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9_1007_a_01L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 상권
- 일명 불법보입도문삼매경(佛法普入道門三昧經) -
009_1007_a_01L佛說維摩詰經卷上 維摩詰所說不思議法門之稱一名佛法普入道門三昧經


오(吳) 월지(月氏) 지겸(支謙) 한역
장순용 번역
009_1007_a_02L吳月氏優婆塞支謙 譯


1. 불국품(佛國品)
009_1007_a_03L佛國品第一

이와 같이 들었다.
009_1007_a_04L聞如是
한때 부처님께서는 대비구들과 함께 유야리(維耶離) 나씨수원(奈氏樹園)에서 유행하셨다. 비구는 8천 명이었고 보살은 3만 2천 명이었는데, 모두 신통(神通)이 있는 보살들이었다.
009_1007_a_05L一時佛遊於維耶離奈氏樹與大比丘衆俱比丘八千菩薩三萬二千皆神通菩薩
모든 대성(大聖)들은 세속의 인연에 따라 능히 교화했으니, 부처님께서 지으신 것을 이미 모두 지었다. 법의 성참(城塹)이 되어서 정법을 보호해 지켜 나갔고 사자후(師子吼)를 하면 시방이 그 소리를 들었으며, 대중들이 청하지 않아도 그들을 도와 편안하게 했으며, 삼보(三寶)를 흥성시켜 끊이지 않게 했으며, 그 결과 모든 마행(魔行)을 항복시키고 원한을 버리게 했다. 일체의 교화를 믿고 이해하지 않음이 없으며 모두가 사지(死地)를 넘어섰으며 해탈하여 걸림이 없으며 변재(辯才)를 잃지 않았다.
009_1007_a_07L一切大聖能隨俗化佛所住者皆已得住爲法城塹護持正法爲師子吼十方聞聲衆人不請祐而安之興隆三寶能使不絕皆以降棄魔行仇怨一切所化莫不信解皆度死地脫無罣礙不失辯才
그 염(念)과 정(定)과 총지(總持)의 온갖 보배가 다 제대로 성취되었으며, 보시ㆍ조의(調意)ㆍ자손(自損)ㆍ계율ㆍ인욕[忍]ㆍ정진(精進)ㆍ선정ㆍ지혜ㆍ훌륭한 방편 이하로 집착하는 바가 없는 불기법인(不起法印)1)을 얻었다. 아유월치(阿惟越致)2)의 법륜을 이미 굴렸으며, 대중들의 상(相)을 따라 지혜와 덕(德)을 나타내고, 대중과 함께하면서 올바로 인도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흔들리지 않으며, 복과 지혜의 분부(分部)를 이미 성취했으며, 이미 얻은 상호가 저절로 장엄되었으며, 색상(色像)이 제일이었고, 세간의 장식은 버렸다. 그 뜻과 행(行)은 높고 미묘하고 명칭은 널리 퍼졌으며, 금강(金剛)의 뜻이 있어서 부처님의 성스러운 성품을 얻었고, 법으로써 사람들에게 감응하여 감로(甘露)의 비를 내렸으며, 오묘한 음성으로 연설하는 것이 물 흐르듯 했으며, 그 소리가 청정해서 미묘한 법에 들어갔다.
009_1007_a_12L其念及定摠持諸寶悉成其所布施調意自損精進一心智慧善權已下得無所著不起法忍阿惟越致法輪已轉隨衆人相爲現慧德在諸衆爲正導以無畏而不動已成福祐慧之分部已得相好能自嚴飾色像第一捨世閒財志行高妙名稱普至有金剛志得佛聖性以法感人爲雨甘露曉衆言音所說如流其聲淸淨入微妙法
009_1007_b_02L생사의 근본을 깨달아서 온갖 액난을 이미 끊었으며, 모든 공포와 두려움을 제도하는 것이 사자후처럼 되었으며,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법을 강설함이 우레와 같았으며, 양(量)이 있지 않았지만 이미 양을 초월했고, 도(道)의 보배인 지혜로 인도함으로써 위대한 스승이 되었으며, 만족을 아는 행으로써 영원한 부처님의 말씀과 법의 공덕을 나타내었고, 모든 길에 널리 들어가서 중생을 순화(順化)했으며, 10력(力)과 무외(無畏)와 부처님의 18법(法)으로써 올바르고 비할 바 없는 부처님의 지혜를 설했으며,
009_1007_a_22L見生死本衆厄已斷度諸恐畏爲師子吼不以多言其講說法乃如雷震無有量已過量以道寶之導爲大師以知足之行現遠佛聲及法功德博入諸道順化衆生說無比正佛之智慧以十力無畏佛十八
악도(惡道)의 나락에 떨어진 자를 가서 제도하기 위해 5도(道)에 태어나 대의왕(大醫王)이 되어서 지혜와 선(善)으로 중생을 구원하고 병에 따라 약을 주어서 복행(服行)을 얻게 하였다. 한량없는 선(善)한 일을 모두 다 얻었고, 한량없는 불국토를 모두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였고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혜를 모두 닦고 배웠고 명철한 지혜의 강설을 모두 들었으며 깨달은 자의 행적을 모두 밟아 나갔으며 지혜와 덕의 근본을 차례대로 흥기했으며 심오한 법의 요체에 모두 이미 들어갔으며 삼매의 한량없음을 능히 다 성취했으며 불력(佛力)의 무외(無畏)를 모두 갖추었다.
009_1007_b_07L往度惡道諸墮塹者其生五道大醫王以慧以善救衆生病應病與令得服行無量善事皆悉得無量佛國皆嚴淨無量佛慧皆修學明智之講皆聽聞明者之迹皆履行慧之德本隨次興深法之要皆已入三昧無量能悉成佛力無畏一切具足
그 명호는 다음과 같다. 정관(正觀)보살ㆍ견정사(見正邪)보살ㆍ정화왕(定化王)보살ㆍ법자재(法自在)보살ㆍ법조(法造)보살ㆍ광조(光造)보살ㆍ광정(光淨)보살ㆍ대정(大淨)보살ㆍ변적(辯積)보살ㆍ보적(寶積)보살ㆍ보장(寶掌)보살ㆍ보인수(寶印手)보살ㆍ상거수(常擧手)보살ㆍ상하수(常下手)보살ㆍ상참(常慘)보살ㆍ상소(常笑)보살ㆍ희근(喜根)보살ㆍ희왕(喜王)보살ㆍ정원지(正願至)보살ㆍ허공장(虛空藏)보살ㆍ보심지(寶甚持)보살ㆍ보수(寶首)보살ㆍ보지(寶池)보살ㆍ보수(寶水)보살ㆍ
009_1007_b_13L其名曰正觀菩薩見正邪菩薩定化王菩薩法自在菩薩法造菩薩光造菩薩光淨菩薩大淨菩薩辯積菩薩寶積菩薩寶掌菩薩寶印手菩薩擧手菩薩常下手菩薩常慘菩薩笑菩薩喜根菩薩喜王菩薩正願至菩薩虛空藏菩薩寶甚持菩薩寶首菩薩寶池菩薩寶水菩薩
009_1007_c_02L수광(水光)보살ㆍ사무업(捨無業)보살ㆍ지적(智積)보살ㆍ등왕(燈王)보살ㆍ제마(制魔)보살ㆍ조화(造化)보살ㆍ명시(明施)보살ㆍ상심(上審)보살ㆍ상적엄(相積嚴)보살ㆍ사자뢰음(師子雷音)보살ㆍ석마왕(石磨王)보살ㆍ중향수(衆香手)보살ㆍ중수(衆手)보살ㆍ상응(常應)보살ㆍ불치원(不置遠)보살ㆍ선의간(善意諫)보살ㆍ연화정(蓮華淨)보살ㆍ대세지(大勢至)보살ㆍ규음(闚音)보살ㆍ범수(梵水)보살ㆍ적수(★ (氵+適) 水)보살ㆍ보당(寶幢)보살ㆍ승사(勝邪)보살ㆍ엄토(嚴土)보살ㆍ금결(金結)보살ㆍ주결(珠結)보살ㆍ자씨(慈氏)보살ㆍ유수(濡首)보살이었다.
그리고 3만 2천 명의 보살이 모두 이와 같은 상수(上首)들이었다.
009_1007_b_21L水光菩薩捨無業菩薩智積菩薩燈王菩薩魔菩薩造化菩薩明施菩薩上審菩相積嚴菩薩師子雷音菩薩石磨王菩薩衆香手菩薩衆手菩薩常應菩薩不置遠菩薩善意諫菩薩蓮華淨菩薩大勢至菩薩闚音菩薩梵水菩薩滴水菩薩寶幢菩薩勝邪菩薩嚴土菩薩金結菩薩珠結菩薩慈氏菩薩濡首菩薩其三萬二千菩薩如此上首者也
모두 편발(編髮)한 무리들로서 1만 바라문(婆羅門)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방의 경계로부터 부처님의 처소로 와서 법을 들었다. 모든 1만 2천 명의 제석천과 시종이 사방에서 왔는데, 여타의 대존(大尊)과 신묘(神妙)한 천인과 모든 용신(龍神)ㆍ건달바[揵沓和]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견타라(甄陀羅), 마후륵(摩睺勒) 및 그 대중들이 함께 회상에 왔다. 그리고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그 대중들이 회상에 와서 앉았다.
009_1007_c_08L復有萬婆羅門皆如編髮等從四方境界來詣佛所而聽法一切諸天各與其衆俱來會聚此彼天帝萬二千釋從四方來與他大尊神妙之天諸龍神揵沓和阿須倫迦留羅甄陁摩睺勒等幷其衆皆來會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幷其衆會坐
그때 부처님께서는 수십만 대중의 권속에 둘러싸여서 경을 설하셨다. 수미산 밖으로부터 온 자가 사면에서 운집하니, 일체의 온갖 회상이 모두 저절로 사자좌에 앉았다.
009_1007_c_15L彼時佛與若干百千之衆眷屬圍遶而爲說經其從須彌方外來者四面雲集一切衆會皆坐自然師子之座
009_1008_a_02L당시 유야리국에 장자(長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나린나갈(羅隣那竭)로 한역하면 보사(寶事)라고 하였다. 그는 5백 장자의 아들과 함께 있었는데, 모두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7보로 된 일산(日傘)을 들고 와서 부처님의 처소에 예배하고 부처님의 발에 절하였다. 그리고는 보배 일산으로 다 같이 부처님 위를 덮으니, 부처님의 위신(威神)으로 하나의 보배 일산으로 하여금 이 삼천대천 불국토를 덮게 했다. 그러자 세계 곳곳에서 온 대중 모두가 보배 일산이 이 삼천세계와 모든 수미산(須彌山)ㆍ목린산(目隣山)ㆍ대목린산ㆍ설산(雪山)ㆍ보산(寶山)ㆍ흑산(黑山)ㆍ철위산(鐵圍山)ㆍ대철위산을 덮어서 전부 보배 일산 속에 나타남을 보았다.
009_1007_c_18L於是維耶離國有長者子名羅鄰那漢言曰寶事與五百長者子俱有決於無上正眞之道持七寶蓋來詣佛所稽首佛足以其寶蓋共覆佛佛之威神令一寶蓋覆此三千大千佛國於是世界諸來大衆皆見寶蓋覆此三千世界諸須彌目鄰大目鄰山雪山寶山黑山鐵圍山大鐵圍悉現於寶蓋中
그리고 이 삼천세계의 큰 바다와 강ㆍ하천ㆍ샘물의 근원과 아울러 위로는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천궁(天宮)과 용궁(龍宮), 모든 존(尊)의 신궁(神宮)이 모두 보배 일산 속에 나타남을 보았다.
시방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가 장엄 청정한 것과 시방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법을 설한 것이 모두 보배 일산 속에 나타남을 모두가 멀리서 보고 들었다. 일체 마군[魔]의 무리들이 전에 없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서서 불국토의 세계를 약간이나마 눈으로 보지 않음이 없었다. 동자(童子) 보사(寶事)는 즉시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009_1008_a_04L此三千世界大海江河川流泉源及上日月星辰天宮龍宮諸尊神宮悉現於寶蓋中十方諸佛佛國嚴淨及十方佛在所說法皆現於寶蓋中悉遙見聞一切魔衆得未曾有禮佛而立國界若干莫不目見童子寶事卽於佛前以偈讚曰

청정한 황금 연꽃 같은 눈은 밝고 아름다우며
청정한 가르침은 뜻의 바라밀을 없앴네.
욕망을 정화하고 의심을 없애서 무량(無量)이라 칭하니
사문인 적연적(寂然迹)에게 예배하고자 합니다.
009_1008_a_10L淸淨金華眼明好
淨敎滅意度無極
淨除欲疑稱無量
願禮沙門寂然迹

이미 대성(大聖)께선 삼계를 거느림을 보이셔서
나의 불국토가 특히 청정하고 밝음을 나타내시고
최상의 법을 설하시어 온갖 의심을 풀어주시니
허공의 신천(神天)이 귀 기울여 듣노라.
009_1008_a_12L旣見大聖三界將
現我佛國特淸明
說最法言決衆疑
虛空神天得聞聽

도의 길을 강설하는 모든 법왕은
법으로써 보시하여 사람에게 해설하네.
법의 북은 선(善)을 이끌어서 최상의 뜻을 나타내니
법왕의 이 지극한 존귀함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009_1008_a_14L經道講授諸法王
以法布施解說人
法鼓導善現上義
稽首法王此極尊

명칭을 설할 때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않고
단지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이 생긴다고 하네.
아(我)가 없으면 저 무지[不知]를 짓지 않으니
마치 부처의 청정함에 악한 현상이 없는 것 같다네.
009_1008_a_16L說名不有亦不無
以因緣故諸法生
非我不造彼不知
如佛淸淨無惡形

처음 보리수에서 불력(佛力)으로 악마를 항복시켜서
감로(甘露)와 멸각(滅覺)과 도의 성취를 얻으셨네.
마음과 뜻이 없는 것으로써 현행(現行)하니
일체의 다른 배움은 그 이름에 굴복하네.
009_1008_a_18L始在佛樹力降魔
得甘露滅覺道成
以無心意而現行
一切異學伏其名

대천세계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시니
이를 받은 자는 바른 바탕을 닦고 청정을 행하네.
천인(天人)이 보고 법을 이해함에 따라
삼보(三寶)가 세간에 나타나게 되었네.
009_1008_a_20L三轉法輪於大千
受者修正質行淸
天人得見從解法
爲現三寶於世閒

부처님께서 설한 법으로 사람을 깨우쳐 교화하니
끝내는 이미 구함도 없이 항상 적연(寂然)하구나.
뛰어난 지혜로 늙고 죽음의 두려움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시니
마땅히 법해(法海)와 덕의 가없음[無邊]에 예배합니다.
009_1008_a_22L佛所說法開化人
終已無求常寂然
上智愍度老死畏
當禮法海德無邊
009_1008_b_02L
일을 공양하는 것이 마치 수미산 같아서
계(誡)가 있는 자든 없는 자든 똑같이 자비로써 대하네.
연설한 바가 허공과 같고 널리 행함을 염(念)하니
누가 부처의 명호를 듣고 공경해 받들지 않으랴.
009_1008_a_24L供養事者如須彌
無誡與誡等以慈
所演如空念普行
孰聞佛名不敬承

이제 능인(能仁)께 이 자비의 일산을 바치니
그 속에 나와 삼천세계가 나타나네.
모든 천(天)과 용신이 거처하는 궁과
건달바 등과 야차[閱叉]도 나타나는구나.
009_1008_b_03L今奉能仁此慈蓋
於中現我三千世
諸天龍神所居宮
犍沓和等及閱叉

세간의 모든 소유(所有)를 아시고
10력(力)으로 불쌍히 여겨 그 변화를 나타내시네.
희유(希有)함을 본 대중 모두 부처님을 찬미하니
지극히 존귀한 대지혜를 나타내심에 큰절 합니다.
009_1008_b_05L以知世閒諸所有
十力哀現是變化
衆睹希有皆歎佛
稽首極尊大智現

