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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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25권
009_0216_c_01L大般涅槃經卷第二十五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009_0216_c_02L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⑤
009_0216_c_03L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第十之五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어떤 법이 대열반의 가까운 인연[近因]이 되겠는가?’라고 하면, 네 가지 법이 대열반의 가까운 인연이 되는 것을 보살이 곧 알게 되는 것이다.
009_0216_c_04L復次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修大涅槃微妙經典具足成就第七功德善男子菩薩摩訶薩修大涅槃微妙經典作是思惟何法能爲大般涅槃而作近因菩薩卽知有四種法爲大涅槃而作近因
만일 말하기를 ‘온갖 고행(苦行)을 닦는 것이 대열반의 가까운 인연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면 옳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네 가지 법을 여의고 열반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이며, 둘째는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두어 생각하는 것이며, 넷째는 법대로 행을 닦는 것이다.
009_0216_c_10L若言勤修一切苦行是大涅槃近因緣者是義不然所以者何若離四法得涅槃者無有是處何等爲四一者親近善友二者專心聽法三者繫念思惟四者如法修行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병에 걸렸을 때에 열병이거나 냉병이거나 허로(虛勞)거나 학질이거나 귀신의 독이거나 간에 용한 의원에게 가면 의원이 병의 증세를 따라 약을 일러 줄 것이다. 그 사람은 정성으로 의원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약을 지어 처방대로 먹을 것이며, 먹으면 병이 나아서 몸이 편안하게 된다.
009_0216_c_14L善男子譬如有人身遇衆病若熱虛勞下瘧衆邪鬼毒到良醫所醫卽爲隨病說藥是人至心善受醫隨教合藥如法服之服已病愈得安樂
009_0217_a_02L병에 걸린 사람은 보살에 비유하고, 용한 의원은 선지식에 비유하고, 의원의 말은 방등경전에 비유하고, 의원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방등경전의 뜻을 생각하는 데 비유하고, 말한 대로 약을 짓는 것은 법대로 37조도품(助道品)을 수행하는 데 비유하고, 병이 나은 것은 번뇌를 멸하는 데 비유하고, 편안함을 얻음은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에 비유하였다.
009_0216_c_19L有病之人喩諸菩薩大良醫喩善知識良醫所說喩方等經受醫教喩善思惟方等經義隨教合喩如法修行三十七助道之法除愈者喩滅煩惱得安樂者喩得涅槃常樂我淨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왕이 법대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을 안락하게 하려고 지혜 있는 신하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신하들이 선왕의 예전 법을 이야기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지성으로 믿고 행하여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니, 원수와 적이 없어지고 백성들이 편안하여 걱정이 없었다.
009_0217_a_03L善男子譬如有王欲如法治令民安諮諸智臣其法云何諸臣卽以先王舊法而爲說之王旣聞已至心信如法治國無諸怨敵是故令民安樂無患
선남자야, 왕은 보살에 비유하고 지혜 있는 신하는 선지식에 비유하고, 신하가 다스리는 법을 왕에게 말한 것은 12부경(部經)에 비유하고, 왕이 듣고 지성으로 믿고 행한 것은 보살이 12부경의 깊은 이치에 뜻을 두어 생각함에 비유하고, 법대로 나라를 다스림은 보살들이 법대로 수행하는 데 비유하였으니 곧 6바라밀이다. 6바라밀을 수행함으로써 원수와 적이 없어진 것은 보살이 번뇌의 나쁜 대적을 멀리 여의는 데 비유하고, 안락하게 된 것은 보살이 대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비유하였다.
009_0217_a_08L善男子王者喩諸菩薩諸智臣者喩善知識智臣爲王所說治法喩十二部經王旣聞已至心信行諸菩薩繫心思惟十二部經所有深如法治國喩諸菩薩如法修行謂六波羅蜜以能修習六波羅蜜故無諸怨敵喩諸菩薩已離諸結煩惱惡賊得安樂者喩諸菩薩得大涅槃常樂我淨
009_0217_b_02L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선지식이 말하기를 ‘네가 수미산에 가면 병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유명한 약이 있기 때문이니 맛이 감로와 같으며, 그 약을 먹으면 온갖 병을 다 고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지성으로 그 말을 믿고 수미산자락에 가서 감로약을 구하여 먹고 병이 쾌차하여 몸이 안락하였다. 문둥병 걸린 것은 범부에게 비유하고, 선지식은 보살마하살에 비유하고 지성으로 믿은 것은 4무량심에 비유하고, 수미산은 8성도에 비유하고, 감로의 맛은 불성에 비유하고, 문둥병이 쾌차한 것은 번뇌를 멸한 데 비유하고, 안락함을 얻은 것은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비유했다.
009_0217_a_16L善男子譬如有人遇惡癩病有善知識而語之言汝若能到須彌山邊可得差所以者何彼有良藥味如甘若能服者病無不愈其人至心信是事已卽往彼山採服甘露其病除身得安樂惡癩病者喩諸凡夫知識者喩諸菩薩摩訶薩等至心信喩四無量心須彌山者喩八聖道甘露味者喩於佛性癩病除愈喩離煩惱得安樂者喩得涅槃常樂我淨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러 제자들을 두었는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 이 사람은 밤낮으로 가르치고 게으르지 않았는데,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지만 항상 교화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009_0217_b_03L善男子譬如有人畜諸弟子聰明大是人晝夜常教不惓諸菩薩等亦復如是一切衆生有信不信而常教無有疲厭
선남자야, 선지식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과 성문과 방등경전을 믿는 사람들이다. 어째서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선지식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10악업을 여의고 10선업을 닦게 한다.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고 이름한다. 또 선지식은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한다. 어떤 것을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한다고 하는가? 자기가 살생하지 않고 다른 이로 하여금 살생하지 않게 하며, 나아가 자기가 바른 소견을 행하고 다른 이에게 바른 소견을 가르친다.
009_0217_b_07L善男子善知識者所謂菩薩辟支聲聞人中信方等者何故名爲善知識耶善知識者能教衆生遠離十修行十善以是義故名善知識善知識者如法而說如說而行何名爲如法而說如說而行自不殺教人不殺乃至自行正見教人正
만일 이렇게 하는 이라면 선지식이라고 한다. 또한 스스로 보리를 닦고 다른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닦게 한다.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고 한다. 자기가 믿음과 계율과 보시와 많이 아는 것과 지혜를 닦아 행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계율을 가지고 보시하고 많이 알고 지혜를 닦게 한다.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7_b_15L若能如是則得名爲眞善知識修菩提亦能教人修行菩提以是義名善知識自能修行信布施智慧亦能教人信布施多聞復以是義名善知識
선지식이라고 함은 선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한 법이라고 하는가? 짓는 일이 스스로 즐겁기를 구하지 않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안락을 구하며, 다른 이의 허물을 보고도 단점을 말하지 않고 입으로는 선한 말만 한다.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7_b_19L善知識者善法故何等善法所作之事不求自常爲衆生而求於樂見他有過訟其短口常宣說純善之事以是義名善知識
009_0217_c_02L선남자야, 허공에 있는 달이 초하룻날부터 보름날까지는 점점 자라듯이 선지식도 그와 같아서 배우는 일에서 나쁜 법은 멀리하고 선한 법은 자라게 한다. 선남자야,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이는 본래 계행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의 지견이 없었더라도 문득 있게 되며, 구족하지 못한 이는 구족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까닭이며, 친근함을 인하여 12부경의 깊고 묘한 이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009_0217_b_23L善男子如空中月從初一日至十五日漸漸增長善知識者亦復如是諸學人漸遠惡法增長善法善男子若有親近善知識者本未有戒解脫解脫知見卽便有之未具足者則得增廣何以故以其親近善知識因是親近復得了達十二部經甚深之義
만일 이 12부경의 깊은 뜻을 듣는 이는 법을 듣는다고 할 것이며, 법을 듣는 것은 곧 대승의 방등경전이며, 방등경을 듣는 것을 참으로 법을 듣는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법을 듣는 이는 『대열반경』을 듣는 것이니
009_0217_c_08L若能聽是十二部經甚深義名爲聽法聽法者則是大乘方等經典聽方等經名眞聽法眞聽法者卽是聽受『大涅槃經
대반열반에 불성이 있지만 여래는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않으심을 듣는다.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고 하는 것이다.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을 8성도라고 하며, 8성도로써 능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끊으므로 법을 듣는다고 한다.
009_0217_c_11L大涅槃中聞有佛性如來畢竟不般涅槃是故名爲專心聽法專心聽法名八聖道以八聖道能斷貪欲瞋恚愚癡故名聽法
법을 듣는다고 함은 11공(空)을 말한다. 이 모든 공함으로써 온갖 법에 모양을 짓지 않는다. 법을 듣는다고 함은 초발심이라고 이름하며 나아가 구경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 초발심을 인하여 대열반을 얻는 것이고 들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며, 닦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는 것이다.
009_0217_c_14L夫聽法者名十一空以此諸空於一切法不作相貌夫聽法者名初發心乃至究竟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以因初心得大涅槃不以聞故得大涅槃以修習故得大涅槃
선남자야, 비유하면 병난 사람이 의원의 가르침을 듣거나 약의 이름을 들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며,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듯 12인연의 깊은 법을 들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며, 마음을 가두어 잘 생각함으로써 번뇌를 끊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셋째 마음을 가두어 생각함[第三繫念思惟]이라고 한다.
009_0217_c_19L善男子譬如病人雖聞醫教及藥名不能愈病以服食故能得差病聽十二深因緣法不能得斷一切煩要以繫念善思惟故能得除斷名第三繫念思惟
009_0218_a_02L또 마음을 가두어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3삼매이니, 공삼매(空三昧)ㆍ무상(無相)삼매ㆍ무작(無作)삼매이다. 공삼매는 25유에 대하여 한 가지 실다움도 보지 않는 것이며, 무작삼매는 25유에 대하여 원하는 일을 짓지 않는 것이며, 무상삼매는 열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것이다. 빛깔 모양[色相]ㆍ소리 모양[聲相]ㆍ향기 모양[香相]ㆍ맛 모양[味相]ㆍ닿는 모양[觸相]ㆍ나는 모양[生相]ㆍ머무는 모양[住相]ㆍ멸하는 모양[滅相]ㆍ남자 모양[男相]ㆍ여자 모양[女相]이며, 이 3삼매를 닦는 것을 보살의 마음을 가두어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009_0217_c_24L復以何義名繫念思惟所謂三三昧空三昧無相三昧無作三昧空者於二十五有不見一無作者於二十五有不作願求相者無有十相所謂色相聲相香相味相觸相生相住相滅相男相女相修習如是三三昧者是名菩薩繫念思惟
무엇을 일러 법과 같이 수행한다고 하는가? 법과 같이 수행하는 것은 보시바라밀과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니, 5음ㆍ12입ㆍ18계의 진실한 모양을 알며, 성문ㆍ연각ㆍ부처님이 다 같이 한길로 열반에 드는 것이다. 법이라고 함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며,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으며,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괴롭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물러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대열반의 깊은 뜻을 아는 이는 부처님들께서 필경에 열반에 들지 않으심을 안다.
