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명경(金光明經)』은, 그 가르침이 대승교[滿字]1)의 극치를 이루어 꿈속에서 금으로 된 북[金鼓]을 치게 하고, 그 이치가 진공(真空)2)에 달하여 이 땅 위로 보배의 탑[寶塔]이 솟아나게 하며, 또한 삼신(三身)의 과보를 갖추어 전생의 업보를 갚는 데 어그러짐이 없게 하고, 십지(十地)3)의 인연을 원만하게 이루어 옛적의 수행을 부족함 없이 다 드러내게 한다. 이 때문에 경 중의 왕[經王]이란 호칭을 얻을 수 있었으니, 장차 사람들을 크게 도울 것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 지위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대흥선사(大興善寺)의 사문(沙門) 보귀(寶貴)는 근래 주(周)나라4) 때의 도안(道安)5)스님의 상수제자[神足]이다. 포교[明匠]6)로 사람을 감복시키니, 실로 훌륭한 인재라고 할 만하며, 여러 경전을 탐닉하여 열람하며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으니, 석가모니 부처님[瞿曇]7)의 화신(化身)이나 공자의 안연(顏淵)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보귀 스님은 옛적 진(晉)나라의 사문(沙門)인 지민도(支敏度)가 2지(支)8)와 2축(竺)9)과 1백(白)10) 등 5가(家)의 『수능엄(首楞嚴)』 다섯 본(本)을 합쳐서 1부(部)로 만들어 8권(卷)으로 지은 것과, 또 1지(支)11)와 2축(竺)12) 등 3가(家)의 『유마(維摩)』 세 본(本)을 합쳐서 1부(部)로 만들어 5권(卷)으로 지은 것과, 근래에 사문(沙門)인 승취(僧就)가 다시 2참(二讖)13)과 구마라즙[羅什]과 야사(耶舍) 등 4가(家)의 『대집(大集)』14) 네 본(本)을 1부(部)로 만들어 60권(卷)으로 지은 것을 정리하였다. 이는 시냇물을 거두어서 바다에 더하며 겨자씨를 모아서 산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에 그치지 않은 큰 공덕이라 할 수 있다.
009_1363_b_02L이러한 합쳐진 경전들은 그 글과 뜻이 두루 갖춰져 있었으니, 이는 선대의 현명한 스승들이 남긴 자취로서, 보귀 스님이 드디어 이를 계승하여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금광명(金光明)』은 세 본(本)이 남아 있었는데, 가장 초기의 것은 북량[涼世]15) 때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것으로 4권(卷)으로 되어 있고 18품(品)에서 끝난다. 그 다음의 것은 주(周)나라 때에 사나굴다(闍那崛多)16)가 번역한 것으로 5권(卷)으로 되어 있고 20품(品)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에 양(梁)17)나라로 바뀐 뒤에 진제삼장(眞諦三藏, 499~569)이 건강(建康)18)에서 「삼신분별(三身分別)」ㆍ「업장멸(業障滅)」ㆍ「다라니최정지(陀羅尼最淨地)」ㆍ「의공만원(依空滿願)」 네 품(品)을 번역하였으니, 이는 이전에 사라졌던 품으로 앞의 담무참 번역본 18품과 합하여 22품(品)으로 만들었다.
그 서문에서 과연 말하기를 “담무참(曇無讖) 법사가 『금광명경』이라 칭하였는데, 이 번역본에는 편(篇)과 품(品)이 빠져 있다”고 하였다. 문장을 살펴보고 뜻을 음미해볼 때마다 이 설(說)은 징험됨이 있으며, 다른 책과 대조해 보더라도 반박할 수 없었으니 자나 깨나 늘 아쉬운 부분이었다. 보귀(寶貴) 스님이 매번 탄식하며 “이 경은 비밀스럽고 오묘한데 후분(後分)에 어찌 「촉루품囑累品」이 없는가? 과거에 비록 세 번이나 번역되었으나, 본래 완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범문(梵文)을 보고 오래도록 생각하여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수나라[大隋, 581~619] 통치 기간에 새로운 경전이 유입되자, 황제가 담당 관리에게 명령하여 서로 이어서 번역하게 하였다. 개황(開皇) 17년에 이르러 법석(法席)19)을 여는 동안 북천축(北天竺) 건타라국(揵陀羅國)의 삼장법사(三藏法師)20)—이곳 말로 지덕(志德)이라고 한다.—에게 권하여 거듭 후본(後本)을 찾아보게 하니, 과연 「촉루품(囑累品)」이 있었고, 나중에 「은주다라니품(銀主陀羅尼品)」도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불전(法典)이 처음에 흩어져 뿔뿔이 나뉘고 갈라져서 나중에 있는 것을 이어서 붙여 기록하여 글의 이치가 완전히 갖춰지기 어려웠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삼장법사(三藏法師)인 혜성 충명(慧性冲明)은 학업(學業)이 뛰어나고 내외(內外)의 경론(經論)에 널리 통달하였다. 그는 수도에 있는 대흥선사(大興善寺)에 머물면서 번역하였는데, 전에 먼저 나온 경전과 합친 24품을 베껴서 8권(卷)으로 만들었다. 학사(學士)인 성도 비장방(成都費長房)이 붓으로 받아 적고, 인도의 사문[梵沙門]이며 일엄사(日嚴寺)의 스님인 언종(彥琮)이 교감을 맡았다.
