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존께서 짐짓 욕계와 색계의 중간 큰 보배 궁전 가운데 계시면서 사자자리에 올라 큰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의 밝기는 마치 해와 달 같고, 크게 자재롭기는 마치 범천과 제석 같고, 공덕이 높이 나타남은 마치 수미산 같고, 법계의 아주 깊음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았다.
거기에 보계(寶髻)라 하는 한 보살이 8천의 보살들과 함께 그 세계를 출발하여 이 국토에 오고자 하여 묘한 보배 일산을 갖고서 부처님께 받들고자 하니, 그 일산이 1천세계를 두루 덮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부처님을 공양하고자, 묘한 음성으로 게송을 읊으면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동방으로 9만 2천의 여러 불세계를 지나면 거기에 선화(善華)란 세계가 있고, 그 국토에 호를 정주(淨住)라 하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중에 보계(寶髻)란 보살이 8천의 보살과 더불어 함께 여기에 왔으니, 그의 말하는 소리가 대천세계에 들리어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법을 닦도록 권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거기에서 이 세계에 온 것은 보살의 청정한 행 법인(法印)을 듣고자 함이오니, 원컨대 대자대비하신 여래께옵서 가엾이 여기시어 널리 분별 해설하여 주옵소서. 여러 보살로 하여금 듣고는 닦아서 온갖 번뇌의 습기를 끊고 보살의 행을 닦아서 온갖 중생의 마음을 분명히 알며, 보살의 모든 행상(行相)을 닦아 능히 지혜의 행을 이해하고, 온갖 번뇌의 행을 알아서 능히 보살이 닦을 법행을 닦고, 깊이 온갖 죄과(罪過)를 관찰하여 몸에 걸림이 없이 모든 부처님을 보게 하겠나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단(檀)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단바라밀은 바로 이 청정한 행으로써 능히 어리석은 마음을 부수고 버리는 마음을 닦으며, 버리는 마음을 닦고 나서는 온갖 것을 보시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보살이 온갖 것을 보시한다면, 곧 네 가지 분별 없는 마음을 얻으리니, 네 가지 분별 없는 마음이란, 첫째는 중생을 분별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마음을 분별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원(願)을 분별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넷이라 하느니라.
007_0253_b_01L중생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이는 줄 수 있고 이는 줄 수 없다든가, 이는 많이 주고 이는 적게 준다든가, 이는 높여 주고 이는 낮추어 준다든가, 이는 공손히 주고 이는 경멸하며 준다든가, 이는 전부를 주고 이는 반만을 준다든가, 이는 계율을 지니는 것이고 이는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라든가, 이는 복밭(福田)이고 이는 복밭이 아니라든가, 이는 크게 갚을 수 있고 이는 크게 갚을 수 없다든가, 이는 바른 소견이고 이는 삿된 소견이라든가, 이 행은 정취(正聚)고 이 행은 사취(邪聚)라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마음을 얻는다면, 이것을 분별하지 않는 마음, 교만 없는 마음, 위와 아래가 없는 마음, 걸림이 없는 마음, 평등한 마음, 진정한 마음, 평등한 보시와 지계, 평등한 자비라고 하며 분별없기가 마치 허공과 같나니, 이것을 일러 중생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보살은 끝내 받는 자에게는 설하고 받지 않는 자에겐 설하지 않는다거나 법을 받은 자에겐 그에 필요한 것을 보시하고 법을 받지 않은 자에겐 공급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분별을 하지 않으며, 또 범부에게는 베풀어 줄[惠施] 수 없고 현성(賢聖)에게는 응당 보시해야 한다고 관찰하지 않나니, 이것을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마음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모든 중생을 관찰하되 마음을 다 평등하여서 갚음을 바라고 보시하지 않으며, 안팎으로 욕심이 없어 명예를 위해 보시하지 않고, 과보를 구하려고 보시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물건을 보시하고도 후회하지 않고, 중생을 거둬주기 위해 보시를 행하나니, 이것을 일러 마음을 분별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007_0253_c_01L원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보시할 때에 제석(帝釋)의 몸이거나 범왕(梵王)의 몸이거나 전륜왕(轉輪王)의 몸이거나 악마[魔]의 몸이거나 장자․대신의 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또 큰 자재를 위하거나 큰 권속을 위해서도 아니고, 천상에 태어나기를 위해서도 아니고,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을 위해서도 아니고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보시를 행하나니, 이것을 일러 원을 분별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닦을 적에 이러한 네 가지 일을 원만히 성취한다면, 곧 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소견을 멀리 여의게 되리니, 첫째는 나라는 소견[我見]이고, 둘째는 중생이란 소견[衆生見]이고, 셋째는 수명의 소견[壽命見]이고, 넷째는 장성의 소견[士夫見]이고, 다섯째는 상견(常見), 여섯째는 단견(斷見), 일곱째는 있다는 소견[有見], 여덟째는 없다는 소견[無見]이니라. 다시 네 가지 공덕을 멀리 여의게 되리니, 첫째는 범부의 공덕, 둘째는 성문의 공덕, 셋째는 연각의 공덕, 넷째는 다른 습기의 공덕이니라.