009_0218_a_08L云何名爲如法修行如法修行卽是修行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知陰界眞實之相亦如聲聞諸佛同於一道而般涅槃法者是常樂我淨不生不老不病不死不渴不苦不惱不退不沒善男子解大涅槃甚深義者則知諸佛終不畢竟入於涅槃
선남자야, 제일 진실한 선지식은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시다 왜냐하면 항상 세 가지로 잘 제어하는 까닭이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끝까지 부드러운 말[軟語]이며, 둘째는 끝까지 꾸짖음[呵責]이며, 셋째는 부드러운 말과 꾸짖음[軟語呵責]이다. 이런 뜻으로 보살과 부처님을 진실한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8_a_15L善男子第一眞實善知識者所謂菩諸佛世尊何以故常以三種善調御故何等爲三一者畢竟軟語二者畢竟呵責三者軟語呵責以是義故菩薩諸佛卽是眞實善知識也
009_0218_b_02L또 선남자야, 부처님과 보살은 큰 의원이므로 선지식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맞추어 약을 주는 까닭이다.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아서 먼저 병의 증세를 보는데, 증세에 세 가지가 있다. 풍병[風]과 열병[熱]과 물병[水]이다. 풍병이 있는 이에게는 타락기름[酥油]을 주고 열병이 있는 이에게는 석밀(石蜜)을 주고 물병이 있는 이에게는 강즙[薑湯]을 주는데, 병의 근원을 알고 약을 주어서 낫게 하므로 용한 의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009_0218_a_20L復次善男子佛及菩薩爲大醫故名善知何以故知病知藥應病授藥故如良醫善八種術先觀病相相有三何等爲三謂風有風病者之蘇油熱病之人授之石蜜水病之授之薑湯以知病根授藥得差名良醫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범부에게 세 가지 병이 있음을 아신다.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다. 탐욕의 병이 있는 이는 해골 모양을 관찰하게 하고, 성내는 병이 있는 이는 자비한 것을 관찰하게 하고, 어리석은 병이 있는 이는 12인연을 관찰하게 한다.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고 한다.
009_0218_b_04L佛及菩薩亦復如是知諸凡夫病有三種一者貪欲二者瞋恚愚癡貪欲病者教觀骨相瞋恚病觀慈悲相愚癡病者觀十二緣相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선남자야, 비유하면 뱃사공이 사람을 잘 건네주는 까닭으로 훌륭한 뱃사공이라고 하는 것처럼,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중생을 건네주므로 선지식이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또 부처님과 보살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법의 근본을 구족하게 닦게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마치 설산은 가지각색 미묘한 약의 근본이 되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 된다.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8_b_08L善男如大舩師善渡人故名大舩師菩薩亦復如是度諸衆生生死大以是義故名善知識復次善男子因佛菩薩令諸衆生具足修得善法根本故善男子譬如雪山乃是種種微妙上藥根本之處佛及菩薩亦復如是悉是一切善根本處以是義故名善知識
009_0218_c_02L선남자야, 설산에 훌륭한 약이 있는데 이름이 사하(娑呵)1)이다. 그 약을 보는 사람은 목숨이 한량없고 모든 병이 없으며, 네 가지 독이 있더라도 상하지 못하고, 약에 닿는 이는 수명이 늘어서 120세를 살며, 생각하는 이는 숙명통(宿命通)을 얻는다. 왜냐하면 약의 힘 때문이다.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만일 보는 이는 모든 번뇌가 소멸되며, 네 가지 마군이 있더라도 산란하게 하지 못하고, 접촉하는 이는 목숨이 단명하지 않아서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접촉한다 함은 부처님 곁에서 묘한 법을 듣는 것이다. 생각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데,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8_b_16L善男子雪山之中有上香名曰娑呵有人見之得壽無量有病苦雖有四毒不能中傷若有觸增長壽命滿百二十若有念者宿命智何以故藥勢力故諸佛菩薩亦復如是若有見者卽得斷除一切煩惱雖有四魔不能干亂若有觸者命不可夭不生不死不退不沒所謂觸者若在佛邊聽受妙法若有念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선남자야, 향산 속에 아뇩달 연못이 있으며, 이 연못으로부터 4대하(大河)가 흐르니, 항하(恒河)와 신두하(辛頭河)와 사타하(私陀河)와 박차하(博叉河)이다. 세간 중생들이 항상 말하기를, ‘죄를 지은 이가 이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이 말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이 밖에 어떤 것이 진실한가? 부처님과 보살들이 진실하니, 그 까닭은 만일 사람이 그를 친근히 하면 모든 죄악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8_c_03L善男子如香山中有阿那婆蹹多池水由是池故四大河所謂恒河辛頭私陁博叉閒衆生常作是言若有罪者浴此四衆罪得滅當知此言虛妄不實此已往何等爲實諸佛菩薩是乃爲所以者何若人親近則得滅除一切衆罪以是義故名善知識
또 선남자야, 이 땅에 있는 약풀이나 모든 숲이나, 곡식이나 감자나 꽃과 과일들이 가뭄을 만나서 말라죽을 때에 난다용왕과 우파난다용왕이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바다에서 나와 모든 숲과 온갖 곡식과 초목들을 다시 소생시킨다.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있는 선근이 소멸하려 할 때에 부처님과 보살이 자비한 마음으로 지혜 바다로부터 감로 비를 내려 중생들로 하여금 열 가지 선한 법을 도로 얻게 하신다.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고 한다.
009_0218_c_10L復次男子譬如大地所有藥木一切叢林百穀甘蔗花果之屬値天炎旱將欲枯死難陁龍王及婆難陁憐愍衆生從大海出降澍甘雨一切叢林百穀草木滋潤還生一切衆生亦復如是所有善根將欲消滅諸佛菩薩生大慈悲從智慧海降甘露雨令諸衆生具足還得十善之法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009_0219_a_02L선남자야,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면서 병난 사람만 보고, 문벌과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는 것을 보지 않으며 모두 다스리니 세상 사람들이 훌륭한 의원이라 하는 것처럼,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번뇌의 병이 있는 것만 보고, 문벌이나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으시고 자비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 하시면 중생들이 듣고 번뇌의 병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말하여 선지식을 친근한 인연으로 대반열반(大般涅槃)에 가깝게 된다고 한다.
009_0218_c_19L善男子譬如良醫善八種術見諸病人不觀種姓端正錢財寶貨悉爲治之是故世稱爲大良醫諸佛菩薩亦復如是見諸衆生有煩惱病不觀種姓端正好醜寶貨生慈愍心悉爲說法衆生聞煩惱病除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以是親近善友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어찌하여 보살이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가? 모든 중생이 법을 들은 까닭으로 신근(信根)을 구족하고, 신근을 얻은 까닭으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즐거이 행하여 수다원과나, 나아가 부처의 과보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선한 법을 얻는 것은 모두 법을 들은 인연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009_0219_a_04L云何菩薩聽法因緣而得近於大般涅槃一切衆生以聽法故則具信根得信根故樂行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得須陁洹果乃至佛果故當知得諸善法皆是聽法因緣勢
선남자야, 어떤 장자가 외아들을 다른 지방에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무역하게 하면서 도로가 통하고 막힌 데를 일러 주고, 또 경계하기를 ‘만일 기생 따위를 만나더라도 사랑하지 말라. 만일 사랑하면 몸을 망치고 생명이 위험하며 재물을 잃게 된다. 또한 나쁜 사람들도 사귀지 말라’고 하여,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재물을 많이 얻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여러 중생과 사부대중에게 길이 통하고 막힌 것을 보여 주는데, 대중들이 법을 들은 까닭으로 나쁜 짓을 여의고 선한 법을 구족한다.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19_a_10L善男子譬如長者惟有一子遣至他國市易所須示其道路通塞之處而復誡之若遇婬女愼莫親愛若親愛者喪身殞命及以財寶弊惡之人亦莫交遊其子敬順父之教勅身心安樂多獲寶貨菩薩摩訶薩爲諸衆生敷演法要亦復如是示諸衆生及四部衆諸道通塞是諸衆生以聞法遠離諸惡具足善法以是義故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009_0219_b_02L선남자야, 비유하면 밝은 거울로 사람의 얼굴을 비치면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법을 듣는 거울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비치기만 하면 선한 일 나쁜 일이 분명히 나타나고 가리지 않는다.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선남자야, 마치 장사꾼이 보배 있는 섬에 가려 하면서 길을 모르는 것을 다른 이가 일러 주면, 그 사람이 그 말대로 보배 섬에 가서 한량없는 보배를 얻게 되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선한 곳에 가서 도의 보배를 얻으려 하면서 길을 모르는 것을 보살이 일러 주면 중생이 그 말을 따라 선한 곳에 가서 위없는 대반열반의 보배를 얻게 된다.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한다.
009_0219_a_19L善男子譬如明鏡照人面像無不明了聽法明鏡亦復如是有人照之則見善惡明了無翳以是義故聽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善男子譬如估客欲至寶渚不知道路有人示之其人隨卽至寶渚多獲諸珍不可稱計切衆生亦復如是欲至善處採取道不知其路通塞之處菩薩示之生隨已得至善處獲得無上大涅槃以是義故聽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비유하면 술 취한 코끼리가 미친 듯이 포악하여 만나는 대로 살해하려고 하여도 코끼리 길들이는 사람이 굵은 쇠갈고리로 정수리를 찍으면 이내 길들어 사나운 성질이 없어지듯이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취하여 나쁜 짓을 하려 할 때에 보살이 법의 갈고리로 찍어서 머물게 하면 다시는 나쁜 짓을 하려는 마음은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한다.