동자 보사는 부처님을 찬미하는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정숙히 공경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5백 명의 동자는 모두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기로 결심했습니다. 불국토의 청정함을 얻는 것에 대해 듣기를 원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여래의 불국토의 청정한 행을 해설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보사에게 말씀하셨다.
“동자야, 자세히 듣고서 잘 생각해 보거라. 내 당연히 그대를 위해 여래와 보살의 불국토의 청정을 해설하리라.”
009_1008_b_07L童子寶事說此偈讚佛已以恭肅敬長跪叉手白佛言此五百童子有決於無上正眞之道願聞得佛國土淸淨佛惟解說如來佛國淸淨之於是佛告寶事曰童子諦聽善思念之吾當爲汝解說如來菩薩佛國淸淨
이에 보사와 모든 대중이 가르침을 받아서 들으니, 부처님께서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어 다니고 숨을 헐떡이는 생물과 사람들의 땅이라면 바로 보살의 불국토이다. 왜냐하면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불국토를 거두어 취한다. 즉 불국토의 사람들로 하여금 법률(法律)을 극진히 받들도록 하기 위하여 불국토를 취하며, 불국토의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최고 지혜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불국토를 취하며, 불국토의 사람들로 하여금 성전(聖典)의 일을 보고 뜻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불국토를 취한다.
009_1008_b_14L於是寶事與諸大衆受敎而聽佛言童子蚑行喘息人物之土則是菩薩佛國所以者何菩薩欲敎化衆是故攝取佛國欲使佛國人民盡奉法律故取佛國欲使佛國人民入佛上智故取佛國欲使佛國人民見聖典之事而以發意故取佛國
왜 이렇게 하는가?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여 이익되게 함으로써 불국토에 태어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공중에다가 궁실(宮室)을 짓고 싶다고 한들 끝내 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동자야, 보살이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불국토를 취하고 싶어 하는 것이니, 불국토를 취하고 싶어 하는 것은 공중에서는 안 되는 것이다.
009_1008_b_20L所以者何欲導利一切人民令生佛國如有人欲度空中造立宮室終不能如是童子菩薩欲度人民故願取佛國願取佛國者非於空也
009_1008_c_02L동자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보살은 구함이 없는 것으로써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나[我]를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착한 성품으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능히 온갖 선(善)을 성취한 무거운 임무를 맡은 사람이 불국토에서 태어날 것이다.
009_1008_b_24L童子知菩薩以無求於國故於佛國得道以不言我敎照人民生于佛土菩薩以善性於國故於佛國得道能成衆爲人重任生于佛土
보살은 그 도의(道意)를 넓히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항상 대승(大乘)으로 올바로 정립한 사람이 불국토에 있게 될 것이다. 보살은 보시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일체의 보시를 베푼 모든 사람들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계(戒)를 지키는 것으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원하는 바를 열 가지 선행으로 원만히 하여 갖춘 사람들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009_1008_c_05L菩薩弘其道意故於佛國得道恒以大乘正立人得有佛土菩薩布施爲國故於佛國得道一切布施施諸人民生于佛菩薩持戒爲國故於佛國得道滿所願以十善行合聚人民生于佛
보살은 인욕으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32상(相)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그 인행(忍行)으로써 바르게 조절하는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정진으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모든 덕의 근본과 선(善)의 수행과 부지런한 정진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009_1008_c_11L菩薩忍辱爲國故於佛國得道三十二相而自嚴飾以其忍行調正人民生于佛土菩薩精進爲國故佛國得道以諸德本善修勤力合聚人民生于佛土
보살은 선사(禪思)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염(念)한 바가 바르고 편안함을 아는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지혜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능히 바르게 인도함을 성취한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을 행하는 것으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로 수호하는 모든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네 가지 은혜를 행하는 것으로 나라를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혜시(惠施)ㆍ인애(仁愛)ㆍ이인(利人)ㆍ등리(等利)로 일체를 구제함을 모두 갖춘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009_1008_c_15L菩薩禪思爲國故佛國得道已知所念正安人民生于佛土菩薩智慧爲國故於佛國得道能以正導成就人民生于佛土菩薩行四等心爲國故於佛國得道慈悲喜護護諸人民生于佛土菩薩行四恩爲國故於佛國得道惠施仁愛利人等利一切救濟合聚人民生於佛
009_1009_a_02L보살은 훌륭한 방편을 행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온갖 방편을 행해서 남을 잘 섭수하는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37도품(道品)의 법을 행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근력(根力)과 각의(覺意)로 애써 정진하는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보살은 법화(法化)를 분류(分流)하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일체의 현명함과 착함을 나타내 보이는 행을 하는 사람이 불국토를 보게 될 것이다. 보살은 8난(難)을 설해서 없애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악도의 온갖 난(難)을 모두 끊음으로써 불국토가 있는 것이다.
009_1008_c_23L菩薩行善㩲方便故於佛國得道一切行權攝人爲善生于佛土菩薩行三十七道品之法故於佛國得道以根意勉進人民生于佛土薩分流法化故於佛國得道一切示現賢善之行得見佛土菩薩說除八難故於佛國得道一切爲斷惡道衆難而有佛土
보살은 스스로 깨달아서 저 수(受)를 비난하지 않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모든 사수(邪受)를 끊음으로써 불국토가 있는 것이다. 보살은 10선(善)의 행을 청정히 닦기 때문에 불국토에서 도를 얻는 것이니, 중생을 여의지 않고 재물이 많고 범행(梵行)을 하고 진실하고 성실한 말을 해서 악도(惡道)를 벗어나고, 부드럽게 말하고 권속을 차별하지 않고 항상 선(善)과 함께하고 질투와 오만이 없고 분노의 뜻을 없앰으로써 정견(正見)으로 깨우친 사람이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009_1009_a_07L菩薩自覺不譏彼受故於佛國得道斷諸邪受而有佛土薩淨修十善之行故於佛國得道不離偶大財梵行誠諦之語免于惡言以柔軟不別眷屬恒與善俱有嫉慢除忿怒意以正見誨人生于佛土
이처럼 동자야, 보살은 이러한 행을 하기에 곧 명예가 있는 것이며, 이미 명예가 있으면 곧 착한 곳에 태어나고, 이미 착한 곳에 태어나면 곧 그 복을 받고, 이미 그 복을 받으면 곧 덕을 나눌 수 있고, 이미 복을 나눌 수 있다면 문득 훌륭한 방편을 행하고, 이미 훌륭한 방편을 행했다면 불국토가 청정해지고, 이미 불국토가 청정해지면 사람과 사물이 청정해지고, 이미 사람과 사물이 청정해지면 청정한 지혜가 있고, 이미 청정한 지혜가 있으면 청정한 가르침이 있고, 이미 청정한 가르침이 있으면 청정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동자야,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싶다면 당연히 청정한 뜻으로 이 같은 행을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뜻을 청정히 함으로써 불국토의 청정을 얻기 때문이다.”
009_1009_a_13L如是童子菩薩以應此行便有名譽已有名譽便生善處已生善處便受其福已受其福便能分德已能分德便行善權已行善權則佛國淨已佛國淨則人物淨已人物淨則有淨智已有淨智則有淨敎已有淨敎則受淸淨如是童子菩薩欲使佛國淸淨當以淨意作如應行所以者何菩薩以意淨故得佛國淨
현자(賢者)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뜻을 청정히 함으로써 불국토의 청정을 얻는다면, 우리 세존께서는 본래 보살이었을 때 뜻이 얼마나 청정하지 못했기에 이 불국토가 이토록 청정하지 못한 것일까?’
009_1009_a_21L賢者舍利弗承佛威神心念是語意淨故得佛國淨我世尊本爲菩薩意豈不淨而是佛國不淨若此
009_1009_b_02L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의 뜻을 아시고 즉시 대답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의 해와 달은 청정한데, 그 빛깔을 보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해와 달의 허물인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009_1009_a_24L知其意卽報言云何舍利弗我日月不見色者豈日月過耶對曰不也非日月過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의 잘못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여래의 불국토가 청정히 장엄되어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 여래의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사리불아, 나의 불국토는 청정하지만 그대가 아직 보지 못한 까닭이다.”
009_1009_b_04L佛言舍利弗咎在衆人無有智慧不見如來佛國嚴淨非如來咎舍利弗我佛國淨汝又未見
변발 범지(梵志)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현자여, 이 불국토가 청정하지 않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나는 석가모니부처님[釋迦文佛]의 불국토가 저 청정한 천궁(天宮)과 같이 청정하게 장엄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009_1009_b_06L編髮梵志謂舍利弗言賢者莫呼是佛國以爲不淨我見釋迦文佛國嚴淨譬如彼淸明天宮
사리불이 말했다.
“나는 이 속에 여러 가지가 섞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커다란 육지에는 검은 산과 돌, 모래 등의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009_1009_b_09L舍利弗言見此中亦有雜糅其大陸地則有黑山石沙穢惡充滿
변발 범지가 대답했다.
“현자여, 잡되고 추악한 뜻을 들었다면, 청정한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서 불국토를 보았을 따름입니다. 당연히 보살들처럼 뜻을 청정히 해서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불국토가 청정함을 볼 것입니다.”
009_1009_b_11L編髮答曰賢者以聞雜惡之意不猗淨慧視佛國耳如菩薩等意淸淨倚佛智慧是以見佛國皆淸淨
이때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자 이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진동하면서 수백천의 진귀한 보배가 쌓여 장엄되고 곳곳마다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비유하면 온갖 보배를 나열해서 청정히 꾸민 여래의 경계와 같아서 한량없는 장엄함과 청정함이 여기에 다 드러났다. 모든 마군들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 찬탄하였으며, 모두가 스스로 보련화(寶蓮華)에 앉아 있음을 보았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불국토가 장엄 청정함을 보고 있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예, 보고 있습니다. 본래 본 적도 없고 본래 들은 적도 없지만, 지금 불국토의 훌륭한 청정이 다 드러났습니다.”
009_1009_b_14L於是佛卽以足指按地此三千大千世界皆爲震動若干百千珍寶積嚴處處校飾譬如衆寶羅列淨好如來境界無量嚴淨於是悉一切魔衆歎未曾有而皆自見坐寶蓮華佛告舍利弗汝且觀此佛國嚴淨對曰唯然本所不見本所不聞今佛國土好淨悉現
009_1009_c_02L“그렇다, 사리불아. 나의 불국토도 이와 같다. 다만 불초(不肖)한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여래는 이 허다한 성냄과 해로움에 따라 불국토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비유하면 모든 천인이 똑같이 금발우[金鉢]로 먹지만 그 복이 많은 자는 손 전체가 스스로 청정한 것과 같다. 이처럼 사리불아, 만약 사람의 뜻이 청정하면 곧 스스로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가 청정함을 볼 것이다.”
009_1009_b_21L舍利弗我佛國如是爲當度不肖人故如來隨此多怒害者現佛國異譬如諸天同金鉢食其福多者擧手自淨如是舍利若人意淸淨者便自見諸佛佛國淸淨
부처님께서 이 불국토의 장엄 청정을 드러냈을 때 8만 4천 명이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고, 장자의 아들인 보사와 5백 동자들도 모두 유순법인(柔順法印)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신족(神足)을 나타내자 이 국토에서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저마다 안주할 곳을 얻었다. 제자인 수행자들과 천인과 사람 3만 2천 명은 세간의 티끌[塵]을 벗어나고 때[垢]를 여의어서 모든 법의 법안(法眼)이 생겼다. 그 8천 명의 비구도 번뇌가 다하고 뜻이 해탈하였다.
009_1009_c_03L當佛現此佛土嚴淨之時八萬四千人發無上正眞道意長者子寶事幷五百童子皆得柔順法忍佛現神足於是國土莫不欣然各得其所弟子行者天與人三萬二千遠塵離諸法法眼生其八千人漏盡意解

