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을 유행하시다 파질수(巴質樹:晝度樹) 아래의 감유리석(紺琉璃石)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그 위에 앉아 여름 석 달이 다 가도록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셨다.
010_0033_a_04L一時,佛遊於忉利天上,在巴質樹下紺琉璃石,佛坐其上爲母說法,盡夏三月。
대비구의 무리들과 함께하셨는데, 8천이나 되는 비구들은 다 아라한[羅漢]들로서 모든 번뇌가 다하고 신족(神足)이 갖추어져 능히 작위(作爲)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7만 2천 명의 보살은 신통(神通)에 통달해서 모두 다린니(陀隣尼:다라니)를 얻고, 모든 사람들이 마음먹고 있는 것과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알며, 무수한 부처님세계를 자유자재로 어디든 다니는 자들이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권속(眷屬)에게 둘러싸여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계셨다. 이때 제천(諸天)의 무리들 중에 두 천자(天子)가 있었으니, 한 명은 이름이 월(月) 천자이고, 또 한 명은 이름이 월성(月星) 천자였는데, 이들도 그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때 월 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친 다음, 앞으로 나와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지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이와 같이 월 천자가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대신통지(大神通智)를 섭지(攝持)하여 최고의 도무극(度無極:바라밀)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보살이 불가사의한 선권방편(善權方便)을 얻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을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보살이 모든 법을 알아서 일행(一行)으로 삼고 일미(一味)로 삼고 일입(一入)으로 삼고 일교설(一敎說)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혜를 얻어 스스로 자유롭고 남들을 위해 설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보살이 깊고 깊은 계율을 얻어서 방일(放逸)한 행동을 하지 않고 스스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리[無上正眞道]를 이루어 불경계(佛境界)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묻고 싶었던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이를 설명해 주십시오.”
010_0034_a_02L부처님께서 월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천자여, 여래의 업을 익히고 싶어서, 큰 승나승열(僧那僧涅:사홍서원의 갑옷)을 입고 싶어서, 큰 싸움에 뛰어들어 큰 도사(導師)가 되고 싶어서, 모든 것을 제도하고 싶어서, 큰 배를 만들고 싶어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고 싶어서, 큰 보시를 하고 싶어서, 큰 법신(法身)이 되고 싶어서, 큰 법우(法雨)를 내리고 싶어서, 큰 법화(法火)를 피우고 싶어서, 큰 법고(法鼓)를 치고 싶어서, 큰 법번(法幡)을 드날리고 싶어서, 큰 법계(法界)를 설하고 싶어서, 큰 법성(法聲)을 전하고 싶어서, 큰 법영(法英)을 다스리고 싶어서, 큰 법지(法智)를 나타내고 싶어서, 삿된 견해와 제사[祀祠]를 끊고 싶어서, 온전한 큰 제사를 세우고 싶어서,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헤아릴 수 없는 모양의 일들을 지어 모든 자들을 위하고 싶어서 이런 문제들을 여래에게 묻는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자여, 부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라. 내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보살마하살은 큰 지혜를 얻어서 깊고 깊으며 미묘한 계(戒)에 이르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리를 스스로 이루어 가장 바른 깨달음[最正覺]을 이루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불세존이 하는 말을 들어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자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의 법이 있어서 제일차별대통(第一差別大通)의 섭지(攝持)를 체득(逮得)하는 것이다.