009_1364_b_02L또 다시 생각하며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는 두 가지 인연이 있으면 수명이 길어진다. 어떤 것이 둘인가? 하나는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이요, 또 하나는 남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겁 동안 죽이지 않는 계[不殺戒]를 닦고 열 가지 착한 일[十善業]을 갖추셨고 음식을 은혜롭게 베풀기도 한량이 없으며 나아가 자기 몸의 뼈와 골수, 살과 피로 굶주린 중생을 배부르게 하여 주었는데 하물며 그 밖의 음식이리오.’ 신상보살은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이런 뜻을 생각할 때 그가 있는 방이 자연히 넓어지고 장엄하게 꾸며졌다. 하늘의 감색 유리와 갖가지 온갖 보배가 사이사이에 섞여서 그 땅을 이루어 마치 여래가 계시는 정토와 같았다. 묘한 향기가 있어 모든 하늘의 향기보다 낮고 연기구름이 드리워 퍼져서 그 방에 가득하였다.
그때 신상보살이 이 여러 부처님과 희유한 일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공경하여 합장하고 여러 부처님을 향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석가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에 오직 수명만은 마음에 의혹이 생긴다. 어찌하여 여래의 수명이 이와 같이 겨우 팔십 세뿐일까?’
009_1364_c_02L그때 네 부처님께서 바르게 두루 아시는 지혜[正遍知]로 신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부처님의 수명이 짧다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우리들은 모든 하늘과 세간의 사람ㆍ마의 무리ㆍ범천의 무리ㆍ사문ㆍ바라문ㆍ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 가운데 능히 여래의 수명을 숫자로 헤아려 그 한계를 아는 이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오직 여래만 제외하고…….”
이때 네 분 여래께서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으셨다아래는 굴다(崛多)번역을 보충한다. 그때 신상보살은 그 모든 부처님 곁에서 석가모니 세존의 수명을 말씀하심을 듣고 나서 그 모든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세존이시여, 왜 저 석가모니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이셨습니까?”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그 모든 세존께서 신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저 석가모니 여래께서는 오탁악세[五濁世]에 출현하시어 백 세의 수명 동안에 믿고 이해함이 낮은 중생ㆍ선근이 적은 중생과 내가 있다는 생각[我見]ㆍ중생이 있다는 생각[衆生見]ㆍ명의 근원이 있다는 생각[命見]ㆍ윤회의 주체를 기른다는 견해[養育富伽羅見]21)ㆍ삿된 견해[邪見]ㆍ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등 그 가운데서 모든 범부 중생과 외도 니건타(尼乾陀)22)ㆍ바리바사가(波梨婆闍迦) 등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세존 석가모니 여래께서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여 중생을 성숙하신다.