2. 선권품(善權品)
009_1009_c_08L維摩詰所說經善權品第二

이때 유야리의 큰 성안에는 유마힐(維摩詰)[한역하면 무구칭(無垢稱)이다.]이라는 장자가 있었다. 과거의 부처님 때부터 이미 행(行)을 이루고 선(善)을 닦아서 본래 법인(法忍)을 얻었으며, 이미 변재(辯才)를 얻었고, 신통이 자유자재였으며, 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마군의 괴롭힘과 원한을 항복받았다. 미묘함에 깊이 들어가고 지혜바라밀에 뛰어났으며,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길에 널리 들어가서 원하는 바를 얻게 했다. 사람의 근기와 명칭과 덕을 나면서부터 구족했으며, 대도를 이루어서 하는 일마다 뛰어났다. 부처님과 성인의 선행을 이미 모두 수립했으며, 바다 같은 각의(覺意)에도 모두 이미 들어갔다. 모든 부처님께서 그를 찬탄했으며, 제자들과 제석천ㆍ범천ㆍ세주(世主)도 공경하였다.
009_1009_c_09L是時維耶離大城中有長者名曰維摩詰漢言無垢稱在先佛已造行修本得法忍已得辯才神通不戲無所畏降魔勞怨深入微妙出於智度無極善權方便博入諸道令得所人根名德生而具足造成大道作事勝佛聖善行皆已得立覺意如而皆已入諸佛咨嗟弟子主所敬
009_1010_a_02L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유야리성에 살면서 방편의 도를 행했으니, 한량없는 재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으며,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악한 계율을 다스렸으며, 인내와 조화의 행으로써 모든 분노를 다스렸으며, 세속에서 정진하여 게으름을 다스렸으며, 선정의 정수(正受)로 미혹의 뜻을 다스렸으며, 지혜의 율(律)을 얻어서 모든 삿된 지혜를 다스렸다. 비록 속인일지라도 사문을 받들어 지켰으며, 지극한 현자의 행을 집에서 살면서 행했고, 무색(無色)에 그치지 않고 아내와 자식을 두었으며, 스스로 즐기는 바가 늘 범행을 닦는 것이었으며, 비록 식솔들이 있어도 항상 한가롭게 지냈으며, 상(相)을 나타내고 몸을 꾸미고 옷을 입고 음식을 먹어도 안으로는 항상 선(禪)의 상태였다.
009_1009_c_18L欲度人故居維耶離矜行權資財無量救攝貧民以善方便諸惡戒以忍調行攝諸恚怒白衣精進攝懈怠者禪定正受攝迷惑意得智慧律攝諸邪智雖爲白衣奉持沙門至賢之行居家爲行不止無色有妻子婦自隨所樂常修梵行雖有家屬常如閑居現視嚴身被服飮食內常如禪
설사 바둑이나 장기 등의 놀이를 하더라도 이는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모든 외도[異道]를 수용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했으며, 성스러운 경전을 떠나지 않고 모든 세속의 가르침의 훌륭한 말을 말미암더라도 법락(法樂)으로 즐겼으며, 모든 사람에게 공경 받는 것을 공양 가운데 제일로 여겼다. 나이 든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능히 기쁘게 했으며, 세간 모든 중생을 다스려서 함께 어울려 지냈으며, 비록 세속의 이익을 얻더라도 기뻐하지 않았으며, 네거리에 나가 노닐더라도 법률을 널리 지켰으며, 왕장(王藏)에 들어가도 모든 강설을 법의 대중에게 했으며, 문득 자신이 가서 보더라도 소도(小道)를 즐기지 않았으며,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라면 자신이 직접 권유해서 무지(無知)를 깨우쳐 주었으며, 모든 음란한 종류에 들어가서도 그 욕망을 없앴으며, 모든 술자리에 들어가서도 능히 그 뜻을 세웠다.
009_1010_a_03L若在博弈戲樂輒以度人受諸異道導以佛敎不離聖典因諸世閒俗敎善語以法樂而樂之一切見敬爲供養中最所有耆舊能喜世閒一切治生諧偶雖獲俗利不以喜悅諸四衢普持法律入于王藏諸講法輒身往視不樂小道諸好學者身往勸誘開童蒙入諸婬種除其欲入諸酒會能立其志
장자(長者)의 부류에 들어가서는 올바른 장자의 뜻으로 능히 법을 즐기게 하였고, 거사의 부류에 들어가서는 올바른 거사의 뜻으로 능히 그 탐욕을 제거했으며, 군자의 부류에 들어가서는 올바른 군자의 뜻으로 능히 인화(忍和)하게 했으며, 범지(梵志)의 부류에 들어가서는 올바른 범지의 뜻으로 고원(高遠)함을 행하도록 했었다.
009_1010_a_11L入長者種長者意能使樂法入居士種正居士能除其貪入君子種正君子意使忍和入梵志種正梵志意使行高
남의 신하가 되어서는 온갖 신하의 뜻을 바로잡고, 단수(端首)를 하고 올바른 도에 들어가게 하고, 임금의 왕자에게 가서는 능히 그 뜻을 바로하게 하고, 효도와 관용과 인애로써 척박한 세속을 솔선해 교화하도록 하고, 귀인(貴人) 속에 들어가서는 능히 고상한 음악으로 교화하여 궁녀를 바로잡고, 서민 속으로 들어가서는 부드러운 뜻과 연민으로 복력(福力)을 진흥시켰다. 제석천[帝釋]에 들어가서는 제석천의 뜻을 바로잡고, 자재한 자가 되어서는 무상(無常)을 나타내 보이고, 범천(梵天) 속에 들어가서는 범천의 뜻을 바로잡아서 범천의 뛰어난 지혜를 능히 나타내게 하고, 사천왕에 들어가서는 사천왕의 뜻을 바로잡아서 능히 모든 천하를 옹호하게 한다.
009_1010_a_15L入人臣中正群臣意爲作端首使入正道入帝王子能正其意以孝寬仁率化薄俗入貴人中能爲雅樂正宮女入庶人中軟意愍傷爲興福入帝釋中正帝釋意爲自在者現無常入梵天中正梵天意能現梵殊勝之慧入四天王正天王意能使擁護一切天下
009_1010_b_02L이처럼 장자 유마힐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훌륭한 방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그가 방편으로 몸에 병을 나타내자, 이 병 때문에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ㆍ많은 신하ㆍ태자와 아울러 나머지 대중들도 와서 문병하였는데, 그 수가 수천 명을 넘어섰다. 그들이 이르자 유마힐은 갑자기 설법을 하였다.
“4대(大)의 몸은 없어지는 법입니다. 어진 자들이여, 이 몸은 무상해서 강하지도 않고 힘도 없고 견고하지도 않으며, 고통을 받고 늙게 되고 병이 들어서 많은 고통과 두려움을 겪습니다. 어진 자들이여, 이 몸은 밝고 지혜로운 자가 믿고 의지할 바가 못 됩니다.
009_1010_a_22L如是長者維摩詰不可稱說善權方便無所不入其以權道現身有疾其疾故國王大臣長者居士群臣子幷餘衆輩從而問疾者無數千人其往者維摩詰輒爲說是四大身爲死亡法諸仁者是身無常爲無强爲無力爲無堅爲苦爲老爲病爲多痛畏諸仁者如此身明智者所不怙
이 몸은 씻어 내릴 수 없는 거품덩어리와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물거품[泡]과 같은 것이며, 이 몸은 갈애(渴愛)와 피로(疲勞)로부터 생기는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중심에 견고함이 없는 파초(芭蕉)와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전도됨의 결과로 받는 허깨비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나는 꿈과 같은 것이며, 이 몸은 행(行)으로 비춰서 나타나는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이 몸은 인연에 따라 변하고 소실되는 메아리 같은 것이며, 이 몸은 고요한 모습이 없는 구름 같은 것이며, 이 몸은 흩어져 버리는 번개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주체가 없는 것이 마치 땅과 같으며, 이 몸은 몸 아닌 것이 불과 같으며, 이 몸은 목숨이 없는 것이 바람과 같으며, 이 몸은 사람이 아닌 것이 마치 물과 같은 것입니다.
009_1010_b_07L是身如聚沫澡浴强忍是身如泡得久立是身如野馬渴愛疲勞是身如芭蕉中無有堅是身如幻轉受報是身如夢其現恍惚是身如影照而現是身如響因緣變失是身如意無靜相是身如電爲分散法身無主爲如地是身非身爲如火身非命爲如風是身非人爲如水
이 몸은 있는 것이 아니니 4대(大)로써 집을 삼는 것이며, 이 몸은 공(空)이라서 나도 없고 성품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이 몸은 나가 없으니 나라는 것은 버려서 여의어야 할 것이며, 이 몸은 장작 묶음이나 힘줄[筋]의 얽힘처럼 세워진 것이며, 이 몸은 참[眞]이 아니니 다만 교묘히 바람이 합한 것이며, 이 몸은 황량하여 더럽고 부패한 것이 쌓인 것이며, 이 몸은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빠르게 썩어서 마멸되는 법입니다. 이 몸은 재난이니 한 번에 백 가지 병이 늘어나며, 이 몸은 늙음이 원수가 되니 늙음의 고통이 극심하며, 이 몸은 궁극에 이르면 당연히 죽음을 맞게 됩니다.
009_1010_b_15L身非有四大爲家是身爲空無我無性無命無人是身無我我者轉離身如束薪筋纏如立是身非眞但巧風合是身爲荒不淨腐積是身爲虛覆速朽爲磨滅法是身爲災一增百病是身老爲怨以老苦極是身爲窮道爲要當死
009_1010_c_02L어진 자여, 이러한 몸에 대해서는 걱정하고 싫증을 내야 하고 반드시 청정하고 음란하지 않은 행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법신에 대해서 저희들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신은 복(福)의 도움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부처님의 몸은 지혜로부터 생긴 것이며, 계품(戒品)ㆍ정품(定品)ㆍ혜품(慧品)ㆍ해품(解品)ㆍ도지견품(度知見品)에서 생긴 것이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로부터 생긴 것이며, 보시와 조의(調意)와 자손(自損)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인욕(忍辱)과 인애(仁愛)와 유화(柔和)로부터 생긴 것이며, 정진을 강행한 공덕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선정을 이해하고 올바로 수용한 데에서 생긴 것입니다.
009_1010_b_22L諸仁者此可患厭發淸淨不婬之行如佛法身吾等當佛法身者從福祐生佛身者從智從戒品定品慧品解品度知見品從慈悲喜護生從布施調意自損從忍辱仁愛柔和生從强行精進功德生從禪解定意正受生
지바라밀[智度無極]과 문덕(聞德)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훌륭한 방편과 지모(智謀)로부터 생긴 것이며, 일체의 모든 바라밀[度無極]로부터 생긴 것이며, 37도품(道品)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신통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지관(止觀)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10력(力)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4무소외(無所畏)로부터 생긴 것이며, 부처님의 18법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모든 악법을 끊는 데서부터 생긴 것이며, 모든 선법을 합쳐서 회통한 데서부터 생긴 것이며, 진리로부터 생긴 것이며, 성실에서 생긴 것이니,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행이 여래의 몸을 이룬 것입니다.
이처럼 어진 자들이여, 반드시 스스로 힘써서 모든 병을 없애고 싶다면, 대도(大道)를 일으켜 행해야 합니다.”
유마힐이 모든 문병 온 자들을 위해 이같이 법을 설하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이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다.
009_1010_c_05L從智度無極聞德生從善㩲方便智謀生一切諸度無極生從三十七道品生從神通生從止觀生從十力生從四無所畏生從佛十八法生從斷一切惡法生從一切善法合會生從諦生從誠生不可計淸淨行爲成如來身如是仁者當自勖勉欲除一切病者當發行大道如是維摩詰爲諸問疾者如應說法令無數千人發無上正眞道意