010_0034_a_14L佛語天子:“菩薩有四事法,逮得第一差別大通之持。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모든 법의 모양이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법을 구하여 찾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이 다함이 없으므로 안온함을 얻어 배움의 증명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법성(法性)을 벗어난 어떤 법도 보지 않으며 여타의 법계에 대해서도 어떤 희망(悕望)을 가지고 이를 생각하거나 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010_0034_b_02L이와 같이 천자여, 오래도록 앉아서 삼매에 들어 각각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하여 그 공임을 사색하는 것, 이것을 모두를 분명히 아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천자여, 이런 곳을 아는 것을 분별하여 깨달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분명히 깨달아 모든 것이 해결되면 곧 상(相)을 바꾸어 가르치는 것을 얻게 되니, 시처(是處)ㆍ지처(知處)ㆍ조립처(造立處)ㆍ분별처(分別處)ㆍ여시처(如是處)ㆍ해의처(解議處)를 돌려가면서 서로서로 전하는 것을 공덕(功德)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천자여, 모든 법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 또한 나를 생각지 않으며, 나 또한 법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법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법이 머물면 머무는 것이니 천자여, 모든 법이 이와 같아서 이러한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은 모두 이미 없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으면 전전(轉前)을 하는 바, 전전하면 곧 다시는 기멸처(起滅處)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소유(所有)가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다. 무소유와 여법(餘法)에 대하여 사유(思惟)하지만 비록 사유하더라도 여법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설하는 것도 없고 또한 머무는 것도 없으며, 비록 여법에서 대명(大明)을 짓는다 하더라도 그 법을 행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천자여, 모든 법이 허공의 마음과 같음을 보살이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천자여, 삼계(三界)를 조작(造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자여, 마음은 형상이 없고 또한 볼 수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환상[幻]처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마음[心]과 마음의 법[心法]이라지만 마음을 찾아보면 역시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과 마음의 법이라지만 마음은 찾아보아도 도저히 얻을 수 없다. 이 마음은 또 알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마음의 모든 법 또한 얻을 수 없고 또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다. 법은 끝내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모든 존재하는 것 보기를 환상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살핀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이미 지난 것임을 알며, 이미 지난 것이므로 일체 모든 것을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아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이 허공처럼 평등하다는 것을 안다.
010_0034_c_02L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이 모든 법의 법성(法性)을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천자이여, 보살은 모든 법 또한 볼 수 없으며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배운다. 눈도 또한 귀를 보지 못하고 귀도 또한 귀를 알지 못하며, 귀도 또한 눈을 보지 못하고 눈도 또한 눈을 알지 못한다.
모든 법은 움직이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것이라면, 법이란 마땅히 법성이 머무는 곳이라고 어떻게 평등하게 알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눈으로 보고 알아서 법을 분별하고는 그러하고 그러하지 않음을 말하지 않으며 따르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그 항상 머무는 곳을 알게 되며 또한 법에서 쇠퇴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천자여, 이것이 바로 법성(法性)이다. 이와 같은 법성은 또한 일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없지만 또한 모든 법을 나타낸다. 생기는 것도 없고 일어나는 것도 없는 데 머묾으로써 그 머무는 곳[止處]을 이와 같이 자세히 살펴야 하니, 마땅히 눈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혜 또한 그러하다. 또한 법성으로 대하지도 않고 벗어날 것도 없으면서 일으키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면 저 모든 법의 법성이 이로써 모두족할 것이다.
이와 같이 천자여, 이것이 네 가지의 법이니, 보살이 크게 신통한 지혜의 지님을 얻어서 최고의 도무극(度無極)을 얻는 것이다.
010_0034_c_21L如是天子!是爲四事法。菩薩得大神通智之持,得最度無極。
010_0035_a_02L이와 같이 천자여, 무엇을 신통(神通)이라 하고, 무엇을 지혜(智慧)라 하는가? 천자여, 신통이란 모든 법에 대하여 그 요의(要義)를 모조리 아는 것이며, 저 하나하나의 지혜를 모두 남김없이 요해(了解)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자여, 이것을 신통이라고 하니 모든 법에 대하여 아(我)와 아명(我名)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천자여, 아자(我者)이면서도 어긋나지 않는 것, 이것이 법의 지혜이다.
이와 같이 천자여, 지혜는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天眼)의 청정함을 얻어서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도 없는 무수한 억천만의 불찰(佛刹)들을 모두 보고, 이들 불찰에서 모든 불세존과 그 제자의 무리들을 본다. 천이(天耳)를 가지고 모든 불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을 모조리 들어서 이를 모두 이해한다.
