 알며, 모든 번뇌는 근본이 없어서 생사의 두려움 없음을 알며, 계의 계[戒戒]와 마음의 계[心戒]와 지혜의 계[慧戒]를 따라 번뇌를 멀리 여의고, 중생을 버리지 않아 단(檀)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계(戒)를 계라 함이 없어 시(尸)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남[人]을 남이라 함이 없고 또 나가 없어[無我] 찬제(羼提)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지음[作]을 지음이라 함이 없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깨끗이 함을 깨끗이 함이 없어 선(禪)바라밀을 깨끗이 하고, 행을 행이라 함이 없어 반야(般若)바라밀을 깨끗이 함입니다.
다함도 없고 나는 것도 없어 인욕을 얻으며, 기억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기별(記別)을 받으며,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고서 또한 물러나지 않으며, 한 번 나서 도솔천에 태어나지 않으며,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 태(母胎) 중에 처하며, 일체 법에 마음으로 머무름이 없으면서도 나는 이미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7보(步)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나는 이 세간에 더없는 높은 이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궁중의 채녀(綵女)와 오락에 처하지 않소.
세간의 기술과 재주를 배우지 않으며, 몸뚱이 탐내는 것을 헐기 위하여 늙은 사람으로 나타내 보이고 수명을 탐내는 것을 헐기 위하여 병들고 괴로움을 나타내 보이며, 탐욕과 나[我]와 내 것[我所]을 헐기 위하여 죽음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중생으로 하여금 제석․범천․인간․천상의 몸을 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문(沙門)을 나타내 보이며,
세간에서 벗어나는 훌륭한 법을 부지런히 구하여 궁성(宮城)을 넘어 나옴은 삼계(三界)의 얽매임에서 벗어남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또 슬픈 과[悲果]를 보이고 앞뒤로 돌아보아서 성내는 마음과 애욕[愛] 없음을 보이며, 32상호로써 그 몸을 장엄함은 중생에게 부처님[良祐]의 복밭을 보이기 때문이며, 마지막 한 올의 머리털[周羅]2)을 깎고 영락(瓔珞)을 버리고 말 건척(揵陟:칸타카)과 마부 천타(闡陀:찬다카)를 돌려보냄은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읨을 나타내 보임이며,
수염을 남김없이 깎음은 일체 법에 탐착하지 않음을 보임이며, 가사(袈娑)를 받아 입음은 중생을 조복함을 보임이며, 울타가(鬱陀伽)․아라라(阿羅邏)의 곁을 따라 법을 물어 받음은 스스로 훌륭한 체하는 마음을 파괴함을 나타내 보임이며, 6년 동안 고행함은 외도를 부수기 위함입니다.
007_0126_c_02L음식을 떳떳이 받음은 세상 법에 따름을 보임이며, 마른 풀을 숨김없이 받음은 만족함을 아는 것을 보임이며, 풀 자리에 앉음은 교만함이 없음을 보임이며, 모든 하늘․용․귀신의 찬탄과 높임을 받음은 공덕의 장엄한 과보(果報)를 나타내 보임이며, 마군의 원수를 항복시킴은 용맹한 힘을 보임이며,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킴은 기왕의 복력(福力)을 보임이며, 온 땅이 진동함은 은혜 갚음을 보이기 때문이며, 위없는 보리의 도를 얻음은 일체의 법 모양[法相]을 분명히 하는 것을 나타내 보임입니다.
모든 법의 평등함을 관함은 부처라고 이름이요, 부처님의 지혜는 누구나 이길 이가 없나니, 이런 이치를 지니므로 여래라 하며, 착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분명히 알아봄으로써 살바야(薩婆若:온갖 지혜)라 하며, 진실하게 말하는 까닭에 하늘과 사람의 스승[天人師]이라 하며, 모든 법을 내지 않으므로 법바퀴를 굴린[轉法輪]다 하며, 굴림도 말도 없기 때문에 굴리는 말[轉說]이라 하며, 들어감이 없는 들어감을 법의 들어감[法入]이라 합니다.
문 없는 문을 법문(法門)이라 하고, 지음 없는 지음을 법의 지음[法作]이라 하고, 선 없는 선을 바른 선[正禪]이라 하고, 벗어남이 없는 벗어남을 바른 해탈[正解脫]이라 함이요, 일체 법의 성품은 매임이 없고 얽힘도 없나니, 이러한 멸한[滅] 법은 곧 과거이며, 나지 않는 것이므로 이를 부처님 출세라 하고 출세 없는 출세를 부처님의 출세라 함이니, 만약 보살이 이렇게 배운다면, 이를 말하되 여러 부처님 여래를 속이지 않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007_0127_a_02L그때 세존께서 불가설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능히 여래의 출세를 잘 분별하였도다. 만약에 이러한 부처님의 출세를 믿는다면 이 사람은 한 법의 조그마한 모양[相]도 깨닫지 않음이니 깨닫지 않는다면 능히 여래의 출세를 분명히 아느니라. 왜냐하면 출세 없는 출세가 곧 부처님의 출세이므로 지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지음이 없으면 받음[受]이 없고, 받음이 없으면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으면 다툴 것이 없고 볼 것이 없고 들어감이 없고 굴림이 없고 나는 것이 없고 멸하는 것이 없고 보리도 없으며, 아첨 없고 속임 없고 마음․뜻․식별 없고 눈이 없고 두 가지 없으며, 눈의 지어감이나 내지 뜻의 지어감도 없고 설함 없고 가르침 없나니 이것을 여래의 출세라 하느니라.”
그때 무외(無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은 여래의 출세와 불가설보살이 말하는 부처님의 출세를 누가 믿겠습니까?” 그때 보녀(寶女)가 무외보살에게 말하였다. “법형(法兄)이시여, 여래의 출세는 헤아릴 수 없으며, 장엄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려운지라, 만약에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마음이 진정하지 않고 허위와 아첨과 기뻐하고 미워함과 질투와 인색함으로써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를 알고도 갚지 않으며, 3계(戒)가 청정하지 못하여 삼계(三界)에 탐착하며, 3구(垢)에 더럽히어 삼보(三寶)를 공경하지 않고 3해탈을 닦지 않으며, 거칠고 흉측한 욕설로써 이치 없는 것을 말하기 좋아하되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며, 이끗[利養]을 위하여 겉으로 세행(細行)을 나타내며,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어 공양을 탐내며, 여러 감관을 조복하지 않고서 즐거이 성문․벽지불의 승을 구하며, 마음이 진실하지 않아서 들음이 적고 어리석습니다.