009_0219_b_07L善男子譬如醉象狂騃暴惡多欲殺害有調象師以大鐵鉤鉤斲其頂卽時調順惡心都盡一切衆生亦復如是貪欲瞋恚愚癡醉故欲多造惡諸菩薩等以聞法鉤斲之令住更不得起造諸惡心以是義故聽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제자들이 전일한 마음으로 12부경을 들으면 5개(蓋)를 여의고 7각분(覺分)을 닦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7각분을 닦으므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법을 들은 까닭으로 수다원들이 공포를 떠난다. 왜냐하면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중병에 걸려서 매우 두려워하는 것을 사리불이 수다원에게 네 가지 공덕과 열 가지 안위(安慰)가 있음을 말하였더니, 그 말을 듣고 나서 두려움이 없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009_0219_b_13L是故我於處處經中說我弟子專心聽受十二部經則離五蓋修七覺分以是修習七覺分故則得近於大般涅槃以聽法故須陁洹人離諸恐怖所以者何須達長者身遇重病心大愁怖聞舍利弗說須陁洹有四功德十種慰喩聞是事已恐怖卽除
009_0219_c_02L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한다. 왜냐하면 법의 눈을 뜨게 하는 까닭이다. 세상에 세 사람이 있는데 첫째는 눈이 없고 둘째는 눈이 하나이고 셋째는 눈이 둘이다. 눈이 없는 이는 항상 법을 듣지 못하는 이며, 한 눈 있는 이는 잠깐은 법을 듣더라도 마음이 전일하지 않은 이며, 두 눈이 있는 이는 전심으로 법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하는 이다. 법을 듣는 데 세 가지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뜻으로 말하기를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19_b_20L以是義故聽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何以故法眼故世有三人一者無目二者三者二目言無目者常不聞法目之人雖暫聞法其心不住二目之專心聽受如聞而行以聽法故知世閒如是三人以是義故聽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내가 예전에 구시나(拘尸那)성에 있을 때에 사리불이 병에 걸렸으므로 아난에게 유촉하면서 법을 연설하였더니, 사리불이 그 소문을 듣고 4부 제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나의 평상을 듣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자. 내가 법을 듣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때 4부 제자가 평상을 들고 나에게 와서 법을 듣게 하였고, 법을 들은 힘으로 병이 나아서 몸이 편안하였다.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19_c_04L善男子如我昔於拘尸那城時舍利弗身遇病苦我時顧命阿難比丘廣爲說法時舍利弗聞是事已告四弟子汝舁我牀往至佛所我欲聽法時四弟子卽共舁往旣得聞法聞法力故所苦除差身得安隱以是義故聽法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어찌하여 보살이 생각한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가? 이 생각으로 마음이 해탈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항상 5욕락에 얽히는 것을 생각하는 까닭으로 해탈하게 된다.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네 가지 법에 뒤바뀌게 되었으나, 생각하는 까닭으로 모든 법이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보게 된다. 이렇게 보고 나서 네 가지 뒤바뀐 것이 즉시 끊어진다.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009_0219_c_11L云何菩薩思惟因緣而得近於大般涅槃因是思惟心得解脫何以故切衆生常爲五欲之所繫縛以思惟悉得解脫以是義故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復次善男子一切衆生常爲常樂我淨四法之所顚倒以思惟故得見諸法無常無樂無我無淨如是見已四倒卽斷以是義故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009_0220_a_02L또 선남자야, 온갖 법이 네 가지 모양이 있으니, 무엇이 넷인가? 첫째는 나는 모양[生相]이고, 둘째는 늙는 모양[老相]이고, 셋째는 병드는 모양[病相]이고, 넷째는 없어지는 모양[滅相]이다. 이 네 가지 모양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범부로부터 수다원에 이르도록 큰 고통을 내게 하는데, 만일 마음을 가두어 잘 생각하면 비록 이 네 가지를 만나더라도 고통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009_0219_c_20L復次善男子一切諸法有四種相何等爲一者生相二者老相三者病相滅相以是四相能令一切凡夫衆生至須陁洹生大苦惱若能繫念善思惟者雖遇此四不生於苦以是義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또 선남자야, 온갖 선한 법이 모두 생각[思惟]을 말미암아 얻어진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더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불ㆍ법ㆍ승 삼보가 바뀌지 않음을 믿고 공경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두어 생각한 인연의 힘으로 온갖 번뇌를 끊은 것이다.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20_a_03L善男子一切善法無不因於思惟而得何以故有人雖於無量無邊阿僧祇劫專心聽法若不思惟終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是義故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復次善男子若有衆生信佛法僧無有變易而生恭敬當知皆是繫念思惟因緣力故因得斷除一切煩惱以是義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어떤 것을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나쁜 법을 끊어 버리고 선한 법을 닦는 것을 일러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고 한다. 또 어떻게 법대로 수행하는가? 온갖 법이 공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보고, 이렇게 보았으므로 몸과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일러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고 한다.
009_0220_a_12L云何菩薩如法修行善男子斷諸惡修習善法是名菩薩如法修行云何如法修行見一切法空無所無常無樂無我無淨以是見故捨身命不犯禁戒是名菩薩如法修
또 어떤 것을 법대로 수행한다고 하는가? 수행하는 것이 두 가지이다. 진실한 것과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하지 않다고 함은 열반ㆍ불성ㆍ여래ㆍ 법ㆍ승가ㆍ실상ㆍ허공의 모양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진실하다고 하는가? 열반ㆍ불성ㆍ여래ㆍ법ㆍ승가ㆍ실상ㆍ허공의 모양을 아는 것을 진실하다고 한다.
009_0220_a_18L復次云何如法修行修有二種眞實二者不實不實者不知涅槃佛性如來實相虛空等相是名不實云何眞實能知涅槃佛性如來實相虛空等相是名眞實
어떤 것을 말하여 열반의 모양을 안다고 하는가? 열반의 모양이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다함[盡]이며, 둘째는 선한 성품[善性]이며, 셋째는 진실함[實]이며, 넷째는 참됨[眞]이며, 다섯째는 항상함[常]이며, 여섯째는 즐거움[樂]이며, 일곱째는 나[我]이며, 여덟째는 깨끗함[淨]이다. 이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009_0220_a_22L云何名爲知涅槃相涅槃之相凡有八事何等爲八一者善性是名涅槃
009_0220_b_02L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해탈이며, 둘째는 선한 성품이며, 셋째는 진실하지 않음이며, 넷째는 참되지 않음이며, 다섯째는 무상함이며, 여섯째는 즐겁지 않음이며, 일곱째는 내가 없음이며, 여덟째는 부정함이다. 또 여섯 가지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해탈이며, 둘째는 선한 성품이며, 셋째는 진실하지 않음이며 넷째는 참되지 않음이며 다섯째는 안락함이며 여섯째는 청정함이다. 만일 중생이 세속의 도를 의지하여 번뇌를 끊었으면, 이런 열반은 여덟 가지 해탈이 있으나 진실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항상하지 않은 까닭이다. 항상함이 없으므로 진실함이 없고, 진실함이 없으므로 참되지 않으며, 비록 번뇌를 끊었으나 다시 일어나므로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부정하다.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 해탈의 여덟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0220_b_02L復有八事何等爲八一者解脫二者善性三者不實四者不眞五者無常六者無樂七者無我八者無淨復有六相一者解脫二者善性三者不實四者不眞五者安樂六者淸淨若有衆生依世俗道斷煩惱者如是涅槃則有八事解脫不實何以故以不常故無常故則無有實無有實故則無有雖斷煩惱以還起故無常無我無淨是名涅槃解脫八事
무엇을 여섯 가지 모양이라고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번뇌를 끊었으므로 해탈이라고 하지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진실하지 않다고 한다. 진실하지 않으므로 참되지 않다는 것이며, 오는 세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므로 항상함이 없고 무루한 8성도를 얻었으므로 안락하고 청정하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렇게 아는 것은 열반을 아는 것이나 불성ㆍ여래ㆍ법ㆍ승가ㆍ실상ㆍ허공의 모양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009_0220_b_12L云何六聲聞緣覺斷煩惱故名爲解脫未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爲不實以不實故名爲不眞未來之世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名無常以得無漏八聖道故名爲淨樂善男子若如是知是知涅槃不名佛如來實相虛空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불성을 안다고 하는가? 불성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인가? 첫째는 항상함이며, 둘째는 깨끗함이며, 셋째는 실다움이며, 넷째는 선함이며, 다섯째는 마땅히 보는 것이며, 여섯째는 참됨이다.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증득할 만함[可證]이며, 다른 여섯은 위와 같다. 이것을 일러 보살이 불성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20_b_19L云何菩薩知於佛性佛性有六何等爲六當見復有七事一者可證餘六如上名菩薩知於佛性
009_0220_c_02L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여래의 모양을 안다고 하는가? 여래라고 함은 깨달음과 선함과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과 해탈함과 진실함과 도를 보임과 볼 수 있음이다. 이런 것을 일러 보살이 여래의 모양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20_b_23L云何菩薩知如來相如來卽是覺相善相常樂我淨解脫眞實示道可見是名菩薩知如來相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법의 모양을 안다고 하는가? 법이라고 함은 선한 것 선하지 못한 것과, 항상한 것 항상하지 않은 것과, 즐거운 것 즐겁지 않은 것과, 내가 있는 것 내가 없는 것과, 깨끗한 것 부정한 것과, 아는 것 알지 못하는 것과, 이해할 것 이해하지 못할 것과, 참된 것 참되지 못한 것과, 닦는 것 닦지 못한 것과, 사승(師承)할 것 사승하지 못할 것과, 진실한 것 진실하지 않은 것 따위이다. 이런 것을 일러 보살이 법의 모양을 안다고 한다.
009_0220_c_03L云何菩薩知於法相法者若善不善若常不常若樂不樂若我無我若淨不淨若知不知若解不解若眞不眞若修不修若師非師若實不實是名菩薩知於法相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승가의 모양을 안다고 하는가? 승가라고 함은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깨끗하며 제자의 모양과 볼 수 있는 모양과 선하고 참되고 진실하지 않음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문이 부처님의 도를 얻은 까닭이며, 또 참되다는 것은 법의 성품을 깨달은 까닭이다. 이런 것을 말하여 보살이 승가의 모양을 안다고 한다.
009_0220_c_08L云何菩薩知於僧相僧者若常樂我是弟子相可見之相善眞不實以故一切聲聞得佛道故何故名眞悟法性故是名菩薩知於僧相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실상을 안다고 하는가? 실상이라고 함은 항상하고 무상한 것, 즐겁고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하고 부정한 것, 선하고 선하지 않은 것, 있는 것 없는 것, 열반이고 열반 아닌 것, 해탈이고 해탈 아닌 것, 알고 알지 못하는 것, 끊고 끊지 못하는 것, 증득하고 증득하지 못하는 것, 닦고 닦지 않는 것, 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니 이것은 실상이라 이름하지만, 열반ㆍ불성ㆍ여래ㆍ법ㆍ승가ㆍ허공은 아니다. 이런 것을 일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음으로 인하여 열반ㆍ불성ㆍ여래ㆍ법ㆍ승가ㆍ실상ㆍ허공 등의 차별한 모양을 안다고 한다.