이들 모든 불찰에 사는 모든 사람들, 배웠거나 안 배웠거나, 상품이든 중품이든 하품이든 모든 일들을 다 깨달아 안다. 능히 신족(神足)을 지녀 모든 불찰들을 두루 다니면서 노닐고, 지난 세상의 헤아릴 수도 없는 겁(劫) 중에 일어난 일들을 모조리 알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들을 모조리 탐색하여 알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본말을 모조리 알게 된다. 이런 지혜를 지녀 스스로 증득하고, 곧 모든 자들을 위해 법을 설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행으로 해서 5통(通)을 이미 얻게 되며 곧 이로 인해 앞으로 다가가리라. 안온하고 위없는 깨달음으로.
010_0035_c_19L而便於是行, 爲已逮五通,
便因是前近, 安隱無上覺。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 빠짐없이 함께 머물게 될 것이니 아직 도를 얻지 못했다면 도를 당하여 그 이치를 구하리라.
010_0035_c_20L佛之所住者,
皆爲已得住, 其未逮道者, 當道求其議。
이에 모든 법들을 보니 모두 비어서 보이는 것이 없구나. 문득 마음이 마구 들뜨니 그 기쁨이 더할 수가 없어라.
010_0035_c_21L於是視諸法, 皆空無所見, 便發踊躍意,
歡喜無過者。
세상의 모든 마(魔)의 무리들 그 터럭조차 움직일 수 없고 바른 깨달음을 신속히 얻으리니 위없는 최상의 높음이어라.
010_0035_c_23L一切諸魔衆, 無能動其毛,
疾逮得正覺, 無上之最尊。
010_0036_a_02L “천자여,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보살마하살이 불가사의한 선권방편(善權方便)의 공덕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 하는가?
010_0035_c_24L“天子!復有四事法,菩薩摩訶薩逮得不可思議善權方便之功德。何等爲四?
첫째는 전세(前世)를 아는 지혜 공덕을 얻는 것이다. 둘째는 어떤 의탁할 곳이 없는 자, 추위에 떠는 자, 괴로워하는 자, 고통 받는 자, 근심 걱정하는 자 등, 온갖 괴로움을 겪는 그런 자들을 보면 즉시 솟구치듯 마음을 일으켜 이들을 구하고자 하며, 이들을 모두 다 가르쳐서 부처님의 도리를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는 모든 법으로 불의(佛意)를 지녀 일체 중생을 얽어매며, 전세의 멀고 오랜 공덕과 복우(福祐)를 가지고 권조(勸助)하며, 또 모든 과거 부처님들의 복우와 공덕을 가지고 권조하여 모두를 근심과 괴로움에서 해탈시켜 풀려나 멀리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이런 공덕들을 통틀어 고생하고 액난(厄難)을 당하는 자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가령 내 마음이 도에 이르고 싶으면 도 또한 내 마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혜가 곧 마음으로부터 마중을 받고 마음이 곧장 도의 지혜에 이르러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1)를 지니고서 공덕에 있어서 그것을 증익(增益)하고, 법계에 있어서 그것을 허물지 않으며, 가히 사의(思議)할 수 있는 법에 대하여 그 배움이 만족할 줄 모르며, 또한 모든 공덕에 있어서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010_0036_b_02L 인욕(忍辱)의 힘으로 동요하지 않으며, 정진을 더하여 나태하지 않으며, 선(禪)의 삼매에 들어 산란하지 않으며, 지혜로워 어리석지 않는다. 항상 모두에게 공양하며 탐하는 것이 없고, 자비로써 은혜를 갚으며 근심하는 바가 없으며, 생기는 것을 사유(思惟)하여 생기는 것이 없음에 도달하고, 그 설한 법을 근심하며 모두를 도탈케 하고자 근심한다.
천자여, 보살행은 이와 같아서, 그 소복(小福)이라도 아는 자는 그 구화구사라로써 짓는 것이 무수하여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은 이 모든 법에 대하여 이루 계산할 수 없는 지혜를 얻어 모든 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요달(了達)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어째서인가? 천자여, 모든 법은 공하고[空], 상이 없으며[無想:無相], 원하지 않는 것[不願:無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공은 헤아려 분별할 수 없고 마음이 얻은 것도 헤아려 분별할 수 없으니, 작은 공덕을 짓더라도 구화구사라로 짓는 것이 무수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어째서인가? 이와 같이 도(道)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마음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행은 헤아릴 수 없으니, 끝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법 또한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불세존의 도의 법도 또한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업신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계율을 결감(缺減)하는 일 없이 계율을 통해 늘 이익을 얻는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모욕을 참되 설사 욕설을 퍼붓고 업신여기더라도 이를 모두 참아내며, 정진을 통해 모든 선한 덕을 합쳐서 모으며, 참선을 통해 모든 정(定)을 체득하며, 지혜에 있어서 어떤 걸림이나 막힘도 없다.
