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시나성(拘尸那城)의 역사족(力士族)이 사는 곳에 있는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 반열반(般涅槃)할 때를 당하여 혜명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009_0493_a_05L一時佛在拘尸那城力士生地娑羅雙樹閒。爾時,世尊臨般涅槃,告慧命阿難言:
“너는 사라쌍수 사이에 사자왕(師子王)이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눕는 방법대로 자리[敷具]를 펴놓도록 하라. 나는 오늘 밤에 반열반에 들겠다. 아난아, 나는 이미 최후의 열반에 들었고, 모든 유위(有爲)의 언설(言說)을 끊어 없앴으며, 이미 불사(佛事)를 다 지었다. 감로(甘露)이며 굴택(窟宅)이 없는 적멸정(寂滅定)의 매우 깊고 미묘하여 보기도 어렵고 깨치기도 어렵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밝은 지혜로 알 수 있는 모든 성현(聖賢)의 법을 설하였다.
내가 이미 위없는 법의 바퀴를 세 번 굴렸으니, 사문(沙門)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천(梵天)이나 사람은 세상과 함께하는 법을 가지고는 굴릴 수 있는 자가 없다. 내가 이미 법의 북을 치고 법의 고동을 불며, 법의 깃발을 세우고 법의 배를 설치하며, 법의 다리를 만들고 법의 비를 내리었다.
009_0493_b_02L나는 이미 모든 외도(外道)와 모든 다른 논의들을 항복받았으며, 악마의 궁전을 흔들고 악마의 세력을 꺾었다. 대사자(大師子)의 포효로 모든 불사(佛事)를 지었으며, 장부(丈夫)의 업(業)을 세워서 근본 서원을 가득 채웠다. 법안(法眼)을 보호해 지녀서 큰 성문(聲聞)을 가르쳐 보살(菩薩)의 수기(授記)를 주었으니, 미래에 불안(佛眼)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난아, 앞으로 나는 다시 무엇을 짓는 일이 없을 것이고 다만 반열반에 들게 될 것이다.”
그때 아난이 이 말씀을 듣고서 근심의 화살을 맞은 듯 너무나 슬프고 괴로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世尊) 바가바(婆伽婆)시여, 열반이 너무나 빠르십니다. 수가타(修伽陀)시여, 열반이 너무나 빠르십니다. 세간의 눈이신 당신이 돌아가시면 세간은 고독하고 세간을 구할 자가 없으며 인도할 스승이 없습니다.”
내가 전에 너에게 말하였거니와, 모든 사랑하는 것들이나 마음에 맞는 일들은 반드시 헤어지고 흩어지는 법이다. 아난아, 너는 이미 자애로운 마음과 둘이 아니며, 마음에 악함이나 신업(身業)이 없다. 그리하여 효성으로 봉양하고 순응하여 따르며 한량이 없을 정도로 나를 모시고 봉양하였다.
그때 아난은 슬퍼하는 눈물을 닦고 곧 여래를 위하여 사라쌍수 사이에 사자가 오른쪽 옆구리로 눕는 법대로 자리를 설치하였다. 그러자 곧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나무와 약초와 수풀들이 모두 여래가 열반하는 곳을 향하였는데, 넘어질 것 같은 것도 있고, 구부린 것도 있고, 땅에 닿을 듯한 것도 있고, 땅에 쓰러진 것도 있었다.
009_0493_c_02L그리고 이 삼천대천세계에 흐르는 크고 작은 온갖 하천과 샘물과 호수들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해서 흐름을 정지하고 멈춰 있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새나 짐승들은 부처님의 신력으로 해서 묵묵히 있으면서 먹지도 울지도 않았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해와 달과 별들, 불빛과 밝은 구슬들, 그리고 심지어 반딧불까지 부처님의 신력으로 해서 모두 모양을 드러내지 않고 빛이 없어서 이를 비추지를 못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축생(畜生)들도 모두 한결같이 자애로운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며, 서로 미워하거나 해를 입히거나 목숨을 끊지 않았다. 모든 아귀(餓鬼)도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았으며,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신력으로 해서 심신이 뛸 듯이 기뻤고 고통에서 벗어나 쾌활함을 얻어서, 뜻대로 제일가는 안락함을 갖추게 되었다.
세존께서 오른쪽 옆구리로 누우셨을 때,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수미산왕ㆍ철위산(鐵圍山)ㆍ대철위산ㆍ목진린타산(目眞隣陀山)ㆍ향산(香山)ㆍ설산(雪山) 및 모든 흑산(黑山), 그리고 넓은 땅과 바다 등이 모두 다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으니, 이른바 동(動)ㆍ용(踊)ㆍ기(起)ㆍ진(震)ㆍ후(吼)ㆍ각(覺)이었다.
009_0494_a_02L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천룡(天龍)과 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그리고 범천(梵天)ㆍ석천(釋天)ㆍ호세왕(護世王) 등이 부처님의 신력으로 해서 각각 그들의 궁전과 침상과 자리와 원과 숲이 모두 다 캄캄하여 다시는 아무런 위엄스러운 빛이 없는 것을 보고서 즐겁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들 권속(眷屬)은 걱정스럽고 갑갑하여 즐겁지가 않았다.