이와 같이 보시한다면 떳떳한 모양[相], 즐거운 모양, 나의 모양, 청정한 모양의 이 네 가지 모양을 관찰하지 않으며, 몸을 깨끗이 함과 입을 깨끗이 함과 마음을 깨끗이 함과 서원을 깨끗이 하는 이 네 가지 법을 깨끗이 하며, 과보의 걸림과 성문의 걸림과 후회하는 마음의 걸림을 멀리 여의게 되리라.
보살은 또 이러한 보시를 닦을 적에 내공(內空)의 인(印), 외공(外空)의 인, 중생의 공한 인, 보리의 공한 인, 이 네 가지 인을 원만히 갖추며, 이와 같이 보시할 적에는 네 가지 정진을 갖추나니, 첫째는 중생을 가득하게 하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고, 둘째는 불법을 옹호하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고, 셋째는 32상과 80종호를 갖추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고, 넷째는 불토를 깨끗이 하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느니라.
007_0254_a_01L이때 다시 네 가지의 염(念)을 갖추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심을 염하고, 둘째는 부처님을 보고자 염하고, 셋째는 항상 마음에 자애[慈]를 염하고, 넷째는 번뇌 여읠 것을 염하며, 이와 같이 보시할 적에는 자기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과 보리, 이 세 가지 일을 깨끗이 하며, 또 경계[界]의 지혜, 중생을 만족케 하는 지혜, 서원의 지혜, 보리를 돕는 지혜, 이 네 가지 지혜를 깨끗이 하느니라.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율을 지니고도 교만(憍慢)을 내지 않음이요, 둘째는 계율 헐뜯는 자를 보아도 경만(輕慢)을 내지 않음이요, 셋째는 계율 지닌 자를 보고서 마음에 질투함이 없음이요, 넷째는 끝까지 성문승을 구하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벽지불승을 염하지 않음이니라.
007_0254_b_01L 다시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율을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염하고, 둘째는 계율을 벗어나고도 마음에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법을 염하고, 셋째는 능히 여래의 계율을 원만히 갖추기 위하여 스님을 염하고, 넷째는 모든 존재의 과보를 구하지 않기 위하여 계를 염하고, 다섯째는 온갖 것을 다 베풀어 주기 위하여 보시를 염하고, 여섯째는 모든 착한 법을 원만히 갖추려고 하기 때문에 하늘을 염하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깊이 일체의 불법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힘써 정진을 행하여 불법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지혜를 구족하여 일체 모든 불법을 아는 것이고, 넷째는 이미 들은 일체 불법을 능히 설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부모, 스승과 화상에게 공양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현재와 미래의 악업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참괴심을 가지는 것이다.
다시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끗[利養]을 위해서 이상한 것을 나타내어 중생을 의혹시키지 않음이요, 둘째는 온갖 것을 여의기 때문에 자기 일을 말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마음에 만족함을 알기 때문에 공양을 가리지 않음이요, 넷째는 착한 법을 즐겨하기 때문에 성인의 종성(種姓)을 행함이요, 다섯째는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두타(頭陀)의 법을 따름이요, 여섯째는 세간 일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고요함을 즐겨함이요, 일곱째는 3세(世)를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 깊이 법을 즐겨함이요, 여덟째는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법을 옹호함이니라.
다시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3세(世)와 다섯 가지 갈래 중생의 사는 곳을 벗어나기 때문에 아홉 가지 나쁜 마음을 여읨이요, 둘째는 깨끗하기를 염하고, 셋째는 닦기를 염하고, 넷째는 착한 법을 더 자라게 하고, 다섯째는 마음으로 고요함을 즐겨하고, 여섯째는 번뇌의 생각을 여의고, 일곱째는 사마타(舍摩他)를 장엄하고, 여덟째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아홉째는 중생을 속이지 않음이니라.
다시 열 가지가 있으니, 몸의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함이 그 하나요, 입의 네 가지 업을 깨끗이 함이 그 둘이요, 뜻의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함이 그 셋이요, 질투를 멀리 여읨이 그 넷이요, 아첨하고 그릇된 마음을 여읨이 그 다섯이요, 마음껏 계율을 염함이 그 여섯이요, 계율을 지니기 이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행함이 그 일곱이요,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부드럽게 말함이 그 여덟이요, 중생의 심부름을 위하여 몸을 받음이 그 아홉이요, 모든 복밭[福田]에서 교만을 내지 않음이 그 열이니라.