3. 제자품(弟子品)
維摩詰所說經弟子品第三

이때 장자 유마힐은 스스로 생각했다.
‘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지만 마음으로는 부처님을 염(念)하리라.’
부처님도 유마힐 장자를 불쌍히 여겨서 곧 현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가서 유마힐을 문병하라.”
009_1010_c_15L於是長者維摩詰自念寢疾于牀佛在心佛亦悅可是長者便告賢者舍利弗汝行詣維摩詰問疾
009_1011_a_02L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뵙고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항상 다른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고 있었는데, 그때 유마힐이 와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리불이여, 반드시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은 아닙니다. 현자여, 앉는 것은 반드시 법대로 해야 합니다. 삼계에 몸과 뜻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바로 좌선입니다. 안으로는 뜻이 머무는 바가 없고, 밖으로는 양 극단을 짓지 않는 것이 바로 좌선입니다. 선(禪)에 입각해서 뜻을 멸진(滅塵)하지 않고서도 모든 몸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좌선입니다. 62견(見)에 대해 흔들리지 않고 37품으로 관행(觀行)하고 생사의 수고로움과 더러움에 있으면서도 그런 것들을 짓지 않고 선행(禪行)에 존재하기를 열반과 같이 한다면, 만약 현자여, 이같이 앉고[坐] 이같이 선다면[立] 이를 투철하게 밝은 여래의 좌법(坐法)이라고 합니다.’
009_1010_c_18L舍利弗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憶念我昔常宴坐他樹下時維摩詰來謂我言舍利弗不必是坐爲宴坐也賢者坐當如法不於三界現身意是爲宴坐不於內意有所住不於外作二觀是爲宴坐立於禪以滅意現諸身是爲宴坐於六十二見而不動於三十七品而觀行於生死勞垢而不造在禪行如泥洹若賢者如是坐如是立是爲明曉如來坐法時我
세존이시여, 저는 당시에 이 법을 듣고 묵묵히 있었을 뿐 어떤 대답도 덧붙일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뵙고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1_a_07L世尊聞是法默而止不能加報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현자 대목건련(大目犍連)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1_a_08L佛告賢者大目犍連汝行詣維摩詰問疾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뵙고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소년 거사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와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009_1011_a_10L目犍連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爲諸少年居士說法時維摩詰來謂我言
‘현자여, 재가(在家)에 사는 세속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할 때는 현자처럼 설해서는 안 됩니다. 법을 설하고 싶다면 반드시 법대로 해야 합니다. 법대로라는 것은 사람의 허물을 떠난 것입니다. 즉, 내[我]가 있지 않으니 오염된 티끌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수명이 있지 않으니 생사를 여의었기 때문이며, 사람에게 처하질 않으니 본말의 단절됨이 멸상(滅相)과 같기 때문이며, 음란하지 않으니 걸림이 없기 때문이며, 늙지 않는 데 이르니 모든 작위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형편에 따라 먹으니 모든 손해를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009_1011_a_12L賢者莫爲居家白衣說法如賢者所說說法者當爲如法如法者離人垢不我爲離染塵不有命爲離生死處人爲本末斷如滅相不以婬爲無罣礙至不老爲諸作斷以隨食爲離諸損
009_1011_b_02L 일체를 구원함이 허공처럼 동등하니 싫어하거나 애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내가 없는 것이니 나의 작위를 없앴기 때문이며, 식심(識心)이 없으니 식심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차례가 없으니 비할 바가 없기 때문이며, 인연의 상(相)이니 무등(無等)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법의 정(情)은 올바로 배움이니 모든 정(情)을 바로잡기 때문입니다. 일[事]대로 들어가니 마땅히 들어가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진실한 믿음을 상기하니 모두가 수립이 되어서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며, 흔들림이 없다면 여섯 경계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며, 뭇 사람들에게 조망되지 않으니 당래(當來)로서 머묾이 없기 때문이며, 공(空)이니 올바른 지(止)가 되기 때문이며, 무상(無相)이니 행(行)이 되기 때문이며, 무원(無願)이니 이연(離淵)이기 때문이며, 스스로 들지[擧] 못하니 스스로 수용하지 못하고, 기분(起分)을 여의었기 때문에 집이 없고,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마음이 이미 사라져서 머무는 바가 없고, 또한 마음의 머묾이 없지도 않으며, 이미 지(智) 없음을 얻었으니 온갖 행법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009_1011_a_18L而一切救如空等爲無適莫無吾爲除吾作以無識心爲離識心以無倫爲無有比以因緣相爲入無以法情正學正諸情以如事入應無所入憶識信而皆爲立終始不動不動則六無猗不望於衆人當來無空爲正止無相爲惟行無願爲離不自擧不自容爲離起分而無家眼耳鼻口身心已過無所住亦不無心住已得無知爲離衆行法
현자여, 법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법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법을 설하는 것은 등구(等句)가 되는 것이니, 듣는 자가 당연히 동등하게 듣는데 설하는 것이 등구만 못하다면, 그는 설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니라서 아직 벗어나질 못한 것입니다. 비유하면 환사(幻士)가 환인(幻人)에게 법을 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이런 뜻을 세워야 법을 설하는 것이 됩니다. 사람에 따라 근본의 덕이 응하는 것이니, 마땅히 잘 보는 것으로써 지혜를 나타내고 대자비와 어리석고 허망하지 않은 것으로써 대승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깨달음의 자리로 돌아가서 내적 성품이 청정하고 삼보(三寶)가 끊이지 않도록 즐겁게 법을 설해야 합니다.’
009_1011_b_04L賢者如此何說爲說法法說者爲等句者當等聞說不如等句者彼爲非說爲非聞爲未譬若幻士爲幻人說法當建是意以爲說法隨人本德所應當善見爲現智以大悲不癡妄爲成大乘於佛有反復內性淸淨不斷三樂以是說法說
이 말을 설했을 때, 세존이시여, 8백 명의 거사가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이런 변재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1_b_11L說是語時世尊百居士發無上正眞道意我無此辯是故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현자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1_b_13L佛告賢者大迦葉汝行詣維摩詰問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가난한 마을에서 걸식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와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009_1011_b_15L迦葉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於貧聚而行乞時維摩詰來謂我言
‘현자여, 크나큰 연민이 있기에 대성(大姓)을 버리고 가난한 걸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미 동등한 법시(法施)라면 행하는 바에서 널리 베풀어야 합니다. 먹지 않을 수 있지만, 연민 때문에 걸식을 하는 것이니, 다만 이를 말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마치 빈 마을에 머무는 것처럼 들어간 마을에서는 남녀를 제도하고자 하고, 들어간 성읍에서는 그 종성(種姓)을 알아서 곧 가난한 집을 찾아가서 걸식을 행해야 합니다. 모든 법에 대해서 받는 바가 없어야 하니, 마치 색깔을 보는 것은 장님처럼 하고, 소리를 듣는 것은 메아리처럼 들어야 하고, 냄새를 맡는 것은 바람처럼 맡아야 하고, 음식을 맛보아도 식(識)으로 분별하지 말아야 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다시 즐기질 말아야 하고, 법을 인식하는 것은 허깨비와 같다고 해야 합니다.
009_1011_b_17L如賢者有大哀捨大姓從貧乞當知已等法施普施於所行已能不食哀故從乞如不以言若住空聚所入聚中欲度男女入城邑知其種姓輒詣劣家所行乞於諸法無所受若見色如盲等如聞聲如響等所嗅香如風等所食味不以識得細滑無更樂於識法如幻
009_1011_c_02L이제 지금의 노인은 이미 8사(邪)를 넘어서서 8해(解)를 올바로 수용하여 올바른 정(定)으로써 삿된 정을 초월합니다. 그리하여 걸식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또한 모든 부처님과 성현을 받들고 난 뒤에야 스스로 먹습니다. 이같이 먹는 자는 온갖 번뇌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번뇌를 없애지 않습니다. 선정의 뜻이 있지 않고 선정을 세우는 바도 없습니다. 생사에 있지 않으면서 멸도(滅度)에도 가지 않습니다. 가령 현자여, 음식을 구걸하는 자에게 베푸는 사람은 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한 큰 복이 있는 것도 아니며, 손해를 받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부처님 도[佛道]에 올바로 의거할 뿐 성문의 도에 의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이처럼 어리석음과 망령됨으로 먹지 않아야 나라 속의 베풂[國中施]입니다.’
009_1011_b_24L耆年已過八邪八解正受以正定越邪定以是所乞敬一切人亦以奉敬諸佛賢聖然後自食如是食者非衆勞亦非無勞不有定意亦無所不在生死不住滅度如賢者食所乞與者爲非無福亦非大福爲非耗亦非長益是爲正依佛道不依弟子之道賢者如是爲不以癡妄食國中施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그의 말을 듣고 일체의 보살에게 예(禮)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가명(家名)이 바로 이 같은 변재로써 도를 일으킬 뜻을 권유하니, 저는 이때부터 다시는 사람을 입신시키는 데 성문[弟子]이나 연각[緣一覺]의 행(行)으로 하지 않고, 매사에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배울 것을 사람들에게 권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뵙고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1_c_10L時我世尊聞其說是至未曾有一切菩薩當爲作禮斯有家名乃以此辯勸發道意吾從是來希復立人爲弟子緣一覺行每事勸人學無上正眞之道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장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1_c_14L佛告長老須菩提汝行詣維摩詰問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 발우에다 음식을 채우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009_1011_c_16L須菩提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所以者何憶念我昔入其舍欲乞時維摩詰取我鉢盛滿飯謂我言
009_1012_a_02L‘현자여, 가령 먹는 것을 평등하게 함으로써 모든 법의 평등을 얻는다면, 모든 법이 평등하므로 온갖 베풂의 평등을 얻는다면, 이 같은 걸식을 행한다면 저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현자여, 만약 음란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지 않고 또한 일체의 상(常)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만약 자기 몸을 알지 못하는데도 이미 일행(一行)을 얻어서 밝지 않음이 없다면, 취(趣)에 대한 애착이 있지 않은데도 명도(明度)를 얻지 않는다면, 지극한 죄가 아닌데도 올바로 해탈하고 이미 해탈해서 해탈도 없고 속박도 없다면, 4제(諦)를 보지 않으면서도 진리를 보지 않음이 없다면, 도를 얻지 않았는데도 범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법어가 평범하지 않은데도 참되지도 않고 참되지 않음도 아니라면, 일체에 무법(無法)으로 법상(法想)을 여의어서 행한다면, 부처를 보지도 않고 법을 듣지도 않는다면,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009_1011_c_18L設使賢者於食等者諸法得等諸法等者得衆施等如是行乞爲可取彼若賢者不絕婬怒癡亦不與俱一切若不知己身已得一行爲非不明非趣有愛非得明度亦非極罪正解已解不解不縛不四諦見非不見諦不得道不凡人不凡法語不爲眞非不眞一切無法行離法之想不見佛不聞法
그리고 불란가섭(不蘭迦葉)ㆍ마하리구야(摩訶離瞿耶)ㆍ누아이단기야(婁阿夷耑基耶)ㆍ금리파(今離波)ㆍ휴가전선(休迦旃先)ㆍ비로특니건자(比盧特尼犍子) 등의 스승이 있는데, 현자여, 그 스승의 말씀을 도(道)로 삼고 그 스승을 따르는 자가 모든 견(見)에 머물게 된다면, 또 극단[邊際]에 떨어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거나 8난(難)에 귀의해서 온갖 번뇌에 있게 된다면, 불신(不信)의 더러움으로 생사의 도를 여의지 못한다면, 그리고 뭇 사람들에 대해서도 타인이라는 상(想)을 갖는다면, 만약 현자가 타인이라는 상을 갖기를 저들과 같이 한다면 우제(祐除)가 아니다. 온갖 마(魔)와 손을 잡고 온갖 번뇌를 반려로 삼는다면,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그림자처럼 생각한다면,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고 모든 경전을 비난한다면, 온갖 경전에 의거하지 않고 멸도(滅度)를 얻지 못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만 걸식을 행할 수 있습니다.’
009_1012_a_04L是亦有師不蘭迦葉摩訶離瞿耶婁阿夷耑基耶今離波休迦旃先比盧特尼犍子等賢者彼師說猗爲道從是師者爲住諸見爲墮邊不及佛處爲歸八難爲在衆勞信之垢不得離生死之道然其於衆亦爲他人想若賢者爲他人想如彼者則非祐除也其施賢者爲還衆魔共一手作衆勞侶於一切人若影想者其住如謗諸佛毀諸經不依衆經不得滅度矣當以如是行取乞耶
세존이여, 당시 저는 망연하여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설해야 할지 알지 못하여 곧 발우를 놓아둔 채 그 집을 나오는데,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수보리여, 발우를 가져가시고 두려워 마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자여, 여래께서 상념[想]으로써 설하셨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009_1012_a_14L時我世尊得此罔然不識是何言何說便置鉢出其舍維摩詰言菩提取鉢勿懼云何賢者如來以想而言說乎何爲以懼
제가 두렵지 않다고 말하자,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상념은 허깨비 같은 것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현명한 자는 일체법과 모든 사람이 모두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지혜로운 자는 눈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두려울 바가 없습니다. 모두 문자를 버리고 문자에서 벗어납니다. 해탈의 상(相)이란 것이 바로 모든 법입니다.’
세존이여, 그때 그가 이 말을 하자, 2백 명의 천인이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2_a_18L我言不也維摩詰言想爲幻而自然賢者不曰一切法一切人皆自然乎至於智者不以明著故無所懼悉捨文字於字爲解解脫相者則諸法也當其世尊是語時二百天人得法眼淨故我不任詣彼問疾
009_1012_b_02L부처님께서 빈뇩문타니자(頒耨文陀尼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2_a_24L佛告邠耨文陁尼子汝行詣維摩詰問疾
빈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다른 지방의 큰 나무 아래서 아이행(阿夷行) 비구를 위해 사외(死畏)의 법을 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말을 했습니다.
009_1012_b_03L邠耨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所以者何憶念我昔在他方大樹爲阿夷行比丘說死畏之法時維摩詰來謂我言
‘이 사람에게 뭔가 조치하고자 해서 이 비구에게 뭔가로 가르치려고 하면, 이는 도리어 이 마니(摩尼)의 마음과 격리되는 것이라서 이미 하급의 정행(正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또 사람의 근기를 보지 않고서 그 뜻을 설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니, 함부로 부엌에다 기와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대생사(大生死)에 있으면서 자취에 들어가도록 해야지, 함부로 자기가 지키는 것으로써 멋대로 인도해서는 안 됩니다. 또 이 현자와 모든 비구는 대도(大道)에 머물기로 이미 결정했는데, 어떻게 그 도의 뜻을 잊고서 제자의 행을 일으키겠습니까?’