그때 대범천왕은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부귀(富貴)를 조작하는 대자재(大自在)의 주인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가 오늘 밤에 반열반에 들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그 신비로운 힘의 변화가 불가사의하고 일찍이 없었던 현상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이 신력은 바로 여래가 열반에 드시는 모습이었다.
대범천왕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걱정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은데다 떨리면서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급히 범중(梵衆)을 데리고 함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하여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나머지 범천(梵天)들도 모두 성법(聖法)을 믿고 받아들여 그 성법에 편안히 머물렀다.
이렇게 말하자, 여래께서 즉시 대범천왕에게 물었다. “범천이여, 너는 지금 실로 이와 같이 생각하여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바로 대범천(大梵天)으로서 내가 남들을 이기나니 남들은 나만 같지 못하다. 나는 바로 지혜로운 자이다. 내가 바로 삼천대천세계의 크게 자재로운 주인이며, 나는 중생을 만들어 내고 중생을 변화해 내며, 세계를 만들어 내고 세계를 변화해 내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그러면 너는 누가 만들었으며 누가 너를 변화시켰는가?” 그러자 범천은 묵묵히 가만히 있었다.
009_0494_b_09L佛言:“梵天!汝復爲誰所作?爲誰所化?”時彼梵天默然而住。
부처님께서는 범천이 묵묵히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일 어느 때에 삼천대천세계에 겁화(劫火)가 일어나서 불길이 대단하게 치솟는다면, 네 생각은 어떠한가? 이것은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인가?” 그러자 대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지금 이 대지(大地)는 물이 모인 것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물은 바람에 의지하여 머무르며, 바람은 허공에 의지한다. 이와 같이 대지는 두께가 680만 유순(由旬)으로 갈라지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범천이여, 네 생각은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인가?” 범천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수경(水鏡)ㆍ소유(蘇油)ㆍ마니(摩尼)ㆍ파리(頗梨)와 나머지 깨끗한 그릇이 나타내는 모든 색상(色像)과 이른바 대지(大地)ㆍ산하(山河)ㆍ수림(樹林)ㆍ정원[園苑]ㆍ궁전ㆍ사택(舍宅)ㆍ취락(聚落)ㆍ성읍(城邑)과 낙타ㆍ나귀ㆍ코끼리ㆍ말ㆍ노루ㆍ사슴ㆍ새 등의 짐승들, 그리고 해ㆍ달ㆍ별과, 성문ㆍ연각ㆍ보살ㆍ여래와 석범(釋梵)ㆍ호세(護世)ㆍ인비인(人非人) 등 갖가지 색상에 대하여 범천이여, 네 생각은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산과 절벽과 깊은 골짜기, 그리고 크고 작은 모든 북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놀이와, 노루ㆍ사슴 등 새와 짐승과 인비인 등이 내는 소리가 범천이여, 네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일 중생들이 꿈속에서 갖가지 색을 보고 갖가지 소리를 들으며, 갖가지 냄새를 맡고 갖가지 맛을 보며, 갖가지 촉감을 느끼고 갖가지 법을 알며, 갖가지 유희를 하고 갖가지 소리로 울며, 신음하고 울부짖고 두렵고 무섭고 괴롭고 즐거움을 받는 등의 일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예를 들어 네 가지 종성(種姓)의 사람들이 단정하기도 하고 누추하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부유하기도 하고, 복과 덕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고, 착한 계율을 지니기도 하고 나쁜 계율을 지니기도 하고, 착한 지혜를 갖기도 하고 나쁜 지혜를 갖기도 한다. 그런데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09_0495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모든 중생들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해로움 당할 것을 걱정하는 것들, 이른바 물ㆍ불ㆍ칼ㆍ바람ㆍ절벽ㆍ독약(毒藥)과, 나쁜 짐승과 원수와 인비인(人非人)의 두려움, 그리고 갖가지 해로움과 일상적으로 있는 두려움 등이 범천이여,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가진 갖가지 질병인 이른바 풍냉(風冷)ㆍ열병(熱病)과 모든 잡병(雜病)들, 계절의 바뀜에 따른 네 가지의 큰 상위(相違), 남들이 지은 것이나 선세(先世)의 업보, 이른바 눈ㆍ귀ㆍ코ㆍ혀ㆍ몸 등의 질병, 그리고 또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의 뜨겁고 고뇌스러움 등에 대해서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은 네가 지은 것이며, 이것은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이것이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겪는 광야의 위험한 적이나 수재(水災) 등의 어려움과, 또 중겁(中劫)의 도병(刀兵)과 역병(疫病) 및 기근 같은 것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겪는 사랑하는 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괴로움, 곧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종친(宗親)과 선지식 등을 이별해야 하는 괴로움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09_0495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짓는 갖가지 악업(惡業)인 이른바 생구(生口)ㆍ주국(酒麴)ㆍ자광(紫礦)ㆍ압유(押油) 등의 도구를 파는 일과, 큰 바다나 텅 빈 들 등 위험한 곳을 찾아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일이나, 갖가지 신선의 방술(方術)과 다른 갖가지 끊어야 하는 일들의 법에 대해서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갖가지 업도(業道)를 짓는 바,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해서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인천(人天)의 과보를 받는다. 