007_0254_c_01L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시(尸)바라밀을 행하는 것인가 하면, 두 가지 청정한 행이 있으니, 첫째는 마음을 지니고 모양을 지니고[有心有相] 또 장엄으로써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라도 끝까지 계를 무너뜨리지 않음이요, 둘째는 마음이 없고 모양이 없고[無心無相] 장엄도 없음으로써 일체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음이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그 두 가지란 안의 감관[內入]을 깨끗이 함과 온갖 바깥 감관[外入]을 구하지 않음이며,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항상 보리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그 하나요, 본래 보리에 나아가는 계의 모양[戒相]을 관찰하지 않는 것이 그 둘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아무리 욕설을 들어도 응수하지 않음은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며, 모든 쓰라린 시달림을 받아도 보복하지 않음은 후세를 옹호하기 때문이며, 손과 발이 끊기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내지 않음은 보리를 옹호하기 때문이며, 요구하는 자를 보고서 마음에 미워하지 않음은 네 가지 거둬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보리의 도를 더하고 인색한 마음을 헐고 악마의 일[魔業]을 부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염불(念佛)을 닦고 나서 인욕을 행하되 온갖 괴로움을 받음은 불신(佛身)을 얻기 위함이니라. 선남자야, 다시 보살이 인욕을 닦음은 10력을 원만히 갖추려고 하기 때문이며, 또 보살이 인욕을 닦음은 큰 사자후를 이룩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3세의 걸림 없음을 알기 위한 때문이며, 대자대비의 힘을 얻기 위한 때문이며, 온갖 지혜를 갖추기 위한 때문이니라.
007_0255_a_01L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힘을 원만히 갖추어서 능히 참음[忍]을 성취하나니, 첫째 지혜의 힘이요, 둘째 닦는 힘이니라. 지혜의 힘을 지님으로써 몸과 마음을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참음이라 하고, 닦는 힘을 지님으로써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참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닦는 것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수행에 있어 쉬거나 후회하지 않고 모든 착한 법에 있어 만족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또한 다섯 바라밀 수행하기를 즐겨하고 항상 온갖 착한 법을 장엄하고 바른 법을 옹호하여 연설하기를 즐겨하며, 중생을 조복하되 마음에 쉬는 적이 없고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벗어나 온갖 바른 불법을 옹호하며, 모든 고행을 닦아도 그 마음은 후회하지 않아 끝내 옛날의 선근을 상실하지 않으며, 널리 닦고 많이 들어도 마음에 싫거나 지침이 없고 중생을 위하여 심부름하되 근심하거나 뉘우치지 않나니, 이것을 정진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정진을 어떻게 깨끗이 한다 하느냐 하면, 몸은 마치 그림자의 모습과 같고 입은 말함이 없고 마음은 끝까지 깨끗하다고 관찰하여 다한 지혜[盡智]로써 모든 멸하는 법을 관찰하고 무생법인으로써 모든 존재의 다함을 알며,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는 능히 세 가지 정진을 장엄하나니 그 세 가지란 몸의 장엄과 깨달음의 장엄과 분별의 장엄이다.
007_0255_b_01L 다시 눈에 집착하지 않음과 색에 집착하지 않음과 식별에 집착하지 않는 세 가지의 정진에 집착하지 않음이 있으며, 내지 법도 그러하느니, 이른 취(取)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정진이라 하느니라.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을 원만히 갖추고는, 은혜로운 보시를 취하지 않고 인색하고 탐냄을 버리지 않으며, 계 지님을 취하지 않고 계 헐뜯음을 버리지 않으며, 참음을 취하지 않고 성냄을 버리지 않으며, 정진을 취하지 않고 게으름을 버리지 않으며, 선정을 취하지 않고 어지러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며, 지혜를 취하지 않고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으며, 착한 법을 취하지 않고 나쁜 법을 버리지 않으며, 불도를 취하지 않고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버리지 않나니, 이를 일러 두 가지 부지런한 정진이라 함이니라. 이 두 가지 정진은 능히 불법을 갖추느니라.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안과 바깥이니, 만약 보살로서 능히 이같이 부지런한 정진을 닦는다면, 이는 비리야바라밀의 행이 깨끗하다고 하리라.
007_0255_b_10L復有二種:所謂內、外。若菩薩能修如是勤精進者,是名毘梨耶波羅蜜行淨。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선(禪)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선의 갈래[禪支]를 취하고 모든 선의 갈래를 관찰하되 관찰하고는 정(定)에 들며, 정에 들고 나서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눈의 선 내지 의식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색의 선 내지 법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땅․물․불․바람․허공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느니라.
해와 달, 제석․범천․자재천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욕계․색계․무색계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이것저것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몸과 마음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위․아래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4취(取)1)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선이라 하느니라.