보살은 모든 법이 일미가 되고 일입이 되고 일설이 됨을 알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지혜가 온갖 지혜의 이치를 모두 이해하여 통달하고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본다. 속제(俗諦)나 도제(道諦)에서 자비로써 법륜을 굴리며, 행할 것이 있으면 이를 행하고, 은혜를 베풀 것이 있으면 그 은혜를 베풀고, 주립(住立)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세우되 곧 법으로써 그것을 주립하며, 법의 크나큰 자비로써 그것을 굴린다.
010_0037_b_02L모든 법에 대하여 이것은 높고 이것은 낮다고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며, 입법(入法)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행법(行法)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며, 또 약간법(若干法)에 대해서도 역시 보는 바가 없다. 범인(凡人)의 법을 익히고 알아서 곧 다시 범인의 법을 행하며, 이 범인의 법에 대하여 역시 추켜세우는 것도 없고 낮추는 것도 없다.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인 이러한 법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한 바, 곧 모든 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모든 법계에서 그 허물어짐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천자여, 이와 같이 보살은 불세존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리에 가까이하지만, 부처님을 가까이한다거나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허물어지게 마련인 사법(事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사람들 간의 차이도 보지 않고, 도리의 차이도 보지 않으며, 모든 사람도 보지 않고, 또한 도리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법계에 대해 시비(是非)를 말하지도 않고 법계에 대해 깨뜨릴 것 없다는 말도 않나니 법계가 이러하듯 모든 것이 이러하니 사유하지 않는다면 이치를 깨닫지 못하리라.
010_0037_b_14L不於法界言是非, 不於法界無所壞,
法界如是一切如, 若不思惟不了義。
모든 법은 공(空)하다고 이미 믿고 6쇠(衰)를 오랫동안 공과 함께하면 모든 법 공적(空寂)하여 자재를 얻으리니 만약 한 곳 공하면 나머지도 그러하네.
010_0037_b_16L已信於法一切空, 六衰久長與空會,
一切法寂得自在, 若一處空餘皆爾。
법에 보는 것 없고 보는 자도 없으며 나란 것도 없으니 얻을 수가 없어라. 이런 것을 내가 만일 배워 얻으면 자세히 살펴서 도의(道意)를 깨치리라.
010_0037_b_18L於法無見無能視, 亦復無我不可獲,
若我學得如是者, 如爲審諦曉道意。
행이 적정(寂靜)하여 공장(空藏)에 미치니 지(止)와 상(相)이 모든 법처(法處)를 따르네. 모든 법이 적연(寂然)함을 모조리 알면 이런 적정에서는 불가함이 없어라.
010_0037_b_20L行應寂靜逮空藏, 止與相隨諸法處,
皆知諸法爲寂然, 於是寂淨無不可。
세간법(世間法)과 최세간법(最世間法)을 모두 알아 의심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으며 원(願)을 끊지 않아 원하고 또 원하며 법을 듣고 항상 생각하여 나태함이 없어라.
010_0037_b_22L世最世閒法皆知, 於是不疑不轉還,
不斷於願願來願, 聞法常念不懈慢。
010_0037_c_02L 셀 수 없는 한량없는 세월에 그 몸이 지은 것 스스로 보지 않고
5도(道)를 돌면서도 법을 보지 않으니 범인(凡人)과 나한(羅漢)도 알 수 있더라.
010_0037_b_24L於無央數不可計, 其身所作不自見,
展轉五道不見法, 凡人羅漢乃能知。
범인이 익힌 것을 항상 생각하여 설하고 이와 같은 일들과 나한의 법을 또한 다시 추켜세우지도 낮추지도 않으며 적정(寂靜)하여 받아들이지 않나니 그렇게 아느니라.