염(念)함이 없이 망령을 즐겨 방편을 모르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리는 마음을 닦지 않고서 항상 마군의 세계에 다니며, 사람․수명․장정에 탐착하여 인과(因果) 없고 업행의 연[業行緣] 없음을 말하며, 그 마음이 방일하여서 나쁜 행동을 즐거워하며, 두타(頭陀)를 버리고 즐거이 세상 법을 행하며, 스스로 자기를 찬탄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으며, 몸․목숨․색 따위의 다섯 가지 법을 탐내고 수면(睡眠)을 즐기고 세상 법 듣기를 좋아하여 시절(時節)을 모르며, 나쁜 벗에 친근하여 4섭법(攝法)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법형이시여, 이런 사람은 부처님 출세를 알지 못하고 부처님의 출세를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007_0127_b_02L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그대는 이제 이미 이러한 나쁜 법을 멀리 여의었습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법형이시여, 저는 이미 이러한 나쁜 법을 멀리 여의었나이다. 어떤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라 합니까? 탐내지 않고 절제하는 것과 같나이다. 어떤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이라 합니까? 탐나는 것을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탐나는 것을 절제하는 것이라 합니까? 진실로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진실로 절제하는 것이라 합니까? 아견(我見)을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아견이라 합니까? 과거를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과거라 합니까? 무명을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무명이라 합니까? 탐욕과 애욕을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무명, 탐욕과 애욕 등을 절제하는 것이라 합니까? 지혜와 해탈 등을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을 지혜와 해탈 등을 절제하는 것이라 합니까? 허깨비를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녀여, 허깨비[幻]란 마음도 뜻도 아니며, 지혜와 해탈이 바로 마음이며 뜻입니다.” “법형이시여, 일체중생의 마음과 뜻, 지혜와 해탈 또한 모두 허깨비와 같습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불가설보살의 말함과 같이 그대는 능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법형이시여, 설할 수 없는 것이란 마침내 설할 것이 없음이요, 설한 것이라면 설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이니, 만약에 설할 수 없는 것을 설함이 있다면 어떤 것을 설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곧 이 말은 설할 수 없음으로써 실상 설함이 없다고 대답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수 없음이라고 이름이요, 만약에 설할 수 없으므로 실상 설함이 없다면 제가 이제 무엇을 들었다 하며 또 들음이 없으면 무엇을 믿겠습니까?”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이 설할 수 없는 것이면서 실상 말함이 있는 것이니, 이제 증거 삼아 알 수 있는 것이 이른바 대중이요, 온갖 대중은 이 설할 수 없는 것의 연설함을 들은 것입니다.” 보녀가 말하였다. “법형이시여, 이 대중 가운데 만약 ‘나는 설할 수 없는 것의 설함을 들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허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설할 수 없음은 실상 설함이 없는데, 어찌 대중들이 들었다고 말하겠습니까?”
007_0127_c_02L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그대가 이제 부처님 말씀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법형이시여, 만약 세간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는 곧 부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것은 바로 탐욕이며 성냄이며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여래는 탐욕과 성냄과 원망이 없음으로써 믿음이 없나니, 만약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곧 증(證)이 없을 것입니다. 법형이시여, 공(空)함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은 진실로 증(證)이 없나니, 그러므로 여래도 증이 없습니다. 법형이시여, 법계의 진실한 성품은 지음이 없고 함이 없으며 허공 따위의 법도 진실히 증이 없음이니, 그러므로 여래도 또한 증이 없나이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무엇을 증이라 합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법형이시여, 만약에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사람을 증한다 합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이 사리불과 목건련(目揵連) 같은 이는 증신(證信)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법형이시여, 과연 증신합니다. 왜냐하면 성문인이 계(戒)는 가[邊]와 짬[際]이 있고 여래의 계는 가와 짬이 없으며, 선정․지혜․해탈의 지견(知見)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때 사리불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보녀여, 성문도 3해탈문이 있고 여래도 또한 3해탈문이 있거늘, 그대가 이제 무슨 까닭으로 성문인은 증신한다 하고 여래는 증신하지 않는다 합니까?” 보녀가 대답하였다. “대덕이시여, 아뇩달지(阿耨達池)의 여덟 가지 맛[八味]을 가진 물이 있어 염부제(閻浮提)에 뿌리고, 뿌리고 나면 온갖 초목과 총림(叢林)이 다 자라나게 되나니, 이러한 뿌리는 물에 차별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차별이 없습니다, 보녀여.”
007_0128_a_02L“대덕이시여, 아뇩달의 못 물은 본래 한 가지 맛이지만 덕 있는 사람이 쓰면 갖가지 미묘한 단 맛[甘味]이 있고, 박덕한 사람이 쓰면 그 맛이 한결 추악하여 아름답지 못하나니, 대덕이시여, 여래와 성문의 3해탈문도 이와 같나이다. 그러므로 여래와 성문인은 차별이 있어도 법계의 성품은 진실로 차별이 없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보녀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보녀여. 능히 이 이치를 잘 분별하여 연설하였도다.” 보녀가 이 법을 말할 때에 3만 2천의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보녀가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마치 큰 바다의 물이 한 가지 맛이면서 여러 보배가 많이 있고 또 값싼 수정(水精) 구슬도 있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비록 평등하다 하지만 부처님이 배우면 값비싼 보배를 얻고 성문이 배우면 값싼 보배를 얻습니다.
대덕이시여, 수미산(須彌山) 위에는 여러 천인(天人)들이 쾌락을 많이 받기도 하고, 또 약간의 쾌락을 받기도 하지만 수미산은 실상 차별이 없나니, 법계도 그와 같아서 비록 차별은 없으나 여래가 처(處)하면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고 성문이 처하면 한량 있는 즐거움을 받습니다. 대덕이시여, 전륜왕(轉輪王)이 천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다 존위(尊位)를 이어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성문인도 그러하여 비록 지혜가 있어도 부처라고 이름하지 않습니다.
007_0128_b_02L대덕이시여, 연등 그릇[然燈器]이 금(金)이라면 누런색이요, 동(銅)이라면 붉은색이요, 색은 비록 다를지라도 등(燈)만은 차별이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부처님이 불을 켜면 지혜의 광명이 그지없고 성문이 켜면 지혜의 광명이 끝이 있지만, 그러나 법계의 성품은 차별이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전륜왕이 성읍(城邑)에 들어올 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박복한 사람이 성읍에 들어올 때에는 가까이 친한 사람까지도 모르는 것처럼, 여래 세존께서 법계에 들 때도 이와 같아서 모든 하늘과 사람이 다 깨달아 알고 온갖 외도(外道)와 이학(異學)을 막고 덮어서 여러 성문․벽지불 등에 뛰어나지만, 성문인이 법계에 들 때에는 같은 성문인(聲聞人)들도 오히려 깨달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대덕이시여, 마치 산간(山間)에 어떤 사자가 부르짖는 소리나 구지라(瞿枳羅)․가릉빙가(迦陵頻伽)․공작(孔雀) 따위의 새 소리나 사람 소리, 소․말․나귀 소리는 그 메아리가 소리를 쫓아 나는데, 이 메아리는 실상 차별이 없지만 소리에 따라 나기 때문에 메아리가 다른 것처럼, 여래와 성문의 3해탈도 이와 같아서 여래는 능히 온갖 마군의 무리를 무너뜨리고, 모든 외도와 사견(邪見)에 뛰어나고, 온갖 중생의 심념(心念)을 알아 중생의 갖가지 행을 알고, 성문․벽지불 등을 조복하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음성을 내며, 성문인은 비록 법계는 같이하여도 이러한 일은 같이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사탕수수[甘蔗]가 그 맛은 한 가지라 할지라도 흰 석청 꿀[白石蜜]을 내는 것은 복덕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검은 석청 꿀을 내는 것은 박복한 사람을 위함이니, 법계도 그러하여 보살마하살은 큰 지혜의 단 이슬[甘露] 맛을 얻어 성문과 벽지불의 맛을 섞지 않고, 성문은 다만 끝이 있는 지혜 맛을 얻을 뿐입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삼천대천세계에 큰 바다가 많이 있어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또 작은 하천이 있어 조그마한 중생을 이익 되게 함과 같이 법계도 그러합니다.
대덕이시여, 해와 달과 별이 함께 허공에 떠 있을 때, 별의 밝음은 해와 달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허공의 성품은 실상 차별이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여래와 성문이 비록 함께 놀고 머물지라도 지혜의 광명은 실상 같지 않고 법계의 성품도 차별이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두 사람이 한 가지 업을 같이 배우는데, 한 사람은 기능이 교묘하여 많은 이익을 얻고, 다른 한 사람은 거칠고 졸렬하여 이익 얻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여래와 성문의 법계도 그러합니다.