007_0255_c_01L중생(衆生)․수명(壽命)․사부(士夫)․나[我]․남[人] 모양[相]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상견(常見)․단견(斷見)과 있고 없는 소견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필경 번뇌를 다하는 선이 아니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정취(正聚)에 들어가는 선이 아니므로 이를 선이라 함이니, 사문의 과[沙門果]를 얻는 선이 아니니라.
이러한 선은 필경 행의 선이 아니라 공으로 조복한 선이라 하지만, 참된 공의 선은 아니며, 모양 없이[無相] 조복한 선이라 하지만, 진실로 모양 없는 선은 아니며, 원 없이[無願] 조복한 선이라 하지만, 진실로 원 없는 선은 아니니, 이를 일러 보살은 대자대비한 온갖 공한 행의 선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온갖 공함을 갖춤이라 하는가 하면, 능히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방편과 자(慈)․비(悲)․희(喜)․사(捨), 4제(諦)의 보리(菩提)와 지혜․서원의 장엄함과 사마타(舍摩他)․비바사나(毘婆舍那)․해탈(解脫)․부끄러움[慚愧] 따위를 관찰하지 않는 이것을 부처님의 방편․삼매․신통․걸림 없는 지혜라 하며,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을 섭취(攝取)하되 2승(乘)에 더럽히지 않느니라.
법의 고요함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면서도 법의 버리는 성품에 취향(取向)하여 분명히 법의 눈이 어두운 성품에 나아가고, 들음이 있으면 법의 귀먹은 성품에 나아가며, 부지런히 조복하여 법의 머묾에 나아가고, 멸하고 고요하여서 불꽃처럼 왕성함을 조복하는 이것을 온갖 행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007_0256_a_01L선남자야, 마치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 그림을 잘 그릴 줄 알되, 그 중에 진흙으로 잘 바르는 이도 있고 색칠을 잘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몸뚱이는 그릴 줄 알아도 손발은 그릴 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손발을 그릴 줄 알아도 얼굴을 그릴 줄 모르는데, 때마침 어떤 국왕이 담요 한 장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부면서 말하기를 ‘그림 그릴 줄 아는 여러 사람은 다 이 담요 위에 모여와서 내 몸의 화상을 그려라’고 하자, 그때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기능에 따라 공동으로 만들되, 어떤 화공 한 사람이 사고로 인연하여 오지 못한 채 여러 사람은 그림을 마쳤다 해서 왕에게 함께 올렸다면, 선남자야, 이 그림을 여러 사람이 다 모여서 만들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내가 이 비유로 말함도 그 이치가 아직 분명히 나타나지 못하였느니라. 선남자야, 한 사람이 오지 않음으로써 다 모여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고, 그 화상도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나니, 불법의 행이란 것도 그와 같아서 만약 한 가지 행이라도 성취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여래의 바른 법을 원만히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행을 원만히 갖추어야만 위없는 보리(菩提)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적에 6만의 보살이 모든 행에 대하여 공함을 원만히 갖추게 되었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般若)바라밀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열두 가지의 지혜를 갖추나니, 과거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하나요, 미래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둘이요, 현재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셋이요, 함이 있음[有爲]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넷이요, 함이 없음[無爲]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다섯이요, 온갖 세상의 조작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여섯이요, 출세함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일곱이요, 변재(辯才)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여덟이요, 진실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아홉이요, 세간의 진리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열이요, 그 으뜸가는 진리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열 하나요, 모든 중생의 영리함과 우둔함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열둘이니, 이를 지혜라 이르는 것이니라.
다니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고 보기도 어렵고 아주 깊어서 배우기도 어려우며, 바른 소견과 정취(正聚)로써 모든 소견과 습기를 멀리 여의고, 스스로 앎이 분명하여서 온갖 중생의 마음을 알며, 법의 지혜와 이치의 지혜로써 아무런 탐착이 없고, 넓고 큰 광명으로 싸움도 없고 핍박함도 없으며, 시절(時節)과 시절이 지남을 잘 알아 정법취(正法聚)를 옹호하고 필경의 깨달음․바른 깨달음․진실의 깨달음으로 모든 더러움을 여의어 아무런 가책을 받지 않으며, 한 가지 행으로써 행이 없고 온갖 중생의 행이면서도 발자취의 행이 없느니라.
온갖 세간의 행을 여읠지라도 그 세간의 행을 멀리 여의지 않고, 세계를 여읠지라도 불토는 여의지 않고, 온갖 행의 장엄을 여읠지라도 중생 조복하기를 멀리 여의지 않고, 모든 행을 여읠지라도 착한 행은 여의지 않고, 중생 마음의 행[心行]의 인연을 여읠지라도 중생 마음의 행 알기를 여의지 않고, 세간의 행은 여읠지라도 세간의 법은 여의지 않고, 모든 몸을 여읠지라도 중생의 마음에 들어가는 이것을 지혜라 하나니, 이러한 지혜는 매우 얻기 어려우니라.