선남자여, 그래서 저 석가모니 여래께서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저들 중생이 만약 여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것을 알면 태어남이 고통이라는 생각[生苦想]ㆍ부처님은 희유하다는 생각ㆍ일찍이 없던 분이라는 생각[未曾有想]ㆍ근심과 걱정이라는 생각을 내어 속히 이와 같은 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워서 마땅히 헐뜯어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009_1365_b_02L 그들 중생이 만약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으심을 보면 희유하다는 생각ㆍ근심과 걱정의 생각ㆍ일찍이 없었던 분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서 그들은 여래가 설하신 바의 모든 경을 받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마땅히 가지고 읽고 외우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세상은 항상하다고 보기[常見] 때문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장부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돈과 재물이 많아서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많았다. 그래서 그 장부의 모든 아들이 재물이 쌓여 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희유하다는 생각이나 일찍이 없었다는 생각을 내지 않았다. 왜냐 하면 얻은 바가 많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장부가 그 부모가 가난하여 얻은 바가 적으면 그들은 혹 왕이나 또는 대신의 집에 갈 것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창고에 갖가지 많은 보배가 가득한 것을 보고 그곳에서 희유하다는 생각, 일찍이 없던 바라는 생각을 하고 마땅히 얻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것이요, 또한 그런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 정진할 뜻을 낼 것이다. 그것은 모두 그런 재물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얻은 바가 적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서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에 세상에 나오신다. 비유하면 우담바라(優曇婆羅)꽃이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야 이에 세상에 나옴과 같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세존은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야 이에 마땅히 세상에 나오시게 된다. 그러면 그들 중생은 보기 드문 행(行)을 얻고 일찍이 없던 바를 얻어 마땅히 기뻐하여 뛸 것이며, 그들이 여래를 뵙고 나면 곧 마땅히 향하여 믿게 될 것이다. 만약 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은 수다라를 받아서 다투거나 어기지 않을 것이다.
그때 신상보살이 한량없는 백천만 보살과 또 한량없는 억[俱胝] 나유타 백천(百千)의 중생과 함께 기사굴산의 석가모니 여래 정변지의 처소에 나아갔다. 도착하여 부처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고 나서 신상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여러 가지 일을 말씀드렸다. 나아가 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기사굴산 석가모니 여래의 처소에 나아갔다. 이르러서는 각각 방향 따라 각각 자리에 앉았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십니다, 석가모니 여래여. 지금 『금광명경(金光明經)』의 법의 근본을 설하시려 하시니 저희들도 마땅히 따라 기뻐합니다.”
009_1365_c_16L復作是言:‘善哉,釋迦牟尼如來今欲說『金光明』法本,我等當隨喜。’”
그때 그들 모든 보살마하살 석가모니 여래의 처소에 나아가 이르러서 석가모니 여래의 발에 머리 숙여 예를 올렸다. 예를 올리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한쪽에 머물러서 그들 모든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방에서 오신 네 분 부처님 세존께서 안부 여쭙니다. 세존이시여, 병도 적으시고 기거가 가벼우시며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십니까?”
나는 이 산 떠나지 않고 항상 보배로운 이 경 설하고 중생을 성숙하게 하므로 반열반(般涅槃)을 나타내 보이노라.
009_1366_a_06L我不離此山, 常說此經寶, 成熟衆生故,
示現般涅槃。
범부는 물들고 집착한 견해로 내가 설한 것 믿지 않으니 그들을 성숙하게 하므로 내 반열반을 나타내노라.
009_1366_a_08L凡夫染著見, 不信我所說,
彼等成熟故, 我現般涅槃。
이때 대중의 모임 가운데 바라문이 있었으니 성은 교진여(憍陳如)요, 이름은 성기(聖記)였다. 대중 가운데 진리를 살피는 마음[諦心]으로 편안히 앉아 있었는데 한량없는 백천의 바라문들이 앞뒤로 에워싸고 함께 공경하여 여래께 공양하였다. 부처님 세존께서 수명이 팔십에 반열반하시리라는 말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백천의 바라문 대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숙여 예를 드리고 아뢰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부처님 여래께서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이익되게 하시려면 대자대비로 모두 다 큰 안락을 얻게 하시고 중생의 진실한 부모요, 가장 으뜸이요, 같은 이 없으시고 또 무등등(無等等)이 되시고, 세간의 귀의처가 되시어 덮어 보호하시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즐겁고 맑고 시원하게 하시어 맑은 보름달의 큰 광명과 같고 태양이 우타연산(優陀延山)23)을 비추듯 하소서. 만약 부처님 세존께서 중생을 나후라(羅睺羅)와 같은 아들로 보신다면,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하나의 은덕을 베풀어 주소서.” 이때 여래께서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009_1366_b_02L이 모임 가운데 율차비(栗車毘:licchavi, 찰제리 종족의 성) 국왕의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일체중생희견(一切衆生喜見)이었다. 그는 대중 가운데에서 말의 변계를 구족하여 문답을 잘 하였다. 이때 왕자가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어 바라문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큰 바라문이여, 그대는 세존에게 어떤 은덕을 구하려고 합니까? 내가 능히 그대에게 그대의 뜻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왕자여. 우리들은 세존의 몸을 공경하며 공양하려 합니다. 그래서 여래의 사리(舍利)를 겨자씨만큼이라도 얻고자 합니다. 왜냐 하면 제가 들은 바로는 만약 선남자 또는 선여인이 여래의 사리에 공경하게 공양한다면 욕계의 여섯 하늘[六天]의 제석천왕과 같은 부귀와 안락을 반드시 얻어 다함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왕자가 곧 대답하였다. “큰 바라문이여, 그대는 일심으로 들으소서. 만약 한량없는 공덕과 육욕천에 나는 과보를 구하길 원한다면, 이 금광명경은 모든 경의 왕이라 생각하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복 받음도 끝이 없어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며 이 경은 이와 같은 공덕을 가지고 있어서 끝없는 복의 과보가 불가사의하니 제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 국가의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 사리를 겨자씨만큼이라도 얻어 작은 탑 가운데 넣고 잠시라도 예배하고 공경하며 공양한다면 공덕이 끝이 없을 것이며 이 사람은 목숨을 다하면 육욕천의 주인이 되어 최상의 미묘한 즐거움을 받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대여, 지금 어떻게 사리에 공양하여 이런 과보를 구하기를 즐겁게 원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왕자여, 이런 인연으로 나는 지금 부처님께 한 가지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허공장보살마하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하게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최상의 미묘한 금과 보배의 꽃과 보배의 당기(幢旗)ㆍ번기(幡旗)와 일산으로써 다 공양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모든 여래의 법과 같이 바르게 수행하겠습니까?”