009_1012_b_06L欲何置此人何以敎此比丘無乃反戾此摩尼之心是已爲下正行又不當以不視人根而說其意也當取使無瘡莫便內坏於竈在大生死可使入迹莫專導以自守又此賢者諸比丘在大道已有決如何忘其道意而發起以弟子行乎
이때 유마힐이 즉시 그 상(像)과 같은 삼매정수(三昧正受)에서 이 비구의 숙명을 염(念)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5백 부처님을 섬기면서 덕의 근본을 세웠고,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가 이미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 도의 뜻으로 말미암아 해설하니, 즉시 모든 비구가 유마힐의 발에 절하면서 예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유마힐이 이 같은 법을 설하자, 모두가 불퇴전(不退轉)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자가 사람을 관찰할 수 있기 전에는 법을 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의근(意根)이 항상 선정에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지(知)와 덕이 불세존과 같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2_b_12L是時維摩詰卽如其像三昧正受是比丘宿命已於五百佛立德本無上正眞道已分布因其道意而爲解說卽時諸比丘稽首禮維摩詰足已爲說如是法皆得不退轉自從是我念弟子未觀察人者不可爲說所以者何不能常定意根原知本如佛世尊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는 장로 가전연(迦旃延)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2_b_20L佛告長老迦旃延汝行詣維摩詰問
009_1012_c_02L가전연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부처님께서는 두 비구를 위해 대강 법을 나타내시고는 곧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나중에 그들을 위해 경의 요체를 설하면서 무상(無常)의 뜻과 고(苦)의 뜻과 공(空)의 뜻과 몸 아닌 것[非身]의 뜻을 말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009_1012_b_22L迦旃延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所以者何憶念昔者佛爲兩比丘粗現軌迹已便入室吾於後爲其說經中要言無常之義苦義空義非身之義時維摩詰來謂我言
‘가전연이여, 행을 기다려서 흥기하는 뜻으로써 법을 설하지 마십시오. 가령 현자여, 생(生)하지도 않고 생한 적도 없고 흥기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무상의 뜻입니다. 5음(陰)이 공하여 일어나는 바가 없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고(苦)의 뜻입니다. 나[我]와 나 없음[非我]이 둘이 아니니, 이것이 비신(非身)의 뜻입니다. 타지 않으면 꺼질 것도 없어서 처음과 끝이 모두 소멸하니, 이러한 멸(滅)이 공(空)의 뜻입니다.’
유마힐이 이렇게 설하자, 그 비구들은 근본 번뇌에서 해탈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2_c_03L迦旃延無以待行有起之義爲說法也都不生不增生不起不滅是爲無常義五陰空無所起以知是是苦義於我不我而不二是非身義不然不爲都滅終始滅是爲空義彼說是其比丘本漏意解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장로 아나율(阿那律)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2_c_10L佛告長老阿那律汝行詣維摩詰問
아나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다른 곳에서 경행(經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정(淨復淨)이라는 범천(梵天)이 천 명의 범지와 함께 나를 찾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내게 절하면서 예를 표한 뒤에 말했습니다.
‘아나율이여, 그대의 천안(天眼)은 얼마나 봅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어진 자여, 저는 삼천대천의 불국토를 손바닥 안에 있는 보관(寶冠)을 보듯이 합니다.’
009_1012_c_12L阿那律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所以者何憶念我昔於他處經行見有梵天名淨復淨與千梵俱來詣稽首作禮問我言幾何阿那律天眼所見我答言仁者吾於是三千大千佛國如於掌中觀寶冠耳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그대의 천안은 몸을 받은 상(相)이 있습니까, 받은 상이 없습니까? 가령 몸을 받은 상이 있다면 외도(外道)의 5신통 등과 함께 하는 것이고, 만약 받은 상이 없다면 상을 받은 자가 없는 것이니, 이 수(數)를 헤아리지 못하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009_1012_c_17L時維摩詰來謂我言云何賢者眼爲受身相無受相耶假使有受身相則與外五通等若無受相無受相者無計數則不有見
009_1013_a_02L저는 당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저 모든 범천은 이제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그의 말을 듣고는 즉시 예를 표하고 물었습니다.
‘세간에 누가 다시 그런 천안이 있습니까?’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부처님이신 세존께서 계십니다. 항상 삼매에 있으면서 선지(禪志)를 희롱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불국토를 다 보면서 스스로 칭찬하며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무리 중에서 5백의 범지가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키고 모두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2_c_21L我時默然彼諸梵聞其言至未曾有卽爲作禮而問言世孰復有天眼維摩詰言有佛世尊常在三禪志不戲悉見諸佛國不自稱說於是衆中五百梵具足發無上正眞道意已皆忽然不現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장로 우바리(優波離)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3_a_04L佛告長老優波離汝行詣維摩詰問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아직 깨달음의 자취도 밟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여래를 찾아뵈려다가 제게 들러 물었습니다.
‘현자여, 아직 깨달음의 자취도 밟지 못한 것이 진실로 부끄럽습니다. 장차 부처님을 찾아뵈려고 하는데, 바라건대 현자께서 이 뜻을 풀어 주십시오.’
009_1013_a_06L優波離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所以者何憶念昔者有兩比丘未踐迹以爲恥將詣如來過問我言賢者未踐迹誠以爲恥欲往見佛賢者解其意
저는 그들을 위해 법어를 나타내서 설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말을 했습니다.
‘우바리여, 가르치는 바로써 그 행을 나무라는 해석은 하지 마십시오. 또 현자여, 아직 깨달음의 자취를 밟지 못한 자는 안에 머물지도 않고 밖을 계교하지 않으며, 둘 사이에서 얻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본래 여래의 뜻으로 번뇌 있는 사람이 번뇌를 다루고자 한 것입니다. 악한 뜻을 이미 해결해서 그 뜻에 의거하게 된 자는 또한 안에 머물지도 않고 밖에 머물지도 않으며, 둘 사이에서도 얻지 못합니다. 그 뜻이 그러하다면, 아직 깨달음의 자취를 밟지 못한 것도 역시 그러하며, 모든 법도 역시 그러하며, 사물이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도 그러합니다. 마치 우바리의 뜻이 청정한 것처럼 청정한 뜻을 뜻하는 것으로 해탈을 삼습니다. 이를 다시 오염시킬 수 있고, 다시 청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009_1013_a_10L吾則爲之現說法語維摩詰來謂我言優波離莫釋以所誨而詭其行也賢者未踐迹者不內住不外計亦不從兩閒得所以者何此本爲如來意欲爲勞人執勞惡意已解意得依者亦不內不外不從兩閒得如其意然未迹亦然諸法亦然轉者亦然優波離意之淨意淨意爲解寧可復污復使淨耶
제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니,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가령 성품의 청정함은 자취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일체의 모든 법과 일체 사람의 뜻은 사념으로부터 더러워집니다. 청정으로 더러움을 관하여서 전도됨이 없다면, 청정이 또한 나의 더러움 등과 함께하는 것이니, 더러움과 청정한 성품, 청정한 성품과 분(分)에 따라 일어남이 한결같이 머무는 바가 없습니다. 또 일체의 법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물속에 있는 달의 형상과 같아서 일체 모든 법이 뜻에 따라 형상을 낳습니다. 이를 아는 자를 계율을 받든다고 하고, 이를 아는 자를 잘 이해한다고 합니다.’
009_1013_a_18L不也維摩詰言如性淨與未迹切諸法一切人意從思有垢以淨觀無倒與淨亦我垢等穢濁與淨性淨性與起分一無所住一切法可知見者如水月形一切諸法從意生其知此者是爲奉律其知此者爲善解
009_1013_b_02L그러자 두 비구가 말했습니다.
‘최상의 지혜입니다. 우바리도 미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우바리는 부처님의 높은 계율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능히 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래를 제외하고는 제자와 보살의 변재로도 의심을 분석하는 데 이처럼 총명한 자가 없다.’
009_1013_b_02L於是兩比丘言上智哉是優波離不及也持佛上律而不能說答言自捨如來未有弟子及菩薩才析疑如此聰明者也
두 비구는 의심을 풀고서 문득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다시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변재의 이익을 얻는 것이 모두 이와 같도록 하소서.’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3_b_05L兩比丘疑解便發無上正眞道意復言曰令一切人得辯才之利皆如是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는 현자 라운(羅云)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3_b_08L佛告賢者羅云汝行詣維摩詰問疾
라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당시 모든 장자의 아들이 저를 찾아와 제 발에 예를 표하고는 물었습니다.
‘라운이여,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습니다. 출가를 하는 것에는 어떤 영예가 있습니까?’
009_1013_b_09L羅云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以者何憶念昔時諸長者子來禮我問我言羅云汝佛之子捨轉輪王出家爲道其出家者有何榮冀
저는 즉시 사실대로 사문의 영예를 설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라운이여, 사문의 영예를 설할 때 현자와 같이 설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영예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어서 사문이 되고 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운이여, 출가란 저[彼]도 이[此]도 중간도 떠나는 것이며, 열반[泥洹]의 자취이며, 모든 밝은 지혜를 받는 것이며, 모든 성현(聖賢)을 불러들이는 것이며, 마의 무리들을 항복시켜서 5도(道)에 들어가는 것이며, 5안(眼)을 청정히 하고, 5력(力)을 받아들이고, 5근(根)을 세우는 것입니다. 피안으로 건너가서 이학(異學)을 교화하고, 올바른 인도로서 수렁에 빠진 자를 건지고, 내가 없음으로서 저[彼]도 받아들이지 않고, 흥기함이 없이 순(順)을 따라서 모든 분란(忿亂)을 끊고, 자기의 뜻을 항복받아 저 뜻을 획득하고, 종성(種姓)을 소멸하여 커다란 배움을 여니, 이 때문에 사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동자들에게 이 자연의 법과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을 가르치니, 모든 동자들이 말했다.
‘거사여, 부처님께서는 부모의 뜻을 어기고 도를 닦지는 말라고 가르쳤다고 저희들은 들었습니다.’
009_1013_b_13L我卽爲如事說沙門之榮冀時維摩詰來謂我言羅云說沙門之榮冀不當如賢者所說所以者何匪榮匪冀故爲沙門爲道者羅云離此彼中迹於泥受諸明智招諸聖賢降伏衆魔五道淨五眼受五力立五根度彼岸化異學爲正導拯淤泥爲無我無彼無起隨順絕諸忿亂降己志護彼滅種姓開大學爲是故作沙門敎是諸童子此自然法佛興難値童子言居士我聞佛不敎人違親爲
009_1013_c_02L유마힐이 말했습니다.
‘그렇다. 마땅히 청정함을 관(觀)해서 보살의 뜻을 일으켜야 하니, 이미 그렇게 행한 자라면 집을 떠나는 견고한 뜻을 얻을 수 있다.’
그때 장자의 아들 서른두 명은 모두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3_c_02L維摩詰言當觀淸淨發菩薩意已應行者可得去家堅固之志卽時三十二長者子皆發無上正眞道意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현자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3_c_05L佛告賢者阿難汝行詣維摩詰問疾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세존의 몸에 사소한 중풍(中風)이 있어서 소의 젖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에 유야리성에 들어가서 대성(大姓)의 범지 집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자 아난이여, 어째서 새벽에 발우를 들고 이곳에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거사여, 부처님의 몸에 사소한 중풍이 있어서 소의 젖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009_1013_c_06L阿難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以者何憶念昔時世尊身小中風用牛湩我時晨朝入維耶離至大姓梵志門下住時維摩詰來謂我言者阿難何爲晨朝持鉢住此我言佛身小中風當用牛湩故我到此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아난이여,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여래의 몸은 금강의 수(數)라서 온갖 악을 이미 끊고 모든 선을 널리 회통했는데,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잠자코 떠나시오. 아난이여, 여래를 비방하지 말고 그런 말을 삼가서 다시는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대존(大尊)인 신묘(神妙)의 천인으로 하여금 그런 말을 듣게 해서는 안 되며, 다른 곳에 있는 모든 회상의 보살도 듣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009_1013_c_12L維摩詰言止止阿難莫作是語來身者金剛之數衆惡已斷諸善普當有何病默往阿難勿謗如來愼莫復語無使大尊神妙之天得聞此也他方佛國諸會菩薩且得聞焉
그리고 아난이여, 전륜성왕은 근본의 덕 때문에 오히려 자재함을 얻었는데, 하물며 남에게 일체의 덕을 베푸는 여래의 지극하고 참된 등정각(等正覺)의 한량없는 복회(福會)가 매우 뛰어난 자이겠습니까? 가십시오, 아난이여. 더 이상 부끄럽게 하지 마십시오. 외도와 이학(異學)으로 하여금 ≺어찌 나의 스승이라 부르겠습니까? 스스로의 병도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병든 사람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라는 거친 말을 듣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빨리 떠나 말이 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009_1013_c_17L且夫阿難轉輪聖王用本德故尚得自在豈況一切施德於人而爲如來至眞等正覺無量福會普勝者哉行矣勿爲羞恥莫使外道異學聞此麤≺何聞我師自疾不能救安能救諸疾人所欲≻疾行莫復宣言
009_1014_a_02L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아난이여. 여래의 법신은 사념이나 욕망의 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세존이 되어서 모든 세간을 벗어났으며, 부처님의 몸은 번뇌[漏]가 없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했으며, 부처님의 몸은 수(數)가 없으며, 온갖 행이 이미 제거되었으니, 그 병은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009_1013_c_23L當知阿難如來法身非思欲身佛爲世尊過諸世閒佛身無漏諸漏已盡佛身無數衆行已除其病有以
세존이시여, 당시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해서 부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난이여, 거사의 말대로다. 다만 부처님은 5탁(濁)의 세상에 출현했기 때문에 이 같은 병의 상(像)을 보임으로써 일체의 탐욕스럽고 곤궁한 행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아난이여, 빨리 가거라. 젖을 얻으려 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4_a_03L時我世尊大自慚懼得無近佛而過聽卽聞空中聲是阿難如居士之所言但爲佛興於五濁之世故以是像開解一切貪貧之行便行阿難取湩莫慚故我不任詣彼問疾
이처럼 상수(上首)인 5백 제자가 모두 자기들이 본래 겪었던 것을 설하였고, 모두가 부처님을 향해 유마힐의 아름다운 말을 칭송하며 술회하였다.
009_1014_a_08L如是上首五百弟子說本所作一切向佛稱述維摩詰之美言