중생이 갖고 있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선행과 악행 및 세간(世間)이 가지는 열 가지 악업도로 해서 모든 중생들이 자비나 연민이 없어서 모든 고뇌와 이롭지 못한 일들인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인연을 짓는, 이른바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망어(妄語)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ㆍ탐(貪)ㆍ진(瞋)ㆍ사견(邪見) 같은 것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떤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괴로운 일들인 이른바 목베임과 손발의 절단, 코베임과 귀베임, 마디마디를 찢어 해체하는 일, 끓는 기름을 붓는 일, 불로 굽고 지지고 볶는 일, 창칼로 찌르고 채찍으로 갈기는 일, 감옥에 갇히고 싸우고 다투고 송사하는 일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떤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짓는 음욕(婬欲)과 사행(邪行)들, 더러 청정하게 계율을 유지하는 어머니를 간음하고 딸을 간음하고 누이를 간음하며, 그리고 그 밖의 악업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떤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겪게 되는 갖가지 죽이거나 해롭게 하는 벌레ㆍ주검ㆍ주술(呪術)ㆍ방약(方藥)ㆍ귀신과 도깨비의 나타남과 다른 갖가지 악업(惡業)의 방편인 단명(斷命)의 인연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떤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09_0495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세간이 가진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걱정ㆍ비애ㆍ고통ㆍ번뇌, 무상법(無常法)ㆍ진법(盡法)ㆍ변역법(變易法), 그리고 네 가지 종성의 사람들에 대해 꺼리고 어려워함이 없는 것과, 싫증나지 않는 사랑스러운 갖가지 사물을 부패시켜 괴멸하고 흩어져 망가지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이 가진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장애로 인한 번뇌의 속박 및 다른 갖가지 고뇌의 구속, 그리고 이런 인연으로 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견고하게 집착하여 성내며 어리석은 마음을 내게 하여 한량없는 갖가지 업행(業行)을 짓게 하는 일들을 범천이여, 마음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세 가지 악취(惡趣)인 지옥과 축생과 아귀도에서 사는 중생들이 받는 갖가지 일의 고뇌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씨앗으로 나는 것이든 씨앗 없이 나는 것이든 모든 수목과 약초들과 물과 뭍에서 나는 꽃과 과일과 향이 나는 나무들이 가지는 갖가지 좋은 맛인 달고 쓰고 짜고 맵고 시고 떫은맛들로서 모든 중생들의 즐겨하고 즐겨하지 않음을 따라 보태거나 더는 것들을 범천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5도(道)를 유전(流轉)하면서 나서는 죽고, 이루고는 허문다. 이러한 중생이 가진 무명(無明)의 가리움과 애착하는 번뇌가 서로 응하여 분주히 치닫고 굴러 흐르면서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미래의 세계에 생사를 통해 유전하면서 이를 끊지 못한다.
009_0496_a_02L 사람ㆍ하늘ㆍ마천(魔天)ㆍ범천ㆍ사문(沙門)ㆍ바라문 같은 자들이 세간에 어지러운 실타래처럼 엉켜서 끊임없이 내닫고 굴러 흐르면서 여기저기를 오고 가고 한다. 모든 중생들은 이처럼 유전하면서도 여기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범천이여, 생각에 어떤가? 이것이 네가 지은 것이며, 네가 변화시킨 것이며, 네가 힘을 쓴 것인가?” 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그렇다면 너는 무슨 인연을 따라 이런 생각을 하고 말을 했는가? ‘이들 모든 중생들은 바로 내가 지은 것이며, 내가 변화해 낸 것이며, 내가 힘을 썼다. 존재하는 세계는 바로 내가 지은 것이며, 내가 변화해 낸 것이며, 내가 힘을 쓴 것이다’라고 말이다.”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혜롭지 못한 사악한 견해와 거꾸로 된 마음을 아직 끊어버리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여래께서 설하시는 바른 법을 듣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일찍이 그와 같은 나쁜 견해를 가지고 그와 같은 나쁜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 모든 중생들은 바로 내가 지은 것이며, 내가 변화해 낸 것이다. 존재하는 세계도 바로 내가 지었으며, 내가 변화해 내었다’라고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존재하는 세계는 업(業)이 지은 것이고 업이 변화해 낸 것이며, 모든 중생 또한 업이 짓고 업이 변화해 낸 것으로 업의 힘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범천이여, 무명(無明)이 행(行)을 인연하고 행이 식(識)을 인연하며, 식이 명색(名色)을 인연하고, 명색이 6입(入)을 인연하며, 6입이 촉(觸)을 인연하고, 촉이 수(受)를 인연하며, 수가 애(愛)를 인연하고, 애가 취(取)를 인연하며, 취가 유(有)를 인연하고, 유가 생(生)을 인연하며, 생이 노사(老死)ㆍ우비(憂悲)ㆍ고뇌(苦惱)를 인연한다. 때문에 이와 같이 큰 괴로움이 모이는 것이다.