010_0037_c_03L凡人所習常念說, 如是之事羅漢法,
亦復不擧亦不下, 寂靜不受爾乃知。
모든 법수(法數)를 모조리 다 알고 법계에서 파괴하는 것 없으며 인욕(忍辱)과 허공이 다른 것 없으니 모든 법 허공임이 이와 같아라.
010_0037_c_05L一切法數皆悉知, 不於法界有所壞,
忍辱虛空等無異, 諸法虛空皆如是。
인욕이 허공과 같아 생각하는 것 없고 모든 법들이 일지(一智)에 들어가나니 무언가로부터 생김이 없고 습(習)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행하는 도가 어렵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한량없는 도를 가까이하고 이것을 심념(心念)하며 나태함이 없으며 나이건 남이건 법은 이와 같으니 구하여 얻을 것 없음이 깨달음의 도리이니라.
무엇을 몸으로 행한 것이라 하며, 입으로 말한 것이라 하며, 마음으로 염한 것이라 하는가? 몸의 일을 범하지 않아서 죽이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몸이 행하는 선이라 한다.
010_0037_c_16L云何身所行、口所言、心所念?不犯身事、不殺、不盜、不婬,是名爲身行善。
무엇을 입으로 말하는 선이라 하는가?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입으로 말하는 선이다.
010_0037_c_18L云何口所言善?不惡口、不兩舌、不妄言、不綺語,是爲口所言善。
무엇을 마음으로 염하는 선이라 하는가? 질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잘못 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마음으로 염하는 선이라 한다.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010_0037_c_19L云何意所念善?不嫉、不恚、不邪見,是名爲意所念善。如是爲自視悉見。
이런 까닭에 몸과 입과 마음이 행하는 대로 모두를 얻게 되니, 이렇게 하지 않고도 능히 그 덕을 두루 설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또한 파랑도 노랑도 빨강도 하양도 분홍도 아니고, 잡색(雜色)도 아니고 또 안식(眼識)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처럼 또한 의식(意識)으로 분별하여 알 수도 없다.
010_0038_a_02L어째서인가? 이것은 불생(不生)이어서 생기는 것이 없고, 일어난다지만 일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생이어서 생기는 것이 없고 불기(不起)이므로 일어나는 것이 없으므로 드디어 무능설보연(無能說普演)의 덕을 체득(逮得)하게 되며, 이때 마음이 안주하여 흔들리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만나볼 수 없고 두루 연설할 자가 없다. 이와 같이 능히 두루 연설할 자가 없고, 또한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고 이런 행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도 않는다. 마음 또한 볼 수가 없어서 이와 같이 마음을 말하며, 계 또한 그 자취를 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은 깊고 깊은 계의 덕을 체득한다.
또 천자여, 보살은 소견(所見)을 벗어난 몸의 공덕을 알게 되어 소견이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아니, 계(戒)이건 악계(惡戒)이건 모두 짓는 것이 없다.
010_0038_a_09L復次天子!菩薩逮知離所見身功德,知於所見無所起,若戒、若惡戒等無所作。
또한 천자여, 보살은 깊고 깊은 법요(法要)에 들어가 머물게 되어 이와 같이 살펴 배워야 할 모든 일들과 깊고 원대한 행을 모두 다 행하며, 모든 승(乘)의 행들을 모두 다 행한다. 이것을 계(戒)라고 하며, 이와 같은 행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도 속이지 않는 것이니, 이런 것을 깊고 깊은 계[甚深戒]라 한다.
또 천자여, 보살은 계를 범하지 않고 계를 허물지 않으며 계를 잃어버리지도 않는다. 무엇을 보살이 계를 범하지 않고, 계를 허물지 않으며, 계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천자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으면 곧 계를 보호할 수 있다. 천자여, 스스로 알 수 있으면 계를 알아서 이 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배운 것을 빠트리지 않으며, 계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계율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모든 남들의 법을 모두 다 안다. 어디가 남들이 있는 곳이며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남들을 어기지 않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천자여, 이런 까닭에 모든 사람을 건너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천자여, 이것이 그 네 가지의 법이니, 보살은 이처럼 깊고 깊은 계를 얻어서 방일하지 않는다.”