4. 보살품(菩薩品)
維摩詰所說經菩薩品第四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4_a_10L於是佛告彌勒菩薩汝行詣維摩詰問疾
미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도솔천에서 모든 천인들을 위해 법어(法語)를 강의했는데, 보살과 대인(大人)의 불퇴전지(不退轉地)의 행을 설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009_1014_a_12L彌勒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所以者何憶念我昔於兜術天上爲諸天人講法語說菩薩大人不退轉地之行時維摩詰來謂我言
009_1014_b_02L‘존자 미륵이여,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으신데, 세존께서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수기하신 것은 어느 생(生)에서 얻은 것입니까? 미륵이여, 과거입니까,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과거라는 것은 생이 멸진했고, 미래라는 것은 대(對)할 것이 없으며, 현재는 머묾이 없습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명생(冥生) 비구에게 이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늙고, 이렇게 병들고, 이렇게 죽으니, 이렇게 끝나고 이렇게 시작한다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아울러 아직 생하지 않은 것과 앞으로 생할 그 둘은 무생(無生)이 아닙니까? 이로 말미암아 논한다면, 무생으로부터 최정각(最正覺)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수기를 받았습니까? 미륵이여, 진여(眞如)가 일어남으로부터 받았습니까, 진여가 소멸함으로부터 받았습니까? 그러나 진여라는 것은 생기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진여이고, 일체 법도 진여이고, 모든 성현도 진여이고, 미륵에 이르러서도 진여입니다.
009_1014_a_15L卿彌在一生補處世尊所莂無上正眞道者爲用何生得彌勒決用過去耶當來耶現在耶去者生盡未來無對現在無住如佛說冥生比丘曰≺是生是老是病是死是終是始及未生與當生此兩者非無生耶≻由是論之從無生得最正覺然則何用記彌勒決從如起耶從如滅耶夫如者不起不滅一切人皆如也一切法亦如也衆聖賢亦如也至於彌勒亦如也
위없는 정진의 도를 수기 받은 것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얻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여라는 것은 자기가 된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타자라고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륵이 최정각을 성취한 자라면, 모든 사람도 당장에 따라서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당장에 도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륵이 멸도(滅度)한 자라면, 모든 사람도 당장에 멸도합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뭇 사람들을 버리고서 혼자 멸도하지 않고 반드시 모든 범부를 구제하고 멸도하기 때문입니다.
009_1014_b_03L記莂無上正眞道者則一切人爲得決矣所以者何如者不稱爲己亦無他稱說如彌勒成最正覺者一切人民亦當從覺所以者何一切人民從覺道故如彌勒滅度者一切人民亦當滅度所以者何如來者不捨衆人獨滅度也必當滅度諸凡夫故
존자 미륵이여, 천인과 이야기를 할 때, 때가 아닌데 하지 마십시오. 부처라는 것은 가지도 않고 또한 돌아옴도 없습니다. 만약 미륵이여, 이 모든 천인이 도(道)를 보고자 염(念)한다면, 도를 행하는 것에 천착해야지 몸을 쫓아서도 안 되고, 정각(正覺)을 쫓아서도 안 되고, 또한 뜻을 쫓아서도 안 됩니다. 모두 멸진한 것이 부처이니, 일체가 화(化)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009_1014_b_10L彌勒與天人談莫爲非時佛者無往亦無還反彌勒此諸天人念欲見則爲穿行道不從身不從正覺不從意也都滅哉佛一切如化
비할 바가 없는 것이 부처이니, 일체가 업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위(無爲)가 부처이니, 일체에 미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절한 것이 부처이니, 일체를 멀리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없는 것이 부처이니, 모든 수(受)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잡되지 않음이 부처이니, 오직 하나의 지(智)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즐기는 것이 부처이니, 뭇 생각한 바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말이 없는 것이 부처이니, 모든 집착에 대해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머묾이 부처이니, 법의 실정(實情)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널리 들어가는 것이 부처이니, 스스로 그러한 여(如)이기 때문입니다.
009_1014_b_14L無比佛一切造業無爲哉佛一切不惑以斷哉佛一切遠離無欲哉佛於諸受盛不雜哉佛都以一智兼樂哉衆所思樂無言哉佛諸著不著住哉佛以法情住普入哉佛自然如也
둘이 아닌 것이 부처이니, 상대적인 법을 이미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수립하는 것이 부처이니, 진실한 믿음을 쌓기 때문입니다. 평등한 것이 부처이니, 허공처럼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수(數)가 없는 것이 부처이니, 기분(起分)의 처소를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저[彼]를 아는 것이 부처이니, 뭇 사람의 의행(意行)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上)이 부처이니, 모든 입(入)에 탐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얽히지 않는 것이 부처이니, 가까운 옥(獄)의 번뇌를 끊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스승이 부처이니, 비할 바 없는 것으로써 교화하여 일체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009_1014_b_19L二哉佛二法已離立哉佛積誠信佛如空等無數哉佛離起分處彼哉佛衆意行知上哉佛諸入不貪不會哉佛近獄勞斷聖師哉佛以無比化將導一切
009_1014_c_02L 명칭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부처이니, 이미 진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색(色)이 없는 것이 부처이니, 청정함과 더러움을 이미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것이 부처이니, 본성이 이미 맑기 때문입니다. 밝음이 부처이니, 자연히 이미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수(受)가 없는 것이 부처이니, 온갖 그물이 이미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많음이 아닌 것이 부처이니, 모든 법이 등각(等覺)이기 때문입니다. 유(喩)가 없는 것이 부처이니, 색호(色好)를 이미 버렸기 때문입니다. 묘함이 부처이니, 깨달은 바가 매우 고원하기 때문입니다.’
009_1014_b_24L非現名哉佛已諦見無色哉佛淨穢已離順哉佛本性已明哉佛自然已淨無受哉佛衆網已裂不多哉佛諸法等覺無喩哉色好已捨妙哉佛所覺甚遠
세존이시여, 당시에 이 법을 설하자 저 모든 천인들 중에서 2백의 천인이 모두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4_c_05L當其說是法時彼諸天衆二百天人皆得不起法忍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광정 동자(光淨童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4_c_07L佛告光淨童子汝行詣維摩詰問疾
광정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유야리 큰 성을 나가고 있는데, 그때 유마힐은 성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예를 표하고는 물었습니다.
‘거사여, 어디에서 오십니까?’
유마힐이 제게 답했습니다.
‘나는 도량에서 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도량이란 어떤 곳입니까?’
009_1014_c_08L光淨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以者何憶念我昔出維耶離大城維摩詰方入城我卽爲作禮而問言居士所從來答我言吾從道場來道場者何所是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무생(無生)의 마음이 도량이니, 한결같이 악의(惡意)를 검사하기 때문입니다. 순박하고 순수한 마음이 도량이니, 증상(增上)을 익히기 때문입니다. 성현의 마음이 도량이니, 아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도의(道意)의 마음이 도량이니, 버리는 것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시의 마음이 도량이니, 과보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율을 지니는 마음이 도량이니, 바람[願]이 구족됨을 얻기 때문입니다. 인욕의 마음이 도량이니, 뭇 사람들을 혼란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진의 마음이 도량이니, 물러나는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사(禪思)의 마음이 도량이니, 의행(意行)을 내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마음이 도량이니, 지혜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009_1014_c_13L道場者無生之心是檢一惡意故淳淑之心是習增上故聖賢之心是往殊勝故道意之心是不忘捨故布施之心是不望報持戒之心是得願具故忍辱之心不亂衆人故精進之心是無退意禪思之心是意行出故智慧之心慧眼見故
자비로운 마음이 도량이니, 뜻을 평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연민의 마음이 도량이니, 고통을 인내하기 때문입니다. 기뻐하는 마음이 도량이니, 법으로써 사람을 즐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수호하는 마음이 도량이니, 인도[導]하는 대로 집착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신통의 마음이 도량이니, 6신통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직 힘쓰는 마음이 도량이니, 성냄이 없기 때문입니다. 멸진의 마음이 도량이니, 사람들을 제도하기 때문입니다.
009_1014_c_20L慈心則是爲等意故心則是爲忍苦故喜心則是以法樂樂人故護心則是爲隨導捨著故通之心是得六通故惟務之心是恚怒故滅心則是度人民故
009_1015_a_02L 네 가지 은혜의 마음이 도량이니, 사람을 합취(合聚)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듣는 마음이 도량이니, 받아서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내지 않음이 도량이니, 자연 그대로 관(觀)하기 때문입니다. 도품법(道品法)의 마음이 도량이니, 수(數)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도량이니, 모든 세간의 과보가 쌓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기(緣起)의 마음이 도량이니, 무명[不明]으로부터 늙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009_1014_c_24L四思之心是合聚人故多聞之心是從受成不生之心是如自然觀故道品法心是不著數不墮故諦心則是諸世閒報已不積故緣起之心是以不明不可盡至於老死皆無盡故
온갖 번뇌의 고요함이 도량이고, 부처를 쫓음이 도량이니, 최고의 정각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마음이 도량이니, 사람과 사물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의 마음이 도량이니, 공(空)으로부터 최고의 정각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모든 마(魔)를 항복시키는 마음이 도량이니, 기울어서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계의 터전이 도량이니, 비록 처하더라도 욕망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자좌의 터전이 도량이니, 아주 뛰어난 무외(無畏)이기 때문입니다. 역(力)과 무외의 터전이 도량이니, 모든 어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3달(達)의 지혜가 도량이니, 여타의 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의각(一意覺)의 터전이 도량이니, 일체지(一切智)를 널리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009_1015_a_06L衆勞之靜是佛從是最正覺故衆生之心是以人物自然故諸法之心是從空最正覺故伏諸魔心是以不傾動故界之場是雖處不墮欲故師子座場善勝無畏故力無畏場是一切無難故三達之智是無餘罣礙故一意覺場是一切智普具故
이처럼 어진 자여, 보살이 만약 바라밀[度無極]에 감응하고, 감응대로 사람을 교화하고, 감응대로 법을 받아서 근본의 사호(祠護)로 욕망에 떨어지지 않는 자라면, 이는 모두 불심(佛心)으로부터 와서 모두 불법을 세운 것입니다.’
009_1015_a_13L如是仁者薩若應諸度無極如應化人如應受法已得本祠護不墮欲者是爲一切從佛心來立於一切佛法矣
세존이시여, 당시 이 말을 설하자 5백의 천인과 사람이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5_a_16L當其說是語時有五百天與人發無上正眞道意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지인(持人)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5_a_18L佛告持人菩薩汝行詣維摩詰問疾
009_1015_b_02L지인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제가 방에 있을 때, 천마(天魔) 파순이 옥녀(玉女) 1만 2천 명을 데리고 제석천의 모습으로 가장해서 풍악을 울리며 제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제 발에 절을 하고 그 권속과 함께 나에게 공양한 뒤에 한쪽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그를 제석천으로 생각해서 찬미하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시오. 구익(拘翼)이여, 비록 복이 있더라도 마땅히 스스로 자만해서는 안 되며, 일체의 욕락(欲樂)을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잃음이 많은 것으로 관해서 덕의 근본을 닦아야 합니다.’
009_1015_a_19L持人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以者何憶念我昔自於室住天魔波旬從玉女萬二千狀如帝釋鼓樂弦來詣我室稽首我足與其眷屬共供養我已於一面住我意謂是天帝釋讚言善來拘翼雖福應有不當自恣一切欲樂當觀非常無强多失當修德本
마군이 말했습니다.
‘정사(正士)여, 이 1만 2천 명의 옥녀를 받아들여서 쓸고 닦는 데 부리도록 하시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구익이여, 남을 홀리는 요사한 것들을 주셔서는 안 됩니다. 저는 석가의 제자이며, 이런 일은 저에겐 온당하지 않습니다.’
009_1015_b_04L魔言正士受是取此萬二千女可備掃灑我言拘翼無以此妖蠱之要我釋迦弟子此非我宜
그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족성자(族姓子)여, 그 같은 오염된 뜻을 일으켜선 안 됩니다. 이 자는 마군으로서 당신을 희롱하고 있을 뿐이지, 제석천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유마힐은 파순에게 말했습니다.
‘이 옥녀들을 내게 주시오. 나는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석가의 제자가 아니니까요.’
009_1015_b_06L時維摩詰來謂我言族姓子莫於是起污意是爲魔來嬈固汝耳非帝釋也維摩詰言波旬以此與我如我應受莫與釋迦弟子
파순은 곧 두려웠습니다. 그는 유마힐이 끝내 자기를 돕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형체를 숨겨 떠나려고 했지만 숨을 수가 없었으며, 그 신형(神形)을 다 드러내고 끝내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파순아, 옥녀를 그에게 주어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파순이 두려웠기 때문에 억지로 옥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파순은 그대들을 내게 주었으니, 나는 그대들이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키도록 하겠소.’
009_1015_b_10L魔卽恐懼維摩詰必不助我欲隱形去而不能隱盡現其神了不得去而聞空中聲曰波旬以玉女與之乃可得去魔以畏故强與玉維摩詰言魔以女與我今汝當發無上正眞道意
모든 옥녀들이 말했습니다.
‘이미 이 같은 도를 따르는 가르침으로 큰 도의 뜻을 일으켰으니, 무엇을 스스로의 즐거움이라 하겠습니까?’
유마힐이 답했습니다.
‘그대들이 문득 위없는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으니, 법락(法樂)를 즐기는 것이 스스로의 즐거움이 될 수 있소. 그대들은 다시는 욕망의 쾌락을 즐기지는 않을 것이오.’
009_1015_b_15L諸玉女言其已如是從道之敎發大道意者當何以自娛答言汝等便發無上正眞道意樂法之樂可以自娛汝等得之不復樂欲樂也
옥녀들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법락이라 합니까?’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기쁨이 부처를 여의지 않는 즐거움이며, 진리의 법을 듣는 즐거움이며, 항상 대중을 공양하는 즐거움이며, 삼계에 의거하지 않는 즐거움이며, 삼계를 싫어하지 않는 즐거움입니다. 욕망의 무상함을 아는 즐거움이며, 종자를 독사처럼 관(觀)하는 즐거움이며, 도를 수호하는 뜻을 따르는 즐거움이며, 모든 사람과 사물을 편안하게 하는 즐거움이며, 사람들을 예의로써 공경하는 즐거움입니다. 모든 소유를 베푸는 즐거움이며, 진인(眞人)의 계율을 받드는 즐거움이며, 인내로 참을성 없는 사람을 다스리는 즐거움이며, 정진력으로 덕행의 근본을 아는 즐거움이며, 선(禪)을 잘 행하는 즐거움이며, 지혜가 깊고 고요한 즐거움입니다.
009_1015_b_19L卽問何謂法樂維摩詰言樂於喜不離佛樂於諦聞法樂常供養衆樂不倚三界樂於三界不嫉知欲無常樂觀種爲毒蛇樂隨護道樂安諸人物樂以禮敬人樂施諸所有樂奉眞人戒樂忍調不忍樂精進力知行德本樂禪善行樂智慧淵
009_1015_c_02L 진리를 널리 알리는 즐거움이며, 악마를 억제하는 즐거움이며, 번뇌를 교화하는 즐거움이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즐거움이며, 상호(相好)로써 모두 회통하여 교화하는 즐거움입니다. 도량을 장엄하는 즐거움이며, 세 가지 해탈문의 즐거움이며, 열반의 길을 가는 즐거움이며, 깊은 법에 들어가는 것을 즐기지만 비시(非時)를 즐기지 않는 것이며, 스스로 그러한 사람[自然人]과 가까이 지냄을 즐기지만 진리가 아닌 것에 분노하는 일은 즐기지 않는 것이며, 착한 벗과 가까이하는 즐거움이며, 나쁜 친구를 멀리하는 즐거움이며, 좋아하고 기뻐하는 즐거움이며, 도품(道品)의 법을 헤아리지 않는 즐거움이니, 이것이 보살이 즐기는 법락으로서 그것으로 스스로 즐기는 것이오.’
009_1015_c_02L樂廣宣佛樂抑制魔樂化塵勞樂佛國淨樂以相好合會敎化樂嚴道場樂三脫門樂泥洹道樂入深法不樂非時樂習自然人不樂怒不諦樂習善友樂遠惡友樂於好喜樂無有量道品之法是爲菩薩樂法之樂而以自娛
이때 파순이 모든 옥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옥녀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거사님과 함께 있겠습니다. 우리는 법락의 즐거움을 깊이 즐길 뿐 더 이상 욕망의 쾌락은 즐기지 않습니다.’
파순이 말했습니다.
‘거사여, 이 옥녀들을 놓아 주십시오. 이미 소유한 것을 상대에게 베푸는 자가 바로 보살입니다.’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놓아 주었으니, 그대가 데리고 떠나시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법행(法行)을 준수하여 원하는 바를 모두 얻게 하시오.’
009_1015_c_09L於是波旬謂諸玉女我欲與汝俱還天上以我等與此居士樂法之樂我等甚樂非復樂欲樂也波旬可捨居士此諸玉女已其所有施於彼者是爲菩薩維摩詰言我已捨汝便將去使一切人遵承法行願皆得
모든 옥녀들이 즉시 예를 표하면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마천(魔天)에 머물러야 합니까?’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자매들이여, 무진(無盡)이란 이름을 가진 천인이 있는데, 항상 법문을 열고 있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오. 무엇을 무진(無盡)이 법문을 여는 것이라 하는가? 비유하면 등불 하나로 수십만의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소. 그렇게 되면 어둠이 다 밝아져서 그 밝음이 끝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오.
009_1015_c_15L諸玉女卽作禮而問言我當云何止於魔天維摩詰言諸姊有天名曰無盡常開法門當從彼受何謂無盡開法門者譬如一燈燃百千燈冥者皆明明終不盡
009_1016_a_02L이처럼 자매들이여, 무릇 한 보살이 도로써 수십만의 보살을 개도(開導)하면, 그 도의 뜻이 끝까지 마르지 않고 더욱더 늘어나고, 그 결과 공덕이 그들을 인도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지 않은 것이오. 이 때문에 이름하여 무진이 늘 법문을 연다고 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따르면서 받아들여야 하오. 마계(魔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자와 옥녀들 중에는 이 도의 뜻이 그대들과 같지 않은 자가 있으니, 여래에 대한 법을 반복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설하시오.’
그러자 파순과 권속이 모두 사라졌으니, 유마힐이 감동시키는 바가 이러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009_1015_c_19L如是諸姊夫一菩薩以道開導百千菩薩其道意者終不盡耗而復增益於是功德不以導彼彼故而有盡耗是故名曰無盡常開法門汝等當從其受魔界無數天子玉女未有可此道意如汝等者於如來爲有反復法爲一切人說已魔眷屬皆去維摩詰所感動如是故我不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 선현(善見)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6_a_04L佛告長者子善見汝行詣維摩詰問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예전에 저는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7일 간이나 계속되는 성대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제단[祠壇]에 들어와서 제게 말을 했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제사를 벌일 때는 뭇 사람들과 같은 제사를 벌여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법사(法祠)를 해야 합니다. 어찌 이런 생각으로써 제사를 하려 합니까?’
009_1016_a_06L善見白佛言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在諸父舍盛祀大祀至于七日時維摩詰來入祠壇謂我言長者子不當祀祠如衆人祠當祀法祠何用是思欲祠爲
제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법의 제사입니까?’
유마힐이 대답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근본적인 행이 없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을 공경하고 보살피는 것을 법사라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입니까?’
009_1016_a_10L我問如爲法之祠祀維摩詰言其爲祠者無本行故敬待衆人是則法祠爲之奈何
‘이른바 불사(佛事)를 해서 자애를 끊지 않는 것이며, 인사(人事)를 해서 연민을 끊지 않는 것이며, 법사(法事)를 해서 기쁨을 끊지 않는 것이며, 지혜의 힘으로써 수호를 끊지 않는 것이며, 보시를 해서 단(檀:보시)을 끊지 않는 것이며, 사람들을 타이르고 교화해서 계율을 끊지 않는 것이며, 비아(非我)임을 알아서 인(忍)을 끊지 않는 것이며, 몸과 뜻을 행하여 정진을 끊지 않는 것이며, 도사(道事)를 사유해서 선사(禪思)를 끊지 않는 것이며, 널리 들어서 지혜를 끊지 않는 것입니다.
009_1016_a_13L爲佛事不斷慈爲人事不斷爲法事不斷喜爲慧力不斷護布施不斷檀戒化人不斷律知非我不斷忍身意行不斷精進惟道事不斷禪思爲博聞不斷智慧
보시를 하되 베푼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해서 공(空)의 사유를 끊지 않는 것이며, 세속의 수(數)를 행하는 가운데 무상(無想)을 끊지 않는 것이며, 타락된 곳에 태어나도 무원(無願)을 끊지 않는 것이며, 정법을 보호하고 지녀서 역행(力行)을 끊지 않는 것이며, 은혜로 사람을 회통하여 수명을 끊지 않는 것이며, 사람을 아는 것이 여여(如如)해서 겸손과 공경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009_1016_a_17L若無施不斷惟空行俗數中不斷無想在所墮生不斷無願護持正法不斷力行恩會人不斷壽命知人如如不斷謙
덕의 근본을 견고히 해서 명재(命財)를 끊지 않는 것이며, 여섯 가지 사념으로 그 염(念)을 끊지 않는 것이며, 여섯 가지 견고한 법을 행해서 배움의 뜻을 끊지 않는 것이며, 정수(正受)를 닦아서 정명(淨命)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호희(好喜)를 행해서 진(眞)을 익힘을 끊지 않는 것이며, 뜻을 단절하여 낳지 않음으로써 어리석은 사람은 버리지 않는 것이며, 사문이 되어서 정성(正性)을 끊지 않는 것이며, 잘 외우고 받아들여 배우는 덕을 끊지 않는 것이며, 산택(山澤)에서 법을 받아서 한거(閑居)를 끊지 않는 것입니다.
009_1016_a_21L堅其德本不斷命財爲六思念不斷其念行六堅法不斷學意修正受不斷淨命行好喜不斷習眞斷意不生不斷愚人爲沙門不斷正性善諷受不斷聞德山澤受法不斷閑居
009_1016_b_02L 염(念)이 부처님의 지혜를 낳아서 연좌(宴坐)를 끊지 않는 것이며, 일체의 번뇌를 다스려서 현명함을 끊지 않는 것이며, 상호를 꾸미고 불국토를 장엄하여 복행(福行)을 분부(分部)함을 끊지 않는 것이며, 뭇 사람의 행을 따라 법을 설함으로써 지혜를 분부함을 끊지 않는 것이며, 온갖 번뇌와 재액을 끊고 모든 불선(不善)의 법을 끊어서 일체 덕의 근본을 분부함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일체지의 각(覺)과 일체 선법(善法)을 구족해서 끊지 않으며, 도품(道品)의 정법으로 일체를 품으니, 이것이 법사(法祠)입니다. 보살이 법사를 세운다면 사사(祠祀)를 얻는 것이니, 가장 뛰어난 복으로서 세간의 최고가 됩니다.
009_1016_b_02L生佛慧不斷宴坐爲一切勞不斷賢行地嚴飾相及佛國不斷分部福隨衆人行而爲說法不斷分部智斷衆勞厄諸不善法不斷分部一切德本一切智覺一切善法具足不以道品正法懷來一切是爲法之祠祀菩薩立法祠者爲得祠祀最偶之福爲世間上
세존이시여, 이 법을 설하자 범지의 무리들 중 2백의 바라문이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저 역시 당시에 너무나 기이해서 정사(正士:보살)의 높은 행실을 이해하게 되자, 즉시 수십만 금의 목걸이를 풀어서 바쳤습니다. 그러나 유마힐은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목걸이를 취해서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은 목걸이를 받아 둘로 나누어서 사(祠)의 모임대로 했습니다. 즉 한쪽을 모든 열등한 나라 안의 곤궁한 사람에게 주고, 또 하나는 저 두바변(頭波變)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대중들과 국토를 보게 하였으니, 두바변[한역하면 고수(固受)이다.]의 그 나라의 명칭은 염기(炎氣)로서 모든 사람들이 구슬 목걸이가 그 나라에 걸려서 그 부처님의 구슬이 영롱하게 빛나는 누각으로 변하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미 그 조화를 보았고, 그 말을 들었습니다.
009_1016_b_10L當其世尊說是法時梵志衆中二百婆羅門發無上正眞道意我時甚自雅奇得與正士高行者會便解頸百千珠瓔以上之不肯我言取是而有所悅自可念昔者維摩詰乃取珠瓔分作兩分仍如祠舍持一分與諸下劣國中貧者持一分奉彼頭波變如來至眞等正幷見其衆及國土頭波變漢言固受其國名炎氣皆見珠瓔懸彼國上變成彼佛珠交露棚旣見是化聞其言
009_1016_c_02L이처럼 어진 자여, 베푸는 자가 여래를 가까이해도 위로 친족에게 도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베풀 때도 역시 평등해서 그러한 상념이 조금도 없고, 대비의 뜻이 있으면서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면, 이것이 법사가 구족된 것입니다.’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은 이 변화를 보고 그 부처님 말씀을 듣고는 모두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처럼 일체 보살이 저마다 자기의 처지를 말하면서 유마힐을 찾아가는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009_1016_b_21L如是仁人施者得近如來上達嚫不以想施貧亦等無若干念有大悲意不望其報惠此法祠爲具足已國中貧人見此變化聞彼佛語皆發無上正眞道意故我不任詣彼問疾如是一切菩薩各稱其所說不任詣彼