007_0128_c_02L대덕이시여, 마치 한 묶음의 꽃은 차별이 없지만 방편이 교묘하기 때문에 비싼 옷을 만들고, 방편이 졸렬하기 때문에 값싼 옷을 만드는 것처럼, 법계의 한 가지 성품도 그러하여 여래는 지혜의 방편과 대자 대비한 업의 인연을 지님으로써 크게 고요함과 훌륭한 지혜를 얻고, 성문인은 졸렬한 지혜를 얻어 청정하지 못합니다. 대덕이시여, 큰 바다 속에 나후라(羅睺羅)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있고 또 그 나머지 중생의 종류가 있으나, 오직 아수라왕만이 그 바다 밑을 다닐 수 있고 다른 이는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법계도 그러하여 부처님만이 필경의 지혜를 얻을 뿐 성문은 얻지 못합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온 땅에 천엽(千葉)꽃과 칠엽(七葉)꽃이 피었는데, 모든 천상․세간 사람들이 천엽 꽃을 보고 다 즐거운 마음을 내는 것처럼, 여래와 성문의 법계도 그러하여 모든 천상․세간 사람들이 부처님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애락(愛樂)을 내지만 성문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덕이시여,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여래의 지혜는 한량없고 그지없어도 성문의 지혜는 한량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계의 성품은 실상 차별이 없습니다.” 무외보살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이 불가설 보살마하살은 결정코 그대의 스승이어서 능히 이 미묘한 법으로 그대를 조복하였습니다.”
007_0129_a_02L보녀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불가설보살은 조복하는 일이 없나니, 왜냐하면 이러한 보살은 나와 남, 이것과 저것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조복한다 하겠습니까. 선남자여, 만약에 마군의 경계와 자기의 경계를 깨닫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며, 모든 법을 알아보아서 나[我]와 내 것[我所]을 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며, 스스로 고행(苦行)을 부지런히 닦고 또 다른 사람을 권하여 부지런히 고행을 닦고서도 마음에 우월한 생각을 내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며, 여러 보살과 같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생사의 큰 일에 있어 곧 해탈하게 되어도 열반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능히 조복하리니, 이것을 으뜸가는 진리라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보녀는 진실로 저 불가설보살을 따라 조복을 받았으며, 조복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이때 보녀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실상 조복이 없나니, 만약 조복한다면 이것은 곧 큰 슬픔[大悲]이요, 큰 슬픔으로써 조복한다면 이 보살이 아닐 것이며, 성문인(聲聞人)이라면 반드시 조복하리니, 왜냐하면 큰 슬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암라과(菴羅果)가 나무 위에서 완전히 익어 그 맛이 감미로우면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지만, 만일 썩어서 그 맛이 쓰면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것처럼,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서 큰 슬픔을 따라 나기 때문에 스스로 조복하고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무외보살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능히 이 불가설보살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제가 어찌 은혜를 알고서 은혜를 갚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어떤 중생이라도 보리도(菩提道)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보녀여, 어떤 것을 보리도를 닦는다 합니까?”
007_0129_b_02L보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리행(菩提行)이라 하는 서른두 가지 업이 있으니, 그 서른두 가지란 마침내 보리의 마음을 물러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성문․벽지불의 마음에 탐착하지 않음이며, 지심으로 수행하여 의심하거나 그릇됨이 없고 모든 수행에 장애가 없음이며, 중생을 위하여 행하되 마음에 싫어하거나 후회함이 없으며, 나고 죽음에서 행하여도 탐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여의며,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다 교화하고 조복하며, 4섭법(攝法)으로 섭취하며, 대중을 위해 즐거이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닦으며, 괴로운 중생을 위하여 크게 슬퍼함을 수행하며, 설한 것과 같이 행하고 정진하기를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모든 중생을 속이지 않으며, 보리를 돕기 위해 장엄을 닦으며, 일체 세간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세간의 이끗[利養]에 탐착하지 않으며, 몸을 위해 뭇 악(惡)을 짓지 않으며, 수명을 탐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조복하여 세 가지 계율을 청정히 하며, 상호(相好)의 업을 장엄하고 닦으며, 항상 출가하기를 생각하여 과거의 착한 업을 갚으며, 언제나 고요함을 즐기고 많이 듣는 것[多聞]을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로써 자기 몸과 남의 몸을 이익 되게 하며, 모든 설법함에는 먹이의 생각[食想]이 없으며, 능히 온갖 것을 버리되[捨]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남을 위해 부지런히 인욕을 닦으며, 국토를 청정케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것입니다. 방편을 알기 위해 일체 지혜를 구하며, 모든 번뇌의 습기를 영원히 끊으며, 신통을 얻기 위해 바른 법을 옹호해 가지며, 착한 벗을 친근하여 착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마군의 업을 멀리 여의어 법답게 머물며, 나고 멸함[生滅]이 없는 미묘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007_0129_c_02L선남자여, 만약에 이러한 법을 행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은혜를 갚지 못하고 또 여래의 은혜를 알지도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반드시 죽고 다스리지 못하고, 필경에는 은혜를 알지도 못하고 은혜를 갚지도 못하나니, 한 사람은 성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연각입니다.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깊은 함정에 떨어져 자기나 남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성문과 연각도 이와 같아서 해탈의 함정에 떨어져 자기나 남을 이익 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무외보살이 곧 자기가 입은 저고리를 벗어서 보녀가 설법한 은혜를 갚고자 하였다. 이때 보녀가 받으려고 하지 않자,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법을 위하는 까닭이니 받아 주기를 원합니다.” “선남자여, 법은 탐욕을 여의는 것이기 때문에 설법하고 받는 것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법이란 취(取)함이 없기 때문에 공양물을 취하는 것에 응할 수가 없으며, 법이란 탐욕이 없기 때문에 공양물을 탐하는 것에 응할 수가 없으며, 법이란 나[我]와 내 것[我所]이 없기 때문에 내 물건으로써 공양한다는 것에 응할 수 없으며, 법이란 청정하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는 물건으로써 공양하는 것에 응할 수 없습니다.
법은 몸과 마음이 없으므로 몸과 마음의 행(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마음과 뜻과 식별이 아니므로 마음과 뜻과 식별은 공양이 아닙니다. 법은 끌어당김이 없으므로 끌어당김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있거나 없음이 아니므로 있다는 법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모든 존재[有]가 아니므로 모양이 있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각(覺)과 관(觀)이 아니므로 각과 관이 있음은 공양이 아니며, 법은 더하거나 덜함이 없으므로 더하고 덜함이 있음은 공양이 아니며,
007_0130_a_02L법은 높거나 낮음이 없으므로 높고 낮음은 법이 아니며, 법은 설할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이름과 글자가 없어서 온갖 소리를 버리고 성도(聖道)를 멀리 여의므로 옷으로써 공양할 수 없습니다. 법은 경계가 없어서 눈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도 아니고 정한 집[屋宅]이 없으므로 옷으로써 공양하지 않아야 하며, 법이란 곧 12인연이어서 상(常)과 단(斷)이 아니므로 옷으로써 공양하지 않아야 하며, 법은 장애가 없고 뒤바뀌지 않고 측량할 수 없고 나․중생․장정․수명이 없고 나거나 사라지지 않고 나오지 않고 함이 없으므로 옷으로써 공양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여래 세존께서도 이러한 법의 공양을 받으셨습니까?” “선남자여, 여래는 비록 법의 공양을 받아도 법계의 성품과 같이 분별하지 않습니다.” “보녀여, 어떤 것을 법계를 분별하지 않는다 합니까?” “선남자여, 만약에 법이 다르고 법공양이 다르며, 공양을 받는 자가 다르고 공양을 베푸는 자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는 법계를 분별한다 할 것이며, 법이나 법공양을 받고 베푸는 자를 분별하지 않는다면 이는 법계를 분별한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외보살이 말하였다. “보녀여, 만약 그 법계가 분별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법계를 분별한다거나 분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까?” 보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법계의 성품은 비록 분별이 없지만, 여러 중생의 마음이 뒤바뀌는 까닭에 분별을 냅니다. 선남자여, 어떤 그릇이 있기 때문에 그 그릇을 완전하다 하거나 파괴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만약 작업(作業)에 취할 것이 있으면 파괴되었다고 말하고 분별한다고도 말합니다. 선남자여, 마치 그릇은 비록 파괴되어도 그릇 속의 허공은 끝까지 파괴될 수 없는 것처럼, 법계의 성품도 그러합니다.”