009_0220_c_12L云何菩薩知於實相實相者若常若樂無樂若我無我若淨無淨不善若有若無若涅槃非涅槃解脫非解脫若知不知若斷不斷不證若修不修若見不見是名實非是涅槃佛性如來虛空菩薩因修如是大涅槃故知於涅佛性如來實相虛空等法差別之相
009_0221_a_02L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 허공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과 보살이 비록 다섯 가지 눈이 있지만 보지 않는 까닭이며, 혜안(慧眼)으로 보는 것이니, 혜안으로 보는 것은 볼 수 있는 법이 아니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아무것도 없는 데를 허공이라고 한다면, 이런 허공을 진실하다고 하며, 진실하므로 항상 없다 이름하며, 항상 없으므로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도 없다.
009_0220_c_21L善男子菩薩摩訶薩修大涅槃微妙經典不見虛空何以故佛及菩薩雖有五眼所不見故惟有慧眼乃能見慧眼所見無法可見故名爲見是無物名虛空者如是虛空乃名爲以是實故則名常無以常無故
선남자야, 공은 없는 법을 이름한 것이며, 없는 법은 공이라고 한다. 비유하면 세간에서 물건이 없는 것을 공이라고 이름하듯이, 허공의 성질도 그와 같아서 있는 물건이 없는 데를 허공이라고 이름한다. 선남자야, 중생의 성품과 허공의 성품이 모두 실다운 성품이 없다. 왜냐 하면 마치 사람들이 있는 물건을 없애 버리고 그런 뒤에 허공을 만든다 말하는데, 허공은 실제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없는 까닭이니, 있는 것이 없으므로 허공도 없는 줄을 알아야 한다. 허공의 성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상하다 할 것이니,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이라고 이름하지 못한다.
009_0221_a_05L善男子空名無法無法名空譬如世閒無物名空虛空之性亦復如是無所有故名爲虛空善男子生之性與虛空性俱無實性何以故如人說言除滅有物然後作空而是虛空實不可作何以故無所有故無有故當知無空是虛空性若可作則名無常若無常者不名虛空
선남자야,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은 색(色)도 없고 막힘[礙]도 없고 항상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허공의 성질을 말하여 다섯째 요소[第五大]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허공은 실로 성품이 없는 것을 광명이 비치므로 허공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허공은 없는 것이다. 마치 세상법[世諦]은 실로 제 성품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세상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009_0221_a_12L男子如世閒人說言虛空無色無㝵常不變易是故世稱虛空之法爲第五大善男子而是虛空實無有性光明故故名虛空實無虛空猶如世實無其性爲衆生故說有世諦
선남자야, 열반의 자체도 그와 같아서 머무는 곳이 없고, 오직 모든 부처님의 번뇌를 끊은 곳[斷煩惱處]이므로 열반이라고 한다. 열반은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다. 열반이 즐겁다고 하지만 우리가 감각하여 즐거움[受樂]이 아니고, 가장 묘하고 적멸(寂滅)한 낙이다.
009_0221_a_17L男子涅槃之體亦復如是無有住處直是諸佛斷煩惱處故名涅槃涅槃卽是常樂我淨涅槃雖樂非是受樂乃是上妙寂滅之樂
부처님 여래께 두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첫째는 적멸한 낙[寂滅樂]이며, 둘째는 깨달아 아는 낙[覺知樂]이다. 실상의 체에는 세 가지 낙이 있으니, 첫째는 감각하는 낙[受樂]이고 둘째는 적멸한 낙[寂滅樂]이며 셋째는 깨닫는 낙[覺知樂]이다. 불성은 오직 한 가지 낙이니 마땅히 볼 수 있는 까닭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을 보리락(菩提樂)이라고 이름한다.”
009_0221_a_21L諸佛如來有二種樂寂滅樂覺知樂實相之體有三種樂一者受樂寂滅樂知樂佛性一樂以當見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名菩提樂
009_0221_b_02L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끊어진 데를 열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예전에 처음으로 부처님의 도를 이루려고 니련선하(尼連禪河) 가에 가셨을 때에, 마왕이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말하기를 ‘세존이여, 열반하실 때가 되셨는데 어찌하여 열반에 들지 않으십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왕이여, 나에게는 지금 많이 아는 제자로서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지혜 있는, 중생을 교화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009_0221_b_02L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若煩惱斷處是涅槃是事不然何以故如來往昔初成佛道至尼連禪河邊爾時魔王與其眷屬到於佛所而作是言世尊涅槃時到何故不入佛告魔王我今未有多聞弟子善持禁戒聰明利智能化衆生是故不入
만일 번뇌가 끊어진 데가 열반이라고 한다면 여러 보살들은 한량없는 겁 전에 이미 번뇌를 끊었는데, 어찌하여 열반이라고 하지 않으며, 다 같이 끊었는데 어찌하여 부처님만 열반이 있고 보살에게는 없다고 하십니까? 만일 번뇌를 끊었어도 열반이 아니라면,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예전에 생명(生名) 바라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지금 이 몸이 곧 열반이다’라고 하였으며,
009_0221_b_10L若言煩惱斷滅之處是涅槃者諸菩薩等於無量劫已斷煩惱何故不得稱爲涅槃俱是斷處何緣獨稱諸佛有之菩薩無耶若斷煩惱非涅槃者何故如來昔告生名婆羅門言我今此身卽是涅槃
또 비사리(毘舍離)성에 계실 때에 마왕이 여쭙기를 ‘여래께서 예전에는 많이 알고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중생을 교화할 만한 제자가 없어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구족하였는데 왜 열반에 들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더디다는 생각을 내지 마라. 지금부터 석 달 뒤에는 내가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까?”
009_0221_b_15L如來昔時在毘舍離國魔復啓請如來昔以未有弟子多聞持戒聰明利智化衆生不入涅槃今已具足何故不如來爾時卽告魔言汝今莫生悒遲之想卻後三月吾當涅槃
009_0221_c_02L세존이시여, 만일 멸도(滅度)함이 열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고 하셨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번뇌를 끊음이 열반이라면 여래께서 처음 도량에 계실 때에 보리수 아래서 번뇌를 끊으신 때가 곧 열반인데, 어찌하여 앞으로 석 달 뒤에 열반에 드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때가 열반이라고 하면 어찌하여 구시나성에서 여러 역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벽녘에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까? 여래께서는 진실하신데 어찌하여 허망한 말씀을 내십니까?”
009_0221_b_20L世尊使滅度非涅槃者何故如來自期三月當般涅槃世尊若斷煩惱是涅槃如來往昔初在道場菩提樹下斷煩惱時便是涅槃何故復言卻後三當般涅槃世尊若使爾時是涅槃云何方爲拘尸那城諸力士等說後夜當般涅槃如來誠實云何出是虛妄之言
그때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여래가 광장설(廣長舌)을 얻었다면 여래는 한량없는 겁 전부터 허망한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하는 말은 진실하여서 허망하지 않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이 파순이 예전에 나에게 청하여 열반에 들라고 하였다면, 선남자야, 이 마왕은 열반의 일정한 모양을 진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009_0221_c_05L爾時世尊告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言善男子若言如來得廣長舌當知如來於無量劫已離妄語一切諸佛及諸菩薩凡所發言誠諦無虛善男子如汝所言波旬往昔啓請於我入涅槃者善男子而是魔王眞實不知涅槃定相
왜냐하면 파순의 생각엔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을 열반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이가 말을 하지 않고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은 죽은 자와 다름이 없다’고 하듯이, 파순도 그와 같아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도 않고 잠자코 말이 없는 것으로써 여래가 열반에 든다고 생각하였다.
009_0221_c_12L何以故波旬意謂不化衆生默然而住便是涅槃男子譬如世人見人不言無所造作便謂是人如死無異魔王波旬亦復如是意謂如來不化衆生默無所說便謂如來入般涅槃
선남자야, 여래는 불ㆍ법ㆍ승 삼보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머무는 법과 청정한 법이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선남자야, 부처님도 ‘부처나 불성이나 열반이 차별한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항상하고 변하지 않음이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부처님도 열반과 실상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있고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009_0221_c_17L善男子如來不說佛衆僧無差別相惟說常住淨二法無差別耳善男子佛亦不說佛及佛性涅槃無差別相惟說常恒不變無差別耳善男子佛亦不說涅實相無差別相惟說常有實不變易無差別耳
009_0222_a_02L선남자야, 그때 나의 성문 제자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구섬미(拘睒彌)국의 나쁜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어기고 계율을 범하며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받아 이양(利養)을 구하면서 재가의 사람들을 향하여 스스로 칭찬하기를 ‘나는 무루(無漏)를 얻었으니 수다원과와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이를 헐뜯어 욕하며 불ㆍ법ㆍ승 삼보와 계율과 화상도 공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내 앞에서 이런 물건은 받으라고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말하지만 나는 허락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도 그들은 나와 반대로 이런 것은 참으로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한다.
009_0221_c_23L善男子爾時我諸聲聞弟子生於諍訟如拘睒彌諸惡比丘違反我教多犯禁戒受不淨物貪求利養向諸白衣而自讚歎我得無漏謂須陁洹果乃至我得阿羅漢果辱於他於佛法僧戒律和上不生恭公於我前言如是物佛所聽畜是等物佛不聽畜我亦語言如是等我實不聽復反我言如是等物是佛聽
이런 나쁜 사람이 나의 말을 믿지 않기에,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지 마라. 이제부터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이러한 나쁜 비구들로 인하여 성문의 배우는[受學] 제자들로 하여금 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나의 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게 하였다. 보살들은 내 몸을 보고 내 법을 들으므로 내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며, 성문 제자들이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않는다.
009_0222_a_09L如是惡人不信我言爲是等我告波旬汝莫悒遲卻後三月般涅槃善男子因如是等惡比丘故令諸聲聞受學弟子不見我身不聞我法便言如來入於涅槃惟諸菩薩能見我身常聞我法是故不言我入涅槃聲聞弟子雖復發言如來涅槃而我實不入於涅槃
선남자야, 나의 성문 제자들이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며 마군의 도당(徒黨)이며, 나쁜 소견을 가진 사람이며 바른 소견이 아니다.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 사람이 참으로 나의 제자이며 마군의 도당이 아니며,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며 나쁜 무리가 아니다.
009_0222_a_16L善男子若我所有聲聞弟子說言如來入涅槃者知是人非我弟子是魔伴黨邪見惡非正見也若言如來不入涅槃知是人眞我弟子非魔伴黨正見之非惡邪也
009_0222_b_02L선남자야, 나는 본래부터 제자들 중에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은 열반에 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를 보지 못하였다. 선남자야, 어떤 장자가 여러 아들을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을 때에, 아들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자는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지만, 아들들이 잘못 생각하여 죽은 줄로 아는 것이다.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구시나성의 한 쌍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않은 것을 성문 제자들이 열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009_0222_a_21L善男子我初不見弟子之中有言如來不化衆生默然而住名般涅槃也善男子譬如長者多有子息捨至他未得還頃諸子竝謂父已死矣是長者實亦不死諸子顚倒皆生死聲聞弟子亦復如是不見我故便謂如來已於拘尸那城娑羅雙樹閒而般涅槃而我實不般涅槃也聲聞弟子生涅槃想
선남자야, 비유하면 밝은 등불을 어떤 사람이 가렸을 때에, 알지 못하는 사람은 등불이 꺼졌다고 생각하는데, 등불은 실제로는 꺼진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해서 꺼졌다고 생각하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비록 혜안이 있으면서도 번뇌에 덮여서 마음이 뒤바뀌었으므로 참된 몸[眞身]을 보지 못하고 멸도하였다는 생각을 낸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멸도한 것이 아니다.