선근이 잘 익지 않으면 마침내 얻을 수 없고, 착한 법을 항상 수행하지 못한 자도 이러한 지혜를 얻을 수 없고, 보리 나무 아래에서라야 얻을 수 있어서 참으로 법성을 알아 모든 부처님의 옹호를 받고 저 언덕에 이르러 일체 법 보시와 단 이슬의 맛을 알게 되리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007_0256_c_01L선남자야, 이러한 지혜는 마침내 온갖 인연과 온갖 모양[相]과 온갖 중생심의 소행을 분명히 아나니,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지혜라 하느니라. 이러한 지혜는 두 가지 고요함이 있으니, 그 두 가지란 걸리는 모양[礙相]을 아는 고요함과 걸림 없는 모양을 아는 고요함이며,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깨달음이 없는 것의 깨끗함이 그 하나요, 모든 소견을 여의는 것의 깨끗함이 그 둘이니라.
이러한 지혜로써 보살마하살은 항상 중생의 영리하고 우둔한 근기 속에나 중생의 마음속에나 일체 법 가운데에 놀면서 모든 번뇌를 관찰하니,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라. 보살은 온갖 세계에 머물러도 법계에 많이 머물러서 시방세계를 잘 관찰하되, 온갖 번뇌[蓋]를 여읨은 다 불법의 근본이라고 보며, 더없는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어서 모든 법을 배우지 않고 모든 법을 여의지도 않으며, 한 가지 법을 헐지 않고 한 가지 법을 이룩하지도 않느니라.
007_0257_a_01L“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행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신념처(身念處)을 관찰함에 두 가지 행이 있으니, 깨끗하지 못한 행이 하나요, 깨끗한 행이 또 하나이다. 깨끗하지 못한 행이란 몸의 깨끗하지 못함으로써 냄새와 더러움이 가득하여 덧없고 머묾이 없어 모든 범부를 속이는 것인 줄 관찰함이요, 깨끗한 행이란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인하여 깨끗한 부처님 몸을 얻고 깨끗한 법신(法身)과 깨끗한 공덕의 몸과 온갖 중생의 보기 즐겨하는 몸을 얻으리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몸을 관찰하고 나서 또 두 가지 행을 깨끗이 하나니, 첫째는 덧없음이요, 둘째는 떳떳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몸이 덧없으므로 마침내 반드시 죽는다고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는 몸을 위하기 때문에 나쁜 업을 짓거나 삿된 생활[命]로 스스로 살지 않고서 세 가지 견고한 법을 닦나니, 첫째는 몸의 견고함이요, 둘째는 목숨의 견고함이요, 셋째는 재물의 견고함이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서 능히 중생을 위해 심부름하여 곧 몸과 입과 뜻의 그릇됨을 멀리 여의게 되므로, 보살은 이 몸의 덧없음을 관찰하고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을 얻느니라.
선남자야, 또 떳떳함이란 곧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음이란 곧 함이 없고[無爲], 함이 없음이란 곧 온갖 지혜의 행하는 곳이고, 온갖 지혜의 행하는 곳이란 곧 공하고 모양 없고 원 없는 곳이며, 또 떳떳함이란 바로 이 허공이므로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을 마치 허공과 같다고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야, 다시 보살은 신념처를 닦아서 온갖 중생의 몸은 필경 이 부처님의 몸이고 부처님의 몸처럼 법신(法身)도 그러하고, 이 두 가지 몸과 같이 나의 몸도 그러하다고 관찰하나니, 이것을 일러 보살이 번뇌 없는 몸을 관찰한다는 것이니라. 보살이 그때 얻는 착한 법은 그 많고 적음에 따라 다 번뇌가 없으므로, 이러한 법으로써 발원하여 온갖 갖가지의 지혜에 회향하며, 번뇌를 없애고 마침내 번뇌를 일으키지 않느니라.
무명의 번뇌란 것은 이미 그 뿌리를 뽑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무명(無明)을 뽑음으로써 곧 소견[見]의 번뇌가 없게 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몸의 염을 닦고 나서 이 몸 가운데에 나[我]와 내 것[我所]을 보지 않고 교만을 내지 않아 나와 내 것을 여의기 때문에 온갖 재물을 구하거나 취하지 않으며, 구하거나 취하지 않기 때문에 재물에 대해 싸움이 없으며, 싸움이 없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고요함이니라.