009_1367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생각하라. 내가 지금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모든 여래는 세 가지 몸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은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셋인가? 첫째는 변화로 나타내는 몸[化身]이요, 둘째는 응하여 나타나는 몸[應身]이요, 셋째는 진리의 몸[法身]이다. 이와 같은 세 몸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거두어 받아들인다.
어떻게 보살이 화신을 밝게 분별하는가? 선남자여, 여래가 옛날 수행하던 때에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수행하였다. 이 모든 수행법은 수행이 완전함에 이르러야 수행의 힘으로 자재로움을 얻으며 자재한 힘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따르며 중생의 행을 따르며 중생의 경계를 따르며 많은 종류를 밝게 분별하며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때를 지나지도 않으며 장소가 서로 들어맞고 때가 서로 맞으며 행이 서로 맞고 설법이 서로 알맞게 갖가지 몸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을 변화로 나타내는 몸[化身]이라 이름한다.
선남자여, 이 모든 부처님 여래는 모든 보살이 통달하기를 위하므로 참된 진리[眞諦]를 설한다. 생사와 열반이 한맛임을 통달하게 하기 위함이며, 몸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생을 두렵거나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요, 끝없는 부처님 법에 근본을 짓기 위함이요, 여래는 여여(如如)함에 상응하여 여여한 지혜와 원력(願力) 때문에 이 몸이 서른두 가지 모습과 여든 가지의 좋은 모습과 목과 등의 등근 광명을 갖추게 된다. 이것을 응신(應身)이라 이름한다.
009_1368_a_02L 앞의 두 가지 몸은 가명(假名)으로 있는 것이요, 이 세 번째 몸은 진실로 있는 것이니 앞의 두 몸에 대한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존재의 여여함을 떠나거나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떠나서는 일체 모든 부처님에게 또 다른 법은 없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이며, 일체번뇌가 마침내 다 사라졌기 때문이며, 청정한 부처님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로 일체 부처님 법을 거두는 젓이다.
다시 다음에 선남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구경에 이르시니, 자신을 이롭게 함이란 곧 존제의 여여함이요, 남을 이롭게 함이란 곧 여여한 지혜이다. 나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곳에서 자재로이 갖가지 끝없는 작용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갖가지 부처님 병을 분별하게 된다.
존재의 여여함에 의하고 여여한 지혜에 의하여 일체 부처님 법을 자재로이 이루게 되니 이것은 제일이며 이루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을 그림에 장엄하는 도구를 만드는 것도 또한 생각하거나 말하기 어렵듯이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로 부처님의 법을 거두어 이룸도 또한 생각하거나 말하기 어렵다.
선남자여, 무엇을 존재의 여여함이며 여여한 지혜라고 하는가? 두 가지는 분별할 수 없지만 일에 자재함을 얻는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여래는 이미 반열반 하셨으나 서원이 자재하므로 갖가지 일이 끝이 없음과 같다. 그래서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도 일에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009_1368_b_02L선남자여 , 비유하면 해와 달은 분별할 수 없음과 같고 또 물과 거울이 분별할 수 없고 광명도 또한 분별이 없으나 이 세 가지가 화합하므로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도 또한 분별이 없으나 서원이 자재하므로 중생에게 감응이 있으며 그래서 응신과 화신의 두 몸이 있으니, 마치 해와 달ㆍ그림자가 화합하여 생겨남과 같다.