009_0496_b_02L범천이여, 무명이 멸하여 차례로 우비와 고뇌까지 멸하면, 다시는 아무런 짓는 것이 없어서 짓는 이로 하여금 편안히 놓아두게 한다. 오직 업과 법이 있어서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와 같은 업과 법의 화합을 여읜다면, 그런 자는 생사의 유전(流轉)을 멀리 여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세간의 업이 다하고 번뇌가 다하고 괴로움이 다하고 괴로움이 쉬어서, 이와 같이 벗어나는 것을 적정(寂定)의 열반을 얻었다고 말한다.
009_0496_b_05L梵天!如是,世閒業盡,煩惱盡、苦盡、苦息。如是出離,是名得於寂定涅槃。
범천이여, 저기에서 누가 열반을 얻는가? 업이라면 그 업이 다하고, 번뇌라면 그 번뇌를 여의고, 괴로움이라면 그 괴로움이 없어지는 자이다. 이러한 법들은 모든 부처님들의 신력(神力)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들이 힘을 쓰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범천이여, 만일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와서 드러내어 설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법들이 있다는 것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세존이 이 세상에 나와서 이와 같이 고요하고 매우 깊어 깨닫기 어려운 광명의 법문(法門)을 드러내어 설하였기에, 이처럼 모든 중생들이 생법(生法)을 들어서 생(生)에서 해탈을 얻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것에 대한 법을 들어서 저러한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법에서 해탈을 얻는다.
범천이여, 이러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들은 이를 나타내고 짓고 힘을 쓰는 것이다. 범천이여, 모든 부처님들이 이를 지어서 열어 보이고 드러내어 설한다. 이른바 모든 행(行)이란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아서 항상함이 없이 굴러 움직이며, 일정함이 없고 구경이 없는 진법(盡法)이며 변역법(變易法)이라고 말한다.
설사 모든 부처님들이 멸도(滅度)한 뒤 바른 법이 가리어 매몰된다 하더라도, 역시 이와 같이 보탤 것을 나타내 보이시니 이른바 모든 행이란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다. 만약 부처님께서 모든 행이 한 순간의 빛의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모든 행이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으며, 마치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음을 마땅히 설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009_0496_c_02L범천이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행이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꿈과 같은 것이며, 메아리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며, 덧없이 굴러 움직이는 진법이요 변역법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모든 행이 마치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다고 설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여기에서 그 모양을 본다. 그런데 그 모양이란 반연(攀緣)이며 인연의 이치이다. 그래서 모든 행이 덧없이 굴러 움직이는 진법이며 변역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파괴되고 흩어지며 시절이 바뀌나니, 한 순간으로부터 하루의 낮과 밤, 반 달 내지 한 달, 일 년 내지 백 년, 일 겁에서 백 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괴멸한다. 아무리 큰 불이라도 타고 나면 꺼지고, 아무리 큰 물이라도 흐르고 나면 다시 그치며 아무리 강한 바람이라도 불고 나면 그친다.
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이런 모양을 보고 나면 마음이 이를 싫어하여 떠나게 된다. 이처럼 모든 행이 덧없어서 헤어지고 무너지고 변하여 바뀌고 다하여 없어지기 때문에, 평등하게 믿는 마음이 생겨 집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그리하여 모든 행이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물속의 해와 달과 별 등 모든 빛의 그림자를 보고 나면 그런 모양들은 모두 그들의 반연이며 인연의 이치일 뿐이기에 보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009_0497_a_02L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훈계를 받고 선지식의 가르침을 얻거나 혹은 스스로 사유하여 모든 행이 마치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믿는 마음이 생겨서 집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그러다가 수다원과(須陀洹果)를 깨달아 얻기도 하며,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얻기도 하고,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기도 하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기도 한다.
대승(大乘)을 믿는 자로 말하면, 더러 초인(初忍)을 얻기도 하고 혹은 제이인(第二忍)과 제삼인을 얻기도 하여 위없는 보리에 도달하기도 한다. 가령 모든 부처가 멸도(滅度)한 뒤에도 이 세간에서는 또한 이처럼 법을 설하고 유행한다. 그리하여 중생들이 법을 듣고 나면 삼승(三乘)을 얻게 되리니 성문승과 벽지불승과 모든 종지(種智)가 위가 없는 대승이 그것이다.
범천이여, 너는 마땅히 이 법의 순서를 알아야 하며, 또한 모든 부처들의 힘을 씀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그 모양을 보고 마음에 싫어져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바, 모든 행이 한갓 덧없는 괴로움으로서 일정함이 없이 굴러 움직이는 진법이며 변역법일 뿐으로,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범천이여, 이런 것들이 또한 모든 부처의 경계이며 모든 부처가 힘을 쓰신 것이다. 중생들로서 이미 이를 수행하여 성취한 자는 이와 같은 정법(正法)의 소리를 듣고는 여래에 대하여 생각하고 공경하여 믿게 되니 모든 행이 덧없이 무너지고 사라져서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여러 중생들 중에는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일찍이 범행(梵行)을 닦는 이가 있고 더러는 집에 있으면서 금계(禁戒)를 받아 지키기도 한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이와 같은 모든 행이 덧없이 허물어져 없어지는 것이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다는 것을 이해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알고 나면 믿음이 생겨서 집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모든 불세존이 비록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모든 부처님들이 힘을 쓰시고 모든 부처님들께서 심어 놓은 선근(善根)이 있기 때문에 보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009_0497_a_20L諸佛世尊雖未出世,以有如是諸佛加故、以諸佛所種善根故,得到菩提。
범천이여,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힘을 쓰신 것이다. 범천이여, 이 삼천대천세계는 범(梵)의 찰토(刹土)가 아니며 외도육사(外道六師)의 찰토도 아니고, 단지 우리들 모든 부처님들의 찰토일 뿐인 것이다.