무릇 고요함이란 곧 참음이니, 참음에 머문다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음이니, 높거나 낮지 않음은 곧 법답게 머묾이요, 법답게 머묾이란 착한 법을 행하지도 않고 나쁜 법을 행하지도 않는 것이니라. 높거나 낮지 않으면 착한 벗을 얻나니, 착한 벗을 얻으면 착한 지식을 만나고 착한 지식을 만나기 때문에 바른 법을 듣게 되며 바른 법을 들음으로써 번뇌의 마음을 지녀 번뇌 있는 법에 회향하지 않나니, 이것을 일러 모든 번뇌의 경계를 벗어났다 하느니라. 번뇌의 경계를 벗어나며 언제나 선정에 들고 이미 선정에 들었다면 나아가 한 가지 법에 이르기까지도 분별을 내지 않나니, 분별이 없으므로 한 법을 짓지 않고 한 법도 변하지도 않으니, 이를 참다운 법이라 하고 일체 법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만약에 이러한 모든 법의 평등을 얻는다면 이를 온갖 지혜라고 하느니라.
007_0257_c_01L보살은 그때 느끼는 것에 따라 자비한 마음을 내나니, 자기로서나 다른 사람으로서나 즐거움을 느낄 적에 애욕의 마음을 여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며, 괴로움을 느낄 때라도 성내는 마음을 여의고 슬퍼하는 마음을 내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무명의 마음을 여의고 버리는 마음을 내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탐착하지 않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성내거나 미워하지 않고,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음을 느낄 때에는 무명을 내지 않나니, 보살은 그때 온갖 느낌의 덧없고 괴롭고 나 없음을 관찰하여서 즐거움 느끼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바로 괴로움인 줄 알고, 괴로움 느끼는 것을 보되 마치 헌 데나 부스럼같이 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은 이 고요하지 않음이라 보고, 즐거움의 느낌은 바로 덧없음이라고 관찰하고, 괴로움의 느낌은 바로 허무하다고 관찰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은 곧 나 없음이라고 관찰하느니라.
보살은 그때 이런 관찰을 하고 나서, 이 모든 느낌은 곧 느낌 없음이라고 보고, 온갖 느낌은 곧 함이 있다[有爲]고 보나니, 만약에 함이 있다면 이는 곧 나고 멸하고 흩어지고 새고 머묾이 없는 것이라고, 이렇게 관찰하고는 나[我]를 보지 않고 느낌을 보지 않나니, 이를 보살의 큰 지혜 방편이라 하느니라.
이 방편으로 인하여 온갖 느낌은 덧없이 나고 멸한다고 보고, 일체 법은 다 허무하여서 느낌 없고 느낄 것도 없고 조작 없고 조작할 것도 없이 인연에 따라 나고 인연에 따라 멸한다고 관찰하며, 매임도 없고 취함도 없어 모든 인연에 각(覺)과 관(觀)을 내지 않고 각과 관이 없음을 인하여 ‘모든 인연의 법은 다 공한 것이다’라고 말하느니라.
007_0258_a_01L어떤 것을 보살은 심념처(心念處)를 닦는다 하는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보리심에 머물러서 이 심성(心性)을 관찰하되, 안으로 느끼는[內入] 마음을 보지 않고 바깥으로 느끼는[外入] 마음을 보지 않고 안팎으로 느끼는[內外入] 마음을 다 보지 않고 음(陰) 속의 마음을 보지 않고 계(界) 속의 마음을 보지 않으며, 이미 보지 않고는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이러한 마음과 인연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 만약에 마음이 인연과 다르다면 같은 때에 응당 두 가지 마음이 있을 것이요, 마음이 바로 인연이라면 응당 다시는 자기의 마음을 관찰할 수 없으리니, 마치 손가락 끝이 스스로 촉감할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그러하리라.’
이런 관찰을 하고 나서 마음은 머묾이 없고 덧없어서 변하거나 달라진다고 보고, 인연하는 대상이 멸한다면 곧 이 마음은 인연 따라 나는 것도 아니고 인연 따라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떳떳함도 아니고 끊임도 아니고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줄을 아나니, 마음을 관찰하되 이와 같이 한다면 진리다운 법에 방해되지 않고 마음의 고요함을 아는 것이니라. 이것을 보살이 마음으로 마음의 염함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마음을 관찰하되 색이 아니므로 볼 수 없고 각과 관이 아니라 하나니, 이를 일러 보살이 마음의 염하는 대상을 닦는다 함이니라. 심(心)과 같이 심수(心數)도 그러하고 심수와 같이 심의 행도 그러하고 심의 행과 같이 심의 구하는 법도 그러하고 구하는 법과 같이 보리도 그러하고 보리와 같이 온갖 착한 법이 다 그러하느니라.
보살이 마음 관찰하기를 원숭이가 물에 그림을 그리고 아침이슬과 왕벌[蜂王]과 고기의 어미[魚母]처럼 하며, 강물과 불꽃처럼 하고, 먼 일을 생각하듯 하며, 홀로 다녀 몸이 없고 항상 굴러서 머묾이 없고 모든 경계에 탐착해서 차례로 나고 멸한다고 하느니라. 능히 이와 같이 한량없는 마음을 거둬서 한 곳에 머물게 하고 움직이거나 굴리지 않고 새거나 섞이지 않고 산란하지 않나니, 이것을 사마타(舍摩他)라고 하느니라.