이 세 가지 몸에 의하여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는 머무르는 곳 없는 열반[無住處涅槃]을 설하신다. 왜냐 하면 두 가지 몸을 나타내기 위하므로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법신을 여의고서 다른 부처님이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두 몸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가? 두 몸은 거짓 이름[假名]일 뿐 진실하지 않으며 생각생각에 사라져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자주자주 나타나되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신은 그렇지 않으니 그러므로 두 몸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법신이란 또한 이 두 몸과 둘이 아니니 이런 까닭에 반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 세 가지 몸에 의하므로 머무름 없는 열반[無住涅槃]을 설한다.
선남자여, 일체 범부는 세 가지 모습 때문에 얽매이고 막히어 세 가지 몸 멀리 여의어 세 가지 몸에 이르지 못한다.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사유하여 분별하는 모습이요, 둘째는 남에 의하여 일으키는 모습이요, 셋째는 성취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모든 모습은 능히 알 수 없기 때문이며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며 능히 깨끗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몸에 이르지 못하니 이와같은 세 가지 모습을 능히 알고 능히 없애고 능히 깨끗이 하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몸을 구족하셨다.
009_1368_c_02L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은 능히 세 가지 마음을 뽑아 없애지 못하므로 세 가지 몸을 멀리 여의어 능히 이르지 못한다.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일을 일으키는 마음이요, 둘째는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요, 셋째는 근본 마음이다. 모든 번뇌를 조복시키는 도에 의하면 일을 일으키는 마음이 다하고, 법에 따라 번뇌를 끊는 도에 의하면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 다하고, 번뇌를 훌륭히 잘 뽑아내는 도에 의하여 근본심이 다한다. 일을 일으키는 마음이 사라지므로 화신(化身)을 나타내고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지므로 응신을 나타낼 수 있고 근본심이 사라지므로 법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 여래가 세 가지 몸을 갖춘다.
선남자여, 이 처음의 부처님 몸이 중생의 뜻을 따름에 많은 종류가 있으므로 갖가지 모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설함이 많다. 둘째 부처님 몸은 제자가 뜻이 한 가지인 까닭에 한 모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를 설한다. 셋째 부처님 몸은 모든 종류의 모양을 넘어서 모양에 집착하는 경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설하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고 이름한다.
009_1369_a_02L응신이란 시작 없는 옛날부터 나고 죽음이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법[不共法]을 능히 거두어 가지는 까닭에 그리고 중생이 다하지 않으므로 작용 또한 다하지 않는 까닭에 항상하다고 설한다. 이것이 근본이 아니므로, 그리고 온갖 작용을 구족하여 나타내지 못하므로 덧없다고 말한다.
법신이란 지어 가는 법[行法]이 아니며 달라짐이 없고 이것은 스스로가 근본이므로 마치 허공과 같다. 그러므로 항상하다고 설한다.
009_1369_a_05L法身者,非是行法無有異異,是自本故猶如虛空,是故說常。
선남자여,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떠나서 다시 더 훌륭한 지혜는 없으며 존재의 여여함을 떠나서 훌륭한 경계는 없다. 이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 이 두 가지는 여여하다. 여여하니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그러므로 법신은 지혜가 청정하며 사라짐도 청정하다. 이 둘이 청정하므로 법신은 청정함을 구족한다.
다시 선남자여, 분별하면 네 가지 음이 있으니, 화신이되 응신이 아닌 것이 있고, 응신이되 화신이 아닌 것이 있고, 화신이요 또한 응신인 것이 있고, 화신도 아니요 응신도 아닌 것이 있다. 무엇이 화신이되 응신 아닌 것인가? 여래는 이미 반열반하셨으나 서원이 자재하므로 이와 같은 몸은 곧 화신이다. 어떤 것이 응신이되 화신 아닌 것인가? 이것은 십지(十地) 이전 보살의 몸이다. 어떤 것이 화신이요, 또한 응신인 것인가? 유여열반(有餘涅槃)에 머무는 여래의 몸이다. 어떤 것이 화신도 아니고 응신도 아닌 것인가? 이것은 여래의 법신이다.