009_0497_b_02L범천이여, 나는 옛날 여기에서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那由他) 아승기겁 동안 보살행을 닦았다.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여래가 심은 한량없는 아승기의 선근(善根)을 청정하게 금계(禁戒)로 지니고 애써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또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를 통해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을 닦아서 이 불토(佛土)를 포섭하여 닦고 다스려 청정하게 하였다.
여러 중생들이 닦는 선근에 대해서는 그들이 견뎌내어 청정하게 한 것을 따라 그 그릇과 시기에 따라서 득도(得度)하게 하였다. 내가 긴긴 밤에 4섭사(攝事)로써 이들 중생을 포섭하였으니, 이른바 보시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이다. 저들은 나의 서원(誓願)의 힘에 의해서 이 불토에 태어나서 나의 설법을 듣고 곧장 이를 믿고 이해하여 다시는 돌아가 범석(梵釋)이나 호세(護世) 등 모든 천왕(天王)들을 믿는 일이 없었다.
범천이여,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곳은 부처님의 찰토이며, 범석이나 호세의 찰토가 아니고, 또 외도육사의 찰토도 아닌 것이다.”
009_0497_b_13L梵天!應如是知:此是佛土,非是梵、釋、護世剎土,亦非外道六師剎土。”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과 백천의 범중(梵衆)들이 근심어린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불세존께서 드물고 훌륭하고 묘한 법을 통달하셔서, 저희 삼천대천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이 여래의 처소에서 보기 드문 마음이 생깁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드물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다함없는 경계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대범천왕은 즉시 귀의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세존께 가르침을 청하면서 이렇게 아뢰었다. “바가바(婆伽婆)시여, 바가바께서는 저의 큰 스승이십니다. 수가타(修伽陀)시여, 수가타께서는 저의 큰 스승이십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修行)해야 합니까?”
009_0497_c_02L부처님께서 범천에게 고하였다. “이 삼천대천세계는 나의 불토(佛土)이다. 내가 지금 이를 너에게 맡기니 너는 마땅히 나의 말에 순종하여 참된 도와 좋은 눈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며, 위가 없는 불안(佛眼)ㆍ법안(法眼)ㆍ승안(僧眼)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말후(末後)의 법을 멸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범천이여, 마땅히 장자(長子)인 동진(童眞) 미륵보살마하살이 있어서 그가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법을 따라 화생(化生)할 것이다. 그리하여 큰 자비와 연민으로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려고 할 것이며 즐거움을 얻어 안온하게 하려고 할 것이다. 그도 또한 이 삼천대천세계의 법다운 보처(補處)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머물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이미 지금 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또한 그에 대해서도 역시 순종하여 이와 같은 진도(眞道)의 법에 대해서 불안과 법안과 승안이 단절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어째서인가? 범천이여, 이러한 법들이 모두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시절을 따라 불안과 법안과 승안이 끊어짐이 없도록 해야 하며, 제석과 범천의 천안(天眼)과 인안(人眼)과 해탈안(解脫眼) 나아가 열반안(涅槃眼)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009_0498_a_02L 이때 악마의 아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상주(商主)였다. 그는 이미 부처님에 대하여 깊이 공경하여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열반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슬프고 괴로워 몸이 떨리며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급히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려가서 도착하는 즉시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는 물러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디 세존께서는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고 세간을 구해 보호하소서. 부디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고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한 겁을 더 머무시고 열반에 들지 마소서. 저 또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어 이와 같이 권하여 청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으로 하여금 너무 빨리 눈멀고 어둡게 하여 가르침을 설하는 자가 없어서 인도하지 못하고 구원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고 지향하지 못하게 만들지 마소서.”
009_0498_a_07L世尊!勿使衆生盲冥太速,無有說者、無導、無救、無依、無趣。”
이처럼 상주가 말을 마치자 부처님께서 곧바로 말씀하셨다. “상주야, 너의 아버지 파순(波旬)은 이미 먼저 나에게 열반에 들기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바가바시여, 반열반(般涅槃)에 드소서. 수가타시여, 반열반에 드소서. 바가바시여, 지금이 바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상주가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는 악마 파순이지 저의 아비가 아니며 저의 선지식이 아닙니다. 언제나 살해(殺害)할 것만을 구하니, 그는 저의 원수이며 대단히 악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저로 하여금 즐거운 일과 화합하여 안온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만 합니다. 그리고는 오직 헐뜯고 허물어서 이익이 되지 않게 하려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또 만약 참으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면, 그는 분명 천인ㆍ마(魔)ㆍ범(梵)ㆍ아수라ㆍ사문ㆍ바라문과 모든 세간을 가엾게 여겨 이익을 위하지 않으며, 또한 화합하여 안온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물러나고 떨어져 괴로움을 받게 하고 싶어서 마음을 낸 이로서, 그는 곧 악마 파순이란 것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어버이로서 부처님을 좇아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은 자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한 명은 법대로 들은 자이며 나머지는 법과 달리 들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세존께서 허락하신 자로서 열반에 들라고 한 파순은, 이 중에 법대로 들은 자가 아니란 사실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이러한 허락에 굳이 집착하지 마시고, 단지 천인 등 모든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안락하고 이익 되게 하는 일에만 마음을 두십시오. 그와 같이 허락한 것은 버리시고 이 세상에 한 겁을 더 머무소서. 만약 부처님께서 오래 세상에 머무신다면 모든 천인 등이 이익 되고 안락할 것입니다. 그러니 세존께서는 서둘러 열반에 들지 마소서.”