007_0258_b_01L보살이 능히 이같이 관찰한다면, 이는 마음을 관찰하되 마음의 염하는 대상을 성취함이라 하고, 마음의 경계를 안다 하고, 마음의 법계를 안다 하고, 마음의 진실한 모양을 안다 하고, 마음의 진실한 성품을 안다 함이니, 이는 곧 널리 알고 깨끗이 알고 진실히 알고 허깨비[幻] 같음을 분명히 알므로 이를 일러 법을 안다 하고, 심성을 안다 하고, 마음의 마지막을 안다 하고 취(取)함이 없는 앎, 걸림 없는 앎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법의 염하는 대상을 닦는다 하는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관찰하느니라. ‘법은 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며, 나와 중생과 수명과 장정도 없고, 또 나거나 멸함이 없고 빠지거나 나오는 것도 없으므로 이를 법성(法性)이라 하나니, 만약에 법을 구할 수 있다면 이는 나는 법[生法]이라 하고, 법을 구할 수 없다면 이는 멸하는 법[滅法]이라 하리라.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것이나 나는 것도 인연에 따르고 멸하는 것도 인연에 따른다.’
007_0258_c_01L 마음의 업을 깨끗이 함이란 모든 중생에게 그 마음을 평등이 하며 항상 선정에 들어 4무애지를 깨끗이 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중생에게 항상 즐거움을 베풀고 슬퍼하는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한량없는 세간에 중생을 위해서 괴로움을 받아도 그 마음을 뉘우치지 않으며, 10력을 깨끗이 함은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영리하고 우둔함을 알기 때문이요, 4무소외를 깨끗이 함은 중생들의 장애가 있고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열여덟 가지 법을 깨끗이 함은 3세의 장애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모든 불법을 깨끗이 함은 온갖 중생으로서는 더 뛰어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렇게 관찰하여 모든 착한 법과 공덕에 만족하여 생각을 내지 않고서 착한 행에 친근하고 나쁜 행과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어 진실로 움직이지 않는 행을 분명히 알며, 탐내지 않음을 알고서 자재롭게 되어도 원에 따라 왕생(往生)하되, 업대로 태어나지 않고 욕계에 태어남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착한 방편을 얻어 법의 염하는 대상을 관찰하되, 보리 돕는 법을 닦고 장엄하여서 보리를 장애하는 온갖 더러움을 멀리 여의나니, 이 공덕을 얻고는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에 다 집착하지 않고, 또 이 두 가지 소견을 멀리 여의고서 중도(中道)를 행하느니라.
중도에는 착하지 않은 염과 무명, 이 두 가지 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법에서도 마음의 방일하지 않음을 중도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지어감[行]과 식별[識]이 그것이며,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 는 이름과 색[名色], 둘째는 6입(入)이며, 다시 닿임[觸]과 느낌[受]의 두 가지 법이 있고, 애욕[愛]와 취함[取]의 두 가지 법이 있고, 존재[有]와 남[生]의 두 가지 법이 있고, 늙고 죽음의 두 가지 법이 있느니라.
선남자야, 나와 나 없음[無我]을 두 가지 변견[二邊]이라 하나니, 만약에 말하기를, 상견(常見)도 단견(斷見)이 아니고 수명도 장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깨달음 아닌 것도 아니고, 실다운 것도 아니고 실다운 것도 헛된 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어감도 아니고 지어감이 아닌 것도 아니고, 생사도 아니고 열반도 아니라고 하여, 두 가지를 말하지 않는다면 이를 중도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살 눈[肉眼]이나 하늘 눈[天眼]이나 지혜 눈[慧眼]으로 법의 염하는 대상을 관찰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이러한 세 가지 눈은 어떤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법 눈[法眼]으로 법을 관찰하기 때문에 비록 분명히 알아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 집착하지 않는다 해서 법계를 잃어버리지 않나니, 이를 부처님 지혜라 하며, 능히 이러한 아주 깊은 법계를 알고서도 온갖 지혜의 염함을 잃어버리지 않나니, 이를 보살이 법으로 법의 염하는 대상을 닦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무엇 때문에 4념처(念處)를 닦느냐 하면, 네 가지의 뒤바뀜을 멀리 여의려고 하기 때문이니, 신념처(身念處)를 닦음은 깨끗함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요, 수념처(受念處)를 닦음은 즐거움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요, 심념처(心念處)를 닦음은 떳떳함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요, 법념처(法念處)를 닦음은 나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니라.