009_1369_b_02L선남자여, 이 법신이란 두 가지가 나타나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두 가지의 있는 바가 없다고 하는가? 이 법신의 모양과 모양이 있는 끈의 두 가지 모두 없으며, 있음도 아니며 없음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숫자도 아니요, 숫자 아님도 아니요, 밝음도 아니요, 어두움도 아니다. 이와 같이 여여한 지혜는 모양과 모양이 있는 곳을 보지 못하고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님을 보지 못하고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을 보지 못하며 숫자도 아니고 숫자 아님도 아님을 보지 못하고 밝음도 아니며 어두움도 아님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경계도 청정하고 지혜도 청정하여 분별할 수도 없고 중간도 없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도[滅道]의 근본인 까닭에 이 법신에서 여래가 나타나신다.
큰 삼매에 의하여 수능엄(首楞嚴) 등 온갖 선정과 대법염처[大法念] 등 일체의 염처(念處)와 대자대비ㆍ일체의 다라니(陀羅尼)ㆍ육신통 등 온갖 신통ㆍ온갖 자재(自在)로움과 평등하게 거두어 주는 온갖 법, 이와 같은 부처님 법이 다 나타난다. 이 큰 지혜에 의하여서는 부처님의 위대한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ㆍ걸림 없는 네 가지 변재[四無碍辯]ㆍ일백팔십 가지의 다른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법[不共法]과 온갖 보기 드물고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이 다 나타난다.
비록 분별함이 있지만 체(體)에는 분별이 없으며 비록 셋이라는 숫자는 있으나 체에는 셋이 없다.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니 마치 꿈과 허깨비 같으며, 또 잡힐 바[所執]도 없고 또한 능히 잡는 것[能執]도 없다. 존재의 바탕은 여여하여 이것이 곧 해탈한 곳이라 나고 죽음의 경계를 지나 나고 죽음의 어두움을 넘으니 일체 중생은 수행할 수도 없으며 이를 수 없는 바요,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금을 얻고자 하여 곳곳에 찾아다니다가 곧 금광을 보았다. 이미 보고 나서는 곧 금광을 파서 금이 섞인 돌을 골라 화로에 넣어 놓여 다듬어 깨끗한 금을 얻어서, 마음대로 가공하여 반지나 비녀 등 여러 가지 장식품을 만들면 비록 다시 여러 가지로 쓰이지만 금의 성품은 바뀌지 않는다.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훌륭한 해탈을 구하여 세상의 선행을 닦음에 여래와 그 제자들을 보고서 가까워져서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착한 것이며 무엇이 착하지 않은 것입니까? 무엇이 바른 수행으로 청정함을 얻고 청정하지 않음을 떠나는 것입니까?’ 그러면 모든 부처님 여래와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청정함을 구하려고 바른 법을 들으려 하는구나.’ 이와 같이 알고 나서는 곧 바른 법을 설하신다.
이 선남자 선여인이 이미 바른 법을 듣고 바른 생각을 기억하여 가지고 발심하여 수행하여 정진력을 얻어 게으름의 장애를 깨뜨렸다. 게으름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일체의 죄의 장애를 없앴으며 죄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보살의 배우는 곳[學處]에서 존중심이 없는 장애를 깨뜨리고 존중심이 없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는 흔들리고 후회하는 마음[掉悔心]을 깨뜨렸다.
009_1370_a_02L 흔들려 후회하는 마음을 깨뜨리고 나서는 초지(初地)에 들어가고 초지에 의하여 이익의 장애[利益障]를 뽑아내고 이익의 장애를 뽑고 나서는 제이지에 들어가며 제이지에 의하여 닥치지 않은 괴로움의 장애를 깨뜨리고 이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는 제삼지에 들어가며 이 제삼지에 의하여 마음이 부드럽고 깨끗한 장애를 깨뜨리고, 마음이 부드럽고 깨끗한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제사지에 들어간다.
이 사지에 의하여 훌륭한 방편의 장애를 깨뜨리고 훌륭한 방편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오지에 들어가며 이 오지에 의하여 진속(眞俗)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진속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육지에 들어가며 이 육지에서 행하는 모습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행하는 모습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칠지에 들어가며 이 칠지에 의하여 사라지는 모양[滅相]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사라지는 모양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팔지에 들어간다.
이 팔지에 의하여 생기는 모양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생기는 모양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구지에 들어가며 이 구지에 의하여 육신통의 장애를 깨뜨리고, 육신통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십지에 들어가며 이 십지에 의하여 일체의 아는 바 장애[所知障]를 깨뜨리며 일체의 아는 바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근본 마음[本心]을 뽑아 없애고 여래의 자리에 들어간다.