부처님께서 상주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만일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려는 자라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상주야, 만일 어떤 사람이 정수리에 물을 뿌리고 자리에 오른 찰리대왕(刹利大王)을 위해 공양을 드리되 혹시 왕자와 대신에게 공양 올리기도 하고, 또 더러 나라와 성읍과 마을을 지켜 보호한다고 한다면, 그런 자는 그 찰리왕으로부터 크게 영광스러운 벼슬을 얻고 복록을 받을 것이며, 그 찰리의 왕은 항상 이러한 자와 그의 자손 및 친구와 그 권속(眷屬)에 대하여 역시 복록을 내리고 옹호하여 보호해 줄 것이다.
009_0498_c_02L상주야, 네가 지금 이처럼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무상법왕(無上法王)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마음에 청정한 믿음을 일으켰으니, 이와 같은 청정한 믿음으로 해서 여래는 마땅히 너를 위로하여 타이르고 너에게 복록의 보답을 내릴 것이다. 내가 지금 너를 위로하여 달래는 것은 네가 부처님에 대하여 마음에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서 선근(善根)을 심었기 때문이니, 그렇게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상주야, 너는 이처럼 청정한 믿음과 선근 때문에 내가 입멸한 뒤 미래의 세상에서 너는 벽지불이 되어 이름을 비민상주(悲愍商主)라고 할 것이다.
009_0498_c_03L商主!汝當以此淨信善根於我滅後未來世中作辟支佛,名曰悲愍商主。
내가 열반한 뒤에 바른 법이 없어지면 이와 같은 악마 파순은 크게 이를 기뻐할 것이며, 이러한 기뻐하는 행위로 해서 그는 마궁(魔宮)에 떨어져서 아비의 대지옥 속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갖가지 괴로움을 다 받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 악마 파순은 이처럼 수승한 지혜의 등불의 지혜의 빛이 숨고 사라지는 순간을 크게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상주야, 내가 멸도한 뒤에 나아가 이와 같은 바른 법이 세상에 머물 때까지 그 시기를 따라서 악마 파순은 마궁에 머무를 것이며, 나의 법이 멸하고 나면 이 악마는 매우 크게 뛸 듯이 기뻐하며 기분이 좋아서 이를 경축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순간에 마궁에 떨어져서 아비지옥에 빠질 것이다.
상주야, 악마는 나중에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큰 고통을 받는 것은 목숨을 빼앗을 때의 고통과 같다. 이처럼 고통을 받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말한 여래ㆍ응공ㆍ정변지가 바로 참된 말이고 실다운 말이며, 다른 말이 아니며 헛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잘 말할 것이다.
‘좋구나, 몸에 대한 율의(律儀)여. 좋구나, 입에 대한 율의여. 좋구나, 마음에 대한 율의여. 이 몸의 선행(善行)과 이 입의 선행과 이 마음의 선행은 즐길 만하고 하고자 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며 뜻에 맞는 과보를 얻으며, 이 몸의 악행과 이 입의 악행과 이 마음의 악행은 즐길 만하지 못하고 하고자 할 만하지 못하고 사랑할 만하지 못하며 뜻에 맞지 않는 과보를 얻게 된다.
그런데 나는 전에 저 몸의 악행과 서로 응하고, 입의 악행과 서로 응하고, 마음의 악행과 서로 응하였다. 이와 같은 업보로 해서 나는 지금 이 지옥에 떨어져서 이처럼 지극히 아프고 지극히 에이는 괴로움과 번뇌를 받으며, 마치 죽음의 고통과 같이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상주야, 만일 여래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가지고 온갖 잘못을 저지르면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날 때 곧장 지옥에 떨어지지만, 만약 다시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켜 여래를 공양하고 허물을 추구하지 않으면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남과 함께 선도(善道)의 천인(天人) 속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굴택(窟宅)이 없는 열반을 설하는 자가 있어도 사람의 몸을 얻기가 어렵고 8난(難)을 여의기 어려우니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서 중앙의 나라에 태어나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그러니 너희들은 조심하여 방일(放逸)하지 말고 마땅히 부지런히 수행해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상주야, 너는 미륵불로부터 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저들 미륵무상법왕(彌勒無上法王)의 국토와 인민을 포섭하여 언제나 자애로운 마음과 미워함이 없는 마음과 원수 맺지 않는 마음과 가엾게 여기는 마음과 즐거워하는 마음, 널리 덮어주는 마음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길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선근으로 해서 악마의 궁전에서 마구니의 처소를 차례로 고쳐서 큰 부귀를 갖추어 자재한 주인이 될 것이다.