007_0130_b_02L그때 세존께서 보녀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누구든지 이러한 법을 성취한다면, 이런 사람은 삼천대천세계의 사람과 하늘의 공양을 받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자, 여러 대중들은 제각기 오다라승(烏多羅僧)3)을 벗어서 보녀에게 받들어 올렸다. 그때 불가설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릇 설할 수 있는 것은 세간(世間)이고 설할 수 없는 것은 출세간이며, 설할 수 있는 것은 애욕의 마음이고 설할 수 없는 것은 애욕을 여읨이며,
설할 수 있는 것은 세간의 행(行)이고 설할 수 없는 것은 출세간의 행입니다. 세존이시여, 출세간의 이치는 지음[作]이 없음이니 지음이 없음은 곧 다툼[諍訟]이 없음이요, 다툼이 없음은 곧 사문(沙門)의 법이요, 사문의 법은 곧 출세간의 법이요, 출세간의 법은 곧 죄와 허물이 없음이요, 죄와 허물이 없음은 곧 취(取)하지 않고 나지 않고 멸하지 않음이요, 나지 않고 멸하지 않음은 곧 출세함이니 출세하는 법은 펴 설할 수 없고 드러내어 보일 수도 없으니, 이런 이치가 있으므로 일체 법은 말할 수 없나이다.”
그때 대중 가운데 이름을 승의(勝意)라 하는 한 천자(天子)가 불가설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 일체 법이 설할 수 없는 것이라면 중생이 무엇을 말한다 하겠습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메아리에 말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십니까?” 승의 천자가 대답하였다. “메아리는 다 인연을 따라 있습니다.”
“선남자여, 이 메아리의 인연은 결정코 안에 있는 것입니까, 바깥에 있는 것입니까?” 천자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러한 인연은 결정코 안에 있지도 않고 바깥에 있지도 않습니다.” “천자여, 온갖 중생은 굳이 두 가지 생각[想]을 만들어 설할 수 있지만 모든 법의 성품은 실상 설할 수 없는 것입니다.”
007_0130_c_02L천자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설할 수 없다면, 여래는 어떻게 8만 4천의 법 덩어리[聚]를 연설하셔서 여러 성문으로 하여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게 하였습니까?” “천자여, 여래 세존은 진실로 말한 것이 없나니, 말함이 없는 것이 곧 여래입니다. 천자여, 그대는 어떤 것을 여래라 하는지 압니까. 장차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여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또는 부처님은 이 과거․미래․현재, 함이 있고[有爲] 함이 없음[無爲]과 음(陰)․계(界)․입(入), 삼계(三界)의 거둬줌, 이것이 인(因)이고, 이것이 과(果)이고, 이것이 화합이며, 혹은 생각과 생각 아닌 것[想非想]과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것[非想非非想]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야.” “천자여, 만약에 이러한 것들이 여래가 아니라면 어떻게 가히 설할 수 있으며, 만약 설할 수 없다면 어떻게 여래를 말하겠습니까. 세존은 8만 4천의 법 덩어리를 연설하셨지만, 이러한 까닭에 8만 4천의 법 덩어리 이치는 실상 설할 수 없었으며, 성문이 듣고 받은 것도 설할 수 없나니, 설할 수 없음은 곧 바른 이치요, 이치를 설할 수 없음은 곧 진실이니, 만약 설할 수 있다면 정(定)하지 않음이며, 또 설할 수 없음은 증(證)할 수 있지만 만약 설할 수 있다면 증할 수 없음이니, 왜냐하면 뒤바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승의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불가설보살이 하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때 불가설보살이 신통력으로써 비구로 변화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나도 이제 불가설보살의 말씀을 깊이 믿으리니, 왜냐하면 나는 여래와 같고 법계와도 같으며, 여래의 모든 음(陰)은 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음도 그러하여 설할 수 없으며, 여래의 계(界)와 입(入)은 설할 수 없으므로 나의 계와 입도 설할 수 없으며, 여래의 보리나 나의 보리도 다 같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며, 여래는 모든 중생계(衆生界)를 분명히 앎으로 나도 중생계를 분명히 알며, 여래는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므로 나 역시 법바퀴를 굴리며, 여래는 위없는 열반에 들어가므로 나도 그와 같이 열반에 들어가겠습니다.”
007_0131_a_02L승의 천자는 말하였다. “비구여, 그대는 지금 마군의 지음으로 여래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비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부처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마군의 제자인 줄 알 것이며, ‘내가 평등함으로써 법의 평등함을 관하고, 법이 평등하기 때문에 중생이 평등하고 중생이 평등하다면 여래도 평등하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진실로 마군의 경계를 벗어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때 비구가 이 말을 하자, 5백 비구가 번뇌를 끊어 해탈하고, 8천 보살이 인욕(忍辱)을 성취하여 곧 향과 꽃으로써 비구를 공양하였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여러 선남자는 무슨 까닭으로 이 비구를 공양합니까?” 여러 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누군가 이 비구로 변화했습니다.” “여러 선남자여, 그대들은 이것이 불가설보살의 변화인 줄 알지 못합니까?” 여러 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마치 여래가 다시 여래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양을 하는데, 누구를 공양하는 것입니까?”
“여러 선남자여, 이 사람이 바로 여래를 공양하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만약에 이 변화한 비구를 공양한다면 이는 곧 불가설보살을 공양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불가설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공양이라도 그 공양을 감당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만약에 어떤 슬기로운 사람이 음성과 행동이 없고 글자와 색이 없고, 이름과 지음이 없어서 연설함이 없으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고, 법과 법 아닌 것도 없고, 깨끗함과 더러움도 없다면, 이러한 공양을 마음대로 공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변화한 비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그대 생각에, 이제 내가 그대와 다른 것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비구여, 왜냐하면 여래는 항상 일체 법은 다 허깨비 같다고 말씀하셨으며, 여래의 말씀과 같이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대덕이시여, 만약에 어떤 사람이 능히 여래를 공양한다면, 이는 곧 변화한 이를 공양함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007_0131_b_02L이때 사리불이 불가설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누가 들어가 이렇게 변화하여서 이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거울 속의 모습처럼, 누가 그 속에 있어서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 속에 있는 것이 없어도 바로 청정한 4대의 인연으로써 어떤 모습이 나타납니다.” “대덕이시여, 변화한 이도 이와 같아서 법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에 능히 이 말을 합니다.” “선남자여, 만약 그렇다면, 온갖 중생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연설할 수 없습니까?”
“대덕이시여, 거울의 뒤쪽은 같은 거울이면서 모습은 어찌 나타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거울의 뒤쪽은 4대가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시여, 중생도 그와 같아서 법계의 성품을 청정하게 하지 못하는 까닭에 연설할 수 없습니다.” “선남자여, 그대의 앞뒤 말은 그 이치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항상 말하기를 ‘일체 법계의 성품은 스스로 청정하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어찌 청정하지 않다고 말합니까?”