비유하면 허공에 의하여 번개가 일고 번개에 의하여 빛이 나옴과 같다. 이와 같이 법신에 의하므로 응신이 나타나며 응신에 의하므로 화신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품이 지극히 청정하여 법신을 거두어들이며 지혜가 청정하여 응신을 거두며 삼매가 청정하여 화신을 거두어들인다. 이 셋의 청정함이 곧 존재의 여여함이다. 이는 다르지 않은 여여함이며 한맛의 여여함이며 해탈의 여여함이며 구경(究竟)의 여여함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체는 한 가지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여,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있어 여래는 나의 큰 스승이라 말하면 마땅히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여래의 몸은 별다른 몸이 없음을 다 알고 다 보게 됨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일체 경계에 대하여 바르지 못한 생각을 다 끊어 없앴기 때문에 이 법에는 두 모양이 없고 분별도 없다.
009_1370_c_02L 성인이 닦아 행하는 바는 여여하며 두 가지 모양이 없는 법 가운데서 닦아 행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온갖 종류의 장애가 다 사라져 없어진다. 여여하게 온갖 장애가 사라진 이와 같고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는 가장 청정함을 얻는다.
이것이 여여한 지혜의 모습이니, 이와 같이 보는 자는 곧 ‘성인의 견해’라 하고 이것을 곧 ‘진실로 부처님을 본다.’고 한다. 왜냐 하면 여여함만이 여여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가 일체 여래를 본다. 왜냐 하면 성문과 연각은 이미 삼계(三界)를 벗어나 참된 경계[眞境]를 찾지만 능히 보거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선남자여, 일체 여래께서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고 일체법에 큰 자재를 얻으니 걸림이 없는 청정한 지혜로 보는 까닭이며 이것은 스스로의 경계라 남과 함께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을 기꺼이 행하며 이 몸을 얻은 것이다. 이 같은 몸은 가장 높아 비할 데 없으니 이곳은 가장 훌륭하고 불가사의하여 말의 한계를 넘으며 이곳은 고요하여 일체의 두려움을 벗어난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지견(知見)이 여여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으니 수명이 한이 없으며 눕고 잠자는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없으며 몸과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어 산란하거나 움직임이 없다. 만약 여래에게 다투거나 따지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
일체 여래에게는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일이 없으며 일체 경계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생사와 열반에 대하여 다르다는 마음이 없으며 여래가 기약하신 바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부처님 여래는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위의 가운데 지해로 거두지 않음이 없으며 일체 모든 법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자비로 거두어지는 바 되지 않음이 없이 일체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자이니라.
왜냐 하면 이것은 매우 깊은 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선남자는 여래께서 이미 보시고 이미 수기하셔서 마땅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니, 이 선남자는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의 경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이 사람은 여래를 비방하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지 않으며 성스러운 승가를 비방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아직 선근을 심지 않은 모든 중생에게는 선근을 심게 하며 이미 심은 선근은 더 늘리고 성숙하게 한 까닭으로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다 능히 육바라밀을 행하게 된다.”
009_1371_b_02L“세존이시여, 만약 곳곳에 있는 국토에 이 『금광명』의 미묘한 경전을 강설(講說)한다면 그 나라에는 네 가지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넷이냐 하면, 첫째는 국왕과 군인이 강성하여 모든 원적이 없고 모든 병을 여의고 수명이 길어지고 길상(吉祥)하고 안락하며 정법이 훌륭할 것입니다. 둘째는 보필하는 재상대신이 화평하고 기쁘며 다툼이 없어 임금이 공경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셋째는 사문 바라문과 나라와 고을 인민이 정법을 수행하며 이로움이 많을 것이며 수명이 길고 부유하고 안락하며 모든 복전을 다 닦아 일으킬 것이요, 넷째는 하루 세 때 가운데 사대(四大)가 알맞고 고르며 이 모든 인민이 더욱더 잘 지켜서 자비와 평등한 마음이 다치지 않아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정성스런 마음으로 우러러 귀의하여 다 보리의 행을 닦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이익과 공덕으로 저희들이 다 곳곳에 이롭게 할 것입니다.”
1)만자교(滿字敎) : 완전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대승교를 뜻하는 말이다. 소승교를 반자교(半字敎)라고 한다. 대승교는 의리가 원만하여 글자가 완성된 것과 같으므로 만자교라 한다.
2)진공(眞空) : 일체의 색상(色相)을 초월한 참으로 공허한 경지를 말한다.