009_0222_b_07L善男子譬如明燈人覆之餘不知者謂燈已滅而是明焰實亦不滅以不知故生於滅想聞弟子亦復如是雖有慧目以煩惱令心顚倒不見眞身而便生於滅度之想而我實不取滅度也
선남자야, 배냇소경은 해와 달을 보지 못하며, 해와 달을 보지 못하므로 낮과 밤이 밝고 어두운 줄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해와 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와 달은 진실로 있지만 소경이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탓으로 잘못된 생각을 내어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009_0222_b_12L善男子如生盲人不見日月以不見不知晝夜明闇之相以不知故便說無有日月之實實有日月盲者不以不見故生於倒想言無日月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저 배냇소경과 같이 여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데, 여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않았으며 잘못된 생각으로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다.
009_0222_b_16L聞弟子亦復如是如彼生盲不見如便謂如來入於涅槃如來實不入於涅槃以倒想故生如是心
선남자야, 안개와 구름이 해와 달을 가렸을 때에 어리석은 사람은 해와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해와 달은 실제로는 있는 것이며 구름이 가렸으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지혜 눈을 덮었으므로 여래를 보지 못하고,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009_0222_b_19L善男子譬如雲霧覆蔽日月癡人便言無有日月日月實有直以覆故衆生不見聲聞弟子亦復如是以諸煩惱覆智慧眼不見如來便言如來入於滅度
009_0222_c_02L선남자야, 이는 여래가 젖먹이 아기의 행을 나타내는 것이며 멸도한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염부제에 해가 졌을 때에 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흑산(黑山)이 가린 까닭이며, 해는 본래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생들이 보지 못하므로 졌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산이 가려서 내 몸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가 멸도한다는 생각을 내지만 나는 실로 끝까지 멸도하는 것이 아니다.
009_0222_b_23L善男子直是如來現嬰兒行非滅度善男子如閻浮提日入之時衆生不見以黑山障故而是日性實無沒衆生不見生沒入想聲聞弟子亦復如是爲諸煩惱山所障故不見我以不見故便於如來生滅度想我實不趣滅度也
그러므로 내가 비사리성(毗舍離城)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석 달 뒤에 내가 열반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009_0222_c_07L是故我於毘舍離國告波旬言卻後三月我當涅槃
선남자야, 여래는 가섭보살이 석 달 뒤에 선근이 성숙할 것을 미리 보았으며, 또 향산의 수발다라(須跋陀羅)가 안거를 마치고 나서 나에게 올 것을 알았으므로 마왕 파순에게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여러 역사가 있으니 그 수가 500이며, 석 달을 마치고 나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파순에게 석 달 뒤에 열반에 들 것이라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009_0222_c_09L善男子如來玄見迦葉菩薩卻後三月善根當熟亦見香山須跋陁羅竟安居已當至我所故我告魔王波旬卻後三月當般涅善男子有諸力士其數五百終竟三月亦當得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我爲是故告波旬言卻後三月當般涅槃
순다(純陀)2)와 500명의 리차(梨車)3)와 암라과녀(菴羅果女)4)가 석 달 뒤에 위없는 보리를 이루려는 선근이 성숙할 것이므로, 내가 파순에게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수나찰다(須那刹多)5)가 니건자(尼乾子)6) 외도를 친근히 하면서, 내가 12년 동안 법을 말하였으나 나쁜 소견으로 믿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의 나쁜 소견의 뿌리가 석 달 뒤에 뽑힐 것을 알았으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다.
009_0222_c_16L善男子純陁等輩及五百梨車菴羅果女卻後三月無上道心善根成熟爲是等故我告波旬卻後三月當般涅槃善男子須那剎多親近外道尼乾子等我爲說法滿十二彼人邪見不信不受我知是人邪見根栽卻後三月定可斫伐我爲是告波旬言卻後三月當般涅槃
009_0223_a_02L선남자야, 무슨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니련선하 가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지혜 있는 제자가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 수 없다’고 하였는가? 나는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바라나에서 법의 수레를 굴리려고 했기 때문이며, 또 야사(耶奢)7)ㆍ부나(富那)8)ㆍ비마라사(毗摩羅闍)9)ㆍ교범바제(憍梵波提)10)ㆍ수바후(須婆睺)11) 등의 다섯 비구를 위해서이며, 또 욱가(郁伽)12) 장자 등 50사람을 위해서이며,
009_0222_c_23L善男子何因緣故我於往昔尼連河邊告魔波旬我今未有多智弟子故不得入涅槃者我時欲爲五比丘於波羅柰轉法輪故復次欲爲五比丘等所謂耶奢富那毘摩羅闍梵波提須婆睺次復欲爲郁伽長者等五十人
또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 등 한량없는 세간 사람과 천상 사람들을 위해서이며, 또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迦葉)의 제자 500비구를 위해서이며, 또 나제가섭(那提迦葉)ㆍ가야가섭(伽耶迦葉)의 형제 두 사람과 그의 500제자를 위해서이며, 또 사리불과 목건련 등 250비구를 위해서 미묘한 법의 수레를 운전하려고 마왕 파순에게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009_0223_a_07L次復欲爲摩伽陁國頻婆娑羅王等無量人天次復欲爲優樓頻螺迦葉門徒五百比丘次復欲爲那提迦葉伽耶迦葉兄弟二人及五百弟子次復欲爲舍利弗目犍連等二百五十比丘轉妙法輪是故我告魔王波旬不般涅槃
선남자야, 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불성을 보지 못하고 번뇌만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항상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즐거움과 깨끗함만 있다.
009_0223_a_13L善男子有名涅槃非大涅槃云何涅槃非大涅槃不見佛性而斷煩惱名涅槃非大涅槃以不見佛性故無我惟有樂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었으나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만일 불성을 보고 번뇌를 끊었으면 대반열반이라고 이름하는데, 불성을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한다.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은 것도 대반열반이라고 일컫는다.
009_0223_a_17L以是義故雖斷煩不得名爲大般涅槃也若見佛性能斷煩惱是則名爲大涅槃也以見佛性故得名爲常樂我淨以是義故斷除煩惱亦得稱爲大般涅槃
009_0223_b_02L선남자야, 열(涅)은 아니라는[不] 말이며 반(槃)은 조직하다[織]는 말이니, 조직하지 않는다는 뜻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또 덮는다[覆]는 뜻이니, 덮이지 않았다는 뜻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또 간다 온다[去來]는 뜻이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취(取)하는 뜻이니, 취하지 않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일정치 않다[不定]는 뜻이니 선정이 일정치 않음이 없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새 것과 낡은 것[新故]이란 말이니, 새 것과 낡은 것이 없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장애[障]란 말이다. 장애가 없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009_0223_a_21L善男子涅者言不槃者言織不織之名爲涅槃槃又言覆不覆之義名涅槃槃言去來不去不來乃名涅槃者言取不取之義乃名涅槃言不定定無不定乃名涅槃槃言新無新故義乃名涅槃槃言障礙障㝵義乃名涅槃
선남자야, 우루가(優樓迦)와 가비라(迦毗羅)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반은 모양[相]이란 뜻이니, 모양이 없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반은 있다[有]는 말이니, 있지 않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화합(和合)이라는 말이니 화합이 없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반은 괴롭다[苦]는 말이니, 괴로움이 없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009_0223_b_05L善男子有憂羅迦迦毘羅弟子等言槃者名相無相之乃名涅槃善男子槃者言有無有之義乃名涅槃槃名和合無和合義乃名涅槃槃者言苦無苦之義乃名涅槃
선남자야, 번뇌를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지 않고 번뇌가 생기지 않음을 열반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께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시므로 열반이라고 이름하며, 가진 지혜가 법에 장애되는 것이 없음을 여래라고 한다. 여래는 범부도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 아니니, 이름을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009_0223_b_10L善男子斷煩惱者不名涅槃生煩惱乃名涅槃善男子諸佛如來煩惱不起是名涅槃所有智慧於法無礙是爲如來如來非是凡夫聲聞緣覺菩薩是名佛性
여래의 몸과 마음과 지혜가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 세계에 가득하여 장애가 되지 않으므로 허공이라고 하며, 여래가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으므로 실상이라고 한다. 이런 뜻으로 여래는 실로 끝까지 열반하지 않으신다. 이것을 일러 보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한다.
009_0223_b_14L如來身心智慧遍滿無量無邊阿僧祇土無所障礙是名虛空如來常住無有變易名曰實相以是義故如來實不畢竟涅槃是名菩薩修大涅槃微妙經典具足成就第七功德
다시 선남자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서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리고,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고, 여섯 가지를 성취하고, 다섯 가지를 익히고, 한 가지를 수호하고, 네 가지를 친근하고 한결같은 실상을 믿고 순종하여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한다.
009_0223_b_19L復次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修大涅槃微妙經典具足成就第八功德善男子菩薩摩訶薩修大涅槃除斷五事遠離五事成就六事修習五事守護一事親近四事信順一實心善解脫慧善解脫
009_0223_c_02L 선남자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린다고 하는가?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음(陰)을 말한다. 음은 무슨 뜻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가 서로 계속하여 무거운 짐을 여의지 못하게 하며, 흩어지고 모이고 하여 3세에 포섭되는데, 그 진실한 뜻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으므로 음이라고 이름한다. 보살마하살은 비록 색음(色陰)을 보아도 모양을 보지 못한다.
009_0223_c_02L善男子云何菩薩除斷五事所謂五所言陰者其義何謂能令衆生生死相續不離重檐分散聚合三世所攝求其義理了不可得以是諸義故名爲陰菩薩摩訶薩雖見色陰不見其相
왜냐하면 열 가지 색 중에서 성품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지만 세계를 지어내므로 음이라고 한다. 수음(受陰)에 108이 있으며, 비록 수음을 보아도 애초부터 수음의 모양이 없다. 왜냐하면 수음이 비록 108이지만 이치로는 일정한 실제가 없다. 그러므로 보살이 수음을 보지 못하며, 상음(想陰)과 행음(行陰)과 식음(識陰)도 그와 같다. 보살마하살은 5음이 번뇌를 내는 근본임을 분명하게 보았으므로 방편으로 끊어 버린다.