“대덕이시여,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아습(阿濕) 비구를 따라서 법의 눈[法眼]이 청정함을 얻었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다만 그의 지도를 받아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법의 눈이 청정할 뿐이었고 실상 얻은 것은 없었습니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나는 허공을 얻었다’고 말하더라도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허공의 성품은 언제나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이니, 만약에 언제나 청정하다면 어떤 것을 얻는다 하겠습니까. 떠도는 구름[客雲]이 덮이므로 중생은 보지 못하며, 떠도는 구름을 제거시키므로 본다고 하나니, 법계의 성품도 그와 같으므로 나는 실상 법의 눈을 얻지 못하였소.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이러한 따위의 서로 맞지 않는 말을 하여서, 법계의 성품은 혹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다고 하십니까?”
007_0131_c_02L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그대의 말과 나의 말은 이 부처님의 경계이어서, 우리들이 알아볼 바가 아닙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이 말은 부처님의 경계이므로 우리들의 알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다시 법계의 성품은 분별이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만약 분별이 있다면, 마땅히 법계는 한량없는 것인 줄 알 것입니다.”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법계의 성품은 하나요, 실상 한량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법계의 성품이 하나라면 어찌 이 부처님 경계는 우리의 알 바가 아니라 하며, 법계가 하나라면, 무슨 인연으로써 온갖 중생을 여래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덕이시여, 그대는 중생과 여래가 다른 모습[相]이 있는 것을 분별하려고 하십니까?” “선남자여, 그대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중생과 여래와의 다른 모습을 분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대는 결정코 남이 없음[無生]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남자여, 이른바 법계(法界)가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대는 다시 삿됨[邪]과 바른 것이[正]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삿됨과 바른 것의 덩어리[聚]는 곧 뒤바뀜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대는 법에 나지[生]않는 것과 나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만약에 나지 않는 것이라면 마지막까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의 생각에는 이 나지 않는 법은 분별이 있다고 하십니까?” “그러하지 않습니다, 선남자야.”
007_0132_a_02L“대덕이시여, 만일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온갖 중생은 여래가 아니라고 말하며, 그런 것이라면 누구는 중생이고 누구는 여래입니까?” “선남자여, 내가 이미 앞서 이러한 이치를 풀이한 것은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 이 물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만약 그대가 뜻하는 그 말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중생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이니, 왜냐하면 비방하기 때문입니다.”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이러한 법은 누구나 비방할 수 없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비방하거나 받을 수 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이러한 따위의 법을 얻음인 줄 알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큰 역사(力士)는 약하고 용렬한 사람이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법도 그러하나니, 만약 부처님 곁에서 선근을 심지 않은 사람이라면 마침내 의심할 수 없고 받아 지닐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사리불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과 같이 만약 이러한 말을 믿고 이해한다면[信解], 마땅히 이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아승기겁에서 이 같은 6바라밀을 수행한 줄 알 것이며, 만약 이 말을 믿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라면 부처님의 기별(記別)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없으며, 만약 믿고 이해하는 이라면 곧 기별을 받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
사리불아,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는 겁 동안에 6바라밀을 수행하되, 이러한 말을 믿고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기별을 받지 못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하였다가, 그 뒤에 믿고 이해하고 나서 곧 기별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능히 이 말을 믿고 이해한다면, 곧 기별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것임을 알지니라.”
007_0132_b_02L불가설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부분[分]으로써 기별을 얻는다 합니까? 만약 과거의 부분으로 기별을 받는다면 이는 이치가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멸한[滅] 법이기 때문이며, 미래의 부분으로써 기별을 받는다면 이것도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아직 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현재의 부분으로써 기별을 받는다 하여도 또한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부분이 다 기별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보살이 기별을 받는다고 말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설할 수 없음[不可說]을 믿고, 설할 수 없음을 알고 설할 수 없음을 말하며, 설할 수 없음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설할 수 없음과 색(色)의 두 가지 법이 차별 없고, 수(受)․상(想)․행(行)․식(識)과, 눈 내지 뜻과, 불․법․승 삼보와, 생사․해탈과 법계가 설할 수 없음도 다 이와 같음을 안다면, 이것을 보살이 인욕(忍辱)의 부분을 얻는다 하고, 남이 없는[無生] 부분을 얻는다 하고, 나옴이 없는[無出] 부분을 얻는다 하고, 취함이 없는[無取] 부분을 얻는다 하고, 더러움이 없는 부분을 얻는다 하고, 존재[有]가 없는 부분을 얻는다 하고, 지음 없는 부분을 얻는다 하리니, 이러한 여러 부분을 원만히 성취한다면, 일체 법에서의 두 가지 생각[二想]과 두 가지 마음[二心]과 두 가지 뜻[二意]과 두 가지 부분[二分]과 두 가지 연[二緣]을 내지 않으리라.
만약 어떤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한다면, 이것을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하리니, 머물지 않기 때문에 지음이 없고, 지음이 없기 때문에 원하여 구함이 없고, 원하여 구함이 없기 때문에 단(斷)과 상(常)이 없으니, 만약 단과 사이 없다면, 이는 곧 중도(中道)니라.
007_0132_c_02L중도는 바로 12인연(因緣)이니, 12인연은 짓는 자 없고 구하는 자가 없으므로 이 이치를 매우 깊다고 하며, 짓는 자 없고 받는 자 없으므로 이 이치를 매우 깊다고 하며, 남이 없으면서[無生] 나고, 나옴이 없으면서[無出] 나오므로 이 이치를 매우 깊다고 하느니라. 마치 맹렬한 불이 인연을 따라 생겨서 짓는 자 없고 받는 자 없다가 이 불이 꺼지고 나면 간 곳도 없고 난 곳도 없는 것처럼, 일체 법 또한 그러하여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보살로서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기별을 받는지 알아야 하느니라.”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음(陰)도 역시 둘이 없다고 보면 설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 옛 부처님처럼 기별을 얻으리라.
007_0132_c_06L若能觀是色陰分, 及不可說無二相,
是人卽獲平等智, 猶如先佛之所得。
만약 입(入)이나 계(界) 등과 일체 법이 두 가지 모양 없음을 관찰한다면 음성도 문자도 짬도 없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 설할 수 없다네.
007_0132_c_08L若觀受想行識陰, 亦復如是無有二,
能諦了知不可說, 卽得受記如先佛。
설할 수 없음과 3세의 부분은 한 부분[一分]으로 차별이 없고 진실한 성품과 참된 모습 모두 평등하니 이렇게 관찰하면 이치 보살[義菩薩]이라 하네.
007_0132_c_10L若欲觀察入界等, 及一切法無二相,
無聲無字無有節, 是故諸法不可說。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과 생사(生死)와 열반(涅槃) 차별이 없고 불․법․승 삼보 역시 둘이 없다네.
007_0132_c_12L不可說分三世分, 卽是一分無差別,
實性眞相悉平等, 如是觀名義菩薩。
일체 법의 이치 설할 수 없고 나고 멸함 없기는 허공과 같고 지음 없고 받음 없기 불 성품 같아 인연 따라 나고 인연 따라 멸하네.
007_0132_c_14L貪欲瞋恚及愚癡, 空無相願悉平等,
生死涅槃無差別, 佛法僧寶亦無二。
멸하고는 오가는 곳 알지 못하니 일체 법 모두 다 그러하여서 나고 멸함은 인연에 따르므로 이것을 멸함[滅]이라고 하네.
007_0132_c_16L一切法義不可說, 無有生滅如虛空,
無作無受如火性, 從緣而生非緣滅。
그 법 만약에 생멸하지 않고 또 상(常)․단(斷)까지 없다면 이는 깊고 깊은 12인연으로 다시 인연 따라 출생하지 않으리.
007_0132_c_18L滅已不知去來處, 一切諸法亦如是,
諸法皆從因緣生, 因緣斷故名爲滅。
본래 나는 것 없는데 이제 나고 본래 나옴이 없는데 이제 나오며 지음 없고 받는 이 없고 모든 인연과 과보도 없으며,
007_0132_c_20L若法不生而不滅, 亦復不常而不斷,
卽是甚深十二緣, 更不從緣而出生。
007_0133_a_02L 다시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이것저것 두 가지 모양도 없으며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도 있지 않음 이는 깊고 깊은 12인연이네.