상주야, 너는 선근으로 해서 저기에서 널리 인천(人天)의 과보를 얻어 80겁을 지나 그 말후(末後)의 몸이 벽지불이 되어서 이름을 비민(悲愍)이라고 할 것이다.
009_0499_b_21L商主!汝以善根於彼廣受人天報已,經八十劫於末後身作辟支佛,名曰悲愍。
009_0499_c_02L무엇 때문인가? 상주야, 너는 나의 열반의 소리를 들음으로 해서 곧장 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의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들에 대하여 자비와 근심의 마음을 낸다. 그리하여 중생들이 안락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나에게 반열반에 들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고 청하는 것이다.
상주야, 내가 마땅히 너에게 이와 같은 선한 과보를 줄 것이니, 너는 마음 속 깊이 기뻐하며 뜻으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상주야, 이런 것들은 바로 네가 여러 여래에게 권하여 청한 선근의 인연인 것이니, 여래는 곧장 법의 베풂으로 이를 덮어주고 너의 선근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때 상주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께서 저의 권청(勸請)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열반에 드실 것이라면, 바라건대 저는 이제부터 법의 머묾에 이르기까지 5욕(欲)을 여의고 오로지 효도(孝道)를 지니겠습니다. 그리하여 놀이를 즐기지 않고 다른 옷을 입지 않고, 화만(華鬘)과 도향(塗香)과 말향(末香)을 쓰지 않으며, 모든 하늘의 수승한 갚음을 받아쓰지 않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저에게 무슨 즐거움이 있겠으며, 무슨 웃고 놀만한 일이 있겠으며, 무슨 즐길 만한 일이 있겠으며, 마음에 무슨 맞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최대의 지혜의 횃불과 지혜의 등불과 큰 지혜의 광명이 사라진다면 저에게 무슨 뛸 듯이 기뻐하고 마음에 맞아서 기꺼이 경축하는 일들이 남아 있겠습니까?
이러한 큰 지혜의 태양에 한량없는 백천의 광염(光炎)의 권속이 있어서 밝음이 없는 큰 어둠을 멸하나니, 큰 지혜의 밝음을 짓는 자가 이처럼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면 저에게 무슨 뛸 듯이 기뻐하고 마음에 맞는 일이 있겠으며, 무슨 즐길 만한 일이 있겠으며, 무슨 웃고 놀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중생을 조복(調伏)하는 자ㆍ중생을 연민하는 자ㆍ진어자(眞語者)ㆍ실어자(實語者)ㆍ시어자(時語者)ㆍ응시어자(應時語者)ㆍ이어(異語)하지 않는 자ㆍ설한 대로 수행하는 자ㆍ대자비(大慈悲)에 머무는 자ㆍ모든 중생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는 자ㆍ모든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갖는 자ㆍ
중생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게 하는 자ㆍ깨닫게 하는 자ㆍ가르치는 자ㆍ전투에 이긴 자ㆍ살촉을 뽑는 자ㆍ의왕(醫王)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자ㆍ크게 좋은 약을 베푸는 자ㆍ끝내 괴로움을 해탈하는 자ㆍ법을 설하는 자ㆍ상주(商主)를 데려가는 자ㆍ얕은 곳을 보여주는 자ㆍ가지 끝과 꼬리를 잡은 자ㆍ횃불을 든 자ㆍ밝음을 내는 자ㆍ빛을 짓는 자ㆍ찬연히 비추는 자ㆍ눈을 보시하는 자ㆍ인도하여 보여주는 자ㆍ
009_0500_b_02L 그리고 공승자(共乘者)ㆍ모든 힘을 갖춘 자ㆍ10력(力)을 갖춘 자ㆍ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얻은 자ㆍ18불공법(不共法)을 갖춘 자ㆍ큰 복의 지력(智力)을 얻은 자ㆍ한량없는 법장(法藏)이 만족한 자ㆍ질투가 없는 자ㆍ모든 중생을 기뻐하는 자ㆍ위가 없는 큰 시주(施主)ㆍ가장 수승한 시주ㆍ마음에 혐오와 원한이 없는 자ㆍ큰 선정을 얻은 자ㆍ
모든 선정의 삼매삼마발제(三昧三摩跋提)의 경계를 얻은 자ㆍ지혜가 한량이 없는 자ㆍ지혜가 막힘이 없는 자ㆍ등급이 없는 지혜의 경계를 얻은 자ㆍ마당(魔幢)을 꺾은 자ㆍ진창[淤泥]을 건넌 자ㆍ피안에 이른 자ㆍ피안에 머무는 자ㆍ두려움이 없는 곳에 이른 자ㆍ모든 중생의 두려움을 없앤 자ㆍ모든 중생을 편히 위안하는 자ㆍ대중이 견고함을 내는 자를 오늘 밤이 지나면 마땅히 헤어져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저 또한 이와 같이 여래께서 적멸하신 후 바른 법이 세상에 머물기까지, 그 기간을 따라 5욕을 버리고 오로지 효도만을 지녀서, 즐겨 웃고 농하는 일이 없으며 다른 옷을 몸에 걸치지 않고 화만이나 도향, 말향 등을 쓰지 않으며, 모든 하늘의 과보를 받거나 쓰지 않겠습니다.”