5. 제법언품(諸法言品)
009_1016_c_04L維摩詰所說經諸法言品第五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사리[한역하면 유수(濡首)이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009_1016_c_05L佛復告文殊師利漢言濡首汝詣維摩詰問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유마힐은 비록 우바새지이만 법의 요체에 깊이 들어갔고 그 덕이 순후하며 변재를 확립하였으며, 지혜는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보살의 법식(法式)을 다 들었고, 모든 부처님의 장처(藏處)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습니다. 온갖 마(魔)에 나아가 다스려서 덕으로써 항복받습니다. 방편과 지혜를 힘써 행하며, 쓸데없이 희롱하며 즐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 의지해서 안주함을 다시 구하는 자가 있다면, 그 속에서 시방(十方)을 개도(開度)하고자 합니다.”
009_1016_c_07L文殊師利白佛言世尊彼維摩詰雖優婆塞入深法要其德至淳以辯才立智不可稱一切菩薩法式悉聞諸佛藏處無不得入進御衆魔降之以德務行權慧非徒戲食猶復求依佛住者欲於其中開度十方
그러자 온갖 보살과 대제자(大弟子)와 제석천ㆍ범천ㆍ사천왕이 모두 생각했다.
‘이제 문수사리와 유마힐 두 사람이 담론을 하면, 구족한 대도(大道)를 설하지 않겠는가?’
009_1016_c_13L於是衆菩薩大弟子釋梵四天王皆念今得文殊師利與維摩詰二人共談不亦具足大道說哉
그리하여 즉시 8천 명의 보살과 5백 명의 제자와 수십만의 천인(天人)이 다 같이 가고자 했다. 이에 문수사리는 모든 보살과 대제자와 모든 천인과 권속에게 둘러싸여서 함께 유야리대성으로 들어갔다. 장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문수사리가 대중들과 함께 오니, 나는 방을 비우고 자리를 합쳐 하나의 자리를 만든 뒤 병으로 누워 있어야겠다.’
009_1016_c_15L卽時千菩薩五百弟子百千天人同意欲於是文殊師利與諸菩薩大弟子及諸天人眷屬圍遶俱入維耶離大長者維摩詰心念今文殊師利與大衆俱來吾將立空室合座爲一座以疾而臥
009_1017_a_02L문수사리는 그 집에 들어가 살림살이는 없고 침상 하나만이 있는 비어 있는 방을 보았다.
유마힐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문수사리여. 이제껏 만나보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상견(相見)하게 되었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어째서 거사께서는 이런 종류의 병을 감내하고 계십니까? 병세가 더 심해지지는 않았는지요? 세존께서 은근히 만수무강을 물으셨습니다. 거동이 가볍고 걸음걸이도 튼튼해지셨는지요? 거사여, 이 병은 어디에서 세우신 것인가요? 생긴 지가 오래되었다면 어느 때나 소멸되겠습니까?”
009_1016_c_21L文殊師利旣入其舍見其室空除去所有更寢一牀維摩詰言勞乎文殊師利不面在昔辱來相見文殊師利言如何居士忍斯種作疾寧有損不至增乎世尊慇懃致問無興起輕利遊步强耶居士是病何所正立其生久如當何時滅
유마힐이 말했다.
“생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리석음으로부터 애착이 있어 나의 병이 생긴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나도 병이 든 것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병들지 않는다면, 내 병도 소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을 확고히 세우고자 하기 때문에 보살은 생사에 들어가는 것으로 병을 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병을 떠나게 한다면, 보살도 다시 병이 없을 것입니다.
009_1017_a_04L維摩詰是生久矣從癡有愛則我病生一切人病是故我病若一切人得不病者則我病滅所以者何欲建立衆人故菩薩入生死爲之病使一切人皆得離病則菩薩無復病
비유하면 장자의 외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그 병 때문에 부모도 병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낫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사람을 자식같이 사랑합니다. 저 사람이 병들면 나도 병들고, 저 사람이 병들지 않으면 나도 병들지 않습니다.
또 보살의 병이 어디에서 세운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보살의 병은 대비(大悲)로써 세우는 것입니다.”
009_1017_a_09L譬如長者有一子得疾以其病故父母諸父爲之生疾其子病愈父母亦愈菩薩如於一切人愛之若子彼人病我則彼不病則不病又言菩薩病何所菩薩病者以大悲立
문수사리가 말했다.
“어째서 이 방은 비어 있고 공양이 없습니까?”
유마힐이 말했다.
“모든 불국토와 이 방이 모두 비어 있는 듯 비어 있습니다.”
또 물었다.
“어째서 비었다[空]고 말합니까?”
대답하였다.
“비었기에 빈 것입니다.”
009_1017_a_14L文殊師利言何以空無供養維摩詰言諸佛土與此舍皆空如空又問何謂爲空答曰空於空
또 물었다.
“비어 있음은 어떤 한 가지로 비어 있음이 됩니까?”
대답하였다.
“비어 있음은 함께할 것이 없음이 비어 있음이 되는 비어 있음입니다.”
또 물었다.
“비어 있음은 다시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생각하는[思想] 자이니, 그것 역시 비어 있음이 됩니다.”
009_1017_a_17L又問解一爲空答曰空無與爲空空又問空復誰爲答曰思想者也彼亦爲空
또 물었다.
“비어 있음이란 것을 마땅히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비어 있음이란 것은 마땅히 62견(見) 속에서 구해야 합니다.”
또 물었다.
“62견은 마땅히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당연히 여래의 해탈 속에서 구해야 합니다.”
009_1017_a_19L又問空者當於何求答曰空者當於六十二見中求又問六十二見當於何求答曰當於如來解脫中求
009_1017_b_02L또 물었다.
“여래의 해탈이란 것은 마땅히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당연히 뭇 사람의 의행(意行)속에서 구해야 합니다. 또 그대는 어째서 공양하는 이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일체의 온갖 마(魔)가 다 나의 공양이고, 저 모든 전변하는 자도 나의 공양입니다. 왜냐하면 마를 행하는 자는 생사를 받는데, 생사라는 것은 보살의 공양이기 때문이며, 저 전변하는 자는 모든 견해를 받는데, 보살은 모든 견해에 대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009_1017_a_22L又問如來解脫者當於何答曰當於衆人意行中求又仁所何無供養一切衆魔皆是吾養諸轉者亦吾養也所以者何魔行者受生死生死者則菩薩養彼轉者受諸見菩薩於諸見不傾動
문수사리가 말했다.
“거사께서 앓는 병은 어떤 종류의 것입니까?”
유마힐이 답했다.
“어진 자여, 내 병은 나타나지 않아서 볼 수가 없습니다.”
또 물었다.
“어떤 뜻입니까? 병이 몸과 합한 것인가요, 아니면 뜻[意]과 합한 것인가요?”
대답하였다.
“내 병이 몸과 합한 것은 몸이 땅이 되기 때문이며, 뜻과 합한 것은 뜻이 환법(幻法)이기 때문입니다.”
009_1017_b_04L文殊師利居士所疾爲何等類答曰仁者病不現不可見又問云何是病與身意合乎答曰我病身合者身爲地意合者意爲幻法
또 물었다.
“네 종류의 지종(地種)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에서 어떤 종류의 병입니까?”
대답하였다.
“이 종(種)이란 것은 모든 사람이 익힌 바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수사리여. 보살이 많은 병의 뜻을 관하고 나서 또 무엇으로써 병든 보살에 대해 익혀야 합니까?”
009_1017_b_08L又問四種地種火種風種何等種病答曰是種者一切人所習也云何文殊師利菩薩觀諸疾意又以何習於有疾菩薩
문수사리가 말했다.
“무상한 몸에 대해 열반[泥洹]으로써 하지 않고, 항상 음욕하지 않음을 나타내면서도 몸에 있어서는 고통이 있고, 열반으로 하지 않지만 안락하고 기뻐하며, 비신(非身)을 나타내면서도 뭇 사람들을 인도하고, 몸이 공적(空寂)해도 영원히 적멸하지 않고 본작(本作)을 나타내고, 항상 저 병을 슬퍼하면서도 스스로는 병을 헤아리지 않고, 숙명(宿命)을 인식해서 사람과 사물을 인도하고 이롭게 하면서도 미혹되는 바가 없고, 선(善)의 근본을 염(念)하고 정명(淨命)을 닦으면서도 저[彼]를 바라지 않고, 항상 정진하여 의왕(醫王)이 되어서 온갖 병을 소멸하니, 이것이 보살이 능히 병든 자와 서로 익히는 것입니다.”
009_1017_b_11L殊師利言於非常身不以泥洹常現不婬在身有苦不以泥洹安而喜之現於非身爲衆人導身之空寂不以永寂爲現本作恒悲彼疾不自計疾以識宿命導利人物而無所惑念善本修淨命不望彼常精進爲醫王滅衆病是爲菩薩能與疾者相習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무엇을 보살이 병이 있어도 그 뜻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라 합니까?”
009_1017_b_18L文殊師利又問何謂菩薩有疾其意不亂
009_1017_c_02L유마힐이 말했다.
“보살의 병이란 것은 이전의 가깝지 않은 죄가 욕이 있는 곳에 머묾을 알기 때문이며, 이 병은 모두 진실하지 못한 사념이 온갖 번뇌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병이란 것은 그 자체의 법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병이란 것은 단지 4대(大)에 의거한 것이고, 이 모든 대(大)에는 도무지 주재자[主]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의거하는 바도 무아(無我)이고, 이 병도 무아를 전적으로 집착한 것이니, 둘 다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병의 근본을 얻은 자는 반드시 정진을 통해 나와 남이라는 생각을 없애는 것이 법상신(法相身)을 일으킴이 되고, 법수(法數)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법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법이 소멸하면 소멸하니, 이렇듯 법이 굴러가면서 서로 염(念)하지도 못하고 서로 알지도 못합니다. 일어나는 것도 내가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으며, 소멸하는 것도 내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009_1017_b_19L維摩詰言菩薩疾者意知是前未近之罪住欲處故是病皆爲不誠之思在衆勞故問疾者自於其法都不可得所以者何如是病者但倚四大又此諸大爲都無主是所倚亦無我是病無我專著兩無專著得病本者必知精進無我人想爲起法相身爲法數法起則起法滅則滅法轉轉不相念不相知起者不言我起滅者不言我滅
법상(法想)을 아는 것은 그 뜻을 길러서 머무는 바가 없는 것이니, 만약 법상으로써 한다면 보(報)를 받는 것이 크게 멈춤[大止]입니다. 이미 병을 떠난 자라면 나의 행위가 없는데, 어째서 병을 끊었다고 말하는가? 말하자면 내가 지은 것이든 내가 아닌 것[非我]이 지은 것이든 다 끊음을 말합니다. 무엇을 내가 지은 것이든 내가 아닌 것이 지은 것이든 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자기 스스로 욕심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까? 말하자면 내적으로 습기(習氣)의 행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내적으로 습기의 행이 없는 것이라 말합니까? 말하자면 평등과 부동(不動)과 움직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009_1017_c_06L知法想者將養其意而無所若以法想受報大止已離病者不爲是何謂斷病謂我作非我作悉何謂是我作非我作斷謂己自無何謂己自無欲謂內無習行何謂內無習行謂等不動不可動
무엇을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말하자면 나의 평등과 열반의 평등입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모두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비어 있다고 이름 붙이는 것입니까? 말하자면 비어 있음이 되는 것이니, 둘 다 이와 같습니다. 범부와 성인이 도를 이루는 것은 평등으로부터인데, 병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받은 바도 비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말하자면 이미 깨달아 요달해서 모든 고통을 지각하지 않으며, 고통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증제(證際)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둘은 모든 고통이 되는 것이니, 기나긴 일체의 악도를 이미 마치고 나면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대비의 연민을 일으킵니다.
009_1017_c_11L何謂爲謂我等泥洹等所以者何此二皆何名爲空所言爲空二者如是聖道成皆從平等病亦不異何謂所受亦空謂已曉了不覺諸痛不盡於以取證際如是二者爲諸痛長一切惡道已竟近一切人興大悲哀
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성법(自省法)을 짓는 것이며, 관(觀)으로써 그 병을 없애지 법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 본래의 병이 생긴 바를 없애지 않고, 그 근본을 알아서 법을 설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병의 근본이라 말합니까? 애초부터 자연[然]이 아닌 것입니다. 자연이 아닌 것이 병의 근본입니다. 무엇을 자연이 아니라고 합니까? 삼계에서 자연이 아닌 것입니다. 그 자연이 아닌 것을 어떻게 압니까? 말하자면 지심(止心)입니다. 지심이란 것은 얻지 못하니, 자연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얻지 못합니까? 상대적인 견해를 얻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내견(內見)과 외견(外見)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009_1017_c_17L爲衆人作自省法觀以除其病而不除法亦不除其本病所生知其根本而爲說法何謂爲本謂始未然未熾然者則病之本何謂不然於三界而不然其不然何用知謂止心止心者以不得也非不然也何以不得二見不得謂內見外見是無所得
009_1018_a_02L문수사리여, 병든 보살은 그 뜻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늙고 죽음이 있더라도 보살은 이를 깨닫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자기가 닦고 다스린 것이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비유하면 원수를 이기는 자를 곧 용기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듯이, 이처럼 늙고 죽는 고통을 모두 제거하는 자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만약 보살이 병이 들었다면, 마땅히 이렇게 관(觀)해야 합니다. 즉 나의 이 병은 참된 것도 아니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여러 사람들의 병도 참된 것도 아니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고 관해야 합니다.
009_1017_c_24L文殊師利爲疾菩薩其意不亂雖有老死菩薩覺之若不如是己所修治爲無惠利譬如勝怨乃可爲勇如是兼除老死苦者菩薩之謂也菩薩若病作是觀如我此病非眞非有亦是衆人非眞非有
이미 이같이 관해서 망령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대비를 일으킵니다. 저 대비심이 오는 것은 그 번뇌를 끊기 위함이니, 도의 뜻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저 대비를 삼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망령된 견해에 떨어지면 그 대비 보살은 자주 출생하지만, 망령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면 대비보살은 자주 출생하지 않습니다. 저 생(生)에서 해탈하고, 떨어진 곳에서 해탈하고, 출생에서 해탈하고, 몸을 받는 데서 해탈한다면, 능히 저 사람을 위해 불법(佛法)을 설할 수 있습니다.
009_1018_a_07L已觀如是不墮妄見興大悲彼必來者爲斷其勞以合道意爲彼大悲所以者何菩薩墮妄見其大悲者有數出生不墮妄見大悲菩薩不以數生彼生爲脫爲脫所墮爲脫出生爲脫受身能爲彼人說佛說法是其誓也
이 맹서[誓]는 부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스스로 몸을 안락하게 해서 저 속박을 풀지 못하면, 올바른 처소에서 스스로 몸을 안락하게 하지 못한다. 또 그 속박을 풀어야 올바른 처소를 얻는다.’
이 때문에 이미 해탈한 보살은 그 행이 속박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엇을 속박이라 하고, 무엇을 해탈이라 합니까? 보살은 선정으로써 모든 아(我)를 속박하고, 도(道)로써 아(我)를 속박합니다. 속박이란 것은 보살이 훌륭한 방편으로써 5도(道)에 태어나서 그 수(受)를 해탈하는 것입니다.
009_1018_a_13L如佛言曰其自安身不解彼縛不得是處而自安身又解彼縛斯得是處故曰已脫菩薩其行不縛何謂縛何謂解菩薩禪定以縛諸我以道縛我縛者菩薩以善權生五道解彼受
보살이 방편이 없이 지혜만 잡으면 속박이고, 방편을 행하면서 지혜를 잡으면 해탈입니다. 지혜롭지만 방편을 행하지 않으면 속박이고, 지혜로우면서도 방편을 잡으면 해탈입니다. 방편이 없이 지혜를 잡으면 속박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하자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不願]의 법을 낳으면서도 상(相)을 다스리지 않고 불국토로써 사람을 교화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방편이 없이 지혜를 잡는 속박이라고 합니다.
009_1018_a_18L菩薩無權執智縛行權執智解智不執權縛智而執權解何謂無權執智縛謂以空無相不願之法生不治相及佛國以化人是無權執智之縛也
009_1018_b_02L 방편을 행하면서 지혜를 잡으면 해탈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말하자면 상(相)을 닦고 불국토로 사람을 개화시켜서 공ㆍ무상ㆍ무원의 법이 생김을 깨닫는다면, 이것을 방편을 행하면서 지혜를 겸하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지혜가 방편을 잡지 못하면 속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하자면 온갖 견해와 행실ㆍ번뇌ㆍ바람[望]을 받으면서 일체의 덕(德)과 선(善)의 근본을 수행하는 것을 지혜가 방편을 잡지 못하는 속박이라고 합니다. 지혜로써 방편을 잡는 해탈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모든 견해와 행실ㆍ번뇌ㆍ바람의 수용을 끊는 것으로 온갖 덕의 근본을 심음으로써 이 도에 분포(分布)하는 것이 지혜로써 방편을 잡는 해탈입니다.
009_1018_a_22L何謂行權執智解修相及佛國開化人而曉空無相願之法生是行權執智之解也何謂智不執權縛謂以見行勞望受立修行一切德善之本是智不執權之縛何謂智而執權解謂斷諸見行勞望之受以殖衆德之本而分布此道是智而執權之解也
저 병든 보살이 이미 이 같은 법을 이해했다면, 설사 몸에 병이 있더라도 그것이 무상(無常)이고 고(苦)이고 공(空)이고 비신(非身)임을 관해야 하니, 이것이 지혜입니다. 또 몸에 받는 바가 있더라도 나쁜 생사를 끊고, 사람들을 이롭게 해서 마음이 도에 합치하게 하니, 이것이 방편의 행입니다. 또 만약 몸에 병이 있을 경우, 이동(異同)의 뜻을 알아서 저 과거가 새롭지 않으면 그 까닭을 관하니, 이것이 지혜입니다. 가령 몸에 병이 있더라도 당장에 일어나는 것을 모두 멸진하지 않으니, 이것이 방편의 행입니다.
009_1018_b_06L彼有疾菩薩已如是下此法設身有病觀其無常爲空爲非身是爲智慧又身所受不以斷惡生死善利人民心合乎道是爲權行又若身病知異同意彼過非新則觀其故是爲智慧假使身病不以都滅所當起者是爲權行
문수사리여, 병든 보살은 그 뜻을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하며, 높은 데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높은 데 머무른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법이고, 낮은 데 머무른다면 제자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데 머무르며, 그 속에서 처하질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범부의 행도 아니고 현부(賢夫)의 행도 아니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생사의 행에 있으면서 더러운 행을 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니원(泥洹)의 행을 관하면서도 니원에 의거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1018_b_12L殊師利爲疾菩薩其意不亂亦不高所以者何若高住者是愚人法卑住者是弟子法故菩薩住不高不於其中無所處是菩薩行不凡夫不賢夫行是菩薩行在生死行爲污行是菩薩行觀泥洹行不依泥是菩薩行行於四魔過諸魔行菩薩行
4마(魔)를 행하면서도 모든 마군의 행을 넘어서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널리 배우고 슬기롭게 행해서 때맞춰 행할 바를 알지 못함이 없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4제(諦)를 행하면서도 진리로써 알고 행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무생(無生)의 행을 관하면서도 이르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연기의 행을 하면서도 모든 견해에 대해 욕망이 없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온갖 사람들의 무리에 있으면서도 번뇌의 행이 없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한거(閑居)의 행을 하면서도 몸과 뜻을 다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1018_b_20L博學慧行無不知時之行菩薩行於四諦行不以諦知行是菩薩行觀無生行不謂難至是菩薩行在緣起行於諸見而無欲是菩薩行在諸人衆無勞望行是菩薩行在閑居行不盡身意是菩薩行
009_1018_c_02L 삼계에서 행하면서도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공(空)의 무행(無行)을 하면서도 온갖 일과 맑은 덕을 모두 행하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뭇 사람들의 의행(意行)으로 바라밀을 삼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6신통을 행하면서도 누행(漏行)을 다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도의 행을 받으면서도 작은 도를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지행(止行)과 관행(觀行)으로 마군의 행을 알면서도 자취의 행을 멸진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제자와 연각이 응하지 않는 것으로 행을 나타내지 않아도 불법의 행을 훼손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009_1018_c_02L於三界行不壞法情是菩薩行爲空無行一切衆事淸德皆行是菩薩行行六度無爲衆人意行而度無極是菩薩行行六神通不盡漏行是菩薩行受道之行不興小道是菩薩行以止觀知魔行不滅迹行是菩薩行於弟子緣一覺所不應不現行不爲毀佛法行菩薩行
이렇게 말하자 8천 명의 천인(天人)이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으며, 문수사리 동자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009_1018_c_10L說是語時八千天人發無上正眞道意文殊師利童子甚悅
현자 사리불은 마음속으로 ‘앉을 자리가 없는데, 이 보살과 대제자는 어디에 앉아야 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마힐은 그의 생각을 알고 즉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그대는 법을 위해 왔습니까, 아니면 자리를 구하러 왔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했습니다.
‘거사여, 저는 법을 위해 왔지 편안한 이익을 구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009_1018_c_11L賢者舍利弗心念無牀座是菩薩大弟子當於何坐維摩詰知其意卽謂言何賢者爲法來耶求牀座也舍利弗居士我爲法來非利所安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법을 이롭게 하는 자는 자신의 목숨도 탐내지 않는데 하물며 자리이겠습니까? 사리불이여, 무릇 법을 이롭게 하는 자는 색(色)의 고통과 상(想)의 행과 식(識)의 구함이 있지 않으며, 음종(陰種)과 제입(諸入)의 구함이 있지 않으며, 욕계와 색계과 무색계의 구함이 있지 않습니다.
009_1018_c_15L維摩詰賢者其利法者不貪軀命何況牀座舍利弗夫利法者非有色識求非有陰諸入之求非有無色之求
사리불이여,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깨달음을 집착해서 구하지 않으며, 법을 집착해서 구하지 않으며, 중생을 집착해서 구하지 않습니다. 또 사리불이여,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고통을 알기를 구하지 않고, 습기를 끊음을 구하지도 않으며, 사유의 도를 다 증명해서 구하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방일함이 없고 방일한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고통의 습기를 알지만, 마땅히 다 증명해서 사유로 도를 이루면,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방일함이 없는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009_1018_c_19L舍利弗夫求法者不著佛求不著法求不著衆求利弗夫求法者無知苦求無斷習求無造盡證惟道之求所以者何法無放逸有放逸法當知苦習當爲盡證以惟致道斯求法者無放逸之求也
009_1019_a_02L사리불이여, 티끌로 음진(婬塵)을 여의지 않으나 그 오염된 자가 즉시 변두리에 있게 되면,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음락(婬樂)이 없는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경계[疆界]가 있지 않으나, 경계가 있다면 분수(分數)가 있는 것이니,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경계가 없는 법을 구함입니다. 법에는 청정하지 않음이 없으나 청정하지 못한 자가 법에 대해 취함이 있고 방일함이 있다면,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취함도 방일함도 없는 구함입니다. 법에는 소굴(巢窟)이 없지만, 법이 있는 자라면 소굴이 있게 되니,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소굴에 의탁함이 없는 구함입니다.
009_1019_a_02L舍利弗無有塵離婬塵其染污者卽爲在邊斯求法者無婬樂之求也舍利弗無有疆界在疆界者則有分數斯求法者無疆界之求也法無不淨在不淨者於法有取有放斯求法者無取放之求也法無巢窟有法者則爲有窟斯求法者無窟倚之求
법에는 상(想)이 있지 않으나, 상(想)을 점치는 자라면 견고한 식(識)이 되니,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점상(占想)이 없는 구함입니다. 법에는 유루(有漏)가 없으나, 유전의 법[流法]에 있는 자는 일체에 가까워지니,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일체가 없는 구함입니다. 법에는 보고 들음도 없고 염(念)도 없고 지(知)도 없으나, 법에 대해 보고 들음과 염(念)과 지(知)가 있는 자라면 이미 구별을 하니, 이렇게 법을 구하는 자는 보고 들음이 없는 구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법을 구하는 자는 일체 법에 대해 오직 구함이 없을 뿐입니다.’
이 말을 끝내자, 5백 명의 천인이 모든 법에 대한 법안(法眼)이 생겼습니다.
009_1019_a_09L法無有想在占想者則爲堅識求法者無占想之求也法無有漏流法者爲一切近斯求法者無一切之求也法無見聞無念無知於法有見聞念知者則爲已別斯求法者無見聞之求也是故舍利弗求法者一切法唯無求也說是語時五百天人諸法法眼生