009_0223_c_08L何以故於十色中推求其性悉不可得爲世界故說言爲陰受有百八雖見受陰初無受相何以故受雖百八理無定實是故菩薩不見受陰想行識等亦復如是薩摩訶薩深見五陰是生煩惱之根本也以是義故方便令斷
선남자야, 보살이 어떻게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는가? 다섯 가지 소견을 말한다. 첫째는 몸이란 소견[身見], 둘째는 한쪽에 집착하는 소견[邊見], 셋째는 사특한 소견[邪見], 넷째는 계에 집착하는 소견[戒取見], 다섯째는 소견에 집착하는 소견[見取見]이다. 이 다섯 가지 소견으로 인하여 62견해를 일으키며, 이 모든 견해로 인하여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이 방비하고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
009_0223_c_14L云何菩薩遠離五事所謂五見何等爲五一者身見二者邊見三者邪見四者戒取五者見取因是五見生六十二見因是諸見生死不絕是故菩薩防之不近
어떻게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하는가? 6념처(念處)를 말함이니, 첫째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둘째는 법을 생각하고, 셋째는 승가를 생각하고, 넷째는 하늘을 생각하고 다섯째는 보시를 생각하고 여섯째는 계율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한다고 한다.
009_0223_c_19L云何菩薩成就六事謂六念處何等爲六一者念佛二者念法三者念僧四者念天五者念施六者念戒是名菩薩成就六事
009_0224_a_02L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익힌다고 하는가? 다섯 가지 선정을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아는 선정[知定]이고, 둘째는 고요한 선정[寂定]이고 셋째는 몸과 마음이 쾌락한 선정이고 넷째는 쾌락이 없는 선정이고 다섯째는 수릉엄정(首楞嚴定)이다. 이 다섯 가지 선정을 익히면 대열반에 가깝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 것이다.
009_0223_c_23L云何菩薩修習五事所謂五定一者知定二者寂定三者身心受快樂定四者無樂定五者首楞嚴定修習如 是五種定心則得近於大般涅槃故菩薩勤心修習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 가지 일을 수호한다고 하는가? 보리심을 말한다. 보살마하살이 항상 보리심을 수호하는데, 세상 사람이 외아들을 수호하듯 하며, 외눈박이가 외눈을 수호하듯 하며, 거친 벌판에 가는 이가 길잡이를 수호하듯 하여
009_0224_a_05L云何菩薩守護一事謂菩提心菩薩摩訶薩常勤守護是菩提心猶如世人守護一子亦如瞎者護餘一目行壙野守護導者
보살이 보리심을 수호함도 그와 같다. 이렇게 보리심을 수호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구족하게 갖는 것이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한 가지 법을 수호한다.
009_0224_a_09L菩薩守護菩提之心亦復如是因護如是菩提心故阿耨多羅三藐三菩提因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常樂我淨具足而卽是無上大般涅槃是故菩薩守護一法
어떤 것을 보살이 네 가지를 친근히 한다고 하는가? 4무량심을 말함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크게 인자함[大慈]이며, 둘째는 크게 가엾이 여김[大悲]이며, 둘째는 크게 기뻐함[大喜]이며, 셋째는 크게 버림[大捨]이다. 이 네 가지 마음으로 인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마음을 가두어 친근히 하는 것이다.
009_0224_a_14L云何菩薩親近四事謂四無量心等爲四一者大慈二者大悲三者四者大捨因是四心能令無量無邊衆生發菩提心是故菩薩繫心親近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결같은 실상으로 믿고 순종한다고 하는가? 보살은 모든 중생이 한 길로 돌아감을 분명히 안다. 한 길은 대승인데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셋으로 나눈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믿고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는다.
009_0224_a_18L云何菩薩信順一實菩薩了知一切衆生皆歸一道一道者謂大乘也佛菩薩爲衆生故分之爲三是故菩薩信順不逆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잘 해탈한다고 하는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을 아주 끊은 까닭이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해탈하였다고 한다.
009_0224_a_22L云何菩薩心善解脫癡心永斷滅故是名菩薩心善解脫
009_0224_b_02L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을 막힘이 없이 안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지혜가 해탈하므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이제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르지 못한 데에 이제 이르게 되는 것이다.”
009_0224_a_24L云何菩薩慧善解脫菩薩摩訶薩於一切法知無障礙是名菩薩慧善解 因慧解脫昔所不聞而今得聞所不見而今得見昔所不到而今得到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바 마음이 해탈한다고 함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마음의 본래 성품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번뇌에 속박되지 않았습니다.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닌데, 무엇을 말하여 마음이 해탈한다고 하겠습니까?
009_0224_b_05L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言世尊如佛所說心解脫者是義不然何以故心本無繫所以者何心本性不爲貪欲瞋恚愚癡諸結所若本無繫云何而言心善解脫
마음의 본 성품이 탐욕 따위 번뇌에 얽히는 것이 아닌데, 무슨 인연으로 속박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사람이 뿔을 짜는 것 같아서 그것에는 우유의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아무리 공력을 들여도 우유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우유를 짜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 공을 적게 들여도 우유가 많이 나는 것인데,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탐욕이 없었는데 지금엔들 어찌 있겠습니까? 만일 본래는 없던 탐욕이 뒤에 생긴다고 하면, 부처님과 보살이 본래는 탐욕이 없었으나 지금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009_0224_b_10L若心本性不爲貪結之所繫者等因緣而能得繫如人搆角本無乳雖加功力乳無由出搆乳之者得如是加功雖少乳則多出心亦如本無貪者今云何有若本無貪方有者諸佛菩薩本無貪相今悉應
세존이시여, 저 석녀(石女)는 본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니, 아무리 한량없는 공력(功力)의 인연을 들이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 탐욕이 없으므로, 아무리 여러 인연을 짓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젖은 나무는 아무리 비벼도 불을 낼 수 없습니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비벼도 탐욕이 생길 수 없는데, 어떻게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얽어맬 수 있습니까?
009_0224_b_17L世尊譬如石女本無子相雖加功無量因緣子不可得心亦如是無貪相雖造衆緣貪無由生世尊攢濕木火不可得心亦如是雖復攢貪不可得云何貪結能繫於心
009_0224_c_02L세존이시여, 마치 모래를 짜서는 기름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짜더라도 탐욕을 얻을 수 없습니다. 탐욕과 마음은 두 가지 이치가 각각 다른데, 설사 탐욕이 있다고 한들 어떻게 마음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말뚝을 허공에 박아서는 마침내 박히게 할 수 없듯이, 탐욕을 마음에 두는 것도 그와 같아서 가지각색 인연을 쓰더라도 탐욕으로 하여금 마음을 얽어맬 수가 없습니다.
009_0224_b_21L譬如押沙油不可得心亦如是復押之貪不可得當知貪心二理各設復有之何能污心世尊譬如有人安橛於空終不得住安貪於心亦復如是種種因緣不能令貪繫縛於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과 보살이 어찌하여 허공중에 가시[刺]를 뽑지 못합니까? 세존이시여, 지난 세상의 마음은 해탈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오는 세상의 마음도 해탈이 없으며 지금 세상의 마음은 도와 함께하지 않았으니, 어느 세상의 마음을 해탈이라 이름하겠습니까?
009_0224_c_04L世尊若心無貪名解脫者諸佛菩薩何故不拔虛空中刺世尊過去世心不名解脫未來世心亦無解脫在世心不與道共何等世心名得解
세존이시여, 지나간 등불은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오는 날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지금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밝음과 어둠은 함께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그와 같은데, 어떻게 마음이 해탈한다고 하겠습니까?
009_0224_c_08L世尊如過去燈不能滅闇未來世燈亦不滅闇現在世燈復不滅闇以故明之與闇二不竝故心亦如是云何而言心得解脫
세존이시여, 탐욕은 있기도 한 것이니 만일 탐욕이 없다면 여인을 볼 때에 탐욕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만일 여인으로 인하여 탐욕이 생긴다면 이 탐욕은 참으로 있다고 할 것이며, 탐욕이 있기 때문에 3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은 여인의 그림만 보고도 탐욕을 내며, 탐욕을 내는 탓으로 가지각색 죄를 짓습니다. 만일 본래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그림을 보고 탐욕을 내며,
009_0224_c_11L世尊貪亦是有若貪無者見女相時不應生貪若因女相而得生者當知是貪眞實而有以有貪故墮三惡道世尊譬如有人見畫女像亦復生貪以生貪故得種種罪若本無貪云何見畫而生於貪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고 합니까?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다면 어찌하여 모양을 보고 나서야 탐욕이 생기고 보지 않을 때에는 생기지 않습니까? 내가 현재에 나쁜 과보를 보는 것은 탐욕이 있기 때문인 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습니다.
009_0224_c_16L若心無貪云何如來說言菩薩心得解脫若心有貪云何見相然後方生不見相者則不生也我今現見有惡果報當知有貪瞋恚愚癡亦復如是
세존이시여, 마치 중생이 몸은 있으나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모든 범부들은 부질없이 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비록 나라는 생각을 가지더라도 세 갈래에 떨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탐욕이 있는 이는 여인의 형상이 없는 데에 여인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3악도에 떨어집니까?
009_0224_c_20L世尊譬如衆生有身無我而諸凡夫撗計我想雖有我想不墮三惡云何貪者於無女相而起女想墮三惡道
009_0225_a_02L세존이시여,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내지만 불의 성품이 모든 인연 중에 있는 것이 아닌데, 무슨 인연으로 불이 나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탐욕도 그와 같아서 빛 가운데 탐욕이 없고 향기ㆍ맛ㆍ감촉ㆍ법 중에도 탐욕이 없는데, 어찌하여 빛ㆍ향기ㆍ맛ㆍ감촉ㆍ법에 탐욕을 냅니까? 만일 모든 인연 중에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중생만이 탐욕을 내고 부처님과 보살은 내지 않습니까?
009_0224_c_23L世尊譬如攢木而生於火然是火性衆緣中無以何因緣而得生耶世尊貪亦如是色中無貪法亦復 無貪云何於色法生於貪耶若衆緣中悉無貪者云何衆生獨生於貪諸佛菩薩而不生耶
세존이시여, 마음은 일정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만일 일정하다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없을 것이며,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고 하겠습니까? 탐욕도 일정하지 않으니,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찌하여 탐욕을 인하여 3악도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탐하는 이와 경계가 둘이 다 일정하지 않습니다.
009_0225_a_06L世尊心亦不定若心定者無有貪欲瞋恚愚癡若不定者云何而言心得解脫貪亦不定若不定者云何因之生三惡趣貪者境界二俱不定
왜냐하면 다 같이 한 가지 빛을 반연하되 혹은 탐욕을 내고 혹은 성냄을 일으키고 혹은 어리석음을 냅니다. 그러므로 탐하는 이와 경계가 모두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두 가지가 모두 일정하지 않다면 어찌하여 보살이 대열반을 닦으면 마음이 해탈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까?”