3)십지(十地) : 보살의 수행 단계를 10단계로 정리한 것이다. 나중에 보살의 수행이 52가지로 정리되자, 그 41번째부터 50번째까지를 가리키게 되었다. 환희지(歓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발광지(発光地)ㆍ염혜지(焔慧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전지(現前地)ㆍ원행지(遠行地)ㆍ부동지(不動地)ㆍ선혜지(善慧地)ㆍ법운지(法雲地) 등이 있다.
4)주(周)나라 : 중국 서주(西周, B.C. 1046~B.C. 771)나 동주(東周, B.C. 770~B.C. 256)가 아닌, 북주(北周, 557~581)를 말한다.
5)도안(道安) : 도안(312~385)은 중국 동진 때의 승려로, 반야학 '본무종'(本無宗)의 대표적 인물이다.
6)명장(明匠) : 출가하여 불법을 닦고 실천하며 포교하는 사람을 뜻한다.
7)구담(瞿曇) : 인도의 석가(釋迦) 종족의 성(姓)으로, 산스크리트어 ‘가우타마(Gautama)’ 혹은 ‘고타마(Gotama)’의 음역어이다.
8)2지(支) : 후한(後漢, 25~220) 때의 월지(月支)의 삼장(三藏)인 지루가참(支婁迦讖)과 오(吳, 238~251)나라 때의 월지(月支)의 우바새(優婆塞)인 지겸(支謙)을 말한다.
9)2축(竺) : 서진(西晉, 265~316) 때에 월지(月支)의 후예[裔]인 돈황삼장(敦煌三藏) 축법호(竺法護)와 서진(西晉) 때에 서역(西域)의 우바새(優婆塞)인 축숙란(竺叔蘭)을 말한다.
10)1백(白) : 삼국시대 위나라[魏] 때의 서역(西域) 삼장(三藏)인 백연(白延)을 말한다.
11)1지(支) :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 2권을 번역한 지겸(支謙)을 말한다.
12)2축(竺) :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 3권을 번역한 축숙란(竺叔蘭)과 『유마힐소설법문경(維摩詰所說法門經)』 1권을 번역한 축법호(竺法護)를 말한다.
13)2참(二讖) : 『대집(大集)』 즉,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의 전부(前部)는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하였으며 후부(後部)는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와 지엄(智儼)ㆍ보운(寶雲) 등이 번역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2참(二讖)이라고 하였으니 2인(人)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나 담무참 외의 1명은 알 수 없다. 담무참은 담마참(曇摩讖)이라고도 하는데 그에 2참이라고 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14)『대집(大集)』 :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을 말하는데, 전체 17품 6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방등이라 함은 대승경전을 통칭하는 말이요, 대집이라 함은 많이 모았다는 말로서, 곧 대승의 교리를 많이 모았다는 뜻이다. 중국 수나라 때 승취(僧就)가 편찬한 경으로, 제1품에서 제11품까지의 26권과 제13품의 3권은 북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했다. 제12품 4권은 송나라 때 지엄(智儼)과 보운(寶雲)의 공동번역(427년)으로, 별행본으로 전해오고 있다. 제14품 12권, 제15품 11권, 제16품 2권은 나련제야사의 번역(566년)으로, 각기 독립되어 있다. 제17품 2권도 후한의 안세고(安世高)가 번역한 것으로, 별행본으로 독립되어 있다.
15)북량[涼世] : 북량(北涼, 397~439)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감숙성(甘肅省)에서 건국된 나라이다.
16)사나굴다(闍那崛多) : 중국 진(陳)ㆍ수(隋) 시대의 번역가로, 북인도 건타라국 사람이다.
17)양(梁) :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에 건국된 남조의 3번째 왕조이다.
18)건강(建康) : 남경(南京)의 고칭으로, 동진(東晋) 및 남조(南朝)의 수도이다.
19)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 등을 행하는 자리를 말한다.
20)삼장 법사(三藏法師) : 경ㆍ율ㆍ논의 삼장에 통달한 고승을 말한다.
21)부가라(富伽羅)는 범어 pudgala의 음사이며,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도 한다. 외도의 60지견(知見) 가운데 하나로 아(我)의 별명이다. 무아(無我)의 뜻으로 보면 생사의 주체로서의 보특가라를 인정하지 않으나, 부파불교의 독자부 경량부에서는 이를 인정한다.
22)니건타는 범어 Nirgrantha의 음사이며, 삼계의 묶임을 여의었다(離緊, 無結]는 뜻이다. 육사외도의 하나로서 고행외도(苦行外道) 또는 나형외도 (裸形外道)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