007_0132_c_22L本無有生而今生, 本無有出而今出,
無有造作無受者, 無有諸因及果報。
이 법 본래 없는데 이제 있고 이미 있던 법도 뒤엔 도로 없나니 만약 있는 법이라면 3세의 거둠이라 성품[性]과 모양[相]은 앞의 말과 같음을 알라.
007_0132_c_24L亦復非有而非無, 非有彼此二種相,
亦不在內非在外, 卽是甚深十二緣。
안[內]의 법이라면 바깥과 중간 없고 바깥 법의 성품이라면 안과 중간 없으니, 일체의 모든 법 또한 그러하므로 이것을 으뜸가는 진공(眞空)의 이치라 하네.
007_0133_a_03L是法本無而今有, 已有之法後還無,
若是有法三世攝, 當知性相如前說。
온갖 중생들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여 더러움 없기 허공 같지만 범부는 마음의 성품[心性] 모르는 까닭에 객진번뇌[客煩惱]에 물이 든다네.
007_0133_a_05L若是內法外中無, 外法之性內中無,
一切諸法亦如是, 是名第一眞空義。
만약에 여러 번뇌가 마음을 더럽혀 끝내 때[垢穢]같이 청정할 수 없다면 객진번뇌가 막고 덮는 까닭에 범부의 마음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하네.
007_0133_a_07L一切衆生心本性, 淸淨無穢如虛空,
凡夫不知心性故, 說客煩惱之所染。
그 마음 성품 본래 청정한 것이라면 온갖 중생들 으레 해탈하지만 객진번뇌가 막고 덮는 까닭에 그러므로 해탈 얻지 못하네.
007_0133_a_09L若諸煩惱能污心, 終不可淨如垢穢,
諸客煩惱障覆故, 說言凡夫心不淨。
마음은 차례대로 마음을 낳지 못하고 마음은 차례대로 마음을 볼 수도 없어 일체의 온갖 마음 인연 따라 나나니 그러므로 차례의 마음은 끊지 않음이라.
007_0133_a_11L如其心性本淨者, 一切衆生應解脫,
以客煩惱障覆故, 是故不得於解脫。
만약에 이러한 마음 알아보기를 허공과 허깨비 모양[幻相] 같다 하면 이 사람 곧 마음의 자재를 얻고 차례대로 말을 분명히 안다네.
007_0133_a_13L心不能生次第心, 心不能見次第心,
一切諸心從緣生, 是故次第心不斷。
마치 요술쟁이[幻師]가 허깨비 짓는 것처럼 무량한 세상에 업 지은 이[業師] 또한 그러하고 마음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나니 이것을 안다면 마음의 자재를 얻으리.
007_0133_a_15L若能知見如是心, 猶如虛空及幻相,
是人卽得心自在, 亦能了知次第心。
만약에 이러한 지혜[忍] 얻기를 허깨비 법의 인연 없음과 같다 하고 이같이 알고도 탐심 안 내면 인연 말미암지 않고 해탈 얻으리.
007_0133_a_17L猶如幻師所作幻, 無量世業師亦爾,
如心衆生亦復然, 若知卽得心自在。
온갖 중생의 갖은 마음 성품은 여래가 말씀하되 3세의 거둠이라고 허깨비으로 된 물질이 진실성 없는 것처럼 중생의 마음도 또한 그러하네.
007_0133_a_19L若有能得如是忍, 猶如幻法無因緣,
若知如是不生貪, 不由因緣得解脫。
마음은 중생을 분명히 알고 중생 또한 마음을 분명히 아나니 마음은 물질이 아니므로 볼 수가 없듯 마음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네.
007_0133_a_21L一切衆生諸心性, 如來攝爲三世攝,
猶如幻物無眞性, 衆生之心亦復然。
007_0133_b_02L
중생의 성품처럼 일체 법 성품 함이 없는 그것을 설할 수 없으매 여래는 참된 법성 깨달았으니 그러므로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네.
007_0133_a_23L心能了知諸衆生, 衆生亦能了於心,
心者非色不可見, 如心衆生亦復然。
일체 범부는 알아보지 못하고 한량없는 생각 속에 이리저리 무명에 덮이고 진실에 미혹하여 진리와 법계를 알지 못하네.
007_0133_b_02L如衆生性一切法, 無爲之性不可說,
如來學得眞法性, 是故名爲無㝵智。
법계의 성품은 허공과 같고 온갖 세간은 말 할 수 없으며 여래는 대자비(大慈悲)를 닦으시어 문자 없는 법 속에 연설하지만,
007_0133_b_04L一切凡夫不知見, 流轉無量生死中,
無明所覆迷於實, 不知如爾及法界。
세간의 달고 쓴 6종의 맛들이 제각기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은 음(陰)․입(入)․계(界)를 말해주어도 그의 법 모양[法相] 알지 못하네.
007_0133_b_06L法界之性如虛空, 一切世閒不能說,
如來修集大慈悲, 無字法中而演說。
중생의 지혜 생멸하지 않음은 마치 허공과 허깨비 같나니 온갖 뒤바뀜을 멀리 여의므로 이것을 청정한 지혜라고 하네.
007_0133_b_08L猶如世閒六種味, 各各不能自覺知,
衆生雖說陰入界, 而不能了其性相。
여래는 일체 법 분명히 깨닫기를 받음과 지음 없기 초목 같으니 만약에 이런 법 관찰하면 이 사람은 곧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리.
007_0133_b_10L衆生智慧不生滅, 猶如虛空及以幻,
遠離一切顚倒故, 是則名爲淨智慧。
한량없는 그 어떤 보살이라도 이러한 인욕을 얻는다면 이 사람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위없는 보리(菩提)의 기별[記]을 주리.
007_0133_b_12L如來覺了一切法, 無受無作如草木,
若能觀察如是法, 是人卽得無生忍。
만약에 안팎의 물질을 버리고 몸․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아서 온갖 중생을 조복한다면 이 사람 곧 부처님께서 기별[記]을 주리.
007_0133_b_14L若有無量諸菩薩, 獲得如是忍辱者,
是人卽爲無量佛, 授其無上菩提記。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서도 그 마음 교만하지 않으며 중생을 다 청정하다고 말한다면 이 인연으로 기별 받으리.
007_0133_b_16L若能放捨內外物, 乃至不惜於身命,
能調一切諸衆生, 是人卽爲佛授記。
모든 법은 찰나 찰나 멸함을 알고 중생을 위해 인욕을 닦으며 다시 중생 위해 인욕을 연설한다면 이 인욕을 인하여 기별을 받으리.
007_0133_b_18L若能淸淨諸衆生, 旣淸淨已不生慢,
說諸衆生悉淸淨, 以是因緣得受記。
나쁜 법 멀리 여의고 부지런히 정진하며 착한 법 닦기 위해 쉬지 않고서 부지런히 정진을 연설한다면 이 정진을 인하여 기별을 얻으리.
007_0133_b_20L若知諸法念念滅, 爲衆生故修忍辱,
復能演說衆生忍, 因是忍故得受記。
007_0133_c_02L 일체 법은 본 성품 청정하고 평등하여 차별 없기 허공 같나니
만약에 이 평등을 연설한다면 삼매로 인하여 기별을 얻으리.
007_0133_b_22L遠離惡法勤精進, 爲修善法不休息,
若能演說勤精進, 因精進故得受記。
법의 설할 수 없음 알고 말할 때에도 겁냄과 두려움 없으며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면 이 지혜로 인하여 기별을 얻으리.