009_0225_a_10L何以故俱緣一或生於貪或生於瞋或生愚癡故貪者及與境界二俱不定若俱不何故如來說言菩薩修大涅槃得解脫
그때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마음은 탐욕의 번뇌에 얽히는 것도 아니고 얽히지 않음도 아니며, 해탈함도 아니고 해탈하지 않음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009_0225_a_14L爾時世尊告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言善哉善哉善男子心亦不爲貪結所繫亦非不繫非是解脫非不解脫非有非無非現在非過去非未來何以故善男子一切諸法無有自性故
009_0225_b_02L선남자야, 어떤 외도들이 말하기를 ‘인과 연이 화합하면 결과가 나는 것이다. 만일 모든 인연 가운데 본래 날 성품이 없는데 능히 난다고 하면, 허공도 날 것이 없지만 결과를 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허공은 내지 않으니 인이 아닌 까닭이다. 모든 인연 중에 본래 결과의 성품이 있으므로 합하여 모이면 결과를 내는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마치 제바달(提婆達)이 담을 쌓으려면 진흙을 취하고 채색을 취하지 않으며, 그림을 그리려면 채색을 취하고 초목을 취하지 않으며, 옷을 만들려면 천을 취하고 흙이나 나무는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지으려면 흙을 취하고 천을 취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취함으로써 그 가운데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하며, 결과를 냄으로써 인연 가운데 먼저 결과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한다.
009_0225_a_20L善男子有諸外道作如是因緣和合則有果生若衆緣中本無生性而能生者虛空不生亦應生虛空不生非是因故以衆緣中本有果性是故合集而得生果所以者如提婆達欲造牆壁則取泥土取彩色欲造畫像則集彩色不取草 作衣取縷不取泥木作舍取泥取縷線以人取故當知是中各能生以能生果故當知因中必先有性
만일 성품이 없다면 한 물질에서 모든 물질이 생겨야 한다. 만일 취할 만하며 지을 수 있고 낼 수 있다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결과가 있었을 것이며, 만일 결과가 없다면 사람들이 취하지도 않고 짓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허공은 취할 것도 없고 지을 수도 없으므로 온갖 만물을 내는 것이니, 인이 있는 까닭이다.
009_0225_b_06L若無性者一物之中應當出生一切諸物若是可取可作可出當知是中必先有果若無果者人則不取不作不出惟有虛空無取無作故能出生一切萬物以有因故
니구타(尼拘陀) 열매는 니구타나무에 있고, 우유에 제호가 있으며 실에는 천이 있고, 진흙에는 질그릇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선남자야, 모든 범부들이 무명 때문에 눈이 멀어서 이런 결정적인 말을 하여 색에는 집착하는 뜻이 있고, 마음에는 탐하는 성품이 있다고 한다.
009_0225_b_11L如尼拘陁子作尼拘陁樹乳有醍醐縷中有布泥中有甁善男子一切凡夫無明所盲是定說色有著義心有貪性
또 말하기를 ‘범부의 마음에 탐하는 성품도 있고 해탈의 성품도 있어서, 탐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탐욕을 내고 해탈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해탈한다’고 한다. 비록 이런 말을 하나 뜻이 옳지 않다.
009_0225_b_14L復言夫心有貪性亦解脫性遇貪因緣則生貪若遇解脫心則解脫雖作此是義不然
어떤 범부는 또 말하기를 ‘온갖 인 가운데는 모두 과가 없다.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미세(微細)하고 둘째는 굵은 것[麤大]이다. 미세한 것은 항상하고 굵은 것은 무상하다. 미세한 인으로부터 변하여 굵은 인이 되고, 이 굵은 인으로부터 다시 과를 이루는데, 굵은 것이 무상하므로 과도 무상하다’고 한다.
009_0225_b_17L有諸凡夫復作是言切因中悉無有果因有二種一者二者麤大細卽是常麤則無常微細因轉成麤因從此麤因轉復成麤無常故果亦無常
또 선남자야, 어떤 범부는 말하기를 ‘마음도 인이 없고 탐욕도 인이 없는데 시절을 인하여 탐욕의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이런 무리는 마음의 인연을 알지 못하므로 여섯 갈래로 바퀴 돌 듯 하면서 생사를 받는다.
009_0225_b_21L善男子有諸凡夫復作是言心亦無因貪亦無因以時節故則生貪心如是等輩以不能知心因緣故輪迴六趣具受生死
009_0225_c_02L선남자야, 마치 개를 묶어서 기둥에 매어 두면 종일토록 기둥을 돌고 벗어나지 못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무명에 얽혀 나고 죽는 기둥에 매여 있으면서 25유를 돌고 벗어나지 못한다.
009_0225_b_24L善男子譬如枷犬繫之於柱終日繞不能得離一切凡夫亦復如是無明枷繫生死柱繞二十五有不能得離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뒷간에 빠졌다가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어떤 이가 병이 나았다가 다시 병드는 것과 같으며, 길 가는 사람이 허허벌판을 만났다가 지나가고 나서 다시 오는 것과 같으며, 또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흙을 칠하는 것과 같다.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이미 무소유처(無所有處)에서 해탈하였으나, 비비상처(非非想處)를 해탈하지 못하고 다시 3악도에 들어간다.
009_0225_c_05L善男子譬如有人墮於圊廁得出已而復還入如人病差還爲病如人涉路値空曠處旣得過已復還來又如淨洗還塗泥土一切凡夫亦復如是已得解脫無所有處未得脫非非想處而復還來至三惡
왜냐하면 모든 범부들이 과보만을 관찰하고 인연을 관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개가 흙덩이만 쫓아가고 사람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과보만 보고 인연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비상처로부터 다시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009_0225_c_11L何以故一切凡夫惟觀於果不觀因緣如犬逐塊不逐於人凡夫之人亦復如是惟觀於果不觀因緣以不觀故從非想退還三惡趣
선남자야,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인 가운데 과가 있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없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거나를 결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만일 인 가운데 결정된 과가 있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없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았다고 말하면, 이런 사람은 모두 마군의 무리로서 마군에게 속했으니, 곧 애욕의 사람이다. 이렇게 애욕에 빠진 사람은 생사의 속박을 영원히 끊을 수 없으며, 마음의 모양과 탐욕의 모양을 알지 못한다.
009_0225_c_14L善男子諸佛菩薩終不定說因中有因中無果及有無果非有非無果若言因中先定有果及定無果定有無果定非有非無果當知是等皆魔伴黨繫屬於魔卽是愛人如是愛人不能永斷生死繫縛不知心相及以貪相
009_0226_a_02L선남자야, 부처님과 보살들은 중도(中道)를 나타내 보인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말하면 눈을 인하고 색(色)을 인하고 밝음[明]을 인하고 마음[心]을 인하고 생각함[念]을 인하여 알음알이[識]가 생기지만, 이 알음알이는 반드시 눈에나 빛에나 밝음에나 마음에나 생각하는 데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없다.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인연으로부터 나는 것이므로 있다고 이름하고, 제 성품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009_0225_c_21L善男子諸佛菩薩顯示中道以故雖說諸法非有非無而不決定所以者何因眼因色因明因心因念識則得生是識決定不在眼中色中明中心中念中亦非中閒非有非無從緣生故名之爲有無自性故名之 爲無是故如來說言諸法非有非無
선남자야,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마음에 깨끗한 성품과 부정한 성품이 있다고 결정된 말을 하지 않으니, 깨끗한 마음이나 부정한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는 까닭이다. 인연을 따라 탐욕을 내므로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본래 탐욕의 성품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009_0226_a_04L善男子諸佛菩薩終不定說心有淨性及不淨性淨不淨性心無住處故從緣生貪故說非無本無貪性故說非有
선남자야,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에 탐욕이 생기고,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이 해탈한다. 선남자야, 인연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는 생사를 따르는 것이며, 둘째는 대열반을 따르는 것이다.
009_0226_a_08L善男子從因緣故心則生貪因緣故心則解脫善男子因緣有二一者隨於生死二者隨大涅槃
선남자야, 인연이 있으므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한다.
009_0226_a_10L善男子有因緣故心共貪生共貪俱有共貪生不共貪滅有不共貪生共貪俱滅有不共貪生不共貪滅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만일 범부가 탐심을 끊지 못하고 탐심을 닦으면, 이런 사람은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한다고 한다. 모든 중생들도 탐심을 끊지 못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한다.
009_0226_a_13L云何心共貪生共貪俱滅善男子有凡夫未斷貪心修習貪心如是之心共貪生心共貪滅一切衆生不斷貪心心共貪生心共貪滅
마치 욕계의 중생이 모두 초지미선(初地味禪)이 있으므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항상 성취할 것이고 인연을 만나면 곧 얻는 것과 같다. 인연이라고 함은 화재(火災)를 말하는데,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한다. 왜냐하면 탐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009_0226_a_17L如欲界衆生一切皆有初地味禪若修不修常得成就遇因緣故卽便得之言因緣者謂火災也一切凡夫亦復如是若修不修心共貪生心共貪滅何以不斷貪故
009_0226_b_02L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인가? 성문 제자들이 인연이 있으므로 탐심을 내고, 탐심을 두려워하여 백골관(白骨觀)을 닦는다. 이것을 일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성문들이 4과를 증득하지 못하였을 때에 인연이 있어 탐심을 내고, 4과를 증득할 때에 탐심이 멸한다. 이것을 일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하며, 보살마하살이 부동지(不動地)를 얻을 때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009_0226_a_22L云何心共貪生不共貪滅聲聞弟子有因緣故生於貪心畏貪心故修白骨觀是名心共貪生不共貪滅復有心共貪生不共貪滅如聲聞人未證 四果有因緣故生於貪心證四果時貪心得滅是名心共貪生不共貪滅菩薩摩訶薩得不動地時心共貪生不共貪滅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이 탐심을 끊고도 중생을 위하여 탐욕이 있는 듯이 나타내는 것이니, 일부러 나타내므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선한 법을 물어서 구족하게 성취하게 한다. 이것을 일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한다고 한다.