다시 5음(陰)을 여의나니, 신념처를 닦음은 색음(色陰)을 멀리 여읨이요, 수념처를 닦음은 수음(受陰)을 멀리 여읨이요, 심념처를 닦음은 식음(識陰)을 멀리 여읨이요, 법념처를 닦음은 상음(想陰)과 행음(行陰)을 멀리 여읨이니, 이를 보살이 네 가지 염(念)하는 행을 깨끗이 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4정근(正勤)한 행을 닦는다 하느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항상 온갖 착한 법을 즐거이 닦아서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법은 미리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미 생긴 나쁜 법은 멀리 여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며,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세간에 착한 행을 닦으므로 성품이 착하여 어떤 방편으로 나쁜 짓을 생기지 않게 하지는 않느니라. 만약에 보살이 4정근(正勤)을 닦는다면 마음이 자재롭게 되리니, 4정근이라 함은 보살은 어느 때나 심(心)과 심수(心數), 대자대비를 함께 행함으로써 정근이라 하느니라.
007_0259_c_01L보살은 그때를 따라 또 4신족(神足)을 닦나니, 그 네 가지란 욕심과 마음과 정진과 지혜이다. 전일한 생각과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를 염하므로 욕심이라 하고, 큰 슬픔[大悲]을 닦음으로 깨닫는 마음이 가뜬함을 마음이라 하고, 나쁜 법을 멀리 여의므로 정진이라 하고, 방편을 얻으므로 지혜라 하나니, 보살은 이 4신족을 닦고 나서 네 가지의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첫째는 수명의 자재로움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비록 짧은 수명으로 태어났더라도 스스로 긴 수명을 얻을 수 있느니라. 또 중생을 조복하여 긴 수명을 주기 위해서는 바른 법을 연설하고 긴 수명에서도 짧은 수명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보살의 태어나는 곳에 따라 사람이든 하늘이든 수명의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셋째는 법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온갖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알아서 중생들에게 온갖 세간의 일을 보여 주어도 출세간의 행에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 깊고 깊은 12인연을 분명히 알고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능히 중생들에게 갖가지 법을 연설하므로, 중생들이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넷째는 서원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사방의 큰 바다를 합하여 한 개의 바다를 만들지라도 오거나 가지 않고 움직임도 굴림도 없이 본래와 다름없게 하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합하여 한 개의 산을 만들지라도 오거나 가지 않고 움직임도 굴림도 없이 본래와 다름없게 하고, 사천왕과 삼천대천세계에서도 방해되거나 걸림이 없게 하며, 삼천대천세계로 하여금 모두 금보배나 7보, 전단․꽃․향․영락과 허공․물․불을 만들고자 하더라도 다 마음대로 이룩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4신족을 깨끗이 장엄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만약에 부모․스님․화상․어른․덕 있는 이를 공양하며, 중생을 보고는 마음껏 문안하되 부드럽고 연하게 말하고 말과 같이 행동하며, 여러 중생을 대함에는 그 마음을 평등이 하여 착한 마음․바른 마음․공경하는 마음․부끄러운 마음으로 대하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고 속이거나 탐내거나 더럽히거나 인색함이 없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의 사업을 자기 사업처럼 경영하고 세력 없는 자에겐 그 세력을 도와주며, 진흙탕이 된 곳에는 흙과 돌로써 다스리고, 강이나 시내, 개천과 도랑에는 다리[橋]를 만들어 주거나 몸으로 업기도 하고 배[船]에 태워 건네주기도 하여 언제나 중생의 필요한 문자를 베풀며 입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을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의 범죄를 비웃지 않고 죄지은 자가 있더라도 법답게 다스리고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하며,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베풀어 주더라도 이미 베푼 뒤에는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느니라.
중생들을 위해 발원 회향하고 신심으로 착한 일을 중생에게 권하고, 목숨[身命]을 아끼지 않아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을 알아서 다른 사람의 이끗[利養]에 바라는 것이 없으며, 항상 출가하기를 염하여 중생에게 권하고, 선지식을 염하되 마음에 버리는 일이 없으며, 원수나 친한 사람이나 평등이 보아 둘이 없고, 갖가지 승(乘)으로써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까지 베풀며, 여위고 약한 사람에겐 평상과 친구를 보시하고, 공포를 느끼는 자에겐 구호하여 주고, 여러 중생 보기를 부모처럼 생각하며, 훼계(毁戒)한 이를 깔보지 않고,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보시하느니라.
007_0260_b_01L 병든 자에게 약품을 공급하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서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끝까지 삼보의 종성(種性)을 끊지 않으며, 항상 함이 없음[無爲]을 염하고, 세간의 일과 온갖 착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어 세간법에 물들지 않고, 보리를 잃어버리지 않고서 지심을 염한다면, 이를 일러 4신족의 행을 깨끗이 장엄하는 것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