007_0133_b_24L一切諸法本性淨, 平等無差如虛空,
若能演說是平等, 因三昧故得受記。
그때 마왕(魔王)이 네 가지 군사를 거느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마왕이 스스로 비구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불가설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마왕 파순(波旬)가 이제 네 가지 군사를 거느리고 부처님 계시는 곳에 이르렀으니, 그대는 어떤 방편을 베풀려고 합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만약 그가 온다면, 나는 마땅히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할 것이오.” 비구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저 마왕 파순은 도무지 착한 마음이 없거늘 어찌 보리심을 내게 합니까?”
007_0133_c_03L若能知法不可說, 說時不生於怖畏,
能以方便化衆生, 因是智故得受記。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내 마땅히 조복하여 착한 마음을 내게 하고서는 이 인연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리니, 그 조복하는 방법으로, 내가 저 타화자재왕(他化自在王)의 경계에 간다면 그가 틀림없이 나에게 붙을 것이다. 이미 나에게 붙은 뒤에는 내가 마음대로 조복할 것입니다.” 그때 파순은 이 말을 듣고는 마음에 겁나고 두려워서 곧 물러가려고 하여도 물러갈 수 없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얽매인 것도 아니고 벗어날 수도 없고 신통력을 일으킬 수도 없다’고 하던 찰나에, 공중에서 ‘이것은 불가설보살의 신통력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마왕 파순은 즉시로 불가설보살 앞에 나아가서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저는 이제부터 온갖 악마의 일을 떠나겠습니다.”
007_0134_a_02L“누가 그대를 얽어매었소?” 파순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제가 얽매었거나 놓여짐이 없건만, 다닐 수가 없습니다.”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제 얽매이지도 않고 놓여지지도 않았지만 다닐 수 없는 것처럼 온갖 중생도 그러하나니, 그 까닭은 무명과 애욕 따위가 뒤바뀌고 얽어매어 벗어날 수 없는 것이오. 파순이여, 만약 그대가 이제라도 얽매임을 헐고자 한다면, 마땅히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시오.”
“선남자여, 온갖 중생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였기에 능히 더 없는 보리심을 냅니까?” “파순이여, 중생은 열여섯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나니, 그 열여섯 가지란, 이른바 항상 윗 마음[上心]을 닦아서 온갖 감관을 빛나게 다듬으며, 부지런히 모든 착함을 닦아서 공덕을 장엄하며, 지심으로 계율을 지녀 후회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며, 큰 자비심을 모아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부처님 세존의 대자대비하심을 믿으며,
여러 중생을 위해 모든 괴로움을 받아 행하며, 능히 중생들의 고뇌를 파괴하며, 모든 감관을 조복하여 바른 생각을 갖추며, 마음에 두려움 없이 온갖 존재[有]를 구하지 않으며, 부처님 지혜 구하기를 즐겨하고 3승(乘) 구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받아도 교만이 없으며, 괴로움을 받아도 뉘우침이 없으며, 지혜를 존경하여 교만을 파괴하며,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며, 몸과 힘을 갖추어 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지며, 삼보(三寶)를 끊지 않음이니, 이것을 열여섯 가지라 하오. 선남자여, 만약에 중생이 이러한 법을 갖춘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줄 알 것이오.”
007_0134_b_02L파순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에 중생이 이러한 법을 갖추어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제 실상 이러한 법이 없거늘 어찌 더없는 도(道)의 마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파순이여, 마치 나무를 심으면 꽃과 과실이 있나니, 처음에는 있지 않지만 나중에는 틀림없이 얻게 된다는 것을 의심할 바 없이 아는 것처럼, 중생이 보리를 향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현재는 비록 있지 않지만 점점 이 열여섯 가지 법을 얻게 되는 것이오.”
열일곱째는 스승과 스님과 덕 있는 사람을 공양하고 공경함이며, 열여덟째는 병들고 괴로운 이를 돌보아 줌이며, 열아홉째는 능히 잘 사유(思惟)함이며, 스무째는 법과 같이 머묾이며, 스물한째는 법을 옹호하기 위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음이며, 스물두째는 다라니를 성취함이며, 스물셋째는 염하는 마음을 원만히 갖춤이며, 스물넷째는 깊은 법을 능히 연설함이며, 스물다섯째는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며, 스물여섯째는 모든 힘을 원만히 갖춤이며, 스물일곱째는 보리를 원함이며,
007_0134_c_02L스물여덟째는 중생을 버리지 않음이며, 스물아홉째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리는 마음을 닦음이며, 서른째는 나고 죽음에 놀아도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않음이며, 서른한째는 몸 받기를 위한 까닭에 복덕을 장엄하고 청정한 원력을 내기 위하여 지혜를 장엄함이며, 서른두째는 일체 법은 연설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서른두 가지 법이라 하오. 보살이 만약에 이 법을 자라게 한다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오.
선남자여, 마치 가을밤의 초승달이 커갈 때 밝고도 깨끗한 것처럼, 중생이 아직 보리의 마음을 내지 못하여도 이러한 서른두 가지 법을 원만히 갖추는 것이 그와 같음이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에 이러한 서른두 가지 법을 갖추어 미묘한 모습과 모양을 얻는다면, 항상 하늘과 사람의 공양을 받게 되고, 능히 온갖 것을 버리고 과보를 구하지 않고, 큰 서원을 내어서 3세를 깨끗이 하고, 계율 지님을 완전하고도 깨끗이 하여 새지 않고 파괴되지 않으며, 인욕을 닦아서 착한 것을 듣게 되고 생각 없는 법의 지혜로써 착한 법을 장엄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착한 근기를 탐내지 않는 것이오.
마침내 여러 선정을 닦되 애착하거나 맛들이지 않으며, 또 중생을 인연한 사랑을 닦지 않고 오직 법의 인연과 인연 없는 인연의 사랑을 닦으며, 크게 슬퍼함을 닦아서 다른 사람의 하는 일을 도우며,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아서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바른 법을 즐거이 듣고 들음과 같이 말하며, 연설할 때에 먹이의 생각(食想)이 없으며, 자기가 다른 사람을 조복하여 탐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여의는 것이오. 4섭법(攝法)으로써 중생을 섭취하며, 복덕과 지혜 두 가지를 수행하여 비바사나(毘婆舍那)와 사마타(舍摩他)를 장엄하며, 염하는 마음을 원만히 갖추어 모든 위의를 깨끗이 하며, 4무애지를 성취하여 얻으며,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지혜에 따르며, 그 마음이 견고하여 물러나거나 흔들림이 없으며, 항상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할 것이오.
007_0135_a_02L파순이여, 여러 중생을 부처님 법에 들게 하기 위하므로 문자와 음성과 연설로써 보여주지만, 으뜸가는 이치 속에는 도무지 이러한 문자나 음성이 없음이니, 이것을 일체 법의 성품이라 하며, 일체 법의 성품은 설할 수 없는 것이오.” 파순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약 일체 법은 설할 수 없는 것이라면 보살이 어떻게 큰 서원을 내어 보리에 나아가겠습니까?” 불가설보살이 대답하였다. “파순이여, 마치 허공과 같이 그의 성품은 끝이 없으니, 허공 속에 우물이나 못을 만들 수 있겠소?”
“만들 수 없습니다. 선남자여.” “파순이여, 만약에 일체 법의 성품을 설할 수 없는 것이라면 증(證)할 수도 없고 널리 설할 수도 없을 것이오.” 파순은 물었다. “어떤 것을 보리심을 낸다 합니까?” 불가설보살이 말하였다. “탐내는 성품을 분명히 안다면 발심한다 하며, 또 성냄과 어리석음과 인색함과 질투함과 음(陰)․입(入)․계(界)와 무명과 지어감[行]과 식(識)과 이름과 색[名色]과 6입(入)과 내지 나고 늙어 죽음 따위의 큰 괴로움을 다 안다면, 이것을 발심이라 하는 것이오.” 파순이 또 물었다. “일체 법은 어떠한 성품이 있습니까?”