009_0226_b_07L云何不共貪生共貪俱滅若菩薩摩訶薩斷貪心已爲衆生故示現有貪以示現故能令無量無邊衆生諮受善法具足成就是名不共貪生共貪俱滅
어떤 것을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아라한과 연각과 부처님과 부동지를 제외한 보살들이다. 이것을 일러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반드시 마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다거나 본래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009_0226_b_11L云何不共貪生不共貪滅謂阿羅漢緣覺諸佛除不動地其餘菩薩是名不共貪生不共貪滅以是義故諸佛菩薩不決定說心性本淨性本不淨
선남자야, 이 마음은 탐욕의 번뇌와 화합하지 않고 성내는 일이나 어리석음과도 화합하지 않았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해와 달이 연기나 티끌이나 구름이나 안개나 아수라에 의해 가리게 되면, 이런 인연으로 중생들이 보지 못한다.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해와 달의 성품이 그 다섯 가지 가림과 화합하지 않는 것처럼
009_0226_b_15L善男子是心不與貪結和合亦復不與瞋癡和合善男子譬如日月雖爲霧及羅睺羅之所覆蔽以是因緣令諸衆生不能得見雖不可見日月之性終不與彼五翳和合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써 탐욕을 내는데, 중생들이 마음이 탐욕과 화합하였다고 말하지만 이 마음의 성품은 진실로 화합하지 않았다. 만일 탐심이 곧 탐욕의 성품이라 하고, 탐하지 않는 것이 탐하지 않는 성품이라면, 탐하지 않는 성품은 탐욕이 되지 않고 탐욕의 마음은 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009_0226_b_20L心亦如是以因緣故生於貪結衆生雖說心與貪合而是心性實不與合若是貪心卽是貪性若是不貪卽不貪性不貪之心不能爲貪貪結之心不能不貪
009_0226_c_02L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며, 부처님과 보살은 영원히 탐욕의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마음이 해탈하였다고 한다.
009_0226_c_02L善男子以是義故貪欲之結不能污心諸佛菩薩永破貪結是故說 言心得解脫
모든 중생들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탐욕을 내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는다. 선남자야, 마치 저 설산의 험준한 곳에는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원숭이는 가지만 사람은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009_0226_c_04L一切衆生從因緣故於貪結從因緣故心得解脫善男子譬如雪山懸峻之處人與獼猴俱不能行或復有處獼猴能行不能行或復有處人與獼猴二俱能
선남자야,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곳에 사냥꾼이 억센 끈끈이를 널쪽 위에 놓아두고 원숭이를 잡는데, 원숭이가 어리석어서 손으로 건드리면 손이 들러붙고 손을 떼기 위하여 발로 밟으면 발이 또 들러붙고, 발을 떼려고 입으로 씹으면 입이 들러붙어서, 이와 같이 다섯 군데를 모두 떼지 못하게 되면 사냥꾼이 몽둥이에 꿰어 메고 집으로 돌아온다. 설산의 험준한 데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얻는 바른 도에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에 비유하고, 사냥꾼은 마왕 파순에게 비유하고, 끈끈이는 탐욕 번뇌에 비유한 것이다.
009_0226_c_09L善男子人與獼猴能行處者如諸獵師純以黐膠置之案上用捕獼猴獼猴癡故往手觸之觸已粘手欲脫手故以腳蹹之腳復隨著欲脫腳故以口齧之口復粘著如是五處悉無得脫於是獵師以杖貫之負還歸家雪山嶮處喩佛菩薩所得正道獼猴喩諸凡夫獵師者喩魔波旬黐膠喩貪欲結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범부와 마왕 파순이 모두 행하지 못하는 데 비유하고, 원숭이는 가고 사람은 못 간다고 하는 것은 모든 외도와 지혜 있는 이에게 비유하였으니, 마군들이 5욕으로도 속박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데라고 하는 것 모든 범부와 파순이 나고 죽는 가운데에 항상 있으면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범부들이 5욕락에 얽매이면 파순이 데려가는데, 사냥꾼이 원숭이를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가는 것과 같다.
009_0226_c_17L人與獼猴俱不行者諸凡夫魔王波旬俱不能行獼猴能人不能者喩諸外道有智慧者惡魔等雖以五欲不能繫縛人與獼猴俱能行者一切凡夫及魔波旬常處生死不能修行凡夫之人五欲所令魔波旬自在將去如彼獵師黐捕獼猴檐負歸家
009_0227_a_02L선남자야, 비유하면 한 나라의 임금이 자기의 나라 안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지만 다른 나라에 가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게 된다.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안락하지만 다른 경계에 이르게 되면 마군을 만나 괴로움을 받는다. 자기의 경계는 4념처(念處)를 말하며, 다른 경계는 5욕락을 말한다.
009_0226_c_24L善男子譬如國王安住己界身心安若至他界則得衆苦一切衆生亦 復如是若能自住於己境界則得安若至他界則遇惡魔受諸苦惱境界者謂四念處他境界者謂五欲也
어떤 것을 마군에게 얽매인다고 하는가? 중생들이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고 보며, 괴로움을 즐겁다고 보고 즐거움을 괴롭다고 보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보고 깨끗함을 부정하다고 보며,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고 보고, 나인 것을 내가 없다고 보며, 진실한 해탈이 아닌 것을 허황되게 해탈이라고 보고, 진실한 해탈을 해탈이 아니라고 보며, 승(乘)이 아닌 것을 승이라고 보고 승인 것을 승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사람을 일러서 마군에게 얽매였다고 하며,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다.
009_0227_a_06L云何名爲繫屬於魔有諸衆生無常見常常見無常苦見於樂樂見於苦不淨見淨淨見不淨無我見我我見無我非實解脫撗見解脫眞實解脫見非解脫非乘見乘乘見非乘如是之人名繫屬魔繫屬魔者心不淸淨
또 선남자야, 만일 모든 법에 공통한 모양과 제각기 다른 모양이 참으로 있다고 보는 이는 이 사람이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이란 모양을 짓고, 나아가식(識)을 볼 때에는 식이라는 모양을 지으며, 남자를 보면 남자란 모양을 짓고 여자를 보면 여자란 모양을 지으며, 해[日]를 보면 해라는 모양을, 달을 보면 달이란 모양을, 세월[歲]을 보면 세월이라는 모양을, 음(陰)을 보면 음이라는 모양을, 입(入)을 보면 입이라는 모양을, 계(界)를 보면 계라는 모양을 짓는다.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며,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다.
009_0227_a_12L復次善男子若見諸法眞實是有摠別定相當知是人若見色時便作色乃至見識亦作識相見男男相女女相見日日相見月月相見歲歲見陰陰相見入入相見界界相是見者名繫屬魔繫屬魔者心不淸淨
또 선남자야, 만일 내가 곧 색이며 색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색이 있다, 색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보거나, 나아가 내가 곧 식이다, 식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식이 있다, 식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인 것이니, 나의 제자가 아니다.
009_0227_a_18L復次善男子若見我是色色中有我我中有色色屬於我乃至見我是識識中有我我中有識識屬於我如是見者繫屬於魔非我弟子
009_0227_b_02L선남자야, 나의 성문 제자로서 여래의 12부경을 여의고 외도들의 경전을 익히거나, 출가한 적멸(寂滅)의 업을 닦지 않고 재가(在家)한 세속의 일을 경영하는 이가 있다. 무엇을 재가한 일이라고 하는가?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인 하인ㆍ전택(田宅)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약대ㆍ나귀ㆍ닭ㆍ개ㆍ원숭이ㆍ돼지ㆍ양 따위나 가지각색 곡식을 받아 두거나, 스님을 멀리 여의고 속인들을 가까이하며, 성인의 말씀을 어기고 재가자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기를 허락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재가의 일을 익힌다고 한다.
009_0227_a_22L善男子聲聞弟子遠離如來十二部經修習種種外道典籍不修出家寂滅之法純營世俗在家之事何等名爲在家事也受畜一切不淨之物奴婢田宅 象馬車乘駝驢鷄犬獼猴猪羊種種穀麥遠離師僧親附白衣違反聖教向諸白衣作如是言佛聽比丘受畜種種不淨之物是名修習在家之事
또 제자들이 열반을 위하지 않고 이익만을 위하여 12부경을 친근히 하고 듣거나, 초제승물(招提僧物)이나 승만물(僧鬘物)을 입고 먹기를 자기의 것처럼 생각하거나, 다른 집을 아끼거나 칭찬하거나, 임금이나 왕자들을 친근히 하거나, 길흉을 점치고 책력(冊曆)에 관한 것[推步盈虛]을 숭상하며, 바둑ㆍ장기ㆍ노름ㆍ투호(投壺)하는 일이나,
009_0227_b_07L有諸弟子不爲涅槃但爲利養親近聽受十二部經招提僧物及僧鬘物衣著食噉如自己有慳惜他家及以稱譽親近國王及諸王子卜筮吉凶推步盈虛圍棋六博摴蒱投壺
비구니나 처녀들을 친근히 하거나, 두 사미를 거느리거나, 사냥하고 고기 팔고 술 파는 집과 전타라들이 사는 데를 놀러 다니거나, 여러 가지로 장사하거나,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나라의 사신으로 이웃 나라에 가거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군의 권속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다.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며, 나아가 어리석은 마음과 함께 나고 함께 멸하는 일도 그와 같다.
009_0227_b_12L親近比丘尼及諸處女畜二沙彌常遊屠酤酒之家及旃陁羅所住之處種販賣手自作食受使鄰國通致信如是之人當知卽是魔之眷屬我弟子以是因緣心共貪生心共貪乃至癡心共生共滅亦復如是
009_0227_c_02L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부정한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마음이 해탈한다고 한다. 만일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도 않고 저축하지도 않으며, 대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남에게 해설하면 이런 사람은 나의 참된 제자인 줄을 알아야 한다. 마왕 파순의 경계를 행하지 않으면,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며, 도품을 닦으므로 탐욕과 함께 나지 않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한다.”
009_0227_b_18L男子以是因緣心性不淨亦非不淨是故我說心得解脫若有不受不畜一切不淨之物爲大涅槃受持讀誦十二部經書寫解說當知是等眞我弟子不行惡魔波旬境界卽是修習三十七品以修習故不共貪生不共貪滅是名菩薩修大涅槃微妙經典具足成就第八功德
大般涅槃經卷第二十五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Sahā. 사사류(舍駛流)라고 번역함. 장수하는 약이다.
  2. 2)춘다(Cunda)의 음사. 구시나성의 공교사(工巧師)의 자식으로 부처님께 최후의 공양을 올린 사람이다.
  3. 3)Licchavī의 음사. 비사리국의 찰제리 종족이다.
  4. 4)Āmarapālī. 암라수의 열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의 왕비가 되어 기바(耆婆)를 낳고, 나중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동산을 기증하였다.
  5. 5)Sunaksatrā. 호성(好星)이라고 번역함. 비구의 이름이다.
  6. 6)Nirgrantha˗putra. 극기주의를 신봉하는 육사외도의 한 종파.
  7. 7)Yaśas명칭(名稱)이라고 번역한다.
  8. 8)부루나미다라니자(Pruna matrāyanī putra).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9. 9)Vimala.이고(離苦)라고 번역함.
  10. 10)Gavampati. 우왕(牛王)이라고 번역함.
  11. 11)Subāhu. 선비(善臂)라고 번역함.
  12. 12)Ugra. 공덕(功德), 또는 위덕(威德)이라고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