009_0500_c_02L 이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도착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는 물러나 한쪽에 자리를 잡은 뒤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디 세존께서는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옛날의 어느 땐가 네 명의 대아수라왕(大阿修羅王)이 위풍당당하게 마차를 타고 갑옷을 입고 여러 권속들을 거느리고 우리 삼십삼천에 와서 싸움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성자(聖者) 목련(目連)이 아직도 세상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여러 하늘들과 아수라가 서로 군대를 대치하고 있을 때에 성자 목련이 네 아수라가 있는 곳으로 가서 법에 따라 이들을 조복(調伏)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하늘들과 아수라가 모두 다 같이 편안할 수 있었으며, 다시는 서로 싸우는 괴로움을 겪거나 서로가 서로를 거스르면서 헐뜯고 다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하지만 지금은 이 대목련(大目連)이 이미 멸도(滅度)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지금 여래께서 다시 열반에 들고자 하십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이제부터 또 자주 서로 싸우고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만약 네 명의 아수라왕이 우리와 싸움을 벌인다면 우리는 저들에 대하여 어떤 계책을 써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알려 주셨다. “교시가(憍尸迦)여, 그만하라.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 만일 금계(禁戒)를 지녀서 지킨다면 원하는 일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이니 다만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자만 이룰 수 있을 것이요, 그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청정히 행하는 자는 이루지만 청정한 행을 하지 않는 자는 못 이룰 것이요, 욕심을 여의는 자는 이루지만 욕심을 여의지 못하는 자는 못 이룰 것이요, 성내는 마음을 여의는 자는 이루지만 성내는 마음을 여의지 못하는 자는 못 이룰 것이요, 어리석음을 여읜 자는 이루지만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한 자는 못 이룰 것이요, 지혜로운 자는 이루지만 지혜롭지 못한 자는 못 이룰 것이다.
009_0501_a_02L이때 네 명의 대아수라왕이 부처님께서 말씀한 가호(加護)에 관한 소리를 듣고는, 분한 마음이 들고 머리털이 일어서면서 두려워 떨며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도착하고 나서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가 자리를 잡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런 가호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네 명의 대아수라에게 고하였다. “너희들은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라. 언젠가는 너희들도 크게 자재(自在)함을 얻어서 저 삼십삼천을 뛰어넘어 다시는 싸우거나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고, 서로 어긋나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조심하여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헐뜯지 말고,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의 마음들을 거스르지 말라. 그리고는 마땅히 자애로운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지어서 중생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얻어 갖추도록 하라.
모든 인자(仁者)는 그 목숨이 오래 머물러 있지 않으며, 자재함의 주인이 되어도 역시 항상함은 없다. 모든 인자는 이 세간이 가진 것을 구족하게 모두 모았다고 해도 반드시 떠나고 흩어지는 데로 돌아간다.
009_0501_a_09L諸仁者!命不久停,爲自在主亦復無常。諸仁者!世閒所有具足合會必歸離散。
모든 인자는 마땅히 여래의 궁극하여 항상함이 없는 경계를 보아서 모든 중생에 대하여 원망하고 미워함이 없으며, 어긋남이 없고 다툼이 없어서 언제나 화합하여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진다. 어찌 하물며 너희들처럼 선근이 적어 피차간에 서로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들에 있어서겠느냐?
모든 인자는 선과 악의 두 업을 통해서 끝내 패망(敗亡)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제부터는 각각 자애로운 마음으로 몸의 업을 자애롭게 하고 입의 업을 자애롭게 하고 뜻의 업을 자애롭게 하여 싸우지 말고 다투지 말고 서로 헐뜯고 욕하지 말라. 이런 인연을 쌓는다면 너희들은 긴긴 밤을 이익과 안락함을 얻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009_0501_b_02L이렇게 말씀을 마치자, 네 명의 아수라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로 그렇습니다. 바가바여, 바로 그렇습니다. 수가타여, 저희들이 그와 같이 여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그와 같이 닦고 그와 같이 머물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이제부터 마땅히 모든 투쟁의 수단들을 버리고 각자 자애로운 마음을 닦겠습니다.”
이때 석제환인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화살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아서 너무나 슬펐다. 그래서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009_0501_b_04L爾時,釋提桓因聞佛涅槃,爲憂箭所射,極大愁惱,悲泣流淚而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법주(法住)에 이르기까지 5욕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궁(內宮)에 들어가지 않으며, 다른 옷은 입지 않겠습니다. 위대한 덕을 갖추신 바가바시여, 마치 가장(家長)이 돌아가시는 것과 같아서 여기의 사람들은 그 은혜로 길러주심을 받은 것을 깨닫고 마음에 고뇌가 생겨 옛 은혜를 기억하여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은혜로 길러주심을 생각하니,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오로지 효도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법주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을 따라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오로지 효도의 마음만 갖겠습니다. 그리하여 5욕을 행하지 않고 내궁에 들어가지 않으며 다른 옷은 입지 않겠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하면, 위없는 도사(導師)께서 내일이면 떠나셔야 하고 다시는 뵐 수 없고 만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석제환인은 이와 같이 말을 마치고는 곧장 얼굴을 묻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