6. 부사의품(不思議品)
009_1019_a_16L維摩詰所說經不思議品第六

그러자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그대는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억백 나술(那術)의 불국토에서 유행하였는데, 어느 불국토에 모든 것을 지닌 모든 훌륭한 사자좌가 있습니까?”
009_1019_a_17L於是維摩詰問文殊師利仁者遊於無量無數佛國億百那術何等佛土爲一切持一切有好師子之座
009_1019_b_02L문수사리가 말했다.
“족성자여, 동쪽으로 36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찰토를 지나면 불국토가 있는데, 그 세계의 이름을 수미번(須彌幡)이라고 합니다. 그 부처의 명호는 수미등왕(須彌燈王)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인데, 지금도 머물고 계십니다. 그 부처님의 신장은 8만 4천 유연(由延)이고, 부처님의 사자좌는 6만 8천 유연입니다. 그 보살의 신장은 4만 2천 유연이고, 수미번국에는 840만의 사자좌가 있습니다. 그 나라의 여래는 일체를 지녔고, 그 사자좌는 일체가 장엄되어 있습니다.”
009_1019_a_20L文殊師利言族姓子東方去此佛國度如三十六恒沙等剎其世界名須彌其佛號須彌燈王如來至眞等正今現在其佛身八萬四千由延師子座六萬八千由延其菩薩身四萬二千由延須彌幡國有八百四十萬師子之座彼國如來爲一切持師子座爲一切嚴
그러자 유마힐은 곧 삼매의 정수(正受)에 들어가서 신족(神足)을 나타내자, 이에 감응해서 저 수미등왕여래는 3만 2천의 사자좌를 보냈다. 그 사자좌는 높고 넓으며 청정히 장엄된 것으로서 일찍이 보기 드문 것이었다. 모든 제자와 보살과 모든 천(天)과 제석천과 범천과 사천왕이 유마힐의 방으로 들어와서, 그 방이 매우 커서 3만 2천의 사자좌를 다 포용하면서도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음을 보았다. 유야리성도 걸리는 바가 없었으며,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과 사천왕의 처소도 걸리는 바가 없어서 모두 본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유마힐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모든 보살과 상인(上人)과 함께 사자좌에 가서 같이 앉으시지요. 당연히 스스로 몸을 세워서 저 사자좌의 모습과 같게 해야 합니다.”
009_1019_b_05L於是維摩詰則如其像三昧正受現神足應時彼佛須彌燈王如來遣三萬二千師子座廣淨好昔所希見一切弟子菩薩天釋梵四天王來入維摩詰舍見其室極廣大悉苞容三萬二千師子座所立處不迫迮於維耶離城無所罣於佛所止及四天處無所罣碍見如故若前不減維摩詰言文殊師就師子座與諸菩薩上人俱坐自立身如彼座像
신통력이 있는 보살은 즉시 스스로 몸을 변형시켜서 4만 2천 유연이 되어 사자좌에 앉았다. 그러나 변두리의 보살과 대제자는 모두 사자좌에 오를 수 없었다. 유마힐이 말했다.
“사리불이여, 사자좌에 가시지요.”
사리불이 말했다.
“이 자리는 높고 크지만 나는 오를 수 없습니다.”
유마힐이 말했다.
“현자여, 수미등왕여래에게 예를 드린 뒤에야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009_1019_b_15L其得神通菩薩自變形爲四萬二千由延坐師子座其邊菩薩大弟子皆不能昇維摩詰舍利弗就師子座舍利弗言姓子此座爲高廣吾不能昇維摩詰賢者爲須彌燈王如來作禮然後可坐
009_1019_c_02L그리하여 변두리에 있던 보살과 대제자들이 즉시 수미등왕여래에게 예를 올리자마자 그들도 사자좌에 앉게 되었다. 사리불이 말했다.
“일찍이 없던 일입니다, 족성자여. 이처럼 작은 방에 이렇게 높고 넓은 좌석을 수용하고, 유야리성도 걸림이 없고,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과 사천왕의 처소도 걸림이 없고, 모든 나라와 성읍, 천룡과 신궁(神宮)도 걸림이 없다니 말입니다.”
009_1019_b_21L於是邊菩薩大弟子卽爲須彌燈王如來作禮便得坐師子座舍利弗言未曾有也族姓子如是小室容受此高廣之座於維耶離城無所罣碍於佛所止及四天處無所罣碍於諸國邑天龍神宮亦無罣碍
유마힐이 말했다.
“사리불이여, 모든 여래와 모든 보살에게는 여덟 가지 부사의문이 있으니, 이 문을 아는 자는 높고 넓은 수미산이 겨자 속에 들어가도 늘거나 줄어듦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의식(儀式)을 나타내면서도 사천왕과 도리천(忉利天)으로 하여금 누가 나를 들여 놓는지 알지 못하게 하며, 이인(異人)이라야 수미산이 겨자에 들어감을 보니, 이것이 부사의에 들어가는 경계의 문입니다.
009_1019_c_03L維摩詰言唯然舍利弗諸如來諸菩薩有八不思議門得知此門者以須彌之高廣入芥子中無所增減因現儀式使四天王與忉利天不知誰內我著而異人者見須彌入芥子是爲入不思議疆界之門也
또 사리불이여, 부사의문을 세우는 보살은 4대해(大海)의 물을 하나의 털구멍에 들여 놓는데, 고기나 자라 등의 수중 생물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용과 귀신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로 하여금 내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의식(儀式)을 인유(因喩)할 뿐 중생에 대해서는 번거롭게 하거나 해치지 않습니다.
009_1019_c_09L舍利弗立不思議門菩薩者以四大海水入一毛不嬈魚鼈黿鼉水性之屬不使龍鬼神阿須倫迦留羅知我何入因喩儀式其於衆生無所嬈害
또 사리불이여, 부처님께서 이 삼천세계를 끊어내서 오른쪽 손바닥에 놓고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불국토에다 배치해도 사람들은 누가 나를 데려가는지 알지 못하고, 또 원래의 처소로 되돌려 놓아도 사람들로 하여금 가고 오는 생각이 없게 하니, 이로 인해 의식을 나타냅니다.
009_1019_c_13L舍利弗於是三千世界如佛所斷以右掌排置恒沙佛國而人不知誰安我往引還復故處都不使人有往來想而現儀
또 사리불이여, 한량없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으면서 율(律)을 받들고 있는데, 부사의문을 세우는 보살이 율을 받드는 사람을 위해 7야(夜)를 겁의 수명으로 나타내도 사람들은 겁이 지났다고 믿지 이것이 7야라는 건 알지 못합니다.
009_1019_c_17L舍利弗有無量人生死奉立不思議門菩薩者爲奉律人現七夜爲劫壽人信知謂劫過不知是七夜也
009_1020_a_02L또 사리불이여, 부사의문을 세우는 보살은 모든 불국토를 나타내서 하나의 불국토로 삼고, 모든 사람을 세워 오른쪽 손바닥에 놓고서 그 뜻을 순화(順化)하여 모든 불국토에 노닐게 할 수 있습니다. 해가 나타나도 한 국토도 진동함이 없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부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예로써 섬기고, 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털구멍에서 시방의 모든 해와 달과 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니, 시방의 어두움[陰冥]이 모두 들어가는 문에 따라 이미 해치는 바가 없으며, 또 불국토의 소유를 줄어들지 않게 하고 일체를 확 트이게 해서 각기 수행을 얻게 합니다.
009_1019_c_20L舍利弗立不思議門菩薩現諸剎好以爲一剎立一切人置其右掌順化其意與遊諸剎令如日不震一國從是禮事十方諸佛令一切從一毛孔見十方諸日月星十方陰冥皆隨入門旣無所害使佛國所有不減一切曠然各得修
또 능히 아래쪽의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국토를 취해서 다른 무수한 불국토에 들어다 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 기울어졌거나 구덩이일지라도 편안하게 땅에 놓아둡니다. 또 부사의문을 세우는 보살은 모든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불상의 색상신[色貌]을 세우듯이 세울 수 있으며, 연각의 색상신을 세우듯이 세울 수 있으며, 제자의 색상신을 세우듯이 세울 수 있으며, 혹은 제석천이나 범천이나 전륜왕의 색상신을 세우듯이 세울 수 있습니다. 시방의 언어와 음성에 따라서 상품과 중품과 하품의 원하는바 일체를 부처님의 유연한 음성으로 유도하여 세우며, 이 부처님의 말씀에서 무상(無想)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의 음성을 나오게 하고, 상황에 맞게 설함으로써 모든 불법의 말이 이런 무리들의 소리에서 나오게 합니다.”
009_1020_a_04L又能蹶取下方恒沙等剎擧置殊異無數佛土若接頹坎安措地又立不思議門菩薩者爲一切人故如佛像色貌立以立之如緣一覺像色貌立以立之如弟子像色貌立以立之或如釋如梵如轉輪王像色貌立以立之隨十方語言音聲上中下之所一切以佛柔軟音響而誘立之出佛語無常非身之聲以如事說諸佛法言出是輩聲
이때 장로 대가섭이 보살의 부사의문에 대한 설법을 듣고서 사리불에게 말했다.
“비유하면, 현자여. 평범한 사람 앞에 온갖 유명한 향(香)을 나타내도 그가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니, 마치 이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 말을 들은 모든 제자는 일시에 부사의의 작용을 볼 수 있었으니, 그 누군들 이 부사의문을 듣고서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009_1020_a_13L於是耆年大迦葉聞說菩薩不思議門謂舍利弗譬如賢者於凡人前現衆名香彼所見則不能知爲若此也今諸弟子聞是語者可一時見不思議作誰聞此不思議門不發無上正眞道
그런데, 현자여. 우리는 어찌하여 영원히 그 근(根)을 끊었으며, 이 대승에 대해 마치 썩은 종자같이 되었습니까? 이 말씀을 들은 모든 제자는 당연히 모든 삼천세계가 진동하도록 울어야 하며, 모든 보살은 흔연히 기뻐하면서 이러한 말씀을 공경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부사의문을 밝게 요달한다면, 일체의 마(魔)의 무리들이 어찌 하겠습니까?”
009_1020_a_19L於此賢者吾等何爲永絕其根此大乘已如敗種一切弟子聞是說當以悲泣曉喩一切三千世界諸菩薩可悅預喜如是說當頂受曉了不思議門者一切魔衆無如之
009_1020_b_02L대가섭이 이 말을 설하자, 3만 2천 명의 천인(天人)이 모두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대가섭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현자여, 시방의 한량없는 무앙수(無央數)의 마군[魔]과 마왕처럼 행동하는 현자는 다 공포를 행하며, 부사의문을 세우는 보살도 항상 사람들을 제도해서 해탈시키느라고 시방에 한량없는 마군의 행위를 합니다. 혹은 보살로부터 손ㆍ발ㆍ귀ㆍ코ㆍ머리ㆍ눈ㆍ뇌수ㆍ혈육ㆍ피부와 처자 및 남녀 권속과 나라ㆍ성ㆍ마을ㆍ재물ㆍ곡식ㆍ금ㆍ은ㆍ명월주(明月珠)ㆍ산호 등의 진귀한 보배와 옷ㆍ음식 등의 일체 소유를 구걸하는 자는 모두 부사의문을 세우는 보살이니, 능히 훌륭한 방편으로써 모든 보살을 위한 방편을 나타내 보여 그 성품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이란 상급이라서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핍박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대가섭이여, 용과 코끼리가 위력을 나타내는 것은 나귀가 감당할 바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여타의 보살도 능히 할 수 없는 것이니, 보살이 핍박을 견디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이는 부사의문을 세운 보살이 방편과 지혜의 힘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009_1020_a_24L大迦葉說是語時三萬二千天人皆發無上正眞道意維摩詰報大迦葉言唯然賢者十方無量無央數魔魔怪賢者悉行恐怖立不思議門菩薩者常解度人魔之所爲十方無量或從菩薩求索手足耳鼻頭眼髓腦血肉肌體妻子男女眷屬及求國城墟聚財穀金銀明月珠玉珊瑚珍寶衣裘飮食一切所有皆從求索立不思議門菩薩者能以善權爲諸菩薩方便示現堅固其性所以者何菩薩當上及不可使凡民逼迫之也迦葉龍象蹴踏非驢所堪爲若此其餘菩薩莫能爲菩薩忍逼猶如立不思議門菩薩入權慧力者也
維摩詰經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일체의 만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칙을 깨달아서 그 경지에 안주하는 것.
  2. 2)아비발치(阿毘跋致)라고도 하는데, 한역하면 불퇴전(不退轉)ㆍ불퇴(不退)ㆍ무퇴(無退) 등이다. 보살의 지위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