“파순이여, 나옴[出]이 없는 것을 일체 법의 성품이라 하오.” 파순은 또 말하였다. “어떤 것을 나옴이 없는 것이라 합니까?” “대저 내는 것이 없음이란 곧 마군의 흔적이 없음이니 마군의 흔적이 없음은 나[我]와 내 것[我所]이 없음이요, 나와 내 것이 없음이란 인연과 지어감과 생각과 모음[聚]과 취함[取]과, 생각과 생각 아님과 나고 멸함과 착하고 악함과 번뇌 있고 번뇌 없음과 함이 있고 함이 없음과 세간이고 출세간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음을 말함이니, 이러한 분별을 냄이 없다면 이것을 바로 나옴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007_0135_b_02L이 법을 말할 때에 8천의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어 허공 속에 올라서 외쳤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파순이여, 우리 8천의 보살은 이 법을 듣고서 무생법인을 얻었소.” 파순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살은 어떠한 법을 원만히 갖추었기에 무생법인을 얻었습니까?”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6바라밀을 원만히 갖추어서 무생법인을 얻었소.” 그때 불가설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여래께옵서는 여러 보살을 위하여 설할 수 없음을 설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이 단(檀)바라밀을 행할 적에 몸을 허깨비 같다고 관하고 느낌(受)을 꿈같다고 관하고 보리를 마치 허공 같다고 관하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 한 가지의 법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단바라밀의 설할 수 없음이라 하며, 만약에 계율과 계율의 경지, 훼계(毁戒)와 훼계의 경지를 관하고 모든 중생들은 나의 성품[我性]이 없다고 관하고 법의 성품을 관한다면 이것을 계율을 깨뜨리거나 헐뜯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계율을 원만히 갖추고 나서도 계율을 지니는 눈[持戒眼]․계율을 깨뜨리는 눈[破戒眼]․보살의 눈, 이 세 가지 눈[三眼]을 내지 않고, 다시 계율을 지니더라도 한 가지 법도 구하지 않고 보리의 과거나 미래나 현재를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시(尸)바라밀의 설할 수 없음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이 모든 중생이 나지 않고 나오지 않음을 관하여 참음[忍]을 닦으며, 보리와 중생과 모든 법은 다 고요하고 중생과 허공은 성내거나 기뻐하는 마음이 없음을 관하며, 또 어떤 법이라도 원망하는 생각을 깨닫지 않고서 참음을 닦으며, 다시 어떤 법이라도 멀리 여읨을 깨닫지 않고서 참음을 닦는다면, 이것을 찬제(羼提)바라밀의 설할 수 없음이라 하느니라.
007_0135_c_02L선나마자야, 만약에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조금이라도 몸과 입과 뜻 따위로 말미암아 어떤 법은 나고 어떤 법은 멸한다고 보지 않으며, 그러고도 정진을 닦아 법계를 헐지 않으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장엄을 닦고 공하고 나 없음[無我]에 있어서 착란을 일으키지 않으며, 온갖 부처님 법을 원만히 갖추기 위하여 장엄을 행하고 부처님 법은 곧 법 없는 것이라고 들어도 그 말에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였어도 허공같이 관하고, 또 장엄으로 법 바퀴를 굴리지 않는 까닭이 일체 법의 성품을 설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면, 이것을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의 설할 수 없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이 선(禪)바라밀을 닦되 닦고 나서 과거의 마음 성품을 보지 않고, 본 성품을 깨끗이 하고서도 머무는 곳을 보지 않으며, 또 탐내고 미워하고 어리석은 마음이나 상․중․하의 마음을 보지 않고 다시 탐내고 미워함이 없고 어리석은 마음과 슬기로운 마음을 분별하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탐내고 미워하고 어리석은 성품과 같이 탐냄과 미워함과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도 또한 그러함이니라.
이와 같이 관하고는 선정에 들어가되, 평등함을 평등하다고 보지 않고 평등하지 않은 법을 평등하다고도 보지 않으며, 또 음(陰)과 계(界)와 제입(諸入), 착함과 악함, 깨끗함과 더러움, 번뇌[有漏]와 번뇌 없음[無漏], 세간과 출세간, 생사와 열반, 다스림[對治] 따위를 법을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선바라밀의 설할 수 없음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설할 수 없는 반야(般若)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만약에 지혜의 행(行)이 없으면, 나[我]와 내 것[我所]과 중생․수명․장정과 상견(常見)․단견(斷見)과 있는 소견․없는 소견과 욕계․색계․무색계도 없음이니, 이것을 행이 없음이라 하며, 다툼[諍訟] 없고 오고 감이 없다면 이것을 지혜의 행에 따른다 하며, 무명의 어둠과 악하고 삿된 소견을 여의리라. 이러한 법을 관한다면 진실한 관찰이라 하느니라.
007_0136_a_02L선남자야, 화재(火災)가 나면 모든 것이 다 타버려서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오직 허공만은 제외되나니, 보살이 이 설할 수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도 이와 같아서 인연이 없느니라. 일체 법의 본 성품이 다 멸함을 보고는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써 열반을 연설하고, 또 중생의 명자(名字) 없음을 알리는 방편으로써 명자를 연설하며, 지혜의 힘을 지닌 까닭에 과거와 미래를 알아서 나고 멸함을 말하느니라.
또 몸과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알지만 방편으로써 몸과 마음을 말하고, 모든 법은 설할 수 없음을 알지만 중생을 위함으로써 방편으로 말하고, 베푸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음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베풂과 받음을 말하고, 모든 법은 본 성품이 청정함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계율[禁戒]을 말하고, 모든 법은 본래 성내는 성품이 없음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인욕을 닦고, 닦음도 없고 여읨도 없음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부지런히 정진을 닦고, 모든 법의 본 성품은 고요함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선정을 수행하고, 생사와 열반이 없음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지혜를 수행하고, 모든 법의 본 성품은 스스로 멸함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열반이 바로 지혜란 것을 말하느니라.
대저 지혜란 것은 음성과 명자가 없으므로 펴 설할 수 없고 보고 들을 수 없으며, 마음 없고 식별 없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나[我]와 내 것[我所]이 아니고 처소나 형체나 규격이 있는 것도 아니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색이 아니고 보이는 것도 아니며, 다스림이 아니고 조작이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생각함도 아니며, 머무는 곳이 없고 과거․미래․현재도 아니니라.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음과 법과 뜻이 아니며, 밝거나 어둠이 아니고 이 허공도 아니며, 안과 바깥이 아니고 동작이나 존재가 아니며, 비대하거나 수척함이 아니고 더하고 덜함이 아니며, 본 성품이 청정하여 탐내고 미워하고 어리석음이 아니며, 미치고 어지러운 것이 아니고 끝과 짬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음이니, 이것을 반야바라밀의 설할 수 없음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007_0136_b_02L이 법을 말씀 하실 때에 마왕 파순은 얽매임에서 벗어나 기쁜 마음을 내어 말하였다.
“제가 이제 설할 수 없는 법을 듣고서 해탈하게 됨과 같이 만약에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 법을 듣는다면 또한 나와 같이 뒤바뀜 속에서 해탈하게 될 것이며, 모든 마군의 부림[使]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모임 가운데 1만 2천의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이때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같은 바른 법을 무어라고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가지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의 이름은 『방등대집(方等大集)』이라 하고, 설할 수 없는 법이라고도 하고 또 온갖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고 온갖 부처님이 지니신 명자를 끊음이라고도 하느니라. 누구든지 이러한 법을 높이고 받들어 가진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그때 공중에서는 풍악과 향․꽃을 베풀어 불가설보살을 공양하고,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 소리로 진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